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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펜타곤 페이퍼, 키신저 訪中, 닉슨 쇼크… 역사 흐름 바꾼 그해 여름 [이상돈 명예교수의 지금의 미국 알려면 1970년대 읽어라]

    펜타곤 페이퍼, 키신저 訪中, 닉슨 쇼크… 역사 흐름 바꾼 그해 여름 [이상돈 명예교수의 지금의 미국 알려면 1970년대 읽어라]

    ‘펜타곤 페이퍼가 공개되다’(‘펜타곤 페이퍼’에 대한 과잉 대응이 워터게이트를 초래) 1971년 6월 13일 일요일 아침,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전날 있었던 큰딸 결혼식을 다룬 뉴욕타임스 1면 기사를 보고 있었다. 닉슨은 1면 오른쪽에 나온 베트남전쟁에 관한 국방부 보고서(‘펜타곤 페이퍼’) 기사를 제목만 보고 읽지도 않았다. 멜빈 레어드 국방장관과 존 미첼 법무장관도 이 기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케네디와 존슨 행정부 시절에 미국이 베트남에 어떻게 개입했나를 다룬 비밀보고서를 보도한 기사에 닉슨은 언급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헨리 키신저는 달리 생각했다. 키신저는 닉슨에게 달려와서 “이런 보도를 그대로 두면 안보 정책을 추진할 수 없다”면서 강력한 대응을 주문했다. ● 문서화된 美의 베트남 개입 경위 폭로 뉴욕타임스에 펜타곤 페이퍼를 넘긴 사람이 대니얼 엘스버그(1931~)임은 곧 알려졌다. 랜드연구소 연구원이던 엘스버그는 1964년 여름부터 존 맥노턴(1921~1967) 국방차관보 아래에서 일했다. 1967년 6월,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이 실패하고 있음을 깨달은 로버트 맥너마라 당시 국방장관은 베트남에 미국이 개입하게 된 경위를 문서화하라고 맥노턴 차관보에게 지시했다. 1968년 말에 완료된 이 방대한 문서는 1급 비밀로 분류돼 15부만 만들어졌고 그중 2부가 랜드연구소로 보내졌다. 베트남전쟁에 환멸을 느낀 엘스버그는 랜드연구소로 복귀한 후 이 문서를 몰래 복사했다. 그는 몇몇 의원들을 만나 공개를 부탁했으나 의원들은 난색을 표했다. 그는 뉴욕타임스를 찾아갔고, 이렇게 해서 뉴욕타임스가 보도를 하게 됐다. 키신저의 설명을 들은 닉슨은 이런 보도가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법무부는 뉴욕타임스에 대해 보도 중지를 명령했고, 뉴욕타임스는 법원 심리가 있을 금요일까지 후속 보도를 중단하기로 했다. 그러자 워싱턴포스트가 같은 내용을 보도했고, 법무부가 워싱턴포스트에 중지 명령을 내리자 보스턴글로브와 시카고트리뷴이 보도를 했다. 주요 신문들이 백악관을 상대로 연합전선을 편 양상이었다. 법무부는 대법원에 상고를 했고, 양측은 대법관 9명 앞에서 치열한 법리 공방을 벌였다. 6월 30일, 대법원은 6대3 판결로 뉴욕타임스를 지지했다. 백악관은 보도를 억제하려다가 오히려 큰 타격을 입었다. 법무부는 엘스버그를 방첩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기로 결정했다. 닉슨은 정부 비밀이 언론에 누출되는 데 대해 분노했다. 닉슨은 노년에 접어든 에드거 후버가 이끄는 연방수사국(FBI)이 무력하다고 보고 찰스 콜슨(1931~ 2012) 보좌관에게 적으로부터 미국 정부를 지킬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콜슨은 닉슨 정부를 적대시하는 인물 명단(에너미리스트)을 작성했는데 민주당 정치인, 신좌파 인물, 비판적 언론인은 물론이고 폴 뉴먼 같은 배우도 포함됐음이 나중에 밝혀졌다. 콜슨은 또한 전직 중앙정보부(CIA) 및 FBI 요원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 특별조사팀을 백악관 산하 조직으로 만들었다. 이들은 비밀누출을 막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 자신들을 ‘배관공’(플럼버)이라고 불렀다. 닉슨은 1968년 대선을 앞두고 진행된 베트남 평화협상에 관한 자료가 브루킹스연구소에 보관돼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브루킹스연구소의 보안이 철저해서 특별조사팀은 침투를 포기했다.● 닉슨 정부 과잉 대응 워터게이트 초래 특별조사팀은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해서 정의감에 충만한 제보자로 알려진 엘스버그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자 했다. 이들은 LA에 있는 엘스버그의 정신과 의사 사무실에 침입해서 그의 병력(病歷)을 확인하려 했다. 이들은 야간에 잠입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필요한 내용을 찾지 못하고 철수했다. 백악관에서 뚜렷하게 할 일이 없어진 이 팀은 닉슨 대통령 재선위원회가 발족하자 그곳으로 소속을 옮겼다. 1972년 6월 17일 밤, 이들은 워싱턴DC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침입해서 도청장치를 설치하던 중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이들이 엘스버그의 정신과 의사 사무실을 침입했다는 사실은 1973년 4월에 확인됐고, 이 소식을 들은 담당 판사는 피고인의 권익이 침해됐다는 이유로 엘스버그에 대한 방첩법 기소를 기각했다. 1971년은 닉슨이 추구해 온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결실을 맺은 해이기도 하다. 그해 4월 10일 미국 탁구팀과 언론인들이 1949년 이후 처음으로 베이징을 방문했다. 4월 27일, 주미 파키스탄 대사는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가 파키스탄 대통령을 통해 닉슨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신을 백악관에 비밀리에 전달했다. 저우언라이는 미국 고위인사의 중국 방문을 환영하며 양국 간의 관계는 이때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닉슨은 키신저가 중국을 방문할 것이며 자신은 이듬해에 방문해서 정상회담을 하고 싶다고 회신했다. 7월 1일부터 남베트남, 태국, 인도, 파키스탄을 순방 중이던 키신저는 파키스탄 체류 중 배탈이 나 대통령궁에 머문다고 발표했다. 7월 9일, 중절모를 눌러 쓴 키신저와 그의 일행은 전용기 편으로 이슬라마바드를 출발해서 베이징에 도착했다. 키신저는 저우언라이 등 중국 고위층을 만나서 환담을 했다. 키신저는 미국이 중국을 적으로 삼는 국가와 연합하지 않겠다고 했고, 저우언라이는 미국이 아시아 전역에서 철군해야 한다고 말했다. 7월 15일, 닉슨은 키신저가 베이징에서 저우언라이와 만났으며 자기는 이듬해 봄에 베이징을 방문할 것이라고 발표해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닉슨 쇼크’ 세계 경제사의 한 장 써 닉슨 정부가 들어선 후 미국 경제는 인플레와 경기침체라는 이중고 현상이 심해졌다. 미국의 상품교역 흑자는 1969년부터 급속하게 줄기 시작했고, 1969년에 90억 달러에 달했던 재정흑자는 1970년에 110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존슨 행정부가 베트남전쟁과 ‘위대한 사회’ 복지 프로그램으로 막대한 재정을 지출한 데다가 독일과 일본이 미국의 경쟁자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민간자본시장이 형성된 상태에서 미국이 저금리를 고집하자 달러화가 대거 해외로 유출됐다. 브레턴우즈 협정은 금 1온스를 35달러로 환산하는 금 태환 제도에 기반을 두고 있었는데, 1955년에 217억 달러에 달하던 미국의 금 보유량은 1971년 여름에는 102억 달러로 감소했다. 당시 미국 밖에는 400억 달러가 있어서 미국의 금 보유량은 금 태환 요구를 감당할 수 없는 위험한 수준이었다. 닉슨은 달러가 고평가돼 있고, 금 본위제가 시대착오라고 생각했다. 닉슨은 인플레와 경기침체 그리고 달러화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한 충격요법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1971년 8월 13일, 닉슨은 극비리에 경제 각료와 참모를 대동하고 캠프 데이비드 대통령 별장으로 향했다. 2박 3일에 걸쳐 닉슨의 주재하에 존 코널리(1917~1993) 재무장관, 아서 번스(1904~1987) 대통령 보좌관, 조지 슐츠(1920~2021) 관리예산실장, 폴 매크라켄(1915~2012) 경제자문회의 의장, 폴 볼커(1927~2019) 재무차관보 등은 미국이 처한 경제난국을 돌파하기 위한 대책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들은 달러화의 금 태환을 중단하고, 물가와 임금을 90일 동안 동결하며, 모든 수입품에 대해 10%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8월 15일 저녁 9시, 닉슨은 TV 생방송을 통해 이런 내용을 공표했다. 닉슨의 이 조치는 2차 대전 후 유지돼 온 브레턴우즈 체제를 허물고 변동환율제 시대를 여는 것이었다. 다음날 미국 주가는 폭등했으나 일본 주식시장은 대폭락을 해 일본 언론은 이를 ‘닉슨 쇼크’라고 불렀다. 닉슨은 그날 세계 경제사의 한 장을 써내려 간 것이다. 역사의 흐름을 바꾼 1971년 여름 두 달이 이렇게 지나갔다. 중앙대 명예교수
  • “입 벌리고 소리내 씹어야 더 맛있다” 英 연구진…식사예절은?

    “입 벌리고 소리내 씹어야 더 맛있다” 英 연구진…식사예절은?

    음식을 더 맛있게 먹고 싶다면 입을 크게 벌린 상태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먹는 게 좋다는 영국 과학자의 조언이 나와 눈길을 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21일(현지시간)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옥스퍼드대학 실험심리학과 찰스 스펜스 교수와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통용되는 식사 예절과는 별개로, 입을 벌리고 씹을 때 음식의 풍미를 훨씬 더 잘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스펜스 교수팀은 시각, 후각, 촉각, 청각, 미각 등 오감이 음식에 대한 인식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고기, 과일, 야채 등 우리가 주로 먹는 음식에는 기분 좋은 향을 내는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이 들어있는데, 입을 크게 벌리고 음식을 먹을수록 더 많은 VOCs가 코안 쪽 후각 세포를 자극해 음식을 더욱 매력적으로 느끼게 한다고 스펜서 교수는 설명했다. 또한 입을 크게 벌리고 식사할 때 발생하는 소리도 식사를 더욱 즐겁게 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는 소란스러운 소리를 내는 음식을 좋아한다”며 “아삭하고 바삭한 음식을 떠올려보라. 사과와 감자 칩은 씹는 소리가 커질수록 더 맛있게 여겨진다”고 말했다. 스펜스 교수는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사용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기도 했다. 그는 “무가리츠(스페인에 있는 유명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는 고객에게 나이프와 포크를 제공하지 않고 한 시즌을 보낸 적도 있다”며 “사과를 한입 베어 물기 전에 사과의 매끄럽고 유기적인 사과 껍질의 감촉을 느끼는 것은 첫 한입의 풍미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펜스 교수는 “손으로 식사를 한 후 손가락을 핥는 것은 예절을 중시하는 집단에서 권장되지 않는다”면서도 “최고의 감각적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는 예절을 잊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방법은 식사예절을 중하게 여기는 이들에겐 혐오스러운 것이 될 수 있다고 더타임스는 경고했다. 국내에서도 다른 사람과 식사할 때 입안의 음식물을 보이지 않고, ‘쩝쩝’ 소리를 내지 않고 먹는 것이 식사 예절로 꼽히고 있다.
  • 다이애나비 인터뷰 하려고…왕자 돌본 유모 ‘불륜·임신설 조작’한 BBC

    다이애나비 인터뷰 하려고…왕자 돌본 유모 ‘불륜·임신설 조작’한 BBC

    유모와 찰스 왕세자의 불륜‧임신설유모 측 “BBC, 다이애나비 인터뷰 추진 중 루머 퍼뜨려”영국 BBC가 과거 다이애나비 인터뷰를 성사시키기 위해 두 아들을 돌본 유모의 불륜·임신설도 조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BBC는 21일(현지시간) 다이애나의 아들들을 돌본 유모에게 과거 다이애나 인터뷰와 관련해 사과하고 상당 금액을 배상키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더 타임스에 따르면, 배상금액은 20만파운드(약 3억1000만원)다. ● 1995년 ‘유모와 찰스’ 불륜설 조작한 BBC 기자 BBC는 1995년 11월 방영된 ‘파노라마’ 프로그램에서 다이애나 인터뷰를 위해 악의적인 의혹을 조작했음을 인정했다. 당시 마틴 바시르 전 BBC 기자는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찰스 왕자와 불화가 있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성사시켰다. 하지만 지난 2020년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동생인 스펜서 남작은 당시 마틴 바시르 기자가 인터뷰를 하기 위해 조작된 서류를 활용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인터뷰를 성사시키기 위해 유모인 알렉산드라 프티퍼가 찰스 왕세자와 불륜 관계이고, 아이를 가졌다가 지웠다는 루머를 조작했다는 것이다.법원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1995년 10월 다이애나는 자신의 변호인에게 프티퍼가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으며 관련 증명서를 곧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프티퍼는 이 의혹이 사실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의 의료 기록까지 보여줬지만 다이애나는 믿지 못했다. 프티퍼의 변호인은 이날 런던 고등법원에서 합의문을 발표하면서 “프티퍼는 그동안 의혹의 출처를 몰랐는데 BBC가 인터뷰를 성사시키려던 중에 나온 것 같으며, 이로 인해서 심각한 개인적 피해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BBC 팀 데이비 사장은 성명에서 “프티퍼와 찰스 왕세자, 그의 아들들에게 다이애나를 속인 것과 그로 인한 영향에 관해 사과하고 싶다”고 고개 숙였다. 이어 데이비 사장은 “해당 프로그램을 다시는 방영하지 않고 다른 방송사에도 일부 방영도 승인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퇴직 대법관 존 다이슨은 BBC 의뢰로 조사를 한 뒤 바시르의 사기로 다이애나 인터뷰가 성사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조사 결과 바시르는 다이애나비의 환심을 사 인터뷰를 성사시키기 위해 여러 건의 조작된 서류를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윌리엄 왕세손은 지난해 BBC 인터뷰가 부모의 사이를 악화시킨 주요인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이후 BBC는 인터뷰 관련자들에게 잇따라 배상을 하고 있다. 마틴 바시르 기자는 다른 방송으로 이직했다가 지난 2016년 BBC로 복귀했다. 하지만 이 조작 인터뷰가 문제되자 지난해 5월 다시 BBC에서 퇴사했다. 바시르 기자는 서류 조작은 인정하면서도 서류조작과 다이애나 왕세자비 인터뷰 성사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 트럼프, 멜라니아와 前부인 장례식…2m 넘은 막내아들[포착]

    트럼프, 멜라니아와 前부인 장례식…2m 넘은 막내아들[포착]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첫째 부인인 이바나 트럼프의 장례식에 가족과 함께 참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현재 아내인 멜라니아 트럼프는 20일(현지시간) 이바나의 장례미사가 치러진 뉴욕시 맨해튼 어퍼이스트의 한 성당에 모습을 나타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이바나 사이에서 태어난 도널드 주니어, 이방카, 에릭 등 세 자녀는 금색으로 장식된 고인의 관을 따라 성당에 들어섰다. 두 번째 부인 말라 메이플스에게서 태어난 티파니 트럼프도 가족과 함께 장례식에 참석했다. 현재 부인 멜라니아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 아들 배런 트럼프도 참석했다. 2006년생으로 올해 16세지만 188cm인 트럼프보다 훨씬 큰 모습이었다. 배런의 키는 2m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장례미사에는 폭스뉴스 진행자 지닌 피로, 이방카의 시아버지인 찰스 쿠슈너, 고인의 오랜 친구인 디자이너 데니스 바소 등도 참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장례미사 직전 자신의 소셜미디어 플랫폼인 ‘트루스 소셜’을 통해 “매우 슬픈 날이지만 동시에 멋지고 아름다운 삶을 기념하는 날”이라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앞서 발표한 성명을 통해서는 “이바나는 아름답고 훌륭한 여인이었다”며 조의를 표했다.모델 출신 이바나…사업가로 인정 체코 태생인 이바나는 1970년대 초반 모델로 활동하다 1976년 뉴욕에서 부동산 개발업에 종사하던 트럼프를 만나 이듬해 결혼했다. 결혼 후에는 트럼프그룹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담당하며 맨해튼의 트럼프타워와 뉴저지 애틀랜틱시티의 카지노 개장을 주도하는 등 사업가로서의 능력도 인정받았다. 1980년대 뉴욕에서 유명한 ‘파워 커플’로 이름을 날렸으나, 1992년 이혼 후에는 각자 새 배우자를 만났다. 이바나는 1992년 트럼프와 이혼한 뒤 이탈리아 사업가인 리카르도 마주첼리와 결혼했고, 2008년에는 20세 이상 연하인 이탈리아 모델 로산노 루비콘디와 세 번째 결혼했지만 1년 후 이혼했다. 이바나는 지난 14일 맨해튼의 자택에서 사고로 인한 외부 충격으로 향년 73세로 사망했다. 공식적인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소방당국은 그가 심장마비를 일으킨 것으로 보고 있다.전 남편 향해 “골프나 쳐야” 쓴소리 이바나는 2020년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전 남편 트럼프를 향해 “패배자로서의 좋은 모습이 아니다”라며 “트럼프는 돈이 많고, 갈 곳도 살 곳도 있다. (퇴임 이후) 인생을 즐길 수 있다.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로 내려가 골프를 치며 평범하게 사는 것이 트럼프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확신하건대 트럼프는 패배자가 되는 걸 싫어한다. 트럼프는 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우려 할 것”이라며 “어쨌든 이 모든 일이 끝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낳은 아이들이) 워싱턴DC가 아니라 그냥 뉴욕으로 가서 평범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 ‘흑인 해변’이란 이유로 빼앗긴 땅 되찾는 데 98년 걸렸다

    ‘흑인 해변’이란 이유로 빼앗긴 땅 되찾는 데 98년 걸렸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의 맨해튼비치 시에는 브루스비치란 해변이 있다. 1912년 흑인 부부 찰스와 윌라 브루스가 1225달러를 주고 매입했다. 당시는 인종차별이 엄연해 백인들이 쉬는 해변에 흑인들이 함부로 드나들 수 없었다. 해서 흑인들만 이용할 수 있는 리조트를 짓겠다는 것이 브루스 부부의 야심찬 계획이었다. 윌라는 당시 인터뷰를 통해 “해변 리조트를 짓기 위해 어디든 땅을 매입하려 했는데 계속 거절만 당했다. 하지민 이 땅을 소유하게 됐고 난 간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문 대변인 칩 듀웨인 셰퍼드는 “캘리포니아 남부가 아닌 곳에서도 쉬려고 이곳을 찾아오는 흑인들의 성채였다”고 돌아봤다. 그러나 백인들은 가만 있지 않았다. 백인 주민들은 당국에 저지할 것을 압박했고,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큐 클럭스 클랜’(KKK)은 인종차별적인 위협을 가했다. 견디다 못한 시의회는 1924년 이곳에 공원을 조성하겠다며 몰수해 버렸다. 그런 시대였다. 100년 전은 그랬다고 해도 그 뒤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수십년 동안 공원을 조성하려는 움직임조차 없어 텅 비어 있었다. 그 뒤  LA 카운티로 소유권이 넘어가 구조요원 훈련 본부와 주차장으로 사용돼 왔다. 그 사이 이 땅의 가치는 2000만 달러(약 260억 원)로 상승했다고 CNN 방송은 전했다. 브루스 부부의 후손들에게 이 부지를 돌려줘야 한다며 현지 시민단체들이 2년 전부터 반환 운동에 나섰고, LA 카운티가 마침내 지난 28일(현지시간) 이 가문 상속자들에게 이 땅을 돌려주는 절차를 완료했다고 밝혔다.LA 카운티 행정 감독관 재니스 한은 “1세기 전 브루스 부부를 상대로 저지른 부당한 행위를 결코 만회할 수 없고 과거를 바꿀 수도 없지만, 이번 조치는 새로운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카운티는 브루스 가문 후손들에게 소유권을 돌려주고, 구조대원 훈련 시설 등을 유지하기 위해 우선 2년 동안 이 땅을 임대해 사용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브루스 가문에는 연간 임대료로 41만 3000 달러(약 5억 4000만원)다. 또 미래에 이 부지를 매입하면 2000만 달러를 얹어 지급하는 것을 약속하는 조항을 넣었다. 그동안 재산권 행사를 못해 입은 손실을 이런 식으로라도 배상하겠다는 취지다. 가문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잃어버린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시의 범죄 행위와 가족에게 가해진 테러를 기억하는 것”이라며 “이것은 정의를 향한 한 걸음”이라고 말했다. 부부의 증증손자인 앤서니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우리는 확신하지 못했다. 달콤쌉싸래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 비극이 된 희망…‘찜통 트럭’속 과테말라 자매의 마지막 말 [美 이민자 트럭 참사]

    비극이 된 희망…‘찜통 트럭’속 과테말라 자매의 마지막 말 [美 이민자 트럭 참사]

    지난 27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 버려진 대형 트럭 안에서 이민자들의 시신이 발견돼 당국이 수사 중인 가운데, 아메리칸드림을 꿈꿨던 희생자들의 신원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오후 6시쯤 근처에 있던 한 시민이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듣고 신고했고, 경찰이 트레일러 밖에 쓰러져 있는 시신을 발견했다. 이후 소방 당국과 현지 경찰은 철도 선로 옆 수풀가에 있던 트레일러에서 시신 46구와 4명의 어린이를 포함한 16명의 생존자를 발견했다.현재까지 희생자는 51명까지 늘어난 가운데, 가장 먼저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과테말라 출신의 자매다. 자매는 참사가 발생한 트럭에 타고 있던 과테말라 국적의 이민자 7명 중 2명이었다. 생존자에 따르면 자매 중 한 명은 트럭에 올라타기 전 “(미국으로 가서 꿈도 이루고 가족도 도울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희생된 자매의 나이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사진상으로 보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이들 자매는 ‘아메리칸드림’을 펼쳐보기도 전, 햇빛으로 달궈진 트레일러 안에서 질식 또는 온열질환으로 목숨을 잃었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참사 당일 해당 지역의 한낮 기온은 섭씨 39도에 달했다. 그러나 트럭 안에는 에어컨은커녕 마실 물조차 없었다. 찰스 후드 샌안토니오 소방서장은 “우리 대원들은 누구도 (시신이 쌓여있는) 장면을 상상하며 현장에 가지 않았다”면서 “시신 더미를 발견했을 당시의 공포는 말할 수 없는 정도였다. 이는 설명하기 어려운 비극”이라고 말했다. 이어 “생존자들의 몸이 만질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고 탈수 상태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현재까지 확인된 생존자는 13명이다. 당초 16명이 구조됐었지만, 이들 중 3명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사망했다.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생존자 중 가장 어린 사람은 과테말라 출신의 16세 소녀로 알려졌다. 참사가 발생한 샌안토니오는 멕시코와 맞닿은 지역으로, 미국 남부 국경을 넘는 이민자들의 주요 경유지다. 해당 지역에서는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국경을 넘는 불법 이민자들의 비극이 이어져 왔다. 2017년에는 샌안토니오 월마트에 주차돼 있던 트럭에 갇혀 있던 이주자 10명이 사망했고, 2003년에는 이 도시 남동쪽 찜통 같은 트럭에서 19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근 수십 년 이래 최악의 이민자 사망 사건”이라고 평한 가운데, 현지 경찰은 현장에서 도주했던 트럭 운전사를 체포해 조사 중이다. 체포된 트럭 운전사는 “멕시코와 미국 국경 검문소를 넘을 때까지도 이주민들이 트럭에 있는지 몰랐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 당국은 범죄 조직과 연관이 있는 불법 이민 알선 조직이 관여했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불법 이민자들은 브로커에게 8000~1만 달러(한화 약 1040~1300만 원)을 건네고 국경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 ‘6·25 영웅’ 웨버… 태극기·성조기 품고 美국립묘지 잠들다

    ‘6·25 영웅’ 웨버… 태극기·성조기 품고 美국립묘지 잠들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분단 상황과 한국전쟁, 그리고 한국을 지키다 희생된 사람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지난 4월 9일 별세한 윌리엄 웨버(97) 미군 예비역 대령의 안장식이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거행된 22일(현지시간) 부인인 애널리 웨버(93)는 “그의 헌신은 한국에서 잊히지 않을 것”이라는 조태용 주미대사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옆에 있던 웨버 대령의 며느리인 베스 체임버 웨버는 “언제나 한국이 (시아버지에게) 경의를 표해 줘서 고맙다. 그는 민주주의에 대해 신념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2시간 정도 진행된 이날 안장식에는 웨버 대령의 손녀 등 가족과 재향군인회 인사 등 70여명이 참석했다. 웨버 대령의 관은 말 여섯 마리가 끄는 마차에 실려 안장식 장소로 이동했고, 이곳에서 최고의 예우를 의미하는 예포 21발이 울렸다. 70여명의 의장대도 동원됐다. 이날 낮 온도는 32도를 웃돌았지만 안장식 중 그의 영면을 슬퍼하듯 갑자기 10분가량 거센 소나기가 쏟아지기도 했다. 그의 관에는 미국 국기인 성조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들어갔다. 한국전 참전용사인 찰스 치플리(91)는 동료 웨버 대령을 추모하며 “우리는 한국전쟁 당시 한국이라는 나라를 처음 들었지만, 공산주의를 막는 전선에서 (한국과) 동료가 됐다. 이제 한국이 크게 발전해 기쁘다”고 말했다. 조 대사는 “웨버 대령의 뜻을 기려 한미 동맹이 미래세대에서도 튼튼히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한미 동맹이 한국의 가장 중요한 외교적 자산으로 우뚝 서도록 하는 것이 제 소명”이라고 했다. 웨버 대령은 공수 낙하산부대 작전장교(대위)로 한국전쟁에 참전해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등에서 활약하던 중 오른팔과 오른 다리를 잃었다. 전역 후에는 한국전 참전용사기념재단(KWVMF) 회장을 맡아 워싱턴DC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 내 ‘추모의 벽’ 건립 사업에 참여했다. 지난해 5월 추모의 벽 착공식 때 한 ‘왼손 경례’로 널리 알려졌고 참전기념공원 내 ‘19인 용사상’의 모델 중 한 명이다. 지난 4월 웨버 대령의 별세 소식에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 모두 조전을 보낸 바 있다. 이날 그가 거주하던 메릴랜드주 프레더릭을 출발한 운구 행렬은 완공된 추모의 벽을 보고 싶다던 생전 그의 바람에 따라 지난 6월 초 모습을 공개한 추모의 벽을 들렀다 알링턴 국립묘지로 이동했다. 주미대사관 관계자는 “한국전쟁 72주년을 사흘 앞둔 가운데 안장식이 열려 더욱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 [르포]‘왼손 경례’ 웨버 대령 안장…“한국 청년들 전쟁 잊지 않길“

    [르포]‘왼손 경례’ 웨버 대령 안장…“한국 청년들 전쟁 잊지 않길“

    한국전쟁 참전했다 팔다리 잃은 웨버 안장식알링턴 국립묘지서 70여명 참석한 채 거행관에는 성조기와 태극기 넣고 21발 예포뜨거운 날씨에 영면 슬퍼하듯 소나기 쏟아져“한국의 젊은이들이 분단 상황과 한국전쟁, 그리고 한국을 지키다 희생된 사람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지난 4월 9일 별세한 윌리엄 웨버(97) 미군 예비역 대령의 안장식이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거행된 22일(현지시간) 부인인 애널리 웨버(93)는 “그의 헌신은 한국에서 잊히지 않을 것”이라는 조태용 주미대사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 옆에 있던 웨버 대령의 며느리인 베스 체임버 웨버는 “언제나 한국이 (시아버지에게) 경의를 표해 줘서 고맙다. 그는 민주주의에 대해 신념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2시간 정도 진행된 이날 안장식에는 웨버 대령의 손녀 등 가족과 재향군인회 인사 등 70여명이 참석했다. 웨버 대령의 관은 말 여섯 마리가 끄는 마차에 실려 안장식 장소로 이동했고, 이곳에서 최고의 예우를 의미하는 예포 21발이 울렸다. 70여명의 의장대도 동원됐다. 이날 낮 온도는 32도를 웃돌았지만 안장식 중 그의 영면을 슬퍼하듯 갑자기 10분가량 거센 소나기가 쏟아지기도 했다. 그의 관에는 미국 국기인 성조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들어갔다.한국전 참전용사인 찰스 치플리(91)는 동료 웨버 대령을 추모하며 “우리는 한국전쟁 당시 한국이라는 나라를 처음 들었지만, 공산주의를 막는 전선에서 (한국과) 동료가 됐다. 이제 한국이 크게 발전해 기쁘다”고 말했다. 조 대사는 “웨버 대령의 뜻을 기려 한미 동맹이 미래세대에서도 튼튼히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한미 동맹이 한국의 가장 중요한 외교적 자산으로 우뚝 서도록 하는 것이 제 소명”이라고 했다. 웨버 대령은 공수 낙하산부대 작전장교(대위)로 한국전쟁에 참전해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등에서 활약하던 중 오른팔과 오른 다리를 잃었다. 전역 후에는 한국전 참전용사기념재단(KWVMF) 회장을 맡아 워싱턴DC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 내 ‘추모의 벽’ 건립 사업에 참여했다. 지난해 5월 추모의 벽 착공식 때 한 ‘왼손 경례’로 널리 알려졌고 참전기념공원 내 ‘19인 용사상’의 모델 중 한 명이다. 지난 4월 웨버 대령의 별세 소식에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 모두 조전을 보낸 바 있다.이날 그가 거주하던 메릴랜드주 프레더릭을 출발한 운구 행렬은 완공된 추모의 벽을 보고 싶다던 생전 그의 바람에 따라 지난 6월 초 모습을 공개한 추모의 벽을 들렀다 알링턴 국립묘지로 이동했다. 주미대사관 관계자는 “별세 후 국립묘지 안장식까지 통상 6개월이 걸리는데 이례적으로 빨리 진행돼 한국전쟁 72주년을 사흘 앞둔 가운데 안장식이 열려 더욱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 [마감 후] 오세훈의 길, 오스만 남작의 길/이두걸 사회2부 차장

    [마감 후] 오세훈의 길, 오스만 남작의 길/이두걸 사회2부 차장

    “범죄와 악취가 그득하고 좁고 구불구불한 거리…곳곳에 물웅덩이가 있는 진흙탕길에는 돌멩이가 널려 있어 발에 차이기 십상이었고, 길 한가운데는 정비가 시급한 도랑이 흘렀다.” 영국의 문호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 5장 ‘술집’ 중 한 대목이다. 해당 문장의 배경은 프랑스 파리다. 19세기 언저리 파리는 전형적인 중세 도시였다. 난개발로 인해 대로는 많지 않았다. 대신 좁고 미로 같은 골목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만들어졌다. 골목 양편으로는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대낮에도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상하수도가 정비되지 않은 탓에 비라도 내리는 날엔 거리가 생활하수와 오수로 넘쳐나는 ‘거대한 화장실’로 변모했다. 1666년 대화재를 겪은 이후 4차선 도로를 갖춘 근대 도시로 거듭난 런던에 비할 바 아니었다. 파리가 근대 도시로 변모한 것은 1852년 파리 등 센 지역 도지사로 조르주외젠 오스만 남작이 임명된 게 계기가 됐다. 나폴레옹 3세는 런던 망명 시절 파리를 개조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황제 자리에 오르자 오스만 남작을 내세워 이를 실행한다. 오스만 남작은 도시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1870년까지 도시 전체를 체계적으로 건설했다. 그는 기차역과 주요 광장을 연결하는 직선의 대로들을 만들었다. 파리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리볼리거리와 남북으로 뻗은 생미셸거리는 그의 작품이다. 대로 주변으로는 ‘오스만 양식 건물’로 불리는 고층 빌딩들을 세웠다. 상하수도망이 확충되는 동시에 크고 작은 녹지들이 곳곳에 마련된 것도 이때였다. 거리마다 가스등도 확충됐다. 엄청난 재정 부담에도 오스만 남작과 나폴레옹 3세는 사업을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그 결과 파리는 가장 현대화되면서도 아름다운 ‘빛의 도시’로 거듭났다. 다만 파리 개조 사업의 ‘그림자’도 존재했다. 주거지 사이로 대로를 뚫어야 했기에 수만여 채의 가옥이 헐렸다. 공사 뒤에는 임대료가 크게 치솟았다. 도심에 살던 하층민들은 구도심 못지않게 열악했던 시 외곽으로 밀려나야 했다. 미로를 없애고 대로를 건설한 것은 감시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이에 “발터 베냐민에서 미셸 푸코에 이르는 비판적 지식인들은 오스만의 도시 계획이 프랑스혁명 이후 폭동과 소요의 중심이 된 파리를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뤄졌다고 평가했다.”(정수복, ‘파리를 생각한다’ 중) 서울시도 도심 재개발을 준비 중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4월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을 발표했다. 높이 제한과 용적률 등 규제를 과감히 풀고, 공공 기여로 서울 도심의 녹지율을 15% 이상 끌어올린다는 게 뼈대다. “세운지구를 보면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라는 오 시장의 말은 과하지 않다. 지난 10여년간 개발이 중단된 세운지구는 근 반 세기 전으로 시계가 멈춰 있는 모습이다. 전통 한옥지구처럼 보존 가치가 큰 것도 아니다. 다만 그곳에서도 누군가는 장사를 하고 공장을 돌려 먹고산다. 하루의 노동을 끝내고 고단한 몸을 누일 공간이기도 하다. 물론 사업이 실제 진행되려면 10년 이상 걸릴 공산이 크다. 하지만 첫 단추를 잘못 꿰면 건물주와의 갈등으로 최근 강제 철거된 ‘을지OB베어들’이 양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오 시장이 선거 과정에서 내건 ‘약자와의 동행’에서 ‘동행’은 같이 걷는 이의 사정과 마음을 살피는 ‘화학적’ 보폭을 맞추는 것까지 포함한다. 오 시장이 본받아야 하는 건 오스만의 뚝심이고, 단절해야 하는 건 오스만의 무감함인 까닭이다.
  • ‘영국 왕위 계승 서열 2위’ 윌리엄 왕세손, 빅이슈 판매원 변신

    ‘영국 왕위 계승 서열 2위’ 윌리엄 왕세손, 빅이슈 판매원 변신

    영국의 왕위 계승 서열 2위 윌리엄 왕세손이 런던 거리에서 노숙자의 자활을 돕는 대중문화잡지 ‘빅이슈’ 판매원으로 깜짝 변신했다. 9일(현지시간) BBC에 따르면 이날 런던 중심부 웨스트민스터 주변에서 윌리엄 왕세손이 행인들에게 빅이슈를 파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에는 윌리엄 왕세손과 함께 찍은 사진과 목격담이 속속 올라왔다. 택시 운전사 닐 크레이머는 윌리엄 왕세손이 매력적이고 정중했다며 “우리는 자선단체와 그 일에 대해서 15분간 멋진 대화를 나눴다”고 덧붙였다. 빅이슈는 1991년 영국에서 창간한 대중문화잡지다. 윌리엄 왕세손은 오랫동안 노숙자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으며, 지난 2005년부터 노숙자 관련 자선 단체인 ‘센터포인트’를 후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왕세손의 어머니인 고 다이애나비도 생전 자선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 눈길을 끌었다. 최근 엘리자베스 2세의 건강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윌리엄 왕세손의 인기는 아버지 찰스 왕세자를 앞지르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윌리엄 왕세손의 지지율은 66%로 찰스 왕세자(50%)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 [포착] 英 4살 루이 왕자, 찰스 왕세자 무릎 위 천진난만 미소

    [포착] 英 4살 루이 왕자, 찰스 왕세자 무릎 위 천진난만 미소

    증조할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즉위 70주년 행사에 참석한 4살 루이 왕자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또 다시 화제를 모았다. 5일(현지시간) 루이 왕자는 버킹엄궁 앞 관객석에서 가족들과 플래티넘 주빌리 퍼레이드를 관람했다. 본식만 3시간에 달할 정도로 긴 행사이다 보니 아직 어린 루이 왕자는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점잖은 8살 형 조지 왕자나 7살 누나 샬럿 공주와 달리 루이 왕자는 벌떡 일어서거나 웃긴 표정을 짓고 하품을 하거나 장난을 쳤다. 텔레그래프지에 따르면 루이 왕자는 이것 저것 가리키며 어머니인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빈에게 계속 물어보고 사자가 등장했을 땐 사자 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결국 할아버지인 찰스 왕세자가 무릎 위에 앉혀서 음악에 맞춰 흔들며 놀아주는 모습이 포착됐다.앞서 루이 왕자는 첫날 버킹엄궁 발코니 행사 때도 여왕 옆에 서서 비행기 소리에 귀를 막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며 화제가 됐다. 어머니가 전투기들이 하늘에 숫자 ‘70’을 그렸다고 설명해주자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보기도 했다. 군기분열식을 위해 버킹엄궁에서 마차를 타고 갈 때는 형인 조지 왕자와 누나인 샬럿 공주 사이에 앉아서 손을 흔들었는데, 너무 열심히 흔든 나머지 샬럿 공주가 가볍게 제지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루이 왕자는 이번 플래티넘 주빌리 등장으로 “여왕보다 눈에 띄는 루이 왕자”라는 수식어와 함께 ‘신스틸러’라는 별명이 붙었다.
  • 여왕 즉위 70년 열광하는 英… “그녀 이후엔?” 숙제 커졌다

    여왕 즉위 70년 열광하는 英… “그녀 이후엔?” 숙제 커졌다

    “폐하, 엄마(Your Majesty, Mummy).” 4일(현지시간) 영국 버킹엄궁 앞 무대에 오른 찰스 왕세자의 애틋한 첫마디에 뜨거운 환호성이 쏟아졌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70주년을 기념하는 ‘플래티넘 주빌리’ 행사 셋째 날 찰스 왕세자는 여왕을 향한 헌사를 바쳤다. 찰스 왕세자는 “당신은 우리와 함께 웃고 울었으며, 무엇보다 70년 동안 자리를 지키셨다”면서 “당신은 평생 봉사하고 계신다. 그것이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날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퀸 등이 총출동한 콘서트가 열린 가운데 여왕은 ‘일시적 거동 문제’로 콘서트에 나타나지 않았다. 왕실은 여왕이 영국의 대표 캐릭터 ‘패딩턴 베어’와 차담을 나누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영국을 비롯한 영연방 전역이 성대한 축제 분위기에 빠져 있는 한편에서는 영국 왕실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논쟁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여왕이 헌신과 봉사의 상징으로 영국 국민들을 통합하는 역할을 해 왔지만, 여왕 이후의 왕실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영국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군주제가 유지돼야 한다고 응답한 영국 국민은 62%로 10년 전 7월 조사(75%)보다 줄었다. 18~24세 사이에서는 선출된 국가수반이 국왕을 대체해야 한다(31%)는 여론이 군주제가 유지돼야 한다(33%)는 여론과 맞먹었다. 영국의 과거 제국주의를 토대로 왕실이 누리는 부와 권력,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의 미성년자 성폭행 의혹 등 각종 추문도 영국의 젊은 세대가 왕실로부터 등을 돌리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외신들은 분석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3일 칼럼을 통해 “미투 운동, 흑인 인권운동 등을 계기로 대중들 사이에서는 왕족이 누리는 특권에 대한 관용이 시들해졌다”면서 “영국 군주제는 현대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연방 국가들 사이에서 확산되는 원주민 및 흑인의 권리 신장 요구는 영국의 식민주의 유산과 거리를 두려는 기류로 이어지고 있다. 카리브해 섬나라 바베이도스는 지난해 12월 입헌군주국에서 공화국으로 전환했다. 호주 원주민들의 권리 신장을 추구하는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신임 총리는 플래티넘 주빌리 첫날인 지난 2일 영국과 호주가 종속 관계가 아닌 “동등한 관계”라고 선언했다.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을 대표하는 정당인 ‘테 파티 마오리’는 헌법을 개정해 영국 국왕을 국가원수에서 없애자는 청원을 펼치고 있다. 여왕이 서거한 뒤 영연방 국가들 사이에서 공화국으로 전환하려는 요구가 줄을 이을 수 있다고 FT와 미 뉴욕타임스(NYT)는 지적했다.
  • “왕실이 나와 무슨 상관” 젊은층 외면 … 英왕실의 미래는

    “왕실이 나와 무슨 상관” 젊은층 외면 … 英왕실의 미래는

    “폐하, 엄마(Your Majesty, Mummy).” 4일(현지시간) 영국 버킹엄궁 앞 무대에 오른 찰스 왕세자의 애틋한 첫마디에 뜨거운 환호성이 쏟아졌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70주년을 기념하는 ‘플래티넘 주빌리’ 행사 셋째 날 찰스 왕세자는 여왕을 향한 헌사를 바쳤다. 찰스 왕세자는 “당신은 우리와 함께 웃고 울었으며, 무엇보다 70년 동안 자리를 지키셨다”면서 “당신은 평생 봉사하고 계신다. 그것이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퀸의 ‘위 윌 락 유’의 리듬을 영국 군악대가 드럼으로 연주하며 막을 올린 콘서트에는 퀸을 시작으로 듀란듀란, 알리샤 키스, 다이애나 로즈 등이 총출동했다. 여왕은 ‘일시적 거동 문제’로 콘서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왕실은 여왕이 영국의 대표 캐릭터 ‘패딩턴 베어’와 차담을 나누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젊은 세대 “왜 특권 누리나” 따가운 시선 영국을 비롯한 영연방 전역이 성대한 축제 분위기에 빠져 있는 한편에서는 영국 왕실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논쟁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여왕이 헌신과 봉사의 상징으로 영국 국민들을 통합하는 역할을 해 왔지만, 여왕 이후의 왕실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와 이브닝 스탠다드의 편집장을 역임한 맥스 헤스팅은 미국 공영 라디오 NPR에 “영국 국민들 사이에서 여왕에 대한 존경과 애정은 크지만, 군주제 자체에 대한 지지도는 훨씬 낮다”면서 “군주제가 다음 세대로 전환하는 것은 어렵다”고 분석했다. 영국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군주제가 유지돼야 한다고 응답한 영국 국민은 62%로 10년 전 7월 조사(75%)보다 줄었다. 응답자의 22%는 선출된 국가 원수가 국왕을 대체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특히 18~24세 사이에서는 선출된 국가수반이 국왕을 대체해야 한다(31%)는 여론이 군주제가 유지돼야 한다(33%)는 여론과 맞먹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로버트 헤이젤 정치헌법학 교수는 “젊은 세대에서 왕실에 대한 태도가 변화하고 있다”면서 “이들은 왕실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충분히 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의 제국주의 역사에 부정적인 젊은 세대는 왕실이 제국주의의 유산을 토대로 부와 권력을 누리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라고 미국 CNN은 전했다.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의 미성년자 성폭행 의혹, 찰스 왕세자의 차남 해리 왕자 부부의 왕실 독립 논란 등도 영국의 젊은 세대가 왕실로부터 등을 돌리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외신들은 분석한다. 해리 왕자 부부가 왕실 독립을 선언하고도 여전히 왕실에 의존하는 등의 행태가 지탄을 받은 한편에서는, 해리 왕자 부부 아들의 피부색을 둘러싸고 왕실이 인종차별적인 행태를 보였다는 해리 왕자의 폭로가 왕실에 ‘다양성’을 기대했던 젊은층을 실망시켰다고 CNN은 덧붙였다. ‘#미투(Me Too)’,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등 소수자의 인권을 중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사회에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누리는 특권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분석했다. FT는 3일 칼럼을 통해 “그들이 누구(왕족)라는 이유만으로 특별한 자격을 가지는 왕족에 대한 관용이 시들해졌다”면서 “영국 군주제는 현대화돼야 한다. 군주는 스스로 왕관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英연방 국가들, 英 식민주의와 결별 움직임 영연방 국가들 사이에서도 영국 왕실과 거리를 두려는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원주민 및 흑인의 권리 신장 요구가 높아지면서 영국의 식민 지배 유산을 비판적으로 돌아보게 된 것이다. 카리브해 섬나라 바베이도스는 지난해 12월 입헌군주국에서 공화국으로 전환했다. 지난 3월 윌리엄 왕세손의 카리브해의 영연방 3개국(벨리즈·자메이카·바하마) 순방에서는 주민들이 영국에 보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등 진통을 겪었다.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신임 총리는 플래티넘 주빌리 첫날인 지난 2일 영국과 호주가 종속 관계가 아닌 “동등한 관계”라고 선언했다. 호주 원주민들의 권리를 높이는 헌법 개정을 추구하는 노동당 정부가 군주제에 대해서도 변화를 모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을 대표하는 정당인 ‘테 파티 마오리’는 헌법을 개정해 영국 국왕을 국가원수에서 없애자는 청원을 펼치고 있다. 여왕이 서거한 뒤 영연방 국가들 사이에서 공화국으로 전환하려는 요구가 줄을 이을 수 있다고 FT와 미 뉴욕타임스(NYT)는 지적했다.
  • 태화강에 매료된 ‘자연주의 정원 거장’ … 亞 첫 작품 선보인다

    태화강에 매료된 ‘자연주의 정원 거장’ … 亞 첫 작품 선보인다

    ‘자연주의 정원’의 거장 피트 아우돌프 정원 작품이 아시아에서는 처음 오는 11월 울산에서 선보인다. 아우돌프는 식물이 태어나서 죽고 사라지는 모든 과정이 아름답다는 것을 일깨워 주려고 여러해살이풀 위주로 자연에 가까운 정원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과 시카고의 루리가든, 영국의 하우저앤드워스 등이 그의 손을 거쳐 태어난 세계적 명소다. 아우돌프는 태화강 국가정원 내 국화정원 1만 8000㎡에 ‘다섯 계절의 정원’이라는 작품을 만든다. 그가 만든 정원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다. 특정 식물로 계절 경관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식물의 조화를 통해 사계절 내내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연출할 예정이다. 그가 아시아 최초로 울산을 선택한 것은 ‘죽음의 강’이었던 태화강이 시민의 힘으로 ‘생명의 강’으로 되살아난 성공 스토리와 국가정원의 뛰어난 입지 여건에 매료됐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울산시는 순천만 국가정원에 조성된 찰스 젱스의 호수정원과 같은 국제적 명성의 정원 조성을 오랫동안 고민했다. 시는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피트 아우돌프를 찾아냈다. 울산 조경 전문가들은 2019년 열린 중국 베이징 세계원예박람회에서 아우돌프를 만나 정원 조성을 요청했다. 시의 노력에 아우돌프는 마침내 울산에 자신의 정원 작품을 조성하기로 했다. 아우돌프는 지난해 9월 울산을 방문해 국가정원을 답사하는 등 실무 준비에 들어갔다. 같은 해 11월에는 아우돌프의 초청으로 울산시 관계자들이 그의 개인 정원인 휨멜로 정원을 비롯해 유럽 지역에 조성된 그의 정원을 견학하고 정원 기본설계안을 협의했다. 12월에 마스터플랜을 확정했다. 이달에는 아우돌프의 회사 관계자이면서 세계적 정원 전문가인 로라 에카세야 일행이 울산을 찾아 자연주의 정원 조성에 앞서 현장과 국내 식물 재배지 등을 직접 점검하고, 식물 유지관리 기술 등을 전수했다. 자연주의 정원에는 국내 자생식물을 포함한 200여종의 다양한 식물이 식재된다. 이 가운데 120여종 약 4만 그루가 지난해 11월 국내에 공급됐고, 현재 경기도에 있는 계약재배 업체에서 재배하고 있다. 네덜란드 현지에서는 막바지 식물 배식 설계가 진행 중이다. 울산시는 이달부터 토양 개량과 배수시설·산책로 조성 등 기반 공사를 시작했다. 시는 9월쯤 식물 식재를 시작, 11월까지 완료해 태화강 국가정원 자연주의 정원을 완성할 계획이다.
  • 15년 만에 방송 출연…VJ 찰스 근황 깜짝

    15년 만에 방송 출연…VJ 찰스 근황 깜짝

    ‘복면가왕’에 뜻밖의 인물이 출연했다. 지난 29일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 1라운드 대결에서 ‘우리집 찰스’와 ‘노래공장 찰리’가 맞붙었다. 투표 결과 ‘노래공장 찰리’가 다음 라운드로 진출했다. 얼굴을 공개하게 된 ‘우리집 찰스’는 자신이 스눕독을 닮았다고 힌트를 줬다. 김구라는 과거 활동했던 VJ 찰스가 아니냐고 추측했다. 가면을 벗자 관객들은 환호했다. ‘우리집 찰스’의 정체는 실제로 VJ 찰스였기 때문이다. 김성주는 “찰스가 공중파 방송에 무려 15년 만에 출연했다”고 소개했다. 김구라는 “결혼하고 방송계를 떠난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찰스는 “적응을 못 했다. 결혼하고 나서 굉장히 도덕적인 훈남이 됐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지금은 인테리어 쪽에서 일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김성주는 “2006년 월드컵 때 ‘이경규가 간다’에서 활약하며 신인상까지 받은 사람이다”라고 말했고, 찰스는 “처음이자 마지막 상이었다”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 코로나19 다 나았다… 임성재 찰스 슈와브 챌린지로 PGA 복귀

    코로나19 다 나았다… 임성재 찰스 슈와브 챌린지로 PGA 복귀

    코로나19 확진 판정 후 회복한 임성재(24)가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무대에 복귀한다. 임성재는 27일(한국시간)부터 나흘간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콜로니얼 컨트리클럽(파70·7209야드)에서 열리는 PGA투어 찰스 슈와브 챌린지(총상금 840만달러)에 출전한다. 지난 5월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우리금융 챔피언십 출전을 위해 한국을 찾은 임성재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우리금융 챔피언십은 물론 시즌 2번째 메이저대회 PGA 챔피언십 출전도 불발됐다. 당시 임성재는 4월 마스터스에서 공동 8위에 오르는 등 상승 곡선을 타고 있어 아쉬움이 더 컸다. 임성재가 PGA투어에 출전하는 것은 지난 4월말 취리히 클래식 이후 약 한 달 만이다.한편 PGA투어 홈페이지는 임성재를 이번 대회 파워랭킹에서 8위에 올려놨다. PGA투어는 “임성재는 코로나19 확진으로 PGA 챔피언십에 나서지 못했다. 여기서 긍정적인 부분을 찾자면, PGA 챔피언십 당시의 쌀쌀한 날씨를 겪지 않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PGA 챔피언십에서는 비가 내리고 기온이 떨어지는 등 날씨 상황이 좋지 못해 여러 선수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임성재와 우승 경쟁을 펼칠 선수로는 PGA 챔피언십에서 개인 2번째 메이저대회 트로피를 차지한 저스틴 토마스(미국)가 꼽힌다. 토마스는 PGA 챔피언십 마지막 날 7타 차 열세를 뒤집고 극적으로 정상에 섰다. PGA투어는 토마스를 파워랭킹 4위에 올려놨다. PGA투어는 “지난주 우승의 기쁨을 떨쳐내고 다시 도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토마스는 시즌 내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왔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밖에 조던 스피스(미국)를 파워랭킹 1위, 세계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미국) 등도 강력한 우승 후보로 분류된다.
  • 소아암도 이겨낸 9세 소년, ‘아버지 폭력’에 살해당했나…美 충격

    소아암도 이겨낸 9세 소년, ‘아버지 폭력’에 살해당했나…美 충격

    성인도 견디기 힘든 암 투병을 견뎌내고 건강한 미래를 꿈꾸던 미국의 9세 소년이 살해당했다. 경찰은 아동 폭력 전과가 있는 소년의 아버지를 긴급 체포했다. 폭스뉴스 등 현지 언론의 6일(이하 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펜실베이니아주(州) 뉴 켄싱턴에 살던 9세 소년 아주레 찰스는 지난 4일 실종신고가 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웃집 마당의 벤치 아래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소년의 시신을 부검한 검시관은 “사망한 채 발견된 소년은 타살로 판명됐다”고 밝혔고, 이내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됐다. 경찰에 따르면 숨진 소년의 시신에는 양말이나 신발이 신겨있지 않았다. 경찰은 이러한 사실이 타살의 중요한 근거라고 판단한 뒤 수사 끝에 소년의 아버지 진 찰스를 체포했다. 진 찰스는 지난해 11월에도 폭행 및 아동학대 혐의로 체포된 이력이 있었다. 당시 찰스의 자녀 중 한 명이 그의 주먹에 맞아 얼굴을 다쳤다는 기록도 있지만, 여기서 폭행 피해를 당한 자녀가 아주레인지, 그의 어린 동생 중 한 명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경찰은 현재 소년의 친아버지가 아들을 살해한 용의자 명단에 올랐는지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현지 검사는 소년이 타인에 손에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해당 사실이 알려지자 이웃 사이에서는 안타까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랫동안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폭행을 당해온 어린 소년은 암 투병을 마치고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년의 이웃들은 “찰스가 어린 시절 소아암 진단을 받았다. 찰스는 긴 투병 끝에 소아암을 이겨낼 수 있었다”면서 “찰스는 언제나 웃음 짓는 아이였고, 동생들을 돌보는 아이였다. 매우 착하고 항상 매너가 좋았으며 누구와도 잘 어울렸다”고 회상했다. 소년의 학교 선생님인 브라이언 헤이던레치 역시 “(찰스의 사망 소식은) 내가 들은 것 중 가장 슬픈 소식이었다. 찰스는 내가 만난 가장 귀엽고, 순수하고, 친절한 아이였다”고 말했다.
  • [이광식의 천문학] 아폴로 16호 달착륙 사진 속 비밀...50년 만에 리마스터링 해 보니

    [이광식의 천문학] 아폴로 16호 달착륙 사진 속 비밀...50년 만에 리마스터링 해 보니

    미 항공우주국(NASA)이 아폴로 16호의 달 착륙 50주년을 기념해 관련 사진들을 리마스터링해서 공개했다.  우주비행사 존 영, 찰스 듀크, 토마스 매팅리가 50년 전 4월 21일(이하 미국동부시간) 달에 착륙했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마지막에서 두번째 달 착륙의 상징적인 이미지들이 리마스터링되었다.  1972년 4월 16일 플로리다의 NASA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발사된 아폴로 16은 탐사나 홍보에 치중했던 초기 임무와는 달리 주로 과학에 중점을 두어 설계된 3개의 'J-미션' 중 두 번째였다.  아폴로 16호의 달 착륙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곧 출간될 책 '아폴로 리마스터링'의 저자이자 이미징 전문가인 앤디 손더스는 11일간의 임무 동안 승무원이 촬영한 이미지들을 신중하게 복원, 개선했다. 그 중에는 달의 지평선을 보여주는 사진, 지구돋이, 월면에 놓여진 우주비행사들의 가족사진, 존 영의 '대도약' 등이 포함되어 있다. 출간은 올해 12월 최종 미션인 아폴로 17호의 달 착륙 50주년을 앞둔 9월로 예정되어 있다. 여전히 달 탐사에 대한 좋은 추억을 기지고 있는 달 착륙선 조종사 찰리 듀크는 리마스터된 이미지에 대해 "그 사진들은 너무 선명하고 현실적이어서 우리가 직접 달에 있는 것 다음으로 가장 좋은 것"이라며 "나는 달에 있어요! 외치는 듯해요. 아직도 믿을 수가 없어. 오늘날에도 그것은 흥분되는 기억"이라고 덧붙였다.  NASA가 아폴로 17호 이후 새로운 달 착륙 임무가 없을 것이라고 선언한 지 2년 후에 이 임무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승무원들은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달로 떠났다. 여기에는 월면차가 포함되었으며, 이전 여행의 경우보다 달 표면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승무원은 11일의 임무 기간 중 3일 동안 달에서 효과적으로 생활하고 작업했으며 나머지는 월면을 여행하는 데 보냈다.  앤디 손더스_1이라는 사용자 이름으로 소셜 미디어에 리마스터링한 이미지 중 일부를 공유한 손더스에 따르면, 그들이 직면한 문제 중 일부는 실제로 놀라운 몇몇 사진을 가능하게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아폴로 16의 임무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달 궤도에 도착하고 착륙선이 사령선(CSM)에서 분리된 직후 사령선 조종사 매팅리는 SPS 엔진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SPS 엔진은 사령선의 주엔진으로, 월면으로 이동한 후 지구로 귀환하기 위해 완벽하게 분사되어야 한다. 과연 달 착륙을 결행해야 하는가?  임무관제실이 문제를 평가하고 착륙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데 4시간이 걸렸다. 사령선의 매팅리와 착륙선의 존 영, 찰스 듀크는 작은 기동으로 시각적인 스테이션을 유지해야 했다. 이것은 그들이 달 궤도에서 서로 안전하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연락이 끊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푸른 지구가 거친 달의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순간 달 표면 위를 비행하는 사령선을 보여주는 특별한 광경을 담아낼 수 있는 사진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실제로 우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표현하는 손더스는 "달의 상공을 날고 있는 우주선에 탄 두 남자가 다른 남자가 탄 우주선을 촬영하고, 그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 40만km 떨어진 우주공간에 지구가 있다"고 설명한 후, "방문자들은 그 지구에서 왔으며, 거기는 그들의 이상한 비행체가 만들어진 곳"이라고 덧붙였다.  아폴로 리마스터링을 연구하는 동안 듀크는 손더스에게 자신이 그 놀라운 사진을 찍은 사람이라고 밝혔다.  "임무관제실에서 우리에게 랑데뷰에 대해 알려주는 바람에 줬기 때문에 존 영은 그 일로 바빠 내게 기회가 돌아온 것"이라고 밝힌 듀크는 "그것은 놓칠 수 없는 특별한 기회였다"고 덧붙였다. ​손더스는 이전에 역사적인 첫 번째 지구 궤도를 돈 존 글렌의 캡슐에서 찍은 이미지뿐만 아니라 초기 아폴로 임무의 이미지들을 공유하기도 했다.  ​"녹음된 음성 전송과 이 순간의 대화 녹취록을 읽으면 우리는 이 사람들이 실제로 달 주위에서 이 우주선을 조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고 말하는 손더스는 "그것은 조종 기술이 필요하고 또 위험한 시도처럼 보였다. 당시에는 너무 원시적이었다. 자동항법 장치로 날고 바다의 플랫폼에 정확히 자동 착륙할 수 있는 현대의 로켓 및 우주선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설명한다.  매팅리가 달의 뒷면에서 엔진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들은 지상 관제실실과 접촉하지 않았지만 두 우주선은 서로 통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레이더의 자동 추적으로 스테이션 유지를 시각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악전고투해야 했다.7. 16mm 영화 필름의 여러 프레임을 겹쳐서 제작 - 달에 있는 우주비행사의 '집', 달 착륙선 오리온과 함께 '그랑프리'에서 볼 수 있는 월면차의 흙먼지.(출처:NASA)  엔진 문제를 인지한 지 3시간 30분 만에 승무원은 마침내 예정된 곳에 도착했고, 영은 '눈앞이 캄캄했다'고 말했다. 몇 분 후 영과 듀크는 지장 관제실에서 그들이 바라던 소식을 들었다. 달 표면에 동력 하강하라는 'GO' 신호였다.  이로써 다섯 번째 달 착륙에 성공한 아폴로 16호는 우주비행사들이 지구의 6분의 1 중력 속에서 생존하고 일할 수 있다는 확신을 보여주는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했다.  그들은 가능한 한 높이 뛰기를 시도했고 충분히 편안함을 느꼈다. 존 영 선장은 성조기와 달 착륙선이 있는 사진을 찍기 위해 '점프 경례'를 했는데, 이는 고전적인 사진이 되었다. 그러나 승무원들은 듀크가 장난을 치면서 '미니 올림픽'을 한다고 '큰 도약'을 시도했을 때 재빨리 그 위험을 상기시켰다. 그는 도약 중 균형을 잃고 생명 유지 배낭을 멘 채 거칠게 착지했다. 영이 나무라듯 말했다. '별로 잘한 짓 아니야, 찰리." 듀크는 배낭을 손상시키거나 슈트가 쪼개지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달에서 기동성과 장비의 한계를 뛰어넘은 또 다른 예는 월면차의 무제한 테스트였다. '미니 올림픽'과 달리 계획된 훈련이었던 이 테스트는 크레이터가 있는 착륙지점에서 하는 일련의 고속 기동과 급선회로 이루어진 것으로, 로버의 능력을 시험하는 '달 그랑프리'로 불렸다.  아폴로 우주비행사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어 표현하지 않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감정을 억제하고 집중력을 유지하도록 훈련받는다. 그들의 전직은 대개 차갑고 냉정하고 매의 눈을 가진 최고의 전투기 조종사이거나 시험 조종사, 엔지니어였다.  따라서 아폴로 임무 동안 실제 인간적인 분위기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 임무가 끝나면서 이런한 순간을 찰리 듀크가 제공했다. 존 영 선장과 함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선외 활동을 마치고 달 착륙선 근처로 돌아왔을 때 듀크는 달 표면에 가족사진을 내려놓고 사진 찍기에 적절한 장소를 찾았다.  사진은 찰리와 아내 도티, 그리고 당시 7살, 5살이던 자녀 찰스와 탐이 집 뒤뜰에 있는 모습을 담았다. 비닐이 씌워진 사진 뒷면에는 '지구에서 온 우주비행사 듀크 가족입니다. 1972년 4월 달 착륙'이라고 적혀 있다.  
  • [우주를 보다] 50년 전 아폴로 16호 달 착륙 순간 다시 보니

    [우주를 보다] 50년 전 아폴로 16호 달 착륙 순간 다시 보니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아폴로 16호의 달 착륙 50주년을 기념해 리마스터 사진을 대거 공개했다. 우주비행사 존 영, 찰스 듀크, 토마스 매팅리가 50년 전인 1972년 4월 21일(현지시간) 달에 착륙했다. 이를 기념하고자 상징적인 달 착륙 사진 여러 장이 리마스터 됐다. 그해 5일 전 미국 플로리다주 NASA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발사된 아폴로 16호는 탐사나 홍보에 치중했던 초기 임무(H미션)와 달리 과학 조사에 중점을 둔 3번의 ‘J미션’ 중 두 번째 프로젝트였다. 아폴로 16호의 달 착륙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곧 출간될 책 ‘아폴로 리마스터링’의 저자이자 이미지처리 전문가인 앤디 손더스는 당시 11일간의 임무에서 승무원들이 촬영한 사진 여러 장을 신중하게 복원하고 개선했다. 그중에는 달의 지평선, 지구돋이, 월면에 놓인 우주비행사의 가족사진, 존 영의 대도약 등이 포함됐다. 출간은 올해 12월 아폴로 17호의 달 착륙 50주년을 앞둔 9월로 예정됐다.당시 달 착륙선의 조종사인 찰리 듀크는 여전히 달 탐사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리마스터 사진에 대해서는 “너무 선명하고 현실적이어서 우리가 직접 달에 있는 것 다음으로 좋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달에 있다고 외치는 듯하다. 아직도 믿을 수가 없다”며 “여전히 흥미진진한 기억”이라고 덧붙였다. 아폴로 16호 임무는 차세대 아폴로 17호를 끝으로 달 착륙 임무가 더는 없을 것이라고 NASA가 선언한 지 2년 후 시작됐다. 그래서 승무원들은 시간이 제한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달로 떠났다. 이전 임무보다 달 표면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11일 임무 중 3일은 달에서 생활하며 과학 조사를 진행했으며 나머지 기간은 월면차를 타고 탐사하는 데 보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리마스터 사진 중 일부를 공유한 손더스에 따르면, 아폴로 16호 승무원들이 직면한 문제 중 일부는 실제로 놀라운 사진 몇 장을 남기게 했다.아폴로 16호 임무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달 궤도에 도착하고 착륙선이 사령선(CSM)에서 분리된 직후 사령선 조종사 토마스 매팅리가 SPS 엔진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SPS 엔진은 사령선의 주 엔진으로, 월면으로 이동한 후 지구로 귀환하기 위해 완벽하게 분사돼야 한다. 이들은 달 착륙을 결행해야 하는가 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임무관제실이 문제를 평가하고 착륙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데 4시간이 걸렸다. 사령선의 매팅리와 착륙선의 찰스 듀크, 그리고 사령관인 존 영은 정거장 상태를 유지하는 작업에 매진했다. 이는 달 궤도에서 서로 안전하고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연락이 끊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문제는 바로 푸른 지구가 거친 달의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순간 달 표면 위를 비행하는 사령선을 보여주는 특별한 광경을 담아낸 사진으로 이어졌다. 손더스는 “실제로 우주에서 일어나는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을 완벽하게 보여준 장면”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달의 상공을 날고 있는 우주선에 탄 두 남자가 다른 남자가 탄 우주선을 촬영하고, 그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 40만㎞ 떨어진 우주 공간에 지구가 있다”며 “달의 방문자들은 지구에서 왔으며, 지구는 방문자들의 이상한 비행체가 만들어진 곳”이라고 덧붙였다. 해당 사진을 촬영한 듀크는 “임무관제실이 우리에게 랑데부를 하라고 해서 존 영은 해당 작업으로 바빠 내가 촬영했다. 놓칠 수 없는 특별한 기회였다”고 밝혔다. ​손더스는 이전에 우주비행사 존 글렌이 우주선을 타고 미국 최초로 지구 궤도를 비행하며 찍은 사진뿐만 아니라 초기 아폴로 임무 사진들도 공유했다. 그는 “녹음된 음성 전송과 이 순간의 대화 녹취록을 읽으면 우리는 이 사람들이 실제로 달 주위에서 이 우주선을 조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고 말했다. 또 “그 장면은 조종 기술이 필요하고 위험한 시도처럼 보였다. 너무 원시적이었다”면서 “자동항법 장치로 날고 귀환 임무에서 바다에 정확히 자동 착륙할 수 있는 오늘날 로켓이나 우주선과는 거리가 멀다”고 설명했다. 매팅리가 달의 뒷면에서 엔진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들은 지상 관제실과 접속하지 못했지만 두 우주선은 서로 통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레이더의 자동 추적으로 정거장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악전고투해야 했다.  엔진 문제를 인지한 지 3시간 30분 만에 승무원들은 마침내 예정된 곳에 도착했고, 존 영은 “눈앞이 캄캄했다”고 회상했다. 몇 분 후 영과 듀크는 지상 관제실에서 그들이 바라던 소식을 들었다. 달 표면에 동력 하강하라는 ‘GO’ 신호였다. 이로써 다섯 번째 달 착륙에 성공한 아폴로 16호는 우주비행사들이 지구의 6분의 1 중력 속에서 생존하고 일할 수 있다는 확신을 보여주는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했다. 이들은 가능한 한 높이 뛰기를 시도했고 매우 편안한 기분을 느꼈다. 존 영 선장은 성조기와 달 착륙선이 있는 사진을 찍기 위해 '점프 경례'를 했는데, 이는 상징적인 사진이 됐다. 그러나 승무원들은 듀크가 장난을 치면서 ‘미니 올림픽’을 한다고 크게 도약을 시도했을 때 재빨리 위험성을 알렸다. 실제로 그는 도약 중 균형을 잃고 생명 유지 배낭을 멘 채 거칠게 착지했다. 영 사령관은 “찰리, 별로 잘한 짓이 아니다”며 나무라듯 말했다.  듀크는 배낭을 손상시키거나 슈트가 쪼개지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달에서 기동성과 장비의 한계를 뛰어넘은 또 다른 사례는 월면차의 무제한 가동 시험이었다. 미니 올림픽과 달리 계획됐던 이 시험은 크레이터가 있는 착륙지점에서 일련의 고속 기동과 급선회 등 기능을 시험해 ‘달의 그랑프리 대회’로도 불렸다.  아폴로 우주비행사들은 일반적으로 자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스타일로 알려졌다. 감정을 억제하고 집중력을 유지하도록 훈련받기 때문이다. 대개 차갑고 냉정하며 매의 눈을 가진 전투기 조종사이거나 기술자였다는 점도 이들의 무뚝뚝한 성향에 한몫했다.따라서 임무 동안 실제 인간적인 분위기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 임무가 끝나면서 찰리 듀크가 반전 매력을 드러냈다. 존 영 선장과 함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선외 활동을 마치고 달 착륙선 근처로 돌아왔을 때 듀크는 달 표면에 가족사진을 내려놓고 사진 찍기에 적절한 장소를 찾았다. 사진은 찰리와 아내 도티, 그리고 당시 7살, 5살이던 두 아들 찰스와 탐이 집 뒤뜰에 있는 모습을 담았다. 비닐이 씌워진 사진 뒷면에는 ‘지구에서 온 우주비행사 듀크 가족입니다. 1972년 4월 달 착륙’이라고 적혀 있다.
  • 英 해리왕자 부인 메건 마클, 우크라 지지한다면서 국기는 거꾸로?

    英 해리왕자 부인 메건 마클, 우크라 지지한다면서 국기는 거꾸로?

    영국 왕실로부터 독립한 후 독보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찰스 윈저 왕세자의 둘째 아들 해리 왕자의 아내 메건 마클(40)가 한 행사에 참석해 우크라이나 국기를 거꾸로 그려 논란이 됐다.  중국 매체 관찰자망에 따르면 지난 17일(현지시각)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한 책 낭독회에 모습을 드러낸 마클은 현장에 있는 아이들과 그림을 그리며 우크라이나를 상징하는 파란색과 노란색을 칠했다. 자신이 그린 그림 한 가운데에는 ‘평화’라는 문구를 써 넣으며 러시아 침공으로 위기에 봉착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 의사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하지만 마클이 그린 우크라이나 국기를 상징하는 그림이 실제 국기와 다르게 그림 상단이 노란색, 하단이 파란색으로 칠해진 것이 공개된 사진을 통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우크라이나 국기는 상단이 노란색, 하단이 파란색인 것과 반대로 칠한 셈이다.  당시 행사는 마클의 참석으로 보안 상의 문제 등으로 일체 비공개로 진행됐지만, 행사가 종료된 직후 네덜란드 주재 영국 대사관이 공식 홈페이지에 마클의 모습이 담긴 현장 사진을 공개하며 외부에 알려졌다.  이에 대해 중국 현지 매체들은 잇따라 "마클이 우크라이나와의 연대를 표현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국기 위에 평화라는 문구를 써넣었지만, 사실은 그가 우크라이나에 큰 관심이 없다는 것만 공개된 행사였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당시 마클이 등장했던 행사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세계 상이군인 체육대회 ‘인빅터스 게임’ 행사 중 하나였다. 이날 행사에 앞서 열린 개막식에 참석한 해리 왕자는 개회사를 통해 “우리는 당신(우크라이나)과 함께 서 있다”면서 “세계는 당신과 하나이며, 당신은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또, 해리 왕자와 동석했던 매건 마클 왕자비 역시 “우크라이나에 영광을”이라고 말하며 러시아의 침공에도 불구하고 이 대회에 출전한 우크라이나 팀을 격려했다.  특히 인빅터스 게임은 해리 왕자가 부상 장병을 돕기 위해 2014년 발족한 국제적인 대회다. 그는 2006년부터 10년 간 군인으로 일했으며, 2007년과 2012년에 아프가니스탄 전쟁에도 참여했다.  이날 마클이 참석한 책 낭독회 역시 해리 왕자가 기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네덜란드 주재 영국대사관은 ‘아주 특별한 순간이었다’고 평가했을 정도로 관심이 쏠렸던 행사였다.  이에 대해 현지 누리꾼들도 연일 이 사건을 화두로 삼아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는 양상이다. 한 네티즌은 “그 누구도 마클이 평화라는 문구를 쓰며 그림을 완성하기 전까지 우크라이나 국기가 잘못 그려졌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 당황스럽다”면서 “알고도 모른척 하지 않는 이상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실제로 우크라이나에 남아 러시아에 저항하는 주민들 누구도 국기를 거꾸로 세우거나 그려서 위험을 외부에 알린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에 앞서 해리 왕자 부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본격화된 직후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자선단체 아치웰 웹사이트에 우크라이나 공식지지 성명서를 게재하는 등 줄곧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 의사를 공식적으로 표명해왔다.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됐던 당일, 해리 왕자 부부 곧장 성명서를 내고 “우크라이나인들을 지지함과 동시에 국제 사회와 지도자들에게도 같은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한다”고 의사를 거듭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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