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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의 새벽,그 화려한 떨림/ 김승웅 지음

    인생의 한 허리를 저널리스트의 끓는 피로 채워 보냈던 김승웅씨가 새 책을 냈다.‘파리의 새벽, 그 화려한 떨림’(선 펴냄)은 한국일보 파리 특파원 시절을 돌아본 저자의 옹골찬 기록집이다. 저자가 시계바늘을 돌려놓은 지점은 “40대 초반의 꽃같은 시간을 살았던” 20년 전이다. 파리의 하늘 밑에서 만났던 사람들, 그들과 교유하며 살뜰히 일구었던 보석같은 감상과 깨달음들을 차분한 어조로 행간에 불러냈다. 파리를 회억함에 있어 그곳은 그저 에펠탑을 품은 낭만과 예술의 도시만이 아니었다. 진실을 향해 무딘 날을 벼리게 이끌어주는 에너지 가득한 공간의 상징이다. 저자는 ‘변경(邊境)’이란 단어로 그 의미를 전달한다. 파리 특파원 시절, 로마에서 만난 테너 가수 박세원(서울음대) 교수의 일화가 지금도 생생하다. 박 교수가 오늘날 누리는 찬사는 로마라는 ‘변경’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고 저자는 담담히 돌아본다. 자신의 음역을 바리톤으로 철석같이 믿고 서울에서 대학까지 졸업한 박 교수. 황당하게도 당시 로마로 유학와서야 비로소 지도교수에게서 바리톤이 아닌 테너가 음역이라는 말을 듣고 경악했다. 그 때 저자는 변경이야말로 진리를 만나는 곳이라고 깨우쳤던 것이다. 60줄이 훌쩍 넘은 지금에야 만각(晩覺)의 애잔함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한다. 국내 분위기로는 접근 자체가 금기시되다시피했던 작곡가 윤이상을 만나러 무작정 베를린을 찾았던 기억이 어제인 듯 새롭다. 당시 68세의 윤이상에게 “반드시 신문에 싣겠다.”고 장담하며 진행했던 인터뷰는 끝내 신문에 실리지 못했다. 하지만 지은이는 그와의 이루지 못한 약속을 잊어본 적이 없었다고 술회한다. 만 20년이 지난 오늘에야 누렇게 빛바랜 원고뭉치를 꺼내 책을 빌려 그 날의 인터뷰를 복권시킨다.“무척 빛났으나 경계하는 눈빛이 역연했던 윤이상”과의 기나긴 인터뷰 내용을 한 글자도 다치지 않고 고스란히 실었다. 저널리스트 본연의 촘촘한 시각의 투망에 걸려든 이국의 에피소드들에는 곱씹어 음미할 메시지가 다채롭다.2만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폴 포츠 뒤잇는 英음악 신동 화제

    폴 포츠 뒤잇는 英음악 신동 화제

    “제 꿈은 노래를 계속 부르는 거에요.” 어려운 가정형편과 친구들의 따돌림을 딛고 최고의 스타로 급부상한 13살의 소년이 영국 전역에 감동의 물결을 선사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앤드류 존스톤(Andrew Johnston)은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치기 위해 영국 최고의 인기TV프로그램 ‘브리튼스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 오디션에 출연했다. 떨리는 가슴을 안고 무대에 올라선 앤드류는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청중과 3명의 심사위원들 앞에서 짧은 자기 소개와 자신의 꿈을 얘기한 뒤 첫번째 오디션 곡으로 ‘자비로우신 주님’(Pie Jesu)을 불렀다. 순간 공연장 안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그러나 이내 앤드류의 노래에 맞춰 관중들의 박수소리와 환호성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심사위원들도 놀라 한 동안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앤드류의 노래가 끝난 뒤에도 기립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천상의 목소리를 가졌다’ ‘음악신동이다’와 같은 관중들의 찬사와 함께 첫 오디션에서 합격한 그는 최종 결선에 들게 됐다. 이로써 2008년 브리튼스 갓 탤런트의 강력한 우승후보로 점쳐진 앤드류는 10만 파운드에 달하는 상금(한화 약 1억 9천만원)은 물론 영국 최대의 자선 공연인 로얄 버라이어티 퍼포먼스(Royal Variety Performance)에 참가하고 유명 레코드 기획사와 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그러나 이처럼 심사위원들과 관람객들의 큰 호응을 받은 것은 단순히 그의 목소리때문만은 아니었다. 7살 때 처음으로 자신의 재능을 알게 된 앤드류는 오페라와 같은 클래식 명곡을 좋아하고 성가대원의 장(將)이라는 이유로 또래들의 이유없는 괴롭힘을 당해야만 했다. 방과 후 늘 혼자였고 눈물 흘리기 일쑤였지만 그 때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며 외로운 마음을 삭혀왔다. 앤드류는 오디션이 끝난 뒤 수많은 언론매체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았으며 지금은 그를 위한 팬클럽도 결성됐다. 앤드류는 “내 친구들이 그런 음악따위는 부르지 말라면서 따돌렸다.”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싶지 않았다. 내 삶을 위해 어떤 일이든 해보고 싶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지난해 브리튼스 갓 탤런트 우승자는 휴대전화 판매업자 출신의 폴 포츠(Paul Potts)였다. 사진= ITV Britain’s Got Talent 방송 화면 캡쳐 서울신문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맨유팬들 “박지성, 경기내내 로마 괴롭혀”

    맨유팬들 “박지성, 경기내내 로마 괴롭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박지성이 이번 AS로마전을 통해 팬들에게도 확실한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맨유는 10일(한국시간) 오전 홈경기로 펼쳐진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AS로마를 맞아 1-0으로 승리하며 4강에 진출했다. 박지성은 이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해 90분 내내 경기장을 누볐지만 공격포인트는 기록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맨유 팬사이트 ‘레드카페’(Redcafe.net)의 네티즌들은 이번 경기의 수훈선수를 거론하며 박지성을 빼놓지 않고 있다. 기록에 나타난 공격 포인트는 없지만 경기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 함께 윙포워드를 이룬 ‘노장’ 라이언 긱스 보다 팬들의 눈에 들었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팬들은 “역시 세 개의 폐”(Birdboy) “경기 내내 로마를 괴롭혔다.”(RedSky At Night) 등의 말로 박지성의 활약에 찬사를 보냈다. 박지성과 함께 팬들에게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선수는 이날 결승골을 합작한 카를로스 테베스와 오웬 하그리브스였다. 골키퍼 에드윈 반데사르와 미카엘 실베스테르 등을 꼽는 팬들도 많았다. 박지성에 대한 호평은 팬들만의 생각은 아니다. 스포츠전문채널 ‘스카이스포츠’는 박지성에게 테베스와 같은 평점 7점을 매겼고 퍼거슨 감독도 경기 후 가진 인터뷰에서 “박지성과 테베스, 하그리브스는 최고의 선수들”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편 이날 맨유의 승리로 챔피언스리그 4강은 맨유와 FC바르셀로나, 리버풀, 첼시로 확정됐다. 맨유는 오는 24일 FC바르셀로나와 원정경기로 4강 1차전을 치를 예정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프리미어리그] 지성 ‘위대한 조연’

    [프리미어리그] 지성 ‘위대한 조연’

    “박지성이 오늘 맨유를 구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구단 홈페이지에는 6일 밤 미들즈브러와의 정규리그 33라운드에서 2-2 극적인 동점골을 만들어낸 박지성(27)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맨유의 ’토킹 더 레즈’ 게시판에는 7일 이 제목과 똑같은 토론방이 개설됐다. 한 팬은 ‘박지성이 지난 두 경기에서 보여준 활약이 라이언 긱스가 이번시즌 전 게임에서 보여준 활약보다 나았다.’고 찬사를 보냈고 또 다른 팬은 ‘박지성의 패스는 환상적이었다. 오늘 좋은 활약을 펼쳤고 그의 능력을 보여준 경기였다.’고 썼다.‘Park’이란 제목의 또 다른 토론방에서도 그에 대한 칭찬은 줄을 이었다. ‘박지성이 10일 새벽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AS로마전에도 선발 출전했으면 좋겠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카를로스 테베스 대신 박지성을 출전시켰을 때 놀랐지만 그는 정말 잘했다.’는 등의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한편 한 팬은 ‘박지성이 실력보다 저평가돼 있다.’고 평가해 눈길을 끌었다. 승부의 추가 기울어진 시점에 이를 굳히던 종전 이미지에서 탈피, 반전의 힘을 과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들즈브러전 후반 29분에 투입돼 10분 만에 웨인 루니의 동점골을 돕는 장면을 두고 현지 언론은 새로운 평가를 내놓기 시작했다. 박지성은 지난 두 시즌 선발 출전한 16경기에서 전승을 거둘 만큼 선발에 강했다. 맨유에서 뽑아낸 8골 모두 선발로 나와 기록했다. 반면 후반에 나와 경기 상황을 반전시키는 능력은 미흡하다는 평을 들어왔다. 스포르팅라이프는 “뛰어난 재능을 갖췄지만 경기를 반전시킬 능력이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미들즈브러전에서 맨유를 패배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자 맨체스터 이브닝 뉴스는 ‘영향력 있는 플레이어’라고 평가했고 스카이스포츠는 ‘위대한 조연’이라며 팀내 최고인 평점 8을 줬다. 지난 2일 AS로마(이탈리아)와의 챔스리그 8강 1차전에서 박지성을 2년7개월 만에 처음으로 유럽클럽대항전에 선발 출전시킨 퍼거슨 감독도 10일 새벽 2차전에서 그의 중용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7일 새벽 잉글랜드 축구협회(FA)컵 준결승에서 반슬리가 카디프시티에 0-1로 져 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아일랜드에서 배우자] 벤치마킹 포인트

    [아일랜드에서 배우자] 벤치마킹 포인트

    아일랜드의 경제기적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지만 지금도 무수한 나라들이 이를 성장의 교본으로 삼아 벤치마킹에 나서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활성화 정책의 방향도 아일랜드의 성공사례에서 따온 것이 많다. 과연 우리가 아일랜드에서 배울 점은 무엇인지, 그 과정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대목은 무엇인지 2회에 걸쳐 짚어본다. 더블린 글 사진 김태균특파원 windsea@seoul.co.kr ■아일랜랜드 외자유치 비결 아일랜드의 경제개혁은 많은 전문가들에 의해 하나의 학문으로 연구되고 있다. 다양한 연구성과를 종합하면 ▲세계화와 국제경제의 호황 ▲과학기술 중심의 교육투자에 따른 고급 인력 양성 ▲유럽연합(EU) 가입에 따른 광대한 인접시장 형성 ▲정부와 노사 등이 함께 참여한 사회연대협약 모델 ▲법인세율 인하 등 적극적인 해외투자 유치 등 5가지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요약된다. 이 가운데 사회연대협약과 외자유치에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경제·사회 시스템 개혁을 통해 스스로 이뤄낼 수 있는 여지가 다른 부분보다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아일랜드 정부였다. 외자유치와 집단이해 조정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은 경제기적의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였다. “한국에는 아일랜드의 경제발전 과정이 잘못 알려져 있는 것 같다. 사회연대협약만 너무 강조한다. 사회연대협약은 경제부흥의 여러 요인 중 하나였을 뿐이다. 현재 아일랜드가 ‘아일랜드 주식회사(Ireland Inc.)’가 되는 데 더욱 중요했던 것은 외국자본 유치의 오랜 역사와 그 산물이었다.” 아일랜드 정부의 외자유치 전담부서인 산업개발청(IDA) 브렌든 할핀 대변인은 다소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외국에서는 1987년을 경제기적의 출발점으로 잡지만 우리의 외자유치 노력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됐고 사회가 안정을 찾으면서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자유치의 중심축은 IDA와 총리실이다.IDA가 제조업 중심의 해외자본 유치에 주력했다면 총리실은 금융자본에 초점을 맞췄다. 더블린 리피강변의 국제금융특구 ‘아일랜드 금융서비스센터(IFSC) ’의 성공은 경제정책국 등 총리실의 작품이었다.IDA는 70년에 만들어졌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외자유치 별동대’였다. 산업통상부 소속이면서도 조직·운영 등에서 완전한 자율권을 부여받았다. 숀 도건 전 IDA 소장은 “대규모 외자유치를 통해 국가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설립한 세계 최초의 독립적 정부조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IDA는 ‘선택과 집중’의 시장원리를 도입하기로 하고 해외 유명 컨설팅업체에 큰 돈을 주어가며 조언을 구했다. 그 결과 정보기술(IT)·의학 등을 중심으로 한 고수익, 고기술 산업을 유치하기로 했다. 그로 인한 결실이 89년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인 미국 인텔 유치, 세계 상위 15대 제약회사 중 14개사 유치 등으로 현실화한 것이다. IDA는 투자 프로젝트가 생기면 즉시 특별반(TF)을 구성한다. 자국 투자의사를 갖고 있는 기업과 혈연·지연·학연 등이 있는 사람들을 두루 물색해 심도있는 개별 접촉에 들어간다. 익명을 요구한 IDA 직원은 “해외기업 유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는 그가 원하면 남극·북극 관광까지도 시켜줄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모든 서비스를 쏟아붓는다.”고 했다. ■’악법도 법’ 사회협약의 힘 “아일랜드가 사회적 합의에 유리한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집단끼리 항상 원만한 결론을 도출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를 조정하고 선택하는 것은 결국 정부의 일이다.”(존 던 아일랜드 상공회의소장) 외국자본이 아일랜드의 성장을 외부에서 도왔다면 ‘사회연대협약’이 내부적인 힘의 원천이 됐다는 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국가부도의 위기에서 1987년 1차 사회연대협약인 ‘국가 재건을 위한 프로그램’이 타결된 뒤 합의의 정신은 아일랜드 사회의 안정성을 상징하는 커다란 흐름이 됐다. 정부정책에 항의를 하다가도 “이것은 사회연대협약에서 정해진 것”이라고 말하면 못마땅해도 일단은 수긍하는 전통이 생겨났다. 문제가 있으면 다음번 사회연대협약 때 요구를 하고 그때까지는 있는 그대로 따르는 식이다. 지금까지 사회연대협약은 여러차례에 걸쳐 위기를 맞았지만 단 한차례도 파국을 맞지 않았다. 여기에는 이해집단의 사이에서 중립적 위치에 있는 정부의 역할이 컸다. 아일랜드의 대표적인 싱크탱크 포파스(FORFAS)의 데클런 휴즈 경쟁력분과 위원은 “정부가 투명한 정보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누구에게나 공개하고 있으며 총리가 3개월에 한번씩 노조 대표와 만나 대화하는 등 노동계와 사회를 연결시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이에 따른 믿음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73년 설립된 총리실 산하 국가경제사회위원회(NESC)도 큰 역할을 한다. 지금까지 3년마다 총 7차례에 걸쳐 사회연대협약의 초안을 짜 온 것이 NESC였다. 경제발전(성장)과 사회통합(분배)에 필요한 정책수단을 발굴해 이를 사회연대협약의 기본 밑그림으로 노·사·정에 제시해 왔다. 정부·노동자·사용자·농민·비영리단체 등 5개 부문 대표 25명(각 5명)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상황에 따라 신축적으로 운용되는것도 아일랜드 사회협약의 특징이다.1차부터 3차까지는 당장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성장 중심의 협약을 했지만 경제가 성장가도를 탄 뒤 4차 때부터는 분배정의·실업해소 등에 초점을 맞췄다. 전국실업자조합, 종교협회, 전국여성협회 등도 새로이 협상자로 참여시켰다. ■슬라이고 새한미디어 유치사례 아일랜드 사람들이 외국인 투자 유치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는 1980년대 말 새한미디어 공장 설립 과정에서 잘 나타난다. 아일랜드 북서부 코노트 주 슬라이고시에 세워진 새한미디어 비디오테이프 공장은 2006년 7월 철수할 때까지 국내기업 유일의 아일랜드 생산법인이었다. 새한미디어가 유럽지역 공장 설립을 추진할 때 각국의 유치경쟁은 대단했다. 아일랜드 말고도 영국, 북아일랜드, 포르투갈 등이 다양한 혜택을 약속하며 자국 투자를 호소했다. 벨파스트 인근에 새한미디어 공장을 들이려 했던 북아일랜드는 홍보책자를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만들기까지 했다. 그런 경쟁을 뚫고 슬라이고가 낙점된 것은 파격적인 조건과 중앙·지방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한데 맞물린 결과였다. 우선 공장부지(10만평)의 사실상 무상 제공에서부터 환경 등 인·허가 규제 완화, 법인세 10년간 면제, 현지 금융대출 알선, 설비 구매자금 지원 등이 이루어졌다. 한국 주재원의 자녀교육 보장, 각종 사회보험 및 의료지원 등도 산업개발청(IDA) 한 곳을 통해 ‘원스톱’으로 이루어졌다. 서류를 갖고 여기저기 뛰어다닐 필요 없이 대부분 그들의 방문으로 해결됐다. IDA는 산업폐수의 환경기준조차 새한미디어가 요구하는 대로 맞춰 주었고 공장 진입로를 넓혀달라고 했더니 아예 없던 길을 새로 뚫어 주었다. 초대형 설비를 운반할 때에는 일대의 교통을 막고 도로 위 전깃줄을 끊어 수송차량의 통행길을 열었다. 운전면허증 국제교류가 되지 않던 당시, 지역 경찰과 연계해 주재원들의 면허 문제를 가볍게 해결해 주기도 했다. 김동국 새한미디어 유럽지사장은 “외국자본을 고객으로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주겠다는 공무원들의 자세가 행정의 질(質)을 높여 외자유치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2006년 7월 새한미디어가 사업 구조조정 차원에서 아일랜드를 떠날 때에도 현지 근로자들의 반발 등은 거의 없었다. 현지 유력언론은 “극서(Far West)에서 온 한국기업이 15년간 우리경제 발전에 큰 역할을 하고 물러간다.”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 “3500만 자폐증 환자에 희망을”

    유엔이 정한 첫 ‘세계 자폐증의 날(4월 2일)’을 맞아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학술세미나와 캠페인이 벌어졌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2일(현지시간) 자폐증 아동과 가족을 위한 격려 메시지를 발표했다.반 총장은 “매일 굳은 결의와 희망, 창조력을 갖고 장애를 마주하는 자폐 아동과 그 가족들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면서 “그들에게 힘을 주고, 필요한 것들을 도와줘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자.”고 말했다. 현재 자폐증 환자는 전세계적으로 3500만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지난 10년간 무려 10배나 늘어났다.자폐증은 1911년 스위스의 정신병학자 E 브로일러가 처음 규정한 것으로 가족이나 주변 사람에게 관심이 없고,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사회 활동을 어렵게 한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최태환칼럼] 박근혜 태업의 명암

    [최태환칼럼] 박근혜 태업의 명암

    지난해 가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였다. 작가 이문열은 걱정했다. 후보 검증이 내전의 칼로 쓰여선 안 된다고 했다.17대 총선 때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을 맡았던 그다. 이명박·박근혜 두 후보의 사생결단을 두고 한 말이었다. 검증공방이 도를 넘었다. 네거티브 전략이 난무했다. 사실상 내전이었다. 갈등은 가까스로 봉합됐다. 박근혜 후보의 경선패배 승복이 마침표였다. 대선 승리의 출발점이었다. 집권 두 달을 넘기지 못했다. 한나라당이 다시 내전이다. 공천갈등이 내전의 칼이 됐다. 대선 승리의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이다.18대 총선 결과를 우려하는 상황까지 왔다. 공천심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호기가 넘쳤다. 공천혁명을 표방했다. 안강민 전 검사장은 공천혁명을 이끈 전천후 폭격기였다. 당 안팎으로부터 스텔스기라는 찬사를 받았다. 결과는 새로운 내전의 출발이었다. 안강민이 떠난 당엔 분열과 갈등의 골만 깊고 선명하다. 한나라당은 전선이 없다. 지도부는 전선없는 전장을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당은 여전히 과반의석 확보의 기대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유권자를 끌어들일 절박한 호소는 보이지 않는다. 한나라당의 2라운드 내전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심란하다. 한나라당의 한계를 봤기 때문이다. 국정 운영능력의 바닥을 들여다봤기 때문이다. 친이·친박의 윈윈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내전의 끝은 뻔하다. 어느 일방의 굴복을 향해 달리는 형국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지금 ‘이중 당적’이다. 몸은 한나라당, 마음은 바깥에 쏠려 있다. 집을 뛰쳐나가 친정을 압박하는 원군의 위세가 만만찮다. 그는 당 공천 결과를 두고 ‘자신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했다. 이중당적, 총선지원 태업의 명분이다. 하지만 그의 태업은 당은 물론 자신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우선 포퓰리즘 행보의 극치라는 당 안팎의 시선이다. 그는 친이측으로부터 배신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공천 협상과정에서 좀더 정치력을 발휘했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너무나 순진했다. 수족이 잘린 아픔은 이해하지만, 협상력·정치력 한계의 자업자득이다. 뒤늦은 태업이 곱게 보이지 않는 이유다. 박근혜 마케팅이 달갑지만은 않은 이유다. 총선 결과 역시 부담이다. 한나라당 측에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면 그의 입지는 그만큼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몽니를 부리다 상처만 입었다는 비아냥을 듣기 십상이다. 태업 효과가 극대화돼도 문제다. 안정의석 확보에 실패한다면 그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태업이 해당행위 시비로 비화할 수 있다. 오로지 당권·대권에 집착하는 이미지가 부각된 측면도 부정적이다. 친박측은 태업을 원칙·신의가 무너진 데 대한 반격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내식구 챙기기가 공천의 최우선 가치였던 데 대해선 비판의 시각이 적지 않다. 변화와 쇄신의 여망을 회피하는 수구의 이미지를 각인케 했다. 어쨌든 물갈이, 쇄신이 공천의 화두였다. 당장 7월 전당대회가 문제다. 당권경쟁을 앞두고 친박연대, 무소속연대 인사들의 복귀를 둘러싼 갈등이 노골화될 게 뻔하다. 내전은 확대 재생산될 가능성이 높다. 당의 다수를 장악한 친이측과의 전선을 어떻게 갖고 가야 할지도 숙제다. 이번 총선서 그는 ‘박근혜 마케팅’의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 대중적 인기를 새삼 확인했다. 하지만 화려했던 인기가 아픈 추억이 될지도 모른다. 새로운 시험대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호날두, 무회전 프리킥의 비밀은?

    호날두, 무회전 프리킥의 비밀은?

    지난달 20일(한국시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볼턴전. 전반 19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포르투갈 특급’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23)는 아크 정면에서 다섯 걸음을 뒤로 물러섰다. 25m 거리의 골문을 응시하는 그의 눈은 빛났다. 그리고 이내 오른발을 떠난 그의 프리킥은 아크에 진을 친 방어벽을 훌쪽 넘더니 이내 뚝 떨어지며 오른쪽 골 네트에 휘감겼다. 마술같은 무회전 프리킥 골이었다. 열흘 뒤 호나우두는 애스턴빌라전서 또 하나의 묘기를 펼쳐보인다. 전반 16분 긱스의 왼쪽 코너킥이 문전에서 상대 보우마 맞고 자기 앞으로 흐르자 바로 오른발을 왼발 뒤로 돌려 뒤꿈치로 툭 하고 골문에 차넣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라보나 힐 킥(Rabona hill kick)’에 관중들은 열광했고 영국 언론들은 난리가 났다.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찬사가 모자랄 정도로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지난해 3위에 머물렀던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 0순위로 추켜세웠다. 프리미어리그 통산 최다 득점자(261골)인 앨런 시어러는 “ 리그에서 저렇게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는 호나우두 뿐이다. 현재 호나우두는 세계 최고 “ 라고 극찬할 정도였다. 양다리를 좌우로 벌리고 서는 준비자세와 회전 없이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호나우두의 프리킥 무회전 탄도는 이미 그의 상징처럼 되었다. 베컴, 주니뉴, 미하일로비치 등의 프리킥 스페셜리스트들 가운데에서도 그의 ‘로킷’은 진화하는 프리킥 역사의 한 획을 긋고 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독보적이다. ◇무회전 마구 프리킥의 정체는? 그는 다른 프리킥 스페셜리스트과 달리 준비거리가 짧은 5~6걸음만 달려 볼을 찬다. 또 특이한 점은 볼을 차기 위한 이동 방향과 볼이 날아가는 방향이 일직선을 이룬다. 디딤발을 최대한 공 왼쪽 가까이 두고 몸을 왼쪽으로 기울인다. 그리고는 인스텝(발 안쪽 면과 발등의 중간 부분)으로 공의 중앙 약간 밑 부분을 강하게 찬다. 임팩트 직후 오른발을 약간 바깥쪽으로 비틂으로써 공의 회전을 최소화시킨다. 그의 오른발을 떠난 공은 무늬가 선명히 보일 정도로 회전이 걸리지 않는 탓에 공이 좌우로 흔들리거나 밑으로 뚝 떨어진다. 야구로 치자면 너클볼의 원리다. 회전 없이 날아가는 공은 구체 원형이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공의 전체 면이 공기 저항을 받게 되어 당시 공을 둘러싼 대기 상태에 따라 불규칙적인 궤적을 그린다. 야구공보다 무겁기 때문에 호나우두의 프리킥 궤적이 미국 MLB 너클볼의 전설 필 니크로의 공처럼 사방팔방으로 휘어지진 않지만 골키퍼의 반응을 무력화시키기에는 충분하다. 또한 빠르기 때문에 호나우두는 다른 프리키커들처럼 골문의 구석을 세심하게 노려야 하는 부담도 줄어든다. 실제로 지난 시즌 토트넘의 수문장 폴 로빈슨은 정면으로 날아오는 호나우두의 프리킥을 얼결에 놓쳐 긱스에게 결승골을 헌납한 적이 있는데 당시 느린 화면을 통해 호나우두가 찬 공이 방어벽을 넘을 때는 왼쪽으로 휘다가 로빈슨 바로 앞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이 틀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탁구대에서 탄생. 캐링턴에서 완성! 호나우두가 이 가공할 무기를 장착할 때까지는 축구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 그리고 반복된 훈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소년 시절 그를 지도했던 레오넬 폰테스(스포르팅 리스본 유스 코치)는 영국 일간지 텔레그라프와 인터뷰를 통해 “ 어느 날 호나우두가 탁구를 치던 도중 ‘코치님. 이것 보세요. 라켓으로 공을 이렇게 치니까 공이 이렇게 날아가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 고 밝혔다. 탁구공이 휘어지는 것에 착안한 호기심 많은 축구 소년의 발명품인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퍼거슨 감독은 맨유의 훈련구장 캐링턴에서 호나우두가 매일 혼자 남아 30분씩 프리킥 개인훈련을 한다고 전했다. 퍼거슨 감독은 “ 루니, 긱스 등이 그의 프리킥 훈련 파트너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는 대단한 연습벌레다 “ 라며 호나우두의 집념 어린 열정에 찬사를 보냈다. ◇강한 자기 암시도 프리킥 연금술사의 힘! 호나우두는 이미 월드스타로서의 조건들을 많이 갖추고 있다. 현란한 드리블, 전광석화 같은 스피드, 쇼맨십과 세련된 외모 등이다. 프리미어리그에서 26골로 단독 득점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경쟁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 만족스럽지 않은듯 호나우두는 압도적인 프리킥 능력까지 갖추었다. ’매직’ 프리킥의 비밀에 대해 호나우두는 “ 겨냥한 골문을 바라보고 스스로에게 ‘자, 이제 차는 거야. 호나우두’라고 말한다. 그리고 찰 뿐이다 “ 라고 밝혔다. 건방져 보일 수 있는 대답도 호나우두가 하니까 왠지 ‘쿨’해 보인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 런던(영국) | 홍재민통신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구출 여대생 “몇분만 주저했어도…”

    ‘제2의 안양 유괴사건’으로 이어질 뻔했던 경기 일산의 아파트 엘리베이터 납치미수 사건에서 강모(10)양을 구사일생으로 지킨 장모(18·대학생)양의 기지에 찬사와 함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장양은 당시 “살려달라.”는 비명소리에 주저없이 3층으로 달려 올라갔고 범인으로부터 강양을 구출했다. 불과 몇분만 주저했더라면 불미스러운 유괴사건으로부터 아이를 구하지 못했을 우려가 컸다. 장양의 기지가 단순폭행 사건으로 치부한 “경찰보다 나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양은 사건 당일인 지난 26일 오후 3시44분쯤 집안 청소를 마무리하고 평소처럼 학원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순간 베란다 창문 밖으로 40대로 보이는 남자가 초등학생 뒤를 바짝 붙어 뒤따라가는 것을 보고 수상하게 생각했다. 낯선 사람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어 아파트 복도 쪽에서 “살려주세요.”란 여자 어린이의 비명 소리가 들렸고 장양은 소리가 나는 3층으로 서둘러 올라갔다. 그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강양은 심한 충격을 받은 채 울고 있었고 용의자는 4층으로 올라가 보이지 않았다. 뒤쫓아가려 했지만 “아저씨가 큰 흉기를 들고 있다.”는 강양의 말에 ‘무모하다.’는 생각에 서둘러 강양을 데리고 1층으로 내려왔다. 장양의 기지가 발휘된 2분여간의 숨막힌 시간이었다. 그러나 정작 장양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경찰도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장양에 대한 연락처와 조사내용 등을 일절 공개하지 않고 있다. 고양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케네디 부인 모방?…佛 브루니 패션 화제

    최근 영국을 방문한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의 부인 카를라 브루니의 패션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바로 지난 1962년 영국을 방문했던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의 패션을 연상시키는 옷차림 때문. 지난 26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청으로 영국을 국빈 방문한 사르코지 대통령 내외는 런던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해 찰스 왕세자의 환영을 받았다. 이때 슈퍼모델 출신의 새 영부인 브루니는 회색코트에 일명 ‘필박스햇’(Pillbox hat)으로 불리는 작은 모자를 쓴 모습으로 비행기에서 내렸다. 데일리 텔레그래프, 더 타임스 등 영국의 주요 일간지들은 일제히 이 모습을 1면에 싣고 브루니의 우아한 패션에 찬사를 보냈다. 또한 브루니는 방문 일정 동안 굽이 없는 플랫 슈즈만을 신어 키가 작은 남편 사르코지를 배려함과 동시에 ‘자신을 낮췄다’는 평가로 영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더 선과 같은 타블로이드지는 재클린 케네디의 패션을 따라한듯한 브루니의 옷차림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주려다 보니 브루니 특유의 개성은 사라졌다.”며 “사르코지 전용기의 승무원 복장 같다.”고 꼬집기도 했다. 사르코지는 이번 방문에서 양국간의 우호를 다질 많은 일정을 소화하고 있지만 영국 언론의 관심은 오히려 부인 브루니의 일거수 일투족을 향하고 있다. 한편 최근 미국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브루니가 15년 전 모델로 활동할 당시 스위스의 유명 사진작가 미셸 콩트가 찍은 누드사진이 경매 예상가 4천달러(한화 약 4백만원)에 판매될 예정이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김하은 기자 haeunk@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씨줄날줄] 그린스펀 원죄론/함혜리 논설위원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그린스펀은 1987년부터 2006년까지 무려 20년간 FRB 의장으로 재임하면서 급변하는 금융시장의 흐름을 탁월한 안목으로 예견하고, 그에 대비한 적절한 금리정책을 펴 미국의 장기 호황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경제 관료들이나 경제 전문가들, 투자자들은 그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그의 발언은 세계 증시, 나아가 세계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가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가리켜 ‘그린스펀 효과(The Greenspan Effect)’라고 한다. 그린스펀 효과는 시장의 절대적 신뢰가 바탕이 됐다. 하지만 미국경제가 장기불황 조짐을 보이면서 20년간 지속됐던 시장의 신뢰는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대신 ‘그린스펀 원죄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를 비롯한 유명 경제학자, 조지 소로스 등 세계적 투자가들, 전직 관료들이 한목소리로 그린스펀을 오늘날 경제 위기의 씨앗을 뿌린 장본인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그린스펀이 극단적인 저금리를 너무 오래 유지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닷컴 버블 붕괴,9·11 사태 등으로 경기가 침체되자 FRB는 2000년 5월부터 2003년 6월까지 연방금리를 12차례 인하했다. 그 결과 연 6.5%였던 금리가 1%로 떨어졌다. 특히 2001년 11월 이후 2% 이하의 초저금리가 3년동안 지속됐는데 이것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부실에서 촉발된 금융위기의 출발점이라는 시각이다. 금융권에 대한 감독을 소홀히 했다는 점도 지적된다. 은행의 방만한 대출, 위험을 내포한 파생금융상품의 확산을 방치한 것을 거세게 비난한다. 그린스펀 입장에서 억울한 측면도 많다. 미봉책인 줄 알지만 물가 안정과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금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으니까. 어찌됐든 ‘미국의 경제대통령’‘통화정책의 신의 손’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그리스펀의 명성은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미국의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도가 약화되고, 세계 경제의 성장축이었던 미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나탈리 포트만 “난 어린 시절을 잃었다”

    나탈리 포트만 “난 어린 시절을 잃었다”

    “잃어버린 어린 시절 보상받고 싶다.” 할리우드 스타 나탈리 포트만(26)이 영화 ‘레옹’으로 시작된 자신의 아역 시절에 대해 “난 소중한 어린 시절을 잃어버렸다”고 고백했다. 나탈리 포트만은 11세 때인 1994년 영화 ‘레옹’에서의 마틸다 역할로 세계적인 스타로 급부상했다. 당시 포트만은 나이답지 않은 조숙한 연기로 평단과 관객의 찬사를 한몸에 받으며 대배우로 성장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제 20대 중반에 들어선 포트만은 뉴스사이트 ‘몬스터스&크리틱스’(monstersandcritics.com)와의 인터뷰에서 “어린 나이에 연기를 시작해서 너무 빨리 커 버렸다.”며 어린 시절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포트만은 “나는 내 어린 시절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어서 나이를 먹었으면’ 하고 바라는 아이였지만 지금 생각하니 부끄러운 일이었다.” 고 밝혔다. 또 그녀는 “난 평범한 삶의 일부분을 놓쳤다. 어린 시절 나는 밖에 나가서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흙장난을 하지 않은 아이였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포트만 본인의 후회와는 다르게 그녀는 잃어버린 어린 시절에도 불구하고 사춘기를 잘 보낸 모범적인 할리우드의 아역 출신 연기자로 꼽힌다.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한 재원인 포트만은 세계적인 스타이자 뛰어난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고 있다. 사진=나탈리포트만 홈페이지 (natalieportmanclub.com) 서울신문 나우뉴스 명 리 미주 통신원 starlee07@naver.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연아가 있어 행복”…갈라쇼에 찬사 ‘봇물’

    “요정보다 더 아름다운 김연아”,“천사를 보는 듯한 꿈을 꾸게 한다.” 갈라쇼에서 멋진 연기를 펼친 김연아(18·군포 수리고)에 대한 찬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김연아는 24일(한국시간) 스웨덴 예테보리 스칸디나비움 빙상장에서 열린 2008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피겨선수권대회 갈라쇼에서 1부 마지막 무대를 장식했다. 김연아는 이날 영화 ‘워크 투 리멤버’의 삽입곡인 맨디 무어의 ‘온리 호프’에 맞춰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해당 기사들에 “너무 아름다웠다.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는 등의 감동 어린 댓글을 남기고 있다. 김연아의 싸이월드 미니홈피 방명록에도 네티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강상은’은 “밤늦게 한 갈라쇼를 보고서 도저히 그냥 잠들 수 없었다.”며 “너무 아름다웠단 말밖엔 할 말이 없다.마음속 한가득 감동을 느꼈다.”고 글을 남겼다. ‘김성태’란 네티즌은 “음악에 맞춰 춤추는 4∼5분,짧은 시간이었지만 보는 이로하여금 천사를 보는 듯한 꿈을 꾸게 했다.”고 칭찬했고,‘오정훈’은 “사람이 이렇게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인가.연아양이 있어 정말 행복하고 즐겁다.”고 말했다. 네티즌 h5703290은 네이버 ‘김연아 응원장’에 “당신은 진정한 애국자고 외교관”이라며 “다른 외교관은 세금을 쓰며 외교를 하지만 연아씨는 돈을 벌면서 더 효과적인 외교를 한다.”고 전했다.. 김연아의 부상 소식에 대해서는 “진통제를 맞고 투혼의 연기를 펼친 것에 박수를 보낸다.”며 걱정했고,“완전히 회복해서 앞으로도 좋은 연기를 펼쳐달라.”고 당부했다. “식이요법을 위해 좋아하는 빵을 마음대로 못먹는 것이 힘들다.”는 김연아의 인터뷰에 대해 “대회가 끝났으니 마음껏 먹으라.”며 “한국에 오면 내가 직접 만든 빵을 선물하겠다.”고 제안하는 이도 있었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당당한 김연아 “목표는 밴쿠버”

    ‘최종 목표는 밴쿠버 겨울올림픽!’ 만 14세 때 한국 피겨 사상 처음으로 국제빙상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 금메달을 따내며 한국 피겨의 앞길을 환히 밝힌 김연아(18·군포 수리고)의 마지막 목표는 2년 뒤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리는 겨울올림픽 정상이다. 지난 4년 동안 김연아의 존재는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석권한 주니어와 성인무대 그랑프리대회의 ‘지존’을 이미 넘어섰다. 사실, 김연아가 피겨팬뿐 아니라 일반인의 아낌없는 찬사를 여전히 받는 이유는 단지 은반 위에서 놀리는 그의 몸짓 하나, 표정 하나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워진 목표를 향해 빙판을 녹일 듯 쏟아붓는 열정과 어떠한 난관에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18세 소녀답지 않은 당당함 때문이다. 그래서 20일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날아든 쇼트프로그램 5위라는 소식은 어떤 이들에겐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아쉬움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사람들에겐 징글맞게 괴롭히고 있는 부상에 맞서 일궈낸, 또 하나의 ‘장한 일’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김연아의 표정은 여전히 자신에 차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얼음 공주’라는 별명에 걸맞게 냉정할 만큼 또박또박 자신의 발걸음을 복기했다는 점이다.“고관절 부상 때문에 우승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오지 않은 만큼, 큰 부담은 없었다.”는 말에서 결코 안되는 일을 끼워 맞추려는 무리함도 보이지 않는다. 처음 국제무대에서 우승할 당시 김연아는 여러 사람 앞에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한 ‘꼬맹이’였다. 그러나 난생 처음 해보는 인터뷰에서 그는 “사샤 코언처럼 되겠다.”면서 “꼭 겨울올림픽 빙판의 가장 높은 곳에 서 보겠다.”고 당돌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차근차근 그 목표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21일 새벽 프리스케이팅을 마지막으로 김연아는 07∼08시즌을 모두 마감했다. 주니어 정상에 오른 이후 지금까지 그의 성적은 사실 그리 중요치 않다. 그로 인해 한국 피겨의 물줄기가 크게 요동쳤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에겐 신선한 일이다. 남은 건 그가 겨울올림픽 정상을 향해 흔들림없이 뚜벅뚜벅 걸어나갈 수 있도록 더욱 애정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일이다. 김연아는 지금 이 시각에도 한국 피겨의 역사를 바꾸고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뮤지컬 ‘나쁜 녀석들’ 리뷰

    뮤지컬 ‘나쁜 녀석들’ 리뷰

    “괜찮았어. 즐거웠어. 한바탕 놀아본 거야. 이렇게 사는 것이 진짜 사는 것.” ‘나쁜 녀석들’(연출 황재헌·5월12일까지·두산아트센터 연강홀)은 마음 가는 대로 사는 인생들에 대한 유쾌한 찬사다.2005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돼 같은 해 토니상 11개 부문에 오른 이 작품이 국내로 무대를 옮겼다. 극은 한 편의 버디무비를 연상케 한다. 코미디영화 감독 프랭크 오즈의 ‘화려한 사기꾼’(1988)이 원작임을 알기 전에도 말이다. 미워할 수 없는 사기꾼 둘이 있다. 프랑스의 휴양지 리비에라에서 ‘망명한 왕자’ 행세를 하는 로렌스(김우형). 그는 특유의 배려심과 귀티(?)를 발휘해 돈은 많지만 사랑에 굶주린 여자들에게 지갑을 자발적으로 열게 한다. 한편 여자들의 얄팍한 동정심을 이용해 푼돈을 뜯어내는 프레디(김도현)는 삼류 사기꾼. 로렌스는 단계별 여자 공략법을 프레디에게 전수 받는다. 이 ‘스승과 제자’는 미스 니베아로 경품 여행에 당첨된 여인 크리스틴의 돈과 마음을 놓고 맞수가 된다. 그런데 진정한 다크호스는 따로 있었다는 게 이 이야기의 묘미다. ‘나쁜 녀석들’은 뮤지컬에서 관객이 원하는 조건은 다 갖추고 있다. 몸 개그와 화장실 유머, 한국적 상황에 맞춤한 언어 유희는 마음을 편히 놓고 웃게 만든다. 자칫하면 ‘카바레’ 분위기로 흐를 듯한 화려한 조명과 쇼는 흥을 높인다.‘이건 연극’임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장난도 친다.“저는 한국인인데 미국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저도 한국인인데 미국인 역할을 하고 있어요.”“이 장면은 아까 했잖아.” 오클라호마 출신, 석유재벌의 딸인 졸린(임지혜)이 사방에 총알을 내갈기며 앙상블의 안무를 이끄는 장면부터 몰입도는 더해간다. 김도현은 천연덕스러운 연기로 적역을 만났다. 하지만 극 초반부, 로렌스가 왕자인 척하며 뭇 여성들을 꼬드기는 장면의 어수선한 동선은 좀더 다듬어져야 할 듯하다. 작품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하는 출발, 무대 위 잦은 세트 교체도 극의 흐름을 끊는 요인이다. 마지막에 고개를 쳐들게 하는 것은 거듭되는 반전. 이야깃거리에 익숙한 요즘 관객들에게 웬만한 반전은 우습지만, 그 ‘한 방’, 통쾌하다.1588-5212.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선부론(先富論·능력껏 부자가 돼라)/던컨 휴잇 지음

    중국 남부 광둥성의 지난해 1인당소득은 8900달러, 서부 닝샤후이주 자치구의 소득은 176달러. 잘 사는 지역과 못 사는 곳의 소득격차는 무려 50배에 이른다.1978년 덩샤오핑이 ‘선부론(先富論·능력껏 부자가 돼라)’을 앞세우며 개혁·개방을 실시한 지 30년을 맞은 지금, 도농간 빈부격차는 중국의 가장 큰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그런 배경에서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2005년 균부론(均富論·다같이 부자가 되자)의 기치를 올린 것. 그렇다면 선부론은 어떤 현재적 의미가 있는 것일까. 선부론이 물론 빈부격차의 한 원인이 됐지만, 그래도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은 중국 5000년 역사상 처음으로 절대 기아에서 해방시키는 데 결정적 공헌을 했다는 점이다. ‘선부론’(던컨 휴잇 지음, 김민주 등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은 중국 시장경제의 키워드가 된 선부론을 집중 조명한 책이다. 영국 BBC의 베이징 특파원을 지낸 저자는 중국의 고도 경제성장을 거시적인 틀에서 다루기보다는 경제발전에 따른 시장경제 체제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라오바이싱(老白姓·일반인)’의 삶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베이징에서 만난 여든 두 살의 자오 노인은 내전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용케 견뎌온 자신의 집이 재개발로 헐리는 것을 모습을 지켜 봐야 했다.1990년대 말까지만해도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던 조용한 회색도시였던 베이징은 2008년 올림픽을 앞두고 지금 대규모 토목 공사가 한창이다.2∼3년 전만 하더라도 막힘없이 달리던 베이징의 5개 순환도로는 만성적인 교통체증에 허덕이고 있다. 서유럽이 1세기 만에 이뤄낸 것을 한국은 20년동안, 중국은 10년 만에 이룩했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중국의 고도성장에 찬사만 보내는 것은 아니다. 서구 언론인 특유의 중국에 대한 ‘삐딱한’ 시선은 여전하다. 베이징·상하이·선전 등 경제발전을 이끄는 도시의 모습을 소개하는 한편 실업·빈부격차 등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는다.1만 98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도시를 바꾸는 디자인] (상) 스페인 빌바오·발렌시아

    [도시를 바꾸는 디자인] (상) 스페인 빌바오·발렌시아

    세계는 지금 초고층 건물을 지어올리는 ‘마천루 경쟁’ 중이다. 세계 최고 높이의 건물을 갖겠다는 자존심, 바람과 중력 등에도 끄떡없는 첨단 공법의 과시, 제한된 토지의 효율성 극대화 등은 경쟁을 부추긴다. 세계 중심도시로 성장하고 관광객을 끌어들이겠다는, 경제성과 상징성을 과연 마천루 경쟁에서만 찾을 것인가. 독특한 디자인의 건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스페인의 빌바오와 발렌시아, 프랑스 파리,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현대 도시가 추구해야 하는 경제성과 상징성을 들여다본다. |빌바오·발렌시아 최여경특파원|#1. 스페인 북부 빌바오 공항 안내소. 시내 지도를 달라고 하자 친절한 미소를 띤 직원은 묻지도 않았는데 지도를 펼치며 “이곳이 구겐하임 미술관이고, 시청사에서 강을 따라 가면 나온다.”고 설명한다.‘빌바오 방문=구겐하임 미술관’이라는 등식이 당연하다는 표정이다. #2. 발렌시아 동부의 해안도시. 하얀색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놀던 10대들은 “안에서는 다양한 문화를 즐기고 밖에서는 밤낮이 다른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라면서 “이곳에서는 미래 도시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며 재잘거렸다. 무엇이 도시를 바꿀 수 있을까. 스페인 빌바오와 발렌시아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빌바오는 1997년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을 개관해 공업도시에서 문화도시로 성공적인 변신을 했고, 발렌시아는 ‘예술과 과학의 도시’(Ciudad de las Artes y de las Ciencias)로 수도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지위를 넘보고 있다. ●하나의 건물, 도시 전체를 변화시켜 스페인 바스크주 중심도시였던 빌바오는 1959년부터 격화된 바스크 독립운동으로 도시 속 위험 요소가 높아지고,1980년대 중반 실업률은 35%까지 솟구쳤다. 도시를 가로지르던 네르비온강은 공업화의 후유증을 겪으며 환경이 악화됐다. 과감한 선택이 필요했고, 빌바오 시정부는 그 방향을 광산·철강·조선업 대신 문화·서비스 분야로 잡았다. 중앙정부에 협력을 요청해 모든 제조설비를 강 뒤편으로 옮기고, 운송수단용 철로를 땅 아래에 묻었다. 이같은 변화는 ‘구겐하임 미술관’ 건립에서 절정을 맞았다.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1억 9000만달러를 투자해 강행한 미술관 건립 사업은 착공 5년 만인 1997년에 마무리됐다. 활짝 핀 꽃 모양에 3만 3000여개의 티타늄 조각을 붙여 ‘금속꽃’(메탈 플라워)이라고 불리는 건물은 낮과 밤, 날씨에 따라 다른 빛깔로 번쩍인다. 입구에 놓인 미국 전위 예술가 제프 쿤스의 대형 강아지 모형과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미 형상의 조형물 ‘엄마’가 어우러진다. 스페인 국왕 후안 카를로스가 “인류가 만든 20세기 최고의 건물”이라는 찬사를 했고, 세계적인 건축가들도 “쇠퇴하는 빌바오를 되살리는 데 ‘절대적인 공헌’을 한 괴물”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스페인 제1도시를 넘본다 스페인 동부 발렌시아는 남북을 관통하는 투리아강에 의존하며 어업과 농업, 공업지대로 성장한 도시이다.1957년 도시의 75%가 침수되는 대홍수를 겪으면서 도시개발의 전기를 맞았다. 대홍수 이후 강의 물줄기가 약해지고 일부는 강바닥이 드러나자 시는 이곳을 공원, 열린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문화 벨트’ 사업을 시작했다. 리카르도 마르티네즈 발렌시아 시정부 도시계획국장은 “‘균형잡힌 도시’와 ‘강의 재발견’으로 목표를 정하고 1991년부터 강을 따라 현대와 전통을 맛볼 수 있도록 도시 조성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발렌시아 중심가는 연갈색의 바로크 건물이 펼쳐지며 오래된 도시의 느낌이 강하다. 북쪽 컨벤션센터부터 시작해 투리아강을 따라 공원, 박물관, 식물원 등을 거쳐 남쪽으로 가면 세련된 하얀색과 푸른색으로 돌변한다. 천재적인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의 역량이 집중된 ‘예술과 과학 도시’는 세련된 미래도시의 극치를 이룬다.1.8㎞,35만㎡ 규모의 공간에 음악당인 ‘레이나 소피아 예술궁전’, 국제회의장 ‘레미스페릭’, 과학박물관 ‘프린시페 펠리페’, 야외공원 등을 조성했다. 칼라트라바는 지중해 해안도시인 발렌시아의 지역 특성을 살려 건물 주변에 얕은 호수를 조성했다. 낮에는 건물 디자인 자체의 매력으로, 조명이 켜진 밤에는 장대하고 호화로운 야경으로 관람객들의 시선을 빼앗는다. 특히 공사기간 14년, 사업비 3억 300만달러가 들어간 음악당은 보는 사람에 따라 거대한 전사의 투구나 우주선, 뛰어오르는 돌고래 등으로 변해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한다. 주빈 메타 등 쟁쟁한 지휘자가 예술감독과 정기 축제를 담당하며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의 명성을 뛰어넘었다. 발렌시아는 예술과 건축 분야에서 수도인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를 뛰어넘는 여행지로 부상하며 연 400만명의 방문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kid@seoul.co.kr ■’엘 구그 경제효과’ 年 3억 2027만 달러 |빌바오 최여경특파원|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건물 하나가 도시의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세계 건축사에 한 획을 그었다. 세계 각국 도시에서 ‘우리도 구겐하임 미술관과 같은 건물을 가져야 한다.’고 부르짖을 정도다. 전 세계에서 100만명 이상을 끌어모으는 구겐하임 미술관은 실제로 어떤 파생효과를 가져다 줬을까. 빌바오 시정부에 따르면 구겐하임 미술관 건립(1997년) 이후 해외 관광객은 1994년 142만 5822명에서 1998년 212만 3305명으로,1.5배가 늘었다. 이후 구겐하임 미술관의 명성에 힘입어 2002년 246만여명,2004년 339만여명,2006년 387만여명으로 한 해 평균 172%의 안정적인 증가율을 유지하고 있다. 빌바오가 관광지로 각광 받게 되면서 호텔은 1994년 29개에서 2006년 50개로 1.7배 늘었고, 이에 따른 호텔 이용객은 44만 2012명에서 112만 4649명으로 2.5배 증가했다. 미술관과 콘퍼런스홀에서 열리는 행사는 1996년 100여개에서 2006년 978개로, 행사 참가자 수는 같은 기간에 각각 2만명에서 18만 4581명으로 무려 9배 이상 급증했다. 빌바오 시정부에 따르면 지난 한해 동안 3억 2027만달러의 파생 효과를 낳았다. 잘 지은 미술관 하나가 도시의 명성을 높이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게 하는 것은 ‘엘 구그(El Gugg·구겐하임의 애칭) 효과’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kid@seoul.co.kr ■스페인 빌바오 제1부시장 인터뷰 |빌바오 최여경특파원|“경제위기 상황에서 왜 천문학적인 재원을 들여 구겐하임 미술관을 지어야 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반대를 무릅쓰고 과감하게 투자한 결과 지금의 빌바오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스페인 빌바오의 이본 아레소 멘디고렌 제1부시장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실업률이 날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빌바오는 고용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지만, 제조업이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보지는 않았다.”면서 “제조업의 부담을 줄이고 레저, 주거, 관광 등의 분야에서 더 많은 가능성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실 당시 우리의 관심사는 환경문제가 아니라 실업률을 낮추는 것이었고, 문화·서비스업이 장기적인 고용 창출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강을 등진 도시’에서 ‘강을 바라보는 도시’로 방향을 잡고, 네르비온 강변의 공장, 제조설비 등을 강 뒤쪽과 바닷가쪽으로 옮겼다.14년간의 노력 결과 한 세기 동안 공업활동으로 환경이 파괴된 네르비온 강의 생태환경이 다시 살아났다. 강을 따라 구겐하임 미술관을 비롯해 박물관·콘퍼런스홀·도서관 등을 지었다. 몇몇 주거빌딩과 호텔은 유명한 건축가에게 디자인을 맡겨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퇴색한 공업도시가 꼭 가봐야 하는 문화도시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 빌바오는 현대 산업도시의 미래를 제시하는 모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kid@seoul.co.kr
  • 겨울올림픽 3수 도전 지렛대로

    지난 9일 강원 강릉에서 성공리에 끝난 세계쇼트트랙 선수권대회가 평창 겨울올림픽 실패 이후 추진 중인 3수 도전의 불씨를 살리고 있다. 10일 강릉시에 따르면 7일부터 사흘 동안 강릉실내종합체육관 빙상장에서 열린 ‘2008세계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는 완벽한 준비와 뜨거운 응원전으로 강원도민들의 겨울올림픽 유치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다. 대회 기간 동안 강릉빙상장은 3400석의 관람석을 가득 메우고 연일 계단에까지 관람객이 몰려 경기당 5000여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7월 과테말라에서의 좌절 이후 잠잠했던 겨울올림픽에 대한 열망을 다시 살리겠다는 주민들의 열망으로 분석된다. 경기장을 찾았던 최재호(47)씨는 “겨울의 고장을 넘어 2018겨울올림픽은 평창·강릉지역에 반드시 유치되길 기원하며 경기를 관람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열기 이상으로 강릉빙상장의 시설과 준비 상황도 합격점을 넘었다는 평이다.1999년 평창 겨울아시안게임 아이스하키 경기를 위해 건립된 강릉빙상장은 이번 선수권대회를 기회로 강릉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국제빙상연맹(ISU) 조지 마토스 대표는 “텔레비전을 통해 경기를 시청하는 외국과 달리 경기장을 메운 뜨거운 열정에 놀랐다.”며 강릉시민들의 동계스포츠 열기에 찬사를 보냈다. 한편 강릉시는 내년 3월 개최 예정인 ‘2009 여자컬링세계선수권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 겨울올림픽 빙상도시로서의 인프라와 대회 경험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최명희 강릉시장은 “기대 이상의 시민들이 참여했다.”며 “겨울올림픽 유치를 향한 시민들의 열망을 바탕으로 강릉시를 세계적인 빙상 중심 도시로 발전시키겠다.”고 다짐했다.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영원한 하숙생’ 최희준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영원한 하숙생’ 최희준

    스피노자는 스스로 ‘왕따 철학자’였다.46세 폐병으로 죽을 때까지 집을 떠나 홀로 ‘하숙생’과 ‘나그네’로 전전했다. 하지만 주위의 어떤 비난과 찬사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삶을 살았다.‘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철학을 폈다. 그래서 헤겔은 “철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스피노자를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상 곳곳에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 대부분 철학자나 다름없다. 부모를 뒤로하고 고향집을 떠나 ‘하숙생’으로, ‘나그네’로 다들 살고 있을 터이다. 모진 비바람이 닥쳐도 ‘나름대로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며 하나 둘 꿈의 벽돌을 쌓고 있다. 이름을 떨치든 아니든 ‘나 태어나 열심히 잘살아 보겠노라.’고 고민하고 다짐하면서 고군분투한다. TV가 아주 드믈었던 1964년,‘하숙생’이란 드라마가 있었다. 미스코리아 출신의 애인을 구하려다 화상을 입고 버림받은 남자 주인공의 애틋한 사랑을 그렸다. 사람들은 비운의 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을 졸여야 했다. 그럴 때마다 허스키한 저음의 음성이 미치도록 나지막이 깔렸다.‘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가/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이랑 두지 말자 미련이랑 두지 말자/인생은 나그네 길 구름이 흘어가듯 정처 없이 흘러간다∼’ 전파를 탄 지 불과 10일도 안돼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모았다. 경향각지 선술집에서는 너도나도 젓가락 반주에 ‘인생은 나그네길∼’을 불렀다. 그럴듯한 ‘철학적 깊이’에 다들 심취하는 모양이었다.‘그래, 인생이 뭐 별거냐, 벌거숭이로 왔다가 벌거숭이로 가는 것을’이라고 중얼거리면서. 서민들의 지친 삶을 어루만지는 노래로 대표되는 ‘하숙생’이다.1960년대 톱가수 최희준(72)씨가 불렀다.5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다. 왜? 이 노랫말을 직접 쓴 고 김석야 선생이 생전에 답했다.“교통 요충지인 천안삼거리를 오가는 길손들의 애환을 어릴 적부터 보면서 드라마로, 노래로 만들어 보겠노라.”고. 40대 이상의 팬들은 물론 30대의 젊은 층도 가수 최희준을 아는 사람이 많다. 전무후무하게 서울대 법대를 나온 가수이자 전 국회의원, 그리고 학사 출신 가수 1호로도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일흔을 넘긴 지난해 그는 ‘대한민국 연예예술상대상’과 ‘화관문화훈장’을 받으면서 ‘영원한 하숙생’이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2008년 그에겐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1936년 쥐띠생인 그가 쥐띠해를 맞아 노래인생 50년을 기념한다.‘우리 애인은 올드 미스’‘진고개 신사’‘빛과 그림자’‘하숙생’‘종점’‘팔도강산’ 등 수많은 히트곡을 모아 올가을 특별한 콘서트를 가질 예정이다. 되도록 추억의 팬들을 많이 만나려고 대극장을 물색 중이다. 그를 서울교육문화회관 커피숍에서 만났다. ▶노래 인생 50년을 맞는 소감은 어떠신지요? “벌써 그렇게 세월이 흘렀네요. 예나 지금이나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마구 떨려요.‘우리 애인은 올드미스’로 데뷔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입니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로 봤을 때 ‘올드미스’라는 제목이 쉽게 나왔을까요? “제가 본격적으로 노래를 부른 것은 서울대 3학년 때인 1958년입니다. 지금 동숭동 문리대 교정에서 법대 대표로 저와 가야금 하시는 황병기 선생이 출전해 입상을 했지요.6·25이후 미군의 영향이 많았을 때였습니다. 군복을 염색해 입고 다니기도 했거든요.1959년 대학졸업 후 미8군에서 노래를 하고 있는데 손석우 선생님이 저를 부르더니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내사랑 주리안’‘그림자’‘목동의 노래’ 등을 주시더군요. 그러면서 온 가족이 다 함께 모여서 부를 수 있는 밝은 풍의 노래를 보급시켜야 하지 않겠느냐고 강조하셨지요. 이른바 ‘홈송’입니다. 여전히 꼬장꼬장하신 손 선생님은 나이가 90인데도 건장하게 잘살고 계십니다. 지난해에 한번 만나 뵈었지요.” ▶데뷔 당시 같이 노래를 부른 가수가 여럿 되지요? “패티김, 이미자, 남일해, 한명숙, 박재란, 위키리 등 많습니다. 미8군에서 노래를 같이 부른 사람도 많고요.” ▶서울대 법대를 진학했다면 당연히 법관 지망생이었겠네요? “원래는 상대 입학원서를 들고 다녔는데 아버님께서 무조건 법대를 넣으라고 했어요. 장차 법조인이 되라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노래로 빠졌으니 아버지가 많이 속상해하셨습니다.‘우리 애인은 올드미스’를 발표하고 나더니 당시 대한일보의 임영웅(현 산울림극단 대표)씨가 ‘대기만성형 학사가수 1호’ 어쩌구저쩌구 대문짝만 하게 기사를 쓰는 바람에 아버님이 알게 됐습니다. 보름 동안 아무 말씀도 안 하셨지요.” ▶법대를 진학했는데 고시공부는 안 했습니까? “대학 3학년때 제8회 고등고시에 응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험지를 받아봤더니 ‘이건 떨어뜨리기 위한 시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포기했습니다.” ▶대학 동기들은 누구입니까? “서울대 법대 12회 출신들의 모임이 있습니다. 이한동 전 총리, 남재희 전 국회의원, 김용태 전 내무장관 등입니다. 동기들 중 저 혼자 노래를 부르다 보니 모임에 가면 제 주변에 다들 앉으려고 했는데 나중에는 정치실세들 주변에 모이더군요, 하하하.12회니까 매년 12월12일날 송년회 겸 만납니다.” ▶가수에서 국회의원도 했습니다. 재선에는 왜 도전을 안 하셨는지요?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로 안양지역구에서 출마해 다행히 당선이 됐습니다. 문화관광위를 맡아 입법을 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재선도전은 공천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아 관뒀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하숙생’의 가사가 잊혀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인생이 뭐냐 하는 것은 항상 화두가 됩니다. 이 노래의 가사는 때로는 묵상을 하게 만들고, 철학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들리지요. 종교계에 계신 분들도 ‘생각할수록’ 의미가 깊다는 말씀을 해주시더군요. 저도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그래 과연 인생이 뭘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또 가사처럼 부담없이 인생을 살다 보니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해병대에서 복무하셨지요? “121기입니다.1961년 9월에 입대해 64년 2월에 제대했지요.‘해병 연예대’의 모병 광고를 보고 지원했습니다. 한 달에 두세 번 나가는 모병선전과 전국 위문공연을 많이 다녔습니다. 여자 가수도 동행했는데 박재란, 이금희, 한명숙, 현미, 이춘희 등 당대의 스타들이었습니다. 해병 연예대의 멤버는 도미, 남백송, 박일호, 방태원, 박경원, 코미디언으로는 임희춘 등이었지요. 우리의 뒤를 이어 남진, 진송남, 박일남, 오기택 등이 해병 연예대의 전통을 이었습니다.” ▶요즘 노래를 들으면서 격세지감을 느끼시지요? “옛날에는 생각도 못 했던 깜짝 놀랄 만한 노래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대중음악이 정규대학의 과목으로도 채택되고 있고 노래를 참 잘 부르는 후배들이 많이 활약하고 있지요. 한류가 힘을 갖는 것도 실력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 근황은 어떻습니까? “아들 둘, 딸 하나 두었는데 다들 결혼해 잘살고 있습니다., 안사람과 단둘이 오붓하게 살고 있지요. 일주일에 두어 번 헬스클럽에서 안사람과 같이 운동을 합니다. 좋아하던 술은 3년 전에 딱 끊어 버렸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저작권료를 얼마 받느냐고 하자 “가수는 받는 게 별로 없다. 그런 문제가 하루빨리 해결돼야 되는데….”라고 했다. 노래는 무엇이냐고 했더니 “말만 들어도 사춘기 때처럼 여전히 가슴이 뛴다.”며 웃는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36년 서울 출생 ▲54년 경복고 졸업 ▲59년 서울대 법대 졸업 ▲58년 가요계 데뷔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64∼66년 10대가수왕 ▲70∼72년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장 ▲96∼2000년 새정치국민회의 안양동안갑지구당위원장.15대국회 문화관광위원 ▲01∼04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상근감사 ▲02년 최희준 가을밤 콘서트(정동극장) ▲03∼현재 한국대중음악연구소 이사장 ●주요 히트곡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하숙생, 팔도강산, 빛과 그림자, 종점 등 200여곡 발표
  • 박범신 포털 연재소설 ‘촐라체’

    박범신 포털 연재소설 ‘촐라체’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가 뭘 원하는지, 무엇을 그리워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요. 한마디로 야성을 잃어버린 젊은 세대들에게 야성을 되찾아주고 싶었습니다.” 작가 박범신(62)씨가 최초의 인터넷 포털연재소설 ‘촐라체’(푸른숲 펴냄)를 단행본으로 내놓으며 집필 배경을 밝혔다. 그는 “젊은 세대들이 그리운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고, 정체성을 알아가도록 하는 것이 소설의 핵심 주제”라고 말했다. ‘촐라체’는 해발 6440m의 히말라야 봉우리 촐라체를 등반하던 중 조난됐다가 극적으로 살아난 산악인 박정헌과 최강식의 실화를 모티프로 한다. 아버지가 다른 형제 박상민, 하영교가 촐라체 북벽에서 겪은 6박7일간의 조난과 생환 과정을 생생하고 긴박감 넘치게 그려낸다. 작가는 “등반이라는 서사만 빌렸을 뿐 산악소설은 아니라며 촐라체는 꿈, 이상일 수도 있고 개인의 정체성일 수도 있다.”면서 “나 자신도 볼펜이라는 피켈에 의존해 소설이라는 촐라체에 오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촐라체가 단지 산이라는 공간이 아닌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촐라체’는 연재 당시부터 주목을 받아 방문자 수가 100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작가는 그러나 “댓글을 통한 건전한 문학적 토론을 바랐는데 일방적인 찬사나 인민재판만이 난무하며 상호 소통에는 미흡했다.”며 아쉬워했다.98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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