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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림픽 성화, 우여곡절 끝에 일본 안착

    올림픽 성화, 우여곡절 끝에 일본 안착

    도착해서도 삐그덕 ·· 관계자 지각에다 폭풍경보 속 오륜기 그리기 축하 비행도 실패26일 ‘무관중’ 속에 후쿠시마 출발, 대회 개막일까지 47개 일본 지역 대장정 예정그리스에서 ‘무관중’ 채화된 도쿄올림픽 성화가 20일 특별수송기 ‘도쿄(TOKYO)2020호’ 편으로 일본 미야기(宮城)현의 항공자위대 마쓰시마 기지에 도착했다.지난 12일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채화된 이 성화는 유럽에서 확산되기 시작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그리스 내 봉송 행사가 이틀 만에 중단되면서 곧바로 아테네로 옮겨졌다. 아테네 중심부의 파나시나이코 경기장에 안치됐던 성화는 19일 개최 도시인 도쿄도가 인수했다. 도쿄도와 대회 조직위원회는 모리 요시로(森喜朗) 회장(위원장)과 야마시타 야스히로(山下泰裕) 일본올림픽위원회(JOC) 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성화 도착식을 열었다. 일본 선수로 올림픽 3연패를 달성한 노무라 다다히로(유도남자)와 요시다 사오리(레슬링 여자)가 특별수송기에 올라 조직위 관계자로부터 성화를 넘겨받았다.이들이 1.5m 높이의 성화접시(이동식 성화 보관대)에 성화를 옮기는 것에 맞춰 항공자위대 곡예비행팀 ‘블루임펄스’가 공중에서 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기 그리기에 나섰다. 그러나 이날 폭풍경보가 발효된 행사장 주변에 강한 바람이 불어 완벽한 형태의 오륜을 그리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교도통신은 이날 강풍 영향으로 하시모토 세이코(橋本聖子) 올림픽·패럴림픽 담당상 등 일부 참석 예정자들이 축하행사에 늦게 도착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성화 봉송 중에 계속 사용될 성화접시는 재해를 딛고 일어서는 ‘부흥’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 당시 가장 피해가 컸던 이와테(岩手), 미야기, 후쿠시마(福島) 등 3개 현의 가설주택 폐기 자재로 만든 것이다. 이날 경축 행사는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축하 행사를 지원할 어린이 200여 명의 참석을 취소하는 등 애초 계획했던 것에서 대폭 축소된 형태로 진행됐다. 경축 행사가 끝난 뒤 성화는 미야기현 이시노마키 옛 시가지에 조성된 쓰나미부흥기념공원으로 옮겨져 일반에 공개된다.도쿄올림픽 성화는 ‘부흥의 불’로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 현에 전시된 후 오는 26일 후쿠시마 J빌리지를 출발해 개막식이 열리는 7월 24일까지 121일 동안 일본 전역의 47개 도도부현(광역단체)을 순회하는 장정에 오른다. 동일본대지진 직후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사고 대응 본부가 설치됐던 J빌리지에서 열리는 성화 출발식은 코로나19 때문에 관중이 없는 상태로 치러진다. 대회조직위는 후쿠시마(26~28일), 도치기(29~30일), 군마(31일~4월 1일) 현으로 이어지는 성화 봉송 때 각 기초자치단체에서 매일 열리는 성화 도착 축하 행사도 무관중으로 진행하고, 성화 봉송 주자가 달리는 도로 주변에 관중이 밀집하지 않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이후로는 각 지역의 코로나19 확산 상황 등을 보고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미국 다녀온 60대 부부 확진

    미국에 사는 아들 집을 다녀온 전북 군산시의 60대 부부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전북도와 군산시는 미국에 다녀온 전북 군산의 아내 A(62·여)씨에 이어 군산지역 안과 원장인 남편 B(65)씨도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17일 밝혔다. B씨는 병원 휴업을 하고 미국을 다녀온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전북에서 8번째, B씨는 9번째 코로나19 확진자가 됐다. 부부는 지난 2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해 미국 뉴욕의 아들 집을 방문하고 14일 오후 4시께 귀국해 공항버스와 택시를 이용해 군산 자택으로 돌아왔다. A씨는 지난 15일 오전 기침, 오한, 근육통, 인후통 등의 증상을 보이자 16일 승용차로 군산보건소 선별진료소를 찾아 검체 검사를 받았다. 부부는 비행기 안에서뿐만 아니라 국내에 들어와 군산으로 귀가하는 과정에서도 마스크를 썼다고 진술했다. 부부는 군산에 도착해서도 선별진료소를 찾은 것 외에는 외출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남편은 승용차로 한 차례 병원에 잠시 다녀온 것으로 파악됐다. 부부는 군산의료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B씨는 자가 격리 상태에서 검체 검사를 받은 뒤 오후에 양성 판정을 받았다. 전북도와 군산시는 부부를 상대로 자세한 이동 경로를 파악하는 등 역학조사를 벌이고 있다. 또 부부가 사는 군산시 지곡동 아파트 등을 방역 소독했다. 방역당국은 A씨와 함께 비행기와 리무진 버스를 탄 이용객, 택시 운전자의 신원을 파악하고 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사설] ‘긴급’ 없는 긴급경영안정자금, 지원체계 보완해야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 대한 정부와 금융기관의 지원이 ‘그림의 떡’이 되고 있다. 지난달부터 소상공인을 위한 긴급경영안정자금 융자 1조 4000억원, 은행권의 3조 2000억원 신규대출 공급 등 10조원이 넘는 지원대책이 발표됐지만 자금이 집행되는 데 한 달 이상 걸린다는 지적이 나왔다. 게다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접수된 긴급경영안정자금 신청은 이미 3조원을 훌쩍 넘어서 지원액이 조기 소진될 거라는 우려로 조바심을 태우는 사람들도 적지 않단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코로나19 피해기업 자금신청의 70~90%가 보증부 대출이다. 보증부 대출은 신용보증재단 등에서 보증서를 발급받은 뒤 은행에서 대출받는 구조다. 돈을 빌린 사람이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재단이 대출금의 90~100%를 책임지기 때문에 은행이 선호하는 방식이다. 평소 2주일 정도 걸리던 보증 심사가 대출신청이 급증하면서 두 달까지 지연되고 있다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현재 대출서류 접수, 현장 실사 등 업무 일부를 은행이 위탁받아 하지만 역시 폭증하는 신청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그제 업무 위탁 범위를 늘리고 정책금융기관의 퇴직 인력을 활용해 신속하게 자금지원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가 또 다른 ‘희망고문’이 돼서는 안 된다. 소액의 보증 심사는 대출 은행에 넘기고, 간단한 현장 실사는 생략하는 방식 등으로 절차를 줄여야 한다. ‘관계형 금융’으로 지역 소상공인들을 잘 아는 지역협동조합, 새마을금고 등과의 협업도 고려해 볼 만하다. 시중은행은 지금 상황에서 대출의 회수 가능성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 신용등급을 한시적으로 상향시킨다거나, 보증부대출 일부를 신용대출로 바꾸고 지점장 전결권을 늘려 심사기간을 줄일 수 있다. 만기가 다가오는 대출은 무심사로 만기를 연장할 수도 있다. 일부 시중은행에서 이미 실행하고 있다. KB·신한·하나 등 5대 금융지주 회장들은 지난 2일 금융위원장과 만나 “비장한 각오로 고객인 국민과 기업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극복해 나가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언행일치를 기대한다.
  • [따뜻한 세상] 전복된 사고 차량 발견, 한걸음에 달려가 운전자 구조

    [따뜻한 세상] 전복된 사고 차량 발견, 한걸음에 달려가 운전자 구조

    새벽 시간에 사고로 전복된 승용차 안에 갇혀 있던 운전자를 구조한 한 시민의 사연이 전해졌다. 지난 6일 오전 2시 30분쯤 인천 연수구 동춘동 북인천지하차도에서 귀가 중이던 정경환(33, 인천 서구 검암동)씨는 승용차 전복 사고 현장을 목격했다. 정씨는 곧장 차에서 내려 사고 현장으로 다가갔다. 운전자는 팔과 다리를 크게 다친 상황. 정씨는 조심스럽게 운전자를 부축, 대피를 도왔다. 정씨는 지난 9일 서울신문과 통화에서 “처음 사고 현장을 목격했을 때 차가 많이 찌그러져 있었다. 혹시 운전자가 잘못되지는 않았을까 걱정을 많이했다”며 “다행히 운전자 분이 앉아 계셨고, 괜찮다고 하셔서 차 밖으로 나오도록 도와드렸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후 정씨는 현장에 구급대가 도착할 때까지 운전자 곁을 지켰다. 팔과 다리를 감싼 채 벌벌 떨고 있는 운전자를 위해 정씨는 자신의 차에서 패딩을 꺼내서 건넸다. 또 사고로 놀랐을 운전자를 위해 계속 말을 걸며 안심시켰다. 정씨는 “운전자께서 떨면서 왜 그랬지… 계속 그러시더라. 운전자를 안정시키기 위해 어떻게 사고가 났는지, 이런 식으로 대화를 계속 했다”며 “10여분쯤 지났을 때 구급대가 도착해서 사고 차 안에 다른 탑승자가 없다고 말씀드린 후 현장을 떠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누구라도 다 그랬을 것 같다”며 “제가 사고현장으로 뛰어갈 때 다른 많은 분이 뛰어 오셨고, 괜찮냐고 물어보시더라. 제가 아니어도 현장에 계신 분들이라면 다 그렇게 했을 것”이라며 용기 있는 자신의 선행을 낮췄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김선자의 신화로 문화읽기] 우리가 꿈꾸던 것, 평범한 ‘일상’

    [김선자의 신화로 문화읽기] 우리가 꿈꾸던 것, 평범한 ‘일상’

    제주도 신화를 읽다 보면 온갖 꽃들이 피어 있는 아름다운 공간이 등장한다. 머나먼 서쪽 어딘가에 있다는 그 신비로운 공간은 ‘서천꽃밭’이라 불린다. 천상인지 지상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서천강을 건너가면 존재하는 그곳은 신에게만 속한 공간은 아니다. 제주신화에 등장하는 많은 주인공이 그곳에 가서 뼈살이꽃과 살살이꽃, 환생꽃 등을 가져다가 억울하게 죽어간 사랑하는 사람들을 살려낸다. 서천꽃밭은 또한 아이를 점지해 주는 삼승할망의 공간이기도 하다. 삼승할망은 그곳에서 다섯 가지 색깔의 꽃을 기르는데, 아이를 원하는 집에 그 꽃을 가져다주면 그 집에 어여쁜 아이가 태어난다. 그러니까 서천꽃밭은 제주신화에 등장하는 생명의 공간이다. 그런데 온갖 꽃들이 피어 있는 이러한 공간은 우리에게 ‘에덴동산’이나 ‘파라다이스’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고대 서아시아 지역에서도 꽃들이 만발하고 맑은 물이 있으며 푸른 나무가 우거진 공간을 생명의 공간, 즉 ‘낙원’으로 상정했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서남부 윈난성에 거주하는 여러 소수민족의 신화에도 그들 생명의 기원이 되는 공간이 등장한다. 나시족이나 이족, 하니족 등 고대 강(羌) 계통의 여러 민족은 아득히 먼 서북쪽에서부터 이주해 왔다는 역사를 갖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전승하는 창세서사시에는 세상의 시작과 인간의 기원에 대한 창세신화뿐 아니라 그들이 이주해 온 노선과 정착해서 살아가게 된 과정 등이 들어 있다. 이러한 민족 이주의 노선은 사람이 죽은 후에 망자를 위해 사제들이 음송해 주는 ‘지로경’(指路經)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은 불멸하고, 불멸의 영혼은 민족이 이주해 온 길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생각했기에, 사제들은 망자가 길을 잃지 않고 그들 민족 시원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로경’ 즉 ‘영혼의 길을 밝혀 주는 노래’를 불러 주었다. 우리도 사람이 죽으면 ‘돌아갔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사실 우리가 잊고 있어서 그렇지, 우리에게도 망자의 영혼이 돌아가는 곳이 있었을 것이다. 그곳은 과연 어디일까. ‘서천꽃밭’이 그 영혼의 귀착지일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망자를 보내는 상여를 그토록 고운 꽃으로 장식하는 것이리라. 소수민족의 신화에도 영혼이 돌아가는 곳이 나온다. 바로 ‘조상들의 땅’이다. 사람이 죽은 뒤 화장을 하면 푸른 연기를 타고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고, 그 영혼은 조상들의 땅으로 간다. 그런 후,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있고 언제나 봄날 같은 그곳에서 밭 갈고 씨 뿌리며 지상에서와 같은 생활을 한다. 티베트 사람들의 이상향 ‘샹그릴라’도 바로 그런 곳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낙원이란 금은보화가 가득 쌓여 있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놀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다. 꽃들이 피어 있고 맑은 물이 흐르며 낯익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그들이 꿈꾸었던 낙원의 모습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디작은 바이러스 때문에 우리는 지금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리고 있다. 맑은 햇살 아래 사랑하는 사람들과 앉아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면서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일상의 이야기를 하는 그런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우리는 새삼 깨닫고 있다. 거칠고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야 했던 소수민족 사람들은 일찍부터 그 ‘일상’의 소중함을 알았다. 그랬기에 그들은 ‘낙원’을 한결같이 평범한 일상의 공간으로 묘사한 것이다. 바이러스가 물러간 뒤 언젠가는 우리도 일상을 회복하게 되겠지만, 그때는 정말 잊지 않으면 좋겠다. 잿빛 하늘 아래 돈더미가 가득 쌓여 있는 곳이 아니라 맑은 물과 푸른 나무,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있는 곳에서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바로 낙원임을.
  • 정민경♥김정균, 20년 배우 동기→결혼 “밥만 먹여주면 돼”

    정민경♥김정균, 20년 배우 동기→결혼 “밥만 먹여주면 돼”

    배우 김정균이 결혼한다. 25일 김정균의 깜짝 결혼 소식이 알려졌다. 특히 김정균의 예비신부가 그와 데뷔 동기인 배우 정민경으로 알려져 더욱 뜨거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김정균과 정민경은 지난 1991년 KBS 탤런트 14기로 데뷔했다. 동기 모임을 통해 소통하던 두 사람은 동기에서 연인 사이로 발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6월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김정균은 이날 방송된 SBS ‘불타는 청춘’에 출연해 직접 정민경과의 결혼 소식과 러브스토리도 공개했다. 이날 김정균은 “15년간 어머니와 같이 살면서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예쁘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었다”며 “결혼식을 알리는 게 쑥스러웠다. 두 번이나 하게 돼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어 “결혼을 결정한 지 세 달 됐다. 알고 지낸 지 20년 된 동기”라며 “탤런트 동기 모임이 있다. 식사를 하고 있는데 술을 안 먹는 친구다 보니 밥을 두 그릇 먹더라. ‘왜 이렇게 밥을 많이 먹니?’ 하니 ‘저는 밥이 좋아요’라고 하더라. 내가 관심을 보이고 볼 때마다 그런 마음이 드니 예뻐 보였다”고 예비신부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농담으로 “밥만 먹여주면 되겠니?”라고 했는데 그게 부부의 연으로 이어졌다고.‘불타는 청춘’을 통해 김정균과 정민경의 웨딩 화보도 공개됐다. 미소가 닮은 두 사람은 환한 얼굴로 부러움을 샀다. 프러포즈 영상에서 김정균이 정민경을 향한 세레나데를 부르고 꽃다발을 증정하는 모습도 공개됐다. 정민경은 전화연결을 통해 “김정균을 너무 사랑한다”고 시원시원하게 말했다. 멤버들은 김정균의 어느 부분에서 결혼을 결심하게 됐는지 궁금해 했다. 정민경은 김정균이 순수하고 착해서 결혼을 결심했다고 전했다. 이어 김광규가 “밥만 먹여주면 결혼한다고 했다면서요”라고 묻자 정민경은 “진짜 저는 밥만 먹여주면 돼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임산부도 있는데…” 모리셔스 입국 거부당한 한국인 신혼부부들

    “임산부도 있는데…” 모리셔스 입국 거부당한 한국인 신혼부부들

    “임산부도 있다” 모리셔스 입국 거부…외교부 관계자 도착 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한국인 신혼부부 18쌍이 아프리카 섬나라 모리셔스에서 입국을 거부당한 뒤 현지 격리 조치됐다. 지난 22일 오후 11시쯤 인천공항을 출발해 두바이를 거쳐 현지에 도착한 이들은 입국 거부와 함께 여권 등을 모두 압수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24일 현지 신혼부부 SNS 등에 따르면 한국인 신혼부부 18쌍이 모리셔스 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했고, 차량으로 1시간쯤 떨어진 곳에 격리됐다. 이들은 SNS에 “모리셔스에 도착해서 출입국 관리소를 통과했는데 한국 사람만 따로 모아놨다”, “검사 후 문제가 없으면 입국을 시켜주겠다고 해 자동차에 올라탔는데 공항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알 수 없는 곳으로 이송돼 6시간 넘게 감금돼 있다”고 전했다. 입국이 거부된 신혼부부들은 당장 한국 귀국 비행기 편이 없는 관계로 모리셔스 공항에서 1시간 떨어진 병원과 수용시설에 나뉘어 격리돼 있다고 알려졌다. 병원에 격리된 신혼부부 중에는 임산부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아직 모리셔스에 외교부 관계자들은 도착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부는 사전 예고 없이 입국 금지 조치한 것에 대해 모리셔스 당국에 항의했다. 또 당국이 공식적으로 입국금지 조치를 한 것은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현지에 억류된 신혼부부들은 모리셔스 정부와 한국 정부 당국의 신속한 조치 등을 요구하면서 현지 한국 영사 협력관 등과의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한편 24일 외교부에 따르면 코로나19 대응 조치로 한국으로부터의 입국을 금지한 국가는 이스라엘, 바레인, 요르단, 키리바시, 사모아, 미국령 사모아 등 6개국이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김금숙의 만화경] 사인, 작가의 책에 받아야

    [김금숙의 만화경] 사인, 작가의 책에 받아야

    프랑스에는 크고 작은 만화페스티벌이 꽤 있다. 만화전문 책방도 파리뿐만 아니라 지방의 각 도시에 있다. 작가는 사인회에 초대받으면 정성을 다해 그림으로 사인을 해 준다. 독자의 태도도 볼만하다. 어린이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한 시간, 때로는 오후 내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책을 이미 구입해 품안에 꼭 안고 있는 사람도 있고 그 자리에서 구입해서 사인을 받는 독자도 있다. 기다리는 동안 누구 한 명 불평을 하거나 새치기를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본인이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려고, 사인을 받으려고 오랜 시간을 기다린 만큼 본인의 차례가 됐을 때, 그의 얼굴에는 행복함이 가득하다. 작가는 설령 피곤하고 힘들어도 그런 독자의 마음과 태도에 보람을 느끼며 사인을 계속한다. 물론 모든 작가의 사인회가 비슷하지는 않다. 옆에 앉은 만화가는 줄이 빽빽한데 내 줄엔 한두 사람만 있을 때도 있고 아예 없기도 했다. 그럴 때엔 연습장에 그림을 그리며 독자를 기다린다. 마음은 초조하지만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않는다. 때로 드물게 만화사인만 받으려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나도 몇 번 그런 경험이 있었는데 그들은 사인북을 가지고 다니며 작가에게 그림을 부탁한다. 거절하지 못하는 마음 약한 만화가는 멋지게 그림을 그려 준다. 이름만 쓴 사인이 아니라 그림이기에 그 자체는 훌륭한 작품이며 사인북은 작품집이 된다. 이런 일도 있었다. 어떤 사람이 이탈리아의 어느 유명 작가가 그려 준 사인을 다음날 한 인터넷 사이트에 경매를 올렸다. 이탈리아 작가는 그에 대해 소셜미디어에서 분노와 실망을 표현했다. “몰상식하다”, “책이 아닌 다른 종이에 사인을 해서는 안 된다”, “고소해야 된다”, “우리는 작가를 지지한다”, “사인회를 주최한 페스티벌 측과 출판사는 이제 더이상 작가들을 사인회에 무료로 불러서는 안 된다” 등등 사람들은 댓글과 공유로 격렬하게 분노했다. 재판까지 갈 뻔했던 이 사건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경매광고를 내림으로써 끝을 맺었다. 작가가 책을 들고 오지 않은 독자에게 책 이외의 종이에 그림을 그려 준 성의를 완전히 배반한 경우였다. 수년 전 귀국한 후 나는 처음으로 국내 어느 만화 행사 사인회에 초대됐다. 사인회를 기획한 곳에서 당연히 책을 준비했으리라 생각했다. 도착해서 보니 책은 단 한 권도 없었다. 다른 만화가들의 책상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 이름이 적힌 테이블 앞에 앉았다. 책이 없으니 사인을 해 줄 수도 없고 난감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만화가들은 줄 선 사람들의 캐리커처를 그려 주고 있었다. 너무나 당연한 듯 보였다. 나는 무얼 해야 할지 몰라 잠시 어정쩡하니 앉아 있다가 내 앞에 선 초등학생에게 “꼬깽이” 캐릭터를 그려 주었다. “우리 아들하고 제 캐리커처 함께 그려 주세요.” 옆에 섰던 아이의 엄마가 내가 그려 준 그림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아, 저는 캐리커처를 그리지 않는데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다른 만화가의 줄로 달려갔다. 나는 캐리커처를 그리려고 그곳에 간 게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캐리커처를 그리며 사인회를 마감했다. 사람들은 다른 재밋거리를 찾아 흩어졌다.이후로도 나는 비슷한 경험을 여러 번 했다. “캐리커처 한 장 그려 주세요.” 마치 물 한 모금 달라는 듯이 사람들은 요구했다. 지금의 그림을 그리기까지 작가들은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의 공을 들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책이 아닌 아무 종이나 내밀며 캐리커처를 그려 달라고 한다. 이런 ‘문화’는 어디서 와서 어떻게 정착하게 된 걸까. 최근 대한민국에는 동네책방이 엄청 늘었다. 반가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화가는 신작을 내면 사인회할 기회가 거의 없다. 책을 내도 낸 것 같지가 않다. 책이 출간된 순간만 잠시 반짝하다가 다른 신간에 묻힌다. 북토크나 사인회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또한 이 기회는 홀로 작업하는 작가들이 유일하게 자신의 작업실에서 나와 독자와 소통하는 시간이다. 강의에 나가지 않고 작업에만 집중하는 작가는 더 그러하다. 책방에서는 책에 사인을 한다. 하지만 행사를 할 때 아직도 구겨진 종이를 내미는 사람이 있다. 쉽게 얻은 그림은 휴지조각처럼 버려질 게 뻔하다.
  • [여기는 호주] 입국신고서에 탑승국 ‘중국’ 지우고 입국한 중국인 논란

    [여기는 호주] 입국신고서에 탑승국 ‘중국’ 지우고 입국한 중국인 논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중국을 방문한 외국인 입국금지가 내려진 호주에서 입국신고서에 탑승국인 ‘중국’을 지우고 들어온 중국인 학생이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4일 호주판 데일리메일은 이 중국인 학생이 어떻게 아무런 제재없이 공항에서 입국심사와 세관신고를 통과하고 호주에 입국했는지 소상하게 보도했다. 샤오 케이라고 소개된 이 중국인 학생은 중국 본토를 출발한 후 홍콩을 경유해 호주 브리즈번 국제 공항에 지난 1일 (현지시간) 밤 11시 45분에 도착했다. 당일 중국인 입국 금지가 선포되면서 출발 전 외국인 입국금지를 몰랐던 이 학생은 공항에 도착해서야 중국 본토에서 출발하거나 경유한 사람들은 입국이 전면 금지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학생은 “호주 입국 후 14일 동안 자가격리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 중국인 학생은 다시 중국으로 추방될 상황에 놓이자 입국신고서의 ‘어느 나라에서 비행기편을 탑승하였습니까?’라는 질문에 이미 적은 ‘중국’을 지워버리고 ‘홍콩’이라고 다시 적었다. 이후 이민성 입국심사를 무사히 통과한 이 학생은 짐을 찾고 세관신고를 통과하는 곳에서도 아무런 제재없이 통과해 호주로 입국했다. 이 학생은 “입국신고서를 받아든 직원은 신고서를 제대로 보지도 않았고 짐 검사도 하지 않았다. 정말 행운이었다”고 자랑했다. 뉴스는 만일 이 학생이 신종코로나 감염자라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해당 뉴스에는 신종코로나 확산방지를 위한 외국인 입국금지가 얼마나 허술하게 시행되는지에 대한 비판과 함께 무책임한 중국인 학생에 대한 비난의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5일 현재 호주는 13명의 신종코로나 확진 환자가 나왔다. 특히 13번째 환자가 우한에서 여행 온 8세 소년으로 확인되면서 더 큰 우려를 낳고 있다. 호주 정부는 신종코로나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중국에서 왔거나, 중국 본토를 경유한 외국인 여행자의 입국을 금지하고 있다. 다만 호주 시민과 영주권자, 직계 가속과 법적 후견인, 혹은 배우자는 이같은 조치에서 제외되며, 중국에서 입국하는 이들은 국경에서 엄격한 검역 절차와 함께 14일 동안 자가격리에 들어가야 한다. 김경태 시드니(호주)통신원 tvbodaga@gmail.com
  • [패스추리tv] ‘빠시즘’과의 전쟁이라면 ‘진중권’ 뒤에 기꺼이 서겠다

    [패스추리tv] ‘빠시즘’과의 전쟁이라면 ‘진중권’ 뒤에 기꺼이 서겠다

    “내 목표는 강남에 빌딩을 사는 것”이라고 동생에게 보냈다는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변호인 측이 공판에서 이 문자를 공개한 검찰을 “논두렁 시계 방식의 망신주기”란 취지로 비판했다. 돈과 스펙, 정치적 올바름(PC)까지 모든 것을 독식하려던 강남좌파의 또다른 위선이다. 마지막에 최종 놓지 않을 것은 ‘강남 빌딩을 향한 꿈’이면서 마치 이상이 훼손당해 못마땅한 듯 반응한다. 까짓 고백하자면 내 꿈도 강남 건물주다. 다만, 기소된 혐의처럼 건물주 되자고 서류 위조는 못하겠다. 착해서 라기보다 걸릴까봐 공포스러워 못하겠는데, 정년 보장되는 직업을 가진 엘리트들은 아마 위조해도 걸리지 않을 것을 알고 걸려도 처벌을 피할 수 있을 거라 과신한 듯하다.걸려도 피할 수 있다는 과신이 공적 제도권 안에서 실행되는 과정을 2020년에 볼 줄 몰랐다. 법무부가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피고인들의 검찰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겠다고 4일 밝혔는데, 이는 국회법에 배치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공소장 제출을 피의사실공표로 판단하며 공소장 국회 제출 거부를 “가까운 곳의 개혁”이라 하지만, 피의사실공표 금지 원칙은 수사가 마무리된 결과물인 공소장에 해당되지 않는다. 오히려 공소장 비공개는 심리와 판결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재판을 일반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공개 재판주의’란 천부인권적 가치를 배반한다. 공소장을 비공개 한 채 진행하는 재판을 왜 국민 세금 들여 하나. 피고인들이 갹출하든지 할 것이지. ‘우리 편을 지켜야 하기에, 우리 편은 옳다’ 식의 전체주의적 사고가 작동하는 경우는 왕왕 있었다. 잘 기획된 각종 애국심 마케팅부터 저마다의 은밀한 질병력이 내밀하게 투사됐던 황우석 지키기 신드롬까지. 그 때마다 전직 동양대 교수·정의당 당원, 현재 무직인 진중권이 열정적인 비판을 가했다. 진중권은 주로 이겼다. 빠 현상 이란 게 논리적 뼈대는 튼튼하지 않은 채 감성이란 살만 오른 경우가 많아서 오래 지속될 동력을 얻지 못했다는 지정학적 요인도 진중권의 승리에 힘을 보탰다. 특이하게 정치권으로 간 빠시즘에는 여러 방식으로 지속적인 양분이 공급됐고, 살이 마치 뼈처럼 보이게 단단해졌다. 그래서 ‘우리 편을 지키지 못했던 과오를 다시는 반복하지 말자’는 사고로 한 단계 진화가 이뤄졌다. 과거엔 틀렸던 것이 지금은 옳고, 저 편엔 나쁜 것이 우리 편엔 괜찮은 게 되고 있다. 과거든 지금이든, 이 편이든 저 편이든 표변하면 안된다는 원칙인 ‘법치주의’가 그래서 가장 먼저 핍박받는 대상이 되어 버렸다. 높은 승률의 진중권이 등판 했음에도 도무지 그라운드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진중권이 GG를 선언한 적이 있었다. 참여정부의 북방한계선(NLL) 포기 논란을 두고 2012년 변희재와 벌인 사망유희 토론이다. 공희준 뉴스케이프 메시지크리에이터는 이 상황을 이렇게 평가한다. “사망유희 토론에서 진중권은 최선을 다했지만, 변희재는 죽을 힘을 다해 토론에 임했다. 그래서 진중권이 졌다.” 진중권은 교류하던 이들과 싸우고 있다. 리무진좌파가 주류였던 강남좌파 세상에서의 분화를 이끌고 있다. 진보 내에서의 분화. 드디어 빠를 갈아 타려는 논쟁이 끝나고 법치, 공정, 정의, 참여를 위한 담론이 시작될 수 있을까. 지금 죽을 힘을 다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유튜브 ‘패스추리tv’ 강남의소리(https://youtu.be/Ph8J-4ZC5gQ)에서 볼 수 있습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두렵다”…우한 주민들, 신종코로나 우려 속 생필품 구하려 외출

    “두렵다”…우한 주민들, 신종코로나 우려 속 생필품 구하려 외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발원지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주민들이 식량과 생필품을 구매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외출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두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대중지 ‘메트로’ 28일자 보도에 따르면,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으로 우한에서 교사로 일하는 제시카 베일링(23)은 지난 2주 동안 단 두 번밖에 외출하지 않았다. 베일링은 인터뷰에서 “우리는 모두 외출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으며, 나 역시 가능한 한 오랫동안 외출을 꺼렸다”고 말했다. 처음에 예약한 치과에 방문하기 위해 외출했다가 치과 건물 전체가 폐쇄돼 재빨리 귀가했다는 그녀는 그다음으로 어쩔 수 없이 생필품을 사기 위해 외출을 감행했었다고 밝혔다.이때 그녀는 마스크를 쓴 것도 모자라 양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선글라스를 써 눈을 가렸으며 스카프를 둘러 목 부위를 가렸다. 물론 긴팔과 긴바지까지 입어 몸을 최대한 가렸다. 그런 그녀가 외출 시 가장 먼저 본 광경은 도시가 텅 비어 있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대부분 사람들로 꽤 붐비던 모든 거리에서는 단 세 명 정도밖에 보지 못했다”면서 “그 모습이 얼마나 어색하게 느껴졌는지 말로 표현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그녀는 외출하는 동안 거리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믿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차렸고 심지어 누군가가 자기 쪽으로 오다가도 자신을 봤는지 길을 건너가는 모습도 봤다. 그녀는 한 대형마트에서 과일 몇 개와 비누, 칫솥 등 세면 도구를 구할 수 있었지만, 채소와 고기, 우유 그리고 마스크가 다 팔리고 없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다행히도 그녀가 구한 물건들의 가격은 들리던 소문과 달리 올라 있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베일링에 따르면, 마트 안에는 사람 몇 명이 있어서 서로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정말 어려웠지만,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이에 대해 그녀는 “신종 코로나가 얼마 동안 물건 표면에 남아있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에 내가 산 과자 봉지와 생수병, 초콜릿 바 그리고 심지어 낱개포장된 믹스커피까지 물로 씻었다”면서 “또 아파트에 도착해서 입고 있던 모든 옷을 세탁기에 던져넣고 신은 신발을 닦았다”고 설명했다. 또 “이전에 난 어떤 공포도 느끼지 않았지만, 지금은 신종 코로나가 확실히 내게 가장 큰 두려움이라고 말하고 싶다. 난 감염된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어 의사들 얼굴에 침을 뱉음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일부러 전염시키려 한다는 충격적인 얘기까지 들었다”면서 “한 남성이 아파트 엘리베이터의 모든 버튼에 침을 뱉는 영상도 봤다”고 주장했다. 우한에서 관광명소 관리시스템을 주로 개발하는 소프트웨어 업체를 운영하는 또다른 주민 역시 5일 동안 외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그는 지방 정부가 이번 사태에 정확하고 신속하게 대응하는 대신 세부적이고 체계적인 계획 없이 도시를 봉쇄했다고 주장했다. 또 이 남성은 “정부가 처음에 감염자 수를 은폐했다는 소문이 있다. 그들은 우한 봉쇄령을 발표했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준비하지 않았다”면서 “의사와 간호사들은 거리에 택시가 없어 교대 근무 뒤 몇 시간 동안에 걸쳐 집까지 걸어가야 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는 자신이 우한 봉쇄령이 발효하기 하루 일찍 직원들에게 춘제(중국의 설) 연휴를 부여했다면서도 신종 코로나는 2002년 사스 때처럼 결국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사업은 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신종 코로나는 결국 5월쯤이면 사라질 것으로 난 알지만, 내 사업은 어떨까? 우리의 모든 고객이 문을 닫았고 관광사업 전체가 문을 닫고 있다”면서 “난 이 점이 중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30일 0시 기준 중국 전역에서 신종 코로나 확진 진단을 받은 누적 환자 수는 7711명으로, 이 중 1370명은 중증 환자여서 사망자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누적 사망자 수는 170명으로 집계됐다. 해외 사례까지 더하면 30일 오전 10시까지 세계 20개국에서 확진 환자 수는 7810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금요일 금요일 밤에’ 이승기, 이번엔 한과 공장 “이노동이 될 때까지”

    ‘금요일 금요일 밤에’ 이승기, 이번엔 한과 공장 “이노동이 될 때까지”

    ‘금요일 금요일 밤에’ 이승기의 분량 사수기가 펼쳐진다. tvN 예능프로그램 ‘금요일 금요일 밤에’는 노동, 요리, 과학, 미술, 여행, 스포츠 등 각기 다른 소재의 6개의 숏폼(short-form) 코너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이다. 15분 내외의 짧은, 서로 다른 주제의 코너들이 속도감 있게 펼쳐지며 시청자들에게 지루할 틈 없는 재미를 선사하고 있는 것. 이승기는 여섯 코너 가운데 ‘체험 삶의 공장’ 코너에서 공장일을 일일 체험하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승기는 ‘금요일 금요일 밤에’ 출연에 대해 각별한 소감을 전해 이목을 끈다. “15분짜리 방송, 숏폼은 처음”이라며 “녹화 중 액기스만 압축해서 나가기 때문에 시청자분들에게 가성비 최고인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저 또한 방송분량에 대한 부담 없이 즐겁게 촬영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는 것. 또한 ‘체험 삶의 공장’에 대해서도 “내가 늘 사용하는 물건, 먹거리가 어떻게 만들어져 우리 손에 오게 되는지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물건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세밀한 과정과 현장 노동자분들의 정성, 신념을 알 수 있는 귀한 경험”이라 밝혔다. 최근 진행된 제작발표회에서 나영석 PD는 “성실하고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가는 인물이다. ‘체험 삶의 공장’은 이승기에게 딱 맞는 코너”라며 이승기를 섭외한 이유를 밝혔다. 이승기와 나영석 PD의 인연은 지난 2007년 ‘1박 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승기는 2020년 2월까지 출연하겠다고 나영석 PD와 합의했고, 해당 내용이 담긴 계약서는 방송을 통해 줄곧 회자되며 많은 웃음을 전했던 것. 장기계약이 막바지에 이른 지금, 나영석 PD의 의도대로 이승기는 ‘금요일 금요일 밤에’에서 따뜻한 웃음을 책임지고 있다. 17일 방송에서도 이승기는 공장일을 체험하며 구슬땀을 흘릴 예정이다. 지난주 꼬막 공장에 이어 한과 공장을 찾은 그는 이번주도 입담 좋은 사장님을 만나 폭풍 친화력을 선보일 전망. 지난 방송 말미 이승기는 “내 노동에는 철학과 신념이 없었다”며 “첫 녹화는 내가 졌고, 2회에서는 이승기가 아닌 이노동이 될 때까지 철학을 장착해서 승리하겠다”고 참회한 바 있다. 과연 오늘 방송에서 이승기가 승리를 거머쥐고 분량을 확보할 수 있을지 많은 궁금증이 더해진다. 한편, tvN ‘금요일 금요일 밤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9시 10분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후원사 에너지기업 지원 논란에 휘말린 페더러 “기후변화 운동 존중”

    후원사 에너지기업 지원 논란에 휘말린 페더러 “기후변화 운동 존중”

    기후변화를 조장한다는 비판에 놓인 스위스 금융그룹의 후원을 받는 테니스 스타 로저 페더러가 자신을 향한 환경운동가들의 비판에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놨다고 BBC가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환경운동가들은 최근 스위스 거대금융기업 크레디트스위스 은행이 화석 연료 회사들에 570억 달러(65조 8600여억원)를 제공했다고 비판하며 이 은행과 스폰서십 관계를 맺고 있는 패더러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10대 환경운동의 상징 그레타 툰베리가 패더러와 크레디트스위스와의 관계를 비판하는 트윗을 리트윗하며 더욱 관심을 끌게 됐다. 이같은 글은 ‘#로저, 이제 깨어나라’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확산되고 있다. 또 학생들이 중심이 된 환경활동가들은 지난 7일 스위스 로잔 법원 앞에서 ‘크레디트스위스는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 로저, 당신은 그들을 지지하는거냐’는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논란이 커지자 패더러는 “나는 기후변화의 충격과 위협을 매우 심각하게 여긴다. 특히 가족과 내가 파괴적인 산불사태를 겪고 있는 호주에 도착해서 더욱 그렇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젊은이들의 기후변화 운동을 대단히 존중하고 존경한다”면서 “한 개인이자 운동선수, 기업가로서 책임감을 일깨워 준 데에 대해 감사한다. 후원사들과 중요한 이슈에 대해 대화하는 데 있어 특권적 지위를 활용할 것을 약속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는 크레디트스위스와 관련 스폰서십 문제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페더러는 호주오픈 참석차 멜버른에 체류 중에 이같은 입장을 냈다. 페더러는 산불돕기 자선 테니스 대회인 ‘랠리 포 릴리프’에도 출전할 예정이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사방에 포탄 터지는 소리… 지뢰 폭발로 잃은 다정했던 친구 잊지 못해”

    “사방에 포탄 터지는 소리… 지뢰 폭발로 잃은 다정했던 친구 잊지 못해”

    일시 1999년 5월 16일 장소 인천광역시 남구 숭의동 부산식당 대담 유세원(북구지대 감찰부장) 이경종(인천학생6·25 참전관 설립자) 이규원 치과원장 (이경종 큰아들)1950년 6월 25일 6·25 사변 이전 나는 화수동 281번지에서 살고 있었다. 인천에 인민군이 들어와서 학생이나 젊은이들을 의용군(義勇軍)으로 막 잡아갈 때였다. 그때 나도 신변의 위험을 느껴 화수동에서 친구들과 지하에 숨어 지내게 되었다. 이렇게 인공(人共/인민공화국의 약자)치하때 어려웠던 지하 땅굴 생활로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친구들은 ‘유문길·사철순·문호영·이용운·허용환·김유득·이희중·신현남·정명돌·노영남·주억재·이상순·유세원’ 이었다. 이들이 후일 인천학도의용대 북구지대로 활동한 핵심 멤버들이었다. 1950년 9월 15일 어느 날 하루는 포탄 터지는 요란한 소리가 여기 저기에서 들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하기 위해 인천 앞바다에서 쏘아대는 함포탄이 인천 시내에 떨어지면서 터지는 소리였다. 그날이 1950년 9월 15일이었다. 이날 UN군과 국군이 인천에 들어와서 인민군으로부터 해방이 되었다. 인천학도의용대(仁川學徒義勇隊) 북구지대 우리들은 인민군 치하에서 너무 고생을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호국활동을 하게 되었고, 인천학도의용대가 창설되어 북구지대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그 해도 다 저무는 12월이 되면서 우리 인천학도의용대는 중공군의 참전으로 단체로 남하(南下)한다는 소문이 들리는 것이었다.1950년 12월 18일 남하(南下) 1950년 12월 18일 남하 행진에 참여한 우리들은 안양, 수원을 거쳐서 기차 화물차 지붕에 올라타서 가기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 밀양을 지나 마산에 도착 하였다. 마산에 도착해서는 어느 민가에 투숙하게 되었는데 이때 나는 가지고 내려왔던 여비도 다 떨어졌었다. 그런데 “해병대모집이 있다!”라는 소식이 있는 것이었다. 나와 친구들은 그 해병대 모집에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다. 우리들은 해병대 모집장소에 찾아갔다. 1951년 1월 3일 해병대 6기에 지원 해병대 모집 장소는 마산국민학교였다. 그때 시험관들은 우리들을 운동장에 쭉 세우더니 10명씩 조를 짜서 운동장을 한 바퀴 돌게 하고는 1등부터 3등까지만 뽑고 나머지는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그때 간단한 학과 시험도 있었다. 이날이 1951년 1월 3일쯤이었으며 그때 나는 합격 되어 마산에서 진해로 걸어가 진해경화국민학교에 들어갔다. 1951년 1월 24일에 우리들은 정식으로 해병대 6기 입대식을 하였다. 1951년 2월 10일이 되어 우리들 6기생 전 훈련과정을 마쳤으며 6기생 중 반수는 보병으로 가고, 그 당시 처음으로 해병대에 생긴 포병과로 반이 가게 되었다. 이때 나는 포병과로 배치받아 당시 진해에 있던 육군포병학교로 포병교육을 또 받게 되었다. 이때 포병학교를 마친 나는 다시 미(美)해병대에서 또 포병교육을 받게 되었다. 이후 나는 강원도 최전방으로 배치받았다. 처음 우리 해병대 포부대가 올라가 전투한 곳이 김일성고지와 스탈린고지였다. 그 당시 이 2 고지는 적의 수중에 있었는데 이때 우리 해병대가 뺏는 큰 전과를 올렸다. 1956년 9월 21일에 가서야 만 5년 8개월 만에 나의 파란만장한 군 생활을 마감하고 명예제대를 하게 되었다. 6·25 전사 인천학생 윤운철 1933년생으로 인천송현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인천영화중학교(현재 대건중고교) 4학년생으로 마산에서 해병6기 입대하여 1951년 7월 17일 입대한지 6개월 만에 17세로 전사하였다.전사한 동네 친구 윤운철을 추모하며 인천에서부터 같이 학도의용대원으로 내려와 6기생으로 같이 입대한 윤운철은 입대한지 6개월 만에 전사했다. 당시 나는 전포대가 돼서 포를 쏘는 직책이고 윤운철은 포를 수호하기 위해 포 전면에서 보초를 서면서 포를 지키는 임무를 하고 있었다. 이러한 임무를 한 윤운철은 척후 임무를 띠고 전면 숲속으로 가다가 대인지뢰를 잘못 밟고 그 지뢰 폭발로 전사하였다. 윤운철은 성격이 유하고 온순하며 남하고 이야기할 때에는 말을 가려서 하는 아주 다정다감하고 배려 많은 친구였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런 온순한 사람이 왜 먼저 하늘나라로 가야 했는지 안타까운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다. 부디 이경종 이규원 2부자(父子)께서 하시는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역사 발굴사업이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바란다. 글 사진 제공 :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관유세원 ▲인천학도의용대 북구지대 감찰부장 1933년 8월 5일 인천 동구 화수동 출생 1950년 6월 25일 인천학도의용대 북구지대 감찰부장(용산중학교 5학년생) 1951년 1월 24일 해병대 6기로 자원입대 군번 : 9210591 병과 : 해병대 포병 1956년 9월 21일 만기 명예 제대
  • ‘구급차-병원’ 5G 실시간 소통…“환자 생존률 높히겠다”

    ‘구급차-병원’ 5G 실시간 소통…“환자 생존률 높히겠다”

    “맥박은 142에 92입니다” 12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성산119안전센터의 앰뷸런스에는 119 구급대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구급대원은 착용하고 있는 ‘VR고글’을 통해 인근 세브란스병원으로 이송중인 환자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알렸다. 구급차 천장에 CC(폐쇄회로)TV가 설치돼 있고, 구급대원의 목에는 360도 촬영이 가능한 ‘넥밴드’가 걸려 있어서 병원에서도 모니터 화면을 통해 상황을 곧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구급대원은 환자가 어떻게 다쳤는지, 어떤 고통을 호소하는지 등을 병원과 공유했다. 병원에서도 구급대원이 취해야 할 조치를 알려 환자의 ‘골든 타임’을 허투루 쓰지 않도록 했다. KT는 이날 소방청, 세브란스병원과 함께 응급의료체계 전 단계에 5G(세대)이동통신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적용하는 서비스를 개발한다고 밝혔다. KT는 앰뷸런스에서 환자를 이송하면서 실시간으로 인근 병원과 의사소통하며 환자에게 적절한 응급조치를 하는 시연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5G 기술의 발전 덕분에 지연없이 고용량의 영상을 전송할 수 있게 되면서 생기는 공공 서비스다. 이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소방청, 세브란스병원 등과 함께 개발중인 응급의료 시스템이다. 2021년까지 개발을 완료하고 2020년부터 사용화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성산119안전센터 관계자는 “실시간으로 소통을 하면 병원에서도 적절한 대비를 할 수 있다. 예전에는 병원에 도착해서야 ‘환자의 상태’, ‘왜 다치게 됐는지’ 등을 알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그럴 필요가 없어지게 된 것”이라며 “환자 상태를 제일 잘 치료할 수 있는 의사가 미리 준비했다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된다. 구급차에서 의사의 지시에 따라 환자의 상처를 압박하는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하면 환자가 생존할 확률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또한 KT와 소방청은 영상통화로 119 신고를 받는 서비스를 진행중이다. 구급차가 출동하는 5~10분 동안 119상황실에서 영상통화로 환자에 적절한 응급조치를 지시할 수 있다. 이날 서울 남산에서 심정지가 온 환자를 가정해 진행한 시연에서 119대원은 영상으로 환자 상태를 확인하며 신고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도록 유도했다. 신고자의 휴대폰 화면으로 ‘심폐소생술 교본 화면’을 보여주면서 “힘들면 다른 사람과 교체하라”, “5㎝ 위로 눌러야 한다”, “지금처럼 하면 된다”, “충분히 이완해달라”는 등의 지시를 실시간으로 했다. 119 영상 신고 시스템은 이미 지난해 10월부터 주요 도시에서 시범 서비스를 해왔다. 이를 통해 심장 정지가 의심됐으나 영상통화로 적절한 지시를 받은 덕에 별다른 후유증 없이 건강을 회복한 사례가 나오고 있다. 이희순 서울종합방재센터 구급상황관리 센터장은 “이전에는 음성으로만 환자 상태를 파악했는데 이제는 현장의 화재 규모, 건축물 붕괴 상황, 환자가 심정지 상태인지에 대해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 스마트폰 기종에서는 음성 통화를 하던 중에 곧바로 영상 통화로 전환이 안 된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꼽힌다. 이럴 때는 음성 통화를 끊은 뒤에 다시 영상 통화로 연결을 시도해야하는데 환자를 챙기느라 정신없는 신고자가 119상황실서 걸려온 영상 통화 전화를 못 받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또한 구급차와 병원이 서로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서비스는 아직 관련법이 제정돼 있지 않은 ‘원격 진료’가 아니냐는 논란이 발생할 수 있어 향후 법체제 보완이 필요하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함포사격으로 무너진 건물… 고향후배 입대한 지 3개월만에 세상 떠나

    함포사격으로 무너진 건물… 고향후배 입대한 지 3개월만에 세상 떠나

    일시 1998년 2월 8일 장소 인천학생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규원 치과 3층) 대담 박종근(인천학도의용대 5대대 부대대장) 이경종(인천학생6·25 참전관 설립자) 이규원 치과원장 (이경종 큰아들)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나다 1950년 6·25 사변이 일어났을 때, 나는 인천공업중학교 5학년생이었다. 전쟁이 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이전에 전국학생연맹(우익 학생 조직)으로 같이 학생운동(學生運動)을 하던 이기관, 정연옥 등과 함께 전(全)인천학생의용대를 조직하였다. 처음 전(全)인천학생의용대를 조직했던 장소는 신흥국민학교 옆 답동 로얄 아파트자리에 있었던 일본식으로 지은 일본 절터였고 우리들은 이끈 의용대장은 인천상업중학교 출신 이계송 형으로 당시 고려대 2학년이었다. 1950년 7월 3일 6·25 사변이 발발하고, 전(全)인천학생의용대를 조직하여 며칠간 정신없이 활동하는 중에도 7월 3일이 닥쳐왔다. 1950년 7월 3일 이날 오후 늦어서인가 숭의동 쪽에서 포 소리가 나면서 인민군 탱크가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그때 알아보니까 경찰은 이미 철수했는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충청남도 공주까지 피난 가서 친척집에 몰래 숨어서 지냈다. 그러던 중에 인민군 치하에서 많은 중학생들이 인민의용군으로 끌려가서 실종되었다는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다. 1950년 9월 15일 친척 집에 숨어서 지내기를 2달이 지나자 인천에서 9·15 상륙작전이 성공했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그래서 나는 즉시 답답하게 숨어 지내던 도피 생활을 끝마치고 인천으로 올라왔다. 7월 3일 인천을 허겁지겁 떠난 지 2개월 반 만이었다. 인천학도의용대 창설 이렇게 어려웠던 피란에서 돌아와 수복된 고향 인천에 돌아와 보니까 인천 시가는 미군이 쏜 함포사격으로 건물들이 무너져 엉망이 되어 있었다. 당연히 시민들의 살림살이도 처참하게 망가져 있었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우리가 활동했던 멤버들은 다시 모여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우리 학도의용대가 부활 됐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각 지역에 지대(支隊)를 설치하고 지대 안에 분대(分隊)를 두었다. 이때 나는 인천학도의용대(仁川學徒義勇隊) 5대대 부대대장으로 활동하였다. 1950년 12월 18일 중공군의 참전과 국군과 UN군의 후퇴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1950년 12월 18일 인천학도의용대가 인천을 철수하여 남하(南下)하는 날이 닥쳐왔다. 나는 1950년 12월 18일 인천축현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제5대대 대원들과 합류했다. 곧 남녀 대원들과 같이 인천에서 출발했다. 우리는 우선 안양을 거처서 수원까지 가게 되었다. 나는 인천학도의용대 제5대대 대원들을 인솔하여, 먼저 부산을 향하여 남하(南下)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해서 대구를 거처 결국 마산에 도착하였다. 인천학도의용대 대원들 자원입대 후 참전 마산에 도착해서 구마산 삼일여관에 여장을 풀고 그곳을 인천학도의용대 제5대대 본부로 정하고 연대본부와 연락을 취하면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때 인천학도의용대 이계송 연대장은 대구 육군본부에 인천학도의용대 진로 관계로 출장 중이어서 마산에는 없었다. 그때 해병대에서는 해병 모집을 하였는데 인천학도의용대에서 많이 지원하였다. 처음 지원한 대원들 50여명은 해병대 제5기 특채로 입대하였으며 나중에 지원한 대원들 600여명은 해병대 제6기생들이었다. 그래서 6기생들은 인천기수라고 불리기도 한다. 통영으로 가서 방위군 수용소에 며칠 지내다가 배를 타고 부산으로 갔다. 부산에서 육군 제2 훈련소에 입소 후 훈련을 마치고 정식 군인이 된 후 나는 통신학교로 가서 무선통신 교육을 받게 되었다. 이후 571부대 화랑중대 4소대에 배치되었고 1953년 5월 23일 나는 군에서 제대를 하였다.6·25 전사 인천학생 김길태 1934년 인천 동구 송림동 122번지에서 출생해 인천해성중학교(현 인천 남중학교, 인천남고등학교의 전신) 3학년 재학 중에 인천에서 출발하여 부산진국민학교(육군 제2훈련소)까지 걸어가서, 1951년 1월 10일 자원입대해, 1951년 4월 15일 참전 3개월 만에, 16세로 전사하였다. 남기고 싶은 말 9·15 인천상륙작전 후 인천학도의용대는 호국(護國) 활동하다가, 1950년 12월 18일 남하하여 자원입대해서 고향(인천)을 위하여 피 흘리며 6·25 전쟁을 치렀다. 이제는 70에 가까운 노령인데, 아직도 인천학도의용대 역사를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기록을 남기지 못한 일이 마음 아팠다. 고향 송림동 후배 김길태는 과묵하고 심성이 곧아서 장래가 촉망되었던 우리 동네의 인재였다. 그런데 나와 같이 자원입대한 후, 참전을 하게 되고 입대한 지 겨우 3개월 만에 전사하여 많이 울었던 생각이 난다. 지금도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프다. 늦었지만 다행히 ‘인천학생스승6·25참전사편찬위원회’ 라는 참전자들의 가슴에 와 닿는 문구를 보고 이제야 인천학도의용대(仁川學徒義勇隊)가 빛을 찾나 싶어 반갑기 그지없다. 이경종, 이규원 2부자(父子)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오늘 내 증언이 도움이 되길 바라며, 좋은 열매를 거두시기를 빌 뿐이다. 글 사진 제공 :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관박종근 ▲인천학도의용대 5대대 부대대장 1932년 8월 19일 인천 동구 송림동 출생 1950년 6월 25일 전인천학생의용대를 이계송,이기관, 정연옥 등과 창립 1950년 9월 20일 인천학도의용대 제5대대 부대대장으로 활동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을 향해 20일간 걸어서 내려감 1951년 1월 10일 부산 육군 제2훈련소 입소 1951년 1월 20일 부산 육군 통신학교 입교 군번 : 0241045 (통신병) 1953년 5월 23일 명예 제대
  • 살림남2 팝핀현준 母, 집 찾아온 손님에 눈물 펑펑 ‘무슨 사연?’

    살림남2 팝핀현준 母, 집 찾아온 손님에 눈물 펑펑 ‘무슨 사연?’

    팝핀현준 어머니가 눈물로 맞이한 손님은 누구일까. 20일 방송되는 KBS2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살림남2)에서는 팝핀현준 집에 손님이 찾아온 이야기가 그려진다. 이날 팝핀현준은 이른 새벽 시간에 공항으로 향했다. 그는 귀한 손님을 모시러 간다며 설레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고, 공항에 도착해서는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게이트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던 팝핀현준은 기다리던 손님이 나오자 환하게 웃으며 뛰어갔고,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인사를 나눴다. 팝핀현준의 어머니 역시 집에 들어서는 손님을 보자마자 부둥켜안고 눈물을 쏟았다. 이후 어머니는 인터뷰를 통해 그녀와의 사연을 밝히며 눈물을 멈추지 못해 안타까움을 안겼다. 멀리에서 온 귀한 손님과 팝핀현준 모자 사이에 어떤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인지 궁금증이 증폭된다. 팝핀현준 가족을 찾아온 손님의 정체와 팝핀현준 어머니가 눈물을 흘린 사연은 오는 20일 저녁 8시 55분 방송되는 KBS 2TV ‘살림남2’에서 공개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소방차 타고 식장으로…꽉 막힌 도로서 ‘발동동’ 신부의 사연 

    소방차 타고 식장으로…꽉 막힌 도로서 ‘발동동’ 신부의 사연 

    지난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LA카운티의 한 예식장. 예식 시간은 임박했는데, 웬일인지 신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입이 바싹 마른 신랑은 초조하게 신부를 기다렸다. 그때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소방차 한 대가 들어왔다. 그 안에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타고 있었고 결혼식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LA카운티 소방국(LACFD)은 15일(현지시간) 교통사고로 꽉 막힌 도로 한가운데 갇혀 오도 가도 못하던 신부가 소방차의 도움으로 무사히 결혼식을 치른 사실을 뒤늦게 공개하게 됐다고 밝혔다. 지난 3월 2일 이곳 소방국 대원들은 교통사고 신고를 접수하고 현장으로 출동했다. 2중 추돌사고가 난 도로는 양방향이 모두 통제됐고, 소방국 대원들은 현장 정리에 나섰다.그러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들러리 두 명과 함께 진흙탕을 헤치고 걸어가는 여성 한 명이 눈에 띄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대원은 “리무진을 타고 결혼식장에 가던 신부가 극심한 교통체증에 막혀 식장까지 걸어가는 중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도울 방법을 찾던 대원들은 현장 정리를 마친 뒤 신부와 들러리를 소방차에 태우고 예식장으로 질주했다. 소방대 호위 덕에 아슬아슬하게나마 식장에 도착할 수 있었던 신부 줄리 고먼은 몇 주 후 신부는 소방국 대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에는 “내 결혼식을 구조해줘서 고맙다”라는 메시지도 함께 적혀 있었다. 신부의 사진을 촬영한 작가 역시 "식장으로 가는 협곡이 완전히 막혀 있었는데, 소방대원들이 도와줬다"면서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극적인 신부 입장이었다"라고 말했다.교통사고 피해자에 이어 결혼식에 늦은 신부까지 구조(?)한 소방국의 사연에 LA카운티 주민들은 세심한 대처였다며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일부 주민들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소방차가 오용됐다고 지적했다. 쉐인이라는 이름의 여성은 “신부를 결혼식장에 데려다주려고 사이렌을 울린 거냐”면서 “만약 빠르게 달리던 소방차가 신호에 걸려 사고라도 났으면 어쩔 뻔했느냐”고 꼬집었다. 이어 “대원들은 모두 징계 처분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 주민 케리 위슬라는 “명백한 세금 낭비”라면서 “체증이 심한 도심 교통까지 고려했어야 한다”고 신부를 비난했다. 이에 대해 소방국 측은 “사이렌은 예식장에 도착해서 울린 것”이라며 문제 소지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박규리 “23살에 결혼..중2 딸 있다” 깜짝 고백

    박규리 “23살에 결혼..중2 딸 있다” 깜짝 고백

    가수이자 국악인 박규리(40)가 현재 중학교 2학년 딸이 있다고 밝혔다. 12일 MBC 에브리원 ‘비디오스타’에는 ‘지상렬 금맥특집! 소맥과 인맥 사이’ 특집으로 지상렬 윤일상 김태훈 양재진 박규리가 출연했다. 이날 박규리는 중학교 2학년 딸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25세에 결혼했다며 “지방에서는 좀 예뻤다. 시립단원 공무원이라 직업도 괜찮아 신랑이 채갔다”고 말했다. 김숙은 “특별히 빨리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냐”고 묻자 박규리는 “전혀 없었다. 남편은 동네 오빠였는데 오래 동안 저를 짝사랑해주더라. 착해서 제가 행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솔직히 답했다. 이어 그는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다. 그렇지만 세상에 태어나서 나의 분신이 있다는 것이 ‘쟤가 진짜 내 딸인가’ 싶으면서 뿌듯하다. 결혼은 아이 때문에 꼭 해야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규리는 이름에 얽힌 씁쓸한 일화도 공개했다. 박규리는 그룹 카라의 박규리로 오해받아 속상하다며 “용하다는 작명소에 가서 이름을 지었는데 후보 이름이 박건의, 박규리였다. 그래서 선택의 여지 없이 박규리로 지었는데 어떤 공연을 가든 사람들이 속상해할 때마다 이름을 잘못 지었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화학硏 바이오화학산업의 비밀병기 ‘바이오슈가’ 생산기술 개발

    화학硏 바이오화학산업의 비밀병기 ‘바이오슈가’ 생산기술 개발

    국내 연구진이 옥수수나 사탕수수 같은 식용 식물이 아닌 억새처럼 먹지 못하는 식물 바이오매스로부터 바이오화학의 비밀병기로 불리는 바이오슈가와 고부가가치 산물을 생산해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화제다. 한국화학연구원 바이오화학연구센터는 ‘바이오화학산업의 쌀’로 불리며 다양한 화학제품의 원료가 되는 바이오슈가를 시험용 공장에서 생산하는데 성공했다고 5일 밝혔다. 바이오슈가 생산에 성공한 기업은 미국과 영국의 기업 몇 곳에 불과한데 연구팀은 이번에 목질계 바이오매스에서 바이오슈가를 제조하는 방법을 포함해 27건의 특허를 등록 및 출원했다. 바이오연료, 바이오플라스틱, 바이오섬유, 바이오포장재는 물론 각종 식품첨가물, 정밀화학제품을 만드는데 활용되는 바이오슈가는 비식용 바이오매스로 만든 산업용 포도당이다. 전 세계 바이오화학 제품 시장규모는 2017년 기준 약 3490억 달러(약 405조원)에 이르는데 이 중 바이오슈가 시장은 1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억새풀과 팜유를 추출하고 남은 껍질 같은 바이오매스에서 바이오슈가와 각종 고부가가치 부산물을 만드는 종합공정기술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바이오매스를 잘게 부숴 죽처럼 만든 뒤 압착해서 짜내는 습식분쇄와 압착공정을 거쳐 액상비료와 생리활성물질을 얻는다. 그 다음 액체를 빼낸 고체만 고온과 고압 조건에서 쪄내면 자일로스와 식이섬유를 얻게 된다. 여기서 남은 것을 기계적 정쇄, 효소를 더해 가수분해 과정을 거치면 포도당을 추출할 수 있게 되며 당용액을 분리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세번째 산물인 리그닌 함유물을 고체로 얻게 된다. 마지막으로 당용액을 농축하면 바이오슈가를 얻게 되는 것이다.시험용 공정이지만 이 같은 과정을 통해 하루에 바이오슈가 70㎏, 액상비료 200ℓ, 자일로스와 식이섬유 200ℓ, 리그닌 50㎏을 얻을 수 있다. 이번에 개발된 공정은 각종 물질을 추출해 내는 과정에서 화학약품을 사용하지 않고 거의 물만 사용하기 때문에 생산비용과 폐기물 발생이 적다는 특징이 있다. 외국에서 바이오슈가를 생산하는 과정에서는 염산이나 황산 같은 화학약품을 사용하기 때문에 특수 반응기를 설치하는 등 초기투자비가 많이 들고 최종 산물 생산 이전에 독성물질을 제거하고 폐기물 처리도 특수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든다.이번 연구를 이끈 유주현 화학연구원 박사는 “화학 약품을 사용해 바이오슈가를 만드는 공정은 고부가가치 부산물이 거의 나오지 않고 처리비용 때문에 수익성이 문제가 있다”면서 “이번에 개발한 기술은 고부가가치 부산물 생산 뿐만 아니라 정제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아 상용화가 손쉬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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