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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사의 강렬한 순간을 포착하다’…퓰리처상 사진전 슈팅 더 퓰리처

    ‘현대사의 강렬한 순간을 포착하다’…퓰리처상 사진전 슈팅 더 퓰리처

    “당신을 웃거나 울거나, 가슴 아프게 한다면 제대로 된 사진입니다.”(1969년 수상자 에디 애덤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퓰리처상 사진전’에는 현대사의 강렬한 역사적 순간이 담겨 있다. ‘퓰리처상 사진전: 슈팅 더 퓰리처’(Shooting the Pulitzer)에서는 1942년부터 2024년까지 80년간 시대별 퓰리처상 수상작 가운데 역사의 변곡점이 된 보도 사진 120여점을 만나 볼 수 있다. 1917년 제정된 풀리처상은 ‘기자들의 노벨상’으로 불리며 언론계 최고의 명예로 인정받고 있다. 전시된 작품들은 제2차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베를린장벽 붕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전세계에서 벌어진 역사적인 순간들을 포착한 사진들이다. 가장 먼저 만나는 1944년 수상작 ‘영웅의 귀환’은 2차세계대전 참전한 병사의 귀환을 담은 감동적인 장면을 담고 있다. 1973년 수상작 ‘베트만-전쟁의 테러’는 네이팜탄 폭격을 피해 달려가는 소녀를 찍은 사진으로 전쟁의 참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밖에도 굶주린 수단 소녀를 뒤에서 지켜보는 독수리를 찍은 사진, 베트콩을 즉결 처형하는 장면, 뉴욕 9·11 테러, 코로나 19 팬더믹으로 인한 참상을 찍은 사진도 만날 수 있다. 1951년 수상작인 ‘한국전쟁’은 ‘다리에 매달린 피난민들’이라는 부제와 함께 우리의 가슴아픈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AP통신의 맥스데스포 기자는 1950년 12월12일 대동강에서 수많은 피난민들이 중공군을 피해 폭파된 대동강 철교 위는 건너는 절박한 장면을 포착했다. 그는 “얼음이 떠다니는 강물 위 다리 기둥을 잡고 사람들이 다리를 기어서 건너고 있었다”고 전했다. 1989년 수상작 ‘생명을 불어넣다’는 소방관이 화염 속에서 아이를 구한 뒤 숨을 불어넣는 사진으로 미국의 화재예방프로그램을 고치는데 역할을 했다. 사진전은 오는 3월 30일까지 열린다. 입장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입장마감 오후 6시)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관람요금은 성인 2만원, 청소년 어린이 1만 5000원이다.
  • [책꽂이]

    [책꽂이]

    24분(애니 제이콥슨 지음, 강동혁 옮김, 문학동네) 북한이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미국 워싱턴DC에 발사했다는 가정하에 진행될 핵전쟁 과정을 설명한다. 발사 이후 지옥도가 펼쳐지기까지는 단 24분. 미국 대통령 자문위원,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부 장관, 리언 패네타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비롯해 수십 년 동안 핵전쟁을 계획한 인물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핵무기 보유의 역사, 운용 기술, 안전장치, 핵 위험 실상 등을 철저하게 조사해 구성한 핵전쟁 시나리오는 섬뜩하기 그지없다. 486쪽, 2만 2000원. 일곱번째나라(신진욱, 박광온, 박성민 외 12명, 싱크앤하우스) 박광온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김한규 국회의원, 이철희 전 청와대 정무수석, 김연명 전 청와대 사회수석, 홍성국 전 국회의원, 박성민 전 청와대 청년비서관 등이 설립한 ‘일곱번째나라LAB’이 창간한 정치 전문 계간지. 민주주의, 복지, 조세, 노동 등 각 분야 15명의 전문가와 교수, 정치인들이 다가올 7공화국을 위한 우리 사회 담론을 길었다. ‘탄핵 너머, 다시 만날 민주주의’를 주제로 민주주의와 사회계약으로 나눠 ‘한국형 뉴딜 연합’을 제안한다. 212쪽, 1만 8000원. 투자, 진화를 만나다(풀락 프라사드 지음, 안세민 옮김, 워터베어프레스) 2007년부터 2023년까지 연평균 20.3%의 수익률을 낸 저자가 진화생물학으로 투자와 부, 나아가 인생의 핵심 문제들에 대한 지혜를 알려 준다. 호박벌을 통해 워런 버핏의 투자 원칙을 설명하고, 성게의 생태를 들어 투자회사 맥킨지를 분석한다. 은여우를 통해서는 투자 종목 선별법을 배울 수 있다. 저자는 투자로 부를 일구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일종의 장기 프로세스이며, 종의 진화야말로 장기 프로세스의 전형이라고 강조한다. 560쪽, 2만 2000원. 알고 보면 반할 초상(이성훈 지음, 태학사) 조선시대 초상화로 당시의 정치, 사회, 문화상을 알려 준다.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어진’(御眞), 충성심의 증표로 왕이 하사한 ‘신하 초상’, 각 당파나 학파의 정통성을 과시하기 위해 그려진 ‘스승 초상’, 지방 수령과 백성들의 이해관계에서 생겨난 ‘목민관 초상’, 고뇌가 담긴 ‘사대부 초상’, 사랑과 애도의 마음이 담긴 ‘벗과 가족의 초상’까지 120점을 분석해 미술사적 의미와 흐름을 소개한다. 초상화를 단순한 그림 이상으로 여겼던 당대 사람들의 인식도 이해할 수 있다. 456쪽, 2만 4000원.
  • [나태주의 풀꽃 편지] 눈을 쓸었다

    [나태주의 풀꽃 편지] 눈을 쓸었다

    올겨울엔 눈이 유독 많이 내린다. 어젯밤에도 눈이 내렸다. 예전에 문학관에서 함께 일했던 민영이가 친정에 다니러 왔다가 오후에 나를 만나러 온다고 해서 일찌거니 풀꽃문학관으로 향했다. 자전거를 타고 갔다. 눈이 많이 내리긴 했지만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는 눈이 다 녹아서 자전거를 탈 만했다. 그나저나 많이도 눈이 내렸다. 게다가 물기를 잔뜩 머금은 습설이다. 공주 가까운 계룡산에는 30㎝나 내렸다는데 내가 사는 마을 금학동에도 눈이 발목이 빠지도록 내렸다. 눈이 많이 내리면 통행이 불편하고 길을 오가는 데 위험하기까지 하지만 내린 눈으로 하여 전혀 새로운 세상을 보여 주는 것 같아 신비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어디 꿈나라에 왔나 싶은 환상에 빠지게도 한다. 하지만 문학관 주차장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문학관 뜨락에 들어섰을 때 나는 오로지 그런 신비감이나 환상에만 젖어 있을 수는 없었다. 우선 문학관으로 오르는 길에 눈이 쌓여 미끄러웠고 뒤뜰에 있는 야외 화장실로 가는 길에 그냥 눈이 방치돼 있어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영이가 오려면 아직 한 시간 정도는 여유가 있을 것 같아서 겉옷을 벗어 놓고 눈을 치우기로 했다. 죽가래로 눈을 밀고 대비로 쓸었다. 허리를 구부린 채 그동안 하지 않던 일을 하다 보니 팔도 아프고 옆구리도 결리고 허리도 아팠다.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는 일. 호이호이 들숨 날숨을 쉬면서 끝까지 눈을 치웠다. 그러다가 그만 죽가래 자루를 부러뜨리고 대비 자루를 또 하나 부러뜨렸다. 하는 수 없이 삽을 가져다가 나머지 눈을 끝까지 치웠다. 눈을 모두 치우고는 정원에 있는 네 그루 소나무 가지 위에 쌓인 눈을 또 털어 주었다. 후유. 힘들기는 해도 일을 마치고 나니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팔다리 아프고 옆구리 아프게 눈을 치워 본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눈 치우기를 마치고 연장을 정리하고 있는데 민영이가 왔다. 민영이는 언제나 혼자가 아니고 제 아이들을 데리고 온다. 딸아이와 아들아이. 딸아이는 벌써 초등학교 5학년이 되고 아들아이는 1학년 입학을 한단다. 민영이가 내 곁에 있었고 결혼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아이들이 이렇게 자랐다. 세월이 이렇게나 빠르고 무정하다. 그런 세월 동안 좋은 엄마로 살아온 민영이가 대견스럽다. 문학관 안으로 들어가 얘기하다가 얼마 안 있어 민영이가 아이들과 함께 돌아가고 다시 나 혼자가 됐을 때, 나는 문학관 정원의 나무들을 찾아다니며 눈을 털어 주었다. 옛날 어른들은 이렇게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그 이듬해 풍년이 든다고 말씀하셨다. 무엇이든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축복을 자청하고 싶은 심정이 그런 말씀을 하도록 했을 것이다. 어쨌든 눈이 많이 내리면 기분이 좋다.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에 빠진다. 하늘로부터 선물을 받은 느낌이기도 하다. 어제저녁부터 내린 눈. 오늘 아침을 백색 세상으로 바꾸어 놓은 눈. 어쨌든 눈은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한다. 착하지 않은 사람들조차 착한 마음을 생각해 보게 한다. 오늘도 내가 문학관 오름길의 눈을 쓸고 문학관 소나무 위에 쌓인 눈을 털어 준 일은 잘한 일이다. 내일 문학관 직원들이 출근한 다음 그들에게 하도록 해도 되는 일이지만 내가 미리 해서 피차간 좋은 일이 됐다. 그것이 나이 든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가방을 메고 문학관을 나와 주차장에 있는 자전거 쪽으로 가려는데 앞산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 건너다보이는 풍경인데 그동안 보이지 않던 풍경이 새롭게 보이는 건 또 웬일일까. 어쩐지 산이 멀면서도 선명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산 위에 눈이 쌓여 백색으로 보이고 산에 있는 나무숲이 뚜렷하게 보였기 때문일 텐데 이것도 눈이 온 날이 주는 하나의 신비로움이고 새로움이리라. 나는 김종길 선생의 시 ‘고고’(孤高)의 첫 문장을 외어 본다. ‘북한산이/ 다시 그 높이를 회복하려면/ 다음 겨울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오늘은 힘들어도 좋은 날. 오늘의 삶은 이것으로 족하다. 나태주 시인
  • 불타고 뒤집혔는데 ‘80명 전원 생존’ 기적…비결은 ‘이것’이었다

    불타고 뒤집혔는데 ‘80명 전원 생존’ 기적…비결은 ‘이것’이었다

    캐나다 토론토공항에서 착륙 도중 전복된 미 델타항공 여객기 탑승자 80명이 모두 생존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러한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던 비결로 안전을 고려한 항공기 설계와 구조대·승무원들의 빠르고 침착한 대응을 꼽았다. 18일(현지시간) 추가로 공개된 영상을 보면 이 여객기는 지난 17일 오후 2시 13분쯤 공항 활주로에 착륙 과정에 미끄러지면서 기체 아랫부분에서 큰 불길이 치솟았고 곧이어 나동그라지며 완전히 뒤집혔다. 전복된 상태에서 위로 올라온 항공기의 배면과 꼬리 부분이 까맣게 불에 탄 채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지만, 화재 진화와 승객들의 대피가 신속히 이뤄지면서 탑승자 80명 전원이 기적처럼 생존했다. 델타항공은 21명의 승객이 부상으로 병원에 이송됐으며, 이 가운데 2명을 제외한 모든 승객이 이날 아침 전에 퇴원했다고 밝혔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이 같은 기적이 안전을 고려한 항공기 설계와 구조대·승무원들의 빠르고 침착한 대응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크랜필드 대학의 항공 부문 책임자인 그레이엄 브레이스웨이트는 “활주로에서 항공기가 거꾸로 뒤집힌 상태에서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항공기가 어떻게 설계됐고 구조팀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승무원들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그는 여객기의 좌석이 바닥에서 분리되지 않도록 하고, 안전벨트를 튼튼하게 제작한 것, 승객이 앞좌석에 부딪혔을 때 크게 다치지 않도록 표면을 부드럽게 만든 점 등이 이런 전복 사고 시 위험을 줄여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장 목격자들은 사고 직후 안전벨트 덕분에 대부분의 승객이 안전하게 보호됐다고 전했다. 한 탑승객은 “사고 직후 안전벨트를 직접 풀 때 까지 완전히 거꾸로 매달린 상태였다”고 말했으며, 또 다른 승객은 “안전벨트를 매고 있어 거꾸로 매달린 상태였다”고 전했다. 아울러 비행기가 뒤집힌 상태에서 승객들의 대피를 도운 승무원들의 역할도 컸던 것으로 평가됐다. 공항 소방서장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소방대가 “불을 신속하게 진압할 수 있었다”면서 대부분의 승객이 소방대가 도착했을 때 “자발적으로 대피”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소셜미디어(SNS) 등에 공유된 영상에는 승무원들이 뒤집힌 상태의 승객들 사이를 걸어 다니며 “모든 것을 놔두고 비상구로 나가라”고 외치는 모습이 담겼다. 브레이스웨이트는 승객들이 패닉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승무원들이 “안전벨트를 풀어주세요” 같은 간단한 지시를 빨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장 당연한 것 같지만, 사람들이 경험하는 패닉 상태에서는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토론토 피어슨 공항 최고경영자(CEO)인 데버러 플린트는 “인명 피해가 없었던 것은 공항에 있던 영웅적이고 훈련된 전문가들, 구조대 덕분”이라며 공항 요원들의 대응을 칭찬했다. 그는 “공항의 비상 대응 요원들은 몇 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고 승객들을 신속하게 대피시켰다”고 전했다. 구조대원들은 비상구 밖에서 승객들이 빠져나오는 것을 도왔다. 브레이스웨이트는 “현장 사진들을 보면 뭔가 다른 일이 벌어졌을 것 같지만, 지금과 같이 다행스러운 결과는 모든 사람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 ‘아저씨’ 원빈, 故김새론 빈소 직접 찾았다…비통함 감추지 못한 동료들(종합)

    ‘아저씨’ 원빈, 故김새론 빈소 직접 찾았다…비통함 감추지 못한 동료들(종합)

    배우 김새론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가운데, 생전 고인과 인연이 있던 연예계 동료들이 빈소를 찾아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17일 연예계에 따르면 배우 원빈은 이날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새론의 빈소를 찾았다. 그는 침통한 표정으로 관계자들과 함께 빈소를 찾아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원빈은 아내 이나영과 함께 근조화환을 보내기도 했다. 김새론과 원빈은 2010년 개봉한 영화 ‘아저씨’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아저씨’가 흥행에 성공하며 김새론은 대중에게 천재 아역으로 눈도장을 찍었고, 원빈 역시 연기력을 재차 증명하게 됐다. 배우 한소희, 김보라, 그룹 악뮤의 이수현·이찬혁 등도 빈소를 찾아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이날 현장에는 가수 아이유, FT아일랜드, 배우 마동석, 공명 등이 근조 화환을 보내 고인을 추모했다. 소셜미디어(SNS)에서도 동료들의 추모가 잇따르고 있다. 배우 김옥빈은 이날 자신의 SNS에 국화꽃 사진을 올리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짧은 글을 남겼다. 김새론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비보가 전해진 직후 올린 글이어서 그를 추모하기 위해 올린 글로 보인다. 영화 ‘동네사람들’에서 김새론과 호흡을 맞춘 김민체도 애도의 마음을 전했다. 그는 SNS에 영화의 한 장면을 담은 사진을 올리며 “영화에서 딸로 만나 너무 행복했던 시간”이라며 “그곳에서 편히 쉬기를”이라고 적었다. 걸그룹 피에스타 출신 옐도 SNS에 민들레 홀씨 이미지를 올린 후 “너무 슬퍼요. 몇 번 봤던 모습이 의리 있고 착한 친구로 남아있는데”라며 “오늘은 긴 밤이 될 것 같아요”라는 글을 남겼다. 그룹 헬로비너스 출신 배우 유아라는 SNS에 김새론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언니가 따뜻한 말은 못 해주고 잔소리만 해서 미안하다”며 “미안하고 고맙고 반짝반짝 빛나던 널 기억하고 기도할게”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방송인 박슬기도 SNS에 국화꽃 사진과 함께 “그곳에선 상처받는 일 없이 그저 평안하길.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로 추모했다. 배우 서예지, 서하준도 SNS에 국화꽃 사진을 남기며 애도했고, 김새론의 전 소속사 골드메달리스트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짧은 애도의 글을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새론은 전날 오후 서울 성수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001년 잡지 ‘앙팡’ 아역 모델로 연예계에 발을 들인 김새론은 2009년 영화 ‘여행자’로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창동 감독의 한국·프랑스 합작 영화인 ‘여행자’가 칸국제영화제 초청을 받으면서 칸 레드카펫을 밟은 우리나라 최연소 배우로 기록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영화 ‘아저씨’, ‘도희야’,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 ‘엄마가 뭐길래’, ‘여왕의 교실’ 등에 출연했다. 그러나 2022년 5월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내면서 활동을 중단했다. 캐스팅됐던 드라마 ‘트롤리’에서 하차했고, 촬영을 대부분 마친 상태였던 넷플릭스 시리즈 ‘사냥개들’에서는 분량이 편집됐다. 김새론은 연극 ‘동치미’를 통해 2년 만에 활동을 재개하려 했으나 복귀가 알려진 뒤 논란이 일자 하루 만에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하차했다. 유작인 영화 ‘기타맨’ 개봉을 앞두고 있다. 발인은 오는 19일 오전 6시 20분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자살예방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최보기의 책보기] 은유가 시를 잡아먹어 독자가 뒤척일 때

    [최보기의 책보기] 은유가 시를 잡아먹어 독자가 뒤척일 때

    시의 중심은 은유와 운율이다. 독자가 시인의 생각을 좇아 상상의 세계를 그리도록 직설이나 직유 대신 은유 속에 뜻을 숨겨 놓는다. 시 안의 문장이나 단어가 은유일 수도 있고, 시 전체가 은유일 수도 있다. 전체가 은유인 시 중에 멋진 시가 꽤 많다. 고은 시인 ‘그 꽃’, 나태주 시인 ‘풀꽃’, 안도현 시인 ‘너에게 묻는다’, 서정춘 시인 ‘죽편’ 등이 꾸준하고 열렬하게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는 이유다. 이 시들의 공통점은 ‘길지 않고, 짧다’는 점인데 짧음은 시인의 노력과 관록이 빚어낸 응축이다. 운율은 리듬이다. 정치인의 출마선언문이나 ‘국민교육헌장’처럼 쓰는 게 아니라 사람의 호흡에 맞추는 장단고저가 있어 마시기에 부드러운 술처럼 문장을 만드는 것이다. 독자가 운율을 의식하지 못하면서도 시가 좋다고 느끼면 운율을 잘 맞췄을 가능성이 높다. 은유와 운율 말고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남다름’이다. 누구나 뻔히 볼 수 있는 해석, 표현, 의미는 시답잖다. 시인은 어떤 사물과 생각에서 독자가 미처 보거나 이르지 못했던 사실을 멋지게 통찰해내는 혜안을 가진 사람이다. 반세기 전 국민의 힘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릴 때 시인들의 역할이 지대했다. 민주화 운동에 삶을 걸었던 청년이라면 대개 시집 한두 권은 가슴 속에 품고 다녔다. 베스트셀러에 시집이 오르는 경우도 흔했다. 그랬던 시가 지금은 서점의 서가에서 ‘멸종의 위기’를 맞은 지 오래다. 시인들이 은유에 집착한 나머지 은유에 은유에 은유를 얹어 시를 너무너무 어렵게 비트는 바람에 독자들을 시로부터 쫓아냈다거나, 자기들이 판 샘물을 자기들끼리 마시며 박수 치고 놀다 그렇게 됐다거나, 날이 갈수록 밑바닥을 헤매는 국민 독서량 때문이라는 말들이 있다. 어쨌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려운 시국에도 시를 포기하지 않고 고집스럽고 줄기차게 시집을 내왔던 출판사가 달아실인데, 서울이 아닌 춘천에 있다. 박제영 대표 역시 30년 넘도록 묵묵히 시의 길을 걷는 시인인데 ‘문장수선공’을 자처한다. 이슬안 시집 ‘달의 기억이 뒤척일 때’는 달아실 시선 제88집이다. 서울에서 태어난 시인은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목천 가는 길/ 피에타// 성 베드로 성당 안/ 죽은 아들 두 팔에 올려놓고/ 가만히 내려다보는// 가지에서 떨어져 나간/ 마른 잎새 끌어안은/ 초겨울 능선에도// 새끼 잃은/ 젖 불은 어미가 있었다’ (‘피정’ 전문)는 시인의 눈은 깊고 따스하다. ‘만경에서 흘러 나간 강은/ 고부를 떠나 멀리 닿았다/ 마산에서 발원한 샘물은/ 재갈을 품고 범람하였다/ 치욕이 온 산하에 일렁거렸다/ 광주천 상류로 번진 강물/ 짐승들 발자국 따라… …무심히 흐르던 강은/ 비로소 광화문에 이르렀다/ 아스라이 번져가는 촛불 아래/ 강물은 거세게 번들거렸다/ 기어이 큰 바다를 이루었다’(‘민중’ 발췌)는 저항심도 있다. ‘달의 뒤편에 오래도록 서 있었’던 시인에게 ‘여린 달빛이 내어준 마음이 시가 되었다’며 ‘응축을 기다리고 있다’고 시인은 전한다. 최보기 책글문화네트워크 대표
  • 유작이 된 복귀작…“너무 슬프다” 故김새론 비보에 연예계 비통

    유작이 된 복귀작…“너무 슬프다” 故김새론 비보에 연예계 비통

    배우 김새론이 25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비보가 전해지자 동료 연예인들이 애도를 표했다. 배우 김옥빈은 17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국화꽃 사진을 올리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짧은 글을 남겼다. 김새론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비보가 전해진 직후 올린 글이어서 그를 추모하기 위해 올린 글로 보인다. 영화 ‘동네사람들’에서 김새론과 호흡을 맞춘 김민체도 애도의 마음을 전했다. 그는 SNS에 영화의 한 장면을 담은 사진을 올리며 “영화에서 딸로 만나 너무 행복했던 시간”이라며 “그곳에서 편히 쉬기를”이라고 적었다. 걸그룹 피에스타 출신 옐도 SNS에 민들레 홀씨 이미지를 올린 후 “너무 슬퍼요. 몇 번 봤던 모습이 의리 있고 착한 친구로 남아있는데”라며 “오늘은 긴 밤이 될 것 같아요”라는 글을 남겼다. 그룹 헬로비너스 출신 배우 유아라는 SNS에 김새론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언니가 따뜻한 말은 못해주고 잔소리만 해서 미안하다”며 “미안하고 고맙고 반짝반짝 빛나던 널 기억하고 기도할게”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배우 서예지, 서하준도 SNS에 국화꽃 사진을 남기며 애도했고, 김새론의 전 소속사 골드메달리스트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짧은 애도의 글을 전했다. 김새론이 생전 과도한 악성 댓글(악플) 등에 시달렸다며 이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가수 미교는 SNS에 “사람이 죽어야 악플러들 손이 멈춘다”며 “악플러들은 본인이 악플을 달고 있다는 것조차 모를 것 같다”고 꼬집었다. 디시인사이드 여자 연예인 갤러리도 성명문에서 “김새론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하며 다시 일어서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과정에서 그가 감당해야 했던 비난과 여론의 외면은 인간적인 한계를 넘는 것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1년 잡지 ‘앙팡’ 아역 모델로 연예계에 발을 들인 김새론은 2009년 영화 ‘여행자’로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창동 감독의 한국·프랑스 합작 영화인 ‘여행자’가 칸국제영화제 초청을 받으면서 칸 레드카펫을 밟은 우리나라 최연소 배우로 기록되기도 했다. 이듬해엔 영화 ‘아저씨’로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얼굴과 이름을 알렸다. 범죄조직에 납치됐다가 특수요원 출신 태식(원빈)의 구조를 기다리는 소미 역을 맡아 불우한 아이의 감정을 잘 표현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후에도 영화 ‘도희야’,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 ‘엄마가 뭐길래’, ‘여왕의 교실’ 등에 출연했다. 그러다 2022년 5월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내면서 활동을 중단했다. 캐스팅됐던 드라마 ‘트롤리’에서 하차했고, 촬영을 대부분 마친 상태였던 넷플릭스 시리즈 ‘사냥개들’에서는 분량이 편집됐다. 김새론은 지난해 연극 ‘동치미’를 통해 2년 만에 활동을 재개하려 했으나 복귀가 알려진 뒤 논란이 일자 하루 만에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하차했다. 같은 해 11월엔 독립영화 ‘기타맨’을 촬영하는 모습이 공개됐으며, 안타깝게도 유작으로 남게 됐다. 김새론의 빈소는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7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19일 오전 6시 20분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자살예방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창백한 푸른 점’···NASA 보이저 1호가 포착한 지구

    ‘창백한 푸른 점’···NASA 보이저 1호가 포착한 지구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5년 전인 1990년 2월 14일, 인류 역사상 ‘가장 철학적인 천체사진‘이 촬영됐다. 바로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다. 지난 14일(현지시간) 과학매체 라이브사이언스 등 외신은 미 항공우주국(NASA)의 보이저 1호가 촬영한 ‘창백한 푸른 점’의 35주년을 기념하는 기사를 일제히 보도했다. 우주라는 광막한 공간 속에 지구가 담긴 이 사진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커다란 경외감을 자아낸다. 인류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지구가 먼 우주에서 보면 그저 한 점 티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유명 과학서적 ‘코스모스’의 저자이자 미국의 유명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1934~1996)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당시 그는 명왕성 부근을 지나고 있던 보이저 1호의 망원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돌려 지구의 모습을 찍어보자는 다소 황당한 아이디어를 냈다. 그리고 1990년 2월 14일 실제로 보이저 1호는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돌려 지구-태양 간 거리의 40배인 60억㎞ 거리에서 지구의 모습을 잡아냈다. 이 사진 속에 담긴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저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했다. 또한 보이저 1호는 지구 뿐 아니라 해왕성과 천왕성, 토성, 목성, 금성도 같이 찍어 가족사진을 완성했지만 이 모든 태양계 행성들은 우주 속에서는 역시 먼지 한 톨에 불과했다. 칼 세이건 박사는 “지구는 우주에 떠있는 보잘 것 없는 존재에 불과함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다”는 명언을 남겼다. 칼 세이건 박사 역시 1996년 우주의 별이 됐지만 사진을 촬영한 보이저 1호는 놀랍게도 지금도 항해 중이다. 보이저 1호는 1977년 8월 20일, 인류의 원대한 꿈을 안고 머나먼 우주로 발사됐다. 보이저 1호는 쌍둥이 탐사선 보이저 2호와 함께 목성과 토성까지는 비슷한 경로로 날아갔지만 이후 곧장 지름길을 이용해 태양계 밖으로 향했다. 현재 보이저 1호는 지구에서 약 250억㎞ 떨어진 성간 우주를 비행 중으로 지구와 통신이 두절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여전히 데이터를 전송 중이다. 곧 ‘창백한 푸른 점’을 촬영할 당시보다 4배나 더 멀리 날아간 것이다. 특히 보이저호에는 60개의 언어로 된 인사말과 이미지, 음악 등 지구의 정보가 담긴 황금 레코드판을 싣고있는데 이를 외계인에게 전달하는 것이 마지막 임무다.
  • ‘재혼’ 심수봉 “첫째 아들에게 유산 다 줄 것” 파격 선언

    ‘재혼’ 심수봉 “첫째 아들에게 유산 다 줄 것” 파격 선언

    가수 심수봉이 자신의 재혼으로 방황했던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지난 15일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은 ‘2025 신년 기획 4탄 심수봉&송가인의 새해 연가’ 2부로 꾸며졌다. 이날 심수봉은 자신의 히트곡 ‘심연 그 밖으로’에 대해 “아들과 깊은 인연이 있는 곡”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진 무대에서 그는 노래를 부르던 중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심연, 그 밖으로’는 심수봉의 첫째 아들 한승현씨가 심수봉의 재혼으로 방황했던 당시의 마음을 담아낸 곡이다. MC 신동엽은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한 사람이 (심수봉의) 아들이다. 아드님이 어머니를 위해 이 자리에 달려왔다”라고 말하며 심수봉의 큰아들 한씨를 무대 위로 초대했다. 한씨는 “다른 방송에서 곡 소개를 하다가 우리 가족의 일들을 레퍼런스로 삼았다고 했다. 그게 상처가 되셔서 부르실 때마다 우신다”라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에 심수봉은 “지금 남편에게 빠져서 아들에게 상처를 많이 줬다. 재혼하며 저는 행복을 꿈꿨지만, 아들에겐 광야였다”라고 말했다. 한씨는 “20년째 울고 계신다. 한결같다”며 “최고의 어머니다. 어머니 덕분에 부족함 없이 잘 컸다”라고 감사함을 전했다. 모자의 애틋한 대화가 오가자 신동엽은 심수봉의 평소 모습을 궁금해했다. 이에 한씨는 “아주 다르다. 다른 분들은 어머니의 낮은 목소리만 들어보셨을 텐데 난 고음도 들어봤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심수봉은 “승현이처럼 착한 아이는 없을 거다. 엄마로서 해준 게 없는 것 같다”며 “오죽하면 유산이라도 다 줘야겠다 싶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를 들은 신동엽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축하한다, 승현아. 나랑 의형제 맺자”라고 말해 웃음을 더했다. 1955년생 심수봉은 1978년 제2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그때 그 사람’을 부르며 데뷔했다. 싱어송라이터인 심수봉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사랑밖엔 난 몰라’ ‘백만송이 장미’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낸 바 있다.
  • ‘초등생 피살사건’ 정신질환 혐오 우려…“낙인찍기 도움 안 돼”[취중생]

    ‘초등생 피살사건’ 정신질환 혐오 우려…“낙인찍기 도움 안 돼”[취중생]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도 세대도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평소 우울증 약을 복용하는 김모(34)씨는 대전 서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초등생이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평소보다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15일 서울신문에 말했습니다. 가해 교사가 우울증이 있었다고 알려지면서 ‘주변에서 나도 잠재적인 범죄자로 보면 어떻게 할지’ 등 시선을 걱정하며 위축됐기 때문입니다. 박씨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비극”이라면서도 “정신질환자를 싸잡아 욕하는 분위기가 느껴져 힘이 빠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울증이나 조현병 등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 중에는 약을 먹거나 치료를 병행하면서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우울증=공격 성향?’ 오해만 퍼져 경찰과 대전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지난 10일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돌봄교실에서 나오던 초등생을 흉기로 살해한 40대 복직 교사 A씨는 평소 우울증을 앓았다고 알려졌습니다. A씨는 우울증으로 지난해 12월 6개월 동안 휴직했다가 같은달 말 진단서를 내고 조기에 복직했다고 합니다. 사건 발생 전에는 교내에서 교직원 등을 상대로 폭력적인 문제 행동을 보여 학교와 교육청이 대책을 논의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사건이 알려진 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우울증이 극단 행동을 일으킨다’며 무분별한 혐오가 담긴 글이 잇따랐습니다. 자신을 의과대학 재학생이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우울증 환자들을 가리키며 ‘피해망상과 스트레스를 극복하고자 공격 성향을 보인다’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큰 해를 끼치는 재앙’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신질환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허위사실과 혐오는 편견만 키운다는 지적이 큽니다.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은 이번 사건 가해자의 질병명이 사건의 원인인 것처럼 언론 등에서 반복적으로 다루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지원단은 “사실에 기반을 두고 사회구조적 요인과 개선방안에 집중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정신건강 적신호 ‘1위’인 대한민국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에 대한 오해가 커질수록 제대로 된 치료와 사건 재발 예방을 가로막게 됩니다. 실제로 우리 국민들의 정신건강 지표는 갈수록 악화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나온 2023년 건강보험통계를 보면 정신 및 행동장애 만성질환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 수는 2019년 335만 2000명에서 2023년 기준 414만 5000명으로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우울증을 겪는 이들도 많지만 치료 환경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전국 우울증 환자는 2018년 약 75만명에서 매년 늘어 2022년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었습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우울감·우울증 유병률 1위(2020년 기준)로, 국민 10명 중 4명꼴로 우울증이나 우울감을 느낀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반대로 2022년 대한우울자살예방학회에 따르면 한국의 우울증 치료율은 11%로 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이었습니다. “우울증은 죄 없다”…치료 환경 개선해야전문가들도 정신질환을 비난하거나 음지화할 경우 치료가 더 어려워진다고 짚습니다. 한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 온더블럭’에 출연했던 나종호 예일대 정신의학과 조교수는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이 우울증 휴직 전력을 앞다투어 언급하는 건 부적절”하다면서 “우울증에 대한 낙인을 강화시켜 도움을 꼭 받아야 할 사람들이 치료받지 못하게 만들어 한국의 정신건강 위기를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개인이 홀로 극복해야 할 문제로 치부하거나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 인식이 만연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입니다. 심리·정신 문제를 연구하는 한국상담치료연구소 역시 우울증 환자를 비난하면 환자의 자기 비난 경향이 강화돼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20세 연하’ 홍주연 아나운서와 열애설에…전현무가 밝힌 솔직 심정

    ‘20세 연하’ 홍주연 아나운서와 열애설에…전현무가 밝힌 솔직 심정

    방송인 전현무가 20세 연하 홍주연 아나운서와 열애설에 대해 솔직한 속내를 전한다. 14일 방송하는 MBN·채널S ‘전현무계획2’ 17회에서는 전현무와 유튜버 겸 방송인 곽튜브(곽준빈)가 배우 최다니엘과 춘천 닭갈비 맛집을 찾아 나서는 모습이 공개된다. 한 식당에 도착한 세 사람은 지금은 보기 힘든 은색 철판과 닭 내장 메뉴를 발견해 신기해한다. 전현무는 철판에서 맛있게 익어가는 닭갈비를 보면서 “요즘 (설거지하기 좋은) 주물 철판도 나오는데 안 바꾸셨네”라며 “대학 때 철판 닦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진짜 힘들었다”며 과거를 떠올린다. 한창 닭갈비를 먹던 중 전현무는 갑자기 최다니엘에게 “그래서 어떡할 건데, 결혼”이라고 한다. 이에 당황한 최다니엘은 연애 프로그램 상대였던 일본 배우 타카다 카호를 언급하며 “그분은 일본에서 계속 활동하고 계신다”고 답했다. 곽튜브는 “친구로 지내시는 거냐. 가능성이 있는 사이냐. 여사친이라는 게 없지 않냐”며 캐묻는다. 전현무와 제작진 역시 “초반에 설레지 않냐. 한순간도 설렌 적 없냐”며 최다니엘을 추궁한다. 그러다 ‘열애설’ 질문의 화살은 전현무에게 돌아온다. 곽튜브가 “최근 스무살 연하인 아나운서와 열애설이 났는데 (자신의) 열애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냐”고 ‘돌직구’ 질문을 던진다. 이에 전현무는 “그 친구(상대방)한테 미안하다는 생각이 제일 처음 든다”고 했다. 그는 이어 “그 친구한테 ‘너 너무 불편하지 않냐’고 물어본다. 상대방이 ‘괜찮다’고 하면 놔둔다”며 “(열애설을) 통해서 그 친구가 주목되니까 그게 좋은 거다. 신입 아나운서가 주목받기 쉽지 않다. 방송 환경이 옛날 같지 않아서 이렇게라도 알려져서 도움이 된 것 같아 그냥 (굳이 대응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 1908년 표준시의 등장… 우리의 삶을 바꾸다

    1908년 표준시의 등장… 우리의 삶을 바꾸다

    日, 조선 통치 위해 기준 시간 도입한반도 경도 기준 땐 30분 차이 나1954년 이원철 ‘시간 광복’ 주장도군사정권 때 日표준시로 다시 바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표준시’ 제도가 등장한 때는 1908년이다. 일본 통감부가 조선의 공적 시간을 양력으로 편제한 해이기도 하다. 표준시란 한 나라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지방 평균 태양시를 가리킨다. 우리가 원해서 따라간 게 아니라 당시 일본이 조선 통치를 수월하게 하고자 도입했다. 일본의 표준시와 차이가 나면서 불편함을 느끼자 일본은 1912년 우리나라 표준시를 일본 경도 기준으로 맞춰 버렸다. 해방 이후인 1954년 이원철 국립중앙관상대장이 ‘시간 광복’을 주장하며 우리나라 경도를 기준으로 표준시를 바꾸면서 30분이 늦춰졌다. 그러나 군사정권은 세계 각국 표준시는 정수로 시차를 둔다는 이유로 1961년 다시 일본 표준시로 바꾼다. 우리나라에 ‘시간’이라는 개념이 정착한 것은 백 년 남짓에 불과하다. 일본이 침탈을 시작한 근대에 특히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이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표준시 변경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정치적인 목적에 따라 혼란에 혼란을 거듭했다. 책은 한국에서 태양력을 채용한 1896년부터 일제강점기가 끝나는 1945년까지 근대적인 시간의 형성을 따라간다. 종, 오포, 사이렌, 시계, 라디오, 달력 같은 사물들이 어떤 목적으로 도입되고, 어떻게 우리의 행동과 생각을 바꾸는지 살핀다. 저자는 시간이 우리 삶을 반영하면서 반대로 삶의 모습을 바꾸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조선시대에는 시계가 아니라 달력 정도만 있어도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차츰 관공서, 우편국, 철도역, 백화점, 은행, 병원, 학교 등 이른바 ‘시계’를 장착한 공간이 늘어나면서 ‘시간의 질서’가 재편된다. 한일병합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시간에 맞춰 쏘는 오포가 등장했다. 1920년대 중반 무렵엔 사이렌이 이를 대신했다. 훨씬 더 넓은 공간에 시간을 알리기 위해서다. 1930년대가 되면 시계와 라디오의 대중적인 보급으로 근대적인 시간이 일상화한다. 특히 6월 10일 ‘시(時)의 기념일’은 시계의 보급과 시간 관념의 확산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라디오가 대중적으로 보급되면서 벌어진 일은 기괴하기까지 하다. 사이렌 소리를 듣고 사람들은 매일 아침 학교, 공원, 신사 등에 모여 체조를 하면서 서로의 몸을 하나로 조율했다. 전시에 언제든 조선인을 동원할 수 있도록 몸과 정신을 통합하려는 일본의 의도에 따라서다. 당시에 사람은 일종의 ‘물자’나 다름없었다. 책은 800여쪽에 걸쳐 시간 정착의 근대사를 사실 위주로 담담하게 기록한다. 그러나 행간마다 식민주의와 제국주의가 어떻게 시간을 악용하고 오용하고 남용했는지 읽을 수 있다. 근대적인 시간은 매우 느린 속도로 조선의 공간에 스며들었고, 부자연스럽고 엉성하게 침투했다. 손목시계가 점차 사라지고 휴대전화가 시계를 대신하는 지금, 우리에게 시간은 어떤 개념일지 문득 궁금해진다.
  • 유대인 천재 인생 갈아 넣은 30년 건축 여정 ‘깊은 울림’[영화 프리뷰]

    유대인 천재 인생 갈아 넣은 30년 건축 여정 ‘깊은 울림’[영화 프리뷰]

    인간은 백년도 못 살지만, 그가 남긴 예술은 후세에까지 생을 이어 간다. 12일 개봉하는 ‘브루탈리스트’는 전쟁의 상처에서 영감을 받아 혁신적인 건축물을 만들어 낸 유대인 건축가 라즐로 토스(에이드리언 브로디)의 30년을 215분에 걸쳐 담아낸다. 영화는 15분간의 중간 휴식(인터미션)을 두고 1·2장으로 구성했다. 1장은 미국에 정착한 건축가 토스의 고된 여정을 그렸다. 아내와 조카를 오스트리아 수용소에 두고 혼자 필라델피아로 온 그는 가구점을 운영하는 사촌에게 의탁해 지낸다. 부유한 사업가 해리슨(가이 피어스)의 아들에게 의뢰받아 인테리어 작업에 나섰지만 실패한 뒤 건설 현장을 전전한다. 그러나 해리슨은 그의 천재성을 뒤늦게 알아보고 그를 다시 찾아와 자신의 아내를 기릴 문화센터를 건축해 달라고 제안한다. 2장은 토스의 아내 에르제벳(펠리시티 존스)이 미국에 합류한 이후 이야기를 그린다. 토스는 해리슨의 제안에 기가 막힌 설계를 내놓지만 건축 비용이 계속 늘어나면서 어려움을 겪는다. 해리슨의 기대가 커질수록 그에 대한 주변의 시기와 질투는 커져만 가고, 타협을 모르는 토스의 성격 때문에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진다. 영화 전반부는 토스의 개인적인 고난, 후반부는 토스가 문화센터를 지으면서 겪는 고난에 초점을 뒀다. 개인적인 고난이 어떻게 예술로 승화하는지가 영화의 백미다. 영화 제목 ‘브루탈리스트’는 ‘브루탈리즘’을 따르는 건축가를 가리킨다. 브루탈리즘은 1950년대 영국에서 전후 복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등장한 건축 양식으로, 노출 콘크리트나 벽돌과 같은 소재의 본질을 드러내는 방식을 쓴다. 메가폰을 잡은 브래디 코베 감독은 “브루탈리즘 건축물은 사람들이 즉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중에게 자리잡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이 부분이 이민자의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면서 “건축물을 설계하거나 만든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투쟁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토스가 만든 건물은 강제수용소를 연상케 하는 하부 구조물과 그 위로 우뚝 솟은 두 개의 직육면체 기둥으로 돼 있다. 기둥 왼쪽과 오른쪽에 파인 십자가 모양 절반에 홈을 내 음각을 만들어 냈는데, 해가 이동하면서 중앙 회당에 시간별로 빛의 십자가를 드리운다. 천재가 갈아 넣은 인생이 아름다움으로 결실을 빚는 순간이다. 2장의 제목이 왜 ‘아름다움의 견고한 본질’인지도 영화 말미에 깨닫게 된다. 안락한 생에 만족하지 않은 개인의 삶은 이렇게 고난의 길을 걸은 뒤에야 예술로 승화한다. 거대한 건물을 실제로 세우는 모습 등을 비롯해 중간중간 1950~60년대 미국 주요 경제·정치 이슈들을 보여 주기에 실화 영화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법하지만, 순수 창작물이다. 마약 투여라든가 성행위 장면 등이 종종 나온다. 방황하는 토스의 심경을 표현한 불협화음 역시 불편함을 부른다. 그러나 그렇게 견딘 215분 뒤에 전해 오는 울림은 상당하다.
  • 짧은 인생, 긴 예술 215분으로 응축한 ‘브루탈리스트’[영화프리뷰]

    짧은 인생, 긴 예술 215분으로 응축한 ‘브루탈리스트’[영화프리뷰]

    인간은 백년도 못 살지만, 그가 남긴 예술은 후세에까지 생을 이어 간다. 12일 개봉하는 ‘브루탈리스트’는 전쟁의 상처에서 영감을 받아 혁신적인 건축물을 만들어 낸 유대인 건축가 라즐로 토스(에이드리언 브로디)의 30년을 215분에 걸쳐 담아낸다. 영화는 15분간의 중간 휴식(인터미션)을 두고 1·2장으로 구성했다. 1장은 미국에 정착한 건축가 토스의 고된 여정을 그렸다. 아내와 조카를 오스트리아 수용소에 두고 혼자 필라델피아로 온 그는 가구점을 운영하는 사촌에게 의탁해 지낸다. 부유한 사업가 해리슨(가이 피어스)의 아들에게 의뢰받아 인테리어 작업에 나섰지만 실패한 뒤 건설 현장을 전전한다. 그러나 해리슨은 그의 천재성을 뒤늦게 알아보고 그를 다시 찾아와 자신의 아내를 기릴 문화센터를 건축해 달라고 제안한다. 2장은 토스의 아내 에르제벳(펠리시티 존스)이 미국에 합류한 이후 이야기를 그린다. 토스는 해리슨의 제안에 기가 막힌 설계를 내놓지만 건축 비용이 계속 늘어나면서 어려움을 겪는다. 해리슨의 기대가 커질수록 그에 대한 주변의 시기와 질투는 커져만 가고, 타협을 모르는 토스의 성격 때문에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진다. 영화 전반부는 토스의 개인적인 고난, 후반부는 토스가 문화센터를 지으면서 겪는 고난에 초점을 뒀다. 개인적인 고난이 어떻게 예술로 승화하는지가 영화의 백미다. 영화 제목 ‘브루탈리스트’는 ‘브루탈리즘’을 따르는 건축가를 가리킨다. 브루탈리즘은 1950년대 영국에서 전후 복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등장한 건축 양식으로, 노출 콘크리트나 벽돌과 같은 소재의 본질을 드러내는 방식을 쓴다. 메가폰을 잡은 브래디 코베 감독은 “브루탈리즘 건축물은 사람들이 즉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중에게 자리잡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이 부분이 이민자의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면서 “건축물을 설계하거나 만든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투쟁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토스가 만든 건물은 강제수용소를 연상케 하는 하부 구조물과 그 위로 우뚝 솟은 두 개의 직육면체 기둥으로 돼 있다. 기둥 왼쪽과 오른쪽에 파인 십자가 모양 절반에 홈을 내 음각을 만들어 냈는데, 해가 이동하면서 중앙 회당에 시간별로 빛의 십자가를 드리운다. 천재가 갈아 넣은 인생이 아름다움으로 결실을 빚는 순간이다. 2장의 제목이 왜 ‘아름다움의 견고한 본질’인지도 영화 말미에 깨닫게 된다. 안락한 생에 만족하지 않은 개인의 삶은 이렇게 고난의 길을 걸은 뒤에야 예술로 승화한다. 거대한 건물을 실제로 세우는 모습 등을 비롯해 중간중간 1950~60년대 미국 주요 경제·정치 이슈들을 보여 주기에 실화 영화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법하지만, 순수 창작물이다. 마약 투여라든가 성행위 장면 등이 종종 나온다. 방황하는 토스의 심경을 표현한 불협화음 역시 불편함을 부른다. 그러나 그렇게 견딘 215분 뒤에 전해 오는 울림은 상당하다.
  • [열린세상] 기업 오너의 책임

    [열린세상] 기업 오너의 책임

    최근 언론에서 “대기업 오너 4명 중 1명, ‘법적 책임’ 등기임원 안 맡아”라는 제목의 기사를 봤다. 기업 오너라는 말은 법적인 용어가 아니다. 국어사전에서는 오너를 ‘기업 등의 소유권을 가진 사람’이라고 밝히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업 오너라고 하면 해당 기업의 최대 지분을 소유하고 실질적으로 회사의 경영 사항에 관해 최종 결정을 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이처럼 기업 오너라는 단어는 법적 용어도 아니고 외국어를 한글로 표기한 것에 불과한데 기이하게도 기업의 법적 책임을 논할 때 자주 등장한다. 기업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그 법적 책임은 당연히 기업 오너가 부담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특히 도덕성과 연관된 형사사건의 경우에는 더욱더 그러한 경향이 강해져 수사기관은 기업 오너의 책임을 확인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기업 오너가 그 사건에 관여했다면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오너가 해당 기업의 대표자가 아니거나 사소한 사안 등 책임을 묻기에 적절하지 않은 경우에도 그 책임을 오너에게 물으려고 하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수사기관 또는 규제기관에서 기업에 대한 수사나 조사를 시작하면 사안이 아무리 사소해도 그 여파가 오너에게 미치지 않을지 전전긍긍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기업이 실적이 좋지 않거나 나아가 도산이라도 하게 되면 최대 지분권자인 오너가 그 불이익을 온전히 받을 수밖에 없고, 그 지분만큼은 무한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런데 도산과 같은 경제적ㆍ재무적 책임 부담을 넘어 오너가 관여하지 않은 일상적 기업 업무에 대해서까지 민사, 형사책임을 물으려고 하는 경우에는 중요한 법적 원칙인 책임주의를 어기게 되는 것이다. 공공기관에서 위임 전결 규정을 둬 국장 전결 사항, 과장 전결 사항 등으로 나눈 것도 조직의 수장이 모든 것을 책임지게 할 수는 없다는 사고에 연유한 것이리라. 세상이 투명해져서 정부로부터 혜택을 받기 위해 대관 활동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정부로부터 불이익한 대우를 받지 않으려 소극적으로, 그리고 투명하게 행하는 대관 활동이 일반적이다. 소위 재벌이라는 대기업에는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런 상황에 기업 오너가 나서서 부정한 청탁 등에 연관되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언젠가 어느 신부님이 쓴 착한 목자와 삯꾼에 관한 글을 읽은 기억이 떠오른다. 양을 소유한 목자는 양들이 그를 먹고살게 하기에 자신을 돌보듯 양들을 돌보는 사람으로 착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삯꾼은 그저 일당을 받는 것이 목적이므로 목자만큼 인내를 가지고 양들을 돌볼 마음이 없고 착한 목자와 같은 심정이 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종교가 아닌 일반 세상사로 돌아가서 볼 때 급여를 받고 일하는 직원보다는 기업을 소유한 오너에게 회사에 대한 애정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직원은 다른 기업에 가서 일을 하면 되지만, 오너는 그 기업이 망하면 모든 것을 잃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기업 오너들 중에도 여러 이유로 불법과 탈법을 일삼는 사람도 있겠지만 기업을 거덜낼 작정을 하거나 기업의 이해관계에 아랑곳없이 불법과 부정을 저지를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특히나 소수 주주의 권리가 강화되고 모든 것이 투명해진 요즘 상황에서는 오너가 그 힘을 통해 편법과 불법으로 사리사욕을 채우기 어려워졌다. 아울러 매출 신장 등 기업의 성장을 통해 그 과실을 취하는 게 훨씬 더 낫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기업을 규제하는 쪽에서도 무조건 가장 꼭대기까지 책임 소재를 물어 그것을 공으로 삼으려 하기보다는 누가 실질적 권한을 행사했는지 따져 보는 동시에 기업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사람이 누구인지 선별하는 데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종철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전 삼성전자 부사장
  • 소시지 삼키다 혼수상태… 식물인간 된 3살 ‘기적의 생환’

    소시지 삼키다 혼수상태… 식물인간 된 3살 ‘기적의 생환’

    작은 소시지 하나가 모든 걸 바꿨다. 2012년 5월 29일, 에마뉘엘 트란은 친구들을 초대한 모임에서 막내딸 메일린에게 소시지를 건넸다. 아이는 소파로 향했지만, 갑자기 말없이 발을 동동 굴렀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숨이 막힌 듯 괴로워하다 그대로 쓰러졌다. 에마뉘엘은 의식이 없는 딸을 끌어안고 필사적으로 인공호흡을 시도했다. 119가 도착할 때까지, 그리고 구급차가 병원으로 달려가는 내내 긴박한 순간이 이어졌다. 병원에 도착한 메일린은 심정지가 반복되었고, 뇌 기능이 정지된 상태에서 연이은 경련을 일으켰다. 폐에는 물이 차올랐다. 의료진은 가능한 모든 응급처치를 시도했지만, 아이는 끝내 깨어나지 않았다. 산소호흡기와 각종 생존 장비가 작은 몸을 감싸고 있었고, 담당 의사는 “혼수상태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냉정하게 말했다. 사고 발생 10일째, 의료진은 가족들에게 영양 공급 중단을 제안했다. 의사는 “아이가 고통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라며 담담하게 설명했지만, 부모에게 그 말은 곧 굶겨서 죽이겠다는 의미로 들렸다. 에마뉘엘과 가족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다. 첫째 딸 루안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메일린을 위해 9일간의 특별 기도회를 열었다. 기적을 바라는 움직임은 점점 퍼져나갔고, 여러 지역에서 기도회가 이어졌다. 그러던 중 가족이 이사를 결심하면서, 메일린은 프랑스 리옹에서 니스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부모는 아주 작은 변화를 감지했다.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가족 “전날까지만 해도 꼼짝 않던 아이였는데… 무언가 달라졌다.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생명이 다시 깃든 것 같았다.” 메일린은 서서히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세한 움직임뿐이었지만, 부모가 말을 걸면 ‘네’라고 대답하려는 시도도 했다. 의료진도 더 이상 그녀의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심각한 장애를 안고 살아갈 가능성이 크니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메일린은 모든 예상을 뛰어넘었다. 사고 후 6주 만에 키가 13㎝ 성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침대 난간을 잡고 일어서기 시작했으며, 넉 달 후엔 혼자 일어나 걷기까지 했다. 8개월 뒤, 마침내 학교에 갈 수 있을 만큼 건강을 되찾았다. 의사들조차 “이런 회복은 본 적이 없다. 뇌가 거의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두개골과 뇌 사이의 공간도 완전히 정상이다”라며 놀랐다. 최근 출간된 ‘메일린의 기적’은 이 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메일린의 아버지 에마뉘엘 트란으로, 아이를 살리기 위해 부모가 포기하지 않았던 순간들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 기적은 바티칸에서도 인정받았다. 2020년 5월 26일, 메일린의 회복은 공식적인 ‘기적’으로 심사받아 인정됐다. 메일린의 아버지는 “이 일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생명의 취약성도,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을 가능성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두 번째 기회를 얻은 우리는 얼마나 운이 좋은지, 매 순간 감사하게 된다”고 말했다.
  • “작품 완성은 창작의 시작”… 예술 한계 넓힌 ‘현대미술의 황제’[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작품 완성은 창작의 시작”… 예술 한계 넓힌 ‘현대미술의 황제’[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예술가는 가난해야’ 편견 격파대중성보다는 실험·도전하며 혁신창조적 방식으로 예술·상업성 조화불편함·자극 강조, 각성의 철학아름다움·편안보다 충격적 메시지불의 고발, 세상 보는 방식 변화시켜천재적 재능과 끊임없는 혁신전통미술 개념 파괴, 입체주의 창안유화·조각 등 사상 최다 5만점 남겨 ‘20세기 가장 위대한 예술가’, ‘시대를 뛰어넘은 천재’, ‘현대미술의 혁명가’ 이러한 찬사는 파블로 피카소(1881~1973)에게 바쳐진 것이다. 그는 어떻게 신화적 존재가 될 수 있었을까. 답은 그가 남긴 말속에 있다. 피카소의 명언을 통해 그가 이룬 성공 비결을 찾아보자. 첫 번째 명언. “가난한 사람처럼 사는 부자가 되고 싶다.” 이 말은 이른 성공과 막대한 부를 축적한 피카소의 상황과는 상반되는 표현이다. 피카소는 92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예술가였다. 피카소의 전기작가 롤런드 펜로즈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예로 들었다. “피카소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천재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연필로 그린 데생이나 심지어 낙서조차 황금으로 변했다. 1945년 피카소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에 집 한 채를 샀다. 그는 이 집을 자신이 그린 정물화 한 점과 맞바꿨다. 그는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건 그림을 그려 주고 얻을 수 있었다.” 이제 독자는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황금 가마를 타고 인생의 꽃길을 걸었던 피카소가 “가난한 사람처럼 사는 부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 의미는 무엇일까. 역설적인 말속에는 그의 예술가적 가치관과 성공 원칙이 담겨 있다. ●성공은 창작 자유·혁신 지속하는 도구 피카소에게 성공이란 창작의 자유와 혁신을 지속할 수 있는 도구였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예술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경제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미술시장에는 예술가가 작품을 팔기 위해서는 대중과 타협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대다수의 예술가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창작을 지속하거나 반대로 상업적 성공을 위해 예술적 신념을 희생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피카소는 사진작가 브로샤이와 나눈 대화에서 이러한 편견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성공은 정말 중요하다. 사람들은 예술가는 자신을 위해서, 혹은 예술에 대한 사랑으로만 일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런 거짓말이 또 있을까? 예술가에게는 성공이 필요하다. 삶을 꾸려 가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대중과 타협하지 않고 역행하는 성공도 쟁취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다.” 보통의 예술가는 가난에서 벗어나 성공하면 초심을 잃고 창작에 대한 욕망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지만 피카소는 달랐다. 그는 가난했던 20대 초반 시절이나 성공한 이후에도 초심을 잃지 않고 오직 예술을 위해 그림을 그렸다. 상업적 성공을 거둔 후에도 대중의 취향을 따르는 대신 실험과 도전을 감행하며 혁신적인 작품으로 미술시장을 이끌었다. 피카소는 예술가는 가난해야 한다는 편견을 깼다. 돈만 많은 부자가 아니라 부를 예술적 자유로 바꿀 줄 아는 예술가였다. 그는 ‘예술과 상업성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 방식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직업화가의 본보기다. 두 번째 명언. “좋은 그림에는 수많은 면도날이 박혀 있을 것이다.” 이 말은 미술이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과 자극을 줘 새로운 사고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그의 예술철학을 반영한다. 면도날은 무언가를 베어 내고 잘라 내는 도구로 사용되며 날카롭고 위험한 느낌을 준다. 면도날이 박혀 있는 그림은 보는 사람에게 충격과 불편함을 주게 될 것이다. 피카소에게 좋은 그림은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베어 내고 생각의 틀을 잘라 내는 것이다.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피카소와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우리가 읽는 책이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쳐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책을 읽어야 할까?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미술은 사회적 메시지 전달하는 강력한 무기 비록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피카소의 면도날과 카프카의 도끼는 같은 의미를 지녔다. 기존의 익숙한 세계를 깨뜨리고 사람들에게 충격과 각성을 줘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그림과 도끼처럼 얼어붙은 사고를 깨뜨리는 책이 피카소와 카프카가 전하는 진정한 예술과 문학의 역할이다. 피카소의 걸작 ‘게르니카’(작품 1)는 면도날과 같은 예리함으로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좋은 그림의 예시다. 1937년 스페인 내전 당시 나치 독일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바스크 지방의 마을 게르니카를 주제로 삼은 이 작품은 미적 감상을 위해 그려진 것이 아니다. 관객이 전쟁의 참상과 고통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거칠고 강렬한 이미지로 표현됐다. 이 그림은 마치 면도날로 화면을 베어 낸 것처럼 보는 사람의 감정을 긁어내며 상처를 남긴다. 작품의 거대한 크기는 그림 속 사건의 규모와 파괴력을 강조한다. 사람, 동물, 사물은 기하학적인 형태로 분해되고 재조합돼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느낌을 자아낸다. 검은색과 흰색의 대비는 빛과 어둠, 생명과 죽음, 희망과 절망 등 상반되는 요소를 부각시키며 관객의 감정을 고조시킨다. 그림 속에서 말은 창에 찔려 고통스러워하고, 폭격으로 인해 폐허가 된 도시와 절망과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의 비명과 고통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게르니카’를 보는 관객은 아름다움이나 편안함을 느낄 수 없다. 이 작품은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자극을 줘 전쟁의 잔혹함을 잊지 못하게 만든다. 피카소는 이렇게 말했다. “회화는 아파트를 장식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적과 싸우며 공격과 수비를 행하는 하나의 전투무기이다.” 그는 미술이 부당함에 맞서 싸우고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자신의 예술철학을 ‘게르니카’를 통해 증명했다. 세 번째 명언. “나는 그림을 그릴 때 가능하면 사람들이 기대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그리고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유별나게 그리려고 애쓴다.” 이 말은 피카소가 왜 20세기 예술의 역사를 바꾼 혁신가로 평가받는지 알려 준다. 피카소는 어린 시절부터 천재적 재능을 보인 신동이었다. 그는 12세에 이미 르네상스 거장 라파엘로처럼 완벽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실력을 갖췄기 때문에 아동 미술대회에 참가할 수 없었다. 13세에는 미술교사이자 화가인 아버지의 그림 실력을 뛰어넘었다. 아들이 천재라는 사실을 확인한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그림 도구를 물려주는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 화가의 권리를 이양했다. 피카소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아버지는 내 손에 자신의 물감과 붓을 쥐여 주셨다. 화구들을 내게 물려준 이후에는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으셨다.” 14세의 피카소는 스페인 최고 미술학교 입학시험에서 하루 만에 고급반 수준의 포트폴리오를 완성하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16세에 그린 ‘과학과 자비’(작품 2)는 마드리드 국전에 출품돼 전문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천재성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이 작품은 의사(과학)와 수녀(자비)가 환자를 돌보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뛰어난 구도, 빛과 그림자의 활용, 인물의 감정 표현 등을 통해 인간이 과학과 신앙, 이성과 감정적 접근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피카소는 19세에 파리 만국박람회 스페인 대표 작가로 선정된 이후 1900년 파리로 건너가 진보적인 예술가 집단의 주목을 받으며 전위예술을 이끌었다. 24세에 ‘장밋빛 시기’의 작품들이 인기를 끌면서 상업적으로 성공했지만 안주하지 않고 혁신적인 입체주의를 창안했다.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초상’(작품 3)은 전통 미술의 개념을 파괴하고 새로운 시각 개념을 창조한 입체주의 대표 작품이다. 르네상스 이후 예술가들은 일점 원근법을 사용해 하나의 시점에서 바라본 대상을 캔버스에 재현하는 방식을 따랐다. 그러나 피카소는 기존 관습을 깨고 여러 시점에서 본 형태들을 한 화면에 배치해 시간성, 공간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새로운 조형언어를 개발했다. 이 작품에서도 볼라르의 얼굴과 몸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각 부분을 기하학적 형태로 나누고 다시점에서 본 형태를 하나의 화면에 결합했다. 2차원 평면에 다중 시점, 기하학적 형태, 중첩된 공간 등을 구현한 입체주의 양식은 20세기 현대미술의 혁명을 가져왔다. 미국의 시인이자 작가인 거트루드 스타인은 피카소의 업적을 이렇게 평가했다. “당시 모든 예술가들은 눈으로는 20세기를 보았지만 그들이 실제로 파악한 것은 19세기의 현실이었다. 피카소는 회화에서 눈으로 20세기를 보는 동시에 실제로도 20세기의 현실을 포착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성공이란 도전하며 미래 만드는 과정 피카소는 천재로 태어났지만 그것만으로 현대미술의 황제로 평가받는 것은 아니다. 그는 청색 시대, 장밋빛 시대, 분석적 입체주의, 종합적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조각, 판화, 도예, 무용극 등 다양한 미술 양식을 탐구하며 미술의 한계를 확장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창작혼을 불태우며 역사상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화가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유화 1만 3500점, 조각 700점, 판화, 데생, 도자기 등 5만여점의 믿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피카소가 남긴 이 말은 그의 진정한 성공 비결을 알려 준다. “한 점의 그림을 끝내자마자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림을 중단하고 더이상 손대지 않기로 결심할 수는 있다. 그러나 결코 그 아래 끝이라고 쓸 수는 없다.” 피카소의 명언은 우리에게 성공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교훈을 줬다. 그는 완성된 작품을 종착지가 아닌 더 위대한 창작을 위한 출발점으로 여겼다. 그의 삶과 예술이 증명하듯 성공이란 어떤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도전하며 확장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간다.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
  • “이재명 비판은 망하는 길” “이미 시작”… 불붙은 친명 vs 비명

    “이재명 비판은 망하는 길” “이미 시작”… 불붙은 친명 vs 비명

    유시민, 김동연 등 호명하며 비판임종석 “당 비판·공론 떠들썩해야인격적인 공격은 하는 건 아니다”고민정 “오래전에 망하는 길 시작”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자 야권 잠룡 간 경쟁도 본격화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를 향해 이른바 ‘일극 체제’라는 비판론이 불거지자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는 등 친명(친이재명)계와 비명(비이재명)계의 갈등이 재점화하는 양상이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9일 페이스북을 통해 “당은 비판과 공론으로 떠들썩한 게 좋다”며 “김경수, 김동연, 김부겸 모두 나서 달라고 설득해도 모자랄 판에 인격적 공격을 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임 전 실장의 발언은 유시민 작가가 지난 5일 유튜브 채널에서 비명계를 향해 “훈장질하듯이 ‘야, 이재명. 네가 못나서 지난 대선에서 진 거야’ 이런 소리 하고 ‘너 혼자 잘될 거 같아?’ 이런 소리 하면 그게 뭐가 되겠나.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라고 비판한 데 대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유 작가는 앞서 김동연 경기지사에 대해 “이 대표한테 붙어서 도지사가 된 사람”이라며 “지금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 운운하는 건 배은망덕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를 향해선 “자신의 역량을 넘어서는 자리를 이미 했다”고 쓴소리를 했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에 대해서는 “지금 국면에선 ‘착한 2등’이 되는 전략을 써야 한다. 지도자 행세하지 말라”고 했고 임 전 실장에게는 “(정치인 말고) 다른 직업을 모색해 보라. 안 맞는다”고 혹평했다. 이에 대해 김 전 지사는 지난 7일 SBS 라디오에서 “당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 취지인 것 같은데,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고 했다. 김 전 총리도 같은 날 페이스북에 올린 영상을 통해 “책을 많이 읽으라는 충고를 받아들인다”면서 포퓰리즘을 다룬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들어 보였다. 비명계인 고민정 민주당 의원은 지난 7일 MBC 라디오에서 “망하는 길로 가는 민주당의 모습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됐다”며 “국회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것은 이 대표이며, 때로는 비판할 수도 있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지적했다. 박용진 전 의원도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수위가 매우 낮은 당내 이견 표출에도 발끈해 독한 말을 내뱉고 조롱하는 대응으로는 이재명의 대선 승리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반면 박지원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지금은 내란 수괴 윤석열 형사처벌과 헌재의 탄핵 인용을 위해 힘을 합쳐 투쟁하자”며 친명과 비명 간 ‘갈라치기’를 경계했다.
  • “광고엔 얼굴 크기 대게살 광고”…실제 배송은 그냥 맛살

    “광고엔 얼굴 크기 대게살 광고”…실제 배송은 그냥 맛살

    인터넷 광고를 보고 대게 살을 주문했다가 편의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맛살을 받았다는 소비자의 사연이 전해졌다. 지난 6일 JTBC ‘사건반장’에 따르면, 제보자 A씨는 SNS에서 본 광고 영상에 현혹돼 새해맞이 특별 할인을 받아 대게 살을 주문했다. A씨가 본 광고 속 대게 살은 여성 얼굴만 한 크기로, 살이 꽉 차 먹음직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 달 만에 도착한 상품을 확인한 A씨는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신선식품임에도 종이상자에 그대로 포장돼 있었고, 상자를 열어보니 편의점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냉동 맛살이 들어 있었다. 20개에 4만 9900원을 주고 무려 한 달 만에 배송받았다는 A씨는 “아내가 대게를 좋아하는데 비싸서 자주 못 사줘 미안한 마음에 주문했었다”고 했다. A씨는 “조금이라도 비슷한 제품이 올 줄 알았는데 정말 어이가 없었다” “식품이라 찝찝해서 먹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고 그냥 냉장고에 넣어 놨다”고 했다. 그는 “환급을 고려했지만 절차가 번거로울 것 같아 결국 포기한 상태“라면서 “다른 사람들은 이런 거짓, 과대광고에 속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제보했다”고 했다.
  • 피 흘리는 시민 두고… “나 곧 퇴근” 외치며 떠난 美 경찰

    피 흘리는 시민 두고… “나 곧 퇴근” 외치며 떠난 美 경찰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자살을 기도한 시민이 총상을 입고 쓰러져 있었으나, 경찰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치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해당 경찰관 2명은 면허가 박탈됐으며, 주 검찰총장에 의해 기소됐다. 6일(현지시간) KSDK News에 따르면 경찰관 타이 워런과 오스틴 프레이저는 2023년 9월 10일 “자살하겠다”는 신고를 받고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포레스트 파크로 출동했다. 신고 접수 7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두 경찰관은 머리에 총상을 입은 채 피를 흘리고 있는 호세 로드리게스-리베라(29)를 발견했다. 하지만 이들은 구급차를 요청하거나 응급처치를 하지 않았다. 바디캠 영상에 따르면 한 경찰관이 “발견 사실을 보고하고 처리하자”고 하자, 동료는 “이거 우리가 맡으면 안 돼. 나 30분 있으면 퇴근이야”라고 답했다. 결국 두 경찰관은 피해자를 두고 자리를 떠났고, 순찰차에서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바디캠에는 “돌아다니다 오자”라는 대화가 담겼다. 약 10분 후, 다른 경찰관들이 피해자를 발견하고 즉시 구급차를 요청했다. 그러나 처음 피해자를 발견했던 워런과 프레이저는 현장으로 돌아와 마치 자신들이 피해자를 이제 막 발견한 것처럼 행동했다. 병원으로 이송된 피해자는 끝내 사망했으며, 검시 결과 자살로 판정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피해자는 17년간 우울증을 앓아왔으며 사건 현장과 자택에 유서를 남겼다. 경찰은 피해자가 소유한 권총이 사건 현장에서 사용됐으나 도착 전 누군가가 총기를 훔쳐 간 것으로 보고 있다. 사건 발생 직후 세인트루이스 경찰청은 프레이저를 즉각 해임했고, 워런도 사직했다. 이후 두 사람 모두 경찰 면허를 박탈당했으며 주 검찰총장은 이들을 기소했다. 세인트루이스 경찰청 측은 “두 사람은 현재 경찰로 근무하지 않고 있다”면서 “규정 위반 시 적절한 징계 조치가 취해진다”고 밝혔다. 피해자의 어머니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경찰의 행동에 슬프고 괴로웠다. 공무원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도 “더는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아 소송은 제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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