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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목식당’ 포항 덮죽집 찾은 백종원 “좋은 선례 남겨야 해” [EN스타]

    ‘골목식당’ 포항 덮죽집 찾은 백종원 “좋은 선례 남겨야 해” [EN스타]

    백종원이 덮죽집 표절 논란 사태에 포항을 급방문했다. 16일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는 2020 겨울특집편이 전파를 탔다. 지난 10월 백종원은 3개월 만에 다시 포항을 찾았다. 포항에 도착한 백종원은 MC 김성주에 전화를 걸어 “촬영팀 몇 명하고만 내려왔다. 포항 덮죽집 때문에 급하게 내려와서 연락을 못하고 왔다”고 말했다. 포항 덮죽집 사장은 아버지의 퇴직금으로 가게를 차렸고, 코로나19 사태로 촬영이 중단된 3개월 동안 직접 덮죽 메뉴를 개발했다. 그런데 방송 이후 덮죽을 모방한 ‘덮죽덮죽’이 서울 강남에 문을 열었고, 원조 덮죽집이 덮죽이란 명칭을 쓰지 못할 수도 있는 위기를 맞게 됐다.백종원은 “거기는 진짜 착실하셔서 문제없겠거니 했다. 우리는 초심이 바뀌는 문제가 제일 많은데 이런 문제가 생긴다. 개인이 저렇게 노력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특히 애정이 간다. 우리라도 보호해 드려야 한다. 어디 기댈 데가 없다. 내가 그랬잖아. 식당하면 외롭다고”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알고 당하는 경우도 많다. 골목식당 나온 사장님 보호하는 것도 있지만 뿌리 뽑아야 한다. 좋은 선례를 남겨야 한다”며 덮죽집을 찾아갔다. 포항 덮죽집 사장은 3개월 만에 만난 백종원과 제작진을 보고 눈물을 보였다. 덮죽집 사장은 “전 정말 늦게 가고 싶다. 천천히 느리게. 그런데 상상도 못하게 자고 일어나니 다른 일들이 생겨서. 되게 많이 힘들어서 선생님을 되게 뵙고 싶었다. 선생님 오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저는 진짜 덮죽만 열심히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400마리 남은 멸종위기 고래 어미와 새끼, 드론이 우연히 포착(영상)

    400마리 남은 멸종위기 고래 어미와 새끼, 드론이 우연히 포착(영상)

    전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해양 포유류 중 하나로 꼽히는 고래의 모습이 드론 촬영을 통해 포착됐다. 미국 현지시간으로 지난 11일, 남동부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있는 한 섬 인근으로 낚시를 떠난 낚시꾼은 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엄청난 물보라와 함께 무언가 물살을 가르는 소리를 들었다. 참다랑어 또는 가끔 보던 큰 고래일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드론을 띄웠고, 그의 주변에 나타난 동물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는 희귀 해양포유류인 북대서양긴수염고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북미대륙과 유럽-아프리카 대륙 사이의 북대서양에서 서식하는 북대서양긴수염고래는 고래목 긴수염고래과 포유류로, 대표적인 멸종위기종이다. 현재 북대서양긴수염고래의 개체 수는 410마리 정도로 알려져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번에 우연히 포착된 북대서양긴수염고래가 한 마리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공개된 사진은 몸무게가 약 50t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북대서양긴수염고래 암컷과 이보다 몸집이 훨씬 작은 새끼가 나란히 헤엄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어미의 몸 길이는 약 15.3m, 새끼는 4.6m 정도로 추정된다. 어미와 새끼는 낚시꾼의 배에서 1km 남짓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서 장시간 헤엄치다 먼 바다로 돌아갔다. 이를 포착한 낚시꾼은 “보통 매년 12월에는 참고래 몇 마리를 만날 수 있긴 하지만, 사람들이 탄 배에서 멀리 떨어져 헤엄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서 “하지만 멸종위기의 북대서양긴수염고래를, 그것도 어미와 새끼 두 마리를 한꺼번에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와 일행이 드론을 날린 뒤 해당 고래를 확인했을 때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면서 “거대한 몸집의 고래 두 마리가 우리 배 아래에서 수영할까봐 두렵기도 했다”고 덧붙였다.한편 전문가들은 북대서양긴수염고래의 개체 수 감소 원인이 지구온난화로 인해 달라진 먹이 환경과 선박과의 잦은 충돌로 생긴 트라우마 등이라고 분석한다. 이러한 상황은 북대서양긴수염고래의 번식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로 2018~2019년, 멸종위기에 처해있는 북대서양긴수염고래가 낳은 새끼는 7마리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전문가들은 대형선박들이 뱃길을 바꾸거나 속도를 늦추고, 최대한 소음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서울광장] 이유 아는 민심이반, 해법도 나와야/김성수 편집국 부국장

    [서울광장] 이유 아는 민심이반, 해법도 나와야/김성수 편집국 부국장

    세밑, 민심이 심상치 않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주에 2주 연속 30%대를 기록하며 사상 최저기록을 또 갈아치웠다. 코로나 재확산, 추·윤 갈등, 부동산정책 실패가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 재창궐은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경제와 방역을 놓고 주춤주춤하다 때를 놓쳤다. 자영업자들은 폭발 직전이다. 버티고 버티다 이제 길바닥에 나앉을 지경에까지 몰리자 그간 참았던 불만을 다 쏟아내고 있다. 코로나로 장사도 못하는데 꼬박꼬박 임대료를 다 내는 게 공정한 건지 대통령까지 의문을 제기하며 도와줄 방법을 찾고 있지만 금세 사정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일반 국민들도 힘든 건 마찬가지다. 너 나 할 것 없이 1년을 힘들 게 버텨 냈지만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다. 외려 갈수록 상황은 더 나빠진다. 지난 일요일엔 확진자가 1000명을 넘어섰다. 사상 최다 수치다. 하루 확진자 3000명을 넘어선 일본을 따라가는 것 아니냐는 섬뜩한 전망까지 나온다. 코로나가 걷잡을 수 없이 더 확산될지, 아니면 한풀 꺾이게 될지 지금으로선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대통령의 말부터 며칠 새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코로나 사태의) 긴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내놓더니 사흘 뒤엔 “송구한 마음…면목이 없다”고 비관적인 분위기로 돌아섰다. 이어 다음날엔 “절체절명의 시간”이라는 비장한 발언이 나왔다. 방역성공 사례라며, 나라 안팎에 자랑했던 K방역도 체면을 구겼다. K방역 홍보에만 1200억원을 넘게 썼지만, 방역선진국에서 방역실패국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제때 필요한 조치로 정부가 강력하게 대처하지 못한 탓이다. 이젠 도처에서 확진자가 속출하고, 누구도 어느 곳에서도 안심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연말 모임도 전부 취소하고 정부의 거리두기 정책을 착실히 따랐던 ‘착한 국민’들은 배신감을 느낀다. 확진자가 속출하면서 의료시스템도 총체적 위기를 맞았다. 서울, 경기 등 수도권에서만 병실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확진자가 수백 명에 달한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정부는 그제서야 5년 뒤 공공병상 5000개를 늘리겠다는 ‘뒷북대책’을 내놓고 있으니 당장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마지막 희망인 백신도 언제 맞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은 인구의 3~4배에 달하는 분량의 백신을 확보하고 이미 백신 접종을 시작했지만 우리는 내년 언제쯤 백신을 맞게 될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전망조차 어렵다. 코로나 재확산으로 흔들리는 것 못지않게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도 민심이 돌아선 주된 원인이다. 대통령이 임명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사생결단으로 싸우는 초유의 사태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속내는 착잡하다. 검찰개혁의 당위성에는 동의하지만 윤석열 솎아내기가 검찰개혁은 아니며,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만 내세우며 절차적 정당성을 경시하는 추 장관의 일방독주에 염증을 느낀다는 사람도 많다. 줄곧 침묵을 지키던 대통령이 지난주 뒤늦게 사과를 했지만, 애당초 임명권자로서 적극적으로 교통정리에 나섰어야 할 사안이다. 부동산정책은 국민들이 체감하는 대표적인 실정(失政)이다. 대통령이 공공 임대아파트를 방문해서 ‘13평 아파트에 4인 가족이 살 수 있겠다’는 발언을 실제로 했는지, 아니면 질문을 한 건지를 놓고 청와대와 야권이 주말 내내 치열한 공방을 벌였지만 민심이 돌아선 본질은 아니다. 3년 반 동안 24번의 부동산정책을 내놨지만 집값은 연일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그런데도 기존의 정책을 고수하겠다고 강변하니 이를 두고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이다. 임대아파트도 필요하지만, 보통의 국민들은 자기 집을 갖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정부 들어 집값 폭등으로 많은 사람들은 이런 꿈을 접었다. 집값을 잡는 데 자신 있다고 하더니 정작 집 없는 서민만 잡았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이제 전국으로 확산된 집값 폭등은, 임대차 3법이 주된 원인이며 규제를 풀고 민간 주택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지적하지만 수용될 것 같지는 않다. 결국 새해에도 집값 급등세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무오류의 착각에 빠져 한쪽 방향으로만 질주하면 국민은 갈수록 불행해진다. 잘못된 정책은 고쳐야 한다. 원인을 아는데 해법이 안 나오니 답답한 노릇이다. sskim@seoul.co.kr
  • 고통 분담vs희생 강요… ‘공정 임대료’에게 묻다

    고통 분담vs희생 강요… ‘공정 임대료’에게 묻다

    문재인 대통령이 중소상공인 임대료 공정론에 물꼬를 트자 ‘임대료 멈춤법’부터 ‘세금 멈춤법’까지 극과 극으로 치닫는 목소리들이 나온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바로 ‘임대료 감면법’ 추진을 공식화했고, 정의당은 한술 더 떠 ‘대통령 긴급재정명령으로 임대료를 즉시 경감하자’고 주장했다. 반면 보수 야당인 국민의당은 또 국민을 임대인과 임차인으로 나눠 편가르기한다고 비판했다. 인터넷에서도 임대인은 봉이냐, 재난지원금도 받는 임차인만 이중 지원하는 게 맞냐며 역시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약자인 임차인은 선(善), 강자인 임대인은 악(惡)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에 근간을 두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15일 임대료 공정론이 ‘선택적 공정’이 안 되려면 정부와 임대인, 금융권을 비롯해 이해관계자들이 고통 분담을 함께 해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여당 법안에 담긴 것처럼 임대인에게 모든 부담을 떠넘겨 희생을 강요할 게 아니라 정부가 우선 임대인을 위한 과감한 세금 인하나 임대료 직접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다. 캐나다와 일본, 덴마크 정부는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소상공인들을 위해 임대료를 직접 지원했다. 특히 캐나다는 수입이 70% 이상 줄면 임대료를 65%까지 보조해 줬고, 봉쇄 조치로 타격이 심할 땐 90%까지 임대료를 지원했다. 정부는 그간 건물주가 자발적으로 임대료를 낮추면 세액공제를 해주는 ‘착한 임대인 운동’을 펼쳐 왔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생색내기일 뿐 임대인의 동참과 협조를 요구할 수 없다. 정부 관계자는 “세제 지원뿐 아니라 직접 지원이나 융자 차원에서도 추가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남의 일’로 여겼던 금융권도 발벗고 나서야 한다. 중소상공인들이 몰락하면 대출을 해준 은행들도 결국 손실을 떠안을 수밖에 없어서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융자가 있는 상가엔 이자 유예로 지원해 주고, 생활형으로 임대료를 받는 사람들은 직접 지원해 줘야 한다”며 “이런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임대인들에게 임대료를 못 받게 하면 역으로 불공정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코로나 전쟁’에서 자영업자가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임대인의 양보도 필요해 보인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이날 YTN 라디오에서 “외국에는 외부 원인 때문에 임대료를 낼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이를 깎아 주도록 의무화하는 제도가 있다”며 “우리도 임대료를 인하해 주는 미덕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교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앞서 전월세 세입자를 위한다는 좋은 취지에도 ‘임대차 3법’이 되레 시장에 큰 혼란을 가져왔다. 더군다나 임대료 강제 인하는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만약 이런 제도(임대료 감면법)가 시행된다면 부동산 임대인은 임대료를 받지 못할 가능성만큼 임대료를 올려서 계약하게 된다”고 밝혔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임대료 차원에서 접근할 게 아니라 코로나로 어려움에 처한 자영업자들을 재정으로 직접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면서 “그러지 않으면 정책 효과도 낮고, 경제 왜곡 현상까지 빚어질 수 있다”고 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윤연정 기자 yj2gaze@seoul.co.kr
  • [여기는 호주] 셀카가 뭐길래…가족 앞에서 인증샷 찍던 엄마 실족사

    [여기는 호주] 셀카가 뭐길래…가족 앞에서 인증샷 찍던 엄마 실족사

    국립공원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절벽의 끝에서 '인생샷'을 찍으려던 여성이 그만 두 자녀와 남편이 보는 앞에서 실족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호주 채널9 뉴스의 보도에 의하면 이번 사고는 지난 12일(현지시간) 오후 3시 경 호주 빅토리아주 그램피언 국립공원에 위치한 보로카 전망대에서 발생했다. 보로카 전망대는 그램피언 국립공원의 절경이 한 눈에 보이는 곳으로 '셀카의 명소'로 유명하며 이곳를 태그한 인스타그램 사진들만해도 6000여 개에 이른다.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절벽쪽으로 안전 난간이 설치되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인생샷'을 남기기 위해 이 난간을 넘어 절벽 밖으로 나와 있는 바위위에까지 가곤 했다. 평소 가족과 함께 자연을 즐기는 것을 좋아했던 로지 룸바(38)는 이날도 두 자녀와 남편과 이곳에 여행왔고, 사진을 찍기위해 안전 난간을 넘어 해당 바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그만 두자녀와 남편이 보는 앞에서 중심을 잃고 80m 아래로 떨어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응급구조대는 절벽아래서 사망한 그녀의 시신을 확인했고 6시간이 지난 밤 9시 경이 되어서야 사체를 옮길수 있었다. 본래 인도 출신으로 멜버른에 정착한 로지의 자녀와 남편은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지의 시누이인 자수 미날 룸바는 "그녀는 가족을 위해 헌신한 아이들의 훌륭한 엄마이자 오빠의 반려자였다"며 "가족 모두가 충격에 빠져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편 보로카 전망대에서 실족사한 사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999년 59세의 영국인 관관객이 동일한 위치에서 떨어져 사망한 사고가 있었고, 셀카와 SNS가 유행하면서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이어졌다. 이에 이번 사고 전에도 그램피언 경찰은 "셀카를 찍기 위해 안전 난간을 넘어 절벽에 이르는 행동은 끔찍하게 이기적인 행동"이라며 "셀카를 찍기위해 절벽에 오르다가 사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김경태 시드니(호주)통신원 tvbodaga@gmail.com
  • [여기는 중국] 독거노인이 ‘삐뚤빼뚤’ 색연필로 그린 가짜 돈 받는 착한 식당

    [여기는 중국] 독거노인이 ‘삐뚤빼뚤’ 색연필로 그린 가짜 돈 받는 착한 식당

    손으로 그린 삐뚤빼뚤한 가짜 돈을 받고 무료 국수를 제공하는 착한 식당이 화제다. 중국 원저우(温州) 창난현(苍南)에서 수타 국숫집을 운영하는 이 씨 부부가 그 주인공이다. 매일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 문을 여는 이 씨 부부의 가게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오는 오래된 단골손님이 한 명 있다. 무려 8년 동안이나 이 씨 부부의 국수가게를 찾아온 할아버지 류 모 씨는 이 일대에서 보살펴 주는 가족이 없는 독거노인이다. 류 씨 할아버지와 이 씨 부부가 운영하는 국수가게의 사연에 큰 관심이 쏠린 것은 할아버지가 지불하는 돈이 다름 아닌 가짜 돈이라는 점에서다. 무려 8년 동안 대량의 국수를 구매한 댓가로 지불했던 지폐가 ‘가폐’였던 것. 류 씨 할아버지가 공책에 직접 색연필로 그리고 형형색색으로 색칠한 가짜 돈에는 각각 10위안(약 1670원), 100위안(약 1만 6700원), 1000위안(약 16만 7000원) 등의 금액이 책정돼 있다.알려진 바에 따르면, 독거 노인 류 씨 할아버지는 이 씨의 국수 가게에서 무려 8년 동안이나 가짜 돈을 내고 무료 국수를 제공받았다. 이 씨 부부가 직접 반죽해서 만드는 수타국수 한 봉지의 가격은 지난 8년 전에는 2위안(약 334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8년이 지난 현재는 봉지 당 6위안(약 1000원)으로 가격이 상승했다. 하지만 이 씨 부부는 류 씨 할아버지에게는 8년 가격과 동일한 2위안을 받고 있다. 그마저도 할아버지가 만든 가짜 돈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무료 국수를 제공해오고 있는 셈이다. 물론 류 씨 할아버지 역시 자신이 국수 한 봉지의 댓가로 지불해오고 있는 돈이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돌봐주는 가족들이 모두 사망한 이후 줄곧 생활고를 겪고 있는 탓에 이 씨가 제공하는 무료 국수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 부부와 할아버지의 인연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일대 또 다른 작은 국숫집에서 아르바이트 생으로 근무했던 이 씨가 모아둔 적금으로 첫 창업을 한 것이 지금의 국숫집이다. 부부가 창업에 성공하기 이전 근무했던 또 다른 가게 손님으로 류 씨 할아버지를 처음 만났던 것.당시 류 씨 할아버지에게는 그를 보살펴주는 친아들 샤오류 씨와 함께 거주 중이었다. 하지만 지난 몇 년 사이 샤오류 씨가 사망, 현재는 류 씨 할아버지 홀로 남아서 생활고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형편이다. 할아버지의 어려운 형편을 알게 된 이 씨 부부는 그 후에도 줄곧 류 씨 할아버지에게 무료 국수를 제공해오고 있다. 이 씨는 “할아버지는 성격이 차분하고 조용한 사람이라서 가게에 사람이 붐빌 때는 들어오지 않고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기 일쑤다”면서 “할아버지 역시 자신이 지불하는 것이 가짜 돈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탓에 매일 가게를 찾아올 때마다 문 밖에서 오랫동안 망설이는 모습을 보인다”고 했다.그러면서 “할아버지가 미안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우리 부부는 삐뚤빼뚤하게 만든 가짜 돈을 큰 소리로 ‘고맙습니다’라고 외친 뒤에 받는다”면서 “우리가 매일 제공하는 국수의 양은 하루 치 식사가 충분할 만큼 많은 양을 제공해드리고 있다. 가끔 아내가 할아버지에게 과일과 각종 먹거리를 챙겨드리려고 하지만 이때마다 할아버지는 극구 사양하고 재빨리 가게 밖으로 나선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이 씨 부부와 할아버지의 사연은 중국 현지 온라인 SNS 등을 통해 일파만파 공유됐다. 13일 현재 이들 사연이 담긴 영상에는 ‘좋아요’ 3600만 건이 게재됐을 정도로 큰 관심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씨는 “우리 부부도 도시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기 이전에 산에서 화전을 일구고 살았었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배고픔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할아버지가 건강하게 살아계실 동안에는 우리 부부가 만든 국수를 계속 제공해드리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취중생]누가 산업재해 유가족을 단식으로 내몰았나

    [취중생]누가 산업재해 유가족을 단식으로 내몰았나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11일부터 4명이 또 단식을 시작했습니다. 바로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씨,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입니다. 정기국회에서 무산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임시국회에서는 제정되도록 촉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통과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정기국회 안에 매듭짓겠다”고 했고,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산업안전은 초당적 문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당내 의견도 조율하지 못했고,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지난 2일 공청회만 열렸을 뿐 국회의 우선순위에서 공수처법 등 다른 법안에 밀렸습니다.건설 추락 사망으로 동생 김태규씨를 잃은 김도현씨는 이날 국회 본관 앞에서 “유족이 단식까지 하는 이 현실이 분하고 억울하기만 하다”며 눈물을 쏟았습니다. 단식을 시작한 이용관씨는 “본회의에서 수많은 법안이 통과됐으나 저희가 제출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지 않는 한 살아서 제 발로 나가지 않을 거다”라고 호소했습니다. 김미숙 이사장은 “용균이로 인해 만들어진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계속되는 죽음을 막지 못하고 있다. 저는 평생 밥을 굶어본 적 없어 무섭기도 하지만, 절박한 마음으로 마지막 선택을 했다. 나의 절박함으로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2018년 말 통과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도 당시 정기 국회가 끝날 때까지 통과 가능성이 희박했지만, 임시 국회에서 논의가 급진전됐습니다. 이번에도 국회가 유족들의 호소에 응답할까요. 11일 민주당은 중대재해법은 임시국회에서 상임위 통과가 목표라고만 했습니다.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거나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 산업재해에 대한 기업의 처벌을 강화한 뒤에도 해결할 과제는 남아 있습니다. 바로 법원이 법정형에 맞게 판결을 내리도록 양형기준을 높이는 일입니다. 현행법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해 근로자를 사망케 한 도급인(원청)에는 7년 이하의 징역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2016년 만들어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양형기준에서 권고하는 형량은 기본 6개월~1년 6개월형이고 감경시 4개월~10개월형, 가중해도 10개월~3년 6개월에 그칩니다. 법원은 2013~2017년 발생한 산재 상해·사망사건에서 징역·금고형을 86명(2.93%)에게만 내렸고, 981명(33.46%)에는 집행유예를 내렸습니다. 징역·금고형도 6개월 이상에서 1년 미만이 많았습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도 의견 수렴에 나섰습니다. 지난달 23일 열린 ‘기업불법 통제와 양형’ 심포지엄에서 김한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산업재해가 줄지 않고 있는 이유는 적정한 형사처벌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므로 권고 형량범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박혜림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도 “양형기준을 설정한 후 오히려 평균형량이 감소했다”면서 “법정형에 비해 권고형 범위가 지나치게 낮았다. 기업의 적극적인 예방활동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양형기준 권고형량 범위를 높여야 한다”고 짚었습니다. 또한 임영미 고용노동부 산재예방정책과장은 “실효성 있는 양형을 위해서는 벌금형도 양형 기준이 필요하다”라며 “특히 벌금으로만 처벌할 수 있는 법인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대법원 양형위는 다음달 11일 양형기준안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정찰하고 전투까지…7.62mm 기관총 장착한 獨 무인 지상 차량

    정찰하고 전투까지…7.62mm 기관총 장착한 獨 무인 지상 차량

    무인기(드론)는 현대전에서 새로운 주역으로 떠올랐다. 처음에는 정찰 목적으로 주로 사용되었으나 최근에는 무장을 장착한 공격 드론이 실시간으로 전장을 정찰하고 미사일로 표적만 정밀 타격할 수 있게 되면서 전쟁의 양상을 바뀌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는 하늘뿐 아니라 땅과 바다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드론의 지상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무인 지상 차랑(UGV·Unmanned Ground Vehicle)이나 해상 버전인 무인 수상함 (USV·Unmanned Surface Vehicle), 무인 잠수정(UUV·Unmanned Undersea Vehicle) 등이 하나씩 실용화 단계에 이르고 있다. 독일의 방산 명가 라인메탈(Rheinmetall)은 무인 지상 차량 시리즈인 미션 마스터 자율 무인 지상 차량(Mission Master Autonomous – Unmanned Ground Vehicle)을 개발했다. 이 무인 지상 차량의 최초 목적은 짐을 싣고 병사를 자율적으로 따라다니는 움직이는 보급차량이다. 하지만 라인메탈사는 기본 8x8 무인 지상 차량을 베이스로 여러 개량형 버전을 개발했다. 가장 최근에 선보인 개량형은 미션 마스터 무장 정찰 시스템(Mission Master – Armed Reconnaissance system)으로 각종 정찰 시스템에 원격 조종 무인 터렛인 라인메탈 필드레인저 RCSW(Remote-Controlled Weapon Station)을 통합했다. 기본 무장은 7.62mm 기관총인데, 분대 화력 지원용으로는 충분한 수준이다.미션 마스터 무인 정찰 시스템은 다른 무인 지상 차량과 함께 병사를 자율적으로 따라다니면서 병사의 지시에 따라 다양한 정찰 임무를 수행한다. 이 차량에는 장거리 전자-광학/적외선 센서(EO/IR)와 360도 카메라, 레이저 거리 측정기, 표적 추적 시스템 등 다양한 센서와 카메라가 통합된 정찰 시스템이 탑재되어 있다. 이 정찰 시스템은 3.5m 높이의 특수 사다리를 이용해서 먼 곳까지 수색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미션 마스터 무인 정찰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은 정찰은 물론 적과의 교전 시에도 병사를 위험에 노출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병사들은 안전한 장소에서 일반 태블릿 PC 크기의 군용 원격 조종 시스템을 이용해서 적을 정찰하고 차량을 보내 적과 교전할 수 있다. 이동 시에도 정보를 수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율적으로 병사를 따라 움직이므로 병사는 본연의 임무를 그대로 수행할 수 있다. 군용 무인 지상 차량은 아직 전장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지 않지만, 여러 업체에서 다양한 개념의 시제품을 개발하고 있고 많은 나라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어 앞으로 지상전에서 역할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이런 무인 시스템이 당장에 사람을 대체할 순 없지만, 자동화 무인화의 흐름은 전쟁이라고 예외가 아닐 것이다.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 [글로벌 In&Out] 코로나 시대의 유학생활 ‘서울 시즌 2’/페브리아니 엘피다 트리흐따라니 서울대 국문학과 박사 과정

    [글로벌 In&Out] 코로나 시대의 유학생활 ‘서울 시즌 2’/페브리아니 엘피다 트리흐따라니 서울대 국문학과 박사 과정

    올해 하반기부터 다시 서울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3년 전 첫 번째로 한국 유학생활을 했다. 따라서 이번이 ‘서울 시즌 2’이다. ‘서울 시즌 2’로 마음이 무척 설?지만 한편 두려웠다. 특히 전 세계가 어려운데 외국에서 유학 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고 지금도 믿기지가 않는다. 코로나19가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지금, 유학생활도 변화했다. 8월 한국에서 코로나가 제2차 유행 중인 가운데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평상시엔 입국 후 4시간 안에 기숙사의 포근한 침대 위에 누웠는데 지금은 공항에서 코로나 예방조치 탓에 무려 8시간 뒤에나 가능했다. 나의 ‘서울 시즌 2’는 3년 전의 ‘서울 시즌 1’과 매우 큰 차이가 있었다. 인천에 도착한 순간부터 느껴졌다. 인천 공항이 그렇게 한적한 모습을 처음 보았다. 마음이 쓸쓸했다. 공항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고 특정버스를 기다려야 해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매우 신속하고 통합적인 조치로 자가격리 시설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자가격리 시설에 도착하기 전 보건소의 직원들이 우리가 비에 맞지 않도록 잘 챙겨 주었다. 일에 대한 충실함에 매우 감사하게 느꼈다. 열일하며 챙겨 주는 직원의 선한 마음이 와닿았다. 나도 나의 일에 더욱 충실해야겠다는 결심까지 하게 만들었다. 우리 대학교의 자가격리 시설에서 나의 ‘서울 시즌 2’가 시작됐다. 난생처음으로 자가격리를 해야 할 뿐더러 코로나 검사도 두 번을 받았다. 주변 사람들이 자가격리를 하는 데 힘들지 않냐, 답답하지 않냐고 물어왔지만 나는 오히려 힘들거나 답답해하지는 않았다. 2주 동안 햇빛을 직접 느낄 수 없는 것 이외에는 모든 순간이 지낼 만했다. 학교에서 유료로 제공되는 시설이라 하루의 세 끼니도 잘 제공되었지만 기대 이상으로 아주 잘 제공되었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는 종교로 음식을 편식하는 나와 같은 학생들의 요청을 일일이 들어 주었다. 그때 골고루 아주 잘 먹었던 것 같았다. 그 시간이 전혀 답답하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게 된 상황에서도 바쁘게 일했던 내 자신에게 자가격리 시간은 오히려 편히 쉬는 시간이 되었다. 못 봤던 영화도 제대로 봤고※ 못 했던 일도 편히 마무리한 기억이 난다. 지금 기말을 앞두고 잠이 부족한 내 자신은 그 시간이 때로는 그립다. 자가격리를 건강하게 마치고 나의 ‘서울 시즌 2’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학생으로서 비대면 수업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신기했다. 지금처럼 최신 기술이 없다면 수업을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상상도 못했다. 무척 힘들고 어렵고 지치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감사해야 할 다른 것이 있다. 친구들과 자유롭게 약속을 잡고 밖에서 만나기가 힘들어서 홀로 시간을 보낼 때가 많고 외로울 때도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온라인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무척 다행이다. 주말마다 새 카페나 새 여행지를 정해서 친구들과 놀러갈 여유, 혹은 문화생활을 마스크 없이 지낼 수 있을 여유를 가지지 못해서 아쉽다. 그렇지만 집에서 또는 혼자서 시간을 보내고 나름대로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을 찾아 그렇게 보내게 되어 보람 있게 보내고 있다. 지금 힘든 시기지만 사소한 것에 감사할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야 나의 ‘서울 시즌 2’의 초창기가 ‘서울 시즌 1’에 비교해 그 나름대로의 독특함을 가지지 않을까 싶다. 서울은 나한테 늘 특별하고 고향 같은 곳이다. 코로나 시대에 다시 시작한 나의 서울, 혹은 한국 생활이 나중에 세월이 흘러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이 되리라. 그리고 이 힘든 시기를 겪는 우리에게 “우리는 할 수 있다”고 외치고 싶고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고 말하고 싶다. “내년에도 우리 더 행복해지자.” 작은 위로가 필요하다.
  • [애니멀플릭스] 인도 정글서 희귀 흑표범 포착…완벽한 ‘블랙팬서’

    [애니멀플릭스] 인도 정글서 희귀 흑표범 포착…완벽한 ‘블랙팬서’

    인도 정글에서 희귀 흑표범이 포착됐다. 12일(현지시간) 비즈니스인사이더 인도판은 카르나타카주 카비니 정글에서 ‘블랙팬서’의 실제 모델인 희귀 흑표범이 관찰됐다고 전했다. 이달 초 BBC ‘어스’ 공식계정에 소개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끈 흑표범의 사진은 현지 야생전문사진작가 사드 정(33)이 2017년 말부터 2020년 1월 사이 촬영했다. 작가는 지난 2015년 처음으로 카비니 정글에서 흑표범을 목격했다. 이후 내셔널지오그래픽과 손잡고 장편다큐 제작에 들어간 그는 2017년 말부터 본격적인 촬영에 나섰다. 아침 6시에 정글에 들어가 저녁 6시 반까지 매일 12시간 이상 표범을 관찰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작가는 “일주일에 단 한 번이라도 마주치면 정말 행복했다. 사진으로 볼 땐 모르겠지만 많은 경우 잠깐 스쳐 지나가는 정도로 모습을 드러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2년 반 동안 거의 매일 촬영에 매진한 그는 실제인가 싶을 만큼 완벽한 흑표범의 사진 여러 장을 건졌다. 작가가 포착한 흑표범은 10살 정도로 추정된다. 흑표범은 대개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상록수 숲에 서식하지만 작가가 포착한 표범은 카비니 정글 낙엽수림에서 관찰됐다. 작가는 “사람들은 사진만 보고 흑표범이 여러 마리일 거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낙엽수림에 서식하는 단 한 마리의 흑표범”이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흑표범을 처음 포착했을 때 전율을 느꼈다. 이것이 진짜 ‘정글북’”이라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지금도 흑표범을 볼 때마다 정글에서 보낸 최고의 시간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난다”고 당시를 추억했다. 또 “이것은 목격 그 이상이다. 동물은 결코 사람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와 달리 다른 동물을 존중하고 자연의 균형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동물은 우리 인간과 많이 다르다”는 자신만의 깨달음을 풀어놓았다. 흑표범은 멜라닌 결핍에 따른 알비니즘(Albinism, 백색증)과 정반대인 멜라니즘(Melanism, 흑생증)으로 인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을 띤다. 마블의 히어로 ‘블랙팬서’가 바로 이 흑표범을 모티프로 한 캐릭터다. 지난해 케냐에서는 아프리카를 통틀어 100년 만에 흑표범이 카메라에 포착된 바 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줄리아니도 코로나19로 입원, 벅스 “백악관 사람들 문제”

    줄리아니도 코로나19로 입원, 벅스 “백악관 사람들 문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선 불복 소송을 대신 진두지휘하고 있는 개인 변호사 겸 전 뉴욕 시장 루돌프 줄리아니(76)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다. 줄리아니 변호사는 6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기도해 준 모든 친구와 지지자에게 감사한다. 나는 훌륭한 치료를 받고 있으며 느낌이 좋다. 모든 것에 뒤처지지 않도록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고 썼다. 그는 이날 워싱턴 DC의 메드스타 조지타운 대학병원에 입원했다고 현지 매체들이 전했다. 다만 그는 얼마나 증상을 경험하고 있는지, 언제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 밝히지 않았다. 줄리아니는 최근 대통령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해 여러 주를 오가며 대선 관련 소송을 챙기느라 왕성한 활동을 펼쳐 바이러스 노출 가능성을 높였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뉴욕시 역사에 가장 위대한 시장이자 미국 역사상 가장 부패한 선거를 폭로하며 지칠 줄 모르고 일해온 루디 줄리아니가 중국 바이러스에 양성 반응을 보였다”면서 “루디는 곧 나을 것이며 우리는 계속 일을 해나갈 것!”이라고 적었다. 줄리아니의 감염 사실은 백악관 직원으로 일하는 그의 아들 앤드루가 지난달 20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밝힌 지 약 2주 뒤에 나왔다고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전했다. 그는 지난달 말에는 트럼프 캠프의 보리스 엡슈타인 고문과 함께 실내에서 장시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기자회견을 했는데, 엡슈타인 고문은 지난달 25일 코로나19 감염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줄리아니 변호사는 이후에도 자가 격리는 하지 않고 공개 활동을 해왔다. 그는 캠프 법무팀의 제나 엘리스 변호사와 함께 전국을 누비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이날 오전에는 폭스뉴스에 출연해 여러 주에서 진행 중인 소송에 대해 설명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사기’ 주장을 되풀이했다. 불복 소송이 잇따라 법원에서 기각되는 등 난관에 봉착한 상황에 줄리아니의 감염 악재까지 겹쳐 소송 진행에 더욱 어려움이 예상된다. 줄리아니 변호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너서클 안에서 가장 최근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이 됐다. 대통령 본인도 지난 10월 양성 판정을 받았다가 나중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본인과 참모들은 방역 지침을 무시한다는 비판의 도마에 자주 올랐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도 늘 트럼프 대통령 곁에서 다소곳이 자리를 지켰던 데보라 벅스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 조정관은 이날 NBC 뉴스 인터뷰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가 앞장서서 방역 지침을 어기고 팬데믹에 대한 미신을 퍼뜨린다고 작심 비판했다. 그녀는 “커뮤니티(백악관) 사람들이 이런 상황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며 마스크를 써도 소용 없고, 집단면역을 향해 일해야 한다고 앵무새처럼 따라한다는 말을 듣고 있다”며 “이런 모습이야말로 이 나라가 직면할 최악의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의 집계에 따르면 미국의 코로나19 환자는 1460만명에 육박하고 28만 1234명이 숨졌다. 이달 1일부터 5일까지 닷새 동안 100만명의 환자가 추가됐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조두순, 별도 교통편으로 이동할 듯…‘음주 금지’ 가능성(종합)

    조두순, 별도 교통편으로 이동할 듯…‘음주 금지’ 가능성(종합)

    2008년 초등학생을 납치·성폭행한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68)이 오는 12일 새벽 만기 출소할 예정이어서 지역 주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조두순은 출소 당일부터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7년간 착용하고 5년간 ‘성범죄자 알림e’에 신상정보가 등록된다. 형기를 마친 수용자는 오전 5시쯤 교도소를 나오게 된다. 다만 조두순은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인물이어서 교도소를 나서는 시점이 다소 늦어질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교정당국은 보호관찰 직원에게 업무를 인계한 뒤 조두순을 내보낸다. 조두순은 전자발찌를 차고 교도소 밖을 나온 뒤 거주지로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 조두순은 별도의 교통편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특혜 시비 지적도 있지만, 일반 시민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으로 귀가할 경우 시민들과 불필요한 마찰이 생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수용시설에서 조두순 담당 보호관찰소, 경찰 등과 여러 가지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두순은 출소 후 전담 보호관찰관으로부터 24시간 1대1 밀착 감시를 받는다. 관할 경찰서가 대응팀을 꾸려 관리하는 2중 관리 체계도 갖췄다. ●특별준수사항 허가되면 ‘소주 1잔’도 금지 조두순은 이동 동선을 비롯한 매일의 생활계획을 보호관찰관에게 주 단위로 보고하고, 보호관찰관은 매일 불시에 출장을 나가 생활계획을 준수하는지 살핀다. 왜곡된 성 의식을 개선하기 위한 전문 프로그램도 출소 전부터 진행한다. 현재 관심사는 법무부가 법원에 신청한 ‘특별준수사항’이다. 검찰은 지난 10월 수원지법 안산지원에 혈중알코올농도 0.03% 이상의 음주 금지 ▲피해자·아동보호시설 접근금지 ▲심야 시간대 외출 제한 등의 내용이 담긴 특별준수사항 추가를 신청했다. 혈중알코올농도 0.03%는 ‘소주 1잔’을 마신 뒤 1시간이 지난 시점에 측정될 수 있는 수치여서 사실상 ‘음주 금지’에 해당한다. 아직 법원 결정이 나오진 않았지만 조두순이 출소하는 시점에 결론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법무부는 조두순이 재범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과 동시에 유튜버 등이 거주지를 찾아 ‘사적 보복’에 나서는 경우도 대비하고 있다. 실제로 일부 유튜버와 커뮤니티 사이트 이용자들이 ‘조두순을 찾아가겠다’고 공개 예고한 상태여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조두순은 출소 후 당분간 거주지 밖으로 나오기 어려워 은둔한 것으로 예상된다. 조두순은 사적 보복에 대비해 교도소에서 하루에 팔굽혀펴기 1000개씩을 하며 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외출금지 명령’ 법안 국회서 논의 중 현재 국회에서는 조두순 같은 아동 성범죄자의 재범을 막기 위해 전자발찌뿐만 아니라 외출금지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한 이른바 ‘조두순 재범 방지법’이 논의되고 있다. 국회 법사위는 지난 4일 법안심사1소위를 열어 전자장치 부착 명령을 받은 사람에게 재범의 위험성이 인정되는 경우 접근금지 등 준수사항을 부과하거나 추가할 수 있도록 한 전자장치 부착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조두순은 2009년 전자장치 부착을 선고받았지만 출소 뒤 전자장치를 부착한 상태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어 주민들의 우려가 높아졌다.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특정시간대 외출 제한을 명령할 수 있다. 조두순은 출소 뒤 안산 지역에 거주할 예정이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여기는 베트남] 얼굴은 기형이지만 마음은 ‘천사’…고엽제 피해자의 삶

    [여기는 베트남] 얼굴은 기형이지만 마음은 ‘천사’…고엽제 피해자의 삶

    베트남 전쟁의 고엽제 후유증 2세로 선천적 얼굴 기형과 각종 질병으로 평생을 고통 속에 살면서도 늘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잃지 않는 남성이 있다. 최근 베트남 현지 언론 뚜오이째는 고엽제로 인한 얼굴 기형과 언어 장애 등으로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는 히엔(44)의 사연을 전했다. 베트남 남부 빈롱성에 거주하는 히엔은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의 아들로 1976년 태어났다. 5살이 되면서 머리가 부풀어 오르듯 커졌고, 걸핏하면 고열에 시달렸다. 하지만 가난한 형편에 전문의를 찾아갈 수 없어 동네 의원에서 받은 해열제만으로 버텨야 했다. 히엔의 머리와 턱이 비정상적으로 커지면서 누구라도 그를 한번 보면 놀라서 도망칠 지경에 이르렀다.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문제는 더욱 커졌다. 히엔을 보고 놀란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을 못 한다는 학부모들의 항의에 결국 히엔은 학교를 그만두었다. 이후 사람을 두려워하게 된 히엔은 집에만 갇혀 지내야 했다. 당시 히엔의 엄마는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고, 아빠가 일하러 나간 텅 빈 집에 남겨졌다. 홀로 지독한 외로움을 견뎌야 했다. 히엔이 12살 무렵 아빠는 새엄마를 데려왔다. 하지만 새엄마 역시 여느 사람들처럼 히엔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을 꺼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히엔의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면서 마음이 열렸다. 새엄마는 “히엔의 친절하고 착한 성품, 부모에게 순종하는 모습에 나의 마음이 녹아내렸다”고 전했다. 히엔은 10대부터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거리에서 복권을 팔았다. 처음에는 그의 얼굴을 보고 도망쳤던 사람들이 차츰 그의 기이한 생김새에 관심을 기울였다. 관광객들은 그의 얼굴을 구경하며 복권을 사주었다. 히엔의 장사가 잘되자 이를 시기한 주변 상인들은 히엔에 관한 헛소문을 퍼뜨리며 그를 비방했다. 마음에 상처를 입고 절망에 빠진 히엔은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 그는 마음을 위로해주는 친구들을 알게 됐다. 다름 아닌 참새와 비둘기들이었다. 새들은 그의 기이한 생김새를 보고 놀라 도망치지 않았고, 그가 주는 먹이를 찾아 모여들었다. 아무 편견과 차별 없이 다가오는 새들을 사랑하게 되면서 그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코로나 사태로 모두 어려운 시기에 그의 순수하고 맑은 미소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불행할 것만 같은 외모를 지닌 사람에게서 끊임없이 차오르는 기쁨에 찬 미소는 차츰 많은 고객을 끌어모으게 됐다. 그는 번 돈을 모두 부모님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쓴다. 그의 새엄마는 “히엔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친절하고 똑똑하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산다”면서 “불운한 삶을 짊어져야 했던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이종실 호치민(베트남)통신원 litta74.lee@gmail.com
  • [취중생] “5·18 때 헬기 사격 있었다”…증거는 충분했다

    [취중생] “5·18 때 헬기 사격 있었다”…증거는 충분했다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5·18민주화운동 당시 이를 진압하기 위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가리켜 회고록에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하여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89)씨에게 광주지법이 지난달 30일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고인의 조카 조영대 신부가 2017년 4월 27일 전씨를 고소한지 약 3년 6개월 만의 일입니다. 사자명예훼손죄는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죽은 사람의 명예를 훼손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재판부는 전씨가 자신의 회고록에서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고인이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밝힌 날에 실제로 헬기 사격이 있었는지, 전씨가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에 반하는 내용을 회고록에 기술했는지 등을 판단해야 했습니다. 전씨와 변호인은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사람들의 진술은 헬기 프로펠러 소리를 기관총 소리로 각 오인했을 가능성에 비추어 볼 때 그대로 믿기 어렵다. 또 5·18민주화운동 관련 사망자 165명에 대한 사체 검시 결과 헬기 기총소사에 의한 사망자가 발견되지 않았고, 부상자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위 진압에 관여하지 않았고 그 내용을 보고받지 못해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5·18민주화운동 기간에 헬기 사격으로 사망자 내지 부상자가 발생했는지 여부는 이 사건 쟁점이 아니었습니다. 재판부는 목격자 및 각 군인들의 진술, 군 관련 문서 등을 종합하여 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고, 전씨가 적어도 미필적으로나마 5·18민주화운동 기간에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자신의 주장이 허위임을 인식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먼저 재판부가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인정한 주요 근거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아래 내용은 100페이지가 넘는 판결문의 일부 내용이라는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목격자·군인 진술도 ‘헬기 사격’ 사실과 부합 고 조비오 신부는 ‘1980년 5월 21일 광주 호남동성당에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아래는 고인이 1989년 2월 2일 국회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진술한 내용입니다.“1980년 5월 18일부터 모든 상황이 끝날 때까지 광주에 머물렀다. 5월 19일부터 시민들의 시위와 시민들을 향한 계엄군의 폭행을 직접 목격했다. 나를 포함한 8명의 신부들이 5월 21일 오후 12시쯤 호남동성당에 모여 평화적 해결을 위한 회의를 했다. 큰 성과 없이 오후 1시 30분~2시쯤 회의를 마친 뒤 성당 정문을 나오자마자 헬기 소리를 들었고, 헬기가 전남도청 쪽에서 사직공원 쪽을 향해 비행했다. 헬기는 광주천 불로교 인근 상공에서 지축을 울리는 ‘드드드드득’하는 기관총 소리 세 번을 내면서 동시에 불이 ‘픽’하고 나갔다.”재판부는 먼저 고인의 진술을 충분히 믿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1989년 이래로 사망할 때까지 1980년 5월 21일 500MD 헬기에 의한 기관총 사격이 있었고 자신이 호남동성당에서 이를 목격했으며, 다른 곳에서는 헬기 사격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면서 “피해자의 진술에 부합하는 목격자들과 일부 군인들의 진술 및 군 관련 문서들이 존재한다. 특히 피해자는 이 증거들의 일부 존재를 알지 못한 채 일관되게 진술했으므로 피해자가 직접 목격하지도 않은 장면을 마치 목격한 것처럼 진술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또 1995년 5월 기자회견 및 검찰 진술에서 ‘1980년 5월 21일 오후 광주 상공에서 500MD 헬기에 의한 기관총 가격이 있었다’고 진술한 고 아놀드 피터슨 목사 등 일부 목격자들 진술의 신빙성이 충분히 인정되고 객관적 정황이 그 진술을 뒷받침한다고 판단했습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관여했던 군인 일부의 진술도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사실에 부합했습니다. 5·18민주화운동 기간에 광주로 출동한 항공대(31항공단 103·501·506 항공대) 소속 헬기 조종사·부조종사들은 500MD 헬기에 7.62㎜ 기관총 2000발, AH-1J(일명 코브라) 헬기에 20㎜ 벌컨 500발을 무장했음을 자인했습니다. 그 중 500MD 헬기 부조종사 한 명은 지난 2017년 9월 검찰 조사에서 “500MD에 탑승하여 정찰하던 중 광주공원에 한 번 위협사격을 가하라는 내용의 무선교신을 듣고 명령권자가 누구냐고 묻자 무전교신이 끊어졌다”고 진술했습니다. 또 5·18민주화운동 기간에 31항공단 탄약관리하사로 근무했던 증인은 이 사건 재판에 출석해 “1980년 5월 20일 또는 5월 21일 헬기 무장사들에게 20㎜ 고폭탄과 20㎜ 보통탄, 7.62㎜ 탄약을 지급했다가 그 중 20㎜ 보통탄과 7.62㎜ 탄약이 3분의1 가량 소비된 상태로 회수했다”고 말했습니다.군의 ‘헬기 사격 작전’ 문건도 여럿 재판부는 5·18민주화운동 전후로 작성된 군 관련 문서들을 통해서도 “적어도 구두 명령에 의해 1980년 5월 21일 실제로 500MD 헬기에 의한 사격이 있었음을 충분히 추단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음은 헬기 사격 사실이 있었음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판단된 문서들의 내용입니다. 먼저 1980년 5월 22일 육군본부가 전투병과교육사령부(현 육군교육사령부·이하 전교사)에 하달한 지침입니다. 이 지침 문서에는 ‘헬기 작전계획 실시하라’면서 ‘시위사격은 20미리(㎜) 벌컨, 실사격은 7.62미리(㎜)가 적합’이라는 문언 등이 적혀 있습니다. 재판부는 비록 전교사에서 이 지침을 접수한 시점이 1980년 5월 21일 이후이고 육군본부에 작전통제권이 없어 이를 서면에 의한 명령서로 볼 수는 없지만, 계엄사인 육군본부의 지침과 무관하게 지역계염사가 작전을 수행할 수는 없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이어 “사격을 실시할 장소가 하천, 임야 및 산으로 기재되어 있어 목격자들의 진술이 이에 부합하고, 특히 ‘광주 시내 하천이 적합 시 실시’라는 기재는 이 문건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광주천 부근에서의 헬기 사격 목격 사실을 최초로 진술한 피해자(고 조비오 신부)의 진술에 부합한다. 또 ‘실사격은 7.62미리(㎜)가 적합’이라는 기재는 500MD에 장착된 7.62㎜ 기관총에 의한 사격이 있었음을 뒷받침한다”고 밝혔습니다. 고인이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목격한 장소인 호남동성당이 광주천 인근에 있습니다. 전교사가 1980년 9월경 발간한 교훈집(이름은 ‘광주소요사태분석’)의 ‘부록 3 항공편’에 기재돼 있는 내용들도 “5·18민주화운동 기간 적어도 위협사격 이상의 헬기 사격이 실재했음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증거가 된다”는 것이 재판부의 설명입니다. 재판부는 “교훈집에 담긴 내용이 실제 있었던 상황을 분석한 것이라고 봐야 하고, 항공기 임무 중 하나로 기재된 ‘의명(명령에 의거함) 공중 화력 제공’은 ‘무장 시위’와 구별되는 개념으로 사용된 표현이라는 점에서 화력 제공은 헬기 사격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면서 “‘불확실한 표적에 공중사격 요청’이라는 기재는 헬기 사격 지시가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사정을 종합하여 재판부는 “피해자가 목격한 바와 같이 1980년 5월 21일 광주에 무장 상태로 있었던 505항공대 또는 560항공대 소속의 500MD 헬기가 위협사격 이상의 사격을 하였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법원 “전씨도 ‘헬기 사격’ 사실 충분히 인식” 이제는 전씨가 5·18민주화운동 기간에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자신의 주장이 허위임을 인식했다고 재판부가 판단한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재판부는 전씨가 5·18민주화운동 당시 보안사령관으로서, 비록 계엄사의 정식 지휘계통에 있지는 않았으나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그 이후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적어도 미필적으로나마 헬기 사격이 있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습니다. 아래는 그 판단의 근거들입니다. #. 피고인은 1980년 5월 17일 오전 9시 30분쯤 보안사 정보처장을 통해 국방부 장관에게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 국회 해산, 비상기구 설치 등 ‘시국수습 방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할 것이라고 통보하면서 계엄 확대 등을 전군 주요지휘관회의 결의 사항으로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해줄 것을 요청했다. #. 피고인은 보안사 소속 군인들 및 12·12 군사반란 이후 피고인과 함께 내란 집단을 구성한 것으로 인정되는 육군참모차장을 통해 계엄사가 1980년 5월 21일 자위권 보유 천명의 담화문을 발표하도록 지시했다. #. 계엄사는 1980년 5월 21일 광주 외곽으로 철수한 이후 광주 재진입 작전 계획을 최종 수립했고, 그날 오후 12시 15분쯤 피고인과 국방부 장관, 수도경비사령관 노태우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전교사령관의 책임 하에 (1980년) 5월 27일 오전 0시 1분부로 작전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5·18민주화운동 기간에 보안사에서는 ‘광주사태 일일속보철’을 작성했는데, 시간대별로 상황 보고가 이뤄졌고 공수부대의 투입 시기 및 장소 등이 상세히 기재돼 있으며, 헬기의 이동 상황이 상세히 기재돼 있어 보안사령관이었던 전씨가 당시 상황을 모두 보고받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재판부는 밝혔습니다. 또 전씨는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의 회고록을 집필하는 과정에서도 헬기 사격이 있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출간을 감행했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입니다. 전씨의 회고록이 출간된 2017년 4월 3일 이전인 같은 해 1월 12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전일빌딩에 대한 탄흔 분석을 통해 헬기에 의한 사격으로 추정되는 하향 사격이 있었다고 발표했고, 많은 언론이 이 발표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전씨는 회고록에서 헬기 사격설을 부인하는 기존의 입장을 유지하면서 국과수의 분석 결과에 대한 검토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또 2007년부터 초고 작성 작업에 참여하는 등 전씨의 회고록 집필을 담당한 민정기(전씨의 대통령 재임 시절 공보비서관을 지냄)씨의 수첩에는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고 조비오 신부의 주장에 대한 대응 방법이 적혀 있었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으로부터 회고록 집필 지시를 받은 민씨는 헬기 사격설에 관해 다각적으로 검토한 후 회고록을 집필한 것으로 보이고, 회고록에서 국과수의 분석 결과에 대한 검토조차 하지 않은 사정은 피고인에게 허위의 인식이 있었음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했습니다.사과를 모르는 전두환 검찰은 재판부가 전씨에게 선고한 형량(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은 부당하다면서 지난 3일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습니다. 전씨 변호인도 판결 직후 “기본적인 사실관계에서부터 납득이 안 되는 판결이 나왔다”고 말한 만큼 조만간 항소할 것으로 보입니다. 재판부는 전씨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피고인은 5·18민주화운동 기간 동안의 헬기 사격 여부가 중요한 쟁점임을 인식하고도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이 확정된 범죄사실을 모두 부인함으로써 특별사면(1997년 12월 22일)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였고, 자신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피해자에 대한 허위사실을 담은 회고록을 집필·출간했다는 점에서 그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며, 과거 대통령을 지냈던 사람으로서 5·18민주화운동이라는 아픈 현대사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피고인에 대해 실망감을 지울 수 없다. 더욱이 피고인은 지금까지도 이 사건 공소사실을 부인하면서 이 사건에 대한 성찰이나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었고, 피해자의 유족인 고소인으로부터도 용서받지도 못했다.”5·18민주화운동이 발생한 지 40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전씨는 당시 계엄군의 유혈 진압에 희생된 사람들과 유족들에게 지금까지 사과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전씨는 지난달 30일 법정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마포구 연희동 자택을 나설 때 ‘대국민 사과하라’고 외친 시민에게 “말 조심해 임마!”라고 외쳤습니다. 이 사건 재판에 출석해서도 조는 모습을 보일 정도였습니다. 이제 전씨의 이런 모습은 그만 보고 싶습니다. 더 이상 진실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코로나로 위축된 12월에도 위축되지 않을 따뜻한 영화는

    코로나로 위축된 12월에도 위축되지 않을 따뜻한 영화는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600명대까지 치솟는 ‘3차 대유행’의 와중에 영화관을 찾는 평일 관객 수가 4만 명대까지 떨어지는 등 영화계 위축이 지속되고 있다. ‘서복’, ‘영웅’ 등 블록버스터 영화는 개봉을 연기했지만, 개봉을 연기하지 않고 올겨울 따뜻한 감동을 주는 영화들이 있어 그나마 영화애호가들에게 위안을 준다. 종교·음악·멜로·애니메이션까지 장르별로 모아봤다. ●‘파티마의 기적’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5월 어느 날 포르투갈의 작은 마을 파티마에 한 줄기 빛이 비친다. 10살 소녀 루치아(스테파니 길)와 어린 사촌 동생들은 그 빛 속에서 성모 마리아를 마주친다. 성모 마리아는 아이들에게 매달 13일 자신을 찾아오라 이야기하고 매일 빠짐없이 기도를 하라고 당부한다. 이후 세 명의 아이들은 6차례 마리아와 만나 기적을 목격한다. ‘파티마의 기적’은 1917년 포르투갈의 작은 마을 파티마에서 일어난 실화를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안정되고 원숙한 연출로 당시 주변 상황과 공간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영화는 기적의 순간을 담담히 전한다. 이 영화는 제91회 아카데미시상식 작품상을 받은 ‘그린북’ 제작진과 제65회 베니스영화제 후보에 오르며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마코 폰테코보 감독이 참여해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국내에선 개봉 첫날인 3일 독립예술영화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뮤직 앤 리얼리티’ 영화 ‘뮤직 앤 리얼리티’는 주연·감독·각본 모두 가수 ‘빅 포니’(로버트 최)가 맡은 자전적 음악 영화로 마치 한국판 ‘원스’, ‘비긴 어게인’이 될 것 같은 기대감을 준다. 바비(빅 포니)는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계 싱어송라이터로, 현실에 치여 사는 뉴욕의 직장인이다. 그러던 와중에 한국에 갈 수 있다는 얘기에 직장도 그만두고 친구 빌리가 속한 밴드의 로드 매니저가 되어 함께 월드투어를 떠난다. 마침내 서울에 도착한 바비는 홍대에서 버스킹을 하는 이나(임화영)를 만나 음악적으로 교감한다. 바비는 음악이라는 공감대로 이나와 함께 노래하면서 늘 찾아다녔던 정체성을 깨닫는다. 83분이라는 그리 길지 않는 상영시간 때문에 부담없이 즐기기 좋다.●‘조제’ 일본 멜로 영화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의 리메이크 작품이다. ‘조제’는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집에서 책을 읽고 상상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살고 있다. 대학생 ‘영석’은 그녀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고 천천히, 그리고 솔직하게 다가간다. 하지만 ‘조제’는 처음 경험해보는 사랑이 설레는 한편, 자신에게 찾아온 낯선 감정을 밀어내고 만다. 영화의 주인공 ‘조제’는 한지민이다. 그를 좋아하는 대학생 ‘영석’을 남주혁이 연기해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배우들만큼 영화의 기대치를 크게 높인 인물은 김종관 감독이다. ‘폴라로이드 작동법’,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사람의 감정에 대해 잔잔하면서도 색다르고 몰입감있게 풀어내는 것이 그의 작품의 특징이다.●‘소울’ 애니메이션 ‘소울’은 ‘지구에 오기 전 영혼들이 머무는 태어나기 전 세상이 있다면 어떨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하는 영화다. 뉴욕의 음악 선생님인 조는 예기치 못한 사고로 영혼이 되어 ‘태어나기 전 세상’에 떨어진다. ‘태어나기 전 세상’에 사는 탄생 전의 영혼들은 멘토와 함께 자신의 관심사를 발견하면 지구 통행증을 발급받고 마침내 지구로 갈 수 있다. 그 영혼이 바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조는 그곳에서 유일하게 지구에 가고 싶어하지 않는 냉소적인 ‘영혼 22’의 멘토가 된다. 인간 세상 너머에 우리가 모르는 세계가 있고 그게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초월적인 줄거리 때문인지 영화 ‘인사이드 아웃’이 연상된다. 이 영화를 제작한 피트 닥터 감독은 ‘인사이드 아웃’을 포함해 ‘몬스터 주식회사’, ‘업’ 등 굵직한 애니메이션 작품을 많이 제작한 경험이 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전동킥보드 안전 논란...지자체·경찰·운영업체 ‘사고 예방’ 힘 모은다

    전동킥보드 안전 논란...지자체·경찰·운영업체 ‘사고 예방’ 힘 모은다

    전동킥보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경기 수원시와 수원남부경찰서, 공유 전동킥보드 운영업체가 전동킥보드 사고 예방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수원시는 수원남부경찰서, 5개 공유 전동킥보드 운영업체와 ‘개인형 이동 수단(PM, Personal Mobility) 사고 예방을 위한 대책회의’를 열고, 안전관리 조치를 논의했다고 4일 밝혔다. 수원시는 지하철역 입구나 버스정류장, 횡단보도 등 사람이 많이 다니는 장소에 방치된 전동 킥보드를 단속하고, 해당 업체에 이동조치를 권고하기로 했다. 수원남부경찰서는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전동 킥보드 운전자의 음주운전, 안전모 미착용, 2인 이상 탑승 등 도로교통법 위반 행위를 집중적으로 단속한다. 공유 전동킥보드 운영 업체는 운전자들이 안전 수칙을 충분히 숙지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전동킥보드에 안전 수칙 안내물을 부착한다. 또 관리 인력을 늘려 도로에 불법 주차된 킥보드를 신속하게 안전한 장소로 옮기기로 했다. 수원시는 지난 8월부터 ‘찾아가는 자전거 안전교육’과 병행해 초·중·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개인용 이동 수단 안전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또 전동 킥보드 안전 수칙 홍보물 2만 부를 제작해 4개 구청과 학교에 배부했다. 홍보물을 추가로 제작해 시민들에게 배포하고, 안전교육도 확대 운영할 계획이다.시 관계자는 “전동 킥보드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철저하게 대비할 것”이라며 “관내 경찰서, 킥보드 운영업체와 적극적으로 협력해 안전한 보행환경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현재 수원시에서는 5개 업체가 공유 전동킥보드 1650여대를 운영하고 있다. 글 사진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내가 남한에서 개발한 항암제, 이북 아버지 산소에 바칠 날 손꼽아”

    “내가 남한에서 개발한 항암제, 이북 아버지 산소에 바칠 날 손꼽아”

    북한에서 인정받았던 수재 의대생은 1990년대 졸업 직후 ‘고난의 행군’ 한복판에 서게 된다. 제대로 환자를 치료하고 마음껏 의학을 연구하겠다는 포부를 가졌던 그는 기근과 전염병이 창궐하는 북한의 열악한 현실에 좌절했다.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북한에서 힘들게 쌓아 올린 경력을 뒤로하고 남한으로 넘어와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남한 정착 13년이 지난 현재 자신의 한의원을 운영하고, 봉사활동으로 의술을 펼치고, 대학원에선 우수 논문을 발표하며 북한에서 못다 이룬 포부를 실현하고 있다. 의료인이자 의학자로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자신이 개발한 항암제를 북한에 묻힌 아버지에게 바칠 꿈을 갖고 있다는 박지나(44) 친한의원 원장을 지난달 27일 서울 성동구 한의원에서 만났다.박 원장은 인민학교(초등학교)부터 고등중학교(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고등중학교 3학년 때는 ‘7·15 최우등상’을 받았다. 전국의 우수 학생을 모아 아홉 차례 시험을 치르게 한 뒤 상위 216명에게 주는 상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산고급중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날인 7월 15일을 기념해 제정한 상이라고 한다. 이 상을 받으면 중앙당과 교육부, 중앙사로청이 발행하는 대학 추천서를 받게 된다. 수능에 해당하는 대입 시험은 면제받고 대학별 입학시험만 보면 된다. 박 원장은 김일성종합대학이나 평성이과대학을 꿈꾸기도 했지만 결국 의대에 진학했다. 집안 성분이 발목을 잡은 탓이었다. 박 원장의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이북 지역 부농이었는데, 해방 이후 북한 정권의 토지개혁 당시 타도 대상으로 몰렸다. 북한에서 성분이란 족쇄가 다소 느슨해진 것은 1980년 중반 들어서부터다. 성분을 너무 따지다 보니 국가적 인재를 쓸 수가 없어 김일성 주석이 ‘성분을 안 보고 인재를 쓰겠다’고 선언했고, 이후 대학도 문을 조금씩 열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버지와 형제들은 모두 뛰어났지만 성분 때문에 쥐 죽은 듯 살았습니다. 제 언니도 대학에 가지 못했죠. 저와 사촌 동생들이 졸업할 때 돼서야 겨우 의대에 들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도 김일성종합대학과 같은 최고 명문대는 꿈도 못 꿨죠.”박 원장은 의대에서 한의학을 전공했다. 타의로 진학했지만 대학에서도 1등은 이어 갔다. 당시 북한 의대는 우수 학생을 추려 학업과 연구를 병행시키고 대학 졸업과 함께 석사 학위를 주는 과정이 있었다. 한 해 400명 졸업생 중 박 원장을 포함해 석사까지 취득한 졸업생은 4명에 불과했다. 성분 제약 속에도 의대 엘리트 코스를 밟은 박 원장은 졸업 후 북한의 비참한 사회 현실과 열악한 의료 환경에 맞닥뜨리게 된다. 북한에서는 의대를 졸업하면 정부가 배정하는 병원에서 일해야 한다. 박 원장은 내과에 배치됐다. 당시는 소련과 동구권의 몰락으로 북한 경제가 최악이던 가운데 기근과 전염병으로 사망자가 속출하던 고난의 행군 시기였다. “제 첫 번째 환자는 쥐가 매개하는 전염병인 출혈열 환자였습니다. 발병 2~3일 내에 수액만 강력 투여하면 사망하지 않는 병이었죠. 제가 출혈열이라고 진단했는데 다른 의사들이 안 믿었습니다. 남한에선 흔한 수액을 투여하면 그만이지만 북한에선 구하기 어려운 것이라 신중을 기한 겁니다. 갓 졸업한 저를 우습게 본 것도 있을 거고요. 결국 환자는 숨졌습니다. 서른둘밖에 안 된 두 아이의 엄마였는데, 장례식에 가 보니 서너 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들이 엄마 죽은 줄도 모르고 길에 나와 놀고 있더라고요. 그때 충격을 받아 며칠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잤습니다.” 결국 박 원장은 탈북을 결심한다. “의대에서 죽도록 공부하며 어떤 환자가 와도 다 고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부풀어서 병원에 출근했는데 처방을 하면 약이 없습니다. 약이 없어 죽어 간 환자가 너무 많습니다. 성분이 안 좋아서 인정은 못 받고 이용만 당한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대학 때부터 하던 연구도 마저 하고 싶었습니다.” 2007년 남한에 도착한 박 원장은 생각지도 못한 벽에 부딪힌다. 북한에서 취득한 자격이 인정되지 않아 남한에서 다시 한의사 국가고시를 봐야 했던 것이다. 낮에는 파출부 등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힘들게 모은 자료로 공부하던 박 원장은 두 차례 낙방 끝에 2011년 남한 한의사 자격을 취득하고 한의원을 열었다. 탈북민 한의사로서 수차례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최근 코로나19가 확산되자 대한한의사협회가 운영하는 한의진료 전화상담센터에서 주말 자원봉사를 하며 한의혜민대상 공로표창 대상도 받았다. 박 원장은 북한에서 한의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양방 내과에서 근무했다. 북한에서는 양의학과 한의학 전공생에게 양·한방을 모두 가르친다. “북한 양의사는 한의학의 기본을 이해하고 한의사도 양의사 못지않게 양의학 지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북한 의료 체계가 ‘양진한치’, 양방으로 병을 진단하고 한방으로 치료한다는 원칙에서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남한의 의학 교육과 의료 시스템은 양방과 한방을 이원화하고 있는데 동서 의학의 장점을 두루 취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양·한방을 모두 아는 전문가가 환자 상태에 따라 최선의 치료 방법을 판단해야 하는데 한국 사회에는 그런 전문가가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환자들은 양의원과 한의원을 오가며 돈은 돈대로 쓰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며 정부도 보험 재정을 낭비하게 돼 안타깝습니다.” 북한에서 전염병이 극심했던 시기에 의사로 근무했던 박 원장은 북한이 현재 코로나19 확진자가 한 명도 없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의료 자원이 부족하기에 전염병이 발생하면 감염원과 감염 경로를 확실하게 차단한다”며 “독재 정권이기에 환자를 정확하게 고립시키고 완치될 때까지 감금하다시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으로선 내부에서 전염병이 발생하면 통제가 어렵겠지만 코로나19처럼 외부에서 유입되는 전염병은 국경 봉쇄만 하면 되니 차단하기 쉬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북한에 가장 시급히 지원해야 할 물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박 원장은 ‘쌀’이라고 답했다. “북한이 중국을 통해 식량 문제를 해결해 왔는데 국경을 봉쇄하면서 식량난이 심해졌습니다. 쌀값이 10~20배는 뛰었다고 합니다. 코로나에 걸려서 죽는 게 아니라 굶어서 죽게 생겼다는 말도 나온다고 합니다.” 박 원장은 지난 2월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의 비례대표 위성정당이었던 미래한국당의 공천관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래한국당 공관위가 내놓은 비례대표 후보 명단이 모당 미래통합당의 반발로 백지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실망했다고 한다. “집안 성분보다는 능력에 따라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를 갈망해 남한에 왔는데 남한 사회도 점점 안 그렇게 되는 것 같다고 느껴 공관위에 참여했습니다. 공관위원들이 밤을 새우며 지원자 500명의 서류를 다 읽고 채점했습니다. 열심히 했는데 하루아침에 공관위가 해산되는 걸 보고 권력의 무자비함을 느꼈습니다. 공관위원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소신을 지켰기에 부끄러움은 없습니다.” 박 원장은 경희대 한의대 석사를 취득하고 박사 과정을 수료, 현재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다. 인삼에서 추출한 성분의 대장암 치료 효과를 연구한 석사 논문은 지난 4월 SCI급 학술지에 등재됐다. 박사 논문도 한약재 성분의 항암 효과를 주제로 할 계획이다. 박 원장의 아버지는 그가 대학 3학년 때 위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는 그때부터 암을 끝까지 연구하겠다고 다짐했다. “제 인생은 의료인의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과 남한에서 죽도록 공부를 하며 이런저런 고난을 겪었지만 저의 희로애락은 언제나 의료와 의학에서 나왔습니다. 가장 기뻤던 일도, 가장 슬펐던 일도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생겼습니다. 탈북민이라고 신기해서 주목받는 게 아니라 실력 있고 환자에게 사랑받는 한의사로, 한의학을 연구하는 학자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무장봉기 이끈 승려… 만세운동 주도 고교생… 일제 수탈 맞선 해녀들

    무장봉기 이끈 승려… 만세운동 주도 고교생… 일제 수탈 맞선 해녀들

    제주도는 역사적으로 몽골이나 왜구의 지배와 침략을 받았던 지역으로 외부 세력에 대항하며 독자적으로 존립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일제의 입장에서 제주는 군사적 요충지였고 풍부한 어족자원을 가진 주요 약탈 지역이었다. 한일병합으로 일제의 수탈이 격심해지자 항거하는 주민들의 움직임이 어느 지역보다 거세게 일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유배를 온 유학자들이나 개화파들은 제주도민들의 학문과 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고 이는 항일·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제주 지역에서는 광복 때까지 크고 작은 항일운동이 잇따라 일어났는데 그중에서 3대 항일운동으로 일컬어지는 법정사 항일운동, 조천만세운동, 제주해녀 항일운동의 현장을 찾아보았다. ●1914년부터 김연일 주지 “일본인 축출” 설법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인 제주도 서귀포 옛 법정사 터는 해발 680m나 되는 한라산 중턱에 있었다. 물이 마른 계곡을 건너 비탈길을 한참 올라가니 어두컴컴한 산속에 일제가 불태워 버린 절터가 나타났다. 집 한 채 크기도 안 되는 작은 터에는 무너져 내린 벽체의 흔적인 돌무더기만 나뒹굴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제주도에서도 항일·독립운동이 줄기차게 벌어졌다. 그중에서도 3·1운동보다 다섯 달 앞서 일어난 법정사 항일운동은 승려들이 주도하고 주민 700여명이 참여한 제주 최대의 항일운동이었다. 법정사 주지 김연일은 1914년 무렵부터 일본의 국권 침탈이 부당하며 일본인을 제주도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설법을 통해 주장하고 있었다. 김연일은 조직적으로 항일운동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거사 6개월 전부터 곤봉과 화승총을 마련하는 등 치밀하게 준비했다. 1918년 9월 말 정구용은 “면장과 이장은 장정을 모아 10월 7일 오전 4시 하원리에 집합하고 8일에는 제주향을 습격해 일본 관리를 체포하자”는 격문을 붙였다. 총지휘자 김연일을 필두로 좌대장, 우대장, 선봉대장, 중군대장, 후군대장 등의 의병과 비슷한 군사 조직 체계를 갖추었다.김연일은 1871년 경북 영일군 동해면 도구리에서 태어나 출가한 뒤 경북 경주 기림사의 승려로 있었다. 같은 절에 있던 승려 방동화와의 인연으로 제주도로 와서 1914년쯤 법정사 주지가 됐다. 김연일은 처음부터 독립운동을 할 목적을 갖고 제주도로 왔다고 한다. 왜 하필 제주도까지 와서 독립운동을 했느냐는 의문에 유족들은 “우리나라 모습에서 제주도가 닻이라서 거기서부터 들어 올려야 독립 바람이 육지까지 분다고 (김연일이) 말했다”고 설명한다. 김연일은 조상의 묘까지 제주도로 옮겼다. 이를 이용해 군자금과 물자를 갖고 제주도에 드나들었다고 한다. 드디어 거사 당일인 7일 새벽 법정사 마당에서 출정식이 열렸다. 김연일은 “일본인을 쫓아내어 원래의 한국 시대를 회복하자”고 선언했다. 선봉대장 강창규와 좌대장 방동화, 우대장 강민수, 모사 장임호와 박주석 등의 지휘에 따라 승려와 신도 등 34명은 깃발을 흔들며 마을로 내려갔다. 미리 참여를 독려하고 격문을 붙여 놓아 참여자는 순식간에 700여명에 이르렀다. 도순·하원·월평·영남·대포·상예리 등 서귀포의 거의 모든 마을 사람들이 뒤를 따르며 일제를 몰아내자고 소리 높여 외쳤다. 중문리에 도착한 군중은 전선을 자른 뒤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일본인 일행을 구타하기도 했다. 이어 현재 중문파출소 자리에 있던 경찰 주재소로 가서 몽둥이로 기물을 부수고 문서를 불태운 다음 건물을 소각했다. 오전 11시쯤 일경의 기마 순사대가 총으로 무장하고 공격해 왔다. 함성을 지르던 군중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일경들은 법정사로 올라가 절을 불태웠다. 법정사 항일운동으로 모두 66명이 검거됐고 김연일이 1심에서 10년형을 받는 등 46명이 형을 선고받았는데 감형과 가출옥으로 실제 수감 기간은 줄어들었다. 김연일은 3년 3개월, 강창규는 6년가량 옥살이를 했다. 박주석, 강수오, 강춘근 등 5명은 고문 후유증과 가혹한 감옥생활로 옥사했다. 특히 강춘근은 재판을 받기 전에 사망했다. 고문사로 추정되지만 자세한 정황은 남아 있지 않다. 김연일은 출옥 후 고향 영일로 돌아가 항일활동과 독립운동을 계속했고 다시 붙잡혀 투옥되기도 했다. 정부는 법정사 항일운동 주도자 가운데 32명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했다. 김연일은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 강창규는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日 주도자 모두 연행, 거사 계획 미리 파악한 듯 제주시의 동쪽에 있는 조천은 일제강점기에는 육지에서 사람과 물건이 활발하게 오가던 제법 큰 항구였다. 조천은 신촌·함덕·신흥 등의 인근 지역뿐만 아니라 제주시와 서귀포로 파급된 제주도 만세운동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제주항일기념관과 삼일독립운동기념탑 등이 들어선 조천만세동산(미밋동산)이 조성돼 있다. 평일인 지난달 17일 찾은 조천읍내는 인적이 드문 조용한 어촌 마을이었다. 마침 애국선열추모탑 앞에서는 임시정부가 1939년 법정기념일로 정한 제81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 및 제18회 제주 지역 애국선열 합동추모식이 제주도 독립운동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었다. 조천만세운동은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 4학년생이던 김장환이 독립선언서를 숨기고 들어오며 시작됐다. 아버지 김시학은 일본 유학파로 1차 세계대전 중에 사회 각계각층 1만명의 연서를 받아 독립청원서를 제출한 인물이다. 김장환은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문 낭독을 지켜보며 만세운동에 참가했다. 보름 후인 16일 조천에 내려온 김장환은 숙부 김시범과 당숙 김시은에게 서울의 3·1운동 소식을 들려주고 독립선언서를 전달했다.이튿날 김시범, 김시은, 김장환은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했다. 이어 김용찬, 김형배, 고재륜, 황진식 등 14명의 동지를 모았다. 이들은 대형 태극기 4본과 소형 태극기 300여장을 만들어 만세운동을 준비했다. 김시범 등은 거사일을 제주도에서 명망이 높았던 유학자인 맏형 김시우의 소상(小祥·첫 기일)인 3월 21일로 잡았다. 21일 아침 8시쯤. 미모치에 14인 동지를 비롯, 조천 주민들과 이웃 마을인 함덕·신촌·신흥 등지의 주민과 서당 생도 등 200여명이 모여들었다. 미모치는 오름의 이름으로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다. 한라산 정기가 마을 동쪽 끝으로 흘러 우뚝 솟은 성소(聖所)로 전해지던 곳이었다. 대형 태극기가 미모치 정상에 꽂히고 ‘독립만세’라고 쓰인 깃발이 나부꼈다. 김시범은 독립선언서를 20여분 동안 낭독했다. 낭독을 마친 김시범은 “조선을 제국의 속박에서 벗어나 독립시키기 위해 한국독립만세를 부르고 행진하라”고 소리쳤다. 김용찬도 “일본 제국의 굴레에서 벗어나 독립하도록 한국독립만세를 고창하고 마을 안을 행진하자”고 외쳤다. 이어 김장환이 ‘대한독립만세’라고 선창하자 군중도 따라 외쳤다. 어떤 이는 창호지에 ‘한국독립만세’라는 혈서도 썼다. 시위대는 일제의 본거지인 제주성으로 행진했다. 조천은 제주성의 동쪽 약 12㎞ 지점에 있었기 때문에 2~3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었다. 도중에 신촌·삼양·화북·건입마을을 거치면 참가자가 더 늘어날 수 있었다. 주민들이 합세하면서 500~600명이 된 시위대는 조천오일장터를 거쳐 비석거리에 도착해 ‘한국독립만세’를 크게 외치고는 계속 행진해 신촌리에 다다랐다. 일경은 급히 제주경찰서에 증원을 요청했고 오후 늦게 무장한 순사 30여명이 도착해 시위대와 맞부딪쳤다. 일경은 공포탄을 쏘고 소총 개머리판으로 무차별로 타격하며 시위를 진압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3명이 다쳤고 김시범, 김시은, 김용찬, 김장환 등 13명이 연행됐다. 이들이 모두 주모자였음을 볼 때 일경은 거사 계획을 미리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시위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튿날 조천오일장터에서 김필원, 백응선, 박두규 등이 중심이 돼 200여명이 붙잡힌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신촌리를 향해 2차 만세시위를 벌였다. 여기서 박두규와 김필원이 체포됐다. 시위 소식은 함덕리까지 전해져 다음날에는 조천과 함덕 양쪽에서 3차 시위가 벌어졌다. 이문천·백응선·김연배 등이 계속해서 시위를 주도했다. 이문천은 조천오일장터에서 주민들과 함께 시위를 벌이다 100여명을 이끌고 오일장이 열리던 함덕리로 이동했다. 함덕리에 이르자 시위대는 800여명으로 늘어났다. 이날은 부녀자와 어린아이들까지 참여했다. ●김장환은 월북했다는 이유로 국가 서훈 없어 시위 확산에 두려움을 느낀 일경은 시위대를 무력으로 강제 해산시키고 이문천과 백응선 등 8명을 체포했다. 또 신흥리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귀동이라는 여성이 “대한독립만세, 같이 죽자 만만세”라는 구호를 외치자 제주경찰서로 연행했다. 여성까지 무차별로 체포한 데 대해 도민들이 격앙하자 부담을 느낀 일제 경찰은 사흘 뒤 여성을 석방했다. 3월 24일 4차 만세운동은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 이날은 조천오일장날이었는데 상인과 장을 보러 온 부녀자들까지 약 1500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투석전까지 벌어지는 등 시위가 격렬해지자 일경은 발포해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김연배 등 4명을 체포했다. 일경은 군 병력까지 불러들여 시위가 다른 지역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 했다. 네 차례의 시위에서 주도자 14명은 모두 검거됐다. 이들을 포함해 기소된 사람은 모두 29명이었고 24명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919년 5월 김시은, 김시범, 김장환 등 주도자 14명은 징역 6개월에서 1년을 받았다. 그보다 옥고와 고문에 따른 희생이 컸다. 백응선은 고문과 옥고로 1920년 3월 순국했다. 김연배도 혹독한 고문의 후유증과 옥고로 가출옥했지만 1923년 11월 27세의 일기로 순국했다. 김시은과 김시범은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김장환에 대한 서훈 기록은 없다. 월북했다는 이유다. 백응선과 김연배는 대통령표창을 받았을 뿐이다.●일제 해녀 요구 들어준다고 해놓고 약속 어겨 “배움 없는 우리 해녀 가는 곳마다/ 저놈들의 착취기관 설치해 놓고/ 우리들의 피와 땀을 착취해 간다/ 가이없는 우리 해녀 어디로 갈까” 제주시 구좌읍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 옆 해녀 노래비에 쓰인 마지막 절이다. 제주 우도 출신 독립운동가 강관순이 지은 노래다. 제주 해녀 투쟁은 연인원 1만 7000여명이 참여하고 238차례의 시위가 벌어진, 국내 최대 규모의 여성항일운동으로 평가받는다. 제주 해녀들의 항일운동을 기념해 구좌읍 하도리에 기념탑을 세우고 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오후 늦은 시간에 찾은 공원에는 운동 삼아 왔다갔다하는 여성만 보일 뿐 참배객은 아무도 없었다. 일제의 수탈에 제주도 해녀들도 예외가 되지 못했다. 이렇다 할 산업이 없는 제주에서는 해녀들의 채취 활동이 일제로서는 독보적인 수입원이었다. 1920년대 중반 일제는 해녀들의 권익 보호를 명분으로 만든 제주해녀어업조합을 어용화했고 해녀들이 힘들게 거둔 해산물을 헐값에 매입하는 등 횡포를 부렸다. 입거 수수료와 세금도 과다 징수했다. 1931년 6월 해녀들은 공동 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12월에는 관제조합 반대, 수확물에 대한 가격 재평가 등의 요구 조건과 투쟁 방침을 정하고 대표를 선출했다. 이듬해 1월 7일 세화리 장날에 해녀 300여명이 1차 시위에 나섰다. 시위대가 구좌면사무소에 이르자 면사무소 측이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일제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마침 신임 제주도사 다쿠치 데이키가 1월 12일 세화장날 시찰에 나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장날 세화리 장터에 해녀들이 모여들었다. 구좌면 하도리·세화리·종달리·연평리와 정의면의 오조리·시흥리 등 6개 마을 해녀들이었다. 손에는 호미와 비창(전복 따는 도구)을 들었다. 해녀들은 다쿠치가 탄 차량을 에워쌌고 다쿠치는 굴복한 척하며 요구 조건을 5일 안에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거짓 약속이었음은 금세 드러났다. 일제는 제주 지역 청년운동가들을 배후세력으로 규정했다.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23일부터 하도리 오문규, 종달리 한향택과 한원택, 세화리 문도배와 문도후 등을 각종 죄목을 붙여 검거하기 시작했다. 24일에는 이에 격분한 해녀 1500여명이 세화주재소로 몰려들었고 일경은 무장경관을 출동시켜 해녀 34명을 포함한 50여명을 체포했다. 27일에는 종달리 해녀 100여명이 붙잡힌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지만 진압당하고 말았다. 주동자로 찍힌 해녀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은 6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다. 이들 말고도 일제에 검거돼 고초를 겪은 해녀가 100여명에 이르렀다. 세 명의 해녀는 항일운동을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을 받았다.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사자명예훼손’ 전두환, 1심서 징역 8월·집유 2년...선고 들으며 꾸벅꾸벅(종합)

    ‘사자명예훼손’ 전두환, 1심서 징역 8월·집유 2년...선고 들으며 꾸벅꾸벅(종합)

    전두환(89) 전 대통령이 5·18 헬기 사격 목격자를 상대로 한 사자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유죄 선고를 받았다. 30일 광주지법 형사8단독 김정훈 부장판사는 201호 형사대법정에서 전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사자명예훼손죄의 법정형 기준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앞서 검찰은 전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전씨는 지난 2017년 펴낸 회고록에서 5·18 기간 군이 헬기 사격한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조비오 신부를 ‘신부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장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자국민을 향한 군의 헬기 사격을 인정하고, 5·18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피고인이 고통받아온 많은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전씨는 재판에서도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였다. 전씨는 이날 오전 8시 42분 부인 이순자(82)씨와 함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을 나와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에 올라타 광주로 향했다. 검정 양복에 중절모 차림으로 마스크를 쓰고 나온 전씨는 승용차에 타기 전 자택 앞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손은 흔들었다. 자택 앞에 있던 시위대는 전씨를 향해 ‘전두환을 법정구속하라’, ‘전두환은 대국민 사과하라’고 외쳤다. 이에 전씨는 시위대를 향해 무언가를 말하다 경호원의 도움을 받아 차에 올라탔다. 전씨는 시위대에게 “시끄럽다 이놈아”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광주에 도착한 전씨는 잠시 벗었던 모자를 찾아 쓰고 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들어갔다. 특별한 도움 없이 혼자서 걷던 전씨는 이내 경호원 한 명의 부축을 받고 느린 걸음으로 법정에 입장했다. 부인 이씨도 전씨의 뒤를 보좌하며 조용히 법정으로 향했다. 취재진들이 “5·18 책임을 인정하지 않느냐”, “아직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느냐. 왜 사죄하지 않느냐. 발포 명령을 부인하느냐”는 등 질문 세례를 했지만, 전씨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이동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취중생] 한 달 뒤면 끝나는 ‘낙태죄’ 시한…국회는 응답하라

    [취중생] 한 달 뒤면 끝나는 ‘낙태죄’ 시한…국회는 응답하라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문재인 정부에게 마지막으로 경고합니다. 낙태죄를 폐지하십시오. 권리를 보장하십시오. 대한민국의 절반, 여성의 경고를 엄중히 새겨들으십시오.” 지난 27일, 국회 앞에서 여성들의 절박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모낙폐) 등 단체 활동가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죄 전면 폐지 외의 다른 대안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임신 후 최대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정부의 형법 개정안이 24일 국무회의를 통과하자 이에 반발하기 위해섭니다. 지난해 헌법재판소에서 낙태를 죄라고 보는 현행법이 헌법불합치라고 결정한 뒤 정부가 1년 만에 내놓은 형법 개정안의 핵심은 임신 14주 이내 여성에게 낙태를 조건 없이 허용한다는 겁니다. 15~24주 여성은 ‘사회경제적 이유가 있을 때’ 낙태할 수 있습니다. 이에 여성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입법예고 기간 제시된 의견이 7000건이 넘습니다. 정부안대로라면 낙태가 가능한 24주는 사실상 임신 중절을 ‘합법화’ 하는 것 아닐까요? 왜 여성들은 낙태죄 전면 폐지를 주장할까요? #나는 낙태했다, 나는 죄인이 아니다서울신문은 지난달부터 직접 임신 중절을 경험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연속 인터뷰 ‘나는 낙태했다’ 시리즈로 공개했습니다(https://url.kr/SpeqCn).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언론을 통해 스스로 경험을 공유하고 목소리를 낸 건 처음입니다. 인터뷰 첫 회 기사가 보도되자, 곧장 이메일로 ‘나도 낙태했다’는 제보 메일이 쏟아졌습니다. 사는 곳도, 나이도, 상황도, 다 다른 사람이었지만 모두가 입을 모아 얘기했습니다. 현행 낙태죄는 여성에게만 죄를 묻는 ‘악법’이라고요. 청소년기 원치 않은 임신을 했다가 임신 중절을 한 여성은 당시 자신에게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남자친구 때문에 더 상처가 컸다고 했습니다. 결혼한 뒤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임신을 중단했는데, 이후 어린 아이만 보면 당시의 기억이 떠올라 괴로워하는 여성도 있었습니다. 낙태와 임신중절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금기어이지만, 정작 현실에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살기 위해’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낙태를 죄라고 보는 법과 잘못된 인식 탓에 제대로 된 진료를 받지 못했고, 부당하고 비위생적인 기억을 안고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정부가 14주냐, 24주냐를 놓고 다툴 동안 정작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는 여성 당사자의 목소리는 지워지고 있습니다. 남은 시간 한 달…이제는 국회의 시간 자연스레 낙태죄 논의의 ‘키’를 쥔 국회에 시선이 쏠립니다. 국회에서도 정부의 입법예고안에 반대하며 여성들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과 정의당 이은주 의원은 낙태죄를 삭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반면 국민의힘 조해진 의원안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낙태 허용 기준을 임신 10주로 제한했습니다. 정부안보다도 퇴행한 안입니다.형법 개정안을 넘겨받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다음달 8일 낙태죄 폐지 전문가들을 모아 공청회를 열 예정이지만, 바로 다음날인 9일 정기국회는 종료됩니다. 법안이 통과되려면 임시국회를 열어 논의해야 한다는 뜻이죠. 시간이 부족한 만큼 개정안을 처리하지 않고 우선 낙태죄를 폐지한 뒤, 내년 이후 시간을 갖고 논의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경우 입법 공백이 생겨 현장에서 혼란이 생길 우려가 큽니다. 이에 올해 안에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라는 여성들의 목소리도 커집니다. 모낙폐는 다음달 1일부터 한 달간 낙태죄 완전 폐지와 대안입법을 촉구하는 국회 앞 1인 시위를 할 예정입니다. 67년간 여성의 몸을 옭아맨 낙태죄가 이제는 정말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 있을까요. 여성 모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 싸우며 지켜봐야겠습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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