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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본주의 사회는 “병영체제”/노동신문 사설통해 비난

    【내외】 북한은 27일 사회주의를 병영체제로 묘사하는 것은 악선전이라면서 자본주의 사회야말로 『지배와 예속,불평등의 썩어 빠진 사회』라고 비난했다. 북한은 이날 당기관지 노동신문에 게재한 논설을 통해 자본주의사회는 『인민대중의 자주성과 창조성을 유린하는 병영식사회』라고 주장하면서 정치적,경제적 문제점만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선전했다. 이 신문은 자본주의국가들의 다당제와 의회제도,선거 등을 싸잡아 이는 『근로대중에게 그 어떤 정치적 자유와 권리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독점자본가들의 정치적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 신문은 또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대중의 자주적 사상의식을 마비시키고 착취제도에 순종시키기 위해 『반동적이며 반인민적인 사상과 문화,썩어 빠진 부르주아 생활양식을 퍼트리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 정치인 TV출연 “방송문화에 새 활력”

    ◎소재 개방타고 토크쇼·드라마에도/현직장관·재야인사 나와 시청자 궁금증 해소 문민시대 개막과 함께 과거 방송출연이 금기시됐던 재야인물을 포함한 정치권인사들의 TV방송 출연이 쇄도,방송문화 전반에 새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 「방송소재의 개방화」추세와 맞물려 한층 가속화되고 있는 이들의 브라운관출연은 「정책성프로」는 물론 연예토크쇼,드라마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장르에 걸쳐 이뤄지고 있어 심심치 않은 화제를 낳고 있다. 이같은 「방송금기」영역의 타파는 방송 소프트웨어의 질적 확충이란 긍정적 측면이 강한 반면,TV가 정치인의 이미지홍보장화할 개연성도 높여줘 신중한 접근이 요구되고 있다. 정치인물 방송출연의 물꼬를 튼것은 SBS­TV의 「주병진쇼」.프로 초반 박희태 전법무부장관을 게스트로 부른 이래 한완상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이부영민주당최고위원,백기완씨등을 초대,정치인들에 대한 권위주의적 고정관념을 불식하는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MBC­TV도 지난달 코미디쇼「일요일 일요일밤에」에 황산성환경처장관이 출연한 것을 시발로 「인기」정치인 모셔오기 경쟁에 나섰다.다큐멘터리 「제3공화국」에 현존「정치성」인사들의 「비증언」을 삽입,드라마 소재의 해빙무드를 만끽하고 있는 MBC는 그 여세를 몰아 지난 26일 「인간시대」에서는 80년대 학생운동권의 상징적 인물인 허인회씨(30)의 삶을 밀착취재,소개함으로써 「달라진 세상」임을 실감케 했다. KBS 또한 홍두표사장 취임이후 「개혁프로그램」을 가시화하고 있다. 오는 5월6일 방영될 「TV손자병법」은 그 첫번째 시범작품.이인제노동부장관이 현직장관으로는 처음 TV드라마에 직접 출연,노·사·정의 화합된 모습을 보여준다.직장인의 갈등과 애환을 코믹터치로 다루는 이 극에서 이장관은 임금·성차별문제로 언쟁을 벌이다 노동부장관실을 찾는 이장수부장(오현경),유비과장(서인석)등에게 노동정책을 설명하고 과천 정부제2종합청사 앞에서 이들과 격의없는 얘기를 나누는 연기(?)를 보일 예정이다.「TV손자병법」팀은 앞으로 사회·직장문제등의 현안을 직접 들어본다는 취지에서 환경처,교통부장관등의 출연도 점차 추진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그러나 KBS쪽은 지난 15일 임수경양이 출연해 입북당시의 심정등을 밝히려 했던 KBS­2TV 「생방송! 전국은 지금」이 불방된데 이어 KBS­1TV 특집쇼프로「부부가요제」에 김영삼대통령부처 출연을 성급히 추진했다가 무산되는등 시행착오를 빚어 소위 정치권과 관련된 「아이디어상품」제작에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따르기도 한다. 이같은 방송흐름에 대해 방송가에선 『또다른 시청률경쟁의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는한 정치권인사들의 TV출연은 표현영역의 확대란 점에서 바람직한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최근 TV3사가 「부도덕 연예인」의 방송출연규제 명단을 확정한데 이은 또하나의 「방송 페레스트로이카」의 신호탄』이란 입장을 보이고 있다.
  • 불안한 교민사회/남미에 「반한움직임」 확산

    ◎“탈세·불법고용” 아르헨 언론서 첫 비판/한인업소 단속… 브라질서도 문제 제기/“차별 아니냐” 불만속 대사관선 “법준수” 집안 단속 아르헨티나의 한인교포사회가 불법체류 외국인의 고용비리와 비인간적 착취등과 관련,당국의 집중조사를 받고있는 가운데 브라질 상파울루의 한인교포사회안에서도 이와 비슷한 제3국출신 노동자고용 비리문제가 제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22일 전해졌다.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마찬가지로 4만여명의 한인교포가 주로 의류업에 종사하고 있는 상파울루 한인교포사회에서는 아직 제3국출신 불법체류노동자들의 고용비리문제가 본격적으로 표면화되고 있지는 않지만 이번 아르헨티나 한인교포사회 사태와 관련,현지언론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상파울루의 한인교포들이 고용하고있는 제3국노동자들은 주로 볼리비아 출신인 것으로 알려져있다.상파울루에서도 일단 현지언론이 한인사회의 고용비리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기 시작할 경우,아르헨티나에서 처럼 상당한 파급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에따라 상파울루주재 한국 총영사관측은 현지언론이 한인사회의 고용비리등에 대한 집중취재에 나설것에 대비,설득력있는 해명자료를 치밀하게 준비하는 등 대비책을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아르헨티나정부의 관계부처 합동조사반은 지난 20일 한인촌안의 교포의류공장및 식당,식품점등에 대해 집중적인 현장조사를 벌인데 이어 21일과 22일에도 한인촌에서 떨어져있는 의류도매및 소매상점가의 한인교포상점들을 대상으로 불법고용 실태및 탈세여부에 대한 조사를 계속했다. 아르헨티나주재 한국대사관측과 교민회는 22일 각기 발표한 담화문을 통해 모든 한인교포업소들이 현지관계법률을 엄격히 준수하고 작업환경과 종업원에 대한 처우를 합리적으로 개선해줄것 등을 촉구했다.
  • 「문민정부」 흠집내기 선전공세(오늘의 북한)

    ◎학생·근로자들에 반정·반민자투쟁 적극 부추겨/핵사찰 촉구·「팀」훈련 등 들어 격렬비난/“대사면조치 등도 국민 기만행위” 혹평/정통성 희석시켜 사회혼란 조장 책략 북한은 지난달 25일 출범한 김영삼정부에 대한 비난과 함께 청년,학생,근로자들에게는 반정부·반민자당 투쟁을 선동하는 상투적인 선전공세를 펴고 있다. 북한은 신정부가 진정한 문민정권이라면 민족·자주원칙을 지키고 군사파쇼체제를 청산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 지지 입장 철회,팀스피리트 훈련 중지,국가보안법 철폐,안기부·기무사 해체,양심수 전원 석방,이인모씨 송환등이 문민정권 여부를 가리는 시금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노동신문은 김영삼대통령 취임일인 지난달 25일 대통령 취임 사실에 대해서는 함구한채 김대통령이 취임 직전 미시사주간지 뉴스위크지와 가진 기자회견 내용을 격렬히 비난했다. 노동신문은 김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핵사찰이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이고 북한측이 IAEA의 특별사찰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대화와경제교류를 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은 『6공 집권자들의 사대망국적 정책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며 『흑백을 뒤집는 주제넘고 가소로운 일』운운의 저급한 표현을 써가며 반박했다. 평양방송도 이날 『신정부가 문민정치에 대해 요란스럽게 떠들고 있으나 파쇼정권을 감싸기 위한 기만광고에 지나지 않는다』고 혹평하면서 「파쇼정권」인 신정부에 대해 남한 주민들이 반대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논조를 폈다. 또 3·1절 74주 기념행사에서 조국통일민주주의 전선 서기국장 유호준은 보고를 통해 『남조선 정권이 진실로 문민정권이라 한다면 민족·자주의 원칙을 지키고 미국 일본으로부터의 예속에서 벗어나야 하며 낡은 군사파쇼체제를 청산해야 한다』면서 『방북 인사들을 포함한 모든 정치범들을 석방하고 이인모노인을 북반부로 돌려보낼 것』을 요구했다. 유호준은 이어 IAEA의 특별사찰 요구에 대한 남한정부 입장과 팀스피리트 훈련및 이인모씨 송환문제 등을 예로 들어 신정부를 격렬히 비난하면서 「남조선 통치배」,「김영삼」등 종래의 비방성 호칭을여전히 사용함으로써 신정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나타냈다. 이같은 신정부에 대한 비난은 새정부 출범 전부터 계속됐다.북한은 지난달 20일부터 매일 평양방송으로 김일성방송대학 교육강좌 「특강」프로그램을 내보내면서 새정부의 문민정치 표방을 『미제 식민지 지배의 안정과 민자당의 집권연장을 위한 기만극』이라면서 새 정부하의 남한사회는 『착취와 억압만이 있게 될 것』이라고 모략했다. 북한의 이같은 부정적 시각은 신정부 출범후에 내려진 몇가지 시정조치에 대해서도 똑같이 나타났다.예컨대 김대통령이 취임 직후 청와대 주변도로와 인왕산 개방조치를 취한 것과 관련,평양방송(2·26)은 『소가 웃다가 꾸레미 터질 노릇』이라는 식으로 비하시켰고 황인성국무총리의 발언에 대해서도 악의적인 시비논조를 폈다. 또 중앙방송은 지난 1일 시사논단프로를 통해 3·1절 대사면조치를 추진한 것에도 트집,『양심수들을 묶어 놓은채 문민정치와 국민화합에 대해 운운하는 것은 기만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하며 『남조선사회는 세계에서 인권이가장 혹심하게 짓밟히고 있는 민중인권의 폐허지대』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이같은 대남비방논조의 행간에는 30여년만에 탄생한 김영삼 「문민정부」의 정통성을 희석시켜 보려는 책략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북한 전문가들은 또 새 정부의 정치적 안정이 구축되기 전에 문민정부의 정통성시비를 불러 일으켜 한국내의 정치사회적 혼란과 갈등을 조장하려는 책략으로 분석하고 있다.북한의 평양방송이 지난 1일자 논평프로에서 신학기를 맞이한 한국내 각급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반미·반전·반핵투쟁」을 부추기면서 「통일투쟁의 선봉투사」가 될 것을 호소한 것은 이같은 북측의 속셈을 잘 드러낸 사례이다. 북한은 최근 국제적인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그들의 핵특별사찰 거부 태도와 관련해서도 한국 신정부에 대한 비난을 호재로 역이용하고 있다.북한선전기관들은 IAEA의 대북특별사찰 요구를 『북을 고립·말살시키려는 범죄행위』라고 반발하면서 한국의 호응입장에 대해서는 『동족을 배반하는 반역행위』라고 비난하고 있다. 북한선전기관들의 이같은 대남비난공세에 비추어 볼때 신정부의 전향적인 대북정책추진에 발맞추어 북한이 대남화해협력 분위기 조성에 적극 호응해 올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 세금,알고보면(외언내언)

    세이는 성서에서도 상종못할 사람들로 묘사되었다.바리세이파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부정적으로 비쳤다.우리도 오이의 상징을 세리로 생각하는 정서가 오래전부터 익숙해왔다.아마도 고대의 세금제도가 침략자의 찬탈수단으로 비롯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터전에서 자급자족하던 시기에는 필요치 않았을 것이고 이민주이 침략을 해온 뒤에 착취수단으로 세금이라는 것을 적용했을 터이니까 처음부터 세리는 저항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세금을 거두는 사람의 기능이라는 것이 조금이라도 세금을 더 받는 일을 능사로 하기 때문에 반감을 느낄수 밖에 없는 숙명적인 역할을 지니고 있다.그러므로 월급쟁이는 세금을 늘 『빼앗긴다』고 생각하고 사업가는 항상 세금을 『두들겨 맞는다』고 표현한다.만화가는,두사람이 맞잡고 힘껏 짜놓은 빨래에서 한사발도 더되는 물을짤수있는 사람을 세리로 그린다. 이렇게 세금을 억울하게 빼앗기는 것으로만 여기는 일은 잘못된 것이다.평범한 시민이라도 세금을 정식으로 연구해보고 자세히 알아서 대응하면 분명히 유리하고 공연한 불평으로 스트레스를 느낄 일이 아닌데 우리는 그런 훈련에 너무 생소하다. 어떤 공무원보다도 친절하고 합리적인 설명을 하고 적극적인 설명을 해주는 것이 요즈음의 세무공무원이라는 것을 이제 알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시민은 타성적으로 세무행정을 경계의 대상으로 여긴다.그런 일을 불식시키려는 아이디어인 듯,2일부터 1주일동안 「세금을 아는 주간」행사를 가지기로 했다고 한다.국세청이 해마다 실시해오는 행사다.한걸음이라도 시민과 가까워지려는 노력에 시민도 호응하면 해롭지 않을 것이다.그런 한편으로 가난한 월급쟁이를 「쥐어짜는 기술」에만 능하고 돈이 많은 사람은 오히려 잘 빠져나가는 것이 세제라는 인상에 굳어있는 것을 풀어주는 일도 긴요하다고 생각한다.
  • 북미무역협정 폐기촉구/미 노조,클린턴에/EC가입 추진도

    【발 하버(미플로리다주) UPI 연합】 미국 최대의 노조기구인 노동총연맹·산별노조(AFL­CIO)는 17일 클린턴 행정부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폐기하고 대신 유럽공동체(EC)가입을 추진하라고 요구했다. 레인 커크랜드 AFL­CIO 회장은 이날 열린 집행위원회 연례 동계회의에서 『NAFTA는 문안대로 라면 순전히 착취당하는 것에 불과하다』면서 정부에 이같이 요구했다. 커크랜드 회장은 NAFTA에 반대하는 이유로서 EC의 시장통합 협정처럼 미국의 실업증가를 예방하는 한편 다른 회원국의 임금수준을 향상시키거나 근무여건을 개선해 줄 수있는 규정이 NAFTA에는 마련돼 있지않은 점을 들었다. 그는 또 현재 서유럽 12개국으로 구성된 EC의 경우는 해당국 시민들의 생명과 자유를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회원국 가입을 거부해왔음도 아울러 지적했다. 그는 미국이 NAFTA 대신 EC에 가입하면 미국 상품들의 시장도 확대될 것이라면서 『미국은 유럽과 무역장벽을 사이에 두고 맞서는 대신 막대한 시장을 지닌 그들의 일원이 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NAFTA는 미국이 캐나다·맥시코와 함께 추진해온 것으로 조지 부시 전 미대통령은 퇴임직전 이 협정에 서명했으나 최종 발효를 위한 의회인준 절차는 아직 거치지 않은 상태다.
  • “규모 작지만 짭짤”… 중국 사기업 번창(특파원코너)

    ◎1천4백만개 등록… 올 50만개 창업/“농사꾼서 백만장자로”… 입지전 회자/한때 투기꾼으로 매도당하는 시련 겪기도 공산주의국가인 중국에서도 「개인기업」들이 번창,그 수가 급증하고 있다. 중국정부가 사회주의식 시장경제라는 경제정책을 추진하면서 생겨나기 시작한 사기업들은 예상되는 경제자유화폭의 확대와 함께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들 사기업 소유자중엔 가난한 농사꾼이나 청소부에서 일약 백만장자로 성장한 입지전적 인물도 적지 않다.요즘 중국언론으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는 북경의 무역업자 모우 키숑(52)은 「파리도 고기다」는 격언에 따라 조그맣게 시작한 사업을 지금은 자본금 1억원(1천9백만달러)의 큰 무역회사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아직 자본주의국가의 기준으로 볼때 기업이라 할 만큼 규모가 크지는 않다.현재 중국에는 1천4백70만개의 개인기업이 있으나 이들은 대개 7명이내의 인원으로 구성된 가족단위로 이뤄져 있다.올들어서만도 50만개의 개인기업이 새로 생겨났다.그러나 많은 개인기업들이 세금과 금융혜택을 받기 위해 소규모 집단농장으로 위장하고 있어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중국은 항공·철도·금융 등 국가기간산업과 주요 원자재의 생산 및 판매를 제외하고는 모든 분야에서 개인기업을 허용하고 있다.이 개인기업들은 해외지점을 설치할 수도 있다. 국영기업들이 비효율적이고 방만한 경영으로 약3분의1이 적자운영을 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개인기업들은 소규모이기는 하지만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속속 개발함과 동시에 알찬 경영으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숫적 증가와 함께 이들은 사업영역도 활발히 확대시켜가고 있다.현재로서는 개인기업의 4분의3이 소규모 상점·식당·수리점들이지만 건설·광고·첨단기술분야에까지 진출하고 있다. 아직 이들이 중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국민총생산(GNP)의 10%로 미미하지만 이들은 중국경제 전반에 활력소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의 개인기업은 지난 78년 경제개혁이 시작되면서 등장하기 시작했다.당국의 묵인하에 나타난 소수의 이들 개인기업은 그나마 89년 천안문사태 이후 한동안 「투기꾼」,「사기꾼」등으로 매도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불과 1년전만 해도 정통파 이데올로기세력들은 개인기업을 「신생 부르주아」라고 공격했다.또한 「착취자」라고 매도하면서 이들에 대한 새로운 계급투쟁을 부추기기도 했다.그러나 이러한 공격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등소평의 흑묘백묘론에 밀려나 버렸다.중국정부는 앞으로도 민간부문에 대한 통제를 더욱 완화해 나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붉은 자본주의 사기업」들은 아직도 여러가지 불이익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입장이다.이들은 은행융자를 받거나 원자재를 공급받는데 있어 여전히 애로를 겪고 있다.시장경제를 도입한 다른 공산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는 개인기업을 하려면 뇌물을 바치거나 연줄이 있어야 한다. 또한 개인기업들은 정부가 어느날 갑자기 국영기업으로 귀속시키는 포고령을 발동할 경우 보호받을 길도 막연하다.이것은 개인기업이 보다 활성화할 수 있는 길을 막고 있는 요인이다. 이러한 불안은 개인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조급증을 심어주고 있다.북경의 한 의류상은 『이것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당장 벌 수 있는 만큼 부지런히 벌고 싶다』고 말했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33)

    ◎소년시절:14/정치비밀결사 「ㅌ·ㄷ」 조직설/“26년 「타도제국주의동맹」 결성” 새 주장/15세 외톨이의 청년 30명 규합에 의문/화성의숙생활 반항적… 이단 취급 받아 이번 회고록에서는 김일성이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을 김시우 집에서 읽었다고 하고 있는데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가 이 책을 가지고 그 무슨 「투쟁」을 했다고 전에 없던 새 주장까지 하고 있다.이 책을 빌려다 읽고 있던 계영춘이 화성의숙 교원에게 적발당하자 김일성은 김시우에게 다음과 같이 항의했다는 것이다. ○우매화정책 장본인 『사람이 건전한 인격을 갖추려면 다면적인 지식을 섭취해야 하지 않습니까.학교 당국은 어째서 새것을 한창 섭취해야 할 청소년들에게서 세계적으로 공인된 선진사상을 연구할 권리마저 빼앗습니까.마르크스나 레닌의 저작들이 보통책방에까지 흘러나와 글을 아는 사람은 다 읽는 판인데 유독 화성의숙에서만은 어째서 그런 책들을 못 읽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용작가들이 쓴 이러한 글을 읽고 북한에 「독서의 자유」가 있다고 착각하는 독자는 이제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 나라는 자본주의 서적 같은 것은 처음부터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1960년대 중반까지는 마르크스 레닌주의 서적은 출판되었고 읽을 수도 있었다.그러나 67년에 김일성이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문제를 들고 나온 후는 이러한 책은 보통책방에서 없어졌다.그 후 민중들은 「세계적으로 공인된 선진사상」이나 「다면적인 지식」에 접할 기회를 잃었고 「주체사상」밖에는 아는 것이 없도록 우매화되었다.이 민중 우매화정책의 장본인인 김일성이 회고록을 쓰면 이상과 같이 북한 현실과 정반대의 「작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여기서 그가 화성의숙의 기숙사나 교실이 아니라 그의 보호자로 되어 있었던 것 같이 보이는 김시우 집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 서적을 읽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점이다.그가 무송소학교 시절의 비정상적인 생활태도를 지속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서술이다. ○비정상적 생활 지속 또 그는 학교에서도 반항적이었다.예를 들면 회고록에서는 어떤 수업시간에 자본주의가 좋다고 주장하는 교원과 학생들을 김일성이 반대했다고 쓰고 있다.그가 『우리는 조선을 독립시킨 후 조국땅에 착취와 압박이 없는 사회를 세워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이것은 그가 화성의숙의 교실에서는 이단적인 존재였다는 것을 말하는 일화이다. 물론 이러한 「일화」들은 이번 회고록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므로 사실은 창작물일 것이다.그들은 이러한 창작물까지 만들면서 김일성이 타도제국주의동맹(ㅌ·ㄷ)을 이 시기 결성했다는 날조를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이전에 김일성은 김형직이 죽기 전인 26년 3월에 화성의숙에 입학하고 부친이 죽은 후인 6월쯤에 중퇴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이때문에 26년 10월17일에 그가 화성의숙에서 ㅌ ㄷ(트 드)을 결성했다는 북한측의 주장은 그 재학기간 등으로 있을 수가 없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무송소학교 시절 김일성이 살부회와 관련이 있었고 김형직이 죽은후 민족주의자들이 그를 화성의숙에 보냈다는 증언이 나온 이상 이 문제는 새로 재고할 점이 생기게 되었다. ㅌ ㄷ이란 북한에서는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되는 참다운 공산주의 혁명조직」이라고 선전되고 있다.1925년에 서울에서 결성된 조선공산당은 한갓 「종파」에 지나지 않고 김일성이 만주의 벽지인 화전현 관가에서 「결성」한 ㅌ ㄷ만이 진정한 공산조직이라는 주장이다.이 주장은 1968년에 발간된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부터 나타나 그후는 조선노동당의 조직적 전통은 그 뿌리가 이 ㅌ ㄷ에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김일성이 26년 6월부터 화성의숙에 전학하였고 그후 몇개월 이 학교에 적을 두고 있었다면 그 실태는 어떻든지 간에 적어도 그의 재학기간에 이러한 조직이 생겨날 가능성 자체는 부인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가령 김일성의 화성의숙 재학기간이 이렇다 할지라도 그가 ㅌ ㄷ을 결성한 일이란 여전히 있을 수가 없다. 백보 양보하여 그가 김시우 집에서 「공산주의 서적」을 읽고 학교 교실에서 「사회주의」를 주장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화성의숙에서 그가 ㅌ ㄷ을 조직할 여건으로는 될수 없다. ○상식선서 납득안가 그 이유로는 우선 사람을 지도하거나 어떤 정치단체를 만들기에는 그의 나이가 너무 어렸다는 점을 들 수 있다.당시 15세였던 그는 이때 나이가 평균 20살 정도인 학생들과 같이 생활을 하고 있었다.장유의 서열의식이 철저했던 당시 30명이나 되는 이 청년들이 고립된 일개 소년에 불과한 김일성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따를 리는 만무하다. 다음으로 그 이전에는 면식도 없었던 이러한 학생들과 단 4개월 정도 있었을 뿐인 그가 이 기간에 ㅌ ㄷ이란 정치비밀결사에 가입하는 「동지」들을 규합할 수 있었다는 말은 객관적으로는 사람을 납득시키지 못할 것이다. 이런 점으로 보아 ㅌ ㄷ의 결성이란 있을 수가 없다. ①「세기와 더불어1」160면 ②「세기와 더불어」154면 ③평전 121면 이하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32)

    ◎소년시절:13/마르크스·레닌서적 탐독설/「자본론」 중국어판 30년에 첫 출간됐는데/“26년 15살때 이미 읽어치웠다” 억지선전/최근들어 “공산당선언만 봤다” 다소 후퇴 김일성이 화성의숙에서 느꼈다는 마지막 세번째의 환멸은 다음과 같다. (ㄷ)민족주의 운동… 상해임시정부의 인사들은 「자치파」니 「독립파」니 하여 서로 치열한 감투싸움이나 세력다툼을 하고 있었고 독립군은 군자금이나 거두며 돌아다녔다.임시정부는 미국등에 대하여 비굴한 「독립청원외교」를 벌이고 있었다. ○“임정인사 세다툼” 적지않은 자산계급출신 운동가들이 「애국지사」로부터 일제의 앞잡이로,민족개량주의자로 굴러 떨어졌다.그들은 「민족개량」「실력양성」의 보자기를 쓰고 「계급협조」「대동단결」「민족자치」를 떠들었다. 이때 김일성은 화성의숙에서는 불가능하였으므로 김시우 집에서 마르크스·레닌의 서적을 읽었다.그리하여 청년들이 찾아올 때 이들에게 새 사조와 소련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착취와 압박이 없는 사회를 선전하였다. 이중 세력다툼이니 군자금 징수니,변절이니,타락이니 하는 것은 김일성이 민족주의를 비판할때 언제나 사용하는 딱지들인데 이러한 단어들은 앞으로 연구할 기회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그가 「김시우 집에서 마르크스·레닌의 서적을 읽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문제를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김시우란 임강시대에 백산무사단원으로서 김형직과 관계를 맺은 우익인사인데 김일성은 그로부터 「좌익서적」을 제공받은 것으로 허구를 꾸미고 있다. 화성의숙시대 김일성이 김시우 집에서 공산주의 서적을 읽었다는 선전은 1978년에 발간된 「불멸의 자욱을 따라」부터 시작되었다.그러나 이 책은 그가 「완고한 민족주의자들을 멀리하고 혁명적 출판물들을 많이 탐독하였다」고 썼을 뿐,그가 무슨 책을 읽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런데 82년에 나온 그의 전기에서는 놀랍게도 그가 이 시절 「공산당선언」과 「자본론」「임금노동과 자본」을 읽었다고 주장하였다. ○민족주의자 멀리해 여담이지만 필자는 대학생시절 자본론을 사 보았었다.그러나 마르크스의 문장이 너무 길어서 의미를 파악하는데 애를 먹고 몇 페이지 안가서 읽는 것을 포기하였다.또 최근 오길남박사에 물어 보았더니 『자본론은 독일의 대학교수들도 읽는데 1년 이상 걸릴 정도로 어려운 서적』이라고 하였다.이런 책을 북한에서는 15살짜리 김일성이 읽어치웠다고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딴데 있다.김시우의 집에 이러한 서적이 있었더라면 그래도 우리는 이것을 「과대선전」정도로 볼 수가 있다.하지만 이러한 책들은 26년 당시,만주의 오지인 화전현 관가에는 있을 리가 없었다. 일본경찰이 1925∼26년에 동남만에서 압수한 「불온문서」를 보면 그 중 1백권 이상의 것은 「선봉」「거화」「전만동포에게 호소함」「전만혁명동포에게」「노동기념선포문」「노동보」「선포문」「불온문서원고」「국제청년데이」「혁명」「농보」「농민회발기준비서」가 그 전부였다. 모두 팸플릿이나 신문에 지나지 않았고 학술서적이란 없었다. 또 김시우의 집에는 마르크스·레닌의 서적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도없었다. ①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은 1929년 초에 육문중학교에 부임한 김일성의 스승 상월이 중국에서 갈림에 가져온 가능성이 있다.그러나 이 책이 길림보다 훨씬 낙후한 벽지인 화전현 관가에 그보다 3년이나 이전에 들어올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②「자본론」은 중국에서는 겨우 1930년에 그 제1권 제1분책의 제3장까지가 진계수 등의 번역으로 상해에서 출판되었다.또 그 전역본은 38년이 되어야 나오게 된다.26년에는 읽어야 할 책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창덕학교 5학년 수준인 그의 일본어로는 일본어 번역판도 읽지 못할 것이다. ③마르크스의 「임노동과 자본」을 일본에서 대중이 볼 수 있게 된 것은 1928년이므로 이 책도 중국에서는 출판이 상당히 늦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이 북한에서는 중국말도 일본말도 잘 모르는 소학교 중퇴생인 김일성이 대학생도 익히 알아보지 못하는 마르크스·레닌의 서적들을,이러한 책이 번역 출판되기도 전에 「읽었다」는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해괴한 주장을 85·87년 양년에낸 「김일성 평전」에서 조목조목 분석비판하였다.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나온 회고록에서는 화성의숙 시대에 「공산당 선언」단 한가지만을 김일성이 읽은 것으로 하고 있다.나머지 책은 길림시대에 읽은 것으로 약간 그 시기를 늦추고 있는데 이렇게 하여도 서로 상충된 거짓말들을 조절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상충된 거짓말 여전 1925∼26년에 걸쳐서 동남만에서 1∼2점 발견되어 일본경찰이 압수한 공산주의 선전 팸플릿 중에 「공산당의 선언」이란 것이 있다.그러나 소련에서 출판된 이 팸플릿이 공산주의의 침투가 늦었던 화전현에,그것도 우익이었던 김시우의 집에 날아 들어 올 가능성이란 역시 매우 희박할 것이다. ①「세기와 더불어1」154∼157면 ②「불멸의 자욱을 따라1」202면 ③「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전기1」31·32면 ④5·6·8 평전 127∼134면 ⑦하상조번역 「임노동과 자본」암파문고판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31)

    ◎소년시절:12/화성의숙서의 불만/40년대까지 신식훈련 못받았으면서/“이청천 등 낡은 군사교육에 환멸” 기술/겨우 3개월 배우고 트집 위한 트집 김일성은 화성의숙에 들어갈 때 팔도구 시절부터의 김형직의 친구 김시우가 데려간 모양이다.그는 당시 화전현 관가에서 정의부 화전총관소 총관으로 있었고 영풍정미소를 경영하여 정의부의 각 기관에 재정원조도 하고 있었다. ○기숙사에서 생활 그 다음 날부터 김일성은 화성의숙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였다.학급에서는 몇몇 친구가 생겼는데 그 하나는 훗날 김일성이 중공계 유격대에 있을 때 그에게 일제에 투항할 것을 권고하러 온 박차석이었고 다른 하나는 1930년 무렵까지 언제나 그의 선배였던 최창걸이었다.그는 이밖에 김리갑,계영춘,이제우,박근원,강병선,김원우 등과도 알게 되었다 한다. 회고록에서 그는 화성의숙에 2주일 남짓 있은 후부터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학과목은 김일성에게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그런데 의숙생들은 특히 수학문제로 그를 괴롭혔다.4칙계산도 잘못하는 청년들이 숙제가 나올 때마다 찾아왔다.그런데 군사훈련 때는 거꾸로 의숙생들이 김일성을 도와주는 형편이었다. 의숙생과 김일성 사이에는 학습과 훈련 면에서 서로 정반대의 실력 차이가 있었다.자라난 환경과 사회생활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지만 김일성에게는 특히 무송소학교 시절부터의 불량한 사고방식과 비정상적인 학교생활 습성이 남아 있었다.이런 상황이 그의 당시 감수성으로는 「환멸」이었던 모양이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에게 화성의숙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는 1960년대에 밝히게 되었다.그러나 이 시기는 그가 26년 3월에 입학한 것같이 서술했던 것을 「26년 6월 전학」으로 바꾸어 나가는 복잡한 조작이 잇따랐다. 또 이 때는 이른바 「타도제국주의동맹」(ㅌ·ㄷ)을 날조하는데 바빠서 그가 화성의숙에서 어떤 학창생활을 지냈는가에 대해서는 거의 설명할 겨를이 없었다. ○“학생 지지받았다” 전기작가들이 화성의숙 생활문제를 쓰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후반부터이다.그들은 김일성이 이 학교에서 어떻게불만을 가지게 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쓰게 되었다.「불멸의 자욱을 따라」가 그 대표적인 것인데 필자는 이 책을 분석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회고록에서는 그 「불만」이 더욱 체계적으로 설명되어 있다.그것을 3개로 나누어 그중 2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군사훈련…실탄사격에 쓸 탄알이 없어서 늘 나무총이나 가지고 훈련했다.아래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기도 했다.또 독립군 대원들이 와서 안중근 장인환 강우규 이재명 나석주 같은 열사들이 쓴 개인 테러를 무훈담이라고 들려주었다. 김일성은 이러한 구한국 냄새가 나는 낡은 군사훈련이나 투쟁방법으로는 도저히 왜놈들을 타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상…어떤 학생은 왕조정치에 미련을 가져 봉건왕조를 다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또 어떤 학생은 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하여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어느 시간에 자본주의 발전에 대한 강의와 토론이 있었다. 이때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선생의 강의와 학생들의 토론에 대항하여 김일성은 자본주의나 봉건주의는 다같이 돈 많은 놈들이 근로대중을 착취하여 호강하는 사회다.자본주의나 봉건주의의 병집을 잘 보아야 한다.조선을 독립시킨 후는 조국땅에 착취와 압박이 없고 근로대중이 잘 사는 사회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여 학생들의 지지를 받았다 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필자의 분석은 다음과 같다. ㈀당시 정의부에는 일본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이청천 그리고 군사훈련을 체육이라 불러서 실시한 평양 대성학교 졸업생 오동진 등이 간부였고 한일합방 후 이시영 이상용 등이 남만주에 세운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도 많았다.그들은 신식 군사지식과 훈련방법도 알고 있었다.나무총이나 모래주머니·테러리즘 같은 것도 결코 구식은 아닐 것이다. 한편 김일성은 화성의숙 초창기에 군사학을 모르는 초년생으로 있었는데 겨우 3개월 정도 밖에 재학하지 않았다.따라서 이러한 불평은 트집을 위한 트집일 뿐이다.화성의숙의 군사학을 구식이라고 하지만 김일성에게는 구식이 아닌 신식 군사훈련을 받을 기회는 1940년대까지 주어진 일이 없었다. ㈁당시 만주의 독립운동가 속에는 이씨왕조를 다시 일으키려는 전덕원 같은 복벽파가 있었고 정의부 청년들에게도 그 영향이 있었다.또 미국식 민주주의를 선호하는 안창호 계통의 인물들과 학생들도 있었다. ○요주의학생 신분 김일성은 이런 민족주의 군사학교에 자의가 아닌 타의로 「전학」하였다.박만포선생에 따르면 그는 전학 이전에 이미 살부회에 들어가고 있었다.부친이라도 부르주아 같으면 타도한다는 「이론」의 소유자는 화성의숙에서는 요주의 학생이게 마련인데 그는 「전기」에서 사실을 거꾸로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①「세기와 더불어1」140∼148면 ②같은 책 149면 ③평전 74∼75면 ④「불멸의 자욱을 따라」전4권 1978년 당간 ⑤「세기와 더불어Ⅰ」150∼154면
  • 근현대인물 재조명 된다/창비,현대인물연구시리즈 기획

    ◎1차 전봉준·김원봉연구 펴내/조봉암·홍명희·여운형도 계획 그동안 식민사관의 영향으로 혹은 이데올로기적 편향 때문에 소홀히 다루어져온 한국 근현대사의 인물들에 관한 새로운 조명이 시도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창작과 비평사가 새롭게 기획한 현대인물연구시리즈의 제1·2권으로 최근 발간한 「전봉준과 갑오농민전쟁」(우윤)과 「김원봉연구」(염인호)는 주로 문헌자료에 의존했던 기존의 평전들과는 달리 학문적으로 전공한 젊은 학자들이 직접 현지답사와 인터뷰등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한국현대인물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작업으로 평가되고 있다.이와함께 진보당의 조봉암,일제시대 노동운동가 이재유,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건국준비위원회를 이끈 민족지도자 여운형등에 관한 연구서도 곧 선보일 예정이다.이 작업은 역사인물의 체계적 연구를 통해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고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봉준의 연구에서는 갑오농민전쟁의 원인에 대해 단순히 삼정문란이나 지배층의착취,그리고 양반·토호들의 횡포에만 초점을 맞춘 종래의 시각에서 벗어나 조선후기의 사회·경제적 변화와 이를 토대로한 사회변동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일어난 것이라는 일관된 관점을 유지했다.특히 주도면밀하고 조직적인 운동전개로 근대 민중운동 역량의 일대폭발을 가져온 전봉준의 역할을 중요하게 다루었으며 그의 인간적 면모도 부각시켰다. 민족주의자 약산 김원봉의 연구는 그의 고난에 찬 투쟁사와 사상을 하나의 일관된 틀로 체계화한 국내최초의 연구서이다.그는 남한에서는 19 48년 월북했다는 이유로,북한에서는 민족해방운동사의 정통성을 만주의 항일무장투쟁에만 한정시키는 또다른 이데올로기적 제약으로 남북한 양쪽에서 배척당해 역사의 뒤켠에 매몰된 인물이었다.이 책에서는 그가 이끈 의열단·민족혁명당·인민공화당등의 활동을 다각적으로 구명,그가 민족독립을 최고의 가치로 삼은 민족주의자였으며 그러면서도 민중의 이익을 일관되게 추구한 진보주의자였음을 밝혀내고 있다.
  • 이달의 독립운동가 나석주열사/다시 새기는 그 충절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착취앞장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 투척/백범 지도받아 상해에서 군자금모집 활동/민족혼 일깨우려 단신으로 서울잠입,장거/“2천만 민중이여 분투하라” 일경과 총격전끝 장렬히 자결 선열들의 애국·애족사상을 기리기 위해 서울신문사와 국가보훈처가 함께 마련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나석주열사가 선정됐다.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나열사는 일제 착취의 간성인 동양탁식회사에 폭탄을 투척,제국주의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인물.나열사의 당시 의거는 일제 식민통치가 경제수탈에 집중될 때 발생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따라서 선생의 의거는 의열투쟁이라는 단순한 사건 차원을 넘어,당시 민족운동으로 승화된 농민·노동운동 차원에서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정부는 지난 62년 3·1절에 열사의 공적을 기리어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2천만 민중아,분투하여 쉬지말라!』는 말을 남기고 숨져간 나열사의 생을 되새긴다. 1890년.황해도 재령군 북률면 진초리. 이곳은 당시 애국계몽운동단체인 신민회의 서북지방 책임자인 백범 김구가 설립한 양산학교가 있었다. 백범과 나열사의 운명적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아버지 나병헌과 어머니 김해금씨 사이의 외아들 석주가 이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서당에서 한문을 배운 소년 석주는 양산학교를 거치며,몸과 마음이 굳센 독립투사로 다져진다. ○황해도 재령 출생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이 지방까지 번지면서부터 청년이 된 석주는 「고기가 물을 만난」듯,우리의 독립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3월 하순,어느날.사리원 부호 최병항의 집에 6인조 권총강도단이 들었다.이들은 모두 복면을 하고 있었다. 강도들은 답지않게 모두 최부자에게 엎드려 절을 했다.최부자도 그제서야 좌정을 하고 냉정을 찾았다.그때 한 복면이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저희들은 일반강도가 아니라 조국의 독립을 꾀하기 위해 군자금을 마련하러 온 젊은이들입니다』 말뜻을 알아차린 최부자는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오히려 6인조 강도들이 불안한 눈치를 보였다. 『너,석주로구나! 그 복면을 쓰고 있을 필요가 없다.그래,춘부장 어른께서도 편안하신가?』 깜짝놀란 석주는 복면을 벗고 최부자 앞에 조아렸다.나머지 다섯명도 얼굴을 드러냈다.김덕영 최호준 최세욱 박정손 이시태등이 그들이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이 이것밖에 없으니 유용하게 쓰도록 하게나!』 최부자가 「강도들」에게 내놓은 돈은 무려 6백30원이었다.이것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거액이었다. 6인조는 크게 감동,엎드려 큰 절을 드린 다음,인사를 올렸다. 『저희들이 떠나고나면 즉시 위경에 연락하여 권총강도를 당했다고 신고하십시오.왜경이 눈치 채면 봉변을 당하십니다』 ○6인조 강도 사건 6인조 강도단은 4월에도 다시 안악부호들인 김응석 원형락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는등 그 활동이 신출귀몰하였다. 수사망이 좁혀들기 시작하자 나석주는 중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1920년 11월 22일이었다.「6인조 연쇄강도사건」은 영구미제로 남았다. 나석주는 상해에서 은사인 백범을 다시 만난다.당시 백범은 임시정부 경무국장. 이때부터 나석주는 스승의 지도를 받으며 독립운동을 계속하게 된다.임정 경무원·의정원 근무와 함께 한인애국단·의렬단 가입으로 폭파활동과 군자금 모집활동등이 전개되었다. 이동휘가 세운 무관학교등에선 전술전략을 연마했다. 1926년.나석주의 생애에 가장 중요한 일이 닥쳐오기 시작했다.그것은 저명한 독립운동가인 김창숙과의 만남이었다. 그해 5월 김창숙과 백범은 국내외 정세를 토론하며 독립운동의 방향을 함께 모색했다. 이들 두 거두는 「지금 무엇인가 횃불을 올리지 않으면 잠자고 있는 민족혼을 영원히 깨우쳐주지 못한다.이때에 위정기관과 친일부호를 박멸하여 국내동포의 잠자는 정신을 일깨워야한다」는 방략에 일치를 보았다. 이를 실행할 인물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일이었다.김구가 먼저 제의를 했다. 『나와 친한 결사대원으로 나석주 이화익과 같은 용감한 청년이 지금 천진에 있다.또 그곳에는 의열단원도 많으니 무기를 구입,천진으로 가서 기회를 보는 것이 좋겠다』김창숙은 두명의 조선청년을 만났다.그리고 계획을 설명했다.둘은 거침없이 나섰다. 『우리들은 일찍이 한번 죽기로 결심했는데, 어찌 사양하겠습니까』 나석주로 결정이 되었다.이화익은 섭섭한 눈치를 숨기지 않았다.김창숙이 말했다. 『백범도 그대의 장도를 학수고대하고 있소.민족의 고혈을 빨고 있는 식산은행과 동양탁식회사가 그대의 손에 폭파되는 날 일제의 간담이 서늘할 것이며,잠자고 있는 조선의 민족혼이 불길처럼 다시 타오를 것이오.대의를 위한 무운을 비는 바이오』 「중국 산동성 출신.나이 35세.이름 마중덕」 1926년 12월 26일.인천항에 상륙한 이 중국인은 다름아닌 나석주였다.「마중덕」은 열차를 이용,진남포로 향했다. 고향을 떠날 때 한마디 이별의 말을 하지못한 부모님과 부인,그리고 아들·딸을 보고싶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귀향길에서 그는 「일제의 삼엄한 경계가 고향등지에 펼쳐져 있다」는 정보를 듣게된다. 나석주는 바로 발길을 서울로 돌렸다.피눈물이 흘렀다. 중국인 전용여관 「동춘전」.1926년 12월 28일.날씨는투명했으나,조국의 겨울바람은 차가웠다. 나석주는 아침밥을 든든하게 들었다.그리고 낮이 될 때까지 거리를 배회했다.오가는 동포들의 표정이 어두웠고,슬프게 느껴졌다. ○들리지않는 폭음 하오 2시5분.나석주는 식산은행으로 들어가 폭탄을 던졌다.그러나 굉음은 들리지 않았다.이게 웬일인가! 뒷벽 기둥에 던져진 폭탄은 불발이었다.절망적인 생각이 찰나처럼 스쳐지나갔다.폭탄을 입수할 때 시험을 하지 못한 점,6개월간의 보관기간중 뇌관에 녹이 슬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 회한으로 남겨졌다. 그러나 다행히 일인들이 눈치를 채지 못했다.나석주는 태연하게 정문을 나섰다. 『그렇다면,이젠 동탁이다!』 동탁으로 들어서면서부터 나석주는 기민하게 움직였다.1층에서 왜인 1명을 권총으로 사격하고,2층으로 뛰어올라가 또다른 왜인에게 사격한뒤 놀라 도망가는 토지개량부 간부들을 거꾸러뜨렸다. 그리고 기술과장실에 나머지 폭탄 1개를 힘껏 던졌다.쏜살같이 1층으로 뛰어내려오며 2명의 왜인들에게 총격을 가하고 거리로 나와 폭음을 기다렸다.그러나이게 또 웬일인가! 하늘이 무너져 내리듯,시야가 노랗게 변해갔다.황금정(지금의 을지로1가)쪽에서 달려온 경찰을 쏘아 쓰러뜨릴 때까지도 폭발음은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황금정2정목에 이르렀을 때에는 왜경들의 포위망이 완전히 좁혀졌다.나석주는 운집한 군중들을 향해 외쳤다. 『나는 조국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2천만 민중아,분투하여 쉬지말라!』 나석주는 자신의 가슴에 나머지 3발을 쏘았다.그것은 해방의 날을 준비하기 위한 장렬한 불꽃이었다. ◎역사적 평가/일 경제수탈에 맞선 농민의 아들 「나는 고향을 떠난지 6년여에 공연히 동서로 분주하면서 아무런 성공없이 지내왔으니 제일은 민주에 대한 죄인이요,제이는 가주에 대한 죄인」이라고 고향 동지인 최호준에게 1925년5월의 편지로 몸부림치던 나석주의사,그는 끝내 민족과 가족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1926년 12월28일 백주에 을지로(당시 황금정)네거리에서 자결 순국하였다. 나석주의사는 황해도 재령군 북률면 진초리에서 태어났는데 북률면은 재령강이 흐르는 나무리들(여물평)로서 원래는 조선왕실의 궁방전이 많았으나 일제가 점유하여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불하하여 9할의 면적을 동척회사가 차지하고 있었다.따라서 북률면민은 거의 동척회사의 소작농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나석주의사도 동척농장의 소작인 나병헌의 외아들로 자라났다. 그가 1926년12월28일 서울의 동양척식주식회사(지금 을지로입구 외환은행 본점자리)와 식산은행(지금 롯데백화점자리)에 수류탄을 던지고 또 동척 관계자 6명을 살상하고 거리로 뛰쳐나와 일제 경찰간부를 처단하고 자결 순국했는데 그때 나석주의사가 동척이나 식산은행을 표적했다는 것이 자기 가정의 처지로 봐서 우연이 아님을 알수 있다.그렇다고 가정 보복으로 국한된 일은 아니었다. 1926년은 일제 식민통치가 경제수탈에 집중되어 민족운동이 사회경제운동을 고조시키고 있던 때였다.당시 전국에 걸쳐 노동쟁의와 소작쟁의가 확산되던 가운데 특히 북률면 동척농장의 소작쟁의가 용천 불이농장의 소작쟁의를 부추기면서 사회운동이 권익운동과 더불어 일제 수탈기구에 대항한 독립운동으로 발전하고 있었다.그럴때 조선민족의 눈에 동척회사나 식산은행이 수탈 본산으로 잡혔던 것이다.그러므로 나석주의사의 의거는 의열투쟁만의 논리를 넘어 농민운동·노동운동을 포괄한 민족운동 총체적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1926년의 의열단은 광주에 있는 황보군관학교에 입교하고 있었다.즉 1919년 창단 이래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의 내용처럼 개인의 작탄활동(의열투쟁)을 전개하다가 이제 막 군사편대활동으로 방법을 바꾸고 있었다.그러니까 나석주의사의 의거는 의열단으로서 의열투쟁의 마지막을 장식한 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같이 나석주의사는 의열단과 유림단의 소망을 안고 순국했으며 농민운동과 노동운동을 대변하면서 우리 민족의 기개를 만천하에 과시하였다.그럼으로써 일본제국주의에는 철퇴를,세계에는 경종을 울렸고 우리 민족에게는 용기를 불러 일으킨 정의의 화신으로 청사에 빛나고 있다.
  • 대선 3대쟁점 핵심 총점검

    선거전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주요정당들의 치고 받는 성명전과 비난전도 가열되고 있다.이들 성명들은 주로 「색깔론」과 흑색선전,금권선거등을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다. ◎색깔논쟁/민주당의 전국연합과의 연대에 초점 민자당은 김대중후보와 인공기가 함께 그려진 홍보유인물은 폐기하도록 했지만 「전국연합」과의 연대를 문제삼아 김후보의 「색깔론」은 계속해서 제기한다는 방침이다. 정원식선거대책위원장은 이같은 방침에 따라 14일 성명서를 통해 『소위 정책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민주당과 손을 잡은 「전국연합」에 참여하고 있는 「전대협」은 북한에 대표를 파견하는등 김일성노선을 추종하는 주사파(주체사상파)들이 주도하는 단체』라면서 『이들의 불법적인 활동은 통일전선전략의 일환으로 김대중후보를 당선시킨다는 사전 각본에 의한 것』이라고 「색깔론」의 고삐를 더욱 죄고 있다. 정위원장은 『「전국연합」소속 대학생들이 각 대학과 지하철역 등 전국 곳곳에서 김영삼후보를 비방하는 선전물을 대량 배포하는 것은 물론 신문에 불법광고를 게재해 특정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어야 한다고 노골적인 불법선거운동을 자행하고 있다』면서 김대중후보와 「전국연합」과의 연대를 강조하고 『김대중후보는 이들의 불법활동을 묵인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손을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삼후보도 12일의 대구유세에서부터 김대중후보를 『김일성노선에 동조하고 있는 「전국연합」과 손을 잡은 후보』라고 지칭하고 『최근 북한은 평양방송을 통해 이 김영삼이를 낙선시키고 민주당후보를 당선시키라고 지령하고 있다』고 색깔론을 들고 나왔다. 또 찬조연사로 나서고 있는 김종필대표는 『색깔이 분명치 않은 사람』,김재순고문은 『김신조가 청와대를 습격했을 당시 향토예비군제를 반대한 사람』,정원식위원장은 남북회담수석대표 시절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5차례나 회담에 참석했지만 북한은 아직도 적화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등으로 북한과 김대중후보를 연결시키고 있다. 민주당의 김대중후보는 이에대해 14일의 유세에서 『김영삼후보가 스스로 30년 민주화동지라고 말하면서도 나를 용공으로 몰고 있는데 대해 비애와 절망을 느낀다』며 『김영삼후보는 대통령이 되기위해 야당에서 여당으로 변신하더니 이제 패색이 짙어지자 30년 우정마저 배신하고 있다』며 김영삼후보의 「변신」을 비난했다. 김후보는 『김영삼후보가 문제삼고 있는 「전국연합」의 인사들과는 김영삼후보 자신도 5공독재투쟁때 긴밀히 협력했고 6공에서도 3당합당전까지 그들과 협력했다』면서 『그들이 김영삼후보와 손을 잡을때는 괜찮고 나와 손잡으면 용공이라는 논리는 군사독재정권의 유물이며 김영삼후보는 이러한 발언을 취소하고 사과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김후보는 또 『이번 선거는 변절이냐 지조냐의 선택』이라고 전제,『김영삼후보는 군정종식을 외치다 군정에 들어갔고,여소야대를 국민의 위대한 결단이라고 했다가 3당합당후에는 「여소야대가 계속됐다면 헌정중단이 됐을 것」이라고 말하는등 신뢰성을 결여했다』고 주장했다. 박희태대변인은 그러나 이날 다시 성명을 내고 『청와대에 들어갈 사람은 푸른 색깔이어야 한다』면서 『김영삼후보가 색깔론을 완곡하게 몇번 표현했다고 해서 30년 우정을 배반했다고 치고 나오지만 김대중후보는 유세때마다 「대통령자질론」을 거론하면서 단골메뉴로 YS를 비난하고 입에 담지 못할 인신공격을 했다』며 「색깔론」을 계속해서 문제삼을 것임을 밝혔다. ◎흑색선전/“악성 비방 유인물 뿌린다” 삼각 비난전 민자당은 민주당과 「정책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손을 잡은 「전국연합」 소속대학생들이 지하철역등 전국 곳곳에서 김영삼후보를 비방하는 흑색선전물을 대량 배포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자당에 따르면 이 유인물에는 김영삼후보가 서울대를 졸업하지 못하고 중퇴했으며 여자관계추문이 있는 듯이 터무니 없는 허위사실을 날조,비방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민자당은 또 『국민당이 김영삼후보는 기업인들을 협박해 이권을 주겠다고 속여 돈을 우려내고 있다는 흑색선전을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최근 민자당이 폐기하기로 한 유인물이 대표적인 흑색선전이라는 주장이다.이 유인물에는 김대중후보가 전국연합의 깃발을 들고있는 가운데 확성기가 달려있는 인공기에서 「야당후보를 당선시켜 우리의 통일전선을 형성할 것이며…」라는 말이 흘러나오는 내용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국민당의 정주영후보도 이날 『이종찬의원이 반금세력에 합류한뒤 민자당의 악성루머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면서 『김영삼후보진영은 「정주영을 찍으면 김대중이가 당선된다」는 흑색선전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당은 또 성명을 통해 『간첩단 사건관련자들이 정부,민자·민주당에 상당수 있다』면서 『정부가 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민주당의 반발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정부와 민자당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으나 구체적인 물증은 제시하지 않았다. ◎금권선거/CY에 집중포화… 서로 “금품살포” 주장 금권선거시비는 역대 어느 선거에서건 관권개입문제와 함께 정부·여당을 공격하는 소재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양상이 사뭇 다르다. 금권선거공방을 주도하는 측은 제1당인 민자당이며 주공세대상은 국민당이다. 국민당은 과거 개념으로 보면 야당이다.그럼에도 우리나라 최대 재벌총수 출신이 후보및 대표를 맡고 있기에 출범부터 김권시비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 민자당은 선거초반 국민당이 막대한 자금동원능력과 현대조직을 이용,여권의 주된 표밭이랄 수 있는 중산층을 파고 들자 국민당의 김권선거양상을 집중 비난했다. 제3당인 국민당은 오히려 김권선거문제에 있어서는 수세에 몰린 셈이다. 이러한 가운데 현대중공업에서 국민당 선거자금지원을 위한 비자금을 조성했음이 경찰수사및 관계 직원의 양심선언으로 드러남에 따라 김권공방이 가열되기 시작했다. 현대기업 돈은 선거자금에 쓰지 않았다고 강변했던 국민당측의 주장이 옳지않음이 판명되면서 상승세를 타던 국민당 지지도가 꺾였다는게 선거관계자들의 분석이다.민자당의 선제공격이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정주영후보는 『비자금이 아니고 보유주식을 매각한 돈』이라고 변명했으나 합리적 타당성을 결여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민자당의 김영삼후보는 유세때마다 『돈으로 권력과 대통령을 사려는 것은 총칼로 권력을 쥐겠다는 쿠데타보다 더 나쁘다』면서 『이같은 더러운 버르장머리를 이번 선거를 통해 국민의 힘으로 반드시 뿌리뽑아 달라』고 김권선거 타파와 정경유착을 집중 공격했다. 민자당은 이와 함께 찬조연설 및 대변인 성명을 통해 정후보를 「근로자의 피땀으로 번 돈을 정치판에 뿌리는 정경유착의 표본」「고 박정희대통령의 음덕으로 돈번 사람」이라고 강력 비난했다. 민주당의 김대중후보도 『정경유착으로 재벌이 된 사람이 어떻게 중소기업을 살리고 경제정의를 실현할 수 있느냐』『노동자를 착취해 재벌이 된 후보』라고 정주영후보의 김권문제를 지적했다. 민주당은 그러나 국민당이 민자당 지지층을 잠식해 어부지리를 얻을 생각으로 『민자당도 김권선거를 시도하고 있는데 국민당만 몰아치는 것은 관권탄압』이라고 국민당편을 들기도 했다. 국민당도 『김영삼 민자당후보의 정치자금 조성경로도 조사해야 한다』고 나서 김권선거 공방은 관권시비에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선거가 종반에 들어서자 각 당은 상대방의 막판 금품살포 가능성을 제기하며 공방을 계속하고 있다. 민자당의 정원식선거대책위원장은 14일 회견을 갖고 『국민당이 오늘부터 현대조직을 이용,막대한 자금을 풀어 1인당 5만원이상의 현금이나 선물을 대대적으로 살포,매표를 자행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폭로했다. 국민당도 이에 맞서 민자당측이 이미 현금봉투돌리기를 시작했으며 이와 관련한 민자당원의 양심선언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 “금권”“탄압” 공방속 표잡기 치열(대선 유세현장 5일)

    ◎“중소기업 긴급경영안정조치 취할터”/김영삼/“선거만 하면 여당 찍는 농민 반성해야”/김대중/부산·경북지역 누비며 YS 흠집내기/정주영/“관권도 큰 문제”/이종찬/3당 모두 비판/박찬종 ○영화배우 대거 참가 ▷김영삼후보◁ 이날 인천유세를 시작으로 대도시유세에 돌입.인천시청 앞광장 유세에서는 이 지역의 부동표공략을 위해 김종필대표,이만섭고문등 당지도부와 인천지역 지구당위원장 전원이 참석.김후보는 『많은 청중이 모여 깊은 감명을 받았다.감사하다』라고 연설에 앞서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인사. 김후보는 『이곳은 6·25전쟁때 백척간두에 있던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유엔군이 상륙작전을 펼쳤던 곳』이라고 인천의 역사성을 강조한뒤 『인천시민은 국가안보에 대해 누구보다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색깔이 뚜렷한 사람을 좋아한다』고 민주당 김대중후보를 우회적으로 공격. 그는 또 이 지역이 중소기업의 집산지임을 감안,『오늘의 중소기업이 왜 이렇게 어렵게 됐느냐』고 반문한뒤 『이는 정부가 우리경제를 대기업 중심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라고 경제정책을 비판. 그는 이어 『우리나라 전체 은행대출액중에서 30대 대기업이 가져간 돈만 43%』라고 지적하고 『여러분의 지지로 내가 대통령이 되면 중소기업을 위해 긴급경영안정조치를 취하겠다』고 공약. 이날 인천유세에서 김종필대표도 『민주당은 성격이 의심스러운 세력과 연대하고,국민당은 10조원이상의 빚을 안고 있는 사람이 금리를 내려 연간 1조원이상의 이득을 보려한다』면서 『이 나라의 명운을 좌우할 책임은 김영삼후보가 져야한다』고 역설. 이날 유세에선 신영균 남궁원 장미희 선우용녀등 13명의 영화배우가 식전행사에 참가했으며 이덕화 코리아나 등이 여흥마당을 주도. 이에앞서 김후보는 이날 상오 강화유세를 마친뒤 인천 부평시장과 용현시장을 잇따라 방문하며 유권자들과 「맨투맨」식 접촉도 시도. 김후보는 또 아파트형 공단인 주안시범공업단지를 방문,세탁기 부품업체인 삼석전기 근로자를 격려하고 생산라인에서 직접 조립작업을 해보이는등 중소기업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표명. 김후보는 강화유세에서『지난번 발표된 남조선 노동당사건에서 보듯이 간첩들이 주로 이 강화를 통해 드나들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상기시키고 『사건발표직후 이곳 강화군민들이 궐기대회를 열어 우리손으로 간첩을 막아내자고 결의한 것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라며 강화군민의 안보의식을 고취하며 지지를 호소. ○한 전 연기군수 면회 ▷김대중후보◁ 이날 아침 KBS­TV 연설녹화를 마치고 헬기편으로 충북 단양군 영촌면 구인사를 찾은데 이어 조치원·대전을 돌며 3일간의 예정이었던 충남지역에서 마지막 표밭갈이. TV녹화때문에 시간에 쫓긴 김후보는 이날 구간마다 헬기를 타고 다녔는데 대전집회를 마치고도 헬기를 이용,대전교도소를 찾아 수감중인 한준수 전군수를 면회한 뒤 다시 헬기편으로 귀경. 구인사에서는 때마침 기도주간인 동안거주일을 맞아 기도를 올리던 신도들에게 『나는 비록 종교는 다르지만 집권하면 종교에 차별을 두지 않을 것이며 필요한 것이 있으면 종교발전에 적극 협력할 것』이라고 5분여동안 스피치. 조치원 유세에서는 『이곳은 한준수전군수의 양심선언으로 역사가 바뀐 곳』이라고 포문을 연 뒤 『의로운 일을 하고도 감옥에 가있는 한군수의 거룩한 희생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민자당정권을 종식시키자』고 주장. 김후보는 대전유세에서 『이번에 어떤 대통령을 뽑느냐에 따라 우리나라 장래가 결정될 것』이라면서 『전국적으로 민자당은 안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데 여러분은 어떠냐』며 우회적으로 지지를 유도. 김후보는 이어 『정치를 잘못하면 바꾸자고 하는 것이 선거』라며 선거존재론을 강조하고 『그러나 농민들은 크게 반성해야 하는데 선거만 하면 여당을 찍어 다른 사람까지 고생시키는 일은 이제는 끝내야 한다』며 농민을 질타.김후보는 『공무원의 정당가입금지는 국민의 참정권을 제약하는 것이며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면서 공무원의 정당가입허용,집권2년안에 공무원의 보수를 국영기업체 수준으로 인상할 것등을 공약으로 제시. ○초반부터 원색비난 ▷정주영후보◁ 충무·진해·마산·김해·부산 해운대등 부산·경남지역을 돌며 민자당후보 흠집내기에 주력. 정후보는 『YS는 평생 반대만 한 사람으로 자기 머리로는 안되니까 반대할 수 밖에 없다』고 초반부터 원색적으로 맹공. 정후보는 『YS는 대통령이 되면 고생할 것』이라며 『오히려 대통령이 되지 않는 편이 행복할 것』이라고 비아냥. 정후보의 이날 연설은 최고위원인 박철언의원이 이 지역의 친YS정서를 고려해 3당합당시 내각제약속 파기를 들어 YS를 비난하면서도 『YS의 민주화투쟁을 평가한다』『YS는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라며 되도록 경어를 써가며 인신공격을 자제한 것과는 대조. 한편 정후보는 이날 현대중공업 비자금의 국민당유입설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이나 해명없이 3당의 선거법위반 구속자수를 비교·나열하며 국민당에 대한 정부의 탄압만을 주장. ○충북지역 순회유세 ▷이종찬후보◁ 제천·충주·청주등 충북지역 순회유세에 나서 민자·국민 양당간의 김권선거공방을 겨냥,『오십보 백보』라며 싸잡아 공격. 이후보는 『최근 정부가 김권타락선거를 막겠다며 재벌정당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사찰을 실시해 집권당을 이롭게 하고 있다』면서 『재벌이 돈으로 권력을 사려하는 것도 문제지만 김권선거를 막겠다며 권력을 이용해 뒤늦게 세무사찰을 벌이는 것도 문제』라고 비난. ○“위대한 선택 해달라” ▷박찬종후보◁ 고향인 부산의 도심 곳곳에서 유세를 갖고 『불의를 참지못하는 정의의 도시 부산 시민들은 이번 대선에서 또하나의 위대한 선택을 할 것으로 믿는다』며 지지를 호소. 박후보는 특히 이곳이 YS의 본거지임을 의식한듯 『양금씨는 6월항쟁이전까지는 민주화의 지도자로서 역할을 해왔다』면서 『그러나 시대마다 지도자의 역할이 다른만큼 이번에는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가진 후보,3당야합으로 국민의 신의를 저버린 후보,국정전반에 대해 식견이 모자라는 후보,말을 수시로 바꿔 믿을 수 없는 후보는 모두 낙선시켜야 한다』고 주장. ○복수 노조허용 약속 ▷백기완후보◁ 이날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부천 인천 아산등을 돌며 유세를 갖고 정주영국민당후보에게 비난을 집중하면서 ▲민주·복수노조 허용 ▲총액임금 임금가이드라인·철폐 ▲고용보험·산재보상보험실시등의 노동공약을 제시. 백후보는 『정주영씨는 노동자들을 착취해 3조원이 넘는 재산을 축적해 놓고 적법한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고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재산을 사회에 출연하겠다는 정주영씨의 발언은 국민의 표를 얻으려는 장사꾼의 무책임한 공약일 뿐』이라고 비난.
  • 북은 M·L주의 버리지 않았다/장수련 통일연수원 교수(특별기고)

    ◎헌법서 용어삭제불구 곳곳에 주체사상으로 위장 최근 관계당국이 입수,공개한 개정 북한헌법은 지난 72년 12월27일 제정된 사회주의헌법 내용을 나름대로 손질한 것으로 보인다.개정 내용 가운데서 주목을 끄는 것은 두가지다.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용어를 삭제하고 주체사상을 미화한 것이 그 하나고 다분히 김정일헌법적 냄새를 풍기도록 만진 것이 다른 하나다. 그러나 북한이 헌법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용어를 버렸다해서 주체사상과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고리가 끊어진 것은 아니다. 북한 주체사상의 시원은 5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53년 스탈린사후의 개인숭배 반대운동과 56년 소련공산당 제20차당대회를 전후하여 태동된 중·소분쟁이 본격화되자 북한의 김일성은 이 와중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요된 중립주의 노선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여기서 출발한게 바로 주체사상이다.그후 갖가지 억지 의미가 부여되면서 주체사상은 김일성의 정적숙청과 주민 노동력 착취용으로,또 대남적화통일노선구축용으로 이용돼 왔다.최근 들어서는수령·당·인민대중의 관계를 「사회정치 생명체」개념으로 설명하면서 「수령뇌수론」까지 들고나와 김일성부자 우상화와 신격화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기도 하다.북한은 주체사상을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사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그러면서도 인민대중은 수령 김일성(김정일 포함)이 시키는대로 언동하는 사상이라는 식의 이율배반적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북한 개정헌법 제3조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혁명사상인 주체사상을 자기 활동의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고 규정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 곳곳에 사회주의·공산주의라는 용어와 내용을 숨겨놓고 있다.또 김일성부자는 소련과 동구 공산권붕괴 이후 자주 『사회주의·공산주의를 버리면 죽음뿐』이라고 강조하며 「우리식 사회주의」를 외쳐대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이 쓰고 있는 사회주의·공산주의란 용어는 김일성부자의 독창물일까? 당치도 않은 소리다.이들 용어와 개념은 마르크스가 창시한 유물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다.북한은 또 인민민주주의 독재라는 미명하에 공산당의 별칭인 노동당 4당독재만을 인정하고 있는데 이 역시 1국1당주의 원칙을 창안,확립한 레닌주의를 본뜬 것에 불과한 것이다. 주체사상의 모체가 마르크스·레닌주의인 이상 어떤 궤변적 수사를 늘어 놓더라도 북한은 결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이같은 맥락에서 주체사상은 후한 점수를 준다해도 김일성적 볼셰비즘에 지나지 않는다.그런데도 북한은 이 김일성적 볼셰비즘을 종교화단계로까지 끌어올리려는 작태까지 보이고 있다. 하기는 북한 권력주변의 아부족들이 한때 주체사상을 격상시켜 「김일성주의」로 부른 일도 있긴 하다.그러나 불행히도 이 조어의 수명은 단명했다.마르크스·레닌주의의 내용적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주체사상을 두고 「주의」운운 하자니 공산주의자들 심성으로도 버거웠던지 그들 스스로 구사를 기피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사회 일각에서 개정헌법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란 용어를 들어낸 표피적 변화만을 보고 북한이 대남적화혁명전략을 포기한 것으로 단정하는 낙관적 관측이늘어나고 있음을 본다.그러나 이같은 발상은 참으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왜냐하면 그들의 헌법을 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에는 아직도 그들 헌법을 지배하는 노동당규약이 엄존해 있고 당규약은 조선노동당이 마르크스·레닌주의당임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장수동
  • “세계 8대경제강국 가능”/김대중후보 관훈토론 일문일답

    ◎나만큼 용공문제 검증받은 사람없어/식량안보 차원에서 농민은 보호돼야 민주당의 김대중후보는 2일 하오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외의장에서 관훈클럽 초청 특별기자회견을 가졌다. 3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이날 특별회견에서는 이광훈 경향신문 논설위원실장,정종문 동아일보 수석논설위원,최청림 조선일보 편집국장대리,성병욱 중앙일보 논설주간,이성춘 한국일보 논설위원등이 대표질문을 했다. 이날 회견의 일문일답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국연합」측이 민주당이 집권하면 장관임명도 협의한다고 하는데 집권후의 거국내각이 「전국연합」과의 연립정부를 말하는 것인가. ▲정국연합과는 연립내각을 구성하지 않겠다.우리당이 발표한 정책중에서 「전국연합」의 의견과 일치한 것만 합의했다.그들이 주장하는 국가보안법 무조건 철폐·안기부의 무조건폐지등 5∼6개항에 대해서는 합의하지 않았다.정부구성은 우리가 독자적으로 구성하고 어떠한 연립정부 구성계획도 없다. 중도우파라는 정치노선도 추호의 변화가 없다. ­지난달 25일 전국연합과의합의가 처음 나왔을때 부인도 시인도 하지 않았는데. ▲수일전에 발표를 보고 협의연락을 맡은 김원기의원을 불러 경위를 들었다.그때 김의원이 『사실무근이다』『보도경위를 알아보고 조치하겠다』고 했다.김의원이 입장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 ­「전국연합」으로부터 대선에서의 지원을 기대하는지. ▲그분들의 주장이 우리당의 정책과 일치한다면 지지할 것으로 기대한다.그러나 그분들은 법에 선거운동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선거운동은 불가능한 것으로 이해된다. ­「전국연합」과 이런식의 대화는 선거용이거나 일시적인 방편이 아닌가. ▲13대국회에서 당시 평민연을 대거 영입했다.그사람들이 제도권 정치에 영입돼 우리나라 정치가 그만큼 안정됐다.14대때 민련을 영입했는데 열심히 일하고 있고 정국이 안정돼 정치가 건전해지는데 크게 기여했다.민주주의를 하면 5·6공의 인사들도 받아들인다는 입장에서 그분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정치에 도움이 된다. ­경제정책공약중 우리나라를 5년내 세계8대경제강국으로 끌어올리겠다고했는데 구체적인 청사진이 없다.우리의 기술·생산력·국민의식으로 보아 가능한지 의문이다. ▲가능하다고 본다.오늘날 8대강국은 스페인·덴마크·오스트리아등이 있는데 스페인을 제외하면 인구가 적어 강국이 되기 힘들다.우리나라의 9월말 현재 GNP상승률이 5.4%이지만 다음 5년동안 평균 7.8%까지 가능하다. ­북한에서 재야와 연합한 민주당을 지지하라고 연일 보도하고 있는데 그것은 김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자신들의 집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인지. ▲그들이 김대중이를 지지하라고 했다면 표가 떨어질 것이 분명하지 않느냐.유신때 남한의 학생들과 연대하라고 떠들어댔다.독재정권은 바로 이를 탄압구실로 삼았다.남쪽의 박정희정권 북한의 김일성이 다같이 정권에 악용했다. ­이근희사건이 터졌을때 사과를 해놓고 그뒤 신문광고에서는 『관련없다』고 했는데 대국민사과를 취소할 용의는. ▲이근희가 간첩이어서 사과한 것이 아니라 부주의로 물의를 일으켜 사과했다. ­정리된 반공관은. ▲공산주의는 독재하에 약자를 억압착취하는 등 사회적 부조리가 만연할 때 구세주처럼 보이기도 한다. 부정부패 독재가 없어지면 공산당이 있을 수 없다고 본다. 6·25 당시인 50∼53년 사이 남포동거리의 자유를 상기해보자.국가보안법이 없었는데도 공산당이 침투할 여지가 없었다. ­김일성에 대한 평가는. ▲일제때 싸운 것은 평가한다.그외는 평가의 여지가 없다.국민을 노예처럼 억압하고 자신을 신격화하는데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농어가부채탕감은 인기에 편승한 공약이 아닌가.생산성 향상을 통한 구조개선이 시급하다고 보는데. ▲보기에 따라 얼마든지 비판할 소지가 있다.그러나 농가빚은 매년 늘어나는데 갚을 길이 없다.갚으라고 하면 도망가버린다.탕감 안하면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농촌을 살리겠다는 결심만 있으면 어렵지만 돈 나올 데가 있다. ­그렇다면 도시근로자나 영세민의 부채도 탕감해주어야 형평에 맞는 것 아닌가. ▲농가부채와 도시영세민의 부채는 성격이 다르다.도시근로자의 부채는 생활비 때문에 생긴 것인 반면 농가부채는 생산과 관련된 것이다.어느나라가 생활비까지 갚아주나.농민문제는 새로운 각도로 보아야 한다.눈부신 변화 앞에서 농업은 보호하지 않으면 망할 수 밖에 없다.식량안보차원에서도 농민을 보호해야 한다. ­87년 대선에서 집권에 실패한 것은 야권 단일후보를 내지 못한데 있는데 중립내각으로 호기를 맞은 이번 대선에서 국민당의 정주영후보와 협상을 벌일 용의는. ▲87년 대선에서 나라도 양보하지 않은게 후회스럽다는 얘기를 여러번 말씀드린바 있다.86년 당시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가 서독 본에서 김대중씨가 사면·복권되면 출마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믿고 당에 다시 들어갔으나 결국 그약속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현시점에서 반민자당 단일후보는 2가지 점에서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첫째 현중립내각하에서는 민자당이 꼭 여당이라고 볼수없기 때문이다.또 정후보의 국민당은 민자당과 같은 뿌리의 2개의 정당이기 때문이다. 정후보는 그동안 현대재벌을 키워오는 과정에서 역대 군사정권과 밀착했을 뿐만 아니라 전경련 회장으로 오늘의 왜곡된 경제구조를 만드는데 크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지난 71년·87년 대선이 끝난뒤 선거결과에 불복했었는데 이번의 대권도전에 실패하면 어떻게 할것인가. ▲지금은 노태우대통령이 중립을 지키고 국민이 잘하고 있다.내가 무슨 염치로 부정하겠는가. ­대선승패에 관계없이 당권을 물려준다는 약속은 변함없는가. ▲변함없다. ­지난 88년 13대 국회등원시 국회사무처에 재산등록한뒤 2개월후에 공개된 김후보 부부의 재산 3억4천만원과 최근에 공개한 43억원과는 굉장한 차이가 있다.개인재산과 정치자금을 어떻게 구분하는가. ▲그때에는 땅에 대해서 평가를 하지 않고 집만 평가를 했기 때문에 오해가 있는 것 같다.대통령이 돼서 좋은 정치를 하고 싶은 욕심은 있으나 부자가 되려는 욕심은 없다.돈이 생기는대로 당과 정치에 썼기 때문에 개인재산은 없다.현금 5억원도 당으로 쓰는 것이고 개인살림으로 쓰는 것은 극히 일부 밖에 안된다. ­15대 총선에서 내각제수용 의사를 밝혔는데 장기집권 기도 또는 민자당내 민정계등 내각제선호세력을 끌어들여 정계개편을 노린다는 지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대통령제를 선호한다.그러나 정치인은 국민이 원하면 고려해야 한다.정부형태에 대해 국민심판이 있어야 한다. ­96년에 내각제를 한다면 퇴임이후 재집권 안할 것인가.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
  • 하와이 원주민 주권회복운동(세계의 사회면)

    ◎내년 미합병 1백돌 앞두고 전개/클린턴 대통령당선으로 더욱 고무/수십여개단체서 자치권획득 추진/“미서 분리하자” 일부주장엔 기득권층 반대 무력으로 빼앗긴 옛 주권을 되찾자는 원주민들의 주권회복 운동이 관광명소인 미국 하와이에서 일어나고있다. 토착민인 「카나카 마오리」인들이 미국에 의해 하와이왕국이 붕괴된지 1백주년이 되는 내년 1월 17일이 다가옴에따라 이같은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특히 이들은 빌 클린턴이 차기 미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더욱 고무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미국에 합병됐기 때문에 하와이인들은 인디언들과는 달리 법적으로 자치권을 가질 수 없다』고 반대해온 부시행정부와는 달리 민주당은 정강에서 자치권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방정부에 의해 아직도 유일하게 미국토착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이들 원주민들은 1백20만 하와이주 인구의 20%에 가까운 2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하와이가 미국에 합병되는 출발점이 된 것은 1893년 1월 17일.미국이 1백62명의 해병대를 보내릴리우카라니 여왕을 쫓아내고 독립적인 하와이왕조의 대를 끊어버린 것이다.그뒤 하와이는 1900년 미국에 합병됐고 1959년 미국정부는 하와이를 미국의 50번째 주로 편입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수난의 역사로 점철돼온 하와이 토착민들이 이같은 운동을 추진하고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과거 미국이 저지른 불법적인 행동에 대한 반감이 아직도 짙게 깔려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들 토착민들은 그들의 자랑스런 문화가 관광객들을 위한 상품으로 전락되고 있고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부유한 일본인들의 골프장으로 둔갑되고 있는데 대해 거부감과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오늘날 하와이 관광수입은 미연방정부의 두번째로 큰 수입원이 되고 있다. 현재 하와이 원주민들은 하와이를 완전 독립시키거나 자치권을 획득하는 두가지 흐름의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이같은 운동을 벌이기위해 조직된 단체는 수십개나 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하와이대학의 한 교수는 『대통령과 우리의 대표자가 동등한 입장에서 이들 문제를 직접 협상해야한다』면서 『미국이 과거 하와이에서 저지른 범죄를 재판할 계획도 갖고있다』고 말했다.또 호놀룰루에서 개업하고있는 엘리자베스 마틴변호사는 『나쁜 사람들이 정책을 결정하고 있다』면서 『미국인들은 우리를 착취하고 있고 모든 사람들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훌라춤을 추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중산층을 비롯한 상당수의 토착민들은 최근들어 하와이를 미국으로부터 분리시키자는 주장에는 반대하고있는 입장이다.사회보장제도등 이미 누리고있는 각종 혜택을 잃게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대신 이들은 토착민들이 스스로 정책을 결정하는 자치권을 부여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현재 하와이에서 이같은 운동을 가장 강력히 벌이고 있는 단체인 「칼라후이 하와이」는 단원제 의회와 선출된 재판관들로 구성되는 사법제도등을 갖추는 것등을 내용으로 하는 자치안을 이미 마련해 놓고있는 상태다. 이 단체 의장인 트래스크씨는 『모든 하와이인들은 마음속으로는 독립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분리돼버리면 토착민들에게 아무런도움도 되지못한다』면서 『우리의 목표는 분리가 아니라 경제적인 자립을 이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든 민족자존심으로 무장된 하와이 토착민들의 주권회복운동이 미국의 하와이침공 1백주년을 앞두고 감정적인 차원으로까지 치닫을 조짐을 보이고 있어 미연방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 독일/외국신부 매매 늘어 골치(세계의 사회면)

    ◎“독 여성 거칠다”… 동남아·중남미 중개사업 번창/결혼후 대부분 파경… 매춘부만 양산/“인신매매 수치”… 규제에 밀수 성행 독일여성들은 자립심이 강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기주장도 이에 못지않게 강하다.많은 독일남성들이 독일여성들에 대해 여성으로서의 부드러움을 잃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이같은 독일여성들에게 지친 독일남성들은 부드러운 외국여자들을 찾게된다.독일남성들이 외국신부들을 구해주는 우편주문제도에 큰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요즘 독일에서는 외국여성을 신부감으로 소개하는 우편주문 사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독일이 이룩해낸 경제적 부는 독일을 유럽최대의 경제대국으로 만들었다.한편 가난한 나라의 많은 여성들은 이같은 독일의 부를 동경해 독일로 오고 싶어한다.이같은 점들이 합쳐져 오늘날 독일의 외국신부들에 대한 우편주문이란 특이한 사업이 생겨났다. 독일남성들은 5천마르크(약 2백80만원)만 내면 외국신부를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일수 있다.카타로그를 보고 주문한 신부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새 신부로 바꿔달라고 요구할수도 있다. 그러나 외국신부에 대한 우편주문이란 결국 여성에 대한 인신매매에 지나지 않는다.특히 독일로 팔려오는 외국여성들은 대부분 경제사정이 어려운 동남아시아나 중남미·동구권출신이다.독일은 자신들의 부를 악용해 가난한 나라의 여성들을 수입,성의 노리개화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더구나 독일로 팔려온 외국여성들중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고 대다수가 기대에 어긋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상당수는 결국 매춘행위로까지 전락하고 마는 실정이다.오늘날 독일 매춘부의 70%가 외국여성들이란 통계가 이를 뒤받침해주고 있다. 따라서 독일정부는 이같은 외국여성의 수입을 근절시키기 위해 입국규제를 한층 강화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독일의 여성단체들도 외국신부 수입을 척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그러나 독일여성단체의 한 지도자는 독일과 외국과의 경제격차가 존재하는 한 외국신부들의 수입을 막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이들은 독일로 수입되는 외국신부들의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알수 없지만 그 수가 급격히 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입국심사 강화로 오히려 밀입국만 크게 늘어나게 됐다는 지적도 있다.독일로 들어오는 방법이 봉쇄된 외국여성들이 할수 없이 밀수업자들에게 자신들을 맡기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이들 외국여성들의 대부분은 독일어를 전혀 할수 없기 때문에 인간 밀수꾼들에게 철저히 착취당하고 있다.서류의 내용도 모르면서 밀수꾼들이 하라는대로 사인을 해 밀수꾼들에게 상당한 빚을 지거나 고생해 번돈을 몽땅 빼앗기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밀수된 여성들이 겪는 가장큰 문제는 그들의 법적 신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체류허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독일에 머물다가 적발되면 그즉시 본인의 비용부담으로 본국으로 송환된다.그러나 거머리같은 밀수꾼들은 이들이 자신들의 비리를 폭로할 것을 우려,추방된 뒤에도 이들을 괴롭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독일에서 매춘행위에 종사했던 여성들은 자신의과거가 부끄러워 가족들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아무튼 독일의 외국인 신부 매매는 독일의 부가 가져온 새로운 죄악이다.문명의 발전과 함께 번지고 있는 황금만능 풍조가 이같은 인신매매의 확산을 부추겼다고 할수 있다.요즘 독일의 외국신부매매 현상은 인간타락의 새로운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 새 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9)

    ◎김형직의 행적/세브란스의전 가짜 졸업증 내걸어/한의로 번 돈 일부 독립자금에 쓴듯/1925년 일제기록엔 「개전자」로 회고록에서는 이번에 처음으로 김형직이 어떻게 의학공부를 했으며 무면허 의료행위를 했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아버지는 병석에 있으면서도 책을 읽었다.한동안은 눈병을 잘 고친다는 왕고모부 김승현네 집에서 보양을 하며 감옥에서 시작한 의학공부를 하였다」. ○18년경 한방 공부 여기서 김일성은 부친이 감옥에 갔다고 써 있지만 필자는 이것은 믿을 수 없다고 전번에 지적하였다.그러나 김형직이 1918년경에 서당교사를 그만둘 생각을 가지고 한방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는 배운 것을 가지고 한방의를 시작할 때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행동을 한다.북한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선생께서는 평양에 있는 동지들에게 연락하여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졸업증을 구해다가 펼쳐놓고 환자들의 병을 보시었다」. 김일성은 자기 아버지가 가짜 의사였다고 북한에서 이렇게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중학교 2학년 중퇴생인 김형직은 무면허 서양의사가 되어 무지한 한인들을 기만하고 착취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무면허의사 시인 그는 이러한 수법으로 임강에서는 순천의원,팔도구에서는 광제의원이라는 간판을 걸고 무지무지하게 많은 돈을 벌었다. 25년 4월에 조사된 김형직에 관한 일제기록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팔도구,의자,김형직,삼십삼,배일,천원(자산을 말함­인용자),평남 평양출신,한학의 소양이 있다.대정8년 3월 조선독립 소요사건의 주모자였다가 관헌의 체포가 두려워서 동년 5월 대안으로 도주하고 당시 불령배(불녕배)의 오이를 잡고 있었으나 개전후 의사에 종사함」. 여기에는 25년 4월에 자산으로 일화 1천엔을 가지는 장백현 제일의 부자 김형직의 인적사항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한학에 소양이 있었다는 것은 그가 한방의로 돈을 벌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료이다. 또 일제는 김형직이 「개전」했다고 쓰고 있는데 이는 그의 정치활동이 일제의 눈에는 크게 보이지 않았다는 것으로 된다.광정단의 총무는 일종의 사무직이었고 그것도 비밀리에 맡았기 때문에 일제는 대수롭지 않게 보고 있었던 것이다. ○활동 주목 못받아 회고록에서 김일성은 오동진,강제하,김시우(김시우로도 쓴다)등이 김형직의 「동지」였다고 몇번이나 강조하고 있다.그런데 오동진은 대한통의부와 대한정의부의 재무부 위원장이었고 강제하는 정의부가 설립한 화성의숙의 재무부담당이었다.김시우도 1921년 당시 임강현에 1부로부터 5부까지 있었던 백산무사단의 제1부에서 역시 재무를 맡고 있었다. 김형직은 축재의 과정에서 독립자금 공급에는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 ①「세기와 더불어,1」34년 ②「불로리 혁명투사 김형직선생」1968년 당간.60면 ③평전 35면 ④평전 127면,한국독립사 357∼358면.
  • 북한 잡지,교양아닌 체제찬양기사 일색(오늘의 북한)

    ◎출판물 현황과 기능을 알아본다/모두 70여종… 당·정기구서 발행/근로자/당정책·노선 선전/천리마/노력착취에 활용/조선영화/충성심 강요 앞장/조선여성/군훈련 참가 유도 잡지는 대중교양의 수단으로서 그 나라 출판문화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게 하는 바로미터가 되고 있다.그러나 북한의 잡지는 성격및 구조 등 모든 면에서 전혀 다른 얼굴을 지니고 있다. 북한의 모든 언론이 그러하지만 잡지 역시 「혁명적 출판물」로서의 기능 수행을 1차 목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혁명군대가 무기를 가져야만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것처럼 혁명조직은 출판물과 같은 예리하고도 전투적인 사상적 무기를 가져야 대중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김일성의 말에서 출판문화에 대한 북한의 정책기조는 잘 나타난다. 김일성 우상화와 노동당의 유일사상 주입에 앞장 서고 있는 북한의 잡지는 그 매체의 특성상 선동보다는 선전에 주력하고 있다.따라서 북한의 잡지는 상업성이 철저히 배제된채 외형적으로는 모두 당·정 또는 그 산하 기관이나 단체에서 발행되는「기관잡지」라는 특성을 가지며 내용면에서는 시사성과 오락성이 도외시돼 잡지로서의 기능을 잃고 있다. 북한의 잡지는 ▲사회과학 ▲자연과학 ▲과학기술 ▲문학예술 ▲대외선전 ▲기타 등 크게 6가지 부류로 분류되고 있으며 현재 70여종이 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분류를 자본주의 사회의 기준으로 본다면 대중 종합잡지와 시사잡지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실제로 대중 종합잡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 스스로가 유일한 대중 교양잡지라고 소개하고 있는 「천리마」지 마저도 일반상식이나 교양에 관한 것보다는 체제찬양,통일문제 등을 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대개 사회과학부문잡지는 사회과학출판사에서,문예잡지는 문학예술종합출판사에서 간행되고 있는데 그가운데서 비교적 널리 읽혀지고 있는 잡지의 성격과 연혁은 다음과 같다. ■근로자=정치이론의 대표적 잡지로 지난 46년 10월 25일 당중앙위원회 기관지로 창간되어 현재까지 반월간 또는 월간으로 30만부씩 간행되고 있다.펴내는 곳은 노동당 출판사내의 근로자사이며 인쇄는 평양종합인쇄공장에서 맡고 있다.크기는 4×6배판,분량은 90페이지 내외이다.표지는 빨간색 바탕에 잡지의 이름인 「근로자」라는 글자가 청색으로 굵게 씌어 있으며 그위에는 「전세계 노동자들은 단결하라」는 구호가 적혀있다. 임무와 기능은 ▲당간부를 대상으로 수시로 제기되는 노동당의 시책과 그 관철을 위한 방향를 제시하고 ▲당의 노선과 정책을 꾸준히 선전하며 ▲김일성 유일사상 계획및 확립에 기여할 것 등이다.이에따라 이 이론지에는 당정책홍보와 집행을 위한 논설이 주로 게재되고 있는데 논설들은 편집국 논설,정치사상논설,혁명전통및 당건설논설 등의 이름으로 씌어지고 있다.또 이같은 논설외에도 김일성·김정일이 저술했다는 문헌도 게재되고 있다.지난 91년에 실린 김일성의 논설 「인민대중 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는 필승불패이다」와 「청년들은 당과 수령에게 끝없는 충실한 청년전위가 되자」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천리마=북한 유일의 대중교양잡지로지난 59년초 「천리마 운동」의 대중화를 목적으로 발행되기 시작했다. 지난달 현재 4백호까지 간행됐다. 임무와 기능은 ▲당의 노선과 정책,특히 수시로 제기되는 시책을 선전하며 그 관철을 위한 투쟁으로 인민들을 고무할 것 ▲인민들이 사회주의 경쟁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노력혁신 등을 일으키도록 추동할 것 등이다. 크기는 4×6배판,지질은 중질지,분량은 90페이지 내외이며 김일성·김정일생일과 관련한 특집기사등이 게재될 때는 20∼50페이지가 늘어나고 있다.천리마 운동에 근로대중을 적극적으로 동원하여 그들의 노동력을 최대한으로 짜내려는 노력착취 수단의 하나로 활용되고 있다. ■노동자=직업총동맹 중앙위원회의 기관지로 직업동맹출판사에서 발행한다.배포대상은 공장,기업소의 노동자 기술자사무원 등으로 이들에게 공업분야에 제기된 당의 시책을 선전하고 천리마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때문에 이 책의 내용은 당이 제시하는 과제의 전달과 그 완수를 위한 방도의 제시,그리고 그 실천을 위해 헌신하라는 촉구 등으로 일관되어 있다. ■조선영화=영화인동맹 기관지로 분량은 80페이지 내외이다.영화잡지라는 특성에 따라 비교적 많은 사진과 함께「우수영화」의 시나리오가 고정적으로 게재되고 있다.또 새 영화 소개및 영화 일반상식 등의 기사가 고정물로 다뤄지고 있다.영화인들의 사상교양 강화및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는 것이 주임무. ■조선문학=대표적인 월간 문학잡지로 작가동맹중앙위원회의 기관지이다.매월 연재소설 1∼2편,단편 4∼5편,시 20편,평론및 수필 1∼2편 정도가 실리고 있으며 분량은 4×6배판 80페이지 내외이다. 작가들에게 『당의 문예정책과 문학예술 분야에서 수시로 제기되는 당의 시책을 선전,그의 관철을 고무·추동하는 것』 등을 주된 임무로 하고 있다. ■조선여성=여성동맹 중앙위원회 기관지로 이 기관의 초급 간부들을 위해 조선여성사가 발행한다. 여성들에게 노동당의 노선과 정책을 선전하며 여성들의 직장 진출을 충동하는 것은 물론 노동적위대 훈련을 비롯한 군사훈련에 적극참여토록 유도하고 있다.다시 말해 북한여성들로 하여금 김일성과 노동당에 무조건 복종하고 충실하도록 예속화하기 위한 수단이며 여성들도 남성들과 똑같이 노동을 하며 군사훈련에도 적극 참가,유사시 전쟁도구로 이용할수 있도록 준비시키기 위한 선전물로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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