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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독부청사 철거의 역사적 의미/김정열 문화부장(데스크시각)

    수도 서울의 심장부에 오랫동안 버티고 있던 오욕의 상징물이 사라지게 됐다.그동안 철거와 보존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돼온 일제 총독부청사가 김영삼대통령의 결단에 따라 마침내 헐리게 된 것이다. 그것도 철거이후 이전복원이 아닌 완전 해체이다.민족의 숨통을 옥죄온 치욕의 조선총독부 건물이 경복궁의 정문을 가로막고 세워진지 근 70년만의 일이다. ○일제잔재 상징물 데라우치 마사타케(사내정의)총독과 야마가타 아리토모(산현유붕)정무총감등 조선총독부 고위관리들이 경복궁 근정문 앞뜰에서 흙을 한삽씩 파던지며 자축한 때가 1916년 7월10일.「조선총독부신영」계획을 수립한지 6년뒤,1926년 10월1일 준공식을 갖기 10년 전의 일이다.일제 식민통치의 총본산이자 일제 잔재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조선총독부 청사는 일제의 한반도 영구지배계획의 일환으로 이같이 태어났다. 연인원 50만명의 한국인 노동자들을 강제 동원해 지은 이 건물은 그 크기가 당시 영국의 인도총독부나 네덜란드의 보르네오총독부를 능가하는 4만7천평의 대지에 동서로2백42칸,남북으로 1백42칸의 규모. 제국주의의 위용을 과시 하기에 충분한 이 건물로 인해 조선왕조의 상징이던 홍례문을 비롯,강녕전·교태전·문태전과 금천의 석교며 수각등 귀중한 민족유산은 무참히 유린당해야 했다. 더구나 일제는 풍수지리설에 입각,경복궁내 근정전과 광화문 사이에 총독부 건물을 지어 민족정기를 끊고자 했음은 잘 알려진 일.서울의 주산인 북악산과 4괘중 주작의 위치인 남산을 잇는 지맥위에 산수의 교차가 이뤄지는 명당 자리에 왕궁을 짓누르는 고압적 건물을 지음으로써 민족사의 기맥을 차단하고 조선의 국맥까지 끊어 영원한 일제의 속국으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청산 국민적 합의 식민통치를 영구히 고착화 하려는 일제의 이러한 음모는 총독부청사의 중앙머리부분이 일왕의 왕관을 뜻하고 있을뿐 아니라 건물의 배치가 일본의 「일」자를 본뜨고 있는 데서도 잘 드러나 있다.또 북악산을 중심으로 총독부 건물 아래쪽에 위치한 경성부청(현 서울시청)은 부속건물과 연결해 보면 「본」자가 되며 총독부와 경성부청 두 건물의 위쪽에 위치한 북악산이 「대」자 모양 이어서 공중에서 보면 영락없는 「대일본」의 형상이라고 한다. 많은 학자들이 총독부 건물을 가리켜 일본인에게는 황도주의·대국주의를 고취 시키는 반면 한국인에게는 패배주의와 무력감및 열등감등 비교육적·반역사적 유물이 되어 있다고 개탄한 것은 바로 이러한 여러 요인에 기인한다. 더구나 식민잔재를 청산하자는 것이 국민적 합의의 도출임을 감안할때 착취와 억압,구금과 고문을 상징하는 총독부청사를 그대로 방치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로 지적돼왔다.혹자는 이번의 해체결정이 식민통치의 열등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무의미 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또 철거에 따른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는등 현실적인 경제여건을 들어 부정적 시각을 보이는 이도 있을 수 있다.그러나 이는 민족사 앞에 죄를 짓는 것에 다름 아니다.조선총독부는 우리 민족사 5천년의 도도한 흐름을 역류시키려는 의도로 지어진 대표적 상징물인 때문이다. 바로 이같은 치욕의 건물에 조상들의 예지 어린 문화유산의 정수를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사용한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노릇이었다.그것은 한마디로 민족문화에 대한 모독이었다. ○민족자존심 회복 일제잔재를 청산,민족의 정기를 새롭게 정립하고 얼룩진 민족사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그리고 정부가 추진하고있는 조선시대 정궁인 경복궁의 잃어버린 모습을 제대로 복원하기 위해서도 총독부청사의 해체는 불가피한 것이다.이제 그 결단이 내려졌다.잘못된 역사의 줄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 취해진 이 빛나는 성업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것이 학계의 시각이다.문민정부의 최대정책과제가 된 총독부철거가 가시화 될 경우 경복궁 복원은 물론 문화민족으로서의 긍지에 부합하는 새박물관 건립도 촉진될 것으로 기대된다.국혼확립의 의미를 새삼 반추해야 할 시점이다.
  • 영하원,내각신임안 가결/「마」 조약비준도 확실시/40표차로

    ◎메이저총리 정치적위기 모면 【런던 AP 연합 특약】 영국의 존 메이저 총리는 23일 하원에서 재신임을 얻으면서 유럽통합을 위한 마스트리히트조약에 대한 의회 지지를 획득했다. 하원(총6백51명)은 이날 보수당의 메이저 총리에 대한 신임투표를 통해 3백39대 2백99(과반수 3백26)로 신임 결정했다.또 이에앞서 실시된 야당인 노동당이 제안한 마스트리히트조약 영국비준에서의 사회분야 수용안에 대해 3백39대 3백1로 부결,메이저 정부의 사회분야조항 영국 제외 방침을 최종 확정시켰다. 이에따라 영국정부의 마스트리히트조약 비준 절차중 상·하원 지지과정은 마무리되었다.단지 개인이 제소,내주부터 고등법원에서 다룰 조약 비준절차의 재검토 과정만 남겨놓고 있다. 전날 영국하원은 유럽통합조약중 사회분야 조항을 영국에 적용하지 않는다는 보수당 정부의 정책과 관련,이 조항을 수용해야 한다는 야당안과 기존정책을 고수하자는 정부안을 모두 부결시켰었다.정국이 극도로 혼란에 빠진 가운데 메이저 총리는 즉각 내각신임투표 실시를 요구했었다.◎“집권유지” 당내 반대파도 가표/1년7개월 「비준논란」종지부(해설) 존 메이저 총리가 이끄는 영국 보수당정부가 구사일생으로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면서 유럽통합의 근간인 마스트리히트조약의 비준을 둘러싼 1년7개월에 걸친 지리한 논란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고 유럽통합대열에 막차로 동승했다.. 하원이 22일 표결에서 노동법과 사회보장법률 등 사회분야조항 예외를 인정하는 정부측 조약안과 이를 거부하는 노동당안을 동시에 부결시킴으로써 메이저총리는 내각신임투표를 조약비준과 연계시키는 승부수를 띄울 수밖에 없는 극한상황에 몰렸었다. 메이저총리는 EC의 노동비용이 미국이나 일본보다 20%나 높아 경쟁력면에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남자에게도 유급 육아휴가를 보장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사회조항을 도입하는 것은 제 무덤을 파는 격이라며 강력히 이의를 제기,지난 91년 조약체결 당시 영국의 사회분야조항 면제특권을 인정받은데 이어 이같은 내용으로 의회비준도 강행해왔다. 반면 노조를 지지기반으로 하는 노동당은 11개 EC회원국이모두 인정하는 노동자 권리헌장을 영국에만 적용시키지 않을 경우 영국을 노동착취국으로 전락시킬 것이라며 극력 반대했다. 6백51석의 하원에서 집권 보수당은 3백36석으로 과반수를 10석 초과한다.22일 표결에서 반란표를 던졌던 문제의 보수당내 유럽통합 반대파 23명도 보수당의 인기가 노동당 뿐 아니라 자유민주당에도 뒤지는 처지에서 의회해산,총선거,제3당 전락의 수순으로 이어질 것이 뻔한 내각불신임에 동조하기는 어려웠다.북아일랜드의 기독교계 울스터 통합파 소속의원 9명은 분란이 끊이지 않는 북아일랜드를 영국과 카톨릭 다수의 북아일랜드의 공동관리 아래 둘 계획인 노동당의 득세를 우려,보수당 편을 들었다. 영국고등법원이 지난 19일 이미 조약비준절차의 법률적 재검토를 명령한 상태여서 정식비준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큰 가닥은 다 잡힌 셈이다.그러나 지지율이 사상최저인 12%까지 떨어진 메이저총리의 국내정치위상에는 이번 승리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 더불어 살기/안경렬 역촌동성당 주임신부(굄돌)

    언젠가 교회사업에 관한 조언차 서울에 온 외국인의 말이다.「Theyareshootingeverydirection.Theyarekillingeachother?」 방향감각없이 마구 쏘아대어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우리 현실을 꼬집어 한 말이었다.2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해당되는 말일게다. 요즈음 공해에 관심이 높다.심각한 공해의 피해자인 우리 자신이 실은 공해의 주범들이기도 하다.서울바닥은 세상에서 제일 큰 재떨이다.하루 몇개비의 담배가 연기를 피우고 재와 꽁초로 버려질까.얼마나 많은 껌이 버려지나.그 연기 그 먼지를 우리가 또다시 마시지 않는가.물을 더럽히는게 사람들이 아니고 무엇인가. 홍릉갈비집은 저마다 원조이고 장충동족발집도 저마다 원조란다.외국에 진출하는 한국기업들끼리 치사할 정도의 제살깎기 덤핑을 한다던가.남북도 마찬가지다.우리가 왜 적이어야 하나.지역간,종교와 종단사이,노·사간 모두 이성을 찾아야 한다.어차피 더불어 살아야 할 사람들이다. 한 우화가 생각난다.사람의 사지백체가 음식을 배불리 먹기만 하고 일 안하는듯한 배를 거슬러 반란을 일으켰다.우리를 착취하고 부려먹기만 하는 배란 놈을 혼내주기 위해 눈은 음식을 보지도 말고,손은 음식을 입에 가져가지 말며,입은 받아들이지 말고,이는 씹지 말며….결과는 이상했다.배보다 먼저 힘 빠지고 죽을 지경인 것은 사지백체였다.사보타주를 풀고 모두 제 할일을 시작하자 생기가 돌아왔다.배도 저희들을 위해 일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진정한 우리의 적은 개인과 집단의 지나친 이기주의요,넓은 이웃과 협동하지 못함이요,공동체질서를 모름이요,경기규칙을 거스름이요,소탐대실의 얕은 꾀요,희생과 봉사를 마다함이다. 여기 우리에게 좋은 길을 가르친 분을 한분 소개하고 싶다.미국인 메리 가브리엘수녀다.지난 5월 그의 타계소식이 전해지자 한국신협운동의 고참들은 모두 그의 명복을 빌었다.그가 한국에서 시작한 신용협동운동이야말로 풍성한 결실을 맺고 있다.1400여 단위신협으로 발돋움하여 세계신협연합회의 일원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며 암울한 독재시대에 민주화운동의 밑거름이 되어 왔다. 사족이지만 북녘의 형제들이야말로 우선 이협동운동을 익혀야 한다.그들이 염려하는 악랄한(?)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지름길이다.자주·자유·자립 그리고 일인은 만인을 위해서,만인은 일인을 위한 연대와 협동의 공동체적 삶의 철학만이 북의 체제를 무리없이 변화시킬 것이다.형제끼리 아군끼리 겨냥하지 않도록 단단한 질서의 대도를 갖추어야 한다.
  • 중화보트피플(외언내언)

    미흑인작가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를 계기로 노예상의 만행이 세계적인 조명을 받은적이 있다.아프리카 원시림의 사냥터를 노리고 마을을 덮치며 벌이는 노예사냥에 전율을 느끼기도했었다.그렇게해서 미국으로 끌려간 흑인노예의 한사람이 「뿌리」의 주인공인 작가의 7대조 쿤타킨테였다. 지금도 뉴욕등 미동부에 가면 노예선의 유적을 볼수있다.뉴욕의 그 노예선유적 인근의 퀸스해변에 노예선아닌 밀항선이 좌초해 세계적인 뉴스가 되었다.흑인노예아닌 중국인 밀항자 3백여명을 태우고 인도양과 희망봉을 돌아 다시 대서양을 횡단하는 1백12일간의 긴 항해끝에 도착하려던 순간이었다. 개방과 개혁으로 국민감시와 통제가 완화되고있는 중국이다.이번뿐아니라 얼마전에도 수백명의 중국인이 태평양을 건너 샌프란시스코에 밀입항하려다 체포당했으며 뉴저지에선 57명의 중국인이 창고에 억류당해있다가 발각되기도 했다.작년 한해의 중국인 미국밀입국자는 10만명에 달한것으로 추산되고있다. 때문에 밀항희망자를 상대로 하는 「인간밀수」도 성행하고 있다.1인평균 3만5천달러(약 3천만원)의 몸값을 받는 이들은 홍콩 대만등지를 근거지로 노예사냥아닌 밀항자사냥을 하고있다.연간 30억달러규모의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무작정 실어 와서는 친척에게 팔거나 불법취업에 동원해 임금을 착취하기도 한다는 보도다. 아무튼 중국판 보트피플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아닌가 긴장하는 미국이다.미중수교당시 미국을 방문한 등소평이 중국의 인권개선을 요구하는 카터에게 중국인 몇억쯤 풀어놓으면 좋겠느냐고 반문한 적이 있었다.카터의 말문이 막혔었다는 에피소드다.10여억중 1억∼2억쯤 내보내면 미국은 어쩔것인지 생각해보았느냐는 가시돋친 응수였다.미국은 등의 그말을 비로소 실감하는 눈치다.중국의 천하대란으로 보트피플 홍수사태라도 터지면 정작 급한것은 미국보다 지근의 우리가 아닐지 더 걱정이다.
  • 6월 문화인물 원효대사/초기 불교 체계화 앞장선 민족사상가

    「부처님 오신날」인 28일 TV3사는 다큐멘터리 특선영화 드라마등 다양한 특집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KBS­1TV는 이날 상오 10시부터 조계사에서 봉행되는 봉축 법요식을 생중계하는 것을 비롯,현대화된 불교음악의 진수를 보여주는 「불교음악과의 만남」(상오 10시40분),다큐멘터리「법륭사­1천4백년만의 비밀」(하오 7시40분),특집드라마「솔바람 물결소리」(낮12시30분)등을 방송한다.KBS홀에서 열린 연주회 실황인 「불교음악과의 만남」에는 가수 우순실 김태곤,국악인 김성녀 김영림,불광사와 승가대 연합합창단등이 나와 「탑돌이」「보현 행원송」등 일반인들도 편안히 들을 수 있는 찬불가를 부른다.일본 불교문화의 뿌리를 추적한 다큐멘터리「법륭사…」은 일본 나라시 법륭사 학술조사 당시 발견됐던 삼존불 밑의 좌대그림을 컴퓨터그래픽으로 재현,고구려 무용총벽화와의 유사점을 규명해냄으로써 일본 불교가 백제뿐만 아니라 고구려의 영향도 받았다는 사실을 입증할 계획.재일교포 사학자 이진희씨가 리포터로 출연,상세한 설명을 곁들인다.한편 KBS­2TV에서는 석가의 일생을 그린 신영균 김지미 주연의 특선영화「석가모니」(상오 10시50분)를 방영한다. MBC­TV의 이번 석탄일 특집으로는 다큐멘터리 3편과 특선방화 1편이 준비돼 있다.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15일간의 촬영끝에 완성한 60분짜리 다큐「운문사」(하오 9시50분).지난 87년 승가대학으로 승격된뒤 현재 2백50여명의 학인 스님들이 도량을 닦고있는 국내 최대의 비구니 사찰인 경북 청도의 운문사를 찾아 그들의 꾸밈없는 삶의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새벽 3시부터 밤 9시까지 엄격하게 짜여진 비구니들의 치열한 구도행각을 밀착취재해 소개한다.「산사의 선식」(상오 8시50분)은 사찰음식이 갖고있는 고유한 특징과 영양학적 가치등을 검증함으로써 건강식으로의 발전가능성을 확인해보는 프로.전통의 맥이 단절되었거나 보존의 필요성이 있는 사찰음식을 직접 재현한다.또 국민의 70% 이상이 불교신자인 스리랑카의 문화와 생활방식등을 보여주는 다큐3부작「스리랑카」의 제1편「동양의 진주」가 상오 10시에 방송된다.승려 조신이 양반집 규수 달례를 만나 파계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안성기 황신혜 주연의 특선영화「꿈」(낮12시10분)도 볼거리이다. SBS­TV는 특집다큐「소쩍새 마을의 4계」(상오11시)를 방영한다.치악산 자락의 일명 「소쩍새 마을」에서 70명의 장애어린이와 부랑아,갈곳없는 노인들을 보살피며 자비행을 실천하고 있는 「엄마스님」 법신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이밖에 정지영 감독,최진영 김금용 주연의 방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하오 8시50분)가 시청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 외국인고용 사회정책적 접근을(사설)

    불법외국인근로자문제가 새삼 부각되고 있다.이경식부총리는3D업종(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업종)에서 일하는 불법외국인근로자들의 체류기간을 연장해달라는 중소기업계의 건의를 받고 이를 탄력적으로 검토,곧 최종방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외국인근로자 활용문제는 경제 하나만의 시각에서 다뤄질 사안이 아니다.전체 사회정책적 판단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고 본다.특히 우리는 아직 외국인근로자 문제에 대한 딱 부러진 기준이 없다는 점에서 이문제가 그때그때 편의에 따라 취급돼서는 혼란만 가중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현재 외국인 근로자가 합법적으로 국내에서 일할수 있는 유일한 창구는 산업기술연수 제도다.해외에 현지공장을 설립했거나 기술을 공여한 업체가 외국인을 국내에서 교육시킬수 있도록 최장 1년기한으로 업체당 50명이내로 제한되어있다. 엄격히 따진다면 이는 연수이지 취업의 개념은 아니다.그런데 제조업에만 종사하는 불법근로자가 2만3천명이고 이들은 6월말까지는 출국해야 한다.이들의 체류기간을 6개월더 연장해달라는 것이다. 3D업종의 중소업자들에게 있어서 이들의 존재는 필요할지 모른다.그러나 한편에서는 경기침체에 따라 국내 실업률이 급상승하고 국내 근로자들이 3D업종으로 회귀하는 사례가 늘어나 노동시장의 수급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이보다는 외국인 근로자 활용문제는 그들에 의한 범법행위의 증가추세,국내 정착기도등 외국인 관리상의 문제로 사회문제화되고 있다는 데서 대단히 신중한 접근이 있어야 한다. 3D업종의 인력난문제를 외국인 활용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단기간의 돌파구는 될지언정 근원적인 해결책은 아니다.더군다나 체류기간의 재연장이 자칫 합법적인 인정조치로 인식된다면 불법취업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신고된 불법체류자만 2만3천명이지,신고도 없고 통계상으로도 잘 잡히지 않은 불법체류자는 10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추산도 있다. 이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결코 적지않다. 꼭 필요하다면 제한적인 범위내에서 엄격한 기준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그래야 저임금에 의한 편법노동력 착취라는국제적 비판도 피할수 있다.국내 노동력의 수급변동에 따라 그 기준이 강화와 완화를 오락가락해서도 안된다. 불법체류자가 몇십만명에 이르렀을때의 뒤치다꺼리 보다는 다소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지금 단호하고도 명백한 입장마련이 있어야 할것이다.
  • 반재투쟁위한 연대강화 호소/중앙방송,노동절맞아 세계노동자에

    【내외】 북한은 1일 「국제노동자절」(5·1절)을 맞아 전세계 노동자들에게 반제자주투쟁을 위한 단결과 연대성을 강화할 것을 호소했다. 북한의 중앙방송은 이날 「노동계급의 정의의 위업 실현을 위하여」 제하의 논설을 통해 『인간에 의한 인간의 온갖 착취를 청산하고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새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전세계 노동계급이 내세운 투쟁목표라고 지적하면서 이같은 목표는 오직 사회주의하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방송은 이어 오늘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자들이 사회주의를 말살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으므로 전세계 노동계급이 제국주의자들에 대한 반대투쟁을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면서 『단결과 연대성 강화가 반제자주위업수행의 사활적 문제』라고 강조,전세계 노동자들에게 반제투쟁을 위한 단결강화를 호소했다. 한편 북한은 「5·1절」을 맞아 1일 총리 강성산,부주석 이종옥·박성철,외교부장 김영남,군총참모장 최광등 고위 당·정간부들을 각급 공장·기업소에 보내 노동자들과 함께 5·1절 기념모임을 갖도록 하는 한편 평양을 비롯한 각지서 다양한 예술공연을 가졌다고 북한방송들이 이날 보도했다.
  • 자본주의 사회는 “병영체제”/노동신문 사설통해 비난

    【내외】 북한은 27일 사회주의를 병영체제로 묘사하는 것은 악선전이라면서 자본주의 사회야말로 『지배와 예속,불평등의 썩어 빠진 사회』라고 비난했다. 북한은 이날 당기관지 노동신문에 게재한 논설을 통해 자본주의사회는 『인민대중의 자주성과 창조성을 유린하는 병영식사회』라고 주장하면서 정치적,경제적 문제점만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선전했다. 이 신문은 자본주의국가들의 다당제와 의회제도,선거 등을 싸잡아 이는 『근로대중에게 그 어떤 정치적 자유와 권리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독점자본가들의 정치적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 신문은 또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대중의 자주적 사상의식을 마비시키고 착취제도에 순종시키기 위해 『반동적이며 반인민적인 사상과 문화,썩어 빠진 부르주아 생활양식을 퍼트리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 정치인 TV출연 “방송문화에 새 활력”

    ◎소재 개방타고 토크쇼·드라마에도/현직장관·재야인사 나와 시청자 궁금증 해소 문민시대 개막과 함께 과거 방송출연이 금기시됐던 재야인물을 포함한 정치권인사들의 TV방송 출연이 쇄도,방송문화 전반에 새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 「방송소재의 개방화」추세와 맞물려 한층 가속화되고 있는 이들의 브라운관출연은 「정책성프로」는 물론 연예토크쇼,드라마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장르에 걸쳐 이뤄지고 있어 심심치 않은 화제를 낳고 있다. 이같은 「방송금기」영역의 타파는 방송 소프트웨어의 질적 확충이란 긍정적 측면이 강한 반면,TV가 정치인의 이미지홍보장화할 개연성도 높여줘 신중한 접근이 요구되고 있다. 정치인물 방송출연의 물꼬를 튼것은 SBS­TV의 「주병진쇼」.프로 초반 박희태 전법무부장관을 게스트로 부른 이래 한완상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이부영민주당최고위원,백기완씨등을 초대,정치인들에 대한 권위주의적 고정관념을 불식하는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MBC­TV도 지난달 코미디쇼「일요일 일요일밤에」에 황산성환경처장관이 출연한 것을 시발로 「인기」정치인 모셔오기 경쟁에 나섰다.다큐멘터리 「제3공화국」에 현존「정치성」인사들의 「비증언」을 삽입,드라마 소재의 해빙무드를 만끽하고 있는 MBC는 그 여세를 몰아 지난 26일 「인간시대」에서는 80년대 학생운동권의 상징적 인물인 허인회씨(30)의 삶을 밀착취재,소개함으로써 「달라진 세상」임을 실감케 했다. KBS 또한 홍두표사장 취임이후 「개혁프로그램」을 가시화하고 있다. 오는 5월6일 방영될 「TV손자병법」은 그 첫번째 시범작품.이인제노동부장관이 현직장관으로는 처음 TV드라마에 직접 출연,노·사·정의 화합된 모습을 보여준다.직장인의 갈등과 애환을 코믹터치로 다루는 이 극에서 이장관은 임금·성차별문제로 언쟁을 벌이다 노동부장관실을 찾는 이장수부장(오현경),유비과장(서인석)등에게 노동정책을 설명하고 과천 정부제2종합청사 앞에서 이들과 격의없는 얘기를 나누는 연기(?)를 보일 예정이다.「TV손자병법」팀은 앞으로 사회·직장문제등의 현안을 직접 들어본다는 취지에서 환경처,교통부장관등의 출연도 점차 추진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그러나 KBS쪽은 지난 15일 임수경양이 출연해 입북당시의 심정등을 밝히려 했던 KBS­2TV 「생방송! 전국은 지금」이 불방된데 이어 KBS­1TV 특집쇼프로「부부가요제」에 김영삼대통령부처 출연을 성급히 추진했다가 무산되는등 시행착오를 빚어 소위 정치권과 관련된 「아이디어상품」제작에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따르기도 한다. 이같은 방송흐름에 대해 방송가에선 『또다른 시청률경쟁의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는한 정치권인사들의 TV출연은 표현영역의 확대란 점에서 바람직한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최근 TV3사가 「부도덕 연예인」의 방송출연규제 명단을 확정한데 이은 또하나의 「방송 페레스트로이카」의 신호탄』이란 입장을 보이고 있다.
  • 불안한 교민사회/남미에 「반한움직임」 확산

    ◎“탈세·불법고용” 아르헨 언론서 첫 비판/한인업소 단속… 브라질서도 문제 제기/“차별 아니냐” 불만속 대사관선 “법준수” 집안 단속 아르헨티나의 한인교포사회가 불법체류 외국인의 고용비리와 비인간적 착취등과 관련,당국의 집중조사를 받고있는 가운데 브라질 상파울루의 한인교포사회안에서도 이와 비슷한 제3국출신 노동자고용 비리문제가 제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22일 전해졌다.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마찬가지로 4만여명의 한인교포가 주로 의류업에 종사하고 있는 상파울루 한인교포사회에서는 아직 제3국출신 불법체류노동자들의 고용비리문제가 본격적으로 표면화되고 있지는 않지만 이번 아르헨티나 한인교포사회 사태와 관련,현지언론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상파울루의 한인교포들이 고용하고있는 제3국노동자들은 주로 볼리비아 출신인 것으로 알려져있다.상파울루에서도 일단 현지언론이 한인사회의 고용비리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기 시작할 경우,아르헨티나에서 처럼 상당한 파급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에따라 상파울루주재 한국 총영사관측은 현지언론이 한인사회의 고용비리등에 대한 집중취재에 나설것에 대비,설득력있는 해명자료를 치밀하게 준비하는 등 대비책을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아르헨티나정부의 관계부처 합동조사반은 지난 20일 한인촌안의 교포의류공장및 식당,식품점등에 대해 집중적인 현장조사를 벌인데 이어 21일과 22일에도 한인촌에서 떨어져있는 의류도매및 소매상점가의 한인교포상점들을 대상으로 불법고용 실태및 탈세여부에 대한 조사를 계속했다. 아르헨티나주재 한국대사관측과 교민회는 22일 각기 발표한 담화문을 통해 모든 한인교포업소들이 현지관계법률을 엄격히 준수하고 작업환경과 종업원에 대한 처우를 합리적으로 개선해줄것 등을 촉구했다.
  • 「문민정부」 흠집내기 선전공세(오늘의 북한)

    ◎학생·근로자들에 반정·반민자투쟁 적극 부추겨/핵사찰 촉구·「팀」훈련 등 들어 격렬비난/“대사면조치 등도 국민 기만행위” 혹평/정통성 희석시켜 사회혼란 조장 책략 북한은 지난달 25일 출범한 김영삼정부에 대한 비난과 함께 청년,학생,근로자들에게는 반정부·반민자당 투쟁을 선동하는 상투적인 선전공세를 펴고 있다. 북한은 신정부가 진정한 문민정권이라면 민족·자주원칙을 지키고 군사파쇼체제를 청산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 지지 입장 철회,팀스피리트 훈련 중지,국가보안법 철폐,안기부·기무사 해체,양심수 전원 석방,이인모씨 송환등이 문민정권 여부를 가리는 시금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노동신문은 김영삼대통령 취임일인 지난달 25일 대통령 취임 사실에 대해서는 함구한채 김대통령이 취임 직전 미시사주간지 뉴스위크지와 가진 기자회견 내용을 격렬히 비난했다. 노동신문은 김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핵사찰이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이고 북한측이 IAEA의 특별사찰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대화와경제교류를 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은 『6공 집권자들의 사대망국적 정책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며 『흑백을 뒤집는 주제넘고 가소로운 일』운운의 저급한 표현을 써가며 반박했다. 평양방송도 이날 『신정부가 문민정치에 대해 요란스럽게 떠들고 있으나 파쇼정권을 감싸기 위한 기만광고에 지나지 않는다』고 혹평하면서 「파쇼정권」인 신정부에 대해 남한 주민들이 반대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논조를 폈다. 또 3·1절 74주 기념행사에서 조국통일민주주의 전선 서기국장 유호준은 보고를 통해 『남조선 정권이 진실로 문민정권이라 한다면 민족·자주의 원칙을 지키고 미국 일본으로부터의 예속에서 벗어나야 하며 낡은 군사파쇼체제를 청산해야 한다』면서 『방북 인사들을 포함한 모든 정치범들을 석방하고 이인모노인을 북반부로 돌려보낼 것』을 요구했다. 유호준은 이어 IAEA의 특별사찰 요구에 대한 남한정부 입장과 팀스피리트 훈련및 이인모씨 송환문제 등을 예로 들어 신정부를 격렬히 비난하면서 「남조선 통치배」,「김영삼」등 종래의 비방성 호칭을여전히 사용함으로써 신정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나타냈다. 이같은 신정부에 대한 비난은 새정부 출범 전부터 계속됐다.북한은 지난달 20일부터 매일 평양방송으로 김일성방송대학 교육강좌 「특강」프로그램을 내보내면서 새정부의 문민정치 표방을 『미제 식민지 지배의 안정과 민자당의 집권연장을 위한 기만극』이라면서 새 정부하의 남한사회는 『착취와 억압만이 있게 될 것』이라고 모략했다. 북한의 이같은 부정적 시각은 신정부 출범후에 내려진 몇가지 시정조치에 대해서도 똑같이 나타났다.예컨대 김대통령이 취임 직후 청와대 주변도로와 인왕산 개방조치를 취한 것과 관련,평양방송(2·26)은 『소가 웃다가 꾸레미 터질 노릇』이라는 식으로 비하시켰고 황인성국무총리의 발언에 대해서도 악의적인 시비논조를 폈다. 또 중앙방송은 지난 1일 시사논단프로를 통해 3·1절 대사면조치를 추진한 것에도 트집,『양심수들을 묶어 놓은채 문민정치와 국민화합에 대해 운운하는 것은 기만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하며 『남조선사회는 세계에서 인권이가장 혹심하게 짓밟히고 있는 민중인권의 폐허지대』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이같은 대남비방논조의 행간에는 30여년만에 탄생한 김영삼 「문민정부」의 정통성을 희석시켜 보려는 책략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북한 전문가들은 또 새 정부의 정치적 안정이 구축되기 전에 문민정부의 정통성시비를 불러 일으켜 한국내의 정치사회적 혼란과 갈등을 조장하려는 책략으로 분석하고 있다.북한의 평양방송이 지난 1일자 논평프로에서 신학기를 맞이한 한국내 각급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반미·반전·반핵투쟁」을 부추기면서 「통일투쟁의 선봉투사」가 될 것을 호소한 것은 이같은 북측의 속셈을 잘 드러낸 사례이다. 북한은 최근 국제적인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그들의 핵특별사찰 거부 태도와 관련해서도 한국 신정부에 대한 비난을 호재로 역이용하고 있다.북한선전기관들은 IAEA의 대북특별사찰 요구를 『북을 고립·말살시키려는 범죄행위』라고 반발하면서 한국의 호응입장에 대해서는 『동족을 배반하는 반역행위』라고 비난하고 있다. 북한선전기관들의 이같은 대남비난공세에 비추어 볼때 신정부의 전향적인 대북정책추진에 발맞추어 북한이 대남화해협력 분위기 조성에 적극 호응해 올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 세금,알고보면(외언내언)

    세이는 성서에서도 상종못할 사람들로 묘사되었다.바리세이파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부정적으로 비쳤다.우리도 오이의 상징을 세리로 생각하는 정서가 오래전부터 익숙해왔다.아마도 고대의 세금제도가 침략자의 찬탈수단으로 비롯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터전에서 자급자족하던 시기에는 필요치 않았을 것이고 이민주이 침략을 해온 뒤에 착취수단으로 세금이라는 것을 적용했을 터이니까 처음부터 세리는 저항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세금을 거두는 사람의 기능이라는 것이 조금이라도 세금을 더 받는 일을 능사로 하기 때문에 반감을 느낄수 밖에 없는 숙명적인 역할을 지니고 있다.그러므로 월급쟁이는 세금을 늘 『빼앗긴다』고 생각하고 사업가는 항상 세금을 『두들겨 맞는다』고 표현한다.만화가는,두사람이 맞잡고 힘껏 짜놓은 빨래에서 한사발도 더되는 물을짤수있는 사람을 세리로 그린다. 이렇게 세금을 억울하게 빼앗기는 것으로만 여기는 일은 잘못된 것이다.평범한 시민이라도 세금을 정식으로 연구해보고 자세히 알아서 대응하면 분명히 유리하고 공연한 불평으로 스트레스를 느낄 일이 아닌데 우리는 그런 훈련에 너무 생소하다. 어떤 공무원보다도 친절하고 합리적인 설명을 하고 적극적인 설명을 해주는 것이 요즈음의 세무공무원이라는 것을 이제 알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시민은 타성적으로 세무행정을 경계의 대상으로 여긴다.그런 일을 불식시키려는 아이디어인 듯,2일부터 1주일동안 「세금을 아는 주간」행사를 가지기로 했다고 한다.국세청이 해마다 실시해오는 행사다.한걸음이라도 시민과 가까워지려는 노력에 시민도 호응하면 해롭지 않을 것이다.그런 한편으로 가난한 월급쟁이를 「쥐어짜는 기술」에만 능하고 돈이 많은 사람은 오히려 잘 빠져나가는 것이 세제라는 인상에 굳어있는 것을 풀어주는 일도 긴요하다고 생각한다.
  • 북미무역협정 폐기촉구/미 노조,클린턴에/EC가입 추진도

    【발 하버(미플로리다주) UPI 연합】 미국 최대의 노조기구인 노동총연맹·산별노조(AFL­CIO)는 17일 클린턴 행정부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폐기하고 대신 유럽공동체(EC)가입을 추진하라고 요구했다. 레인 커크랜드 AFL­CIO 회장은 이날 열린 집행위원회 연례 동계회의에서 『NAFTA는 문안대로 라면 순전히 착취당하는 것에 불과하다』면서 정부에 이같이 요구했다. 커크랜드 회장은 NAFTA에 반대하는 이유로서 EC의 시장통합 협정처럼 미국의 실업증가를 예방하는 한편 다른 회원국의 임금수준을 향상시키거나 근무여건을 개선해 줄 수있는 규정이 NAFTA에는 마련돼 있지않은 점을 들었다. 그는 또 현재 서유럽 12개국으로 구성된 EC의 경우는 해당국 시민들의 생명과 자유를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회원국 가입을 거부해왔음도 아울러 지적했다. 그는 미국이 NAFTA 대신 EC에 가입하면 미국 상품들의 시장도 확대될 것이라면서 『미국은 유럽과 무역장벽을 사이에 두고 맞서는 대신 막대한 시장을 지닌 그들의 일원이 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NAFTA는 미국이 캐나다·맥시코와 함께 추진해온 것으로 조지 부시 전 미대통령은 퇴임직전 이 협정에 서명했으나 최종 발효를 위한 의회인준 절차는 아직 거치지 않은 상태다.
  • “규모 작지만 짭짤”… 중국 사기업 번창(특파원코너)

    ◎1천4백만개 등록… 올 50만개 창업/“농사꾼서 백만장자로”… 입지전 회자/한때 투기꾼으로 매도당하는 시련 겪기도 공산주의국가인 중국에서도 「개인기업」들이 번창,그 수가 급증하고 있다. 중국정부가 사회주의식 시장경제라는 경제정책을 추진하면서 생겨나기 시작한 사기업들은 예상되는 경제자유화폭의 확대와 함께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들 사기업 소유자중엔 가난한 농사꾼이나 청소부에서 일약 백만장자로 성장한 입지전적 인물도 적지 않다.요즘 중국언론으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는 북경의 무역업자 모우 키숑(52)은 「파리도 고기다」는 격언에 따라 조그맣게 시작한 사업을 지금은 자본금 1억원(1천9백만달러)의 큰 무역회사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아직 자본주의국가의 기준으로 볼때 기업이라 할 만큼 규모가 크지는 않다.현재 중국에는 1천4백70만개의 개인기업이 있으나 이들은 대개 7명이내의 인원으로 구성된 가족단위로 이뤄져 있다.올들어서만도 50만개의 개인기업이 새로 생겨났다.그러나 많은 개인기업들이 세금과 금융혜택을 받기 위해 소규모 집단농장으로 위장하고 있어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중국은 항공·철도·금융 등 국가기간산업과 주요 원자재의 생산 및 판매를 제외하고는 모든 분야에서 개인기업을 허용하고 있다.이 개인기업들은 해외지점을 설치할 수도 있다. 국영기업들이 비효율적이고 방만한 경영으로 약3분의1이 적자운영을 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개인기업들은 소규모이기는 하지만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속속 개발함과 동시에 알찬 경영으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숫적 증가와 함께 이들은 사업영역도 활발히 확대시켜가고 있다.현재로서는 개인기업의 4분의3이 소규모 상점·식당·수리점들이지만 건설·광고·첨단기술분야에까지 진출하고 있다. 아직 이들이 중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국민총생산(GNP)의 10%로 미미하지만 이들은 중국경제 전반에 활력소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의 개인기업은 지난 78년 경제개혁이 시작되면서 등장하기 시작했다.당국의 묵인하에 나타난 소수의 이들 개인기업은 그나마 89년 천안문사태 이후 한동안 「투기꾼」,「사기꾼」등으로 매도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불과 1년전만 해도 정통파 이데올로기세력들은 개인기업을 「신생 부르주아」라고 공격했다.또한 「착취자」라고 매도하면서 이들에 대한 새로운 계급투쟁을 부추기기도 했다.그러나 이러한 공격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등소평의 흑묘백묘론에 밀려나 버렸다.중국정부는 앞으로도 민간부문에 대한 통제를 더욱 완화해 나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붉은 자본주의 사기업」들은 아직도 여러가지 불이익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입장이다.이들은 은행융자를 받거나 원자재를 공급받는데 있어 여전히 애로를 겪고 있다.시장경제를 도입한 다른 공산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는 개인기업을 하려면 뇌물을 바치거나 연줄이 있어야 한다. 또한 개인기업들은 정부가 어느날 갑자기 국영기업으로 귀속시키는 포고령을 발동할 경우 보호받을 길도 막연하다.이것은 개인기업이 보다 활성화할 수 있는 길을 막고 있는 요인이다. 이러한 불안은 개인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조급증을 심어주고 있다.북경의 한 의류상은 『이것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당장 벌 수 있는 만큼 부지런히 벌고 싶다』고 말했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33)

    ◎소년시절:14/정치비밀결사 「ㅌ·ㄷ」 조직설/“26년 「타도제국주의동맹」 결성” 새 주장/15세 외톨이의 청년 30명 규합에 의문/화성의숙생활 반항적… 이단 취급 받아 이번 회고록에서는 김일성이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을 김시우 집에서 읽었다고 하고 있는데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가 이 책을 가지고 그 무슨 「투쟁」을 했다고 전에 없던 새 주장까지 하고 있다.이 책을 빌려다 읽고 있던 계영춘이 화성의숙 교원에게 적발당하자 김일성은 김시우에게 다음과 같이 항의했다는 것이다. ○우매화정책 장본인 『사람이 건전한 인격을 갖추려면 다면적인 지식을 섭취해야 하지 않습니까.학교 당국은 어째서 새것을 한창 섭취해야 할 청소년들에게서 세계적으로 공인된 선진사상을 연구할 권리마저 빼앗습니까.마르크스나 레닌의 저작들이 보통책방에까지 흘러나와 글을 아는 사람은 다 읽는 판인데 유독 화성의숙에서만은 어째서 그런 책들을 못 읽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용작가들이 쓴 이러한 글을 읽고 북한에 「독서의 자유」가 있다고 착각하는 독자는 이제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 나라는 자본주의 서적 같은 것은 처음부터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1960년대 중반까지는 마르크스 레닌주의 서적은 출판되었고 읽을 수도 있었다.그러나 67년에 김일성이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문제를 들고 나온 후는 이러한 책은 보통책방에서 없어졌다.그 후 민중들은 「세계적으로 공인된 선진사상」이나 「다면적인 지식」에 접할 기회를 잃었고 「주체사상」밖에는 아는 것이 없도록 우매화되었다.이 민중 우매화정책의 장본인인 김일성이 회고록을 쓰면 이상과 같이 북한 현실과 정반대의 「작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여기서 그가 화성의숙의 기숙사나 교실이 아니라 그의 보호자로 되어 있었던 것 같이 보이는 김시우 집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 서적을 읽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점이다.그가 무송소학교 시절의 비정상적인 생활태도를 지속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서술이다. ○비정상적 생활 지속 또 그는 학교에서도 반항적이었다.예를 들면 회고록에서는 어떤 수업시간에 자본주의가 좋다고 주장하는 교원과 학생들을 김일성이 반대했다고 쓰고 있다.그가 『우리는 조선을 독립시킨 후 조국땅에 착취와 압박이 없는 사회를 세워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이것은 그가 화성의숙의 교실에서는 이단적인 존재였다는 것을 말하는 일화이다. 물론 이러한 「일화」들은 이번 회고록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므로 사실은 창작물일 것이다.그들은 이러한 창작물까지 만들면서 김일성이 타도제국주의동맹(ㅌ·ㄷ)을 이 시기 결성했다는 날조를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이전에 김일성은 김형직이 죽기 전인 26년 3월에 화성의숙에 입학하고 부친이 죽은 후인 6월쯤에 중퇴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이때문에 26년 10월17일에 그가 화성의숙에서 ㅌ ㄷ(트 드)을 결성했다는 북한측의 주장은 그 재학기간 등으로 있을 수가 없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무송소학교 시절 김일성이 살부회와 관련이 있었고 김형직이 죽은후 민족주의자들이 그를 화성의숙에 보냈다는 증언이 나온 이상 이 문제는 새로 재고할 점이 생기게 되었다. ㅌ ㄷ이란 북한에서는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되는 참다운 공산주의 혁명조직」이라고 선전되고 있다.1925년에 서울에서 결성된 조선공산당은 한갓 「종파」에 지나지 않고 김일성이 만주의 벽지인 화전현 관가에서 「결성」한 ㅌ ㄷ만이 진정한 공산조직이라는 주장이다.이 주장은 1968년에 발간된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부터 나타나 그후는 조선노동당의 조직적 전통은 그 뿌리가 이 ㅌ ㄷ에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김일성이 26년 6월부터 화성의숙에 전학하였고 그후 몇개월 이 학교에 적을 두고 있었다면 그 실태는 어떻든지 간에 적어도 그의 재학기간에 이러한 조직이 생겨날 가능성 자체는 부인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가령 김일성의 화성의숙 재학기간이 이렇다 할지라도 그가 ㅌ ㄷ을 결성한 일이란 여전히 있을 수가 없다. 백보 양보하여 그가 김시우 집에서 「공산주의 서적」을 읽고 학교 교실에서 「사회주의」를 주장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화성의숙에서 그가 ㅌ ㄷ을 조직할 여건으로는 될수 없다. ○상식선서 납득안가 그 이유로는 우선 사람을 지도하거나 어떤 정치단체를 만들기에는 그의 나이가 너무 어렸다는 점을 들 수 있다.당시 15세였던 그는 이때 나이가 평균 20살 정도인 학생들과 같이 생활을 하고 있었다.장유의 서열의식이 철저했던 당시 30명이나 되는 이 청년들이 고립된 일개 소년에 불과한 김일성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따를 리는 만무하다. 다음으로 그 이전에는 면식도 없었던 이러한 학생들과 단 4개월 정도 있었을 뿐인 그가 이 기간에 ㅌ ㄷ이란 정치비밀결사에 가입하는 「동지」들을 규합할 수 있었다는 말은 객관적으로는 사람을 납득시키지 못할 것이다. 이런 점으로 보아 ㅌ ㄷ의 결성이란 있을 수가 없다. ①「세기와 더불어1」160면 ②「세기와 더불어」154면 ③평전 121면 이하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32)

    ◎소년시절:13/마르크스·레닌서적 탐독설/「자본론」 중국어판 30년에 첫 출간됐는데/“26년 15살때 이미 읽어치웠다” 억지선전/최근들어 “공산당선언만 봤다” 다소 후퇴 김일성이 화성의숙에서 느꼈다는 마지막 세번째의 환멸은 다음과 같다. (ㄷ)민족주의 운동… 상해임시정부의 인사들은 「자치파」니 「독립파」니 하여 서로 치열한 감투싸움이나 세력다툼을 하고 있었고 독립군은 군자금이나 거두며 돌아다녔다.임시정부는 미국등에 대하여 비굴한 「독립청원외교」를 벌이고 있었다. ○“임정인사 세다툼” 적지않은 자산계급출신 운동가들이 「애국지사」로부터 일제의 앞잡이로,민족개량주의자로 굴러 떨어졌다.그들은 「민족개량」「실력양성」의 보자기를 쓰고 「계급협조」「대동단결」「민족자치」를 떠들었다. 이때 김일성은 화성의숙에서는 불가능하였으므로 김시우 집에서 마르크스·레닌의 서적을 읽었다.그리하여 청년들이 찾아올 때 이들에게 새 사조와 소련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착취와 압박이 없는 사회를 선전하였다. 이중 세력다툼이니 군자금 징수니,변절이니,타락이니 하는 것은 김일성이 민족주의를 비판할때 언제나 사용하는 딱지들인데 이러한 단어들은 앞으로 연구할 기회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그가 「김시우 집에서 마르크스·레닌의 서적을 읽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문제를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김시우란 임강시대에 백산무사단원으로서 김형직과 관계를 맺은 우익인사인데 김일성은 그로부터 「좌익서적」을 제공받은 것으로 허구를 꾸미고 있다. 화성의숙시대 김일성이 김시우 집에서 공산주의 서적을 읽었다는 선전은 1978년에 발간된 「불멸의 자욱을 따라」부터 시작되었다.그러나 이 책은 그가 「완고한 민족주의자들을 멀리하고 혁명적 출판물들을 많이 탐독하였다」고 썼을 뿐,그가 무슨 책을 읽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런데 82년에 나온 그의 전기에서는 놀랍게도 그가 이 시절 「공산당선언」과 「자본론」「임금노동과 자본」을 읽었다고 주장하였다. ○민족주의자 멀리해 여담이지만 필자는 대학생시절 자본론을 사 보았었다.그러나 마르크스의 문장이 너무 길어서 의미를 파악하는데 애를 먹고 몇 페이지 안가서 읽는 것을 포기하였다.또 최근 오길남박사에 물어 보았더니 『자본론은 독일의 대학교수들도 읽는데 1년 이상 걸릴 정도로 어려운 서적』이라고 하였다.이런 책을 북한에서는 15살짜리 김일성이 읽어치웠다고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딴데 있다.김시우의 집에 이러한 서적이 있었더라면 그래도 우리는 이것을 「과대선전」정도로 볼 수가 있다.하지만 이러한 책들은 26년 당시,만주의 오지인 화전현 관가에는 있을 리가 없었다. 일본경찰이 1925∼26년에 동남만에서 압수한 「불온문서」를 보면 그 중 1백권 이상의 것은 「선봉」「거화」「전만동포에게 호소함」「전만혁명동포에게」「노동기념선포문」「노동보」「선포문」「불온문서원고」「국제청년데이」「혁명」「농보」「농민회발기준비서」가 그 전부였다. 모두 팸플릿이나 신문에 지나지 않았고 학술서적이란 없었다. 또 김시우의 집에는 마르크스·레닌의 서적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도없었다. ①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은 1929년 초에 육문중학교에 부임한 김일성의 스승 상월이 중국에서 갈림에 가져온 가능성이 있다.그러나 이 책이 길림보다 훨씬 낙후한 벽지인 화전현 관가에 그보다 3년이나 이전에 들어올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②「자본론」은 중국에서는 겨우 1930년에 그 제1권 제1분책의 제3장까지가 진계수 등의 번역으로 상해에서 출판되었다.또 그 전역본은 38년이 되어야 나오게 된다.26년에는 읽어야 할 책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창덕학교 5학년 수준인 그의 일본어로는 일본어 번역판도 읽지 못할 것이다. ③마르크스의 「임노동과 자본」을 일본에서 대중이 볼 수 있게 된 것은 1928년이므로 이 책도 중국에서는 출판이 상당히 늦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이 북한에서는 중국말도 일본말도 잘 모르는 소학교 중퇴생인 김일성이 대학생도 익히 알아보지 못하는 마르크스·레닌의 서적들을,이러한 책이 번역 출판되기도 전에 「읽었다」는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해괴한 주장을 85·87년 양년에낸 「김일성 평전」에서 조목조목 분석비판하였다.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나온 회고록에서는 화성의숙 시대에 「공산당 선언」단 한가지만을 김일성이 읽은 것으로 하고 있다.나머지 책은 길림시대에 읽은 것으로 약간 그 시기를 늦추고 있는데 이렇게 하여도 서로 상충된 거짓말들을 조절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상충된 거짓말 여전 1925∼26년에 걸쳐서 동남만에서 1∼2점 발견되어 일본경찰이 압수한 공산주의 선전 팸플릿 중에 「공산당의 선언」이란 것이 있다.그러나 소련에서 출판된 이 팸플릿이 공산주의의 침투가 늦었던 화전현에,그것도 우익이었던 김시우의 집에 날아 들어 올 가능성이란 역시 매우 희박할 것이다. ①「세기와 더불어1」154∼157면 ②「불멸의 자욱을 따라1」202면 ③「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전기1」31·32면 ④5·6·8 평전 127∼134면 ⑦하상조번역 「임노동과 자본」암파문고판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31)

    ◎소년시절:12/화성의숙서의 불만/40년대까지 신식훈련 못받았으면서/“이청천 등 낡은 군사교육에 환멸” 기술/겨우 3개월 배우고 트집 위한 트집 김일성은 화성의숙에 들어갈 때 팔도구 시절부터의 김형직의 친구 김시우가 데려간 모양이다.그는 당시 화전현 관가에서 정의부 화전총관소 총관으로 있었고 영풍정미소를 경영하여 정의부의 각 기관에 재정원조도 하고 있었다. ○기숙사에서 생활 그 다음 날부터 김일성은 화성의숙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였다.학급에서는 몇몇 친구가 생겼는데 그 하나는 훗날 김일성이 중공계 유격대에 있을 때 그에게 일제에 투항할 것을 권고하러 온 박차석이었고 다른 하나는 1930년 무렵까지 언제나 그의 선배였던 최창걸이었다.그는 이밖에 김리갑,계영춘,이제우,박근원,강병선,김원우 등과도 알게 되었다 한다. 회고록에서 그는 화성의숙에 2주일 남짓 있은 후부터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학과목은 김일성에게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그런데 의숙생들은 특히 수학문제로 그를 괴롭혔다.4칙계산도 잘못하는 청년들이 숙제가 나올 때마다 찾아왔다.그런데 군사훈련 때는 거꾸로 의숙생들이 김일성을 도와주는 형편이었다. 의숙생과 김일성 사이에는 학습과 훈련 면에서 서로 정반대의 실력 차이가 있었다.자라난 환경과 사회생활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지만 김일성에게는 특히 무송소학교 시절부터의 불량한 사고방식과 비정상적인 학교생활 습성이 남아 있었다.이런 상황이 그의 당시 감수성으로는 「환멸」이었던 모양이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에게 화성의숙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는 1960년대에 밝히게 되었다.그러나 이 시기는 그가 26년 3월에 입학한 것같이 서술했던 것을 「26년 6월 전학」으로 바꾸어 나가는 복잡한 조작이 잇따랐다. 또 이 때는 이른바 「타도제국주의동맹」(ㅌ·ㄷ)을 날조하는데 바빠서 그가 화성의숙에서 어떤 학창생활을 지냈는가에 대해서는 거의 설명할 겨를이 없었다. ○“학생 지지받았다” 전기작가들이 화성의숙 생활문제를 쓰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후반부터이다.그들은 김일성이 이 학교에서 어떻게불만을 가지게 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쓰게 되었다.「불멸의 자욱을 따라」가 그 대표적인 것인데 필자는 이 책을 분석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회고록에서는 그 「불만」이 더욱 체계적으로 설명되어 있다.그것을 3개로 나누어 그중 2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군사훈련…실탄사격에 쓸 탄알이 없어서 늘 나무총이나 가지고 훈련했다.아래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기도 했다.또 독립군 대원들이 와서 안중근 장인환 강우규 이재명 나석주 같은 열사들이 쓴 개인 테러를 무훈담이라고 들려주었다. 김일성은 이러한 구한국 냄새가 나는 낡은 군사훈련이나 투쟁방법으로는 도저히 왜놈들을 타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상…어떤 학생은 왕조정치에 미련을 가져 봉건왕조를 다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또 어떤 학생은 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하여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어느 시간에 자본주의 발전에 대한 강의와 토론이 있었다. 이때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선생의 강의와 학생들의 토론에 대항하여 김일성은 자본주의나 봉건주의는 다같이 돈 많은 놈들이 근로대중을 착취하여 호강하는 사회다.자본주의나 봉건주의의 병집을 잘 보아야 한다.조선을 독립시킨 후는 조국땅에 착취와 압박이 없고 근로대중이 잘 사는 사회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여 학생들의 지지를 받았다 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필자의 분석은 다음과 같다. ㈀당시 정의부에는 일본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이청천 그리고 군사훈련을 체육이라 불러서 실시한 평양 대성학교 졸업생 오동진 등이 간부였고 한일합방 후 이시영 이상용 등이 남만주에 세운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도 많았다.그들은 신식 군사지식과 훈련방법도 알고 있었다.나무총이나 모래주머니·테러리즘 같은 것도 결코 구식은 아닐 것이다. 한편 김일성은 화성의숙 초창기에 군사학을 모르는 초년생으로 있었는데 겨우 3개월 정도 밖에 재학하지 않았다.따라서 이러한 불평은 트집을 위한 트집일 뿐이다.화성의숙의 군사학을 구식이라고 하지만 김일성에게는 구식이 아닌 신식 군사훈련을 받을 기회는 1940년대까지 주어진 일이 없었다. ㈁당시 만주의 독립운동가 속에는 이씨왕조를 다시 일으키려는 전덕원 같은 복벽파가 있었고 정의부 청년들에게도 그 영향이 있었다.또 미국식 민주주의를 선호하는 안창호 계통의 인물들과 학생들도 있었다. ○요주의학생 신분 김일성은 이런 민족주의 군사학교에 자의가 아닌 타의로 「전학」하였다.박만포선생에 따르면 그는 전학 이전에 이미 살부회에 들어가고 있었다.부친이라도 부르주아 같으면 타도한다는 「이론」의 소유자는 화성의숙에서는 요주의 학생이게 마련인데 그는 「전기」에서 사실을 거꾸로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①「세기와 더불어1」140∼148면 ②같은 책 149면 ③평전 74∼75면 ④「불멸의 자욱을 따라」전4권 1978년 당간 ⑤「세기와 더불어Ⅰ」150∼154면
  • 근현대인물 재조명 된다/창비,현대인물연구시리즈 기획

    ◎1차 전봉준·김원봉연구 펴내/조봉암·홍명희·여운형도 계획 그동안 식민사관의 영향으로 혹은 이데올로기적 편향 때문에 소홀히 다루어져온 한국 근현대사의 인물들에 관한 새로운 조명이 시도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창작과 비평사가 새롭게 기획한 현대인물연구시리즈의 제1·2권으로 최근 발간한 「전봉준과 갑오농민전쟁」(우윤)과 「김원봉연구」(염인호)는 주로 문헌자료에 의존했던 기존의 평전들과는 달리 학문적으로 전공한 젊은 학자들이 직접 현지답사와 인터뷰등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한국현대인물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작업으로 평가되고 있다.이와함께 진보당의 조봉암,일제시대 노동운동가 이재유,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건국준비위원회를 이끈 민족지도자 여운형등에 관한 연구서도 곧 선보일 예정이다.이 작업은 역사인물의 체계적 연구를 통해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고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봉준의 연구에서는 갑오농민전쟁의 원인에 대해 단순히 삼정문란이나 지배층의착취,그리고 양반·토호들의 횡포에만 초점을 맞춘 종래의 시각에서 벗어나 조선후기의 사회·경제적 변화와 이를 토대로한 사회변동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일어난 것이라는 일관된 관점을 유지했다.특히 주도면밀하고 조직적인 운동전개로 근대 민중운동 역량의 일대폭발을 가져온 전봉준의 역할을 중요하게 다루었으며 그의 인간적 면모도 부각시켰다. 민족주의자 약산 김원봉의 연구는 그의 고난에 찬 투쟁사와 사상을 하나의 일관된 틀로 체계화한 국내최초의 연구서이다.그는 남한에서는 19 48년 월북했다는 이유로,북한에서는 민족해방운동사의 정통성을 만주의 항일무장투쟁에만 한정시키는 또다른 이데올로기적 제약으로 남북한 양쪽에서 배척당해 역사의 뒤켠에 매몰된 인물이었다.이 책에서는 그가 이끈 의열단·민족혁명당·인민공화당등의 활동을 다각적으로 구명,그가 민족독립을 최고의 가치로 삼은 민족주의자였으며 그러면서도 민중의 이익을 일관되게 추구한 진보주의자였음을 밝혀내고 있다.
  • 이달의 독립운동가 나석주열사/다시 새기는 그 충절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착취앞장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 투척/백범 지도받아 상해에서 군자금모집 활동/민족혼 일깨우려 단신으로 서울잠입,장거/“2천만 민중이여 분투하라” 일경과 총격전끝 장렬히 자결 선열들의 애국·애족사상을 기리기 위해 서울신문사와 국가보훈처가 함께 마련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나석주열사가 선정됐다.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나열사는 일제 착취의 간성인 동양탁식회사에 폭탄을 투척,제국주의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인물.나열사의 당시 의거는 일제 식민통치가 경제수탈에 집중될 때 발생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따라서 선생의 의거는 의열투쟁이라는 단순한 사건 차원을 넘어,당시 민족운동으로 승화된 농민·노동운동 차원에서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정부는 지난 62년 3·1절에 열사의 공적을 기리어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2천만 민중아,분투하여 쉬지말라!』는 말을 남기고 숨져간 나열사의 생을 되새긴다. 1890년.황해도 재령군 북률면 진초리. 이곳은 당시 애국계몽운동단체인 신민회의 서북지방 책임자인 백범 김구가 설립한 양산학교가 있었다. 백범과 나열사의 운명적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아버지 나병헌과 어머니 김해금씨 사이의 외아들 석주가 이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서당에서 한문을 배운 소년 석주는 양산학교를 거치며,몸과 마음이 굳센 독립투사로 다져진다. ○황해도 재령 출생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이 지방까지 번지면서부터 청년이 된 석주는 「고기가 물을 만난」듯,우리의 독립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3월 하순,어느날.사리원 부호 최병항의 집에 6인조 권총강도단이 들었다.이들은 모두 복면을 하고 있었다. 강도들은 답지않게 모두 최부자에게 엎드려 절을 했다.최부자도 그제서야 좌정을 하고 냉정을 찾았다.그때 한 복면이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저희들은 일반강도가 아니라 조국의 독립을 꾀하기 위해 군자금을 마련하러 온 젊은이들입니다』 말뜻을 알아차린 최부자는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오히려 6인조 강도들이 불안한 눈치를 보였다. 『너,석주로구나! 그 복면을 쓰고 있을 필요가 없다.그래,춘부장 어른께서도 편안하신가?』 깜짝놀란 석주는 복면을 벗고 최부자 앞에 조아렸다.나머지 다섯명도 얼굴을 드러냈다.김덕영 최호준 최세욱 박정손 이시태등이 그들이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이 이것밖에 없으니 유용하게 쓰도록 하게나!』 최부자가 「강도들」에게 내놓은 돈은 무려 6백30원이었다.이것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거액이었다. 6인조는 크게 감동,엎드려 큰 절을 드린 다음,인사를 올렸다. 『저희들이 떠나고나면 즉시 위경에 연락하여 권총강도를 당했다고 신고하십시오.왜경이 눈치 채면 봉변을 당하십니다』 ○6인조 강도 사건 6인조 강도단은 4월에도 다시 안악부호들인 김응석 원형락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는등 그 활동이 신출귀몰하였다. 수사망이 좁혀들기 시작하자 나석주는 중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1920년 11월 22일이었다.「6인조 연쇄강도사건」은 영구미제로 남았다. 나석주는 상해에서 은사인 백범을 다시 만난다.당시 백범은 임시정부 경무국장. 이때부터 나석주는 스승의 지도를 받으며 독립운동을 계속하게 된다.임정 경무원·의정원 근무와 함께 한인애국단·의렬단 가입으로 폭파활동과 군자금 모집활동등이 전개되었다. 이동휘가 세운 무관학교등에선 전술전략을 연마했다. 1926년.나석주의 생애에 가장 중요한 일이 닥쳐오기 시작했다.그것은 저명한 독립운동가인 김창숙과의 만남이었다. 그해 5월 김창숙과 백범은 국내외 정세를 토론하며 독립운동의 방향을 함께 모색했다. 이들 두 거두는 「지금 무엇인가 횃불을 올리지 않으면 잠자고 있는 민족혼을 영원히 깨우쳐주지 못한다.이때에 위정기관과 친일부호를 박멸하여 국내동포의 잠자는 정신을 일깨워야한다」는 방략에 일치를 보았다. 이를 실행할 인물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일이었다.김구가 먼저 제의를 했다. 『나와 친한 결사대원으로 나석주 이화익과 같은 용감한 청년이 지금 천진에 있다.또 그곳에는 의열단원도 많으니 무기를 구입,천진으로 가서 기회를 보는 것이 좋겠다』김창숙은 두명의 조선청년을 만났다.그리고 계획을 설명했다.둘은 거침없이 나섰다. 『우리들은 일찍이 한번 죽기로 결심했는데, 어찌 사양하겠습니까』 나석주로 결정이 되었다.이화익은 섭섭한 눈치를 숨기지 않았다.김창숙이 말했다. 『백범도 그대의 장도를 학수고대하고 있소.민족의 고혈을 빨고 있는 식산은행과 동양탁식회사가 그대의 손에 폭파되는 날 일제의 간담이 서늘할 것이며,잠자고 있는 조선의 민족혼이 불길처럼 다시 타오를 것이오.대의를 위한 무운을 비는 바이오』 「중국 산동성 출신.나이 35세.이름 마중덕」 1926년 12월 26일.인천항에 상륙한 이 중국인은 다름아닌 나석주였다.「마중덕」은 열차를 이용,진남포로 향했다. 고향을 떠날 때 한마디 이별의 말을 하지못한 부모님과 부인,그리고 아들·딸을 보고싶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귀향길에서 그는 「일제의 삼엄한 경계가 고향등지에 펼쳐져 있다」는 정보를 듣게된다. 나석주는 바로 발길을 서울로 돌렸다.피눈물이 흘렀다. 중국인 전용여관 「동춘전」.1926년 12월 28일.날씨는투명했으나,조국의 겨울바람은 차가웠다. 나석주는 아침밥을 든든하게 들었다.그리고 낮이 될 때까지 거리를 배회했다.오가는 동포들의 표정이 어두웠고,슬프게 느껴졌다. ○들리지않는 폭음 하오 2시5분.나석주는 식산은행으로 들어가 폭탄을 던졌다.그러나 굉음은 들리지 않았다.이게 웬일인가! 뒷벽 기둥에 던져진 폭탄은 불발이었다.절망적인 생각이 찰나처럼 스쳐지나갔다.폭탄을 입수할 때 시험을 하지 못한 점,6개월간의 보관기간중 뇌관에 녹이 슬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 회한으로 남겨졌다. 그러나 다행히 일인들이 눈치를 채지 못했다.나석주는 태연하게 정문을 나섰다. 『그렇다면,이젠 동탁이다!』 동탁으로 들어서면서부터 나석주는 기민하게 움직였다.1층에서 왜인 1명을 권총으로 사격하고,2층으로 뛰어올라가 또다른 왜인에게 사격한뒤 놀라 도망가는 토지개량부 간부들을 거꾸러뜨렸다. 그리고 기술과장실에 나머지 폭탄 1개를 힘껏 던졌다.쏜살같이 1층으로 뛰어내려오며 2명의 왜인들에게 총격을 가하고 거리로 나와 폭음을 기다렸다.그러나이게 또 웬일인가! 하늘이 무너져 내리듯,시야가 노랗게 변해갔다.황금정(지금의 을지로1가)쪽에서 달려온 경찰을 쏘아 쓰러뜨릴 때까지도 폭발음은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황금정2정목에 이르렀을 때에는 왜경들의 포위망이 완전히 좁혀졌다.나석주는 운집한 군중들을 향해 외쳤다. 『나는 조국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2천만 민중아,분투하여 쉬지말라!』 나석주는 자신의 가슴에 나머지 3발을 쏘았다.그것은 해방의 날을 준비하기 위한 장렬한 불꽃이었다. ◎역사적 평가/일 경제수탈에 맞선 농민의 아들 「나는 고향을 떠난지 6년여에 공연히 동서로 분주하면서 아무런 성공없이 지내왔으니 제일은 민주에 대한 죄인이요,제이는 가주에 대한 죄인」이라고 고향 동지인 최호준에게 1925년5월의 편지로 몸부림치던 나석주의사,그는 끝내 민족과 가족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1926년 12월28일 백주에 을지로(당시 황금정)네거리에서 자결 순국하였다. 나석주의사는 황해도 재령군 북률면 진초리에서 태어났는데 북률면은 재령강이 흐르는 나무리들(여물평)로서 원래는 조선왕실의 궁방전이 많았으나 일제가 점유하여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불하하여 9할의 면적을 동척회사가 차지하고 있었다.따라서 북률면민은 거의 동척회사의 소작농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나석주의사도 동척농장의 소작인 나병헌의 외아들로 자라났다. 그가 1926년12월28일 서울의 동양척식주식회사(지금 을지로입구 외환은행 본점자리)와 식산은행(지금 롯데백화점자리)에 수류탄을 던지고 또 동척 관계자 6명을 살상하고 거리로 뛰쳐나와 일제 경찰간부를 처단하고 자결 순국했는데 그때 나석주의사가 동척이나 식산은행을 표적했다는 것이 자기 가정의 처지로 봐서 우연이 아님을 알수 있다.그렇다고 가정 보복으로 국한된 일은 아니었다. 1926년은 일제 식민통치가 경제수탈에 집중되어 민족운동이 사회경제운동을 고조시키고 있던 때였다.당시 전국에 걸쳐 노동쟁의와 소작쟁의가 확산되던 가운데 특히 북률면 동척농장의 소작쟁의가 용천 불이농장의 소작쟁의를 부추기면서 사회운동이 권익운동과 더불어 일제 수탈기구에 대항한 독립운동으로 발전하고 있었다.그럴때 조선민족의 눈에 동척회사나 식산은행이 수탈 본산으로 잡혔던 것이다.그러므로 나석주의사의 의거는 의열투쟁만의 논리를 넘어 농민운동·노동운동을 포괄한 민족운동 총체적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1926년의 의열단은 광주에 있는 황보군관학교에 입교하고 있었다.즉 1919년 창단 이래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의 내용처럼 개인의 작탄활동(의열투쟁)을 전개하다가 이제 막 군사편대활동으로 방법을 바꾸고 있었다.그러니까 나석주의사의 의거는 의열단으로서 의열투쟁의 마지막을 장식한 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같이 나석주의사는 의열단과 유림단의 소망을 안고 순국했으며 농민운동과 노동운동을 대변하면서 우리 민족의 기개를 만천하에 과시하였다.그럼으로써 일본제국주의에는 철퇴를,세계에는 경종을 울렸고 우리 민족에게는 용기를 불러 일으킨 정의의 화신으로 청사에 빛나고 있다.
  • 대선 3대쟁점 핵심 총점검

    선거전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주요정당들의 치고 받는 성명전과 비난전도 가열되고 있다.이들 성명들은 주로 「색깔론」과 흑색선전,금권선거등을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다. ◎색깔논쟁/민주당의 전국연합과의 연대에 초점 민자당은 김대중후보와 인공기가 함께 그려진 홍보유인물은 폐기하도록 했지만 「전국연합」과의 연대를 문제삼아 김후보의 「색깔론」은 계속해서 제기한다는 방침이다. 정원식선거대책위원장은 이같은 방침에 따라 14일 성명서를 통해 『소위 정책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민주당과 손을 잡은 「전국연합」에 참여하고 있는 「전대협」은 북한에 대표를 파견하는등 김일성노선을 추종하는 주사파(주체사상파)들이 주도하는 단체』라면서 『이들의 불법적인 활동은 통일전선전략의 일환으로 김대중후보를 당선시킨다는 사전 각본에 의한 것』이라고 「색깔론」의 고삐를 더욱 죄고 있다. 정위원장은 『「전국연합」소속 대학생들이 각 대학과 지하철역 등 전국 곳곳에서 김영삼후보를 비방하는 선전물을 대량 배포하는 것은 물론 신문에 불법광고를 게재해 특정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어야 한다고 노골적인 불법선거운동을 자행하고 있다』면서 김대중후보와 「전국연합」과의 연대를 강조하고 『김대중후보는 이들의 불법활동을 묵인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손을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삼후보도 12일의 대구유세에서부터 김대중후보를 『김일성노선에 동조하고 있는 「전국연합」과 손을 잡은 후보』라고 지칭하고 『최근 북한은 평양방송을 통해 이 김영삼이를 낙선시키고 민주당후보를 당선시키라고 지령하고 있다』고 색깔론을 들고 나왔다. 또 찬조연사로 나서고 있는 김종필대표는 『색깔이 분명치 않은 사람』,김재순고문은 『김신조가 청와대를 습격했을 당시 향토예비군제를 반대한 사람』,정원식위원장은 남북회담수석대표 시절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5차례나 회담에 참석했지만 북한은 아직도 적화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등으로 북한과 김대중후보를 연결시키고 있다. 민주당의 김대중후보는 이에대해 14일의 유세에서 『김영삼후보가 스스로 30년 민주화동지라고 말하면서도 나를 용공으로 몰고 있는데 대해 비애와 절망을 느낀다』며 『김영삼후보는 대통령이 되기위해 야당에서 여당으로 변신하더니 이제 패색이 짙어지자 30년 우정마저 배신하고 있다』며 김영삼후보의 「변신」을 비난했다. 김후보는 『김영삼후보가 문제삼고 있는 「전국연합」의 인사들과는 김영삼후보 자신도 5공독재투쟁때 긴밀히 협력했고 6공에서도 3당합당전까지 그들과 협력했다』면서 『그들이 김영삼후보와 손을 잡을때는 괜찮고 나와 손잡으면 용공이라는 논리는 군사독재정권의 유물이며 김영삼후보는 이러한 발언을 취소하고 사과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김후보는 또 『이번 선거는 변절이냐 지조냐의 선택』이라고 전제,『김영삼후보는 군정종식을 외치다 군정에 들어갔고,여소야대를 국민의 위대한 결단이라고 했다가 3당합당후에는 「여소야대가 계속됐다면 헌정중단이 됐을 것」이라고 말하는등 신뢰성을 결여했다』고 주장했다. 박희태대변인은 그러나 이날 다시 성명을 내고 『청와대에 들어갈 사람은 푸른 색깔이어야 한다』면서 『김영삼후보가 색깔론을 완곡하게 몇번 표현했다고 해서 30년 우정을 배반했다고 치고 나오지만 김대중후보는 유세때마다 「대통령자질론」을 거론하면서 단골메뉴로 YS를 비난하고 입에 담지 못할 인신공격을 했다』며 「색깔론」을 계속해서 문제삼을 것임을 밝혔다. ◎흑색선전/“악성 비방 유인물 뿌린다” 삼각 비난전 민자당은 민주당과 「정책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손을 잡은 「전국연합」 소속대학생들이 지하철역등 전국 곳곳에서 김영삼후보를 비방하는 흑색선전물을 대량 배포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자당에 따르면 이 유인물에는 김영삼후보가 서울대를 졸업하지 못하고 중퇴했으며 여자관계추문이 있는 듯이 터무니 없는 허위사실을 날조,비방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민자당은 또 『국민당이 김영삼후보는 기업인들을 협박해 이권을 주겠다고 속여 돈을 우려내고 있다는 흑색선전을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최근 민자당이 폐기하기로 한 유인물이 대표적인 흑색선전이라는 주장이다.이 유인물에는 김대중후보가 전국연합의 깃발을 들고있는 가운데 확성기가 달려있는 인공기에서 「야당후보를 당선시켜 우리의 통일전선을 형성할 것이며…」라는 말이 흘러나오는 내용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국민당의 정주영후보도 이날 『이종찬의원이 반금세력에 합류한뒤 민자당의 악성루머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면서 『김영삼후보진영은 「정주영을 찍으면 김대중이가 당선된다」는 흑색선전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당은 또 성명을 통해 『간첩단 사건관련자들이 정부,민자·민주당에 상당수 있다』면서 『정부가 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민주당의 반발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정부와 민자당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으나 구체적인 물증은 제시하지 않았다. ◎금권선거/CY에 집중포화… 서로 “금품살포” 주장 금권선거시비는 역대 어느 선거에서건 관권개입문제와 함께 정부·여당을 공격하는 소재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양상이 사뭇 다르다. 금권선거공방을 주도하는 측은 제1당인 민자당이며 주공세대상은 국민당이다. 국민당은 과거 개념으로 보면 야당이다.그럼에도 우리나라 최대 재벌총수 출신이 후보및 대표를 맡고 있기에 출범부터 김권시비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 민자당은 선거초반 국민당이 막대한 자금동원능력과 현대조직을 이용,여권의 주된 표밭이랄 수 있는 중산층을 파고 들자 국민당의 김권선거양상을 집중 비난했다. 제3당인 국민당은 오히려 김권선거문제에 있어서는 수세에 몰린 셈이다. 이러한 가운데 현대중공업에서 국민당 선거자금지원을 위한 비자금을 조성했음이 경찰수사및 관계 직원의 양심선언으로 드러남에 따라 김권공방이 가열되기 시작했다. 현대기업 돈은 선거자금에 쓰지 않았다고 강변했던 국민당측의 주장이 옳지않음이 판명되면서 상승세를 타던 국민당 지지도가 꺾였다는게 선거관계자들의 분석이다.민자당의 선제공격이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정주영후보는 『비자금이 아니고 보유주식을 매각한 돈』이라고 변명했으나 합리적 타당성을 결여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민자당의 김영삼후보는 유세때마다 『돈으로 권력과 대통령을 사려는 것은 총칼로 권력을 쥐겠다는 쿠데타보다 더 나쁘다』면서 『이같은 더러운 버르장머리를 이번 선거를 통해 국민의 힘으로 반드시 뿌리뽑아 달라』고 김권선거 타파와 정경유착을 집중 공격했다. 민자당은 이와 함께 찬조연설 및 대변인 성명을 통해 정후보를 「근로자의 피땀으로 번 돈을 정치판에 뿌리는 정경유착의 표본」「고 박정희대통령의 음덕으로 돈번 사람」이라고 강력 비난했다. 민주당의 김대중후보도 『정경유착으로 재벌이 된 사람이 어떻게 중소기업을 살리고 경제정의를 실현할 수 있느냐』『노동자를 착취해 재벌이 된 후보』라고 정주영후보의 김권문제를 지적했다. 민주당은 그러나 국민당이 민자당 지지층을 잠식해 어부지리를 얻을 생각으로 『민자당도 김권선거를 시도하고 있는데 국민당만 몰아치는 것은 관권탄압』이라고 국민당편을 들기도 했다. 국민당도 『김영삼 민자당후보의 정치자금 조성경로도 조사해야 한다』고 나서 김권선거 공방은 관권시비에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선거가 종반에 들어서자 각 당은 상대방의 막판 금품살포 가능성을 제기하며 공방을 계속하고 있다. 민자당의 정원식선거대책위원장은 14일 회견을 갖고 『국민당이 오늘부터 현대조직을 이용,막대한 자금을 풀어 1인당 5만원이상의 현금이나 선물을 대대적으로 살포,매표를 자행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폭로했다. 국민당도 이에 맞서 민자당측이 이미 현금봉투돌리기를 시작했으며 이와 관련한 민자당원의 양심선언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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