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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화상대로는 김정일쪽이…(송정숙칼럼)

    정직하게 말해서 김일성이 사망하기 전에 예정됐던 정상회담이 우리는 다소 불안했었다.그무렵 항간에서는 김일성을 만나고 온 사람은 모두가 좋지않은 운과 만나거나 다녀온 뒤에 「망했다」는 말이 이것저것 떠돌기도 했었다.조국이 통일만 된다면 조용히 시골로 낙향하여 과수원이나 돌보며 여생을 살고 싶다고 한 김구선생의 욕심없는 감회까지를 두고두고 모양사납게 만들어버렸고,독립지사 조소앙선생도 그에게 기만당했다.하려고만 들면 자신과 만난 사람들을 여지없이 곤란한 함정에 빠뜨리는 노회한 독재자가 김일성이다.그를 상대로 합리적이고 결이 곧은 민주주의 사회의,누가뭐래도 순진한 모범생격인 김영삼대통령이 마주 앉는다는 것은 국민으로선 조심스런 일이다.또 김일성은 김대통령과 한세대가 차이나는 노인이었다.경로사상에 물들어 성장하는 한국인에게는 노인을 거역못하는 체질이 유전되어 있다.게다가 유난히 효성스럽고 노인에게 다정한 김대통령이,자신의 부친과 동년배인 그 노욕 강한 늙은이를 상대해야 한다는 것에 우리는 노파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김일성의 죽음소식을 듣고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가 무산되는 아쉬움은 들면서도,그런 노파심때문에 「아마도 우리가 운이 좋을 징조인가보다」하는 마음과 함께 은연중 고개를 드는 안도감같은 것을 체험했다. 이제 싫든좋든 정상회담의 상대는 김정일로 정해지는 것같다.김정일은 작가 최인훈의 표현처럼 『우리를 슬프게 하는 지체와 지각』속에서 희극처럼 만들어진 권력세습의 작품이긴 하다.그래도 그가 북을 장악한 실세라면 우리는 그와 대화할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대체 그는 누구인가.그가 입을 열고 했다는 말로 우리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사회주의 무엇무엇에 영광있으라』라고 외친 외마디소리가 전부다.알아듣기도 어려운 우물거리는 발음으로 내뱉은 이 한마디로는 도무지 그 사람됨이나 지적 수준같은 것을 짐작할 수가 없다.부시시한 몰골로 지척지척 걷는,언제나 자다가 끌려나온 것같은 모습이 비치는 화면만 보았을뿐 제대로 된 연설문 하나도,그를 짐작할 단서는 없는 것같다.그저 옹색한 정보를 토대로 해서나마 아마추어식 분석을 해보면 그는 『CNN뉴스를 시청하고 서방영화를 즐기며 「난쟁이 똥자루」같은 자기 희화의 말투를 서슴지않는』,말하자면 자본주의식 사고가 약간 침투된 과육을 지닌 「준비된」독재권력의 주인공인 것같다. 그런 상대가 정상회담의 새 상대로 불리할지 유리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몇가지 예측은 가능하다.우선 그와는 같은 문법의 말놀이(랭귀지 게임)가 가능하지 않을까싶다.그의 아버지인 김일성은 『이밥에 고깃국을 먹고 기와집에서 살면 최고』인 인민을 만들려고 반세기를 군림해온 그러나 그걸 이루지도 못한 통치가였다.그러나 아들인 김정일은 다소 퇴폐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자본주의의 정보가 입력된 세대다.그가 즐겨 시청한다는 CNN의 정보만으로도 지구촌이 어떻게 개방이 불가피한 곳인지는 알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가 병약하고 기형적인 안하무인의 무능한 예비독재자인지,영특하고 완결된 권력승계자인지 제대로 알길은 없지만 그래도 그가 그의 부친보다 대화상대로 다소 나을 수 있을 몇가지 기본 조건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이를테면 적어도 그는 직접 전범은 아니다.권력을 세습했으므로 죄의 책임도 「대를 이어야」한다는 이론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는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는 아닌 것이다.김일성의 경우 그 이름만 듣고도 치가 떨리는 것이 우리의 오랜 정서다.그런 분노를 털어보지 못하고 김일성을 저세상에 보낸 일에 허탈해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다.그런 대화상대를 마주하면 감정의 기복을 겪게 된다.그건 쌍방에 좋을 일이 아니었다.김정일로서도 스스로 직접 지은 과오가 아니므로 비교적 부담이 덜할 수 있다.그러므로 깨끗이 시인하고 청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같은 문법을 사용하는 그에게는 「혁명 1세대」가 갖는 시대착오적 집념의 몽매성을 설득해볼 수도 있을것이다.이미 조종이 울린 이념을 안고 언제까지 버틸수 있을지에 대해서 그도 내심 회의를 느끼고 있을 지도 모른다.그가 개방의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설은 우리로 하여금 그런 기대를 하게한다.아버지의 너무 커다란 외투를 걸치고,춥고 배고픈 채 허망한 충성심만 그득한 인민을이끌고 출발해야 하는 그는 자신의 공화국의 미래에 다소 당황해 있을 수도 있다.그런 그에게는 이쪽의 거짓없는 충심과 성의를 이해시키기가 덜 어려울 것이다.형제적 우애를 기울여 정직하고 진실된 통일논의를 하기에는 차라리 그가 그의 부친보다 나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만만히 생각하고 경박한 대응을 한다면 그것은 또다른 오산을 초래한다.무슨 일만 생기면 물색없이 앞질러가다가 안해도 좋을 실수를 하는 약점을 우리는 지니고 있다.겉으로는 어벙해 보이지만 금세기가 낳은 가장 질긴 독재자가 수십년 빚어 만든 회심의 후계작이 김정일이다.만만하게만 여길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
  • 북한 주체예술/세습 정당화 도구로 이용

    ◎60년대 김정일이 사회주의리얼리즘에 속도전 이론 접목/혁명가극­집단창작 통해 김일성 신격화/김정일 직접지도… 후계자능력 인정받아 김정일은 지난 60년대 후반부터 김일성 주체사상을 선전·선동하는 방편으로서 북한의 문예활동을 선도해 왔다. 73년 9월 북한의 당 중앙위원회 제5기 7차 전원회의에서 조직 및 선전·선동 담당 비서로 선출되면서 그는 김일성의 후계자로 부각됐으나 이미 67년 당 중앙위원회 제4기 15차 전원회의를 계기로 각종 문화분야에서 이른바 「지도」를 본격화했다. 특히 김정일은 김일성이 내세우는 마르크스·레닌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예관을 북한 특유의 주체문예관으로 변경시켜 김일성의 신격화운동을 직접주도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먼저 연극분야에서 1970년대초 김정일은 『연극혁명을 일으켜 낡은 연극에 종지부를 찍고 혁명연극의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혁명가극의 시대를 개척했다. 항일 유격대원의 이야기를 다룬 가극 「피바다」를 71년 초연하기위해 김정일의 지도가 있었다. 김일성을 비롯한 빨치산 출신의 당시 북한 권력층 원로들이 이 「피바다」 공연을 보고 김정일의 능력을 크게 평가,후계자로 정하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김일성 신격화 작업의 상징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정일은 1980년 혁명연극 「혈분만국회」를 직접 제작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미술 부문은 1970년대에 김정일의 지도에 따라 주체미술의 대전성기를 맞았다고 북한은 선전해 왔다. 그때까지 역사적 사실 속의 한 인물로 형상화되던 김일성이 70년대 북한의 회화에서는 현실적이며 인민에게 친근한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또 혁명적 기념비 미술은 거의 김정일의 업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조선 노동당 창립 30주년 기념으로 1975년부터 5년에 걸쳐 만들어진 「왕재산대기념비」의 경우 김정일이 비행기까지 동원하는 관심 속에 진행되었다. 70년대의 「평양 지하철 벽화」,「삼지연 대기념비」등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주체사상탑」,「개선문」등 80년대의 혁명적 기념비 미술로 이어진다. 음악의경우 혁명가극 「피바다」가 혁명의 무기로 생산 현장에서 공연됐다. 김정일의 음악관이 비교적 늦게 정립된 탓인지 87년 「행복의 노래」와 88∼89년 평양예술단이 창조한 민족가극 「춘향전」등이 김정일의 지도에 따라 무대공연 형식으로 발표됐다. 김은 오케스트라연주중 연주자의 반음 착오까지 지적할 정도로 조예가 깊다. 김정일은 또 4.15창작단,왕재산창작단,백두산창작단등을 만들어 문학분야에 집단창작제를 제도화시켜 「조선의 별」등의 대하소설을 기획하게 했다. 그는 『우리가 건설해야할 새로운 혁명문학은 명실공히 수령을 형상화한 문학을 말한다』고 역설했다. 무용에서도 「피바다식 가극무용」이 보통명사로 사용될 만큼 가극 「피바다」에서 구사된 수법이 정형으로 자리잡았다. 북한에서 4대 명무용의 하나로 꼽는 「키춤」은 원래 「피바다」의 3장 2경에서 물방아간 가무로 나오는 것을 떼어 내 72년에 군무로 개작한 작품이다. 이처럼 북한의 각종 예술활동을 지도해온 김정일은 특히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입각한 속도전이론등을 가미한 새로운 문예이론을 만들어 부자 세습에 대비한 신격화운동에 문화 예술을 적극 활용했다.
  • 북 새체제 대응방식 시각차(의정초점:11일 상임위)

    ◎외통위/여,“원칙있는 자세” 촉구… 야, 유화책 주문 11일 열린 국회 외무통일위원회에서는 북한의 새체제 등장에 따른 정부의 시각변화와 대응책이 논의의 초점이었다.여야의원들은 정부가 앞으로 김정일체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를 놓고 미묘한 시각차를 보였으며 일부 야당의원들이 제기한 김일성에 대한 정부의 조의표명문제로 논란을 벌였다. 먼저 남궁진의원(민주)은 『북한 새체제의 권력이 확립될 때까지는 북한의 어느 계층도 자극하지 말고 유화조처를 취해야 한다』면서 『미­북3단계회담의 조속개최및 핵등 북한문제의 일괄타결을 정부가 지원해야 하며 핵과 경협의 고리도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부영의원(민주)도 『김정일체제는 우리의 인식과는 상관없이 미·중·일등 국제적으로 인정추세』라면서 『정부는 새체제의 안정에 대비,바로 대화할 준비를 갖추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종찬의원(새한당) 역시 『김일성 사후 미국이 대단히 유화적인데 반해 우리는 다음 현상을 예측하고 조치를 취한 바가 없다』고 지적한뒤 『북한문제는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일괄타결방향으로 가는 만큼 대범함을 보이라』고 유연한 태도변화를 주문. 이에반해 노재봉·박정수·서정화의원등 여당의원들은 김일성­김정일 세습체제에 대한 성격규정과 함께 정부의 원칙있는 대응자세를 촉구,성급한 유화책을 경계했다. 먼저 노의원은 『유례가 없는 부자승계정권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면서 『지금의 교류 운운은 김정일체제를 강화시켜 한반도의 영구분단으로 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서의원은 특히 『김일성이 없어진 북한은 이제 가난한 동토에 지나지 않는다』며 『정부는 이러한 실체를 냉철히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책을 세우라』고 촉구했다. 이들에 비해 박찬종의원(신민)은 『북한을 그대로 놔두자』는 특이한 논리를 폈다.그는 『북한의 시행착오는 필연으로,괜히 도와줍네 하고 나서다가는 함부로 부지깽이로 쑤시다 불씨를 꺼뜨리는 우를 범할수 있다』면서 『정부는 단기 과도체제인 김정일시대 이후상황을 설정해 장기적 관점에서 대책을 세우라』고 주문했다.이날 회의는 특히 김원기·이부영·임채정·남궁진의원등 민주당의원들이 정부에 김일성 조문사절단을 보낼 것을 제의,이를 둘러싼 논쟁도 벌어졌다. 이들은 「문상회담」,「조문외교」의 이점을 강조하며 『신뢰회복과 분위기조성을 위해 조문사절단을 파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국민정서등 사절단파견이 여의치 않으면 정부의 공식적인 애도표명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라고 정부의 전향적 검토를 촉구했다. 이같은 여야의원들의 질문과 제안에 대해 이홍구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상황의 이중성」이라는 표현으로 대북관계의 복잡하고 어려운 성격을 설명했다.그는 『북한과는 일면 대결하면서 화해도 추구해야 한다』면서 조문사절단 파견문제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없음을 들어 분명한 거부의사를 표명했다. ◎국방위/“북지도부동향 집중감시”/“정보 수집능력 허점없나” 신랄히 추궁 11일 국회 국방위에서는 북한주석 김일성의 사망에 따른 우리 군의 「안보시나리오」가 주된 의제로 다뤄졌다. 여야 의원들은 김일성의 급작스런 사망과 관련한 군의 대처능력과 안보태세,정보수집및 예측능력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었다.북한 지도부및 군부의 움직임에 대한 질문과 더불어 북한의 핵개발 저지와 한반도 전쟁방지라는 두가지 명제를 놓고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는 한반도 상황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이 이루어졌다. 먼저 김일성의 사망 사실을 34시간이나 늦은 북한측의 발표를 듣고서야 알게 된 것은 정보능력의 불재가 아니냐는 야당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민주당의 정대철 나병선 장준익의원등은 『우리 정부의 대북관련 정보의 허점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군은 물론 우리측의 모든 정보기관이 『미국의 CIA조차 몰랐다더라』면서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질책했다.『이처럼 정보능력도 없으면서 만일의 사태를 어떻게 예측할 수 있고,만반의 태세를 자신할 수 있느냐』는 성토였다.이러한 불만은 김일성의 사인에 대한 추궁으로 이어졌다. 여야 의원들은 북한의 권력공백기에 따른 불안감을 해소하고,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안보태세를 강화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서로 이론이 없었다.그러나 김일성의 사망이 확인된 직후 정부가 내린 군 비상경계령조치에 대해서는 확연한 시각차를 드러냈다.민주당측은 김영삼대통령이 군사적 평가를 거치지 않고 이병대국방부장관에게 직접 비상경계령을 시달한 절차상의 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반면 김종호의원(민자)은 『안보태세강화가 가장 중요한 시점이었던 만큼 단계적 절차에 따라 제대로 대처했다』고 정부측을 옹호했다.정대철의원은 「한·미·일 위기공동관리체제」를 구성할 것을 제의했다. 의원들은 이어 앞으로 한반도정세의 최대 변수는 북한군이라는 인식 아래 북한 군부의 동향및 북한의 핵정책 변화등에 대한 전망등에 대해 질의를 계속했다.『북한의 핵 개발의지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나병선의원),『김영주 김평일등에 의한 궁중쿠데타 또는 군부쿠데타와 주민들의 대거 탈출사태등의 가능성이 있나』(정대철의원),『북한군의 혁명 2세대 실력자에 대한 인사정보는 있느냐』(임복진의원)등. 한반도 안보의 위협요소를 제거하는 방안도 제시됐다.강창성의원은 경제협력 모색을,정대철의원은 장기적인 남북군사교류를,임복진의원은 강경파를 견제하는 대신 온건파를 강화시키는 전략을 방안으로 내놓았다. 이에 대해 이병대국방장관은 『김일성 사망이후 북한측은 군사활동이 저조해지고 대남비방방송을 중지하는 등 특이한 상황이 포착되지 않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장관은 『북한내부의 지도체제 변화등 동향을 집중감시하고 있다』고 밝히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군사적 즉각 대응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과대망상증」 부자가 닮은꼴/김일성­김정일 인물비교

    ◎형세 판단력 뛰어난 카리스마형/김일성/행동 거칠고 충동적… 방약무인형/김정일 분단 반세기에 걸쳐 북한의 절대권력자로 군림한 김일성과 권좌를 대물림한 김정일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통치스타일은 물론 취향이나 생활 습관 등에 이르기까지 부자의 성향이나 스타일이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우선 김일성은 훤칠한 키,호남형에다 듬직한 체구에서 풍기는 외모로 주위사람들를 압도한다.오랜 빨치산 생활을 통해 습성화된 동물적 정치감각과 주도면밀한 성격을 바탕으로 권모술수와 조직장악력이 뛰어난 인물이다. 즉 「간특할」정도로 형세판단에 탁월하며 이 판단을 기초로 『상대가 약할때 공격하고』『상대가 강할때는 과감히 후퇴하며』『후퇴시에는 적절한 상대의 약점을 잡아 협상으로 국면전환』을 시도한다. 김일성의 이같은 빨치산식 전술은 「68년의 푸에블로호 납치사건」「7·4남북공동성명」에서도 적절하게 구사됐다. 굳이 두 부자의 공통점을 찾자면 과대망상증 정도라고 할 수 있다.거대한 카드섹션쇼의 김일성모습,특권층만의 차량통행이 허용된 장대한 개선문,김부자의 영광과 안락을 위해 전국에서 뽑혀온 「여성접대원」들이 고급벤츠 승용차 앞에서 머리 숙여 절하는 모습에서 이들의 공통분모가 읽혀진다.또 원래 금박을 입혔다가 등소평의 핀잔을 듣고 금박을 벗겼다는 거대한 김일성동상,외국인 방문자의 눈을 속이기 위한 급조 통행인,형식적인 교회,전시용백화점등도 이들 부자의 과대망상증을 뒷받침해주는 한 단면이다. 김일성은 늘 미소를 짓고 어린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한 말투로 포옹하는 등 이미지 관리에도 능하다.「친애하는 위대한 수령」이라는 호칭에 걸맞는 교묘한 연기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아버지와 달리 카리스마도 없으며 행동이 거칠고 충동적이다.85㎏의 비만 때문에 몸가짐이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또 1백65㎝의 작은 키에 다른 사람을 내려다보기 위해 뒷굽이 높은 구두를 신는다.시력은 극히 나빠 0.1∼0.2의 근시. 김정일은 주말마다 자신이 주최하는 파티에서 위스키와 코냑을 즐겨 마시면서 경음악밴드에 맞춰 춤을 추고 한국의 히트대중가요를 부르기도 한다.그의 애창곡은 「하숙생」「이별」 「찔레꽃」등이며 요즘은 「사랑의 미로」를 즐겨부르는 것으로 알려졌다.그는 또 영화보기를 무척 좋아한다. 그는 화가 나면 총을 꺼내들고 상대방에게 겨누거나 재떨이를 던지는 괴벽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또 주민들에게는 겸손한 체하나 측근에 대해서는 오만하다.평소의 말투는 아주 거칠고 방약무인이다.측근중 인민무력부장 오진우에게만 경어를 쓸 뿐이다.각종보고를 받을 때 기분이 좋은 경우는 1만달러 정도를 줄 때도 있는데 절대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을 만큼 고집이 세다. 한번 결심한 것은 끝까지 밀고 나가는 성격을 갖고 있는데 이때문에 시행착오나 부작용이 많아 북한주민들은 그의 성격을 난폭하다고 혹평한다. 「베이비 김」은 소년시절 생모의 사망(7살)과 부친 김일성의 재혼(11살)을 계기로 성격이 비뚤어지고 난폭해졌다. 윗사람들의 얘기는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버렸다.공부에 전혀 흥미가 없어 한글도제대로 읽고 쓰지 못한다고 혹평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그대신 어릴때부터 일찍 섹스에 눈을 떠 중·고등학교 시절 그에게 당해 임신한 교사가 자살하는 소동이 벌어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성장한 이후에도 그의 여자 사냥벽은 계속되고 있다.자신의 비밀,특히 정사에 관한 일을 조금이라도 외부에 누설하거나 방탕한 생활에 충고를 하는 자가 있으면 아무리 측근이라도 총살에 처하는 비정한 면이 있다. 그는 67년9월 결혼했으나 딸 하나를 둔뒤 70년에 이혼했다.첫 부인이 보통교육부의 전부부장(우리의 차관)김일천이라는 추측도 있다.72년 청진시 공산대학 부학장 김용준의 둘째딸 김애숙과 재혼,아들 하나를 두어 자식이 두명이다.소련여성 알라와의 사이에 주라라는 아들이 하나있다. 외제차 수집광에 스피드광인 그는 벤츠스포츠카등 독일·일본제의 고급승용차 30대를 가지고 있다.
  • 비정한 권력투쟁가… 유례없는 반세기 독재/김일성 82년의 인생역정

    ◎유년 평양·만주 전전… 20세에 빨치산 활동/해방후 구소점령군 배경업고 권력장악/도전세력 가치없이 제거… 1인체제 구축/민족통일 빙자 6·25남침… 「전범」 낙인/67년 주체사상 만들어 사회주의 통치도구로 활용하기도 김일성.현대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장기집권을 누린 독재자이다.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난 45년 소련군을 등에 업고 한반도의 절반인 북한땅의 통치자가 된 뒤 거의 반세기동안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휘둘러왔다.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주석과 당총비서라는 사회주의 체제 특유의 어마어마한 권력집중적 직책도 모자라 북한주민들에게 「위대한 수령」,「민족의 태양」으로 부르기를 강요한 전제군주적 독재자였다. 김은 어찌보면 사이비 종교집단의 교주처럼 전지전능하고 무오류의 존재로 인식되도록 주민들을 세뇌시켜왔다고 할 수 있다.먹을 것이 모자라 하루 두끼 먹기운동을 벌이면서도 철저한 사상무장과 외부 정보통제로 주민들로 하여금 지상낙원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믿도록 만드는능력을 갖춘 인물이 바로 김일성이기 때문이다. 김은 1912년 4월15일 평양의 한 농가에서 아버지 김형직과 어머니 강반석을 부모로 하여 철주와 영주를 동생으로 둔 삼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본명은 성주였으나 만주에서 빨치산활동을 할 때 일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에 대한 기록은 우상화과정에서 지나치게 미화되거나 엄청나게 날조되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그의 출생지가 평남 대동군 룡산면 하리 칠골에 있는 외가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이름도 성주에서 일성을 거쳐 다시 일성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김일성의 「공식」생가는 평양 대동강변 언덕에 자리잡은 지금의 만경대이며 이른바 「혁명의 요람」으로 북한의 모든 주민들에게는 참배의 대상이 되어왔다. 김은 어린 시절 한때 외할아버지가 개신교 장로를 지내는 등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 외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강반석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니기도 했다. 그는 만경대에서 짧은 유년시절을 보낸 뒤 가족과 함께 만주로 이주했다.그후 김은 만주의 중국계 소학교인 모예산소학교,팔도구소학교와 평양근교 외가인 칠골에 있는 외조부 강돈욱이 교감으로 있던 창덕학교 등을 전전하며 파란많은 소년기를 보내다 26년 역시 중국계인 무송소학교를 졸업한다. 이후 32년 유격대활동에 적극 가담하기까지의 기간은 뚜렷한 활동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다만 북한에서 나온 그의 전기들은 이 기간중 장춘과 길림 사이에 있는 가륜에서 한인농민들에게 사상교화작업을 했다고 쓰고 있다. 그는 31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32년 중순부터 중국 공산당 산하의 항일 빨치산집단에 참여한다.이때 이름도 성주에서 일성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김의 항일투쟁경력은 그가 북한정권을 장악한뒤 유일체제를 강화하면서 그에 대한 우상화를 합리화하기 위해 터무니없이 과장·미화되었다.북한의 선전용 김일성 전기들은 만주사변이 일어난 32년 그가 조선공산당을 창설했다고 하지만 당시 불과 19세였던 그는 당시 그럴만한 힘이 없었다. 그는 2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양세봉이라는 한인이 이끄는 유격조직에 들어감으로써 항일빨치산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후 그는 중국공산당 산하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에 사병으로 들어가 활동하다 우수한 중국어 실력을 인정받아 나중에 대대장급으로 승진했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만주 일대에서 소규모 유격활동을 벌이던 김은 37년 유격대원 2백명을 이끌고 국경 마을인 함남 보천보를 습격했다.일본경찰지서와 우체국 등을 방화하고 추격해오는 경찰서장을 비롯한 일경 7명을 살해한 이른바 「보천보전투」를 벌여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김은 이 전투가 자신이 참여한 빨치산 전투중 가장 성공적인 전투였다고 자랑하며 보천보에 자신의 동상과 혁명박물관까지 세우고 북한 주민들에개 참관을 강요했다.하지만 보천보사건을 일으킨 사람이 김일성이 아니라는 소수 의견을 내는 학자들도 있다.즉 보천보사건의 김일성은 그해 11월 죽었으며 그의 부하였던 사람이 소련으로 도피한 뒤 그의 이름을 도용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보천보사건 이후 일본이 중국 본토 침략의 전초전으로 만주의 빨친산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전에나서는 바람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히 와해되기 시작했다.때문에 김도 41년 8월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 서쪽으로 피신해야 했다. 소련은 이 무렵 만주에서 일본과의 전쟁에 대비,중국인과 한인유격대원들을 모아 블라디보스토크 근교 등지에 「88독립저격여단」이라는 부대를 창설했다.김도 김책,최용건,이동화 등 빨치산 동료들과 함께 이 부대에 들어가 43년에는 대위급으로 진급한다. 김은 여기서 만주에서 함께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김정숙과 결혼했다.그녀는 16세 때인 35년에 김일성의 빨치산부대에 가담해 주방일 등 잡일을 보았던 여자였다. 김은 42년 그녀와의 사이에 첫아들인 정일(소련명 유라)을 낳았다.하지만 그녀는 49년 평양에서 사산아를 낳다가 사망했다. 해방과 함께 무명의 소련군 장교로 평양에 입성한 그는 이후 소련의 절대적 후원과 타고난 권모술수로 재빨리 권력을 장악한다.소련 점령군은 친소세력에 의한 공산정권 수립의 필요성에 따라 자신들의 협조자들 가운데 하나를 북한지도자로 만들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고 김이 바로 그같은소련의 의도를 기민하게 포착한 것이다. 소련점령군이 46년 2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를 만들어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지명하면서 정치지도자로서의 그의 기반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1949년 3월에서 4월까지 한달동안 자신을 도와준 소련에 감사를 표시하기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돌아온 뒤인 6월 24일 북로당과 남로당 중앙위원회연석회의를 열어 당 위원장자리를 차지했다.이 회의에서 당의 명칭도 북조선노동당에서 조선노동당으로 바꾸었다. 당과 정부기관을 장악하는데 성공한 김일성은 자신에게 도전하는 세력을 가차없이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그는 자신에게 협력했던 인사도 자신에 도전할 정도로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숙청 또는 암살이라는 수단을 동원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는데 심지어 자신과 유격대활동을 함께했던 빨치산대원들까지 가차없이 제거하기도 했다. 그는 조만식과 같은 민족주의자뿐 아니라 박헌영,김두봉등과 같이 자신에게 협력했던 수많은 인물들을 한국전쟁에 대한패전책임을 덮어씌우거나 종파주의를 부추키고 있다는등의 갖가지 죄목을 걸어 제거함으로써 결국 북한정권을 족벌체제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소련의 힘을 빌려 48년 북한정권의 초대수상에,49년 조선노동당 초대위원장에 오른뒤 도전세력들을 가차없이 제거하기 시작했다.그는 조만식 등 민족주의자는 물론 현준혁 등 국내파,박헌영 등 남로당계,김두봉을 위시한 연안파,허가이 등 소련파를 차례로 숙청해 결국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김은 자신의 권좌가 어느 정도 다져진 50년 6월25일 한반도의 적화통일이라는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마침내 무력 남침을 감행한다. 그 자신이 식은죽먹기라고 여겼던 적화통일이 유엔의 개입으로 실패로 끝났음에도 그는 전혀 책임을 느끼지 않았다. 김일성이 무력 적화통일이라는 야욕을 공공연히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47년부터였다.그는 신년사를 통해 『단합된 민주조선의 건설은 남한에 있는 반동적인 매국노들에 대한 궁극적인 승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인민군과 보안대를 강화시켜야한다』고 역설했다. 김일성은 모든 상황이 유리하다고 판단,밤도둑처럼 새벽야음을 틈타 남침을 했으나 유엔군이 참전하고 중국의용군이 자신을 도와주러 왔을때는 이미 전쟁이 자신의 관리능력 밖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되었다.국제정세를 너무 단순하게 보았던 판단착오의 결과였다. 김일성은 자신의 실수로 엄청난 결과가 빚어지자 동료들을 숙청했다.그는 1950년 12월 21일 강계에서 열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원회의에서 그의 빨치산 동료들을 비롯한 거의 모든 사람들을 공격했으며 그 가운데서 김일,최광,임춘추,김열,무정등은 당에서 축출해버렸다. 김일성은 뒤이어 당의 재조직문제를 놓고 자신과 이견을 보인 소련파의 거두 허가이를 숙청했으며 박헌영을 비롯한 국내파들도 정부전복을 기도하고 미국을 위해 스파이활동을 했다는등의 죄목으로 체포해 사형에 처하는등 자신에게 도전하거나 더이상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는 세력은 여지없이 제거하는 비정함을 보였다. 김일성은 50년대 중반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도전하는 세력들을 숙청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래 67년에 「주체사상」을 만들어 냈으며 72년에 와서 북한의 사회주의헌법에 통치이념으로 명문화시켜 통치의 도구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같은 주체사상과 김일성에 대한 극단적인 우상화가 맞물리면서 북한정권이 안에서부터 서서히 허물어지는 요인이 됐다. 북한의 선전매체들이 김일성에 대해 『가랑잎을 띄우고 대하를 건너가는 만고의 영웅이며 그가 한번 노려보기만 하면 원쑤도 가을 풀같이 쓰러진다』고 보도할 정도로 북한은 이후 유사종교집단적 사회구조를 띠면서 경직적인 김일성 1인체제가 굳어지기 시작했다. 70년대 이후 김일성은 남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완전히 밀리면서 철저한 폐쇄체제로 주민들을 통제하면서 다른 한편 아들인 김정일에게로 후계세습작업을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나름대로의 준비과정을 거쳐 지난 72년 12월 비공개리에 당중앙위 전원회의를 거쳐 김정일을 자신의 후계자로 내부적으로 결정했다.그도 소련의 스탈린 등의 전례를 보고 자신의 사후에 대해 대비를 시작한 것이다.다시 말해 스탈린 사망후 대대적인 격하운동에 충격을 받은 김이 사후 안전판으로 세계사에 유례없는 부자간 권력승계라는 희화적 구도를 상정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그는 자신에 대한 우상화 이상으로 김정일에 대한 상징조작을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가면서 권력을 하나씩 아들에게 이양하기 시작했다.김정일에 대한 호칭을 「당중앙」에서부터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향도의 별」 등으로 격상시켜나가면서 노동당 조직비서(73년),노동당 정치 상무위원회 위원(80년),인민군 최고사령관(91년),국방위원장(93년) 등 핵심요직을 하나하나 물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에게 「살아있는 신」으로 우상화작업을 펴온 김일성도 끝내 죽음을 거부할 수 없는,한 평범한 인간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그 자신도 70년대 이후 각종 질병에 시달리면서 건강유지에 발버둥쳐온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김일성의 질환은 지난 73년께부터 확인된 뒷머리의 혹에서부터 고혈압·당뇨·난청·신경통·뇌일혈을 비롯해 그를 8일 새벽 마침내 죽음으로 몰고간 심근경색 등 10여가지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쨌든 그는 분단 반세기만에 초유의 역사적 사건인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급사했다.그를 갑작스런 죽음으로 몰고간 원인이 그의 일생일대의 도박이라고 할 수 있는 정상회담에 대한 준비과정에서의 과로 때문인지,아니면 경제난과 대외적 고립에 따른 누적된 스트레스 탓인지는 아무도 모른다.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북한주민들에게 영생불사의 존재로 신격화된 그도 죽음 앞에 아무도 예외일 수가 없다는 철리를 그의 맹목적인 추종세력들에게 마침내 일께워 준것이다. 그의 공과는 후세의 사가가 엄정하게 평가해줄 것이다.그가 역사의 장에 어떻게 기록되든 과대망상에 빠진 권력의 화신이었다는 사실은 동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이미 뚜렷이 각인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일성 연표◁ △1912.4.15 평남 대동군 고평면 남리 만경대출생(본명은 김성주) △1923 만주 장백현 팔도구 소학교 졸업 △1926 만주 길림 육문중학 중퇴,재학중 공청 가입 △1930 김성주를 김일성으로 개명 △1931 중국공산당 입당 △1932 중국공산당 조선인부대 지대장 △1935 김일성으로 재개명 △1936 조국광복회 조직 △1937.6 함남 보천보 습격 △1937.9 함남 증평리 습격 △1940말 소련으로 망명 △1945.8 소련군 소좌 △1945.9 소련점령군 비호하 입북 △1945.10 조선공산당 서북5도당책임자 및 열성자대회 참석 △1945.10 「김일성장군」환영 평양시군중대회에 등장 △1945.12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책임비서 △1946.2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 △1946.7 북조선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장단 의장 △1946.8 북조선노동당 부위원장 △1947.2 북조선 인민위원회 위원장 △1948.8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1948.9 수상(제1차 내각) △1949.3 경제문화 협정체결차 소련방문 △1949.6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1950.6 군사위원회 위원장 △1950.7 인민군 최고사령관 △1953.2 원솔칭호 △1953.7 영웅칭호 △1956.4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1957.9 수상(제2차 내각) △1957.11 당 및 정부 대표단장으로 소련 10월혁명 40주년 기념식 참석 △1959.1 소련 제21차 공산당대회 참석 △1959.9 중국 정권창건 10주년 기념식 참석 △1961.7 우호협조 및 상호 원조조약 체결차 소련 중국 방문 △1961.9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및 정치위원회 위원장 △1961.10 소련공산당 제22차대회 참석 △1962.10 수상(제3차 내각) △1966.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 △1967.1 소련방문 △1967.12 수상(제4차 내각) △1970.11 노동당 총비서 겸 정치위원 △1972.12국가주석 △1972.12중앙인민위원회 위원겸 국방위원회 위원장 △1975.4중국방문 △1975.5루마니아·알제리·모리타니·불가리아·유고 순방 △1977.11국방위원회 위원장 △1977.11인민군 최고사령관(원수) △1977.12 국가주석 △1980.5 유고 티토대통령 장례식 참석 및 루마니아 방문 △1980.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1980.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총비서·군사위원장 △1982.4 국가주석 △1982.9 중국 방문 △1984.5 소련등 동구권 8개국(소련·폴란드·동독·체코·헝가리·유고·불가리아·루마니아)순방 △1986.10 소련 방문 △1986.12 국가주석 △1988.6 몽골 방문(중국·소련 경유) △1989.11 중국 방문 △1990.5 국가주석 △1991.10 중국 방문 △1992.4 대원솔 칭호 △1993.4 「전민족 대단결 10대강령」발표 △1994.4.8 사망
  • 김일성사후의 한반도정세/김석준(특별기고)

    ◎대남노선 온건화­평화통일 “청신호”/김정일체제 개혁·개방 가속화 전망/정상회담 정례화·북핵 타결 가능성 북한 김일성주석의 사망소식이 온나라에 여러가지로 큰 충격을 주었다.남과 북의 7천만 민족에게 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에도 긴급뉴스로 전파되어 김일성사후의 한반도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하였다.특히 북한핵문제,북미회담,남북한 정상회담 등이 구체적인 관심의 초점으로 되고 있는 이때 김일성주석의 사망은 사인을 둘러싼 의혹만이 아니라 이들 문제와 한반도정세의 향후 전개에 미칠 영향에 대해 많은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한국정부도 돌발사태에 대비한 전군비상체계 돌입,국가안보회의와 국무회의 개최 등의 조치를 취하는 한편 새로운 대응전략을 마련중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남북정상회담준비에 골몰했던 정부였기에 일부 관계자가 충격과 허탈감에 빠진것도 이해할 수 있으나 신속하게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니 다행으로 생각된다. 자연사의 경우에는 이미 오랜기간 권력승계를 준비해온대로 김정일후계체제가 다소의부작용을 무마하면서 큰 무리없이 등장할 것이다.김정일이 주석직을 승계하고 반대파를 숙청,무마하면서 권력기반을 구축하면 정치안정을 이룬뒤에 북한핵문제해소와 경제안정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이 경우에는 남북관계도 진전되고 남북통일도 전향적으로 전개될 것이다.김일성 개인의 카리스마와 전체주의적 통치방식도 김정일체제의 경우에는 새로운 권력집단으로 부상할 개혁지향의 관료집단과 합리적 통치방식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물론 이러한 전환과정에 많은 시행착오나 부분적인 저항으로 인한 혼란이 발생하여 더욱 전체주의적인 방향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없지 않으나 그럴 경우에도 체제의 폐쇄성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전반적으로 볼 때 북한의 새로운 체제는 기존 체제보다 개방화와 개혁의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고 개인의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에 의존하던 지도체제에서 집단적인 방식이 많이 추가된 탈전체주의체제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여기에는 세계적인 사회주의체제의 몰락과 개방화라는 역사적인 추세뿐만이 아니라 북한사회내의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군부,당및 정부내에서의 개혁적·합리적 기술관료집단의 부상,북한사회내 엘리트집단의 폐쇄적 체제에 대한 회의 및 개방에 대한 선호,북한 경제상황의 악화,주체사상에 대한 확신 약화,해외 유학파의 증가에 따른 개방화의 욕구파급,외국 방송과 해외정보의 확산 등이 기존체제를 위협하는 요인들이다.이들이 김일성체제의 후계체제구축에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이 때문에 북한체제의 개혁과 개방에 반발하는 수구세력,특히 일부 군부세력이 중심이 되어 쿠데타를 일으킬 수도 있지만 그 가능성은 매우 낮다.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북한체제는 소련이나 동구체제보다는 중국의 개방화와 가까운 길을 걷게될 가능성이 크다.김일성의 사망은 장기적으로 북한체제의 개혁과 개방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으로 보인다.북한체제가 개방과 개혁의 길로 나아가는 한 한반도주변정세는 안정된 길로 나아갈 것이다.북미회담의 계속 추진,남북정상회담의 정례화,북환핵문제의 평화적 해결등이 가능하게 된다. 혹시라도 김일성이 피살된 경우에는 상황전개가 더욱 복잡하다.누구가 주도했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개혁과 개방에 반대하는 수구세력이나 김정일에 의한 경우에도 북한체제의 안정은 단기간에는 어려운 반면 장기적으로는 북한체제의 급속한 붕괴를 제촉할 수도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남북관계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북한뿐만이 아니라 우리정부가 남북관계의 또다른 독립변수가 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상황이 유동적이고 불확실할수록 정부의 대응전략내용에 따라 전개방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국내 보수·진보세력간의 의견대립이 지나치게 표출되었던 점을 교훈으로 삼아 정부가 보다 개혁적인 정책방향을 조속히 정립할 필요가 있다.국가안보를 속으로는 중시하더라도 유동적인 북한을 자극하기보다는 더욱 통일을 향한 평화적 대화통로를 유지해야한다.가능하면 남북정상회담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는 정부 의지를 공표하여 북한의 새로운 체제의 안정에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정치적·경제적 수단을 동원하여 우리정부의 일관된 통일정책을 추진해야 하겠다.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북한체제의 붕괴로 인한 흡수통일보다는 단계적인 통일방안의 독자적·주체적 실현이 필요하다.남북정상회담과 북미회담의 지속적인 추진을 촉구한다.
  • “안기부에 대한 국민신뢰 회복돼야”/신상우 국회정보위원장 인터뷰

    ◎과거의 역기능 재발방지에 역점 둘터/정보서비스차원 국민의 알권리 충족 『정보위원회의 활동은 국가안전기획부가 국민의 신뢰를 받느냐,국회가 어떻게 국가의 이익을 뒷받침하느냐를 가름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개정된 국회법과 안기부법에 따라 초중량급 위원들로 신설된 국회정보위원회의 신상우초대위원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와 국가이익』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정보위의 운영 방향은. ▲소관이 베일에 가려져 있던 안기부라는 점에서 여야는 물론 언론의 관심이 집중될 것이다.실제로 안기부가 무엇을 하는지 국민의 대표기관이 알아야 하고 또 정치공작,지식인사찰등 과거의 역기능이 되살아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데 운영의 방향을 잡고있다.안기부의 업무를 다루자면 역시 핵심은 예산이 수반되는 국가정보사업이다.이는 국익과 직결된 사업으로 고도의 기밀과 보안유지를 필요로 한다. ­보안유지에 대한 특별한 대책은. ▲기밀을 누설할 때에는 관련법에 따른 처벌조항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우선인 것은 정보위원 개개인의국익에 대한 책임의식이다.안기부가 위원들을 신뢰하고 위원들은 국익을 바탕으로 철저한 보안을 지키게 될 것이다.위원회가 다루는 비밀문건은 국회에 별도로 비밀보관소를 설치해 안기부의 담당책임자가 관리하는 등 유출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 ­안기부 업무와 관련한 자료요청등에서 여야의 시각차가 클텐데. ▲안기부의 속성은 자료를 대외적으로 내지 않으려는 것이다.정보위는 다른 위원회와는 달리 국회법에 따라 위원들의 자료요구사항을 취합해 안기부에 요청하고 안기부는 이에 대해 감추지 않도록 하는 등 운영의 묘를 살리겠다.그러나 사생활이나 인권차원의 자료요구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위원회 활동은 철저한 비공개인데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국민이 아는 것과 국회가 파악해야 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비밀이 원칙이지만 정보서비스차원에서 위원회가 안기부와 협의해 알릴 사항은 알리겠다.한 예로 지난번 전쟁위기국면에 대한 정보공개는 국민들의 협조를 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본다. ­본격적인위원회 활동은. ▲오는 9일 첫 회의를 열어 여야간사를 선임하고 위원회의 활동방향을 잡겠다.그러나 아직 위원회 직원및 위원보좌진들의 신원조회가 끝나지 않았다.본격적인 활동은 다음 국회부터가 될 것이다. ◎위원보좌 실무진 철저 신원조회/의원배포자료 회수… 위반땐 최고 5년형/국회정보위 비밀관리 어떻게 개정 국회법에 따라 신설된 국회 정보위에 많은 눈길이 쏠리고 있다. 국가의 최고 정보기관인 국가안전기획부에 대한 통제가 주된 임무인데다 여야의 거물급 중진들이 포진하고 있어 더욱 그렇다.물론 정보위가 제 모습을 갖추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기는 하다.지금으로서는 신상우위원장(민자)을 포함,위원 12명을 선정하고 회의실등 사무실을 마련해 놓은 초보 단계의 모양을 갖춘데 불과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두가지 작업이 남아 있다. 첫째는 위원들을 보좌할 실무진들을 구성하는 문제이다.나라의 「신경망」을 다루기 위해서는 불순한 책동을 차단할 수 있는 「확실한 인선」이 전제가 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둘째로는 정보위가 취득한 기밀에 대해 어떻게 보안을 유지하느냐 하는 기술적인 문제이다. 첫번째 사안에 대해서는 우선 피감독기관인 안기부의 신원조회 결과가 나온 뒤 결론을 내릴 계획이다.신원조회 대상은 모든 정보위 직원들과 의원보좌관 및 비서관등 40여명 가량이다.국회직이 아닌 의원의 개인보좌관이나 비서관은 아예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그러나 신원조회의 결과가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다.국회 직원들이야 신원조회에 통과하지 못하면 다른 부서로 옮기면 그만이지만 의원보좌진들은 처지가 다르기 때문이다.정보위는 이 때문에 전문위원 후보 3명에 대한 신원조회를 의뢰했을 뿐 나머지 대상자는 아직 확정짓지도 못하고 있다. 두번째 사안인 보안유지는 국회 안에 「비밀문서 보관소」를 설치,불상사를 미리 방지할 계획이다.안기부의 보안규정에 따라 엄격히 관리하고 안기부 직원을 상주시키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보관소에 비치된 문서는 언제든지 열람할 수 있으나 복사 또는 외부유출은 일체 금지된다.회의 때 의원들에게 나눠준 자료도 회의가 끝나면 회수한다.이를 어길 때는 징역 5년이하 또는 벌금 5백만원이하의 처벌을 받는다. 이같은 2중장치를 통해 보안은 확보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운영에 있어서는 상당기간 시행착오가 불가피할 전망이다.특히 정보위가 관장하는 부처는 안기부 뿐만 아니라 정보예산이 책정되어 있는 통일원 외무부 내무부 국방부 법무부등도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이들 기관을 대상으로 한 자료요구및 비밀분류등에 있어 어느 수준의 정보에까지 접근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여야 사이에 적지 않은 논란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신위원장은 『국방위에서 안기부를 상대할 때는 막연한 구름잡기식 접근이었다』고 상기하고 『그러나 앞으로는 정보위가 구체적인 사안을 다루게 된다는 점에서 비밀분류나 자료제출 허용범위등에 대한 견해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 민영화 서둘지말고 무리없게(사설)

    그동안 말썽이 끊이지 않던 공기업 민영화정책에 대한 정부의 보완대책이 발표됐다.이번 대책의 핵심은 비교적 규모가 작은 공기업은 30대기업의 참여를 배제시켜 중소기업들이 인수케하고 한국중공업같은 초대형 공기업에 대해선 증권시장에서 주식을 최대한 분산시킨뒤 민영화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다시말해 재벌그룹의 경제력 집중을 될수 있는 한 억제하면서 민영화에 뒤따르는 혜택이 중소기업에도 돌아가게 함으로써 지금까지의 논란가운데 가장 큰 쟁점이었던 재벌관련 특혜시비를 없애 보겠다는 취지를 담은 것이다.민영화정책은 공기업의 경영효율을 높여서 전반적인 산업체질을 튼튼히 하고 우리경제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토록 하는데 근본목적이 있다. 그러나 정책추진의 초기부터 정부보유주식의 매각방식이 원칙을 잃은데다 업종전문화시책과의 연계성이 결여됐고 특혜시비가 그치질 않는등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문제점들이 노출됐던 것이다.따라서 우리는 이번 보완대책이 비록 충분치 못하고 값비싼 대가를 치른 것이기는 하지만 정책운용의 신중을 기하고 신축성을 살리려 한점은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다.특히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큰 초대형 공기업의 경우 상장을 통해 일반대중에게도 주식보유의 기회를 주기로 한것은 민영화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형성을 돕는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방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그렇지만 우리는 공기업의 민영화정책이 아직도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구체적인 추진에 앞서 계획의 타당성 여부를 총체적으로 점검하는 장치를 마련토록 촉구하고 싶다.또 몇년안에 민영화를 끝낸다는 식의 힘에 부친 업무추진행태는 일찌감치 떨쳐버려야 한다.국민경제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큰 만큼 적은 수의 공기업을 대상으로 다단계의 순서를 밟으며 추진하는 것이 오히려 성공률을 높일수 있을 것이다. 민영화방식도 공개경쟁입찰원칙을 강조하는 것보다는 각 산업의 특성에 맞게 보다 다양화하는 것이 해당공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촉진시켜 자본주의 기틀을 확고히 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이와함께 우리는 민영화가 이뤄지더라도 공익성이 큰 업체에 대해서는 정부의 감시기능이 있어야만 효율적인 경영이 이뤄질 수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이번 대책내용 가운데 한국비료와 같이 공개경쟁입찰을 둘러싸고 큰 시비가 일었던 일부공기업에 대한 뚜렷한 해결방안이 없는 점,금융전업자본문제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은행 매각계획을 세운 것도 너무 성급하게 민영화를 추진하려던 결과로 보아지는 것이다.장기적인 안목에서 경제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민영화를 거듭 촉구한다.
  • 어선 한척 월북/시계 흐려 방향착오

    수산청은 4일 『선적을 알 수 없는 목선 한 척이 이날 상오4시30분쯤 연평도 서남해상에서 시계불량으로 방향착오를 일으켜 북쪽으로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수산청은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고 있으며,만약 북한이 실종된 어선을 보호중일 경우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송환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아일랜드 공화군/“수일내 무장투쟁 종식 선언”

    ◎“분리독립 시대착오… 강경파 설득 노력/영 당국과 평화협상 추진/IRA 당수 발표 【런던 로이터 연합】 지난 69년 이후 북아일랜드의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무장투쟁을 지속적으로 벌여온 IRA(아일랜드공화군)가 앞으로 며칠내에 무장투쟁의 종식을 위한 휴전을 선언할 계획이라고 영국 신문 메일 온 선데이가 26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아일랜드 민족주의계열의 소식통을 인용,IRA의 정치조직인 신 페인당 게리 아담스 당수가 평화협상을 개시하기 위해 강경파들로부터 승인을 얻으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존 메이저 영국총리와 앨버트 레이놀즈 아일랜드 총리는 지난해 12월 공동성명을 통해 폭력사용을 포기할 경우 IRA를 협상상대로 인정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와관련,신문은 게리 아담스 당수가 주권론에 바탕을 둔 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며 평화협상은 북아일랜드 경제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논지로 휴전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문은 이어 휴전이 성립되면 다음 단계로는 영국,아일랜드 정부대표와 모든 정당이 참여하는 상설회의가설치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김 주석,역사앞에 서라/이재근(서울광장)

    『과거사를 돌이키면 북한이 폭력전략의 경력을 갖고있는게 사실이다.그러나 지금 북한은 변했다고 봐야한다.독선적인 판단으로 착오와 실수를 하는일은 있어도 마지막 순간에 멸망의 길을 피할줄 아는 지혜는 가졌을 것이다.요즘 세상에 죽음을 각오해 수단방법을 가리지않고 전쟁을 일으킬 나라가 있겠는가.평양의 지도자는 자기가 먼저 방아쇠를 당기면 자살행위가 될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 계제인데 아직도 무슨 전쟁얘기냐고 할지 모른다.하나 이것은 내 의견이 아니다.「조선전쟁」의 일본인 저자 가미야 후지(신곡불이·전 경응대교수)가 내비친 최근 한반도정세관이다.북핵제재문제를 둘러싸고 팽배했던 「한반도 전쟁위기론」은 하구라는 것이다.북의 전쟁도발 가능성에 대한 소박한 반대논거도 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다.그것이 바로 「평화의 하구성」이다.전쟁은 예고되지 않는다.전쟁은 그것이 일어나기 전에는 언제나 부정되고 애써 회피되는 괴물이다.전쟁은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만이 알고있다.쌓이고 쌓이다가 어느날 하루아침에 폭탄처럼 터져버린다.그것이 전쟁이다.그러니 상대국가의 두 정상이 만나서 얘기하거나 어쩌면 아예 터놓고 살고 있다하더라도 한쪽이 전쟁을 하려들면 전쟁은 터지는 것이다.44년전 6·25동족전쟁이 그러했다.요즘 남북예멘전쟁이 또한 그것이다. 이상하게도 이해 6월의 세상살이 주제는 온통 남북의 「전쟁과 평화」뿐이었다.카터 전미대통령이 서울과 평양을 오가더니 언뜻 남북정상회담을 끌어냈다.사태는 반전해서 이제는 그 위기론의 근거가 북한핵이라는 사실은 저만큼 잊고 남북정상회담이 모든것의 시작이요 끝인양 얘기들하고 나섰다.카터의 거중내용도 그러하지만 현실적으로 북한핵제재요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 말이다.한마디로 북한핵의 「과거사」규명에 관한 국제여론은 침묵속에 들었다. 이 단계에서 성급히 단언한다면 남북문제의 전과정에 있어서 정상회담이란 그것이 성사되더라도 다만 시작에 불과하며 크고 깊숙한 주제속 각론의 한 대목이라는 사실을 알아야한다.중요한 것은 북한주석 김일성의 두주먹속에 북핵의과거가 꽁꽁 숨어있다는 사실을 아는 일이다.기실 북한핵문제는 지금까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해왔다는 의혹에서 시작된 것이다.북핵문제 2년이 바로 그에대한 진상규명의 과정이었다.국제사회의 근거있는 우려대로 북한이 이미 핵폭탄을 만들기에 충분한 플루토늄을 보유했거나 2∼3개의 핵폭탄을 갖고있는데도 현재를 위해 과거를 불문에 부친다면 그것이 평화란말인가.과거 핵규명이 전제되지않은 정상회담은 또…. 저쪽의 의심되는 평화제스처는 또 있다.『북핵위기는 끝났다』고 장담한 카터는 귀국후엔,남북한 병력을 각 10만으로 줄이고 비무장지대(DMZ)로부터 완전 철군하자는 등의 제의를 북주석 김일성이 내놨다고도 했다.괴이쩍게도 카터씨는 김일성의 평화주의적 「대인풍」면모를 소개하는데 심혈을 기울이는듯했다.그 10만감축 제의를 『생각건대 매우 의미있고 역사적인 것』이라고 마음대로 평가하는가 하면 한국전 실종미군유해 송환논의때 김주석은 반대했지만 그의 부인 김성애가 부추기자 결국 동의했다고 전하기도 했다.『그것은 멋진 장면이었고 그녀는 매력적인 여자였다』고 회고한 카터였으니 무엇에 잔뜩 홀렸는가 의심이 안가는바도 아니다. 이른바 10만 감군의 위장평화제의가 언제적 얘기였는가 따져볼 일이다.과거핵이 의심스럽고 현재핵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10만감축제의는 전혀 자신의 「폭력의 역사」를 망각한 또 하나의 평화제스처일뿐이다. 사실말이지 무기를 갖고는 어느 누구도 평화를 운운하지 못한다.맨손의 인간만이 평화를 만든다.평화는 헌장이나 협약 또는 정상회담으로 보장되지 않는다.사람 사람들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려야한다. 그래서 전쟁과 평화를 얘기할적에 「좋은 전쟁」이니 「나쁜 평화」니 하는것은 의미가 없다.전쟁은 전쟁이고 평화는 그냥 평화일뿐이다.돌아간 카터씨가 감군과 미군유해송환 「미담」을 전했을때 우리 주변에서 들린 얘기들이 『이제 평화다.남북한 정상이 만나고 군대가 줄고 미국과 북한이 잘 나가는데 무슨 전쟁인가』였다.사실이 그렇다면 나쁘지않다.그런데 그것이 바로 또다른 하나의 「평화의 허구」이다. 이데올로기의 전쟁속에서 살아남기위해 삶이 얼마나 처절해야하고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하는 인간의 변신과 고민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6·25전야의 텔레비전드라마는 말해줬다.한 젊은 대학강사가 피란을 가지못하고 서울에 남아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내용을 다시 꾸민 「역사 앞에서」가 그것이다.역사는 무엇이며 사람들은 왜 역사앞에 서야하는가를 알려준다. 카터씨를 만났던 북한주석이 정상회담을 전후해서 할일이 있다.양쪽에 움켜쥐고있을 수 있는 핵주먹을 활짝 펴보이라는 것이다.44년전에 일으킨 전쟁의 죄과를 시인하고 사과한다면 더욱 당연하다.다시 역사앞에 서라는 것이다.
  • 시민이 희생양일수 없다/이기백(데스크 시각)

    올 여름은 유별나게 불쾌지수가 높다.1주일째 계속되는 마른장마속에 철도·지하철파업으로 이틀째 출퇴근 전쟁을 치른 시민들은 월드컵축구 대볼리비아전마저 비기자 아쉬움이 더욱 크다. 한줄기 시원한 빗줄기는 언제나 뿌려지려나.시민의 발을 볼모로한 유례없는 철도·지하철 연대파업이 노정의 끝없는 힘겨루기로 변질되면서 시민들의 짜증은 폭발직전까지 치닫고 있다. 대화로 풀어야 할 노사의 단체협상이 매번 평행선을 치닫다가 곧이어 공권력이 개입되고 끝내 시민들만 희생양이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있다. 더욱이 이번 파업은 순수한 노사갈등의 표출이라기 보다는 대규모 사업장과의 연대파업 전단계이며 이는 제2노총을 목적으로 하는 법외노조의 정치성 세과시라는 공안당국의 분석이 불쾌지수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 이런 분석이 기우라치면 이번 파업의 외면적 동기로 철도는 1일 8시간 근무라는 근로조건 개선을,지하철은 임금인상등 생존권을 내세우고 있으나 과연 이같은 주장이 전국민의 발을 묶어 놓아도 되는 정당한 이유로 국민들의눈에 비출 것인가는 한번쯤 생각해보는 도량이 필요하다. 좋은 근무조건과 생존권은 인간의 원초적 욕구이자 권리다.그러나 국가 기간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근무조건과 급여 이상으로 국가와 국민에 봉사한다는 자부심과 책임이 더욱 소중하다. 세계에서 자기직업에 가장 책임감과 자긍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미국 핵잠수함에 근무하는 해군장병이라고 한다. 초강대국의 국민으로 대양에 나가 몇 개월씩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면서도 보수는 같은 경력 다른 직종의 3분의 2밖에 안되는 데도 이들은 자신의 임무에 대단한 긍지를 갖고있다. 대륙간 핵탄두를 적재한 밸래스틱미사일을 적재한 핵잠수함은 그 자체가 세계의 운명을 좌우하는 힘의 상징이며 미국의 이익을 대변한다.미국대통령도 세계 분쟁지역에 힘의 과시를 밝히는 기자회견 일자를 결정할때 이 핵잠수함이 언제쯤 분쟁지역에 도착할 수 있는지를 계산에 넣는다는 것이다. 이들과 함께 생활한 현역 해군대령은 밸래스틱잠수함 근무자는 해군참모총장이 일일이 면담할 정도로 심사가 까다로우며 한번 선발되면 평생을 봉직한다고 한다. 더 좋은 근무조건,더 많은 급료를 받을 수있는 기회가 있어도 이들은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보람감때문에 전직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그래서 핵물리학자이며 최초의 핵잠수함인 노틸러스호 함장을 지낸 리코펠은 제독이면서도 노틸러스호 함장으로 평생을 지냈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 철도·지하철은 국가의 동맥이며 국민의 발인 까닭에 여기에 종사하는 사람은 남다른 책임과 함께 긍지가 뒤따르게 마련이다.더 낳은 임금,더 좋은 근무조건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인지상정이겠지만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안된다고 책임감마저 저버린다면 어느 누구도 존경심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여러가지 어려운 시기에 가장 본분에 충실해야 할 직종에 있는 사람들이 국민을 볼모로 자기 주장을 관철하려 든다면 크게 잘못된 시행착오이다.여론의 뒷받침 없는 권익주장은 집단이기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마침 주말부터 장마전선이 북상,시원한 빗줄기가 내린다고 하니 주초부터는 모든 시민들이즐거운 마음으로 출근길에 나설 수 있기를 바란다.철도·지하철 근로자들의 책임감과 자긍심이 살아 있음을 믿어 의심않는다.
  • “통일로가는 큰걸음”대체로 환영/남북정상회담합의를 보는 시민의소리

    ◎대좌만으로도 큰뜻… 빠른 시일내 성사돼야/북한의 전략전술 여부 파악,신중대처 긴요 북한의 김일성주석이 18일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을 제의하고 김영삼대통령이 이를 전격 수용한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과 사회단체들은 일제히 환영하면서도 다만 시행착오가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조심스러운 진단을 함께 내렸다. ▲서경석 경실련사무총장=이번 정상회담 제의로 긴박했던 한반도 주변 상황이 호전되는 쪽으로 급진전된 것을 환영한다.특히 핵문제는 어디까지나 민족내부의 문제로 이제 남북 정상이 직접 만나 해결해야 한다.나아가 남북한 경제교류및 통일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진전이 있기를 기대한다. ▲백계현 광복회사무총장=북한 핵문제로 궁지에 몰렸던 우리나라 주변 상황이 희망적으로 변한 것을 환영한다.남북한 관계가 급진전될 계기가 마련됐다는 느낌이다.그러나 김일성주석의 갑작스런 정상회담 제의는 그동안의 관행으로 볼때 현실화되지 않을 가능성도 많은 것으로 보여져 한편으로는 걱정이다.남북한 정부가 서로진실성을 갖고 대화를 해 좋은 결과가 얻어지기를 희망한다. ▲양성철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교수(54)=남북정상회담은 그 시기와 장소·조건 등이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기때문에 무조건 이를 수용한다는 것은 오히려 북한의 전술에 말려들 위험성이 높다.특히 북한핵문제는 쾌도난마식으로 단순하게 해결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고 자칫 북한의 최면술이나 고도의 전술·전략에 말려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정부는 보다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서정우변호사(51)=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크게 환영할 일이다.특히 북한같이 한 사람에 의해 모든 사항이 결정되는 국가의 최고책임자와 직접 만나 회담을 갖는다는 것은 문제해결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당장은 회담의 성과가 없을 수도 있으나 남북 정상이 일단 만나게 됐다는 점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으며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시기와 방법은 실무자들이 구체적으로 결정하겠지만 방법에 너무 구애받지말고 빠른 시일내에 회담을성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창복 전국연합상임의장=북한 핵 등 남북한의 현안을 남북 정상이 직접 만나 자주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크게 환영한다.우리 정부가 정상회담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준비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기 바란다. ▲한장섭군(26·동국대 총대의원회 의장·독문학과 4년)=어떤 형식이 됐든 남북간의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고 민족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적극 찬성이다.그동안 북한 핵 문제로 남북관계가 지나치게 긴장돼 있었으며 또 사실이상으로 과장된 측면이 있었다.양쪽 최고 권력자가 만나 이러한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김영미씨(27·주부·강서구 화곡동)=이번 정상회담 수락을 계기로 그동안 일반시민들을 불안속으로 몰아넣은 북한 핵문제가 두 정상의 허심탄회한 대화로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란다.또 나아가 남북한 경제교류와 인적교류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향휴 일정을 마련,통일의 기초를 마련해주었으면 좋겠다. ▲이헌호씨(31·공인회계사)=반드시 남북정상회담을 성취하기 바란다.남북이 정략적 차원에서 곧잘 이용해온 정상회담을 탄탄한 국민적 지지를 받고있는 문민정부가 이루어낸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큰 성과를 올린것으로 역사적 평가를 받을 것이다. ▲오치규씨(27·서울대 정치학과4년)=핵문제만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외세의 간섭없이 우리 민족 스스로의 해법으로 풀수 있도록 남북정상회담을 열어 그 초석을 닦아놓았으면 한다.두 정상간의 대화로 갑작스런 평화무드가 형성되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이루어내야할 민적의 대과업인 통일에 한발짝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
  • 지배주주 「틀」만든후 시장자율로/금융전업그룹 육성방안 윤곽

    ◎1인 지분율 15∼20%로 상향조정/정부,은행법 개정후엔 개입 안해/정 부총리·홍 재무·박 수석 조율… 일부선 비판 금융재벌이 탄생할 것인가.금융의 「정주영」「이건희」가 과연 나올 것인가.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금융전업 기업군」의 윤곽이 잡혀가고 있다.박재윤 청와대 경제수석 비서관은 지난 주말 경주에서 열린 금융학회 세미나에서 구상의 일단을 밝혔다.이에 앞서 정재석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은 오는 11월 민영화할 예정인 국민은행을 금융전업 기업에 팔겠다고 말했다.가장 소극적이던 홍재형재무장관도 최근 태도를 바꿨다.금융전업 기업군에 특혜를 주지 않는다는 전제로 이달 중 세부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화답했다. 경제팀의 핵심 멤버 3인 사이에 「입장 조율」이 끝난 셈이어서 「구상 단계」인 금융전업 기업군 육성은 이제 「추진 단계」로 접어들었다.문제는 어떻게 금융재벌을 만들어내느냐는 방법론이다.이달 말 재무부가 그 방법을 제시할 예정이지만 지금까지 나온 세사람의 발언을 짜맞추면 윤곽을 짚어볼 수 있다. 요약하면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춘 금융전업 자본가가 은행의 지배주주,즉 주인이 될 수 있는 「틀」을 만들되 그 이후는 「시장 자율」에 맡긴다는 것이다.현행 은행법은 동일인이 특정 은행의 지분을 8% 이상 갖지 못하게 돼 있다.이를 금융전업 자본에 대해서는 15∼20%까지 높이고 기존 주주들 가운데 산업자본의 지분은 4∼5%로 낮춘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구체적인 대상을 선정하고 세금감면,금융규제 완화 등의 특혜를 주며 금융재벌로 육성하는 과정을 예상해볼 수 있다.그러나 이 경우 특혜시비를 몰고 올 것이 불을 보듯 분명하다.그래서 정부는 은행법을 개정하는 것으로 그치고 그 다음 과정에는 일체 개입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박수석의 「전업」 구상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3월 서울대 강연이었다.개방과 자율화로 무한경쟁 시대를 맞은 은행의 경영효율을 높이기 위해 주인을 찾아주자는 내용이었다.어떻게 주인을 찾아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박수석의 발언은 즉각 금융업계에 민감한 반향을 불러왔다.신한은행과 대신·교보·장기신용은행·제일은행 등이 앞다퉈 「금융전업 기업군」이 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이들은 전업 육성을 위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되는 특혜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그러나 이들이 정말 1인 지배주주를 바라는지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금융전업」 구상이 한편에서 무르익어가지만 반론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학계는 물론이고 홍장관의 지시로 세부 방안을 마련 중인 재무부에서조차 「거꾸로 가는 정책」「어설픈 자유주의적 발상」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세계적인 추세인데 금융전업 기업군 구상은 은행의 소유와 경영을 일치시키자는 것으로 시대 착오적인 발상』『세계 1백대 은행중 주인 있는 은행이 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재무부 관계자),『금융재벌로 낙점을 받으면 고객의 돈을 합법적으로 기업확장에 쓸 수 있게 돼 경제력 집중 면에서 현대의 정주영씨나 삼성의 이건희씨 차원을 능가할 것』(한국조세연구원 이인표박사),『금융재벌을 육성하기 위해 소유제한을 완화한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산업재벌은 물론 개인인 금융자본가나 법인이 은행을 지배하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박상용 연세대교수)는 등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재무부가 구체 방안을 마련한다지만 이 구상이 실현될 지는 미지수이다.
  • 민자,「민주 이대표 회견내용」 비난 공세

    ◎“야대표가 「북제재 반대」라니…” 맹공/“원폭제조해도 방관하자는 얘기냐” 힐난/존망걸린 문제 국책불명발언 취소요구 민자당은 14일 민주당 이기택대표의 기자회견과 관련,김종필대표가 기자간담회를 통해 조목조목 반박한 것을 비롯,모든 당직자가 한 목소리로 강도 높은 비난공세를 퍼부었다. 김대표는 이날 하오 긴급고위당직자회의를 소집,이대표의 회견에 대한 당의 대응방향과 수위를 조절한 뒤 전체 당직자가 배석한 가운데 간담회를 갖고 이대표의 발언을 『어불성설』 『국적불명의 발언』『당치않은 소리』『지나쳐도 너무 지나친 표현』등으로 지칭하며 격앙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김대표는 『한 없이 긴장상태가 조성돼 가는 상황에서 야당의 대표가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발언을 서슴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말문을 연 뒤 『나라에 우려스런 상황이 조성될 때는 비록 야당이라 하더라도 국가적 차원에서 협력하는 자세가 정상이며 상식인데 그렇지 못한 이대표의 자세는 대단히 유감』이라고 공박. 김대표는 특히 지금의 위기상황은 정부가 조성한 것이라는 이대표의 주장에 대해 『북한으로하여금 원자폭탄을 만들도록 내버려두고 방관하자는 얘기냐』고 반문한 뒤 『북한이 왜 핵을 가지려 하고 누구를 향해 사용하려 하는가를 생각해 볼 때 제재를 하지 말라는 이대표는 과연 한국사람인지 묻고 싶다』고 목청을 높였다. 김대표는 이어 『북한의 핵문제는 정책 이전에 우리의 생사,대한민국의 흥망에 관한 문제로 이대표는 제재가 안된다는 발상이 어디서 나왔는지 되살펴보고 오늘 아침의 국적불명발언을 거둬주기 바란다』고 요구. 한편 이날 민자당 당직자들은 그동안 대야 비난발언을 자제하던 모습을 바꿔 『망발을 서슴지 않은데 대해 경악과 분노를 느낀다』(문정수사무총장),『양식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서청원정무장관),『현실인식의 무지이며 시대착오적인 작태』(박범진대변인),『더듬이가 잘린 곤충과 같이 방향을 못잡는 행태』등 일제히 원색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이기택 민주대표 일문일답/북핵 일괄타결 불변… 독자제재 반대/「상무대국조」 신문광고·탄핵 관철 ­북한이 핵무기보유 의도를 갖고 있다는 안기부의 보고는 핵개발이 협상용이라는 전제아래 성립한 민주당의 일괄타결안의 현실성에 의문을 주고 있다.당론을 변경할 용의는. ▲안기부장의 국회보고를 완전히 믿을 수는 없다.당론은 변함없이 일괄타결방식에 의한 해결이다.유엔제재에는 승복할 수밖에 없지만 미국중심의 제재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미국중심의 제재는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유엔제재를 수용하겠다는 것과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것은 모순 아닌가. ▲우리는 유엔회원국이다.따라서 유엔의 이름으로 제재한다면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북한핵문제의 해결을 위해 직접 특사형식으로 북한을 방문할 용의는. ▲정부가 받아들인다면 갈 용의가 있다.북한핵문제를 해결하고 지금의 전쟁위기를 극복하는데 보탬이 될 것이다.내가 먼저 방북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것은 사안이 미묘해 물의를 빚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상무대사건 국정조사와 관련,대통령도 탄핵대상에 포함시킬것인가. ▲조사과정에서 비위사실이 드러나면 예외가 될 수 없다. ­정부는 대북제재를 포기하고 북한은 IAEA탈퇴를 철회하라는 식의 촉구성 발언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일리가 있다고 인정한다.그러나 먼저 정부가 남북실무접촉등을 통한 대화노력에 최선을 다했는지 묻고 싶다.이제는 미국이 직접 대화에 나서야 한다.3차고위급회담을 열어야 한다. ­북한의 IAEA탈퇴로 긴박해진 상황에서 상무대사건 국정조사를 계속 문제삼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여야가 힘을 합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잘 알고 있다.그러나 상무대사건 국정조사 역시 유야무야 넘길 일이 아니다.신문광고와 탄핵을 관철시키겠다.국민심판을 기다리겠지만 우선적인 책임은 정부와 여당이 져야 한다.
  • 은행 등 원천징수 자료 극세청 통보 내년 부활

    ◎재무부,신규계좌도 제출 금융기관이 고객의 예금이자에 대한 세금을 원천징수한 자료를 국세청에 제출하는 제도가 빠르면 내년 중 부활되고 새로 개설되는 금융계좌를 국세청에 통보하는 제도도 신설된다. 11일 재무부에 따르면 국세청은 금융실명제 이전에는 금융기관으로부터 원천징수 자료를 제출받았으나 실명제 이후 작년 10월7일부터 고객의 비밀보호 차원에서 중단했다. 재무부는 금융소득에 대한 종합과세가 실시되는 96년부터 원천징수 자료를 제출토록 할 방침이었으나 그 때에 갑자기 부활할 경우 시행착오로 인한 혼란이 우려 돼 제출시기를 앞당기기로 했다.그러나 제출절차와 내용을 간소화해 주소와 성명,주민등록번호,계좌별 이자소득 금액과 원천징수 세액 등 종합과세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만 넘겨 주도록 하고 제출 횟수도 매월이던 과거와 달리 매년 2월말 연 1회로 제한할 방침이다. 이밖에 「신규계좌 통보제도」를 신설,새로 개설되는 계좌를 금융기관이 반드시 국세청에 통보,계좌가 실명이나 차명으로 개설 됐는지 여부를 확인하도록할 계획이다.선진국에서도 계좌를 틀 때 실명인지 차명인지를 가리기 위해 신규 계좌를 국세청에 통보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 삼성 “아래로부터 개혁”/신경영 한돌기념 결의

    삼성그룹은 7일 신경영 1주년 기념일을 맞아 사장단 회의를 열고,「7·4제」의 완전 정착과 「아래로부터의 개혁」 강화 등 5개항을 결의했다. 사장단은 이날 신경영 실천의 해를 맞아 ▲「품질·서비스 완벽주의」를 실현하고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강화하며 ▲「공정한 경쟁,공존 공영의 정신으로 다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들고 ▲「나부터의 변화」를 추구하기로 했다. 그룹 관계자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시작된 신경영은 이제 본궤도에 올랐으며 변화과정에서 혼란과 시행착오도 없지 않았지만 삼성이 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밝혔다.
  • 「미국제」 가족·우리가정(송정숙칼럼)

    수절도 못했지만 재클린은 현직 대통령의 추도사를 헌정받으며 전대통령 영부인으로 미국국립묘지에 묻혔다.역대 어느 대통령부인보다 많은 국민의 칭송속에서 「영원의 불」밑에 누운 것이다.이로써 알링턴묘지에는 케네디대통령 가정이 하나 이뤄졌다.대통령부부와 사산한 딸,생후 사흘만에 잃은 아들을 자녀로 손색없는 가족이다. 진작에 미국국민들은 가임여성으로 백악관에 들어온 재클린과 케네디대통령에게 이런 가족모형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그러므로 중도에 좌절한 케네디 대통령가의 비극이 더욱 한스러웠을 것이다.재클린이 죽자 오래 홀로 누워있던,그들이 사랑하던 케네디에게 그 부인을 돌려주는 일에 온국민이 그토록 관심을 보인 것인지도 모른다. 케네디시대 이후 미국인들의 가족모습은 옛날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별로 없게 되었다.원로 ㄱ시인은 지난 70년대초에 미국에 초빙교수로 다녀온 적이 있다.그때 부부끼리 친교를 나눴던 교수들이 있었다.10여년만인 80년대에 ㄱ시인은 그곳엘 들러 옛친지들을 한자리에 모아보았다.그랬더니 5쌍중한쌍도 그대로 부부를 유지하고 있지 않았다.비교적 안정되고 다소 보수적인 교수사회도 그런 것이 미국이다. 내가 아는 한 시어머니가 최근에 미국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내외를 보러갔다.아들도 며느리도 대단히 우수하다고 자랑하던 분이다.그런 그분이 의외로 예정을 당겨 일찍 돌아왔다. 『며느리는 다리를 척 꼬고 앉아 책을 보고 아들아이가 커피를 끓여바치더라.아침도 아들이 토스트굽고 우유랑 채소랑 식탁에 차리면 며느리는 먹기만하고 설거지도 아들이 하더라.어떻게 키운 아들인데 그꼴 못보겠더라』는 것이 연유였다.논문을 먼저 끝낸 아들이 며느리를 그렇게 돕기로 약속했다지만 시어머니로서는 도저히 참고 보아 줄수 없었던 것이다. 최근 한 여자대학에서는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을 놓고 사제간에 지상논쟁이 벌어졌다.이 책은 외국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며느리들에게 적어보낸 시어머니의 요리법편지를 모아 책으로 엮은 것으로 이 대학에서 출판했다.이에 대해 여성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 비판을 했다.『이 책은 「여성이 곧 음식담당자이고 요리가 곧 여성」이라는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으며 결과적으로 여성의 억압구조를 강화시켰다』는 주장이다.그런 책을 여성의 자존심을 지켜나가야 할 대학이 가장 보수적인 제목으로 낸것이 실망스럽다는 것이다.굳이 낸다면 책이름이라도 「자녀에게 주는 요리책」이었어야 했다는 것.지난해에 나온 이 책은 40일만에 5만권을 팔았다. 대표적인 갈등의 상징인 고부간이 요리법을 전수해가며 화평하게 지내는 미덕도 크게 평가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만큼 요즘 여성들은 자아가 강하다.혼수니 지참금따위 시대착오적인 풍습이 사회를 퇴영시키는 한편으로 이처럼 진보적이고 맹랑한 여성들이 기성세대의 의표를 황당하게 찌르기도 한다.이들모두가 우리의 가족을 구성할 핵심세력이다.그들은 특수한 일부도 아니다. 현직 국민학교 선생님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도 있다.요즈음 도시주변의 어려운 동네에는 의외로 편부가정이 많다고 한다.대개 엄마가 달아난 가정이다.그런데 이런 가정은 편모가정의 아이들보다 문제가 훨씬 심각하고 지도할 방법도 없다.무엇보다 거칠고 희망이나 따뜻함 같은 것이 먹혀들지 않고 도무지 어째볼 수가 없다.이런 난감한 어린이가 날로 늘어난다고 한다.최근 그런가정의 아버지가 아이를 학대했던 일이 사회문제로 대두된 일도 있었다.이런 현상은 여성의 자아가 강해지며 생긴 부작용같은 것이다. 몇년전 미국서 화제가 됐던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라는 영화는 편부가 아이를 키우며 헤어진 아내와 법정싸움을 벌이는 것이었다.『부자가 저녁을 함께 지어먹으며 인생을 이야기하는 안락하고 평화로운 생활의 의미를 당신들이 알기나 하느냐』고 절규하는 부성애가 일품이다.아마도 그무렵이 그나라에서 편부가정이 한창 사회문제가 됐던 시기였을 것이다.최근 것으로는 「메이드인 아메리카」라는 영화도 있다.자아가 강한 흑인 여성이 정자은행에서 『좋은 종자』를 주문해다가 시험관수정을 하여 잉태하고 딸을 낳아 길렀다.머리가 기막히게 좋게 태어난 그 딸이 아버지를 찾아나서는 이야기를 미국식 코미디로 처리한 영화다.그러면서도 가족을 구성하는 것이 혈연으로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그러나 가족이란 인간에게 최후의 구원일 수밖에 없다는 것 등을 소란스런 미국식문화속에 보석처럼 묻어놓고 있는 영화다.이런「미제가족」과 유사한 가족은 이제 어디서나 가능하게 되었다. 이제 가족구조가 변해가는 것은 지구촌 어디서나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공하한 도덕론으로는 대응이 어렵게 되었다.금년은 유엔이 정한 「세계 가정의 해」다.전통적 구호만으로는 별효과를 기대할수 없을 것이다.인간에게 가족이란 무엇인지,현실은 어떤지,미래의 가족은 어떻게 예측되고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를 탐색하고 규명해야 할것이다.오늘처럼 절망스럽게 타락해가는 인성을 구하는 것은 결국 가정의 역할임을 생각해서도 우리의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그러나 절대로 서로 떠넘기기식이 아닌 방법이어야 한다.
  • 이북출신 전의원들 김대중씨 발언 비난

    이북출신 전국회의원들의 모임인 「이북출신전국회의원회」(회장 김인식)는 23일 『최근들어 김대중씨가 국내외에서 한 친공적 발언에 대해 큰 우려의 뜻을 표한다』는 성명을 내고 『김씨가 이성을 되찾고 자숙하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성명서는 또 『김씨가 미국 워싱턴 타임스와의 회견에서 「북한에 핵폭탄 두세개가 있어도 미국이 갖고 있는 핵탄두 2만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는등 일련의 친북적 발언은 지금까지 간간이 드러났던 그의 불투명한 노선이 결국 친공적이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면서 『김씨의 발언이 북한을 정상적인 사회로 인정하는 인식의 착오에서 비롯한 것인지,북한의 입지를 돕자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수 없다』고 비난했다.
  • 시카고행 KAL기 연료떨어져 앵커리지 기착 재급유 소동

    ◎고도 잘못잡아 기름대량소모 21일 하오 9시28분쯤 서울을 떠나 시카고로 가던 대한항공 B747­400 여객기가 고도설정 착오로 연료소모량이 늘어나는 바람에 항공유를 재공급 받기 위해 예정에 없던 앵커리지 공항에 기착했다. 이 사고로 비행기가 목적지인 시카고에 예정보다 5시간 가량 늦은 22일상오 6시20분에 도착,승객들이 항의하는 소동을 빚었다. 대한항공측은 이 여객기가 일본 나리타공항 상공에서부터 적정 비행고도인 8천7백m보다 3천m 낮은 5천7백m로 비행,항공유를 많이 소모해 앵커리지에 기착했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측은 이 여객기가 탑재 중량을 초과해 짐을 실었거나 기체 또는 계기장치등에 이상이 있어 고도를 낮게 잡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원인을 조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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