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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민순, 회고록 논란에 “文, 남북정상회담 후 안보 관련 주요 후속회의 관장”(종합)

    송민순, 회고록 논란에 “文, 남북정상회담 후 안보 관련 주요 후속회의 관장”(종합)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24일 회고록 논란에 대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남북정상회담 후에도 안보 관련 일련의 주요 후속 조치에 대한 회의를 실질적으로 관장했다”고 밝혔다. 또 송 전 장관은 백종천 당시 안보실장이 주재한 북한인권 결의안 관련 회의를 문재인 전 대표가 주재한 것처럼 자신이 회고록에 기술해 ‘중대한 기억의 착오’를 범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하고 나섰다. 송 전 장관은 이날 총장으로 재직 중인 북한대학원대를 통해 이런 내용의 글을 배포했다. 송 전 장관은 자신의 회고록에 담긴 북한인권 결의안 기권 경위에 대한 문 전 대표의 전날 반박과 관련해 입장을 밝혔다.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10월 2∼4일) 추진위원장을 맡았던 문 전 대표가 정상회담 이후에도 안보 관련 주요 후속조치에 깊숙이 관여했고, 이런 맥락 속에서 그해 11월 북한인권 결의안 관련 논의에도 개입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는 “당시 회의에서 백종천 안보실장은 회의 진행을 맡았고 의견조정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문재인 비서실장이 주요 발언권을 행사했다”고 설명했다. 송 전 장관은 아울러 “문 전 대표가 (기권) 결정에 이르기까지 본인이 취한 조치에 대한 자신의 기억과 기록을 재차 확인해 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문 전 대표가 밝힌 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당시 관계자들로 하여금 11월 20일(송 전 장관이 주장하는 기권 결정 시점) 오후부터 밤까지 서울과 싱가포르에서 있었던 논의 경과와 발언들에 대한 기억과 기록을 다시 검토하게 하는 것이 적절하다”며 “그 결과에 기초하여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는 것이 정쟁의 종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 전 장관은 최근 발간한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에서 2007년 11월 15일 안보정책조정회의, 16일 노무현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북한인권 결의안 찬반에 결론을 내지 못한 뒤 북한 입장을 확인하고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싱가포르 ‘아세안+3’ 회의에 참석 중이던 11월 20일에 기권 방침을 결정했다고 썼다. 송 전 장관은 11월 16일에 정부가 이미 결의 기권을 결정했다는 문 전 대표 측 주장에 대해서도 “사안의 주무장관이었던 저자(본인)가 찬성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었고, 대통령이 저자의 11월 16일 자 (찬성) 호소 서한을 읽고 다시 논의해 보라고 지시한 것은, 최종 결정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그는 회고록을 쓰기 위해 “개인적 기록, 국내외 인사들의 기록과 회고, 개별 인터뷰, 그 외 공개된 자료를 교차 확인했다”고도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文 “종북 논란 뿌리뽑겠다”며 강경 대응

    文 “종북 논란 뿌리뽑겠다”며 강경 대응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송민순 회고록’을 둘러싼 새누리당의 종북 공세에 “누가 안보를 정치적으로 악용했고 누가 북한에 기대어 정치를 해 왔는지를 만천하에 드러낼 자신이 있다. 차제에 망국적이고 소모적인 종북논란을 기필코 뿌리 뽑고야 말겠다.“며 강경 대응에 나섰다. 문 전 대표는 23일 ‘저의 길을 가겠다’는 페이스북 글에서 “남북문제에 관해 저도, 참여정부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문 전 대표는 새누리당의 회고록 논란을 “국민을 편 가르기 하는 색깔론”이라 꼬집으며 “사악한 종북공세에 끝까지 맞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서 자신이 ‘기억이 잘 안난다’고 답했던 부분에 대해 “10년 전 일인데다 회의록 등의 자료가 제게 없으므로 제가 모든 일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제게 유리한 대목임에도 불구하고 정직하게 그 부분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에 사소한 부분일지라도 기억나지 않는 대목은 있는 대로 말했다는 것이다. 또 회고록과 관련, “송 전 장관은 안보실장이 주재한 회의를 마치 제가 주재해 결론을 내린 것처럼 기술하는 중대한 기억의 착오를 범했고, 다른 착오도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문 전 대표는 “새누리당이 지난 대선 때 NLL 논란으로 정치적 이득을 본 것처럼 이번에도 그럴 것으로 판단했다면 참으로 구차하고 한심한 발상이다. 결국 색깔론은 경제에도, 안보에도 무능한 새누리당이 비빌 유일한 언덕인 것”이라고 날을 세운 뒤, “저는 조만간 민주정부 10년과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의 안보성적을 정확하게 비교해, 누가 안보 무능세력인지 분명히 말씀드릴 계획도 갖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지금 국민의 관심은 ‘최순실 게이트’에 집중돼 있다. 새누리당이 이 국면을 호도하기 위해 어설픈 색깔론을 되뇌고 있는 게 이번 사건의 본질”이라고 덧붙였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일침도 덧붙였다. 문 전 대표는 “이대로 가면 박근혜 정권의 마지막은 비극으로 끝날 것”이라며 “스스로 권력형 비리를 철저하게 파헤치고 국민께 용서를 구하면서 남은 임기동안 민생에 전념하겠다고 다짐하는 것만이 살 길이란 것을 박 정권에 진심으로 충언한다”고 말했다. 그는 “평생을 색깔론과 싸우며 지금보다 더한 음해와 중상을 이겨내고 끝내 한반도 평화의 기틀을 다진 김대중 대통령처럼, 저의 길을 가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논란이 되고 있는 ‘대북 결재 의혹’은 사실상 침묵하고 있다며 공세를 퍼부었다. 박맹우 새누리당 의원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문 전 대표의 글을 “궤변 일색의 변명만을 거듭하고 있다”며 “백번 양보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까지는 인정해줄 수 있겠는데, 그렇다면 왜 그토록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자료(대통령 기록물) 열람을 통해 실체를 확인해 보자는 우리 당의 제안에 동의해주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여당의 요구를 ‘사악한 종북공세’로 규정한 데 대해서는 “코너에 몰리니 ‘피해자 코스프레’로 상황을 모면해 보고자 하는 것”이라면서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핵폭탄이 만들어지는 마당에, 북한 문제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말라는 말이냐”고 반박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진짜 남자야? 여자 행세한 인신매매범 인터폴에 덜미

    진짜 남자야? 여자 행세한 인신매매범 인터폴에 덜미

    완벽한 여자 행세를 하며 중남미를 누비던 남자 인신매매범이 경찰에 붙잡혔다. 20일(현지시간) 현지 언론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인터폴은 카라카스에서 리카르도 레알 로드리게스(28)를 인신매매 혐의로 체포했다. 이름에 남녀 구분이 뚜렷한 스페인어로 리카르도는 영어의 리차드에 해당하는 남자이름이다. 하지만 인터폴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체포된 용의자는 긴 머리에 풍만한 가슴을 가진 여성이다. 무언가 착오가 있었던 게 아닐까 라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지만 경찰의 설명을 보면 상황이 이해된다. 베네수엘라 출신인 리카르도는 완벽한 남자지만 인신매매 범죄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완벽한 여자 행세를 했다. 성전환수술은커녕 성형수술도 받은 적이 없지만 머리만 길러도 여자로 보일 만큼 리카르도는 여성스러운 얼굴을 타고 났다. 여자로 변신(?)한 그의 범행무대는 미인이 많기로 유명한 자신의 모국 베네수엘라였다. 리카르도는 베네수엘라 여성들에게 접근해 "외국에 가면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꼬셨다. 꼬임에 넘어간 여성들에게 비행기 티켓 등 경비를 대주고 그가 여성들을 데려간 곳은 파나마. 리카르도는 파나마에 도착한 뒤 여성들을 성매매업소에 넘겼다. 그러면서 받은 돈은 미화 3500달러, 우리돈 390만원 정도다. 장사가 된다고 본 그는 아예 직접 성매매업소를 차려놓고 베네수엘라 여성들에게 성매매를 시켰다. 자신의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겐 티켓 등 초기비용(3500달러) 외에 숙식제공 등을 이유로 매달 1000달러(약 112만원)를 받았다. 인터폴이 리카르도 검거에 나선 건 파나마 당국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파나마 수사당국은 베네수엘라 여성들을 팔아넘기는 인신매매범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인터폴 적색수배를 발령했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美 로컬 푸드 전도사 미스카 제주서 건강 먹거리 토크쇼

    美 로컬 푸드 전도사 미스카 제주서 건강 먹거리 토크쇼

    우리 밥상에 올라온 음식들의 재료는 어디서 오는 걸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로컬 푸드 전도사 켄 미스카가 제주를 찾아 건강한 제주 먹거리를 이야기한다. 켄 미스카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최고급 레스토랑 요리사로 일하다 돌연 일리노이에 28만 992㎡ 규모의 ‘에피파니 농장’(Ephipany Farms Enterprise Inc.)을 열고 숱한 시행착오 끝에 수백 가지 채소와 육류, 가금류를 생산하는 농장으로 발전시킨 로컬푸드 전문가다. 뛰어난 영감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는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 강연에서 ‘올바르게 생산하고 소비하는 음식’을 고민하고 연구했던 자신의 얘기를 들려줘 왔다. 19일 제주도에 따르면 이번 제주 토크쇼는 제주 로컬푸드로 만든 건강한 식단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자리로 오는 30일 오후 7시 제주시 관덕로 제주올레 간세라운지에서 열린다. 켄 미스카는 “제주 천혜의 자연이 준 식재료를 어떻게 생산하고 소비하는 게 건강한 방법인지 함께 고민하고 제주 로컬푸드 미래에 대한 얘기를 전하기 위해 제주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제주올레길 주민행복사업의 하나로 제주시가 주최하고 제주올레와 한국농업경영인 제주시연합회가 주관한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AI 판사는 인간 판사 대신할 수 없어”

    “AI 판사는 인간 판사 대신할 수 없어”

    “인공지능(AI) 판사는 인간 판사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빅데이터를 이용한 인공지능 법률정보 서비스 업체인 ‘렉스 마키나’의 공동설립자 조슈아 워커는 18일 인터뷰에서 이같이 단언했다. 그는 과거의 여러 결론과 렉스 마키나가 법률 예측 시스템을 시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같은 판사라도 같은 사건을 미래에 다시 재판한다면 불분명한 부분이 명확해지면서 다른 판결이 나올 수 있는 만큼 AI의 결정이 인간의 결정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그는 “법률 전문가로서 기술에 파묻히면 안 된다. 사법 정의 등 중요한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워커는 “렉스 마키나의 판결 예측 시스템이 실제 일반 판결과 맞아떨어질 확률은 처음에는 65%였고, 특정 종류의 사건 판결의 경우 95%까지 확률이 올라갔다”며 “그러나 이를 기반으로 변호사가 본안과 쟁점에 집중해 변론하면 또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AI는 분쟁을 해결하는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단순 사건의 경우 기존 판례 분석을 통해 결론을 쉽게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분쟁이 법원으로 갔을 때 결론이 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불필요한 소송이 제기되지 않을 것”이라며 “판사나 변호사 등은 (비효율적인 시간을 줄여) 더 가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2008년 설립된 렉스 마키나는 법원과 지적재산권 관련 판결을 공유하고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판사별 평균 소요 시간, 승소율, 평균 배상액 등 법률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고객들은 관할 법원을 선택하거나 소송 전략을 짤 수 있다. 워커는 렉스 마키나가 소송 당사자 기업과 변호사뿐만 아니라 판사들에게도 유용한 도구로 이용된다고 소개했다. 그는 “특허 사건을 싫어하기로 유명한 스티븐 브라이어 미 연방대법관은 렉스 마키나를 활용해 좀 더 짧은 시간 안에 특허 사건을 해결할 수 있게 됐다”며 “언론과 비영리단체 등에는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법원에서 판결 정보를 얻기 위해 겪었던 갈등과 시행착오를 떠올리며 “법률 관련 분야가 어둠 속에 가려져 있어서는 안 되고 누군가는 불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커쇼 ‘포스트시즌 마무리’ 자존심 세웠다…다저스, 워싱턴 꺾고 NLCS 진출

    커쇼 ‘포스트시즌 마무리’ 자존심 세웠다…다저스, 워싱턴 꺾고 NLCS 진출

    세계 최고의 투수로 불리는 클레이턴 커쇼가 포스트시즌 부진에 마침표를 찍었다. 포스트시즌에서는 기량을 발휘하지 못 한다는 비난을 받았던 커쇼가 팀을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CS)로 이끌면서 자존심을 세웠다. 커쇼를 마무리 투수로 투입하는 초강수를 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가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NLDS·5전3승제) 5차전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두고 챔피언십시리즈(CS)에 진출했다. 다저스는 14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워싱턴 DC의 내셔널스 파크에서 열린 워싱턴 내셔널스와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NLDS 5차전에서 4-3으로 승리했다. 이로써 내셔널리그(15개)와 아메리칸리그(15개) 30개 구단으로 이뤄진 메이저리그의 올해 4강이 확정됐다. 다저스는 오는 16일부터 시카고 컵스와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NLCS)에서 월드시리즈 티켓을 놓고 다툰다.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ALCS)를 치른다. 7전 4승제인 각각의 챔피언십시리즈 승리 팀이 대망의 월드시리즈에서 만난다. 이날 디비전시리즈 5차전은 2승 2패로 벼랑 끝에 선 다저스와 워싱턴이 끝장 승부를 펼쳤다. 다저스는 승리를 지키기 위해 현역 최고의 에이스 선발 투수인 클레이턴 커쇼를 9회말에 등판시키는 초강수까지 뒀다. 승리의 여신은 변덕스러웠다. 초반 흐름은 워싱턴이 훨씬 좋았다. 워싱턴은 2회말 에스피노자의 적시타로 선취점을 얻었다. 다저스의 선발 투수인 리치 힐은 1실점 하고 2와 3분의 2이닝 만에 조기 강판당했다. 다저스는 워싱턴의 에이스 선발인 맥스 셔저를 상대로 5회초 1사 만루의 기회를 얻었지만 안드레 이디어가 헛스윙 삼진, 체이스 어틀리가 유격수 땅볼로 돌아서면서 절호의 찬스를 살리지 못했다. 6회말에는 워싱턴의 어이없는 주루 실수가 나왔다. 워싱턴의 선두타자 제이슨 워스는 볼넷으로 출루했고, 후속타자 2명은 연이어 아웃당했다. 2사 1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라이언 짐머맨은 좌익수 방면으로 라인드라이브성 2루타를 쳤다. 워싱턴의 3루 코치는 워스한테 홈으로 쇄도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판단 착오였다. 포수 야스마니 그랜달은 외야에서 정확히 송구한 공을 받아 잠시 기다린 끝에 여유 있게 워스를 태그아웃했다. 달아날 기회를 황당하게 잃어버린 워싱턴은 곧바로 역전당했다. 다저스는 0-1로 뒤진 채 맞은 7회초에만 4점을 올려 내셔널스 파크의 열광적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선두타자 피더슨은 셔저의 초구인 시속 153㎞(94.8마일) 포심 패스트볼을 받아쳐 솔로포를 폭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고 셔저를 마운드에서 끌어내렸다. 이어진 1사 1,2루에서 대타로 들어선 카를로스 루이스는 1타점 역전 적시타를 쳤다. 저스틴 터너는 2사 1,2루에서 워싱턴의 5번째 투수 숀 켈리를 상대로 중견수 뒤 펜스를 직접 맞히는 3루타를 때려 누상의 주자를 모두 홈으로 불러들였다. 하지만 워싱턴도 물러나지 않았다. 1-4로 뒤진 7회말 대타 헤이시의 2점포로 다시 턱밑까지 추격했다. 이후 무사 1루에 놓인 다저스는 마무리 투수 켄리 얀선을 7회말에 올렸고, 2사 만루의 위기까지 갔지만 결국 추가 실점 없이 이닝을 마쳤다. 다저스는 9회말만 잘 막아내면 챔피언십시리즈 진출을 확정할 수 있다. 다저스는 현역 최고의 선발 투수로 평가받는 클레이턴 커쇼를 9회말 1사 1,2루의 위기에서 등판시키는 초강수를 뒀다. 커쇼가 불펜으로 마운드에 오른 것은 2009년 10월 22일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필라델피아 필리스전 이후 거의 7년 만에 처음이다. 커쇼는 4번 타자 다니엘 머피를 2루수 뜬공으로 요리했다. 후속타자 대타 윌머 디포는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으로 처리하고 경기에 마침표를 찍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시론] 힐러리 클린턴과 한국의 기대/전인영 서울대 명예교수(국제정치)

    [시론] 힐러리 클린턴과 한국의 기대/전인영 서울대 명예교수(국제정치)

    서울을 방문한 미국 밴더빌트대학 총장에게 미국 대통령 선거에 관한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는 흥미로운 지적을 했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간의 치열한 비방전을 보면서 그의 언급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완벽한 대통령 후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힐러리와 트럼프 모두 법적·도덕적 의혹을 떨쳐내지 못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두 사람에 대한 ‘비호감도’가 높은 것은 미국 유권자의 실망과 아쉬움을 반영한다. 투표장에서 누구를 결정해야 한다면 덜 나쁘고 경험이 많으며 불확실성이 적은 후보를 택해야 할 것이다. 미국 대통령 선출 과정은 길고 복잡하다. 미 대선은 막대한 선거자금, 전국적 조직망 구축, 후보의 비전과 리더십 과시, 양호한 건강상태, 충분한 정치적 경험, 여론과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능력 등을 필요로 한다. 정치적 경험이 적은 트럼프는 특유의 선동적 언사와 좌충우돌로 뉴스 미디어와 유권자의 관심을 집중시켜 왔다. 그는 지지에 소극적인 공화당 지도부와 당내 경쟁자들의 도전을 극복해 최종 주자가 됐고, 정치경험이 풍부한 민주당 클린턴 후보와 대결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민 문제, 이슬람 종교, 자유무역 비판 등 미국 중심주의, 나토와 한·일 방어, 총기규제 반대, 막말과 거짓말, 포퓰리즘, 연방소득세 문제, 여성비하 등에 관한 경박하고 무책임한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이 돼 왔다. 과거 18년 동안 연방소득세를 내지 않은 사실이 폭로되면서 트럼프의 신뢰도가 크게 낮아졌다. 치명적 타격은 제2차 토론회 직전 폭로된 여성 비하 음담패설 테이프에서 왔다. 트럼프는 잘못을 인정하고 즉시 사과했으나 대통령이 되기 위한 자격과 자질 결여라는 비난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힐러리는 트럼프 같은 인간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공격하고 있다. 당혹감을 느낀 공화당 하원의장 폴 라이언은 더이상 트럼프를 방어하지 않고 그를 위한 지지 유세도 하지 않겠으며, 의회 선거에만 전념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공화당 지도부의 우려와 트럼프 포기를 의미한다. 두 차례 토론 결과는 힐러리의 우세승으로 나타났다. 투표일까지 25일 정도가 남은 현시점의 여론조사에서는 클린턴이 6~11% 포인트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클린턴은 주요 경합 주에서도 우세를 보이고 있다. 힐러리는 총 538명(하원의원 435명, 상원의원 100명, 워싱턴DC 3명)의 선거인단 중에서 237~260명을 확보해 당선에 필요한 270명에 접근하고 있다. 설령 클린턴이 11월 8일 유권자 득표수에서 뒤진다 해도 대통령이 될 수 있게 됐다. 많은 이들은 대선 레이스 초반 크게 유리할 것 같은 힐러리가 결함투성이의 트럼프를 쉽게 제압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한다. 힐러리는 친밀감 부족과 정직성 결여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 클린턴은 국무장관 시절 주고받은 이메일 3만 3000여개를 마음대로 삭제한 일로 궁지에 몰리고 있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면 힐러리를 감옥에 보내겠다고 공언했다. 클린턴의 월가와의 친화력과 시간당 20만 달러에 이르는 초특급 강사료(?)는 비난 대상이다. 클린턴 재단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단, 빌 클린턴의 성 추문을 크게 이슈화하려던 트럼프의 계획은 차질을 빚었다. 국무장관 시절 발생한 ‘벵가지 사태’에 대한 힐러리 책임론도 제기됐으나 결정타는 되지 못했다. 트럼프가 힐러리의 뇌 혈전과 폐렴 등 건강과 스태미나 문제를 물고 늘어졌지만 클린턴의 여유 있는 반격에 막혔다. 성급한 예단은 금물이겠으나 대세는 클린턴 쪽으로 기울고 있다. 한국은 외교·국방 분야에 경험이 없고,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반복해 온 트럼프에 비해 외교 경험이 풍부하고 남북한을 잘 아는 클린턴의 당선이 바람직해 보인다. 북한과 경제사정 악화 등 다양한 국내외적 문제에 직면한 한국은 굳건한 한·미 동맹 유지를 원하고 있다. 비방전으로 얼룩진 미국 선거전을 보면서 선동적이고 자주 말을 바꾸며 시행착오를 자주 겪을 트럼프보다 우호적이며 외교와 의회 경험이 풍부한 클린턴이 당선되기를 기대해 본다.
  • 대량 탈북 대비 ‘사회통합형 정책’ 나온다

    대량 탈북 대비 ‘사회통합형 정책’ 나온다

    정부, 종합 정착지원대책 발표 엘리트 활용·비상계획 손질 서독식 대규모 정착촌도 추진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1일 대규모 탈북을 염두에 둔 ‘탈북민 지원 체계’ 점검을 주문하면서 관계 당국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통일부는 다음달 ‘사회통합’에 초점을 맞춘 새 탈북민 지원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12일 정례브리핑에서 “다음달이면 탈북민 3만명 시대가 될 것”이라면서 “이에 맞춰 탈북민 정책 방향을 사회통합형으로 바꾸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어 “기존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지원을 효율화하는 쪽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남북통합문화센터 건립, 미래행복통장 추진, 탈북민 창업 지원, 3국 출생 탈북민 자녀 지원 계획 등이 담길 전망이다. 정부는 탈북 엘리트의 활용 방안과 유사시 대규모 탈북에 대한 비상계획 등도 손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 대변인은 일각에서 제기된 ‘탈북촌’ 건설 계획에 대해선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지만 그런 계획이 있는지는 말씀드릴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 탈북촌은 대규모 탈북민 수용 방안의 하나로 거론된다. 독일 통일을 앞두고 1989년 한 해에만 ‘탈동독’ 행렬이 34만여명에 이르자 서독은 ‘전원 수용’ 방침을 세우고 각 지방에 정착촌 형식의 수용소를 세우기도 했다. 실제 지난 1~9월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는 1036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854명)보다 21% 이상 증가했다. 2011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집권 이후 북·중 국경 통제와 단속이 강화되면서 감소했던 탈북자 숫자가 처음으로 증가세로 돌아선 것이다. 특히 과거에는 북·중 국경지대 주민들의 ‘생계형 탈북’이 주를 이뤘으나, 최근에는 북한의 엘리트층과 출신 성분이 좋은 해외 파견자를 중심으로 한 ‘이민형 탈북’이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7월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가족과 함께 탈북한 데 이어 중국 베이징 북한대표부에서 근무하던 보건성 1국 출신 간부도 한국으로 망명했다.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국장급 간부의 귀순 사실도 최근 알려졌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영향으로 본국 송금 압박이 커지면서 외화벌이를 하던 해외 파견 근무자들의 탈북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4월 중국 닝보(寧波)의 류경식당에서 근무하던 북한 종업원 13명이 한국으로 집단 망명한 데 이어 중국 산시(陝西)성 소재 북한 식당에서 근무하던 여성 종업원 3명도 지난 6월 국내에 들어왔다. 지난달 28일에는 극동지역 북한 인력송출회사의 간부가 북한 근로자 4명과 함께 탈북해 국내로 입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탈북 행렬이 늘면서 김정은의 공포 통치는 더욱 가혹해지고 다시 숙청에 대한 두려움으로 엘리층이 탈북하는 악순환 현상도 나타난다. 통일부는 “북한 내부의 변화를 면밀히 관찰하면서 대책 마련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규모 탈북을 기정사실화한 정책이 오히려 탈북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탈북 권유 등에 맞서 북한 정권이 탈북 방지책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앞서 김정은 정권 수립 후 국경 경계를 강화하자 2011년 2706명이던 탈북민 수는 이듬해 1502명으로 줄어들기도 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탈북민 수용 대책 등이 탄력을 받는 부분은 있겠지만 당장 수용 시설 마련 등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탈북민 정착 체계는 오랜 시행착오 끝에 갖춰진 것이라 틀을 갑자기 크게 바꾸긴 어렵다”고 말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新전원일기] 부부 인생에 구구절절 핀 구절초… 삶이 꽃같네

    [新전원일기] 부부 인생에 구구절절 핀 구절초… 삶이 꽃같네

    계절이 깊어 간다. 하늘은 높고 푸르고, 들판은 황금빛 물결이다. 산야의 가을꽃들이 만개해 형형색색으로 물들어 간다. 가을꽃으로는 단연 노랗고 하얀 국화가 으뜸이다. 전국에서 국화꽃 축제 소식이 들려온다. 외래종에 밀려 우리의 토종 야생화들은 언제부터인가 보기 드물어졌는데, 일부러 옮겨 심어 가꾼 야생화 축제 소식도 반갑다. 멕시코가 원산지인 코스모스에 자리를 내주었던 우리 꽃 구절초도 산에서 내려와 길가까지 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강원도 홍천군 남면의 푸른 산자락을 병풍처럼 두르고 조성된 6000여평의 ‘구절초 피는 마을 하립골’에도 밤새 함박눈이 내려 쌓인 듯 하얀 구절초 꽃이 만개해 뒤덮였다. ‘꽃차 연구소’ 건물 뒤편에 자리한 야생화 정원의 꽃들도 선비정, 삿갓정 등 양끝으로 단아하게 서 있는 정자를 사이에 두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알록달록 피어난다. 정자에 올라앉아 달콤한 한과를 한입 깨물어 먹고 향긋하게 우린 차를 마시며, 끝도 없이 펼쳐진 하얀 구절초 밭을 내려다보고 산자락에 걸린 구름을 올려다본다. 꽃길 위로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 따스하고, 부는 바람마다 꽃 내음이 실려 있다. 잠시 나를 잊고 세상 시름도 잊고, 먼 곳의 국도를 달리는 차들의 행렬이 가엾다. 저리 바삐 어디로들 달려가는 것일까. # 처음엔 한 귀퉁이에 심어… 틈틈이 야생화 공부 ‘구절초 피는 마을 하립골’의 용금옥(57·여) 대표와 신용성(59)씨 부부가 처음 이 터전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6년의 일이었다. 당시 부부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중이었고, 인근 마을의 주민인 이모의 권유로 44번 국도에서 바로 보이는 삿갓봉 아래의 땅 1500평을 구입했다. 길도 없는 맹지였지만 살던 아파트를 팔아서라도 꼭 갖고 싶은 땅이었다. 어쩐지 놓치면 안 될 것만 같았던 그 간절한 바람. “그런데, 팔았던 아파트가 1년 만에 두 배로 뛰더라고요. 아깝기는 했지만 그래도 후회하지 않았어요. 그만큼 이 땅이 너무 좋았거든요.” 태어나서 자란 고장의 흙냄새와 풍광이 그리웠던 것이리라. 용 대표의 고향 역시 이곳 홍천이었다. 땅을 사 놓고 밭을 일구기 위해 주말마다 오르내렸다. 고된 직장 생활의 와중이었지만 힘든 줄도 몰랐다. 몇 년 뒤 바로 옆의 땅을 더 구입해 한 귀퉁이에 그 무렵부터 알아 가기 시작한 각종 야생화를 심었다. 2002년에는 지금 집터가 있는 땅을 구입하고, 2004년에 자그마한 농가 주택을 한 채 지었다. 길가에 있는 밭을 조금씩 구입하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인근 땅의 주인들을 찾아다니며 허락을 받아 길을 냈다. 그 길을 내는 과정만으로도 소설책으로 한 권이란다. 그때마다 비용은 적금을 찾기도 하고 대출을 받기도 하여 충당했다. # 퇴직 후 건국대 꽃차 소믈리에 과정 수료·자격증 처음에는 관상용으로만 심었던 구절초 군락이 점차 넓어지며 일대를 뒤덮었다. 보고만 말기에는 아까워 찾아보니 예로부터 약재로도 쓰이던 것이었다. 양이 두 번 겹친다는 중양절(重陽節), 음력 9월 9일에 그 꽃이 만개해 아홉 번 꺾는다는 구절초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따뜻한 성질을 갖고 있어 위장병을 비롯해 월경 불순, 자궁 냉증 등의 부인병 약재로 널리 쓰여 왔다. 중금속이나 니코틴 등 몸의 독소를 배출시키고, 혈관에 쌓인 콜레스테롤을 씻어내 면역력을 높이고, 살균 작용도 해 기관지염과 감기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용 대표는 틈틈이 야생화 공부를 하며 꽃을 따서 차로 만들어 먹고, 비누로도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써보니 좋아서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더러 팔라는 사람들이 있어 약간의 비용만 받고 만들어주기도 했다. 이른 퇴직 후 본격적으로 꽃차 연구를 시작해 2012년 건국대에 꽃차 소믈리에 과정이 생겼을 때에는 1기로 수료하고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직접 가꾸는 야생화만 해도 30여종이 되었고, 뒷산에는 각종 야생화와 야생초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 딸·아들 이름서 한 자씩 따서 지은 ‘하립골’ ‘하립골’이라는 이름은 딸 제하씨와 아들 경립씨의 이름에서 한 자씩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2012년 상표 등록을 하고 제조 허가를 받았다. 농협에서 30여년간 근무한 남편 신씨가 정년 퇴임하며, 용 대표가 혼자 하던 꽃차 연구소의 일이 급격히 커지기 시작했다. “사실 저는 이곳에 내려와 살 생각이 없었습니다. 내게는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작은 농가 주택이었던 것을 꽃차 공방으로 사용하기 위해 리모델링해 넓히고, 꽃차 체험 오시는 분들을 위해 묵을 방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해 한쪽에 미니 이층으로 별채를 짓게 되었는데, 이층을 서재로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거기에 혹해서는 그만….” 신씨는 2007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소설이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한 소설가다. 2015년 작품집 ‘거인의 내력’을 출간한 바 있다. 전업 작가로서 퇴직 이후의 삶을 나름 설계하고 있었으리라. “그런데 사실, 퇴직 후의 현실적인 문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 안정적으로 작품을 쓰기 위해서라도 우선 해결해야 할 문제였죠. 그런데 새로 집을 짓고, 주변 정리를 하면서 정원을 꾸미고 하는 일들이 매일 시행착오였습니다. 농사고 집 짓는 일이고, 뭐 아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구절초 밭도 야생화라고는 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그냥 다 풀밭이 되거든요. 매일 풀과의 전쟁이죠. 또 꽃을 수확해서 쪄서 말리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깨끗이 씻어서 감초 우린 증기에 찌고, 먼지 앉지 말라고, 저기 보이는 저 대형 비닐하우스 안에서 하나하나 일일이 베 보자기에 펴서 말리고, 이 포장 디자인이며 아내가 직접 다 한 거랍니다. 일체의 공정이 다 수작업이에요. 아내에게 미안해 책상 앞에만 앉아 있을 수가 있어야죠. 그래서 돕다 보니… 사실, 일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 2013년 매출 2500만원… 작년엔 6000만원 ‘껑충’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얼굴 가득 뿌듯한 미소가 번진다. 이야기가 있는 마을, 구절초가 있는 마을 하립골을 지방의 작은 문학 공간으로도 꿈꾸는 그의 바람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너른 잔디 마당에서 음악이 있는 문학제를 개최하고, 달빛 아래 낭독회도 꿈꾼다. 작가들을 초청해 독자와의 만남도 갖고, 작은 독서 모임도 꾸릴 수 있으리라. 그리하여 꽃길 하나, 물길 하나, 물레방아 놓을 자리, 야생화 정원의 침목 하나, 주차장의 자갈 하나에도 그의 고민과 손길이 가지 않은 것이 없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은 꼭 손의 흙을 털고 춘천으로 향한다. 현재 강원대에서 문예창작학으로 박사과정을 공부 중이기 때문이다. 현관 입구 쪽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낯선 차가 저 아래 꽃길 사이의 언덕을 올라온다. 지나다가 예쁜 정경에 반해 들어오게 됐다며 구경해도 좋으냐고 묻는다. 부부는 반갑게 일어나 맞으며 얼마든지 둘러보시라고 말한다. 사진기를 꺼내 든 일행이 저 아래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하얀 꽃길로 앞다투어 사라진다. 지난해는 한국관광공사에서 시행하는 공모전에 제출한 사업계획서가 채택돼 보조금 2500만원을 받았다. 대출금이 아니라 순수 지원금이었다. 건물 뒤편의 야산을 정리해 야생화 정원을 조성하고 정자를 세웠다. 홍천 농업기술센터에서도 포장재 등의 비용에 대한 보조금이 지원됐다. 지인들과 꽃차 협회 회원 등이 주로 방문해 체험하던 공방이 블러그(http://blog.naver.com/ssp154) 등을 통해 입소문이 나며 논산, 영월, 제주도 등지에서 단체로 벤치마킹을 왔다. 전국 각지의 박람회에서 초청장이 날아들었다. 올봄에는 미시령 꽃길 조성을 위해 속초시에서 구절초 싹을 대량으로 구매해 갔다. 경남 삼랑진에서도 강둑길 조성을 위해 구매해 가고, 마을 단위로 몇 십 박스씩 주문이 들어왔다. 가을이면 생화 판매가 급증한다. 겨울이면 대궁을 잘라 즙을 짜서 포장하고, 먹기 좋게 환으로 만들어 판다. 2013년 2500만원 정도 하던 매출이 2년 만인 지난해는 6000만원으로 뛰어올랐다. “박람회를 다녀 봐도 그렇고, 오시는 분들 말씀을 들어 봐도 그렇고, 여기 꽃이 유난히 품질이 좋더라고요. 선별해 채취를 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토양과 환경이 특별하기 때문인 듯해요. 워낙 청정 지역인데다, 보시다시피 하루 종일 햇빛이 너무 잘 들잖아요.” 농장 규모로는 얼마든지 대량 생산도 가능하다. 그러나 용 대표는 철저하게 수작업만을 고집한다. 신선한 최고의 품질로 본인이 직접 만드는 꽃차에 대한 자부심이기도 하고, 앞으로 더욱 커질 전망인 꽃차 시장에 대한 일종의 차별화 전력이기도 하다. “지금도 문의가 많이 들어와요. 건강에 대한 관심들도 커지고, 현재 커피 시장은 포화 상태잖아요. 그래서 커피 전문점 등에서 특히나 많이 들어오는데, 더욱 전문화되고 대중화되어갈 거라고 보고 있어요.” 거기에 야생화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며 봄이면 새싹 분양 문의가 폭주한다. 튼튼한 모체에서 생산된 싹이 어느 토양에나 잘 적응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난 2일에는 하립골 잔디 마당에서 딸 제하씨의 결혼식이 있었다. 사돈들이 중국에서 건너오고, 전국 각지의 친지들이 꽃놀이 삼아 하객으로 참석했다. 하얀 구절초 밭을 배경으로 전통 혼례를 올리고 피로연까지 모두 이곳에서 열었다. “10여 년 전부터 이곳을 가꿔 가며 꾼 꿈이 있었어요. 첫째는 하립골을 세상에 알리는 것, 둘째는 이곳에서 아이들의 야외결혼식을 하는 것, 셋째는 손녀, 손자들이 하얀 구절초 밭 사이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 이미 두 가지를 이뤘네요.” 꽃과 문학과 자연과 함께 하는 인생의 제2막. 이 부부가 20여년 전 살던 아파트를 줄여 삿갓봉 아래 처음 이 터전을 마련하고, 차근차근 준비해 온 세월에 대한 결실일 것이다. 돌아오는 길, 한 아름 꺾어 온 가을의 향기가 차 안 가득 석양을 맞는다. ■글쓴이 - 소설가 서진연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2013년 ‘괴산’으로 EBS 라디오 문학상 수상. 저서로는 소설집 ‘붉은 나무젓가락’, 장편소설 ‘수목원’ 등이 있다.
  • [기고] 北核 해결 또 하나의 축, EU와 나토/윤병세 외교부 장관

    [기고] 北核 해결 또 하나의 축, EU와 나토/윤병세 외교부 장관

    흔히 북핵 문제 등 한반도 평화와 관련된 논의를 한다고 하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이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못지않게 국제사회에서 우리 입장을 매우 강력하게 지원해 주는 우군이 바로 유럽연합(EU)이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다. 필자가 이번에 브뤼셀을 방문한 것은 아프간 지원 국제회의 참석에 더해 EU 및 나토와 최근 한반도 상황을 공유하고 공조 방안을 중점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한·나토 글로벌 파트너십 수립 10주년을 맞아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 회담을 갖고, 나토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북대서양이사회에서 28개 회원국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특별 연설을 했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고위 대표와도 대표 취임 후 여섯 번째 회담을 가졌다.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몇 가지 핵심 사항에 공감대를 이루었다. 먼저 북핵 문제는 한국만이 아닌 EU와 나토를 포함한 국제사회 전체에 대한 위협이며, ‘턱밑의 비수’처럼 시급하고 엄중한 사안이라는 인식을 공유했다. 한 나토 회원국은 지금의 한반도 안보 상황이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고 했다. 한국전 참전 회원국들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함께 피흘린 역사를 거론하며 강력한 연대 의식을 표명했다. 또 다른 회원국은 집단 방위를 규정한 북대서양조약 5조에 따라 미국에 대한 북한의 위협은 곧 나토 전체에 대한 위협이라고 했다. 둘째, 북핵 문제를 다룰 때 이제는 과거와 다른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나토 회원국들은 핵무장으로 광폭 질주하는 북한에 더욱 강력한 압박과 억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일부 회원국들은 최근 미국 고위 관리가 제기한 북한과의 외교관계 단절 및 격하 필요성에 공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모게리니 EU 고위 대표도 신규 안보리 결의문 채택은 물론 기존 EU 독자제재 강화 등 EU 차원의 구체적 조치를 적극 검토해 나가겠다고 했다. 셋째, EU와 나토는 북핵 문제는 북한 문제와 분리될 수 없으며 인권, 해외 노동자, 북한 내 정보 유입 등을 아우르는 총체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EU는 그동안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유엔 안보리 결의 2270호의 채택 지지, 대북 독자 제재 시행 등을 통해 우리 정부의 입장을 지지해 왔을 뿐 아니라 우리 대북 외교의 또 하나의 중요 축인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유엔 총회 등 국제무대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 왔다. 넷째, 향후 나토와 확장억제에 최적의 경험을 공유하자는 데 공감했다. 나토는 냉전 시기와 이후에 핵위협을 성공적으로 억제하고 관리해 온 경험이 있다. 나토와의 최적 경험 공유는 서로에게 윈·윈이 될 것이다. EU와 나토로 대변되는 유럽의 통합과 경제 번영, 안보는 유럽 국가들이 겪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창의적 고뇌의 산물이다. 유럽은 독일 통일을 통해 또 다른 전쟁의 참화를 막고 유럽의 통합을 이끌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을 갖춘 EU와 나토는 북핵 문제 해결을 넘어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 우리의 든든한 동반자가 될 것이다.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주택과 아파트 사이, 모여 사는 즐거움 마당에 널렸네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주택과 아파트 사이, 모여 사는 즐거움 마당에 널렸네

    근대건축의 거장들은 공동주거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미스 반데어로에는 이미 1922년 슈투트가르트의 바이센호프 전시에서 철골 아파트를 선보였다.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1951년에 860-880 레이크 쇼어 드라이브 아파트먼트를 시카고에 완성했다. 또 다른 거장 르코르뷔지에의 위니테 다비타시옹이 1959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그 뒤를 이었다. 이보다 훨씬 앞선 안토니오 가우디의 카사 밀라(1912)는 파격적인 조형으로 유명하지만 알고 보면 무려 40여 가구가 거주하는 유럽형 상가 아파트다. 시기와 지역,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지만 네 건물 모두 세계 건축계의 명작이다. 한국 공동주거의 연보에는 건축가의 이름이 잘 보이지 않는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름난 건축가의 작업 중에 공동주거, 특히 아파트가 별로 없다. 안병의의 힐탑 아파트(1968), 조성룡의 아시아 선수촌 아파트(1986), 우규승·황일인의 올림픽 선수기자촌 아파트(1988) 등 손꼽을 정도다. 물론 그 리스트의 제일 앞에는 다수의 건축가가 참여했던 마포 아파트(1964), 그리고 이 연재에서 다뤘던 김수근과 그 후예들의 세운상가(1967)가 있다. 공동주거는 건축계에서 그리 인기 있는 분야가 아니다. 작업 조건이 좋지 않고 무엇보다 건축가의 의지를 구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존심이 강한 소위 작가형 건축가들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은 주제다. 그러나 공동주거는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건축 유형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한 나라의 대표적인 건축가들이 관심을 갖고 노력할 필요와 명분이 충분히 있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상황은 이례적이다. #단지형 아파트·주상복합 열풍 전 건축 이례적인 상황에는 꼭 예외적인 인물이 있다. 아파트, 특히 그중에서도 상가 아파트를 설계한 건축가로서 그 존재가 알려진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런데 그 희귀한 사례의 하나가 2016년에 작고한 김석철이다. 예술의전당,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을 설계한 바로 그 건축가다. 국가적 프로젝트를 많이 했고 거대담론을 담은 각종 저서를 다수 출판했다. 그런 김석철의 작품 연보에 상가 아파트가 두 개나 들어가 있다. 그 하나가 대구 명륜로의 한양 가든 테라스고 또 다른 하나는 서울 강동구 성내동의 올림픽 파크타워(현 삼성 파크타워 아파트)다. 각각 사용승인일이 1982년 12월 30일과 1995년 8월 28일이다. 상가 아파트의 연보에서 이 시기는 독특한 의미를 갖는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에 불었던 상가 아파트 열풍과,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에 들어 시작된 주상복합 열풍 사이에 절묘하게 끼어 있기 때문이다. 즉 김석철은 상가 아파트가 한물가고 단지형 아파트가 이미 대세를 이루던, 그리고 본격적인 주상복합의 열풍은 불어오기 전에 이 두 개의 건물을 설계한 것이다. 이것은 우연일까? 이 두 건물에 대한 그의 글이 마침 남아 있다. 좀 길지만 음미해볼 면이 있다고 생각해 인용한다. ‘이제 단독주택에 살기는 어렵게 되었다. 땅도 부족하고, 유지관리도 힘들고, 좋은 주변여건을 갖기도 어렵다. 집이라면 단독주택만 한 것이 없지만 집합주택은 단독주택이 못 가진 많은 장점도 있다. 집합주택의 긍정적인 면과 단독주택의 좋은 점을 합한 새로운 주거의 모델을 추구해야 한다. 이웃이 있고, 마을이 있으면서 집집마다의 독자성과 가변성이 확보되는 그런 공동주택을 모색할 때가 되었다. 모여 사는 즐거움과 편안함과 안전을 가지면서 단독주택이 지닌 특유의 세계를 하나의 주거 속에 시도해 본 것이 성내동의 올림픽 파크타워다. (중략) 올림픽 파크타워는 열아홉 세대의 조그만 세계를 최초의 철골구조 속에 하늘 위의 대지라는 이름으로 이루어 본 것이다. 예술의 전당 국제현상 직전 대구 시내 한가운데에 시도하였던 각 집이 자신의 마당을 갖는 열아홉 세대의 마을인 가든 테라스 이후 십이 년 만에 다시 시도해 본 이웃과 마을이 있는 단독주택 같은 집합주택이다.’ (출처 : 건축도시정책정보센터 아우름) #시대착오인가, 작가정신인가 그런데 김석철이 당시 기준으로는 유행이 한참 지난 상가 아파트를 설계한 상황은 여전히 궁금증의 대상이다. 건축가 본인이 사망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그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 직접 가서 보는 것이다. 답은 항상 현장에 있다. 그래서 오직 이 건물 하나를 보겠다는 목적으로 대구에 내려갔다. 무더위가 유난했던 2016년 여름에서도 가장 더웠다고 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동대구역에서 택시를 타고 가면서 내 눈을 의심했다. 사방에 오래된 상가 아파트들이 보였다. 특히 동대구역 바로 옆에는 ‘동대구 맨션’이 있었다. 아주 반듯한 중정형 상가 아파트였다. 나중에 알아보니 1979년 5월에 사용 승인을 받았다. 연대가 비교적 늦은 셈이다. 이것 말고도 눈에 띄는 건물들이 많았다. 대구는 상가 아파트 연구에 중요한 도시라는 것을 알게 됐다. 김석철의 가든 테라스는 대구 중구 명륜로에 있다. 동대구역에서 3.6㎞ 정도 떨어져 있다. 가로명이 명륜로인 것을 보면 근처에 향교가 있을 것이고 (실제로 있다) 그렇다면 아주 오래된 동네다. 상가 아파트가 도심 유형이라는 것은 서울이나 대구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실물로 접한 건물은 사진에서 보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관리 상태도 비교적 양호해 보였다. 다만 지하와 지상 1층에 자리잡은 상가는 별로 활기가 없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엄청나게 넓은 에스컬레이터는 운행하지 않은 지 오래된 듯 했다. 그리고 그 가라앉은 분위기는 명륜로의 인접 구간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일대에 곧 재건축이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안타깝지만 김석철의 가든 테라스도 그 대상이었다. (이 글이 그 마지막 기록이 아니기를 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륜로는 인상적이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바로 이거다’ 하고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약 280m에 달하는 한 블록의 거리 양쪽이 일부만 제외하고 모두 상가 아파트였던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길 북쪽의 가든 테라스를 위시해 송정맨숀, 대봉맨션 A, B동(1973)이, 길 남쪽에는 대구맨션 A, B, C동(1972)이 포진해 이 일대를 무지개떡 가로로 만들고 있었다. 분당 정자동이나 판교 일부를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한국 어디서도 이런 가로를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이 건물들은 모두 연대가 상당히 높다. 서울하고 비교해도 결코 늦지 않다. 즉 가든 테라스가 들어서기 이전에도 이곳은 상가 아파트 지역이었다. 그러니 김석철과 그의 의뢰인은 지역의 특성을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당시 그의 나이 30대 후반이었다. #19가구로 건축해 작가성 여지 남겨 가든 테라스는 지하 1층, 지상 8층의 건물이다. 지하 1층에서 지상 2층까지의 저층부는 상가와 사무실이고 그 위는 주거다. 일부 주거에 상당히 널찍한 옥상 마당이 있어서 가든 테라스라는 이름이 붙은 듯하다. 실체와 이름이 썩 잘 어울린다. 주차장은 건물 뒤쪽 옥외에 있다. 전체 19가구가 있으니 공동주거로서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개별 가구의 면적이 200㎡를 훌쩍 넘을 정도로 넓고 상가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상당한 존재감이 있다. 이 ‘19가구’라는 것은 공동주거에서는 상당히 의미심장한 숫자다. 20세대가 넘어가면 당시 주택건설촉진법상 사업계획 승인대상으로 각종 규제가 심해지기 때문에 바로 그 아래 숫자를 택한 것이다. 이미 1977년에 주택건설촉진법, 1979년에 주차장법이 제정되면서 그 이전의 상가 아파트와는 완연히 다른 방식의 설계가 필요했던 시절이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내부를 안 들어가 볼 수 없다. 제일 좋은 방법은 주민을 만나 말을 붙여 보는 것이지만 유난히 더운 날이라 그런지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다. 결국 안면에 철판을 깔고 경비실 문을 열었다. 두 분이 계셨다. 이럴 때는 그냥 솔직한 것이 최고다. 학창 시절에 이 건물에 대해 알게 되었고, 실물을 보려고 서울에서 왔으며, 설계하신 분이 안타깝게도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고 하니 두 분 모두 표정이 풀렸다. 게다가 그중 한 분이 마침 주민이었다. 결과적으로 건물 안팎을 잘 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2018년으로 임박한 재건축 이야기, 엘리베이터가 2층에서부터 시작해서 불편하다는 이야기, 살아보니 고층 주상복합보다는 이런 식의 상가 아파트가 최고라는 이야기 등등이 나왔다. 마침 3층에 비어있는 집이 있다고 해서 올라가 보니 꽤 여유 있는 마당이 있었다. 비어 있는 탓에 가꾸지 않아서 그렇지 입지와 환경 면에서 매우 양호한 상황이었다. 단 내부 평면은 그다지 특이한 점이 없었다. 외부 복도가 유난히 넓고 쾌적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전용면적 비율에 집착하는 요즘 같으면 생각도 하지 못할 일이다. 이 건물 이후에 김석철은 예술의전당으로 일약 세간에 이름을 얻게 되고 그만의 독특한 행보를 이어나가게 된다. 그러다 무려 12년이나 지난 후에 올림픽 파크타워를 설계했다. 가든 테라스가 비교적 옆으로 긴 유형이라면 올림픽 파크 타워는 13층으로 엄연한 수직 유형이었다. 역시 주택건설촉진법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불과 19가구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런 유형은 점차 ‘나 홀로 아파트’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다. 결국 공동주거 시장은 대규모 단지형 아파트가 아니면 상업지역에 고밀도로 지어지는 고층 주상복합으로 양분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1960년대 후반, 70년 초중반을 관통했던 거리형 상가 아파트의 유형은 완전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무렵, 김수근 이후 또 다른 시대의 풍운아라 할 만한 김석철이 자신만의 해법으로 두 개의 공동주거 프로젝트를 세상에 선보인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시대착오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독창성에 기반한 작가정신이라고 할 것인가? 50년대 후반의 상가 주택에서 60~70년대의 상가 아파트, 현재의 주상복합에 이르는 한국의 도시복합건축의 계보에서 이것은 여전히 심각한 질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요즘의 한국 건축가들은 공동주거를 매우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으며 그 결과물들이 하나씩 등장하고 있다. 일부에 불과하지만 상가 아파트도 서서히 복권의 길을 가고 있는 듯 보인다. 강남보금자리 주택 4단지(2015)를 설계한 이민아(협동원)가 전자의 경우라면 2016년에 영등포 양남시장을 시장과 아파트가 결합한 형태로 재건축하는 현상공모에서 당선된 코어 건축은 후자에 속한다. 어느 방향이건 공동 주거가 좀더 다양하고 깊이 있게 발전되는 것은 사회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김석철의 독자적 행보가 헛되지 않은 셈이다.
  • [새 영화] ‘비바’

    [새 영화] ‘비바’

    왠지 쿠바 영화 하면 음악 영화를 떠올리기 쉽다.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등의 여운이 짙기 때문이다. 13일 개봉하는 ‘비바’ 또한 쿠바 현지를 배경으로 한 음악 영화다. 주인공이 드래그 퀸(여성처럼 차려입고 여성처럼 행동하는 남성)을 꿈꾼다는 점에서 ‘헤드윅’을, 아버지와의 충돌과 화해를 통해 꿈을 이뤄 간다는 점에서는 ‘빌리 엘리어트’를 떠올리게 한다. 쿠바 아바나의 빈민가에서 홀로 살고 있는 헤수스(엑토르 메디나)는 이성에게 관심이 없는 여성스런 청년이다. 이웃 아줌마들의 머리를 해주며 입에 풀칠을 한다. 그는 게이 클럽에서 드래그 퀸들의 가발을 매만지며 무대를 동경하게 된다. 어렵사리 무대에 서게 된 헤수스. 시행 착오 끝에 클럽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던 순간 낯선 중년 남성에게 두들겨 맞는다. 알고 보니 어릴 적 집을 떠났던 아버지 앙헬(호르헤 페루고리아)이다. 유명 복서였던 아버지는 아들이 여장을 한 채 노래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긴다. 헤수스와 앙헬은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다. 아일랜드 출신 패디 브레스내치 감독은 아바나를 여행하다가 우연히 드래그 퀸 공연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영화를 만들게 됐다. 그는 드래그 퀸을 흥밋거리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무대에서라도 자아를 실현하려는 성 소수자들의 열정이 예술가들의 열정 못지않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모처럼 한국을 찾은 쿠바 영화답게 들을거리, 볼거리가 풍성하다. 라틴 기타가 때로는 흥겹게 때로는 구슬프게 스크린을 수놓는다. 드래그 퀸의 립싱크 무대가 하이라이트. 매기 칼리스, 블랑카 로사 길, 로지타 포네, 안니아 리나레스, 조래다 마레로, 마시엘 등 시대를 풍미했던 쿠바 디바들을 영접할 수 있다. ‘프랭크’, ‘룸’ 등으로 할리우드 대세 음악 감독으로 떠오른 스티븐 레닉스가 음악을 조율했다. 개방 물결에 휩쓸리기 시작했지만 옛 정취가 여전한 아바나의 풍광들이 보는 이들의 가슴을 촉촉하게 만든다. 페인트가 벗겨진 낡은 건물 벽조차 정겹다. 푸에르토리코 출신 명배우로, 라틴아메리카 문화권 영화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베네치오 델 토로가 총괄 제작자로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고 올해 미국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청소년 관람 불가.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리스크 대책 없이 ‘기술금융 줄세우기’ 재연되나

    기술력 평가 인력·경험도 부족 “미국처럼 특화 은행 나와야”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담보 위주 대출 관행을 강하게 질타하며 기술금융 활성화를 주문하면서 은행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주춤하던 ‘기술금융 줄세우기’ 경쟁이 재연될 것을 우려해서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올 상반기 45조 7000억원어치의 기술금융을 취급했다. 올해 목표치 50조원의 90%를 달성했다. 기술금융은 기존의 담보 대출과는 달리 기술력만 좋으면 이를 평가해 담보 없이도 돈을 빌려주는 새로운 형태의 기업금융이다. 금융 당국은 금융개혁 과제 중 하나로 선정해 2014년 7월부터 기술금융을 독려해 왔다. 시행 초기에는 실적 경쟁 등 압박이 심했다. 당시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은행별로 일일이 지원 실적을 챙겼고,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역시 ‘관계형 금융’을 외치며 새로운 기업금융을 주문했다. 기술금융 실적을 은행 혁신성 평가에 반영해 1등부터 꼴찌까지 등수를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금감원장과 금융위원장이 잇따라 바뀌고 가계부채, 기업 구조조정 등 굵직한 이슈가 떠오르면서 기술금융은 수면 아래로 들어가는 듯했다. 은행들은 “기술금융이 제대로 안착하려면 시간이 걸린다”면서 또다시 실적 압박이 시작되는 것을 가장 경계했다. A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술력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시장에서 잘 안 될 경우 그 손실은 은행이 고스란히 질 수밖에 없다”면서 “이런 위험은 차치하고 과거처럼 ‘누가 누가 많이 하나’ 경쟁으로 흐를까봐 걱정”이라고 털어놓았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제품을 만들고 시장에서 성공하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가 발생할 수 있는데 기술만 담보로 대출을 늘리다가는 자칫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은행들은 올해부터 기술신용평가(TCB) 기관을 거치지 않고 자체적으로 기술을 평가할 수 있게 됐지만 인력이나 경험 면에서 부족한 실정이다. B은행 기업금융 담당자는 “새로운 기술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10명 안팎의 직원들로 구성된 은행 내 작은 조직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기준 변리사, 기술사 등 은행 내 기술금융 전문인력은 76명이다. 외부 평가기관인 TCB 기관 4곳(나이스·한국기업데이터·이크레더블·기술보증기금) 역시 지난해부터 올 6월 말까지 14만 4300건이 접수돼 1인당 한 달 평균 20건을 심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양적 확대보다는 질적 내실을 키울 때라고 강조한다. 박기홍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기업금융팀장은 “평가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양적 경쟁이 심화되면 은행이 부실화될 우려가 있다”면서 “시중은행이 모두 기술금융에 주력하기보다는 미국 실리콘밸리뱅크처럼 이에 특화된 은행들이 나와 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사설] 전경련의 역할 재정립 필요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해체론이 가라앉기는커녕 연일 덩치를 키우고 있다. 청와대 개입 여부로 논란 중인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에 출연금을 모집했다는 의혹으로 불거진 개혁론이 아예 해체론으로 급물살을 타는 조짐이다. 야권과 시민단체들만이 아니라 여권과 재계에서마저 수명이 다했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존폐의 기로에 선 현실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창립 55년의 역사를 다져 온 거대 단체를 놓고 함부로 해체 운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전경련의 최근 일련의 행태와 위기 대응 방식을 보면 대체 무슨 생각으로 굴러가려는 단체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청와대 비선 실세 개입으로 신생 재단들에 뭉칫돈을 내놓았다는 의혹만으로도 충분히 시대착오적이다. 그렇건만 두 재단을 하루아침에 뚝딱 새 법인으로 통합하겠다는 발상을 해결책이라고 내놨다. 답답한 심정으로 재단 설립 의혹을 지켜보는 국민 시선이 두렵다면 내놓을 수 없는 카드다. 설립 경위, 모금 방식 등 어느 하나 먼저 해명하려는 의지도 없었다. 한국 재계를 대표해 온 전경련이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것은 자업자득의 측면이 크다. 본분과 운영 취지를 망각하고 기득권 유지에만 온통 촉각을 곤두세워 정경유착의 대명사라는 이미지를 스스로 뒤집어써 왔다. 어버이연합의 관제 시위 지원금 의혹도 벗지 못한 와중에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까지 불렀다. 여론의 질타를 받으면서 굳이 회원사로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는 불만이 내부에서조차 새어 나오고 있다.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 회원사들의 이탈 움직임이 이미 눈에 보인다. 전경련이 권력의 눈치와 시류나 살피는 뒷거래 단체로 쪼그라든 현실이 딱하고 안타깝다. 외환위기 과정에서 기업 간 빅딜을 주도하는 등 국민 경제 발전을 위해 선 굵은 역할을 한 적도 있다. 어쩌다 구제불능이라는 소리까지 듣고 있는지 정신을 차려야 한다. 대기업 회원사들조차 “정부 입장 대변 기구로 전락했다”는 푸념을 하고 있다면 더 따져 볼 것도 없는 이야기다. 여론에 부응해 발전적 해체를 선언하든지 마지막으로 환골탈태의 몸부림이라도 보여 주든지 둘 중 하나는 해야 한다. 경제난 해소와 사회 통합이 시대적 과제인 현실이다. 이런 위중한 시기에 전경련의 존재 가치가 과연 어디에 있는지 국민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 서울시의회 김태수의원 “잘못 걷은 지방세 5년간 1조5천억”

    서울시의회 김태수의원 “잘못 걷은 지방세 5년간 1조5천억”

    행정기관 공무원의 실수로 주민들에게 잘못 걷은 지방세가 내년 늘고 있다. 5년새 2배 가량 증가했다. 서울시의회 김태수 의원(중랑2. 더불어민주당)이 서울시에서 받은 ‘지방세 과오납 현황’ 자료를 보면 서울시와 각 자치구가 최근 5년 간 잘못 걷은 지방세가 1조5798억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오납은 대부분 공무원의 실수나 과세자료 착오, 소송 등에 따른 것이다. 년도 별로 보면 2010년 2294억, 2011년 2291억, 2013년 3771억, 2014년 3432억 그리고 지난해 4008억 등이다. 서울시 본청의 과오납 금액은 304억이다. 이중 납세자가 실제로 내야할 세금보다 더 돈을 많이 내 발생한 ‘국세경정’이 64.8%에 이른다. 또 25개 자치구의 과오납 금액은 1조5494억이다. 국세경정, 법령개정, 소송 등 과오납 사유가 다양했다. 이들 중에 과오납이 가장 많은 자치구는 강남구다. 강남구는 5년간 2939억이 발생했다. 이어 중구(2066억), 영등포구(1969억), 서초구(1249억) 순으로 집계됐다. 한편 잘못 걷은 지방세를 주민들에게 발 빠르게 돌려 준 자치구는 금천구로 조사됐다. 과오납 환급률을 보면 금천구는 243억 중 99.96%를 돌려줘 미환급액이 13억에 그쳤다. 이어 영등포구(99.96%), 송파구와 종로구(99.95%) 순으로 집계됐다. 또 서울시 본청은 과오납액 304억 중 3200만원만이 미환급 돼 99.83%의 높을 환급률을 보였다. 김태수 의원은 “행정기관의 징세 편의주의로 잘 못 걷힌 지방세가 매년 발생하고 있다. 최근 5년새 과오납 발생액이 2배 가량 증가했다”고 지적하면서 “세금은 국민의 재산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행정기관은 세금징수 관리 체계를 개선하여 착오 부과 등으로 납세자를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남도립도서관, 자원봉사자에게 ‘기밀누설은 이적행위’ 서약 받아

    전남 도립도서관과 도내 시·군 공공도서관의 사서직 관장 임명률과 사서 충원율이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도립도서관 자원봉사자에 대해 황당한 서약서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도 되고 있다. 강성휘(목포1) 전남도의원은 5일 전남도의회 임시회 도정질문에서 도립도서관을 비롯한 44곳 시·군 공공도서관 사서직 관장 임명률은 18%, 법정 사서직 충원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도립도서관 자원봉사자에 대해 황당한 서약서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약서에 의하면 자원봉사자는 ‘비밀 업무를 취급하는 사람으로 간주되고 기밀 누설은 이적행위, 반국가적 행위임을 자인한다’는 등 자원봉사와 전혀 관련 없는 내용의 서약서를 자원봉사자로부터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강 의원은 “업무상 착오일 수도 있겠지만 도서관이 개관된 지 5년 동안이나 이런 황당한 서약서를 자원봉사자로부터 받고 있었다는 것이 도립도서관의 수준이고 현실이다”며 “지역 대표도서관으로서 도립도서관의 큰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낙연 전남도지사는 “사서직 관장은 개방형 직위를 검토해 나가고, 전문 사서직에 대해서는 수요를 분석해 연차적으로 충원해 나가겠다”면서 “대표도서관 역할에 대해서도 정책기능을 보완하고 도서관 격차해소를 위해 종합적인 지원 협력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무안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박형주 세상 속 수학]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함

    [박형주 세상 속 수학]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함

    항상 어처구니없고 허무맹랑한 계획을 내놓는 우리 시대의 돈키호테가 이번엔 화성 이주 계획을 발표했다. 2060년까지 100만명의 인간이 화성에 정착할 거란다. 전기자동차 테슬라로 자신이 사기꾼이 아님을 이미 입증한 일론 머스크 얘기다. 테슬라 전에 창업했던 우주개발회사인 스페이스 엑스는 이미 재사용 로켓을 발사하고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 네바다 사막엔 단일 건물로 세계 최대 면적이라는 기가팩토리 건설이 한창인데, 전기 배터리를 대량생산해 전기자동차 세상을 만들 참이다. 머스크의 화성 계획을 듣다가 영화 아바타가 떠올랐다. 지구의 고갈된 자원을 대체하기 위해 인류가 발견한 행성 판도라가 배경이다. 재미로만 봤던 영화인데 누군가는 이걸 실현할 계획을 세우고 착착 준비를 진행했다니. 외계에서 온 듯한 이 사람을 어찌 막으랴. 입체 영화 아바타는 2010년에 세계적인 신드롬을 만들어 내며 우리나라에서 개봉됐다. 인터넷 게임 팬들은 ‘가상세계 속에서 자신의 분신’이라는 뜻의 이 단어를 사용하며 아바타를 꾸며 주기 위한 아이템을 구매하고 있었지만, 웬만한 사람은 아바타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영화가 많은 관객을 동원하며 3D 영상기술이 새로운 화두가 되자 아바타 충격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불과 얼마 전에 아이폰 충격을 겪었는데 또 충격이라니. 한국이 이런 분야의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은 오히려 큰 문제가 아니다. 이런 기술이 미래를 바꿀 주요 관심 대상으로 분류되지도 않았던, 상상력의 부족이 정말 뼈아픈 것이다. 여전히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 기기를 만들어 내는 우리나라가 소프트웨어와 창의적 개념의 경쟁에서는 존재감이 없다.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에만 몰입하다가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깨닫는 데는 시행착오와 각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폰 충격을 만들어 낸 스티브 잡스의 예를 들어 보자. 애플사를 창업한 그는 1980년대 초에 방문했던 제록스사의 연구소에서 그림(GUI)을 사용하는 컴퓨터 시제품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 영감으로 매킨토시를 개발해 큰 성공을 거두지만, 그의 경영 스타일에 반기를 든 이사회에 의해 85년 애플에서 쫓겨났다. 좌절에 빠져 있던 잡스는 우연히 팔로알토 이웃인 노벨화학상 수상자 폴 버그 교수와 대화를 하던 중에 미래의 과학에서 가상실험이 중요할 것임을 깨닫게 됐다. 과학의 진보에 기여하는 걸 새로운 미션으로 설정하고는 넥스트 컴퓨터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가상실험이 가능한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실험 결과를 시각화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자 컴퓨터 영상화 업체를 인수해 픽사라고 개명했다. 불행하게도 넥스트 컴퓨터는 잘 팔리지 않았고, 그는 빈털터리가 될 처지가 돼서야 하드웨어를 포기하고 진짜 본질인 운영체제(OS)를 파는 일에 집중했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의 전환은 이렇게 힘들다. 결국 넥스트 OS는 맥의 운영체제인 OS X가 됐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던 픽사는 100% 컴퓨터그래픽스로 만든 역사상 첫 번째 애니메이션인 ‘토이스토리’로 대성공을 거두었고, 잡스는 다시 백만장자가 됐다. 특히 ‘토이스토리2’에서는 계산기하학을 애니메이션에 적용해 해상도를 자유자재로 하는 기법을 개발하는 등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었다. 수학자들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자 할리우드는 많은 수학자가 진출해 활약하는 곳이 됐다. 잡스는 디즈니사에 픽사를 팔았는데, 그가 사망할 때 그는 디즈니의 제1주주였다.
  • [新전원일기] 세종실록 속 ‘곡성 울금’ 참맛 알린 38세 농사꾼… 수억 매출 ‘곡성 희망가’

    [新전원일기] 세종실록 속 ‘곡성 울금’ 참맛 알린 38세 농사꾼… 수억 매출 ‘곡성 희망가’

    #왕실 공납품으로도 알려진 곡성의 ‘울금’ 영화에서 익히 보았던 도로를 따라 달린다. 울창한 숲이 좌우로 펼쳐져 있고 저 멀리로 품 넓은 섬진강이 보인다. 굽이가 많아 다소 위험하게 느껴지는 것만이 영화의 서늘함을 떠오르게 할 뿐 눈도 마음도 밝아지는 기분이다.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내린다. 서울에서는 마음만 가을이었는데, 이곳에서는 곳곳이 가을이다. 사람보다는 자연이 계절을 더 충실히 살아낸다. 당연한데 자주 잊는다. 자주 잊어서, 사람이 많은 도시에는 계절이 더디 오고 빨리 가버리는 것 같다. 도시를 놓고 자연으로 간 사람에게는 계절도 정직하게 오고 갈까. 이런저런 생각에 골몰하고 있자니 어느새 곡성이다. 2012년 귀농한 노병철(38)씨의 첫인상은 젊고 활기찬 최고경영자(CEO) 그대로였다. 흰 셔츠와 검은색 바지를 맵시 있게 차려입은 그와 어정쩡하게 인사를 나눴다. 순간 커다란 밀짚모자를 눌러 쓰고 허름한 작업복을 걸친 사람들에게만 눈길을 준 게 무색해졌다. 이 또한 선입견이었으리라.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울금뿐만이 아니라 그가 그런 복장을 하고 나타난 것이 쉽게 이해되었다. 울금은 기원전부터 기록되어 있을 만큼 연원이 오래된 작물이다. 생강과의 식물로 중국 남부와 인도, 일본의 오키나와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자생하거나 재배되며 우리나라의 중남부 지역에서도 재배된다. 맛은 맵고 쓰며 찬 성질을 지녔는데, 혈행을 활성화시키고 위산 분비를 조절한다. 간 기능 향상, 생리통과 생리불순 완화, 담낭과 결석 치료, 항염과 항암, 노화 예방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항암과 관련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5000여개의 논문이 쏟아질 정도로 관심이 높다. 뿐만 아니라 울금은 염료와 식품 착색제로도 손색이 없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곡성과 순천, 구례에서 생산된 울금은 왕실에 공납할 정도로 상품 가치가 높았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울금 생산량이 가장 많은 곳은 진도로, 재배 면적도 곡성의 5배가 넘는다. 당연히 그 명성도 진도 울금이 가장 높다. 노 대표는 예부터 내려오는 곡성 울금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고심했고, 자연농법을 이용해 진도 울금과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리고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해 곡성 울금의 기반을 다져 나갔다. 연원도 오래고, 왕실에 공납할 정도의 특산물이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울금’이라는 이름이 생소하다면 카레의 원료인 강황을 떠올려도 좋을 것이다. 강황은 뿌리줄기에 달리는데 비해 울금은 덩이뿌리에 달리는 게 다를 뿐으로, 카레의 노란색이 울금의 주성분인 ‘커큐민’ 때문이다. #우연이 운명을 만들기까지 노 대표는 귀농인 중에서도 젊은 축에 속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귀농을 계획했던 것은 아니다. 2009년 당시 정보통신을 전공하고 고시 공부를 하던 그에게 어머니의 교통사고 소식이 전해졌다. 그는 서둘러 귀향해 척추 부상으로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의 간호를 떠맡았다. 시험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와 마음이 조급했지만 병상에 누워서도 농사를 걱정하는 어머니를 보고 있자니 농사를 외면하기도 어려웠다. 어머니가 완쾌된다 해도 울금 농사를 짓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결국 그는 고시 공부를 포기하고 귀농을 결심했고,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울금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울금 농사는 무엇보다 토질이 중요하다. 물이 잘 빠지는 마사질 황토흙이 생육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는데, 토질만 맞으면 키가 2m까지 자랄 정도로 생장이 빠르다. 노 대표는 울금의 키가 커야 알도 실해진다고 말한다. 물론 무조건 크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울금의 키가 크고 줄기가 튼실해야 풍작을 기대할 수 있다. 울금의 키가 한 뼘씩 자랄 때마다 그의 행복감도 한 뼘씩 커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울금에는 특유의 향 때문인지 해충이 꼬이지 않는다. 당연히 살충제를 사용할 필요가 없고 그런 만큼 농사를 짓기가 수월하다. 그런 울금을 가리켜 그는 ‘착한 애’라고 표현한다. 착한 애라서 무엇보다 좋은 점은 소비자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것이라 말하는 그의 얼굴에 착한 미소가 번진다. 울금은 연작이 가능하다. 그러나 2회 이상 연작을 할 경우 울금 성분이 떨어지고 수확량이 감소한다. 뿌리 작물이라 지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문이다. 그는 지력 회복을 위해 땅을 옮겨 다니며 농사를 짓는다. 농사를 하면서도 유목 생활을 피할 수 없는 셈이다. 옮겨 다니며 농사를 지으려면 땅이 많이 필요할 텐데 그에 필요한 비용은 어떻게 감당하는지 궁금해졌다. “정부에서 좋은 조건으로 지원을 해주기 때문에 땅을 구매하거나 임대할 때 큰 부담은 없는 편이에요. 처음에는 멋모르고 무조건 땅을 구매했는데 이제는 임대를 주로 합니다. 그 편이 더 수월하고 경제적으로도 비용 부담이 주니까요.” 땅을 관리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는 한 번 수확을 끝낸 땅에는 콩이나 옥수수를 심어 지력을 회복할 시간을 준다. 발효 퇴비와 자체 개발한 친환경 영양제로 거름을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것만으로도 울금 농사에 적합한 토양을 만드는 데 무리가 없다. 정작 농사를 짓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저장이다. 울금은 9~10월에 꽃을 피우고 알을 맺는다. 수확은 11월에 하는데 열대작물이라 겨울나기가 쉽지 않다. 아무 생각 없이 저장고에 보관했다가 모두 상해 낭패를 본 적도 있다. 시행착오 끝에 생각해낸 것이 토굴 저장이다. 토굴 자체가 갖고 있는 지열로 일정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데다 수분이 휘발되지 않아 울금 보관에는 최적의 장소라 할 수 있다. 큰 키와 넓은 잎으로 빼곡한 울금밭을 보고 있자니 거인 나라에 불시착한 난쟁이가 된 듯하다. ‘나’라는 존재가 하릴없이 느껴지면서 자연이라는, 신비로 가득 찬 세계에 불현듯 경외감이 드는 것이다. 살아내기 위해 치러야 하는 치열한 경쟁과 희생들이 사실은 불필요한 아등바등함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흔한 비유로 성냥갑같이 비좁은 공간에서 어깨를 부딪치며 살아가는 일이 결국 우리에게 남길 것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생각들이 꽉 들어찬 머리 위로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울금잎이 서서히 움직이며 스스슥, 느린 소리를 냈다. #가공에 성공해 울금 대중화에 이르기까지 “어려서부터 농사짓는 걸 보고 자라서 농사가 아주 낯설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작정하고 뛰어드니 어려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더군요. 젊은 나이에 시작한 것이니만큼 포부도 크게 가졌는데, 젊은 패기로만 감당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문제가 많았어요. 일손이 달려서 파종기나 수확기에는 멀리까지 가서 인력을 구해 와야 했고, 기계를 사용해야 하니 자본도 필요했어요. 무엇보다 판매가 쉽지 않은 게 문제였어요.” 노 대표는 유통 경로와 더불어 울금의 소비층을 확대할 방법에 대해 고심했다. 마케팅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울금의 쓴맛이 대중화를 어렵게 했다. 쓴맛을 줄이고 울금의 효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기능성을 높여야 했다. 그는 울금을 발효시키면 커큐민의 흡수율이 높아지고 쓴맛도 완화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해 제품 개발에 몰두했다. 그리고 흑마늘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옥수수 전분이나 감자 전분 등을 함께 넣었다가 산폐가 발생하기도 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액체가 돼버리기도 했어요. 이것저것 시도하고 실패한 끝에 결국 성공했을 때는 눈물이 다 나더라구요.” 울금과 설탕, 파파야 효소를 적정 비율로 섞어 발효 기계에 넣고 60도 고온에서 한 달간 숙성시키면 흑울금을 얻을 수 있다. 흑울금은 울금의 쓰고 매운 맛과 특유의 향을 완화시켜 먹기에 좋을뿐더러 가공하기 전보다 영양 성분도 더 풍부하다. 흑울금으로 특허를 내고 본격적인 가공에 돌입했다. 가공한 농산물은 부가가치가 매우 높아진다. 울금 역시 가공품 가격이 생물 가격의 10배를 웃돌 정도다. 가공품은 저장도 수월하므로 생물을 판매하는 것보다 훨씬 유리한 셈이다. 그는 현재 1만평 정도의 토지에서 60t가량의 울금을 수확한다. 귀농한 2012년 당시만 해도 매출액이 제로에 가까웠으나 2015년에는 2억 5000만원의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급성장세에 있다. 그러나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도 품목 개발에 주력할 계획이다. 지난해 6월 ‘뿌리 깊은 약초’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블로치 유한회사’를 법인화한 것은 그가 지닌 포부의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농부와 CEO, 1인 2역을 소화하고 있는 그의 흰 셔츠 위로 햇살이 넘실거린다. 그리고 괴기스럽고 비밀로 가득 찬 곡성이 아닌, 희망과 생기로 넘치는 곡성에 그 어느 때보다 명랑한 가을이 당도했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한 편의 영화가 문화예술계를 달궜다. “절대 현혹되지 마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사람들은 무엇에 현혹이라도 된 듯 영화 곳곳에 숨어 있는 ‘메타포’(은유)의 퍼즐을 맞추느라 골몰했다. 영화적 기법이나 스토리 전개 방식에 대한 새로움을 상찬하는가 하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음모론에 대입시켜 영화를 해석하기도 했다. 영화 ‘곡성’에 이렇듯 활기찬 해석들이 가해진 것은 현실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했으되 현실을 넘어서거나 현실에는 없는, 합리적인 설명이나 논증이 불가능한 ‘진실’을 다루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전반을 지배하던 낯설고 음산한 공포감도 한몫했겠고 말이다. 마을을 덮친 연쇄적인 죽음과 공포감을 배가시킨 이면에는 ‘곡성’의 자연 풍광이 자리하고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스크린을 가득 채운 자연의 색조가 너무 아름다워 곡성의 비극이 더 선연하고 생생하게 느껴졌다. 나무로 우거진 습지며, 굽이진 도로 저편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산의 굴곡이며, 섬진강의 푸른 물줄기며, 하다못해 쓰러진 지붕과 낡은 기둥과 흙먼지로 가득한 폐가마저 눈길을 사로잡았다. 현실에는 없을 것 같은, 그래서 더 가보고 싶은, 내 눈과 발로 곳곳을 확인하고 싶다는 열망이 영화를 보는 내내 차올랐다. 그 마음이 희미해지는 동안 가을이 시작되었고 ‘울금’이라는 낯선 식물에 대해 전해 들었다. 그리고 우연인지 운명인지, 울금 재배지 중 한곳이 ‘곡성’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 글쓴이 소설가 진연주 200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방’(房)으로 등단. 2015년 ㈜문학동네에서 장편소설 ‘코케인’ 출간.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실패한 도시 유토피아… 재생의 길로 ‘다시 세운’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실패한 도시 유토피아… 재생의 길로 ‘다시 세운’

    # 세운상가의 ‘복권’ 세운상가에 2016년은 어떤 해였을까. 아마 프랭크 시내트라의 노래처럼 ‘참 좋은 해’(It was a very good year)였을 것이다. 일단 오세훈 시장 당시 등장했던 ‘전면 철거 후 재건축 및 녹지축 조성’이라는 이야기는 이제 완전히 들어갔다. 내부적인 우여곡절도 있었고 세계 경제의 영향도 받았지만, 이 지역이 고층화되면 종묘의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해제해 버리겠다는 유네스코의 엄포 또한 강력한 지원사격이었다. 그 와중에 세운상가의 가장 북쪽 끝인 현대상가가 철거되기는 했다. 지금의 세운상가는 서울시가 추진하는 도시 재생 사업의 중요한 한 축이다. ‘다시 세운’라는 프로젝트 이름은 적어도 당분간은 이 건물의 미래가 상당히 밝을 것임을 보여 준다. ‘입체적 복합문화 산업공간으로 재생’한다는 취지로 다양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철거될 뻔했던 세운상가는 졸지에 도시의 문화적 아이콘이 됐다. 2016년은 세운상가의 보행자 데크, 즉 공중가로를 다시 살리는 대대적인 공사가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세운상가 건립 당시의 취지, 즉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공중 보행자 가로로 연결하는 개념을 다시 되살린다는 것이다. 국제 현상설계 공모를 통해 이스케이프(김택빈, 장용순, 이상구) 건축사사무소의 ‘현대적 토속’(Modern Vernacular)이 최종 선정됐고 3월 4일 공사가 시작됐다. 한국은 건축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이 지극히 부족한 사회다. 지어진 지 수십 년이 지난, 게다가 문화재도 아닌, 민간 건물의 당초 설계 의도를 이렇게 정성스럽게 다시 살리려는 노력은 사실상 전례가 없다. 건물이 워낙 크고, 주변 지역이 워낙 넓으며,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도 하겠지만, 뭐니 뭐니 해도 설계자가 한국 근현대 건축 대표주자의 하나인 김수근과 그의 후예들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 연재를 통틀어 이렇게 설계자의 아우라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건물의 사례는 단연코 없다. 세운상가가 각종 전시나 연구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흔해졌고, 세운상가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7~8월에는 ‘도시는 선이다’라는 제목으로 세운상가의 산파역이었던 ‘불도저’ 김현옥 시장에 대한 전시회가 시립역사박물관에서 열렸고 세운상가는 그 핵심적 전시물의 하나였다. 2016년은 세운상가의 ‘복권’이 시민사회에서 공식화된 해로 봐도 좋을 것이다. 세운상가에 대한 글은 넘치도록 많다. 다만 그 물리적 실체에 대한 기초 정보는 그리 넉넉하지 않다. 자료의 축적과 차분한 관찰보다는 해석과 의미 부여에 더 많은 관심이 기울어진 듯하다. 현재까지는 2010년 서울 시립역사박물관에서 펴낸 ‘세운상가와 그 이웃들’이라는 책이 가장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으나, 비매품으로 도서관에서 열람할 수 있다. 세운상가 도시재생을 추진 중인 서울시는 이제 자료집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흔히 ‘세운상가는 1967년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이라고 하지만 이 숫자가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전체 건물 중에서 극히 일부분이다. 게다가 공식 기록이란 측면에서 세운상가가 과연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도 지난번 좌원 아파트 편에서 제시한 바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세운상가가 들어선 자리는 일제강점기 후반 태평양전쟁이 격렬해지면서 공습에 대비해 만들어진 소개공지대다. 그 자리가 슬럼화되자 당시 서울시장 김현옥은 대형 주상복합 건물을 짓는다는 아이디어를 대통령 박정희에게 제출했다. 내친김에 ‘세(世)계의 운(運)이 모인다’는 지극히 자기현시적이고 개발시대다운 이름까지 지어 올렸다. 설계를 의뢰받은 건축가는 김수근이었다. 당시 상당한 규모의 조직을 운영하고 있던 김수근은 휘하의 젊은 건축가들에게 실무를 맡겼다고 전한다. 그러나 실행 단계에 들어갔을 때 건설사들이 제각각으로 시공하는 바람에 보행자 통로 등 핵심 설계 의도가 잘 구현되지 않았다. 결국 아무도 설계자를 자처하지 않는 기묘한 상황이 오랫동안 계속됐다. 완공 당시에는 상가와 아파트 모두 상당한 인기를 끌었으나 반짝 인기가 식고 건물이 낡아 가면서 도시의 흉물로서 받을 만한 비난은 모조리 받는 처지가 됐다.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것부터 시작해 ‘서울의 도시구조를 망친 주범’이라는 것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하고 날 선 비난들이었다. ‘한국의 아파트 연구’의 저자인 프랑스 출신 발레리 줄레조는 세운상가를 한마디로 ‘완전한 실패작’으로 규정했다. # 실패한 유토피아? 세간의 논의는 일단 그렇다 치고 세운상가의 면모를 간단히 파악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가장 북쪽부터 시작해 각각 현대상가(2008년 철거), 세운상가 가동(혹은 아세아상가. 현 세운전자상가), 청계상가, 대림상가, 삼풍상가(현 삼풍 넥서스), 풍전호텔(현 PJ호텔), 신성상가(현 인현상가), 진양상가까지 총 8개의 건물이 있다. 전체 길이는 945m로 종로와 청계천로, 을지로, 마른내길, 그리고 퇴계로에 걸쳐져 있다. 이 중 가장 먼저 완공된 것은 세운상가 가동으로 1967년 11월 17일 사용 승인을 받았으며, 가장 나중에 완공된 것은 풍전호텔로 사용 승인일은 1982년 12월 31일이다. 그 격차가 무려 15년에 가깝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과적으로 풍전호텔은 나머지 건물들과 사뭇 다른 점이 있다. 지하에 널찍한 주차장이 있는 것이다. 주차장법이 제정된 해가 1979년이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처음으로 신문 지면에 ‘세운상가의 개관’을 알리는 기사가 실린 것은 1967년 7월 26일이었다. 하오 2시라고 시간까지 밝히고 있다. 당시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와 김현옥 시장이 참석했다. 이때 개관한 건물은 세운상가 가동으로 당시 광고가 아직 남아 있다. 사용 승인일은 그보다 몇 개월 후인 11월 17일이었으나 1, 2층 상가만 먼저 개관하는 바람에 개관일이 한참 앞당겨진 것이다. 이때 상부의 아파트는 아직 건설 중이었다. 이름이 말해 주듯이 건물마다 건설사가 제각각이었다. 이들 중 현대나 대림, 삼풍은 잘 알려진 이름들이다. 그중 비교적 덜 알려진 신성건설은 거대 주상복합 건설의 경험을 되살려 1971년 7월 6일 홍은동에 유진상가를 완성한 바로 그 회사다. 그러나 이처럼 건설사가 서로 다르다 보니 공통의 개념을 구현하는 것이 어렵게 됐다. 건물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요소의 하나였던 보행자 데크의 경우 아예 처음부터 마른내길 위, 즉 풍전호텔과 신성상가 사이는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이후 청계천로의 데크가 2004년, 이어 삼풍상가와 풍전호텔의 데크가 2006년 리모델링 당시 철거됐다. 결국 보행자 데크의 전체적인 연속성은 처음부터도 완전치 않았고 그나마 만들어진 것도 상당 부분 사라진 지 오래됐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 보면 이 장대하고 사연 많은 복합 건물군을 ‘세운상가’라는 이름으로 단일화해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낳는지 알 수 있다. 차라리 서로 다른 건물로 파악하고 역으로 공통분모를 만들어 가는 것이 더 유익한 태도일지 모른다. 세운상가에서 예나 지금이나 가장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역시 보행자 데크, 즉 공중가로 부분이다. 지상은 자동차가 다니고 보행자는 그 위를 걷는다는 공중가로의 개념은 물론 세운상가만의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당시는 세계적으로 거대 건물을 통해 구시대의 모순을 극복하고 전쟁의 상처를 복구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다는 야망이 지배하던 시대였다. 일본은 메타볼리즘 건축을 통해 생명체의 신진대사 시스템을 도시와 건축에 적용하려고 했다. 공중가로라는 개념도 이미 1960년대에 영국의 신브루탈리즘 계열 건축가인 앨리슨과 피터 스미슨 부부에 의해 ‘스트리트 인 더 스카이’(street in the sky)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바 있었다. 이것은 사실상 런던의 교통사고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이었는데, 당시 한국이 같은 문제를 제기할 상황이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김수근은 누구보다도 세계 건축계의 동향에 민감했고, 또한 그것을 자신의 경력에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았던 인물이었다. 수많은 사람을 한 층 위로 올라가게 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유인 동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제공되지 않은 공중가로는 그야말로 무용지물이다. 1960년대에 시도된 런던의 공중가로 네트워크인 페드웨이(Pedway)도 결국 실패했다. 세운상가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불법 음란물 말고는 사람들을 데크로 올라오게 하는 별다른 ‘유인 동기’가 없다는 불명예를 얻고 말았다. 세운상가에 대한 부정적 견해는 사실상 이렇게 버려진 공중가로의 탓이 크다. 종종 ‘건물 전체가 슬럼화됐다’고 하지만 정작 건물의 내부, 특히 아파트의 중정 부분은 지금도 상대적으로 환경이 더 양호하다. 답사 과정에서 만난 몇몇 세입자들은 임대료가 오르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즉 수요가 있는 것이다.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한 삼풍상가나 풍전호텔은 불명예스러운 루머가 무색하리만큼 아주 멀쩡한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다. 아예 처음부터 공중가로를 건물 양옆이 아니라 중앙에 설치해서 여러 개의 중정을 거치도록 했으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즉 중정을 지금처럼 입주민들만이 전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공공장소로서 보행자에게 개방했더라면? 즉 다른 상가아파트들이 길과 맺고 있던 밀접한 관계를 공중가로에서 만들었더라면 어땠을까. # 세운상가가 던져준 건축의 역할 영욕의 세월을 뒤로하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세운상가가 이제 새로운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기약하고 있는 지금 건축과 건축가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세운상가를 가리켜 실패한 유토피아라고 비난하는 것은 결과론적인 시각에서는 근거 있는 행위일지 모른다. 동시에 아주 쉬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는 자칫하면 미래에 대해 꿈을 꾸고 상상하는 것은 부질없다는 패배주의를 낳는다.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가 그렇듯이 건축 또한 해 오던 방식을 더 세련되게 반복하는 것만으로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도전해야 하고 남들이 하지 않았던 것을 시도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 어디 다른 나라에서 선례를 수입해 우리의 미래를 해결하려는 습관 또한 그 효용성의 한계에 다다랐다.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분석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따라서 그만큼 외로운 결정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실패한 유토피아의 상징, 그러나 어떻게든 세월의 무게를 이겨 온 세운상가가 우리에게 주는 역설의 교훈이다.
  • 아이카이스트랩, ‘SK텔레콤에 중계기 납품’ 계약서 공개…허위 공시 논란 불식

     아이카이스트랩이 지난달 20일자로 체결된 SK텔레콤과의 중계기 납품계약서를 3일 공개했다. 지난달 20일 공시내용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문서이다.  계약서에 따르면, 아이카이스트랩과 SK텔레콤 간 계약 금액은 54억 8143만원이며 계약기간은 오는 12월까지다. 아이카이스트랩 측은 “이미 중계기 납품을 일부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한 때 관련 내용이 허위공시로 잘못 알려졌다. 아이카이스트랩이 최근 사명을 변경했는데, 계약 상대방이 이와 관련된 착오를 일으켜서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아이카이스트랩의 전신인 지에스인스트루와 중계기 납품 계약을 맺어왔으며, 지난달에도 계약이 체결됐다”면서 “계약 당시 사명은 아이카이스트랩이었다”고 확인했다.  지에스인스트루는 1972년 설립된 전자계측기·통신기기 제조 회사다. 아이카이스트가 지난 6월 지에스인스트루 지분을 인수했고, 7월 17일 지에스인스트루는 이름을 아이카이스트랩으로 변경했다. 아이카이스트 김성진 대표가 아이카이스트랩 공동대표를 맡았지만, 지난달 7일 긴급이사회에서 사실상 해임됐다고 아이카이스트랩이 밝혔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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