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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와 차 한 잔] 진보의 재구성 모색 ‘정치의 이동’ 펴낸 장은주

    [저자와 차 한 잔] 진보의 재구성 모색 ‘정치의 이동’ 펴낸 장은주

    참 거북살스럽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 영전에 바친다’는 헌사도 부담스럽기만 하다. 철학이 ‘집 나갔다’는 말을 너무 쉽게 듣는 여의도 정치판에 전해져야 마땅한 쓴소리인데 도시 귀 기울여 듣는 이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10년 만에 집권한 보수 정권은 역시나 권력형 비리로 비칠거리고, 권력을 내준 진보 진영은 통합진보당 사태에서 보듯 지리멸렬하기만 하다. 그래서 진보 진영과 자유주의 세력 사이에 놓인 ‘이념적 한강’에 다리가 되고 싶었다는 장은주(48) 영산대 법대 교수가 낸 ‘정치의 이동’(상상너머)을 이 무더위에 펼쳐 놓았다. 지난 18일 서울신문 회의실에서 만난 장 교수에게 집필 동기부터 물었다. 그는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 프랑크푸르트 요한볼프강괴테 대학에서 ‘하버마스와 그람시의 시민사회론 비교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대학이 있는 경남 양산과 서울의 참여사회연구소를 오가며 ‘지금, 여기’에 몰입하고 있다. 장 교수는 “우리 정치의 발전 방향에 대한 철학적 모색을 정리해 보고 싶은 생각을 평소 갖고 있었다. 지난해 여름방학에 A4 용지 150쪽 분량으로 딱딱하기 이를 데 없는 초고를 썼다. 아내인 하주영 박사와 대학 친구이자 출판기획가인 이건범이 읽어 보더니 ‘꼭 필요한 얘기’라며 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시각장애 1급인 이씨가 이런저런 보완할 점들을 지적하고, 초고를 들춰본 이양수 한양대 교수가 A4 30쪽 분량의 의견을 보내와 1년에 걸쳐 책으로 엮었다. 그가 한창 집필에 속도를 내던 때 “모두 책을 산 것처럼 보이지만 누구도 끝까지 읽어 보지 않은 것 같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 열풍이 일었다. 그의 초고 제목은 ‘왜 어떤 정의인가’였다. 그러던 차에 일보 전진을 희망하던 이들에게 거듭된 절망을 선사한 4·11 총선 패배와 진보당 사태를 맞게 됐고, 도리어 책 속의 발언에 무게가 실리게 됐다. 무상급식으로 인한 복지 논쟁이나 용산 참사, 한진중공업 사태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도 장 교수의 논지를 풀어 가는 실마리가 됐다. 그는 “진보·자유 진영이 왜 이렇게 망가지게 됐는가 하면 근본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정치적 지식인’들이 진보 정치의 본성을 이해하는 낡고 잘못된 정치적 사유 습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그의 주장은 단순할지 모른다. 1980년대 불의의 체제를 분노로 견뎌 왔던 진보주의자들이 지독한 성찰을 통해 ‘보수적 진보’의 인식틀을 과감히 깨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시각에서 ‘분배 패러다임’이라 이름 붙인 ‘엄청난 괴물’을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재화의 분배에만 초점을 맞추는 정의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존중하는 정의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는 것. 그가 진정 바라는 정치의 방향은? “시민들이 민주주의의 주체가 되고 그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스스로 생각하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공론장이라던가 토론, 대화를 통해 바람직하고 합리적인 정책을 찾아내는, 시민 중심의 민주주의로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지식인 중심의 정치보다 시민 주체성,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정치 참여 과정이 올바른 정치 개혁의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게 ‘민주적 공화주의’라고 했다. 독자들이 어떻게 읽어 줬으면 할까? 장 교수는 “대학 교육을 받고 사회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쓰려고 노력했다.”며 “정답을 제시하려고 하는 책이 아니라 함께 모색하며 현실을 돌아보는 책”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누구보다 정치적 지식인들이 읽어 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똑똑하고 정의롭다고 자부하는 이들이야말로 이 책의 문제의식에 제대로 부딪쳐 볼 일이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포토 다큐 줌인] 한여름 도심 속 이색 피서지

    [포토 다큐 줌인] 한여름 도심 속 이색 피서지

    얼마 전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452개 기업을 대상으로 여름휴가 실태 조사를 한 결과 지난해 대비 휴가일수는 평균 0.2일 늘어난 반면 휴가비는 평균 2.7% 줄어들었다. 이는 예년에 비해 얇아진 지갑을 들고 휴가를 보내야 한다는 얘기다. 일상을 벗어나 바다로, 산으로 국내외 유명 휴양지에서 여름 휴가를 보낼 꿈에 부풀어 있던 이들에게는 슬픈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낙담하지 마시라. 비행기 타고 배 타고 힘들게 멀리 떠나지 않더라도 더위를 잊고 추위에 오들오들 떨 수 있는 도심 속 피서지들이 적지 않으니까. [패밀리] 한옥촌으로 유명한 서울 종로구 북촌에 위치한 아이스갤러리에 들어서면 어른, 아이 모두 좋아할 얼음세상이 펼쳐진다. 전시장 입구에 마련된 두꺼운 겨울 옷을 입고 영하 5도의 전시장에 들어서면 다양한 얼음조각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얼음덩어리를 섬세하게 깎아 만든 숭례문과 다보탑, 얼음 피아노 등 냉기를 뿜어내는 얼음조각들을 구경하다 보면 등골까지 서늘해지며 더위는 이내 잊혀진다. 얼음으로 만들어진 미끄럼틀을 타고, 얼음으로 만든 집인 이글루에 들어가면 잠시나마 북극 여행을 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온 인수초등학교 3학년 김래현군은 “차가운 얼음조각 사이에서 노니 시원해서 좋고, 여름에 겨울철 추위를 느낄 수 있어서 신기하다.”며 언 손을 녹이려고 입김을 호호 불면서도 마냥 즐거워했다. 이곳의 또 다른 재미는 얼음조각 체험이다. 직접 얼음칼을 들고 단단한 얼음을 서걱서걱 깎아서 만든 얼음잔으로 음료수를 따라 마실 수 있다. [마니아] 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자리한 종합 레저스포츠 테마파크인 웅진플레이도시 내 스노도시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실내 스키장이 있다. 초급자용 100m, 중·상급자용 150m 등 총길이 270m의 슬로프 위를 덮은 새하얀 눈밭은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슬로프에 올라가 눈을 밟으면 뽀드득뽀드득 소리와 함께 인공눈의 감촉이 계절을 착각하게 만든다. 스키나 스노보드를 타고 눈 위를 내달리면 시원함이 배가된다. 스노보드 마니아인 대학생 윤지윤(23)씨는 “겨울에 타야 제맛이지만 여름에 타는 스노보드는 색다른 매력이 있어 좋다.”며 엄지를 추켜세웠다. 스키나 스노보드에 익숙지 않다면 눈썰매를 타며 속도감을 만끽할 수 있다. 눈썰매를 타고 빠르게 미끄러지면 가슴 속까지 서늘해진다. 때때로 나무모양의 제설기에서 새하얀 눈을 하늘 높이 뿌려주는데 동남아관광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타이완 관광객인 라이지링(18)은 “이런 추위도 처음이고 눈밭을 보는 것도 처음이어서 정말 흥분되고 행복하다.”며 활짝 웃었다. [도전파] 서울 우이동 북한산 밑에 위치한 코오롱등산학교에는 국내 유일무이,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실내 인공빙벽이 세계 최고 높이를 자랑한다. 건물 지하 3층에 위치한 빙벽장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영하 10도의 한기가 몸을 휘감는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높이 20m에, 90도의 깎아지른 빙벽을 마주하면 지금이 여름이라는 사실이 머릿속에서 단박에 사라진다. 방한복에 안전모를 쓰고 두껍고 뾰족한 쇠발톱이 박혀 있는 크램폰까지 신으면 준비 끝. 자일에 안전벨트를 연결하고 낫 모양의 아이스툴을 손에 들면 본격적으로 얼음벽 등반이 시작된다. 아이스툴로 빙벽을 찍고 크램폰을 신은 발로 얼음을 차내며 온 신경을 집중해 한 발 한 발 얼음벽을 타고 오르다 보면 한 여름 무더위와 스트레스를 까많게 잊는다. 정상에 올라 느끼는 성취감은 덤이다. 30년 경력의 윤재학(63)씨는 “여름철 빙벽등반은 운동과 피서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데 이보다 더 좋은 피서법이 있겠느냐?”며 여름휴가지로 실내 빙벽장을 적극 추천했다. 코오롱등산학교에는 초보자를 위한 빙벽강좌도 개설돼 있어 빙벽등반을 기초부터 쉽게 배울 수 있다. 수강생은 숙박도 가능하다니 휴가기간 내내 차가운 빙벽을 오르며 보내는 것도 이색 휴가로 권할 만하다. 주머니 사정이 가볍거나, 휴가가 짧아 고민인 이들이 있다면 도심 속 겨울세상으로 훌쩍 떠나 보자. 글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닉쿤 음주운전사고 불구속입건

    닉쿤 음주운전사고 불구속입건

    서울 강남경찰서는 24일 술을 마시고 차를 몬 아이돌 그룹 ‘2PM’의 태국 출신 멤버 닉쿤(24)을 음주운전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닉쿤은 이날 오전 2시 45분쯤 면허정지에 해당하는 혈중 알코올 농도 0.056% 상태에서 검은색 폴크스바겐 골프 승용차를 운전하다 강남구 청담동 학동사거리 인근의 신호가 없는 골목 교차로에서 오토바이와 접촉 사고를 낸 뒤 음주 사실이 적발됐다. 소속사인 JYP엔터테인먼트는 “본인은 물론 회사의 부주의로 발생한 잘못된 일”이라면서 “향후 필요한 조사가 있으면 성실히 임할 것”이라며 사과했다. JYP는 “닉쿤은 전날 저녁 공연 연습 후 소속사 전체 연예인이 참석한 식사 자리에서 맥주 2잔 정도를 마시고 인근 같은 블록에 있는 숙소로 돌아가다 사고가 났다.”고 설명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대학교수, 밥값 안내려는 판사에 열받아 결국…

    대학교수, 밥값 안내려는 판사에 열받아 결국…

    “모르는 사람에게 법은 건조하다. 아무것도 아니다. 같은 법 밑에 살지만, 같은 혜택을 보는 게 아니다. 아는 사람만을 위한 법, 그게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거침없다. 마구 지른다. 이렇게 패대기쳐도 괜찮을까. 판·검사를 난도질해도 후환은 없을까. 대한민국 사법제도 개혁, 정말 가능하다고 믿는 건지. ●“사법부의 숨겨진 빙산 91.7% 깨부수자” ‘서초동 0.917’(책과함께 펴냄)은 김희균·노명선·오경식·정승환 등 법학전문대학원·법학부 교수 4명이 서초동으로 상징되는 법조계를 겨냥해 쓴 책이다. 부제 ‘빙산을 부수다, 사법개혁’이 의미하듯 최종 목적지는 사법개혁이다. 책을 대표집필한 김희균(46)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한민국의 사법·교육·정치제도 아래에 빙산이 있다고 합니다. 예컨대 사법에 전관예우의 잘못이 있으면 정치, 교육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50년 이상 개혁을 얘기하고 있는데 안 되는 이유는 그 근저에 잘못이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빙산의 아래에 감춰진 0.917을 깨부수자고 책을 기획했습니다.” 심층인터뷰와 세미나를 거쳤다고 한다. 취재도, 토론도 격렬히 한 냄새가 풀풀 풍긴다. 적절한 비유, 콕 집는 사례가 많다. 사법제도를 지탱하는 4개의 기둥인 법원과 검찰, 경찰, 변호사에 대한 고발이자, 훈계이자, 개혁을 위한 제안이다. 이런 식이다. 판사 항목의 2부에 나오는 한 대목. 밥이나 술자리의 자리배열이 엄격한 법조계에서 “판사가 무조건 상석이다. 그다음 검사, 그다음 교수, 그다음 변호사, 그다음 회사원인데(중략) 가끔 방송국PD라든가 시를 쓴다든가 하는 얘들만 분위기 파악 못하고 상석에 앉았다가 나중에 말석으로 슬슬 내려온다”, “그런데 몇몇 상석은 자리를 파할 때 비상식적인 결론을 유도해서 문제다. ‘참 오늘 돈은 누가 내지?’ 자기가 제일 많이 떠들어 놓고, 밥값은 다른 사람이 낼 때 이 점에서부터 무언가 비리가 시작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3부의 검사 항목에서도 가차 없다. “자칫 정치적 파장이 생길 만한 사건이 닥쳐오면 사건 자체를 보기보다 사건이 사회에 미칠 영향을 먼저 생각한다. 정치인 사건이 배당되면 1년도 더 남은 총선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고, 기업인 관련 사건이 배당되면 세계 금융위기로 침체된 국내 경제를 걱정한다. 이게 바로 검사들 생각이다. 하지만 국민은 생각이 전혀 다르다. 그냥 ‘법대로 처리하세요!’” ●법원·검·경·변호사 향한 고발 및 훈계 김 교수는 오해는 하지 말라고 한다. 특정 기관을 꼬집을 의도로 쓴 건 아니라고. “사법제도 전반이 잘못 굴러가고 있고 각자가 자기 일을 제대로 못 한다는 차원입니다. 대검이 해서는 안 될 수사를 하고 있으니, 법원행정처가 무소불위가 되고 있으니, 자기 위치에 서서 돌아보면 좋겠다. 바깥에서 이렇게 보고 있으니, 안에 있는 분들이 한번 생각해 보시라는 뜻입니다.” 12월의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출판인 만큼 타깃이 정치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건 아니라고 했다. “가장 읽어 주면 하는 게 갓 법조에 들어간 젊은 판·검사이고 두 번째가 법학도들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일반 시민들이고요. 정치권을 염두에 두고 쓴 건 아닙니다.” 4명의 원고를 김희균 교수가 전체 톤의 일관성을 고려해 ‘가볍고 재밌게’ 다시 썼다고 한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기 전부터 “고시공부가 싫어 딴짓을 많이 했던” 그는 극단, 출판사 근무에 파리8대학(불문학 학사, 석사, 박사),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로스쿨(법학박사)까지 다양한 경험을 누렸다. 글솜씨도 웬만한 논객 뺨친다.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극에 달해 있다. 경제민주화가 대선의 초점이 될 것 같지만 사법개혁도 주요 쟁점으로 다뤄야 한다.”는 그는 “재량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법으로만 해결하는 법치주의를 실천하겠다는 대선 후보가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인터뷰를 맺었다. 글 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서초동 0.917’ 대표집필자 김희균

    [저자와 차 한 잔] ‘서초동 0.917’ 대표집필자 김희균

    “모르는 사람에게 법은 건조하다. 아무것도 아니다. 같은 법 밑에 살지만, 같은 혜택을 보는 게 아니다. 아는 사람만을 위한 법, 그게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거침없다. 마구 지른다. 이렇게 패대기쳐도 괜찮을까. 판·검사를 난도질해도 후환은 없을까. 대한민국 사법제도 개혁, 정말 가능하다고 믿는 건지. ●“사법부의 숨겨진 빙산 91.7% 깨부수자” ‘서초동 0.917’(책과함께 펴냄)은 김희균·노명선·오경식·정승환 등 법학전문대학원·법학부 교수 4명이 서초동으로 상징되는 법조계를 겨냥해 쓴 책이다. 부제 ‘빙산을 부수다, 사법개혁’이 의미하듯 최종 목적지는 사법개혁이다. 책을 대표집필한 김희균(46)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한민국의 사법·교육·정치제도 아래에 빙산이 있다고 합니다. 예컨대 사법에 전관예우의 잘못이 있으면 정치, 교육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50년 이상 개혁을 얘기하고 있는데 안 되는 이유는 그 근저에 잘못이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빙산의 아래에 감춰진 0.917을 깨부수자고 책을 기획했습니다.” 심층인터뷰와 세미나를 거쳤다고 한다. 취재도, 토론도 격렬히 한 냄새가 풀풀 풍긴다. 적절한 비유, 콕 집는 사례가 많다. 사법제도를 지탱하는 4개의 기둥인 법원과 검찰, 경찰, 변호사에 대한 고발이자, 훈계이자, 개혁을 위한 제안이다. 이런 식이다. 판사 항목의 2부에 나오는 한 대목. 밥이나 술자리의 자리배열이 엄격한 법조계에서 “판사가 무조건 상석이다. 그다음 검사, 그다음 교수, 그다음 변호사, 그다음 회사원인데(중략) 가끔 방송국PD라든가 시를 쓴다든가 하는 얘들만 분위기 파악 못하고 상석에 앉았다가 나중에 말석으로 슬슬 내려온다”, “그런데 몇몇 상석은 자리를 파할 때 비상식적인 결론을 유도해서 문제다. ‘참 오늘 돈은 누가 내지?’ 자기가 제일 많이 떠들어 놓고, 밥값은 다른 사람이 낼 때 이 점에서부터 무언가 비리가 시작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3부의 검사 항목에서도 가차 없다. “자칫 정치적 파장이 생길 만한 사건이 닥쳐오면 사건 자체를 보기보다 사건이 사회에 미칠 영향을 먼저 생각한다. 정치인 사건이 배당되면 1년도 더 남은 총선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고, 기업인 관련 사건이 배당되면 세계 금융위기로 침체된 국내 경제를 걱정한다. 이게 바로 검사들 생각이다. 하지만 국민은 생각이 전혀 다르다. 그냥 ‘법대로 처리하세요!’” ●법원·검·경·변호사 향한 고발 및 훈계 김 교수는 오해는 하지 말라고 한다. 특정 기관을 꼬집을 의도로 쓴 건 아니라고. “사법제도 전반이 잘못 굴러가고 있고 각자가 자기 일을 제대로 못 한다는 차원입니다. 대검이 해서는 안 될 수사를 하고 있으니, 법원행정처가 무소불위가 되고 있으니, 자기 위치에 서서 돌아보면 좋겠다. 바깥에서 이렇게 보고 있으니, 안에 있는 분들이 한번 생각해 보시라는 뜻입니다.” 12월의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출판인 만큼 타깃이 정치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건 아니라고 했다. “가장 읽어 주면 하는 게 갓 법조에 들어간 젊은 판·검사이고 두 번째가 법학도들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일반 시민들이고요. 정치권을 염두에 두고 쓴 건 아닙니다.” 4명의 원고를 김희균 교수가 전체 톤의 일관성을 고려해 ‘가볍고 재밌게’ 다시 썼다고 한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기 전부터 “고시공부가 싫어 딴짓을 많이 했던” 그는 극단, 출판사 근무에 파리8대학(불문학 학사, 석사, 박사),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로스쿨(법학박사)까지 다양한 경험을 누렸다. 글솜씨도 웬만한 논객 뺨친다.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극에 달해 있다. 경제민주화가 대선의 초점이 될 것 같지만 사법개혁도 주요 쟁점으로 다뤄야 한다.”는 그는 “재량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법으로만 해결하는 법치주의를 실천하겠다는 대선 후보가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인터뷰를 맺었다. 글 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밤하늘의 문을 열다’의 1호 민간천문대 대표 이세영

    [저자와 차 한 잔] ‘밤하늘의 문을 열다’의 1호 민간천문대 대표 이세영

    여름밤은 은하수의 계절이다. 직녀와 견우가 빛나고 그 사이에 물 흐르듯 하늘을 가로지른 별의 무리, 그 위를 유유히 날아다니는 백조가 아름답다. 말 그대로 별들의 축제가 벌어진다. 여름에 볼 만한 별은 전갈의 심장인 안테레스와 직녀성이다. 특히 직녀는 1등성보다 더 밝은 0등성이다. 천구상의 좌표는 적위 38도인데 우리나라 서울의 위도가 37.5도이기에 바로 우리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다. 아울러 여름에는 수평으로 별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반짝반짝 빛난다. 이 반짝거림이 초여름 새벽에 피어 오르는 산 안개와 어우러지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창출해 낸다. 이럴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쩍새 울음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뛰는 멋진 여름밤이다. 이런 내용으로 최근 ‘밤하늘의 문을 열다’(계명사 펴냄)라는 책을 낸 이세영(59)씨. 그는 연세대학교에서 천문과 관계없는 세라믹공학과 경영학을 전공했다. 어느 날 문득 본 밤하늘에 매료돼 1997년 경기도 가평에 ‘코스모피아’라는 민간 천문대 1호를 열었다. 따라서 15년 동안 밤하늘을 본 경험을 토대로 책을 썼다. “20년 전이지요. 밤하늘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천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아울러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별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또 잘못 알고 있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느꼈지요. 특히 초등학생은 더 그랬습니다. 이런 부분에 고민하다가 천문대를 생각하게 됐지요.” 이씨는 여름밤 별들에 대한 감상법을 잠시 소개한다. “요즘 같은 계절에는 직녀성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직녀성 왼쪽에는 백조의 꼬리별이 있지요. 다시 말해 직녀와 견우 사이에 은하수가 있고 그 사이를 백조가 날아다니는 것이지요. 생각만 해도 아주 멋진 광경이 아닙니까.” 이 책은 일반인들의 잘 모르는 천문상식, 특히 여름밤 별들의 움직임에 대해 궁금해하는 부분, 그리고 밤하늘의 어려운 주제를 나름대로 쉽게 풀어 썼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의 대표적인 별자리와 남반구 여행을 통해 경험한 새롭고 신기한 현상을 소개했다. 특히 ‘12’라는 숫자를 목성의 움직임과 연계하면서 그 뜻을 흥미롭게 푸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목성의 태양 공전주기 12년은 우리가 사용하는 12진법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내용이다. 기존의 천문 책에 있는 백과사전식 내용을 탈피해 화성과 지구 거리 측정 방법, 수성과 상대성 이론, 금성의 태양 통과, 화성과 탐사 로봇, 명왕성의 진짜 그럴듯한 퇴출 이유, 코페르니쿠스의 장례식 등은 이 책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는 천문대가 100여곳 있어요. 저의 천문대는 별과 1대1로 대화할 수 있는 곳입니다. 별과의 거리는 어떻고, 별의 생김새는 어떻고, 별이 얘기하고자 하는 모습은 어떻고 그런 것을 감상할 수 있지요. 책 내용도 그런 것입니다.” 별은 그저 보는 것이 아니라 감상하고 대화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책 안에는 천문학 박사인 염범석씨가 찍은 천체 사진이 다양하게 실려 있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중국은 산이고 물이로다_산시성 몐산, 쓰촨성 구채구

    중국은 산이고 물이로다_산시성 몐산, 쓰촨성 구채구

    중국은 산이고 물이로다 호랑나비가 되는 꿈을 꾼 장자가 깨어나 말했다지.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내 꿈을 꾼 것인가.” 한 마리의 나비처럼 중국을 누볐다. 나는 꿈을 꾼 것인가, 여행을 한 것인가. 신의 조각품이라 할 만한 산시성의 몐산, 물감을 엎지른 것만 같은 쓰촨성의 구채구는 ‘중국의 산과 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글·사진 김명상 구명주 기자 취재협조 하나투어, 레드팡닷컴 산시성 몐산 綿山 타이항산맥에서 피어난 한 떨기 산 백두산에서 시작해 지리산에서 마침표를 찍는 백두대간을 굽어보면, 산과 산이 북에서 남으로 길게 손을 잡고 있는 것만 같다. 백두대간이 9개의 산을 안고 있듯 중국의 타이항산맥太行山脈도 산시성, 허베이성, 허난성 출신의 산을 실타래처럼 엮는다. 남한 쪽 백두대간의 길이는 650km, 타이항산맥의 길이는 남북으로 600km며 동서로 250km. 수치만으로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산시성山西省은 타이항산의 서쪽, 동쪽은 바로 산둥성山東省이다. 타이항산맥의 서쪽에서 솟아오른 몐산綿山·면산으로 향했다. 처음 들어보는 산이었다. 그러나 낯설지 않았다. 4대 명절 중 하나인 한식이 몐산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알았던 까닭이다. 한식은 춘추전국시대 충신으로 불리는 개자추介子推를 기리는 날이다. 진나라 문공이 칩거했던 시기, 개자추는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줄 정도로 문공을 지극정성으로 보필했다. 그러나 훗날 문공이 왕이 되자, 개자추는 다툼이 잦은 현실 정치를 뒤로한 채 어머니와 함께 몐산으로 숨고 만다. 충신을 잃은 문공은 개자추를 불러들이기 위해 몐산에 불을 질렀으나, 개자추는 끝내 내려오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불에 타 죽고 말았다. 그래서 동지에서 105일째 되는 날인 한식에는 뜨거운 불에 죽어간 개자추를 기리기 위해 찬 음식을 먹고 있다. 산시성의 성도인 타이위엔太原·태원에서 개자추의 전설이 영근 몐산까지는 버스로 2시간이면 닿았다. 몐산을 한자어 그대로 풀이하면 ‘이어지는 산’이다. 분명 몐산의 저 너머에는 또 다른 중국의 산이 불뚝 솟아 있을 것이다. 버스에 의지해 몐산을 본격적으로 오르자, 신이 둥근 과일을 칼로 깎듯이 저 산을 곱게 도려낸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해발 2,000m를 웃도는 산 위, 도로가 끊길 듯 끊길 듯 끊기지 않고, 연이어 나타났다. 도로의 폭이 워낙 좁은 탓에 대형 버스 두 대가 마주칠 때면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며 비켜갔다. 버스가 직사각형 반듯한 건물 앞에서 멈춰 섰다. 절벽 위에 대롱대롱 매달린 원펑수위안雲峰墅苑·운봉서원이었다. ‘하늘 위 호텔’이라는 별명이 어색하지 않았다. 숙소 창문을 열자 한 폭의 동양화가 한눈에 들어왔다. 1, 2 정궈스에 오르면 등신불을 볼 수 있다 3 몐산의 원펑스에는 한식의 유래가 된 개자추의 전설이 숨쉰다 4 원펑스의 120계단은 108가지 번뇌와 12연기를 의미한다 5 원펑스에서 정궈스로 오르는 계단이 아찔하다 6 군사요새인 몐산의 석채. 타이항산의 서쪽에 솟은 몐산의 높이는 2,000m가 넘는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소원이 박힌 절벽을 지나 ‘미라 승려’를 만나다 원펑수위안의 로비인 10층은 원펑스雲峰寺·운봉사와 이어지는 비밀 통로다. 여기서 원펑스를 오르면 호텔 10층 높이만큼 발품을 아낄 수 있다. 그러나 편한 것을 거부하고 느리게 다가오는 중년의 중국인이 보였다. 그는 아찔하게 펼쳐진 120계단 위에 두 손을 밀착하면서 연거푸 절을 했다. 고개를 들 때마다 시선은 원펑스로 향해 있었다. 120계단은 108가지 번뇌煩惱에 12연기를 더한 숫자를 의미했다. 번뇌는 집착에서 일어나는 심적인 고통이다. 마음을 비우면 쉬운 것을 우리는 항상 욕심을 부리고 의도치 않게 성을 내며 어리석은 행동을 일삼았다. 그래서 120계단은 인간의 행렬로 쉴 날이 없었다.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서 원펑스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모든 죄를 사하여 줄 것만 같은 편안함이 감돌았다. 포복사抱腹寺는 절벽 속에 감겨 있는 원펑스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절은 마치 어미의 뱃속에 아이가 안겨 있는 모습을 닮았다. 사람의 손길이 도저히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가파른 암벽을 따라 붉은 천이 휘날렸다. 천에 매달린 것은 등불 혹은 방울이었다. 왜 등불과 방울인가. 등불燈·등불등을 단 사람은 “소원이 이뤄지길 기다리겠다等·기다릴등”고 신께 기도했고, 반대로 방울鈴·방울영을 단 사람은 “소원이 이뤄지다니, 영험합니다靈·영험할영”고 감사 인사를 띄웠다고 한다. ‘등’과 ‘영’이라는 한자 음을 이용한 중국인의 재치를 엿볼 수 있었다. ‘유구필응有求必應’이라 했다. 말하는 대로, 꿈꾸는 대로 이뤄지리라. 원펑스를 지나 ‘之갈지’ 모양의 지그재그 계단을 올랐다. 정궈스正果寺·정과사로 가는 길이다. 정궈스까지 오른 이유는 하나였다. 등신불等身佛을 보고 싶었다. 등신불은 쉽게 말해 ‘미라가 된 승려’다. 미라라 하면 방부처리한 상태로 편하게 누워 있는 이집트 미라가 대번 떠오른다. 그러나 이곳의 등신불은 고고하게 양반다리를 한 채 앉아 있었다. 어떻게 꼿꼿한 자세 그대로 ‘인간 불상’이 되었는지는 과학도 풀기 힘든 미스테리라고 했다. 오매불망 누군가를 그리워하다 그대로 돌이 된 망부석처럼 등신불에는 어떤 애절함과 의지가 선연하게 묻어났다. 등신불의 갈라진 틈 사이로 뼈와 두개골이 보였다. 정궈스에는 등신불 총 12존이 있다. 등신불도 살아온 궤적에 따라 저마다의 표정이 달랐다. 유독 표정을 잔뜩 찡그린 불상이 보였다. 죽어서도 지울 수 없는 한이 가슴 깊숙이 응어리진 게 틀림없었다. 역시나 그 등신불은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상처를 안고 있다고 했다. 하산한 그대여, 왕자다위안과 핑야오구청으로 가라 몐산에서 내려와 왕자다위안王家大原·왕가대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왕씨네 집을 찾아간 것이다. “비단이 장사 왕서방 명월이한테 반해서 비단이 팔아 모은 돈 퉁퉁 털어서 다 줬소” 노래 <왕서방연가> 탓인지 중국의 부자 하면 왕서방의 퉁퉁한 얼굴이 스쳤다. 실제 왕王씨는 이李씨, 장張씨와 함께 중국의 3대 성씨로 꼽힌다. 왕자다위안은 길조차 왕씨의 집임을 증명했다. 남북으로 큰 길이 하나 놓여 있고 동서방향으로 세 개의 길이 나 있으니 영락없는 王자였다. 왕씨 가문의 시조인 ‘왕실王實’은 두부장사로 큰돈을 모은 거상이었다. 왕실의 17대손 형제는 나란히 관직에 등용돼 가문에 영광을 안겨줬고 집을 더 크게 짓고 더 화려하게 치장했다. 예나 지금이나 부와 명예를 뽐낼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 바로 으리으리한 집짓기가 아닌가. 수백년에 걸쳐 대대손손 지어진 이 집은 ‘민간의 자금성’으로 불릴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방의 개수는 1,118칸, 정원의 수도 100개가 넘는다. 집을 구경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족히 1시간은 걸렸다. 왕자다위안에서는 숨어있는 장치를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계단과 문 앞에는 복숭아, 박쥐, 원숭이, 물고기 등의 조형물이 나타났다. “복숭아는 장수, 박쥐는 복을 의미하고요…” 여기저기서 숨은 그림 찾기에 빠진 이들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집을 채운 소품 중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만든 것이 없었다. 방문객이 어찌나 만졌던지 사람의 손을 탄 장식품은 하나같이 반들반들했다. 하산 후 여행은 대개 왕자다위안에서 핑야오구청平遙古城·평요고성으로 이어진다. 핑야오구청은 명나라, 청나라 시대의 ‘명동’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번화해 몐산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적막한 몐산에 파묻혀 며칠을 지냈던지라 왁자지껄한 핑야오구청의 분위기가 처음에는 낯설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몸이 반응했다. 정신없이 골목을 누볐더니 어느새 두 손 가득 간식과 아기자기한 기념품이 들려 있었다. 스토우빙으로 불리는 바삭바삭한 과자, 매콤하고 짭조름한 양 꼬치, 대형 지팡이 과자 등 맛있는 길거리 음식이 워낙 많아 끼니를 걸러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핑야오구청에는 지갑을 열게 하는 마력이 흘렀다. 알고보니 핑야오구청 일대는 상업 중심지로 흥했던 곳이었다. 중국 최초의 은행인 표호票號도 이곳에 있다. 처음 핑야오구청을 둘러보면 망망대해를 누비는 것처럼 막막하다. 다행히 스러우市樓·시루는 든든한 등대 역할을 했다. 아침이면 이곳을 중심으로 거리 공연이 열리고, 밤이면 화려한 빛이 뿜어 나와 여행객을 위무했다. 1 장수, 복 등을 의미하는 조형물이 곳곳에 숨어있다 2 왕자다위안은 민가의 자금성으로 불릴 정도로 거대하다 3 핑야오구청의 아침은 화려한 전통 공연으로 시작한다 Travel tip 산시성 사람은 식사 전 꼭 ‘식초’ 한 잔을 마신다. 상 위에 오른 검정 액체를 보고 당황하지 말자. 몸에 좋은 약이라 생각하고 냉큼 마셔 보시길. 핑야오구청에는 게스트하우스, 중국식 전통 숙소인 객잔이 있다. 특히 객잔에 머물면 홍등과 버드나무를 벗 삼아 객잔 주변을 산책해 보라. 귀부인이 된 것처럼 어깨가 으쓱해진다. 또한 객잔 마당의 테이블에서 맥주 캔을 든다면 풍경에 취해 밤을 새기 십상이다. 단, 객잔의 실내는 약간 쌀쌀한 편이니 취침 전 창문을 잘 닫는 게 좋다. T clip.여행상품 10월20일까지 몐산으로 손쉽게 떠날 수 있다. 바로 인천에서 산시성의 성도인 타이위안까지 아시아나항공이 전세기를 운항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총판매대리점을 맡고 있는 레드팡닷컴을 비롯해 하나투어, 모두투어, 자유투어, 참좋은여행, 온라인투어 등 전국의 여행사를 통해 전세기 상품을 예약할 수 있다. 매주 토요일 출발해 4박5일간 현지에 머무르며 몐산, 왕자다위안, 핑야오구청 등 산시성 대표 여행지를 모두 아우르며 중국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디너쇼도 포함한다. 상품가 69만9,000원부터 문의 레드팡닷컴 02-6925-2569 쓰촨성 구채구 九寨溝 고산증은 통과의례였다 오색찬란한 물빛을 보는 순간 당신은 선계仙界에 온 듯한 착각을 할 것이다. 지구상의 온갖 푸른색 보석을 가루 내 물에 푼 듯한 구채구의 물빛은 다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산을 고이 담아낸 물이 잔잔하고, 웅장한 폭포에서는 거대한 물의 커튼이 눈앞을 가린다. 하지만 구채구에 도착하기 전 고산병이 발목을 잡았다. 구채구로 가는 관문인 청두成都·성도에서 국내편 비행기를 타고 해발 3,500m의 구황공항에 내리자마자 딱따구리가 머리를 쪼는 듯한 두통이 일어났다. 갑자기 높은 곳에 올라오자 심한 고도차에 몸이 고통을 호소한 것이다. 미리 먹었던 고산병 예방약은 별무소용이었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니 몸은 금방 적응됐는지 평소와 같은 기분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다른 일행들은 정도가 조금 덜할 뿐, 여전히 두통이 남아있다고 했다. 구채구는 해발 1,980~3,100m 정도 높이에 걸쳐져 있는데 한반도의 최고봉, 백두산 높이가 2,744m라는 것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종종 발생할 수 있는 고산증세는 하나의 통과의례이며 극복한다면 진한 감흥을 얻을 것이다. 구채구는 1970년대에야 벌목공에게 발견됐을 정도로 오지다. 골짜기 안에 9개의 장족 마을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아름다운 산과 오색찬란한 물로 유명하다. 동화세계, 인간선경 등으로 불리는 중국 관광의 명소로 1975년 중국 정부 지정 관광지로 지정됐고, 1992년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 1997년에는 세계 생물권 보호구로 지정되기도 했다. 4 진주가 흐르는 듯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진주탄폭포 5 오화해는 꽃처럼 아름다운 다섯 색깔이 비친다는 뜻으로, 비취색이 인상 깊은 곳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감탄사가 절로 터지는 물빛 구채구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Y자 형태이며 크게 수정구樹正溝, 일측구日則溝, 측사와구則渣窪溝 3개의 골짜기로 이뤄져 있다. 전체 길이는 55.5km, 입구에서 구채구의 가장 높은 지역인 장해까지의 길이는 총 17.8km에 달한다. 따라서 도보로 걷기에는 힘들기에 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같은 버스를 탄 관광객들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찬탄을 질러댔다. 그것도 그럴 것이 산이 물 표면에 그대로 비춰지기도 하고, 비취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물 색깔의 오묘함에 홀리듯 빨려들게 된다. 예로부터 장족들이 신산성수神山聖水라 불러 왔다는데 그 이유를 짐작할 것 같다. 구채구 내에는 크고 작은 호수들이 114개, 호수 사이에 17개의 폭포군, 11개의 급류, 5곳의 트래버틴(석회암의 일종) 모래톱이 서로 연결돼 있다. 호수는 이름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있는데 명칭이 있는 호수는 보통 오화해, 경해, 장해와 같이 바다海라 명명된다. 구채구에 관한 전설에는 로맨틱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옥낙색모라는 여신이 있었는데 달과라는 남자신이 그녀를 사모했다. 한 번은 달과가 여신에게 바다를 볼 수 있는 보물거울을 선사했는데 갑자기 달려든 마귀에 놀라 거울을 떨어뜨렸다. 그 거울 조각이 인간세상에 떨어져 보석처럼 산 곳곳에 박히게 됐는데 그것이 구채구의 호수가 됐다는 것이다. 구채구의 하이라이트, 오화해·장해 구채구는 면적이 720km2 달하는 만큼 관광객이 머무는 짧은 시간 동안 모두를 둘러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성수기에는 가이드도 압사당할 뻔했다고 할 만큼 중국인 관광객이 몰리기에 여유로운 사진 촬영도 어렵다. 따라서 미리 몇 곳을 정해 놓고 집중해 보는 편이 낫다. 추천하는 곳은 오화해五花海와 장해長海다. Y자 계곡의 오른쪽(일측구) 상류 부분에 있는 오화해는 꽃처럼 아름다운 다섯 가지 색이 비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만큼 구채구 호수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인데 에메랄드색과 남색, 녹색 등이 서로 교차하고 영롱한 빛을 발해 눈을 어지럽힌다. 이런 신비한 색감은 석회암 지형 때문인데, 물에 석회질이 많아 색깔이 옥색으로 비치는 것에 더해 주변 산의 전경, 태양의 움직임 등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화한다. 호수 속에는 이미 오래된 나무가 유유자적하게 잠겨 있는데 신기하게도 썩지 않는다고 한다. 지질 특성상 석회 성분이 고착돼 그 형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들이 어우러진 오화해는 말 그대로 선경이라 부를 만큼 감동이 살아 숨쉰다. 오화해 위로는 팬더바다라는 뜻의 웅묘해熊猫海가, 아래로는 경내에서 가장 웅장하며 진주가 흐르는 듯 아름답다는 진주탄폭포珍珠灘瀑布가 있는 만큼 천천히 유람하듯 즐기는 것도 좋다. 식사 후 버스를 타고 구채구에서 제일 높은 호수인 장해로 향했다. 장해는 백두산보다 높은 해발 3,101m에 있고 길이는 약 4.3km에 달한다. 유람선이라도 뜰 것 같은 긴 물결이 호수임에도 시야를 탁 트이게 만든다. 이곳을 한 바퀴 둘러보면 마치 중식도로 산을 뭉텅뭉텅 베어낸 듯한 노르웨이의 피오르드fjord와 흡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구채구라는 계곡 하나에서 동양과 유럽의 매력을 아우르는 풍경이 숨쉬는 것이 참으로 신기할 뿐이다. 장해 아래 쪽으로 걸어 내려가면 역시 물 색깔이 곱디고운 오채지五彩池에 닿는다. 1 석회질 성분 때문에 이곳에 잠긴 나무들은 썩지 않고 형태를 유지한다 2 웅장한 풍경을 자랑하는 장해. 이름답게 사진에 보이는 장면이 전체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3 구채구 장족문화촌에서는 장족의 문화와 전통을 만끽하며 쇼핑도 겸할 수 있다 4 장족문화촌에서 전통복장을 한 여인이 집으로 들어가고 있다 5 장족은 중국 소수민족 중 유일하게 칼을 차고 다니기에 화를 돋우면 곤란에 처할 수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오지 속 쇼핑몰, 장족문화촌 구채구 내의 수정채에는 각종 기념품을 파는 장족 마을이 있다. 입구 앞에는 쵸르텐불탑과 룽다風馬가 서 있다. 룽다는 긴 장대에 매단 긴 깃발이고 타르쵸는 정사각형의 기를 이어서 매단 것으로 경문이 가득 쓰여 있다. 진리가 바람을 타고 세상에 전달돼 모두가 해탈하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데 해져 사라질 때까지 그대로 둔다고 한다. 입구로 들어가면 타르쵸가 만국기처럼 내걸려 있다. 상점에서 물품을 파는 이들은 모두 장족 전통 복장을 하고서 그들만의 독특한 기념품을 만든다. 티벳문자가 수놓인 천 제품, 스카프, 옥으로 만든 빗, 각종 의류, 거울, 팔찌, 귀걸이 등의 액세서리 등도 만날 수 있다. 상업적인 느낌이 강해 아쉽지만 장족의 고유한 삶도 들여다보고 기념품도 구매할 수 있어 구채구를 찾은 이라면 누구나 즐겨 찾는 곳이다. T clip.가는방법 청두(성도)는 구채구의 관문이다. 인천에서 청두까지는 아시아나항공, 중국국제항공, 사천항공 등이 운항 중이며 약 3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청두에서 구황공항까지는 비행기로 45분 걸리지만 육로로는 10시간도 소요될 수 있다. 그만큼 비행기 이용객이 많은데 문제는 날씨가 워낙 오락가락하는 탓에 비행기 연착이 흔하디 흔하게 일어난다는 것. 기자는 3시간 넘게 청두 공항 의자에 누워서 기다려야 했다. 상품 문의 하나투어 02-2127-1951 Travel tip. 구채구는 산에 단풍이 들고 물이 많은 가을이 성수기다. 단, 10월에는 중국인 관광객들로 가득 차서 주변 호텔 가격도 비싸고, 관광할 때 인도를 걷기도 힘들 만큼 붐비니 9월이 가장 적당하다 구채구 내에서 버스 이용할 때는 앉은 자리가 풍경 감상의 핵심이다. 입구에서 상행선 버스를 탈 경우 왼쪽이, Y자 교차로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는 일측구에서는 오른쪽에 앉으면 이동하면서 멋진 장면을 만끽할 수 있다. 고산병은 평소 건강상태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으니 자만은 금물. 일단 고산병 증세가 생기면 하산만이 해결책이다. 약을 준비하는 등 미리 조처하고 대비하자.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저자와 차 한 잔] ‘신화 리더십을 말하다’ 삼국유사 전문가 고운기 교수

    [저자와 차 한 잔] ‘신화 리더십을 말하다’ 삼국유사 전문가 고운기 교수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고운기(51) 교수는 ‘삼국유사’에 빠져 사는 ‘삼국유사 전문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대학원 박사 과정 이후 줄곧 삼국유사에 천착해 살았고 2009년부터는 이른바 ‘스토리텔링 삼국유사’ 시리즈에 몰두, 지금까지 모두 세 권을 펴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국문학자이면서 삼국유사라는 역사서에 흠뻑 젖어 사는 독특한 학자. 그가 시리즈의 네 번째로 세상에 낸 ‘신화 리더십을 말하다’(현암사 펴냄)는 요즘 대선 정국에 흔한 화두인 리더십을 겨냥했다. 삼국유사 속 건국신화의 주인공 11명을 도마에 올려 그들이 가졌던 리더십을 풀어내는 시각이 독특하다. ●삼국유사 속 건국신화 주인공 11명 리더십 “나라를 세우고 경영한 건국 주체라면 응당 범상치 않은 리더십을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삼국유사의 건국신화에는 그 리더십들이 명확하게 펼쳐집니다. 대통령을 새로 뽑아야 할 시점입니다. 선택의 판단 기준을 삼국유사 속 건국 주체를 통해 생각해 본 것이지요.” ‘삼국유사로 읽는 리더십’이랄까. 웅녀를 비롯해 해부루와 금와, 고주몽, 온조, 박혁거세, 석탈해와 김알지, 김수로, 견훤, 왕건의 건국과정과 국가운영, 그리고 결말을 통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리더십이 다양하게 비교된다. 이를테면 단군을 낳은 웅녀는 자신의 목표를 확실히 갖고 주장을 대범하게 표현했던 용기와 희생의 ‘바리데기 리더십’의 소유자요, 큰 나라 부여를 변방의 소국으로 전락하게 한 해부루와 금와는 ‘삽질 리더십’의 위인, 고구려 대국의 주춧돌을 놓은 고주몽은 절묘한 균형감을 갖춘 ‘물지게 리더십‘의 경륜자로 풀어진다. 그런가 하면 가락국에서 버림받았지만 결국 신라를 거목으로 키워낸 석탈해는 ‘모퉁잇돌 리더십’, 후백제를 세워 왕건보다 우월한 입장에 있었지만 결국 비전을 갖지 못해 굴복한 견훤은 ‘자전거 리더십’, 다투지 않고 순응한 채 차례를 기다려 고려를 세운 왕건은 ‘물레방아 리더십’의 인물이다. “삼국유사의 기사들을 분석하다 보니 건국주에 대한 판단이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흐름엔 부인할 수 없는 특징이 있게 마련입니다. 가장 원형적인 우리 토종의 정신사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생각하고 판단해 보자는 뜻입니다. 대통령을 선택할 때도 개개인이 좀 더 주체적인 판단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전형적인 왕조사인 삼국사기에 비해 삼국유사는 당대의 사회를 다양하게 보여 주는 ‘대안 사서’의 성격이 강하다는 고 교수. 당대의 규범을 벗어난 ‘야사’란 평가와 달리 훨씬 더 풍부하고 포괄적인 콘텐츠를 담은 역사서이기 때문에 삼국유사에 더 매력을 느낀단다. 국문학자이면서 줄기차게 역사서 ‘삼국유사’에 천착해 사는 이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의 정체성 생각하고 판단해 보자” 아버지에게 버림받았으면서도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할 약을 구해 험한 길을 갔던 용기와 희생의 바리데기. 그 바리데기의 리더십이야말로 지금 대선 후보들이 가장 새겨야 할 덕목임을 고 교수는 거듭 강조한다. “따져 보면 리더십은 그리 거창한 게 아니지요. 누구나 각자의 입장에서 리더이고 리더가 될 수 있는 작은 리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건국신화에서 건져내 쉬운 교훈으로 드러내 보인 리더십들. 비단 리더십 말고도 ‘대안 사서’ 삼국유사엔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유익한 덕목과 콘텐츠가 무궁무진하다고 한다. 그래서 고 교수는 앞으로 갈 길이 멀다. 물론 삼국유사의 스토리텔링 건져내기다. 지금 집중해 내년 상반기에 낼 삼국유사 속 모험담이며 절·탑·불상, 고승열전, 귀신 이야기, 향가 이야기…. “현장을 다녀보면 훌륭한 콘텐츠를 담고 있는 삼국유사 속 현장이 왜곡되고 훼손되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문화사업이란 명목으로 앞다퉈 벌여 대는 이벤트 탓에 생겨난 역사 훼손의 흉물들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해야 할 일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김상연 특파원 워싱턴 저널] 옆집은 아직 정전인데…美 ‘이웃의 정’ ON? OFF?

    미국 메릴랜드주 브룩빌로드에 사는 니키 멜러(공무원)는 마음이 편치 않다. 자신은 시원한 에어컨이 돌아가는 거실에 앉아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바깥의 폭염을 잊고 지내지만 바로 뒷집과 옆집은 아직도 전기가 안 들어와 나흘째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집에서 와인 한 잔 즐길 때도 이웃을 생각하면 죄책감이 든다.”고 2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에 밝혔다. 지난달 29일 갑자기 불어닥친 살인적인 폭풍으로 워싱턴 일대에서만 2일 현재 25만 가구가 여전히 정전 상태를 면치 못함에 따라 예기치 않은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연일 찜통 더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같은 동네에서도 어떤 집은 전기가 들어오고 어떤 집은 안 들어오면서 이웃 간 ‘인간성’을 시험하는 국면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배가 난파돼 무인도에 떨어진 사람들 중 음식을 갖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형성되는 묘한 ‘윤리의식’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멜러는 고민 끝에 옆집에 사는 앤드루 모랠이 자신의 인터넷선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멜러의 집에서부터 시작된 긴 선이 뒤뜰을 거쳐 모랠의 집으로 마침내 연결됐다. 에어컨이 안 돌아가는 집에서 땀에 젖어 지내는 모랠이지만 인터넷만이라도 사용할 수 있어 이웃에게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메릴랜드주 조지아스트리트에 사는 네이선 리브스도 어린 세 자녀가 신경 쓰여 잠시 망설이다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이웃들에게 “언제든 우리 집에 와서 쉬거나 휴대전화 충전을 해도 좋다.”고 알렸다. 대다수 이웃들이 아직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날 한 이웃이 처음으로 음식을 잔뜩 가져와 리브스의 냉장고에 넣은 뒤 서둘러 자리를 떴다. 어떤 집 대문에는 ‘우리 집 전기가 들어올 때까지만 댁의 현관 밖에 있는 전원에 우리 집 냉장고 플러그를 꽂아 사용하겠으니 양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는 메모지도 붙었다. 주인을 당장 만날 수 없어 급한 대로 일단 사용한 뒤 나중에 양해를 구하는 식이다. 작은 소유권이라도 일일이 따지는 미국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다. 그래도 사생활 침해를 싫어하는 미국인답게 전기가 안 들어오는 가정 대부분은 아직까지 이웃에 폐를 끼치기보다 에어컨이 나오는 차 안에서 잠시 몸을 식히거나 자체 동력 발전기 구매에 나서고 있다. 폭염과 정전은 이번 주말까지 이어질 전망이라고 당국은 밝혔다. carlos@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학문론’ 펴낸 서울대 명예교수 조동일

    [저자와 차 한 잔] ‘학문론’ 펴낸 서울대 명예교수 조동일

    조동일(73) 서울대 명예교수가 ‘학문론’(지식산업사)을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국문학자가 웬 학문론이라며 생뚱맞아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모르는 소리다. 이미 한국문학에서 동아시아문학으로, 세계문학으로 전공의 지평을 넓힌 지 오래다. 또 연구의 꼭짓점을 문학에서 인문학문으로, 학문일반론으로 높였다. 국문학자라기보다 인문학자라는 호칭이 어울린다. ●학문이란 무엇인지 차근차근 풀어내 학문론은 그가 저술한 13권의 학문방법론을 집대성한 결정판이다. 학문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며,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누가 하며, 막히면 어떻게 하는지 차근차근 풀어 준다. 공부는 왜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학생은 물론 학문의 길 위에서 갈등하는 전문 연구자들에게 길을 알려 준다. 어찌 보면 간단하다. 학문(學問)이란 그의 말대로 “배우고(學) 묻는(問) 행위이며, 학문론(學問論)은 학문(學問)을 잘하게 하는 이론(論)”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이 시대 조동일의 학문론은 ‘몰락한 종갓집’을 다시 일으켜 세울 통찰의 생극론(生克論)을 연다. 서구와 중국, 일본도 감히 시도하지 못한 창조학을 통해 인문학이 주도하는 ‘학문입국’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학문을 수출할 구체적인 정책적 대안도 내놓았다. “인문학문(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문을 하는 사람들의 패배 의식과 열등 의식의 산물입니다. 인문학문은 홀로 위대하다고 자부하지 말고 사회학문(사회과학)이나 자연학문(자연과학)과 제휴해야 합니다.”라고 고언했다. 나아가 학문의 통합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과학 방법이니 과학철학이니 하는 분리주의 헌법을 철폐하고 학문의 역사를 바꿔야 해요. 학문론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학문 나라 전체의 통합 헌법’입니다.” 아홉 가지 학문의 병 ‘구불의병’(九不宜病)으로 비뚤어진 학계 풍토에 죽비를 들었다. 학문 여건과 몰이해를 탓하거나, 학문을 한다면서 시사평론이나 하거나, 학문을 인정받으면 장사가 되는 쪽으로 쏠리거나, 학문 업적을 자랑하면서 인기 관리에나 힘쓰고, 자기 연구는 않고 주문생산에만 매달리고, 남의 학문 흉내 내기를 일삼고, 학문을 승패를 가르는 경쟁이라고 여겨 이기기 작전을 쓰거나, 공부만 하고 학문으로 나아가지 않고, 진행 중인 작업에 매몰돼 멀리 못 보는 등 아홉 가지 질병이다. 일찍이 ‘고려 제일의 시인’ 이규보가 시를 잘못 쓰는 아홉 가지 병폐를 이른 ‘구불의체’(九不宜體)에서 따온 것이다. 학문이 막히는 학자는 자가진단해 볼 일이다. 하나라도 해당하는 학자는 뜨끔할 것이다. ●아홉 가지 예 들어 학계 풍토 비판 “반성합니다. 너무 많은 책을, 너무 어렵게 썼어요. 책을 펼치면 오·탈자가 너무 많아요. 99.9% 완벽한 책을 내는 게 꿈입니다.” 그렇다면 ‘학문론’은 완벽할까. 출판가에 알려지지 않은 사연이 있다. 초판본에서 오·탈자 40개가 발견되자 지식산업사 김경희 사장은 초판 1000부를 자진 폐기했다. 저자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김 사장은 1977년부터 지금까지 조 교수의 책 21종 27권의 출간을 도맡아 왔다. 조교수는 “알았으면 말렸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교수라는 직함 이외에 다른 직함을 거의 가져 본 적이 없다. 그 흔한 대학의 보직도 맡지 않았다. 70여권의 저서와 200여편의 논문을 썼다. ‘학자는 저술로 말한다.’라는 아포리즘을 지킨 몇 안 되는 꼿꼿한 학자다. 전공자들이 꾸준히 사 보는 책, 절판되지 않는 책의 저자다. 서울대학교 등에서 37년을 가르치다 정년퇴직했고, 계명대 석좌교수 5년, 울산대 연구교수 3년을 더 보태 45년간의 ‘기나긴’ 교수 생활을 올 3월에 마감했다. 대표작으로는 ‘문학연구방법’(1980),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 1~3’(2001), ‘한국문학통사 1~6’(2005)가 있다. 요즘 그림 그리는 재미에 푹 빠졌다. 2년 전에는 서울 인사동에서 부부전시회 ‘풍경+선수’ 전을 열었다. 소년 때부터 화가 지망생이었다. 글 노주석 부국장 joo@seoul.co.kr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속속들이 옛 그림 이야기’ 펴낸 미술평론가 손철주

    [저자와 차 한 잔] ‘속속들이 옛 그림 이야기’ 펴낸 미술평론가 손철주

    출판사 자음과모음이 펴낸 문고판 인문도서 시리즈. 인문 교양지 ‘자음과모음 R’의 연재물과 KBS ‘TV특강’ 강연록 등을 엮어 1~3권을 냈다. 1권이 미술평론가 손철주의 ‘속속들이 옛 그림 이야기’, 2권은 역사학자 장수한 침례신학대 교수의 ‘깊고 진한 커피 이야기’, 3권은 동화작가이자 시인인 김진경의 ‘신화로 읽는 세상’이다. 7000~8000원대로 책정해 시리즈를 이어갈 계획이다. “이 책은 쉽게 보고 덮을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깊은 정보는 다른 책에서 얻으면 돼요. 한번 읽고 다른 사람 주세요. 재미있다면 말이죠.” 출판사가 들으면 식겁할 소리다.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계동 출판사 학고재에서 만난 미술평론가 손철주(59)는 신간 ‘속속들이 옛 그림 이야기’를 두고 이렇게 정의했다. 이 책은 자음과모음 출판사가 내놓은 ‘팸플릿 시리즈’ 1권으로, 그가 지난해 한 공중파 프로그램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그림 보는 만큼 보인다’ ‘다, 그림이다’ 등 스테디셀러의 저자이자 미술평론가이니 이 손바닥만 한 책을 두고는 이리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건가 생각하면 물론 오산이다. 이 책에 대한 애정은 “재미있게 보고 다른 사람에게 주어라.”에 방점을 찍어 이해하면 된다. 1장 ‘누워서 구경하니 더욱 신기하여라’는 산수화를 다루고 2장 ‘봄날의 상사는 말려도 핀다’는 그림에 담긴 내밀한 남녀의 애정사를 풀어 놓는다. 3장 ‘꽃이 속삭이고 동물이 노래한다’에서는 민화를, 4장 ‘선비는 숨어도 속세는 즐겁다’에선 인물화를 다룬다. 옛 그림의 시대적 배경과 화가의 시선을 소개하고 관련된 한시도 녹여 가면서 설명한다. 그림을 보여 주고 말하는 TV 강의를 글로 적어 놓으니 내용이 쇠락해 버렸다. 그래서 강의 내용을 중심으로 말투를 새로 쓰고 설명을 덧대면서 이해력을 돕는 작업을 했다. “바위는 어떻게 그렸고 붓질은 어떻게 했고 이런 식의 미술 기법보다는 그림이 품은 이야기를 말하고 싶었다.”는 그는 “그림을 그린 옛 사람의 눈으로, 그 시대상에서 볼 수 있도록 안내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마치 할머니 무릎을 베고 옛 이야기를 듣는 듯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이 녹아들어 재미가 쏠쏠하다. 그는 비단에 채색을 하고 정교하게 산과 나무, 해를 심어 넣은 유성업의 ‘해맞이’처럼 연하장 같은 그림보다는 서툰 듯 거칠게 그린 최북의 ‘공산무인도’를 더 좋아한다. 화가가 자연을 바라보는 심경이 붓질 하나하나에 그대로 묻어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 이유로 무명 화가의 솜씨가 부끄러움 없이 드러난 민화도 참 재미있는 그림이다. 소박하고 진실하면서도 우리 민족의 습속이나 믿음이 고스란히 숨어 있어서다. 사무실 벽에 빼곡히 붙은 메모지들에 쓴 한시를 인용하면서, 도록을 꺼내 보이면서, 컴퓨터에 있는 민화를 확대해 가면서 설명을 하는 그의 얼굴에 신명이 묻어난다. 김홍도의 ‘표피도’를 설명할 때는 감탄사가 마구 섞인다. “붓질이 아주 자잘해요. 그림을 20분의1 정도로 축소해서 붓질을 몇 번 했는지 헤아려 봤거든요. 수십만 번인 거예요.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이런 잔털을 일일이 다 그렸다는 게.” 옛 그림은 이토록 찬사를 받아 마땅한데 정작 사람들은 그 가치를 잘 알지 못한다. 저자는 그 이유를 “스토리텔러 부족”으로 꼽는다. “가끔 옛 그림 전시를 하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요.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흥행은 못 해요.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가 그 역할을 자처한다. “이전까지는 동서양 미술 전반에 관심을 가졌지만 이제는 옛 그림에 집중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했다. 옛 그림을 역사이자 축적된 우리의 삶으로 보는 그에게는 일종의 사명감이자 책임감이다. 준비하는 책 역시 옛 그림에 관한 것이다. 이전에 냈던 ‘옛 그림 보니 옛 생각 난다’가 옛 사람의 감성을 흘렸다면 새 책에는 미술 기법을 조금 덧댈 계획이다. 그럼 옛 그림을 어떻게 즐기면 되는 것인가 묻자 “무조건 많이 보라. 그리고 꼭 돋보기를 갖고 가라.”고 대답한다. 공자 왈 ‘머리 좋은 사람은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더 나아가서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이치다. 돋보기의 용도는? 옛 사람이 옛 그림에 숨겨 놓은 것들을 발견하는 재미를 주는 수단이다. 글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공무원 음주운전하면 부서장도 책임”

    “공무원 음주운전하면 부서장도 책임”

    제주도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가지 술로 1차만 마시고 오후 9시 이전에 술자리를 끝내는 ‘119 음주 문화 개선 캠페인’을 벌인다고 18일 밝혔다. 2006년 7월 이후 2010년까지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된 도 소속 공무원이 532명에 이르는 등 잘못된 음주 문화가 공직사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생산성도 떨어뜨리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도는 폭탄주 마시지 않기, 2차 술자리 가지 않기, 오후 9시 이후에 술 마시지 않기 등 공직자 음주 문화 개선 방안을 마련해 제주도 노동조합, 여성공직자회와 함께 연중 감시할 계획이다. 또 매주 수요일을 금주의 날 및 부서 공동체의 날로 지정해 문화 행사를 하도록 할 방침이다. 특히 부서 회식 후 음주운전이나 폭행 등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을 때는 부서장에게 연대 책임을 물어 인사상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문원일 도 총무과장은 “제주도는 음주에 대한 인식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너그러운 편이어서 음주율이 아주 높다.”며 “잘못된 음주 문화를 바꾸기 위해 공무원부터 솔선수범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지역사회 건강조사에서 제주도는 최소 7잔(여성은 5잔) 이상을 마시는 술자리가 주 2회 이상인 고위험 음주율 분야에서 전국 1위를 차지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K·POP 세계를 홀리다’ 대중음악 전문가 김학선씨

    [저자와 차 한 잔] ‘K·POP 세계를 홀리다’ 대중음악 전문가 김학선씨

    1년 전 이맘때 불어닥치기 시작한 K팝 열풍을 지켜보며 뜨악하지 않았는지. 수천㎞ 떨어진 나라의 소녀들이 한글 가사를 천연덕스럽게 읊조리고 서툰 한글로 꾸민 글자판을 흔드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자부심으로 뿌듯해야 할지 어떨지 난감해지곤 했다. 그런 한편에서 그네들이 정말 우리가 모르고 지나친 우리 안의 뭔가를 제대로 발견해 냈을까 궁금해지곤 했다. ●70년대부터 2010년대 뮤지션·명반 망라 2000년 인터넷음악방송국 ‘쌈넷’ 기자로 시작해 12년 동안 대중음악에 관한 글을 쓰고 일간지 객원기자로도 일한 김학선(37)씨가 ‘K·POP 세계를 홀리다’(을유문화사 펴냄)를 낸 것도 그런 궁금증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과정이었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신문 편집국에서 만난 김씨는 “오늘날 K팝이 여러 나라 젊은이들을 그렇게 달뜨게 만드는 것은 절도 있는 군무나 현란한 뮤직비디오 덕이 아니라 엄혹한 1970년대와 80년대를 견뎌내면서 음악에의 꿈을 잊지 않았던 ‘비틀스가 부럽지 않은 대중음악사의 천재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대중음악 전문가 김학선씨 일문일답 보러가기 책은 첫 장 ‘K팝과 아이돌’을 시작으로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시대별로 일람하고 대표적인 뮤지션들과 그들의 명반을 톺았다. 자연스레 도돌이 형 식이 되는데 김씨는 들인 공력에 견줘 상대적으로 저렴한 책값을 매겼다. 청소년들에게 많이 읽히고 싶다는 출판사의 뜻을 좇은 결과라고 했다. “먹고살기에 바빠 음악을 더는 듣지 않고 ‘나가수’나 ‘탑밴드’ 같은 TV프로그램을 보면서 ‘옛날엔 저런 훌륭한 음악이 있었지. 그런데 아이돌 음악? 그건 음악이 아니야. 잘 기획된 상품일 뿐이지’ 하고 넘어가는 중장년들에게 오늘의 젊은이들도 훌륭한 음악을 만들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런 김씨와 달리 출판사는 아이돌 음악에만 빠져드는 청소년들이 아빠, 엄마가 자신들 나이에 들었던 음악을 함께 들으며 소통하는 계기로 책이 활용되길 원했다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도 훌륭한 음악 만들고 있어” 김씨가 책에 등장하는 신중현의 ‘햇님’, 키보이스와 히식스 등에 몸담았던 김홍탁의 ‘징글벨’,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등을 들어보면서 자신이 얘기한 바를 확인할 수 있도록 따로 블로그를 만든 것은 저자와 출판사 간의 의견 차를 좁힌 결과물이다. 하지만 김씨는 “워낙 게을러 K팝 열풍이 한창이던 지난 연말에 책을 내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마감에 쫓겨 아이돌 음악의 가치를 집중력 있게 뜯어보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털어놓았다. 또 하나, 아이돌 음악의 진정한 주체가 아이돌인지, 아니면 SM이나 YG 등의 대형 기획사인지에 대해선 여전히 헛갈리고 스스로도 정리가 안 된다고 했다. 장르로 다룰 수 있을 정도로 독창적이고 깊이 있는 음악을 보여준 김두수(63)를 빠뜨린 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린다며 증보판에 꼭 포함시킬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분량 탓에 아티스트 위주로 대중음악사를 정리하다 보니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아코디언 연주를 들려준 심성락(76)옹과 같은 세션맨, 프로듀서, 엔지니어 등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아쉽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K팝 열풍의 한편에는 얼마 전 미국 공연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어낸 갤럭시 익스프레스 같은 인디음악도 엄연히 존재한다며 뉴욕타임스 등이 대대적으로 지면을 할애했는데도 아이돌 음악에만 치우친 언론이 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뉴키즈온더블록 이후 아이돌 음악이 사라진 미국과 유럽에서 K팝은 틈새시장을 파고들 수 있을 것”이라며 “조그만 뉴키즈온더블록 같은 것을 형성해 꾸준히 마니아를 양성하고 애호가를 키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현재 다른 출판사가 기획한 뮤지션 시리즈로 송골매를 쓰고 있어서 배철수와 만날 계획이라고 밝힌 김씨는 한국 헤비메탈의 역사를 짚어보는 책을 꼭 써 보고 싶다는 희망도 빼놓지 않았다. 글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산행기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 김별아 작가

    [저자와 차 한 잔] 산행기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 김별아 작가

    나와 내가 다르지 않고 내 어리석음이 네 어리석음과 다르지 않으며, 내가 흔들리고 젖으면서도 희망의 불을 지피듯 너 역시 비바람 속에서도 줄기를 곧게 세우고 따뜻한 꽃잎을 피울 수 있으리라고 - 흔들리며 가는 삶 中 베스트셀러 ‘미실’의 작가 김별아와 산행(山行), 그것도 백두대간 완주라니. 안 어울릴 것 같지만 신선한 조합일 수 있겠다.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해냄 펴냄)는 부제-김별아, 공감과 치유의 산행에세이-에서 알 수 있듯 김별아의 산행 에세이다. 김별아(43)란 작가가 언제부터 산을 탔나. 책을 들추니 2010년 3월부터 2011년 11월까지 근 2년 백두대간을 다녔다. 그 전반부를 지난해 5월 에세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로 묶었다. 이번에 나온 건 후반부를 엮은 2편 격이자 완결편. 백두대간 남쪽을 39개 구간으로 쪼개서 밟았던 산길의 자취를 미세하고 고운 언어로, 잘 다듬었다. 튀지 않으면서도 입맛을 돋우는, 깊은 향기를 오래 남기는 정갈한 음식을 대하는 느낌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이런저런 ‘백두대간 정복기’를 염두에 두고 산행의 힌트라도 얻으려 한다면 손에 들지 않는 편이 좋다. 김별아의 표현대로 ‘왕초보’ 산꾼의 산행기이기도 하지만, 감성 풍부한 20~30대를 거쳐 마흔한둘(산행을 했을 당시)의 인생 행로를 750㎞ 산행과 중첩시키면서 과거와 현재의 잔상과 현실을 솜씨 좋게 촘촘하게 짜넣은 웰메이드 인생 에세이여서다. “제 밑바닥을 드러내 보인 전편이 늘 스스로를 달달 볶거나 불안에 떨었던 산행을 담았다면 이번 것(‘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은 종주가 절반을 지나 편안하게 써서 그런지 공감의 폭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동네 뒷산도 오르지 않아 스스로를 ‘평지형 인간’이라던 김별아가 마흔이 넘어 백두대간 종주를 선언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지금껏 꺼리던 일과 정면으로 맞서보고 싶다는 것, 아들과 함께 산행하며 돈보다 값진 추억을 물려주고 싶다는 것, 내 운명의 삶터를 내 발로 밟아보고 싶다는 것 등이 있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강릉(김별아의 고향)이란 곳은 대관령에 가로막혀서 굉장히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곳이에요. 1987년 작은 도시들마저 들썩일 때도 우리 동네는 평화 그 자체였어요. 역사가 소문이었죠. 우리는 변방이구나 하는 느낌이었어요. 해서 (백두대간의 한 구간이기도 한) 저 ‘령’(嶺)을 넘자는 생각을 했어요.” 작가는 국립공원 소백산을 오르면서는 ‘행복’을 화두로 삼는다. “사람들은 대개 네 잎 클로버가 행운의 상징이라는 사실에 몰두해 그것을 찾으려 풀숲을 뒤지지만, 그보다 한 잎이 더 적은 평범한 세 잎 클로버가 행복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에세이 곳곳에 범상치 않은 이런 성찰을 만날 수 있어 덤을 얻는 기분이 든다. 어쨌건 김별아는 독하디독한 산꾼이 다 됐다. “백두대간 종주팀 50가족 111명, 그 중 우리끼리 ‘리얼 오리지널 개근 완주’라고 부르는 39차(에 걸친 산행) 완전 출석 완주자는 대장인 우린 아빠와 중 2 지혜와 아들 혜준이와 나, 4명뿐이다.”라고 했듯 한번도 빠지지 않고 20개월을 백두대간 완주에 꼬박 바쳤으니. “백두대간 종주를 두 번 하라면 안 할 겁니다. 세상에 좋은 산이 얼마나 많은지 알았으니까요.” 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 [롯데칸타타오픈] 김자영 “3연승 해보고 싶다”

    [롯데칸타타오픈] 김자영 “3연승 해보고 싶다”

    국내 여자골프의 새 ‘아이콘’ 김자영(21·넵스)이 3연승에 도전한다. 8일부터 사흘 동안 서귀포 롯데스카이힐골프장(파72·6288야드)에서 열리는 롯데칸타타오픈. 시즌 여섯 번째 대회인데 총상금은 5억원이다. 김자영은 지난달 한국여자프로골프투어(KLPGT) 우리투자증권과 두산매치플레이대회에서 2연승을 일구며 올 시즌 여자골프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가 됐다. 김자영이 이번 대회마저 석권하면 지난 2009년 우리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을 시작으로 MBC투어 S-OIL 챔피언스 인비테이셔널, 하이원리조트컵 SBS 채리티여자오픈 등을 내리 우승한 유소연(22·한화) 이후 두 번째로 3개 대회 연승이란 기록을 남기게 된다. 또 시즌 상금랭킹 1위(2억 850만원)인 김자영이 우승 상금 1억원을 챙길 경우 이예정(19·에쓰오일·1억 2800만원), 문현희(29·호반건설·1억 800만원) 등을 크게 따돌리고 시즌 상금왕을 어느 정도 굳힐 수 있다. 김자영은 지난해 이 대회 첫날 6언더파 단독선두로 나서는 등 대회장인 롯데스카이힐 코스에 좋은 기억이 있다. 김자영은 “(2연승 이후) 굉장히 바빠졌다. 2연승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너무 기쁘고, 올해는 모든 것이 다 잘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며 “사람 욕심이란 게 끝이 없는 것 같다. 3연승까지 해보고 싶다. 다만 2연승의 기억을 모두 지우고 초심으로 돌아가야만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3연승에 도달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여럿이다. 지난해 상금왕 김하늘(24)을 비롯, 지난해 12월 해외 개막전 우승자 김혜윤(23·이상 비씨카드)과 리바트 레이디스오픈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이예정, 국내 개막전 우승컵을 아마추어에게 넘겨준 문현희 등이다. 이 셋이 모두 첫날 같은 조에서 샷 대결을 벌인다. 김자영과 한솥밥을 먹고 있지만 올 시즌 ‘와신상담’하고 있는 동갑내기 양수진(21), 두산대회에서 김자영에게 1홀 차로 패해 쓴 잔을 들었던 ‘루키’ 정연주(20·CJ오쇼핑)도 대회 개막을 단단히 벼르고 있다. 이번 대회 우승자에게는 내년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롯데챔피언십 출전 자격이 주어진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대구지역 방언 질펀하게 얼버무린 연작시집 ‘대구’ 펴낸 상희구 시인

    [저자와 차 한 잔] 대구지역 방언 질펀하게 얼버무린 연작시집 ‘대구’ 펴낸 상희구 시인

    시 한 편을 먼저 감상해 본다. ‘용두방천에는 돌삐이가 많고/무태에는 몰개가 많고/쌍디이못에는 물이 많고/깡통골목에는 깡통이 많고/달성공원 앞에는 가짜 약장사가 많고/진골목에는 묵은디 부잣집이 많고/지집아들 짱배기마즁 씨가리랑/깔방이가 억시기 많고/칠성시장에는 장화가 많고/자갈마당에 자갈은 하나도 안보인다’ 여기에 나오는 돌삐이는 돌멩이, 몰개는 모래, 쌍디이못은 쌍둥이못, 씨가리는 이의 알, 짱배기마즁은 머리통마다, 깔방이는 아주 작은 새끼 이, 억시기는 매우, 자갈마당은 대구의 이름난 유곽촌이다. 미당의 시 ‘질마재 신화’는 특정 지역을 무대로 쓰인 시집이다. 자신의 고향마을인 ‘질마재 마을’에서 보고 들은 여러 생활풍경들을 능숙한 언어로 재현해 우리 현대시사에서 불후의 명작을 남겨놓았다. 상희구 시인은 대구 지역 방언을 질펀하게 버무리며 총 100편으로 일단락된 연작시집 ‘대구’(황금알 펴냄)를 최근 펴냈다. 2010년 연작장시 집필을 시작으로 2011년 4월 ‘현대시학’에 모어(母語)로 읽는 ‘대구’를 연재해 2012년 2월호로 대장정을 마쳤다. 자신의 고향집에 대한 추억으로 시작해 고향의 젖줄인 금호강에 대한 장대한 묘사로 끝을 맺었다. 이 연작장시는 ‘질마재 신화’처럼 고향을 소재로 한 또 하나의 야심 찬 기획물이자 도전적인 시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집은 고향, 지리, 방언 등을 통해 우리 시의 미학을 면밀히 관찰하고 분석함으로써 현대시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방언의 구사에서 자기 개성의 절정을 이룬다. 노골적이고 다채로운 대구 방언의 구사는 미학적 완성도를 한껏 높인다. “저로 하여금 시인이 되게끔 매개한 것은 어릴 적부터 그 엄혹했던 궁핍과 그에 수반한 지독한 외로움이었습니다. 외로움을 달랜다는 것은 아주 까다로운 정신의 한 영역으로 아주 힘든 것이었지만 그 치유방법으로는 저만의 독특한 비결이 있었지요. 다름 아닌 고향의 수많은 산천과 골목길, 야트막한 언덕배기, 연못, 다리, 나무, 돌덩어리들, 그리고 고향의 또 다른 온갖 것들과 서로 함께 맞닥뜨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그 ‘온갖 것들과 함께 서로 맞닥뜨리고 상종하며 무엇인가 남겨놓은 일이 시인이 되게 했다는 것이다. 또 방언으로 시를 쓴 한 이유 중 하나는 어머니의 영향이 크다. 시인은 “어머니는 대구 방언에 관한 한 아주 탁월한 언어감각을 가지셨던 분”이라고 회고한다. 따라서 이번에 끝내는 것이 아니라 긴 장정이 될 것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고향 대구에 대해 그동안 가슴에 맺힌 것이 어찌 100가지뿐이겠습니까. 호흡을 한번씩 들이 쉬고 내쉴 때마다 맺힌 것을 하나씩 풀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고향의 세시풍속, 전래음식, 제례에 이르기까지 아우를 작정입니다.” 비장한 시인의 마음이 엿보이는 대목이다.아련한 옛 추억과 유소년 시절의 특별한 경험, 나이를 먹을수록 솟아나오는 시인의 놀라운 회상을 통해 재생되는 작업이 기대된다.시인은 1942년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상고를 졸업한 뒤 1987년 김윤성 선생의 추천으로 월간 ‘문학정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발해기행’ ‘요하의 달’ ‘숟가락’ 등이 있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나를 좋아하게 하는 커뮤니케이션’ 펴낸 김정기 교수

    [저자와 차 한 잔] ‘나를 좋아하게 하는 커뮤니케이션’ 펴낸 김정기 교수

    더글러스 태프트 코카콜라 전 CEO는 ‘삶은 공중에 5개의 공을 돌리는 저글링게임’이라고 말했다. 일, 가족, 건강, 친구, 나 자신을 5개의 공으로 설정했다. 이 가운데 일은 고무공, 나머지 4개의 공은 유리공으로 보았다. 일이라는 고무공은 떨어뜨려도 다시 튀어오르지만 다른 것들은 깨지고 만다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은 공기와 같다. 우리를 평생 따라다니면서 괴롭히는 재물보다 백 배, 천 배 중요하지만 잘 느끼지 못할 뿐이다. 재물은 일의 영역이지만 커뮤니케이션은 가족, 건강, 친구, 나를 좌지우지한다. 좋은 커뮤니케이션은 깨지지 않는 지혜를 주는 그 무엇이다. 그렇다면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일까. “커뮤니케이션 전공자들끼리만 돌려 읽는 논문과는 다른 방법으로 학술적 지식에 이용후생(利用厚生)의 휴머니즘을 입혀서 사람들과 공유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를 좋아하게 하는 커뮤니케이션’(인북스 펴냄)을 세상에 내보낸 김정기(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순정한 눈매와 야무진 입매로 커뮤니케이션학 대중화의 속사정을 밝혔다. 한국언론학회장과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장을 지낸 언론학자의 “읽기 쉽고, 재미있는 커뮤니케이션 책을 쓰고 싶었다.”라는 직언에서 진심이 읽혔다. ‘매스미디어와 수용자’ ‘미디어 사회’ ‘한국대학생 수용자의 텔레비전 시청동기 연구’, 지금까지 그가 쓴 책이다. 이번엔 제목부터 다르다. 의도를 눈치 챌 만하다. 비법을 주문하자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 정복법은 없다.”라고 잘랐다. 다만, 커뮤니케이션 행위를 이해하고 소통과 공감의 지혜를 얻도록 도움을 줄 수는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강릉사람 억양으로 “알잖아요.” “있잖아요.”를 반복하면서 ‘오~래’ 설명했다. 벼르고 별러 쓴 책이다. 존 덴버가 ‘Take me home country roads’에서 ‘almost heaven’이라고 표현한 오지, 미국 웨스트버지니아대학에서 지난 한 해 연구년을 꼬박 채웠다. 결정적 계기는 돌아가신 부모님이었다. 아들이 미국에서 공부해서, 박사학위를 따고,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데 그게 무슨 학문인지 아시지도 못한 채 돌아가시게 했다는 회한이 사무쳤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신문방송학이라고 부르는 커뮤니케이션학에는 미디어만 있고 사람은 없다. 인간커뮤니케이션의 실종이다. 그래서 저자는 무슨 말인지 알아먹기도 어려운 서양식 미디어 이론의 전달자 역할을 집어던졌다. 배려와 공감이 있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법을 끌어들였다.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자의 영역에서 보통사람의 영역으로 가져왔다. 그가 펼치는 재래식 소통논리는 구수하고 독특하다. 11가지 주제를 이론이 아니라 체험담으로 알려준다.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의 시구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로 우리가 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지 알려주는 식이다. ‘불확실성 감소이론’은 주례사를 부탁하는 제자들이 제출한 ‘결혼하는 이유 9가지’를 통해 하나하나 풀어준다. 나의 비밀을 밝히면 관계는 진전한다는 ‘자기정보 노출 커뮤니케이션’을 설명하고자 ‘커피 한잔’이라는 옛가요에 얽힌 연애사건을 전격 공개했다. 딸과 카카오톡에서 나눈 은밀한 사생활에도 예외는 없었다. 가족, 친구, 건강, 나처럼 깨어져선 안 되는 영역을 지키는 소통의 지혜를 조곤조곤 일러주는 저자의 정감 있는 얘기를 듣노라면 호감과 공감을 부르는 좋은 커뮤니케이션은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절로 깨달게 된다. 노주석기자 joo@seoul.co.kr
  • [김문이 만난 사람] ‘음악 인생 60주년’ 대중가요 작곡계의 살아있는 전설 김희갑

    [김문이 만난 사람] ‘음악 인생 60주년’ 대중가요 작곡계의 살아있는 전설 김희갑

    ‘사랑아 내 사랑아’ ‘진정 난 몰랐네’ 등으로 존재를 처음 알렸다. 추억의 노랫말을 잠시 음미해본다. ‘그토록 사랑하던 그 사람/잃어버리고/타오르는 내 마음만/흐느껴 우네/예전에는 몰랐었네/진정 난 몰랐네’에 이어 세월이 지나 ‘그 겨울의 찻집’으로 옮겼다. ‘바람 속으로 걸어갔어요/이른 아침의 그 찻집/마른 꽃 걸린 창가에 앉아/외로움을 마셔요/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이번에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으로 변신했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적 있는가/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어디 이뿐이랴. ‘사랑의 미로’와 ‘향수’ 등 수많은 히트곡마다 한국의 대표적 정서를 담아냈다. 하여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대중가요 3000여곡, 영화음악 300여편, 뮤지컬 3곡 등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에 커다란 획을 ‘쫘악’ 긋는다. 그래서 대중 가요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불후의 명품 작곡가라고 한다. 김희갑(76)씨. 중학교를 졸업하고 미8군에서 기타 연주를 시작했으니 올해로 음악 인생 60년을 맞는다. 또 1967년 ‘사랑아 내 사랑아’로 작곡 앨범을 처음 낸 지 45년이다. 그는 올해 새로운 대중음악의 한 장르를 준비하고 있다. 어떤 것일까. 지난 21일 오전 경기도 용인 자택에서 김씨를 만났다. 확 트인 창가를 배경으로 부인 양인자씨가 커피 한 잔을 권한다. 양씨에게 ‘그 겨울의 찻집’의 가사는 아무리 들어도 감미롭다고 했더니 남편 김씨가 “요즘에는 그런 찻집이 없어요.”라고 대신 대답을 한다. 김씨는 여전히 모자를 쓰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미8군 부대에서 연주할 때 빡빡머리를 감추기 위해 모자를 쓰기 시작한 것이 습관이 돼 60년 동안 거의 벗어본 적이 없다. 김씨는 칠순인데도 얼굴 피부색은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둘은 잉꼬부부로 소문나 있기도 하지만 작사·작곡계의 명콤비로 알려져 있다. 둘은 1985년에 만나 2년 뒤에 결혼했다. 마침 부부의 날이었다. 양씨는 “안 그래도 다음 달 결혼 25주년을 맞아 기차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며 웃는다. 김씨는 “알 만한 사람 부부 여섯쌍이 함께 간다.”며 즐거운 듯 활짝 웃는다. 김씨 부부는 원래 경기도 분당에 살았다. 그래서 언제 이사 왔는지부터 먼저 물었다. “한 4년 됐나요. 원래는 여기보다 더 조용한 곳인 강원도 문막 정도로 가려고 했어요. 그랬더니 우리 집사람 친구들이 멀리 이사 가면 아예 인연을 끊겠다고 협박(?)을 하더군요. 그 바람에 여기에 머물렀습니다(웃음). 사실 내년이면 다시 판교 쪽으로 이사를 갈 겁니다. 그곳에 아파트를 하나 장만했거든요.” 양씨가 주방에서 떡과 차 한 잔을 꺼내오며 권한다. 김씨는 “고맙습니다.”라고 깍듯이 인사한다. 늘 반말이 아닌 존대어를 쓰는 모양이다. 김씨에게 올해가 작곡가로 데뷔한 지 45년째라고 했더니 “(가요사 등) 일부 기록에는 1967년으로 나와 있는데 레코드사에 알아봤더니 1965년이라고 하더군요. 그거나 이거나 그렇게 세월이 흘렀네요.” 기타 연주는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했다. 그렇다면 그의 음악적 환경은 어떠했을까. 평양에서 태어난 김씨는 의사 집안에서 자랐다. 할아버지는 한의사, 아버지는 의사였다. “아버지는 독자였고 저는 맏아들로 태어나 할아버지한테 귀여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보약을 자주 먹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합니다. 아마 12살까지 매일 먹었지요(웃음). 아버지는 의사였지만 음악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제가 6살 때 평양에서 40여리 떨어진 평남 강동에서 아버지가 병원장을 맡았습니다. 사택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시간 날 때마다 대학 때 음악 활동을 같이 했던 친구들을 불러 음악 연주를 자주 했습니다. 나중에는 악단을 조직해 시골 여러 곳에 다니면서 공연을 하곤 했지요. 8·15 광복 이후에는 의사라는 신분을 감추고 국가 지정 음악당, 그러니까 남한으로 치면 예술의전당 같은 곳을 맡아 운영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코디언 같은 것을 잘 연주했습니다.” 김씨는 원래 축구 선수가 되고 싶어 했다. 초등학교 때 레프트윙 포지션으로 학급 대표로 출전했을 만큼 축구 실력이 남달랐다. 내친김에 학교 대표로 출전하고 싶었다. 그 무렵 음악 활동을 하는 아버지를 보고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6·25전쟁이 발발했고 1·4후퇴 때 김씨 집안 식구들은 임진강을 거쳐 대구까지 월남하게 된다. 먹고사는 것이 어려워졌다. 대구에 있던 미 25야전병원에 취직하려고 했으나 아버지가 갖고 있던 의사면허는 인정이 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아버지는 미군부대 장교 식당에서 접시닦이로, 아들 김씨는 친구와 함께 하우스보이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오후 2시 30분쯤이 쉬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때마다 같이 일을 하는 친구가 주머니에서 작은 하모니카를 꺼내 연주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좋아 아버지한테 음악을 배우겠다고 했지요. 흔쾌히 허락을 하신 아버지한테 악보 읽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때 처음 만진 악기가 만돌린이었습니다. 중고품이었는데 선이 끊어지면 미군들이 사용하는 전화선을 연결해 사용하곤 했지요. 6개월 정도 하니 웬만한 연주가 가능해지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한테 김영순(김트리오 부친)씨가 놀러 왔는데 트럼펫과 기타 연주를 기가 막히게 했습니다.” 이후 김씨는 ‘바로 기타야, 기타!’라고 생각하며 기타에 푹 빠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가르쳐 주는 대로 가사를 적고 노래를 배웠다. 말 그대로 밥숟가락만 놓으면 새벽 4시까지 기타를 배웠다. 또한 작곡가 박시춘 선생과의 만남 등을 통해 장차 훌륭한 음악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한 지 2년 세월이 지나서야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때마침 고등학교에 악단이 하나 생겼는데 김씨는 곧바로 악단장을 맡았다. 웬만한 편곡은 그의 손을 거칠 정도로 음악 실력을 인정받았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고등학생 신분으로 미 공군 클럽에서 기타 연주를 했다. 사실상 프로 생활을 시작했던 것.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대구에서 ‘음악 연주자 베스트 7’에 뽑혀 서울로 올라와 ‘록쇼’ 악단에 합류했다. “그때 오산에 있는 미군부대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전국 곳곳을 다녔습니다. 그러던 1년 뒤에는 제가 직접 악단장을 맡게 됐지요. 악단 명칭도 록쇼에서 ‘A1쇼’로 바꿔 활동 무대를 넓히게 됩니다. 운 좋게도 미8군 클럽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연주자로 소문이 나기도 했지요. 이후 7년 동안 A1쇼 악단을 이끌었습니다.” 그가 미군부대와의 인연을 접은 것은 1962년이었다. 다시 음악 공부를 하고 싶은 열정이 생겼기 때문이다. 당시 해군 군악단 단장을 지냈고 작곡가로도 유명한 이교숙 선생을 찾아가 작곡과 편곡 등을 강도 높게 배웠다. 그렇게 2년 정도 시간이 흘렀을 무렵 작곡가 박춘석씨를 만나게 됐다. 박씨의 곡을 녹음할 때 기타 연주를 해주고 박씨에게 편곡을 더 배우게 됐다. 아울러 작곡가 김영광씨의 부탁으로 편곡을 해주면서 이 방면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섬세한 작곡 솜씨가 일품이라는 소문까지 자자했다. “하루는 오아시스레코드 손진석 사장이 찾아와 작곡 앨범을 내자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건성으로 대답했는데 거의 매일같이 집요하게 부탁을 했습니다. 특히 대중가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작곡의 명분론으로 설득하더군요. 그래서 ‘사랑아 내 사랑아’(태원), ‘불타는 연가’(남진), ‘진정 난 몰랐네’(김상희), ‘모래 위를 맨발로’(이시스터즈) 등 12곡을 4명이 3곡씩 나눠 부른 이른바 ‘김희갑 작곡 제1집’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후 본격적인 작곡 활동을 하면서도 ‘김희갑 악단’을 계속 이끌어오다 드라마 주제가를 작곡하면서 크게 히트를 친다. 1983년 KBS 주말드라마 ‘청춘행진곡’에서 노주현과 정윤희의 ‘러브송’을 하나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최진희를 발탁, ‘그대는 나의 인생’을 작곡했던 것이다. 이 노래는 가수 최진희를 탄생시키고 우리나라 최초의 뮤직비디오 음악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많은 인기를 끌었다. 이어 ‘사랑의 미로’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 등이 담긴 제2집 작곡 앨범이 나오면서 악단을 해체하고 작곡과 연주 등 솔로로 활동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가 지금까지 작곡한 노래만 무려 3000곡이 넘는다. 이 가운데 부인 양씨와 함께 작사·작곡을 한 것은 400여곡에 이른다. 예를 들어 ‘킬리만자로의 표범’ ‘그 겨울의 찻집’ ‘서울 서울 서울’ 등 조용필의 히트곡을 포함해 ‘타타타’ ‘우리도 접시를 깨트리자’ ‘립스틱 짙게 바르고’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대는 나의 인생’ ‘하얀 목련’ 등이 대표적인 부부 합작 국민 애창곡이다. 얼마 전에는 TV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에서 젊은 가수들에 의해 불려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요즘 대중가요계의 흐름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음악적으로 재능이 대단한 가수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그룹 쪽으로 치우친 것이 아쉽습니다. 재즈, 댄스, 트로트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듣는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앞으로는 ‘대중음악을 감상하는 시대’가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김씨는 요즘 모종의 작업을 하고 있다. 발성의 기본기를 확실히 갖춘 남자 3명, 여자 1명으로 이뤄진 중창단을 만들어 대중음악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일이다. 40대 중후반 한 팀, 20~30대 젊은 성악가 한 팀 등 두 팀을 만들어 실내악 분위기의 대중음악을 올가을쯤 선보일 예정이다. 필생의 역작이나 다름없다. 새로운 꿈과 희망, 식지 않은 열정으로 그 일에 집중하고 있다. km@seoul.co.kr ●김희갑은 고교 졸업 후 ‘록쇼’ 멤버 활동… 대중가요 3000여곡 작곡 1936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의사인 아버지에게 음악을 배웠다. 대구에서 대성고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 악단장을 맡아 발군의 음악 실력을 발휘했다. 아울러 미8군 부대에서 프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서울에 있는 ‘록쇼’ 악단 멤버로 활동했다. 이후 ‘A1쇼’ 악단장으로 7년 동안 활동했다. 1962년 미군부대 위주의 활동 무대를 접고 본격적으로 작곡 공부를 시작했다. 5년 뒤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김희갑 작곡 제1집’ 앨범을 냈다. 1983년 KBS 주말드라마 ‘청춘행진곡’ 주제가를 작곡해 크게 히트쳤다. 1985년 이후에는 김희갑 악단을 해체하고 솔로 활동에 전념했다. 지금까지 3000여곡을 작곡했으며 1987년에 양인자씨와 결혼한 뒤 함께 400여곡을 작사·작곡했으며 300여편의 영화음악과 뮤지컬 ‘명성황후’ 작곡 등으로도 유명하다. 취미는 골프와 분재.
  • 생각만으로 움직이는 로봇팔… 상상이 현실이 되다

    생각만으로 움직이는 로봇팔… 상상이 현실이 되다

    팔다리가 마비된 환자가 ‘물건을 들고 싶다.’고 생각만 하면 로봇팔이 자유자재로 움직여 명령을 수행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기계 부피를 줄이고 개발 비용을 줄이는 등 남은 과제를 해결해 상용화한다면 마비 환자의 자활에 획기적 도움이 될 듯하다. ‘600만불의 사나이’, ‘로보캅’ 등 공상과학물 주인공처럼 뇌파 등 생체신호로 기계를 작동시켜 인간 능력을 극대화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미국 브라운대 메디컬센터·하버드 의대 등의 전문가로 구성된 연구팀은 16일(현지시간) 마비 환자의 뇌파를 이용해 생각만으로 인공 수족을 움직이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과학저널인 네이처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피실험자인 59세 여성 캐시 허친슨과 ‘밥’으로 알려진 60대 남성 등 2명은 모두 뇌졸중으로 팔다리가 마비된 미국인이다. 연구진은 이들의 뇌 운동 피질에 어린이용 아스피린 크기(4㎟)의 ‘브레인게이츠’라는 센서 칩을 이식했다. 이 칩 속에는 96개의 전극이 담겼다. 이 전극은 환자가 팔을 움직이는 상상을 할 때 발생하는 신경 신호를 포착, 수집해 머리 윗부분에 연결된 케이블을 통해 외부 컴퓨터로 전송한다. 컴퓨터는 신경 신호를 해석해 환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로봇팔에 ‘움직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15년간 팔을 움직이지 못한 허친슨은 이번 실험에서 로봇팔을 이용해 커피 마시기에 도전했다. 연구진이 공개한 실험 동영상에 따르면 허친슨은 상상을 통해 로봇팔로 커피가 담긴 보온병을 들어 올린 뒤 천천히 입으로 옮겼다. 병이 입술에 도달하자 빨대로 커피를 마시고 병을 다시 테이블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두 환자는 고무공 잡기에도 도전했다. 밥은 성공 확률이 50%를 밑돌았지만 허친슨은 60%가량의 성공률을 기록했다. 뇌파로 컴퓨터 마우스를 조작하는 실험도 성공했다. 밥은 “내 손을 움직이는 상상을 했더니 로봇팔이 저절로 움직여 물체를 집더라.”며 놀라워했다. 학계 전문가들은 “뇌파를 이용한 기기 작동 실험의 정점을 찍은 결과”라고 평가했다. 존 도너휴 브라운대 뇌과학연구소장은 “마비 환자, 특히 전신 마비 환자의 입장에서는 아침에 커피잔을 잡고 마시는 동작이 매우 경이로운 일”이라고 밝혔다. 비슷한 연구를 진행 중인 앤드루 슈워츠 미국 피츠버그대 교수도 “‘커피 마시기’는 마비 환자들이 진정 바라는 일상생활의 한 동작”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사고와 기계를 결합시키려는 노력은 최근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사지마비 환자가 로봇팔을 움직여 ‘하이파이브’를 하는 데 성공했고, 스위스의 한 실험실에서는 부분 마비 환자가 로봇팔을 원격 제어하기도 했다. 윤인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박사는 “국내에서도 최근 척추마비 환자의 재활을 돕는 ‘맨머신인터페이스’(인간이 컴퓨터나 기계 등을 조작하는 장치)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보온병 들기’ 실험에 성공한 연구진은 향후 무선으로 신경신호를 외부 컴퓨터로 전송하는 체계를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브레인게이츠 칩 이식에 관여한 케빈 워위크 영국 리딩대 교수는 “신경신호로 전구를 켜고, 문을 열고, 휠체어를 밀고, 심지어 차를 운전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향후 몇 년 내 이 같은 일이 현실화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기행소설 ‘첫사랑뿐’ 펴낸 박인식

    [저자와 차 한 잔] 기행소설 ‘첫사랑뿐’ 펴낸 박인식

    산마루 흰 눈 위에 흩어진 핏빛. 10여년 전 그의 글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이다. 그만큼 무섭고 아렸다. 잡지 ‘사람과 산’을 창간하기 전 이미 산 밑의 5000명을 정기 구독자로 확보했던 사나이. 힘들게 만든 잡지를 2년 이끌고 미련 없이 넘긴 뒤 산으로, 전업 작가로 떠난 그이. 여러 기행문과 대하소설 ‘백두대간’을 2권까지 내놓은 박인식(61) 작가가 200자 원고지 5000장 분량의 기행소설 ‘첫사랑뿐’(3권·바움)을 내놓은 것이 지난 연말이다. 넉달여 뒤늦게 책장을 100여쪽 넘길 즈음 푹 빠져들었고 그를 만나고 싶은 용기가 생겼다. 인사동 술독을 마르게 했으며 황석영 작가 등과 더불어 ‘4대 구라’로 꼽히는 그를 봄바람 부는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계동 한옥집 마당에서 만났다. ☞녹취록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원고지로만 작업하는 이유는. -글을 쓸 때의 집중력, 내 생각을 글로 옮길 때 느낌, 힘이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해서다. 오랜 세월 그렇게 써 와 익숙해졌다. →작품을 쓰게 된 계기는. -1993년에 카슈가르를 경유해 곤륜산맥의 막장으로 들어갔다. 고소증에 걸려 신내림을 경험했다. 하룻저녁에 장편소설 한 권 분량을 써 내려 갔고 곧바로 잃어버렸다. 오랜 시간 그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어떻게 그런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났는지 고민하다 10여년 전에 내 전생의 삶이 거기 있었고 간절한 바람 같은 것이, 사랑이라 해도 좋고, 날 꼭 다시 찾아오게 만든 염원 같은 것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4~5년 묵힌 뒤 2년 전 파리에서 한달 동안 하루에 200자 100장씩 썼다. 곧바로 잠들고 다음 날 일어나 101쪽부터 200쪽까지 쓰고, 그게 몇 시에 끝나든지 오직 글 쓰는 데만 매달려 1권 반 정도를 썼다. 그 뒤 부처가 태어나 도를 깨치고 열반에 들 때까지 걸은 1500㎞를 100일 동안 걸은 뒤 ‘너에게 미치도록 걷다’를 냈다. 그 뒤 다시 파리 집에서 한달 써서 6000장을 완성했다. 그걸 5000장으로 줄여 낸 것이다. →긴 분량인데 꼭 하고 싶었던 얘기는. -개인이나 집단이나 갈등이 생기고 정반합을 거치는 복잡한 과정이 일어나는데 그것을 극복하는 에너지원 가운데 첫사랑의 숭고한 감정이 가장 앞선다고 본다. 감상적이라고, 너무 낙관적이라고 타박해도 뭐라 할 수 없겠지만 그런 정서, 감정 속에서 정말 이 우주 질서를 재편해 재미있게 활달하게 이끌 수 있는 에너지원은 그것밖에 없다는 걸 전하고 싶었다. →더 집약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없나. -길면 긴 대로 기승과 파고 들어가는 집중력이 있다. 황석영 선배도 길게 쓰지 마라, 200자 900장 넘어가면 잘 안 읽는다, 그랬다. 그래서 타협한 게 이 정도다. 누가 ‘백년 동안의 고독’ 같은 걸 쓰겠나. 남이 안 쓰기 때문에 나는 쓰고 싶다. →아끼는 경구가 있다면. -마르케스는 “소설가는 모든 것이 신문기사로 실려도 좋을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보통 사람이 상식으로 여기는 것을 뛰어넘는 가르침을 주어야 한다는 의미일 텐데, 인간이 어찌 저럴 수 있나 싶은 상황을 통해 역으로 인간의 길을 가리키는 것, 그것이 문학이라고 믿는다. →앞으로의 작품 계획은. -한국 사람과 산이 맺고 있는 관계를 살펴본 문학이 없었다고 본다. 내게 남겨진 과업이라고 생각한다. ‘백두대간’ 나머지 작업을 끝내고 한민족이 산과 맺고 있는 영성을 주제로 쓰고 싶다. 주인공이 사람이 아니라 한국의 산들인 그런 얘기를 구상하고 있다. 그것만 마치면 더 이상의 글 욕심이 사라질 것으로 본다. →그럼 산행 계획은. -산행할 수 없는 나이가 되면 돌아오지 못할 산을 마지막으로 한 번 가고 싶다. 7000m급의 처녀봉을 정말 힘들게 등반한 뒤 사라지고 싶다. 글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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