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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벌써 13년차, 나는 어떤 배우인가

    벌써 13년차, 나는 어떤 배우인가

    “진짜 내 위치가 어디쯤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배우 권상우(37)는 요즘 고민이 깊다. 올해로 데뷔 13년차. ‘배우로서의 삶’을 되돌아보는 중이다. 지난 2일 종영한 SBS 월화극 ‘야왕’에선 복수에 나선 순정남 ‘하류’로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마지막회 시청률은 무려 25.8%(닐슨코리아). 손가락에 꼽을 만큼 드문 25%대 드라마군에 당당히 합류했다.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권상우는 차분하게 성장통의 이유를 밝혔다. 그는 “초반 주인공 ‘하류’의 캐릭터가 참 좋았는데, 극 중반 이후 이야기가 흐트러지면서 시원스럽게 연기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복수극이 아닌 멜로인 만큼 애증 섞인, 줄타기하는 듯한 감정 표현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극 중반을 넘기며 감정표현은 절제한 채 주변 사건을 설명하는 단편적인 대사만 주어졌습니다. 시원하게 감정을 풀어낼 수 없었어요. 종영 이후에도 ‘후련하다’는 느낌이 덜했습니다.” 권상우는 고질적인 한국 드라마의 ‘쪽대본’에도 일침을 가했다. “밤 9시 55분 시작되는 드라마 최종회의 ‘엔딩장면’ 촬영을 밤 9시 20분에야 마쳤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매회 ‘연기’가 아닌 ‘촬영’에만 집중했다”고 토로했다. 그 탓에 왠지 모를 공허감만 커진 상태다. 몇 년쯤 해묵었던 연기 고민도 폭발했다. 권상우는 “여태껏 나를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이 없는 것 같다. 이제는 갈증을 풀 수 있는 작품, 뭔가 남길 수 있는 작품을 해 보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연기를 잘하는 황정민, 김수로 같은 배우는 될 수 없을 것 같고, 자신과 분위기가 비슷한 조인성이나 강동원과는 색깔이 달라야 한다는 고민에서다. 장르를 가리진 않지만 정말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가 ‘리얼액션’이라고 말했다. “권상우만 보여줄 수 있는 전투력과 세련되고 강한 액션이랄까. 해외촬영이 빈번해지면서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이때 습작 수준의 시나리오를 몇 편 써놓았어요. 주변 감독님들에게 보였더니 ‘내용이 괜찮다’고 하더군요. 시나리오를 직접 쓴 액션영화에 출연하는 게 꿈입니다.” 최근 영화 ‘차이니즈 조디악’에 함께 출연했던 성룡(청룽)을 지켜보며 자극받은 듯했다. 그는 “(성룡은) 영화를 기획하고 연기하며 카메라를 보고 연출까지 한다. 제작진 회식까지 챙기더라. 에너지가 넘친다”고 말했다. 그는 서른 즈음까지 술을 한 잔도 못 마셨다고 한다. 지금도 맥주나 와인 한두 잔이 주량이다. 대신 끊임없이 몸을 가꾸고 작품마다 과감한 노출에 도전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요즘 권상우는 ‘아들 바보’다. 아들 룩희 자랑을 늘어놨다. 직접 찍은 휴대전화 사진을 보여주며 “이렇게 예쁜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웃었다. 내년에는 꼭 둘째 아이를 갖고 싶다는 바람도 이야기했다. 또 “10년 후에는 정말 신뢰할 수 있는 배우가 돼 있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저자와의 차 한잔] ‘나는 아직 엄마가 되려면 멀었다’ 낸 교육컨설턴트 박대진씨

    [저자와의 차 한잔] ‘나는 아직 엄마가 되려면 멀었다’ 낸 교육컨설턴트 박대진씨

    사교육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시대의 엄마들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사교육에 높은 관심을 보인다. 명문대에 보내려는 욕망 때문이다. 그런데 매년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60만명의 아이들 중 명문대학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아이들은 대략 5% 내외다. 나머지 95%의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교육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박대진씨가 신간 ‘나는 아직 엄마가 되려면 멀었다’(센추리원 펴냄)를 통해 사교육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으면서 엄마들을 위한 방향과 대안을 제시한다. “일반적으로 엄마들에겐 임신과 동시에 아이를 양육하는 데 필요한 자원이 축적됩니다. 출산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와 아이 사이에 맺어지는 무한 신뢰와 애정, 사랑 등이 바로 엄마의 자원이지요. 또 엄마는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이 자원을 소비합니다. 문제는 엄마의 욕망은 무한하지만 그 자원은 유한한 데 있습니다.” 일례로 아이의 건강을 생각해서 균형 잡힌 식단을 제공하고 사랑과 관심으로 보살피는 일은 자원을 축적하는 것이지만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공부를 가르치는 일은 소비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좋은 엄마, 현명한 엄마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원의 양을 제대로 파악해 효율적으로 분배할 줄 안다”면서 “그 작은 차이가 엄마와 아이와의 관계 형성은 물론 신뢰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고 이에 대비하는 일은 좋은 엄마가 되는 길 중 하나라는 것. 사교육의 현실을 잘 이해하는 것도 그런 차원이다. 사교육은 중하위권이 아닌 상위권 학생을 위한다는 것을 간과한 채 아이가 성적이 떨어지면 무조건 학원부터 보내려고 욕심을 내는 엄마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공부 좀 해라’, ‘너 커서 뭐가 되려고 그래?’,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등 과거 부모님한테 들었던 말들을 우리는 그대로 아이들에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엄마나 아이가 답답해지며 하루 12시간씩 공부를 많이 하고 있음에도 만족스럽지 못하고 있지요. 집중력이 점점 떨어지고 산만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부 순위만으로 인생이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불행은 시작되기 때문에 ‘엄마의 욕망을 일단 멈추고 아이를 가졌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강조한다. 아이가 행복하려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아이가 그것을 찾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의 욕심이 아이를 지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아이의 꿈과 나의 꿈을 혼동하는 것은 아닐까. 과연 지금 행동이 진정 아이의 행복을 위한 것일까” 등을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고 덧붙인다. “엄마들은 사실 억울하다고 말하지요. 잘못된 학벌 위주의 사회, 수년 동안 자리를 못 잡고 시행착오만 되풀이하는 대학 입시 제도, 바로 서지 못하는 공교육, 돈버는 데만 혈안이 된 학원들은 놔두고 왜 자신들만 갖고 그러느냐고 항변합니다. 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요.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사교육을 주도하는 사람도 엄마요, 현실적으로 바꿀 수 있는 주체도 엄마뿐이죠. 엄마의 생각만 조금 바뀌어도 아이에겐 충분합니다.” 저자는 프랑스 소르본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홍익대, 한국외국어대, 숙명여대와 교육대학원에서 불문학을 가르쳤다. 영어 학원을 직접 운영하면서 많은 엄마와 아이들이 겪고 있는 교육문제와 답답한 현실을 체감했단다. 저서로는 ‘어느 한국인의 작은 반란’ 등이 있다. 글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사진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대학생 절반 “1년 전 비해 술자리 감소”…왜?

    대학생 절반 “1년 전 비해 술자리 감소”…왜?

    절반에 가까운 대학생(42.6%)이 “1년 전에 비해 술자리가 줄었다.”고 밝혔다. 이는 건강이 좋지 않거나 염려(14.2%)되기 때문이기 보다는 학업이나 취업 준비로 시간이 부족(50.8%)해서가 주된 이유였다. 금전적으로 여유롭지 못해서(13.3%) 등도 이유로 꼽혔다. 이것은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지난 2일 전국 남녀 대학생 300명을 대상으로 ‘대학생 음주문화 실태’를 주제로 한 설문 조사 결과로, 현재 취업난의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이와 함께 진행된 또 다른 설문 결과를 살펴보면, 대학생 4명 중 1명(29%)은 최근 6개월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술을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생이 한달간 술자리에서 쓰는 비용은 1인 평균 “6만 1000원”이었으며 남녀별로 살펴보면 남학생(7만 7000원)이 여학생(5만 1000원)보다 더 많은 술값을 쓰는 것으로 확인됐다. 주량 면에서는 소주를 기준으로 평균 “9잔 반”으로 나타났는데 여학생 평균 주량이 8.51잔인 것에 비해 남학생은 1.9잔으로 다소 높게 나타났다. 참고로 소주 한 병이 7.5잔 정도 나온다고 계산하면 여학생은 소주 한 병을 조금 넘게 마시며 남학생은 소주 한 병 반이 조금 못되게 마시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학생이 가장 좋아하는 술은 맥주(33.0%), 소주(23.8%), 소맥(18.8%), 막걸리(10.6%) 등의 순으로 나타났지만, 남녀별로 보면 남학생은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맥(21.7%)을, 여학생은 막걸리(11.4%)를 상대적으로 선호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뿐만 아니라 전체 대학생 응답자의 60.6%는 한번 술자리에 참석하면 평균 2차까지 가는 편이라고 답했는데 남학생(66.0%)이나 고학년(68.6%)일수록 2차 술자리에 참석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전체 대학생의 71.3%가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는데 술자리가 필요하다고 응답해 대다수의 대학생들이 술자리를 사회생활의 필요조건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알코올 중독진단과 관련한 질문 중 대학생 4명 중 1명(26.2%)은 “술을 줄이는 게 좋겠다.”는 충고를 들어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대학생 5명 중 1명(17.4%)은 “술을 마신 후 필름이 끊긴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돼 일부 대학생들의 무절제한 음주문화도 함께 관측됐다. 사진=대학내일20대연구소 제공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길섶에서] 미황사 동백꽃/함혜리 논설위원

    남녘의 봄소식이 한창이다. 광양의 매화꽃을 보며 마을길을 걷는 프로그램이 있기에 가려 했지만 동행할 친구를 찾다가 예약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길 떠날 때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하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겠지만 길동무를 찾는 게 쉽지만은 않다. 매화 구경을 내년으로 미루고 아쉬워하고 있던 차에 해남 땅끝마을 미황사의 금강 스님이 동백꽃 소식을 전해왔다. 지난겨울 그렇게 찬바람이 몰아치더니 올해 동백꽃은 유난히 붉고 소담스럽게 피었다고 한다. 스님은 꽃 구경 하며 차나 한 잔 하자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신다. 마음 같아선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지만 여건이 허락하질 않는다. 아! 꽃은 내가 오기만을 기다려 주지 않으니 이를 어쩔꼬. 내 마음을 아셨는지 스님께서 휴대전화로 꽃 사진을 몇 장 보내주셨다. 동백꽃 붉은 빛이 형언할 수 없이 맑다. 제법 고혹적이기까지 하다. 사진으로 보면서 아쉬움을 달래본다. 내년에는 꼭 가리라. 혼자서라도 기어이. 그곳에 가면 함께할 이들이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400개 낚싯바늘로 잡는 흑산도 홍어

    400개 낚싯바늘로 잡는 흑산도 홍어

    대한민국 최대 홍어 어장 흑산도. EBS 극한직업은 흑산도에서 벌어지는 홍어잡이 사투 현장을 3~4일 오후 10시 45분 생생하게 전달한다. 목포항에서 92.7㎞ 떨어진 흑산도에서는 모두 7척의 배가 홍어잡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흑산도 홍어가 유명한 이유는 따로 있다. 흑산도 인근 해역은 수심 80m 이상으로 깊고 뻘이 많아 홍어 서식과 산란으로는 최적지로 꼽힌다. 어획량이 확 줄어들고 있는 추세였으나 최근 중국 불법어선 집중 단속으로 어획량이 다시 늘고 있는 추세다. 거기다 흑산도 어부들은 홍어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미끼를 쓰지 않고 오로지 낚싯바늘로만 잡는 주낙 방법을 쓴다. 바퀴당 400개나 되는 날카로운 바늘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주낙을 끌어올리는 작업은 조금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다. 제작진은 홍어잡이 배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인 선원으로만 구성된 영진호를 따라나섰다. 30년차 베테랑 선장에서부터 4개월 된 초보 선원까지, 모두 5명의 선원은 매번 같은 마음으로 조업을 준비한다. 만선의 꿈을 안고 영진호가 5시간을 달려나간 끝에 첫 조업을 시작한다. 투망 작업 뒤엔 이전 조업 때 내려놓은 위치에 놓이도록 양망 작업을 시작한다. 쉴 새 없는 강행군에 선원들은 지쳐 가는데, 그 와중에 어망이 잘리는 돌발사태가 벌어진다. 설상가상으로 바다가 거세지기 시작하는데…. 거기다 고생 끝에 끌어올린 주낙에는 홍어가 보이질 않는다. 주로 끌려 올라온 것은 이런저런 쓰레기들. 선원들로서는 힘이 쭉 빠질 만한 일이다. 30년차 베테랑 선장마저도 얼굴에서 웃음기가 슬슬 사라지기 시작한다. 제대로 건진 게 없으니 작업은 또 이어진다. 2시간 쪽잠을 잔 뒤 이어지는 작업들. 점점 무거워지는 몸과 마음을 가볍게 만드는 것은 역시 바늘에 걸려 줄줄 올라오는 홍어들. 마침내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기쁜 소식은 크게 크게/안혜련 주부

    [옴부즈맨 칼럼] 기쁜 소식은 크게 크게/안혜련 주부

    요사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많다. 이 사람은 이래서 맘에 안 들고, 저 사람은 저래서 맘에 안 차고, 그 사람은 그래서 그저 그렇다. 분명 예수님이 사랑하시고, 부처님이 자비를 베풀고, 공자님이 예의를 가르친 아름다운 이 땅인데, 뉴스를 보면 언제부터인가 사기꾼과 폭력배, 무례와 술수로 가득 찬 아수라장 같은 곳이 되어버린 듯하다. 어릴 적 동화책에서 본, 미운 말을 할 때마다 입에서 튀어나오는 더럽고 끔찍한 벌레들이 수시로 내 눈앞에서 사방으로 흩어지니, 이 불편하고 거북한 마음을 어디서 어떻게 떨쳐버릴 수 있을까. 이런저런 궁리와 시도 끝에 그래도 선과 진실을 찾는 사람들, 삶을 성실하고 건강하게 사는 이들에 관한 소식을 접할 때, 잠시라도 마음의 평화와 위로를 얻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갈증 날 때 마시는 차가운 물 한 잔에서 느끼는 청량감이랄까. 최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오승은 박사에 관한 기사가 그런 소식에 속했다. “나를 교황으로 뽑은 여러분을 (하느님께서) 용서하시길…”이라는 유머로 목자 직무를 시작한 새 교황에 관한 소식은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가난이 부끄러움을 넘어 마치 사회악이라도 되는 듯 생각되는 오늘날, 그는 2000년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청빈과 겸손의 상징인 프란치스코를 새 이름으로 택함으로써(3월 18일 자 22면)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꿈꾸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또 화려한 관저가 아닌 게스트하우스에서 다른 사제들과 함께 생활하기로 함으로써(3월 28일 자 16면) 이전부터 살아온 소박하고 검소한 삶을 이어갈 뜻을 밝히고 있다. MIT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하버드의대에서 생물학 연구를 하는 오승은 박사에 관한 기사(3월 27일 자 27면)도 신선했다. 1998년 대학수학능력시험 최초 400점 만점을 받았던 소녀는 15년의 시간이 흐른 후 ‘뼈 성장의 비밀’에 관한 의미 있는 논문을 네이처에 게재했다. 오 박사의 논문 ‘연골 세포의 분열, 성장과 뼈 길이의 관계’는 성장판 관련 질환 치료 등에 핵심 원리를 제공할 것으로 평가되며, 특히 오 박사 전공인 물리학을 이용한 시스템생물학으로 접근해 더욱 주목된다고 한다. 시원한 바람과도 같은 기분 좋은 기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신선한 바람을 가슴 깊이 호흡하지는 못했다. 알고 싶고 궁금한 마음을 만족시키기에는 기사의 내용과 분량 모두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대중의 관심을 일시적으로 받는 연예인 소개에는 신문 전면을 할애하기도 하면서, 가치 있는 일에 자신의 일생을 걸고 정진하는 사람들에 관해서는 관심도 지면도 너무 인색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 사실이다. 그들의 오늘이 있기까지, 언제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어떤 노력과 선택을 했으며 어떤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와 같은 내면의 삶을 독자는 더 알고 싶어 하지 않을까? 언론의 특성인 비판과 감시 역할을 감안하더라도 기쁜 소식, 좋은 소식은 더 크게, 더 자세히 보도해 주어 힘겹고 답답한 현실에서 잠시라도 오아시스를 찾는 기쁨을 느끼게 해주면 좋겠다. 서울신문과 다른 신문과의 차별화도 이와 같은 드러나지 않은 독자의 욕구와 갈증을 풀어주는 심층적 보도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들어서 기분 좋은 이야기, 들어도 또 듣고 싶은 이야기를 더 많이, 더 자주 보기를 기대한다.
  • 클래식 + 차 한 잔… 1만원의 여유

    강남구는 4일 오전 11시 강남구민회관에서 여행을 주제로 ‘4월 브런치콘서트’를 개최한다. 브런치콘서트는 강남심포니 오케스트라가 2008년부터 클래식 대중화를 위해 매월 첫째 주 목요일 오전에 펼치는 연주회로 1만원의 저렴한 가격에 빵이나 쿠키, 차 한 잔의 여유를 곁들이며 클래식을 즐길 수 있는 공연이다. 이번 콘서트는 강남심포니의 상임지휘자 서현석의 지휘 아래 소프라노 박지현과 테너 정의근, 바순 장현성의 협연으로 진행되며, 베를리오즈의 관현악곡 중 하나인 ‘카니발 서곡’을 시작으로 작곡가 조두남의 ‘산촌’ 등이 공연된다. 이어 테너 정의근이 살바토레 카르딜로의 ‘무정한 마음’을 부르고, 소프라노 박지현 등이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의 ‘축배의 노래’를 협연한다. 브런치 콘서트에 관심 있는 주민은 강남문화재단(6712-0534)으로 문의하면 된다. 조현석 기자 hyun68@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8) 한국 스포츠외교 산증인 김운용 前 IOC 부위원장(상)

    [명사가 걸어온 길] (8) 한국 스포츠외교 산증인 김운용 前 IOC 부위원장(상)

    김운용(82)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을 만나기로 한 건 서울 여의도의 한 오피스텔이었다. 자신의 발자취를 오롯이 모아둔 ‘김운용닷컴’(www.kimunyong.com) 사무실이 입주한 곳이었다. 약속 시간 10분을 앞두고 그가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단정히 빗어 넘긴 머리에 남색 캐시미어 코트, 맞춰 두른 고동색 에르메스 목도리는 현역 시절 그대로였다. 이날은 택시법의 재의결을 요구하며 택시업계가 총파업을 벌인 날이었는데, 그는 기자에게 “택시 스트라이크 때문에 오는 길은 괜찮으셨소”라고 영어를 섞어 말을 건넸다. 말투와 몸짓 하나하나에서 한국 스포츠 외교의 첨병으로 오래 활약한 세월이 묻어났다. 1971년 대한태권도협회장에 취임하며 체육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 1986년 IOC 위원, 1988년 IOC 집행위원, 92년 부위원장에 당선돼 활동했다. 그동안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유치, 2000년 시드니올림픽 남북 동시 입장, 1994년 태권도의 올림픽 정식종목 승인 등 국민들의 뇌리에 남아 있는 굵직굵직한 스포츠 이벤트들을 진두지휘한 그다. 좌절되긴 했지만 2001년 유색 인종으로는 최초로 IOC 위원장직에 도전, 세계에도 얼굴을 알렸다. 그의 인생을 함축한 ‘올림픽 30년, 태권도 40년’ 문장 속에는 한 사람이 일궜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성취와, 딱 그만큼의 시련이 녹아 있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운동과 영어를 유난히 좋아했던 한 소년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를린올림픽이 열린 1936년, 다섯살 나이에 부모님 손을 잡고 대구 만경관에서 ‘민족의 제전’이란 올림픽 기록영화를 본 것은 마치 어제 일처럼 그의 기억에 생생하다.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보면서 난생 처음 느낀 강렬한 두근거림은 어쩌면 훗날 그가 올림픽 무대의 중심에서 일하리라는 자기암시로 작용했는지 모른다. 다섯 살 위의 형은 “동아일보가 손 선수의 일장기를 지워서 큰일이 났다”고 말해줬다. 신문사에서 일하던 부친 김도학(1936년 별세)씨의 영향으로 어린 형제는 또래에 비해 아는 것이 많았다. 대구 조선민보사 기자였다가 서무부장 겸 경리부장으로 일했던 부친은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했고 바이올린과 오르간 연주를 즐겼고 문학에도 소질이 있었다. 부친을 닮아 그는 다재다능한 소년으로 자라난다. 서울 욱구중학교(1945년 해방 후 6년제 경동중학교로 변경, 현 경동고)에서 공부 말고도 복싱·스케이팅·공수도 등 운동이라면 가리지 않고 연마했고, 피아노도 개인 레슨을 받을 정도였다. “나는 과목별 편차가 심했다. 영어는 월등히 뛰어났지만 수학은 형편없었다. 그러나 싸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놀기도 잘하면서 5등 하는 게 1등보다 낫다는 생각이었다.”(저서 ‘미련한 사람은 자기 경험에서 길을 찾고 현명한 사람은 선배에게 길을 찾는다’ 중에서) 특히 영어에 대한 그의 열정은 대단했다. “내 꿈이 외교관, 피아니스트, 국제법 학자가 되는 것이었으니까…. 원래 영어를 좋아했다. 중학교 시절엔 방학 때 다음 학년도 책을 미리 읽고 4학년 때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크리스마스 캐롤’(찰스 디킨스), ‘스케치북’(워싱턴 어빙) 같은 문학 작품도 많이 읽었다. 해방이 되고 미군이 들어왔을 때는 그들이 주둔한 동숭동 서울대에 찾아가 보초들과 회화 연습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선교사가 세운 연희대(현 연세대)를 택하게 됐다. “그때는 (연희대가) 국제적인 학교라 외국 교사가 많아서 성경도 영어로 1주일에 3시간, 회화도 언더우드 부인이 직접 가르치는 3시간, 영어강독 3시간 등 일주일에 영어만 9시간 공부했다.” 그러나 해방,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근대사의 소용돌이는 그가 외교관의 꿈을 이루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는 대학 2학년이던 1950년 제2회 고등고시 행정 3부(현 외무고시)에 응시한다. 응시원서 마감일인 6월 20일 대학 1학년 수료증과 인지세 2000원을 들고 고시회관에서 원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불과 닷새 뒤 전쟁이 터졌다. 시험은커녕 목숨마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인생은, 특히 그런 격동기를 통과하는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고향인 대구로 피란가지 못해 서울에 갇혀 있던 그는 9월 말 서울이 수복되고 나서 육군본부에서 국제연합 연락장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된다. 병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때라 징집 공고가 곳곳에 나붙었는데, 국군과 미군의 공조를 위해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 역시 절실했던 것이다. 당시 19세이던 그는 연희대 학도호국단 사무실에 가서 2학년 재학증명서를 뗀 뒤 이를 4학년으로 고치고 나이도 응시 자격인 21세로 올리는 ‘문서 위조’를 감행하면서 지원한다. 1951년 12월 그는 보병 중위로 임관해 동해안을 지키는 5사단의 사단장 전속부관으로 발령받는다. 인생의 항로는 바뀔지언정 목적지를 바꾸지 않는 것은 그의 영민함 덕이었다. 영어가 나침반이 됐다. 엉겁결에 군인이 됐지만 그는 좋아하는 영어책을 놓지 않았다. 외교관이 될 수 없다면 군사외교 분야에서 활동하면 됐다. 기회는 적극적으로 구하는 사람에게 왔다. 1953년 1월 1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미국 보병학교 훈련 시험에 합격해 조지아주 포트 베닝의 보병학교를 다녀온 것을 비롯해 세 차례나 군사유학을 다녀왔다. “요즘 한창 얘기하는 드론(첨단 무인폭격기)을 1955년에 벌써 공부했다. 산 영어를 많이 하니까 (나를) 써먹기 좋잖아. 직업군인도 아닌데 (군대에서) 내보내지를 않았다. 사단장, 군단장, 군사령관, 참모총장의 전속부관으로 일했다. 참모총장이 미8군과 매일 접촉해 탄약이나 기름을 지원받던 때였으니….” 1960년 4·19 혁명 당시엔 계엄사령관이었던 송요찬 참모총장의 부관으로 일했고 다음해 5·16 군사쿠데타 이후 송 장군이 내각수반(총리)에 오르면서 의전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중령으로 예편한 뒤 1963년 8월 주미대사관 참사관이 돼 워싱턴으로 갔지만 1968년 무장공비 김신조 사건, 푸에블로호 피랍 사건 등이 일어나면서 남북관계가 경색되자 청와대에서 미국담당 1급 비서관으로 일하라는 전갈을 받고 귀국한다. 하지만 정치적인 이해가 맞물리면서 경호실 보좌관(차장 1급)으로 발령이 난다. 그 뒤 6년 동안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좌한다. 조금 길지만 그의 육성 증언을 옮겨본다. “장군을 맨 처음에 뵌 건 1954년 2군단 소속으로 강원도 화천에서 포병사령관을 할 때였다. 나는 막 미국 유학을 다녀온 상태였다. 세 번째 유학을 마치고 1군사령부 비서실에 있을 때 그분은 작전참모부장이었는데, 비서실이 참모장 소속이었다. 그때 장군들은 주말이 되면 자유당에 ‘사바사바’하러 다녔는데 박 장군은 안 그랬다. 휘하에 소령이나 대위들 데리고 골목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그러다 우리를 만나면 ‘김 소령 어디가, 한 잔 할래?’ 하고 말도 건넸다. 인정이 많은 분이셨다. 판공비를 본인이 안 쓰고 다 나눠줬는데, 나도 많이 얻어 썼다. 그분의 성품이 드러나는 얘기가 두 가지 있다. 상관이었던 송요찬 장군이 1963년 동아일보에 ‘군은 민정이양하고 복귀하라’는 성명서를 낸 뒤 구속됐잖나. 그걸 풀어주고 송 장군이 나온 뒤에 딸을 하버드 법대에서 공부시키는 걸 도와줬다. 자신이 한 번 친 사람들도 후에는 명예회복을 해줬다. 순경 시켜서 ‘누가 줬다고 말하지 말고 가족에게 갖다주라’며 도움을 주기도 하고. 그러니까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개인적인 에피소드도 있는데, 내가 출장 다녀오면서 여비를 털어서 카디건 같은 걸 사오면 ‘이런 거 왜 사왔어’하며 나무라셨다. 선물 같은 건 당연한 건 줄 알고 ‘좀 더 사오지’ 할 법도 한데, 그 정도로 인정이 있는 분이었다. 5·16 후에는 박 장군이 내각 수반으로 왔을 때 의전비서관으로 있었다. 1968년 청와대 경호실 차장으로 가서 6년간 모시다가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나왔다. 경호실에 가려고 해서 간 게 아니었지만 막상 가보니 (경호실이) 권총만 차는 데가 아니고 미국 식으로 서비스, 즉 공공 업무를 하는 곳이었다. 다른 기관들과 협력도 해야 하고 사전 경비를 위한 장비도 준비해야 하고…. 경호실에 있으면서도 다른 심부름(군사원조 관련)도 많이 했다.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나가지 않아도 됐지만 책임지고 나왔다. 사표를 냈더니 박 대통령이 부르더라고. 장례식 때문에 좀 가다듬고 나서 부르는 거라면서 봉투를 줬다. ‘다시 부를 테니까 가 있어’ 했다. 그런데 그 후에 자신이 암살당했으니…나는 (청와대를) 나와서 태권도만 열심히 했다. 1971년에 유신정우회에서 국회의원 제의도 들어오긴 했는데 내가 고사했다. 4·19 때 자유당이 하루저녁에 무너지는 걸 다 봤는데…절대 안한다고 했다.” 육 여사 묘소에 참배를 하고 청와대를 떠난 김 전 부위원장은 1971년 태권도협회 회장에 취임하면서 스포츠계와 인연을 맺게 된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저자와의 차 한잔] ‘얼굴은 답을 알고 있다’ 낸 최창석 명지대 교수

    [저자와의 차 한잔] ‘얼굴은 답을 알고 있다’ 낸 최창석 명지대 교수

    책을 처음 손에 쥔 지난 18일, 4년 만에 피겨 세계선수권을 제패한 김연아(23)가 기자회견에서 “재능은 어느 정도 타고 나는 것 같다”고 말한 것이 알려졌다. 책을 펼치니 딱 그 얘기였다. ‘얼굴은 답을 알고 있다’(21세기북스 펴냄)를 쓴 최창석(59) 명지대 정보통신공학과 교수는 지난 20일 서울신문사 편집국에서 기자와 만나 김연아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자고 했다. 그에 따르면 인류의 얼굴은 크게 세 가지, 북방형과 남방형 그리고 중간형으로 나뉜다. 독자들도 아래 기준에 따라 자신의 얼굴을 가늠해보시라. 그에 따르면 인류의 얼굴은 크게 셋, 북방형과 남방형 그리고 중간형으로 나뉜다. 북방형은 타원형 얼굴에 흐린 눈썹, 작은 눈과 긴 코를 갖고 있어 결단력과 돌파력을 지녔고 활달하고 급한 성격으로 정리된다. 반대로 남방형은 각진 얼굴에 진한 눈썹, 큰 눈과 짧은 코를 지닌다. 뛰어난 관찰력과 분석력을 자랑하며 침착하고 치밀한 성격이다. 중간형은 둘이 섞인 것. 얼굴 형태가 재능과 성공을 결정한다는 것이 최 교수가 책에서 주장하는 핵심이다. 얼음 위에서 등과 다리 근육을 많이 쓰는 피겨스케이팅은 ‘북방형 얼굴’에 맞는데, 김연아의 얼굴은 두상, 이마, 눈, 눈썹, 광대뼈, 턱의 모습 모두 북방형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이젠 라이벌이라고 하기도 어렵게 된 동갑내기 아사다 마오(일본)는 남방형에 가깝다. 최 교수는 인간의 얼굴은 뇌가 결정하는데 이는 진화의 산물이라며 “북방형은 주로 빙하기에 사냥을 했던 사람들이라 등과 다리근육, 또 이들 근육을 지배하는 뇌의 운동영역도 함께 발달했다”며 “김연아의 두정부(머리 꼭대기)가 조금 솟아 있고 아사다는 납작한데 이는 김연아의 운동 영역이 아사다보다 더 발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빙하기에 열매를 따먹던 사람들의 후예라 할 수 있는 아사다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김연아보다 잘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고 주장한다. 언뜻 비과학적인 것으로 비칠 주장을 왜 전자공학 전공자가 하는 걸까. 최 교수 이력을 돌아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1988년 일본 가나자와대학 박사과정에 들어가 얼굴 영상 처리와 컴퓨터그래픽 연구에 몰두하면서부터 사람들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우리 경찰에서 쓰이는 몽타주 작성 기법도 그의 발상이 핵심이다. 대구 개구리소년의 실종 10년이 흐른 시점에서의 얼굴을 유추해내고 숱한 연예 프로그램에서 스타들의 2세를 추정하는 사진을 만들어내는 기법을 창안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번 책은 국내 정치인 기업인 운동선수 등 40개 분야의 유명인 1370여명의 얼굴 특징을 분석해 재능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큰 눈을 가진 남방형은 관찰력과 분석력이 뛰어나 경제, 기술, 학문 같은 정적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비교적 눈이 작은 북방형은 결단력과 돌파력으로 스포츠 같은 동적 분야에 강하다는 것. 전형적인 남방형으로는 지휘자 정명훈과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을 꼽고, 북방형으로는 김연아와 소프라노 조수미, 축구 선수 박지성을 꼽는다. 그는 얼굴을 연구하는 데 많은 행운이 작용했다고 털어놓았다. 북방형 재능과 남방형 재능이 확연하게 드러난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이 첫째라고 했다. 최 교수는 “북방형 재능이 플러스라면, 남방형 재능이 마이너스인 셈인데 양쪽 재능을 스포츠, 전문직,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쉽게 검증할 수 있었던 점이 행운”이라고 말했다. 만약 남방형 한쪽으로 치우친 동남아시아나 서양에서 태어났다면 이를 분명하게 확인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최 교수에게 “낯선 연구를 하려니 힘들었을 것 같다”고 운을 뗐더니 “개념 자체가, 기존 연구가 없으니까 힘들었다. 뭔가 있는 줄은 알겠는데 돌파구가 열리지 않아 많이 고민했다. 그러다 2007년 5월 연구년으로 일본에 갔을 때 오키나와의 한 횟집에서 돌파구가 마련됐다. 영 회맛이 아니어서 왜 이러냐고 요리사에게 묻자 ‘그런 맛을 느끼려면 도쿄나 홋카이도에 가야 한다. 원래 오키나와의 생선은 이 정도’란 답을 들었다. 사람도 동물처럼 기후와 환경에 적응하면서 얼굴, 체형, 재능도 달라졌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확장돼 북방과 남방은 기후가 반대이므로 사람의 성격뿐만 아니라 도자기, 산수화 등의 성격도 서로 반대일 것이란 식으로 생각의 가지를 쳐나갔다. 기후 적응과 먹이 채집 과정에서 발달한 능력이 오늘날 우리 재능의 근원이라는 가설을 만들었고 계속 사례들을 모아 책을 완성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연구 과정에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대기업 CEO 대목이었다. 사냥할 때 사람들을 몰고 다녀야 하는 북방형이 기업 경영에 강할 것이라고 막연히 짐작했는데 막상 2010년 12월 기준으로 국내 30대 기업중 내국인 CEO 28명의 얼굴을 살펴보니 북방형이 한 명, 중간형이 4명, 남방형이 23명이었다. 내국인 CEO 중 남방형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를 규명하느라 애를 먹었다. 최 교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예로 들었다. “큰 눈에 전형적인 남방형인 이건희 회장은 영화 한 편을 봐도 주연, 조연, 엑스트라, 배경, 조명 등을 살펴보며 열 번 본다고 한다. 분해한 뒤 종합하니 본질을 꿰뚫는 것이다. 이런 능력을 연마해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도 그룹 전체를 꿰뚫고 여기에 상상력까지 더해진다. 약한 결단력을 장점인 관찰력으로 뒤덮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짜릿한 희열도 느꼈다고 했다. 지난해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메달을 딸 수 있는 종목을 뽑았다. 그때만 해도 많은 이들이 가능성을 재지 않았던 펜싱, 사격, 체조를 찍었다. 스포츠를 모르는 전자공학 전공자가 이런 주장을 늘어 놓으면 바보 아니면 똑똑한 놈, 이런 소리 들을 게 뻔했지만 여러 번 살펴봐도 같은 결론이 나와 확신을 가졌다고 돌아 책 제목이 절묘하다고 하자 최 교수는 “전 공학자다 보니 사실에 충실하려고 했는데 출판사에서는 독자를 더 불러모으기 위해 이런 제목을 내놓았다. 나로선 약간 불만이었다. 왜냐하면 재능과 성공을 다루는 것이 목적이고 얼굴이 그 수단, 출입구였는데 전도된 느낌 때문이었다. 하지만 출판사를 믿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고 보니 골상학((骨相學)이란 게 있었다. 최 교수는 “맞다. 18세기에 유행했다. 하지만 골상학은 부정될 수 밖에 없었다. 원래 서양에는 남방형이 지배적이고 북방형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인간 현상의 다양한 측면을 담아내지 못하니 서양에서 골상학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관상(觀相)과는 선을 제대로 긋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운명론이나 결정론으로 읽힐까 경계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인 셈. 최 교수는 “정곡을 찔렀다. 그래서 많은 실증적인 예, 통계 등으로 뒷받침하려고 했다. 그리고 읽어보면 알겠지만 막연히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논증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고 나직한 목소리로 답했다. 책을 쓰는 데 5년은 얼추 걸렸는데 어느 정도 만족하느냐고 물었더니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이제 서문을 썼다. 각론으로 뻗어나가야 한다. 분야별로 정말 어떤지, 왜 그런지 등을 짚어야 한다. 내 힘만으로는 벅찬 일이어서 해당 분야에서 오랫동안 연구해온 분들과 손잡고 해나갈 생각이다” 어느 정도 검증하며 책을 썼는지도 궁금했다. 최 교수는 “솔직히 학자로서의 욕심 때문에라도 내가 발견한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하니 부러 다른 이의 의견을 구하지 않았다. 연구년에 일본을 북쪽부터 남쪽까지 훑으며 사람들 얼굴을 관찰하고 태국까지 내 돈 들여 가본 것도 그 때문“이라며 “이제 책이 나왔으니 내 주장의 허점 같은 것들에 대한 날카로운 채찍질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가 이렇듯 얼굴 연구에 몰두하는 목적은 뭘까. “얼굴을 정확히 분석하면 자신의 재능이 어떤 분야에서 발현될 것인지를 파악해 헛된 시간과 비용, 노력을 줄일 수 있다. 보통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식의 객담들이 많지만 사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이 있어도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재능이 없는데도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하면 된다’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건 옳지 않은 것이다.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그렇다”고 했다. 앞에 말한 여러 전문가와의 협업도 이런 차원에서 하는 얘기다. 책의 뒤 커버에는 ‘김연아의 성공, 우리나라에서만 인기가 높았던 스타크래프트, 세계로 뻗어나간 싸이의 인기, 이 세 가지가 모두 달라 보이지만 실은 하나의 원인에서 비롯된다’고 적혀 있다. 인류가 그 기원부터 환경에 적응하며 쌓아온 능력이 얼굴에 숨어 있는데 이 유형을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재능과 특질이 드러난다. 얼굴에 성공 DNA가 담겨 있다는 주장이다. 최 교수는 “무채색을 선호하는 북방형 지역에 유채색 자동차를 팔려는 노력 같은 것은 헛된 것이다. 또 아기자기한 게임을 선호하는 남방형 지역에 전투형 게임을 팔려는 노력 역시 허튼 노력만 양산할 수 있다. 따라서 비즈니스 영역이나 디자인 영역에도 이런 인식을 활용하면 그만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커버스토리] 세종시 공무원 24시 그리고 애환

    [커버스토리] 세종시 공무원 24시 그리고 애환

    정부세종청사로 이전한 부처 공무원들은 세종시에서 많게는 6개월, 짧게는 2개월 반을 생활했다. 대다수 공무원들은 겉으론 입주 초기보다 안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불편한 것에 익숙해졌을 뿐 입주 초기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들 한다. 주거형태도 가족까지 몽땅 세종시로 이주한 공무원은 3분의1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매일 장거리 출퇴근을 하거나, 원룸이나 아파트를 얻어 생활한다. 출퇴근자와 나홀로 둥지족들이 많다 보니 근무 형태나 여가문화 트렌드는 많이 달라졌다. 세종청사 출범 6개월, 이주 공무원들의 달라진 생활문화와 그들만의 애환을 소개한다. 세종청사 입주로 겪은 가장 큰 변화라면 이동거리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청사주변에 먹거리나 편의시설이 없다 보니 인근 도시로 장거리 이동이 불가피해졌다. 점심을 먹기 위해 조치원이나 공주, 유성까지 가고오는 데만 40분~1시간이 걸린다. 장거리 출퇴근 공무원들은 ‘원정 점심’까지 감안 하면 하루 대여섯 시간을 차 안에서 보내는 셈이다. 원거리 출퇴근이나 원룸생활 등 생활 패턴이 달라지면서 회식이나 근무 형태도 크게 달라졌다. 서울·과천·인천·안양 등 장거리 출퇴근자들은 셔틀버스를 놓치면 하루가 완전히 꼬인다. 출근 셔틀버스는 지역에 따라 출발 시간이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서울 신도림이나 인천 등 수도권 한복판에서는 일찍 출발하기 때문에 새벽부터 서둘러야 한다. 서울 목동에서 매일 출퇴근 한다는 한 사무관은 “셔틀버스 출발지인 신도림까지 나오는 데 30분이 걸린다”며 “하루 평균 5시간 넘게 버스에서 갇혀 있다”고 토로했다.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공무원들은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10~20분 전부터 하던 일을 접는다. 오후 6시 30분 셔틀버스가 출발하지만 마음에 드는 자리를 차지하려면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 양재와 과천시 인덕원 등 일부 노선은 오후 8시와 9시에도 출발하는 차량이 있지만, 나머지 구간은 한번 떠나면 끝이다. 출퇴근하는 공무원들은 목 베개도 필수품이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목 베개를 꺼내 두르는 모습은 이제 흔한 풍경이 됐다. 현재 서울에서만 매일 출퇴근하는 공무원들은 KTX나 승용차 이용자를 제외하고 3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장거리 출퇴근자들에게는 ‘야근’이나 ‘연장근무’란 말은 다른 나라 얘기가 됐다. 어쩔 수 없이 야근을 해야 할 때는 그냥 남녀 휴게실에서 잔다. 휴게실은 부처별로 마련돼 있는데 이층침대 형태로 24명(남녀 각 12명)까지 잘 수 있다. 하지만 장거리 이용자에게 야근을 강요할 수 없어 휴게실을 이용하는 빈도는 사실상 매우 낮다. 나홀로 둥지족들도 많다. 가족이 내려오지 않은 공무원은 원룸이나 아파트를 얻어 2~3명씩 공동생활을 한다. 이런 공무원들을 지칭해 ‘세종총각’ ‘세종댁’이란 신조어도 생겼다. 장거리 출퇴근자들 때문에 부서별 회식도 주로 점심으로 돌린다. 저녁에 일정을 잡았다가는 뭇매(?)를 맞게 되는 분위기다. 저녁 회식이 줄어들면서 대신 여가 활동에는 여유가 생겼다. 특히 나홀로 둥지족들은 썰렁한 집에 일찍들어가기보다 처지가 같은 동료들과 함께 운동을 즐긴다. 헬스나 자전거 타기 등으로 건강을 다지는 사람들이 많아 이른 아침과 퇴근 후 청사 체력단련실은 운동 마니아들로 항상 북적인다. 세종청사 공무원들이 가장 번거롭고 심란해 하는 게 국회 출장이다. 그런데도 부처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국회의원이나 보좌관들을 직접 만나 설명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행을 하게 하는 분위기다. 정책이나 법안을 충분히 이해시켜 각 부처가 유리한 쪽으로 결론을 얻어내기 위해서다. “번거로운데 자료만 보내달라”는 국회의원들도 있지만 어지간하면 직접 올라가는 것이 원칙처럼 굳어지고 있다. 15일 출근길에 만난 경제부처의 한 과장은 “국회에 가서 협의할 일이 있어서 서울에 가는 중”이라며 “10분 설명하기 위해 오가며 하루 일과를 다 허비하게 생겼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사회부처의 한 과장은 이틀 전 10명의 본부 과장이 줄줄이 국회에 올라가 설명했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경제부처의 한 국장은 “요즘 ‘취미’가 서울과 오송을 오가는 ‘KTX 예약하기’”라며 웃었다. 그는 세종시에 숙소도 마련했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서울에서 회의가 있다 보니 서울 명동 은행회관이나 정부서울청사로 더 자주 ‘출근’한다. 그렇다고 세종청사에 들르지 않을 수도 없다. 하루만 빠져도 결재할 서류가 산더미가 된다. 얼마 전에는 세종청사로 출근했다가 오후에 서울로 올라가 회의를 하고 저녁 때 약속 때문에 세종시로 내려왔다가 다시 막차를 타고 서울 집으로 돌아간 적도 있다. 다음 날 새벽에 서울에서 있는 조찬회의에 늦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는 “세종시에 내려온 지 이제 넉 달인데 오르락내리락하는 생활에 벌써 지쳐간다”면서 “국감 시즌이면 아예 세종청사에서 업무를 보는 것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출장 비용도 만만치 않다. 출장비를 담당하는 사회부처의 한 주무관은 “서울 출장이 너무 잦다 보니 연말까지 사용해야 할 출장비가 다음 달이면 바닥날 것 같다”며 “어떻게 예산을 전용해야 모자란 출장비를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세종시에 내려온 공무원들은 국회뿐만 아니라 행안부와 조직·인원 협의나 청와대 보고, 타 부처와의 회의 등으로 일주일에 몇 번씩 서울을 오르내리는 ‘셔틀근무’가 피곤하다고들 하소연한다. 특히 조직·인사와 공무원들의 처우관리를 하는 행안부가 내려오지 않고 서울에서 ‘이래라저래라’한다며 속을 끓이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국회 출장에 따른 행정 낭비를 없애기 위해 세종청사 내에 국회 분원을 설치해 스스로 찾아가는 서비스를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서영복 행정개혁시민연합 사무총장은 “분원이나 서울출장소를 마련하고 화상회의 등 물리적인 공간과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식이 변해야 한다”면서 “의원이나 보좌관들이 부처 공무원들을 국회로 불러들여야 위엄이 선다는 잘못된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사를 벗어나면 세종시는 대도시로서의 기본조건조차 갖춰져 있지 않다. 그 중 가장 시급한 것이 의료시설이다. 세종청사 주변에서 의료시설이라야 대규모 아파트 단지인 첫마을에 소아과와 내과 딱 두 곳뿐이다. 종합병원은 언감생심이다. 다른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대전이나 조치원 등 인근 도시로 나가야 한다. 한 공무원은 “얼마 전 주말을 이용해 서울에서 치과 치료를 받은 뒤 월요일에 통증이 심해 병원에 전화했더니 세종시에는 치과가 드물다고 하더라”면서 “이곳에서는 아프면 생고생”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세종시 첫마을에 입주한 또 다른 여성 사무관은 최근 한밤중에 일어났던 일화를 소개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 한밤중 배를 잡고 고통을 호소해 난감했다”면서 “인근에 병원이 없어 아이를 싣고 무작정 대전시내 큰 병원 응급실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진찰 결과 급성 장염이어서 병원에 입원시키고 여러 날 오가느라 고생했다고 덧붙였다. 청사에서는 이런 불편해소를 위해 청사 내 간이 진료실을 마련했다. 또 종합병원 등과 연계해 순회 진료도 정례화하는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불만을 해소할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세종청사 부처 노조위원장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당초 ‘세종시 이전계획 원안 고수’를 고집했는데 요즘은 잊고 있는 것 같다”면서 “불편한 점이 부각될 때마다 ‘문제 없다’고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세종시와 행안부 말만 믿고 언제까지 인내하며 생활해야 할지 의문이 든다”고 쓴소리를 했다. 세종 유진상 기자 jsr@seoul.co.kr 세종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세종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저자와의 차 한잔] 와인 총서 6권 ‘신세계 와인’ 펴낸 최훈 보르도와인아카데미 원장

    [저자와의 차 한잔] 와인 총서 6권 ‘신세계 와인’ 펴낸 최훈 보르도와인아카데미 원장

    “마키아벨리는 유배 시절 낮에는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일하고, 저녁에는 예복으로 갈아입어 독서를 하면서 고독을 이겨냈지요. 그 시간에 얻은 지혜가 쌓여 ‘군주론’이 나왔어요. 내게는 그 시간이 새벽입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서재에서 3시간 집중적으로 글을 읽고 써내려 가는 것이죠.” 최훈(77) 보르도와인아카데미 원장이 하루도 쉬지 않고 필력을 쏟아붓는 것은 확실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와인 총서라고 불릴 만한 ‘와인 시리즈’를 완성하는 것. 최근 그가 내놓은 ‘신세계 와인’(자원평가연구원 펴냄)은 그 한가운데에 있다. 지난 19일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신문 본사에서 만난 최 원장은 절절함이 묻어나는 계획을 털어놓았다. “와인은 단순히 술이 아닙니다. 글로벌 문화에 접근하기 위한 매개이죠. 와인의 역사로 세계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고, 와인 향기를 맡으면서 삶의 여유를 갖기도 하죠. 누군가는 그런 와인을 올바르게 전달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충실히 써 나갈 작정이에요.” ‘신세계 와인’은 2006년 썼던 ‘남국의 와인’ 개정판이지만, 내용에서는 새 책이나 다름없다. 남위 35도에 있는 5개 나라(칠레, 아르헨티나,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와인 통계와 산지, 등급제도 등이 그 사이 크게 달라져 모두 반영했다. 개정 작업에 2년이 걸렸다. ‘와인리뷰’, ‘와인 앤 시티’ 등에 쓰는 원고 마감이 때마다 다가왔고, 새로 수입된 와인에 대한 평가의뢰가 수시로 들어왔던 탓에 집필에 몰두할 수 없었다. “현장에 가지 않으면 글을 내놓지 않는다”는 신념이 깊어 1년에 네댓 번 해외 출장길에 올라 꼼꼼히 확인하고 사진도 새로 찍었다. 학술서처럼 다소 딱딱하지만, 현지 이야기가 충실하게 담겨 여행서 같은 느낌도 풍기는 이유다. 최 원장이 와인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40여년 전이다. 교통부에 재직하던 1967년, 프랑스 정부가 후진국을 대상으로 마련한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해 파리 르그랑호텔, 니스 네그레스코호텔 등에서 호텔경영학 교육을 받았다. 그때 그저 싸다는 이유로 슈퍼에서 와인 한 병을 사서 두어 잔 홀짝였다. 1프랑(지금의 800원 수준)이었다. 귀국해서는 와인 구경도 못했다. 1970년대는 외화 소비 규제가 심했던 때라 와인을 먹을 수 있었던 곳은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호텔 8곳뿐이었다. “외국인은 상관없지만, 한국인이 와인을 먹을라치면 이름을 적어야 했던 시절인 데다 공무원이 외국 술이라니 큰일 날 일”이라고 떠올렸다. 교통부 해운·관광 국장, 철도청장까지 오르면서 승승장구했던 그가 위기를 맞은 건 1994년. 열차 사고로 자리를 내놓기에 이르렀다. 33년에 걸친 공직생활을 끝냈다. “요직을 두루 거쳐 장관직에 대한 열망이 있었죠. 그게 하루아침에 사라진 겁니다. 열정을 쏟을 ‘무엇’이 필요했죠. 마침 그때 와인이 있었습니다.” 민간기업 연구원장을 맡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와인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해외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갈 일이 있으면 짬을 내 와이너리를 다니며 현장을 살폈다. “주변 사람들은 생판 모르는 와인에 그렇게 몰두하냐면서 미쳤다고 했지만, 와인을 들여다볼수록 글로벌 문화로서 와인 문화가 시대적 추세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인들의 지원을 받아 2002년 7월 국내 최초의 와인전문교육기관인 ‘보르도와인아카데미’를 출범했다. 최초의 정통 와인 전문지를 발간하고, 와인콩쿠르 ‘코리아 와인 챌린지’를 국내 처음으로 열었다. 2006년에는 프랑스 정부에서 농업공로훈장인 메리트 아그리콜 오피시에를 받았다. 와인 전문가로서의 삶이 두 번째 인생이라면, 세 번째는 집필가로 점철돼 있다. 12권을 한 질로 하는 와인 시리즈를 목표로 삼아 ‘와인과의 만남’, ‘프랑스 와인’, ‘유럽의 와인’, ‘신세계 와인’ 등 6권을 완성했다. 7권은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의 와인 산지, 동유럽의 와인 등을 줄줄이 구상하고 있다. “이전 책들이 와인에 학술적으로 접근했다면 7권은 와인 문화를 대중적으로 풀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가 나이가 있으니 과연 몇 권까지 실행에 옮길 수 있을는지는 몰라요. 그렇다고 잡문을 쓰지는 않을 겁니다. 내 책이 문화의 중심인 와인 인프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목적이 뚜렷하니까요.”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낯선 터키의 중심 ②카라만 Karaman, 카파도키아 Kapadokya

    낯선 터키의 중심 ②카라만 Karaman, 카파도키아 Kapadokya

    풍요로운 도시 카라만 Karaman 여행자들에게 콘야는 안탈랴와 카파도키아 사이의 경유 도시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그런 탓에 가이드북에서도 콘야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얻기가 어렵다. 콘야에서 남쪽으로 100km 거리인 카라만은 콘야보다도 더 소외된 도시다. 콘야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거리임에도 카라만을 들러 여정을 잇는 이들은 흔치 않다. 한국인 여행자들도 마찬가지라 카라만의 존재는 그 흔한 블로그에서도 검색하기가 힘들다. 여행자들이 외면한 카라만이긴 하지만 시대를 아우른 보물을 간직한 풍요로운 도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카라만 성’에서는 예로부터 위풍당당했던 카라만의 면모를 볼 수 있다. 12세기 셀주크제국 당시 세 겹으로 겹겹이 지은 카라만 성은 요새와도 같았다. 무려 3km 바깥에 자리했었다는 해자와 외성外城은 카라만의 위상과 권위를 짐작하게 한다. 최근까지도 복원 중인 카라만 성은 현재 내성內城만 남은 상태. 아찔한 계단을 따라 성루에 오르면 작지도 크지도 않은 카라만 도심이 한눈에 담긴다. 200년 전의 오스만 전통 가옥인 ‘타르탄랄의 집’에서는 카라만에서 나아가 터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나무로 지은 집은 아래층과 위층에 각각 네 개의 방을 두었는데 아래층은 겨울에만, 위층은 여름에만 사용했다. 붙박이장과 샤워실 등은 각 층에 공통적으로 배치했지만 벽난로는 아래층에만 설치하는 식이다. 2007년에 복원한 2층은 배, 블루 모스크 등을 그려 놓은 천장 장식이 볼 만하다. 이슬람과 크리스트교를 넘나드는 카라만의 종교 유적지는 카라만에 풍요로운 볼거리를 더한다. 메블라나의 어머니를 모신 ‘아크테케 모스크’는 카라만의 자랑이다. 메블라나와 그의 아버지가 묻힌 콘야의 메블라나 박물관에 비해 너무나도 소박하지만 사원 앞에 자리한 커다란 나무는 1370년부터 이어온 사원의 유구한 역사를 속삭이듯 전한다. 아크테케 모스크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비잔틴 당시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체쉬멜리 교회’가 남아 있다. 교회 내부 천장에는 프레스코화의 흔적이 아련하지만 크리스트교인들이 제 나라로 돌아간 후 교회는 문을 닫았다. 여행자들의 발길 또한 뜸해 교회 내부를 돌아보기는 쉽지 않은 일. 대신 체쉬멜리 교회 분수 유적은 카라만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카라만 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유물을 전시한 박물관이다. 동전, 의복, 도자기 등 다양한 생활양식이 깃든 전시품은 기본. 조명을 밝힌 유리관 안에는 섬뜩하지만 눈길을 앗아가는 미라가 누워 있다. 이 미라는 카라만 도심에서 40km 떨어진 타쉬칼레 마나잔 동굴 5층에서 발견됐다. 타쉬칼레의 마나잔 동굴은 6~7세기 비잔틴 시대에 사람들이 살아가던 공간이다. 겉으로는 깎아지른 암벽으로만 보이지만 암벽 안에는 5층에 걸친 주거 공간이 오밀조밀하게 놓여 있다. 수백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당시의 입구는 찾을 수 없다. 암벽의 전면부가 무너져 내려 날개를 가진 새들만이 자유롭게 동굴을 드나든다. 사람들은 길이 아닌 환기구로 마나잔 동굴을 찾는다. 가느다란 손전등 빛에 의지해 허리를 굽혀 좁은 굴을 통과하고 환기구에 설치된 수직의 사다리를 기어오른다. 길은 또한 외길이다. 내려오는 데에도 팔과 다리의 근력이 만만찮게 요구돼 적절한 힘의 배분이 필요하다. 악조건을 딛고 찾은 동굴 자체는 그리 큰 볼거리가 아니지만 여행자들의 호기심을 채우기에는 손색이 없다. 두 눈이 번쩍 뜨이는 타쉬칼레의 또 다른 볼거리는 마나잔 동굴에서 멀지 않은 타쉬 암발라에 자리한다. 타쉬 암발라는 비잔틴 시대, 사암의 무른 바위를 파 만든 350여 개의 곡물 창고다. 대형 비둘기장을 연상케 할 정도로 거대한 바위를 질서정연하게 쌓아 만든 창고는 비록 필요에 의해 조성됐지만 놀랍도록 아름답다. 내부 온도가 13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창고는 50~60톤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양의 곡물을 보관할 수 있는 규모. 사람들이 바위를 기어다닐 수 있도록 홈을 파 놓았으며, 도르레를 사용한 흔적도 보인다. 곡물 창고 한 켠에 마련된 타쉬 메스짓 사원에서는 곡물 창고의 내부를 짐작해 보는 일이 가능하다. 사원은 나무 계단을 통해 편하게 드나들 수 있어 기도 시간이면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travie info 타르탄랄의 집┃관람시간 오전 8시~오후 5시 카라만 박물관┃관람시간 오전 8시30분~오후 12시30분, 오후 1시30분~오후 5시, 월요일 휴무 아름답고도 슬픈 땅 카파도키아 Kapadokya 페르시아어로 아름다운 말馬이라는 뜻의 카파도키아는 박해를 피해 살던 많은 크리스트교인들이 정착한 땅이다. 60~70년대부터 400년대까지 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크리스트교인들은 카파도키아의 어딘가에 숨어 피폐한 삶을 살아왔다. 지하 혹은 바위 동굴에 숨어 살던 그들에게는 크리스트교의 공인도 소용이 없었다. 교인들을 꾀어 내기 위한 술수라 여긴 그들은 크리스트교가 공인된 이후 더욱 깊은 곳으로 숨어 들었다. ‘데린쿠유’와 ‘카이마클르’와 같은 지하 도시는 애초에 히타이트인들이 파 놓은 곳이다. 박해를 피해 온 크리스트교인들은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방어를 하기 위해 지하를 오가며 살았다. 지하 도시의 규모는 생각보다 무척 크다. 침실과 부엌, 원형 극장에 교도소까지 갖추고 있을 정도. 가장 많을 때에는 2만~2만5,000명의 인구를 수용했다니 그 규모를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크리스트교인들이 정착한 땅에는 수도원 또한 많다. 카파도키아의 기괴한 지형은 그리하여 바위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은밀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괴뢰메 야외 박물관’은 매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라는 의미로 365개의 암굴을 파 수도원을 지었다는 곳이다. 기암괴석과 더불어 프레스코화의 상태가 좋은 동굴 교회가 꽤 있어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 돌아보면 도움이 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98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젤베 야외 박물관’도 괴뢰메 야외 박물관의 일부다. 젤베는 물이 흘러 만든 계곡으로 가장 깊은 골로 접어들면 물을 만나게 된다고 한다. 계곡 높은 곳에는 수도원이 지어졌고 성상파괴가 성행하던 8~9세기경 이곳 동굴은 은신처로 사용됐다. 크리스트교인들과 더불어 이슬람교인들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며, 이슬람 사원의 미나레와 유사한 구조물이 아직까지도 보존돼 있다. 스머프 마을이라는 명성답게 ‘파샤바’에는 버섯 모양의 바위가 줄지어 서 있다. 송이버섯처럼 몸통은 하얗고 갓은 거무튀튀한 모양새가 재미있다. 어떤 곳의 바위는 눈처럼 하얘 화이트 샌드 혹은 소금 사막과 같은 느낌이 든다. 지하 도시와 괴뢰메 박물관 등 여행자들이 걸어서 닿을 수 있는 카파도키아는 사실 일부에 불과하다. 수많은 기암괴석과 계곡이 이룬 이곳 땅은 길보다는 길이 아닌 곳이 더 많다. 이런 카파도키아를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은 열기구를 타는 것이다. 해가 뜨기도 전인 이른 아침, 여행자들을 가득 실은 열기구는 카파도키아의 하늘을 점점이 수놓는다. 열기구는 기암괴석에 가까이 가기도, 아주 높게 떠오르기도 하며 1시간 가량의 여정을 잇는다. 열기구를 타기 전에 잔뜩 겁을 먹었던 이들도 이내 적응해 하늘 아래 아름다운 경치에 취하고, 과도하게 흥분된 마음으로 과도하게 많은 사진을 찍고 나서야 지상에 발을 내디딘다. 열기구 투어는 단언컨대 상상보다 황홀하다. 무섭다는 이유로, 비싸다는 이유로 절대 망설이지 말 일이다. Travel to Turkey ▶항공 터키항공(서울 사무소 02-3789-7054 www.turkishairlines.com)에서 인천-이스탄불 직항편을 매일 운항한다. 인천 출발 23:55, 이스탄불 도착 05:00, 이스탄불 출발 00:45, 인천 도착 16:55. 기내 서비스도 만족스러운 편이다. 이스탄불-콘야, 이스탄불-카파도키아 등 이스탄불 국내선도 터키항공으로 이용 가능하다. ▶시차 터키가 한국보다 7시간 느리다. ▶화폐 터키시 리라Turkish Lira를 사용하며 TL로 표기한다. 2012년 12월 기준, 1TL이 0.556미국달러, 0422유로 가량. 대략 1TL에 600원을 곱하면 원화로 쉽게 계산이 가능하다. ▶레스토랑 소마치(0332-351-6696 www.somatci.com)는 셀주크투르크의 음식을 전문적으로 선보이는 레스토랑. 800년 전 요리법에 따라 메블라나의 책자에 나오는 음식을 선보인다. 토마토 소스나 해바라기 오일, 마가린 등 당시 콘야에 없던 재료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 게 특징. 100년 된 가정집의 방과 정원을 레스토랑으로 활용하고 있어 분위기도 그만이다. 하브잔(0332-324-1100 www.havzanetliekmek.com.tr)은 터키식 피자인 피데 전문점이다. 1m 가량 되는 기다란 에뜰리엑멕 피데를 자르지 않고 내어 와 보는 즐거움도 크다. 두 명은 족히 먹고도 남을 만한 피데가 6TL로 가격도 저렴한 편. 2m가 넘는 피데도 만든 적이 있다는 게 주인장의 전언이다. 피데를 먹고 나올 때 레몬향의 스킨도 뿌려 준다. 타카(0332-237-8802 www.takarestaurant.com.tr)는 흑해에서 잡은 생선요리를 선보이는 집이다. 육류가 대부분의 밥상을 지배하는 중앙 아나톨리아에서 생선요리는 반가운 메뉴. 여러 종류의 생선 중에서 선택을 하면 튀김옷을 입혀 맛있게 내어 온다. 레스토랑 분위기도 매우 고급스럽다. 야카마나스트르(0544-601-1312)는 30cm는 족히 넘는 잉어를 통째로 튀겨 선보이는 집. 잉어가 많이 잡히기로 유명한 베이쉐히르 호수에서 잡은 잉어를 요리의 재료로 사용한다. ▶카페 아이딘차부쉬(0332-325-2343, www.aydincavus.com)에서는 소박하지만 정겨운 콘야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진한 터키식 커피가 일품이다. 시니(0332-237-5853)는 세련된 분위기 속에서 도심을 360도 전망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자 카페다. 콘야 시내의 쿠레플라자 42층에 자리한다. 실레(0332-244-9028)는 터키전통의 물담배를 경험할 수 있는 커피숍이다. 성헬레나교회가 자리한 실레에서도 분위기가 꽤 괜찮은 곳으로 손꼽힌다.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설 연휴, 가족과 전통예술에 흠뻑

    설 연휴, 가족과 전통예술에 흠뻑

    짧은 설 연휴, 가까운 공연장에서 다양한 국악과 전통놀이를 즐기면서 명절 분위기를 만끽하는 것도 좋겠다. 국립국악원은 10일과 11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과 야외마당에서 설날 맞이 기획공연 ‘여민동락’(與民同)을 준비했다. 한 해의 소원을 빌고 차 한 잔과 덕담을 나누는 ‘접빈다례’, 음악·춤·그림이 어우러진 ‘풍류다회’ 등 세시풍속을 체험하는 시간이다. 국립국악원 소속 단체가 궁중무용 ‘처용무’, 관악합주 ‘경풍년’, 가사 ‘춘면곡’, 민요 ‘아리랑’ 등을 공연한다. 무대 위에서 서예가 김영삼 선생이 국립국악원의 신년휘호를 쓰고, 전정우 선생이 계사년 상징인 뱀을 그릴 예정이다. 관객들에게는 전통주와 한과를 제공한다. 국립국악원 야외광장에 제기차기, 투호 등을 경험하는 전통 민속놀이 체험장을 만들었다. 예악당 로비에는 토정비결을 보고 가훈을 써주는 코너도 마련했다. 1만원. (02)580-3300.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은 9일 부산 남구 대연동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 ‘설맞이 국악한마당’ 연주회를 올린다. 무병장수와 풍요를 기원하는 자리로 궁중 연례음악 ‘수연장지곡’, 가곡 ‘영제시조’, 무용 ‘장고춤’, 민요 ‘금강산타령’, 풍물놀이 ‘판굿’ 등으로 구성했다. 수석지휘자 김철호, 집박 채수만, 가곡 예능보유자 이종록, 한국무용가 장선희 등이 출연한다. 공연 1시간 전부터 좌석권을 선착순으로 배부한다. (051)607-3123. 서울 중구 정동극장은 전통뮤지컬 ‘미소’(MISO)의 9·10일 관람객에게 설맞이 한과를 선물한다. 이날 극장을 찾는 관람객을 위해 전통놀이를 체험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28일까지 공연예매권, 가족&연인 패키지(공연 티켓 2장·전통의상체험촬영)를 20% 할인된 가격에 판매한다. 4만~5만원. (02)751-1500.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커버스토리] 김 차장, 당신은 눔프입니까

    [커버스토리] 김 차장, 당신은 눔프입니까

    40대 초반의 가장인 김세금씨. 10대 그룹 계열사의 차장으로 연봉 7200만원(상여금 포함)을 받고, 서울 강동구에 5억원짜리 30평형대 아파트를 갖고 있는 서울의 대표적인 중산층이다. 오전 6시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부터 그의 주머니에서는 세금이 나간다. 씻는 데만 샴푸 등의 부가가치세로 21원이 나간다. 출퇴근길에도 차량 기름값의 절반 정도인 1850원을 교통에너지환경세 등으로 낸다. 출근길 아침 식사용으로 5000원짜리 커피와 베이글 세트를 사는 데 455원의 부가세를 냈다. 담배 한 갑(2500원)을 사면서 또 담배소비세로 1549원을 냈다. 점심에는 김치찌개(7000원)를 먹으면서 636원의 부가세를 계산했다. 마침 이날은 월급날. 명세서에 찍힌 숫자는 521만 7000원이다. 소득세(37만 8800원)와 건강보험료(16만 6370원) 등으로 78만 2940원을 뗐다. 월급에서만 매일 2만 6098원의 세금이 나가는 셈이다. 퇴근 길에 동료 3명과 가볍게 소주 한 잔을 걸쳤다. 삼겹살 6인분(7만 2000원)을 먹으며 6545원, 소주 4병(1만 2000원)에 3484원의 세금을 냈다. 소주에는 부가세 외에 주류세가 병당 530원이 더 붙었다. 대리기사 비용으로 1만 5000원을 지불했다. 역시 부가세 1364원이 들어가 있다. 차에서 내리니 아파트 상가의 빵집이 눈에 들어왔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딸에게 ‘월급 턱’으로 3만원짜리 케이크를 샀다. 부가세 2727원이 따라붙었다. 김씨가 하루에 낸 세금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파트 재산세 등으로 1년에 57만 6000원, 자동차세로 연간 25만 9740원을 냈으니 하루로 치면 각각 1578원, 712원이다. 결국 김씨가 눈떠서 잠자리에 들기까지 하루에 낸 세금은 평균 4만 7015원이다. 연봉의 4분의1이 넘는 1716만원을 해마다 세금으로 내고 있는 셈이다. 김씨는 생각한다. ‘복지도 좋지만 세금은 더 내지 않았으면….’ 25일 기획재정부와 경제연구소 등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를 지배할 주요 현상 가운데 하나는 ‘눔프’(NOOMP)다. ‘복지는 좋지만 내 지갑에서 돈이 나가는 것은 안돼’(Not Out Of My Pocket)라는 심리를 뜻하는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노인 기초연금(14조 6672억원)과 반값 등록금(7조원) 등 여러 복지 공약을 내걸었다. 이를 위해서는 135조원이 필요하다. 재정부가 이달 말 제출을 목표로 열심히 재원 조달 계획을 작성 중이지만 돈을 쥐어짜내기가 쉽지 않은 여건이다. 결국 증세밖에 답이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김유찬 홍익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는 “부가세나 소득세율 인상 등 보편적 증세를 선택하든 아니면 부유세 등 부자 증세를 하든 구체적인 증세 방안을 고민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복지사회로 가려면 눔프 극복이 필수”라면서 “(피할 수 없는 독배인)증세의 불가피성을 설득할 수 있는 소통의 리더십과 갈등 조정 역할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세종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 남해 외딴섬 ‘추도’의 겨울

    남해 외딴섬 ‘추도’의 겨울

    해마다 겨울이면 전체가 물메기덕장으로 변하는 섬이 있다고 했습니다. 큰놈들은 얼추 아기 기저귀만 해서 물메기 말리는 풍경이 겨울 추위를 떨쳐버릴 만큼 넉넉해 보인다고도 했지요. 경남 통영의 난바다에 뜬 섬, 추도(楸島) 이야기입니다. 추도 사람들은 물메기 등을 따고, 널고, 말리고, 펴고, 열 마리 한 축으로 묶는 일을 제철 석 달 동안 쉬지 않고 되풀이합니다. 엄동설한을 마다 않는 그 정성은 고스란히 맛이 되지요. 통영 사람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추도 메기를 장독대 등에 보관했다가 설날 제삿상에 올리기도 하고, 곶감 빼먹듯 겨우내 조금씩 꺼내 먹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독에 넣어둔 추도 메기가 바닥을 드러낼 쯤 푸른 봄이 찾아오는 거지요. 거제 외포항에선 긴 방파제 전체가 대구덕장으로 변한 이색적인 풍경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펄떡대는 대구들이 파란 바다 위에 내걸린 모습, 상상이 되십니까. 오전 7시. 해가 뜨는 시각이다. 통영여객터미널은 이때가 가장 번잡하다. 주변 섬들로 향하는 배들이 대부분 이 시간대를 전후해 출발하기 때문이다. 추도는 가깝다. 통영에서 한 시간 남짓 걸린다. 관광객들에게는 그게 장점이다. 이른 아침, 배를 타고 들어가 섬을 한 바퀴 둘러본 뒤, 오후에 배를 타고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숙박하는 것도 좋다. 오후 배로 들어가 하룻밤 잔 뒤 다음 날 아침 일찍 나올 수 있다. 남해 난바다에 떠있는 섬이니, 날씨만 좋다면 해넘이와 해돋이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여객선에서 마주한 새벽 풍경이 기막히다. 멀리 한산도 등 섬 위로 빠알간 해가 얼굴을 내민다. 바다도 덩달아 붉게 충혈됐다. 배는 새벽이 선사하는 몽환적인 파란빛과 붉은 여명의 경계를 내달린다. 속도는 느리다. 통영에서 14㎞ 남짓 떨어진 추도까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니 말이다. 한 시간여 금파(波)를 헤친 배가 미조마을에 승객들을 내려놓았다. 섬의 첫인상은 평이하다. 불퉁스러운 표정으로 배에서 물건을 싣고 내리는 섬 사내들과 초점 없는 시선으로 뭍 사람들을 구경하는 촌로들, 그리고 겅중대며 뛰어다니는 검둥개까지, 외딴 섬의 전형적인 풍모다. 한데 도드라진 풍경 하나가 이방인의 시선을 끈다. 물메기덕장이다. 강원도 황태덕장처럼, 물메기를 말리는 곳이다. 한곳에 몰려 있는 황태덕장과 달리 물메기덕장은 마을 곳곳에 퍼져 있다. 게딱지만 한 공간이라도 있다면 어디건 물메기덕장이 된다. 선착장에서 마을로 오르는 고샅길이며 골목 여기저기 물메기로 꽉꽉 찼다. 심지어 집 지붕 위에서도 물메기들이 꾸덕꾸덕 말라간다. 잡아서 널기까지의 과정이 힘들지, 말리는 일이야 어려울 게 없다. 덕장에 걸어 놓으면 볕과 바닷바람이 알아서 말린다. 섬 주민 박금도(75)씨는 올해 물메기가 최고 조황이라고 했다. 자신을 포함해 4대째 추도에서 물메기를 잡고 있다는 그의 설명은 걸쭉하고 시원시원하다. “미기(물메기)는 (바닷)물이 뜨시면 안 나. 추붜야 나오지. 올겨울에 유난히 추붜가 (물메기가) 마이 났지.” 추도는 물메기의 고향이다. 통영 등에서 판매되는 물메기의 팔할은 추도산이란 말이 있을 정도다. 물메기는 우리나라 모든 바다에서 난다. 그런데 왜 하필 추도일까. 추도 앞바다가 산란지라는 설명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동중국해 등에서 여름을 난 물메기는 겨울이면 산란을 위해 한국 연안을 찾는데, 그곳이 바로 추도 인근 해역이라는 것이다. 한겨울의 물메기가 맛있는 것은 산란을 위해 살을 찌우기 때문이다. 물메기 수명은 1년 남짓. 대부분 산란을 마친 뒤 죽는다. 추도 사람들은 물메기란 표현을 내심 싫어한다. 조경렬(68) 대항마을 이장은 “그기 미기(메기)지 왜 물메기고?”라며 마뜩잖다는 표정이다. 오래전부터 섬 사람들에게 불려온 이름이 더 가치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주민들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게 또 있다. 뭍사람들이 흔히 ‘옛날에는 물메기를 생선으로 취급하지 않아 잡혀도 그냥 버렸다’고 평가절하하는데, 이게 틀렸다는 거다. 조 이장은 “여기선 (물메기를)버리지 않았다고. 묵고 살 것도 없었는데 애써 잡은 걸 와 버리겠노?”라며 아쉬워했다. 지금처럼 귀한 대접은 아닐망정, 몹쓸 생선 취급하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추도 어민들은 모두 대나무 통발로 물메기를 잡는다. 플라스틱 통발을 쓰는 다른 지역의 어선들에 견줘 환경친화적인 전통 어법을 고수하고 있는 셈이다. 그 탓에 대나무 통발을 수리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다. 11월 말쯤 마을 앞바다에 통발을 내린 뒤, 수선을 거듭하며 이듬해 3월까지 쓴다. 추도 사람들은 물메기가 본격적으로 나는 12월부터 2월까지, 3개월 정도 번 돈으로 1년을 버틴다. 올해는 어장 형성이 다소 늦어 12월 중순쯤부터 본격적으로 물메기가 나기 시작했다. 다행이라면, 예년에 견줘 훨씬 많은 양이 잡히고 있다는 것. 집집마다 3동(100마리)쯤 수확하는 건 흔하고 5~6동씩 잡는 날도 있다. 이른 아침에 조업을 나갔던 어선들은 점심 무렵 돌아온다. 남정네들이 배에서 물메기를 내리면 아낙들은 마을 우물가에 모여 이를 손질한다. 물메기의 등을 따 내장과 알, 아가미 등을 깨끗하게 발라낸다. 아가미와 알은 젓갈을 담고, 두툼한 몸체는 여러 번 민물에 씻은 뒤 덕장으로 보낸다. 핵심 포인트는 여느 바닷물고기와 달리 민물에 씻어 말린다는 것. 주민들은 “바닷물에 씻으면 짭아서 못 먹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물메기 손질은 일종의 품앗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너나없이 돕는다. 품삯은 물메기로 받는다. 이 또한 오랜 전통이다. 섬 사람들에게 물메기는 현금과 다름없을 터. 1동에 두 마리가 묵계다. 물메기는 꼼칫과의 물고기답게 살이 흐물거린다. 섬 주민들은 회가 별미라며 ‘강추’하지만, 쫀득한 살점에 길들여진 도시인들에겐 어색할 수 있다. 맑은탕으로 끓인 국물은 더없이 시원하다. 매생이죽처럼 ‘술술’ 넘어간다. 남해 지역 술꾼들이 속풀이 음식으로 즐겨 먹었던 것도 그런 까닭이겠다. 물메기는 무엇보다 말려서 먹는 게 일품이다. 가격도 생물보다 훨씬 비싸다. 국에 넣어 끓이면 딱딱했던 물메기가 부드럽게 풀어지며 먹기 좋은 상태가 된다. 술안주로도 최고다. 굽거나 튀긴 다음 고추장 등에 찍어 먹는다. 말린 물메기는 택배의 경우 한 축(10마리)에 10만원부터 17만원까지 4등급으로 나눠 팔고 있다. 현지에서 사면 훨씬 싸다. 상품의 경우 10만원을 훌쩍 넘기지만, 하품은 4만~5만원짜리도 있다. 추도는 작은 섬 치고 은근히 볼거리가 많다. 무엇보다 물색이 곱다. 맑은 날이면 하늘과 바다가 어우러져 파란색 젤리처럼 보인다. 한 술 떠먹으면 입가에 파란 물감이 묻을 것 같다는 식의 농짓거리가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섬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두 시간이면 넉넉하다. 추도는 ‘큰산’을 경계로 대항마을과 미조마을로 나뉜다. 외지인들이 종종 큰산을 ‘희망봉’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섬 주민들은 이를 영 탐탁지 않게 여긴다. 기암들로 이뤄진 해안은 인적 드문 섬 동쪽, 그러니까 샛개부터 펼쳐진다. 샛개 아래로 내려가 꼼꼼하게 살펴야 기골이 장대한 해안절벽과 만날 수 있다. 샛개는 해돋이 풍경이, 미조마을 용두암은 해넘이 풍경이 멋들어지다. 큰산 정상까지 오를 수도 있다. 다만 30년 넘게 사람의 발길이 끊겨 오르는 길이 녹록지는 않다. 큰산 정상엔 뜻밖에 너른 안부가 펼쳐져 있다.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친 나무들 사이로 남해의 쪽빛 바다가 얼굴을 내민다. 오르는 길에서 세월의 더께를 걷어 내면 옛 다랑논과 집들의 흔적이 튀어나온다. 조 이장은 농촌체험을 원하는 도시인들에게 작은 다랑논들을 임대한다든지, 큰산을 통해 미조와 대항마을을 잇는다든지 해서 섬 관광을 활성화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때쯤 되면 오르기 수월하고 볼 것도 많은 ‘큰산’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작은산엔 무인등대가 있다. 추도에서 오후 배로 통영에 나왔다면 반드시 산양일주도로에 들를 일이다. 맑은 날이면 피보다 붉은 노을과 만날 수 있다. 산양일주도로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은 달아공원이다. 예서 마주하는 남해 풍경이 장쾌하다. 당포대첩지 인근의 원항마을 해넘이 풍경도 빼어나다. 당포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함대가 왜구의 배 21척을 괴멸시킨 전승지다. 달아공원이 웅장하고 서사적이라면, ‘장군봉’ 중턱의 마을 언덕에서 맞는 해넘이는 한결 소박하고 서정적이다. 겨울 남해의 풍성한 맛과 만나고 싶다면 거제 장목면의 외포항으로 향하는 게 순서다. ‘대구의 본고장’쯤 되는 포구다. 대구는 동해안에 서식하다 겨울철 산란을 위해 남해안으로 내려오는데, 장목 앞바다가 그 길목 노릇을 한다. 해마다 12~2월이면 장목 일대에 대구어장이 형성된다. 대구는 수컷이 비싸다. 암컷은 알을 빼고 나면 먹을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맑은탕이야 익숙한 음식이고, 대구찜이 독특하다. 묵은 김치에 대구를 싼 다음 쪄 낸다. 외포항 주변 대부분의 식당들이 대구찜 2만 5000원, 맑은탕 1만 5000원(이상 1인분)을 받고 있다. 생대구 수컷 최상품은 6만~7만원선, 말린 대구는 2만 5000~5만원 선이다. 외포항에서 가거대교 방향으로 10분 남짓 가면 장목항이다. 적요한 포구에 들면 일부 혹은 전체가 노랗게 칠해진 배들이 눈에 띈다. 잠수기 어선들이다. 일반 어선과 달리 잠수부들이 바닷물 속에서 어패류를 캐는 것이 주업이다. 현지에선 ‘머구리’라고 부른다. 배가 한결같이 노란색인 건 ‘잠수부들이 바닷속에서 작업 중이니 지날 때 조심해 달라’는 경고의 뜻이다. 요즘 주로 나는 건 키조개와 대합 그리고 우럭(조개)이다. 특히 키조개는 관자가 가장 통통해지는 시기여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다. 한 개 1000~1500원. 우럭은 1㎏에 1만 5000원선이다. 대합은 시세 차가 큰 편인데 1㎏에 1만 5000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포구 바로 앞의 ‘제1, 2구 잠수기 수협거제지소공판장’에서 살 수 있다. ■ 여행수첩 →가는 길:통영여객터미널(644-0364)에서 한려페리호가 오전 7시, 오후 2시 30분 추도까지 오간다. 오전 배는 미조마을을 먼저, 오후 배는 대항마을을 먼저 들른다. 어느 마을에서 타도 상관없지만, 시간 안배는 잘 해 두는 게 좋다. 어른 편도 7550원. 조경렬 이장(017-566-7115), 미조마을 심춘우 이장(010-9313-2628). →잘 곳:여관은 없다. 민박을 해야 한다. 하루 4만~5만원. 음식점도 없다. 민박집에서 주문해 먹어야 한다. 한 끼 7000원이다. 메기탕은 1만원. 샛개 쪽에 명리의 집(010-4571-7759) 펜션도 있다. 글 사진 통영·거제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외국인들에 인기 ‘한국 회식문화 체험’ 동행해 보니…

    외국인들에 인기 ‘한국 회식문화 체험’ 동행해 보니…

    “세이(say) 건배~.” 지난 18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종로3가의 한 고깃집. 불판 위로 술잔을 부딪치는 직장인들 사이에 주위를 둘러보며 조심스레 술을 따르는 9명의 외국인이 눈에 띈다. 어색한 분위기는 잠시, 지글지글 갈매기살이 익는 소리에 소주잔이 몇 순배 돌아가자 금세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동행한 한식 여행 전문가가 ‘폭탄주’의 일종인 ‘타이타닉주’를 선보이자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외국인들의 눈빛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잔에 술이 찰 때마다 여기저기서 폭소와 탄성이 나왔다. 외국인들은 행여 놓칠세라 그림까지 그려가며 폭탄주 제조법을 받아 적는가 하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스웨덴에서 온 시실리아(51·여)는 “스웨덴에서는 술 도수가 워낙 세서 폭탄주도 거의 없고, 술을 섞어 마시지도 않는다”고 자기 나라와 비교를 하기도 했다. 길게는 3~4차까지 가는 한국의 술 문화가 알려지면서 ‘나이트 다이닝 투어’ 등 이색 음주문화 체험 프로그램이 외국인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이날 모인 외국인들은 김치만큼이나 화끈하고 독특한 우리나라의 회식 문화를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고 했다. 호주, 영국, 스웨덴, 미국 등 국적부터 직업, 나이도 각양각색이다. 얼굴이 발그레해지자 한 목소리로 “2차는 어디죠?”를 외쳤다. 2차에서는 청주에 떡볶이 안주가 나왔다. 떡볶이가 맵다며 다들 쩔쩔맸지만 안주 접시는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남자친구와 함께 한국을 찾은 영국인 마리사(30·여)는 “술 좋아하기로 소문난 영국인도 친구와 펍 크롤(pub crawl·술집 돌기)을 하는 일이 있지만 한국에서처럼 직장 동료나 상사와 함께 회식을 하는 일은 거의 없다”면서 “최근 런던과 한국 사이에 직항 노선이 늘면서 영국인들 사이에서 한국 여행 붐이 일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잔 두잔 더해진 술잔은 처음 보는 사람들 간의 서먹함을 녹여줬다. 3차로 향한 피맛골 골목 사이에 있는 두부비지집. 외국인들은 막걸리잔을 서로 따라주며 낯선 음식을 맛본 소감부터 사는 이야기까지 자신들의 사연들을 실타래 풀듯 풀어냈다. 1970년 대구에서 룩셈부르크에 입양됐다는 소니 피카드(48·여)는 “4차는 광장시장에서 빈대떡과 동동주를 마신다는데 전통시장을 가본다는 것이 무척 기대된다”면서 “오늘 제 생일인데 삽겹살에 소주로 5차는 안 갈래요?”라고 말하며 즐거워했다. 신기하고 즐거운 체험 속에 한국인들처럼 술을 마시다가는 큰일나겠다는 얘기도 나왔다. 호주인 알비 샤르프(52)는 “모든 사람이 편안한 자리 속에 이야기할 수 있는 점은 좋지만 늘 3~4차까지 가면 마지막엔 고주망태가 돼 기억을 잃어버리게 될 것 같다”면서 “한국은 회식이 매우 잦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술을 마시면 다음날 일할 때 너무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스웨덴인 롤랑드(61)는 “우리나라에서는 회사 사람들과의 파티는 크리스마스 같은 때나 하고 그나마 2~3차로 이어지는 경우도 없다”면서 “맞벌이하는 부부가 대부분이어서 번갈아가며 아이를 봐야 하기 때문에 일이 끝나면 집으로 가는 게 일상”이라고 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무덤에서 큰 부자 무슨 소용있겠는가…죽기 전에 쉬는 법을 먼저 배워야”

    “무덤에서 큰 부자 무슨 소용있겠는가…죽기 전에 쉬는 법을 먼저 배워야”

    미국과 유럽에서 선풍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세계적인 명상 수행가 아잔 브라흐마(62) 스님이 한국에 왔다. 10일 개막해 16일까지 서울 중구 필동 동국대에서 열리는 ‘세계명상힐링캠프’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스님은 ‘선정체험과 실체 깨침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고대 불교명상을 과학적 명상체계로 복원한 자신의 집중수행을 즉문즉설과 실참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캠프 개막에 앞서 10일 조계사에서 기자들과 나눈 일문일답.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명상을 하나. -(앞의 찻잔을 들어 보이며)이 잔을 1분을 넘겨 5분가량 들고 있으면 팔이 저려 오고 고뇌에 빠지게 된다. 30초만 내려놓았다가 다시 든다면 훨씬 쉽게 들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명상을 하는 이유이다. 명상은 마음의 고요가 얼마나 효율적인지를 알게 해 준다. →영국 명문 케임브리지대를 그만두고 출가한 이유는. -출가 전 모든 종교를 탐색해 보았다. 일종의 시장조사를 먼저 한 셈이다. 불교가 나에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대학 시절 처음 명상을 배웠고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유명한 과학자들, 특히 물리학자들 가운데 불교신자가 많다. 대학시절 존경했던 교수들과 지금도 교류하고 있다. →불교신자 물리학자가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우주 세계는 여러 번의 빅뱅이 있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빅뱅은 가장 최근 것에 불과하다.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생겼다가 소멸하는 이 우주현상을 현대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과학도 출신인 불교도의 입장에서 굳이 불교와 과학을 분리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 불교 명상에 편승한 힐링 열풍이 강하게 불고 있다. 어떻게 봐야 하나. -2500년 불교의 역사는 마음 탐색이 핵심을 이룬다. 마음 작용이 어떻게 용서와 평화에 영향을 미치는지 고민하는 과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서구 의학계는 지금 불교와 건강의 상관관계 연구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다. 몸의 건강에 마음 건강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입증한 성과도 숱하다. 한국사회의 힐링 열풍도 그런 맥락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아잔 스님의 명상과 한국불교 간화선의 수행법은 어떻게 맞닿아 있나. -다른 종류의 명상이라고 해서 차이가 있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현대차이든 기아차이든 목적지에 가 닿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명상의 방편에 상관없이 어떻게 수행하는지가 중요하다. 명상 자체를 떠나 평화롭고 친절하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관대할 필요가 있다. →현대인이 안고 사는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요즘 사람들은 빨리빨리 서두를 줄만 알았지, 가만히 고요하게 머물지 못한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갈수록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더 오래 살 수 있다. 무덤에서 큰 부자로 있다는 게 무슨 소용 있나. 죽기 전에 편하게 쉬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더 높은 경지의 깨달음을 경험하고도 초기의 선정으로 돌아간 이유는 뭔가. -수행자들을 해탈의 경지로 데려다 주는 일종의 운송수단이라고 봐야 한다. 부처님 자신도 초선에서 경험한 환희심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제자들이 그 초선의 환희심을 궁극의 깨달음으로 연결하도록 이끈 방편이 아닐까 한다. →명상센터나 스승을 만나지 않고도 일상에서 명상 수행을 할 수 있나. -요리를 배울 때 일단 요리법을 먼저 배운다면 훨씬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명상이 고요하고 평화롭게 된다면 굳이 스승을 찾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서양 사람들은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 나쁜 악업을 많이 쌓았다. 그 악업을 풀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서로의 종교를 존중했으면 한다. 한국의 문화와 정서는 아름답다. 굳이 서구문화를 좇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아잔 브라흐마 스님은 1951년 영국 런던 태생. 케임브리지대에서 물리학을 공부하던 중 불교에 심취했으며 태국에서 아잔차의 제자로 출가했다. 호주 보디니야나 수행센터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 명상수행법을 전파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명상 에세이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의 저자이며 근간으로 ‘성난 물소 놓아주기’, ‘놓아버리기’, 명상안내 요약집 ‘멈춤의 여행’을 내놓았다.
  • [커버스토리] 세종청사 시대 3주째… 박재완 재정의 24시

    [커버스토리] 세종청사 시대 3주째… 박재완 재정의 24시

    지난달 27일 오전 6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기 성남 분당구 정자동 자택에서 평소보다 조금 일찍 길을 나섰다. 이날의 목적지는 재정부가 새로 둥지를 튼 세종시가 아닌 서울 광화문이었다. 오전 8시부터 청와대에서 비상경제대책회의가 열렸기 때문이다. 박 장관은 회의가 끝나자마자 세종정부청사로 향했다. 2시간 30분 걸려 도착해 재정부 기자단과 오찬을 함께한 뒤 다시 서울 여의도로 향했다. 그날 오후 2시 30분부터 세종청사 개청식이 있었지만 새해 예산안 처리 등을 위해 국회에서 비공개 당정 간담회를 가져야 했다. 박 장관이 이날 하루 서울과 세종청사를 오가며 길에 버린 시간만 6시간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4일 “앞서 20일에는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해야 했다”면서 “박 장관이 워낙 건강 체질이기는 하지만 체력 부담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재정부가 과천청사에서 세종청사로 옮겨온 것은 지난달 20일이다. 벌써 3주째 접어들고 있지만 박 장관이 세종청사에 머문 날은 단 3일에 불과하다. 그것도 온종일 머문 것이 아니라 잠깐잠깐 볼일을 보고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시간으로 따지면 세종 체류는 10시간 남짓이다. 세종시 첫마을에 장관 관사가 있지만 잠을 잔 적은 한 번도 없다. 6개 부처가 세종청사로 이사했지만 주요 회의와 행사는 여전히 서울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과천청사에서 ‘방’을 뺀 탓에 서울에서는 주로 광화문 서울청사와 명동 은행연합회관, 여의도 국회 안 사무실을 이용한다. 관용차인 준중형 하이브리드 승용차도 주된 업무공간이다. 본의 아니게 ‘움직이는 사무실’ 시대를 맞고 있는 셈이다. 재정부 고위관계자는 “장관께서 서울에 아침 일정이 없는 날에는 가급적 세종청사에서 업무를 보려고 하지만 여의치 않은 실정”이라며 “앞으로도 상당 시간을 길에서 보내야 할 것 같다”고 털어놨다. 다른 장관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은 지난달 17일 세종시로 내려왔지만 거의 매일 서울을 오르내렸다. 그래도 세종시 첫마을 장관 관사에서 2~3일씩 숙박했으니 박 장관보다는 사정이 낫다. 박 장관과 비슷한 시기에 이삿짐을 싼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도 이틀 중 하루는 서울에서 보내고 있다. 그나마 장·차관들은 회의 핑계라도 대고 서울에 온종일 머무를 수 있지만 국장급 간부들은 꼼짝없이 서울과 세종을 ‘셔틀’처럼 오가야 해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재정부 고위공무원 A씨는 “서울에서 일을 보고 밤늦게 세종청사로 돌아오면 밥 때를 놓쳐 굶은 적도 많다”면서 “5000명이 넘는 공무원들이 단체로 ‘귀양’ 온 셈”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부는 정보기술(IT)을 활용해 화상회의 등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하지만 한계가 있어 보인다. 재정부의 또 다른 고위관계자는 “해킹 등으로 비공개회의 사항이 외부에 유출될 위험을 감수하느니 서울에 모여 얼굴을 맞대고 회의를 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귀띔했다.세종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세종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커버스토리-1983 과천 vs 2013 세종] 세종시 지금은 불편하지만 스마트 행정도시로 발전 기대

    [커버스토리-1983 과천 vs 2013 세종] 세종시 지금은 불편하지만 스마트 행정도시로 발전 기대

    “과천으로 유배됐다.” 30여년 전 정부부처의 과천 이전이 현실로 나타나자 공무원들은 이렇게 탄식했다. ‘구내식당 2부제’, ‘행정 비효율 초래’, ‘주변 편의시설 부족’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지금의 세종시대와 완전히 ‘닮은꼴’이다. 1980년까지만 해도 과천은 경기 시흥군의 인구 1만명에 불과한 촌락이었다. ‘서울 무섭다고 과천부터 긴다’는 속담으로나 접해 본 ‘오지’에서 근무하게 된 공무원들의 심경은 참담했다고 한다. 이런 과천청사 이전과 지금의 세종청사 이전을 모두 경험한 중앙부처 고위공무원들에게서 1980년대 과천과 2013년 세종시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방담에는 은성수(51·행정고시 27회)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정책국장, 손병석(51·기술고시 22회) 국토해양부 국토정책국장, 박천규(48·행시 34회) 환경부 기후대기정책관 등 3명이 함께했다. →과천시대 이전은 어땠나. 은성수 1984년 재무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는데 1986년 초까지 지금의 서울 세종로 이마빌딩에 재무부가 있었다. 당시에는 공무원들 대부분이 차가 없었다. 퇴근하면 우르르 종로 쪽으로 버스나 지하철을 타러 갔다. 그러다 누군가 “대포나 한 잔” 하고 바람 잡으면 청진동 골목길로 방향을 틀었다. 자연스럽게 끈끈해졌다. 손병석 1987년 첫 월급봉투를 받아보고 대학생 때 과외 교습비보다 못해 황당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이미 과천청사시대가 열린 뒤였는데 지하철 4호선은 아직 건설 중이었고 남태령 고갯길은 확장공사 중이었다. 그래서 서울 동료들에게 출퇴근길은 늘 전쟁이었다. 박천규 1990년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때는 서울 잠실의 환경처(환경부 승격은 1994년) 시절이었다. 단독 청사이다 보니 서로 모르는 직원이 없었다. 토요일 오전 근무가 끝나면 함께 족구를 하기도 했다. →과천 이전으로 달라진 점은. 은 1986년 과천으로 갔더니 출퇴근 교통이 불편해 과천청사 앞에 택시들이 도열해 있었다. 사당역까지 1인당 1000원씩 받았고 4명이 다 차야 출발하는 합승이 일반적이었다. 나중에는 하나둘씩 차를 구입하게 돼 허전하게 주차장에서 흩어지곤 했다. →업무환경은 어땠나. 손 청와대 보고를 하면 두꺼운 판지를 여러 쪽 이어 붙여 보고용 병풍을 만들었다. 필경사를 불러 병풍에 내용을 쓰게 했다. 타이핑 담당 여직원이 있어 기계식 타자기로 공문을 찍어주기도 했다. 시·도에서 시행하는 공문을 작성하려면 먹지와 갱지를 여러장 겹쳐 글쇠를 힘껏 쳐야 했다. 밤늦게 타이핑하던 여직원 손가락이 갈라터져 피가 나기 일쑤였다. 국회 질의 답변서를 사무관이 직접 썼는데 회의장 앞 복도에 신문지를 깔고 주저앉아서 가방을 받치고 작성했다. 은 1986년은 우리나라 국제수지가 처음 흑자로 전환된 해다. 적자시대 정책을 많이 바꾸고 개방화도 시작하면서 정말 야근했던 생각밖에 안 난다. 컴퓨터나 인터넷이 없는 아날로그 시대니까 일일이 타이핑을 해서 윗사람에게 대면 보고했다. 윗분들 편의를 위해 125%로 확대 인쇄하기도 했다. 박 1991년과 1994년 두 차례 낙동강 오염사고가 있었다. 고도성장의 부작용이 나타났고, 환경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새로운 업무가 쏟아졌다. 1991년 환경개선부담금제도 도입이나 1995년 쓰레기 종량제 도입 같은 굵직한 정책들이 만들어졌다. 야근이 잦았는데 상사가 자리에 남아 있으면 감히 먼저 퇴근할 수 없었다. →2013년 세종시의 업무환경은. 은 지금은 업무를 ‘스마트’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이다. 보고는 이메일로 하고, 장차관도 스마트폰으로 결재를 한다. 서울과 이처럼 멀리 떨어진 곳에 행정도시를 만든다는 건 스마트환경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세종청사는 옛날 같았으면 불가능했다. 스마트 업무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 앞으로 더 발전할 것으로 본다. 박 과거엔 당연시됐던 대면보고가 많이 사라졌다. 유무선을 통한 구두보고도 일반화됐고, 아이패드를 활용한 보고도 많다. →과천과 세종을 비교하면. 손 1987년만 해도 과천은 지금의 세종시처럼 을씨년스러웠다. 개발이 덜 돼 빈 땅도 많았고, 가로수는 갓 심어 자그마했다. 도로는 아직 공사 중이었고, 비만 오면 곳곳이 진흙탕으로 변해 곤욕을 치렀다. 미분양 주택이 많아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 부 직원들을 상대로 강매까지 이뤄졌다. 은 (과천 인근의) 인덕원, 평촌 등이 개발됨에 따라 대중교통이 크게 개선되면서 과천이 서울의 일부처럼 느껴지게 됐다. 세종시는 좀 심하게 말하면 ‘청사밖에 없는 도시’다. 지금 짓고 있는 아파트 입주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2014년 이후가 되면 세종시도 도시 기능이 정상화될 것으로 본다. 박 과천은 계획도시로 성공한 사례다. 행정도시로 출발했지만 주거환경이 편리하고 대공원, 경마장 등 문화공간도 갖췄다. 세종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여기저기서 불만들이 많이 들린다. 앞으로의 세종, 어떻게 변화시켜 나가야 할까. 은 세종시는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이 자체로 발전시켜야 한다. 국회나 다른 행정기관과의 물리적 거리를 극복할 보완방안을 마련하고, 대학 등 교육여건을 확충해 도시로서의 기능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솔직히 세종청사의 경우 새집 냄새도 나고 불편함이 많지만 지엽적인 부분이다. 세종시를 어떻게 발전시켜나갈 것인지에 대한 합리적인 컨센서스(공감대)가 필요하다. 세종시 발전이 나라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손 세종청사 개청은 지방 분권과 국토 균형발전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국정 운영이라는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보면 낡은 행정관행과 의식을 혁파하고 선진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박 소소하지만 회의 문화도 많이 바뀔 것이다. 서울역이나 오송역 등 교통편이 좋은 곳에서 회의가 열리고 화상회의도 더 많이 활용될 것 같다. →끝으로 두 번의 청사 이전을 겪은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손 세종시가 꼭 불편한 것만은 아니다. 전국 어디든 두 시간 안에 갈 수 있다. 주말에 가족과 함께 놀러가기에도 좋다(웃음). 박 불편함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계기로 삼아 봐도 좋을 것 같다. 은 외국 공무원들이 꼭 물어 보는 말이 있다. “이전할 때 공무원들이 반발하지 않았느냐”고. 그러면서 “한국 공무원들의 헌신적이고 적극적인 태도가 부럽다”고 말한다. 후배들의 업무에 대한 열정으로 세종청사 시대가 빠르게 정착하기를 기대한다. 정리 세종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인간의 조건’ 쓴 한승태씨

    [저자와 차 한 잔] ‘인간의 조건’ 쓴 한승태씨

    섭씨 영하 10도 안팎의 날씨에도 얇은 셔츠에 얇은 점퍼 하나만 걸친 채 나타났다. 2007년 겨울 전남 진도 서망항의 꽃게잡이배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 편의점과 서초구 서초동 주유소, 충남 아산의 돼지농장과 당진의 자동차부품공장 용역직, 강원 춘천의 오이 비닐하우스까지 거친 그의 이력으로 보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이력에 어울리지 않게 손가락이 하얗고 길었다. 춘천의 한 대학 경영학과를 나온 그는 스물여섯 무렵부터 한 달 죽도록 일한 대가로 100만원 남짓 쥐는 밑바닥 일터들을 맴돌았다. 위장취업의 불온함, 그 흔했던 문학수업,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 돈이 필요해 그런 곳을 돌아다녔다. 중학생 때 작가가 되면 좋겠다고 꿈꿨던 것을 편의점과 주유소에서 일하던 2008년 가을쯤, 신림동 고시원의 가로 1.2m에 세로 2.3m 방에서 기억해 내고는 농업, 축산업, 제조업 일자리를 모두 거친 뒤 책을 쓰겠다고 결심했다.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를 부제로 거느린 ‘인간의 조건’(시대의창 펴냄)을 쓴 한승태(31·필명)씨를 26일 서울 중구 을지로에서 만났다. 그는 서문에 ‘누구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법한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 사는지 보여주고 싶어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잊힐 게 분명한 사소한 사항들로 책을 가득 메우고 싶었다’고 적었다. 그의 의도대로 깨알같은 사연들이 넘쳐난다. →요즘은 어떤 일을 하시나요. -비닐하우스 일을 그만 둔 게 지난해였습니다. 그때부터 아르바이트 일을 하며 돈을 모아 원고를 쓰고 돈이 떨어지면 일하는 식으로 지냈습니다. 지금은 도배일을 하고 있고요. 그냥 무거운 것 들어주고 기술 배우는 수준이지요. 일당 5만원입니다. 신림동과 난곡 일대에서 일하는 팀에 속해 있습니다. 오늘은 연락이 안 와 놉니다. 일 있는 날 전화 오면 형편 닿는 사람이 일하는 식이지요. 제가 지금 거주하는 신림동과 난곡 일대에도 저와 비슷한 또래, 처지의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책은 어떻게 낸 거지요. 비닐하우스 일을 그만 둔 지난해 가을부터 쓰기 시작해 올해 4월 마쳤습니다. 제 책에 가장 흥미를 느낄 만한 출판사를 골랐는데 그게 시대의창이었습니다. 원고 일부를 읽어보시고 곧바로 연락이 와 나머지를 모두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하더군요. 보냈더니 곧바로 일주일이 안돼 책을 내자고 했어요. 일사천리로 진행됐죠.   편집자 이정남씨는 “워낙 원고 정리가 잘 돼 거의 손 댈 것이 없었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책의 성격상 정확한 르포르타주로도 훌륭하고도 개성 넘치는 문학으로도 읽힐 수 있어 출판사 입장에서 포지셔닝하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나중에 한씨를 통해서 들으니 출판사는 대통령선거와 새 정부 출범 등의 워낙 큰 이슈에 묻힐까 우려했다고 했다.   →그래서 다 쓰고 난 뒤 어떤 느낌이 들던가요. -홀가분한 느낌이었습니다. 짐을 벗었다는 생각도 들었고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다 썼으니까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지요. 전 그냥 제가 떠돌던 곳들이, 동시대 사람들이 아무런 관심도 애정도 기울여주지 않는 공간에서 시간이 멈춘 듯 공존하는 게 너무 신기하고 한편으로는 당연하게 느껴지고 했어요. 해서 이쪽의 사람들에게 그런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 그곳에서도 사람들이 살 부대끼며 살아간다는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는데 그 얘기를 다 마친 셈이지요.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했어요. -네, 그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요. 스스로 많이 닮고자 노력했어요. →책을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요. -정말 쓰는 게 즐거웠는데요. 쓰는 동안 제가 갖고 있는 불안감 때문에 괴로웠지, 쓰는 것은 즐거웠어요. 과연 (독자들이) 받아주기나 할까, 계속 글만 쓸 수는 없어 생계비를 버느라 잠깐 멈추고 그랬지요. 제 머리 속에 들어 있던 거를 다 쏟아냈으니 만족합니다. 자신에 대한 불안감말고는 딱히 어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술도 못 마시면서 배 위에서의 생활을 어떻게 견뎌냈어요. -재미있는 게요, 돈 많은 사람들은 막 먹이고 그럴텐데요. 그 사람들은 돈이 없으니 입이 하나 줄면 그게 좋은 거예요. 술 마시라고 하는 시기가 어느 정도 지나면 ‘너 안 먹으면 좋지, 내가 더 먹을 수 있으니’ 이렇게 돼요. →워낙 키가 크니 군대에서 혹시 ‘고문관’ 아니었나요. -네, 키만 컸지. 체력이 뛰어나게 좋은 것도 아니고. 특히 제가 말귀를 잘 못 알아들어서. 그래도 제가 운이 좋았던 건 안 그런 사람도 있지만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아서. 좋게좋게 넘어가고 그랬던 거 같아요.   →책에는 비닐하우스 여주인과 다툰 뒤 하우스 안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했을 때-그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그는 정말 키가 크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와 웃다가 짐짓 살아야겠다고 결심하는 대목이 나온다. 어쩼든 큰 키 때문에 가는 곳마다 재미있는 사연들이 많이 나온다.   -특별히 그런 일 구하다 보면 키 큰 사람 좋아해요. 전구 가는 용도(?)로도 쓸모있지만, 이를테면 다른 사람들이 토익이나 뭐 그런 것들이 스펙이 되듯 제게도 스펙이 되는 거지요. 인력시장에서 전 스펙이 굉장히 좋은 편이었어요. 한국사람이지, 30대 초반이고 키도 아주 크고, 최고의 스펙이라 할 수 있죠.(웃음)   처음 출판사를 통해 인터뷰를 섭외할 때부터 사진을 찍고 싶지 않아 할 것 같았다. 두 가지 이유를 어렵지 않게 댈 수 있었다. 역시나 그랬고 몇번의 밀당 끝에 마주앉기는 했다. 앞으로도 평생 비슷하게 살텐데 취업에 어려움이 따른다며 사진 촬영을 극구 마다하는 그를 설득할 수가 없었다. →돼지농장에서 Belle & Sebastian의 노래들을 흥얼거렸다는 대목에서 지독한 패러독스같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던데요. 늘 책보고 음악 듣지요. -예. 배에서도 일기를 썼어요. 그런 것들이 다 모여 책이 된 거고요. 늘 떠돌아 다녔으니 여자친구를 만나거나 할 상황도 아니었고. 만난 사람만 만나고 그렇지요. →형님들이나 아저씨들이 뭐라 하지 않나요. -상관 안하세요. 배 처음 탈 때는 굉장히 무섭고 두려웠는데 그곳 사람들, 의외로 관대해요. 처음엔 한두 번 뭐라 핀잔도 하고 눈치도 주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용납되고. →돼지농장에서 자돈(子豚)을 버리는 끔찍한 경험 같은 것들이 내면화되거나 해 괴롭거나 하지는 않는지요. -물론 머리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게 있지요. 누구나 그러는 건데 가끔식 떠오르거나 연상되곤 하지요. 길에서 죽은 고양이 시체를 봤을 때 그런 것들. 굳이 그런 이미지 때문에 생활을 못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요. 또 워낙 제가 잘 잊는 편이라. 너무 자연스럽게 돼지농장 사람들의 꿈은 다 로또였어요. 사회 초년생들이야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 나가는 과정을 밟겠지만 그곳 사람들이야 극단적으로, 초월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지요. 그곳을 빠져나오든가 굶든가 둘 중의 하나인 거지요. 혼자인 저야 논외지만 그들은 가족도 있고 아이 공부도 시켜야 하고 부모도 모셔야 하고, 빚도 있으니까. 현재와 미래를 단계적으로 그려볼,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그럴 경황이 없는 거지요. 그래서 더 공상적이 된다는 그런 느낌으로요. →함께 일했던 분들이 보고 싶거나 그런가요. -연락하고 싶기는 한데, 이를테면 책을 쓰는 게 아니라 제가 일만 하며 어느 곳을 떠돌다 만나면 그럴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으니 선뜻 연락하기도 힘들고 같이 일할 때에는 제 개인적인 성격 탓도 있지만 그렇게 일하는 분들 역시, 멀리 있는 인연을 가까이 끌어 당기는 것에 부담스러워 하는 걸 많이 봐왔기 때문에. 그분들끼리는 당장 배 위나 돼지농장에서 닥친 상황,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만 신경쓰니까. 그런 연락을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요.   →앞으로의 계획은요. -부자가 됐으면 합니다. 부자가 돼 하고 싶은 일하며 사는 것인데 제게는 글 쓰는 일이 되겠지요. 생계비 걱정 않고 글 쓰는 것이 제 꿈입니다. →전업작가로 살려면 한달 얼마 정도? 물론 다른 이에 견줘 한참 낮겠지요. -한달에 80만~90만원 정도. 또 그런 게 죽 있어야 하니까 그렇게 쉽지는 않지요. (책에 나오는) 고시원 방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임시로 가는, 도저히 생활이 안되는 공간고요. 싼 데를 찾아보면 한달에 방세 30만~35만원, 식비는 30만원, 이것도 처음엔 아껴서 먹어요. 하루에(한끼가 아니다!) 7000원 정도씩 먹다가 더 이상 못 참겠다며 확 먹어버려서 대중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무리 아껴도 한 30만원 들어요. 여기에 공과금 전화세 교통비 등 합쳐 그 정도만 있으면 글만 쓰며 살 수 있지요. →문학 인생의 설계 같은 게 있나요. -당장은 없어요. 제 특성이기도 하지만요. 눈앞의 것만 확 처리하는 게 바쁘니까. 글 쓰며 살아야겠다, 생각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뭔가를 채워넣지 못하죠.. →2권을 생각하나요. -이걸로 끝입니다. 다음 책은 아마 다른 주제일 겁니다. →어떤 작가가 되고 싶나요. -이 책이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제가 책을 읽을 때 가슴에 뒀던 것은 사람들이 위로와 위안 받았으면 좋겠다, 이 정도로 생각했지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책, 앞에서 얘기한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과 함께 최근에는 존 툴 케네디가 쓴 ‘바보들의 결탁’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줄거리는 미국의 한 또라이 백수가 부모님 재산 축내며 살다가 안되겠다 싶어 직장 구하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워낙 이 친구 정신세계가 독특해 계속 쫓겨나는 일을 실었어요. 얼핏 굉장히 우울하게 들리는 얘기인데 너무 유쾌하게 썼어요. 캐릭터가 특이하고 좋아서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1984’나 ‘동물농장’을 보고 오웰이 유머가 없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앞의 책을 보면 유머가 충만하죠. 제 나름대로 중점을 뒀던 대목은 이 책에도 진지한 정치적 사회적 성찰을 요하는 그런 부분이 있는데 이런 이슈에 관심없는 사람들도 흥미를 느끼고 재미있게 읽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출판사에서는 치밀하고 객관적인 르포르타주와 특이하지만 잘 쓴 문학작품의 경계가 혼재해 포지셔닝이 쉽지 않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제겐 후자가 더 어울리는 것 같아요. 좋은 읽을거리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진지한 사회적 성찰은 이미 좋은 책들이 많고 제가 깊이를 따라갈 수 없이 훌륭한 책들이 많아요. 제 책은 아카데믹하기보다 엔터테인먼트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비꼬는 글의 맛, 그런 것을 좋아해요. 더글러스 애덤스의 책이나 영국 작가들에 그런 게 특히 많은데 그런 걸 살리려고 조금은 했어요. →그러면 앞으로도 알바하고 글 쓰고, 그런 그림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겠네요. -네. 새 봄에는 누가 소개해줘 경남 합천의 대나무농장에 가서 일하게 될 것 같아요. 그러면서 틈틈이 계속 글 써야죠.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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