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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車검문 병장·의경 잇단 희생

    강원도 동해시 해안초소 장병 총기 탈취 사건 용의자 검거를 위해 검문 중이던 의경이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숨졌다. 24일 오전 3시쯤 경북 구미시 원평동 선기교에서 구미경찰서 방범순찰대 소속 김모(22) 수경이 동료 경찰관들과 차량 검문검색 중 음주운전을 하던 정모(34)씨의 2.5t 트럭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졌다. 사고 운전자 정씨는 경찰관들의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운행했으며, 사고 후 10여m쯤 더 달린 뒤 차를 세워 현장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정씨는 경찰에서 “술에 취해 깜빡 조는 바람에 경찰의 정지신호를 보지 못했으며,‘쿵’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사고가 난 뒤였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운전자 정씨가 혈중 알코올농도 0.092% 상태에서 운전한 사실을 확인했으며, 정확한 사고경위를 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키로 했다. 숨진 김 수경은 2003년 10월 입대한 뒤 같은 해 12월 구미서 방범순찰대로 전입했으며, 오는 10월22일 전역을 앞두고 있어 동료 경찰 관계자들이 안타까워했다. 이에 앞서 지난 23일 오전 1시35분쯤에는 수방사 헌병단 소속 임모 병장(21)이 서울 영동대교에서 차량 검문검색 중 무면허 운전을 하던 이모(36)씨의 카렌스 승용차에 치여 숨졌다. 구미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제주, 기업가 천국된다

    연내 제정을 목표로 하고 있는 ‘제주특별자치도특별법’에 명시될 투자 인센티브 지원 내용은 현행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수준이 될 전망이다. 21일 제주도가 1차 확정한 제주특별자치도 인센티브지원 방안에 따르면 1000만달러 이상의 내외국인 투자가 이뤄지는 ‘투자진흥지구’의 경우 도로·용수시설, 상하수도, 폐수 종말시설 등 인프라시설을 국가가 지원하도록 하고 제주특별자치도의 전략적 유치산업인 교육·의료부문 등도 외국인 투자의 경우 투자진흥지구 대상사업에 포함시킨다는 것이다. 또 현행 5년인 투자진흥지구에 대한 법인·소득·지방세 등 조세감면 기간을 법인·소득세는 7년, 지방세는 최고 15년까지로 늘리고, 자본제 도입에 따른 관세, 특별소비세, 부가가치세 등도 3년간 면제하기로 했다. 외국 투자기업에 대한 입지보조금의 경우는 매입가의 50%, 시설투자비는 투자비의 10%를 지원하고 국·공유지 임대료도 100% 감면하며 토지매입과 임대료 차액, 교육훈련비, 고용보조금 등도 40∼50%를 정부가 지원토록 제주특별자치도 특별법에 반영키로 했다.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seoul.co.kr
  • [마광수의 섹스토리] (8)한국에선 그저 내숭을 떨어야…

    [마광수의 섹스토리] (8)한국에선 그저 내숭을 떨어야…

    생면부지의 그를 만나기로 한 날 아침부터 나는 긴장하고 있었다. 그렇게 긴장을 한 날은 이제껏 많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런 날은 없을 듯싶다. 전화 목소리로만은 그는 내게 진정한 ‘남자’로서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최대한도로 예쁘게 보이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에게 좋아하는 여자 취향 같은 것을 물어본 적이 아직은 없었기 때문에 한참동안 고민을 했다. 생각 끝에 나는 이렇게 결정했다. 그가 ‘청순한 여자’를 좋아할 것 같아서 내린 결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화장도 투명 메이크업으로 하고 깨끗하고 귀여우면서도 약간의 섹시함을 풍기는 ‘로리타’ 스타일의 여자로 치장하기로 작정했다. 어려보이는 것이라면 나는 자신이 있다. 피부가 하얗고 눈은 똥그랗고, 키는 적당하면서도 마른 체구, 그런 이미지라면 나는 자신이 있었다. 어려보이는 것이나 귀여워 보인다는 얘기는 평소에도 자주 듣던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합쳐 ‘섹시함’을 갖춰야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긴 생머리를 잘 드라이해서 늘어뜨리고 하얀색 민소매 원피스를 입었다. 메이크 업 베이스는 평소의 연두색과는 달리 좀더 화사해 보이는 하늘색을 썼다. 평소에 바르던 트윈케이크 대신 21호 파운데이션과 가수 ‘엄정화’가 선전하는 빨간통 파우더를 발라 피부를 화사하고 깨끗하게 표현한 후, 눈에는 하얀색과 은색이 섞인 펄 섀도를 발랐다. 펄 빛 화이트 펜슬로 눈밑을 그려넣어 주어 눈매가 좀더 또렷하게 보이게 하고, 아이라인에 신경을 써서 평소보다 뚜렷하게 그려 넣었다. 입술은 누드 베이지 색으로 라인을 그린 다음 더 투명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 립스틱 대신 립글로스를 발랐다. 내가 좋아하는 ‘메이크 업 포에버’ 상표의 립글로스…. 초콜릿 향기가 나서 예전의 남자 친구도 키스를 할 때 초콜릿을 빨아먹는 느낌이 난다며 다 쓰면 또 사주곤 했던 립글로스였다. 참, 손톱도 아주 중요하다. 우선 손톱 영양제를 바른 후 끝의 길고 뾰족하게 튀어나간 부분만 하얀색으로 칠하고 그 위에 투명 매니큐어를 바른다. 그래서 이른바 ‘프렌치 네일’이 완성되었다. 굽 높은 진주빛 샌들을 신을 것이므로 길게 자란 발톱들에도 손톱과 같이 프렌치 네일 스타일로 발랐다. 그와 만나기로 한 곳은 압구정동에 있는 ‘씨네 플러스’ 앞이었다.4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5분 정도 일찍 도착한 나는 그가 타고 올 것이라는 빨간색 ‘티뷰론’을 기다리고 있었다. 티뷰론 윗 덮개를 열고 온다고 했는데,4시 정각이 되자 그가 정확히도 시간을 맞춰 나타났다. 그는 마땅히 주차할 곳이 없으니 빨리 타라고 내게 손짓을 한다. 나는 재빨리 그의 차에 몸을 실었다. 사실 얼굴도 모르는 남자의 차를 덥석 탄다는 것은 좀 위험한 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벌써 그에게로 간 후였다. 그의 옆 모습이 보였다. 선글라스를 쓴 그의 옆 모습은 구릿빛 피부에 잘 깎여들어간 턱 선을 자꾸 훔쳐보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었다. 그날 우리는 둘이서 야한 영화 한 편을 봤다. 그런 다음에 ‘델리’라는 이름의 인도풍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경복궁 옆에 있는 재즈바 ‘재즈 스토리’로 갔다. 그를 처음으로 정면으로 본 것은 ‘델리’에서 였다. 키는 180㎝ 정도의 건장한 체격. 면바지에 니트 소재 반팔 티를 입고 목에는 반짝이는 금목걸이를 둘렀다. 쌍꺼풀이 없는 적당한 크기의 눈에 잘 깎여진 코, 그리고 입술. 나는 남자를 처음 볼 때마다 입술부터 보는 버릇이 생겼다. 입술을 봐서 키스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면 그에게 호감이 있다는 증거다. 그의 입술은 키스하기에 적당한 입술 같았다. 너무 얇지도 않으면서 너무 진한 분홍빛과 갈색 빛도 감돌지 않는 적당한 색깔의 입술이었다. 그의 입술에서 시선을 옮겨 그의 눈가로 가져가면서, 나는 그의 자신감 넘치게 빛나는 눈빛에 압도되고 말았다. 그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돌연히 두려워졌다. 좀처럼 열등감 따위는 빠져들지 않는 나이지만 나는 그에게 빠른 속도로 매료되고만 나 자신을 숨기고 싶었다. 밤이 점점 깊어갔다. 그가 나를 집에까지 데려다주겠다고 말했다. 그 때까지 우리는 영어로 얘기하고 있었다. 헤어지는 순간, 그가 처음으로 한국말을 썼다. 서투른 한국어였다. “너와 있으면…정말 즐거워….…이런 기분은…정말 오랜만이야. 다음에도…만날 수…있겠지?”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그날 우리는 나눈 적이 없었다. 갑작스럽게 터져나온 그의 말에 놀란 나는,“정말이에요?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었군요.”라고 말하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그는 다시 내게 이렇게 대답해왔다.“왜 그렇게 정중한 경어체를 쓰고 그래? 그냥 반말로 편하게 얘기해. 이제부턴 경어체로 얘기하기 없기다. 약속!” 그렇게 말하는 그가 나이에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속으로 쿡쿡 웃었다. 그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나를 덥석 안고 키스를 했다. 당황할 겨를도 없이 나는 그의 혀 움직임을 따르게 되었다. 처음에는 입술만 부드럽게 빨던 그는 내 꾹 다문 이들을 벌리고 나서 그 사이에 자기의 혀를 디밀어 넣었다. 그러고 나서 혀를 내 입 안에서 자유롭게 휘저어댔다. 그런 다음 곧 내 혓바닥을 빨아들여 자신의 입속으로 가져갔다. 나는 온 몸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당연히 ‘첫 키스’는 아니었지만, 남자마다 키스 테크닉이 다르다는 것을 그를 통해 절실히 깨달았다. 그가 내 허리를 감고 있던 손을 내 가슴으로 가져갔다. 그러는 순간 내 휴대전화 벨이 울리는 바람에 무드가 깨져버렸다. 따라서 우리의 동작은 모두 정지되고 우리는 내일을 기약하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1년 동안 매일 만났다. 그와의 첫 섹스는 그를 처음 만난 지 1주일 후에 이루어졌다. 전에 사귀었던 다른 남자들과 비교해 보면 굉장히 빠른 속도로 가까워진 것이었다. 첫 섹스를 하기 전, 우리는 밤마다 한강 고수부지나 인적이 드문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키스와 페팅을 나누었다. 스킨십은 한번 선을 넘으면 절대로 그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는 처음에는 옷 위의 내 가슴을 만지고, 그 다음에는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내 몸을 만졌다. 그 뒤에는 내 상의를 위로 올려 브래지어 끈을 풀고 나서 내 유방과 유두에 키스를 했다. 그러고는 치마와 바지 속으로 손을 넣고서 내 엉덩이를 만지다가 결국은 질 속에 손을 집어넣는다. 나도 처음에는 괜스레 수줍어하는 체하며 그의 행동에 따랐지만, 결국엔 나도 내 본능에 충실해져 버려 그의 성감대를 서서히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의 귓속에 키스하고 겨드랑이에 키스하고 유두에 키스하고 그리고 옆구리에, 그런 다음에는 그의 성기까지…. 좁은 차 안이 불편했는지 그가 어느날 갑자기 스킨십 동작을 멈추고 내게 이렇게 물어왔다. “나를 믿지? 나는 아무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대로 양평으로 갔다. 이른바 러브호텔엘 가게 된 것이다. 우리는 깨끗하게 보이는 예쁜 분홍색으로 칠해진 한 러브호텔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거친 섹스였다. 나의 첫 섹스는 대학교 1학년 때였다. 다른 여대생보다 빨랐던 것인지 아니면 늦었던 것인지 그것은 잘 모르겠다. 여자애들은 체질적 속성상 남자와는 다르게 ‘내숭’이 많다. 남자애들은 자기가 여러 여자들과 잔 것을 자랑스럽게 떠벌려댄다. 하지만 요즘 여자애들은 입으로는 ‘성 해방’을 부르짖으면서도 자신의 성경험을 축소·은폐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네들은 남자친구와 잤다고 절대로 공공연하게 말하지 않는다. 아주 친한 친구 사이가 돼야 비로소 자기의 경험 얘기를 털어놓는다. 그것도 상대방 친구가 남자하고 자본 애가 확실하다는 확신이 들 때에 한해서 말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굉장히 어려 보이는 나. 지금 대학 4학년이지만 사람들은 나를 1학년생으로 착각하고 나이트클럽 같은데 들어갈 때 신분증 보기를 요구할 때도 많다. 그리고 어려보이는 얼굴 탓에 순진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런 적도 있다. 야하기로 유명한 M교수의 강의를 듣던중 남자 후배 애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누나, 누나는 교수님이 말하는 것 다 이해해? 누나는 너무 어려서 충격을 받을 것 같아….” 나는 그 말을 듣고서 속으로 쿡쿡 웃었다. ■마광수는1951년 경기 수원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현재 연세대 국문과 교수 ▲저서 ‘윤동주 연구´ ‘상징시학´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장편소설 ‘권태´ ‘즐거운 사라´ ‘불안´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사랑의 슬픔´
  • 개발 인근지역 이익도 환수

    개발 지역은 물론 인근 지역에 대해서도 개발 이익을 환수하는 기반시설부담금제가 조기 도입된다. 원래 2007년에 도입할 예정이었으나 연내 입법 절차를 거쳐 이르면 내년 상반기 중 시행될 예정이다. 또 서울 강북지역에는 강남권 못지 않는 주거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교통·문화·교육 등의 인프라가 대폭 확충된다. 정부가 수도권과 주변지역에 보유하고 있는 토지도 택지로 개발돼 주택 공급이 확대된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20일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제3차 부동산 정책 당정협의회를 갖고 이같은 내용을 포함한 부동산시장 안정화 대책을 마련했다. 개발이익 환수와 주택 공급 확대 등 두가지 원칙이 골간이다. 당정은 특히 개발이익 환수 차원에서 논란을 빚어온 토지 공개념의 경우 기반시설부담금제만을 시행하는 부분 도입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토지초과이득세와 토지상한제 등은 더 이상 논의하지 않기로 했다. 기반시설부담금 대상에는 기존 개발부담금제 적용 대상인 토지 형질변경, 용도변경뿐만 아니라 대규모 국책사업의 택지 또는 기업도시 주변지역, 재건축 지역 등도 포함될 예정이다. 당정은 또 서울 강북 지역의 광역적 개발 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구역지정 요건을 대폭적으로 완화하고 인근의 단독 주택지도 포함시키기로 했다. 이를 위해 여러가지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규제를 완화하고, 용적률 등을 포함한 유인책을 대폭 늘리되 반드시 공공부문은 공영개발로 추진키로 했다. 강북 광역개발을 위한 재원에 대해서는 용적률 상향조정, 층고제한 완화 등을 통해 마련하고 주택 재개발시 사업시행자 지정을 위한 주민동의 요건도 3분의2 이상에서 2분의1 이상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키로 했다. 아울러 주택 공급 확대의 경우 신도시 추가 건설보다 수도권 주변의 군시설 용지나 교도소 이전지, 정부 보유토지 등을 활용해 택지로 개발한 뒤 서민용 주택이나 중대형 아파트 공급 물량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해 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개발이익 환수와 투기억제를 위한 기반시설부담금제가 정착될 경우 제도의 시행상황을 봐가며 신도시 개발을 검토해 나가기로 했다. 열린우리당 안병엽 부동산대책기획단장은 강남지역의 재건축 규제와 관련,“불합리한 면이 없지 않아 합리적으로 고치는 점을 논의할 것”이라며 사실상 완화 방침을 시사했다. 한편 당정은 판교 공영개발, 중대형 아파트 공급 확대 등에 대해서는 제4차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논의키로 의견을 모았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6자 ‘지뢰밭 회담’

    북핵 6자회담 재개를 앞두고 관련국들은 겉으로 협력, 협상 등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은 치열한 역학관계와 치밀한 정치적 계산으로 어지럽다. 회담의 키를 쥔 각국의 수뇌부는 선거와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숨어있는 강경론 서울의 한 외교소식통은 19일 “이번 4차 6자회담에서 성과가 없을 경우 미국 정부는 회담방식을 포기하고 강경 제재조치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딕 체니 부통령을 위시한 강경파가 이번에 콘돌리자 라이스 장관과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 등 비교적 온건한 국무부 팀에 마지막 기회를 줬다는 얘기다. 이 발언의 사실성은 몇 가지 정황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전날 “미 정부가 차기 6자회담이 성과없이 끝날 경우 회담을 중단하겠다는 뜻을 한·일 정부에 피력했다.”고 보도했고, 우리측 수석대표인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도 “이번 회담에서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면 미국이 향후 어떠한 자세로 나올지 대비해야 한다.”고 심상치 않은 말을 했다. 정동영 통일부장관도 같은 날 아사히신문 보도의 진위를 묻는 질문에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한편에서는 최근 정 장관이 “회담기간이 한달이 걸리더라도 이번에 끝장을 봐야 한다.”고 강조한 것을 놓고, 미국내 강경기류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1년 넘게 중단돼 온 협상이 단번에 타결되긴 힘들 것이란 관측이 현재로선 많은 편이다. 정부 당국자는 “체니 부통령이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은 강하게 견제했지만, 라이스 장관한테는 재량권을 많이 주는 편”이라며 무 자르듯 회담을 철수하긴 힘들 것이란 의견을 보였다. ●한국, 정치논리 가미된 주도적 역할론 임기 후반기에 접어든 노무현 대통령과 차기 대권주자인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지금 시간에 쫓기고 있다. 두 사람 다 2차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업적 만들기’가 절실한 상황이다. 최근 우리 정부가 ‘주도적 역할론’을 들고 나온 데는 ‘가만히 있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다.’는 위기의식이 담겨 있다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이와 관련, 체니 부통령이 정 장관의 독자적 행보에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이런 시각이 맞다면, 단기적 성과에 집착해 국가적 대사를 그르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될 만하다. 일각에서는 정 장관이 18일 “일본이 소극적이다.”고 외교적으로 민감한 발언을 한 데 대해서도, 조바심에 무리수를 두고 말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마음은 콩밭에 임기가 1년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지지율이 곤두박칠치고 있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도 ‘업적 만들기’에 내몰리는 눈치다. 고이즈미 총리는 실제 19일 “이 정권 안에 핵과 납치문제를 해결, 북한과 국교정상화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야마사키 다쿠 전 자민당 부총재를 정 장관에게 보내 납치문제 등을 회담 의제에 포함시켜 달라고 요청하는 등 동분서주하고 있다. 고이즈미 정권으로서는 미국과의 ‘찰떡공조’로 북한을 강경제재하는 쪽으로 분위기를 잡아가다 회담이 재개되자 다시 협상을 통한 납치문제 해결에 주력하는 등 우왕좌왕하면서 남북한 모두에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타이」라곤 생후 두 번 맨 명함없는 햇병아리

    「타이」라곤 생후 두 번 맨 명함없는 햇병아리

    제1회 한국문화대상 연예부문 대상을 탄 조영남(趙英男)씨 별명이「타잔」. 납작한 얼굴에 납작한 코, 짤막한 키에 멋대로 자란 더벅머리, 아무리 귀엽게 봐주려 해도 결코 미남은 아니다. 서울신문사 제정 제1회 한국문화대상의 연예부문 대상 수상자 조영남.「데뷔」1년 6개월이 채 못 되는 그가 권위를 다짐하는, 그리고 부상 45만원의 푸짐한 상금이 달린 대상을 차지하기까지는? 별명「타잔」, 더벅머리 총각 - 본격적 활동은 겨우 여섯 달 「데뷔」한지 1년 반이라고는 하지만 조영남이 본격적인 가수활동을 한 것은 6개월 정도에 불과하다. 작년 4월 모 방송국의「오늘도 명랑하게」라는 아침「프로」에서 어느 외국가수의「컨트리·송」을 흉내낸 게 최초의 방송무대이고 그로부터 1년 가까이는 8군 무대가 주무대였다. 그리고 지금도 서울대 음대 3년에 재학중인 성악도(聲樂徒). 독집을 십여개씩 가지고 있고「레코드」사, 방송국,「쇼」무대를「서커스」처럼 뛰어다니고 가요상이라면 단골로 차지하는 관록파 가수들에 비하면 조영남은 아직 햇병아리이다.「레코드」가 가수의 명함이라면 조영남은 아직 명함도 없다(현재 그의「레코드」는 3개가 거의 동시에 출반단계에 있지만). 시상식 무대 위에서의 그는 남달리 상기돼 있었다. 7명의 심사위원이 대상후보자 선출을 위해 이례적으로 무대 위에서 투표용지를 함 속에 집어넣을 때까지, 그는 그가 차지한「남자가수상」이란 영예만으로도 충분히 흥분상태였다. 그러나 개표결과는 6대 1이라는 압도적인 수로 그의 이름이 호명됐다. 심사위원회는 당초 3분의 2 이상 득표자가 안나올 경우 2차 투표로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그럴 필요도 없이 부상 45만원의 큼직한 상금이 달린 최고의 영예인 대상이 그의 손에 굴러들어간 것이다.「인기보다는 재능을, 관록보다는 장래성」을 주장한 심사위원들이 그에게「몰표」를 던져준 셈이다. 「극장엔 낮잠자러 간다」, 맥주 30병 마신 끝에 이틀 앓아 『처음으로 가수가 됐다는 기분입니다』 시상식 뒤 조영남은 생후 두 번째 매어봤다는「보·타이」를 어루만지며 히죽 웃었다.「넥타이」를 처음 매어본 것이 지난 9월「드라마·센터」에서「조영남 리사이틀」을 가졌을 때.「안매는 게 아니라 못맨다」고 주장한다.『신사복은「리사이틀」때 이모가 사준 검정색 한 벌 뿐이고 목욕은 잘해야 1년에 몇 번, 이발소와는 담을 쌓을 정도이고 영화관엔 낮잠자러 간다』약간 엉뚱한 얘기다. 사실상 그의 차림새나 얘기에서「히피」적인 체취가 없는 것도 아니다. 술은 즐기지 않으나 마신다면 소주를 맥주「컵」으로 마시고 때론 술로 밤샘을 한단다. 『새벽 3시까지 한 30병 마시고 나서 이틀을 앓아 누웠습니다.「컨디션」이 나빴던 것 같습니다』 무대에서도 그는「무대화장」이란 걸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차라리 더 우스꽝스럽게 보이려는 듯(?) 그「퍼니·페이스」를 마음껏 찌푸린다. 노래는『애써 배우는게 아니고 저절로 배우게 된다』집에는 TV, 전축은 물론 가수의 필수품격인 녹음기,「라디오」하나 없단다. 다방이든 극장이든 흘러 들어오는 노래가 곧 교과서이고『한번 들으면 대개는 외게 된다』는 것. 따라서 다른 가수들처럼「레슨」이니 연습이니 하는 과정을 밟지 않았다고 자랑한다. 「연애사건」으로 H대 중퇴, 지금은 서울음대 3년 재학중 조영남의 이 천재적(?) 재능은 이미 고2(강문고)때부터 실증됐다. 한양대 주최 전국 고교「콩쿠르」에서 수석을 차지한 그는 장학금으로 고등학교를 마쳤다. 그리고「해외유학」까지 보장되는 조건의 장학생으로 한양대 음대에 들어갔다. 2학년에서 중퇴한 그는 다음해에 현재의 서울음대에 다시 1학년으로 입학했다. 한양대를 퇴학한 이유는「연애사건」때문이란 것.『퍽 심각한 연애였다』면서 상대방 여학생이 자퇴하자 자신도『더 다닐 마음이 안생겨 중퇴해 버렸다』는 얘기다. 당시 19세였던 그가 어느 정도의「심각한 연애사건」을 벌였는지에 관해서는 애써 입을 다문다. 또 한 곳 그에게 장학금을 대준 곳은 그가 고등학생 때 성가대로 있던 D교회. 한 달에 2천원씩 학비보조를 해줬는데…. 『너무 조건을 내세우고 치사하게 굴어서』1년 만에 교회를 뛰어나왔다. 협조를 이유로 자유를 구속하는 건 견딜 수 없는 일이란 주장. 그의「비틀즈」에 대한 견해는『자유분방해서 좋고』「히피」쪽에 대한 견해는『개성이 있고 사회에 생명감을 넣어주는 것 같아서』할 수 있으면 자신도『「히피」적인 생활을 해보고 싶다』한다. 홀어머니 김씨(54) 슬하 7남매의 넷째, 가정형편은 퍽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게 산다. 8군 무대에 선 것은 대학 2학년 때, 장학금을 차버린 뒤 학비를 벌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의 승한 재능이 이때부터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세미·클래식」에서부터「컨트리·웨스턴」「포크·송」「칸소네」유행「팝·송」등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가창과 특이한 무대「매너」는 날과 함께 그의 주가를 높였고 파격적인「개런티」상승이 뒤따랐다. 이런 현상은 그의 TV무대 진출에서도 곧 재현되었다. 그가 부른『딜라일러』는 지금 선풍처럼 가요계를 휩쓸고 TV극『목격자』의 주제가『이 생명 다하여』정훈희(鄭薰姬)의 「히트·송」인『안개』도「스타일」이 바뀐 채 못지않게「히트」하고 있다.『딜라일러』는 영국가수「톰·존스」가 금년 초에 불러 英·美를 비롯하여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세계적인 가수로 군림케 된「컨트리·뮤직」이다. 조영남의 등장은 바로 이「딜라일러」의 한국상륙과 때를 같이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 있다. 그를 둘러싼 작곡가,「레코드」사들이 거의 동시에 세 곳에서 나타나 취입쟁탈전을 벌였고 조군은 번역곡을 3개의「디스크」에 취입, 곧 출반될 단계이다. 음대에서 기초교육을 착실히 쌓은 그가 몇 개의 대중가요에서 가능성을 보이자 가요계의 기대는 거의 절대성을 띠고 있다. 이봉조(李鳳祚), 홍현걸(洪鉉杰), 손석우(孫夕友), 서영은(徐永恩) 등 많은 작곡가들이 저마다 자작곡의 취입을 위해 집중공격을 펴고 있고 몇 개의「레코드」사들이 그를 끌어들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에게 한국문화대상의 연예대상을 주는데 서슴지 않은 심사위원들은『종래 가수들의 창법에서 완전히 탈피한 가수』『풍부한 기초실력, 풍부한 성량, 놀라운 소화력』을 내세우며 극찬을 펴고 있다. [ 선데이서울 68년 12/1 제1권 제11호 ]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롯데그룹(1)-신격호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롯데그룹(1)-신격호 회장家

    신격호 롯데 회장은 빚을 몸속의 열에 비유하곤 한다. “몸에 열이 오르면 병이 나고 심하면 목숨이 위태롭다. 과다한 차입금은 만병의 근원이다. 특히 잘하지도 못하는 업종에 빚을 내 사업을 벌이는 것은 사회적으로 죄를 짓는 일이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과다한 차입경영이 논란이 되고 있는 요즘, 신 회장의 말은 울림이 크다. 일각에서는 “껌 팔아 부자됐다.”며 롯데의 국가경제 기여도를 얕잡아 보기도 하지만, 기여도가 높다는 삼성·현대·LG 등이 저마다 골칫덩이 자식 한두 개 때문에 국가경제에 고통을 줄 때도 롯데는 어느 계열사 하나 그런 곳이 없었다.“실패하더라도 빚을 돌려줄 수 있는 범위에서만 투자한다.”는 신 회장의 무차입 경영 덕분이다. 롯데그룹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현재 70.3%. 삼성(50.0%) 다음으로 재무구조가 튼실하다. 단돈 83엔을 들고 일본땅에 건너가 ‘조센징 장사꾼’이라는 멸시를 받아가며 부(富)를 일군 신 회장. 그렇게해서 번 돈으로 고국에서 다시 기업을 일으킨 그는 한·일 양국에 사업체를 갖고 있지만 지금껏 과실송금을 한번도 한 적이 없다. 한국에서 번 돈은 고스란히 한국에 재투자하고 있다. 고(故) 정주영 현대 창업주가 중후장대 기간산업을,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경박단소 첨단산업을 일으켰다면, 신 회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서비스산업을 개척한 선구자다. 몇 안되는 생존 창업주인 그는 여든을 훌쩍 넘긴 지금에도 여전히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셔틀경영’을 하고 있다. ●또다른 이름 시게미쓰상 그는 홀수달에는 신격호, 짝수달에는 시게미쓰 다케오(重光武雄)가 된다. 홀수달에는 한국에서, 짝수달에는 일본에서 일한다. 그의 셔틀경영이 언제쯤 시작됐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주위에서는 모국 투자가 시작된 1960년대 말부터라고 짐작한다. 벌써 30년째다. 월말이 되면 수행원도 없이 혼자 공항에 나가 훌쩍 비행기를 탄다. 생활철학인 거화취실(去華就實·화려함을 멀리하고 실속을 추구)이 엿보이는 단면이다. 한국에 머무를 때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을 쓴다. 집무실 겸 숙소다. 외출은 거의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바로 옆의 롯데백화점 매장을 둘러보는 정도다. 올빼미족에게 반가운 얘기 한가지. 신 회장은 창업주 총수로는 드물게 ‘새벽형 인간’이 아니다. 오전 8시쯤 일어나 9시에 호텔방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임원들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라고 입을 모은다. 우선, 말수가 적다. 칭찬에도 인색하다.“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 지론”이라고 스스로 말할 만큼 완벽주의자다. 타고난 내성적 성격에 오랜 일본생활까지 겹쳐 웬만해서는 ‘혼네’(속내)를 내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때로 냉정하다는 얘기도 듣는다. 둘째아들인 신동빈 롯데 부회장이 “결단코 자상한 분은 아니다.”라고 했을 정도다. 언론에도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단돈 83엔 들고 일본으로 신 회장은 1922년-원래는 1921년생이지만 호적에 1년 늦게 올랐다-경남 울주군 삼남면 둔기리에서 5남5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울산농업보습학교를 나와 경남도립 종축장에 기수보로 취직했지만 “박봉의 삶이 싫어” 1941년 일본행 관부연락선을 탔다. 이 때가 열아홉살. 고향친구 자취방에 얹혀 살며 신문·우유 배달 등 닥치는 대로 잡일을 했다. 돈이 모이면 헌책방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작가 지망생의 꿈은 오래 가지 못했다. 문학으로는 먹고 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기술을 배워야 했다. 와세다고등공업학교(현 와세다대 이학부) 화학과에 입학했다. 일본 패전의 기색이 짙어가던 1944년 어느날, 조선인 청년의 성실성을 평소 눈여겨보던 한 일본인 노인이 “커팅오일(기계를 갈고 자르는 선반용 기름) 사업을 해보라.”며 선뜻 6만엔을 내놓았다. 그러나 첫 사업체는 공습을 맞아 완전히 불타버렸다.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친구들은 “귀국선을 타자.”고 종용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는 살 수 없는 게 그였다. 빚을 갚으려면 돈을 벌어야 했다.1946년 5월 도쿄 스기나미구(區)의 낡은 창고에 가마솥을 내걸었다. 그럴 듯한 간판(히카리특수화학연구소)도 달았다. 커팅오일을 응용해 만든 비누와 크림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1년반만에 노인에게 진 빚을 모두 갚았다. 내친 김에 비누를 만들던 가마솥과 국수를 뽑아내던 기계로 껌을 만들었다. 또다시 대박. 신주쿠 허허벌판에 종업원 10명의 주식회사 롯데가 탄생했다. 껌회사에 소설 여주인공(‘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샬로테) 이름을 붙인 발상이 생뚱맞아 보이지만, 못다한 문학청년의 꿈은 그렇게 해서 다소 풀렸다.1948년 6월28일의 일이다. 신 회장은 훗날 “롯데라는 이름은 내 일생일대의 최대수확이자 최고의 선택”이라며 흡족해했다. 그가 1967년 한국에 롯데제과를 설립했을 때, 일각에서는 “고국에 대한 첫 투자가 겨우 소비재 사업이냐.”며 비판했다. 신 회장은 이렇게 항변한다.“한·일 수교로 모국 투자길이 열리자 당시 정부는 내게 종합제철소를 지어달라고 했다. 그래서 후지제철소(현 신일본제철)의 도움을 받아 설계도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정부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직접 제철소(포항제철)를 짓겠다고 했다.” 어찌됐든 그렇게 ‘성공한 재일교포 사업가’로 고국에 진출한 그는 한국롯데를 국내 재계서열 5위의 ‘유통 명가’로 키워냈다. 지난해 말 현재 자산 29조 7000억원, 계열사수 41개, 종업원수 3만 5000명이다. 일본롯데에 비교도 안됐던 매출액(26조원)은 7대3 규모로 역전됐다. ●일본인 아내와 재혼 신 회장은 조혼 풍습에 따라 1940년 둔기리의 고향처녀(노순화)와 결혼했다. 신혼생활은 신 회장의 일본행 가출로 1년여만에 끝났다. 노 여사는 남편의 금의환향을 끝내 보지 못하고 1951년 29살에 요절했다. 신주쿠 허허벌판에서 일본 1위의 껌업체 하리스와 10년 상전(商戰)을 벌이는 동안, 신 회장에게 큰 힘이 돼준 이는 1952년 재혼한 일본인 아내 다케모리 하쓰코(竹森初子·78)씨였다. 결혼후 남편성을 따 시게미쓰로 바꿨다. 당시 일본 외무성 대신의 여동생이었다. 경영에 일절 참여하지 않는 시게미쓰 여사는 성품이 온화하다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우리말을 잘 하지는 못하지만 알아듣기는 한다. 신 회장은 노 여사와의 사이에 맏딸 영자씨를, 시게미쓰 여사와의 사이에 동주·동빈 두 아들을 두었다. 롯데가의 한 인사는 “동주와 동빈이는 일본에서 나고 자라 집안에서는 히로유키, 아키오라는 일본이름으로 더 친숙하게 불렸다.”고 전했다. ●백화점 주역 신영자 부사장 모녀 신 회장의 맏딸 영자(63)씨는 롯데쇼핑 총괄 부사장 겸 호텔롯데 면세점 총괄 부사장을 맡고 있다. 부산여고와 이화여대 가정학과를 나왔다. 유통업계의 라이벌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는 대학 동창이다. 지난해 말 롯데면세점 모델인 ‘욘사마’ 배용준씨의 사진전에 직접 참석했을 만큼 회사일에 적극적이다. 유통 사업가답게 의상과 화장이 화려하다. 다소 깐깐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새어머니인 시게미쓰 여사와는 팔짱을 끼고 다닐 정도로 사이가 좋다. 1967년 장오식 전 선학알미늄 회장과 결혼해 1남3녀를 두었으나 지금은 독신이다. 가장 눈에 띄는 자녀 혼사는 막내딸 정안(31)씨. 지난해 5월 영국계 로펌 클리포드&챈스의 이승환(37) 변호사와 결혼했다. 이 변호사는 한국케이블TV 대구방송 회장과 영남일보 주필을 지낸 이종명씨의 아들.‘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의 회원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외아들 지만씨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잡화 바이어(차장)로 일하던 정안씨는 결혼후 휴직, 남편과 함께 해외에 머무르고 있다. 친구 소개로 이 변호사를 만나 2년간 연애했다. 주례는 시아버지의 절친한 ‘지기’ 한완상 한성대 총장이 맡았다. 한 총장과 이 전 회장은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함께 하기도 했다. 신 부사장이 사업적으로 가장 의지하는 이는 둘째딸 선윤(34)씨다.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를 나와 97년 롯데쇼핑에 입사, 올해 초 이사로 승진했다. 명품관 ‘에비뉴엘’ 개관의 일등공신이다. 외할아버지를 닮아 키가 크고 호리호리하다. 성격도 소탈해 직원들 사이에 평이 좋다. 인테리어 회사 사장과 결혼했으나 지금은 독신이다. 외아들 재영(38)씨는 롯데에 포장지를 납품하는 인쇄업체 ‘재영상공’의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맏딸 혜선(36)씨는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선윤씨처럼 독신이다. ●일본롯데 이끄는 큰아들 동주 동주(51)씨는 일본롯데 부사장이다. 결혼이 다소 늦었다. 서른여덟살이던 92년 3월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재미교포 사업가 조덕만씨의 둘째딸 은주(41)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동주씨가 일본롯데의 미국법인 지사장으로 발령나면서. 아버지를 닮아 내성적인 그는 의외로 열살 연하의 거래처 여직원에게는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남덕우 전 경제부총리가 주례를 본 두 사람의 결혼식은 이례적으로 언론에 공개됐다. 아들(정훈·12)만 하나다. 현재 일본에 살고 있는 동주씨는 아오야마(靑山)학원과 같은 대학원에서 경영공학을 전공했다. 롯데와 무관한 미쓰비시 상사에서 10년간 샐러리맨 생활을 하다 87년 한국롯데에 입사했다.“순수하고 학자 같다.”는 게 주위의 공통된 평가다. ●한국롯데 이끄는 둘째아들 동빈 동빈(50)씨는 형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나고 자랐다. 역시 형이 다닌 아오야마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미국 컬럼비아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았다.88년 일본 롯데상사의 이사로 롯데에 합류하기까지,8년을 다른 회사(노무라증권)에서 일한 것도 형과 같다. 한국무대에 데뷔한 것은 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를 맡으면서. 증권사에 오래 있어서인지 수치에 매우 밝다.97년 2월 한국롯데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중국적자이던 그는 한국생활을 시작하면서 일본 국적을 정리했다. 처음엔 우리말이 서툴렀으나 지금은 발음이 조금 어색할 뿐, 대화를 주고받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와인을 즐기지만 폭탄주는 좋아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문학 기질을 이어받아 사석에서 가끔 괴테의 시를 영어로 읊기도 한다. 이승엽 프로야구 선수가 뛰고 있는 일본 롯데 지바 마린스의 구단주 대행도 맡고 있다. 세간에는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알려져 있으나 집안 인사의 얘기는 다소 다르다.“형인 동주보다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 적극적인 성격은 아니다. 원래 신씨 집안 남자들이 활달한 편은 못된다.” ●한·일 넘나든 현해탄 혼맥 롯데가는 물론 재벌가를 통틀어 화려한 혼맥의 정수로 꼽히는 게 동빈씨의 결혼이다.85년 형보다 먼저 일본에서 다섯시간에 걸친 일본전통 혼례식을 치렀다. 신부는 일본의 대형 건설사 다이세이의 오고 요시마사 부회장의 둘째딸 마나미(眞奈美·46)씨. 일본 귀족학교인 가쿠슈잉(학습원)을 졸업한 재원이다. 일본황실의 며느리감 후보로도 거론됐다. 후쿠다 다케오 전 일본 총리가 중매를 서고 주례까지 맡았다. 결혼식에 나카소네 당시 총리를 비롯해 전·현직 일본 총리가 세 명이나 참석해 한·일 양국에서 떠들썩한 화제가 됐다. 마나미씨를 만나본 한 인사는 “평범하고 참한 인상”이라고 전했다. 아들 유열(19)군과 규미(17)·승은(13) 두 딸을 두고 있다. 부인과 자녀들은 일본에 살고 있다. 한달에 두세번 신 부회장이 일본으로 건너간다. 신 회장이 ‘셔틀 기업경영’을 하고 있다면, 신 부회장은 ‘셔틀 가족경영’인 셈. 수행원 없이 다니는 것은 부자(父子)가 똑같다. ●남다른 고향사랑과 초고층 건물에의 꿈 해마다 5월이면 신 회장은 울산시 울주군 둔기리 호숫가의 너른 잔디밭에서 사재를 들여 잔치를 벌인다.69년 대암댐 건설로 고향마을이 물에 잠기자 전국에 흩어진 고향사람들을 수소문,1971년 5월 돼지머리에 막걸리를 기울인 것이 시초가 됐다. 이후 지금껏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있다. 모임 이름도 고향에서 따 ‘둔기회’라고 지었다. 처음엔 수십명이던 회원수가 아들·며느리·손자의 가세로 지금은 수백명으로 불어났다. 고향 못지 않게 신 회장에게는 애틋한 대상이 있다. 파리 에펠탑 같은 세계 최고층 건물이다. 여든살이 되던 해인 2002년,112층 건물 청사진을 내보이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언제까지나 고궁만 보여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교통영향 평가 등에 걸려 지금껏 삽도 떠보지 못했다. 신 회장은 ‘건설통’ 서울시장에게 기대를 걸며 초고층 건물을 재추진하고 있다. ●유통명가 떠받치는 롯데맨들 롯데에는 사장단 회의가 따로 없다. 지난해 신설된 정책본부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계열사간 조정자 역할을 한다. 호텔롯데 소속의 김병일(62) 사장이 신동빈 부회장(본부장)을 도와 부본부장을 맡고 있다.73년 호텔롯데 경리부장으로 입사해 81년 그룹 기획조정실 이사를 시작으로 20년 이상 신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신 회장 부자의 심중을 가장 정확히 읽어낸다는 핵심참모다. 짧은 스포츠형 머리가 트레이드 마크. 그룹 내 손꼽히는 재무전무가로 말수가 적다. 그룹의 모태인 롯데제과는 경리분야에서 20년 잔뼈가 굵은 한수길(64) 사장이 맡고 있다. 자일리톨껌 등 ‘연타석 홈런’으로 경영성과를 끌어올렸다. 호텔롯데와 롯데쇼핑은 삼성 출신의 장경작(62) 사장과 ‘젊은’ 이인원(58) 사장이 각각 이끌고 있다. 신세계백화점과 조선호텔 사장을 지낸 장 사장은 올 2월 롯데맨으로 변신했다. 수익사업의 귀재라는 수식어를 달고다닌다. 평균 연령이 60대인 롯데 경영진 사이에 드물게 50대인 이 사장은 97년 CEO(최고경영자)로 파격 발탁돼 8년간 장수하고 있다. 관리·영업·매입 등 백화점 3대 요직을 모두 거쳤다. 의심나면 끝까지 파헤친다. 할인점 업계 최초로 중소기업 박람회를 연 롯데마트 이철우(62) 사장과 정통 엔지니어 출신으로 현대석유화학 인수 주역인 호남석유화학 이영일(64) 사장도 눈에 띈다. 신 회장의 가족 가운데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이는 친동생인 신준호(64) 롯데햄·우유 부회장과 5촌조카 신동인(59) 롯데자이언츠 구단주 대행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지금의 롯데를 일구는데 일조했으나 지금은 한발 물러나 있다. 음료업계 최초로 순 매출액 1조원 돌파의 대기록을 세운 롯데칠성음료 이종원(61) 대표이사 부사장, 스피드 경영으로 유명한 롯데건설 이창배(58) 대표이사 부사장, 워커홀릭(일중독자)으로 불리는 롯데삼강 이광훈(57) 대표이사 전무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롯데맨이다. 황각규(51) 롯데쇼핑 상무와 강현구(45) 롯데닷컴 상무 등은 신 부회장의 관심사업을 보좌하고 있다. ●“평창면옥에 해답이 있다” 이철우 사장의 회고다. “잠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의 일이다. 백화점을 짓기는 했는데 신세계의 세 배인 드넓은 매장을 채울 일이 걱정이었다. 회장님은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며 타박하시더니 평창면옥에서 해답을 찾으라고 했다.” 당시 서울 평창동에 있던 평창면옥은 5000원짜리 밥맛이 워낙 좋아 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사람들이 왜 굳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그곳까지 가겠는가.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상품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고객에게 꼭 필요하고 훌륭한 상품을 만들면 문제는 절로 해결되기 마련이다.” 신 회장의 이 얘기는 지금도 롯데 임직원들 사이에 자주 회자된다. hyun@seoul.co.kr ■ 절친했던 신격호·정주영 회장 신격호 회장은 생전의 정주영(왕회장) 현대 창업주와 절친했다. 왕회장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직접 추도사를 쓰기도 했다. 신 회장이 일곱살 아래다. 흥미롭게도 두 사람의 인생 역정은 매우 닮았다. 우선 대가족의 장남이다. 신 회장은 동생이 9명, 왕회장은 7명이다. 중농·빈농의 아들로 농사규모는 달랐지만 식솔이 워낙 많아 삶이 퍽퍽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성공 신화의 시작이 가출이라는 것도 같다. 두 사람 모두 열아홉살 때 “앞이 안보인다.”며 집을 뛰쳐나왔다. 사업 시작후 최대의 시련도 ‘불’이었다. 신 회장은 처음 차린 커팅오일 공장이 불에 몽땅 타버려 빚더미에 올라 앉았다. 왕회장도 첫 사업인 자동차수리공장이 불에 타는 바람에 고초를 겪어야 했다. 신 회장은 이 때문에 지금도 임직원들에게 자나깨나 불조심을 외친다. 롯데호텔 준공 때 멀쩡한 새 건물의 복도 천장을 뜯게 한 뒤 손전등으로 직접 방화 장치를 확인한 일화는 유명하다. 공교롭게도 죽을 고비도 한차례씩 넘겼다. 여든이 다 될 때까지 직접 운전을 하고 다녔던 신 회장은 언젠가 밤길에 귀가하다가 트럭과 정면으로 부딪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왕회장도 새벽에 울산공장을 시찰하러 직접 운전하고 가다가 차가 바닷물에 빠져 죽을뻔 했다. 발상도 기발하다. 신 회장은 풍선껌에 대나무 대롱을 함께 포장해 장난감처럼 불 수 있게 했다. 왕회장은 겨울 골프에 빨간 골프공을 도입한 주인공이다. 이 유명한 빨간공 일화를 남긴 1970년 초봄 라운딩의 동반자가 바로 신 회장이었다. 신 회장은 훗날 “폭설이 내려 (하얀 골프공을 찾을 수 없는 만큼)의당 약속이 취소된 것으로 여겨 하마터면 큰 실수를 할 뻔했다.”고 회고했다. M&A(인수합병)보다는 직접 공장말뚝 박기를 즐겼던 것이나 귀향잔치(둔기회·소떼방북)를 벌인 점도 똑같다. 다만, 신 회장은 언제나 소리가 나지 않았고 왕회장은 늘 요란했다. 대선 출마 등 말년에 한눈을 판 왕회장과 달리 신 회장이 사업에만 전념하는 것도 결정적 차이다. hyun@seoul.co.kr ■ 신동빈 부회장 ‘큰어머니’ 제사 해마다 직접 지내 지난달 21일 저녁 서울 성북동 신영자 롯데쇼핑 부사장의 자택. 검정 옷차림의 신씨가문 후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이 날은 종손인 신격호 회장의 첫 부인 노순화 여사의 기일이었다. 신동빈 부회장은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어머니’의 제사를 주관했다. 누나인 신 부사장은 말없이 ‘생모’의 제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여느 재벌가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신 회장이 재혼한 아내와의 사이에서 얻은 동빈씨는 한국에 정착한 이후 노 여사의 제사를 꼬박꼬박 지내고 있다. 집안에서나, 그룹에서나,‘후계자’로서의 입지를 빠르게 굳혀가고 있는 모습이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후계구도와 관련해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언급을 회피하던 그룹측은 이제 공공연하게 “후계구도 작업은 끝났다.”고 단언한다. 신 부회장이 일본인 아내를 맞은 점 등을 들어 일본롯데를, 신동주 일본롯데 부사장이 장남인 점 등을 들어 한국롯데를 맡을 것이라는 분석이 한때 유력했지만 현재로서는 뒤집힌 셈이다. 신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신설된 정책본부의 장(長)을 맡으면서 후계자 논란을 확실하게 잠재웠다. 재계는 “그룹 대권을 둘째아들에게 넘기겠다.”는 신 회장의 의지로 해석했다. 신 부회장은 온라인쇼핑몰·편의점 사업 등에서 이렇다할 실적을 내지 못했지만,KP케피칼·현대석유화학 등을 성공적으로 인수함으로써 아버지의 신임을 굳혔다. 현장을 중시하는 것은 아버지의 영향을 그대로 받았다. 지난 4월에는 롯데마트 금천점에 불쑥 나타나 한 시간 동안 매장을 둘러보기도 했다. 현장에서 지시한 내용은 나중에 꼭 확인한다. 상장(6개사)에 인색한 기업 문화와 보수적인 토양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주목된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브리티시오픈골프] 최경주 “악 17번홀”

    ‘탱크’가 자신의 키보다 더 깊은 벙커에 빠진 뒤 1개홀 최악의 스코어를 적어내며 고개를 떨궜다. 최경주(35·나이키골프)는 17일 스코틀랜드 세이트앤드루스 올드코스(파72·7279야드)에서 벌어진 브리티시오픈골프대회(총상금 730만달러) 최종 라운드에서 4타를 줄여나가며 중간합계 6언더파로 ‘톱10’ 입상의 기대를 부풀렸지만 막판 17번홀에서 무려 5타를 까먹는 바람에 대회 최고 성적 달성의 꿈을 한순간에 날렸다. 최종 성적은 1언더파 287타로 14일 자정 현재 공동 43위.첫 홀에서 기분좋게 1타를 줄이며 버디사냥에 나선 최경주는 5번홀에서도 1타를 더 벌어 전반을 보기 없이 마쳤다. 후반 첫 홀인 10번홀에서도 곶감 빼먹듯 버디를 기록한 최경주는 다음홀에서 이날 유일하게 보기를 저질렀지만 12번홀에서 곧바로 만회하는 등 16번홀까지 4타를 줄이며 한 자릿수 순위를 코앞에 뒀다. 하지만 발목을 잡은 건 이전까지 이번 대회 모두 18명에게 더블보기 이상을 안긴 17번홀(파4). 최경주는 그 17번홀 중에서도 가장 악명이 높은 ‘로드 벙커’에 공을 빠뜨린 뒤 9타 만에 홀아웃했다. 그린 옆에 개미지옥처럼 아가리를 벌린 로드 벙커는 크기는 조그맣지만 깊이는 무려 1.8m. 지난 78년 대회에서 일본인 최초의 메이저 우승을 눈앞에 둔 토미 나카지마가 무려 4타 만에 겨우 빠져나와 ‘나카지마 벙커’라는 별명이 하나 더 붙었다. 결국 최경주는 전날 보기로 버틴 17번홀에서 자신의 역대 프로 경기 동안 단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퀸터플보기’를 안긴 벙커의 악몽에 몸서리를 쳤다. 전날까지 이븐파로 선전한 허석호(32)도 버디 없이 보기만 5개를 쏟아내며 최종 5오버파 285타로 70위권에 그치며 대회를 마감했다. 대회 두번째 패권을 노리는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는 14일 자정 현재 6번홀까지 중간합계 13언더파로 살얼음판 선두를 이어나갔다.6년 만의 ‘홈그린 챔피언’을 벼르는 콜린 몽고메리(스코틀랜드)는 8번홀까지 2타차로 우즈를 추격했고, 우즈와 우승조로 함께 나선 호세 마리아 올라사발(스페인)도 6번홀까지 10언더파로 단독3위를 달리며 우즈를 위협했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여담여담] 차라리, 뜨거운 불쏘시개?/황수정 문화부 기자

    별렀던 책장 정리를 하리라 소매를 걷고 본즉 한권 두권 밀쳐놓은 책이 어느새 어른 키만큼 쌓였다. 아파트 쓰레기장으로 이들을 내놓으려다 몇달 전 만난 시인의 얘기가 퍼뜩 머리를 스쳤다. 그이 역시 이삿짐에서 추려낸 책이 족히 수백권은 됐는데, 몇날며칠 수소문한 끝에 강원도 오지의 한 군부대로 몽땅 실어보냈다고 했다. 그 때 시인은 좀 유난하다 싶게 흥분했었다. 책이 귀해 못 보는 세상도 아니건만 그 멀리서 부러 차를 몰고와 헌책들을 살뜰히 거둬가는 젊은 장병들 뒷모습이 그렇게 흔감스러울 수가 없더라면서. 생각해 보면 우린 정말 책 귀한 줄 모르는 세상을 살고 있다 싶다. 기실 책이 귀하게 여겨질 리 만무한 시속(時俗)이기도 하다. 수십권짜리 책 세트를 “딱 오늘 이 시간에만 이 가격!”이라며 땡처리하듯 호들갑 떠는 TV홈쇼핑의 선동(?)에마저 무감각해지고만 현실 아닌가. 홈쇼핑에 매물로 나온 책들 신세는 인터넷 서점 쪽에 비하면 그래도 양반이다. 인터넷에서는 각양각색의 ‘덤’이 따라붙지 않고선 아예 책 대접을 받을 수가 없다. 마일리지, 할인쿠폰, 경품, 심지어는 해당 출판사의 베스트셀러가 별도 사은품으로 얹힌다. 도서 원가보다 더 비싼 선물들에 파묻힌 책을, 그것도 ‘택배’로 받아드는 세상이다. 그들이 오래오래 귀한 대접을 받기란 애시당초 글러먹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책의 힘이 정말 셌던 때가 있었다. 글자들이 인터넷을 날지 않고 종이 안에서만 얌전했던 시절. 혼기 찬 고모가 전집 두어질을 혼수품으로 마련하겠다며 친구들과 곗돈을 붓던 일이 이젠 달나라 이야기 같다. 프랑스의 인기 여류작가 아멜리 노통브의 희곡집에서 무릎을 쳤다. 전쟁으로 고립돼 서재에 갇힌 세 남녀. 얼어죽지 않으려면 책을 불쏘시개로 써야만 하는데, 셋의 옥신각신이 쉽게 끝나질 않는다.‘두께’로만 존재하는 책의 신세에 빗대 작가는 현대사회의 책 가치를 신랄히 역설한 셈이다. 재활용 수거차를 기다리며 오락가락 장맛비에 젖어갈 내 책들. 차라리 뜨거운 불쏘시개가 되겠노라 아우성칠까봐 며칠째 거실 귀퉁이에 엉거주춤 쟁여만 놓았다. 황수정 문화부 기자 sjh@seoul.co.kr
  • [열린세상] 법조계 우먼파워/김화진 법무법인 율촌 미국변호사

    얼마 전 미국의 유명한 대학총장이 과학과 공학 분야에서 여성의 활동이 저조한 이유는 성별에 따른 역할을 강제하는 사회화 과정 때문이 아니라 유전적인 차이 때문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서, 잘 마무리되기는 했지만 곤욕을 치렀다. 우연찮게 이 대학은 여성들의 힘든 역정을 보여주는 역사를 가진 대학이다. 법대의 여성사를 보자. 1871년 당시 미국에는 여성 법률가가 세 사람이었다.1870년에 에이더 케플리는 노스웨스턴법대에 지원해서 입학허가를 받았고 미국에서 법대를 졸업한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1871년에는 헬렌 소여가 하버드법대(HLS)에 지원서를 제출했는데, 학교는 장시간의 논쟁 끝에 그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했다.1872년에는 수전 앤서니가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했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배심원들은 물론 전원 남성이었다.1873∼4년에 연방대법원은 일리노이주에서 여성이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여성의 대법원 변호사 자격도 인정되지 않았다. 1878년에는 이름이 잊혀진 한 여성이 다시 HLS에 지원했다가 입학을 거부당했다.1880년 당시 미국의 여성 변호사 수는 75명이었다.1899년에는 프란세스 키가 HLS에 지원했다. 이번에는 교수진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대학은 이를 거절했다.1900년 현재 미국의 여성 변호사 수는 1010명이었다.1909년 이네즈 밀홀랜드가 HLS에 지원했다. 그녀는 장문의 편지를 교수진과 학교 앞으로 보내 입학의 타당성을 설득했다. 그러나 거절당했다. 1915년에는 15명의 여성이 ‘여성의 HLS 입학에 관한 탄원서’를 총장 앞으로 제출했다. 총장은 남녀공학이 학교에 ‘해로울’ 것이라는 이유로 그를 배척했다. 당시 15명의 탄원자들 중 한 사람이 HLS 교수의 딸이었는데, 이들은 케임브리지여자법대라는 학교를 설립해버렸다. 그러나 교실 두 개로 설립된 이 학교는 지원자가 별로 없어 설립멤버들이 졸업하자 바로 문을 닫았다. 1920년에는 연방헌법 수정 제19조가 제정되어 여성의 연방 차원 투표권이 인정되었다.1930년에는 하버드를 제외한 대다수의 법대가 여학생을 받아들였다. 당시 2203명의 여학생과 3385명의 여성 변호사가 있었다는 통계가 있다.2차 대전 무렵 미국 법대생의 25%가 여학생이었으나 HLS에서의 여학생 비율은 여전히 제로(0)였다. 그러다가 1950년, 마침내 14명의 여학생이 HLS에 입학했다. 학교에는 부랴부랴 여자 화장실이 설치되었다. 여학생의 학생식당 이용은 허락되었으나 1958년까지 기숙사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21세기 직전인 1999년 현재 HLS 신입생의 43%가 여학생이었으며, 두 사람의 연방대법관과 법무장관을 포함해 미국 법률가의 4분의1이 여성이다.1997년 최초로 여학생이 HLS를 수석졸업했고,2003년에 드디어 여학장이 탄생했다. 물론 이는 스탠퍼드에 비해서는 늦은 것이었다. 예일 법대는 여성 대통령을 배출할 것으로 기대되거나 아니면 벌써 배출했다는 조크도 있다. 의대도 사정은 비슷했다.1847년에 여성이 처음 입학을 지원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1945년에야 성사되었다. 경영대학원에도 1963년에 문호가 개방되었고, 하버드대학 여학생 수 제한이 철폐된 것이 1975년이다.1956년에 최초로 여성 정교수가 나왔는데 지금은 전체 교수진의 13% 정도가 여성이다. 긴스버그 대법관이 한 연설문을 보면 긴스버그 대법관이 법대를 졸업하고 뉴욕의 법률사무소에 취직하려고 했을 때 “유대인, 여성, 애기엄마”라는 세 가지 최악의 조건을 갖춘 죄로 실패했다는 말이 나오는데 지금의 상황과 비교해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성 대법관, 헌법재판관과 법무장관이 나왔는데 미국에서처럼 기나긴 투쟁의 역사는 없었지만 쉬운 역정은 아니었던 듯하다. 여성의 역할이 사회 각 분야에서 아직 크지 않은 것은 유전적 이유가 아니라 사회화 과정 때문이라는 것이 역사에서 쉽게 보인다. 김화진 법무법인 율촌 미국변호사
  • [마광수의 섹스토리] (7)나는 탐미주의자

    [마광수의 섹스토리] (7)나는 탐미주의자

    나는 탐미주의자이고, 또한 성에 있어서는 미식가이다. 나는 성적 잡식가들을 혐오한다. 그들은 질보다 양을 더 따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혼(1990년) 후 한번도 여자와 육체관계를 가져본 적이 없다. 이혼 후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1992년)이 터져 쓸데없는 시간의 ‘소모전’을 치러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는 나의 탐미적이고 페티시즘적인 취향에 맞지 않는 여자하고는 절대로 성관계를 갖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 나는 돈을 주고 여자를 사서 같이 자본 적이 한번도 없다. 그런 나에게 최근 어떤 여성이 하나 다가왔다. 그래서 짧은 기간이나마 멋진 유미적 섹스 관계를 갖게 되었다. 그녀를 나는 내가 20년째 단골로 다니고 있는 이대 앞의 카페 ‘볼 앤 체인(Ball and Chain)’에서 보게 되었다.‘볼 앤 체인’(이름이 얼마나 에로틱한가! 죄수가 차는 족쇄와 사슬을 가리키는 말인데, 사도마조히즘을 연상시켜 주어 무척이나 도착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에는 긴 바(bar)가 있어 혼자서 오는 손님들이 많은데, 어느날 거기에 혼자 갔다가 역시 혼자 와 술을 마시고 있던 그녀를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정말 신비롭게 아름다웠다.170㎝쯤 되는 적당한 키에 전체적으로 약간 마른 듯이 보였지만 앙상하게 마른 것은 절대 아니었다. 왜…. 골격이 작은 여자들이 있지 않은가? 비교적 큰 키에도 불구하고 자그마한 골격에 적당히 살이 붙어서 부드러움을 더해주는 그런 ‘여성스러운’ 몸매를 가진 여자들 말이다. 그녀는 칠흑같이 숱 많은 머릿단을 등의 날개뼈까지 늘어뜨리고 있었다. 물론 요즘에는 블루블랙이니 하는 색깔을 인공적으로 넣는 여자들도 많지만, 그녀의 머리카락이 천연의 것인 것만은 의심할 나위가 없었다. 얼굴은 정말로 조각만 했는데, 귀 아래서 턱으로 이어지는 선이 깨질 것처럼 너무도 가냘퍼서 그만 두 손으로 감싸주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느라 나는 한참동안 진을 빼야 했다. 너무나 투명해서 그 안이 다 비칠 것만 같이 새하얀 피부는 칠흑같은 머릿단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뺨 아랫부분은 싱그러운 청록빛을 띤 핏줄들이 관능적인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나는 보통 아이섀도를 짙게 칠한 여자들을 ‘어색하다’고 보는 편이었는데, 그녀는 화장을 완벽하게 잘 해 화려한 아이섀도가 정말로 잘 어울렸다. 그녀의 눈은 앙증맞은 고양이의 그것 같았다. 눈동자는 흑옥(黑玉)처럼 까맣고, 흰자위는 푸른빛이 돌 정도로 하다. 눈 모양도 단순히 둥그렇기만 한 게 아니라 마치 송편 모양처럼 기묘한 곡선미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또 그렇게 도발적으로 보일 수 없었다. 입술에는 간단히 누드 핑크빛이 도는 립그로스를 발랐을 뿐이었는데, 약간 작은 듯한 입술은 그대로도 완벽한 모양새를 이루고 있어 입술선을 교정하기 위해 립라이너를 할 필요가 없었을 터였다. 내가 그녀에게 온 정신을 다 빼앗기게 된 이유는 이렇게 신비롭고 이국적인 얼굴 탓도 있었지만, 역시 길고 가느다란 목과 자그마한 어깨가 보여주는 지극히 아름다운 곡선미 때문이었다. 물론 어두운 조명 때문에 확실히 볼 수는 없었지만, 옷 위로 드러난 어깨의 맵시하며 가끔씩 보이는 하얀 목선으로 미루어보아 내 상상은 틀림없었을 것 같았다. 그녀는 패션감각 또한 너무나 뛰어난 것 같았다. 그녀는 온통 보라색으로 온몸을 휘감고 있었는데, 보라색이 이토록 사람을 매혹적으로 보이게 하는지는 여태껏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상의는 니트로 된 반코트쯤 되어 보였다. 목 주위의 여밈새와 손목 주위는 온통 보라색 깃털로 화려하게 장식돼 있었고, 풍만해 보이는 깃털 장식은 그녀의 정말로 가는 허리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거지만, 그녀의 허리는 한 20인치쯤 되었나 보았다. 20인치만 돼도 이렇게 인간의 허리가 아닌 것처럼 가느다란데,‘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유명한 여배우 비비언 리의 허리가 17인치였다는 건 말짱 거짓말일 것이다. 그녀의 화려한 반코트 아래에는 발목까지 오는 긴 스커트를 입었는데…. 그게 또 몸에 몹시도 착 달라붙어 있는 게 아닌가. 살짝이 난 트임 사이로 살짝살짝 엿보이는 그녀의 날씬한 다리 또한 몹시도 인상적이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패션의 완성’은 신발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신발에 신경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런 점에서 본다면 그녀의 패션은 완벽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이 얇싹한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15㎝의 ‘울트라 하이힐’을 신은 여자를 실제로 본 적이 없었다. 소위 명품이니 뭐니 해서 샤넬이나 구치, 겐조, 셀린 같은 옷으로 쫙 빼입고 다니는 여자들은 어디에나 널려 있다. 하지만 요즘 유행은 ‘울트라 하이힐’은 아닌 것이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큼직한 리본이 달린 단화를 신고 다니는 게 보통이다. 하여튼 나는 말 그대로 그토록 높은 굽의 ‘뾰족구두’를 실제로는 처음 보았다. 그녀는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그래서 높은 하이힐이 오히려 그녀의 다리 전체에 위태위태함을 더해줘서 아이로니컬하게도 금세 부러질 것만 같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다. 구두 앞모양도 너무나 뾰족해서 분명 안에 있는 발가락들이 짜부라들지 않고서는 걷지도 못할 구두였지만, 전체적으로 그 위태위태한 아름다움은 정말 사람을 오싹하게 할 만큼 치명적이었다. 구두 앞은 깊게 파여서 발가락만 간신히 가릴 정도였고, 그 발등 위를 가느다란 금색 메탈 줄이 사선으로 가로지르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와인 잔을 질금거리면서 긴 시간 동안 숨을 멈추고서 그녀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서 그녀 바로 옆자리에 가서 앉았다. 난 진짜로 ‘야한’ 여자 앞에서는 사족을 못 쓴다. 나는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어서 장(腸)이 다 꼬일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녀도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걸로 봐서 나한테 쬐끔은 관심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서로의 반응을 염탐하던 중에 다시 눈이 마주친 그녀는 내게 살짝 미소를 지어주었다. 기회는 이 때다 싶어 나는 그녀의 오른쪽 허벅지에 손을 갖다 댔다. 신기하게도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든가 하는 식의 촌스러운 반응을 나타내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손을 빼어 그녀의 두 가랑이 사이로 찔러 넣었다. 그래서 내 손바닥은 그녀의 사타구니 사이에 포근하게 갇혔다. 내 손에 전달돼 오는 맨살의 따스한 온기와 ‘노 팬티’로 인한 음모의 부드러운 감촉 때문에 나는 너무나 너무나 행복했다. 나는 더욱 용기를 내어 그녀의 귓바퀴에 혀를 갖다대 보았다. 그래도 그녀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나는 그녀의 귓바퀴와 귓불, 그리고 귓속을 철부덕 철부덕 핥았다. 그래도 그녀는 조용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그런 야한 매너에 진심으로 감복했다. 여느 여자 같으면 버럭 소리를 지르거나 가만히 있다손쳐도 조금씩 폼을 잡거나 생색을 냈을 것이었다. 나는 그녀와의 ‘이심전심’이 가능하다는 것을 즉발적(卽發的)으로 느꼈다. 그래서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갖다대 보았다. 퍼들거리는 그녀의 혀가 금세 내 입안으로 쳐들어왔다. 혓바닥과 혓바닥의 부딪침, 그리고 타액과 타액의 섞임. 나와 그녀는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않고 은밀한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얼싸 안았다. 그러고는 그녀의 몸과 내 몸을 밀착시켰다. 그녀의 몸뚱어리는 따스했다. 나는 몸이 차가운 소음인(少陰人)인지라 몸이 뜨거운 소양인(少陽人) 여성을 좋아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바로 소양인인 것 같았다. 카페의 음악이 바뀌었다. 올리비어 뉴턴 존이 부르는 ‘Phisical’이었다. 그 노래 속의 가사인 ‘Let Me Hear Your Body Talk’가 우리 두 사람을 자리에서 일어서게 했다. 나와 그녀는 조용한 걸음걸이로 카페를 빠져나왔다. 역시 아주 높은 굽인지라 그녀의 걸음걸이는 우아하게 느렸다. 달리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자연스레 어느 장소로 이동했다. 멀리서 명멸하는 붉은 색 네온사인이 ‘장미호텔’을 표시해주고 있었다. ■마광수는 1951년 경기 수원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현재 연세대 국문과 교수 ▲저서 ‘윤동주 연구´ ‘상징시학´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장편소설 ‘권태´ ‘즐거운 사라´ ‘불안´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사랑의 슬픔´
  • 당정, 종부세 세부담증가율 상한폐지 검토

    당정, 종부세 세부담증가율 상한폐지 검토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13일 부동산 보유세를 강화하기 위해 현행 50%인 종합부동산세의 세부담 증가율 상한선을 대폭 올리거나 아예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또 종부세 과세기준을 현행 기준시가 9억원 이상에서 6억원 이상으로 낮춰 과세대상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와 함께 1가구 1주택 보유자 양도세 비과세는 당분간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반면,1가구 2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해서는 양도차익의 최고 80%까지 과세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정은 이날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이해찬 총리와 우리당 원혜영 정책위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2차 부동산정책 고위당정협의회를 갖고 이같은 내용의 부동산 세제강화 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열린우리당 원혜영 정책위의장은 “현행 50%인 세부담 상한선이 너무 낮게 잡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며 “이에 따라 상한선을 100%로 할 것인지,200%로 할 것인지, 아니면 폐지할 것인지가 모두 검토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해 종부세 법안을 제출할 당시 세부담 상한선을 100%로 잡았으나 당정협의 과정에서 50%로 하향 조정했었다. 당정은 또 부동산 투기이익을 환수하기 위해 양도세 산정기준을 실거래가로 전면 전환,1가구 2주택 이상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과세를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양도세 강화에 따른 거래동결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일정기간 유예기간을 두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채수찬 정책위 부의장은 이와 관련,“1가구 2주택이나 1가구 3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해서는 양도세를 강화하되,1가구 1주택 보유자는 다르게 취급하자는 논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1가구 1주택 장기보유자로서 집값이 올라 고가주택 보유자가 된 경우는 조세저항이 우려되는 만큼 공제율을 대폭 확대해주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정은 이와 함께 부동산 실거래가 기반 구축을 위해 시·군·구 단위의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가 의무화됨에 따라 신고된 실거래가를 등기부에 기재하도록 관련 제도를 대폭 정비키로 했다. 당정은 실거래가 신고 의무화에 따라 세부담이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보고 취득세와 등록세 등 거래세 부담을 대폭 낮추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한편 당정은 다음주 당정협의회에서는 개발이익 환수와 공공 역할 확대, 안정적 주택공급방안을 논의키로 했다. 김성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대구 10월 급행버스 도입

    대구 시내에 오는 10월부터 급행버스가 도입된다. 시내버스 준공영제를 도입하기 위해 시내버스 노선 개편을 추진중인 대구시는 “대구지하철 1,2호선이 다니지 않는 지역에서 급행버스를 도입키로 했다.”고 12일 밝혔다. 급행버스가 다니는 곳은 ▲동구 팔공산∼달서구 성서 ▲수성구 범물∼북구 칠곡 ▲북구 동서변∼달성군 가창 등 3개 노선이다. 급행버스 요금은 현재 좌석버스 요금과 같은 1300원으로 잠정 결정됐다. 급행버스는 시내버스 승강장 가운데 30%만 정차하게 된다. 대구시는 또 유통단지∼북비산 네거리∼명덕네거리∼동부정류장∼경북도청 등 2차 순환선을 오가는 노선 2곳과 범물∼남부정류장∼북부정류장∼두류공원∼남구청 등 3차 순환선을 운행하는 노선 2곳 등 순환선 4개도 마련했다. 대구시는 18일부터 22일까지 대구시내 구·군 지역을 돌며 버스개편안에 대한 순회 설명회를 열어 주민들의 의견을 듣기로 했다. 유한국 대구시 교통국장은 “이번에 마련한 시내버스 노선 개편안은 종전보다 통행 시간이 5분 정도 단축되고, 배차 간격도 종전 12분대에서 7∼8분대로 줄어든다.”고 말했다.대구 황경근기자kkhwang@seoul.co.kr
  • 北 핵폐기땐 200만㎾ 송전

    北 핵폐기땐 200만㎾ 송전

    정부는 북한이 오는 27일께 베이징에서 열릴 제4차 6자회담에서 핵폐기에 합의할 경우, 이르면 2008년부터 200만㎾의 전력을 직접 송전방식으로 북측에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인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12일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열린 NSC 회의를 마친 직후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북측에 전달한 ‘중대 제안’내용을 이같이 설명했다. 정 장관은 “6자회담에서 북한의 핵폐기 합의문이 발표되면 즉각 경기도 양주↔평양간 직접 송전 건설 문제를 협의, 송전 및 변환시설 건설에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정부는 1994년 제네바 북·미 핵합의로 시작됐다가 중단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금호지구 100만㎾ 2기 경수로 공사를 공식 중단하고, 우리 정부 분담금 가운데 남은 24억달러 내에서 전력 공급 비용을 충당키로 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그동안 경수로 건설 사업에 11억 2000만달러나 투입, 이 돈을 모두 날리게 되는 셈이어서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정 장관은 “3년 이내 북한 핵폐기의 시점에 건설 공사도 완료해 북한 전력 부족분을 메울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송전선로 건설에는 5000억원, 변환설비 건설에는 1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했다. 송전 시점과 관련, 정부 당국자는 “폐기를 완료한 때일 수도 있고 폐기 과정상의 한 시점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대북 전력 공급은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다른 나라들도 상응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북측이 핵폐기에 동의하면 2002년 12월 중단한 중유 공급 계획이 6자회담을 통해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대 제안에 대한 북측의 수용 여부와 관련해 정 장관은 “아직 답변해 오지 않았으나 우리측은 제안의 성실성과 유용성을 들어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북한이 지난 2월10일 핵무기 보유 및 6자회담 무기한 중단 선언을 한 직후 ‘중대 제안’을 마련했으며 5월 남북 차관급회담에서 북한에 알리고 지난 달 17일 평양 방문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구체적인 내용을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정 장관은 “북측이 내놓을 것은 핵포기이고, 북한이 원하는 것은 체제안전보장을 포함한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와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 에너지를 핵심으로 한 경제문제 해결”이라며 “대북 직접 전력공급은 이 문제를 푸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KEDO의 향방에 대해 “유관국과의 협의를 거쳐 차차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정 박정경기자 crystal@seoul.co.kr
  • 경의·동해선 연내 개통

    경의·동해선 연내 개통

    남북은 오는 10월 경의·동해선 열차의 시험운행을 가진 뒤 올해 안에 철도를 개통하기로 했다. 현재 임시 개통된 경의·동해선 도로의 개통식도 10월에 갖는다. 남북은 또 오는 2006년부터 경공업과 광공업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협력하기로 했다. 10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는 11일 서울 그랜드호텔에서 사흘째 회의를 갖고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12개항의 공동합의문 작성을 위해 이날 밤늦게까지 막판 문안조율협상을 벌였다. 양측은 또 ▲쌀 차관 50만t 제공에 관한 합의서 ▲남북 경제협력협의사무소 개설·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각각 채택키로 했다. ●철도 연결구간 새달 공동점검 남북 대표단은 이날 밤 늦게 공동 발표를 통해 “남북은 우선 상호보완적 경제협력 사업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를 위해 다음달 중에 남북 철도 연결구간의 노반 실태를 공동 점검하기로 했다. 남북은 또 오는 9월에 상설기구인 남북 경제협력 협의사무소를 개성에 개설해 경협 과정에서 수시로 발생하는 문제점을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남북 수산협력 실무협의회 첫 회의도 오는 25일부터 사흘간 개성에서 열기로 합의했다. 이는 서해상의 평화정착과 남북 어민의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란 설명이다. ●쌀 50만t 연내 北제공 쌀 차관과 관련해서는 국내산 40만t과 수입산 10만t을 연내에 제공키로 했다. 북한의 식량난과 6자회담 재개 등을 감안해 예년보다 10만t이 늘어났다. 북측은 이번 회의에서 북한 지하자원의 공동 개발을 제의하며 “아연, 마그네사이트를 남쪽이 투자해 생산한 후 남쪽에 가져가거나 공동으로 내다 팔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경공업과 관련,“북쪽에는 숙련공이 많고 (남쪽에서) 자재와 설비를 보장해 주면 생산해서 남쪽에 들여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제의했다. 수산분야에 대해서도 “서해상에서 공동 어로를 하고 양식사업도 같이 해 보자.”면서 “우리는 청정해역으로 좋은 지역이 많고, 남쪽에서 밧줄 등을 지원해주면 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는 경의선 개통 등을 소재로 한 공동우표 발행 등 우편 부문 남북 협력을 추진키로 했다. 황중연 본부장은 이날 “경의선 철도 외에도 3·1운동과 단군신화, 금강산 등을 소재로 한 우표 발행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태국진출 기업 稅부담 경감

    빠르년 내년 1월부터 태국에 투자한 국내 기업의 배당·이자·사용료 소득에 대한 최고세율이 현행 10∼20%보다 5∼10%포인트 낮아진다.태국에서 조세감면을 받아도 세금을 낸 것으로 간주, 국내 기업의 법인세 납부때 그만큼 감면해 주는 간주외국납부세액공제제도(TSC)를 5년간 허용키로 하는 등 태국 투자 국내 기업의 세부담이 줄어들 전망이다. 재정경제부는 11일 태국과 제2차 조세조약개정 실무회담을 갖고 이같은 내용에 완전합의, 양국 외무부 장관의 서명과 국회동의를 거쳐 빠르면 내년 1월1일부터 적용키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또 태국이 앞으로 말레이시아의 라부안 역외금융센터와 같은 제도를 도입한 뒤 이를 통해 역외펀드가 우리나라에서 투자소득을 얻을 경우, 역외펀드는 이중과세 방지를 규정한 조세조약 혜택에서 배제돼 국내 세법에 따른 과세가 이뤄지도록 했다.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대기오염차량 도심 통행 제한

    대기오염차량 도심 통행 제한

    수도권 대기질을 개선하기 위해 강력한 교통통제 정책이 도입된다. 서울과 인천·경기도(24개시)의 일부 도심을 ‘환경지역(Environment Zone)’으로 묶어 저공해차만 통행을 허용하고, 이를 위해 자동차 ‘환경등급제’ 도입도 추진된다. 수도권내 교통혼잡 지역을 오가는 차량에 대해선 ‘교통혼잡세’를 물리고,2007년부터는 교통세 가운데 일부를 대기환경개선 사업에 쓰기로 했다. 정부는 이런 내용의 ‘수도권 대기환경관리 기본계획(2005∼2014)’을 마련해 이달 하순 이해찬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수도권 대기환경관리위원회에서 최종 확정할 방침이라고 10일 밝혔다. 지난 5월 환경부가 작성한 기본계획안을 토대로 정부부처와 서울·인천·경기 3개 시·도가 그동안 구체적 방안을 협의해 왔다. 기본계획에 따르면 스웨덴 스톡홀름 등 일부 선진국에서 시행 중인 ‘환경지역’ 제도를 2008년부터 수도권에 도입, 대형버스나 트럭 등 대기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차량의 통행을 제한키로 했다. 교통량 집중으로 대기오염이 심한 지역을 통과하는 차량에 대해선 ‘교통혼잡세’를 부과하고 저공해차는 이를 면제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환경부는 “경제적 수단을 이용해 자동차 통행을 억제하겠다는 취지”라면서 “선진국 사례를 면밀히 조사해 세부 도입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집단에너지 공급도 확대된다. 주거용 시설을 대상으로 올해부터 매년 9만호씩 지역난방을 보급하는 한편, 상업 및 공공기관 난방시설의 10%를 구역형 집단에너지 공급대상으로 지정했다. 이밖에 기업체에 부과하는 교통유발부담금 액수를 올리는 대신 통근버스·카풀제 확대 등에 참여할 경우 버스구입비를 지원하거나 교통유발부담금 면제 및 세제혜택 확대 등 방안도 내놓았다. 정부는 2014년까지 수도권 대기질을 현재보다 40% 안팎 개선시키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서울의 경우 미세먼지는 2003년 현재 ㎥당 69㎍(마이크로그램·100만분의 1g)에서 40㎍으로, 이산화질소는 38ppb(십억분율)에서 22ppb로 낮추기로 했다. 이를 위해 수도권 3개 시·도는 사업장과 자동차 등에서 나오는 미세먼지·질소산화물·휘발성유기화합물(VOC)·황산화물 등 4개 오염물질의 배출량을 현재보다 39%∼53%까지 낮춰야 한다.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관련기사 22면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진그룹 (2)-2세 경영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진그룹 (2)-2세 경영

    한진 조씨가(家)의 2세들이 창업주 고 조중훈 회장의 그늘에서 벗어난 지 3년.4형제의 ‘홀로서기’가 정착된 가운데 이제는 선친이 다져놓은 반석에서 세계 일류 수송기업을 향해 달리고 있다. 지난 3년간 2세들의 경영 성적표는 ‘기업은 물려 받는 것이 아니라 가꾸어 나간다는 것’임을 증명해준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도 “전문경영인으로서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가장 큰 유산”이라고 말한다. ●조중훈 회장의 자식 교육 고 조 회장은 자식들에게 인성에서는 검소와 성실을, 일에서는 프로를 강조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자식들을 엄격하게 교육 시켰지만, 때론 애틋한 부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또 선진 지식을 습득하도록 조기 유학을 보내 자식들에게 전문가의 길을 걷도록 했다. “미국 유학 시절 때입니다. 부친은 틈틈이 자신의 육성이 담긴 테이프를 저에게 보내 격려를 했었습니다. 힘들 때마다 부친의 자식 사랑을 확인하면서 큰 힘을 얻은 거죠. 그리고 저도 1주일에 한번씩 아버지께 편지를 썼죠. 부친은 ‘훌륭한 경영자가 되기 이전에 훌륭한 인간이 되어라.’,‘현재의 조건에서 행복을 찾아라. 행복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다.’를 가르치곤 했었습니다.”(조양호 회장) 조양호 회장과 부친과의 일화 한 토막. 조 회장이 유럽여행을 떠날 때 부친은 궁색하지 않도록 3000달러를 경비로 줬다. 조 회장이 여행을 끝내고 홍콩에서 부친을 만났을 때, 그는 부친이 건네준 돈의 절반인 1500달러을 돌려드렸다. 그는 돈을 절약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다니며 1∼2달러짜리 값싼 여인숙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이후 부친은 조 회장의 검소한 생활과 관리 능력을 신뢰하게 되었단다. 말은 안 했지만 장남의 됨됨이와 장차 그룹의 후계자로서 자질을 테스트했던 것이다. ●4형제의 소그룹 독립경영 “4형제 모두 대한항공에서 경영수업을 시작했지만, 선친(고 조중훈 회장)께서는 자식들의 전공과 성격 등을 감안해 주요 계열사를 맡기신 것 같습니다. 항공은 그룹의 주력 업종이고, 전문 기술의 이해가 필요한 만큼 공대 출신인 제가 맡게 됐고, 둘째(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는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한 데다 성격도 걸걸해서 건설·중공업에 적합하다고 판단하셨죠. 또 국제 비즈니스 마인드가 필요한 해운쪽은 사교적인 셋째가 적성에 맞을 것으로 보셨고, 막내는 금융분야 공부를 죽 해왔으니 그룹의 금융을 책임지도록 하셨습니다. 선친은 이미 1990년대 초부터 이같은 밑그림을 그려놓고, 자식들을 관련 계열사에서 꾸준히 트레이닝을 시켰다는 생각이 듭니다.”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4형제가 각각 항공과 중공업, 해운, 금융을 맡게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진그룹은 2002년 조중훈 회장의 별세 이후 4형제간 ‘독립 경영’을 정착시켰다. 그룹 후계구도를 일찌감치 ‘교통 정리’한 데다 확실한 계열 분리를 위해서는 독립경영이 선결돼야 한다는 4형제간의 합의에 따른 것이다. 그로부터 3년 후 한진 주요 계열사의 ‘성적표’는 독립경영의 성과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세계적인 항공사 독일 루프트한자의 19년 아성을 깨고, 화물수송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한진중공업은 국내 조선업체들이 적자에 허덕이던 지난해 367억원의 흑자를 기록했으며, 한진해운은 지난해 사상 최대의 경영성과를 올렸다. 메리츠증권은 동양화재의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통해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한진은 올해 창립 60돌을 맞아 계열사간 지분 정리를 마무리짓고, 확실한 ‘홀로서기’에 나설 전망이다. 한진중공업은 사실상 그룹으로부터 계열 분리가 마무리됐으며, 금융(동양화재)은 지난 3월 계열 분리를 끝냈다. 4형제의 독립 경영이 자리잡으면서 계열사간 의존 관계도 시나브로 엷어지고 있다. 대한항공과 한진해운은 주보험 거래처를 조정호 회장이 수장인 동양화재에서 다른 대형 보험사로 옮겼으며,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이끄는 한일레저는 한일 컨트리클럽내에 있던 대한항공 광고판을 철수시켰다. 또 금융계열사인 한불종합금융은 사무실을 서울 중구 해운센터에서 인근 파이낸스센터로 옮겼다. ●항공 전문가 조양호 회장 “회장님의 ‘러브레터’ 받았습니까.”,“이번주에는 두번이나 받았습니다.”대한항공 임원 사이에 오가는 아침 대화 가운데 하나다. 한 임원의 설명이다.“조 회장께서 해외 출장이 잦다 보니 업무를 주로 온라인으로 처리하는데, 좀 부족하거나 따로 지시할 내용이 있으면 담당 임원에게 이메일을 보내요. 임원들은 이를 회장님의 ‘러브레터’라고 부릅니다. 조 회장께서 워낙 전문가이다 보니 내용이 아플 때가 많죠.”이어 “모언론사 기자가 국내 그룹 회장들의 인터넷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 늦은 밤에 질문서를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조 회장은 본인 메일을 확인한 뒤,‘이런 질문은 홍보실에 문의하십시오.’라고 메시지를 보낸 모양이에요. 그 기자가 회장들로부터 되받은 유일한 메일이었고,30분만에 답장이 왔다고 하더라고요.” 조양호(56) 대한항공 회장은 늦은 밤에도 노트북을 열어 회사 현황을 파악하고, 결재도 한다. 의문 나는 사항은 담당 임원에게 이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로 질문을 한다. 직원들도 이제는 회장이 밤중에 결재한 서류를 보아도 더 이상 놀라지 않는다. 조 회장은 국제 항공업계에서 알아주는 거물급 인사다.2000년 출범한 세계적 항공동맹체 ‘스카이팀’ 결성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그가 미국 델타항공의 레오뮬린 회장과 의기 투합해 결성키로 한 ‘스카이팀’은 당시 참여항공사 문제로 난관에 부딪쳤다. 조 회장은 평소 친분이 두터운 에어프랑스와 알리탈리아의 최고경영자(CEO)를 집요하게 설득, 결국 ‘스카이팀’에 참여토록 했다. 그가 일궈놓은 스카이팀은 이제 국제 항공동맹체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그는 또 30년간 대한한공에서 잔뼈가 굵은 항공 전문경영인이다. 영업·정비·전산·자재·인사·총무 등 항공사 경영에 필수적인 분야를 두루 섭렵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전문경영인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되, 경영의 잘잘못을 지적하는 경영인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항공사 경영은 제조업과 달라 전문적인 경영 능력없이 권위만을 앞세워 경영권을 행사할 수 없는 특수한 업종입니다. 저는 조종사들과 전문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경비행기를 직접 조종할 수 있는 훈련도 받았습니다.” 조 회장이 2003년 그룹 회장에 취임하면서 임직원에게 던진 첫 일성은 ‘세계 최고의 종합 물류기업’이었다. 이를 위해 2010년까지 항공 여객운송 세계 10위, 항공 화물운송 세계 1위, 해상운송 세계 3위, 국내 육운 1위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는 인하대 공대를 거쳐 미국 남가주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인하대 경영학 박사 출신이다. ●선 굵은 조남호 회장 조남호(54) 한진중공업 회장은 4형제 가운데 가장 선이 굵은 경영스타일을 보여준다. 직원에게 많은 권한을 위임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도 철저히 따진다. 경영진이 일일히 챙기다 보면 실무 책임자의 활동 폭이 좁아지고, 책임감있는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1995년 인천 영종도의 남측방조제 건설 에피소드는 그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한진은 당시 최대의 국책사업이었던 인천국제공항 공사에 남측방조제를 맡았다. 서해안은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유속이 빨라 물막이공사 진행이 지지부진했다. 급히 대안을 찾아야 할 상황이었다. 또 북측방조제 공사는 경험많은 국내 굴지의 건설사가 맡은 터라 서로 자존심을 걸고 공기단축에 매달렸다. 이 때 조 회장(당시 부회장)은 현장 책임자를 직접 방문,“현장을 말아 먹든 말든 모든 권한은 당신에게 있다. 당신을 믿으니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꼭 해내리라 믿는다.”며 전권을 위임했다. 그 결과 여러 개의 바위로 5t이상의 돌망태를 만들어 쌓아나가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공사를 조속히 끝냈다. 더구나 경쟁사의 북측방조제 완공보다 간발의 차이로 일찍 끝내 업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준공식 날 헬기를 타고 현장에 도착한 조 부회장은 현장 책임자와 만나자마자 뜨거운 포옹을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조 회장은 국내에서 경복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지만 해외 근무경험은 풍부하다. 선친에게도 필요하면 바른 말을 했고, 부하 직원을 포용하는 스타일이다. 조 회장은 1971년 입사, 네덜란드와 중동, 동남아 등에서 근무하며 해외 건설사업의 개척자 역할을 담당했다. ●‘국제통’ 조수호 회장 조수호(51) 회장은 해운업계의 ‘국제통’으로 통한다.1991년 우리나라가 국제해사기구(IMO)의 상임이사국 가입을 위해 발벗고 나설 때, 정부가 그를 로비스트(?)로 낙점할 정도였다.1년 중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며, 세계 곳곳에 지인들을 심어 놓은 조 회장이 적격 인물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조 회장은 각국 대표를 일일이 찾아 다니며 협력을 요청, 결국 이사국 선임을 이뤄냈으며,93년에는 IMO이사국 연임에 공헌하기도 했다. 그는 딸만 둘이다. 딸들을 위해 주방에서 요리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대놓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조 회장은 해운업계의 ‘페미니스트’로 불린다. 여성은 배에 태우지 않는다는 해운업계의 금기를 깨고, 한진해운은 1995년 국내 최초로 12명의 여성 해기사(항해사, 기관사)를 선발했다. 또 1997년에는 여성주재원을 파견했으며,2000년에는 최초의 여성 일등항해사를 배출했다. 특히 대졸 신입사원 가운데 여성 비율이 절반에 육박한다. 조 회장은 미국 남가주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79년 대한항공에 입사했다.85년 한진해운 상무를 시작으로 10년만인 94년 사장으로 취임했으며,2003년 7월 회장직에 올랐다. 그는 20년간 해운업 ‘한 우물’만 판 전문경영인이다. 한진해운은 컨테이너선과 LNG선 등 150여척의 선박과 전세계 53개의 항로를 운영, 연간 1억t 이상의 화물을 수송하는 국내 최대의 선사다. 지난해 매출액 6조 2000억원, 순이익 6457억원을 기록했다. ●금융그룹 시동 건 조정호 회장 98년 한진투자증권(현 메리츠증권)의 재무구조는 최악이었다.9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자기자본은 411억원으로 퇴출 위기에 몰렸다. 이를 반전시킨 주인공이 조정호(47) 메리츠증권 회장이다. 당시 조 회장은 푸르덴셜증권 자회사인 PAMA(푸르덴셜에셋매니즈먼트아시아)로부터 510억원의 외자 유치에 성공한 뒤, 강력한 리더십으로 이듬해에 순이익 753억원, 자기자본 2156억원으로 불려놓았다. 외자 유치에는 평소 친분이 있었던 PAMA 코리아 대표인 김한 사장의 도움이 컸다. 이 인연으로 김 사장은 2003년 메리츠증권 부회장으로 스카우트된다. 김 부회장은 “메리츠증권과 PAMA를 결혼시킨 중매쟁이로서 맡은 역할을 다하기 위해 메리츠증권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나서기를 꺼려한다. 그러나 발동이 걸리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 지난해 ‘우수영업직원 격려행사’에 참석했던 조 회장은 직원들에게 직접 만든 ‘드라큐라주(포도주 폭탄주)’를 돌리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끌었다. 또 무대에 나가 자신의 18번곡을 멋지게 부르기도 했다. 조 회장은 최근 PAMA의 메리츠증권 지분 인수를 진두지휘하며,‘금융그룹’을 향한 시동을 걸고 있다. 지분 인수에 성공하면 동양화재를 정점으로 메리츠증권과 기존 한불종합금융을 아우르는 자산규모 3조원대의 중견 금융그룹을 이끌게 된다. 조 회장은 남가주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스위스 IMD 경영학 석사 출신이다. 영어와 불어에 능통하다. ●조씨가 3세는 ‘공부중’ 조씨가 3세들은 이제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이들이 많다. 유독 중매 결혼이 많았던 조씨가에서 3세 결혼은 어떻게 될까.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얘기다. “부모가 하라고 해서 요즘 젊은 애들이 그대로 따릅니까. 중매든, 연애든 사람만 좋으면 저는 반대할 생각 없습니다. 시대도 옛날하고 많이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조 회장과 이명희(56)씨는 장녀 현아(31)씨와 장남 원태(29)씨, 차녀 현민(22)씨 등 1남2녀를 두고 있다. 현아씨는 99년 미국 코넬대학에서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현재 대한항공의 호텔기판사업본부 기내판매팀장을 맡고 있다. 활달한 성격에 국제적 감각이 뛰어나며, 항공업무 전반에 대해 해박하다는 평이다. 원태씨는 대한항공 경영전략본부 부팀장(차장)으로 일하다가 지난달 미국 남가주대 MBA(경영학 석사)를 밟기 위해 출국했다. 본격적인 경영수업에 앞서 능력을 더 키우는 것이 낫겠다는 조 회장의 판단에서다. 조 회장은 “능력과 관심이 있다면 모를까, 자식이라는 이유로 경영에 참여시키지는 않겠다.”면서 “전문가적인 자질을 지녀야 한다.”고 밝혔다. 인하대 경영학과 출신인 조 차장은 합리적 사고에 일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다. 막내 현민씨는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 형제 가운데 유일하게 연애 결혼한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과 김영혜(54)씨는 1남1녀를 두고 있다. 장남 원국(29)씨와 장녀 민희(25)씨는 현재 미국 유학 중이다.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의 2세들은 현재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조 회장의 부인인 최은영(43)씨가 롯데가 출신으로 일본에 적지 않은 일가 친척이 있기 때문이다. 장녀 유경(19)씨와 차녀 유홍(17)씨 등이 있다. 조정호 메리츠증권 회장과 구명진(41)씨는 1남2녀를 두고 있다. 장녀 효재(16)양은 국내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원기(13)군은 미국으로 조기 유학을 떠났다. 막내 효리(4)양이 있다. ●한진그룹의 대표 CEO 이종희(63) 대한항공 총괄 사장은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CEO다. 경상도 사투리가 무뚝뚝하기보다 사근사근할 정도다. 그러나 78년 항공사에서 가장 바쁜 자리인 영업스케줄 과장 시절에는 5년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할 정도로 독종 기질이 다분하다. 이 사장은 대한항공 공채 1기 출신으로 정비·자재·기획·영업 등을 두루 거쳤다. 겉보기에는 소탈한 전문경영인으로 보이지만 업무만큼은 빈틈이 없다는 평이다. 매달 책 3권 이상을 읽을 정도로 독서파이기도 하다. 대구 출신으로 대구상고와 단국대 경영학과, 연세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김정웅(63) 한진중공업 건설부문 사장은 실무형 리더로 1993년부터 국가 최대의 국책사업인 인천국제공항 건설 현장소장과 총괄본부장을 맡아 성공적으로 공사를 마쳤다. 인하대 토목과를 졸업했다. 홍순익(59) 한진중공업 조선부문 사장은 국내 조선 1번지에서 출발한 한진중공업을 세계 조선기술 센터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적임자라는 평이다. 홍 사장은 서울고를 거쳐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나왔다.70년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에 입사한 뒤, 외국계 회사에서 수석 엔지니어와 동종 대형업체의 조선소장, 미국선급협회(ABS) 부사장을 역임했으며,2001년 다시 조선 현장에 복귀한 정통 조선맨이다. 박정원(60) 한진해운 사장의 집무실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직원들 중 누구라도 할 이야기가 있으면 언제든 올라오라는 뜻에서다. 그는 평사원 출신 CEO로서 포용력과 리더십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직원들의 생각을 직접 듣기 위해 평사원 및 특정 부서와 호프타임을 자주 갖는다. 서울 출신으로 중동고와 한양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김한(51) 메리츠증권 부회장은 글로벌 마인드와 감각을 갖춘 CEO다. 서울대와 미국 예일대 MBA 출신이다. golders@seoul.co.kr ■ 조씨 부자의 ‘사진 사랑’ 항공사의 수장으로서 숱한 해외 여행 때문일까. 고 조중훈 회장과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취미는 똑같이 사진 촬영이다. 솜씨도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선 프로급이다. 일만큼이나 취미도 극성스러운 것이 부자간 닮은 꼴이다. 고 조 전 회장은 공식 업무에서 벗어나면 카메라를 메고 낯선 땅 이곳저곳을 두루 돌아다니며, 이국의 풍물과 사람사는 모습 등을 카메라에 담았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찍은 사진들을 1985년 ‘이집트 고대문화 사진 전시회’에 내놓았다. 또 그의 사진 작품이 수만 점에 달해 한때는 개인 사진전을 준비하기도 했다. 고 조 회장은 사진 취미에 대해 이렇게 밝힌 적이 있다.“유별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도 있지만 자주 해외에 나가는 사업 특성과도 무관치 않습니다. 여기에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은 그 많은 감동과 경이를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장남인 조 회장의 사진 실력도 이미 재계에서 유명하다. 그는 해외 출장에서 찍은 작품으로 달력을 제작,4년째 지인들에게 선물로 주고 있다. 취미 활동을 비즈니스로도 활용하는 조 회장이 처음 사진을 찍게 된 계기는 중학교 때 부친으로부터 카메라를 선물로 받으면서다. 조 회장은 부친을 따라 여행을 자주 다녔는데, 부친이 항상 카메라를 갖고 다니며 사진 촬영을 하는 것을 보면서 사진에 대한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는 지금도 해외 출장 때면 디지털카메라와 캠코더를 분신처럼 꼭 챙긴다. 그리고 노트북에 작품을 담아 놓은 뒤 기념으로 촬영한 사진들을 지인들에게 직접 메일로 보내준다. 그가 사진 촬영에 이렇게 빠지는 데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의지대로 잘 표현할 수 있고, 간직할 수 있다는 점과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넓은 세상을 작은 렌즈에 담아 낸다는 점을 꼽았다. 그도 부친만큼이나 취미에 열성적이다. 평소 국내외 사진 전문잡지를 보면서 마음에 드는 것은 스크랩을 해뒀다가, 작품 활동에 참고한다. 또 사진 전문가와 만날 기회가 있으면 미진한 부분을 곧잘 묻기도 한다. 바쁜 해외 출장 중에도 차량으로 이동하다 차창 밖의 멋진 풍광이 눈에 들어오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차를 세워 촬영을 할 정도다. 조 회장은 “해외에 예정된 행사보다 하루나 이틀 정도 일찍 출발해 사진을 찍기 위해 도시 주변을 돌아다닌다.”면서 “사진은 잠시 잊었던 삶의 소중한 순간과 기억을 되살려주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말했다. golders@seoul.co.kr ■ 대한항공의 ‘화물 수송사’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로부터 어제 연락이 왔는데, 대한항공이 지난해 항공화물 수송 부문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고 해요. 이번주에 공식 발표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동북아 물류중심기지 건설에 대한항공이 일조를 했다는 점에서 뿌듯합니다.” 지난달 29일 서울 서소문 KAL빌딩에서 만난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상기된 표정으로 이같이 밝혔다. 당시에는 아직 공식 발표된 내용이 아니라서 그런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지만 대한항공 창사 36년만에 세계 항공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는 자부심은 도드라져 보였다. 그러나 대한항공이 세계 항공화물 수송 분야에서 톱이 되기까지 우여곡절과 애환도 적지 않았다. 대한항공이 화물사업을 시작한 것은 민영화 2년 후인 1971년 4월. 서울∼일본 도쿄∼미국 LA를 잇는 태평양 노선에 화물기를 처음으로 취항하게 된 것. 한·미 항공협정을 개정할 정도로 어렵게 노선을 취득했지만 막상 실어나를 화물이 없는 상황이 터졌다. 시도도 못하고 주저앉을 수 없다는 심정에서 당시 대미 수출품의 대부분이 가발인 점을 착안, 직원들에게 가발 수출업체를 찾아 나서라는 특명을 내렸다. 그러나 가발업체 대부분이 소규모 중소기업으로 찾는 것조차 힘들었다. 다행히 수출조합을 방문해 주소를 얻고, 복덕방에서 위치를 알아냈지만 또 다른 걸림돌이 있었다. 이제 막 출발한 대한항공에 대한 불신이 적지 않았던 것. 결국 애국심에 호소하며 설득전까지 치러가며 겨우 승낙을 받았다. 또 당시 해외 비즈니스맨들이 주로 이용하던 조선호텔 프런트를 찾아 숙박부를 뒤져가며, 접촉에 나서기도 했다. 이런 고생끝에 대한항공의 첫 화물기는 휴항없이 태평양을 건너게 됐다. 대한항공의 항공화물 변천사는 우리나라의 산업 발달사와 맥을 같이 한다.1970년대 초반에는 가발과 스웨터 등이 화물의 주종을 이뤘으며,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에는 모피류와 전자제품,1990년대에는 전자제품과 의류 등이 시장을 주도했다. 최근에는 반도체와 휴대전화,LCD 등 고가의 IT제품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휴대전화만을 위한 전세기가 인도에 운항한 적도 있다. 대한항공은 또 별난 특수화물을 수송한 경험도 많다.1983년 11월에는 B747화물기로 서울대공원에 수용될 동물 418마리(54t)를 미국 댈러스에서 서울까지 수송,‘현대판 노아의 방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 핵연료와 탱크, 헬리콥터 등 다른 항공사들이 좀처럼 수송할 수 없는 특수화물을 실어나른 경험도 쌓았다.94년에는 89마리의 미국산 말을 제주로 수송한 것을 시작으로 매년 경주마들을 실어 나르고 있으며, 무역전시장(COEX)내에 개장된 아쿠아리움(대형수족관)에 전시될 상어 35마리 등 희귀 어류들을 호주로부터 운송한 적도 있다. 또 운송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악어 72마리를 성공적으로 수송하기도 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달리는 굴뚝’ 자동차 관리에 초점

    ‘달리는 굴뚝’ 자동차 관리에 초점

    정부가 내놓은 ‘수도권 대기환경관리 기본계획’은 오는 2014년까지의 장·단기 대책을 망라한 종합 처방책이다. 한두 차례 정도 정부내 공식회의를 거쳐 이달 하순 최종 확정될 예정이지만 그동안 부처협의 과정에서 이견이 대부분 걸러진 만큼 ‘원안 통과’가 확실시되고 있다. 수도권 대기질 개선과 관련한 정부 정책은 그동안 공언해 온,“10년 후엔 서울 남산에서 인천 앞바다가 보이도록 하겠다.”는 말로 요약된다. 실현 여부는 자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번 기본계획에 이런 의지만큼은 확실하게 담았다는 것이 정부측의 설명이다. ●“자동차 배출가스를 잡아라” 개선대책은 자동차 관리에 초점을 맞췄다. 휘발유 자동차에 비해 대기오염 효과가 큰 경유 값을 상대적으로 올린 에너지 상대가격 체계 개편조치에 이어 추가 대책이 전방위적으로 동원됐다. 이 가운데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른바 ‘교통수요 관리’ 정책이다.‘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계획하고 있는데, 대형버스나 트럭 등 오염물질 대량 배출차량과 저공해차를 철저하게 ‘차별 대우’하겠다는 게 골자다. 우선 ‘환경지역(Environment Zone)’ 지정은 저공해차나 배출가스 저감장치 부착차량 등 출입허용 차량을 선별해서 운용하겠다는 취지다. 선진국 사례도 참조했다. 일본 도쿄와 스웨덴 스톡홀름에선 이미 같은 제도가 시행 중이고, 영국 런던도 2007년부터 ‘저배출 지역(Low Emission Zone)’ 제도를 도입키로 예정돼 있다. 대기오염이 심한 지역을 통과하는 차량에 대한 ‘교통혼잡세’ 부과도 저공해차 등은 대상에서 제외시킨다는 방침을 세웠다. 런던의 사례가 모델로 검토되고 있다. 교통혼잡지역내 주차 및 운행차량에 대해 하루 1만원 가량 혼잡세를 걷고 있는데,▲택시와 장애인자동차, 응급차 ▲엄격한 배출가스 허용기준을 만족시키는 대체연료 자동차는 징수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혼잡지역내 거주자는 90% 할인혜택을 주고 있다. 기업체를 대상으로 한 교통수요 관리도 같은 맥락이다. 교통유발부담금 액수를 올리고 대상지역도 확대해 규제를 강화하는 한편 지원책도 여럿 내놓았다.▲통근버스 공동운영시 차량구입비·운영비용 지원 ▲대중교통 이용시 지하철 승차권·버스카드 지급 등 현물 보조 ▲참여업체의 교통유발부담금 면제 범위 및 세제혜택 확대 등이다. ●에너지·도시계획 정책과도 연계 에너지 및 도시관리에 대한 환경친화적 조치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주거용 시설을 대상으로 올해부터 매년 9만호씩 지역난방을 보급해 2014년까지 90만호로 늘리고, 상업 및 공공기관 난방시설의 10%를 집단에너지 공급대상으로 대체할 계획이다. 실내 난방온도 목표치도 지난해 현재 섭씨 23도인 것을 매년 내려 2014년엔 20도로 맞추기로 했다.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도시계획도 연계했다. 수도권의 도시별 주거 및 취업기회를 비교분석한 뒤 주거와 취업 기회의 균형을 도모할 수 있는 도시개발정책이 추진된다. 예컨대 취업기회는 풍부한데 상대적으로 주거물량이 낮은 지역에 대해 우선적으로 신규 주거시설을 공급함으로써 교통수요를 감소시키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 거의 모든 정책수단이 총동원되었다는 점에서 수도권 대기질이 앞으로 실질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관계자는 “(교통혼잡세와 환경지역 지정,7조 3000여억원의 재원 조달방안 등)그 동안 크고 작은 현안에 대해 부처간 이견이 있었지만 현재로선 모두 해소된 상태”라면서 “앞으로 종합대책을 차질없이 진행하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환경과 공해연구회 장영기(수원대 환경공학과) 회장은 이에 대해 “이른바 ‘굴러다니는 굴뚝’인 자동차 대책에 집중한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면서 “(정부가)개별적 규제를 벗어나 여러 대책을 총가동한 종합적 대책을 수립함으로써 환경정책을 한 차원 높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대기질 얼마나 나쁜가 한국의 수도권 대기오염은 이미 세계적으로도 악명높은 수준이다. 아황산가스(SO3/8)나 일산화탄소(CO), 납(Pb) 등 이른바 1차 오염물질은 무연휘발유 공급 등에 힘입어 지난 10여년간 크게 개선돼 후진국 형을 벗어난 상태다. 하지만 이산화질소(NO3/8)와 미세먼지(PM10), 오존(O5/8) 등 2차 오염물질의 오염도는 이와 반대다.2003년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는 입방미터(㎥)당 69㎍(마이크로그램·100만분의 1g)에 달해 주요 선진국 도시 가운데 첫손가락에 꼽힐 정도다. 이산화질소와 오존 농도 역시 1990년 당시보다 20∼50%까지 치솟았다. 폐해도 심각하기 이를데 없다. 사회적 피해비용이 연간 10조원을 넘고(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미세먼지로 인한 호흡기·심폐질환 등 조기 사망자가 수도권에서만 연간 1만 1100명에 이른다는 연구결과(경기개발연구원)가 이를 뒷받침한다. 단순히 ‘숨쉬기 불편하다.’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인명 보호와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다뤄져야 할 중대 사안이라는 얘기다. 대기오염의 주범은 단연 자동차다. 환경부의 수도권 오염물질 배출비율 분석에 따르면 ‘미세먼지는 66%, 질소산화물은 51%, 휘발성유기화합물은 21%’나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수도권에 등록된 자동차는 692만대로,1980년 27만대에서 무려 26배 가량 급증했다.2014년엔 950만대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됐다. 전체 자동차 가운데 차령 10년 이상 노후차 비율이 점점 느는 것도 오염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1994년 3만 5000대에서 2002년 59만대로 17배 가량 증가한 상태다. 이번 종합대책이 자동차 관리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편 환경정의 등 12개 시민환경단체로 구성된 ‘블루 스카이 운동’은 정부의 대기환경관리 기본계획 수립과 관련,11일 오후 2시 서울 정동 배재대학교 학술지원센터에서 ‘수도권 대기환경 개선 특별대책의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포럼을 개최한다.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日人동아리 JAPAN

    日人동아리 JAPAN

    [1]일본 “참 반갑스므니다” 한국“日에 배운답니다” “사이토, 호∼무랑데스.(齋藤 ホ-ムランです·사이토 홈런입니다.)” 지난 5월29일 낮 12시쯤 경기도 구리시 인창고 운동장에 함성이 길게 울려퍼졌다. 등번호 ‘9’를 유니폼에 아로새긴 포수 사이토(41)가 2회 말 2사, 주자 1루에서 네번째타자로 나와 상대 알바트로스A의 두번째 투수 이영훈(38)이 뿌린 볼을 받아쳐 오른쪽 담장을 훌쩍 넘겨버렸다. 이날의 주인공은 한국에 들어와 사는 일본인들로 이뤄진 생활체육 야구 동아리 ‘JAPAN’(재팬) 회원들이다. JAPAN은 이미 1회 말 6안타와 2볼넷을 묶어 대거 6점을 뽑아내며 1회 초 공격에서 1점에 그친 알바트로스를 5점이나 따돌리고 있었다. 사이토의 2점포에 힘입어 JAPAN은 8대1,7점차로 달아났다. 이날 경기에서 JAPAN은 3회 5점,4회 3점을 보태 4회 3득점으로 힘겨운 추격전을 벌인 알바트로스를 16대4로 크게 이기고 3승(1패)을 챙기며 단숨에 강자로 떠올랐다. 팀 최고령 선수로 일본에서 내로라하는 업체의 고위간부인 오츠(51)는 “야구를 할 때만큼은 후배들이 아저씨라고 부른다.”면서 “직위를 밝히지 말고 그냥 한국과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만 소개해 달라.”고 말했다. 매주 강남구 개포동 일본인학교에서 연습을 하는 선수들은 “다른 팀은 물론 심판도 한국인이지만 차별은 눈꼽만큼도 없다.”고 입을 모은다. 양국의 야구 스타일에 대해서는 “한국인들은 수비보다는 공격에 치중하는 반면, 일본인들은 치밀한 작전을 바탕으로 아기자기한 형태”라고 한다.‘힘의 야구’와 ‘기술 야구’라는 설명이다. 또 “일본에서는 동호회가 부상까지 감수해가며 야구를 하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연식(軟式) 볼을 쓰는데, 한국에선 프로와 같은 경식(硬式) 볼을 써 보다 흥미가 넘친다.”고 했다. “일본에서는 고교만 해도 4000여개 팀이 있을 정도여서 전문적인 선수로 성장하지 않더라도 야구를 좋아하게 마련”이라면서 “따라서 올라갈수록 적성 등을 봐가며 적절히 진로를 가리지만, 한국에서는 일단 야구에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프로 등 최고를 지향하는 것 같다.”는 말도 보탰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2]초반 ‘미풍’ 이젠 ‘태풍’ ●‘KOREA’의 외딴 섬 JAPAN은 국내에서 유일무이하게 외국인으로만 구성된 생활체육 동호회로 리그 참여에 적극적이다. 지난 5일 하쿠(31·일본 통신업체 서울 주재원) 감독을 지하철 2호선 선릉역 근처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일본에서 중학교까지 선수 유니폼을 입고 외야수로 뛰었다는 그는 큰 키에 언뜻 보기에는 가냘픈 몸매로, 수줍은 듯한 웃음을 띠면서도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하쿠 감독은 “서울에 있는 1000여명의 일본 기업체 주재원끼리 만든 골프, 축구, 합창 등의 구락부(俱樂部=클럽)가 있지만 야구처럼 한국인들과 교류가 활발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감독을 맡은 이유는 실력을 떠나 교포 3세로 의사소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현실적인 판단도 작용했다. JAPAN은 지난해 시즌 첫 발을 뗐다. 낯선 이국에서의 출발에 긴장감이 더했는지 딴에는 꽤 한다는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첫 해엔 8강 턱걸이라는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 이들이 가입한 주신리그(Jewshin league·주신은 한자어인 조선의 우리말)엔 트리플A그룹 10개, 더블A 11개 팀 등 100개 팀이 참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젠 슬럼프를 훌훌 털고 올 들어 현재 4승1패 승점 12로, 한 경기를 더 뛴 라이브위너스(5승1패 승점 15) 다음으로 공동 2위에 올라 ‘깜짝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금 JAPAN은 회원 26명을 거느렸다. 절반이 넘는 15명이 30대 연령층이다. 초등학교 3학년짜리도 있지만 나이 든 주재원의 자녀로, 실제 경기에서 뛴다기 보다는 야구를 좋아해 어른들이 끼워준 덕분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생활체육 야구 규정에 따라 고교 때까지를 선수 출신으로 치면 외야수 히키치(34) 등 선수 출신은 2명이다. 하쿠 감독은 중학교 때까지 뛰어 선수 출신으로 대우(?)를 받지 않는다. 한 경기에 선수 출신을 2명 넘게 기용하지 못하도록 묶은 규정으로 보면 다행일 수 있다. JAPAN엔 리그 도루왕도 있다. 외야수를 맡고 있는 키타자키(37)는 올 시즌 도루 8개를 기록해 “나가면 훔친다.”는 말까지 듣는다. [3]한국 사랑 ‘호~ 무랑’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 “독도 영유권 문제로 광화문 일본 대사관 앞에서 집회가 열리는 등 양국 관계가 시끄러울 때는 우리가 그런 와중에 한국인들과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지요.” 하쿠 감독은 최근 한·일 분쟁에 대해 조심스레 물음을 던지자 이렇게 말하며 웃음을 지었다.“바깥에서는 그렇게(차가운 눈으로) 본 사람들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외국, 특히 한국에서 야구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털어놨다.“동료 가운데 야구 때문에 산다는 사람도 보이더라.”고 덧붙였다. 주재원으로 한번 부임하면 3∼5년 정도 한국에 머무는 게 보통인데, 이 때문에 일본으로 들어오라는 발령이 나면 한국업체로 옮겨 야구를 계속할까 생각하고 있다는 회원도 봤단다. 투수 이토(39)도 “서로 부딪쳐가며 경기를 하느라 상처가 나고 감정이 나빠질 수도 있다.”면서 “그런데 경기가 끝나면 함께 ‘수고했다.’‘잘 배웠다.’는 등 밝게 인사하고 이해해줘 아직껏 아무 탈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일본 한 방송사의 서울 특파원으로 일한다. 또 팀 에이스로 3승을 거둬, 간간이 등판하며 1승(1패)을 낚은 하쿠 감독과 JAPAN의 마운드를 책임지고 있다. 이들이 입는 유니폼은 일본 국가대표들이 입는 것과 같다. 왼쪽 가슴에는 히노마루(日の丸)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하쿠 감독은 “일본에서라면 국가대표 옷을 입는다는 게 상상할 수도 없다.”면서 “야구를 통해 한국의 여러 업체와 커뮤니케이션도 이뤄져 두루 좋다.”고 말했다. 라이브위너스 김재희(36) 총무는 “JAPAN 선수들은 게임이 있는 날이면 적어도 한시간 일찍 경기장에 도착해 몸을 푸는가 하면 기본기에 얄미울 정도로 충실하는 등 배울 게 많다.”고 추켜세웠다. 일본인 팀에는 비 내리는 날과 악연이 있다. 올 리그에서만 해도 폭우가 쏟아져 3월 말 시범경기와 지난 3일 등 3개 경기를 미뤄야만 했다. 지난해 말 괌으로 동계 전지훈련을 가서는 비 내리는 가운데 현지 동호회와 두 차례 친선전을 가졌는데, 파워에 밀려 모두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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