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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주변국 親美벨트… 남은 단추는 베트남?

    中 주변국 親美벨트… 남은 단추는 베트남?

    미국과 중국이 21일부터 28일까지 열리는 베트남 공산당의 제12차 전당대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누가 권력 서열 1위인 서기장에 오르냐에 따라 베트남이 기존의 친중국 노선을 유지하느냐, 아니면 친미국 노선으로 선회하느냐가 갈리기 때문이다. 베트남 공산당은 ‘국부’ 호찌민 사후 지도자들이 권력을 분점하는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해 비교적 안정적인 통치력을 보여왔다. 하지만 시장경제가 발전하면서 공산당 노선 유지를 주장하는 친중 보수파와 자유민주주의 요소를 받아들이려는 친미 개혁파 간 갈등이 깊어졌다. 전당대회 수개월 전에 서기장과 총리 등이 미리 결정되던 관례가 깨진 것만 봐도 권력 투쟁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AFP 통신은 “각종 루머와 문건들이 인터넷에서 난무해 국영 매체가 국민에게 문건은 ‘독약’이라며 읽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권력 투쟁의 핵심 인물은 친중 보수파 응우옌푸쫑 현 서기장과 친미 개혁파 응우옌떤중 총리이다. 베트남은 서기장을 중심으로 국가주석(외교), 총리(행정), 국회의장(입법)이 권력을 분점하지만, 내정을 책임지는 총리의 권한이 서기장에 버금간다. 쫑 서기장의 연임이 좀더 유력하지만, 중 총리의 막판 뒤집기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둘 중 한 명이 28일 서기장으로 선출되면 자기 파벌 인사를 국가주석, 총리, 국회의장에 내정하고 오는 5월 열리는 형식적인 총선에서 이들을 추인할 가능성이 크다. 베트남 전당대회에 가장 민감한 국가는 단연 중국이다. 양국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특히 중 총리에게 주목하고 있다. 중 총리는 미국과의 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있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를 이끌 정도로 미국과의 관계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러나 중 총리는 2014년 중국이 남중국해 호앙사 군도에 석유시추선을 설치했을 때 해안경비대를 보내 무력 충돌까지 불사한 대중 강경파이다. 중 총리는 정부 업무보고에서 “개혁의 근본 목적은 미국과 같은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국가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집권하면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을 ‘베트남 민주공화국’으로 바꿀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전당대회 와중에도 베트남이 남중국해 문제에서 중국에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중 총리 세력이 여전히 힘을 갖고 있다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미국은 내심 중 총리를 응원한다. 그가 서기장에 오르면 중국의 핵심 주변국인 미얀마, 대만, 베트남의 최고 권력자가 모두 친미파로 채워져 ‘중국 봉쇄’ 전략이 수월해진다.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는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친중 집권당을 몰락시켰고, 대만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은 이달 총통 선거에서 친중 국민당 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한국·대만 ‘TPP 가입’ 협력 관계 구축하겠다”

    “한국·대만 ‘TPP 가입’ 협력 관계 구축하겠다”

    대만 사상 첫 여성 총통으로 당선된 차이잉원(蔡英文) 민주진보당(민진당) 주석은 한국과 함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가입하기 위해 협력 관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차이 당선자는 1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시아의 신흥 민주국가로서 (한국과 대만) 모두 민주 자유의 가치를 지닌 점 등 공통된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며 “한국과 대만은 오랫동안 유지한 우호 관계와 공통으로 보유한 민주 가치, (경제) 발전 경험 등을 토대로 양국 국민뿐 아니라 지역과 국제사회의 평화와 행복, 더 많은 이익 증진을 위해 각계각층의 교류 강화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만 국민의 생활 개선과 경제 발전 촉진, 세계 각 지역과의 교류 확대,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 평화, 협력을 위한 역할 강화 등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TPP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국제 경제·무역기구 가입과 더 많은 양자 간 경제무역 협력 성사를 위해 노력하겠다”며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와 다방면의 협력 관계를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 자서전의 중문판 추천사를 쓴 차이 당선자는 “한국과 대만은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겪었으며, 지역과 국제적으로 다른 도전도 겪었다”면서 “여성 정치인이 남성보다 더 시험을 치러야 하는 동방의 사회문화에서 여성이 중대한 임무를 맡아 국가와 국민을 이끌고 (도전에) 맞서는 것은 시대적으로 상당한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한류 확산에 대해 “지난 몇 년간 한류가 세계적으로 눈부신 유행 문화의 힘이 된 배경에는 한국 정부의 문화정책 측면의 노력과 통찰력이 있다”며 “상당히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당주석 취임 전 한국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며 “한국의 음식과 정교하고 세밀한 음식 문화에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다. 특히 김치가 맛있다”고 말했다. 차이 당선자는 “과거 (양안) 정책의 착오를 원상회복하겠다”며 국민당 정권의 친중정책 노선을 수정할 계획임도 명확히 했다. 그러면서도 5월에 취임하게 되면 양안 관계가 평화롭고 안정된 상황을 지킬 수 있도록 현 체제, 양안 간의 협상·교류 성과, 민주 원칙, 보편적 민의를 양안 관계의 기초로 삼아 당파를 초월한 입장을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씨줄날줄] 쯔위 대만기 논란/박홍환 논설위원

    [씨줄날줄] 쯔위 대만기 논란/박홍환 논설위원

    국내에서 활동하는 대만 출신 아이돌스타 쯔위(17·본명 저우쯔위·周子瑜)가 대만 국기를 흔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지난 15일 영상을 통해 “중국은 하나”라며 허리를 90도 굽혀 공개 사죄했지만 그 여파는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대만 총통 선거에까지 영향을 끼쳐 8년 만에 야당으로의 정권 교체를 가져왔다. 대만 독립을 추구하는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 후보의 당선에 최소한 1~2%의 득표율 제고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대만에서는 또다시 통독(統獨) 논쟁이 거세질 전망이다. 2000년 사상 처음으로 국민당에서 민진당으로 정권이 교체될 즈음 벌어졌던 통독 논쟁의 ‘시즌2’인 셈이다. 중국과의 ‘통일’이냐, 대만의 ‘독립’이냐를 놓고 거세게 붙었던 1차 통독 논쟁은 대독파(대만독립건국파)가 불을 댕겼다. 급진적인 대만 독립 노선을 견지했던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 정부는 대만 독립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앞서 중국과 대만 정부, 즉 공산당과 국민당은 1992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그 의미는 양측의 각자 해석에 맡기기로 하는 이른바 ‘92컨센서스’에 합의했다. 일종의 현상유지 합의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대만은 중화민국으로 여긴다. 국민당 정부는 여기에 더해 통일도, 독립도, 무력사용도 안 한다는 3불(불통, 불독, 불무) 정책을 견지해 왔다. 반면 중국은 막강한 국력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대만을 소외시키는 전략을 추구했고, 이에 따라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만지홍기(靑天白日萬地紅旗)도 국제무대에서 사라졌다. 대만은 올림픽 등 국제 스포츠 이벤트 등에 참석할 때 상징 꽃인 매화 문양의 깃발만 사용할 수 있다. 누구라도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지 않으면 중국 정부는 경제적·외교적으로 철저히 응징했다. 그럼에도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집권한 최근 8년 동안 양안 관계는 순풍에 돛단 듯 순항했다.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 격인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맺어 경제공동체까지 이뤘다. 하지만 과실은 중국과 대만의 소수 경제인들에게만 돌아갈 뿐 서민들의 경제적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았다. 대만의 정권 교체는 이미 지난해부터 예견됐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마 총통과의 역사적인 양안 정상회담 등으로 국민당 후보에 힘을 실어 주려 했지만 유권자들의 마음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오히려 무심결에 청천백일만지홍기를 흔든 쯔위를 당국까지 나서서 겁박하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대독파들을 결집시켰다. 대만의 통독 논쟁 시즌2가 동북아에 몰고 올 파장은 간단치 않다. 중국과 각을 세우는 차이 총통 당선자는 대미·대일 외교 강화를 천명하고 있다. 한국 외교의 고민 요인이 또 늘었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대만 정권교체] 反中정서 ‘딸기 세대’의 분노… 쯔위 사태에 134만명 몰표

    [대만 정권교체] 反中정서 ‘딸기 세대’의 분노… 쯔위 사태에 134만명 몰표

    “차이잉원(蔡英文)의 당선은 ‘딸기 세대’의 복수다.” 16일 치러진 대만 총통 선거에서 야당인 민진당의 차이잉원 후보가 대승을 거둬 8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룬 배경에는 ‘딸기 세대’라고 불리는 청년층의 분노와 좌절이 있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딸기 세대란 1981년 이후 태어난 대만 청년을 일컫는 말로, 그들이 부모 세대와 달리 사회적 압박과 고된 노동에 딸기처럼 쉽게 상처를 받는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용어다. 나약하고 자기 만족적이며, (사회적·정치적으로) 무관심하다며 청년들을 비하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2008년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 천윈린(陳雲林) 회장의 대만 방문에 대해 반(反)중국 대학생 단체들이 ‘야생딸기운동’을 벌이면서 저항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딸기 세대는 대만의 영토를 노리는 중국에 대한 적대감과 어두운 경제적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공유하고 있다. ‘22K 세대’(초임 2만 2000대만달러·79만원 세대)로도 불리는 청년층은 20년째 제자리걸음인 초봉과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들이 친중 성향 집권 국민당의 주리룬(朱立倫) 후보 대신 차이 후보를 지지하면서 정권 교체를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 WSJ의 분석이다. 이번 총통 선거에서 20~29세 투표율은 70%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직전 2012년 선거에서는 60% 수준이었다. 특히 대만 내 반중 정서를 불러일으킨 ‘쯔위 사태’로 청년 134만명(전체 유권자의 7.1%)이 차이 후보에게 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양안정책협회의 조사를 인용해 전했다. 이는 차이 후보가 획득한 689만표의 19.5%에 해당한다. 훙야오난(洪耀南) 양안정책협회 사무총장은 “투표율이 1996년 이래 최저치인 66%에 머물렀는데도 차이 당선자가 56%의 득표율을 올린 것은 젊은 유권자의 지지가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차이잉원 시대의 대만] 경제 난관 어떻게 뚫을까

    [차이잉원 시대의 대만] 경제 난관 어떻게 뚫을까

    대만 차이잉원(蔡英文) 총통 당선의 일등공신으로 마잉주(馬英九) 현 정부의 ‘경제 실정’이 꼽힌다. 마 총통이 친중 정책을 펴면서 중국과 경제협력 규모는 확대됐지만, 그 혜택이 일부 기득권층에만 쏠린 탓에 젊은 층과 중산층 시민이 등을 돌린 것이다. 차이 당선자는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개방’ 카드를 꺼내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에 박차를 가하며 중국 일변도의 경제구조를 탈피하겠다는 공약을 천명한 만큼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경협 관계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마 총통은 2008년 집권한 이후 양안 경협에 ‘올인’했다. 양안 무역 규모는 2002년 이후 3배 이상, 대만의 대중 투자는 5배 가까이 폭증했다. 2010년에는 중국과 관세 감면과 서비스시장 개방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양안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맺어 세계 2위의 경제력을 지닌 중국의 후광을 기대했다. 그는 대만의 기술력, 중국의 시장과 자본력을 결합한 ‘차이완’(Chiwan) 시대가 열렸다는 찬사를 들으며 그는 재선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대만 제조업체들이 중국 현지로 이전하며 대만 내 산업 공동화가 심해져 내수경기 침체, 청년실업 등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양안 교역은 대만이 미국·유럽·일본의 주문을 받아 중국 현지에서 가공한 다음 해당 국가에 이를 다시 수출하는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이 주류다. 이 방식은 중국 경영비용 상승과 부품 현지화로 대만 경제에 끼치는 효과가 제한적이다. 실제로 2008~15년 대만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연평균 2.9%였으나 임금인상률은 0.8%에 그쳤다. 반면 부동산은 2배 넘게 뛰었다. 중국의 혜택은커녕 10년째 실질임금이 오르지 않는 등 민생 경제만 망가졌다는 얘기다. 류멍쥔(劉孟俊) 중화경제연구원 제1연구소장은 “대만인들은 양안 간 경협에서 파생된 혜택이 서민이 아닌 대기업과 부유층에 집중되는 등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안 경제가 급속히 가까워진 상태에서 중국의 성장이 둔화돼 오히려 대만 경제는 직격탄을 맞았다. 1990년대 중반 이후 2008년 마 총통 집권 전까지 연평균 5%대 이상의 중고속 성장률을 기록하던 대만이 2011년부터 3∼4%대, 지난해는 1%대 밑으로 성장률이 곤두박질치며 최악의 성적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일변도의 경제상황이 ‘부작용’을 빚자 사회적 저항 운동을 불러왔다. 2014년 대만 대학생들은 중국과의 서비스무역협정 비준에 반발해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하고 장기 농성을 벌였다. 차이 당선자는 지난 17일 “양안 관계가 평화롭고 안정된 상황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과거 정책의 착오를 원상회복하겠다”고 밝혀 친중 정책에 대한 수정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그는 정치적으로 양안 관계에 대해 속도 조절을 하는 한편 국민당의 중국 의존 정책으로 위축된 서방 기업들의 투자유치 확대를 위해 적극적인 개방 정책을 펼 것으로 예상된다. 변화를 바라는 젊은 층과 현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에 실망한 중산층의 개혁 요구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이 당선자는 이를 위해 미국과 11년째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호투자협정(BIA)을 체결해 대만 내 외국인 투자를 확대하고 TPP 가입을 서둘러 미·일의 경제우산 아래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중국의 눈치를 보며 미뤘던 동남아·중남미 국가들과의 자유무역협정(FTA)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민감한 분야인 반도체·디자인 산업에 대해서는 중국 투자를 반대하고 대만의 해외시장 확대에 총력전을 편다는 계획이다. 다만 대만 수출액의 40%, 해외 투자의 60%를 중국이 차지하는 만큼 중국과의 교역관계를 급격히 조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린셴선(林賢參) 대만사범대 동아시아학과 교수는 “양안 관계와 글로벌 경제 상황이 불투명해 대만 경제에 먹구름이 몰려 오고 있다”면서 “차이 정부는 인도를 비롯해 아세안 국가들과 경협을 강화하는 한편 미국과는 TPP, 일본과는 경제동반자협정(EPA)을 체결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타이베이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쯔위, 사과 동영상이 ‘국민당 괴멸’ 결정타

    쯔위, 사과 동영상이 ‘국민당 괴멸’ 결정타

    지난 16일 치러진 대만 대선·총선 동시 선거에서 국민당을 괴멸시킨 결정타는 선거 전날 밤 터진 한국 걸그룹 트와이스의 대만 출신 멤버 쯔위(周子瑜·17)의 사과 동영상이었다. 지난해 한국 방송에서 대만 국기를 흔든 것이 중국에 알려져 ‘대만 독립 지지자’라는 비판에 휩싸였던 쯔위의 사과 동영상은 대만 유권자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동영상 속의 쯔위는 평소 방송에서 보였던 화려한 모습이 아닌 옅은 화장에 수척한 얼굴이었다. 쯔위는 “중국은 하나다. 내가 중국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는 내용의 반성문을 읽었다. 이를 본 대만 누리꾼들은 “이슬람국가(IS)가 인질을 살해하기 전에 유언을 읽게 하는 모습과 같다”며 울분을 토해냈다. 다음날 아침 투표가 시작되자 유권자들은 ‘행동’에 나섰다. 대만 언론이 전한 투표소 풍경을 보면 쯔위 동영상 때문에 투표소로 달려 나온 유권자의 발언이 줄을 잇는다. 일본에 유학 중이던 한 유권자는 “새벽 비행기를 타고 투표하러 왔다”고 말했다. 대만 의정감시센터 사무총장 야오리민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기권하려던 중도층이 하룻밤 사이에 적극적인 국민당 심판론자로 돌변했다”면서 “투표율이 66%로 비교적 낮은데도 총통 선거 사상 최대인 308만표 차가 난 것은 반국민당 유권자가 적극적으로 투표하고 친국민당 유권자는 자포자기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동영상은 민진당에 큰 호재였다. 차이잉원(蔡英文) 후보는 “대만인에게 깊은 슬픔과 분노를 안겼다”며 유권자의 감성을 자극했다. 차이잉원은 당선 첫 기자회견에서 쯔위를 거론하며 “중화민국은 하나의 민주국가이며 이를 억압하면 양안 관계는 파괴될 것”이라고 밝혔다. 쯔위가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기(靑天白日旗)를 흔들며 내뱉은 “나는 대만인이고 대만도 하나의 국가다”라는 말은 벌써 차이잉원 시대의 키워드가 됐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中 압박 거부”… 양안 긴장 예고

    대만 105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총통이 탄생했다. 16일 실시된 총통선거에서 제1야당인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59) 후보가 689만여표(57%)를 얻어 381만여표(31%)를 획득한 집권 국민당 주리룬(朱立倫·55) 후보를 압도적인 표 차로 눌러 당선을 확정 지으며 8년 만에 여야 정권 교체도 이뤄냈다. 함께 치러진 총선에서도 민진당은 지난 총선보다 28석이 더 많은 68석을 얻어 과반 의석을 획득한 반면 국민당은 29석이 쪼그라든 35석을 얻는 데 그쳤다. 차이 당선자와 중국은 벌써 기 싸움에 들어갔다. 차이 당선자가 승리선언 첫마디부터 “어떤 압박도 거부하겠다”며 중국을 견제하고 나서자 중국 당국도 17일 “분열활동 반대 입장”을 밝히며 각을 세웠다. 차이 당선자는 ‘여성, 소수민족, 첩실의 자식, 미혼’이라는 갖은 핸디캡에도 굴하지 않고 일어선 입지전적인 정치인이다. ‘동양의 유대인’으로 불리는 객가(客家·중국 한족의 일파로 대만 내 소수민족) 망족 출신의 아버지와 원주민 파이완족 출신인 할머니의 혈통을 이어받았다. 아버지 차이제성(蔡潔生)은 자동차 수리업으로 출발해 부동산·건설·호텔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한 기업인으로, 본처 외에 네 명의 첩실을 두고 있다고 빈과일보가 17일 보도했다. 11명의 이복 형제자매 가운데 막내딸인 차이 당선자는 네 번째 첩실 장진펑(張金鳳)의 소생이다. 미혼인 차이 당선자는 부패로부터 자유로운 청렴한 정치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차이 당선자의 경력은 화려하다. 국립 대만대 법대와 미국 코넬대 법학석사, 영국 런던정경대(LSE) 법학박사 학위까지 마친 엘리트 코스를 밟은 학자 출신이다. 국립정치대 법대 교수로 지내던 1992년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에 의해 발탁돼 공직과 인연을 맺었다. 차이 당선자는 외유내강의 카리스마로 수렁에 빠진 민진당을 잇따라 구해내며 ‘민진당의 잔 다르크’라고 불렸다. 그는 ‘대만의 메르켈’을 꿈꾼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처럼 때론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때론 엄마처럼 대만을 이끌 수 있을지 주목된다. 타이베이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차이잉원 시대의 대만] 양안관계 어떻게 되나

    [차이잉원 시대의 대만] 양안관계 어떻게 되나

    ‘대만 독립’을 추구하는 차이잉원(蔡英文)의 민진당 정권이 집권하면서 대만해협에 긴장의 파고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정부가 요구하는 양안 컨센서스인 ‘92공식’(九二共識·1992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의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합의)에 대해 차이 정부가 입장을 분명히 밝히지 않으면 양안에 격랑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리룬(朱立倫) 국민당 주석을 압도적인 표 차이로 물리치면서 자신감을 얻은 차이 당선자가 일찌감치 지지기반을 다지기 위해 강경 드라이브로 맞설 여지도 남아 있다. 차이 당선자는 그동안 ‘92공식’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채 대만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중화민국’ 헌정체제의 수호와 양안 현상 유지, 대만해협의 평화안정을 강조했다. 중국과 더 가까워지지도, 급진적인 대만 독립 노선을 추구해 양안 관계의 긴장도 유발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마잉주(馬英九) 정부 시절에 다져 놓은 친중정책의 성과를 선택적으로 유지해 나가겠다는 의도도 담겨 있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된 상황에서 국제적 고립이 이어지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외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2000년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 정부 출범 당시와 같은 급진적인 대만 독립 노선보다는 비교적 유연해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다만 대중 정치인인 차이 당선자로선 자신을 뽑아준 지지자들이 친중 정책의 상징으로 반감을 보이는 92공식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 부담이다. 그가 지난 16일 당선이 확정된 뒤 기자회견에서 “중국과 대만은 서로 대등한 존엄을 추구해야 하며 도발과 ‘의외의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며 “어떤 형태의 압박도 양안 관계의 안정을 해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 과정에서 차이 정부가 미국과 일본에 유착되면 중국의 반발을 살 공산이 크다. 미·일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가입을 공약으로 내걸어 둔 상태다. 차이 당선자가 강조하는 것은 양안 정책의 투명성이다. 양안 교류의 과실이 소수 기득권층에만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골고루 분배되는 것이 필요하고, 국가 안전도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정부가 추진해 온 양안 상호 교류의 기본 방향과 경제 정책의 효과를 인정하고 양안 관계에 도발하지 않으며 의외성도 없을 것이라고 보장한 바 있다. 관건은 이 같은 그의 양안 정책 방향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받아들이느냐의 여부다. 오는 5월 그의 총통 취임 성명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지가 중요한 이유다. 중국의 기대를 만족시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관계가 악화될 것이라는 시각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중국은 차이잉원의 당선과 관련해 대만에 대한 국정 방침이 대만 선거 결과에 따라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만 정책을 관장하는 국무원 대만판공실은 16일 밤 성명을 통해 지난 8년간 양안은 ‘92공식’과 ‘대만 독립’에 반대하는 정치적 토대 위에서 서로 손을 잡고 평화로운 발전의 길을 걸었으며 교류합작의 제도적 틀을 만들고 대만해협의 평화안정을 위해 노력해 왔다고 밝혔다. 성명은 이어 중국의 이 같은 국정 방침은 일관되고 명확하며 대만 선거 결과에 따라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어떤 형태로든 ‘대만 독립’을 위한 분열활동에 반대하고 국가주권과 영토의 ‘완성’을 위한 중대 원칙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변함없다”고 강조했다. 성명은 또 중국은 양안이 하나의 중국임을 인정하는 모든 정당, 단체와의 접촉 교류를 강화하기를 바란다면서 양안 동포와 함께 공통된 정치적 토대와 평화, 대만해협의 평화안정을 유지보호함으로써 중화민족 부흥의 밝은 미래를 함께 창조해 나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중국 외교부도 대만 문제는 중국 내정의 문제이며 대륙과 대만이 하나의 중국에 속해 있다고 거듭 확인했다. 왕이단(王逸丹)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은 “차이 당선자는 대만인들의 심리적 변화와 대만해협에서 충돌을 바라지 않는 미국의 정책을 꿰뚫고 있어 천수이볜을 따르지 않고 92공식에 대해 입장을 보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타이베이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대만 총통 선거 현장을 가다] ‘선거 여왕’ 첫 女총통 눈앞…“양안관계 평화 유지할 것”

    [대만 총통 선거 현장을 가다] ‘선거 여왕’ 첫 女총통 눈앞…“양안관계 평화 유지할 것”

    앞으로 4년 동안 대만의 국정운영 방향과 중국과의 관계를 결정짓는 총통선거가 16일 오전 8시(한국시간 9시)부터 대만 전역에서 치러진다. 오후 4시 투표가 끝나면 밤늦게 개표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야당인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59) 후보가 크게 앞서고 있는 만큼 대만 사상 최초의 여성 총통이 탄생하고 8년 만의 정권교체도 이뤄질 전망이다. 지금까지 여론조사(미공개 포함)에서 차이 후보의 지지율은 집권 국민당 주리룬(朱立倫·55) 후보보다 15~20% 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만의 정체성을 강조한 ‘대만을 밝혀라’를 선거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차이 후보는 마잉주(馬英九) 총통 집권 8년간 중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 심화, 곤두박질친 경제 등 실정을 공격하며 일찌감치 판세를 굳혔다. ●“샤오잉 당선”… 지지자들 표 차에 더 관심 대선을 하루 앞둔 15일 민진당 차이 후보는 ‘민진당 텃밭’인 타이중(臺中)시 펑위안(豊原)에서 마지막 유세를 시작했다.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그가 ‘국민당 벨트’의 핵심인 수도 타이베이(臺北)로 올라오는 길목마다 승리를 확신한 수많은 지지자들이 몰려들어 “샤오잉(차이 후보의 애칭) 당선”을 외쳤다. ‘적진’ 타이베이로 돌아온 차이 후보는 총통부 앞 카이다커란(凱達格蘭)대로에서 가진 마지막 유세에서 “먼저 미국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며 당선에 대해 자신감을 보였다. ●차이 후보 “미국에 감사… 양안 평화 유지” 미국이 총통선거 후 양안관계가 급변할 것에 대비해 토니 블링큰 국무부 부장관을 중국에 보내는 등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데 대한 반응이다. 대만 독립을 견지하는 그가 당선되면 양안(중국과 대만)관계가 급랭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분석이다. 특히 차이 후보는 한국 걸그룹 트와이스의 대만 출신 멤버 쯔위(17)가 방송에서 대만 국기를 흔든 것을 계기로 대만 독립 세력 논란에 휩싸인 것에 대해 “모든 중화민국(대만) 국민은 국가에 대한 애정과 지지를 표현하기 위해 국기를 들 수 있다”며 쯔위를 옹호했다. 그는 “이는 국민의 권리로 억눌려서는 안 된다”면서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며 모두가 함께 지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푸궈(劉福國) 대만정치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차이 후보가 당선되면 그는 즉시 어떻게 대해야 할지 현실적인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며 “양안관계가 평탄치는 않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악화될 것이라고 속단하기에도 이르다”고 말했다. 주리룬 후보는 이날 타이베이에서 출발, 타이중과 자신이 시장을 지낸 신베이(新北)를 거쳐 다시 타이베이로 돌아오는 마지막날 유세를 펼쳤다. 지지율 2위인 주 후보는 오전 타이베이 총통·입법위원 경선본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선거 승리를 자신하느냐는 질문에 “국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내일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집권 시) 균형 잡힌 국제교류를 할 것”이라며 승리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내비쳤다. 이날 밤 타이베이 판차오 제1경기장에서 열린 최종 유세에는 마잉주 총통을 비롯해 전 주석 롄잔(連戰), 입법부원장 훙슈주(洪秀柱) 등 국민당 최고 지도부가 총출동해 주 후보를 열렬히 응원했다. 주 후보는 “지지자들의 열정과 격려가 내일 투표로 이어질 수 있도록 힘을 보태달라”고 호소했다. 당초 이번 선거는 주리룬 후보와 친국민당 성향의 야당인 친민당 쑹추위(宋楚瑜) 후보의 단일화 가능성과 중국의 움직임 등이 막판 변수로 주목받았지만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쑹 후보는 2012년 대선 때도 차이 후보와의 연대론을 일축하며 끝까지 완주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 총통 간 66년 만의 양안 정상회담 성사 이후엔 중국발 ‘북풍’도 잦아들어 차이 후보의 압승이 기정사실화됐다. 류멍쥔(劉孟俊) 대만 중화경제연구원 제1연구소장은 “1996년과 2000년, 2004년 총통선거까지만 해도 미사일 발사 등 중국이 위협했으나 효과가 별로 없었다”면서 “중국은 그 이후로 비교적 유연하게 대처하는 정책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설명했다. ●입법위원 113명 전원 총선도 동시 실시 한편 이번 선거에서는 입법위원 113명 전원을 새로 뽑는 총선도 동시에 실시된다. 원주민 대표 6석을 포함해 지역구 79석, 비례대표 34석이다. 현재 64석을 보유한 국민당은 50석 이상은 지키겠다는 목표지만, 현재 전망으로는 40석 안팎이 예상된다. 40석인 민진당은 과반인 57석을 목표로 하고 있어 대선과 총선에서의 동시 승리를 기대하고 있다. 타이베이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대만 총통 선거 현장을 가다] “변화” vs “성장”… 침묵하는 표심 향해 막판 유세

    대만 총통선거를 이틀 앞둔 14일 총통 후보들은 마지막 차량 유세에서 당의 텃밭을 집중적으로 파고들며 막바지 표밭 다지기에 나섰다. 당선이 유력시되는 차이잉원(蔡英文) 민진당 후보는 이날 ‘민진당 표밭’인 대만 남부 지역을 훑었다. 차이 후보는 확성기와 요란한 깃발을 단 오토바이 부대 및 차량과 함께 가오슝을 출발해 타이난과 자이, 장화를 거쳐 타이중에 이르는 차량 유세의 대미를 장식했다. 연도에 몰려든 시민들과 학생들은 “총통은 떼어 놓은 당상”이라며 “차이잉원 자유(加油·화이팅)!”를 소리 높여 연호했다. 일부 시민들은 “샤오잉(小英·차이잉원 지칭)이 당선되면 시집갈 수 있겠네”라는 익살스러운 플래카드를 들고 나오기도 했다. 타이베이 중산(中山)역에서 만난 시민 위궈화(兪國華·48)는 “지금 대만에는 변화가 필요하다”며 “대만의 변화를 이끌어낼 후보는 오직 차이잉원밖에 없다”고 두둔했다. 주리룬(朱立倫) 후보는 이날 ‘국민당 벨트’인 대만 북부 지역을 공략했다. 타이산, 신좡을 출발해 수린과 싼샤, 잉거, 투청 등을 거쳐 반차오에 이르기까지 신베이 전역을 샅샅이 누볐다. 주 후보는 특히 부인 가오완첸(高婉?)과 함께 차량에 동승해 당선을 응원하는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하며 ‘남다른 부부애’를 과시했다. 그는 “아내가 정말 고생한다”며 “어제저녁에도 나를 위해 생선탕을 끓여줘 맛있게 먹었다”며 겸연쩍은 듯이 웃었다. 이를 지켜보던 리젠민(李建民·37)은 “차이 후보가 미혼인 점을 겨냥해 가정이 편안하면 국가도 평안해진다는 점을 강조해 표심를 얻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총통 후보들은 침묵하며 관망하는 표심을 얻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상대 후보는 최대한 평가절하하고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주 후보는 이날 신베이시 차량 유세에서 유권자들을 향해 차이 후보에 대해 “신뢰가 없는 사람”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차이 후보가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정책과 관련해 속으로는 대만 독립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겉으로는 ‘현상 유지’라고 애매모호하게 답변하는 등 성실하지 못한 ‘공약’(空約)만 남발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그러면서 “침묵하는 탓에 소외되는 사람들이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열과 성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주 후보는 앞서 13일에는 가장 존경받는 전직 총통 ‘장징궈(蔣經國) 카드’도 던졌다. 장징궈의 28주기인 이날 마잉주(馬英九) 총통 등과 함께 장징궈 묘소를 참배했다. 침묵하는 다수가 대부분 나이 많은 노령층인 점을 감안해 고도 경제성장을 견인한 장징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려 한 것으로 분석된다. 차이 후보는 이날 장화 차량 유세에서 “헛된 루머에 현혹되지 말라”고 맞받아쳤다. 주 후보 측이 이번 선거 기간 동안 차이 후보에 대한 불법 정치 자금 수수설을 흘리고 있는 데 대한 반격이다. 차이 후보는 “집권 국민당은 침묵하는 다수들이 자신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줄 아는데, 이는 매우 큰 착각”이라며 “국민당은 하루빨리 이 같은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침묵하는 다수의 사람들이야말로 바로 이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라며 “이들은 오만방자한 정부가 바뀌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만큼 이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정치를 이뤄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타이베이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장징궈를 떠올린다/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장징궈를 떠올린다/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장징궈(蔣經國·1910~1988) 대만 총통은 장제스(蔣介石) 초대 총통의 맏아들이다. 장징궈는 그러나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다. 반제국주의 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상하이 푸둥(浦東)중학에서 퇴학당해 1925년 소련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났다. 이곳 중산(中山)대에서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을 만나 인연을 맺었다. 그의 나이 열여섯, 덩샤오핑은 스물두 살 때였다. 장징궈는 프랑스에서 중국 공산주의 청년동맹 유럽지부에서 활동하다 온 그를 형이라고 부르며 잘 따랐다. 덩샤오핑도 그를 친동생처럼 아꼈다. 중국 공산당을 뿌리째 뽑아 버리려는 아버지와의 결별을 택한 그는 소련 홍군에 자원 입대하는 등 온 몸에 붉은 물을 들였다.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잔뜩 화가 난 장제스는 아들과 코민테른 극동지역 책임자를 교환하자는 소련의 요구를 단칼에 잘라 버렸다. 이 때문에 장징궈는 농촌으로 쫓겨나 온갖 간난신고를 겪어야 했다. 1937년 2차 국공합작이 성사돼 소련에서 귀국했다. 천륜(天倫)을 저버릴 수 없던 그는 아버지와 화해하면서 국민당 정권에서 중책을 맡았다. 1949년 공산당에 대만으로 쫓겨난 뒤 대만 정부의 군과 정보기관의 책임자로 국민당을 지휘했다. 국방부장·행정원장(총리) 등 요직을 거친 뒤 6~7대(1978~1988) 총통을 지냈다. 장제스 사후 총통직을 세습한 탓에 국내외의 따가운 시선이 쏠렸지만 장징궈는 고도 성장을 이끌어 대만을 ‘아시아의 4룡’의 선두주자 올려놓았다. 대만의 동서를 관통하는 고속도로를 닦아 관광산업을 일으키고 낙후 지역 개발, 서민생활 수준 향상, 기업입국 토대를 구축하는 등 대만이 자립할 수 있는 터전을 닦았다. 정부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정실(情實)인사도 배격했다. 1987년 장제스를 따라 대만으로 이주한 노병(兵)들의 소원인 고향 방문의 길을 터 주는 탐친법(探親法)을 제정했고, 38년간 선포됐던 계엄령도 해제해 민주화의 기틀도 마련했다. 그가 죽기 전에 “장씨 가문의 정치는 나로서 끝낸다”며 세습 정치도 포기했다. 그의 자리는 리덩후이(李登輝) 국민당 주석이 물려받았다. 대만 출신인 그는 총통제를 직선제로 바꾸고 1996년 사상 처음 실시된 총통선거에서 중국의 거센 미사일 바람을 뚫고 민선 총통에 당선됐다. 덕분에 장징궈는 세상을 떠났으나 ‘양안삼지’(兩岸三地·중국과 대만, 홍콩)에서 가장 존경받는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했다. 대만 총통선거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총통 후보 세 사람은 장징궈와 직간접으로 연결돼 있다. 여론조사에서 멀찍이 앞서 달리는 차이잉원(蔡英文) 민진당 후보는 그로부터 총통직을 물려받은 리덩후이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차이 후보를 뒤쫓는 집권 국민당의 주리룬(朱立倫) 후보는 국민당 직계 후보이고, 제3당 친민당의 쑹추위(宋楚瑜) 후보는 그의 총통 재직 시절 비서관으로 재직했다. 무엇보다 부러운 것은 여야 세 후보 모두가 그의 후광을 더 얻고 싶어 하지, 꺼리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처럼 진영 논리와 무관하게 모두에게 존경받는 전직 지도자를 우리는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khkim@seoul.co.kr
  • [대만 총통 선거 현장을 가다] “마 총통 때문에 경제 추락”… 정권 심판 나선 대만 국민들

    [대만 총통 선거 현장을 가다] “마 총통 때문에 경제 추락”… 정권 심판 나선 대만 국민들

    “여론조사 결과처럼 선거에서도 차이잉원(蔡英文·60) 민주진보당(민진당) 후보의 압도적 우세로 끝날 것입니다. 마잉주(馬英九)의 국민당 정부하에서 서민 생활이 얼마나 어려워졌는지 알기는 압니까?” 대만 수도 타이베이(臺北) 중심가인 시먼딩(西門靖)에서 만난 유권자 리쑤핑(李素萍·42)은 차이 후보를 지지한다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대학생이라고 밝힌 린밍룬(林明倫·21)은 “마 총통이 집권한 지난 8년간 대만 경제는 추락을 거듭했다”며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해 줄 후보에게 표를 주겠다”고 말했다. 타이베이 중앙역에서 만난 왕샤오쥔(王小軍·67)은 “차이 후보가 당선돼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가 악화되면 대만 경제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면서 “(여론조사에서는 차이 후보가 앞서 있지만) 누가 될지는 당일 투표함 뚜껑을 열어 봐야 알 수 있다”고 반박하며 국민당 주리룬(朱立倫·55)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총통 선거를 사흘 앞둔 13일 비가 오는 가운데 대만의 대선 열기는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중산(中山)구 민진당 총통·입법위원 경선본부로 이동하는 길 양쪽에 차이 후보와 주 후보, 친민당 쑹추위(宋楚瑜) 후보의 사진이 들어간 대형 옥외 광고가 걸렸으며 오가는 버스와 택시도 총통 후보들의 광고판으로 빼곡했다. 이날 오후 광푸난루(光復南路) 등 도심 곳곳은 “둥쏸”(凍蒜)을 외치는 소리로 가득 찼다. 대만어로 마늘을 뜻하는 ‘둥쏸’은 표준 중국어의 ‘당선’(當選)과 발음이 같다. 그래서 유독 선거철만 되면 “둥쏸”이 크게 들리는데 이날도 어딜 가나 “차이잉원~둥쏸”, “주리룬~둥쏸”, “쑹추위~둥쏸” 등 각 후보 지지자들의 구호가 멈추지 않았다. 표심을 잡기 위한 막판 유세도 한창이었다. 주 후보는 이날 신베이(新北)시에서 유권자들을 향해 “지금 세계적인 저유가, 중국 경제성장 둔화 등으로 세계경제가 패닉 상태에 빠졌다”면서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가 아니라 투자를 유치하고 경제를 살리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제 위기를 우려하는 표심을 파고들겠다는 것이다. 차이 후보는 집권 뒤의 양안 관계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현상 유지를 기본으로 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택시기사 천셴파(陳先發·58)는 “친중국 대 반중국, 보수 대 진보로 나뉘어 계속 싸우면 안 그래도 안 좋은 경제가 더욱 나빠질 것”이라며 “다수인 중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의 판세로는 초대형 돌발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대만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 가능성이 크다. 8년 만의 정권 교체에 대한 희망을 한몸에 받고 있는 차이 후보는 ‘선거의 여왕’으로 불린다. 2008년 총통 선거에서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의 부패 문제로 고배를 마신 뒤 당 주석을 맡아 민진당을 극적으로 살려내는 ‘잔 다르크’ 역할을 했다. 주석 취임 후 3년간 각종 선거에서 집권 국민당을 7차례나 눌렀다. 특히 지난해 11월 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는 국민당을 대파하며 정권 탈환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차이 후보에게 맞서는 국민당 주 후보는 마 총통이 지난해 12월 지방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당 주석에서 물러나면서 당의 새로운 구심점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1월 진행된 당 주석 선거에 단독 출마해 역대 가장 높은 득표율(99.61%)로 당선됐다. 총통 후보가 된 과정도 극적이다. 이번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언해 온 그는 당의 후보로 선출됐던 훙슈주(洪秀柱) 전 입법원 부원장이 고전을 면치 못하자 선거 3개월을 앞두고 구원투수로 전격 등판했다. 특히 2010년 신베이 시장 선거에서 차이 후보에게 승리를 거둔 전력이 있어 그에 대한 기대가 크다. 지난해 5월 당 주석 신분으로 방중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국공 수뇌회담’을 갖고 양안 현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막판 변수는 있다. 현재 2, 3위 후보가 단일화할 경우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성사되면 예측 불허의 승부가 전개된다. 대만 TVBS방송의 지난 5일 마지막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이 후보는 43%의 지지율로 25%의 주 후보를 18% 포인트 차로 앞서고 있다. 친여 성향의 친민당 쑹 후보는 두 차례의 TV 토론에서 선전하며 지지율을 5% 포인트 이상 끌어올렸으나 15%대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국민당은 같은 날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주 후보의 지지율은 31.2%로, 차이 후보(39.2%)와의 격차가 8% 포인트로 좁혀졌다고 주장했다. 타이베이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World 특파원 블로그] 절망만 말하는 ‘자학’ 선거전 암울한 대만 사회의 자화상

    [World 특파원 블로그] 절망만 말하는 ‘자학’ 선거전 암울한 대만 사회의 자화상

    12일 중국과 대만 언론에는 특이한 유세 사진이 실렸다. 오는 16일 실시되는 총통 및 입법위원(국회의원) 동시선거에 출마한 국민당 소속 입법위원 후보 왕진스(王進士)가 먹물을 얼굴에 들이붓는 모습이었다. 왕 후보는 “나는 얼굴에 먹칠하는 게 두렵지 않다”고 외쳤다. 그의 퍼포먼스 사진은 ‘자학’(自虐)으로 치닫는 이번 선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금까지 집권당인 국민당과 야당인 민진당은 “우리가 집권하면 무엇을 하겠다”는 공약 대신 “상대 당이 집권하면 대만은 망한다”며 국민을 협박했다. 지난 주말 대규모 유세에서 국민당 총통 후보 주리룬(朱立倫)은 “민진당은 중국과 싸우려는 위험한 세력”이라면서 “민진당의 집권은 대만 젊은이를 전쟁으로 내몰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후보는 “국민당 집권 8년 만에 대만은 중국에 예속됐다”면서 “국민당의 집권 연장은 대만의 종말을 재촉할 것”이라고 맞섰다. ‘절망’만 말하는 대만 선거는 쇠퇴하는 대만을 비추는 거울이다. 2010년까지만 해도 10%가 넘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3분기 -1.1%를 기록했다. 지난해 1~9월까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52%로 디플레이션 상태를 연출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현재 수출은 9개월 연속 마이너스, 수입은 11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임금은 20년째 제자리인데, 부동산 가격은 그새 40배나 올랐다. 많은 유권자는 이 모든 책임이 중국과 국민당에 있다고 믿고 있다. 대만의 대중국 수출의존도가 40%에 이르고 대만 수출기업의 47%가 중국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대만협회(AIT·대사관 격) 회장을 지낸 리처드 부시는 “8년 전 민진당이 집권했더라면 대만 경제는 더 악화됐을 것”이라고 밝힐 만큼 중국 없는 대만의 생존은 더 불투명한 상황이다. 심각한 것은 젊은 층의 절망이다. ‘22K’(초봉 2만 2000대만달러·약 79만원) 달성이 지상 과제일 정도로 젊은이들은 실업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영국 BBC가 최근 중국 본토 출신의 후손과 대만 현지인의 후손 10명을 심층 인터뷰했는데 전원이 “국민당이 싫어 민진당을 찍겠지만, 정권이 바뀐다고 희망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 청년들은 “통일이냐 독립이냐만을 선택할 것을 강요한 양대 정당의 20년 싸움에 숨이 막힌다”고 호소하지만, 새로운 정치세력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글로벌 시대] 전쟁에서 평화로, 진먼다오/민재홍 덕성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글로벌 시대] 전쟁에서 평화로, 진먼다오/민재홍 덕성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며칠 전 중국 샤먼(厦門)을 다녀왔다. 중국 대륙의 남쪽 푸젠(福建)성 샤먼은 아편전쟁 이후 체결된 영국과의 난징(南京)조약에 따라 일찍부터 서양 문물이 유입되었고, 1979년 덩샤오핑(鄧小平)에 의해 경제특구로 지정되어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남태평양을 바라보는 깨끗한 자연 환경과 따뜻한 기후조건으로 중국에서도 주거 환경이 뛰어난 곳으로 평가받는 곳이다. 샤먼에서 배를 타고 약 30분만 가면 작은 섬 진먼다오(門島)에 도착한다. 대륙 땅이 아닌 대만의 영토로, 1949년 장제스(蔣介石) 국민당 정부가 마오쩌둥(毛澤東) 공산당에 쫓겨 대만으로 밀려나면서도 ‘죽음으로 사수하라’는 강한 의지로 지켜낸 섬이다. 1958년 중국은 다시 대규모 군사를 동원하여 진먼다오를 공격하였다. 44일간 계속된 전투에서 중국은 무려 47만발의 포탄을 쏘아대며, 턱밑에서 호시탐탐 중원 회복을 노리는 장제스의 진먼다오를 맹폭하였다. 그러나 처절하고 끈질긴 저항에 중국도 이 섬을 포기하였다. 이후 장제스는 진먼다오에 여러 대피소와 지하 방공호를 건설하여 본토 회복의 전진기지, 대륙 반공의 요새를 구축하였다. 중국과 대만의 양안(兩岸) 관계를 논할 때 늘 푸젠성과 진먼다오의 팽팽한 대치가 연상되는 이유다. 이번에 들어가 본 지하 방공호는 단순한 땅굴이 아니었다. 식량 보급과 생활이 가능한 지하 도시였고, 특히 군함을 타고 바다로 탈출할 수 있도록 만든 자이산(翟山) 갱도의 시설은 상상 이상이었다. 방공호 입구에는 장제스가 직접 쓴 물망재거(勿忘在莒·거에 있던 때를 잊지 말라) 글귀가 있다. ‘물망재거’는 사기 전단열전(田單列傳)에 나오는 말로, 전국시대 연(燕)나라에 패한 제(齊)나라가 힘들게 산둥(山東) 지방의 거로 피신한 후에 전단을 내세워 다시 나라를 되찾는다는 고사이다. 장제스도 아마 제나라처럼 언젠가는 다시 본토를 수복하겠다는 염원을 담아 이 성어를 모토로 삼은 것이다. 또 장제스는 진먼다오에서 대륙이 보이는 가장 높은 곳에 거광루(莒光樓)를 세워 한시라도 대륙 회복의 염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뜻을 표현하였다. 60년 전의 장제스를 떠올리며 거광루에 올랐지만 이미 진먼다오는 평화의 땅이 되어 있었다. 1986년부터 대만인들의 중국 본토 친지방문이 허용되었고, 2001년엔 대륙과 진먼다오 사이에 통항·통상·통우의 3통이 시작되어 진먼다오는 이제는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 명주(名酒)로 꼽히는 진먼 고량주와 포탄으로 날아온 쇠를 녹여 만든 포탄 나이프는 유명 기념품이 됐을 정도다. 대륙과 대만의 정치적 통일은 요원해 보이지만, 이미 실질적인 교류를 통해 사회 문화적 통일은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지난달 7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은 분단 66년 만에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가졌다. ‘우리는 한 핏줄’을 외친 만찬에서 두 정상은 57도 진먼 고량주를 함께 마셨다. 이 술은 중국이 포격을 중단한 1990년 9월 27일을 기념하여 당시 가오화주(高華柱) 대만 국방부장이 만들어 소장했던 것이다. 정치적 합의문 발표는 없었지만, 양안의 평화를 상징하는 고량주로 두 정상은 미래를 약속한 셈이다. 다음달인 2016년 1월 대만 총통 선거가 있다. 현재 국민당 후보가 아닌 야당 민진당의 여성 후보인 차이잉원(蔡英文)의 당선이 확실해 보인다. 차이잉원이 주장하는 양안 관계의 3대 원칙인 ‘유(有)소통, 부(不)도발, 의외의 일이 없을 것’이란 말대로 중국과 대만의 평화가 계속될지 지켜볼 일이다.
  • 양안정책 이슈… 정권 교체·첫 여성 총통 나올지 최대 관심

    양안정책 이슈… 정권 교체·첫 여성 총통 나올지 최대 관심

    “처음에는 지지율이 저조하지만, 지난달 미국 워싱턴 방문 후 서서히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 (집권 국민당 주리룬(朱立倫) 후보 진영) “미래의 민진당은 경제발전과 양안관계 안정을 최우선 순위에 두겠다.” (야당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 후보 진영) 내년 1월 16일 실시되는 총통선거를 30일 앞두고 대만 정국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번 대선은 민진당이 국민당의 8년 통치를 끝내고 여야 정권교체를 이룰지가 주목된다. 특히 민진당의 차이잉원 후보가 당선되면 대만 최초의 여성 총통인 동시에 ‘집안의 정치적 후광’을 업지 않은 여성 지도자 반열에 오른다. 가장 유력한 두 대선 후보인 국민당 주리룬 후보와 민진당 차이잉원 후보는 정치·경제 현안을 비롯해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문제에 대해 현격한 입장차이를 보이는 만큼 이번 선거전의 향배가 대만의 미래에 중대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16일 여론조사기관 대만지표민조(臺灣指標民調)에 따르면 현재 대선 판세는 지지율이 46%대인 민진당 차이잉원 후보가 크게 앞서가고 있다.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이끄는 국민당 주리룬 후보는 차이 후보 지지율의 절반(16%대)에도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중도 우파 성향의 기호 3번 친민당 쑹추위(宋楚瑜) 후보의 지지율 역시 한 자릿수(9%대)에 머무르고 있다. 색깔이 비슷한 주리룬 후보와 쑹추위 후보가 단일화에 성공하더라도 차이 후보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다. 집권당의 주 후보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마 총통의 집권 기간 경기 침체 탓이다. 2010년 경제성장률이 10%를 넘었던 대만 경제는 곧바로 곤두박질치며 2013년 2.2%, 2014년 3.9% 성장하더니 올해는 1%대 성장도 버거울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대만이 1%대 저성장의 늪에 빠진 것은 성장엔진이었던 중국이 오히려 대만 제조업의 몰락을 불러온 까닭이다. 대만은 1990년대 대외 투자의 80%를 중국 본토에 쏟아부은 덕분에 중국 내 산업 체인의 중간재를 담당하며 고도성장을 누려왔다. 하지만 중국 투자가 부메랑이 돼 중소기업 중심의 대만 제조업은 경쟁력을 상당 부분 잃고 말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45%에 이르렀던 대만 제조업 비중은 현재 30%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6년 전부터 디스플레이 등 신산업 위주로 체질을 바꾸고 있지만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밀려 경쟁력 회복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에 따라 대만의 가계소득은 2008년부터 2014년 사이 연간 평균 0.6% 수준 증가에 그쳤다. 우밍후이(吳明慧) 국가발전위원회 경제발전처 처장은 “낮은 임금과 너무 높은 집값 때문에 젊은 세대가 등을 돌렸다”고 말했다. 양안관계 역시 대만 총통선거의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이슈다. 4년 전 차이 후보는 양안정책 탓에 마잉주 총통에게 밀려 고배를 마셨다. 당시 중국에 진출해 있는 대기업들이 ‘친중국 성향’의 마 총통에게 큰 힘을 실어주었기 때문이다. 대만 독립 성향의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을 계승한 차이 후보는 여전히 양안관계의 핵심 원칙인 ‘92공식’(九二共識·‘하나의 중국’ 원칙)을 공개적으로 인정치 않은 채 양안 간 현상 유지를 하겠다고 애매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왕젠민(王建民) 중국사회과학원 대만연구소연구원은 “차이 후보가 집권한다 하더라도 양안 민간교류와 경제협력을 완전히 저지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러면서 “다만 양안 관계 분위기에 중대한 변화는 나타날 수 있다“며 ”중국과 대만의 양안 정책에 어느 정도 조금씩 변화는 생길 것”으로 관측했다. 차이 후보가 당선되면 현재 양안 사무를 주관하는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해협회)와 대만의 해협교류기금회(해기회) 간 대화 채널 상설화를 위해 진행 중인 협상이 중단되거나 민진당의 양안 경제정책이 보수적으로 변할 것으로 보인다. 황즈팡(黃志芳) 민진당 국제사무부 주임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 여부는 무조건 국민의 뜻에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민진당의 정책은 우선 중국에 대한 대만의 경제 의존도를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이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World 특파원 블로그] 中 vs 대만 페북 전쟁…차이잉원의 ‘f’ 한수

    [World 특파원 블로그] 中 vs 대만 페북 전쟁…차이잉원의 ‘f’ 한수

    지난 10일 밤 대만 총통 후보 차이잉원(蔡英文)의 페이스북이 ‘간체자’(簡體字) 기습을 당했다. 차이 후보가 올린 선거 홍보물에 11일 새벽까지 무려 9만개의 댓글이 달린 것이다. 댓글은 대부분 대륙에서 쓰는 중국어 간체자였다. “헛된 독립을 포기하고 대륙의 품에 안기라”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대만에서 쓰는 번체자(繁體字) 댓글들은 간체자 댓글의 홍수에 순식간에 떠내려갔다. 당황한 차이 후보 측은 조사에 나섰다. 10일 밤 12시부터 2시간 동안 대륙의 인터넷 계정 9885개가 차이 후보의 페이스북에 집중적으로 접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신기한 점은 중국에서는 페이스북을 차단하는데 어떻게 이처럼 많은 계정이 순식간에 차이 후보의 페이스북에 접속할 수 있었느냐는 것이었다. 중국에서도 사설 VPN(가설망)을 이용해 방화벽을 우회해 들어가면 페이스북에 다가갈 수 있지만, 약속이나 한 듯 특정인의 페이스북으로 몰린 것은 우연의 일치로 보기 힘들었다. 차이 후보가 속한 민진당은 중국 공산당 선전기구의 공격이라고 의심했다. 중국에는 정부 주도의 댓글 알바집단인 ‘우마오당’(五毛黨)이 1000만명 이상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7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馬永九) 대만 총통의 첫 정상회담으로 야당인 민진당의 대만독립 노선이 부각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대선 승리가 유력시되는 차이 후보는 공격 대상으로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차이 후보는 기막힌 역공을 생각해냈다. 그는 “다양한 목소리는 우리 사회를 진보시킵니다. 새 친구 여러분 대만의 자유와 민주, 다원성을 마음껏 누리세요”라는 글과 함께 페이스북의 머리글자 ‘f’를 활용해 ‘freedom’(자유)이라는 그래픽을 올렸다. 순식간에 10만여명이 ‘좋아요’를 눌렀고 댓글과 답글에서는 치열한 논쟁이 전개됐다. 대만 누리꾼들이 “이런 게 바로 언론의 자유이다. 투표소에서 누군가를 선택해 보지 못한 당신들은 민주주의를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하자 대륙 누리꾼들은 “미국과 일본에 예속돼 제 운명도 개척하지 못하면서 무슨 민주주의 타령이냐”고 맞섰다. 욕설과 비방의 공간이 토론의 공간으로 바뀌면서 차이 후보를 공격하려고 왔던 대륙의 누리꾼들이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체험하는 역설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정치적 통일보다 ‘3NO’에 무게… 민진당에 ‘독립 불가’ 경고

    정치적 통일보다 ‘3NO’에 무게… 민진당에 ‘독립 불가’ 경고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대만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이룬 66년 만의 정상회담은 양안 관계의 확실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벌써 양안의 정치적 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내보이기도 한다. 경제적으로는 이미 ‘한 몸’이나 다름없어서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정치 통일의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양안은 1992년 ‘하나의 중국’ 원칙에 합의한 이후 경제 측면에선 단순 협력을 넘어선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대만은 무역의 4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고 양안 간 인적 교류는 연간 1000만명에 이른다. 중국 본토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인구도 200만명이나 된다. 그러나 정치, 군사 방면에서는 갈등과 반목을 거듭했다. 특히 대만과 미국이 굳건한 군사 동맹을 유지하고 있고 양안의 사상과 체제가 완전히 달라 정치적 통일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런 상황에서 두 정상이 서로를 국가원수이자 정부 대표로 인정하고 만난 것은 양안 관계가 질적 변화의 길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정상회담으로 양안 관계가 성숙해진 것은 맞지만 통일은 아직 멀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BBC 중문망은 8일 “시진핑과 마잉주는 ‘역사적 지위’를 획득하는 데 성공했지만, 회담 자체를 통일과 결부시키는 것은 너무 낭만적인 발상”이라고 진단했다. 두 정상이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재확인했지만,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보고 대만은 ‘중화민국’을 ‘하나의 중국’으로 보는 ‘동상이몽’에는 변함이 없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이 일방적인 통일을 주장하지 않고 대만이 독립을 선언하지 않으며 서로 군사적으로 위협을 가하지 않는 ‘3NO’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정상회담이 내년 1월에 실시되는 대만 대선에 영향을 주기 위해 기획된 측면도 있지만 ‘북풍’의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홍콩 명보는 “시 주석이 민진당으로 기울어진 판세를 역전시키려 했다기보다 오히려 다음 총통으로 유력한 차이잉원(蔡英文) 후보에게 ‘섣불리 독립을 외치지 말고 현상 유지에 주력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정상회담이 대만 내부를 더 분열시킬 가능성은 크다. 대만 여론은 현재 ‘통일을 향한 역사적인 정상회담’이라는 평가와 ‘대만을 팔아먹은 회담’이라는 평가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차이 후보는 “마 총통은 대만의 민주와 자유, 중화민국의 존재성, 대만인민의 선택 권리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면서 “매우 실망스러운 회담”이라고 비판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66년 만에 ‘80초 악수’…‘하나의 중국’ 못 박다

    66년 만에 ‘80초 악수’…‘하나의 중국’ 못 박다

    “느낌이 좋았다. 우리는 있는 힘껏 서로의 손을 꽉 쥐었다.”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은 지난 7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역사적인 ‘악수’의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1949년 분단된 이후 66년 만에 만난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정상의 악수는 80초 동안 길게 이어졌다. 이날 싱가포르 샹그릴라호텔에서 연출된 악수와 정상회담은 긴장과 대립으로 점철됐던 분단사에 한 획을 그은 장면이었다. ●양안 교류 확대·핫라인 설치키로 6명씩 배석한 역사적인 정상회담은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시 주석은 “우리는 뼈가 부러지더라도 힘줄로 이어지는 형제이며 물보다 진한 피를 지닌 가족”이라면서 “역사는 오늘을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 총통은 “양안 인민은 중화민족이며 염황(중국 민족 시조)의 자손”이라고 화답했다. 두 정상은 ‘하나의 중국’이란 원칙을 골자로 한 ‘92공식’(九二共識)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92공식은 1992년 11월 민간기구인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해협회)와 대만 해협교류기금회(해기회)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중화민국(대만)이 각자의 해석에 따른 명칭을 사용(일중각표·一中各表)하기로 한 것을 말한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에 방점을 두고 있고 대만은 ‘일중각표’ 즉 하나의 중국에 대한 각자의 해석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대만 독립으로 인한 두 개의 중국에 반대하는 것은 똑같다. 두 정상이 ‘하나의 중국’을 강조한 이유는 내년 1월 대만 대선에서 국민당을 누르고 집권당이 될 게 확실시되는 민진당을 겨냥한 경고이기도 하다. ●정상회담 정례화도 큰 틀에서 합의 시 주석은 이날 회담에서 “양안의 최대 위협은 대만 독립세력”이라면서 “이 세력은 양안의 평화발전을 저해하고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진당은 ‘하나의 중국’ 원칙은 중국으로의 예속이라고 믿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대만이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진당 대선 후보인 차이잉원(蔡英文)은 친중 유권자들을 의식해 양안 관계의 현상 유지를 약속하면서도 92공식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만 연합만보는 “비록 차이잉원이 총통이 되더라도 양안 관계에 급격한 변화를 줄 수 없도록 ‘대못’을 박은 회담”이라고 평가했다. 마 총통은 적대상태의 완화와 분쟁의 평화적 처리, 양안교류의 확대, 양안 핫라인 설치, 공동 중화문화 진흥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고 시 주석은 즉각 동의했다. 시 주석은 특히 마 총통이 대만의 외교적 고립을 토로하자 “국제 문제에 대한 대만 동포의 감정을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중화권 매체들은 대만이 독자적으로 유엔에 가입하겠다는 주장만 하지 않으면 대만 고립화 외교를 완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했다. 시 주석은 또 “대만이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건설에 참여하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입하는 것도 환영한다”고 말했다. 양측은 양안 정상회담을 정례화하는 데에도 큰 틀에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회담 후 마 총통은 직접 기자회견에 나와 “이번 회동이 회담 정례화의 첫걸음이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마 총통은 또 대만을 향한 미사일 배치를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시 주석은 “대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친중’ 마잉주 정권 구하기 나선 시진핑… 회담 호칭은 ‘선생’

    ‘친중’ 마잉주 정권 구하기 나선 시진핑… 회담 호칭은 ‘선생’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이 오는 7일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한다. 내전을 거쳐 1949년에 분단된 중국과 대만의 정상이 얼굴을 맞대는 것은 66년 만이다. 천이신(陳以信) 대만 총통실 대변인은 “두 정상이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눌 예정”이라고 지난 3일 밝혔고 중국 정부도 4일 회담 개최 사실을 확인했다. 중국 정부는 이번 회담을 ‘양안 지도자 신분 및 명의로 이뤄지는 회동’이라고 규정했다. ‘양안 지도자’ 신분을 강조한 것은 회담의 성격을 사실상 정상회담으로 규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중국은 두 지도자가 상대방을 ‘선생’으로 호칭하기로 했다고 밝혀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양안 관계의 현주소를 드러냈다.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니 서로 상대방을 총통이나 주석으로 부를 수 없는 까닭에 나온 것이다. 천 대변인은 “두 정상은 만찬도 함께 할 것”이라면서 “양안 지도자의 직접적인 교류, 소통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해 정례화 가능성도 시사했다. 홍콩 명보는 “정상회담을 위해 양측이 수개월간 물밑 협상을 벌였다”면서 “중국에서 정상회담을 하게 되면 중국이 사실상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고 마잉주를 총통으로 인정하는 꼴이 돼 중화권 국가인 싱가포르에서 만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싱가포르는 중국과 대만이 1992년 11월 반관영 민간기구들을 통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을 각자의 해석에 따라 명칭을 사용(一中各表)하기로 합의한 ‘92공식’(九二共識)이 나온 곳이기도 하다. 양안 간에는 2005년 양측 집권당 대표였던 후진타오 당시 중국 공산당 총서기와 롄잔 당시 대만 국민당 주석 간 회담 이후 네 차례의 국공(국민당과 공산당) 영수회담이 있었지만 국가주석과 총통 간 회담은 성사된 적이 없었다. 이번 정상회담으로 양안은 더욱 밀착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대만이 중국으로 흡수되는 상징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 마이애미대의 준 드레이어 교수는 “마 총통이 정상회담에서 대만 독립성을 해치는 발언을 한다면 대만에선 대규모 시위가 발생할 것”이라면서 “마 총통이 역사적인 인물이 되고 싶어 하지만 오히려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총통이 될 위험도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이 훼손되는 것까지 감수하고 정상회담에 나선 것은 내년 1월 대만 대선을 앞두고 국민당의 패색이 짙어져 판세 역전의 계기를 마련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국민당은 훙슈주(洪秀柱) 후보 지명을 철회하고 주리룬(朱立倫) 주석을 새 대선 후보로 선출하는 특단의 조치까지 취했지만 야당인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후보에게 크게 뒤지고 있다. 더욱이 대선과 입법위원(국회의원) 선거가 동시에 치러져 국민당은 정권을 빼앗기는 것은 물론 소수당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여 있다. 중국은 ‘92공식’을 거부하는 차이 후보가 당선될 경우 양안 관계에 파열음이 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자칫 대만에서 독립 세력의 힘이 커지면 홍콩은 물론 대륙의 신장위구르와 티베트 지역까지 불안해질 수 있다. 국민당은 정상회담을 통해 양안 관계의 중요성과 경제적 긴밀함을 부각시킬 생각이다. 그러나 중국과 국민당의 승부수가 오히려 역풍을 부를 수 있다. 국민당이 민심에서 멀어진 원인 중 하나가 마잉주 정부의 지나친 친중 정책이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 국무부는 “양안 관계의 안정은 미국에도 이익”이라며 “양안이 상호 존중의 기초에서 계속 건설적인 대화를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씨줄날줄] 新국공합작/박홍환 논설위원

    1924년 1월 20일부터 30일까지 중국 남부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에서 열린 중국 국민당 제1차 전국 대표대회는 중국 현대사의 한 획을 긋는 이벤트로 기록돼 있다. 쑨원(孫文)이 소집한 당 대회에서 리다자오(李大釗), 마오쩌둥(毛澤東)을 비롯한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이 대거 국민당 간부로 선출됐다. 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이른바 제1차 국공합작이다. 5·4운동으로 촉발된 민주혁명의 완성을 위해 북방 군벌 타도가 급선무였던 국민당으로서는 어떤 세력과도 손을 맞잡아야 했고, 출범한 지 3년밖에 안 된 공산당으로서는 통일전선을 통해 세력을 확장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에 소련과 코민테른의 적극적인 지원이 주효했다. 1차 국공합작은 3년 반 만에 막을 내렸다. 쑨원이 사망한 후 국민당은 좌파와 우파 간 권력투쟁에 돌입했고, 1926년 권력을 장악한 장제스(張介石)가 본격적으로 반공 정책을 펴기 시작하면서 골이 깊어졌다. 마침내 1927년 7월 국공합작은 붕괴했고, 대륙은 10년간의 내전에 돌입했다. 중국 공산당으로서는 대장정으로 대표되는 ‘고난의 시기’이자 각지의 민중을 규합하는 ‘기회의 시기’이기도 했다. 1차 국공합작의 명분이 군벌 타파였다면 2차 국공합작은 항일(抗日)이라는 명분을 내걸었다. ‘일본은 피부병, 공산당은 심장병’이라며 공산당부터 토벌한 뒤 항일전쟁에 나선다는 안내양외(安內攘外) 정책을 고수했던 장제스는 이른바 ‘시안사변’ 이후 일본과의 전쟁에 나서라는 여론에 떼밀려 공산당과 손을 맞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1937년 9월 마침내 제2차 국공합작이 성립됐다. 항일전쟁으로 뭉치긴 했지만 양측의 계산은 달랐다. 일제의 패망 이후 권력을 쥐기 위한 막후 샅바싸움이 거칠게 이어졌다. 마침내 1945년 항일전쟁 승리 이후 또다시 피비린내 나는 국공 내전이 벌어졌고, 국민당은 1949년 대만으로 패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66년, 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이른바 ‘신(新)국공합작’ 기운이 물씬하다. 마침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오는 7일 정상회담을 개최한다. 2008년 이후 국공 영수회담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현직 정상 간의 회담은 처음이다. 이번 합작은 ‘국민당 구하기’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 나온다. 내년 총통 선거를 앞두고 있는 대만에서는 야당인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 후보가 국민당 후보를 크게 앞서고 있다. 중국에 적대적인 민진당의 집권을 막아야 하는 시 주석과 양안 관계의 중요성을 부각시킴으로써 국민당 지지 세력을 규합하려는 마 총통의 계산이 딱 맞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월등한 위치(1차)에서 대등한 위치(2차), 그리고 이젠 열등한 위치로 전락해 국공합작을 고대하는 국민당의 서글픈 현실이 읽힌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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