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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극전사 출사표 및 G조 전력 분석

    “Again 2002! 16강 넘어 4강까지 간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새달 10일 개막할 2006독일월드컵을 향해 출항할 23인 태극전사들의 필승에 대한 의지와 신념은 바위처럼 단단하기만 하다.1차 목표는 16강 진출. 토고와 프랑스, 그리고 스위스 등 조별리그에서 만날 상대들은 분명 ‘난적’들이다. 그러나 태극전사들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비기기 작전은 없다.3전 전승으로 16강 티켓을 움켜쥐겠다.”는 각오와 함성은 너나 없이 똑같다. 더욱이 23인 가운데 10명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짜릿한 ‘4강맛’을 본 선수들.4년전의 ‘신화’를 딛고 또 다른 ‘라인강의 기적’을 탄생시키기 위해 이들은 마지막 준비까지 마쳤다. 한 몸뚱이가 돼 뛰고 구르고, 굵은 땀방울로 훈련장을 적셨다.4강 신화는 또 일궈질 수 있을까. 아드보카트호에 승선한 23명 태극전사들의 입을 통해 그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 조별리그에서 만날 3개국의 현재 전력 분석은 물론 ‘12번째 선수’인 붉은악마가 펼칠 뜨거운 응원전까지 미리 본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딕 아드보카트 감독(59) 1947년 9월27일/네덜란드/네덜란드대표팀 감독,PSV 에인트호벤 감독, 레인저스FC 감독, 보루시아MG 감독, 아랍에미리트(UAE) 감독 ▶오는 6월 또 한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겠다. 모든 가능성은 우리에게도 열려 있다. 우리 선수들은 2002한·일월드컵의 경험과 잉글랜드, 독일 등 선진리그에서의 경험을 통해 더 강해져 있다.16강 진출이 최종 목표가 아니다.8강 진출도 1차 고지일 뿐이다. 한국 축구팬들의 기대치가 높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한국 감독직은 커다란 도전이다. 한국팀을 맡은 이유는 도전할 수 있다는 점 하나 때문이다. 도전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우리의 목표를 이루겠다. 한국 선수들의 능력과 가능성을 믿는다. ●정기동 GK코치(45) 1961년 5월13일/청주/1990이탈리아월드컵 국가대표,1992∼2002년 포항스틸러스 골키퍼 코치,2004년 국가대표팀 골키퍼 코치 ▶골키퍼는 체력보다 순발력이나 안정적인 볼 캐칭이 우선이다. 부상이 있지 않는 한 이운재가 계속 주전을 맡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드보카트 감독께서 나이는 고려하지 말고 월드컵 때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선수를 추천하라고 지시했다. 새로 뽑힌 김용대가 김영광과 이운재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독일월드컵에서 유럽 빅리그에서 통할 한국 골키퍼가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이운재(33·GK·수원 삼성) 1973년 4월26일/충북 청주/청주상고-경희대/182㎝ 88㎏/A 매치 데뷔 1994년 3월 미국전·94경기 83실점/월드컵 2회 출전(1994,2002년)/K-리그 228경기 240실점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어느덧 고참이 됐다. 대표팀 주장이 되고 나서 맞는 첫 월드컵인 만큼 2002년 히딩크호 시절 못지않게 팀원들간 단합과 투지를 북돋울 수 있도록 솔선수범하겠다. 이제 세번째 월드컵이고, 경험이나 순발력, 노련미 등 모든 면에서 자신있다. 일단 부상을 조심해야 한다. 월드컵을 앞두고 항상 긴장된 생각을 가지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본다. 최종 목표는 월드컵을 품에 안고 한국에 돌아오는 것이다. ●핌 베어벡 수석코치(50) 1956년 3월12일/네덜란드/스파르타 로테르담 코치 겸 감독대행,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코치 겸 감독대행 FC그로닝겐 감독, 일본 J2리그 NTT오미야 감독, 한·일월드컵 한국대표팀 수석코치,PSV 에인트호벤 2 군 감독,UAE대표팀 수석코치 ▶4년 전에 비해 시간이 썩 많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부담이다. 그러나 선수들이 열린 사고방식을 갖고 있고, 서로 의사소통을 잘하고 있는 점이 2002년과 달라진 점이다. 그 때에는 홍명보 코치가 수비를 리드하면서 상대에 따라 변화를 주는 역할을 했는데 지금은 다른 상황이어서 새로운 실험을 하게 됐다. 독일월드컵에 가면 ‘4강’을 일궈냈던 당시 홈에서 받았던 한국팬들의 성원이 그리울 것이다. ●홍명보 코치(37) 1969년 2월12일/포항제철-J리그 가시와 레이솔-미국 LA 갤럭시/A매치 135경기 9득점/1994,95,97년 세계올스타, 한·일월드컵 브론즈볼 수상,FIFA 선정 월드컵 올스타 ▶2002년에 견줘 주어진 시간은 짧지만 잘 준비해 가고 있다. 한·일월드컵의 4강 신화가 행운의 산물이 아님을 증명하겠다. 독일월드컵에서 우리가 16강 이상을 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나는 아직 부족한 게 많지만 선수들이 잘 따라주는 편이고 내가 갖고 있는 경험을 시시때때로 들려주고 있다. 선수들이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포백은 개인적인 능력보다는 수비와 미드필더는 물론 공격수까지 이어지는 전체적인 조직력이 중요하다. 많이 발전했고, 남아있는 시간 동안 완성도가 더 높아질 것이다. ●압신 고트비 코치(42) 1964년 2월8일/미국/한·일월드컵 국가대표팀 기술분석관,2004년 LA갤럭시 수석코치, 독일월드컵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기술분석관 ▶한국 축구를 믿는다. 한국 축구의 가능성을 믿었기 때문에 코칭스태프직을 또 수락했다. 한국 선수들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사력을 다한다. 강한 단결력을 과시하는 건 이번 독일월드컵에서 큰 장점이 될 것이다. 젊은 선수들의 기량이 더 좋아졌고, 베테랑들은 경험을 더 쌓았다는 점에서 현재 대표팀의 전력은 2002년 멤버보다 더 낫다. 한ㆍ일월드컵의 4강 진출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김영광(23·GK·전남 드래곤즈) 1983년 6월28일/전남 고흥/광양제철고-한려대/185㎝ 80㎏/A매치 데뷔 2004년 2월 오만전·5경기 2실점/월드컵 출전 없음/K-리그 71 경기 1도움 75실점/2004년 아테네올림픽 대표 ▶일단 16강에 들면 태극전사 특유의 신바람으로 무난하게 8강에 들 수 있을 것이다. 주전으로 뽑히면 내가 앞장서겠다. 해외전지훈련 때는 욕심만 앞서다 보니 부상을 숨기고 경기에 나서게 됐고, 그 때문에 컨디션이 나빠지면서 플레이도 좋지 못했다. 초심으로 돌아갔다.‘리틀 칸’이란 말은 이제 듣기도 싫다. 기본에 충실하고 당당하게 명 골키퍼로 거듭나는 기회로 삼겠다. ●김용대(27·GK·성남 일화) 1979년 10월11일/경남 밀양/거제고-연세대/189㎝ 83㎏/A매치 데뷔 2000년 4월 라오스전·15경기 5실점/월드컵 출전 없음/K-리그 111 경기 142실점/2000년 시드니올림픽 대표 ▶2002년 막판에 탈락했던 응어리가 한 번에 풀렸다.(이)운재 형이 있어서 주전은 아니겠지만 이제 독일에 가면 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숙소생활을 계속해 왔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훈련을 해서 몸 상태는 최상이다. 출장 기회가 온다면 승리를 꼭 지켜내도록 하겠다. ●설기현(27·FW·울버햄프턴) 1979년 1월8일/강원 정선/강릉상고-광운대/184㎝ 73㎏/A매치 데뷔 2000년 1월 뉴질랜드전·64경기 12골/월드컵 출전 1회(2002년)/05∼06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리그 32경기 4골 4도움/한·일월드컵 이탈리아전 동점골 ▶건강하고 역동적인 활약을 펼칠 자신이 있다. 우리뿐만 아니라 본선진출팀 모두가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이다. 몸싸움과 체력에는 항상 자신감이 있지만 경기를 뛰다 보면 부족한 것을 느끼기도 한다. 남은 기간 준비를 잘해서 월드컵에 문제없도록 하겠다. 아드보카트 감독님이 원하는 플레이를 하도록 노력하겠다. ●이영표(29·DF·토트넘 훗스퍼) 1977년 4월23일/강원도 홍천/안양공고-건국대/176㎝ 68㎏/A매치 데뷔 1999년 6월 코리안컵 멕시코전·82경기 5득점/월드컵 출전 1회(2002년)/2006 프리미어리그 31경기 1도움/한·일월드컵 2도움(포르투갈전, 이탈리아전) ▶2002년의 성과를 재현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지만 지금 선수들은 자신감이 넘친다. 국내선수들이 지난 해외전훈에서 좋은 경기를 보여줬고, 모든 면에서 4년 전보다 낫다고 본다. 앞으로 남은 기간은 변화를 시도하는 것보다 지금 상태의 장점을 더욱 발전시키고 단점을 보완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 ●김두현(24·MF·성남 일화) 1982년 7월14일/경기 동두천/통진종고/175㎝ 73㎏/A매치 데뷔 2003년 4월 일본전·31경기 5골/월드컵 출전 없음/K-리그 134경기 13골 14도움/2002 아시안게임 대표,2004 아테네올림픽 대표 ▶내 역할은 애초에 마음먹었던 대로 준비하고 제 실력을 발휘하는 것뿐이다.(박)지성이 형이 80분을 뛰고 내가 10분을 뛴다고 해도 그 10분 동안 골을 넣을 수도 있고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해결할 수도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이호(22·MF·울산 현대) 1984년 10월22일/서울/중동중-중동고/182㎝ 76㎏/A매치 데뷔 2005년 10월21일 이란전·10경기 0골/월드컵 출전 없음/K-리그 81경기 4골 5도움/김남일의 뒤를 이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급성장 ▶설레기도 하지만 아직 실감은 안 난다. 대표팀 전지훈련에서 경기를 하면서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나처럼 어린 선수들이 선배들을 잘 따르고 한 발짝 더 뛴다면 다시 한 번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감독님이 미드필드에서 압박하고, 떨어지는 볼에 대해 준비하라고 매번 주문하신다. 좀 더 거칠게 하라는 얘기로 새겨 듣겠다. 대표팀 첫 경기에선 정신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다. 처음 나서는 월드컵에서 뭔가를 건지겠다. ●김상식(30·DF·성남 일화) 1976년 12월17일/전남 해남/경남공고-대구대/184㎝ 72㎏/A매치 데뷔 2000년 5월 유고전·38경기 2골/월드컵 출전 없음/K-리그 247 경기 13골 11도움/2000년 올림픽 및 아시안컵 대표 ▶어느 위치든 기회가 주어지면 최선의 기량 보여주겠다. 소속팀에선 수비형 미드필더지만 포백수비의 필요성 때문에 대표팀에 발탁이 됐다. 그러나 원래 포지션으로 뛸 기회가 온다면 실력을 보여주고 싶기도 하다. 어쨌든 센터백이든 수비형 미드필더든 기회가 주어진다면 최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 내가 꿈에서 바라던 것이 현실로 이뤄졌다.2002년 당시에 못지않은 축구로 국민 모두를 하나로 만드는,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다. ●조원희(23·DF·수원 삼성) 1983년 4월17일/서울/배재중-배재고/177㎝ 73㎏/A매치 데뷔 2005년 10월 이란전·12경기 1득점/월드컵 출전 없음/K-리그 86경기 2골 1도움/2005년 10월 이란전 A매치 데뷔골 ▶설레고 긴장된다. 부담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름대로 자신감도 있다. 어렵게 찾아온 기회인 만큼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겠다. 무엇보다 월드컵에 나갈 수 있어 영광이고 대표팀 명단에 들어 행복하다. 존경하는 (송)종국이 형과 함께 나란히 명단에도 들고 월드컵에도 함께 나갈 수 있어 더욱 좋다. 열심히 해서 좋은 경기를 펼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서로 경쟁을 해야 한다면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겠다. 형들과 하나로 뭉쳐 월드컵에서 좋은 모습 보이도록 하겠다. ●이을용(31·MF·트라브존스포르) 1975년 9월8일/강원도 태백/강릉상고-단국대/176㎝ 69㎏/A매 치 데뷔 1999년 3월 친선경기 브라질전·45경기 2골/월드컵 출전 1회(2002년)/2006 터키 슈퍼리그 28경기 1골 2도움/한·일월드컵 3∼4위전 프리킥 동점골,2002년 월드컵대표팀 가운데 가장 먼저 해외진출(터키) ▶스위스보다 한국이 체력적으로 우위에 있다. 프랑스와 한국이 16강에 갈 것이라는 전망을 터키 현지에서 들었다. 프랑스에 대해서도 한국이 절대적으로 밀릴 상대는 아니다. ●정경호(26·FW·광주 상무) 1980년 5월22일/강원 삼척/강릉상고-울산대/179㎝ 71㎏/A매치 데뷔 2003년9월 오만전·40경기 6골/월드컵 출전 없음/K-리그 89경기 13골 6도움/2004 올림픽 대표,2004 아시안컵 대표 ▶토고는 기술적으로 뛰어난 선수가 많고, 결정적인 상황도 많이 만들어내는 팀이다. 절대 만만히 볼 팀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자신있다. 토고의 뒷공간을 노리겠다. 다들 2002년에 4강에 들었기 때문에 국민들의 기대치가 높아졌다는 말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각오를 갖고 있다. ●김진규(21·DF·주빌로 이와타) 1985년 2월16일/경북 안동/안동고/183㎝ 83㎏/A매치 데뷔 2004년 7월 트리니다드토바고전·21경기 3골/월드컵 출전 없음/K-리그 26경기 2골 1도움/2003ㆍ2005년 세계청소년(U-20)선수권대회 대표,2004 아시안컵 대표 ▶어린 나이에 너무 큰 기회가 주어져서 기분이 좋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안으로 삭이겠다. 선배들이 다 잘해주기 때문에 형들 말을 잘 들으면서 주전 경쟁을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안정환(30·FW·뒤스부르크) 1976년 1월27일/경기 파주/서울기계공고-아주대/177㎝ 73㎏/ A매치 데뷔 1997년 4월 중국전·58경기 15골/월드컵 출전 1회(2002년)/K-리그 8 7경기 44골/한·일월드컵 미국전 동점골 및 이탈리아전 골든골,2004아시안컵 대표 (이)동국이 빠져 내 반쪽을 잃어버린 것 같다. 함께 나서지 못해 너무 아쉽다. 둘이서 서로 잘 해 보자며 많은 대화를 나눴었다. 그러나 동국이 몫까지 분명히 해 내겠다. 팀을 옮긴 뒤 뒤스부르크에서 출전기회를 잡지 못한 게 약점이 돼 엔트리 포함 여부가 불투명했고, 아드보카트 감독님으로부터 실망스럽다는 평가까지 받았지만 한 번 잡은 기회는 절대 놓치지 않겠다. 독일월드컵에선 기필코 원정 무승의 한을 풀겠다. 또 월드컵 본선 최다골 기록을 노리는 개인적인 바람도 이루고 싶다. ●조재진(25·FW·시미즈S펄스) 1981년 7월9일/경기 파주/대신고/185㎝ 81㎏/A매치 데뷔 2003년 6월 우루과이전·18경기 4골/월드컵 출전 없음/K-리그 47경기 4골 3도움 /2006 J-리그 12경기 8골 2도움/2004년 아테네올림픽 대표 ▶정환이 형이 좋은 장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많이 배우겠다. 그러나 주전 경쟁에서는 자신 있다. 골을 넣을 준비도 돼 있다. ●최진철(35·DF·전북 현대) 1971년 3월26일/전남 진도/오현고-숭실대/187㎝ 77㎏/A매치 데뷔 1997년 8월 브라질전·60경기 4골/월드컵 출전 1회(2002년)/K-리그 288경기 27골 11도움/2004아시안컵 대표, 독일월드컵대표팀 가운데 가장 최고령 ▶‘4강신화’에 대한 부담은 있지만 나는 물론 젊은 선수들이 뭔가 이루려고 적극 노력하고 있다.16강 진출은 충분히 가능하다. 내 자신도 90분간 우리 대표팀은 물론 젊은 상대 선수들에게 밀리지 않고 뛸 수 있다. 수비에서 골을 안 먹으면서 공격에도 보탬이 되는 플레이를 하겠다. ●김남일(29·MF·수원 삼성) 1977년 4월23일/인천/부평고-한양대/180㎝ 68㎏/A매치 데뷔 1998년 12월 베트남전·64경기 2골/월드컵 출전 1회(2002년)/K-리그 129경기 8골 9도움 ▶TV를 보면 정말 월드컵이 다가오고 있다는 게 느껴지지만 아직은 담담하다. 대표팀의 강점은 무엇보다 경험이다.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를 경험한 선수들의 수가 2002년보다 훨씬 많다. 빅리그에서 뛰는 박지성, 이영표 등 동료들에게 든든한 무게감이 느껴진다.2002년 대표팀보다 젊은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팀 분위기도 훨씬 활기차고, 도전적인 부분도 긍정적이다. 선배로서 후배들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부담도 되지만 경기장 안팎에서 책임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김동진(24·DF·FC서울) 1982년 1월29일/경기도 동두천/안양공고/183㎝ 74㎏/A매치 데뷔 2003년 12월 동아시아대회 홍콩전·33경기 2득점/월드컵 출전 없음/K-리그 119경기 13골 6도움/2002년 아테네올림픽 그리스전 선제골 ▶마지막 준비까지 철저히 마쳐 국민들의 기대와 성원에 부응하겠다. 축구 인생에서 그야말로 꿈이었던 월드컵 무대에 설 수 있어 무한한 영광이다. 팀 승리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박주영(21·FW·FC서울) 1985년 7월10일/대구/청구고-고려대/182㎝ 74㎏/A매치 데뷔 2005년 6월 우즈베키스탄전·16경기 5골/월드컵 출전 없음/K-리그 43경기 23골 5도움/2003ㆍ2005 세계청소년(U-20)선수권대회 대표,2004 아시아축구연맹(AFC) 청소년(U-20)선수권대회 최우수선수 및 득점왕,2005 K-리그 신인상 ▶본선 무대에 설 수 있어 좋다. 감독님의 말처럼 더 보여줘야 하며 부족한 것도, 그리고 배울 것도 많다. 남은 기간 채워 나가겠다.재미있게 훈련하고 준비하겠다.1분이라도 뛰어서 팀에 도움이 되고 싶다. 처음 나서는 월드컵이니만큼 이제까지 인정받았던 내 능력을 후회없이 발휘하겠다. ●박지성(25·MF·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81년 2월25일/서울/수원공고-명지대/175㎝ 72㎏/A매치 데뷔 2000년 4월 라오스전·58경기 5골/월드컵 출전 1회(2002년)/05∼06 프리미어리그 34경기 1골 6도움/2000ㆍ2004 아시안컵 대표,2000 올림픽 대표,2002 한·일월드컵 포르투갈전 결승골, 국내선수로 프리미어리그 첫 진출 ▶한국과 프랑스가 16강에 진출할 것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개인적인 목표나 포부는 없다. 팀 목표가 16강인 만큼 여기에 역량을 집중하겠다. 마음의 준비는 최종 엔트리 발표 이후 이미 했다. 긴장은 좀 되지만 준비는 다 돼 있다. 어느 포지션이나 자신있고 경기장에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훈련기간이 한·일월드컵때 보다 짧지만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동일한 조건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줘야 한다. ●김영철(30·DF·성남 일화) 1976년 6월30일/인천/부평고-건국대/183㎝ 81㎏/A매치 데뷔 1997년 6월 가나전·9경기 1골/월드컵 출전 없음/K-리그 256경기 5도움/2002 아시안게임 대표,2005 K-리그 수비수 베스트 11선정 ▶벤치만 지키는 신세로 전락하진 않겠다. 그동안 마음고생도 많았지만 독일행이 결정돼 마음도 가뿐하다. 남은 건 어떻게 이기느냐다. 첫 상대인 토고의 평가전을 지켜보며 상대 공격수들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폈다. 탄력과 스피드가 뛰어나고 힘도 좋았다. 특히 올루파데는 드리블이 좋고 빨라 아데바요르와 호흡을 맞추면 상당히 위협적일 것이다. 일생에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를 기회다. 단 1분이라도 뛰는 것, 골을 먹지 않고 이기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프랑스도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다. ●이천수(25·FW·울산 현대) 1981년 7월9일/인천/부평고-고려대/172㎝ 64㎏/A매치 데뷔 2000년 4월 라오스전·60경기 7골/월드컵 출전 1회(2002년)/K-리그 62경기 25골 21도움/2000ㆍ2004 올림픽 대표,2000 아시안컵 대표,2002 K-리그 신인상,2002 아시아축구연맹(AFC) 올해의 신인,2005 K-리그 최우수선수 ▶2002년 한·일월드컵 때는 어려서 그런지 뭣도 모르고 패기 하나만으로 경기에서 열심히 뛰었을 뿐인데 지금은 심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준비가 많이 됐다. 지금은 당당하다. 포지션 경쟁에서 쉽게 지지는 않겠다. 전지훈련에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분명한 내 입지를 다지고 싶다. 공격수인 내게는 골을 넣어야 할 책임이 있다. 프리킥, 슈팅 등 모든 걸 준비하고 있다.16강은 물론 4강까지 간다는 각오에는 변함이 없다. ●백지훈(21·MF·FC서울) 1985년 2월28일/경남 사천/풍기중-안동고/175㎝ 67㎏/A매치 데뷔 2005년 8월7일 동아시안게임 일본전·11경기 0골/월드컵 출전 없음/K-리그 12경기 0골/2005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주전 활약 ▶훌륭한 선배들과 경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개인적으로도 영광이다. 나이가 어려 경험이 부족하지만 그 대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패기와 투지가 있다.‘베스트 11’도 충분히 자신있다. 최종 엔트리에 막상 내 이름이 들어가게 되니 나뿐만 아니라 가족과 나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짧은 축구 인생에서 가장 기쁜 날이었다.4강 이상이 내 목표이고 그렇게 될 것이다. 가장 기대되는 경기는 스위스전이다. 세계청소년대회에 출전했을 때 스위스에 져 16강이 좌절됐었는데 이번에는 크게 이기고 싶다. ●송종국(27·DF·수원 삼성) 1979년 2월20일/충북 단양/배재고-연세대/177㎝ 73㎏/A매치 데뷔 2000년 6월 LG컵 이란 4개국대회 마케도니아전·50경기 3득점/월드컵 출전 1회(2002년)/K-리그 75경기 5골 2도움/2002년 자황컵 체육대상 남자최우수상 ▶이제부터 시작이다. 대표팀 합류 이후 몸은 거의 100% 가까이 만들어졌다. 전지훈련에 뽑히고도 부상 때문에 참가하지 못했던 아픈 기억이 차라리 약이 됐다. 신뢰해 준 아드보카트 감독님, 그리고 소속팀 차범근 감독님에게 실망을 안겨드리지 않겠다.
  • [월드컵 인사이드] (8) 방송사 해설위원 경쟁

    ‘마이크 전쟁, 그들만의 월드컵이 시작된다.’ 독일월드컵 개막을 50일 남짓 남겨놓고 축구해설가들의 치열한 ‘마이크 전쟁’도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세계인의 축구축제가 열리는 독일의 각 경기장에서 선수들의 땀과 눈물, 희비와 명암은 물론 숨결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증폭시켜 대한민국을 응원의 열기로 뒤덮게 할 ‘전령사들의 전쟁’이다. 4년 전 이들은 부산과 인천, 대전, 그리고 광주에서 때로는 웃으며 때로는 감격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며 거짓말같던 대한민국의 월드컵 4강 행보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다.5개월 뒤 독일에서 펼쳐질 또 하나의 환희와 감격을 준비하고 있다. ●‘일류요리사’가 되라 캐스터와 함께 축구장의 열기를 전하는 해설가들의 뒷모습은 화면에서처럼 그리 화려하지만은 않다. 단 90분 동안의 경기를 치러내기 위해 그들은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그라운드로, 라커룸으로 뛰어다닌다. 선수들과 감독의 표정을 읽어야만 그날의 경기를 예측하고 일관된 방향으로 각 선수의 플레이를 짚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신문선(48) SBS 해설위원은 경기 전 선수와 감독을 괴롭히기로 유명하다. 공식 사전 인터뷰는 물론 라커룸까지 불쑥 찾아가 말 한마디는 물론, 표정까지 읽어낸다. 물론 전 경기의 기록만으로 각 선수의 최근 컨디션을 파악할 수도 있지만 “그래가지고는 내 방송에 철학이 담길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 지난 90년 이탈리아월드컵 이후 다섯번째 월드컵을 치르게 될 신 위원은 또 축구해설은 ‘멋진 요리를 만드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축구장이라는 냄비에 선수라는 재료까지 갖춰졌으니 경기 해설에 얼마 만큼의 양념을 넣고 간을 치느냐가 중계의 성패를 결정하는 잣대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독일월드컵을 위해 그는 최근 4년간의 선수 자료를 이미 차곡차곡 쌓아놨다. 기록은 물론, 선수들의 잡다한 일까지 포함돼 있다. 그의 방 한쪽에 축구 관련 서적은 물론, 신문 잡지에 기고한 칼럼 내용까지 일일이 정리해 놓았다. ●히딩크는 폴란드전 때 떨고 있었다? KBS의 해설을 맡고 있는 이용수(47) 위원 역시 경기 전 ‘마당발’로 통한다. 지난 2002년 6월4일 대한민국의 첫 한·일월드컵 첫 경기인 폴란드전이 벌어지기 직전 그는 부산월드컵경기장의 라커룸을 찾았다. 선수들이 코치들과 함께 몸을 추스리고 있는 동안 거스 히딩크 감독은 방 한구석에서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굳어있었다. 벤치에선 번뜩이는 카리스마와 호쾌한 세리머니로 정평이 나 있는 그였지만 그는 분명 떨고 있었다.“전반 15분만 넘기면 기회는 온다고 말하면서도 명장답지 않은 고독과 외로움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고 그는 4년 전 월드컵 첫 경기 때의 히딩크를 기억하고 있다. 독일행을 준비하고 있는 이 위원은 요즘 ‘산오르기’에 한창이다.90분 내내 수만 관중의 함성을 뚫고 목청을 돋우기 위해선 체력이 관건.“조별리그 3경기는 물론, 어쩌면 그 이상의 경기까지 소화해 내기 위해선 선수 못지 않은 체력이 필수”라는 게 그의 말이다.“단련된 신체에서 건강한 방송이 나온다.”고 강조한다. ●마이크도 신선해야 산다 축구해설의 간판격인 이들 둘 외에도 목을 가다듬는 ‘새내기’들이 있다.‘황새’ 황선홍(38)과 ‘유비’ 유상철(35)이 그들. 대한민국의 월드컵 첫 골을 작성했던 황선홍은 SBS와 계약을 마쳤고, 유상철도 조만간 KBS의 해설위원으로 변신할 예정.“입담은 다소 달릴지 모르겠지만 신선함으로 승부하겠다.”는 게 이들의 각오다. 여기에 차범근(53·수원) 감독까지 MBC에서 영입을 추진하고 있어 중계 마이크는 그야말로 왕년의 ‘스타들의 경연장’으로 변할 전망. 특히 유상철은 황선홍과 건국대 동문이고, 차 감독과는 경신고 선-후배 사이. 각 방송사가 시청률을 놓고 사활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독일월드컵의 중계석은 벌써부터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 co.kr
  • 안정환·설기현·박주영 대안 거론

    1998년 프랑스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한국-네덜란드의 2차전.0-5로 뒤져 패배가 굳어진 후반 32분쯤 한국의 차범근 감독은 서정원의 대체요원으로 약관 19살의 앳된 선수를 투입했다. 한국축구의 미래에 대한 투자이자 자신이 발탁한 신예에게 큰 무대 기회를 제공하자는 의도였다. 겁 없는 신예는 위협적인 중거리포를 날리며 미래 한국축구의 간판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그가 바로 이동국(포항)이고 그때 얻은 별명이 ‘라이언 킹’이다. 하지만 ‘게으른 천재’라는 또 다른 별명처럼 노력하지 않는 모습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엔 외면받았다.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본선무대를 밟지 못한 게 대표적인 경우. 다행히 오는 6월 독일월드컵대표팀에 재발탁된 이후 모든 공격이 그에게 맞춰질 만큼 달라진 모습을 보였지만 지난 5일 당한 무릎 부상으로 다시 한번 월드컵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게 됐다. 문제는 일찌감치 제외됐던 2002년과 달리 이번엔 대표팀 내 역할이 컸던 만큼 조직력을 중시하는 아드보카트 감독의 고민도 커졌다는 점이다. 그를 대체할 선수에 따라 한국축구의 전력이 정상화되느냐, 추락하느냐가 걸려 있기 때문. 아드보카트 감독의 해결책이 곧 나오겠지만 일단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조직력에만 집착하지 않는다면 대안은 여러가지가 있다고 본다. 성남의 김학범 감독은 기존 대표팀 내에서 대안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 김 감독은 “큰 틀의 변화는 없을 것”이라면서 박주영(서울)의 자리 이동 정도가 검토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밝혔다. 정해성 제주 감독도 “현 대표팀 내의 기존 멤버들을 활용하는 게 가장 좋다.”며 “이동국의 부상이나 부진을 대비해 아드보카트 감독도 또 다른 카드를 준비해 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수 KBS해설위원(세종대 교수)은 “아드보카트 감독은 국내파 검증을 통해 지난 전지훈련 멤버를 선발했다. 그들 안에서 독일월드컵에 출전하는 국내파 선수들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해외파인 안정환(뒤스부르크)이나 설기현(울버햄프턴), 조재진(시미즈)과 함께 K-리그 득점 선두를 달리는 우성용(성남)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이미 유럽으로 건너간 아드보카트 감독은 설기현을 점검할 예정이고, 핌 베어벡 수석코치도 지난 12일 J리그에서 활약하는 조재진을 살펴보기 위해 일본으로 날아갔다. 이동국에 비해 파괴력은 떨어지지만 조재진과 우성용 모두 장신을 이용한 포스트 플레이가 능해 주목된다. 곽영완기자 kwyoung@seoul.co.kr
  • 출판계도 “월드컵 특수 잡자”

    축구에도 백두대간이 있다. 센터라인 골문을 지키는 골키퍼, 수비를 총지휘하는 센터백(중앙수비수), 수비와 공격을 연결하는 수비형 미드필더, 중원의 지휘자로 플레이 메이커 노릇을 하는 공격형 미드필더, 그리고 최전방의 센터포워드(중앙공격수). 우리 몸으로 치면 등뼈와도 같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축구 또한 알고 보면 더욱 흥미롭다. 월드컵의 계절.‘2006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와 관련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축구에 대한 상식을 일러주는 책에서부터 축구를 소재로 한 자기계발서, 어린이 동화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종 다양하다. ‘박지성 휘젓고 박주영 쏜다’(김화성 지음, 동아일보사 펴냄)는 ‘2002년 이후 한국 축구는 무엇이 달라졌는가’를 주제로 한 축구 에세이집이다. 동아일보 스포츠전문기자인 저자는 한국 축구는 ‘아시아의 독일 축구’라고 주장한다.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톱니바퀴 같은 조직력을 추구해 좀 뻣뻣한 느낌을 준다는 것. 네덜란드식 토털축구를 지향하지만 골 결정력이나 순간 상황대처 능력 등은 아직 멀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경기일정 및 관전포인트 핸드북이 부록으로 실려 있어 실용서의 구실을 톡톡히 한다. SBS 스포츠 해설위원인 장원구 씨가 쓴 ‘2006 월드컵 스카우팅 리포트’(스포츠넷 펴냄)는 월드컵 본선 32개국 출전 선수들의 프로필과 활약도, 팀전술, 공격패턴 등을 분석한 책. 또 ‘2006 월드컵 이야기’(박재호 지음, 문학사상사 펴냄)에는 월드컵의 역사, 독일 월드컵의 개요, 각국의 전력 등 월드컵과 관련한 다양한 정보가 담겨 있다. 축구경기로부터 직장인의 성공전략을 이끌어낸 ‘비즈니스와 축구’(테오 시어벌드 등 지음, 강혜정 옮김, 맥스미디어 펴냄) 같은 책도 나와 있어 눈길을 끈다. 어린이 책 시장에도 축구바람이 불기는 마찬가지. 아이들판 출판사는 수원 삼성 차범근 감독의 장녀 차하나씨가 번역한 독일의 축구동화책 ‘우리는 강한 녀석들, 공포의 축구단 ’(전13권) 1∼3권을 1차분으로 내놓았다. 이 책은 실제로 어린이축구팀 감독을 맡고 있는 독일 작가 요하임 마사넥이 자신의 지도 경험을 토대로 쓴 것으로 독일에서만 300만권 이상이 팔린 인기 동화다. 출판사 측은 월드컵이 열리는 6월까지 2차분 4∼6권, 이어 연말까지 13권을 모두 펴낸다는 방침이다.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남양유업 홍두영 명예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남양유업 홍두영 명예회장家

    기업설명회에 전혀 관심이 없는 회사, 돌다리를 몇 번씩 두들겨보고도 건너지않는 보수적 경영, 창업주 얼굴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회사…. 남양유업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자사의 우유와 유제품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라도 기업과 창업주에 대해 더 많이 알려야 한다. 하지만 이 회사의 창업주는 ‘크렘린’처럼 베일에 가려져 있다. 남양유업을 창업한 홍두영(87) 명예회장은 한국 낙농업의 대부로 통한다. 홍 명예회장은 40여년간 한국 낙농산업의 기반을 조성하고 좋은 유제품을 만들기 위한 외길을 걸어왔다. 홍 명예회장은 지난달 2일 타계한 김복용 매일유업 회장과 곧잘 비교된다. 두 기업 창업주는 나이가 비슷하고 이북 출신이라는 점 등 공통점이 많다.‘짠돌이’ 경영도 닮았다. 우유·조제분유·발효유·치즈·음료 등의 제품군도 상당히 겹치면서 ‘모방과 카피’ 논란도 많다. 연 매출액도 8000억원대로 엇비슷하다. 여러면에서 두 회사는 ‘물고 물리는’ 숙명적인 관계다. 남양유업의 대표이사 3명 가운데 한 명인 창업주 홍 명예회장은 국내 최고령 최고경영자(CEO)이다.1919년 1월7일생이다. 남양유업이 창립된 1964년 이후 43년째 대표이사와 사장, 회장, 명예회장 직위를 줄곧 지키고 있다. ●영변 지주의 장남 홍두영 명예회장은 평안북도 영변군 영변면 서부동에서 홍재영씨와 최점숙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이 영변에서 손꼽히던 지주여서 어린시절을 유복하게 보냈다. 홍 명예회장은 일제시대인 1944년 일본 와세다 제1고등학교를 마치고 바로 와세다대에 진학, 불어불문학과를 마쳤다. 홍 명예회장은 자신에 대해 말하기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어서 어릴적 행적이 거의 알려진 게 없다. 일본에서 귀국한 27세의 청년 홍두영은 어수선하던 광복 정국에서 고향 영변의 숭덕여자중학교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다. 교사 생활을 하던 1947년 5월 같은 영변 출신의 열살 아래인 지송죽(77)씨와 결혼,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김일성 정권이 일본에서 대학을 다닌 엘리트 가정을 내버려 둘 리 없었다. 홍 명예회장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4 후퇴 때 가족과 홍선태(작고) 전 남양산업 대표 등 동생을 데리고 월남했다. ●배고픈 아이들 때문에 유업에 손대 홍 명예회장의 첫 사업은 경험 부족 등으로 실패했다. 종전 이듬해인 1954년 부산에서 비료를 수입하는 ‘남양상사’를 일으켰다. 회사가 안정적인 궤도에 들어서는 듯했지만 62년에 화폐개혁이란 뜻밖의 복병을 만나 8년만에 모든 재산을 날려버렸다. 일각에서는 당시의 충격이 너무 심해 ‘돌다리를 두드려보고도 건너지 않는’ 소심증과 같은 마음의 병이 생겼다는 말도 한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홍 명예회장은 신문이나 TV를 통해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꺼린다.”며 “경기단체 회장직 제의도 많았지만 다 물리쳤다.”고 말했다. 첫 사업 실패 이후 홍 명예회장의 보수적 경영이 시작됐으며, 큰 아들 홍원식(56) 회장에 대한 경영수업이 다른 기업보다 일찍 시작됐다. 홍 명예회장이 사업 재기를 꾀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분유였다. 비료 수입업에 종사하던 그는 1963년 선진 외국 출장길에서 분유사업을 눈여겨 봐뒀던 것. 분유를 마음껏 먹고 있던 외국 아기의 모습을 본 그에게 한국전쟁 직후 먹을 게 없던 고국의 아이들 얼굴이 떠올랐던 것으로 짐작된다. 고국으로 돌아온 홍 명예회장은 64년 3월 13일 남양유업을 설립했다. 당시 정부는 ‘보릿고개’를 해결하고 농민들의 소득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낙농사업에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홍 명예회장은 영변의 지주 아들이어서 낙농업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뚝심으로 밀어붙였다.1965년 11월 충남 천안에 제1공장을 짓고 자가생산 체제에 들어갔다. ●한 때는 아들, 부인까지 경영에 관여 충남 천안 공장부지가 금광터였기 때문이었을까. 지난 67년 1월10일 출시된 유아용 제조 분유인 남양분유는 ‘대박’을 터뜨렸다. 이어 77년에는 유산균 발효유인 남양 요구르트를 개발, 히트 브랜드 대열에 합류시켰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출연료 1억원을 주고 축구선수 차범근을 광고 모델로 내세웠다.78년 유업계 최초로 기업을 공개하고 주식을 상장했다. 회사가 커지면서 가족 모두 팔을 걷어붙였다. 장남 홍원식 회장이 회사일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연세대 경영학과 재학 중이던 73년부터 종종 회사에 나와 가업을 도왔다. 강의가 끝난 뒤에는 회사에 달려와 입출금 전표를 끊는 등 경리업무를 봤다.74년 기획실 부장을 시작으로 경영수업에 들어갔다.77년 이사,79년 상무,80년 전무,88년 부사장을 거쳐 지난 90년 4월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가 2003년 회장으로 물러났다. 그는 90년대에는 불가리스, 아인슈타인우유, 아기사랑秀,E-5, 위풍당당 동충하초 등을 내놓으며 남양유업이 성장가도를 달리게 했다. 회사가 성장 엔진을 필요로 하던 80년 9월 둘째 아들 홍우식(53) 서울광고기획 사장도 남양유업에 합류했다.85년 8월까지 남양유업 과장을 지냈다. 남양유업이 성장가도를 달릴 80년대 초반 큰아들 홍원식 회장과 둘째 아들 홍우식 사장이 모두 힘을 합쳤다. 홍 명예회장의 부인 지송죽씨도 한때 남양유업의 감사로 근무했다. 남양유업이 최근 곧잘 내세우는 ‘친인척 경영 참여 금지’는 그 당시에는 해당되지 않았다. 창업주 홍 명예회장은 당시 90년 4월 회사 최고경영자 자리를 홍원식 회장에게 물려주면서 회사 운영에 관해 두 가지 금기사항을 가르쳤다.‘기업인으로서 정치에 참여하지 말 것’과 ‘부동산 투기를 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고 전한다. 홍 회장뿐만 아니라 기업인이면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사항이다. 연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홍 회장은 30년 가까이 남양유업에서 근무한 덕분에 누구보다 회사 사정에 밝았다. 홍 회장은 지난 99년 10월 덴마크 왕실로부터 ‘영예로운 메달’을 받았고,2001년 7월 무차입 경영과 축산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제25회 전국경영생산성촉진대회에서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43년째 남의 건물을 사옥으로 지난 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위기 당시 대기업마저 자금난에 휘청거릴 때 남양유업은 오히려 20% 이상의 성장을 이뤘다. 대표적인 소매업종으로 불황을 잘 타지 않는 데다 기업 규모보다도 ‘브랜드 파워’가 강한 까닭이다. 게다가 98년 11월 그동안 상업·조흥·신한은행에 남아 있었던 180억원의 은행차입금을 모두 갚았다. 부채 비율을 167%에서 0%로 떨어뜨렸다. 회사는 당시 보도자료에서 ‘무차입(無借入) 경영의 원조’라고 공식 선언했다. 현재는 4700억여원을 확보,1만%의 사내유보율을 자랑한다. 이로 인해 상당한 금융소득도 올리고 있다. 이같은 남양유업의 성공은 창업주 홍 명예회장의 독특한 철학인 ‘4무(無)’경영에 바탕을 두고 있다.4무는 돈을 빌려쓰지 않고(무차입), 노사분규가 없으며(무분규), 친인척이 개입하지 않으며(무파벌), 자기 사옥이 없는(무사옥) 경영을 말한다. 인사에서의 투명성도 줄곧 강조된다. 오너의 친인척은 회사에 발붙이지 못하며, 파벌 형성 또한 용납되지 않는다. 홍보와 마케팅을 총괄하는 성장경 상무는 “남양유업에는 자연스럽게 인사청탁을 하는 사람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사옥도 없다.43년째 남의 건물에 세들어 살고 있다. 현재는 서울 중구 남대문 대일빌딩을 빌려쓰고 있다.1000억원이 넘는 시설투자를 하고 종업원이 3000명이 넘는 기업이지만 임원은 단 9명에 불과하다.43년간 단 한차례도 노사분규가 발생하지 않았다. 남양유업은 목장주들에게는 지독할 정도로 품질검사가 깐깐한 회사다. 그러나 원유값 만큼은 현금으로 결제하고, 결제기일도 정확하게 지키는 회사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목장주들이 거래하기를 가장 선호하는 회사로 통한다. 제품의 다양화는 추진하지만 사업의 다각화는 철저하게 배격하고 있다. 우유 캔을 만드는 회사나 낙농가를 위한 사료공장 등을 세우자는 내부 의견도 많았다. 그러나 전공을 벗어나는 사업에는 눈을 돌리지 않는다는 게 지금까지의 방침이다. 식품 분야 세계 최고가 되기까지는 절대로 한 눈 팔지 않겠다는 창업주 홍 회장의 경영 철학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홍 회장은 지난 2003년 11월 대표이사 사장에서 물러나고 최대주주 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홍 명예회장은 박건호 대표이사 부사장, 김승수 대표이사 전무 ‘3두마차’ 경영체제를 확립해 오고 있다. 홍 회장은 그러나 경영에 무관심하지는 않다. 회사에 사무실을 두고 거의 매일 출근을 하면서 중요 사항을 직접 결정할 만큼 경영에 깊이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 명예회장도 가끔씩 회사에 들르곤 한다. 남양유업과 거래하는 회사의 한 관계자는 “남양유업이 1억원 이상의 경비를 지출할 때는 오너가 반드시 결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이에 따라 남양유업의 의사 결정이 경쟁 기업에 비해 많이 늦다.”고 말했다. 홍 명예회장은 부인 지송죽씨와의 사이에서 3남2녀를 두고 있다. 하지만 회사 직제상 경영에 참여하는 이는 창업주 홍 명예회장 자신뿐이다. 큰아들 홍원식 회장은 최대 주주로 남아있다. 자본금 44억 3300여만원인 남양유업의 지난해의 정확한 매출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2004년의 매출은 7729억 8400만원에 당기순익은 427억 9400만원에 이른다. 홍원식 회장은 19.44%(13만 9964주)의 지분을 가진 최대 주주다. 홍 명예회장은 7.63%(5만 4907주)를, 홍원식 회장의 부인 이운경(54)씨는 0.89%(6400주)를 보유하고 있다. 둘째 아들 홍우식 사장이 0.63%(4568주), 셋째 아들 홍명식(46) 사까나야 사장은 0.4%(2908주)씩 갖고 있다. 홍두영 명예회장의 처남댁 김정선씨가 이색적으로 0.16%(1168주)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막내딸 홍영혜(44)씨는 지난해 초 장내에서 2612주를 매도, 지분율이 0.45%(3208주)에서 0.08%(587주)로 낮아진 것이 눈에 띈다. 특히 미국 투자회사 안홀드 앤드 에스 블라이흐뢰더가 15.90%(11만 4448주)를 보유하는 등 외국인들이 눈독을 들이는 회사다.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분은 23.74%에 이른다. 남양유업의 주식 거래가 극히 부진해 한때 상장폐지 위기까지 내몰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소액주주를 무시하며 경영권 방어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내년도 매출 목표는 1조원으로 잡고 있다. ●평범한 집안과 결혼 창업주 홍 명예회장의 자녀 혼맥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다만 큰 아들 홍원식 회장은 지난 76년 고려해운 창업주 이학철(작고) 회장의 장녀 이운경(54)씨와 화촉을 밝혔던 것이 눈에 띌 정도다. 홍 회장은 이동찬(84) 코오롱그룹 회장 가문과도 연결된다. 이동찬 회장의 셋째딸 이혜숙(54)씨가 고려해운 이 회장의 장남인 이동혁(59) 고려해운 회장과 결혼한 까닭이다. 홍원식 회장은 부인 이운경씨와의 사이에서 진석(30), 범석(27)씨 두 자녀를 두고 있다. 이씨는 사회활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을 통한 남양유업의 3세 승계가 어떻게 이어질지도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2004년 말 홍 회장은 어머니 지송죽 전 감사로부터 주식 2만 108주(2.79%)를 모두 물려받았다. 이를 두고 형제간에 사이가 소원한 게 아니냐는 소문이 나돌았다. 둘째 아들 홍우식씨는 남양유업을 주요 고객으로 삼는 광고회사 서울광고기획 사장을 맡고 있다. 홍 사장은 지난 71년 서울고교와 76년 연세대를 거쳐 83년 미국 산타클라라대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해군 중위 출신인 홍 사장은 지난 79년 8월 한국IBM을 거쳐 지난 80년 9월부터 85년 8월까지 남양유업 과장을 지냈다. 남양유업내에 있던 광고 부문을 들고나와 부친의 우산에서 독립했다. 홍 사장은 지난 85년 8월 서울광고기획의 상무,88년 전무,90년 부사장을 거쳐 93년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지난 1980년 설립된 서울광고기획은 2004년 총 취급고가 626억원으로 업계 17위였다. 주요 광고주로는 남양유업을 비롯해 태영·보령제약·보령메디앙스·BYC, 씨엠에스 천재교육·하선정종합식품 등이 있다.2005년도의 매출 목표는 900억원이지만 정확한 매출은 알려지지 않았다. 홍 사장은 지난 81년 5월 최수진(49)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연년생인 자녀 인석(24), 서현(23) 등 1남1녀를 두고 있다. 지난 72년 이름을 춘애에서 수진으로 바꾼 최씨 역시 별다른 사회 활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녀 영서(52)씨는 이교현(57)씨와 결혼, 수경·수영(25) 쌍둥이와 정호(18)군을 두고 있다. 홍 명예회장의 큰사위 이교현씨 가족은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이씨는 개인사업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셋째 아들 홍명식(46) 사까나야 사장은 연봉이 1억원을 웃도는 외환 딜러직을 떠나 음식점 8개를 운영하고 있다. 요리에 관심이 많은 그는 서울파이낸스센터 지하 2층에 회전초밥 전문점 사까나야 등 6개의 지점을 두고 있으며, 한정식집 돈후이 등을 운영하는 외식업 사장이다. 홍 사장의 이력은 다채롭다. 용산고와 연세대를 거쳐 지난 87년 미시간대에서 MBA를 땄다.1987년부터 JP모건체이스 은행 등에서 12년동안 근무한 금융통.99년 인터넷서점 ‘예스24’를 공동 창업해 한세실업에 매각되기 전인 2003년 5월까지 부사장으로 재직하기도 했다.6개 사까나야와 돈후이 등의 전체 매출액이 100억원대에 이르는 등 외식재벌 반열에 들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외식업종으로 변경한 홍 사장은 지난해 초 인터넷 의류 쇼핑몰인 블루피치를 운영하는 김현정(40)씨와 결혼해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김씨는 고려대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홍 사장은 전처에게서 효정·희정(19) 등 일란성 쌍둥이 자녀를 두고 있다. 홍 사장은 쌍둥이 자녀 외에도 동근(13)군을 두고 있다. 이들은 모두 싱가포르에서 공부하고 있다. 막내딸 홍영혜씨(44)는 지난 90년 영국 웨일스개발청의 황재필(44) 한국사무소장과 결혼, 하나(17)양과 승현(11)군을 두고 있다. 영혜씨는 경희대 작곡과를 졸업한 재원. 서울 양정고를 마치고 연세대를 다니다가 미국 조지아주립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한 황씨는 지난 86년 주한 영국대사관 부상무관을 거쳐 89년부터 영국 웨일스개발청 한국사무소장을 맡고 있다. 황씨의 부친은 헌병차감을 지냈던 황태섭(작고)씨다. 황씨는 86년 연세대 어학당에서 홍씨와 얼굴을 익혔다. 이들은 홍씨의 올케 소개로 사귀다가 이듬해 결혼에 골인했다. chuli@seoul.co.kr ■ 우량아 선발대회 아시나요 남양의 대표적인 성장 엔진으로는 1971년 시작된 ‘전국우량아 선발대회’를 들 수 있다. 자라나는 2세의 건강과 체격 향상을 일깨워주기 위해 마련된 일종의 사회 공헌 행사였다. 첫 대회에는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참가했고 아기와 엄마 등 수상자를 청와대에 초청, 오찬을 할 정도로 관심이 깊었다. 변변한 행사나 이벤트가 없던 당시로는 전 국민이 참여하는 큰 행사였으며,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이 당시 행사를 기억하고 있다. 우량아 선발대회는 창업주 홍두영 명예회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아기 엄마라면 누구나 자기 아기를 우량아로 키우고 싶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전국에서 토실토실한 아기들이 구름떼처럼 모여 들었다.24개월 미만의 아기들이 지방 예선을 거쳐 결선을 겨뤘다. 제1회 전국 최우량아는 춘천에 사는 한영만 아기(69년 11월생)로 발육상황은 키 85㎝, 몸무게 13㎏, 머리둘레 50㎝, 생후 11개월부터 걷기 시작했으며 모유와 우유를 함께 먹였고 과일즙, 달걀 노른자 반숙 등을 간식으로 먹였다고 한다. 튼튼하고 건강한 아기의 대명사인 우량아 선발대회는 84년 제13회 대회까지 계속됐다. 이후 92년부터 임신육아교실로 바꿔 진행되고 있다. 출산율 저하를 막기 위해 새내기 주부들에게 올바른 출산 정보 전달에 힘쓰고 있다. 연간 1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들여 전국에서 250회 이상 연다. 특히 산부인과·소아과·피부과·한방 분야의 권위있는 전문의들이 나와 임산부들에게 이해하기 쉽고 꼭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저출산이라는 사회적 숙제를 풀기 위한 남양의 또 다른 사회 공헌활동이다.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다시한번! ‘2002 붉은함성’

    다시한번! ‘2002 붉은함성’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세살짜리 딸아이가 최근들어 검지 손가락을 앞으로 쭉 뻗으며 붉은악마들의 응원을 따라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독일월드컵이 다가오면서 텔레비전 방송에 붉은악마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 탓이지요. 난생처음 본 붉은악마의 응원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아내도 덩달아 “구청 여성축구단에 들어가 운동이나 해볼까.”라며 너스레를 떨고 있습니다. 오는 6월이면 월드컵의 붉은 감동이 재현됩니다. 서울 시청 앞을 붉게 물들였던 인파 속에 묻혀 태극전사와 하나됐던 그 때. 월드컵 첫승에 이어 사상 처음으로 16강에 진출하더니 8강,4강까지 태극전사들의 거침없는 질주는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 날의 감동을 독일월드컵까지 이어갈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먼저 가족과 함께 지난해 9월 문을 연 상암월드컵 경기장내에 있는 ‘월드컵 기념관’을 돌아보세요.2002년 6월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그 곳에 가면 ‘4강’의 감동과 기쁨이 넘친답니다. 보는 것만으로 부족하다면 구청의 축구교실에 참가해 활동하는 것도 괜찮겠지요. 어린이, 주부, 어르신 할 것없이 함께 축구를 즐길 수 있답니다. 독일월드컵에서도 우리의 ‘꿈★’이 이뤄지기를 기원해 봅니다. 글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4강 감동·축구발전사 한눈에 ‘어게인(Again) 2002!’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내에 있는 ‘2002 FIFA 월드컵 기념관’에 들어서자 붉은 물결의 감동이 가슴에 물결쳤다. 붉은색 정문에 들어서자 내부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2002년 6월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월드컵의 감동을 다시한번 먼저 거스 히딩크 감독과 차범근 감독 등 축구발전에 공헌한 6명의 축구인 흉상이 있는 ‘명예의 전당’을 둘러본 뒤 입장료 1000원을 내고 기념관에 들어섰다. 400평 남짓한 실내에는 내·외국인들 관람객들이 다시 돌아온 ‘월드컵의 해’를 반겼다. 가장 먼저 만난 곳은 한국 축구의 발전을 볼 수 있는 전시실. 엄마와 함께 놀러온 황현준(8·강원도 속초시 주문진초등학교 1년)·현후(7) 남매가 자원봉사자 고월덕(66·여)씨의 설명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아이들은 월드컵 당시 23인의 태극전사들의 사인이 들어간 유니폼과 축구공, 축구화, 기념주화, 기념품 등에 대한 설명에 푹 빠져 있다. “현준이는 2002년 월드컵때 ‘피버노바’ 공이 몇개 만들어졌는지 아니?” 고씨가 장래 희망이 축구선수라는 현준이에게 질문을 건네자 현준이가 잠시 고민한 뒤 “몰라요.”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고씨는 “2002개가 만들어 졌어. 혹시 퀴즈 프로그램에 나올지도 모르니까 잘 기억해 둬.” 고씨의 친절한 설명에, 현준이는 “네∼”라며 우렁차게 대답했다. 맞은편에 있는 영상관 앞에서 현후는 오빠와 함께 두손을 앞으로 펴고 연신 ‘대∼한민국’을 외쳐댔다. 이 곳은 최첨단 하이퍼 큐브 영상관으로 2002년 월드컵 하이라이트와 명장면을 모은 ‘6월의 붉은 함성’을 상영하고 있었다. 벽면에 6개의 대형 스크린이 둘러져 있어 이 곳에 들어서면 마치 당시의 느낌과 감동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코너를 돌아 만나는 ‘대한민국 우리들의 붉은 함성’의 광장에는 붉은 악마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이어 ‘31일간의 대장정’ 코너에는 A∼H조까지 당시 월드컵에 참여했던 국가들의 전적 등 각종 정보는 물론 모형으로 제작된 피파컵과 당시 입장권 등을 볼 수 있다. 관람객들은 자원봉사자 고씨의 해박한 축구지식에 감탄을 쏟아낸다. 환갑을 훌쩍 넘은 나이에 누구보다 축구에 대한 열정이 넘치고 있는 그는 중국어 통역 담당으로 중국인 등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월드컵의 감동을 전해준다. 고씨는 “축구는 알면 알수록 더 재미있는 운동”이라면서 “일반 관람객은 물론 외국인들에게 지난 2002년 월드컵 4강 이야기를 해줄 때 가장 신이 난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체험거리 풍성 전시관은 보는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태극전사와 기념촬영’ 코너에서는 4강 신화를 만들어낸 태극전사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태극전사의 기념사진에 직접 찍은 자신의 사진을 합성해 끼워 넣는 코너로 전시장 관람의 최고 기념품을 마련할 수 있는 곳이다. 이 곳에서 황의정(32·은평구 연신내동)씨가 “지윤아 웃어봐.”라며 딸 유지윤(4)양에게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찰칵∼” 사진촬영이 끝나자 곧바로 지윤이의 얼굴이 태극전사 기념사진에 합성됐고, 기계에 2000원을 투입하자 유니폼을 입은 지윤이의 멋진 기념사진이 프린트 됐다. 황씨는 “지윤이는 매일같이 스포츠 뉴스를 끝까지 볼 정도로 축구 등 스포츠를 무척 좋아한다.”면서 “태어나서 월드컵을 처음 본 아이에게 그때 감동을 전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가장 인기있는 체험코너는 ‘가상 골키퍼 체험’. 외국인 여행객들이 천장의 빔프로젝터와 센서를 통해 날아오는 축구공을 막으려 허공으로 두손을 날린다.‘레프트, 라이트’ 등을 외치는 모습이 어린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바닥에 설치돼 있는 1m 크기의 터치 스크린의 축구공을 발로 밟자 축구공이 멋지게 날아가 골대에 빨려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만나는 ‘꿈★은 이뤄진다’는 코너는 2006년 독일월드컵에 사용할 공인구 ‘팀가이스트’가 전시돼 있다. 관람을 끝낸 사람들의 얼굴에는 그날의 아름다운 기억 때문인지 함박 웃음이 가득했다. 기념관은 지난해 9월 축구협회 2층 축구박물관에 전시돼 있던 것을 멀티미디어 영상자료와 함께 개관했다. 대한축구협회에서 위탁운영하며, 관람시간은 40∼50분 정도 걸린다. ●관람 정보 가는 길은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2번출구를 이용, 경기장 서문방향으로 경기장을 끼고 100m쯤 가다 보면 나온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연중무휴다. 관람요금은 일반 1000원(단체 700원), 장애인·65세 이상·12세 이하 500원(단체 350원)이다. 자세한 설명을 들으려면 안내원에게 설명을 부탁하거나 내부에 설치된 안내단말기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통역서비스도 제공된다. 자세한 정보는 기념관(3151-0231)이나 홈페이지(www.worldcupmuseum.co.kr)에서 얻을 수 있다.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배우고 즐길 곳 서울에만 1500여곳 월드컵 4강의 감동을 몸으로 체험하고 싶다면 가까운 축구 동호회나 구청 축구교실을 찾아가 보자. 서울에는 축구를 배우고, 즐길 수 있는 축구단과 시설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각 구별로 조기축구회와 축구동아리, 일반·직장인축구회, 주부, 어린이축구단 등이 있어 이를 모두 합하면 1500개가 넘는다. 또 시내 곳곳에는 60여곳의 축구장이 있어 어렵지 않게 축구를 즐길 수 있다. ●‘왕년의 스타’가 만든 축구교실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선수가 만든 ‘서초구 홍명보 축구교실’이 다음달 17일 문을 연다. 서초구는 어린이들의 체력향상과 스포츠맨십 습득을 위해 관내에 거주하는 6∼13세 어린이 120명을 뽑아 축구를 가르친다. 강의는 양재근린공원 잔디축구장에서 매주 금·토 주2회씩 열리며 연회비 6만원과 월 8만원의 회비를 받는다. 참가 어린이에게는 유니폼이 지급되고 상해보험에도 가입시켜 준다. 왕년의 스타들이 ‘꿈나무 육성’을 위해 문을 연 축구교실은 모두 12개. 양천구에서 지원하는 ‘김진국 축구교실’은 매주 수·토요일 안양천변구장에서 열린다. 또 신현호(송파구), 이태엽(강동구), 차범근(용산구) 등도 꿈나무를 키우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각 축구단에는 전문 지도자들이 체계적으로 축구를 가르치고 있다. ●일석삼조의 자치구 축구교실 자치구에서 운영하는 축구교실은 주부 축구교실이 대부분이다. 주부들은 상대적으로 축구에 입문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동작구 여성축구교실과 영등포구 여성축구단, 송파구 여성축구단, 노원구 여성축구단 등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회원에 가입하려면 각 구청 문화체육과에 문의하면 된다. 회원은 연중 모집하며 회비와 가입비가 저렴하다. 주부 축구교실의 장점으로는 축구도 배우고, 건강도 챙기고, 구민끼리 우의도 다질 수 있다는 것 등이 꼽힌다. 자치구 축구단 중 눈길을 끄는 축구단은 지난해 4월 발족한 ‘성동구 생활체육 70대 장수 축구단’. 축구단원 25명 전원이 70세 이상으로 평균나이는 72세이며 최고령자는 78세나 된다. 전체 축구단원의 나이를 모두 합치면 무려 1800세에 달한다. 이들은 축구로 건강과 우의를 다지고 있다. ●인근 공원에 축구하러 나가볼까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스포츠광장(http://sports.seoul.go.kr)에 따르면 서울시내 축구장은 모두 64개. 서울스포츠광장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가까운 축구장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 가장 인기있는 인조잔디 축구장과 한강시민공원 축구장은 유료이며, 배수지 등에 마련된 동네 축구장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10곳인 인조 잔디 축구장은 이용료가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다. 가장 비싼 곳은 송파구 잠실동 올림픽주경기장(2240-8746)으로 주경기장은 하루 111만 6000원, 보조경기장은 33만 6000원이다. 마포구 성산동 월드컵공원 내 인조잔디 축구장(330-5516)은 2시간에 평일 7만원, 주말·휴일 10만원이며, 중랑구립잔디운동장(490-3466)은 2시간에 주간 5만 5000원, 야간 7만 5000원이다. 한강시민공원사업소가 운영하는 축구장은 이촌·여의도·양화·잠실·반포·망원·난지·뚝섬·강서구·광나루지구 등 모두 13곳으로 이용료는 2시간에 1만 2000원이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붉은악마 챙기려 독일행 자원했죠”

    “2002년엔 대표팀의 ‘입’역할을 했지만 이젠 우리 대표팀과 독일로 원정올 ‘붉은악마’응원단을 지원하고 한국 여행객들의 안전을 챙기는 게 주된 임무가 될 겁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1년 이상 외교관 생활을 접고 한국 대표팀의 미디어 담당관, 즉 히딩크 감독의 대변인 역할을 했던 허진(43) 외교통상부 재외이주과장이 내달 11일 월드컵이 열릴 독일로 떠난다. 주독 한국대사관 참사관이 그의 자리다. 최근 이뤄진 인사에서 독일 근무를 자원했고, 외교부는 ‘월드컵과 허진’이란 인연을 고려, 여러 후보를 물리고 그를 임명했다. 허 과장은 “한국의 축구협회가 워낙 견실해져서 공관의 도움은 필요없겠지만 도울 일은 최대한 돕겠다.”고 했다. 오는 17일 정몽준 축구협회장과 만나 향후 계획도 협의할 계획이다. 히딩크 감독의 한국행 비자에 서명한 이는 당시 네덜란드에서 근무하던 허 과장. 히딩크 감독이 한국으로 오기로 가계약한 상태에서 중동의 한 국가를 놓고 고민할 때 그를 찾았다. 당시 히딩크 감독은 “한국에 가기 전 말라리아 예방접종을 맞아야 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6·25전쟁과 차범근, 허정무 이 세 단어가 히딩크 감독이 지닌 한국에 대한 지식의 전부였다는 것. 허 과장은 “한국은 아시아 두번째 선진국이다. 한국은 절대로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란 말로 설득했다. 월드컵 당시 외교관을 대표팀 언론담당관으로 파견한 것은 파격이었다. 히딩크 감독과의 친분, 어학능력, 전문성 등을 갖춘 허 과장에 대해 정몽준 협회장이 외교·행자·문화 3개 부처장관의 협조를 받아 가능했던 일이다. 신임 아드보카트 감독이 히딩크 이상의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허 과장은 우리 대표팀이 이번 월드컵에서 최소 16강, 또는 8강에 진출하리라 낙관했다. 특히 그는 베어백 코치에 대해 “아드보카트의 다혈질적 요소를 보완해줄 완벽한 참모형”이라고 평했다. 히딩크감독과 그의 관계를 옆에서 계속 지켜본 결과다. 허 과장은 1970년 브라질이 월드컵에서 3연속 승리하는 모습에 완전히 매료됐다고 한다. 이후 노트를 하면서 경기를 보는게 버릇이 됐다. 월드컵 이전부터 스포츠 신문에 칼럼을 써온 축구 ‘전문가’다. 그는 “히딩크 감독이 월드컵 출사표를 던지면서 마지막 언급으로 ‘경기를 즐기자’(Let’s play the games)고 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경기의 결과를 국가운명의 상징으로 여기기보다는 축구를 생활화해야 한다.”면서 “이번 월드컵은 온 국민이 ‘즐기는’ 축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이번엔 우승 향해 대~한민국”

    “이번엔 우승 향해 대~한민국”

    한국과 독일의 월드컵축구 준결승전이 열렸던 2002년 6월25일. 결승행이 좌절된 그날은 ‘대∼한민국’ 4강 신화의 종착점이기도 했지만 새로운 꿈을 향한 출발점이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 서울신문(당시 대한매일) 1면은 ‘꿈은 계속된다’라는 제목 아래 결연한 눈빛으로 하늘을 응시하던 조윤나·윤호 쌍둥이 남매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남매는 월드컵 희망 메시지의 대표 아이콘으로 국민들에게 각인됐다. ●월드컵 꼬마스타, 의젓한 초등학생으로 윤나와 윤호는 누구보다 설레는 마음으로 2006년을 시작했다.1999년생(윤나가 1분 차이로 누나)으로 당시 네 살이었던 남매는 어느덧 여덟 살로 자라 곧 초등학교 2학년이 된다. 2002년 당시 사진은 독일이 한 골을 넣으면서 우리 관중석이 크게 술렁였을 때의 모습. 소시지를 입안 가득 물어 탱탱해진 볼이 윤호의 표정을 더욱 비장하게 만들었다. 월드컵으로 ‘꼬마 스타’가 된 뒤 유명세도 많이 탔다. 동네 어른들이 볼 때마다 ‘월드컵 스타’라며 반가워했고, 신문에 난 얼굴이 윤나 남매인지 미처 알지 못한 성당 신부님은 “윤나·윤호와 꼭 닮은 아이들이 신문에 났더라.”며 놀라기도 했다. 또 대한매일을 비롯해 항공사 등 여러 기업·단체의 홍보 모델이 됐다.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각종 기념행사 때마다 쌍둥이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아버지 조희성(39·회사원)씨는 “아직도 시간 날 때마다 그날의 경기장면을 비디오로 보면서 아쉬움을 달랜다. 올해 독일 월드컵에서도 한국이 좋은 성적을 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조씨는 그날자 신문을 스크랩해 가보처럼 보관하고 있다. 거실 벽면에 ‘대∼한민국 대∼한매일’이라는 글귀와 함께 쌍둥이의 대형 사진을 걸어 놓았다. ●“주영이 형, 올해에는 꼭 우승해 주세요” “한 장에 20만원이던 월드컵 관람권이 200만원을 호가할 정도로 값이 뛰더군요. 팔아버릴까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언제 다시 월드컵을 직접 볼 수 있을까 싶어 경기장에 갔던 게 우리 가족에게 평생 남을 추억을 만들었지요.” 원래 축구를 좋아했던 윤호는 월드컵 이후 축구에 대한 사랑이 더욱 커졌다. 지난해 여름방학에 ‘차범근 축구교실’에서 실력을 쌓은 윤호는 또래보다 발이 빨르고 재간도 좋다. 윤호는 “박주영 형처럼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면서 “이번에는 꼭 우승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윤나도 웬만한 축구선수 이름은 줄줄 왼다.“잘 생긴 이동국 오빠가 제일 멋있어요. 동국 오빠, 힘내세요∼우리가 있잖아요∼파이팅.” 어머니 김연수(35)씨는 “이번엔 독일에 갈 수 없어 아쉽지만, 거리응원이라도 꼭 갈 것”이라면서 “붉은악마 응원단의 마스코트라는 자부심으로 목청껏 응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아직도 4년 전 입었던 빨간 티셔츠와 두건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남매의 마음은 붉은 물결이 넘실댈 독일에 벌써부터 가 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아듀 2005 희망을 쏜 사람들] (3) 박지성·이영표

    [아듀 2005 희망을 쏜 사람들] (3) 박지성·이영표

    초등학교 279개팀 6609명, 중학교 172개팀 5970명, 고등학교 117개팀 3567명.2005년 현재 한국 축구의 현주소다. 이 가운데 13개팀 433명의 프로 선수가 나온다. 이 척박한 현실 속에서 한국 축구는 지난 2002한·일월드컵에서 세계 4위에 올랐다. 산술적으로 따져도, 합리적으로 생각해도 모두가 불가능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4강 신화’라고 불렸다. 지난 7월과 8월 우리는 또다른 ‘기적’을 경험했다. 한 명은 175㎝에 72㎏, 다른 한 명은 176㎝에 68㎏의 작은 체구다. 하지만 둘은 세계 최고의 축구 무대라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나란히 진출, 팀의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리그 최고의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신형엔진’ 박지성(24)과 올시즌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토트넘 홋스퍼의 ‘초롱이’ 이영표(28) 얘기다. 둘 모두 대학 때까진 그늘에 머물렀다. 박지성은 초등학교 6학년때 ‘차범근 축구상’을 받으며 일찌감치 자질을 보였지만 작은 체구 탓에 명지대 진학도 보결로 겨우 들어갔다. 이영표도 안양공고 시절 추계대회 최우수선수 수상이 전부이며 청소년대표조차 발탁된 적이 없다. 흔히 말하는 ‘엘리트 코스’와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둘은 한순간도 꿈을 놓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다. 쉴새없이 뛰는 그들의 멈출 줄 모르는 체력은 그들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가를 말해주고, 빅리거들도 놀라는 창조적인 움직임은 누군가에게 배운 게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연구를 통해 자신만의 움직임을 익혔음을 드러냈다. 박지성은 2000년 일본 J-리그 교토 퍼플상가에 입단해 2부리그로 떨어진 팀을 한 시즌 만에 다시 1부로 끌어올리며 ‘교토의 별’로 떠올랐다. 이영표 역시 K-리그 부동의 왼쪽 윙백으로 명성을 날렸다. 둘은 2003년 1월 거스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고 네덜란드 PSV에인트호벤으로 옮겨 팀을 04∼05시즌 리그 챔피언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올려놓으며 유럽에 ‘태극듀오’ 열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안주하지 않았다. 벤치 신세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를 뒤로 하고 나란히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해 박지성은 17경기 1골 4도움, 이영표는 12경기 가운데 11경기 풀타임 출장에 1도움을 각각 기록하며 ‘아시안 프리미어리거’ 성공신화를 쓰고 있다. 작지만 옹골찬 그들의 플레이에 새벽잠을 설치며 응원하는 한국인들은 뿌듯한 자긍심을 느낀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뉴스피플] 유럽축구 전문 서형욱 해설위원

    [뉴스피플] 유럽축구 전문 서형욱 해설위원

    잠자는 시간을 빼면 24시간 그의 머릿 속엔 오로지 축구밖에 없다. 이제 겨우 ‘인생관이 선다.’는 이립의 나이 서른. 하지만 지난 10일 조추첨이 끝나며 본격 독일월드컵 시즌으로 접어든 지금, 그는 곳곳에서 쏟아지는 팬들의 축구 ‘지식갈증’을 해갈해주는 우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여드름 자국이 채 가시지 않은 동안의 이 ‘청년’은 축구 마니아에서 ‘최연소 해설위원’으로 자리매김한 서형욱(30) MBC 축구해설위원이다. 스무살 때 간 군대에서 뒤늦게 축구에 재미를 붙였다. 매일 연병장에서 동료들과 공차며 뛰노는 게 마냥 재미났다.1997년 6월 제대하니 98프랑스월드컵 최종예선 탓에 ‘차범근 열풍’과 축구 붐이 일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있을 때면 혼자 자료를 모으던 버릇이 옮아와 그때부터 축구에 빠져살았다. 서점에서 외국 전문서적을 찾아 헤맸고 99년 1월에는 PC통신에 ‘유럽클럽축구 동호회’를 만들어 1000여명의 회원들과 매일 축구 얘기로 밤을 지새웠다. 2000년 6월 SBS축구채널에서 분석가로 활동하다 3개월 뒤 마이크를 잡았다. 선수 출신도 아닌 데다 겨우 25살, 최연소였다. 이듬해 9월 한 스포츠신문사 기자가 됐다.1년 동안 현장을 누빈 경험을 바탕으로 MBC에서 해설을 이어갔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축구 여행을 떠났다. 한달 동안 유럽의 축구장 세 군데를 돌았다. 한 선수가 슈팅한 것이 골대를 맞고 나오자 한 관중이 ‘이골레토’ 노래에 맞춰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했고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 3만여명이 함께 입을 맞추는 장면에서 소름끼치는 문화충격을 받았다. 축구는 이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즐기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2003년 7월부터 리버풀대학 축구산업대학원에서 1년간 석사 과정을 밟았다.19개국에서 몰려온 32명의 축구광들과 매일 토론했다.20곳 정도의 축구장을 돌아다녔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6월 ‘유럽축구기행’이란 책을 냈고 축구 서적으론 처음으로 4쇄까지 찍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는 요즘 일주일 두 번의 방송 출연과 신문 칼럼 쓰기, 내년 봄 출간할 두 번째 책쓰는 작업에다 지난 9일 개설한 최초의 축구전문 사이트 ‘토털사커(totalsoccer.empas.com)’ 자료 업데이트 작업으로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서 위원은 “취미인 축구가 일이 됐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 일이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때 보람차다.”면서 “토털사커가 영화의 ‘씨네21’처럼 축구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매체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독일월드컵 2006] “아드보카트호에 적극 협조”

    축구 국가대표팀의 장기 동계훈련 계획을 놓고 대한축구협회와 갈등 양상을 빚던 K-리그 사령탑들이 딕 아드보카트 대표팀 감독의 구상에 협조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협회와 구단간의 사전 조율이 필요하다는 뜻은 여전히 굽히지 않아 예정대로 내년초 차출 선수 전원을 이끌고 전훈을 떠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와 관련, 프로축구연맹과 축구협회 관계자들은 오는 27일 다시 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최종적으로 결론짓기로 했다. 김정남(울산), 차범근(수원), 허정무(전남), 최강희(전북), 장외룡(인천), 정해성(부천), 박항서(경남) 이장수(서울) 등 8명의 K-리그 감독들은 15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임페리얼 팰리스 호텔에서 아드보카트 대표팀 감독과 회동을 갖고 내년 1월15일부터 시작될 대표팀의 해외 전지훈련을 비롯, 아드보카트 감독의 독일월드컵 구상에 협조하겠다고 뜻을 같이 했다. 김학범(성남) 감독 등 6명은 개인 사정으로 불참했다. 감독들은 “대표팀에 시간이 필요한 것은 공감하는 만큼 협력할 것이 있으면 적극 협력하겠다.”고 답했고, 일부는 특히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예선전이 예정된 3∼4월쯤 K-리그 휴식기에도 대표팀 소집을 할 수 있도록 방안을 모색하는 게 좋겠다.”는 뜻도 전했다. 이에 앞서 아드보카트 감독은 “기존의 규정대로 대회 30일 전인 5월부터 훈련을 시작하는 것은 너무 빡빡하다.”면서 “또 국내 선수들의 해외 경험은 K-리그 전체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프로구단의 협조를 거듭 요청했다. 그는 또 “전지훈련 불참 선수는 대표팀에서 탈락시키겠다는 말은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의미가 잘못 전달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감독들은 “당초 차출 협조에 구단과의 충분한 사전 대화가 부족했다.”면서 “차후 체계적인 의사 전달 방법과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 강신우 축구협회 기술국장은 “분위기는 참석자들이 월드컵의 중요성에 공감하는 편안한 자리였다.6주간 전지훈련 일정이 무리없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며 협회도 구단과 좋은 관계 유지를 위해 연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차붐, 할아버지 됐다

    ‘차붐’ 차범근(52) 수원 감독이 첫 손자를 봤다. 프로축구 K-리그 수원은 13일 “차 감독의 장녀인 하나(27)씨가 이날 오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 모 산부인과에서 3.7㎏의 아들을 순산했다.”고 밝혔다. 차 감독은 “할아버지가 됐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올해가 가기 전에 너무 큰 선물을 받았다.”고 말했다. 차 감독과 오은미씨 부부는 하나씨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고 있는 두리, 학업중인 막내아들 세찌 등 2남1녀를 두고 있다. 하나씨는 지난 2002년 이화여대 독문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계 항공사 루프트한자 한국지사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지난해 10월 결혼했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새 광고]

    ●피자 한조각=국제전화 18분 SK텔링크는 최근 축구감독 차범근을 기용한 국제전화 ‘00700’ 광고를 새로 선보였다. 새로운 고객들이 국제전화를 사용할 때 외국인이 나오는 등 예상치 못한 상황을 다룬 ‘플리즈’편과 국제전화 요금은 막연히 비싸다는 인식을 깨는 ‘요금’편을 내보내고 있다. 차범근이 국제전화교실의 강사로 출연, 통화하고 싶은 사람의 이름 뒤에 플리즈를 붙이고, 피자 한 조각이면 18분간 통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우쳐주는 형식이다. ● ‘프라하의 연인’ 이효리·에릭 삼성전자가 최근 휴대전화 애니콜 가운데 얼굴을 보면서 통화할 수 있는 비주얼폰 광고를 시작했다. 에릭이 이효리와 함께 ‘유럽의 심장’ 체코의 프라하에서 촬영한 이 광고는 음성을 주고받는 차원을 뛰어넘어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미묘한 감정까지 전달하는 것이 컨셉트다. 신세대들의 새로운 사랑법을 제시한 비주얼폰에는 동영상을 보는 PMP와 악기를 연주하는 밴드 기능도 들어 있다.
  • [2005 하나은행 FA컵] 수원, 성남 잡고 체면 살렸다

    ‘레알’ 수원이 프로축구 K-리그 후기리그 선두 성남을 꺾고 FA컵 8강에 올라 체면치레를 했다. 차범근 감독이 이끄는 수원은 2일 파주공설운동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FA컵 16강전 성남과의 경기에서 조재민의 선제골과 브라질 출신 이따마르(2골)의 연속골에 힘입어 성남을 3-1로 완파했다. 이로써 수원은 지난해 K-리그 우승과 더불어 A3대회와 컵대회, 수퍼컵 등 4개 대회를 연속 석권했던 위용을 되찾으며 이날 FC서울을 누른 전북과 새달 12일 준결승행을 다투게 됐다. 올시즌 K-리그에서 끝모를 부진에 빠지며 차범근 감독 퇴진 압박에까지 몰린 수원은 FA컵에 ‘올인’한 팀답게 초반부터 강하게 밀어붙혔다. 수원은 전반 29분 코너킥 찬스에서 김동현이 머리로 떨궈준 공을 조재민이 강하게 오른발로 차넣어 기세를 올렸다. 후반 4분에는 아크 정면에서 김동현이 내준 공을 이따마르가 중거리포로 그물을 가르며 2-0으로 달아났다. 성남은 후반 19분 김두현의 로빙 킬패스를 받은 우성용이 발리슛으로 한골을 만회하며 파상공세를 폈지만, 종료 직전 이따마르의 개인기에 수비 2명이 뚫리며 골키퍼와 1대1 찬스를 내준 뒤 쐐기골을 허용했다. 논산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전북-FC서울전에서는 FA컵 최다우승팀(2000년,2003년) 전북이 정종관과 밀톤의 연속골로 정조국이 한골을 만회한 서울을 2-1로 눌렀다. 논산 인구(13만명)의 6%에 해당하는 7500여명의 관중을 끌어모은 ‘축구천재’ 박주영은 세 차례 슈팅을 날렸지만 연속골 행진을 이어가는 데는 실패했다. 한편 K-2리그의 국민은행은 돈지덕과 이도권의 연속골로, 한국철도는 황상필(2골)과 김은철, 정석근이 소나기 골로 K-1리그의 인천과 부천을 각각 2-1과 4-2로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포항은 승부차기 끝에 광주를 4-3으로 이겼고 대구FC는 수력원자력을 4-1로, 전남은 울산은 2-1로 누르고 나란히 8강에 합류했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축구대표 감독 선임 임박

    2일 열릴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위원장 이회택)를 앞두고 조 본프레레 감독의 뒤를 이을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작업도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독이 든 성배’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후보들은 대략 30명선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특히 해외 유명 감독들의 ‘러브콜’이 잇따르는 기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축구협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새 감독은 늦어도 추석연휴(17∼19일) 즈음에는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감독 선임 작업 실무를 책임지고 있는 강신우 기술위 부위원장은 “10월12일 이란과 평가전에 앞서 9월 말까지는 국내에 입국, 훈련에 돌입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후보군 중 외국인과 내국인 비율은 6대4 정도로 알려졌으며, 이들은 크게 세 집단으로 분류된다. 베르티 포크츠(58) 전 독일 감독과 필리페 트루시에(50) 전 일본 감독, 바비 롭슨(72) 전 잉글랜드 감독 등 해외 지도자 한 묶음과 차범근(52) 수원 감독·김호곤(54) 전 올림픽대표 감독·조광래(51) 전 LG감독·김호(61) 전 월드컵 감독 등 국내 지도자, 그리고 K­리그에서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는 프리미어리그 출신 이안 포터필드(59) 부산 감독 등이 거론된다. 이들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국 감독직을 희망하는 것은 내년 6월 독일월드컵 본선무대를 직접 밟고 싶다는 강한 욕망에서 비롯됐다. 동시에 6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으면서도 여전히 ‘미완’인 한국 축구에 대한 가능성을 높게 보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94년부터 98년까지 독일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포크츠 감독은 “2006독일월드컵이 끝난 이후에도 감독직을 수행한다는 조건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면서 “유럽팀과 상대하기 위해서 가능한 한 빨리 많은 훈련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제프 마이어 코치 등 2명을 대동하겠다.”고 구체적 운영 프로그램까지 밝힐 정도로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독일월드컵까지 남은 시간의 촉박함과 한국 축구에 대한 이해도 등의 이유로 K-리그 3년째인 포터필드 감독에게 무게가 쏠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수그러지지 않고 있다. 축구협회는 일단 대외협력국 차원에서 받은 감독 후보들의 데이터를 기술위에 상정해서 기술위원들 스스로 최종 후보를 결정토록 할 방침이다.이후 기술위는 우선협상대상자 순위를 결정한 뒤 9월 초부터 영입 협상에 들어갈 계획이다.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차붐’ 먼저 웃다

    신임 국가대표 사령탑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는 수원 차범근 감독과 부산 포터필드 감독의 맞대결에서 차 감독이 먼저 웃었다. 수원은 24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K-리그 후기리그 개막전에서 전기리그 우승팀 부산을 맞아 전반 먼저 한 골을 내줬으나 후반 시작하자마자 곽희주(25)가 동점골을 터뜨린 데 이어 포항에서 임대된 이후 첫 출전한 이따마르(25)가 후반 22분 안효연의 패스를 받아 결승골을 넣어 2-1로 역전, 차 감독에게 후기리그 첫 승리의 기쁨을 안겼다. 산뜻한 출발은 부산의 몫이었다. 전반 38분 루시아노의 패스가 흘러나오자 역시 포항에서 임대해 첫 출전한 다실바(29)가 페널티구역 정면에서 달려들며 슛, 먼저 골그물을 흔들었다. 하지만 부산은 전반 막판부터 퍼붓는 수원의 소나기 슈팅 공세를 더이상 버텨내지 못했다. 전반 46분 수원 장지현이 날린 중거리슈팅이 부산 골키퍼 김용대의 선방에 막히는 등 심상치않은 조짐을 보이더니 후반 시작하자마자 미드필드 오른쪽에서 얻어낸 장지현의 프리킥을 부산 수비수들이 혼전중 걷어냈으나 이를 받은 곽희주(25)가 슛, 동점골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결국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후반 22분 수원 이따마르가 안효연의 패스를 받아 왼쪽에서 낮게 깔아찬 것이 골문으로 빨려들어가며 ‘국가대표 사령탑 후보 대리전’ 승부를 결정지었다. 부산 역시 전세가 뒤집힌 뒤 박성배, 루시아노 등이 막판 공세로 역습을 펼쳤으나 뽀뽀의 오른발 프리킥이 골대 왼쪽을 살짝 벗어나는 등 골운이 따르지 않았다. 한편 포항은 ‘라이언킹’ 이동국(26)이 모처럼 골을 터뜨린 데 힘입어 전북을 2-0으로 꺾었고,FC서울은 김은중과 김동진의 연속골로 광주를 2-0으로 눌렀다.‘축구 천재’ 박주영은 김동진의 추가골을 어시스트하며 득점포인트를 올렸다. 또 대전은 대구를 2-1로, 인천은 울산을 1-0으로 각각 꺾었다.부산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포터필드 감독 “누구나 대표팀 감독을 원한다”

    포터필드 감독 “누구나 대표팀 감독을 원한다”

    조 본프레레 전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의 퇴진으로 차기 사령탑에 대한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명되고 있는 프로축구 부산의 이안 포터필드(59·스코틀랜드) 감독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포터필드 감독은 24일 부산 아시아드종합경기장에서 수원과의 프로축구 K-리그 후기리그 개막전을 마친 뒤 “차기 한국대표팀 감독에 대한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지금 나의 팀은 (프로축구)부산 아이파크이고, 앞으로 남은 후기 리그에 전념할 수밖에 없다.”고 구체적 언급을 회피했다. 최근 축구협회로부터 강력한 제안을 이미 받은 것으로 알려진 포터필드 감독은 그러나 협회와의 접촉 여부 질문에 대해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부인한 뒤 지금 (후임 감독 내정설에 대해) “이 상황에 대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는 등 다른 관련 질문에 대해서도 동문서답으로 일관, 좀 더 구체적인 접촉이 있지 않았느냐는 의혹까지 불러 일으켰다. 이날 경기에서 승리한 뒤 앞서 인터뷰한 차범근 수원 감독에 견줘 포터필드 감독은 마치 질문 내용을 미리 예상한 듯 시종 여유있는 모습으로 재치있게 질문을 피해나간 게 그 이유. 일관되게 ‘노(N0)’로 일관한 뚝심도 돋보였다. 다만 포터필드 감독은 “모든 국민들이 자신들의 축구선수가 잘 하길 바라고 있고, 내가 있는 동안 팀과 K-리그가 많이 성장했다.”고 은근히 자신의 역량을 과시, 묘한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또 “누구나 대표팀 감독이 되길 원한다.”고 운을 뗀 뒤 “대표팀이든 클럽팀이든 커다란 책임감이 필요하고, 의무감으로 자신의 직함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해 국가대표 사령탑으로서의 자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다음은 포터필드 감독과의 인터뷰를 요약한 일문일답.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에 대한 의향은. -난 지금 부산 아이파크의 감독이다. 즐기고 있다. 그 문제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 또 축구협회와는 아무 일도 없었다. ▶‘본프레레호’의 문제점은 뭔가. -잘 모르겠다. ▶(대표팀)감독직에 부담이 있나. -누구나 감독을 원한다. 다만, 큰 책임과 의무감이 따라야 한다. ▶국내파가 옳은가, 해외파가 옳은가. -국민들이 결정할 문제다. 축구는 온갖 의견이 분분한 스포츠다. 글 사진 부산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외국선 ‘명장’… 국내선 ‘졸장’

    한국축구대표팀 외국인 사령탑들의 역사는 거스 히딩크 감독을 제외하면 고난의 연속이었다. 한국축구는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 대비해 독일 출신의 명장 디트마르 크라머 감독을 영입했다. 하지만 크라머는 훈련 방식 등을 놓고 김삼락 코치 등과 갈등을 빚다가 본선출전을 앞두고 쫓겨났다. 크라머가 없는 ‘김삼락호’는 결국 본선에서 1승도 올리지 못하고 예선탈락했다. 1994년에는 88년 서울올림픽에서 구 소련의 우승을 이끈 명장 아나톨리 비쇼베츠가 96애틀랜타올림픽대표팀 감독과 미국월드컵대표팀의 기술고문으로 기용됐다. 비쇼베츠는 한국의 월드컵 사상 첫승의 목표였던 볼리비아를 분석하기 위해 독일-볼리비아전을 본 뒤 ‘발빠른 서정원을 기용하라.’는 전력분석보고서를 김호 감독에게 제출했지만 외면당했다. 그리고 2년 뒤 애틀랜타올림픽에서 1승1무1패로 예선탈락하고 보따리를 쌌다. 2003년 3월에는 2000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포르투갈을 4강으로 이끈 명장 움베르투 코엘류가 사령탑에 올랐다. 하지만 코엘류 역시 같은 해 10월 아시안컵예선 오만 원정에서 베트남과 오만에 잇따라 충격패를 당한 뒤 당시 박성화 코치 등 코칭스태프와의 불협화음 소문까지 불거지며 경질 위기에 내몰렸다. 코엘류는 결국 2004년 3월 독일월드컵예선 몰디브전에서 사상 최악의 졸전을 펼치며 0-0으로 비긴 뒤 사퇴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자진사임했다. 이밖에 96년 아시안컵 8강전에서 2-6 충격패를 당한 박종환 감독과 98프랑스월드컵 예선에서 영웅이었다가 본선 도중 네덜란드에 0-5로 대패하고 불명예 퇴진한 차범근 감독 등 한국인 감독들도 대표팀 사령탑 수난사에 이름을 올렸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제2 히딩크’ 뽑아라

    ‘제2 히딩크’ 뽑아라

    조 본프레레(59) 축구대표팀 감독이 23일 전격 사임하면서 후임 사령탑으로 누가 선임될 것인가에 축구팬들의 촉각이 곤두서 있다. 전문가들은 일단 국내파 감독이나 한국축구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 외국인 감독을 꼽는다.2006독일월드컵이 열달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국내파 감독들이 선수 파악이나 선발, 프로구단이나 협회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하는 데 유리하다는 이유다. 국내파로는 월드컵대표팀을 이끈 경험이 있는 김호·차범근 전·현 수원 감독이 거론된다. 특히 차 감독은 비록 98프랑스월드컵에서 대회 중 경질이라는 수모를 당했지만 월드컵이 열리는 독일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어 유리하다는 평가다. 하지만 국내 감독은 여전히 세계축구에 대한 정보나 대응 전략, 전술 마련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3년 동안 부산 감독을 지내며 올시즌 팀을 K-리그 전기리그 정상에 올린 스코틀랜드 출신의 이언 포터필드 감독과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해 2002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핌 베어백(네덜란드) 전 코치, 필립 트루시에(프랑스) 전 일본대표팀 감독 등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포터필드 감독은 최근 3년 동안 K-리그에서 한국축구를 면밀히 살펴왔다는 점에서 축구팬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신문선 SBS해설위원은 “독일월드컵에서의 목표를 어디에 두느냐가 관건이지만 현 시점에서는 국내 축구 사정을 잘 아는 국내파나 포터필드 감독 등이 충분히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축구팬들을 만족시킬 만한 세계적인 지도자를 영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2002한·일월드컵에서 독일을 결승까지 이끈 루디 러, 독일 도르트문트와 바이에른 뮌헨을 유럽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끈 오트마르 히츠펠트,FC바르셀로나와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을 지낸 보비 롭슨과 올랭피크 리옹을 프랑스리그 4연패로 이끈 폴 르 구엥 등 현재 어떤 팀의 지휘봉도 잡지 않고 있는 쟁쟁한 명장들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서형욱 KBS해설위원은 “외국인 감독이 단기간에 전술 접목을 꾀하기는 어렵겠지만 선수와 팬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능력과 명성을 가진 지도자라면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그라운드의 악바리 이영무 감독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그라운드의 악바리 이영무 감독

    온 국민을 웃기고 울리는 축구에서의 골 세리머니는 언제 봐도 환희와 감동의 결정판이다. 느닷없이 속옷을 내보여 주는가 하면 옆으로 드러누워 기발한 동작으로 폭소를 터뜨리게 한다. 또 손을 꽉 잡고 기도하는 숙연한 장면을 연출하는 등 이래저래 골 세리머니는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1975년 9월28일 서울 동대문운동장. 제4회 한·일 축구 정기전이 열렸다. 전년도 도쿄 시합에서 4대1로 패한 앙갚음을 하듯 한국 선수들은 경기 초반부터 일본의 골문을 열심히 두들겼다. 이때 유독 눈에 띄는 선수가 있었다. 왜소한 키에 보잘것없는 체격, 그러나 종횡무진 경기장을 헤집고 다니는 모습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후반 중반 무렵, 승부에 쇄기를 박는 세 번째 골이 터졌다. 바로 그 순간 골문 앞에서 보기드문 광경이 벌어졌다. 꽉 쥔 두손을 이마에 갖다 대고 무릎을 꿇은 채 한참 동안 미동도 하지 않는 모습, 생소했지만 전국민에게 감동과 설욕의 속시원함을 선사했다. 주인공은 바로 ‘그라운드의 악바리’ 이영무(53) 선수였다. 이후 차범근 신연호 박민재 선수 등이 골을 넣은 후 기도 세리머니를 연출하는 바통을 이었다. 이 세리머니는 종교적 논란 등으로 잠시 주춤했으나 2002년 월드컵때 이영표 송종국 최태욱 이천수 등에 의해 다시 살아났고 최근에는 박주영 등 차세대 골잡이들도 자주 애용한다. ●“선착순 달리기 차범근 선수에 딱 한번 져” 앞서 언급한 대로 ‘기도 세리머니’의 원조는 이영무 할렐루야 축구감독이다.75년 한·일 축구 정기전에서 처음 선보인 후 81년 축구 국가대표를 은퇴할 때까지 그의 상징처럼 늘 따라다녔다. 감독생활을 하는 지금도 물론 마찬가지다. 이 감독은 이와 관련해 “처음 기도 세리머니를 할 때에는 스스로 생소했고 비난도 많았다.”면서 몸이 빈약하고 잘 먹지 못해 빈혈로 쓰러지는 경우도 있었고 또 기술도 뛰어나지 못해 신앙심 하나로 열심히 뛰자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이런 각오로 현역때 선착순 달리기를 하면 죽어라 뛰었고 청소년대표 시절 차범근 선수한테 딱 한번 뒤진 것 외에는 단 한번도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다고 회고했다.“오직 살 수 있는 길은 지구력밖에 없으며 하느님한테 힘이 되어 달라고 늘 기도했다.”고 말했다. 그런 습관으로 골이 터질 때마다 감사의 표현으로 저절로 기도 세리머니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할렐루야 축구단 숙소 인근의 한 식당에서 이 감독을 만났을 때 ‘기도 세리머니’에 대한 질문에 지체없이 나온 대답이다. 이 감독은 최근 할렐루야 축구단을 이끌고 팔레스타인 지역을 순회하며 평화의 축구경기를 하고 돌아온 직후였다. 위험지역인 관계로 결코 쉽지 않은 출장이었기에 궁금증이 생겼다. “지난해 팔레스타인 지역을 방문했지요. 이때 팔레스타인 축구대표팀이 처음으로 구성돼 우리와 친선시합을 가졌습니다. 당시 떠나올 때 올해도 방문한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베들레햄을 비롯, 헤브론 라말라 여리고 등 좀처럼 외국인이 드나들 수 없는 곳에서 네차례의 친선경기를 가졌지요. 처음에는 잔뜩 경계했지만 나중에는 외부의 사랑을 많이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특히 월드컵 4강의 한국팀이 왔다며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 등을 연발, 이 구호가 세계 축구 공용어임을 실감했다며 웃었다. 아울러 방문하는 곳마다 어린이들에게 축구 클리닉 행사를 해주자 총소리를 듣고 자란 사나운 성질은 온데간데없고 ‘코리아 넘버원’을 외치며 환영했단다. 이들이 사용하는 축구공은 아직도 고무공. 미리 갖고 간 가죽공 100개와 장난감 등 선물보따리를 풀어놓자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고 전했다. ●팔레스타인지역 방문때 “대~한민국” 연호에 감동 이 감독은 “먼지만 펄펄 나는 헤브론 운동장에서 돌과 자갈을 주워내고 경기 2시간 전부터 물을 뿌리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모습에서 따뜻함을 느꼈다.”면서 헤어질 때 ‘살렘(평화)’‘살렘’을 외치며 붙잡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했다. 높은 담이 무너지고 평화의 문이 열리는 것을 느꼈다.”며 아직도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또 “알 자지라와 팔레스타인 방송 등에서 우리 선수들을 집중 인터뷰하는 등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덧붙였다. 이 감독은 앞서 지난해 7∼8월 르완다 탄자니아 우간다 등 아프리카 내전지역에 축구단을 이끌고 방문하는 등 몇 년째 소외지역을 찾아 선교활동을 펴고 있다. 화제를 돌려 한국 축구의 수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2002년 월드컵 개최로 인해 축구의 저변확대는 물론 과거 70∼80년대보다 괄목할 만한 발전과 성장을 이루었다고 전제했다. 이어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를 예로 들면서 “체력이나 전술면에서 국제적 수준으로 따라왔다. 그러나 기본기를 다지는 것이 여전히 문제점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볼 키핑과 패싱, 컨트롤 등의 기본기는 어릴 적부터 다져져야 하는데 한국축구는 그걸 건너뛴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본프레레 국가대표팀 감독이 경질된 한국축구가 내년 독일월드컵에서 어느 정도의 성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하느냐고 묻자 수비가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002년 월드컵 때의 홍명보 최진철 김태영 등으로 이어지는 수비 라인업과 비교했을 때 무게가 떨어지는 편”이라고 했다. 최근 들어 김두현 선수가 많이 좋아졌지만 수비보강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런 다음 미드필드에서는 김남일과 유상철 선수처럼 강인함이 있어야 하고 측면 돌파는 이영표와 김동진, 포드에는 박지성 박주영 안정환 등이 포진할 경우 낙관적인 성적을 기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주영 선수에 대해서는 편안함과 부드러움이 있으며, 기초와 발기술이 있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정신력·체력 보강한다면 독일월드컵 16강 가능” “남은 10개월 동안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보강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가 유럽처럼 정상에 와 있으면 별도의 훈련이 필요없지만 그렇지 않은 실정입니다. 팬들의 눈은 이미 4강 수준을 바라보고 있지요. 지금이라도 총체적 난국임을 인식하고 기술위원회, 축구협회, 각 프로구단 등 모두 같이 호흡하고 함께 가야 합니다. 그래야 독일월드컵에서 16강,8강을 바랄 수 있습니다.” 이 감독은 국가대표 시절을 회고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합을 77년 11월 이란과 가진 월드컵 예선경기를 꼽았다.2대1로 뒤지던 후반에 차범근 선수가 센터링한 볼을 김재한 선수가 아크서클 부근에서 헤딩으로 볼을 떨어뜨리자 달려가면서 슛해 골인시켰다. 그러자 12만 관중이 한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긴 침묵속에 빠졌다. 비기긴 했지만 승점에서 뒤져 월드컵 본선에는 진출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이 감독은 경기 고양에서 4남3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당시 부친은 면서기였고 나중에 면장까지 지냈다. 이 감독은 어릴 적부터 돼지 오줌통으로 마을 뒷산 묘지에서 혼자 드리블하면서 축구를 즐겼다. 능곡 초등학교 5학년때 학교 축구부와 비축구부간의 시합때 감독의 눈에 띄어 발탁됐다. 고1때인 70년 지금의 부인과 만나 8년 교제 끝에 78년 결혼했다. 이 감독은 할렐루야가 전반기 2부리그에서 11개팀 중 5위를 기록했으며 2007년부터는 K-리그에서 좋은 경기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3년 경기 고양 출생 ▲73년 경희고 졸업 ▲74∼81년 축구 국가대표 ▲77년 경희대 졸업 ▲81년 포철, 할렐루야팀 선수 ▲81년 경희대 대학원 체육학 석사 ▲83∼92년 임마뉴엘 선수 겸 코치 ▲87∼90년 합동신학대학원 신학과 석사 ▲92∼98년 이랜드푸마 축구단 감독 ▲92년 목사 안수 ▲94년 올림픽팀 코치 ▲95년 유니버시아드팀 코치 ▲98년 축구협회 기술위원 ▲99년∼현재 할렐루야 축구단 감독 ▲2000년 성결대 겸임교수 ▲2002년 축구협회 기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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