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차마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6억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체조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암막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6만원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077
  • ‘해고 자제 합의’ 누가 말바꿨나

    ◎김우중 회장­“재벌총수들 동의”… 논란증폭 진화나서/재계회장단­자사마저 정리해고 통보… “겉과속 달라” 재계 총수들간에 해고 자제에 관한 합의가 있었나. 金宇中 전경련 회장대행이 ‘정리해고 자제’ 발언으로 논란이 증폭되자 “개인차원의 소신만이 아니라 재계 합의사항”이라며 진화하고 나섰다. 金 회장은 20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전경련 회장단회의와 5대 그룹 회장과의 접촉에서 정리해고를 자제키로 합의를 봤다”면서 “지난 4일 대통령과 전경련 회장단의 회동 때에도 재계 공식 입장으로 통보했다”고 밝혔다. 金 회장은 특히 “현대그룹의 鄭夢九 회장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말해 정리해고를 추진 중인 현대그룹(자동차)이 동의했음을 강조했다. 다만 鄭 회장이 “나는 정리해고 자제방침을 받아들이겠지만 숙부인 鄭世永 명예회장을 설득하기 어려우니 별도로 연락해달라”는 말을 듣고 鄭 명예회장과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개별 기업까지 설득하지는 못했지만 대표성 있는총수들이 해고 자제에 동의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재계는 金 회장의 발언이 총파업에 불씨가 될 수 있고,정작 金 회장이 이끌고 있는 대우자동차마저 정리해고 방침을 밝힌 상태여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겉다르고 속다른 발언’이라고 몰아부치고 있다. 물론 金 회장은 대우자동차의 정리해고 방침통보에 대해 “고통분담의 의지를 촉구하기 위한 협상카드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어쨌든 金 회장의 발언으로 재계와 노동계에 적지않은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金 회장의 지도력이 손상을 입게 됐으며 현대와 손잡고 하기로 한 기아자동차 공동인수에도 악영향을 줄 것같다.
  • 삼성 희색·현대 울상/두 그룹 박세리­금강산 유람선 홍보전 희비

    ◎삼성­자신감 급상승… 기아自 인수 태세/현대­‘간첩’ 돌풍으로 北 관광 좌초 위기 현대와 삼성의 홍보전이 ‘2라운드’를 맞았다.재계의 두 거목이 상황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얼마전까지는 ‘소떼’와 ‘금강산 유람선’으로 현대가 잘 나갔다.호사다마일까.북한 무장공비의 동해안 침투사건으로 현대는 지금 울상이다. 반면 삼성은 박세리의 LPGA 3연승으로 희색이 가득하다. 삼성은 지난 대선 때의 원죄(?)로 신정부 들어 일부 정치권의 눈총을 받은데다 李健熙 회장이 역점을 기울여 추진한 자동차가 빅딜의 대상으로 거론되면서 몇달간 곤혹스러웠다.구세주는 ‘벤처기업’ 박세리였다.박이 지난 5월 18일 미 LPGA 우승에 이어 US오픈,제이미파 크로거 대회마저 석권하는 위업을 이루면서 분위기는 밝아졌다.“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넘쳐난다.자동차의 빅딜에 아랑곳 없이 여차하면 기아자동차마저 인수할 태세다.삼성그룹 관련 주가는 연일 강세다.李弼坤 중국본사 대표가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劉常夫 삼성재팬 사장이 포철회장으로 발탁되는 ‘인재 풀’의 위력도 과시했다. 현대는 괴롭기만 하다. 그룹의 모든 역량을 기울인 금강산 유람선이 ‘북풍’ 암초에 걸려 ‘좌초’위기를 맞고있다.오는 9월25일 첫배가 제대로 뜰지 불투명해졌다. 자동차 조립공장 등 대북 경협사업도 휘청거리고 있다.당초 지난 11일 중국 베이징을 통해 실무단 33명이 북한을 방문,금강산 관광 등 대북 사업논의를 마무리 지을 계획이었다.날짜도 18일로 연기했다가 이마저 연기될 판이다.501마리 소떼의 북송 일정마저 틀어졌다.현대가 뜻밖의 ‘돌풍’을 만나 금강산 유람선사업과 공정위의 부당 내부거래 조사,기아자동차 인수,빅딜 등 두루 얽힌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갈지 관심거리다.
  • ‘찾아온 달러’내쫓는 노조/日 三和銀 서울지점장 ‘기막힌 항변’

    ◎임금협상과정서 집으로 전화 “日로 돌아가라” 원색적 욕설도/“외국인투자 힘든 나라” 낙인 우려 일본계 상와(三和)은행 서울지점장인 오가사라와 야스키(小笠原)씨는 지난 12일 급히 재정경제부 金宇錫 국제금융국장을 찾았다.그가 金국장을 찾은 것은 노사문제와 관련해 치른 한 ‘사건’때문이었다. 오가사라와 지점장은 지점의 노사임금협상과정에서 일부 노조원(회사 직원인지 외부 직원인지는 확인되지 않음)이 지난 달 28일 집으로 전화를 걸어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퍼부었다고 했다.그는 전화내용을 다 녹음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속기사무소의 공증(公證)까지 받아놓았다.녹음된 내용을 金국장에게 전하기 위해 ‘항의방문’한 것이었다.원색적인 욕과 “일본으로 돌아가라”는 대목도 들어있었다. 노조원들이 임금을 많이 받으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그러나 이러한 일로 외국인투자가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점을 재경부는 우려하고 있다.외국인투자를 애써 유치하려는 것도 대외 신인도(信認度)를 높여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고용증진을 통해 실업을 해결보려는 노력에 다름아니다. 오가사라와 지점장은 다음 달 2일 일본 도쿄에서 경단련 주최로 열리는 대한(對韓)투자 설명회에 연사로 참석한다.노사문제로 곤욕을 치른 그가 투자설명회에서 한국에 투자하라고 일본기업인들에게 말해 줄지 의문이다.오히려 자신의 체험사례를 들어 투자에 조심하라고 할지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후지무라 마사요시(藤村正哉) 일·한경제협회장을 비롯한 대규모 일본투자단이 방한해 국내 구석구석을 돌며 투자여건을 살피고 있다.외국투자가들은 한국의 노사관계에 관심이 많다.정리해고를 할 수 있도록 명문화됐음에도 정리해고가 안되고 있는 ‘이상한 현실’을 그들은 이해 못한다.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 등 외국의 주요 언론과 신용평가회사들은 노조파업에 큰 우려를 보이고 있다.세계적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사가 최근 국내 19개은행의 신용등급을 무더기로 낮춘 요인 중 하나도 노사불안이었다. 재경부 관계자는 “외국인 투자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며 “만약 상와은행이 분규에 휘말려철수한다면 다른 외국계 은행이나 기업들의 철수에 불을 당길지 모른다”고 말했다.93년 오스트레일리아의 웨스트 팩 은행이 한국지점을 폐쇄한 것은 영업실적이 나빴기도 했지만 노사관계가 매끄럽지 않았던 게 한 요인이었다.
  • 사원 채용 ‘줄대기’ 극성

    ◎정치인·거래처 중역 등 동원 청탁에 골머리/견디다못한 업체사장 해외 도피 출장까지 신입사원 채용에도 ‘줄대기’ 경쟁이 한창이다. IMF사태 이후 취업이 워낙 어렵다보니 회사 중역들은 물론,인사 담당자들도 회사 안팎의 취직 청탁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웬만한 배경으로는 명함도 못 내민다’는 자조적인 농담이 횡행할 지경이다. 서울 서초동에 있는 컴퓨터 관련 중소업체 P사의 吳모사장(45)은 얼마 전취업 청탁을 견디다 못해 미국으로 ‘도피성 출장’을 갔다가 보름 뒤인 면접 당일에 귀국했다. 관리 및 연구직 신입사원 11명을 채용하겠다는 광고를 낸 뒤 명문대학 출신을 포함,80여명의 지원자가 몰렸을 때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하지만 원서접수 첫 날부터 ‘친인척이다’ ‘아는 사람이다’라며 배려해달라는 청탁이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왔다. 무작정 들어줄 수도, 거절하기도 부담스러웠다는 것이 吳사장의 설명이다. 지난 2월 전문대졸 이상의 사무직 직원 2명을 뽑은 서울 S대학에는 3백여명의 지원서가 쇄도,무려 1백50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기획실 관계자는 “정부 주요부처와 정치권을 비롯,대학 교수에 이르기까지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취직을 부탁받았다”면서 “정중히 부탁을 거절하고 철저하게 원칙대로 뽑았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한 인사 담당자는 “지난 달 경비직 30명을 뽑는데 1백여명이 지원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면서 “경비직 채용에 정치인들이 청탁 전화를 하기는 처음”이라고 전했다. 이달 말까지 간부직·관리직·영업직 등 모두 10여명을 뽑기로 한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교육자재 판매회사 S사는 거래업체 중역 등의 부탁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원서 접수 첫 날인 지난 24일 간부직과 관리직 신규 채용자 3명을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 실직 설움에… 빚 독촉에… 빈손 가출/노숙­부랑인 전국 5천명

    ◎낮엔 인력시장 무료급식소 등 전전/밤되면 철도·지하철역 몰려 새우잠/복지부,급식·임시수용시설 23억 지원 IMF한파 속에 집을 나와 대도시 지하도에서 노숙하는 ‘홈리스(Homeless)’들이 늘어나고 있다. 상당수는 최근 일자리를 잃은 저소득층 일용직 근로자와 정리해고로 실직한 사무직 근로자,사업체 부도로 도피한 중소기업인 등이다. 서울 시내의 노숙자는 이미 2천명을 넘어섰고 하루 1백여명씩 계속 늘어나고 있다.전국적으로 노숙자는 3천여명,부랑인은 2천여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부는 노숙자들이 부랑인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위해 사회복지기금에서 23억여원을 지출키로 하는 등 보호대책을 적극적으로 펼쳐 나가기로 했다. 노숙자들 대부분은 낮에는 인력시장과 무료급식소 등을 전전하다가 밤이되면 철도역이나 지하철역 등으로 몰려든다. 부산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하다 지난 해 12월 부도를 내고 상경한 김모씨(49)는 ‘중소기업 사장들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서울지하철 을지로역 입구지하도에서 30여명의 노숙자들과 밤을 보낸다.김씨는 “날마다 찾아오는 채권자들의 등쌀에 시달리다가 빈손으로 집을 나왔다”면서 “처음에는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산의 중소기업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다 해고되자 서울역 부근에서 노숙하고 있는 박모씨(38)는 “차마 가족에게 실직했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파견근무를 핑계로 집을 나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처음에는 9천원짜리 여관방과 심야만화방 등을 전전했지만 돈이 떨어지자 노숙자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길호섭 생활보호과장은 “최근 서울 등 대도시 지하도 등에서 노숙하거나 거리를 떠도는 부랑인들이 크게 늘고 있다”면서 “민간단체와 연계해 이들을 돕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이에 따라 대한적십자사가 전개 중인 일시 구호활동 및 무료급식소 운영을 최대한 지원하고 천주교 개신교 등 종교단체가 펼치는 구호활동을 적극적으로 돕는 한편 다른 민간단체도 구호활동에 참여토록 적극 권유키로 했다. 신부 목사 등 성직자와 사회복지전문요원들의 상담을통해 연고자가 확인된 ‘홈리스’는 집으로 돌아가도록 대한적십자사 구호기금에서 6천여만원을 여비로 지급키로 했다.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건강이 나빠졌거나 지나친 음주로 알콜에 중독된 사람들은 전국 43개 부랑인복지시설에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 1∼2개월 동안 임시 수용키로 했다.이를 위해 예비비에서 19억원을 지출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올 실업률이 노동부의 전망대로 6%에 이르면 고용보험이나 실업급여 혜택을 받지 못하는 최저소득층 자활보호자가 모두 88만2천여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이들이 ‘홈리스’로 전락하지 않도록 3천여억원을 들여 특별취로사업을 실시할 계획이다.
  • 국태공의 보은(비록 남가몽:2)

    ◎대원군,정권잡사 신세진 쌀장수에 관직/이조판서 홍종응 집서 무참하게 냉대받고/서 강사는 쌀장수 이천일 찾아가 사정하니/쌀 20섬·돈 1천냥 꾸러미·정육 100근 선뜻/아들 보위 오를던날 궁중잔칫상 차려 대접 고종이 즉위하자 아버지 흥선군은 대원군이 되고 세상사람들은 그를 국태공이라 불렀다.운현궁도 초가 삼간에서 대궐같은 기와집으로 탈바꿈했다.당시의 돈으로 1만7천830냥이나 들여 신축하였으니 만일 그 때가 IMF시절이었다면 즉각 공사중지 명령이 내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만에,실로 오랜만에 권좌에 오른 대원군이었던 만큼 그까짓 1만이나 2만냥 같은 돈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겼고 무엇보다 먼저 해야할 일이 나라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그동안 자기를 도와준 사람에게 보답하고 자기를 능멸했던 사람에 대해서는 응분의 불이익을 주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먼저 대원군이 손을 보려 했던 사람은 이조판서 홍종응이었다.이사람은 당대 유수의 대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보는데 안목이 없었고 세상일에 너무 각박했다.○하인폭거로 왼손에 유혈 1863년 임술민란(일명 진주민란) 직후의 경제는 특히 어려웠다.요즘과 같은 경제난국이 닥쳐 모든 사람들이 하루 끼니를 잇기가 어려웠는데,흥선군도 예외가 아니었다.그래서 하루는 흥선군이 홍판서 댁을 찾아가 구걸하게 되었는데,홍판서는 문전박대를 했다.문전박대 뿐만 아니라 그 댁 하인이 대원군에게 폭행까지 하여 손가락에 유혈이 낭자하였다. “국태공이 흥선군 시절에 너무 가난하여 늘 꾸워 먹고 살았다.임술민란이후에 인심이 점점 각박하여 먹고 살 길이 막막하였다.이조판서 홍종응의 집에 가서 입을 열고 싶었으나 여러 번 은혜를 입은 처지라서 쉽게 말하기도 어려웠다.그러나 염치를 불고하고 부득이 찾아가니 하인들이 나와서 말하기를 ‘우리 대감께서는 근래에 건강이 좋지 못하여 잠시 산정의 사랑에 쉬러 갔습니다. 소인들에게 분부하시기를 아무라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으니 다른 날 다시 오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고 했다.그러나 세모에 날씨가 너무 추운데다 배도 고프고 목마름이 심하여 일이 성사되건 안되건간에 한번 만나 얘기나 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흥선군이 애걸하니 하인들이 차마 거절하지 못하여 협문을 열어 들어오게 하였다. 그러나 홍종응이 답하기를 ‘이왕에 몇번 청구하신 것은 즉시 봉행해 드렸습니다만 지금은 세모를 당하여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구걸하니 이들을 다 구제해주기 어렵습니다.얼마 안되는 이조판서의 봉급으로는 그 사람들을 다 기쁘게 해주기 어려우니 대감께서 금번에 청하시는 것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차차 형편을 보아 후일에 도와드리겠습니다’ 하고 흥선군의 청을 거절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흥선군이 그 집 문밖을 나설 때에 불상사가 생겼다.뒤를 따라 나온 홍종응의 하인이 발길로 협문의 판자를 찼다.그 조각이 흥선군의 손을 내리치니 다섯 손가락에 유혈이 낭자하였다.” 그러나 서강에 사는 쌀장수 이천일의 경우는 전혀 달랐다.홍종응의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흥선군은 손에 붕대를 감은 채 그 길로 이천일의 집을 찾아갔는데 맞이하는 태도부터가 홍종응과는 크게 달랐다. ○“집권자 되면 은혜 갚겠다” “부득이 서강에 사는 쌀가게 주인 이천일을 찾아갔다.흥선군을 맞은 천일은 크게 놀랐다.문안을 드린 후에 보니 흥선군의 왼손 다섯 손거락에 피가 엉기어 얼었고 상처의 흔적이 매우 심하였다.천일이 ‘어찌해서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까’하고 물으니 대원군은 ‘나귀를 모는 아이가 실수하여 빙판에 떨어져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였다.천일이 약수로 피를 씻어낸 후에 손을 헝겊으로 싸니 조금 통증이 가셨고 정신이 들었다. 그런 뒤 천일이 ‘대감은 어찌해서 누한 곳(누지)에 행차를 하셨습니까.’고 물으니 대원군은 ‘다른 이유가 없고 몇년 전부터 내가 그대의 은혜를 입어 왔으나 지금 세모를 당하니 추운 절기에 살아갈 길이 막연하여 염치불고하고 찾아왔네’ 하고 답했다.이에 천일이 아뢰기를 ‘형편이 그러시다면 물건 보내라는 패지(메모지) 한 장이면 족하실텐데 대감께서 예까지 친림하셨습니까.송구할 따름입니다.염려하지 마시고 돌아가십시요.내일 아침일찍 조처하여 보내 드리겠습니다’고 황송해했다. 대원군은 집에 돌아왔으나 저녁을굶은 터라 추위가 더욱 혹독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천일은 약속대로 이튿날 아침 일찍이 물자를 보냈다.흥선군이 조반 후에 서강의 이천일에게서 보내 온 목록을 보니 쌀 20섬,돈 1천꾸러미,장작나무 50바리,정육 100근,서초(평안도에서 나는 담배) 30근이나 되었다.흥선군은 ‘이 은혜를 어찌 갚을꼬’ 생각하면서 ‘만약에 하늘이 도와 내가 집권자가 된다면 제일 먼저 그 은혜를 갚겠다’고 맹세하였다.” ○경상감사와 비슷한 녹봉 세상 일은 알 수 없는 것.거지 흥선군이 국태공이 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1863년 12월8일 젊디 젊은 철종이 갑자기 승하하니 운현궁에 왕기가 서렸다. 아들이 임금이 되고 흥선군이 대원군으로 뜬 것이다. 즉위식 날 대원군이 서강의 쌀장수 이천일을 특별히 부르니 천일이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달려와 운현궁으로 들어섰다. 대원군이 친히 손을 잡고 인도해 가니 천일은 떨리고 황공하여 나아가지 못하고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몸을 굽히고 있었다.그 두터운 은혜를 이루다 헤아리기 어려웠다. 이 때 대원군의부인 민씨가 이천일이 온 것을 알고 궁중의 잔치상을 내어오게하니 천일은 손이 떨려 진수성찬을 다 먹을 수가 없었다.이에 대원군이 친히 천일의 손을 잡아 상에 앉게 한뒤 큰 은반에 홍로주를 가득 부어주니 천일에게 그렇게 큰 영광은 처음이었다.” 대원군은 왕실의 체면을 많이 떨어 뜨렸으나 그 정분은 잃지 않았던 것이다.뿐만 아니었다. “드디어 이천일이 선혜청 고직에 임명되니 그 수입이 경상감사의 봉급보다 못하지 않았다.선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경사스런 일이 있다하더니 과연 헛말이 아니었다.” 지금도 홍종응 처럼 한치 앞을 못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천일같이 착한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이니 이 일은 두고 두고 후세 사람들이 명심할 일이라 할 것이다.
  • 판사와 변호사/이생직 변호사(서울광장)

    ○업무상 가깝고도 먼 사이 가깝고도 먼사이. 판사와 변호사는 한마디로 가깝고도 먼 사이이다. 판사는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을 법정에서 재판하면서 수많은 변호사들을 마주 대한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판사에게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며 적어도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그런 변호사들을 상대하는 판사는 변호사들에 대해 같은 자격을 가진 법조인이라는 생각에서 일반인들 보다 그 의견을 존중해주고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이 보통이다. 결국 판사와 변호사는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예의를 갖추고 서로 조심하는 사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그 속마음이나 인간성에 대해서는 잘 모르게 되고 따라서 가깝지만 먼 사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변호사로서는 엄격하면서도 인간미가 넘치는 판사,매끈하게 재판진행을 하면서도 공정성을 잃지 않은 판사에 대해 특히 호감을 갖게 되고 가까이 지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판사로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판사와 변호사는 서로의 직분이 다르다는 생각에서 사적으로 가깝게 지내는 것을 피하는 것이 보통이며 또한 그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판사와 변호사가 학교동창이었다든지 과거 같은 법원에서 판사로 같이 근무하였다든지 하는 경우 그 관계를 완전히 단절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일반적으로는 종래의 관계를 유지하여도 괜찮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고 일부 변호사중에는 오히려 이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친한 관계일수록 조심을 종전의 인간관계를 인위적으로 단절하는 것이 쉽지 않고 또한 강제로 멀어지게 할 수는 없다.어떤 사람들은 사적으로 가깝게 지내더라도 재판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면 될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상당한 정도로 수양이 된 사람이 아니면 사적인 관계와 재판을 완전히 구분하기는 상당히 어렵다.그러므로 판사와 변호사는 가깝게 지내는 관계일수록 조심해야 하고 오해를 살 일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 설령 본인들로서는 상당히 조심한다고 하더라도 가깝게 지내다 보면 주위에서 의혹의 눈길을 보내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를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최근의 의정부 법원의 판사와 변호사 유착의혹 관련기사를 보면서 새삼 생각나는 분이 이모 변호사이다. 이 변호사는 판사로 재직할 당시 지방으로 현장검증을 갔다가 동행한 변호사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갖게 되었는데 이를 검찰이 문제삼아 뇌물죄로 처벌하려고 하였고 이에 상당수의 판사들이 반발하게 되어 사법파동이라는 사상초유의 일이 발생하게 됐었다. ○고 이 변호사를 떠올리며 결국 이로인해 그분은 불명예퇴임을 하게 됐으며 그 일로 인해 평생을 쓰라린 가슴을 간직하게 되었다.그분은 이후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지함으로 판사로서의 엄숙함을 강조하였고 그 자신은 사건에 임하는 변호사로서 절개와 지조를 지키려고 노력을 하였다. 이 변호사는 판사와 변호사의 관계에 대해 많은 글을 남겼는데 항시 조심하고 경계하는 태도를 강조했다.특히 돌아가시기 수년전부터는 보통사람으로서는 차마 고백하기 어려운 부끄러웠던 경험들을 글로 남겨 후배판사와 후배변호사에세 귀감이 되게 했으니,지금에 와서 새삼 그분의 용기에 머리가 숙여지면서 존경할만한 법조인이 더 많이 생겨났으면 하는 바램이 드는 것이다.
  • JP 총리 인준 정계개편 고리될수도/임시국회 이후 쟁점

    ◎거야선 공동정권 틈 벌리기 시도/추경예산·청문회 법제화도 난제/파행 재연땐 새판짜기 여론 고조 임시국회에서 정부조직 개편안 등 몇몇 여야간 쟁점은 정리됐지만 여전히 봉합수준이다.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개혁구상이 상당한 차질을 빚을 게 분명하다.현안중 고용조정(정리해고)의 법제화만이 마무리됐을 뿐 인사청문회제도 도입 등 다른 현안들은 여전히 형식논리 공방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가장 큰 현안은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로 굳어진 차기정부 첫 총리인준이다.물론 새정부 출범후 다루기로 한 추경예산안과 인사청문회 제도의 법제화 역시 쉬운 사안은 아니다. 특히 차기정부는 김명예총재에 대한 국회 동의를 받지 못해 첫 조각 때부터 삐걱거리는 미증유의 사태를 겪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정재문 김종호 박세직 현경대 의원 등 한나라당 중진 4명이 16일 ‘JP 총리 찬성’선언으로 돌아서는 등 당내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으나,대세는 아직 반대입장이다.오는 20일 의원총회를 열어 최종 당론을 결정한다는 복안이지만,복잡한 당내역학관계상 결론을 내지 못하고 분열상만 노출시킬 공산이 크다.임시국회가 17일 폐회됐지만,총리인준을 다룰 오는 25일 제 189회 임시국회를 앞두고 여야간 물밑 논의가 어느 때보다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것도 이를 감안한 때문이다.개별 의원간 접촉은 물론 이른바 정치권의 ‘빅딜’로 불리는 당대 당차원의 협의도 진행중인 것으로 여겨진다.정치권 일각에서 총리인준을 정치권 대변혁의 전초전으로 보는 시각도 이러한 연유다. 당사자인 자민련은 한나라당의 내홍과 경제청문회를 고리로 ‘크로스 보팅’이 실시되길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국민회의도 마찬가지다.야권과 전략적 제휴가 이뤄지길 기대하면서 인선에 더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하지만 한나라당은 되려 공동정권의 ‘틈새 벌리기’가 앞으로 있을 지방선거와 당 구심점 만들기에 최적 현안이라는 판단이어서 접점을 찾기가 여의치 않다. 이렇게 볼 때 이번 회기내 처리하지 못한 추경예산과 인사청문회제도의 법제화도 결국은 총리인준과 맞물려 있다고 봐야 한다.국민회의와 자민련이 한나라당 설득에 성공한다면 별 문제가 될 게 없으나,의견분열로 상처를 입고,그 과정에서 국회 처리절차마저 꼬이면 정치권은 여론의 정계개편 압력에 봉착할 위험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 시인 김상옥(이세기의 인물탐구:160)

    ◎시·서·화 3절의 시조문학 거두/글자 한자한자마다 ‘도자기의 자해’ 닮은 품격/조춘·옥적·백자부 등 명편 중고교과서에 실려 ‘무거운/덧문을 열고/뜨락을 한참 내다본다/ 이 아침/매연 속에/목련꽃 차츰 벙글어/ 사노라/때묻은 눈에도/봄은 이처럼 부신가!’(조춘) 초정 김상옥 시인의 시는 어느 시를 읽어도 절조를 울리지만 그중에서도 중고 교과서에 실린 ‘조춘’‘옥적’‘백자부’등은 ‘시상의 간명한 처리,아무나 생각할 수 없는 사고의 반전,멋들어진 은유와 섬세한 언어구사’로 더이상의 시를 생각할수 없게 만드는 명편들이다.마치 적설에 파묻힌 보석이 눈이 녹자 자태를 드러내듯이 말속에 숨겨진 온오와 시적 함축은 글자 한자한자마다가 옥구슬처럼 영롱하다.성격도 그렇다.그의 눈에 거슬리고 싫으면 싫은 것이다.이를 두고 소설가 김동리는 ‘인은 곧 문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의 결곡하고 강개한 인품은 족히시에 반영되어있다’고 평한 바 있다. ○초판 1천부 모든 매진 ‘완벽을 기하려는 영악(영오)한 조사와 중속을 떠난 고매한 시혼은 우리문단의 한 이채’로써 ‘전통적 정서나 시인의 인식은 시대가 흐르거나 나이가 들어도 그 광채는 시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자신의 시작에 대해 얼마나 까다롭게 선별하는가는 지난 89년 고희기념시집인 ‘향기남은 가을’을 낼 때 시집 8권과 그동안 써두었던 1천여편중에서 103편을 고른 것만봐도 알수 있다.‘이미 활자화된 것은 어쩔수 없지만 그냥 써두었던 것’중에서 시집 30권에 해당하는 엄청난 분량을 며칠동안이고 찢어버린 것이다.그리고 시집의 서문에다 ‘세상에 시는 넘치도록 흔하지만 정작 시는 드물다’고 자탄하고 ‘한 구절이라도 후일 남을 수만 있다면참으로 분외의 보람이겠다’는 겸양은 후학들의 문학에 대한 자세에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경고가 아닐수 없다. 그의 인생역정은 ‘사환에서 점원, 연독이 자욱하던 시골인쇄소의 인쇄공과 도장장이’에 이르기까지 안해본 일이라곤 없다.해방직후 출판된 그의 첫번째 시집 ‘초적’은 편집 교정 문선 조판에서 인쇄 장정의 전과정을 손수해냈고 초판 1천부는 즉시 매진되어 고서점에서도 구할수 없는 희귀본으로 유명하다.고향에서 오랫동안 중고교교사로 봉직하다가 60년초에 서울에 올라와 골동상인 아자방을 경영한 것은 실은 ‘서화 골동을 감식하고 부자도 못한다는 연적 콜렉션’에 가까이 하려는 의도였으며 실제로 그의 서와 전각실력은 의재필선에 이르는 경지다. ○한때 고향서 중고교사로 지난 70년초 신세계미술관초청 ‘시·서·화전 이후 일본 교토초청 전시등 10여차례의 전람회를 가진바 있고 미술평론가 이경성씨와 그의 작품을 구입했던 작가 박완서씨는 ‘이것은 단지 문학의 여기가 아니라’고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이른바 ‘시·서·화 삼절’로 지칭되는 그의 글과 그림은 고루한 화풍에서 벗어나 진취적인 파격성과 독창성,소쇄한 여백처리로 도자의 품격을 흐트리지 않는다.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일화로는 지난 74년 당시 국립박물관장이던 최순우씨의 초청으로 ‘시와 도자’에 관한 특강에서 ‘시는 언어로 빚은 도자기라면 도자는 흙으로 빚은 시’라는 말을 남겼고 이는 지금까지도 ‘도자’나‘시’를 말할 때마다언제나 인용되는 명구다.그는 참으로 시를 사랑하고도 자를 사랑한다.‘일호의 작위도 없는 우리 고도를 나의 시로써 시못지않게 사랑’하여‘나의 치아보다 먼저 이빠진 항아리에게 순금의 의치를 만들어 끼워주는’ 자세이고 시에서도 ‘이빠진 자욱이 눈에 띠면’ 이만하면 되겠다고 마음에 찰 때까지 몇밤을 지새워 퇴고를 거듭한다. 초정은 경남 충무시에서 기호 김덕홍씨와 진수아씨 사이의 6녀1남중막내로 태어난 귀하디 귀한 외독자이다.6세때부터 동네에 있던 한문서당 송호재에서 수강하여 최연소자로서 ‘괴’를 받았고 일찍이 ‘동필’소리를 들었으며 역시 소년시절인 17세에 문단에 등단후 그가 18세때 쓴 ‘청자부’를 읽은 가람은 ‘글이 너무 절정에 올라가 있어 이런 글을 쓰면 단명하다’고 걱정스러워할 정도였다. ‘우기를 머금은 달무리/시정은 까마득하다//맵시든 어떤 품위든/아예 가까이 오지말라//이 적막/범할수 없어 꽃도 차마 못꽂는다’한평생을 그가 사랑해 마지않은 ‘백자’처럼 살아온 초정은 최근에는 금아 피천득과 만나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이따금 인사동에 나가 그가 좋아하는 골동품을 보는 기쁨이 낙이다.그런중에도 그가 보여주는 최근의 시는 누에고치에서 청명한 비단실이 뽑혀오르듯이 ‘밤마다 밤이 이슥토록/묵을 갈다가/벼루에 흥건히 괴는 먹물/먹물은 갑자기 선지빛으로 변한다/사람은 해치지도 않았는데/지울수 없는 선지빛은 온 가슴을 번져난다’고 노래부른다. ○한국시조사의 한획 그어 이미 ‘시’니 ‘시조’니 하는 경계에 묶여있지 않은 ‘무위자연인’으로서 그는 ‘시인의 말은 오직 시일뿐’이라는 것이며 ‘속세의만사는 한낱 군소리에 지나지 않다’는 말로 자신의 삶을 압축해 보인다.부인 김정자씨와의 사이에 3남매,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용산구 이태원동청화아파트에서 자녀들은 출가하고 부부만이 살고 있다. 그의 제자이던 시인 박재삼은 생전에 ‘스승의 시는 도자에 그려진 한송이 백매와 같다’고 찬사해 마지않았다. ‘기막힌 위치에 자리잡고있어 한치도 움직일수 없이 완벽하다’는 것이 이유다.평자들로부터 ‘가람·노산을 뛰어넘어 한국시조사의 한 획을 그어놓은 시조시인’으로 받들어진 것도 이러한 과정에서 얻어진 곡진한 결과일 것이다. 그의 시적 자존심은 사우세풍을 지나 ‘예술 속으로 뚫고 들어간 사람’이라는 찬사와 함께이 시대 고고특절한 품성을 지닌 존재로서 언제까지나 찬연히 빛나게 될 것이다. □연보 ▲1920년 경남충무출생 ▲1926년 한문서당 송호재 수강 ▲1930∼35년 진산 이찬근 완선 김지옥 노제 장춘식사사 ▲1936년 시지 ‘아’동인 ▲1937년 시지 ‘맥’ 동인 ▲1938년 문예지 ‘문장’·동아일보에 시·시조·동요 추천,당선 ▲1945년 해방기념제전 시부 장원,삼천포문화동지회 창립,통영문협회원 ▲1946∼62년 중학교교사 봉직 ▲1947년 시조집 ‘초적’(수향서헌)출간 ▲1948년 시집 ‘고원의 곡’(성문사)출간 ▲1952년 문교부편수국 자문위원 ▲1954년 충무공 시비건립,통영문협재건,‘참새’지 복간 ▲1972년 일본 경도에서 서화화전개최,서울·부산·대구·대전·마산등 개인전 10여 차례 ▲1973년 삼행시집 ‘삼행시’출간▲1974년 국립중앙박물관초청 ‘이조도자’에 관한 특별강연 ▲1977년 육필 몰자귀비 건립 ▲1986년 산청에 시비건립 ▲1989년 고희기념시집 ‘향기남은 가을’(상서각)출간 시집 ‘이단의 시’(49년)·‘의상’(53년)·‘목석의 노래’(56년)‘묵을 갈다가’(80년), 동시집‘석류꽃’ (52년)·‘꽃속에 묻힌집’(58년) 산문집‘시와 도자’(75년)등 12권 제1회 중앙시조대상·제1회 노산문학상·제2회 충무시 문화상 등
  • 박물관 대학/이융조 충북대 박물관장(굄돌)

    우리 대학도‘박물관대학’이라는 사회교육 과정을 개설해 이제 3기가 거의 끝나간다.1기 때는 어떤 사람이 올까 하는 의구심이 관계자들을 불안하게 했지만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의 박물관대학 강사들이 알찬 강의를 진행해 지역 저명인사와 유지들이 많이 수강하였다. 우리 대학 전 총장,전 도의회 의장,전 부지사,도·시의원들을 비롯하여 우리 학교 교수들도 여러분 강의를 들었다.시어머니와 며느리,부부,동창생들 이같이 와서 들은뒤 갖는 식사 또는 차마시는 시간은 즐겁기만 하다. 게다가 될 수 있는한 강좌와 강사를 매년 새롭게 구성한 결과 1기부터 이번까지 3년을 잇따라 수강하는 사람들도 10명이 넘는다.2시간 반 강의를 들으려고 7∼8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오는 열성적인 수강생도 있다. 올해는 문화유산의 해를 맞이해 이에 동참하는 뜻으로 1학기에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2학기에는 중원지방의 역사와 문화라는 주제로 16주씩 강의를 했고 답사도 다녀왔다.과정이 끝나가는 것이 애석해서인지 ‘학생’들은 수료를 기념하는 답사를 하자고 해오는 15일에는 익산 미륵사지와 고창의 고인돌·선운사를 다녀오기로 계획을 짜놓았다. 이들은 앞으로 우리 전통문화의 파수꾼이 되고 홍보자가 될 것이기에 우리는 수료식에 동문들까지 초청해 새 동문을 맞이하는 상견례도 가질 예정이다.이같은 박물관대학 과정을 여러 대학교 박물관에서 개설해 우리 전통문화와 민족에의 자긍심을 높이는 올바른 교육을 한다면 우리도 머지않아 미국·일본에서 처럼 자원봉사자들이 우리 전통문화를 지키고 안내하는 그날이 멀지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절약 이렇게(경제위기 극복/우리 모두 나서자:10·끝)

    ◎신용카드 없애고 가계부 쓴다/백화점 가는 대신 할인매장 이용/해외여행·외국승용차 구입 취소/담배·음료도 외제 대신 국산 구입/자가용 운행 억제로 생활비 절감 회사원 문희정씨(30·삼성전관)는 지난 2일 자신이 갖고 있던 3장의 신용카드를 모두 없애 버렸다.최악의 경제난을 헤쳐나가려면 충동구매나 과다구매로 이어지기 쉬운 신용카드를 없애는게 우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자가용승용차도 특별한 날이 아니면 집에 그냥 세워둘 계획이다. 대학생 강태선양(23·숭실대 4년)은 지난 1일부터 용돈의 사용처를 꼼꼼히 메모를 한다.아르바이트를 하는 강양은 “메모를 하면서 따져보니 오락성경비 등을 줄이면 용돈을 30% 이상 줄일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회사원 이모씨(29·서울 동작구 사당동)는 지난달 말 정기휴가를 내 중국을 여행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그는 “5년전부터 매년 휴가 때마다 해외여행을 했지만 환율이 엄청나게 뛴데다 어려운 국가경제를 감안해 내년으로 미뤘다”고 설명했다. 경제위기를 이겨내려는 시민들의 ‘작은 지혜’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내핍의 고통쯤은 감수하겠다는 자세다.이른바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 운동도 사회 각계로 급속히 확산돼 가고 있다. 지난달 독일제 벤츠승용차를 사기로 계약했던 김종진씨(45·레저사업체운영)는 지난 3일 해약했다.“어려운 경제와 주위의 시선을 생각하니 차마비싼 외제차를 새로 살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서울 강남의 수입자동차판매업체 P사 관계자는 “최근들어 해약이 잇따라 업종전환을 고려중”이라고 말했다. 절약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백화점이나 수입품전문상점의 매출은 준 반면 할인매장의 매출은 증가했다. 수입상품이나 외국에 로열티를 주는 제품은 사소한 것이라도 사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크게 늘고 있다. 대형 할인매장인 킴스클럽의 판촉계장 박찬규씨(30)는 “19개 전국 지점에서 매상이 5% 정도 늘었다”면서 “외형상으로는 소폭이지만 시중백화점의 매상이 60∼70% 정도로 뚝 떨어진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매출 증가”라고 전했다. 회사원 이준영씨(30)는“줄곧 미제 담배를 피워왔지만 얼마전부터 국산담배로 바꾸었다”면서 “주스 한 병을 사더라도 순수 국산품만을 골라 사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기관의 절약운동도 본격화됐다.대검찰청은 지난 2일 전국 52개 지검·지청에 청사의 전기와 수돗물 등 물자를 절약하라는 긴급공문을 내려보냈다.대검은 청사의 실내온도를 평소보다 1∼2도 가량 낮추고 2개짜리 실내등은 한쪽만을 사용토록 했다. 검사들은 회식때 양주 대신 국산 술을 마시고 자가용 출·퇴근도 자제키로 했다.
  • 국수호디딤무용단/풍물소리와 춤의 어울림

    한국춤의 세계화를 기치로 전통춤 개발에 주력해온 국수호디딤무용단이 11월2일 하오7시 서울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풍물소리,춤’을 공연한다. ‘풍물소리,춤’은 지난 90년 5월 미국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서 첫 공연을 가진 이래 뉴욕공연을 거쳐 일본,중미 5개국,남미 베네수엘라,아시아의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 등 각국을 돌며 우리춤의 해외사절 역할을 톡톡히 해온 디딤무용단의 대표작.국내에서는 지난 90년 10월 대한민국무용제 초청공연과 올해 국립극장 야외무대를 통해 선보인 바 있지만 본공연을 통한 무대검증은 처음이다.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풍물소리와 춤을 한데 어우른 한 판의 신명나는 춤가락.전라 우도농악의 절차를 바탕으로 그 절차마다 사물의 가락과 춤의 가락을 내용이 같게 구성한 1시간 20분짜리 공연물이다.남녀 각 5명이 일으키는 사물의 바람과 정주·방울·요령·나팔·공·반고·소고·변죽 등의 소리,여기에 방울춤·신칼대신무·향발무·해탈·살풀이·소고춤 등 다양한 전통춤이 어울려 절묘한 조화를 이뤄낸다.출연자가 처음 등장하여 끝날 때까지 퇴장없이 공연이 이뤄지는 마당극형식의 춤이라는 점도 이번 공연의 큰 특징. 국수호 안무에 김평호·신미경·최주연 등 단원 10명이 출연하며 이번 공연에 이어 내년 5월에는 독일 문화의집 한국주간 행사에 정식초청을 받아 유럽나들이에도 나선다. 문의 421­4797.
  • 북미 현지생산 늘려 ‘차마찰’ 줄었다(해외사설)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던 미·일 정부의 미·일 자동차합의(95년 체결)의 실시상황 점검 회합을 요약하면 ‘미·일 자동차 마찰은 종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의 통상 관계자는 대일 무역적자 문제와 규제완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고 미 자동차 업계도 미제 차량의 대일 판매대수 감소에 불만을 품고 있다. 불씨가 있지만 마찰로까지 확대되지 않았던 것은 합의의 골자인 ‘일본 자동차 산업의 국제화와 현지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차의 대미수출은 10년 동안에 68% 감소,미제 자동차 부품 구입액은 5년 동안 2배나 늘어 2백20억달러.이 경향은 일본 제조업체의 북미 현지생산 확대로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도요타자동차를 예로 들면 북미에서의 생산능력이 96년도 실적의 약 80만대로부터 내년말에는 1백20만대가 된다.현재의 연간 대미수출대수가 40만대 남짓이지만 급격하게 줄어들 것이라고 이 회사 간부는 말한다. 닛산자동차 혼다기연공업도 똑같이 북미 생산을 확대한다.올해는 엔저로 미국 시장의 호조가 지속돼 일시적으로 수출이 늘고 있지만 내년 이후는 확실하게 줄어들 전망이다.일본은 미·일 합의시에 공표한 북미 생산계획을 웃도는 속도로 대미투자를 하고 있다. 또 하나의 공약인 일본 자동차시장의 개방에 대해서는 빅 스리(미국 자동차 3대 메이커)의 노력부족이라고 말할수 밖에 없다. 크라이슬러의 네온,GM의 새턴의 극단적인 판매 부진은 일본시장의 폐쇄성 이전의 문제다.도요타의 판매망으로 팔고 있는 GM의 캐벌리에는 차량가격에 필적하는 판촉비를 투입하고서도 전년 실적을 밑돈다. 폭스바겐의 일본시장에서의 성공을 거론할 것까지도 없다.소비자의 지향을 보다 빨리 파악하는 것이 승리자가 되는 것은 시장경제의 철칙이다. 미국의 주장에 정당성이 있는 것은 자동차 등록정보의 공개 등 규제완화의 추진이다.미국 업계보다는 일본 소비자의 이익 때문이다.차량검사 문제와 자동차 유통의 구조개혁 등도 일본이 솔선해서 해야할 과제다.그 때야말로 불씨가 꺼질 것이다.〈니혼 게이자이 10월12일〉
  • 기아그룹,제발등 찍었다/화의신청으로 사태 되레 악화

    ◎정부의 강경수 못읽고 무리수 일관/자동차사 마저 3자매각 위기 몰려 기아그룹의 화의신청은 결국 사태 해결을 꼬이게 만든 ‘자충수’로 드러나고 말았다. 결론이 나지는 않았지만 기아자동차를 회생시키고 나머지 계열사를 매각하기로 잠정 결정했던 당초의 채권은행단의 결정을 따랐더라면 기아자동차만은 정상화시킬수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그러나 이제는 기아자동차마저 법정관리를 통해 제3자 매각될 수 있는 상황에까지 몰리고 있다.이는 기아사태 처리에 대한 정부의 강경한 의지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기아그룹은 부도유예 만료 1주일 전인 지난 21일 일요일밤 사장단 회의를 열어 화의신청을 최후의 선택으로 결정했다.기아그룹의 한 관계자는 “은행관리는 채권단에서 난색을 표명하고 법정관리는 종금사쪽에서 위험성이 높다고 해 부도유예 만료 전에 여유를 남겨 놓고 선택할 수 있는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도 강경 대응으로 나왔다.부도유예 만료를 기다렸다면 신용평가기관의 평가대로 기아자동차와 종속 협력업체만큼은 법정관리를 피해 정상화하는 길을 모색할 수 있었을 것이다.그것은 진로그룹의 경우와 같이 김선홍회장의 퇴진을 전제로 한 자금지원과 같은 방식이 됐을 것으로 여겨진다.기아는 이같은 해결책을 받아들이기가 거북했을 것으로 보인다.김회장이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그룹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판단했음 직하다.기아가 화의를 택한 다른 이유는 진로그룹의 사례로 보아 화의 신청을 부도유예 만료 전에 하는 편이 기아에 유리할 것으로 판단을 한 때문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결국 화의신청은 오히려 역효과를 빚어 사실상 법정관리를 선택하라는 채권단의 최후통첩을 받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 나리양 유괴살해 현장검증 이모저모

    ◎전씨 “검거전 부모가 자살 권유”/극단 사무실서 범행재연하다 실신도/남편 최씨,공범가능성 철저수사 요구 17일 상오 2시간여에 걸쳐 실시된 박나리양 유괴 살해사건의 현장검증에는 수백명의 주민들이 몰려 끔직했던 당시 상황을 낱낱이 지켜보았다. 범인 전현주씨(28)는 “속죄할 수 있도록 죽게 해달라”고 시종일관 되뇌었다. ○…전씨는 이날 박양을 처음 만나 유괴했을 때처럼 검은색 멜빵 바지에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몽타주처럼 가지런히 머리를 빗어 넘겼으며 뿔테 안경을 착용해 초췌했던 검거 당시와는 달리 비교적 깔끔한 모습. 전씨는 시종 머리를 떨군 채 범행을 재연했으며 간간이 나즈막한 목소리로 형사들에게 범행 순간을 설명. ○…첫번째 검증현장인 서울 서초구 잠원동 킴스클럽 앞에서는 전씨의 남편 최모씨(34)가 갑자기 나타나 전씨에게 “사실대로 말해”라고 소리쳐 한때 술렁이기도.최씨는 “아내가 검거되기 전 수십 차례에 걸쳐 ‘자살하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고 전하고 “유서까지 남긴 사람이 남편에게마저 거짓말할리는 없다”면서 공범이 있을 가능성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주장.최씨에 따르면 전씨는 “공범들이 시키는대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는 것.하지만 경찰은 전씨가 남편 등 가족에게는 거짓말을 한 것이며 전씨의 단독범행이라고 거듭 확인. ○…비교적 담담하게 범행을 재연하던 전씨는 박양을 살해한 사당동 극단사무실에서는 흐느끼다 잠시 실신. 전씨는 나리양의 목을 조르는 장면에서는 나리양을 대신한 인형에 차마 손을 내밀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형사들의 손에 이끌려 인형의 목을 눌렀다. ○…전씨의 부모는 전씨가 붙잡히기에 앞서 딸이 연루된 사실을 눈치채고 “속죄하는 길은 자살뿐”이라며 세차례에 걸쳐 딸에게 자살을 종용했던 것으로 밝혀져 눈길. 전씨는 지난 15일 작성한 진술서에서 경찰이 친정집으로 여러차례 전화를 걸어오자 어머니가 지난 9일 자신의 집으로 찾아와 ‘행여 이 사건에 연루됐다면 자살을 해라.너를 사랑하는 엄마 아빠도 너를 따라 갈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을 써놓고 편히 가라’고 말했으며 이튿날인 10일에도 다시 찾아와 같은 말을 했다고 적었다. 전씨는 이에 따라 집 근처 약국에서 자살하려고 살충제를 구입했으나 경찰에 쫓기는 바람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 한가위 유감/김용상 연구위원(남풍북풍)

    올핸 곡식도 과일도 대풍이라 한다.추석 연휴도 4∼5일이나 된다.그래선지 이번 연휴중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 일가친척을 만나 정담을 나누기 위해 이동하는 사람이 무려 3천만명에 이를 것이라 한다.그러나 이산의 고통속에 살고 있는 실향민들은 명절때면 더욱 사무치는 외로움으로 가슴이 미어진다.고향에 한걸음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보려고 임진각을 찾기도 하고 갖가지 망향제 상품에 눈길을 돌리기도 한다.두만강가 도문과 압록강가 단동에서 망향제를 지내는 코스,북한의 무산과 가장 가까운 남평,회령과 가까운 삼합촌,자성과 가까운 노령 등을 찾는 맞춤코스 등 다양한 망향제 상품들은 고향과 가족을 그리는 실향민들의 애틋한 마음을 짐작케 해준다.한 실향민은 “북에 남은 가족들은 차례상은 커녕 끼니도 제대로 떼우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며 기어이 눈시울을 적셨다. 북녘 동포들에게 추석은 이름뿐인 명절이다.한때 ‘봉건잔재’라는 이유로 없어졌다가 88년에야 복권된 추석 휴일은 딱 하루뿐이다.그래서 묘소가 멀리 있으면 성묘조차 갈 수 없다.도를 벗어나면 여행증이 있어야 하는데다 당일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차례상도 떡 벌어지는 남한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초라하다.명태와 계란 절편 그리고 과일 몇가지가 고작이다.잘 사는 집이래야 삶은 돼지고기가 추가될 정도.그러나 이것도 식량난에 허덕이지 않았을때의 얘기지,지금은 명태 한마리에 과일 몇개로 차례를 올리는 집이 수두룩하단다.형편이 좋아지긴 커녕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니 그럴수 밖에 없을 것이다.최근 북한­중국 접경지역을 돌아보고 온 한 스님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강을 건너다 체력이 달려 숨진 사람이 부지기수였으며 내가 두만강가에서 직접 목격한 표류시체만도 11구나 됐다”고 증언했다.차마 듣기 민망한 참상이다.그러나 북한 당국은 여전히 딴전이다.총체적인 난국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인 개혁 개방을 외면한채 “위대한 김정일 동지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조선식 사회주의를 어떠한 역경속에서도 강화 발전시킨 것”이라는 등 한심한 선전선동놀이에만 열중하고 있다.주민들을 기아선상으로 몰아넣은게김정일의 업적이라는 건지,그저 기가 막힌다.
  • 절망에 빠진 유가족 실신 속출

    ◎처참하게 숨진 가족 시신사진 보고 충격/식사 거르고 악몽·수면부족 고통 등 호소 대한항공 801편 추락사고 사망자에 대한 사체확인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악몽과 수면부족 등 고통을 호소하는 유가족들이 늘고 있다. 식사를 거르고 잠을 이루지 못해 탈진 또는 쇼크로 실신하는 유가족도 적지 않다. ‘시신이라도 성했으면’했던 기대와는 달리 사진을 통해 차마 볼수 없을 만큼 처참하게 숨진 가족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로 변을 당한 광주시 동구의회 조진형 의원의 형 주형씨(39)는 “사진으로 뚜렷하게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기장과 부기장,여승무원 등 15명 정도일 뿐 나머지는 많이 상해 있었다”고 말했다. 10일 하오에는 한 여자 유족이 합동분양소에서 숨진 가족의 사진을 확인하고 외마디 비명과 함께 복도로 뛰쳐나가 실신하기도 했다. 11일 상오에도 사체 사진을 통해 딸의 죽음을 확인한 한 부모가 분향소에서 식사도 거른채 하염없이 흐느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괌한인회의 자원봉사자 이호영씨(49)는 “가족들의갑작스런 죽음으로 악몽과 절망감 등에 시달리는 유가족들이 많다”면서 “어떤 말로 유가족을 위로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때문에 퍼시픽 스타호텔 2층 분향소안에는 별도로 유족들을 위해 간단한 치료시설까지 마련됐다. 미 적십자 항공사고전담반 소속 50여명의 봉사대원들도 유족대책본부 앞과 분양소를 돌아다니며 유가족들을 상담하거나 물수건과 음료수를 나누어 주며 아픔을 같이하고 있다.
  • 심한 통증 호소에 가족들 ‘안절부절’/부상자 2차 후송 병원주변

    ◎약혼녀 사망 모른채 “신혼여행 비행기론 안가겠다” 9일 새벽 2차로 후송된 대한항공 추락사고 부상자 12명은 1차 송환자들과 달리 부상정도가 심각했으며 괌 현지병원 진료기록에는 없는 제2,제3의 통증을 호소했다. 이 때문에 가족들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1차 검진결과에 안도하면서도 “현지의 무더운 날씨로 상처가 빨리 곪거나 일손 부족으로 응급처치가 부실했던 것 같다”는 의료진의 설명에 분통을 터뜨렸다. 부상자 가족들은 생환자들과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으나 일부는 통증을 호소하는 부상자들의 모습에,또 일부는 불귀의 객이 된 동행자들의 참변을 떠올리곤 눈물을 훔쳤다. ○…삼성의료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홍성현 KBS보도국장의 부인 이재남씨(43·여·서울 서초구 서초1동)는 후송과정에서 “큰 딸 영실(17)이는 어떻게 됐느냐”고 되묻고는 가까운 가족이외 친지들의 면회조차 거절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사고 당시를 기억하고도 말하고도 싶지 않다”며 입을 다문 이씨는 8일 1차로 송환돼 같은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막내 화경양(15) 이외 남편과 첫째·둘째 딸을 한꺼번에 잃은 처참한 현실을 차마 수용할 수 없는듯 내내 눈을 감고 있다고 병원측은 전했다.화경양도 홍국장의 사망소식을 모른채 아직까지도 아빠를 애타게 찾고 있다는 것. ○…인하대병원에 이송된 승무원 손승희씨(24·여)는 왼손을 다쳐 붕대를 감았을 뿐 비교적 양호했으나 “살아남아 기쁘다는 생각보다는 승객들의 안전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게 죄송스러워 괴로운 마음을 떨칠수 없다”며 함께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대한 자책으로 괴로워했다. ○…국립의료원에 옮겨진 박성봉씨(26·중외제약 직원·서울 영등포구 신대방동)는 아직까지도 오는 11월22일 결혼예정이던 약혼녀 최연희씨(26·기아자동차 버스영업부)의 죽음을 모른채 “신혼 여행은 절대 비행기로 가지 않겠다”고 되뇌이자 병상을 지키던 박씨의 어머니가 남몰래 한숨.
  • KAL기 추락 참사­첫 공개된 참혹한 현장

    ◎기체 잔해는 거대한 숯덩이…/시커먼 동체안 곳곳 타버린 시신들/화염 피하려 몸부림 친 흔적 곳곳에/사흘간 방치… 숨 못쉴 역한냄새 진동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끔찍한 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두동강 난 잔해기의 동체 내부는 바싹 타버린 숯덩이처럼 완전히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잔해기 안에는 웅크리거나 엉긴채 시커멓게 타버린 시신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8일 유족대표 5명에게 공개된 사고현장은 30도를 웃도는 날씨속에 사흘동안 방치된 탓인지 숨조차 쉬기 어려울 정도의 역한 냄새가 진동했다. 태극마크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은 기체의 꼬리날개 부분안으로 들어서자 좌석에 앉아 있거나 웅크린 자세로 시꺼먼 타버린 시신 4구가 있었다.탑승객들이 남긴 구두들,여기저기 나뒹구는 의자,그위로 옷가지들이 찢겨진채 걸쳐 있었다. 기체 앞부분은 훨씬 더 참혹했다.온전한 시신은 하나도 없었으며 그저 ‘사람일 것’이라는 느낌만 들 정도로 심하게 훼손돼 있었다. 사고 당시 치솟는 화염을 피하기 위해 몸부림친 흔적이 곳곳에 뚜렷하게남아 있었다.자식을 껴안고 숨진 듯 비스듬히 쓰러진 두 형체,충격으로 몸체는 의자밑으로 비끌어지면서도 끝까지 좌석을 붙들고 숨진 모습은 당시의 처절했던 상황을 유추할 수 있게 했다.어떤 시신은 의자 사이에 끼어 있었고,무엇에 짓눌린듯 형체가 완전히 일그러진 시신도 눈에 띄였다.희생자들의 살점과 뼈도 잔해기 주변에 흩어져 있었다. 희생자들의 옷가지나 가방 등 유류품은 흔적조차 없었다. 현장에는 흰색 위생복을 입고 장갑과 마스크를 착용한 15명 가량의 미연방 교통안전위원회(NTSB) 소속 대원들이 조심스레 사진을 찍어가며 시신을 수습하고 있었다. 이날 상오 9시30분부터 20여분동안 자원봉사자 자격으로 현장을 방문한 정동남씨(44)는 “한 마디로 지옥에 들어선 느낌이었다“면서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한 참상이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 어떤 모정(외언내언)

    집채만한 트럭이 달려들며 순식간에 나락으로 구르던 그 순간에도 좁은 택시 뒷좌석에 공간을 만들어 어린 남매를 밀어넣고 자신의 몸으로 덮치는 위험을 버텨 아이들은 살게 하고 자신은 목숨을 던진 어머니.그 눈깜짝할 순식간에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놀랍고 위대한 이 살신의 모정이야기는 연일 30몇도를 오르내리는 찐가마솥 같은 더위를 잠깐 잊게 할 만했다. 그래서인지 모든 매체가 거의 모두 이 기사를 다루고 있다.그러나 생각해보면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이런 어머니 이야기는 이밖에도 많이 있을 것이다.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모정의 본능이기 때문에 모든 어머니는 그럴 준비가 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그러므로 이 일이 별일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다.그런 어머니를 예사로 빼앗아가는 우리 거리의 무법스러움과 비정이 새삼스레 분노스럽다. 트럭들은,덩치가 큰 트럭일수록 더욱이 거칠어서 곁을 지날때마다 빨려들어 역살당할 것 같은 불안을 느끼게 한다.폭주족이 날뛰는 고속도로도 아니고 밤이 깊어 달려대는 길도 아닌 대낮의 시내에서이런 사고가 생길만큼 난폭스럽고 거친 것이 우리의 운전문화다.별안간 쏟아진 비는 길을 미끄럽게 하여 사고나기가 아주 쉬운 법이지만 크고 무거운 차들일수록 이런때 속력을 더 낸다.이런 난폭운전을 집중 감독하는 것도 단속반이 할 일이지만 그런 기대는 할 수도 없다. 그러니까 이렇게 생명을 걸고 아이들을 지킬 각오가 되어있어야 하는 것이 우리네 어머니들이다.어머니들이 「내아이」를 지켜야할 일은 그 밖에도 너무 많다.학교 폭력에서 지켜야 하고 부당한 내신에서도 지키기위해 길에 나서서 투쟁해야 한다.유난히 자식위한 각오가 투철한 것이 우리 어머니들이기도 하다.어머니들의 그런 열정이 건설적이고 발전적인 것에 이바지하도록 사회가 안정되고 성숙했으면 오죽 좋겠는가.단란하고 행복한 가족에게 닥친 불행이 너무 가슴아프다.이 황당한 불행에 차마 눈을 못감았을 젊은 어머니의 영전에 명복을 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