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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버랜드 ‘티 익스프레스’ 체험

    에버랜드 ‘티 익스프레스’ 체험

    단언컨대, 이 놀이기구를 타는 3분 내내 차마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고 해서 ‘난 남자도 아냐.´란 자괴감에 빠질 이유는 전혀 없다. 목이 터져라 비명만 질렀다고 창피해 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에버랜드에서 14일 선보이는 이 전율스러운 놀이기구의 이름은 티 익스프레스. 육식공룡 티렉스(티라노 사우루스 렉스의 약칭)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녀석은 오금을 펴지 못할 정도의 스릴과 스피드로 ‘사나이 자존심´을 쥐락펴락하곤 했다. # 나무로 만든 롤러코스터… 승차감 “끝내줘요” 티 익스프레스는 철골 구조물로 제작된 일반 롤러 코스터와는 달리 차량의 바퀴와 레일을 제외한 전체가 나무로 만들어진 ‘우든 롤러 코스터(wooden roller coaster)´다.‘빈티지 스타일´의 1세대 롤러 코스터인 셈.‘낙하와 상승´이라는 롤러 코스터의 기본을 충실하게 구현했다. 우든 코스터의 가장 큰 장점은 탁월한 승차감에 있다. 스틸 코스터의 경우 한 번 타고 내려오면 온 몸이 욱신거렸던 것이 사실. 하지만 우든 코스터는 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안하다. 또 스틸 코스터가 레일을 비꼬거나 뒤집는 등 인공적인 조형미를 강조해 차가운 느낌을 주는 데 비해, 우든 코스터는 부드럽고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전 세계 테마파크 상위 50개 중 22곳에서 우든 코스터를 1개 이상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다. 편안한 승차감을 강조했다고는 하지만 ‘속도와 스릴´만은 결코 녹록지 않다. 나무 구조물 사이를 부딪힐 듯 지나며 느끼는 긴장감도 독특하다. # 세계 최고의 낙하각도 77도 ‘짜릿한 스릴감´ 최고 높이 56m(낙하 높이 46m)에서 날개없이 추락하는 듯한 티 익스프레스의 최초 낙하각도는 77도. 전 세계 170여개의 우든 코스터 중 가장 가파른 각도다. 맨 꼭대기에서 보면 거의 수직으로 떨어지는 듯하다. 최고시속 104㎞는 이 때 작성된다. 국내는 물론, 아시아에서도 가장 빠른 기록이다.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동안 g값(중력가속도) 또한 4.5g으로 최고조에 달한다. 바이킹(2g)등 놀이기구의 두 배가 넘고 F-16 전투기 조종사가 느끼는 6g에 맞먹는 수치다. 12번 맛보는 ‘에어타임(air time)´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엉덩이가 잠시 허공에 뜨는 무중력 상태를 이르는 말로, 롤러 코스터가 트랙을 따라 상승하다 꼭짓점에 다다를 때 느껴진다. 직선거리를 낙타의 등처럼 오르락 내리락하는 ‘카멜 백(camel back)코스´ 등에서 발생한다. 정리해보자.‘나이애가라 폭포 꼭대기 높이에서 앙코르와트 천상계단과 같은 각도를 이루며 치타가 먹이를 향해 질주하는 속도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 티 익스프레스다. 녀석을 더 짜릿하게 즐길 수 있는 팁. 절정의 스릴을 맛보려면 맨 뒷자리에 탈 것. 빠른 속도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뒷자리에 앉을수록 길어질 뿐 아니라, 가속도 또한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 하나. 자신의 담력을 시험해보고 싶다면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타볼 것. 어두울수록 속도감이 더해지기 때문에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라면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질 듯하다. # 스위스 인타민사에서 제작…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강조 스위스 인타민사(社)에서 제작한 티 익스프레스는 알프스 산맥의 관광 열차와 산악마을을 컨셉트로 개발됐다. 주변 자연환경과의 조화, 탁월한 경관미 등을 염두에 두고 제작했다는 것이 에버랜드 관계자의 설명이다. 철골 구조물이 아닌 나무를 주재료로 사용해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트랙 부분에는 9겹의 얇은 목재를 압축 성형해 특수 제작한 라미네이트 우드(Laminated Wood)라는 신소재를 활용했다. 기존 목재보다 7배의 강도를 지니고 있어 일반 목재와 달리 변형 및 파손이 적고, 소음과 진동이 대폭 줄어 탑승감과 안전성이 높아졌다. 구조물에 사용된 나무의 총 무게는 617t. 일렬로 세우면 110㎞에 달한다. 서울에서 천안까지의 거리와 비슷하다. 나무를 연결하는 데 들어간 볼트는 5만 개, 사용된 목재 블록 숫자는 4만 5000여개에 달한다. 에버랜드는 티 익스프레스 오픈에 맞춰 기존 알파인 지역을 스위스 풍의 알프스 마을로 리뉴얼한다. 탑승 순간을 찍은 ‘순간포착사진점´,SK 텔레콤 멤버십 고객들을 위한 ‘T 라운지´와 캐릭터 상품점 등도 마련해 놓았다. 승차 대기시간을 줄이려면 대기표를 미리 뽑아둔 다음 해당 시간에 방문해 바로 탑승할 수 있는 ‘큐패스(Q-Pass)´를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 글 사진 용인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서울광장] 검찰 더 겸손해져야 한다/오풍연 논설위원

    [서울광장] 검찰 더 겸손해져야 한다/오풍연 논설위원

    #장면1 1987년 늦가을. 전두환 정권 말기 몇몇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들과 자리를 함께한 적이 있다. 공안정국이 위세를 떨치던 때라 그들의 기세 또한 대단했다. 심지어 자기네끼리 의기만 투합하면 나라를 흔들(?) 수 있다는 생각도 은연중 내비쳤다. 당시 ‘공안검사’는 출세코스로 통했다. 그래서 많은 검사들이 줄을 대기 위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그러나 20여년이 지난 지금 그들 대부분은 검찰을 떠났다. #장면2 1992년 경제부처를 잠시 출입할 때다. 한 서기관이 아침에 나와 씩씩대며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전날 저녁 국내 최고명문인 K고 출신 동기들이 몇명 모였단다. 검사 출신 1명에 나머지는 대부분 행시 출신이었다고 했다. 일은 2차 술자리에서 벌어졌다. 검사 친구가 하도 오만불손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고 했다. 다른 동기들도 기분이 잔뜩 상해 다들 밤잠을 설쳤다고 전했다. #장면3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 초기 검사들과 자리를 함께했던 게 기억난다. 공중파로 방영돼 많은 사람들이 이를 지켜보았다. 전국에서 차출된 검사들은 현직 대통령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정제되지 않은 말들도 거침없이 쏟아냈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이제 막 가자는 것이죠.”라며 흥분하기도 했다. 검찰의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가 모두에게 실망만 안겨준 채 끝나 전파낭비라는 지적을 받았다. 그 뒤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검찰에 대한 대국민 이미지는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검찰을 수년간 출입한 터라 이런 얘기들을 들으면 마음이 편치 않다. 이는 아직도 국민위에 군림하려는 검사가 적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검사란 어떤 자리인가. 법과 절차에 따라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고 억울한 사람을 구제해 주는 것을 주임무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도 실상은 그렇지 않아 유감이다. 참고인 조사차 검찰을 방문한 사람들 대다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들의 오만함과 불손 때문이다. 이제는 검찰도 변화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던진 화두도 변화와 섬김의 정치다. 특히 섬기는 자세를 체득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을 섬겨 나라를 편안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해 12월 대통령 당선 이후 줄곧 주창해온 슬로건이다. 왜 국민을 섬겨야 하는지의 이유는 간단하다. 자세를 낮춰 국민을 받들어야 사랑받는 대통령이 된다는 확신이 선 까닭이다. 노 전 대통령이 검찰개혁을 이루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한 대목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앞으로 검찰이 해야 할 일도 보다 분명해졌다.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해 겸양(謙讓)의 미덕부터 길러야 한다. 얼마 전 류우익 대통령실장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당부했던 세가지 덕목을 벤치마킹해도 좋을 듯싶다. 힘과 욕망, 감정표출의 절제가 그것이다. 이를 검찰에 그대로 대입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권부(權府)의 사람들’이 지켜야 할 것을 정확히 짚었기 때문이다. 최근 물러난 검찰 고위인사도 “국민에게 겸손하고 절제된 자세를 보일 때 진정한 존경을 받을 수 있다.”고 되돌아봤다. 검찰은 지난 주말 검사장급 이상 인사를 단행했다. 진통을 겪은 탓인지 뒷말도 무성하다. 검찰의 변화된 모습을 다듬는 것은 김경한 법무장관과 임채진 검찰총장의 몫이다.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 [04일 TV 하이라이트]

    ●클래식 오디세이(KBS2 밤 12시45분) 새봄맞이 특집. 클래식 FM 진행자들의 ‘나의 클래식 이야기’. 국내 유일의 클래식 음악 전문 채널인 KBS1 FM을 대표하는 유정아, 정만섭, 이미선, 정준호 등 네 명의 라디오 진행자들이 클래식 음악에 얽힌 자신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그 곡의 연주 영상을 직접 소개하는 시간을 갖는다.   ●TV소설 아름다운 시절(KBS1 오전 7시50분) 진숙의 일로 순애와 말다툼을 벌이던 재범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안 될, 평생 가슴에 묻어두려 했던 말을 뱉어버리고 이에 순애는 큰 충격에 빠진다. 한편, 향숙을 찾아간 미자는 같이 데려 온 경화가 행방불명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명진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되는데….   ●다큐 人(EBS 오후 10시40분) 사고 때문에 경훈은 무릎을 절뚝거린다. 무릎을 또 다친 바람에 더 심난해진 경훈은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는다. 대통령 취임식 날, 드디어 희망의 무대에 오른 ‘라스트포원’. 자신들에게 무모하다며 차가운 시선을 보내던 세상사람들의 편견을 깨고 당당히 한국의 젊은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아 간다.   ●코끼리(MBC 오후 8시20분) 서로의 실체를 알지 못한 채 10년 동안 온라인으로 우정을 쌓아 가고 있는 ‘베르테르’ 영수와 ‘베르사이유의 장미’ 미경. 그들의 극적인 첫 만남이 시도된다. 한편,‘무엇이든 도와 드립니다’를 창업했지만 특별한 수입이 없는 복수와 국진.100원까지 수입을 철저하게 이등분을 하고, 빈 병 수거까지 하게 되는데….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6시30분) 낮잠을 잘 때도, 밤잠을 잘 때도 꼭 엄마의 등을 벗 삼아 자는 은아. 새벽에도 시도 때도 없이 깨서 업어달라며 엄마를 괴롭히는 어부바 공주. 업어달라고 보채고 업고 있다가 내려놓으면 바닥을 구르며 사생결단 떼쟁이로 변신한다.28개월 어부바 공주 은아의 어부바 탈출 프로젝트가 펼쳐진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40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성 가족 성당. 건축가 가우디의 필생의 역작으로 꼽히고 있고 지금도 계속 건축 중이다.1982년에 착공,91년부터 가우디가 공사에 들어갔고 그가 숨진 뒤에도 지금까지 공사가 계속되는 건축물. 성 가족 성당이 특별한 이유는 고전 건축과 현대 건축이 조화롭게 공존하기 때문이다.
  • [여성&남성]‘양성성’에 대한 단상

    [여성&남성]‘양성성’에 대한 단상

    “무슨 여자애가 저렇게 선머슴 같아?”, “남자가 계집애처럼 굴어서 되겠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자 같은 남자´, ‘남자 같은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이들은 전통적인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허무는 ‘비정상적인 집단´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성(性)의 경계가 조금씩 느슨해지고 ‘양성성(兩性性)이 유행을 타면서 이들에 대한 인식도 꽤나 부드러워졌다. 심지어 양성성을 ‘미덕´으로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동성들이 바라보는 ‘남자 같은 여자´, ‘여자 같은 남자´의 생각은 어떨까. 이들에 대한 여와 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내숭없는 그녀’ 멋진Girl ● “남성적인 여자 보면 지레 반감” 대학생 김모(23·여)씨는 일명 ‘여고-여대 라인´이다. 사춘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여성 공동체에 길들여지면서 온갖 유형의 여성들을 다 만나봤다. 여성성이 과도하게 부각되는 친구부터 역으로 남자 같은 여자들까지 못본 사람들이 없다. 이 가운데 김씨는 ‘남자 같은 여자´에 대해 고운 시선을 보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짧은 커트머리에 굵은 목소리, 행동에 터프함이 묻어나는 여자 아이들을 볼 때 왠지 어색하고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 “남자같이 행동하는 아이들은 대개 레즈비언인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남성적인 여자 아이들을 보면 지레 반감이 들더군요. 왜 자신의 여성성을 굳이 죽여 가며 남자인 양 행동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괜히 멋있는 척 구는 면도 있는 것 같고요.” 김씨는 최근 드라마에서 멋있게 비춰지는 ‘양성형 인간´에 대해서도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실제는 이와 크게 다르다고 말한다. “남자 같은 여자가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나온 은찬이(윤은혜 역)와 같다면 또 모르죠. 하지만 은찬이는 드라마 속 미화된 캐릭터일 뿐입니다. 전 정말 남자같이 행동하는 여자들이 이해가 안 돼요. 반감이 드는 게 사실이고요.” ● “여성성 무시하는 태도 이해 못해” 직장인 최모(25·여)씨도 남자 같은 여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최씨는 이들이 여성성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최씨는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남자 같은 여자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생겨났다. “회사에 남자 같은 여자 동료가 있는데 앙숙이에요. 그 동료는 저를 ‘과도하게 여성스러운 말투를 쓴다. ´며 비꼬는 투로 대합니다. 치마를 입고 온 날은 치마를 입었다고 비꼬고, 화장을 좀 진하게 한 날은 그럴 시간에 책이라도 한 장 더 보라고 충고해요.” 이럴 때마다 최씨는 어이가 없다. 이 때문에 회사 내에서 자존심이 상하는 경우도 많다. “왜 사사건건 제게 시비를 걸까요. 자신과 다르다고 매사 지적하는 그 동료를 이해할 수가 없어요. 편견일는지 모르겠지만 심리적으로 남성적인 여자들은 본인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여성스러운 여자들은 생각이 없다든지 우습다든지 약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해요. 저도 그런 여자 동기를 볼 때마다 괜히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어요. 상대하기도 싫어요.” 대학원생 박모(24·여)씨도 남성스러운 여성을 볼 때마다 ‘억지스럽다. ´는 느낌이 든다. 고등학교 시절엔 남자 같은 여자를 보면 쿨(Cool)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박씨는 대학생이 된 뒤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고 말한다. 같은 과 친구 중 유난히 남자같이 구는 여자 친구의 행동 때문이었다. 가끔 도를 넘는 행동으로 구설수에 자주 오르내렸다는 박씨의 친구. 친구의 억지스러운 행동은 주변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만들 때가 많았다. “1학년 때 대성리로 MT를 갔었어요. 장을 봐온 짐을 옮기는데 좀 무겁더라고요. 20명 정도 간 MT이니 얼마나 먹을 것이 많았겠어요. 약간 힘든 척을 했더니 대놓고 제게 욕을 하더라고요. 어이가 없었죠. 그러면서 보란 듯이 무리하게 많은 짐을 들고 몇 걸음 걸어가더군요. 제게 힘을 과시한 거죠. 몇분 뒤 힘이 부쳤는지 들고 있던 짐을 모두 땅에 내동댕이쳤어요. 죄 없는 계란만 다 깨뜨렸지 뭐예요.” ● “내숭女보다 터프女가 더 멋져요.” 직장인 노모(25·여)씨는 남자 같은 여자를 보면 개성 있어 보여 한편으로는 부럽다. 또 그런 그녀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노씨의 경우 보통 여자라고 하면 다소곳하고 머리가 긴 고정관념의 여성성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반면 남성성을 지닌 여성들은 적극적이고 활발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건강미도 있어 보이고 남과 다른 그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남자 같은 여자들이 건강해 보이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활발해 보이고 성격도 화끈해 보여요. 이런 점에서 이들이 무척 긍정적으로 보여요. 모든 여성들이 천편일률적으로 긴 생머리에 다소곳한 성격을 지녔다면 얼마나 지루하겠어요. 남자 같은 여자. 뭔가 개성 있어 보이고 독특하지 않나요?” 대학생 이모(22·여)씨는 자칭 ‘남성미 넘치는 여성´이다. 남들이 자신에 대해 뭐라 말하든 개의치 않는다. 이씨는 어린 시절부터 여성들의 내숭이 너무 싫었다. 별거 아닌 것에 호들갑을 떨고 힘이 넘치면서도 약한 척하는 여성들의 내숭이 싫었다. 무거운 짐도 일부러 더 들고 강해지려고 노력했다. “사실 남자 같은 제 자신에 대해 불만은 없어요. 주위 친구들도 많이 이해해 줘요. 여고를 나왔는데 학교 다닐 때 가끔 좋아한다는 친구들도 있었고요. 약간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냥 웃고 넘겼습니다. 외모 역시 말할 것도 없다. 이씨는 여성보단 남성 쪽에 가깝다. 헤어스타일이나 패션스타일이 어떠하냐에 따라 몸가짐도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급적 치마보다는 바지, 긴 머리보다는 짧은 컷 머리를 선호한다. “기계공학을 전공하는데 과 특성상 남자들이 많아요. 자연스레 어울려서 지내죠. 선배들에게 형이라고도 부르고요. 전 여성스러운 건 체질적으로 싫어해요. 그냥 털털하고 활발한 게 좋아요.” 직장인 강모(23·여)씨는 남자 같은 여자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남성미가 나는 여성은 괜히 당당해 보이고 멋져 보이기 때문이다. 왜소한 몸에 소극적인 성격을 지닌 자신과 대비돼 그저 부러울 뿐이다. 남성미 넘치는 여성들은 리더십도 있어 보인다. “왠지 그녀들의 남성성이 멋지지 않나요? 요즘은 양성성이 대세잖아요. 여성적인 측면과 남성적인 측면을 모두 갖고 있다면 분명 경쟁력이 있다고 봐요. 제 주변에도 남성적인 친구들이 많은데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요. 남성적인 여자에 대해 편견을 갖는 사람들이 일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옳지 않죠. 지금이 무슨 조선시대인가요?”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섬세한 감수성’ 男부럽군 ● “심리적 거부감 어쩔 수 없어” “여자 같은 남자들 보고 있으면 내가 다 민망해요. 아무리 마음을 열고 이해하려고 해도 심리적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대학생 김모(26)씨는 여자 같은 남자들을 차마 눈뜨고 지켜보기가 어렵다. 경북 경주의 보수적인 집안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란 김씨는 이런 사람들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비록 대학에서 여성학 수업도 들어보고 ‘오픈 마인드´를 가지려고 노력도 해 봤지만 아직은 쉽게 다가오지가 않는다. “아직 남자는 남자다워야 보기 좋아요. 남자가 여자처럼 굴면 왠지 뭔가 비정상적인 것 같고 그래서 멀리하게 돼요.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사실 그런 친구들 있으면 많이 놀려대기도 하잖아요.” 직장인 김모(27)씨도 마찬가지. 김씨도 여성스런 말투와 표정을 쓰고 슬픈 영화에 찔끔 눈물을 흘리는 남자들을 보면 ‘쟤 왜 저래. ´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제 아무리 남녀의 역할이 불분명해지고 있다지만 지킬 건 지켜야 한다는 게 김씨의 생각이다. “‘어머´, ‘웬일이니?´ 같은 여성적인 표현을 쓰는 남자들이 부쩍 많아졌어요. 사회가 변하고는 있지만 상대에게 거부감을 준다면 본인도 노력해 고쳐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요.” 특히 남성들이 많이 모인 집단에서는 ‘여자 같은 남자´에 대한 혐오감이 강하다. 남중(男中)과 남고(男高) 출신에 현역으로 군복무까지 마친 이모(26)씨는 ‘남자들의 소굴´을 경험하며 이들에 대한 적대감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한다. “고등학교 시절 여자 같은 남자애가 한 명 있었는데 모두 그 아이 흉내를 내기도 하고 놀림도 심했어요. ‘게이´라는 소문도 파다했고요. 나중에 그 아이와 진지하게 얘기를 해봤는데 상처를 꽤나 많이 받고 있었습니다.”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씨는 여자처럼 행동하는 구성원에 대한 언어 폭력은 정말 대단했다고 말한다. ‘이딴 녀석이 어떻게 군대를 들어왔냐. ´는 말부터 심한 욕설, 심지어 성희롱까지 벌어졌다. “군대란 조직이 원래 ‘남성성´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잖아요. 이런 틈바구니 속에서 여자 같은 행동과 감수성을 지닌 남자들이 살아남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 양성형 남성이 여자에게 인기가 좋다? 그러나 모든 남성들이 이들을 혐오의 눈길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갖추지 못한 ‘여성적 섬세함´이나 ‘부드러움´을 부러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대학원생 권모(27)씨에게는 친한 친구 가운데 ‘여자 같은 남자´가 있다. ‘어머!´라는 말투를 연발해 가끔 닭살(?)이 돋기는 하지만 부드러운 말투와 섬세한 감수성이 부럽다.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많더라고요. 물론 여자들도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다르겠지만 그 친구의 여성적인 말투와 행동, 그리고 부드러운 감수성을 좋게 보는 여자들이 많아요. 왠지 터프가이가 인기가 많을 것 같은데 요즘엔 이런 ‘양성형 인간´의 인기가 부쩍 치솟고 있는 느낌입니다.” 평소 무뚝뚝한 말투로 스스로를 ‘여자에게 인기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권씨는 이런 이유로 이 친구의 ‘여성스러움´을 흉내내고 있다. 보다 부드럽고 상냥하게 말하고 해맑은 웃음을 짓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자칭 ‘양성성 찬양론자´인 대학원생 김모(27)씨는 ‘남자다움´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주변에서 흔히 ‘남자답다. ´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의 특징을 종합해 보면 외적으로는 근육질 몸매에 큰 키, 내적으로는 통 크고 결단력도 있으며 여자를 휘어잡는 약간의 권위를 가진 사람, 또 윗사람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할 줄 알는 ‘시원스러움´과 ‘넉살´, 이런 것들로 종합되더군요.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과연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인간형일까요.” 김씨는 사람들이 좋게 보고 있는 ‘남성성´에 대해 불만이 많다. ‘남자답다. ´라는 개념이 ‘멋있다. ´라는 말과 등식처럼 이해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별로 멋있지 않은´ 인간형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저 사람 정말 남자야. ´라고 말할 때 어떤 사람인지를 관심있게 보면 비민주적이고 가부장적인 인간형인 경우가 많아요. 과거부터 남성스러움에 환호를 보냈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온 듯합니다. 그러나 현대사회가 권하는 ‘민주적 인간형´과는 충분한 차이가 있습니다. 양성성은 이러한 개념의 한계를 극복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 양성성은 남녀평등의 ‘밑거름´ 본인 스스로 ‘여자 같은 남자´라고 생각하는 직장인 김모(27)씨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별명이 ‘여자´였다. 놀림도 많이 받았고 이 때문에 상처도 컸다. 김씨는 이때 ‘안 되겠다. ´싶었다고 한다. 민감한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이런 자신의 모습이 너무 싫어졌기 때문이다. ‘남자답게´ 보이기 위해 태권도도 배웠고 욕설도 해대며 서서히 ‘남자다움´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춘기가 지나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 이런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실 시대도 많이 변했죠. 제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양성성´이란 말은 없었으니까요.” 김씨는 과거 왜곡된 남성성에 매몰된 채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려 노력했던 점이 후회스럽다. 남성과 여성의 장점을 고루 갖춘 사람으로 거듭날 기회를 스스로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많이 양성화되고 있습니다. 성역할도 많이 깨지고 있고 이에 따라 남성과 여성을 규정하는 제약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죠. 그러나 아직도 그 잔재는 남아 있어요. 특히 남성이 많이 모여 있는 집단에서는 ‘여성적인 남성´은 아직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군대가 대표적이죠. 특히 전통적으로 남성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크다 보니 의도하지 않게 여성성을 무시하는 경향도 있고요. 따라서 양성성은 남녀평등의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요.”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남아共 흑인학대 비디오 파문

    흑백통합정책을 펴고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엽기적인 인종차별 비디오로 인해 발칵 뒤집혔다. 백인 대학생들이 흑인 직원에게 소변을 갈긴 음식물을 먹이는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시위가 거세지고 대규모 폭력사태도 우려되고 있다. 27일(이하 현지시간) 남아공 SABC 등 현지언론과 CNN 등에 따르면 26일 공개된 문제의 비디오는 남아공 사법수도인 중부 내륙 블룸폰테인의 프리스테이트 대학(UFS)의 남학생 기숙사에서 지난해 9월 촬영된 것이다. 남자 백인 대학생 4명이 기숙사 행사인 묘기경쟁대회에서 남성 1명과 여성 4명 등 흑인 직원들을 데려다 차마 먹지 못할 음식물로 모욕을 주는 장면을 담고 있다.한 백인 대학생이 쇠고기 스튜가 담긴 그릇에 소변을 갈긴 뒤 흑인들에게 먹도록 강요하고 흑인들은 무릎을 꿇은 채 먹는다. 이들은 음식물을 삼키는 과정에서 구토를 하기도 했다. 화면의 마지막에는 아프리카어로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흑백)통합이다.”라는 내레이션이 깔린다. 학대를 당한 이들은 지난해 인종 통합 프로그램에 따라 이 학교 기숙사에 고용돼 일하고 있던 직원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동영상이 공개되자 27일 블룸폰테인에선 격앙한 흑인 대학생 400여명이 교내에서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강제진압했지만 남아공 전역에서는 항의가 빗발쳤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19) 경남 하동군 화개면 맥전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19) 경남 하동군 화개면 맥전마을

    화개면소재지에서 5㎞ 남짓 떨어진 맥전(麥田)은 ‘보리암’이라고도 불리는 모암마을에 편입된 곳이어서 보리 재배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러한 이름이 붙었다.‘화개면지’에 따르면 1936년 3월 큰 지진이 있었고, 같은 해 여름 홍수까지 덮치면서 산사태가 발생, 마을 전체가 흔적 없이 무너져 내린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밀쳐 없어진 동네라 하여 ‘미라태’라는 달갑지 않은 이름도 얻었다. 산사태의 악몽을 걷어내고 한두 호씩 마을을 재건해 한때 40호쯤 되었던 것이 지금은 8가구만 남았고 그나마 원주민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강 건너 구례에서 시집와 맥전 사람으로 60년을 넘게 산 박점순(84) 할머니가 뜨거운 물속에 자꾸만 찢어진 종이상자를 넣었다 빼낸다. 사찰 등에서 쓰고 남은 초를 녹인 물이라는데 이렇게 적셔서 말려두면 불쏘시개로 톡톡히 제 몫을 해낸다. 슬하에 자식도 없이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20년 넘게 홀로 사셨다는 박 할머니의 집은 아궁이 군불로 난방을 한다. 봄철엔 간간이 찻잎을 따지만 그것도 고질적인 관절 악화로 제대로 해낼 수가 없다. ●3대째 가업 잇는 ‘조태연가 죽로차’ 전에는 부식을 싣고 찾아온 용달차에서 찬거리를 사곤 했는데 요즘은 이 마을 사람들도 자가용을 타고 다녀 덩달아 부식차마저 들어오는 일이 드물어졌다. 버스 정류장까지는 쉬엄쉬엄 1시간 거리여서 시장에 나가는 일이 부쩍 힘에 부친다. 경치 좋고 조용한 이 마을도 박 할머니에겐 그저 적적하고 불편하고 어려운 것이 ‘쌔고 쌨지만’ 할 수 없이 사는 곳에 불과한 모양이다. 맥전에는 하동군 내에서도 내로라하는 녹차 명가가 있다.1962년 우리나라 최초로 녹차 상표를 낸 ‘조태연가(家) 죽로차’가 그곳. 녹차 재배는커녕 있는 차나무도 다 파내고 유실수를 심어댔던 반세기 전쯤 부산에서 차를 찾아 화개로 들어온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한다. 지금은 고 조태연옹의 손자 조윤석(37)씨가 3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촉각, 후각, 미각, 거기에 손재주며 눈썰미까지 제다인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데다 어려서부터 몸에 익은 환경이 현재의 그를 만들었다. 어린 윤석에게 찻잎 따기는 용돈벌이였고, 찻물은 동상에도, 감기에도, 배앓이에도 빠짐없이 쓰이던 만병통치약이었다. 처음엔 편찮은 어머니를 위해 일손을 돕는 것으로 출발했다. 녹차 상품 포장만 2년을 하다 하나씩 작업 과정을 배워갔다. 녹차를 더 알고 싶단 생각에 식품공학을 전공했고, 요즘은 대학원에서 자원식물개발을 공부 중이다. 좋은 원료를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기 위해서란다. 젊은 후계자는 녹차가 생산되지 않는 달엔 쑥, 감잎, 뽕잎, 연잎, 국화(감국), 구절초, 겨우살이 등을 활용한 차 만들기에 전념한다. 이런 대용차들도 몇 년간 선방 스님들의 시음 의견을 수렴한 후에야 상품으로 내놓는다. ●한정된 수량 100% 수작업 조태연가의 모든 차는 한정된 수량에 한해 100% 수작업만 한단다. 대량 생산을 할 경우 품질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45년을 이어온 브랜드 인지도를 떨어뜨릴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고. 조윤석씨에겐 두 명의 어린 자녀가 있다. 내심 둘째딸이 가업을 이어주길 바란다는 그는 차의 생성부터 완성까지를 꼼꼼히 기록한다. 그가 젊은 시절 겪었던 시행착오를 아이들에겐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다. 두툼한 작업일지 속엔 3대를 지나 4대로 이어질 지리산 야생차 비법이 그득하다. 아직 찻잎을 덖으려면 두어 달은 더 기다려야 하는데 이 댁 다실엔 벌써부터 찻잔 가득 봄 향기가 기지개를 켜는 듯하다. #가는 길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부산 서부 사상시외버스터미널 등에서 화개행 버스를 탈 수 있다. 전남 구례와 경남 하동의 중간 지점이므로 구례나 하동까지 온 다음 화개로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IC나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장수IC에서 남원으로 간 다음 19번 국도를 이용해 화개로 간다. 남해고속도로는 하동IC로 바로 진입한다. 맥전마을은 화개장터 삼거리에서 쌍계사 방향으로 진입해 5㎞쯤 직진해야 하는데 계곡 건너편 산기슭에 있다. 글·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 (www.emountain.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새/고선주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새/고선주

    새가 나무에 앉는 것은 하늘이 싫어서가 아니다 너무도 푸른 그곳에 차마 동선을 그릴 수 없어서다 새가 하늘을 나는 것은 땅이 싫어서가 아니다 새싹들이 자라는 그곳에 차마 발길질할 수 없어서다 하늘과 땅 땅과 하늘 보라, 새가 그 가운데를 타고 날아간다 <고선주 ‘새’>
  • [병자호란 다시 읽기] 곤혹스러운 상태가 지속되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곤혹스러운 상태가 지속되다

    조선이 후금과의 관계를 안정시키려면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했다.1630년 무렵부터 병자호란이 일어날 때까지 후금이 요구했던 핵심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자신들과의 교역에 성의를 보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도( 島)의 한인들을 받아들이지 말고 그들에게 물자를 공급하지도 말라는 것이었다. 특히 후자는 후금이 조선을 ‘평가’하는 핵심 관건으로 사실상 명과의 관계를 끊으라는 요구나 마찬가지였다. 인조정권은 곤혹스러웠다. 정묘호란 당시 조야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루어졌던 화친은 ‘명과 조선의 부자(父子) 관계만 유지할 수 있다면 후금과의 형제 관계는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북경으로 가는 육로가 끊긴 상황에서 조선과 명의 관계는 가도와의 왕래를 통해 유지되고 있었다. 바로 거기에 조선의 고민이 자리잡고 있었다. 가도는 모문룡 시절이래 내내 조선를 들볶았고, 조선 또한 ‘부자 관계의 상징’인 가도를 외면하지 못했다. ●영원한 애물단지, 가도 후금도 한동안은 양측의 관계를 묵인하는 듯이 보였다. 조선을 거쳐 가도에서 들어오는 명나라 물자가 필요했던 데다, 수군이 없는 상황에서는 가도를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금이 1629년 기사전역(己巳戰役),1631년 대릉하 전투 등을 통해 명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으면서 상황은 크게 변했다. 본토 방어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명은 가도에 대한 지원을 포기하다시피했고, 그 때문에 가도의 고립과 곤궁은 점점 더 깊어졌다. 그럴수록 가도의 한인들은 조선에 더 결사적으로 매달렸다. 가도를 이미 ‘손안에 들어온 물건(掌中之物)’이라고 여겼던 후금이 조선에 대해 압박의 강도를 높이는 것은 당연했다. 조선의 지원만 없다면 가도의 한인들은 대거 후금으로 투항할 것이고, 가도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가 되기 때문이었다. 가도가 무너진다면 후금은 얼마나 홀가분할 것인가. ‘뒤를 돌아보아야 할 걱정(後顧之憂)’ 없이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산해관으로 나아가 명과 최후의 결전을 벌일 수 있었다. 후금이 조선을 공격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에 대한 공격을 구상하면서 후금은 명이 자신들의 배후를 역습하는 상황을 우려했다. 하지만 산해관 바깥이 후금군에 의해 봉쇄된 상황에서 명의 육군이 움직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명이 조선을 지원하려 할 경우 천진(天津)이나 등래(登萊)에서 수군을 동원할 것이고, 명 수군은 분명 가도를 중간 거점으로 삼아 조선을 지원하거나 요동을 공격할 것이라는 것이 후금의 판단이었다. ‘가도를 내버려 두라.‘는 후금의 압박 속에서도 조선은 끝내 가도에 대한 은밀한 지원을 멈추지 못했다. 명과의 ‘부자관계’를 차마 끊지 못한 데다, 유사시 명의 지원을 끌어들일 수 있는 ‘거점’이라는 실낱같은 기대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 사정에 정통한 후금 조선은 가도에 대한 지원을 은밀하게 한다고 했지만 후금은 그 전말을 거의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 주된 이유는 조선 사람 가운데 후금과 내통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1632년 12월, 철산(鐵山)의 아전 이계립(李繼立)은 조선이 가도의 한인들에게 물자를 대주고 있다는 사실을 용골대에게 밀고했다. 후금 자체가 본래 첩보 활동에 뛰어난데다 청북 지역에 대한 조선의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언제든지 불거질 수 있는 일이었다. 이 같은 사정은 함경도 쪽에서도 비슷했다. 조선의 북변 거주자들과 호인들 사이의 교통을 통해서도 조선 정보가 새 나가고 있었다. 누르하치가 요동을 장악하기 이전부터 두만강 부근에서는 번호(蕃胡)라 불리는 호인들과 조선인들의 왕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번호들이 국경을 넘어와 조선인들을 납치해 가기도 했고, 그들 자신이 조선으로 귀순하기도 했다. 물론 강을 건너 여진 지역으로 도망가는 조선 사람들도 있었다. 누르하치가 두만강 유역의 번호들을 모두 평정한 뒤에도 양자의 접촉은 끊이지 않았다. 실제 1629년 11월의 ‘양경홍(梁景鴻) 역모’는 이 같은 접촉 배경에서 빚어진 사건이었다. 양경홍은 북인의 잔당으로 인조반정을 맞아 한옥(韓玉), 신상연(申尙淵), 이극규(李克揆), 정운백(鄭雲白) 등과 함께 경원(慶源)으로 귀양갔다. 양경홍 등은 현지에 살던 양사복(梁嗣福) 양계현(梁繼賢) 부자와 친하게 지내면서 그들을 이용하여 후금군을 끌어들여 모반을 시도했다고 한다. 양계현은 젊었을 때 포로가 되어 여진 지역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인물이었다. 공초(供招) 과정에서는 ‘정운백이 한윤(韓潤)에게 서신을 보내, 만약 오랑캐를 이끌고 오면 마땅히 앞장서 인도하고 투항하겠다.’고 했다는 진술이 나와 수사 담당자들을 놀라게 했다. 한윤은 이괄(李适)과 함께 반란을 주도했던 한명련(韓明璉)의 아들로 당시 후금에 망명 중이었다. 우습구나 삼각산아 (笑矣三角山) 옛 임금은 지금 어디 있나 (舊主今安在) 지난번에 강도 만나 (頃者遇强盜) 강화도에 가 있다네 (往在江華島) 수사 과정에서 공개된, 양경홍이 지었다는 시의 내용이다. 반정으로 쫓겨난 지 6년 이상이 지났지만 인조정권을 ‘강도’로 표현할 만큼 적개심이 여전히 높다. 사건 관련자들은 모두 처형되었지만, 조선 조정은 이 사건 이후 후금과 접촉한 경험이 있는 함경도 주민들의 동향에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후금은 실제로 평안도와 함경도 등지에 살던 불평 불만자들을 끌어들여 조선어 역관으로 활용했다. 양계현은 부친 양사복이 처형된 뒤에 후금으로 귀화하여 조선을 왕래하는 역관이 되었다. 양계현을 통해 조선의 민감한 내부 사정이 후금에 알려졌을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1630년대 조선을 드나들면서 악명이 높았던 중남(仲男), 정명수(鄭命壽) 등도 비슷한 계기로 역관이 되었다. 후금은 이래저래 조선 사정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 ●후금, 명을 흉내내기 시작하다 명을 능멸할 정도로 힘이 커진데다 조선 사정까지 훤하게 알고 있었던 후금의 요구 수준은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1632년 9월, 용골대는 추신사(秋信使) 박난영(朴蘭英)을 만났을 때 홍타이지의 ‘불만’ 사항을 전달했다.‘조선은 명의 사신이 오면 모든 관원이 말에서 내려 영접하면서 왜 후금 사신에게는 말 위에서 읍(揖)만 하느냐?’는 힐문이었다. 이제 후금 사신도 명 사신과 동동한 수준으로 영접하라는 요구였다. 1632년 10월에 왔던 후금 사신 만월개(滿月介)는 한 술 더 떴다. 그는 평양에 이르러, 조선이 후금에 보내는 예단(禮單)의 수량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고 불평을 늘어놓은 뒤 다시 명을 거론했다.‘명에는 봄가을의 사신말고도 성절사(聖節使)까지 보내면서 우리에게는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그는 더 나아가 ‘명 사신들을 접대할 때는 금은으로 된 그릇을 쓰면서 후금 사신들에게는 사기 그릇을 쓴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곧 이어 서울로 향하던 후금 사신 소도리(所道里) 일행은 봉황성(鳳凰城)에 이르러 ‘명사 수준으로 영접하지 않으면 조선 국경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비변사는 ‘부자관계와 형제관계가 같을 수는 없다.’고 설득하는 한편, 만월개 일행에게 푸짐한 선물을 안겼다. 어떻게든 명과 후금 사이에서 현상을 유지하려는 고육지책이었다. 1632년 무렵, 조선이 취한 대외정책은 일견 절묘했다. 명과 후금 모두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나름대로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조선은 삼국 관계에서 ‘독립변수’가 아니었다. 명이나 후금 어느 한쪽에서 문제가 불거지면 조선은 곧바로 ‘선택의 기로’로 내몰렸다.1632년 명에서 일어난 공유덕(孔有德)의 반란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였다.‘공유덕의 반란’ 때문에 조선과 후금의 관계는 다시 위기를 향해 치닫게 된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숭례문 복원 불붙은 논쟁] 숯덩이 하나도 소중… 굴삭기로 퍼 버리다니…

    재로 변한 기와와 목부재(木部材)를 빗자루로 쓸어 모아 굴삭기로 퍼담았다. 타다 남은 목부재는 트럭에 싣기 위해 톱으로 잘게 썰었다.600년 동안 숭례문을 지탱하던 나무가 순식간에 토막나는 순간이었다.13일 오후 숭례문 화재 현장 모습이다. 14일 문화유산연대 강찬석 대표와 함께 다시 찾은 현장은 그제서야 경찰 과학수사대의 지휘를 받아 처리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기와와 서까래 등 엄청난 양의 잔해가 서울 수색동과 경기 파주시 폐기물장에 버려진 뒤였다. 현장 감식으로 신원확인을 위한 유류품도 확인하기 전에 물청소를 해버린 대구 지하철화재참사 현장과 똑같았다. 시민들은 분노했다. 김광열(61·서울 도봉구)씨는 “우리 아이들이 보고 배울 게 있어야 하는데, 국상을 맞은 우리가 국보의 흙 한줌이라도 쓰레기 버리듯 하면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모(54·인천시)씨는 “전문가들이 현장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도 안 내렸는데 굴삭기가 들어간다는 게 말이 되나.”라고 반문했다. 1994년 유네스코 산하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일본 나라시에서 동양의 목조문화재에 대한 회의를 연 뒤 작성한 ‘나라 다큐먼트’에 따르면 문화유산의 판별 기준은 성분·재질·형상이 유사하거나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새로 지은 숭례문 건물은 이미 문화유산의 의미를 상실하는 셈이다. 화재현장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문화유산연대 김란기 집행위원장은 “타고 남은 숯이라도 원래의 나무가 우리의 문화유산인데 마구잡이로 폐기하는 몰상식한 짓을 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처리에만 열중했다.S건설사 장모(60) 사무소장은 “과학수사대의 지휘 아래 문화재청의 자문을 받아 잔해를 처리하고 있다.”면서 “숯덩이로 변해 의미가 없는 폐기물은 폐기물처리장으로 보내고, 타다 남은 목재나 의미있다고 판단되는 것들은 서울시가 마련한 별도의 장소로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하지만 그는 별도의 장소를 몰랐다. 강찬석 대표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유해를 그냥 버리나.”며 한숨을 내쉬었다.“잔해를 급하게 치우지 말고 현장을 보존하고 덧집을 씌워서 눈비에 의한 손상을 막은 뒤 문화재위원들이 현장을 지휘해 발굴조사를 해야 했는데….”그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림 하다드 지음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아랍·중동 지역에서의 분쟁은 끊이지 않지만 그 실상은 온전하게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다. 몇몇이 죽거나 다쳤다는 등 희생자의 숫자만 나열된 채 현장의 아픔과 목소리 그리고 이것들을 있게 한 원인은 번번이 묻혀 버리곤 한다.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림 하다드 지음, 박민희 옮김, 아시아네트워크 펴냄)는 2006년 ‘이스라엘-레바논 전쟁’을 실상 그대로 세상에 전한 기록이란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슬람 무장조직인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병사 2명을 납치하고 8명을 살해한 행위를 빌미로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공습,33일간 레바논인 5000명을 죽거나 다치게 하고 인구의 25%를 이재민으로 만든 전쟁의 생생하고 입체적인 증언이다. 레바논에서 태어나 미국 메릴랜드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한 뒤 귀국해 일간지 ‘데일리스타’ 기자로 일한 저자가 쏟아내는 증언들은 절규에 가깝다. 60년간 계속되는 중동분쟁을 관통하는 정치, 사회, 종교적 요소들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사람들의 영혼을 얼마나 무섭게 파괴해 가는지를 현지인들의 목소리에 얹어 실감나게 전한다. 살면서 세 번의 이스라엘 침공과 내전을 겪어야 했던 체험을 기자가 아닌, 두 아이의 어머니 입장에서 풀어낸 것이 큰 특징.“‘잠이 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폭탄이 우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어요.’ 열세살 난 생존자 누르 하셈이 말했다. 살아난 그녀의 어머니는 누르의 세 남동생을 찾으러 갔지만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주변의 누구도 차마 누르에게 말하지 못했다. 남동생 셋이 죽었다고….” 저자 자신의 헤즈볼라에 대한 감정 변화를 통해 미국·이스라엘에 대한 아랍의 증오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 주는 점도 흥미롭다.“헤즈볼라는 무슨 자격으로 우리를 이런 혼란 속으로 몰아넣는 거지? 도대체 왜 이스라엘 군인들을 납치했냐고. 레바논 상황이 막 다시 좋아지려는 이때에 왜? 왜? 왜?”“이스라엘의 공격은 헤즈볼라와 상관없다. 그것은 순수한 증오일 뿐이다. 순수한 복수심이다. 그들은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왔다.” 어느 종파와 정치 세력에 치우치지 않은 채 레바논에 고통을 가져다준 시오니스트, 혹은 기독교도 레바논인들에게 원망을 사는 헤즈볼라에게도 마음의 문을 여는 저자는 결국 이렇게 말한다.“내 소중한 아이들아, 앞으로는 달라질 수 있다고 믿자. 잊지 마라, 유대인도 아랍인도 서로를 증오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레바논과 이스라엘도 언젠가는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믿어라. 정의롭고 공정한 평화 말이다.” 1만 5000원.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미드’ 볼까 한국명작 볼까

    황금연휴는 드라마 마니아들에게도 ‘황금의 시간’이다. 특히 미드족을 겨냥해 한 작품을 연속으로 여러편 내보내는 ‘데이(Day) 특집’이 마련되는 등 채널 별로 색다른 드라마들이 가득하다. 먼저 MBC는 설특집 4부작 드라마 ‘쑥부쟁이’(7∼8일 오전 10시 35분)를 야심차게 기획했다. 쑥부쟁이는 유심히 보지 않으면 지나쳐 버리기 쉬운 들꽃으로, 드라마에서는 부모님의 사랑을 상징한다.아버지의 재산을 둘러싼 자식들의 갈등과 자신의 병을 차마 자식들에게 밝히지 못하는 아버지의 고민 등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전원일기’의 김정수 작가와 권이상 PD가 뭉친데다 권성덕, 김용림, 고두심, 박순천, 박은수, 이계인 등 ‘전원일기’ 멤버들이 대거 출연해 더욱 눈길을 끈다. FOX채널의 편성은 베스트 드라마 ‘종합선물세트’이다. 우선 지난해 화제를 모았던 미드와 영드 5편을 방영하는 등 물량공세를 펼친다. 심령수사극 ‘고스트 앤 크라임’, 인기 영국드라마 ‘닥터 후’, 신개념 추리 코미디 ‘명탐정 몽크’, 실화를 바탕으로 한 ‘성범죄 전담반’, 감각 스릴러 ‘덱스터’가 그들이다. 한국 대표 드라마 편성도 빼놓을 수 없다.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 ‘올인’(6∼10일 오전 6시), 핑크빛 스캔들 ‘프라하의 연인’(6∼10일 낮 12시), 박신양·김정은 주연의 ‘파리의 연인’(6∼10일 오후 5시) 등 화제작 3편을 만나볼 수 있다. 본방송을 놓쳐 안타까웠던 시청자들에겐 절호의 기회이다. 영화채널 OCN은 9일 오후 10시부터 11일 오전 2시까지 28시간 동안 ‘CSI’ 베스트 에피소드와 ‘CSI의 리얼리티 버전’이라 불리는 10부작 ‘머더’를 함께 내보낸다.‘머더’는 실제 살인사건을 소재로 일반인이 두 팀으로 나뉘어 범인을 찾는 대결을 펼치는 리얼리티 시리즈물. 드라마 ‘CSI’와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할 듯하다.수퍼액션은 `수퍼데이 6탄 수퍼내추럴 시즌2´(8일 오후 10시∼9일 오후 5시)를 19시간 동안 특집 방송한다.‘수퍼내추럴’은 심령 공포 드라마로 악마 사냥에 나선 형제 퇴마사의 이야기를 담았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추재기이/조수삼 지음

    ‘‘내 나무’는 나무를 파는 사람이다. 그는 나무를 팔면서 “나무 사시오!” 하지 않고,“내 나무!”라고만 했다.…나무를 사려는 사람이 없어 틈이 나면 길가에 앉아 품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바로 고본(古本) 경서(經書)였다.’ 이 사람은 몰락한 양반층의 지식인인 듯하다. 그래서 차마 다른 장사꾼들처럼 “나무 사시오!”라고 존대하지 못하고,“내 나무!”라고 하대함으로써 양반 선비의 마지막 체면을 세우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추재기이(秋齋紀異·조수삼 지음, 허경진 옮김, 서해문집 펴냄)’는 조선 후기 기이한 언행으로 장안에 이야깃거리가 되었던 인물 71명을 소개한 ‘저잣거리 열전’이라고 할 수 있다. 추재 조수삼(1762∼1849)은 화가로 유명한 조희룡이 ‘호산외기(壺山外記)’에 실은 ‘조수삼전’에서 그의 복 열두 가지를 들면서, 여덟 번째 복으로 담론을 들었을 만큼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다고 한다. ‘내 나무’에서 보듯 ‘추재기이’에는 신분질서가 무너지고 돈이 위세를 떨치기 시작하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 조선의 거리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 생생하다.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이상하고 신비스러운 이야기를 담은 전기(傳奇)를 읽어주는 늙은이를 그린 ‘전기수(傳奇)’의 주인공은 ‘숙향전’,‘심청전’,‘설인귀전’ 등을 외워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초하루는 (청계천의)첫째 다리, 초이틀에는 둘째다리에 앉고, 초사흘에는 이현(梨峴·청계천 4가 배오개다리 일대), 초나흘에는 교동 어귀, 초닷새에는 대사동 어귀, 초엿새에는 종루 앞에 앉는 식이었다. 그는 가장 재미있는 대목에 이르면 잠시 입을 다물었는데, 이때 사람들은 다투어 돈을 던졌다고 한다. 이를 요전법(邀錢法)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원숭이를 구경시켜 빌어먹는 거지와 거리에 앉아 소리를 하여 먹고 사는 장님 악사, 팔뚝만 한 검은돌을 맨주먹으로 깨는 차력사, 안경알을 가는 절름발이 노인 등 조선 후기의 거리 풍경이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95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4) 빨래터의 여자와 남자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4) 빨래터의 여자와 남자

    김홍도의 그림 ‘빨래터’다. 아낙네 몇이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 그림 왼쪽의 어린아이가 딸린 여성은 머리를 풀어헤쳐 감은 뒤 다시 땋고 있다. 앞에는 빗이 놓여 있다. 재미있는 것은, 어린아이다. 아랫도리를 홀랑 벗고 있는데 이놈은 심심한 것인지 배가 고픈 것인지 엄마 젖을 만지고 있다. 그 아래의 여성은 긴 빨래를 비틀어 짜면서 건져내고 있다. 그 오른쪽에 방망이질 하는 여성 둘이 무슨 이야기인지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빨래터는 온갖 수다가 난무하는 곳이 아닌가. 시누이 험담인가, 동서 험담인가, 아들 자랑인가, 건너 마을의 아무개 남편의 이야기인가. 우물과 빨래터는 여성들 고유의 일터이자, 수다판이다. ●여성의 일터이자 은밀한 이야기 나누는 곳 빨래는 밥짓기와 함께 여성노동에 속한다. 아니, 속하는 것이 아니라, 빨래와 밥짓기는 여성을 여성으로 규정하는, 좀 더 어렵게 말해 여성성을 규정하는 본질적 노동이다. 곧 밥과 빨래란 가사노동은 곧 여성이란 말과 등치된다. 밥짓기와 빨래가 언제부터 여성 노동으로 규정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아마 가부장제 사회가 성립하고부터가 아니었을까.1123년 고려에 왔던 송나라 사신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이렇게 말한다. 옷을 빨고 비단이나 베를 희게 말리는 것은 모두 부녀자의 일이다. 비록 밤낮으로 부지런히 일해도 감히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물을 파고 물을 긷는 것은 대개 시내 가까운 곳에 한다. 우물 위에는 두레박을 걸어 함지박에 물을 긷는다. 함지박은 배의 모양과 같다. 빨래는 오래 전부터 여성의 노동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고려나 조선이나 다를 것이 없다. 다만 조선의 여성은 고려의 여성에 비해 훨씬 부자유하였다. 지난 호에 말한 바와 같이 조선의 양반-남성들은, 여성의 외출을 금했다. 하지만 고려조의 여성은, 남편의 승진과 출세를 도모하기 위해 엽관운동을 하러 남편의 상관을 찾아가는 일도 가능했고, 굿을 하기 위해 신당을 찾거나, 불공을 올리기 위해 절을 찾을 수도 있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구경거리가 생겼을 때도 당연히 떳떳하게 외출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조선조가 들어서면서 여성의 외출은 금지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의 외출이 완전히 봉쇄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금지의 원칙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활동의 의지를 축소시켰던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남아 있는 여성의 합법적 탈출로, 곧 해방구는 우물과 빨래터였다. 그것은 힘든 노동의 공간이었으나 한편으로는 동네의 소식을 주고받고 은밀한 험담을 할 수도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그곳은 성적 담화가 가능한 해방의 공간이었다. 단원의 그림 오른쪽 위의 갓을 쓰고 쥘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양반, 이 양반의 자세는 분명 성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 사내의 포즈는 지난 호에서 소를 타고 길을 가던 여인의 얼굴을 훔쳐보던 그 사내의 포즈와 같다. 부채를 넘어서 보내는 눈길의 속내는 곧 남성의 성욕인 것이다. 빨래터 그림은 이것 말고 더 있다. 아래쪽의 그림은 신윤복의 그림 ‘빨래터의 사내’다. 개울가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는 여인, 흰 천을 펼치는 할미, 그리고 목욕을 마쳤는지 젖은 어여머리를 땋고 있는 젊은 여성이 있다. 이 젊은 여성은 저고리 아래 가슴을 드러내고 있다. 왼쪽의 젊고 늘씬한 몸매의 사내를 보라. 활과 화살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반이 분명하다. 이 사내의 눈길은 젊은 여성의 가슴에 꽂혀 있다. 우물가가 남성과 여성이 접촉하는 성적 공간인 것처럼 빨래터 역시 성적인 공간이다. 고려가요 ‘제위보’를 들어 우물가의 성적 접촉의 실례를 확인해 보자.‘고려사’에는 국문가사는 없어지고 이제현이 한시로 번역한 것이 남아 있는데, 이 노래의 사연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어떤 아낙이 죄를 지어 제위보에서 노역살이를 하던 중 남자에게 손을 잡혔는데, 씻을 방도가 없어 노래를 지어 자신을 원망했다. 이제현이 한시로 그 노래를 풀어 옮겼다. 빨래터 시냇가 수양버들 아래서 손을 잡고 자기 마음 말하던 흰 말 탄 그 사람 처마에 석 달 비가 내린다 해도 손 끝에 남은 향기 어찌 차마 씻을 수 있으리. 아낙이 지은 죄의 구체적 내용이야 알 길이 없지만, 아마도 애정에 관계된 것이 아니었을까. 어느 날 자신과 관계하던 남자가 빨래터에서 일을 하던 여자를 찾아왔다. 여자의 손을 잡고 사랑한다는 말을 털어놓는다. 남자는 이내 떠난다. 손끝에 남자의 체취가 남아 있다. 석 달 비가 쏟아진다 해도 씻을 수가 없다. 여자는 남자를 따라갈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럽다. 이처럼 빨래터는 남자와 여자의 성적 신호가 오가는 그런 공간이었던 것이다. ●황진이는 빨래터에서 만난 남녀의 작품 ‘제위보’는 이별을 노래한 것이지만, 빨래터에서 사랑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17세기 초 이덕형이 쓴 ‘송도기이’란 책은 개성에 관계된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거기에 황진이가 태어난 내력을 밝힌 부분이 있다. 이 이야기는 이덕형이 공무로 개성에 머무를 때 채록한 것이기에 당시 개성에 유포되어 있던 이야기다. 황진이의 어머니는 이름이 현금인데,18살에 병부교 다리 밑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웬 훤칠한 대장부 하나가 다리 위에서 나타나 현금을 보고 웃기도 하고 손으로 가리키기도 하는 것이 아닌가. 잘생긴 사내라, 현금의 마음도 적잖이 쏠리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사내는 갑자기 사라졌고, 빨래하던 아낙들도 모두 흩어졌다. 인적이 끊어지자 그 사내가 다시 나타나 기둥에 기대어 노래를 한 곡 뽑는다. 노래가 끝나자 사내는 현금에게 물을 한 잔 달랜다. 현금이 냉큼 물을 떠 주었더니, 반쯤 마시고 돌려주면서 마셔보라고 하였다. 현금이 마시자 물이 아닌 술이었다. 말하자면 마술을 동원한 ‘작업’이었던 바, 현금은 거기에 넘어가 사랑에 빠졌던 것이다. 황진이는 빨래터에서 만난 두 남녀의 작품이었다. 우물가에서 만나 왕비가 되었던 그런 이야기는 빨래터에도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은 빨래터에서 만난 여성과 관계하여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은 고려의 두 번째 왕이 된다. 왕건은 태봉의 궁예의 장수로서 903년 수군을 이끌고 후백제 땅인 나주를 공격한다. 목포에 배를 정박시키고 있는데, 멀리 오색 구름이 서린 동네가 보인다. 찾아가 보니, 어떤 처녀가 빨래를 하고 있다. 즉시 ‘신원조회’를 해 보니, 처녀의 할아버지는 부돈, 아버지는 다련군이란 사람이었다. 다련군이 사간 벼슬을 지낸 연위란 사람의 딸 덕교와 혼인해서 낳은 딸이 바로 이 처녀다. 뭐 이렇게 말해 보아야 감이 잡히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요약하자면, 그 여자는 그 지방 호족의 딸이었다. 보니, 인물이 괜찮다. 무슨 말로 수작을 걸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여자와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시집 안 간 처녀를 건드려 놓고 왕건은 여자의 출신 성분이 낮다 하여, 임신을 원하지 않았다. 해서 돗자리에다 사정을 한다. 그런데 이 처녀의 행동이 놀랍다. 여자는 전날 밤 용이 자신의 뱃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용은 곧 왕이 아닌가. 여자는 이불에 흘린 정액을 쓸어 넣었다. 일종의 인공수정인 셈인데, 어쨌거나 임신이 되었고 아들을 낳았으니, 그가 바로 혜종이다. 혜종은 특이하게도 얼굴에 돗자리 무늬가 있었다. 원래 왕건이 사정한 곳이 돗자리였으니, 말이 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혜종을 ‘돗자리 대왕’이란 이름으로 불렀다 한다. 빨래터는 용흥사란 절이 되었다. 용흥은 용이 나타났다는 뜻이다.‘고려사’는 혜종이 용의 아들답게 늘 물을 잠자리에 뿌리고, 큰 병에 물을 담아 팔꿈치를 씻었다고 전한다. ●남성이 성적 욕망 따라 여성 관찰하던 곳 이제 빨래터가 단지 옷을 세탁하는 공간만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빨래터는 남성이 자신의 성적 욕망이 시키는 바에 따라 여러 여성들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었으며, 또 여성은 자신의 나신 일부를 슬쩍 남자들에게 보일 수 있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단원과 혜원의 빨래터 그림에 남자가 등장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16) 전북 남원시 산내면 팔랑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16) 전북 남원시 산내면 팔랑마을

    텐트를 흔드는 빗소리 때문에 밤새 잠을 설치고 새벽녘에야 잠시 밖으로 나선 적이 있다. 그때 본 바래봉(1165m)은 하나의 섬이었다. 천왕봉까지 이어진 경쾌한 능선 사이로 파도처럼 일렁였던 구름, 해초같이 흔들렸던 철쭉, 그리고 바다에 우뚝 선 외딴 섬인 양 안개에 젖어 있던 봉우리. 겨우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카메라를 들었을 땐 이미 모든 풍경이 쓸쓸히 떠나버린 후였다. 그날의 바래봉은 전설처럼 아득하다. 지금 그 곳 앙상한 나뭇가지엔 겨울 한철 찬바람뿐이겠지만 가지마다 붉은 꽃잎으로 화할 5월이면 팔랑마을도 등산객들의 꽃무리로 복작복작 활기를 띨 것이다. ●5월이면 꽃구경 온 등산객들로 북적 얼추 700고지. 따라서 바래봉 산행은 벌써 절반쯤 끝낸 셈이다. 정확히 팔랑마을을 출발한 산길은 바래봉에서 남쪽으로 1.5㎞ 진행한 팔랑치(1010m)로 가 닿는다. 기실 ‘바래봉 철쭉’은 팔랑치 철쭉을 말하는 것인데 바래봉 능선에서 철쭉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 팔랑치 인근이기 때문이다. 팔랑마을은 그 팔랑치 아래에 있다. 걸음걸이로 치자면 약 50분 거리다. 행정구역상 전라북도 남원시이지만 경상남도 함양군이 약 6㎞, 전라남도 구례군은 약 7㎞로 삼도가 적절한 간격으로 어우러졌다. 한자로는 여덟팔(八) 사내랑(郞) 자를 쓰며, 이름 그대로 아들을 많이 낳는 마을로 통한다. 건물 수는 훨씬 더 많지만 실제 팔랑의 거주 호수는 7가구로 단출하다. 한때는 초등학교 분교가 들어설 만큼 사람이 많았는데,1968년 1·21 청와대 습격사건으로 지리산 인근의 독가촌들을 모두 이전하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고사리, 꿀, 산나물, 송이 채취에 민박까지 겸한다. 남원시의 지원 하에 민박마을로 돌아선 건 20년 전쯤. 전엔 농사도 제법 일궜다지만 멧돼지 때문에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1년 내내 수고를 해도 하룻밤 습격으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그것이 또 주민들이 마을을 버린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렇게 떠난 사람들 중 일부가 다시 팔랑으로 돌아와 정착했지만 ‘가나안농산(063-636-3553)’ 김재문(57)씨 댁은 차마 고향을 버리지 못했다고 한다. 벌써 4대째 살고 있는 땅이다. 김씨는 군 생활 34개월을 제외하곤 단 한 번도 이 마을을 떠나본 적이 없다. ●고사리·꿀 채취… 민박으로 더 유명 6년 전쯤 민박집을 새로 지었지만 정작 손님들에게 인기 있는 곳은 대대로 살았던 아궁이 흙집이다. 여름엔 추워서 반팔을 입고 온 이들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지낼 정도라고 한다. 당연히 모기도 없다. 요즘 같은 계절엔 민박이나 산나물 채취 일을 잠시 놓아 두고 여행이라도 다니면 좋을 텐데 “여기처럼 좋은 곳이 없는데 나가서 뭔 고생이오.”라며 손사래를 친다. 며칠 전쯤 바래봉 어깨 너머로 많은 눈이 내렸다. 지리산 서북릉 기슭이어서 눈이 많은 마을이다. 자고나면 30㎝씩 쌓여 있다. 김씨의 표현대로라면 “엄청나게 내리는 눈”이다. 폭설 시엔 산내면자율방범대에서 트랙터로 길을 내줘 통행이 가능하다. 할 줄 모르는 인터넷도 지난해 개통됐다. 다만 이곳 역시 유선이 들어오지 않아 비싼 값을 주고 TV 시청을 해야 한다고. 당분간 감내해야 할 산마을의 불편이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www.emountain.co.kr) ■ 가는 길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함양분기점에서 남원 방향으로 가다가 지리산IC로 나간다. 대구나 광주 역시 88고속도로 지리산IC로 진입하면 편하고 부산에서는 진주∼함양을 거쳐 남원시 인월면에서 뱀사골 쪽으로 들어선다. 팔랑마을은 861번 도로에서 약 2㎞ 지점으로 시멘트 포장길 가장 끝 지점이다. 버스는 남원이나 함양으로 간 다음 인월에서 뱀사골이나 달궁행을 타고 갈 수 있다.
  • [환경·생명] 녹색교통 ‘카셰어링’ 시대 열린다

    [환경·생명] 녹색교통 ‘카셰어링’ 시대 열린다

    2012년 1월, 회사원 장모(32)씨는 부산 출장을 위해 더 이상 서울에서부터 차를 가져가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KTX 부산역에서 내린 뒤 역 앞 카셰어링 서비스 공용 주차장에서 원하는 차를 타고 업무를 본 뒤 반납하면 되기 때문이다. 예전의 렌터카 같았으면 최소한 하루를 빌려야 했다. 하지만 카셰어링 차량에는 시스템 단말기가 갖춰져 있어 사용한 시간만큼만 요금을 내면 된다. 시간과 비용을 동시에 아낄 수 있어 장씨는 이 서비스에 만족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와 살인적 고유가로 자동차 이용을 줄여야 한다는 경고가 확산되는 가운데 올해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자가용 한대를 여럿이 나눠 사용하는 ‘카셰어링’(자동차 나눠타기)서비스가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본격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서비스가 활성화되면 환경과 경제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국민들의 인식 개선과 제도 보완 등의 과제도 적지 않다. ●올해 공공기관 중심 서비스 시작 장기간 특정인이 독점해 사용하는 ‘렌트(rent)’나 ‘리스(lease)’와 달리 카셰어링은 하루에도 몇 번씩 본인이 필요할 때만 차를 빌릴 수 있다. 그 만큼 개인 차량 수요를 줄이는 장점이 있다. 도심 교통체증을 완화시켜 배기가스량도 줄여 준다. 보통 카셰어링 자동차 한대가 승용차 7∼10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친환경적 교통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1987년 스위스에서 첫 시행된 뒤로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활성화되고 있다. 전 세계 이용자수만 해도 100만명이 넘는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카셰어링 회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자동차 10년타기 시민연합 임기상 대표는 “우리나라 운전자의 하루 자가용 이용패턴과 자동차 내구성을 감안할 때 운전자 세명당 자가용 한대만 있어도 충분하다.”면서 “카셰어링이 자가용 수요를 어느 정도 흡수해줄 경우 대기 오염 예방과 에너지 비용 절감 효과가 상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걸음마 단계 다양한 혜택을 앞세워 수많은 이용객을 확보한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이제 막 서비스가 소개되는 단계다.SK에너지의 ‘카티즌’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회사 법인차량을 주중 근무시간(09∼17시) 이외의 시간에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알선하고 있다.1600㏄ 아반떼의 경우 월 유지비가 10만원(유류비 제외) 정도로 같은 차량을 직접소유할 때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업체측은 “법인 영업차량 등에 카셰어링 시스템을 적용하면 보통 차량 수요가 20∼30% 줄어든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은 지난해 10월부터 비영리 목적의 ‘자동차두레’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6가구가 1500㏄ 아반떼를 함께 사용하는데 연간 유지비는 가구당 20만원(유류비 별도) 정도 든다. 마포두레생협 이경란 이사는 “카셰어링을 시작하면서 각 가정의 ‘세컨드 카’ 수요가 사라졌다.”면서 “차량 한대를 여럿이 나눠쓰다 보니 자연스레 불필요한 자동차 이용도 줄어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부도 지난해 말 국가청정지원센터를 통해 카셰어링 서비스에 대한 환경적·경제적 분석을 마치고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서비스 도입을 검토 중이다. 녹색연합 부설 녹색사회연구소 정선미 연구원은 “이르면 올 초부터 몇몇 국가기관들이 시민단체와 연계해 본격적인 카셰어링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라며 “공공기관 서비스가 성공하면 1∼2년 뒤 지하철 역과 아파트단지 등을 중심으로 일반인 상대의 카셰어링 서비스도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등기문화´ 개선·각종 제도 정비 시급 원칙적으로는 카셰어링에 공감해도 실제로 남과 차를 나눠타는 것을 꺼리는 이들이 많은 게 사실. 그동안 국내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카셰어링 서비스가 번번이 실패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부 렌터카 업체들은 이미 전국적 규모의 카셰어링 인프라를 갖춰 놓고도 국민들의 인식이 미치지 못하자 발만 구르고 있다. 임기상 대표는 “우리나라 국민들은 ‘빌리면 격이 떨어지므로 뭐든지 자기 소유여야 한다.’는 이른바 ‘등기문화’ 의식이 강하다.”면서 “이동 수단인 자동차마저도 부(富)와 신분의 상징으로 여기기 때문에 카셰어링 서비스 도입이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카셰어링 서비스 시행을 위한 보험·세제상의 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도 문제다. SK카티즌 임종률 팀장은 “대중교통 수단과 경쟁해야 하는 카셰어링은 수익이 크지 않은 상품이기 때문에 당국이 환경적 차원에서 업체에 공영 주차장 무료 사용이나 보험료 절감 등 혜택을 줘야 한다.”고 제시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54) 후금,조선에 배(船)를 요구하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54) 후금,조선에 배(船)를 요구하다

    정묘호란이 끝난 뒤부터 병자호란이 일어날 때까지 조선과 후금의 관계는 아슬아슬했다. 조선은 후금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바로 명과 가도라는 바깥 변수 때문이었다. 유흥치가 피살된 뒤, 가도를 탈출하여 후금으로 귀순한 자들 가운데는 홍타이지에게 가도를 빼앗을 기회가 왔다고 부추기는 자들이 있었다. 홍타이지는 그럴듯하게 여겼고 그 파장은 곧바로 조선으로 밀려들었다. 1631년(인조 9) 6월8일, 평안병사 유림(柳琳)이 보낸 장계가 조정에 도착했다. 호차(胡差) 중남(仲男)과 아지호(阿之好) 등이 군사 1만명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와 가산(嘉山)의 서쪽 지역을 차단했다는 소식이었다. 같은 날 도착한 장계에서 평안감사 민성휘(閔聖徽)는 ‘호인들이 조선에서 배를 빌려 가도를 습격하려 한다.’고 보고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주변 고을의 수령들과 장수들을 불러모아 방어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보고했다. 소식을 접한 비변사는 ‘부원수 정충신(鄭忠信)을 평안도로 보내고 금군(禁軍)과 포수(砲手)를 평양으로 파견하고 황해도의 병력도 동원하라.’고 건의했다. 정묘호란 이후, 이렇게 많은 수의 후금군이 압록강을 건너온 적은 없었다. 그것은 사실상 침략이었다. 다만 그들은 남쪽으로 내려오지 않고 배를 빌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인조는 황급히 비변사 신료들을 불러모았다. 영의정 오윤겸(吳允謙)은, 후금군이 배를 빌려 가도를 습격하려는 목적에서 침략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명에 대한 의리를 고려할 때 배를 빌려줄 수는 없다며 속히 황해도를 비롯한 각도의 군사들을 동원하라고 촉구했다. 최명길의 분석은 좀 달랐다. 그는 후금군이 쳐들어 온 것은 조정을 협박하여 식량을 구하려는 수작이라고 보았다. 최명길은 후금군이 깊숙이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군사 징발 때문에 민심을 소란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6월10일 호차 중남이 홍타이지가 보낸 국서를 갖고 서울로 올라왔다. 홍타이지가 보낸 편지는 조선에 대한 불만과 비난으로 가득 차 있었다. 홍타이지는 먼저 ‘조선이 양곡을 주는 바람에 가도가 존속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어 조선이 용천, 철산 지역의 땅을 가도 주민들에게 경작지로 제공하고 있는 것을 비난했다. 그는 정묘호란 당시 서울 이북 지역을 차지할 수 있었음에도 반환했음을 상기시킨 뒤 조선은 그럼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홍타이지는 ‘잘못을 사과하는 차원에서 배를 빌려 달라.’고 요구했다. 배를 빌려주기 않으면 의주와 철산을 점령하겠다고 위협했다. 중남이 입경한 그날, 명에서 온 사절도 서울로 들어왔다. 등래순무 손원화(孫元化)가 보낸 도사(都司) 왕순신(王舜臣)과 이매(李梅) 두 사람이었다. 그들은 인조를 만났을 때 조총, 구리 냄비와 배 100척을 구입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공교롭게도 명 사절들도 배를 내놓으라고 요구한 것이다. 당시 손원화는 바람 잘날 없는 가도의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배가 필요했다. 그는 조선에서 배를 구입하여 섬 안에 있는 인원과 전마(戰馬), 군수 물자 등을 등래(登萊) 지역으로 수송하려고 했던 것이다. 손원화의 요구는 조선에게 무척 버거운 것이었다.100척이나 되는 배를 새로 건조하기도 어렵고, 각 지역의 화물선들을 갑자기 차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또 섣불리 배를 주겠다고 약속했다가 후금이 알게 될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조선 조정은 결국 배를 제공하라는 요구는 완곡히 거부했다. 대신 조총 500자루와 구리 냄비 100개를 보내겠다고 확약했다. 명에 대해서는 참으로 충성스런 조선이었다. 청북 지역에 후금군 1만명이 주둔해 있고, 호차가 서울에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 명 사절들에게 조총 500자루를 주겠다고 약속한 것은 분명 아슬아슬한 모험이었다. 조정은 실제로 왕순신 등이 중남과 조우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심초사해야 했다. 중남 또한 배를 빌려줄지 여부를 빨리 밝히라고 닦달했다. 조정은 중남에게 ‘명은 우리의 부모 나라이므로 너희에게 배를 빌려주는 것은 천륜을 저버리는 것이다. 부자(父子) 사이에 차마 못할 짓을 할 경우 형제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잔인하게 명을 저버리면 뒷날 너의 나라로부터도 의심을 받을 것’이라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의리와 천륜을 강조하여 중남의 ‘심금을 울려 보려는’ 의도였다. 그러면서 후금군의 침략을 비난하고,‘형제 사이의 의리를 생각해서 며칠분의 군량을 제공할 것이니 빨리 철수하라.’고 촉구했다. 배를 빌려줄 수 없다고 하자 중남 일행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조정은 접대하는 신료를 보내 그들을 달래서 다시 데리고 들어왔다. 그들에게 성대한 연회를 베풀어 회유했지만 중남 등은 배를 빌려 달라는 요구를 접지 않았다. 조선 측이 다시 거부하자 중남 일행은 다시 일어나 귀국하겠다고 나가버렸다. 조정은 다시 사람을 보내 이미 녹번동까지 가 있던 중남 일행을 달래야만 했다. 후금은 왜 배를 빌려달라고 요구했을까? 당시까지 후금은 바다에서 작전할 수 있는 수군 전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요하(遼河)와 같은 내륙 지역의 강에서 운항할 수 있는 작은 규모의 배들은 있었지만 그것을 갖고 바다로 나가기는 어려웠다. 무엇보다 바다에서 배를 조종하고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수군 병력이 없었다. 후금에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그들의 육군은 철기(鐵騎)라 불릴 정도로 막강했지만 바다나 수군과 관련해서는 이야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철산의 바로 코앞에 있는 가도에서 모문룡이 ‘발호’를 해도 수군이 없는 상황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모문룡은 바로 그 같은 후금의 약점을 파고들어 8년 가까이 ‘해외 천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이다. 후금은 조선의 수군과 항해술에 대해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홍타이지는 심지어 ‘조선 수군이 명 수군보다 강하다.’라고 인식했다. 따라서 조선에서 배와 수군을 빌리면 자신들의 전력은 배가될 수 있다고 보았다. 수군만 있으면 코앞에 있는 가도를 점령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후금의 서쪽을 철옹성처럼 막아 버티고 있는 산해관도 해로로 공격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수군이 강한 나라’로 인식되었다. 왜란 초반 조선 육군은 연전연패했지만 수군은 달랐다. 일본군의 서해 진출을 막아 그들의 수륙병진(水陸竝進) 전략을 좌절시킴으로써 궁극에는 명의 안보까지도 지켜낸 것이 조선 수군이었다. 이순신(李舜臣)의 탁월한 영도와 거북선 등 조선 전함들의 활약상은 명 관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1626년 조선에 왔던 명사 강왈광(姜曰廣)은 ‘조선 사람들이 배를 조종하는 것은 빠르기가 비바람이 몰아치는 것 같다. 만일 그들이 오랑캐에게 넘어가 오랑캐들이 조선 수군을 이끌고 쳐들어온다면 산동이나 강남 지방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명청 교체기 명 관인들이 조선의 향배와 관련하여 가장 크게 우려했던 대목이 바로 수군이었다. 조선 또한 명과 후금의 대결 상황에서 ‘수군 문제’가 갖는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후금의 강요대로 배나 수군을 제공할 경우, 가도가 곧바로 위험에 처하고 산해관을 비롯한 명의 내지까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후금에 배를 넘겨주는 것은 ‘부모의 나라’에 비수를 꽂는 것이었다.1631년 6월, 배 때문에 명과 후금 모두로부터 ‘코너에 몰려야 했던’ 조선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프로배구 V-리그]아깝다 한전

    스포츠 현장에서 승자의 웃음이 늘 기분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겨 놓고도 때로는 허탈감에, 때로는 차마 울 수도 없는 절망감에 어색하게 짓는 그것일 수도 있다.8일 프로배구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의 씁쓸한 웃음이 그런 경우였다. 한때 남자코트를 호령한 뒤 이젠 ‘이 빠진 호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이번 시즌 단 1패에 그치며 ‘약골’임을 단호히 거부하던 삼성이었지만 이날은 달랐다. 감독부터 18명의 선수들까지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삼성이 수원에서 벌어진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원정경기에서 약체 한국전력에 풀세트까지 끌려 가는 등 혼쭐이 난 끝에 3-2로 진땀승을 거뒀다. 시즌 초반 8연승 뒤 지난달 30일 현대캐피탈에 첫 패를 당했던 삼성은 이날 다시 3연승째를 기록했지만 순간적으로 흐트러진 집중력과 태만한 경기 태도 등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숙제로 남게 됐다. 아쉬운 건 한국전력도 마찬가지. 시즌 직전까지 추진하던 프로화를 무위로 돌렸던 한국전력은 양성만(19점) 정평호(13점)의 과감한 좌·우공격과 리베로 염순호의 몸을 날린 허슬플레이, 무려 14개를 잡아낸 블로킹의 집중력으로 삼성의 혼을 뺐다. 십 수년 간 신 감독을 스승으로 모시던 공정배 감독의 한국전력이 삼성과 풀세트 접전을 펼친 건 프로배구 원년이던 2005년 3월3일 이후 처음이다. 앞선 여자부 경기에서는 페르난다 베티 알비스(28점)를 앞세운 KT&G가 현대건설을 3-0으로 완파하고 9승(1패)째를 기록하며 이틀 만에 선두를 탈환했다. 반면 현대건설은 이날까지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9연패에서 허우적댔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제18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4국] 이세돌,2007년 최우수기사로 선정

    [제18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4국] 이세돌,2007년 최우수기사로 선정

    제8보(117∼124) 이세돌 9단이 4일 서울 삼성동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2007 바둑대상 시상식에서 2007년도 최우수기사로 선정되었다. 이세돌 9단은 바둑담당 기자들로 구성된 45명의 선정위원단으로부터 34표를 받아,2위 이창호 9단을 압도적인 표차로 따돌렸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최우수기사상을 수상한 이세돌 9단은 기록부문에서도 연승상과 승률상을 추가해 3관왕에 올랐다. 온라인 인기투표로 진행된 인기기사상 부문에서는 이창호 9단과 박지은 8단이 나란히 1위에 올랐다. 두 기사는 이 부문에서 5년 연속 수상을 하는 기쁨을 누렸다. 신예기사상은 한상훈 2단, 감투상은 목진석 9단에게 돌아갔으며 강창배 아마7단이 아마기사상을 수상했다. 전보에 이어 백이 118로 젖혀 흑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게다가 흑은 마지막 초읽기마저 몰려 있어 확실한 수읽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이 괴로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흑119로 끊은 것은 모양이 너무 사나워 차마 두기 힘들지만, 현재의 상황에서는 일단 최강의 응수다. 행마법으로는 <참고도1> 흑1로 막는 것이 모양이지만, 이후 백10까지 진행되면 A와B가 맞보기로 흑이 곤란하다. 백122로 나간 것은 여기서 승부를 결정짓겠다는 김기용 4단의 승부수. 알기 쉽게 둔다면 <참고도2> 백1로 막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흑이 2로 끊은 뒤 4로 돌려치는 수가 있어 백이 잡히기는 하지만, 외곽을 선수로 틀어막을 수가 있어 백도 적지 않게 이득을 본 모습이다. 최준원 comos5452@hotmail.com
  • “살려달라” 아비규환

    “살려달라” 아비규환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펑’하는 폭발음과 함께 불기둥이 치솟았고, 건물에서 일하던 현장 근로자들은 “살려달라.”며 뛰쳐나왔다. 검은 연기는 하늘을 집어삼킬 듯 뿜어져 나왔고, 시간이 갈수록 사망자 수는 늘어났다. 가족들은 실낱 같은 희망을 품고 달려왔지만 오후 11시를 넘기면서 실종자 모두 숨진 것으로 확인되자 현장은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사고 발생 7일 오전 10시45분쯤 이천시 호법면 유산리 냉동물류센터 ‘코리아2000’ 지하층 기계실에서 폭발과 함께 불이 났다. 사고 당시 건물 지하에서는 57명이 작업 중이었고, 오후 3시11분쯤부터 사망자가 실려 나왔다.17명은 구조되거나 자력으로 탈출했지만 일부는 심한 화상으로 중태에 빠졌다. 불길은 오후 4시쯤 겨우 잡혔으나 유독가스와 연기는 하늘을 뒤덮었다. 소방당국은 냉동창고 안에 보관된 냉매 약품이 연쇄폭발하면서 유독가스가 더욱 심해진 것으로 추정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유독가스가 순식간에 번지며 희생자들이 대피로를 찾지 못해 인명피해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 화재 현장에서 불과 100m 떨어진 곳에 한국가스공사 이천분소가 있어 현장을 지켜보던 이들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이곳은 주변 공장과 주택에 가스를 공급하는 시설로 불이 옮겨 붙었다면 최악의 폭발 사고가 일어났을 뻔했다. ●가족들의 통곡 사고 소식을 전해 들은 가족들은 현장에 속속 도착했지만, 생사가 확인되지 않자 서로 부둥켜 안은 채 울부짖다가 실신하기도 했다. 숨진 이용호(43·유성기업)씨의 삼촌은 현장에 마련된 가족 대기실에서 “(조카에게 휴대전화를 걸었는데) 계속 신호가 가고 30초쯤 있다가 연결이 끊긴다. 신호가 가는 걸 보면 휴대전화는 타지 않았고, 결국 어딘가 살아있을 확률이 있지 않으냐. 어서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해서 찾아달라.”며 울부짖었다. 황의충(48·한우기업)씨의 사촌은 “어제까지 (황씨의) 아버지 생신이어서 함께 웃고 떠들었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져서 너무 황당하다.(황씨의) 아들이 이번에 연세대 법대에 합격했는데, 좋은 모습 못 보고 가다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숨진 신원준(43·아토테크닉)씨의 부인은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친구들을 만나러 나와있는데, 오늘 못 들어갈지 모르니 씻고 먼저 자고 있으라고 했다. 아빠의 소식은 차마 얘기하지 못했다.”며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신씨의 부인은 “오늘 아침에 별말 없이 출근했는데 혹시 병원에서 (사망자의) 신원이 확인되면 연락 좀 달라.”고 취재진에게 호소하기도 했다. 강재용(66·한우기업)씨의 사위 유한일씨는 사망자 명단에서 장인의 이름을 확인한 뒤 “DNA검사를 해봐야 아는 것 아니냐. 아직은 모른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구조작업·신원확인 난항 불이 나자 소방차 등 진화장비 214대와 소방관 620여명, 경찰 2개 중대와 교통기동대 등이 동원돼 진화 및 구조작업을 벌였다. 유독가스로 현장진입에 어려움을 겪던 소방당국은 오후 2시30분부터 119구조대를 투입해 시신을 수습했다. 소방당국은 창고 내부의 우레탄 원료가 연쇄 폭발을 일으켜 붕괴 위험이 커지자 오후 5시쯤 구조대원을 철수시키고 한때 작업을 중단했다. 유독가스가 빠지고 열기가 낮아지며 오후 6시를 넘어서 구조작업이 속도를 냈다. 소방당국은 오후 11시18분쯤 40구의 시신을 모두 수습했지만, 업체에서 미처 파악하지 못한 현장 근로자나 아르바이트생 등이 더 있을 가능성을 고려해 밤샘 수색작업을 펼쳤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최초 폭발보다는 사망 후에 건물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과 불에 시신이 훼손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천 윤상돈 이재훈 이경원기자 nomad@seoul.co.kr
  • 가족들 눈물속 작별인사… 온라인엔 ▶◀ 물결

    최요삼이 6명에게 새 삶을 나눠 주기 위해 장기 적출 수술을 받기 직전인 2일 저녁 8시 30분.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은 차마 터뜨릴 수 없는 슬픔과 눈물로 범벅이 됐다. 챔피언이자 아들, 삼촌으로 아직은 살아 있는 최요삼과의 마지막 면회 시간. 퉁퉁 부어오른 얼굴, 코와 입에 호스를 끼고는 있었지만 목 아래까지 덮여 있는 이불이 오르내리는 게 보일 정도로 그는 분명히 숨을 쉬고 있었다. 어머니 오순이씨를 비롯해 큰 누나 요연씨 등 형제들과 조카들이 방에 들어섰지만 동생 경호씨는 “마지막 모습을 차마 볼 수 없다.”며 형과의 마지막 대면을 피했다. 떠나 보내는 이들은 오열 대신 어깨만 들썩이는 조용한 슬픔으로 최요삼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인터넷을 통해 최요삼의 뇌사와 장기 적출 소식을 전해 들은 누리꾼들도 눈물바다를 이뤘다.“전문의사가 결정했겠지만 너무 빠른 판단 아닌가.”,“벌써 뇌사판정인가.”라는 불만의 목소리도 컸지만 “마지막 가는 길을 장기 기증으로 아름답게 장식하고 가는 당신은 진정한 복서이고 진정한 챔피언입니다.”라며 하늘에서 행복하기를 비는 글들도 올라 왔다. 최요삼의 장례식은 5일 권투인장(葬)으로 치러질 예정. 빈소는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 따라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이 유족 측에 무료 제공하기로 했다. 장례식이 끝난 뒤 시신은 5일 오전 10시 경기도 성남 화장터에서 한 줌의 재로 변하게 된다. 35년의 지친 영혼을 내려 놓을 곳은 경기도 안성시 유토피아추모관. 임원으로 있는 전 챔피언 박찬희씨의 요청으로 추모관 측이 특별실 자리를 마련했다. 최요삼이 영원히 잠들 자리는 지난해 2월 세상을 뜬 탤런트 정다빈씨의 유택 맞은편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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