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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1등 지상주의/노주석 논설위원

    1989년에 개봉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한국영화는 입시에 찌들어 꿈을 잃고 방황하던 당대 학생들의 자화상이었다. 강우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이미연과 김보성이 데뷔한 이 영화는 1등을 놓치지 않던 한 여학생이 한순간의 연애사건으로 성적이 떨어지자 투신자살한다는,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줄거리였다. 영화제목은 지금도 공부 못 하는 학생들을 대변하는 관용구로 쓰이고 있다. 요즘 인기 절정의 드라마 ‘공부의 신’은 공부 못하는 꼴찌들에게도 인생역전의 기회를 주는 희망의 메시지라고 방송국 측은 설명한다. 그러나 공영방송에서 노골적으로 1등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일본의 만화가 미타 노리후사의 만화 ‘꼴찌, 도쿄대 가다’를 원작으로 일본 TBS에서 2005년 방영한 작품의 리바이벌이다. 방영 당시 도쿄대 지원자가 12%나 늘어나는 반향을 일으켰다. 1등주의 비판에 대해 원작자는 “합격 여부보다 노력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며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작품을 옹호했다. 실제 드라마를 보는 아이들은 과정보다 결과에만 집착하는 게 현실이지만. 글로벌 1위 자동차기업 도요타의 사상 최대 리콜사태와 관련, 현대경제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원인은 1인자의 자만심이었다. 도요타식 혁신을 강조하는 CEO로 유명한 김쌍수 한전 사장은 “혁신보다는 자만이 문제였다. 1등이라고 자만할 때 문제가 생긴다.”라고 분석했다. ‘영원한 1위는 없다.’라는 평범한 진리의 재확인이라고나 할까.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나서 온 가족이 TV 앞에 모여앉아 밴쿠버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선을 지켜봤다. 우리 선수 중 한 명이 금메달을 딴 건 좋았지만 차마 못 볼 장면을 보고 말았다. 메달 욕심에 자리다툼을 한 우리 선수 2명의 충돌은 예선경기 내내 선수들 칭찬을 아끼지 않던 어른들의 입을 다물게 하였다. 어부지리로 은메달을 목에 건 더티플레이의 대명사 오노가 얄미웠지만 탓할 처지가 아니었다. 급기야 일부에서는 국내 쇼트트랙 파벌의 역사까지 들먹거린다. 인터넷에는 특정 선수의 이름을 지칭하면서 비난하는 글이 떠돌고 있다. 한국체육대학 출신이면 어떻고, 또 아니면 어떻다는 말인가. 어찌 어린 선수들을 탓하랴. 이 모든 것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은메달 따면 고개 숙이고 우는 세상을 만든 우리 어른들의 잘못인 것을.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동북권 7개하천 내년 봄 재탄생… 밀어·버들치 사는 생태하천으로

    동북권 7개하천 내년 봄 재탄생… 밀어·버들치 사는 생태하천으로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 시인의 ‘향수’에 나올 법한 실개천이 서울 우리네 집 앞에서 되살아난다. 서울시는 15일 중랑·우이·묵동·당현(조감도)·방학·도봉·대동천 등 동북권역의 7개 하천을 밀어·버들치 등이 노니는 생태하천으로 내년 봄까지 탈바꿈시킨다고 밝혔다. 현재 7개 하천은 물이 거의 없는 상태다. 시는 이를 위해 이 하천들에 초고도 처리수를 공급, 맑고 깨끗한 물을 흐르게 하기로 했다. 관련 설계는 다음달까지 끝내기로 했다. 초고도 처리수는 중랑물재생센터의 하수를 고도처리한 물이다. 총 사업비 규모는 460억원이다. 시 복원계획에 따르면 도봉천의 경우, 1km에 걸쳐 샘터와 주민들이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된다. 특히 중랑천 합류지점에 도봉산을 형상화한 벽천분수·수변공간을 만들며 전 구간에 여울과 소(沼)를 설치해 지역주민들이 물소리를 들으며 산책할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 바꿀 계획이다. 복개로 인해 단절된 방학천에는 실개천뿐 아니라 오픈 스페이스를 이용한 물마루 공원을 만들고, 주변지역의 유래·문화유적들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스토리텔링 아트 갤러리가 조성된다. 당현천 6.1km 구간엔 연극·연주·음악·전시회를 할 수 있는 소리공원을, 우이천엔 물고기 통로 어도와 여울등을 설치하고, 묵동천엔 계절별 테마를 즐길 수 있는 야외정원 등을 만들 예정이다. 고태규 시 물관리국 하천관리과장은 “7개 하천에 맑은 물이 흐르면 물놀이는 물론, 버들치, 살치 등 다양한 생물이 사는 생태하천이 되살아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설맞이 콩트] 두용씨의 커피 한 잔/이은선

    [설맞이 콩트] 두용씨의 커피 한 잔/이은선

    “괜찮아유. 살다 보면…. 근강 잘 챙기구 애기덜두 잘 돌보셔유. 새해니께, 복도 많이 받으시야쥬.” 차마 대답도 못하고 우는 산모의 얼굴을 병실 문이 휘릭, 가려버렸다. 뒤돌아 선 두용씨가 콧등을 훔쳤다. 그러고 나니 달콤한 커피 한 잔 생각이 간절했다. “(꼬르륵) 지금 휴대폰이 전파를 수신 중에 있습니다.” 벌써 30분째 두용씨의 휴대전화가 먹통이었다. 엊그제 새로 바꾼 최신식 휴대전화는 여러 가지 면에서 무척 친절했지만, 그렇다고 없는 전파를 그 스스로 만들어 낼 수는 없을 거였다. 짧고 예쁜 옷 입은 언니가 서 있는 가판대에서 달달한 믹스커피 한 잔 얻어 마시고, 배고파 한 잔 더 마시려고 그 예쁜 언니에게 다가가 말을 건 것이 우리 두용씨가 24개월 할부로 휴대전화를 새로 장만하게 된 이유였다. 그것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그 시간에 두용씨는 고장 난 지 일주일이나 지나 이제는 음성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내비게이션을 수리했을 거였다. 밤 늦게 손님을 태우고 이 산골을 찾아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휴대전화는 잘 작동되었고, 고장난 내비게이션은 여전히 ‘GPS를 탐색’하고 있었다. 산 중턱의 저수지 옆집에 손님을 내려 주고 난 다음이었다. 신기하게도 두용씨의 내비게이션이 작동을 하기 시작한 게 아닌가. 우리의 두용씨, 너무도 반가운 나머지 ‘내비’양이 알려주는 대로 친절하게 길을 따라오다가 산 속 더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가고야 말았다. “여가, 워디여?” 워낙 산 깊은 곳이라 그런지 이번엔 휴대전화가 말썽을 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 휴대폰이 전파를 수신 중에 있습니다!(꼬르륵)” “거 참, 허 거 참!” 두 눈을 슴벅이던 두용씨가 끝내 혀를 찼다. 이제 믿을 거라곤 오로지 두용씨의 동물적인 위치 감각뿐이었지만, 그 동물이라는 것도 동물 나름이어서 그것이 야생 호랑이의 번뜩이는 밤눈인지, 집토끼의 졸린 밤눈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연말에 내린 눈이 아직도 녹지 않은 산골의 구불구불한 길을 굳건히 달려 내려오며 두용씨는 저녁 먹을 때 물에 담가 놓고 온, 빨간 고무 다라이의 알밤 한 자루를 생각했다. 전주 이씨, 임명공파 19대손인 두용씨는 차례상에 올릴 밤을 치는 일로 새해 맞을 준비를 끝내곤 했는데, 오늘은 예기치 않게 저녁 늦게 손님을 태워 버리는 바람에 밤을 치는 일이 늦어지게 된 거였다. 게다가 길까지 헤매고 있으니 언제쯤 집에 가서 물에 불린 밤을 치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지가 뭐 이러고 싶어 이랬간듀. 오널은 조상님덜이 이해해 줘야유!” 두용씨는 가끔, 아니 자주 조상 탓을 했다. 두 달 간 같이 살았던 외국 여자가 사채를 쓰고 도망갔을 때에도, 12년간 다니던 직장에서 정리해고된 뒤에 몰게 된 택시 회사에서 계약사기를 당해 스페어 기사로 전락했을 때도, 거스름돈 500원이 시비의 발단이 되어 경찰서까지 가게 되었던 날도. 착실하고 조용히 살고 있는 두용씨를 절대로 가만히 놔두지 않는 세상을 향해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힐난이 바로 조상님 탓하기였다. 조용히 차례상 기다리시던 조상님들 입장에서야 ‘내가 너 같은 넘을 손자로 두고 싶었겄냐. 우리 집안 내력은 아니니 외가쪽 가서 알아봐라.’(그럼 외가 조상쪽에서는?) 했을 일들이겠지만. 그래도 우리 두용씨는 무척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류, 다 좋으니께 12시 안에만 집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줘유!” 한두 방울씩 떨어지던 빗방울이 두용씨 보란 듯 더 굵어지고 있는 밤이었다. 해무(海霧)를 뚫고 맹렬히 밤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등대 불빛처럼 용감하게 급경사 길을 시속 20㎞로 내려오던 두용씨의 택시가 우뚝 멈춰 섰다. 경사가 끝나는 지점에서 승용차 한 대가 발라당 뒤집어져 있고, 아직 꺼지지 않은 헤드라이트가 어두운 산 속을 향해 애처롭게 빛을 내뿜고 있는 게 아닌가. 재빠르게 눈앞의 상황을 파악한 두용씨의 머리와는 달리 그의 택시가 멈춰 선 것은 용달차 바로 앞, 사람이 쓰러져 나와 있는 곳이었다. 가까스로 멈춘 택시 안에서 총알처럼 두용씨가 튀어나왔지만 말은 그보다 좀 늦게 나왔다. “……사, 산규? 이, 이이이봐유!” 그런데 엎어져 뒹굴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여자였다. 게다가 그 여자는 핏덩이, 말 그대로 피와 양수를 뒤집어쓰고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갓난아이를 안고 있었다. 두용씨는 다급히 점퍼를 벗었다. 아침에 지퍼를 올리다 내복이 끼었지만 빼기 귀찮아 그냥 올려버린 바람에 점퍼와 내복이 하루종일 붙어 있었는데, 두용씨가 서두르다 내복을 찢어 버리고야 말았다. 탯줄을 휘감고 있는 핏덩이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 이봐유! 정신 차류. 여기서 이러믄 얼어죽어유!” 두용씨는 점퍼로 둘둘 싼 핏덩이를 안아서 택시 조수석에 올려놓았다. 다급히 신음하고 있는 산모도 부축해 차 뒷좌석에 태웠다. 숨 돌릴 새도 없이 두용씨는 다시 승용차 쪽으로 달려갔다. 분명 일행이 있을 거였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산모와 같이 타고 있었을 거라 짐작되는 사람이 없었다. 다급한 두용씨가 승용차 안을 뒤져 산모의 것으로 보이는 가방을 들고 다시 택시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이제 아무 걱정두 하지 말유! 지가 병원까지 데려다 줄뀨. 아, 아가! 쪼끔만 참아라이!” 두용씨의 택시가 재빨리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조금 전, 길을 헤매던 때와는 달리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힘이 분기탱천한 차의 뒤꽁무니로 쉴 새 없이 빗방울들이 날아 붙고 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두용씨는 알지 못했다. 신음하며 쓰러져 있던 산모가 또 하나의 생명을 세상 밖으로 내어 놓으려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아, 워쩌면 좋대유. 쫌만, 쫌만 더 참아 봐유!” “아아악!” 산모의 비명과 핏덩이의 애처로운 들숨과 날숨이 두용씨를 한꺼번에 짓누르고 있었다. “호, 호호흡이 중요, 중요 하대유! 숨을 잘 쉬어 봐유!” 산모를 차에 태울 때의 비장함과는 다르게 두용씨는 차라리 울고 싶었다. 어쩌다 이런 일이…. 그래도 우선은 본인의 차에 있는 생명들을 살리고 봐야 할 게 아닌가. 두용씨는 차 안의 히터를 최대한 높게 올렸다. ‘이제 열심히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다!’ 두용씨가 수도 없이 이 문장들을 머릿속에 굴리고 있을 때였다. “(띠리링) 전파를 수신하였습니다” 두용씨는 하느님이라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한 손으로는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휴대전화의 폴더를 밀어 올렸다. “있잖유, 여기 산모를 태우구 있는디유. 워디루 가야 된대유? 아, 병원은 아는디, 여기가 워디냐면유…. 산골이라. 아뉴, 상태는 모르겄구유. 차가 뒤집어지고 길에서 애기를 낳은 거 같은디, 지가 지나다가 실었슈. 근디 뱃속에 애기가 하나 더 있어유. 지금 막 나올라그류.” “아아악!” 산모와 두용씨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산모에게 머리채를 잡힌 두용씨의 택시가 급히 S자를 그리며 휘어졌다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다행히 경사길을 벗어난 평지였다. “머리, 머리 좀 놔줘유. 우, 운전을 해야쥬!” 산모는 두용씨의 말을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119 구조대에게 끊임없이 전화를 해댄 덕분에 두용씨의 택시는 시내에 인접한 중소병원의 응급실로 안내를 받을 수가 있었다. 두용씨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인공위성이 두용씨 최신식 휴대전화의 위치추적을 해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애기, 애기 아버지는유?” 두용씨의 물음에 산모는 곧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산모의 비명 사이사이로 두용씨가 엮어 본 말에 의하면 ‘죽고, 없고, 혼자’라는 거였다. “아!” 두용씨는 지금 당장 머리통이 뽑혀나갈지라도 이 아픔을 참아야 할 것만 같았다. 병원으로 들어서기 직전이었다. 새된 비명을 내지른 산모가 마지막 힘을 주자마자 두용씨의 머리가 핸들 앞으로 튕기쳐 나왔다. 산모는 힘없이 좌석에 나가떨어져 있고, 방금 나온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두용씨는 뽑힌 머리채가 아파서 우는 것인지, 아기가 울어서 자신도 울고 있는 것인지 모를 눈물을 흘렸다. “거, 거의 다 왔슈!” 병원 응급실 문 앞에 두용씨의 택시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급정거했다. 미리 연락을 받고 기다리던 병원 직원들이 택시 뒷좌석을 열고 산모와 방금 태어난 아이를 보살피는 동안에, 두용씨가 조수석에 눕혀 놓았던 핏덩이를 안고 응급실로 뛰어갔다. “여기, 여기두 애기 있슈! 일루 좀 와 봐유!” 때아닌 소란에 응급실에 있던 환자와 보호자들의 눈이 모두 두용씨에게로 향했다. 간호사가 두용씨에게 다가왔다. 아기를 넘겨주는 두용씨의 가슴이 갑자기 전기가 오른 것처럼 찌릿했다. 다행히 모두 무사했다. 두용씨는 한참동안 응급실 앞 보호자 대기석에서 달달 떨다가 산모가 정신을 차렸다는 말을 듣고 병실로 올라갔다. 택시 안에서는 잘 보지 못했는데, 부옇게 달뜬 산모의 얼굴이 참 고왔다. ‘저 고운 여자가, 어쩌다….’ “고맙습니다.” 어렵사리 눈을 뜬 산모의 말이 두용씨의 가슴팍에 내리꽂혔다. “괘, 괘안아유. 그나저나 차가 그리돼서 워쩐대유.” “……” 산모가 손에 꼭 쥐고 있던 지폐 몇 장을 내밀었다. “지금은 이것밖에 없어요.” “아, 아뉴! 됐어유!” 두용씨는 극구 사양했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서린 까닭인지 산모가 입을 꼭 다물고 울었다. “이거, 이거로 나중에 며꾹이나 사서 드셔유.” 두용씨는 손에 꼭 말아 쥐고 있던 돈을 산모의 침대에 내려놓았다. 사양하려는 듯 산모가 움찔하는 동시에 문 앞까지 뛰어나와 버린 두용씨가 뒤를 돌아보았다. “괜찮아유. 살다 보면…. 근강 잘 챙기구 애기덜두 잘 돌보셔유. 새해니께, 복도 많이 받으시야쥬.” 차마 대답도 못하고 우는 산모의 얼굴을 병실 문이 휘릭, 가려버렸다. 뒤돌아 선 두용씨가 콧등을 훔쳤다. 그러고 나니 달콤한 커피 한 잔 생각이 간절했다. 가지고 있던 돈을 산모에게 다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동전 몇 개가 주머니 속에 남아 있었다. “얼른 가서 밤 치야는디….” 자꾸 산모의 얼굴과 품에 안고 있던 아기의 얼굴이 눈에 어른거렸다. 아이의 온기가 두용씨의 팔뚝에 아직 남아있는 것만 같았다. 커피 자판기 앞에서 두용씨는 자꾸 병실 쪽을 돌아봤다. 괜히 어깨가 으쓱해져 내복만 입고 나와 있는데도 하나도 춥지 않았다. 두용씨는 막 뽑아져 나온 뜨거운 커피를 단번에 마셔버렸다. “크으. 얼른 가서 차례상 봐 드릴께유. 쫌 늦다고 뭐라군 허지 말어유.”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꾸만 조상님들이 병실 안으로 다시 가보라고 채근하는 기분이 들었다. 산모가 잡아 뜯어 원형 탈모증에 걸린 사람처럼 정수리 한가운데가 뻥 뚫린 두용씨의 머리 위로 자정을 알리는 라디오 소리가 내려앉았다. 택시를 몰고 병원을 막 빠져나오며 두용씨는 내일 아침에 뜨끈한 떡국이라도 좀 가져다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착한 일 한 뿌듯함에 그런 생각을 한 것이지, 절대 다른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정말로. 막 털어 넣은 커피의 단 맛이 아직도 두용씨의 입 속에 남아 있는, 뿌듯한 새해였다. > 작가약력 < 이은선(본명 이미선) ▲1983년 충남 보령 출생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한신대 대학원 소설전공 수료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 [길섶에서]同伴/김성호 논설위원

    회자(會者)는 정리(定離)란다. 무상과 덧없음의 정의일 수 있겠다. 만남엔 헤어짐이 따르기 마련. 그래도 살다 보면 어디 헤어짐을 미리 알아 챙겨 만나고 맺을까. 그래서 느닷없는 별리는 항상 섭섭하고 아쉽다. 죽음의 별리야 더 말할 나위가 있을까. 세상 회자정리의 극치. 차마 애써 대비하고 준비하기 어려운 난제이다. 점심때 찾아든 식당이 시끄럽다. 한적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좋아 가끔씩 찾는 밥집. 비명에 간 동생 죽음을 못 견뎌하는 종업원 아주머니의 비탄이 안쓰럽다. 아침 사무실에서 마주한 직장동료의 고통스러운 표정이 겹친다. 9년을 함께 살던 강아지가 심장마비로 떠났단다. 눈시울이 벌건 채 말도 채 잇지 못하는 비통.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가 유난히 을씨년스럽다. 내일모레면 설. 평상의 떨어지고 헤어진 삶에서 대하는 이런저런 만남의 순간이 각별한 명절이다. 도란도란 피우는 이야기꽃도 좋겠고. 함께 살아가는 인연들을 챙기고 도닥이는 오붓한 동반(同伴)을 생각해보자.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설날 볼거리] 방송3사 설 특집 해부

    [설날 볼거리] 방송3사 설 특집 해부

    ‘황금 설 연휴, TV 리모컨을 사수해라!’한국 최고의 명절인 설을 맞아 올해도 방송 3사에서는 심혈을 기울인 다양한 특집 방송을 마련했다. 작년 설이 기존 프로그램의 재방송에 포커스를 많이 뒀다면, 올해는 재미를 주는 오락물과 훈훈한 다큐멘터리 등 볼거리가 더 풍성해졌다. 특히 다큐멘터리 애호가와 스포츠 마니아라면 이번 설 연휴 만큼은 TV 리모컨을 사수해도 좋을 듯하다. ‘아마존의 눈물’, ‘한국인의 문화’ 등 진정성이 돋보이는 명품 다큐 프로그램들이 방송되기 때문이다. 또한 저녁에는 밥 짓는 냄새와 함께 온 세상에 함성 소리가 퍼질 것으로 보인다. 2010년 벤쿠버 올림픽이 개막되는데다 숙명의 라이벌 관계인 한국과 일본이 동아시아 축구선수권대회에서 명승부를 펼치는 것도 기대되는 대목이다.주어진 시간은 단 3일, 짧아도 너무 짧은 2010년 설날을 앞두고 방송 3사가 준비한 설특집 선물세트는 근사하다. TV 앞에 모여든 시청자들은 어떤 선물 상자를 고를까.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방송 3사의 설 특집 프로그램들을 해부했다.◆ 다큐, 설날 시리즈는 계속된다.이번 설에는 훈훈한 감동을 주는 다큐멘터리들이 가득해 다큐 애호가들의 구미를 당길 것으로 기대된다. 우선 다큐멘터리 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명품 다큐 MBC 창사특집 ‘아마존의 눈물’과 극장 판 ‘북극의 눈물’이 연이어 방송된다. 시청률 20%를 돌파하며 다큐멘터리의 새 장을 연 ‘아마존의 눈물’은 지난 5일 막을 내렸지만 그 여운은 설날에 계속될 예정이다.배우 김남길이 내레이션을 맡은 ‘아마존의 눈물’은 설 연휴 3일 동안 오전 9시30분에 1부부터 3부까지, 그리고 에필로그까지 연속 방송된다.또 ‘아마존의 눈물’의 인기 속에 ‘지구의 눈물’시리즈 1편인 ‘북극의 눈물’ 극장판도 설을 맞아 전파를 탄다. 지난 2008년 방송된 ‘북극의 눈물’은 명품다큐라는 극찬을 받고 극장판으로 새롭게 각색, 국내 최초로 상업 영화관에서 개봉된 공중파 다큐멘터리다.‘아마존의 눈물’속 김남길의 내레이션이 눈길을 끌었듯, ‘북극의 눈물’내레이션은 국민배우 안성기가 맡아 기대를 모은다.KBS 2TV ‘한국인의 문화’는 한국인의 음식과 집에 담긴 철학을 새롭게 조명하는 다큐멘터리이다. 13일, 14일 오후 1시 30분에 2부작으로 방송되는 ‘한국인의 문화’에선 한국의 문화코드인 ‘한식과 한옥’을 다뤄 전통 철학이 내재되어 있는 유산을 소개한다.◆ 오락물과 스포츠, 온 가족이 ‘하하 호호’“대한민국~ 짝.짝.짝, 짝.짝!”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부르짖었던 함성을 올 설에도 들을 수 있을까?오는 14일 오후 7시 15분에 동아시아 축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 국가대표팀은 ‘영원한 라이벌’ 일본과 맞붙는다. 경기는 일본 도쿄 국립운동장에서 펼쳐지며 허정무 감독의 지휘 하에 김영광, 이운재, 오범석, 구자철, 이동국 등이 출전할 예정이다. 축구 중계방송은 KBS, MBC가 동시 진행한다.SBS는 13일부터 2010년 벤쿠버 올림픽을 단독 중계한다. 국내 지상파방송사가 동계올림픽을 단독 중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SBS 관계자는 “연휴가 시작되는 13일부터 3월1일까지 캐나다 벤쿠버에서 열리는 2010년 벤쿠버 동계올림픽 전 경기를 SBS 지상파방송과 SBS 스포츠 채널 등을 통해 단독으로 중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SBS에서 도맡은 2010년 벤쿠버 올림픽 중계방송은 오는 13일 오전 11시에 개회식을 시작해 스키, 쇼트트랙 등 시원한 겨울 스포츠 경기들이 펼쳐질 예정이다.스포츠뿐만 아니라 재미와 웃음을 주는 오락물도 가족들에게 찾아간다.MBC 설기획 특집프로그램인 ‘스타 댄스 대격돌-춤 봤다’와 ‘씨름의 신’에는 인기 아이돌이 대거 등장한다.설 당일, 오후 11시에 방송하는 ‘스타 댄스 대격돌-춤 봤다’는 2PM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레인보우 애프터스쿨 비스트 티아라 등 인기 그룹들이 출연해 ‘막상막하’ 춤 대결을 펼친다. 뿐만 아니라 개그계 패러디의 여왕인 김신영과 신봉선이 맞대결을 한다.‘씨름의 신’에선 아이돌이 몸으로 부딪힌다. MC 김구라와 이경실이 진행을 맡으며 그룹 2PM 2AM 소녀시대 등 아이돌 그룹들이 대거 출연해 볼거리를 선사할 예정이다. ‘씨름의 신’의 제작진은 모래판에 오른 아이돌의 치열한 ‘샅바싸움’이 벌어질 것을 예고했다. 방송은 13일, 오전 10시 30분.설날에는 스타와 기자와의 만남도 이루어진다. MC 김용만 김구라 신정환이 진행을 맡는 SBS 신년특집 ‘용구라환’에선 연예인 20명과 기자 20명이 대결하는 공방전을 펼친다. 14일 오후 11시에 방송하는 ‘용구라환’에선 스타는 기사 때문에 고민이 많았던 사연을, 기자는 대중과 연예인 사이에서 갈등했던 사연을 소개하며 긴장감을 높인다.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KBS-2TV 출발 드림팀’은 지난달 27일 설날 특집을 위해 곡성 섬진강 기차마을로 떠났다. 슈퍼주니어의 은혁 씨엔블루의 정용화 브라이언 등 최강 아이돌 스타들로 구성된 연예인팀과 코레일관광개발팀이 힘겨루기에 나선 것.특히 이날 녹화에는 광주, 순천 및 전국 각지에서 팬클럽을 중심으로 많은 관람객 및 청소년들이 찾아와서 이들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는 후문이다.사진 = 서울신문NTN DB, KBS, SBS, MBC 제공서울신문NTN 김경미 기자 rornfl84@nate.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깔깔깔]

    ●난센스 퀴즈 1. 암탉은 어느 집에서 시집 왔을까? 꼬꼬댁. 2.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여자는? 꿈속의 여자. 3. 우리가 수업시간에 조는 이유는? 꿈을 갖기 위해서. 4. ‘이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사람’을 한 글자로 표현하면? 나. 5. 겁 없는 쥐가 한마디 하자 고양이가 도망갔다. 쥐가 한 말은? 나, 약 먹었다. 6. 편식이 아무리 심한 사람이라도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는 것은? 나이. 7. 바나나가 웃으면? 바나나킥. 8. 울 카페 7학년 이상 회원 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폭포 이름은? 나이야가라. 9. 우리나라 사람이 ‘쇼트트랙’에 강한 이유? 새치기를 잘한다. 10. 질문을 할 때 한 손만 드는 이유는? 두 손 다 들면 만세가 되니까. 11. 성인(聖人)과 성인(成人)의 차이는? 석가모니가 집을 나가면 출가라 하고 내가 집을 나가면 가출이라고 한다.
  • KCM “김빠진 앨범? ‘사연’ 많은 앨범”

    KCM “김빠진 앨범? ‘사연’ 많은 앨범”

    디지털음반의 활성화로 인해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곡들이 쏟아지고 있는 요즘, 앨범 발매 전후로 홍보 경쟁이 더욱 뜨거워졌다. 하지만 앨범 발매 후 성대결절로 무려 두 달 동안 노래를 부르지 못한 가수가 있다. 혹자는 “이번 앨범은 이미 김빠졌다.”며 활동을 만류했지만 차마 이대로 끝낼 수 없었던 KCM의 사연을 들어봤다. 지난해 11월 5집 앨범 ‘Part1-Alone’을 발매한 KCM은 그달 28일 부산콘서트 도중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다. 성대 결절 진단을 받은 KCM은 모든 스케줄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두 달이 지나 지난달 13일 새로운 버전의 타이틀곡 ‘하루가’를 선보였다. KCM이 5집 앨범에 이토록 집착하는 건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KCM은 지난해 전 소속사와 결별 후 8년간 가수 생활을 하며 틈틈이 준비했던 100여곡들 중 모니터링과 편곡을 거쳐 5집 앨범을 제작했다. 제작과 녹음에 10개월가량 더 걸렸으니 총 9년여의 시간과 열정이 앨범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셈이다. “앨범을 혼자 준비하면서 잘 안 넘어갈 땐 답답했지만 너무 자유로웠고 지금 생각해봐도 즐거웠단 생각이 들어요. 문제는 작업을 마치고 그 당시에 몰랐던 스트레스와 과로가 쌓여서 노래도 못할 정도로 몸이 굉장히 아팠다는 거죠.” KCM이 몸에 탈이 날 정도로 열정을 보였던 건 변화를 시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KCM은 기존의 음악에서 조금 더 클래식한 스타일의 곡을 파트1에, 그간 준비해왔던 곡들 중 감성적인 80년대 팝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곡들을 모아 파트2에 담았다. “30~40대를 위한 음악이 없다는 글을 보고 앨범 콘셉트를 잡았어요. 사실 좀 쉬었다가 파트2로 나올까도 했는데 팬들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셔서 파트1의 타이틀곡 ‘하루가’ 뉴 버전으로 다시 활동하게 됐죠.” 한 여자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면서 평생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 남자의 절박한 심정을 그린 ‘하루가’는 KCM에게 큰 의미가 있는 곡이다. 자신을 만나러 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실제 첫사랑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하루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KCM은 곧 5집 앨범 파트2도 선보일 예정이다. 하지만 KCM의 변신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자신의 음반뿐만 아니라 후배들의 앨범도 프로듀싱하며 후배양성에 나선 것. “프로듀서로서 발전하기 위해 음악 공부에 매진하고 있어요. 올해 제가 프로듀싱한 앨범도 몇 개 나오고 뛰어난 후배가수를 발굴하면 제작까지 도전해볼 생각이에요. 제가 욕심이 많은 편이에요.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잖아요. 욕심이 나는 만큼 열심히 해야죠.”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세시에 흰 눈이 내리네’/박철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세시에 흰 눈이 내리네’/박철

    흰 눈이 내린다 마당 가득 흰 눈이 내린다 누군 히말라야에 가서 초라한 너를 발견하였다는데 네시 약속을 위해 집을 나서는 길 차마 흰 눈 위에 발을 딛지 못하고 마당가에 섰다가 거대한 나를 보았다 함박꽃이 되어 내리는 올해의 첫눈 너를 찾든 나를 잃든 오늘은 비긴 날로 하자 그러니 우린 하나다 지금이라도 우연히 골목에서 만나면 함박꽃 한 술 떠 서로 먹여주며 아프게 살아온 지난 여름은 잊도록 하자 그래 그러라고 세시가 지나는데 흰 눈이 내린다
  • [생명의 窓] 암(癌), 이제 질을 논할 때다/하지현 건국대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

    [생명의 窓] 암(癌), 이제 질을 논할 때다/하지현 건국대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

    “선생님 몇 달 남은 것이죠?” “진단 결과를 환자분에게는 숨겨 주시기 바랍니다.” 10년 전만 해도 암과 관련해 의사가 환자나 환자 가족들과 나누는 대화는 주로 이런 내용이었다. 암을 진단받고 나면 당연히 남은 삶이 얼마 되지 않을 것으로 여기고 얼마나 남았는지 알고 싶어 했고, 그동안 지난 생을 정리해야 한다고 믿었다. 또 암을 진단받았다는 천형과도 같은 소식을 가족과 환자에게 알리는 방법은 의사들의 중요한 고민이었다. 내가 의과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암환자와의 소통에 대해 이런 부분을 배웠다. 그런데 요즘 진료실 풍경은 많이 달라졌다. 암환자들을 심심치 않게 정신과 진료실에서 만나게 된다. 항암치료를 위해 내과를, 수술을 위해 외과를 가던 환자들이 이제는 정신과에도 온다. 왜 그런 것일까? 그것은 암과 관련한 커다란 패러다임의 전환이 왔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보건복지가족부 중앙암등록본부는 암 발생자의 생존율 통계를 발표했다. 암환자의 5년 생존율은 1993년 41%에서 2003~2007년에 57.1%로 획기적으로 늘어났다. 그중에서도 갑상샘암은 98.8%, 유방암은 89.5%, 전립샘암은 82.4%의 높은 생존율을 나타냈다. 많은 환자들이 2년 안에 사망하는 확률이 높지만 그 기간을 지나고 나면 난치성 암이라 해도 5년 이상 생존할 확률이 높고 10년 생존율을 조사했을 때에도 10명 중 4명 가까이가 건재했다. 이에 반해 암 발생자 수는 2005년 14만 5858명에서 20 07년 16만 1920명으로 11% 늘었다. 특히 노령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나라 국민이 평균수명까지 살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남자가 34.4%, 여자는 28.9%라고 한다. 이 복잡한 통계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오래 살게 되고 정기검진이 일반화되면서 암에 걸리고 진단 받을 확률은 올라간 반면 의학의 발달로 생존율도 10년 사이에 매우 올라갔다.’는 것이다. 즉, 이제는 암환자의 생존율이 높아진 만큼 암으로 인해 삶의 질을 위협받는 환자로 지내는 동안의 심리적 고통도 대등하게 중요한 문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암을 치료받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 수술과 항암치료 등으로 인한 신체의 변형, 사회와 가정에서의 삶의 급격한 변화, 완치판정을 받은 다음에도 사라지지 않는 재발에 대한 두려움은 환자들을 괴롭히는 대표적인 심리적 문제들이다. 나아가 투병 중인 환자 가족들의 고통이나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 때문에 사치스럽다고 여겨 차마 말로 하지 못하는 성생활 문제까지 더해지면 암환자의 심리적 문제는 복잡해진다. 처음에는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이제는 좋아졌다고 생각하고 직장에 복귀하고 가정에서 일상생활을 시작하려고 하지만 처음 의욕과 달리 생각만큼 일이 쉽사리 풀리지도 않는다. 이런 문제들로 우울해지고, 잠도 안 오고, 예민해지고, 스트레스 관리가 안 돼 생활은 더 엉망이 되는 것같이 느낀다. 그런데 주변에 얘기하면 배부른 고민이라는 말을 들을까 신경이 쓰인다. 이와 같은 어려움을 이해해 줄 곳이 정신과다. 암에 대해 이해하는 의사이면서 심리적인 부분도 다룰 수 있으니까. 정신과에서 상담하고 치료를 받으면서 많은 환자들은 편안해지고, 더 나아가 신체적 조건도 덩달아 좋아지는 효과를 본다. 실제로 같은 암을 앓고 있는 환자들끼리 집단치료를 받은 경우 그러지 않은 환자들에 비해 재발률이 현저히 낮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예전에 가난할 때에는 밥을 굶지 않는 것이 가장 우선이었지만 여유가 생기고 나면 맛과 분위기와 같은 문화적 측면이 중요해지듯이, 이제 암의 문제도 차차 삶의 질의 문제로 방향전환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암의 정신과적 측면을 다루는 정신종양학이 정신의학계에서 주목받는 이유다. 현대의학의 발전과 빠른 노령화 추세에 맞춰 암은 이제 생존의 차원을 넘어섰다. 암과 더불어 사는 삶의 질을 더욱 고민하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때다.
  • [28일 TV 하이라이트]

    ●현장르포 동행(KBS1 오후 11시30분) 사업실패 후 집을 나가 버린 남편. 그녀에게 남겨진 건 빚과 세 아이들 그리고 견디기 힘든 생활고다. 서른넷 숙현씨는 자신이 처한 현실이 버겁기만 하다.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칠 생각도 해 봤지만, 차마 어린 아이들을 보면 그럴 수도 없다. 가정을 지키고 싶은 엄마의 바람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다줄거야(KBS2 오전 9시20분) 태민은 강호에게 지금까지 영희를 위해 자신의 감정을 속이며 살아 왔지만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며 엄포를 놓는다. 한편 영희와 강호의 결혼을 위해 나서는 보영을 보며 남주는 엄마의 자식은 영희뿐이냐 묻고, 보영은 모두 내 자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남주는 단 한 번도 그렇게 느끼지 못했다고 차갑게 말한다. ●지붕뚫고 하이킥(MBC 오후 7시45분) 아침부터 기분 좋은 세경. 일을 하면서도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활기찬 세경의 모습에 온 집안이 다 환해지는데…. 대형 기획사 오디션에 도전하는 광수와 인나. 이번 기회를 반드시 잡고 말겠다며 근사한 팀명까지 짓고 각오를 다진다. 그렇게 오디션을 본 후, 드디어 합격했다는 전화가 걸려온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SBS 오후 8시50분) 매일 밤, 할아버지를 찾아오는 불청객 잠꼬대. 온 가족을 잠 못 들게 하는 상상초월 잠꼬대 할아버지를 만나 본다. 매일 무덤을 찾아와 이불을 덮어주는 남자. 어머니를 못 잊어 눈물짓는 한 아들의 사연을 소개한다. 또 하루에 얼음 20ℓ를 먹어치우는 얼음 아줌마도 만나 본다. ●세계테마기행(EBS 오후 8시50분) 보츠와나 최초의 국립공원이자, 두 번째로 큰 초베. 빅5라 불리는 대형 동물들을 비롯해 7만여마리의 코끼리 떼와 450종의 새가 서식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동물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으로, 보트와 지프로 사파리가 가능한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야생동물의 천국, 초베국립공원을 찾아간다. ●강력 1반(OBS 오후 11시) 국내 방송 드라마 최초로 ‘캐논 5D Mark II’라는 DSLR의 동영상 기능을 사용해 촬영한 ‘13년 후’를 방송한다. ‘캐논 5D Mark II’는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의 색감과 심도를 만들 수 있다. ‘13년 후’는 과거 친구의 아버지한테 성폭행을 당한 당사자가 13년이 흐른 뒤 가해자를 찾아간 사연을 다룬다.
  • [피플 인 스포츠] KLPGA 시드전 수석합격 강민주

    [피플 인 스포츠] KLPGA 시드전 수석합격 강민주

    “지켜보세요. 249대1의 바늘구멍 뚫은 경험을 살릴 겁니다.” 지난해 11월27일 전남의 무안골프장 동코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정규 투어 시드순위전이 한창이었다. 대상은 2부 투어 선수들. 다음 시즌 1부 투어로 뛰어오르기 위한 ‘수능’이다. 특히 홍진주(27), 임성아(26) 등 미국 무대에서 뛰던 선수들까지 ‘국내 U-턴’을 위해 참가하고 있던 터. 참가선수는 249명. 강민주(20·하이마트)는 나흘 동안 9언더파 281타의 성적을 냈다. 우승. 249대1의 바늘구멍을 뚫고 수석합격이라는 생애 최고의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첫날 3위로 출발, 2라운드에서 7위로 우승권에서 멀어지나 싶더니 3라운드 3위를 회복한 뒤 마지막날 6타차를 뒤집었다. “더 없이 짜릿하다.”고 했다. 이제까지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던 아버지 강동원(49)씨의 입가에 비로소 웃음이 묻어났다. 덜렁거리기만 할 줄 알았던 맏딸이었다. ●초등 4학년때 입문…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 2008년 국가대표 상비군을 지낸 유망주 출신. 한양대학교 2년에 재학 중이다. 드라이버샷의 평균 비거리는 260야드. 넉넉하다. 지난해 KLPGA 투어 2부 투어인 드림투어에 데뷔했다. 그러나 15개 대회에서 딱 한 차례 ‘톱 10’에 그치는 등 성적은 시원치 않았다. 상금랭킹 39위. 1부 투어로 가기엔 상금랭킹이 모자랐다. 절친한 친구인 남지민(20·하이마트)은 3위로 이미 1부 투어 초청장을 받았던 터였다. 그러나 강민주는 시드전을 수석으로 통과, 누구보다 값진 ‘제2의 골프인생’을 약속받았다. “1부투어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였다고나 할까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연습장에 갔다가 우연히 잡았던 골프채가 지금까지 자신을 지켜준 ‘동반자’가 됐다. “원래 덜렁거리던 성격을 바로잡는 게 목적이었다.”는 게 아버지 강씨의 말. 3년 주기로 슬럼프도 겪었다. 첫 경험은 서문여중 1학년 때. 골프백을 창고에 처박았다. “쳐다보기도 싫었다.”고 했다. 손바닥에 피멍이 들도록 공을 때려대니 그럴 법도 했다. 그러나 길어 봐야 사흘도 가지 않았다. “슬며시 창고문을 열어 보니 골프백이 없어졌더라고요. 민주가 도로 꺼내간 거지요. 그랬던 일이 서너 번은 될걸요.” 강민주는 ‘골프 대디’ 강동원씨의 ‘사업 파트너’이기도 하다. 강씨의 직업은 플라스틱 소재를 개발하고 관련 상품을 만드는 일. 23~4년 전 레진사업을 시작한 강씨는 강민주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7년 전 골프화 스파이크 만드는 일에 눈길을 돌렸다. “당시 유명한 메이커 골프화를 딸에게 사 신겼는데 그만 다 닳아 없어진 스파이크를 구하기가 영 어렵더라고요.” 강씨는 새 신발을 사 대기가 벅차 아예 스파이크를 만들기로 했다. 그때부터 강민주는 ‘시제품 품평원’이었다. 강씨에게 맏딸은 그저 ‘친구 좋아하는, 쾌활한 처녀’다. 강씨는 “이제까지 민주의 이미지는 덜렁대는, 친구 사귀기 좋아하는, 욕심 없는 아이 정도였지요. 시합 때 선후배가 자기보다 못 치면 정작 당사자는 가만있는데 자기가 더 속상해하는 아이였어요.” 강씨는 “시합 때 아이가 무너지면 따라다니는 아빠 마음도 무너집니다. 보기 몇 개 나오면 차마 더는 보지 못하고 나무 뒤로 숨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지요.” ●4월 데뷔전 앞두고 태국서 비지땀 강민주는 지금 태국에서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동계훈련. 생애 첫 1부투어 경기는 지난달 12월 중국 셔먼에서 이미 치렀지만 사실상의 데뷔전은 오는 4월 초다. 강민주는 “아빠가 늘 강조한 ‘고기 잡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첫 번째는 시드전에서 1위 한 거고요. 두 번째는 올해 상금랭킹 10위 안에 드는 것이에요.”라면서 “한때 반짝하는 것보다 몇 십년을 두고 기억되는, 그런 꾸준한 선수로 남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5만4700원에 KTX외 모든열차 1주일 무료탑승…코레일전남본부 파격 지역홍보

    차표 한장으로 일주일간 모든 열차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이 출시됐다. 코레일(한국철도공사) 전남본부는 일주일간 KTX를 제외한 모든 열차를 횟수에 관계없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내일로 티켓’을 발매한다고 13일 밝혔다. 대상은 코레일 전남본부에서 티켓을 구입하는 만 18~24세의 청소년으로, 가격은 5만 4700원이다. 이를 구입해 곡성에 올 경우 곡성기차마을 증기기관차와 섬진강 레일바이크, 심청이야기 마을 펜션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평소 서울 등지에서 이 코스를 이용할 경우 열차요금(평균 7만 6600원)과 숙박료(11만원), 각종 이용료(1만 5000원) 등을 감안하면 1인당 20만원 상당의 비용이 든다. 내일로 티켓은 오는 30일까지 하루 100명씩 선착순으로 한정 판매된다. 티켓 구매 시 무료 우편 배달서비스도 제공된다. 이번 행사는 지역알리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전남 곡성군의 공동 참여로 이뤄졌다. 이민철 코레일 영업부장은 “숙박 걱정 없이 남도를 여행할 수 있는 투어열차의 첫 시도”라며 “여수시 등 다른 지자체와도 협력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지아이조’ 테이텀 “중요 부위에 화상” 고백

    ‘지아이조’ 테이텀 “중요 부위에 화상” 고백

    ”내 생애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이다.” 할리우드 꽃 미남 배우 채팅 테이텀(30)이 영화 촬영 중 남성의 중요 부위(?)에 화상을 입는 사고를 당한 사실을 뒤늦게 고백했다. 테이텀은 해외 잡지 ‘디테일스’(Details) 최신호에서 지난해 10월 스코틀랜드에서 영화 ‘이글 오브 나인스’(Eagle of Ninth)를 촬영을 하다가 이와 같은 사고를 당했다고 밝혔다. ”생애 가장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기억”이라고 운을 뗀 테이텀은 “차가운 물 속에서 액션신을 찍다가 벌어진 사고”라고 말했다. 테이텀은 당시 차가운 강에 몸을 담근 채 연기를 하고 있었는데 촬영이 길어지자 스태프들이 테이텀을 배려해 물을 끓여와 찬물을 섞어 옷에 부어줬다. 무사히 촬영을 마쳤을 때 한 스태프가 실수로 찬물을 섞지 않은 팔팔 끓는 물을 테이텀의 몸에 부어 사고가 일어났다. 테이텀은 “뜨거운 물이 온몸을 타고 흐르자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차마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라서 말을 하지 못한 채 ‘당장 병원에 가야한다.’고 되내였다.”고 사고 당시를 떠올렸다. 상처가 너무나 쓰라리자 테이텀은 병원으로 이동하는 중 스태프들에게 ‘계속 뒤통수를 때려달라.’고 주문했을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1시간 거리에 있는 병원에서 테이텀은 응급치료를 받았다. 그는 “의사 5명이 심각한 얼굴로 화상 입은 부위를 응시했다. 그건 아픔과는 또 다른 심리적 고통이었다.”고 재치있게 설명했다. 다행히 상처가 모두 아물었다고 밝히면서도 테이텀은 “지금 당시 기억을 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다.”면서 “사고 이후 촬영할 때 더욱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테이텀과 제이미 벨이 주연을 맡은 캐빈 맥도날드 감독의 ‘이글 오브 나인스’는 올 가을 개봉할 예정이다. 테이텀은 2007년 영화 ‘스텝업’에 함께 출연한 동료 배우 제나 드완(30)과 2년 열애 끝에 지난해 비밀 결혼식을 올렸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연비 올려야 생존” 신기술경쟁 가속

    “연비 올려야 생존” 신기술경쟁 가속

    ‘자동차 연비를 끌어올려라.’ 올해 세계 자동차 업계가 ‘연비 전쟁’을 벌이고 있다. 글로벌 경기회복에 따른 유가 상승과 각국 정부의 연비 정책 강화 등으로 ‘연비 나쁜 차’는 퇴출 기로에 서게 된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연비규제안을 제정, 2016년까지 평균 연비를 현재 10.5㎞/ℓ보다 대폭 상향된 15.1㎞/ℓ를 충족토록 했다. 정부도 이르면 2011년부터 자동차세 부과 기준을 현재의 배기량에서 연비와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으로 바꾼다. 하이브리드 개발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는 판매량이 가장 많은 가솔린 차량의 연비 개선이 발등의 불인 셈이다. ●가솔린차량 연비개선 발등의 불 10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신차들의 연비는 대폭 향상되고 있다. 오는 18일 출시되는 현대차 쏘나타 2.4는 가솔린 직분사(GDI) 엔진을 탑재, 연비를 13.0㎞/ℓ로 끌어올렸다. 르노삼성의 뉴 SM5도 중형차 처음으로 ‘엑스트로닉’ 무단변속기를 장착, 구 모델 연비(ℓ당 10.8㎞)를 크게 웃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5일 출시된 닛산 ‘뉴 알티마’는 3.5 모델 연비가 10.3㎞/ℓ, 2.5 모델은 11.6㎞/ℓ를 구현했다. 기아차의 첫 준대형 모델인 K7은 2.4 모델 11.8㎞/ℓ, 3.5 모델이 10.6㎞/ℓ로 호평을 받고 있다. 세계 완성차 업체들의 연비 신기술, 무엇이 있을까. ●다이어트와 엔진 기술 혼합하라 세계적 트렌드는 차체 중량 감소와 엔진 다운사이징이다. 탄소섬유, 마그네슘 등 신소재를 적용한 ‘경량 차체 설계’ 기술로 체중은 줄이고 내구성은 높이는 게 목표이다. 독일 폴크스바겐도 2012년형 폴로 중량을 30% 정도 감량할 계획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탄소섬유가 고가의 소재여서 국내 차에 적용할지는 가격경쟁력 확보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엔진은 고압·직접분사 등 기술 혼용이 추세다. 미 포드는 가솔린 직분사 엔진과 터보차저를 조합한 ‘에코 부스트(EcoBoost)’ 엔진을 개발하고 있다. 연료 소모가 종전보다 20%, CO2 배출량은 15%가 준다. 포드는 올해부터 5년 이내 신차 50만대에 장착한다. 폴크스바겐은 터보 및 슈퍼차저를 동시 장착한 엔진을 개발, 골프와 시로코 등 소형차에 적용한다. 현대기아차가 개발 중인 8단 변속기와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는 ‘에어로 다이내믹스’도 연료 효율을 높이는 주요 기술이다. ●에코 드라이빙을 최적화하라 소프트웨어는 ‘스마트’해진다. 신형 쏘나타, K7 등 국내 신차마다 ‘에코 드라이빙 시스템’이 장착되고 있다. 연료 소비가 많으면 적색등이, 정속주행 때는 녹색등이 켜져 운전자가 스스로 연비를 개선한다. 닛산이 개발한 ‘에코 페달 시스템’은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필요 이상 밟으면 자동차가 페달을 밀어낸다. 유럽에서는 친환경 내비게이션이 인기다. 스페인 벡시아가 지난해 12월 출시한 내비게이션 ‘에코나브’는 최단 거리보다 연료 효율이 가장 좋은 경로를 운전자에게 안내한다. 주행 시 언제 가속할지도 알려준다. 친환경 내비게이션을 이용할 경우 20~33%의 연료 소비량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도 해외 판매용 투산ix에는 연비가 가장 높은 도로를 안내하는 ‘그린 루팅(Green Routing)’ 내비게이션을 적용할 계획이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禁忌’ 영화속 유쾌한 파괴

    ‘禁忌’ 영화속 유쾌한 파괴

    “감독은 언제나 자기가 만든 최신작에 역행하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프랑스의 유명 감독 프랑수아 오종의 말이다. 영화는 개혁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소리다. 그는 늘 새로움에 도전했다. 그리고 그가 말한 역행은 사회적 ‘금기’를 깨면서 시작됐다. 보통 사람들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될 수 없는 상황을 설정하면서 때론 가혹하게, 때론 불편하게 다가갔다. 그에게 영화란 금기를 해부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다. ●영화의 역사는 금기 깨기의 역사 금기(禁忌). 영화가 금기를 깨야한다는 것은 사실 영화정신의 밑바탕이기도 하다. 영화는 항상 금기에 도전했고 진보를 선도했다. 이에 영향을 받은 대중도 서서히 변해갔다. 지금은 흔해 빠진 ‘노출’은 20세기 중반 영화계가 폐쇄적인 성(性) 담론에 대해 도전장을 내밀면서 시작됐다. 영화가 이렇듯 단순한 예술을 넘어 사회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전제는 전문가들의 일관된 견해다. 이상용 영화평론가는 “영화는 젊은 세대와 함께 태동했다. 영화는 이전에 없었던 문화적 코드를 통해 저항을 해나갔다. 이게 영화의 기본 정신”이라고 강조한다. 한국 영화라고 다를까. 굳이 독립영화와 예술영화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미 주류 영화에서도 금기 해부는 시작됐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차마 입에 꺼내기도 어려웠던 ‘근친상간’을 부각시켰고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는 동성애를 전면에 내세웠다. 지난해에도 금기 깨기는 이어졌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2008)는 지고지순한 모성애에 대한 환상을 부정했다. 이들 영화의 특징은 금기를 깨는 방식이 무척 심각했다는 것. 올드보이나 마더 모두 시종일관 어두운 분위기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는 평가다. 관객들은 그 금기에 균열이 생기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지만 마냥 심각하지만은 않았다. 몇몇 영화들은 금기와 웃음을 접목시켰다. 지난해 82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과속 스캔들’은 속도위반을 한 세 당사자의 이야기를 재치있게 풀어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아직 정상적이지 못한 것으로 치부되는 혼전 임신과 출산을 소재로 코믹 영화를 만들어 보겠다는 발상은 분명 금기를 풀어내는 다른 접근 방식 가운데 하나였다는 분석이다.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의 금기깨기는? 14일 개봉하는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도 이 계보를 잇고 있다는 평가다. 우리 사회의 금기인 ‘트랜스젠더’란 소재를 ‘여장남자’라는 웃음 코드로 접목시켰다는 것. 남자였던 시절 지현(이나영)은 뜻하지 않게 한 여자와 하룻밤을 지낸다. 하지만 몇 년 뒤 자신을 아빠라 부르는 아들 유빈(김희수)이 갑작스레 찾아온다. 준서(김지석)와 풋풋한 사랑은 이내 헝클어지기 시작하고 자신의 아들을 위해 지현은 남장을 감행한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다. 물론 이 영화의 초점은 배우 이나영이 ‘남장’을 한다는 데 맞춰져 있지만 실제 영화를 끌어가는 동력은 아직은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금기인 ‘트랜스젠더’에 있다. 이광재 감독은 이 영화에서 ‘트랜스젠더’란 소재를 통해 성에 대한 이분법적 경계를 허물어트리고자 했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의 삶은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예측불가의 시간들이다. 이분법적 논리에서 벗어나 누구나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보편의 영화’를 꿈꿨다.”고 설명한다. 철저한 외부인이자 금기의 대상이었던 트랜스젠더가 여자로서 사랑을 하면서도 아빠가 될 수도 있다는 애매모호한 설정을 통해 금기를 해체해 보겠다는 것. 물론 감독은 이를 ‘남장여자’라는 다소 코믹한 코드로 표현해 냈다고 덧붙인다. 배우 이나영도 “익숙하지 않은 소재를 유쾌하게 풀어내기 위해 힘썼다.”고 말한다. 하지만 금기와 유쾌함의 균형이 잘 잡혀있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영화는 트랜스젠더가 아빠가 되는 해프닝을 다루고 있지만 이내 남자 주인공과의 사랑에도 성공한다. 민감한 성(性) 정체성 문제는 그저 남자분장을 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했을 뿐이었다는 것. 그저 지현이 “남자의 몸에 갇혀 살았을 뿐 바뀐 건 없다.”고 울부짖는 게 영화가 가진 고민의 전부였다는 평가도 흘러나온다. 이상용 평론가는 “소재가 바닥난 대중영화들이 금기를 건드리려고 하지만 이내 비켜가 버린다. 금기를 단지 ‘소재화’ 시키는 데 멈춰있다. 물론 그걸 전면에 내세우며 사회에 칼날을 들이댈 필요까진 없지만, 이왕 금기를 다룰 요량이라면 충분히 고민거리를 던질만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지붕킥’, 자유자재 패러디에 시청자 폭소

    ‘지붕킥’, 자유자재 패러디에 시청자 폭소

    MBC ‘지붕뚫고 하이킥(이하 지붕킥)’ 이 영화 ‘베사메무쵸’ 나 ‘은밀한 유혹’ 을 떠올리게 했던 광수(이광수)-인나(유인나)의 에피소드에 이어 ‘유주얼 서스펙트’ 와 ‘약속’ 패러디로 자체 최고시청률 26.1%(TNS미디어코리아)를 경신했다. 4일 방송된 준혁(윤시윤 분)과 세경(신세경 분)의 이야기에는 지난 1996년판 할리우드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 가 덧입혀졌다. 세경의 일을 돕다 준혁이 다리를 접질르자 준혁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 세경은 “준혁의 다리가 되겠다” 고 선포했다. 준혁이 계단을 오르내리고 외출하는 길에 부축을 받으면서 둘 사이에는 자연스러운 스킨십이 이뤄졌다. 또 이 둘은 약속 장소에서 친구 세호(이기광)을 기다리면서 실제 연인들인 것처럼 데이트를 즐겼다. 하지만 준혁이 다리를 절둑거리다가 다시 멀쩡하게 걷고 또 뛰기 시작하면서 결국 준혁에 의해 조작된 ‘상황’ 인 것이 폭로된다. 특히, 폭로되는 상황이 극 중 ‘절름발이 버벌(케빈 스페이시)이 실은 조직 두목 카이저 소제였다’ 는 반전이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과 일치해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박신양, 전도연 주연의 한국 영화 ‘약속’ 패러디도 선보였다. 보석(정보석분)이 ‘약속’의 조폭 두목 박신양을 패러디해 시청자를 폭소케 한 것. 봉실장(이봉원분)에게 해고통보 사실을 차마 전하지 못하고 술잔만 연신 비운 보석(정보석분)은 술에 만취한 봉실장을 데리고 한 성당을 찾았다. 그리고는 “당신께서 훗날 네 죄가 무엇이냐고 물으시면 이 사람을 만나고 이렇게 버린 것이 가장 큰 죄였다고 말할 것”이라면서 “이 사람한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저는 정말 개쓰레기입니다” 라고 말해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사진 = MBC 서울신문NTN 백영미 기자 positive@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아파트와 인간의 군상-소설 3選] 미션에 빠져 집을 좇는 사람들

    대출 2000만원을 끼고 마련한 6000만원 정도에 햇빛 잘 드는 창문 있는 집이 필요하다. 장애를 가진 아들을 손가락질 받지 않고 키울 수 있는 동네에 집을 갖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다. 치매를 겪고 있지만 본능은 사선(死線)을 넘나들던 시절 봤던 호수가 내다보이는 소박한 집을 꿈꾼다. 내 집 마련을 위한 필사적인 노력의 목표물들이다. 한겨레 창비신인소설상을 받고 등단한 김윤영이 택한 자신의 첫 장편소설의 주제는 바로 많은 이들을 웃게 하고, 한숨짓게 만드는 부동산이다. 제목도 기가 막히다. 최근 인기를 얻었던 한 드라마의 제목을 패러디한 듯 ‘내 집 마련의 여왕’(자음과모음 펴냄)이니, ‘풍속소설’을 자처하며 의도적으로 본격문학을 비틀고자 하는 의도도 숨어 있겠다. 집이라는 것이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달뜬 욕망의 표상이면서도, 한편으론 가족 단위를 이뤄주는 안락한 보금자리로서 간절한 현실임을 여실히 확인시킨다. 작가는 이를 ‘솔(Soul) 하우스’라고 이름붙인다. 부모 없는 형제들과 치매 노인의 솔 하우스, 장애아들을 가진 가족의 솔 하우스 등, 형태는 다르지만 소박한 욕망이 진지하게 펼쳐진다. 작가 김윤영의 분신과도 같은 주인공 ‘임수빈’은 이러한 다양한 욕망과 좌절을 함께 안겨주는 ‘집의 문제’와 연신 맞닥뜨린다. 사실 소설의 구성은 허술하다면 허술하다. 미션을 해결하면 새로운 미션이 연이어 등장하고, 과거의 미션을 통해 만들어진 인연이 새 미션에 조력자 역할을 수행하는 식이다. 일본 만화에서 흔히 나타나는 ‘나선형 과제 해결 구도’다. 실어증 딸과 기억상실증 남편까지 등장, ‘솔하우스’에서 다시 만나 각각 말과 기억을 되찾기도 한다. 실제로 김윤영의 ‘…여왕’은 금기를 건드렸다. 부동산이라는 소재와 주제가 그러하듯 헛기침하며 점잔빼는 문학으로서는 차마 다루지 못했던 것들이다. 다만 르포 소설입네 하며 최소한의 소설적 형식도 갖추지 못한 삼류 글들만 나돌아다니는 현실에서 ‘…여왕’의 극사실적인 현실 묘사는 소설의 본령이 달리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김윤영은 “돈 냄새가 나면 일단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순문학에 얽매이지 않고 좀 더 현실적인 먹고사는 문제를 다루면서 한국 문학의 저변을 넓히고 싶다.”며 문학적 위악(僞惡)의 역할을 자처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연말결산] 2009 놓칠 뻔한 연예뉴스 ① 방송

    [연말결산] 2009 놓칠 뻔한 연예뉴스 ① 방송

    2009년 한 해도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숱한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이 안방극장을 장식했다. 드라마만 보더라도 상반기 ‘꽃보다 남자’와 ‘아내의 유혹’에 이어 하반기에는 ‘아이리스’와 ‘선덕여왕’ 등이 잇따라 퇴근길 직장인들의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들 만큼 유난히 ‘히트 드라마’가 풍성했던 한 해였다. 예능 프로그램도 이와 다르지 않다. ‘무한도전’과 ‘1박2일’, ‘패밀리가 떴다’ 등의 리얼 버라이어티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면서 비슷한 포맷의 현장 버라이어티 작품들이 하나둘씩 시청률 경쟁에 뛰어들었던 한 해다. 하지만 많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은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은 다른 한 편에서는 시청률은 낮았어도 나름대로의 작품성과 오락성을 인정받은 드라마·예능 프로그램이 있었다는 점을 반증한다. 서울신문NTN은 신선하고 참신한 소재의 드라마와 웃음 외에 훈훈한 감동을 선사했던 6개의 프로그램을 ‘명품’ 반열에 올려본다. ◆ 드라마 부문: ‘탐나는도다‘ ’열혈장사꾼‘ ‘천하무적 이평강’ 우선 드라마 부문에서는 MBC ‘탐나는도다’와 KBS ‘열혈 장사꾼’ , SBS ‘천하무적 이평강’ 이 독특한 소재와 신선한 기획으로 주목을 받았던 작품들이다. 다만 시청률은 작품성에 비해 크게 높지 않았던 게 ‘옥의 티’. MBC의 ‘탐나는도다’ 는 ‘17세기 제주 앞바다에 금발의 푸른 눈 사나이가 떨어지다’라는 독특한 주제로 웰메이드 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외국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서로 다른 문명과 인종 간의 소통방법을 터득해 가는 과정과 신분격차 속에서 사람간의 벽을 허물어가는 과정을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평균 5.7%(TNS미디어)의 시청률로 바닥을 기었지만 나름대로 마니아층을 형성해 선전은 했다는 후평이다. 하지만 당초 20부작으로 예정돼 대본까지 미리 나왔음에도 저조한 시청률 때문에 최종 16부작으로 만족해야 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는 마니아층의 지지를 얻은 덕에 DVD용으로는 총 21부작으로 재편집돼 발매되는 영광을 누렸다. 감동이 있는 휴먼 드라마를 지향한 KBS의 ‘천하무적 이평강’ 과 ‘열혈 장사꾼’도 각각 5.5%와 9.2%의 비교적 낮은 시청률을 현재 올리고 있거나 과거에 기록했지만 이들 드라마는 ‘실패와 역경을 통해 꿈을 이루는 젊은이’(천하무적 이평강), ‘고객을 감동시키는 세일즈’(열혈 장사꾼) 등 뚜렷한 주제의식을 드라마에 삽입한 덕분에 평론가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 예능 부문: ‘단비’ ‘우리 아버지’ ‘강심장’ 예능부문에 있어서는 MBC ‘일요일일요일 밤에(이하 일밤)’의 프로젝트 코너인 ‘단비’와 ‘우리 아버지’, 그리고 SBS의 ‘강심장’이 ‘명품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일밤의 ‘구원투수’ 로 전격 투입된 김영희PD는 KBS ‘1박 2일’ 과 SBS ‘패밀리가 떴다’ 의 리얼 코미디에 밀렸던 프로그램을 ’감동 코드’ 로 방향전환을 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6일 첫 전파를 탄 ‘단비’ 와 ‘우리 아버지’를 통해서다. 이들 프로그램은 초기 4%대에 머물렀던 시청률이 8%대까지 뛰어오르며 서서히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이끌어 내고 있다. ‘단비’ 의 경우 출연자들이 아프리카 지역의 심각한 식수 문제를 생생하게 접하면서 열악한 환경 속의 현지인들에게 힘을 준다는 내용을 담았고, ‘우리 아버지’ 는 병든 아내와 혼자 자라는 아들 생각에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기울이는 아버지, 자식에게 환경미화원이라는 사실을 숨긴 아버지 등 힘겹게 살아가는 이 시대 가장의 이야기를 사실감있게 묘사했다. 이같은 ‘훈훈함’ 때문인지 실제 이들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 상당히 뜨거운 편이다. 시청자 게시판에서는 “수정이에게 기적을 안겨준 단비팀 감동이다”, “추운 날씨에 얼어붙은 마음까지 녹였다”, “밥먹으면서 봤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아 혼났다” 라는 식의 감동섞인 호평이 쏟아나고 있다. 이 외에 SBS의 ‘강심장’ 역시 ‘감동 예능’ 이 그저 감동과 눈물에만 머물지 않고 예능 프로그램의 기본 취지인 ‘웃음’이 감동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나도록 해야 한다는 모델을 제시해주고 있는 케이스다. 예를 들면 신·구 게스트들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비밀리 간직했던 사연을 공개하거나 차마 그동안 꺼내지 못했던 눈물겨운 가족사 등을 자연스럽게 웃음과 감동으로 승화시키는 내용들이다. ‘강심장’은 게스트들의 깜짝 놀랄 만한 사연들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하면서 평균 시청률이 20%에 육박하는 등 화요일 심야 프로그램의 최강자로 등극했다. ’색깔’을 갖춘 드라마와 ‘감동’을 선사하는 예능 프로그램. 2010년의 방송계에서도 이 열기는 계속 뜨거워지리라 기대해본다. 사진=각 방송사 서울신문NTN 김진욱 기자 action@seoulntn.com/백영미 기자 positive@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주말화제] 3040 도서관서 재기 꿈꾸다

    [주말화제] 3040 도서관서 재기 꿈꾸다

    11일 아침 8시. 김모(41)씨는 여느 때처럼 잘 다려진 회색 정장에 검정색 반코트를 말끔하게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배웅하는 아내에게 “회사 잘 다녀올게.”라는 말을 던졌으나 마음은 천근만근처럼 무거웠다. 서둘러 집을 빠져나온 그의 발걸음은 서울 북촌길의 정독도서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김씨는 이른바 ‘도서관 출퇴근족’이다. 유통회사에 다니다 경기불황으로 지난해 실직한 그는 재기를 위해 이 도서관을 찾고 있다. 도서관 정기간행물실에서 일간지 3개와 경제지 2개를 정독한다. 취업정보 게시판을 꼼꼼히 읽다 보면 어느새 시계는 12시. 점심은 도서관 식당에서 3000원짜리 백반으로 해결한다. 사회 이슈와 문화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시청각실에서 영화도 보고 각종 잡지를 읽다보면 어느새 창밖엔 뉘엿뉘엿 해가 진다. 김씨는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 눈물을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면서 “반드시 백수 꼬리표를 떼고 사회 생활에 복귀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30~40대 실직자들이 공공도서관으로 향하고 있다. 취업에 필요한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데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독서·인터넷 검색·영화감상 등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냉난방이 잘돼 있어 더위와 추위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날 정독도서관 휴게실과 흡연실에는 취업을 준비하는 30~40대 남성들로 넘쳐났다. 다른 도서관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종로, 용산, 남산, 동대문 등 서울시내 5개 공공도서관 관계자들은 “10~20대 학생보다 30대 이상 중년층이 더 많이 찾는다.”고 밝혔다. 남모(35)씨는 3개월째 정독도서관을 사무실 삼아 출퇴근하고 있다. 지난 9월 다니던 중소 IT업체가 문을 닫으면서 하루아침에 백수가 됐다. 남씨는 “2살배기 딸을 키우는 아내에게 차마 말할 수 없어 매일 아침 8시 서류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다.”고 말했다. 아내가 눈치챌까 봐 퇴직금을 쪼개 월급통장에 넣는다고 덧붙였다. 치킨체인점을 운영했던 이모(37)씨는 매일 취업 정보 업데이트가 끝나는 오후 4시까지 종로도서관에서 보낸다. 이씨는 “얼마 전 도서관에서 고교 동창을 만났는데, 유명 법대를 나와 승승장구할 줄 알았던 친구가 실업자 신세여서 충격을 받았다.”면서 “나중에 만날 때는 도서관이 아닌 사무실에서 보자고 약속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저출산에 고개숙인 자본주의

    치열한 대학 입시 경쟁과 부동산값 폭등, 실질임금 하락으로 살아가는 게 여간 힘들지 않다는 당신. 이놈의 경쟁이 치열해진게 한없이 폭증하는 인구 때문이라고 보는가. 이 때문에 차마 내가 낄 틈이 없다고 느끼는가. 그래서 사람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기를 바라는가. 착각이다. 지금의 우리 사회 주류인 베이비 붐 세대는 모른다. 저출산 문제가 얼마나 큰 재앙을 몰고 올지를. 미국의 인구 문제 전문가이자 ‘뉴 아메리카 재단’의 선임 연구원 필립 롱맨은 자신의 책 ‘텅빈 요람’(민음인 펴냄)에서 이렇게 경고한다.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얼마나 큰 파괴력을 지녔는지 조목조목 역설하는 그는 역사학, 인구 통계학, 경제학, 생물학, 여성학, 역학 등 다양한 분야를 총동원하며 종합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그는 묻는다. 체제적 약점을 복지 정책에 의존하고 있는 자본주의가 고령화 사회를 배겨낼 수 있을까.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의료비와 연금이 그 비용들을 견뎌낼 수 있을까. 롱맨은 “현대 사회의 토대를 이루는 두 가지 신념 체계인 자본주의와 자유는 인구가 계속 증가할 것이란 확신 위에서야 가능한 이데올로기다. 지금과 같은 저출산·고령화가 지속된다면 체제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고 분석한다. 과학 기술로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고개를 젓는다. 롱맨은 기술의 발달이 생산성을 개선해 노동력의 부족분을 메울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은 순진한 믿음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 자본주의와 기술 진보에 맹목적 신뢰를 하고 있는 우파 경제학, 복지 정책으로 삶의 질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좌파 경제학 모두 저출산 문제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이 없다면 지구촌의 미래는 어둡다고 롱맨은 말한다. 그가 내놓는 대안은 간단하다. 적당한 출산율과 튼튼한 가정, 보다 생산적인 고령화에 희망을 건다. 치밀한 분석력에 비하면 대안은 상대적으로 ‘진부’하다. 이 석학조차 뚜렷한 대안이 없는 듯 해 미래가 더 암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눈길을 끈다. “18세 이하 자녀를 둔 부모에게 근로소득세를 감면해주고 아이를 낳은 부모에게 실질적인 배당금을 보장해야 한다. 첨단 의료와 중증 질환 치료에 투자하는 비용을 줄이고 운동 장려와 식생활 개선으로 건강한 노년 생활을 유도, 건강 보험의 재정적 부담을 감소시켜야 한다.” 1만 4000원.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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