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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험한 세상 비빌 언덕 되려고 모였죠”

    “험한 세상 비빌 언덕 되려고 모였죠”

    지난 25일 낮 12시, 서울 영등포동2가 지하에 있는 한 교회. 김원도(63)씨가 두 손으로 노숙인 이창수(가명·52)씨의 차가운 손을 꼭 잡았다. “힘내라.”는 한 마디를 건넸을 뿐인데 이씨의 눈시울이 금세 발개졌다. 노숙인 쉼터 ‘행복한 우리집’에서 마련한 노숙인 송년모임이었다. 노숙인 10명과 노숙인 출신으로 자활에 성공한 사람 등 75명이 모여 좁은 교회를 꽉 채웠다. 행복한 우리집 원장인 문정순(57·여) 목사는 “연말 송년회는커녕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노숙인들에게 음식도 먹게 하고, 또 과거 노숙인이었던 사람들을 만나 희망을 품게 하려고 마련한 자리”라고 말했다. 노숙인들을 위로한 김씨도 2005년부터 2년간 노숙생활을 했다. 그는 “운영하던 횟집이 망하면서 2억원이 넘는 빚이 생겼고, 자식들 월급까지 압류 당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 집을 뛰쳐나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숙인 쉼터에 들어오면서 김씨는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쉼터 복지사들의 도움으로 파산신고도 하고, 생활습관도 바꿔 건강도 회복할 수 있었다. 김씨는 현재 서울시 일자리 지원사업에 참여해 월드컵공원에서 일하며 한 달에 80만~90만원을 벌고 있다. 2009년부터 꼬박꼬박 저축해 모은 돈이 1000만원을 넘었다. 김씨는 이씨에게 “용기가 가장 중요하다. 나도 잘난 건 없지만 우리가 서로 비빌 언덕이 되면 조금이나마 세상이 따뜻해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세대공감] 영화 같은 당신들의 크리스마스

    [세대공감] 영화 같은 당신들의 크리스마스

    해마다 이맘때면 거리에서 흐르는 캐럴과 화려한 빛깔로 반짝거리는 길거리 조명이 마음을 들뜨게 한다. 크리스마스가 가슴 설레는 것은 연말연시 분위기에 연인, 가족과 함께하는 따뜻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성탄절이 사흘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연인과 함께할 크리스마스 계획에 들뜬 젊은 커플, 며칠 전부터 밤마다 산타 할아버지에게 갖고 싶은 선물을 기도하는 어린이, 자녀의 선물을 준비하며 몰래 산타가 되려는 부모. 모두가 설레는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 전, 저마다의 행복한 추억이 가득한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울 신월동에 사는 송창근(54)씨는 크리스마스 하면 가장 먼저 차가운 훈련소와 조교들의 고함 소리가 떠오른다. 크리스마스 이틀 전 군대에 들어가 어리바리한 신참으로 크리스마스를 맞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송씨는 22세였던 1977년 12월 23일 논산훈련소에 입소했다. 부모님, 친구들과 헤어져 훈련소 연병장에 모이자마자 “지금부터 크리스마스 기분은 잊어라.”고 호령하는 고참의 말에 이씨는 바짝 긴장한 채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송씨는 입대 전까지만 해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고향인 충북 청주의 고고장에서 친구들과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특히 크리스마스는 일년 중 몇 안 되는 통행금지가 풀리는 날이었기 때문에 송씨와 친구들은 크리스마스만 되면 밤새워 놀 계획을 세우곤 했다. 이런 송씨도 입영은 피할 수 없는 일. 머리를 빡빡 깎고 입영열차를 타러 가는 길에 울려 퍼졌던 캐럴이 송씨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가뜩이나 가기 싫었던 군대인데 친구들과 신나게 놀 수 있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가려니 발길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송씨는 “캐럴을 들으면 크리스마스를 안 챙기는 사람이라도 마음이 들뜨는데 군대에 가야 하니 한숨만 나올 뿐이었죠.”라며 씁쓸했던 기억을 되살렸다. 입영열차 안에서 내다 본 차창 밖은 색색의 조명으로 가득했지만 열차 안은 먹장구름이 엄습한 것처럼 어두운 분위기였다. “그때의 우울했던 기분은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왜 하필이면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 입대했는지.”라며 송씨는 한숨을 쉬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알바만… 꽃다운 나이 이렇게 처량할 수가 양재동에 사는 대학생 이소은(24·여)씨에게도 우울한 크리스마스의 추억이 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의 기억은 아르바이트로 보낸 대학교 1학년 때. 매일 아침 7시 커피숍으로 가서 가게를 열고 장사를 시작해 정오까지 일한 뒤, 점심을 먹고 곧바로 피자집으로 가서 저녁 9시 30분까지 일했다. 방학 내내 하는 아르바이트를 크리스마스라고 쉴 수 없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와 당일에도 커피숍과 피자집 아르바이트를 오가면서 이씨는 쏟아져 들어오는 연인들을 보며 부러워했다. 커피숍에서는 커플들이 양손에 백화점에서 산 선물을 가득 들고 들어와서는 다정하게 앉아 커피를 마시다 나갔다. 피자집에서는 오후 2시에 들어온 커플이 6시가 될 때까지 계속 앉아 있었다. 마주 앉아 먹는 것이 더 편할 텐데도 연인들은 한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계속 머리를 쓰다듬고 껴안으며 애정표현을 했다. 이씨는 “‘다 드셨으면 나가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았다.”면서 “나도 크리스마스 땐 놀고 싶고 특히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싶은데, 스무살 꽃다운 나이에 돈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속상했다.”고 말했다. 결국 이씨는 퇴근을 조금 앞두고 화장실로 가서 눈물을 훔쳤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지만… 크리스마스는 ‘솔로지옥’ “주접떨고 망가지는 역할은 이제 싫어요.” 공덕동에 사는 박서현(27·여)씨에게는 친한 친구들과 함께 보냈던 5년 전 크리스마스 이브는 지우고 싶은 기억이다. 2005년 대학생이었던 박씨는 크리스마스 기분을 제대로 내기 위해 친구 3명과 함께 사람들이 북적이는 강남에서 약속을 잡았다. 설레는 기분으로 약속장소로 향한 박씨는 ‘절친’들을 발견해 손을 들어 인사하려는 순간,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박씨를 제외한 친구 3명 모두 남자친구를 데려온 것. 남자친구랑 같이 오겠다고 말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박씨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 다 커플이고 저만 그 자리에서 혼자였어요. 미리 귀띔이라도 해줬으면 좋았는데 나가 보니 모두 쌍쌍이라 괜히 제가 민망했죠.” 친구들의 남자친구들도 여자친구만 믿고 그 자리에 따라왔을 뿐 서로 모르는 사이라 분위기는 썰렁했다. 박씨는 속으로 친구들이 굉장히 야속했다. “커플은 자기들끼리만 좋지 서로 알지도 못하는데 다 같이 어울리려니 어색했어요. 일행 중 저만 혼자라는 게 더 당황스러운 일이었죠.” 썰렁한 분위기를 견딜 수 없었던 박씨는 스스로 분위기 메이커가 되기로 결심했다. 혼자만 솔로로 왔으니 커플들 사이에서 주눅 들지 않으려면 되레 활발하게 분위기를 주도하자는 생각이었다. 박씨는 그때부터 커플들 사이를 이리저리 다니며 먼저 말을 걸었다. “이름이 뭐예요?”에서부터 “연예인 닮으셨네요.”라는 마음에 없는 칭찬까지 하면서 분위기를 띄우려고 노력했다. 박씨가 이렇게 망가지는 사이 다른 친구들은 남자친구 앞에서 잘보이기 위해 조신하게 내숭을 떨었다. 심지어 한 친구의 남자친구는 자기 여자친구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저 사람 좀 푼수 같아.”라고 말했다. 분위기를 띄우려는 박씨의 눈물겨운 노력도 헛수고로 돌아가고 박씨는 오히려 마음에 상처만 입었다. “분위기 어색하지 않게 일부러 칭찬해준 것도 모르고 푼수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대로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박씨는 그후로 크리스마스 때 친구들이 불러도 나가지 않았다. 박씨는 “차라리 혼자 집에서 ‘나홀로집에’나 보는 게 더 편해요.”라며 울적한 표정을 지었다. 박씨는 올해도 여전히 솔로다. ●돈 잘버는 ‘화려한 돌싱’의 쓸쓸한 크리스마스 미국 뉴저지주에서 사는 최형원(49·가명)씨는 자칭 ‘화려한 돌싱’이다. 30대 초반에 결혼해 8년을 함께 산 아내와 이혼한 뒤 미국으로 이민간 지도 벌써 10년째다. 미국에서 벌인 사업이 번창해 성공한 이민자로 자리잡은 최씨에게 딱 하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여자친구. 사업이 바쁘고 여가시간에는 운동 등 취미활동을 하는 등 애인을 만들 시간이 없다고 주장하는 최씨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외로운 것은 어쩔 수 없다. 특히 이맘때가 되면 겨울휴가를 받아 한국에서 미국 여행을 오는 친구들 부부나 가족을 보면 외로움이 더해진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에는 최씨의 가장 친한 친구 부부가 뉴욕으로 놀러와 예정에도 없던 ‘가이드’ 역할을 해야만 했다. 뉴욕의 지리와 명소를 잘 알고 있는 최씨에게 친구는 “부인을 감동시킬 수 있는 멋진 레스토랑을 예약해 달라.”는 부탁까지 했다. 결국 최씨는 친구 부부를 데리고 뉴욕 타임스스퀘어와 백화점 등을 구경시켜주는 데 크리스마스 하루를 전부 보내야 했다. 마지막으로 친구 부부를 위해 예약해둔 야경이 멋진 최고급 레스토랑까지 안내해준 최씨는 피곤하다면서 집에 먼저 들어갔다. 최씨는 “친구 부부가 오붓한 시간을 보내라는 의미에서 눈치껏 빠져주긴했는데 막상 집에 오니 허무하고 외로웠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외국인 직원들과 매년 집에서 파티 경기 일산에 사는 이형민(28)씨는 3년 전인 2007년 12월 24일 비행기 안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그는 이집트로 어학연수를 가기 위해 터키항공을 타고 하늘 위를 날고 있었다. 이씨는 “하필이면 24일만 비행기표가 남아 있어서… 혼자 크리스마스를 보낸 건 처음이었어요.”라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25일 0시를 알리는 시곗바늘이 지나자 옆자리에 앉아있던 한 외국인이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이씨는 인사를 나눈 참에 옆자리 외국인과 기내에서 주는 와인을 나눠 마셨다. 그러자 앞자리에 앉아 있던 또 다른 외국인이 마찬가지로 인사를 했고 함께 또 술을 나눠 마셨다. 이씨는 “그렇게 한명 한명 인사해서 5명이 서로 이야기도 하고 술도 마시고 했어요. 처음에는 와인, 다음엔 맥주도 마시면서 놀다 보니 서로 친구가 됐죠.” 국적은 미국, 터키 등 다양했다. 서로 말은 제대로 통하지 않았지만 크리스마스 축하주를 나눠 마시며 더듬거리는 영어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씨는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전부 크리스마스라고 즐겁게 어울리는 모습을 보니 정말 세계인의 축제라는 말이 실감났다.”고 말했다. 중소 가구공장을 운영하는 문규성(62)씨도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과 함께 보낸 크리스마스의 추억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주 노동자가 가장 많이 사는 경기 안산시 문씨의 공장에는 6명의 외국인이 일하고 있다. 중국,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몽골, 네팔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이들은 문씨의 공장에서 일년 넘게 일해 가족처럼 정이 들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문씨는 외국인 직원 6명을 모두 집으로 초대해 파티를 열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가족과 떨어져 보내야 하는 외국인 직원들의 고충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문씨의 부인 김희화(59)씨는 크리스마스 전날 아침부터 음식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외국인들도 좋아하는 우리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불고기, 잡채부터 탕수육까지 집에서 직접 만들어 차려냈다. 일을 끝낸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문씨 부부까지 8명이 모두 음식 앞에 둘러 앉아 각자의 나라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에 대해 이야기하고 가족 이야기를 주고받는 등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자리가 모두 파할 무렵 외국인 직원들은 문씨 부부에게 하얀 쇼핑백을 하나 건넸다. 그 안에는 문씨 부부에게 영어로 쓴 크리스마스 카드와 부부의 선물이라는 내복이 들어 있었다. 문씨는 “각자 나라마다 명절이 다 다르지만 크리스마스는 공통적으로 즐길 수 있는 날이라고 생각해 직원들을 모두 초대해 함께 시간을 보냈다.”면서 “여러 사람이 함께 모이니 훨씬 더 따뜻하고 즐거웠던 시간으로 기억된다.”고 말했다. 문씨는 올해 크리스마스에도 이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청해 함께 파티를 할 계획이다. 김양진·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철저히 홀로 갇힌 심리해부

    철저히 홀로 갇힌 심리해부

    어딘가에 갇혀 버렸다. 이유는 모른다. ‘왜?’라고 질문하기엔 시간이 촉박하다. 생사의 기로다. 처절한 몸부림. 방도는 없다. 과연 빠져나갈 수 있을까. ‘밀실 공포’는 스릴러 영화의 단골 손님이다. 폐소공포증 환자가 아니라도, 내가 ‘저 상황에 있다면’이라는 상상만으로도 극한의 공포감을 만든다. 8일 개봉한 ‘베리드’도 그렇다. 어느날 갑자기 땅속 좁은 관에 갇히게 된 한 남자. 탈출을 위한 눈물겨운 사투는 단 한명의 배우, 단 하나의 공간이란 한계에도 불구하고 95분 러닝타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베리드를 중심으로 여러 ‘밀실 영화’들을 비교해 봤다. 제한된 공간은 다른 요소의 개입을 철저히 배제한다. 도움을 청할 수도, 받을 수도 없다. 의지할 곳은 오직 자신, 혹은 자신과 타인의 관계뿐이다. 영화는 밀실이라는 극한의 상황을 유도한 뒤 그 안에 갇힌 배우들의 반응과 심리를 중계한다.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자연스럽게 훑어 나가는 것. 과학자가 차마 하지 못하는 심리 실험을 감독이 친절히 해 주는 셈이다. 물론 제작비가 덜 든다는 장점도 빼놓을 수 없다. ■ 베리드… 전화해야 산다 vs 폰부스…전화가 끝나야 산다 같은 밀실 영화라도 작품에 따라 영화 문법에는 차이가 있다. 베리드가 ‘6피트 깊이 땅속’, ‘90분 지탱 산소’의 ‘관’을 밀실로 정했다면, 폰부스(2003)는 좀 더 개방적인 밀실을 택한다. 공중전화 박스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진행되는 폰부스는 공중전화로 전화를 건 정체불명 남자와의 사투를 그렸다. 이곳은 완전 밀폐가 아니다. 외부 상황을 지켜볼 수 있다. 하지만 무력하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죽어 갈 수 있다는 무력감이 공포 코드가 된다. 전화기를 놓고 나가면 자신도 죽을 수 있다. 그와의 소통이 끝나야 산다. 반면 베리드는 소통만이 살길이다. 휴대폰의 배터리가 나갈까 노심초사다. 폰부스와는 반대다. 자신을 매장한 이라크 테러세력과 통화를 해야 한다. 자신이 어디 묻혀 있는지 아는 유일한 사람들인 까닭이다. 같은 밀실을 놓고도 탈출과 소통의 의미를 정반대로 접목한 대표적 예다. ■ 베리드… 현상금 노린 인질극 vs 큐브… 불분명한 실체의 이유없는 감금 그렇다면 이들은 왜 갇혔을까. 베리드는 그 이유를 분명하게 제시한다. 이라크 테러범들이 현상금을 노리고 죄 없는 미국인 노동자를 납치해 묻는다. 인질 동영상을 찍어 돈을 뜯어내려는 것이다. 감독의 눈은 이런 상황에 직면한 정부와 기업의 대처 방식에 맞춰져 있다. 반면 영문도 모른 채 정육면체 큐브에 갇힌 사람들의 탈출기를 그린 ‘큐브’(1997)는 명확한 이유가 없다. 큐브를 설계한 이도 함께 갇히게 되는데 그조차 모른다. 그저 언제부터인가 큐브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책임자가 바뀌어도 프로젝트는 계속 추진됐다고 영화는 말한다. 악은 존재하지만 그 실체가 불분명한, 그래서 책임질 대상이 없는 현대사회의 이면을 꿰뚫는다. ■ 베리드… 개인과 사회 관계 주목 vs 디센트… 극한 직면한 공동체 조명 동굴을 소재로 한 ‘디센트’(2005)는 동굴 안의 인간관계를 주목한다. 6명의 친구들과 동굴 탐사를 떠났다가 고립되는 이야기를 담은 디센트는 극한에 직면한 공동체와 개인의 심리가 어떻게 추락(Descent)하는지 생생하게 보여 준다. 부상당한 친구를 버린 것도 모자라 자신이 살기 위해 괴물이 친구에게 시선을 돌렸으면 하는, 그래서 자신이 도망갈 시간을 벌고 싶은 이기적 본능을 부각시킨다. 베리드는 시선을 확장한다. 개인과 개인을 넘어선, 바로 개인과 거대 사회의 관계를 주목한다. 매장당한 이유는 개인의 책임이 아니다. 휴대폰으로 구조를 요청하지만 그가 몸담고 있는 기업도, 국가도 책임을 피할 방법만 찾는다. 영화는 주인공의 통화 내용을 통해 거대 사회 이면에 숨겨진 이기주의와 관료주의의 단면을 파헤친다. 생매장이 주는 원초적인 두려움 못지않게 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대기업과 국가의 행태 또한 소름 끼치게 무섭다는 게 영화의 메시지다. ■ 베리드… 뻔한 결론 한계로 지적 vs 로프… 미래 내다본 60년 전 혜안 밀실 영화 자체는 이제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올해만 하더라도 ‘디센트: Part2’, ‘이그잼’, ‘데블’ 등이 개봉됐다. 하지만 평단의 반응은 싸늘했다. 극도로 단순화된 상황만큼이나 단순한 결론에 도달해 버리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베리드 역시 이 같은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국가와 기업의 행태를 직설적으로 비판하려 노력했으되, 이런 절제되지 않은 날선 비판이 되레 영화의 맛을 떨어뜨린다. 서스펜스 거장 앨프리드 히치콕의 ‘로프’(1948)가 60년이 지난 지금에도 빛을 발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단지 스릴을 맛보기 위해 대학 친구를 살해한 두 청년이 자축 파티를 열었다가 은사에게 들통 난다는 게 영화 줄거리다. 아파트 거실이란 제한된 공간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롱테이크(편집 없이 길게 촬영) 기법을 사용한다. 이들은 니체의 초인론을 오해하고 강자가 약자를 살육할 수 있다는 소신으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다. 전후(戰後) 꿈틀거렸던 히틀러 망령에 대한 처절한 반성이 엿보인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절제된 문법도 소름 끼치지만 ‘묻지마 살인’이라는 현대사회 병폐를 일찌감치 짚어낸 혜안이 돋보인다. 6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로프의 센스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가장 빛난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동해항 국제여객선 겨울관광 인기

    강원 동해항 국제 여객선 ‘이스턴 드림호’가 내년 1월까지 대부분 승선 예약이 완료되는 등 겨울 특수를 누리고 있다. 해운사인 DBS크루즈페리는 7일 이스턴 드림호는 올 하반기 들어 지역 여행업체는 물론 국내 대형 여행사들까지 일본, 러시아 등 해외 관광객을 대거 모집하는 데 성공하면서 겨울 관광객 특수를 맞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추세속에 러시아발 한국행과 한국발 일본행 이스턴 드림호는 이날 현재 매 항차마다 승선 예약이 완료돼 더 이상 승객을 받아들일 수 없는 실정이다. 한국행 관광객들은 적설량이 적정한 강원도 일대 스키 관광, 일본행 관광객들은 기후가 온화한 사카이미나토시 일대 온천 등에 쏠리고 있다. 지난해 6월 취항한 이스턴 드림호는 동해항~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항~일본 사카이미나토항 항로를 매주 1회씩 운항, 해상 관광로를 개척 중이다. 1만 3000t급의 국제 여객선인 이스턴 드림호는 여객 458명과 컨테이너 130개, 자동차 66대 등을 동시 수송할 수 있으며 면세점과 사우나 등 시설을 갖추고 있다. 동해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고전 톡톡 다시 읽기] 이탁오에게 글쓰기란

    [고전 톡톡 다시 읽기] 이탁오에게 글쓰기란

    이탁오의 제자 왕본아에 따르면, “선생(이탁오)은 한평생 읽지 않은 책이 없고 가슴 속에 품었다가 토해내지 않은 말이 없었다. 읽지 않은 책이 없었다 함은 마치 먹고 마시는 일에 기갈난 사람처럼 굴어 충분히 배부르지 않으면 그만두지 않은 것을 말한다.” 책을 이처럼 절실하게 읽은 사람이라면 글 또한 그렇게 쓸 것이 분명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분은 토해내지 않은 말이 없었는데, 흡사 음식물을 먹다가 목에 걸리기라도 한 듯 죄다 구토로 토해내지 않으면 또한 멈추지 않으셨다.”고 한다. 이탁오에게 글쓰기란 일종의 ‘토하기’였다. 토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신체의 반응인 것처럼, 글쓰기는 생각과 감정이 저절로 분출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글만이 누군가를 울릴 수도 웃길 수도, 화나게 할 수도 위로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글쓰기를 이탁오는 ‘동심’에 빗대어 말한다. 법칙에 얽매이지 않고 앎에 구속되지 않은 아이만이 세계를 진심으로 보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언어로 말할 수 있다. 성인(聖人)은 그런 점에서 ‘동심’을 간직한 자들이었다. 세상의 글 잘하는 사람은 모두가 처음부터 글 짓는 데 뜻을 둔 것은 아니었다. 그 가슴 속에 차마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괴이한 말들이 무수히 고여 있고, 그의 목구멍에는 말하고 싶지만 감히 토해낼 수 없는 말들이 걸려 있으며, 그 입가에는 꺼내놓고 싶지만 무슨 말로 형용해야 좋을지 알 수 없는 것들이 허다한데, 그런 말들이 오랜 세월 축적되면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형세가 된다. 그랬을 때 일단 그럴싸한 풍경을 보면 감정이 솟구치고 눈길 닿는 사물마다 탄식이 흘러나온다. 이렇게 해서 쏟아져 나온 옥구슬 같은 어휘들은 은하수에 빛나며 회전하는 별들처럼 하늘에 찬란한 무늬를 수놓게 된다. 굶주린 사람처럼 읽고, 토하듯이 써라! 어떤 법도 모르는, 아니 법 따위는 가볍게 무시해 버리는 아이처럼 진심을 다해 써라! 그런 글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통한다는 게 이탁오의 가르침이다.
  • [시론] 60년전, 피란 뱃길을 생각한다/송수남 언론인

    [시론] 60년전, 피란 뱃길을 생각한다/송수남 언론인

    지금 한반도 서쪽의 아름다운 섬 연평도는 북한군의 무차별 포격으로 만신창이의 상처투성이로 변한 지 벌써 이레가 넘었다. 연평도 사람들이 포격 첫날 부랴부랴 어선을 타고, 인천 해경 부두에 내리는 피란민 행렬을 TV 화면으로 똑똑히 보았다. 부모 손에 이끌려 부두를 밟은 철부지들의 얼굴에는 영문을 미처 알아치리지 못한 공포의 그림자가 어리는 듯했다. 이렇듯 공포에 질린 피란 행렬 속의 어린 아이들을 보는 동안 끔찍스러웠던 옛날 일이 불현듯 기억되었다. 꼭 60년 전이었다. 겨우 여덟살이었던 1950년 12월이 저문 어느 날, 고향 옹진반도 끝자락까지 포탄이 떨어졌다. 포구는 몰려든 피란민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 틈새를 비집고, 작은 돛단배에 올랐던 어린 마음에도 살아야 한다는 의지가 생겼던 것일까. 어떻든 피란민들이 빼곡 들어찬 배가 떠나면서 멀미가 치밀어 돛대 기둥을 끌어안은 채 이내 정신을 놓아버렸다. 그리고 얼마를 지나 내린 데가 서해 5도의 중간 섬에 해당하는 대청도였다. 배에서 내린 다음에야 혼자 왔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았지만, 손바닥만 한 섬이었기에 다음 배를 탄 부모님을 극적으로 만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산가족을 겨우 면하고, 뒷날 인천으로 나와 유년시절을 줄곧 서해안 항구도시에서 보냈다. 나이를 조금씩 먹으면서도, 아주 작아 보였던 돛단배와 부모님과 잠시 헤어졌던 아찔한 순간을 생시처럼 꿈꾸었다. 그럴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 잠을 깨기가 일쑤였지만, 좀처럼 기억을 홀훌 털어내지 못했다. 얼결에 연평도를 떠나 인천 연안부두 이웃의 한 찜질방에 머무는 아이들도 지금, 인천으로 오는 뱃길에서 만났던 일렁이는 파도가 꿈속에 나타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보다는 귀청을 찢을 것처럼 요란했던 대포 소리와 포탄이 마구 뿜어낸 불꽃 기둥의 기억이 골무만큼 작은 아이들 가슴을 짓누를 것이다. 꿈을 먹고 살아가는 아이들을 아랑곳없이 마구 쏘아댄 북한군의 무차별한 포격은 아동학대일 수도 있다. 더구나 민가가 옹기종기한 여염(閭閻)을 마구 덮쳤으니, 이를 북한의 발악적 만행으로 규정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제대로 선전포고를 하고 치르는 전쟁에서도 민간은 공격하지 않는다고 한다. 전쟁의 불문율인 것이다. 세계적 작가인 파울루 코엘류는 연평도 포격 소식을 듣고 “나는 아무것도 자유롭지 않지만, 기도는 할 수 있다.”는 말로 안타까워한 모양이다. 이 호소에 동참한 크리스티나라는 여인은 “한국에 신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면서 “전쟁은 이렇듯 끝나지 않는 것일까요.”라고, 연평도 포격에 회의(懷疑)를 보냈다는 이야기가 몇몇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 옛날 옹진반도에서 대청도로 향했던 피란 뱃길을 떠올릴 때마다 전쟁의 공포는 당대에 끝내야 한다는 생각들을 하고 살았다. 그러나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들 때까지 손자 같은 아이들에게 이를 대물림했다는 죄책감이 무겁다. 더구나 아이들이 뛰어놀던 연평도 고향 땅은 멀쩡하지도 않다. 흉악한 포탄에 맞아 그을린 연평도의 몰골은 목불인견(目不忍見)이 아닌가. 그 많았던 섬 사람들이 다 떠나고, 고작 서른명 남짓한 섬 사람들이 남았다는 것이다. 해양경찰서 연평출장소에 근무하는 한 의무경찰이 “주인 떠난 집 강아지가 나를 알아보고 꼬리를 흔들면, 차마 피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는 뉴스가 매스컴을 탔다. 주인집 아이가 무던히도 귀여워했을 강아지가 가엾고, 더러 남은 섬 사람들은 외롭다. 이렇듯 적막강산으로 변한 연평도를 생각하면, 소설가 이외수씨가 최근 트위터에 올렸다는 “비록 늙었으나, 아직은 총을 들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싶다. 그리고 전쟁을 부추긴다는 비난에 맞서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의 결의부터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겁이 나시면 도망치세요.”라고 댓글을 단 작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 해병대사령관 “100배 1000배로 갚아주겠다”

    해병대사령관 “100배 1000배로 갚아주겠다”

    “우리 해병을 죽고 다치게 한 대가를 반드시 저들이 뼈저리게 후회하도록 100배, 1000배로 갚아 주겠다. 현역과 예비역 모두 뼈에 새기게 반드시 복수하겠다.” 지난 27일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치러진 ‘연평도 전투 전사자’ 고(故) 서정우(22) 하사와 문광욱 (20) 일병의 합동영결식은 ‘영원한 해병’의 넋을 기리는 애도로 가득했다. 해병대장으로 치러진 영결식에는 유족과 군·정·관계자 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 서 하사와 문 일병의 약력이 소개되자 유족들은 흐느끼기 시작했고, 참석자들의 어깨도 슬픔으로 들썩였다. 유낙준 해병대사령관은 조사에서 “해병대의 자랑이었던 그대들에게 북한은 어찌 이리 극악무도한 만행을 저지를 수 있었나. 우리 해병대는 두번 다시 참지 않을 것이다.”라고 애도의 뜻과 응분의 대가를 천명했다. 서 하사의 동료 한민수 병장도 추도사에서 “이게 무슨 일이냐. 너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반드시 복수해 주마, 사랑하는 정우야, 광욱아. 서북도의 수호신이 되어 연평도를 지키는 우리들에게 힘이 되어 주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며 애통해했다. 서 하사와 문 일병의 유가족들은 고개를 떨어뜨린 채 먼저 떠난 아들을 떠올리며 계속해서 눈물을 닦았다. 헌화와 분향에서도 유족들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채 굳은 표정이었다. 영결식이 끝나고 시신이 식장을 빠져 나가려는 순간 해병대전우회 양평군지회 김복중(해병 440기)씨가 운구행렬을 멈춰 세웠다. 그는 “고인이 즐겨 불렀던 영원한 해병가를 선창하겠습니다.”며 해병대가를 선창했고, 식장을 메운 해병 장병과 전우회원들은 떠나가도록 합창해 주변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해병 장병과 전우회원들은 못내 아쉬운지 한번 더 해병대가를 합창했다. 시신이 식장을 빠져나와 운구차에 실리자 유족들은 관을 부여잡고 발을 구르며 다시 한번 목놓아 울었다. 서 하사의 부모는 관을 두드리며 “우리 정우 어떡해, 엄마야 엄마야. 이놈아, 아빠다. 정우야. 가지마.”를 외치며 안타가워했다. 문 일병의 유족들도 “우리 광욱이 불쌍해서 어쩌나.”라며 관을 놓지 않아 영결식장은 다시 울음바다가 됐다. 영결식을 마친 두 전사자의 시신은 성남 화장장으로 운구됐고 유족들은 화장로로 관이 운구되자 참았던 눈물을 또 쏟았다. 1시간여 만에 한줌의 재로 돌아온 두 용사의 유해는 대전 국립현충원 사병묘역에 나란히 묻혔다. 천안함 46용사가 함께 잠들어 있는 묘역으로부터 100m가량 떨어진 곳이다. 서 하사의 아버지는 차마 아들의 유해 위에 흙을 덮지 못한 채 잔뜩 찌푸린 하늘을 한참 동안 올려다보며 눈물을 삼켰고 어머니도 발을 구르면서 “어떡해”를 되뇌이며 오열했다. 문 일병의 어머니 역시 아들의 유해를 향해 “아이고, 우리 아들”을 목놓아 불렀다. TV로 영결식과 안장식을 지켜본 국민들도 눈물을 흘리며 두 용사가 편히 잠들기를 기원했다. 꿈많던 영원한 해병은 이렇게 영원히 하늘나라로 갔다.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연극’에 대한 연극-다르면서 같은 두 무대… 공통분모는 재미!

    ‘연극’에 대한 연극-다르면서 같은 두 무대… 공통분모는 재미!

    28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 오르는 ‘경성스타’(이윤택 연출, 연희단거리패 제작)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 오르는 ‘우리 말고 또 누가 우리와 같은 말을 했을까?’(김동현 연출, 극단 코끼리만보 제작)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금기로 통용되는 자기 얘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두 작품 모두 ‘연극에 대한 연극’이다. ‘경성스타’가 일제시대 연극사를 소재로 삼았다면, ‘우리 말고’는 연극의 이야기성 그 자체에 집중한다. 과거와 현대에 대한 얘기인 셈이다. 스타일상으로도 대조된다. ‘경성스타’가 서사극으로 연대기적 서술을 선보인다면, ‘우리 말고’는 시공간이 파괴된 곳에서 뚜렷한 서사 없이 극을 전개한다. 유일한 공통점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말들이 별처럼 반짝이는 세상 - ‘우리 말고 또 누가 우리와 같은’ ‘우리 말고’는 딱 어떻다고 설명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서사구조를 갖추지 않아서다. 한 배우가 뚜벅뚜벅 걸어나와 당신은 도대체 어떤 얘기를 기대했기에 지하의 어두컴컴한 극장 안에 들어와 있냐고 되물으면서 시작된다. 그 뒤 차례로 등장하는 20여명의 배우들이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는다. 개명해서 이름이 두 개인 덕분에 두 명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남자, 뛰어난 스턴트맨이지만 “괜찮습니다.”만 연발할 뿐 이름은 가질 수 없는 남자, 13년 연기하는 동안 박수받은 순간을 합쳐 보니 단 24시간에 불과하지만 그 맛에 한다는 무대중독 여자, 엄마에게 서운한 게 있었는데 매운 낙지를 같이 먹으며 눈물 흘리다 보니 어느 순간 다 풀려버렸다는 여자 등 온갖 사연들이 다 나온다. 작품 자체가 크로키 화집 같다. 극의 리듬도 소설적이라기보다 시적이다. 공연이 끝난 뒤 극장 밖을 나설 때 잠시 발길을 멈춰 밤하늘을 올려다 보길. 그 밤하늘에 단지 20여명의 배우가 아니라 지구상 수십억명이 뱉어낸 말, 차마 뱉지 못하고 마음 속으로 삭인 말, 입이 아니라 표정이나 행동으로 건넸던 말들이 떠돌아 다닐는지 모른다. 그 말들이 그렇게 허공을 맴도는 것은 그 말들에게 쉴 곳을 만들어주지 않았던 우리 자신 때문 아닐까. 연극 마지막, 무대를 텅 비운 채 침묵 속에서 무용수의 낯선 몸짓만 번득이는 것은, 가슴을 연 우리들에게 마침내 반짝이며 다가온 별무리였을지도. ‘세상 밖, 극장 안’을 넘어 ‘극장 밖, 세상 안’으로 달려가는 미래 연극의 풍경이 아른거린다. ●우리는 집 나간 ‘노라’요, 순결 잃은 ‘카추샤’가 아니었을까-‘경성스타’ ‘경성스타’는 일제강점기 극작가 임선규(김용래)의 삶을 통해 한국 연극사를 재구성한다. 임선규는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나중에 ‘홍도야 우지마라’로 널리 알려졌다)라는 신파극으로 최고 극작가로 떠오른 인물. 서양식 연극쟁이들은 임선규의 눈물 찔찔 짜대는 극을 두고 비웃지만, 그는 조선 민중의 정서에 가장 잘 들어맞는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역사에 대한 얘기라 많은 세월과 인물이 거쳐가지만 무대 뒤편에 떡하니 자리잡은 회전무대 덕에 무리 없이 넘어간다. 수많은 사건을 다루는 속도감을 올려주는 데다, 서사극적 연출 덕분에 감정과잉이 자제된다. 회전무대는 연극 막판 또 다른 명풍경을 만들어낸다. 회전무대가 쉬지 않고 돌아가면서 선배 연출과 배우가 남긴 말이 임선규 팀의 막내이자 신출내기 배우 혜숙(배보람)에게 내리꽂히는 것이다. 이 장면은 그야말로 백미다. 그런 의미에서 연극의 진정한 주인공은 임선규가 아니라 퇴물 여배우 이월화(김소희), 새내기 배우 혜숙 두 인물이다. ‘인형의 집’에서 뛰쳐나간 노라의 운명은 결국 ‘부활’의 카추샤가 될 수밖에 없었던 현실. 그런 현실 앞에서 조선 남자들은 모른 척 퉁소나 불 수밖에 없었던, 이상의 ‘날개’에 나오던 풍경. 그게 조선의 모습이었고, 신극과 친일작품의 물결에 떠밀린 당대 연극인의 모습이었으리라. 이월화는 이 세월을 온몸으로 받아낸 인물이었고, 혜숙은 그 잿더미 속에서 월화를 이어가는 새싹이다. 나무꾼이 포대기에 싸인 아기를 들고 가는 장면을 남긴 영화 ‘라쇼몽’처럼, 아무리 치욕의 역사라 한들 그 시대는 이미 혜숙이란 배우를 낳아버린 것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재기노린 정지현 아쉬운 銀

    시상대에 선 정지현(삼성생명)은 차마 고개를 못 들었다. 취재진을 보고도 “인터뷰 못 하겠다.”고 손사래만 쳤다. 입을 열기조차 힘들어 보였다. 그만큼 자책하고 실망했다. 한국 레슬링 에이스 정지현이 아시안게임 은메달에 그쳤다. 21일 광저우 화궁체육관에서 열린 그레코로만형 60㎏급 결승전에서 이란 오미드 노루지에게 2-1로 졌다. 이번 대회 완벽한 재기를 확신했었지만 한발 모자랐다. 정지현은 그런 사실을 납득하기 어려워했다. 금메달이 눈앞이었다. 결승까지 몸풀듯 쉽게 올라왔다. 컨디션이 좋았다. 결승전에서도 1세트를 3-0으로 앞섰다. 그러나 2·3세트를 연이어 0-2로 내줬다. 경기가 끝난 뒤 정지현은 취재진 앞에서 아무 말도 못했다. 시상대에선 우승국 이란 국기를 바라보지 못했다. 정면만 응시한 채 굳은 표정이었다. ☞[아시안 게임 화보] 광저우 정복한 대한민국 대표 선수들 정지현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21살 때였다. 어린 나이에 최고 스타가 됐다. 그러나 이후 부침이 심했다. 부상과 부진이 이어졌다. 팔꿈치 부상이 고질이 됐고 새로운 룰 적응에도 실패했다. 지난해 3월 대표선발전에서 다시 탈락했다. 나이는 어느덧 20대 후반이 됐다. 모두들 “이제 정지현은 끝났다.”고 말했다. 몸도 마음도 힘든 시기였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정지현은 다시 절치부심했다. 체급을 60㎏급에 고정하고 컨디션을 올려갔다. 1년 6개월 만에 대표팀에 복귀했다. 지난 9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선 3위에 올랐다. 재기의 희망이 보였다. 이제 정지현의 완벽한 재기는 2년 뒤로 미뤄야 한다. 정지현에 앞서 출전한 55㎏급 최규진은 1회전 탈락했다. 66㎏급 김현우도 2회전에서 졌다. 레슬링 대표팀은 그레코로만형 첫날 노골드에 그쳤다. 광저우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배우 류현경 “술 취한 후배 머리 잡아당겨” 굴욕

    배우 류현경 “술 취한 후배 머리 잡아당겨” 굴욕

    배우 류현경이 후배 여배우에게 굴욕을 당해 소심한 복수를 한 사연을 털어놨다. 류현경은 지난 21일 방송된 KBS 2TV ‘밤샘버라이어티 야행성’에 출연해 “나를 팬으로 보고 인사한 후배에게 상처받아 머리를 잡아당겨 복수했다”고 고백했다. 이날 류현경은 과거 한 신인 여배우가 자신을 알아보고 깍듯이 인사했지만 영화 ‘방자전’ 시사회장에서 다시 만난 후배 여배우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인사하지 않아 섭섭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류현경은 “그 신인여배우는 모작품에 출연 단숨에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영화제 파티에서 후배 여배우를 또 만난 류현경은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넸지만 자신을 팬으로 착각하고 인사를 해주는 굴욕을 당했다. 상처를 받은 류현경은 “술자리에서 만취한 후배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며 “차마 세게는 못하고 살짝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고 말해 출연진을 폭소케 했다. 사진 = KBS 2TV ‘밤샘버라이어티 야행성’ 화면 캡처 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
  • 알레르기·아토피 안전한 치료법은…

    알레르기·아토피 안전한 치료법은…

    요즘 호환 마마보다도 무서운 것이 알레르기와 아토피다. 단순히 가려운 정도가 아니다. 순간 발작으로 목숨을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옛날에 비해 생활, 위생, 치료 수준이 비할 수 없이 나아졌는 데도 왜 이런 병에서 자유롭지 못한 걸까. EBS 1일 오후 9시 50분 ‘다큐프라임’ 3부작 ‘내 아이의 전쟁, 알레르기’ 가운데 1부 ‘미치도록 가려운 아이들’을 방영한다. 방송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피부는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긁고 또 긁다 보니 온몸이 상처와 피투성이다. 알레르기와 아토피로 인한 가려움증 때문에 넋 나간 듯 긁어대는 아이들을 지켜봐야만 하는 부모들도 미칠 노릇이다. 이 가려움증은 어디서 오는 걸까. 방송은 뇌신경 과학자들의 최신 연구 성과를 소개한다. 원래 과학자들은 가려움증을 약한 통증 정도로 취급해 왔다. 그런데 가려움이 유발되는, 통증과는 전혀 다른 메커니즘이 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가키기 류스케 일본 생리학연구소 교수는 가려움은 불쾌함을 관장하는 뇌 부위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학자다. 가려움을 약한 통증 정도로 받아들여 내버려 두다가는, 감정을 관장하는 대뇌변연계에 문제가 생길 위험성이 있다. 또 가려움증에 대한 거의 유일한 처방이 된 스테로이드의 진실도 확인해 본다. 부모들은 스테로이드 부작용 괴담이 신경 쓰인다. 잘 낫지도 않을뿐더러, 나중에 재발할 경우 다시 치료가 어렵고, 낫는다 해도 피부에 큰 손상을 준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방송은 국내외 전문가들을 통해 이 같은 상식이 잘못된 것임을 명백히 한다. 아직까지는 완전한 치료법이 없는 질환인 알르레기와 아토피. 그로 인한 가려움을 진정시키는 데는 항염제, 곧 스테로이드가 최선의 방법일 수밖에 없다. 스테로이드가 지금처럼 의심받게 된 것은 1990년대 스테로이드를 악마의 약물로 몰아붙였던 일본의 한 방송 프로그램 때문이다. 이후 일본에서 ‘아토피 비즈니스’ 시대가 열렸다. 스테로이드마저 믿을 수 없다는 공포감에 온갖 종류의 민간요법이 난무했다. 그런데 치료효과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피해를 키우기만 했다. 결국 전문가들이 나서서 스테로이드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켰고, 어떻게 해야 안전하게 쓸 수 있는지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그 덕에 지금 일본에서는 아토피 환자 단체에서 더 적극적으로 스테로이드가 그나마 안전한 선택임을 홍보하고 있다. 2~3일에는 2부 ‘아토피에 대처하는 부모들의 자세’, 3부 ‘음식이 아이를 공격한다’를 이어 내보낸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차마 눈뜨고 못 볼!…” 피자가게 ‘애정행각 생쇼’

    “차마 눈뜨고 못 볼!…” 피자가게 ‘애정행각 생쇼’

    영국에 본점을 둔 세계적인 피자 체인업체 ‘피자 익스프레스’(Pizza Express)가 문 닫은 가게에서 애정행각을 벌인 점원 2명 때문에 때 아닌 구설에 휘말렸다. 영국 대중지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지난 28일(현지시간) 밤 맨체스터에 있는 피자 익스프레스에서 남녀 점원이 구경꾼이 몰린지도 모르고 진한 애정행각을 벌였다. 당시 해당 피자가게는 문을 닫은 상태였다. 와인을 나눠 마시고 얼큰하게 취한 두 남녀 직원은 가게에 불을 켜면 밖에서 창문을 통해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사실을 몰랐다. 두 사람은 피자가게의 주방에서 애정행각을 벌였고 이를 본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나둘 몰리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구경꾼은 점점 더 몰려 어느새 길거리에는 10여 명이 아예 자리를 잡았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여자 친구와 지나가다가 이 모습을 봤다는 20대 남성은 “사람들은 진한 애정행각을 벌이는 모습에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낄낄대면서 이들의 모습을 지켜봤다.”면서 “정말 대단한 볼거리였다.”고 이들을 놀려댔다. 피자 익스프레스 측은 때 아닌 직원들의 애정행각 스캔들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업체의 대변인은 “본사는 이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직원들의 고의성은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건을 정확히 조사해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사진=더선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엄마·아빠 이혼 시켜주세요

    엄마·아빠 이혼 시켜주세요

    “이혼이라는 말은 쉽게 하는 게 아니지만, 엄마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고 싶습니다. 엄마랑 아빠가 이혼하게 되면 아직 한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막내동생을 유치원에 보낼 수 있을 테니까요.” 아버지가 사실상 가출 상태인 한 여중생이 부모의 이혼을 허락해 달라며 법원에 눈물로 호소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부모가 이혼해 한부모 가족이 되면 학비 등을 지원받을 수 있어 어려운 가정형편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진정서 내… 법원 위로금 전달 27일 서울가정법원에 따르면 올해 중학교 3학년인 A(15)양은 최근 부모가 이혼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진술서를 가사2단독 이주영 판사에게 제출했다. 진술서에서 A양은 “어릴 적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소리를 많이 듣고 살았지만, 비교적 화목하고 평화로운 가정이었다.”고 글을 시작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2008년 직장을 구한다며 지방으로 내려가면서부터 단란했던 가정에 시련이 닥쳤다. 아버지의 연락은 점점 뜸해졌고, 지난해 말부터는 A양이 전화를 해도 아예 받지를 않았다. 가장이 떠나버린 A양 가족은 막막한 어둠 속에 버려진 처지와 다를 게 없었다. 할머니와 어머니, A양과 세 동생 등 모두 여섯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어머니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식당과 편의점 등에서 허리가 휘도록 악착같이 일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처음에는 “곧 돌아오시겠지.” 하고 기다렸으나 배고픔과 경제적 곤궁을 막연한 기다림이 해결해 주지 못했고, 결국 아빠의 무책임에 지치고 말았다. “아빠라는 사람이 우리 가족에게는 버팀목이고 의지해야 할 곳인데, 그 버팀목이 사라져 정말로 충격이 컸습니다. 항상 일하고 돌아오는 엄마의 등을 보면 저와 동생들은 친구와 놀러 가고 싶어도, 사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차마 말을 못 했습니다.” 고등학교 진학 시기가 다가오자 A양의 걱정은 더 커졌다. 가족들이 학비 부담 때문에 더 힘겨워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가슴을 짓눌렀다. 그러던 차에 “한부모 가족이 되면 정부가 대학생 때까지 지원해 준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결국 어머니는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했고, A양도 법원에 진정서를 내기에 이르렀다. “어디 가서 아빠 없다는 소리 듣지 않고, 아주 조금만 더 나은 형편에서 살게 도와주세요. 판사님, 엄마뿐 아니라 저와 제 동생들을 위해서라도 제발….” 재판부는 A양의 아버지와 연락이 닿지 않아 현재 공시송달로 재판을 진행하고 있으며, 가능하면 A양 가족의 입장을 헤아릴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또 이혼소송과 별도로 A양 가족에게 30만원의 위로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여가부 “학비 등 도움줄 수 있을 것” 한편 여성가족부는 A양 부모가 꼭 법적으로 이혼하지 않더라도 학비 등은 지원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여가부 관계자는 “한부모가족지원법 제4조에 따르면 부모 한쪽으로부터 유기(遺棄)된 청소년도 고등학교 학비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길섶에서] 군부모2/노주석 논설위원

    지난달 28일 자 길섶 난에 실린 ‘군부모(軍父母)’를 읽고 많은 분이 전화와 이메일로 사연을 주셨다. 신문에서는 군대의 문제점만 매일 보도하고, 군대의 좋은 점은 잘 알리지 않는다는 취지가 주를 이뤘다. 고위공직자 한 분의 군대 간 큰아들 얘기에 공감이 갔다. 첫 자대 면회를 간 날. 아들이 차려입은 군복의 ‘칼주름’과 군화의 ‘불광’을 보고 깜짝 놀랐단다. 군기가 얼마나 세기에 이 정도인가 싶었다고 했다. 얼마나 고생했을까 싶어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런데 아들의 입에서 의외의 얘기가 흘러나왔다. 선임들이 입고 나온 군복 다림질도 해주고, 군화도 닦아 주었다는 것이다. 며칠 뒤에는 두툼한 편지 한 통이 집으로 배달됐다. “아드님을 잘 보살피겠다.”라는 내무반원 전원의 다짐과 자필 사인이 들어 있었다. 제대할 때까지 아들과 더불어 건강하게 병영생활을 하겠다는 다소 뻔한 내용이지만 다른 백 마디 말보다 믿음이 갔단다. 이 분의 결론은 “군부모님들 안심하세요.”였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노르웨이의 숲’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노르웨이의 숲’

    흰색 차가 산 깊숙이 들어가기 전까지 두 남자는 출장이라도 떠나는 양 행동했다. 하긴 폭력단의 조직원이 일처리를 위해 길을 떠났으니 출장이 맞는 건가.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두 사람은 마땅한 자리를 찾은 다음 땅을 파기 시작한다. 귀찮기는 해도 두목의 명령에 따라 시체를 파묻으면 끝나는 일이라고 그들은 판단했다. 그러나 뜻대로 진행되는 영화가 어디 있으랴.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시체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관계를 가지려는 남녀, 행실 나쁜 고등학생 셋, 무시무시한 살인마가 끼어들면서 사건이 복잡해진다. ‘노르웨이의 숲’은 노르웨이에서 촬영한 영화가 아니며, 영화 속엔 노르웨이를 상징하는 어떤 물건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왜 ‘노르웨이의 숲’이냐고?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미국의 인디밴드 ‘비치 하우스’가 올해 발표한 명반 앨범의 세 번째 트랙 제목도 ‘노르웨이’다. 그런데 가사를 헤아려 봐도 제목이 왜 노르웨이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바깥의 사람들에게 노르웨이는 모호한 느낌의 신비한 단어인 모양이며, 감독 노진수 또한 그런 이유로 영화의 제목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무라하키 하루키의 소설이나 비틀스의 노래와 하등 상관이 없다. 어처구니없는 제목은 영화의 실없는 자세를 반영한다. ‘노르웨이의 숲’은 ‘호빵과 진빵의 차이’를 따지는 주인공의 질문으로 시작하고 끝나는 영화다. 정신없이 숲속을 헤매는 인물들과 달리 영화를 보는 사람은 사건의 전후 사정을 꿰뚫고 있다고 착각할 법하다. 하지만 스크린 앞에 앉은 사람도, 진지한 자세라곤 구할 길 없는 영화를 놓고 영문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잔혹한 살인과 폭력이 줄줄이 일어나는데, 도덕적으로 흠집이 있는 인물들에겐 별 동정이 가지 않으며, 어리석은 행동들이 줄기차게 스크린을 채운다. 도대체 ‘노르웨이의 숲’의 주제는 무엇이란 말인가? ‘노르웨이의 숲’은 근래 빈번히 소개되는 ‘초저예산 영화’ 중 한 편이다. 어느 정도 제도권으로 자리 잡은 독립영화와도 거리가 있는 영화인 것이다. 그 가운데 차마 영화라 부르기조차 민망한 작품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관심을 가질 만한 현상이라고 본다. 1970년대의 펑크음악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당시 기득권이 쓰레기로 취급한 펑크는 이후 대중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정체된 대중음악에 새 물꼬를 튼 결과였다. 이 말은, 펑크의 역사적 가치를 ‘노르웨이의 숲’에 부여하겠다는 게 아니다. ‘서클 바깥의 영화들’이 향후 유의미한 역할을 맡을 수 있게 전개되고 조직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현재의 모습보다 미래의 방향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노르웨이의 숲’의 열악한 만듦새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숲속인데 정원수가 보이는 건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제작 여건 상의 한계를 아이디어로 돌파한다는 것, 물론 좋은 일이다. ‘노르웨이의 숲’의 제작진은 한 판 놀아보겠다는 자세로 영화를 완성했는데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제도권 영화들이 깜짝 놀라 벌벌 떨도록 만들려면 좀 더 대담하고 뻔뻔한, 맹렬하고 과감한 태도가 필요하다. 그래야 펑크급의 반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영화평론가
  • 1급이상 고위직 사수 부처간 ‘신경전’ 치열

    1급이상 고위직 사수 부처간 ‘신경전’ 치열

    정부 부처 간 고위직 자리 확보를 위한 신경전이 치열하다. 1급 이상의 고위직 자리가 빌 경우 연쇄 승진효과가 크기에 그 결과에 따른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30일 정부 부처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1급, 차관급 등의 고위직 신규 임명자가 종전과 달리 타 부처 출신들이 많아지는 등 부처 간 인사 경계가 약해지고 있다. 특히 최근 외청장과 산하기관장에 대한 임명을 놓고 행정안전부와 국토해양부 간에는 미묘한 갈등마저 감지된다. ●연쇄 승진 효과 커 희비 엇갈려 지난 8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장에 한만희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이 승진 임명됐다. 행복청은 국토부 산하 외청이나 전임 정진철 청장은 행안부 출신이다. 행안부는 국토부 출신인 한 청장이 임명되자 내심 차장을 기대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이후 행안부는 국토부에 국장 자리를 요구했지만 국토부가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복청 국장은 3명으로 현재 지역주민 보상 및 이주 대책 등을 담당할 지역정책관에 행안부 유상수 국장이 파견돼 있다. ●행안부-국토부 외청장 임명 등 갈등 국토부는 도시건축 및 기반시설국으로 업무 성격이 다르다는 판단에 따라 행안부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8월에 밀렸던 행안부가 9월 대반격을 벌였다. 제22대 대한지적공사 사장에 김영호 전 행안부 차관이 취임했다. 지적공사는 2008년 행정자치부에서 국토해양부로 감독권한이 이관됐지만 행안부 출신 인사들이 줄곧 수장을 맡아 왔다. 전임 이성열 사장도 중앙공무원교육원장 출신이다. 국토부는 이 전 사장 임기 만료를 앞두고 내부 인사 기용을 시도했지만 행안부와 힘겨루기에서 분루를 삼켜야 했다. 이에 앞서 현 정부초기 장수만 전 조달청장이 국방부 차관, 김대기 통계청장이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이수원 특허청장도 지식경제부가 아닌 기획재정부 출신이다. ●외청선 “상급부처 인사해소용” 불만 이와 함께 청단위 기관에서는 상급부처의 밀어내기식(낙하산) 인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국장 자리가 상대적으로 적은 상황에서 일부가 상급부처의 인사 해소용으로 제공되다 보니 불만이 폭발 직전이다. 외청으로서는 승진 기회가 줄어들고 업무를 모르는 간부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도 막대하다. 더욱이 내려온 간부들이 눌러앉고, 낙하산 인사가 본청 국장으로 직접 내려오는 행태가 벌어지면서 위상이 말이 아니다. 통계청 기획조정관에 기획재정부 인사가 승진 임명됐다. 통계교육원장 등을 거쳐 내려오던 요식절차마저 생략한 채 대놓고 자리를 차지했다. 정부 외청의 한 관계자는 “외청 국장자리가 상급부서의 인사해소처로 활용되고 있다.”면서 “올라갈 사람은 잠시 머무는 정류장이고 대부분 본부에서 물먹은 인사들을 배려하는 자리가 됐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서울 이재연기자 skpark@seoul.co.kr
  • [서울광장] 눈물잔치로 끝나선 안될 이산가족 상봉

    [서울광장] 눈물잔치로 끝나선 안될 이산가족 상봉

    아버지와 형제들을 북에 두고 1996년 탈북한 L씨의 얘기다. 가을이면 해마다 이북5도민 체육대회가 열린다. 여기서 고향사람을 만나면 반갑기 그지없지만,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80·90대 실향민들을 보노라면 절로 눈시울이 붉어진단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가요의 한 소절처럼 말이다. 며칠 새 탈북자 몇 분과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이들은 북측이 올 추석을 앞두고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한 의도에 대해 하나같이 “남측의 지원을 유도하려는 수순”이라고 입을 모았다. 탈북자 출신의 세계북한연구센터 안찬일 박사는 “(금강산 상봉 잔치로)외화벌이 수단인 금강산관광을 재개하려는 의도”라고 추측했다. 북한당국의 의도가 어디에 있든, 이 가을에 또다시 ‘눈물 바다’가 펼쳐질 참이다. 이산가족의 상봉 장면은 지난 1985년 첫 고향방문단을 교환한 이래 언제나 온 겨레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무대였다. 한(恨)은 신바람과 함께 한민족의 독특한 정서를 나타내는 어휘가 아닌가. 그러나 한 차례 눈물잔치로 이산의 한을 전부 ‘카타르시스’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 혈육이나 부부 간 반세기 넘는 생이별 끝의 짧은 재회가 다시 기약없는 이별로 이어진다면 이보다 더 참혹한 트라우마가 어디 있겠나. 이산가족들이 상봉 때마다, 떠나는 피붙이가 버스 차창 밖으로 내민 손을 차마 놓치 못하던 장면을 떠올려 보라. 아마 그들 모두는 이제 이승에선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으로 온몸을 떨었을 것이다. 까닭에 이산가족 문제는 가장 인도적이어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북한당국이 유감스럽게도 게임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음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북한은 언제나 뭔가 반대급부를 줘야만 시혜를 베풀듯이 이산가족 상봉 ‘이벤트’에 응한다는 차원에서다. 여기엔 세습체제의 안위에 대한 북한지도부의 두려움이 깔려 있다. 강성대국이나 지상낙원의 허구성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될 것을 저어한다는 말이다. 더욱 비극적인 일은 그나마 그런 게임을 할 시간조차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탈북자 L씨는 이북5도민 행사 때마다 줄어드는 실향민과 늘어나는 탈북자로 역비례하는 현장을 목격하면서 착잡해진다고 한다. 통칭 일천만 이산가족이라지만 1988년 이후 상봉신청자 12만 8000여명 중 4만 4000여명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이 중 70세 이상이 6만여명이고, 매년 1000명씩 상봉해도 66년이 걸린다. 결국 상봉을 상시화·정례화해 제도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한 이산의 아픔을 달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다. 이산가족 문제는 이론상 생사확인-서신교환-상봉-재결합이란 4단계를 거쳐 완전 해결된다. 재결합이야 통일에 버금가는 숙제지만, 3단계까진 남북 양쪽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가능한 일이다. 금강산면회소 등 이를 위한 인프라도 어느 정도 깔려 있다. 문제는 실행의 일차적 열쇠를 북측이 쥐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측은 예나 지금이나 그들의 필요에 따라 이산가족 카드를 빼어들 뿐이다. 인륜에 어긋나는 짓이지만, 그런 태도는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3대 세습이 이뤄진 이후엔 달라질까? 김일성과 김정일이 못하던 일을 허약한 리더십의 김정은이 하기는 더욱 어려울 듯싶다. 그래서 이산의 한을 풀고 또다른 민족정서인 신바람을 일으키는 일도 결국엔 우리의 몫이다. 북에 비해 가진 게 많은 우리라도 천륜을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 아마 북측은 우리 측의 지원을 “3대 세습에 대한 (남조선 인민들의)축하”라고 강변하는 구태를 연출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북이 내민 카드가 야만적이라 할지라도 일정부분 전향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반대급부를 쥐여주더라도 담대하게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상시화를 제안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통독 전 서독이 동독의 정치범 석방이나 가족 간 상호 방문을 위해 상당한 대가를 지불한 사례는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kby7@seoul.co.kr
  • [다큐] 애호가들 갈증 풀어줄 명품 영상

    [다큐] 애호가들 갈증 풀어줄 명품 영상

    TV프로그램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기를’ 바라는 마음은 다큐 애호가들도 마찬가지. 다큐멘터리 장르에 있어서 신뢰의 상징처럼 된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NGC)과 EBS가 한가위 연휴 동안 명품 다큐들을 잇따라 선보인다. 하나같이 다큐 애호가들의 갈증을 풀어줄 작품들이다. 다큐전문채널 NGC에서는 그동안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던 명작 다큐를 엄선, ‘명작다큐 앙코르방송’을 준비했다. 우선 20~25일 밤 11시 2008년 한국방송대상에서 대상을 거머쥔 ‘차마고도’가 시청자를 찾아간다. 세계의 지붕 티베트를 거쳐 히말라야를 넘고 네팔과 인도에 이르기까지, 험하고도 아름다운 길을 걸으며 생생하게 영상으로 담아낸 명작이다. 21~23일 오전 10시에는 8000만년 전 백악기, 한반도에 살았던 마지막 공룡들의 일대기를 담은 3부작 ‘한반도의 공룡’이 방송된다. 2008년 EBS에서 방송된 작품. 급격한 지구환경의 변화 속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쳤던 한반도의 마지막 공룡 타르보사우루스와 부경 고사우루스, 해남이크누스 등 주변 공룡들의 드라마틱한 삶이 첨단 컴퓨터그래픽기술로 재현된다. 이어 같은 기간 오후 5시부터는 각 분야 최고의 인기 다큐가 안방을 찾는다. 21일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죽음의 공포 속에서 남긴 전쟁의 기록을 살펴보는 6부작 ‘2차 세계대전’ 전편이 방송된다. 22일에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민물고기를 찾아 떠나는 ‘몬스터 피시’가 준비됐다. 내셔널지오그래픽 탐험단과 해양 생태학자 제프 호건 박사가 거대 물고기의 숨겨진 세계를 낱낱이 파헤친다. 23일에는 ‘인류재앙 시나리오’가 시청자를 찾아간다. EBS의 한가위 다큐 프로그램도 이에 못지않다. 우선 21~23일에는 ‘추석 특선 앙코르 다큐프라임’을 준비했다. 21일 오후 11시10분에는 ‘한반도의 공룡 1, 2부’가 100분 동안 연속 방송된다. 22일 오후 11시10분에는 ‘한반도의 매머드 1, 2부’가 잇달아 방송된다. EBS 창사 10주년 기념 프로그램으로, 3D로 제작돼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23일 오후 1시20분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인류를 다룬 ‘호모 컨버전스 1, 2부’가, 오후 11시10분에는 100만년 전 한반도에 살았던 호모 에렉투스 등 선사시대 인류를 추적하는 ‘한반도의 인류 1, 2, 3부’가 150분 동안 안방을 찾는다. 아울러 24일 오후 1시55분 ‘추석특집 다큐프라임 스페셜-북극항로’가 전파를 탄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나뭇가지 먹고 사는 희귀 ‘괴물고기’ 발견

    남미 페루 밀림지역에서 나무를 먹는 희귀한 물고기가 발견됐다. 페루 국영통신 안디나에 따르면 물고기는 7∼8월 아마존밀림 내 푸루스 강과 유루스 강 해저탐사에서 발견돼 최근 연구대상으로 지정됐다. 페루 푸루스 국립공원 관계자는 “나무를 먹는 물고기가 남미에 약 12종 정도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번 물고기는 (알려지지 않은) 희귀종”이라면서 “강물이 빠지는 내년 7월과 9월 사이에 이 종에 대한 연구를 실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탐사팀은 이번에 발견된 나무 먹는 물고기의 생김새를 정밀하게 분석해 오는 12월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발표에 앞서 현지 언론에 공개된 사진을 보면 물고기는 길이 70cm 정도로 마치 군복처럼 몸 전체에 얼룩덜룩한 무늬가 있다. 특이한 건 숟가락처럼 생긴 이빨. 이런 모양새를 가진 이빨을 이용해 물고기는 강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갉아먹고 산다. 페루 언론에 따르면 발견된 물고기에는 연구팀에겐 낯선 종이지만 인디언들에겐 이미 친숙한 먹거리였다. 문명생활을 거부하고 아마존밀림 국립공원 내에서 자연 삶을 살고 있는 인디언들이 그간 이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페루 학계는 인디언들이 붙인 이름대로 물고기를 ‘자이언트 카라차마’라고 부르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그 집’ 헐려도 화폭은 기억한다

    ‘그 집’ 헐려도 화폭은 기억한다

    집이 헐리고, 거리가 바뀌고, 도시가 달라진다. 누군가에겐 개발과 성장의 과정이지만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이 뿌리 뽑히는 아픔이다. 그리고 여기, 속절없이 사라지는 공간의 기억을 기록하는 이들이 있다. 10년째 재개발, 뉴타운 지역을 사진으로 찍어온 강홍구 작가와 1년간 서울 가리봉동 조선족 문화를 기록해온 이수영·리금홍 작가다. 이들의 개인전이 나란히 열리고 있다. ●10년째 재개발 지역 풍경 작업 가회동 원앤제이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강홍구 작가의 ‘그 집’전은 서울 불광동 재개발 지구와 은평 뉴타운, 세종시 예정지인 충남 연기군의 종촌리 등에서 찍은 사진 30여점이 선보인다. 얼핏 보면 재개발 현장의 황량한 풍경을 담은 컬러 사진 같지만 실제는 흑백으로 프린트한 사진 위에 부분적으로 잉크나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한 것이다. 주인이 떠난 빈집은 흑백으로 남겨 두고, 주변의 나무에 녹색의 색감을 더한 작품들은 사진도 그림도 아닌 모호한 정체성처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드는 효과를 낸다. 흑백 사진이 완전히 퇴색해 버린 과거의 느낌이라면 이 사진들은 차마 떨쳐버릴 수 없는 추억에 대한 아련한 느낌이 강하다. 작품마다 흰색 물감을 흘려 일종의 표식을 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우연히도 이사가는 곳마다 재개발 지역이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다는 작가는 9일 “사진은 사실이 아닌 것도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만드는 뻔뻔함과 공식적인 성격이 강한데 사라진 집과 공간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사진 위에 색을 입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진 작가로 유명하지만 원래는 회화를 전공했다. 재개발 현장을 찍는 작업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듯싶다. 그는 “10년 했으니 이제 그만 이별하고, 새로운 작업을 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10월3일까지. ●조선족 거리 1년간 체험·기록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3번 출구로 나오면 거리마다 중국어 간판이 넘쳐난다. 구로구 가리봉동의 조선족 거리 풍경이다. 이수영과 리금홍 작가는 지난 1년 이 거리를 쏘다니며 온갖 음식을 맛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1.5평짜리 쪽방을 얻어 한 달간 직접 살기도 했다. 한남동 공간해밀톤에서 18일까지 열리는 ‘가리봉동 진달래반점’전은 작가들이 몸으로 체험한 기록들을 관객과 공유하는 장이다. 전시장은 설치미술과 자료들을 모은 아카이브로 구성됐다. 가리봉동에서 먹었던 음식물을 말려서 전시하고, 다양한 향신료를 한곳에 모아 조선족의 음식문화를 간접 체험하도록 했다. 양고기 꼬치구이의 고향을 찾아 지난봄에 비행기, 기차, 버스를 갈아타고 중국 옌지와 신강, 우루무치까지 다녀온 여정을 영상 작업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조선족 이주민의 삶을 조금이라도 체험하기 위해 솥단지를 옆에 끼고 사막과 황무지를 건넜다. 이주의 고단한 풍경은 냄비, 칼, 국자 등 온갖 세간에 비행기 수화물표를 붙인 설치작품으로 표현됐다. 전시장 한쪽에는 두 사람이 가리봉동에서 즐겨 찾던 진달래반점의 내부를 재현했다. 진달래반점에서 아주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들을 녹취해 DVD로 만들기도 했다. 이수영 작가는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가리봉동이 사라질 때까지 가리봉동 기록 작업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공간해밀톤은 한남동 제일기획 인근에 있는 대안 전시공간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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