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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자! 아자! 시민기자]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 연주회

    [아자! 아자! 시민기자]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 연주회

    봄이라지만 아직은 옷깃을 여며야 하는 제법 쌀쌀한 날씨다. 지난 29일 저녁 왕십리 로터리에 위치한 성동문화회관은 봄을 맞이하는 아름다운 선율에 취해 보고픈 주민들로 가득했다. ‘봄맞이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 특별연주회’. 이날 연주회는 단순한 문화행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학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지역 학생들을 도와주기 위한 특별한 행사였다. 수익금 전액은 성동구의 인재양성을 위한 장학기금으로 쓰여진다고 하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가족과 함께 좋은 공연도 즐길 수 있는 일석이조의 보람찬 행사였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봄의 소리’ 왈츠곡을 첫 곡으로 화려한 봄맞이 음악회가 시작되었다. 경쾌한 바이올린 선율을 따라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거리며 싱그러운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바이올린 협주곡인 비발디의 사계, 모차르트의 오보에 협주곡 C장조 연주에서는 바이올린과 오보에 연주자가 협연하며 열정적인 무대를 선사하였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으로 흥겨움은 절정에 달했으며, 쿠르티스의 물망초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중 ‘하바네라’를 부른 소프라노의 열창은 연주회의 하이라이트였다. 마지막 곡인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에서는 관객들 모두 손뼉을 치는 등 연주자와 관객이 하나되는 화합의 무대를 만들었다. 연주회가 귀에 익은 대중적인 곡들로 짜여져 2시간여 동안 편안한 마음으로 클래식 곡을 감상할 수 있었고, 지휘자의 상세한 곡해설과 악기소개 등으로 멀게만 느껴지던 클래식 음악에 친근감을 가질 수 있었다. 단순히 즐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돕는 나눔의 기쁨도 실천할 수 있는 이런 행사가 점차 많아질 때 우리 성동은 자연스럽게 문화의 도시로 인식될 것이다. 글 임미행 시민기자
  • [보러갑시다]

    미 술 ■ 김복연 작품전 4월2일까지 서울갤러리 1전시실(02)2000-9737. 서정적 울림이 강한 풍경화. ■ 카리브 색채의 신비전 4월17일까지 갤러리 베아르떼(02)739-4333. 쿠바와 베네수엘라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라틴미술전. ■ 이희중 개인전 4월17일까지 사비나미술관(02)736-4371. 민화의 회화적 요소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작품 40여점. ■ 이정 작품전 4월8일까지 갤러리 아트링크(02)738-0738. 전통문인화정신에 바탕을 둔 수묵화. ■ 도윤희 개인전 4월9일까지 카이스갤러리(02)511-0668. 연필드로잉에 유화물감으로 색을 입힌 관조적 분위기의 작품. ■ 오이량 작품전 4월12일까지 인사아트사이드(02)725-1020. 실리콘을 재료로 한 실험적 작품. ■ 바이런 킴 작품전 5월8일까지 로댕갤러리(02)2259-7781.‘피부그림’,‘고려청자유약’ 시리즈, 풍경화 ‘일요일 그림’ 연작 등 모더니즘 계열의 추상회화. 클래식 ■ 루실 정 & 알레시오 박스 듀오 피아노 콘서트 6일 오후7시30분 충무아트홀 대극장(02)2230-6624. ■ 체임버 뮤직 오브 프랑스 5일 오후7시30분 충무아트홀 대극장(02)2230-6624. ■ 스티브 바라캇 내한공연 4월1일 오후8시 이화여대 대강당 1544-1555. ■ 미하일 페투호프 내한공연 4월5일 오후6시 LG아트센터(02)599-5743. ■ 하피스트 곽정 ‘서프라이즈 파티’ 4월2일 오후7시 부천시민회관 대공연장(032)326-2689. ■ 소년합창단 리베라 내한공연 31일 오후7시30분 충무아트홀,4월2·3일 오후7시 이화여대 대강당(02)751-9607. ■ 모차르트 협주곡 전곡연주회 4월1일 오후7시30분 세종문화회관 소극장(02)399-1145. ■ 본 트랩 칠드런 ‘사운드 오브 뮤직 콘서트’ 31일 오후7시30분 고양 어울림극장,4월2일 오후8시 분당 요한성당(02)3472-4480. 뮤지컬 ■ 아이 러브 유 6월19일까지 연강홀(02)501-7888. 한진섭 연출, 남경주 최정원 정성화 오나라 출연. 이 땅의 모든 커플들에게 바치는 뮤지컬. ■ 아가씨와 건달들 5월1일까지 정동 팝콘하우스(02)574-4012. 강대진 연출, 김장섭, 김선경, 김법래, 류정한, 김소현 출연. 대표적 흥행 뮤지컬 새 옷입고 돌아오다. ■ 넌센스 아멘 5월22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02)556-8556. 고선웅 연출, 김성기 서영주 김수용 출연. 유명 코믹 뮤지컬 ‘넌센스’의 남자 버전. ■ 난타 4월10일까지 PMC대학로자유극장 1544-1555. 송승환 제작. 브로드웨이에 이어 대학로도 두드린다. ■ 더플레이 엑스 4월 2일부터 6월 26일까지 발렌타인극장2관(02)741-9120. 박재민 작·연출, 김영민 이동수 조은별 출연. 세상을 향한 개들의 유쾌한 풍자. 연 극 ■ 의자들 4월3일까지 대학로 학전블루(02)3673-1392. 양정웅 각색·연출, 정해균 김은희 장현석 출연. 현대 부조리극의 대명사, 이오네스크의 작품. ■ 부부 쿨하게 살기 4월9일까지 국립극장 별오름극장(02)762-9190. 손기호 작·연출, 임학순 우미화 출연. 행복한 부부로 살기 위한 지침서. ■ 디 아더 사이드 4월3일까지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02)747-5161. 아리엘 돌프만 작·손진책 연출, 권성덕 김성녀 정호붕 출연. 분단이 초래하는 웃지 못할 비극. ■ 관객모독 6월19일까지 창조콘서트홀(02)764-3076. 페터 한트케 작·기국서 연출, 전수환 윤상화 서은경 양동근 출연. 평생 동안 들을 욕을 먹어도 화가 나지 않는 이유. ■ 행복한 가족 30일부터 4월30일까지 블랙박스씨어터(02)747-1010. 민복기 작·박원상 연출, 민복기 정석용 윤복인 출연. 가족해체 시대에 짚어보는 가족의 의미. ■ 세상을 편력하는 두 기사 이야기 4월10일까지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소극장(02)760-4639. 베쓰야쿠 미노루 작·송선호 연출, 전무송 이호재 오길주 정동환 출연. 잔인하게 사람들을 죽이는 노 기사들, 왜? ■ 농업소녀 4월1일부터 29일까지 게릴라극장(02)763-1268. 노다 히데키 작·이병훈 번안·연출, 조영진 정동숙 김경익 박유밀 출연. 도시의 야만성에 짓눌린 농촌 소녀 이야기. 무 용 ■ 저스트 포 쇼 31일·4월1일 오후8시,2일 오후6시 LG아트센터(02)2005-0114. 영국 신체극단 ‘DV8’의 세계 초연작. ■ 2005 현대 춤작가 12인전 4월5∼7일 오후7시30분 문예진흥원예술극장 대극장(02)2220-1338. 중견 안무가들의 색깔있는 솔로공연. ■ 드림 앤 비전 페스티벌 4월4·5일 오후7시30분 포스트극장(02)338-6420. 김진숙, 홍연지, 윤성희 등 젊은 안무가들의 실험성 넘치는 작품. 콘서트 ■ 뱅크·포지션·최재훈 대전 콘서트 4월 2일 오후 5·8시 충남대학교 국제문화회관 정심화홀 1588-4446. ■ 수잔 베가 내한 공연 4월 4일 오후 8시 충무아트홀. ■ 전제덕 광주 콘서트 4월 3일 오후 7시 광주 문화예술극장 소극장(02)3143-5480. ■ god 광주 콘서트 4월 2일 오후 7시,3일 오후 5시 광주 동강대 체육관 1544-2921. 국 악 ■ 국립국악원 정악단 ‘춘산에 눈 녹인 바람’ 31일 오후7시30분 국립국악원 예악당(02)580-3300. 어린이 ■ 판도라의 날씨 상자 4월10일까지 동영아트홀 1588-7890. 날씨에 대한 과학 원리,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교훈적인 내용. ■ 넌 특별하단다 5월8일까지 인켈아트홀2관(02)745-0308. 맥스 루카도의 세계적인 그림동화가 뮤지컬로. 오페라 ■ 베세토 오페라 ‘마술피리’ 4월1∼6일 오후 7시30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02)3476-6224.
  • 이네사 갈란테 새달19일 내한공연

    이네사 갈란테 새달19일 내한공연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를 그녀보다 더 잘 부를 수가 있을까. 소프라노 이네사 갈란테가 새달 19일 오후 8시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 선다. 세계적 지휘자 주빈 메타가 “이렇게 노래 잘하는 가수가 있다니!”라고 탄성을 질렀다는 바로 그 천상의 목소리.2001년 첫 내한무대를 가진 뒤 세번째로 서울을 찾는 그의 무대는 이번에도 열기가 예사롭지 않을 거란 기대들이다. 기획사측이 “갈란테에 가려 다른 기획공연들이 빛을 못 볼까봐 걱정된다.”며 행복한 고민(?)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부른 ‘아베 마리아’가 실린 음반은 성악팬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5만장이 넘게 팔려나갔다. 라트비아 출생인 갈란테는 어쩌면 성악가수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인 어머니와 테너가수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음악을 공기처럼 마시고 살았다. 예후디 메뉴인, 주빈 메타 같은 거장들이 일찍이 그의 ‘끼’를 발견하고 서방무대 진출을 독려했으나, 냉전상황으로 라트비아가 소련에서 독립한 이후에야 세계무대에 늦깎이 데뷔할 수 있었다. 1992년 독일 만하임에서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의 파미나 공주를 맡으면서 평단의 본격적인 주목을 받았다. 정상에 올라선 결정적 계기는 1995년 제작한 앨범 ‘Debut’가 선풍적 인기를 누리면서부터였다. 연주는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지휘 김덕기). 대표곡 ‘아베 마리아’와 오페라의 유명 아리아들을 들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노래 사이사이로 곡에 얽힌 사연들, 자신의 생활 이야기 등을 섞어 다감하고 따뜻한 무대를 만들어줄 예정이다.2만∼8만원.(02)599-5743.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문화마당] 돈, 권력자, 그리고 예술가/진회숙 음악칼럼니스트

    언젠가 신문에서 읽은 얘기다. 국내 한 대학의 이사장님께서 같은 대학 미대 교수가 제작한 모자상(母子像)이 너무 뚱뚱하다며 조각상을 팔등신의 늘씬한 미인으로 바꾸어 제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이런 지시를 받은 교수는 예술가로서의 양심에 따라 당연히 그것을 거부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 교수는 재임용에서 탈락되는 수모를 겪었다고 한다. 수십 년 전의 얘기가 아니라 소위 문화의 세기라고 하는 대망의 21세기에 일어난 일이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이때 내가 놀랐던 것은 그 사학재단이 저지른 엄청난 비리가 아니었다. 사실 이런 종류의 비리는 너무나 많이 일어나서 이제는 더 이상 놀랄 만한 일도 되지 못한다. 내가 정작 놀랐던 것은 권력을 쥔 사람이 아주 비상식적인 이유로 예술작품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지시를 내렸다는 것과, 예술가가 그것을 거부한 것에 대해 괘씸죄를 적용했다는 것이다. 모차르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아마데우스’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도주’의 초연이 끝난 후, 공연을 본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황제가 신하들을 대동하고 모차르트를 찾았다. 그는 일단 작품이 매우 훌륭했다고 칭찬을 한다. 하지만 너무 칭찬만 해서는 황제로서의 권위가 서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한다. 이 말에 수긍할 수 없었던 모차르트가 무엇이 부족하냐고 묻자 황제는 당황한다. 꼬투리를 잡을 말이 영 떠오르지 않아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눈치 빠른 신하가 “음표가 너무 많아.”라고 하자 마침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맞아. 음표가 너무 많아.”라고 말한다. 모차르트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꼭 필요한 음만 썼다고 하자 황제는 “그래도 한가한 저녁에 듣기에는 음표가 너무 많아. 음표를 줄이도록 하지.” 이렇게 얘기하고는 자리를 뜬다. 실제로 요제프 황제가 이런 말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아마데우스’의 작가는 이런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통해 예술에 대해 식견이 없는 권력자와 그 밑에서 일하는 예술가 사이에 있음직한 갈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음표를 줄이라는 지시를 받고 모차르트가 얼마나 황당했을까. 속된 말로 얼마나 분통이 터졌을까. 그가 교회와 귀족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생의 마지막 10년을 프리랜서로 보냈던 것도 어쩌면 이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경제적 안정을 버리는 대신 예술가로서의 자유를 얻었지만 그 대가는 너무도 참담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와 그 밑에서 일하는 예술가. 역사를 살펴보면 양 쪽이 서로 행복하게 만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경우, 상처를 입고 고통을 받는 쪽은 예술가이다. 왜냐하면 예술작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지시를 내리는 쪽은 그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행동인지 스스로 모르기 때문이다. 하기야 그것이 부끄럽다는 것을 알면 애초부터 음표를 줄이라는 식의 몰상식한 주문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얼마 전에 예술가에게 엄청나게 많은 후원을 하고 있는 미국의 한 억만장자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그는 후원하지만 요구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후원을 받은 예술가가 몇 년 동안 작품 하나 발표하지 않아도 그만이라는 것이다. 예술가가 그저 놀기만 해도 그것은 새로운 작품을 위한 충전이라고 생각하며, 자기가 준 돈으로 술을 먹든 여행을 하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그것을 통해 얻은 경험이 나중에 빛나는 예술작품으로 탄생할 것이라고 믿어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아무에게나 가능한 일은 아니다.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만이 예술가의 자유와 창작의지를 존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회숙 음악칼럼니스트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2)일본의 끝나지 않은 해양 정복욕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2)일본의 끝나지 않은 해양 정복욕

    아, 우리가 즐겨써 온 그 ‘현해탄’이란 이름 조차도 큐슈 북부의 특정 해변에서 비롯된 것이니, 식민 극복이 만만치 않음을 새삼 가슴으로 느낀다. 독도는 이같이 거대한 해류 위에 돌출된 시금석이리라. 독도를 독도 문제로만 국한할 경우, 결코 해양 패권의 세계사적 드라마를 읽지 못할 것이니,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어도 제국의 바다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분명히 알 일이다. 지난 10일. 일본 시마네현의회 총무위원회가 2월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한다는 조례안을 가결시켰다. 대통령과 한국 외무부가 아무리 ‘내 마누라론’을 주장하고, 침묵으로 묵살하고, 소극으로 일관해도 일은 끝내 벌어진 것이다. 사실 흥분할 것도 없다. 사태는 예정된 수순을 따랐을 뿐이므로. 주한 일본대사의 당당한 영유권 주장, 아사히신문 경비행기의 독도 진입작전, 게다가 한승조·지만원을 비롯한 국내 극우인사들의 맞불작전까지, 돌이켜 보면 우연은 하나도 없다. 영토분쟁을 표면화시켜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가기 위한 일본 지도부의 야욕이 마각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19세기 에도막부, 홋카이도 식민화 ‘다케시마’ 주장은 망언이 아니며, 망언은 실제로 없으니 망언이란 말을 써서도 안된다. 체계적이며, 장기지속적인 심대한 해양정책에서 비롯된 국가의지의 또다른 표현일 뿐 결코 돌출발언은 아니다. 일본의 노골적인 행태는 가히 고삐 풀린 망아지 수준이되, 관·민 합동으로 질서정연하게 치고 빠지면서 주연·조연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등 화려한 연출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시네마현의 조례 제정을 일본 정부가 만류했다고 하나 전혀 믿을 게 못된다. 양동작전일 뿐이다.‘식민지근대화론’의 미몽에 취해 선전·선동을 일삼던 지식인들을 비롯, 차제에 지난 수백년간 일본이 아시아 바다에 남긴 족적을 단계적으로 살펴 감고계금(鑑古戒今)의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19세기에 에도(江戶) 막부는 ‘숲속의 사람들’ 아이누족의 영토였던 북해도, 즉 홋카이도를 식민화한다. 일단의 식민경영 세력이 ‘숲의 섬’을 치고 들어갔다. 그 후 100여년이 지난 오늘, 보호구역에 갇힌 ‘아메리카 인디언들’처럼 아이누들은 박제화되어 일본에서도 차별받는 2만여명의 혼혈아로 잔존할 따름이다. 일본은 홋카이도에 이어 사할린으로 손길을 뻗친다. 러시아와 북방 4개 도서 반환문제로 시끌벅적하지만, 사실 러시아도 북방 영토에 대해서는 논할 자격이 없는 나라다. 차르 시절, 코사크 기병대를 앞세워 동진을 거듭해 사하·축치·에벤키·캄챠달 등이 살던 시베리아를 식민지로 만들었던 그들 아닌가. 일본은 이어 남쪽의 류쿠(우리측 사료에는 유구로 기록됨)를 병합한다. 오키나와는 일본이 붙인 이름이고 본래는 류쿠국이었다. 독립 왕국으로 중국은 물론 조선과도 문물교류를 활발히 하며 조공·중계무역에 힘써 문화가 크게 번성한 나라였다. 무역선 활동 범주가 동아시아는 물론이고 인도 등 서남아시아까지 뻗친 해상국가였다. 그러나 도쿠가와 바쿠후 성립 6년째 되던 1609년 규슈 남부의 번주인 사쓰마한(薩摩藩)은 3000군사로 류쿠를 점령한다. 단, 정략적 입장을 취해 국제무역에서 엄청난 차익을 남기는 사탕수수 같은 경제적 수탈은 감행했으면서도 정치적으로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 수준에서 방관·조절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후 류쿠는 일면 일본에 수탈당하면서도 중국에 조공의 예를 갖추는 이중적 성격을 갖는다. 불행한 역사의 시작이다. 사실 사스마한의 점령 이전에도 류쿠는 왜구의 노략질에 시달려 왔으니, 류쿠와 일본의 악연은 해묵은 것이다. 그러던 일본은 1879년 드디어 ‘류쿠 처분’을 단행한다. 이로써 독립왕국 류쿠는 오키나와현으로 강등되어 일본에 병합된 이래 오늘에 이른다. 이처럼 일본의 해양식민화 정책은 전략적 포석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집요하게 기다리며 정확히 잡아먹을 시기를 노리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日정부, 남양군도 침략행위 전면 부정 1874년 청·일전쟁의 전후 보상으로 타이완을 챙긴 것은 교과서에 나온 상식.‘대륙 중국’이 타이완을 팔아넘긴 셈이 되었지만 사실은 그 중국이 타이완을 팔아넘길 자격이 있는지도 되물어야 한다. 타이완에는 푸젠(福建) 등 남부에서 이주해 온 중국인도 많았지만 이른바 타이완 원주민인 토착 타이완족이 살고 있었다. 일본의 타이완총독부가 설치되면서 그들의 운명 역시 아이누처럼 박제화되고 만다. 타이완총독부에서 갈고 닦은 식민경영의 노하우가 이후 고스란히 조선총독부로 전수되었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일본의 해양식민화가 홋카이도, 사할린, 류쿠, 타이완 같은 섬 정도에 그친 것은 아니다.1919년 파리강화회의 결과 일본은 사이판, 괌 등이 속한 이른바 남양군도를 자치령으로 분배받는다. 세계열강의 태평양 분할정책에서 그 지분을 챙긴 것. 남양군도는 서태평양 적도 이북의 작은 섬인 미크로네시아의 동쪽 끝 카리바시와 서쪽의 괌을 제외한 엄청나게 드넓은 바다.19세기말 이래로 독일이 지배하다가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일본의 남양제도 위임통치령이 되었고,1947∼1986년에는 국제연합의 위임을 받은 미국의 태평양 신탁통치제도가 되었으니, 태평양은 태평과는 무관한 격동의 바다였다. 일본인들은 남양군도로 들어가 설탕, 술, 수산가공품 같은 사업을 펼쳤으며 한때 사이판의 일본인이 10만을 헤아리기도 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패전 후 최초로 오는 6월 극우인사인 모리 요시로 전 총리를 대동하고 남태평양의 미국령 사이판을 찾아 일본군 전몰자들을 추모할 계획이다. 남양군도에 대한 침략행위의 전면 부정이 자행되고 있으며, 그 선봉에 일왕이 선 격이다. 당연히 대표적 극우언론인 산케이는 일왕의 사이판 방문 소식에 ‘감격해 하며’ 이를 전면에 도배하는 충성을 과시했다.‘위령의 여행’으로 묘사하면서 ‘남양군도’를 지배하던 향수를 노골적으로 되살려 낸 것이다. 팔라우의 수도인 코로(Koror) 외곽으로 빠지다 보면 코발트빛 바다 위에 ‘아이고 브리지’가 떠있다. 머나먼 팔라우까지 징용왔던 한국인들이 기아와 고통 속에 ‘아이고’를 연발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오죽하면 ‘아이고다리’로 명명되었겠는가. 정신대로 끌려온 나이 어린 여성들이 하루에 수십명씩의 일본군을 상대하며 피를 토하고 죽어간 남양군도로 ‘신의 아들’이 ‘위령 여행’을 떠날 것이 분명한 즉, 야스쿠니신사 참배에서 격을 높여 다시 대양으로 진출하는 셈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이른바 태평양전쟁이라 칭한 데서 알 수 있듯 세계대전의 본질은 해양패권의 각축이다. 일본은 실질적이고도 직접적으로 사이판과 괌은 물론 필리핀, 팔라우, 티니안, 얍, 뉴기니 같은 섬, 그리고 서진을 거듭하여 인도네시와, 말레이시아 등에 이르기까지 왕성한 식탐을 과시했다. 우리의 인식은 대륙 지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일본의 아시아정책은 예나 지금이나 해양이라는 거대한 또 하나의 영토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 ●기다리다 덮치기… 집요한 日 해양정책 일본은 세계열강의 해양 재편성에 기초한 배타적경제수역(EEZ)이라는 국제해양법 신질서에 매우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서남쪽으로 눈길을 돌려 기왕에 문제가 되어온 조어도, 일명 센카쿠열도 문제로 중국과 심각한 해양분쟁을 일으킨지 오래다. 미래의 해양자원을 염두에 넣는다면 일본이 조어도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너무도 확실하다. 남쪽으로 눈을 돌려 손톱만 한 바위에 불과한 오키노도리시마(沖鳥島)로 명명하고 자기 영토에 포함시켰다. 해양과학자들까지 동원해 섬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아 침대만 한 섬 하나에 290억엔을 퍼부었다. 이로써 자신의 영토(38만㎢)보다도 넓은 40만㎢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확보하게 된 것. 나아가서 태평양 복판에 떠있는 미나미도리까지 영토로 선포했다. 이렇듯 일본은 해양 영토에 관한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러니 독도가 어찌 그들의 눈독에서 빠질 수 있었으랴. 이런 만행이 대중국 포위전략 측면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미국의 암묵적 동의 없이 가능할까. 미국 역시 ‘해양제국’이다. 일제의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이 태평양전쟁에 개입하는 단서가 마련되지만, 기실 일본과 미국이 가쓰라-테프트밀약을 통해 섬 국가인 필리핀과 반도국가인 한반도를 ‘빅딜’하는 국제적 공모에 가담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직·간접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는 태평양의 섬은 거의 없다. 태평양은 공해가 분명하지만 미국과 일본이 ‘대주주’행세를 하고 있다. 오키노도리시마와 미나미도리는 남양군도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일본이 만들어낸 ‘바다 땅따먹기’의 야심작이 아니겠는가. 근래 일본 정부는 해양권 확보에 노골적이다. 경제산업성, 외무성, 국토교통성 등이 주동이 된 연락회의가 공개적으로 열린다. 숨길 게 없다는 식이다. 독도 영유권까지 인정받는다면 일본은 전체적으로 405만㎢의 배타적 경제수역, 즉 일본 영토의 10배를 뛰어넘는 방대한 해양영토를 확보하게 된다. 제주도 한경면에는 일본군이 옥쇄를 대비해 만든 거미줄처럼 얽힌 가마오름땅굴이 있다. 버려졌던 이 땅굴은 한 개인의 희생적 노력으로 현재 평화박물관이 되어 있다. 이곳 이영근 관장은 “현재 공개된 굴은 극히 일부로, 모두 바다를 향해 포신을 겨누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땅굴에서 바닷가 쪽으로 내려와 일본군 알트르비행장을 벗어난 송악산 해변에도 미군기를 겨냥했던 동굴들이 줄지어 있다. 태평양전쟁의 구체적인 해안진지가 한반도 곳곳에서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같은 ‘평화’라도 韓·日 인식 달라 가미카제 특공대가 출격을 감행했던 규슈 남쪽 가고시마현의 아름답기 그지없는 지란(指宿) 바닷가에도 같은 이름의 ‘평화관’이 존재한다. 그러나 소년병에 대한 애틋한 추억과 모정을 빙자한 최루성 역사 회고만 존재할 뿐 전쟁 자체에 대한 책임과 반성은 어디에도 없다. 같은 ‘평화’를 거론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인식차는 상상을 초월한다.‘제국의 바다’를 잊지 못하는 일본의 추억만들기가 계속되는 한 ‘현해탄’의 파고도 계속 높아질 것이다. 아, 우리가 즐겨 써온 그 ‘현해탄’이란 이름조차도 규슈 북부의 특정 해변에서 비롯된 것이니, 식민 극복이 만만치 않음을 새삼 가슴으로 느낀다. 독도는 이같이 거대한 해류 위에 돌출된 시금석이리라. 독도를 독도 문제로만 국한할 경우, 결코 해양 패권의 세계사적 드라마를 읽지 못할 것이니,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어도 제국의 바다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분명히 알 일이다. 해방 60주년, 일본은 20세기형 제국의 바다를 21세기에 다시 ‘신장개업’했다.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우선 청와대와 외무부의 공식 입장 및 향후 일정부터 듣고 싶다. 또 ‘내 마누라타령’으로 일관하면서 질질 끌려다니다 끝내 국제사법재판소 법정마당까지 끌려가 내 영토를 약취당하고 말 것인가.
  • 무장日軍 학교 난입… 무차별 고문…

    러시아 혁명 이후 연해주에 진주한 일본군이 당초 출병목적은 외면한 채 한인의 독립운동을 짓밟는 데 혈안이 됐었다는 내용을 담은 미군의 정보문서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일본군은 1918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볼셰비키 혁명군인 적군(赤軍)과 차르의 백군(白軍) 사이에 내전이 벌어지자 ‘국제간섭군’이라는 명분으로 미국, 프랑스와 함께 출병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최근 입수한 ‘미국 시베리아 원정군 정보장교 문서’를 27일 공개했다. 이 문서는 1919년 3·1운동을 전후한 시기 시베리아와 연해주에서 한인 항일독립운동을 일제가 어떻게 탄압했는지를 담고 있다. ‘일본이 시베리아의 한국인들에게 가한 야만적 가혹행위’라는 부제를 단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군은 1918년 10월부터 1919년 8월까지 에브게네프카, 하바로프스크, 니코리스크, 베리노 등에서 활동하던 한인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일본군은 한인 독립운동가들을 무차별 체포해 감금과 고문을 일삼았으며, 한인 학교에 무장한 채로 들어가 교과서를 불태우거나 책상 등의 집기를 부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1919년 3월15일 하바로프스크에서는 미군 병사들에게 영문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던 한인 2명을 체포해 사슬로 묶은 뒤 감옥에 2주 동안 감금하며 고문을 자행하기도 했다. 일본군은 또 항일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한국인을 매수해 동료들을 고발케 하거나 러시아 경찰에게 금품을 대가로 조선인 탄압에 앞장서도록 하기도 했다고 문서는 전하고 있다. 국사편찬위 이상일 박사는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러시아나 일본의 기록에 의존하던 3·1운동 전후 연해주 지역 독립운동사 연구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면서 “일반인들에게도 일제의 만행에 대한 경각심과 독립 운동에 목숨을 바친 선열의 뜻을 되새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홍혜경의 ‘미미’를 만난다

    홍혜경의 ‘미미’를 만난다

    소프라노 홍혜경의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공연이 기다린다. 올 들어 두번째 예술의전당이 기획한 오페라 ‘라 보엠’ 무대에 그가 선다. 홍혜경이 국내 오페라에 출연하기는 처음이다. ●국내 오페라 첫 출연으로 화제 3월3일부터 12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이는 이번 무대는 영국 로열 오페라하우스의 존 코플리 프로덕션(연출 리처드 그랙슨)이 꾸민다. 영국 최고의 연출가 존 코플리가 1974년 만든 프로덕션은 지난 30여년간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 등 빅스타 성악가들과 함께 무대를 만들어왔다. 지휘는 세계적 지휘자 줄리어스 루델이 맡을 예정.1944년 뉴욕에서 지휘자로 데뷔한 뒤 메트로폴리탄과 뉴욕시티 오페라에서 무려 22년 동안 총감독과 수석지휘자로 활동해왔다. 유명 오페라 명반이나 DVD에서 이름으로만 접했던 마에스트로를 직접 만날 수 있는 드문 기회인 셈이다. 푸치니의 ‘라 보엠’은 1959년 국내 초연된 이후 한해도 거르지 않고 막을 올려온 인기 오페라. 파리 뒷골목을 배경으로 시인 로돌포와 폐결핵을 앓는 여공 미미, 화가 마르첼로와 여점원 무제타의 사랑과 이별을 사실주의로 그려낸 고전이다. ●‘마에스트로’ 줄리어스 루델 지휘 이번 공연은 여주인공 미미를 맡은 ‘메트의 디바’ 홍혜경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무대로 기억될 듯하다.1984년 모차르트 오페라 ‘티토와의 자비’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데뷔한 홍혜경은 20년이 넘도록 주역으로 활약해왔다. 예술의전당측은 “비슷한 시기에 쏟아지는 대형 뮤지컬들과 경쟁해야 하지만, 프리마돈나 홍혜경을 기다려온 클래식 팬들이 모처럼 움직여줄 것”이라며 기대를 걸고 있다. 서울 예원학교 2학년 때 도미, 줄리어드 음악원과 대학원을 나온 홍혜경은 1982년 한국인 최초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기록을 낳았다. 지난 1월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투란도트’의 류를 맡았던 그는 6월에는 동양인 가수에 대한 편견이 심하기로 유명한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에서 또 한번 미미(라 보엠)를 노래하기로 돼 있다. ●메트로폴리탄 20년넘게 주역 활동 ‘라 보엠’에는 귀에 익은 곡들이 유난히 많다. 로돌포의 아리아 ‘그대의 찬 손’을 비롯해 ‘내 이름은 미미’ ‘무제타의 왈츠’ ‘외투의 노래’ 등은 많은 성악가들이 무대 밖에서도 즐겨 부르는 인기곡이다. 로돌포 역의 테너는 미국의 유망주 리처드 리치. 무제타는 황후령, 마르첼로는 노대산, 쇼나르는 사무엘 윤, 콜리네는 임철민이 각각 연기한다. 더블캐스팅에는 미미 역의 김향란, 로돌포 역의 이응진 외에 김승철 박미자 김요한 최경렬 등. 연주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합창은 부천시립합창단이 맡는다. 홍혜경, 리처드 리치 팀 공연(3·6·9·12일)은 3만∼16만원. 김향란, 이응진 팀 공연(5·8·11일)은 2만∼12만원.(02)580-1300.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울리히 “암스트롱 7연패 안될걸”

    ‘사이클 황제’ 랜스 암스트롱(미국)을 영화 ‘아마데우스’에 나오는 모차르트로 치자면, 얀 울리히(독일)는 그늘에 가려진 라이벌 살리에리다. 암스트롱이 2살이 더 많지만 인간 한계의 시험장이자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프랑스도로일주사이클대회(투르 드 프랑스)에서는 울리히가 2년 앞선 97년 정상에 올랐다. 93년 세계선수권 챔피언에 오른 암스트롱은 96년 고환암에 걸려,2년 여의 사투 끝에 99년 투르 드 프랑스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며 극적인 인생 드라마를 만들어 냈다. 이후 암스트롱은 지난해까지 6연패의 질주를 이어갔지만, 울리히는 97년 우승 이후 준우승만 4차례나 하는 등 만년 2인자에 머물렀다. 이들은 경쟁자이면서 페어플레이 정신을 드높인 동반자이기도 하다.2001년 대회에서 울리히가 산악 내리막길에서 넘어졌을 때 암스트롱은 추월하지 않고 그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2년 뒤에는 반대 상황이 연출됐다.15구간 결승선을 앞두고 관중의 가방에 자전거 핸들이 걸리는 바람에 암스트롱이 넘어졌던 것. 뒤를 따르던 울리히는 역전 우승을 노릴 수 있었음에도 암스트롱이 다시 재속도를 낼 때까지 잠시 숨을 골랐다. 다시 숙명의 레이스가 펼쳐지게 됐다. 올해 7월 열리는 투르 드 프랑스에 불참한다고 소문이 났던 암스트롱은 17일 소속팀 홈페이지를 통해 7연패 도전을 선언했다. 암스트롱은 “아직 컨디션은 엉망이지만 7연속 우승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암스트롱의 소식을 들은 울리히도 이날 개인 홈페이지에서 “랜스의 7연패를 바라는 팬들도 있겠지만, 그것을 막아내기를 기대하는 팬들도 있다.”고 밝히며 전의를 불태웠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피아노선율과 함께 봄마중을…

    피아노선율과 함께 봄마중을…

    새봄을 깨워줄 피아노 두 대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기다린다. 피아니스트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와 노르웨이 체임버 오케스트라(20일 오후6시), 그리고 브래드 멜다우 트리오(24일 오후8시)의 내한무대. 안스네스는 세 차례, 브래드 멜다우 트리오는 두 차례 각각 한국 공연을 연 적이 있어 이미 국내에 두꺼운 팬층을 거느리고 있는 얼굴들이다. 올해 35세인 노르웨이 출신의 피아니스트 안스네스가 실내악을 이끌고 방한하기는 처음. 팬들은 지난 2003년부터 그가 객원지휘를 맡고 있는 실내악단 노르웨이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직접 지휘하는 무대를 감상할 수 있다. 네살 때 피아노를 시작한 안스네스는 세계 유수의 콩쿠르 수상을 통한 ‘데뷔 공식’을 따르지 않은 드문 이력의 소유자. 수많은 ‘현장’ 연주회를 통해 재능을 인정받았다. 뉴욕 카네기홀이 현존하는 최고 음악가의 연주를 집중 조명하는 ‘퍼스펙티브(Perspectives)’시리즈 2004∼2005 시즌에 역대 최연소 연주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그리그 ‘홀베르크 모음곡 Op.40’,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18번’, 바흐 ‘피아노 협주곡 5번’, 하이든 ‘교향곡 45번 고별’ 등을 연주한다.(02)2005-0114. 긴장을 푼 채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피아노 무대를 찾는다면 브래드 멜다우 트리오 쪽이 더 어울린다. 클래식과 팝, 솔로와 트리오 등으로 다양한 음색을 빚어온 멜다우는 클래식뿐 아니라 대중음악계 전반을 아우르는 스타급 피아니스트. 찰스 헤이든, 리 코니츠, 웨인 쇼터, 존 스코필드, 찰스 로이드 등 세계 정상급 연주자들과 함께 공연 및 음반녹음을 하는 등 왕성한 에너지를 뿜어왔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아이즈 와이드 샷’, 빔 벤더스 감독의 ‘밀리언 달러 호텔’ 등의 영화에 멜다우의 음악이 삽입된 것을 봐도 대중의 취향을 폭넓게 수용하는 그의 음악 성향을 알 수 있다. 고교시절 재즈밴드에서 실력을 쌓은 뒤 1995년 데뷔앨범 ‘Introducing Brad Mehldau’를 내놓으며 클래식에 스윙을 가미한 독특한 연주 스타일을 선보였다. 이번 공연에서는 베이시스트 래리 그레나디에와 드러머 호르헤 로시와 트리오로 호흡을 맞춰 최근 선보인 음반 ‘Anything goes’의 수록곡들을 들려준다.(02)543-1601.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영화속 수능잡기] 아마데우스

    사촌이 땅을 사면 기뻐하기보다는 배가 먼저 아픈 것이 평범한 사람의 심리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그가 별로 노력도 안 하고 큰 성공을 거둘 때 우리의 시기심은 최고조에 이른다. 가령 나는 밤새 공부해도 성적이 거기서 거기인데 어떤 친구는 한두 시간 공부하면서도 성적이 최상위권이라면, 맥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럴 때 우리는 곧잘 신을 타박한다. 신이시여, 대체 왜 이렇게 불공평하십니까? 롤프 하우블의 저서 ‘시기심’에서는 인간이 시기심을 느낄 때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 네 가지 양태를 소개하고 있어 흥미롭다. 먼저 낙담이다. 저건 내가 도저히 가질 수도 없으니 꿈도 꾸지 말자. 일찌감치 포기해버리는 방식이다. 과히 나쁜 방식은 아니지만 자칫 패배자의 생존 방식이라는 비난을 들을 수 있다. 둘째, 야심이다.‘저 친구가 해냈다면 나도 해낼 수 있어.’라는 생각으로 경쟁심을 키우는 방식이다. 금메달을 꿈꾸며 땀 흘리는 운동선수들이 취하는 방식으로 권해볼 만하다. 그러나 자신의 처지를 분명히 알지 못하고 함부로 도전하면 코가 깨진다. 셋째, 분노다. 분노는 상대가 정당하지 못한 방식으로 소유물을 가졌다고 믿을 때 발동한다. 저 친구는 아버지가 잘 살아서 수백만원짜리 과외를 하기에 공부를 잘 하는 거야, 나도 저 정도의 가정에 태어났다면 재능을 꽃피울 수 있었을 거야. 세상에 대한 적개심을 쌓아가는 것이다. 넷째, 공격성 즉 타인을 해치려는 마음이다.‘왜 나는 저 친구가 갖고 있는 것을 가지지 못한 것일까. 부모와 세상을 잘 못 만나서 그래. 이 더러운 세상을 확 불질러 버리고 싶어.’하는 식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이다. 감옥에는 이런 방식으로 시기심을 표출한 사람들로 북적댄다. 경계해야 할 방식이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궁정음악단장 살리에리, 그는 모차르트의 그늘에 가려 명성이 잊혀져 버린 불운의 음악가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살리에리는 어려서부터 음악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무식한 그의 부친은 그의 꿈을 무참하게 짓밟는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고 음악적 재능을 활짝 꽃피운다.‘신은 왜 모차르트에게는 재능을 주셨고, 나에게는 그의 재능을 알아볼 수 있는 귀를 주셨을까.’살리에리의 시기심은 불같이 타오른다. 세상에는 음악가가 되고 싶은 욕망도 있을 수 있고, 화가나 만화가가 되고 싶은 욕망도 있을 수 있고, 사업가가 되고 싶어하는 욕망도 있을 수 있다. 욕망이 다양한 사회는 다양한 문화를 꽃피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떤가. 돈과 물질에 대한 집착과 시기심만이 지나치게 강한 사회는 아닐까. 왜 저 나라는 깨끗한 물과 산과 공기를 갖고 있는데 왜 우리는 갖지 못한 것일까. 왜 우리는 유럽의 어떤 도시처럼 훌륭한 건축문화를 갖지 못한 것일까. 이런 시기심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세상은 좀더 밝아지지 않을까. 밀로스포먼 감독, 톰헐스,F 머레이애이브러험 출연,1984년작. 김보일 서울 배문고 교사 uri444@empal.com
  • [씨줄날줄] 판교신기루/육철수 논설위원

    19세기 말 러시아 귀족과 군장교들 사이에서는 ‘러시안 룰렛’이란 게임이 유행했다. 차르(황제)체제의 암울한 시대상황에서 희망없이 살아가던 지배층에 번진 일종의 사회병리현상이다. 말이 용기와 운(運)을 시험하는 게임이지 생명을 담보로 한 엽기적 도박과 다름없다.6연발 권총에 총알 한 발을 장전한 뒤 상대와 돌아가면서 관자놀이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데 죽을 확률은 6분의1, 즉 16∼17%다. 생존 확률이 80%가 넘어 안심할 만하겠다지만 게임 당사자에게 이 확률은 의미가 없다. 그들에겐 사느냐 죽느냐가 전부여서 죽을 확률이 50%이며, 공포감을 고려하면 체감확률은 훨씬 더 높을 것이다. 확률에 밝은 수학자나 통계학자들은 완전하게 불가능한 경우만을 ‘확률 0(제로)’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학적인 개념일 뿐 실제로는 확률이 50% 밑으로 떨어지면 느낌의 영역, 즉 운의 영역으로 돌린다고 한다. 그렇다면 확률 50%는 확신과 운의 경계인 셈이다. 확률이다 뭐다 해서 다 갖다 붙여도 운 좋은 사람을 이길 수는 없는 법. 러시안룰렛은 두말할 것 없이 용기있는 사람보다는 운 좋은 사람이 이기게 돼 있는 게임이다. 요즘 수도권 주민 둘만 모이면 판교신도시 시범단지의 예상경쟁률을 화제에 올린다고 한다. 건설교통부가 청약통장 가입자를 바탕으로 추산해 본 경쟁률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판교신도시에 국민주택 규모(전용면적 25.7평) 아파트 3000가구를 건설할 경우, 성남과 기타수도권, 서울 1순위자의 거주지별 경쟁률은 최소 190대1에서 최대 3500대1까지 나온다고 한다. 당첨확률이 겨우 0.5∼0.03%여서 ‘0’에 가깝다. 확률이 50%보다 낮으면 행운의 영역이라는데, 이거야말로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이 아니면 꿈도 꾸지 말아야 할 상황이다. 당첨만 되면 그 자리에서 2억∼3억원을 남길 수 있다니 주택청약이 아니라 주택복권 1등 당첨과 맞먹는다. 운만 잘 따라주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몰려드는 사람들을 어찌 말릴 수 있겠는가. 주택보급률이 몇년전 100%를 훌쩍 넘겨 통계상으로는 가구당 한 집씩 차고 앉았어야 하는데, 내집을 장만하기 위해 신기루(蜃氣樓)를 좇는 ‘확률게임’의 세태를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까.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문화마당] 프리랜서 파이팅/진회숙 음악칼럼니스트

    얼마 전에 찌개를 끓이다가 손을 데었다.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이 손이 왜 그러냐고 묻기에 찌개를 끓이다가 데었다고 했더니 선생님 같은 사람도 부엌일을 하느냐고 되물었다. 여기서 선생님 같은 사람이란 곧 클래식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클래식’과 ‘부엌일’ 왠지 조합이 안 된다는 것이다.“선생님 같은 분은 클래식이 은은하게 흐르는 멋진 거실에서 와인 잔을 기울이며 무드 있게 사는 줄 알았는데요.” 이렇게 말하는 이도 있었다. 이 무슨 심각한 오해란 말인가. 클래식에 와인 잔이라니. 그런 호사를 누려본 적이 없는데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 아마 우리 사회에서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려면, 그리고 그것을 즐기면서 살려면 상당한 정도의 재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선입견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몇 년 동안 소식을 모르고 지내던 한 후배가 신문에서 내가 쓴 글을 읽었단다. 이름 옆에 프리랜서라고 쓰여져 있는 것을 보고 ‘아, 실업자구나.’라고 생각했다는 얘기를 듣고 한참 웃었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사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내 직업은 비정규직 정신노동자이다. 원고 청탁이 들어와야 겨우 쥐꼬리만한 원고료라도 받을 수 있을 뿐 보너스와 퇴직금은 물론이요 정기적인 수입조차 없다. 가끔 가다 그동안 쌓아놓은 명성(?)을 바탕으로 책을 써서 몇푼 안 되는 인세를 챙기는 것. 그것이 보너스라면 보너스일 것이다. 이렇게 대책 안 서는 직업이 바로 ‘프리랜서’라는 직업이다. 어떻게 보면 프리랜서라는 말은 이 시대가 글줄깨나 쓰는 실업자들에게 붙여준 허울 좋은 이름인지도 모른다.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작곡가 모차르트는 생의 후반부에 프리랜서로 일했다. 교회와 귀족으로부터 벗어난 그는 자유를 얻은 대신 배고픔을 감내해야 했다. 그래서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매일매일 곡을 썼다. 자기가 좋아하는 곡만 쓴 것이 아니었다. 개중에는 마음에 안 드는 주문도 있었다. 클라리넷을 싫어했지만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써야만 했다. 그런데 이렇게 억지로 쓴 곡이 불후의 명곡이 되었다. 삶에 대한 치열함이 이런 명곡을 만들어낸 것이다. 조선 시대 해금의 명인 유우춘은 파리가 앵앵거리는 소리, 장인들이 뚝딱거리는 소리, 선비들이 글 읽는 소리, 모두 다 밥을 구하는 데 뜻이 있다고 하면서 자기가 해금을 하는 것도 밥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늙으신 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 해금을 한 것이라고. 그는 이런 명쾌한 말로 비렁뱅이의 깽깽이 운운하는 당대의 실학자 유득공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내가 만약 멋진 소파에 앉아 와인 잔을 기울일 수 있는 처지에 있었다면 지금처럼 치열하게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취미 삼아 쓰는 글, 취미 삼아 쓰는 음악, 취미 삼아 하는 연주. 이런 것에는 삶의 치열함이 묻어날 수 없다. 더불어 진정한 명작이나 명곡, 명연주도 나올 수 없다. 나는 확신한다. 이 세상에 밥을 벌어먹기 위해 하는 모든 일은 신성하며, 그런 치열함에서 진정한 작품이 나오는 것이라고. 그러니 밥을 벌어먹기 위해 일하는 이 세상의 모든 프리랜서들은 부디 힘내시길. 그렇게 치열하게 일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정말로 세상에 길이 남을 만한 작품이 탄생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진회숙 음악칼럼니스트
  • [공연포커스]엄단비 바이올린 독주회

    [공연포커스]엄단비 바이올린 독주회

    한국 음악계를 짊어질 어린 연주자들을 발굴·소개하는 ‘금호아트홀 2005 라이징 스타 시리즈’가 올해 6회 일정으로 막오른다. 첫 무대는 8일 오후 3시 엄단비(15) 바이올린 독주회와 오후 8시 김선욱(17) 피아노 독주회. 커티스 음악원에 재학 중인 엄단비는 8세에 금호영재오디션을 통해 데뷔한 샛별 중의 샛별. 버몬트심포니와 협연, 인터내셔널 뮤직페스티벌 초청 카네기홀 연주, 시애틀뮤직페스티벌의 이머징 아티스트 콘서트 등 세계적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바이올린 영재다. 모차르트, 브람스,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 등을 연주한다. 2004 에틀링겐 피아노 콩쿠르에서 1등을 거머쥐며 주목받는 김선욱은 서울시향, 울산시향 등 국내 주요 교향악단과 두루 협연하며 강한 터치와 빈틈없는 테크닉을 자랑해 왔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김대진 교수를 사사하고 있으며, 바흐 베토벤 쇼팽의 피아노곡들을 연주한다.(02)6303-1919.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청진기/박만호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청진기/박만호

    (무대) 원룸 아파트 아래 위층,301호와 401호 (등장인물) 남:소리감별사 여:빨간 구두의 여인 의뢰인1:50대 초반 의뢰인2:30대 중반 의뢰인3:30대 초반 할머니:꿈속의 환영 딸:중학생 (소리에 대해) 소리는 하나의 등장인물처럼 연기한다. 극의 흐름을 이끌고 가는 극적 요소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 소리를 측정하는 청진기는 ‘호른’의 유려한 곡선 음관을 부착한 특별한 도구이다. ●제1장 어둠 속에서 “영호야- 영호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원룸 아파트 아래 위층인 301호와 401호가 서서히 드러난다. 스탠드만 침침하게 켜져 있는 아래층 301호는 실내가구들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 위층 401호는 아직 어둠 속에 싸여있다. “우웅 우웅-”하는 진동음이 들리자,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나 귀마개를 벗고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남자.“새로운 메시지가 없습니다.”라는 안내음이 들린다. 이어 아파트의 여러 생활소음들이 와글와글 들려온다. 다시 귀마개를 하고 눕는 남자. 이때 다급한 뾰족구두 소리. 쫓기듯 달려와 위층 401호로 올라간다. 문을 닫고 구두를 벗고 룸으로 들어서는 여자. 외투를 벗고 침대 위로 무너지듯 쓰러진다. 아래층 침대에 누웠던 남자가 슬며시 몸을 일으킨다. 플래시를 켜서 천장을 비춰본다. 위층 여인의 숨소리가 평정을 되찾는다.“끼리리리-”하며 냉장고 가동 소음이 시작된다. 냉장고를 비추는 플래시. 새벽 4시를 알리는 괘종시계 소리와 함께 암전된다. 무대 밝아지면, 아래층 301호의 실내가 드러난다. 침대와 평범한 실내가구들. 구석 쓰레기통에는 호른 나팔과 야구방망이가 처박혀 있다. 탁자에서 남자에게 소리 감별을 받고 있는 의뢰인들. 호른을 닮은 청진기로 손목시계들을 검진하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소리:(손목시계) “째각 째각 째각 째각-” 남자:이게 불량입니다. 태엽이 긁히는 소리가 나는군요. 의뢰인1:계측기로는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남자:0.5데시벨의 소음이군요. 계측기는 보통 플러스 마이너스 1데시벨의 오차를 가지고 있지요. 다음 분. 의뢰인2:(믹서기 3개를 탁자에 놓고) 동방가전에서 출시한 신제품입니다. 모델별 소음의 차이를 알고 싶습니다. 소비자에게 주는 청각적 영향 말이죠.(뚜껑을 살피는 남자에게) 저... 뚜껑이 아니라 작동시의 소음만 분석해 주시면. 남자:모든 소리를 다 분석해야죠. 의뢰인2:우리가 필요한 건. 남자:다시 말하지만, 소리는 복합적입니다. 의뢰인1:감별사님을 믿고 따르세요. 남자:G-1800, Q-300, A-7, 이 세가지 모델의 소리 중에서 A-7이 가장 우수합니다. 의뢰인2:그럴리가요.A-7이 가장 구형인데. 남자:신제품이 G-1800이죠? 이건 실패작입니다.110데시벨의 고주파 파동 현상이 발생합니다. 여기에 무방비로 노출되면 고객만족도가 어찌 될까요? 다음 분이오. 의뢰인3:역시 탁월한 분석이십니다.(포도주 2병을 내밀며) 적포도주와 백포도주입니다. 소리:(뾰족구두) “또각 또각 또각 또각-” (포도주 병을 살펴보다가, 뾰족구두 소리에 눈길을 돌리는 남자. 초인종 소리. 남자가 청진기를 벗고 문을 연다. 복숭아 접시를 들고 들어오는 이층 여자) 여자:안녕하세요? 저는…. 남자:위층 401호 분이시죠? 여자:어머나, 어떻게 아셨죠? 남자:(여인의 빨간색 뾰족구두를 보며) 내 추측이 맞았군요. 빨간색일 거라 생각했죠. 어젯밤에 구두 소리를 들었어요. 여자:어머나, 새벽 4시가 넘어 들어왔는데. 남자:새벽엔 더 잘 들리죠. 여자:한데 색깔까지 어떻게 아셨나요? 남자:검은색 구두였다면 소리가 더 낮게 깔리거든요. 낡은 가죽이라 세월의 나이가 느껴지던데요.15년 된 캥거루 가죽입니다! 여자:호호호- 점쟁이신가봐! 어제 이사왔어요. 인사도 드릴 겸 복숭아 좀 드시라고요.(남자에게 복숭아 접시를 건네며) 어머나, 손님들이 많이 계시군요. 남자:제 의뢰인들입니다. 여자:무얼 의뢰 받으시는데요? 남자:소리요. 의뢰인1:제품의 소리를 감별해 주시는 거죠. 의뢰인2:그 느낌까지요. 의뢰인3:감별사님은 기계보다 정확하시죠. 여자:우리 아파트에 대단한 명인이 살고 계시는군요. 저…이것도 감별이 되나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소리가 잘 안 들리거든요. 남자:(휴대전화를 검진하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소리가 작게 설정된 거 외엔.(진동음을 조정하고) 들어보세요. 소리:(휴대전화 진동음) “우웅 우웅 우웅…” 남자:커졌죠? (휴대전화를 여자에게 주며) 이웃사촌이니 감별비는 받지 않겠습니다. 여자:아유, 고마워요. 남자:소리를 놓치면 후회가 크답니다. 여자:맞아요. 일년 전에 정말 중요한 연락을 놓친 적이 있어요. 샤워 중이었거든요. 제 인생이 걸린 중요한 기회였는데….30분 늦게 연락하는 바람에 바이 바이! 근데 감별사님은 소리를 어떻게 분석하시나요? 남자:기억되어 있는 소리들 때문에 분석이 되는 겁니다. 여자:이 세상 소리를 전부 기억하고 계세요? 남자:한 번 들으면. 의뢰인2:스리쿠션 때린 당구공처럼요? 의뢰인3:구구 팔십일 구구단처럼요? 여자: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처럼? 남자:망각이 안돼요. 모두:오!…. (다시 포도주 병을 검진하는 남자. 가만히 주시하는 사람들) 소리:(포도주) “출렁 출렁 출렁 출렁-” 남자:아르마냑 17년산이군요. 의뢰인3:네! 맞습니다. 남자:색깔도 소리를 냅니다. 적포도주는 백포도주보다 0.3데시벨 정도 고음을 지닙니다. 잔에 따를 때, 잔을 부딪칠 때, 적포도주는 유혹의 소리를 발산하지요. 좋은 술은 좋은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우와!…. 의뢰인2:선생님. 그 차이를 일반인도 인식할 수 있나요? 남자:그들도 분명 듣습니다. 말로는 표현하진 않지만, 마켓에서 돈으로 표현하죠. 의뢰인들:(박수치며)니즈는 욕망이다! 여자:전 들을 수 없거든요! 색깔이 소리를 낸다고요? 그런 황당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는 거죠? 왜들 무조건 믿는다고만 하시죠? 남자:이걸 쓰고 한번 들어보세요. (여자에게 청진기를 건네는 남자) 여자:이건 호른의 음관이잖아요! 남자:제가 특별히 제작한 청진기입니다. 여자:(쓰레기통에 처박힌 호른의 나팔부분을 발견하고) 저기서 떼어내 만드셨나요? 남자:네. 난 새로운 악기가 필요하거든요. 여자:이 청진기가 악기라고요? 남자:그럼요. 혼자만 들을 수 있는 악기죠. 여자:혼자만 듣는 게 어떻게 악기가 되죠? (청진기를 던지며) 이건 장난감에 불과해요. 남자:진정하세요. 이 세상은 소리로 가득차 있습니다. 소리를 외면하지 마세요. 제발…. 이리 오셔서 들어보세요. 호른 소리를 음미할 수 있어야 진정한 호른 주자가 될 수 있듯이, 이 청진기는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게 해 줍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수많은 소리로 가득 차 있는가를 가르쳐 주는 거죠.(청진기를 여자에게 씌워주고 백포도주를 흔든다.) 들리나요? 눈을 감고 들어 보세요. 소리:(백포도주) “출렁 출렁 출렁 출렁-” 여자:들려요. 남자:이번엔 적포도주입니다. 소리:(적포도주) “출렁 출렁 출렁 출렁-” 남자:안단테 칸타빌레로 사라지는 아련한 고음의 잔상이 왼쪽 귓전을 스치죠? 여자:(청진기를 벗으며) 들려요…. 하지만 차이는 모르겠어요. 의뢰인1:허허허- 소리 감별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의뢰인2:그래서 우린 의뢰를 하러 오고요. 의뢰인3:기계보다 정확하시니까요. 여자:흥, 정말로 듣지 못하는 소리가 하나도 없어요? 남자:듣지 못하는 소리라…. 있죠. 잠들었을 때. 여자:밤에도 안 자고 전부 듣는다면서요. 새벽 4시에 제 구두소리도 듣고. 남자:낮에 자나보죠? 여자:농담하세요? 어째 좋은 이웃이 되기는 힘들 것 같군요. (휭하니 나가버리는 여자. 의뢰인들도 일어선다.) 의뢰인1:허허허. 성질도 급하시네. 오늘도 좋은 감별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의뢰인2,3:최상의 분석이었어요.(박수치며) 엑설런트! (모두 나가면 하품하는 남자. 위층 402호로 들어서는 여자. 소리를 읊조린다.) 여자:“우리 아기 예쁜 배, 할미 손은 약손, 쓱쓱 만져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우리 아기 동그란 배, 할미 손은 약손. 궁글궁글 쓸어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남자, 위층의 소리를 의식하며 침대 밑에서 박스 하나를 꺼낸다. 박스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꺼내 물끄러미 바라보는 남자. 스케이트 신발의 줄을 풀렀다가 다시 매더니 하품하며 드러눕는다. 조명 분위기가 바뀐다.) (탁자 위에서 남자의 휴대전화가 진동한다. 코를 고는 남자. 이어 부르는 소리) 소리:“우웅 우웅 우웅- 영호야. 영호야-” 남자:(몸을 뒤채며) 순이니…. 인라인 스케이트 사놨다. 어여 신어봐….(부스스 얼굴을 들고) 엥! 내가 자고 있었나. 순이니? 순이 왔니? 날 저물었는데 얘는 뭐하고 안 들어오나. 어휴, 말을 말아야지. 세상 좋아졌다. 맨땅에서 스케이트를 다 타고.(보호장구와 헬멧을 착용해보며) 돈 쓰게 만드는 기술도 가지가지여. 앉아서 이런 거만 연구하는 놈들 천지니. 어뗘. 순이야. 아빠도 멋져 보이냐? 아빠도 소싯적에 얼음지치기 한가닥 했다. 외날 썰매 모르지? 우선 중심을 잘 잡고…. 긴 꼬챙이 하나를 다리 사이로 넣고 얼음을 팍팍 찍으면서 달리는 거여. 대가미 방죽에선 아빠가 일등했다. 니 이렇게 차려입고 씽씽 달리면 동네 남학생들이 줄줄 따르것다. 순이야, 얼른 들어온나. 인제 호른을 필요로 하는 나이트클럽은 없다. 그러니 아빠는 내일이면 배 타러 가야헌다. 한동안 못 보니까 얼른 와. (시계를 흘낏 보다) 아니 근데 이누무 지지배가 아직도 들어올 생각을 안 하고 어딜 싸돌아 다니는 거여. 내 이년을….(휴대전화 메시지를 발견하고) 얼래, 이게 뭐여.“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그려 근데.“아빠. 로데오광장 빨리….” 20분전에 온 거네. 로데오 광장? 하하- 요것이 눈치 하난 빨라요. 거기서 스케이트 타고 싶다 이거지? 다른 애들처럼. 오냐. 아빠가 가마. 근데 얘가 스케이트 사논 걸 어떻게 알았지? 돈 없다고 등짝을 후려패서 학교 보내 놨더니…. 하여튼 귀신이여 귀신. (박스를 옆구리에 끼고 달려 나가는 남자. 그 열린 문으로 여자가 은밀하게 들어와, 가구들 뒤에 무엇인가를 붙여 놓는다. 감별사의 청진기를 보고 자기 심장에 대본다.) 소리:(심장박동) “쿵 쿵 쿵 쿵-” (남자가 돌아오는 기척. 얼른 복숭아 가져왔던 접시를 드는 여자. 남자가 힘없이 들어선다.) 여자:어머! 오셨네요. 문이 열려 있기에 접시를 가져가려고요. 아깐 제가 너무 흥분했었나 봐요. 어디 산책 다녀오세요? 남자:근처 로데오 광장에 갔었습니다. 아이들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있더군요.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나도 즐거워지거든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지요. 웬 처녀가 글쎄 나한테 “아빠”라고 부르는 겁니다. 여자:어머나, 그래서요. 남자:후후후. 당황스러워 혼났습니다. 여자:그 아가씨 아빠가 감별사님과 비슷한가 보죠. 남자:하긴…. 그 아가씨도 우리 딸애와 비슷하긴 했어요. 여자:따님이 있으세요? 남자:……. 여자:참, 그거 잘 타세요? 스케이트요. 남자:내 스케이트가 아닙니다. 여자:누구한테 선물하시려나 보죠? 남자:……. 여자:호호- 말씀하기 싫으신가 봐요.(문으로 가며) 그럼 또 뵙겠습니다. 남자:일년 전, 휴대전화 소리 때문에 인생이 달라졌다고 했죠? 소리는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금방 사라지거든요. 여자:감별사님. 좋은 이웃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여자 나가면, 남자는 박스를 옆에 낀 채 홀로 서성인다. 조명 분위기 다시 바뀐다.) 남자:어휴! 몇 분 차이로 이게 뭐여. 속 터져. 쬐금만 더 기다리지 않고선.(박스를 놓고 휴대전화 메시지를 확인하며) 이누무 기지배는 대체 어딜 간 거여. 소리:“삐- 삐- 새 메시지는 없습니다.” 남자:아! 눈부시다. 눈부셔. 왜 이리 눈이 부시지? 불을 끌 수도 없고. 순이야, 어여 연락 좀 해라. 아빠 이러다가 죽는다잉. 일주일째 이러고 잠 한숨 못 잤다.(침대에 드러누우며) 이러다 아빠 죽겠다. 순이야. 순이야…. 소리:(진동소음) “우웅 우웅 우웅 우웅-” 남자:(벌떡 일어나 휴대전화 확인하며) 아니잖아. 어디지? 아래층 201호여! 죽겠네. (문을 열고 아래층으로 뛰어가는 남자. 문을 다급히 두드리는 소리) 남자(E):여보세요,201호 아저씨! 전화 왔어요- 얼른 휴대전화 좀 받아 봐요. 201호(E):돌겠네! 안 받으려던 건데. 알았다니까- (휴대전화 진동소리 겨우 멈춘다. 다시 들어오는 남자) 남자:싸가지 없는 놈. 끝까지 안 받네. 매너들 없어. 소리:(TV 끝나는 소리)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치이-” 남자:302호 미친놈. 오늘도 저 모양이야. 꺼라. 제발 좀 꺼라. 바로 옆방에서 이러면 어떡하냐.(앞쪽 베란다로 나와서) 302호- 텔레비전 좀 끄쇼. 시끄러워 살 수가 있나. 이웃들(E):조용히 좀 해요. 남자:302호, 조용히 하라잖아요∼ 이웃들(E):301호, 당신이 조용히 해∼ 당신 때문에 못자. 아저씨 날마다 이게 뭐예요. 남자:이런 우라질. 귓구멍이 거꾸로 뚫렸나. 나는 니들 때문에 못자- 아! 눈이 터질 것 같네. 그래도 안 끈다 이거지. 니기미! 대한사람 살아야 길이 보전도 된다. (야구방망이 들고 나가는 남자.302호 문 부서지는 소리. 비명소리. 순찰차 사이렌 소리) (위층 401호 여자는 나지막이 뭔가를 읊조린다.) 여자:“쓱쓱 만져 주면…뭐든지 다 낫는다…궁글궁글 쓸어 주면…뭐든지 다 낫는다….” 무대 서서히 어두워진다. 암전. ●제2장 무대 밝아지면, 아래층 301호 침대에 우울하게 앉아있는 남자. 얼굴에 수건을 두르고 귀마개를 하고 있다. 말씨가 점차로 사투리 운율로 변해간다. 남자:백두산이 다 닳기 전에, 대한사람 살고 보자는데 웬 말들이 많은 겨.(수건을 풀며) 돌아와 보니 문은 닫혀있고 불은 꺼져 컴컴하고…. 아무도 없는 거여. 그냥 빈집이여. 빈집.(귀마개를 벗으며) 기껏해야 한 삼일이면 됐지. 왜 삼일이 열흘 되고 달포 되고 한달 되느냔 말이여. 왜 삼일이 석달 되고 석삼년 되느냔 말이지. 이상타. 참말 이상한 일이다. 어무이는 금가락지 끼워주면 훨훨 날아간다 허지, 딸년은 스케이트 있어야 씽씽 달려간다 하지. 아! 나도 편지 한 장 달랑 써 놓고 부산으로 가서 외항선 탔다 했지? 석달 열흘만 꾹 참고 다녀오자. 어무이도 없지. 딸자식도 없지. 여편네도 없지∼ 허참, 귀신이 곡할 노릇인 거여, 시방 이것이. 태평양 넘어 동지나해 건너 알류산 열도 거쳐 부산항에 도착, 광복동 시장에서 딸년 인라인스케이트하고 어무이 서돈짜리 금가락지 서둘러 해가지고 와보이, 종적이 묘연한 것이여. 여편네 줄려고 야들야들한 속곳 둘둘 말아 끼고 왔는디, 입을 사람이 없는 거여. 세상 참 얄궂네. 인생 허망타. 어무이도 없지, 딸자식도 없지. 여편네도 없지∼ 소리:(진동음)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얼른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남자.“새로운 메시지가 없습니다.”라는 안내음. 실망하는 남자. 이때 문을 노크하는 소리. 남자가 문을 여니 의뢰인들이 의뢰품들을 들고 들어온다.) 의뢰인들:좋은 아침입니다. 의뢰인1:(전자레인지를 탁자에 놓고) 부품 교체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남자:(청진기로 검진하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흠…흠… 소리:(전자레인지) “위이이잉-” 남자 : 모터가 낡았으니 교체하세요. 다음. 의뢰인2:(책들을 놓으며) 신나라출판사의 기획 시리즈 견본품인데요. 남자:(책장 넘기며) 책도 소리를 가집니다. 종이 지질에 따라서 소리는 천차만별입니다. 소리:(종이) “펄렁 펄렁… 팔랑 팔랑… 풀렁 풀렁…” 남자:이건 모조지, 이건 아트지, 이건 하드보드에 코팅까지. 아트지는 반짝 반짝! 모조지는 서글 서글! 3데시벨의 편차가 있네요.(표지를 보며) “세계의 미스터리”라…. 이 제목에는 모조지보단 아트지가 어울립니다. 미스터리는 반짝반짝해야죠. (여자가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와 몰래 엿본다.) 의뢰인3:(돌멩이 2개를 놓으며) 심산인테리어에서 의뢰한 겁니다. 남자:(돌을 살피며) 흥미 있는 소재이군요. 돌의 소리는 가장 심원한 소리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재질이니까요. 돌의 소리는 음악의 근본입니다. 돌로 만든 악기인 편경의 소리는 국악의 표준 음정이죠.(돌을 부딪쳐 본다.) 오만년의 역사를 간직한 소리입니다. 소리:(돌) “딱 딱 딱 딱-” 의뢰인들:정말 탁견이십니다. 남자:저 전자레인지는 전에도 감별해 드린 건데요. 저를 시험하시나요? 의뢰인1:예? 오해십니다. 남자:칠일 전에도 해드렸고, 한 달 전에도 했습니다. 의뢰인1:청진기가 착오를 일으킬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남자:기계든 인간이든 자기만의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리는 살아있는 생명체죠. 청진기는 거짓을 모릅니다. 여자:(앞으로 나서며) 감별사님의 판단을 믿지 못하시나요? 의뢰인1:음…. 출고담당 직원의 미스인가 봅니다. 확인해 보죠. 여자:(모두 자신을 쳐다보자) 어머나! 안녕하세요. 호호호- 문이 열려있지 뭐예요. 의뢰인1:소리 감별은 회사의 일급 기밀입니다. 여자:한심한 출고담당 재교육도 중요하죠. 의뢰인1:(전자레인지 들고 나가며) 성질도 급하시고 변덕도 심하시군요. 흠, 흠. 여자:오늘의 분석은 어땠나요? 의뢰인2:출판사가 관심을 가질 것 같습니다. (의뢰인2,3도 나간다. 남자가 문을 잠그더니, 얼른 여자를 데리고 구석으로 간다.) 남자:혹시 이 아파트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 못하셨나요? 여자:글쎄요? 남자:이사 온 뒤로 다른 주민들 보신 적 있나요? 여자:네… 봤죠. 남자:이상하지 않던가요? 여자:네. 남자:언제부터인가 이 아파트 주민들이 잠만 자고 있어요. 모든 활동이 중지된 겁니다.201호는 휴대전화를 안 받는 버릇이 있고,302호는 지가 무슨 애국시민이라고 날마다 애국가를 시청하더니 모두 조용해 진 겁니다. 여자:에이, 고급 아파트는 원래 조용하잖아요. 남자:(눈치를 보더니 말소리를 죽이며) 나는 저 의뢰인들을 믿지 않습니다. 여자:(놀라며) 네? 무슨 말씀이세요? 남자:뭔가 수상쩍은 음모가 있어요. 의뢰 물품이 변하지 않고 있어요. 여자:날마다 똑같아요? 남자:일주일 주기로 반복되고 있어요. 예전엔 한달 주기였죠. 점점 짧아지고 있어요. 나는 새로운 소리를 원합니다. 여자:좋아하는 음악은 자꾸 듣기도 하잖아요. 가령 호른 연주는 어때요? 남자:모차르트 호른협주곡 3번 2악장 로만자… 호른은 같은 곡을 연주하더라도 날마다 다릅니다.(청진기 곡선음관을 어루만지며) 호른을 통해서 들어야 세상은 아름다워집니다. 하지만 누가 날마다 같은 구름을 보고 싶겠소. 누가 날마다 같은 바람을 맞고 싶겠소. 출고담당 직원의 미스라고 둘러대지만 실수가 아닙니다. 치밀하게 반복되는 순환시스템이죠. 소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이 세상이 죽어가는 것처럼. 저들이 소리를 뺐어가는 겁니다. 아…. 이러다가는 당신의 잠꼬대마저 뺐어갈지도 몰라요. 여자:어젯밤에 제가 잠꼬대했나요? 남자:(흉내 낸다.) “쓱쓱 만져 주면… 궁글궁글 쓸어 주면…” 여자:어머, 어머! 저를 너무 속속들이 아시네. 호호호- 내 정신 좀 봐. 가야겠어요. 남자:어젯밤에 당신의 잠꼬대 소리를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아세요? 제발 가지 마세요. 여자:네? 남자:잠꼬대 소린 정말 너무 오랜만에 들어 봤어요. 지금 이 아파트에서 당신만이 유일하게 살아있는 사람이에요. 지금 가버린다면 당신도 잃어버릴 것만 같아요. 여기 계세요. 여긴 안전하니까. 여자:(남자를 경계하며)감별사님은 소리를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남자:사실은 소리가 무서워요. 여자:왜요? 남자:너무 진실하니까. (이때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온다. 점점 고조되는 온갖 소리들. 서로 뒤섞여 아비규환의 아우성처럼 난무한다.) 소리:“찌르르르… 출렁출렁… 저벅저벅… 쿵쾅쿵쾅… 우웅우웅… 영호야∼영호야∼” 여자:이게 뭐야? 어디서 들리는 소리지? 남자:(귀를 막으며) 아! 아! 저리가. 듣기 싫어. 씨끄러. 듣기 싫어. 아아악- (남자 귀를 막으며 고통스러워한다. 나가려 하지만 열리지 않는 문. 야구방망이로 치고 머리로 들이받으며 발광하다가 쓰러진다. 여자는 놀라서 남자를 부둥켜안는다. 소리들이 그친다.) 여자:여보… 여보! (병원 가운을 입은 의뢰인들이 나타난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남자를 침대에 뉘고 벨트로 사지를 결박한다. 남자를 청진기로 진단하는 의뢰인1) 여자:아… 어떻게 된 거죠. 무서워요. 무슨 소리였죠? 그이는 괜찮은가요? 의뢰인2:안심하세요. 본 특병동의 소리치료 시스템입니다. 일종의 충격요법이죠. 의뢰인1:상태가 좋지 않아.2단계 프로그램도 실패야. 발작 증세가 멎지를 않네. 더 이상 늦출 수 없어. 내일 수술 일정 잡도록 해. 의뢰인3:근데 보호자께서 동의서에 아직 서명을…. 의뢰인1:그깟 동의서 하나를 여태 못 받아? (여자에게) 똑바로 들으세요. 내일도 서명하지 않으면 조치를 취할 겁니다.(의뢰인2에게) 자네 수련의가 왜 그 모양이야. 그럴 거면 딴 병원으로 가. 내가 이젠 환자한테 훈계까지 받아야 돼? 내가 저를 시험한다고? 미친놈이 입만 살아서. 한데… 어떻게 알았지? 의뢰인2:환자는 지각능력이 있는 게 확실합니다. 자신에게 의미있는 것에만 몰두하는 주의력 증가 기제가 너무 왕성해서 그렇습니다. 환자의 소리 분석은 정상입니다. 의뢰인1:믹서기 회사에선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했잖아. 의뢰인2:그건 생산부장의 말이고요. 오늘 아침에 마케팅팀장과 통화했는데 좋은 지적이라고 반기더군요.2차 분석도 의뢰하겠답니다. 일시적인 “해리성 황홀경”입니다. 의뢰인1:속단하지 말라고 했지? 자네의 진단은 정서적인 판단이 앞서고 있어. 의뢰인2:“뇌손상에 의한 퇴행성 기억장애”란 과장님의 진단은 측두엽의 손상만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거 아닙니까? (쓰레기통에서 부서진 호른 나팔을 꺼내서 안고 있던 여자가 나선다.) 여자:선생님, 우리 그이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의뢰인1:미치겠네 정말. 아까 발작하는 거 못 봤어요? 가족도 몰라보잖아요. 여자:예전에 연주하던 곡 이름을 정확히 기억해 냈단 말이에요. 의뢰인1:단편적인 기억 정도는 모든 환자들이 다 가지고 있어요.(부적뭉치를 던지며) 이게 뭡니까? 이런 식으로 맘대로 행동하면 퇴거조치시킬 겁니다. 여자:이 부적에 어떤 힘이 있다고 믿으세요? 미신에 불과하다면서요? 의뢰인1:그게 아니고…. 의사의 치료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 아닙니까. 협조요. 협조! 여자:협조했잖아요. 가구며 소지품들 가져다가 집안처럼 꾸며놓고… 순이더러 로데오 광장에서 아빠를 기다리라고 해서 그렇게 했잖아요. 근데 별 이상도 없는 이가 왜 딸을 몰라보나요? 왜 아내도 몰라보나요? 그저 지쳐서 그런 걸 거예요. 집에 가서 잘 요양하면… 고요한 호숫가를 찾아서 호른도 불면서 푹 쉬면 나아질 거예요. 의뢰인1:흥, 호른 분다고 치료가 되면 병원이 뭐하러 있어요! 도대체 의사를 뭘로 보는 거요? 기물을 파손하고 상해를 입힌 환자는 완치되기 전엔 퇴원할 수 없습니다. 내일까지 수술 동의서에 서명하세요.(의뢰인3에게) 진정제 5밀리그램…. 아니 7밀리그램 준비하고, 면회는 금지시켜. (의뢰인1,3 나간다. 흐느끼며 부적을 줍는 여자. 창문으로 복도에서 담배 피우는 의뢰인1이 보인다.) 여자:흑흑흑…. 날더러 어떡하라고요. 기다려라. 기다려라…. 벌써 세 달이 됐어요. 의뢰인2:왜 그토록 소리에 집착하는지 그 압제의 요인을 찾아야 하는데…. 기억 과잉이 문제입니다. 뇌의 측두엽에 너무 많은 소리의 기억들이 축적되어서, 컴퓨터가 다운되듯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주치의께선 손상된 부위를 제거하지 않으면 발작이 계속된다고 보십니다. 삭제키를 눌러야 리소스 부족에서 해방되니까요. 여자:그러면 과거의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면서요. 의뢰인2:대신 새 기억은 지킬 수 있습니다. 여자:그토록 찾던 딸이 눈앞에 나타나도 못 알아보는데, 앞으론 영원히 그렇게 되겠죠? 이 빨간 구두요… 15년 된 캥거루가죽 맞아요. 저이가 나이트밴드 아르바이트 뛰어서 첫 월급으로 사준 우리 결혼 선물이죠. 이거 신고 난생 처음 비행기 타고 제주도로 신혼여행 갔어요. 이 호른은 방직공장 월급 일년을 꼬박 모아서 제가 사준 거예요.(호른을 쓰다듬는 여자. 창가에서 귀 기울이는 의뢰인1) 서귀포 밤바다는 그날 따라 왜 그렇게 고요했는지, 저이가 부는 호른 소리가 수평선 끝까지 울려 퍼졌어요. 모차르트 호른 협주곡 3번 2악장 알레그로. 그게 저이가 아는 유일한 연주곡이죠. 순이를 낳게 되어서 사범대학을 그만뒀으니… 이 모든 걸 다 잊어버리겠죠? 의뢰인2:아마 그렇게 되겠죠. 여자:그렇게 되면, 우린 이 세상 안 산 거나 같네요. 시골 고등학교 밴드부 남학생이 부는 호른 소리에 바람나 쫓아다니다가…. 외아들 사범학교 나와 선상님이 평생소원이던 홀어머니 가슴에 못질하고, 남자 앞길 망쳤다고 원망들은 촌년이… 저승 가서 어머니까지 못 알아보는 산송장 만들어 놨다는 소린 죽어두 들을 순 없네유. 차라리 청진기 쓰고 세상의 소리에 미쳐서 사는 게 나아요. 저인 소리를 사랑했으니까. 저이 어머니도 소리를 벗삼아 사셨으니 하늘나라에선 서로 알아보겠지요. 의뢰인2:사모님…. 여자:선생님도 저이가 미쳤다고 보세요? 의뢰인2:의사가 해서는 안 되는 말이 하나 있지요. 알 수 없습니다…. (의뢰인3이 주사기 가지고 들어온다. 의뢰인2가 여자를 부축해 나간다. 의뢰인3이 주사할 준비를 하는데, 창문에서 지켜보던 의뢰인1이 들어와서 부서진 호른을 들어본다.) 의뢰인1:아까 몇 밀리그램이라 했지? (쳐다보는 의뢰인3) 3밀리그램만 투여해. 의뢰인3:3밀리요? 네…. (주사기 용량을 조절해서 남자의 팔에 주사 놓고 나가는 의뢰인3) 의뢰인1:길영호씨. 지금 혼자서 호숫가를 거닐고 있소? (입으로 모차르트 호른협주곡 3번을 불며 빠져든다.) 빠밤 빠바바밤 바밤바 빠바밤- 빠밤 빠바바밤 바밤바 빠바밤- (이층 401호로 힘없이 들어서는 여자. 부적 뭉치를 탁자에 놓다가 세어본다.) 여자:하나, 둘, 셋, 넷…. 분명 다섯장을 붙였는데. 한 장이 살아있어! (암전) (무대 밝아지면, 병실 분위기가 나는 아래층 301호. 환자복이 입혀진 남자가 침대 벨트에 묶여있고, 의뢰인2를 따라 여자와 딸이 들어선다.) 의뢰인2:휴, 제가 미친 거 같네요. 주치의가 회진오시기 전에 끝내셔야 합니다. 여자:고맙습니다. 순이야, 어서. 딸:아빠! 제가 왔어요. 어째 잠만 자는 거야. 흑흑흑…. 아빠 일어나세요. 눈떠- 아빠- 여자:여보! 순이가 돌아왔어요. 이제 일어나세요. 다 잘되었어요. 저도 직장 잡아 돈벌이해요. 지난 일은 잊고, 정신 좀 차리세요. (여자와 딸이 벨트를 풀고, 사력을 다해 남자를 일으켜 세운다. 아무리 흔들어도 눈을 뜨지 못하고 무너져 태아처럼 웅크리는 남자) 딸:흑흑흑…. 엄만 대체 무얼 한 거야! 아빠가 저리 되도록. 여자:엄만 안 해본 거 없다. 귀신 쫓는다는 복숭아도 들이고, 부적도 붙여보고, 약손으로 아픈 데 쓸어주시던 할머니 소리도 해보고…. 너는 뭘 하고 있었어. 이년아, 니 아빠 이리된 것 다 너 때문이다. 나가버릴 거면 그냥 나가지 메시지는 왜 남겨! 딸:난 그냥…. 아빠가 기다릴 것 같아서…. 여자:그걸 아는 년이 세 달이나 안 들어와! 니 메시지 못 들었다고, 또 올지도 모르니까 지켜봐야 한다고, 휴대전화에서 눈도 못 떼고 일주일을 뜬눈으로 지새우셨다. 그러다 결국 쓰러지신 겨. 산송장 되신 겨. 집으로 가요, 여보. (남자의 환자복 윗도리를 벗기고 몸을 쓸어주며 사복으로 갈아입히는 여자와 딸. 자연스럽게 할머니의 소리를 하게 된다.) 여자:“우리 아기 예쁜 배, 할미 손은 약손, 쓱쓱 만져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할머니:“우리 아기 동그란 배, 할미 손은 약손. 궁글궁글 쓸어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소리를 받아 부르는 할머니의 환영. 문으로 들어와 부엌에서 요리를 한다.) 할머니:어여 일어나거라. 영호야. 된장찌개에 밥 말아먹고 어여 핵교 가야지. 온나 온나. 어여…(미소 짓는 남자) 우리 외동이, 온나 온나. 딸:엄마! 아빠가 웃어. 여자:어디? 정말! 여보, 어디 좋은 곳 유람이라두 하는 게유? 할머니:아유, 찌린내. 요 녀석 바짝 섰네. 쯧쯧쯧. 이부자리는 한강이구. 늦게까지 숙제하더니 곤했던 게여. 그려 됐다. 옷 갈아입자. 아부지 모르시게 저리 치워놨다. 인나렴. (여자와 딸이 남자의 아랫도리도 사복으로 갈아입힌다. 할머니는 싱크대로 가서 도마를 꺼내 칼자루 끝동으로 마늘을 다진다.) 소리:(마늘 다지는) “쫑 쫑 쫑 쫑-” 여자:여보,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눈을 떠요. 딸:아빠. 눈 떠. 제가 잘못했어요. 흑흑흑. 아빠. 제발! 남자:불…. 불이여…. 딸:뭔 불이 나? 남자:집에 불났다. 어쪄 어무이. 할머니:간밤에 어매가 호롱불 꺼놨다. 걱정 말그라, 불 안 났으니. 밥 다됐다. 소리:(찌개 끓는) “보글 보글 보글 보글….” (마침내 힘없이 눈 뜨는 남자) 할머니:됐다. 눈 떴다! 딸:아빠! 여자:여보! 할머니:어매는 좀 쉴란다. (이젠 할머니가 기력이 다한 듯 눕는다. 중얼거리며 그 옆으로 다시 무너지는 남자) 남자:왜 이리 자꾸 졸리지. 어무이 괜찮으셔유? 주무시는가베. 순이야, 엄마는 일 나갔니? 밥은 먹었니? 그래 아빠 잠깐 눈 좀 붙였다 일어날 테니 뭔 일 있으면 깨우렴. 아주 잠깐이다…. 아빠가 일어나서 떡볶이 해줄게. 설탕도 넣고 달달하게…. (모로 쓰러진 남자 어느새 코를 곤다. 할머니가 부스스 일어나 아들과 손녀를 보더니 천천히 문으로 걸어 나가며 아들을 부른다.) 할머니:애비야…. 영호야! 영호야…. (놀라서 벌떡 일어나는 남자) 남자:어무이! 딸:아빠. 꿈에 할머니 봤어? 남자:순이야. 혹시 할머니가 뭐라 하셨니? 딸:언제요? 남자:돌아가시기 전에. 딸:(할머니 목소리로) “애비야…. 영호야! 영호야….” 남자:그래… 맞았어. 어무이가 날 부르는 소리였어.(딸을 안으며) 순이야. 할머니가 아빠를 불러주셨구나. 아빠는 할머니가 한마디도 안 하고 그냥 가신 줄 알았다. 여보, 어무이가 나를 불러 주셨대. 날 용서하신 거여. 여자:여보, 흑흑흑…. 딸:내가 아빠를 얼마나 깨웠는 줄 알어? 남자:기특한 것. 아빠가 잘못했다. 어무이, 지가 죽일 놈입니다. 여자:아니에요. 지가 죽일 년이에요. 남자:어무이 손은 약손이여. 암…. 그렇구 말구. 딸:할머니 손이 약손? 남자:니 여섯 살 때, 맹장염을 앓았단다. 할머니가 밤새 순이 배를 문질러 주셨대. 할머니 약손으로. 니가 잠이 들어서 새벽이 됐는데, 아빠가 나이트 일 마치고 와보니 이미 혼수상태인 거라. 그래 아빠가 들쳐 업고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은 거여. 딸:애게, 약손이면 맹장도 고쳐야지. 남자:아픈 걸 잊게 해주셨잖니. 그러니 약손이지. 이렇게 배를 쓸어주시면서…. (약손 소리를 함께 부르는 가족. 할머니가 밖에서 창문을 열고 함께 부른다.) 가족:“우리 아기 예쁜 배, 엄마 손은 약손, 쓱쓱 만져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할머니:“우리 아기 동그란 배” 가족:“엄마 손은 약손” 할머니:“궁글 궁글 쓸어 주면…” (노래하다가 침울하게 그치는 할머니) 할머니:인자 이 손 약발도 다 떨어졌는가부다. 이 손으로 아범 뺐어가려던 저승사자들 다 쫓아 버렸는데 이젠 안 되는가부다. 내 다시는 약손 안 할란다. 남자:어무이, 이참에 그 달랑무 소리도 그만 두세요. 동네 애들이 벌써 순이를 놀린대요. 할머니:내 그리하마…. 달랑무 소리두 안 할란다. (창문을 닫는 할머니. 의뢰인1이 방으로 들어선다. 긴장하는 의뢰인2) 의뢰인2:선생님, 환자가 깨어났습니다. 어제 2단계 프로그램의 효과인 것 같습니다. 옷은 환자가 갈아입고 싶다고 해서…. 의뢰인1:음…. 잘했구만. 길영호씨. 이제 환청이 들리지 않습니까? 남자:네, 사라졌습니다. 의뢰인님. 의뢰인1:허허허…. 잊으세요. 불필요한 소리들을. 불필요한 기억들을. (의뢰인3이 호른 케이스를 하나 들고 들어온다.) 의뢰인3:지금 도착했습니다. 의뢰인1:(케이스를 남자에게 주며) 퇴원하게 되면 이게 필요하실 겁니다. 여자:호른이잖아요? 의뢰인1:제가 30년간 가지고 있던 겁니다. 주인을 잘못 만나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죠. 한적한 호숫가를 찾게 되거든 연락 한번 주세요.(나가며) 한번 들으러 가고 싶군요. 의뢰인2:선생님! 의뢰인1:자네가 “알 수 없습니다.” 하는 순간, 나도 알 수 없어 졌다네. 의사는 신이 아니지 않은가. 남자:선생님. 신은 이 수많은 세상의 소리를 어찌 다 들을까요. 의뢰인1:허허허- 다 듣다간 신도 입원해야지요. (마주보고 씩 웃는 그들. 의뢰인들 나간다.) 남자:어머니더러 달랑무 못 파시게 한 그것이 내내 걸리는 거여. 바깥출입도 안 하시구 말수도 적어지더니 그냥 가신 거여. 여자:제 잘못이에요. 동네 푼수들 말만 듣고…. 남자:어무이는 소리 힘으로 사신 겨. 그게 어무이 약손이여. (문이 열린 채다. 그 문으로 겨울바람이 불어온다. 어머니가 다시 들어와 서성이며 누군가를 기다린다. 뭔가 바람에 날려 쿵- 엎어지는 소리) 할머니:영호니? 영호야- 야가 삼일씩이나 어딜 간 거여. 저게 누구여. 영호지. 어여 어여 온나. 세상에! 야가 못 먹어서 눈이 십리는 들어갔네. 집 놔두구 어딜 갔다 이제 오는 겨. 들어가 밥 묵자. 엄매가 된장국 끓여놨다.(흰 고무신을 주며) 봐라. 흰 고무신 사놨다. 따습지? 어여 신어봐. (흰 고무신을 받아 침대 머리맡에 놓았다가, 가슴에 끌어안고 웅크리는 남자) 소리:(소년) 흰 고무신 때 타면 어쩐대유. 소리:(할머니) 영호야 자니? 엄매는 그깟 금가락지 없어도 된다. 영호만 있으면 된다. 소리:(소년) 어무이. 흰 고무신… 내 눈 내리면 신을란다. 소리:(눈 밟는) “뽀작 뽀작 뽀작 뽀작” 할머니:멋지다. 헌헌장부 났다. 남자:남학생들이 줄줄 따르것다잉. 손이 얼은 것 좀 봐. 요리로 들어와. 어여. (어느새 인라인 스케이트 신고 헬멧 쓰고 서있는 딸. 아빠 엄마 있는 침대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간다. 문가에서 고개 끄덕이던 할머니, 달랑무 팔러 가신다.) 할머니:달랑무∼ 있어. 푸성귀나∼ 달랑무∼ 있어. 무대 서서히 어두워지며 암전. ■ 희곡 당선소감 게으른 며느리에게 시켜야 할 일은 두부 만드는 일이랍니다. 느긋하게 일해야 맛있는 두부가 만들어진다죠. 군대 지휘관도 게으른 사람이 좋답니다. 게으른 천재여야지 괜히 아랫사람 생고생 시키지 않는다는 건데…. 요건 사실 게으른 아랫사람들의 소망이죠. 부지런한 천재 즉 이순신 같은 양반 만났다간 그저 죽었구나 하고 뛰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는 없지요. 안 뛰면 바로 곤장 맞지요. 난중일기 쬐금 보니까, 임진왜란 발발 전에 이 어른 매일 하는 일이 순찰 나가서 하급지휘관 곤장 치는 게 주업무이시더군요.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다 하셨으니 백전백승의 신화를 창조하셨던 게죠. 선친께서 제 원래 이름자에 늦을 만(晩)자 하나를 넣어주신 덕택에 이렇게 느즈막히 입문하게 되었나 봅니다. 작은 상 하나를 펴놓으시고 늘 만년필로 원고지에 글을 쓰셨던 아버님께서는 교단 은퇴 후에 스스로 책 몇 권을 출간하셨죠. 그러곤 집안잔치가 있으면 친구 분들께 그 책을 선물하던 낙으로 사셨습니다. 평생 글을 쓰시던 열정은 정말 프로작가 못지않으셨지요. 이제부턴 저도 작심하고 자세 가다듬어 열심히 쓰겠습니다. 작은 상 앞이 아니라 PC 앞이 되겠네요. 축하해주는 벗님들, 사랑하는 영두와 영소, 그리고 가족들. 더불어 삶의 위안과 기쁨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서. 아울러 미흡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약력 1959년 충북 제천 출생 중앙대 교육대학원 무용 석사과정 ■ 심사평 세상이 어수선한 탓인지 응모작들 중에서도 투신자살, 노숙자, 입시부정, 로또복권 등 세상살이의 고달픔을 담은 작품들이 유난히 많았다.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 그리고 각종 드라마 매체에 많이 노출된 탓인지 대화체의 이야기 구사에는 능숙해졌으나 막상 연극이라는 무대예술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는 작품은 드물었다. 최종적으로 심사자들의 손에 남은 희곡들은 박만호의 ‘청진기’, 김성제의 ‘바다로 가는 성북행’, 그리고 류세균의 ‘달 속의 그늘’이었다. 공사판의 살인사건을 그린 ‘달 속의 그늘’은 밑바닥 인생들의 성격설정이나 대사구사에 능숙했으나 극 구성이 너무 평이하고 결말 부분을 배영감의 감상적인 인생고백으로 가져간 점이 지적되었다. 지하철 승강장을 배경으로 해서 사회적으로, 성적으로 상처받고 억압된 두 모자의 아픈 일상을 포착해낸 ‘바다로 가는 성북행’은 살아있는 독특한 정서가 심사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남편에게 맞고 사는 식당 파출부인 엄마와, 성전환 수술을 위해 일본으로 돈벌러 가는 여성적 아들의 아픔을 과장되지 않은 일상적 대사 속에 담아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극적 상황과 행동을 충분히 연극적으로 객관화시키지 못했고 극이 아직 작가의 주관적인 관점 안에 갇혀있다는 느낌이 있다. 현대생활을 지배하는 각종 소음과 어린 날에 듣던 정겨운 소리들을 대비시킨 ‘청진기’는 ‘소리’를 극적으로 전경화시킨다는 아이디어나, 신경증환자인 남편을 아내가 의료진과 공모해서 연극적으로 치유한다는 설정 등이 충분히 연극적이며 대사나 극 전개 기법도 상당히 감각적이었다. 그러나 ‘문명의 비인간성/어린 시절의 순수함’이라는 대비가 도식적이며, 극전개의 생략과 비약이 과도한 점에서 어느 기성작가를 연상시킨다는 점이 다소 걸렸다. 결국 각각 장단점을 갖춘 ‘청진기’와 ‘바다‘를 두고 고심을 거듭하다가 그 나름의 완성도와 무대적 상상력을 높이 사 ‘청진기’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김철리(연출가)·김방옥(평론가)
  • [이사람] 28일 개원하는 중국문화원 주잉제 원장

    [이사람] 28일 개원하는 중국문화원 주잉제 원장

    주잉제(朱英杰)는 중국 정부가 서울에 문을 여는 주한 중국문화원의 초대 원장이다. 문화원은 28일 개원식을 갖는다. 하지만 그는 이미 지난해 6월부터 원장 발령을 받고 서울에서 개설 준비를 해왔다. “중국어는 물론 중의학, 중국 요리, 서예도 무료로 배울 수 있어요. 요리 강습을 위해 베이징 일류 요리사가 올테니까 기대하십시오. 관광 및 교역 정보 등 중국 관련 정보도 제공됩니다. 강의는 물론 내년 초부터 시작하고요. 중국문화원 인터넷 사이트(www.cccseoul.org)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1년반 동안 몰두해온 개설 준비를 마친 주 원장은 어느덧 문화원을 알리는 ‘중국 문화의 전도사’로서 여념이 없었다. 서울 종로구 내자동 서울경찰청 옆 지상 6층 지하 1층의 검은색 건물. 입구에 다가가면 정문 옆 벽에 새겨넣은 공자·맹자·노자·장자 등 중국 전통의 네 현자의 모습과 중국문화센터란 뜻의 ‘중국문화중심(中國文化中心)’이란 한자 현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곳이 이집트, 프랑스, 몰타에 이어 세계에서 네번째로 문을 여는 중국문화원이다. 지난 2000년 당시 주룽지(朱鎔基) 총리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먼저 개설을 제의해 이뤄진 중국 정부의 야심찬 중국 알리기 계획의 산물이다.2년여 전 중국 정부가 기존 건물을 40억원에 사들인 뒤 30여억원을 들여 중국식으로 단장했다. 아담한 정원을 포함하면 600평 규모다. “문화원 입구를 지키고 있는 사자 석상은 베이징 자금성 정문의 사자상을 그대로 축소해 만든 것입니다. 문화원 안의 가구들도 국보급 명·청 시대 고가구를 원형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주 원장의 설명이다. 사자상과 가구들은 중국에서 공수해 왔고 기술자들도 서울에 와서 10개월 가까이 내부 장식을 다듬었다. 현판 ‘중국문화중심’은 마오쩌둥(毛澤東)의 친필. 마오가 이전에 따로 쓴 중국 문화와 중심을 합쳐서 만든 것이다. “지하 120석 규모의 공연장에선 매주 2∼3차례 중국 영화가 상영되거나 공연이 열리게 됩니다.50여평 규모의 2층 전시실에선 내년 초 개관 기념 윈난(雲南)성 그림전시회를 열 계획입니다.” 3층은 강의실,4층은 중국에서 가져온 1만 5000권의 장서가 빽빽하게 꽂혀 있는 도서관이 자리하고 있다.7층에 마련된 중국 요리 실습실이 무엇보다 눈에 들어왔다. 천장의 중국식 초롱의 은은한 빛이 중국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주 원장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내부장식의 세세한 부분까지 챙겼다고 한다. 그는 “중국 문화의 정수에 푹 빠지도록 해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28일을 개원일로 잡은 것도 중국인 특유의 관념을 보여준다.“중국인들은 짝수를 좋아합니다. 특히 8자는 ‘재화가 늘고 융성한다.’는 함의를 지녔죠.” 중국인들에게 28일은 8이 2개인 날, 즉 8이 겹치는 날로 해석되기도 한다.2004년 12월도 짝수다. 길일을 택한 셈이다. 문화원 개설·운영의 모든 것을 도맡아 처리하고 초대 원장까지 된 것은 그가 한국을 잘 알고 이해하는 중국 문화부의 대표적 한국통이란 점과 무관치 않다. 게다가 그는 음악과 문화에 정통한 예술인 출신이다. 그는 평양음악무용대학 82학번인 북한 유학생 출신이다. 고교 졸업 후 고향 헤이룽장성 가무단에서 5년 동안 연주 활동을 하다 1981년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 음악대학에 입학,25살의 늦깎이 대학생으로 평양 유학길을 떠난다.“김일성종합대학에서 1년 동안 한국말을 배운 뒤 4년 동안 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호른을 전공했지요. 어려서부터 악기 다루는 걸 좋아해서 음악가가 되고 싶었어요.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문화부 북한담당관으로 일하라고 하더군요.” 그후 1989년부터 4년 동안 평양 중국대사관 문화관을 지냈다. 문화원 원장을 발령받기 직전까지 문화부의 아시아과 과장으로 중국과 남북한 문화교류를 총괄해왔다. 얼후, 피리, 양금 등 전통 중국 악기는 물론 빠우란 중국 소수민족 악기에도 능통하다. 주 원장은 호른을 전공했고, 스트라우스의 콘체르토와 모차르트의 콘체르토 3번을 가장 좋아한다.“조선 사람들은 노래와 춤을 좋아하고 민족적 특징과 자부심이 강하죠. 북한의 왕재산 악단이나 피바다 가극단 등이 중국에서 많은 사랑과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적 전통에 서구적인 것을 결합한 점이 어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10년 가까이 북한에 있는 동안 예술인들이 각별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쨌든 한반도는 그에게 ‘또 하나의 고향’이다. 그만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으로 얽혀 있다.“아내 자오원(趙文)과 만난 것도 평양 유학 시절이고, 아이도 ‘평양산(産)’”이라고 자랑한다. 부인 자오원은 베이징의 중국음악대에서 한국과 일본음악사를 강의하고 있다.“연세대에서 6개월간 유학했는데, 한국말을 저보다 더 유창하게 합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아들 원카이(元凱)도 한국말을 배우고 있단다.“런민대학 부속중학 1학년인 원카이는 학교에서 제2 외국어로 한국어를 선택해 배우고 있답니다. 한류 열풍에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주 원장은 한류 열풍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낙관했다. 한국 드라마 덕택에 많은 중국인들이 한국에 와 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한국 드라마는 중국과 달리 일상생활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다루고 있어요. 배우들의 연기도 호소력이 있고요.” 그의 고향은 한국동포들이 많이 사는 헤이룽장(黑龍江)성. 그 탓에 어려서부터 주위에는 자연스럽게 한국 친구가 많았다.“음악선생님들은 대부분 조선족이었죠. 제가 처음 호른을 배운 분도 조선족이었어요.” 주 원장은 왕희지체에 심취해 있을 정도로 서예 실력도 프로급이다. 북한에 있을 때는 옥류관 냉면을 좋아했는데, 서울에 와선 고추·양파·버섯을 잘게 썰어 넣고 푹 끓인 된장찌개에 백세주가 그의 기호식품일 정도로 한국화돼 있다. 독립문 근처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그는 가족들과 떨어져 있는 것 말고는 서울이 “고향집처럼 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한국적인 것들이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아쉽다. 아름다운 한국말을 지키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 아닌지 모르겠다.”며 따끔한 한마디도 빼놓지 않았다. 이석우기자 swlee@seoul.co.kr
  • 빈 소년합창단 새달 전국 순회공연

    빈 소년합창단 새달 전국 순회공연

    500여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빈 소년합창단이 새해 1월 한국을 찾아 천상의 화음을 들려준다. 합창단은 1월11일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전국 6개 도시를 돌며 무대를 열 계획이다. 빈 소년합창단이 창단된 것은 1498년. 당시 오스트리아 황제였던 막시밀리안 1세의 칙령으로 궁정성당에 봉사하는 성가대로 출발했다. 이후 지금까지 빈 소년합창단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빈 국립오페라단과 함께 ‘빈 궁정악단’의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세계적 작곡가들이 음악성을 완성한 기반이었다는 사실은 합창단의 긍지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 슈베르트와 하이든은 소년 시절 단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모차르트도 매일 아침 미사 때에 합창단을 지휘했다. 바그너, 리스트, 요한 슈트라우스 등이 곡을 헌정하기도 했다. 현재 빈 소년합창단은 10∼14세의 단원 100여명이 4개 팀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내한공연에서는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멘델스존 등 고전가곡,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오스트리아 전통민요, 멕시코 아프리카 등 세계 여러 나라의 민요들을 들려줄 예정이다.1월11일 서울 노원문화예술회관,12일 대구 학생문화센터,14일 대전 문화예술의전당,15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17일 부산 시민회관,18일 수원 경기도문화의전당,1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대극장.(02)3472-4480.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씨줄날줄] 女風

    기록을 보면 아내의 위세에 눌려 가정에서 평생 기를 못펴고 산 역사상 위인들이 많다. 소크라테스가 대표적이며 공자·모차르트·링컨·톨스토이도 그런 부류다. 공자는 아내에게 얼마나 시달렸으면 논어에 이런 불평을 남겼겠는가.“가까이 하면 불손하고, 멀리 하면 원망하기 때문에, 세상에 다루기 어려운 것이 여자다(近之不遜 遠之則怨 女人難養).” 남존(男尊)시대였기에 망정이지 지금 같았으면 망언으로 몰려 큰 욕을 봤을 터이다. 어쨌거나 후대의 호사가들은 이들이 억센 아내의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 자기 일에 몰입한 결과 대업적을 이룰 수 있었다는, 제법 그럴 듯한 해설까지 곁들인다. 인류역사가 일부 모계사회를 제외하고 대대로 남성중심 사회였음에도 여성은 그 배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능력이 출중해도 성차별로 인해 역사와 사회의 전면에 나설 기회를 얻지 못했을 뿐이다. 지난 주말 제46회 사법시험 최종합격자가 발표됐는데, 여성이 수석을 차지해 올해 8개 주요 국가고시에서 여성이 수석을 싹쓸이했다.‘여풍(女風)’이란 말이 나올 만도 하다. 각종 입사시험에서도 여성이 상위권을 휩쓰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요즘이다. 나라 밖도 만만치 않다. 영국 여왕이 건재하고 할로넨(핀란드)·아로요(필리핀) 등 여성대통령 6명이 활약 중인 가운데 칠레에서도 내년 대선에서 최초의 여성대통령 탄생이 유력하다는 소식이다. 총리와 대법원장이 여성인 뉴질랜드에서는 최근 의회의장도 여성이 차지해 3부를 장악했다. 미국 플로리다주에서는 96세 할머니가 조그만 도시의 시장으로 재선돼 세상을 놀라게 했고, 뉴욕 타임스사에는 여성CEO가 등장했다. 시대가 여성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요구하고 있는 마당에 ‘여풍’이란 말도 이젠 적절치 않은 표현이다. 장관자리 수십개를 남성이 차지하고 각계각층에 남성이 절대다수를 점해도 ‘남풍(男風)’이란 말은 쓰지 않는다.‘여풍’도 남성중심적 고정관념의 소산임에 다름 아니다. 남녀평등을 부르짖으면서 굳이 구별하려는 구시대적 사고야말로 박물관행 감이다. 자신만의 능력과 커리어로 국가·사회의 중심으로 당당히 나서는 여성들이 아름답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씨줄날줄] 인생반환점/육철수 논설위원

    역사는 오래 산 사람보다 뭔가를 이룬 사람을 기억한다. 시대에 따라 특정인물에 대한 선악을 가리기가 쉽지 않은 흠이 있긴 하나, 그의 삶의 길이보다는 깊이를 따지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태초 이래 가장 오래 산 사람에 대한 기록이 어느 역사서에도 등장하지 않는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음악가 모차르트·슈베르트·멘델스존·쇼팽이 인생이 짧아 업적을 이루지 못한 게 아니며, 김소월·윤동주·김유정·박인환이 요절하는 바람에 주옥같은 시와 글을 남길 수 없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천재성을 인정하지 않는 바 아니지만, 그들이 역사에 남은 것은 피와 땀에 젖은 열정으로 길지 않은 인생에서 남보다 백배 천배 이상 천착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그들의 궤적을 통해 나이는 먼저 태어난 자를 따라잡을 수 없어도 업적은 얼마든지 역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인생의 묘미를 깨닫곤 한다. 어제 통계청이 ‘2002년 생명표’를 발표했는데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남자 73세, 여자 80세라고 한다. 친절하게도 기대여명(평균잔여수명)을 따질 때 남자는 37세, 여자는 41세가 ‘인생 반환점’이라는 계산도 내놓았다. 생명표를 보면 40대 중반의 기대수명은 30년으로 나와 있다. 인생의 반환점을 10년 가까이 지나친 입장에서, 만감은 아니더라도 여러 상념에 잠기는 것은 흐르는 세월 탓만은 아닐 것이다. 불혹(不惑)을 훌쩍 지나 지천명(知天命)이 코앞에 다가오는데도 이룬 것이 없어 가슴이 짓눌리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신문에 이름 석자 오르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처지에 욕심을 너무 부리는 것은 아닌지…. 여생이 짧다고 느껴져 다급한 생각에서 공돈이라도 한탕 크게 벌어 볼 요량으로 로또복권에 자꾸 눈길이 가 서글픔이 밀려올 때도 많다. 하지만 일순간의 인생역전보다는 진솔하게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이성으로 돌아와 이내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른다. 평균수명만큼 산다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30년을 얕은 삶으로 초조하게 허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라톤이야 코스가 정해져 있어 반환점이 중요하겠으나, 종점이 언제 어딘지 모르는 우리 인생에서 그 반환점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저 인생의 중간평가 정도로 가볍게 넘기고 말 일이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씨줄날줄] 브나로드 운동/이기동 논설위원

    모스크바국제공항의 정식이름은 세르메체보국제공항. 세계 유수 여행사들이 서비스, 청결, 안전 등 모든 면에서 ‘최악의 국제공항’으로 꼽는데 주저함이 없지만 그 이름만은 러시아 역사상 최고의 한량, 세르메체프백작을 딴 것이다. 모스크바 교외에 위치한 그의 저택은 일명 작은 베르사유궁이라고 불리는데, 지금도 18세기 러시아귀족들의 영화를 엿보는데 손색없는 화려함을 자랑한다. 저택 안내판에는 그가 거느린 농노가 20만명에 달했다고 하니 당시 농노제의 위세를 짐작케 한다. 백작인 그가 농노의 딸을 정식 아내로 맞아들였다는 기록은 그가 탐욕의 화신처럼 돼있는 다른 러시아지주들과는 자못 다른 유의 귀족이었음을 은근히 내비친다. 혁명 뒤 볼셰비키들이 모스크바국제공항에 그의 이름을 붙인 것도 그가 신분, 계급을 넘어 러시아인들의 존경을 받았음을 짐작케 한다. 1917년 볼셰비키혁명 때까지 제정 러시아는 철저한 농노국가였다. 따라서 19세기 러시아의 지식인들이 농민계몽을 혁명의 첫 단계로 삼고 ‘브나로드(V Narod·민중속으로)’운동을 시작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볼셰비키혁명의 성공도 사실은 브나로드운동에 힘입어 황제 차르와 대지주의 권위를 우습게 보기 시작한 계몽된 농민들 때문에 가능했던 셈이다. 일제하 이 땅의 젊은 지식인들이 브나로드운동에 눈돌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1934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심훈의 ‘상록수’는 이광수의 ‘흙’과 함께 계몽형 브나로드 소설의 대표작이다. 다만 한국판 브나로드의 주인공들은 공산혁명가가 아니라, 농민계몽으로 식민시대의 질곡을 헤쳐보려던 젊은 남녀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적 또한 대지주가 아니라, 갖은 교활한 꾀로 이들을 괴롭히던 주재소 일본 순사들이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석연변호사가 주도하는 헌법포럼이 헌법 브나로드운동을 주창해 화제다. 급진세력의 개혁독점을 배격하고, 헌법정신이 국민의 구체적 삶에 파고들도록 만들겠다는 결의다. 일반국민 뿐아니라, 행정수도이전 위헌판결 이후 헌법재판소 때리기에 나섰던 여권 일각의 급진세력 또한 이들의 계몽대상이다. 어지러운 세상, 사실 헌법보다 더 좋은 나침반이 또 있겠는가. 반개혁, 반노(反盧)라고 성급하게 매도하기보다는 헌법바로세우기 운동쯤으로 받아들이며 어디로 가는지 지켜볼 일이다. 이기동 논설위원 yeekd@seoul.co.kr
  • 모차르트 협주곡 전곡연주 끝내는 피아니스트 김대진

    모차르트 협주곡 전곡연주 끝내는 피아니스트 김대진

    피아니스트 김대진(42·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손은 작고 오목하다. 그 힘찬 타건이 어디서 나올까 싶게 여린 손마디가 뜻밖에 시선을 잡아끈다. 그런 그가 긴 장정을 마친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전곡 시리즈 연주 마무리를 눈앞에 뒀다. 꼭 3년이 걸린 작업이었다. 지난 2001년 9월 막을 올린 전곡 연주는 새달 16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연주를 끝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모차르트와의, 관객과의 긴긴 교감에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을 터. “관객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먼저 들어요. 전곡시리즈를 감상할 땐 지난번 연주를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데, 워낙 띄엄띄엄 공연이 이어지다 보니 그 점을 충족시키지 못했어요.” 김 교수는 “안타깝고 미안하다.”는 자성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다니엘 바렌보임은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지난해 6월 한달 동안 연주를 끝냈다.”는 아쉬움의 말을 덧붙였다. 욕심이 너무 많았던 탓이기도 했다. 연주요청을 잘라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올 하반기에만도 30여회가 넘게 무대에 섰을 정도다. 학교 연습실에서 며칠씩 밤을 새우기도 했지만, 수확은 컸다. 무엇보다 악기들이 이루는 ‘수평적 조화’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이전엔 피아노 협주곡에서는 피아노가 최우선이어야 한다고만 생각했었다.”는 그는 “내 피아노도 무대에서 조화를 이뤄야 할 하나의 악기일 뿐이란 걸 이젠 안다.”며 웃었다. 새달 16일 마지막 무대는 전곡 시리즈에서도 가장 역점을 둬온 부분이다.‘협주곡 12번 A장조’와 ‘24번 c단조’‘20번 d단조’. 처음부터 마지막을 위해 남겨뒀던 것들이다.“27곡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가운데 단조곡은 20번과 24번뿐입니다. 생애의 질곡과 무관하게 작곡활동을 한 모차르트이지만, 가장 솔직히 비애를 드러낸 작품이 그들인 셈이죠. 모차르트의 진면목을 마지막 무대에서 보여주고 싶었다고 할까요.” 마지막 연주회에 즈음해 기념음반(소니 클래식)도 내놓았다. 폴란드 국립방송교향악단을 직접 지휘하며 협연한 ‘협주곡 23번’과 ‘17번’을 녹음했다. 한 학기 안식년이 주어지는 새해에는 더 바빠질 것 같다. 내년 5월에는 뉴욕 링컨센터 독주회가 있고,7월엔 그가 1985년 우승한 클리블랜드 콩쿠르(옛 로베르 카사드쉬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한다. 한·일 수교 40주년을 기념한 삿포로교향악단과의 서울·도쿄 연주회에 이어 하반기에는 아일랜드 국립교향악단과의 협연도 준비중이다. 스케줄이 숨이 찬다. 그 자신, 솔직히 가장 설레는 프로그램이 지휘자로 데뷔하는 무대다. 내년 4월 수원시향과의 정기연주회 지휘를 그가 맡기로 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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