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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축구팀 평양 도착하던 날/방석순ㆍ우정식 특파원 제1신

    ◎엄청난 환영인파… 호텔입장에만 30분/순안공항 3천명 마중… 악수세례/옥류관 만찬 땐 「우리의 소원」 합창/숙소 고려호텔 한증탕ㆍ파친코장 갖춰 서울신문사는 남북통일축구대회를 생생히 취재ㆍ보도하기 위해 본사 북경아시안게임 합동취재단원이었던 방석순 차장(스포츠서울 체육1부)과 우정식 기자(〃 사진부)를 9일 평양에 특파했다. 다음은 두 기자가 보내온 평양도착 제1신. ▷공항◁ ○…9일 낮 12시 정각 남쪽 선수단과 기자단들을 태운 조선민항 특별기가 도착하자 순안공항은 환영분위기에 달아올랐다. 공항에 나온 3천여 남녀 환영객들은 모두 손에 꽃을 들고 『조국통일』 『조국은 하나다』라는 함성을 지르며 손님들을 맞이했다. 기내에서 간단히 인적사항을 대조하는 것으로 입국수속을 끝낸 선수단ㆍ기자단중에서는 정동성 체육부장관이 맨처음 트랩을 내렸다. 정 장관이 내려서자 환영나온 김유순 북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ㆍ김형진 부위원장ㆍ최용해 축구협회장이 다가와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악수를 나눴다. 또 30여명의 북한 기자들이 몰려나와 열띤 취재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선수단이 트랩에 모습을 나타내자 일부 환영객들은 트랩 앞까지 다가와 남녀 축구선수들의 손을 잡으며 『잘왔다』 『조국통일』 등을 외쳤다. 또 일부 환영객들은 최순호ㆍ김주성 등 한국 남자 축구선수들을 목마 태워 환영객 터널 사이를 1백여m나 행진했고 다른 선수단과 기자단들에도 손목을 잡으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이날 환영객들은 한복을 차려입은 젊은 여성과 청년ㆍ어린이 등으로 다양했는데 이들은 한국선수단ㆍ기자단을 태운 10대의 승용차와 3대의 버스가 공항을 떠나자 뒤따라 뛰기도 했다. 환영객중 일부 부인들은 눈물까지 흘리며 『생전에 남쪽 축구선수가 평양에 오는 것을 보고 통일 멀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평양 베어링공장 노동자인 김영희씨(23ㆍ여)는 『7일 방송과 신문을 통해 남쪽 축구선수단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다』며 아침 일찍부터 공항에 나와 기다렸다고 말했다. ▷연도◁ ○…순안공항에서 한국선수단 숙소인 창광거리 고려호텔까지는 약 21㎞. 차량이 많지 않은 데다 4차선으로 도로가 넓은편. 선수단 차량행렬이 지날 때마다 일반 차량이 일단 정지해 30여분밖에 걸리지 않을 거리였으나 이날은 환영인파와 여러번 선수단 차량의 길이 막히는 바람에 1시간45분이나 소요됐다. 환영인파는 김일성광장에서부터 고려호텔까지 특히 많았는데 기자단 및 선수단이 호텔 입구에서 버스에서 내려 호텔 앞까지 들어가는 데도 30여분이나 걸렸다. 일행을 태운 버스가 호텔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1천여명의 평양시민이 몰려들어 버스에서 내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만찬◁ ○…9일 평양시 모란봉 대동강변 청류벽에 자리잡은 한식집 옥류관 남북선수단 만찬은 분단 이후 어느 때에도 볼 수 없었던 절절한 동포애를 나눈 꿈같은 순간의 연속이었다. 최용해 북한 축구위원장이 한국선수단을 초청,마련한 만찬에서 한국의 정동성 체육부 장관ㆍ북한의 김유순 체육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남녀 선수 임원 취재기자에 이르기까지 참석한 모두는 하나로 엉켜 피붙이임을 확인했다. 하오 7시10분 시작된 만찬은 각테이블에 남북 체육관계자ㆍ선수ㆍ임원들이 고루 섞어 앉아 잉어회 해상꿩 완자볶음 잣죽 신선로 등 전통음식을 즐기며 조용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아버지를 북에 둔 이회택 감독과 그 아버지 소식을 전해준 박두익 감독,한국땅에 오빠 한필성씨를 둔 한필화씨,통일축구 대임을 맡은 박종환 감독,명동찬 감독 등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정을 나누었다. 만찬이 끝날 무렵 북한 가수들이 민요에 심취해 있던 남북 체육인들은 흥이 오르자 「우리의 소원」등의 노래를 합창하기도 했다. 정동성 체육부 장관은 김유순 북한 체육회 위원장의 손목을 이끌고 테이블을 돌며 남북 교류와 통일을 향한 전진을 다짐했으며 선수들과 함께 어울려 무대 위아래에서 통일을 합창했다. 분위기가 고조되자 부자상봉을 앞둔 이회택 감독의 눈에도,나이어린 남북축구선수들의 눈에도 모두 그렁그렁 이슬이 맺혔다. 남북의 만찬은 예정시간보다 1시간이나 넘게 진행됐고 헤어지는 자리에서 남과 북의 모든 체육인들은 상기된 얼굴로 통일을 향하는 징검다리의 첫 돌을 놓았다는 뿌듯한 자부심을 보였다. 이날 정동성 체육부장관은 북측에 용과 호랑이가 그려진 도자기를 선물하는 등 초청에 응한 귀빈으로서 만찬장을 주도했다. ▷숙소◁ ○…지난 85년 남북 고향방문 당시 서울 손님을 맞았던 고려호텔은 45층에 2개 빌딩이 나란히 있고 평양 최고급호텔로 객실 5백여개,호텔 지하에는 안마실ㆍ한증탕ㆍ이발소ㆍ파친코장이 있다. 이날 고려호텔에는 북한 노동당 창립 45돌을 축하하기 위해 온 각국 대표단도 같이 묵고 있는데 베란다에 나와 호텔에 들어서는 한국선수들을 구경하기도.
  • 한가위 2천만대이동 시작/첫날 귀성길은 “수월”

    ◎「분산출발」이 교통전쟁 막아/30만“탈서울”,오늘부턴 붐빌듯/경부등 심야고속도로 평소보다 한산 2천만의 대이동이 예상되는 황금의 추석연휴를 맞아 귀성 첫날인 29일 철도와 고속도로,국도 등에서는 당초의 우려와는 달리 큰 교통혼잡없이 비교적 원만한 소통이 이뤄졌다. 이는 연휴기간이 5일동안이나 이어져 귀성객들이 분산된데다 당국의 사전계도로 귀성객들이 첫날부터 한꺼번에 몰리지 않고 있기 때문 등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경부고속도로와 중부고속도로의 경우 대부분의 귀성객들이 열차나 국도로 빠져나가 이날 귀성차량들이 제한속도와 비슷한 시속 1백㎞정도로 운행이 가능했다. 또 열차의 경우 경부선과 호남선 등 전구간의 표가 완전 매진돼 서울역과 청량리 등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귀성객들로 붐볐으나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과 상봉동ㆍ구의동 등지의 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각 노선별 승차권의 예매율이 이날 하오까지도 50%선에 그쳤다. 비상근무에 들어간 경찰은 고속도로의 체증을 해소하기 위해 서울∼수원간 단거리운행차량의 고속도로진입을 막는 한편 체증의 주요원인인 고속도로비상통로의 차량운행을 강력히 단속했다. 경찰은 이날 고속도로 등의 상황으로 미루어 일요일인 30일에도 이날 보다는 차량이 다소 늘어나기는 하겠으나 당초 우려했던 큰 혼잡은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있다. ▷고속도로◁ 귀성차량행렬로 극심한 교통체증이 예상됐던 경부ㆍ중부고속도로에는 이날 평소의 토요일보다도 오히려 적은 차량이 서울을 빠져나갔다. 치안본부 고속도로 순찰대의 한 관계자는 『최근 토요일에는 6만대이상의 차량이 경부ㆍ중앙고속도로를 통해 서울에서 나갔으나 이날은 5만8천대 정도였다』면서 『자정을 전후한 시간의 고속도로는 매우 한산하다』고 전했다. 또 최근 전국의 고속도로에서는 하루평균 20여건의 교통사고로 4∼5명이 숨졌으나 이날에는 6건에 2명사망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한국도로공사는 이같은 현상을 연휴기간이 길어 교통분산효과가 있는데다 교통체증을 우려해 자가용운행이 줄어들었고 통행요금후불제로 톨게이트의 체증이 해소됐기 때문이라고분석했다. 그러나 도로공사관계자는 『밤중에 고속도로사정을 물어오는 전화가 빗발치는 것으로 보아 30일 상오에는 한꺼번에 차량이 밀릴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서울역◁ 서울역에는 귀성객특별수송기간인 29일부터 10월3일까지 모두 1백20여만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날 하룻동안 12만5천여명의 귀성객이 임시열차 52편을 포함,모두 1백47편의 열차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호남선은 이날 상오에 10월1일 표까지 완전 매진됐으며 경부선도 10월2일 좌석표까지 모두 팔렸다. 한편 남대문경찰서는 29일 서울역주변의 암표상 25명을 연행,즉심에 넘겼다. 예년의 경우 서울역이나 고속버스터미널 등에는 차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웃돈을 받고 불법운행하는 버스ㆍ승용차 등이 줄을 이었으나 올 추석의 귀성첫날에는 이같은 차량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 2천만 한가위 대이동

    ◎황금연휴 닷새… 사상최대 귀성행렬/차량 폭주로 「교통전쟁」 예고/2시간거리 서울∼대전 7시간 걸릴듯/오늘하오부터 “북새통”… 임시열차 1천여대 증편 황금의 추석연휴를 맞아 전국에서 모두 2천만명 가량의 귀성객 또는 나들이 인파가 대이동을 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귀성전쟁이 시작됐다. 29일 교통부ㆍ치안본부ㆍ도로공사 등 교통관계기관에 따르면 이번 추석절 연휴 동안의 귀성객은 서울 3백50여만명을 포함,수도권에서 5백60만명 등 전국적으로 전체인구의 30%를 넘는 1천5백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지난해의 1천3백만명보다 15%정도가 늘어나는 것이다. 이 귀성객들은 대부분 가족단위로 움직일 것으로 보이며 더욱이 귀향은 하지 않더라도 명승지나 휴양ㆍ관광지 등을 찾아나설 사람도 5백만명 가까이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가운데 철도ㆍ항공ㆍ해운편을 이용하는 5백80여만명을 제외하면 나머지 1천4백여만명은 버스와 승용차 등 차량을 이용할 수 밖에 없어 제한된 도로사정에 비해 엄청난 차량의 증가추세를 감안하면올해 귀성길이 지난해보다 훨씬 악화될 우려가 크다. 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 도로는 지난해의 고속도로 1천5백51㎞,국도 1만2천1백90㎞에서 별로 늘어나지 않았으나 차량대수는 지난해 추석때의 2백53만9천여대에서 26.9%가 증가,3백17만5천여대에 이르고 있다. 관계당국은 특히 귀성차량행렬이 연휴전날인 29일 하오부터 연휴첫날인 30일사이 크게 붐비기 시작할 것으로 보고 있다. 도로공사는 오는2일 하루 고속도로 교통량이 전국적으로 최고 90만대에 이르는 등 추석연휴기간동안 연 5백40만대의 차량이 이동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고속도로 및 국도◁ 이번 추석연휴동안 서울 등 수도권에서 시작되는 경부고속도로와 주요국도를 이용할 차량은 65만∼82만대로 적정통행량을 크게 초과,움직이는 주차장이 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경부고속도로는 추석전날인 오는2일 평일 차량통행량 4만4천대보다 22.7%가 늘어난 5만4천대,중부고속도로는 평일통행량 2만7천대보다 무려 1백7% 증가한 5만6천대나 통행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따라서 이 두 고속도로의 1일 최대통행량 9만대를 2만대이상 넘어서게 돼 차량의 주행속도는 시속 20㎞이하로 떨어질 전망이다. 이렇게 될 경우 평소 2시간대에 다니던 서울∼대전구간(1백52.2㎞)은 7시간40분정도,5시간 거리인 서울∼부산구간은 11시간이상 걸리게 된다. 또 서울∼안양∼수원사이 1번국도와 서울∼성남∼장호원사이 3번국도도 평균시속이 10㎞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처럼 교통체증이 극심한 상황이 연출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서울 강남 및 상봉버스터미널의 버스표예매율은 50%를 밑돌고 있는 실정이다. 경찰은 우선 근거리통행차량이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을 막기위해 고속도로는 한강이북에서만 진입할 수 있도록 경부는 서울∼수원사이,중부는 서울∼곤지암사이 인터체인지에서의 진입을 모두 막기로 했다. 또 고속도로에서 시달린 운전자들이 첫 휴게소에 엄청나게 몰릴 것에 대비,운전자들이 휴게소를 분산이용하도록 지도하고 노견으로 운행하는 차량은 무조건 범칙금 3만원씩을 물리기로 했다. 이와함께수도권 주변의 1번ㆍ3번ㆍ46번ㆍ6번ㆍ인천∼안산∼아산사이 등 5개 주요국도에서는 30일 0시부터 10월4일 자정까지 신호연동제를 실시,귀성차량에 대해 신호우선권을 주고 대부분 일반통행시키기로 했다. ▷철도◁ 철도청은 29일부터 10월2일까지 2백39만명 등 모두 5백20만명이 철도를 이용할 것으로 보고있다. 철도청은 이에따라 29일부터 10월7일까지 평소 5천5백89대 2만8천8백72량을 운행하던 것보다 임시열차 1천1백30대 9천6백26량을 증편,모두 6천7백17열차 4만6백32량을 운행하기로 했다. 철도청은 29일 47만명에 이어 10월1,2일에 각각 65만명씩,추석당일인 3일 52만명이 철도편으로 귀성할 것으로 보고있다.
  • “아쉬운 서울의 4일 평양서 또 만납시다”

    ◎북녘손님들,한아름 선물안고 돌아가 국토분단 45년만에 서울에서 처음열린 남북고위급회담에 참석했던 북쪽 대표단일행은 7일상오 3박4일동안의 회담일정을 모두 마치고 북한으로 돌아갔다. 이들은 지난4일 남쪽땅에 첫발을 디딜때와는 전혀달리 친숙한 표정으로 『이번 회담에서 얻어진 조그만 진전이 오는 10월16일 평양에서 열릴 제2차 회담에서 큰 성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기약했다. 북쪽 대표단은 이날 상오7시쯤 숙소인 서울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마친뒤 상오8시30분쯤부터 귀환버스에 올랐다. 북쪽 대표단장인 연형묵정무원총리는 상오9시35분쯤 마지막으로 객실에서 나와 현관에서 기다리던 강영훈국무총리와 굳은 악수를 나눈뒤 홍성철통일원장관과 함께 1호차에 탔다. 대표단의 짐은 올때와 마찬가지로 8.5t 컨테이너로 날랐다. 화물수송담당자는 『북쪽에서 가져온 과일과 기념품 등을 모두 소비했음에도 선물이 많아 올때보다 오히려 짐이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예정보다 30여분이나 늦은 상오9시38분 숙소를 떠난 차량행렬은 올때와 마찬가지로 올림픽대로와 마포ㆍ무악재를 거쳐 통일로를 따라 판문점으로 갔다.
  • 올림픽공원 둘러보며 “부러운 눈길”/북녘손님

    ◎박물관등 견학한뒤 서울의 마지막밤/신라유물앞선 조상슬기에 감탄/만나는 사람마다 “수고하십네다”/호텔만찬선 정치적발언에 한때 분위기 “침울ㆍ 남북고위급회담 북쪽대표단 일행은 서울방문 사흘째인 6일 주요행사일정을 대체로 마치고 아쉬움속에 서울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일행은 이날 국립중앙박물관과 올림픽공원 등을 돌아보고 신문사를 방문하는 한편 시내 대중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행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등 취재에도 열을 올렸다. 북쪽대표단일행은 처음 올때의 굳은 표정과는 달리 마주치는 행사요원 및 취재진들에게 『수고합네다』라는 인사말을 건네는 등 자못 친근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북쪽대표들은 이날 하오7시30분 박준규국회의장이 송파구 잠실동 롯데호텔에서 배푼 만찬에 참석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 여ㆍ야 정치지도자 및 국회의원들이라는 점을 인식한 탓인지 정치적질문과 발언을 거듭해 만찬장의 분위기를 다소 무겁게 만들었다. 특히 연형묵총리는 「외국군대ㆍ핵무기철수」 등을 서슴없이 거론하기도 했다. 북쪽대표들은 약2시간동안의 만찬을 끝내고 하오9시50분쯤 숙소인 인터콘티넨탈호텔로 돌아온뒤 외출을 삼간채 끼리끼리 모여앉아 얘기를 나누거나 다시 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며 서울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이들은 이날 하오7시부터 20여분동안 차에 탄채 올림픽공원을 돌아봤다. 승용차 3대와 버스 4대에 나눠타고 인터콘티넨탈호텔을 떠난 이들 일행은 잠실종합운동장∼롯데월드∼올림픽회관을 지나 올림픽공원 북2분을 통해 공원안으로 들어섰다. 차량이 올림픽수영경기장,체조경기장,사이클경기장,몽천토성 및 유명조각가들의 조각품들이 있는 곳을 지나는 동안 북한의 사진기자들은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공원안 모습을 촬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북쪽대표들은 올림픽기념 평화의 문을 비롯한 각종 시설물과 공원내부를 돌아보며 『아주 잘 가꾸어 놓았다』 『올림픽을 치르느라 수고 많았겠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을 태운 차량행렬이 연도를 지날때는 연도의 시민들이 손을 흔들며 반가움을 나타냈고 이들도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북쪽수행원과 기자 등 70여명은 이에앞서 이날 하오2시40분 버스편으로 중앙박물관에 도착,김진무사무국장의 영접을 받으며 1층강당으로 들어가 한병삼관장의 인사말을 들은 뒤 박물관소개영화를 20분동안 관람했다. 일행은 이어 이건무고고부장과 강우방미술부장의 설명을 들으며 2ㆍ3ㆍ4층 전시실을 차례로 돌아보았고 특히 선사시대와 신라시대 유물을 유심히 살폈으며 유물진열장의 온ㆍ습도 자동조절장치,문화재의 개인소장문제 등에 관심을 나타냈다. 북쪽기자단의 김천일단장은 『남쪽에는 신라ㆍ백제유물은 풍부하나 고구려의 유물이 적고 북쪽에는 그 반대이니 「남북유물합동전시회」를 열었으면 좋겠다』는 우리기자의 물음에 『그래서 이렇게 회담을 갖는게 아니냐』면서 『다 합의해서 하자』고 답변했다. 일행은 이에앞서 하오1시쯤에는 강남구 신사동 삼원가든에서 숯불갈비와 냉면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 북대표 차량 4중 충돌/2대 크게 부서져

    4일 상오11시40분쯤 연형묵정무원총리 등 북한측대표단이 탄 차량행렬 가운데 4대가 마포대교북쪽 강변도로진입로 입구에서 연쇄추돌사고를 일으켜 대표단 3호차와 4호차가 크게 부서졌다. 이 차에 탔던 대표단은 곧 예비차에 옮겨타고 숙소로 향했다. 사고는 80∼90㎞로 8차선의 마포대로를 달리던 차량행렬이 2차선의 강변도로 진입로로 들어서는 순간 취재차 1대가 사진을 찍기 위해 갑자기 끼어드는 바람에 대표단차량들이 급브레이크를 밟아 일어났다. 또 이 사고를 취재하기 위해 달려오던 KBS차량과 경찰사이카가 충돌,한때 혼잡을 빚기도 했다.
  • 남ㆍ북이 “얘기꽃”… 화기넘친 만찬/북녘손님 맞던날

    ◎「손에손잡고」 선율속 문배주 축배/“어서오세요”연도엔 환영인파/“통일전기 마련됐으면”… 국민들 큰관심/회담장주변엔 외신기자등 몰려 법석 분단 45년만에 남과 북의 국무총리가 처음으로 만난 4일 7천만 겨레는 조국의 통일을 바라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남북고위급회담의 성공을 빌었다. 때마침 맑게 갠 서울의 가을하늘도 남북총리의 역사적 만남을 축복하는듯 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되새기며 연형묵총리 등 북측대표단 일행의 입경을 지켜본 국민들은 회담장인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강영훈총리가 일행을 따뜻히 영접하는 장면을 보곤 다시한번 같은 겨레의 정을 실감했다. 이날 북측 대표단 일행이 판문점을 넘어 서울에 들어오는 중요한 길목마다에는 많은 시민들이 나와 환한 웃음으로 손을 흔들어 일행을 환영했다. 환영인파 가운데는 특히 월남한 실향민들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이들은 저마다 이번 회담이 좋은 결실을 거둬 조국의 통일을 앞당기는 것은 물론 하루라도 빨리 흩어진 혈육들이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했다.그러나 일부에서는 성급한 기대는 금물이며 끈기를 가지고 차근차근 통일의 길을 열어야 할 것이라는 신중론을 펴기도 했다. 북측 대표단 일행은 이날저녁 강총리가 힐튼호텔에서 주최한 만찬회에 참석한뒤 무역회관에서 우리영화를 감상하고는 모두 숙소에 돌아가 서울에서의 첫날 밤을 보냈다. ▷만찬 및 영화관람◁ 우리측 수석대표인 강영훈국무총리는 이날 하오7시쯤 힐튼호텔에서 북한대표단에게 만찬을 베풀고 이들의 서울 방문을 환영했다. 이날 만찬에는 북측인사외에 우리측 관계ㆍ재계ㆍ언론계인사 등 2백20여명이 참석,통일을 기원하는 축배를 들면서 남과 북이 화기애애한 얘기꽃을 피웠다. 이날 칵테일장에는 국산양주와 맥주 외에 인간문화재 이경찬옹이 특별히 빚은 문배주가 준비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으며 만찬음식은 7가지 코스의 양식. 이날 만찬 참석자들은 모두 27개 테이블에 나눠앉았으며 헤드테이블에는 강ㆍ연 두 총리를 비롯,김상협 적십자사총재ㆍ민관식 평통수석부의장ㆍ김용식 통일고문회의의장ㆍ홍성철 통일원장관ㆍ김윤환 정무1장관ㆍ최호중 외무장관ㆍ유창순 전경련회장 등과 북한측의 김광진 인민무력부부부장 등이 참석. 만찬장에는 7인조 실내악단이 서울올림픽 지정곡인 「손에 손잡고」를 비롯,선구자ㆍ고향의 봄ㆍ아리랑 등 우리가곡ㆍ민요를 연주해 분위기를 돋웠고 강총리는 연총리에게 해강 유근형씨가 제작한 청자화병을,회담대표들에겐 고급양복지,북측 수행원들과 기자들에게는 손목시계 및 탁상시계를 각각 선물. 북측 대표단은 원하는 사람들만 만찬이 끝난뒤 하오8시부터 40분동안 한국종합전시실(KOEX) 4층에서 문화영화인 한국의 전통문화유산을 관람하고 숙소로 돌아가 서울의 첫밤을 보냈다. 영화를 관람하고 숙소로 돌아온 뒤 북측 기자들은 『영화가 재미있었느냐』고 묻자 『역사성이 결여된 듯하다』 『졸음이 와 제대로 못봤다』고 짤막하게 답변하곤 서둘러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판문점◁ 이날 상오10시쯤 북측 대표단장인 연형묵총리가 판문점의 군사분계선을 넘어 우리측 「평화의 집」 입구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홍성철 통일원장관이 『진심으로환영합니다』라며 손을 내밀어 영접했고 연총리는 『감사합니다』고 답했다. 연총리는 이어 『우리 대표단은 큰 기대를 갖고 왔다』고 말한뒤 홍장관의 안내로 「평화의 집」안으로 들어섰다. 이에앞서 북측 대표단의 수행원 33명과 기자단 50명은 상오9시50분쯤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신분증이나 「보도」라고 쓰인 완장으로 간단한 신원확인절차를 거친뒤 우리측 지역으로 들어왔다. ▷연도◁ 북측대표단들이 통과하는 통일로 등 연도 곳곳에는 통일에의 염원을 안고 미리 나와 기다리던 시민들과 길가던 시민들이 함께 어울려 차량행렬이 지나갈 때마다 손을 흔들고 박수를 치며 일행을 환영했다. 또 빌딩이나 아파트단지 등에서는 시민들이 창가에 나와 일행이 지나는 광경을 지켜봤다. 환영인파 가운데는 특히 월남한 실향민들이 많아 흩어진 혈육의 재회를 애타게 갈구하는 그들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줬다. 북측대표단 일행들도 이따금 차창을 열고 환영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하기도 했다. ▷회담장주변◁ 북측대표단 일행이 낮12시5분쯤 회담장이자 숙소인 인터콘티넨탈호텔에 도착하자 이들을 보려는 많은 시민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한때 큰 혼잡을 빚기도 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호텔주변은 평소와 크게 다름없는 평온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북측대표단 일행은 기자들의 열띤 취재경쟁 속에 카메라 플래시가 잇따라 터지자 사뭇 긴장하기도 했으나 차츰 여유를 되찾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였다. 강영훈총리의 영접을 받고 호텔에 들어선 연총리 등 북측대표단 일행은 호텔직원들의 안내로 30∼33층에 마련된 숙소에 여장을 푼뒤 불고기와 된장찌개 등으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한동안 휴식을 가졌다. 한편 대부분의 북한기자들은 우리측 취재진과의 접촉을 꺼렸으나 로동신문의 이광진기자를 비롯한 3∼4명의 기자들은 취재진이 모여있는 1층 로비로 자주 내려와 기자들의 질문에 일일이 대답해주는 등 적극성을 보였다. 이기자는 하오5시40분쯤에도 1층 커피숍으로 내려와 판문점에서 얼굴을 익힌 몇몇 기자와 환담을 나누다 기자들이 40∼50명으로 늘어나자 10분남짓 즉석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 요르단서 서울까지… 본사 육철수특파원 교민철수 동승기

    ◎“사지 벗어났다”… KAL기 이륙하자 환호/암만공항 대합실 출국자로 북새통/“총소리에 뜬 눈 밤샘”전쟁악몽 회상/일부 교민,“피땀 흘려 모은 재산 잃었다”한숨 쿠웨이트와 이라크 교민 3백21명을 태운 대한항공 특별기 보잉747 점보기가 21일 상오 4시23분(한국시간) 암만국제공항활주로를 이륙하자 한국교민들은 마침내 사지에서 벗어난다는 안도로 환호를 지르며 옆사람의 손을 잡고 서울의 가족ㆍ친지들을 만날 기쁨에 들떴다. 1천8백여㎞의 사막길을 횡단,전쟁터를 빠져나온 교민들은 대부분 암만국제공항부근 호텔과 공항대합실등에서 3∼4일간 초조하게 특별기도착을 기다리며 불안에 떨었으나 무사히 출국수속을 마치고 태극마크가 선명한 대한항공 특별기에 탑승하자 「한국의 영토」에 발을 들여 놓은 듯 안도감에 젖었다. 교민들은 『전쟁중인 사막에서 손가락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히 고국에 살아 돌아가니 기쁘기 한량없다』고 입을 모으고 『쿠웨이트 등에 버리고 온 재산이야 다시 벌면 되지 않느냐』고 서로 위로하는 분위기였다. 요르단 대피교민 귀국을 위한 대한항공 특별전세기 제1편이 20일 상오 7시24분 김포공항을 이륙,바레인을 거쳐 암만의 퀸 알리아공항에 도착한 것은 14시간만인 하오 9시28분(현지시간 하오 3시28분)이었다. 공항대합실에는 한국교민을 비롯,쿠웨이트와 이라크에서 빠져나온 아시아ㆍ아랍인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부모를 따라 이곳에 온 어린이들은 전쟁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공항대합실을 이리뛰고 저리뛰며 마냥 즐거워했다. 대림산업 쿠웨이트 지점장 김진서씨(33)는 『전쟁이 일어나던 날 새벽내내 대포와 총소리에 놀라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아침에 공관에서 「전쟁이 났으니 지하실로 대피하라」는 전화연락을 받고서야 일이 터진 줄 알았다』면서 당시의 급박하고 불안했던 분위기를 전했다. 김씨가 살고 있던 안달로스의 옆동네 리카이에는 쿠웨이트 육군본부가 있었다. 2,3일이 지나자 상가는 모두 문을 닫고 국제전화가 불통됐다. 식량부족현상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라크 당국에서 주는 배급은 가족당 하루 쌀 1∼2㎏,담배 1갑정도였고 식수는 아예 없었다. 시내에는 온통 이라크군인들이 지키고 있고 일반인들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라크군인들은 필리핀이나 인도계 여성들에는 폭행을 하기도 했으나 한국인에 대해서는 좋은 대우를 해주었다. 김씨 가족은 17일 이웃교민의 도움으로 「시보레」자동차를 타고 피난행렬에 낄 수 있었다. 쿠웨이트시에서 이라크국경쪽으로 통하는 포스링로드와 식스링로드는 유럽ㆍ아시아 아랍인 등 피난민의 차량행렬로 가득 메워졌다. 국경부근 검문소에 이르렀을 때 한국교민들은 다행히 철저한 검문을 피할 수 있었다. 이라크 군인들은 한국인을 보면 『꼬레』를 연발하며 어린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손까지 흔들어 줄 정도로 우호적이었다. 식량과 식수는 다행히 떠날 때 충분히 준비해 어려움이 없었으나 열이 나고 설사를 해 애를 먹었다. 교민들은 한국인들이 무사히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근로자들이 성실하게 일해와 그들에게 신뢰감을 심어준 덕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라크에서 온 김정원씨(35ㆍ여)는 전쟁당일 바그다드시는 매우 조용했다고 말했다. 이곳 사람들은 언론통제가 심해 외국에서 보도되고 있는 사실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의 6백여 교민들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이 이라크에 대한 응징조치가 임박했다는 소문에 귀국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의 한국교민들은 건설회사를 통해 식량을 공급받아 사정이 괜찮았으나 현지인들은 생필품수준이 쿠웨이트 보다 오히려 못하다는 것.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이처럼 한국교민들의 생명에는 위협이 되지 않았으나 이역만리 타국까지와 애써 가꾼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삼켜버렸다. 특히 쿠웨이트에서 개인사업을 했던 20여 교민들은 참담한 모습이었다. 좌석에 앉아 넋을 잃은 듯 멍하니 창쪽을 바라보는 이홍식씨(60). 그는 11년전부터 쿠웨이트에서 개인주택공사를 만들어 사업을 벌이면서 모은 5억원 재산을 몽땅 잃었다고 했다.
  • 피서 절정… 무질서도 절정/해수욕장ㆍ유원지 5백만이 “북새통”

    ◎바가지 판쳐 하루숙박 7만원/계곡서 세차ㆍ쓰레기 마구버려/주말 물놀이하다 50명 사망ㆍ실종 전국이 섭씨30도를 훨씬 웃도는 불볕더위가 열흘째 계속된 가운데 8월들어 첫 일요일인 5일 전국의 해수욕장 등산로 등 피서지에는 제철을 맞은 피서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올여름 최고인파를 기록했다. 이날 부산의 해운대해수욕장에 80여만,광안리에 40여만 인파가 모여들어 북새통을 이룬 것을 비롯,속초 강릉 등 동해안에 50여만,그동안 기름에 오염돼 피서객의 발길이 뜸하던 서해안도 1백여만명의 피서객이 줄을 이었다. 또 설악산 지리산 북한산 덕유산 등지에도 2만∼5만명씩의 등산객들이 몰려 울긋불긋 꽃무늬를 이뤘고 미처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한 시민들도 가까운 수영장이나 계곡 유원지 등을 찾아 무더위를 식혔다. 이날 전국의 피서인파는 5백만명을 훨씬 넘을 것으로 추산됐다. 이처럼 피서행렬이 피크를 이루자 곳곳에서 물놀이 사고와 피서객상대 범죄 등 사건사고가 잇따랐고 바가지요금이며 행락질서를 둘러싸고 갖가지 시비와 소란도 끊이지 않았다. 물놀이 익사사고의 경우 주말인 4일 강원지방에서 8명이 숨지거나 실종한 것을 비롯,경북과 전북지방에서 5명씩,충남 3명,충북2명 등 20여명이 숨지거나 실종된데 이어 이날도 낮 12시15분쯤 경북 울진군 서면 하원리 불영계곡의 속칭 용소에서 고교동창생들과 야영을 와 수영하던 김상현군(24ㆍ영남대 경영학과3년)이 깊이 3m의 물에 빠져 숨지는 등 모두 30여명이 사망ㆍ실종된 것으로 추정됐다. 또 5일 상오 3시50분쯤 부산해운대 바닷가에서 산책하던 이웃 서창권씨(42)가 2인조강도에게 현금 14만원 등이 든 지갑을 빼앗긴 것을 비롯,곳곳에서 피서객을 상대로 한 강ㆍ절도ㆍ폭력사건 등이 속출했다. 또 부산 등 남해안과 동ㆍ서해안의 해수욕장 일대에서는 숙박시설과 음식점 등이 초만원을 이뤄 평소의 5배나 되는 바가지요금을 요구하기가 일쑤여서 시비가 잇따랐다. 해운대와 광안리 등지에서는 하루 1만1천5백원으로 정해진 갑급여관의 숙박료를 5만∼7만원씩 받았고 야영텐트 1개 치는데 1만원씩의 자릿세를 요구했다. 특급관광호텔의 경우가장 싼 방이 11만원이어서 부대시설이용료를 포함하면 20만원이 들어야 했다. 이밖에 동ㆍ서해안피서지에서도 하루 1만∼1만5천원씩이던 숙박료가 5만∼8만원씩이나 했고 사이다 콜라 등 찬 음료수는 2∼3배의 값을 받았다. 상인들 뿐만 아니라 피서객들도 더위에 지친 탓인지 곳곳에서 보기 민망스런 추태를 연출,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서울 근교의 북한산계곡과 송추ㆍ일영 등지의 냇가에는 피서객들이 몰고온 차량들이 아무곳에나 마구 세워져 큰 혼잡을 빚었으며 냇가마다 차들이 모여들어 세차를 하는 바람에 환경보호를 무색케 했다. 강원도 오대산,충남 계룡산 계곡 등에서는 집에서 가져오거나 이웃 상점에서 1시간에 1만∼2만원씩에 빌린 속칭 가라오케 등을 틀어놓고 30∼50대 남녀가 술에 취해 춤판을 벌이는가 하면 곳곳에서 고스톱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피서객들이 아무데나 마구 버리고 간 쓰레기는 며칠이 지나도록 손길이 미치지 않는 듯 악취가 코를 찔렀고 젊은 남녀들의 낯뜨거운 데이트장면도 볼썽 사나웠다.
  • 피서 절정… “탈도시”인파 4백만

    ◎열차ㆍ버스표 매진… 역ㆍ터미널마다 북새통/주말고속도 체증 극심… 주차장 방불/대구 36.3도… 올들어 최고 지루했던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불볕더위가 시작된 첫주말인 28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 도시에서는 피서지나 교외유원지 등으로 빠지는 휴가인파가 줄을 이었다. 치안본부는 이날 서울에서 1백50여만명이 시외로 빠져나간 것을 비롯,전국에서 4백여만명의 피서객이 도심을 벗어나 피서지로 떠난 것으로 추산했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이날 하오가 되자 차량행렬이 뚜렷하게 줄어 들었으며 경부ㆍ호남ㆍ중앙ㆍ영동고속도로와 경춘가도 등은 심한 교통체증현상을 빚었다. 서울역에는 이날 상오9시부터 배낭을 멘 원색의 옷차림을 한 피서객들이 몰리기 시작해 직장인들의 업무가 끝난 하오2∼3시 사이에는 절정을 이루었다. 철도청은 이날 열차편으로 서울역과 용산역ㆍ영등포역을 통해 서울을 빠져나간 인파가 추석이나 민속의 날 하루전날의 귀성인파와 비슷한 수준인 15만명이라고 밝혔다. 서울역측은 이처럼 피서객들이 몰리자 이날 처음경부선ㆍ호남선ㆍ장항선 등 피서지로 가는 노선에 33편의 임시열차를 추가 운행하고 95개의 정규열차에도 객차 36량을 증량했다. 그러나 임시열차 승차권마저 하오3시쯤에는 모두 매진돼 매표구앞은 입석표를 사려는 사람들로 크게 붐볐다. 영등포역에도 이날 평일보다 30%가량 늘어난 3만8천여명의 인파가 몰렸다. 영등포역을 출발하는 열차편은 오는 8월1일까지 전노선의 하오시간열차표가 모두 매진됐으며 각 매표창구에는 차표를 사려는 피서객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2∼3시간씩 줄을 서야만 했다.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도 주말휴양객과 휴가에 나선 피서객들이 붐비면서 이날 하룻동안 10만여명이 고속버스편으로 서울을 빠져나갔다. 특히 속초 강릉 부산 여수 등 유명피서지로 향하는 구간의 승차편은 29일 상오 차편까지 모두 매진됐다. 또 호남ㆍ영동선에도 5만여명의 휴가인파가 몰렸고 경부ㆍ중부고속도로는 휴가를 떠나는 자가용 차량까지 한꺼번에 몰려 이날 하오에는 평소 2시간걸리던 서울∼대전간이 3∼4시간이상씩 걸리는 등 교통체증을보였다. 서울 청량리역에는 이날 상오9시부터 가족을 동반한 휴가인파와 방학을 맞아 수련회를 떠나는 대학생 등이 몰려들어 7개 매표창구에 2백m남짓씩 줄을 서서 기다렸다. 청량리역측은 이날 임시열차 9편을 증편했으나 경춘ㆍ중앙선은 매진사태를 빚었다. 이날 청량리역을 빠져나간 인파는 2만2천여명으로 집계됐다.
  • 「살신」 청원경찰의 꿈/노주석 사회부기자(현장)

    ◎육교 설치 입버릇처럼 외우더니… 청원경찰로 24년동안 묵묵히 일해온 주태진씨(49)는 23일 하오11시5분쯤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휘경역 건널목을 지키다 건널목을 무단횡단하던 윤모씨(32)를 몸을 던져 구해내고 자신은 달려오는 열차에 부딪쳐 그 자리에서 숨졌다. 「법 없이 살 사람」으로 불려온 주씨는 평소 말수가 적어 그속을 헤아리기 어려웠지만 맡은 책임을 다하고 이제는 차디찬 시신이 되어 병원 영안실에 누웠다. 그의 주검앞에는 졸지에 미망인이 된 부인 이영순씨(43)와 세자매가 흐느끼고 있다. 주씨가 숨진 건널목은 하루평균 10만명이상의 주민이 이용하고 있고 인천에서 의정부를 왕래하는 전동차만 5백대를 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복잡한 건널목이다. 그러나 이곳을 지키는 것은 하루 24시간을 줄곳 격일제로 근무하는 청원경찰 3명과 너비 21m의 도로 양쪽에 설치된 길이 10m의 차단막 2개가 전부. 지하철1호선 휘경역사 바로 앞에 있는 이 건널목의 차단시설은 왕복 2차선 도로를 지나는 차량의 행렬과 차도 가장자리에 마련된 인도로통행하는 보행자들을 열차사고의 위험으로부터 지키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한 것 같았다. 실제로 지난 1년반 사이 이 건널목에서는 10여건의 크고 작은 건널목 사고가 일어나 3명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는 피해를 냈다. 지난86년 6월부터 이곳에서 일해온 주씨는 평소에도 늘 『이 건널목에는 육교를 세워야 사고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왔다고 남은 동료들은 전했다. 지난해에는 철도청측에 『이곳에 육교를 설치해 주든지 아니면 보행자용 차단막이라도 설치해 달라』고 건의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8년전부터 함께 근무해 온 김영길씨(49)는 『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을 청원경찰 3명의 힘으로 지키는 것은 무리…』라며 동료의 죽음앞에 말끝을 잊지 못했다. 이웃 주민 김모씨(37ㆍ여)는 『아이들이 하루에도 십여차례씩 이곳을 지나다닐 때마다 마음을 졸여왔다』면서 『더 큰 사고를 막기 위해서라도 주민들의 숙원인 육교를 꼭 설치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붉은 광장」선 시민들 반공시위/소 28차 당대회 이모저모

    ◎“2류국 전락위기”고르비,개혁 촉구/급진파,탈당 연기… 보수파도 의장직 도전 자제 ○신형투표기 설치 ○…소련 전국에서 4천6백83명의 대의원이 참가,불참자가 26명에 불과한 가운데 2일 개막된 소련공산당 제28차 당대회가 열리고 있는 크렘린궁 회의장에는 투표기가 설치돼 과거 대회와는 크게 변모된 모습. 즉 과거 수십년간 기계적 거수기역할에 머물러왔던 대의원들이 이제는 남의 눈을 의식치 않고 자신의 양심에 따른 표결을 할 수 있게된 것. 이 신형 투표기를 이용한 첫번째 표결에서는 당이 인민에게 책임을 지는 구조도입문제를 회의일정에 포함시키자는 제안에 대해 3천4백17명의 대의원들이 반대,찬성자 1천여명을 누름으로써 보수파들이 승리. ○“공산당을 법정에” ○…당대회 개막과 때를 같이해 크렘린궁이 위치하고 있는 모스크바 붉은 광장 한편에는 3백여명의 시민이 모여 공산당 반대시위를 전개. 「인민에 대한 범죄혐의로 공산당을 법정에 세우자」는 등의 반공산당 깃발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던 이들 시위대는 대의원들을 태운 검정색 볼가승용차 대열이 광장을 통과할때마다 야유를 보내는 모습. 이에 경찰이 개입해 군중들을 차량 행렬로부터 강제로 격리시켰으나 체포자가 있는지는 즉각 확인되지 않았다. ○당통제권 장악 애써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2일 개막된 소련공산당 제28차 당대회에서 자신에 대한 사임요구를 물리치고 자신의 개혁정책을 강력히 비호하는 등 이번 당대회의 통제권을 장악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당초 이번 당대회에 불참하고 공산당에서 탈당하기로 계획하고 있던 소련공산당내 급진세력인 민주강령운동측은 이같은 계획을 연기했다고 밝혔으며 2주전까지만해도 고르바초프를 축출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던 보수파들도 고르바초프에 대적하기 위한 후보를 내세우지 않을 것이라고 기자들에게 밝혔다. 이날 당대회가 개막된지 9분쯤 뒤에 북서부 시베리아지방의 마가단 출신 광부인 블라디미르 블루도프라는 대의원이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데 실패한 책임을 지고 정치국과 당중앙위원회 멤버 전원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음에도 불구,이날 상오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진전사항은 고르바초프의 연설이 아닌 그의 당대회 통제능력인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는 정치국 및 당중앙위의 퇴진 요구안에 대해 자신의 연설이 끝난뒤 이 문제를 검토하자고 제의했으며 4천6백83명의 대의원들은 이를 지지함으로써 위기를 넘겼다. 공산당내 강경파인 이반K 폴로즈코프 신임 러시아공화국 공산당 제1서기는 대회장밖 로비에서 기자들에게 자신은 고르바초프에 맞서 중앙당서기장직 경선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탄광부들은 당지도부가 생활조건 향상에 실패한데 항의하기 위해 이번 당대회 폐막을 하루 앞둔 오는 11일에 당일 총파업을 벌일 것이라고 위협하는 한편,당지도부의 대거 축출,당자산의 국유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당관료제 격렬 비난 ○…고르바초프는 이날 연설에서 소련정부의 많은 공무원들이 그들의 권력과 특권을 보호하는데만 연연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소련정부 및 공산당의 방대한 관료제도를 비판했다. 그는 이어 『우리 자신들은 사회주의로부터 스탈린주의 색채를 제거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동구권의 강경공산정권의 붕괴를 비호하고 『소련이 급격히 2류 강대국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급진적 개혁은 필수적인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는 구체적 제안을 거의 내놓지 않았으나 공산당원들에게 ▲고급두뇌 및 인력의 해외유출 중단 ▲외국자본의 유입을 위한 정부의 농기계 생산독점 종식 법안의 통과 ▲소련화폐에 세계시장에서의 태환성을 조속히 부여할 것 ▲느슨한 기초에서라도 국가를 보전할 수 있는 소연방내 15개 공화국들을 연합시키는 새로운 조약에 관한 협상을 벌일 것 등을 당부했다.
  • 동ㆍ서독 「경제사회 통합」하던 날/베를린=김진천특파원

    ◎“게르만 최고의 날”… 헐린 장벽터엔 환호물결/“마음의 벽도 뚫었다”… 새 독일건설 기대/동베를린 지점엔 자정부터 “환전 인파”/국경표지판ㆍ동독화폐 등 “분단상징”수집 열풍 1일은 드디어 동서독이 하나된 날. 이미 헐려버린 장벽,의미를 상실한 경계선,그리고 새로 이어진 옛길등 분단의 실체를 확인시켜 오던 가시적 장애물은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으며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동서독 주민들간의 마음의 장벽이 말끔히 제거됐다는 점이다. ○「자유왕래」실감 사람도 자동차도 강아지도 그냥 넘나든다. 「자유왕래」 바로 그것이며 이제 베를린은 하나,독일은 통일됐다는 사실을 현장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동베를린 시가지의 분위기도 종전과는 달리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 것도 활기를 찾은 주민들의 모습 때문인 듯 했다. 브란덴부르크문 근처에서 만난 동베를린 거주 베르너 슈바베씨(67)는 「독일인」이된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 동서쪽으로 나뉘어 살던 가까운 친척들이 모두 이자리에 모여 함께 기념사진을 찍어 두기로 했다고전하면서 『잘사는 서쪽의 친척들을 부러워만 하던 시절은 지나갔으며 이제는 우리도 넉넉해질 것』이라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동베를린 시내에서 만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같이 민족재결합의 실현에 환희의 표정을 감추지 않았으며 잘사는 나라 서독인이 된 긍지와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에 넘쳐 있었다. ○45년만에 자유통행 ○…동독측은 동서베를린의 장벽에 설치된 검문소의 철시는 물론 양독사이의 국경선과 서베를린과 동독사이의 장벽검문소,서베를린과 서독을 연결하는 고속도로상의 검문소 등 모든 검문소를 지난 28일부터 철수시켰다. 이같은 조치에 따라 종전 1시간 이상씩 걸리던 각검문소나 국경통과 지점은 30일 일반도로와 마찬가지로 차량소통이 수월하고 자유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동독과 서베를린 사이의 포츠담 검문소의 베르너 니처조장은 『1일부터 실시될 자유통행의 예행연습을 위해 지난 28일부터 검문을 안하고 있다』면서 『1일부터는 검문소직원 5명중 1명만 남기고 모두 다른곳으로 옮길 예정이며 남아있는 1명도 종전과 같은「검문」을 위해서가 아니라 「독일국민」에 대한 서비스를 위해서 머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독에서 가장 먼저 환전을 시작한 은행은 서독의 도이치방크 동베를린지점. 도이치방크는 동베를린 중심부인 알렉산더 광장 바로옆 건물에 사무실을 얻어 1일 0시 동베를린지점 개설과 동시에 환전을 개시했다. ○휴일없이 환전업무 도이치방크 동베를린 지점 앞길은 은행이 문을 열기전부터 환전을 하기위해 몰려든 동독인들의 행렬로 꽉 메워졌으며 각국에서 몰려온 보도진들은 역사적인 최초 환전모습을 스케치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라이너 그램제 지점장은 『오늘을 위해 15일전부터 준비를 해왔으며 2일 자정까지 48시간 쉬지않고 환전업무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동독의 시중은행인 스파르타카스은행의 90개 지점과 폴크스방크의 20개 지점등 동베를린내 1백10개 은행지점들은 휴무일인 30일에도 은행예금 확인증을 발부하기 위해 정상근무를 했다. ○“고액예금주는 보고” ○…동독 의원들은 거액을 모은 전 공산당 간부들이 화폐개혁으로이익을 챙기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의 하나로 10만마르크 이상의 구좌를 갖고 있는 예금주들의 이름을 보고하도록 국영은행에 요구. 관리들은 동독인들이 서독 마르크를 손에 쥐면 흥청망청 낭비,인플레를 일으키지 않을까 우려하면서 검약을 거듭 당부. ○백화점엔 쇼핑 행렬 ○…역사적인 동서독 경제ㆍ통화통합을 하루 앞둔 30일 동독의 상점들에는 몇시간만 지나면 무용지물이 될 동독 마르크화의 잔여분을 자정이전에 다 소비하려는 동독 주민들로 북적댔다. 동베를린시 중심에 있는 알렉산더 광장에는 주머니에 남은 잔돈을 처분하려는 사람들로 시끌벅적 했으며 루마니아 출신 집시들과 상인들은 광장 곳곳에 물건을 실어나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또한 거리의 악사들도 쇼핑객들을 위해 음악을 연주,축제분위기를 더욱 돋우기도. ○…동베를린시내 첸트룸 백화점 근처에는 엄청나게 싼 가격에 판매되는 동독제 의류를 사기 위해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동쪽」고객맞자 채비 ○…서베를린 백화점과 가게들은 다음주부터 새돈(서독 마르크)을가지고 몰려들 「동쪽」고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만반의 대비. 동독인들은 새돈으로 장난감ㆍ식생활용품을 비롯,컬러TV와 VTR등 전자제품을 주로 구입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서베를린의 소규모 가게들은 직원들의 휴가까지 미루며 D데이를 준비하고 있다. ○…1일을 기해 동서국경이 철폐됨에 따라 국경에서의 여행자 검문이 사라지게 되는데 경비초소나 장애물 등은 기념물로 보존될 전망. 그런데 국경지대에 설치돼 있던 각종 표지판 가운데 80%가 이미 수집가들에 의해 「도난」당한 상태라고. ○…통화통합으로 동독마르크는 이제 자취를 감추게 됐으나 한편에선 이 화폐에 대한 수집붐이 일고 있다는 소식. 특히 동독 마르크 주화의 경우 외국으로부터 주문이 밀려들고 있는데 풀세트는 한화 2백만원 상당에 거래된다고. ◎동ㆍ서독 통화통합조치 ▲서독 중앙은행(분데스방크)은 2백43억마르크(1백47억달러)에 해당하는 6백t의 지폐 4억장과 7억마르크(4억2천4백달러)에 해당하는 동전 5억개를 동독에 있는 13개 주은행에 수송,동독에서 필요한 초기의 화폐수요는 2백50억마르크(1백51억달러)정도로 예상. ▲동독은 3천여개의 은행 본ㆍ지점과 우체국ㆍ철도역ㆍ관광사 등 7천여개 환전소에 이같은 물량의 서독 마르크화를 배부,1일 9시부터 통화교환. ▲2만5천여명의 직원이 있는 동독 중앙은행은 지난 수주일동안 시민 개개인에 은행구좌를 개설해 주기 위한 작업을 벌여 왔으며 서독 중앙은행은 이같은 작업을 도와주기 위해 2백50명의 자문관을 파견. ▲동독의 경제전환에 따른 경제적 동요를 방지하기 위해 총 1천3백억마르크(7백88억달러)가 제공될 예정. ▲현재 동독에는 약 1백30억 동독 마르크가 유통되고 있는데 7월6일까지만 유통가능.〈AP〉 ◎「통합」을 보는 각국표정/시장경제 적응 낙관 동독/몇년간은 고통 겪어 영국/역사적인 변화 시작 일본/번영의 터전을 마련 서독 ○…로타르 데 마이치레 동독 총리를 포함한 일부 세계 정치지도자들은 30일 오는 1일부터 전격적으로 발효되는 동서독의 경제 및 통화통합이 성공을 거두게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데 마이치레 동독 총리는 이날 함부르크에서 가진 주간지 빌트 암 존타크지 최신호와의 기자회견을 통해 『동서독의 경제통화통합은 성공적으로 수행될 것이다. 나는 동독인들이 시장경제로의 전환에 잘 적응해 나갈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의 더글라스 허드 외무장관은 이날 보수당 지지자들에게 행한 연설을 통해 영국은 유럽내에서의 경제통합을 지지하고 있다고 밝히고 독일의 경제통화통합은 『비록 동독인들이 몇년동안은 경제재건의 고통을 겪게 되겠지만 결국에는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나카야마 다로(중산태랑) 외무장관도 『동서독 통일 움직임은 대립의 시기로부터 유럽이라는 질서안에서 협조라는 역사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면서 양독의 통화통합을 환영했다. ○…한스 디트리히 겐셔 서독 외무장관은 동독의 할레시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90년 7월1일은 희망과 결단력 있는 행동의 날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동독인들이 적극적으로 경제통합에 대처해 나갈 것을 촉구했다. 헬무트 하우스만 서독 경제장관도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도처에 산적해 있지만 동서독의 경제통합은 사회보장ㆍ환경보호 그리고 번영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서독의 야당 및 노조 지도자들은 경제통합조치로 인해 동독 노동자들이 절망과 곤란을 겪게 될 수도 있다고 이날 경고했다. ○…미국은 동서 양독간의 경제통합이란 거보가 1일 내딛게 되는 가운데 진행되고 있는 동구권 개편으로 말미암아 그동안 별문제 없었던 외채도입에 새로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금융전문가들이 최근 경고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독일 통일이 미국 기업들에게도 새로운 사업기회를 약속하고 있지만 미정부의 입장에서는 외채를 제때 끌어들이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내다봤다.
  • 미 종군기자 「6ㆍ25 40년」 기고/맥스 데스포

    ◎당시 AP통신 종군기자/“대동강교 넘던 「자유정신」 서울에 생동”/남하행렬 의미 이제야 이해 나는 1950년 서울을 처음 방문했다. 당시 적으로부터 서울을 탈환하기 위해 시가전을 벌이는 미군과 함께 걷거나 차를 타고 서울을 들어오게 됐는데 그 방문은 나에게 우울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이제 40년이 흘러 다시 방문한 서울은 나를 사로 잡을 만큼 황홀하다. 이처럼 변한 서울을 보니 40년전에 일어났던 수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간다. ○개전 2주에 서울 특파 1950년,나는 로마주재 AP통신기자로 일하다 귀국명령을 받았다. 6월 중순 뉴욕에 도착한 나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일하도록 전보됐다. 25일 북한군이 38선을 넘었고 전쟁이 시작됐다. 나는 즉각 본사로 달려가 종군취재를 자원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하지만 며칠후 본사는 나를 소환해서는 『아직도 종군취재를 원하느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나는 즉각 「그렇다」고 대답했고 15분뒤에 내 여권은 군허가를 받기 위해 워싱턴으로 보내졌다. 여권을 받고 이틀뒤 나는 도쿄로 향발했다. 도쿄에서 종군취제에 필요한 승인절차와 군복지급을 받기 위해 오래 기다렸다. 이윽고 전쟁발발 2주만에 나는 한국에 도착,서울에서 후퇴하는 군대와 합류했다. 그뒤 나는 3년동안 진퇴를 거듭하는 유엔군을 따라서 전장을 누비벼 수많은 일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내가 전투를 취재하기 시작한 것은 미군 제24사단 34연대의 대전전투였다. 대전에서는 시가전이 어지럽게 벌어지고 있었다. 좁은 가로에서는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를 저격탄이 날아다녔다. 가장 치열한 시가전은 인천상륙작전후 서울에서였다. 서울로 진격하는 곳곳에서,그리고 서울시내에서는 한걸음을 진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치열한 전투를 치러야 했다. 나는 여기서 하나의 비극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화선이 교차하는 주택가의 길가운데 한 가족이 갇힌 채 전투지역을 벗어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들이 갖고 있던 물건들은 길위에 어지럽게 흩어졌다. 한 늙수그레한 남정네가 당황한 표정으로 길가운데 있었고 그 옆에는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아들을 어르고 있었다. 나에게는 그 모습이 영영 잊혀지지 않는다. ○철교사진으로 퓰리처상 미 해병들은 간선도로에서 조차 터널 방공호 참호 등을 폭파시키면서 진격해야 했다. 어떤 도로에서였다. 저격탄에 해병대원이 쓰러지면서 진격이 멈췄다. 처음에는 어디서 저격탄이 날아왔는지 몰랐으나 곧 나무등걸뒤에 숨어있는 군인의 어깨와 머리가 발견됐다. 그는 재빨리 총을 쏘고 나무 뒤로 숨는 것이었다. 그를 향해 집중사격이 가해졌고 마침내 그가 갖고 있던 탄약대가 폭발하면서 그는 끝장났다. 내가 서부전선에서 영국군대와 함께 있을 때였다. 공륜작전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급히 지프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저녁 늦게 도착하자마자 제187전투연대 본부에 종군취재를 신청했다. 새벽 5시 정각 공수부대원들과 함께 0630기에 올랐다. 출발하기까지의 짧은 시간동안 카메라등 장비를 안전하고 사용하기 편리하게 보관할 장비를 마련해야 했다. 비행기에 오르자 곧 공수부대원들을 인터뷰했다. 나는 취재수첩을 조종사에게 주면서 가까운 AP특파원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뒤 내 옆자리의 젊은 대원으로부터 낙하방법을 배웠다. 그는 나에게 점프한 뒤에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 고공 7백피트 상공에서 적후방으로 낙하했다. 낙하에는 30초가 걸렸다. 나는 이전에 단 한번도 점프한 적이 없었지만 안전하게 내렸다. 임무는 북한군이 북송하는 한국군및 미군포로를 실은 기차를 가로채는 것이었으나 기차는 예정보다 일찍 통과해 버렸다. 우리는 그곳에서 대규모 적들을 만나 전투를 치렀다. 1주일동안 버틴 끝에 탱크를 앞세우고 진격하는 미군을 만나 구조되기도 했다. 승리하는 쪽에 있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다. 내가 3사단을 따라 동해안을 북진할 때 그랬다. 3군은 평양에 입성한 뒤 안주를 거쳐 압록강으로 진격했다. 그러나 중국군이 몰라닥쳐 공격해 왔다. 미군과 한국군은 후퇴하기 시작했다. 모든 군수송차량은 부교를 이용,대동강을 건넜다. 나도 3명의 특파원과 지프를 타고 건넜다. 얼마뒤 강하류에 수많은 피란민이 밀려 들었다. 이들이 그곳을 피할 수 있는 길을 폭격으로 교판이 부서진 대동교의 아치를 이용하는 것 뿐이었다. 그들은 마침내 아치를 기어오르내리며 폭격으로 뒤틀어진 아치를 따라 건너기 시작했다. 당시는 지독하게 추웠다. 나는 장갑을 끼고 있었지만 손가락이 곱아 카메라는 겨우 겨우 작동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그 처절한 피란행력의 뜻이 새삼스럽게 이해된다. 지금 남한에는 그들의 땅도 재산도 친척도 남겨두고 자유를 찾아 월남한 많은 이북사람들이 살고 있다. 부서진 대동강 철교난간을 타고 피란길에 오른 그 사진으로 나는 나중에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제 나는 그 사진이 다른 사진들과 함께 한국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한국인에게 낮익은 것이 된 것을 알게 돼 더욱 영광스럽다. ○활기와 확신의 한국으로 나는 53년 상처로 가득한 한국을 떠났다. 나는 77년 다시 한국을 방문,달라진 한국의 모습을 보았다. 건축공사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고 거리에는 생동감이 넘쳤다. 하지만 이제 다시 한국을 보니 내 눈을 의심할 지경이다. 나는 한국의 또다른 면모를 보고 있다. 새빌딩들의 모습은 정말 멋있다.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 교통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거리에는 차량의 홍수가 이어지고 있다. 거리는 생동감과 활기로 넘치고 있다. 이번에 관공서와 군부대를 방문하면서 나는 특히 관리들과 군장교들의 당당한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노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눌 때나 민간기업,혹은 정부의 관리들을 만났을 때 확신에 찬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수많은 한국인들이 월남하도록 만든 그 정신과 원칙이 남쪽에 살아 있음을 느꼈다. 이것이 40년전 겪어야 했던 역경을 극복하는 밑거름이었음이 분명하다.
  • 생산적 「놀이문화」가꾸자/황산성 변호사(서울시론)

    ◎해외서까지 민족자존심 먹칠해서야…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노나니』 오늘날 우리는 이 노래를 그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병풍삼아 잡동사니 쓰레기를 어지러이 깔고 찢어지는 굉음을 내는 육성기를 손에 든채 얼굴이 취한 꼴불견의 춤추는 사람을 연상하게 된다. 노는 것이 심신을 단련하기 위하여 젊었을 때 특권이요,동시에 휴식이라는 숨은 뜻이 더 엿보이는 멋있는 가락이 왜 민족적 발악으로 들리거나 허송세월한 노인들의 넉살맞은 한풀이로 들리게 될까. 노는데에도 나름대로의 어떤 정신이 분명해야 하고 질서와 절제가 뒤따르며 기쁨과 보람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노는데에도 「정신」 필요 해외여행이 전면 자율화된지 1년이 되었다. 작년 한해 무려 1백20여만명이 관광차 해외를 다녀왔다. 해외여행은 견문을 넓히고 외국의 문화와 역사,관습을 직접 보고 배우는 좋은 기회다. 그런데 우리는 해외여행하는데 지나치게 경비를 지출할 뿐아니라 보신재 등 이상한 물건을 턱없이 많이 사오거나 엉뚱한 짓만 하다가 창피를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사람 사는 곳은 세계 어느곳이든 기본적 예절과 자세가 엄연히 존재한다고 할 것이다. 이에 벗어난 작태로 인하여 국가와 민족적 자존심에 손상을 주게 된다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해외여행을 통하여 각 개인이 알차고 풍부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기회가 될 수 있고 나아가 세계 속에서 우리의 위치와 입장을 더욱 분명히 알고 우리의 시야를 넓히는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뚜렷한 목적의식이 없다면 차라리 기분전환이라도 잘 하면 다행이다. 그동안 우리는 산업화 과정의 와중에서 주당 가장 긴 시간을 일하는 민족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최근 휴일수를 늘려달라는 소리가 높아졌다. 일본이 아직도 세계 최강국의 위치를 잃지 않는 근본적 이유 중의 하나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맡은 일에서 손을 떼지 않고 그야말로 일 중독자로서 일 자체에서 일과 휴식을 같이 즐기는 젊은이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소비부작용 부채질 우리는 수출부진,무역적자,심지어 대기업들의 조업중단,기술투자마비등 어려운 여건임에도불구하고 세계 최강국들의 틈바구니에서 너무 잘사는 사람들의 흉내를 내고 있지는 않는지. 휴식은 생산의 충전기간이다. 서독사람은 출근해서 업무에 돌입하기까지 5분이 걸리고 일본인은 15분이 걸리며 우리는 45분이 걸린다고 한다. 쉬면 쉴수록 생활리듬은 깨지고 과소비의 부작용을 부채질하여 다음의 업무에 막대한 지장이 온다는 심각한 얘기다. 공휴일이라고 하여 생명이 위독한 환자에 대한 수술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여 환자의 목숨을 앗아간 최근의 사건이 바로 그 단적인 예이다. 공휴일을 더 요구하거나 더 늘리기 이전에 공휴일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에 대한 국민생활 전반에 걸친 합리적 운영계획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흥청망청 놀아나는 세태에 대한 반감과 자극으로 인하여 10대 남녀청소년들이 떼강도짓을 하여 유흥비 마련을 하고 있지 않는가. 『남따라 장간다』고 혼자 조용히 명상하며 자신을 반성하고 점검하는 순간을 휴식이라고 여길 수 없는 조급함과 경솔함이 만연하여 남들 노는틈에 끼어야 노는 맛을 느끼게 되는 군중심리로 휴일의 차량행렬은 교통참극을 빚는게 일상화 되었다. 게다가 술이 노는 데 필수적 기호품이 되어버렸다. 100% 알코올에탄올로 환산하여 연간 국민1인당 알코올소비량이 3ℓ를 넘으면 위험수위라고 하는데 우리는 7ℓ라고 하니 이미 술이 심각하다는 차원에서도 벗어났다할 수 있겠다. 술집마담이나 여종업원과의 육체관계는 돈으로 살 수 있는 정도이고 술김에 놀아난 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는 초실정법적 법집행의 결과를 낳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드디어 우리사회에서 술로 인하여 새로운 성계층문화가 형성되어가는 타락한 현상을 드러낸 셈이기도 하다. 우리는 문화공간을 찾아서 정서를 순화시키는 귀한 시간도 가져야 한다. 특히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관찰함으로써 우리조상의 얼과 숨결을 느낄수 있다. 문화유산은 민족의 영원한 자산이고 자랑임을 알아야 한다. ○문화유산보존 관심을 따라서 역사의 교훈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은 잘 보존해야 한다. 최근 우리는 개발이라는 논리에 밀려 문화재들이 사라져 가고 있고 혹 보존한다 하더라도 시멘트칠로서 보수하는등 문화공간을 파괴하는 실정이다. 노는 중에도 각 개인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최대한 발휘하되 다른 사람의 눈에 거슬리는 짓은 삼가하자. 이제 우리는 정치ㆍ경제적 발전에 상응하는 국민의 문화복지 수준의 향상을 위해서도 놀이문화에 대한 새로운 검토와 각성이 절실하다고 할 것이다.
  • 리투아니아공 위기 국면/소,탱크 등 1백대ㆍ공수부대 1천명 투입

    【빌니우스ㆍ모스크바 AP AFP 연합】 크렘린이 리투아니아공화국의 독립요구에 대응,군사조치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24일 소련의 탱크와 장갑차 약1백대가 리투아니아 수도 빌니우스로 진입했다고 현지 목격자들이 전했다. 한편 리투아니아 의회는 이날 새벽 무력을 이용해 소련이 리투아니아 의회를 장악하고 의원들을 체포할 경우에 대비,리투아니아 의회의 권한을 워싱턴주재 리투아니아 외교관인 스타시스로조라티스 2세에게 전면 위임하는 결의안을 의결했다. 리투아니아 의회의 아우드리스 부트카비키우스의원은 리투아니아의회가 이같은 권한위임법안을 통과시킨 이날 새벽 1천여명으로 추산되는 공수부대 병력을 포함 무장군인들을 태운 1백대 가량의 소련군 차량대열이 빌니우스시 중심가 간선도로를 따라 이동하는 것을 몇몇 시민들과 함께 목격했다고 말했다. 현지 시민들은 이날 새벽 빌니우스시내로 진입해 리투아니아 의회 건물을 끼고 통과한 소련군 차량행렬이 탱크와 장갑차들이라고 전했다. 부트카키비우스의원은 당시 차량에 타고 있는 소련공수부대원들은 이 차량 행렬이 빌니우스 북서쪽 75km 떨어진 요나바시에서 빌니우스 북부 시아우레스 미에스텔리스의 군부대로 이동하는 길이며 1천명의 공수부대원들이 이 차량행렬에 타고 있음을 알렸다고 말했다. 리투아니아 의회의 일부 의원들은 이같은 결의안을 통과시킨 직후 의회 건물 밖으로 나와 약 1백m 떨어진 간선도로위를 소련군 차량행렬이 통과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카지미에라 푸룬스키네 리투아니아 총리는 소련군 이동과 관련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무장장갑 차량들은 대체로 한밤중에 도심 한가운데로 들어오지는 않는다』고 의회에 모여있는 기자들에게 말했다. 한편 발트지구 소련국경부대장 발렌틴 가포넨코는 이날 반란 가능성에 대비해 리투아니아 국경을 따라 소련군 병력이 추가로 배치됐다고 말한 것으로 소련관영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 카슈미르 사태 악화/인군 발포… 60명 사망

    【스리나가르(인도) UPI 로이터 연합】 인도보안군이 1일 카슈미르지구의 독립을 요구하는 회교도 시위군중들에게 발포,적어도 60명이 사망하고 수십명이 부상함으로써 2년전 전투적 분리주의 운동이 시작된 이래 최악의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국영방송 보도와 목격자에 따르면 이날 유혈사태는 스리나가르와 그 주변의 도시들로부터 모여든 1백만까지로 추산되는 군중들이 스리나가르시에 모여들어 지난 47년의 인도독립 이래 최대 규모의 카슈미르지구 반인도시위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발생했다. 시위군중들은 각처에서 도보나 또는 차량편으로 행렬을 이루어 49년의 첫 인도­파키스탄 전쟁 당시의 휴전선을 감시하고 있는 유엔군 감시단 본부쪽으로 행진하고 있었는데 하오 2시께 약 2천명의 군중들이 반인도구호를 외치며 스리나가르의 한 교외에서 유엔군 사무소쪽으로 행진하던 중 보안군과 충돌한 것을 비롯,각처에서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 30만 시민,“리가초프 퇴진”요구/소 당중앙위ㆍ시위 현장

    ◎시위행렬 1㎞… “루마니아 잊지말라”경고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래 최대규모 시위에 참석한 군중들은 4일 모스크바 시내 고리키공원을 출발,60열 횡대로 1㎞이상 늘어서 시내 중심가를 행진했는데 일부 시민들은 흰색과 붉은색ㆍ청색이어우러진 볼셰비키 혁명전의 대형 제정러시아 국기를 흔들기도 했다. ○제정러시아기 등장 시위자들은 행진 도중 강경보수파 지도부 퇴진,헌법6조 폐기등의 구호와 함께 『당 간부들은 루마니아를 기억하라』고 외쳤으며 집결예정지인 마네츠 광장으로 향하기 앞서 5일 개막되는 당중앙위전체회의가 열릴 크렘린궁 앞에 잠시 멈춰 급진적 개혁을 촉구하는 「위력 시위」를 벌였다. ○경찰들도 제지안해 ○…모스크바 경찰은 이날 마네츠광장으로 이어진 8차선 도로를 가득 메운 군중들의 행진을 제지하지 않았는데 일부 사복 경찰들이 외곽의 차량 통행을 통제,모스크바 시내 중심가는 하나의 거대한 보도로 변했다. 경찰은 가두행진으로부터 집회 해산까지 5시간이 넘게 지속된 이날의 평화적 시위를 그저 지켜보았을뿐어떤 충돌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가두행진을 마치고 크렘린궁 바로 옆에 위치한 마네츠광장에 집결한 30여만명의 시위자들은 수천명의 경찰관들이 둘러싼 가운데 집회를 시작했다고 모스크바 라디오방송이 보도. 시위자들은 본 행사에 들어가기 앞서 최근 발생한 남부 아제르바이잔공화국의 민족분규로 사망한 수백명의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을 거행,거대한 광장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시위에 참가한 군중들은 시내의 고리키공원에서부터 행진을 시작,크렘린궁의 바로 옆에 있는 마네츠광장으로 집결했는데 집회에 모인 군중들은 공산당내의 보수파거두인 정치국원 예고르 리카초프를 겨냥,『리가초프는 퇴진하라』고 외쳤으며 집회장으로 통하는 지하철역등에는 리가초프와 「그의 일파」가 권력장악을 바라고 있다고 비난하는 내용의 유인물들이 뿌려졌다. ○타스통신,시위비난 ○…소련 TV방송은 이날 시위를 광범위하게 보도하면서 『페레스트로이카가 당을 휩쓸고 있으며 보수파 구지도자들은 현재 거듭된 타격을 입고 있다』고 강조.모스크바 라디오 방송도 이날 시위에 「동조하는」보도를 통해 당내 개혁파와 무정부주의자,사회 민주주의 운동가들 뿐만 아니라 반공산주의자들도 이번 시위에 동참했다고 전하고 그들의 모토는 「모든 민주세력들의 단결」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당내 보수파들의 견해를 대변해온 관영 타스통신은 이번 시위를 비난하면서 시위자들의 지배적 논조가 「파괴적」이며 당국에 대한 「압력과 공갈」로 가득 차 있다고 성토했다. ○미언론 비상한 관심 한편 미국 언론 특히 방송들은 모스크바시민들의 개혁지지 시위 하루뒤인 5일에 개막되는 소련공산당 중앙위 전체회의에 비상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ABC,CBS,NBC,CNN등 미국을 대표하는 각방송들은 피터 제닝스,댄 래더,톰 브로코등 그들 방송국의 간판스타들을 모스크바로 파견,임시방송센터를 마련. ○“체코시위와 유사” ○…작년 11월 프라하에서 체코의 민주화 시위를 지켜봤던 모스크바의 외국인 목격자들은 이번 시위가 체코공산당의 권력독점 종식을 이끌어낸 당시의 군중시위와 유사한 분위기를 띠었다고 전했다. ◎“소 공산당 생사기로에” ○…당 중앙위의 한관리는 5일 현재 소련공산당이 처한 입장을 「당을 위한 사회주의」냐 아니면 「사회주의를 위한 당」을 만들 것이냐의 기로에 서있다고 표현. 그는 한 영국 TV와의 회견에서 이같이 말하고 소련공산당은 이제 생과 사의 갈림길에 와 있다고 말했다. ○“급진세력과 제휴를” ○…소련의 급진개혁주의자인 전 정치국원 보리스 옐친은 5일 소련 국민들은 이제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서기장에게 싫증을 느끼고 있다고 말하고 만일 그가 급진세력과 제휴하지 않는다면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옐친은 이날 스페인의 일간 엘 문도지와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말하고 소련공산당은 『스탈린주의 체제가 남긴 최악의 재앙』인 정치적 권력독점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역설. 그는 『고르바초프는 지금까지 좌익이나 우익가운데 어떤 세력을 택할 것인지를 밝히지 못했다』고 지적,『소련 국민들은 이제 그에게 싫증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 설 연휴 차분… 귀경길 북적/상가 대부분 철시

    ◎역ㆍ터미널 밤늦도록 인파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인 올해 설날 연휴 3일간은 모처럼 고유의 민속명절 분위기를 되찾아 차분하고 조용했다. 산뜻한 설빔차림에 선물꾸러미를 들고 고향을 찾은 시민들은 귀성나들이의 번잡스러움도 잊고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모여 차례를 지내고 웃어른들께 세배를 드린 다음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서울거리의 상가는 모두 문을 닫았고 도심거리는 텅비었으며 시골에서는 동네마다 농악놀이ㆍ윷놀이ㆍ널뚜기ㆍ연날리기 등의 세시풍속이 되살아나 한결 명절분위기가 돋보였다. 서울을 비롯한 도회에서도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고궁ㆍ극장가ㆍ유원지 등을 찾는 시민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서울거리는 거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은데다 차량통행이 크게 줄어 한산했고 극장가와 덕수궁ㆍ경복궁 등 고궁에는 상오부터 평소보다 3∼4배나 많은 5만여명의 시민들로 붐볐다. 또 이날 이른 아침부터 동작동 국립묘지에는 3만5천여명,망우리공동묘지에도 신정때보다 4배가 많은 2천여명의 성묘객들이 줄을이었고,임진각 망배단에서는 실향민들이 철책앞에 차례상을 펴고 북녘을 향해 절을 올리며 실향의 아픔을 달래기도 했다. 설난연휴 끝날인 28일은 계속되던 강추위가 누그러진 가운데 하오부터 고속도로와 국도에는 귀경차량이 몰리기 시작,교통체증현상을 빚었다. 설날연휴를 끝낸 귀성객들은 이날 상오부터 귀경길에 오르기 시작,하오부터는 경부ㆍ호남ㆍ중부ㆍ영동고속도로와 일반 국도에는 차량이 줄을 이었으며 하오5시가 넘어서면서 각 고속도로가 서로 만나는 신갈ㆍ회덕인터체인지 등지를 심한 교통체증현상을 빚어 평소보다 1∼2시간씩 귀경시간이 더 결렸다. 귀경행렬은 이날 자정을 넘어 29일 새벽까지 계속돼 서울역을 비롯한 각 열차역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및 시외버스터미널 등지에는 귀경객들로 크게 붐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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