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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혁 변호사의 행정법 판례 강의] 지하철역과 건물사이 연결통로 도로점용료 상당의 변상금 가능한가

    도로는 공물에 해당하고, 이는 일반인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그런데 일반 사용과는 달리 공물의 특정 부분을 특정한 목적으로 어느 정도 배타적·계속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고, 이를 특별사용이라 한다. 특별사용을 위해서는 도로의 관리청으로부터 도로점용 허가를 받아야 하고, 그 허가는 재량행위의 성격을 갖는다(대판 2005두1329).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도로점용 허가를 받은 특별사용의 경우 도로점용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도로점용 허가를 받지 못하고, 사실상 도로를 점용하여 특별사용하고 있는 자에 대해서는 도로의 관리청은 점용료의 100분의 120에 상당하는 변상금을 부과할 수 있다(도로법 제94조). 도로의 이용관계 중 일반사용과 특별사용의 구분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 중 하나가 지하철역과 인근 건물의 연결통로 부분이다. 지하철역 연결통로는 공중의 교통에 이용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음은 물론이지만, 인근 건물에 출입하는 사람들의 통행로로 이용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 경우 어떤 기준에 의해 도로점용 허가를 필요로 하거나, 도로점용 허가를 받지 않을 경우 변상금을 부과할 수 있을 것인가.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과 갑 건물의 연결통로는 갑이 공사를 하여 기부채납하였고, 유지관리를 갑이 담당하고 있으며, 일반시민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항상 개방하였다. 하급심 판결에서는 갑의 사옥을 통행하는 사람들 외에도 일반 시민이 이를 이용하여 왔으므로, 갑의 독점적 사용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하여 도로점용료 상당의 변상금 부과처분을 위법하다고 판단하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하 연결통로의 주된 용도와 기능이 주로시민의 교통편익을 위한 것이고 이에 곁들여 원고 건물에 출입하는 사람들의 통행로로도 이용되고 있는 정도라면 일반사용에 해당하지만, 그와 반대인 경우에는 특별사용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즉, 특별사용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독점적·배타적 점유·사용 여부가 아니라, 주된 기능과 용도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고 설시한 것이다(대판 90누8855). 위 판결 외에도 ①도로 위에 건축된 지하 1층, 지상 17층의 낙원상가아파트 건물은 도로 위에 건물이 설치되어 있고, 1층 공간에는 일정 간격으로 지주가 배열되어 있으며, 그 사이로 형성된 터널 중앙에 차도가 설치되어 있는 경우(대판 96누7342), ②차도와 인도 사이 경계턱을 없애고 건물 앞 인도 부분에 차량 진출입 통로를 개설한 경우에 대하여 특별사용으로 보고, 변상금 부과가 적법하다고 판단하였다. 반면 ①선릉역에서 지상 테헤란로로 나가는 일반 시민들이 주로 이용하고 이에 곁들여 인근 건물에 출입하는 사람들이 이를 이용하고 있으며, 건물 출입자들로 인하여 일반 시민들이 불편을 감수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지하철 연결통로 중 확장 부분(대판 94누3766), ②을지로입구 전철역과 인근 롯데백화점의 지하 연결통로 설치와 병행하여 통행의 편의를 증진시키기 위해 연결통로 쪽으로 올라가는 기존 출입 계단에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한 부분은 지하도로의 일반 사용을 위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도로 점용료 상당의 변상금 부과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하였다. 판례들을 종합하면, 도로 또는 연결통로의 주된 기능과 용도가 건물 출입자들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일반 교통자들을 위한 것인가, 건물 출입자들의 도로 또는 연결통로 사용으로 인해 일반 교통자들에게 불편을 끼치는가 등의 기준에 의해 도로 또는 연결통로의 특별사용, 변상금 부과처분의 적법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세계 최악의 평행주차’ 영국판 김여사 보니…

    이번에는 ‘영국 김여사’ 얘기다. ‘세계 최악의 평행주차 시도’ 라고 명명된 동영상이 온라인에서 100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오렌지뉴스는 4월 30일(현지시간) BBC 방송을 인용, 벨파스트에서 주차를 하려는 한 불운한 ‘김여사’ 의 사연을 보도했다. 평행주차를 하려는 ‘김여사’ 의 계속된 시도는 이웃집에서 이 광경을 목격한 학생들의 휴대전화 카메라에 촬영됐다. 학생들은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세계 최악의 평행주차 시도, 즐기세요’라는 제목으로 이 장면을 올렸다. 이 불운한 여성의 주차장면을 본 많은 누리꾼들은 “도대체 저 여자는 무엇을 하는거야” ,“다섯째 날”, “이 바보짓이 20분 이상 계속되고있다”등 다양한 댓글을 올렸다. 30분 이상이 지나 마침내 차가 주차에 성공하자 보고있던 학생들은 기쁨의 함성을 지르고 운전자에게 박수갈채를 보내기도 했다. 시아랜 도허티 학생은 BBC에게 “우리는 주차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기 15분 전부터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정도 공간이라면 큰 차도 쉽게 주차할 수 있을텐데 그녀의 주차실력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형편없었다”고 말했다. 인터넷 뉴스팀
  • “수도권 교통문제 ‘광역교통’ 관점서 풀자”

    서울 송파·강남·강동구, 경기 성남·하남시 등 5개 도시 교통 업무 부서장들이 송파구에 모였다. 위례신도시 등 5개 도시 주변 교통 환경 개선을 위해 서로 긴밀히 협조하고 목소리를 모으겠다는 취지다. 송파구는 최근 5개 도시 교통 부서장들이 참가하는 ‘동남권 지방자치단체 교통 협의회’를 구성하고 첫 회의를 개최했다고 30일 밝혔다. 교통 협의회는 수도권 교통 문제를 한 지역의 관점이 아닌 ‘광역 교통’의 관점에서 진단하고 함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모임이다. 특히 송파구 등 5개 도시는 위례신도시, 하남 감일 및 하남 감북 보금자리 주택 사업, 지하철 9호선 건설, 롯데월드 타워 건설, 동남권 유통 단지 조성 사업 등 굵직굵직한 도시 개발 사업을 공유하고 있어 이들 도시의 입장을 고루 반영한 교통 대책 마련이 필수적이다. 지난 26일 열린 첫 회의에서는 위례신도시 주변 교통 개선을 위한 현안을 논의했다. 위례신도시 주변에는 도로 10곳, 접속 시설 4곳, 철도 시설 4곳, 환승 센터 2곳, 중앙 버스 전용 차로 3곳 등 총 23개 교통 개선 사업이 예정됐다. 협의회는 이미 완료된 2개 사업 외에 복정사거리 지하차도 등 현재 진행 중인 사업 3개와 설계 완료, 사업 계획 변경 과정에 있는 나머지 사업들에 대한 추진 방향 등을 논의했다. 백삼종 교통행정팀장은 “앞으로 송파구에서 주관해 분기별로 정기회의를 개최할 것”이라며 “다음 회의에는 필요에 따라 사업 주체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SH공사 등도 참여시켜 현안을 논의하고 도출된 의견을 관계 기관에 적극 요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유해화학물질관리법·공정거래법 與野 이견… 법사위·정무위 제동

    하도급법이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면서 경제민주화 입법에 물꼬는 트였지만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을 비롯한 몇몇 경제민주화 법안들은 해당 상임위나 법사위에서 제동이 걸렸다. 하도급법과 함께 대표적 경제민주화 법안 중 하나로 꼽히는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은 화학물질 유출 사고로 중대한 피해를 일으킨 업체에 대해 매출액의 10%까지 과징금을 물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과징금 규모 등을 놓고 여야 간 의견 차가 커 법사위는 다음 본회의가 열리는 6일에 소위를 열어 법안 처리를 재시도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재계의 반발로 7일까지인 이번 임시국회 회기 내 처리 전망이 불투명하다.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4개 관련 법안과 가맹점주의 권익보호를 강화하는 가맹사업법 개정안 등은 정무위에 묶여 있다. 대기업 계열사 간 부당 내부거래에 대해 규제를 강화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여야 간 입장차도 크고 재계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추가 논의가 필요하지만 4월 임시국회에서는 정무위 법안심사소위는 열리지 않을 예정이며 6월 국회에서나 논의가 다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비은행금융회사의 대주주 자격심사를 강화하는 금융기관 지배구조법, 금산분리를 강화하는 금융지주회사법과 은행법,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만 돼 있다.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새누리당이 당초 국가의 지급 규정을 의무화한 것에서 ‘국가는 연금 급여를 안정적·지속적으로 지급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로 대체해 의결할 것을 주장하면서 법사위 소위에서 발목이 잡혔다. 한편 ‘진주의료원법’이라고 불리는 지방의료원 설립에 관한 일부 개정안은 지방의료원 폐업 전 중앙정부와 협의를 거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나 여야 간 이견으로 상임위에 묶여 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황용주의 진지한 믿음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

    “황용주의 진지한 믿음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

     여기 문제적 인간이 있다. 족적만 살펴보자. 대구사범학교를 다니다 사회주의 서적을 읽고 독서회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한 뒤 일본 와세다대학 재학 중 학병으로 중국에 끌려간다. 광복군의 일원으로 해방 조국에 돌아와 교육에 매진하다 부산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이 돼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의 시신을 용기있게 보도해 4·19 혁명에 불을 당긴다.   대구사범 동기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시 만나 조국의 암울한 현실에 공분, 5·16 쿠데타와 이후 조국 근대화의 밑그림을 그린다. 미국의 반대 따위는 없을 것이라며 박정희를 부추긴다. 정수장학회를 만들고 방송사 사장에까지 오른다. 곧바로 주체세력의 암투에 휘말려 나락을 경험한다. 1964년에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남북한 상호 체제 인정” 등을 월간 ‘세대’에 실었다가 구속된다. 이후 40여년의 삶은 ‘함께 혁명했던’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추모에 오롯이 바쳐진다.  황용주(1918-2001년) 전 문화방송 사장. 그가 평생 남긴 40여권의 일기를 유족에게서 건네받은 안경환(65) 서울대 법대 교수가 여러 인사의 증언과 자료를 수집해 쓴 인물전기 ‘황용주: 그와 박정희의 시대’(까치 펴냄)를 냈다. 진보진영에 속하며 국가인권위원장을 지낸 안 교수이기에 의외로 비칠 여지도 있다.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택에서 만난 안 교수와의 일문일답.    →책을 내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10년도 전에 일기를 입수했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지.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산 지식인이 그렇게 무덤도 없이 간 것에 대해 아련한 마음이 있었죠. 우리 문화나 정체성이 4·19 이후에야 시작됐다고 보며 일제시대는 우리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게 대세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윗세대에 대해 우리가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고, 특히나 일제 말기 최고의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학병 세대들을 전체적으로 엮어서 시대사를 써볼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려니까 벅차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걸렸어요. 그런데 (황용주씨) 부인(이창희 여사·프랑스 거주) 나이가 90이 넘었으니 기왕 하는 거 10주기에 맞춰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제 평가를 배제하고 그 사람 목소리를, 그 분 입장에서 재현해봐야겠다 그렇게 된 거고요. 그래서 ‘인물전기’라고, ‘평(評)’ 자를 넣지 않은 것입니다. 개인의 기록들을 보니까 다행히 그 시대 분위기를 공부해야 하고, 특히 일본 관련 책들을 많이 봤죠.   일제 말기 사람들의 지적 역량이나 스케일, 능력이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세대보다 훨씬 높더라. 일본 제국의 지적 수준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정하기 싫어하거든요. 그러니 잘못됐다고 생각해버립니다. 후세대들은 내가 모르는 옛날 건 중요하지 않은 거고, 나쁜 거다, 은연 중에 생각하게 됐어요. 후속 세대는 더하더라고요. 심정적으로 동조하면서도 그에 대해 불편한 마음이 많았습니다. 운동가나 정치가는 그럴 수 있겠지만 지식인들이 정보나 지식을 선택적으로 취해 경박하게 판단하는 것을 보고 전 많이 불편했습니다. 요새 말로 좌든 우든 마찬가지입니다. 요새 사람들이 공부를 덜하는구나, 균형 감각이 덜하구나, 우리는 완전히 체화되기 전에 들어오면 말로 다 풀어버리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 쓰는 사람들이 그렇듯 이 작업에만 매달린 건 아니고 다른 책도 준비하면서 조금씩 하느라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난해쯤 낼 수 있었는데 박정희 문제가 걸려 있기에 선거전에 이슈가 되는 건 원치 않아 이번에 내게 된 것입니다.  →황용주와의 첫 만남은?  -1987년에 처음 교수가 된 뒤 찾아 뵜습니다. 외국 생활을 하느라 비었던 공백을 채우고 싶은 욕망 같은 게 있을 것 아닙니까. 학생들이 왜 저런 구호를 내걸까 궁금증이 있었고 한국 사회에 대한 총체적 이해랄까, 그런 차원에서 이문열도 그때쯤 다시 만났고요.  당시 이미 황 선생은 형편이 어려워 제가 ‘문예춘추’ 몇개월치 모아서 드리기도 하고 프랑스 문학 얘기도 나누며 일년에 서너 번, 명절 뒤 인사도 드리고 바둑도 두고 했습니다.  →두 분이 (경남 밀양 출신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  -정치 얘기는 많이 나누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분이 학생 때도 문학을 공부했고, 부산일보 시절 영화제도 만들고 칼럼니스트로 일하면서 제가 공유한 취향을 한 세대 앞서 가지신 분입니다. 난 내 얘기하고, 응 그러냐 그런 거죠. 황용주 하면 떠오르는 게 박정희니까, 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식인으로나 교양인으로서의 제 이미지와 제가 만나본 많은 원로 가운데 가장 잘 맞는 분이었어요.   →역시 자료 수집하고 증언 채취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을 것 같다. 10년 동안 꾸준히 조금씩 하신 것이네요.  -사람들 만날 때마다 묻기도 하고 지나가는 말처럼 던지기도 했습니다. ‘세대’지 관련해서는 많이 증언을 들었습니다. 가능하면 증언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찾으려 노력했고 정 안될 때는 그냥 증언만 실었지만.  인권위원장 그만 둔 뒤인 2010년, 사모님(이창희 여사) 증언 받으러 프랑스를 며칠씩 두 차례 다녀왔죠. 딸(황용주는 프랑스를 동경해 이름을 ‘란서’라 지었다)에게는 단편적으로 한 게 아니라 너 써라, 무조건 써달라고 해서 대학노트 한 권을 받았습니다.  그 양반에게는 단순한 딸이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는 이상의 표현이자 상징이었잖아요. 그런 딸이 문학을 공부하고 싶어하는데도 프랑스에서 이공계를 전공하도록 한 것도 조국 근대화에 기여하라는 뜻이었을 정도였다. 마지막 운명의 순간에 ‘정희야, 란서야’라고 외친 것도 상징성이 크다.  →10년을 매달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 시대 사람들의 고민과 열정을 젊은 세대에게 전달하고 싶었다는 거겠지요.  -네, 크게 보면 김윤식 교수가 해온 일과 비슷합니다. 제가 진보진영에 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데, 황용주는 나쁜 인간으로 평가돼 있습니다. 정수장학회를 만들고. 그렇지만 그 사람의 입장을 들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지 않습니까. 만약 법률가로서 누구의 변호를 맡았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 사람의 다른 얘기를, 판사의 판단을 받기 위해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책을 쓰면서 100% 공감이 안 가서 힘든 구석은 없었는지.  -예를 들어 5.16은 어쨌든 헌법학자 입장에서는 쿠데타입니다. 헌법이 그렇게 정리가 되고. 그걸 혁명이란 이름으로 내세워서, 군인이 권력을 잡아 출세를 하겠다, 사심을 채우겠다고 달려든 사람도 있었겠지만, 황용주는 적어도 지식인으로서 가지고 있던, 한 국가를 전체적으로 개발하는 로드맵으로서 높게 생각하고 정당화시키는데 헌법학자로선, 쿠데타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쿠데타의 결과로서 산업화에 기여한 역사는 현 시점에서 인정할 수 있지만 말입니다. 또 10월 유신(등에 눈 감거나 박정희가 죽은 뒤에) 추모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전두환을 찬양하고 나아가 노태우까지 그러는 건 동의할 수 없었죠.  →다투거나 한 건 아니시죠.  -그러진 않았고요. (웃음) 일제시대의 훌륭한 군인들 얘기 많이 하잖습니까? 그 때 장군들의 스케일과 지적 역량, 신화같은 얘기들. 일정 부분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박정희의 유업을 이어가려면 군인이 더 집권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전혀 용납할 수 없죠. 서로 시대가 다른 사람 얘기하는 거니깐.  그 때마다 바둑이나 두고, 뭐 이렇게 하면서 넘어갔습니다. (웃음) 저도 대학생 때 1급이었는데 나이 차도 있으니까 제가 나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안 그렇더라고요.  →프랑스를 동경해 딸 이름을 지을 정도로 일반적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확고했던 분이 한국적 민주주의를 얘기한 것은 극히 모순되는데.  -그건 이해가 가는 것이 한국이란 사회가 식민 지배 이후 아무것도 없었지 않습니까. 민족적 민주주의라는 말을 누가 먼저 썼는지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군대가 집권해서 공업화를 서두르고 남북한이 유엔 동시가입한 뒤 통일로 간다, 이런 로드맵을 만든 것은 완전히 황용주의 머릿속에서 나온 겁니다. 사회 변혁을 이끌 지식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룹은 군대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실 신생국가의 보편적인 현상이기도 하고, 그렇게 그 사람은 본 거지요. 4·19 다음에 대한 기대가 많았겠죠. 당당히 4·19의 연장이란 주장을 하게 되고 당시 그런 생각에 호응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지요.    황용주는 평생 ‘국민’이나 ‘시민’이라 하지 않고 ‘한반도 주민’이라 불리길 열망했다. 그렇게 평소에 증오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던 즈음에 그가 흥분했던 모습을 안 교수는 어제 일처럼 떠올렸다.    →책을 읽으면서 1947년 마크 게인(281쪽)과 1979년 황용주(459쪽)의 경고는 지금 정확히 들어맞는데요.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면.  -전 역사를 길게 보고 낙관하는 쪽이에요. 연초에 이문열씨와 한 케이블 채널에 출연해 대담하면서 느낀 건데 결국은 진보와 보수 모두 역사의 완결성을 믿지 않잖습니까. 우리 역사가 이만큼 성공했다고 보는 사람이에요. 지금까지 성공한 양상과 속도는 아닐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더 괜찮은 나라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게 무엇이냐?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옆으로 챙기고 같이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전 박근혜 시대에 반감 같은 건 없어요. 개인적으로 박정희 체제에 당했느냐와 역사적으로 평가하는 건 엄연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박정희 시대에 연좌제 피해를 받은 사람이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이니까 안된다’라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습니까. 그건 정치적 연좌제인 거죠. 반대로 박근혜씨는 아버지의 영광만 누리려 하지 말고 ‘그늘’도 같이 받아라고 칼럼에 적었던 것이지요.  →이병주(1921~92년) 평전을 내겠다고 했는데 마음의 빚이라도 있나.  -앞에 학병시대를 얘기한 것처럼 그를 작가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평론을 해보고 싶은 것이다.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읽고 며칠 잠을 못 잘 정도로 큰 감명을 받았는데 지금 보면 문단에 그의 자리는 없다. 중학교 다닐 때 주필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는데 당시 국제신문 주필이 이병주였다. 부산일보 사설과 비교하며 읽고 친구들에게 떠들곤 한 기억이 있다.  대학 때 건방지게 문단에서 대들고 한적도 있는데 다 받아주고 했다. 그런데 5·16 이후 문단이 완전 진보 쪽으로 정리돼 경상도 출신 작가는 모두 전두환과 도매금이 됐다. 또 이병주씨는 문단이나 대학에서 패거리를 이루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우뚝 서 있던 거인이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다. 그를 정리하는 건 좌와 우가 함께 한다는 의미도 있다. 내가 가장 맞춤하다는 데 공감대가 맞춰져 있고 은근히 압력도 가해지곤 한다.    오는 8월 정년퇴임하는 그는 “아무 것도 안하는” 자유로운 삶을 꿈꾸느라 무척 행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걱정거리라면 그동안 읽은 책들을 처분하는 문제, 저자 서명이 담긴 수천 권의 책을 어떻게 처분하느냐 고민하고 있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커버스토리-주부 우울증] 파주서 …청주서… 그녀들의 극단선택 아픈 사연

    [커버스토리-주부 우울증] 파주서 …청주서… 그녀들의 극단선택 아픈 사연

    파주 지난 21일 오후 7시 45분. 경기 파주 119센터에 다급한 목소리의 30대 후반 남성의 전화가 걸려 왔다. “아파트 출입문 번호키를 누르고 현관에 들어서자 아내(32)가 목에 피를 흘리며 왼손에 흉기를 들고 자신과 마주 서 있다”는 신고였다. 아내는 남편에게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우리 애기들 보러 가자”고 말했으나 남편은 두려운 생각에 꼼짝을 할 수 없어 119에 전화를 걸었다. 흉기를 들었다는 말에 전화는 112로 넘어갔고, 5분 만에 강력계 형사들이 아파트에 들이닥쳤다. 아내는 안방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서 왼손에 든 흉기를 목에 대고 있었다. 형사들은 즉시 흉기를 빼앗아 아내를 제압했다. 그러나 만 1살을 겨우 넘긴 큰아들은 이미 침대에 엎드린 채 숨져 있었다. 지난 5일 태어난 작은 아들은 방바닥에 누워 있었으나 한눈에 봐도 위급해 보였다. 두 아들 모두 목 부위에 치명상을 입은 뒤였다. 남편이 쓰레기를 내다 버리고 가게를 다녀오느라 잠시 자리를 비운 시간은 겨우 15분이었다. 그 짧은 틈에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119구급대가 즉시 큰아들 손목을 잡고 가슴에 귀를 댔으나 맥박이 잡히지 않았다. 가쁜 숨을 쉬는 작은아들은 급히 일산백병원으로 이송했으나 같은 날 밤 10시 15분 끝내 숨졌다. 아내는 지난해 1월 큰아들을 임신 중일 때부터 성격이 급변했다. 이름을 불러도 잘 듣지 못하고 웃지도 않았다. 서울아산병원을 찾았다. ‘임신 우울증’이라고 했다. 약을 먹고 치료를 받자 금세 좋아졌다. 그러나 이달 초 둘째를 낳은 뒤 재발했다. 친정아버지가 찾아와 딸의 이름을 불러도 다른 곳을 쳐다보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남편은 경찰에서 “심각하다. 다시 병원을 가야겠다 생각했는데 사고가 난 것”이라며 좀 더 빨리 병원을 찾지 않은 자신을 원망했다. 산후조리원에서 좀 더 지내지 못한 것도 후회가 됐다. 병원 정신과폐쇄병동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아내는 아직 아들 둘이 숨진 사실을 모르고 있다. 청주 지난 2월 21일 오전 8시 20분 충북 청주시 흥덕구 분평동의 한 아파트. 주부 이모(42)씨는 남편이 출근한 이후 갑자기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급습했다. 안방에서 주방으로 나와 싱크대에 보관하던 식칼을 꺼냈다. 자살을 결심한 이씨는 안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딸(11·초등 4년)을 본 순간 딸의 걱정이 밀려왔다. 자신이 하늘나라로 가면 엄마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할 딸의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이씨는 딸도 함께 죽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평소 엄마를 잘 따르고 착했던 딸은 죽어도 천당에 가서 지금보다 행복할 것만 같았다. 결국 이씨는 잠자는 딸의 목을 흉기로 한 차례 찌른 뒤 자신의 목을 수차례 찔러 자해를 시도했다. 방에 있던 아들(15)이 동생의 비명소리를 듣고 나와 이 광경을 목격하고 119에 도움을 청했다. 중학교 2학년인 아들은 침착하게 엄마와 동생을 지혈했고, 신속하게 출동한 구급대원들이 병원으로 이송해 모녀의 목숨을 구했다. 끔찍한 이날 사건도 이씨의 우울증이 가져온 참극이었다. 이씨에게는 결혼 후 2007년 약간의 우울증 증세가 찾아왔다. 결혼 전 있었던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해 몸의 움직임이 둔해지면서 남들보다 뒤떨어진다는 절망감이 누적돼 왔던 게 원인이었다. 이씨는 11차례 병원 치료를 받고 상태가 호전되자 치료를 끊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일 뿐,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절망감은 이씨를 계속 괴롭혔다. 그러던 중 올해 초 청소일을 하기 위해 나가던 어린이집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일을 빨리빨리 하지 못한다는 핀잔을 듣자 이씨의 절망감은 더욱 심해졌다. 이씨는 자책하면서 사고 발생 2주 전 어린이집을 그만뒀고, 이때부터 우울증이 급격하게 악화됐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열등감이 하루종일 계속됐고, 이런 정신적 고통은 불면증으로 이어졌다. 2주 동안 잠을 못 잤고, 음식도 먹지 못했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에서 혼자 먹지 못하는 술까지 마셨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씨는 사고 당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결국 가족들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경찰 관계자는 “자신에 대한 절망감과 사회에서 이씨를 바라보는 그릇된 시선이 우울증을 키운 것 같다”면서 “이런 이씨를 돕기 위해 남편이 곁에서 애를 썼지만 참극을 막지는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된 이씨는 처벌보다 치료가 중요하다는 검찰의 판단에 따라 지난 4일 석방됐다. 조사 과정에서 검찰은 이씨가 우울증을 장기간 치료하지 않다가 병세가 악화돼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씨의 딸도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길 간청했고 남편도 부인을 꼭 치료하겠다며 선처를 당부했다. 영주 지난해 8월 24일 오후 7시쯤. 주부 김모(42)씨는 4살과 2살 난 아들을 데리고 경북 영주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대구 동구 신서동 한 아파트로 향했다. 이 아파트는 김씨가 결혼하기 전 살았던 곳. 아파트에 도착한 김씨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13층으로 올라가 아들 2명을 안고 계단을 통해 투신했다. 투신한 이들 모자가 아파트 앞 화단에 쓰러져 있는 것을 아파트 경비원이 발견, 119구조대 등에 신고했다. 하지만 발견 당시 두 아들은 숨진 상태였으며 김씨는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사망했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의 투신은 우울증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2006년 결혼한 김씨는 안정된 직업을 가진 남편(47)과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늦은 결혼이었지만 김씨 부부는 다른 사람이 부러워하는 잉꼬부부였다. 늘 행복할 것만 같았던 김씨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결혼 3년 만인 2009년이었다. 당시 돌을 지난 첫째 아들이 말을 못하고 이상한 행동을 했다. 처음에는 크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생각하다 아이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자 2010년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진단이 나왔다. 자폐증이라는 것이었다. 김씨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둘째 아들에게도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둘째도 첫째와 비슷한 행동을 보였다. 설마 하고 병원을 찾았으나 발달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첫째 아들이 자폐증이라는 진단을 받은 지 꼭 1년 뒤다. 이때부터 김씨에게 무서운 병이 찾아왔다. 두 아들이 아픈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자책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자책이 우울증으로 이어졌다. 1년 동안 꾸준히 약을 복용했지만 큰 차도가 없었다. 김씨는 주변 사람에게 “나의 잘못이다. 사는 것이 힘들다. 죽겠다”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김씨의 남편은 김씨와 두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씨가 자살하던 날도 김씨의 남편은 2년과 1년여 동안 치료를 했지만 증세가 호전되지 않는 두 아들을 위해 서울의 유명 병원을 찾았다. 아들을 입원시켜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서울 병원 일을 본 뒤 집에 전화를 한 김씨 남편은 부인이 전화를 받지 않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김씨가 평소 “죽겠다”고 한 말이 머리에 스쳤기 때문이다. 처가에도 김씨를 찾아보라고 전화를 했지만 이미 김씨는 두 아들과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하러 가는 길이었다. 경찰은 “김씨가 둘째 아이가 발달장애로 판명난 뒤 우울증을 앓았지만 1년 동안 약만 먹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저자와의 차 한잔] 인물전기 ‘황용주, 그와 박정희의 시대’ 펴낸 前국가인권위원장 안경환

    [저자와의 차 한잔] 인물전기 ‘황용주, 그와 박정희의 시대’ 펴낸 前국가인권위원장 안경환

    여기 문제적 인간이 있다. 족적만 살펴보자. 대구사범학교를 다니다 사회주의 서적을 읽고 독서회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한 뒤 일본 와세다대학 재학 중 학병으로 중국에 끌려간다. 광복군의 일원으로 해방 조국에 돌아와 교육에 매진하다 부산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이 돼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의 시신을 용기있게 보도해 4·19 혁명에 불을 당긴다.   대구사범 동기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시 만나 조국의 암울한 현실에 공분, 5·16 쿠데타와 이후 조국 근대화의 밑그림을 그린다. 미국의 반대 따위는 없을 것이라며 박정희를 부추긴다. 정수장학회를 만들고 방송사 사장에까지 오른다. 곧바로 주체세력의 암투에 휘말려 나락을 경험한다. 1964년에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남북한 상호 체제 인정” 등을 월간 ‘세대’에 실었다가 구속된다. 이후 40여년의 삶은 ‘함께 혁명했던’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추모에 오롯이 바쳐진다.  황용주(1918-2001년) 전 문화방송 사장. 그가 평생 남긴 40여권의 일기를 유족에게서 건네받은 안경환(65) 서울대 법대 교수가 여러 인사의 증언과 자료를 수집해 쓴 인물전기 ‘황용주: 그와 박정희의 시대’(까치 펴냄)를 냈다. 진보진영에 속하며 국가인권위원장을 지낸 안 교수이기에 의외로 비칠 여지도 있다.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택에서 만난 안 교수와의 일문일답.    →책을 내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10년도 전에 일기를 입수했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지.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산 지식인이 그렇게 무덤도 없이 간 것에 대해 아련한 마음이 있었죠. 우리 문화나 정체성이 4·19 이후에야 시작됐다고 보며 일제시대는 우리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게 대세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윗세대에 대해 우리가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고, 특히나 일제 말기 최고의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학병 세대들을 전체적으로 엮어서 시대사를 써볼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려니까 벅차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걸렸어요. 그런데 (황용주씨) 부인(이창희 여사·프랑스 거주) 나이가 90이 넘었으니 기왕 하는 거 10주기에 맞춰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제 평가를 배제하고 그 사람 목소리를, 그 분 입장에서 재현해봐야겠다 그렇게 된 거고요. 그래서 ‘인물전기’라고, ‘평(評)’ 자를 넣지 않은 것입니다. 개인의 기록들을 보니까 다행히 그 시대 분위기를 공부해야 하고, 특히 일본 관련 책들을 많이 봤죠.   일제 말기 사람들의 지적 역량이나 스케일, 능력이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세대보다 훨씬 높더라. 일본 제국의 지적 수준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정하기 싫어하거든요. 그러니 잘못됐다고 생각해버립니다. 후세대들은 내가 모르는 옛날 건 중요하지 않은 거고, 나쁜 거다, 은연 중에 생각하게 됐어요. 후속 세대는 더하더라고요. 심정적으로 동조하면서도 그에 대해 불편한 마음이 많았습니다. 운동가나 정치가는 그럴 수 있겠지만 지식인들이 정보나 지식을 선택적으로 취해 경박하게 판단하는 것을 보고 전 많이 불편했습니다. 요새 말로 좌든 우든 마찬가지입니다. 요새 사람들이 공부를 덜하는구나, 균형 감각이 덜하구나, 우리는 완전히 체화되기 전에 들어오면 말로 다 풀어버리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 쓰는 사람들이 그렇듯 이 작업에만 매달린 건 아니고 다른 책도 준비하면서 조금씩 하느라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난해쯤 낼 수 있었는데 박정희 문제가 걸려 있기에 선거전에 이슈가 되는 건 원치 않아 이번에 내게 된 것입니다.  →황용주와의 첫 만남은?  -1987년에 처음 교수가 된 뒤 찾아 뵜습니다. 외국 생활을 하느라 비었던 공백을 채우고 싶은 욕망 같은 게 있을 것 아닙니까. 학생들이 왜 저런 구호를 내걸까 궁금증이 있었고 한국 사회에 대한 총체적 이해랄까, 그런 차원에서 이문열도 그때쯤 다시 만났고요.  당시 이미 황 선생은 형편이 어려워 제가 ‘문예춘추’ 몇개월치 모아서 드리기도 하고 프랑스 문학 얘기도 나누며 일년에 서너 번, 명절 뒤 인사도 드리고 바둑도 두고 했습니다.  →두 분이 (경남 밀양 출신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  -정치 얘기는 많이 나누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분이 학생 때도 문학을 공부했고, 부산일보 시절 영화제도 만들고 칼럼니스트로 일하면서 제가 공유한 취향을 한 세대 앞서 가지신 분입니다. 난 내 얘기하고, 응 그러냐 그런 거죠. 황용주 하면 떠오르는 게 박정희니까, 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식인으로나 교양인으로서의 제 이미지와 제가 만나본 많은 원로 가운데 가장 잘 맞는 분이었어요.   →역시 자료 수집하고 증언 채취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을 것 같다. 10년 동안 꾸준히 조금씩 하신 것이네요.  -사람들 만날 때마다 묻기도 하고 지나가는 말처럼 던지기도 했습니다. ‘세대’지 관련해서는 많이 증언을 들었습니다. 가능하면 증언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찾으려 노력했고 정 안될 때는 그냥 증언만 실었지만.  인권위원장 그만 둔 뒤인 2010년, 사모님(이창희 여사) 증언 받으러 프랑스를 며칠씩 두 차례 다녀왔죠. 딸(황용주는 프랑스를 동경해 이름을 ‘란서’라 지었다)에게는 단편적으로 한 게 아니라 너 써라, 무조건 써달라고 해서 대학노트 한 권을 받았습니다.  그 양반에게는 단순한 딸이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는 이상의 표현이자 상징이었잖아요. 그런 딸이 문학을 공부하고 싶어하는데도 프랑스에서 이공계를 전공하도록 한 것도 조국 근대화에 기여하라는 뜻이었을 정도였다. 마지막 운명의 순간에 ‘정희야, 란서야’라고 외친 것도 상징성이 크다.  →10년을 매달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 시대 사람들의 고민과 열정을 젊은 세대에게 전달하고 싶었다는 거겠지요.  -네, 크게 보면 김윤식 교수가 해온 일과 비슷합니다. 제가 진보진영에 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데, 황용주는 나쁜 인간으로 평가돼 있습니다. 정수장학회를 만들고. 그렇지만 그 사람의 입장을 들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지 않습니까. 만약 법률가로서 누구의 변호를 맡았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 사람의 다른 얘기를, 판사의 판단을 받기 위해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책을 쓰면서 100% 공감이 안 가서 힘든 구석은 없었는지.  -예를 들어 5.16은 어쨌든 헌법학자 입장에서는 쿠데타입니다. 헌법이 그렇게 정리가 되고. 그걸 혁명이란 이름으로 내세워서, 군인이 권력을 잡아 출세를 하겠다, 사심을 채우겠다고 달려든 사람도 있었겠지만, 황용주는 적어도 지식인으로서 가지고 있던, 한 국가를 전체적으로 개발하는 로드맵으로서 높게 생각하고 정당화시키는데 헌법학자로선, 쿠데타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쿠데타의 결과로서 산업화에 기여한 역사는 현 시점에서 인정할 수 있지만 말입니다. 또 10월 유신(등에 눈 감거나 박정희가 죽은 뒤에) 추모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전두환을 찬양하고 나아가 노태우까지 그러는 건 동의할 수 없었죠.  →다투거나 한 건 아니시죠.  -그러진 않았고요. (웃음) 일제시대의 훌륭한 군인들 얘기 많이 하잖습니까? 그 때 장군들의 스케일과 지적 역량, 신화같은 얘기들. 일정 부분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박정희의 유업을 이어가려면 군인이 더 집권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전혀 용납할 수 없죠. 서로 시대가 다른 사람 얘기하는 거니깐.  그 때마다 바둑이나 두고, 뭐 이렇게 하면서 넘어갔습니다. (웃음) 저도 대학생 때 1급이었는데 나이 차도 있으니까 제가 나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안 그렇더라고요.  →프랑스를 동경해 딸 이름을 지을 정도로 일반적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확고했던 분이 한국적 민주주의를 얘기한 것은 극히 모순되는데.  -그건 이해가 가는 것이 한국이란 사회가 식민 지배 이후 아무것도 없었지 않습니까. 민족적 민주주의라는 말을 누가 먼저 썼는지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군대가 집권해서 공업화를 서두르고 남북한이 유엔 동시가입한 뒤 통일로 간다, 이런 로드맵을 만든 것은 완전히 황용주의 머릿속에서 나온 겁니다. 사회 변혁을 이끌 지식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룹은 군대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실 신생국가의 보편적인 현상이기도 하고, 그렇게 그 사람은 본 거지요. 4·19 다음에 대한 기대가 많았겠죠. 당당히 4·19의 연장이란 주장을 하게 되고 당시 그런 생각에 호응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지요.    황용주는 평생 ‘국민’이나 ‘시민’이라 하지 않고 ‘한반도 주민’이라 불리길 열망했다. 그렇게 평소에 증오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던 즈음에 그가 흥분했던 모습을 안 교수는 어제 일처럼 떠올렸다.    →책을 읽으면서 1947년 마크 게인(281쪽)과 1979년 황용주(459쪽)의 경고는 지금 정확히 들어맞는데요.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면.  -전 역사를 길게 보고 낙관하는 쪽이에요. 연초에 이문열씨와 한 케이블 채널에 출연해 대담하면서 느낀 건데 결국은 진보와 보수 모두 역사의 완결성을 믿지 않잖습니까. 우리 역사가 이만큼 성공했다고 보는 사람이에요. 지금까지 성공한 양상과 속도는 아닐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더 괜찮은 나라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게 무엇이냐?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옆으로 챙기고 같이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전 박근혜 시대에 반감 같은 건 없어요. 개인적으로 박정희 체제에 당했느냐와 역사적으로 평가하는 건 엄연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박정희 시대에 연좌제 피해를 받은 사람이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이니까 안된다’라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습니까. 그건 정치적 연좌제인 거죠. 반대로 박근혜씨는 아버지의 영광만 누리려 하지 말고 ‘그늘’도 같이 받아라고 칼럼에 적었던 것이지요.  →이병주(1921~92년) 평전을 내겠다고 했는데 마음의 빚이라도 있나.  -앞에 학병시대를 얘기한 것처럼 그를 작가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평론을 해보고 싶은 것이다.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읽고 며칠 잠을 못 잘 정도로 큰 감명을 받았는데 지금 보면 문단에 그의 자리는 없다. 중학교 다닐 때 주필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는데 당시 국제신문 주필이 이병주였다. 부산일보 사설과 비교하며 읽고 친구들에게 떠들곤 한 기억이 있다.  대학 때 건방지게 문단에서 대들고 한적도 있는데 다 받아주고 했다. 그런데 5·16 이후 문단이 완전 진보 쪽으로 정리돼 경상도 출신 작가는 모두 전두환과 도매금이 됐다. 또 이병주씨는 문단이나 대학에서 패거리를 이루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우뚝 서 있던 거인이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다. 그를 정리하는 건 좌와 우가 함께 한다는 의미도 있다. 내가 가장 맞춤하다는 데 공감대가 맞춰져 있고 은근히 압력도 가해지곤 한다.    오는 8월 정년퇴임하는 그는 “아무 것도 안하는” 자유로운 삶을 꿈꾸느라 무척 행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걱정거리라면 그동안 읽은 책들을 처분하는 문제, 저자 서명이 담긴 수천 권의 책을 어떻게 처분하느냐 고민하고 있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경북도청 이전 터 개발 갈팡질팡

    경북도청 이전 터 개발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경북도청은 내년 6월 경북 안동·예천의 새 청사로 이전하고 빈터만 남는다. 14만 3000㎡의 부지에는 경북도청과 도의회, 경북경찰청, 도교육청, 도선거관리위원회, 도소방본부 등이 들어서 있다. 대구시는 25일 경북도청 터의 활용방안에 대해 2011년 말 대구경북연구원에 연구용역을 맡긴 결과 세 가지 활용방안이 나왔다고 밝혔다. 첫째는 국립인류사박물관 등 공공기관 유치, 둘째는 문화시설 건립, 마지막으로 국립자연사박물관 등 산업·교육시설 건립 등이었다. 하지만 올해 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는 국립세계사교육테마파크, 국립산업기술박물관, 국립어린이박물관 건립 방안을 마련해 제출했다. 이에 대해 시민들은 “어떤 성격의 시설인지 잘 와 닿지 않는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구시의회 최길영 의원도 “인수위에 경북도청사 부지 활용 방안을 제출하면서 연구용역하고는 관계없이 또 다른 내용으로 사업을 하겠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어떠한 여론수렴 절차도 거치지 않아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시 관계자는 “입주할 국책시설의 종류, 인근 지역에 미치는 공동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역개발 및 지원 방향을 중심으로 용역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최 의원은 “뒤늦게 또 2차 용역 발주를 계획하고 있다. 용역 결과는 빨라야 내년 상반기에 나오는데 도청 이전 때까지 개발방안을 결정하지 못하고 방치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보행자 많은 곳 차도 줄여 걷기 편하게

    앞으로 보행자가 많은 구역의 도로는 차도를 줄이는 대신 인도를 넓혀 보행자 중심으로 바꾼다. 안전행정부는 보행량이 많은 재래시장과 터미널 주변 등은 차도를 줄여 보행자 전용길 등의 공간을 만드는 ‘보행 환경 개선지구 사업’을 실시한다고 24일 밝혔다. 시범사업 지역은 대구 북구 경북대 주변 대학로와 경북 영천의 터미널 연계 재래시장 지역 등 10곳으로 현지 실사와 보행·교통량, 사고 현황 등을 분석해 선정됐다. 이들 지역은 전문가 자문과 주민설명회 등을 거쳐 세부 추진계획을 확정해 올해 하반기부터 사업이 진행된다. 또 아파트와 초등학교 등에는 이른바 ‘S자형 도로’를 만들어 속도 저감형 보행안전 공간으로 바꾼다. 이재율 안행부 안전관리본부장은“앞으로 보행여건이 열악한 지역의 시설 정비 및 보행권 강화를 위한 제도개선, 단속 강화 등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석 기자 ccto@seoul.co.kr
  • [프리미어리그] 맨유, 20번째 맨 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로빈 판페르시의 해트트릭을 타고 통산 20번째 정상에 섰다. 맨유는 23일 올드트래퍼드에서 열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정규리그 34라운드에서 애스턴 빌라를 3-0으로 완파했다. 27승3무4패, 승점 84의 맨유는 남은 4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우승을 확정했다. 지난 시즌 맨유에 1위 자리를 빼앗은 2위 맨시티(20승8무5패·승점 68)가 남은 5경기를 모두 이겨도 결과는 뒤집히지 않는다. 2년 전 우승 당시 EPL 정규리그 최다 우승 기록(19회)을 썼던 맨유는 기록을 한 뼘 늘렸다. 판페르시는 전반에만 3골을 몰아쳐 일찌감치 승부를 갈랐다. 전반 2분 라이언 긱스가 골 지역 왼쪽에서 골문 앞으로 찔러준 공을 왼발 선제골로 연결한 판페르시는 11분 뒤 웨인 루니가 하프라인에서 내준 종패스를 아크 부근에서 왼발 논스톱 슈팅으로 맨시티 골망을 다시 흔들더니 전반 33분 긱스가 배달한 공을 왼발로 마무리, 기어이 해트트릭을 작성했다. 정규리그 22~24호 골을 터뜨린 판페르시는 루이스 수아레스(리버풀·23골)를 제치고 득점 부문 선두로 나섰다. 한편 박주영이 후반 교체 출전한 스페인 프로축구 셀타비고는 레알 사라고사와의 홈경기 후반 추가시간에 마리오 베르메호가 터뜨린 골로 2-1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일단 꼴찌 신세를 면했다. 7승6무19패(승점 27·골득실-16)를 기록, 레알 사라고사(승점 27·골득실 -22)에 골득실에서 겨우 앞섰다. 1부 잔류의 마지노선인 17위(그라나다·승점 29)와의 승점 차도 ‘2’로 줄었다. 최병규 기자 cbk91065@seoul.co.kr
  • 현대차 사내하청노조 “총파업”… 생산 ‘휘청’

    엔저로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대차가 사내하청 노조(비정규직노조)의 부분 파업 돌입, 정규직 노조의 주말 특근 거부 등으로 삼중고를 겪고 있다. 부분 파업과 특근거부에 따른 생산차질만 1조원에 달하고 있다. 엔저 등 안팎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사가 상생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조는 24일부터 사내하청 직원 8500여명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부분 파업에 돌입하고, 오는 26일부터는 울산과 아산, 전주 등에서 총파업을 벌이기로 했다. 앞서 현대차는 3500명의 비정규 직원을 2016년까지 단계적으로 정규직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사내하청 노조는 전원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는 이에 대해 불법 파견 관련 법기준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정규직 전환은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 사내도급 제도는 자동차뿐 아니라 조선과 철강, 전자 등 주요 기간산업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노동부가 3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0년 사내하도급 현황’에 따르면 1939개 사업장의 근로자 132만명 가운데 24.6%인 32만여명이 사내 수급업체 소속 근로자이다. 특히 조선과 철강업계는 사내수급업체 소속 근로자의 비중이 각각 61.3%와 43.7%로 높게 나타났다. 자동차 업계는 16.3%, 전자와 화학산업은 각각 14.1%, 28.8%에 이른다. 산업계도 회사가 어려울 때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는 현재 노동시장에서 무리한 정규직화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국경총 관계자는 “기업경쟁력 확보를 위한 사내하도급은 세계 각국의 보편적 생산방식(300인 이상 기업 41.2%가 사내하도급 활용, 일본 500인 이상 제조업체 59.9% 사내하도급 활용)”이라면서 “하도급 직원의 전원 정규직화는 기업을 공멸의 길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노사가 합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본사는 물론 1, 2차 하청업체에까지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노조의 주말 특근 거부로 4만 8000여대의 차량을 제때 만들지 못해 9500억원의 생산차질액이 발생했다. 여기에 비정규직 노조의 부분 파업까지 더해진다면 생산차질에 따른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협력업체 관계자는 “수만 명에 달하는 협력업체 직원들이 노조의 무리한 요구와 작업 거부 때문에 생계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내하청 노조 관계자는 “같은 일을 하면서 사내하청이란 이름표를 달고 계속해서 저임금에 시달리며 살 수는 없다”면서 “현대차의 통큰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노조가 공장은 가동하면서 회사와 협상하는 것이 순리”라며 “현대차도 이에 적극 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주먹구구 가스 도입 무엇이 문제인가] (상) 무리한 장기 공급계약

    [주먹구구 가스 도입 무엇이 문제인가] (상) 무리한 장기 공급계약

    한국가스공사의 무리한 장기공급 계약은 가스산업이 민간에 개방되는 것을 막기 위한 내부 전략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이는 정부의 ‘봐주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지적도 있다. 22일 가스업계 등에 따르면 1991년부터 지난해까지 12년 동안 진행한 20년 이상의 장기공급 계약은 모두 15건으로, 이 중 33%인 5건(매년 1734만t, 총 3억 4680만t)의 계약이 2010년 12월에서 2012년 2월까지 15개월 사이에 이뤄졌다. 여기에 기존 장기공급 계약 물량과 가스공사가 추진 중인 러시아 파이프라인가스(PNG) 연간 750만t과 지분투자를 통해 확보한 모잠비크산 3360만t,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미국 프리포크와 커버 포인트 등의 연간 도입량 400만~500만t 등을 합하면 2017년 수입 물량은 무려 4500만~5000만t에 이를 전망이다. 국내의 액화천연가스(LNG) 소비량은 계속 늘고 있는 추세이지만 SK와 GS그룹 등 민간 발전사의 직도입 물량도 함께 늘고 있기 때문에 가스공사의 국내 판매량은 3600만t(2012년 기준) 안팎에서 더 크게 늘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 민간에너지 전문가는 “발전회사들의 직도입 물량이 늘면서 앞으로 가스공사의 국내 판매량은 지난해를 정점으로 더 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따라서 2017년이면 가스공사가 수입하는 LNG 중 최소 1000만t 이상이 남아돌게 될 전망이다. 1000억여원의 건설 비용이 드는 10만t 규모의 저장시설을 수십개 더 짓든지, 아니면 천연가스를 수입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손해를 보면서 다시 수출해야 할 지경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가스공사의 독점 수입구조를 깨고 민간 수입을 허용하는 ‘가스시장 개방정책’을 채택하려다가 그만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당시 인수위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가스공사가 국내 수요분 이상의 장기도입 계약을 해놓은 상태에서 민간의 값싼 가스 수입을 허용할 수 없었다”면서 “가스공사의 경영상 타격은 물론 장기계약 파기에 따른 국가신인도 하락과 국내 가스시장 혼란 등의 우려로 경쟁체제 도입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도 “LNG 독점 수입으로 앉아서 돈을 버는 가스공사가 경쟁 도입을 통해 밥그릇을 뺏기지 않으려고 가격 전망과 상관없이 짧은 기간에 계약을 서두른 측면이 강하다”라고 지적했다. 또 이런 혈세 낭비를 정부가 묵인했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높다. 267조원에 이르는 가스공사의 장기계약을 승인한 산업통상자원부의 가스담당 부서조차도 가스공사가 얼마나 장기계약을 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2017년 가스공사의 장기공급 물량이 3552만t으로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에 대해 “원래 국내 가스 소비량의 90% 이상이 장기공급 물량으로 채워지기 때문에 적당한 공급 계약”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가스공사의 총수입량 가운데 중·장기계약에 의한 공급물량 비율이 2010년에는 77%, 2011년에는 73%, 2012년에는 71% 등 70%대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가스공사를 견제하고 점검하는 산업부의 담당부서도 가스공사가 얼마나 장기계약이 이뤄지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세계적 기업인 삼성전자의 지난해 매출액 201조원도 뛰어넘는 267조원의 천문학적인 재원이 투입되는 장기계약이 이뤄지는 데 아무런 감시 장치도 없었던 셈이다. 김수덕 아주대 시스템에너지학부 교수는 “260조원이 넘는 엄청난 계약을 공기업이 독단적으로 처리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무슨 이유로 장기 가격예측도 없이 짧은 기간에 엄청난 물량을 계약했는지를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도 “감사원이나 사정기관이 나서 가스공사 계약의 진실을 밝히고 수십조원의 국가적인 손해를 입힌 산업부와 가스공사에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425건 힘들게 인증받았지만… 현장 외면에 눈물 짓는 ‘환경신기술’

    425건 힘들게 인증받았지만… 현장 외면에 눈물 짓는 ‘환경신기술’

    정부는 환경기술을 평가해 기술개발을 촉진하고 환경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환경신기술 인증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기업이 개발한 환경신기술을 신속히 현장에 보급하고, 지방자치단체 등 기술 사용자는 신기술을 믿고 사용할 수 있게 해주려는 제도다. 환경신기술로 인증을 받으면 공공환경 기초시설 우선 활용과 입찰 가점 부여, 입찰 참가자격 사전심사 때 배점 부여, 시공 실적으로 인한 입찰 참가자격 제한 완화 등의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신기술 개발자나 업체에 시장 진출에 도움을 주겠다는 의도이다. 하지만 본래 취지와는 달리 어렵게 신기술 인증을 받고도 현장에선 외면당하고 있어 적극적인 지원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시행 16년째 접어든 환경신기술 인증제도의 성과와 개선점 등을 점검해본다. 환경부와 환경산업기술원은 1997년 말 환경신기술 인증제도가 도입된 이래 지난해까지 425건(신기술인증 270건, 기술검증 155건)의 환경신기술이 인증돼 연간 4조원 이상(2011년 기준) 매출 실적을 올렸다고 21일 밝혔다. 그러나 매출실적은 대기업이나 특정 분야 신기술에 국한될 뿐 개인이나 중소기업들은 기술의 현장 적용이나 실용화 장벽이 너무 높다며 어려움을 호소한다. 환경부는 차세대 환경신기술 개발지원 등 여러가지 지원 정책을 펴왔다. 신기술 인증을 받기만 하면 시장 진입과 영업이 수월할 것이란 기대감 때문에 신청 건수도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신기술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사전에 갖춰야 할 조건과 전문가들의 공개심사 과정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기술개발과 어려운 과정을 통해 신기술 인증을 받았지만 현장에 접목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각종 공사 현장에서는 신기술보다 여전히 관행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말로는 신기술 우수성을 인정하면서도 정작 현장에서는 외면을 받아 사장되는 것도 많다. 실제로 공사 책임자나 담당 공무원조차도 잘못될 것을 우려해 신기술보다는 이미 알려진 기술을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한편으로는 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한 상태에서 환경신기술 인증을 받아 기술 판매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한 업체는 변압기 절연유에 포함된 이물질을 제거하는 기술 2건에 대해 환경신기술 인증을 받았지만 관련된 국내 시장이 미비한 관계로 현장 적용 실적이 전무한 상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환경기술은 외부 환경조건에 따라 성능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신기술에 대해 사용을 기피하는 경향이 짙다”면서 “신기술 현장 적용 시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해외 진출을 돕는 등 보다 적극적인 사후관리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기술 인증 절차에 따른 공정성 문제를 놓고 잡음도 나오고 있다. 최근 ‘자동차 매연 저감장치’ 개발로 환경신기술 인증을 신청했던 이모(인천 남동구 거주)씨. 법규에 따라 사전 시험성적표 등을 첨부해 신기술 신청을 했지만 최종 전문가 심사에서 떨어졌다. 신규성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우수성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며 심사위원들의 공정성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심사위원 가운데는 분야가 다른 사람이 선정되는 등 인증에 허점이 많았다”면서 “법규에 나와 있는 것도 달리 해석하는 등 공무원들의 업무 행태도 문제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기술에 대한 특허와 기술검증을 증명하는 데만 2000여만원, 신기술 인증 신청에 200만원 등의 비용이 들어갔고 무엇보다 허비한 기간이 아깝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이에 대해 기술원 측은 “개인이나 중소기업이 많은 노력과 자금을 투입하여 개발한 기술이 객관적인 입증이 어려워 신기술로 인증받지 못하는 사례도 많다”면서 “기술개발 단계부터 신기술에 해당하는지, 우수 기술로 인정받으려면 어떤 자료를 준비해야 하는지 등 기술원에 사전 자문을 받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환경신기술정보시스템(www.koetv.or.kr)을 이용하면 관련 정보와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신기술 인증제도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자 정부도 신기술 보유자를 보호하고 기술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제도 개선에 착수했다. 신기술 인증과 기술검증의 유효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확대하는 법안이 이미 국회에 제출됐다. 중소기업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기술검증 수수료의 70% 지원뿐만 아니라 올해부터는 선행기술조사 비용도 지원할 방침이다. 또한 신기술의 현장 적용 후에는 직접 현장을 방문해 성능을 점검하는 등 사후 관리도 강화된다. 환경부 관계자는 “환경기술검증 국제 상호 인정을 통한 국내 환경신기술의 해외 진출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 도입도 추진 중”이라며 “국내에서 평가한 기술검증 결과를 해외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유럽연합(EU), 캐나다 등과 함께 환경기술검증 국제 상호 인정을 위한 국제표준규격(ISO) 제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종 유진상 기자 jsr@seoul.co.kr
  • 포브스 선정 세계 2000대기업 삼성전자 20위 ‘상위1%’

    삼성전자가 18일(현지시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하는 ‘세계 2000대 기업’ 가운데 20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26위에서 6계단 올라 상위 1%에 처음 포함됐다. 현대자동차도 지난해 96위에서 7계단 오른 89위를 차지했다. 100위 이내에 든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와 현대차 2곳이다. 100위 밖으로는 포스코(184위), 신한금융지주(251위), 기아자동차(268위), 현대모비스(278위), KB금융지주(327위), 삼성생명(330위), SK이노베이션(366위) 등 모두 65개 한국 기업이 세계 2000대 기업에 포함됐다. 지난해에는 68개사였다. 포브스는 매년 매출과 순익, 자산규모, 시가총액 등을 기준으로 2000대 기업을 선정한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목돈 안드는 전세’ KDI도 “효과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렌트푸어’(전세 사는 빈곤층) 공약인 ‘목돈 안 드는 전세’에 대해 또다시 실효성 논란이 일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조차도 “효과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KDI는 18일 ‘부동산시장 모니터링 1분기 보고서’에서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4·1 부동산종합대책 등에 대한 설문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목돈 안 드는 전세’가 실효성 있을 것이라는 응답은 26.3%에 불과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집 주인은 전셋값을 받는 대신 자기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그 이자를 세입자에게 부담시킬 수 있다. 6월부터 시행될 예정으로 주인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집이 은행에 저당잡히는 것을 싫어하는 우리나라 정서상 실효성이 낮을 것이라고 지난 11일 당정회의에서 의원들이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4·1부동산 대책 가운데 ‘공공분양주택 축소’(73.8%)가 ‘민간주택 공급 조절’(58.8%)보다 효과가 있다는 응답을 했다. 수요 정책에서는 ‘주택구입자 지원강화정책’(92.6%),‘ 생애최초 구입자 지원확대’(85.1%) 등이 ‘민간임대시장 활성화 정책’(47.6%)보다 낫다고 평가했다. 공공임대주택 정책으로는 ‘공공주택 공급’(73.8%)을 효과적으로 봤다. ‘하우스푸어’(내 집 소유 빈곤층) 및 렌트푸어 대책 중에는 ‘전세자금 지원’(65%)이 꼽혔다. ‘하우스푸어 지원정책’의 정책효과를 기대한 응답은 36.3%에 불과했다. 세종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열린세상] 규제 행정의 허실/배종하 전 한국농수산대학 총장

    [열린세상] 규제 행정의 허실/배종하 전 한국농수산대학 총장

    물가가 오르는데 정부는 뭐하고 있는가? 은행이 해킹으로 뚫리는데 원인은 찾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는가? 부동산 시장의 침체로 집값이 떨어지고 건설회사가 줄도산을 하는데 정부는 무슨 대책을 세우고 있는가? 학교 폭력이 이렇게 심각한데 정부는 팔짱만 끼고 있는가? 저축은행의 부실 여파가 연쇄적으로 퍼져 나가는데 정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매일 주위에서, 언론에서 정부를 비판하거나 정부가 현안을 조속히 해결하라는 독촉을 듣는다. 시간이 지나도 비판의 목소리는 수그러들지 않고, 시원스럽게 해결되는 것도 없으니 정부가 제대로 하는 게 없는 것 같다. 세금을 쓰면서 국민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줄 모르는 비효율적인 정부이다. 정부는 과연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가졌는가? 정부가 전지전능하면 몰라도 이 많은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정부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이러한 어려운 문제에는 늘 해답을 찾지 못한 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새 정부는 경제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엄단하겠다며 여러 가지 정책을 내놓고 있다. 양극화는 점점 심해지고, 이대로 가다간 사회 전체가 큰 갈등에 휘말릴 수도 있기 때문에 경제 민주화를 외치는 정부의 입장은 공감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국회는 대형 유통업체의 전통시장 영업을 제한하고 대기업이 골목상권에서 손을 떼게 하거나, 기업 총수와 임원의 연봉을 공개하고 대기업 계열사의 부당내부거래에 대한 벌을 강화하는 법을 추진 중이다. 대기업의 횡포가 얼마나 심했으면 이런 조치가 나오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정책 수단을 보면 거의 규제 일변도여서 아쉬움이 남는다. 다른 나라에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규제 정책들도 보인다. 과도한 규제가 시장을 왜곡시키며, 기업의 경쟁력을 죽이고 성장 동력을 훼손할까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오랫동안 불필요한 규제 철폐를 천명해 왔고 많은 규제를 없앴다며 실적을 자랑하기도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규제는 더 늘어나고 있다. 해마다 국회에서 만들어지는 법을 들여다보면 규제 덩어리가 아닌가? 없어지는 규제도 많지만 늘어나는 규제가 더 많다. 물론 필요한 규제도 있다. 하지만 정부보다 민간이 더 크고 시장의 힘이 지배하는 경제에서 규제로 행정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한가? 아무리 잘 만들어진 규제라도 규제의 망을 피해가는 구멍은 있고 그걸 또 귀신같이 찾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 구멍을 막으려 하면 규제는 복잡해지고, 많은 규제는 일선에서 제대로 집행이 안 되는 악순환을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정부의 힘은 막강하다. 대기업도 정부의 눈치를 보고, 시장의 노점상이나 골목의 포장마차도 관할 공무원이나 경찰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민간의 힘과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정부의 역할은 점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정부의 역할을 기대하거나 정부에 많은 걸 요구하면 비정상적이고 초법적인 규제만을 양산하게 된다. 규제들이 제대로 효과를 내면 그래도 낫겠지만 그러지 못하면 비효율의 극치이다. 더구나 규제의 남발은 공직사회 부패의 연결고리가 되기도 한다. 시장은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 중에 가장 훌륭한 제도라고 하지만 시장도 실패하는 경우가 있어 정부의 역할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역할은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데 그쳐야 하고 시장이 최대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책도 규제보다는 시장 원리에 더 가까운 조세 같은 수단이 바람직하다. 자식에게 “하지 마라”고 잔소리하는 것은 쉽지만 효과는 별로 크지 않다. 칭찬과 격려로 스스로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훨씬 효과가 있다. 자유로운 경쟁 속에 창의성이 발휘되고 도전정신이 발현되는 것이다. 창의성, 도전정신이야말로 발전의 원동력이다. 자유경쟁과 시장경제를 옹호한 경제학자 하이에크의 말을 빌리면, 정부가 모든 걸 해결해 주기 바라는 것은 ‘노예가 되는 길’(The Road to Serfdom)이다.
  • [뉴스 분석] 北 메시지 핵심은 ‘대화 명분’ 달라

    [뉴스 분석] 北 메시지 핵심은 ‘대화 명분’ 달라

    북한이 원하는 것은 대화일까, 도발일까. 우리 정부가 지난 11일 공식적으로 대화를 제의한 이후 북한이 내놓은 반응들은 수십년간 대북 문제를 다뤄 온 당국자나 전문가들조차도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 못할 정도로 모호성을 띠고 있다. 하나의 입장 발표문에 대화와 도발이란 상반된 입장이 매번 담겼기 때문이다. 한 손에는 도발 카드를, 다른 한 손에는 대화 카드를 쥐고 북한이 한국과 미국의 분위기를 살피며 저울질에 들어간 모습이다.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 문답(14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최후통첩장’과 외무성 대변인 담화(16일) 등 세 차례의 입장문에서 대화 제의를 ‘교활한 술책’, ‘기만의 극치’라고 비난하면서도 ‘대화 여부는 전적으로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달렸다’, ‘대화에 반대하지는 않지만’이란 말로 항상 여지를 남겼다. 심지어 자신들의 ‘최고 존엄’인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사진을 불태운 국내 보수단체와 이를 방조한 당국에 보복하겠다면서도 ‘대화를 원한다면’이라고 나름의 출구 전략까지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실제로 도발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대화에 나설 수 있도록 명분을 마련해 달라는 메시지일 것이라는 데 무게를 뒀다. 전현준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7일 “겉으로는 강하게 해도 밑으로는 대화를 하려는 게 북한의 전략전술”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대화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남한 정부에 대한 비난 수위를 낮추려고 고심한 흔적도 묻어난다. 개성공단을 담당하는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은 16일 발표한 비망록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역도’라고 비난하면서도 박근혜 대통령을 지칭할 때는 ‘청와대 안방주인’이란 표현만 사용했다. 이번에 발표된 최고사령부 ‘최후통첩장’도 최고지도자 ‘모독행위’에 대한 이전의 반응과 비교하면 수위가 낮다. 지난해 2월 말 인천의 한 군부대가 내무반에 “때려잡자! 김정일, 쳐 죽이자! 김정은”이란 원색적 구호를 붙이자 북한은 전 지역에서 동시다발 규탄궐기대회까지 열었다. 최고사령부는 이 전 대통령에게 욕설과 비난을 퍼부으며 “불이 번쩍 나게 초토화해 버리게 될 것”이라고 위협을 가했다. 당시 최고사령부의 통고문에 ‘대화’에 대한 언급은 아예 없었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북한이 대화에 전제조건을 달고 있지만, 막상 대화에 나서면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며 “사과해야 대화하겠다는 원칙적 주장은 충분히 타협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어린이보호구역 내 교통사고...5세 어린이 숨져

    어린이집 앞 어린이보호구역에서 5세 어린이가 교통사고로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17일 경찰에 따르면 전날 오후 5시쯤 서울 동작구 상도 3동 소재 한 구립 어린이집을 나서던 최모(5)군이 지모(50)씨가 몰던 스타렉스 차량에 치였다. 최군은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사고 지점은 최군이 다니던 어린이집 바로 앞에 놓여진 차도로, 당시 최군은 어머니와 함께 귀가 중이었다. 경찰은 “안전대가 설치되지 않은 구간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며 “아이가 넘어졌는데 스타렉스 차량이 그 위를 그대로 지나갔다고 목격자가 진술했다”고 전했다. 지씨는 경찰 조사에서 “어린이보호구역이라 시속 20㎞로 운전했다”며 “아이가 넘어져 있는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지씨에 대해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하프타임]

    류현진 20일 3연승 도전 류현진(26·LA 다저스)이 오는 20일 오전 8시 5분 메릴랜드주 오리올파크에서 열리는 미프로야구 볼티모어와의 인터리그 경기에 첫 선발 등판, 3연승에 도전한다. 선발 맞상대는 똑같이 2승1패를 기록한 우완 제이슨 해멀(통산 44승)이다. 지명타자제를 시행하는 아메리칸리그 소속 볼티모어의 홈 경기인 탓에 류현진은 타석에 들어서지 않는다. 오리올파크는 류현진이 2승째를 따낸 애리조나주 체이스필드와 마찬가지로 타자 친화적인 구장이어서 홈런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3루수 매니 마차도, 유격수 J J 하디, 1루수 크리스 데이비스 등은 특히 경계해야 한다. 최종준 체육회 사무총장 사퇴 최종준 대한체육회(KOC) 사무총장이 돌연 사퇴했다. 최 사무총장은 16일 이사회에 앞서 “지난 2월 제38대 김정행 회장이 선출된 뒤 사무총장직을 내려놓으려고 했으나 새 집행부 구성까지만이라도 함께해 줄 것을 신임 체육회장이 요청해 업무를 계속해 왔다”며 “새 집행부가 구성된 만큼 사임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체육회 노조는 성명을 통해 “소문으로 떠돌던 ‘낙하산 사무총장’이 현실화됐다며 “체육회는 올림픽 헌장에 의거해 정부의 압박 등 외압으로부터 자율성과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 규정에 어긋나는 인사는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김정행 회장이 행정을 잘 아는 공무원 출신 인사를 사무총장으로 임명하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안다“고 반박했다. 아이스하키, 헝가리에 역전승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16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스포르트 아레나에서 열린 2013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1 그룹A(2부) 2차전에서 홈팀 헝가리에 5-4(0-3 1-1 3-0 0-0 승부치기<1-0>)로 기적 같은 역전승을 일궜다. 세계 28위 한국이 19위의 헝가리를 국제대회에서 꺾은 것은 처음이다. 1982년 스페인 하카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C풀에서 헝가리에 2-18로 참패한 것을 시작으로 31년 동안 1무9패로 일방적인 열세였다. 승점 2를 챙긴 한국은 카자흐스탄, 이탈리아(이상 승점 6), 헝가리(승점 4)에 이어 6개 팀 중 4위를 달려 남은 세 경기 중 한 경기만 이기면 그룹A에 잔류한다.
  • 단 하루, 부산 상륙작전

    단 하루, 부산 상륙작전

    꽃 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다. 무작정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KTX에 몸을 실었다. 동백섬이 선연하게 보이는 해운대는 싫었다. 대신 자갈치 아지매가 손짓하는 ‘남포동’과 부산 속 작은 섬인 ‘영도’를 단 하루 만에 돌았다. 화통한 남포동 꼬불꼬불 미로엔 ‘없는 게 없다’ 부산에 몇 년을 살았다는 이유로 “눈을 감고도 ‘부산 가이드북’ 정도는 쓸 수 있다”고 종종 허풍을 떤다. 그건 부산을 아끼고 좋아하는 내 마음의 표현법이었다. 누군가 부산 여행을 도와 달라 손을 내밀기라도 하면, 나는 넓은 오지랖을 쫙 펴곤 여행 멘토를 자처했다. 부산 초보자의 단골 질문 중 하나는 “부산역에서 해운대까지 멀어?”다. 멀다. 부산역에서 해운대까지 지하철을 타면 최소 45분이 걸린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해운대에선 맨얼굴의 부산을 느낄 수 없다. ‘짠’하고 ‘찐’한 부산을 만나고 싶다면, 부산역에서 신평행 1호선 지하철을 타면 된다. 부산역에서 지하철로 5분이면 남포역과 자갈치역에 도착한다. 큰 도로를 중앙에 끼고 왼쪽이 자갈치시장, 오른쪽이 남포동이니 두 역 중 어디에 내려도 무관하다. 그곳엔 “어서 오이소” 하고 두 팔을 내젓는 부산이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정신없이 돌아가는 남포동엔 없는 게 없다. 먹을 것도 ‘천지 삐까리매우 많다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입을 것도 ‘천지 삐까리’, 볼 것도 ‘천지 삐까리’. 남포동의 초입은 대영시네마와 메가박스 부산극장이 마주 보고 서 있는 ‘BIFF부산국제영화제’ 광장. 광장에는 현재 영화인 48명의 손이 박제돼 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는 베니스영화제 황금 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 프랑스의 뤽 베송 감독과 배우 이자벨 위페르, 홍콩의 욘판 감독도 핸드 프린팅 대열에 합류했다. 남포동 인근의 낡은 극장에서 시작된 ‘작은 영화제’ 앞에는 이제 ‘국제’라는 호칭이 붙는다. 보물찾기 게임을 하는 심정으로 좋아하는 영화인의 손도장을 찾다 정신을 차리니 구불구불한 골목 안이었다. 얼키설키 뒤엉킨 골목은 거대한 미로 같았다. 지하철역을 등지고 남포동 BIFF광장에 서면, 앞으로 창선동 먹자골목이 펼쳐지고 왼쪽으로 부평동 족발골목, 오른쪽으로 광복동 패션거리가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노릇노릇한 씨앗호떡과 굵직한 부산 떡볶이가 차려진 노점상을 비집고 쭉 직진하면 ‘아리랑거리’다. 목욕탕에서나 볼 수 있는 자그마한 의자에 몸을 실은 사람들은 분주하게 비빔당면, 국수 등을 흡입하고 있다. ‘도떼기시장, 깡통시장’ 등 다양한 별명을 자랑하는 국제시장도 아리랑거리와 멀지 않다. 1945년 해방 이후 각종 군수 물자가 시장을 통해 풀렸는데, 지금도 국제시장에선 일제, 미제 등 각종 수입품이 팔리고 있다. 왁자지껄 수다스러운 남포동을 떠나 자갈치 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되니, 찾아가기 참 쉽다. 오랜만에 찾은 자갈치 시장엔 여전히 사람 사는 냄새가 진동했다. 얼마 전 고인이 된 최민식 사진작가가 그리워졌다. ‘날 것의 사진’을 고집한 그가 왜 그토록 자갈치 시장을 사랑했는지, 시장 주변을 한 바퀴만 돌면 알 수 있다. 자갈치 시장은 펄떡이는 물고기의 마지막 몸부림처럼 언제나 역동적이다. “회 한 접시 먹으소.” 권하는 호객행위도 여기선 거추장스럽지 않고 정겹다. 자갈치 시장 뒤편에선 영도다리가 훤히 보였다. 1 자갈치시장에선 영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장 주변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손길이 분주하다 2 신신한 해산물이 가득한 시장 남포동 길거리 음식 트로이카 씨앗호떡 BIFF광장엔 긴 줄이 여기저기 늘어서 있다. 사람들이 줄을 서는 이유는 단 하나. 씨앗호떡을 먹기 위해서다. 기름이 흥건하게 둘린 판 위에 찹쌀 반죽을 떨어뜨리면 금세 오동통하게 부풀어 오른다. 호떡의 가운데를 가위로 쭉! 그 속으로 땅콩, 해바라기 씨 등의 견과류가 두둑하게 들어간다. 뜨끈뜨끈한 호떡을 한 입 베어 물면, 쫀득한 찹쌀이 입 안에 엉겨 붙고 견과류가 오도독 씹힌다. 위치 부산시 중구 남포동 5가 BIFF광장 일대 가격 900~1,000원 비빔당면 국수만 비벼 먹는 건 아니다. 새하얀 당면도 부산에서는 새빨간 양념 옷을 입는다. 들어가는 내용물은 거창하지 않다. 면과 양념장을 분주하게 섞은 뒤 토핑으로 올라온 김치, 시금치를 곁들여 젓가락질 하면 된다. 위치 부산시 중구 창선동 2가 아리랑거리 일대 가격 2,000원 충무김밥 속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김밥’과 함께 부추 김치, 무 김치, 오징어 무침이 반찬으로 나란히 따라 나온다. 하얀 종이가 깔린 쟁반 위로 검정, 빨강의 조화는 참 곱다. 정신없이 김밥 하나, 반찬 하나를 떠 먹는 동안, 할머니의 칼칼한 목소리가 들린다. “오징어는 남기지 말고 다 챙겨 무래이, 안 그럼 혼낸다.” 위치 부산시 중구 창선동 2가 아리랑거리 일대 가격 3,000원 영도등대는 태종대 여행의 메인요리다 ©나명선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수줍은 영도 한 맺힌 다리 너머, 외로운 섬 가수 현인의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의 화자는 영도다리를 서성이는 어느 사내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흥남부두에서 누이 금순이의 손을 놓친 오라비는 영도다리 난간 위에 걸린 외로운 초승달을 보며 흐느꼈을 것이다. 어디 금순이와 금순이의 오라비만 헤어졌을까.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그때, 피란민들은 하나같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고 간절한 주문을 외웠다. 언제 만날지 모르는 잔인한 약속은 마음의 덫이었다. 희망고문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너덜너덜해진 가슴을 부여잡고 영도다리를 서성거렸다. 오늘은 오려나, 내일은 오려나…. 자갈치 시장에서 버스를 타고 피란민의 애끓는 애환이 덕지덕지 붙은 영도다리를 건넜다. 그림자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말절영도·絶影島이 살았다는 섬이 바로 영도다. 실제 신라시대부터 조선 중기까지 영도에선 말이 자랐다고 한다. 신석기 사람들에게도 영도는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 신석기 유적인 ‘동삼동 패총’은 영도의 역사를 말해 준다. 국립 해양대학교 입구에 들어선 동삼동 패총 박물관에 바로 그 ‘패총’이 잠들어 있다. 먼 길을 온 여행자가 영도까지 찾아드는 이유는 뻔하다. 신라시대 태종 무열왕이 활을 쏘곤 했다는 ‘태종대’가 영도에 있기 때문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달리던 버스가 태종대에서 멈췄다. 나는 태종대와 무려 세 번이나 만났다. 자갈마당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직접 싼 도시락을 먹었던 기억, 태종대 축제에서 반딧불이를 봤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변한 건 하나도 없었다. ‘太宗臺태종대’라 쓰여 있는 묵직한 대형 돌덩이도 그대로였고, ‘다누비’ 열차도 여전히 손님을 태우고 씽씽 달리고 있었다. 나지막한 경사를 따라 쭉쭉 뻗은 나무가 조성돼 있고 그 사이사이로 살짝살짝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보여줄 듯 말 듯 애간장을 녹이던 바다는 남항 조망지에서 인심을 썼다. 부산의 대표 항구인 남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남항 조망지’는 야경 촬영지로 사랑받고 있다. 그러나 남항 조망지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쓸 필요는 없다. 조금만 발길을 옮기면, 태종대 최고의 명당인 전망대와 영도등대가 나오니까. 전망대엔 두 아이를 끌어안은 모자상이 세워져 있다. 전망대로 나가면 모자상의 비밀이 풀린다. 고개를 빼꼼 내밀자 신선이 노닌다는 신선바위와 자살바위가 양쪽으로 보였다. 모자상을 세운 건 다 자살바위 때문이다. 한때 한 해 평균 30명이 자살바위 인근에서 목숨을 끊었는데, 신기하게도 모자상을 세운 뒤로는 자살 횟수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주전자를 닮았다 하여 이름 지어진 ‘주전자섬’은 스토커처럼 끈질기게 내 눈을 따라다녔다. 어느 지점에서 보든 바다 위에는 주전자섬이 떠 있었다. 전망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바다의 정중앙엔 주전자섬, 그 뒤로 대마도, 거제도가 나란히 서 있다. 물론 대마도와 거제도는 날씨가 쾌청한 날에만 볼 수 있는 귀한 손님이다. 당일치기 여행이라 마음이 급하겠지만 영도등대는 놓쳐선 안 된다. 영도등대를 봐야 태종대를 다녀갔다고 ‘인증’할 수 있다. 1906년 설립된 영도등대는 벌써 100살이 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당당했다. 태종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육지와 바다의 경계가 불투명해졌다. 어느덧 기차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영도등대 위에 자리한 태종사는 끝내 오르지 못하고, 다시 뭍으로 나가는 버스에 올라야 했다. 버스를 타고 영도다리를 지나던 순간, 신기하게도 배 멀미를 느꼈다. 1 영도등대 일대는 예술이 꽃피는 문화공간이다 2 바다가 펼쳐지는 태종대 산책로에선 봄을 만끽할 수 있다 3 여행객을 태우고 씽씽 달리는 다누비 열차 글·사진 구명주 기자 취재협조 한국관광협회중앙회 www.koreatravel.or.kr 태종대 짬뽕 태종대에 도착하면 범상치 않은 중화 요릿집이 하나 버티고 있다. 이름부터 정직한 ‘태종대 짬뽕’. 문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손님이 많은 걸 보니, ‘맛집’이 분명하다. 짬뽕을 주문하면 종업원의 질문이 되돌아온다. “태종대 짬뽕 맞지예?” ‘태종대’ 세 글자에 유독 힘을 싣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살이 오른 꽃게, 입을 살짝 벌린 홍합, 도톰한 오징어 등…. 국물을 한 입 떠 먹으면 “살아있네.”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주말에는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2~3시에도 손님이 줄어들지 않는다. 빨리 후루룩 먹고 일어나는 건 암묵적인 예의다. 찾기도 쉽다. 버스 정류장에서 태종대 입구 쪽으로 걸어가면 왼편으로 식당이 보인다. 주소 부산시 영도구 동삼 2동 986-9 문의 051-405-2992 대표메뉴 일반 짬뽕 4,500원, 태종대 짬뽕 6,000원, 태종대 짜장 5,500원, 하얀 짬뽕 6,000원 ▶travie info 추천 여행사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를 타면 약 3시간. 비싼 기차 비용을 들여서 내려갔건만, 초행길이라 헤매면 곤란하다. 더구나 주말이면 부산행 티켓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 수도권 거주자라면 열차 티켓부터 현지 이동까지 도와주는 여행사의 힘을 빌려도 좋다. 기차 상품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홍익여행사는 다양한 부산 여행 상품을 갖추고 있다. 상품가격도 KTX 왕복 비용과 크게 차이나지 않아 저렴한 편이다. 문의 홍익여행사 www.ktxtour.co.kr 02-717-1002 태종대 탐방 코스 태종대를 돌아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걷기, 다누비 탑승, 유람선 탑승. 이중에서 4.3km의 순환도로를 운행하는 열차 ‘다누비’를 타면 태종대 관광은 훨씬 편하다. 단, 주말이면 탑승객이 워낙 많아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길다. 주요 코스 광장 승차장→태원자갈마당→구명사→전망대→영도등대→태종사→정문 입구 하차장 탑승료 1,500원 부산역에서 태종대 가기┃1호선 9번 출구, 시내버스 88번, 101번 남포역에서 태종대 가기┃1호선 6번 출구, 시내버스 8번, 30번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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