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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은 조의문 유족에 전달…이순자, 김홍업과 짧게 인사, 이재용 등 각계 인사 발걸음

    김정은 조의문 유족에 전달…이순자, 김홍업과 짧게 인사, 이재용 등 각계 인사 발걸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는 12일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틀째 이어졌다. ●“北, 대통령 부재중이라 조문단 못 보낸 듯” 전날 여야 5당 대표 등 정치권 주요 관계자가 빈소를 찾았다면, 이날은 경제계를 비롯해 법조계와 교육계, 외교사절 등 각계 인사들이 발걸음해 애도를 표했다. 특히 오전 9시 50분 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씨가 빈소를 찾아 눈길을 끌었다. 이씨는 고인의 차남인 김홍업 전 의원에게 짧게 인사만 건네고 조문을 마쳤다. 동교동계 막내이자 올해 초 이씨의 5·18 민주화운동 망언으로 이씨를 거세게 비판했던 설훈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이씨와 악수하며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이씨는 취재진의 질문을 뿌리치고 장례식장을 급히 떠났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이 1980년 신군부로부터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 신군부의 핵심이었던 전 전 대통령을 찾아가 남편의 석방을 탄원한 바 있다. 이 여사는 2011년 인터뷰에서 “(전두환을 만나) 빨리 석방되도록 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자기 혼자서 결정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2009년 김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전 전 대통령은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전 전 대통령은 영정에 헌화한 뒤 차남 김 전 의원에게 악수를 청하며 “사람일이 다 그런 것 아니겠나. 고생 많으셨다”고 말한 바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판문점 통일각에서 전달한 조화는 오후 7시쯤 빈소에 도착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 유족에게 조화와 조의문을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은 김경수 경남지사와의 대화에서 북측 조문단이 오지 않은 데 아쉬움을 표하면서 “대통령이 안 계시고 국정원장이 없어서, (북측) 고위급이 와도 만날 (우리 쪽) 사람이 없다. 조문단을 보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박 의원과 함께 빈소를 찾아 방명록에 한자로 이름을 적은 뒤 특별한 언급 없이 조용히 조문을 마치고 빈소를 떠났다. 박 의원은 “삼성 측으로부터 조의를 직접 와서 표하고 싶다고 해서 시간 조정만 한 것”이라며 동행에 별 뜻이 없음을 밝혔다. 박 의원은 “이건희 회장이 이 여사, 김 전 대통령과 대화를 많이 나눴다. 특히 이 회장이 정부에서 정보기술(IT) 개발에 박차를 가해 달라고 요구해 과학기술과 정보통신부를 강화했다”며 비화를 밝혔다. ●하토야먀 전 일본총리·김명수 등 애도 국외 인사들의 조문도 이어졌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이낙연 국무총리와 동행해 유족들에게 일일이 악수하며 인사를 건넸다. 이 총리는 “하토야마 전 총리가 이 여사 유언대로 한반도의 평화가 오길 바란다며 조의를 표했다”고 전했다. 추궈훙 주한 중국대사도 조문했다. 김한정 민주당 의원은 “추 대사가 유족들에게 ‘이 여사님은 대한민국 민주화의 대모이셨다. 한중 관계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해 주신 점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감사드린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김명수 대법원장과 정경두 국방부 장관,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재명 경기지사, 오거돈 부산시장, 송철호 울산시장 등이 빈소를 찾아 애도했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이순자 여사도 조문…1분만에 떠나

    이순자 여사도 조문…1분만에 떠나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가 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이날 오전 9시 50분쯤 빈소를 찾은 이순자 여사는 영정 앞에 헌화한 뒤 DJ와 이희호 여사의 차남인 김홍업 전 국회의원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약 1분 만에 자리를 뜬 것으로 알려졌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이희호 여사, 의식 잃지 않고 찬송가 따라부르며 편안히 소천”

    “이희호 여사, 의식 잃지 않고 찬송가 따라부르며 편안히 소천”

    유족·관계자들이 전한 이희호 여사 마지막 순간차남 홍업 “염려 말고 아버님 만나세요. 사랑합니다” 10일 별세한 이희호 여사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순간 편안한 모습으로 임종을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온갖 고난과 역경을 겪으면서 단 한번도 강인한 의지와 희망을 놓지 않았던 고인은 소천하는 순간에도 흐트러지지 않았다고 관계자들이 전했다. 장례집행위원장을 맡은 김성재 김대중평화센터 상임이사는 11일 “돌아가실 때 의식이 깨어 있으셨다”면서 “한 번도 의식을 잃어본 적이 없지만, 기력이 쇠해서 눈은 감고 계셨다”고 연합뉴스에 전했다. 김 상임이사는 “우리가 함께 모여 성경을 읽어드리고 찬송도 드리고 기도를 했다”면서 “그때 여사님이 눈을 뜨고 입을 달싹달싹하면서 찬송을 따라해 유족들이 슬픔 속에서도 매우 감사해했다”고 말했다. 이어 “편안히 소천하셨고, 이내 얼굴도 밝아지셨다”고 덧붙였다. 이희호 여사가 눈을 감는 순간에는 유족들을 비롯해 김대중평화센터 윤철구 사무총장, 박한수 대변인, 최경환 민주평화당 의원, 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등이 함께 곁을 지킨 것으로 전해졌다. 김대중평화센터 관계자는 “어제 오후 9시쯤부터 이희호 여사 곁에 모여 임종을 준비했다”면서 “여사님이 생전 좋아했던 찬송가 ‘나의 갈 길 다하도록’을 부르고 성경을 읽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다같이 찬송가를 부를 때와 2남 홍업씨가 성경 시편 23편 구절을 낭송했을 때 여사님이 입술을 움직여 따라하는 모습에 다들 놀랐다”고 전했다. 박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을 통해 “임종 전 오후 10시 32분 홍업씨가 ‘아무 염려 마시고 예수님 꼭 잡으세요. 아버님 만나시고, 제가 잘할게요. 사랑하고 감사합니다’라고 마지막 말씀을 드렸다”고 밝혔다. 박 대변인은 “오후 11시쯤 큰며느리 윤혜라씨가 ‘고마웠고 감사했다. 편안하시라’고 인사했고, 이후 가족들만의 시간을 가졌다”면서 “이후 급격히 상태가 안 좋아지다가 오후 11시 37분 소천하셨다”고 전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 글에서 “여사님께서 가족들의 찬송가를 따라 부르려고 입을 움직이면서 편안하게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밝혔다. 박지원 의원은 “오후 11시 37분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소천하셨고, 병원 영안실에 안치했다”고 말했다. 임종에 앞서 전날 오후 5시쯤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이희호 여사를 찾았다. 박 대변인은 “권양숙 여사가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저희가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제가 외로울까봐 봉하에 자주 오셨는데 최근 뵙지 못했습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권양숙 여사가 이어 ‘여사님, 좋으시겠습니다. 대통령님 곁에 가실 수 있어서’라고 하니 갑자기 여사님이 계속 감고 있던 눈을 떴다”면서 “이때 가족들도 다들 ‘평안하세요. 사랑하고 존경합니다’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이희호 여사 별세…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반려이자 정치적 동지

    이희호 여사 별세…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반려이자 정치적 동지

    여성운동가로서 독자적 업적…여성 정치 확대에 기여김대중 전 대통령 별세 뒤에도 남북 평화 위해 헌신 이희호 여사가 10일 별세했다. 97세. 김대중평화센터 관계자는 이날 “이희호 여사가 오늘 오후 11시 37분 소천했다”고 밝혔다. 이희호 여사는 최근 노환으로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1922년 태어난 이희호 여사는 이화여고와 이화여전,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한 뒤 미국 램버스대를 거쳐 스카렛대를 졸업했다. 귀국 후에는 이화여대 사회사업과 강사로 교편을 잡는 한편 대한YWCA 한국 여성단체협의회 이사 등을 역임하며 국내 대표적인 여성 운동가로 활동했다. 상처했던 고 김대중 대통령과 1962년 결혼한 뒤에는 인생의 반려자이자 정치적 동지로서 고난과 역경, 그리고 영광을 함께 겪어왔다. 김 전 대통령의 미국 망명과 납치 사건, 내란음모 사건으로 인한 수감, 가택연금 등 군사정권 내내 이어진 감시와 탄압을 함께 겪으며 이겨냈다.특히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당시 사형 선고의 부당함을 알리는 등 국제적인 구명운동에 앞장섰다. 이를 위해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1997년 김 전 대통령이 4번의 도전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70대를 넘어선 나이에 ‘퍼스트 레이디’로서 활발한 내조 활동에 나섰다. 특히 외환위기 직후 사회봉사 단체 ‘사랑의 친구들’과 ‘여성재단’을 직접 설립해, 마지막까지 고문직을 맡는 등 아동과 여성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이들의 권리 신장에 심혈을 기울였다. 김 전 대통령 재임 때 여성의 공직 진출 확대를 비롯해 여성계 인사들의 정계 진출의 문호를 넓힌 당사자이기도 하다. 한명숙 전 총리를 비롯해 추미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미경 한국국제협력재단 이사장,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등이 김 전 대통령 발탁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 전 대통령과 동행해 영부인으로서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했다.그러나 김 전 대통령 재직 시절 3남 홍걸씨에 이어 차남 홍업씨까지 잇달아 구속되는 등 시련도 겪어야 했다. 이희호 여사는 김 전 대통령 별세 이후에도 재야와 동교동계의 정신적 지주로서 중심을 잡아 왔다. 마지막까지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자리를 지키며 남북 관계가 교착 상황에 빠졌을 때에도 남북 평화를 위한 조언과 행동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 교회여성연합외 ‘용감한 여성상’, 미국 캘리포니아주 ‘이 해의 탁월한 여성상’, 무궁화대훈장, 펄벅 인터내셔널 ‘올해의 여성상’ 등 인권과 여성문제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특1호실에 마련됐다.(02-2227-7550) 발인은 14일이며, 당일 오전 7시 고인이 장로를 지낸 신촌 창천교회에서 장례 예배가 열린다. 장지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이다. 이 여사는 가족 측의 의사에 따라 사회장으로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이 여사의 장례를 주관할 장례위원회가 구성된 가운데 장상 전 국무총리서리와 평화당 권노갑 고문이 위원장을 맡고, 5당 대표가 장례위원회 고문으로는 참여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노환’ 이희호 여사 한때 위독… 위험한 고비는 넘긴 듯

    ‘노환’ 이희호 여사 한때 위독… 위험한 고비는 넘긴 듯

    지난 8일 위중했던 것으로 알려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97) 여사가 이튿날인 9일 위험한 고비를 넘긴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을 찾은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이날 밤 9시 20분쯤 이 여사의 병실에서 나와 “현재 많이 안정을 찾은 상태”라며 “가족들도 일단 귀가했고 병실에는 비서진과 경호 인력만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동교동계인 박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의 오랜 측근인 민주평화당 권노갑 상임고문과 함께 병원을 찾았다. 이 여사는 노환으로 지난 3월부터 입원 중이며 최근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의원은 평소 이 여사의 바람에 따라 이날 가족과 측근들이 서울 창천교회 박춘화 목사와 함께 병실에서 특별예배를 드렸다고 전했다. 그는 “여사님이 자택 인근의 창천교회를 53년간 다녔다”며 “꼭 예배를 드리고 싶다고 했다”고 말했다. 특별예배를 마친 차남인 김홍업 전 의원, 삼남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 상임의장 등은 일단 병원을 떠나 귀가했다. 의료진이 위급 상황에서 벗어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날 오후 5시에는 한화갑 전 대표, 김옥두 전 의원 등 동교동계 인사들과 최경환 민주평화당 의원도 병실을 찾았다. 최 의원은 “어제(8일) 아주 급박했다는데 그 상황은 넘겼다고 한다”며 “어르신들 건강이 그렇듯 완전히 호전됐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전했다. 병원 관계자도 “지난 6일에 굉장히 안 좋았고 지금은 (신체활력지수가) 낮은 상태에서 회복됐다”며 “이 여사의 신체활력지수가 낮은 상태에서 계속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진은 당초 이 여사의 상태에 대해 이번 주말을 고비로 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이 여사의 가족과 동교동계 인사들은 당시 이 여사의 병세가 악화할 것을 염려해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의 별세 소식도 알리지 않았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당신이 몰랐던 ‘진짜 영웅’ 이야기

    [밀리터리 인사이드] 당신이 몰랐던 ‘진짜 영웅’ 이야기

    임부택 소장부터 딘 헤스 대령까지나라를 지킨 위대한 6·25 전쟁 영웅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동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은 3년간 이어지며 한반도를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9일 국방부와 국가기록원 등에 따르면 민간인 24만 4663명이 사망하고 학살당한 사람도 12만 8936명에 이르렀습니다. 부상자와 행방불명자 등을 모두 포함하면 99만명이 희생됐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섰던 군의 피해도 컸습니다. 전쟁 기간 한국군 13만 7899명, 유엔군 3만 7902명이 전사·사망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들이 흘린 피를 잊지 않기 위해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정했습니다. 보통 ‘영웅’이라고 하면 영화 속 전쟁 영웅, 스포츠 영웅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저는 6월을 맞아 여러분이 잘 모르는 전쟁 영웅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세월이 지나 잊혀졌지만, 우리가 잊어선 안 되는 그들의 영웅담을 전합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매달 국가보훈처가 발표한 ‘이달의 6·25 전쟁 영웅’을 참고했습니다. ●6·25 전쟁 첫 승리 주역 ‘임부택 육군 소장’6·25 전쟁 영웅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이가 바로 임부택(1919.9.24~2001.11.13) 육군 소장입니다. 그는 국군경비대 창설 멤버로, 중사 계급으로 교관을 맡아 사병(병사와 부사관) 군번 ‘1번’(110001)을 받았습니다. 이후 국방경비사관학교(현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 1기로 소위 임관을 했습니다. 임 소장은 1950년 1월 6사단 7연대장으로 부임한 뒤 북한군의 남침 징후를 포착하고 강원 춘천 소양강변 인근에 방어진지를 구축해 준비태세를 갖췄습니다. 6월 25일 개전 당일, 그의 예측이 적중해 열세의 화력으로도 춘천으로 향하는 북한군을 3일간 막아냈습니다. 이는 개전 초기 큰 혼란에 빠졌던 국군이 전열을 가다듬어 한강방어선을 구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북한군은 개전 당일 춘천을 점령하고 곧바로 수원으로 진격해 국군 증원부대와 한강 이북의 국군을 포위·섬멸할 계획이었지만, 임 소장을 포함한 장병들의 악착같은 방어로 계획은 물거품이 됐습니다. 그는 다음달인 7월 충북 음성 ‘동락리 전투’에서 북한군 15사단 48연대를 기습공격으로 섬멸해 6·25 전쟁 첫 승리를 기록했습니다. 당시 공로로 7연대 부대원 전원이 1계급 특진 영예를 안았다고 합니다. 1951년 4월 6사단 부사단장으로 있던 시기에는 경기 양평 용문산에서 중공군 3개 사단의 공격을 받고도 반격해 2만명을 사살하고 3500명을 포로로 잡아 전쟁 최대의 승리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1953년 7월 11사단장으로 있었던 임 소장은 ‘휴전전투’로 불리는 ‘삼현지구 반격 작전’에서 중공군 4개 사단의 공세를 저지해 현재의 휴전선을 확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중공군 총사령관이었던 펑더화이(팽덕회)가 임 소장을 제거하라는 특별 지시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생전 최고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2차례 받는 등 모두 17개 훈장을 받았습니다.1961년 5·16 쿠데타 당시 1군단장으로 있었던 임 소장은 “반란군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내전에 대한 우려와 ‘국군끼리 충돌하지 말라’는 윤보선 대통령 공문이 상부에 전달되면서 나서지 못했고 얼마 뒤 군복을 벗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해 1월 11사단에는 그의 투혼을 기리는 뜻에서 ‘임부택 장군실’이 마련됐습니다. ●공군 역사를 새로 쓴 ‘김신 공군 중장’김신(1922.9.21~2016.5.19) 공군 중장은 우리 공군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는 분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차남으로, 대를 이어 나라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는 6·25 전쟁이 발발하자 바로 다음날인 6월 26일 이근석 대령 등 10명의 공군 장교와 함께 미군으로부터 ‘F-51 머스탱’ 전투기를 인수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당시 미국은 F-51 전투기 인수 조건으로 ‘훈련 없이도 전투기를 탈 수 있는 조종사’를 원했습니다. 당시 중령이었던 김 중장은 10명 중 유일하게 미 공군에서 F-51로 훈련받은 경험이 있어 ‘국군 첫 전투기 인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일행과 쉬지 않고 훈련해 7월 2일 전투기를 이끌고 귀국했고, 휴식도 없이 바로 다음날인 3일부터 출격해 강원 묵호·삼척지구, 서울 영등포·노량진지구 전투 등에서 적 부대와 탄약저장소를 맹렬히 공습했습니다. 1951년 10월에는 한국 공군 단독출격 작전도 주도했습니다. 특히 대령으로 제10전투비행 전대장을 맡은 뒤에는 미 공군이 수차례 출격하고도 성공하지 못한 평양 근교 ‘승호리 철교’ 폭파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승호리 철교는 평양 동쪽 10㎞ 지점, 대동강 지류인 남강에 설치된 철교로 군수물자를 중·동부 전선으로 수송하는 적 후방보급로 요충지였습니다. 그는 “적의 극심한 대공포화 위협을 감수하고라도 고도를 낮춰 폭탄을 투하해야 한다”며 목숨을 건 공격전술을 도입했고, 1952년 1월 15일 3번째 출격에서 승호리 철교 폭파에 성공했습니다. 한국 공군의 새 역사를 쓴 김 중장은 1962년 공군참모총장을 마친 뒤 제9대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고 ‘을지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부모님의 나라를 지킨 ‘김영옥 미국 육군 대령’김영옥(1919.1.29~2005.12.29) 미국 육군 대령은 재미교포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이탈리아와 프랑스 전선에서 활약했습니다. 그는 제대 후 자영업을 하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부모님의 나라를 구하겠다’며 자원입대해 대위로 군에 복귀했습니다. 김 대령은 주로 정보 수집 업무를 맡으며 한국인 유격대를 조직하다 1951년 ‘중공군 춘계공세’ 때 직접 부대를 지휘해 혁혁한 공로를 세웠습니다. 특히 1951년 5월 중공군 2차 춘계공세 때는 구만산·탑골 전투와 금병산 전투에서 참전해 사기가 떨어진 부대원을 독려해 승리로 이끌었고, 유엔군 부대 중 가장 빠른 진격으로 ‘캔자스선’(1951년 서울 탈환 뒤 38도선을 전술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마련한 전선)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같은 해 6월 ‘철의 삼각지대 전투’를 수행하다 중상을 입고 일본 오사카로 후송됐지만, 치료를 받고 다시 전선에 복귀하는 투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1952년 9월 미국으로 복귀할 때까지 수많은 전공을 세웠고,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정부로부터 ‘은성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2005년에는 우리 정부는 그에게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했습니다. ●서울 수복 후 태극기 휘날린 ‘박정모 해병대 대령’‘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한 박정모(1927.3.20~2010.5.6) 해병대 대령은 1950년 9월 27일 서울탈환 작전 당시 해병대 2대대 6중대 1소대장으로 최전선에 섰습니다. 그는 소대원들과 새벽에 공격을 감행해 치열한 교전 끝에 서울 중앙청(당시 정부청사)으로 들어가 옥상의 인공기를 걷어내고 태극기를 가장 먼저 게양했습니다. 이 역사적인 장면은 사진으로 남아 지금도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립니다.이후 1951년 전쟁 최대 격적지였던 ‘가리산지구 전투’에서 최종 목표인 957고지를 야간 기습공격으로 탈취했고, 연합군 총반격 작전인 ‘리퍼 작전’에도 기여했다고 합니다. ‘도솔산지구 전투’에서는 24개 목표 중 적의 최후 방어선인 제9목표를 일주일 만에 탈환하는 공로도 세웠습니다. 정부는 박 대령에게 ‘을지무공훈장’과 ‘충무무공훈장’을 수여했습니다. ●한국 공군의 아버지 ‘딘 헤스 미국 공군 대령’딘 헤스(1917.12.6~2015.3.3) 미국 공군 대령은 6·25 전쟁 당시 우리 공군을 지원하기 위해 창설된 ‘제6146군사고문단’ 책임자로, 한국인 전투기 조종사 양성을 진두지휘한 인물입니다. 한국 공군이 최단 기간에 ‘싸울 수 있는 군대’로 거듭나게 된 것은 헤스 대령의 공로가 매우 컸습니다. 그는 F-51 전투기로 1951년 6월까지 1년간 무려 250회를 출격하는 초인적인 활동으로, 개전 초기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또 ‘1·4 후퇴’ 직전 중공군 개입으로 전황이 악화됐을 당시 적이 눈앞까지 닥친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안고 수송기에 태워 950명의 전쟁 고아와 성인 80명을 제주도로 안전하게 대피시키기도 했습니다. 전후에도 그는 제주도를 찾아 전쟁고아들을 돌봤고 ‘전쟁고아의 아버지’로 불렸습니다.2017년 3월 제주항공우주박물관에는 그를 기리는 기념비가 건립됐습니다. 우리 공군은 그를 ‘6·25 전쟁 중 한국 공군의 아버지’로 기리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공로로 미국 정부로부터 ‘은성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英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생일…‘로열패밀리’ 총출동

    英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생일…‘로열패밀리’ 총출동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93세 생일을 축하하는 공식 행사가 열린 8일(현지시간) 왕실을 대표하는 ‘로열 패밀리’들이 총출동했다. 행사에는 마클 왕자비가 출산 후 처음으로 대중에 모습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해리 왕자는 마클 왕자비 곁을 시종 지켰다. 외신 등에 따르면 여왕은 이날 버킹엄궁 인근에서 열린 근위기병대의 공식 축하퍼레이드인 군기분열식을 지켜보기 위해 마차를 타고 도착했다. 여왕의 진짜 생일은 태어난 날인 4월 21일이지만 공식적으로는 6월 둘째 주 토요일에 기념식을 연다. 여왕의 장남인 찰스 왕세자와 카밀라 왕세자빈, 손자인 윌리엄 왕세손과 미들턴 왕세손빈, 해리 왕자와 마클 왕자비 등이 모두 참석했다. 마클 왕자비는 첫째 출산 이후 4주 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찰스 왕세자와 윌리엄 왕세손, 여왕의 차남인 앤드루 왕자 등은 직접 검은 털모자를 쓰고 말을 타고 행진했다.오는 10일 98세 생일을 맞는 여왕의 남편인 필립공은 이날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필립공은 고령 등을 이유로 2017년 왕실 공무에서 은퇴했다. 인근 그린 파크에서는 로열 기포병들이 여왕의 공식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41발의 축포를 쐈다. 이날 퍼레이드 후 여왕과 왕실 가족은 버킹엄궁으로 돌아와 발코니에서 영국 공군의 공중분열식을 지켜봤다. 공중분열식에는 최신 전투기를 포함해 20여대가 참여하며, 공군 곡예비행단(Red Arrows) 소속 전투기들이 대미를 장식한다.군기분열식은 원래 전통적인 전투준비에서 유래했지만, 18세기부터 250년 이상 영국 왕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이어져 왔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952년 왕위에 오른 뒤에는 철도파업이 일어난 1955년을 제외하고 매년 열렸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하회마을 섶다리를 지켜내라.’

    ‘하회마을 섶다리를 지켜내라.’

    ‘하회마을 섶다리를 지켜내라.’ 경북 안동시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하회마을 방문 2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임시 설치한 섶다리 보존에 나섰다. 5일 시에 따르면 지난달 예산 7000만원(철거비 포함)을 들여 하회마을 만송정에서 강 건너 옥연정사 앞 모래사장까지 길이 123m, 너비 1.5m, 수면으로부터 약 60cm 높이로 놓은 섶다리를 존치하기로 했다. 섶다리는 통나무와 솔가지, 흙, 모래 등 자연 재료를 활용해 소박하게 짓는 전통방식의 다리이다. 이에 따라 시는 최근 부산지방국토관리청과 문화재청에 하천점용허가, 문화재현상변경허가를 각각 신청했다. 애초 이 다리는 문화재청이 안전상 등의 이유로 설치에 반대했으나 시가 이달 14일까지 1개월 간 사용후 철거 조건으로 임시허가를 받아 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국가중요민속자료 제122호인 하회마을 주변에 다리를 새로 놓으려면 반드시 문화재청의 국가지정문화재 현상변경 허가 절차를 거쳐여 한다. 이처럼 시가 섶다리 보존에 나선 것은 설치된 지 1개월도 안돼 화회마을의 명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14일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가 하회마을과 섶다리를 찾은 이후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5월 7만여명이었던 하회마을 관광객이 올해 같은 기간 9만 50000명으로 35% 이상인 2만 5000명이 증가했다. 특히 섶다리가 놓여 나룻배 이용하지 않고 바로 하회마을에서 옥연정사를 둘러보고 부용대까지 오를 수 있는 최적의 관광코스가 만들어진 것이다. 하회마을 관광객의 70% 이상이 섶다리를 이용하고 다리를 건너며 중간중간 멈춰서 ‘인생샷’을 남기기 위해 바쁜 표정들이라고 마을보존회 관계자는 귀뜸했다. 이 때문에 갈수록 다리 존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회마을 섶다리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매년 마을 주민들이 10월 말쯤 설치해 이듬해 장마철 무렵 거둬들였던 임시 다리였다. 안동시 관계자는 “섶다리 보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결과를 낙관할 수는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이종락의 기업인맥 대해부](73) 2세 경영 본격화된 동원그룹

    [이종락의 기업인맥 대해부](73) 2세 경영 본격화된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 4월 깜짝 은퇴 선언 차남 김남정 부회장, 수산·식품 그룹 이끌어2014년부터 1조원 들여 9개 회사 M&A동원그룹 김재철(84) 회장이 지난 4월 16일 경기 이천의 ‘동원리더스아카데미’에서 열린 ‘동원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깜짝 선언했다. 동원산업을 창업하고 회사를 이끌어 온지 딱 50년 만이다. 김 명예회장은 1969년 4월 16일 서울 명동의 작은 사무실에서 회사를 연 뒤 50년만에 동원그룹을 수산·식품·물류 등으로 외연을 확장해 국내외에서 연간 약 7조 2000억 원의 연매출을 올리는 글로벌기업으로 키웠다. 전남 강진군 군동면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7남 4녀 중 장남이었던 김 명예회장은 강진농고 우등생이어서 서울대 농대 장학생으로 뽑혔다. 하지만 “바다는 무한한 보고로, 우리가 잘 살려면 우수한 젊은이들이 바다를 개발해야 한다”는 담임 교사의 말을 듣고 바다에 인생을 걸겠다고 결심한 뒤 당시 국립수산대학(현 부경대학교) 어로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반 시절, 우리나라 최초 원양어선인 ‘지남호’가 출항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지남호에 승선하기 위해 ‘목숨을 잃어도 좋다’는 각서를 쓴 뒤, 실습선원으로 몸을 실었다. 이렇게 혹독한 현장체험을 한 그는 자본금 1000만원을 구해 직원 3명, 원양어선 1척으로 동원산업을 창립했다. 동원산업은 1982년 국내 최초로 참치 살코기를 통조림에 담은 참치캔을 선보여 대히트 시켰다. 동원참치는 출시 이후 현재까지 62억캔 이상 판매돼 국민식품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한 줄로 늘어 놓으면 지구 12바퀴 반을 돌 수 있는 양이다. 동원산업은 이후 양반김, 양반죽, 육가공식품 등 다양한 식품을 출시하며 식품사업을 키워나갔고, 2000년 본격적인 식품사업 확대를 위해 식품가공유통계열사인 ‘동원F&B’를 분할설립했다. 동원F&B는 유가공사업, 건강기능식품사업, 온라인유통 사업 등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며 국내 굴지의 식품기업 중 하나로 성장했다. 김 명예회장은 수산업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1999년부터 2006년까지 한국무역협회장을 맡는 등 우리나라 재계를 대표하는 경영인으로 우뚝 섰다. 국내 원양업계에서 탄탄한 기반을 다진 김 명예회장은 1982년 신성장동력으로 금융업을 선택한 뒤 ‘한신증권’을 인수했다. 1996년 동원증권으로 사명을 바꾼 뒤 성장을 이어가다가 2004년 한국투자신탁을 인수하면서 지금의 한국투자금융그룹으로 키웠다. 한국투자증권은 큰 아들 김남구(56) 부회장이 경영을 맡고 있다.김 명예회장의 은퇴 선언으로 동원그룹은 차남 김남정(46)부회장이 실질적 경영을 이끌고 있다. 중경고와 고려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김 부회장은 1996년 동원산업에 입사해 창원의 참치캔 제조공장 생산직과 바쁘기로 소문난 청량리지역 영업사원 등 현장을 두루 경험했다. “경영자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애환을 몸으로 깨달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른 것이다. 이후 미 미시간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은 뒤 귀국해 동원산업 경영지원실장과 동원시스템즈 경영지원실장에 이어 2011년부터 동원엔터프라이즈 부사장 및 2008년에 인수한 미국의 참치캔 회사 스타키스트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거치는 등 경영수업을 받았다. 2014년 동원그룹의 부회장에 선임됐고, 부친을 도와 테크팩솔루션, 동부익스프레스 등 다수의 인수·합병(M&A)을 성사시키며 현재 동원그룹의 4대 주요사업축(수산-식품-패키징-물류) 기반을 완성했다. 2014년부터 5년동안 동원그룹이 인수·합병한 회사만 9곳, 인수를 위해 들인 돈만 1조원에 이른다.김 명예회장은 고 조덕희씨와의 사이에 2남 2녀를 뒀다. 조씨가 2012년 세상을 떠나자 김헬렌랑(67)씨와 이듬해 재혼했다. 부산대에서 패션을 전공한 김씨는 호주 시드니대에서 서양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보석디자인 국제감정 자격증을 딸 정도로 미술, 패션 분야에 조예가 깊다.장남인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은 고병우 전 건설교통부 장관의 딸 고소희(51)씨와 결혼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동윤(26), 지윤(21) 남매가 있다. 차남 김남정 부회장은 법무부 차관, 국정원장과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신건 변호사의 3녀인 신수아(47)씨와 결혼했다. 이대 장식미술학과 4학년을 다니던 신씨와 동아리 선배의 소개로 만나 2남 1녀를 뒀다. 차녀 김은지(51)씨는 김택수 전 국회의원의 4남 김중성(57)씨와 결혼해 미국에서 살고 있다.
  • ‘영국 국빈 방문’ 트럼프, 마클 왕자비만 안 만나는 이유

    ‘영국 국빈 방문’ 트럼프, 마클 왕자비만 안 만나는 이유

    새달 3일부터 사흘간 영국을 국빈방문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해리 왕자 부인인 메건 마클 왕자비를 제외한 왕실 주요 인사 대부분을 만난다. 결혼 전 미국에서 배우로 활약하는 동시에 여성인권 운동에도 적극적이었던 마클 왕자비는 2016년 미 대선 당시 “나는 그(트럼프)가 꿈꾸는 세상을 원하지 않는다. 이런 확신이 더욱 생긴다”고 소신 발언을 하기도 했다. 25일(현지시간) BBC 등에 따르면 영국 왕위 계승 서열 6위인 해리 왕자와 지난해 5월 결혼해 최근 아치 해리슨 마운트배튼 윈저 왕자를 출산한 마클 왕자비는 트럼프 대통령 국빈방문 행사에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미 할리우드 배우이자 해리 왕자보다 3살 연상의 흑인 혼혈 이혼녀라는 꼬리표를 단 채 보수적인 영국 왕실에 입성해 화제가 된 마클 왕자비는 결혼 전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 미국을 떠나겠다고 밝힐 정도로 ‘반(反)트럼프’ 민주당 지지자다. 결혼식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제러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 등 정치 지도자도 일절 초대받지 못했다. 영국 왕실 업무를 담당하는 버킹엄궁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영국 국빈방문과 관련한 상세 일정을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 도착 첫날인 6월 3일 버킹엄궁 정원에서 열리는 환영 기념행사에 참석한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찰스 왕세자, 부인 카밀라 왕세자빈이 트럼프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를 맞이할 계획이다. 환영식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항의 시위 등을 고려해 비공개로 열기로 했다. 환영식에 이어 여왕과 해리 왕자, 트럼프 대통령 부부가 함께하는 비공개 오찬도 이어진다. 저녁에는 버킹엄궁에서 국빈만찬이 열린다. 만찬에는 여왕과 찰스 왕세자 부부, 윌리엄 왕세손 내외와 함께 영국 주요 인사와 영국 거주 미 유명인사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국빈방문 이틀째인 4일 트럼프 대통령은 사퇴를 선언한 메이 총리,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와 함께 세인트제임스궁에서 비즈니스 조찬을 한 뒤 총리관저로 자리를 옮겨 양자회담을 갖는다. 이날 저녁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답례 차원에서 리젠트파크에 있는 미 대사관저에서 개최하는 만찬에 찰스 왕세자 부부가 참석할 계획이다. 마지막 날인 5일 여왕과 찰스 왕세자, 트럼프 대통령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75주년을 기념해 남부 포츠머스에서 열리는 기념식에 함께 참석한다. 영국 의회는 주요 외국 정상이 의미 있는 방문을 했을 경우 의사당 내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상·하원 합동 연설 기회를 부여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국빈 방문에서 초대받지 못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싱가포르 리콴유 총리 손자 동성결혼식 “나의 소울메이트”

    싱가포르 리콴유 총리 손자 동성결혼식 “나의 소울메이트”

    싱가포르 리콴유 전 총리의 손자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동성 결혼식을 올렸다. 2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보도에 따르면 리콴유 전 총리의 차남 리셴양의 아들인 리환우는 지난 2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동성인 헝이루이와 결혼한 사진을 올렸다. 리환우는 “나는 오늘 나의 소울메이트와 결혼했다. 평생 이와 같은 순간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남아공은 2006년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싱가포르에서는 동성결혼은 물론 동성애 자체가 불법이다. 리환우의 아버지 리셴양은 SCMP에 “내 아버지(리콴유 전 총리)가 이를 알았다면 기뻐했을 것이다”라며 아들의 결혼을 축하했다. 결혼식을 알린 페이스북 게시물에는 수많은 ‘좋아요’와 함께 “축하해요! 사랑에는 경계가 없어요” 같은 축하 댓글이 달렸다. 한편 대만에서는 지난 22일 차이잉원 총통이 아시아 최초로 동성 간 결혼을 법제화하는 내용의 법안에 서명했다. 동성 간 결혼등기를 받기 시작한 24일 대만 전역에서는 총 526건의 동성 간 결혼등기가 이뤄졌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이종락의 기업인맥 대해부](72) 계열분리 모색하는 고려아연

    [이종락의 기업인맥 대해부](72) 계열분리 모색하는 고려아연

    고려아연, 형제간 협업·릴레이 경영으로 유명3남인 최창근 회장이 10년째 진두 경영최윤범 사장, 3세 경영 승계 준비영풍과 공동경영체제를 꾸리고 있는 고려아연은 최기호 창업주 집안이 이끌고 있다. 창업주 슬하에 5형제중 장남 최창걸·차남 최창영 명예회장에 이어 2009년부터 셋째인 최창근 회장이 고려아연 최고경영자(CEO)로 재직중이다. 고려아연은 아들 3형제가 각각 경영, 기술, 원료를 맡아 협업하며 릴레이식 경영을 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고려아연은 종합비철금속 제련회사로 주요 제품으로는 산업용 기초소재인 아연, 연, 동, 귀금속인 금과 은, 희소금속인 인듐 등이 있다. LS니꼬동제련에 이어 국내 비철금속 매출 2위 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6조 8833억원, 영업이익, 7647억원, 당기순이익 5348억원을 올렸다. 고려아연이 주력으로 생산하는 정련아연 생산량은 세계적으로 기업별로는 1위, 국가별로는 중국에 이어 2위다. 고려아연은 연(납) 생산량도 세계 1위다. 고려아연은 연산 30만t으로 생산량 기준 세계 2위였지만 2016년 제2비철단지를 완공해 생산량을 43만t으로 늘리면서 세계 1위였던 중국 위광제련소를 뛰어 넘었다. 연은 자동차 배터리 원료, 건설자재, 전선 피복, 방음재 등으로 활용된다. 고려아연 온산제련소는 세계 1위 규모를 자랑한다. 온산제련소에서는 아연과 연 등 기초 금속을 비롯해 금은 등 귀금속까지 연간 18가지 비철금속 120만t을 생산, 전 세계 단일 제련소 가운데 비철금속을 가장 많이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거의 해마다 황산누출, 용해로 수중기 폭발, 근로자 추락사 등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지만 회사측의 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고려아연은 최근 차세대 산업인 전기차 배터리 소재 시장에도 뛰어들었다.창업주는 원래 6남 3녀를 뒀지만 큰 아들이 일찍 죽은 뒤 실질적인 장남 역할은 최창걸(78) 고려아연 명예회장이 맡았다. 그는 경기고를 나와 서울대 경제학과와 콜럼비아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부인은 27대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지낸 유중근(75)씨다. 두 사람 사이에는 2남 1녀가 있다. 장남 데이비드 최(51)는 경영을 맡지 않기로 선언한 뒤 여동생 영아(48)씨와 함께 미국에서 살고 있다.차남인 최윤범(44)씨만 경영에 참여해 지난 3월 고려아연 사장에 취임해 3세 경영 승계를 준비하고 있다. 최 사장은 미 애머스트대학과 콜럼비아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2007년 고려아연에 입사했다. 2010년부터 페루 광산개발을 위한 현지법인 ICM 파차파키의 사장으로 자원개발 사업을 총괄했다. 2012년부터 부사장으로 전략기획 업무를 담당했고, 2014년부터 호주 아연제련소인 SMC 사장을 지냈다. 창업주의 둘째인 최창영(75) 명예회장은 서울대 금속학과를 졸업하고 미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금속학 석·박사를 받았다. 이화여대를 나온 김록희(73)씨와의 사이에 2남 1녀가 있다. 장남 최내현(49)씨는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한 뒤 고려아연 계열인 코리아니켈과 알란텀의 사장으로 재직중이다. 창업주의 3남인 최창근(72) 고려아연 회장은 경복고, 서울대 자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 콜로라도대 광산대학원에서 자원공학, 미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자원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9년부터 고려아연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다. 이화여대 출신인 부인 이신영(68)씨와의 사이에 1남 2녀를 뒀다. 장녀 최경아(44)씨는 천신일 ㈜세중 회장의 장남 천세전(45) 사장과 결혼했다. 차녀 최강민(40)씨는 고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의 외아들인 방성훈(46) 스포츠조선 대표의 부인이다. 외아들 최민석(37)씨는 행안부 장관을 지낸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딸인 김지수(32)씨와 혼인했다. 김씨는 결혼 전 윤세인이라는 예명으로 연예계 활동을 했다. 창업주의 4남인 최창규(69) 영풍정밀 회장은 경복고, 서울대 문리대, 시카고 대학원을 나왔다. 5남인 최정운(66)씨는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지내며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다.고려아연은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순환출자 해소를 요구하고 있어 LG그룹이 3대째에 이르러 계열분리를 한 것처럼 영풍과 그룹을 분리할 가능성이 높다. 고려아연이 영풍과 계열분리를 추진하면 공정거래법상 규제에서 벗어나고 기업가치를 재평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풍과 고려아연 관련 회사들은 최근 몇년 동안 두 가문의 계열분리를 위한 지분절차를 활발하게 벌이고 있는 중이다.  이종락 논설위원 jrlee@seoul.co.kr
  • [이종락의 기업인맥 대해부](71) ‘한지붕 두 가문’ 영풍그룹

    [이종락의 기업인맥 대해부](71) ‘한지붕 두 가문’ 영풍그룹

    영풍과 고려아연이 70년째 공동경영영풍은 창업주 차남인 장형진 고문이 실질 경영장남 장세준 부사장, 차기회장으로 사실상 낙점‘영풍’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교보문고 다음으로 큰 영풍문고 일 것이다. 하지만 영풍은 단순한 서점 회사가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 기준 자산 12조원으로 소속회사 24개를 거느린 재계순위 25위인 종합비철금속 제련과 전자부품 회사다. 철강업계에 포스코가 있다면 비철금업계에서는 영풍이, 스마트폰업계에 삼성전자가 있다면 전자부품업계에는 영풍이 있는 셈이다. 비철금속이란 철 이외에 구리, 납, 주석, 아연, 금, 백금, 수은 등 공업용 금속을 말한다. 영풍그룹은 해방 직후인 1949년 황해도 사리원 출신의 동향인 고 장병희 창업주와 고 최기호 창업주가 동업으로 만든 무역회사인 영풍기업사가 모태다. 당초 ‘불놀이’로 유명한 주요한 시인까지 3인이 함께 시작했으나 주요한 시인이 장면 내각의 상공부 장관으로 일하면서 2인 동업체제가 되면서 70년째 ‘한 지붕 두 가문’의 공동경영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지배회사인 ㈜영풍과 전자계열은 장씨 일가가 맡고 있고, 고려아연을 중심으로 하는 비철금속 계열은 최씨 일가가 담당한다. 두 집안은 70년 가까이 공동경영체제를 이어오고 있지만 순환출자 문제가 얽혀 있어 3세 경영과 동시에 계열 분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장병희 창업주는 2남 2녀를 뒀는데 차남인 장형진(73) ㈜영풍 고문 일가쪽만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장 고문의 형인 장철진 전 영풍산업 회장은 지난해 6월 별세했다. 장 고문은 1993년 회장으로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서 지난 2015년 대표이사와 사내이사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그룹 일을 챙기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장 고문이 지배구조 문제를 전반적으로 해결하고 점진적으로 승계를 준비하는 모양새”라고 분석했다. 장 고문은 서울사대부고와 연세대 상경대를 졸업했다. 전경련을 비롯한 재계 단체 활동이 뜸한 편이고, 외부 언론 인터뷰 등도 꺼려 ‘은둔의 오너’로 알려져 있다. 장 고문은 김세련 전 한국은행 총재의 장녀 김혜경(71)씨와 사이에 장세준(44) 코리아서키트 부사장과 장세환(39) 서린상사 대표, 딸 혜선(38) 씨 등 3남매를 두고 있다. 이들 자녀에 대한 지분 승계는 일찌감치 이뤄져 장세준 부사장이 ㈜영풍의 최대주주로서 지분율이 16.89%, 장세환 대표가 3대 주주로 11.15%를 점하고 있다.장남인 장세준 부사장은 영동고를 졸업한 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생화학을 공부한 뒤 패퍼다인대에서 경영대학원을 다녔다. 코리아서키트는 영풍그룹 전자사업의 몸통 역할을 한다. 차남 장세환 대표도 미국 패퍼다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이후 중국 칭화(淸華)대에서 국제 MBA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영풍과 고려아연의 비철금속 수출·입을 하는 서린상사를 맡고 있다. 막내인 딸 혜선(38)씨는 세계은행 수석연구원 인경민(38)씨와 결혼해 미국에서 살고 있다. 영풍그룹은 주요 계열사로 ㈜영풍, 영풍문고, 인터플렉스 등을 두고 있다. 이강인(68) 영풍 사장은 국내 재활용(리사이클링) 금속 연구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장은 산업폐기물을 가공해 가치 있는 금속으로 탈바꿈시키는 기술에 상당한 일가견을 가진 전문가다. 경기고와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전공으로 서울대와 미 유타대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사장은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근무하며 비철금속 기초 연구·개발(R&D)과 자원 재활용 분야, 금속 재료 등을 연구하며 경험을 쌓았다.최영일(64) 영풍문고 사장은 30년간 문화콘텐츠 분야의 전문가로 활약했다. 서울사대부고, 동국대 무역학과와 미 이스트미시건대 경제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월트디즈니코리아,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등 여러 다국적기업에서 근무했다. 해외 마케팅 전문가인 최 사장은 월트디즈니에서는 취임 4년 만에 매출액을 4억에서 250억으로 불렸고, 워너브라더스에서는 국내 캐릭터 산업의 서막을 연 콘텐츠 비즈니스맨으로 통한다. 이외에 오로라월드, 대원미디어 등의 사장을 지냈다. 영풍문고 사장으로서 오프라인 도서 매출과 온라인 도서 매출을 신장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고객들이 서점에 머무르게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백동원(64) 인터플렉스 대표는 하이닉스, 현대전자에서 제조본부, 기술지원사업본부, 품질보증실 등 기술사업화 분야의 전문성을 보유한 경영자다. 하이닉스 부사장과 충칭공장 총괄사장을 역임했다. 백 대표는 보성고와 고려대 재료공학과와 같은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1984년 현대전자에 입사한 이후 재료, 소재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백 대표는 영풍그룹에서는 시그네틱스 대표를 시작으로 지난 2018년 3월 인터플렉스 대표로 취임했다.  이종락 논설위원 jrlee@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천년의 구들, 신라의 온기를 전하다 - 하동 칠불사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천년의 구들, 신라의 온기를 전하다 - 하동 칠불사

    # 천년의 온돌, 아자방(亞字房) 이야기 가득한 ‘금관가야에서 오시어 아자방을 축조하셨네 (來自金官築亞房) ’ 봄 향기 가득 머금은 지리산이다. 동쪽 주능선 산행코스인 명선봉, 형제봉, 덕평봉을 허위허위 지나다 보면 어느 순간 얌전한 토끼봉(1,534m)에 닿는다. 바로 이 토끼봉 자락을 잡고 아래로 내려오다 보면 반야봉 남쪽 해발 약 800m 지점에 천년 고찰이 등장한다. 불현듯이. 허투루 볼 절집이 아니다. 천년 세월의 온기(溫氣)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구들방이 있는 절이다. 천년 온돌, 아자방(亞字房) 이야기가 전해지는 지리산 칠불사(七佛寺)다.당연히, 유명 사찰에는 회자되는 전설이나 설화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즉 일상의 바쁜 삶에도 ‘불구하고’ 시간 내어 굳이 찾아올 만한 이유가 당연히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지리산 칠불사는 언제든 얼굴 한 번 내밀만한 이야기들이 가득한 절임은 분명하다. 칠불사의 창건 스토리부터 예사롭지 않다. 삼국 시대 초기 김해 지방에 존재하였던 가야(伽倻) 일명 가락국(駕洛國)의 태조이자 김해 김씨의 시조인 김수로왕(金首露王)의 일곱 왕자가 이곳에서 수도 정진하여 모두 성불하였다고 하여 일곱 ‘칠(七)’, 부처 ‘불(佛)’을 써서 이름 지은 절이 칠불사다.<삼국유사, 가락국기>나 <동국여지승람 하동기>에 따르면 서기 42년에 태어난 수로왕이 현재의 인도 갠지스강 상류지방에 5세기부터 있었던 태양왕조 아유다국의 공주 허황옥(許黃玉)을 왕비로 맞아들여 10남 2녀를 두었다고 한다. 이 중 큰 아들 거등(巨登)은 왕위를 계승했고 차남과 삼남은 김해 허(許)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나머지 일곱 왕자가 이 곳에서 부처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하니 칠불사를 방문한 김해 김씨(金氏), 김해 허씨(許氏) 성을 쓰는 방문객들은 급히 옷깃부터 여민다. 콘텐츠의 힘이다.또한 칠불사는 흔히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해진 시기라고 알려진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보다 270년 더 빨리 인도에서 배를 타고 불교가 직접 전래했다는 이른바 ‘남방전래설’을 지지하는 가야불교의 시원인 곳이기도 하다. # 인도에서 전해진 불교 남방전래설, 빨치산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최후를 맞이한 빗점골여기에 더해 칠불사에는 신라 효공왕(재위 897∼912) 시절 구들도사라 불렸던 ‘담공선사’가 직접 축조한 아자방(亞字房)의 흔적이 전해 내려온다. 방의 모양이 ‘아(亞)’자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아자방(亞字房)으로 불리는 데 한 번 불을 지피면 온돌 고래 사이로 열기를 100일 동안 간직하였다고 한다. 칠불사에서는 바로 이곳을 한겨울 스님들이 참선 수행하는 선방으로 사용한다. 아자방(亞字房)에서 참선공부를 할 때는 장좌불와(長坐不臥, 늘 앉아만 있고 눕지 않는 것), 일종식(一種食, 하루 한 끼만 먹는 것), 묵언(言, 말하지 않는 것)의 세 가지 규칙을 지켜야 한다. 현재 이곳은 국가문화재 승격을 위한 중수 공사를 하고 있다.동국제일선원으로 불리는 칠불사 역시 많은 퇴락과 중수를 거듭했다. 특히 6·25전쟁을 거치면서 전소된 사찰을 전 쌍계사 승가대학장인 제월당 통광(1940~2013) 대선사의 힘으로 1978년부터 중수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현재 대웅전, 아자방, 운상선원, 설선당, 보설루, 원음각, 요사, 영지, 일주문 등은 완전 복원 중창하여 신라 시대의 향기 가득한 선원으로 탈바꿈하였다. <지리산 칠불사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만약 김해 김씨나 김해 허씨라면, 지리산 토끼봉을 지나는 일이 있다면 2. 누구와 함께? - 가족 단위 나들이 장소. 3. 가는 방법은?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범왕길 528- 하동터미널 → 화개터미널 첫차 7:55 막차 20:30 수시 운행. 4. 감탄하는 점은? - 칠불사까지 가는 지리산의 풍광들, 눈 앞에 펼쳐지는 드넓은 산자락 풍경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지리산 깊은 곳에 있다 보니 방문객들은 그리 많지 않은 편. 6. 꼭 봐야 할 장소는? - 아자방(亞字房), 대웅전, 영지 연못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칠불사 올라오기 전에 화개장터에서 가벼이. 산이 깊다보니 사찰 주변에는 상업시설이 없다.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chilbul.or.kr/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청학동, 최참판댁, 화계장터, 섬진강, 삼성궁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칠불사는 1948년 '여수, 순천 10.19사건' 당시 여순 병력과 군경 토벌대가 최후 충돌한 곳으로 국군의 소개(疏開)처리로 인하여 전소되었다. 빨치산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최후를 맞이한 곳이 바로 칠불사 위쪽 빗점골이다. 한국 현대사의 깊은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곳.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법정 선 LG 사주 일가…양도세 포탈 혐의 부인

    가족 간 주식거래를 제3자와의 거래로 위장해 거액의 양도소득세를 포탈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LG 사주 일가가 줄줄이 법정에 출석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 송인권)는 15일 조세범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LG 사주 일가 14명과 재무관리팀 2명에 대한 첫 공판을 진행했다. 창업주 고 구인회 회장의 손자이자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차남인 구본능(70) 희성그룹 회장은 이날 건강 문제를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다. 고 구인회 회장의 3녀, 구자경 명예회장의 장녀 및 차녀를 포함한 나머지 피고인은 모두 법정에 나왔다. 재판 시작 10여분 전 출석한 이들은 서로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대기했다. 검찰은 “LG 재무관리팀이 사주 일가 주식을 매매할 때 다른 사주 일가에 매매한 사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위장했다”면서 “사주 일가가 불특정 제3자에게 주식을 매도하는 것처럼 가장하는 방법으로 신고해 양도소득세를 포탈한 사건”이라고 공소 요지를 설명했다. 이와 관련, 변호인은 “이 사건의 주식 거래에서 사기나 그 밖의 부정한 행위가 없었다”며 피고인들의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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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가 14일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찾아 담연재에서 여왕의 메시지와 방문 인사를 전한 뒤 권영세 안동시장의 환영 선물을 전달받고 있다. 1999년 한국에 온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가장 한국적인 곳을 보고 싶다’며 안동을 다녀간 뒤 20년을 기념해 대를 이어 찾았다. 안동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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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가 14일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찾아 담연재에서 여왕의 메시지와 방문 인사를 전한 뒤 권영세 안동시장의 환영 선물을 전달받고 있다. 1999년 한국에 온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가장 한국적인 곳을 보고 싶다’며 안동을 다녀간 뒤 20년을 기념해 대를 이어 찾았다. 안동 연합뉴스
  • [포토] ‘어머니 발자취 따라’… 안동 하회마을 방문한 영국 앤드루 왕자

    [포토] ‘어머니 발자취 따라’… 안동 하회마을 방문한 영국 앤드루 왕자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가운데)가 14일 안동 하회마을을 찾아 살펴보고 있다. 앤드루 왕자의 방문은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안동을 다녀간 지 20년 만이다. 이날 앤드루 왕자는 어머니가 방문했던 발자취를 따라 안동 곳곳을 방문한다. 2019.5.14 연합뉴스
  • 안동 하회마을 전통 섶다리 50년 만에 재현

    경북 안동 하회마을 앞 낙동강 ‘전통 섶다리’가 50년 만에 임시 복원된다. 안동시는 오는 10일 하회마을 부용대 앞에 설치된 섶다리를 일반에 공개한다고 10일 밝혔다. 시는 오는 14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안동 방문 20주년을 맞아 차남 앤드루 왕자의 하회마을 방문을 앞두고 만송정에서 강 건너 옥연정사 앞 모래밭까지 길이 123m, 너비 1.5m, 수면에서 약 60cm 높이로 임시 섶다리를 만들고 있다. 섶다리는 통나무와 솔가지, 흙, 모래 등 자연 재료를 활용해 소박하게 짓는 전통방식의 다리로, 관광객들에게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이 다리는 이달 26일까지 한시적으로 운영(오전 10시~오후 6시)된다. 섶다리가 생기면서 만송정에서 섶다리를 건너 옥연정사를 지나 바로 부용대 정상까지 걸어서 관람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다. 또 하회마을 관광코스를 다니는 시간이 이전보다 약 30분 줄어든다. 시는 강물 수위는 높지 않으나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섶다리에 안전조치를 철저히 할 계획이다. 하회마을 보존회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 사람들이 해마다 강수량이 적은 10월 말에 섶다리를 설치해 이듬해 장마철 무렵 거두어 들였다고 설명했다. 옛날 섶다리를 놓을 때 물에 강한 물푸레나무를 Y자형으로 해 지지대를 세우고 그 위에 굵은 소나무와 참나무를 얹어 다리 골격을 만들었다. 이어 솔가지로 상판을 덮고 그 위에 다시 흙을 얹었는데, 그 모양이 마치 지네가 기어가는 형상이라고 했다. 안동시 관계자는 “하회마을 섶다리는 옛 문헌에도 상세히 등장한다”면서 “새로 놓일 섶다리는 전통 한옥, 낙동강변길, 휘돌아나가는 물길, 드넓은 모래사장 등 하회마을 고즈넉한 정취와 함께 예스러운 풍광을 자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이종락의 기업인맥 대해부](67) 취임 첫 해를 맞은 이해욱 대림산업 회장

    [이종락의 기업인맥 대해부](67) 취임 첫 해를 맞은 이해욱 대림산업 회장

    이해욱 회장, 입사 24년만인 올해 회장에 올라에너지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올인’ 부인은 LG家...고 구본무 회장의 조카사위대림산업은 올해 창립 80주년을 맞이했다. 국내 건설사 중 최고(最古)의 역사를 자랑하는 대림산업은 1939년 10월 10일 인천 부평역 앞에서 ‘부림상회’라는 간판을 내걸고 건설 자재 판매회사로 첫 발을 내디뎠다. 1947년 대림산업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하고 본격적으로 건설업에 진출했다. 대림이 급성장하게 된 계기는 이재준 창업주의 장남 이준용(81) 명예회장이 경영이 참여하면서부터다. 경기고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후 미국 덴버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한 이 명예회장은 귀국한 뒤 영남대와 숭실대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학자의 길을 걷던 이 명예회장은 1969년 부친의 엄명으로 대림산업에 계장으로 입사했다. 그는 건설과 석유화학 분야를 양대축으로 해 대림산업을 2018년 재계순위 18위까지 끌어올렸다. 이 명예회장은 3남 2녀를 뒀는데 장남 이해욱(51) 회장이 올해부터 명실상부한 그룹 총수에 올라 3세 경영시대를 열었다. 이 회장은 경복고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떠나 부친이 나온 미 덴버대 경영통계학과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응용통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 대림엔지니어링 대리로 입사한 뒤 대림산업 구조조정실 부장, 석유화학사업부 부사장, 대림코퍼레이션 대표, 대림산업 부회장을 거쳐 24년만에 회장직에 올랐다. 이 회장의 치적은 대부분의 기업이 어려움을 겪던 1998년 IMF 외환위기때 선제적 대응으로 순조롭게 위기를 극복한 것이다. 그는 이 당시 석유화학사업 부문의 체질개선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고강도 구조조정과 전략적 제휴확대, 혁신을 주도했다. 또한 한화와 NCC사업부문을 통합해 아시아 최대규모의 여천NCC를 출범시켰고, 선진 화학기업인 바젤사와의 합작으로 폴리미래, 미국쉐브론 필립스와의 합작법인인 KRCC를 설립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대규모 석유화학부문의 구조조정 성공으로 대림그룹은 IMF 이전 1997년 395%에 달하던 부채비율을 2005년 72%로 낮췄으며, 1997년 1조 9000억원이었던 매출액이 2018년에는 22조 1000여억원으로 증가하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이재준 창업주가 대림산업의 토대를 만들고 건설업을 특화시켰다면, 2세대 이준용 명예회장은 유화부문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3세대인 이해욱 회장은 석유화학사업의 체질을 개선하고 대림산업의 아파트 브랜드 ‘e편한세상’을 도입하는 등 대림산업의 새 성장동력을 마련하는데 집중했다. 이 회장은 에너지 사업을 회사의 중장기적 전략으로 세웠다. 2013년 에너지 사업을 전담하는 대림에너지를 설립해 에너지 디벨로퍼 사업을 벌이고 있다. 같은 해 호주 퀸즐랜드 석탄화력발전소 지분을 인수해 해외 민자발전 시장에 진출했다. 2015년에는 국내최초로 석유화학산업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류브리졸과 폴리부텐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했다. 대림산업은 연간 8만톤의 폴리부텐을 생산할 수 있는 세계적인 규모의 공장을 사우디에 건설해 운영할 계획이다. 2024년 상업운전에 돌입하면 연간 33만톤의 폴리부텐을 생산할 수 있으며 약 35% 이상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확보한다. 이 회장은 음악과 미술 등에 전문가 수준으로 조예가 깊어 2003년부터 대림미술관 관장을 맡아 오고 있다. 취미는 드럼이다. 회사 이메일 주소에 ‘드럼’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다고 한다. 세심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이라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2016년 운전기사를 상습적으로 폭언했다는 혐의로 재판에서 1500만원 벌금형을 받았다. 이 회장은 당시 “잘못된 행동이 누군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됐다”면서 “상처를 받은 모든 분들께 용서를 구한다”며 공개 사과했다. 이런 점 때문인지 대림산업은 지난 1월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의 ‘2019 기업인과 대화’에 한진, 부영그룹과 함께 초대받지 못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동남아 순방중인 지난 3월 11일 대림산업이 브루나이에서 짓고 있는 ‘템부롱 대교’건설 현장을 찾았다. 템부롱 대교는 브루나이만(灣)을 사이에 두고 저개발지역인 동부(템부롱)와 개발지역인 서부(무아라)로 나뉜 브루나이 국토를 연결하는 30㎞ 규모의 해상교량이다. 브루나이 경제발전의 핵심 동력이 될 2조원 규모의 대규모 국책사업이다. 문 대통령은 “템부롱 다리야말로 우리 정부가 추구하는 동반 및 포용적 성장의 좋은 사례”라면서 “이런 가치 있는 사업에 우리 기업이 큰 역할을 해 더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템부롱 대교 공사현장 방문을 계기로 대림산업이 청와대의 ‘부정적 기업목록’에서 빠진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하지만 대림산업이 그룹의 호텔 브랜드 ‘글래드’(GLAD) 상표권을 이 회장과 아들이 100% 지분을 보유한 회사인 APD에 넘겨주고는 자회사인 오라관광(현 글래드호텔앤리조트)이 사용하게 하는 식으로 이 회장 일가가 수익을 챙긴 사실이 지난 2일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됐다. 이 회장 등은 과징금 총 13억 500만원을 물게 된 것은 물론 검찰에 고발당해 또다른 시련을 맞게 됐다. 이준용 명예회장은 1965년 열애 끝에 이화여대 출신의 고 한경진씨와 혼인했다. 장인인 한순성씨는 천안 사업가 집안 출신이었다. 장남인 이해욱 회장은 LG그룹 구자경 명예회장의 외손녀인 김선혜(48)씨와 결혼했다. 장모가 구자경 회장의 큰 딸 구훤미씨, 장인은 희성금속 회장을 지낸 고 김화중씨다. 즉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처사촌이다. 두 사람은 친지의 소개로 만나 연애 결혼했다. 슬하에 1남 2녀를 뒀다. 미국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차남 이해승(50)씨의 부인 김경애(51)씨는 전 미국 미주리대 김현영 박사의 딸이다. 3남 이해창(48) 캠텍 대표이사는 외동딸을 두고 있다. 막내딸 이윤영(47)씨의 남편 김동일(46)씨는 외국계 금융사에 근무하고 있다.  이종락 논설위원 jr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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