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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야가 제기한 한보관련 23개 의혹 내용

    ◎「나사본」 인사의 한보영입·제일은과의 관계/산은 외화대출 특혜·은감원 직무유기 여부/96년말∼97년초 한보 긴급지원 지원 묵인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6일 「한보사태합동조사위」회의를 열어 한보사태에 대해 본격적인 진상조사 활동에 나서기로 한 4개 분야 23개 의혹을 제기했다.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권력개입 소위◁ ▲지난 92년 대선 당시 여권 사조직인 「나라사랑실천운동본부」(나사본) 등 민주계 실세들의 개입여부 ▲한보에 영입된 나사본 인맥▲제일은행과 나사본·한보의 관계 ▲김영삼 대통령 차남 현철씨와 교분이 있는 한보관련 대상자 명단 ▲한보 비자금의 권력핵심부 유입규모▲한보철강의 부지매립 및 공장설립 인·허가,부도처리 과정상 당시 권력개입 의혹 ▷금융비리 소위◁ ▲산업은행 등의 외화대출 특혜 ▲은행감독원 등의 직무유기 여부 ▲재경원 등의 지휘·감독문제 ▲한보그룹 위장계열사 및 친인척을 통한 비자금 조성 ▲채권은행단의 담보액 조작 여부 ▲지난 95년11월말 재경원의 20개 리스회사 감사 당시 한보철강에 대한 3천억원의 변칙대출혐의를 잡고도 감사를 중단한 경위 ▲정태수 총회장의 처남이 운영하는 세양선박의 무리한 지급보증 ▲95년과 96년 정기검사에서 제일은행의 한보철강에 대한 부실대출위험을 파악했으면서도 시정하지 않은 배경 ▲96년말과 올해초 채권은행단이 5천2백억원의 긴급자금을 지원할 당시 묵인한 이유 ▲채권은행단의 거액여신 한도초과에 대한 은행감독원 승인여부 ▷한보수습대책 소위◁ ▲한보철강의 향후 처리 ▲한보 협력업체 및 지역경제 피해 진단,활성화 대책 ▲충남지역에 대한 특수재해지역선포 ▲피해 중소기업에 대한 부도어음 결제의 실효성 여부 및 미불체납 해결방안 ▲한보철강 법정관리인 전격교체 배경 ▲상공부의 한보에 대한 외화대출 추천사유 ▷공정수사감시 소위◁ ▲검찰,감사기관의 축소수사와 은폐수사 여부 ▲감사원,은행감독원의 감사실적과 처리결과 ▲검찰수사 착수경위 의혹 및 문제점
  • 한보사태와 교훈얻기(김호준 정치평론)

    『할 수만 있다면 교훈으로써 악을 고쳐라』 로마의 황제(AD161∼180)이자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나오는 말이다. 6년전 「수서사건」이 터졌을때 우리가 진상규명과 교훈얻기를 철저히 했더라면 이번 한보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6공시절 한보는 주택허가가 날 수 없는 서울 수서지구의 자연녹지를 택지로 불법개발·공급하여 막대한 부당이득을 취했다.이 의혹사건의 배후에는 엄청난 권력이 숨어 있었다.그러나 검찰은 핵심 배후를 덮어둔채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 청와대비서관 1명과 떡값 몇푼 받아먹은 여야의원 5,6명을 잡아넣는 것으로 사건수사를 종결했다.검찰의 축소·은폐 수사를 비난하는 여론이 거셌지만 끝내 어물어물 넘어가고 말았다.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정태수 한보회장으로부터 1백50억원을 받은 사실이 밝혀진 것은 4년후 노씨의 비자금 수사과정에서였다. ○“제2의 수서사건” 부끄러운 일 만일 그때 우리가 수서택지의 진상을 성역없이 철저히 규명하여 백일하에 드러낼수 있었다면 그후 정경유착의 양상은많이 달라졌을 것이다.그때 환부를 도려내지 않고 미봉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정태수씨가 살아남을수 있었던 것이고 제2의 수서사건이라고 할 한보사태가 일어난 것이다.온 나라가 일개 기업인에게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 농락당하다니 이처럼 부끄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이번 수사는 절대로 수서사건의 재판이 되어서는 안된다.한보사태의 원인과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전정권에서 이미 부도덕하다고 판정난 기업이 어떻게 개혁과 도덕성을 생명으로 삼은 문민정부 아래서 더 비대해지고 더 큰 비리를 저지를 수 있었는지 국민들로선 이해가 안된다. 자본금이 1천억원도 안되는 회사가 은행에서 5조원이나 끌어썼다니 은행문턱이 높은줄만 아는 서민들로선 기가 찰 일이 아닐수 없다.더구나 5조원 가운데 2조원은 행방이 묘연하다니 아리송하기만 하다.검찰은 국민들의 이런 의문들을 속시원하게 풀어주어 「수서」때 실추된 명예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수사가 끝나면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지워야 한다.경우에 따라선 대선주자도 정리해 원죄없는 깨끗한 정권 창출의 바탕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또한 한보사태의 문제점을 적출·보완하여 다시는 이런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제도적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실은 이 맨나중 일이 제일 중요한 과제다. 한보사건 수사는 이제 시작단계지만 앞으로 우리가 도전해야 할 과제는 벌써부터 허다하게 발견된다.가장 먼저 공략해야 할 문제 가운데 하나가 은행이 손을 놓으면 쓰러질 기업이 어디 한보뿐이겠느냐는 것이다.실명제 아래서 기업들이 불법적인 비자금을 공공연하게 조성하고 있는 것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도 중요한 과제다.또 정치인들이 받는 억대의 「떡값」은 언제까지 치외법권적인 존재로 놔둘 것인가도 결론을 내야 할 것이다.물론 아직은 진상규명에 역점을 두어야 할 때다. 과거에도 우리는 이런 대형비리·대형사고와 수없이 마주쳤고 그때마다 나라는 벌집 쑤신 것처럼 들끓었다.언론은 『누구 탓이냐』고 소리치며 속죄양을 찾기에 바빴고 야당은 『정권이 책임져야 한다』며 정치공세에 열을 올렸다.이번도 예외는 아니다.사건이 터지기가 무섭게 언론은 한보의 배후에 대통령 차남을 비롯하여 정치권의 실세들이 있는 것 같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온갖 억측을 콩볶듯 튀겨냈다.그리고 야당은 대통령까지 물고 들어가는 초강공 전략을 구사했다. ○진상규명·재발방지 역점둬야 이런 엄청난 비리에 사람들이 통탄하고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지나친 격앙이나 혼란조장은 금물이다.지금처럼 경제회생이 절박한 과제로 다가온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종합적 사고와 냉철한 판단이 요구된다.잘못하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사람 몇명 잡아넣는 일에 흥분해서는 안된다.그런 푸닥거리가 국민들의 울분을 삭이고 여론을 잠재우는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근본적인 처방은 못된다. 부패한 권력자들과 외압에 굴복한 은행장들 때문에 이번 사태가 났으니 그들만 징치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생각은 단견이다.문민정부 들어 금융비리 때문에 불명예 퇴진한 은행장이 18명이나 된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사법처리만으로는 비리가 근절되지 않는다.아무리 영향력 있는 로비와 힘센 압력을 동원하더라도 사업성이 없으면 대출을 받을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야 비리가 차단된다.대형 비리는 부패한 사람들이 저지른 인재라기 보다 잘못된 제도가 야기한 구조적 문제로 파악해서 교훈을 구하는 노력이 중요하다.〈논설위원실장〉
  • 의원 재산증감 신고내역/이홍구 대표 변동없어

    ◎김덕용 의원 +260만원/김상현 의장 -6,000만원/김종필 총재 -6,700만원 한보 특혜의혹을 둘러싸고 정치권 사정설이 증폭되는 가운데 국회 공직자윤리위가 31일 의원 전원에 대한 재산변동신고를 마감했다.지난해 6월 15대 개원당시 신고액에서 변동된 부분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윤리위는 다음달 신고내역을 공개,늦어도 5월까지는 심사를 마칠 예정이다. 신한국당 이홍구 대표위원은 당초 29억여원에서 「변동 없음」으로 신고했다.한 측근은 『대부분이 부동산이어서 증감이 없었다』고 귀띔했다.민주계 중진인 최형우 상임고문은 1억원 쯤 늘어난 7억여원 정도를 신고했고 김덕용 의원은 96년도 신고액 14억9천5백만원에서 예금이자 등 2백60만원이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이회창 고문은 배우자와 장·차남 재산을 통틀어 지난해 신고액 14억9천여만원 보다 예금이자 등 3천4백여만원이 늘었다.이한동 고문은 본인 재산 21억4천9백만원은 변동이 없었고 배우자와 장남명의의 예금이자가 5백70여만원 늘어났다. 국민회의 김상현 지도위의장은 9억9천여만원에서 은행융자를 갚느라 6천만원이 줄었고,김근태 부총재는 지구당운영비명목 등으로 1천4백만원이 줄었다.김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당초 신고액 24억여원에서 현금이 6천7백여만원 줄었다.김용환 사무총장도 당초 70억여원에서 자녀유학비·특별당비·의정보고회경비 등으로 예금 4억여원이 감소한 것으로 신고했다.
  • 귀순 김영진·유송일씨 가족 일문일답

    ◎“탈북자 티 안내려 깨끗한 옷 준비”/인사문제 다투다 출당돼 귀순 결심/남한 쇠고기수입 반대 이해 못했다 귀순가족 김영진·유송일씨 일가 8명은 30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탈북후 중국을 경유,한국에 오기까지의 과정과 최근의 북한 실상 등에 대해 설명했다. ○풍랑 거세 죽을뻔했다 ­인천항에 도착했을때의 모습이 심한 풍랑을 겪은 사람들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밝고 건강했는데. ▲김영진=지난해 3월 북한을 탈출한 뒤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남한으로 오는 배를 탈 수 있었으나 밀항선을 탔을 때의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풍랑이 매우 거세 아이들은 심한 멀미를 했다.이런 어려운 과정을 겪고 난 뒤였기에 인천항에 도착했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표정이 밝았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옷차림이 깨끗했던 것은 탈북자라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미리 깨끗한 옷을 준비했기 때문이다.연극은 없었다. ○형·어머니가 일부 도와 ­해광군(김씨의 차남)이 일기를 쓰게 된 배경은? 곳곳에 서로 다른 필체가보이는데. ▲김해광=두만강 부근에서 방랑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썼다.먼 훗날 이 일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틈틈이 메모해둔 것을 바탕으로 일기를 썼다.글씨체가 다른 것은 중국 체류 당시 우리를 도와준 「박사장」이란 사람이 『일기를 쓴 것을 줘야 한국에 빨리 갈 수 있다』고 해 일기를 여러권 만드느라 그랬다.형과 어머니가 내 일기를 베껴 전달했다. ○섬에서 불피우며 대기 ­안기부의 귀순 발표가 구조시간보다 먼저였는데,구조당시 상황은. ▲김영진=남한으로 올때 마음이 불안해 시간개념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선원들이 『풍랑으로 시간이 늦어졌다』며 배에서 내리라고 해서 내렸는데 당시 배가 몹시 고팠기 때문에 점심시간이 지났을 것이란 생각만 들었다.섬에 내려 불을 피우며 마음을 안정시키고 있을 때 멀리서 배가 보였다.우리가 『살려주세요』를 계속 외치며 구조를 요청하자 배에서 『조용하라.가만 앉아있으라』는 방송이 들렸다.배가 너무 커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자 작은 보트로 3명이 왔다.이들은 우리들에게 『어디서 왔느냐』고물었다.배에 쓰여진 글자가 북한의 글자와 달랐기 때문에 남한에 왔긴 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북한에서 왔다』고 하자 『수고했다.타라』고 했다.보트를 타고 건너가는 때까지 30분 정도 걸렸다.배에서 해경의 헬기를 타고 인천항으로 왔다. ○해고돼 노동자로 전락 ­귀순동기는. ▲유송일씨=24년간의 군복무 기간동안 남한의 대북방송을 통해 남한사회와 귀순자들의 삶을 알고 있었다.제대후 95년 1월쯤 청진 오중흡대학 후방부 관리과에서 근무하던중 사무실에서 노동신문에 난 남한 청년학생들의 쌀시장 개방과 쇠고기 수입 반대시위 관련 기사를 읽었다.기사를 읽으면서 『남조선은 왜 그 좋은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지 이해가 안된다.쇠고기나 실컷 먹었으면 좋겠다』고 한 것 때문에 엄한 조사를 받았다.결정적인 동기는 그해 8월 인사를 자기 마음대로 하는 상급자와 다툰 적이 있다. 이때부터 그가 사회안전부 요원을 동원,저를 모해하기 시작해 급기야 11월에 당에서 쫓겨났고 직장에서도 해고돼 노동자로 전락했다.나름대로 김정일을 위해 24년동안군에서 충성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때 더이상 김정일 체제 아래서는 희망과 미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아이들 앞날도 걱정이 됐다. ○통행료로 낙지 등 준비 ­국경을 통과할 때 안전부 요원을 만났을텐테 「통행료」라는 것을 주었는가. ▲유송일=24년간 군 복무를 했기 때문에 국경 경비의 허점이 어디 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발각될 것에 대비,경비대 매수용으로 낙지 10㎏과 북한돈 2만원을 준비하기는 했지만 두만강을 건널때 안전부의 감시망을 피했기 때문에 통행료를 지불할 필요가 없었다. ○배 탈때까진 서로 몰라 ­두 가족이 함께 귀순하게 된 경위는. ▲유송일=김영진씨 가족을 전혀 알지 못했다.배에 같이 탑승했을 때 「이들도 한국에 가는 모양이구나」하고 생각했다.
  • “양국 교류협력의 교량역에 자부심”/벳푸 시장 인터뷰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벳푸·규슈 더 나아가 일본과 한국의 교류협력관계가 증진되기를 기대한다』 일본의 지방 소도시로서는 처음으로 외국 국가원수방문이라는 커다란 행사를 치르게 된 벳푸시의 이노우에 노부유키(정상신행) 시장은 정상회담이 벳푸에서 열리게 되도록 배려한 한·일 양국정상에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활짝 웃었다. ­지방도시로서 회담준비에 어려움이 컸을 텐데. ▲경비가 삼엄해 지금까지 이런 행사에 익숙치 못한 시민이 다소 놀라기는 했지만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한국과의 교류가 어떤 방향으로 진척되기를 바라고 있는가. ▲벳푸상고와 군산상고가 교류를 하고 있고 벳푸시는 목포시와 결연을 하고 있다. 한국과 가까운 규슈,특히 벳푸가 한·일간 교류협력의 교량역을 맡도록 노력하겠다. ­하시모토 총리와 사돈관계라는 점이 정상회담유치에 도움이 됐다는데. ▲차남과 총리의 장녀가 4년전 결혼해 1남1녀를 두고 있다.나와 하시모토 총리는 손자를 공유하고 있다(웃음).지난해 아세안 정상회담때 김대통령에게 하시모토총리가 「벳푸도 있다」고 말했다고 들은 적은 있지만 결정은 발표를 보고 알았다.
  • 주민생활(흔들리는 동토 북한:3)

    ◎연변TV방송 몰래 시청/남한사회 실상 잘알아/학생들 노력동원 일쑤… 사금채취까지 시켜/옥수수·도토리로 가정서도 밀주제조 “판매” 북한에서 새 TV는 북한 화폐로 1만4천원,중고품은 5천원 가량을 줘야 살 수 있다.노동자 평균 월급은 50원 정도.무척 비싼 가격이지만 TV를 갖고 있는 집은 상당히 많다. 김경호씨 일가가 살던 회령 등 중국 접경지역 주민들은 바깥사정에 대해 훤히 알고 있다.중국 연변에서 송출되는 TV방송을 시청하기 때문이다. 천편일률적인 북한 중앙방송은 인기가 없다.국경 인근 주민들은 창문·문틈을 이불로 가려 불빛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한 뒤 재미있고 다양한 연변방송을 본다.그래서 집집마다 감시하러 다니는 보위부원들과의 숨바꼭질이 매일 밤 이어진다. 회령지역 주민들은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한 기자회견 내용을 잘 안다.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의 진상은 물론 지존파 사건,성수대교 및 삼풍백화점 붕괴 사실도 익히 안다. 김씨 일가는 『주민들은 연변TV와 조선족 방문 등을 통해 남한의 실상을 알고 있으며 이 때문에 체제에 대한 불만이 높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매일밤 감시요원과 숨바꼭질 북한에서는 중국제를 최고로 친다.북한제 비누는 15∼18원이나 중국제는 30원.하지만 중국제는 없어서 못 팔 정도다.중국제는 남쪽 황해도,강원도에까지 광범위하게 파고들었다.미제나 일제는 거의 알지 못한다. 일반 자녀들은 공부할 시간이 거의 없다.각종 노력동원 등으로 예습·복습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과외공부는 말할 것도 없다.학교에서 수업받는 것이 전부다.회령에 사는 학생들은 방과 후면 농촌으로 가 힘든 노동을 해야 하고,사금채취에도 동원된다.게다가 학교에서는 수시로 고철,파지 등을 가져오라고 숙제를 낸다.노력동원은 인민학교 4년,중학교 6년 내내 계속된다.부모들의 교육적 부담도 크다.사회주의의 장점이라고 내세우는 「무상교육」은 구호일 뿐이다.실습준비물을 빌미로 값비싼 전깃줄,양동이,빗자루 등을 요구한다.그때마다 사줄 형편이 못되는 대부분의 부모들은 진땀을 흘린다.심지어 수업과 상관없는 토끼가죽까지도 1년에 석장을 보내줘야 한다.○중국제 물품 최고로 인식 회령에서 직장에 나가지 않는 가정주부들은 1주일에 세번씩 농사일에 동원된다.또 「3대혁명 붉은기 쟁취운동」을 통해 사상·기술·문화에 대한 교양교육을 받는다.과거 주부들은 대개 직장에 나갔지만 최근에는 거의 나가지 않는다.월급은 없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배급표만 주기 때문이다.대신 집에서 술과 떡을 빚어 장마당에 나가 팔 궁리만 한다. 민간인의 술 제조는 원래 금지돼 있다.그러나 식당·분식점은 물론,일반 가정에서까지 너도나도 옥수수·도토리·쌀뜨물 등으로 밀주를 만들어 판다.돈을 벌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 중의 하나기 때문이다. ○한달 한번 목욕도 힘들어 술을 사서 가게에서 먹으면 한병에 45원을 받는다.안주로는 간장을 곁들인 따뜻한 두부가 인기다.가장 값싼 안주지만 이나마 19원을 줘야 한다.그래도 술장사는 잘된다.외상 술을 먹은 가장이 외투를 맡기고 집에 와 부부싸움을 하는 경우가 잦다.술을 많이 먹고 싶은 날 일부러 가장 낡은 옷을 입고가 실컷 먹고 옷을 맡긴 뒤 찾아가지 않는 얌체족이 극성을 부린다. 물사정도 좋지 않고 비누도 없어 청결한 생활은 기대하기 힘들다.당국에서는 목욕은 1주일에 한번,머리는 4일에 한번씩 감도록 권장한다.실제로는 한 달에 한 번 목욕하기가 힘들다. 북한에서는 오랜 사회주의체제를 거치면서 고유의 예의범절이 많이 사라졌다.나이가 서너살 차이가 나도 「야」「자」 반말하기 일쑤다.김씨 일가는 말투·앉는 자세 등 남한의 예의범절이 엄격해 불편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최현실씨는 『남한 생활 40일동안 북한과 너무도 다른 생활에 정신을 차릴수 없었다』면서 『마치 유치원생이 대학에 온 기분』이라고 말했다. 차남 성철씨는 『북한에서는 그동안 임꺽정을 소재로 한 영화와 TV드라마를 즐겨 방영했지만 지금은 방송하지 않고 있다』면서 『임꺽정을 방영하면 분명히 주민들이 동요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주위 사람들과 자주 나눴다』고 말했다.
  • 김우중 회장 차남/대우자동차 입사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의 차남 선협씨(29)가 대우자동차에 입사했다.대우그룹에 따르면 선협씨는 지난 1일자로 경기도 부평의 대우자동차 기술연구소에 입사해 수습과정을 밟고 있다.대우측은 『선협씨는 미국에 유학중 군복무때문에 귀국했고 이번에 병역특례역으로 입사해 5년동안 의무근무를 마치면 미국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김회장이 밝혀온 경영권 승계에 친인척을 배제한다는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선협씨는 근무를 마치면 미국으로 돌아가 보스턴대에서 기계공학박사 과정을 마칠 것으로 알려졌다.
  • 서양화가 권옥연(이세기의 인물탐구:116)

    ◎허무·고독을 즐기는 화단의 신사/세련된 멋·투박한 정서가 자연스레 공존/구상·추상 오가며 미지의 세계 정신적 탐구 권옥연은 슬픔과 허무가 엇갈리는 낭만적이고 이지적인 성격이다.화려하고 사치한 사교적인 면을 지니면서 「군중속에 둘러싸인 고독」 같은 이미지가 전신에 배여 있다.스스로를 옷 한벌도 없는 「무의자」로 불리기를 원하거나 그림 곳곳에 잔잔한 슬픔의 무늬가 운문율처럼 번지고 문학적 향수와 비감을 감추지 않는 것도 그만의 예술가적 기질일 것이다. 그의 작품도 일본과 프랑스유학에서 연유한 세련된 멋과 우리만의 꾸미지 않은 투박한 정서가 자연스럽게 공존된다.이른바 지난 역사속에 숨겨진 한국인 특유의 비애와 한을 떨쳐버리지 않고 이를 안으로 익삭여서 그림의 특징으로 삼은 것이 특별히 남다르다.그의 화면의 배경은 금방 눈이라도 쏟아질 듯 무겁게 내려앉은 청람의 하늘과 차갑게 빛나는 납빛의 달,상서로운 길조 한마리가 피안을 향한 아득한 미래를 응시하면서 미묘한 조율과 변주로 탐미적 향기를 풍겨낸다. 그의초기작품은 자연주의적 공간의 원근법을 무시하고 수평으로 전개되는 선상에서 간결하고 절제된 대상이 평탄한 색조로 수직구도를 이루고 있었다.이는 한때 고갱의 예술세계에 경도된 흔적이기도 하지만 평론가 유준상에 따르면 「사상을 색채가 아닌 형체에 의해서 파악」하고 「인간을 비극적인 고뇌의 생명」으로 보기 때문에 그의 추상화는 「해학성과 불가사의한 세계를 동경하는 정신적 탐구를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그림곳곳 잔잔한 슬픔… 화면구성의 배치와 균형뿐만 아니라 색채의 의장을 무시한 자기억제적인 색조는 「관념적인 영원성마저 표출시킨다」고 했다.또 내적 경험을 암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상형기호는 보석타래처럼 허공을 부유하면서 「비현실세계에서의 신비적 허무」로 반짝이는 것도 그만이 보여주는 화경의 특징이다. 그는 유치한 것을 싫어하고 쓸데없는 치장을 역겨워한다.예를 들어 당장에 눈에 띄는 그림보다는 어둠이 눈에 익어 천천히 나타나는 그림이야말로 「벨벳속에 싸인 다이아몬드처럼 아름답다」고 주장한다.그래서 낯설고 새로운 수많은 미학적 체험과 깊은 모색의 시기를 거쳐 그의 화면은 「바닷속같이 괴괴한,정일과 정미의 경지」를 끌어낸다.구상에서 추상,다시 최근에는 「구상적이면서도 구성적」인 그림으로 그는 남보다 앞장선 그림을 그리는 대가로 국내외에 알려져 있다. 그의 일상적인 매너는 누구를 만나든 포용력 있게 반기는 제스처에 능하다.한때는 주한프랑스대사로 10여년이상 한국에 머물었던 로제 상바르대사와 절친하여 그가 주관하는 파티의 주역이었고 다른 자리에도 자주 얼굴을 비치는등 사교적인 폭이 두껍고 넓은 편이었지만 실제로는 의외로 비사교적이고 사회성이나 경영에 어둡다. 정이 많고 정의감이 투철하여 같은 예술원회원인 천경자씨가 가짜 미인도사건에 휘말렸을 때는 「작가의 의견을 존중」하여 철저히 감싸주었고 그와는 성격이 정반대인 원로화가 김흥수씨가 「외국작가초대에 대한 이의제기」나 「국전의 의미」를 묻는 시비를 만들 때도 옳은 것의 편에 서서 이들을 두둔해왔다. ○17세에 선전 입선 같은 함흥 출신에다일본과 프랑스유학을 비슷한 시기에 보낸 김흥수씨는 『그는 함흥의 명문가의 자손으로 남보다 풍족한 성장기를 보냈고 올바르게 처신하여 화가로서 탄탄대로를 걸어왔으면서도 언제나 겸허하여 오만이 없다』고 말한다.이른바 예술가로서 신사의 도를 고집스럽게 지켜온 보기드문 순수파라고 할 수 있다. 화가로서의 그의 위치나 면모를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그의 긴 화력과 그가 성취한 새롭고 혁신적인 화풍만으로도 그의 위상을 논하는 것 자체가 이미 무의미하다. 그는 함남 함흥읍에서 대지주의 5대독자로 태어나 조부모와 부모의 기대와 사랑을 한몸에 듬뿍 받은 천진무구성을 지금도 지니고 있다.어릴 때는 음악과 문학에 심취하여 『지휘자나 작곡가가 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면서 음악에 관한 한 앉은 자리에서 100여곡 이상의 노래가 그의 몸에서 물처럼 흘러나온다.오죽하면 작곡가 김성태씨는 『그의 머리를 한번 해부해보고 싶다』고 했고,김순애씨는 『그가 허밍으로 부르는 즉흥곡을 악보로 써둔다면 틀림없이 주옥 같은 명편』이 됐을 거라고 감탄할 정도다. 함흥에서 서울 제2고보(경복고)로 유학한 후 3학년되던 해 선만 학생전람회에서 준특선,다음해 특선했고 졸업반인 5학년때 선전에서 입선하면서 17세에 벌써 화가로 호칭되었다.그러나 『50년동안 그림을 그려왔지만 내가 그리고 싶어서 그린 그림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화가」라는 타이틀에 밀려 어쩔 수 없이 그리지 않으면 안될 때가 있었다』고 자신을 돌아본다. 부족할 것 없는 환경에서 화가이면 누구나 동경해 마지않는 도쿄와 파리유학,수많은 국제전에 선정,초대되었고 세종문화회관 개관때도 가로 40m,세로 20m의 초대형 「십장생도」커튼을 제작하여 화제가 되는가 하면 일본·덴마크·파리국립·현대·근대미술관 등 세계적인 미술관에 그의 그림이 소장되어 있다.그는 개인적으로 금곡에는 개인박물관을 가지고 있고,무대의상을 미술의 차원으로 이끌었다는 평을 듣는 부인 이병복씨는 국제무대에서 공연하는 극단 자유극장의 대표이며 한때 서울대에 출강하긴 했지만 한평생 그림만을 그려온 전업작가다. ○40m 「십장생도」 제작화제 이처럼 행복만이 점철된 그에게 뼈저린 아픔이 있었다면 두고 온 산하에 대한 그리움과 지난 봄 긴 투병끝에 있던 장남을 잃은 일이다.지상의 모든 슬픔을 온몸으로 얼싸안은 채 『나는 평생 철들지 못한 철부지였으나 아들을 잃자 갑자기 철드는 자신을 느꼈다』고 소년처럼 절규한다. 자녀는 파리화단에서 활동하는 딸(이나씨)과 첼리스트인 차남(유진)이 있다.지난해 도시계획에 밀려 고풍스럽고 오래된 광희동집을 떠나 성북동의 빌라로 이사하게 되자 현대적인 낯선 분위기가 싫어서 집에선 잠만 자고 장충동 화실에서 거의 하루를 보낸다.술을 마다하지 않으며 줄담배를 피운다. 그의 신작분위기는 빈 바위 같은 회색산정과 앙상한 나목에 앉은 흰새 한마리.새는 머언 공간을 향한 긴 응시를 끝내고 지금 마악 비상직전,아니면 탐색직전의 긴장과 정적을 품고 있다.그의 득의의 화면은 보는 이의 마음에 철학의 심연을 만들어주고 있으나 이제 허무주의와 문학주의를 딛고 그는 화가의 가장 찬란한 광채인 청람의 보석 같은 구두점을 그의 화면속에 감추고 싶어하는 시기다. □연보 ▲1923년 함남 함흥 출생 ▲39년 선만학생전람회 특선 ▲40·42년 선전입선,제2고보(경복) 졸업 ▲44년 도쿄제국미술학교 졸업 ▲48년 첫개인전(동화백화점 화랑) ▲49년 국전입선 54·56·60년 국전특선 ▲56∼60년 체불,파리살롱도톤,파리 레알리테누벨전선정초대출품 ▲60년 프랑스 파리아카데미 드페수학,도쿄 일본교갤러리 개인전 ▲61∼72년 국전초대작가 및 국전심사위원 역임 ▲65년 도쿄개인전,상파울루 비엔날레 한국대표 출품 ▲68년 서울개인전(신세계미술관)「한국현대회화전」(도쿄국립근대미술관) ▲70년 엑스포70 세계100인선 작가로 선정,현대화랑개관 기념전 ▲73∼74년 한국미술대상 심사위원,미 국무성 초청 미국문화계 시찰 ▲75년 「한국현대미술가 100인선집」 출간(금성출판사) ▲78∼현재 금곡박물관장 ▲79년 개인전(갤러리 현대),세종문화회관 대강당 및 소강당 커튼(막)제작(가로 40m,세로 18m) ▲83∼현재 예술원회원 ▲86년 한불수교 100주년 기념 「서울·파리전」(서울갤러리) ▲95년 광복 50주년 기념 특별전 ▲96년 이목화랑 개관 20주년기념전 출품(권옥연·천경자·윤중식·임직순) 〈작품소장〉 미국 체이스맨해턴은행·도쿄국립근대미술관·일본겸창근대미술관·덴마크코펜하겐국립근대미술관·파리국립현대미술관외 〈수상〉 예술원상·보관문화훈장·3·1문화상
  • 선경 임원 인사/인더스트리 사장 조민호씨/SKC 사장 장용균씨

    ◎유공가스 사장 최동일씨/SK 컴퓨터통신 사장 변재국씨 선경그룹은 27일 조민호 선경인더스트리 부사장과 장용균 SKC 부사장,최동일 유공가스 부사장 등 부사장 3명을 사장으로 승진시키고 변재국 유공전무를 SK컴퓨터통신 사장으로 발령하는 등 사장 4명,부사장 2명,전무 10명,상무 10명,이사 14명,대우이사 24명 등 임원 64명에 대한 승진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에서 선경인더스트리 김창근 이사는 이사 승진 1년만에 상무로,같은 회사 김대기·윤인선 부장은 대우이사로 조기 승진하는 등 연구개발과 기술분야의 전문가 3명이 발탁승진했다.또 최종현 회장의 조카인 최창원 선경인더스트리 대우이사와 차남인 최재원 SKC대우이사가 1년만에,사위인 김준일 대한텔레콤 대우이사는 2년여만에 이사로 승진했다.선경그룹은 『무한경쟁의 세계화시대를 맞아 성과주의와 소수정예주의를 원칙으로 인사했다』고 밝혔다.
  • 성우그룹 회장 정몽선씨/2세승계 완료…정순영 회장 명예회장 추대

    성우그룹은 26일 정순영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장남인 정몽선 부회장(42)을 내년 1월1일자로 새 그룹회장으로 선임했다고 발표했다.정 현회장은 그룹명예회장으로 추대됐으며 4남인 정몽용 종합기획실장은 성우종합상운·성우정공·성우종합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에 선임됐다. 성우그룹은 정회장의 차남인 정몽석 현대종합금속 부회장,3남인 정몽훈 (주)성우·성우 TRW·성우전자 부회장을 포함해 2세들의 경영권 승계가 완료됐다.성우그룹은 현대시멘트·현대종합금속·성우종합상운 등 10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성우그룹의 2세 경영체제 출범으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형제들 가운데 막내동생인 정상영 금강고려화학 회장만이 경영일선에 남게 됐으며 정명예회장과 정인영 한라그룹명예회장·정순영 성우그룹회장·정세영 현대자동차명예회장은 모두 일선에서 은퇴했다.
  • 김 대통령 충현교회서 성탄예배

    ◎손 여사·현철씨 내외 등 가족과 함께/예배후 목회자·신도들에 간단히 인사/최근 방송인터뷰서 매주 가족예배 밝혀/기상직후·취침전엔 손 여사와 함께 기도 김영삼 대통령은 성탄절인 25일 상오 부인 손명순 여사와 차남 현철씨를 비롯한 아들딸 내외,손주 등과 함께 취임전 다니던 서울 역삼동 충현교회에서 열린 성탄축하예배에 참석했다. 김대통령은 상오 11시부터 1시간여동안 6천여 신도들과 같이 예배를 마친뒤 김창인 목사의 안내로 설교대로 올라가 교회 목회자및 신도들에게 간단하게 인사했다. 김대통령은 『대통령이라는 직책이 대단히 어렵고 중요하다』면서 『특히 우리같이 어려운 여건에서는 해결해야 될 책임이 더욱 막중하다』고 강조했다.김대통령은 『군최고통수권자로서 남북 및 외교문제는 전적으로 대통령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어려움을 절감한다』며 『남북분단이라는 비극적 현실을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이어 『국내적으로 경제가 대단히 어렵지만 우리 국민들은 이를 극복할 능력이 있다』고 말하고 『세계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아시아 42개국중 2번째로 가입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나간다면 세계 선진국 문턱을 넘어설 수 있다』고 역설했다. 김대통령의 이날 예배 참석에는 김광일 비서실장과 김광석 경호실장,이해순 의전수석 등이 수행했으며 기독교신자인 심우영 행정·최양부 농수산·유도재 총무수석 등도 모습을 보였다. 한편 김대통령은 최근 극동방송과의 특별회견에서 청와대에서의 신앙생활을 공개,눈길을 끌었다. 충현교회 장로인 김대통령은 매 주일 가족예배를 갖는 것은 물론 기상직후와 취침직전 손여사와 함께 반드시 기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외국방문때에도 한인교회 목회자를 초청해 예배를 드린다는 것. 김대통령은 『매일 아침 고향의 아버님께 전화를 걸어 구체적인 기도제목을 말씀드리고 기도를 부탁한다』고 소개했다.김대통령은 또 찬송가는 434장 「나의 갈길 다가도록」을 즐겨부른다고 말했다.국정전반에 어려움이 닥칠때는 이사야서 41장10절 『두려워말라.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를묵상하면서 용기를 얻고 있다.
  • 국민생명 부회장 김중민씨

    국민생명은 24일 이사회를 열고 대표이사 부회장에 김중민씨를 선임했다.김부회장은 고 김택수 전 대한체육회장의 차남으로,국민생명의 실질적인 오너다.
  • 78년부터 경영수업 받은 정인영씨 차남/한라 정몽원 신임회장

    ◎남가주대 MBA 출신… 젊은층과 친화력 한라그룹의 정몽원 신임회장은 창업주인 정인영 명예회장의 차남이다.78년 한라해운에 평사원으로 입사,줄곳 부친 밑에서 경영수업을 받아 왔다. 정명예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회장에 대해 깍듯이 「회장」 칭호를 붙이면서 『미국 남가주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입사후 만도기계를 잘이끄는 등 학식과 경험을 겸비했다』며 추켜세웠다.이어 『새해부터는 정회장이 그룹전반에 걸쳐 전권을 행사하고 나는 주요 프로젝트에만 관여할 것』이라며 정회장에게 두터운 신임과 함께 무게를 실어주었다. 한라그룹의 경영권 승계는 지난해 장남 몽국씨(44)가 계열사 경영에서 손을 떼고 미국으로 떠남에 따라 몽원씨의 회장취임 구도가 자연스럽게 굳어졌었다.정회장은 서울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미국 남가주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86년 한라공조의 대표이사 사장을 맡으면서 계열사 경영에 나서 89년 만도기계,91년 한라건설 등의 대표이사를 지냈고 지난해 그룹 총괄부회장에 올랐다.정보통신분야에 관심이 많아 국제전화사업에 참여를 주도했고 자동차부품회사인 한라일렉트로닉스 및 캄코 등을 설립했다. 술자리에서는 젊은 직원들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 발표된지 1년이 안된 신곡만 부른다.대학시절부터 아이스하키 등 운동을 좋아해 94년 만도기계 아이스하키팀을 창단했으며 요즘도 서울 목동의 아이스링크를 즐겨 찾는다.부인 홍인화 여사와의 사이에 2녀를 두고 있다.
  • 발레리나 문훈숙(이세기의 인물탐구:114)

    ◎영혼을 춤추는 황색요정/국내외 공연 7백회… 한국발레 대명사/푸에테 36호 회전… 동양인 핸디캡 극복 발레리나 문훈숙,그의 춤추는 모습은 바람에 날려 떠다니는 공기의 정,손으로 만져지지 않는 비실체적 이미지다.그의 부단한 변용과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깃털 같은 비약은 지상의 것같지 않은 눈부신 백색광을 무대곳곳에 흩뿌린다.실제로 그를 만나본 사람이라면 올백으로 곱게 올려빗은 머리와 가늘고 희고 수줍은 모습에서 흡사 그가 춤추는 「백조」나 「레실피드」 혹은 「지젤」의 일면을 발견하게 된다. 평론가 김경애에 따르면 「이른바 한국 발레의 대명사로 지칭되는 그는 어느덧 무용계정상에 우뚝 서서 그가 아니고는 한국발레를 말할 수 없다」는 평을 듣게 된 위치다.「단지 춤잘추는 발레댄서일뿐만 아니라 그가 우리 발레에 끼친 공로는 참으로 지대하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지난 89년 러시아 키로프발레단 초청으로 러시아 마린스키극장에서 「지젤」공연을 가졌을때 극장을 가득 메운 발레본고장의 관객들로부터 7차례이상의 열광적인커튼콜을 받았고 「춤추는 동양의 진주」 「황색요정」의 돌풍을 불러일으키면서 그는 일약 국제무대의 주역으로 도약했다.동양인으로서는 넘볼 수 없던 고난도의 푸에테 36회 회전으로 발레 콤플렉스를 일시에 불식시키는 순간이었다. ○발레계 발전 지대한 공헌 그는 또 춤의 직업성을 투철하게 각인시킨 본격적인 직업발레리나이기도 하다.그가 소속한 유니버설발레단은 「정부의 지원이 없는 민간단체로서 국립발레단을 넘어서는 괄목할만한 업적을 남겼다」는 평을 듣는다. 고전발레에서 창작발레에 이르기까지 국내외 700여회의 공연을 기록했고 볼쇼이의 안드레스 리에파 키로프의 알렉산더 쿠르코스 아메리칸발레 시어터의 케빈 매켄지 같은 기라성같은 세계적 발레댄서들과 파트너를 이루었으며 그중에서도 「심청」은 우리 발레 레퍼토리로서는 세계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어 평론가 김태원은 장면장면을 정확하게 재현해 낸 문훈숙을 향해 「지적인 발레리나」란 명칭을 장식해 주고 있다. 모든 무대예술이 그렇듯이 춤은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대스타가 절대 요구되는 예술이다.더구나 발레는 눈으로 감상하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문훈숙을 이 시대 「스타」의 한사람으로 손꼽는 데 주저할 사람은 없다. 그가 스타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재능과 자기 노력,그리고 춤예술이 스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을 기민하게 파악한 유니버설 발레단의 탁월한 기획력이 뒷받침한 때문일 것이다.그런 행운의 세례를 받아 오늘에 이르렀고 그는 그런 의미에서의 노력가였으며 또한 자신이 노력한 만큼의 상급을 받은 행운아이기도 하다. ○로잔발레콩쿠르 첫 입상 그는 현재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에다 선화학원 이사장 한국문화재단부 이사장 한국무용협회 최연소 이사지만 직함에 어울리는 권위나 오만이나 섣부른 흐트러짐은 어느 부분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긴 목선과 긴 팔,활처럼 휘는 긴 속눈썹과 함께 그 얼굴은 아직 소녀의 티를 벗지 못한 채 그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정겹게 따를줄 알고 아직은 「피자」를 좋아하는 신세대 분위기를 품고 있다. 아침 9시 반에 성동구 능동에 있는 발레단사무실에 나와 하오 3시반까지 연습,어릴 때부터 기숙사생활이 몸에 밴 독립심이 강한 기질로 한가지 일에 몰두하면 꾸준히 일을 성취하는 형이다.정교한 생김과는 달리 전혀 까다롭지 않아 단원들이 마시던 커피잔을 거둬 씻거나 어질러진 소품을 정리하기도 한다.그의 성격은 약간의 낯가림과 수줍음이 있지만 그의 후배인 강수진이 「외국생활의 외로움과 숱한 경쟁을 이겨내고 세계가 주목하는 발레리나가 된 것」을 환영하여 지난 6월 강수진초청 「지젤」공연을 마련할 만큼 관대하고 포용력이 큰 편이다. 한국문화재단의 박보희씨와 윤기숙씨 사이의 3남3녀중 넷째.밀밭을 스치는 바람이나 도약하는 새의 비상등 미세한 움직임에 대해 예민한 감응력을 지닌 그는 『춤은 일찍부터 삶의 일부로서 나의 내부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고 말한다. 워싱턴에서 태어나 74년부터 리틀엔젤스에서 세계순회공연에 참가했고 미국 체스터브룩 초등학교졸업후 선화중에 오면서 애들리언 델라스등 철저한 외국인 발레교사들로부터 「날카로운 테크닉」을사사받았다.한국인으로서는 처음 스위스 로잔발레콩쿠르에서 입상하면서 미국 오하이오발레단과 워싱턴 발레단에서 솔리스트로 활약,『발레리나는 즐기기보다 보여주기 위해 최고로 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터득한 후에도 춤추는 것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17세때 한때 가벼운 슬럼프를 겪었다.그러나 철저하고 혹독한 훈련을 극복한 끝에 「발레의 참맛」을 알게 되면서 안나 파블로나 알리시아 마르코바 같은 신화적인 무용수를 꿈꾸게 되었다. 문선명 통일교교주의 차남(흥진씨)과 21살되던 해 미국에서 약혼,결혼을 불과 몇달 앞두고 약혼자가 교통사고로 타계하자 「인생은 영원할진대 지상에서 못다한 백년해로 천국에서 하겠다」며 영혼 결혼을 간청한 것으로 한때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그때부터 그의 이름 박훈숙 대신 부군의 성을 따서 문훈숙을 사용하게 되었고 국제무대에서는 통상 「줄리아 문」으로 불리고 있다.지금은 한남동시댁에서 5년전에 입양한 아들(신철·유치원)을 향한 모성의 행복에 젖어있다. ○문선명 차남과 영혼결혼 스타는 아름답고 그들의 감정은 관객을 변화시킨다. 어느 때는 날개처럼 어느 때는 비누방울처럼 가볍게 비상하고 비약하고 비행하면서 「인간 영혼의 가장 고매한 정서를 표현」하는 그의 테크닉은 장대한 포물선과 살아있는 나선을 커브시키면서 「천상의 꽃밭을 수놓는 신비로운 나비」로 무대를 날고 있다. 『육체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심정의 세계를 표현하는 참예술인이 되리라』 그는 45세까지 춤추는 것이 소망이지만 어쩌면 마사 그레이엄처럼 80이 넘어서도 무대에 서있을때 서있는 자체만으로 이미 춤으로서 관객을 눈부시게 할지도 모른다. 몸이 악기인 춤예술에서 그는 지금 한창 생동감에 넘쳐 물오른 장미와 같은 시기다.무용의 세계에서 오랫동안 생명력을 잃지 않고 불멸의 광채로 남고 싶어하는 그를 향해 「우리시대 자랑스러운 신데렐라」로 표현하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연보 ▲1963년 미국 워싱턴 출생 ▲76∼79년 선화예고에서 발레 전공.애들리언 델라스 사사 ▲79∼81년 영국로열발레 및 모나코 왕립발레학교 수학(마리카 베스브라소바 사사),미 오하이오발레단 솔리스트 「비애」 출연 ▲82∼84년 미 워싱턴발레단 솔리스트 「헨델축하」 출연 ▲84년 유니버설발레단(UBC)창단기념공연 「신데렐라」 주역 ▲85년 일본 대만 등 5개도시에서 「세레나데」「흑조 그랑파」주역 ▲86년 아시안게임 문화예술축전무용제 박용구대본 「심청」주역 ▲87년 일본 말레이시아 등 6개도시 「심청」 「호두까기 인형」 주역 ▲89년 키로프발레단초청 「지젤」주역(키로프 마린스키극장) ▲90년 러시아 노던팔마이라 페스티벌초청 「레실피드」,레닌그라드 백야제초청 「돈키호테」 주역 ▲91년 뉴욕 이글레프스키발레단초청 「호두까기 인형」,「상트 페테르부르크 르네상스를 위한 갈라텔레톤」행사초청 「지젤 파드두」,모스크바 크렘린궁전극장 아메리칸발레 페스티벌 참가 ▲92∼96년 키로프발레단초청 「돈키호테」,「춤의 해」기념 「백조의 호수」등 국내및 해외 50여개도시순회등 700여회.12월 20∼25일「호두까기 인형」(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현재〉 유니버설발레단단장겸 수석무용수,한국무용협회이사,학교법인 선화학원이사장,한국문화재단 부이사장 〈수상〉 문학의 해 기념 「가장 문학적인 발레리나상」 MBC문화스페셜 선정 「4월의 예술가상」 한국발레협회상(96년)
  • 탈북 김경호씨 일가족 첫 나들이

    ◎가는 곳 마다 환대… 「따뜻한 서울」 실감/소감 묻는 보도진에 “좋다… 황홀하다”/“북 TV선 판자촌 인민들과 보았는데”/어린이들 장난감·놀이시설에 넋잃어 북한을 탈출,홍콩을 통해 지난 9일 서울에 도착한 김경호씨(62) 일가족 일행 17명이 입국 5일만인 14일 처음 서울 시내 나들이를 했다. 김씨 일행은 이날 상오10시부터 하오3시까지 서울 남산타워와 롯데백화점,남대문시장 등 시내 3곳을 차례로 돌아봤으며 가는 곳마다 시민들에 둘러싸여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버스 한대에 동승,다소 긴장된 모습으로 첫 나들이코스인 남산타워에 나타난 김씨 일행은 기다리던 보도진들이 소감을 묻자 한결같이 『좋다,황홀하다』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김씨는 남산타워 전망대 11층에서 자신이 태어나 한국전쟁까지 유년시절을 보낸 이태원을 바라보며 『너무 많이 변했어.저게 이태원이냐』라고 묻기도 했다. 김씨를 비롯,처음에는 다소 긴장된 모습을 보였던 일행은 시간이 지나면서 표정들이 환해졌으며 특히 어린이들은 장난감과 놀이시설에 넋을 잃고 바라보기도 했다. 김씨의 차녀 명실씨(35)는 전망대앞에 펼쳐진 빌딩숲과 자동차의 행렬을 바라보며 『북한에 있을때 서울에는 판잣집만 있다고 들었고 텔레비전에서도 판자촌에 사는 인민들의 모습만 보았는데…』라며 놀라워했다. 남산구경을 끝낸 이들은 이어 중구 남산동의 한식집 「연정」에서 등심과 된장찌개로 점심식사를 한 뒤 롯데백화점 본점과 남대문시장을 방문했다. 김씨의 셋째사위 박수철씨는 점심식사중 『당국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구경도 못한 음식을 많이 먹었는데 더구나 겨울철에 푸르고 싱싱한 남새(야채)를 먹는다는 것은 북한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임신 8개월째인 김씨의 넷째딸 명순씨도 롯데백화점을 돌아본 뒤 『북한에서는 생전 구경도 못하던 물건들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며 『굶주리고 있는 북한 동포들은 남한이 이런 줄은 꿈에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남대문시장은 때마침 토요일 하오를 맞아 쇼핑객들과 상인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북적거렸다. 시민들은 휠체어를 탄 김씨를 금방 알아보고 순식간에 그를 에워싸고 박수를 치며 『남한에 잘 왔습니다.축하합니다』라고 열렬히 환대했다. 나들이가 끝날 무렵 김씨의 차남 성철씨(26)는 『북한에서 듣던 것과 너무 달라 놀랐지만 이제야 사선을 넘어왔다는 안도감이 든다』며 매우 만족해 했다.
  • 탈북 일가족 서울 도착­본지 기자 서울행 동승기

    ◎“드디어 서울로”… 김씨 안도의 기색 역력/보도진 질문에 묵묵… 「탈북기사」엔 관심/“김포 안착” 기내방송에 승객들 큰 박수 ○…9일 하오4시30분.홍콩에서 서울로 향하는 대한항공 618편 안에서는 김경호씨(61) 일가족 등 일행 17명은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 북한을 탈출한지 장장 44일.새로운 생활을 위해 서울로 향하면서 이들 대부분은 자신들의 탈출에 관한 보도를 기내 TV를 통해 보면서 감회에 어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두만강을 넘어 중국대륙을 횡단,홍콩까지 4천㎞에 이르는 대탈출극 끝에 드디어 서울망명이 실현됐다는 안도감과 함께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감이 뒤섞여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김씨의 둘째딸 명실씨(36)는 『꿈에 그리던 서울에 가게 돼 기쁘기 그지없다.그러나 서울생활이 어떨지 몰라 아직은 아무 장래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다』는 말로 일행의 심정을 대변했다. ○…김씨는 비행기안에서 기자들이 소감을 묻자 손으로 아픈 목을 가리키며 대답을 할 수 없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표시한 뒤 창밖을 응시,46년만의 고향방문에 만감이 서린 표정을 지었다. 김씨가족 대부분은 긴장이 덜 풀린 탓인지 몹시 지쳐 보였다.그러나 밝은 표정을 지으며 기대감에 부푼 모습이 역력했다. 임신 7개월인 막내딸 명순씨(28)는 『태아가 건강하냐』는 물음에 『건강하다』고 답변. 어른들이 피곤해 하는 것과는 달리 5명의 어린이는 처음에는 다소 긴장한 것처럼 보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장난을 치고 동승한 보도진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이들은 비행기가 이륙한 뒤 1시간여가 지난 뒤 기내식이 나오자 처음에는 무엇을 시켜야 할지 당황해 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지만 과일과 콜라 등 음료수를 들면서 옆에 앉은 가족과 귀엣말을 나누기도. 김씨의 차남 성철씨는 기자들의 질문에 『서울에 가서 다 말하겠습니다.지금은 많이 불안하고 기분도 좋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되풀이. 셋째딸 명숙씨(34)의 남편인 박수철씨(38)는 기내에서 나눠준 신문을 꼼꼼히 들여다보며 자신들의 기사에 관심을 표시.특히 북한정보원 2명이 북한을 탈출,홍콩에서 망명을 신청중이라는 기사에한동안 눈을 떼지 않았다. 박씨는 지난 8월 강릉으로 북한잠수함이 침투했다는 뉴스를 북한에서 들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전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북한의 식량사정이 심각하다는데 사실이냐는 물음에 『뻔한 건데』라면서 『서울에 가서 이야기할 테니 그만합시다』라면서 더 이상의 언급을 회피. ○…이들은 비행기가 김포공항 상공에 도착하자 창문밖에 펼쳐진 서울의 정경을 마냥 응시. 승객 가운데 한 사람이 『한강』이라고 소리치자 김씨는 아무말 없이 한강주변정경을 뚫어지게 내려다보았다. 하오5시15분쯤 여객기가 김포공항에 안착했다는 기내방송이 나오자 승객은 일제히 박수를 치면서 이들의 서울행을 축하했다.
  • 탈북 김경호씨 일행 어떤 대우 받나

    ◎현행 귀순동포 보호법 따라 지원받아/4개월간 합동신문·소양교육 거쳐야/귀순자 판정후 정착금·보로금 등 지원 정부는 6일 탈북사건중 최대 규모인 김경호씨 일행이 한국에 들어오면 관계기관 내부규정에 따라 4개월동안 군 합동신문소 조사와 사회적응을 위한 소양교육을 거친뒤 「귀순동포보호법」에 따라 보호 및 정착지원을 받게 된다고 밝혔다. 정부 당국에 따르면 김씨 일행은 귀국 즉시 「정보사범등의 처리업무 조정규정」에 따라 정보사 합동신문소로 옮겨져 귀순동기,북한에서의 활동내역 등에 대해 조사를 받고 관계기관으로부터 한국사회 적응을 위한 기본소양교육을 받은뒤 주거지로 옮기게 된다. 또 이들은 주거지 이전에 앞서 귀순동포보호위원회(위원장 보건복지부차관)의 결정에 따라 최종적으로 「귀순자」판정을 받게 되며 이 결정에 의거해 호적을 얻은 뒤 정착금 및 보로금지원·주택지원·취업알선·교육 및 의료·생활보호지원 등을 받게 된다. 따라서 정착금과 주거지원비만을 계산했을때 김경호·최현실씨 부부와 차남 성철씨는 3천9백32만원,차녀와 3녀가족은 3천67만원,장남가족은 2천7백79만원,4녀가족은 2천98만원,동행한 최영호씨는 1천7백만원 정도 지급받을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정부는 「북한탈출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을 국회에 제출해 놓고 있으나 이 법안이 올 정기국회에서 통과되더라도 6개월 후 발효되기 때문에 김씨일행은 현행 「귀순동포보호법」에 따라 지원받게 된다.
  • 효령대군의 「유·불 조화론」/사회발전 공헌도 재조명

    ◎청권사 학술강연회/왕권 연연않은 무아의 경지·무소유 의식/은중·태골경 필사합본은 살신성인 자세 사단법인 청권사(전주이씨 효령대군 파종회)는 4일 하오 2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에서 「조선조 초기의 유교정치와 효령대군의 유불조화론」이란 주제로 학술강연회를 열었다. 이날 강연회에는 경북대 김정진 교수와 동국대 김영태 교수,한국정신문화연구원 김지견(한국전통불교연구원장) 교수가 발제에 나서 조선조 태종의 차남인 효령대군이 당시 배불사상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유교와 불교를 조화시켜 사회발전에 이바지했는지를 짚어냈다. 김정진 교수는 「효령대군의 향헌과 유교학적 의의」를 통해 향헌 오십육조를 고찰해 볼때 효령대군의 생활은 불교인이 아니라 유교인으로서 새로운 왕조 통치이념에 지대한 공헌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효령대군은 왕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부러 불교의 대자대비적 무아의 경지와 무소유의식을 가졌으며 해탈적 소박한 생활행적은 오히려 효령대군이 유교통치에 직간접적으로 협력한 것으로 볼 수있다고 말했다. 김영태 교수는 「조선초기 불교와 효령대군」이란 발제에서 조선초기 태종과 세종 초년의 척불시책에 의해 법난의 수렁에 빠져들던 불교교단을 한때 회생시켜 크게 불교문화를 진작시켰던 숭불왕 세조의 중흥불사도 실은 효령대군에게 힘입은 바가 크다고 주장했다.김교수는 세조는 원래 불교를 좋아했던 왕이지만 그 재위기간중 행한 많은 불사에는 언제나 효령대군의 이름이 함께 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면서 효령대군의 숭불행적이 전래의 신불의 전통을 지킨 셈이며 조선왕조 전 시기를 통해 가장 숭불한 왕으로 알려진 세조의 불교중흥불사를 언제나 효령대군이 도와 민족문화의 보배인 불전국역의 성업을 이룩하는데 큰 뒷받침이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지견 교수는 「효령대군의 경서 사경및 언해의 사회교육적 의의」에서 효령대군이 은중경과 태골경을 친히 필사해 합본으로 천안 광덕사에 모신 것은 한갓 취미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불교탄압의 모진 회오리바람속에서 살신성인한 것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특히 은중경은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내용이 담겨있고 태골경은 어버이가 자식을 극진히 보살피는 내용으로 대군이 당시 사회의 치유수단으로 손수 사경한 것이라기보다는 오늘의 우리사회를 살펴볼때 600년후의 한국사회를 위해 남겨놓은 유업으로 본다고 말했다.
  • 두산그룹 사령탑 전격교체/새회장에 박용오씨

    ◎OB맥주 적자 등 침체분위기 일신 포석 두산그룹의 박용곤 회장이 3일 전격 퇴임,후임 6대 회장에 박용오 그룹부회장 겸 두산상사회장(59)이 추대됐다. 두산그룹은 이날 상오 그룹운영위원회를 열어 박신임회장을 만장일치로 그룹 회장에 추대했다고 발표했다.박신임회장은 고 박두병 창업주의 차남이며 박전회장의 바로 아래 동생.박 전 회장이 전격 퇴임한 것은 OB맥주가 몇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등 침체돼 있는 그룹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한 용퇴로 풀이된다.OB맥주는 지난해 1천88억원,올 상반기에 7백60여억원의 적자를 낸데 이어 시장점유율도 50% 아래로 떨어져 그룹 전체의 경영난을 초래했었다. 박 전 회장은 지난 2일 하오 『그룹 운영위원회를 소집하라』고 관계자들에게 지시,퇴임할 의사를 밝혔다.박전회장은 3일 열린 운영위에서 『만 65세가 되는 내년 4월까지 회장직을 수행하려 했으나 창업 2세기의 원년인 내년부터 그룹을 보다 강력하게 운영할 수 있는 새로운 사람이 공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해주길 바라는 뜻에 물러난다』고 말했다.지난 81년부터 14년동안 그룹을 이끌어온 박전회장은 그룹이 추진중인 사업구조조정과 OB맥주의 시장탈환 과제를 동생에게 물려주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미국의 경영 컨설턴트회사인 매켄지사와 손잡고 벌이고 있는 사업구조조정 작업은 두산이 창업 2세기의 첫 과업으로 비중을 두고 있어 박신임회장이 어떤 경영 능력을 발휘할지 주목된다.두산은 25개 계열사를 19개사로 통폐합하고 투자 우선 순위를 조정하기 위해 부동산과 한국네슬레 등 3개사의 보유 주식을 매각할 계획이다.특히 OB 영등포 공장등 효율성이 적은 부동산 등을 매각,연말까지 총 5천억원의 자금을 마련할 방침이다. OB의 시장회복도 박신임회장의 최대 과제이다.박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영업과 생산 현장부터 뛰겠다』고 시장 탈환에 대한 강한 의욕을 보였다.박회장은 또 『그룹의 풍토를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분위기로 과감히 개선해 나가겠다』며 『정밀화학·유통 등 고부가가치 사업에 비중을 두는 한편 해외시장에도 적극 진출할 방침』이라고 포부를 밝혔다.박회장의 이같은 발언은 선대 회장들이 닦아놓은 보수·안정 기조의 그룹 분위기를 공격적으로 쇄신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두산그룹은 4일 상오 9시 서울 종로4가 연강홀에서 그룹 원로 및 임직원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회장 이·취임식을 갖는다.
  • 김 대통령 차남 현철씨/와세다대학 강의 맡아

    ◎내년 4월부터 경영대학원에 출강 김영삼 대통령 차남인 현철씨(38)가 내년 4월부터 일본 와세다대학 경영대학원에 시간강사로 출강한다. 김씨는 일본에 거처를 마련하지 않은채 일주일에 두번씩 비행기를 타고 영어로 「출장강의」를 할 계획이다. 현재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중인 김씨는 그동안 일본 와세다대학과 게이오대학을 비롯,중국 북경대학,미국 일부대학을 대상으로 출강교섭을 벌여왔다. 미국 남가주대학에서 경영학석사를 받은 김씨는 최근 고려대 대학원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이 호평을 받아 다음달 20일쯤 최종심사에서 통과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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