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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代 걸친 학교사랑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에 걸쳐 5명이 한 대학에 장학금을 기증해 화제가 되고 있다. 한신대 전신인 조선신학원의 설립자 고(故)김대현 장로의손자 준수씨(60)는 10일 한신대에 미화 10만달러를 쾌척했다. 김씨 집안의 학교사랑은 고 김장로가 1939년 조선신학원을 설립할 때인 현금 15만원과 15만원 상당의 부동산을 내놓는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당시 30만원은 현재 재산가치로는 170억원이 넘는다. 77년에는 김장로의 장남인 영철씨가1,000만원,86년에는 차남인 영환씨가 1,300만원을 내놓았다. 99년에는 영철씨의 아들로 전 불가리아 대사였던 흥수씨(61)가 30만달러를 쾌척했다.이번에 돈을 낸 준수씨는 영환씨의 아들이다. 미국 댈러스에서 전자부품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준수씨는 앞으로도 매년 10만달러를 기증키로 약속했다. 이날 증정식에 참석하지 못한 준수씨 대신 나온 여동생 성수씨(55)는 “할아버지의 뜻이 밀알이 돼 지금까지 이어져내려오고 있다”면서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데 쓰여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재계 ‘사돈맺기’ 잇단 경사

    현대산업개발 정세영(鄭世永)명예회장과 전방 김석성(金奭星)전 회장,조양래(趙洋來)한국타이어 회장과 이명박(李明博)전 의원이 각각 사돈관계를 맺는다. 정 명예회장의 1남2녀중 막내인 유경씨(32)와 김 회장의1남4녀중 막내인 종엽씨(33)는 다음달 4일 서울 H호텔에서 화촉을 밝힌다.두 사람은 지인의 소개로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유경씨는 이화여대 사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뉴욕에서 컴퓨터그래픽을 공부했고,지난 7월까지 현대산업개발에서 근무했다.종엽씨는 미국 벨뷰대학 출신으로 현재 전방 계열의 내의류 생산업체인 전방군제㈜에서 근무하고 있다.김 전회장은 전방의 최대주주로 김창성(金昌星)경총회장과는 사촌간이다.한국타이어 조 회장의 차남인 현범씨(31)와 이 전의원의 3녀인 수현씨(26)는 28일 오후 6시 서울 H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김성곤기자 sunggone@
  • 팔순 어머니께 9남매가 바치는 글

    “먼저 어머님의 팔순을 맞이하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10년 전 가톨릭 가족신문 ‘구남매(九男妹)’를 발행해화제가 되었던 9남매가 어머니의 팔순을 맞아 ‘하나되게하소서’(울림)라는 가정문집을 냈다. 김말련 여사와 9남매는 온가족이 모두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로 장남 최홍준씨가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사무총장,차남 홍길씨가 대구 상인성당 신부,6남 홍국씨가 가톨릭신문 편집국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문집은 4부로 이뤄졌다.1부는 어머니 김 여사가 자녀를키우며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는 글로서 아직 끝나지 않은모정을 담뿍 담고 있다.2부는 홍준씨 부부와 홍길 신부,3남 대한매일 최홍운 편집국장 등이 삶의 현장에서 보고 느낀 점들을 쓴 것이다.홍길 신부는 “어머님의 팔순을 맞이해 형제들과 가족들에게 특별한 전기를 만들고 싶었다”며가족 전체의 참여와 협력으로 준비가 이뤄졌다고 말한다. 갚을 길 없는 모정에 대한 심경은 편지 형식으로 3부에담았다.장녀 경애씨는 “저희들 근심일랑 접어두시고 효도받으시며 손주들의 크는 모습을 지켜보시면서 여생을 편안히 보내시라”고 당부하는 장면은 뭉클하다. 한편 외손녀 김문희양의 “저희들에게 주신 사랑의 반도못되지만 저희들도 할머니 정말 많이 사랑하는 것 알아주세요”라는 재롱어린 감사의 말은 입가에 미소를 번지게한다. 팔순을 맞은 어머니의 내리사랑과,그에 감사하는 마음이화답하는 문집은 메말라가는 세태를 따뜻하게 적신다. 지난 88년 지금은 고인이 된 아버지의 고희연 및 부모 금혼식 때도 ‘서로 사랑하여라’라는 문집을 낸 바 있다. 이종수기자 vielee@
  • 이산가족 방문단 새달 교환

    제4차 이산가족 방문단이 다음달 중순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서울과 평양을 교환 방문한다.또 제6차 남북 장관급회담이 다음달 말부터 11월초 사이 3박4일간 평양에서 열린다. 남북 대표단은 17일 서울 평창동 올림피아 호텔에서 제5차남북 장관급회담 2차 전체회의와 비공식 접촉을 갖고 이같이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간 합의사항에는 이들 외에 ▲경의선 조기 복원 ▲임진강 수해방지 ▲개성공단 특구지정 ▲남북경협 4개 합의서조기 발효 ▲태권도 시범단 교환을 비롯한 남북간 체육교류▲동해 어업협력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4차 이산가족 방문단은 남과 북에서 150명 안팎으로 구성될 것으로 보인다.남북은 이와 별도로 다음달 말쯤 적십자회담을 열어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설치문제 등을 논의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 대표단은 18일 오전 제3차 전체회의를 열어 이같은내용의 8∼9개 합의사항을 담은 공동보도문을 채택,발표한다. 김홍재(金弘宰) 통일부 대변인은 “금강산관광사업 활성화문제는 좋은 결과가 기대된다”면서 “임진강 수해방지사업과 체육교류 등 여러 부분에서 의견이 접근됐다”고 전했다. 북측이 제기한 대북 전력지원과 경원선 복원,상선 영해통과 문제 등은 우리측 의견에 따라 다음 회담에서 논의키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이날오후 5시 청와대에서 김령성 단장 등 북측 대표단 3명을 접견하고 남북관계 전반에 걸쳐 대화를 나눴다고 오홍근(吳弘根)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김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김 단장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말한 뒤 “장관급회담이 재개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남북 양측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협력하여 많은 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김 단장은 “김 위원장은 건강하고 바쁜 중에도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는 사업을 지도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공동선언 정신에 따라 잘 해나간다면 큰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풍연 진경호 전영우기자 poongynn@
  • 남북 장관급회담 전망/ 북 전력지원 다시 요청 진통 예상

    지난해 12월 4차 회담에 이어 9개월 만에 재개된 제5차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측은 남북간 논의될 수 있는 거의모든 현안을 의제로 내놓아 회담결과가 주목된다.경의선철도·도로 복원과 임진강 수해방지 문제 등 그동안 논의됐거나 합의된 사안은 물론 상선 영해통과 문제까지 11개항을 제시했다.이는 북측이 일단 남북대화 및 협력에 적극나서겠다는 뜻을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북측의 적극적 태도는 16일 1차 전체회의에서 김령성 북측 대표단장의 기조발언에서도 잘 나타난다.과거 회담의경우 우리와 달리 20분을 넘지 않았으나 김 단장은 이를훨씬 넘겨 우리측 홍순영(洪淳瑛·통일부장관)수석대표보다 길게 발언했다.통일부 고위당국자는 “북측이 이번 회담에 상당히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음을 뜻한다”고 풀이했다. 우리 정부는 일단 이같은 북측의 적극성을 반기고 있다. 그러나 난관이 곳곳에 산재해 있어 절충에 상당한 진통이예상된다.우선 그동안 논란이 됐던 현안들이 북측의 의제에 포함돼 있다.전력지원과 비전향장기수 송환문제가 대표적이다.지난4차 회담때 50만㎾의 전력지원을 요청했던 북측은 이번 회담에서도 또다시 이를 제기하고 나섰다. 우리 정부는 전력지원에 앞서 북측 전력사정에 대한 실태조사부터 벌여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절충에 어려움이 따를것으로 보인다.비전향 장기수 송환문제도 국군포로 및 납북어민 송환문제 등과 맞물려 있어 쉽게 타결될 사안이 아니다. 또 금강산 관광대책에 있어서도 북측은 사업 주체를 현대아산 대신 자금력 있는 다른 기업을 요구할 방침인 것으로알려져 진통이 예상된다.우리측이 제시한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설치도 북측의 난색으로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반면 경의선 철도·도로 복원이나 임진강 수해방지대책,상선 영해통과 문제 등은 양측 모두가 적극적이어서 원만한합의가 점쳐진다. 향후 남북관계와 관련해 주목되는 대목은 이 의제들 외에김 북측 단장의 기조발언이다.김 단장은 “외세와 보수세력의 책동으로 북남 당국대화가 중단됐다.반통일세력의 방해책동을 짓부수고 6·15공동선언을 지지하는 광범한 대중의 힘에 의해 모든 사업을 밀고 가야한다”고 주장했다.8·15 평양 통일대축전 파문에 따른 남한내 보수세력의 반발을 정면으로 비난한 것이다. 남북간 대화 및 교류협력에 적극 나서되 남측 보수세력의반발에 대해서도 능동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뜻을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자칫 남한내 보혁간 갈등의 빌미를 제공할 가능성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진경호기자 jade@
  • 부음/ 5대의원 손치호씨, 작곡가 김명곤씨, 연극배우 고설봉씨

    ●5대 의원 손치호씨손치호(孫治浩) 전 국회의원(5대)이 14일 오후 6시45분 서울 상계동 백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향년 90세.손전의원은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을 지냈으며 유족은 진순례씨와 3남1녀.빈소는 서울 강남병원, 발인 17일 오전9시. (02)3430-0398. ●대중음악 작곡가 김명곤씨. 대중음악 작곡가이자 연주가,편곡가인 김명곤(金明坤) 한국대중음악작가연대 회장이 16일 오전 3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49세. 1973년 미8군 무대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한 고인은 1978∼79년 그룹 ‘사랑과 평화’의 연주자,작곡가 겸 가수로 활동했으며 나미의 ‘빙글빙글’ ‘슬픈 인연’,혜은이의‘파란나라’,박상민의 ‘청바지 아가씨’ 등 수많은 히트곡을 작곡했다. 또 조용필,송대관,양희은,혜은이,신승훈 등의 음반에 수록된 5,000여곡을 편곡했다.지난 99년 8월 한국대중음악작가연대를 조직,초대 공동회장을 맡으면서 대중음악작가들의 권익 옹호에 힘썼고 숭실대 실용음악과 교수로도 재직했다.유족으로 아들인 힙합가수 종희씨(20)가 있다.빈소는서울 강남성모병원,발인 18일 오전 7시 30분.장례는 대중음악인장으로 치러진다.(02)590-2576 ●원로 연극배우 고설봉씨. 원로 연극배우 고설봉(高雪峰)씨가 16일 별세했다.향년 89세. 동양극장 청춘좌에 입단해 ‘사비수와 낙화암’으로 데뷔한 그는 93년 최고령 연극배우,최다 작품 출연(연극 500여편,영화 300여편)으로 대한민국기네스북에 올랐으며 최근에는 한일합작영화 ‘반딧불’,연극 ‘맥베드2000’에 출연했다.유족은 미망인 박순녀(朴順女·80)여사와 장남 태일(泰一·58·자영업),차남 태천(泰天·56·자영업),삼남태웅(泰雄·46·자영업)씨.빈소는 서울대병원.발인은 18일오전 8시30분이며 이어 장례식은 오전 10시 서울 마로니에공원에서 연극인장으로 치뤄진다.(02)760-2011
  • 소설가 황순원 1주기 추모

    사람은 가도 그 향기는 남는다. 14일 오전 11시40분 ‘문단의 큰 별’ 황순원선생의 1주기 추모식이 충남 천안시 풍산공원묘원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부인 양정길여사와 시인이자 서울대 영문과교수인 장남 동규씨,차남 남규,장녀 선혜,삼남 진규씨 등유족을 비롯해 문학평론가인 김병익 인하대교수,김주연 숙명여대교수,소설가 김원일씨 등 문단 후배들과 김용성 인하대교수,소설가 고원정·김형경씨,평론가 하응백·강웅식씨 등 황순원선생의 경희대 국문과 제자 등 모두 60여명이참석했다. 1915년 평남 대동에서 출생한 황순원선생은 1931년 시로등단한 이후 1982년 ‘신들의 주사위’를 남길 때까지 숱한 명작을 남겼다.대표작 ‘소나기’는 한국 단편소설의백미로 꼽힌다. 한편 김용성 교수 등 제자들은 추모식이 끝난 뒤 가칭 ‘황순원선생을 생각하는 모임’을 만들고 선생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자 경희대에 흉상을 건립하기로 했다. 천안 글 이종수기자 vielee@
  • “특별사면 정보 비공개 정당”

    대통령의 특별사면과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특별7부(부장 禹義亨)는 13일 “정치적으로 남용되고 있는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를 감시하기 위해 관련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법무부장관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청구거부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1심을 뒤집고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적인 행위이고 원고들이 공개를 요구하는 문건들은 그 의사결정과정에서 작성된 것에 불과해 그것을 공개해야 할 뚜렷한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또 정치적 사면에 대한 견제를 위해 정보공개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대통령 사면권 행사 때 공개되는 사면대상자 명단과 사면 이유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변은 지난 99년 8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와전 국회의원 황병태(黃秉泰)·김병오(金炳五)씨 등이 특별사면되자 법무부에 정보공개를 요구했으나 “사면대상자와 제외자의 이름과사유가 공개되면 명예훼손의 위험이 있다”며 거부당하자 소송을 냈다. 지난해 11월 1심은 “정치적 행위인 만큼 사법적 심사의 대상은 아니지만 정치적 남용을 막기 위한 국민의 정보접근권은 보장돼야 한다”며 승소판결을 내렸다. 조태성기자 cho1904@
  • “對北 지원 구상무역 방식 검토”

    국회는 10일 통일외교통상위 등 14개 상임위별로 25개 정부부처 및 산하기관에 대한 국정감사를 실시,대북정책·금강산 관광사업·공적자금 사용문제·언론사 세무조사 등을놓고 여야간 격렬한 공방을 벌였다. 특히 여소야대 개편에 따른 정국운영의 시험대가 될 이번국감은 첫날부터 환경노동위가 회의절차,정무위가 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 출석 문제,문광위가 증인채택 문제를 놓고 여야간 대립으로 회의가 지연되는 등 곳곳에서 마찰이빚어졌다.김동태(金東泰) 농림부장관은 농림해양수산위의국감 답변을 통해 “현재 대북 식량지원에 대해 정부내에서구체적으로 검토한 바 없다”고 전제,“우선 대북지원 문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중요하다고 보며, 앞으로 구체적인논의가 진행될 경우 지원방식에 대해 구상무역 등 다양한방법이 검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광위의 문화관광부 국감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언론사세무조사와 관련,청와대 박지원(朴智元) 정책기획수석,남궁진(南宮鎭) 정무수석,김성재(金聖在) 전 정책기획수석과 이종찬(李鍾贊)전 국정원장,문일현 전중앙일보 기자의 증인채택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반면 민주당의원들은 구속된 방상훈(方相勳) 조선일보 사장 등 언론사주 3명과 손영래(孫永來) 국세청장, 이남기(李南基) 공정거래 위원장 등 여야간 이견이 없는 5명을 증인으로 선정한 뒤 필요하다면 나머지 증인은 채택하자고 맞서진통을 겪었다. 통외통위 국감에서 김형기(金炯基) 통일부 차관은 제 5차남북장관급회담과 관련,“그동안 남북간 합의가 되었으나이행이 미진한 사안을 중심으로 협의할 계획”이라며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사업과 동해안 육로 연결,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및 서신교환 제도화 등에 주력할 방침임을 밝혔다. 강동형 진경호 김성수기자 yunbin@
  • 김 전 대통령 차남 현철씨, 극동문제硏 비상임위원에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賢哲)씨가 지난 1일경남대학교 부설 극동문제연구소의 비상임연구위원직을 맡은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6월 중순 미국유학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한 현철씨는10일 “평소 관심을 갖고 있던 21세기 국가경영학과 미래학에 관한 연구를 할 계획”이라며 “내년 3월부터는 경남대대학원에서 강의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또 한나라당 공천설에 대해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연구위원으로 선임된 만큼 당분간 연구활동에 전념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동형기자 yunbin@
  • 학술원 회원 윤천주박사 별세

    문교부 장관과 서울대 총장 등을 지낸 학술원 회원 윤천주(尹天柱) 박사가 8일 오후 10시 숙환으로 별세했다.80세. 경북 선산에서 태어난 윤 박사는 해방전 일본 동경대를 중퇴하고 47년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이듬해부터 고려대 정경대 교수로 재직했다.63년 민주공화당 창당 당시 초대 사무총장을 지냈고 이후 64년 문교부장관,제7대 국회의원(전국구),73년 부산대 총장,75년 서울대 총장을 거쳐 78년 학술원 회원으로 선임됐다. 학계와 교육계에 기여한 공로로 62년 서울시 문화상,76년국민훈장 무궁화장을 각각 받았으며 ‘선비와 관료는 근검절약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신조로 지난 40년간 한 번도 이사하지 않은채 한옥에서 살아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정희(李貞姬·75)여사와 장남 대근(大根·동부제강 사장),차남 태근(台根·사조 아메리카 사장)씨등 2남 2녀.한나라당 주진우(朱鎭旴)의원과 외교안보연구원 이서항(李瑞恒) 교수가 사위다. 빈소는 서울대병원,발인(장례미사)은 12일 오전 9시 서울돈암동 천주교회.(02)760-2011.
  • 이인희 한솔제지 대표이사 사임

    국내 여성 최고경영자의 대표격인 한솔 이인희(李仁熙·73)고문이 지난 3월23일 그룹 모기업인 한솔제지의 대표이사직을 사임한 것으로 밝혀졌다.이 고문은 당시 주주총회에서 장남인 조동혁(趙東赫·51)부회장 등과 함께 한솔제지의 등기이사에서 물러났다.차남 조동만(趙東晩·48)부회장도 지난해 한솔제지의 등기이사 자리를 내놓아 현재 오너 일가로서는 삼남 조동길(趙東吉·46) 부회장만이 한솔제지의 등기이사를 맡고 있다. 김태균기자 windsea@
  • [편지로 본 1940년대 문단秘史] (1)김동환 가족사

    한 여인이,생신을 보름 남짓 앞둔 91세의 한 여인이 1993년 3월 18일 세상을 떠났다.‘백구 신원혜지묘(白鷗 申元惠之墓)’라는 묘비명만으로는 이 여인의 죽음이 한국 문학사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아리송할 것이다.그러나 그녀의 이름위에 있는 ‘파인 김동환(巴人 金東煥)’이란 각자(刻字)를 보노라면 ‘아,파인의 본처가 그때까지 생존했더란 말인가’라는 자못 회고조의 감탄사가 나올 법하다.1903년 원산에서 태어난 신원혜가 서울 정신여고를 졸업,블라디보스토크,간도,원산 등에서 중학교 교사로 있다가,서사시 ‘국경의밤’으로 이미 명성을 얻은 두 살 연상의 시인 김동환과 결혼한 건 1926년 3월 14일이었다. 가난한 시인의 아내이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3남 1녀를얻은 그녀는 1942년 작가 최정희(崔貞熙)와 남편의 관계가알려지자 시인의 “우유부단한 처신을 안타깝게 지켜”보다가 기어이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고 그 극심한 어머니의 분노를 이겨내지 못한 아버지는 끝내 여관으로 잠시의 거처를 정하였다”고 셋째 아들 김영식(金英植·68)은 회상한다.“그 후 어머니는 교회 일과 모교인 정신여고 동창회 봉사활동에 전념하면서 아픈 상처를 홀로 달래고” 지냈는데,나중 동네 아낙들에게 “아무리 남편이 속을 썩이더라도 집에서 나가 달라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한다(김영식,‘아버지 파인 김동환-그의 생애와 문학’). 조혼이 아닌 어엿한 신여성과 연애를 거쳐 사랑이 그득한결혼을 했던 파인의 예기치 못했던 탈선이 문단에서는 가십이었으나 그의 고향을 비롯한 애독자들로부터는 마침 휘몰아친 친일문학과 함께 따가운 매도의 대상이었다.어쩌면 이 두가지 탈선은 오히려 동시에 수행되면서 인간과 민족의존재론적 본질을 벗어나 원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해준 도피처 역할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파인의 친인척과 고향 사람들로부터 동정과 애정을 받은 것은 정작 남편이 버린 여인 신원혜였다.아니,파인 조차도 그녀를 버릴 수 있었을까. 서울이 인민군에 점령당한 직후인 1950년 7월 초 파인은 홀연히 귀가했다.피신 차 이뤄진 이산가족 상봉은 비록 짧았으나 단란했는데,이내 최정희의 자수 권유를 받고 나간(7.23) 뒤 그대로 납북,생사도 모르게 분단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앓은 게 이 일가족이었다.가족이랬자 두 아들은 일찍세상을 떠나버려,셋째 영식과 딸 영주(英珠·63)뿐이었다. 영식은 서울 경복고를 거쳐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대통령 비서실,주불 한국대사관 등에서 근무하다 정년을 맞았고,영주는 정신여고와 이화여대 국문과를 나와 시인으로 등단,캐나다 밴쿠버에 살고 있다. 이 한많은 여인이 죽음을 앞두고 마련해 둔 유품 속에는파인의 사진과 애증이 교차하는 몇몇 증빙 서류들,그리고자신이 묻힐 묘소와 묘비명이 포함되어 있었다.살아서 쫓아냈던 지아비를 죽어서야 한 문패 안으로 맞은 것이다.보따리 속에 파인이 보낸 편지도 한 묶음 있었다.파인은 맨몸으로 집을 나갔으니 여러 유품들은 저절로 신원혜가 간직했을 터여서 여간 소중한 자료가 아니리라는 기대에 부푼다.신원혜는 파인에게 보냈던 기라성같은 문인들의 편지를 그 격변의 역사를 헤치면서 고이 간직해 왔었다.신혼초 서울의정동,다동을 거쳐 종로구 돈의동 74번지로 호적을 옮긴 뒤,적선동(1927.5),인사동(1930.7),견지동(1933.12),필운동(1935.10),옥인동(1936.11),통인동(1938.1),효자동(1940.2)을전전하다가 1941년 6월 12일 적선동 183번지의 목조 기와집으로 이사,거기서 해방을 맞았다. 만주로부터 돌아온 피난민의 딱한 사정 때문에 방세도 안받고 그대로 살게 했던 이창규씨가 어느날 정전(停電)이 되자 성냥불을 켜들고 초를 찾다가 넘어져 석유난로에 점화,순식간에 집이 불타 버렸다.바로 1946년 12월 12일 오후 7시쯤,파인의 유품이,그리고 그가 ‘낭자 신원혜’에게 보냈던 달콤한 연애편지가 잿더미로 변해버린 순간이다.일가는창성동 자교(紫橋)교회 목사 사저에서 신세를 지다가 청운동(1948.5∼1953.2)으로 옮겨 6·25와 1·4후퇴를 겪으면서도 행여나 남편이 돌아오려나 싶어 몇 년간 이사도 하지 않았다.이제 파인과 신원혜는 갔고,사랑의 편지도 불타버렸다.그러나 1947년부터 납북당했을 때까지의 격랑을 헤치며 파인이 한 지아비와 육친의 정으로 아내 신원혜와 자녀에게보냈던 32통의 편지는 문단 비사의 차원을 넘어 가난했던글쟁이의 인생론적인 비애를 느끼게 한다. 중학생 아들(영식)과 초등생 딸(영주)을 아내에게 맡긴 빈털터리 시인 김동환은 이 무렵 최정희로부터 지원(1942년생),채원(1946년생) 두 딸을 가진,허리가 휘청거리는 아버지였다.최정희와의 보금자리였던 덕소에서 8·15를 맞은 파인의 심경은 실로 착잡했을 것이다.그의 뇌리에는 선비적 지조의 상징인 매월당 김시습의 18대 후손으로서 민족운동에투신했던 화려한 투쟁 경력들-민요 전설시의 거봉,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중앙위원,침략주의에 항거했던민완 기자,잡지 ‘삼천리(三千里)’의 폭발적인 성공과 민족의식이 강한 각종 출판물 간행,신간회 집행위원 등등이스쳤을 것이다.이런 경력 때문에 오히려 더 부정적으로 보였던 친일행위의 오점들은 그로 하여금 발빠른 자성과 회오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진흙 속에 빼앗긴 두 발 겨우 뽑고/오래 가뒀던 옛 날개 와락 펴 멀리 쳐다보니”(‘돌아온 날개’),“새나라 백성들은 이래서는 안된다/우리는소생하지 않으면 안된다”(‘소생’)는 참회와 함께 “올해엔콩팥을 맘대로 심어/천리객은 몰라도 십리의 벗 맞아들여/소찬에 약주라도 싫도록 대접할꺼나”(‘起耕’)라는 은인자중의 자세를 보여줬다.반민특위 때 그가 자수(1949.2.28)할 수 있었던 심리적인 배경도 여기서 비롯한 것이다. 그가 이승만 정권이나 한민당 추종이 아닌,조선민주당 대변인격으로 정당활동에 몸담았던 것(1946.2)은 나름대로의민족관을 지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혼란 속에서 숙원이었던 잡지 ‘삼천리’ 복간에 온 정력을 쏟았는데,민족 독립노선이나,문인으로 발 빠르게 자아비판한 채만식을 부각시킨 걸로 봐서 다분히 참회적인 자세를 취했다.을지로5가 여관에서 업무를 시작한 파인은 틈틈이 아내와 아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납득시키려고 난필의 쪽지를 보냈다.우편 배달이 아닌 사환이나 인편을 통해 직배시킨 경우가 많았던 시절이라 겉봉에는 ‘영식 모(英植 母)’ 혹은 아예 ‘영식 전(展)’이라 쓰고는 원고지나 적당한 백지에 절박한 용건만적어 보냈다.서른 두 통의 편지중 가장 빈도수가 많은 내용은 잡지 일로 인쇄소에 붙어 있어야 한다든가,당장 돈이없으니 우선 얼마만 보내고 며칠 뒤 더 보내겠다는 등등이다.신원혜의 이성적인 결벽과는 달리 어린 남매들이 아버지에게 귀가와 생활비를 독촉하는 전화를 했던 데 대한 회답으로 보인다. 이 역마살의 시인을 신원혜와 함께 묻고 딸 영주는 “기다리면 다시 올 사람인가/시를 만드시던/파인,내 아버지//하늘 밑을 파고/그를 묻었다.//그가 다니던 길도/함께 넣었다.//눈물도 못 내고/기어 가/나도 묻힌다.//아 아,내 아버지 파인”(‘아름다운 작별’)이라고 마음을 추스렸다.이렇게 담담해질 수 있는 시인으로서의 김영주와는 달리,아버지로부터 버림 받았던 딸로서의 김영주는 무척 신랄했다.“친일행동과 여자 문제로 부끄러운 아버지 책을 써서 알리는 것은 정말 내가 부끄러워요”라며,“아버지는 실패한 인간입니다.자신만 실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이세상에서 천국의 모형을 이루어 살라고 주신 한 가정의 책임을 저버리므로 해서,어머니와 우리 자녀는 가장아픈 불행을 체험했으며,어머니의 고통과 수치와 배반에 대한 증오와 세상이 보내는 그 부끄러운 수근거림을 어떻게 감당하셨는지 놀라울 뿐입니다”(김영식,위와 같은 책)라고 통매했다. 그러나 파인의 애틋한 조각편지들은 실패한 인간의 자료로서가 아니라 역사의 멍에를 헤어날 길 없었던 인정미 넘치는 나약한 한 서정시인이 치러야만 했던 가정과 사랑과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갈기갈기 찢어진 상처일 것이다. “몸 무고히 학교에 잘 다니느냐.마음에 어느 날 잊은 적이 없었다”거나,“추위가 심하니,남대문 야미(暗)시장에 가서,영식이나 영주의 외투 한 벌 사서,한 아이라도 입히오”,“한방의 침술 운운하지만 큰 아이들 때(장남 영사는 16세로 1942년에,차남 영창은 17세로 1947년에 사망)에 보아도도무지 믿을 사람들이 못 되니 더 보이지 말고,내가 정초에 영식이를 데리고 전문 신의(新醫)들에게 보여 충분히 치료할 터이니,아이에게 겁나는 말을 일체 말고,내가 가기를 기다려 주오”라는 등등의 구절에 이르면 이 시인이 얼마나가슴으로 울었던가를 알법도 할 것이다.“내일 산소에 가는 일은 중지하고,5월 단오에나 가기로 하오”란 구절은 바로 두 아들이 묻혔던 미아리 공동묘지로,거길 가면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묘소에 절하라’고 말한 후 묵념을 했고,어머니는 쌍봉 무덤 앞에 엎드려 흐트러진 모습으로” 울부짖었다고 김영식은 회고한다.살뜰한 지아비와 부정(父情)이 넘치는 글이기에 오히려 다른 서간문에 못지 않게 돋보이는 이 글들을 쓴 주인공이 어째서 가정을 버릴 수 있었을까. 임 헌 영 문학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 [고이즈미 대해부] (4)집안배경

    [도쿄 황성기특파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정치인 3세다.할아버지,아버지가 중앙 정치무대에서 국회의원과 주요 각료를 지낸 쟁쟁한 집안 출신이다. 그는 지역구인 요코스카(橫須賀)의 표밭은 물론 정치관,이념 같은 정치적 자산을 선대로부터 물려받았다.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의 딸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 외상을 비롯,고이즈미 내각의 각료 18명 가운데 6명이 정치인 2∼3세일 만큼 일본에서 정치 세습은 흔하다. 할아버지 고이즈미 마타지로(小泉又次郞·1951년 사망)는건설 노무자 집안의 차남이었다.군인의 꿈이 좌절되자 정치에 투신,1908년 중의원이 된 그는 1929년 체신대신으로발탁된다. 아버지 고이즈미 준야(小泉純也·1969년 사망)는 실은 할아버지의 사위였다. 외동딸을 정치인에게 줄 수 없다는 할아버지의 반대에 고이즈미의 부모는 가출을 단행,사랑을 이뤘다. 결국 마타지로는 준야를 아들로 삼고 고이즈미라는 성을주게 된다.준야는 고향인 가고시마(鹿兒島)에서 1937년 중의원이 된 뒤 장인이자 아버지인 마타지로가 사망하자 지역구를 요코스카로 옮겨 이케다(池田)내각에서 방위청장관을 지냈다. 고이즈미는 영국 런던대학에 유학하던 중 아버지의 죽음을 맞아 69년 고향에 돌아와 지역구를 물려받는다.그해 출마했으나 고배를 마시고 ‘정치 스승’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전 총리의 비서를 지내며 절치부심하다 72년 중의원에 첫 당선된다. 고이즈미 개혁의 상징인 ‘우정(郵政) 3개 사업 민영화’는 조부 때부터의 숙원사업인가 하면 청렴결백한 정치 스타일도 3대 물림이다. 선대의 후광을 등에 업은 고이즈미는 후쿠다파에서 승승장구하며 정계 입문 7년 만에 대장성 정무차관에 오른 뒤후생·우정대신을 지낸다.95년 자민당 총재 첫 도전에 실패하고 지난 4월 “남자는 3차례 승부한다”며 2전3기 끝에 자민당 총재에 오른다. 큰 시련없이 대권을 잡은 그지만 그에게도 인간적인 고통은 있다.부인과의 이혼이었다. 고이즈미는 36살이던 78년 아오야마 가쿠인(靑山學阮)대학에 재학중이던 당시 21살의 미야모토 가요코(宮本佳代子)와 결혼했다.결혼기간은 길지 않았다.부인이 4년 만에 집을 나가고 결국 이혼에 이른다.이혼을 두고 세간에서는 고이즈미가 폭력남편이니,여성혐오증이라는 소문도 있었으나사실무근으로 알려져 있다. 3대 정치인 집안의 고된 뒷바라지에,요코스카에서 자식을키우겠다는 고이즈미의 고집,성격 차이 등을 견디지 못했다는 게 정설이다.그의 전 부인(44·회사원)은 최근 한 잡지 인터뷰에서 “내가 좋아했던 대중음악에는 전혀 흥미를보이지 않았다”고 성격차를 단적으로 표현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세 아들이 있다.첫째(23세),둘째(20세)는 고이즈미 총리가 손수 키웠고 이혼 당시 임신 6개월째이던 셋째 아들은 부인이 키웠다.장남 고타로(孝太郞)는정치가의 뒤를 잇지 않고 지난 1일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혼은 결혼의 10배의 에너지가 든다”는 지론인 고이즈미 총리는 재혼을 하지 않았다.요시다 시게루(吉田茂)이후 독신 총리는 50년만에 그가 처음이다.지금 일본에는퍼스트 레이디가 없다. marry01@
  • 英앤드루 왕자 22년만에 해군 퇴역

    [런던 AFP 연합]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차남인 앤드루 왕자(41)가 30일 22년간 몸담았던 영국 해군에서 퇴역했다.앤드루 왕자는 이날 영국 해군의 전통에 따라 잉글랜드북동부 타인 위어주 뉴캐슬의 타인강에 정박한 HMS 아크 로열 항공모함 선상에서 퇴역식을 갖고 군생활을 마감했다.앤드루 왕자는 앞으로 국내외에서 왕실 업무를 수행하는 한편 10월부터 영국국제무역위원회(BTI)의 순회대사로 일할 계획이다.
  • 원로 서양화가 박성환씨 별세

    원로 서양화가 박성환(朴成煥) 옹이 30일 새벽 2시5분 서울 회기동 경희의료원에서 별세했다.향년 82세. 1919년 황해도 해주시 구제동에서 태어난 박 화백은 주로황소,농악 등을 소재로 한 향토색 짙은 작품에 치중했으며 70년대 국전 초대작가와 심사위원을 역임했다.유족은 장남 수영(경희의료원 홍보실 차장),차남 수인(인사동 추재화랑 대표)씨,발인 8월1일 오전7시40분,(02)958-9545
  • 러, 2차남북정상회담 지원

    이고리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김정일(金正日) 북한국방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확인하고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서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바노프 장관은 26일 오후 하노이 대우호텔에서 한승수(韓昇洙) 외교통상부장관과 가진 한·러 외무장관 회담에서이같이 말했다. 30분여에 걸친 단독 회담에서 이바노프 장관은 “러시아는남북대화의 지속을 지지한다는 방침에 변화가 없으며 제2차남북 정상회담이 열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노이 박찬구특파원 ckpark@
  • 안씨 사망 반응·이모저모

    동아일보사 김병관 명예회장의 부인 안경희씨의 빈소가마련된 서울 고려대 안암병원에는 침통한 분위기 속에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15일 오후 1시20분쯤 빈소를 찾은 김 명예회장은 눈자위를 연신 손수건으로 훔쳐 주위를 숙연케 했다.회사 관계자는 “김 명예회장이 평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문객은 김 명예회장을 비롯,김학준 동아일보 사장과 김회장의 장남인 김재호 동아일보 부사장 등이 맞았다. 미국에 머물고 있는 차남 김재열씨도 귀국 중인 것으로알려졌다.조화는 김정배 고려대 총장과 친인척이 보낸 5개외에는 모두 돌려 보냈다.부의금도 받지 않았다. ■서울노량진경찰서의 관계자는 “추락 지점으로 볼 때 안씨가 아파트 베란다가 아니라 작은방 창문에서 떨어진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면서 “조카딸인 김모씨(27)도 이모가 엄마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작은방으로 들어갔다가 떨어졌다고 말했다”며 자살 가능성을 내비쳤다. 경찰에 따르면 조카딸 김씨는 처음에는 인터폰을 통해 경비실로 전화를 해 “혹시 이모가나가는 것을 못봤냐”고물어왔다가 곧 이어 급하게 경비실로 내려와 이모가 없어졌다며 이쪽저쪽을 둘러보더니 경비원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119를 불러달라”고 말한 뒤 추락 현장으로 뛰어갔다는 것이다. 동아일보사측은 추락 원인과 관련해 경찰의 수사 결과를지켜보자는 입장이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임·직원들은 ‘근조’라는 검은 리본을 패용한 채 근무를 했으나 안씨에 대해서는대부분 “아는 바 없다”며 말을 아꼈다.동아일보사측은‘안씨가 세무조사와 관련해 친·인척들에 대한 심적 부담감을 느껴 왔다’는 경영전략실 명의의 짤막한 보도문만낸 뒤 언급을 회피했다. ■동아일보 법인과 사주에 대한 국세청 고발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은 안씨의 사망과 관련,‘지켜보자’며 여론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안씨가 검찰 수사에 심적 부담을 느껴왔다’는 동아일보사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정확한 사인도 밝혀지지 않은상황에서 뭐라고 말할 계제가 못된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안씨의 사망으로 수사가 일부 차질을 빚을 수도있으나 전반적으로는 처음의 원칙에 따라 계속 될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날 오전 빈소에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과 박지원 정책기획수석을 보내 조의를 표하고 유족들을 위로했다.여야 정치권은 아무런 공식 논평을 내지 않은대신 당직자들이 개인적 차원에서 빈소를 방문,문상했다. 김 회장과 사돈간인 이한동 국무총리에 이어 민주당 김중권 대표,박상규 사무총장,장성민 의원 등도 빈소를 찾았다. 한나라당 최병렬 부총재는 빈소를 방문하기에 앞서 기자실에 들러 “들은 얘기로는 이번 사건이 세무조사와 직접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풍연 장택동 박록삼기자taecks@
  • 여천 NCC 한화측 경영진 교체

    파업수습을 둘러싸고 한지붕 두가족의 경영진이 갈등을빚어 사사(使使)갈등으로 불렸던 여천NCC 사태가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다. 여천NCC의 공동 출자사인 한화는 최근 분규원인이 됐던현지 경영진을 교체,사태해결에 나섰다.이로써 공동출자한대림 이준용(李埈鎔)회장이 한화 김승연(金昇淵) 회장에게신문광고를 통해 공개면담을 요구하면서 확대됐던 이번 사태가 수그러들 것같다. 여천NCC는 지난 7일 서울 한화 소공빌딩 본사에서 임시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열고 한화측 공동대표였던 이상철(李相哲) 부사장(공장장)을 박완식(朴完湜·57) ㈜한화 화약부문 전무이사로 교체했다.또 한화측의 김관수 관리담당 상무를 경질하고 차남규(車南圭·47) ㈜한화정보통신 상무를앉혔다. 공동출사사인 대림산업을 대표하는 김당배 여천NCC 사장과 신석범 기획담당 상무는 유임됐다. 한화석유측은 이번 경영진 교체는 대림산업 이준용 회장의 일간지광고 파문이후 증폭된 한화·대림간 갈등과 현재유보상태인 여천NCC 노조의 파업을 조속히 해결하려는 의지에 따른 것이라고설명했다. 한편 한화측 경영진 교체에 대해 여천NCC 노조집행부 간부는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져 다행”이라며 “오는 9일 회사측과 공식대화를 갖기로 합의했다”고 말해 공장은곧 정상을 되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광삼기자 hisam@
  • 남북 장관급회담 곧 재개

    남북한 장관급 대화가 곧 재개돼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포함,남북간 주요 현안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지난 3일 매일신문 창간 55주년기념 특별회견에서 “앞으로 남북관계는 그간의 정체상태가 풀려가는 방향에서 진전이 이뤄질 것이며,조만간 남북당국자간 대화 재개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혀조만간 대화가 재개될 것임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김 대통령은 6일 직능단체대표 초청 청와대 오찬에서도 “북·미대화가 아직 진행되지 않고 있고,남북관계가 정체상태에 있으나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진단,곧 남북간은 물론 북·미간 대화가 시작될 것임을 분명히했다. 김 대통령은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 완료,금강산 관광사업 문제 등 남북관계 제약 요인 해소,6·15 남북공동선언1주년을 기념하는 남북공동행사 개최 등으로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면서 “대화 재개와 아울러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문제가 자연스럽게 논의될 수 있을 것으로본다”고 밝혔다. 답방 시기에 대해 김 대통령은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되지 않았다”면서 “(서울 답방은)남북정상이 함께 서명한남북공동선언의 합의사항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행될 것”이라며 김 위원장의 답방을 확신했다. 이와 관련,정부 고위관계자는 “구체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북측으로부터 약간의 사인이 있다”고 전하고 “남북간긴장완화와 교류협력이 지속된다면 향후 남북관계는 제2차남북정상회담 등을 통해 한단계 더 진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는 대화가 재개되면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사업계속 추진 ▲4대 경제협력 합의서 발효 ▲이산가족 문제의근본적 해결 ▲금강산 육로관광 추진 ▲군사적 신뢰구축등을 주요 의제로 선정,협의해나갈 계획이다. 장관급 회담 대표에는 남측의 임동원(林東源) 통일부장관,북측의 김용순(金容淳) 아태평화위원장이 유력한 것으로전해졌다. 오풍연기자 poongy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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