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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나라 ‘공천 커트라인’ 낮춘다

    한나라당은 ‘친이-친박’간의 공천 갈등이 일단 해소되자 향후 본격적인 공천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걸림돌 제거에 나섰다. 당헌·당규에 명시된 ‘비리 연루자 공천 배제’조항을 손질하려는 움직임부터 보이고 있다. 안강민 공천심사위원장은 27일 이와 관련,“모호한 측면이 많다. 규정을 명확히 할 필요성이 있다.”며 당헌·당규의 수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안 위원장은 “당규에는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자에 대해서만 규정돼 있어 벌금·과료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은 데다 사면·복권을 받은 사람에 대한 예외 규정도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강재섭 대표도 전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과거 야당 10년 하면서 정치공작, 음해·탄압에 얽힌 사람의 경우, 비리 정치인은 공천을 불허한다는 당규에서 예외로 할 수 있다.”며 유연한 입장을 밝혔다. 현행 당규 9조에는 공천 부적격 기준을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재판을 계속 벌이고 있는 자, 파렴치한 범죄 전력자, 부정·비리에 연루된 자’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지난해 4·25 재보궐 선거에서 패배한 뒤, 쇄신 차원에서 마련한 것이다. 이 조항이 새삼 논란거리가 된 이유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측의 김덕룡 의원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박근혜 전 대표측 좌장격인 김무성 최고위원 등이 관련되기 때문이다. 김현철씨는 지난 98년 한보비리 사건에 연루돼 조세포탈 혐의로 징역 2년형을,5선의 김 의원은 부인이 2006년 지방선거에서 공천헌금을 받아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바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 1996년 수뢰 사건으로 20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김 최고위원측은 “사면·복권이 된 데다 지난 16∼17대 총선에 잇따라 공천받아 이미 걸러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나라당은 28일 최고위원회의와 공심위에서 공천 부적격자를 규정한 조항에 대한 논의를 벌일 예정으로 알려져 논의 결과에 따라 공천 갈등을 빚을 가능성도 상존한다.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사설] 김현철씨 출마 선언을 보는 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가 어제 경남 거제에서 18대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김씨는 조만간 거제에 사무실도 마련하고 한나라당 예비후보로 등록하겠다고 한다. 거제는 김 전대통령의 고향이자 현철씨의 본적이 있는 곳이다. 아버지의 후광, 정치적 자산을 토대로 국정에 뛰어들겠다는 것이다. 그가 정치를 하든 말든 개인의 선택이고 자유이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가. 문민정부에서 ‘문민 황태자’‘소통령’으로 불리며 국정을 농단하고 나라를 파탄으로 몬 장본인이 아닌가. 국민들의 상당수는 아직도 외환위기 직전에 터진 정권 말기의 한보사태와 김현철 게이트를 기억하고 있다. 그는 비선조직을 운영하며 정·관·재계를 주물렀다. 대통령 아들이라는 영향력을 행사해 한보가 거액을 부정하게 대출 받도록 했으며, 크고 작은 공직 인사에도 간여했다. 안기부를 개인의 정보수집 창구로 썼다. 갖가지 이권에도 개입하고 대선 자금 관리에도 손을 뻗쳤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의 공천권에도 개입하는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다 사법처리까지 된 인물이다. 김씨는 “CEO출신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거제와 국가발전을 뒷받침하겠다.”고 했다. 그는 10년간의 반성으로 족하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구악의 상징인 그가 정치 무대로 복귀하는 것을 반기는 국민은 없다. 이명박 당선인을 지지한 아버지가 적극 도와주고 있다고 한다. 당선이 보장되는 한나라당 공천을 따겠다고 공언했다. 김씨 출마는 이제 한나라당의 ‘개혁공천’을 가르는 잣대가 됐다.
  • YS차남 현철씨 거제출마 선언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차남인 현철씨가 23일 경남 거제에서 18대 총선에 출마한다고 선언했다. 김씨는 이날 거제시 신현읍 웨딩블랑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번 총선이 정치 입문의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공천 경쟁에 뛰어들었다.”면서 “정치를 하더라도 명분이 있는 곳에서 하고 싶다.”고 말했다. 거제는 YS의 고향으로 선산과 생가가 있으며, 현철씨의 본적지이다. 김씨는 이어 “한나라당 공천 획득에 자신이 있으며,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하면 무소속 출마는 하지 않겠다.”며 “CEO 출신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경영학 박사 경력을 살려 거제와 국가 발전을 뒷받침하려고 한다.”고 말했다.거제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박지원-한화갑 맞대결?

    동교동계인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와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4월 총선에서 맞대결을 벌일 전망이다. 박 전 실장은 22일 대통합민주신당에 입당, 전남 목포에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앞서 한 전 대표도 연고지인 전남 무안·신안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홍업 의원에게 넘겨준 상태로, 이미 목포 출마의 뜻을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 한 전 대표는 “우리(동교동)에게도 질서가 있고 선배가 있다.”고 말했고, 박 전 실장은 “한 전 대표의 말씀에 제가 뭐라고 말할 입장이 아니다.”며 언급을 회피했다.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단독]김호연 빙그레회장 천안서 총선출마

    [단독]김호연 빙그레회장 천안서 총선출마

    빙그레 김호연(52) 회장이 22일 한나라당 입당을 선언한다. 김 회장은 오는 4·9총선에서 충남 천안을에 출마할 계획이다. 이번주 중 회장직도 사직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천안시 직산읍이 고향인 한화그룹 창업주 김종희(작고) 회장의 차남이자,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친 동생이다. 김 회장의 백부인 김종철 전 국민당 총재(작고)가 천안에서 6선 의원을 지냈으며, 김 총재가 작고하자 둘째 숙부인 김종식 전 의원이 지역구를 물려받아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 집안´ 출신이다. 백범 김구 선생의 손녀 김미씨의 남편인 김 회장은 백범 기념사업회장, 매헌 윤봉길 장학회 후원회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최근 천안시 성정2동에 선거사무실을 마련하고 오는 25일 쯤 사무실 개소식을 가질 예정이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만도, 8년만에 한라그룹 품으로

    한라그룹이 외환위기 때 품을 떠났던 국내 최대의 자동차부품 업체인 만도를 되찾는다. 한라그룹의 계열사인 한라건설은 만도의 대주주인 선세이지(Sunsage)사(社)로부터 지분 72.4%(539만 1903주) 전량을 6515억 4677만원에 매입하는 매매계약을 맺었다고 21일 밝혔다. 재계는 한라건설의 만도 인수를 한라그룹의 옛 계열사 찾기 신호탄으로 해석하고 있다. 만도는 1962년 설립돼 국내 자동차산업 발전과 함께했다.1999년 한라그룹이 넘어갈 때 창업주인 고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이 가장 가슴쓰려했던 알토란 같은 회사 가운데 하나다. 고 정 명예회장은 “만도 경영권을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며 강한 애착을 보였으며,2006년 7월 세상을 뜨면서 만도 인수를 유지로 남겼다. 한라그룹의 본격적인 만도 되찾기는 2005년 시작됐다. 정 명예회장의 차남인 정몽원 한라건설 회장이 유지를 받들어 사활을 걸었고 8년 만에 다시 한라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만도의 연간 매출액은 1조 5800억원 규모. 평택·원주·익산 등 국내 공장과 중국 베이징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만도 인수는 정 회장이 1000억원이 넘는 인수 자금을 준비하는 등 치밀한 전략을 세웠고, 사촌형인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도 ‘모종의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사보다 인수금액을 적게 써내고도 인수에 성공한 것은 만도를 선세이지에 넘길 당시 체결한 약정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선세이지가 만도 지분을 팔 경우 우선 매입권을 한라건설에 주도록 돼 있었다는 것이다. 한라그룹은 다음에는 한라공조 인수를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는 한라그룹이 미국 비스테온(Visteon)사로 넘어간 한라공조까지 인수하면 자동차 부품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부고] 이정석 前대한언론인회장 별세

    이정석 전 대한언론인회 회장이 16일 오후 7시30분 별세했다.76세. 고인은 평북 정주 출신으로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1954년 조선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해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을 거쳤다. 이후 KBS로 자리를 옮겨 보도국장과 워싱턴ㆍ런던특파원, 올림픽방송본부장, 기획조정본부장을 역임한 뒤 한국방송제작단 사장과 대한언론인회 회장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소현씨와 장녀 이수린(미국 거주), 장남 이인욱(아크인터내쇼날코리아 부장), 차남 이인용(그로스베커드 사원)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19일 오전 8시.(02)3410-6901.
  • [공직 인맥 열전] 법무부·검찰 (하)

    [공직 인맥 열전] 법무부·검찰 (하)

    법무·검찰에서 검사장급 보직 이하로 가장 선호도가 높은 근무지는 법무부,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이다. 세 곳을 번갈아 근무하며 요직을 두루 거치는 사례도 많다. 주로 각 기수별로 난다긴다하는 검사가 발탁된다. 이같은 메리트가 200%의 능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당근책으로 활용되면서 인맥을 형성하기도 한다. 특히 법무부 감찰기획관·홍보관리관·검찰과장·법무심의관, 대검 수사·공안·범죄정보·홍보기획관 및 중수1·2과장·첨단범죄수사과장, 서울중앙지검 2·3차장 및 형사1부장, 특수1·2·3부장, 금융조세조사1·2부장 등은 선망의 자리로 꼽힌다. 이 가운데 법무부·대검 기획관과 서울중앙지검 2·3차장은 차기·차차기 검사장 후보군 중 선두그룹으로 꼽힌다. ●기수별 우수 검사 세곳에 발탁 지난해 대선 당시 선거관련 고소·고발·수사의뢰 등을 원만하게 풀어낸 신종대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사법시험 23회 출신으로 법무부 검찰3과, 대검 감찰1과장, 대검 공안기획관 등을 지냈다.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를 둘러싼 각종 의혹사건 수사를 진두지휘한 김홍일 3차장은 사시24회에 합격, 대검 강력과장, 서울지검 강력 부장 등을 역임했다. 후덕한 성품과 체구로 ‘김 장군’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김종구 전 법무부장관-김각영 전 검찰총장-조승식 대검 형사부장을 잇는 충남 인맥의 중견이다. 전국 특수수사를 조율하는 송해은 대검 수사기획관은 사시25회 출신으로 대검 연구관, 인천지검 특수부장, 인천지검 2차장 등을 거쳤다. 지난 2002년 인천지검 특수부장 때는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의 비자금 조성 비리를 원칙대로 수사하다가 지휘부와의 이견으로 이듬해 서울남부지청으로 옮겨간 일화로 유명하다. 김현웅 법무부 감찰기획관은 사시 26회로 대검 공판송무과장, 예금보험공사 파견 검사, 법무부 법무심의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지냈다. 지난해 현직 고법 부장판사가 연루된 초대형 법조비리 사건을 지휘하면서 경찰 고위간부, 현직 판사, 현직 검사의 연루 사실을 밝혀냈다. 전국의 모든 범죄 정보가 모이는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실 수장인 정병두 기획관은 사시 26회로 법무부 검찰1·4과장, 송무과장 등을 지냈다. 현재 대통령직인수위에서 파견 근무 중인 그는 임채진 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형사1부장을 맡았고, 임 총장의 인사청문회 때 준비단장을 맡는 등 임 총장의 오른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선거·노동 사건을 총괄하는 박청수 대검 공안기획관은 사시 26회로 울산·부산·수원·서울 등 대규모 지검의 공안부장은 물론 대검 공안1·2과장을 지낸 전형적인 공안통 검사다.2005년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수사를 이끌면서 청와대와 천정배 당시 법무부장관의 의견과 달리 구속수사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기획관 등 검사장 후보 ‘선두´ 법무·검찰의 입으로 불리는 홍만표 법무부 홍보관리관과 김경수 대검 홍보기획관은 사시27회 동기로, 둘다 정통 특수통으로 꼽힌다. 홍 관리관은 서울지검 특수1·2·3부장, 청와대 민정수석실, 수원지검 특수부 부부장, 대검 중수2과장 등을 지냈다. 진승현 게이트,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 비리 의혹, 황우석 사건 등을 수사했다. 김 기획관은 서울지검 특수1부 부부장, 법무부 검찰3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을 역임하며,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현철씨 비리, 이용호 게이트, 행담도 개발 의혹, 법조 브로커 윤상림씨 사건 등을 수사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두산그룹 오너 4세 대거 승진

    두산가(家)의 ‘원(原)’자 돌림 4세들이 무더기 승진했다.‘용(用)’자 돌림 3세들과 더불어 그룹을 주도적으로 이끌게 된다. 오너 책임경영 체제 강화 속에 ‘힘의 균형’을 의식한 절묘한 견제가 엿보인다. 두산그룹은 16일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의 장남과 차남인 박진원(40) 두산인프라코어 상무와 박석원(37) 두산중공업 부장이 각각 전무와 상무로 승진했다. 박용현 두산건설 회장(박용성 회장의 동생)의 장남과 차남인 박태원(39) 두산건설 상무와 박형원(38) 두산인프라코어 부장도 역시 각각 전무와 상무로 나란히 승진했다. 이들의 승진은 지난 연말 사장단 인사때 박용곤 명예회장(박용성 회장의 형)의 장남(박정원 ㈜두산건설 부회장)과 차남(박지원 두산중공업 사장)이 승진 또는 중책을 겸직함에 따라 예견됐던 일이다. 이로써 그룹에 몸담고 있는 오너 4세 8명 가운데 6명이 승진했다.‘용’자 형제들의 또래 아들들을 골고루 승진시킨 것이다. 그러나 ‘균형’ 속에서도 어느 정도의 ‘쏠림’은 감지된다. 박용성 회장의 장남인 박진원 전무가 요직인 산업차량 부문장(BG장)에 임명됐다. 실세 삼촌인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을 보좌하면서 그룹의 실무 흐름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주요그룹 연말연초 임원인사 살펴보니

    주요그룹 연말연초 임원인사 살펴보니

    삼성, 포스코, 한화그룹을 제외한 주요 그룹들이 임원인사를 마쳤다. 세대 교체가 두드러진다. 부회장 직함이 늘면서 책임경영이 강화된 것과 오너 3·4세들의 전진 배치가 계속된 점도 특징이다. ●40∼50대 젊은 사령탑 부상 14일 재계에 따르면 주요 그룹의 간판 최고경영자(CEO)들이 줄줄이 물러났다. 통신·전자업계의 쌍두마차였던 조정남(67) SK텔레콤 부회장과 김쌍수(63) LG전자 부회장이 오는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고문으로 물러난다. 현대차그룹의 윤명중(67·글로비스), 이전갑(61·현대파워텍), 한규환(58·현대모비스) 세 명의 부회장도 퇴진했다.6년간 현대상선을 이끌어온 노정익(55) 사장도 지난 주말 전격 사임했다. 대신 젊은 사령탑이 부상했다. 현대차그룹에서는 이정대(53·현대차 재경본부장), 서병기(61·현대차 품질 및 생산개발총괄본부장), 박승하(57·현대제철), 김창희(55·엠코) 사장이 각각 부회장 반열에 새로 올랐다. ●책임경영 강화…부회장 전성시대 ‘실세 부회장’이 늘어난 것도 큰 특징이다. 신헌철(62) SK에너지 사장, 김반석(59) LG화학 사장, 경청호(55) 현대백화점 사장이 연말연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권한도 주면서 책임도 묻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와 맞물려 포착되는 흐름 중의 하나가 사업부제 강화이다.SK그룹은 아예 ‘회사내 회사’(CIC) 개념을 도입하고 각 부문별로 사장을 뒀다.SK에너지만 하더라도 김명곤(58), 김준호(50), 유정준(45) 등 40∼50대를 CIC 사장으로 배치했다. 올 들어 ‘빠른 변화’를 화두로 내세운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친정체제를 강화했다. 노정익 사장의 사임으로 전인백(현대U&I), 김지완(현대증권) 등 현 회장 취임 전의 주요 CEO들이 모두 물러났다. 현대상선 새 CEO에는 김성만(61) 전 한국유리공업 부회장이 영입됐다. 큰 폭의 세대 교체가 예견됐던 삼성그룹은 예기치 못한 사태로 다음달 말 정기주총 직전에 ‘최소한의 인사’만 할 예정이다. ●오너 3·4세 승진잔치는 예년보다 덜해 오너일가의 전진배치가 가장 두드러진 곳은 두산가(家)이다.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잇따라 성사시켜 ‘힘의 무게이동’을 예고해온 박용만(53·박용곤 명예회장의 동생) 두산인프라코어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했다. 박 명예회장의 장·차남이자 4세인 박정원(46) 두산건설 부회장과 박지원(43) 두산중공업 부사장은 각각 ㈜두산 부회장(겸직)과 사장으로 발령났다. 현대백화점그룹 정몽근 명예회장의 장남이자 3세인 정지선(36) 부회장은 회장으로 승진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딸 현아(33·대한항공 기내식 사업본부장)씨와 아들 원태(31·〃 자재부 총괄팀장)씨도 나란히 한 직급(상무A·상무B)씩 승진했다. 관심이 쏠렸던 이재용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삼성전자 전무, 정의선 (정몽구 회장의 외아들)기아차 사장, 정지이 (현정은 회장의 맏딸)현대U&I 전무 등은 현재로서는 변동이 없다. 예년에 비하면 오너 3·4세들의 승진이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지난해 워낙 많이 이뤄진 데 따른 속도 조절도 중요한 요인으로 풀이된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내고장 이야기속 인물] ‘해남의 논개’ 官妓 어란

    [내고장 이야기속 인물] ‘해남의 논개’ 官妓 어란

    1592년 임진왜란 때 경남 진주에 논개가 있었다면 1597년 정유재란 때 전남 해남에는 어란(於蘭·?∼1597)이 있었다. 충절의 여인 논개는 잘 알려져 있지만 어란은 모른다. 두 여인 다 신분이 천한 관기(官妓)였다. 논개가 왜군 장수와 함께 투신해 조선 여인의 기개를 알렸다면 어란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았다. 어란이 세계 해전사에 전무후무한 명량대첩의 일등공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란은 400여년간 철저하게 묻혀버렸다. 뒤늦게 해남 출신 원로 교육자인 박승룡(81)옹에 의해 이 전설 같은 이야기가 최근 문헌으로 확인돼 빛을 보게 됐다. (편집자주) 새해 1일 새벽, 땅끝인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 전형적인 바닷가 마을답게 해마다 풍어와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다.400여년 전통이다.‘당주신위(堂主神位)’라고 돌에 쓰인 신주는 정유재란 때 나라를 구한 할머니로 보인다. 이 마을 옆 동산에는 17세기 초쯤 조선시대에 세워졌다는 석등이 있다. 마을사람들이 할머니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 전해진다. 박승룡옹은 “일제 강점기 때 25년 동안 해남에서 순사를 한 일본인 사와무라 하지만다로(澤村八幡太朗)의 유고집에서 ‘어란’이란 여인의 행적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유고집인 ‘문록경장(임진·정유년)의 역(전쟁)’에서는 명량대첩의 패배를 어란의 간첩행위로 보고 있다. 그는 “마을 주민들이 알고 있는 마을의 수호신인 할머니 이야기와 책의 내용이 한치의 오차 없이 그대로 들어맞았다.”고 흥분했다. 마을주민들은 신주로 모신 주인공의 실체를 이제야 어란 할머니라고 알게 됐다. 박옹은 “정유재란 때 어란과 관계를 맺은 왜장 스가 마사가게(管正陰)는 실존인물”이라고 강조했다. 스가 마사가게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조선에 파견한 스가 히라에몬(管平右衛門)의 서자라고 일본 히로시마대학의 히구마 교수가 확인해줬다. ●명량대첩 일등공신 어란 명량해전은 충무공이 남은 12척의 배로 왜군 133척을 울돌목(명량)에 수장한 정유재란 최대의 승리다. 난중일기 등으로 당시 해전을 되짚어보자.1597년 8월26일 충무공은 우수영인 어란진에서 울돌목 앞인 진도군 벽란진으로 옮겨간다.9월7일에는 왜장 스가 마사가게가 군선 13척으로 정탐차 어란마을에 들어온다. 이어 14일쯤 왜군 총대장인 구루시마 미치후사(來島通總)가 어란마을로 들어온다. 이렇게 보면 어란이 왜장 마사가게를 만난 기간은 일주일 남짓이다. 마사가게는 첫눈에 어란의 미모에 넋이 나갔을 것이다. 결국 그는 잠자리에서 명량해전 출전일을 누설하고 만다. 때마침 조선인 김중걸이 왜군에게 붙잡혀 마사가게 앞으로 끌려온다. 그러나 누군가의 구명으로 김중걸이 풀려난다. 이 누군가는 김중걸이 떠나기 전 “나는 김해인”이라고 안심시킨 뒤 “‘왜놈들이 배들을 모아 조선 수군을 모두 몰살한 뒤 바로 경강으로 올라가겠다고 말하더라.’는 말을 우수영에 전하라.”고 귀띔했다. 왜군 장수의 총애를 받는 어란이 아니고는 포로가 풀려날리 만무하다. 김해인이란 본관이 김해 김씨일 듯하다.100만부가 넘게 팔린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서는 ‘왜군이 어란항에서 출항할 때 적장(구루시마 미치후사)의 몸시중을 들던 조선인 여자 1명이 물에 뛰어들어 죽은 것으로 묘사된다. 소설이지만 음미할 만한 대목이다. 충무공은 김중걸로부터 적진 동향을 안 뒤 명량해전 이틀 전인 14일 본진을 벽파진에서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으로 옮긴다. 이로써 충무공의 전술이 명량해협을 뒤에 둔 배수지진에서 앞에 둔 전법으로 급선회한다. 이 전술변경이 명량대첩의 승리를 가져온다. 명량해전 일인 9월16일 충무공은 전투 2시간여만에 불리한 전세를 뒤짚고 왜군 133척을 울돌목에 격침한다. 왜군은 좁고 물살이 센 울돌목에 놀라 큰 배들은 뒤에 남기고 작은 배들로만 울돌목을 건너 전투에 나섰다가 격침됐다. 퇴각하던 스가 마사가게는 이날 벽파진에서 익사한다. 일본 전사(戰史) 기록도 똑같다. 충무공은 9월14일자 난중일기에서 “(김중걸의)말이 모두 믿기는 어려우나 그럴 수도 없지 않을 듯해 전령선을 우수영으로 보내어 피란민들을 육지로 피하라고 타이르도록 했다.”고 적었다. 우수영으로 진을 옮긴 대목이다. ●어란은 이순신의 간첩 사와무라는 유고집의 48,49쪽에서 명량해전 대패의 원인을 어란진의 간첩사건으로 규정했다.‘어란진에 주둔한 스가 마사가게는 이순신군의 간첩인 미기(美妓) 어란과 애인관계로 사랑에 빠져 명량해 출전기일을 발설한다. 어란은 이를 이순신군에 연락한다. 결국 명량해전에서 애인 스가 마사가게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라에는 충성했지만 인간적인 양심의 가책으로 다음날 달 밝은 밤에 명량해가 보이는 서쪽바다에 투신한다.’고 적었다. 그러나 어란이 투신한 이유는 불분명하다. 또 87쪽 그가 지은 한시에는 ‘무희 요염에 유혹돼 어란진의 여심(旅心)에서 정을 맺은 것이 간첩의 그물에 걸리다.’ ‘정유재란 때 논개와 같은 업적을 남긴 여인이 있었다.’고 기록했다. 지금 마을주민 가운데 누구도 모르던 ‘어란’이란 이름도 이 유고집에서 처음으로 나온다.‘어란’이라는 마을 이름은 고려 공민왕 때부터 나온다. 사와무라의 유고집에 신뢰성을 더한 문장이 있다.‘대흥사 앞쪽인 해남군 삼산면 평활리에 임진란과 정유재란 때 붙잡힌 일본인 포로수용소(2000여명)가 존재한다.’고 적었다. 실제 현장확인에서 이는 사실로 밝혀졌다. 처음으로 서울신문(1983년 3월 13일자)에 보도돼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마을사람들의 증언 어란마을 주민들이 알고 제사 지내는 할머니 이야기는 이렇다. “명량해전 이튿날인 9월17일, 마을 앞 바닷가로 한 여인의 시체가 떠오른다. 이를 마을 어부가 발견, 시신을 수습해 근처 소나무 밑에 묻는다. 묘 앞에 석등을 세우고 불을 밝혀 이 할머니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할머니가 투신했을 것으로 보이는 매봉산 절벽에서 가까운 산에는 사당의 주춧돌이 나뒹군다. 지금 마을 뒤편 사당은 두번째 옮긴 것이다. 주민 김학채(73·향토연구사)씨는 “70살 넘은 마을 사람들은 할머니 석등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어릴 때 마을에서 날마다 저녁에 불을 켜고 새벽에 불을 끄던 일을 한 것을 잘 안다.”고 말했다. 그는 중요한 말을 했다.“사당의 할머니 신주를 일본의 장군 가문(스가 마사가게)에서 가져가려는 것을 주민들이 지켜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주민 최사홍(90)옹은 “한학자이신 조부께서 ‘이 등대가 있는 곳은 유서깊은 신성한 곳이고 영을 기리기 위해 석등을 세우고 불을 켰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고 기억했다. 이처럼 석등에 불을 밝히는 어란마을의 관습은 일제 강점기에도 이어졌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불을 켜도록 허용한 점은 의혹이 있다. 이에 대해 히구마 교수는 “사료를 연구해봐야 할 일이지만 불을 켠 것은 일본인들도 등대로만 알았지 정확한 내용은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튼 어란항은 남다른 민족혼이 살아 숨쉬는 곳임에 틀림없다. 뭍에서 툭 튀어나온 천혜의 군사 요충지이다. 마을회관 앞마당에는 조선시대 수군 무관인 만호 5분의 비석과 해방기념비 1개가 세워져 있다. 해남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구국의 여인’ 찾아낸 박승룡옹 구국의 여인 ‘어란’을 처음으로 찾아낸 박승룡옹은 지난해 8월10일 세기 준이치(瀨木俊一) 일본 해남회 회장으로부터 부탁했던 책을 받았다. 그가 펴낸 사와무라 하지만다로의 유고집이다. 유고는 사와무라의 큰딸인 시마구라 이구고(75·島倉郁子)가 보관하다 해남회에 전달해 인쇄됐다. 해남회는 일제 때 해남에서 살았던 일본인들의 친목 단체이다. 해남회 회장은 “임진·정유재란 때 조선과 일본에서 첩자를 서로 활용했다. 어란도 진주의 논개와 같은 사례”라고 평가했다. 박옹은 친분이 있는 히구마 다게요시 히로시마대학 교수로부터 “경장 2년(정유재란)에 스파이(간첩)로 활동한 어란 할머니를 아십니까.”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한국인인 김학래(85·서울 광진구 광장동)씨는 “일년에 10번 이상 해남을 왕래하는 해남회 초대 회장인 다니구지 노보루(谷口登)에게서 어란 이야기를 들었다. 어란진에서 경찰관을 한 기무라 세이지(木村精一)의 차남인 기무라 오사무(木村修·81)에게서도 이 이야기를 들었다. 오사무는 나의 순천농업학교 동기”라고 말했다. 박옹은 “영암 왕인박사 유적지도 우리 기록에는 없지만 일본 기록을 참고로 해 오늘날의 유적지가 복원됐다.”며 “어란 할머니의 얼이 깃든 곳을 성역화하면 한·일 우호 교류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남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LG家 애틋한 마음만 오롯이 담아…”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부인인 고(故) 하정임 여사의 발인이 12일 오전 7시 치러진다.LG가(家)는 평소 조용했던 고인의 성정을 기려 영결식을 치르지 않기로 했다. 유명인의 추모사나 약력보고 등 형식적인 절차를 생략하기로 한 것이다. 유족들의 애틋한 마음만 오롯이 담아 단출하게 고인을 떠나보낸다.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는 유족들의 사부(思婦)·사모(思母)곡이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고인과 66년을 해로한 구 명예회장은 고인의 삶을 소개한 신문기사를 직접 챙기며 눈물을 떨구기까지 했다. 장남이자 상주인 구본무(63) LG그룹 회장은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잠시도 빈소를 떠나지 않고 밀려드는 문상객을 모두 직접 맞았다. 차남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은 ‘고인의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기자들의 청에 어렵게 입을 열었다. 구본능 회장은 “남들은 호상(85세)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어머니가 60여년간 제사를 도맡아 지내다 재작년 추석에야 겨우 곳간 열쇠를 넘길 정도로 평생 일을 안고 사셨다.”고 회고했다. 빈소가 차려진 지 사흘째인 11일에도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 한덕수 국무총리, 이수성 전 국무총리, 사공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가경쟁력강화특위 공동위원장,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 김영주 산업자원부 장관, 장재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 등 전·현직 정부 고위인사들이 문상했다.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CJ 회장), 강신호 전 전국경제인연합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정용진·구학서 신세계 부회장과 이경상 이마트 대표, 김각중 경방 명예회장 등도 빈소를 찾았다. 사흘 동안 약 3000명이 조문을 했다. 한편 고인의 유해는 경기 성남 화장장을 거쳐 이천시 마장면 해월리 가족묘역(봉안당)에 안치된다.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두산 3·4세 전진배치

    두산 3·4세 전진배치

    두산그룹이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부회장을 회장으로 승진시켰다.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두산건설 부회장은 ㈜두산 부회장을 겸임하게 됐다. 박 명예회장의 차남인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사장은 사장으로 승진했다. 두산그룹은 30일 이같은 내용이 포함된 회장·사장단 인사를 발표했다. 최승철 두산인프라코어 대표이사 사장은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이재경 ㈜두산 사장은 부회장으로, 이남두 두산중공업 대표이사 사장은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각각 승진했다. 서동수 EPC사업총괄 부사장은 발전BG장으로 선임됐다. 이날 두산그룹의 인사 핵심은 오너가(家) 3·4세의 전진배치로 볼 수 있다. 박용만 회장은 올해 장비업체인 밥캣 등 49억달러 규모의 잉거솔랜드 3개 사업부문에 대한 인수·합병(M&A)을 성사시켰다. 국내 기업의 해외 M&A사상 최대규모였다. 앞으로 두산의 지주회사 전환과 ‘중공업 전문기업’으로의 변신에서 박 회장의 역할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박 회장의 승진에 따라 두산 주요계열사를 총괄하는 박용성(3남) 두산중공업 회장-용현(4남) 두산걸설 회장-용만(5남)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등 3세 형제들의 경영구도가 더욱 확고해졌다. 3세들이 아직도 활발히 경영활동을 하고 있지만 이번 인사를 통해 오너 4세들도 경영권 승계에 한발 더 다가선 것으로 풀이된다. 장손인 박정원 부회장이 앞으로 지주회사 역할을 할 ㈜두산의 부회장을 겸임하게 된 것은 후계구도와 관련, 주목되는 대목이다. 현재 두산그룹 내에는 오너 4세중 8명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한편 두산측은 “이번 인사는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조화를 통해 책임·내실경영 체제를 구축한 점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이명박 시대] 재계 학맥 누가 있나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포항 동지상고와 고려대 경영학과(61학번)를 졸업했다. 이에 따라 재계·금융계에 있는 동지상고와 고려대, 특히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들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기태 동신여객자동차 대표는 이 당선자와 동지상고 동기다. 황대봉 대아그룹 명예회장, 손기락 LG산전 고문, 황인찬(황대봉 명예회장의 장남) 대아고속해운 회장, 이장우 이메이션코리아 대표, 하인국 푸른2상호저축은행 대표, 박성욱 하이닉스반도체 부사장, 석경오 현대중공업 전무, 장지활 SC제일은행 상무, 이휴원 신한은행 부행장 등도 동지상고를 나왔다. 재계에서 고려대 경영학과 인맥은 매우 화려하다. 현역으로 있는 경영학과 출신의 맏형급은 김승유 하나금융지주회사 회장이다. 김 회장은 이 당선자와 가까운 경영학과 동기동창이다. 재벌가 2·3세중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이 많다. 특히 범(汎) LG가(家)에 많은 편이다.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은 이 당선자의 4년 후배로 고(故) 허정구 삼양통상 명예회장의 3남이다. 허 명예회장은 LG그룹 공동창업주인 고 허준구 명예회장의 형이다. LG그룹에서 분가(分家)한 GS그룹에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이 많다. 허창수 GS그룹 회장, 허정수 GS네오텍 사장, 허진수 GS칼텍스 사장도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역시 LG그룹에서 분가한 LS그룹의 구자열 LS전선 부회장과 구자용 E1 사장도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도 경영학과를 나왔다. 구자훈 LIG 손해보험 회장도 경영학과 출신이다. 범 현대가에도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들이 많다. 정몽규(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외아들) 현대산업개발 회장, 정의선(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외아들) 기아차 사장, 정몽진(정상영 KCC 명예회장의 장남) KCC 회장, 정몽익(정상영 KCC 명예회장의 차남) KCC 사장 등이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이다.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은 유학을 떠나는 바람에 졸업은 하지 않았지만 경영학과를 다녔다.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 박문덕 하이트맥주 회장은 경영학과 71학번 동기다. 두산가의 4세인 박정원(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 장남) 두산건설 부회장, 김준 경방 사장, 김윤 삼양사 회장도 동문이다. 최근 금융쪽에서 급성장한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도 경영학과 출신이다.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의 장남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도 동문이다. 재벌 오너가 아닌 최고경영자(CEO) 중 경영학과 출신으로는 이학수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장(부회장)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김인 삼성SDS 사장, 황태선 삼성화재 사장, 김갑렬 GS건설 사장, 김우평 SK증권 사장도 동문이다. 경영학과 출신은 아니지만 최태원 SK그룹과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고려대를 나온 주요재벌 총수다. 김징완(사학과) 삼성중공업 사장, 이상대(정치외교학과) 삼성물산 사장은 대표적인 전문경영인으로 통한다. 안미현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이명박 시대-당선자 가족들] 당선자 집안 사람들

    [이명박 시대-당선자 가족들] 당선자 집안 사람들

    이명박 당선자와 김윤옥 여사는 딸 셋, 아들 하나를 뒀다.4남매. 요즘 기준으론 대가족이다. 이 당선자가 ‘보물 1호’라고 첫손에 꼽는 손자 6명과 사위 3명을 합치면 직계가족만 15명인 대식구다. 이런 가족을 가리켜 이 당선자는 “내 가장 든든한 백”이라고 말한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시절부터 해외 출장을 나가도 자녀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챙기는 등 세심한 부정(父情)을 보였다는 게 김 여사의 설명이다. 돈독한 가족애 덕분에 이 당선자는 대선 본선은 물론, 한나라당 경선 때도 가족의 전폭적인 지원과 지지를 받았다는 얘기다. 세 딸은 모두 전업주부다. 큰딸 주연(36)씨와 둘째딸 승연(34)씨는 미국 줄리아드 음대에서 음악을 전공했고 막내딸 수연(32)씨는 이화여대 미대를 나왔다. 다 출가했다. 아들 시형(29)씨는 미혼이다. 연세대 원주캠퍼스를 거쳐 미국에서 공부했다. 올 초까지는 외국계 회사에서 인턴사원으로 일했지만 퇴직했다. 한때 그가 군대를 가지 않았다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사실무근이다. 시형씨는 육군 전방부대에서 병역을 마쳤다. 사위 3명의 면면이 화려해 눈길을 끈다. 첫째사위인 이상주(37)씨는 검사 출신으로 지금은 삼성화재 법무팀의 상무로 있다. 둘째사위 최의근(34)씨는 서울대병원 내과 전문의로 일하고 있다. 막내딸 수연씨의 배필인 조현범(35) 한국타이어 부사장은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차남이다. 조 회장이 전경련 회장인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친동생이니 이 당선자는 자식 혼사로 재벌가와 직접 인연을 맺은 셈이다. 조석래 회장은 한나라당 경선 직전에 “이번엔 경제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대식구라 ‘사고’도 몇 번 있었다.2002년 월드컵 직후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 당선자가 축구대표팀 히딩크 감독을 시청에 초청해 명예시민증을 전달하는 자리에서 아들 시형씨와 셋째사위 조씨만 따로 기념촬영을 하도록 해 구설에 오른 전력이 있다. 이 당선자가 위장전입 파문으로 곤욕을 치른 것도 그동안 자녀들을 사립 초등학교에 보내기 위해 주소지를 옮겼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나 당선자가 직접 사과해야 했다. 큰딸 주연씨와 아들 시형씨는 이 당선자 소유 건물을 관리하는 ‘대명기업’에 ‘위장취업’해 실제론 거의 출근하지 않고도 100만∼250만원씩 월급을 받았다. 탈세 의혹이 불거지며 파문이 확산되자 이 당선자는 뒤늦게 세금을 납부했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50) 통청운동( 通淸運動 ) 앞장선 율관 장지완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50) 통청운동( 通淸運動 ) 앞장선 율관 장지완

    중인 가운데 법률을 담당한 관원을 율관이라 했는데, 율관의 판단에 따라 형률이 달라지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직무였다.1406년에 유학(儒學), 무학(武學), 이학(吏學), 역학, 음양풍수학, 의학, 자학(字學), 율학(律學), 산학(算學), 악학(樂學) 등 10학의 일부로 율학을 설치하고,1433년 형조 안에 있던 율학청에 별도 건물을 마련해 독립하게 하였다. 율과 합격자 명부가 율과방목인데, 현존하는 16세기 자료를 보면 1507년에 9명,1513년 7명,1525년 8명 등으로 3년에 한번 뽑았다. 율과 정원은 9명이었지만, 일정한 성적에 이르지 못하면 뽑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율과 합격자만으로 전국의 재판을 처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485년에 ‘경국대전’이 완성되면서 율관제도가 성문화되었는데, 율학교수(종6품) 1명, 별제(종6품) 2명, 명률(明律 종7품) 1명, 심률(審律 종8품) 2명, 율학훈도(정9품) 1명이 서울에 있고, 검률(종9품)을 서울에 2명, 각도 및 제주에 1명씩 파견해 모두 18명이었다. 검률(檢律)은 각 지방에서 발생하는 범죄를 조사하고 법률에 비춰 형량을 정하는 임무를 맡겼으니, 오늘날의 검사라고 할 수 있다. 형조에 판서(정2품), 참판(종2품), 참의(정3품), 정랑(정5품), 좌랑(정6품) 등의 문관이 있고, 그 아래 중인 출신의 기술직 전문 관리들이 18명 있었던 셈이다. 이 가운데 교수, 별좌, 훈도의 임기가 차면 고을수령으로 승진시켜 내보냈다. 율과 합격자가 열심히 근무하도록 격려하는 제도이다. ●전국 율학생도 정원 2388명 형조에는 정원 40명의 율학생도가 있었고, 부(府) 16명, 목(牧) 14명, 도호부 12명, 군 10명, 현 8명씩 있었는데, 이성무 교수가 전국의 율학생도를 모두 합해보니 2388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전국의 군현에서 날마다 소송이 일어나고 재판이 벌어지기 때문에, 막중한 재판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수많은 법률종사자가 필요했음을 알 수 있다. 인구가 10배나 늘어난 지금도 로스쿨의 정원을 2000명으로 묶어 두는 것과 비교가 된다. 생도에게는 잡역을 면제해 공부에만 전념케 했으며, 군역도 연기 혜택을 주었다. 율학 장려를 위해 생도를 그 지역의 토관(土官)으로 임명했으니, 지역 할당제에 해당된다. 율학교수와 훈도가 교육을 담당해, 율문(律文)을 강습하고 후진을 양성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가에서는 양반들에게도 기술학을 장려해 습독관(習讀官) 제도를 설치했지만, 율학에는 습독관이 없었다. 중인들이 독점한 셈이다. 김재문 교수는 ‘한국전통법의 정신과 법체제(33)’라는 글에서 “이들의 처우가 일반직보다 낮으며 승진이 제한되어 있어, 율과 합격자는 법원장이나 검찰청장은 될 수 없는 기능직, 기술직 공무원”이라고 표현했다.“일종의 법무부 공무원이나 지방의 법원서기, 사법행정직에 가까운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문과 출신이 지방의 수령, 또는 형조판서나 의금부 도사가 되어 판사나 검사의 역할을 수행한 셈이다. 조선 전기의 율과 시험방법은 두 가지였다.‘대명률(大明律)’은 책을 덮어 놓고 뒤로 돌아 앉아서 질문에 대해 법조문을 외우며 강론하였다.‘당률소의’,‘무원록’,‘율학해이’,‘경국대전’ 등은 책을 펴놓고 지적하는 부분을 해설하면서 논리적으로 설명하였다. 이 가운데 헌법인 ‘경국대전’과 ‘대명률’, 법의학서인 ‘무원록’은 500년 가까이 필수과목으로 지속되었다. 율학은 중인들이 다루는 잡학이어서, 사대부들은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지방 수령들의 판결에 잘못이 많이 생겼다. 문과에도 ‘경국대전’이 필수과목이었지만, 일종의 헌법이어서 실제 재판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정약용이 이러한 병폐를 해결하기 위해 지은 책이 바로 ‘흠흠신서’이다. 형사재판의 실태에 관한 비평과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 책이니, 지방 수령을 위해 만든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뒷부분에서 실례를 소개했는데, 제4부 상형추의(祥刑追議)에서 정조가 왕세손으로 섭정한 1775년부터 재위기간인 1799년까지 25년 동안 심리했던 사건 가운데 142건을 22개 유형으로 분류하여 요약하고, 주석과 비평을 덧붙였다. 제5부 전발무사(剪跋蕪詞)에서는 자신이 목민관이나 형조참의 자격으로 직접 다룬 사건과 유배지에서 들은 살인사건 16건을 논변하였다. 관리들은 살인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하지 않고, 검시(檢屍)도 직접 하지 않았다. 사건 현장이 참혹한 데다, 시체에 대해 거부감이 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수령과 의생(醫生)이 출동해 검시하지 않고, 시체를 만지던 오작인이나 아전에게 검시를 위임해서 문제가 많았으며, 고문을 가해 자백을 받는 방법을 주로 썼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증거를 수집하고 엄밀한 심문과정을 통해 자백을 받아내지 않았던 것이다. 시체 검사방법을 자세히 소개한 ‘무원록(無寃錄)´이 율과의 필수과목이었지만, 중국에서 수입된 책이라 문장이 어려웠다. 세종은 이 책에 주석을 붙여 ‘신주무원록(新註無寃錄)´을 간행하게 했으며,‘검시장식(檢屍狀式)’이라는 공문서 서식을 인쇄하여 배포했다. 김호 선생은 ‘신주무원록과 조선전기의 검시’라는 논문에서 “‘신주무원록’이 일종의 검시 지침서라면 ‘검시장식’은 실제 검시 현장에 가지고 나가서 시체의 손상부위 등을 기록하는 공문서”라고 설명했다. ●율학 집안에 태어난 시인 장지완 장지완(張之琓·1806∼1867 이후)은 할아버지 장택과 아버지 장덕주를 거쳐 자신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율과에 합격한 집안에 태어났다. 넉넉한 집안이 아니어서 가정교사를 두지 못하고 장덕주가 직접 아들들을 가르쳤다. 장남 지련은 33세에 율과에 합격해 교수가 되었고, 차남 지완은 20세에 합격해 훈도겸 교수가 되었으며,3남 지환은 17세에 합격해 교수가 되었다.3형제가 모두 교수가 되었으니, 율관으로선 가장 출세한 편이다. 인왕산 언저리에 살았던 장지완은 율과 공부를 아버지에게 했지만, 시는 이름난 시인 장혼을 찾아가 배웠다. 글방 친구 유기의 시집 머리말에 “나는 총각 때부터 마을에서 친구들을 구했는데, 학덕도 비슷하고 나이도 비슷한 자가 일곱 명 있었다. 이 일곱 명은 다른 일에 유혹받지 않고, 오로지 글을 배우는 데만 뜻을 두었다. 시를 지어서 넣어 두는 주머니와 비단 시축(詩軸)을 가지고, 날마다 숲과 골짜기에서 노닐었다. 밤에는 등불을 밝히고 머리를 맞대면서, 마치 서로 떨어지기를 싫어하는 것 같이 지냈다.”고 회상하였다. 이 가운데 장혼의 손자 장효무는 무과에 급제하여 오위장(五衛將)이 되었지만, 고진원은 글방 선생으로 늙었으며, 유기는 필경(筆耕) 품삯으로 한 달에 500전을 받아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게 살았다. 가난한 가운데도 시 짓기를 좋아했던 이들의 문학모임을 장지완의 호를 따서 비연시사(斐然詩社)라고 하는데, 장지완 말고는 거의 30대에 세상을 떠나 문단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중인 1670명 거사자금 234냥 마련 장지완은 “시가 성정(性情)에서 나온다.”고 했다.“성정이 하늘로부터 타고난 것이긴 하지만, 사람에 따라 그 기질이 맑고 흐린 구분이 있다.” 그가 말한 성령(性靈)은 누구나 지니고 있는 개성이다. 이 세상 사람 모두가 지니고 태어난 개성을 시의 존재근거로 삼은 까닭은 위항문학이 사대부문학에 대해 근본적으로 안고 있는 신분적 차이를 넘어서기 위한 시도이다. 그는 자신들의 신분을 자각하고 존재의의를 부각시키기 위해, 자기 당대에 살았던 여러 중인들의 전기나 묘지명을 지었다.50세가 넘어 문단의 원로가 되자, 위항인들의 시선집인 ‘풍요삼선(風謠三選)’에 발문을 써주어 후배들의 활동을 격려하였다. 양반이면서도 차별받던 서얼들은 조선 중기부터 여러 차례 상소하여 ‘신분에 제한없이 실력에 따라 벼슬하게 해달라’고 청했다.1772년에 삼천 명이 집단적으로 상소할 정도로 세력이 커지자, 정조가 1777년에 정유절목(丁酉節目)을 정하여 이덕무·유득공·박제가·서리수를 검서(檢書 5품)로 임명했다. 서얼들이 만족하지 않고 1823년에 9996명이 연명하여 상소하자, 결국 1851년에 서얼도 벼슬에 등용한다는 조치를 내렸다. 이에 자극받은 기술직 중인들이 4월 25일 통례원에 모여 통문(通文)을 만들고,5월 2일에는 통례원, 관상감, 사역원, 전의감, 혜민서, 율학, 주학(籌學), 도화서에서 4명씩, 내의원, 사자청(寫字廳), 검루청(檢漏廳)에서 2명씩의 대표자가 도화서에 모였다. 장지완은 ‘중인도 사대부 같이 벼슬하게 해달라.’고 상소문을 지을 제술유사로도 뽑혔다.1670명의 기술직 중인들이 거사자금 234냥을 갹출할 정도로 열심이었다. 5월 어느날 통청운동(通淸運動)의 핵심인물인 장지완의 집으로 투서가 날아들었다. 방법이 너무 온건하니, 좀더 과격하고 급진적으로 몰아붙이라는 과격파의 선동이었다. 이들은 윤8월 18일에 철종이 경릉에 행행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 행차길에서 상소문을 올리기로 하였다. 그래서 1872명의 이름으로 상소를 올렸지만,‘철종실록’에는 왕이 경릉에 행차하여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만 남아 있고 상소문은 실려 있지 않다. 고관 대작의 자제들이 중심이었던 서얼들의 통청운동은 성공했지만, 힘 없는 기술직 중인들의 통청운동은 공식적인 기록에도 남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들이 올렸던 상소문 초안만 역과 합격자 명부인 ‘상원과방’에 실려 전한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대선에 또 등장한 ‘3金’

    17대 대선에서도 결국 3김(金)이 모두 무대 위로 올라왔다. 이미 대선 과정에 깊숙이 개입해온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에 이어 지난 4년간 노출을 피해온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까지 5일 선거판에 발을 담근 것이다. JP는 이날 검찰의 BBK 의혹 수사결과 발표 직후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강재섭 대표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어 이 후보 지지의사를 천명했다고 강 대표가 밝혔다. 강 대표에게 JP는 “한나라당 전 당원이 이 후보를 믿고 뭉친 것이 굉장히 자랑스럽고 그래서 사필귀정으로 결정이 난 것 같다. 축하한다. 정권교체를 위해 많이 돕겠다.”고 했다고 한다. 한나라당은 이르면 6일 JP에게 ‘지원’을 공식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경우 JP는 7일 한나라당의 대전 유세에 참석할 가능성이 있다. 이 후보측이 그동안 주저하다 투표일을 코앞에 두고 JP에게 손을 내민 것은, 충청권의 심대평 후보가 무소속 이회창 후보와 손을 잡은 데 따른 맞불작전이란 분석이다. 앞서 4일 DJ의 노벨평화상 수상 7주년 기념행사에는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와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가 열 일을 제쳐 두고 참석했다.DJ는 맞은편에 나란히 앉은 두 후보에게 “둘이 앉으니 보기 좋다.”며 결혼식 주례처럼 얘기했다. 이미 범여권 통합과 관련해 구체적인 훈수를 마다하지 않아온 DJ가 은근히 단일화를 압박한 뜻으로 해석됐다. 이에 정 후보는 “제가 당선되면 내년에 청와대에서 크게 한 번 모시겠다.”고 했고, 문 후보는 “홍업(DJ의 차남)이와 제가 ROTC(학군단) 동기다.”며 서로 눈에 들려 애쓰는 모습을 연출했다. YS는 이미 한나라당 경선을 앞두고 상도동계 출신 인사들을 이명박 후보측에 보내 지원을 했고, 이에 이 후보는 경선 직후 전직 대통령으로는 가장 먼저 YS를 찾아가 사의를 표했다.YS는 며칠 전 이명박 후보의 경쟁자인 이회창 후보를 겨냥,“인간이 아니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해가 가도 스러지지 않는 3김의 위상은 ‘지역주의의 끝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권력욕을 버리지 못하는 3김도 잘못이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표를 얻으려는 후보들의 행태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후보들이 철학과 의지가 약하기 때문에 자꾸 3김에 의존하는 것”이라면서 “단기적으로 선거에서 이득을 볼지는 몰라도 집권후 통치에는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선택2007 D-20] 또 화제 오른 ‘박근혜식 정치’

    [선택2007 D-20] 또 화제 오른 ‘박근혜식 정치’

    ‘박근혜식 정치’가 또 화제다. 박근혜(얼굴) 전 한나라당 대표가 숱한 관측을 깨고 30일 호남에서 첫 지원 유세를 하는 ‘파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소신인 ‘원칙론’을 감안하면 선거 기간에 ‘당원의 의무와 책무’에 따라 자연스럽게 유세하리라는 전망이 적지 않았다. 다만 빨라도 새달 초나 되어야 가능할 것으로 봤다. 새달 4,5일쯤 검찰이 BBK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것을 지켜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게 측근 의원들의 주장이었다. 그럼에도 박 전 대표는 “이달 안에 시작한다.”는 입장을 정리하고 나서 그대로 밀어붙였다. 괜히 시간을 더 끌었다간 마치 이명박 후보의 낙마라도 기다리는 것으로 비쳐지길 두려워했던 것일까. 반대로 너무 늦게 나섰다간 굳이 그의 지원 유세가 필요치 않은 ‘이명박 대세론’이 굳어질 가능성도 있었다.‘30일 출동’이 절묘하다는 평가는 그래서 나온다. 측근 의원들 사이에선 “너무 빠르다.”는 반발이 여전하다. 어쨌거나 양쪽 모두 박 전 대표의 결정에 깜짝 놀랐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첫 지원유세 장소로 지역구를 둔 대구가 아닌 호남, 그것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 의원이 지난해 4·25 재보선에서 당선된 전남 신안·무안을 택해 눈길을 끈다.‘대담한’ 선택이란 평이다. 당시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은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지는 등 ‘불패신화’에 금이 가는 아픔을 겪었다. 당 대표로 선거를 이끌었던 박 전 대표 역시 이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동시에 이곳은 한나라당에는 ‘기회의 땅’으로 기억됐다. 김홍업 의원과 맞붙은 한나라당 후보가 호남에서는 처음으로 마의 득표율 10%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지고도 박수를 받은 그의 상황과도 어쩌면 비슷한 곳이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김정일후계자 차남 김정철 유력”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차남인 김정철(27)씨가 후계자로 유력하다고 일본 마이니치 신문이 보도했다. 이 신문은 지난 24일 “김씨가 올들어 북한의 최고 요직 중의 하나인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에 발탁된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당 조직지도부는 각급 조직과 내각, 인민군까지 통제하는 권력 부서이다. 김 위원장이 조직부부장에 발탁됐을 때도 정철씨와 같은 나이였다.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거론돼 온 인물은 영화배우 성혜빈씨와의 사이에 태어난 정남(36)씨, 오사카 출신 북송동포인 고영희씨와의 사이에 태어난 정철씨, 그 아래의 정운(24)씨 등 3명이다. 그러나 정철씨의 동생인 정운씨는 노동당의 요직이 아닌 조선인민군에 배속돼 있어 후계 구도에서 사실상 탈락한 상태이며, 장남 정남씨는 조직지도부 소속이라는 설도 한 때 있었으나 실제로는 ‘방임 상태’라고 이 신문은 말했다. 정부 당국자는 “정철씨가 조직부부장의 직함을 갖고 있다고 해서 후계구도가 짜여진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면서 “만약 직함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직책을 실지로 수행하는 부부장인지, 아닌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부고] 진도씻김굿 박병천 명인 별세

    [부고] 진도씻김굿 박병천 명인 별세

    중요무형문화재 진도씻김굿의 굿음악(巫樂) 예능보유자 박병천 씨가 20일 오전 3시35분 별세했다.74세. 세습무로 22대를 이어온 고인은 1932년 전남 진도 신청(神廳)의 악사 박범준과 진도 최고의 무당 김소심의 차남으로 태어났다.“박병천의 소리와 장단은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찬사를 받았던 그의 작은 할아버지는 대금산조의 창시자인 박종기이다. 고인은 1971∼1976년 진도에서 전승되는 ‘남도들노래’와 ‘강강수월래’,‘진도만가’를 전국민속경연대회에 들고 나가 국무총리상과 대통령상,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잇따라 수상했다. 1977년에는 ‘진도다시래기’,1978년에는 ‘진도씻김굿’을 다시 발표하여 각각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는데 큰 역할을 했다. 고인은 이후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악장 및 예술감독, 사단법인 민속놀이진흥회 이사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전임교수, 대불대학 석좌교수를 역임하면서 최근까지 후진 양성에 힘썼다. 장남 박환영(50) 부산대 교수가 대금연주자로 가업을 잇고 있다. 빈소는 20∼22일 서울 아산병원,23∼24일 전남 진도 한국병원.23일 오후 8시부터 한국병원에서는 고인을 위한 ‘진도씻김굿’이 있다. 발인은 24일 오전 9시, 장지는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 선영.(02)3010-2230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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