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총선결과의 정치사적 의미/긴급대담
◎안병만 외대부총장·정치학/이용필 서울대교수·정치학/“국민은 새정치질서를 원했다”/국민·무소속 대거 등장… 여야 모두가 패자/영·호남 독식 사라져 지역감정 타파 기대/「견제와 균형」 뿌리내릴땐 민주화 촉진 계기될것/통일등 국가 중대사 맡을 새국회,대립보다 국익우선 협력을
특별한 쟁점이나 이슈없이 치러졌던 14대총선이 당초 예상을 뒤엎고 여당의 과반수의석 확보 실패로 판가름났다.신생정당 국민당이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하는가 하면 민주당이 서울지역에서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고 무소속후보가 대거 당선되는등 갖가지 이변이 속출했다.앞으로 14대 국회는 차기정권을 창출할 대통령선거를 치러야하고 민주화·경제·통일등 국가적 과제를 해결해야할 책임을 떠맡게 됐다.이번 총선결과의 정치사적 의미,이같은 결과를 도출해낸 민의의 소재와 14대국회의 정치·경제적 과제는 무엇인지에 대해 외국어대 안병만부총장(정치학),서울대 이용필교수(〃)의 긴급대담을 통해 짚어본다.
▲안병만부총장=투표율은 선거의 특징을 말하는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이번 14대 총선투표율 71.9%는 역대 총선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인데도 그 결과는 전혀 딴판으로 나타났습니다.「투표율이 낮으면 여당에 유리하다」는 통념을 깨뜨린거지요.
주원인은 정치불신,정치소외현상때문으로 분석됩니다.
그런데 투표율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여소야대라는 기현상을 만들어낸 것은 「관심있는 공중」이 대거 투표에 참여한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도저촌고」의 기본 특징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서울등 대도시의 투표율은 예전보다 다소 높아진 반면 농촌지역의 투표율이 떨어진게 그 좋은 증거입니다.
▲이용필교수=투표율로 민의의 소재를 파악하는 근거자료로 삼는데는 동감입니다.그러나 이번 선거는 투표율 못지않게 두가지 중요한 특성이 있습니다.하나는 당초 국민들이 생각한 것처럼 신생정당인 국민당이 여당표를 잠식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참여를 게을리하지 않은 중산층,이른바 「수익계층」이 넓게 분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국민당이 여당표를 크게 잠식한 것은 「여당과 반대되는 당」이라는 이미지보다 성향이 비슷하다는 점이 더 강하게 작용한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이 점이 향후 정국변화의 주요 변수가 될 것입니다.
또 양당 구조속에서 제3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 국민당과 무소속의 대거 등장은 기존 양당에 대한 국민의 불만표출로 보입니다.사회가 다원화하고 점차 복잡해지는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여겨집니다.앞으로 국민당이 어떻게 활동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정당정치가 「3당제」 또는 「다당제」로 갈 수 있는지의 여부를 판가름할 것입니다.
▲안부총장=이번 총선결과를 분석해보면 여러가지 함축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우선 3당 합당으로 탄생한 거여구도를 깨뜨렸으며 민자당의석으로서는 과반수인 50%에 못미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됐습니다.반면 민주당은 기대이상으로 선전,서울지역에서 과반수를 넘는 의석을 확보했고 수도권지역에서도 많은 당선자를 내 「지역당」이라는 오명을 어느정도 씻게 됐습니다.
○다당제 정착에 큰 관심
기존 양당구도를 타파하고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국민당의 약진은 우리 정치사에 충격을 주었습니다.국민당의 향후 거취가 주목됩니다.
이번 선거는 지난 13대때 조성된 지역감정이 완전히 해소되진 않았지만 민자당의 아성인 대구·경남지역과 민주당의 전북지역에서 다른 당선자를 배출,인물과 정당이 우선시되는 경향을 낳아 새로운 가능성을 안겨주었습니다.
▲이교수=그점은 동감입니다.안교수가 앞서 지적했듯이 민자당의 공화계가 지지기반인 충청권에서 의외로 부진했으나 민정계가 전북에서 2석을 확보했습니다.영남지역에서도 국민당과 무소속후보들이 어느 정도 공간을 확보했다는 사실은 지역감정으로 얼룩진 우리의 정치사에 변화의 조짐이 싹트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안부총장=이번 총선결과로 미루어 볼때 앞으로의 정국은 13대처럼 민자당 마음대로 운영되지는 않을 것입니다.그러나 여당의 의도대로 정국이 운영되지 않는다는 것이 정국불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견제와 균형,타협과 관용이 우리 정치권의 대명제로 등장하게 돼 결과적으론 민주화를 더욱 촉진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또 이번 선거가 예전과는 달리 대통령선거에 앞서 치러졌고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현실적 계산에도 불구,민자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향후 민자당내 대권구도문제에 많은 갈등을 야기시킬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특정인의 대권주자 부상에도 예상치 못할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큰 편입니다.
▲이교수=총선결과를 각 당은 겸허하게 수용,정당정치를 활성화하고 당내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우리의 경우 정당정치가 잘 안되는 이유는 정치인들의 의식수준이 낮은 탓도 있지만 당내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은데 가장 큰 원인이 있습니다.
민자당도 이제는 각계파의 지분이나 주장하는 과거의 행태에서 벗어나야 되고 민주당도 이익만을 추구하는 당내 불협화음을 제거해야 할 것입니다.
밀실정치로 각 계파의 지도자들이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지도자들의 개인의견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수준낮은 정치행태가 계속되는한 정당정치가 궤도에 오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이런 정당을 누가 민주주의 정당이라고 여겨 표를 주겠습니까.인물을 내세우는 무소속이 대거 등장한 것도 이때문입니다.
국민당도 마찬가지입니다.선거운동과정에서 보였던 것처럼 대표 한사람에 의해서 움직인다면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국민당은 또 재벌당이라는 이미지와 정경유착의 의혹을 깨끗이 씻는데도 노력해 확고부동한 제3당의 위치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4대 국회의 원구성이 이뤄지면 여야할것없이 무소속 의원들을 영입하려는 노력이 있을 겁니다.
민중당이 국회진출은 실패했으나 제도권 진입을 처음 시도했다는 점도 과거에는 볼수 없었던 상황으로 우리 정치사에 기록될 중요한 변화입니다.
○정경유착 의혹씻어야
▲안부총장=역사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은 양당구도로 이끌어왔습니다.58년,71년,78년,85년의 총선이 그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87년 13대 총선때부터 두드러진 이유는 없으나 다당제로 가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습니다.또다시 거대여당이 만들어진다해도 계속 다당제쪽으로가지 않을까 추측됩니다.
정치적인 맥락에서 고찰하면 우리의 선거는 상당히 민주화에 공헌하면서 정착되어가고 있습니다.많은 선거를 통해 국민의 의식수준도 몰라보게 높아졌습니다.
이는 독재나 군부출현이라는 돌발적인 사태발생의 가능성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정치발전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교수=국민의 의사는 표에만 있는게 아닙니다.이면에 또다른 의미가 담겨있다고 봅니다.표는 상징적 의미만 있을뿐 모든것을 다 표출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총선의 당선자들은 국민의 지역갈등해소 열망을 파악,이를 치유하는데 노력해야 합니다.
여소야대의 결과를 놓고볼 때 국민의 뜻은 우선적으로 거기에 있다고 보아야합니다.우리 정치사의 격동기를 살펴보면 그때마다 국민이 보여준 슬기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이제부터라도 국민의 정서와 의식의 흐름을 겸허하게 청취해야 하는 노력들이 있어야겠습니다.이것은 14대 국회의원들의 소임이며 의무입니다.
○지역아닌 국민대표로
또 민주화완결,경제발전,통일문제등 국가중대사를어느 한당에만 맡기지 말고 그 책임을 공유해야 할 것입니다.한 계파나 집단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나머지는 지켜보거나 비방이나 하는 그런 상태가 더이상 지속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공유상태로의 전환」이는 14대 국회의원들이 기필코 개척해야 할 새로운 정치영역입니다.
▲안부총장=같은 생각입니다.이런 점에서 14대국회와 의원들에게 개인적으로 주문하고 싶은 점이 4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당과 지역을 배경으로 당선됐지만 국회란 민의를 대변하는 사람들의 집합체입니다.개개인이 소중한 일꾼들입니다.과거처럼 당이나 지도자가 시키는대로 획일적으로 간다면 곤란합니다.개개인의 정견이나 주장이 보다 활성화되어야 할 것입니다.한 여론기관의 조사를 보면 의원 개개인은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당이 보수니까 보수로 회귀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이래가지고는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함은 물론 욕구불만을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고 맙니다.
○단체장선거 쟁점될듯
둘째,통일을 주도하는 국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생각합니다.14대 국회는 통일을 얼마나 빨리 이루느냐는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새의원들은 이번 국회가 「통일국회」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접근했으면 합니다.
셋째,당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점인데 이제는 개인의 역량에 따라 당을 좌지우지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됩니다.사당이나 붕당의 형태를 가지고는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함은 물론 시대의 욕구에도 결코 부응할 수 없습니다.국회에서 지도자의 목소리만이 아닌 당의 목소리,의원 개인의 정치적 소신이 자리잡아갔으면 합니다.
넷째,14대 국회는 국민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국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우리 국민들이 아직까지 정치소외 속에서 헤매고 있는데 이번 선거의 투표율이 이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국민의 참여로 변화를 유도하는 국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교수=14대 국회는 여러모로 대선과 연결되어 있습니다.우리사회를 한단계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선 「국민을 잘살게 하는 대권」창출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앞서 지적했듯이 제3당 출현과 무소속 의원의 연합가능성이 어느때보다 높습니다.건전한 타협정치가 뿌리내려지지 않으면 21세기를 헤쳐나가야 할 국가적 과제들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선 가장 가까운 당면과제로 기초·광역단체장선거실시 여부가 큰 쟁점으로 대두되리라 봅니다.
영국의 철학자 JS밀은 국회의원에 출마한뒤 지역주민들에게 다음과 같은 연설을 한 바 있습니다.『이 지역이나 유권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라 한다면 난 국회의원을 안하겠다.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에게 지역구는 절차상의 선거구일뿐 의회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은 전국민을 대표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안이한 자세에서 탈피,항상 대국적이고 진취적인 사고로 국정에 임해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