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차관보
    2026-03-10
    검색기록 지우기
  • 무죄추정
    2026-03-1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544
  • 공직자의 삶(외언내언)

    끝내 농림수산부가 고위공직자를 희생시켰다.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처음으로 알게 된 일이 있다.다리에도 피로가 쌓인다고 말한다는 사실이다.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장기간 무리하게 지다 보면 어느날 갑자기 무너진다는 것은,인체를 통해서는 잘 알고 있다.그런데 그것이 생명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다리같은 무생물체에도 적용시킬수 있는 말이라는 것은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우루과이라운드(UR) 문제가 심각해졌을 때 실무책임을 지고 있던 2년여전 당시의 농림수산부 고위책임자들은 밖에서 보기에도 어지간히 시달리는 느낌이었다.그무렵 농촌사람들과 시민단체 그리고 국회에서 이리저리 집중포화를 받던 농림수산부의 고위공직자는 제네바로 가서 미국대표와 쌀개방문제를 최종타결하고 돌아온뒤 개각에 의해 경질되었다.그 직후 우리나라의 한 외교관계 인사가 UR에서 우리 협상상대였던 미국대표를 외국에서 만난 일이 있다고 한다.그 외국대표는 우리대표였던 농림수산부 공직자의 안부를 묻더라고 한다.그래서 그 문제의 책임을 지고 경질되었음을 알렸더니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는 아주 유능하게 협상을 이끌었다고 생각했는데…』라며 이해할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더라는 것이다. 농림수산부는 그렇게 오랫동안,그리고 그렇게 여러모로 피로가 쌓여온 부처다.그러므로 고 김정롱 농림수산부차관보의 죽음도 단순한 개인의 과로에 의한 불행이기보다는 「피로가 쌓인 농림수산부」의 일부가 무너진 것을 뜻한다. 온갖 부정적인 폄하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이르는 과로를 요구당하는 것이 공직자의 삶인 것이다.농림수산부만 아니라 만성 피로에 걸려있는 정부부처는 그 밖에도 많을 것이다.그것을 바꿔 활력있고 생동하는 부처로 만드는 것도 결국은 공직자가 할일이다. 장기기증같은 숭고한 뜻을 평소 갖고 있었던 것을 보면 고인은 생각이 깊고 희생정신이 강했던 사람인 것같아 고개가 숙여진다.명복을 빈다.
  • 순직 김정룡 차관보/내일 농림수산부장

    정부는 18일 고 김정룡 농림수산부차관보에 대해 차관급및 황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농림수산부는 18일 과로로 인한 뇌출혈로 뇌사상태에 빠져 안구와 신장등의 장기를 이식한 뒤 순직한 김정룡 농림수산부 차관보의 장례식을 농림수산부장(장의위원장 최인기 장관)으로 치르기로 했다. 영결식은 20일 상오 10시 서울 목동 이대부속병원에서 치러진다. 장지는 경기도 파주군 탄현면 성동리 산5. 연락처 653­4899.
  • 「명의신탁 해지」 자금이동 조사/토지­금융전산망 연계

    ◎투기성 매매 단속/17개부처 합동 대책본부 가동 정부는 6월 말까지의 부동산 실명전환 유예기간 중 명의신탁이 해지되는 사례들을 대상으로 자금이동 여부를 조사,명의신탁 해지를 이용한 투기성 매매를 집중 단속키로 했다. 정부는 18일 재경원,건설교통부,농림수산부,내무부,국세청 등 13개 부처가 참가한 가운데 대책회의를 열고 건교부의 부동산 대책본부(본부장 홍철 건설교통부 차관보)를 17개 부처와 기관이 참여하는 상설 기구로 확대하고 부동산 실명제의 조기 정착을 위한 각종 조사 및 단속에 들어갔다. 대책본부는 ▲제도개선반 ▲투기대책반 ▲주택수급반 ▲전산운영반 ▲세무조사반 등 5개반으로 구성됐고 관계 부처의 국장들이 반장을 맡는다. 홍본부장은 『19일부터 가동되는 토지종합전산망을 기초자료로 실명화 유예기간 중 명의신탁이 해지되는 건들에 대해 자금이동 여부를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실명제의 효율적인 추진을 위해 지난 93년 8월부터 시행된 금융실명제와 연계, 토지 종합전산망에 나타난 가구별·토지소유 변동상황 등과 금융기관 전산망에 나온 개인별 금융자산 현황을 종합해 비실명 부동산 거래를 밝혀낼 방침이다. 제도개선반은 유예기간 중 등기이전을 하지 않는 경우 공시지가의 30%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입법화와 함께 취득세,종합토지세,양도소득세,증여세 등 실명제에 따른 관련제도의 개선작업을 맡는다. 투기대책반은 토지거래 전산망으로 파악한 토지거래 정보 등을 통해 투기우려 지역을 포착해 단속반을 투입하고 토지거래의 사후관리 및 부동산 실명전환 유예기간 중의 투기단속 등을 맡는다. 한편 건교부는 지난 12∼16일 땅값 상승요인이 있는 16개 시군의 토지거래 및 지가동향을 조사한 결과 거래가 뜸해지는 등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대책본부는 2월 중순 부동산 시장 동향을 다시 조사할 계획이다.
  • WTO금융 후속협상/이달말 제네바서 재개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함에 따라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에서 유보된 금융 분야의 후속 협상이 이 달 말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재개된다. 재정경제원은 17일 WTO로부터 오는 29부터 2월3일까지 금융 분야의 UR 후속협상을 재개한다는 전문을 받고 신명호 제 2차관보 또는 연원영 금융정책실 제 2심의관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파견하기로 했다. 재경원은 이번 협상에서 미국 등 선진국들이 은행의 신상품 도입,증권사 및 보험사의 업무영역 확대 등을 집중적으로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정부는 협상에서 우리의 3단계 금융시장 개방 및 자율화 계획과 외환제도 개혁방안 등 개방화 노력을 설명할 계획이다.
  • 김정룡 농림수산차관보 순직/남부가뭄지역 시찰하다 과로사

    ◎고인뜻 따라 장기기증… 6명 새삶 16일 아침 출근길에 갑자기 쓰러져 뇌사상태에 빠진 김정룡 농림수산부 차관보가 17일 하오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끝내 순직했다.향년 52세. 숨진 직후 고인의 장기일부는 『죽으면 장기가 필요한 사람에게 내 육신을 나눠주겠다』던 생전의 뜻에 따라 6명의 중환자에게 이식돼 새생명으로 태어났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이규창박사의 집도로 3시간여의 적출수술끝에 기증된 장기는 신장 2개,안구 2개,심장판막 등 6개로 모두 성공적으로 이식됐다. 김차관보는 16일 상오7시30분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 근처에서 조깅을 하다 머리에 갑작스런 통증을 느끼고 집에 돌아와 식사를 한 뒤 출근하려다 쓰러져 병원으로 가던 길에 승용차안에서 의식을 잃었다. 집에서 가까운 서울 영동 세브란스병원으로 먼저 가 뇌단층(CT)촬영을 한 결과 뇌출혈을 일으킨 것으로 밝혀졌고 다시 앰뷸런스를 이용해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진 뒤 정밀검사및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회생하지 못했다. 부인 장갑생(52)씨와 가족들은 이날하오 최종적으로 뇌사판정이 나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속에서도 곧바로 가족회의를 열고 평소 독실한 기독교신자이던 고인이 입버릇처럼 되뇌곤 하던 장기기증을 결정해 병원측에 이같은 뜻을 전달했고 곧바로 이식수술이 이뤄졌다. 서울법대 행정학과와 행정대학원을 졸업하고 고시행정과 7회에 합격,27세의 나이로 농수산부에 처음 몸담은 그는 24년간을 줄곧 농수산부에서 일해온 확실한 「농수산부맨」이었다. 양정국장·농업협력통상담당관·축산국장·농정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걸쳤다. 지난해 5월 산림청차장으로 발령받아 잠시 타의에 의한 외도를 한 그는 12월28일 다시 「친정」인 농수산부로 돌아와 업무에 더욱 강한 의욕을 보여 쉴새없이 일해왔다고 동료직원들은 전했다. 가족과 동료들은 『고인이 최근 영·호남지방의 극심한 가뭄 때문에 몹시 고민해왔으며 지난주에는 2박3일 일정으로 영·호남 가뭄현장을 직접 시찰하고 14일 밤 돌아온 뒤 걱정하느라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일요일인 15일에도 집에서 쉬라는 가족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과천청사로 출근,가뭄대책과 채소류수급대책을 마련하는 등 농민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전력투구했다』고 말했다. 동료들은 『지난해 농안법파동과 농수산물물가안정대책,WTO체제준비 등으로 어려운 고비를 겪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세상을 뜨다니 너무 안타깝다』고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또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대학시절에는 산악반장을 맡았고 최근까지도 일요일이면 늘 산을 찾아 매우 건강한 체질이었는데 이렇게 졸지에 가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고 넋을 잃었다.
  • 중 반체제 탄압 심화/방중/섀턱 미국무차관보 회견

    【북경 AP AFP 연합】 존 섀턱 미 인권담당 국무차관보는 15일 작년에 중국의 인권 분야에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고 지적하고 그가 미 행정부를 대신해서 중국측에 위경생(44)씨를 비롯한 반체제인사 수명의 석방을 촉구했다고 밝혔다. 섀턱 차관보는 중국 보안·법무·보건 당국자들과의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그가 중국은 작년에 중국의 언론·집회·종교의 자유 분야에 있어서 진전이 없었고 오히려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새로운 조치 등 『심각한 문제들』이 야기됐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 한미일 외 제3국서/수억달러 지원 기대.미 허바드 부차관보

    【도쿄 연합】 북한 경수로 지원을 위한 코리아에너지개발기구(KEDO)출자금 모금을 위해 곧 동남아시아를 순방할 예정인 미국의 토머스 허바드 동아시아·태평양담당 국무부차관보는 한국과 미국,일본 이외 국가들로부터 수억달러씩 지원을 받을 방침이라고 밝힌 것으로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4일 보도했다. 허바드 부차관보는 13일 워싱턴에서 니혼게이자이신문과 가진 회견에서 『제3국으로부터 출자받는 금액 총액이 미국 출자분을 상회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면서 출자형태도 현금외에 중유등 현물도 수용함으로써 한·미·일 3국의 부담을 가능한한 줄이겠다고 말했다.
  • 남북분단의 전말(새로쓰는 한국현대사:3)

    ◎미 「한반도 점령」 44년초 첫 구상/4국 공동관리→「힘의 진공화」 전략 추진/소의 대일 선전포고에 “양분” 전격 결정/전황 변화 따라 한때 “단독점령” 의지… 대소견제에 역점 □특별취재반 ▲황규호(문화부부국장급) ▲이용원( 〃 기자) ▲김성호( 〃 〃) ▲김경운(조사부 〃) 1945년 8월11일 새벽(미국 시간)미국 워싱턴 맥클로이 전쟁성차관보의 사무실.미 육군 링컨준장과 러스크대령,본스틸대령등 3명은 벽에 걸린 대형 「내셔널 지오그래픽」지도를 바라보며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곧 지도 한 귀퉁이 한반도 지형 위로 붉은 줄 한가닥이 휙 지나갔다.서울과 평양사이를 통과한 이 줄 오른쪽에 누군가가 「북위 38도」라고 썼다.세 사람은 이어 눈길을 중국대륙 쪽으로 옮겨 나직한 목소리로 뭔가를 상의하기 시작했다… 일본이 연합국측에 항복선언을 하기 나흘 앞서,전후 처리를 맡은 미 전쟁성 전략정책단(단장 링컨준장)간부 몇사람에 의해 「38선」은 이렇게 태어났다.이들이 한반도 처리방안을 논의한지 30분이 채 안되서였다. ○30분만에 「붉은 줄」 한민족의 운명을 결정지은 38선이 그려진 배경과 의미를 이해하려면 태평양전쟁 발발이후 미국이 한반도에 대한 정책을 어떻게 바꾸어왔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일본과의 전쟁에서 연합국을 이끈 미국이 한반도를 포함한 전후처리도 역시 주도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전쟁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한반도 문제를 다루었다」는 오랜 통설과는 달리 최근의 연구성과는 미국이 일찌감치 한반도에 관심을 보였으며 전쟁의 흐름,소련과의 관계변화에 따라 한때는 한반도를 단독점령하려는 의지까지 가졌음을 보여준다.최근 비밀해제된 미 국립공문서보존기록관리국(NARA)의 「국무성 일반자료군」,워싱턴국립기록센터(WNRC)의 기밀문서,국무성 외교문서들에 따르면 미국은 1944년 2월 한반도 점령구상을 처음 마련했다.카이로회담에서 미국·영국·중국의 세 정상이 「적절한 과정에 따라」한반도를 독립시킨다고 합의한지 두달만의 일이다. 44년 들어 전황이 압도적으로 우세해지자 미국은 전후처리 방안을 세우는 기구의 하나로 국무성에 영토연구국을 만든다.이 연구국이 처음 한 일이 「한반도의 해방·점령」보고서를 만든 것이다.국무성은 이 보고서에서 종전후 미·소·영·중등 4개국의 공동점령­일정 기간의 신탁통치,또는 임시정부 수립­완전 독립이라는 3단계 안을 냈다.이 안은 「한반도를 한 국가의 세력권으로 분류하면 소련에게 넘어갈 가능성이 크므로 이를 막기 위해 여러나라가 참여해야 한다」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 최근 발굴한 국무성 메모랜덤(44년 5월 작성)에도 『한반도가 독립에 앞선 신탁통치 기간동안 소련에 의해 관리되는 것은 중대한 정치문제를 야기할 것이며 미국은 한반도가 소비에트화하는 것을 태평양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게 될 것』이라고 밝혀 소련 견제가 중요한 정책목표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어 한반도 정책의 주도권은 국무성에서 군부로 넘어가 「힘의 공백지대화」전략이 은밀히 추진된다.이 전략도 「한반도 처리문제를 섣불리 꺼냈다가 소련에게 빼앗기느니 차라리 전쟁이 끝날 때까지 논의 대상에서 아예 제외하자」는 구상에서 나왔다.「힘의 공백지대화」는 44년 10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스탈린과 주소련 미대사 해리먼의 군사전략회의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다.이 회의에서 스탈린은 『만주의 일본군을 효과적으로 격퇴하려면 소련 육해군이 「북부 조선의 항구들」을 점령해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해리먼은 의도적으로 이에 대한 답변을 회피한다. ○소주장 의도적 외면 이 전략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유지돼 결국 미국이 별다른 무력동원 없이 1945년 8월 한반도 반쪽을 차지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45년 초 미 군부는 『태평양상에 방위체계를 구축하기 위해』한반도를 비롯한 일본점령 지역을 미국이 단독점령할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그해 2월에는 링컨준장이 이끄는 전략정책단이 새로운 한반도 처리방안을 내놓았다.이 안은 한국을 도계에 따라 넷으로 나눠 미·소·영·중등 4개국이 분할점령하되 서울과 부산·인천등 주요도시는 미국이 맡는다는 구상이었다. 미국 루스벨트대통령이 45년 4월 서거해 트루먼이 그 뒤를 잇자 한반도 정책은 또 한차례 변화를 겪는다.루스벨트가 국제주의자로서 소련과의 협력에 정책 우선순위를 뒀던 것과는 달리 트루먼대통령은 소련에 대한 견제 전략을 적극적으로 펴나간다. 국수주의자 성격이 강한 그는 45년 2월 열린 얄타회담에서 전임자가 만주를 소련 세력권으로 인정한 것 자체를 「지나친 양보」로 보았다.더욱이 원자폭탄 개발로 일본에 대한 승리가 확실해지자 트루먼은 소련이 대일본전에 끼어들기전에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려고 서두른다.곧 소련이 참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쟁을 끝내면 전후 처리에 있어서도 소련을 배제시킬 수 있다고 희망했기 때문이다.따라서 45년 7월 열린 포츠담회담에서도 예의 「힘의 공백지대화」전략을 써 한반도문제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는다. 한편 동유럽의 공산화에 몰두한 소련은 괜히 미국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 한반도문제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 1945년 8월6일 미국은 일본 히로시마에 첫 원자폭탄을 투하한다.그러자 소련도 기회를 놓칠세라 9일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로 진격한다.「소련을 배제한 채 승리를 따낼지도모른다」는 미국의 기대는 물건너 갔다.미국으로서는 이제 「한반도」라는 떡덩어리를 혼자 먹을지,소련과 나눠먹는다면 그 크기는 어떻게 잘라야할지 결정할 순간이 왔다. ○고심끝 정치적 판단 미 정부 고위층은 10일 밤늦게까지 고심하다 「소련측과 나눌 수밖에 없다」는 정치적 판단을 내렸고 구체적인 「줄긋기」는 전략정책단에게 맡겼다.「한반도를 도계에 따라 분할점령한다」는 안을 낸 적이 있을 정도로 한국사정에 밝았던 링컨단장은 망설임없이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붉은 줄을 그었다.그 줄이야말로 소련이 받아들일 수 있는 북방한계선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소련군은 8월11일 밤 함경북도 웅기를 점렴함으로써 한반도에 첫발을 내디뎠고 미군은 9월8일 인천을 통해 상륙했다.이어 소련은 8월27일 38선을 봉쇄,인적·물적 교류를 차단했다.미국도 9월2일 미국육군태평양총사령관 맥아더가 발표한 「포고령1·2·3호」에서 38선이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한 경계선이 아니라 군정관할선임을 분명히 했다. 민족분단의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 등소평 와병설 사실일까/중국/최근사진 상해일간지에 공개

    ◎서방/“집단지도 체제로 국정 수행”… 나쁜건 사실 와병설과 사망설이 끊이지 않던 중국 최고실력자 등소평(90)의 최근 사진이 12일 중국 본토에선 처음으로 상해의 한 일간신문에 게재돼 그 정치적 의미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국공산당 상해시위원회 기관지인 해방일보는 이날자 1면에 「등소평동지는 건강하다」는 제목과 함께 코트차림에 헝겊모자를 쓴 등이 지난해 10월1일 국경절을 맞아 북경 중남해에서 벌어진 폭죽행사를 의자에 앉은채 지켜보고 있는 사진을 게재했다. 지난해 2월 구정 상해의 한 리셉션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처음 선보인 등의 이날 사진은 지난 수일간 끈질기게 나돌던 등의 와병설을 일축하기 위한 시도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등이 북경의 한 병원에 입원중이며 병세가 너무 악화돼 강택민국가주석의 예방을 받을수 없었다는 일본신문의 보도가 나오면서 그의 건강을 둘러싼 풍문이 세간의 관심사로 등장했었다. 이날 등의 사진이 해방일보에 실린 것과 관련,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 강택민을 필두로 하는 이른바 「상해방」으로 알려진 상해출신 지도자들이 대거 중앙요직에 진출했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북경의 한 외교관은 『강주석등 상해출신 개혁세력들은 등이 국가의 주요행사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홍보하는데 관심을 갖고있다』고 말하고 등의 이번 사진이 상해의 주요 일간지에 실린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한편 중국주재 대사를 역임한 바 있는 윈스턴 로드 미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는 11일 『등의 건강상태가 안좋은 것은 분명하다』면서 중국지도자들이 집단적인 방식으로 그날그날의 국정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와관련,중국외교부의 심국방대변인은 12일 주례 뉴스브리핑에서 『등이 춘절(음력 1월1일)을 맞아 텔레비전에 모습을 드러낼수 있을지 예측할수 없다』고 말해 등의 건강이 극히 안좋은 상태라는 점을 시사했다.
  • 주유엔 대사 박수길씨/외교안보 연구원장 이정빈씨

    정부는 11일 주유엔대사에 박수길외교안보연구원장을,외교안보연구원장에 이정빈외교안보연구원연구위원을 임명하는등 본부 간부 및 공관에 대한 인사를 발표했다.인사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시드니총영사 민병규 ▲주미공사 정의용 ▲외교안보연구원연구위원 이창범 ▲2002 월드컴축구유치위원회 사무총장 송영식 ▲장관특별보좌관겸 통상담당대사 김삼훈 ▲의전장직무대리 문동석 ▲아시아·태평양국장 김하중 ▲통상국장 장기호 ▲구주국장 한태규 ▲공보관 유광석◎국제대형사건 처리 역량발군/박수길 주유엔대사 훤칠한키에 구수한 화술이 호감을 주는 보스형. 61년에 외무부에 들어온 국제법전문가. 제1차관보시절 김만철일가 망명사건,도재승서기관피랍, KAL기 폭파사건 등 국제적인 대형사건처리에 외교역량을 발휘. 제네바대사 시절에는 쌀시장개방소신을 밝히다가소환되기도 했다. ▲경북 경산·62세 ▲고려대 법학과졸 ▲외무부 조약국장 ▲외무부1차관보 ▲주제네바대사 ▲외교안보연구원 ◎6공때 북방외교 적극수행/이정빈 외교안보위원장 온유한성품으로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전형적 직업외교관.업무추진에서는 큰 줄기와 방향을 잡은 뒤 후배들의 의견을 폭넓게 반영,후배들의 신망이높은 편. 1차관보로 재직시에는 한·소수교에 깊숙히 참여하는 등 6공의 북방외교를 적극 수행 ▲전남 영광·58세 ▲서울대 행정학과졸 ▲외무부 중동국장 ▲대통령정무비서관 ▲주스웨덴 대사 ▲외무부 1차관보 ▲주인도 대사
  • “남북대화 재개 안되면/북­미연락소 개설 곤란”/미국무부 관리

    【워싱턴=이경형특파원】 미국정부는 남북대화가 재개되지않는 상황에서 워싱턴과 평양에 연락사무소가 개설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혀 남북대화재개와 연락사무소 개설이 사실상 연계될 것임을 비쳤다. 미국무부의 한 고위관리는 10일하오(한국시간 11일상오)워싱턴주재 한국특파원만을 상대로 미·북한관계 등 현안에 관해 배경설명을 하는 가운데 『남북대화의 재개가 연락사무소 개설의 전제조건은 아니나 남북대화가 재개되지 않는 상황에서 연락사무소를 개설한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어려운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미행정부는 지금까지 「영사문제와 다른 기술적 문제」가 해결되면 연락사무소의 개설은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여왔으나 이날 처음으로 연락사무소 개설에 따른 『정치적 고려사항』을 제시한 것이다. 그는 이어 미정부는 기회있을때마다 남북대화의 중요성을 북한에 강조해왔으며 최근 토머스 허바드국무부 동아태담당 부차관보가 헬기조종사 송환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했을 때에도 이러한 미국의 입장을 전했다』고 밝혔다.
  • 미­베트남,이달 대표부 교환/로드 차관보/자산반환협상 등 현안타결

    【워싱턴 AP 연합】 미국과 베트남은 모든 미해결 쟁점들이 완전 타결됨에 따라 이달중 상대국 수도에 외교대표부를 개설하게 될 것이라고 윈스턴 로드 미국 국무부차관보가 9일 밝혔다. 로드차관보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동안 협상타결을 가로막아온 베트남전 당시 미국자산반환등 관련 현안들이 모두 해결됐다면서 이달안에 각기 상대방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드차관보는 그러나 연락사무소의 정확한 개설일자는 밝히지 않았다. 미국이 작년 2월3일 베트남에 대한 무역금수조치를 해제하면서 두나라 관계는 빠르게 개선되기 시작해 작년 5월에는 상호 연락사무소개설을 위한 법적인 테두리에 합의했다.
  • 미­일/「전후 50년」새 관계 모색/무라야마 방미… 정상회담 전망

    ◎둘다 국내문제로 “쩔쩔”… 주요현안 없어/안보·무역마찰·북핵문제 등 논의 예상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일본 총리가 10일 총리 취임후 처음으로 미국 방문길에 올랐다.무라야마총리의 방미는 지난해 2월 호소카와 전총리 이후 일본 총리의 첫 미국방문이다. 무라야마총리는 당초 방미에 소극적이었으나 외무성 등이 강력 추진,성사되게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미국도 일본의 요청에 대해 11월 인도네시아에서 만났는데 또 만날 필요가 있겠느냐는 반응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그만큼 현안다운 현안은 없는 방문길이다. 양국의 정부수반은 모두 국내정치에 발목이 잡혀 있는 상태다.대외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해 나갈 처지가 아니다.클린턴 대통령은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대패,공화당이 지배하는 의회를 다루는데 쩔쩔매고 있고 무라야마 총리도 사회당 내분으로 시달리고 있는 처지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은 현안을 다루는 회담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전후 50년을 맞아 새로운 양국관계를 모색하는 정치적인 무대」로 될 공산이 크다.일본 외무성의사이토 사무차관도 총리의 방미는 『종전 50주년의 마디를 맞아 양국 정상이 만나 미래를 이야기하는데 의의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또 미국 부시행정부에서 아·태지역 담당 부차관보를 지낸 윌리엄 클라크씨도 한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비슷한 주장을 펴기도 했다.최근 미국의 일본에 대한 관심의 저하나 일본의 대미불신 분위기 등을 극복하고 새로운 양국관계를 구축하는 「내일을 위한 회담」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무라야마 총리가 11일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가질 정상회담 등에서는 미·일 안보문제 및 무역마찰,북한의 핵문제,경수로 지원문제 등을 중점 논의하고 그밖의 의제로는 등소평의 병세가 위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중국과 정치상황이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는 러시아 등 국제정세 등이 꼽히고 있다.오는 11월 오사카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기구의 원만한 진행등도 협의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수년동안 양국간 주요 논의대상이었던 무역마찰 문제는 지난해 7월부터 경제협의를 벌여 10월 일부 합의가 이뤄진 뒤 미국의 태도가한결 부드러워졌다.최근 미국에서는 대일관계를 경제분야에 집중해온 것과 관련,반성이 일고 있을 뿐 아니라 아시아지역에서 중국 인도 등과의 경제협의에 집중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에 시급한 현안은 되지 않을 전망이다.일본으로서도 추진중인 규제완화 5개년계획을 들어 미국측의 이해를 구한다는 입장이고 그만하면 미국으로서는 더 이상 「저팬 배싱(일본 두드리기)」을 하기 보다는 「저팬 패싱(일본 통과)」의 입장을 보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총리의 방미를 21세기를 맞이하는 원년으로 삼고 싶다는 강한 염원을 나타내고 있다.이 점에서 지난해 무역마찰문제 등을 둘러싸고 결렬에 가까운 결과를 빚었던 호소카와 전총리의 미국방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속에서 회담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 「KEDO」설립 실무협의 어떻게 돼가나

    ◎「한국형경수로 불가피」인식 일치/사무총장에 미측 대사·차관보급 보임/한·미·일중심 발족뒤 회원국 늘릴 방침 한국과 미국,일본등 3국은 9일(현지시간)부터 워싱턴에서 북한의 경수로 제공과 관련한 코리아에너지기구(KEDO)설립협정 및 경수로공급계약서의 초안작성 실무협의에 착수했다. 오는 11일까지 3일간 미국무부 소회의실에서 계속될 이번 실무협의는 3국의 과장급이 참석하는 협의로 협정과 계약서의 각 조항별로 축조심의를 벌이는 작업이다.비록 과장급 실무협의이긴 하나 각 조항에 명시되는 단어 하나하나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어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실무협의는 작년 11월 워싱턴과 12월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고위실무회의의 합의원칙에 따라 이를 구체화하는 작업이다. 미측에서 게이 세이모어 국무부 핵비확산담당관,한국측에서 박인국 북핵담당과장,일본측에서 다케하라 과장등이 참석한 이번 회의는 ▲KEDO의 조직 및 구성,운영,관리,본부설치등을 규정하는 정관과 ▲KEDO와 북한당국간에 체결할 경수로공급계약서의 초안을 작성하는 것이 기본목적이다. KEDO정관은 KEDO가 국제컨소시움의 형태이긴 하나 어디까지나 정부간 협력기구이기 때문에 그 성격이나 형식은 국제협정으로 규정된다는 것이다. 현재 한·미·일 3국간에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는 것은 설립목적,본부설치 및 설치장소(뉴욕),본부 사무국의 구성 및 인원배치,조직,운영등이나 이에 따른 비용 및 소요경비의 분담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합의를 보지 못했다.이같은 재정부담문제는 설립협정에 구체적으로 명시하기보다는 기본원칙만 기술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본부의 사무총장은 미국이 대사나 차관보급을 보하고 한국과 일본은 차장을 맡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윈스턴 로드 미국무부 동아태차관보도 9일 시사했듯이 경수로건설(40억달러)의 소요재정은 한국과 일본이 대부분을 부담하고 미국은 중유 1차분 5만t(4백50만달러)과 KEDO본부 설치운영비용,폐연료봉처리비용을 부담할 것으로 조정이 되어가고 있다. KEDO는 일단 한·미·일 3국이 창설멤버로 이를 구성,발족시킨뒤 이어 다른 국가들의 참여를 종용하여 회원국을 늘려갈 방침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경수로건설공급계약서는 그 형식은 일반 상업적 계약서의 형태를 띠게 되며 여기에는 ▲발전용량 1천Mw 경수로원자로 2기 ▲경수로 제공시기(2003년을 목표) ▲KEDO가 사업주체임을 명시할 방침이다.한국측은 공급계약서에 경수로의 모델이 울진 3·4호와 동형인 한국표준형으로 한다는 것을 적시한다는 입장이다.그러나 북한측은 작년 12월 북·미간의 경수로전문가회담에서 KEDO가 사업주체가 아니라 자금주체라야 하며 경수로는 한국형이 아닌 러시아제나 독일형의 도입을 요구해 앞으로 북·미간의 계약서 작성과정에서 다소 진통을 겪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북한이 어떤 주장을 하든 경수로는 한국이 재정부담을 많이 하는만큼 한국형의 제공은 필수불가결하다는데 한·미·일은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다만 북한의 끈질긴 요구를 감안,계약서에 한국형을 굳이 명시하지 않는 방안도 북한과의 계약체결과정에서 신축적으로 검토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미국은 이번 실무협의를 바탕으로 이달중 북경에서 다시 북한측과 경수로 관련 전문가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 토개공사장 이효계씨/관광공사장 김태연씨

    정부는 9일 한국토지개발공사 사장에 이효계 전 내무부차관을,한국관광공사 사장에 김태연 전 노동부차관을 임명했다. ◇이사장 약력 ▲전남 여수(59) ▲숭실대 법대·서울대 행정대학원 ▲내무부 기획관리실장·차관보 ▲광주직할시장 ▲전남도지사 ▲총리 비서실장 ◇김사장 약력 ▲서울 (52)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경제기획원 심사평가국장·물가정책국장 ▲국무총리실 제2 행정조정관 ▲경제기획원 대외경제조정실장·차관보
  • 새 외교팀/대미외교 목소리 높인다

    ◎세계화 수행과 연계 “외교 다원화” 추진/「대미위주」 탈피… 국력걸맞게 보폭확대 「12·23」개각으로 들어선 새 외교팀의 대미 외교기조가 변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대미외교의 경우 우리 외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기 때문에 대미외교의 기조변화는 크게 주목되는 것이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나 공로명 외무장관의 공식석상에서의 발언등 외형적인 것만을 종합해 보면 아직 딱부러지는 「변화」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그럼에도 내면적으로는 「미국중시」라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조그만 현상들이 곳곳에서 감지된다.새 외교팀이 우리 외교의 자주성을 빈도높게 거론,대미외교에 대한 시각을 교정하려는 움직임의 강도도 무시못할 정도다. 이같은 현상 등은 김대통령이 국정과제로 제시한 「세계화」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외교의 다원화를 꾀하면 자연히 「미국중시」의 틀이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관점에서 당연하다는 시각도 있다. 공 장관은 대미 외교정책의 수정가능성을 질문받을 때마다 『미국은 일본과 함께우리외교의 주축』이라며 그 가능성을 일축하면서도 『경제력 수준에 걸맞는 외교를 해야 한다』면서 북핵 문제로 소원해진 다른 나라,다른 외교이슈에도 중점을 두겠다고 강조한다. 공 장관은 취임식에서도 『그동안 북한 핵문제로 일부 부서가 소외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이의 「치유」를 약속했다.치유란 다시말해 국력에 걸맞는 「외교 다변화」를 뜻하는 것이다.김 대통령도 신년 회견에서 『우리 국력에 맞게 세계를 상태로 외교를 해나가겠다』면서 공 장관의 발언을 확인시켜 주었다. 새 외교팀의 대미관을 읽을 수 있는 첫 사건은 「미군 헬기사건」이었다.여기서 새 외교팀은 과거 한승주 장관때와는 다른 몇가지 「미국 길들이기」방법을 선보였다.공 장관은 한국을 찾는 미국관계자들이 「시도 때도 없이 장관실을 드나들고 전화를 거는 것」에 제동을 걸었다.때문에 이 사건 처리를 위해 외무부를 방문한 허바드 미국무부차관보는 우리쪽의 카운터파트너인 미주국장만을 상대해야 했다. 미측이 당초의 약속과 달리 북한측과의 협상에서「남한 미전향장기수」거론에 응해준데 대해서도 즉각 제동을 걸었다.박건우 차관이 카트만 주한 미대리대사를 불러 『우리의 주권사항이므로 깊이 우려한다』고 공개항의를 한 것이다.이를 문민정부이후 우리의 목소리를 미측에 분명히 전달한 일대 「사건」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외교전문가들은 앞으로의 대미외교에서 우리 목소리가 자주 크게 나올 것이며 때에 따라서는 한­미간 갈등으로 비화될 소지도 없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현재 북­미간 경수로·연락사무소협상,한반도 평화체제구축문제,한­미통상문제등 한­미간 갈등요소가 산적해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특히 김대통령이 『남북관계 진전없이 경수로 지원없다』고 회견에서 못박음으로써 경수로협상은 향후 한­미관계를 측정해볼 수 있는 「가늠자」로 등장할 것 같다. 대미외교 한 실무자는 『공 장관의 대미관은 이전의 한장관의 것과는 사뭇 다른 것 같다』면서 『재임기간중 미국측이 껄끄럽게 생각할 부분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 북 경수로 건설 지원금/한국 50% 일 30% 분담/일지 보도

    ◎중유는 미서 전액부담 할듯 【도쿄=강석진특파원】 북한 경수로 지원을 위한 코리아에너지개발기구(KEDO)설립 등 대체적인 지원 방안이 한·미·일 3국의 협의를 통해 굳혀졌다고 일본의 산케이신문이 5일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지원방안은 ▲2월에 창설되는 KEDO 본부를 뉴욕에 설치하고 ▲사무국장에는 미국의 대사,차관보급 인사가 담당하고 한·일 양국은 사무차장을 내며 ▲경수로 건설 자금 부담은 한국 50% 이상,일본 30% 정도로 하고 ▲경수로 완성시까지의 대체에너지인 중유 제공은 미국이 거의 전액 부담한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미·일 양국은 오는 11일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일본총리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이같은 지원 방안에 최종적인 합의를 볼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소식통은 『북한에 지원하는 경수로는 한국형을 사용 조건으로 한 유상자금 협력이라는 관점에서 한국의 부담 배분이 커질 것이라는 인식에 한·미·일 3국이 일치했다』고 밝히고 『그러나 경수로의 실제 건설은 2∼3년 후 시작될 것이기 때문에 대충 목표를 잡는데 그쳤다』고 말했다.
  • 아시아 「세력균형자」로 국익 확보/미 「신 아태전략구상」 배경

    ◎북­미대화 등 불구 국제무대서 주도권 견지 미국이 우리 정부에 통보해 온 「신 아·태전략구상」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전진배치한 군사력을 현 수준으로 유지,이 지역의 「세력균형자」로 계속 남겠다는 전략적 판단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전진배치를 현 수준에서 유지하겠다는 것은 현재 한국과 일본등에 배치된 미군 병력수준을 감축하지 않고 그대로 두겠다는 것이다.구체적으로는 주한 미군 3만7천명,주일미군 4만5천명,미7함대등 최소한 10만명의 병력을 탈냉전 상황과 무관하게 유지시켜 나가겠다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세력균형자로 계속 남겠다는 것은 미국이 세계적인 탈냉전기류,북핵타결과 북·미대화등의 상황변화에도 불구,한반도를 비롯한 아시아지역 국제정치 무대에서 주도권을 견지해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존의 대아시아 정책수정을 의미하는 「신 전략구상」은 94년 중반 당시 하버드대 정치학교수인 조셉 나이가 클린턴 행정부의 국방차관보로 임명되면서부터 검토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조셉 나이차관보는 부임이후 부시정권때의 동아시아전략구상(EASI)이 『미국의 국제적 입지를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며 수정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왔다.그는 교수시절부터 『미국은 당연히 세계를 지배해야하며 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주창해왔으며 취임직후 클린턴대통령의 「명」을 받아 EASI의 본격 수정작업에 착수했다. 부시대통령의 동아시아 전략구상은 구소련이 붕괴해 기존의 냉전구도가 사라졌고 그같은 탈냉전의 국제기류에 따라 미국은 군사력을 전반적으로 감축,미국경제의 회생을 꾀해야한다는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구상은 시장개방을 둘러싼 국제적 긴장관계 형성 및 끊임없는 지역분규 발생등 국제안보환경의 급변에 따라 미국의 국익을 확보하는데 적절치 못한 전략이라는 지적을 받게됐다.결국 클린턴행정부는 군사력으로 대변되는 미국의 힘의 강조가 자국의 국제적 경제환경을 개선시킬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으며 클린턴은 이같은 배경에서 나이차관보의 새 안보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미국의 이같은 새 안보전략이 한반도 안보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것이냐 이다. 전문가들은 새 안보정책이 북·미합의 이행과정에서 북한에 「딴생각」을 하지못하도록 압박을 가하는 요인이 될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관계개선 추진과정에서 미군철수문제등을 걸어 대대적인 평화공세를 펼것으로 예상된다.미국의 「신구상」은 이에 대비한 사전포석의 성격도 갖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즉 북한측의 재래식무기 전방배치,미사일수출문제등의 해결없이는 관계개선이 있을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출로 볼수 있다는 것이다.
  • 일제통치의 해악(새로 쓰는 한국현대사:2)

    ◎한민족 주체 말살… 남북분단 단초로/반일세력 살상·6백여만 강제징발/창씨개명·신사참배로 「정신」 황폐화/「황국 신민화」강요,「친일지식인」양산… 민족갈등의 불씨 남겨 □특별취재반 ▲황규호(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 기자) ▲김성호( 〃 〃 ) ▲김경운(조사부 〃 )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 맞이한 광복의 빛은 찰나에 그치고 말았다.1910년 국권을 결정적으로 빼앗겼다가 일제가 2차세계대전에서 패망한 1945년 8월15일 민족해방의 날.그 광복으로 일제의 압제로부터 벗어났지만,환희의 기쁨은 곧 퇴색해버렸다.다만 예측할 수 없는 파란만장한 다른 시대가 민족의 미래로 다가서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우리의 현대사는 어언 50년이 되었다.그 반세기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얼핏 떠올려 볼 수 있는 말이 있다. 「미국이 한국에 깊숙이 개입해 온 시기는 일본 식민통치 전체기간을 상응하고도 남는다.팝뮤직등 한국의 잡동사니문화가 미국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지속적인 영향은 일본으로부터받았다.전후 한반도에서 두 국가를 건설한 것도 일본의 영향이다」 미국 시카고대 교수 브루스 커밍스(정치학)의 이 말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해방과 더불어 막을 올린 남북분단의 비극을 포함한 격동의 현대사 속에는 일제침략의 유산이 짙게 깔려 있는 것이다.우리가 8·15해방을 맞았을 때 민족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다시 말하면 일제36년의 파쇼통치를 통해 민족주체가 거의 말살되어 무력화한 상태였다.더구나 대전을 승리로 이끈 연합동맹국의 시각은 한반도에 뚜렷한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 일본 제국주의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이 물음에 대답할 자료는 얼마든지 있다.1910년 강제합병 이후 복벽운동 성격의 의병전쟁과 현대정치사상에 입각,독립선언의 의미를 지닌 3·1운동에서 입은 피해는 엄청나다.한 현대사자료는 3·1운동의 경우만도 10만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1923년 8월 일본 도쿄 등을 휩쓴 간토(관동) 대지진의 피해를 한국인 폭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날조,무차별 살해한 대학살을 자행했다.당시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독립신문」은 한국인 6천6백11명이 살해된 것으로 보도했다. 일본 제국주의 정부 비호아래 자경단이름으로 저절러진 만행현장에 대한 당시 경찰관의 증언.『아이들은 줄을 세워놓고 부모들이 보는데서 목을 잘랐다.그 다음은 부모들을 찔러 죽였다.온통 피바다를 이루었기 때문에 장화를 신지 않고는 걸어다니지 못할 지경이었다』 1925년 「치안유지법」을 제정한 일제는 국내에서도 반일세력을 모두 잡아들였다.조선총독부가 각년판으로 펴낸 「조선의 최근 치안상황」에 따르면 1931년 한햇동안 붙잡아 투옥한 인원만도 3만8천7백93명에 이르고 있다.1937년 중일전쟁을 도발한 일제는 육군특별지원령 공포(1938년)를 시발로 징용령(1939년)및 학병제(1943년)실시,여자정신대근무령 공포(1944년)등으로 인명을 수탈했다. 「조선인 강제연행기록」은 모두 6백만명이 끌려간 것으로 밝히고 있다. 일제는 이 기간에 정신적 민족주체성 말살정책을 병행했다.동화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말과 글을 못쓰게 한 한글교육금지(1938년),고유한 성과 이름을 강탈해버린 창씨개명이 그것이다. 그리고 신사참배를 강요하면서 1940년에는 황국신민화운동을 가속화했다.전통적 씨족관념마저도 앗긴 국민의 정서는 황폐 그것이었다. 일제는 황국신민화운동을 추진하면서 1941년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그리고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을 침략을 찬미하고 부추기는 자리에 끌어들였다.이 과정에 반민족적 지식인들이 생겨남으로써 민족내부의 분열을 가져왔다.이는 결국 민족갈등의 씨앗을 뿌려 일제 식민통치가 남긴 가장 큰 악영향으로 남게 되었다.일제하 독립운동이 희석된 까닭도 여기 있거니와 오랜 세월을 두고 민족화해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그래서 대전의 전세를 차츰 유리하게 호전시키고 있던 연합동맹국의 눈에 들어온 한반도는 일본 패전 이후의 전리품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그나마 한국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계를 유지해 왔던 중국 국민당정부의 장개석인 것으로 알려졌다.1943년 11월 미국,영국,중국의 수뇌가 만난 카이로 회담에서다.「조선인민의 노예상태에 유의,적당한 시기에 자유독립시킬 것을 결의한다」는 내용의 관심을 보였다. 우리가 각별히 주목할 것은 포츠담회담이다.카이로회담에서 합의한 「1차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탈취한 모든 지역은 반환되어야 한다」는 내용도 재확인했다.그렇다고 한반도가 민족의 손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고,전승국인 미국과 소련이 넘겨받기로 한 것이다.그리고 「적당한 시기에 독립시킨다」는 카이로선언 원칙아래 처음으로 한반도 분할점령이 논의되었다.일본의 강점지역이라는 이유로 한반도와 거기 사는 사람들은 또 다른 운명을 기다려야 했다. 포츠담회담은 미국으로 하여금 다른 전략구상을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원자폭탄을 이미 보유한 미국은 자국의 전력이 소련보다 우위라는 사실을 감지한 것이다.이에 따라 미국은 한반도에 관한 논의를 의도적으로 지연시켰다.소련 진출을 적극 차단키로 한 미국은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1945년 7월25일 한반도 점령지시를 내렸다.하지만 미국의 주력병력은 한반도에서 먼 오키나와에 있었다. 그리하여 미국은 8월6일 서둘러 히로시마에 원폭을 떨어뜨렸다.소련은 다급한 나머지 미국이 두번째로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하기 전날인 8월8일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나섰다.그리고 한반도에서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작전계획을 바꾸어 가면서 8월11일 밤 기계화군단을 포함한 소련군 25군 예하의 3개 군단과 2개사단이 황급히 한·소국경을 넘기 시작했다.미국은 소련군이 아직 한·소국경을 넘지 않은 8월11일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한 분할선을 부랴부랴 그어버렸다. 여러 증언을 종합하면 이날 하오 2∼3시 사이에 분할선을 긋기까지 워싱턴 미 육군성 차관보 부속실 벽시계바늘은 고작 30분을 움직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분단의 역사는 너무 길었다. ◎“16세부터 노역·위안부… 한 어찌 풀까”/종군위안부 강덕경 할머니 증언/「역사의 진상」낱낱이 파헤쳐 사죄 반드시 받아야/민간기금으로 「과거」 무마 시도 일 태도 용납못해 「민간 위로금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일본찌 정부가 낱낱이 진상을 밝히고 과거의 죄과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해야 합니다.일본 정부가 종군위안부 문제를 민간기금을 가지고 위로금을 지급하는 형식으로 무마하려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일본 제국군의 위안부로 끌려갔던 강덕경할머니(66)는 민족자존이 회복되길 바랄뿐 돈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분노했다. 『철 모르는 나이에 끌려가 아무 죄도 없이 말로 다할 수 없는 고생을 해야 했던 위안부 피해자들의 50년이 넘는 아픔을 누가 알겠습니까.세월을 탓하며 사라져 간 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넋을 다소나마 어루만져 주기 위해서도 사죄는 받아내야 합니다』 진주에서 태어난 강덕경할머니는 16세때인 1944년 요시노국민학교(현재의 중앙국민학교) 고등과 1학년 재학중 여자근로정신대 1기생으로 일본에 끌려가 후지코시 비행기공장에서 부품깎는 일을 했다.감옥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이 너무 고달파서 한밤중에 도망을 치다 군인에게 붙잡히는 바람에 부대로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하게 됐다. 위안부 생활이 남긴 급성신우신장염으로 시달리고 있지만 그는 유엔인권위원회,세계인권대회,국제사법재판소등을 통해 반세기 동안 청산되지 않은 군위안부 문제를 국제여론화하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활동에 참여해 왔다.『한국 역사의 수치라고 생각하고 덮어 두어서는 안된다』는 강할머니는 민간단체들이 마련해 준 서울 혜화동 「나눔의 집」에서 같은 처지의 할머니 여섯분과 살고 있다.
  • 관광공사장 김태연

    정부는 4일 한국관광공사 사장에 김태연 전노동부차관을 내정했다. 김씨는 지난 65년 서울 상대를 졸업,행정고시 5회에 합격한 뒤 옛 경제기획원 물가정책 국장과 대외경제 조정실장·차관보를 지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