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양이’의 무상 행위
노년의 렘브란트가 늙고 병들자, 사정을 딱하게 여긴 한 친구가 돈을 건네며 말했다.
이 돈으로 몸을 보할 음식이라도 사 먹게나.
그러나 렘브란트는 ‘헛되고 헛되니 헛되도다’라는 성경구절을 되뇌며
그림물감을 사는 데 그 돈을 몽땅 써버린다.
영인문학관 강인숙 관장이 홈페이지 인사말에 이 일화를 인용한 속뜻은 분명해 보인다.
스스로가 가장 원하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행복해지기 위한
최선의 선택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인문학관, 문인들의 영혼과 숨결이 느껴지는 곳
2001년에 개관한 영인문학관의 시발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2년 남편인 이어령 선생이 《문학사상》을 창간하면서 문인들의 초상화를 표지에 실은 게 첫 걸음이었다. 문인 초상화가 전무하다시피 했던 시기, 그러나 문학을 사랑하는 여러 화가들의 동참으로 생소한 그 작업을 가능케 할 수 있었다. 화가들은 수록 대상이 된 작가의 작품 내용과 주제를 반영해 특색 있는 초상화를 그려냈을 뿐 아니라, ‘화가의 말’도 직접 썼다. 현재 전시 중인 100여 점의 초상화가 그 시절에 그려진 작품들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우리나라의 문학관은 대부분 기념관 형태였다. 영인문학관은 현대문학관에 이어 박물관의 면모를 갖춘 두 번째 문학관인 셈이다. 개관 당시 강인숙 관장은 병마와 싸우고 있었다. 병원에서 인후암 판정을 받던 날, 그는 그동안 수집해둔 자료 정리에 들어갔다. 암 선고를 받고 집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이 문학관 개관을 서두르는 것이었다니, 어떻게 그리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사명감’이라고 대답했다. 외국과 달리 박물관의 성격을 띠는 문학관이 없다는 것은 문단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속상한 일이라며. 담담한 그의 얼굴 위로 늙고 병약한 렘브란트의 얼굴이 겹쳐졌다. 홈페이지에서 읽은 <나는 왜 문학관을 하게 되었는가>라는 글 가운데 ‘김동인의 낡아빠진 명함이나 글씨도 판독하기 어려운 이상의 초고를 누가 나만큼 사랑하랴’는 문장도 떠올랐다. 병든 몸이 아니라도 버겁고 힘겨운 그 일을, 강인숙 관장은 문학에 대한 애정으로 해냈다.
서울 평창동에 위치한 영인문학관은 좋은 입지 조건을 갖췄다고 말하기 힘들다. 가파른 오르막을 한참 올라가야 하니 무심히 길 가다 들를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약도가 그려진 쪽지를 들고 길을 물어 찾아오는 사람,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흠뻑 젖어서 들어오는 사람, 부산이나 제주도 같은 원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오는 사람, 그들이 있어 강인숙 관장은 보람을 느낀다. 그렇게 찾아오는 관람객이 하루에 한 명만 있어도 영인문학관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는 강 관장의 말. 이곳을 찾아 발품을 판 사람들이 문학과 예술에 대해 담소를 나누는 장면과 그런 이들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는 강인숙 관장의 모습이 그려졌다.
인연을 통해 본 성찰의 기록, 어느 고양이의 꿈
“딸 많은 집 셋째 딸은 선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말이 있죠? 제가 바로 그 딸 많은 집 셋째 딸이에요.”
신작 에세이를 보여주며 강인숙 관장이 말했다. 교육열이 대단했던 그의 어머니는 열 살 된 아들을 폐렴으로 잃은 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종용하지 않았다. 살아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 어머니 아래에서 자란 그는 성적 경쟁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공부만 하고 읽고 싶은 책만 읽으며 중학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철이 들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공부를 시작했고,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그는 스스로가 자유롭다고 느꼈다. 남과 겨뤄서 이기기보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살았다고. 그 딸 많은 집 셋째 딸이 최근에 낸 수필집 제목이 《어느 고양이의 꿈》이다. 고양이는 사람 좋아하고 북적대는 분위기를 즐기던 그의 어머니가 내성적인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기도 하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은 ‘인연’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영인컬렉션1’이라는 제목이 붙은 1장은 문인들과의 만남과 그 관계에 얽힌 예술품을, 다음 장인 ‘영인컬렉션2’는 한국 민속품과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3장 ‘만남의 11가지 패턴’에서는 넓게 관계 맺지 않는 고양잇과의 인간이 소중하게 여기는 몇몇 사람을 얼마나 깊이 사랑하는지 보여준다.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과 예술에 관한 조예가 엿보이는 저작이다.
그는 책을 출간할 때마다 판매부수에 연연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특히 수필은 대중 앞에 발가벗고 서 있는 느낌이라 많이 안 팔렸으면, 생각했던 적도 있다고.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어느 고양이의 꿈》을 통해 대중들이 문인을 알고 이해하고 사랑하면 좋겠다고, 그래서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주기 바란다는 그의 말에서, 동료와 선후배 문인을 생각하는 살뜰한 마음이 다시 한번 느껴졌다.
문인 초상화전, 상상력과 현실 사이
최근 영인문학관은 이사를 하면서 문인 초상화전 ‘상상력과 현실 사이’를 기획했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다양성’이었다. 김삿갓과 신사임당부터 2000년대 들어 더욱 왕성하게 활동하는 권지예, 정미경에 이르기까지, 대상 문인을 선정하는 데 있어 활동시기에 전혀 구애받지 않은 듯 보였다. 화풍도 전통기법을 답습한 작품부터 간소화된 선만으로 표현된 추상적인 작품까지,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초상화뿐 아니라 자화상, 캐리커처, 마스크, 흉상, 사진에 이르기까지 작품이 100점이 넘는다. 화가별로 전시하는 새로운 시도도 했다.
“초상화는 눈을 그리는 게 가장 까다로운 것 같아요. 특히 작가들의 눈은 더 그렇죠. 눈은 그 사람 내면의 진정성을 드러내요.”
그렇게 말하는 강인숙 관장의 눈도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형형하다. 천생 작가의 눈이구나, 싶다.
너나 할 것 없이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다닐 만큼 사진이 보편화된 시기에 초상화전을 하는 의미에 대해 물었더니, ‘진실과의 닮음’이라고 말한다. 사진이 리얼리즘(realism)이라면 초상화는 그리는 이의 상상력이 가미되는 데 변별력이 있다는 것이다. 대상이 가진 개성을 포착하여 창작자 고유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 그러면서 대상과의 닮음이 확보되는 것이 창작자가 부여하는 예술혼일 것이다. 시간을 정지시켜 얻어낸 영원. 초상화와 사진의 가장 큰 차이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초상화뿐 아니다. 문인서화, 육필원고, 삽화, 지필묵, 작고한 문인의 유품 등은 물론이고 작가들이 기증한 애장품이 수저집에서 장바구니에 이르기까지 전시관을 가득 메웠다. 그중에서도 부채는 강인숙 관장이 유난히 자부심을 가지는 부문이다. 문인부채와 화가부채를 가지고 예전에 전시회를 한 적도 있단다. 그의 긍지를 입증하듯, 영인문학관이 소장한 부채들은 뛰어난 예술성을 가지고 있다. 부채를 비롯해 소장 물품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각별하다. 강인숙 관장은 문인들이 죽은 뒤 자녀들이 유품을 나눠가지는 과정에서 전시 가치 있는 물건들이 사라지는 것이 무엇보다 안타깝다.
“전시를 하면 도록이라도 남잖아요.”
그 말에, 누군가는 나서서 문학 관련 자료를 모으고 관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느껴졌다. 개인 소장일 경우 자료가 온전하게 관리, 보관되기 힘들다는 것도 그의 안타까움을 더 절박하게 한다. 그토록 지극한 애정이고 보니 기증 받은 자료를 전시하지 않고 사장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일찍이 앙드레 지드는 ‘무상의 행위’에 관해 설파했다. 《교황청의 지하실》이라는 작품에서 도덕을 초월한 절대적 자유를 실험하기 위해 무동기의 살인, 이른바 ‘무상의 행위’로서 살인을 저지르는 주인공 라프카디오를 등장시킨다. 만약 인간에게 순수한 자유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 않는 무동기의 무상 행위이리라. 영인문학관은 강인숙 관장에게 문인과 독자에 대한 사랑을 가시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일 뿐 어떤 목적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상의 행위’라 할 수 있다.
글·사진 하재영 소설가
월간 <삶과꿈> 2008년 7월호 구독문의:02-319-37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