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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찌라시’ 단속 무모한 도전

    검찰과 경찰은 고 최진실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채업 괴담’의 진원지가 여의도 증권가의 사설 정보지(속칭 찌라시)라는 판단에 따라 7일부터 대대적인 단속에 들어갔다. 1980년대 중반에 등장한 것으로 알려진 정보지는 A4 용지에 정리된 것이다. 대기업 정보 담당자, 국회의원 보좌관, 국정원·경찰 등 정보 계통 관계자 등이 매월 정기 또는 비정기적으로 갖는 정보회의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정리한 것이다. 정치·경제 문제, 연예인 스캔들 등 언론 보도에서 접할 수 없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최근들어 증권가 정보지는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유포되는 새로운 방식도 등장했다. M증권 장모 애널리스트는 “요즘은 종이와 메신저 정보라는 두 형태가 공존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추세”라며 “종이 찌라시 내용이 메신저상에 유포되고, 메신저상의 이야기가 확대·재생산되며 종이 찌라시에 반영된다.”고 말했다.G증권 김모 애널리스트는 “찌라시를 종이 형태만 생각하고 있는 듯한데, 요즘 찌라시는 메신저를 통해 확산되는 내용이 주류”라면서 “최진실씨의 소문도 어디서 먼저 시작됐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정보 유통에는 증권사 등 금융업계 종사자들이 애용하는 특정 인터넷 메신저가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메신저는 1대1 대화를 기본으로 하는 일반 메신저와는 달리 ‘쪽지’를 대량 발송할 수 있다.K증권 이모 애널리스트는 “메신저에 500명 이상이 등록돼 있고, 이들과 매일 10건 정도의 정보를 주고받는다.”면서 “4만여명에 이르는 증권업계 종사자들이 이런 식으로 정보를 주고받기 때문에 최초 유포자를 찾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 메신저를 공급하는 B사 관계자는 “메신저를 통해 주고받는 쪽지나 대화 내용은 회사 서버에 남지 않고, 복구할 방법도 없다.”고 설명했다. 검경의 이번 전쟁이 2005년의 재판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연예인 X파일 사건이 불거졌던 2005년 3월, 검경은 사설 정보지 업체 단속에 들어갔지만 업체 두 곳만 단속한 채 용두사미로 끝났다.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수사관들은 “정보 출처가 명확지 않은데 무슨 수로 수사하느냐.”면서 “이번에도 잔가지 몇 개만 부러뜨리는 선에서 끝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고 최진실씨의 ‘사채업 괴담’을 수사 중인 서울 서초경찰서는 이날 괴담의 최초 유포자를 찾는 것은 무리라며 사실상 수사를 종결키로 했다. 경찰은 A씨,B씨,C씨에 이어 중간 유포자로 소환했던 D씨에게 “소문을 메신저를 통해 들었는데, 누구에게 받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진술을 들은데다 D씨의 컴퓨터 등을 압수수색했지만 쪽지나 대화 내용이 서버에 남아 있지 않아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경찰 관계자는 “D씨에게 정보를 보낸 이를 찾지 못해 더 수사할 수 없다. 관련자 네 명을 재소환·조사한 뒤 선별적으로 입건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밝혔다.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檢“사설 정보지 꼼짝마”

    대검은 6일 인터넷과 불법 사설정보지의 집중 단속에 나섰다. 악의적이고 상습적인 허위사실 유포 사범은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정했다. 우크라이나를 방문 중인 임채진 검찰총장은 고(故) 최진실씨의 자살사건과 관련해 대검 간부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범죄에 엄정 대처하라.”고 지시했다고 대검이 이날 밝혔다. 이에 따라 검찰은 경찰의 단속을 지휘하되 사안이 중대하고 법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에 설치된 ‘신뢰저해사범 전담수사팀’이 직접 수사하기로 했다. 검찰은 지금까지 사설정보지가 10개 이상으로, 한부에 30만∼50만원에 거래되는 것으로 파악했으며, 생산·유통 경로와 인터넷을 통한 확대·재생산 경로를 집중 추적하기로 했다. 검찰은 사설정보지를 만들어 내는 행위 자체보다는 허위사실 유포에 초점을 맞춰 생산업자를 신용훼손, 명예훼손 및 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보장에 관한 법률 위반죄로 처벌할 계획이다. 한편 고 최진실씨의 자살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정되는 ‘사채업 괴담’의 진원지를 수사하고 있는 서울 서초경찰서는 이날 증권업계 종사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메신저 서버를 압수수색했지만 필요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 경찰은 괴담 중간 유포자로 알려진 증권사 직원 D씨의 사무실 컴퓨터와 그가 사용한 메신저 M사의 서버 설비를 압수수색해 전산자료를 확보했지만 서버에 대화나 쪽지가 저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 이에 경찰 안팎에서는 정보통신에 대한 무지 때문에 불필요한 강제수사 기법을 동원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관련자들을 한 명씩 소환 조사해 괴담의 실체와 최초 유포자를 밝혀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홍지민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Local] 사진전 열어 북한 실상 알려

    전남 곡성 심청축제(2∼5일)때 열린 북한 사진전이 북한동포들의 어려운 실상을 알리는 데 도움을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사진전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곡성군협의회(회장 빙기윤)가 마련했고, 사진은 평통중앙회에서 받은 것으로 76점이 전시됐다. 사진 내용은 북한 주민들이 모내기를 하고 수확하는 모습, 들판에서 일하거나 달구지를 끌고 가는 장면 등이다. 전시장인 곡성 기차마을의 객차 밖에는 관광객들의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쪽지가 수백장씩 나붙었다. 빙 회장은 “이번 전시회가 북한의 실상과 현 주소를 국민들이 정확히 알고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데 작은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곡성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멜로영화, 가을 극장가 물들이다

    멜로영화, 가을 극장가 물들이다

    본격적인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10월. 다양한 색깔의 멜로영화가 극장가를 물들인다. 이달 상영되는 국내 멜로물은 줄잡아 6∼7편.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하면 세배 가까이 늘었다. 올가을엔 어떤 멜로 영화들이 일상에 지친 우리의 감성을 적셔줄까. ●눈물샘 자극하는 최루성 멜로 거의 사라져 올해 멜로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너는 내 운명’(2005),‘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행복’(2007) 등 그동안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해온 최루성 멜로가 사라지고 ‘생활형’ 멜로물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점. 돈 때문에 재회한 연인들의 불편한 하루를 그린 ‘멋진 하루’나 7년을 사귄 남자친구에게 7초 만에 차인 한 여자(문소리)의 사랑과 이별을 사실적으로 그린 ‘사과’(16일 개봉) 등은 사랑을 과대 포장하는 대신 담백한 시선으로 일상 속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런 만큼 이 작품들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감정을 최대한 자제하고 현실적이고 담담하게 상황을 그린다.‘멋진 하루’의 전도연은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를 뒤로하고 절제된 연기로 오히려 상대역(하정우)을 돋보이게 했고, 생활밀착형 로맨스를 표방한 ‘사과’의 강이관 감독도 평범한 남녀 커플 50쌍의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남녀의 말과 행동, 생각의 차이를 짚어냈다. ●‘비몽’ 등 신비감 강조한 판타지 로맨스도 인기 이와는 반대로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판타지성 멜로물도 눈길을 끈다. 한일 톱스타인 이나영과 오다기리 죠가 호흡을 맞춘 김기덕 감독의 신작 ‘비몽’(9일 개봉)은 꿈으로 이어진 남녀의 슬픈 사랑을 몽환적으로 그린다. 옛사랑의 과거를 잊으려는 여자와 꿈속에서도 연인을 그리워하는 남자가 결국은 한 사람이라는 설정은 한편의 시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김 감독은 이 작품에서 남과 여, 꿈과 현실, 삶과 죽음 등을 대칭적인 시각으로 표현했다. 청춘스타 이동욱·유진 주연의 ‘그 남자의 책 198쪽’(23일 개봉)은 미스터리 멜로에 방점이 찍혔다. 헤어진 연인이 남긴 쪽지에 적힌 198쪽의 비밀을 찾기 위해 매일 도서관을 찾는 정체불명의 남자와 주요 도서의 198쪽만 없어지는 사실을 알게 된 사서의 사랑 이야기다. 영화 ‘동감’‘바보’에 이어 또 한편의 멜로물에 도전한 김정권 감독은 “과도한 음악이나 과장된 행동으로 억지 미스터리를 그려내기보다는 여행을 하면서 의문점들이 풀리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설의 상상력 스크린 속으로 한편 올가을엔 소설의 상상력을 영상으로 옮긴 작품들이 많아 원작과 비교해 보며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1937년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철없는 모던보이(박해일)와 비밀스러운 매력을 지닌 모던걸(김혜수)의 사랑을 그린 영화 ‘모던보이’는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한 이지형의 소설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2000)가 원작. 영화에서는 원작의 스토리에 다소 변화를 줘 당대의 분위기를 살리고 감정선을 부각시켰다. 김주혁·손예진 주연의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23일 개봉)도 이중 결혼을 소재로 한 소설의 상상력에 기댄 경우. 제2회 세계문학상 당선작으로 4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이 작품은 ‘결혼은 연애의 무덤’이라는 명제에 대한 남녀의 서로 다른 입장 차를 통해 기존 결혼제도의 통념을 뒤집는다. 이 밖에 일본 작가 다이라 아즈코의 소설을 영화화한 ‘멋진 하루’와 윤성희의 단편소설이 원작인 ‘그 남자의 책 198쪽’도 소설적 감수성을 영화에 녹였다. 영화 ‘모던보이’를 제작한 KnJ엔터테인먼트의 곽신애 이사는 “감독이나 제작자들은 원작 소설의 캐릭터와 참신한 시각에 이끌려 영화화를 결정한다.”면서 “영화는 소설과 달리 제작비와 시간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원작에 대한 선입견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고속도 휴게소도 ‘이벤트시대’

    고속도 휴게소도 ‘이벤트시대’

    “가을 가족여행을 하면서 고속도로에서 고구마 캐는 추억을 만들어 보세요.” 단순히 쉬어가는 곳으로 인식되던 고속도로 휴게소가 지역 농특산물 체험 및 알림 장소로 인기를 더하면서 휴게소 이벤트 시대를 맞고 있다. 지역 특산품의 좋은 점을 알려 향후 고객으로 끌어들이고, 휴게소에는 이용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한편으로 영업에 도움을 주기 위한 서비스 차원이다. 충북 청원군 오창읍 화산리 중부고속도로 상행선 오창휴게소에서 다음 달 3일 오후 고구마 캐기 체험행사가 열린다.26일 오창휴게소에 따르면 이날 가족단위로 3㎏에 한해 고구마를 캐게 한 뒤 무료로 가져가게 할 계획이다. 고객들이 따로 준비하지 않고 고구마를 캘 수 있도록 호미, 장갑 등을 준비해 놓는다. 휴게소측은 800㎏가량의 고구마가 수확돼 250∼300개 팀이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이 휴게소는 지난 5월 주차장을 만들면서 남은 휴게소 옆 공터 250㎡에 고구마를 심어 가꿔왔다. 오창휴게소 관계자는 “그간 우리 휴게소를 이용해준 고객들의 성원에 보답하고 여행하는 중에 색다른 체험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를 마련했다.”면서 “반응이 좋으면 해마다 이 행사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칠곡·동명, 라이브 콘서트 서해안고속도로 상·하행선 서천휴게소에서는 매주 주말에 고객을 상대로 ‘보물찾기’ 행사가 열린다. 쪽지를 휴게소 주변에 숨겨놓고 이용객들에게 찾게 한 뒤 목베개 등을 선물로 주고 있다. 인형과 물총 등 어린이를 위한 선물이 많다. 하루 20∼30명의 이용객이 뜻밖의 휴게소 선물을 받고 있다. 지난해 여름부터 이 행사를 열고 있다는 상행선 휴게소의 조시웅 총무팀장은 “피서철에는 즉석 가족사진을 찍어주는 등 이벤트가 다양해선지 손님들이 무척 즐거워한다.”고 자랑했다. 같은 고속도로 상행선 홍성휴게소에서는 매일 ‘유적 돌아보기’ 행사가 열린다. 휴게소 인근에 있는 한용운 선생, 김좌진 장군 생가 등을 무료로 구경시켜 주는 행사다. 하루 3∼4명이 신청하고 있다. 휴게소 직원이 영업차량에 고객들을 태워 안내해준다.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칠곡휴게소는 매주 금·토요일 오후 3시 라이브콘서트를 연다. 대구·경북지역 무명 가수들이 나와 2∼3시간 정도 공연을 한다. ●명절땐 인삼 깎기 대회 중앙고속도로 동명휴게소도 매주 토·일요일 오후 6시부터 통기타 라이브콘서트를 갖고 있다. 서해안고속도 행담도휴게소는 매주 1∼2차례 안데스음악 공연을 연다. 공연은 에콰도르인들이 한다. 경부고속도로 망향휴게소도 이들 음악팀과 통기타 가수들이 공연을 하면서 휴게소 고객유치에 나서고 있다. 행담도휴게소 유창규 영업과장은 “잠깐이나마 고객들이 머무는 사이 눈요깃감이라도 하라고 지난 5월 공연을 시작했다.”며 “고객유치와 휴게소 홍보 효과를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명절 때도 지역특산물 관련 이벤트들이 펼쳐지고 있다. 경남 김해시 상·하행선 진영휴게소에서는 지난 추석 문경지역 특산물인 사과·배·곶감을 판매했고, 국내 인삼유통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충남 금산을 지나는 대전통영고속도로 인삼랜드휴게소는 수삼깎기 대회를 열고 고객들에게 수삼세트를 무료로 나눠주면서 명절 분위기를 돋웠다. 고속도로 화장실이 깨끗해진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고, 칠곡휴게소 하행선에는 130여㎡ 규모의 갤러리 ‘화가와 그림 이야기’가 있어 유명 화가의 작품을 전시해 호응을 얻고 있다. ●군위, 식당에 책 1000권 비치 중앙고속도로 경북 군위휴게소는 식당에 도서 1000권을 비치했다. 같은 고속도로 안동휴게소는 하회별신굿 탈놀이 홍보공간을 마련, 안동하회탈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명장 김완배 선생님이 직접 제작한 9가지 탈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곁들였다. 인삼랜드휴게소 관계자는 “고객이 많이 와야 매점 영업과 임대가 잘 되는게 아니냐.”면서 “고객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휴게소를 알리기 위해 이런 이벤트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고속도로 휴게소는 23개 노선에서 149개가 운영되고 있다. 휴게소 사이의 평균거리는 29.8㎞이다. 전국종합·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아빠가 너무 좋아 「도깨비」가 된 새댁

    아빠가 너무 좋아 「도깨비」가 된 새댁

    밤마다 장독대에 오물이 뿌려지고 『이사 가지 않으면 가족을 몰살 하겠다』는 협박장이 날아 들었다. 때로는 고무신짝이 가위로 싹독 잘려 있기도 하고. 여느 협박사건과는 달리 목적마저 뚜렷치 못한 이 도깨비 장난은 누구의 짓일까? 경찰의 수사 결과는 놀랍게도 범인이 바로 그집 주부라는 것. “이사 안가면 가족을 몰살” 밤마다 협박장 사건의 무대는 충북 청주시 문화동의 한식집. 기성복 행상을 하는 홍(洪)모씨(51) 가족과 공무원인 윤(尹)모씨(30) 가족등 두집이 세들어 사는 이집에 도깨비가 처음 나타난 것은 지난달 26일 밤. 고추장, 된장독에 개똥이 들어 있고 뜰에 벗어놓은 고무신짝이 가위로 잘려 있는데다가 울타리에는 「노트」쪽지에 적힌 협박장이 꽂혀 있었다. 협박 내용은 『술도 못마시는 놈이 이 동네에 살 자격이 없다. 이사가지 않으면 집에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지르겠다』는 것. 처음 홍씨와 윤씨는 동네 불량배들의 못된 장난질이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다음날 밤에도 또 그 다음달 밤에도, 그러니까 28일밤까지 비슷한 협박편지가 마루에 까지 날아들고 장독대에는 오물이 뿌려져 있지 않은가. 결국 소문은 마을에 퍼졌고 두집 식구들 뿐만아니라 온마을 사람들이 이 불길한 협박장때문에 떨었다. 마을사람들의 신고로 경찰에서 수사에 착수하자 29일밤부터는 이 도깨비장난이 딱 그쳐버렸다. 경찰은 처음 형사를 잠복시켜 현장에서 범인을 잡으려 했지만 범인이 눈치를 챘는지 나타나지 않아 실패, 다른 각도에서 수사를 다시 시작했다. 홍씨와 윤씨집에선 각각 사나운 개를 기르고 있었다. 그러나 수상한 사람이 나타나면 으례 짖어야할 이 개들이 짖은 일이 없었다고 했다. 수상한 일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협박장 울타리에만 꽂아놓았다면 몰라도 마루에 까지 가져다 놓았고 고무신을 가위로 잘라놓은 것을 보면 여유있게 한 일. 경찰은 도깨비의 정체가 이집을 자주 드나드는 사람이거나 집안사람일 것이라는 심증을 굳힐수 밖에는 없었다. 우선 집안 사람들과 이웃주민들 10여명의 필적을 받아내어 국립 과학수사연구소에 협박장 글씨와의 대조를 의뢰했다. 이것이 지난 4일의 일. 신혼의 단꿈 침입 안받고 행복한 보금자리 꾸미려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협박장이 그쳤다곤 하지만 협박장을 받은 사람의 심정이 편안할 리는 없었다. 사건의 해결을 못본채 홍씨는 협박장의 명령대로 이사를 했다. 그런데 또 이날밤 도깨비가 나타났다. 협박장과 함께 홍씨집에서 이사가면서 남겨놓고 간 「프라이·팬」으로 이번에는 마룻바닥에 사람의 똥까지 퍼붓고 새로 사 신은 윤씨네 고무신을 또 싹독 싹독 잘라 놓았다. 온동네에 소문이 퍼지고 사람들은 다시 불안에 떨었다. 횟가루부대 종이에 쓴 협박장등 현장검증을 하던 경찰은 참고삼아 윤씨네 방안을 살피다가 다락에서 「노트」 1권을 발견했다. 「노트」는 22장 가운데 16장이 찢겨있었다. 울타리와 마루에 던져졌던 협박장 용지와 대조해본 결과 지질이 같은 것. 경찰은 도깨비가 윤씨 가족, 그 중에서도 윤씨의 아내 신(申)모여인(27)이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찰이 그런 눈치를 보이려하면 신여인이 펄쩍 뛰는데다가 윤씨마저 『협박당하는 것도 분해 죽겠는데 내 아내를 범인으로 몰아 세우느냐』고 화를 내곤하여 확증이 될 필적감정결과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10일 마침내 과학수사연구소에서 회신이 왔다. 윤씨의 입회하에 개봉해본 결과 협박편지 필적의 주인은 신여인. 경찰이 예측한 대로지만 윤씨나 이웃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필적 감정나자 “아빠 용서하세요” 흐느껴 왜 그녀는 자기집에 도깨비장난을 했어야만 했던가? 필적감정결과를 보고는 체념한 듯 눈물을 흘리며 범행을 순순히 자백한 그녀의 진술에 따르면 - 청주 S국민학교를 졸업, 집안 일을 도우다 지난 3월 윤씨와 결혼했다. 결혼후 지금 사는 집에 방2간을 18만원에 전세들어 신혼 살림을 차렸다. 딸까지 낳았다. 그지없이 행복한 나날이었다. 그런데 한가지 고민거리는 시갓집이 이웃이어서 불편할뿐 아니라 한집에 세든 홍씨가 술이 고래라 윤씨에게도 술을 먹이는 것이었다. 홍씨는 술이 취하면 남편을 데려가 술을 먹일 뿐만아니라 걸핏하면 소주병을 차고 신혼의 보금자리를 침범하기 일쑤였다는 것. 술이 취하면 자기 부인에게 마구 욕설을 퍼붓기도 하여 남편이 닮지않을까 두렵기도 했다는 것. 신여인은 홍씨가 그지없이 미웠다. 그래서 궁리끝에 결국 도깨비 노름을 생각해냈다는 것인데 좀 「드릴」있게 연극을 꾸미기 위해 장독에다 개똥을 퍼붓고 고무신을 가위질 했다는 것. 여기까지가 제1막. 과연 홍씨는 그녀의 뜻대로 이사를 가 버렸는데 남편은 이사갈 꿈도 꾸지 않는게 아닌가. 사실 그녀는 홍씨와 떨어지는것도 문제였지만 실은 이웃에 사는 시가에서도 멀리 떠나고 싶었던 것. 그래서 홍씨네가 이사간 날 밤에 제2막을 연출했다. 11일 협박·재물손피혐의로 구속이 집행된 그녀는 『아빠 용서하세요』라며 후회의 눈물을 뿌렸지만 시댁의 식구들은 경찰에 달려가 『너때문에 아들 망쳤다』고 아우성을 치기도. <청주(淸州)=황규호(黃圭鎬) 기자> [선데이서울 71년 11월 28일호 제4권 47호 통권 제 164호]
  • [Metro] 서울시 11일까지 ‘애니 페스티벌’

    서울시 서울산업통상진흥원(SBA)은 유럽의 우수 애니메이션 작품을 선보이는 ‘유러피언 애니-페스티벌 인(in)서울’을 11일까지 서울애니시네마에서 연다고 5일 밝혔다. 페스티벌은 유럽의 프랑스, 영국, 체코에서 각각 열리는 3개의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의 2007~08년 수상작, 상영작과 학생 작품들로 모두 70여편이 상영된다. 불가리아, 핀란드, 남아공, 아르헨티나 등 다양한 국가들의 작품들로 세계 애니메이션 창작의 흐름을 맛볼 수 있는 기회이다. 또 행사기간 중에는 관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하였다. 상영기간 중의 토요일인 6일에는 마지막 회(19시) 상영 후 간단한 다과를 하며 관객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애니메이션의 밤’을 연다. 관람객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경품 추첨 이벤트와 쪽지시험 이벤트 등도 마련했다.‘서울애니시네마’는 중구 예장동 SBA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내에 있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자살 충동 느낄땐 전화를 걸어라

    자살 충동 느낄땐 전화를 걸어라

    세계 자살률 1위. 세계자살예방의 날(9월11일)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오명을 씻지 못했다. 독거노인과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정이 늘면서 자살자는 매년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2006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자살사망률은 인구 10만명당 21.5명에 달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11.2명의 두배에 달하는 수치다.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자살. 과연 막을 수 없을까.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 정신과 민성길 교수는 “자살을 시도하기 직전에 전화를 걸어보라.”고 조언했다.‘핫라인’으로 불리는 생명의 전화(1588-9191)는 자살을 시도하기 직전 마음을 되돌리는 데 큰 효과를 발휘한다. 막상 자살하려는 마음을 먹어도 그 순간만 넘기면 금방 평상심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 생명의 전화는 24시간 운영된다. 자살충동이 생기면 곧바로 전화를 걸 수 있도록 주머니에 쪽지를 넣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수시로 지인에게 전화하는 습관을 갖게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희망적인 말을 ‘단정적으로’ 하는 것도 자살을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당신은 희망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강하게 말하는 방식이다. 단 단정적인 조언을 하는 대상은 가족보다 제3자가 좋다. 민 교수는 “가족간 불화로 자살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부모가 강하게 조언하면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높다.”면서 “유명인, 의사와 같이 권위가 있거나 호감이 있는 대상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좋다.”고 설명했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을 무작정 ‘환자’로 몰아서는 안 된다. 자살자 가운데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는 40%를 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충동적으로 자살한다는 뜻이다. 특히 큰 실패로 심리적인 충격을 받은 사람을 자극하는 것은 위험하다.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은 대개 자살을 반복적으로 시도한다. 한번 자살을 시도한 사람이 다시 시도할 확률은 50%, 두번째는 70%, 세번째는 90%에 달한다. 올해 생명의 전화 상담통계에서도 자살을 1번 이상 시도한 사람 27명 가운데 3번 이상 시도한 사람이 10명이나 됐다. 반복적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은 늘 주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위험한 곳으로 가지 않는지 살펴야 한다. 또 신뢰를 바탕으로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미리 다짐을 받아두는 것이 좋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오강섭 교수는 “당신이 왜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고,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표현해야 한다.”면서 “‘나를 믿고 자살하지 말라.’고 약속하면 순간의 충동을 억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살을 시도하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은 “나는 무가치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고 고립무원의 상황에 빠져 있다고 생각할 때 자살을 시도하게 된다. 오 교수는 “가족과 친구, 의사가 모두 힘을 합쳐 희망을 주고 관심을 가지면 자살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죽음으로 청산한 교감(校監)과 여교사(女敎師)의 사랑

    죽음으로 청산한 교감(校監)과 여교사(女敎師)의 사랑

    가정을 가진 50대의 국민학교 교감과 20대의 아름다운 처녀교사 사이의 괴로웠던 사랑은 1년만에 죽음으로 끝맺고 말았다. 모범적인 교육자로 알려졌던 교감과 여교사가 1년전에 첫정을 나누었던 학교별관의「피아노」교실에서 1년뒤 바로 그날 정사(情死)를 해야만했던 인생의 함정은…. 입에서 입으로 소문 번져 두려웠던 양쪽 집안 체면 인천시 B초등학교 이경일(李京一)교감(52·가명)과 음악강사 김효숙(金孝淑)양(24·가명)이 학교별관의 4평남짓한「피아노」교실에서 극약을 먹고 쓰러져 있는 것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청소부 강(姜)모씨(31)였다. 지난 2일 아침 9시쯤 강씨가 평일과 같이 별관청소를 하다 무심코 「피아노」교실의 문을 열어보니 반나체의 두교사가 「피아노」위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이교감은 부평 성모병원에, 김양은 이웃 기독병원에 옮겨졌으나 김양은 바로 숨지고 이교감은 2일 상오 숨을 거뒀다. 청소부 강씨는 이들이 죽기전날인 1일밤 8시쯤부터 「피아노」교실에서 『엘리자를 위하여』『장송곡』등을 치는 소리가 들렸으나 가끔 있는 일이 어서 무심코 흘려 버렸다는 것. 이들이 쓰러져 있던「피아노」에는 「베토벤」교향곡 5번 (운명)이 펼쳐져 있었고 김양의 글씨로 쓰여진 낙서쪽지가 「피아노」주위에 흩어져 있었다. 낙서내용은『못이룰 사랑』『저세상에서 거리낌 없이 사랑하리』『아버지 미안해요』등등으로 애절한 사랑을 말해주고 있었다. 김교감은 김양아버지의 친구, 김양은 이교감의 딸의 친구로 두 집안끼리는 왕래가 잦았다. 김양이 박문(博文)국민학교에 들어간 것도 이교감의 주선에 의한 것. 방과후「피아노」교실에서 하루가 멀다고 정열 태워 이 학교에서만도 13년7개월을 근무한 이교감은 해방전 평양사범 강습과를 수료한 뒤 서울에서 D대학을 졸업, 서울의 몇몇 사립국민학교를 거친 독실한 「가톨릭」신자. 깨끗하게 생긴 노신사「타이프」. 김양은 인천시내 모여고를 거쳐 2년전에 서울의 서라벌예술대학 음악과를 졸업하고 이 학교 음악강사로 들어온 미혼녀로 아버지는 S기독교의 전도사로 누가보아도 모범적인 양가집 규수. 이들의 사랑이 세상에 알려지기는 지난 여름부터. 「피아노」교실에서의 정사현장이 발각된 뒤 학교에서는 쉬쉬 해왔으나 한입두입 퍼지기 시작, 최근에는 이 소문을 들은 몇몇 학부형들이 학교에 찾아와 노골적인 항의소동을 벌였고 두 집안에서도 눈치채게 됐다. 두사람에게는 학교를 그만두어야 할 것은 큰문제가 아니었다. 이교감과 가까웠던 이모교사에 의하면 이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양쪽의 집안이 문제였다는 것. 이교감은 다 큰 자식들에게, 그리고 김양은 부모와 친구대할 낯이 없었고 그래서 정사하기로 결심한 것 같다는 그의 말. 『무서웠어요. 그날 밤. 1년전 바로 이 장소』라는「피아노」실에서 발견된 낙서에 의하면 이들의 사랑은 꼭 1년전에 시작된 듯. 죽기를 결심하고는 1년을 채우기 위해 미루어 온 듯한 낙서들이 발견됐다. 낙서와 동료교사들에 의하면 이교감의 부인은 8년전부터 심한 위장병을 앓아 온데다 2년전부터는 엎친데 덮친격으로 자궁암까지 겹쳐 병상의 몸이 됐다. 그래서 그런지 이교감은 항상 고독한 모습을 지녔고 이에 동정한 김양의 감정이 사랑으로 싹트기 시작했다. “흠잡을데 없던 사람이었는데” 모두 침통 『낙서에 적힌대로 일년전 바로 그날, 이 장소에서 친구의 딸, 아버지와 딸, 교감과 강사』라는 굴레를 벗어나 사랑은 뜨겁게 불타오른 것. 오랫동안 성생활을 억압당해 온 50대의 마지막 정열과 남자를 처음 경험한 젊은 처녀의 사랑이 이 세상 끝까지 변할줄 몰랐던 것. 방과후의「피아노」교실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둘은 정열을 불태웠고 때로는 서울, 부산등지로 사랑의 여행을 떠났다. 바로 죽기전날 일요일에도 성당에서 「미사」를 함께 본 두사람은 「피아노」교실로 와서 늦도록 함께 있었다는 것. 최(崔)모교사는 이들이 자주 동행여행을 떠나는 것을 알았으나『단 한치의 빈틈도 없이 깔끔한 성격의 이교감이 설마 죽기까지 하리라고는 도저히 짐작조차 못했다』고 말했다. 이교감의 집(인천시 중구 신생동)에서는 병든 부인이 너무나 엄청난 충격을 받아 병세가 악화, 혼수상태에 빠져있고 장남(22·서울모대학 3년)이 서울에서 내려와 집안 일을 돌보며『죽은 사람을 욕되게 하지 말라』며 침통해 했다. 김양집(인천시 남구 숭의동) 에서는 식모가 아무도 없다며 문을 잠가놓고 열어주지 않았다. 동료교사나 부하직원들에 의하면 평소의 이교감은 교육자로서 흠잡을데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 동교의 박(朴)모 교장도 기자를 만나자『할말이 없다』고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자리를 피했다. 그러나 학부형중의 한사람은 두교사의 그러한 관계를 알았다면 적어도 두사람을 한 학교에 있지는 않도록 했어야 옳을것이 아니냐고 학교 당국의 처사를 탓했다. <인천=김형호(金滎浩)기자> [선데이서울 71년 11월 14일호 제4권 45호 통권 제 162호]
  • [대우조선해양 M&A] 3社 인수 TF팀장에게 듣는 출사표

    [대우조선해양 M&A] 3社 인수 TF팀장에게 듣는 출사표

    월척의 꿈이 무르익었다. 대우조선해양이라는 알짜배기 대어(大魚)가 드디어 22일 시장에 공식 매물로 나온다. 두산그룹의 중도 포기로 인수합병(M&A)전은 현재까지는 포스코·GS·한화 3파전이 유력하다. 저마다 “우리가 최적임자”라며 한 치의 양보가 없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악성루머가 급속히 번지는 등 과열 조짐도 감지된다. 회사의 운명과 명예를 걸고 M&A전을 이끌고 있는 태스크포스(TF) 팀장에게서 ‘빅3’의 출사표를 들어보았다. ■해양플랜트 최강자 대우조선해양 세계 조선업 시장이 활황기에 접어든 2∼3년 전부터 대우조선은 기량을 맘껏 뽐냈다. 뛰어난 선박 제조 및 설계 기술력과 고급 생산인력이 밑바탕이 됐다. 성장 기세도 무섭다. 지난해 매출 7조 1050억원, 영업이익 3068억원을 기록했다. 올해는 보폭이 훨씬 크다. 올해 계획한 매출 9조 9000억원, 영업이익 6000억∼7000억원도 거뜬하게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상반기에만 매출 4조 7500억원, 영업이익 3572억원을 일궈냈다. 영업이익만 놓고 보면 지난 한해 영업이익을 이미 넘어섰다. 더욱 군침을 돌게 만드는 것은 성장 잠재력이다. 대우조선은 반잠수식시추선 등 해양플랜트의 최강자다. 고유가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쪽 성장은 불문가지다. 물량이 늘고 있는 LNG선과 30만t급 이상의 초대형유조선(VLCC)도 다른 조선사에 견줘 우위에 있다. ■포스코 “8조 인수자금 조달능력 충분” 대우조선해양을 잡겠다는 포스코의 의지는 확고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밀도가 높아지고 있다. 입이 무겁기로 소문난 이구택 회장조차 적극적으로 말문을 열 정도다. 지금까지 국내건 해외건 인수·합병(M&A)에는 도통 관심을 보이지 않던 포스코다. 이처럼 ‘고상한’ 기업 이미지를 갖고 있는 포스코가 염치 불구하고 ‘먹겠다.’고 나서는 이유는 뭘까. 답은 간단명료하다. 이번 M&A의 총괄책임자인 이동희 부사장은 21일 “장기 성장발전을 위한 신성장동력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는 반드시 인수해야 한다는 포스코의 분위기를 대변한다. 포스코는 대우조선이 세계 최고의 조선해양 전문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훌륭한 회사’라고 평가한다. 대우조선이 이러한 경쟁력을 유지하고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날개를 달아 줄 수 있는 새 주인을 만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부사장은 “40년간 축적해온 경험과 역량을 조선해양업에 접목하면 한국 조선해양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의미있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조선을 품에 넣기 위해서는 적어도 7조원, 많게는 8조원 이상의 인수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조건에 가장 근접한 후보가 포스코다. 포스코는 6조원 정도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부 자금조달도 별 걱정을 하지 않는다. 이 부사장은 “부채비율이 24%밖에 되지 않아 (외부 자금 조달에도)문제가 없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컨소시엄이 필요하다면 대우조선 경영에 도움이 되는 전략적 투자가를 찾을 것”이라고도 했다. 포스코는 GS와 한화 등 현재 거론되는 인수 후보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세우면서도 좀처럼 내색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낯빛을 가지런히 하려고 애쓴다. 특정 상대에 신경쓰기보다는 매각공고가 나면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두산이 중도포기하지 않았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포스코는 이번 M&A의 최강자로 꼽히면서 루머에도 시달렸다.‘정부 특혜설’ ‘대주주 반대 우려설’ 등이 대표적이다. 이와 관련, 이구택 회장은 “벌써부터 포스코가 가장 유력하다는 말이 나오는데 우리를 잘 안 되게 하려는 쪽에서 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GS “3년전부터 전담팀 꾸려 인수준비” “3년을 기다렸다.” 서경석 GS그룹 대우조선 인수 TF팀장(GS홀딩스 사장)은 “대우조선은 2005년 GS그룹 출범 때부터 타깃이었다.”고 잘라말했다.3년 전에 이미 전담팀을 꾸려 국내외 컨설팅업체 등과 함께 치밀한 인수 준비를 해왔다는 주장이다. 서 팀장은 GS가 대우조선을 인수해야 하는 당위성으로 “최고의 시너지효과”를 들었다.“GS건설의 육상 플랜트와 GS칼텍스의 에너지 네트워크 등이 대우조선의 해상 플랜트와 결합하면 포스코와 한화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막대한 시너지가 창출된다.”는 설명이다. 서 팀장은 경쟁 인수후보 대비 GS의 강점으로 “우량한 재무구조와 경영진의 높은 도덕성”을 꼽았다. 포스코의 자금력과 한화의 의지를 다분히 견제하는 발언이다. 인수주체인 GS홀딩스는 부채비율이 26%에 불과하다. 자기자본 2조 9000억원에 빚이 7600억원이다. 게다가 지난 3월 주주총회 때 회사 정관을 고쳐 전환사채 발행 한도를 5000억원에서 1조원으로 2배 늘려놓았다. 상환우선주 등의 발행 근거도 다양하게 터놓았다. 언제든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만반의 채비를 마쳤다는 얘기다. 서 팀장은 “대우조선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려면 노조뿐 아니라 전후방 연관사, 지역주민, 국가 등 전방위 지원이 필수적”이라며 “그러자면 경영진의 도덕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GS는 오너(허창수 회장)의 독단적 판단이나 주주간 분쟁 등으로 인한 기업가치 훼손을 찾아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GS에 대한 대우조선 노조의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덜한 것도 유리한 대목이다 그러나 GS에도 약점은 있다. 보수적 기업문화 탓에 입찰가를 높게 써내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팽배하다. 서 팀장은 “3년을 준비한 프로젝트인데 그럴 리가 있겠느냐.”며 “오너의 인수 의지도 확고하다.”고 일축했다. 대한통운, 하이마트 등 잇단 M&A 실패와 경험 부족 꼬리표에 대해서는 “M&A 경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수대상 기업에 대한 폭넓은 이해”라고 반박했다. 서 팀장은 “이미 대우조선 육성 청사진을 상세히 세워놓았다.”며 “실패는 없다.”고 자신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한화 “축적된 M&A경험 최대 강점” 지난 20일 증권가에는 난데없는 쪽지가 돌았다. 한화가 이날 대우조선 인수 포기를 선언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유시왕 한화그룹 대우조선 인수 TF팀장(신규사업 담당 부사장)은 “강력한 인수후보이다 보니 그런 악성루머도 도는 것 아니겠느냐.”며 “한화가 M&A에 나서 실패한 적 있느냐.”고 반문했다. 첫 마디부터가 도전적이다. 유 팀장은 “일단 인수하면 (인수회사를)그룹의 중추, 나아가 업계 1등으로 키웠다.”고 자부했다. 실제 대한생명, 한화갤러리아, 한화리조트 등 오늘날의 한화를 떠받치는 주력 계열사는 모두 M&A로 키운 회사들이다. 유 팀장은 “여러 매물을 올려놓고 검토했으나 시너지 효과나 성장성 측면에서 대우조선만 한 회사가 없었다.”면서 “대우조선은 한화의 향후 20년 신성장 엔진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2011년까지 해외매출 비중을 40%로 끌어올려 ‘글로벌 한화’로 도약하겠다는 그룹 청사진을 위해서도 대우조선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역설이다.“제2창업”을 내걸고 덤비는 이유다. 유 팀장은 “축적된 M&A 경험과 20년 무분규 노사문화를 토대로 대우조선을 인수하면 10년 안에 지금의 4배로 키울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 비중을 줄이고 자원개발 등 신규사업을 늘려 2017년 대우조선 매출을 35조원으로 불리겠다는 계획이다. 인수후보들 가운데 대우조선 투자계획을 가장 구체적으로 밝힌 곳은 한화다. 유 팀장은 그리스 등 세계 주요 선사(船社)들이 있는 나라들과 한화의 친분이 두터운 것도 강점으로 내세웠다. 대우조선의 선박 수주로 연결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대한생명 때처럼 이번에도 김승연 회장이 인수 제안서를 직접 제출할지도 관심사다. 한화를 끊임없이 공격하는 자금조달 능력과 관련, 유 팀장은 “2002년 대한생명 인수 뒤 다른 M&A에 참가하지 않았고 해마다 1조원대(그룹 전체)의 이익을 내왔기 때문에 자금여력은 충분하다.”고 반박했다. 우량 계열사 상장과 보유 부동산 매각 등으로도 ‘실탄’을 조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는 현금화에 시간이 걸리는 단점이 있다. 오너의 도덕성 논란과 관련해서는 “분식회계를 한 것도 아니고 부정(父情)이 빚은 우발적 잘못을 M&A에 끌어들이는 것은 지나치다.”고 강변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20&30] 솔로탈출 감동의 러브스토리

    [20&30] 솔로탈출 감동의 러브스토리

    ‘다른 사람들은 잘도 결혼하는데 난 왜 못할까.’ 결혼은 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는 미혼 남녀의 공통된 의문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자신보다 못났다고 여겨지는 이들도 짝을 만나 결혼식을 올린다. 직장이 안 좋은 걸까, 돈이 없어서일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 봐도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여론조사에서도 결혼을 못해 시달리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최근 결혼적령기의 20대 후반∼30대 미혼남녀 410명(남성 192명, 여성 218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 가운데 83.4%가 결혼을 위해 전문가의 조언을 얻고 싶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이들을 위해 기혼 남녀의 결혼성공담을 들어봤다. 그들의 감동적인 ‘러브 스토리’에서 결혼에 이르는 비법을 찾아보자. ●“사랑을 위해서라면 내 모든 것을 드리겠어요” 대부분의 연인들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에게 아낌없이 주는 ‘희생 정신’이 결혼에 이르는 지름길이었다고 회고했다. 직장인 최모(30·여)씨는 사랑을 위해 미국 유학을 중도에 포기했다. 공부보다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택했다. 최씨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과 동기인 김모씨와 눈이 맞았다. 김씨가 군 복무를 하던 2년 남짓을 빼곤 8년 동안 늘 붙어 다녔다. 그러다 2006년 초 대학원을 졸업한 최씨는 ‘미국 박사’를 바라는 부모의 강권에 못 이겨 김씨를 남겨둔 채 홀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김씨와 헤어져 지구 반대편으로 건너간 최씨는 외로움에 눈시울을 적시는 날들이 적지 않았다. 언제나 곁에서 힘이 돼준 김씨가 그리웠다. 그의 소중함도 뼈저리게 느꼈다. 그해 겨울, 더는 사무치는 그리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서둘러 귀국했다.“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남자친구 회사로 찾아가 ‘더 이상 떨어져 살 수 없다.’며 당장 결혼하자고 했어요. 그때 남자친구의 감동에 찬 표정은 지금도 선명해요. 부모님은 대경실색했지만 제 마음을 이해하시고는 결혼을 승낙했습니다.” 학원강사 임모(34)씨는 전형적인 ‘경상도 사내’다. 여성은 순종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재미와는 담을 쌓은 무뚝뚝함까지 겸비했다. 친구들은 그런 임씨가 절대 결혼하지 못하리라 장담하곤 했다. 하지만 예언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친구들 가운데 가장 먼저 반려자를 찾은 것이다. 임씨는 5년 전 같은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던 한 여인을 만났다. 그녀의 자태에 임씨의 굳은 마음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이후 새벽부터 출근해 그녀의 책상 위에 장미꽃 한 송이와 절절한 연모의 마음이 담긴 쪽지를 남겼다.‘꽃과 글’로 사랑의 마음을 전한 지 한 달째 되던 날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승낙했다. 그녀와의 첫 데이트 이후 임씨는 매일 강의가 끝나면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줬다. 함께 있는 동안에는 절로 온갖 유머가 튀어나왔다. 그런 임씨에게 위기의 순간이 찾아왔다. 여자 쪽 부모가 잘나가는 변호사와 맞선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그녀에게 이 소식을 들은 임씨는 경상도 사내의 뚝심과 배짱을 발휘할 때가 닥쳤음을 직감했다. 그는 문지방이 닳도록 그녀의 집을 드나들었다. 온갖 감언과 선물 공세로 부모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다. “당시엔 뭔가에 홀렸던 것 같아요.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듣긴 했지만 제가 180도로 확 바뀔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지금도 당시를 떠올리면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집안 반대에도 우리 사랑 변치 않아” 집안 반대에도 끝까지 사랑을 지켜내 결혼에 성공한 이들도 적지 않다. 교육업계에 종사하는 이모(39)씨는 지금도 부인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젖는다. 숱한 고비를 이겨낸 끝에 그녀와 하나가 됐기 때문이다. 이씨는 1992년 제대 뒤 복학했다. 그해 첫 전공수업 시간에 새내기로 들어온 과 여자후배를 알게 됐다. 서로 이야기가 통하고 취미나 생각이 비슷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늘 함께 지내며 서로를 위해주고 챙겨줬다. 두 사람은 같은 해 졸업했고, 나란히 중견기업에 취직했다. 남은 건 결혼뿐이었다. 하지만 시련이 닥쳤다. 이씨의 부모가 쌍수를 들고 반대했다. 여자친구가 무남독녀로 홀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집안이 너무 가난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심한 상처를 받은 나머지 회사도 그만두고 자취를 감췄다. 며칠 뒤 이씨도 사직하고, 그녀를 찾아나섰다. 우선 그녀의 고향인 경남 창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그녀는 아직 그곳에 있었다. 곁에 머물며 그녀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줬다. 이씨는 그곳에서 취직한 뒤 자리를 잡았다. 그녀를 도저히 떠날 수 없었다.1년 남짓 지났을 무렵 부모에게 “결혼을 허락하겠다.”는 연락이 왔다.“그때 여자친구가 어디에 있든, 몇날 며칠이 걸리든 꼭 찾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녀 말고 다른 그 무엇도 의미가 없었죠.” 증권회사에 다니는 이모(29·여)씨는 대학 선배인 박모(34)씨와 일심동체가 돼 양가 부모의 반대를 이겨내고 결혼에 성공했다. 양쪽 부모는 모두 두 사람의 결혼을 극구 말렸다. 집안 형편이 서로 맞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이씨의 집은 공직에 복무하는 아버지 덕에 풍족한 편이었다. 반면 박씨는 편모슬하에서 힘들게 컸고 가정형편도 좋지 않았다. 그러나 이씨는 4년 동안 변함없이 사랑했던 박씨와 헤어질 수 없었다. 박씨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매일 양쪽 집안을 오갔다. 좋아하는 음식을 사들고 가는 등 부모들의 마음을 돌리고자 노력했다. 문전박대를 수없이 당했지만 굴하지 않았다. 6개월간 끈질기게 달라붙은 결과 그토록 차갑기만 하던 부모들의 마음이 녹기 시작했고, 지난해 9월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양쪽 집안에서 고작 가정형편을 이유로 반대하고 나섰을 땐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떡하겠어요. 죽을 힘을 다해 양가 부모님들을 설득했죠.” 수년에서 수십년 동안 한 사람을 바라보며 키워온 사랑이 결실을 맺은 이들도 있다. 직장인 김모(36·여)씨는 1996년 대학 졸업 뒤 곧바로 취직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이듬해 졸업하고도 취업하지 못했다. 외환위기 여파로 취직은커녕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하기 힘들었다.‘백수’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남자친구는 취업 스트레스로 불면의 나날을 보내면서 점점 수척해져 갔다. 김씨도 마음고생이 심했다. 부모가 “내일 모레면 서른이다. 더 늦기 전에 결혼하라.”며 압박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김씨는 이런 어려움을 무심결에 남자친구에게 털어놨다. 그러자 남자친구는 대뜸 “좋은 남자 만나라.”며 이별을 통보했다. 하지만 김씨는 그가 아니면 그 누구와도 함께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김씨는 여행 가방에 옷과 생필품을 챙겨 넣고 무작정 그의 자취방으로 달려갔다. 방문을 열자 남자친구는 생라면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김씨는 그 모습을 보자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 달간 남자친구의 자취방에 머물며 그의 마음을 어루만져 줬다. 그녀의 지극 정성은 그해 겨울 결혼으로 빛을 발했다.“당시 집에서는 난리가 났지만 남자친구와 도저히 헤어질 수 없는데 어떡하겠어요. 그때 제 행동이 지금도 옳았다고 자부해요.” ●초등 동창생 중·고·대학까지 곁에서 돌봐 직장인 김모(33)씨는 20년 동안 한 여자만 바라봤다.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예쁜 외모와 밝은 성격 때문에 어릴 때부터 남성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김씨는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이르기까지 줄곧 그녀 곁을 지켰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지는 못했다. 대학시절 그녀는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면 “돈이 없다. 데려다 달라.”며 전화하곤 했다. 그때마다 김씨는 군말 없이 차를 몰고 가 계산을 치르고 해장국까지 먹인 뒤 집에 바래다 줬다. 그녀의 ‘주사’는 직장인이 되고나서도 여전했다. 그런 어느 날 그의 지성이 통했던지 그녀에게 변화가 감지됐다. 돌보듯 하던 무덤덤한 태도에서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따뜻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다른 남자와의 연애 이야기는 쑥 들어가고 그에게 “잘 생겼다.”,“여자 마음을 잘 살펴봐라.”는 등의 말을 늘어놨다. 김씨는 그녀의 말과 눈빛에서 그녀의 마음을 읽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참고 참았던 사랑을 고백했다. 김씨는 지난해 봄 그녀와 결혼했다.“결국 그녀 곁에 제가 남게 되리라 생각했어요. 미인은 강한 자가 아니라 인내심이 많은 자와 백년가약을 맺게 되리라고 확신했거든요.” 직장인 신모(28·여)씨는 짝사랑으로 오랜 가슴앓이를 했던 남자와 다음달 결혼한다. 신씨는 빼어난 외모 덕에 직장 동료나 선후배들 사이에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신씨는 자신을 좋아하고 쫓아다니는 남자들은 마다하고 언제나 냉랭하기만 한 선배에게 묘한 매력을 느꼈다. 선배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아침마다 커피를 타주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건네는 등 온갖 교태(?)를 부렸지만 그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초조한 마음에 친한 동료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에게 ‘선배가 해외지사 지원을 위해 아침마다 중국어회화 학원을 다니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신씨는 무작정 같은 반을 신청했다가 첫날부터 선배가 보는 앞에서 창피만 당했다. 선배가 수강하던 반은 고급반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아침마다 꿋꿋하게 나가 선배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선배도 신씨의 마음을 알았는지 한 달쯤 지나자 대하는 게 달라졌다. 출근 시간 전까지 중국어도 가르쳐주고, 아침도 같이 먹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면서 두 사람은 연인 사이로 발전했고, 결국 한 집에서 살게 됐다.“매일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학원에 갔어요. 어머니가 ‘잠도 많은 애가 웬일이냐.’며 신기해 하셨는데, 요즘 남편과 친정에 갈 때면 그때 일을 들먹이며 놀리곤 하세요. 중국어 실력이야 당연히 ‘꽝’이죠.” 김정은 황비웅 장형우기자 kimje@seoul.co.kr
  • [굿모닝 베이징] 中정부가 생각 못한 것

    13일 밤 한국 야구 대표팀이 야구 종주국 미국에 끝내기 희생플라이로 역전승을 거둔 짜릿함이 아직도 남은 가운데 숙소인 미디어빌리지로 돌아왔다.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처음 보는 명함만 한 크기의 초록색 카드 한장이 보였다. 청소를 마친 뒤 놓고간 모양이다.14일 햇빛이 난 뒤 흐리고 약간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 쪽지였다. 볼펜으로 최고 기온 섭씨 31도와 풍속 2∼3마일이 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왼쪽 빈자리에는 스마일을 표시하며 친절함을 강조했다. 개막 사흘째인 지난 10일 폭우가 내린 뒤 베이징의 하늘은 몰라보게 맑아졌다. 서울처럼 비온 뒤의 쨍한 하늘은 아니지만 그래도 소문만큼 나쁘지는 않았다.4일 도착할 때만 해도 베이징은 안개에 잠긴 도시였다. 낭만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오염물질 입자가 습기와 결합해 생긴 스모그에 덮여 안개가 낀 것처럼 가시거리가 수백m에 그친 것. 중국 정부는 올림픽을 앞두고 공기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그런 노력이 서서히 결실을 맺었다. 무려 1조 8000억여원을 들여 인공 강우를 시도, 공기 중에 있는 오염 물질을 씻어냈다. 대회 기간 중 공해 유발 공장의 가동과 건설 공사도 전면 중단시키는 극단적인 방법도 동원했다. 차량도 짝홀수제로 운행된다. 우연의 일치일 수 있지만 공기질이 좋아진다는 것을 체감하는 가운데 13일 처음 제공된 날씨 예보 카드를 보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중국 정부가 자신감이 생겼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잘못된 추측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맑은 하늘을 만들기 위한 중국 정부의 무모하기까지 한 노력을 떠올리면 어쩔 수 없다. 세상일은 순리를 따르지 않으면 부작용이 일어난다. 인공 강우 여파로 베이징시 주변 3개 성은 극심한 가뭄에 시달린다고 한다. 베이징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모두 비로 만들어버린 탓이다. 베이징 시내를 다니다 보면 곳곳에 건설이 중단된 채 흉물처럼 생긴 건물이 눈에 자주 띈다.높은 담장을 둘러치고 올림픽 슬로건이나 홍보 벽화로 가렸지만 추한 모습을 완벽하게 숨길 수는 없었다. 어쨌든 카드를 보면서 중국 정부가 올림픽만을 위한 게 아니라 인민의 건강을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베이징 플러스] “도핑검사 때문에 피가 모자라”

    남자 육상 100m 금메달 후보인 자메이카 출신의 스프린터 아사파 파월(26)이 “잦은 도핑 때문에 피가 모자랄 지경”이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13일 AP통신에 따르면 파월은 지난 1일 중국에 도착한 이후 무려 네 차례의 도핑 검사를 받았다. 파월은 기자회견 자리에서 “중국에 도착한 이후 무려 네 차례나 도핑 검사를 받아 기분이 몹시 상했다.”면서 “검사 과정에서 너무 많은 피를 뽑았다. 아마도 100m 경기를 하기도 전에 앙상해지고 말 것”이라며 뼈있는 한마디를 던졌다.●달라이 라마 “베이징 올림픽 지지” 프랑스를 방문하고 있는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73)가 12일(이하 현지시간) “베이징 올림픽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달라이 라마는 이날 프랑스 남부 에브리 지역에서 열린 베트남 불교사원 준공식에 참석해 “중국인들은 올림픽 게임을 개최할 만한 자격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달라이 라마는 강연을 들으려고 모인 1500명 남짓한 지지자들 앞에서 티베트 사태 등 민감한 현안은 언급하지 않았다. 자신의 프랑스 방문은 종교 활동의 일환일 뿐 정치 행보가 아니라는 입장도 거듭 강조했다. 달라이 라마는 13일에는 프랑스 의원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가졌다.22일에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부인 카를라 브루니와 면담한다.●찜통더위에 호주 기자 중태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로 베이징 시내가 점차 한증막으로 변해가고 있는 가운데 올림픽을 취재 중인 호주의 기자가 무더위로 병원에 실려가 중태다. 호주 매콰리 방송의 매튜 힐(24) 기자는 개막식이 열린 지난 8일 무더위 때문에 갑자기 쓰러진 후 건강이 악화돼 현재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에 놓였다고 AFP통신이 13일 보도했다. 힐은 최근 회복세를 보이는 듯했지만 12일 밤 갑작스레 상태가 악화돼 홍콩으로의 이송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역대 마스코트 3위는 `호돌이´ 1988년 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 ‘호돌이’가 역대 심벌 가운데 3번째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미국 MSNBC가 12일 인터넷뉴스로 보도했다. MSNBC는 역대 동ㆍ하계 올림픽 마스코트의 베스트5를 뽑았다.1위엔 1980년 모스크바 하계올림픽 때의 미샤,2위엔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하계올림픽의 코비,4위엔 베이징올림픽의 푸와,5위엔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의 스노레츠가 선정됐다. MSNBC는 우리나라 전통 상모의 용도를 이해하지 못한 듯 “호돌이가 왜 머리 위에 화장실 청소기를 얹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농담을 던진 뒤 웃음 짓는 호랑이가 친근감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암컷 호랑이를 상징하는 호순이도 소개됐다.또 테디 베어를 연상시키는 미샤는 끌어안을 듯한 인상을 준다면서 전설적인 레슬러 지미 스누카가 입었을 법한 무지갯빛 벨트와 금빛 올림픽마크 모양을 한 버클을 차고 있다고 묘사했다. 푸와에 대해선 매우 선량하고 친근한 인상이며, 네 마리 부엉이를 소재로 한 스노레츠는 여덟살 배기 아이가 12분 만에 후딱 만들어낸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워스트5’로는 ▲1996년 애틀랜타 하계올림픽의 이지 ▲2004년 아테네 하계올림픽의 아테나와 페보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의 네베와 글리츠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의 미지크 ▲1968년 그레노블 동계올림픽의 슈스가 뽑혔다.●中 ‘금메달리스트의 아빠를 찾아라’ 사격 여자 10m 공기권총 부문에서 중국에 세 번째 금메달을 안겨 준 궈원쥔의 생부를 찾아주자는 운동이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 번지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13일 전했다. 궈원쥔의 아버지는 딸이 태어난 직후 어머니와 이혼했다. 이후 산시성 서안에서 혼자 딸을 키웠던 아버지는 궈원쥔이 14살 되던 해, 딸을 사격에 입문시켰다. 그러나 1999년 궈원쥔의 아버지는 코치에게 “멀리 떠나려고 한다. 친딸처럼 여겨 그 애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의 쪽지를 남기고 떠났다. 이후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딸은 수차례 총을 놓고 방황했다. 올림픽을 1년 앞둔 지난해까지 방황은 계속됐다. 그의 마음을 다잡게 만든 것은 “금메달을 따는 것이 실종된 사람을 찾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코치의 말. 결국 궈원쥔은 금메달을 따냈고 이 안타까운 사정을 전해들은 중국 네티즌들은 중국 전역에서 궈원쥔의 아버지를 찾는 운동을 진행 중이다.베이징 올림픽특별취재단
  • [병자호란 다시 읽기](83) 다시 화친을 시도하다(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83) 다시 화친을 시도하다(Ⅰ)

    남한산성에서 고단한 나날을 보낸 것이 어느덧 17일, 병자년(丙子年)이 저물고 정축년(丁丑年)이 밝아 왔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상황은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 청 태종 홍타이지는 탄천(炭川)에 진을 쳤다. 청군 병력이 30만이나 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산성에 대한 청군의 정찰은 훨씬 강화되었다. 홍타이지까지 산성 근처로 다가와 자리를 잡았으니 청군은 이제 모든 역량을 다해 조선 조정을 압박할 요량이었다. 조선군 근왕병들이 산성으로 접근하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 남한산성에서는 다시 화친을 시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최명길·김상헌 사신 파견 싸고 대립 1월1일 원단. 인조는 백관들을 거느리고 서쪽을 향해 망궐례(望闕禮)를 마쳤다. 이어 2품 이상의 신료들이 인조에게 새해 인사를 올렸다. 새해를 맞아 광주목사(廣州牧使) 허휘(許徽)가 쌀로 떡을 빚어 인조께 진상했다. 신하들에게도 얼마간씩 떡이 돌려졌다. 성첩을 지키는 장졸들에게도 ‘새해 선물’로 특식이 주어졌다. 삶은 콩과 말고기였다. 나만갑(羅萬甲)은 떡을 대하니 아침부터 눈물이 난다고 적었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무엇인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조정은 비변사(備邊司) 낭청(郎廳) 위산보(魏山寶)를 청군 진영으로 보냈다. 이번에도 술과 고기를 들려 보냈다. 신년 인사를 겸하여 적정을 살펴보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청군 장수들이 조선 사신 일행을 대하는 태도가 영 달랐다. 사신 일행이 도착했을 때, 어떤 자가 위산보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들어가려 했다. 다른 자가 만류하여 겨우 멈췄지만, 태도는 여전히 뻣뻣했다.“황제께서 산성을 순찰 중이시니 우리가 함부로 받을 수 없다.”며 위산보 일행을 퇴짜놓았다. 이제 조선이 사신을 보내는 여부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투였다. 위산보가 돌아온 직후 인조는 신료들을 불러모았다. 먼저 청군의 군세(軍勢)를 놓고 논란이 빚어졌다. 김류, 이홍주(李弘胄), 홍서봉(洪瑞鳳) 등 상당수 신료들은 청군이 군세를 과장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산성에서 내려다보면 청군이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그들이 조선을 기만하기 위해 세력을 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료들은 홍타이지가 왔다는 것도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참으로 갑갑한 현실 인식이었다. 완전히 포위된 상황에서 적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소치이기도 했다. 최명길의 의견은 달랐다. 그는 청군이 이전부터 누차 ‘황제가 올 것’이라고 말해 왔던 것에 주목했다. 최명길은 ‘황제가 왔으니 조선 실정을 알리려 한다.’는 명목으로 청군 진영에 사신을 다시 보내 적정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헌은 하루에 두 번씩이나 사신을 보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김신국은, 근왕병들이 사신이 적진을 왕래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해이해질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역시 반대했다. 하지만 인조는 최명길의 의견에 동조했다. ●‘최악의 상황´ 예상 못한 화친론 김신국(金藎國)과 이경직(李景稷)이 다시 청군 진영에 가서 화친을 청했다. 청장 마부대(馬夫大)는 역시 황제가 순찰 중이라는 핑계로 즉답을 피했다. 이튿날에도 조선 조정은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할 지 여부를 놓고 논란을 벌였다. 황제가 진짜 왔는지, 황제가 온 것이 사실이라면 그를 만났을 때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황제가 왔다는 것을 이유로 인조에게 출성(出城)하라고 강요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논의가 분분했다. 김신국, 이경직, 홍서봉 세 사람이 청군 진영으로 다시 가기로 결정되었다. 인조는 그들에게 실언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최명길은 나라가 보전된 뒤에야 와신상담(臥薪嘗膽)도 할 수 있다며 그들에게 공손한 태도를 보이라고 주문했다. 김상헌은 적정을 정확히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지레 ‘와신상담’ 운운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다시 반박했다. 하지만 인조 또한 “강국도 약국에 거만하게 대할 수 없는데 하물며 약국이 강국에 뻣뻣하게 굴 수 있냐.”며 최명길을 두둔했다. 논란 끝에 예상되는 청의 요구 가운데 두 가지만은 따를 수 없다는 방침이 결정되었다. 하나는 인조에게 성에서 나오라는 요구이고, 다른 하나는 왕세자를 입송(入送)시키라는 요구였다. 이식(李植)은 화친을 추구하되, 그 내용은 철저하게 기존의 형제관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쨌든 이제 청과 화친하겠다는 방침은 다시 확고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청이 과연 조선의 바람대로 따라줄 것인가. 결과적으로 보면, 인조와 왕세자의 출성 거부를 ‘마지노선’으로 삼은 것은 그저 조선의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홍타이지가 몸소 탄천까지 내려와 산성에 대한 압박을 독려하는 상황에서 청이 ‘인조의 출성 불가’를 용인할 리 만무했다. 그럼에도 당시까지 비변사 신료들은 ‘최악의 상황’이 닥쳐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일부 신료들은 여전히 근왕병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김신국 등은 청군 진영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마부대 등을 만나자 황제에게 전하는 문안 인사를 건넸다.‘황제께서 풍설(風雪)을 무릅쓰고 먼길을 오셨으니 10년 형제의 의리상 염려가 되어 이렇게 찾아왔다.’며 분위기를 살폈다.‘형제관계’를 강조하면서 그들의 반응을 탐색하려는 의도였다. 잠시 후 용골대가 나와 누런 종이를 내밀며 황제의 조유(詔諭, 황제가 신료들에게 내리는 조서와 유시문)라고 일컬었다. 그러면서 조선 사신들에게 네 번 절한 뒤에 가져가라고 강요했다. 분위기에 압도된 김신국 등은 결국 네 번 절하고 그것을 갖고 돌아왔다. 참담한 심정이었다. 정묘호란 이후 후금과 형제관계를 유지해 왔지만, 조선 지식인들은 마음 속으로는 의연히 그들을 ‘오랑캐’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 ‘오랑캐의 칸(汗)’이 황제가 되고, 그가 내민 쪽지가 ‘조유’가 되고 ‘칙서(勅書)’로 변한 기막힌 현실을 직접 목도했다. ●형제→신하관계로 바뀐 현실에 경악 김신국 등은 인조를 알현했을 때, 모두 죽지 못하고 돌아와 송구스럽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홍타이지가 보낸 편지는 ‘대청관온인성황제(大淸寬溫仁聖皇帝)가 조선 국왕에게 초유(招諭)한다.’는 문구로 시작했다. 내용은 과거의 국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자신들은 조선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는데 조선이 명에 붙어 자신들과 적대했다는 것’ 등을 비롯하여 조선에 대한 섭섭함을 열거했다.‘청은 강하다고 뻐긴 적이 없는데, 약소국인 조선이 왜 대드냐?’는 것이 내용의 핵심이었다. 홍타이지는 특히 자신을 황제로 추대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리러 왔던 몽골 버일러들을 만나주지 않은 것을 질책했다. 과거 고려(高麗) 시절 요·금·원(遼金元) 세 나라에 신하를 칭하고 머리를 숙였던 조선이 지금은 왜 그리 뻣뻣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신을 보내기 전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이기는 하지만 막상 홍타이지의 ‘조유’를 접했을 때 신료들은 경악했다. 답서를 보내는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인조가 회의를 소집했을 때, 신료들은 머뭇거렸다. 누구도 섣불리 의견을 제시하지 못했다. 김상헌이 나섰다. 지금 사죄해 봤자 저들의 노여움을 풀 수 없을 것이니 차라리 군사들에게 적서(賊書)를 보여주어 적개심을 고취시키자고 촉구했다. 그러자 최명길이 막아섰다. 홍타이지가 온 이상 대적하려 할 경우, 나라가 망할 뿐이라고 신중한 대응을 촉구했다. 홍서봉이 절충안을 내놓았다. 답서에서 홍타이지를 부르는 명칭을 ‘제형(帝兄)’이라고 쓰자고 했다. 일각에서는 최명길, 장유(張維), 이식 세 사람에게 답서를 쓰게 하되, 그 중 하나를 선택해서 보내자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엄혹한 현실에 밀려 화친을 다시 추진하기로 결심했지만, 막상 오랑캐가 ‘황제’와 ‘조유’를 운운하는 또 다른 ‘현실’을 직접 마주했을 때 조선 조정은 고민했다. 그리고 그 고민은 다시 망설임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시간은 조선 조정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깔깔깔]

    ●임신부에게 적절한 운동 라마즈 분만을 배우기 위해 모인 산모와 그 남편들로 교실은 꽉 차 있었다. 강사들은 산모들에게 출산시 해야 하는 올바른 호흡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예비 어머니들, 임신 중 운동은 아주 많은 도움을 줄 거예요. 특히 걷는 것만큼 좋은 운동이 없답니다. 예비 아빠들께서는 무엇보다 꼭 시간을 내 아내와 함께 산책을 하세요.” 이때 모임의 중앙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손을 들고 이렇게 말했다. “저, 아내가 골프백을 들고 걸어도 되나요?”●결석한 이유 한 학부모로부터 자기 딸이 결석한 이유를 설명하는 쪽지를 받았다. “어제 우리 애가 결석한 것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일요일자 신문을 현관에서 들여오는 것을 깜빡 잊었습니다. 월요일에 그 신문을 발견한 우리는 그날이 일요일인 줄 알았습니다.”
  • [길섶에서] 서랍정리/함혜리 논설위원

    사무실에서 사용하고 있는 책상은 골동품 수준이다. 낡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로 오래됐다는 얘기다.20년은 됐을 법하다. 아래쪽 서랍이 잘 안 닫히기에 서랍 뒤쪽으로 손을 넣어 더듬어 보았더니 종이들이다. 앞서 이 책상을 사용했던 사람들이 서랍에 넣어두었던 것들이 서랍을 여닫는 사이 뒤로 넘어간 채 남아 있었던 것이다. 꺼내 보니 우편물과 자료, 메모 쪽지들이다. 누렇게 빛이 바랜 편지 한 통이 눈에 들어왔다. 남아메리카 온두라스의 우표가 붙어 있고, 겉봉에는 오래 전에 퇴사한 선배의 이름이 적혀 있다. 소인을 보니 1992년 4월20일이다. 다른 종이들은 미련없이 휴지통에 버렸지만 이 편지는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16년 전에 이 편지를 쓴 사람의 정성을 생각하니 마음에 걸렸다. 잠시 고민하다가 원래 편지가 있던 서랍 뒤로 다시 넣어버렸다. 보이는 것뿐 아니라 손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도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게 떠나는 사람의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서랍정리뿐일까. 주변 정리도 마찬가지일 게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고소 남발 법무법인에 불만 가장 많아

    저작권법 침해로 고소된 인터넷 이용자들은 고소인보다 이를 위임받은 법무법인에 더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법무법인에 대한 불만이 변호사업계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지숙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등이 지난 3월 ‘한국방송학보’에 발표한 ‘저작권 침해로 신고 및 고소된 인터넷 이용자들의 의식과 행동 의도에 관한 연구’에서 이같이 조사됐다. 우 교수 등이 지난해 7∼10월 3개월간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저작권 단속 관련 대책 카페’ 이용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저작권법 단속과 관련해 불만 대상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 230명 중 108명(47%)이 법무법인을 지목했다. 이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법 자체와 사법 종사자에 대한 불신과 경멸감을 갖게 되었다고 답했다. 고소인인 콘텐츠업체에 대한 불만은 45명(20%)에 그쳤으며, 자기의 잘못을 인정한 이용자도 58명(25%)이었다. 또 억울한 점과 잘못된 점을 묻는 질문에 답한 응답자 246명 중 107명(44%)이 사전경고가 없거나 쪽지나 이메일 한번 보내 경고가 미흡한 상황에서 곧바로 고소하고 짧은 기간 안에 합의를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58명(23.6%)은 법무법인들이 법집행이나 저작권 제도를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목적으로 고소를 하거나 합의금을 받는 것 같다는 불만을 표현했다. 법무법인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기분이 상했다는 응답도 16명(7%)이었다. 법제도 자체에 대한 불만은 7명(3%)에 불과했다. 개선방안을 묻는 질문에 답한 206명 중 81명(39%)이 사전경고를 통해 기회를 줘야 한다고 답했다. 저작권제도에 대한 구체적인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다는 응답은 54명(26%)이었다.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는 응답도 26명(12.6%)이었다.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친구의 아내와 불륜

    친구의 아내와 불륜

    강산도 변한다는 10여년동안 서로 쥔있는 몸이면서 불륜의 관계를 맺어오던 친구의 아내와 남편의 친구가 꼬리를 잡혔다. 불륜의 최장기 기록이라고 웃어넘기기엔 너무나 기가찬 이들이 빠진 인생의 함정은…. 부부싸움 뒤에 찾아와서 “기분풀자”며 중국집 가선… 이 불륜의 함정에 빠진 주인공은 신(申)형순여인(36·가명·마산시봉암동)과 김(金)복수씨(46·가명·마산시오동동). 신여인은 6남매의 어머니요, 김씨는 자식 넷을 거느린 가장. 이들이 강산이 변하도록 길게 길게 이어온 불륜의 관계는 드디어 꼬리가 잡혀 남편 이(李)씨의 고발로 지난 20일 쇠고랑을 차고 말았다. 이들의 불륜이 이루어지기는 약15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남 합천이 고향인 신여인은 창원군 구산면 모부락 이봉길씨(45·가명)에게 시집왔다. 이때 김씨는 신여인의 이웃에 살며 남편 이씨와는 어려서부터 막역한 친구-다정한 이웃으로 왕래도 잦았었다. 신여인과 김씨가 처음 불륜의 관계를 맺기는 이들도 잘 기억해내지 못하는 10여년전인 어느 여름날, 아침부터 가정불화로 아내와 싸움을 하고 남편이 홧김에 집을 나간사이 김씨가 신여인집에 찾아온 것. 기분이 몹시 불쾌해있는 신여인을 위로해 준다며 함께 점심먹으러 이웃 중국집에 가서 역사는 시작되었다. 점심대신 배갈을 마신 김씨는 술이 얼근해지자 생각이 달라져 신여인을 덮쳤다. 완강히 반항할 줄 알았던 신여인이 오히려 기다렸다는듯이 안겨오더라는 것이 김씨의 진술. 시간·장소는 쪽지로 연락, 꼭 낮에만 만나 1시간씩 그 후로는 김씨에게 오히려 신여인쪽이 먼저 만나자는 제안이 왔다는 것. 그후 이들 불륜의 행각은 고속도로모양 일사천리-시간과 장소가 적힌 쪽지로 만날 것을 약속, 10년동안 이것을 한번도 어겨본일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주로 구마산역 일대 여인숙과 남성동주변 여관에서 만나 일을 치르곤 시외「버스」를 타고 따로따로 돌아갔다. 반드시 낮에 만나 1시간만 즐기고 돌아가는게 이들의 밀회 방법. 10여년을 한번도 눈치채이지않고 이어올수 있었던 것은 이 방법을 철칙으로 삼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순조로왔던 불륜의 두남녀에게도 난관이 왔다. 서로 멀리 떨어지게돼 만날수가 없게된것. 65년 김씨가 창원에서 마산으로 이사오자 한동안 애타게(?) 그리워만 했다. 욕정에 눈먼 집념은 여인쪽이 더욱 강한 것인가 - 오랜 궁리끝에 김씨 곁으로 좀 더 가까이 가고자 이사를 하기로 결심한 것. 신여인은 남편을 들볶기 시작했다. 마산으로 이사 가자고 몇달을 졸라 시내 봉암동에 조그만 집하나를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그후로도 남편 이씨는 아무것도 모른채 김씨와 여전히 우정을 이어왔다. 신여인과 김씨는 누구의 의심도 받지 않은채 또다시 접촉을 계속 할수가 있게되었다. 아들을 하나 더 낳고 딸을 더 낳아도 이들은 변함없었다. 여자가 30대 중반을, 남자가 40대 중반을 넘어서자 이들의 정열은 더욱 농후해져갔다. 밀회의 횟수도 잦아지기 시작했다. 9월에 접어들자 거의 매일같이 만났다. 그러면서도 보통 연인들처럼 가정을 박차고나와 결혼하자는 소리는 누구도 하지않았다. 만날수 없게되는 그날까지만 즐기자는 묵계가 서로 이뤄져 있었다. 그들은 남몰래 즐기는 밀회가 탄로나리라고는 생각지않았다. 양쪽 가정에도 아무 불화없이 평온한 날이 계속됐고.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그들이 아무리 꼬리를 잘 도사려도 10년이란 긴세월에 철통같았던 비밀의 한구석이 무너지기 시작, 정체가 드러났다. “유부녀 관계” 자랑 일삼다 미행한 남편에게 들통나 남자는 여자를 정복하면 우월감을 갖게마련, 비밀을 남들에게 은근히 자랑하고 싶어한다. 김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발없는 말은 몇천리를 돌아 이씨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러나 김씨가 자기 아내와 관계했으리라곤 꿈에도 몰랐다. 사업관계로 자주 외지에 갔다오면 잠자리에서 가끔 아내의 거부를 받았다. 그러던것이 찬바람이 일자 부쩍 아내의 항거가 심해져 의심하기 시작,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해도 김씨와 연관지어져 잠못 이루는 밤이 많아졌다. 지난 20일 이씨는 아내에게 시골에 갔다 오겠다며 집을 나서 마을어귀에 숨어있었다. 의심했던대로 아내가 시내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뒤를 미행, 남성동 S여관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을때 이씨는 10년 쌓은 탑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충격을 받고 한동안 정신을 가눌수가 없었다. 여관방문을 잡아제치자 당황한 김씨와 아내가 벌거벗은채 이불을 뒤집어썼다. 아내의 입에서 10여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불의의 고백에 이씨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다음날 이씨는 아내와 친구를 간통혐의로 고소를 제기하고 말았다. 경찰에 붙들려온 이들은 범행횟수와 날짜, 장소 등을 묻는 경찰관에게 10여년의 일을 어떻게 다 기억할수 있겠느냐며 고개를 떨구었다. <마산(馬山)=송수남(宋守男)기자> [선데이서울 71년 10월 17일호 제4권 41호 통권 제 158호]
  • [서민 등골 빠지는 ‘新 3고시대’] “콩나물 1000원어치로 한끼 못먹어”

    [서민 등골 빠지는 ‘新 3고시대’] “콩나물 1000원어치로 한끼 못먹어”

    “아유∼ 정말 비싸서 못 사겠네.” 1일 오후 4시 주부 이영선(53)씨의 장보기에 따라나선 지 벌써 30분째. 농산물 가격이 가장 싸다는 서울 가락동농수산물시장 골목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무를 찾고 있지만 그의 맘에 드는 싸고 질좋은 ‘녀석’은 도통 보이지 않는다. ●배추값 올라 김치 안 담근지 한참 그의 다리통보다 큰 무가 2000원 푯말 뒤에서 손짓한다. 저렴한 녀석들도 그 뒤에 1000원 푯말 뒤에 줄 서 있다. 이씨는 그네들을 힐끗 보고는 감자부터 사야겠다고 발길을 돌린다.“어휴∼ 작년에 2개에 500원짜리들이 무슨… 국물 우리는 무는 좀 못생긴 거 사도 되는데 안 보이네.” 이씨는 감자가게에서 강원도와 충남에서 올라온 감자 값을 물어봤다.20㎏에 1만 7000원. 비싸다는 이씨의 말에 주인아주머니는 “그럼 말도 붙이지 마요. 2월에 6만원 하던 게 엄청 떨어진 것도 모르나.”면서 쏘아붙였다. 이씨는 발걸음을 옮겨 감자가게를 열 곳 이상 돌아다니며 값을 물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결국 한 가게에서 1000원을 깎아 1만 6000원에 감자 한 박스를 샀다. “우리 아저씨 일감이 없어서 열흘째 놀아요. 기초보호대상자라고 국가에서 주는 돈 20여만원을 쌀로 대신 받고,4년 전에 암을 앓고 나서 먹는 약값·검진비 70만∼80만원 들이고 나면 한 달에 시장 볼 수 있는 돈은 10만원도 안돼요.“ 따라다니기에 지친 기자에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과일 가게는눈길도 주지 않는다.1년 전부터 단 한 번도 과일을 사 먹은 적이 없단다. 콩나물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기 옛말이지 콩나물 1000원어치 사도 한 끼도 못먹어요. 싼 걸로 말하면 요즘 식탁에는 얼갈이가 최고 효자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옷은 구청 벼룩시장서 해결” 한 단에 1000원짜리 얼갈이 배추를 집으면서 이거면 일주일 동안 된장국·겉절이로 최고란다. 김치는 배추값 올라 안 담근지 3개월째다. 이씨는 호박 3개에 1000원이라는 말에 잠시 발길을 멈춘다. 좀 생각에 잠기더니 “하나에 300원도 넘네. 청양고추는 얼마요.”라고 묻는다.2근쯤 돼보이는 바가지 하나에 2000원어치를 주인과 실랑이 끝에 샀다. 이씨가 적어온 쪽지에는 이제 무·두부·고사리가 남았다. 판 두부 한 모에 1300원. 두부 사는 것을 포기했다. 마른 고사리 1개에 2000원. 이제는 이씨도 지쳤는지 고사리는 다 똑같다면서 샀다. 기자가 “무는 안 사세요?”하고 묻자 이씨는 “힘들어서 도저히 못찾겠어요. 그냥 얼갈이 된장국이나 해먹지 뭐….”라면서 짐을 들었다. 그래도 아쉬운 듯 출구로 나가는 동안에 이집 저집 무 가격을 물어 본다. “토요일에 서초구청 벼룩시장에 가면 옷도 500원·1000원이면 사요. 과일이야 비싸 안 먹는다고 해도 두부·콩나물 값은 그러면 안 되지. 프로판 가스 가격이 작년에 3만 3000원이었는데 7월이면 4만원이 된다고 하대요. 라면도 한 달에 40개는 먹는데 한 개에 100원이나 올랐어요. 돈 걱정 없이 며칠이라도 살아보는 게 소원이에요.”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어느 고양이’의 무상 행위

    ‘어느 고양이’의 무상 행위

    노년의 렘브란트가 늙고 병들자, 사정을 딱하게 여긴 한 친구가 돈을 건네며 말했다. 이 돈으로 몸을 보할 음식이라도 사 먹게나. 그러나 렘브란트는 ‘헛되고 헛되니 헛되도다’라는 성경구절을 되뇌며 그림물감을 사는 데 그 돈을 몽땅 써버린다. 영인문학관 강인숙 관장이 홈페이지 인사말에 이 일화를 인용한 속뜻은 분명해 보인다. 스스로가 가장 원하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행복해지기 위한 최선의 선택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인문학관, 문인들의 영혼과 숨결이 느껴지는 곳 2001년에 개관한 영인문학관의 시발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2년 남편인 이어령 선생이 《문학사상》을 창간하면서 문인들의 초상화를 표지에 실은 게 첫 걸음이었다. 문인 초상화가 전무하다시피 했던 시기, 그러나 문학을 사랑하는 여러 화가들의 동참으로 생소한 그 작업을 가능케 할 수 있었다. 화가들은 수록 대상이 된 작가의 작품 내용과 주제를 반영해 특색 있는 초상화를 그려냈을 뿐 아니라, ‘화가의 말’도 직접 썼다. 현재 전시 중인 100여 점의 초상화가 그 시절에 그려진 작품들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우리나라의 문학관은 대부분 기념관 형태였다. 영인문학관은 현대문학관에 이어 박물관의 면모를 갖춘 두 번째 문학관인 셈이다. 개관 당시 강인숙 관장은 병마와 싸우고 있었다. 병원에서 인후암 판정을 받던 날, 그는 그동안 수집해둔 자료 정리에 들어갔다. 암 선고를 받고 집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이 문학관 개관을 서두르는 것이었다니, 어떻게 그리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사명감’이라고 대답했다. 외국과 달리 박물관의 성격을 띠는 문학관이 없다는 것은 문단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속상한 일이라며. 담담한 그의 얼굴 위로 늙고 병약한 렘브란트의 얼굴이 겹쳐졌다. 홈페이지에서 읽은 <나는 왜 문학관을 하게 되었는가>라는 글 가운데 ‘김동인의 낡아빠진 명함이나 글씨도 판독하기 어려운 이상의 초고를 누가 나만큼 사랑하랴’는 문장도 떠올랐다. 병든 몸이 아니라도 버겁고 힘겨운 그 일을, 강인숙 관장은 문학에 대한 애정으로 해냈다. 서울 평창동에 위치한 영인문학관은 좋은 입지 조건을 갖췄다고 말하기 힘들다. 가파른 오르막을 한참 올라가야 하니 무심히 길 가다 들를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약도가 그려진 쪽지를 들고 길을 물어 찾아오는 사람,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흠뻑 젖어서 들어오는 사람, 부산이나 제주도 같은 원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오는 사람, 그들이 있어 강인숙 관장은 보람을 느낀다. 그렇게 찾아오는 관람객이 하루에 한 명만 있어도 영인문학관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는 강 관장의 말. 이곳을 찾아 발품을 판 사람들이 문학과 예술에 대해 담소를 나누는 장면과 그런 이들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는 강인숙 관장의 모습이 그려졌다. 인연을 통해 본 성찰의 기록, 어느 고양이의 꿈 “딸 많은 집 셋째 딸은 선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말이 있죠? 제가 바로 그 딸 많은 집 셋째 딸이에요.” 신작 에세이를 보여주며 강인숙 관장이 말했다. 교육열이 대단했던 그의 어머니는 열 살 된 아들을 폐렴으로 잃은 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종용하지 않았다. 살아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 어머니 아래에서 자란 그는 성적 경쟁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공부만 하고 읽고 싶은 책만 읽으며 중학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철이 들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공부를 시작했고,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그는 스스로가 자유롭다고 느꼈다. 남과 겨뤄서 이기기보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살았다고. 그 딸 많은 집 셋째 딸이 최근에 낸 수필집 제목이 《어느 고양이의 꿈》이다. 고양이는 사람 좋아하고 북적대는 분위기를 즐기던 그의 어머니가 내성적인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기도 하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은 ‘인연’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영인컬렉션1’이라는 제목이 붙은 1장은 문인들과의 만남과 그 관계에 얽힌 예술품을, 다음 장인 ‘영인컬렉션2’는 한국 민속품과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3장 ‘만남의 11가지 패턴’에서는 넓게 관계 맺지 않는 고양잇과의 인간이 소중하게 여기는 몇몇 사람을 얼마나 깊이 사랑하는지 보여준다.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과 예술에 관한 조예가 엿보이는 저작이다. 그는 책을 출간할 때마다 판매부수에 연연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특히 수필은 대중 앞에 발가벗고 서 있는 느낌이라 많이 안 팔렸으면, 생각했던 적도 있다고.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어느 고양이의 꿈》을 통해 대중들이 문인을 알고 이해하고 사랑하면 좋겠다고, 그래서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주기 바란다는 그의 말에서, 동료와 선후배 문인을 생각하는 살뜰한 마음이 다시 한번 느껴졌다. 문인 초상화전, 상상력과 현실 사이 최근 영인문학관은 이사를 하면서 문인 초상화전 ‘상상력과 현실 사이’를 기획했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다양성’이었다. 김삿갓과 신사임당부터 2000년대 들어 더욱 왕성하게 활동하는 권지예, 정미경에 이르기까지, 대상 문인을 선정하는 데 있어 활동시기에 전혀 구애받지 않은 듯 보였다. 화풍도 전통기법을 답습한 작품부터 간소화된 선만으로 표현된 추상적인 작품까지,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초상화뿐 아니라 자화상, 캐리커처, 마스크, 흉상, 사진에 이르기까지 작품이 100점이 넘는다. 화가별로 전시하는 새로운 시도도 했다. “초상화는 눈을 그리는 게 가장 까다로운 것 같아요. 특히 작가들의 눈은 더 그렇죠. 눈은 그 사람 내면의 진정성을 드러내요.” 그렇게 말하는 강인숙 관장의 눈도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형형하다. 천생 작가의 눈이구나, 싶다. 너나 할 것 없이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다닐 만큼 사진이 보편화된 시기에 초상화전을 하는 의미에 대해 물었더니, ‘진실과의 닮음’이라고 말한다. 사진이 리얼리즘(realism)이라면 초상화는 그리는 이의 상상력이 가미되는 데 변별력이 있다는 것이다. 대상이 가진 개성을 포착하여 창작자 고유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 그러면서 대상과의 닮음이 확보되는 것이 창작자가 부여하는 예술혼일 것이다. 시간을 정지시켜 얻어낸 영원. 초상화와 사진의 가장 큰 차이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초상화뿐 아니다. 문인서화, 육필원고, 삽화, 지필묵, 작고한 문인의 유품 등은 물론이고 작가들이 기증한 애장품이 수저집에서 장바구니에 이르기까지 전시관을 가득 메웠다. 그중에서도 부채는 강인숙 관장이 유난히 자부심을 가지는 부문이다. 문인부채와 화가부채를 가지고 예전에 전시회를 한 적도 있단다. 그의 긍지를 입증하듯, 영인문학관이 소장한 부채들은 뛰어난 예술성을 가지고 있다. 부채를 비롯해 소장 물품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각별하다. 강인숙 관장은 문인들이 죽은 뒤 자녀들이 유품을 나눠가지는 과정에서 전시 가치 있는 물건들이 사라지는 것이 무엇보다 안타깝다. “전시를 하면 도록이라도 남잖아요.” 그 말에, 누군가는 나서서 문학 관련 자료를 모으고 관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느껴졌다. 개인 소장일 경우 자료가 온전하게 관리, 보관되기 힘들다는 것도 그의 안타까움을 더 절박하게 한다. 그토록 지극한 애정이고 보니 기증 받은 자료를 전시하지 않고 사장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일찍이 앙드레 지드는 ‘무상의 행위’에 관해 설파했다. 《교황청의 지하실》이라는 작품에서 도덕을 초월한 절대적 자유를 실험하기 위해 무동기의 살인, 이른바 ‘무상의 행위’로서 살인을 저지르는 주인공 라프카디오를 등장시킨다. 만약 인간에게 순수한 자유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 않는 무동기의 무상 행위이리라. 영인문학관은 강인숙 관장에게 문인과 독자에 대한 사랑을 가시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일 뿐 어떤 목적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상의 행위’라 할 수 있다. 글·사진 하재영 소설가     월간 <삶과꿈> 2008년 7월호 구독문의:02-319-3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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