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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지도의 오열/이순녀 사회부 기자(현장)

    ◎“사체 흔적도 없는데…” 구조대 철수에 허탈 「9시50분 검정색 가죽장갑,10시20분 신용카드 입회신청서 4장,10시25분 흰색 아동용운동화…」.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발생 24일째인 22일 상오 서울 마포구 상암동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 실종자 유류품과 사체수색을 위해 잔재물 더미를 파헤치는 포클레인 옆에 바짝 붙어서 상오 내내 작업을 지켜본 실종자가족 강희경(23·대학생)양.그녀의 손에는 작업중 발견된 유류품들을 시간별로 꼼꼼히 적어놓은 쪽지가 들려 있었다.백화점에 쇼핑을 갔다가 실종된 어머니와 두 동생의 작은 흔적이라도 찾기위해 이모들과 함께 이 곳을 찾은 지 벌써 닷새째다. 강양은 포클레인이 조금씩 쏟아내는 흙더미 사이를 샅샅이 뒤져도 「엄마의 유류품」이 나오지 않자 끝내 울먹였다. 마찬가지로 지난 18일부터 딸의 시신을 찾고 있는 이선규(48·부천시 원미구)씨도 『잠시도 한 눈을 팔지않고 잔해물 더미를 뒤지고 있으나 아직 딸의 소지품하나 찾지 못했다』고 한숨을 쉬었다.모든 작업이 끝난만큼 이제 그나마 기대를 걸 곳은 여기밖에 없지 않느냐는 표정이었다. 이씨처럼 대부분의 실종자가족들은 이곳을 마지막 희망으로 삼고 유류품과 시신의 일부라도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그러나 지금까지 발견된 것은 유골로 추정되는 뼈 25점 뿐으로 기대 이하다.더구나 야적장 1만5천여평 가운데 절반은 이미 수색작업이 끝난 상황이다.25일쯤이면 모두 마무리될 예정이어서 실종자가족들의 마음만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점심식사를 위해 잠시 중단됐던 수색작업을 다시 시작하려던 이날 하오 1시쯤 실종자가족들이 갑자기 술렁대기 시작했다.붕괴사고 현장에서 구조대원과 장비들이 철수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것이다.허겁지겁 현장으로 돌아가는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이 무척 애처로웠다.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만들었을까,도대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나­. 시간이 흐를수록 실종자 가족들의 애틋한 사연들도 모든 이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게 분명하다.『도대체 우리가족이 왜 이런 험한 꼴을 당해야 합니까』 울먹이며 난지도를 떠나는 강양의 분노어린 목소리는 아주 오래도록가슴에 남을 것 같았다.
  • 「베트남 참전비」에 몰린 인파/나윤도 워싱턴특파원(오늘의 눈)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20년만에 미국과 베트남과의 관계정상화가 발표된 다음날인 12일,워싱턴 한복판에 위치한 베트남 참전비에는 보통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이날따라 조화도 더 많이 놓여있고 쪽지편지도 더 많아 보였다. 지난 82년에 완성된 이 참전비는 높지막하게 위치한 보통 참전비와는 달리 반 지하로 내려가,반들거리는 검은 화강암을 사람 키높이에 중심각이 넓은 V자형으로 길게 세워 놓았으며 그 벽에 음각된 5만8천여명의 전사자 명단을 손으로 직접 만질수 있게한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보통때는 관광객들로 붐비지만 이날은 달랐다.전날 대통령의 국교재개 선언을 지켜본 참전용사들과 가족들이 약속한 것도 아니면서 자연스럽게 모여들었다.전우의 이름을 만지던 60대의 참전용사는 대통령의 발표를 『시대의 흐름에 따른 어쩔수 없는 조치』로 받아들였다.그러나 40대의 참전용사는 『어리석은 짓』으로 몰아붙였다.이름위에 흰종이를 대고 연필로 마구 그어대 자식의 이름을 하얗게 베껴낸 70대 할머니는 『올때마다 베껴낸이름을 모아 앨범을 만들고 있다』며 선언 따위에는 무관심을 표시했다. 그래도 만지거나 베껴낼 이름이라도 있는 이들은 『실종자(MIA)와 포로(POW)를 먼저 찾아내라』고 검은 매직으로 쓴 판을 목에 걸고 참전비 주위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실종자가족보다는 훨씬 다행스러워 보였다.『실종자와 가족들에 대한 블랙화요일의 대학살』이라고 쓴 판도 눈에 띄었다. 베트남 전선으로 파병됐다가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는 미군의 수는 2천2백2명.미국정부는 매년 1억달러의 예산을 들여 베트남당국의 협조아래 수십차례 수색작업을 벌여왔지만 이렇다할 소득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베트남과의 국교재개는 바로 이들 실종자들을 찾는데 본격적인 베트남의 협조를 얻기 위한 것이 가장 첫째의 이유이며 경제적 이익이나 안보적 이익은 부수적인 것이라고 클린턴 대통령은 강조했다. 그러나 베트남 참전비 주위를 맴돌며 20년을 한결같이 기다려온 실종자 가족들에게는 대통령의 강조도 설득력이 없어 보였다.갑자기 누군가가 『젊은 병사들의 생명을 담보로 동남아시장에 접근하려 하느냐?』는 글귀가 쓰여진 판을 눈앞에 들이댔다.
  • 북한 공산정권 수립(새로쓰는 한국 현대사:26)

    ◎대의원 선거 흑백함 놓고 전형적 공개 투표/북노당 출신 당권장악 하자 남노당측 불만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하자 38이북의 공산주의자들도 자체 정권 수립을 서두른다.단독정부 반대,통일정부 수립이란 명분을 내세워 유엔한국임시위원단 입북과 5·10총선거를 거부했던 그들로서는 자체 정부 수립을 더이상 늦출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정권수립을 일찍부터 준비해온 만큼 막상 그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7월달 초에 이미 결정 1948년 8월25일 북한 전역에서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이 날짜는 7월9·10일 열린 북조선 인민회의 제5차 회의에서 이미 결정난 것이었다.8·25선거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먼저 「친일분자 제외」라는 명목아래 반대세력의 선거권·피선거권을 빼앗아버렸다.또 인구 5만명에 하나꼴인 2백12개 선거구의 출마자를 미리 지정하고 이에 대해 찬반을 묻는 흑백함선거를 실시했다.흑백함선거란 투표장에 흑백 2개의 투표함을 설치해 찬성자는 흰 함에,반대는 검은 함에용지를 넣는 전형적인 공개투표 방식이다.더욱이 주민들을 직장·마을별로 집단 동원한데다 병자·노약자에게는 투표함을 들고 찾아가 투표를 시켰다.말하자면 투표를 하지 않을 자유마저도 박탈한 비민주적인 선거였다.따라서 유권자 4백52만6천65명 가운데 99.97%인 4백52만4천9백42명이 참가해,98.49%가 찬성표를 던진 어처구니 없는 결과가 나왔다. 어쨌든 2백12명의 대의원이 선출됐고 여기에 해주 인민대표자회의에서 미리 뽑은 남쪽의 대의원 3백60명을 합쳐 제1기 최고인민회의가 구성됐다.「해주회의」는 북한정권이 남한 주민의 의사까지 모두 수렴했다는 주장을 내세우기 위해 마련한 행사였다.48년 7월 남한 각지에서는 인민 대표를 뽑는다는 지하선거가 남로당 주도로 실시됐다.여기서 선정된 대표들은 해주에서 8월21일 대회를 열어 최고인민회의 남쪽 대의원을 선출했던 것이다. 9월2일 최고인민회의가 개막돼 의장에 허헌 남로당 위원장,부의장에 김달현(천도교청우당 위원장)과 이영(근로인민당 부위원장)을 각각 선출했다.둘째날에는 대의원 5백72명에 대한 자격심사 결과를 발표했다.대의원 가운데 여자는 69명으로 12.1%이고,연령은 30∼40대가 2백32명으로 가장 많았다.성분별로는 농민(34%),사무원(26.7%),노동자(20.9%)순이었으며 특이하게도 전지주가 1명 있었다. ○각본대로 선거 연출 한편 해주 인민대표자회의와 8.25선거를 각본대로 연출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인 북한정권 수립 작업은 그러나 곧 암초에 부딪힌다.내각 구성을 놓고 북로당과 남로당 사이에 권력투쟁이 시작된 것이다.남쪽에서도 내각이 구성된 뒤 불만을 품은 한민당이 야당으로 돌아선 일이 있지만 북쪽 사정은 훨씬 심각했다.내각의 주도권을 잡는 것이 바로 정권장악과 직결되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연일 회의를 열어 내각 구성을 논의했다.먼저 각 성의 상(장관)을 어떤 비율로 나누느냐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남로당은 대의원 숫자를 감안,남북이 6대 4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결국 남북이 절반인 10명씩 맡기로 결정했다.그러나 실제 남로당과 북로당이 차지한 자릿수는 크게 차이가 났다.북쪽을 완전 장악한 북로당은 지분 가운데 9석을 가졌지만 남로당은 남쪽지분 중 5석을 확보하는데 그쳤다.나머지 5석은 기타 정당들이 나눠가졌다.내각 구성에서 북로당은 남로당을 압도한 셈이다. 비율이 정해진 뒤 구체적인 인선에 들어가자 갈등은 증폭됐다.내각 수상은 소련에서 점지한 김일성으로 이미 정해졌고 부수상 3명도 남의 박헌영과 홍명희,북의 김책 등으로 쉽게 결정됐다. 정작 문제가 된 자리는 사법상이었다.남로당은 최용달을 사법상으로 추천했다 북로당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자 다시 이승엽을 내세웠다.이에 대해 북로당은 『이승엽이 남쪽에서 할 일이 많으므로 무임소상이 알맞다』고 주장했고 남로당은 『그가 남로당 현지 지도부를 맡았던 지도자이므로 권위있는 자리를 줘야 한다』고 맞섰다. 외무상 자리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북로당은 주영하를,남로당은 북조선인민위원회 외무국장을 지낸 남한출신 이강국을 각각 추천했다.양쪽은 외무상이 남쪽 지분임을 인정,부수상 박헌영이 겸직한다는 선에서 타협했다.주영하는 교통상으로 자리를 바꿨고 신진당 출신 이용이 도시경영상으로 결정됐다.내각 구성 논의는 「인민공화국」선포 하루전까지 계속됐고 몇몇 자리는 김일성에게 인선을 위임했다.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는 김두봉이 내정됐다. ○주로 연안파가 득세 북한 공산정권의 첫 내각과 주요 직책 명단은 다음과 같다.(★표는 남쪽 출신) ▲수상 김일성 ▲부수상 박헌영(★) 홍명희(★) 김책 ▲국가계획위원장 정준택▲민족보위상 최용건▲국가검열상 김원봉(★) ▲내무상 박일우 ▲외무상 박헌영(★) ▲산업상 김책 ▲농림상 박문규(★) ▲상업상 장시우 ▲교통상 주영하 ▲재정상 최창익 ▲교육상 백남운(★) ▲체신상 김정주 ▲사법상 이승엽(★) ▲문화선전상 허정숙 ▲노동상 허성택(★) ▲보건상 이병남(★) ▲도시경영상 이용(★) ▲무임소상 이극로(★) ▲최고재판소장 김익선 ▲최고검찰소장 장해우 ▲법제위원회 위원장 허헌(★). 내각이 구성되자 남로당은 큰 불만을 품게 된다.숫적으로도 열세인데다 비교적 힘있는 자리들을 대부분 빼앗겼기 때문이다.특히 연안파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비롯,내무·재정·문화선전상 등을 거머쥔 것에도 못미친다고 판단했다.이같은 불만은 정권 수립후 여러 형태로 노출됐고 드디어는 김일성과 박헌영 간의 전면전으로 확대돼 남로당파의 몰락을 불러오게 된다. 9월8일 최고인민회의 5일째 회의에서는 「인민공화국」헌법을 승인하고 즉시 「전조선 지역에서 인공헌법을 실시한다」고 공표했다.이어 ▲그동안 북한을 통치해온 북조선인민위원회의 정권이양 선언 ▲최고인민위원회의를 이끌 상임위원회 위원장 및 위원 선출 ▲새 수상에 김일성 선출 및 조각 위임등 각종 요식절차를 끝냈다. 1948년 9월9일 상오 10시.평양 모란봉극장에서는 최고인민회의 6일째 회의가 열렸다.김일성이 등단해 조각 결과를 발표하자 대의원들은 박수로 승인했다.김일성은 곧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수립을 정식 선포했으며 그 자리에 모인 남북의 공산주의자들은 열렬히 환호했다.일제로부터 벗어난지 3년,남쪽에서 대한민국이 출범한지 25일만에 북쪽에는 공산주의자들이 세운 별도의 정권이 들어선 것이다.◎노동당중앙위 출당 결정서/반대세력은 현 일·반동지주로 몰아 숙청/당 추천 국비생 부친 경력까지 면밀 분석/「반공」 혐의 드러나면 “파렴치범” 추가시켜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광복과 함께 38이북 지역을 장악하면서 정치적 반대세력들을 친일분자니 반동지주니 갖은 구실을 붙여 무자비하게 숙청했다.따라서 1948년 8월25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할 당시 이렇다 할 반대파는 북한에 존재할 수 없었다.설사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마음을 드러낼 수 없는 분위기였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워싱턴 미국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에서 찾아낸 한장의 출당 결정서는 당시 실정을 실감나게 보여준다.「19 47년 10월29일 북조선노동당 중앙검열위원회 상무위원회」명의로 작성되고 「절대비밀」 도장이 찍힌 이 결정서는 한재련(당시 25세)이라는 청년당원을 쫓아내는 이유를 밝혔다. 한재련은 당시 25세로 김일성대학 역사문학부 철학과 1학년이었다.당의 추천을 받은 국비생이었고 민청 중앙위원,당세포책임자를 맡은 촉망받는 공산주의자였다.그런 그가 쫓겨난 이유는 간단하다.출신성분이 나쁘다는 것이다. 결정서는 먼저 한경련이 ▲해방후 한달동안 신민당에 몸담은 적이 있으며 ▲부친이 일제 때 10년동안 형사로 활동했음을 지적했다.결국 공산주의에 반대한 신민당 입당 경력이나 친일파의 아들이라는 성분을 뒤늦게 알게 돼 쫓아낸다는 뜻이다. 결정서는 이와 함께 「학습에 태만하고 음주 방탕하였으며」,「학교 공금 1천5백원을 횡령했다」는 등의 이유도 덧붙였지만 이는 한경련을 파렴치범으로 몰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출신성분이 좋지 않으면서도 국비생에 당의 중책까지 맡은 사람이라면 개인적인 약점을 잡히지 않으려고 더욱 노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경련은 유명한 인물이 아니어서 출당후 그가 어떻게 살아갔는지 알 길은 없다.다만 해방이후 6·25전쟁 때까지 수백만의 북한 동포가 공산정권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왔듯이 그도 어느땐가 위험을 무릅쓰고 38선을 넘어 대한민국 땅에 정착했을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기자 김성호 〃 〃 김경운 조사부 〃
  • 등록마감 현장(“열전” 6·27선거)

    ◎「여역 부풀리기」 많아 선관위 확인 “진땀”/“재산 1천억 아닌 1백억대” 정정 해프닝/신혼부부가 광역·기초의원 나란히 출마/60세 여장부 군수 출마… 기초장 여성후보 2호로 후보등록이 12일 마감되며 선거전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이른바 「돈은 묶고 입은 푼다」는 통합선거법정신을 존중해 후보자끼리 상호비방과 흑색선전을 자제하는 대신 정책대결을 벌이자는 「공명선거다짐대회」가 번지고 있다. 개인유세가 사실상 무제한으로 허용되자 후보자마다 유권자와 접촉하는 기회를 극대화하기 위해 새벽부터 유세에 나서고 있다.반면 후보등록창구는 전날과 달리 한산했다. ○「공명」 결의대회 가져 ○…인천광역시장과 기초단체장선거에 출마한 민자당후보 11명은 이날 상오 최기선후보 선거대책본부에서 공명선거실천결의대회를 갖고 『돈 안드는 선거,깨끗한 선거문화정착의 선봉이 된다』는 등 3개항의 결의문을 채택. ○…전남 여천시 여천동에서 시의원에 출마한 황치종 후보(52·오성수산대표)와 오병선 후보(38·시의회부의장)도 여천동사무소에 모여 공명선거에 솔선수범하고 인격존중,불법·탈법선거운동척결,흑색선전 안하기 등을 지키며 고장발전에 앞장설 등을 공개적으로 다짐. ○…부산시장후보 3명은 꼭두새벽부터 유권자를 만나느라 동분서주.민자당 문정수 후보는 상오6시 사상구 엄궁동 엄궁농산물시장을 찾은데 이어 곧바로 사하구 신평동 신평지하철역에서 출근길 시민을 상대로 득표활동을 전개.이어 ▲근로자와 점심식사 ▲아시안게임 유치위 총회 ▲부산시선관위 후보자공명실천대회 ▲부산역광장 개인연설회 등으로 꽉 짜여진 일정을 소화.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부산경찰청 교통정보센터 방문으로 하루를 시작.그의 일정 역시 ▲증산체육공원과 초량시장 공개연설 ▲평화시장 기사식당에서 저녁식사 ▲서면 천우장 뒷길의 정당연설회 개최 등 빡빡했다. ○…제주지사에 출마한 민자당 우근민 후보와 무소속 신구범후보는 각각 서귀포에서 연락사무소 현판식을 갖고 시장순회,가두연설 등 하루종일 한라산 남쪽지역을 집중공략. 민자당 우후보는 서귀포시장출마자 변성근 후보(민자) 선거대책본부와 자신의 서귀포사무소 현판식에 참석한 후 서귀포시와 남제주군의 안덕면과 대정읍을 순회하며 지지를 호소. 무소속 신후보는 제주시수협 어판장을 거쳐 역시 한라산 남쪽지역으로 옮겨 서귀포상설시장,동명백화점,2호광장의 상가 등을 돌며 거리유세. ○“여론 호도한다” 흥분 ○…종로구 인의동 서울시선관위 접수창구에는 지난 92년 대선에 나선 김옥선 전의원(61·여)이 무소속 시장후보로 등록.그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언론이 몇몇 후보만 선정해 「빅3」이니 「스몰3」이니 해가며 여론을 호도한다』고 흥분. ○…전북지역을 텃밭으로 여기는 민주당후보들은 유권자의 몰표를 유도하는 듯 플래카드를 같은 색깔로 만들어 눈길. ○…이인제 민자당 경기지사후보는 파주군 임진각에서 첫 유세를 갖고 『가장 민주적이고 깨끗하게 치러진 경기지사후보의 경선결과에 승복한 임사빈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 이 후보는 『엄정한 책임과 냉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며 『임 후보의 무소속 출마로 잃는것도 있지만 얻는 것이 더 많아 압도적 승리를 담보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고 강조. ○…대구지역 12개 선관위는 후보들이 등록서류에 기재하는 최종학력을 과장하는 사례가 많아 정규학력을 확인하느라 진땀.후보들은 대부분 「XX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등 6개월짜리 비정규학력을 기재했는데,선관위 직원들은 일일이 전화로 정식학력을 재확인.선관위의 관계자는 『학력콤플렉스를 지닌 후보가 학력을 과장하고 있다』고 분석. ○…지난해 10월 기초의원끼리 결혼한 광주 북구의회 박정희 의원(29)과 남편인 전남 담양군의회 김영문 의원(37)이 이번 선거에서도 기초의원과 광역의원후보로 함께 출마. 남편 김 의원은 한단계 높여 담양 제1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광역의원에 출마했고 부인 박의원은 예전처럼 북구의원으로 출마. 91년 기초의원선거에서 전국 최연소 당선으로 이목을 끈 부인 박의원은 『부부 공동선거전략을 준비했다』며 『남편과 함께 당선될 것』이라고 기염. ○…첫날 재산을 1천2백21억2천만원으로 신고한 포항 덕수동 기초의원후보조영우씨(35)의 재산은 잘못 신고된 것으로 확인됐다.조씨는 토지의 평가액 1백18억원을 1천1백18억원으로 잘못 써넣는 통에 실제보다 10배로 부풀려졌다고 정정신고. ○한집안서 3명 출마 ○…청원군 현도면 군의원선거에는 이름이 같은 오해진씨(57·전현도농협조합장)와 오해진씨(38·축산업) 및 두 후보의 할아버지뻘인 오희업씨(67·농업) 등 3명이 나섰다.현도면은 주민 5천7백여명 가운데 세 후보의 집안인 보성 오씨가 43%로 문중의 결정이 당락을 좌우한다고. ○…전주시장후보 교체여부를 놓고 말썽을 빚은 민주당 전북지부가 이번에는 광역의원 비례대표의 순위를 바꿔 당사자가 항의하는 등 또다시 물의. 민주당 전북도 광역의원 비례대표 4번으로 발표된 박원조씨(52·축산업)는 등록을 위해 도지부를 방문했다가 순위가 5번으로 낮아진 것을 알고 4시간동안 거세게 항의. ○…민자당의 전석홍 전남지사후보는 해남경찰서 앞 광장에서 연설회를 갖고 행정경험과 지역개발능력을 내세우며 지지를 호소.정시채 민자당 전남도지부장과 최영철·지련태씨등이 참석한 가운데 24인승 승합버스를 개조한 유세차량 위에서 연설한 전후보는 『살림 잘하는 며느리를 뽑는 마음으로 전남의 구석구석을 잘 아는 기호 1번을 꼭 찍어달라』고 호소. ○등록 하룻만에 사퇴 ○…충주시 앙성면에서 시의원후보로 등록한 김관수씨(48)가 사퇴,지방선거후보중 사퇴1호를 기록. 11일 등록한 김씨는 12일 상오11시 충주시선관위를 찾아와 『고혈압으로 건강이 좋지 않고,주민간의 대립과 마찰을 원치 않는다』며 사퇴신고서를 제출.김씨가 등록과 함께 낸 기탁금 2백만원은 전액 국고로 귀속된다. ○…경기 광명시의 전재희 후보에 이어 경남 하동군수 후보로 60세의 이영애씨가 이 날 등록함으로써 기초 단체장 여성 후보 2호를 기록.함양중학교를 나온 이씨는 농협에 근무하다 정모씨(60)와 결혼,남편 명의의 정부미 도정공장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여장부로 『관권에 짓밟힌 민권을 되찾기 위해 출마를 결심했다』며 『지지기반과 후원단체는 없지만 여성 유권자들의 지지로 승리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 합천군 제 1선거구에도환갑을 넘긴 김연이씨(62·여)가 군의원 후보로 등록.그는 홀몸으로 해인사 부근에서 식당을 경영한 것 외에는 뚜렷한 경력이 없어 출마배경에 주민들이 갸우뚱. ○탤런트아들도 동원 ○…청주 중앙공원에서 개인 연설회를 가진 민주당 이용희 충북지사 후보의 유세에는 탤런트인 이 후보의 막내 아들 재훈씨(33)가 나와 지지를 호소.MBC의 「사랑과 영혼」 「사춘기」 등에 출연하는 재훈씨는 『친분이 두터운 정한용·박상원·이재룡 등 인기 탤런트들이 도와주기로 했으며 정씨에겐 지지연설도 부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세계 사라예보 포격/4명 죽고 8명 부상

    【사라예보 로이터 AP 연합】 보스니아 세르비아계가 4일 사라예보공항의 서쪽지역에 포격을 가해 4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했다고 보스니아정부 및 병원 관계자들이 밝혔다. 정부 소식통들은 포탄이 이날 아침 부트미르에 떨어졌으며 사라예보 서부의 다른 지역도 공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 충북/“예측불허 혼전지역”… 2강 1중 양상(6·27표밭기류:2)

    ◎여론조사 선두… 승기 굳히기 박차­민자 김덕영/청고학맥 업고 자민련바람 기대­자민련 주병덕/2강 틈새속 어부지리 전략… 부동표 흡수 주력­민주 이용희 민자당의 김덕영,민주당의 이용희,자민련의 주병덕 후보가 3파전을 벌이는 충북은 이번 시·도지사선거에서 가장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지역의 하나로 꼽힌다. ○지역조직 총동원 세당이 모두 이 지역을 자기당 후보의 우세,혹은 혼전지역으로 분류해 놓고 전력투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자당·자민련후보의 선두다툼에 민주당후보가 뒤쫓는 2강1중의 양상이라는 것이 현지 선거관계자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민자당은 전통적으로 여권의 텃밭이던 이 지역을 지키기 위해 고심하는 눈치가 역력하다.「자민련 충청바람」을 막기 위해 다른 어느 지역보다 튼튼하다고 믿는 이 지역의 조직을 총동원하고 있다. 게다가 충북과 전북은 이번 선거의 이른바 「전략지역」이다.갈수록 심각해져 가는 지역당 구도를 청산하려면 이 두지역에서의 승리가 필수적이라는 생각이다. 자민련은 충북에 명운을걸고 있다시피하고 있다.이번 시·도지사선거에서 지역기반인 충청권을 석권하지 못하면 내년 총선에서의 대약진은 커녕 존립자체에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고 판단한다.이에 따라 충청권 3개 지역가운데 가장 기반이 취약하다고 평가되고 있는 이곳에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민주당은 두후보가 격전을 벌이는 틈바구니에서 어부지리를 노린다.민자당과 자민련이 신·구여권표를 나누어 갖는 상황에서 야당 고정표를 단속하고 부동표 일부를 흡수하면 가능성이 있다는 계산이다. ○도지사경력 부각 세후보의 선거전략 역시 이같은 정황분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민자당의 김후보는 먼저 문민정부들어 첫번째 도지사를 역임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6공때 지사를 지낸 주후보와의 차별화전략이자 선명성경쟁이다. 그는 또 『충북은 충남의 들러리가 아니다』라고 역설하고 있다.충북의 자존심을 자극해 충남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한편으로는 『JP(김종필 자민련총재)나 자민련에 합류한 이종근 의원(충주)이 충청권발전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자민련의 주후보는 순경에서 출발,지사까지 지낸 입지전적 경력과 오랜 행정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운다.이 지역 최대 학맥으로 평가받는 청주고출신으로 도내 전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동문들의 지원을 얻고 있는 것도 큰 무기다. 또 자신을 「6개월 지사」에 그치게 한 지난 90년 단양 매포지역 수재 보상각서사건을 전화위복의 호재(호재)로 활용하고 있다.도민편에서 수재민들을 도우려다 지사직에서 물러났다는 주장이다. ○동문지원 무기로 민주당의 이 후보는 「유일한 야성후보」라는 점을 부각시키며 3선의원을 지낸 관록을 바탕으로 벌써 2년전부터 출마에 대비해 얼굴을 알리는 노력을 해왔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아직 미정」이 60%나 되는 차가운 분위기속에 김후보가 평균 14%의 지지율을 얻어 선두를 달리고 주후보가 11%,이후보가 8%로 뒤를 잇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결과에 대해 김후보진영은 도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김종호 도지부위원장이 최근선거운동에 본격 가세하면서 승기를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청주권공략 부심 반면 주 후보진영은 『충북에서의 자민련바람은 잠복성』이라며 『여론조사에서 「아직 후보를 결정하지 않았다」고 응답한 60% 가까운 사람들의 상당수는 선거가 임박하면 자민련 지지로 돌아설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 후보진영은 현재로선 김·주후보에 처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막판 역전극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각 후보진영의 관심은 「청주시를 어떻게 공략할 것인가」에 모아지고 있다. 세후보는 도내 지역적 기반이 다르다.김후보는 고향인 충주를 중심으로 제천·단양,이후보는 보은·옥천·영동,주후보는 음성·진천이 지지기반이다.각각 충북의 동쪽과 남쪽·북쪽지역을 분할하고 있다.서쪽에 치우친 청주는 무주공산이다. 여기에 청주는 유권자가 33만여명으로 충북 전체유권자 97만4천여명의 33%에 달한다. 따라서 세후보는 「청주에서의 승리=선거에서의 승리」라는 판단아래 청주권공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 도쿄 도지사 비서실 폭발물 테러/어제하오/소포에 폭발장치…2명부상

    ◎옴교주 체포 보복 가능성 수사/옴교주 아사하라 어제 체포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 경찰이 도쿄 지하철 사린살포사건과 관련,옴진리교의 아사하라 쇼코(마원창황)교주를 살인 및 살인미수혐의로 검거,수도권 일원에 비상 경계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16일 하오 7시쯤 도쿄도청 도지사 비서실에서 폭발물이 터져 도지사의 민원비서 우쓰미 마사아키(내해정창·44)씨가 왼쪽 손가락 전부와 오른쪽 엄지손가락이 잘려 날아 가는 중상을 당하고 청소원 1명도 가벼운 부상을 입는 등 2명이 부상을 입었다. 우쓰미씨는 이날 아오시마 유키오(청도행남) 도지사 앞으로 배달된 소포를 열려는 순간 큰 폭발음이 나면서 폭발물이 터져 이같은 부상을 입었다.폭발물은 가로 25㎝,세로30㎝,높이 10㎝ 정도의 크기였으며 발신인은 「도쿄도 히노데마치 무라야 가즈요」로 되어 있었고 안에는 「수질검사 결과를 빨리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쪽지가 들어 있었다. 아오시마지사는 사고 당시 도시박람회 문제를 논의하는 도의회 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있었기 때문에 화를 입지 않았다. 경찰은 이날 범행과 관련,아오시마지사가 이날 상오 도의회에서 옴 진리교의 종교법인 해산 청구를 시사한 바 있어 옴 진리교단의 관련 여부에 대해 수사를 펼치고 있다. 경찰은 또 무소속 돌풍을 일으켜 도지사에 당선된 아오시마 신임 지사의 도시박람회 개최 취소 등 정책에 반대하는 과격파가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목격자인 도쿄도청 청소원은 이날 『도지사실과 비서실에 대한 청소를 끝내고 나오는 순간 갑자기 펑 소리가 나고 흰 연기가 났으며 폭발음이 굉장해 귀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일본경찰은 이에 앞서 16일 상오 야마나시현 가미쿠이시키 본부 제6동(사티안)에서 도쿄 지하철 독가스 테러 용의자로 추적해온 옴 진리교의 아사하라 교주를 체포했다. 이로써 지난 3월20일 12명이 숨지고 5천여명이 치료를 받은,불특정 다수를 노린 지하철 독가스 테러사건은 사건 발생 두달만에 베일를 벗게 됐다. 경찰은 그러나 교주가 붙잡힘으로써 옴교측이감추어 놓은 사린이나 총기 등을 사용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무차별 살인에 나서는 보복범행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보고 특별경계에 들어갔다.
  • 시민 교통감시(외언내언)

    독일사람처럼 신고정신이 철저한 민족은 없다.독일에 뺑소니차량이 없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뺑소니 운전자들은 대부분 잡히게 마련이다. 여느 대도시처럼 주차난이 심각한 베를린시내에서 가까스로 주차해 놓았던 승용차를 빼려다가 자칫 바짝 옆에 세워진 차를 스쳤을 경우 아무도 안보는 한밤중이라고 그냥 갔다가는 망신당하기 십상이다.현장에서는 아무일이 없더라도 이틀 정도 지나면 경찰로부터 출두요구서가 날아든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시간을 보내던 연금생활자가 운전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며 차량번호를 메모해 놓았다가 「나는 몇동 몇호에 사는 누구인데 가해차량은 몇번」이라고 자신의 전화번호와 함께 쪽지를 운전석앞 유리에 꽂아 놓는다.소름끼칠 정도의 신고정신으로 인해 독일 사회는 「8천만이 감시하는 감옥」이라고 불린다. 손해보험협회는 12일부터 교통신호위반·중앙선침범·추월금지위반·고속도로 갓길통행 등 4가지 법규위반차량에 대해 사진을 찍어 제보하는 사람에게는 현상금 1만원씩을 주기로 했다.제보된 내용은 「심사위원회」에서 확인해 해당 위반지역 경찰서에 즉각 고발하는 동시에 현상금을 제보자의 은행계좌에 입금한다는 것이다.제보자의 신분은 철저히 보안이 유지된다. 지난해 발생한 교통사고 26만6천여건 중 80%이상이 교통법규위반이 원인이며 이로 인해 11개 자동차보험사의 적자액이 8천61억원이나 돼 이를 줄여보자는 데서 현상금제도가 도입됐다.경영개선의 차원에서 시민 서로가 법규위반차량을 적발해 사고를 줄이자는 것이지만 이를 잘 운영한다면 범시민 교통감시운동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이 제도가 시민들 사이에 불신의 골을 심어줘서는 안된다.돈만을 노린 전문 현상금사냥꾼(Bounty Hunter)들이 설친다면 우리사회도 「4천만이 감시하는 감옥」이 될 우려가 있다.
  • 미·러·EU/크로아내전 긴급 진화나서/내일 제네바 「평화회담」제의

    ◎세계,자그레브도심 재포격… 40여명 사상/아카시 특사 “적대행위 중단 구두합의” 【자그레브·사라예보·워싱턴·모스크바 AP AFP 로이터 연합】 크로아티아 정부군이 세르비아계 반군에 대해 공습을 감행한데 대한 보복으로 크로아티아내 세르비아계 반군이 크로아티아내 수도 자그레브에 로켓포 공격을 감행,부상자가 속출하는등 옛 유고 연방지역의 내전은 확전기미를 보이고 있다. 세르비아계 반군은 3일 크로아티아 정부군의 전략요충지인 오쿠카니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자그레브시내에 로켓포 공격을 감행,1명이 숨지고 40여명이 부상당했다. 지난 2일에도 세르비아계가 장악하고 있는 자그레브 남쪽지역에서 집속탄이 든 오르칸 로켓이 발사돼 5명이 숨지고 1백34명이 부상당했다. 한편 크로아티아에서 세르비아계와 정부군간의 충돌이 격화되는등 옛 유고의 내전이 확대 양상을 보이자 미국과 러시아 등은 2일 긴장완화를 위한 공동 외교 노력에 긴급히 나섰다.워런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은 안드레이 코지레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전화통화를 갖고 영국,프랑스,독일등 보스니아 사태 중재를 위한 이른바 5대 접촉국 그룹이 크로아티아의 평화 조성을 위해서도 적극 노력키로 했다고 니콜러스 번스 국무부대변인이 전했다. 또한 데이비드 오웬 유럽연합(EU)특사와 토르발트 슈톨텐베르크 유엔 특사도 3일 크로아티아 정부와 세르비아계 세력 지도자들에게 오는 5일 제네바에서 긴급 회의를 갖자고 제의했다. 【자그레브 AFP 연합 특약】 크로아티아 정부군과 크로아티아내 세르비아 반군은 크로아티아 동부지역에서 적대행위를 중단키로 합의했으며 이는 하오 4시(현지시간)부터 발효된다고 3일 아카시 야스시 유엔특별대사가 밝혔다. 아카시 대사는 기자회견에서 자그레브와 크로아티아내 세르비아계의 카라지나 공화국 지도자간의 구두합의는 곧 조인될 것이라고 말했다. ◎확전 치닫는 유고 내분/세계 반정부 연합 구축… 유엔 통제력 상실 전면전 발발을 예고하는 먹구름이 발칸반도 상공을 짙게 덮었다.오랜 보스니아내전으로 발칸반도는 이미 「세계의 화약고」로 지칭돼온 지 오래지만 이번 먹구름은 이제까지보다 훨씬 규모가 클 것으로 예상돼 심각한 우려를 부르고 있다. 4개월간의 보스니아휴전이 만료된 1일 전격단행된 세르비아계 반군에 대한 크로아티아정부군의 기습공격에 세르비아계 반군은 즉각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와 공동전선을 펴는 등 옛 유고연방전역으로 전쟁이 확산될 조짐이 드러나기 시작된 때문.보스니아내전이 인근 공화국으로 확산되는 것만은 어떻게든 막아보려던 국제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한편 유고전역에 전쟁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될 것이란 최악의 시나리오가 실현 직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크로아티아 주재 외교관들은 크로아티아정부군이 지난 91년 세르비아계가 분리독립,자치공화국으로 선포한 「크라이나」의 일부를 탈환한 이번 공세에 대해 여러가지 이유에서 위험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라고 진단하고 있다. 크로아티아는 2일 작전완료를 선언하면서 공세는 이틀에 국한된 것이라고 강조했으나 일단 전투가 시작된 이상 재개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특히 자그레브에 대한 세르비아계의 대규모 보복폭격에서 볼 수 있듯 대도시들에 대한 공격은 보복의 악순환을 불러 전쟁확산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전확산위기를 고조시킨 것은 크로아티아가 반군과의 분쟁지역인 「오쿠카니」를 협상과 외교가 아닌 무력수단을 통해 장악한데 대해 유엔평화유지군 등 국제사회가 아무 제지도 하지 못한 점이다.유엔 안보리는 1일 긴급회의를 열고 크로아티아군의 공격을 즉각중단하라고 촉구했을 뿐 크로아티아의 공격을 전혀 통제할 수 없었다. 라도반 카라지치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 지도자는 이번 공세와 관련,『우리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아무도 말릴 수 없다』며 크로아티아내 세르비아계에 대한 지원입장을 분명히 밝혔다.그의 의지여하에 따라 보스니아내전을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여겨진 카라지치가 이같은 강경입장을 표명한 것도 전망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더욱이 프랑스·영국 등 유럽국가는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계가 전면전을 벌이면 자국 소속의 유엔평화유지군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밝히고있어 대규모전쟁이 재발하면 싸움을 말릴 중재자조차 없게 되는 발칸반도에서는 걷잡을 수 없는 살육전이 벌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 경위 시험 답안도 유출/구속 경사/쪽지에 적어 빼내

    ◎넘겨 받은 두 경찰관 구속 경찰 승진시험문제 정답 유출사건을 수사중인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14일 지난 2월26일 실시된 경감승진시험답안을 빼돌린 본청 교육과 김대원(42·구속중)경사가 같은 날 치러진 경위승진시험의 정답과 문제도 유출시킨 사실을 확인,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경위승진시험의 1차 객관식시험 1백문항의 정답과 2차 주관식시험의 문제가 적힌 쪽지를 입수,이 쪽지가 유출된 과정을 집중조사한 결과 구속된 김경위로부터 경위승진시험정답과 주관식시험문제도 유출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김 경사는 본청 교육과 이수돈(46)경위와 짜고 본청 경리계 직원 이인교(48)경사로부터 1천만원을 받기로 하고 정답 및 문제를 이 경사에게 넘겨줬으며 이 경사는 시험에 합격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날 이 경위와 이 경사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및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구속했다. ◎경무국장 직위 해제 경찰청은 14일 경찰 승진시험문제 유출사건과 관련,경찰청 경무국장 황용하 치안감을 직위해제하고 경찰청 기획관리관 구홍일 치안감이 경무국장을 겸직토록 했다.
  • 카자흐 자치주 이리계곡(서역 문화기행:12·끝)

    ◎천산 산맥자락 초원… 기마민족의 터전/18세기 들어 영·러 등 열강 각축… 중,54년 자치주 선언/아편전쟁 승리 이끈 임칙서 장군 동상 혜원성에 남아 밤낮을 부리나케 보름을 달리면서 겨우 서역의 중로와 남로를 말 타고 꽃 보듯 하였다.이제 남은 것은 사막에 논을 일구고 초원을 비단으로 가꾼,그래서 서역의 낙원으로 불리는 북로를 결코 빠뜨릴 수 없었다. 우루무치에서 이닝(이령)까지 공로 한시간은 정말 미의 여로였다.중로나 남로가 백색 아니면 적갈색의 질식적인 영토였다면 북로는 적갈색이 마르고 청록색이 살 찌는 낙원이었다.멀리 아이비호와 사이리무(새리목)호의 쪽빛 물결이 굽어 보이고 카자흐의 팔카스호로 흘러가는 이리강의 굽이치는 맥류조차 역력히 보인다.그보다는 하얀 만년설의 천산산맥과 파란 초원과 바둑판인양 구획 정리된 논밭들을 보면서 그 장관과 풍요를 읽고 있을 때 저 땅에 흥망과 공방이 오갔던 역사,그 소용돌이가 들리는 듯했다. ○꼬마들도 말타고 사냥 여기는 기원전 6세기경부터 흑해로부터 동점한 스키타이들이 유목하면서 행국을 형성하던 곳.기마민족의 마당은 초원이었었다.따라서 초원위에서 꼬마조차 말을 타고 새를 쏜다는 흉노와 한무제때부터 동맹을 시도했던 오손과의 밀고 당기던 싸움이 끊이지 않았던 땅이다.그래서 눈물겨운 이야기도 있었다. 기원전 110년부터 기원전 105년 사이의 일이었다.한무제의 사신 장건이 오손의 곤막왕을 찾아 명마 천필을 요구하자 오손왕은 한왕조의 공주를 소망하였다.오손과의 동맹으로 흉노를 치고 명마 천필을 위해 이를 응낙하였다.무제 조카의 딸인 세군공주를 구천리밖 오손에게 보냈다.공주가 왕의 우부인이 되었지만 멀지 않아 곤막조차 노환으로 죽었다.오손의 풍습대로 곤막의 손자에게 다시 시집을 가서 딸 하나를 두었다지만 고향을 그리다가 끝내 백조가 되어 환고향하겠다는 슬픈 시를 남겼었다. 아름다운 이리계곡에 싸움은 쉬지 않았다.18세기에 들면서 이슬람교도의 반란으로 야기된 서터키스탄의 무장 침입을 비롯,영국·러시아등 열강의 침노로 영일이 없었다.19 54년 중국 중앙정부가 이닝에다 「이리지역카자흐자치주」를 선포하면서 안정을 되찾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이리강 유역은 뎅구리(카자흐말로 하늘이란 뜻)신앙에 뿌리 깊은 기마민족과 세계최대의 농업민족인 한족과 교전으로 얼룩진 「화성」이요,「백양성」이다. 「사기」,「대원전」에 따르면 오손은 흉노보다 작은 행국으로 준갈분지의 남역과 천산북로를 무대로한 천산유목민이었다.그들은 늘 몽골 고원으로부터 침노하는 흉노나 서쪽으로부터 밀려오는 대월씨,대원등과 쫓고 쫓기면서 혼혈을 거듭하였다.그래서 옛날 오손국을 점거한 카자흐사람이 혈맥상 오손의 후예일 가능성도 없지않지만 유목적인 생활모형만은 오손의 계승자임이 틀림 없다. 이닝지역의 인구는 비록 카자흐·위구르·한의 삼분천하였지만 카자흐의 자치주인 만큼 카자흐의 색깔이 진했다.거기서 손을 뻗치면 옛날 소련연방이었던 카자흐공화국과 맞닿는 국경이다.텁수룩한 수염에 뾰죽하면서도 결코 높지 않은 코.형상은 사뭇 위구르사람을 닮았지만 살갗은 흉노쪽,역시 알타이가 가까워선지 모르겠다. ○위구르사람 얼굴 닮아그러한 카자흐사람을 보면 옛날 한나라때부터 이곳에 죽치고 살았던 터주들임에도 그들이 뽐내는 천마를 기르고 천산 산마루나 초원을 질풍처럼 달리면서 함성을 지르는 기마술 말고 그들 스스로의 역사는 쓸쓸하리만큼 한산하다. 1978년 북경의 고고학자들이 이닝의 서쪽 고을 신웬(신원)에서 오손의 무덤을 발굴했다는 소식을 들은 바 있었다.필자는 그때 의아했었다.유목민에게는 성토해서 봉분을 만드는 습속이 없어서였다.오손족은 그만 두고 천하를 휩쓸었던 칭기즈칸의 무덤조차 알 길이 없지 않았던가? 그들은 시신을 풀밭에 묻고 그 위로 말이 달리고 새풀이 돋아서 아무렇지도 않게 풀밭이 되었었다. 그럼에도 차푸차알(찰포사이)에 있는 시보(석백)족 자치현에 오손 고분이 있다는 말을 듣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그 고분이 있는 진첸(김천)읍은 이닝의 동남쪽 4.8㎞지점.진쳰읍 이라치뉴루(의랍재오록)마을엔 크고 작은 고분 2기가 있었다.그들은 모두 만두모양의 대머리 무덤,그 위에는 풀 한포기 없는 황토의 언덕이었다. 진쳰 씨앗공장뒤편에 있는큰 무덤은 그 높이가 10m에 직경이 25m쯤,거기서 서쪽으로 4백m지점인 시보중학교 교문옆에 있는 작은 무덤은 큰 무덤의 3분의 1 크기였는데 동네 꼬마들의 놀이터임은 마찬가지였다.다만 아무 곳에도 2천년전의 오손 무덤임을 증명하는 기록은 없었다.1978년,신웬고분의 발굴조사에서 이미 밝혀진대로 비록 2천년의 연조는 밝혀졌지만 그 속에서 고작 유골과 약간의 목기만 출토되었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그렇게 다만 흙 둥주리뿐인 오손 고분을 답사하고 돌아오면서 결코 허행이 아니었다는 생각은 차푸차알에 들러 시보족들의 마음을 참관하고서였다.그곳은 이닝 남쪽 20㎞지점,서역에서는 유일하게 시보족이 집단 거주하는 촌락이었다.그 마을 이름이 시보말로 「곡식의 창고」라는 뜻,그만큼 풍요로운 땅이었다. 필자가 서역을 떠돈지 스무날,이제 귀로에 올랐는데 뜻밖에도 타관서 동향을 만난 설렘이 있었다.글세,차푸차알을 거닐다가 거리에서 만난 얼굴들은 몹시 낯이 익었었다.작은 키에 둥글 넙죽한 얼굴,낮은 코에 가는 눈.그뿐이랴? 그들의 민속촌에서는 울긋불긋한 과녁에 활쏘기와 장사들의 씨름판이 벌어지고 있었다.거기다 서너근이 될법한 무와 빈대떡 비슷한 밀떡을 부침질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2년여 남짓 귀향살이 그들은 벌써 백여년전,빈발하는 청로전쟁에 만주로부터 파견된 청군의 후예들이었다.그러니까 우리 민족과 가장 사촌민족인 만주족이었는데 그곳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만주어 보존 구역이었다. 그러나 풍운의 현대사가 남아 있는 곳은 역시 중·카국경옆 훠청현에 있는 후이웬(혜원)읍이었다.후이웬은 이닝 북서 40㎞지점.거기는 청대 이리장군(총통이 등진장군의 약칭)의 주둔지였다. 청나라는 1757년,준갈분지의 반란을 평정하여 서역을 재통일하고,1762년,거기다 「이리장군」을 설치하여 신강지역 최고의 행정및 국방의 수장으로 천산산맥의 남북로는 물론 팔카스호 동쪽지구를 총관장했었다.1764년부터 3년에 걸쳐 이곳에다 둘레 7㎞의 성을 쌓았지만 1871년의 러시아침략으로 무너졌던 것을 18 82년에 오늘의 후이웬성으로 복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후이웬성이 역사의 무게를 지니게 된 것은 2백30년에 달한 연조 그 자체보다는 그를 다스리던 사람과 역사와 예술을 한 곳에 응집 표현한 몇채의 건물이 있다.그 사람은 임칙서(1785∼ 1850년)요,그 건물이란 후이웬루(혜원루)와 장군부·장군정이다. 임칙서는 애국의 장군이었다.광동광서의 총독으로 금연운동을 펼치고 아편전쟁을 일으킨 영국군대를 물리쳐 공을 세웠으면서도 면직 당한 채,1842년12월부터 이리장군으로 전임,1845년1월 사면 받기까지 2년남짓 귀양살이하면서도 농지를 확장하고 농산을 장려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그의 자취는 사방에 있었다.후이엔성안에 보존되고 있는 당시 이리장군의 거소요 지휘본부였던 「장군부」와 「장군정」이 중국 남방의 소박한 건축양식과 정원의 풍모를 보여주고 있는가하면 후이웬성 북쪽 5백m쯤엔 임씨가 손수 심었다는 청강수 네그루가 「임공수」란 이름으로 빨간 벽돌담안에 모셔 있었다.거기에 그치지 않았다.이닝시 서북쪽 교외의 경제개발구역에는 이닝시문화국에서 1994년8월에 완공한 「임칙서기념관」이 문을 열었는데 그안에는 임씨의 동상과 사적전시실이 꾸며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리지역을 상징하는 마크는 뭐니뭐니해도 후이웬성밖에 북경의 고루를 본 떠서 1897년에 축조한 「후이웬루」다.벽돌 축대위에 날듯한 처마와 울긋불긋한 기둥의 3층 누각은 어쩌면 중국 서북단을 지키고 카자흐 자치주에 세워진 가장 한족적인 문화의 축도로 서 있다.
  • 미 군정체제 확립(새로 쓰는 한국현대사:5)

    ◎“일인활용 불가피”속 행정권 장악에 석달/서울 입성뒤 「북쪽 접수」 주력… 개성 첫 점령/북의 소군은 2개월 앞서 「도인민위」 설치/인천입항 미군 환영길 한국인 2명 일경에 피살 미군이 인천에 첫발을 디딘 1945년 9월8일은 미 군정 3년을 포함해 이후 반세기동안 유지돼 온 한미간 특수 역사관계의 출발점이었다.그러나 한국인과 미군의 첫 만남은 그 시대상황을 상징이라도 하듯 비극적인 사건으로 얼룩졌다.미군을 환영하러 부두로 몰린 한국인들이 일본경찰의 총에 맞아 두명이 숨지고 십여명이 부상한 것이다. 인천은 서울과 가까운 근대 해항지여서 일찍부터 일본인 거주자가 많았고 그 세도 강한 항구도시였다.반면 부두노동자들이 조직한 노동조합이 활발히 움직이는등 반일세력도 만만찮았다.따라서 해방이 되자 인천시내에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일본경찰은 재향군인 9천명을 급하게 모아 특별경찰대를 조직,각 파출소에 배치하는등 경비를 강화했으며 한국인들도 이에 맞서 치안유지회(보안대)를 결성해 대치하는 분위기였다. 「미군이 9월8일 인천항으로 상륙한다」는 소문이 며칠전부터 떠돌자 시민들은 「해방군」을 맞는다는 기쁨에 들떴다.이에 조선총독부는 9월5일 담화를 통해 『미군은 민중환영등 의례적인 행사를 희망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이어 8일에는 인천경찰서가 의사·산파·우편배달부를 제외한 사람의 외출을 금지한다고 공시했다.그리고 『이것은 미군의 지시』라고 못박았다. 8일 아침이 되자 인천시내 곳곳에는 미군을 환영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은 자연스레 하나의 무리를 형성했다.미군 함정이 부두에 도착한 하오2시쯤에는 거대한 물결이 되어 인천항쪽으로 나아갔다.인파가 현재의 인천우체국 자리를 지나 산업은행 앞에 이르자 일본 특별경찰대의 99식 소총이 불을 뿜었다.이 발포로 행렬에 앞장선 조선노조 인천중앙위원장 권평근(당시 45세)과 보안대원 이석우(20세 가량)등 2명이 숨지고 1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권평근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사는등 일생을 조국광복에 바친 독립운동가였다. 해방된 우리땅에서 독립운동가가 일본경찰에게 공공연하게 피살된,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어떻게 일어났을까.이 사건에는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의 사전정보부족과 한국에 대한 그릇된 시각,일본측 농간들이 복합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미군은 진주에 앞서 한국주둔 일본군사령관 우에쓰키(상월양부)와 연락,그로부터 『무장폭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를 듣자 「미군이 인수할 때까지」라는 조건으로 일본군의 치안유지권을 인정한다.이같은 미군의 입장은 권평근·이석우의 사망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다.장례식이 끝난 뒤 유족들이 미군에 발포경찰관등을 고발,이에 대한 군사재판이 13일 열렸다.이 자리에서 일본인인 인천경찰서장등은 『미군 지시로 환영·외출을 금지했는데 이를 어겼다』고 주장했고 법정은 이들의 행위를 「합법」이라고 판정했다.재심청구를 했지만 곧 기각됐다. 이 사건은 미국 신문에 즉시 보도돼 미국내에서도 비판여론이 크게 일었다.종군기자 리처드 E 라우터배크는 「뉴욕타임스」9월9일자 기사에서 『일본군이 환영군중에게 발포한 것은 미군사령부의 지시때문』이라고 공개했다.「뉴욕타임스」는 이어 11일자 사설에서 『우리는 일제 식민정책을 시행한 쓰레기들에게는 부드럽게 대하고 우리가 해방시킨 민중에게는 강경하게 대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심각하게 제기했다. 한국점령 임무를 맡은 미 제24군단 가운데 8일 인천을 통해 맨 먼저 들어온 부대는 7사단이었다.7사단은 인천에 17보병연대를 남겨놓고 9일 아침 서울로 향했다.당시 미국신문들은 거리풍경을 『흰옷을 입고 이상스런 검정모자(갓)를 쓴 한국인들이 길가에 죽 늘어서서 「만세」를 외치며 환호했다.「USA Army Welcome」이라고 쓴 환영아치도 가끔 눈에 띄었다』고 보도했다.한국인들은 대부분 순수한 마음에서 미군을 「해방군」으로서 환영했던 것이다. 이날 하오4시6분 서울 조선총독부 건물(현 국립중앙박물관)제1회의실에서 38선이남 일본군의 공식 항복행사가 열렸다.일본측 대표인 아베 노부유키(아부신행)조선총독,우에쓰키 주둔군사령관등이 먼저 들어왔고 이어 하지중장,킨케이드중장(제7함대사령관)등 미군대표가 자리를 잡았다.하지중장 뒤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X자로 세워져 있었다. 다음날부터 미군은 38선이남의 영토와 행정조직을 장악하는데 본격적으로 나선다.서울에 본부를 둔 7사단은 우선 북쪽지역에 주력해 12일 개성을 점령한 다음 소련과 연락할 전신장치를 설치했다.이어 그리고 미군정은 각 도에 군정지사를 보내 행정권을 장악했다.지사 발령날짜를 보면 ▲경기도 10월2일 ▲강원도 11월26일 ▲충북 11월8일 ▲충남 10월9일 ▲경남 9월28일 ▲경북 11월3일 ▲전북 11월20일 ▲전남 10월26일등이다.초대 군정지사들은 영관급 장교가 대부분이고 경남지사인 찰스 해리스가 유일하게 준장이었다. 미군이 지방에 분산 배치된 초기에는 군정 수행에 어려움이 많았다.군단위까지 확보하기에는 병력이 부족했고 특히 훈련된 행정요원은 턱없이 모자랐다.그런가 하면 현지실정을 몰라 한동안 일본인 관리를 활용해야 했으며,일부 지역에선 「조선인민공화국」이 임명한 관리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그러나 각 도에 군정지사를 파견해 자리잡음으로써 미군정은 1945년 11월 말쯤 전국적인행정체제를 확립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한반도 진격속도가 빨랐던 북쪽의 소련군은 군정체제를 이루는데도 앞섰다.8월9일 참전한 소련군은 일부지역에서 일본군의 저항을 받긴 했지만 8월 말까지는 38선이북 지역에 대한 군사적 점령을 끝냈다.점령군은 제25군,그 사령관은 IM 치스차코프대장이었다. 치스차코프는 평양에서도 조만식이 주도하는 「평남 건국준비위」와 「공산당 평남도위원회」를 합쳐 「평남 인민정치위원회」를 구성케 했다.이 위원회는 비록 조만식을 대표로 내세웠지만 실제적으로는 공산주의자들의 수중에 들어갔다.소군은 이같은 방식으로 기존의 정치세력과 공산주의자들을 엮은 인민위원회를 9월 말까지 각 도에 구성했다. 미군이 남쪽에서 직접통치의 형태를 갖췄다면 소군은 자치적으로 보이는 「인민위원회」구성을 통해 간접통치하는 교활한 방식을 택한 셈이다. ◎해방된 내땅인데… 일경에 맞서다 피살/유족 최초 증언… 「권평근의 인천참사」/미군 의뢰 따른 일 통제에 강력 저항/20∼30년대 노조운동 통해 항일투쟁 미군이 인천에 상륙하던 날 일본경찰의 흉탄에 희생된 권평근(1900∼45년)은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였다.그는 1919년 「3·1운동」부터 45년 9월 숨질 때까지 독립운동에 앞장서 왔지만 아직 정부로부터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지 못했다.그에 관한 기록이 여러 문헌에 흩어져 있어 미처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러나 본사 취재팀은 일본측 기록인 ▲삼전방부의 저서 「조선 종전□ 기록」(암남당서점) ▲1936년 조선총독부 경무국 자료인 「국외□어□□용응조선인명부」 ▲경성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에서 31년 9월 발행한 「사상월보」9월호들을 검토했다. 또 ▲서울경찰청이 1993년 6월9일 국가보훈처에 회신한 「권평근에 대한 지문조회」결과 ▲국가보훈처 소장 독립유공자공훈록 제5권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광복군」기록 ▲조선일보 1931년 7월24일자,8월27일자,9월4일자 ▲동아일보 1931년 8월27일자,10월27일자 등 각종 자료와 가족으로부터 단독입수한 권평근의 미공개사진,증언들을 종합해 국내 언론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아직 시도해 본 적이 없는 권평근의일생을 복원했다. 권평근은 경기도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에서 태어났다.배재학당에 다니던 그는 「3·1운동」때 고향에서 시위대열의 선두에 섰다가 3년동안 충청도로 피신한다.이어 26∼27년에는 중국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조선총독부 경무국이 작성한 「해외 반일조선인 명부」에는 그를 『배일사상이 농후한 요주의 인물』로 기록하고 있다. 권평근의 경력은 30년대에 빛난다.인천으로 이사해 노동조합에 투신한 그는 31년 7월 「일본인습격사건」의 주동자로 체포된다.당시 만보산사건이 일어나자 국내에서도 한국인과 중국인사이에 충돌이 잦았다.그러나 권평근 등은 일본이 한·중 양국을 이간질시키려고 사건내용을 과장한 것이라며 중국인을 공격하는 군중의 분노를 일본인에게로 돌렸다.이 사건으로 그해 10월26일 경성지법 형사제1부에서 징역3년을 선고받는다.당시 재판기록을 보면 권평근은 이해 5월1일,6월10일,7월5일 등 세차례에 걸쳐 반일시위를 벌이려고 구체적인 준비를 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복역을 마친 권평근은 노동조합을 통해 더욱 은밀하게 독립운동을 벌였고 해방당시에는 조선노조 인천중앙위원장이었다.총격 현장에서도 그는 일본경찰에게 『해방된 우리땅에서 웬 참견이냐.쏠테면 쏘라』며 가슴을 내밀었다고 한다.그의 장례식은 사회단체장(일부 기록은 시민장)으로 치러졌다. 딸 명숙씨(55·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742)는 아버지를 『6척 장신에 힘이 장사였다』고 기억했다.또 그리 어렵지 않은 살림인데도 자신은 하루 두끼만을 먹으며 어려운 이웃에게는 식량과 옷을 서슴없이 나눠줬다고 회상했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부국장급 ▲이용원 〃 ▲김성호 〃 ▲김경운 〃
  • 헬기 사건 미의 시각/클린턴 행정부 어떻게 접근할까

    ◎“단순 돌발사고” “대북관계 불변”/“핵합의 손상 우려… 북 송환거부 못할것”/대화해결 원칙… 「관대한 처분」에 기대 주한미군 헬기의 휴전선 북방 불시착사건은 단기적인 사건으로 그칠 것으로 보이며 북·미관계진전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물론 이는 북한측이 조종사 1명의 시신과 생존 조종사의 송환을 지연시킬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 분석이다. 북한이 조종사의 송환을 늦추지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는 ▲북한측이 방북중인 미 하원의 리처드슨의원에게 『이번 사건이 불행한 사건』이라고 밝힌 점 ▲북핵합의후 연락사무소 개설 등 북·미관계개선이 시급한 북한으로서 미국을 자극할 필요가 없으며 ▲클린턴대통령이 직접 성명을 통해 조속한 송환을 촉구한 점을 북측이 감안하지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평양을 방문중인 리처드슨의원이 크리스토퍼 국무장관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사실상 미국정부의 대표로 김영남외교부장 등 북측 당국자들을 만나 클린턴행정부의 우려를 직접 전할 수 있는 점과함께 미국이 뉴욕의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와 항상 대화창구를 열어놓고 필요시 현안을 논의할 수 있기때문이다. 북한측이 이번 송환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의 여부는 곧바로 김정일체제의 미국에 대한 정책의 단면을 읽게해줄 것이라고 워싱턴 포스트지 등은 지적하고 있다.북한이 만약 조종사의 송환을 지연시킬 경우 겨우 가동하기 시작한 북미관계의 개선움직임은 급냉각될 것이며 가뜩이나 북미합의에 불만을 갖고있는 공화당의원들의 반발에 불을 댕길 것이다. 앞으로 북한측이 어떻게 나올지는 단정하기 어려우나 조종사들의 송환에 앞서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최대로 이용할 것이라는 것이 관계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그들은 이번 사건이 한반도의 대치상태의 지속과 휴전협정의 문제점에서 야기된 것이라며 미·북한간 평화협정의 체결 필요성을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의 조속한 해결책과 관련,워싱턴소재 미 전략문제연구소의 윌리엄 테일러수석부회장은 『미행정부가 이번 사건이 실수에 의해 발생했음을 북측에 시인하고 즉각 미·북한간의 대화채널을 가동해 불필요한 긴장이 조성되는 일을 피해야할 것』이라고 CNN과의 회견에서 강조했다. 북한은 지난 77년 7월 북한 영공으로 잘못 들어간 미군헬기를 격추,3명의 승무원을 숨지게하고 부상자 1명을 억류했지만 3일후 시신들과 함께 생존승무원을 돌려보낸 적이 있다. 이번 경우에도 북한은 미측으로부터 사건경위에 대한 공식적인 해명을 듣고 관대한 제스처를 내외에 과시하면서 조종사를 조만간 송환할 것으로 예상되며 불시착한 헬기는 과거의 전례에 비추어 돌려보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군당국이 밝힌 헬기 월경상황/분계선을 민항통제선으로 착각/“남방한계선 남쪽 비금선 통과중” 보고후 두절 주한미군과 국방부를 긴장시키고 있는 주한미군 17항공여단 소속 OH­58 정찰용 헬기의 북한지역 불시착사건은 군사분계선을 비행금지선으로 착각한 조종사에 의해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19일 주한미군과 국방부 등에 따르면 사고헬기는 월경직전인 17 상오 10시43분쯤 『비행금지선으로 들어간다』는통신을 한뒤 교신이 두절됐다.그러나 헬기는 당시 이미 군사분계선앞에 있던 12사단 관측초소 위를 지나 북측지역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12사단보고와 헬기의 무선교신내용을 토대로 헬기 월경당시 상황을 살펴본다. 17일 상오 10시4분쯤.헬기는 춘천기지를 이륙해 지형숙지훈련지역인 강원도 원통부근까지 비행해왔다. 이 헬기는 이날 비행금지선을 넘어 남방한계선 앞까지 비행한뒤 좌회전해 춘천으로 되돌아올 계획이었다. 이 헬기는 이 지역을 여러차례 비행한 주조종사 홀준위가 새로 전역온 힐먼준위에게 지형교육을 시키느라 비행을 한 것이며 미군측은 규정에 따라 며칠전 한국공군에 이 비행계획을 통보했다. 헬기는 이날 이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민간항공기의 운항이 통제되는 공역(P­518)을 통과했다. 당시까지는 본부와 계속 교신이 이루어졌으나 그 이후부터는 본부와 통신이 한동안 끊어졌다. 이는 헬기가 계곡을 따라 저고도저속비행을 하는 바람에 전파가 산악지형에 막혀 일어난 현상으로 이 지역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사고헬기는 통신두절 상태에서 10여㎞를 순식간에 비행,남방한계선을 통과하고 군사분계선 앞에 위치한 전방관측소를 지나치고 있었다. 그러나 헬기 조종사는 이때 위치를 잘못 파악하고 본부와 다시 가진 최종교신에서 『남방한계선 이남에 있는 비행금지선을 통과하고 있다』고 보고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을 종합해보면 이 헬기는 조종사의 실수로 북쪽지역으로 넘어간 것이 확실해지고 있다. 군의 한 관계자는 『남방한계선 바로 앞에는 산등성이마다 노란색으로 월경방지표지판이 세워져있으나 헬기가 계곡을 따라 비행을 하느라 이 표지판을 보지못한 것 같다』면서 『아군초소 근무자 역시 영하 30도의 강추위속에서 귀마개를 하고 전방만을 주시하던 중이라 갑자기 머리위로 지나치는 헬기에 미리 경고를 못했다』고 말했다. ◎외무부·국방부·주한미군 표정/북­미 교섭채널 면밀 주시/국방부,경고사격 안한 현지부대 조사 외무부·국방부 등 우리 정부는 미군 헬기의 북한지역 불시착사건이 북­미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정부 당국자들은 대체적으로 북한측이 미국과의 관계진전을 감안,미군 헬기문제를 빌미로 송환협상에서 「강수」를 사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면서도 상황에 따른 「돌출변수」를 내심 경계하는 분위기. ○…외무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미국과 북한사이에 어떤 채널이 어떻게 가동되는 지 비상한 관심을 갖고 양측의 교섭채널을 면밀히 주시.이는 교섭채널과 그 수준이 양측의 향후 관계개선전망을 간접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좋은 메시지가 될 수 있기 때문. 현재까지 외무부가 파악하고 있는 양측의 채널은 정전협정에 의한 군사정전위원회,북한의 주유엔대표부와 미국무부,미국의 북경대사관과 북한의 북경대표부,「특사파견」 등을 들 수 있는데 미국은 거의 모든 대북한 채널을 가동시키고 있다는 것이 외무부의 판단.이 가운데 정전위는 소령급의 공동일직장교회의만 한번 열렸을뿐 북한측은 대표회의나 비서장회의 등의 개최에는 심한 거부반응을 보이며 가급적 미국무부나 백악관을 상대로한 채널만을 열어놓고 「직거래」를 원하고 있는 상황이라고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설명. ○…이번 송환교섭에는 때마침 북한을 방문중이던 미 하원의 리처드슨의원(민주),크리스텐슨 미국무부 부과장 등이 백악관의 「명」을 받아 특사자격으로 활동하고 있는 상황.리처드슨의원은 당초 19일 상오 10시 판문점을 넘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클린턴대통령과 전화를 나눈뒤부터는 본격적인 송환협상에 뛰어든 느낌. 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측이 미군헬기의 「피격」사실을 방북중이던 리처드슨의원 일행에게 알려주었고 이들이 곧 워런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과 레이크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에게 조종사의 신변상황 등을 전화를 통해 알린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북한측이 방북중인 의원일행을 통해 미국측에 계속 협조적인 「사인」을 보내고 있어 사태가 의외로 일찍 매듭지어질 공산이 크다』고 전망. ○…워런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은 18일 상오 1시30분쯤 한승주외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미헬기 조종사 한명이 숨지고 다른 한명이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한국정부에 통보.크리스토퍼장관은 이 통화에서 사망한 조종사가 직접 총에 맞았는지 아니면 강제착륙과정에서 추락에 의한 사망인지를 밝히지는 않았으며 한국정부의 「임무」에 대해서도 별다른 요구사항이 없었다는 후문. ○…주한미군은 이번 사건과 관련,미군당국의 공식발표 이전에 사고에 대한 자세한 상황과 조종사이름 등이 「누설」된 데 대해 심한 불쾌감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주한미군측은 사고소식이 최초 유출된 「진원지」가 한국 국방부 또는 합참인지 아니면 주한미군측인지를 가리기 위해 당일 주한미군상황실 근무자를 대상으로 외부전화통화기록 등을 조사하고 있다는 것. ○…국방부는 일요일인 18일 이병대장관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모두 출근,미군헬기사고 진행상황을 점검한데 이어 19일에는 헬기가 월경한 지역을 맡고 있는 부대가 근무를 소홀히 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진상조사에 착수.국방부는 이 조사에서 미군헬기가 월경할 당시 아군초소에서 미처 경고사격 등을 취하지 못한 경위 등에 대해 집중조사할 방침.
  • 성수대교 붕괴 참사 그후(94년 충격의 365일:2)

    ◎무학여고생 “아직도 슬퍼요”/빈자리 지날때마다 급우들 눈시울/제자잃은 선생님들 불면증 시달려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같은 반 친구 이연수양을 잃은 무학여고 2년 김미경(17)양의 책상서랍에는 사고직전까지 연수양과 교실에서 나눈 쪽지편지 수십장이 조그만 플라스틱 상자안에 고이 간직돼 있었다. 『우리 둘만의 아름다운 얘기를 만들자.고등학교,대학교,결혼뒤에도 이어지는 멋진 얘기를…』 2학년 내내 단짝으로 지낸 미경양은 색색의 형광펜으로 곱게 쓴 연수의 쪽지글을 다시 꺼내보며 우정의 고운 베를 짤 친구를 잃은 충격이 아직도 채 가시지 않은 듯 말을 잃었다. 『잠꾸러기,아직도 자냐.빨리 일어나서 공부해야지』학기말시험을 앞두고 연수가 지난 중간고사때 이른 새벽에 걸었던 전화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게 들려오는듯 미경양은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시험때가 되니 연수가 더 생각나요.지난 중간고사때는 늦은 밤과 새벽에 공부하고 있는지 확인전화를 하며 서로에게 채찍이 돼주었는데…』 연수양의 담임이었던 송태훈(54·영어담당)선생님도 그날의 참사로 입은 정신적 생채기를 끌어안고 인고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그는 『사고가 나던날 방지거 병원에서 교복을 얌전히 입은 연수양의 시신을 목격한 뒤 매일 새벽 3시쯤이면 잠이 깨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며 『사고 직후 한때는 뚜렷한 대상도 없는 분노에 몸을 떨어야 했다』고 고통을 토로했다. 학우와 제자를 8명이나 한꺼번에 잃은 무학여고는 사고가 발생한지 50여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날의 아픔과 충격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성수대교 붕괴가 그만큼 우리사회의 전체를 뒤흔들었다는 얘기다. 이 학교 김영의(64)교장선생님도 『학생들이 모이면 그때의 이야기가 다시 나올 것 같아 조회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지금까지의 고충을 피력했다. 성수대교 붕괴가 이토록 우리사회에 충격을 준 이유는 무엇인가.튼튼한 것으로 인식되는 대교가 그토록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당혹감,희생자는 우리 모두라는 점,그리고 시민의 생명을 경시하는 부실공사·부실관리,이에따른 불신감의 확산이라고 하겠다. 이때문에 이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충격과 교훈을 남겼다. 우리사회가 성수대교의 붕괴를 전화위복으로 삼으려 안간힘을 쓰고있듯 무학여고도 제자리를 찾으려고 모두들 힘겨운 노력을 하고 있다.사고후 한때 썰렁했던 도서관에 최근 학생들이 다시 모여들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찬물을 끼얹은듯 무겁고 조용하기만 했던 교실에도 여학생 특유의 재잘거림이 서서히 되살아나고 있다. 그렇다고 성수대교 붕괴가 몰고온 아픔과 부끄러움이 치유된 것은 결코 아니다.그러기엔 그것은 너무도 부끄러운 이 시대 우리의 자화상이며 개발경제시대의 어두운 유산이기 때문이다. 피지도 못한채 떨어져버린 무학여고의 8송이 꽃망울이 하늘에서 편히 잠들기 위해선 우리사회 모두가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건설공사는 물론 교육,문화,경제,정치…. 『애꿎은 연수의 죽음으로 무엇을 배웠을까요』 미경양은 마치 어른들을 향해 항변하듯 질문을 던지고는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검사 7명·변호사 15명 법리논쟁/「성수대교」공판 이모저모

    ◎검찰,플라스틱 다리모형까지 제시/구속때 적용된 직무유기 혐의 제외 붕괴사고 55일 만인 15일 하오 서울형사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성수대교참사사건의 첫공판은 동아건설의 부실시공과 서울시 관계자의 관리소홀을 추궁하는 검찰과 이를 부인하는 피고인들의 접전으로 시종 팽팽한 긴장속에 진행됐다. ○…성수대교 건설에 간여했던 동아건설 관계자등 6명과 대교개통이후 교량관리·보수 등의 책임을 맡았던 공무원등 11명을 나눠 10여분간의 휴정시간을 제외하고 6시간 가까이 계속된 이날 재판에서 피의자들은 한결같이 혐의사실을 부인하는 것으로 일관,이번재판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 이신영 전서울시도로국장등 공무원들은 『안전점검결과 통보서를 작성하면서 하자보수대상 교량수를 줄이라는 지시를 한적도 받은 적도 없다』고 주장. 이국장 등은 『검찰수사과정에서 혐의사실을 일부 시인한 것은 연일 계속된 검찰수사로 피로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담당검사가 「시인해 달라」고 해 도의적 책임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강변. ○…이에앞서 신문을 받은 동아건설 부평공장 이규대(61)전상무등 동아건설 관계자들은 검사의 신문에 『잘 모르겠다』,『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등의 진술로 일관,책임회피에 급급하는 모습. 이들은 특히 용접불량등 사고를 부른 원인에 대해 『검사가 제시한 서류를 통해 부실시공을 확인했을 뿐 공사가 진행중일 때는 몰랐다』고 변명한데 이어 『도의적 책임은 있지만 다리붕괴에 직접적인 책임은 없다』며 항변. ○…검찰은 불구속피고인 2명을 포함,피고인이 17명이나 되는데다 변호인도 거물급 변호사 15명이 참여하자 이번공판에 형사1,5부와 특수2부 검사등 모두 7명의 검사를 투입,피고인들의 혐의사실을 입증하는데 총력. 특히 이번 사건을 진두지휘한 형사1부 이경재 부장검사는 공판이 시작된 직후 방청석에 앉아 신문하는 검사들에게 수시로 「쪽지」를 전달,신문내용을 보강하는 열성을 보이기도. ○…3백여명의 방청객들이 법정을 메운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이날 피고인들에 대한 신문에 앞서 1천만원을 들여 만든 높이 20㎝,길이 60㎝ 크기의 성수대교의플라스틱 모형과 스티로폴로 만든 H빔 모형 등을 법정에 들여놓고 『변호인과 재판부의 이해를 돕기 위해 모형을 제작했다』고 설명. 검찰은 또 직접신문에 나서기 전 준비해 온 원고를 통해 『전문적 지식이 요구되는 이번 사건의 수사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며 고충을 토로. ○…검찰은 당초 양영규·김재석 전도로시설과장 등 서울시 공무원 4명에 대해 직무유기 등의 혐의를 적용해 구속했으나 정작 기소단계에서는 업무상과실치사상혐의만 적용,재판에 회부한 것으로 드러나 직무유기부분에 대해서는 공소유지에 자신이 없었음을 표출. 대법원은 82년 판례에서 「주관적으로 직무를 버린다는 의식이 있어야 죄가 성립하고 태만이나 착각으로 직무집행을 성실히 수행하지 못한 경우에는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직무유기죄를 엄격하게 축소해석하고 있어 검찰이 직무유기혐의는 공소를 유지하기가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
  • 중국의 음주풍속(최두삼 귀국리포트:20·끝)

    ◎“깐베이(건배)” 제의땐 잔 비워야 예의/“일 적어 스트레스 없다” 좀처럼 만취 안해 기자는 60년대초 고등학생때 무전여행으로 전국을 순회한 적이 있었다.문자 그대로 돈없는 여행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거지마냥 얻어먹기도 쑥스럽고해서 하루종일 3끼를 굶은채 길을 걸어본 적이 있었다.이렇게 굶다보니 나중에는 나도 모르게 어느 농가로 발길이 옮겨져서 염체불구하고 얻어먹었던 꽁보리밥에 된장국은 아직도 「내평생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기억되고 있다. 중국혁명의 아버지 모택동도 기자와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감히 기자와 모택동을 비교한다는게 무엄하기 짝이없는 노릇이지만 굶다보면 누구나 비슷해지는지 모르겠다.어쨌든 모택동 등 홍군간부들은 장정기간중 마셔본 마오타이(모대)술 맛이 어찌나 좋았는지 평생을 잊지 못했다고 한다.1934년 겨울 대지가 꽁꽁 얼어붙은 가운데 장개석군대의 포화에 밀려 굶기를 밥먹듯하며 쫓겨다니다 귀주성 마오타이라는 지방의 농가에서 마셔본 술은 온몸의 피곤을 일시에 녹여줬을 뿐아니라 싸울 용기와 힘을 북돋아줬던 것 같다. 그후 공산당이 집권하자 이 술은 「혁명의 술」이 되어 중국 최고의 명주가 되었다.지난 72년 닉슨 미 대통령의 역사적인 중국방문때도 이 술을 대접해 서방세계에서도 유명해졌다.중국술중에 가장 비싸 한병에 3백위안(원·약3만원)안팎이나 하지만 이름값 하느라 그렇게 비싼 것같다. 중국에는 이 마오타이를 비롯해 펀지우(분주),주예칭지우(죽엽청주),우랑예(오양액)등 8대명주들이 각기 독특한 맛을 자랑하지만 가장 많이 팔리고 또 외국에도 수출이 가장 많은 술은 공자후손들이 빚어 팔고 있는 콩푸지아지우(공부가주)이다.언뜻 보아 가장 보수적일 듯한 공자후손들이 일찌감치 현대적인 광고수법에 눈을 떠 TV와 라디오 신문에 계속 술광고를 내보낼뿐아니라 심지어 거리의 전봇대에까지 광고쪽지를 붙여왔다.이 술은 항아리모양의 옹기병에 담겨있어 중국적인 멋을 풍기기도 하지만 가격도 마오타이의 10분의 1밖에 안된다. 어쨌든 중국에는 땅이 넓은 만큼 술도 많다.술종류는 크게 나눠 마오타이 우랑예등 맹물처럼 맑은백주,주로 과일로 담아 색깔이 있는 황주,그리고 맥주등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그중 맥주로는 20세기초 독일인들이 청도에 들어와 공장을 세웠다는 청도맥주가 가장 유명하지만 전국 곳곳에 많은 맥주공장들이 있어서 세계 제2의 소비시장을 이루고 있을 정도이다.황주로는 등소평이 즐긴다는 샤오싱지우(소흥주)를 비롯,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중국을 대표하는 술들은 수수로 빚는 고량주를 비롯,대체로 백주들이다.양주의 알코올도수가 대부분 40∼50도인데 비해 백주는 50∼60도가 대부분이며 심지어 69도짜리 헝양라오깐(항양로간)이란 술도 있다.한국의 소주처럼 중국의 서민들이 값싸게 마실 수 있는 얼궈터우지우(이과두주)도 최고 64도까지 올라가는 백주다. 중국인들의 술마시는 예법중 가장 두드러진 특징중의 하나는 깐베이(건배)다.한국에서는 건배라하면 무슨 「건강을 위해서」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말 그대로 「잔을 말린다」는 뜻이다.다시말해 잔에 있는 술을 모두 마신다는 것인데,중국인과 술을 마실때 이 말을 모르면 곤란하다.그들은 자주 건배를 제의하고 그때마다 잔을 비워주는게 예의이기 때문이다. 대신 한국에서처럼 술잔을 돌리며 강권하는게 없다.웨이터가 술잔의 술이 줄어들면 다시 채워주곤 하는데 이때 고맙다는 표시로 술잔옆 탁자를 가볍게 3∼4차례 두들겨 주는게 예의이다.그들은 『한국식으로 마셔보자』면서 잔을 돌려 술을 따라주면 어쩔줄 몰라 쩔쩔맨다.어떤 사람은 자기가 받은 술잔에다 자기가 직접 술을 따르는가하면 그저 눈만 껌벅거리고 있는 경우도 많다. 북경을 비롯한 중국 중부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술을 취하도록 마시는 경우가 드물다.강권하는 습관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하지만 건배 시합이 벌어졌다하면 정신없이 마셔대는 사람도 있다.30∼40명을 상대로 돌아가면서 일일이 건배를 하는 경우도 있다.그런데도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모습은 좀체로 구경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한 중국 공무원에게 『술을 마시고 취해서 헛소리도 좀 해야 스트레스가 확 풀리지 않겠느냐』고 물어봤으나 『우리는 억세게 일을 하지않아 풀어야할 스트레스가 없다.그래서 헛소리할 필요도 없다』고 대답했다.
  • 철원 민통선내 산불/임야 10㏊ 태우고 계속 번져

    【철원=조한종기자】 7일 상오 11시35분쯤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마현1리 민통선내 군부대 사격장에서 산불이 나 이날 하오 11시 현재 10㏊의 임야를 태운뒤 계속 번지고 있다. 이날 불은 군부대에서 개인화기 사격 연습중 불꽃이 사격장 주변 풀밭에 옮겨붙어 일어났다. 군당국은 불이 나자 군부대 헬기 2대와 군병력 50여명을 동원해 진화작업에 나섰으나 이 지역이 지뢰밭인데다 날이 어두워져 일단 철수했으며 불은 북쪽지역으로 계속 번지고 있다. ◎선산·금릉소도 이와함께 이날 하오3시쯤 경북 선산과 금능에서 일어난 산불은 8시간이 지난 하오 11시 현재 임야 6㏊를 태우고 계속 번지고 있다. 금능군 남면 오봉리 앞산계곡에서 일어난 산불은 임야 3◎를 태우고 불길이 계속 번지고 있으나 금릉군은 날이 어두워 더이상 진화작업을 벌일 수 없게 되자 하오8시30분께 진화작업을 벌이던 인원들을 일단 해산시켰다.
  • 증인보호 이래서야…/양승현 사회부기자(오늘의 눈)

    최근 우리 사회 전반에 충격을 던졌던 「지존파」사건과 온보현 연쇄납치 살해사건은 경찰 수사의 쾌거가 아니고 관련자의 신고와 범인의 자수로 범행의 전모가 밝혀졌다.경찰이 한 일이라곤 고작 추가 범죄를 밝혀 낸 보강수사 정도다. 그렇다고 시민들의 신고정신 또한 선진국 처럼 그리 높은 편도 아니다.서울 가락동 뺑소니 사망사고를 곧바로 해결할 수도 있었으나 사망자의 돈을 줍느라 뺑소니 운전자를 놓쳐 버린 게 우리 현실이다. 무슨 뺑소니 차량이 그렇게 많을까 할 정도로 서울의 웬만한 도로에는 「교통사고 목격자를 찾습니다」는 내용의 쪽지가 나붙어있다.선진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도덕 불감증의 현장이자 신고정신의 실종이다. 미국에서는 좁은 아파트 주차장에서 작은 차량 접촉사고만 일으켜도 반드시 피해차량의 앞유리창에 사고를 낸 사람의 명함을 꽂아놓는다.만약 그대로 달아났다간 「백이면 백」 아파트 어느 창가에선가 이를 본 사람의 신고로 잡히기 십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선 아무리 경찰력을 늘리고 장비를 현대화한다 해도 수사에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범죄문제 전문가들은 관련자나 주민들의 신고에 의존하는 폭이 갈수록 높아질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사실 경찰력 하나만으로 복잡다기한 현대범죄를 모두 막기엔 역부족인 게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경찰은 장비낙후와 인력부족,과다한 업무타령만 할 때가 아니다.갈수록 비중을 더해갈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단서가 될 증인이나 목격자의 보호에 우선 힘써야 할 때다. 그런데도 10·11일 사이에 법정에서 불리한 증언을 했다는 이유로 아무 관계도 없는 두 어린 생명이 목숨을 잃고 관련자들이 사경을 헤매는 충격적인 범죄가 또 발생했다. 그렇지 않아도 경찰에 사건을 신고하면 시도 때도없이 「오라 가라」 하는 통에 생업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시민들은 야단이다.경찰이 해주는 보상도 미미하기 짝이없다.그런데 불리한 증언을 했다고 한 가정이 완전히 파탄이 되어버렸으니 이제는 시민들의 신고정신 부족도 탓할 계제도,더이상 기대할 수도 없게 됐다. 우울하고 어두운 우리 경찰의 현주소가 안타깝기만 하다.
  • 김정일 손가락은 기형… 짧고 굽어(「85년 북한」 극비보고서:하)

    ◎6·25때 중국 피란… 석회 섞인물 먹은탓/멜론 등 열대과일 즐겨 특수온실 마련/오진우는 부정맥환자… 현준극도 심장박동기 달고다녀 국제정세와 관련,김정일은 몇몇 사회주의국가들의 사정을 언급하면서 일부나라들에서 종교의 위치가 너무 강하다고 비난.폴란드에서는 당화합에 사람모으기가 교회에 사람 모으는 것보다 더 힘들다니 한심하다고 했음.그는 최근 북한을 방문한 폴란드 예술단의 일행중에 당원들이 많이 포함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숙소인 호텔에서 예배를 본 사실을 이야기했음.김정일은 대부분의 동구 사회주의국가들에서 공식적으로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사실도 못마땅하다고 했음.그는 북한은 종교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나라라고 말했음.북한에는 실제로 예배를 보는 교회나 사찰·수도원은 한곳도 없다고 했음.그는 남한에는 수백만명에 달하는 신자들이 있기 때문에 통일이 되면 조선노동당도 종교문제를 다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음. 몽골에 관해 이야기하며 김정일은 도시에서도 많은 주민들이 유르타(천막)생활을 하는데 수많은 스님·신자들이 있는 나라라고 했음.양모나 무두질한 가죽 따위를 수출하면서 나라가 발전했다고 자랑하는 나라라며 꼬집었음.소련 국가 계획위원회 동지들이 북한경제에 필요하다며 몽골영토에서 갈탄채광을 계획했다가 철도건설·주택·생산시설등에 투자할 경비가 너무 많아 포기했다는 예도 이야기했음. ○중국 맥주맛 혹평 83년 6월 자신의 중국방문에 대해 언급하며 김정일은 호요방의 안내로 캔맥주 생산공장을 둘러본 이야기를 했음.그는 맥주맛이 어떠냐는 그 공장책임자의 물음에 답할 수가 없었다고 함.맥주맛이 너무 형편없는데 그 책임자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는 것임.그는 북한맥주가 훨씬 더 맛이 좋다고 했음.그 이유는 물 때문이라고 하며 김정일은 소련산 맥주,기타 소프트 드링크류도 맛이 떨어진다고 했음.소련산 미네랄 워터에 대해서는 칭찬. 남북한 관계에 대해 김정일비서는 사마란치위원장의 주선으로 로잔에서 열린 남북한 올림픽위원장 회담이 결과없이 끝났다고 했음.양측이 기존입장만 되풀이,아무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했다고함.그는 최근 남한이 새로운 형태의 스파이활동을 시작했다고 강조.얼마전 황해도 남부에서 남한 첩자 1명이 당노동자로 위장해 활동하다가 채포됐다고 했음.이 첩자는 무기나 기타 장비는 일체 소지하지 않고 북한파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손상시킬 목적의 선전물배포 임무를 받고 파견됐다고 함.이 사람은 지방당조직의 당선전내용을 요약한 노트 30권을 소지하고 있었는데 수정주의·교조주의와의 투쟁을 강조한 내용들이 적혀있었다 함.이 사람은 자신이 북한의 북쪽지방으로 침투하라는 밀명을 받았다고 자백했다 함.이 노트를 소련·중국에서 친척방문을 위해 온 한인들을 통해 소련·중국으로 전달하려고 했다 함.김정일은 국가보위부장이 이 일을 자신에게 보고하면서 이 노트들이 이미 형제국들에게 넘어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함.김정일은 적들이 북한·소련 관계가 강화되는 것을 원치 않고 두려워한다고 했음. 김정일은 자신을 포함,북한지도자들의 신상에 관한 정보도 제공했음.그는 자기 가족이 신장결석에 잘 걸리는 체질이며 자기도신장에 작은 결석 수개가 있다고 했음.그래서 의사들이 가급적 맥주를 많이 마시고 시금치를 먹지말라고 충고한다고 함.북한 비뇨기과 전문의들이 3년째 동독에서 신장결석 레이저 파쇄 치료법을 배우고 있다고 함.그는 현재 치료법은 비용이 너무 비싸 1회 치료에 자동차 3대값이 든다고 말하고 앞으로는 일반주민들도 이용할 날이 올 것이라고 했음.그는 정기적으로 의사의 진찰을 받고 있으며 자신의 주치의는 인민군의 의료 책임자로 있었고 소련서 3년 공부한 대학교수라고 소개했음. ○신장에 결석 많아 그는 자신이 한국전쟁중 중국의 길림에 피란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석회등 혼합물이 많이 섞인 나쁜 물을 먹어서 손가락이 모두 굽었다고 했음.손가락을 보니 모두 짤막하고 기형적인 모양을 하고 있었음.그는 손가락을 보여주며 『중국으로부터 받은 평생의 선물』이라고 말했음.정치국 상임위원이며 인민무력부장인 오진우,당중앙위 행정부장 김시학등도 중국 북동지방에 오래 살아 물로 인한 병을 같이 얻었다고 함. 김정일은 부친을 따라 50년대 소련,60년대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이야기를 했음.모스크바에서는 당중앙위 비서인 황장엽을 따라 동물원에 가서 한국 꿩을 본 기억이 난다고 했음.그는 정치국원과 당중앙위 비서를 지낸 숙부인 김영주가 몹시 건강이 나쁘다고 했음.김일성은 나이에 비해 크게 건강이 나쁜 편은 아니라고 함.김일성은 80년 눈질환으로 인한 두통을 심하게 앓았으나 그해 눈수술을 받은 뒤 두통이 없어졌다고 함.김일성도 신장결석 수술을 받았다고 함.수술은 권위있는 외과의사인 박명빈이 집도했으며 소련전문의들이 옆에서 도왔다고 함.평양의대를 졸업한 박명빈은 이 수술을 하기 위해 1년반을 준비했다고 함.의학서적을 집중연구하는 외에 수술경험을 쌓기 위해 유사환자 1백60명을 수술했다고 함.그는 현재 55세로 보건부장이라고 함(90년 10월 사망 ­편집자주).가끔씩 시도 쓰는 그는 지금도 수술기술을 유지하기 위해 주 3회씩 수술을 계속한다 함.그는 수술일에 전념하고 싶다며 3번이나 보건부장 면직요청을 정치국에 내 차기 당중앙위 전체회의에서 그의 청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함. 오진우는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불정맥을 앓고있다고 함.지난해 합병증으로 심하게 앓아 심장박동촉진기를 달라고 했는데 「병신같이 사느니 죽는게 낫다」며 그가 거부하고 있다고 함.김정일은 정치국 위원인 김중린,인민군 해군사령관 김일철,중앙전신전화국장 주현옥,당중앙위 국제부 제1부부장 현준극등이 모두 이 심장박동촉진기를 달고 잘 지내는데 오진우만 왜 안 달겠다고 우기는지 모르겠다고 했음.김정일은 이 박동기는 7년에 한번씩 배터리만 교체해주면 되는 아주 효과적인 기계라고 했음. 김정일은 모스크바 주재 북한대사인 권희경이 간질환과 신경계통에 질환이 있어 정기적으로 평양으로 와 진찰을 받는다고 했음.10월 14일에도 정기진찰을 받으러 와 10월 16일까지 평양에 머문다 함.김정일은 권희경대사가 모스크바에서 소련술과 중앙아시아산 과일등 음식물을 자주 자기앞으로 사서 보내온다고 했음. ○소 정부에 호의적 대화중 김정일은 슈티코프,라주바예프,수즈달레프,푸자노프등 소련대사와 소련고문관들에 대해 매우 호의적으로이야기했음.그는 어떻게 하든 자기가 소련정부와 소련국민들에 대해 호의적이라는 점을 보여주려 애썼음.그는 자기가 소련에 숨길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며 소련·북한의 우호관계를 지지한다는 것을 보이려고 했다.그는 앞으로 더 자주 만날 것을 제의했다. 그는 자기 국민들,동료들에 대해서 아무 거리낌없이 말했음.정치국원·당중앙위 비서들에 대해서도 가차없이 혹평을 해 그가 이미 국가·당서열에서 제2인자인 위치를 확고히 굳힌 것으로 보였음.김정일은 일상생활에서는 사치가 몸에 밴 것으로 보였음.서방 제품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고 바나나·멜론·수박등 여러 과일·채소들이 김일성 일가족만을 위해 특수온실에 연중내내 재배된다고 함.본인은 그가 여러 질문에 허심탄회하게 답해준데 대해 소련정부를 대신해 사의를 표했음.
  • 민자 「행정구역 개편」 간담회 중계

    ◎3시 광역화 “찬성”… 울산 직할시 “반대”/“환경·교통·선진국예 고려 넓혀야”/광역화/“성남·전주 등 타시와 형평 어긋나”/울산시 8일 서울 여의도 민자당사에서는 울산시의 직할시승격과 부산·인천·대구직할시의 시역확장등 최근 극심한 논란을 빚고 있는 2단계 행정구역개편안을 놓고 현지 주민대표와 정부·민자당관계자,대학교수등 전문가들이 찬반의견을 개진하며 격론을 벌였다. 민자당이 내무부의 개편안을 놓고 7일 당무회의에서 벌인 설전에 이어 여론수렴의 하나로 주관한 이날 토론에서 교수들은 주로 부산·대구·인천의 직할시역 확대에는 찬성했으나 울산의 직할시 승격에는 반대의견이 많았다. ○…내무부의 이시종지방기획국장은 개편안에 대한 설명에서 『사람의 키가 크면 옷도 갈아 입어야 하듯 인구집중추세에 따라 21세기 환태평양시대를 준비하고 통일을 대비하기 위해 개편은 불가피 하다』고 설명.이국장은 특히 『직할시역 확대는 달걀의 노른자위가 흰자위없이 성숙할 수 없듯 대도시의 환경·교통등 각종 도시문제를 극복하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강조. ○…최창호건국대 대학원장은 독일·일본·대만을 예로들며 『산업사회로의 빠른 발전을 해온 우리 나라에서는 특히 도시권을 중심으로 농촌을 통합해가는 행정구역 개편이 필요하다』고 직할시필요론에 찬성. 그는 『2천67년에 가면 우리나라 인구의 97.5%는 도시인이 될 것』으로 전망한뒤 『영국도 70·80년대 두차례의 대개편을 통해 대도시적 현대 행정을 구현했다』고 첨언. 오연천 서울대 행정대학원교수는 『민선자치단체장을 중심으로 하는 지방자치시대에서는 중앙집권적인 수직행정구조 대신 중앙과 지방의 협조적 경쟁관계를 정립해야 한다』고 전제한뒤 『독자적 항만도시로 발전해온 부산·인천의 시역확대는 도시의 자생기능확대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인정.그는 그러나 『울산을 새로운 직할시로 만드는 것은 마산·창원·성남·전주등 다른 유사지역과의 형평성과 국민경제적 필요등에 비추어 최선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신중론을 피력. 반면 김석준이화여대교수는 『당연시돼야 할 문제가 갑작스레 제기됨으로써 국민들이 당황하고 정치권의 싸움으로 비약되고 있다』면서 「행정단계 축소론」과 「세계화」를 내세워 직할시 확대 및 울산시승격에 찬성. 김용래전서울시장은 『벌써 도시화율이 48%에 이르고 세계추세가 도·농구별이 없는 광역화를 향하고 있으므로 울산을 도와 분리된 직할시로 하지 말고 특례시 정도의 지위를 인정,사무와 기능배분·재원배분에서 일정부분 독자성을 주거나 도와 공동운영하도록 하자』는 대안을 제시. ○…김정웅부산상공회의소 사무국장은 『물류시설이 포화에 이른 부산을 국제물류단지로 생존시키기 위해 배후지원지로 쓸 땅이 절실하다』고 부산확대론을 강조. 반면 신태성경남도의회 내무분과위원장은 개편안 반대운동을 위해 자른 손가락을 붕대로 감고 나와 『경남은 이제 껍데기만 남게 될 몰락의 운명앞에 장례식만 남았다』고 개편안을 성토.신위원장은 『어제 마산시의회가 내무부장관 사퇴결의안을 내고 마산 청년회의소·불교청년회등 75개 단체가 서명·성명등 항의운동을 벌이는 가운데 오늘 경남도의원들은 민자당직 사퇴결의를 한다』고 소개. 그는 『울산을 떼어내면 경남은 45%의 살림을 빼앗기고 재정자립도는 35%이하로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뒤 부산시 확대론에 대해서도 『78·79년에 부산에 편입된 일부 지역주민들은 세금만 많고 부산의 쓰레기밭이 돼버린 것에 분노,환원요구운동을 벌인 것으로 안다』고 반대. ○…백남치정조실장은 『여러분의 뜻을 충분히 검토,국가경영 및 지역발전 차원에서 바람직한 당론을 모아 정부와 협의,결정하겠다』고 원론적 답변으로 토론을 마감. ◎「행정구역 개편」 민자 움직임/울산직할시 승격·유보 격론/찬·반인사들 잇단 방문… 당사 어수선/“준직할시로”·“시군통합만” 대안 백출 행정구역개편안을 마무리짓는 소임을 떠안은 민자당이 『문제를 합리적이고 원만히 처리하도록 하라』는 김영삼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기존의 개편추진방향을 수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아울러 시간을 너무 끌지 말라는 당부에 따라 당론수렴 및 당정협의 일정을 서둘러 매듭짓기로 방향을 틀었다.그러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해당지역 주민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묘책이 없어 여전히 곤혹감을 떨치지 못하는 가운데 갖가지 절충안들이 당내에서 제기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반적으로 민자당은 「합리적이고 원만한 처리」를 강조한 김대통령의 속뜻을 울산의 직할시 승격과 부산·대구·인천의 시역확장이라는 기존 내무부안의 완화로 받아들이는 분위기. 박범진대변인은 8일 『오늘 고위당직자회의는 광역행정구역 개편과 관련해 지역간 대립이 예상외로 심각한 상황이라는데 인식을 같이 했으며 논란이 장기화되면 부작용이 커지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당지도부의 조기수습방침을 설명.박대변인은 특히 대통령의 지시내용을 『주민의사에 반해서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하면서 『당이나 행정부가 주민의사에 반하는 것을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내무부안의 상당부분 후퇴를 시사. 그동안 내무부안을 지지해온 문정수사무총장도 『대통령의 말씀은 내무부안을 그대로 추진하기에는 무리라는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진단했으며 민주계의 한 인사는 『지금의 상황으로는 울산의 직할시 승격이 불가능 할 것같다』고 전망. 그러나 이세기정책위의장과 백남치정조실장은 『대통령은 원칙론을 말씀하셨는데 언론이 울산의 직할시승격 유보와 3개 직할시의 시역확장 최소화로 확대해석하는 것같다』면서 『지금은 공론화과정이니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당의 방향선회를 부인.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당론이 정해질지 추측이 무성한 가운데 당내에서는 경남과 울산 양쪽지역의 불만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절충방안들이 제기돼 주목. 한 고위당직자는 이날 『일본에는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의 중간형태인 「지정시」라는게 고베 등 10개나 있다』면서 『이는 우리의 준직할시 또는 준광역시 개념에 해당하는 것으로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고 불쑥 문제를 제기. 이 당직자는 특히 『이같은 준광역시의 기준을 인구 1백만 정도로 정하면 울산은 몇년 기다려야 하지만 희망을 가질 수 있고 성남·부천등 다른 도시들의 형평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해결할 수 있다』면서 당론수렴과정에 이같은 방안의 검토를 제기할 뜻을 피력. 백남치정조실장은 『직할시 승격 차원이 아닌 울산시·군의 통합은 언제라도 가능하지만 이 방안은 울산지역 주민들을 만족시킬 수 없는게 문제』라고 언급,시·군통합이 직할시 승격의 유보에 대한 대안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음을 시사. ○…민자당사에는 이날 심완구 울산남지구당위원장이 찾아와 『행정적 차원에서 시도된 울산의 직할시 승격이 정치적 논리로 무산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는가 하면 곧이어 경남 거창의 주민대표 7명은 정책위의장실을 방문,심위원장과 반대로 울산의 직할시 승격 및 부산의 시역확장에 대한 반대의사를 전달.게다가 전북 전주에서도 직할시 승격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표면화되고 있고 10일부터 경남지역 주민들이 항의시위를 하기 위해 집단으로 상경할 것이라는 소식이 날아들어 당사는 이래저래 뒤숭숭한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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