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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학 만나니 삶의 희망이 보였습니다”

    “인문학 만나니 삶의 희망이 보였습니다”

    “현실은 달라진 게 없지만 어제와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내일은 또 달라져 있겠죠.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노숙자 생활을 하다 사회적 기업인 ‘청소세상’을 만든 유상희(53)씨는 15일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곧 전셋집을 마련해 쪽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청소세상은 지난해 12월 서울 중구에서 두 번째 만든 자활공동체로 최근 서울시로부터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중학교 졸업 학력이 전부인 유씨의 삶을 변화시킨 계기는 ‘인문학’이었다. 1998년 경제위기 때 실직한 뒤 노숙생활과 남대문 쪽방에서 지내다 2009년 구에서 개설한 ‘희망의 인문학 과정’을 수강하며 전환점을 맞았다. “인문학을 공부하며 그동안 살아왔던 삶을 곱씹게 됐습니다. 역사가 이렇게 재밌는 과목인 줄 몰랐고, TV에서만 보던 연극과 영화를 직접 보면서 인생을 돌아보게 됐죠. 삶에 대한 희망도 보였습니다.” 인문학에 눈을 뜬 그는 틈만 나면 인근 남산 도서관에 가 강사들이 추천한 책을 읽었다. 2008년부터 지역자활센터 청소사업단 ‘하얀나라’에서 3년간 청소기술과 영업 마인드를 습득하는 등 노력한 끝에 지난해 말 동료들과 함께 독립해 청소세상을 창업했다. “스스로 세상을 헤쳐 나가야 하는 게 부담스럽고 많이 부족했지만 일단 해 보자는 생각에서 열심히 일했어요. 그리고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서울시에서 7500만원의 대출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부지런히 뛰며 새로운 기술도 익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씨를 심겠다.”며 또 웃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봉사하며 아내도 얻고… 여생 외롭지 않아”

    “봉사하며 아내도 얻고… 여생 외롭지 않아”

    지난 2009년까지만 해도 매일 아침 서울 영등포역 근처에서는 임진국(96)씨를 만날 수 있었다. 임씨는 교통경찰 제복을 입고 손에 신호봉을 든 채 교통이 혼잡한 영등포역 근처에서 교통정리를 해왔다. 그가 영등포 일대 도로 위에서 시간을 보낸 세월이 무려 30년이나 된다. 주민들은 그런 임씨를 ‘영등포 교통장관’으로 불렀다. ●영등포 도로 위에서 교통정리 봉사 30년 임씨의 교통정리 봉사는 50여년 전에 목격한 교통사고의 충격이 계기가 됐다. 1964년 어느 날 청계천을 지나다 초등학생 3명이 유턴하던 차량에 치여 숨지는 모습을 본 것. 임씨는 서울지방경찰청을 찾아가 교통경찰 제복을 얻어 입고 종로·을지로·청계천 등에서 교통정리 봉사를 시작했다. 그러다 1979년부터는 영등포역 근처로 옮겨 이곳에서만 30년 동안 교통정리 봉사를 했다. ●후원회원·경찰 등 수많은 자식들 생겨 사람들은 그를 ‘교통장관’이라고 불렀지만 그의 삶이 장관의 그것처럼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네살 때 일본인 부부의 양자가 돼 일본으로 건너가 살다가 광복이 되어서 귀국했지만 곧바로 6·25 전쟁을 겪어야 했다. 이후 결혼을 하지 않아 따로 가족이 없는 그는 영등포의 한 평 남짓한 쪽방에서 외롭게 살아왔다. 그러던 가운데 임씨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생활에도 큰 변화가 왔다. ‘임진국 교통할아버지후원회’가 생겨 그에게 자그마한 아파트를 선물했는가 하면 후원회와 영등포경찰서의 도움으로 2006년에는 같은 쪽방촌에 살던 차갑선(79) 할머니와 백년가약을 맺기도 했다. 이제는 건강이 좋지 않아 더는 교통봉사 현장에 나서지 못하지만, 임씨는 “교통봉사를 하면서 여생을 같이할 아내도 얻고, 후원회와 경찰 등 수많은 자식들까지 두게 돼 결코 외롭지 않다.”며 주름진 얼굴에 가득 웃음을 담았다. 김소라기자 sors@seoul.co.kr
  • 국제결혼 단꿈, 인신매매 악몽으로

    국제결혼 단꿈, 인신매매 악몽으로

    한가위 연휴 내내 김재민(가명)씨의 집에는 떠들썩한 웃음소리 대신 정적만 감돌았다. 노모는 빈 방에서 넋을 놓고 있는 아들을 보고 소리죽여 울었다. 숫기가 없어 이성을 잘 만나지 못하던 40대 중반의 노총각 아들에게 국제결혼을 권한 것이 발단이었다. 그저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외국인 배우자를 만났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한 번의 ‘실수’로 김씨는 사람도, 돈도, 믿음도 모두 잃었다. 김씨는 최근 인터넷에 오른 ‘몽골 여성 국제결혼 중개’ 광고를 보고 회원으로 가입했다. 항공료, 가입비까지 수천만원을 중개업체에 지불했다. 신부 측에도 지참금 명목으로 수백만원을 건넸다. 몇 달 뒤 다른 3명의 남성과 함께 몽골로 날아갔다. 한데 모든 것이 이상했다. 업체 측은 김씨 일행을 작은 쪽방에 감금하다시피 한 뒤 은밀하게 아가씨들을 소개했다. 식사는 단무지에 쌀밥, 멀건 된장국이 전부였다. 맘에 드는 아가씨를 만나 결혼을 약속했지만 김씨는 몇 시간 뒤 경찰에 체포돼 철창에 갇혔다. 현지 출입국관리사무소로부터 “업체 주선으로 아가씨를 만났다.”는 사실이 적발됐기 때문이다. 주몽골 한국 영사관 관계자는 “몽골의 정서상 업체가 개입된 결혼 자체를 인신매매로 간주한다.”고 밝혔다. 결국 김씨는 수백만원의 벌금을 물고 나서야 경찰서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결혼은 했지만 불행은 끝이 아니었다. 귀국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신부가 집을 나갔다. 수소문한 결과 한국에 먼저 온 애인을 찾으러 갔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남은 것은 금전적 피해와 극심한 정신적 고통뿐 이다. 김씨의 어머니는 “국제결혼 중매 업체를 통한 현지 결혼이 불법 인신매매로 통하는 줄 알았다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돈벌이에 눈먼 일부 업체와 외국인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데도 정부는 전혀 손을 쓰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등의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는 현행법상 ‘중개업체를 통한 국제결혼’을 금지하고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김씨처럼 자국민이 타국에서 억류되거나 벌금을 내는 등 피해를 입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제대로 된 실태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베트남 현지에서 확인한 한국인 불법 결혼 중개 건수는 2008년 4건, 2009년 5건, 지난해 7건이었다. 중국, 필리핀, 캄보디아, 몽골 등에서는 아예 불법 결혼 중개 사례가 보고된 적이 없다. 지난해 기준, 국내 결혼이민자 가운데 60%가 동남아권에 집중돼 있다. 이들 대부분은 국제결혼 중개업체를 통해 배우자를 만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국제결혼 피해사례는 2005년 64건, 2006년 96건, 2007년 72건, 2008년 137건, 2009년 176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자국민이 타국에서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피해를 입는 사례가 적지 않은 탓에 정부의 관리·감독이 허술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전문가들은 “업체와 민간기관 또는 정부가 손잡고 국제결혼 자문기관을 만들거나 영리 목적이 아닌 정부 차원의 중개시스템 개발을 검토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커버스토리-한가위] “돌아갈 집도 없고 대책도 막막” 수해민 끝나지 않은 악몽

    [커버스토리-한가위] “돌아갈 집도 없고 대책도 막막” 수해민 끝나지 않은 악몽

    추석을 앞둔 지난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우면산 밑 전원마을 세입자 박준철(가명·58)씨는 서초구청 앞마당에 차려진 장터에서 연거푸 막걸리를 들이켰다. 박씨는 아침 빗물이 들어찬 반지하집, 진흙 범벅이 된 가구 사진 등을 가방에 넣고 서초구청을 찾았던 터다. 구의원이나 구청 직원들이 눈에 띌 때마다 달려가 인사를 하고 “당장 먹고살 세간살이라도 마련할 수 있는 보상금을 좀 더 대달라.”며 하소연했다. 구의원들은 얼굴이 붉으스레한 박씨에게 “힘써볼게요.”라고만 답할 뿐이었다. 구청 측도 딱히 수해를 입은 세입자 대책이 없다고 했다. 박씨는 또 막걸리잔을 들었다. 우면산 토사가 쏟아져내리던 날 박씨의 반지하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박씨 부부는 친척집에 머물렀다. 그러나 박씨는 친척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혼자 서초구청 부근 찜질방으로 거처를 옮겼다. 보상금으로 받은 100만원은 당장 먹고살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세간살이 장만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형편이다. 게다가 아내는 좁은 창문으로 빠져나오다 허리를 다쳐 수술 날짜까지 받아 놓았다. “돌아갈 집도 없는데 무슨 추석입니까. 연휴 기간에 친구들과 서초구청 앞에서 술이나 한잔할 겁니다.” 박씨가 말하는 추석이다. 서울역에서 노숙생활을 하는 이훈성(가명·56)씨도 추석은 남의 일일 뿐이다. 1998년 IMF사태는 이씨를 고향 광주에서 서울역으로 떠밀었다. 노숙 동안 막일을 해서 쪽방이나 고시원 생활도 했다. 그러다 돈이 떨어지면 서울역 근처에 머물며 일자리를 찾았다. 가족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고향에 간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할 정도다. 올여름은 유난히 비가 잦아 거의 일하지 못했다. 돈을 벌지 못하니 쉴 방을 구할 수도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달 22일부터 서울역에서 잠을 잘 수도 없게 됐다. 이씨 입장에서는 ‘잠터’마저 잃은 것이다. 이씨는 “노숙인에게 추석이 무슨 의미일까마는 올 추석은 더 쓸쓸하고 외롭다.”며 고개를 꺾었다. 대학 4학년생 정지은(22·여)씨는 추석 연휴 기간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며 보내기로 했다. 고향에 내려가는 친구가 가르치던 고3 학생의 과외를 맡겼기 때문이다. 고향에 가고픈 생각이 굴뚝같지만 4일 동안 모의고사 문제를 풀어주고 20만원을 받는다는 조건을 뿌리치지 못했다. 대학 생활 내내 한 푼이라도 아끼고 최대한 모으는 버릇이 몸에 밴 탓이다. 400만원에 가까운 이번 학기 등록금 가운데 절반은 집에서 대 줬다. 나머지는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충당해야 할 처지다. 그러나 장학금을 받는다는 보장이 없는 만큼 허리띠를 졸라매고 뛰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월세, 생활비, 교재비 등을 따지면 단돈 만원이 아쉬운 형편이다. 정씨는 “과외 때문에 고향에 못 간다고 말씀드리면 부모님께서 속상해 하실까 봐 연휴 동안 토익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중구, 남대문지역상담센터 확장 이전

    남대문 쪽방촌 주민들의 사랑방인 ‘남대문지역상담센터’가 새로운 집으로 이전했다. 중구는 5일 남대문로5가 중구 상공회 건물 5층에서 최창식 구청장과 쪽방 거주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남대문지역상담센터 개관식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상담센터는 이 건물의 지하 1층과 지상 4층 등 2개 층을 사용한다. 지하 1층에는 목욕탕과 이·미용실, 체력단련실, 빨래방, 탈의실 등이 있으며, 지상 4층에는 센터 사무실과 상담실, 의료실, 정보통신실, 주민휴게실 등이 들어섰다. 현재 남대문로5가 남대문경찰서 뒤편에는 33개 건물에 708개의 쪽방이 있으며, 쪽방촌 주민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293명과 65세 이상 홀로 사는 노인 150명, 장애인 146명 등 755명에 이른다. 최 구청장은 “쪽방촌 주민들에게 라면 등 식료품과 푸드뱅크 및 무료급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자활 의지가 높은 주민들에게 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도록 상담하는 등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해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전경련 쪽방촌에 ‘사랑의 쌀’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추석을 앞두고 서울지역 5곳의 쪽방촌 가구에 ‘사랑의 쌀’을 전달한다고 4일 밝혔다. 전경련은 이날 영등포 쪽방촌에 530포대를 전달한 것을 시작으로 종로(6일, 650포대), 동대문(6일, 306포대), 남대문(8일, 769포대), 용산구(8일, 850포대) 등 전체 3105가구에 쌀을 나눠준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시민들 ‘식판정쟁’에 냉정했다] 삼성동 아침부터 ‘활기’… 창신동 젊은층 외면 ‘썰렁’

    [시민들 ‘식판정쟁’에 냉정했다] 삼성동 아침부터 ‘활기’… 창신동 젊은층 외면 ‘썰렁’

    서울시 무상급식 지원 범위에 관한 주민투표가 실시된 24일 투표 현장에서는 지역별·연령별 온도차가 뚜렷했다. 중·장년, 노년층이 주로 이른 아침부터 투표소를 찾았고, 강남권의 참여율이 두드러졌다. 투표율이 33.3%에 못 미쳐 투표함을 열지 못하게 되자 일부 시민들은 아쉬워했다. ●‘지방선거 몰표’ 강남구 투표 두각 오전 8시 30분 강남구 삼성1동 주민센터 1층에 마련된 제3투표소에는 4~5분 간격으로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특히 40~50대의 중년여성과 할머니 유권자들이 많았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몰표로 오세훈 서울시장을 밀어준 강남권은 다른 지역과 달리 투표하러 나온 주민으로 활기를 띠었다. 중학교 2학년 자녀를 둔 주부 최모(44)씨는 “나도 딸이 있지만 소득 하위 50%의 어려운 아이들에게만 집중 지원하는 것이 국가 장래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투표 이유를 설명했다. 강남구 대치동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인 단국대 사범대부속고등학교 투표소에서는 오전 6시 40분쯤 유권자들이 100m가량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했다. 오후 들어 투표소를 찾는 강남 주민들의 발길이 다소 늘어나기도 했다. ●노년 참여율 높고 투표 여부 함구 반면 쪽방촌 거주자 등 저소득층 유권자가 많은 종로구 창신1동 주민센터에는 아침부터 중·노년층을 중심으로 유권자들이 투표소를 찾았지만 총선·대선 등 대형 선거 때와 비교하면 투표율이 극히 낮았다. 종로구 청운효자동 자치회관에는 오전 7시부터 1시간 동안 40~70대만 투표에 참여했다. 20~30대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성별도 8대2의 비율로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관악구 청룡동 관악구의회 투표소 역시 썰렁한 분위기였다. 투표 행위 자체가 오 시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인식되면서 투표 여부를 숨기는 이들도 많았다. 회사원 이종원씨는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 같아 동료들끼리 서로 투표 여부를 묻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서울시와 자치구 공무원들은 하루 종일 주민투표 여부에 대해 입 밖에 내는 것을 꺼렸다. 상당수의 구청 직원들은 여당 서울시장과 야당 구청장이 맞선 형국의 선거에서 어느 때보다 조심스러워했다. 한 자치구 공무원 A씨는 “전면적 급식이 옳은지, 단계적 급식이 옳은지를 떠나 여야로 엇갈린 단체장의 눈치를 봐야 하는 공무원들에게 이번 투표는 정말 불편하다.”고 말했다. ●吳시장·郭교육감 희비 교차 오 시장은 오전 6시 45분쯤 종로구 혜화동 자치회관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부인 송현옥씨와 함께 표를 던졌다. 이후 현충원을 참배한 뒤 오후에는 집무실에서 투표 마감 시간까지 투표율을 확인하다 모처로 떠났다. 곽노현 교육감은 오전 9시쯤 출근해 “이번 투표는 아이들에게 차별급식하자는 나쁜 투표”라면서 “투표 거부는 정당한 권리 행사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또 “교육감으로서 투표에 참여할 수 없어 가장 강력한 반대의사 표시로 착한 거부를 했다.”고 말했다. 허광태 시의회 의장은 주민투표 종료 직후 “불의한 투표에 단호한 심판을 내린 위대한 서울시민의 승리”라면서 “시민들이 친환경 무상급식과 민주주의를 지켰다.”고 자평했다. 조현석·김효섭·백민경·김진아기자 white@seoul.co.kr
  • [경제 브리핑] 쪽방 거주자 취업때 수당 최대 100만원

    고용노동부는 쪽방이나 비닐하우스 등 정상적인 주택이 아닌 거처에 살고 있는 ‘비주택 거주자’가 취업하면 최대 100만원의 수당을 지급한다고 8일 밝혔다. 고용부에 따르면 전국의 비주택 거주자 3만 7000여명 중 3만 2000여명이 취업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고용부는 이들이 직업훈련이나 집단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최대 20만원, 직업훈련과정에 등록하면 생계보조수당 월 20만원을 지급하고 취업에 성공하면 최대 100만원을 지급할 예정이다. 직업훈련비(200만∼300만원)는 면제된다.
  • [독거노인 사랑잇기] 노인이 행복한 사회 (10)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말벗’ 봉사

    [독거노인 사랑잇기] 노인이 행복한 사회 (10)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말벗’ 봉사

    “안녕하세요. 할머니.” “아이고, 그래. 그쪽도 잘 지내셨지요?” “밤새 잘 주무셨어요?” “잘 잤지, 방금 운동 갔다가 와서 누웠어. 근데 어지러워. 왜 그럴까.” “오늘 드실 약 잘 드셨어요?” “약은 먹었는데, 어지럽네.” “날씨가 더워서 그런 것 같아요. 오늘은 쉬시고 오후까지 어지러우면 근처 병원에 한번 다녀오세요. 참, 막내딸네는 다녀오셨어요?” “그럼, 갔다 왔지. 어제 저녁 늦게 왔어.” “할머니 잘 쉬시고, 주말 잘 보내세요. 제게 재밌는 말씀도 많이 해주시고요.” “그래요. 항상 염려해줘서 고마워요.” 누군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다면 손녀와 할머니의 대화로 착각할 수도 있다. 이 대화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담사와 독거노인이 주고받는 안부 통화 내용이다. 자신이 맡은 업무를 하면서 독거노인의 건강을 가족처럼 챙기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심평원 상담사들은 자발적으로 이들 독거노인과 가족의 연을 맺고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상담사들 자발적 실천… 봉사분야 다양 심평원 콜센터 상담사는 50명. 각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54명의 독거노인에게 안심콜서비스 전화를 한다. 일주일에 두 번이지만 노인들의 반응은 뜨겁다. 정완순 심평원 고객센터 차장은 “서초구에 사는 노인이라고 해서 모든 노인이 부유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복지단체의 추천을 받아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 지속적으로 안부전화를 해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도와드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 노인은 모두 75세 이상의 고령인 데다 일부 노인은 지병이 있어 집 밖을 나서는 것조차 어렵다고 호소한다. 집 안에서만 주로 지내는 노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서적인 위로다. 가끔씩 노인들이 금품을 노린 사기전화로 오해해 냉대하는 사례도 있지만 상담사들은 웃음을 잃지 않고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노인들을 대하고 있다. 정 차장은 ”외로우니까 누군가 연락해주는 것을 너무나 반기는 어르신이 많지만 어떨 때는 사기전화로 의심해서 냉대를 받을 때도 있다.”면서 “하지만 꾸준히 연락하면 마음을 열고 전화를 기다리게 된다.”고 말했다. 노인들이 마음을 열고 시시콜콜 여러 얘기를 늘어놓으면 지루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상담사들은 노인들의 대화를 더 기다린다고 했다. 특히 건강보험 심사를 담당하는 심평원은 의료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있기 때문에 노인 건강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해주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지난 6월 27일에는 창립기념일을 앞두고 독거노인 가정에 쌀 10㎏과 라면 1박스씩을 전달하는 행사를 가졌다. 서초구는 물론 인천과 경기 성남, 고양까지 직접 찾아가 44가구에 식료품을 전달했다. 본래 인근 지역 노인들을 초청해 본원 지하식당에서 잔치를 가질 계획이었지만 많은 노인들이 거동이 불편하다는 점을 감안한 행사였다. 노인이 집을 비운 곳도 찾아가 이웃을 통해 식료품을 전달하도록 조치했다. 당시 쌀을 받은 김모(76) 할머니는 “우리네가 뭘 해준 것도 없는데 이렇게 고생스럽게 찾아다니면서 도와주니 감격스러울 따름”이라면서 “누군가 나를 돕는다는 생각을 하면 외로움이 훨훨 날아가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심평원은 독거노인 방문과 별도로 다양한 노인 돕기 행사를 펼치며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올 1월에는 설 명절을 앞두고 서울지역 쪽방촌 노인 300여명에게 내복과 쌀을 전달했고, 최근에는 서울노인복지센터에 신입사원이 방문해 2000여명의 노인에게 구두닦이와 배식, 안경세척 등의 봉사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또 인턴직원들은 노인들을 위해 7000개의 만두를 빚어 대접하는 행사를 가졌다. 노인들이 어려워하는 손발톱깎기 봉사활동도 진행했다. 모두 보건복지부에서 집중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과 맞물려 지역 주민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낸 사업이다. 지난해 겨울에는 강남구 구룡마을을 방문해 연탄 2000장과 쌀·라면 등의 생필품을 전달했다. 당시 행사에는 여느 봉사행사와 마찬가지로 강윤구 심평원장이 직접 참여해 쌀과 라면을 함께 나르며 땀을 흘렸다. 일부 직원들은 일회성 행사로 끝낼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진행할 것을 청하기도 했다. 공공기관으로 평소에도 대민 서비스에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특히 봉사활동에 대한 직원들의 반응이 좋았다. 당시 봉사단에 참여한 김옥봉 심평원 기획예산부 차장은 “봉사활동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뤄지기를 바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더 열심히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의료 강점 살려 봉사분야 확대할 것” 심평원은 방문행사와 함께 향후 1~2년 내에 두배로 확장하는 콜센터를 활용해 안심콜서비스 사업을 더욱 확대할 방침이다. 상담사들을 늘려 업무부담을 줄이고, 일부는 노인 봉사에 집중하도록 돕는다는 계획도 세웠다. 김충렬 심평원 고객지원실장은 “독거노인은 생활의 문제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대화할 상대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라면서 “특히 심평원에는 간호사 등 전문인력이 많기 때문에 단순히 ‘병원에 가보시라’는 말 이상의 도움도 드릴 수 있다.”고 소개했다. 심평원의 사회공헌활동은 독거노인 돕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또 다른 중점 사업은 희귀난치병 어린이 돕기. 희귀난치병 어린이에게 치료비와 격려금을 지원함으로써 공공기관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것이다. 심평봉사단은 한 해 1000명이 넘는 직원이 5000시간 가까이 봉사활동을 펼쳐 대표적인 사내 봉사단체로 남았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쪽방이라도 있으면 노숙 안할 텐데…”

    “쪽방이라도 있으면 노숙 안할 텐데…”

    “당장 어디서 자야 할지, 자유카페니 뭐니 소용없어요. 주거만이라도 해결된다면….”(서울역 노숙인 이모씨)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서울역 안에서 생활하는 노숙인의 강제 퇴거를 하루 앞둔 31일 노숙인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노숙인들은 서울시가 노숙인들의 쉼터로 제공할 자유카페의 이용을 꺼렸다. 전문가들은 노숙인들을 한 곳에 몰아 통제하는 정책보다 독립적인 주거지원이 효과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날 오후 6시쯤 서울역 앞 광장 한쪽에는 노숙인 10여명이 쏟아지는 비를 피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술에 취해 앉아 있거나 신문지나 깔개 위에 누워 있었다. 이들은 1일부터는 마땅히 갈 곳이 없다며 걱정스러워했다. 서울역에서 3개월째 노숙하고 있는 김모씨는 “서울역에서 밀려나면 공원이나 지하도밖에 갈 곳이 없다”면서 “쉼터도 있지만 시설이 열악하고, 규율을 따르며 살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다른 노숙인 이모씨는 “영등포역 등으로 가고 싶지만, 그곳에는 이미 자리를 차지한 노숙인들이 많아 아예 포기하고 다른 장소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대책인 자유카페에 대해 노숙인들은 거의 기대하지 않고 있다. 노숙 생활 2개월째라는 한 노숙인은 “자유카페라 해도 결국 한 곳에 수용하는 쉼터나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노숙인은 “자유카페 같은 대책도 공무원들의 생각일 뿐”이라면서 “좁은 고시원 방 하나라도 있으면 행상을 하든 막노동을 하든 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다. 남기철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주거지원은 노숙인들의 자립심과 자활 의지를 길러주며,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 편입되도록 도와주는 효과도 있다.”고 강조했다. 노숙인들이 자신의 집에서 살고 싶다는 욕구를 충족시켜 줘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 노숙인들에게 주거공간을 지원해 주는 사업으로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임시주거비지원사업’이 있다. 노숙인들에게 고시원과 쪽방 등의 월세 2개월분을 대주면서 주민등록 복원,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신청, 일자리 연계 등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전국 주요도시에서 1년에 500여명의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결과, 2개월 뒤에도 노숙을 하지 않고 주거를 유지하는 노숙인이 전체의 79.6%에 달할 정도로 효과를 보이고 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집행위원장은 “장애가 있거나 고령 또는 질병 치료가 필요한 노숙인들을 위해 차별화된 쉼터를 마련하는 주거대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신진호·김진아·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용산구, 마을기업으로 고용·나눔 실천

    “아직은 시작 단계라 많이 힘듭니다. 그래도 계속 노력하면 번창할 게 틀림없어요.” 용산구에서 최근 문을 연 한식당 ‘사랑방 밥이보약 밥집’의 엄병천 대표는 25일 영업을 시작하는 각오를 이렇게 다졌다. 그는 “이웃들을 위해 지속가능한 운영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이곳은 동자동 뒷골목 쪽방촌 주민들의 자활을 돕기 위해 문을 연 ‘마을기업’이다. 마을기업은 지역 공동체 주도로 향토 자원을 활용, 안정적 소득과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설립된 마을 단위 기업을 뜻한다. 지난해부터 행정안전부에서 선정, 국비·시비 등으로 개업과 운영을 지원하고 있다. 보통 1년 정도 계약을 맺고 3000만~5000만원 수준의 비용과 운영 노하우 등을 지원한다. 이익은 주로 다시 일자리 창출과 소외 이웃 지원을 위해 쓰여 고용과 복지의 일석이조 효과를 얻는 셈이다. 용산구에서는 올해 마을기업으로 사랑밥 밥이보약 밥집과 함께 도시락 배달업체 ‘도시락데이’가 문을 열었다. 각각 용산지역 자활센터와 동자동 사랑방에서 운영을 맡았으며, 쪽방촌 주민 등 10명이 여기에서 새로 일하고 있다. 특히 사랑법 밥이보약 밥집은 조리 자격이 있는 지역 주민들의 음식 경연대회까지 거쳐 메뉴를 선정했으며, 도시락데이는 유기농 재료를 이용한 웰빙 도시락을 표방하고 있다. 용산구는 지난해부터 마을기업을 지원했다. 지난해 문을 연 1곳을 포함, 현재 총 4개 마을기업이 운영되고 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독거노인 사랑잇기] “노후생활 맞춤 ‘수익+안정’ 금융상품 출시”

    [독거노인 사랑잇기] “노후생활 맞춤 ‘수익+안정’ 금융상품 출시”

    “지금 은행들은 젊은 고객에 영업전략을 집중하고 있지만 본격적인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 노인 세대가 중요한 고객군으로 주목받을 것입니다.” 강원 우리은행 개인고객본부 부행장은 10일 금융권에서 노인 고객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고 이들의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위해 맞춤형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또 경제적인 어려움과 외로움을 호소하는 독거노인을 위한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면서 보건복지부의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도 대상을 늘릴 방침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서 노인 고객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나. -현재 은행은 미래 성장을 위해 청년층, 우량 고객화를 위해 중장년층을 주요 고객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의료 기술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연장되면서 급격한 노령화가 진행 중이다.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이 전체의 11%였으나 2050년이면 38.2%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인 고객은 오랜 경제활동을 통해 축적한 부를 소비하는 계층이다. 현재는 물론 향후 중요한 거래 고객군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노인 고객을 위한 특화 금융상품이나 서비스는 무엇인가. -연금을 수령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우리연금통장’, 노후에 대비하기 위한 ‘월복리 연금식 적금’을 판매중이다. ‘해피라이프 퇴직연금 평생통장’ 등과 같은 퇴직연금 상품과 역모기지론 상품인 ‘주택연금대출’도 마련돼 있다. 앞으로 매월 수익이 이자로 지급되는 월지급식 펀드 등 수익률과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다양한 상품 출시를 검토하고 있다. 고령화에 대비한 종합자산관리 서비스와 맞춤형 금융서비스도 내놓을 예정이다. →노인들의 안정적인 경제 생활을 위해 우리 사회가 준비할 것은. -노인들의 자산은 대부분 연금이어서 운용 기간이 길다. 그러나 국내 금융시장은 장기 상품이 원활히 운용될 정도로 발달하지 못했다. 노인들에게 많은 연금이 지급되려면 장기채권, 주택저당증권(MBS), 물가연동채권 등 장기 운용 시장의 발전이 필요하다. 또 금융회사들이 의료나 관광산업 등과 연계된 창의적인 금융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세제 지원 등 제도적 지원도 있어야 한다. →사회공헌 활동의 목표와 내용은 무엇인가. -우리은행은 인간사랑, 행복추구, 희망실현 등 3가지 키워드를 통해 ‘함께하는 사랑, 꿈과 희망을 키우는 나눔 금융’ 실현을 목표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우리 행복 소사이어티 프로그램’이 있다. 전국 30개 영업본부가 지역의 사회복지시설을 ‘우리사랑나눔터’로 정하고 1만 5000명의 임직원으로 구성된 자원봉사단이 꾸준히 봉사 활동과 기부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고객을 대상으로 인터넷 뱅킹 이용시 직접 기부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 온라인 소액 기부 문화 정착에도 힘쓰고 있다. →복지부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에 참여한 계기는. -장애인, 불우청소년 등 소외계층을 위한 다양한 사랑나눔 활동을 하고 있지만 독거노인 문제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 왔다. 쪽방촌에 살고 계시는 독거노인을 위해 식료품 등을 지원하고 있고, 매년 창립기념일인 1월 4일이면 독거노인에게 ‘사랑의 쌀’을 전달하고 있다. 그러던 중 복지부의 제안을 받고 흔쾌히 참여하게 됐다. 올해 말까지 단계적으로 지원 대상을 늘릴 생각이다. 이번 사업을 통해 독거노인의 고독사를 방지하고 이들에 대한 애정과 배려의 문화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졌으면 한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범죄는 흔적을 말한다] (11) 자살 같았던 사건의 진실

    [범죄는 흔적을 말한다] (11) 자살 같았던 사건의 진실

    “여기 방이동(서울 송파구)인데요, 노래방 문 좀 따주세요.” 2010년 9월 20일 밤 10시. 119신고센터에 20대 여성의 다급한 요청이 들어왔다. 닷새 전 노래방 문을 연다고 나간 A(당시 46세)씨를 애타게 찾던 첫째딸(당시 28세)의 목소리였다. 구조대가 급히 달려간 지하 노래방은 앞뒤로 굳게 철문이 닫혀 있었다. 119 대원이 한참을 씨름하던 잠금장치를 절단하고 문을 열자 고약한 냄새가 확 풍겼다. 뭔가 썩는 냄새였다. 노래방 주인 A씨가 가족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끝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자살이었다. 한눈에 들어온 현장은 그랬다. 시신이 누워 있던 노래방 내실 탁자에서는 유서가 담긴 흰 봉투와 먹다 남은 소주병 2개가 나왔다. A4 용지 2장 분량의 유서에는 구구하게 긴 사연이 담겨 있었다. 1년 전 남편 유산으로 시작한 노래방이 생각만큼 잘 안돼 속상하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3남매가 엄마 마음을 몰라줘 섭섭했다는 사연, 자신은 재미있게 살지 못했지만 자식들은 서로 의지해 가며 정겹게 인생을 살라는 당부 등이 이어졌다. 노래방과 살던 집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숨겨놓은 통장은 어디에 있는지, 출금 비밀번호는무엇인지 등도 적혀 있었다. 컴퓨터 워드프로세서로 인쇄돼 마지막에 도장까지 찍힌 유서는 남이 썼다고는 상상도 못할 만큼 세세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자살이라고밖에는”… 유서 2장과 소주병 A씨의 왼쪽에는 피묻은 칼이 놓여 있었다. 노래방 부엌에 있던 식칼이었다. 칼은 명치와 왼쪽 손목 2군데에 상처를 냈다. 치명상은 명치 쪽인 듯했다. 정황상으로 보면 A씨는 평소에 자살을 고민해 왔고, 결국 어느 날 노래방 문을 잠그고 술을 마신 뒤 1차로 손목을 2차례 긋고 나서 다시 명치 부위를 스스로 찌른 것으로 보였다. 자칫 억울하게 묻힐 뻔했던 A씨 피살의 한을 풀어 준 사람은 베테랑 형사였다. 자살 치고는 현장이나 시신이 지나치게 깔끔했다. A씨가 자살한 쪽방은 성인 2명 정도가 겨우 누워 잘 수 있는 크기. 그나마 가로로는 누울 공간조차 나오지 않을 만큼 좁은 방이었지만 벽에 피가 튄 흔적이 전혀 없었다. 바닥에 고여 있는 혈액의 양도 이상하리만큼 적었다. ●“최후 순간에는 주저하기 마련, 그러나…” 피해자의 몸에 난 상처도 주저흔(hesitation marks) 하나 없이 지나치게 깨끗했다. 주저흔이란 자살하려는 사람이 한번에 치명상을 만들지 못하고 여러 차례 자해한 흔적을 남기는 것을 말한다. 주로 치명상 주위에 생기는데 송곳에 찔린 듯한 작은 것부터 1~2㎝까지 많게는 수십개가 남기도 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는 “사망자의 몸에 칼에 찔린 상처가 많고 외부로 흘러나온 혈액이 많으면 타살로 간주하기 쉽지만 자살인데도 그렇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흉기로 자살하려는 사람은 고통 없이 빨리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치명적인 곳을 못 찾거나 주저하게 돼 스스로 여러 곳에 상처를 입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 자녀도 “자살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A씨가 워낙 솔직하고 화통해 우울증이나 자살과는 거리가 먼 데다 유서도 어색하다고 했다. 유서에는 “내가 글씨를 잘 못써 PC방 점원에게 워드(워드프로세서)를 배웠는데, 유서 쓰는 데 2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돼 있었다. 하지만 자녀들은 컴퓨터를 전혀 모르는 엄마가 어느 결에 워드를 배웠는지도 의문이고, 굳이 유서를 워드로 작성한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유서 속 단어들이 평소 엄마의 말투와 전혀 달랐다. ●생활반응이 말해 주는 사건의 진실 A씨의 시신에 대해 부검 결정이 났다. 치명상은 가슴에 난 창상이었다. 찔린 곳은 한 곳이었지만 칼이 만든 상처의 끝부분이 묘하게 변해 있었다. 치명상을 입히려고 같은 곳을 정확하게 두 번 찔렀을 때에나 생기는 현상이다. 자살하는 사람이 스스로 치명상이 난 곳을 정교하게 찾아 두 번 칼을 찌를 리 없다. 자살 현장이 조작됐음을 말해주는 결정적인 증거는 시신 왼쪽 손목의 상처였다.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했다는 A씨의 상처에 ‘생활반응’(生活反應·특정 충격에 대해 살아 있는 몸이 보이는 반작용)이 나오지 않았다. 너무 적은 출혈량 등을 감안했을 때 살아있는 상태에서 손목을 그었다기보다는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 만든 가짜 상처로 결론났다. 하지만 의문은 계속됐다. 범인이 누구이기에 통장 비밀번호는 물론이고 남의 가족사를 줄줄이 꿰고 있을까. 그렇다면 범인은 3남매 중 하나일까. 주변인물을 대상으로 수사가 시작됐다. 정작 범인 색출은 싱겁게 마무리됐다. 유서 봉투에서 둘째 딸(당시 25세)의 헤어진 동거남(당시 25세)의 지문이 나왔다. A씨 사망현장에 그가 있었다는 얘기다. 친척집에 숨어 있던 동거남은 순순히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그는 1년 넘게 A씨의 둘째딸과 동거를 해왔지만 최근 자주 다투면서 때리기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사건이 나기 한달 전 동거녀가 가출하자 노래방에 찾아가 “딸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지만 A씨에게 면박을 당한 뒤 모욕감에 범행을 결심했다. 그는 “결혼식은 못 치렀지만 1년 이상을 사위처럼 살면서 집안 대소사를 챙기고 상주 노릇까지 했는데 장모가 나에게 너무 모질게 대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너무나 깨끗한 자살현장이 타살을 증명했다”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너무나 깨끗한 자살현장이 타살을 증명했다”

     “여기 방이동(서울 송파구)인데요, 노래방 문 좀 따주세요.”  지난해 9월 20일 밤 10시. 119신고센터에 20대 여성의 다급한 요청이 들어왔다. 닷새 전 노래방 문을 연다고 나간 A(당시 46세)씨를 애타게 찾던 첫째딸(당시 28세) 목소리였다. 구조대가 급히 달려간 지하 노래방은 앞뒤로 굳게 철문이 닫혀 있었다. 119 대원이 한참을 씨름하던 잠금장치를 절단하고 문을 열자 고약한 냄새가 확 풍겼다. 뭔가 썩는 냄새였다. 노래방 주인 A씨가 가족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끝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자살이라고밖에는” 유서 2장과 소주병  자살이었다. 한눈에 들어온 현장은 그랬다. 시신이 누워 있던 노래방 내실 탁자에서는 유서가 담긴 흰 봉투와 먹다 남은 소주병 2개가 나왔다. A4 용지 2장 분량의 유서에는 구구하게 긴 사연이 담겨 있었다. 1년 전 남편 유산으로 시작한 노래방이 생각만큼 잘 안돼 속상하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3남매가 엄마 마음을 몰라줘 섭섭했다는 사연, 자신은 재미있게 살지 못했지만 자식들은 서로 의지해 가며 정겹게 인생을 살라는 당부 등이 이어졌다. 노래방과 살던 집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숨겨놓은 통장은 어디에 있는지, 출금 비밀번호는무엇인지 등도 적혀 있었다. 컴퓨터 워드프로세서로 인쇄돼 마지막에 도장까지 찍힌 유서는 남이 썼다고는 상상도 못할 만큼 세세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A씨의 왼쪽에는 피묻은 칼이 놓여 있었다. 노래방 부엌에 있던 식칼이었다. 칼은 명치와 왼쪽 손목 2군데에 상처를 냈다. 치명상은 명치 쪽인 듯했다. 정황상으로 보면 A씨는 평소에 자살을 고민해 왔고, 결국 어느 날 노래방 문을 잠그고 술을 마신 뒤 1차로 손목을 2차례 긋고 나서 다시 명치 부위를 스스로 찌른 것으로 보였다. ●“누구라도 최후의 순간에는 주저하기 마련, 그러나…”  자칫 억울하게 묻힐 뻔했던 A씨 피살의 한을 풀어 준 사람은 베테랑 형사였다. 자살 치고는 현장이나 시신이 지나치게 깔끔했다. A씨가 자살한 쪽방은 성인 2명 정도가 겨우 누워 잘 수 있는 크기. 그나마 가로로는 누울 공간조차 나오지 않을 만큼 좁은 방이었지만 벽에 피가 튄 흔적이 전혀 없었다. 바닥에 고여 있는 혈액의 양도 이상하리만큼 적었다.  피해자의 몸에 난 상처도 주저흔(hesitation marks) 하나 없이 지나치게 깨끗했다. 주저흔이란 자살하려는 사람이 한번에 치명상을 만들지 못하고 여러 차례 자해한 흔적을 남기는 것을 말한다. 주로 치명상 주위에 생기는데 송곳에 찔린 듯한 작은 것부터 1~2㎝까지 많게는 수십개가 남기도 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는 “사망자의 몸에 칼에 찔린 상처가 많고 외부로 흘러나온 혈액이 많으면 타살로 간주하기 쉽지만 자살인데도 그렇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흉기로 자살하려는 사람은 고통 없이 빨리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치명적인 곳을 못 찾거나 주저하게 돼 스스로 여러 곳에 상처를 입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 자녀도 “자살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A씨가 워낙 솔직하고 화통해 우울증이나 자살과는 거리가 먼 데다 유서도 어색하다고 했다. 유서에는 “내가 글씨를 잘 못써 PC방 점원에게 워드(워드프로세서)를 배웠는데, 유서 쓰는 데 2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돼 있었다. 하지만 자녀들은 컴퓨터를 전혀 모르는 엄마가 어느 결에 워드를 배웠는지도 의문이고, 굳이 유서를 워드로 작성한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유서 속 단어들이 평소 엄마의 말투와 전혀 달랐다. ●생활반응이 말해 주는 사건의 진실  A씨의 시신에 대해 부검 결정이 났다. 치명상은 가슴에 난 창상이었다. 찔린 곳은 한 곳이었지만 칼이 만든 상처의 끝부분이 묘하게 변해 있었다. 치명상을 입히려고 같은 곳을 정확하게 두 번 찔렀을 때에나 생기는 현상이다. 자살하는 사람이 스스로 치명상이 난 곳을 정교하게 찾아 두 번 칼을 꽂을 리 없다.  자살 현장이 조작됐음을 말해주는 결정적인 증거는 시신 왼쪽 손목의 상처였다.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했다는 A씨의 상처에 ‘생활반응’(生活反應·특정 충격에 대해 살아 있는 몸이 보이는 반작용)이 나오지 않았다. 너무 적은 출혈량 등을 감안했을 때 살아있는 상태에서 손목을 그었다기보다는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 만든 가짜 상처로 결론났다.  하지만 의문은 계속됐다. 범인이 누구이기에 통장 비밀번호는 물론이고 남의 가족사를 줄줄이 꿰고 있을까. 그렇다면 범인은 3남매 중 하나일까. 주변인물을 대상으로 수사가 시작됐다. 정작 범인 색출은 싱겁게 마무리됐다. 유서 봉투에서 둘째 딸(당시 25세)의 헤어진 동거남(당시 25세)의 지문이 나왔다. A씨 사망현장에 그가 있었다는 얘기다. 친척집에 숨어 있던 동거남은 순순히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그는 1년 넘게 A씨의 둘째딸과 동거를 해왔지만 최근 자주 다투면서 때리기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사건이 나기 한달 전 동거녀가 가출하자 노래방에 찾아가 “딸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지만 A씨에게 면박을 당한 뒤 모욕감에 범행을 결심했다. 그는 “결혼식은 못 치렀지만 1년 이상을 사위처럼 살면서 집안 대소사를 챙기고 상주 노릇까지 했는데 장모가 나에게 너무 모질게 대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서울신문의 주간 기획물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에 보내주시는 독자 여러분의 큰 성원과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게재된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시리즈의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 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할 땐 미제사건 2) 죽음의 성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 직전의 성적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3) 오열했던 남편 부인을 독살하다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죽거나 혹은 더 나빠지거나 4) 목 졸려 죽은 시신의 ‘마지막 증언’ 운전석 아내 목졸라 살해하고 차는 낭떠러지로… 5) 강간 후 살해된 성전환 여성 恨풀다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남성의 사연 6) 초미니 흔적 ‘미세증거물’  대변 속 100억분의 1g DNA 난관 속 사건 푼 ‘최후의 단서’ 7) 정관수술한 지능적인 연쇄성폭행범 ‘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8) 핏자국 속 엽기 살인범의 족보 혈흔 속 性염색체로 ‘악마의 姓’ 찾아내다 9)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왜 그날 조폭은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10) 급성 수분중독 사람의 능력 이상으로 물 많이 마시면 생명 잃는다 11) “너무나 깨끗한 자살현장이 타살을 증명했다”-생활반응은 진실을 알고 있다 12) 불탄 시신의 호흡이 지목한 범인은 그의 아들이었다-화재사 속에 숨은 타살의 흔적찾기 13) 車운전석 그녀의 주먹쥔 양팔-‘에어컨은 억울했다’
  • 독거노인·쪽방촌 찾는 ‘재난도우미’ 하루 따라가보니…

    독거노인·쪽방촌 찾는 ‘재난도우미’ 하루 따라가보니…

    20일 오후 2시 서울 아현동의 한 골목. 서울시립마포노인종합복지관 소속 ‘재난도우미’ 구양희(62·여)씨가 땀을 뻘뻘 흘리며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다. 기온은 31.6도, 체감온도는 34.6도까지 치솟아 올 들어 첫 폭염주의보까지 발령됐다. 구씨가 방문한 곳은 박복희(79·여)씨의 집. 10여분 동안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올라 다다른 곳은 허름한 연립주택. 이곳 지하층에 박씨의 집이 있다. 집이 지하다 보니 바깥보다는 나은 듯 했지만 막상 방안에 들어서자 역시 찜통이다. 이내 등이며 콧잔등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박씨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구씨를 맞았다. 박씨는 “너무 덥고 땀이 나서 이제 막 얼굴을 씻었다.”며 옷가지로 대충 물기를 닦아냈다. ●서울시, 올 8536명 투입 집안에 있는 여름 가전제품은 낡아빠진 선풍기 한대뿐이다. 그것도 박씨가 어딘가에서 주워 온 것인데, 자주 고장이 나곤 한다. 이날도 날은 더운데 선풍기는 작동되지 않았다. 그럴 때면 박씨는 땀에 젖은 얼굴이며 목덜미를 찬물로 씻으며 더위를 식히곤 한다. 구씨는 들고온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박씨의 이마며 뺨에 맺힌 땀을 닦아주며 부채를 꺼내 부채질을 해 줬다. 구씨는 “ 밖이 너무 더워서 지금 바깥에 나가면 고생하시겠다. 병원은 이따가 더위가 한풀 꺾인 4시쯤 가시는 게 좋겠다.”면서 “한여름에 외출할 때는 꼭 양산을 챙겨 가셔야 한다.”는 당부말도 잊지 않았다. 박씨는 가족 없이 혼자 산다. 젊은 시절 결혼을 했는데 알고보니 다른 처자식이 있어 그 길로 집을 나왔다. 한동안 다른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며 살았다. 이처럼 의지가지없는 어렵고 외로운 박씨에게 구씨는 거의 유일한 말벗이자 도우미다. 박씨는 “이렇게 챙겨줘 고맙다.”며 밝게 웃었다. 서울시는 이달부터 9월까지 재난도우미 제도를 운영한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5179명 늘어난 8536명이 활동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폭염 피해가 우려되는 독거노인, 쪽방촌 사람들, 노숙인 등 취약계층을 일일이 찾아 건강상태를 살핀다. 폭염주의보가 발령되면 모든 도우미들이 나선다. 무더위에 취약한 노약자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구씨는 “어르신이 다른 곳은 건강하지만 다리가 많이 불편하다. 앞으로 더 더워질텐데 아픈 다리로 이 언덕길을 오르내리실 걸 생각하니 걱정스럽다.”며 박씨의 손을 꼭 잡았다. ●취약계층 건강상태 살펴 구씨는 30여분 동안 박씨의 건강상태를 점검하고,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 살뜰하게 점검한 뒤 지하방을 나섰다. 구씨는 “오늘처럼 무더운 날 언덕길을 오를라치면 나도 땀에 젖고 적잖은 나이라 무릎도 아프지만, 더 어려운 어르신들을 한 분이라도 더 뵙고 살피려면 그런 걸 탓할 겨를조차 없다.”며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의 얼굴에서 얼핏 사람의 향기가 배어나는 듯했다. 글 사진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동대문구, 주거 불명자 9명 찾아 지원

    최근 ‘화장실 거주 3남매’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동 주민센터 복지 사각지대 조사팀에 의해 주거 불명자들이 무더기로 발굴됐다. 이들은 기초생활수급권자 선정과 긴급지원 대상에 오르게 됐다. 13일 동대문구에 따르면 전농1동 주민센터는 오는 15일까지를 ‘복지사각지대 제로 기간’으로 정하고 주민생활지원팀 7명과 통장, 직능단체 회원 등 조사팀을 운영하고 있다. 조사팀은 지난 8일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청량리역 주변, 전농동 ‘588’ 일대, 쪽방촌, 공원 등을 대상으로 중점 순찰활동을 펼친 결과 폐지수거 차량에서 잠자는 남자 1명과 청량리역 주변과 여인숙에 기거하는 여자 2명 등 9명을 찾아냈다. 모두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에서 제외된, 그야말로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다. 주민센터는 지난 9일에는 주민자치위원회에서 후원한 여름 이불 20채를 쪽방촌 거주자들에게 제공했으며, 헌 이불 수거와 함께 집안의 묵은 때를 말끔히 제거하는 대청소와 소독작업을 벌였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별도 연료 없이 라면 10분·감자 1시간에 OK”

    “별도 연료 없이 라면 10분·감자 1시간에 OK”

    5일 오전 11시 서울 창신동의 판자촌에 가로 약 1m, 높이 약 2m 크기의 ‘태양열조리기’가 설치됐다. 창신동 판자촌은 서울 시내 마지막으로 남은 판자촌이다. 14가구 60명 정도가 사는 무허가 판자촌에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다. 주민들은 좁고 허름한 집에서 액화천연가스(LPG)의 가스통을 구입해 밥을 해먹으며 산다. ●환경보호·연료비 절감 동시에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인추협) 소속 자원봉사자들과 서울과학기술대 그리니스트 최고전문가과정 소속 원생들이 모여 창신동 판자촌과 쪽방촌, 구기동에 있는 강양임 할머니댁에 태양열조리기를 설치했다. 이날은 유엔이 정한 제16회 ‘환경의 날’이다. 인추협과 그리니스트 50명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 환경보호와 동시에 연료비를 절감해 저소득층의 가계에 도움을 주고자 태양열조리기를 설치했다. 태양열조리기를 설계한 김창현 책임교수는 “인도와 아프리카 같은 빈민층이 많은 나라에서는 태양열조리기를 사용하고 있다. 이번에 설치한 태양열조리기는 우리나라 위도와 경도를 고려해 맞춤 제작했다.”고 말했다. ●총 6대… 대당 제작비용 150만원 총 6대의 태양열조리기를 제작하는 데 1개월 정도 걸렸다. 비용은 한 대에 150만원가량 들었다. 사용법은 간단하다. 설치된 철판이 태양열을 한데 모아 유리를 통과한다. 통과된 적외선이 유리 안의 공기를 데우고 그 공기가 음식물을 익히는 것이다. 태양열을 이용하기 때문에 별도의 연료가 필요하지 않다. 석유나 석탄 같은 화석연료를 쓰지 않으므로 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하지도 않는다. 연료비 절감과 환경보호가 동시에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오우훈 운영교수는 “라면은 10분, 고구마 감자는 물을 넣지 않은 채로 1시간이면 조리해서 먹을 수 있다.”면서 “비가 오면 이용하기 어렵다는 게 단점”이라고 말했다. 판자촌에 사는 김모(63)씨는 “지금 당장 라면을 끓여서 먹어 보고 싶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김씨는 “LPG 가스통을 2달에 한번 4만원에 구입하는데 잘만 쓰면 연료비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겠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날 오전 11시에 태양열조리기에 넣어 뒀던 계란이 한 시간쯤 지나자 반숙이 됐다. 뜨겁게 익혀진 계란을 보고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권성(언론중재위원장) 인추협 이사장은 반숙된 계란을 한입 먹으며 “아주 잘 익었다. 태양열조리기가 어려운 이웃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진광 인추협 상임이사는 “나머지 3대는 지방에 설치할 예정이다. 이러한 대안에너지 활용이 확산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글 사진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 이 길을 걷는다면’ 펴낸 이동미 작가

    [저자와 차 한 잔] ‘… 이 길을 걷는다면’ 펴낸 이동미 작가

    ‘서울에 대추나무 길을 아시나요.’ 일단 한 사연부터 살펴보자. ‘옛날 신당동에 자식이 없는 독지가가 살고 있었다. 전쟁통에 집을 잃고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눈에 보였다. 가진 돈을 다 내어 이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었다(중략).골목과 골목 사이는 두 사람이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좁은 길이 되었다. 그 골목 끝에 이 모든 이야기를 지켜보던 대추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하여 이 길을 대추나무 길이라고 했다.’ 여행작가 이동미(42)씨가 최근 펴낸 ‘매일 너와 이 길을 걷는다면’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처럼 이 책은 서울의 정겨운 골목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냥 밋밋하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4계절이라는 테마를 놓고 골목길을 부지런히 찾아 헤매고 있다. 종이 냄새 물씬 풍기는 충무로, 비오는 오후의 피맛골, 골목의 진수 한남동, 도심 속의 문화골목 정동길, 코리안 드림의 쪽방촌 가리봉동, 서울 같지 않은 부암동 등 낯익지만 낯설은 구석을 흥미롭게 파헤치고 있다. 지난 11일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19층에서 저자 이씨를 만났다. 두 아이를 둔 엄마이지만 1년 반 동안 틈틈이 발품을 팔아 서울 골목길을 누볐고 그 결실로 책을 내게 됐다. 놀랍게도 그는 이번이 일곱 번째 펴내는 책이고 공저까지 합하면 20여 권에 이른다. 대부분 여행 관련 주제로 하고 있다. ‘매일 너와 이 길을~’에는 섬세한 여성의 솜씨로 보기 좋게 시와 에세이를 맛깔스럽게 버무렸다. 그가 골목에 집착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원래부터 골목을 좋아했습니다. 골목에는 문화가 살아 있지요. 여행 취재기자로 출발해 여행 칼럼니스트, 여행작가 협회 홍보이사 등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골목길과 친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골목에는 사람과 정, 그리고 추억이 있음을 알게 됐다. 그가 본격적으로 서울의 골목을 탐닉하게 된 것은 1998년 서울에서 강화도로 이사하면서였다. 서울을 떠나고 나서야 서울의 구석이 보이더라는 것이다. 특히 서울의 골목은 부지불식간에 사라지고 있다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재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골목을 글로나마, 사진으로나마 남겨둬야 한다는 사명감도 앞섰다. “서울의 골목은 너무 예뻐요. 희소가치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 사라지는 골목길들을 책을 통해서라도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독자들에게 비록 작은 목소리이지만 훈훈함과 인간적인 냄새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는 글을 쓰는 동안에도 골목길이 계속 사라졌다고 한다. 예를 들어 피맛골, 공덕동 골목이 그러하다. 자연적으로 생긴 골목길은 둥근 원이지만 재개발 등 인공적인 길은 각진 ‘네모’여서 운치가 없다고 강조한다. 그에게 서울에서 가장 가볼 만한 골목길이 어디냐고 했더니 그는 “명보극장 맞은편 쪽 충무로길은 역사의 맛이 살아 있다.”고 추천했다. 신당동 뒤쪽 골목도 가볼 만하다고 덧붙인다. 강원 영월 태생인 그는 원래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으나 한국관광공사에서 통역 안내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여행 전문가’로 전향했다. “다음번에는 지방의 골목을 순회하면서 동화처럼 스토리텔링이 있는 책을 펴낼 생각입니다.” 글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영등포, 쪽방촌 6일 방역

    영등포구가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영등포역 주변 쪽방촌 주민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구는 4일 위생환경 개선을 통한 쪽방촌 주민들의 건강증진을 위해 연말까지 ‘사랑나눔 해충박멸’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 지역은 보건 환경이 열악한 곳으로 실외 소독 위주로 방역을 해 왔지만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이번에 전 가구의 집안까지 구석구석 살균 소독한다. 이곳은 서울시 쪽방촌 중 거주자 수가 가장 많은 곳으로 좁은 지역에 장애인,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 541가구, 62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쥐, 바퀴벌레 등 해충 서식률이 높아 천식, 감염병 등이 발생할 우려마저 매우 높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 구는 민간소독업체인 서울시방역협회, 새마을 동자율방역단과 협약을 체결해 방역소독에 필요한 인력과 약품을 지원하기로 했다. 먼저 6일부터 오는 30일까지 공무원, 민간단체 등 총 50명으로 구성된 방역단이 쪽방촌을 돌며 쥐가 다니는 길목에 60여개의 독먹이를 설치하고, 바퀴벌레가 서식하는 쪽방을 일일이 방문, 저독성약제를 사용해 해충을 박멸한다. 또 오는 10월 2차 방역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데스크 시각] 출입처가 없어지니… /임병선 영상콘텐츠부 부장급

    [데스크 시각] 출입처가 없어지니… /임병선 영상콘텐츠부 부장급

    손톱 밑의 검은 때가 모든 것을 말해줬다. 지난해 12월의 어느 날, 서울 종로의 커피점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노숙인 생활을 그만둔 지 반년쯤 된 그에게 빵 한 조각과 커피를 대접했다. 체감온도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였다. 그가 아침 일찍 거리에 나와 종종걸음치는 직장인들에게 노숙인 자활 잡지를 사달라고 1시간 30분이나 외친 뒤였다. 기자보다 열살은 많아 보이는 외모. 그런데 조심스레 물어 보니 아홉살 아래란다. 삶의 굴곡이 얼굴에 잔뜩 생채기를 남긴 듯했다. 삿된 기운이 가시지 않은 눈초리에 언뜻 천진난만함이 깃들던 순간들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그리고 달이 바뀔 때면 새로 나온 잡지를 들고 거리에서 목멘 외침을 늘어놓을 그를 그리워하게 됐다. 기자는 서울신문 편집국 소속이지만 방송 일을 하고 있다.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를 통해 금요일 오후 7시 30분 방영되는 ‘TV 쏙 서울신문’이란 보도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21년 전 입사했을 때 꿈도 꾸지 않았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6월 첫 방송을 시작한 지 9개월이 됐고 4일 저녁 40회분이 방영된다. 여전히 촬영 현장에 나가면 “서울신문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웬 동영상 카메라?”라면서 당황하는 취재원들을 본다. 조금만 설명하면 취재원들도 금세 고개를 끄덕인다. 신문 동네가 영 신통치 않으니 곁방살이에 힘겹겠구나 하는 동정도 읽힌다. 기자 또래보다 방송과 영상 전달 방식에 훨씬 친숙할 후배들마저 지면 일과 방송 제작을 병행하느라 벅차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 기자들을 괴롭혀 가며 프로그램을 꾸리고 있다. 주 1회, 한 주가 끝날 무렵에 방송을 내보내다 보니 피할 것도 많고 조심스러운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정된 인력과 자원으로 꾸리다 보니 지상파나 기존 보도전문 채널에서 제공하는 뉴스보다 여러 모로 손방이다. 그런 속에서 조그만 위안과 보람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장삼이사(張三李四)와의 만남이다. 출입처에 매인 처지였다면 결코 만나기 쉽지 않았을 이들에게서 진한 사람 냄새를 맡고 있다.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의 쪽방촌에도 들어갔다. 그곳에서의 경험은 정말 1980년대 달동네로 시간이동한 것 같았다. 두 손자를 건사하며 힘든 나날을 잇고 있는 할머니를 인터뷰했고, 그 동네 어르신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는 ‘평화의 집’을 찾았다. 25년째 그곳에서 자원봉사하는 안정자씨는 병을 얻어 “이대로는 죽겠다싶어” 구로구 개봉동으로 이사했다고 했다. 말이 이사지 실은 피신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내 어르신들이 전화로 찾아대는 통에 왕복 3시간의 버스 출퇴근을 3년째 이어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 묻어 있던 행복감을 쉬 잊지 못한다. 이 시설을 세우고도 그 흔한 사진 한장 걸어놓지 않고 한달에 한번 신용카드를 건네며 “어르신들께 맛난 것 만들어드리게 마음껏 장을 봐라.”고 당부한다는 임춘식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잊기 어렵다. 임 교수는 이따금 이곳을 찾을 뿐 언론에 좀처럼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 겸손함으로도 커다란 존경을 얻고 있다. 노숙인들의 ‘큰형님’ 이명식 중랑구청 주무관이 동상 자국이 덕지덕지 남아 있는 노숙인 발을 어루만지는 모습은 또 어떤가. 후배 PD가 촬영한 영상으로 본 것이지만 출입처 칸막이 안이라면 과연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그렇게 평범한 이웃의 고단한 일상을 함께하다 보니 과거 출입처에서 만났던 취재원들이 참 재미없었다는 엉뚱한 생각까지 하게 된다. 펜이나 컴퓨터 자판 대신 마이크를 잡다 보니 부끄러운 줄도 모르게 됐다. 일전에 편집국 제작회의에서 많이 부족한 우리 프로그램 이름을 들먹이며 “많은 시청 바랍니다.”라고 말해 실소를 산 일도 있다. 감히 독자 여러분께 같은 말씀을 여쭌다.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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