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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른을 위한 동화]족제비의 선택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어. ‘비가 올까?’ 족제비는는 목을 길게 늘어뜨리고 굴 밖을 내다보았지.그러나 조금 어둡기는 해도,아직 비까지 뿌릴 것 같지는 않았어. ‘빨리 서둘러야 겠군.’ 족제비는 사냥을 하기 위해 재빨리 굴을 나섰어.족제비는 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왜냐하면,비가 오면 땅이 질척해지고,땅이 질척해지면 아무래도 털에 뭐가 묻고 쉽게 지저분해지지 않겠어? 깔끔한 족제비는 몸을 더럽히는 걸 제일 싫어했어. 그건 자신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자신의 털을 욕보이는 일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었어.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고,짙은 밤색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아름다운 털.족제비는 털을 더럽히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도저히 참을 수 없었어. 족제비에게 있어 털은,깨끗하고 아름다운 털은 곧 자신의 전부였던 거야. “거기 서라!” 굴을 나서자마자,족제비는 통통한 들쥐를 발견하곤 뒤를 쫓기 시작했어.들쥐는 열심히 도망쳤고 족제비도 열심히 뒤쫓았지.그런데 들쥐 때문에 족제비가 놓친 게 있었어.늑대! 그래,위험하기 짝이 없는 늑대 말이야! 들쥐가 약을 올리듯 요리조리 도망쳤기 때문에 족제비는 배고픈 늑대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어. 늑대는 어느 틈에 족제비 바로 앞에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앞발을 휘둘러댔지. “으악!” 늑대가 나타나자마자,이미 들쥐를 는 일 따위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어.족제비는 도망치기 시작했지.죽기 살기로 도망쳤어.쫓고 쫓기고.목숨을 건 추격전은 한참을 끌었지. 그런데…. 마침내 족제비는 막다른 골목에 몰렸단다.저쪽에서는 늑대가,그 반대쪽에는 수달의 똥구덩이가 있었거든.족제비 못지않은 깔끔쟁이 수달은,절대 굴 근처에서 똥오줌을 누지 않는단다.말하자면 화장실을 따로 두는 거야.그런데 하필이면 족제비가 그 화장실 쪽으로 몰린 거야. 까짓 똥구덩이가 무슨 문제냐고? 아냐. 다른 동물들은 몰라도 족제비에게는 큰 문제지. 큰 문제이고 말고.아까도 말했잖아.족제비는 자신의 털에 오물 묻히는 걸 죽기보다 싫어한다고.그냥 싫어하는 게 아니야 정말 글자 그대로 죽기보다 싫어한다니까! 이제 족제비에게는 두 가지 길뿐이었어.수달의 화장실을 가로질러 온몸에 똥오줌을 묻히면서 살아남느냐,아니면…. 마지막이었어.족제비가 달아나기를 멈추고 그 자리에서 주춤거리는 눈치를 보이자,늑대는 여유있게 웃으며 천천히 족제비에게 다가섰지. 어깨 너머로 늑대의 가쁜 숨결과 끈적이는 웃음,그리고 입맛 다시는 소리를 들으면서 족제비는 정신이 아뜩해지는 것을 느꼈지. ‘도망을 쳐야지? 딱 한 번뿐인데.그러고나서 깨끗이 씻어버리면….’ 족제비는 똥오줌이 썩어가고 있는 냄새나는 구덩이를 바라보며 순간적으로 생각했지.그러나…. 다음 순간,족제비는 눈을 질끈 감고 돌아섰어. 늑대를 향해. 그리고는 어금니를 물며 목울대를 올라오는 소리를 꿀꺽 삼켰지. ‘털을 더럽히면서까지 살아남지 않겠어.그게 단 한번이 아니라 반의 반 번뿐일지라도.’ ●작가의 말 똥오줌이 있는 구덩이 쪽으로 족제비를 몰면,족제비는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고 합니다.그것이 전통적인 족제비 사냥법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했습니다.내게 ‘족제비의 털’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나는 무엇을 버렸는가? 그런 멋진 선택을 할 수 있는 족제비가 부럽습니다.˝
  • ‘잠자는 미녀vs호두까기’ 뭘 봐야 좋을까

    ‘백조의 호수’와 더불어 차이코프스키의 3대 발레로 불리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호두까기 인형’이 색다른 버전으로 오는 8일 나란히 무대에 오른다. 국립발레단이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고전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는 안무가 루돌프 누레예프의 작품. LG아트센터에서 막올리는 영국 안무가 매튜 본의 ‘호두까기 인형’은 지난해 내한공연을 가진 ‘백조의 호수’처럼 현대발레를 활용한 댄스 뮤지컬이다.두 작품 모두 초등학생도 관람할 수 있는 무대여서 가족 단위의 공연으로 제격이다. ●국립발레단 ‘잠자는 숲속의 미녀’ 마녀의 저주로 100년간의 잠에 빠진 공주가 왕자의 키스로 깨어난다는 동화를 바탕으로 한 마리우스 프티파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고전발레의 모든 테크닉이 담겨 있어 ‘발레의 교과서’로 통한다.누레예프 버전은,1961년 서방세계로 망명한 러시아 키로프발레단 출신의 전설적인 안무가 누레예프가 파리오페라발레단 재직 당시 프티파의 안무에 그만의 독특한 세련미와 남성미를 가미해 재안무한 것.남성 무용수들의 힘과 테크닉을 극대화함으로써 다른 공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화려하고,역동적인 무대가 특징이다.그만큼 무용수들에겐 많은 고통이 따른다. 워낙 어렵고 까다로운데다 누레예프 재단이 엄격하게 레퍼토리 관리를 하기 때문에 전세계에서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단체는 파리오페라발레단,이탈리아의 라 스칼라발레단,오스트리아의 비엔나발레단 등 세 곳뿐이다.때문에 국립발레단이 창단 이후 처음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공연하면서 누레예프 버전을 선택한 것은 과감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국내에선 유니버설발레단이 마린스키 버전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공연한 바 있다. 명성에 걸맞게 제작 규모 또한 엄청나다.이탈리아에서 공수하는 300벌의 의상 대여료만 2억원.총 제작비는 11억 5000만원에 달한다.무용수도 100명이 넘는다.국립발레단은 누레예프와 25년간 함께 작업했던 영국인 안무가 겸 무용수 패트리샤 뤼안을 초빙해 단원들을 연습시키는 등 작품의 완성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공연에는 주역 세 커플이 번갈아 출연한다.국립발레단 간판스타인 김주원과 ‘발레 혜성’이란 별명을 얻은 신예 이원철,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발레단 솔리스트인 안바 자로바와 한국 대표 발레리노 이원국,미국 보스턴발레단 수석무용수 폴리아나 리베로와 휴스턴발레단 수석무용수 사이먼 볼이 각각 짝을 이룬다.15일까지 1588-7890. ●매튜 본 ‘호두까기 인형’ 우아한 여성백조 대신 근육질 남성 백조의 역동적인 군무(백조의 호수)로 파격의 즐거움을 선사했던 안무가 매튜 본이 이번엔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전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명작 ‘호두까기 인형’을 댄스 뮤지컬로 각색한 무대를 선보인다. 국내에는 ‘백조의 호수’가 먼저 소개됐지만 안무 순서는 ‘호두까기 인형’이 앞선다.1992년 ‘호두까기 인형’탄생 100주년 기념작으로 만든 이 작품은 매튜 본이 안무한 첫 장편 발레 공연으로 그해 에든버러페스티벌에서 성황리에 초연됐다. 고전발레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하는 그의 독특한 안무 스타일은 ‘호두까기 인형’의 성공에 힘입어 이후 ‘하이랜드 플링’‘백조의 호수’‘신데렐라’‘카 맨’등 일련의 화제작을 낳았다. 이번에 공연되는 ‘호두까기 인형’은 매튜 본이 지난 2002년 공연단체 ‘뉴 어드벤처스’를 창단하면서 리바이벌한 것.초연 이후 10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 이 작품은 지난 2월까지 영국 전역에서 ‘백조의 호수’를 능가하는 흥행 수익을 올렸다. 매튜 본의 ‘호두까기 인형’은 원작에 설정된 중산층 가정 대신 악랄한 고아원장이 원생들을 착취하는 춥고 음울한 고아원을 배경으로 택했다.사랑의 슬픔과 기쁨을 통해 성숙한 여인으로 성장하는 클라라와 소년에서 근육질의 멋진 남성으로 변모하는 호두까기인형 등 성장드라마의 이미지를 강조한 점도 색다르다.클라라의 꿈속에서 고아원생들이 하얀 빙판위에서 신나게 스케이트를 타는 장면이나 오색 빛깔의 사탕과자나라 등은 단숨에 관객을 마법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장치들이다. 초연 당시 클라라역을 맡았던 에타 머핏이 같은 배역으로 무대에 설 예정이어서 한층 기대를 모은다.30일까지(02)2005-0114.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日 베스트셀러 ‘꼬리내린 개의‘ 저자 사카이 준코

    |도쿄 황성기특파원|출판 불황의 일본에 대박이 터졌다.작년 10월 1판을 낸 지 지금까지 18만부를 찍었다.‘꼬리내린 개의 울음소리(負け犬の遠吠え)’란 제목이 우선 눈을 끈다. 꼬리내린 개란 결혼하지 않은 독신녀를 가리킨다.저자 사카이 준코(酒井順子)의 분류법에 따르면 “30대,미혼에 무자식인” 여성이 그들이다.느낌이 꼭 들어맞진 않지만 ‘서른 독신녀’,혹은 ‘노처녀’쯤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결혼을 늦게 하는 만혼(晩婚) 추세는 지구촌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일본은 가히 세계 수위를 달린다.도쿄에 사는 30대 초반 여성의 미혼율이 38%에 이른다.그녀의 책은 일본에서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독신녀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응원가다. ●독신녀 ‘모험·안정’ 두 유형으로 분석 “꼬리내린 개란 모험과 안정의 두 가지 길이 있을 때 재미있는 모험 쪽을 선택하는 여성이에요.호기심에 저항 못하는 사람인 거죠.괜히 창피해서 남자를 붙잡지 못한다거나,동성인 여성에게는 인기가 있는 사람이죠.” 사카이는 그의 책에서 모험과 안정의 예를 이렇게 든다.미혼 직장여성이 2명의 남성으로부터 데이트 신청을 받는다고 하자. 한 명은 소박하고 성실한 동갑내기이지만 화제가 빈곤하고,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을 모르는 탓에 잡지에 소개된 싸구려 술집으로 초대한다.다른 한 명은 경험이 풍부한 연상의 기혼남으로 그녀를 고급 복집에 데리고 간다.태어나서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복 요리에 호기심이 생겨 기혼남과의 모험을 택하는 것이 꼬리내린 개,독신녀다. 안정을 택하는 여성은 비록 얘기가 재미없고 싸구려 술집이더라도,동갑내기(안정)를 택해 결혼으로 골인한다는 즉 ‘싸움에 이긴 개’라는 것이 사카이의 논법이다.그녀의 책을 사보는 층은 누구일까. “압도적으로 꼬리내린 개(독신녀)들이 많이 읽어요.그렇지만 의외로 이긴 개(기혼녀)들도 ‘실은 나도 꼬리내린 개 체질이지만 결혼해버렸다.’는 반응이 오곤 해요.”그녀의 책을 사는 독신녀들은 “그래,그렇지.”라고 탄복하면서 읽는다.공감하는 대목이 많아서이다. “독신녀라는 게 옛날에는 특수한 존재였어요.미혼자들은 어느 쪽인가 하면 신념을 갖고 결혼하지 않거나,전쟁에 나가 남성들이 많이 죽어서 결혼을 할 수 없었다는 이유가 확실히 있었습니다.그러나 지금은 이유가 없어요.왠지 결혼하지 않을 것 같은 것이지요.그렇다고 결혼을 하고 싶다는 소망이 없는 것도 아니예요.결혼하고 싶지만 생각대로 안되는 거예요.그래서 독신녀들은 번식해 가는 것입니다.” ●독신녀의 독특한 심리·행동패턴 담아 사카이 그녀 자신도 37세의 독신녀다.책을 쓰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기혼에다,아이까지 있는 여자에게 지지 않으려고 아둥바둥거리기보다,‘졌다.’고 스스로의 약점을 인정하고 배를 내보이는 편이 살아가기 편한 것 아닌가요.게다가 미혼이더라도 (자유자재로 일하고 돈쓰고)행복하다고 어필하기보다는 ‘난 이렇게 불행해요.’라고 꼬리를 내려버리면 괜한 다툼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독신녀들이 그녀의 이런 논리에 100% 찬성하지는 않더라도,독신녀만이 이해할 수 있는 독특한 심리,행동패턴을 소프트터치로 그려 호감을 샀다. 그녀는 일본의 만혼,특히 여성의 만혼을 이렇게 분석한다.“여성이 경제력을 갖게 돼 생활을 위한 결혼은 하지 않아도 된 점이 있어요.부모나 이웃사람의 눈이나 ‘압력’을 의식하지 않게 된 것도 꼽을 수 있고요.독신보다는 결혼 쪽이 훨씬 집안 일이나 노동량이 많아서 이런저런 일들을 생각하면 결혼할 기분이 안드는 거죠.” 사카이 본인은 왜 아직까지 독신인가.“결혼하고 싶다는 기분은 있지만,상대가 없어요.결혼을 해달라고 하는 상대와는 하고 싶지 않아요.”더 캐묻자 “결혼했다는 경력은 필요해요.결혼해서 남자가 뭔가를 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없어요.아마 결혼하면 곧바로 이혼할지 몰라요.(웃음)”라고 털어놓는다. 그녀의 책 말미에는 꼬리내린 개가 되지 않기 위한 10계명이 나온다.제1조가 “불륜을 저지르지 말 것”이다.“주위에 불륜을 저지르는 독신녀들이 너무나 많아요.간통죄가 있다면 줄어들까요.왜 불륜으로 치닫는가 하면 모험,안정 가운데 모험을 택하기 때문이죠.” 생생한 경험이 없었다면,10계명의 제1조로 쓰기 힘들 것 같다.“그래요,(불륜 경험이)있어요.어느 순간부터 불륜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작정했어요.지금은 남자친구도 없고,불륜도 저지르지 않고 있지만요.” “남자 말투를 쓰지 말 것(2조)”,“여성지를 읽을 것(4조)”,“여자들에게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 것(7조)” 등도 10계명 중 눈에 띈다. 비판은 있다.여성을 결혼 여부로 간단히 ‘이긴 개’,‘진 개’로 나누는 구분법은 경박하기 짝이 없다는 지적이다.“기혼여성으로부터는 의외로 비판이 없지만,독신녀에게선 가끔 비판을 들어요.‘난 미혼이지만 예쁘니까 괜찮아.’라든가,‘일을 잘하니까,지지 않았다.’라든가.그런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사실은 그런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이미 패배를 인정한 셈이에요.” ●‘독신녀 10계명’ 공감·비판 동시에 ‘꼬리내린 개’가 화두로 뜨면서 바빠졌다.일본 언론은 물론 해외 언론의 취재 요청도 적지 않다.주목할 일본의 사회현상으로 본 때문이다. “CNN,뉴스위크,브라질 잡지 등이 취재했는데,놀랍게도 많은 세계 대도시가 비슷했어요.결혼하지 않고 30대가 된다는 것은 장소가 달라도 심정적으로는 똑같다는 점이에요.” 사회 곳곳에 진출한 독신녀들이 일본 사회,소비 진작에 공헌했다는 자부가 적지 않고,언론이나 경제학자들도 그들의 공헌을 부추긴다. “그럴까요.지금 세금을 내고 있고,이들 꼬리내린 개들이 사라진다면 당장 곤란해질 사람은 있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 죄는 큰 것 같아요.소비만 해도 차세대로 이어지는 소비가 아닌,자신 세대에서 끝나는 거잖아요.” 향후 독신녀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는 대답.거품경제를 경험한 30,40대와는 달리 지금의 10,20대 여성은 성장기부터 불황을 겪은 탓에 생활을 위해 결혼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현상도 나오고 있다고 진단하는 사카이.말미에 결혼 가능성을 묻자 “안할 것 같다.”는 게 그녀의 전망이다. ■걸어온 길 1966년 도쿄 출생.일본 릿쿄(立敎)대학 졸업 후 광고회사 하쿠호도(博報堂)에서 3년간 일하다,프리랜서로 독립해 집필활동에 전념하고 있다.고교 재학시절부터 여러 잡지에 칼럼을 기고해 이름을 알렸다.‘소자(少子)’,‘번뇌 카페’ 등 다수의 에세이집을 출판했다. marry04@seoul.co.kr˝
  • [사설] 公約없이 총선 치를 텐가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일이 불과 25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 정당들은 도대체 뭘 내세우며 선거를 치르려고 하는지 안타깝기 짝이 없다.한나라당,민주당,열린우리당 등 여야 할 것없이 탄핵사태를 빌미삼아 힘겨루기에만 몰두하고 있다.정당의 정책과 비전을 내세운 공약 대결은 찾아볼 수가 없다.오히려 총선을 ‘친노’ 대 ‘반노’이거나,‘민주’ 대 ‘반민주’의 세대결로 몰아가려는 인상마저 짙다. 대통령 탄핵사태가 정당들의 이해와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정당들이 제할일은 제쳐놓고 오로지 편가르기에만 몰두하는 것은 지탄받아 마땅하다.한나라당은 지금 당권싸움에다,지역구 공천 잡음,비례대표 공천 심사위원회 구성 논란 등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민주당은 방송사와의 갈등과 탄핵공방에 함몰돼 당의 정체성이 무엇인지조차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열린우리당은 여당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정책 비전이 없기는 마찬가지다.민생정치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벤트적 성격에 치우칠 뿐 구체적인 복안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겨우 자민련과 민주노동당이 총선공약을 발표했을 뿐이다. 이번 총선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를 통해 새정치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다.부패 정치,지역 정치,편가르기 정치를 추방하고 인물과 정책을 내세워 유권자들의 올바른 선택을 유도하는 것이 새정치의 첫걸음이다.그런데도 정당들이 선거일이 얼마남지 않았는데도 국정과 민생에 대한 공약하나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다면 한심한 일이다. 과거에는 정당들이 선거를 앞두고 지역주의를 촉발한다든가,바람정치로 세몰이를 했던 나쁜 전례가 있다.그러나 지금 지역주의나 보스정치가 사라진 마당에 정당들이 과거의 선거전략을 그대로 답습하려 한다면 시대의 요구나 변화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정당들은 지금부터라도 국정,경제,민생 등에 대한 정책과 비전으로 총선에 임해야 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 [사설] 눈총받을 만한 검찰 수사 행보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의 공정성이 다시 한번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검찰은 25일 한나라당과 노무현 캠프가 지구당에 불법대선자금을 지원했다면서 그 액수를 한나라당은 410억원,노 캠프는 42억 5000만원이라고 밝혔다.이와 함께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에 돌아오면서 2억원대의 지원금을 받은 사실을 흘렸다가 항의를 받자 돈의 성격은 밝혀진 바 없으며 박 의원 소환계획도 없다고 밝히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검찰의 수사 결과는 돈의 액수,발표 시기 두가지 측면에서 눈총받을 만하다.검찰의 이른바 입구 조사 결과 4대기업으로부터 한나라당과 노 캠프가 조성한 불법 자금 규모가 722억원 대 16억여원으로 나타나 편파 수사라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검찰은 기업측이 노 캠프 자금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면서 기다려 달라는 말만 되풀이해 왔다.편파성 시비가 가라앉지 않은 가운데 검찰은 자금 사용액 즉 출구 조사 결과 한나라당과 노 캠프의 불법자금 지원액이 410억원 대 42억 5000만원이라고 발표했다.노 대통령이 말한 ‘10분의 1’ 주장에 근접한 것이,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공교롭기 짝이 없다. 발표 시기 면에서도 야당의 항의를 받을 만하다.한나라당 대표로 박 의원이 거론되고 있는 시점이라는 점뿐만이 아니다.검찰은 한나라당 자금 410억원은 모두 불법 자금이라면서,노 캠프 자금은 20억원은 불법자금이지만 22억 5000만원은 불법자금 의심은 되지만 출처가 규명된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확실치 않은 수사 결과를 이때 내놓은 이유가 무엇인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검찰은 25일 귀국한 이학수 삼성구조조정본부 부회장을 조사하기 시작했다.이 부회장에 대한 조사를 통해 4대기업의 자금지원 내역을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자금 사용처 또한 편파성 시비가 없도록 해야 한다.수사결과는 총선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검찰은 공정한 수사로 국민 선택이 왜곡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호박(琥珀) - 김효동

    월령 29일,그믐이다. 동쪽 하늘에 그믐달이 비껴 떠 있다.망원경 경통에 입을 맞추고 숨을 길게 내쉰다.경통의 옆면을 스치며 부연 입김이 날아간다.파인더에 눈을 들이댄다.그믐달은 파인더의 십자선 중앙에 꼼짝없이 잡혀 있다.접안렌즈로 눈을 옮기고 핀트를 맞추자,달 표면의 크레이터가 또렷이 나타난다.달의 바다인 습기의 바다가 거친 암영을 채워가고 있다.그 주위를 비에타나 티코와 같은 크레이터들이 점점이 두르고 있다.크게 심호흡한다.내뱉은 입김이 옅은 달무리를 만들어내다간 금세 흩어진다.눈을 떼고 고개를 젖뜨린다.금방이라도 화구를 열 듯한 하늘이지만 아직껏 짙은 어둠만 머금고 있을 뿐이다.깊은 바다의 잔잔한 침묵을 그려내는 듯하다.꼭 움켜쥐고 있던 액세서리 호박을 코밑에 가져다 댄다.발트해의 짙푸른 해수가 밀려온다.로스토크 연안 부두,김 선배는 독일에 가고 싶어 했다.오래 머물진 않을 거야.어디까지나 여행이니까…….호박이야.발트해를 상징한대.독일에 사는 이모가 보내줬는데 이젠 필요 없게 됐어.이왕이면 북해까지 돌아볼 생각이야.보트니아만을 거쳐 핀란드만까지…….북두칠성 국자의 머리 부분에 머물러 있던 눈동자가 작은곰자리를 거쳐 북극성으로 옮겨간다.호박을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는다.발트해,김 선배가 그곳에서 곤충이 박힌 호박을 캐고 있다면,나는 이곳에서 놈들을 낚아야 한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에 부딪친다.간들거리는 고목 가지가 그믐달을 콕콕 찌르기 시작한다.할아버지를 지그시 내려다본다.방한복을 여미는 모습이 어줍다.담배는 안 돼요.할아버지는 담배를 먼저대로 담뱃갑 속에 쑤셔 넣는다.할아버지의 등 뒤로 다가가 방한모를 씌우고 요철(凹凸)형 단추를 채워 드린다. 때각! 할아버지의 어깨가 움찔한다.손전등을 입에 물고 점퍼 속에 손을 넣는다.손바닥만한 관측일지가 차가운 공기를 맞는다.9월15일,강원도 횡성,오리온자리가 희미하게 보이다.맨눈 관측,화성이나 황소자리보다는 밝은 편임…….두 달이 훌쩍 지났구나.펜을 꺼내들고 마음을 가다듬는다.11월18일,경북 문경새재.그믐달에 가까워 맨눈으로 3,4등성도 확인 가능.사자자리 부근을 향해실험 촬영.바람이 불지만 촬영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듯……. 망원경 앞으로 돌아온다.파인더를 단단히 고정하고 조심스레 미동나사를 조절한다.망원경의 방향이 찬찬히 천정(天頂)으로 향한다.하늘은 자정을 기해 이전까지의 침묵을 깨뜨릴 것이다.삼십 년을 넘게 만삭이었던 하늘이 자궁을 연다? 굉장히 매혹적이야.놈들을 사냥하는 일은 얼마나 더하겠어! 근사한 녀석들 많이 담아 와.플레이트로 고개를 돌린다.넉 대의 카메라가 좁은 플레이트 위에 빽빽이 올려져 있다.많이 잡아오면 괜찮은 놈으로 한 마리 주는 거지? 나도 꼭 찍고 싶었는데…….작년에 소백산에 갔었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서 한 놈도 찍지 못했잖아.달이 보름달에 가까워서 큰 놈에게 희망을 걸었는데,날씨까지 도와주지 않아서 그것마저도 물 건너갔지 뭐야.편지하면 그 주소로 보내주는 거 잊지 마.바람에 실려 온 검불이 얼굴을 스친다.망원경의 접안부를 두 손으로 꼭 감싼다.밤하늘 이곳저곳에 빛을 게우고 번뜻 사라질 녀석들이 머릿속에 그려진다.긴장이 몰려온다.오늘은 기필코 대어를낚아야 한다. 문경새재는 초행이다.소백산이나 함백산에서보다 수월한 등반이 될 것이라는 지도교수의 귀띔이 이곳을 선뜻 결정하게 만들었다.잡광(雜光)이 없고 먼지가 적어 촬영이 용이한 곳이라는 정보는 관련 잡지를 통해 앞서 접한 터였다.산꼬대가 심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괜찮은 촬영지다.나무가 많지 않은 나지막한 산언덕에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 또한 썩 마음에 든다.고개를 들어올린다.밤하늘에 지독한 정적이 연출되고 있다.바람이 차다.귓불을 스치는 산바람은 가랑이까지 으스스하게 만들 정도다.할아버지가 으레 신경이 쓰인다.차에 계시는 편이 낫겠어요.내려가시겠어요? 할아버지의 어깨 위에 가벼이 손을 올려본다. “괜찮아요.다 늙어서 한 번 찾아온 감기가 그 무슨 대수라고.” 할아버지의 몸 상태가 영 거슬리는 것이 아니다.손자를 따라나서야겠다는 얄망궂은 고집을 쉬이 꺾을 수가 없었다.두통 때문에 소다를 댓 수저 퍼먹었거든.어째 머리가 다섯 배는 더 지끈거려요.바람을 쐬면 조금 나아지려나…….할아버지를 향한 불안함이 이제는부모님에 대한 섭섭함으로 옮겨간다.온천 관광을 떠나는 부모님이 홀로 집에 계시기 적적하다는 이유로 할아버지와의 동행을 부추기지만 않았어도 서릿바람에 아이를 업고 밭에 나온 기분은 느끼지 않을 것이다.수안보에서 부모님과 헤어지고 내내 말이 없던 할아버지의 입을 트게 한 것이 차가운 기침이었다는 사실을 거슬러 생각하게 된다.화분증 탓에 봄마다 기침으로 고생하는 할아버지이긴 하지만 한 번도 감기에 걸린 적은 없는 분이다.성치 않은 오른다리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가슴은 더욱 답답해져 온다.당장 차로 모셔다드릴게요.얼마 버티기 힘드실 거예요. “나는 아무래도 괜찮다니까…….그나저나,등나무집 할머니 말이다.왜,너도 알잖아,얼마 전에 네 엄마가 소개시켜준…….” 낚시용 승창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청승궂다.이내 지팡이 끝으로 낙엽 더미를 헤적이기 시작한다.땅 위에 글자를 새기고 있는 듯도 하다.낙엽을 헤치는 소리가 듣기에 좋지 않다.선영에게 얘기는 많이 들었네.경영학을 전공한다고? 수치에 매우 민감하겠군.아,자네도 들어서 알겠지만,난…….찻잔을 내려놓는 종업원의 행동이 거치적거린 모양이었다.남자는 말을 멈추고 김 선배의 어깨를 두드렸다.영문학과 선배야.우리 동아리 회장이었고…….이 년 전에 졸업했어.둘 다 초면이겠지? 나는 김 선배의 재킷에 박힌 장식용 버클에 시선을 고정했다.반갑네.남자는 내 시선을 밀쳐내듯 손을 내밀었다.손이 형편없이 못생겼군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말을 꾹 삼켰다.나는 그가 청하는 악수를 건성으로 받아들였다.형편없기 짝이 없는 그 손 언제까지 잡고 있어야 합니까! “성우라고 했지,아마?” 김 선배가 나를 대신해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은 많이 찍어봤나? 사진 속에 별을 담는 것과 정물을 담는 것은 확연히 다르지.쉽사리 덤비지 말아야 할 것이 천체를 담아내는 일이야.한낱 취미 정도로 생각했다간 큰 오산이지.듣자하니 소질이 많다던데…….무엇이든 역량이라는 것이 중요하지.일본에서 귀국하자마자 이 녀석이 찾아왔더라고.달과 금성의 일주 사진이라고 보여주는데 볼품이 없더군.난 처음에 반딧불 사진인 줄 알았다니까.농담 삼아,개똥벌레의 일주 사진이네,감히 반딧불로 별을 대적하다니,그랬지.” 남자는 김 선배를 돌아보며 짐짓 미소를 지었다.김 선배의 얼굴로 미소가 이어졌을 때,그녀의 재킷에 달려 있는 버클을 떼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치밀었다.어째서 별을 찍지? 나는 남자의 점잖은 말투가 듣기에 거북했다.글쎄요,뭐든 좋아지기 시작하면 따라가는 법이죠.남자는 한동안 내 눈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선물을 하나 할까 하는데,어떤가? 남자는 말을 마치자마자 과장된 걸음으로 카페를 빠져나갔다.그의 뒷모습을 보면서,누군가 카페 바닥에 바나나 껍질을 놓아두었더라면,하고 생각했다.괜찮아,성우야? 불편해 보여.난 너한테 도움이 될까 해서…….나는 김 선배의 시선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이 분야에선 알아주는 베테랑이야.물론 지금은 접은 상태지만…….작년엔 외국의 한 천문대가 주최한 천체 사진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어.나이가 많은데도 열정이 대단해.열정이라는 말로 남자의 나이를 짐짓 감추어보려는 그녀의 말투가 왠지 우스꽝스러웠다.저 사람 곧 인도로 떠날 거야.다른 세상을 접해 보고 싶대.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많이 도와줄 거니까,한국에 머무는 동안 자주 만나봐.남자의 구두 소리가 나갈 때와 마찬가지로 카페 가득 둔탁한 공명을 일으키며 다가왔다.할머니가 마음에 안 드세요,할아버지? “아니,내 말은 그런 게 아니라…….” 할아버지는 말끝을 흐리는가 싶더니 이내 기침을 토해낸다.기침 소리가 밤하늘에 긴 메아리를 긋는다.할아버지를 내려다본다.할아버지의 안경알에 그믐달이 갇혀 있다.그믐달이 거듭 요람으로 변하는 착각이 든다.할아버지의 심상이 그대로 전해지는 느낌이다.산록을 오르면서 할아버지는 내내 요람 위에서 쉬고 싶다는 말을 되뇌었다.무릎을 매만지며 번번이 하늘을 올려다보던 할아버지의 눈빛에서 요람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곧장 알아차릴 수 있었다.의족이 할아버지를 지탱하기엔 무리이지 싶었지만 할아버지는 그에 아랑곳없다는 듯 쉬지 않고 내 뒤를 따랐다.점점 뒤처지는 할아버지를 이곳까지 끌어올린 것은 아마도 달의 이미지가 전하는 느긋한 안주(安住)가 아니었을까.회답이라도 하듯 북극성 주위를 오르내리던 낙엽이 요람 위에 사붓 내려앉고 있다. “할망구가 은근히 피하더구나.어쩐지 아니다 싶었어.미련일랑 한푼 남길 것도 없다.네 엄마도 그렇지,그리 줏대 없는 할망구를…….” 할아버지는 의각이 끼인 다리를 쭉 뻗는다.아닐 거예요.할머니가 일부러 피하기야 하시겠어요? 할아버지의 긴 한숨 소리가 귓가로 날아온다. 플레이트 앞으로 다가간다.카메라 한 대를 집어 든다.애지중지하는 펜탁스67 기종이다.노출을 중단하고 필름을 교체한다.노출 시간을 초과한 감이 들지만 유성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될 일은 없다.다만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필름이 아까울 뿐이다.대학에 다닐 때 처음으로 장만했던 카메라야.니콘FM2지.선배로서 주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받아,자! 그믐달을 할퀴면서 한참을 꼬박거리던 나뭇가지가 툭 부러진다.배낭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모양이다.배낭으로 고개를 돌린다.어서 받아,성우야.내년 가을에 유성을 촬영할 거라면서? 이번에 못 찍었다고 그 난리를 치더니.카메라 한 대 더 있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잘 알면서.어서 받아.나는 김 선배를 바라보다가 남자가 건네는 카메라를 말없이 받아들었다.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별을 너무 많이 본 탓일까?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상이 끝없이 생기더군.혼자 여행을 선택한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르지.가면 갈수록 새로운 걸 찾게 돼.물론 과거가 바탕이 된 새로움이겠지만.인도에 대해 아는 것 좀 있나? 힌두교? 일처다부혼? 아니면,마하트마? 남자와 김 선배가 자리를 떠나고 나서도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동아리 선배로서 소개시켜줬을 뿐이니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해해.아,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이야,마하트마란.김 선배는 다시 돌아와 그렇게 몇 마디 던지고는 급하게 카페를 빠져나갔다.나는 김 선배가 잠시 우주로 여행을 떠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불안감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는 힘으로 나타났다.그들이 지나간 카페 홀에 문뜩 간디와 마하트마를 외치는 남자가 부딪쳤다가 분산하는 이미지가 그려졌다.커피 리필해 드릴까요? 종업원은 나의 대답을기다리는 투였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나는 그녀가 무안해하길 바라면서 그녀의 코밑을 계속해서 쏘아보았다.리필해 드리겠습니다.위대한 영혼 좋아하시네! 잠시 주춤하던 바람이 한달음에 몰려온다.옹그리고 있던 낙엽 더미가 소르르 흩어진다.달빛을 빌려 주위를 둘러본다.할아버지의 발 앞으로 융단이 말리듯 낙엽 더미가 굴러간다.굴러간 낙엽만큼의 양이 또다시 굴러오는 모습이 거년스럽다.할아버지의 어깨 위에 낙엽 한 장이 사부랑삽작 걸터앉는다.아니,어느새 날아간다.할아버지,녹차 드릴까요? “아니,됐다…….애초에 소개를 받는 게 아니었지,여시 같은 할망구!” 배낭에서 녹차 티백과 보온병을 꺼낸다.배낭 옆에 부러진 나뭇가지가 힘없이 나동그라져 있다.다만 동아리 선배로서 소개시켜줬을 뿐이니까…….웃음이 나온다.플레이트가 놓여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삼각대에 장착한 카메라와 플레이트 위에 올린 넉 대의 카메라가 하늘을 향해 조리개를 가만 열어놓고 있다.적도의 가대에 올린 카메라는 천구의 이동을 따라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가져오지 않은 남자의 카메라가 머릿속에 떠오른다.유성을 담아내기에 카메라가 적은 듯도 하다. 티백을 간닥거리며 망원경의 접안부를 들여다본다.카시오페이아와 페르세우스 사이에 웅그리고 있던 은하단이 어느 틈에 천정(天頂) 부근으로 이동해 있다.별들의 바다를 감상하기에 녹차의 양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없네,부담이 엔간히 드네,민망해서 자식들 볼 면목이 없네,다 늙어서 주책이 아닌가 싶네…….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괸다더니,뭐 그리 둘러댈 것이 많은지.보험 들으랄 때부터 알아봤지,내가! 참말로 사랑은 아무나 하나네 그려.” 녹차를 들이켜다 사레가 들린다.입술을 훔치며 할아버지를 돌아본다.할아버지의 고개가 하늘로 향한다.나의 시선이 어느새 할아버지의 고개를 따라간다.성도(星圖)를 펴놓은 듯한 밤하늘이다.고개가 각각의 별자리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남쪽 하늘에 고래자리가 자오선 위를 조용히 헤엄치고 있다.서쪽 하늘,독수리자리의 알타이르가 말없이 지고 있는 모습이다.달을 품은 동쪽하늘,쌍둥이별의 카스트로와 폴룩스가 드높게 떠 있다.가슴속에 새겨진 성도가 보이지 않는 별마저 또렷이 그려내고 있다.아마 잦은 촬영에서 밴 습관일 것이다.멀리 작은개자리의 프로키온이 외롭게 반짝인다.별을 본다는 건 말이야…….그건 결코 값싼 센티멘털리즘만으로 되지 않는 거야,적어도 우리 같은 사람에겐.김 선배의 손가락이 작은개자리에 머물렀다.끝내 그 모습만을 유지하는 별은 없어.나 역시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진 않아.프로키온,다른 별들처럼 모여 있지 않고 외롭게 떠 있지.저 별을 보고 있으면…….아니다,값싼 감상은 내가 찾고 있네…….자,봐봐! 김 선배의 손가락이 공중에서 천천히 움직였다.큰개자리의 시리우스와 베텔게우스를 연결하고 프로키온으로,다시 시리우스로 돌아오면…….김 선배의 손가락이 내 눈앞에 머물렀다.김 선배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어색한 마음에 멀리 횡성군(郡)의 정경을 내려다보았다.그러니까,그렇게 그려보면 겨울의 대삼각형이 이루어지는 거야.네 손으로 한번 그려볼래? 지그시 눈을 감아본다.주머니 속의 호박이 얼굴에까지 느껴진다. “생판 모르는 할망구 만나서 뭔 득을 보겠다고.내가 미쳤지!” 할아버지는 두 손을 비비며 몸을 움츠린다.몸 전체가 굼벵이처럼 오그라든다.정말 안 되겠어요,차로 돌아가요.할아버지는 대답이 없다.흰자위가 드러나도록 눈을 치켜뜨고 달 쪽을 올려다볼 뿐이다.억지를 부리는 어린아이 같아 안쓰럽다.달은 달일 뿐,요람은 그저 값싼 감상인 모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지독한 난시 탓에 할아버지에겐 그야말로 별 볼 일 없는 밤하늘이라는 것마저 이곳에 와야 할 명분을 지우는 것 같아 답답하기까지 하다.어느새 할아버지의 발목까지 낙엽 더미가 덮여 있다.의족으로 낙엽을 헤치는 모습이 곰상스럽다.갑자기 할아버지가 지팡이에 의지해 승창에서 일어선다.차로 가시겠어요? 할아버지는 지팡이로 땅을 꾹 찌른다. “칼을 들었으면 두부라도 썰어야지,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산중턱을 엷게 스친다.등나무집 할머니를 두고 하는 말이다.칠순을 넘겨보는 할아버지에게 사랑이 찾아왔다는 사실이 나에겐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기억도 나지 않는 할머니 얼굴을 등나무집 할머니의 얼굴로 대신하겠다는 생각도 없다.다만,물 건너간 사랑을 되돌리지 못할 때 찾아올 슬픔을 고스란히 할아버지 자신이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작년 가을에 콤바인 예취날에 바짓부리가 걸려 발목을 잃은 할아버지에게 사랑은 그 후유증마저 낫게 할 수 있는 힘이 될지도 모른다.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는 생각지 못한 섬으로 가로막힐 때가 있다.경우에 따라선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그래서일까? 할아버지의 사랑이 쉽사리 이루어지리란 기대는 들지 않는다.등나무집 할머니는 둘러대는 것이 아니다,어쩌면.할머니도 일부러 그러시는 건 아닐 거예요. “그럼 만나지 말자는 게 진심이라는 게냐?” 아니,그런 것이 아니라,뭔가 사정이…….갑자기 눈 속에 번뜩하며 섬광이 스민다.고개를 젖히자 곧 하늘이다.드디어 화구를 벌린 모양이다.그대로 하늘에 눈을 처박는다.이중성단을 관통하며 희미하게나마 유성 하나가 떨어진다.할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동시에 따라붙는다.단말마와 같은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를 따라 금세 사라진 녀석이지만 잔상으로나마 눈 속에 남는다.보셨어요? 저기…….손가락을 펴 하늘을 가리키지만 할아버지는 아무 관심도 없는 투다.대인이 또 세상에서 사라지는구나,하고 말하면서 그 사람 이런 말을 꼭 덧붙였어.자신은 타 없어지는 유성이 아니라,우주에 버려진 별이 되고 싶다고 말이야.그 말이 무슨 뜻일까? 나는 선배가 말하는 남자에 대해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그렇게 자신을 사랑하더니 결국 혼자가 되어버린 걸까? 그 사람 지금은 인도에 없어.또 다른 낯선 곳을 찾아갔겠지.김 선배는 간헐적으로 딸꾹질을 토해냈다.그러면서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되뇌었다.메클렌부르크 포어포메른…….낯선 곳에서 혼자가 되어보는 건 어떤 기분일까? “한 번 더 자리를 만들어야겠다.이번엔 네 엄마가 아니라,내가 직접 말해야겠어.만나서 담판을 짓든지…….성우야,두유 좀 가져다 다오.목이 다 탄다.” 배낭으로 다가간다.지퍼를 열고 배낭 속에 손을 넣어 두유를 찾는데 다시 유성이 떨어진다.순간적으로 고개를 들어올린다.큰곰자리 부근으로도 유성이 떨어지고 있다.큰곰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북극성을 오매불망하는 듯한 눈매가 큰곰으로부터 전해져 온다.거듭 긴장이 몰려온다.오늘을 마지막으로 삼십 년 후에나 찾아올 사자자리 유성우다.모(母)혜성의 궤도 문제로 삼십 년의 주기마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를 들은 바 있다.무엇이든 머문다는 건 좋지 못해.머물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 봐.무슨 일이 있어도 유성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온몸을 감싼다.김 선배가 일러주었듯,아니,그녀가 전하는 어느 화백의 말처럼 하늘은 곧 오랜 세월 품어온 정한(情恨)을 차가운 땅덩이를 향해 쏘아댈 것이다.정한이란 비타민E 다음에 아직 나타나지 않은,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비타민F와 같은 인생의 알 수 없는 영양소일지도 모른다고 천경자 화백이 말했지.그 여자,아니,그 화백이 자신의 그림을 참 재미있게 표현했었어.전시회 작품들이 대부분 오로라와 같은 몽롱한 색채로 표현돼 있었거든.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오로라를 목격했다는데,글쎄,갓 잡은 등 푸른 생선이 파닥이는 것 같더라나? 화가의 표현치고는 좀 어수선하게 느껴지지 않아? 김 선배는 말을 마치자마자 상념에 사로잡힌 듯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김 선배의 시선은 언제부턴가 내 어깨에 머물러 있었다.또 그 사람 생각하는군요? 김 선배는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섰다.망원경에 눈을 들이대는 김 선배의 모습이 왠지 어색했다.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어색함을 견디지 못한 표정이었다.그런 식으로 시치미 떼지 말아요! 내뱉지 못한 말이 가슴속에서 빙빙 돌았다.김 선배는 접안렌즈에서 눈을 떼고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그 사람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나에게서도 머물지 않으려는 걸까? 그녀는 자신의 상념을 자르려는 듯 의외의 말을 던졌다.성우야,횡성에 가자.너도 태기산에 간 적 있지? 나는 한참 뒤에나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그렇지 않아도 오리온자리 일주 사진을 찍을 곳을 찾고 있었어요.그래요,가요.김 선배는 바지 주머니 속에서 밀황색 호박을 꺼내 코에 가져다 댔다.그래,가.가보고 싶던 곳이었어.“얘,두유가…….” 느지감치 할아버지 손에 두유를 쥐어드린다.옷깃에 달라붙은 검불을 떼어내고 버름한 방한복을 여며드린다.손목시계를 들여다본다.라이트 버튼을 누르자 액정 화면이 흐릿하게 빛을 발한다.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다.노출 시간을 체크하고 카메라로 다가간다.노출 시간을 또다시 오버한 감이 든다.필름을 새로 갈아끼운다.때마침 희미한 유성 하나가 떨어진다.재빨리 카메라를 들어 연속 촬영을 한다. 다시 한 마리가 떨어진다.제법 모양을 갖춘 놈이다.운이 좋으면 긴 유성흔을 잡은 사진을 현상할 수 있을 듯하다. “땃땃하게 데운 베지밀이 최곤데 말씀이야.그,병에 든 거 말이다.” 카메라의 구도를 바꾸어본다.이번엔 복사점을 중심으로 앵글을 잡지 않고 주변의 별자리를 중심으로 구도를 잡을 생각이다.어디서 떨어질지 모르는 놈들이기 때문에 천구가 모두 피사체다.사진으로 태어난 녀석들이 깨알과 같이 작다 하더라도 사진을 현상하는 동안만큼은 현장에서 느꼈던 흥분이 다시 살아나 그야말로 황홀하다.마지막이라는 말이 얼마나유혹적인지 알아? 올해를 마지막으로 그놈들을 잡을 수 있는 해는 아마도 네가 두 딸아이의 아빠가 되었거나 손자도 볼 수 있는 시간들을 다 겪고 나서야 올 거야.군침이 돌지 않니? 장관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유성은 이미 몇 년 전부터 거의가 떨어져서 그다지 훌륭한 사진은 찍을 수 없을 거야.운이지,뭐.노벨이 태어난 해엔 한 시간 동안 무려 만 개 이상이 떨어졌다는데…….성우야? 김 선배가 나직이 내 이름을 불렀다.꼭 갈 건가요? 김 선배는 대답하지 않았다.나를 가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성우야?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선배가 다시 내 이름을 불렀다. “나,인도에 갈까?” 그 사람 인도에 없다면서요? 아직 거기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김 선배는 다소 신경질적인 내 물음에 뜬금없이,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나는 그녀의 얼굴빛에서 장난스럽게 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나는 내가 말했어야 하는 부분을 모욕적으로 도난당한 느낌이 들었다.널 좋아하는 것 같아.그녀가 다시 같은 말을 반복했을 땐 수치심마저 치밀었다. “젊었을적엔 참 고왔을 얼굴인데…….에이,모르겄다.늙을수록 애가 돼 간다는데 남사시럽게…….이놈의 나이도 이냥저냥 시들어갈 판인가?” 시계를 들여다본다.12시30분.유성은 카메라를 향해 간헐적인 입김만 뿜을 뿐 탄성을 자아낼 만한 모습은 보여주질 않고 있다.어쨌든 물고 늘어져야 한다.새벽 1시에서 2시 사이가 녀석들이 한꺼번에 태어나는 극대 시각이라는 정보를 굳이 믿으라면 아직 3,40분 정도의 터울이 있는 셈이다.그때에 대비해 아껴두었던 커트필름을 꺼낸다. 갑작스레 휴대전화기가 엉덩이를 간질인다.어머니의 전화다.걱정이 되는 모양이다.할아버지를 잘 모시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이미 내 목소리에서 할아버지의 안전을 확인했을 것이다.할아버지를 내려다본다.할아버지가 나를 따라나선 것에 대한 불만이 가신 것일까.할아버지는 세상을 관조하러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다리를 절단하고 병원에 누워 계실 때,이제는 바라만 보며 살란다,하면서 관조라는 말을 꺼낸 적이 있다.뭐든 간섭하고 살았는데,이젠 좀 앉아서 쉬어야지.늙어서 다리 쓸 일이 뭐가 있겠어.방바닥에 앉아서 창 밖이나 구경하면 됐지.그걸 관조라고 해도 될 거야.할아버지가 관조라는 말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라 말했을 때,사실 너무 우스웠다.세상에는 그저 바라보아야 하는 일보다 시기해야 할 일들이 더 많은 법이니까.사학년생들끼리 전시회를 열기로 했어.작년 선배들처럼 여러 가지 테마를 가지고 전시하지는 않을 거야.그만큼 작품이 적다는 얘기겠지.그러고 보면 선배들은 참 대단해.별을 잡아온다는 게 어디 쉬워? 카페 창가에 앉아 있던 김 선배는 밖을 바라보며 전면 유리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뽀드득뽀드득 듣기 싫은 소리가 귓전에 머물렀다.선배는 사진 많이 찍으러 다녔잖아요. “주문하시겠어요?” 검은 에이프런을 입은 여자가 테이블 앞에 섰다. “고작해야 일주 사진이 전부야…….커피 두 잔 주세요…….다른 사람들은 은하며 성단이며 그림 같은 작품들을 전시하는데…….” 탁자 밑에서 자꾸만 나의 구두코가 그녀의 발을 차고 있었다.그런데도 김 선배는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내가 말을 걸지 않는다면그녀는 그녀의 생각 속에 머물고 말 듯했다. “가끔은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어차피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말이야.아,계획은 세웠니? 유성우 말이야.할아버지 사고 때문에 작년에 찍지 못했잖아.맞다,할아버지는 괜찮으시지?” 플레이트를 돌아본다.아무래도 좁은 플레이트 위에 넉 대의 카메라는 무리이지 싶다.사진 주변에 수차(收差)가 나올 것을 감안해야 할 듯하다.옆 카메라의 릴리즈가 들어올 것도 예상해야 할 판이다.사진 표면에 검은 줄이 생길 것이 뻔하다.필름을 스캔하고 이미지 처리를 한다고 해도 작품의 질은 떨어질 것이다.망원경과 카메라를 부착하는 방법을 시도하기로 한다.카메라 한 대를 들어 망원경 앞으로 가져온다.신발 끈을 끄른다.망원경의 접안부와 카메라의 렌즈를 맞대고 신발 끈을 감는다.왜요,필요한 거 있으세요? 할아버지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요 좀 보련다.난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 계속해요.” 할아버지는 배낭을 걸어 놓았던 나무로 절뚝절뚝 다가간다.지퍼를 내리는 소리가 크다.늦었구나! 지도교수가 내 어깨를 치고 홀을 빠져나갔다.몇 작품 전시하지 않은 전시회 치고는 꽤나 엄숙한 분위기였다.선배들의 사진전은 ‘우주의 신비’라는 제목으로 열렸다.‘끝의 향연’이었던 작년의 제목에 비하면 꽤나 성의가 없어 보이는 제목이긴 했다.사진전은 학교 도서관 입구의 홀에서 개방적으로 열렸다.얼마 안 되는 작품이 전시되었다고는 하지만 안드로메다은하나 플라아데스 성단 사진은 그 몇 안 되는 작품들까지 빛내기에 충분했다. “겸연쩍긴 하지만,그래도 차지 않은 달이 더 정이 간다니까.” 달은 고개를 젖힌 할아버지의 코끝에 붙어 있지만 바람에 끄덕이는 나뭇가지 탓에 자꾸만 명멸한다.‘달과 금성의 일주,강원도 횡성군 태기산,올림푸스 OM-1,45㎜ 광각렌즈…….’ 공책 크기만한 사진 속에 지평선을 향해 사선을 내리긋는 달과 금성의 일주가 힘차게 다가왔다.개똥벌레 일주 사진,감히 반딧불로 별을 대적하다니……. “성우야.” 어느 결에 김 선배가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나는 사진 속의 달과 금성을 머릿속에 그려진 반딧불과 견주어 보았다.미친놈!“늦었구나?” 김 선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선배는 자신의 사진을 한번 훑고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횡성에 가본 적이 있군요? 나는 물으려다 말았다.실망했지? 사진을 찍을 때도,인화할 때도 온통 딴생각이었으니…….괜찮아요.개똥벌레 같지 않은데요,뭘.정말 괜찮아요.나는 김 선배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입아귀를 부풀렸다. “괜찮으면,너 가질래? 지금 가져가도 돼.” 김 선배가 조용히 물었지만,나는 대답하지 않았다.그때부터 김 선배의 입도 열리지 않았다.그녀는 홀 주위를 돌기만 할 뿐이었다.나는 김 선배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김 선배는 ‘개똥벌레의 일주’가 놓인 이젤을 무려 다섯 번이나 거치면서도 내내 입을 열지 않았다.나는 그런 그녀에게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선배 사진을 내가 어떻게 가져요,하고 되뇌기만 했다. “더 이상은 못 봐주겠어!” 김 선배가 자신의 사진을 들고 돌연 도서관을 빠져나갔을 때에도 내 입 속에선,선배 사진을 내가 어떻게 가져요,하는 말만 반복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바다뱀자리와 큰개자리의경계선 부근에 섬광이 스친다.지평선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사라진다.한참 만에 나타난 녀석이지만 그다지 반갑지 않다.기대를 많이 한 탓이다.플레이트 앞에 선다.50㎜ 표준렌즈를 광각렌즈로 교체한다.필름을 빼내면서 웬일인지 작품다운 작품이 나올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46도 화각으로 유성을 잡는다는 것이 무리이지 싶었다.새 필름으로 갈아끼운다.이번엔 초점비에 따라 4분에서 8분씩 노출을 주기로 한다.버름했던 앞섶을 단단히 여미고 망원경으로 다가간다.경통에 키스하고 힘겹게 매달려 있는 카메라로 눈을 가져다댄다.잘 보여? 힘없는 목소리로 김 선배가 물었다.오늘따라 잘 잡히지 않네요.횡성에 도착하기 이전부터 무엇인가가 불안했다.달의 상을 또렷하게 끌어오는 것마저 힘에 부칠 정도로 불안이 온몸을 휘감았다.잘 안 되니? 김 선배는 까치발을 하면서 재킷 주머니에 손을 꼭 찔러 넣었다.천문학도 아닌데 왜 그렇게 쩔쩔매? 천문학이면 괜찮게요? 이건 완전히 막노동이니…….안 되겠어요.카메라 좀 가져다 줄래요? 그냥 찍어야 할 것 같아요. “왜,내가 있어서 그래?” 카메라를 받아들려고 했지만 김 선배는 잠시 악력을 썼다.카메라가 중요해,내가 중요해? 나는 뜬금없는 그녀의 질문에 장난스레 되물었다.선배는 아빠가 좋아요,엄마가 좋아요? 김 선배가 갑자기 카메라를 놓아 버리는 바람에 몸이 뒤로 밀렸다.두 시간 동안 노출할 거니까 지겨워도 참아요.김 선배는 대답하지 않았다.망원경 접안부에 카메라를 부착하고 셔터를 누르자,김 선배가 대뜸 딸꾹질을 토해냈다.나 몰래 뭐 훔쳐 먹었어요? 나는 배낭으로 다가가 보온병과 녹차 티백을 꺼냈다.자,마셔요. “자연현상이라는 게 그 자체로 인간에게 많은 감상을 주는 거 같아.” 김 선배에게 녹차가 담긴 잔을 건넸다.안 좋은 부분이 있다면 때론 인간을 징벌하기도 한다는 점이죠.김 선배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그래,맞아.때론 징벌하기도 하지.그걸 피하는 방법은 뭘까? 나는 김 선배를 돌아보았다.피할 수 없어요.다만,치유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게 답일 뿐이죠.감상만 쫓아가지 말아요,제발! 그러다간 평생 치유할 수 없는 징벌을 안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뱉어내고 싶은 말이었지만 긴 한숨으로 대신했다.프로키온,외로운 별이야.김 선배는 감상에 빠지고 있었다.그녀는 겨울의 대삼각형을 연거푸 그려댔다. 김 선배의 얼굴에 입술을 가져다 댄 것은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그녀가 대뜸 일어섰다.우리 그만 내려가자.나 너무 피곤해.나도 모르게 김 선배를 쏘아보고 있었다.피곤하다니요? 올라온 지 고작해야 한 시간 지났는데.노출 끝내려면 적어도…….김 선배는 기필코 가야 한다는 표정이었다.그녀의 눈을 다시 한 번 뚫어지게 쏘아보았다.일단 내려가자.김 선배는 무턱대고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선배님,지금! 김 선배가 바닥에 주저앉았다.선배,이건 반칙이에요.여기까지 와서 그냥 내려간다는 건…….저따위 별들이야 언제라도 볼 수 있어! 그녀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왜 그래요? 미안해,그냥 내려가자.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성우야,넌 여기가 어디 같니? 아까부터 유심히 살펴봤는데,아무래도 이상해.”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온 할아버지가 묻는다.주위를 둘러본다.내 눈엔 그저 낮은 산언덕으로만 보인다.무슨 겁을 주시려구요? “모르겠니? 난 아무리 봐도…….” 안 갈 거예요? 김 선배는 ‘횡성여관’ 앞에 섰다.그녀는 간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여관이라는 글자에서 ‘관’자의 네온사인이 끔벅이며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차 있는 곳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돼요.빨리 가요,선배! “나…….나,여기 예약했어.” 예약요? 여관도 예약이 돼요? 응,오래 전에…….할아버지 손끝에서 라이터 불꽃이 번뜩인다.깊은 고랑이 팬 이마 위에 돌연 플라아데스 성단이 나타난다.영묘한 빛을 산란하는 산개성단.할아버지는 담배를 문다.성단이 단박 사라진다.담배! 손전등을 켜고 할아버지를 향해 불빛을 겨눈다.담배요! 나도 모르게 뱉어버린 소리가 맞은편 산허리에 부딪힌다.어이없이 큰 내 목소리에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툭 불거진다.죄송해요,전 다만……. “다시 한 번 비춰보거라…….아무래도 무덤자리 같은데.” 할아버지는 손가락을 펴고 팔을 뻗어 허공에 둥그런 원을 그린다.손전등 불빛이 할아버지의 손끝을 따라간다.어느새 이슬이 맺힌 언덕 주위가 불빛에 번뜩인다. “그래,맞다.무덤자리가 확실해.둔덕이 좀 진 곳이 있잖니? 오래 돼서 다 깎여 내려갔지만 그것이 봉분이고…….” 할아버지는 이번에 두 팔로 허공을 감싸는 시늉을 한다. “양쪽의 활이 엉성하게나마 살아 있잖니.저 봐라,가지가 이리저리 벌어지긴 했지만 묘목도 있잖아.어쩐지 이상하다 싶었지.” 다시 주위를 비추어본다.엉성한 이팝나무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한 그루씩 자라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신경을 좀 쓰지,죽어서도 한이겠구먼.” 네,그런 것 같네요.할아버지를 한참동안 내려다보다가 하늘로 고개를 든다.때를 맞추어 북두칠성의 국자 옆으로 상당히 밝은 유성이 떨어진다.준비해 두었던 커트필름으로 모든 카메라의 필름을 교체한다.하늘은 등갓이 손톱에 찢긴 순간처럼 번쩍 발한다.긴 유성의 꼬리가 눈 속에 오래도록 남는다.긴 궤적을 남긴 유성은 할아버지가 등진 산의 허리춤에 박히면서 소리 없이 부서진다. 망원경 접안부에 맞댄 카메라의 필름도 커트필름으로 교체한다.망원경과 카메라가 불안하게 맞대어져 있다.상이 선명하지 않잖아! 자,다시 해보자.김 선배가 내 어깨를 힘껏 내리쳤다.처음엔 다 그런 거야.심호흡하고 다시 해봐! 천천히! 여자 다루어본 적 있을 거 아니야! 그래,천천히 렌즈를 돌리면서…….상을 잡아야 사진이든 뭐든 나올 거 아니야! 다시,다시! 신발 끈을 다시 단단히 매고 상이 선명해지도록 접안렌즈를 천천히 조정한다.무한대를 응시해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피하려면 파인더를 보면서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그래,그래야 한다.파인더에 들이댄 눈에 점점 힘이 들어간다.아랫입술을 꼭 깨문다.다시 상이 가능한 한 선명할 때까지 망원경 접안렌즈의 초점을 맞춘다.카메라에 눈을 들이댄다.전망이 별로 감동적이지 못하다.다시 망원경의 초점을 정밀하게 맞춘다.들어온다.선명해진다.조리개를 최대한 개방하고 최대한의 노출을 유도한다.긴장이 밀려온다.검지에 힘을 주고 셔터를 누른다.순간 내 행동에 대한 반감 섞인 생각이 스친다.우주는 가만히 있어도 가슴에 소지할 수 있다는.그것 봐,하면 되잖아.어,언제 왔어요? 김 선배가 남자에게 달려가는 모습을 나는 스스로 거역하고 있었다. “가만,그러고 보니,내가 죽은 이 위에 버릇없이 앉아 있었네 그려.” 할아버지는 승창을 들고 망원경 쪽으로 다가와 앉는다.배낭으로 다가가 녹차 티백과 두유를 꺼낸다.할아버지 옆으로 다가간다.꼭 다시 한 번 만나보세요.좋으신 할머니 같던데.할아버지 손에 두유를 쥐어드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차갑지만 폭신한 낙엽방석이다.녹차가 담긴 컵을 가볍게 감싸쥐고 하늘을 올려다본다.영묘하게 빛나는 큰개자리의 시리우스가 동쪽 하늘을 호령하면서 지평선 위에 드높이 떠 있다.궁수자리의 남은 마지막 밝은 별들이 서서히 지고 있다.켄타우루스와 남십자가자리의 별들 그리고 에라다누스강자리의 아케르나르가 남쪽 하늘에 깊이 박혀 있다.할아버지,돌아가는 길에 온천욕이라도 하시겠어요? “아니다.온천은 무슨…….” 들추어진 할아버지의 바짓부리를 정리해드린다.차갑고 딱딱한 의족이 손끝에 느껴진다.할아버지가 내 어깨 위에 천천히 손을 얹는다. “힘들여서 만나봐야 게 잡아 물에 넣는 꼬락서니지.안 그러냐,성우야?” 죄송하지만,삼백이호실로 방 하나 더 주세요.돈을 지불하고 김 선배의 뒤를 따랐다.층계는 끝이 보이지 않을 것처럼 벌건 융단을 뒤덮고 지루하게 이어졌다.관측장비가 무거운 탓인지도 몰랐다.삼층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김 선배는 다시 딸꾹질을 토해냈다.미안해,괜찮아질 거야.나에겐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나는 그녀가 괜한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생각했다. 김 선배와 나는 삼백일호와 삼백이호 앞에 나란히 섰다.선배의 옆얼굴을 잠시 동안 바라보았다.그녀는 문을 향해 다시 한 번 딸꾹질을 토해냈다.괜찮아,정말이야.그녀에게 열쇠를 건네고 문손잡이를 돌렸다.꼭 자고 가야겠어요?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잖아요.더군다나 차도 있는데…….김 선배는 몸을 틀어 나를 바라보았다.잠시 말이 없던 그녀가 목에 걸린 호박을 떼어 내 앞에 들이밀었다.짐짓 어색한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깔려 있었다.미안해…….오래 머물 것 같지는 않아.무엇이든 오래 머문다는 건 좋지 못해.기억이든뭐든…….그녀는 내 손바닥 위에 호박을 얹어놓고 꼭 쥐어주었다.호박이야.발트해의 상징이래.독일에 사는 이모가 보내줬는데 이젠 필요 없게 됐어.직접 가서 캐보려구…….이왕이면 북해까지 돌아볼 생각이야.보트니아만을 거쳐 핀란드만까지…….독일 북동부에 있는 발트해 연안 도시라는데.주 이름이…….아주 긴 이름이었는데……. 무척이나 밝은 대화구가 눈에 들어온다.사방이 일순 밝아진다.느낌이 좋다.큰곰자리의 꼬리 부분으로 다시 여러 개의 유성이 빗금을 그으며 떨어진다.곧 큰곰의 머리 부분으로도 유성이 떨어진다.유영하는 연어의 등지느러미처럼 은빛을 산란하며 하늘을 가른다.제법 공격적이다.머리카락이 설 정도로 쾌감이 전해진다.맞아,포어포메른주였어.독일의 북동부,메클렌부르크 포어포메른주! 망원경 앞으로 다가간다.카메라에 눈을 들이대자 동전 크기의 유성이 망원경 안으로 날아온다.몸이 반사적으로 꺾인다.조금만 참으세요,할아버지.이것만 찍으면 다 되니까.잠잠했던 바람이 다시 불어오기 시작한다.카메라에 키스한다.너만 믿으마.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할아버지 등뒤로 다가간다. “그놈의 미련이 문제라지…….성우야,등나무집 할머니가 만나는 주겠지?” 나는 할아버지 등뒤에서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때마침 유성의 꼬리가 할아버지의 긴 하품 소리를 따라 하늘에 은회색 칼날을 하늘에 긋는다.뒤이어 서너 개가 더 떨어진다.지평선 어딘가에 떨어졌을 유성의 잔상이 오래도록 눈 속에 남는다.무덤 주위를 둘러본다.하필 그곳에 가겠다는 이유를 모르겠군요.나는 손바닥 위에 놓인 호박을 내려다보며 말했다.그곳이 한때는 슬라브족의 요새였다는 거야.맞아,슬라브족의 요새.한자동맹이란 것도 그곳에서…….엉터리 수작 말아요! 입이 열릴 뻔했지만 참았다.내 손으로 호박을 채취하고 싶은 게 꿈이야.고대 생물이 들어 있는 호박 말이야.난…….김 선배는 말을 멈추고 문손잡이를 잡았다.잠깐만요! 김 선배는 여관 복도가 울릴 만큼의 내 부름에도 놀라지 않은 듯했다.김 선배는 천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그녀의 눈망울에 작은 프로키온이 나타났다.우는 거예요,지금? 그녀는 다시 딸꾹질을 토해내기 시작했다.이거요,잘 구경했어요.아무리 찾아도 개똥벌레는 없던데요.나는 돌돌 만 ‘달과 금성의 일주 사진’을 점퍼에서 빼내 그녀에게 들이밀었다. “나,잠깐 약국에 좀 다녀올게.기다리지 말고 자.” 김 선배는 사진을 받지 않았다.나는 호박과 돌돌 만 사진을 번갈아 내려다보았다.말해줘요! 아니야,내가 갔다 올게.먼저 자고 있어.그녀는 이미 층계를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나는 슬라브족도 한자동맹도 아닌,김 선배가 그곳에 가겠다는 이유만을 알고 싶었다. 할아버지의 기침이 다시 시작이다.할아버지를 돌아본다.할아버지의 발 앞으로 낙엽 더미가 굴러가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흡사 융단이 말리는 듯하다.굴러간 양만큼의 낙엽이 또다시 굴러오는 모습이 할아버지의 발 아래 펼쳐진다.그믐달로 날아간 낙엽들이 한점 바람에 사방으로 흩어진다.주머니에 손을 넣는다.호박이 느껴진다.호박 속에 갇혀버린 것은 나일지 모른다.손님,삼백일호 손님,안에 있어요? 복도 끝,창유리를 통해 어슷하게 비쳐든 새벽의 푸른 기운이 물 위에 떠가고 있었다.발트해,삼백일호 문 아래로 차가운 해수가 밀려나오고,나는 그 위에 밤새 쥐고 있던 호박을 떨어뜨렸다.점벙! 발끝으로 밀려온 해수를 나는 나도 모르게 피하고 있었다.김 선배는 결국 호박을 캐러 떠났다.손님,손님! 이봐요! 하늘을 올려다본다.동쪽 끝에 겨우 고개를 내민 시리우스에 손가락을 찍는다.천천히 베텔게우스와 연결하고 프로키온으로 옮긴다.다시 시리우스로 손가락이 이동하지만 그만 손가락은 가던 길을 멈추고 만다.나는 겨울의 대삼각형을 그릴 수 없는 모양이다.곧 겨울이 찾아올 테지만 그때에도 삼각형을 그릴 수 없을 것이다.관측일지를 꺼내든다.11월19일,사자자리 감마성 부근을 복사점으로 20여 개의 유성 출현.30년 후에는…….호박을 꺼내 코밑에 가져다 댄다.발트해의 짙푸른 해수가 밀려간다.로스토크,그녀는 결국 그곳에 가고 없다.
  • SBS 시청률 지상주의 어디까지

    SBS가 ‘선택!리얼 데이트’(연출 이충용)를 전격 편성한 것을 놓고 이 회사 예능국 프로듀서들이 집단 반발하고 있다. ‘…데이트’는 이른바 ‘잘나가는’ 남성이 여러 여성과 데이트를 해 한 사람을 선택하는 서바이벌 데이트 프로그램.지난 가을 개편때부터 방영할 계획이었으나,“짝짓기 프로의 실질적인 부활”이라는 회사안팎의 비판과 제작일정 등의 문제로 무산됐다.그런데 SBS는 지난 6일부터 시청률 한자리 수 대의 정규 프로그램 ‘창과 방패’를 중단하고 대신 ‘…데이트’를 넣은 것.SBS 관계자는 4차례 방영하고 시청자 반응이 좋으면 정규방송에 넣을 파일럿 프로그램의 성격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예능국 PD들은 “시청률 위주의 파행 편성”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정규 프로를 4주일 만에 중단하고 파일럿 프로를 끼워넣은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는 것.한 PD는 “이런 편성이 용인되기 시작하면 언제라도 시청률 낮은 프로는 바꿔끼기 당할 것”이라고 불쾌해했다. 이들은 “최근 조기 종영이 결정된 ‘왕의 여자’처럼 극단적인시청률 위주 편성이 두드러지고 있다.”면서 “최근 예능국 프로듀서 임시회의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자는 의견을 예능국장과 제작본부장에게 전달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한편 선정성 및 저질성 시비로 공중파 방송에서 일제히 사라졌던 ‘연예인 짝짓기’가 부활됐다는 것도 우려를 낳고 있다.제작진은 ‘결혼 적령기 남녀의 진지한 만남을 추구하는 공개 중매 프로그램’이라고 주장하지만,뚜껑을 열어보니 여성의 외모가 주경쟁력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외모지상주의와 여성상품화를 부추긴다.”는 시민단체의 비판이 전혀 시정되지 않았다. 다른 방송사의 PD는 “이 프로그램이 정규편성을 무시하고 시급히 내보내야 할 만큼 실험성이 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지나치게 시청률을 의식한 무리수”라고 비판했다. 채수범기자 lokavid@
  • 책 / 창덕궁과 창경궁

    글 한영우 / 사진 김대벽 열화당·효형출판 펴냄 서울은 세계적으로 궁궐이 가장 많은 도시로 꼽힌다.대규모 정궁(正宮)만 해도 경복궁·창덕궁·창경궁·경희궁·경운궁(덕수궁) 등 다섯 곳이나 된다.특히 창덕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문화적 자부심을 드높여주고 있다.그러나 우리 역사학계의 궁궐사 연구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그동안 나온 왕궁 관련 책들은 대부분 건축사 전공자들이 쓴 것인 만큼 건축양식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히 설명돼 있지만 역사적 맥락에서 궁궐을 다룬 책은 매우 드물다.‘창덕궁과 창경궁’(글 한영우,사진 김대벽)은 그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건축물로서의 궁궐’보다는 ‘역사의 무대로서의 궁궐’에 초점을 맞췄다. 한림대 한림과학원 특임교수인 저자는 새로 씌어져야 할 궁궐사의 첫 소재로 서울에 있는 5대 궁궐 가운데 창덕궁과 창경궁,그리고 그 후원을 택했다.일반적으로 조선의 정궁으로 알려진 경복궁이 아닌 창덕궁과 창경궁을 선택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무엇보다 창덕궁이 경복궁보다 10년뒤에 세워졌지만,실제로는 창덕궁이 조선왕조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정궁으로 이용된 곳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또한 경복궁이 궁궐로서 최고 권위를 지니고 있었지만 생활공간으로는 넓고 아름다운 후원을 갖춘 창덕궁과 창경궁이 더 선호됐다는 점,특히 창덕궁은 다른 궁궐에 비해 원형을 많이 보존하고 있다는 점도 그 한 이유다.창덕궁과 창경궁은 서로 다른 궁이지만 예전에는 두 궁을 가르는 담이 없었으며,창경궁은 창덕궁의 부속건물처럼 이용돼 두 궁을 합쳐 ‘동궐(東闕)’이라 부르기도 했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1부는 창덕궁과 창경궁이 처음 세워진 이래 일제 강점기 궁궐의 본래 모습을 잃어버리기까지 파란만장한 역사를 왕조별로 살핀다.2부에서는 궁궐과 후원을 각각의 건물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저자는 ‘동궐도’에 그려진 연경당과 현재 연경당의 위치와 모습이 다른 점에 대해 기존 학계의 해석과는 다른 주장을 펴 주목된다.‘동궐도’에 그려진 연경당은 실제로는 진장각(珍藏閣)이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통설이다. 그러나 저자는 ‘궁궐지’ 등의 기록을 토대로 이것이 진장각이 아니라 헌종 대 이후에 새로 지은 연경당이라고 결론짓는다.이 책은 미술출판의 명문 열화당과 인문교양서 분야에서 두각을 보여온 효형출판이 각각 장점을 살려 공동 기획·편집·디자인·제작한 책이어서 또다른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다.4만원. 김종면기자
  • 오늘 개봉 ‘야마카시’/ X게임 도전하는 7명의 젊은이

    ‘야마카시’란 90년대 후반 프랑스에서 시작돼 유럽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변종 익스트림 스포츠.고공 낙하,빌딩 등벽,로프타기 등 도심건물을 무대로 ‘맨손’ 스턴트 기술을 구사하는,아찔하기 짝이 없는 게임이다. 프랑스 액션영화를 대변하는 뤼크 베송 감독이 이 짭짤한 소재를 그냥 놓쳤을 리 없다.5일 개봉하는 ‘야마카시’(Yamakasi)는 극한의 스포츠 게임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을 내세워 그가 직접 제작하고 각본까지 쓴 액션물이다. 스무살을 갓 넘긴 7명의 청년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기성사회의 질서를 삐딱하게 보고 파리의 뒷골목을 전전하며 그렇고 그런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하지만 그들이 만든 스포츠 서클 ‘야마카시’는 어린이와 청소년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는다.도시질서를 혼란시킨다는 이유로 경찰의 추적을 받지만,번번이 경찰을 조롱하며 신출귀몰하는 그들의 존재는 우상으로 떠오르기에 충분하다.신나는 펑크리듬에 맞춰 빌딩숲을 훨훨 날아다니는 젊은이들을 부각시킨 영화는 한눈에도 ‘뤼크 베송 표’다.그가 최근 제작해온 ‘택시’시리즈와 여러모로 닮은꼴의 분위기다. 우리에겐 좀 낯선 익스트림 스포츠의 현장을 다양한 각도로 조명하는 화면 자체만으로도 서커스를 보는 듯 흥미롭다.드라마 소재까지 관객들의 동조를 이끌어내기에 딱 좋은 것으로 선택했다.야마카시를 흉내내다 크게 다친 어린이가 병원비를 구하지 못해 사경을 헤매면서 영화는 ‘현대판 로빈 후드’으로 모양새를 갖춰나간다.아이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야마카시팀은 ‘있는 집’만 골라 고가품들을 훔친다. 순찰중인 경찰들이 코앞에서 이들을 놓치고,돈에 눈먼 의사와 장관을 마구 조롱하는 대목에서 관객들이 짜릿한 미소를 머금을 수 있도록 장치했다.동양계,흑인 등 무명의 주인공들은 실제 야마카시 전문가.맨손으로 24층 빌딩을 오르내리고 고층건물 사이를 휙휙 뛰어다니는 장면들을 대역없이 직접 소화했다. 황수정기자
  • [젊은이 광장] 지방대학의 홍보전쟁

    요즘 캠퍼스 곳곳에서 교복 입은 학생들이 줄을 지어 이곳저곳을 다니는 모습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이들은 올 수능시험을 치른 지역 고등학교 수험생들로 대학에서 마련한 ‘캠퍼스 투어’,‘입시설명회’에 참여하기 위해 캠퍼스를 찾은 학생들이다.우리대학뿐만 아니라 일부 지방대학에서는 ‘등록금 면제’와 ‘기숙사 제공’,‘해외어학연수 지원’ 등 파격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수험생들을 모으고 있다.이는 신입생 수가 대학정원을 밑돌면서 서울에 있는 대학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각 지방대학에서 생존을 위해 선택한 홍보방식이다. 대학이 홍보에 열을 올리게 된 것은 ‘대학정원 미달사태’가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지난 9월 민주당 설훈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지방대학 정원이 무분별하게 늘어나면서 전국 대학의 신입생 충원율은 2000년도 97.8%,2001년도 98.4%,2002년도 94.5%,2003년도 94.5%로 낮아지는 추세다. 전국 평균은 아직까지 90% 이상의 충원율을 보이고 있으나 전남,광주,전북,경북,경남 지역 등은 충원율이 80%대로 낮아져 문제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반면 수도권 소재 대학에서는 지방 학생들의 유입으로 2003년도 입시에서 정원을 모두 채워 100%를 넘어섰다. 수험생들의 수도권 대학 선호현상은 지방대학이 손놓고 앉아 있을 수 없게 된 계기가 됐다.이미 지방 일부 대학에서는 전체 정원의 50%도 채우지 못해 문을 닫아야 할 형편에 놓여 있다.대학퇴출은 시간문제인 것이다.과거 정부의 잘못된 교육정책으로 경쟁력 없는 대학이 속출하고 교육기관으로서 기본적인 요건도 갖추지 않은 대학이 난립하면서 이는 필연적인 결과일지도 모른다.더불어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학벌주의,수도권 중심주의가 한몫하면서 지방대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학문탐구와 지역사회 발전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대학 구성원들이 본연의 임무는 뒤로 한 채 신입생 유치에 뛰어들겠는가.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교수들은 2인 1조로 팀을 이루어 수업이 없는 날이면 바리바리 기념품들을 싸들고 지역 학교를 순회하는 보따리 장사가 돼야 한다.재학생들 역시 대학을 홍보하는 도우미가 되어 자신의 모교와 인근 학교를 찾는다. 그뿐인가.대학에서는 엄청난 돈을 들여 언론매체에 광고를 내보내며 갖가지 홍보행사,인쇄물을 찍어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하지만 입시철 반짝 이벤트의 끝은 너무도 초라하고 안쓰럽다.비슷한 수준의 다른 대학에 비해 얼마나 많은 수험생들이 지원했는지 또 실제 등록률이 얼마나 높은지에 따라 대학관계자들은 입시의 성패를 가늠하고 있기 때문이다.이처럼 허술하기 짝이 없는 입시전략으로 지방대학은 매년 연명하며 ‘일류대학’을 꿈꾸고 있다. 정작 신입생들이 대학에 입학해 어떤 교육환경과 내용으로 학업에 전념하고 졸업생들의 취업률을 높일 수 있는,경쟁력과 대안을 찾는 일은 게을리 하면서 말이다.일단 입학만 하면 학생이 알아서 공부해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현실과 형식적인 대학운영은 되레 재학생들의 편입과 재수를 부추기고 있다.대학은 떠나가는 학생들을 속수무책으로 방치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렇다 할 대안을 찾지 못하고 소모적인 경쟁을 하고 있는 지방대학의 현실 속에 갖지 못한 자들의 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때문에 많은 지방대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선택의 여지가 없이 언제,어떻게 이해관계에 얽혀 간판을 내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늘도 온갖 수식어구로 치장된 글귀를 외치는 지방대학의 모습은 처량하기만 하다. 임 현 재 안동대 신문사 편집부장
  •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하여 / (上)부부 애정계좌 확인하라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라 했던가. 이혼율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혼은 더 이상 뒤에서 쑤군거릴 특별한 일이 아니다.그렇다면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잘 맞지 않으면 이혼하고 ‘새 생활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도 좋을까.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해야 할 이유는 많지만 ‘이기적으로’ 나 자신만을 위해서 생각해보자. 미국의 임상심리학자들에 따르면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병에 걸릴 확률이 35%나 높고 수명도 4년 단축된다.반면 행복한 결혼은 면역시스템의 능력을 높여줘 행복한 부부생활을 하는 부부의 백혈구는 외부로부터 공격받았을 때 잘 증식하고,암 세포 등을 파괴하는 건강한 ‘킬러 세포’도 많이 갖고 있다.즉 스포츠 클럽에서 1∼2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그중 20분만 결혼 생활에 쏟아붓는다면 운동보다 3배 이상의 면역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결혼생활은 갈등의 연속이다.누군가는 말하지 않았던가.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은 한 세트의 갈등을 선택하는 것이라고.그러나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상·하로 나눠 결혼에서의 행복비법을 찾아본다. 흔히 결혼은 99%의 화학작용과 1%의 노력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분명 ‘그에겐 확 끌리는 무언가가 있었다.’거나 ‘서글서글한 성격’,‘마치 아이같이 맑은 눈빛’‘편안한 남자’라는 둥 이유가 있다.‘그냥 좋았다.’는 비논리도 사랑에서만은 통한다.더욱이 어떤 부인은 ‘향긋한 땀냄새가 좋다.’며 남편의 샤워를 말릴 정도로 체취에 호감을 느끼기도 하고,남들이 비난하는 이상한 성격마저 ‘멋지다.’고 생각해서 결혼에 이른다. 이런 현상은 본능적인 ‘번식 명령’에 따라 짝을 찾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마음을 뒤흔들었던 사람이 그렇게 미워질까. ●‘깡통계좌' 되면 이혼? 정신과전문의 김준기(결혼지능연구소 부소장) 박사는 부부간의 갈등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일방이 참기만 하면 유지되던 지난날의 결혼은 없어졌으며,복잡한 사회에서 부부간이 함께 나눌 시간은 부족하지만 오히려 상대방이 이해하고 받아주기를 기대하는 것이 불행을 부른다.더욱이 수명이길어져서 서로 뭔지 모르면서 싸우다 50대가 되면 더욱 틈새가 벌어지게 마련이다.”고 말하며 “행복하게 살려면 애정계좌를 늘 확인하고,잔고가 부족하면 새롭게 채워넣는 1%의 노력,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노력만 있으면 된다.”고 충고한다.이미 우리는 99%의 화학작용으로 만난 짝이기 때문이다. 흔히 부부 사이를 원만하게 만드는 비결을 촛불이 켜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거나 해변에서 부부가 함께 휴가를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짜 비결은 ‘일상의 평범한 일을 상대방과 진지하게 마주보는 것’이다.사실 사이 좋은 부부라면 촛불켜진 식탁이 무드를 더하겠지만,사이 나쁜 부부가 촛불을 켜고 마주 앉으면 “왜 이리 어두컴컴해.”라고 불평이나 쏟아놓게 되기 때문이다.어른거리는 촛불에 상대의 얼굴이 ‘유령처럼’보인다는 사람들도 있다.즉 평소 서로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쌓아두지 않으면 어떤 좋은 환경이나,고급 선물도 그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이렇게 쌓인 긍정적인 감정을 ‘애정계좌’라 말한다.서로 신뢰가 쌓인 부부 즉 애정계좌가 두둑한 부부라면 어쩌다 큰 문제가 생겨도 애정계좌는 충격을 완화시켜주는 쿠션역할을 한다.잔고가 많기 때문에 나쁜 감정(마이너스 감정)으로 적잖이 애정이 없어져도 아직 애정잔고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반면 애정잔고가 거의 없는 부부에게는 작은 문제 하나만 생겨도 ‘깡통계좌’가 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이혼’은 당연하게 따라붙는다. ●애정계좌 어떻게 채울까 애정계좌의 잔고는 ‘돈’이 아닌 ‘애정’이다.그렇다면 두 사람 사이의 애정은 어떻게 생길까.낭만적인 저녁식사나 휴가보다는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대화’,그것이 바로 잔고를 늘린다. 대화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만 하면 싸우게 되는데 무슨 말을 해?”라고 고개를 흔든다.“차라리 우리집 강아지랑 이야기하는 게 나아.꼬리라도 흔들어주면 얼마나 위로가 되는데….”라고 말하는 부인도 있다. 미국 부부 심리의 권위자 존 M 고트맨 박사는 부부가 단 3분간 대화를 나누는 모습만으로도 부부의 앞날을 알 수있다 한다.부부 상담을 통해 지금 행복한 부부라도 언젠가는 헤어지겠다고 예견하거나,때로는 별로 사이가 좋아 보이지 않는 상황임에도 이혼하지 않을 것임을 96%의 정확도로 알아맞힌다는 고트맨 박사는 저서 ‘행복한 부부, 이혼하는 부부'에서 “행복한 부부는 10분간 눈빛이나 표정 등 정서적으로 다가가는 반응을 100번 이상 보인다.”고 말한다.결혼은 긍정적인 감정에서 출발하지만 함께 살아가면서 겪는 갈등은 차츰 부정적인 감정을 높이게 마련이다. 행복한 부부가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의 비율이 5:1이라면,이혼을 앞둔 부부는 1:1.25정도라고 한다.긍정적인 감정이란 애정과 친밀감,우정,성적인 이끌림,이해와 인정,관심 등이라면 부정적인 감정은 미움과 서운함,불평불만,화,무시,비난,경멸,모욕 등의 감정이다. ●다가가기·외면하기·시비걸기 김영진(38·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씨는 남편과 대화를 하지 않은 지 벌써 보름이 지났다.“친정 형제들이랑 문제가 좀 있었어요.그래서 이야기를 했더니 나를 위로하기는 커녕 마치 자신이 재판장인양 내 잘못을 조목조목 따지는 바람에 나는 상처받았어요.결혼초부터 시댁이야기라면 어떤 것도 듣지 않으려는 통에 내심 분노가 쌓였었는데 그 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어요.그런 남편이 참 야속했거든요.아이들과의 문제나 동네 일이나 친구들 사이의 문제에서도 남편은 단 한번도 내 편이 되어준 적이 없어요.” 부부간의 대화는 세 가지 유형이다.다가가기,외면하기,시비걸기. 예를 들면,명절 전 아내가 “명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다.”고 말할 때 세 유형은 극명하게 차이나는 반응을 한다.다가가기를 잘 하는 남편은 “명절날이 더 힘드니 어떻게 하지? 내가 조용조용 운전 할테니 고향가는 차안에서만이라도 좀 쉬어.”라고 말하지만 외면하는 남편은 “당신,아버님 용돈 챙겨.”라고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시비걸기를 하는 남편은 “일년에 한번밖에 없는 명절인데 그것도 못해? 당신만 명절에 일하는 거야? 다른 여자들도 다 해!”라고 윽박지른다. 다가가기에는 “나는 당신에게 관심있다.”“이해한다.”“돕고싶다.”“당신을 믿는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반면 외면하기는 상대방의 감정적인 연결시도에 반응을 안보이고 얼른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이는 가장 빨리 이혼에 이르는 반응이다.대개 남편들의 경우 무심해서 이런 반응을 보이지만 아내는 이때 마음이 상하고,상처를 받는다. 시비걸기는 감정적인 연결을 갖고자 하는 상대에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호전적이고 논쟁적이며 때로는 비꼬고 비웃는 반응을 보인다.대개 상대방에게 화가 나 있거나 상대방을 이기려 할 때 이런 반응을 보인다.많은 부부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전형적인 대화법은 시비걸기다. 남편:야 저기 지나가는 차 멋지다.내년에는 꼭 사자. 아내:당신 월급을 생각해서 꿈 깨셔. 긍정적인 대화와 관심으로 애정계좌를 두둑하게 해놓는 1%의 노력이 없다면 99%의 화학작용은 형체도 없이 소멸하고 마는 것,그것이 사랑과 결혼의 불가해성이라고 한다. 허남주 기자 hhj@ 다가서는 부부인가 테스트 해 보세요 평소 외면하거나 시비거는 부부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과연 우리는 서로에게 다가가는 부부인가 한번 테스트 해보자. 나는 아내(혹은 남편)에게 정서적으로 잘 다가가는 스타일인가?(‘예’는 1점,‘아니오’는 0점) 1.나는 아내(남편)의 기분이 어떤지를 알려고 애쓴다. 2.나는 종종 우리 관계가 어떤지에 대해서 아내에게 물어본다. 3.나는 아내의 요구를 만족시켜주는 것이 대체로 즐겁다. 4.나는 아내의 말에 귀기울인다. 5.아내를 위해 그 자리에 함께하는 것이 내게는 중요하다. 6.내 아내가 내 시간과 관심을 필요로 할 때 나는 대부분 그에 반응해준다. 7.나는 아내가 혼란스러워하는 일이 있을 때 말을 걸어 대화를 나눈다. 8.아내가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때 나는 대개 격려해준다. 9.아내가 힘들어할 때 나는 그것을 이해하고 도움을 줄 수 있다. 10.아내가 이야기하기를 원하면 나는 바쁜 일이 있어도 대개는 응할 수 있다. *풀이:6점 이상이면 다가가기를 제대로 하는 것이며 5점 이하라면 아내(혹은 남편)에게 잘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 [대한포럼] 무너진 국민연금 신화

    우 득 정 ‘파산 시한폭탄' 뇌관 제거해야 세대간 균형 우선 고려를 만약 월급의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월급이 아주 많다면 투덜거리는 수준에서 그치겠지만 생활하기에도 빠듯한 정도의 월급을 받는 사람이라면 먼저 이민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좀 더 극단적인 사람은 뼈 빠지게 일해 세금으로 뜯기느니 놀면서 최저생계비나 타겠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가정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우리가 지금처럼 ‘덜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 수급방식을 고수한다면 다음 세대는 소득의 30% 이상을 국민연금 보험료로 내야 한다.앞선 세대가 자신들의 몫보다 훨씬 더 많이 챙긴 탓이다.다음 세대는 재정이 거덜난 건강보험료를 지금보다 더 부담할 가능성이 높다.게다가 외환위기 과정을 거치면서 투입된 공적자금 미회수분 100여조원도 25년에 걸쳐 분할상환토록 돼 있다.근로소득세 등 각종 세금에 이러한 부담까지 합친다면 ‘담세율 50% 이상’은 금방 현실화된다. 그렇게 된다면 다음 세대는 이 땅에 태어난 것을 후회하면서 선대를 저주하게 될 것이다.어쩌면 선대의 부채를 상속하지 않겠다며 법원에 제소할지도 모를 일이다. 국민연금이 파산이라는 시한폭탄을 안은 채 너무 많은 승객을 싣고 내달리고 있다.모두가 뇌관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나서기를 꺼린다.시한폭탄의 폭발 시점이 44년 후이기 때문이다.2047년 국민연금의 재원이 완전히 고갈되기까지 버티고 보자는 심사다. 물론 현 세대로서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현 세대는 15년 전 정부가 국민연금 제도를 도입하면서 약속했던 노후의 호화여행을 철석같이 믿었다.선진국의 노인들처럼 은퇴 후에는 해변에서 따뜻한 햇살을 즐기며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하지만 지난달 18일 정부가 입법예고한 ‘더 내고 덜 받는’ 내용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이러한 환상을 산산조각냈다.호화여행은커녕 콩나물 시루와도 같은 완행열차의 여행도 어렵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부는 과거 정부의 ‘거짓말’ 탓으로 돌리며 보험료를 꼬박꼬박 물고 노후에 ‘용돈’을 받든지,조금 넉넉하게 생활하려면 각자알아서 대비하라고 말한다.개인연금 등 민영보험이나 저축 등으로 충당하라는 얘기다.지금까지 낸 보험료를 돌려달라든가,노후생활 설계에 정부가 간섭하지 말라는 불평이 쏟아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게다가 한국조세연구원은 최근 ‘자영업자의 소득 신고 누락으로 직장가입자들이 지역가입자들에 비해 연금 수급률에서 손해를 볼 뿐 아니라 납입 원금도 다 받지 못하게 된다.’고 하니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그럼에도 삿대질을 한다고 해서 국민연금이 약속했던 옛 신화가 되살아나지 않는다.15년 전 정부가 약속한 것처럼 월급의 3%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내면 편안한 노후생활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제갈공명이 다시 살아나더라도 없는 것이다.국민연금 도입 당시 환상만 봤지 실상을 꼼꼼히 따져보지 않은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현 세대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지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순간에 와있다.지금처럼 급여율 60%를 유지하려면 9%인 보험료율을 2030년까지 20%대로 높여야 한다.보험료율을 그대로 두면 급여율 30% 미만을 감수해야 한다.9%의 보험료에 60%의 급여율을 고집한다면 2031년쯤 국민연금 제도는 공중분해된다. 지금 유럽 각국은 더 일하고 연금지급 시기를 늦추기 위해 연금과의 전쟁에 돌입했다.우리도 더 늦기 전에 국민연금의 시한폭탄 뇌관 제거 작업에 나서야 한다.다만 국민연금은 수익자와 부담자가 상이한 만큼 세대간의 균형이 무엇보다 먼저 고려돼야 한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
  • 강남 호스트바 단속 르포 / 취업못한 연어족 호스트바‘선수’로

    “요즘 한국에서 돈 벌려면 ‘선수(호스트바 접대부)’가 아니면 힘들더라고요.” 26일 새벽 4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D호스트바.강남 최대 규모의 호스트바인 이 곳에 강남경찰서 방범지도계와 기동대 소속 20여명의 직원이 들이닥쳤다.여경들이 손님을 가장,밖에서 망을 보는 ‘망발이’들의 시선을 끄는 동안 다른 경찰직원들이 지하통로 철문을 뜯고 들어가 기습 단속을 벌였다.기자는 새벽까지 흐느적거리던 현장을 함께 취재했다. ●“한국에서 돈 벌려면 호스트바로 가라” 200평이 넘는 호스트바내 12개의 룸은 남자 접대부 60여명과 여대생·가정주부 등 여자 손님 수십명으로 가득차 있었다.테이블에는 고급 양주와 맥주,값비싼 안주가 널려 있었고,접대부와 손님 모두 간편한 복장으로 짝을 지어 술잔을 돌리고 있었다. 남자 접대부 앤디(25·논현동)는 호주시민권자.그는 한국에서 호스트바가 아니면 제대로 취업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며 고개를 떨궜다.이 일을 시작한 지 4개월 됐다는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가족과 함께 호주로 이민갔고,그 곳에서대학까지 마쳤다.그는 “지난해 5월 혼자 한국에 왔지만,수개월동안 변변한 직업을 찾지 못해 아는 사람 소개로 이 곳에 왔다.”면서 “여대생에서부터 주부에 이르기까지 호스트바를 이렇게 많이 찾는 줄 몰랐다.”고 털어놨다.한 테이블당 팁은 10만원 정도.지난 한달 수입이 1000만원을 훨씬 넘었다. 캐나다 유학생 출신 강모(23)씨는 3개월째 이 일을 하고 있었다.그는 지난 2000년 어머니와 함께 캐나다로 유학을 간 뒤 대학을 마치고 지난해 귀국했다.강씨는 “한국에서 취직이 안돼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잡으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잘 되지 않았고,결국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길을 선택했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카드빚 갚기 위해 호스트바에 출근하는 대학생들 이날 적발된 남자 접대부 중에는 대학생이거나 대학을 막 졸업한 취업 재수생들이 많았다.이들은 공통적으로 카드빚에 시달리고 있었다. 손모(19·H대 2년)군은 카드빚 2000여만원을 갚기 위해 호스트바에 발을 들여 놓았다.손군은 “카드빚 때문에 퇴근 후 이 일을 하는 공익근무요원이나지방에서 원정 오는 대학생도 있다.”고 귀띔했다. 업주 김모(27)씨는 경찰에서 “경기침체로 룸살롱·단란주점 등은 파리를 날리지만 호스트바만큼은 한달 수억원의 이익을 남길 정도로 불야성”이라면서 “돈줄을 찾아 이 곳을 찾는 젊은이가 많다.”고 밝혔다. ●“나이트클럽은 시시해요” 선배와 함께 생일 파티를 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는 여대생 김모(20·K대 2년)씨는 “재미없는 나이트클럽보다는 호기심이 발동하는 이 곳을 골랐다.”면서 “내 돈내고 내가 즐기는데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단속반에게 따졌다.유학생 김모(22·여)씨는 “방학을 이용해 귀국했다가 이곳이 물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찾았다.”면서 “이 곳에서 용돈을 다쓰고 출국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유학생 친구들이 많다.”고 전했다.같은 회사 직원 3명과 함께 이곳을 찾은 텔레마케터 조모(24·여)씨는 “성과급을 통해 한달에 500만원 넘게 벌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 즐기는데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면서 “회사에서 억눌린 스트레스를 풀러 온 것”이라고 말했다.주부 이모(38)씨는 “이 나이에 젊은 남성을 상대로 답답함을 풀 수 있는 곳은 여기뿐”이라면서도 “제발 신분이 공개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강남경찰서는 무허가로 몰래 영업을 한 업주 김씨와 지배인 남모(30)씨 등 2명에 대해 식품위생법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남자 접대부를 처벌할 수 있는 법 조항이 없어 호스트바 종업원과 손님들은 모두 현장에서 훈방조치했다. 이영표 이효연기자 tomcat@
  • 이런 책 어때요 / 동물에게도 문화가 있다

    리 듀거킨 지음 / 이한음 옮김 지호 펴냄 동물의 진화는 유전자 뿐만 아니라 모방을 통한 문화적 전달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이 담겼다.미국의 진화생물학자인 저자는 특히 리처드 도킨스의 “우리 모두가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 로봇”이라는 ‘이기적인 유전자’ 개념을 수정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동물의 짝짓기처럼 유전자만이 강력하게 작용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유전자와 문화는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상호작용을 한다는 게 저자의 견해.실제로 노련한 암컷의 짝 선택을 흉내 내는 멧닭이나 작은 애완용 물고기 거피의 행동 등은 유전자의 전이만으론 쉽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1만 3000원.
  • [열린세상] 국적에 관한 인식전환 시급

    김지미의 영화 가운데 ‘명자,아끼꼬,쏘냐’가 있다.주인공 이름의 변천사이지만 이 민족,이 나라의 지난날 자화상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다.아끼꼬가 명자의 일본 이름이며 쏘냐는 가장 흔한 소련식 이름이다.그나마 극중 명자는 사할린의 북한 국적인이 되어 한국에 돌아오지도 못한다.이 땅에 명자가 어디 한둘이겠는가.그리고 누구나 광복 전 외국에 나갔다면 일장기(日章旗) 사건의 또 다른 손기정이 되었을 터이다. 조선조 말엽 이래 지난 100년의 기구했던 국가 운명에 덩달아 이 민족의 국적도 춤추었다.때로는 스스로,더 많게는 국가 권력의 강제로,하와이에 그리고 러시아령 연해주에,또는 만주와 일본에 보내졌고 끝내 거기에 주저앉아 국적 또한 제각기 달라졌다.남쪽이든 북쪽이든 그동안 이 땅에 머문 사람마저도 지금 예순살 이상이면 한때 일본제국의 국적인이었던 과거를 지울 수 없다. 전쟁 끝에 광복이 되고 어렵게 이룬 국가이기에,바로 그 국가와의 법적 유대관계를 가리키는 국적에 대해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정서적 집착이 강한 것 같다.그 결과 국적문제에 관해서만은 편협한 인종민족주의나,적어도 이중적 태도를 취하게 된다.이를테면 이민은 이기적인 배신자들이 하는 선택이고,국적포기는 반민족 행위로 받아들인다.그런가 하면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골퍼 미셸 위는 국적에 관계없이 이 나라의 딸 ‘장영주’,‘위성미’로 끝없이 감싸안는다. 얼마전 외국국적 취득에 따른 병역면제 문제로 물의를 빚은 가수 유승준의 입출국 뉴스가 신문 지면을 장식하던 그날 모 방송 사장 아들의 국적 문제가 또 논란이 된 일이 있다.악의적인 병역 기피나 기형적인 원정출산이 왜 문제가 아니겠는가.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안고 있는 국적문제의 본질도,전부도 아니다.국가체제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전통적인 영토나 국민,주권개념의 틀이 바뀌고 있는 가운데 그 변천상이 가장 돋보이는 대목이 국적제도이다.현 독일의 집권 사회민주당·녹색당 연립정부는 선거공약으로 ‘국적법’의 대폭 개정을 내걸었고,이를 실현했다. 요컨대 국적에 대한 전향적 인식 전환이 시급히 요청된다.시대착오적이고,반통일적이라고 불러 마땅한,국적법을 포함한 우리 국적제도는 재편돼야 한다.모계혈통 수용,남녀불평등의 개선,미성년자보호와 같은 수준의 개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이미 600만을 넘어선 재외동포 코리안은 지난 역사를 어김없이 반영하는,우리 국적인의 격세유전(隔世遺傳)이다.북한 출생의 북한인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한 ‘이영순사건’의 대법원 판례가 몇년전 나온 바는 있으나,그런 개별적 판단을 더 이상 법원에 맡길 일이 아니다.이에 우리 국민 수의 반쯤 되는 북한주민에 대한 법적 지위를 전향적으로 가늠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이중국적이나 그에 따른 우리 국적포기를 무작정 매도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엄청난 수의 유학생,그리고 기업과 기관 주재원 및 근로자 등이 속지주의 국가에 나가 있다.현재의 추세로는 이중국적자의 증가세를 막을 수도,꺾을 수도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오히려 우수한 한국계 해외인력을 적극적으로 불러들여 무한경쟁 체제를 강화해야 하며,이를 위해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국적요건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아울러 재외국민이 국적 요건에 묶여 받게 되는 각종 불이익과 피해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지난날 ‘명자,아끼꼬‥’를 보고,어제 북한인 탈북자를 보며,또 오늘 유승준을 보면서 그 숱한 비극과 갈등의 귀결점이 바로 ‘국적’임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처음에는 우리의 특수한 역사성과 분단 국가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했고,지금은 오늘의 세계화 추세에 못따라가는 우리의 국적제도에 새로운 검토가 있어야 하겠다.물론 그에 앞서 더 시급한 것은 인식의 대전환이 아닐 수 없다. 권영설 중앙대 헌법학 교수
  • 댄스 동호회 엿보기 / 뜨거운 정열의 몸짓 라틴 리듬에 맞춰 차차차~

    “싸모님,춤 한 번 땡기실까요∼,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시장바구니 들고 카바레로 향한 주부의 탈선….한때 이만큼 부정적으로 인식됐던 사교댄스가 이제는 댄스스포츠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춤을 추기 전에는 춤에 대한 동경이,춤을 추면서는 춤에 대한 열정이,춤을 춘 뒤에는 스트레스를 날린 상쾌함이 몸을 감싼다. ●직장인·학생·주부등 회원 다양 13일 밤 서울 논현동 ‘권병주 댄스스포츠스쿨’에는 이글거리는 한여름 태양처럼 뜨거운 열기가 가득했다.댄스스포츠 동호회 ‘클럽 메디앙스(mediance.net)’ 회원들이 뿜어내는 정열적인 몸짓이 실내를 압도했다. 최근 2∼3년 사이에 정확한 수치를 잡기는 힘들 정도로 온·오프라인 댄스스포츠 동호회의 규모가 크게 늘어났다.직장인·학생·주부 등 회원층도 다양하고,정기적으로 모임을 열면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라틴팝의 열풍을 일으킨 팝가수 리키 마틴과 지난 2001년 개봉된 일본 영화 ‘쉘 위 댄스(Shall We Dance)’가 댄스스포츠의 한 분야인 라틴댄스 붐을 일으키며 모던댄스보다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 건축설계사무소 대표인 강지숙(34)씨가 라틴댄스를 접한 것은 2000년.일감은 쌓이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생활이 지속되자 ‘나를 위한 인생’을 만들어내겠다는 마음으로 회사를 그만뒀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라틴댄스를 배운다고 하니까 친구들이 ‘춤바람 났냐.’며 놀리기도 했죠.지금은 그때 그 친구들이 배우고 싶다며 이미 기본기를 마스터한 저를 부러워하고 있어요.” 안철수연구소에서 근무하는 고정한(35)씨에게도 라틴댄스는 일상의 돌파구였다.“똑같은 생활이 반복되면서 새로운 뭔가에 빠지고 싶다는 욕망이 커졌다.몸을 유연하게 해주는 라틴댄스에 매료돼 배우기 시작했고,이제는 부인과도 함께 댄스스포츠를 즐긴다.”며 자랑이다. ●“지루한 일상 탈출위해 시작했어요” 여자 친구에 끌려 댄스스포츠를 배우게 된 김준명(33·기아자동차)씨도 지금 춤의 매력에 빠져버렸다.“넥타이 매고 상사에게 결재를 받던 내 모습이 몇분 만에 격렬한 라틴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으로 바뀝니다.속 안에있던 스트레스를 그렇게 풀어내고,열정을 발산하는 거지요.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나요.” 이제는 이 동호회 회장까지 맡게 될 정도로 열성 춤꾼이 됐다. 댄스스포츠는 남녀가 짝을 이루어 추는 춤인 만큼 청춘남녀간에는 애틋한 감정이 싹트기도 한다.‘알아주는 몸치·박치’였던 윤승보(26·학생)씨는 댄스스포츠 동호회 경력 3년차.“지루한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해 라틴댄스를 시작했다.”는 그는 “일주일에 한 번 듣는 강의로는 성에 차질 않아 처음 6개월 동안은 무려 여섯 개의 학원을 다니며 매일매일 연습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지금은 룸바·탱고·자이브 등 무려 10여개의 댄스를 뽐내는 단계에 이르렀다.게다가 예쁜 짝 류현정(34·메이크업 아티스트)씨를 만나게 해줬으니 라틴댄스는 ‘은인’이다. ●자세 교정되고 스트레스도 훌훌~ 라틴댄스의 장점이 이것뿐이랴.정해진 스텝과 리듬에 따라 움직여 자세가 교정된다.또 스트레칭을 많이 하게 돼 몸매는 탄력을 얻는다.류씨는 “몸을 많이 움직여 땀이 많이 나고 살도 빠진다.춤을 추는 내내 어깨를 펴고 허리를 바로 세우는 등 몸을 긴장시키니까 키도 1㎝나 컸다.”고 설명했다.쳇바퀴 돌듯 똑같은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적은 시간을 투자하면서 생활의 활력을 느끼고 싶은 사람,특히 주말이 무료한 싱글은 주저하지 말고 라틴댄스를 배워보는 건 어떨까. 글 최여경기자 kid@ 사진 안주영기자 jya@ ■댄스스포츠는 우리가 사교댄스,볼룸댄스라고 부르는 춤의 정식 명칭은 ‘댄스스포츠’.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스포츠댄스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 처음 댄스스포츠가 들어온 것은 조선말 서울 주재 러시아 공사에 의해서였다.1920년대 일본과 러시아에서 돌아온 유학생들이 현 YMCA에서 시범을 보이면서 사회 고위층에 급속도로 퍼졌다. 댄스스포츠 종목은 룸바·차차차·자이브·삼바·파소도블레의 라틴댄스와 왈츠·탱고·퀵스텝·슬로 폭스트롯·비엔나 왈츠의 모던댄스 등 총 10개.룸바는 아프리카 흑인 리듬을 바탕으로 하고,자이브는 스윙·재즈 리듬과 비슷하다.삼바는 브라질,파소도블레는 스페인,차차차는 쿠바에서 나온 춤이다. 모던댄스는 주로 유럽·북미를 근원으로 한다.살사·메렝게·라밤바 등도 라틴 아메리카 스타일 댄스로 유명하지만 보통 ‘클럽댄스’로 분류된다.전문학원이나 각종 동호회에 등록하면 댄스스포츠를 배울 수 있다.학원은 보통 1주일에 1번 강의(수강료 평균 6만∼7만원)한다.동호회는 비교적 저렴한 수강료로 배울 수 있다. 학원은 기초부터 확실하게 배울 수 있지만 친목단체가 아니므로 어색한 분위기가 계속되면서 쉽게 흥미를 잃는 경우도 있다.반면 동호회는 비슷한 수준의 사람끼리 만나 쉽게 친해질 수는 있지만 전문가가 없을 경우 잘못된 자세를 익힐 우려가 있다.때문에 자신의 성격과 목적에 따라 학원이냐,동호회냐를 선택하는 게 좋다. 라틴댄스는 의외로 많은 에너지를 발산해 살을 빼는 데도 좋다.특히 잘 빠지지 않는 팔,허벅지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어릴 때부터 배운다면 바른 자세,균형잡힌 몸매,긴 다리의 멋진 체형을 만들 수 있다고. 처음 자세를 교정하고 스텝을 잡는 것부터가 평상시와 다르기 때문에 처음 몇 개월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특히 남자들은 정해진 약속에 따라 파트너를 리드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어려움이 크다.이 고비를 잘 넘기면 각종 라틴바,살사바 등에서 멋진 춤 솜씨를 발휘할 수 있다. 최여경기자
  • [열린세상] 5년 정권과 철창행 인생

    본분(本分)을 지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그래서 늘 성현들은 본분을 깨달으라고 한다.분수(分數)를 지키라고도 한다.자신의 경계를 제대로 알고 벗어나지 말라는 뜻이다.대소유정(大小有定)이란 말씀이 있다.그릇은 그릇대로 쓰임새가 있으니 거기에 맞는 분수를 지키라는 뜻도 된다. 요즘,지난 수년 동안 잘 나가던 인물들이 줄줄이 철창행이 되어 매스컴을 타고 있다.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사람,TV 화면 덕에 얼굴이 상당히 알려진 사람들도 있다.사연도 가지가지다.얼마를 먹었다느니,얼마를 바쳤다느니, 무엇을 봐주었다느니 등등이다. 불안한 심정으로 검찰청에 출두하는 모습,카메라맨을 의식해 애써 태연하려는 모습,양쪽에 집행관의 호위를 받으며 구치소를 향해 차에 오르는 모습 등등,이젠 우리 국민들도 이런 장면에는 대충 익숙해 있다. 그들은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보통 인물들이 아니었다.지금 전직 대통령까지 조사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 있으니 끝이 따로 없는 셈이다.대통령의 아들들,친인척들은 물론이다.가히 대통령가(家)의 수난이라 할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소위 실세,측근이라 불리던 그 많은 사람들도 줄을 섰다.최고 권부였던 청와대 인사들,그것도 말단 행정관이 아닌 최고위층 인사들이다.비서실장,수석비서관을 지낸 이들이니 당시 위세가 얼마나 당당했던 인물들인가.또 여당 인물들이 빠질 수 있겠는가.최고책임자였던 인물,그 아래 힘깨나 쓰던 인물들이 각 순차로 철창행이다. 요즘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가만있자.언젠가 분명 보았던 장면인데…”한다.마치 과거의 세계 명작영화를 주연배우만 바꿔 리바이벌한 작품을 다시 감상하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언제였던가.맞다.딱 5년 전이었다.그리고 또 있었다.그로부터 딱 5년 전이었다.그리곤 또 그 5년 전….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 좋은(?) ‘세계 명작영화’를 리바이벌해서 보고 또 보고 해온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사적(私的) 분야의 부패도 말할 수 없이 심각하다.그러나 특히 공적(公的) 분야의 부패에 더욱 분개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공적 지위에 앉은 인물들이국민의 세금으로 먹고 살면서 부패로 나라를 망치기 때문이다.국민에 대한 배임이고 나라를 팔아먹은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정권마다 ‘이때다’ 싶은 생각에 앞뒤 가리지 아니하고 ‘한철 장사’에 투신한 자들이 속출해 왔던 것이다. 또 그 사람들,그 얼마나 떵떵거리고 목에 힘을 주었던가.그까짓 권한,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마치 세상을 제 맘대로 쥐락펴락할 수 있는 듯이 얼마나 으스댔던가. 당시에 악수 한번 하던 모습을 기억하는가.고개를 뒤로 젖히고 손가락만 대충 내밀고 금세 딴 곳으로 눈길을 돌려 보내던 모습들,마치 자신은 타고난 선택된 사람들이고 상대는 어디서 별 볼일 없는 자들이 찾아온 듯이 대하던 태도들. 왜 그랬을까.고작해야 5년짜리 권세였던 것을.자신은 5년 후에도 부귀영화가 계속되리라고 생각했겠지….이런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썩은 구석은 생각하지 않는다.그저 정치적 탄압이요,희생양이요,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고 언성까지 높인다. 본분을 모른 탓이다.정권을 잡는다는 것이 무슨 일을 하라는 것인지,그 정권 밑에서 공직에 나선다는 것이 무엇을 하라는 것인지,그런 감투를 쓴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왜 썩어서는 안 되는지를 모르는 탓이다. 다시 5년 후를 상상해 보자.우리 국민은 제발 그 끔찍한 ‘세계 명작영화’는 다시 보지 않게 되기를 갈망한다.그러기 위해서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본분을 지켜야 하는지는 너무도 자명하다.5년이 긴 것 같지만 짧다.그 5년이 철창행 5년이 되지 않도록 제발 이제부터는 단단히 새기고 또 새길 일이다. 강 지 원 변호사 법률사무소 淸芷 대표
  • 세계인 - 우리는 이렇게 산다 / “가·나·다…” 일본에 부는 한국어 바람

    |도쿄 황성기특파원|아지키(29·여)는 6년 전 시작한 한국말 공부를 지금도 틈틈이 계속한다.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신문기자이지만 시간을 쪼개 한국인을 만나거나,집에서 한국어 책,한국 신문을 읽고 인터넷을 검색하며 ‘한국’과 사귀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한국과 만난 것은 작가 시바 료타로의 ‘가도를 가다’라는 소설에서이다.그 소설의 제2권 ‘가라(韓)의 나라 기행’에 백제시대 일본으로 건너가 왕세자를 가르친 아직기(阿直岐)의 혼령이 안치된 아지키(阿自岐) 신사가 시가현에 있다는 에피소드를 읽고부터이다. “내 이름의 성과 한자는 틀리지만 조상이 백제에서 건너온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아지키) 그녀의 성인 아지키는 일본어로는 ‘안식(安食)’이라고 쓰고 백제시대 아직기의 일본식 발음이 아지키로 똑같다.그녀의 뿌리찾기는 그때부터 시작됐다.뿌리찾기의 첫걸음으로 한국어 배우기를 택했다.새벽 5시 전철을 타고 도쿄 시내의 한국어 학원에서 공부를 한 뒤 출근하는 나날이 처음 1년간 이어질 정도로 맹렬히 한국말을 공부했다. “언젠가는 한국에 가서 내 뿌리의 실마리를 찾고 싶었다.”는 그녀는 그래서 “백제 시대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한국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몇년 안에 한국으로 건너가 유학할 생각”이다.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쓰는 일본이지만 그녀는 결혼 후에도 아지키라는 이름이 새겨진 명함을 고집하고 있다.그만큼 “이름에 애착이 가기 때문”이다. 한국말을 배우는 일본인들.그들이 한국을 만나고 한국말을 공부하게 된 동기나 계기는 각양각색이다. 주일 마다가스카르 대사관의 일본인 직원 우야마(48·여)의 한국과의 접점은 “사기꾼 같은 한국 여성과의 만남”이었다. 일본에 유학온 마다가스카르 청년이 방학 때 놀러간 프랑스에서 만나 첫 눈에 빠진 여성이 한국인이었다.이 여성이 2년 뒤 어느날 갑자기 일본에 나타나 그 청년에게 청혼을 했다.수상쩍게 생각한 우야마가 뒷조사를 해보니 이 여성은 이혼한 지 며칠도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청년에게는 결혼을 말리고 한편으로는 하도 어이가 없었다.곰곰이 “한국은 도대체 어떤 나라이고 한국인은 어떤 사람들인가.”하는 의문이 생긴 그녀는 ‘한국 조사’를 시작했다. “한·일 관계,재일 한국·조선인 문제 등을 공부하다 보니 한국말을 모르고는 안되겠다 싶어 2년 전 NHK 문화센터에 다녔다.”(우야마) 한국말을 배우기 전까지 “한국인은 일본 사람을 싫어한다.가급적 한국인과 접촉하지 말아야 한다.”는 정도의 한국관을 가졌던 그녀는 지금은 “아시아의 이탈리아처럼 성격이 뜨겁고 유머도 많고 쉽게 싸우는 한국인이 친근하게 느껴진다.”고 이미지를 바꾸었다.얼마 전 간신히 입문에서 초급 수준으로 한 단계 뛰어올랐다. 나카야마(32·가명·회사원)도 지극히 나쁜 인상에서 한국과 우연히 만나 한국말 공부에까지 이른 케이스.그는 친구 3명과 놀러간 서울의 한 포장마차에서 무려 40만원을 넘는 계산을 청구받는 ‘바가지’가 한국과의 접점이 됐다. 대학 강사이자 동화작가인 시라이(52·여)는 3년 전 학회일로 처음 가본 한국에서 “일본과 달리 힘에 넘치고 아름다우며 깊이 있는 한국 동화를 발견”한 것이 한국말 공부의 계기가 됐다.일본에서 출판된 한국 동화 번역본을 뒤졌으나 3권에 불과했다.뿐만 아니라 2권은 절판된 상태였다. 어렵게 입수한 ‘백두산 이야기’를 일본어로 읽었으나 “성에 차지 않아” 원문을 읽기로 작심하고 재일 YMCA의 한글강좌반에 등록을 했다.직업적인 호기심이 발동돼 시작된 한국말 공부를 “실제로 써먹고 싶어진” 그녀는 한국인 유학생을 집으로 초대해 함께 식사를 하고 일본말을 가르쳐 주는 자원봉사도 한다. 유학생이 결혼하면 부인에게 일본말을 가르쳐 주고 그들이 한국으로 돌아가면 가족들과도 만나면서 그의 ‘한국 네트워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한국에 가면 잠자리에 구애받지 않을 정도로 여기저기 납치되다시피 초대받기도 한다.”(시라이) 지난해 8월에는 남편의 흔쾌한 동의를 얻어 한달간 연세어학당에 ‘현지 연수’를 가기도 했다. 시라이 같은 열성파로는 미노(32·여)도 결코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대학에서 한국 역사를 전공한 남편과의 공통점을 늘리기 위해 5년 전 한국말을 공부하기 시작한 그녀는 지난 3월 말 짐을 싸들고 도쿄의 나리타 공항을 떴다.“갈까말까 망설이던 중 남편이 등을 떠밀어 결심했다.”는 미노는 지금 서강대 어학원을 다니며 한국말을 맹렬히 익히고 있다.3개월 예정인 유학에 드는 비용을 지난 연말 출판사 아르바이트로 충당한 그녀는 불편한 하숙생활도 즐겁기 짝이 없다. 한·일 교류가 늘면서 여자친구나 남자친구가 한국인이라 한국말을 공부하는 일본인도 적지 않다. 요네쿠라(39·여·작가)는 10년 전 캐나다에서 영어 어학연수 중 만난 한국인 남성에 “한눈에 반해” 한국말을 배웠다.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유학지를 바꾼 그녀는 연세대 어학당에서 공부를 한 덕에 지금은 일본에서 한국 관련 일을 하고 있다. 사이토(32·여·회사원)는 일본인 남자친구가 한국에서 음악활동을 하면서 ‘한국’을 만난 경우.“원거리 연애가 불가피해지면서 남자친구가 있는 한국의 말을 공부할 필요를 느껴” 독학을 하고 있다. 한국과의 접점이 이처럼 십인십색이지만 2002년 월드컵을 전후로 ‘재미’나 취미로 한국말을 공부하는 사람이 크게 늘어난 점이 최근의 두드러진 변화이다. 도쿄의 신주쿠 구청 공무원인 니시오(29·여)는 “난해한 기호 같은 한글을 읽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 1년 전부터 주일 한국문화원 한글강좌 ‘초급반’에 다니고 있다.“특별히 한글이 일과 관계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그녀에게 주 1회의 한글강좌는 스포츠 클럽을 다니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다. “일본인들이 대개 그렇듯 미국이나 유럽 이외에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는 잘 몰랐던” 오시마(33·회사원)에게 한글은 ‘취미’이다.“한국에 여행가 혼자서 쇼핑할 수 있는 정도만 배울 생각”인 그에게 한글공부는 생활의 긴장을 유지해 주는 즐거움이다. marry01@ ■도전 1년… 60대 스즈키부부 |도쿄 황성기특파원|스즈키 부부는 한글을 배운 지 꼭 1년이 넘었다.지난해 4월 도쿄 시내 한국문화원 한글강좌의 ‘입문반’으로 시작해 올 4월부터는 한 단계 뛰어올라 ‘초급반’이다. “20년 전 한국으로 출장을 갔던 차에 관광했던 경주의 절에서 본 한글과 영문 안내문을 보고 이웃나라의 글은 배워 두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한 게 계기라면 계기”라는 남편 스즈키 모리오(66)의 설명. 차일피일하다 결국 2년 전 퇴직하고 우연히 알게 된 한국인 유학생에게 ‘가나다라…’를 배우면서 내친 김에 본격적인 공부를 하게 됐다.화요일 오후 6시30분부터 시작되는 강좌 30분 전부터 나와 부부가 나란히 앉아 예습을 할 만큼 열성이다. “혼자서 배우는 게 아까워” 부인 요시코(66)도 나란히 다니게 됐다.영문학을 전공한 요시코는 “평소 어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남편이 하는 김에 따라 다니게 됐다.”고 말한다. 주 1회의 강좌 말고도 집에서 라디오 강좌도 듣는 이들은 예습·복습 같은 공부에는 일절 간섭을 하지 않는다.자칫하면 ‘부부싸움’으로 발전하기 쉬운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집트로 여행을 갔던 스즈키는 여행 중의 선상에서 한국인 단체관광객을 만나 배운 한국말을 써보고 싶은 욕심에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걸었다가 한꺼번에 한국인들이 반가움을 표시하면서 모여드는 바람에 곤혹스러웠던 경험이 있다고 전해준다.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 떨어지는 게 가장 큰 문제”라는이 부부는 올 가을쯤 한국 여행에 도전한다.“한국어 실전을 치러보는 것이 꿈”인 스즈키 부부에게 한글은 노년의 부부애를 다지게 해주는 ‘묘약’과도 같다. ■도쿄 한국문화원 수강자 80%가 젊은여성 일본의 한국어 인구는 월드컵 대회를 전후로 부쩍 늘었다.2년 전 개설된 도쿄의 한국문화원 한글강좌 담당인 시미즈는 “과거에는 ‘학문이나,일을 위해서’가 한국어를 공부하는 계기였다면 지금은 ‘취미나 한국인과의 교류’라는 가벼운 것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8개 강좌에 94명이 등록하고 있는 문화원의 경우 대기자가 20명 가까이 있을 만큼 초만원.수강자의 80%가 20∼30대 직장 여성인 점도 특징이다.더러 재일교포나 남성 수강자가 있지만 1개 강좌에 1명이 있을까 말까이다. 한국의 수능시험에 해당되는 일본의 대입 ‘센터시험’에서 영어를 제외한 외국어 중에서도 한국어가 중국어에 이어 인기가 높다.2003년도의 경우 영어 55만명에 이어 중국어(405명),한국어(169명),프랑스어(138명),독일어(96명)의 순으로 외국어를 선택했다. 일본의 5500여개 고교 중 163개교,530여개 대학 중 200여개교에서 한국어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 OCN, ‘백만장자와 결혼하기’ 12일부터 방영

    미국 폭스TV에서 인기를 끌었던 ‘백만장자와 결혼하기’(원제 Joe Millionaire)가 케이블·위성 영화채널 OCN의 전파를 탄다.12일부터 매주 월·화 낮 12시30분. 프랑스에 성(城)을 갖고 있고,5000만달러를 상속받게 된다는 청년 에반 매리어트(28)가 20명의 여성 가운데 한 명을 선택하는 과정을 담은 ‘리얼리티 쇼’다. 그러나 마지막회를 앞두고 에반은 백만장자가 아니라 건설현장의 중장비 운전기사라고 고백하고 최종 선택된 여성에게 계속 사귈지를 묻는 반전을 꾀한다. 또 케이블·위성 유료영화채널 캐치온은 21일부터 매주 수·목요일 밤 9시 미국 ABC가 제작한 ‘서바이벌 천생연분’(원제 Bachelorette) 8부작을 방송한다.20대 후반 여성 물리치료사가 25명의 남성들 가운데 짝을 찾는 내용이다.
  • [씨줄날줄] 돈 텔 마마

    ‘그곳에 가면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우수에 젖는 블랙 톤의 장식에 은은한 댄스음악이 흐르고 소파에 묻힌 중년의 피로가 술잔과 부킹에 녹아난다.파티문화가 성숙하지 못한 풍토에 성인들의 격있는 유흥문화를 지향한다는 나이트클럽 ‘돈 텔 마마(Don’t tell MaMa)’.서울 역삼동 경복아파트 네거리 옛 서울구락부 자리.일반 성인 유흥장과는 상호가 달라 호기심을 자극한다.인근에는 1990년대 성담론을 양지로 끌어내 성인개그를 꽃피운 코미디클럽과 단란주점,카페 등이 번창하고 있다. 돈 텔 마마가 성황을 이룬 건 고객들의 수준과 부킹(즉석 남녀 짝짓기),이색적 분위기에서 연유됐다고 한다.대개 30∼40대 중년들이 어울려 서로 마마나 파파로 부르지 않고 음주가무에 탐닉할 시간을 갖는다.가정과 직장의 스트레스를 그나마 안심하게 풀어낼 곳이라며 전문직종의 고소득층 남녀가 주로 찾는다.‘그들만의 성인문화를 위해서’라며.으레 낯선 상대와의 스릴있는 밀회를 꿈꾸며 발길을 들인다.부킹이 성공하면 거의가 상대의 신분을 확인하는 절차를거치기 때문에 여흥도 비밀스럽다.여성 손님들이 훨씬 더 많아 이들의 선택에 따라 남성을 짝지어주는 웨이터들의 세련된 매너가 분위기를 살린다.비용도 술 마시기보다는 싼 편이어서 ‘물 좋은’ 성인문화의 대명사가 됐단다.이 때문에 오후 8시와 주말이면 자리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장안의 꾼들이 몰리고,이름을 본뜬 업소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지난 2000년 11월 문을 연 돈 텔 마마가 오는 10월이면 문을 닫게 된다.한 부동산 개발업자가 이 부지를 사들여 인허가 절차를 거쳐 23층 규모의 주상복합아파트를 지을 계획이다.최근 ‘흐려진 물’과 경쟁업체들의 업 그레이드가 일찍 간판을 내리게 된 배경으로 작용한 것 같다는 설명도 곁들여진다.성인의 나이트 라이프를 부킹공간으로 끌어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부정적 편견을 넘어서지 못한 탓이라고 한 전문가는 지적한다.특히 강남 주부의 절반 이상이 애인을 갖고있다는 둥 사회적 일탈의 부작용을 부추긴 성인클럽의 상징처로 꼽히기도 한다. 중년은 저마다의 이유와 위기의식으로 음주를 즐긴다고 한다.돈 텔 마마는 그 스펙트럼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박선화 논설위원 pshno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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