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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투아공 불공격/타스통신

    【빌나 AP AFP연합】 소련당국은 17일 리투아니아공화국 독립운동의 총본산인 최고회의를 무력 점거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으나 리투아니아 및 에스토니아,라트비아 등 발트해 연안 공화국 주민들은 세계의 이목이 페르시아만에 집중되는 틈을 타 이들 공화국에 대한 모스크바의 탄압이 확대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날 에스토니아공화국과 라트비아공화국 등이 평온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소련 관영 타스통신은 소련군 당국과 에스토니아 관리들이 현재 최대현안중의 하나인 발트해 공화국 청년들의 소련군 징집문제에 합의를 보았다고 말했다.
  • 리투아공 유혈사태 왜 일어났나

    ◎공화국 탈소 움직임에 「초강경 대응」/소 보수파 입지 강화의 반증 세계의 이목이 온통 페르시아만 쪽으로 몰려있는 가운데 소련당국의 독립요구 시위를 벌이는 리투아니아 공화국 시민들에게 유혈진압을 단행했다. 흡사 지난 1956년 전세계의 관심이 수에즈운하에 쏠려있는 동안 헝가리에 탱크를 몰고 들어간 경우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최근 수개월간 크렘린 내부의 움직임을 보면 이번 무력진압은 페르시아만 사태와는 관계없이 언젠가는 일어날 사태발전으로 예견돼 왔었다. 무력진압의 표면적인 이유는 소련연군에 대한 징집 거부이다. 발트해 3개 공화국을 비롯해 몰다비아 우크라이나 그루지야 아르메니아 등 독립노선을 표방한 7개 공화국에서는 현재 연방군으로의 징집을 거부하고 있다. 이들 공화국 청년들의 입대불응 이유는 소련군이 점령군이기 때문에 입대명령에 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연방공화국 정부들은 이들에게 징집에 응하지 말것을 공공연히 부추기고 지난 8일 크렘린이 병력을 투입,병역 기피자 검거에 나서자 시민들에게 총궐기해 이를 저지할 것을 호소하고 나섰다. 크렘린 권위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크렘린은 그동안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해오며 민족문제에 대해서도 비교적 관대한 입장을 취해왔다. 고르바초프 집권 이래 민족소요를 무력으로 진압한 것은 89년 그루지야 공화국 수도 트빌리시 시에서 군이 발포,20여명을 사망케 한 것과 90년 아제르바이잔에 병력 1천여명을 파견해 소요 진압에 나선 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생필품 부족 등 경제난이 더 극심해지고 연방공화국들이 독자적인 경제정책을 선언하는 등 국정 전반이 혼란으로 빠져들자 군부 KGB 관료조직 등을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커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도 보수세력들의 입장에 점차 동조하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고 급기야 지난 12월 인민대표회의에서 연방공화국들의 독립을 사실상 불허하는 새 연방법이 채택됐다. 아울러 소요 지역에 대해서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통령 직접통치를 명할 수 있는 비상권한까지 부여받았다. 연방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행위는 절대로 용납치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따라서 새해 들어서 더욱 고조되고 있는 발트해 3국 등의 독립요구에 대한 크렘린의 무력대응은 충분히 예견돼 온 것이었고 앞으로 진압대상 지역과 경우에 따라 희생자 수도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크렘린 당국은 지금까지는 민족소요 지역에 대한 무력진압 등 내정문제에서의 강경입장을 대외문제에까지 연결시키지는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마무리 단계에 있는 전략무기 제한협상(START)과 페르시아만 사태 대응 등에서 계속 미국과 협력관계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등 서방국들은 발트해 공화국들에 대한 크렘린의 무력진압을 페레스트로이카의 중대한 방향전환 신호로 받아들이고 강력한 비난과 경고를 보내고 있다. 부시 미 행정부는 이런 상태라면 오는 2월의 미소 정상회담에 예정대로 임하기가 힘들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백악관의 스코크로프트 안보담당 보좌관과 말린 피츠워터 대변인 등이 잇따라 이 문제를 미소관계와 연결시키는 발언을 했다. EC 등 유럽국들과 캐나다도 약속한 대소 경협을 취소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문제는 크렘린도 연방공화국들과 극적인 타협점을 찾거나 독립을 허용해 주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강경대응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데 있다. 서방국들도 이런 입장을 감안해 일방적으로 연방공화국들의 독립을 지지하기 힘들다는 한계가 있다. 그런 식으로라도 소련이라는 대국이 와해되지 않고 안정을 유지하는게 세계 평화에도 플러스라는 계산들을 하는지도 모른다. 서방국들의 힘으로 크렘린의 무력사용을 막기는 힘들 것같다. 더구나 미국은 지금 페르시아만에 매달려 있다. 발트해 공화국들로서는 시기적으로도 너무 불리한 때 「당하게」된 것같다.
  • 고르비,리투아공 직접통치 시사

    ◎“헌정질서 붕괴… 막다른 골목” 경고/공수부대 1천명 현지도착 【모스크바 AP연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10일 리투아니아 공화국의회에 보내는 호소문을 발표,리투아니아 공화국이 국가법을 준수하지 않는다면 이 지역을 연방대통령이 직접 통치할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날 관영 타스통신을 통해 발표된 이 호소문에서 『현상황은 본질적으로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인민들은 헌정 질서의 회복과 신뢰할만한 안전 보장,정상적인 생활조건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대통령 직접 통치의 실시를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리투아니아 공화국 의원들은 소련 헌법을 위반하고 있고 시민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으며 대통령의 명령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최고의회는 『모든 적절한 조치를 통해 공화국 및 소련 인민들에 대한 책임을 이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이같은 경고는 군무 이탈자와 징집 기피자를 체포키위해 이곳에 1천명의 공수부대 병력을 파견한데 뒤이은 것으로 대통령 직접통치가 단행되면 공화국 의회의 해산,시위 및 정치단체 금지 등의 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
  • 발트국,「군 투입」 반발 확산/리투아니아,1만 주민 반소 시위

    ◎라트비아선 “고르비에 저항” 결의 【모스크바 AFP연합 특약】 소련군 병력과 탱크들이 리투아니아공화국의 수도 빌나에 도착한 가운데 9일 약 1만명의 빌나주민들이 리투아공화국의회 의사당 외곽을 싸고 반소ㆍ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빌나 라디오는 소련군 장갑차들이 수도 빌나 텔레비전방송국 주변에 포진했다고 보도했다. 이보다 앞서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공화국 지도자들은 소련군 탱크에 맞서 시민들에게 총궐기할 것을 호소했다. 【모스크바 로이터AP연합】 크렘린당국이 병역기피자와 탈영병을 검거하기 위해 리투아니아 등 7개 공화국에 군대를 동원함으로써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에드가르 사비사아르 에스토니아 공화국총리는 9일 드미트리 야조프국방장관을 만나 사태의 해결방안을 논의했다. 이와함께 라트비아공화국의회는 중앙정부가 7개 공화국에 병력을 파견한 것은 「직접적인 침략행위」로 규정하고 이 문제를 최고회의에서 정식으로 논의하자고 결의했다. 라트비아 의회는 또 주민들에게 강제징집 문제와 관련해 중앙정부에 협력하지 말것을 당부하는 한편 징집을 이유로 병력을 파견한 것은 대규모 공격을 감행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 다국적군 60만­이라크군 54만 “초긴장 대치”

    ◎요르단 국경·사우디 영공은 폐쇄/“이촉즉발” 위기속의 페만 현장 ○난민유입 방지 일환 ○…요르단은 9일 아리크와 쿠웨이트로부터 넘어오는 모든 비요르단인들에게 국경을 폐쇄한다고 밝혔다. 살라메 하마드 요르단 내무차관은 이날 국영 페트라 통신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이 조치는 즉각 발효된다고 말했다. 하마드차관은 이라크와 쿠웨이트로부터의 난민들을 도울 국제지원을 받기까지는 국경폐쇄가 불가피하다고 말하고 요르단은 이제까지 제3세계 출신 난민들 85만여명을 돌보느라 외채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불구,5천5백만달러를 썼으나 국제지원으로 받은 금액은 1천2백만달러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페르시아만 난민들을 본국으로 송환시키려는 비행기들에 대해 사우디 영공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영공 폐쇄조치를 내렸다고 국제이민기구(IOM)의 암만소장이 9일 밝혔다. 이 소장은 8일 밤 리야드항공 관계자들로부터 이를 통보받았다고 말하고 이에따라 하노이로 떠나려던 비행기들이 출발하지 못하고 있으며 사우디 상공을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페만 지역에는 미군을 포함한 다국적군 60만5천여명과 쿠웨이트지역내 및 부근에 배치된 이라크군 54만명 등 모두 1백14만명이 대치중이라고 미 국방부가 8일 밝혔다. 피트 윌리엄스 미 국방부 대변인은 유엔이 결의한 이라크의 쿠웨이트 철군시한을 1주일 앞두고 논평을 통해 페만 지역에 미 육해공군 36만명 이상이 서구 국가들과 아랍 국가들의 다국적군 24만5천명과 함께 집결해 있다고 밝혔다. ○중화기 막바지 수송 ○…유엔이 쿠웨이트 점령 이라크군의 철군시한으로 설정한 15일이 다가옴에 따라 미군을 주축으로 하는 사우디 주둔 다국적군의 화력 강화를 위한 탱크와 중무기 등의 해상 수송 작전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서방의 군사소식통들은 사우디 항구에는 하루 평균 6∼7대의 군용물자를 수송하는 선박이 도착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한 관계자는 수송작전이 최고조에 달해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해 8월 23만명의 병력을 수송한 것을 시작으로 대규모 수송작전을 전개해 왔는데 지난해 12월까지 1백50여대의 선박이 병력은 물론 수백대의 탱크를 포함해 모두 2백만t의 물자를 수송했다. ◎“예상 밖의 평온” 바그다드/거리엔 젊은이 “북적”… 이따금 반미시위 ○…유엔이 정한 이라크의 쿠웨이트 철수시한을 불과 1주일 앞두고 페르시아만에 전운이 짙게 깔린 요즈음 바그다드시는 송년축제 때 쓰인 전구들이 아직 시내 곳곳에 줄지어 걸려있는 등 새해맞이 분위기로 가득차 있으며 긴박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호텔 옥상으로 보이는 하늘에서는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고,시내 고속화도로 양편에는 붉은빛을 뿜는 가로등이나 혹은 행운을 상징하는 네잎 클로버 모양으로 된 네온등이 불빛의 행렬을 이루고 있다. 시내 야시장은 여전히 인파로 북적거리고 있으며 백화점에는 각종 상품들이 가득 진열돼있어 비록 유엔의 대이라크 금수이후 물가가 크게 오르기는 했지만 물자부족 등 즉각적이고 실제적 타격은 받지 않고 있는 듯하다. 그간 중재를 자청하고 바그다드를 숱하게 드나들었던 서방측 유명인사들중의 하나는 『전쟁에 관한 얘기는 바그다드에서보다 유럽에서 더 많이 하고 있다』며 바그다드의 평온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라크 정부가 17세에서 23세까지의 남자들을 공식적으로는 전원 징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연령층 젊은이들이 사둔가나 티그리스 왼쪽 강안을 따라 들어서 있는 번화가를 몰려다니고 있는 풍경은 예전과 다름이 없다. 이곳 서방외교관들은 이라크 정부당국의 민방위태세와 관련한 각종 성명과 발표들은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동시에 대외적 선전효과도 노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즉 예비군 동원령이 내려졌지만 『정규군은 동원된 예비군에 무장을 시킬 여유능력이 없는 것은 물론 군편제내에 흡수할 능력조차 없는 것 같다』는 것이 이곳 외교관들의 진단이다. ○…수백명의 이라크인들이 9일 바그다드주재 미국 및 영국대사관앞에 『미군은 즉각 철수하라』 『우리는 사담 후세인을 사랑한다』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항의시위를 벌였다. 이같은 항의시위는 미국이 페만 위기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마지막이자 최선의 기회』라고 말하는 미·이라크간의 제네바 외무장관 회담이 열리기 직전 발생했다.
  • 부동산 취득·등록세 감면 폐지/93년부터 공시가의 100% 과세

    ◎내무부,감면률 연차인하 방침/검인 계약서도 없애기로/우선 올해 40%로 낮춰 납세액 갑절 올라 관인계약서의 사용을 권장하기 위해 현재 부동산에 대한 취득세 및 등록세를 부과할때 거래가격의 일정률을 감면해 주는 제도가 오는 93년부터 폐지되며 공시지가의 1백%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게 된다. 이와 함께 부동산 중개업자 및 부동산을 사고 판 사람의 탈세를 막기 위해 시행하고 있는 검인계약서 제도도 폐지된다. 8일 내무부에 따르면 부동산등기 신청때 부과하는 취득세와 등록세를 지난해까지는 신고된 거래가격의 30%에만 세금을 부과했으나 올해부터는 지난해 9월 건설부에서 발표한 공시지가의 60%에까지 과세하고 92년에는 80%를,93년에는 1백%를 적용키로 했다. 미성년자·부녀자 등의 부동산 취득과 투기를 막기 위해 국세가운데 상속세와 양도소득세는 그동안 과세표준액에 의해 과세해오다 올해부터 공시지가의 1백%를 적용하고 있다. 내무부가 취득세 및 등록세의 거래가격 적용률을 이같이 조정함에 따라 올해 부동산 거래자의 실제 납세액은지난해보다 2배가량 높아지게 됐다. 내무부의 이같은 방침은 부동산 거래질서를 확립하고 중개업소 및 매매자의 세금포탈을 막기 위해 지난88년 9월부터 검인계약서 제도가 시행되면서 당초 취지와는 달리 대부분의 경우 취득가액을 실제보다 낮게 신고하거나 시가표준액 정도만을 신고하고 있어 아무런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회원들은 이날 시민들에게 나눠준 유인물에서 『일제하의 정신대 징집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범죄행위』라고 지적하고 ▲일본측의 공식사과 ▲희생자 위령비 건립 ▲정신대 생존자 및 유족들에 대한 배상 등 6개항을 요구했다.
  • 발트 3국,「불복종운동」 추진/소군 파병에 항의

    ◎자국청년 징집도 거부 【모스크바ㆍ빌나 AP로이터 연합특약】 소련국방부는 8일 징집거부 및 기피자들을 검거하기 위해 라트비아ㆍ리투아니아ㆍ아르메니아를 비롯,8개 공화국에 공수부대를 파견하고 있다. 포도르 쿠즈민 발트지역 군사령관은 이날 징집거부 및 기피자중 자수하는 사람들은 처벌받지 않고 군복무가 허용되겠지만 징집에 응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군이 검거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지관리들은 장갑차를 포함,1백8대의 군용차량과 함께 공수부대들이 이날 새벽 4시30분(현지시간) 대규모 징집거부 및 기피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리투아니아 수도 빌나에 파견됐다고 밝혔다. 그루지야ㆍ에스토니아ㆍ몰다비아ㆍ우크라이나ㆍ우즈베크공화국내의 카라칼파크자치지역 등 다른 7개 공화국에도 징병제도를 강제적으로 이행시키기 위해 소련군이 파견되고 있다. 소련방군이 파견되고 있는 가운데 발트해 3개공화국은 자국 청년들이 소련군에 강제 징집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시민 불복종운동을 전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카지미에라 프룬스키에네리투아니아공 총리는 징집문제로 발단된 이번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회담했으며 사비사르에스토이나공 대통령도 고르바초프와 회담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향했다. 일부 관계자들은 국제적인 관심이 페르시아만 사태로 쏠리는 것을 이용,크렘린 당국이 모종의 조치를 취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한편 소련 중앙정부를 지지하는 리투아니공화국의 주민 1백여명이 8일 빌나에서 리투아니아 당국의 식료품가격 인상에 항의,경찰의 저지망을 뚫고 의사당으로 난입했다.
  • 소,발트3국에 군 투입/야조프국방/1개 사단규모 공수부대 파병

    ◎라트비아공에 “군징집 협조” 통첩/그루지야선 경찰발포 3명 사망 【모스크바 로이터연합특약】 라트비아공화국 관리들은 7일 드미트리 야조프 소련 국방장관이 수천명의 공수부대원들을 발트해 연안국가들에 파병토록 명령했다고 말했다. 이 관리들은 『발트해 지역 군사령관이 라트비아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군징집을 원활히 하기위해 이같은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통보했다』고 말했다. 이와관련,소련 TV는 이날 『1개 사단이상의 낙하산부대가 발트해지역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이로인해 모스크바와 이 지역간의 긴장은 계속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다. 【모스크바 AFP연합특약】 소련 그루지야공화국 남부 오세티아 자치지역에서 6일 경찰이 발포,최소한 3명이 숨졌다고 인터팍스가 보도했다. 현재 소식통들은 경찰의 발포이후 무장한 군인들이 시내를 순찰하고 있으며 3천여명의 보안군이 증강됐다고 전했다.
  • “다국적군 개전 하룻만에 승리”/영지,아랍장성의 말 인용보도

    ◎이라크군 사기 침체·훈련도 엉망/첫 공격으로 공군·미사일 초토화 이라크군과 전투를 했거나 이들과 협력했던 경험이 있는 아랍 및 회교권 장성들은 다국적군이 대이라크전을 개전 첫날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더 타임스지는 구랍 31일 이들 장성들의 말을 인용,이라크군의 사기는 과거 어느때보다도 침체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들의 견해는 작년 8월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후 대치상태에 있는 이라크군과 다국적군간에 전쟁이 붙을 경우 수개월간 전투가 계속될지 모른다는 미군 지휘관들의 전망과는 대조되는 것이다. 타임스는 징집된 이라크 병사들 가운데 일부는 지난 75년이후 제대하지 못한채 군무에 붙들려 있으며 전선에 배치된 일부 군인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쿠웨이트 접경에 배치된 미군에 비밀리에 매수돼 미군이 그들의 군사장비를 검사하도록 허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하지르 테이무리언 특파원의 기사에서 『이라크는 불과 1천7백만 인구의 제3세계 국가로서 인종과 종교문제로 분열돼 있는 국민의 대다수는 집권 바트당에 깊은 반감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는 또 『전쟁이 수개월동안 지속되고 다국적군에 막심한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미군 지휘관들의 경고는 이라크군과 밀접한 관계를 가져온 사람들의 의견과 상충하고 있다』고 말하고 『이들 아랍 및 회교권 장성중에서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기 전까지 이라크 병력의 증강을 도와준 이집트 최고사령부 관계자들과 8년간의 대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던 이란의 퇴역장성들,그리고 지난 61년이후 이라크에 대항해 투쟁을 계속해온 쿠르드족 게릴라 지도자들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지난 89년까지 이집트 국방장관을 지낸 모하마드 압델 할림아부 가잘라 육군원수는 다국적군의 사상자수는 수백명에 그칠 것이며 신예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주장은 허세라고 주장한 것으로 인용보도했다. 가잘라는 또 지난주 다국적군이 공군력을 동원,초반에 몇차례 공격을 가해 이라크 공군과 공중방위망 및 미사일을 무력화 할 수 있고 그런 다음에는 연합군의 신예무기로 이라크군을 쉽게 굴복시킬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이같은 분석은 이란­이라크 전쟁기간중 이라크가 보여준 전투수행 능력을 근거로 한 것이라고 그는 밝혔다. 이 전쟁에서 이란이 불과 50대만이 동시에 비행할 수 있는 노후한 미국제 비행기를 갖고도 5백대를 넘는 이라크의 현대식 전투기를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은 이라크군 조종사들의 훈련미숙과 동기 부족 때문이었다고 테이무리언 기자는 전했다.
  • 시위 막던 경감 돌맞고 절명/어제 안산서

    ◎「공권력 응징집회」 대학생들과 대치중 【안산=김동준기자】 12일 하오8시50분쯤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 846의3 라성플라자 앞길에서 근로자ㆍ학생 등 2백명의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던 경기도경 수원경찰서 기동2중대장 안병업경감(41)이 이들이 던진 돌에 머리를 맞아 안산병원으로 옮기던중 숨졌다. 숨진 안경감은 이날 하오8시 안산시 원곡동 성당앞에서 열린 「공권력응징 및 노동운동탄압규탄대회」에 참가한 대학생 1백50명ㆍ근로자 50명이 원곡4거리 보성상가 입구까지 진출하자 기동대병력 1백60여명을 이끌고 시위대를 막다가 이같은 변을 당했다. 안경감이 쓰러지는 순간을 목격한 기동2중대 무전병 유영화상경(22)은 『시위대가 몰려오는 소리가 들리자 안경감이 혼자 차도로 나서는 순간 시위대가 던진 돌에 머리를 맞아 그자리에서 쓰러졌다』며 『당시 안경감은 방석모를 쓰고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학생ㆍ근로자들은 지난달 30일 안산시 ㈜금강공업에서 발생한 근로자의 분신자해사건이 공권력의 개입에 따른 사건이라고 주장,규탄대회를가졌다.
  • 중동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사설)

    이라크의 쿠웨이트침략을 규탄하는 국제사회는 다시 그들의 쿠웨이트합병 발표이후 직접적인 응징을 위한 확고한 대응태세를 굳히고 있다. 그럴수록 중동지역의 전운은 더욱 짙어지면서 일촉즉발의 파국을 앞두고 있는 듯하다. 전쟁이란 어느 일방의 공격과 그 대응에 의해 확대되게 마련이다. 이라크는 선제 무력침공행위를 반성하거나 철회하기는 커녕 미국을 비롯한 세계적 응징태세에 반격하듯 사우디아라비아 침공 의사를 보였다. 그들은 「성전」이라는 이름아래 1백만명을 추가 징집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어느 쪽이 전쟁도발자이며 국제적 범죄자인지 얼른 분간하기조차 어렵게 된다. 또 침공에 대한 응징이 선인지 응징에 대한 「성전」운운의 대응이 악인지 한계가 모호해진다. 지금 중동이 처한 모순과 위기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전면전을 불가피하게 할 수도 있는 이라크의 군사적 모험주의가 끝내 포기되지 않는다면 그에대한 국제적 제재와 응징은 마땅한 것이다. 유엔안보리는 이미 대이라크 경제적 제재와군사적 행동을 결의한 바 있다. 소련 역시 다국적군에 참여할 뜻을 굳혔다. 소련이외에도 일부 북대서양동맹국들과 아랍연맹국가들도 대이라크 제재행동에 뜻을 같이하고 있다. 그렇다고 세계는 지금 중동 위기가 더 이상 확대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유엔이나 아랍동맹국들의 중재 노력과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전쟁은 도발한측의 실수로서 곧장 끝나야 한다. 확전은 전쟁 당사국은 물론 그 동맹세력까지도 피폐케 한다. 그것이 바로 인류공통의 평화의지를 말살하는 전쟁이 사라져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우리 정부가 유엔의 대이라크 경제제재와 무기판매를 금지한 제1차 결의에 지체없이 동조한 것도 그 때문이다. 사실 전쟁에 대한 혐오와 기피,평화에의 의지와 노력에 있어 우리는 누구보다도 앞서는 민족이다. 우리는 동족전쟁을 겪었고 그보다 오래전에 일제의 침략과 병탄에 의한 국권상실의 뼈저린 경험도 갖고 있다. 지금도 우리는 전쟁적 대결과 체제ㆍ이념의 대립에 의한 민족분단의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라크의쿠웨이트침공에 남다른 증오와 응징의 결의를 갖는 것도 이에 연유한다 할 것이다. 마침 이라크의 침공과정에서 실종됐던 우리 근로자 3명이 돌아왔다. 우리로서는 더이상의 사태전개와 관련해서 현지의 우리 근로자및 교민들 안전문제에 더욱 유념해야 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들을 대피시킬 수 있는 외교적인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세계와 인류는 국제화해와 긴장완화라는 시대적 추세에 역행하는 무력대결은 극력 피해야 한다. 더구나 지금 확전위험속에서 이라크가 경솔하게도 화학무기를 사용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것은 파멸이다. 인류문명의 발상지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가 회교도들의 무덤이나 비극의 땅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라크는 평화공존의 논리가 성숙되어가는 세계사적 조류에 동참해야 한다. 즉 전쟁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 소 징집군 귀환 요구/우크라이나공 결의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모스크바 당국에 대한 저항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 우크라이나공화국은 30일 소련군에서 복무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인의 전원 귀환을 요구했다. 우크라이나공화국 최고회의는 이날 소련 국방부에 대해 소련군에 징집,키르기스 아제르바이잔ㆍ아르메니아공화국 등 문제지역에 파견돼 있는 모든 우크라니아 병사를 오는 10월1일까지 철수시킬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찬성 2백82대 반대 31로 통과시켰다.
  • 세종대 대량유급사태와 향후 전망

    ◎“교육질서 확립” 대학 초유의 「극약처방」/“폭력엔 단호대처”… 정부의 일관된 의지 반영/신입생 못뽑으면 재정난…재연불씨도 여전 문교부가 11일 세종대의 수업거부학생들을 모두 유급으로 처리하겠다고 천명한 것은 세종대사태의 해결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데 대한 일벌백계의 의지를 밝힌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세종대가 법정 수업시한인 10일을 하루 넘긴 11일에도 수업을 정상화시키지 못하고 있고 여론 또한 『더이상 세종대를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쪽으로 기울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문교부는 특히 세종대의 설립자를 포함한 재단이사 모두를 개편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재단측에도 강력한 제재조치가 뒤따를 전망이며 이는 세종대사태를 계기로 올바른 대학교육의 질서를 확립하는 분기점으로 삼겠다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문교부가 『10일 이전까지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남은 수업일수를 충분히 이수할 경우 학점취득이 가능하다』고 밝힌 것은 선량한 학생들을 가급적 많이 구제하려는 교육적 배려로 여겨지고있다. 정원식 문교부장관은 10일밤 열린 관계부처 대책회의에서 『휴교령즉시발동을 통한 문제의 조속한 해결』이라는 정부일각의 의견에 맞서 선량한 학생은 모두 구제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교육적 맥락에서 문교부는 「휴교령」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교내폭력,불법행위가 지속될 경우」로 국한하고 있다. 따라서 체육학과 무용과 등 정상수업이 계속되어 온 7개학과 1천1백20명은 학점이수 및 진급에 큰 지장이 없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들이 구제된다 하더라도 휴학인원 3백여명을 뺀 나머지 3천5백여명 가운데 지난달 25일 수업재개이후 10일까지 하루라도 수업을 받은 일부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급처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문교부의 현재 입장이다. 그러나 문교부가 10일 이전 하루라도 수업을 받지 않은 학생은 모두 유급처리가 되므로 앞으로는 학교에 나올 필요도 없다고 까지 밝힌 부분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대학은 학점으로 진급과 유급이 처리되게 되어 있기 때문에 학생개개인으로 볼때는 임시휴업해제이후 10일까지 수업을 1시간도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임시휴업이 내려진 4월28일 이전까지 수업에 열심히 참가했다면 구제의 여지가 남아 있는 것이다. 앞으로 학생들의 출결상황과 교수들의 출석인정여부확인에 따라 구제될 수 있는 폭은 커지겠지만 그 숫자는 아무리 많아야 2천명선에 그칠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최소한 1천5백여명은 확실하게 유급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최소한 졸업생도 3백여명 안팎에 그칠 것으로 보이며 문교부로서는 4학년학생 1천2백명 가운데 3백명이상이 졸업을 못하면 91학년도 신입생을 선발하지 않을 방침이어서 신입생모집도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대량유급사태는 결국 유급학생들의 등록금납부거부운동등으로 번질것이 불을 보듯 뻔하고 신입생을 못뽑을 경우 학교예산의 70%에 이르는 등록금수입의 격감으로 극심한 재정난을 겪을 것 또한 분명해 최악의 경우 문을 닫는 사태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결국 세종대사태는 일단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수습하기 어려운 국면이 됐다. 문교부가 재단이사진을 모두 바꾸고 대학정상화대책위원회를 구성해 2학기부터 정상적인 학사운영대책을 마련한다고 밝히고 있으나 그렇게 되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유급학생 불이익/1학기 늦게 졸업… 등록금 추가부담/“문제대학 꼬리표” 취업 어려움 가중 국내사상 초유의 대량유급사태는 학교당사자 뿐만 아니라 대상 학생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등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 유급대상 학생 가운데 내년 2월말 졸업예정자는 8월로 졸업이 늦어지게 되며 나머지 학생들도 최소한 졸업이 1학기 늦춰지게 됐다. 또 이들 학생들은 가뜩이나 힘든 현재의 취업난에다 「문제대학」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취업의 어려움이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이밖에도 최소한 1학기의 등록금을 내야하는 재정적 부담을 학부모들은 지게 됐다. 예비학사장교(ROTC)의 경우에도 대부분이 수업을 받았으나 일부는 유급위기에 처해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유급이 되면 장교로 임관이 불가능해지며 자격을 상실,곧바로 징집영장이 나오게 된다. 이와 함께 전대협으로 대표되는 운동권학생들에게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되는데 「전대협대리전」을 표방한 이상 「유급은 없다」는 이번 사태주도 운동권학생들의 주장이 허위로 밝혀짐에 따라 세종대에 관한 한 대중성을 상실하게 된다. 또한 이들은 이번 사태가 「학생학내운동탄압」의 빌미가 되어 운동권학생의 대량구속사태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갖고 있다. 11일 상오 정원식문교부장관이 세종대 사태에 대한 정부의 방침을 밝힌뒤 실무담당자인 이천수 대학정책실장은 기자들과 다음과 같은 일문일답을 가졌다. 또 세종대의 이중화총장도 이날 문교부의 결정에 대해 학교측 입장을 밝혔다. ◎이천수 문교부 대학정책실장/“휴교령 내리면 구제될 학생 1명도 없을 것” ­이번 조치로 유급되는 학생과 구제될 수 있는 학생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법정 최대시한인 10일까지 수업에 참여한 학생은 앞으로 남은 수업일수를 이수할 경우 구제되지만 임시휴업해제이후 10일까지 1시간도 수업에 나오지 않은 학생은 11일부터 출석해봐야 모두 유급된다. 문교부는 세종대로부터 교수별ㆍ학생별ㆍ강좌별ㆍ과목별 수업관련 자료를 제출받아 구제대상학생의 선별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최종결정에는 상당기간이 걸릴 것이다』 ­구제대상학생수를 어느 정도로 보는가. 『현재로선 정확한 숫자를 계산할 수 없다. 다만 법정시한인 10일 이전까지 매강좌마다 수업참여학생비율이 최고 20%에 불과해 구제대상학생수는 극소수에 그칠 것으로 본다』 ­교내 폭력ㆍ불법행위가 계속되면 휴교조치도 불사한다고 했는데 그 경우 지금까지 수업을 받아온 학생들은 어떻게 되는가. 『그같은 불행한 사태가 된다면 전원유급이 불가피할 것이다』 ­「불법행위」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은 몇명이나 되는가. 『주도적인 학생은 20∼50명선이며 적극 가담ㆍ추종학생은 2백명 정도다』 ­91학년 신입생선발은 전면중지인가 아니면 유급된 학생수만큼 모집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부분적인 선발은 세종대의 수용시설능력이나 학사운영상 어려움이 많이 따르므로 불가능하리라고 본다. 따라서 세종대는 91년도에 신입생을 모집할 수 없을것이다』 ­재단 이사진의 개편폭은 어느 정도인가. 『주영하이사장과 최옥자명예총장을 포함,거의 전원이 될 것이다. 몇명이 바뀌느냐 보다 설립자와 그 가족이 개편대상이 되느냐의 여부가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주이사장 등이 물러나지 않겠다고 버틸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퇴진을 계속 종용하겠다. 문교부의 감독권을 발동해서라도 퇴진하도록 하겠다』 ­세종대사태의 핵심적인 문제라 할 수 있는 학생의 총장선출참여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교육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총장은 어디까지나 법인인 이사회에서 선임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입장이다』 ­법인이 인정할 경우 학생도 총장선출권을 가질 수 있지 않은가. 『그것이 바로 학생들의 주장인데 이는 법정신에 맞지 않는다』 ◎이중화 세종대총장/“「유급범위」 최소화 위해 모든 노력 기울일 터” ­문교부가 대량유급 방침을 밝혔는데. 『유급 범위를 최소화 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강구하겠다. 법정수업일수의 4분의 3을 출석하면 학점을줄 수 있으므로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6월25일부터 7월9일 사이의 기간을 결석허용일수인 4주안에 포함시켜 희생을 줄이도록 문교부와 협의하고 있다』 ­학생들의 유급기준은. 『구체적 방안은 서 있지 않으나 문교부의 세부지침에 따라 선별작업을 진행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업을 진행해온 17개 학과의 5백여명과 ROTC학생들을 비롯,10일이전에 한번이라도 수업을 받았고 앞으로라도 수업의지가 있는 선의의 학생들을 최대한 구제하도록 문교부에 호소할 방침이다』 ­대량유급사태가 빚어지면 학교측에 어떤영향을 미치게 되는가. 『학교의 이미지가 크게 손상되는 것은 물론 유급된 학생들이 또다시 등록금납부거부운동 등 집단적인 움직임을 벌일 것이 우려되며 학교재정에도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유급학생들도 등록금을 다시 내야 하는가. 『유급된 학생들은 원칙적으로 다음 학기에 또 등록금을 내야한다』 ­학생들의 총장직선제 요구는. 『현행법에 총장선임권한은 재단에 있으므로 총장이 해결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학생들이 총장선출 과정에 참여,총장자격을 심의하는 것을 양보한다면 교수직선에 의한 총장선출방안을 재단측에 건의할 용의도 있다』 ­오늘 있었던 전체교수회의와 교무회의의 분위기ㆍ논의 내용은. 『당국이 대량유급을 결정한 상태에서 침통한 분위기였으나 피해학생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도록 교수와 교무위원 및 교직원들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최선의 노력을 다하자고 결의했다』 ­현재의 심정은. 『세종대사태에 관심을 갖고 걱정을 해준 온 국민과 학부모들에게 대량유급사태를 막지 못한데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죄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사태의 후유증이 최소화 될 수 있도록 모든 학내 구성원과 함께 온 힘을 쏟겠다』
  • 알바니아 변혁의 도화선될 가능성

    ◎「반정인사 대사관피신」의 배경과 파장/「장벽붕괴」부른 동독인 대탈출과 흡사/40년 일당독재ㆍ개혁늑장에 불만 표출 지난달 28일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알바니아 반체제인사들의 외국대사관 피신사건은 향후 알바니아 정국에 전면적인 변혁을 몰고올 하나의 정치적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특히 동구권국가 가운데 가장 느린 개혁속도를 보이던 알바니아에서 지난 며칠동안 반정부소요가 발생해 4백여명의 반체제 인사들이 수도 티라나주재 외국대사관으로 피신,이 가운데 일부가 정치적 망명을 요청하고 나선 이번 사태는 지난해 베를린장벽 붕괴의 도화선이 됐던 동독인들의 동구주재 서독대사관 피신사건과 그 양상이 흡사하다는 점에서 남다른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지 외교소식통들은 『4백여명의 알바니아인들이 대사관으로 피신하기 위해 담을 넘거나 트럭을 이용해 대사관 정문으로 돌진해 왔으며 알바니아 보안군은 이들에게 총격을 가해 적어도 4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전하고 『현재 티라나주재 10여개 대사관에는 모두 4백여명이 피신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동구의 대변혁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식 공산독재체제를 고수해오다 최근 굳게 걸어 잠갔던 빗장을 서서히 풀고 「위로부터의 점진적 개혁」을 시도해온 알바니아 알리아 정부가 이번에 직면한 사태의 표면적 원인은 지난 5월8일 발표한 여행자유화 조치와 새로운 여권법이 지나치게 차별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지난 40여년 동안 공산당 일당 독재하에서 누적돼온 국민들의 불만이 개혁물결을 틈타 폭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인구 3백만명에 1인당 국민소득 9백만달러를 밑도는 알바니아의 현경제상황은 정치ㆍ경제ㆍ외교적으로 자주 고립노선을 선언한 지난 70년대 중반보다 오히려 더 악화됐으며 높은 실업률과 생필품부족은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 수년간 알바니아를 강타한 가뭄으로 식량마저 바닥나 국민들의 불만은 최고조에 달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알바니아의 최고통치권자 라미즈 알리아 노동당 제1서기는 국민들의누적된 불만이 현 체제의 붕괴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지난 5월 중앙집권경제체제를 완화하고 개인의 인권을 보장하는 제한된 개혁조치를 단행한 바 있다. 그러나 알리아정부는 이같은 민주화개혁조치를 단행하면서도 사회주의체제 강화라는 단서를 단채 루마니아식의 형식적 개혁만을 추진,국민들의 개혁열망을 수용하는데 미흡할 수 밖에 없었다. 이번 사태와 관련,알바니아관영 ATA통신은 『외국대사관으로 피신한 알바니아인들이 「범죄자」와 「징집통지서를 받은 청년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지 서독소식통은 『이들은 알바니아의 반체제인사들』이며 『서독정부는 이번 사건은 유럽경제공동체(EEC)회의에 상정,공동입장을 취할 것』이라고 밝혀 이에 대한 대응이 알리아의 개혁의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관측통들은 내다보고 있다.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에 가입의사를 밝힌데 이어 국민들의 해외여행을 허용하는 등 일련의 개혁조치를 취해온 「동구의 고도」 알바니아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동구대변혁의 「막차」에 오르게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 한국전 40돌 맞아 재조명 미 유에스 뉴스지

    ◎“잊혀진 전쟁”6ㆍ25… 「공산화 도미노」막았다/동ㆍ서 이념대립서 군사충돌로 급선회/「값비싼 희생」은 동구민주화와 연계성/“전쟁의 물적ㆍ심리적 유산은 한국인 모든 세대에 깊이 자리” 미국의 시사주간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는 6ㆍ25 40주년을 맞아 「잊혀진 전쟁」을 재조명하고 이 전쟁이 남긴 유산과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남북대결의 현실을 분석하는 특집기사를 6월25일자 카버스토리로 다뤘다. 장장 14쪽에 이르는 유에스 뉴스지의 특집기사를 요약한다. 지금부터 꼭 40년전 장마비가 내리는 아침에 시작돼 그후 37개월동안 이미 수탈당한 아시아 변방의 반도를 뒤흔든 야만적인 투쟁은 마지막 전쟁(제2차 세계대전)의 후기인 동시에 다음에 일어날 전쟁의 서문이었다. 이것은 갑자기 열전으로 변한 냉전이었고 공산주의 사상 가장 담대한 「국제해방전쟁」이었으며 유엔으로서는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일 「경찰업무」였다. 판문점이라는 무인지대의 황량한 「휴전마을」에서 교착상태로 끝날 때까지 이 전쟁에는 22개국이 참전했고5백만명의 인명이 이로 인해 희생됐으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정치적ㆍ경제적 소요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발발 40년이 지난 지금 한국전쟁은 미국인들의 기억속에 미국의 킬링필드였던 안개낀 산들만큼이나 아물거리는 존재로 남아있다. 폭찹힐이나 하트브레이크 리지에서,또는 장진호에서 퇴각하는 길에 쓰러진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에 값하는 기념비는 어디에 있는가? 베를린 장벽이 유럽 분단의 상징이라면 남북한을 가르는 경계선은 아시아의 베를린 장벽이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 한국의 노태우대통령이 2주전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났을때 이들은 냉전의 가장 뚜렷한 흔적인 한국의 분단상태를 언젠가는 끝낼 수도 있을 해빙작업을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아시아에서 화해의 봄이 무르익고 있는 지금 공산주의 양대 종주국인 중국과 소련은 자신들이 지난 1950년 파괴하려 했고 그후 40년간 무시하고 비난하고 전복시키려 애써 왔던 한국과의 외교재개를 위한 새로운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냉전의 모델◁ 한국전은 유럽일변도였던 미국의 관심을 태평양쪽으로 되돌렸다. 2차 대전후 극동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약화되기 시작했었다. 트루먼행정부는 「중공」과의 타협에 접근하게 된다. 당시 칼럼니스트 월터 리프먼은 『아시아는 서방의 군사적 영향력,경제력 통제 및 사상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다』고 기술했다. 한국전이 중국과 소련간 불화의 서막이었다는 증거가 현재 나타나고는 있지만 당시 한국전은 획일적 공산주의의 이미지를 강화했으며 미정책입안자로 하여금 이때문에 오랜기간 골머리를 앓게 해왔다. 한국전은 무엇보다도 냉전을 정치ㆍ이념적 성격에서 군사충돌로 변모시켰다. 이는 전후 봉쇄정책의 촉매일뿐 아니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표현한대로 「군사산업 복합체」를 형성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1951회계연도 미군사예산은 1백40억달러(책정기준)에서 53회계연도에는 5백40억달러로 상승된다. 보다 놀라운 점은 미국의 대외 원조계획의 군사화이다. 1950회계연도의 경우 군사원조가 대외원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2%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는 60회계연도에 41%로높아졌다. 한국전은 또한 냉전기간을 통해 미국의 외교정책을 괴롭혀온 기본적인 모순을 가져다 주었다. 미국은 한편으로 국내에서 악의에 찬 반공주의에 반대하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한편에서는 공산주의 침략이 이루어지는 세계 어디서고 이를 퇴치한다는 결의를 다짐하도록 만들었다. 50년 9월30일 북한이 남침을 시작한지 3달째가 되는 날 트루먼은 국가안보회의문서 68호에 서명한다. 이 문서는 『소련의 강대국 부상을 막기위해 미국은 희생이 어떠하더라도 국내외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할 결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언급한다. ▷미 극우세력의 득세◁ 다른 수준에서 한국전은 핵시대(소련은 전쟁발발 3개월전 첫 핵실험에 성공했음을 발표한다)에서 전쟁이 가열돼서는 안된다는 점을 상기시켜준 전쟁이었다. 이같은 새로운 「제한전」의 개념은 그러나 중국을 핵공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온 더글러스 맥아더장군에게는 맞지 않는 것이었다. 51년 3월 맥아더는 중국 로비스트였던 조셉 마틴하원의원에게 보낸 서한에서 트루먼의 제한전 개념을 공개적으로통박한다. 그는 『공산주의가 세계무대 장악을 위해 준동하는 지역이 아시아』임을 상기시키면서 『아시아가 떨어지면 유럽도 공산화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명령에 순종하는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트르먼은 마침내 맥아더를 해임하나 공산주의 「격퇴」에 관한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맥아더가 밀려난데 자극받아 존 맥가시상원의원은 공산주의 동조세력이 트루먼 행정부안에 도사리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그로부터 13년후 피그만사건이 있고난후 미국이 아시아에서 또다른 제한전으로 치달을 무렵 배리 골드워터상원의원은 64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자유방위를 위한 극단주의는 악이 아니다』라고 선언함으로써 맥아더를 상기시켰다. 이같은 우익노선은 마침내 로널드 레이건에 의해 미국의 정책으로 채택된다. ▷잊혀진 전쟁◁ 한국전의 여파가 오래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에 관한 한 가장 놀라운 것은 거의 잊혀졌다는 사실이다. 한국전에서 전사한 미군 병사수는 5만4천여명으로 한 세대후의 베트남전의 미군희생자 5만8천명에 거의 육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미국인들의 한국전에 대한 기억은 뚜렷한 것이 없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일본으로부터 무조건 항복을 받아낸 사람들에게 북한과 중국을 상대로 싸운 전쟁에서 비겼다는 사실은 결코 달갑지 않는 일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트루먼대통령은 ▲징집연장 ▲세금인상 ▲임금ㆍ물가 통제부과 등을 취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상황에 비교하면 국내의 피해는 극히 미미했다고 하겠다. 또 베트남전이 TV를 통해 대대적으로 소개된 것에 비하면 한국전은 신문에나 조금 보도되는 등 일반인들의 관심밖의 일이다. 한국전이 끝난지 40년이 지난 지금 냉전이 종식되고 있는 현실을 되돌아 보건대 한국의 산하에서 치른 희생과 최근 프라하,바르샤바,부다페스트에서의 민주주의 태동은 분명한 연계성을 갖고 있다. 미국의 봉쇄정책은 성공했으며 미국과 우방국들은 한국에서 공산주의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한 값비싼 희생을 치른 것이 분명하다. 최종적인 결과를 볼때 그 희생이 가치 있는 것이었다고 역사는 결론을 내릴 것이 분명하다. ▷계속되는 남북대결◁ 한국전쟁은 총성이 멈춘지 1세대가 지났지만 아직도 남북한 국민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이 경제기적을 거두고 한소 정상회담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물적ㆍ심리적 유산은 모든 세대와 사회계급에 걸쳐 깊이 자리잡고 있다. 도쿄에서 발행되는 친북한신문의 편집인 손진형씨는 『전쟁은 민족 최대의 비극』이었다고 말한다. 휴전된지 37년이 되도록 남북한은 아직도 기술적으로 전쟁상태이며 1백51마일 휴전선에는 1백만의 병력이 마주 대하고 있다. 한국의 영화관에서는 영화상영전에 간첩과 공산주의자를 113으로 신고하라는 자막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북에서는 김일성이 또다른 전쟁 가능성을 내세워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모든 북한주민은 매년 열리는 한미 합동군사훈련 기간동안 전투비상체제하에 놓인다. 김일성은 『미제국주의자와의 전쟁경험은 금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남쪽에서는 전쟁이 재벌이라는 신흥기업군이 자랄 수 있는 혼란스럽고 독점적인 시장을 마련해 주었다. 전쟁은 남북을 합쳐 1백50만명의 사망자와 실종자를 낳았으며 수백만명의 인구가 고향을 떠나게 만들었다. 인구의 대량이동은 도시화를 촉진시켰다. 전쟁이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남북 모두 군인들이 정치권력을 쥐도록 만든 점이다. 남에는 장성출신의 대통령이 3명이나 되고 그중 2명은 쿠데타로 집권했다. 북에서는 전현직 고위 장교들이 김일성의 강력한 지지그룹을 형성하고 있으며 당의 고위직에 앉아 있다. 경희대 나종일대학원장은 『전쟁은 우리가 정치적으로 성숙되지 못했음을 보여줬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들을 군사적인 수단과 독재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지적한다. 아직도 남북 모두에게 분단상황은 마음속에 굳게 자리잡고 있으며 남한은 독일통일방식의 단계적 통일을,북한은 1국2체제 방식을 내놓고 있다. 한국전쟁의 사회적 영향을 연구한 서울대 김경동교수는 『전쟁이 왜,어떻게 발발했는지 분명히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우리는 당시 전쟁을 막을 통제능력이 거의 없었다』라고 진단한다. 전쟁이 한국민들에게 가치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적어도 남한은 자신들이 1950년에는 갖지 못했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힘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한ㆍ소 정상회담 이후 「동북아 역학」진단(전문가 좌담)

    ◎“한반도 긴장완화의 「지렛대」본격 작동”/크렘린,「두개의 코리아」사실상 인정한 셈/중국도 장기적으로 북한개방 유도할 듯/평양,대소의존 높아 「단절」어려울 듯/미군철수 겨냥… 전략차원서 대미접근 가능성/한ㆍ소발전은 서울ㆍ북경 개선의 촉매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간의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을 통해 수교원칙이 합의됨에 따라 양국관계는 급격히 개선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정세도 큰 변화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특히 한소정상회담을 격렬히 비난해온 북한이 이같은 사태변화에 어떻게 대처해 갈지,과연 북한도 개혁ㆍ개방정책을 추진해 갈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으며 북한­중국­소련의 북방3각관계가 어떻게 변모해갈지도 궁금하다. 이같은 문제들을 풀어보기 위해 신승권(한양대ㆍ소련정치) 박두복(외교안보연구원ㆍ중국정치) 윤병익교수(통일연수원ㆍ북한정치)의 좌담을 마련했다. □참석자 신승권교수 박두복교수 윤병익교수 ▲신승권교수=한소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관계의 급진전과 한반도의 긴장완화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한국과의 수교원칙에 합의한 소련측의 결정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적어도 금년 3월 이전까지는 북한과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한미군사동맹 관계를 인정하면서 한반도에서의 1코리아(1Korea) 정책을 고수한다는 것이 소련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한소간의 정치ㆍ경제ㆍ문화교류를 발전시킬 뿐 아니라 북한으로 하여금 대남관계를 개선토록 하고 개방과 개혁의 방향으로 압력을 가하는 2코리아(2Korea) 정책을 펴나갈 것이다. 한국과 관계개선은 하되 국교정상화까지는 가지 않겠다고 북한측에 다짐했던 소련이 금년들어 학자와 언론인 등을 통해 김일성체제를 비판하기 시작한 것도 이같은 근본적인 정책변화없이는 불가능 했을 것이다. ▲박두복교수=한소관계의 발전은 장기적으로 한중관계의 발전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중소분쟁 완화이후 한소ㆍ한중관계는 상호 보완적이고 상호 상승적인 작용을 해왔다.우리 정부의 북방정책도 이런 대전제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체제유지에 한계성 ▲윤병익교수=북한도 소련에 대해 상당히 불편한 입장을 표시할 수는 있지만 구조적으로 군사ㆍ경제면에서 대소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소련의 정책을 인정 내지 묵인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북한과 소련관계가 단절되면 공장이 가동을 멈추고 무기공급이나 수리도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수용하기는 어렵고 한소수교와 국제화해 및 한반도 정세변화 상황을 나름대로 대남정책에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2코리아 정책으로 입장을 바꾼다면 북한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조선정권과 대한민국자체를 부인하는 등의 대남전략 기본속성은 그대로 유지하되 한반도의 평화정착 분위기를 최대한 활용,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자는 등의 군사문제 타개책을 내세울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 군축과 신뢰회복,외국군의 단계적 철수를 들고 나온 것은 그런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여러면에서 체제유지에 한계가 있다. ▲박교수=중국은 대북한관계에 있어서 소련보다는 많은 제한요소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소련은 분단극복과제를 안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한반도정책을 펴나가는데 있어서 자유롭고 고르바초프 등 지도자들이 2차대전 당시 징집연령에 이르지 않았던 혁명 3세대로 실용주의적 가치체계를 갖고 있으며 군사ㆍ경제적으로 북한에 대해 확고한 제재수단을 갖고 있다. 이에 반해 중국은 대만과의 관계에서 「하나의 중국」 (1 China)정책을 고수하기 때문에 한반도정책에 있어서도 행동반경이 좁고 등소평을 비롯한 실세지도층이 혁명 1세대들이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한국을 인정하게 되면 결국 2코리아 정책을 받아들이는 꼴이 돼 1차이나원칙과 배치되는 모순을 자초하게 된다. 우리의 북방정책방향도 중국보다 행동반경이 넓은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함으로써 한중 관계발전의 자극요인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신교수=소련은 정치개혁면에서는 중국에 앞서 있지만 경제개혁면에서는 훨씬 뒤져있다. 중국은 실용주의 경제노선에 착수한지 오래고 소련은 이제서야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소간의 경제발전 경쟁과 협력이 이뤄져 북한에 개혁개방압력을 가하면 북한은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73년이란 가장 오래된 공산주의국가 소련에서 경제가 엉망이 됐고 동구권이 붕괴한 것을 보고도 북한이 계속 통제경제를 추진하는데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선택놓고 고심예상 ▲윤교수=올가을 북경 아시안게임에 노대통령이 방문하는등 중국과 접촉할 경우 한중 관계개선을 통해 중국의 1코리아정책에 중대한 변화합력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북한도 결국 남북한 평화공존모델로 갈 수 밖에 없는데 1코리아정책에서 2코리아정책으로 전환해야 하는 정책선택의 어려운 단계에 와 있다. ▲박교수=천안문사태와 동구민주개혁이후 중국의 정치상황은 전반적으로 위축돼 있다. 이같은 급진적 변화가 중국공산당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져 정책결정과정에서 이데올로기요인이 부각되고 현실주의적 목소리가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북한체제에 대한 인식도 이데올로기 요인에포함된다. 그러나 이는 외적변화에 대한 반사작용으로 과도기적 현상에 불과하다. 중국도 근본적으로는 북한의 체제변화와 개혁을 유도하는 정책을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한소관계가 한중관계발전으로 직결되지는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유리한 영향을 미치리라 본다. 중국사람들을 만나보면 한중관계는 한소관계진전보다 반발짝 늦게 따라간다고 얘기한다. ▲신교수=중국과 소련이 라이벌입장이긴 하지만 고르바초프 등장이후 한반도긴장완화와 군축문제에 있어서 한소관계가 정상화돼야 한중관계도 이를 구실삼아 북한의 비판을 받지않고 부드럽게 정상화될 수 있다는 사실에는 견해를 같이 할 것이다. 중소관계도 냉각관계를 뛰어넘어 뭔가 진전을 봐야할 것이며 작년 중소정상회담에서 뭔가 합의를 보지 않았겠는가. ▲윤교수=중국은 천안문사태이전까지는 정경분리원칙에 입각,2코리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전제위에서나마 한국과 상당한 경제접근이 있었다. 그러나 천안문사태 이후 상황이 달라져 북한과 밀착되는 징후를 보였다. 그에 비해 소련은 86년 블라디보스토크선언을 통해 아시아국의 일원임을 자처한 이래 88올림픽직전 글라스노야르스크선언에서 남북한을 같은 비중으로 취급하는 등 사실상 2코리아정책으로 가고 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소련매스컴이 김일성을 소련군대위출신으로 소규모 빨치산을 이끈데 지나지 않으며 6ㆍ25가 남침전쟁이라고 폭로한 것은 김일성위상격하 의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소국교수립상태까지 가면 평화공존은 「2개의 조선」을 조작하려는 책동이라는 입장의 북한의 1코리아정책은 수정될 수 밖에 없고 이같은 기본논리의 와해는 북한체제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박교수=북한의 1코리아정책은 유한성을 띤 시간문제다. 1코리아정책은 국제사회의 대결논리시대의 산물로서 이제 국제적인 데탕트의 물결이 한반도에까지 투영되는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남북교류가 불가피하고 서로 정치실체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북한은 진실성을 갖고 군축문제에 임해야 하며 1코리아 정책으로의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대남강경노선을 평화공존노선으로 전환하기 위해 체제변화가 불가피하다. 북한이 단기적으로는 어렵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당장은 동구의 변혁이 김일성체제를 위협,오히려 더욱 경직화되고 이념을 강조하겠지만 이는 외부자극에 대한 조건반사일 뿐이다. 김일성이 거의 80세가 다된 만큼 김정일에게 권력을 이양시키는 과정에서 어떤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라도 정치ㆍ경제개방을 촉구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신교수=김일성 사망이후 획기적인 계기가 있을 수 있고 김정일집권을 계기로 국민들에게 내놓을 수 있는 것은 경제개혁이다. 그런 의미에서 낙관할 수 있다. 북한이 석유ㆍ원자력 등 자원면에서 소련에 의존하고 있고 전력ㆍ식량난 등 경제사정이 워낙 어렵다. 소련은 지난 84년 체르넨코서기장시절 김일성의 소련방문 당시 원자력발전소 설치를 약속했지만 체르노빌 사건이후 소극적으로 변해 북한의 원자력발전소 건립자체를 주저하고 있다. ○소련ㆍ북한 갈등 예상 ▲박교수=소련이 탈스탈린화 하는데 북한이 스탈린주의를 고수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결과적으로 소련과 북한간의 갈등으로 나타나겠지만 북한의 경제ㆍ군사 구조상 지탱하는데 한계가 있다. 중국도 소련보다 먼저 탈스탈린화에 나섰기 때문에 중소가 동시에 변혁을 추진하고 이 변혁이 상호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도 천안문사태 이전에는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었다. 중국이 현재는 위축현상을 보이고 있지만 그동안의 개방정책으로 인한 빈부계층과 지역갈등의 해결을 통한 국민일치감 회복을 위해서는 경제합리화보다 정치개혁이 더 쉬운 방법이다. 중국이 난국을 슬기롭게 해결,개혁과 개방정책으로 회귀하지 못한다면 한소관계발전은 오히려 중국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신교수=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는 중국에서 배운 것이다. 만일 페레스트로이카가 없었다면 중소분쟁이 심화됐을 것이나 양국이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중소관계도 진전될 것이다. 박교수는 중국이 사회혼란 극복문제때문에 잠정적으로 위축돼 있다고 했는데 소련은 개혁과 개방을 중단할 수 없는 단계에와있다. ▲박교수=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중국의 개혁ㆍ개방정책이 2단계로 접어든다면 중소 관계발전은 북한체제를 변화시키는 엄청난 압력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신교수=현재 소련만이 북한에 개방압력을 가해도 시간문제인데 중국까지 압력에 가세한다면 북한은 그야말로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중국과 소련처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북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내부개혁 서둘러야 ▲윤교수=모든 문제는 결국 북한의 변화가능성문제로 귀착된다. 대외개방정책면에서 북한은 중국처럼 대외개방경제를 추진하되 주체사상논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조총련계기업을 받아들이는 등 변명을 추진하려할 것이다. 김일성이 지난 84년 소련과 동구를 돌아보고 이들의 경제발전상에 쇼크를 받은뒤 중국을 본받아 합영법을 실시했으나 서방자본은 거의 들어오지 않고 있다. 중국이 인민공사를 해체하고 시장경제를 부분 도입한데 반해 북한은 시장경제도입을 꺼리기 때문에 국내경제개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중국은 대내적개방의 바탕위에서 대외개방을 추진,조화를 이룰 수 있으나 북한은 국내변화는 도외시한 채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위하여 」라는 식의 교조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에 진전이 없는 것이다. ▲박교수=유물변증론에서 봐도 외적요인은 내적요인과 연관지어서만 움직일 뿐이다. 북한에서도 국가최우선 목표를 계급투쟁에서 생산력발전으로 전환시키는 내적변화가 있어야 진정한 군축과 평화공존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에서는 모택동사상과 현대화개념이 대립됐었으나 모사망후 현대화론 노선화가 이뤄졌다. 북한에도 김일성사망후 주체사상수정을 통해 78년이후의 중국이 치른 과정이 있어야 한다. ▲윤교수=현재로서는 북한의 대외경제개혁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경제개혁은 물론 정치개혁은 더욱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원민주체제가 일반적 추세인데도 북한은 김부자세습체제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로 1당독재체제의 변형인 주체사상을 더욱 확고히 하고 있다. 대내개혁이 안되기 때문에 대남정책의 변혁도 어려운 것이다.최근까지 몇차례 남북대화를 했지만 북한의 남조선해방인민민주주의 통일전선전략에는 추호의 변화도 없기 때문에 진전이 없는 것이다. ▲신교수=소련이 지금까지는 북한에 대한 개방압력을 주저해 왔다. 북한이 내부개혁을 하지 않으려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중국과 함께 설득하는 색다른 방법을 들고 나올 것이다. 북한이 아무리 철두철미한 통제사회라 해도 차우셰스쿠정권처럼 밑으로 부터 붕괴되지 않으려면 정권유지차원에서라도 지금같은 스탈린체제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소련이 김일성사망후 차기정권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겠지만 소련이 루마니아처럼 북한에도 개입할지는 알 수 없다. 소련이 전세계 천연가스생산량의 40%,석유 20%,목재 40% 등 엄청난 자원을 갖고 있는데도 미일학자들이 고르바초프가 곧 쓰러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유는 공산주의가 망해가고 있다는 얘기다. 고르바초프가 집권한 85년에 비해 요즘은 모든 물건이 비싸며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일을 잘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의욕고취요인이 없기 때문에 서방세계에서 1시간이면 할 일을 3∼4시간 동안 하고 시설마저 낙후돼 있어 근본적으로 공산주의자들은 프로레타리아 룸펜기질이 몸에 배 있는 것이다. 소련도 그런 상황인데 석유한방울 안나는 북한에서야 말할 나위도 없다. ○「폐쇄경제」날로 악화 ▲윤교수=북한은 주체적방식에 의해 자립적 사회주의민족경제를 건설한다는 목표아래 물질대신 정신적인 인센티브제를 도입하고 있다. 요즘은 잘 안되니까 물질인센티브를 병행하고 있지만. 북한이 자립경제를 한다고 나서는데 대해 소련의 타스통신은 북한기간산업 70여개가 소련에 의해 건설됐고 기술자도 소련에서 배워간 것 아니냐고 폭로하기도 했다. 북한경제의 특징은 군인력을 포함한 노동력동원을 통한 경제건설이다. 경제가 어려운데도 정치선전목적을 위한 전시효과를 노려 1백5층짜리 유경호텔까지 짓고 경영능력이 없어 싱가포르인에게 운영을 맡기기도 했다. 북한에서 4년간 농업지도를 하다 얼마전 일본으로 돌아온 조총련계농업전문가에 따르면 심각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일성의 발상으로 경사도45도까지의 산을 소위 다락밭으로 만들어 옥수수를 심도록 했는데 산을 전부 깎고나니 여름에 홍수가 지고 산사태가 나 논에까지 토사가 쌓이는 바람에 대부분의 논까지 버렸다고 한다. 세계농업기술 수준에서 인정받지 못할 비과학적인 방법을 주체적발상이란 미명아래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의 비능률성에다 주체적발상까지 겹쳐 북한경제의 한계를 앞당기고 있는 셈이다. ▲박교수=한소관계 발전이 북한을 고립화시키는 방향으로 나간다면 리더십의 특성상 중국과 북한이 관계를 강화할 수 밖에 없으며 고립화 방향이 아닐 경우 북한이 미일등 서방과 관계개선하는 방향으로 진전돼 한소관계 발전이 한중관계,나아가서는 남북한관계에 유리한 여건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윤교수=한소수교때문에 북한이 미일과 접근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고 북한이 미군유해송환등 화해제스처를 쓰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북한의 목표는 미국과 수교하려는 것이 아니다.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북한ㆍ미국간 평화협정체결을 위한 대남전략차원에서의 대미접근일 뿐이다. 한소수교원칙합의를 계기로 대남전략에 변화를 보인다면 한국정부를 승인하고 대화하며 동서독식 평화공존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통일을 원하는 대내외적 갈망분위기를 활용,군사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선전공세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단기적인 전망이고 장기적으로는 여러가지 변화요인에 의해 압박을 받게돼 결국 우리의 정책노선에 응해올 수 밖에 없지 않나 생각된다.
  • 「시위 진압」 의경이 전담

    ◎전경난동 계기로… 불만 없게/2년간 단게적 충원/근무지 이탈 모두 중징계/「전경 관리부」신설… 기강 수시 점검/치안본부,「전ㆍ의경 괸리개선안」 마련 앞으로 근무지를 이탈하거나 집단난동을 부리는 등 근무기강을 해치는 전투경찰 및 의무경찰은 불명예제대와 형사입건 등 중징계를 받게되며 중대장 등 책임자들도 감찰조사 등을 통해 지휘책임을 지게 된다. 또 치안본부 안에 경무관을 부장으로 하는 전경관리부를 설치,흐트러진 전ㆍ의경의 근무기강을 바로잡는 한편 이들에 대한 소양ㆍ덕목교육을 크게 강화할 계획이다. 치안본부는 5일 부산에서의 전경 난동사건 등 최근 들어 흐트러지고 있는 전ㆍ의경들의 근무기강과 관련,안응모내무부장관 주재로 긴급시도경찰국장회의를 열어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전ㆍ의경 운영관리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안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최근 부산 전경 기동 2개중대의 집단 난동행위는 기강을 생명으로 하는 모든 경찰관의 사기를 저하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엄청난 실망을 안겨주었다』고 지적하고『앞으로 항명ㆍ부대이탈 등 불미스런 사건이 발생하면 당사자는 물론 관련지휘관도 엄중 문책하겠다』고 밝혔다. 치안본부는 이날 회의에서 특히 최근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전경들이 군에 징집된뒤 경찰로 넘어와 시위진압 등에 동원되는 것에 불만을 품은 것으로 보고 오는 92년까지는 시위진압기동대를 모두 지원자인 의경으로 충원하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전국 12만8천여명의 경찰 가운데 전ㆍ의경이 43%인 5만5천여명에 이르고 있는데 비해 이를 관리하는 부서는 총경을 과장으로한 전경관리과와 전경인사과 등 2개과에 그쳐 효율적인 관리가 어려운 점을 감안,경무관이 총괄하는 전경관리를 신설하고 그아래 전경기획과 등 3개과를 두기로 했다. 경찰은 또 치안본부에 정훈관,각시도 경찰국에는 감찰반과 정훈반을 두어 전ㆍ의경의 신임 교육과정에서부터 품성교육과 집체소양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근무기강을 수시로 점검하기로 했다.
  • 「발트3국 평의회」50년만에 부활/3국정상,정치협력 선언

    ◎「탈소」공동전선구축 합의/소군징집 통제방안도 논의 【탈린(소 에스토니아공) AFP AP 연합 특약】 소련 발트해연안 3개공화국의 최고회의의장(대통령)들은 12일 정치협력선언에 서명,발트3국 최고지도자협의체인 발트평의회를 50년만에 부활시켰다. 지난 34년 창설됐던 발트평의회는 40년 소련에의 합병과 함께 해산됐었다. 발트평의회는 3개공화국의 대통령과 총리,외무장관들로 구성되며 정기적으로 회합을 갖고 탈소 독립운동실현을 위한 공동전선을 모색,각 공화국 정부에 대해 구속력을 띠지 않는 경고 등을 하게 된다. 이번 정상회담을 주도한 아르놀드 루펠에스토니아 최고회의의장은 회담에 앞서 발트해 3국 지도자들이 이번 회담을 통해 정치협력선언,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 부시 미국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공동성명 등 4가지 문서에 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식통들은 또 이들 3개국 최고회의의장들이 발트해 공화국주민들의 춘계 소련군징집을 통제하기 위한 공동노력방안을 논의할 것 같다고 전했다.
  • 일본은 도덕적으로 거듭나야(사설)

    한국의 문화계를 대표하는 1백여명의 지도층 인사가 재일한국인에 대한 처우개선을 촉구하는 성명을 내놓았다. 여기 담긴 의지는 전체한국인의 뜻을 집약해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명서에서 밝혔듯이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한 일본측의 「성의있는 노력」이다. 추상적인 미문과 수사만을 늘어놓으며 절묘한 방법으로 회피하는 일본정부의 태도에 의심과 환멸을 느끼고 있는 것이 한국국민의 심경이다. 한국도 이제는 충분히 성장한 실력있는 나라다. 우리국민이 남의 나라에 가서 억지를 쓰며 치대거나 얹혀지내며 천덕꾸러기가 되기를 바라거나,그래야 할 피치못함이 있는 나라가 아니다.그러나 재일한국인은 다르다. 그들은 이미 일본에 옮겨 심어져서 그곳 토양에 1백년 가까이 뿌리내려진 가계이고 후생이다. 그들이 비록 3세이고 4세라 할지라도 그들의 그곳 삶을 근원지어준 것은 일본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뿌리뽑힌 채 일찍이 타국살이를 하는 운명과 만나지 않았더라면,발전하는 조국에서 지금쯤 떳떳하고 확고한 삶의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못했다. 그래서 세금도 내고 근로도 하면서 일본에 기여하며 그곳 체질로 살아온 것이다. 식민지 피해의 당대와 멀어졌다고 해서 그들을 「보통 외국인과 같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런 논리는 그동안 누차 되풀이해 온 일이므로 거듭 펼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은,한국인들이 지닌 「진솔한 목소리」를 일본은 이번의 「성명」에서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끼리 주고받는 외교적 교섭이나 정치인의 목소리는 과장과 굴절 또는 흥정으로 윤색도 되지만 이번의 각계 대표가 내놓은 성명은 그렇지 않다. 이것은 국민감정을 대변한 꾸밈없고 각색없는 목소리다. 지난 86년 일본의 한 고교생은 우연히 잡목더미에 가려져 있던 「대본영」 지하갱 입구를 발견했다. 계속 탐사하고 생존자를 찾아내어 확인한 결과 한인들이 이 갱을 파느라고 노예처럼 일하다 1천명도 넘게 죽어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수성 예민하고 자부심 강한 젊은이들이 자기 조국 일본에 느꼈을 실망과 고통을 짐작할 수 있다. 오죽하면 일본 고교생이 「한인 생존자」를 찾아 달라고 호소하겠는가. 불행하게도 일본땅은 조금만 깊이 파면 한국인의 원한이 삽끝에 묻어나곤 한다. 배상을 기피하기 위해 45년동안 깊숙이 감춰두었던 강제징집한 한국인 명단의 일부가 이번에 기어이 밝혀진 것도 필연적인 일이다. 관련자료가 없다느니 조사가 안됐다느니,온갖 핑계로 숨긴 문서지만 끝내 숨어주지 못했다. 무엇이든 써놓는 기록귀같은 국민이 일본이다. 경제적 능력을 과시하며 지구촌에 땅투기를 하는 일본의 행태는 세계시민의 빈축을 산다. 아마도 그들은 이 투기가 그들의 후손을 위함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발밑에 원한 가득한 영혼들을 암매장한채 그런 땅투기가 무슨 복을 전해 주겠는가. 그보다 급한 일은 가해자적인 부도덕성을 세척하고 도덕적으로 거듭나는 일이다. 그러지 못하면 정신적으로는 깊은 상처를 지닌 채 돈만 많은 국민이 되고 만다. 진정한 한국인의 목소리가 들릴때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그걸 듣고 스스로 치유하는 노력을 기울이라. 그것이 피차에 불행을 줄이는 일이다.
  • 일,“군징용 한인명단 보관”/후생성

    ◎군속포함/배상 꺼려 45년간 숨겨오다 첫시인/한일 민간단체들 확인 【도쿄 연합】 일본정부는 태평양전쟁 수행을 위해 일제때 군인·군속으로 징집해간 한국인명부를 현재 보관하고 있으면서도 보상기피등을 위해 해방이후 45년이 지난 지금까지 「관련문서 유실」을 이유로 명단공개 거부와 이의 대한인도를 외면하는등 비인도적인 처사로 일관해온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한국인에 대한 보상을 촉구하는 일본내 민간단체인 「일본국에 대해 공식진사와 보상을 청구하는 재판촉구모임」 대표4명과 한국내 희생자 유가족들의 모임인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양순임상임이사등 5명이 21일 하오 사회당 이토(이동수자)의원의 주선으로 일본 후생성을 방문,강제징용·징병자명단,희생자명부 등을 요구한 데 대한 후생성관리들의 답변과정에서 확인됐다. 후생성측은 이날 한국인 징용자들에 대한 끈질긴 명단공개요구에 대해 처음에는 『관련자료가 없다. 조사가 안됐다』며 발뺌하다 『일본군인·군속의 명단등은 있으면서 유독 한국인 명단만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고 반박하자 『징용자·정신대 등에 관한 명단은 없으나 군인·군속의 명단은 있다』고 실토했다. 이들 관리들은 그러나 군인·군속중 사망한 사람의 명단공개요구에 대해서는 사망자와 생존자의 분류가 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끝까지 공개를 거부했으며 군인·군속으로 동원된 구체적인 숫자에 대해서도 언급을 피했다. 후생성이 강제징용·징병자명단과 관련,보관유무를 확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정부는 그동안 패전과 함께 대한인력수탈에 관한 자료가 유실됐다는 이유로 한국내 유가족들의 간곡한 호소에도 불구,명단공개를 거부해 왔다. 일본이 지금까지 공개한 명단은 2만1천9백19명의 군인·군속사망자명부(65년 한일회담시 제공)뿐으로 그이외에는 징용자·징병자 총수조차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군인·군속으로 끌려간 한국인은 37만여명으로 이중 15만명이 행방불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후생성에는 4만명의 희생자명단이 보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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