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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9)이득윤과 ‘서계이선생가장결’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9)이득윤과 ‘서계이선생가장결’

    ‘정감록’에 수록된 예언서의 저자들 중에도 비교적 낯선 인물이 있다. 서계(西溪) 이득윤(李得胤·1553∼1630)이 그런 경우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서계 역시 조선시대엔 상당히 유명한 예언가였다. 서계가 살던 16세기는 우리 역사상 별들의 시대였다. 퇴계 이황, 화담 서경덕, 하서 김인후, 율곡 이이, 고봉 기대승, 우계 성혼, 남명 조식 등 조선 유학사(儒學史)의 거장들이 일시에 배출되어, 성리(性理)를 궁구했다. 노수신·백인걸·유희춘임억령 등 선비의 기개를 떨친 이도 많았고, 최경창·백광훈·이달 등 시문의 대가도 적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북창 정렴, 토정 이지함, 격암 남사고 등은 신선의 세계를 드나들어 이채를 띠었다. 불가(佛家)에도 서산대사 같은 거물이 있었다. 위에 언급한 16세기의 인물 가운데 상당수는 예언서의 저자로도 유명하다. 우선 토정과 북창이 그렇고, 격암과 서산대사도 예외는 아니다. 서계도 이 부류에 속한다. 서계는 유학자인 동시에, 역술가요 음악가였다. 그가 지었다는 ‘서계이선생가장결’(西溪李先生家臧訣)은 현재 ‘정감록’의 일부로 되어 있다. 서계는 누구였는가? 그의 저술로 알려진 ‘서계이선생가장결’은 또 어떤 책인가? 그리고 서계가 살던 16세기가 ‘예언가들의 전성시대’로 불릴 수 있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서계 이득윤이란 예언가 서계는 어려서부터 성리학 공부를 많이 했다. 선조 21년(1588년)에는 진사(進士)가 되었으므로, 그의 실력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서계는 수학과 역학(易學)에도 밝았다. 당시 역술의 대가 박지화(朴枝華)를 방문해 수준 높은 토론을 펼쳤다 하며, 이를 계기로 역학의 대가로 이름을 얻었다. 그는 우주자연의 생성과 운행원리에 관한 전문가였다. 쉽게 말해, 서계는 주역 점을 잘 치기로 유명했다. 아마 그런 덕택이었겠지만 정유재란이 일어나던 1597년 서계는 관직에 등용되었다. 처음엔 희릉 참봉(禧陵參奉)에 임명되었고 얼마 후 왕자사부(王子師傅)가 되었다. 이밖에 한두 가지 벼슬을 더 지냈다. 그러다 광해군이 집권하자 조정에서 물러났다. 오늘날 충북 청원군 미원면이 서계의 고향이었다. 그는 낙향 직후인 광해1년(1609) 미원면 일대 9곳에 이른바 ‘옥화구곡’(玉華九曲)을 정했다. 일찍이 성리학의 대가 주희(朱熹)가 송나라 때 푸젠성 무이산에 머물며 무이구곡(武夷九曲)에 묻혀 지낸 사실을 모범으로 삼은 것이다. 서계는 청원군 미원면을 남북으로 흐르는 박대천을 따라 하류에서 상류 쪽으로 만경대(萬景臺), 후운정(後雲亭), 어암(漁巖), 옥화대(玉華臺), 천경대(天鏡臺), 오담(鰲潭), 인풍정(引風亭) 및 봉황대(鳳凰臺)를 두었다. 옥화구곡이란 이름이 암시하듯 구곡 가운데서 서계에게 가장 중요한 곳은 제4곡 옥화대였다. 옥화란 옥구슬이 떨어지듯 아름답다는 뜻이다. 옥화대의 이름에서 유래한 미원면 옥화리엔 서계가 지은 추월정(秋月亭)도 남아 있다. 서계처럼 ‘구곡’을 정해놓고 자연을 벗 삼아 학문에 침잠하는 태도는 16세기 이후 선비들 사이에서 널리 유행했다. 전라도 해남의 고산 윤선도 같은 이도 ‘고산구곡’을 노래한 것으로 유명하다. 무려 십여 년 동안이나 서계는 옥화구곡에 칩거했다. 이 때 그는 기호지방의 대표적인 성리학자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과 서신을 통해 태극도(太極圖)와 역학에 관해 토론을 벌였다. 여기서도 재차 확인되듯, 일평생 서계의 가장 큰 관심거리는 역학이었다. 그에겐 또 하나 전문분야가 있었다. 음악이었다. 정두원(鄭斗源)을 상대로 거문고에 관한 지식을 교류했는데, 나중에 서계는 한국의 역대 금보(琴譜·거문고 악보)를 집성하여 ‘현금동문유기’(玄琴東文類記)를 만들었다. 일종의 거문고 악보였고, 이를 통해 서계는 한국음악사에 길이 남을 자료를 남겼다. 서계가 못마땅하게 여긴 광해군이 축출되고 인조가 즉위하자 그는 관직에 복귀했다. 선공감정(繕工監正)을 거쳐 충청도 괴산 군수에 임명됐다. 바로 그 때의 일이다.‘실록’에 보면, 서계는 서울에 올라와 국왕에게 사은(謝恩)하는 길에 의미심장한 예언을 했다. 서울 사람들의 음성을 듣고 나서 서계가 이렇게 말했다.“아직도 쇳소리가 거세게 나오고 있으니, 난리가 끝이 안 났다.” 그 뒤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사람들은 서계의 예언이 맞았다며 그의 예언능력에 감탄했다. 예언가 서계는 매우 유능한 지방관이기도 해 통치 실적이 당대 최고였다 한다(실록, 인조8년 5월28일 정미). 요컨대, 서계는 주역(周易)의 대가로 출세해 훌륭한 목민관(牧民官)이 되었고 정묘호란을 예언하기도 했다. 물론 예언가 서계의 명성은 그의 탁월한 주역 실력에 기인했다. 뒷날 서계는 후손과 후학들에 의해 청주 신항서원(莘巷書院)과 귀계서원(龜溪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 그들은 서계를 주역의 대가로서보다는 성리학자의 전형으로 기렸다. 이것은 예언가 서계에 관한 일반 민중들의 기억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다. ●‘서계이선생가장결’의 내막 서계가 남겼다는 예언서의 제목엔 ‘가장결’이란 용어가 포함돼 있다. 말 그대로라면 집안에 보존되어 오던 비결이어야겠는데 실은 그렇지 않았다. 앞서 말한 대로 후손과 후학들이 기억하는 서계는 근본적으로 성리학자였다. 그런데 그 ‘가장결’의 내용을 보더라도 그것은 서계의 집안에 전승된 비결은 아니었다. “선생이 사기막(沙器幕)에 살 때 이웃에 살던 최생(崔生)이 와서 여쭸다. 임진(壬辰)의 화는 피할 수 있었으나, 앞으로 2백여 년 뒤엔 반드시 큰 난리가 일어날 텐데, 그 일을 조목조목 적어두어 훗날을 도모하는 것이 어떨까요? 그러자 선생이 그럼 네게 말해줄까 라고 대답했다.”(서계이선생가장결) 이 말을 곧이곧대로 따른다면, 문제의 예언서는 서계 집안에 전해진 것이 아니었다. 서계의 제자로 추측되는 최씨가 애써 부탁해서 얻은 예언서였던 만큼 그 전승과정에서도 최씨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봐야 한다. 과연 최씨는 서계의 예언을 받아 적었을까? 우선 당장 정확히 판단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다만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은 이 예언서가 ‘정감록’과 대체로 일치한다는 점이다. 잠시 예를 들어보자. “적호(赤虎):이인(異人)이 남쪽으로부터 오니 한곳에 소동이 일어난다. 왜인(倭人) 같으면서도 왜인은 아닌데 화친을 주장한다.(중략) 청계(靑鷄):천리 강산이 셋으로 나뉘니 어찌할 것인가.(중략) 흑룡·현사(黑龍·玄蛇): 푸른 옷과 흰옷이 함께 동쪽과 남쪽에서 나온다.”(‘서계이선생’) 위에 인용한 내용은 말세의 시운을 말하는 것인데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말세엔 이인 또는 진인이 등장한다. 둘째, 국토가 분단된다. 셋째, 남동쪽에서 정체불명의 침략군이 쳐들어온다는 것이다. 참고로 말해, 인용문에 나오는 ‘적호’와 ‘청계’ 같은 것은 60갑자를 이용해 연도를 표시한 것이다. 예컨대 ‘청계’의 ‘청’은 갑(甲)과 을(乙),‘계’는 유(酉)를 가리킨다. 청계는 곧 을유년이다.‘서계이선생은’ 을유년에 천리강산이 셋으로 나뉜다고 하였다. 이미 말했다시피 3국 분국설은 18세기 이래 정감록의 골자를 이뤘다.‘서계이선생’은 그 전통에 충실한 예언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일제식민지에서 해방되던 1945년이 바로 을유년이었다. 예언서의 내용과는 달리 나라는 셋으로 쪼개지진 않았다. 하지만 그 해에 남북으로 분단된 것은 틀림없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서계의 예언이 또 적중했다고 믿었다. 그것은 물론 우연이었다. 적호(병인)에 이인이 나와 화친을 주장한다는 내용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적중했다고 볼 수 있다. 무리한 점이 없지 않으나 고종 3년의 병인양요(1866)를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흑룡(임진) 현사(계사) 연간에 정체불명의 외국군대가 침략해 온다고 본 것은 전혀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만일 병인양요에 관한 예언이 들어맞았다면 그 점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병인양요를 겪은 뒤에 창작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서계이선생’은 일단 1860∼1870년대에 창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서계이선생’의 저술연대에 대해 좀더 생각해보자. 첫째,‘서계이선생’이 19세기 후반에 저술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그 근거는 예언서에서 발견된다.“이상하도다, 세상의 재난이여! 병란도 아니요, 칼날도 아니로다. 가뭄이 아니면 수재요, 흉년이 아니면 역병이다.”(‘서계이선생’) 여기서 보듯, 이 예언서에서 거론되고 있는 말세의 가장 중요한 조짐은 외침이나 내전을 비롯한 전쟁이 아니었다. 문제는 천연재해와 전염병이었다. 인플루엔자와 장티푸스, 콜레라가 한국을 강타해 많은 피해를 주었던 시기에 ‘서계이선생’은 쓰여졌다고 본다. 가뭄과 홍수가 번갈아가며 민중을 몹시 괴롭히던 때 ‘서계 이선생’을 빙자한 말세의 예언이 나왔다고 추정된다. 그 때는 다름 아닌 19세기 후반이었다. 그러나 아직 갑오동학농민전쟁이나 청·일전쟁 같은 대사건이 터지기 전이었다. 그렇다면 병인년(1866) 이후 갑오년(1894) 이전에 저술됐다는 이야기다. 둘째,19세기 후반 창작설을 뒤집을 만한 근거도 ‘서계이선생’에서 발견된다. 문제의 예언서를 자세히 분석해보면 서계가 활동하던 16세기의 사정을 반영하는 부분도 있다. 이 기회에 ‘서계이선생’의 특징을 간략히 요약해 보자. ●‘서계이선생가장결’의 특징 이 예언서의 특징은 세 가지다. 첫째, 위에서 언급한 대로 말세의 징후를 전염병과 자연재해에서 찾았다는 점이다.‘정감록’은 대체로 전쟁의 발발을 말세의 시작으로 본다. 둘째, 피란지를 충청도, 그것도 주로 충청북도에 설정하였다는 점이다. 충북 보은에 있는 속리산의 증항(甑項), 황간(黃澗)과 영동(永同) 사이, 청주(淸州) 남쪽과 문의(文義) 북쪽, 옥천(沃川)이 주요한 길지로 부각된다. 충청남도의 경우 진잠(鎭岑)과 공주의 유구(維鳩)와 마곡(麻谷)도 거론된다. 길지로 선정된 지역이 충청북도에 많고, 특히 청주와 보은을 중심으로 사방에 배치된 점이 인상적이다. 실제로 서계 이득윤의 고향이 충북 청원군 미원면 옥화리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연치 않은 것 같다. 설사 말세의 징조에 관한 예언은 서계의 붓끝에서 직접 나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길지에 관한 언급은 서계와 모종의 관련이 있었을 법하다. 서계와 동시대의 인물이던 격암 남사고가 그랬듯, 서계도 자기 고향을 중심으로 길지를 논의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셋째, 이 예언서엔 부지런히 농사짓는 것이 말세를 헤쳐 나가는 최고의 방법으로 돼 있다.“이런 세상을 맞아 남편은 땅을 갈고 아내는 베를 짜되 벼슬자리에 오르지 말고 농사 짓는 데 부지런히 힘씀으로써 스스로 살길을 버리지 않도록 하라.”고 하였다. 또 이런 구절도 있다.“밭이여, 밭이여!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농사일에 진력하면 난세를 이겨낸다고 주장한 것이 흥미롭다. 이것은 여느 예언서와는 다른 점이다. 간혹 ‘정감록’에 밭(田) 또는 개활지에 살길이 있다고 된 부분이 있긴 하다. 하지만 ‘서계이선생’처럼 뚜렷하게 독농(篤農)을 주장한 경우는 없다. 굳이 부자가 될 필요는 없다고 말하면서도 ‘서계이선생’은 힘써 농사짓기를 거듭 강조한다. 이런 대목은 생전에 훌륭한 지방관으로 이름을 날리던 서계의 진심과 통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계이선생’엔 비록 부분적으로나마 서계의 본뜻을 담고 있는 대목도 있지 싶다. 그러나 어떤 부분은 서계가 작고한지 300년가량 지난 19세기 후반, 그 이름을 빌려 위작한 것으로 봐야 옳겠다. ●16세기는 예언가들의 전성시대 신기하게도 서계가 활동하던 16세기에는 문화계에 많은 별들이 등장했다. 특히 그 가운데 이름난 예언가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쏟아져 나왔다. 왜 그랬을까? 어쩌면 이것은 내 억단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 이유를 나는 다음의 세 가지로 짐작한다. 첫째, 당시 사회가 무척 불안정했다는 점이다.16세기에는 여러 차례 사화(士禍)가 일어나 억울하게 핍박을 받는 선비들이 많았다. 그들은 자연히 인간의 길흉화복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고, 그런 문제를 직접 연구하는 선비들도 생겨났다. 토정 이지함과 북창 정렴 등은 그 대표적인 경우다.16세기 후반에 이르러 당쟁이 심해졌다. 설상가상으로 왜적이 침략해 사회는 위기감에 젖어들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은 16세기에 활동한 기인(奇人)과 이승(異僧)의 언행에서 예언을 발견하려는 분위기가 더욱 강화됐다. 둘째,16세기까지만 해도 한국의 문화계는 성리학 일변도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그 시기엔 성리학계에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대두해 자웅을 겨뤘다. 하지만 조선의 사상계는 아직 그다지 경화되지는 않았다. 이 시대의 유학자들은 성리학의 여러 학설에 골고루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유학자들은 성리학의 대가들이 이단으로 지목한 불교, 도교 및 음양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한 마디로, 학계의 분위기는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런 까닭에 격암 남사고의 경우처럼 역학 또는 음양학의 대가들도 사회적으로 널리 인정을 받았다. 이 번호의 주인공 서계 이득윤 역시 그러했다. 셋째, 한국역사상 드물게 지방문화가 융성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사실 통일신라시대는 물론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고급문화의 생산과 소비는 수도에서만 가능했다. 그 시대엔 지방에 고급문화가 거의 존재하지 않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중앙과 지방의 문화적 편차는 조선시대에 들어가자 급격히 줄어들었다. 중국에서 창안된 강남농법(江南農法)이 전해지면서 지역개발 붐이 일어났고, 새 시대의 국가적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의 이상에 따라 전원문화(田園文化)가 고급문화로 평가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16세기에는 경상, 전라, 충청도 각지가 경제적인 면에서 골고루 개발됐고, 그 문화적 수준도 서울과 비등하였다. 각지에 고급문화의 거점이 들어섬으로써 성리학이든 역술이든 대가들이 대거 배출되었다. 예컨대 남사고는 경상도 출신이며, 이지함과 이득윤은 충청도 출신이었다. 서산대사는 평안도에서 자라나 전라도와 강원도를 비롯한 각지에서 활동했다. 조선 후기에도 사회적 불안은 수그러지지 않았다. 어떤 점에서는 더욱 심해졌다고까지 하겠다. 지방의 문화적 수준은 여전히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16세기에 비해 서울과의 문화적 편차는 더욱 커졌다. 사상적인 면에선 어떠했나? 이른바 ‘이단’(異端)이 공식적인 논의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심지어는 성리학 내부에서도 사상적 통일을 강조하는 경향이 지나쳤다. 지배층이 내세운 이론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멀쩡한 성리학자들이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려 배척되었다. 이처럼 사회분위기가 경직되다 보니 새 예언가가 ‘공식적으로 탄생’하기란 불가능했다. 예언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더욱 늘었지만 누구도 자기 이름을 내걸고 예언가로 행세할 수는 없는 분위기였다. 이런 판국이라 16세기를 수놓은 예언가들의 화려한 이름은 계속 도용되었다. 그러지 않아도 본래 예언가로 정평이 나있던 토정이나 서계의 이름을 빌려 새 예언서가 여러 차례 만들어졌다. 그와 더불어 그들은 해묵은 명성을 더욱 드날렸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4) ‘원조’ 예언자들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4) ‘원조’ 예언자들

    언제 누가 무슨 예언으로 세상을 움직였을까. 시대의 변천에 따라 예언자의 계보도 많이 달라졌다.20세기 초엔 손병희를 비롯한 신종교단체 지도자들이 ‘정감록’을 근거로 ‘후천개벽’을 예언했다. 그에 앞서 조선 후기에는 풍수지리와 점술에 밝은 ‘술사(術士)’들이 예언자로 활동했다. 그들은 정권에서 소외된 이른바 ‘원국지사(怨國之士)’들과 연합해 새 왕조의 창립을 꿈꾸었고,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예언서 ‘정감록’을 민간에 유포시켰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좀더 다양한 부류의 예언자들이 발견된다. 우선 고려 후기에는 미륵불의 화신이라고 주장하다가 사기꾼으로 단죄된 사람들이 있었다. 사실 고려시대만 해도 국가는 정치적 예언을 독점 관리하였으며, 이를 위해 천문과 지리 등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술관(術官)을 따로 설치했다. 국가가 예언을 제도적으로 독점하는 경향은 이미 고대로부터 비롯됐다. 우리와 이웃한 고대 중국은 물론, 서양문명의 뿌리로 알려진 로마제국에서도 정치적 예언은 국가의 통제를 받았다. 정치적 예언은 허가받은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만큼 고대사회에서 예언의 역할은 중요했다. 한국 고대의 예언자들은 크게 네 가지 종류로 구분된다. 왕, 무당, 일관 및 승려가 그들인데, 이들은 예언의 원조였다.‘정감록’의 가장 깊숙한 뿌리였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신성한 왕들의 예언능력 고대엔 왕들이 직접 예언자 역할을 담당했다. 예컨대 신라 선덕여왕이 그랬다.‘삼국유사’에 나오는 설화인데 비교적 널리 알려진 이야기라 줄거리만 간단히 언급하겠다. 영묘사 옥문지에 개구리 떼가 모여 여러 날 동안 울어댔다. 이것을 보고 여왕은 여근곡이란 곳에 백제 군사가 잠복해 있는 줄을 알아냈다. 개구리는 눈이 툭 불거져 있어 성난 모습을 하고 있으므로, 병사로 해석했다. 개구리가 울던 옥문은 곧 여자의 생식기인데 여자는 음이요, 빛깔로 말하면 흰색, 방향으로는 서쪽이다. 여왕은 적군이 서쪽에 있음을 짐작했다. 그런데 남근이란 여근 속에 들어가면 죽는 법이라 여근곡의 적군은 물리치기가 쉬울 것으로 판단했다. 선덕여왕의 예언은 사물의 형태, 이름, 빛깔이 당시 사람들이 공유한 상징체계의 틀 안에서 이뤄졌단 점이 주목된다. 역사가들은 이 설화를 예로 들어 선덕여왕은 개인적으로 대단한 능력이 있었다든가, 또는 여왕의 권위가 만만치 않았다는 주장을 편다. 여기에 덧붙여 나는 한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고대의 왕은 신성시 됐는데, 왕의 초월적 능력에 대한 기대가 그 이면에 자리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집트의 파라오나 중국 고대의 진시황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신성한 능력의 소유자로 간주돼, 사시사철 천지의 순조로운 운행을 알리는 달력을 공포할 권리가 있었다. 심지어 고대 동양에서는 신기한 동식물의 출현, 별자리의 움직임을 비롯해 갖가지 천문 현상, 바람과 비 등 일체의 자연 현상에서 하늘의 뜻을 발견하고자 했다. 자연환경의 사소한 변화에도 한 나라의 정치적 공과가 반영되어 있다고 믿었다.‘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물론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도 이에 관한 기사가 수없이 많다. 왕은 이 모든 현상의 이면에 암시된 하늘의 뜻을 정확히 읽고 적절히 대응해야만 됐다. 그것이 하늘과 백성에 대한 왕의 의무였다. 이런 점이 지나치게 강조되다 보니 한국 고대엔 왕이 흉년이나 자연재해에 대해 직접 책임을 져야 됐다. 부여에선 여차하면 왕을 바꾸기까지 했다고 한다. 부여 왕은 정치적 수장이자 최고의 사제로서 책임을 져야 했다. 부여 사람들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하늘의 의지가 절대적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전쟁이 벌어지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소를 잡아 그 발굽 모양으로 길흉을 점칠 정도였다. 일종의 동물 점(占)이 애용되었던 것인데, 그 방법이 중국 고대 은(殷)나라의 갑골점(甲骨占)과 비슷해 보인다. 고대에는 아직 세속적인 지식과 종교적인 신앙심이나, 정치권력과 종교적 권위를 별개의 것으로 구분하지 못하였다. 그런 가운데 왕은 최고 권력자이자 종교적으로 신성한 존재로서 하늘의 뜻을 정확히 읽어내야 된다는 사명을 떠안게 됐다. 심한 경우, 예언과 주술의 능력이 부족한 왕은 퇴출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상적인 왕은 선덕여왕처럼 예지 능력을 구비했어야 됐다. ●궁중의 무당 또는 일관들, 예언 전문가로 국정에 간여해 시일이 흘러감에 따라 정치와 종교는 점차 분리되었고, 정치권력이 종교적 권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왕 노릇을 하는 데는 여전히 정치적 예언능력이 요구되었지만, 왕이 직접 예언자여야 할 필요는 사라졌다. 왕은 궁궐 안에 예언자들을 고용했고, 그것으로 족했다.‘삼국사기’에 보면 이미 백제의 초창기인 온조왕 때,‘일관(日官)’이란 전문가가 측근으로 기용돼 있었다. 어느 한 해엔 왕궁의 우물물이 갑자기 넘쳤고, 도성에 사는 어떤 백성의 집에서 말이 소를 낳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더욱이 그 머리는 하나였으나 몸은 둘이었다. 이런 변고(?)에 대해 일관이 해석을 내놨다.“우물물이 갑자기 넘친 것은 대왕이 크게 세력을 일으키게 될 징조입니다. 소가 머리는 하나인데 몸이 둘인 것은 대왕이 이웃 나라를 병합하게 될 징조입니다.” 예언은 맞아들었다. 얼마 후 온조왕은 진한과 마한을 병합하는 데 성공했다. 일관의 정체가 과연 무엇일지 궁금하다. 고구려에서는 일자(日者)라고도 하였다. 그는 천체의 이상현상을 예언으로 풀이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예컨대 149년(고구려 차대왕 4년) 5월에 다섯 별(歲星 또는 木星,熒惑 또는 火星,太白 또는 金星,辰星 또는 水星 그리고 鎭星 또는 土星)이 동쪽 하늘에 모였다. 일자가 보기에 흉한 조짐이었다. 그러나 그는 왕의 마음에 거슬리면 공연히 화를 당할 수도 있다고 판단해,“임금의 덕”이 있다는 증거라고 거짓으로 둘러댔다. 이 이야기에서 보듯, 늦어도 2세기에는 천문에 정통한 직업적인 예언자들이 고구려 왕실에 존재했다. 일자는 이를테면 전문직 관리로 왕을 보좌했다. 고구려 왕실에는 또 다른 부류의 예언자들도 있었다. 역시 고구려 차대왕 때의 기록이 참고가 된다. 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마침 하얀 여우가 보이기에 활을 쏘았다. 그러나 맞히지 못해 떨떠름해했다. 왕은 ‘무사(巫師)’에게 이 일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스승 사(師)’ 자를 붙여 무사라 일컫는 데서 짐작되듯, 최상급의 무당이었다. 무사는 그 일이 아주 나쁜 징조라고 말했다. 여우는 요사스러운 짐승인데 하물며 그 빛깔이 하얗다면 더욱 괴이한 일이라 했다.“임금님은 하늘의 뜻을 두려워하여 덕을 닦고 잘못을 반성하십시오. 만일 임금님이 덕을 닦으시면, 화가 변하여 복이 될 수 있습니다.” 왕은 화가 치밀어 올라 이렇게 간언하는 무사를 죽여 버렸다. 나라 안의 최고 무당으로서 예언자는 자연 현상에 은밀하게 담긴 하늘의 뜻을 제대로 알아맞혀야 했다. 여기서 반드시 언급돼야 할 한 가지 중요한 사항이 있다. 무당은 자연 현상의 예언적 의미를 캐낼 때 현실정치에 깊숙이 개입할 수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들의 정치적 개입은 위의 이야기가 상징하듯 상당한 위험이 뒤따랐다. 우리에게 삼국통일의 명장으로 널리 알려진 김유신만 해도 본래는 고구려의 무당이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는 전생에 고구려의 무당 추남이었다 한다. 추남은 천지자연의 여러 현상을 예언으로 풀이하는데 능했다. 뿐만 아니라 점술에도 밝았다. 하지만 고구려 왕비의 뜻을 거스른 바람에 무고하게 죽음을 당했고, 이를 복수하기 위해 적국 신라의 귀족 가문에 환생했다는 이야기가 있다.‘삼국유사’에 보면, 고구려의 연개소문 역시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적국의 장수로 환생하였다고 했다. 환생에 얽힌 전설이 사실이었는가 하는 문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점은 추남이든 또는 차대왕 때의 무사든 국가의 운명을 바로 예언해야 될 사명을 띤 무당들이 왕의 곁에 포진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과 별도로 천문에 밝은 일자들 역시 예언을 임무로 삼았다. ●명산대천과 시조 사당의 제관들, 국운을 예언하다 7세기의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얼핏 무당과 비슷해 보이지만 엄밀한 의미로는 구별되는 새로운 부류의 예언자들이 등장했다. 사제 또는 제관(祭官) 즉, 나라의 중요한 제사를 담당하던 종교인들이 예언자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고구려 말기인 보장왕 때 일이다.654년(보장왕 13년) 4월, 마령 고개 위에서 신인(神人)이 나타나 고구려의 멸망을 예언했다. 마령의 신인이란 산신령을 가리킨 것이 거의 틀림없다. 신라의 경우 김유신의 전기를 읽어보면 삼산(三山)의 여신들이 국운을 수호하는 신으로 언급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고구려의 마령도 국가적으로 중시되던 명산이며, 그 곳의 산신이라면 특별한 신앙대상이 아닐까 한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마령 산신의 예언을 청취한 사람은 결코 평범한 사람일 수가 없다. 그는 산신령의 제사를 전담하는 사제였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딱히 고구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삼국에는 저마다 국가적인 제사의 대상이 정해져 있었다. 유명한 산천과 국가의 시조묘(始祖廟) 등이 신앙 대상이었다. 이들 종교시설을 관리하는 사람들도 따로 있었다. 고구려 요동성(遼東城)만 해도 시조 주몽(朱蒙)의 사당이 설치돼 있었는데 그에 얽힌 이야기는 마침 예언자에 관한 우리의 논의에 도움이 된다. 보장왕 때 당나라 장수 이세적(李世勣)이 고구려를 정복하기 위해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그 성 아래까지 쳐들어 왔다. 당나라 군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달아 성을 공격했다. 당 태종까지 친히 합세해 요동성을 수십 겹으로 에워싸 북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요동성 주민들의 사기는 저하됐고 성은 함락직전이었다. 바로 그때 주몽 사당을 관리하는 사람이 나섰다.“우리가 모시는 주몽 사당에는 철판을 이어 만든 갑옷이 있고 날카로운 창이 있다. 전해오는 말로 이것은 전연(前燕·249∼370) 때 하늘이 내려 보냈다고 한다. 지금 적에게 포위되어 형세가 위급하다. 미녀를 단장하여 주몽 신에게 아내(‘婦神’)로 바치자.” 그의 제안대로 미녀를 바친 다음 제관이 다시 말했다. 주몽이 기뻐하시므로 성은 반드시 지켜질 것이란 이야기였다. 그러나 요동성은 바로 함락되고 말았다. ‘삼국사기’에는 주몽 사당의 제관을 단순히 무당(‘巫’)이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크게 괘념할 일은 아닐 성싶다. 요동성의 함락에 관한 내용은 고구려의 적국인 당나라 측의 사료를 거의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그 사당을 보호하고 관리할 ‘사제’ 또는 ‘제관’이 없었을 리는 만무하다. 이쯤에서 요점을 간추려보자. 첫째, 고구려의 건국 시조 주몽은 사후에 국방의 요충인 요동성을 수호하는 신으로 간주돼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비슷한 예로 신라의 문무왕도 죽어 국가의 수호신이 되었다. 문무왕과는 달리 주몽은 성곽의 수호신이었다. 그런 점에서 주몽 사당은 후대 중국 성황(城隍)의 원형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둘째, 주몽 신에게 젊은 여성이 희생으로 바쳐졌다는 점이다. 사람을 산 채로 무덤에 부장품으로 삼는 순장(殉葬) 풍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으나, 종교적 희생은 오랫동안 끈질기게 존속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인용한 사료에서 확인되듯 국가적으로 중요한 이 사당을 관리하는 제관이 있었고, 그는 수호신 주몽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바로 이 점이 지금 우리에겐 가장 중요하다. 백제의 경우에도 명산대천은 국가적 신앙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중요했던 만큼 국가의 멸망을 예언하는 징조가 가장 분명하게 포착된 장소이기도 했다. 백제가 멸망하기 몇 해 전부터 기이한 현상들이 자주 목격됐다. 빨간 말이 북악의 오함사(烏含寺)에 들어와 울었다고 했다. 그 말은 사찰을 여러 날 동안 맴돌다 죽었다는 것이다. 북악이라는 명칭에서도 짐작되듯 그 산은 백제의 오악 가운데 하나였다. 명산 중의 명산으로 백제가 국가적 신앙대상으로 삼았던 북악 산신이 나라의 멸망을 알리는 징조였다면 의미심장하다. 하필 ‘말’이 등장하고 있는 것도 상징적이다. 앞서 예로 든 고구려의 산신도 마령 즉 ‘말 고개’에 출현했던 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고대에 말은 전쟁 또는 군신(軍神)의 상징이었다. 멸망을 눈앞에 두고 백제의 우물, 강물 그리고 바다에도 재앙의 조짐이 역력했다. 서해안 해변에는 무수히 많은 작은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어찌나 많던지 백성들이 아무리 먹어도 남았다고 했다. 생초진(生草津)엔 거대한 여인의 시체가 발견됐다. 그 길이가 무려 18척이나 됐다고 한다. 수도 사비성의 서남쪽으로 흐르는 사비하(금강)에는 큰 물고기가 죽어 떠올랐는데, 길이가 3척이나 됐다. 이어서, 사비하의 물이 핏빛처럼 붉게 물들었다. 도성의 우물물도 핏빛으로 변했다. 모두 ‘삼국사기’에 기록된 것들이다. 따져보면 우물물이나 강물이 붉게 변했다는 이야기는 큰 물고기나 거대한 여성이 폐사했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고대 한국인들의 관념에 따르면 물속에는 물의 신이든가 아니면 용이 살고 있었다. 그 형상은 특출한 사람의 모습일 수도 있었고 물고기 또는 지렁이와 같을 수도 있었다. 이러한 물의 신은 우선 고구려의 건국신화에 등장한다. 주몽의 외할아버지 하백이 바로 그렇다. 작은 물고기들은 물의 신(水神,河伯)의 신하로 인식됐다. 적에게 쫓기던 주몽이 무사히 강물을 건너 도망칠 수 있었던 것도 다름 아닌 물고기와 자라들 덕분이었다. 만일 주몽이 수신의 외손이 아니었더라면, 수중 생물들의 도움을 기대하긴 어려웠다는 것이 신화의 논리다. 백제 왕실은 고구려의 후예를 자처하였던 만큼 명산 못지않게 대천(大川)도 중요했다. 수도 사비성을 감싸 흐르던 사비하, 생초진 그리고 서해 바다의 수신은 모두 백제의 수호신이었을 것이다. 물론 수호신들의 죽음에 대한 관찰은 비현실적이지만 이런 비현실적인 현상을 목격하고 보고하고 기록한 것은 보통사람들의 몫이 아니었다. 그것은 예언자인 제관들의 고유한 권리요, 또한 의무였다. ●호국사찰의 승려들, 불안한 미래를 보다 삼국에 불교가 전파된 뒤로 각 나라엔 호국사찰(護國寺刹)이 들어섰다. 기존의 산신과 수신에 더하여 부처님의 가호가 나라의 융성을 보장해주리란 믿음이었다. 그러다 나라가 망하게 되자 그 조짐이 호국사찰에도 나타났다. 백제의 경우, 천왕사(天王寺)와 도양사(道讓寺)의 탑이 벼락을 맞는가 하면, 백석사(白石寺) 강당에도 벼락이 쳤다. 왕흥사(王興寺)에선 배의 돛과 같이 생긴 것이 강물을 따라 절간 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목격됐다. 왕흥사 승려들은 이런 모습을 함께 지켜봤다 한다. 정치적 예언은 본래 신성한 왕과 무당들의 독점적 영역이었으나, 역사 속에 새로 등장한 일관(日官)들, 불가(佛家)의 스님들에게도 예언의 권능이 공유되기 시작했다. 이런 고대 예언자들의 직업적 계보가 이어져, 조선후기엔 술사(術士)와 스님들이 정감록의 생산과 유통을 주로 담당하게 된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그친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우리동네 이야기] 강북구 번동

    [우리동네 이야기] 강북구 번동

    강북구 번동이라고 하면 임대아파트 밀집촌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번동의 2만 3567가구 가운데 영구임대 아파트는 번동주공 2·3·5단지 4181가구로 전체의 17.7%에 그치고 있다. 30평형대 아파트들도 대거 있으며 가장 큰 평형은 48평짜리(한진그랑빌아파트)다. 임대 아파트 단지는 1988년 올림픽 전후로 도시 미화 차원에서 무허가 판잣집들을 정비하면서 만들어졌다. 번동은 한때 ‘호랑나비’로 인기를 끌었던 가수 김흥국씨가 살아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김씨가 번동에 산다고 해서 아들의 애칭을 방송에서 ‘번칠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김씨는 현재 이곳에 살지 않지만 김씨의 누나가 번2동 통장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번동은 보건소, 강북웰빙스포츠센터, 강북문화정보센터, 구민운동장 등의 주민편의시설도 많다. 강북웰빙스포츠센터는 지난 3월 개관한 최신식 건물로 수영장, 에어로빅·헬스장·스쿼시장 등이 갖춰져 있다. 강북문화정보센터 역시 10만 737권의 장서를 보유했으며, 한자교실, 바둑교실, 댄스스포츠교실 등의 문화강좌가 연중 열린다.3600여평의 구민운동장은 배드민턴, 조깅,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의 체력단련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오동공원에 올라서면 북한산·도봉산·수락산·불암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비경을 맛볼 수 있다. 오동공원은 서울 강북구 미아동과 번동 사이를 남북으로 갈라놓으며 상당히 길고 넓은 면적(40여만평)을 차지한다. 특히 오동공원의 ‘꽃샘길’ 400m구간은 한 시민이 자비를 털어 꽃·나무를 가꾸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동공원 산자락에 위치한 드림랜드도 번동에 있다. 드림랜드는 다른 놀이공원에 비해 이용요금이 저렴하며 최신 기종은 아니지만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20여종의 놀이기구가 있다. 넓은 잔디밭이 잘 가꾸어져 있어 산책코스로도 적절하다. 번동의 지명유래도 재미있다. 번동(樊洞)은 고려시대에 쓰여진 ‘운관비기’라는 책에는 ‘이씨(李氏)가 한양에 도읍하리라.’는 비밀스러운 기록이 있어서 고려 말기의 왕과 중신들이 경계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삼각산 아래 현재의 번동 지역에 오얏나무가 무성하다는 말을 듣고 이씨가 흥할 징조라 여겨 오얏나무를 베기 위해 벌리사를 보냈다. 그 때부터 이곳을 벌리(伐里)라 부르다가 갑오개혁 이후 번리(樊里)가 되었다고 한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2012 올림픽은 파리서” 유치열기 후끈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2012 올림픽은 파리서” 유치열기 후끈

    |파리 함혜리특파원| 요즘 파리 시내를 다니다 보면 피할 수 없는 상징물이 ‘파리 2012’ 로고다. 파리의 상징 에펠탑을 비롯해 의사당, 파리 시청, 콩코드 다리, 알마 다리 등에는 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마크와 파리의 올림픽 유치 후보 도시를 알리는 대형 로고가 밤낮으로 빛을 발한다. 거리의 가로수, 지하철 티켓, 주차카드, 영수증 등에서도 ‘파리 2012’ 로고를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 파리는 2012년 올림픽 개최지를 놓고 런던(영국), 뉴욕(미국), 마드리드(스페인), 모스크바(러시아) 등과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2012년 개최지를 결정하는 제 115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7월 6∼11일)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인들은 이번에는 반드시 파리가 개최지로 선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올림픽 ‘해트트릭’ 겨냥한 세번째 도전 프랑스 파리는 올림픽 유치전에서 이미 두차례 고배를 마셨다. 지난 1986년 로잔 총회에선 바르셀로나에,2001년 모스크바 총회에선 베이징에 아깝게 패했던 만큼 모든 사람들은 이번만은 ‘꼭’ 승리하기를 고대하고 있다. 만약 파리가 오는 7월 싱가포르에서 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되면 프랑스는 1900년,1924년 올림픽에 이어 세번째 올림픽을 개최하게 된다. 프랑스가 국가 최대의 사업으로 추진 중인 ‘2012 파리’의 캐치프레이즈는 ‘게임을 향한 열정(L’Amour des Jeux)’이다. 스포츠, 축제, 우정 그리고 나눔을 향한 프랑스인 특유의 열정을 보여주는 표어다.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시장은 “게임을 향한 열정은 프랑스인들의 올림픽 경기에 대한 특유의 깊은 사랑을 반영한다. 올림픽은 경쟁, 스포츠맨십, 그리고 윤리적 가치의 최고 구현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올림픽 개최를 위한 최적지” 자신 파리시는 매년 44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국제적 관광도시인데다 올림픽 개최를 위한 시설의 95%가 이미 완공돼 있어 올림픽 개최를 위한 최적지라고 자신한다. 파리 북부 생드니에 있는 스타드 드 프랑스, 서부의 파르크 데 프렝스, 롤랑 가로스 경기장 등 대부분의 대형 경기장은 이미 지어져 있으며 전 관람인구의 65%를 수용하게 된다. 새로 건설될 수영장, 사이클 경기장, 사격 경기장, 슈퍼 돔은 파리지역 주민들을 위한 체육시설로 남게 된다. 파리시는 시 북부 17구의 바티뇰 지역에 45㏊에 이르는 선수촌을 건설한다는 계획이다.1993년 이래 개발된 도심공원을 끼고 있어 10㏊의 녹지 공원을 포함하는 이 지역에 1만 500여명의 선수를 포함한 1만 7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숙박시설이 들어선다. 북부와 서부에 위치한 두개의 주요 경기장 구역으로부터 10분 이내의 거리에 위치한 선수촌 지역은 환경보전과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한 개념을 도입해 건설된다. 올림픽 이후에는 파리시민을 위한 주거·상업시설과 여가를 위한 장소로 전환될 예정이다. 선수촌이 들어설 바티뇰에는 전시관을 갖춘 높이 75m의 파리올림픽 상징 조형물이 설치돼 하루 300명 이상의 관람객을 맞고 있다. 바티뇰에 있는 2012 파리올림픽 상징조형물을 찾은 주민 필립은 “가장 아름다운 스포츠 제전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파리에서 열리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퓌토에서 왔다는 마리 프랑스는 “2012년 올림픽 개최지가 결정되는 날이 마침 결혼기념일과 겹친다.”며 “파리가 반드시 개최지로 선정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정부와 기업 똘똘 뭉쳐 유치 총력전 2012 파리올림픽위원회는 파리시와 프랑스 정부, 일드프랑스 지역(광역 파리), 프랑스국가올림픽위원회를 주축으로 설립된 이익단체.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아래 장 프랑수아 라무르 청소년·체육부 장관, 앙리 세랑두 프랑스 국가올림픽위원회(NOC) 회장, 장 폴 위종 일드프랑스 지역의회 대표, 베르트랑 랑뒤레 일드프랑스지역 지사, 장 클로드 킬리 IOC위원, 축구스타 지네딘 지단 등이 유치를 지지하고 있다. 기업들의 참가 열기도 대단하다. 프랑스 재계는 ‘파리 2012 기업모임’을 결성,2012 파리올림픽위원회를 후원하고 있다. 파리올림픽 기업모임은 아코르, 에어버스, 에어프랑스, 카르푸,EDF, 프랑스 텔레콤, 르노, 르 갸르데르 등 가장 성공적인 프랑스 기업 가운데 17개의 세계적인 기업들로 구성돼 있다. 전세계 250만명의 직원들을 포함하고 있는 이들 기업들을 주축으로 산업 전반에 걸쳐 중소기업부터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파리 올림픽 유치에 아낌없는 지지와 후원을 이끌어내는 일을 하고 있다. 파리 2012 기업모임 대표인 르 갸르데르의 아르노 르 갸르데르 회장은 “프랑스 재계는 파리시의 올림픽 유치를 돕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이같은 지지 활동이 2012 파리올림픽 위원회의 올림픽 유치를 성공적으로 이끌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파리올림픽 유치 성공을 위한 프랑스인들의 열망은 뜨겁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인의 85%(25세 미만은 96%)가 파리 올림픽 개최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림픽 유치로 경제 활성화 전망 이같은 지지는 파리가 2012년 올림픽 유치에 성공할 경우 프랑스 전역에 걸쳐 미치게 될 경제·사회적 영향을 간접적으로 설명한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은 파리가 올림픽을 유치할 경우 약 4만 2000개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며 350억 유로에 이르는 추가 수입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게다가 2012년 이후 프랑스 전국에 걸쳐 400만명의 신규 스포츠업 종사자가 생기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올림픽유치위원회도 올림픽 개최 전후로 10만여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내다봤다. 올림픽 개최가 미래지향적인 도시 발전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장 피에르 카페 파리시 도시개발 담당 부시장은 “올림픽 선수촌은 지속가능한 발전의 가장 엄격한 기준을 도입, 도시재개발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며 “21세기 파리가 갖게 될 대표적인 건축 유산물이 될 것이며, 바티뇰 지역의 재건과 경제활성화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크리스티앙 소테 파리시 경제발전담당 부시장은 “올림픽 개최를 통한 경제·사회적 이익이 엄청난 반면 파리시민의 추가 부담은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파리시는 올림픽 개최에 총 42억유로가 투입될 것으로 추산했다. 이 가운데 22억유로는 기업이 부담하고,20억 유로는 민간·공공 합작기금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lotus@seoul.co.kr ■ 올림픽유치위원장 필립 보디옹 |파리 함혜리특파원| “파리 올림픽 유치를 위해 온 국민이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같은 힘의 집결은 파리와 파리 근교 도시의 개발계획에 힘을 실어 줄 뿐 아니라 세대간·문화간 격차를 줄임으로써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2012 파리 올림픽위원회의 핵심 조직인 올림픽유치위원회 필립 보디옹 (50) 위원장은 “파리에서 1890년 열린 만국박람회가 에펠탑과 트로카데로 광장, 알렉상드르 3세 다리를 건설하는 계기가 됐다.”면서 “올림픽은 도시 재건이라는 과제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게 도와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올림픽 개최를 위한 관광 및 스포츠 인프라 건설, 건설경기 활성화 등을 통해 올림픽 개최이전에 6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올림픽 이후에도 7년간 4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며 이같은 경기 활성화는 경제난에 따른 각종 사회갈등을 봉합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올림픽 개최지로서 파리의 강점에 대해 보디옹 대표는 ▲국민 모두가 열정적으로 올림픽 개최를 희망하고 있고 ▲올림픽 개최 계획이 매우 효율적이고 실현 가능성이 높으며 ▲올림픽 개최 이후에도 물리적·정신적 유산을 통해 올림픽 정신을 효과적으로 계승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꼽았다. 특히 모든 경기장과 선수촌이 10분 안에 연결되는 이동의 용이성과 선수들의 안전 등은 지난 3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평가단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IOC평가단 실사기간 중 노동계의 총파업 단행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느냐는 질문에 “큰 영향은 없었다.”며 “노동계도 프랑스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 해결에 올림픽 유치가 결정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것이라는데 공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디옹 위원장은 프랑스 국립행정대학원 ENA 출신으로 외무부, 총리실 산하 외교자문단, 대통령 기술고문단 등을 거쳤으며 외무부 재직시절인 1987년에는 ‘1992 올림픽유치위원회’의 사무장으로 활동했다. “개최도시 선정에 확신한다.”는 그는 “2012 파리올림픽은 파리가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역동적이고, 매력적이며, 영감을 주는 21세기의 도시로 재탄생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lotus@seoul.co.kr
  • [NPB] 이승엽 연이틀 쾅!

    ‘아시아의 홈런킹’ 이승엽(29·롯데 마린스)이 이틀 연속 호쾌한 홈런을 폭발시키며 본격적인 열도 정복에 나섰다. 이승엽은 6일 도코로자와 인보이스돔에서 열린 일본프로야구 세이부 라이언스와의 원정경기에 첫 좌익수 겸 5번타자로 선발 출장,1점포를 포함해 6타석 5타수 2안타 1볼넷에 3타점 3득점으로 펄펄 날았다. 이승엽의 활약에 힘입어 롯데는 15-4로 대승을 거뒀고, 퍼시픽리그 선두인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한 경기차로 바짝 뒤쫓았다. 전날 세이브전에서 6개월여 만에 마수걸이 홈런포를 쏘아 올린 이승엽은 이로써 2게임 연속홈런과 4경기 연속안타 행진을 이어갔고, 타율도 .353으로 끌어올렸다. 지난해 8경기 만에 첫 홈런을 터트린 것과 비교하면 훨씬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려 2년차를 맞이한 올시즌 맹활약을 예고했다. 이승엽은 2회 선두 타자로 나서 지난해 재팬시리즈 MVP인 이시이 다카시의 초구를 엉겁결에 건드려 1루 땅볼로 물러나는 듯했지만 커버를 들어가던 이시이가 송구를 놓쳐 세이프가 됐다. 이어지는 매트 프랑코의 중전 안타로 3루까지 내달린 뒤 하시모토의 우전 적시타로 홈을 밟아 팀의 첫 득점을 올렸다. 대폭발의 징조였을까. 4-3으로 앞선 3회말 1사2루에서 투수 옆을 꿰뚫는 중전 적시타로 타격감을 조율한 이승엽은 5회 1사에서 두번째 투수 시바자키와 만났다. 이미 완벽하게 감을 회복한 이승엽은 덤벼들지 않고 2-3 풀카운트까지 차분히 기다렸고, 시바자키의 135㎞짜리 몸쪽 직구를 그대로 잡아 당겨 오른쪽 담장을 훌쩍 넘겼다.6회초 1·2루에서 상대의 집중견제로 고의볼넷을 얻어 나간 이승엽은 9회 마지막 타석에도 1사 1·3루에서 2루 땅볼로 타점을 보탰다. 이날 하와이 출신 베니 아그바야니도 7회 만루포를 포함해 2안타 4타점을 쓸어담았고, 프랑코도 3타수 1안타를 기록해 거센 자리 다툼은 이어졌다. 보비 밸런타인 롯데 감독이 상대투수에 따라 선수기용에 변화를 주는 ‘플래툰시스템’을 즐겨 구사하는 탓에 빅리그 출신의 발렌티노 파스쿠치가 언제든지 1군으로 복귀할 수 있지만, 이승엽이 현재의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중심타선의 한 자리를 확고히 굳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김홍신의 세상보기] 충돌의 미학을 기다리며

    [김홍신의 세상보기] 충돌의 미학을 기다리며

    오른손잡이가 오른손을 다쳐 사용할 수 없을 때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숟가락으로 밥 떠 넣기는 그런대로 괜찮지만 젓가락질을 하기는 보통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글씨 쓰기는 더욱 어렵고 가위질, 캠코더와 마우스 다루기나 현악기 다루기도 수월한 게 아니다. 뿐만 아니라 세수하고 면도하는 일도 만만한 게 아니다. 한국인의 대다수는 오른손잡이이다. 한국인들이 유달리 오른편을 선호하는 까닭을 생각해보았다. 생활용구 거개가 오른손잡이용이라는 것 말고도 오른편을 바른편이라고 인식하는 묘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우리 어릴 적엔 오른쪽을 바른쪽, 오른손을 바른손이라고 표현했다. 어쩌면 해방공간사와 6·25전쟁 후유증으로 우익적인 것을 옳고 좌익적이면 그른 것으로 인식했을 것 같다. 많은 종교적 그림에서 악마와 나쁜 것들이 왼쪽에 배치되어 있다거나 왼쪽을 나쁜 징조, 악마, 더러운 것으로 표현되고 인식된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전 세계 인구 중 15% 정도가 왼손잡이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라틴어의 왼손잡이가 재수 없거나 배신을 뜻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가로쓰기를 하기 위해선 오른손잡이가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건 오른손잡이의 생각일 뿐이다. 왼손잡이가 가로쓰기를 하면서 아무 불편이 없다는 걸 모르는 건 인식의 오해일 뿐이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만이 특별하게 발달한 언어중추가 있는 좌뇌를 언어적, 시각적, 논리적, 분석적, 이성적, 디지털적이며 우뇌는 비언어적, 시공간적, 동시적, 형태적, 종합적, 직관적, 아날로그적이라고 한다. 쉽게 풀어보면 오른손잡이는 좌뇌가 발달하게 되어 말하고 읽고 쓰고 추리하는 데 유리하고 왼손잡이는 우뇌가 발달하게 되어 원근의 감각, 창의성, 음악성, 직감이 강하다고 한다. 천재는 우수한 두뇌를 타고나는 게 아니라 두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하니 굳이 좌뇌와 우뇌에 관해 집착하는 것은 온당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요즘 초등학교에서 19단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나는 19단 외우기보다 먼저 우리 아이들에게 오른손과 왼손을 함께 두루 쓰는 연습을 하도록 했으면 한다. 좌뇌와 우뇌를 발달시키는 것을 덤으로 얻고 좌우를 동시에 인식하는 지혜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충돌의 미학’이라는 게 있다. 서로 부딪쳐서 아름답거나 좋은 것을 만들어내는 작용을 말하는 것이다. 거칠게 깨뜨린 돌멩이를 한통속에 넣어 계속 충돌시키면 모난 것들이 부서져 결국 예쁜 모양의 조약돌이 된다. 보석을 가공할 때도 원석과 도구가 충돌해서 영롱한 광채를 발하는 보석이 만들어진다. 질병과 의술이 충돌하여 환자의 고통이 소멸되고 문명의 가치창조, 예술적 승화, 인간애의 따뜻한 모습들도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들이다. 이제 우리는 오른손과 왼손을 두루 사용하는 지혜를 통해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있는 진보와 보수의 대립, 동서의 지역 갈등, 남북한의 좌우대립, 세대 갈등, 남녀 차별, 빈부격차, 노사갈등…이런 것들을 서로 눅이는 세상을 그려보았으면 한다. 신체 중에 좌우로 나누어진 것을 보면 눈, 콧구멍, 귀, 손, 발 등이 있다. 어느 한쪽이 고장나면 큰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걸핏하면 좌파니 수구세력이니 하며 다투고 동쪽에 사는 것이 어떠하고 서쪽에 사는 것이 어떠하다는 식으로 비난하며 나이가 들어 고리타분하다느니 젊어서 안하무인이라고 얼러대는 충돌의 해악으로는 국가가 발전할 수 없을 것이다. 산 하나를 두고 동쪽에 사는 이가 서산이라 부르고 서쪽에 사는 이가 동산이라 부른다고 해서 서로 틀린 것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충돌의 미학을 기다린다.
  • [코드로 읽는책] 종교가 사악해질 때/찰스 킴볼 지음

    역사를 통틀어 종교만큼이나, 편협한 이기심을 초월해 고귀한 가치와 진리를 추구하는 세계도 없다. 사랑과 자기 희생, 타인에 대한 봉사 등은 대부분 종교적 세계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종교만큼 반목과 갈등, 악행, 나아가 전쟁의 원인이 되는 것도 많지 않다.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세력보다 더 많이 종교의 이름으로 전쟁이 치러졌고, 악행이 저질러져 왔음은 슬프지만, 현실인 것이다. ‘종교가 사악해질 때’(찰스 킴볼 지음, 김승욱 옮김, 에코 라브르 펴냄)는 이같은 관점에서 종교적인 사악함의 본질과 징조를 살펴보고, 각각의 종교 안에서 타락한 행위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들을 개괄적으로 제시한다. 저자는 침례교 목사이지만 그에 앞서 종교학 교수로서 각 종교의 교리와 역사, 지리적 특수성 등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고 책을 집필했다.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 힌두교, 불교 등 각 종교를 비교종교학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 그는 종교의 타락을 경고하는 징후로 다섯 가지를 든다. 먼저 절대적인 진리 주장이다. 절대진리 주장은 종교적 전통속에 배어 있고, 그 종교 전체를 지탱하는 기초가 된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대한 특정한 해석이 엄격한 교리로 자리잡게 되면 그 종교는 타락할 가능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다음은 맹목적인 복종이다.1994년 일본 옴 진리교의 사린가스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특정 교리이든, 사람이든 맹목적 복종을 요구하면, 이미 그 종교가 타락했다는 확실한 징후라는 것이다. 메시아 도래와 같은 이상적 시대 주장도 마찬가지다. 일부 기독교 근본주의 단체들은 지금도 신성한 템플마운트 지역에 유대교 성전이 솟아오늘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예루살렘 구시가지에 있는 최고 성직자 대학 학생들은 그 성전의 성직자로 일하게 될 미래를 기대하며 15년 과정을 밟고 있다. 국가의 이상적인 모습을 편협하게 정의하고, 자기들이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신정을 확립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위험하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는 쉽게 타락한다. 네번째는, 목적이 모든 수단을 정당화하는 경우다. 성지 수호, 집단 정체성 강화, 체제 수호 등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약한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을 갖고 이웃과 건설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무시하기 쉽다. 그러나 종교생활에 없어서는 안되는 다양한 요소, 즉 성지, 공동체 정체감, 제도적 틀, 안식일 등이 종교생활의 목적은 아니다. 이것들은 공동체내에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될 뿐이다. 마지막으로 성전(聖戰)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건대 ‘성전’이란 없다. 명분은 성전일지 몰라도 실제 거룩한 전쟁은 없었으며, 전쟁의 결과는 늘 재앙이었다. 성전에 참여한 사람들이 느끼는 부당함과 불만의 뿌리가 아무리 깊더라도 성전은 해결책이 아닌 것이다. 저자는 그 어떤 종교도 이런 타락현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지만, 각각의 종교는 자신의 지혜와 전통 안에서 이런 타락의 징후들을 찾아내 바로잡을 수 있는 능력과 수단을 갖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또 성실하게 신앙을 지키면서도 자신이 경험한 신만이 유일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얼마든지 인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종교적 다원주의라는 건설적인 시각을 통해 다른 종교를 그냥 참아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다양성을 찬양하며, 그것을 힘의 원천으로 포용하라고 충고한다.1만 4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경기 작년 재판 우려”

    국내 경기가 지난해 재판(再版)이 될지 모른다는 재계의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20일 재계에 따르면 정부는 경기가 회복세에 들어섰다고 주장하지만 재계의 풍향계는 다소 다르다.4대 그룹의 한 임원은 “지난해에도 경기가 3월까지는 매우 좋았다.”면서 “회복세에 대한 기대감이 한창 커질 무렵, 난데없는 폭설에 대통령 탄핵정국, 중국 금리인상 등이 터지면서 2분기부터 경기가 고꾸라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올해도 이 달까지는 지표경기가 좋지만 독도 분쟁, 북핵 문제 등 조짐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또다른 기업체의 임원도 “지난해가 대내 문제였다면 올해는 대외문제라는 것만 다를 뿐, 전개되는 양상이 지난해와 매우 흡사하다.”고 걱정했다. 반짝 호조 끝에 찾아왔던 지난해의 긴 악몽을 경계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고유가와 환율에 발목잡히고 있는 점도 지난해와 비슷하다. 금융기관장을 지낸 한 고위인사는 “주가든 환율이든 높거나 낮은 것은 괜찮다.”면서 “문제는 진폭”이라고 우려했다. “요즘처럼 시장이 출렁대는 것은 불길한 징조”라며 “금융계의 도덕적 해이가 기승을 부리는 것도 시장 혼란기의 전형적 특성”이라고 꼬집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정운찬 총장 교육부직원특강 전문

    한국 대학의 현실과 이상 1. 대학의 위기론 우리 사회에서 대학의 위기, 고등교육의 위기론이 들려온지도 제법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국의 대학이 짧은 시기에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감당해온 성취에 대해서 객관적인 인정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사회의 유례없는 발전의 배후에는 물론 전 국민의 피땀어린 노력과 참여가 있습니다만, 그러한 성취동기를 교육을 통해 승화시키고 전문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던 대학의 기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수백년에 걸쳐 대학제도를 발전시켜 왔던 구미의 경험과는 달리 한국의 대학은 그 역사가 매우 짧습니다. 이웃 일본에 비해서도 우리는 매우 짧은 시기에 변화와 발전을 이룩하였습니다. 문제가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한국 대학이 수행해온 역할과 수고에 대한 응당의 평가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대학이 어떤 형태로든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은 모두가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사회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사회로부터 대학에 요구하는 것이 달라졌고, 학생들이 교수와 맺는 관계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분화된 학문체제, 입시제도, 교육방식과 학교운영방식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현상들도 자꾸 출현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양상은 매우 다양하며 복합적입니다. 한국경제의 발전 수준에서 볼 때 연구의 수준과 교육의 질이 더 높아져야 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인문학의 위기론이 이야기되다가 이공계 위기론도 대두되고 있습니다. 급격히 변화하고 달라지는 사회를 대학이 채 따라가지 못해 현실적합성이 떨어진다는 염려도 있습니다. 기업들은 대학에서 가르치는 것이 별로 쓸모가 없다는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 입시제도를 둘러싸고 학부모들과 중고등 학생들의 불만도 적지 않은 듯 합니다. 잘하는 사람은 잘하는 대로 못하는 사람은 못하는 대로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불만이 매우 높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현실 속에서 나타나는 부적합성과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제도적 노력을 개혁이라고 한다면 대학도 현재 개혁을 필요로 하는 시점에 있음은 분명합니다. 2. 세계화, 정보화, 신자유주의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의 고등교육, 대학의 위기는 도대체 어디에 기인한 것일까요? 어떤 분들은 교수진을 탓하고 어떤 분들은 학생들의 질을 탓합니다. 정부의 교육정책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것이 위기의 요인들임은 분명합니다만, 보다 원천적으로 위기의 성격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현재의 위기상을 지나치게 특수한 것, 즉, 우리만의 잘못된 현상이라고 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대학들은 유사한 문제와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가장 선진적인 대학체제를 구축하고 있다는 미국에서도 대학개혁의 문제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한국 대학의 위기상도 20세기 말 이후의 세계사적 변화와 관련하여 이해되어야 합니다. 저는 크게 세가지 현상이 위기의 배후에 작동하고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두말할 나위 없이 세계화입니다.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고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 상호작용의 빈도가 급증하면서 많은 영역에서 표준의 세계화, 즉 글로벌 스탠다드의 강화현상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나라별로, 지역별로 독자적인 개성을 갖고 존립이유를 찾아오던 제도나 기관, 관습들이 이 압력앞에 위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영어권이 아니면서 문화적인 축적 수준이 높은 아시아 국가의 대학들이 더욱 심한 몸살을 앓게 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두 번째는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전달 매체의 발달에 따른 사회변화를 들 수 있습니다. 정보의 산출과 유통방식이 지금까지와는 현저하게 달라지면서 전통적인 지식생산과 유통의 책임기구였던 대학의 위상에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성적 담론 대신 감성적인 이미지가 더욱 중요시되는 변화도 함께 등장합니다. 지식을 전수하고 공유하는 절차도 현저하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끝으로 대학의 위기를 가져오는 요소로는 신자유주의적 경쟁논리의 확산을 들 수 있습니다. 시장과 경쟁을 강조하고 이를 통해서 효율성을 극대화 하려는 논리가 큰 힘을 얻게 되면서 대학의 안팎에서도 경쟁논리는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교수들의 연구나 교육도 무한경쟁의 시스템 속에서만 더욱 발전하고 효율적일 것이라는 가정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고 있습니다. 대학간에도 무한경쟁의 시대가 도래하고 기업처럼 홍보전략이 중시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나아가 대학이 기업연구소나 여타 지식정보기관들과 지식생산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오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우리 대학의 위기론은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연구와 교육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의 시급성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대학이 선진국대학에 비해 뒤떨어져 있다는 관점만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시스템구축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도 위기나 개혁이 이야기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점에서 대학의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 시각도 좀더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것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21세기 세계질서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그럼에도 무엇이 여전히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대두할 것인지에 대한 종합적이고 거시적인 이해와 대응이 없이 한국대학 만의 미시적 문제로 접근해서는 곤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 한국적 특수성 그러나 한국대학의 위기상은 한국적 특수성으로 인해 더욱 심화되는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대학이 차지하는 엄청난 사회적 위상에 비해 대학 자체의 존립기반은 매우 취약하다는 점에서 한국의 특수한 위기를 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대학입시 뉴스가 사회의 톱뉴스가 되고, 대학 정책이 정부의 가장 중요한 정책이 되는 국가는 전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자녀의 대학입학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정도로 교육에 온 정성을 다 쏟는 것도 한국사회의 두드러진 모습니다. 사교육비가 큰 경제부담으로 되는 사회,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대접받지 못한다는 인식이 유난히 강한 곳도 한국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대학의 위상이 한국처럼 강한 사회도 찾아보기 어려울 듯합니다. 그 반면에 한국사회에서 정작 대학의 존립기반은 매우 취약합니다. 한국 근대 역사 속에서 우리는 대학이 과연 무엇하는 곳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본 경험이 많지 않습니다. 먼저 제도적으로는 대학이 자신의 교육철학과 연구여건을 독창적으로 구축해나갈 자율성과 내적 권위도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정부의 대학정책 역시 자율성과 대학개성의 확립이란 점에서는 부정적인 측면도 적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재정적으로는 대학이 연구와 교육에 지출하는 수준은 결코 충분하지 못합니다. 국립대학은 국립대학대로, 사립대학은 사립대학대로 우리 대학의 재정은 선진 교육과 연구를 감당하기에 한참 부족합니다. 사회적인 관심은 대단하면서도 정작 대학자체의 자율적 역량과 지적 권위는 뚜렷하지 못한 괴리로 인해 대학은 늘 대학외적인 문제들로 휘둘려온 감이 있습니다. 때로는 정부로부터, 때로는 기업이나 시장으로부터, 때로는 학부모나 학생들로부터 다양한 요구와 비판을 받고 있지만 진정으로 대학을 대학답게 만들기 위한 고민과 노력은 오히려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대학이 지성의 권위를 인정받지 못함으로써 사회의 다른 영역으로부터 독자적인 권위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점을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기업들은 대학에게 점점 더 당장 쓰여질 기술교육, 전문교육을 요구합니다. 대학을 기업연구소와 같은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으며 실제로 그로 인한 대학교육의 파행을 우리 모두 경험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대학을 자녀의 입시관문이란 잣대로만 바라봅니다. 대학의 연구와 교육실상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들도 입시만은 최대의 관심대상이 됩니다. 정부기관이 대학을 행정과 규율의 대상으로만 파악하는 사례도 종종 경험합니다. 잠시 저희 서울대학교의 예를 말씀드리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대학이 나름대로의 장점과 수행해야 할 지적 과제들이 있다고 봅니다만 특히 서울대학교가 한국사회에서 마땅히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가장 뛰어난 연구자들을 기르고 전 세계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지식산출기관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오늘 서울대학교의 연구여건은 매우 열악합니다. 한국사회의 가장 중요한 지식 산출기관임에도 정작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크게 부족합니다. 대학 본연의 역할을 중심으로 변화를 모색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연구와 교육 자체와는 거리가 먼 일들로 대학의 지적자원이 소진되어야 하는 경우들도 적지 않습니다. 저는 입시제도의 난맥상 못지 않게 대학이 뚜렷한 자기비전을 갖고 독자적인 연구와 교육의 내실을 키워가지 못하는 것 자체가 매우 심각한 위기현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는 비단 서울대학교 만의 문제는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대학과 사회 간에 서로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의 편차가 커지고 상호작용방식이 달라짐에 따라 야기되는 혼란과 불만,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대학이 존립이유와 자기정체성을 뚜렷하게 확립하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위기의 징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기에 위기극복을 명분으로 시행된 여러 가지 하향적 제도 개혁이나 정부간섭이 위기를 더욱 심화시킨 측면도 없지 않다고 봅니다. 이런 의미에서 위기는 반드시 대학 내부의 문제라기 보다는 대학-사회-정부가 한데 얽혀 있는 구조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라 생각합니다. 4. 개혁의 방향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매우 상식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대학을 대학답게 만드는 길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학이라는 제도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그 본래적인 의미를 재확인하는 작업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대학이 우리 사회에 ‘진리’의 존재와 그 불멸의 가치를 알려주는 지성의 산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이 고답적인 도덕공동체가 되어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세속적인 이해관심에 좌우되는 공리주의에 지배되어서도 안될 것입니다. 저는 대학의 이런 정체성이 위협을 받는다면, 안팎의 어떤 요구나 강요에도 흔들리지 말고 우리 자신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의 변함없는 역할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교육과 연구입니다. 이 둘은 수레의 양 바퀴와 같아서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학교의 사정과 여건에 따라 둘 중 어느 한곳에 더욱 집중할 수는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이 양자는 대학의 존립근거입니다. 오늘날 대학교육은 너무도 기능위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키고 있는지 저는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때로는 막스베버가 말한 ‘비지성적 전문가’들만 양산하는 것이 아닌가 염려스럽기조차 합니다. 개인의 명예나 출세가 목적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과 인류공동체의 미래를 고민하는 진지한 젊은이들을 키우는 대학을 만들어야 합니다. 오늘날 대학이 대중교육기관처럼 일반화되기 했지만 그래도 대학은 한 사회의 엘리트 집단을 양성하는 고등교육기관입니다. 대학은 단순한 지식전수기관이어서는 안됩니다. 또한 학생들이 즐거워할 취미활동이나 당장 쓰여질 기술교육의 장소도 아닙니다. 대학교육은 학생들의 잠재적인 지적 재능을 키워내고 그들이 창의적이고 건강한 사고를 할 수 있도록 길러내는 최고수준의 가르침입니다. 때로는 힘든 훈련을 거쳐 유능한 연구자를 키워내는 과정이어야 하고, 냉정한 평가를 통해 지적으로 단련된 지성인을 키워내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역사적인 분기점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지를 깊이 사고할 줄 아는 식견과 혜안을 길러주기도 합니다. 저는 우리 대학교육이 내용적으로나 질적으로 더욱 고급스러워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은 이런 기대와 매우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보는 바대로 오늘날 뛰어난 인재들이 고시공부로, 의대진학으로 몰려들고 있는데 이런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한 사회의 우수한 인재들이 모두 단일한 가치를 추구하고 당장에 쓰여질 효용과 개인적 안락만을 중요시할 때 그 사회의 발전 잠재력이 약화될 것은 분명합니다. 대학이 이차적이고 직업적인 훈련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대학의 존재이유가 그와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대학은 직접적 효용성으로부터 한걸음 물러서 진리 그 자체, 연구 그 자체의 의의를 드러내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성찰성을 중시하는 인문학적인 연구나 실험논리를 중시하는 자연과학적 연구는 그 방법은 다르지만 모두 ‘진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일치합니다. 최근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에 대한 이분법적 논의를 자주 접합니다만, 이 둘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과학의 양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과 함께 중시되어야 할 대학의 본령이 연구입니다. 자발적인 연구를 지원하고 진지한 연구성과를 존중하는 학문적인 분위기가 대학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한국대학은 여전히 선진국으로부터 최신의 지식들을 도입하고 전파해야 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우리 자신이 독창적이고 주체적인 지식을 산출하는 능력을 배양해야 합니다. 해방후 50년이 훨씬 넘은 역사 속에서 여전히 지적인 종속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급속한 경제발전, 민주화, 남북관계의 변화, 정보사회로의 이행 등 한국사회가 보여준 현대사의 족적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현상임에도 아직 우리 대학이 이를 세계학계에 내놓을 수준의 연구물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연구역량을 강화하고 연구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방향으로의 개혁이 절실합니다. 한국의 대학은 연구자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너무 빈약합니다. 교수들의 연구를 진작시킨다는 명목으로 요즈음 경쟁논리가 곳곳에 도입되고 있습니다. 분명히 교수사회도 좀더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연구활동에 참여해야 하며 자기쇄신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속적인 경쟁구조와 관료적인 평가논리가 곧 연구역량의 강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연구에는 연구자의 각오와 역량 못지 않게 연구를 가능케 하는 여건과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자연과학은 두말할 필요가 없고 인문사회과학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연구활동을 하는데 필요한 각종 인프라와 행정지원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연구자만을 다그치는 방식은 한계가 있습니다. 가장 열정적으로 연구에 전념해야 할 젊은 교수들이 살아남기 위해 쏟아야하는 땀이 진정으로 연구작업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제도적 강요로 인해 창조성을 잃고 연구역량을 소진해 가지는 않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은 개별연구자들을 최우선적으로 배려하는 조직입니다. 또한 다양한 사고와 행동이 인정되고 공존하는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그런 만큼 전체적인 의사소통과 의사결정과정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럴수록 민주적인 소통을 위해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종종 민주적 의사결정은 추진력의 빈약함으로 귀결된다는 오해가 있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의견들이 토론되고 그 속에서 결집된 의사가 확인될 수만 있다면 어떤 결정이나 개혁적인 조치들도 어렵지 않게 이루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 사회에 좋은 모델을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대학의 민주화와 자율성의 확보는 매우 중요한 개혁과제의 하나입니다. 대학마다 여건과 상황이 다를 것입니다. 따라서 각 대학이 자신에 맞는 최적의 구조들을 찾아내는 과정 자체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대학 본연의 특성과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부의 강요나 요구로부터 자율적인 권위를 민주적으로 확보하는 일이 근본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위해 학부모나 기업, 정부 당국 등은 모두 대학이 스스로의 권위를 지적인 차원에서 구축하고 행사할 수 있도록 지원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대학의 권위를 우리 사회가 인정해주지 않고, 대학을 행정기관의 하나로 보거나 투자기관의 하나로 생각한다면 장기적으로 대학 자체는 물론이고 우리사회에도 큰 손실을 가져올 것입니다. 또한 제도만능주의적 사고도 재고할 여지가 있을 것입니다. 특정한 제도의 도입이 곧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대학이 가진 문제 자체가 복잡 다양하며, 여러 대학간의 사정이 또한 다릅니다. 국립대학의 여건과 사립대학의 여건이 다르며 종합대학과 단과대학의 여건 또한 다를 것입니다. 연구와 교육이라는 대학본연의 역할을 강화하는 틀 위에서 각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개혁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이 사회 속에 존재하는 한 사회의 요구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은 분명합니다. 특히 한국사회처럼 대학입시와 졸업이 중요한 사회적 함의를 갖고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대학개혁의 핵심은 오히려 대학본질의 회복, 다시 말해 지성의 권위를 확립하고 창조적인 지식생산의 능력을 배양하며 지적이고 비판적인 인재들을 양성하는 일에 일차적인 목표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저희 경우를 말씀드려 죄송합니다만 서울대학교가 지역균형선발제를 비롯한 다양한 선발기준을 모색한다거나, 국내외적인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연구기능을 활성화함으로써 변화하는 시대에 부응하는 지식공동체로 개혁해 보려는 구상을 하는 이유도 이런 생각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각 대학마다 구체적인 형태는 달라도 대학 본연의 모습을 갖추기 위한 유사한 개혁과제들을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모든 대학이 자율성과 독창성을 가진 교육과 연구의 중심지로서 제 기능을 더욱 강화하게 되는 것이야말로 대학개혁의 근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
  • 경기 불안한 회복세

    경기 불안한 회복세

    경기회복에 대한 기조가 또다시 흔들릴 조짐이다. 경기회복의 불씨는 살아나고 있지만, 환율과 국제유가 등 대외변수의 역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환율은 달러당 1000원선이 위협받고 있으며, 유가는 연일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종합주가지수는 1000선을 돌파한 지 8일 만에 세 자릿수로 밀렸다. 대외 악재가 경기회복의 복병으로 떠오름에 따라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은 10일 외환시장 개입을 위한 공조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재경부는 외국환평형기금 가운데 5조원을 활용해 환시장에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한은도 역외에서 투기 조짐이 나타나면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대외 여건과는 달리 국내 경기는 갈수록 회복 국면으로 접어드는 징조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이날 통계청이 발표한 2월 소비자전망조사에 따르면 소비자들의 기대심리를 나타내는 소비자기대지수는 99.4로 전월의 90.3보다 9.1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지난 2002년 9월 이후 2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이와 관련, 박승 한은 총재는 “1·4분기부터 완만한 회복 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특히 소비심리는 물론 제조업 업황전망 등 기업의 투자심리가 일제히 살아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한은은 이날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경기회복의 분위기를 살린다는 차원에서 콜금리 목표를 현수준인 3.25%에서 동결했다. 대외 여건의 악재속에 금융시장은 좀처럼 불안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날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오전 한때 989원까지 급락했다. 그러나 정부의 강도 높은 개입 발언 등에 힘입어 전일보다 0.7원 떨어진 1000.3원으로 마감, 간신히 1000원선을 지켰다. 거래소시장에서 종합주가지수는 환율 하락과 유가급등 등의 영향으로 전일보다 10.13포인트나 떨어진 998.66으로 마감했다. 9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중질유(WTI)가격은 미국 동북부의 강추위와 미국·이란간 갈등 등의 영향으로 전일에 비해 배럴당 18센트 상승한 54.77달러로 마감됐다. 런던 국제석유거래소(IPE)의 4월 인도분 북해산 브렌트유 역시 54센트 오른 53.38달러를 기록했다.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는 1.14달러 오른 45.47달러로, 사상 처음으로 45달러를 돌파했다. 두바이유의 오름폭이 상대적으로 커 우리 경제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다음달 발표 예정인 세계경제전망보고서를 통해 원유시장이 오는 2010년까지 긴장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IMF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원유 생산여력을 현재 하루 150만배럴에서 300만∼500만배럴로 늘려야 갑작스러운 수급불안에 완충작용을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주병철 장택동기자 bcjoo@seoul.co.kr
  • [신연숙칼럼] 도박, 대마초, 성형수술

    [신연숙칼럼] 도박, 대마초, 성형수술

    ”국가는 존재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다.”이렇게 말하면 국가보안법 사수가 곧 국가정체성 사수라고 믿고 있는 이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펄쩍 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정한 우리 헌법 제10조에 대해 권위있는 헌법전문가가 붙여놓은 설명이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지닌다.”고 명시한다. 이는 국가는 전체의 이름으로 개인을 말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생명권·인격권·생활방식 등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헌법 조항에도 불구하고 실생활에서 우리는 개인보다 국가를 우위에 두고 살아 왔던 게 사실이다. 개인의 가치, 권리, 자유가 사회의 그것보다 존중되는 개인주의가 서구의 근대 정신을 이끌었건만 우리의 근대는 개인보다는 전체주의적 국민동원에 의해 추동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와중에서 동원의 주체가 됐던 국가권력이나 끈질긴 저항을 했던 민주화세력, 그 어느 쪽에도 개인의 가치가 발아될 공간은 없었다. 그런데 최근 이런 상황에 커다란 틈을 내는 주목할 만한 일들이 발생했다. 서울 남부지법 이정렬 판사의 억대 내기골프 무죄판결, 문화예술인들이 펼치고 있는 대마초 흡연 합법화운동, 대통령 부부의 쌍꺼풀 수술이 그것이다. 이 판사는 “골프는 우연이 아닌 기량에 의해 승부가 결정되는 스포츠이기때문에 도박이라고 볼 수 없다.”고 도박성 자체를 인정 안하는 논리를 폈지만, 후일 인터뷰에서 개인의 자유 문제를 제기한 의도적 판결이었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명백한 도박인 카지노는 국가가 한 것이라서 괜찮고 개인 간의 행위는 불법이라고 처벌하는 것은 지나치게 국가우위의 이중적 잣대”라고 주장한다. 영화배우 김부선을 비롯한 문화예술인들은 “대마초의 중독성이 과장돼 개인의 취향과 기호가 제한받는다.”며 대마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한다. 이들은 외국의 관련 법률과 약리연구 결과를 제시하면서 현재의 강력한 처벌이 과잉금지의 원칙과 행복추구권에 반하고, 담배나 알코올 등 유사기호생활자들과 비교할 때 명백히 개인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이와는 좀 성격이 다르지만 노무현 대통령 부부의 쌍꺼풀 수술도 예사롭지 않은 ‘사건’이다.‘상안검 이완증’치료를 위한 것이라지만 대통령 부부의 성형수술은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국민들이 생각하기에 너무 사적(私的)인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 개의 사안을 보는 우리 사회의 엇갈린 시각 또한 흥미롭다. 도박과 대마초에 대해서는 최초의 격렬한 반발이 지나간 후 본질적 질문으로 되돌아가 2차적 담론이 형성되는 양상이다.‘사회적 통념에 문제를 제기한’‘경청할 만한 판결’이라거나 대마흡연의 합법화까지는 아니라도 ‘비범죄화’나 과도한 처벌법의 개선을 요구하는 동조의견도 나타난다.1000원짜리 고스톱을 하면서도 죄의식을 강요받고 대마초 가수라면 인격파탄자 쯤으로 낙인찍던 과거 같으면 생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반면 대통령부부의 쌍꺼풀 수술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이 많이 비친다. 이런 이들은 높은 수준의 절제와 멸사봉공의 정신이 요구되는 직책에 대한 기대심리 배반을 지적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것도 언급할 거리가 되느냐는 반응도 있고 보면 조용한 다수들은 대통령의 사생활 정도로 여기고 관심 밖에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바야흐로 우리 사회에도 ‘개인’이 탄생하고 있다는 징조다. 권력에 맞선 개인만이 아니라 권력 속의 개인도 똑같은 권리를 누리는 게 헌법 제10조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수석논설위원 yshin@seoul.co.kr
  • ‘제2 모텔 파동’ 오나

    ‘제2 모텔 파동’ 오나

    경기도 일산신도시의 200여평짜리 여성전용 사우나는 최근 영업난을 견디지 못해 문을 닫았다. 지난해 내부 공사 비용으로 대출받은 10억원과 기존 대출금의 연체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것이다. 주인 이모(55)씨는 “몇 개월째 빚을 갚지 못해 할수없이 경매로 넘겨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근처에 대규모 찜질방이 2곳이나 생기면서 손님이 눈에 띄게 줄어 4000원이던 입장료를 3000원으로 내렸지만 손님을 끌기에 역부족이라고 털어놨다. 인근의 불가마사우나도 사정은 비슷하다.2년 전 300여평 규모의 불가마사우나를 개업할 때만 해도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손님들로 북적댔다. 내부의 이발소도 인기가 좋아 권리금만 5000만원을 호가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쯤 인근에 대규모의 호화 불가마사우나가 들어서면서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새 사우나가 생기면서 손님들이 나은 서비스를 찾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목욕탕·사우나, 제2의 모텔파동(?) 이렇듯 최근 들어 서울, 경기도 등 수도권의 재래식 목욕탕과 소규모 사우나·찜질방의 부도가 줄을 잇고 있다. 대규모 현대식 사우나·찜질방이 생겨나면 인근 지역은 거의 쑥대밭이 되고 만다. 그나마 사우나·찜질방 단골손님들의 발길도 경기여파 등으로 갈수록 뜸해지면서 도시가스·인건비 등 경비를 감당하지 못해 내놓는 매물도 쏟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은행권에 비상이 걸렸다. 통상 이들 자영업자에게 담보의 70∼80%를 대출해줬기 때문이다. 현재 은행권은 사우나·찜질방 등 목욕업에 대해서는 대출억제업종으로 분류해 신규 대출이 중단된 상태다. 은행권의 전체 중소기업 대출(중소기업+자영업자) 연체율은 2∼3%대에 머물고 있지만, 목욕업종의 연체율은 무려 10∼15%로 5배가량 높다. 한때 성매매특별법 시행의 직격탄을 맞은 모텔 등 숙박업의 연체율이 5%대임을 감안하면 위험에 훨씬 더 노출돼 있다는 얘기다.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이 지난해 12월 2.2%였으나, 지난 1월에는 2.6%로 오른 것도 이들 업종의 연체율이 갈수록 높아지는 데 크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제2금융권도 골머리 더 심각한 것은 은행권보다 상호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의 목욕업종에 대한 대출 규모가 더 많다는 점이다. 은행권은 선별적으로 대출해준 반면, 상호저축은행은 무분별하게 대출해줘 부실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저축은행 업계 관계자는 “저축은행이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는 데는 숙박·임대·목욕업 등에 대한 대규모 대출이 큰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경기가 호전되고 있다고들 말하지만, 소규모 목욕탕·찜질방·사우나 등 자영업자들의 연체율을 보면 경기 호전 기미를 찾아볼 수 없다.”며 “올들어 이들 업종의 연체율이 더 높아지고 있어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최근 들어 은행권의 대출이 숙박·목욕업에서 부동산저당대출 이 많았기 때문에 이들 업종에 대한 경매가 많아질 것”이라며 “특히 지난해 하반기부터 은행들의 한도 축소로 상호저축은행들이 대출을 많이 해줘 저축은행 부실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금융연구원 김병연 연구위원은 “경기심리는 대기업, 중소기업, 자영업자 등의 순으로 오기 때문에 자영업자들은 여전히 겨울나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이들의 영업난이 경기바닥의 징조인지, 봇물처럼 터지는 문제의 시발인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병철 김미경기자 bcjoo@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진인왕, 한국판 전륜성왕?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진인왕, 한국판 전륜성왕?

    요즘은 ‘우담발라’가 꽤 자주 피는 것 같다. 연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지만 최근에도 충북 단양군청과 충남 논산 성불사에 우담발라가 피었다고 해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법화경’에 보면 우담발라는 부처나 전륜성왕(轉輪聖王) 같은 성인이 출현할 때만 핀다고 한다.3000년에 겨우 한 번 필까 말까 한다는데 생물학자들은 그것이 실상 풀잠자리알 또는 곰팡이에 불과하단다. 어쨌든 우담발라가 피어 있는 성불사의 금륜 스님은 상서로운 징조라며 “을유년에는 평화와 번영, 남북통일을 기원하고 싶다.”고 했다. 우담발라. 작디 작은 몇십 송이 꽃인가, 곰팡이에 스님은 참 크고 묵직한 기원을 매달았다. 그런데 나는 우담발라가 피면 등장한다는 전륜성왕과 ‘정감록’의 진인왕 사이에서 비슷한 점을 발견한다. 전륜성왕은 부처의 세속적 모습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불경을 결집한 아소카 왕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불심이 깊고 태평성대를 실현할 왕이 바로 전륜성왕인데 민중은 진인왕에게 바로 그런 역할을 기대했다. 정감록의 진인은 무엇보다 현실의 고난을 헤쳐 간 민중의 꿈을 형상화시킬 의무를 졌다. 진인왕은 조선왕조의 기득권층인 양반을 벌주고 신분구조를 뒤엎으며, 서구열강과 그들의 종교를 물리치고 동아시아 질서를 재편할 민중의 구세주였다. ●진인은 못된 양반을 생지옥으로 1785년 정조 9년 또 한 차례 정감록 사건이 터졌다. 주모자들은 나라가 셋으로 쪼개진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유씨, 장씨, 김씨가 삼국의 왕이 된다고 했다. 그 뒤 나라를 통일할 진인(眞人)은 제주 700개 섬 가운데 어딘가 숨어 때를 기다린다고 했다. 사건의 주모자들은 그 진인이 마음대로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능력의 소유자라고 하면서 이미 서씨와 정씨 두 사람이 진인의 명에 따라 사람들의 허물을 낱낱이 기록한 일종의 ‘선악적(善惡籍)’을 작성중이라고 했다. 18세기말 민중이 진인의 출현에 걸었던 기대가 무엇이었는지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우선 주목되는 게 그 ‘선악적’이란 장부다. 딱히 양반의 허물만 기록한다고 명기돼 있지는 않다. 그러나 평민을 못살게 구는 양반들의 악행을 기록하는 데 그 중점이 있다고들 여겼을 것이다. 진인은 민중의 구세주였기 때문이다. 나라가 바뀌어도 무식한 아랫사람들로서야 당장 무슨 벼슬을 기대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저 양반놈들 망하는 꼴 좀 보자.’는 것이 그들의 희망이었다. 현실은 물론 정반대였다. 여러 지방에서 양반들은 동약(洞約)이나 향약을 실시해 장부를 비치해두고 말 안 듣는 하층민들을 기록해 뒀다가 벌을 줬다. 윗사람을 몰라본다, 불효한다, 형제간에 불화한다는 등의 죄명이 양반들의 ‘선악적’에 기록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진인이 민중의 편에서 선악 장부를 만들고 있다는 소문은 진인의 인기를 더욱 높였을 법하다. 통상적으론 양반 편에서 작성하는 것인데, 양반을 벌줄 수 있는 선악적이라니 얼마나 통쾌하랴. 진인의 상벌은 현세에서 시행된다는 점도 민중으로선 무척 달가운 일이었다. 자기들은 별다른 죄도 없이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데 약자들을 괴롭히며 놀고먹는 양반, 놀부 같은 그들이 밉고 싫었을 것이다. 민중은 자기들 눈앞에서 그런 못된 양반들이 생지옥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그리고 민중들은 지옥이란 말을 꺼낼 때마다 자연스레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을 떠올렸을 것이다. 지옥(범어 나라카·Naraka)은 사후세계란 뜻인데 그 참혹한 광경은 ‘목련경’에 자세하다. 석가모니의 큰 제자 목련존자의 지옥방문 이야기는 민간에 널리 알려졌다. 문맹인 사람들도 지옥도란 종교화를 통해서 지옥의 모습을 잘 알고 있었다. 불교의 지옥은 종류도 많아서 각기 8대 열지옥(뜨거운 지옥)과 한지옥(추운 지옥)이 있고, 그 아래 또 32개 소지옥이 있다고 한다. 진인은 선악 장부에 기록된 악인을 문자 그대로 생지옥에 보낼 것이 분명했다. ●푸른 옷(靑衣)은 천주교 신부요, 서구열강이다 진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또 있었다. 어찌 보면 좀 뜬금없는 소리 같기도 한데, 진인은 서양 종교인 천주교도 퇴치해야만 했고 서구열강도 물리쳐야 했다. 물론 이런 기대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말까지 서서히 무르익어 갔다. 북경에 파견된 조선의 사신일행이 거기 와 있던 예수회 신부를 알게 된 것은 이미 17세기부터였으나 천주교가 국내에 유입되어 본격적인 신앙운동이 벌어진 것은 18세기 후반이었다. 조정은 잔뜩 긴장하여 천주교를 엄금하였지만 그 세력은 제법 급속하게 늘어났다. 이런 가운데 1801년 신유박해를 비롯, 천주교도에 대한 박해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하층민들의 일부는 천주교의 문을 두드렸지만 천주교를 이단시하는 사람도 많았다. 조정의 ‘계몽’도 한몫했지만 천주교에서 조상의 제사를 금지한다는 게 그들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천주교에 대한 민중의 반발과 두려움은 정감록에도 감지된다.1923년판 정감록의 일부인 ‘무학비결(無學秘訣)’에서 푸른 옷이 남쪽에서 쳐들어오는데 ‘스님 같되 스님은 아니라’고 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여태 한반도엔 없었던 새로운 부류의 성직자 즉, 신부들이 침략자란 것이다.‘푸른 옷’은 본래 좀더 먼저 쓰인 ‘도선비결(道詵秘訣)’에서만 하더라도 미지의 외부인으로 해석될 뿐이었다.‘푸른 옷을 입고 남쪽에서 오니 오랑캐도 아니요, 왜적도 아니다.’라고 했다. 하필 왜 푸른 옷인지를 누구도 설명할 수 없다가 천주교의 국내 활동이 심각성을 띠게 되자 푸른 옷은 어느덧 서양신부로 비화됐다. 19세기 초에는 서양 함대의 파병을 요청하는 천주교 신자 황사영의 편지가 발각되어 여론이 비등했다. 연달아 천주교박해사건이 터졌으며 국내에 잠입한 프랑스 신부도 처형되었다.19세기 중반에는 그 여파로 프랑스 함대가 공격했고 설상가상 통상문제로 미국함대도 쳐들어 왔다. 그러자 이제는 서구열강 자체가 침략의 장본인으로 부상했다. 이런 변화를 기록한 것이 역시 정감록의 일부인 ‘토정가장결(土亭家藏訣)’이다.‘푸른 옷과 흰 옷이 서쪽, 남쪽에서 동시에 침략한다. 이때 정씨가 바다 섬에서 군사를 이끌고 나온다.’ 역사란 아이러니요, 거기서 나는 또 정감록이 갖는 현실 적응력을 본다. 서양선박의 출몰을 계기로 17세기 후반에 해도진인설이 등장했었는데(연재3호 참고), 그로부터 200년이 지난 19세기 말엔 거꾸로 해도진인이 극복해야 할 대상이 서양함대요, 서양신부였으니 말이다. ●동학의 최제우 새 세상 구현할 진인으로 1859년 최제우는 서학에 반대한다는 뜻에서 ‘동학’이란 이름의 새 종교를 만들었다. 그 뒤 1894년 동학은 서양과 일본을 물리치고 탐관오리를 내쫓아 백성을 구하겠다며 갑오동학농민운동을 벌였다. 한 마디로 동학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 내부의 지배층만이 아니라 외세란 점을 분명히 하였다. 그 바탕 위에 동학은 새 세상을 건설하자고 주장했다. 그것이 이른바 ‘후천개벽’이다. 최제우의 제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에게서 진인의 모습을 찾으려고 했다. 그들에게 최제우란 존재는 새 세상을 구현할 초인이었다. 진인은 서양세력의 위협에서 민중을 구해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 새 질서를 가져다줄 구세주였다. 그러나 모든 일을 진인 혼자 하는 것은 아니다. 방씨, 두씨 및 곽씨 성을 가진 3장군의 도움을 받는다고 했다. 각각의 성씨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그들의 활약상이 ‘토정가장결’에 나와 있다. “곽장군이 요동의 군사를 이끌고 방씨, 두씨 장수와 함께 왜적과 서남 오랑캐를 무찌른다. 청나라를 몰아내고 명나라를 돕는다. 정씨를 돕고 이씨를 공격한다. 그러면 이씨는 제주로 들어갈 것이나 4∼5년간의 운수에 지나지 않는다.” ●진인은 동아시아 질서를 재편한다 두어 줄밖에 안 되지만 숨가쁜 격변, 그것도 국제적인 변화를 예언한다. 하층민중이 국제정세에 민감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그들 나름의 생각이 없지 않았을 것은 물론이다. 특히 주목되는 구절은 일본과 청나라를 멸망시키고 이어서 조선의 이씨왕조를 무너뜨린다고 한 점이다. 먼저 외부에서 제기된 문제를 극복하고 그런 다음 비로소 내부문제에 착수한다고 한 점이 인상적이다. 다 아는 대로 일·청 두 나라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통해 한국을 괴롭힌 장본인으로 수백 년이 지난 뒤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두려워했다. 더욱이 두 나라는 19세기말 한국에 진출, 내정을 간섭하고 경제적으로도 많은 피해를 주었다. 그런 까닭에 대다수 민중은 진인이 나타나 그들 두 나라도 없애버리기를 바랐던 것이다. 특히 일본의 멸망에 대한 기대가 커, 일본 정벌론까지 등장하게 된다. 정감록의 한 파트인 ‘서계이선생가장결(西溪李先生家藏訣)’엔 호랑이해부터 뱀해 사이 진인이 일본을 쳐서 항복을 받는다고 했다. 호랑이는 섬나라 일본에 존재하지 않는 동물의 왕이며 뱀은 용과 더불어 성인, 또는 왕을 상징한다. 구한말 한반도 지도를 그릴 때도 한국 사람들은 이를 호랑이로 인식했다. 일본 사람들은 일본이 포항과 장기 앞바다에 등대를 설치한 것에 원한을 품기도 했다. 그곳은 호랑이의 꼬리에 해당하는데 등대가 세워지면 호랑이 꼬리에 불을 지른 셈이라는 것이다. 호랑이를 죽이려는 계략이라며 등대를 당장 허물라고 했다. 웃고 넘어갈 이야기지만 어쨌거나 막강한 일본을 이기려면 그런 주술에라도 호소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예언서에 언급된 일본정복설은 허망한 소망에 불과했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일본은 해가 갈수록 더 많은 한국산 미곡을 수입했고, 값싼 면직물을 한국으로 대량 수출했다. 결과적으로 대다수 민중은 전례 없는 쌀 부족에 시달렸다. 값싸고 품질 좋은 수입산 면직물을 당해낼 길 없어 일반 농가의 면포(綿布) 생산은 위축돼 갔다.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치른 뒤 한국을 집어삼키려고 혈안이 돼 있었다. 예언서에는 그런 역사적 상황을 반전시키고자 했던 민중의 열망이 표현돼 있다. ●진인왕과 보양법, 밀교 그야말로 초인적인 업적을 이룰 진인왕에 관해 정감록의 일부인 ‘동차결’은 이렇게 점치고 있다.‘태조의 성은 정(鄭), 이름은 홍도(紅桃), 자는 정문(正文), 무오생이다. 섬 가운데 평실에서 나와 계룡산에 건국한다.’ 정진인의 이름 ‘홍도’(붉은 복숭아)는 도교적이다. 복숭아는 수명과 성적 능력을 상징한다. 특히 그 빛이 붉다면 복숭아 중에서도 일품이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름은 ‘정문’, 문(文)을 바로잡는다고 돼 있다. 통치 질서와 윤리도덕을 바르게 한다는 뜻으로, 말하자면 진인은 유교적 덕성을 겸비한 존재다. 무오생이라 함도 의미가 있다.10간의 5번째인 ‘무(戊)’와 12지의 7번째인 ‘오(午)’는 각기 중간의 홀수, 즉 중양(重陽)이다. 진시황의 생일도 단오 또는 중양이었다. 이런 남성은 불세출의 영웅이라 한다. 진인왕은 도교적 성격이 강한 만큼 도교서적에 나오는 진인이 되는 방법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다. 도교에선 양기, 성적 능력을 극대화시키면 절로 진인이 된다고 본다. 그것이 양생법이다. 불교의 분파인 밀교에도 거의 똑같은 가르침이 있다. 당나라 때 도사 손사막이 지은 ‘방중보익(房中補益)’을 보면, 정액을 잃지 않고 93명의 여성과 성교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했다. 몸에 내재한 이성성(二性性)을 살리게 돼 진인이 된다는 말이다. 허무맹랑한 얘기 같지만 밀교는 물론 힌두교에서도 다 그렇게 봤다. 정액을 몸 밖으로 쏟아내지 않고 변화시켜 뇌로 보낼 수만 있다면 열반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이다. 유사종교의 지도자들은 이를 빙자해 간음 사건으로 물의를 빚기도 한다. 그들로서는 진인 될 수행을 했다고 강변할지도 모르겠다.1937년엔 백백교 사건이 발생했는데 교주 전해룡은 간음과 범법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무려 350명의 남녀신도를 살해했다고 한다. ●진인왕이 다스릴 새 세상 진인왕이 다스릴 새 세상의 특징을 ‘동차결’은 이렇게 적어놓았다.‘여러 대를 두고 내려오던 양반은 상사람이 되며, 상사람은 오히려 양반이 된다. 부처를 섬기는 사람들 가운데서 인재를 뽑아 쓴다.’ 짧은 내용이지만 정감록을 믿던 민중에겐 결정적으로 중요한 대목이다. 진인왕이 평등사회를 실현한다고 볼 순 없지만, 조선사회의 신분질서를 뒤엎고자 한 민중의 의지가 뚜렷이 드러나 있다. 상사람이 양반되고 양반이 상사람 된다고 하였으니 그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진인왕은 유불선 삼교합일의 바탕 위에 존재하지만 그 본질은 불교적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인재를 불교에서 구할 리가 없지 않은가. 또한 여기서 나는 조선후기 민중이 성리학적 지배 이념에 반발해 불교에서 대안을 찾고 있었음을 본다. 조선말의 혁명가 김옥균도 불교신자였으며, 이동인과 같은 개화승려도 있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어떤 사람들은 불교를 융성시킬 진인왕은 전륜성왕이라고 생각한다. 불교 경전에 보이는 전륜성왕은 모두 4명이다. 공교롭게도 예언서에서 진인왕에게 왕업을 도울 세 아들이 있다고 한 것과 맞아떨어진다. 신라의 진평왕도 아들의 이름을 동륜, 금륜 등으로 불렀다. 그 역시 스스로를 전륜성왕으로 봤다는 증거다. 전륜성왕 가운데 첫 왕은 철륜왕인데 진인왕이 그에 해당한다. 그 뒤를 이어 동륜왕·은륜왕·금륜왕이 차례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게 불교의 가르침이다. 불교신자로서 정감록을 믿는 사람들은 진인왕의 협력자인 세 아들에게도 당연히 그런 역할을 기대한다. 전륜성왕이 출현할 때 우담발라가 핀다고 했다. 서두에서 말했듯 이미 우담바라는 피었다. 과연 전륜성왕은 오는 것일까. 전륜성왕이 가진 7개의 보물 중 하나인 거사보(居士寶)는 고아, 노인, 병자 등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을 모두 구원하는 능력이 있다. 더러 전륜성왕으로 간주되기도 하는 예언서 속의 진인왕은 서양열강, 중국, 일본을 평정하고 동아시아에 새 질서를 구축한다고 했다. 정감록은 당대 민중의 현실적인 문제를 극복할 대안이었다. 그 예언이 실질적인 힘을 발휘했느냐는 별개 문제다. 대안이란 점에서 정감록은 예언서로서 생명력을 오래도록 유지했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방학사거리에 ‘바이오톱’ 조성

    의정부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관문 역할을 하는 방학사거리에 물을 주제로 한 소규모 생물서식공간(바이오톱·조감도)이 조성된다. 서울 도봉구(구청장 최선길)는 26일 방학동 678 일대 1만5780㎡(4773평)의 방학사거리 녹지대를 연말까지 분수, 연못, 잔디광장, 상징조형물 등을 갖춘 테마형 수경공원으로 조성한다고 밝혔다. 1982년 나무와 잔디밭으로 꾸며져 교통광장의 역할을 하는 현재의 녹지대는 주변 주택가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해 주민들로부터 외면을 받아왔다. 최근에는 노숙자나 탈선 청소년 등이 모이는 우범지역으로 바뀌어 민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구는 사거리 교차로마다 하나씩 사계절을 주제로 한 친수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는 도봉구 지역이 북한산, 초안산 등 녹지는 많지만 생활공간에서 청량감을 주는 친수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봄의 마당’에는 서울의 관문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생기고 ‘여름 마당’에는 서울광장 분수대와 같은 바닥분수가 설치된다. ‘가을마당’에는 중랑천·방학천과 연계된 소규모 생태연못과 소나무 동산을 만들고,‘겨울마당’에는 잔디광장을 조성해 주민들의 문화·체육활동 등이 열리도록 한다. 공사에는 시비등 모두 26억원이 투입된다. 최 구청장은 “계절에 맞는 수종의 나무와 꽃을 각 마당에 심어 자연의 정취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 “‘웰빙 최적구’라는 구의 목표에 맞는 바이오톱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그로테스크 멜랑콜리, 상실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천운영의 소설세계)/차미령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그로테스크 멜랑콜리, 상실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천운영의 소설세계)/차미령

    진실이 나를 절망으로 밀어 넣으려 한다면 나는 단호히 거부할 것이다. ―천운영,‘포옹’ 천운영 소설에 대한 보다 정확히 말해,‘바늘’이 출간되고 난 후 이 작가의 첫 소설집을 중심으로 한 지금까지의 논의는 ‘엽기성’,‘동물성’,‘야생성’,‘야수성’,‘육식성’,‘파괴성’,‘공격성’,‘관능성’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천운영 소설에 이르러 우리 문학은 “가부장적 질서를 난도질하는 육체적 질감을 지닌 현장(김양선,‘기이하고 낯선 가족과 여성이야기’)”을 갖게 되었다는 식의, 지난 연대의 여성 소설과 천운영 소설을 구획짓고자 하는 시도가 여러 평문에서 발견되는 것은 그러므로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불감증, 거식증, 불임, 도벽 등과 같은 히스테리적 징후로서만 즉, 부정으로서만 여성 소설의 위반성을 거론할 수 있었던 지난 연대와는 달리,“맹수의 이미지를 띤 여성인물들(황종연,‘탈승화의 리얼리즘’)”은 유례없이 “전복적이고 파괴적인(황도경,‘환상 속으로 탈주하라’)”힘을 독자들에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 작가의 차기작에 대한 관심이 “신선한 살과 피를 원하는 이 짐승의 다음 먹잇감은 무엇이 될 것인가(남진우,‘늑대의 후예’)”쯤으로 표현되는 것이 지금은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이다. “육체적 질감”,“신선한 살과 피” 등의 앞서 인용한 비평적 수사에서 은연 중 드러나듯, 천운영 소설이 보여 주는 이러한 특징은 무엇보다 그 생생한 현장감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이제는 잘 알려진 ‘발로 쓰는’ 이 작가의 스타일이나 그로 인한 생동감 넘치는 디테일의 창출에도 불구하고, 천운영이 정작 공들여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그가 취재한 세계, 바로 그 곳으로부터 도출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직접 회를 뜨고, 야나기상의 문신을 보고, 소머리 가르는 접칼을 쥐어도, 작가의 시선은, 장어를 다루는 횟집 주방장의 손놀림에서 텅 빈 수족관 앞에 망연히 앉아 있는 그의 ‘아내’에게로, 남자의 육체에 수놓아진 화려한 거미 문신에서 문신사의 자살한 ‘어머니’에게로, 뼈와 살이 갈려진 소머리에서 우시장 노동자의 ‘할머니’와 ‘연인’에게로 이동한다. 한 세밀한 묘사가 담고 있는 내용이 작품의 전체적인 의미를 좌우하는 데까지 미치지는 못한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 앞에서, 우리의 포커스 또한 이동할 때가 된 듯하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질문들;천운영 소설의 세밀한 묘사와 이에 기반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에 가려 미처 드러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저토록 야수적이고 공격적이며 파괴적인 인물들 내면에는 과연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가? 작가의 두 번째 창작집 ‘명랑’이 출간된 지금, 우리가 시도해야 할 작업은 엽기성과 파괴성의 이면 혹은, 공격성과 야수성의 연원을 추적해 들어가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그 그로테스크함으로 인해 앞서 언급한 비평적 키워드들의 시발점의 하나가 되었던 천운영 소설 인물들의 ‘몸’으로부터 출발해 보자.“감각적이고 물질적인 신체를 보여(심진경,‘아름다움과 추함을 가로지르는 섹슈얼리티의 모험과 위반’)”주면서 “몸의 해부학적 묘사라 할 만큼 유난히 신체에 대한 묘사에 집착(황도경, 앞의글)”한다고 평가받는 이 작가의 소설에서, 몸, 그것으로부터 다시 시작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주목하는 몸의 일부는 얼굴이 아니다. 바로 ‘등’이다. 우리 중 누군가 자신의 ‘등’의 진짜 모습을 본 사람이 있을까. 등은 인간의 육체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사람들은 대개 죽을 때까지 자신의 등의 실제 모습을 모르고 산다. 심지어 거울 앞에서도. 그 실재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무의식의 세계를 은유하고 있으며, 나조차 알지 못하는 이면을 타자는 볼 수 있다는 인식은 불안과 공포의 근원으로 자리한다. 만약 자신의 등이 “굽은 등”이고, 자신이 “곱사등이”이라면, 그 불안과 공포는 피할 수 없는 것이 된다.‘포옹’의 ‘나(인경)’는 “평면만을 보여주는 거울의 기만성(1:213, 이하 괄호안의 표기는 수록소설집:페이지수)”을 충분히 알고 있다.“그렇게 화장을 하고 차려 입으니 너무 예쁘구나(1:213)”라는 거울 속 어머니의 말은 그러므로 거짓이라는 것도. 일찍이 멜라니 클라인이 말한 대로 거울의 드라마가 막을 내릴 때 더 이상 엄마의 일부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아이의 고통은 원초적인 것에 육박하지만, 거울이 제공하는 이 기만적인 나르시시즘은 자기정체성을 구성해 내고, 거울을 통과한 후에야 아이는 자신을 3인칭으로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굽은 등을 보기를 두려워하는 인경은 여전히 엄마의 일부일 때에만 완전하다고 느낀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진실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니, 그것이 진실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엄마 품에 안겨 거울 속 나를 바라보(1:213)”며, 자신의 뒷모습이 “백지”로 남기를 바란다. 진실이 절망을 가져다준다면 그 진실을 단호히 거부하는 것, 그것은 자신이 불완전하다고 믿는 그녀가 불우한 삶을 견뎌 내는 일종의 방법론이다. ‘포옹’에서 인경의 등은, 어머니를 제외한 그 누구도 손대기를 꺼려한다는 점에서는 나조차 어찌할 수조차 없는 내 안의 괴물―‘바늘’에서 곱추를 연상시키는 ‘나’의 등이나,‘숨’에서 육식동물을 연상시키는 할머니의 단단한 등뼈를 보라―이지만, 거꾸로 누군가의 손길을 간절히 요구한다는 점에서 소통을 불러오는 몸의 유일한 창구가 된다.“어느 누구도 자신의 등을 쓰다듬을 수는 없는 법이며, 타인만이 그 등을 쓰다듬고 보듬어 줄 수 있”(‘등뼈’)다는 소설 속의 한 전언은 천운영 소설에서 타인과의 소통이란 것은 곧 위무의 다른 말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자신은 볼 수조차 없지만 타자는 볼 수 있으며, 자신은 안아주고 보듬어 줄 수 없지만 타자는 안아주고 보듬어 줄 수 있기 때문에,“아내의 굽은 등”“할멈의 굽은 등”(‘행복 고물상’)에서 번져 나오는 고독감은 남편과 이웃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지친 이를 위로하는 가장 좋은 방편은 “등을 쓰다듬어 주는” 것(‘멍게 뒷맛’)이며, 위로받는 가장 좋은 방법 또한 “등을 내맡기는”(‘아버지의 엉덩이’) 것이다. 천운영 소설에서는 환상 속에 잠깐 이루어진 만남 또한 “등을 만졌던 것 만 같다”(‘월경’)라고 표현된다. 이런 식이라면 타인에 대한 분노나 타인으로부터의 외면은 등을 돌리거나, 등을 치는 것으로 그려질 성싶다. 마치 아버지를 경멸하는 아들이 제 아버지의 “등을 쏘아 보”고, 그 아버지의 “등짝을 후려”치고 싶어 하는 것(‘아버지의 엉덩이’)처럼, 친구들이 대항할 힘도 없는 ‘나’를 “등을 밀쳐 땅바닥에 넘어뜨리”던 것(‘세번째 유방’)처럼, 살인 장면의 마지막 기억이 “남자가 정말 당신 등을 밀었다”(‘멍게 뒷맛’)로 남게 되는 것처럼. 그러나 무엇보다 천운영 소설에서 등은 대부분 대상­타자를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작중인물의 불안을 담고 있다. 등을 돌린 사람 혹은, 돌아선 사람의 등에 대한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사례들;“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남편 뒤에서 그의 아내는 “침묵하는 당신(남편)의 등”을 바라보며 그 “등이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왜소한 그 등을 보이고 당신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다”(‘당신의 바다’)며 견딜 수 없어 한다. 연인들의 연애의 끝은 또 어떠한가. 꿈 속에서 골목을 헤매던 여자는 길 모퉁이에서 “남자가 등을 보이고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다가가지만 모퉁이를 돌면 새로운 모퉁이만 계속해서 나타날 뿐이고(‘모퉁이’), 연인에게 입 맞추던 여인은 “등을 보이고 돌아”선 후 그로부터 “점점 멀어진”다(‘세번째 유방’). 이렇듯 도저한 상실감이 등의 이미지를 빌려 가장 성공적으로 형상화된 소설은 그 표제가 아예 ‘등뼈’이다. “여자가 떠났다”라는 간결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등뼈’는 자신에게 맹목적으로 집착하던 여성이 떠난 이후 전개되는 남성의 황폐한 내면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아무런 징후나 예고도 없이 순식간에(1:138)”라는 구절에서 강조되고 있듯이, 여자의 실종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것이어서 남자에게 그것은 “떠난 것이 아니라 증발한 것(1:143)”에 가까우며, 남자는 당연히 여자의 그러한 증발에 대비할 수 있는 아무런 준비도 해 놓지 못한 채이다. 그러나 “그때 왜 여자의 등을 쓰다듬어주지 못했을까(1:148)”라는 소설 속의 한 구절을 제외한다면 남자가 여자의 사라짐을 안타까워하는 모습은 쉽사리 발견되지 않는다. 대신 남자는 특이하게도 “여자가 떠난 뒤 살 속에 숨은 뼈에 집착하기 시작(1:150)”한다. 주위 사물들에서 뼈를 연상해 내고(1), 원인을 알 수 없는 요추디스크로 고통받다가(2), 급기야 뼈를 찍은 엑스레이 필름을 닥치는 대로 모으며(3), 결국 아무런 식욕조차 느끼지 못하게 되어 그의 몸엔 뼈만 두드러지게 된다(4). 여자가 떠난 후 이 남자가 보여주는 모든 증상((1)∼(4))은 그러니까 ‘뼈’에 대한 집착으로 수렴된다. 그런데 왜 하필 ‘뼈’일까? 등에 통증이 느껴졌다. 손을 돌려 등을 만졌다. 손끝에 등뼈 마디마디가 분명히 잡혔다. 남자는 욕조에서 기어 나와 거울 앞에 섰다. 거울에 서린 김을 걷어내자 남자의 퀭한 얼굴이 보였다. 광대뼈가 툭 튀어 나오고 눈이 쑥 들어간 낯선 사람이 거울 속에 들어 있었다. 남자는 가까스로 몸을 움직여 거울에 등을 비추어보았다. 등골이 패고 뼈가 튀어나온 등이 어렴풋이 보였다. 여자가 그 등뼈에 숨어 남자의 등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있었다.(1:158) ‘뼈’에 대한 남자의 집착은 그의 일상을 와해시키고 결국 그 자신을 말 그대로 뼈만 남게 만들어 버리는데, 사라진 여자가 등뼈는 말할 것도 없고 광대뼈, 턱뼈, 어깨뼈, 복사뼈까지 유난히 뼈가 도드라졌으며 식성도 특이해서 생선뼈, 닭갈비뼈, 조개껍데기와 같이 뼈에 붙은 살들만을 골라 먹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러한 남자의 집착은 그녀에 대한 남자의 무의식적 동일시 즉, 사라진 대상을 불완전하게나마 보유하고자 하는 멜랑콜리적 동일시가 빚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랑하는 대상이 사라지면 누구나 그 대상에 대한 집착을 어느 정도 유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현실적인 요구와 함께 대상에 투자되었던 리비도는 다시 회수된다(프로이트,‘애도와 우울’). 이것이 상실된 대상에 대한 상식적인 ‘애도’의 과정이다. 그러나 상실된 대상에 대한 리비도가 너무나 강해서 현실에서 상실된 대상을 대체할 만한 다른 대상을 찾지 못할 때, 주체는 상실된 대상을 내면화(internalization) 혹은 합체(내적 동일화,incorporation)함으로써 계속 보유하고자 한다(J 버틀러,‘멜랑콜리적 젠더/거부된 동일시’). 결코 재현될 수 없는 상실된 대상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살아 있는 현재로 끊임없이 소환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남자가 가까스로 거울에 비춰본 자신의 등에서 “여자가 그 등뼈에 숨어 남자의 등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환상으로 처리되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이러한 맥락에서 음미해 볼 만하다.“뼈가 튀어나온 등”은 현재의 환상 속에서 과거의 상실된 대상과 남자가 조우하는 장소로 공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천운영 소설의 인물들은 이처럼 상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그 저항이 지극히 위장된 형태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멜랑콜리적 주체의 성격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다. 상실로 인한 슬픔이 애도로 승화되지 못한 원인은 무엇보다 이들이 도저한 상실감의 원인이 된 대상에 대해 ‘의식적으로는’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리하여 환상 속에서조차 대상과의 만남이 허락되지 않을 때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난폭한 짐승(2:119)”이 출몰하게 된다. 이 “난폭한 짐승” 혹은,“광포한 짐승” 혹은,“제 속에 든 짐승”은 인물들 특히, 여성인물들을 숨이 차도록 달리게 만들기도 하고, 그녀들에게 무서운 식욕을 부추기기도 한다. 다음을 보라:애도할 만한 죽음이 나타나면 여자 속에 숨은 짐승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 슬픈 일이 일어나기를, 짐승을 다스릴 만한 제물이 나타나기를 여자는 빌었다(‘모퉁이’, 강조 인용자).“애도할 만한 죽음”이 여자 속 숨은 짐승을 사라지게 하고,“무언가 슬픈 일”이 그 짐승을 다스릴 것이라는 저 여자의 내면이 가리키는 것은, 자신의 상실감의 원인이 되는 대상이 앞에 있다면 그 상실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막한 기대이다. 통제 불가능한 내면은 분명 무언가의 상실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실된 대상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된 대상이 눈 앞에 있어 이를 애도할 수 있다면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내면을 잠재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기억-내용은 이미 소실되었으되 기억-감정이 남아 있어 유사한 심리적 기제가 주어지면 어김없이 리비도가 투자된다. 그러나 그 대상이 상실된 바로 그 대상은 아니기에 상실의 흔적은 그녀들에게 애도해야 할 무언가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애초에 존재하지조차 않았던 남자의 유골을 뿌리러 제주도로 향하는 여자(‘포옹’)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또한 바로 그것이다. 천운영의 소설들에서 누군가의 죽음 혹은 (갑작스러운) 사라짐은 서사를 이끌어 가는 가장 기본적인 모티프이다. 이 작가의 어느 작품을 들춰 보아도 이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명랑’‘아버지의 엉덩이’‘세번째 유방’에서는 할머니가,‘바늘’‘명랑’‘월경’‘당신의 바다’에서는 아버지가,‘바늘’‘멍게 뒷맛’‘월경’‘아버지의 엉덩이’에서는 어머니가,‘숨’‘그림자 상자’에서는 양친부모 모두가,‘등뼈’‘멍게 뒷맛’에서는 여자가,‘모퉁이’에서는 연인이,‘당신의 바다’에서는 남편이 죽거나, 실종되거나, 아무런 예고 없이 주인공 곁을 떠난다. 이러한 상실이 대개 가장 기본적인 삶의 단위인 가족 관계에서부터 발생한다는 것은 이렇게 열거한 목록에서도 금방 포착되는데, 그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할머니)의 빈자리이다. 천운영 소설이 가족관계 안에서의 갈등을 그 기본 축으로 하면서도 ‘모퉁이’‘그림자 상자’‘세번째 유방’을 제외하면 형제나 자매를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소설들에서마저도 언니, 오빠, 동생은 화자를, 부모 특히 어머니 곁에 가까이 할 수 없게 만드는 경쟁자로서만 그 의미를 지닌다. 천운영 소설 속 주인공들의 어머니에 대한 집착 혹은 애증은 그 유례를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강렬하다. 최근 한 평론에서는 천운영 소설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로 ‘부재하는 아버지’가 거론되었거니와(남진우, 앞의 글), 이 논자의 지적대로 무능하고 비루한 아버지의 초상은 이 시대 거세된 남성성의 표상이라 할 만하다. 물론 아버지가 부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로는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부재하는 아버지’는 실로 오랫동안 우리 소설의 한 테마였고,‘아비-부재’,‘아비-찾기’,‘아비-되기’,‘아비-부정’의 기나긴 순환 속에서 우리 소설의 주인공들은 그 정체성의 근거를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존재론적 불안과 함께 지금껏 성장해 왔다고 해도 그리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운영 소설에서 아버지의 죽음, 그 부재의 효과는 말 그대로 그저 ‘없음’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특징적이다. 아버지의 위치가 지극히 주변화되어 있음에도, 이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아들들에게서는 그에 대한 어떠한 연민도, 이를 복권하려는 의지도, 스스로 가부장으로 전신하고자 하는 충동도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천운영 소설에서 강력한 입법자로서의 아버지란 ‘세번째 유방’의 아버지를 빼고는 찾아보기 힘들며, 심지어 ‘아버지―법’은 “어머니를 닮은 부라보콘”에게까지 자리를 내준다(‘눈보라콘’);“오직 부라보콘만이 내 운명에 관여할 수 있는 존재(1:90)”다.‘∼하지 말라’가 사라진 자리에서, 가위를 든 “이발사” 아버지가 사라진 바로 그 자리에서,‘나’는 어머니를 마음껏 향유하고자 한다.‘눈보라콘’에서 부재하는 아버지는 그러므로 이후 도래할 어머니의 빈자리를 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그치게 된다. 또 다른 남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아버지의 엉덩이’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아버지는 느낄 수 없을 만큼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텔레비전을 본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상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등을 쏘아 본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쇼핑호스트가 플라스틱 밀폐용기를 소개하고 있다. 앞치마를 두른 쇼핑 호스트는 크기가 각기 다른 밀폐용기를 쌓아놓고 얼마나 저렴한지에 대해 과장되게 말하며 전화주문을 유도한다.(……) 아버지는 냉장고에 뭐가 들었는지 관심도 없으면서 조금씩 내려가는 숫자판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2:172) 위 장면의 등장인물의 성(性)을 여성으로 치환시켜 놓으면 즉, 아버지와 아들의 식사장면이 아니라 어머니와 딸의 그것으로 바꾸어 놓으면, 우리 눈 앞에 매우 익숙한 광경이 펼쳐진다. 늙은 어머니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딸이 “상”을 차려 들어간다, 어머니의 모습에 “신경질”이 난 딸은 그녀를 “쏘아 본다”, 텔레비전에서는 “플라스틱 밀폐용기”를 선전하는 “홈쇼핑” 프로그램이 한창이다, 어머니는 숫자판에 넋을 놓고 있다. 그러나 이 장면의 주인공은 분명 아버지와 아들이다. 홈쇼핑 중독자인 아버지의 “게걸스런 주문과 반품”이 “외출”로 이어지는 이 소설은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히스테리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 혹은 홈드라마의 역전된 판본이라 할 만한다. 그러나 이 장면을 언급한 것은 이 시대의 ‘아버지 부재’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존재한다. 아버지의 ‘엉덩이’라는 발칙한 상상력이 말해 주듯이 다만,‘어머니 부재’로 세계의 중심을 잃어버린 한 “엄마”의 아들로서만, 아버지는 그렇게 존재할 뿐이다. 이 소설의 아버지와 아들, 두 남성 주인공을 움직이는 숨은 작인은 아버지가 아니라 부재하는 어머니이다. 자신의 어머니 묘소 앞에서 “이제 막 탯줄을 끊고 세상에 나온 갓난아이처럼 우는(2:166)” 아버지는 물론이고, 태어나자마자 잃어버린 “따뜻한 자궁(2:167)”을 그리워하는 아들 역시 포도나무 가지에서조차 “침묵하며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2:182)”를 발견한다. 이들 부자(父子)에게 ‘부재하는 어머니(할머니)’는 모성적 초자아(maternal superego)의 형상으로 그녀의 아들들을 조종한다. 남성인물을 움직이는 모성적 초자아의 형상은 ‘숨’에서는 ‘차가운 자궁’의 이미지를 빌려 섬뜩하게 변주된다. 할머니를 설득하는 마지막 방편인 송치를 구하기 위해 주인공 ‘나’가 불법적인 물먹이기를 감행하다가 경찰에 발각되어 도망치는 대목에서, 단속반의 추격을 피해 숨어든 장소가 높이 2미터, 영하 20도의 “거대한 냉장창고”라는 점을 쉽게 지나쳐서는 안 된다. 그 추격의 장면이 마치 사냥의 한 대목처럼 그려지고 있다는 점―할머니가 “육식동물”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이 발각으로 인해 할머니의 의사를 거스른 미연과의 결혼이 틀어질 위기에 처한다는 점, 그 안에서 ‘나’는 입을 틀어막은 채 “숨을 죽여(1:55)”야 한다는 점 등은 이 냉동고가 ‘나’에게는 공포 그 자체일 수밖에 없는 ‘얼어붙은 자궁’이 물질화된 것임을 암시한다.‘숨’에서 아들을 숨죽이게 만드는 냉동고가 이처럼 은유적 차원에서 자궁의 부정적 이면을 함축하고 있다면,‘행복고물상’에서 그것은 “유산된지도 모르고 보름 동안이나 자궁 속에 죽은 아이를 넣고 다녔던(1:162)” 아내를 빌려 실체화되고 있기도 하다. 자궁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자궁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는 천운영의 소설들에서는 빈번하게 출물하면서 작품의 기저음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당신을 둘러싼 바다 밑바닥 같은 어둠”(‘당신의 바다’)과 같은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천운영 소설에서 어둠, 바다는 의미론적인 층위에서 긴밀한 연관관계 속에 놓이는 경우가 흔하며,“깊은 어둠(1:195)”,“어두운 바닷 속으로 깊숙이(1:139)”,“바다 깊숙한 곳(1:156)”,“물 속 깊숙이(1:158)”,“깊은 바다로 침잠(1:136)” 에서와 같이 곧잘 하강 혹은 침잠의 이미지와 함께 나타나는데, 이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최종지점에 어머니―모체―자궁이 자리한다.“탄생 이전의 따뜻한 양수 속으로 돌아가고 있는” 할머니(‘명랑’)나,“태아처럼 몸을 구부리”고 “어머니의 자궁처럼 포근해진 어둠”을 즐기는 아이(‘유령의 집’)는 천운영 소설의 주인공들에서 발견되는 모체―자궁으로의 회귀욕을 보다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천운영 소설에 등장하는 위와 같은 사례들에서 다음과 같은 해석들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무력한 아버지를 대체하는 어머니에게서 아버지-법에 내포된 헤게모니의 일시적인 전복을 읽어낼 수도 있고, 성적 관계의 절대적 방해자로 나타나는 할머니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손자의 서사를 아버지―질서의 외부를 꿈꾸는 딸의 서사의 역전된 판본으로 체감할 수도 있으며, 빈번히 등장하는 자궁 회귀욕으로부터 주체―대상의 이분법에 이전하는 원초적 충동으로서의 모체 회귀욕을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위 소설들에서는 그것이 의존성이건, 억압이건, 회귀이건 간에 어머니의 부재가 스토리―시간 내에서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며,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죽음(‘아버지의 엉덩이’)이나 재혼(‘눈보라콘’)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자체로 버려짐이나 내쳐짐의 쓰라린 감각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대상―타자의 상실을 ‘버려짐’으로써 격렬하게 경험하는 인물들은 무엇보다 ‘바늘’‘멍게 뒷맛’‘월경’‘모퉁이’에 등장하는 여성인물들이다. 울음보가 터졌다. 엄마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다락 계단을 기어오르면서부터 나는 이미 울고 있었다. 코피가 나올 것처럼 콧잔등이 매큼해지고 입술은 움찔움찔 울음을 품었다. 엄마는 내 울음소리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엄마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걸었다. 내 울음이 엄마를 돌려세울 수 없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울음을 그칠 수는 없었다.(2:100) ‘모퉁이’는 주인공 ‘나’가 ‘엄마’와 헤어지는 인상적인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장면에서 엄마를 잃어 비통한 한 소녀의 심사는,14줄에 걸쳐 집요하게 서술된다. 마치 그것을 영원한 이별이라 예감하는 듯이 소녀는 줄기차게 울어댄다. 그러나 소녀가 그토록 떠날까봐 전전긍긍하는 엄마는 단지 아빠의 공장에 밥을 가져다주러 나선 길일 뿐이다. 매일 반복되었을 이 일상적인 엄마의 떠남 앞에서 소녀는 한참동안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엄마를 자신으로부터 떼어놓는다고 생각되는 존재는 “뱃속의 아이”라도 저주하는 소녀,“엄마가 없으면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악을 쓰고 울었(2:112)”던 그 소녀,“우는 것만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2:105)”이었던 바로 그 소녀는, 성인이 되어서도 “남자”에게는 여전히 “울음소리”로 존재한다.‘멍게 뒷맛’,‘바늘’에서 역시, 어머니와의 이별은 언제나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것이며, 성장한 그녀들이 겪는 모든 상실의 밑그림이 된다. 엄마들은 결국 떠난다. 엄마가 떠난 길목을 바라보며 꼼짝도 못하고 있던 그날을 기억하는 ‘나’(‘바늘’)나, 좋은 옷을 차려 입고 기차에 올랐을 때부터 이미 엄마에게 “버려질 것”을 짐작하고 있었던 ‘당신’(‘멍게 뒷맛’)은, 그런 점에서는 모두 닮은 존재들이다. 이 세 작품에 비해 어머니의 비중이 미미하게 그려진 ‘월경’에서조차, 주인공 ‘나’는 어머니의 화사한 보석함에, 손톱 자른 것, 빠진 머리카락, 상처에서 떼어낸 딱정이와 같이 제 몸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을 모아둠으로써, 뿌리깊은 분리 불안을 드러낸다. 이 소설들에 등장하는 여성 주인공들은 어린시절, 주로 어머니로 대표되는 대상-타자에게 강렬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으되, 필연적으로 그 애착이 거부(혹은 금지)됨을 경험한다. 가령,‘모퉁이’에서 그것은 금지의 양상(“엄마의 가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젖무덤을 헤치는 내 손을 단호하게 뿌리쳤다. 나는 엄마의 매정한 손이 야속했다. 엄마는 내게 동생이 생길 거라고 했다. 동생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나는 되우 맞은 사람처럼 휘청거렸다(2:109)”)으로,‘바늘’에서 그것은 거부의 양상(“엄마가 내민 보자기에는 꽤 많은 돈뭉치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스님의 옷을 들고 집을 나섰다.‘나는 그곳으로 가야겠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내게 남긴 말이었다.(1:24)”)으로 전면화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금지/거부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의 욕망은 부인된 형태로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할머니를 갑작스러운 사고로 잃은 뒤 그녀의 뼛가루를 생전의 할머니가 명랑가루 먹듯 맛보는 손녀가 “내 내부에는 언제나 나를 바라보며 침묵하는 그녀가 있다(2:37)”고 고백하는 것(‘명랑’)처럼, 상실이 일어났을 때 상실을 부인하고 상실된 대상의 속성을 취하여 이를 내면화하는 것이 천운영 소설에 등장하는 멜랑콜리적 주체의 생존전략이라고 한다면,‘바늘’과 ‘월경’의 ‘나’는 바로 그 길을 간다. ‘바늘’과 ‘월경’은 각각 그로테스크한 인물 묘사와 도착적인 섹슈얼리티로 인해 발표된 직후부터 유독 많은 평자들의 주목을 받아 온 작품들이다. 이 글의 관점에서 역시, 두 작품은 매우 흥미롭게 읽힌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점에서 두 소설을 집중적으로 되짚어 보고자 하는 이유는 다음의 몇 가지 단서들로부터 비롯한 것이다. 먼저 두 소설 모두 여성 화자들이 이미 유년기를 통과한 이후임에도 여전히 아동인 것처럼 그려지고 있으며 또한 공히 인물이 비성적인 단계―통상적인 의미로―에서 성적인 단계로 이행하는 순간을 문제 삼고 있다는 점, 인물들은 각각 어머니(‘바늘’) 혹은 아버지(‘월경’)와의 이별을 하나의 트라우마로 간직하고 있으며 이와는 대조적으로 반대성(性)의 부모는 거의 무시되고 있다는 점 등이 그 단서들로, 이로부터 우리는 천운영 소설에 나타나는 도저한 공격성(/도착성)의, 이면(/연원)을 다시금 집약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왜냐하면 ‘바늘’과 ‘월경’에서는 여성 주인공들이 어린 시절 겪어야 했던 한 쪽 부모의 상실이 그녀들의 자아정체성의 형성에 결정적인 기제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인 ‘바늘’에서는 그로테스크한 삽화가 여러 번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도 다음의 세 장면은 특히 문제적이다;(1)먼저, 죽어가는 새끼고양이. 간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절에서 살던 시절 ‘나’는 “어미고양이의 날카로운 울부짖음(1:20)”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새끼고양이를 변기통에 버리고는 그 변기통 속으로 고양이가 자취를 감추는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2)다음으로, 전쟁기념관에서의 상상. 전쟁기념관에서 ‘나’는 전시된 무기들을 하나씩 꺼내 스님을 공격하는 불온한 상상을 해보지만 스님의 심장이 관통당하고 내장이 갈가리 찢기고 발에서 피가 솟구쳐도, 그녀는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좀더 강인하면서 잔인한”“엄마가 할 수 있는 그런 방법(1:21)”이 아니었기 때문에.(3)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자살 소식 직후 행해지는 육식. 형사로부터 어머니의 자살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의연히 수화기를 내려놓고 고기 한 점을 집어 먹으며, 바위에 찢긴 엄마의 모습을 떠올려 보지만 ‘나’의 머릿속엔 “여자의 하얀 알몸만 떠오를(1:31)” 뿐이다;상식적인 수준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행위들이 무대화되고 있는 이 세 장면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러니까 ‘나’의 공격적인 행위의 메커니즘을 해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자. 첫 번째 장면에 대한 질문 하나. 어미고양이에게서 떨어져 나와 변기통 속으로 빠져 들어간 새끼고양이는 마찬가지로 버려진 ‘새끼’인 ‘나’의 분신과 다름 없을 터. 그렇다면 이 장면은 ‘나’에게 지극한 고통을 유발했을 것임에도 왜 ‘나’는 이를 스스로 자행하며 게다가 “오랫동안” 지켜 볼 수 있었던 것일까? 마조히스틱한 쾌감 때문에?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상실이 곧 결핍을 부른다는 오래된 통념은, 천운영 소설의 인물들 앞에서 수정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자아가 포기된 대상의 심리적 저장고이며 상실된 대상은 구성적 동일시의 하나로 자아 안에 거주하면서 자아와 함께 출몰한다는 사실은 일찍이 프로이트가 ‘자아와 이드’에서 기술한 바 있으며, 버틀러는 그러하기에 사랑하는 대상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대상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위상을 외부적인 것에서 내부적인 것으로 전이하는 것이라 지적한 바 있다(J 버틀러, 앞의 글). 즉, 상실에 대처하는 멜랑콜리적 전략은 역설적이게도 상실 자체를 무화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나’가 새끼고양이를 변기통 속에 버릴 수 있었던 까닭으로 이미 그녀의 자아 안에, 거부된 애정의 대상으로서의 어머니가, 멜랑콜리적 동일시를 통해 그 자아의 일부로서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시할 수 있을 듯하다. 어머니는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숨쉰다! ‘나’의 행위에서 ‘나’의 위치와 어머니의 위치가 이중적으로 얽혀있는 것은 이러한 내면화의 결정적인 증거다. 버려짐과 버림을 동시에 구현하는 새끼고양이의 에피소드는 물론이고, 스님을 잔인하게 공격하는 상상이나, 자살 소식 직후의 육식 또한 마찬가지의 메커니즘 아래에서 작동한다. 스님을 공격하는 것은 자신으로부터 어머니를 빼앗아간 존재에 대한 응징이라는 점에서 그 일차적 의미가 있지만, 그 방식은 어머니가 자신을 버렸던 방법 혹은 어머니가 스님을 살해했던 바로 그 방법에는 미치지 못하기에 ‘나’는 그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수가 없다.‘나’가 공격으로부터 성취하고자 하는 것은 그녀의 내부에서 그녀와 함께 공존하는 어머니의 시선 바로 그것을 체현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고기 한 점을 씹어 삼키면서 찢겨진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는 그녀로부터 우리는, 어머니가 여전히 ‘나’에게는 알몸의 여자로 현현하는 에로틱한 대상이라는 사실을 유추함과 동시에,“상실하기보다는 차라리 조각내고 분해하고 자르고 삼키고 소화하고”자 하는 곧, 대상을 먹음으로써 그 대상을 제 안에서 부활시키고자 하는 멜랑콜리적 식인 행위의 환상(J 크리스테바,‘검은 태양’)의 한 풍경과 마주하기에 이른다. 정신이 아득해져온다. 가슴 한쪽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솟구쳐 올라온다. 나는 방으로 뛰어들어간다. 그리고 그가 했던 것처럼 팔을 마구 휘두르기 시작한다. 누구를 향해 팔을 휘둘렀는지 모른다. 푸른 모자가 튀어오른 것 같기도 하고 계집의 찢어지는 목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1:83) ‘바늘’에서와 같이 유년기를 통과한 이후에도 여전히 아동으로 남겨진 듯한 여성 주인공은 ‘월경’의 ‘나’로 재등장한다.‘월경’의 ‘나’는 스무살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월경(越境)하지 못한 채 바로 그 경계 위에 서 있다.‘나’의 말을 빌리자면 ‘나’의 “몸은 작정이라도 한 듯 자라기를 멈추었다(1:62).” 이 소설의 주된 관심사가 바로 그 경계를 넘어서는 한 순간에 있다는 것은 제목에서부터 암시되는 바다. 그런데 ‘바늘’과 마찬가지로 한쪽 부모의 상실을 초점화하고 있는 이 소설을 전작 옆에 나란히 놓고 따져볼 때 새롭게 부각되는 측면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그 상실이 ‘나’의 젠더 정체성 형성에 개입됨으로써 ‘나’의 젠더 정체성을 매우 불안정하게 구조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월경’에서는, 천운영 소설에서는 이례적으로, 어머니의 떠남이 아니라 아버지의 떠남이 ‘나’에게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나’가 떠나버린 아버지를 하나의 이성으로 욕망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목 또한 수차례 등장한다. 그녀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칭하지 않고 ‘그’라고 지칭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인상을 강화하는데,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소설은 일렉트라 콤플렉스의 천운영식 판본으로 받아들여지기 쉬울 듯하다. 그러나 프로이트에게 이성부모에 대한 근친상간적 욕망과 그 욕망의 금지가 여아에게 여성성을 최종적으로 선사하는 것과는 달리 이 소설에서 ‘나’의 젠더 정체성은 오히려 남성의 그것에 가깝게 드러나고 있어 차별적이다. 즉,“가슴도 가슴이지만 계집의 엉덩이는 정말 탐스럽다. 표주박 두 개를 나란히 놓은 듯 완만한 곡선을 이루다가 툭 불거지는 모습이 여간 아니다(1:70)”라는 구절을 비롯한 소설의 여러 대목에서 나타나듯이 ‘나’는 “은하수 계집”을 성인 남성의 시선으로 욕망하고 있으며, 바로 이 점이 여러 평자들로 하여금 ‘월경’을 도착적 섹슈얼리티가 전경화된 소설로 주목하게 한 주요한 요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함께 트럭 짐칸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면 온 우주가 우리를 중심으로 돌았고, 별들은 작은 이슬방울이 되어 우리의 배 위에 사뿐히 내려 앉았다(1:63)”에서와 같이 지극히 감상적으로 또 지극히 여성적인 시선으로, 떠나버린 아버지를 기억하고 또 애타게 그리는 ‘나’가 어떻게 동시에 “은하수 계집”을, 그것도 저러한 시선으로 욕망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이러한 불균형은 작가가 도발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데 몰두한 나머지 그 일관성은 신중히 검토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함에 불과한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상실한 어머니와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내면화하고자 했던, 그럼으로써 상실로 인한 상처를 무의식적으로 무화하고자 했던 ‘바늘’의 주인공과 마찬가지로,‘월경’의 ‘나’ 역시 상실한 아버지를 그러한 방식으로 제 속에 부활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 즉, 그녀의 자아 안에, 상실된 애정의 대상으로서의 아버지가, 그 자아의 일부로서 공존하고 있다고 말이다.“은하수 계집”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이에 대한 한 근거가 됨은 물론이거니와,‘나‘가 “은하수 계집”을 여러모로 ‘그녀(어머니)’와 견주어 보면서 ‘그녀(어머니)’의 분신처럼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가정을 뒷받침해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설의 클라이맥스에 위치하는 사건 곧,“은하수 계집”과 “푸른 모자를 쓴 사내”의 정사장면을 ‘나’가 목격하고 그들을 공격하는 그 사건에서,‘나’가 ‘그(아버지)’의 위치를 그대로 반복함으로써, 과거의 ‘그(아버지)’―‘그녀(어머니)’―“낯선 남자”의 구도를, 현재의 ‘나’―“은하수 계집”―“푸른 모자를 쓴 사내”의 구도로 전이시키고 있다는 점은 그 결정적인 증거로 제출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요컨대 ‘월경’에서 ‘나’는 아버지를 욕망하는 데서, 아버지의 욕망을 그리고 아버지가 욕망할 것이라 추정되는 대상을 욕망하게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바로 이 점이 ‘나’의 젠더 정체성의 혼란을 초래한 근본적인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메커니즘의 시발점에 현실에서의 상실을 절대로 수락할 수 없는 멜랑콜리적 주체의 내면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읽는 이를 순식간에 포박하는 천운영 특유의 자질 뒤편에 도사리고 있는 상실과 박탈의 어두운 그림자……, 누군가는 사라지고 그 사라짐이 가족 내의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저토록 결정적인 흔적을 남긴다. 그리하여 이 작가에게 가족은 천운영식으로 표현하자면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 같은 유령의 집(‘유령의 집’)” 즉,‘아가리(구강기)’적 욕구에 충실한 “괴물”스러운 인물들이 집 안을 떠도는 “유령”의 “어두운” 그림자와 씨름하는 전쟁터나 다름없다.“핏줄”과 얽혀진 인간 욕망의 가장 원초적인 그래서, 들여다보고 싶으면서도 그러기에는 두려운 “하수도” 속 같은 “어둠”이야말로 이 작가의 해부 대상인 것이다. 이어지는 ‘유령의 집’의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보라;“보이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들리는 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그 이면에 삶은 존재하니까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으려고 해보세요. 그건 때때로 흥미진진한 일이 될 겁니다.” 천운영이 꾸며놓은 유령의 집을 방문한 독자에게 이 보다 더 친절한 안내가 또 있을까. 천운영은 이렇게 근본적인 상실을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그것도 가족 내부에서 끈질기게 문제화한다는 점에서 현재 우리 문단에서는 매우 독특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다. 배수아, 백민석 같은 바로 앞선 연배의 작가는 물론이고, 비슷한 연배이며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정이현이나 김윤영에 견주어 보아도 이는 이 작가 특유의 자질이다. 앞서 살펴본 작품들에서처럼 특히나 천운영은 가족 안에서의 상실을 한 인간을 배태해내는 결정적인 그 무엇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이제 전환을 맞을 때가 온 것은 아닐까.‘늑대가 왔다’나 ‘그림자 상자’와 같은 비교적 근작들에서는 이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파괴적 욕구가 분출되고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물론 가족이 부여한 운명으로부터의 탈출은 아직 환상 속에서만 가능하고 결국에는 처참한 결말을 맞지만 말이다. 앞으로 이 작가에게 “배꼽을 버리고자 하는(‘그림자 상자’)” 욕구가 앞설 것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운명론에 더 깊숙이 천착할 것인지, 우리는 이 작가를 계속 눈여겨 지켜볼 필요가 있다. ■ 당선 소감 하루 평균 서른 통 정도의 전화를 받고 또 그만큼의 전화를 하며 두 해를 보냈다. 맞춤법을 묻는 전화부터 부고를 알리는 전화까지. 아무리 사소하게 보이는 일도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소중하며 또 누군가의 수고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문학을 한다는 것 역시 그리 다르지 않은 일인 것 같다. 누군가의 호소에 응답하는, 그러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마음껏 공부할 수 없어 애태우던 나날들이었지만 헛되지 않았다고 믿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부족함을 스스로 잘 알기에 당선은 여전히 실감나지 않는다. 응모한 글에 미덕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공이 아니라 주위 여러분들의 은덕이다. 국문과 은사님들과 조남현 지도 교수님,202호와 326호에서 동고동락했던 선후배 동료들, 이 분들께 더 좋은 글로 보답하고 싶다. 결점이 많은 글을 너그러이 감싸주신 김윤식 선생님과 정과리 선생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한결같이 믿어 주시는 부모님과 언니, 동생, 오랜 벗들에게는 쑥스럽지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고백하건대,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꿈을 나는 아직도 버리지 못했다. 이제는 다른 길을, 그것도 멀리 와버렸다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론 쓸쓸하다. 그러나 약속한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세상을 향한 내 새로운 수화기를 함부로 놓지 않겠노라고. 그것이 지금 주어진 이 지면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길인 것 같다. 이제 겨우 시작이다. ●약력 ▲1976년 대구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 심사평 이번에도 평론의 기초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 이론에 대한 지식을 과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설익은 개념들이 횡행하면서 작품을 파괴하거나, 작품과 겉도는 독무를 추는 글이 적지 않았다. 이론이 문학의 이해에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니 배울수록 좋다. 그러나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니 작품 분석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경합한 작품은 네 편이다. 김수영의 시를 다룬 정경은의 ‘생활의 뒤란, 시’는 엉뚱한 상상력으로 김수영의 시를 장식해가면서 시의 변주를 다룬 재미있는 글이다. 그러나 그 상상력이 김수영 시의 이해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장욱과 김행숙의 시를 다룬 송승환의 ‘청동 방패를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은 동일성의 부정이라는 기본적인 전제 하에 새로운 시의 존재 가능성을 탐색한 글이다. 꼼꼼한 분석이 돋보이고 설득력도 있었다. 오랫동안 시를 써본 사람이라는 짐작이 간다. 다만 구도가 지나치게 단순한 게 흠이었다. 최윤의 세 장편을 분석한 허병식의 ‘진정성의 서사와 주체의 귀환’은 ‘기원의 부재’라는 현대 이론의 신화에 깊이 침윤된 글이다. 그래서 마치 소설이 그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씌어진 것처럼 읽었다. 그것이 약점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주체의 귀환이라는 명제를 끌어낸 것은 글쓴이만의 독창적 사유의 결과이다. 전체적으로는 대상 작품에 들어맞았지만 세목들에서는 무리한 적용이 많았다. 천운영의 소설 세계를 해부한 차미령의 ‘그로테스크 멜랑콜리, 상실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은 ‘등뼈’ 이미지를 천운영 소설의 핵심 징조로 보고 그것으로부터 소설의 무의식의 ‘작업’과 변주를 정신분석학적으로 파고든 글이다. 분석과 해석이 요령을 얻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기존의 상식적인 해석을 뛰어넘으려는 패기가 돋보였다. 마무리를 서둘러 처리했다는 약점이 있었지만 글 전체가 보여준 가능성은 그런 약점을 무시해도 좋게 하였다. 당선을 축하한다. 김윤식·정과리
  • [2005 문화코드] ②세계로 뻗는 韓流

    [2005 문화코드] ②세계로 뻗는 韓流

    1990년대 후반 중국·타이완에서 불씨를 지핀 ‘한류’는 지난해 일본을 강타한 ‘욘사마’ 신드롬으로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바야흐로 한류의 전방위적인 확산 프로젝트인 ‘신(新)한류’의 바람이 불고 있다. 드라마·영화·가요 등 대중문화에서 한국문화 전반으로, 동아시아 중심에서 유럽·미국 등 세계 무대로, 장르와 시장의 다각화 노력이 한창이다. 외부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한류’가 ‘신한류 프로젝트’로 거듭날 수 있을지, 아니면 동아시아에 국한된 ‘찻잔속 태풍’에 안주할 것인지 올 한해가 그 경계를 가르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지난해 타이완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로 ‘천국의 계단’과 ‘대장금’이 각각 1,2위를 차지했다. 한국관광공사 해외홍보팀 유진호 과장은 “타이완은 중국·홍콩·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지역 한류의 풍향을 가늠하는 잣대라는 점에서 한류의 지속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징조”라고 말했다.‘겨울연가’의 여진이 여전히 거센 일본은 ‘파리의 연인’에 이어 권상우와 김희선이 출연하는 ‘슬픈 연가’를 48억원에 입도선매했다. 동남아와 일본을 점령한 드라마는 이제 중동을 거쳐 아프리카로, 또 중남미로까지 확산되는 양상이다.MBC는 최근 드라마 ‘불새’를 아프리카 가나에 판매했다.‘겨울연가’에 이어 아프리카에서 방송되는 두 번째 한국 드라마다. 멕시코는 지난 2002년 드라마 ‘별은 내가슴에’와 ‘이브의 모든 것’을 방영한 이후 한류 붐이 크게 일어난 곳. 이후 명문 국립자치대학에 한국어과가 신설되기도 했다. 미국 한인방송에서 방영된 ‘대장금’은 한인은 물론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화제를 모았고, 드라마 ‘올인’은 카자흐스탄과 우크라이나 등지에까지 방영됐다. 이에 힘입어 올해는 ‘불새’‘천국의 계단’ 등이 아르헨티나·페루 등지에 진출할 예정이다.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열린 제4회 국제방송영상견본시(BCWW 2004)에 일본 말고도 중국·타이완·베트남·미국·영국 등 외국 방송 관계자 800여명이 몰려들어 1300만달러어치의 한국 영상물 구매 계약을 맺은 것은 ‘한류’의 세계화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이와 함께 오는 4월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의 미디어전시회 ‘MIPTV’에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청된 것도 고무적이다. 행사협의를 위해 방한했던 주관사 리드 미뎀의 테드 바라코 이사가 “한류 열풍이 아직은 아시아에 국한된 현상이지만 충분히 조명할 가치가 있다.”고 지적한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드라마 기획 단계부터 체계적으로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두는 제작 풍토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러브스토리 인 하버드’‘유리화’‘슬픈연가’ 등 의도된 ‘한류 기획상품’들이 세계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주목되는 한 해다. ●문화현상에서 사회현상으로 지난 연말 중국 출판계는 ‘한국소설 붐’을 10대 뉴스의 하나로 꼽았다.‘귀여니’ 이윤세의 소설 ‘그놈은 멋있었다’(70만부)와 ‘늑대의 유혹’(60만부)이 중국 청소년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덕이다. 그런가 하면 국산 팬터지 동화인 ‘고양이학교’(문학동네어린이)는 프랑스·타이완·중국과의 판권계약에 이어 최근 영문판을 출간했다. 올 10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국제도서전의 ‘한국의 해’ 행사는 문학·출판은 물론 공연·미술·학술까지 한국문화를 총체적으로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아시아문화산업교류재단 김자성 차장은 “드라마·영화뿐만 아니라 여타 장르의 콘텐츠로까지 한류가 번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국제교류재단에 따르면 외국인과 해외동포를 대상으로 한 한국어능력시험 지원자는 1997년 2274명에서 지난해 1만 7531명으로 8배 늘었고, 세계 각국의 한국학 개설강좌는 95년 143개 대학에서 2004년 335개 대학으로 늘었다. 지난해 초 중국 베이징에 한·중 합작 뷰티전문병원인 ‘아이캉병원’이 문을 연 이후 국내 병원들이 속속 중국으로 몰려 현재 베이징·상하이 등지에서 40∼50여곳의 병원이 성업 중이다. 한류열풍은 전통음식인 김치의 수출확대에까지 톡톡히 한몫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김치 수출액은 일본으로의 물량이 대폭 늘어 사상 처음으로 수출액 1억달러를 돌파했고, 인삼과 고추장 등의 수출도 30%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新한류 성공조건은 전문가들은 한류가 아시아권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더 나아가 세계로 확산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지적한다. 자칫 머뭇거리다간 우리보다 앞서 동남아를 휩쓸다 자취없이 사라진 일류(日流)의 전철을 밟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한류의 견인차 노릇을 하고 있는 드라마의 역할이 중요하다. 최근 비슷한 유형의 드라마가 쏟아져 나오면서 타이완·베트남 등지에서는 “한국 드마라 주인공은 왜 다 죽느냐.”는 식의 비판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방송영상산업진흥원 김영덕 연구원은 “드라마의 질적 수준을 위한 꾸준한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타들의 몸값 상승이 제작비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콘텐츠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력이 약세를 보이는 것도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일본 드라마의 경우 높은 가격 때문에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에서는 방영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제작 인프라의 확충과 연예 산업의 선진화, 그리고 드라마와 기업광고의 연계 등 다양한 마케팅 기법들이 고려돼야 할 것이다. 또한 드라마 관련 관광위주에서 한류와 우리 고유문화를 연계한 고부가가치 관광상품의 개발이 절실하다. 대장금의 수라상을 음식관광상품으로 개발하고, 한의학과 관련된 의료관광상품으로까지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문화관광정책연구원 채지영 연구원은 “‘겨울연가’의 사례에서 보듯 드라마 한 편이 가져다 주는 파급효과가 엄청나지만, 그에 비해 지역에서의 대비책은 아직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와 함께 한류를 일방적인 문화전파가 아니라 상호 문화교류의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시각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제적 논리의 팽배, 획일적인 콘텐츠, 미국 문화의 퓨전 등 한류에 대한 일각의 부정적인 평가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경제적 효과 지난 1일 인천공항에 입국한 일본 관광객들은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최근 일본 NHK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대장금’의 출연진이 공항에서 이들을 반갑게 맞아준 것. 한국관광공사가 올해 ‘한·일 국교정상화 40주년’과 ‘2005한·일공동방문의 해’를 맞아 마련한 행사였다. 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일본·타이완·홍콩 등 한류 국가로 분류되는 8개국의 관광객이 전년보다 34.3% 증가했다. 이는 다른 나라의 관광객 증가율 9%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관광공사는 올해 한류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일본인 관광객 300만명과 중국 등 중화권 관광객 200만명 등 외래 관광객 700만명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한류의 경제적 효과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배용준이다. 일본 다이이치(第一)생명경제연구소는 배용준이 한·일 양국에 파급시킨 경제적 효과를 2조 3000억원대로 추정했다. ‘겨울연가’ 촬영지인 강원도 남이섬과 중도 등은 연간 최소 160억원의 소득을 올렸다. 관광공사는 한류열풍으로 약 8400억원의 추가 관광수입과 330억원에 이르는 국가 홍보 효과를 얻은 것으로 분석했다. 기업의 한류 마케팅도 뜨겁다. 삼성전자는 올해 아시아권 최대 음악축제인 ‘2005 MTV 아시아어워드’에 공식 후원사로 참여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동남아 젊은 층에서 불고 있는 한류열풍을 활용, 이 지역에서의 매출 30%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태평양화학은 전지현을 모델로 내세워 중국 시장을 공략해 매년 두 배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고,99년 베트남에 진출한 LG생활건강은 김남주의 인기에 힘입어 베트남 화장품 시장의 70%를 점유한 상태다. 정부도 한류를 문화상품에서 본격적인 수출산업으로 발전시키려는 움직임을 서두르고 있다. 올 상반기중 홍콩·베트남·타이완 등 아시아권 5개국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 차례 더 벌인뒤 이를 바탕으로 한류 국가를 공략하기 위한 문화산업 관련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누드브리핑] 두꺼비 출현 숨긴 까닭은?

    [누드브리핑] 두꺼비 출현 숨긴 까닭은?

    서울시 공원녹지관리사업소 직원들이 ‘두껍아, 두껍아’를 노래하고 있다. 지난 9월 말 시청 청원경찰이 본관 뒷뜰과 서울광장을 관리하는 사업소 담당자에게 체력단련실 앞 화단에 두꺼비가 나타났다는 제보를 해 며칠 뒤에는 서울광장에서 뒤뜰로 이어지는 보도에서 촬영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는 ‘비밀’로 숨겨져왔다. 그 속사정이 참으로 안쓰럽다. 두꺼비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니 말이다. 박인규 공원녹지관리사업소장은 “지난 3월 중순 남산에 도롱뇽과 개구리가 출현했다는 보도가 나간 뒤 일부 몰지각한 시민들이 알을 퍼가는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출입금지구역인 남산 숲 속에 페트병을 들고 들어가 알을 퍼간 까닭은 “도심에 나타났다는 점에서 신기하게 여긴 데다 보신에 좋고 희귀병에도 효험이 있다는 속설 때문”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사업소 직원들은 오가는 사람수가 엄청난 데다 자동차 통행까지 많아 번잡하기 그지없는 도심에 적어도 암수 한쌍이 시청 뒤뜰에 살고 있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무엇보다 사업소 직원들 사이에서 ‘길조’라는 해석이 분분해 흥미롭다. 한 직원은 “핫이슈였던 수도이전 계획이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꺾인 것도 두꺼비가 가져온 좋은 징조”라면서 “앞으로도 좋은 일이 이어질 것”이라고 반겼다. 또 다른 직원은 “청계천 복원, 대중교통체계 개편, 뉴타운 개발 등 서울시 역점사업들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리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징조”라면서 “수장(首長)인 이명박 시장에 대한 것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이 시장이 대권주자로 꼽히는 점을 가리키는 것이다. 예부터 왕비를 상징하는 두꺼비가 나타나면 가뭄 땐 비를 몰아오고 집안에 재물이 들어올 조짐으로 여겨진다. 또 최근 들어서는 토종 동물을 해치는 황소개구리의 천적으로 손꼽힌다. 공원녹지관리사업소는 시청 두꺼비가 겨울잠에서 깨면 동물생태 전문가를 초청해 생태통로 조성 등 체계적 관리에 대한 용역을 맡길 계획이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씨줄날줄] 차우셰스쿠 비디오/이기동 논설위원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부부의 종말은 1989년 겨울 동유럽 변혁의 행진을 결국 비극으로 마감케 했다. 벨벳처럼 부드럽게 진행됐다고 ‘벨벳혁명’이라 불린 체코를 비롯해, 헝가리, 폴란드, 동독은 너무도 평화롭게 역사적인 변혁을 이루어냈다. 그것은 도심 광장들을 밝힌 촛불시위의 위력과 함께, 일반시민들이 만든 기적이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 유독 동구의 최빈국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만은 예외였다. 35년간 불가리아를 통치한 토도르 지프코프는 그해 11월 반정부 시위에 굴복해 물러난 뒤,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몇해 뒤 사망했다.20년 이상 일당독재를 이끈 차우셰스쿠는 반정부 시위대에 무차별 발포하며 버텼으나 결국 실각, 그해 성탄절 부부가 함께 총살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두 사람은 장기독재, 우상화, 부정부패, 공포정치 외에도 김일성가(家)와 특별한 친분을 유지한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특히 차우셰스쿠는 생전, 김일성의 통치 스타일을 루마니아에 이식시켜 철혈통치의 기반을 닦은 인물이다. 신앙에 가까운 지도자 숭배, 가부장적 권위주의, 공포심을 접목한 상징조작, 가족 독재, 폐쇄주의 통치술은 차우셰스쿠, 지프코프, 김일성 3인의 공동작품인 셈이다. 김정일이 차우셰스쿠 처형장면을 담은 비디오를 보며 측근들에게 “우리도 인민들의 손에 죽을 것”이라고 되뇌었다는 뉴스위크 보도는 그가 느꼈을 공포감이 어떠했는지 짐작케 한다. 측근들과 함께 처형 비디오를 보며, 그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김정일은 수차 강조했다고 한다. 보도내용대로라면, 김정일이 차우셰스쿠정권과 북한정권의 유사성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어서 흥미롭다. 하지만 이후 김정일은 차우셰스쿠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동유럽식 변혁이 아니라, 핵무기 개발과 미국에 대한 대결과 적대감을 극대화하는 길을 걸었다. 역사의 교훈과는 다른 방법을 택한 것이다. 미국의 보수학자들이 북한정권교체 필요성까지 제기하며 김정일정권의 초조감을 부채질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차우셰스쿠식 종말을 초래할지 모를 북한 내부의 움직임일 것이다. 북한 나름대로는 경제분야에서 일부 변화시도도 없지 않지만, 그 노력이 아직은 너무 미미하고 더디다. 북한지도부가 지금부터라도 역사의 교훈을 제대로 새겨 개방 개혁의 길을 걷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의 책임일 것이다. 이기동 논설위원 yeekd@seoul.co.kr
  • [Doctor&Disease] 삼성서울병원 송재훈 박사

    [Doctor&Disease] 삼성서울병원 송재훈 박사

    “최근들어 많은 사람들이 암에 대해 공포감을 갖고 있는 반면 발병 유형이나 전파의 속도가 훨씬 위협적인 감염성 질환의 문제는 간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질환이 얼마나 가공스러운지는 조류독감이나 사스 파동으로 입증됐지 않습니까? 암은 개인의 고통일 수 있지만 감염질환은 국가나 인류의 재앙일 수 있습니다.” ‘항생제 내성 감시를 위한 아시아 네트워크(ANSORP)’대표로 이 문제에 관한 WHO의 아시아권 파트너이기도 한 송재훈(47·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과장) 박사는 ‘항생제 내성(耐性)’에 대해 묻자 작심한 듯 말문을 열었다. 그의 경고가 허풍이 아니라 의학적 진정성을 가진 현실의 문제라는 점은 의사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더욱 두렵고 막막했다. ‘인류의 재앙’이 항생제 내성에서 비롯된다는 말인가. -그렇다.1940년 ‘기적의 약’이라는 페니실린이 임상에 사용된 후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지만, 세균은 인간보다 앞서 이런 약제에 스스로를 적응시켜 왔다. 세계적인 세균학자들이 ‘항생제로 미생물을 박멸하겠다는 발상은 오만이자 착각’이라고 뼈아픈 고백을 하고 있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현재의 첨단 의학도 이 미생물을 어쩌지 못한다. 통상 한가지 신약 개발에 10∼15년이 소요되는 반면 세균이 이 신약에 맞설 내성을 갖추는 기간은 길어야 1년이다. 이게 재앙의 근거다. 약제에 대한 세균의 적응이 그렇게 위협적이란 말인가. -1940년 페니실린이 사용되기 시작했는데,1950년대에는 포도상구균의 90%가 이 약에 대한 내성을 갖고 있었다. 이 내성균을 치료하기 위해 10년이나 연구해 1960년 메티실린을 개발하자 불과 1년 뒤에 MRSA라는 내성균이 생겼다. 또 이 내성균에 듣는 반코마이신이 개발됐지만 머지않아 또다른 내성균이 나타났다. 바로 ‘슈퍼박테리아’다. 정말 두려운 일이다.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항생제 내성 문제는 이미 세계적인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일단 내성균이 발생하면 전파는 순식간이기 때문이다.WHO도 이를 ‘인류 건강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규정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폐렴구균 내성률이 70%,MRSA 내성률은 80%로 세계 최고수준인데, 이게 문제다. 송 박사는 항생제 내성의 문제가 특히 사망률과 사회·경제적 파급효과에서 두려운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내성률이 70%라는 건 10개의 균주 가운데 7개는 항생제가 듣지 않는다는 뜻”이라며 이렇게 말한다.“일단 내성균에 감염되면 질병 치사율이 최소 2배에서 최대 13배까지 높아지게 됩니다. 실제로 약제에 반응하지 않는 신종 ‘다재내성결핵균’에 감염된 환자 1명의 치료비가 일반 환자의 100배나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사태의 원인은 무엇인가.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항생제 오·남용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약분업 이후 오·남용 사례가 줄었지만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내성균의 신속하고 광범위한 전파도 문제다. 이는 내성균 문제가 한 지역이나 국가, 권역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라는 근거가 된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은 그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지역이다. 내성 문제를 다룰 시스템이나 인프라가 취약하다는 점도 문제다. 우리나라의 경우 각급 병원이나 국가 차원의 내성균 감시·조사체계가 갖춰지지 않아 일단 문제가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는 이게 왜 문제인지를 모르는 의사도 많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사스나 조류독감을 항생제 내성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보는가. -접촉으로 전파되는 사스보다는 조류독감이 훨씬 심각하다. 올 겨울이 위기라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이게 만약에 대인(對人)전파능력만 갖춰지면 가히 인류의 재앙이 될 것이다. 이걸 통제하려면 항바이러스제제 확보가 관건인데, 백신 제조능력이 없는 우리로서는 속수무책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앞선 사스 파동때 보았듯 우리나라의 질병 조기대응체제가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 있다는 점이다. 송 박사는 조류독감과 같은 바이러스의 출현은 매우 위험한 징조라며 이렇게 덧붙였다.“독감은 호흡기전염으로 통제가 안된다는 점에서 또다른 위협입니다.WHO가 깊이 고민하고 국제 공조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문제는 중국인데, 중국에서 조류독감이 발생했을 때 WHO와 전 세계 전문가들은 ‘올 것이 왔다.’며 바짝 긴장했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소강국면이지만 올 겨울이 고비라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지금 이게 터지면 대책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미국은 이런 문제에 대해 질병보다 국가안보의 시각에서 접근한다. 콩고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문제가 됐을 때도 미국CDC(질병통제센터)가 제일 먼저 출동했다. 반면 우리 질병관리본부는 예산도 미국의 100분의 1에 불과하고, 감염문제를 다룰 의사도 전국적으로 50명 정도다. 이런 체제로는 예측할 수 없는 질병에 맞서기 어렵다. 지금부터라도 인적, 물적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ANSORP같은 기구를 정책적으로 지원, 활성화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그는 “항생제 내성의 문제는 인류가 마주칠 가장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의 공유가 중요하다.”며 “정부는 물론 의·약사와 환자, 제약회사가 합의해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향후 10∼20년 뒤에는 페니실린 개발 이전의 혼란기가 도래할 것”이라고 거듭 경고했다. 글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송재훈 박사 ▲서울대의대 및 대학원(박사)▲서울중앙병원 감염내과 교수▲미국 마요(Mayo)클리닉 감염내과 교환교수▲현,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과장, 성균관의대 내과학교실 교수▲현, 항생제 내성감시를 위한 아시아네트워크(ANSORP)대표 및 아시아·태평양 감염연구재단 이사장
  • 성스러운 암소신화/드위젠드라 N 자 지음

    성스러운 암소신화/드위젠드라 N 자 지음

    요즘 정치권에서는 ‘정체성’이란 단어가 유행이다. 그런데 선험적으로 주어진 정체성이란 게 있을까. 혹은 누가 일률적으로 정할 수 있을까. 그런 식으로 정체성을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 아닐까. 이런 의문을 가진 사람이라면 인도 델리대학 역사학과 교수 드위젠드라 N 자(Jha)의 ‘성스러운 암소신화’(이광수 옮김, 푸른역사 펴냄)는 꽤 흥미로운 책이 될 듯하다. ●참고문헌 목록 100쪽 넘어 ‘인도 민족주의의 역사만들기’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이 책은 ‘인도답다.’의 간판격인 암소숭배가 착각에 지나지 않음을 논증하고 있다. 논증은 일일이 증거를 들이대는 우직한 방식이다.180여쪽 분량의 본문을 떠받치기 위해 고고학적·역사학적 각주해설과 참고문헌 목록은 100쪽이 넘게 이어진다. 자 교수는 인도문화 형성기인 베다시대(BC 1500∼BC 600년) 초기를 다룬 문헌 ‘리그베다’에서 200∼300 마리 정도의 소를 한꺼번에 죽여 제사지냈다는 광범위한 자료를 찾아낸다. 물론 베다시대 말기부터 살생금지를 주장하는 일부 문헌이 나타난다. 이 때쯤 등장하는 불교와 자이나교는 살생금지를 중요한 덕목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암소가 신성해서가 아니라 유목생활이 농경생활로 바뀌면서 소, 특히 새끼를 낳는 암소를 무더기로 죽이는 것이 비경제적이었기 때문이다. 현대 인도에서도 암소는 유유자적 노니는 게 아니라 밭을 갈고 수레를 끈다. 인도의 연간 쇠고기 생산량은 놀랍게도 114만t에 이른다. 자 교수는 “암소 여신도, 암소를 모신 사원도 존재한 적이 없다. 뭐라고 말하든지 (암소숭배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당연한 결론에 이른다. 남은 의문은 ‘누가 왜?’이다. 대답은 인도의 식민지배 경험, 이슬람교 국가인 파키스탄과의 카슈미르 분쟁,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서 자라난 광적인 힌두민족주의다. 사실 역사해석이 현재와 밀접한 연관이 있고 필요에 따라 변형되기도 한다는 게 아주 새로운 시각은 아니다.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홈스봄이 ‘만들어진 전통’이란 책을 엮어낸 1983년 이래 서구에서는 근대국가라는 개념 자체가 상징조작으로 이뤄졌다는 연구서가 쏟아져 나왔다. ●인도선 출판 거부당해 그럼에도 이 책이 예사롭지 않은 까닭은 자 교수가 책을 쓰기 전후의 상황 때문이다. 자 교수는 옛 조상들이 쇠고기를 먹었다는 사실을 논증한 학자에게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딱지가 붙는 상황에 분개해 이 책을 썼다. 그러나 인도 내 출판은 거부당했고 힌두민족주의자들은 온갖 소송과 협박으로 자 교수를 압박했다. 정체성을 일방적으로 규정한 뒤 상대를 마르크스주의자로 몰아가는 게 낯선 풍경만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에게 다소 낯선 인도역사를 다루고 있어 술술 읽히지 않는 게 흠.1만 5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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