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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징역3년
    2026-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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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력시위 근절 차원 중형 구형/「한총련 농성」 첫공판 이모저모

    ◎단순가담자 “큰 실수” 반성 선처 호소/일부간부 “한총련 노선 모른다” 억지/검찰 “기소자 상당수 실형 선고될 것” 서울형사지법은 15일 한총련 사건 피고인 대부분이 검찰이 제출한 증거에 동의하자 첫 공판에서 결심을 진행했다.검찰은 징역3년씩을 구형,폭력시위 엄단의지를 재천명했다. ○…피고인들은 최후진술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한총련의 폭력성을 알게 됐다』『큰 실수를 저질렀지만 한번만 용서해 주면 앞으로 시위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등 반성의 빛을 보이며 선처를 호소. 이태윤 피고인(23)은 『부모님께 열심히 생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죄송스럽다』며 『앞으로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진술. 그러나 일부 간부급 학생들은 『북한의 주장은 물론 한총련의 노선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상식을 벗어난 답변으로 일관해 눈살. ○…피고인 대다수가 학생인데다 초범이라는 점 때문에 대부분 집행유예가 선고돼 풀려날 것이라는 추측과 관련,검찰은 『억측』이라고 일축. 검찰의 관계자는 『재판부도 검찰이 구속 기소 대상을 수차례에 걸쳐 선별했다는 점을 감안할 것』이라며 『극렬시위를 뿌리뽑기 위해서라도 상당수 학생에 대해 실형을 선고할 것』이라고 전망. ○…형사합의21부 민형기 부장검사는 공판 말미에 시위참가 경위,재판을 받는 심정,앞으로의 계획 등을 묻는 설문지를 피고인에게 배포해 눈길.재판부는 『연세대 집회가 축제 분위기라는 선배의 말을 듣고 참가해 쇠파이프를 휘두르게 됐다』는 피고인의 어이없는 진술을 듣고 『왜 그렇게 철없는 짓을 했느냐』며 훈계성 신문을 하기도. ○…검찰의 주신문과 변호인측 반대신문,피고인 최후진술 등의 순으로 진행된 공판은 피고인 1명당 20∼30분만에 심리가 끝나는 등 초고속으로 종결.법원은 서울지법 형사합의21·22·23부와 4개 지원에서 오는 25일까지 일제히 심리에 착수한 뒤 집중심리 방식을 채택해 늦어도 오는 11월 초쯤 사건을 모두 종결짓는다는 방침.〈김상연 기자〉
  • 수뢰혐의 과천시장 징역 3년 선고/수원지법

    【수원=조덕현 기자】 수원지법 형사 11부(재판장 정연욱 부장판사)는 9일 주유소 설치허가 등과 관련,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과천시장 이성환 피고인(58)에 대해 징역3년,추징금 3천5백43만원을 선고했다.
  • 재벌총수 4명 실형/비자금 공판

    ◎경제활동 보장위해 법정구속 안해 □선고형량 ◆징역7년­이현우 ◆징역4년­안현태 ◆징역3년­금진호 이원조 성용욱 안무혁 ◆징역2년6월­최원석 ◆징역2년­김우중 정태수 장진호 ◆집행유예­이건희 이준용 김준기 이건 김종인 이경훈 이태진 사공일 재판부는 이어 하오 2시30분에 속개된 노태우 피고인 비자금 사건 선고공판에서 뇌물 공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동아그룹 회장 최원석 피고인에게 징역 2년6월을,대우그룹 회장 김우중 피고인,한보그룹 총회장 정태수 피고인,진로그룹 회장 장진호 피고인에게는 징역 2년,(주)대우 대표 이경훈 피고인에게는 징역 10월의 실형을 각각 선고했다. 뇌물수수 방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던 금진호·이원조 피고인에게는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이들을 법정구속하지는 않았다.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 피고인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동부그룹 회장 김준기 피고인과 대림그룹 회장 이준용 피고인,대호건설 대표 이건피고인은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노태우 피고에게 뇌물을모아 건넨 전 청와대 경호실장 이현우 피고인에게는 뇌물수수죄 등을 적용,징역 7년에 추징금 6억1천만원을 선고했다. 전 청와대 경제수석 김종인 피고인에게는 징역1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전 청와대 경호실 경리과장 이태진 피고인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전직 대통령까지 뇌물 수수죄로 처벌하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며 『이번 판결로 기업 활동 등에 영향을 받겠지만 그런 것이 볼모가 돼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면 거시적으로 자신에게는 물론 기업 활동과 우리나라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중형 이유를 밝혔다. 하오 4시에 열린 전두환씨 비자금 사건 선고공판에서는 전 청청와대 경호실장 안현태 피고인에게 뇌물수수죄 등을 적용,징역 4년에 추징금 5천만원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전 국세청장 성용욱 피고인과 전 안기부장 안무혁 피고인에게는 징역 3년씩을 선고했다.그러나 안피고인과 함께 구속기간 만료로 풀려났던 성피고인은 법정구속하지 않았다. 전 재무장관 사공일 피고인은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 모두 대통령의 손에 때를 묻힌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만 그 가운데도 안현태 피고인은 모금액이 많고 모금 과정에서 대통령과 혼연일체가 됐으므로 법정 구속한다』고 밝혔다.
  • 증감원 수뢰관련 전 부원장보 집유/서울지법 선고

    서울지법 형사 합의21부(재판장 민형기 부장판사)는 17일 기업 공개를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뇌물을 받아 징역 6년과 징역 5년이 구형된 박근우 증권감독원 전 부원장보(54)와 남순도 전 부국장(47)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수재죄 등을 적용,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과 징역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한솔제지로부터 1천5백만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3년이 구형된 유우일 전 부원장보(52)는 징역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 박전부원장보에게 5천만원을 준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코리아데이터시스템 대표 고정 피고인에게는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남전부국장에게 4천만원을 준 창성개발 대표 송산 피고인에게 징역10월에 집행유예 1년,유전부원장보에게 1천5백만원을 준 한솔제지 부사장 김도연 피고인에게는 벌금 1천만원을 선고했다. 박전부원장보는 95년 10월 코리아데이터시스템의 고피고인으로부터 기업 공개를 앞당길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5천만원을 받는 등 3개 업체로부터 6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됐었다.
  • “폭력 피하다 윤화사 가해자 치사죄 처벌”/대법원 판결

    폭력을 피해 달아나던 사람이 불의의 사고로 숨졌다면 가해자를 상해치사로 처벌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형사3부(주심 지창권 대법관)는 1일 배종현 피고인(32·경남 창원시)에 대한 상해치사 사건 상고심에서 배피고인의 상고를 기각,원심대로 징역3년을 확정했다.
  • “특별사면 돼도 추징금은 내야”/대법

    징역형과 추징금 납부를 동시에 선고받고 특별사면을 받았을 경우 추징금은 사면대상이 아니라는 대법원 결정이 나왔다. 대법원 형사3부(주심 안용득 대법관)는 2일 지난 93년 장교진급심사와 관련해 1억9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징역3년에 집행유예 4년,추징금 1억5천5백만원을 선고받은 뒤 사면복권된 전 공군참모총장 정용후씨(61)가 낸 이의신청 재항고심에서 『징역형과 추징금은 별개』라며 기각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특별사면은 형 선고의 효력을 없애지만 추징의 효력마저 없앤다고 보는 것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 5·18관련 유죄판결 80명 「특별법」이후 첫 재심청구

    ◎이우재씨 등 “민주화위한 정당 행위” 지난 80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다 계엄포고령 위반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계엄포고령 피해자협의회」(대표 이우재)소속 회원 80명은 『당시 시위는 민주화를 위한 정당한 행위였다』면서 이 사건 재심청구서를 10일 서울고법에 냈다. 지난달 19일 제정된 5·18특별법에 근거해 이뤄진 재심청구는 이번이 처음으로 앞으로 비슷한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법은 구속중인 전두환전대통령이 5·18사건과 관련,유죄판결을 받게되면 재심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씨등은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을 경우 전과기록의 말소는 물론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낼 수 있다. 이씨등은 청구서에서 『특별법은 12·12 및 5·18사건을 전후해 발생한 헌정질서파괴 범죄를 저지 또는 반대한 행위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에 대해 재심청구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 『당시 광주사태의 진상규명과 비상계엄해제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여 유죄판결을 받았으므로 재심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씨등은 80년 5월17일 비상계엄전국확대와 동시에 내려진 계엄포고령 10호를 위반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수도군단 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2년을 선고받고 항소해 81년5월 서울고법에서 징역1년의 형이 확정되는등 각각 선고유예에서 최고 징역3년의 판결을 받았었다.
  • 이형구 전노동 집유/뇌물수수 항소심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강완구 부장판사)는 27일 산업은행 총재로 재직하면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3년에 추징금 3억3천5백만원을 선고받은 전노동부장관 이형구(54)피고인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수재)죄를 적용,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및 추징금 3억3천5백만원을 선고했다.
  • 삼풍 이준 회장 10년6월 선고/이한상 사장 7년/서울지법

    ◎전서초구청장 2명 3년·2년6월/골조시공 우성건설 3명엔 집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발생 1백82일째인 27일 관련 피고인 25명 가운데 9명에게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됐다. 서울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이광렬 부장판사)는 이날 이 사고로 구속기소돼 징역20년을 구형받은 삼풍회장 이준(73)피고인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죄 등을 적용해 징역 10년6월을,징역 7년이 구형된 삼풍사장 이한상(42)피고인에게 같은 죄를 적용,징역7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백화점 설계변경 등을 묵인해 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은 전서초구청장 이충우(60),황철민(54)피고인에게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위반(뇌물수수)죄 등을 적용해 징역3년에 추징금 1천3백만원,징역 2년6월에 추징금 1천2백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특히 붕괴사고의 주요인으로 작용한 백화점 5층 골조공사의 시공주체인 우성건설 주임 정순조(41)피고인에게 금고 1년6월,나머지 우성측 피고인 3명에게는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우성측도 사고의 연대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이에따라 유족과 부상자들은 삼풍과 우성건설 양쪽에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심수섭 전서초구청 도시정비국장 등 서초구청 관계자 3명에게는 선고유예 판결이 내려졌다. 이준 피고인 등은 지난 6월29일 사망자 5백3명을 포함,1천2백여명의 사상자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관련,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됐었다.
  • 덕산 박성섭 회장/징역 7년 선고/서울지법

    서울지법 형사합의 22부(재판장 이광렬 부장판사)는 20일 덕산그룹 부도사건과 관련,징역12년과 징역7년이 각각 구형된 박성섭(46)피고인과 박씨의 어머니 정애리시(71)피고인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사기)죄등을 적용,징역7년과 징역3년을 선고했다. 또 회사자금을 유용한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박피고인의 동생 성현(36)씨에게는 업무상횡령죄가 적용돼 징역8월에 집행유예 1년이 선고됐다.
  • 컴퓨터 바이러스 제작·유포/최고 징역3년형/정보통신부

    정보통신부는 20일 컴퓨터바이러스프로그램을 제작하거나 유포하는 사람에 대해 3천만원이하의 벌금이나 3년이하의 징역,또는 2가지 형사처벌을 병과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개정안을 추진키로 했다. 정통부는 『최근 컴퓨터바이러스프로그램 제작이나 해커행위가 잇따르고 있으나 마땅한 처벌법규가 없어 대응을 못하고 있다』며 『컴퓨터바이러스 유포행위 등을 저작권침해와 동일하게 처벌하는 형벌규정을 도입,오는 9월 정기국회에 개정안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미 군정체제 확립(새로 쓰는 한국현대사:5)

    ◎“일인활용 불가피”속 행정권 장악에 석달/서울 입성뒤 「북쪽 접수」 주력… 개성 첫 점령/북의 소군은 2개월 앞서 「도인민위」 설치/인천입항 미군 환영길 한국인 2명 일경에 피살 미군이 인천에 첫발을 디딘 1945년 9월8일은 미 군정 3년을 포함해 이후 반세기동안 유지돼 온 한미간 특수 역사관계의 출발점이었다.그러나 한국인과 미군의 첫 만남은 그 시대상황을 상징이라도 하듯 비극적인 사건으로 얼룩졌다.미군을 환영하러 부두로 몰린 한국인들이 일본경찰의 총에 맞아 두명이 숨지고 십여명이 부상한 것이다. 인천은 서울과 가까운 근대 해항지여서 일찍부터 일본인 거주자가 많았고 그 세도 강한 항구도시였다.반면 부두노동자들이 조직한 노동조합이 활발히 움직이는등 반일세력도 만만찮았다.따라서 해방이 되자 인천시내에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일본경찰은 재향군인 9천명을 급하게 모아 특별경찰대를 조직,각 파출소에 배치하는등 경비를 강화했으며 한국인들도 이에 맞서 치안유지회(보안대)를 결성해 대치하는 분위기였다. 「미군이 9월8일 인천항으로 상륙한다」는 소문이 며칠전부터 떠돌자 시민들은 「해방군」을 맞는다는 기쁨에 들떴다.이에 조선총독부는 9월5일 담화를 통해 『미군은 민중환영등 의례적인 행사를 희망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이어 8일에는 인천경찰서가 의사·산파·우편배달부를 제외한 사람의 외출을 금지한다고 공시했다.그리고 『이것은 미군의 지시』라고 못박았다. 8일 아침이 되자 인천시내 곳곳에는 미군을 환영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은 자연스레 하나의 무리를 형성했다.미군 함정이 부두에 도착한 하오2시쯤에는 거대한 물결이 되어 인천항쪽으로 나아갔다.인파가 현재의 인천우체국 자리를 지나 산업은행 앞에 이르자 일본 특별경찰대의 99식 소총이 불을 뿜었다.이 발포로 행렬에 앞장선 조선노조 인천중앙위원장 권평근(당시 45세)과 보안대원 이석우(20세 가량)등 2명이 숨지고 1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권평근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사는등 일생을 조국광복에 바친 독립운동가였다. 해방된 우리땅에서 독립운동가가 일본경찰에게 공공연하게 피살된,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어떻게 일어났을까.이 사건에는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의 사전정보부족과 한국에 대한 그릇된 시각,일본측 농간들이 복합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미군은 진주에 앞서 한국주둔 일본군사령관 우에쓰키(상월양부)와 연락,그로부터 『무장폭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를 듣자 「미군이 인수할 때까지」라는 조건으로 일본군의 치안유지권을 인정한다.이같은 미군의 입장은 권평근·이석우의 사망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다.장례식이 끝난 뒤 유족들이 미군에 발포경찰관등을 고발,이에 대한 군사재판이 13일 열렸다.이 자리에서 일본인인 인천경찰서장등은 『미군 지시로 환영·외출을 금지했는데 이를 어겼다』고 주장했고 법정은 이들의 행위를 「합법」이라고 판정했다.재심청구를 했지만 곧 기각됐다. 이 사건은 미국 신문에 즉시 보도돼 미국내에서도 비판여론이 크게 일었다.종군기자 리처드 E 라우터배크는 「뉴욕타임스」9월9일자 기사에서 『일본군이 환영군중에게 발포한 것은 미군사령부의 지시때문』이라고 공개했다.「뉴욕타임스」는 이어 11일자 사설에서 『우리는 일제 식민정책을 시행한 쓰레기들에게는 부드럽게 대하고 우리가 해방시킨 민중에게는 강경하게 대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심각하게 제기했다. 한국점령 임무를 맡은 미 제24군단 가운데 8일 인천을 통해 맨 먼저 들어온 부대는 7사단이었다.7사단은 인천에 17보병연대를 남겨놓고 9일 아침 서울로 향했다.당시 미국신문들은 거리풍경을 『흰옷을 입고 이상스런 검정모자(갓)를 쓴 한국인들이 길가에 죽 늘어서서 「만세」를 외치며 환호했다.「USA Army Welcome」이라고 쓴 환영아치도 가끔 눈에 띄었다』고 보도했다.한국인들은 대부분 순수한 마음에서 미군을 「해방군」으로서 환영했던 것이다. 이날 하오4시6분 서울 조선총독부 건물(현 국립중앙박물관)제1회의실에서 38선이남 일본군의 공식 항복행사가 열렸다.일본측 대표인 아베 노부유키(아부신행)조선총독,우에쓰키 주둔군사령관등이 먼저 들어왔고 이어 하지중장,킨케이드중장(제7함대사령관)등 미군대표가 자리를 잡았다.하지중장 뒤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X자로 세워져 있었다. 다음날부터 미군은 38선이남의 영토와 행정조직을 장악하는데 본격적으로 나선다.서울에 본부를 둔 7사단은 우선 북쪽지역에 주력해 12일 개성을 점령한 다음 소련과 연락할 전신장치를 설치했다.이어 그리고 미군정은 각 도에 군정지사를 보내 행정권을 장악했다.지사 발령날짜를 보면 ▲경기도 10월2일 ▲강원도 11월26일 ▲충북 11월8일 ▲충남 10월9일 ▲경남 9월28일 ▲경북 11월3일 ▲전북 11월20일 ▲전남 10월26일등이다.초대 군정지사들은 영관급 장교가 대부분이고 경남지사인 찰스 해리스가 유일하게 준장이었다. 미군이 지방에 분산 배치된 초기에는 군정 수행에 어려움이 많았다.군단위까지 확보하기에는 병력이 부족했고 특히 훈련된 행정요원은 턱없이 모자랐다.그런가 하면 현지실정을 몰라 한동안 일본인 관리를 활용해야 했으며,일부 지역에선 「조선인민공화국」이 임명한 관리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그러나 각 도에 군정지사를 파견해 자리잡음으로써 미군정은 1945년 11월 말쯤 전국적인행정체제를 확립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한반도 진격속도가 빨랐던 북쪽의 소련군은 군정체제를 이루는데도 앞섰다.8월9일 참전한 소련군은 일부지역에서 일본군의 저항을 받긴 했지만 8월 말까지는 38선이북 지역에 대한 군사적 점령을 끝냈다.점령군은 제25군,그 사령관은 IM 치스차코프대장이었다. 치스차코프는 평양에서도 조만식이 주도하는 「평남 건국준비위」와 「공산당 평남도위원회」를 합쳐 「평남 인민정치위원회」를 구성케 했다.이 위원회는 비록 조만식을 대표로 내세웠지만 실제적으로는 공산주의자들의 수중에 들어갔다.소군은 이같은 방식으로 기존의 정치세력과 공산주의자들을 엮은 인민위원회를 9월 말까지 각 도에 구성했다. 미군이 남쪽에서 직접통치의 형태를 갖췄다면 소군은 자치적으로 보이는 「인민위원회」구성을 통해 간접통치하는 교활한 방식을 택한 셈이다. ◎해방된 내땅인데… 일경에 맞서다 피살/유족 최초 증언… 「권평근의 인천참사」/미군 의뢰 따른 일 통제에 강력 저항/20∼30년대 노조운동 통해 항일투쟁 미군이 인천에 상륙하던 날 일본경찰의 흉탄에 희생된 권평근(1900∼45년)은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였다.그는 1919년 「3·1운동」부터 45년 9월 숨질 때까지 독립운동에 앞장서 왔지만 아직 정부로부터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지 못했다.그에 관한 기록이 여러 문헌에 흩어져 있어 미처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러나 본사 취재팀은 일본측 기록인 ▲삼전방부의 저서 「조선 종전□ 기록」(암남당서점) ▲1936년 조선총독부 경무국 자료인 「국외□어□□용응조선인명부」 ▲경성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에서 31년 9월 발행한 「사상월보」9월호들을 검토했다. 또 ▲서울경찰청이 1993년 6월9일 국가보훈처에 회신한 「권평근에 대한 지문조회」결과 ▲국가보훈처 소장 독립유공자공훈록 제5권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광복군」기록 ▲조선일보 1931년 7월24일자,8월27일자,9월4일자 ▲동아일보 1931년 8월27일자,10월27일자 등 각종 자료와 가족으로부터 단독입수한 권평근의 미공개사진,증언들을 종합해 국내 언론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아직 시도해 본 적이 없는 권평근의일생을 복원했다. 권평근은 경기도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에서 태어났다.배재학당에 다니던 그는 「3·1운동」때 고향에서 시위대열의 선두에 섰다가 3년동안 충청도로 피신한다.이어 26∼27년에는 중국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조선총독부 경무국이 작성한 「해외 반일조선인 명부」에는 그를 『배일사상이 농후한 요주의 인물』로 기록하고 있다. 권평근의 경력은 30년대에 빛난다.인천으로 이사해 노동조합에 투신한 그는 31년 7월 「일본인습격사건」의 주동자로 체포된다.당시 만보산사건이 일어나자 국내에서도 한국인과 중국인사이에 충돌이 잦았다.그러나 권평근 등은 일본이 한·중 양국을 이간질시키려고 사건내용을 과장한 것이라며 중국인을 공격하는 군중의 분노를 일본인에게로 돌렸다.이 사건으로 그해 10월26일 경성지법 형사제1부에서 징역3년을 선고받는다.당시 재판기록을 보면 권평근은 이해 5월1일,6월10일,7월5일 등 세차례에 걸쳐 반일시위를 벌이려고 구체적인 준비를 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복역을 마친 권평근은 노동조합을 통해 더욱 은밀하게 독립운동을 벌였고 해방당시에는 조선노조 인천중앙위원장이었다.총격 현장에서도 그는 일본경찰에게 『해방된 우리땅에서 웬 참견이냐.쏠테면 쏘라』며 가슴을 내밀었다고 한다.그의 장례식은 사회단체장(일부 기록은 시민장)으로 치러졌다. 딸 명숙씨(55·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742)는 아버지를 『6척 장신에 힘이 장사였다』고 기억했다.또 그리 어렵지 않은 살림인데도 자신은 하루 두끼만을 먹으며 어려운 이웃에게는 식량과 옷을 서슴없이 나눠줬다고 회상했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부국장급 ▲이용원 〃 ▲김성호 〃 ▲김경운 〃
  • 범죄신고자 보호법안 마련/대검/인적사항 누설땐 징역3년

    범죄 신고자 및 법정증인이 피의자나 피고인에게 보복을당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때는 신고자의 요청에 따라 피의자의 신병변동사항을 통지해 주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하는 「범죄신고자 보호법」이 곧 제정돼 올해안에 시행된다. 대검 강력부(김진세 검사장)가 17일 마련한 법안초안에 따르면 해당 사건 피고인의 체포·구속 및 석방과 관련된 처분내용·판결선고내용·가석방·형집행정지결정 등 각종 신병관련 변동사항을 담당 검사 및 경찰서장의 직권으로 신고자나 법정대리인,후견인 등에게 통지해 사전에 대비토록 한다는 것이다. 법안은 특히 범죄신고자나 증인의 진술·증언·자료제출 내용 등이 기록되는 조서에 인적사항은 기재하지 않고 별도의 비밀장부를 둬 특별관리토록 했다. 또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종사하는 사람이 이를 누설했을 때는 3년이하의 징역이나 5백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등 엄격한 처벌규정이 신설됐다.
  • 안병화씨에 뇌물준 박병찬씨 3년구형

    서울지검 공판부 이승섭검사는 22일 전한전사장 안병화(63·구속중)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캐나다 원자력공사 한국대리점인 삼창 회장 박병찬(58)피고인에 대해 뇌물공여죄등을 적용,징역3년에 추징금 17억2백10만원을 구형했다.
  • 조기현 피고인에 징역 3년형 선고/서울고법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손지열부장판사)는 23일 상무대이전공사사업을 하면서 공사대금 1백89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등으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5년이 선고된 청우종합건설 전 회장 조기현피고인(56)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죄등을 적용,징역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조피고인이 89년12월부터 92년까지 대로개발 이동영사장을 속여 13억2천여만원을 가로챈 혐의(사기)에 대해서는 증거부족을 이유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 희대의 살인마들 공판 표정/방청객 몰려 사회적 파장 실감

    ◎“왜 유죄냐” 욕설·독기 그대로/지존파/“나같은 흉악범은 사형 마땅”/온보현 희대의 두 살인마에 대한 공판이 31일 상오와 하오 두차례에 걸쳐 서울형사지법 법정에서 열렸다. ○…「지존파」일당의 선고공판이 열린 417호 대법정에는 이른 아침부터 2백여명의 방청객들이 들어차 이 사건에 쏠린 사회적 관심을 반영. 김기환은 첫공판과 지난 19일 결심공판때와 마찬가지로 느린 걸음으로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입정,전혀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나 선고공판인 때문에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방청객들을 한차례 훑어본뒤 착석. 이어 고개를 숙인채 강동은·김현양·강문섭·문상록·백병옥·이경숙이 차례로 입정했으며 김현양은 팔꿈치까지 올라온 가죽수갑에 묶인 두손을 쉬지않고 부비며 들어와 초조한 심정을 표출. ○…각자의 생년월일만을 확인,간단하게 인정신문을 마친 재판부는 곧이어 『피고인들의 자백과 관련증거들로 볼때 피고인들에 대한 범죄사실은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며 범행동기·살해방법·사회적 파장등으로 나누어 차분히 선고문을 낭독. 재판부는 「한탕주의」에 사로잡혀 저지른 이들의 범행이 「가진자」에 대한 맹목적인 질시에서 비롯되었으며 범행의 동기를 사회의 부조리 탓으로 돌리는 이들의 책임전가를 엄중히 질타. 재판부는 또 『모두 결손가정에서 자라 사회적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자란 점이 인정되나 이들과 같이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나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다수의 젊은이들이 이 사회에 엄존하고 있다』고 밝히며 이들의 범행동기가 설득력이 없음을 강조. ○…김기환은 선고공판이 끝난뒤 호송차에 타기전 『전두환·노태우는 무죄인데 나만 왜 유죄냐』며 마구 욕설을 퍼부은뒤 『세상은 ×같은 것이여』라고 해 자신이 저지른 범행을 전혀 참회하지 않는 모습. 징역 5년의 구형을 받고 이날 징역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이경숙은 선고를 받은뒤에도 집행유예의 의미를 모르는듯 잠시 멍한 표정. 곧이어 옆자리에 앉은 여교도관에게 몇마디를 묻고는 이내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내쉬며 만감이 교차하는듯 감격의 눈물. ○…지존파에 이어 이날 사형이 구형된 온보현피고인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용서를 빈다』며 『사형만은 피해달라는 변호인의 말은 지금 이자리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도 나같은 흉악범들에게는 전혀 쓸모없다』는 의외의 최후진술을 했다. 온은 『희생된 사람들과 유족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생각하신다면,또 다시는 나같은 흉악범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부디 법정최고형인 사형에 처해 달라』고 재판부에 마지막 심경을 전한뒤 『형의 집행도 하루속히 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주문. ○…변호인 반대신문에서 『현상수배되지 않았더라면 자수하지 않고 범행을 계속 저질렀겠느냐』는 질문에 온이 또렷한 목소리로 『네.아마 그랬을 겁니다』라고 응답하자 방청석에서는 일순 술렁거리며 『저런…』이라는 한숨과 함께 꾸짖는 목소리가 들려오기도. 온은 또 2차범행이 실패로 돌아간뒤 인근 경찰서에 자수할 생각으로 『내가 목격자다』라며 전화를 걸었으나 『네가 범인인 것을 알고있다.자수하지 않아도 목소리가 녹음돼 현상수배를 하면 잡을수 있다』라는 경찰의 말을 듣고 갑자기 반감이 생겨 범행을 계속하기로 작정했다고 진술. ○…온은 지난13일 구속기소된 이래 15년전 헤어진 「첫사랑」을 나눈 여자와의 면회는 허용했으나 가족들을 포함,담당 국선변호인의 면회조차 거부하고 이날 법정에 선 것으로 확인.
  • 이상훈 전국방 집유3년 선고/율곡비리 항소심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김경일부장판사)는 24일 율곡사업 비리와 관련,군납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항소한 전국방부장관 이상훈피고인(61)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수수)죄를 적용,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추징금 3천만원을 선고했다.
  • 하극상 사병 3명 15∼10년 구형/군사재판 첫 공판

    ◎탈영 소위2명 10년·하사15년 【부산=김정한기자】 장교및 하사관의 무장탈영사건 피고인들에게 최고 징역 15년에서 최하 3년까지의 중형이 구형됐다. 10일 상오 9시30분 육군 제11군단 보통군사법원(53사단 법정)에서구속된 29명가운데 1차로 기소된 9명에 대한 1차공판이 재판장 강운학중령 심리로 열렸다. 군검찰은 논고를 통해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지고있는 현역장교와 하사관이 무기를 훔쳐 군부대를 이탈,소총을 난사한데다 통신선을 절단해 초소의 통신을 마비시켜 전군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국민을 불안케한 행위는 엄벌에 처함이 마땅하다』고 구형이유를 밝혔다. 이날 재판에서 군검찰은 무장탈영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특중소위(22·육사50기)와 조한섭소위(24·학군32기)에게 각각 징역10년,황정희하사(22)에게는 15년을 구형했다. 소대장을 폭행한 혐의(속칭 소대장길들이기)로 구속기소된 손신병장(22)에게는 징역15년,신원식병장(22)과 유영민상병(22)등 2명에게 각각 징역10년이 구형됐으며 상관폭행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김헌중대위 (31·학군 28기)와 김기환대위(31·3사후보생5기)등 2명은 징역3년,탈영장교의 훔친 수류탄을 보관한 윤종천이병(22)은 5년이 구형됐다. 재판에서 피고인들은 대부분 혐의사실을 순순히 시인했으며 탈영했던 김·조 소위와 황하사는 『하극상 문제이외에 개인적이 동기로 탈영한 것이 아니냐』는 군검찰관의 추궁에 『하극상 문제를 사회에 알리기위해 탈영했을뿐 개인적인 탈영동기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재판에는 가족들에게만 출입이 제한되는 등 비공개로 이뤄졌던 지금까지와 달리 피고인가족 20여명과 군부대관계자,취재진등 1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선고공판은 오는 13일 상오 10시 53사단 법정에서 열릴 예정이다. ◎“1차공판 스케치”/“일병이 하사에 담배달라 반말… 분개” ○…이날 첫공판에참석한 구속자가운데 김기환대위를 비롯한 장교4명과 황정희하사는 짧은 스포츠형,신원식병장등 사병4명은 삭발하고 입장했으며 모두 군복상의를 하의 밖으로 드러낸채 헌병들과 함께 법정에 도착. ○…이날 피고인에 대한심리는 계급순으로 진행.구형도 김기환·김헌중대위부터 시작,탈영한 장교 2명과 황하사 및 탈영장교가 훔친수류탄을 보관했던 윤종천이병에 이어 마지막으로 소대장을 폭행한 신병장등 3명에 대한 순으로 이뤄졌다. 소대장 폭행사실을 알면서도 상부에 보고하지않은 김기환 대위는 피고인 진술에서 『초급장교인 소대장과 대대장급이상의 고급장교와의 허리역할을 해야할 중대장으로 책임을 다하지 못해 이런 불미스런 사태가 발생했다』며 『본인이상의 장교에 대한 처벌을 하는 것은 군의 사기를 위축시킬 수 있고 자신에게 모든 잘못이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만 책임을 물어달라』고 말한뒤 결국 눈물을 흘려 법정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기도. ○…무장탈영을 주도했던 김특중소위는이날 군내에 만연한 하극상에 대해 많은 소대장들이『어차피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며 2년만 있으면 제대한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어 이대로는 안되겠다싶어 무장탈영을 결심하게 됐다』고 털어놔 지금까지 사병들의 하극상에 대해 장교들의 적극적인 대응이 없었던 점을 시인했다. ○…군사법정에서 황정희하사는 지난해 5월 해안초소 선임하사로 배치되자 사병이 『야 담배있나』고 반말을 하는가 하면 일병이 『이곳에서 생활하려면 내 말을 잘 들어야 한다.일병 이상에게 경어를 사용하라.계급 높다고 까불지 마라』는 등 모욕적인 언행을 일삼았다고 군기문란을 생생히 진술. 또 김특중소위는 지난 7월 초 사병들이 말을 잘 안듣는다는 이유로 해안을 향해 실탄 1발을 발사했는가 하면 내무반에서 수류탄으로 소대원들을 위협하기도 했으며 조소위도 지난8월 중순 내무반에 전 소대원을 집합시켜 놓고 M16소총으로 천장에 실탄 2발을 발사한 것으로 드러나 지휘체계가 한계에 달했음을 짐작케 하기도.
  • 유서대필 3년 복역/강기훈씨 내일 출소

    91년5월 분신자살한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필한 혐의로 같은해 7월 구속기소돼 징역3년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씨(30)가 17일 형기를 모두 마치고 출소한다.
  • 정주영 피고에 징역 7년 구형

    서울고검 김동섭검사는 20일 대통령선거법및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3년을 선고받고 항소한 전 현대그룹명예회장 정주영피고인(79)에게 징역7년을 구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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