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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건개피고 7년 구형/검찰/“5억 4천만원 이자도 뇌물”

    대검 중수부2과 황성진부장검사는 7일 「슬롯머신업계의 대부」 정덕진씨형제로부터 5억4천여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대전고검장 이건개피고인(52)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위반(뇌물수수)죄를 적용,징역 7년에 추징금 5억4천2백40만원을 구형했다. 서울형사지법합의23부(재판장 김황식부장판사)심리로 열린 이날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이와함께 이같은 특가법위반혐의를 적용한 주청구가 재판부에서 배척될 것에 대비,이피고인이 차용증을 써주고 받은 5억4천여만원의 이자만을 뇌물로 보아 형법상의 뇌물수수죄를 적용,징역 2년6월에 추징금 5억4천2백40만원을 예비적 청구로 구형했다. 변호인측은 이날 최후변론을 통해 『이피고인은 차용증을 써주고 돈을 빌린 것일 뿐』이라면서 『돈을 받을 당시인 88년 10월 당시 정씨에 대한 검찰의 내사가 있지도 않았으므로 검찰의 내사를 막아달라는 업무상청탁을 대가로 돈이 건네졌다는 공소사실은 근거가 없다』고 무죄를 주장했다. 이피고인은 지난88년 10월부터 같은해 12월까지 3차례에 걸쳐 정덕진씨의 동생 덕일씨(44)로부터 『형을 잘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모두 5억4천2백4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지난 5월 검찰에 의해 구속·기소됐었다.
  • 이건개 전고검장의 눈물/박성원 사회부기자(현장)

    ◎“선친의 명예 지켜온…” 변론에 끝내 눈시울 『피고인이 검찰고위직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가혹하게 단죄돼서는 안될 것입니다』 슬롯머신업계비리와 관련,구속·기소된 전대전고검장 이건개피고인(52)에 대한 결심공판이 열린 7일 상오 서울형사지법 319호법정. 변호인인 서정우변호사는 이 사건이 사정태풍속에서 검찰간부도 예외일 수 없다는 「본때보이기」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공직자로서 도덕적 비난의 소지는 있는지 몰라도 형사처벌의 대상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변호인의 최후변론이 계속되는 동안 검찰의 대선배에게 징역7년의 중형을 구형한 대검중수부 2과의 황성진부장검사가 손을 이마에 얹으며 곤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변호인은 이어 『이피고인이 돈을 받은 88년 10월에는 정씨형제에 대한 검찰의 내사가 진행되지도 않았고 조직폭력수사를 책임지는 대검 형사2부장직에도 있지 않았다』면서 『검찰이 정씨형제를 유도신문해 차용금을 뇌물로 몰아붙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일영전대법관도 변호인으로 나와 정상참작을 호소했다. 『만인의 존경을 받고있는 고 이용문장군의 장남으로 평생을 검찰에 몸담아 오로지 국가를 위해 헌신하면서 부친의 명예를 지켜온…』 정상을 호소하는 윤변호사의 변론이 시작되자 그동안 법정에서 단한번도 눈물을 보인적 없던 이피고인은 더이상 참기 어려운듯 안경을 벗고 손수건을 꺼내 눈시울을 훔쳤다. 『30세에 서울시경국장을 지내는등 빠른 승진과 처신이 어려운 공안검사직을 줄곧 맡았다는 점때문에 주위의 질시까지 받으면서도 원칙을 생명처럼 여긴 피고인이 어머니에 이어 사랑하는 아내마저 잃고 불구인 여동생을 보살피기 위해…』 한참동안 계속된 변론은 『공직자로서 투기라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동산에 투자한 죄는 미워도 검찰에 구속돼 법정에서 선 첫 검사라는 이유 하나로 피고인을 부패검사의 전형인양 미워해서는 안된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이어 최후 진술에 나선 이피고인은 『재판의 실체성립 여부와 관계없이 겸허하게 반성하는 계기로 삼겠다』며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짤막하게 말했다. 방청석에 나와 있던 동생 이건종검사가 구치소로 향하는 형의 뒷모습에서 검찰의 명예를 단숨에 할퀴고간 슬롯머신사건의 끝을 되새기는 듯 멍한 시선으로 한동안 움직일줄 몰랐다.
  • 청송감호소 30대 감호자/고졸검정고시 전국 수석(조약돌)

    ○…올해 제2회 고졸학력검정고시에서 평균 98.66점을 얻은 청송제2감호소 감호자 김석원씨(32)가 전국수석을 차지. 김씨는 지난 8월29일 실시한 시험에서 9개 과목가운데 국어·과학 2개과목을 제외한 나머지 7개과목에서 1백점을 획득. 지난 84년 4월 절도죄로 징역2년에 보호감호 7년을 선고 받고 감호중인 김씨는 오는 96년4월 만기출소할 예정인데 대학에 진학,전기전자학 전공을 희망.
  • 김문기씨 7년 구형

    서울고검 진륭치검사는 15일 상지대 운영비리등과 관련,구속기소된 전 민자당의원 김문기피고인(61·전 상지대 이사장)에 대한 항소심결심공판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죄등을 적용,1심 구형량대로 징역7년을 구형했다.
  • 민주당 정치관계법 개정안 요지

    ◎창당방해죄 신설… 설립요건 완화/정당법/「정치자금 기부증서제」 모금 실시/정자법 민주당이 13일 국회에 제출한 정당법과 정치자금법 개정안 요지는 다음과 같다. ◇정당법 개정안 ▲국회의원선거권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정당 발기인및 당원이 될 수 있음(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장,국회의원보좌관과 비서관및 비서,국회교섭단체의 정책연구위원,대학총장을 비롯해 전임강사이상 교육공무원 포함) ▲법정지구당 수를 현행 국회의원선거법상의 지역구 총수의 5분의 1이상(48개)에서 10분의 1이상(24개)으로 조정. ▲정당의 공직선거후보자 선정절차 또는 선정후보자 확정 절차가운데 선거구를 관할하는 해당당부의 대의기관이나 당원총회 비밀투표의 의결을 통하는 방법을 허용. ▲창당방해죄를 신설,창당준비활동이나 정당활동을 방해하는 사람은 7년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함. ◇정치자금법 개정안 ▲후원회를 둘 수 있는 지구당을 국회에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의 지구당에서 모든 정당의 지구당으로 확대.▲후원회원수를 중앙당은 1천명에서 2천명으로,시·도지부는 3백명에서 5백명으로,지구당후원회는 2백명을 3백명으로 확대. ▲후원회가 평년의 2배를 모금,기부할 수 있는 「공직선거가 있는 연도」에 현행 대통령및 국회의원선거가 있는 연도이외에 정당추천이 허용되는 지방자치단체장및 지방의회의원선거가 있는 연도를 추가. ▲후원회 금품모집 방법에 「정치자금기부증서에 의한 모금」을 신설하고 모금횟수를 평년에는 각 2회,공직선거가 있는 연도에는 각 4회로 규정. ▲정치자금기부증서에 의한 모금은 중앙선관위 발행의 정치자금기부증서와 기부금을 교환하는 방법으로 모금.정치자금기부증서에 표시하는 기부금의 금액은 1만원,5만원,10만원 3종으로 규정. ▲지정기탁제도를 폐기해 기탁금은 국고보조금 배분비율에 따라 정당에 지급. ▲노동조합등 노동단체와 언론기관,언론단체도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있도록하고 노동조합은 정치자금을 기부하기 위하여 조합비이외에 정치자금기부를 위한 별도기금을 설치,경리할 수 있도록 함. ▲국고보조금의계상에 있어서 현행 유권자 1인당 6백원을 증액하고 공직선거가 있는 연도에는 그 선거마다 6백원씩을 추가계상. 국고보조금 배분에 있어 국회의원선거에 참여한 정당의 경우 유효투표총수의 1백분의2이상을 득표한 정당에 보조금총액의 1백분의2를 배분하고 국회의원선거에 참여하지 않은 정당의 경우는 시·도의회의원 또는 시·도지사선거에서 유효투표총수의 1천분의5이상만 득표하면 보조금총액의 1백분의2를 배분토록 한것을 유효투표총수의 1백분의2이상을 득표한 경우로 조정.
  • 이진삼씨엔 2년구형/정보사민간테러관련

    서울지검 공안1부 천성관검사는 6일 군정보사 민간인 테러사건과 관련,구속·기소된 전 정보사령관 이진삼피고인(56·전체육청소년부장관)에게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죄를 적용,징역 2년을 구형했다. 서울형사지법 조병현판사 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논고문을 통해 『피고인은 폭행에 관한 사전보고나 지시 등 혐의사실을 모두 부인하고 있으나 전정보사 3처장 한진구씨(52·수배중)의 군검찰부에서의 진술과 당시 지휘체계등으로 미뤄 개입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이번 사건은 과거 군사정권 아래서 군인들에 의해 저질러진 민간인테러 사건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사건으로 비난받아 마땅하고 특히 피고인은 당시 정보사령관으로 엄벌해야 하지만,사건이 발생한 지 7년이 지났고 피해자인 양순직의원의 피해정도가 경미한 점 등을 참작,이같이 구형한다』고 말했다.
  • “어떤 경우도 가혹행위 불용” 의지/고문경관 4명 법정구속 의미

    ◎수사기관 인권침해 발못붙이게 서울고법이 23일 전 민청련의장 김근태씨의 고문사건과 관련,불구속 상태로 기소된 고문경찰관 4명의 항소심에서 8년만에 이들을 모두 법정구속조치한 것은 가혹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는 사법부의 강력한 의지를 천명한 것이어서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어떤 고상한 명분과 중대한 국가목적을 위해서도 고문행위는 결코 용인될 수 없다』고 지적했듯 이번 조치는 지금까지 어루어진 가혹행위는 물론 행여 앞으로도 있을지도 모를 유사한 행위에대한 경고라고 할 수 있다. 다시말해 일종의 관행처럼 여겨온 수사기관의 인권침해 행위는 이제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씨가 이들 고문경찰관들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한 것은 「민청련」의장으로 있던 지난 85년9월. 김씨는 이때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11차례에 걸쳐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당했다며 이듬해 1월 고문경찰관들을 고발했으나 검찰은 87년1월 이들을 모두 무혐의 처분했었다. 이에 불복한 김씨와변호인들은 87년2월 서울고법에 재정신청을 냈고 88년12월 서울고법이 이를 받아들여 이들 고문경찰관들이 재판에 회부됐었다. 당시 특별검사는 김창국변호사가 맡았으며 서울형사지법은 지난 91년1월 김수현피고인등 고문경관 4명에게 징역2∼5년씩을 선고,유죄를 인정했으나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새삼스레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없기 때문에 법정구속은 하지 않는다』고 밝혔었다.
  • 세습경영 허점노린 희대 사기극/범양상선상대 1백억대 사기사건 안팎

    9일 검찰이 발표한 범양상선을 상대로 한 김문찬씨(43)의 사기 행각은 세습 경영체제의 허점과 정치권력에 허약한 우리 기업의 병폐를 다시한번 확인시킨 사건이다. 국내 굴지의 해운회사가 무일푼의 사기꾼이 던진 「고위층」이라는 미끼에 걸려들어 4년이 넘게 1백억원에 가까운 거금을 고스란히 뜯겨왔다는 점에서 지난해 7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보사 사기 사건」의 재판이라 할 수 있다. 김씨가 범양상선 대표 박승주씨에게 접근 한 것은 지난 88년 3월.당시 김씨는 부친으로부터 해운회사인 대호원양을 물려받아 경영하다 부도가 난 처지였고 박씨는 부친의 자살로 미국 유학길에서 급거 귀국,26살의 나이로 경영권 분쟁에 휘말려 있던 회사를 떠맡았던 상태였다. 김씨는 우선 박씨의 선친과 잘 아는 고위층의 부탁이라며 자연스레 경영에「문외한」인 박씨에게 접근,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않고 자신의 회사 경영 경험등을 바탕으로 경영기법에 대한 자문을 해 주었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이부장」「이선생」등 기관원으로 신분을 위장한채 접대하려는 박씨를 호통까지 치며 신망을 쌓았으며 반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뒤를 봐 주는 고위층 4∼5명에게 수고비를 전해 주어야 한다』며 2천만원을 요구,본격적인 사기행각을 벌이기 시작했다. 김씨는 특히 지난 90년 8월 상속세 감면을 미끼로 박씨로부터 5억원을 받아 내면서 당시 민정당 고위 인사를 거명,박씨의 선친이 낸 정치자금의 영수증을 받아 주겠다고 약속하는등 든든한 배후세력이 있는 것처럼 속여왔다. 91년 12월부터 3차례 걸쳐 은행 채무금 7천억원의 상환기일을 연기해 주는 로비자금으로 47억원을 챙긴 김씨는 이듬해 9월 범양상선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사기행각이 들통날 것을 우려,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달아났다. 빼돌린 돈으로는 이미 추적이 사실상 불가능한 양도성 예금증서(CD)를 구입해 놓은 뒤였다. 김씨는 뒤늦게 어처구니없는 사기를 당한 사실을 안 범양측이 사회적 체면때문에 신고하지 못할것으로 알고 올 6월 귀국해 박씨와 재접촉을 꾀하다가 첩보를 입수한 검찰의 역공작에 걸려들어 지난달 19일 검거됐다. 김씨는 검거 당시에도 범양측과의 약속장소인 경복궁앞에서 약속시간보다 2시간 가량 먼저 나와 주변상황을 일일이 살피는 용의주도함을 보였고 검찰조사과정에서도 자신의 인적사항에 대해 철저히 함구한채 변호사및 가족들에게도 거짓말을 일삼는등 희대의 사기꾼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씨는 검찰조사결과 부정수표단속법위반으로 징역 8월의 실형을 산 것을 비롯,사기·배임등 혐의로 18번이나 입건됐으며 87년에는 Y백화점을 상대로 고위층을 빙자해 사기를 하려다 피소된 전력까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유해 봉환 임정요인 5인

    ◎대한매일신보 주필로 민족사상를 고취/박은식/을사조약때 음독/신규식/미서 독립군 양성/노백린/한국노병회 결성/김인전/상민공동회 조직/안태국 ◇박은식(1859∼1925년)황해도 황주태생.1898년 「황성신문」을 창간했으며 1905년 황성신문에 장지연의「시일야방성대곡」을 게재,일제의 탄압을 받게 되자 영국인 배설이 경영하던 「대한매일신보」로 옮겨 주필을 역임하는등 민족언론인으로 민족사상을 고취. 1924년 임시정부의 국무총리에 취임하고 대통령대리를 겸직했으며 1925년 3월에는 이승만대통령의 탄핵면직을 계기로 2대 대통령으로 취임,독립운동에 헌신하다 같은해 11월1일 노환으로 상해의 한 병원에서 작고.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신규식(1879∼1922년)충북 청원태생.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이에 비분강개,음독자살을 기도했다가 오른쪽 눈을 실명.1911년11월 중국으로 망명,손문의 신해혁명에 참여했으며 상해·남경등지에서 망명동지들과 함께 독립운동단체인 「동제사」를 조직.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출범과 함께 법무총장에 임명되고 임시의정원 부의장에 선출됐으며 1921년에는 국무총리 겸 외무총장에 취임하는 등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쳐오다 1922년 9월25일 과로로 상해에서 43세로 별세.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노백린(1873∼1926년)황해도 송화태생.1910년 일제에 국권이 침탈되자 미국으로 망명,하와이에서 독립군을 양성했으며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해로 달려가 임시정부수립에 참여하고 군무부총장에 임명됨.1922년 국무총리대리를 거쳐 다음해 국무총리에 정식 취임했으며 1924∼25년까지 국무총리,교통 및 군무총장직을 겸임하다 1926년 1월22일 상해에서 지병으로 별세.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김인전(1876∼1923년)충남 서천태생.1919년 4월 상해로 건너가 이듬해 임시의정원 재무예산위원직을 시작으로 의정원부의장,임시정부 재무부 비서국장과 임시공채관리국장,임시정부의학무총장대리 등을 역임. 1922년 임시의정원 전원위원장에 피선됐고 같은해 4대 의정원의장에 선출돼 임시정부의 의정활동을 이끌었다. 김구·여운형 등과 함께 한국로병회를 결성,군대양성과 독립전쟁의 비용 조달에 주력. 1923년5월24일 과로로 순국.1980년 건국훈장 국민장. ◇안태국(1875∼1920년)평남 평양태생.평양에서 협동사라는 회사를 설립,실업구국운동에 앞장섰으며 이승훈 등과 함께 상민공동회를 조직하고 1917년 신민회가 창립되자 여기에 가입,최고위간부로 활동.1911년 간도의 독립군기지 설치운동과 관련,경찰에 체포돼 징역 2년을 언도받았다.
  • 국민기본권의 불가침성 확인/헌재,반국가행위법 “일부위헌” 의미

    ◎정치 이유따른 기본권 제한에 쐐기 헌법재판소가 29일 유신시대의 대표적 악법으로 꼽혀온 「반국가행위자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대해 일부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은 피고인의 반국가적 행위등 어떠한 정치적 이유로도 재판을 받을 헌법상의 국민기본권은 박탈·제한될 수 없다는 헌법정신을 확인한 것이다. 유신시절 미상원 프레이저 청문회에 출석,박정희대통령을 격렬히 비난하고 회고록등을 통해 반정부활동을 폈던 김형욱씨 유족들에 의해 제기됐던 이번 헌법소원은 김씨가 행한 반국가행위와 김씨에게 적용된 초헌법적 법률사이에서 헌재가 어떤 법적가치에 무게를 둘 것인지 관심을 끌어왔다. 이에대해 헌재는 이날 결정문을 통해 『반국가행위자 처벌에 관한 특조법 11조 1항등은 피고인의 재판을 받을 권리및 상소권이라는 헌법상 권리를 본질적으로 침해할뿐만 아니라 죄형법정주의및 적법절차주의라는 형사재판의 기본원리를 무시,헌법에 어긋난다』고 선언,죄의 경중을 떠나 법의 기본질서에 의하지 않는 처벌은 있을 수 없다는 자유민주주의 기본정신을 뒤늦게나마 분명히했다. 이에따라 79년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된뒤 82년 서울형사지법에서 문제의 특조법에 따라 징역 7년과 전재산몰수형을 선고받고 서울 동소문동·사당동 가옥과 골동품등 전재산을 몰수당했던 김씨유족들은 헌법재판소법 47조에 따라 재심청구가 가능해 재산과 함께 명예를 되찾을 길이 열렸다고 할수있다. 김씨 유족들은 89년 몰수재산반환청구소송과 함께 『특조법은 피고인의 출석이나 증거조사도 없이 형을 선고하고 상소권마저 박탈하는등 위헌』이라며 위헌심판제청신청을 서울민사지법에 냈다가 모두 기각당한뒤 지난해 8월 헌법소원을 냈었다.
  • “김형욱씨 「반국가행위」 처벌/상소권 제한은 위헌”

    지난 82년 당시 김형욱전중앙정보부장을 처벌한 근거 법령이었던 「반국가행위자의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중 피고인측의 상소권을 제한한 이 법 제11조1항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내려졌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최광율재판관)는 29일 김씨의 부인 신영순씨(미국거주)가 낸 「반국가행위자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11조 등에 대한 헌법소원사건 선고심판에서 『피고인이 외국에 도피중인 중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상소권을 전면 봉쇄한 것은 헌법상 재판청구권의 본질적 침해』라며 위헌결정을 내렸다. 지난 82년 서울형사지법이 김씨에 대한 궐석재판을 열어 징역 7년과 재산몰수형을 선고한뒤 부인 신씨는 90년 상소권회복 청구소송을 제기했으나 「피고인 또는 피고인을 위해 상소할 수 있는 자는 피고인이 체포되거나 임의로 검사에게 출석한 때에 한해 상소할 수 있다」는 이 법 제11조1항 규정에 따라 법원에 의해 기각되자 헌법소원을 냈었다.
  • 신훈식 피고인 징역 7년선고/대리시험 항소심

    서울형사지법 항소3부(재판장 박송하부장판사)는 18일 대학입시 대리시험사건과 관련,구속기소된 주범 신훈식피고인(33·전광문고교사)과 브로커 김세은피고인(37)등 19명에 대한 항소심선고공판에서 신피고인과 김피고인에게 업무방해죄등을 적용,원심대로 징역 7년과 5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전정릉여상교감 홍정남피고인(46)등 나머지 브로커 5명에게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징역3년을,장인원피고인(43·여)등 학부모 5명에게는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씩을 선고했다.
  • 「차고지 증명제」 과연 필요한가(오늘의 쟁점)

    정부는 자동차를 보유할 때에는 반드시 차고지를 확보하도록 의무화하는 차고지증명제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차고지를 확보하지 않은 자동차의 증가로 주택가는 물론 주변도로가 야간에 주차장화 되어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차고지 증명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이 교통부의 입장인 반면 현재의 여건으로 보면 차고지 증명제를 실시하면 부작용만 낳을 것이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차고지증명제 도입에 대한 찬반 입장을 들어본다. ◎도입론/안찬근 교통부 교통영향평가과장/주택가 도로 야간주차장화로 기능 상실/시이상 「중대형」부터 단계적용 바람직 차고지증명제란 자동차를 보유하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자동차를 보관할 수 있는 장소(차고지)를 확보하고 이를 증명하여야만 자동차등록이 가능토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국민소득의 향상으로 80년대 중반부터 자동차가 급증추세에 있어 97년도에는 1천만대,2001년도에는 1천4백만대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그러나 주차공간의부족 및 자동차 보유자의 차고지 확보의식 결여 등으로 주거지역과 그 주변도로의 대부분이 주차장화 됨으로써 소방차 등 긴급 자동차의 접근 불능,시민생활공간 침해 및 이웃간의 불화초래 등 경제·사회적 문제가 점차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5년간 자동차증가율이 26.6%(자가용승용차 35.3%)에 이르고 있으며 자가용자동차의 자기차고 확보율이 35%에 불과하고 약40%의 자동차가 도로에 야간주차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방관할 경우 3∼4년 후에는 주거지역 이면도로 뿐만 아니라 간선도로를 포함한 주거지역 모든 도로의 통행기능과 접근기능이 완전히 상실될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공공도로의 사물화를 방지하고 도로 본래의 기능을 회복시켜 도시교통의 원활한 소통을 도모하고자 자동차보유자의 차고지 확보를 의무화하는 법률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자동차 대수가 3백64만대이던 지난 62년부터 차고지증명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자동차는 반드시 차고지에 보관하여야 한다는 인식의 정착으로 제도시행 10년후 개인차고지가 40%에서 80%로 증가하는 등 도시교통소통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차고지증명제 실시를 몇년 더 유예하자는 의견도 있으나 차고지문제에 대한 별도의 대책을 지금 서두르지 않고 시기를 늦춘다면 차고지증명제 실시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며,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시행에 따른 문제점은 더욱 심화될 것이므로 문제점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강구하여 곧 시행해야 할 것이다.다만 제도시행으로 국민에게 주는 부담을 고려하여 시단위이상 도시지역을 대상으로 중·대형 승용차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며 주차장 공급을 확대하는 제도적 뒷받침을 계속해 나갈 방침이다. 따라서 시행초기에는 그 효과가 한정될 수 밖에 없으나 향후 차고지증명제의 전면실시로 자기 자동차는 자기책임하에 보관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과 함께 소방차·구급차 등 긴급 자동차의 접근로 확보와 차량의 파손·도난의 예방으로 개인과 국가적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쾌적한 주거환경 조성과 보행자 편의도모 뿐만 아니라 도시교통 전체의 운용효율이 증대됨으로써 자가용시대에 걸맞는건전한 자동차문화가 정착되어 갈 것으로 기대된다. ◎반대론/김차중 자동차공업협회 홍보부장/증차억제에만 효과… 근본 해결책 못돼/「개구리식 주차」·빌딩시설 활용 강구를 차를 세워 놀 차고지가 있다는 것을 서류상으로 증명해야만 자동차를 등록할수 있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차고지 증명제에 대해서 당협회는 대안을 가지고 반대해 왔으며 차고지 개념의 발상지 일본이 30여년간 수십만명의 공무원이 차고지로 인한 부정과 연루되는 불상사를 겪으며 정착을 해가던 때나,이미 실패한 유물로 공개낙인이 찍힌 지금이나 당협회의 견해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자동차의 증가가 경제성장률을 훨씬 앞지르는 현재 무분별한 숙박차로서 다른차와 긴급상황출동차의 진로방해등의 폐단에 대한 우려와,자동차보관책임에 대한 국민의 인식전환을 위한 조치로서의 부분적인 타당성이나,정부조직상의 여러가지 악조건을 무릅쓰고 교통여건 개선에 진력하는 교통부의 노력을 모른체 하자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 제도의 맹점은 차가 느는 것을 억제하여 악화속도를 늦추는 수준이지 주·박차의 여건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데 미흡하다는 것과 차고지증명서 허위작성자는 1년이하의 징역 또는 5백만원 이상의 벌금부과 또는 도로상의 장소를 차고지로 사용한자는 50만원이하의 과태료 부과정도로 법준수를 유도한다는 개념이 자동차를 갖겠다는 인간의 그 집요한 욕망의 정도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도 지적한다. 「차고지로의 사용이 허가되지 않은 도로상의 장소를 차고지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한다」는 이런 옹색한 법취지 자체가 흑백적인 단순사고의 산물이며 이런 사고로 자동차는 이제 맥투한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우리 옷이나 다름이 없게 된 현실타개와 21세기 교통문제에 대처 할 수도 없다.현재의 인도와 차도가 시간대별로 주·박차공간으로 사용되어야 하며 적절한 사용료 부과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개구리식 주차방식이나 최근 서초구청이 주선하는 주택가와 인접한 빌딩 주차시설의 야간개방등도 적극적인 해결책으로서 전국적으로 권장 할만하다.이 기회에 이용자들의 질서와 따뜻한 감사표시,사유재산의 사회개방에 대한 세제상의 고려등 인간적인 교류와 조화를 조장하는 이런 조치의 확산이나 현재 불법전용되고 있는 기존허가차고의 환원,매가구 1대의 차보급을 겨냥한 차고시설 의무강화 등이 차고지입법에 선행되었으면 한다. 우리 사회개혁과 발마춰 무분별한 주·박차 정도만 개선되어도 이 차고지 입법의 타당성은 반감이 될것이다.법이전의 품위있는 주·박차를 권장하는 운동이 선행되었으면 한다.
  • 김문기 전의원 징역3년 선고

    서울형사지법 합의30부(재판장 이임수부장판사)는 16일 상지대 재단운영 비리사건과 관련,구속기소돼 징역 7년이 구형된 전민자당 의원 김문기피고인(61·상지대 재단이사장)과 김 전의원의 사위 황재복피고인(46·전총장 비서실장)에게 업무방해죄를 적용,각각 징역 3년을 선고했다.
  • 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윤세주열사)

    ◎의용군 지휘… 중국 화북서 일군과 전투/중학때 연무단 조직,개천절시위 주도/일경수배 피해 망명… 조선의열단 결성/독립단체 규합… 40만명과 교전중 장렬한 최후 윤세주선생은 1901년 6월24일 경남 밀양군 부북면 강천리에서 부친 윤희규선생과 모친 김경이여사 사이에서 태어났다.성품은 겸손했으나 일본 식민지통치에 대해서는 온 생애를 통해서 저항할만큼 애국심이 깊었다. 윤선생은 국민학교때 일왕 출생 기념일에 받은 일장기를 변소에 버릴만큼 일본을 증오했다. ○독립선언서 낭독 그는 밀양의 사립 동화중학에 입학하면서 항일 인사였던 김홍표교장의 영향을 받아 항일 정신을 키워갔다. 윤선생은 김교장의 애국사상에 감화,학교내의 비밀결사인 연무단을 조직했다.연무단은 당시 금지됐던 개천절 기념행사를 갖고 시위를 벌였다.이 사건으로 동화중학은 폐쇄됐다.그러나 윤선생의 가슴에 반일·배일사상은 영원히 남게됐다. 1919년 3월1일 서울에서 만세운동에 참가한 그는 만세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 고향에 내려가 동지들을 규합했다.13일 하오1시쯤 수천명이 모인 고향장터에서 그는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동지들은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쳤다.그를 그냥 둘리 없는 일제의 당장 잡아들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일본경찰의 수배를 피해 그는 중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일본은 그해 4월14일 부산지법 밀양지청에서 궐석재판으로 윤선생에게 징역1년6월을 선고했다. 만주로 망명한 그는 요령성 유하현에있는 신흥무관학교에 들어갔다. 신흥무관학교는 당시 국내의 독립운동 비밀단체인 신민회의 결의에따라 이회영형제가 세운 독립군양성 무관학교로 그는 이곳에서 정식으로 군사훈련을 받았다.그는 11월9일 죽마고우 김원봉등 13명의 학생들과 함께 조선의열단을 결성했다. 구체적인 항일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조선의열단은 조선총독부등 일제 침략기관의 파괴와 원흉들을 살해 하기위한 계획을 세우고 폭탄투척자를 물색하게됐다. 19세의 그는 신철휴 윤치형등과 함께 국내에 잠입했다. 그러나 윤선생일행은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면서 국내동지 50여명과 함께 체포됐다. 5년4개월의 감옥생활을하고 27년 출옥한 그는 중외일보 기자·경남주식회사사장으로 위장,독립운동에서 손을 뗀 양 조용히 지내다가 32년 여름 다시 중국 남경으로 망명했다. ○폭탄투척자 물색 그의 독립운동에 대한 방법도 세련되어갔다.그는 『과거에는 열정과 용기만을 갖고 싸웠으나 앞으로는 혁명적 인생관과 과학적 혁명이론으로 재무장, 정확한 혁명운동을 하겠다』고 다짐했다.그는 32년 10월20일 중국군사위원회 간부훈련단 제6대(약칭 조선민족혁명간부학교)에 입교,33년 4월21일 1기로 졸업했다.독립운동전선의 행동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때였다. 독립운동단체들은 연합준비위원회를 구성한뒤 해외독립운동단체들을 참가시켜 그해 11월10일 한국대일전선통일연맹을 결성했다. 그는 이 단체에서 안병조·김두봉·김규식·윤기섭·최동오 등과 함께 중앙집행위원회 상무위원으로 선출됐다. 이 단체는 33년 7월5일 독립운동가들이 소망하던 민족혁명단을 탄생시키는 모체가 됐으며 그는 이 단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그는 또 민족혁명당이 일군에 무력으로 대항하기위해 만든 중국과 제휴해 만든 조선의용대에서도 핵심부서인 편찬위원회 주간이 돼 선전공작 활동을 벌였다.그러나 독립운동의 효과는 호전되지 않고 일군에 유리하게 전개되어갔다.독립운동을 적극 협력해주던 중국 국민당 정부도 38년 10월25일 무한이 일본군에 함락되면서부터는 중공군과의 내전에만 심혈을 쏟았다. 그는 직접 조선의용대 지대를 이끌고 중일전투에 참가했다.41년 4월에 그는 수많은 고난을 극복하고 황하를 건너 화북을 향해 북상해갔다.그는 마침내 태행산 항일 근거지에 도착, 조선의용대를 조선의용군으로 개칭하고 중공 8로군과 함께 항일 무장활동에 열중했다.그는 모든 대원들로부터 가장 신뢰받는 지휘자로 존경을 받았다.42년2월 일본군은 4만명의 군대를 동원,태행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5월에는 20개사단 40만명의 병력으로 대대적인 공격을 해왔다.조선의용군은 불과 3천∼4천명에 불과했다. ○“끝까지 투쟁” 유언 일본군은 전투기와 전차까지 동원,본격적인 군사작전을 폈다.5월29일 항일 연합군 사령부에서는 조선의용대에 탈출로를 확보하고 탈출할 것을 명령했다.일군이 점령하고 있는 양쪽 산봉우리 사이의 탈출로를 확보하기위해 두 산봉우리를 조선의용군이 공격,전군이 탈출할 때까지 사수하기로 했다.작전개시 5시간만에 탈출로를 확보했다. 그는 이 전투에서 적탄을 맞고 쓰러졌다.3일 뒤 동지들이 중상을 입고 쓰러진 그를 발견했으나 이미 중태였다.6월3일 그는 석굴에서 숨을 거두었다.『단결해서 적을 사살하기 바란다』는게 동지들에게 남긴 그의 유언이었다.선생의 나이 41세였다. 선생이 전사한 뒤 1주년이된 43년 6월 중경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조선민족혁명당 조선의용군은 합동으로 윤선생의 추도회를 가졌다.대한민국정부는 80년 윤세주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황재복피고엔 5년

    대검찰청 김성호중수4과장(부장검사급)은 2일 상지학원운영비리와 관련,구속기소된 전민자당의원 김문기피고인(62·상지대재단이사장)에게 업무방해죄등을 적용,징역 7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또 김이사장의 사위인 상지대 총장비서실장 황재복피고인(46)에게 징역 5년을 구형하고 교무과장 김달기피고인(49)등 학교관계자와 학부모등 35명에게는 징역 3년∼벌금 1백만원을 구형했다.
  • 이정식씨 살해 부인/무기징역 원심 확정

    대법원 형사3부(주심 윤영철 대법관)는 14일 부동산갑부 이정식씨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씨의 부인 오병순피고인(39) 등 3명에 대한 상고심에서 오씨 등의 상고를 기각,오씨 등 2명에게 무기징역을,나머지 1명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오 피고인은 남편 이씨로부터 이혼당하는 처지가 되자 이씨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지난해 3월15일 서울 마포구 도화동 이씨집 안방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된 문광옥피고인(53) 등 2명과 함께 이씨의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었다.
  • 「5·18」 미 망명 윤한봉씨 7월 귀국/광주 형에 전화

    ◎“17일 LA영사관에 여권신청”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지명수배된 16명 가운데 유일한 실제인물인 윤한봉씨(46)가 정부의 광주 관련자들의 수배해제방침에 따라 귀국한다. 윤씨는 13,14일 이틀동안 형 광장씨(광주시 동구 서석동)와 2차례 국제전화를 통해 『합법적으로 고국에 돌아갈 수 있게 돼 무척 기쁘다』면서 『LA 현지서 펼쳐온 민족민주운동을 마무리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려 귀국은 2개월뒤나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윤씨는 13일 총리실에 자신이 결성한 「재미한국청년연합」(한청련),「한겨레운동민족연합」등을 이적단체로 규정한 정부측이 안전귀국을 보장할 수 있는지를 묻는 질의서를 냈으며 『오는 17일 귀국의 첫 단계로 LA총영사관에 여권발급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윤씨는 내란주요임무종사등의 혐의로 계엄당국에 의해 지명수배되자 1년동안 도피생활을 하다 81년 4월30일 외항선원으로 위장,마산항에 정박중이던 화물선을 타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윤씨는 미국에서 LA 「민족학교」 「한청련」등을 결성,활동을 해오다 87년 미정부의 망명허가를 받았다. 74년 전남대 농대 재학중 민청학련사건의 전남북 책임자로 구속됐던 윤씨는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1년남짓 복역하고 풀려난뒤 77년 긴급조치9호 위반으로 다시 구속되는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다.
  • 백태웅씨 15년형 확정

    대법원 형사3부(주심 윤영철 대법관)는 14일 부동산갑부 이정식씨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씨의 부인 오연순피고인(39)등 3명에 대한 상고심에서 오씨등의 상고를 기각,오씨등 2명에게 무기징역을,나머지 1명에게 징역7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 김영호씨 10년 선고/정보사사기 항소심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박용상부장판사)는 29일 정보사부지 매각사기사건과 관련,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 17년에 벌금 10억원,추징금 10억4천6백만원이 선고됐던 전합참군사연구실 자료과장 김영호 피고인(53)등 10명에 대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사기)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김피고인에게 징역 10년에 벌금 5억원,추징금 10억4천6백만원을 선고했다. 피고인들의 항소심 형량은 다음과 같다.(괄호안은 1심 형량) ▲김영호 징역 10년 벌금 5억원,추징금 10억4천6백만원(징역 17년 벌금 10억원,추징금 10억4천6백만원) ▲정건중 징역 10년 벌금 30억원(징역 17년 벌금 50억원) ▲정영진(31·성무건설사장) 징역 10년 벌금 30억원(징역 15년 벌금 50억원) ▲정덕현(38·전국민은행 대리) 징역 6년(징역 10년) ▲김인수(40·부동산 브로커) 징역7년 벌금 10억원(징역 10년) ▲박삼화(39)징역 3년(징역 5년) ▲신준수(58)징역 4년(징역 5년) ▲임환종(53)징역 2년6월 (징역 3년) ▲윤성식(52·제일생명상무)징역 1년6월 집행유예 3년(징역 1년6월) ▲정명우무죄(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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