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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철씨 그림 모내기는 이적물”

    서울지법 형사항소3부(재판장 金建興 부장판사)는 13일 ‘모내기’ 그림을그린 혐의로 기소된 전 민족미술협의회 공동대표 신학철 피고인(55)에 대한파기환송심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죄를 적용,징역 10월형의 선고를 유예하고그림을 몰수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모내기 그림은 북한이 주장하는 민중민주주의 혁명에 의한 연방제 통일을 찬양하는 이적표현물”이라면서 “그러나 신피고인이10여년간 이 사건 재판에 따른 심적 고통을 받았고 그림으로 인해 실제 피해가 생기지 않은 점을 감안,형의 선고를 유예한다”고 밝혔다. 신피고인은 지난 87년 모내기하는 농부가 코카콜라,양담배 등을 바다 속으로 쓸어넣는 남쪽의 모습과 풍년으로 행복해 하는 북측의 모습을 대비시킨‘모내기’ 그림을 그려 미전에 출품한 혐의로 89년 기소돼 1,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지난해 상고심에서 유죄취지로 파기환송됐다. 이상록기자 myzodan@
  • [義烈 독립투쟁](1-2) 李在明 의사

    안중근(安重根)의사가 중국 하얼빈역에서 일제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한 지 채 두 달이 못돼 국내에서는 한 애국청년이 ‘을사오적’의 하나인 이완용(李完用)을 노상에서 습격,치명상을 입힌 의거가 일어났다. 을사조약 체결로 한국은 일제에게 외교권을 박탈당하였고 한국 땅에는 일제의 통감부가 설치되어 사실상 한국정부를 대신하였다.1907년 ‘헤이그밀사사건’으로 고종황제가 강제 폐위당한 데 이어 한국군의 해산 등 일제의 한국침략은 갈수록 강도를 더해 갔다.이에 전국에서 의병이 궐기해 일제에 대해무력항쟁을 시도했으나 병력과 물자에서 역부족이었다.여기서 돌파구로 모색된 것이 바로 개별단위의 의열투쟁이었다.이는 일제의 침략 주동자와 친일적신들을 처단함으로써 그들의 침략의지를 분쇄시키고 동시에 동포들에게 구국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함이었다.이완용처단의거도 그 연장선상에서 시도된 것이었다. 1909년 12월22일 오전 이완용은 5일 전인 12월17일 사망한 벨기에 황제 레오폴트 2세의 추도식이 열리고 있는 서울종현(鐘峴) 천주교회당(현 명동성당)내 추도식에 참석하고 있었다.11시 30분경 식이 끝나자 이완용은 저동(苧洞) 자택으로 돌아가기 위해 인력거에 올라 교회 오른쪽 언덕길을 막 오르려던 참이었다.이때 갑자기 한 청년이 인력거 뒤에서 달려오더니 품 속에서 단도(短刀)를 꺼내 순식간에 이완용의 왼쪽 어깨(左肩)를 내리 찔렀다. 졸지에 습격당한 이완용이 인력거 아래로 고꾸라지자 청년은 따라내려가 그를 타고 앉아 이번에는 오른쪽 허리(右便腰部)를 찔렀다.이완용은 이내 의식을 잃고 길바닥에 쓰러졌다.이를 지켜보던 인력거 차부(車夫) 박원문(朴元文)이 달려들어 제지하려 하자 청년은 그의 어깨를 찔러 쓰러뜨리고는(박원문은 왼쪽 폐를 찔린 후 나중에 사망함) 다시 이완용에게 달려들어 오른쪽 신장(腎臟)부분을 난자하였다(이완용의 생질로 그의 비서관을 지낸 김명수(金明秀)가 1927년 간행한 이완용의 전기 ‘일당기사(一堂紀事)’에서 인용).길바닥은 유혈이 낭자하고 순식간에 일대는 아수라장이 돼버렸다.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고 판단한 청년은 그때서야 ‘대한독립 만세!’를외쳤다.때마침 인근에서 호위하던 순사들이 달려들어 체포하려 하자 청년은칼을 휘두르며 대항하였다.그러나 중과부적으로 일경의 칼에 하체에 상처를입고 붙잡히고 말았다.이 의거로 결국 이듬해 처형된 청년이 바로 이재명(李在明)의사로 검거 당시 23세였다. 이 의사는 평양 출신으로 13세때 예수교에 입교하였으며 평양 일신(日新)학교를 졸업하였다.1904년 미국 노동이민회사의 이민모집에 응모,하와이에서농부로 일하다가 1906년 3월 재미한인 독립운동단체인 공립협회(共立協會)에 가입,활동하기도 했다.1907년 공립협회에서 매국적(賣國賊) 숙청을 결의하자 자원,그 해 10월 배로 일본을 거쳐 귀국했다.귀국 후 중국과 노령(露領,러시아령) 등 각지를 돌며 동지를 규합하고 일제의 침략 원흉들과 매국노의처단을 결심한 이 의사는 1909년 1월 순종황제의 서도(西道,평안도) 순시때이토(伊藤博文)가 동행한다는 사실을 접하고 평양역에서 이토를 처단하기 위해 동지 몇 사람과 정거장에서 대기했다.그러나 이토가 자신의 신변의 위협을 우려해 순종황제에게 붙어다니므로 이토를 향해 발포하다가 자칫 순종황제의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도산 안창호의 만류로 이 계획은 미수에그치고 말았다.그러나 이토를 처단하기 위해 원산을 거쳐 해삼위(海蔘威,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기회를 엿보던 중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그를 처단했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하였다. 일제와의 무력항쟁이 어려운 상황에서 일제 침략괴수보다는 매국노들을 먼저 처단하는 것이 국권수호의 첩경이라고 생각한 이 의사는 이완용 등 을사오적을 처단 대상으로 지목하였다.그들 가운데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은 첫번째 대상인물이었다.거사 1개월 전인 11월 하순경 이 의사는 동지들과 숙의끝에 자신은 이동수(李東秀)·김병록(金丙祿)과 함께 이완용을,김정익(金貞益)·조창호(趙昌鎬)는 일진회 회장 이용구(李容九)를 처단하기로 결의하였다.12월7일 최종모임에서 일행은 역할분담을 확정하였다.거사 결행자 이외에 오복원(吳復元)·박태은(朴泰殷)·이응삼(李應三) 등 3인은 거사자금 조달을,조창호·전태선(全泰善)은 거사에 필요한 권총·단도를 준비하여 서울로운반하는 책임을,그리고 김용문(金龍文)은 먼저 서울로 올라가서 이완용과이용구의 동정을 탐지하기로 했다. 12월12일 상경한 이 의사는 당시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기사를 통해이완용이 벨기에 황제 추도식에 참석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거사 당일 아침 군밤장수로 변장,성당 정문 앞에서 군밤을 팔며 동태를 살폈다.오전 11시30분경 추도식을 마친 이완용이 인력거에 오르자 이 의사는 그를 응징하고는 현장에서 체포돼 이완용 저택 보호순사실로 끌려갔다. 의거현장에서는 이 의사 이외에 여인 2명도 같이 체포되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은 이 의사의 부인 오인성(吳仁星)여사였다.권총을 휴대한 채 성당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동수와 조창호는 이 의사가 체포된 후 현장에서 도주하였다.이 사건으로 이 의사 등 13명이 이듬해 3월13일 정식 기소되었다. 첫 공판이 열린 5월13일 오전 9시30분경 이 의사 등 일행을 태운 3대의 호송차가 신축한 지방재판소에 도착하였다.중키에 짧게 깎은 머리,흰색 죄수복을 입은 이 의사가 동지 일행과 함께 출정하자 10시5분 개정에 이어 검사의기소장 낭독이 끝나고 재판장의 심문이 시작됐다. 문:공모자는 모두 몇 명이나 되는가?답:한 사람도 없다. 문:찬성자도 없었는가?답:2천만 동포가 모두 찬성자다. 문:거사는 언제부터 준비했나?답:을사조약 체결 후 미국에 있을 때부터 준비했다. 문:왜 이완용을 죽이려고 했나?답:죄목은 8개조(條)다.그 첫번째가 을사조약 체결이다. 거사현장에서 압수된 권총·단도 등 거사용품을 가리키며 재판장이 물었다. 문:행흉(行凶)에 사용된 무기는 이것들인가?답:행흉이라니,나는 행의(行義)를 했다.(‘일당기사’에서 인용) 18일 선고판결에서 이 의사에게는 ‘교(絞)’,즉 교살형이 선고되었고 김정익·김병록은 징역 15년,자금조달책인 이응삼에게는 최저형인 징역 5년이 선고되었다. 6월30일 경성공소원(京城控訴院)에서 열린 2심 공판에서 검사는 “1심판결은 ‘완전무결’한 것”이라며 1심대로 판결을 내려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하였다.8월 최종선고에서 사형이 확정되자 이의사는 “너희 법이 불공평하여나의 생명은 빼앗지만 나의 충혼은 빼앗지 못할 것이다.나를 교수형에 처한다만 나는 죽어 수십만 명의 이재명으로 환생해 너희 일본을 망하게 할 것이다”라며 엄숙히 경고하였다. 9월13일 사형집행에 앞서 기독교 신자인 이 의사는 “내가 보던 찬미(讚美,찬송가)책이나 갖다 달라”고 하여 207장 ‘예수가 나를 기다리심’을 1절부터 끝까지 읽고는 조용히 순국하였다. 한편 이 의사의 습격을 받은 후 다량 출혈로 사경을 헤매던 이완용은 일제당국의 각별한 치료 덕분에 이듬해 2월14일 퇴원하였다.그가 입원해 있는 동안 그의 병실이 있던 대한의원(현 서울대병원 구관)에는 통감부 소속 일본인 고관을 비롯해 고종·순종황제가 보낸 칙사,한국정부 고관,심지어 한국거류 일본인들의 병문안 발길이 끊일 날이 없었다. 퇴원 후 내각 총리대신으로 복귀한 이완용은 이 의사 순국 20여일 전인 8월22일 한국통감 데라우치(寺內正毅)와 마침내 ‘한일병합조약’을 체결,강토와 국권을 일제에 내주고 말았다.금산(錦山)군수 홍범식(洪範植)은 이 소식을 듣고 뒷산에 올라가 목을 매 자결하였고 매천 황현(黃玹)은 ‘절명시’를 남기고 음독,순국하였다.1910년대 의열투쟁은 이로써 또하나의 출발점에 서게 되었다. 정운현기자 jwh59@
  • 대법원, 양형기준 제정…둘쭉날쭉 형량 없앤다

    앞으로 형사재판에서 법원이나 판사간에 양형 편차가 크게 줄어들어 보다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형량산정이 가능하게 된다. 대법원은 8일 살인·강도·뇌물죄 등 14개 범죄유형별로 구체적인 양형산정기준과 양형참작 요인을 수록한 ‘양형실무’ 책자를 발간, 전국 법원에 배포했다.양형기준을 사법사상 처음으로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기준은 지난 97년 10월부터 중견법관 13명으로 구성된 양형실무위원회가범죄유형별로 정부수립 이후 50여년에 걸쳐 실제 선고된 형사재판 결과와 외국의 양형제도 현황을 자료로 삼고 각종 회의,토론회,세미나 등에서의 토론결과를 기초로 만들었다. 특히 ▲죄질 ▲전과 ▲합의여부 ▲재범상태 등 다양한 양형인자와 정상참작정도까지 구체적으로 적시,선고형량의 편차를 최대한 줄이도록 했다. 뇌물죄는 수뢰액수와 부정한 업무집행 여부를 양대 기준으로 정하고 액수가3,000만원 이상이면 원칙적으로 실형을 선고하도록 했다. 교통사고 특례법위반죄는 ▲합의여부 ▲피해정도 ▲음주여부를 주요 양형기준으로 하고,치상사고의 경우 피해자와 합의했을 때는 벌금 또는 집행유예,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피해가 치명적일 경우 징역 1년6월 이하의 실형을 적정형량으로 제시했다. 임병선기자 bsnim@
  • 국민회의 사면건의 주요내용

    국민회의가 28일 확정,정부에 건의한 8·15특별사면,복권 대상자 1,777명은 공안사범과 경제사범이 주류다.선거사범 일반 형사사범은 제외됐다.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형 미확정자가 186명이나 포함됐다는 점이다.형 미확정자에대한 사면복권은 유례가 없던 일로 국민회의는 검찰이 공소를 취하하는 형식을 제안했다.법무부측은 난색이다.따라서 실현가능성은 미지수다. 국민회의는 공안사범 기결수 90여명 전원에 대해 사면복권을 건의했다.이가운데는 7년 이상 복역한 미전향 장기수 7명이 포함됐다.손성모,신광수씨(남파간첩사건)와 최호경,조덕원씨(민족해방애국전선 사건) 등이다.안재구 전 숙대교수와 유학진씨 등 구국전위사건 관련자,이화춘씨 등 일본 유학사건관련자,96년 연대사태로 구속된 한총련 소속 학생들도 포함됐다.단병호 전금속노련 의장 등 노동계 인사도 상당수 이번 사면복권 대상에 들어갔다.서울지하철 파업사태 관련자에 대한 수배해제 조치도 건의됐다. 일반 선거사범 113명에 대한 사면복권과 지난 96년 페스카마호 선상반란때선원 살해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조선족 10명에 대한 특별감형도 요청했다. 김현철(金賢哲)씨를 특사에 포함시키는 문제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결심이 필요한 만큼 당 차원에서는 공식 건의하지 않기로 했다. 경제사범 중에는 경제위기에 따라 흑자부도를 낸 기업인과 생계형 사범 등을 중점 배려했다.국민회의 유선호(柳宣浩)인권위원장은“가급적 조속히 혜택을 주자는 게 당의 입장이며 법무부도 선별 분류기간을 고려,성탄절 특사때는 이번에 제외된 경제사범의 특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추승호기자 chu@
  • 김현철씨 8·15특사 포함될까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賢哲)씨가 8·15 특별사면에 포함될지 여부와 더불어 사면 대상자가 되면 재수감을 면할 수 있을지가 관심을 끌고 있다. 현철씨는 지난 6월23일 서울고법의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에 벌금 10억5,000만원 및 추징금 5억2,000만원을 선고받고 재상고한 상태이다. 97년 11월 수감 170일 만에 보석으로 석방된 현철씨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면 잔여 형기 1년6개월 가량을 복역해야 한다. 사면은 형의 확정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8·15 사면에 포함되려면 대법원이 서둘러 판결하거나 현철씨가 재상고를 취하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정치권의 사면 움직임에 대해 법원 관계자들은 “사법부의 독립성이 훼손된다”며 반발하고 있어 판결이 앞당겨질 가능성은 희박하다.따라서 현철씨가 재상고를 취하하는 방법이 유력하다고 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정치인 등 유력인사가 피고인인 사건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이 소를 취하하면 실제 수감까지는 열흘 이상 심지어는 한달 가량 걸린다. 현철씨의 경우 서울고법 판결문이 서울고검에 송부되면 고검은 집행촉탁서를 발부하고 이를 받은 서울지검은 피고인에게 출두토록 통보하고 수감 절차를 밟게 된다. 따라서 현철씨가 이같은 집행 절차의 틈새를 이용,다음달 초쯤 재상고를 취하하면 단 하루도 추가로 복역하지 않고 사면받을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정치 재개 행보를 보이는 김 전대통령과 현철씨가 ‘국민 감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이처럼 ‘낯 뜨거운’ 선택을 할지는 미지수다. 임병선기자 bsnim@
  • 신창원 동거녀 어떤 처벌받나

    탈옥수 신창원의 마지막 동거녀인 김명주(金明周·26)씨가 18일 범인은닉죄로 구속됨에 따라 신이 2년5개월26일간의 도피행각 중 만났던 나머지 여인들의 사법처리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행 형법 151조 ‘범인은닉죄’ 규정은 범인을 숨겨주거나 도피를 도와줄경우 처벌하도록 돼 있으나 ‘친족이나 동거 가족의 경우 처벌할 수 없다’는 특례규정을 두고 있다. 법원은 김씨에 대한 영장 실질심사 과정에서 ‘동거 가족’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를 놓고 고심했으나 혼인신고가 돼있지 않고 사실상 혼인관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나머지 접촉여성들에 대해서도 신창원임을 알았는지 여부와 은닉노력 정도에 따라 추가 사법처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재까지 신과 접촉한 것으로 확인된 여성은 순천에서 만난 김씨를 포함해15명.경북 성주와 충남 천안 각 5명,경기 평택 2명,서울과 전북 익산 각 1명 등이다.이 중 김씨를 포함한 8명과는 동거했다.탈옥 직후인 97년 3월 천안전모씨(31),10월 평택 강모(23),98년 4·5월 성주 심모(34)·방모(28),7월서울 양재동 박모(28),12월 익산 신모(21),99년 5월 천안 정모씨(20) 등이다. 범인은닉죄의 형량은 3년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한편 검거 당시 순천 아파트 안에서 발견된 오디오,장롱,소파 등 동산은 신이 훔친 돈으로 구입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함에 따라 장물인 현금 및 귀금속등과 함께 국고 귀속이 확실시된다.그러나 동거녀 김씨 명의로 돼있는 아파트는 신이 훔친 돈중에서 준 4,000만원으로 계약하고 입주시 잔금 4,085만원을 건설회사에서 대출받은 돈으로 충당해 국고 귀속 여부가 시비거리로 남아있다. 순천 남기창기자 kcnam@
  • 성폭행 누명 5년여 옥살이 “30대 아들 억울함 밝혀주오”

    경기도 광명시에 사는 이모씨(62·백화점 청소원)는 아들(35)이 지난 91년얼굴도 모르는 여자에게서 성폭행 강도범으로 지목돼 구속된 뒤 5년3개월 동안 복역하고 97년 만기출소했다고 주장했다. 이씨에 따르면 아들은 91년 9월30일 저녁 8시쯤 애인을 만나러 안양역에 나갔다가 약속이 어긋나 돌아오다 그해 8월4일 발생한 강도·강간 사건의 용의자로 경찰에 붙잡혔다. 한 여자가 경찰관과 함께 다가와 범인이라고 주장,파출소로 연행된 뒤 안양경찰서로 넘겨져 1주일 동안 구금돼 조사를 받았다.피해 여성이 범인이 틀림없다고 주장한데다 고교 시절의 전과 때문에 꼼짝없이 범인으로 몰렸다는 것이다. 아들 이씨는 그해 12월 중순 강간 등의 혐의로 수원지법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항소했지만 패소했고 대법원에서도 상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모두 5년3개월 동안 복역했다.사건 당시 애인 등 2명과 함께 있었다고 알리바이를주장했지만 특수한 관계 때문에 신빙성이 없다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판결문에 명시된 유일한 증거는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과 검거 직전 그가 피해자 집 근처에서 배회한 사람과 같다는 이웃 사람들의 진술이었다고이씨는 주장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 도청·사생활추적·채권회수 기업형 ‘악질해결사’ 기승

    핸드폰 비밀번호 확인에 20만∼50만원,전화통화 내용 도청에 50만∼100만원,불륜 현장 추적에 150만원,미행에 20만원,예비군 대리 참석에 20만원,채권해결에 회수금의 30∼50%.12일 경찰이 발표한 ‘기업형 심부름센터’ 조직원들이 의뢰인들로부터 받은 사례금이다. 이들은 ‘심부름센터’‘고민해결’‘○○기획’ 등의 이름으로 생활정보지에 광고를 내 의뢰인들을 모집했다.의뢰를 받으면 증거를 잡기 위해 도청기와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거나 사진기 등을 갖고 미행했다.의뢰인과 함께 불륜현장을 덮치기도 했다. 구속된 ‘심훼밀리파’ 두목 김주연씨(34) 등은 지난 4월 말 민모씨(35·여·서울 송파구 잠실동)로부터 남편의 불륜 증거를 잡아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이들은 포텐샤 승용차에 민씨를 태워 남편의 동거녀가 살고 있는 전남 화순군의 한 아파트로 내려가 새벽 2시쯤 불륜현장을 덮쳤다.이들은 대가로 민씨로부터 110만원을 받았고,민씨는 남편을 간통죄로 고소했다. 서울경찰청은 지난 5일부터 1주일 동안 사생활 침해사범에 대한 일제단속을 실시,모두 79명을 붙잡아 55명을 신용정보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위반등 혐의로 구속하고 24명을 입건했다. 구속된 김씨 등 12명은 지난 4월 무허가 심부름센터를 차리고 생활정보지에 ‘비밀보장,가정고민 해결’등의 광고를 낸 뒤 이를 보고 찾아온 의뢰자 56명으로부터 불륜관계 등 사생활을 추적하고 채권을 받아달라는 부탁과 함께8,000여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97년 피살된 귀순자 이한영씨의 소재를 살인범에게 알려준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살고 출소한 김민식씨(29)는 ‘신성용역’이라는 심부름센터를차려 사생활 조사 등 불법 영업을 해오다 적발됐다. 진득현씨(45) 등 3명은 96년 ‘TSL’이라는 무허가 심부름센터를 차린 뒤모 신용카드회사로부터 건당 1,000원의 수수료를 받고 회사측이 의뢰한 사람들의 주민등록등본을 발부받아 넘겨준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이들 중 일부는 이동통신회사 직원을 사칭해 피해자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건 뒤 ‘통화감도가 좋지 않으니 다시 전화를 해달라’며 발신지 추적장치가 된 자신들의 전화로 전화를 걸도록 유도,피해자의 소재를 파악하는 수법을 쓰기도 했다. 경찰은 이처럼 해결사 노릇을 하는 심부름센터가 서울시내에만 1,000여곳에 이르며 ‘해결’과정에서 공갈·협박을 일삼거나 사생활을 침해해왔다고 밝혔다. 이종락기자 jrlee@
  • 김기삼 전 조선대총장 자살

    의료기기 납품비리로 구속됐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전 조선대 총장 김기삼(金淇森·61)씨가 출감 3일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씨는 9일 오전 4시40분쯤 서울 서초구 방배동 신삼호아파트 4층 자택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중상을 입고 신음하다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3시간만에숨졌다.부인 임송지(任松枝·57)씨는 “남편은 죽는 게 명예회복을 하는 길이라는 말을 자주 해왔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6일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서울대 병원에서 지병인 당뇨 등의치료를 받다가 8일 저녁 병원의 허락을 받고 집으로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의 시신은 가족들의 뜻에 따라 이날 광주 조선대 병원 영안실에 안치됐다. 김씨는 조선대 총장으로 재직 중이던 97년 의료기기 납품과 관련,1억6,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6월에 추징금 1억6,000만원을 선고받았으나 지난 6일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및추징금 1억6,000만원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조현석기자 hyun68@
  • 김형욱씨 유족 재산찾기 ‘헛고생’

    지난 79년 반국가 활동을 하다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된 김형욱(金炯旭·당시 54세) 전 중앙정보부장의 가족들이 국가에 빼앗긴 김씨의 재산을 되찾으려다가 실패했다. 김씨는 지난 77년 미 의회에서 ‘김대중(金大中) 납치사건’과 인혁당 사건 등이 조작됐다고 폭로한 데 대한 보복으로 박정희(朴正熙)정권이 김씨 한사람만을 겨냥해 제정한 ‘반국가행위자 처벌법’에 따라 기소돼 82년 궐석 상태에서 징역 7년형과 함께 전재산 몰수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지난 93년과 96년에 각각 이 법의 상소권 박탈과 궐석재판·재산몰수 조항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김씨의 재산은 서울 신당동의 대지 582평,성북동 임야 3,700여평 등으로 96년 당시 시가 1,000억원대에 이른다. 위헌 결정을 근거로 김씨의 부인 신영순(申英順·68·미국 거주)씨는 97년서울 삼선동 땅 4,517평을 국가로부터 불하받은 사람으로부터 전매받은 황모씨 등 11명을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말소 청구소송을 냈다. 대법원 민사2부(주심 鄭貴鎬대법관)는 1일 “위헌적인 법률에의해 이루어진 등기가 무효임에 분명하더라도 위헌임을 모르는 상태에서 시효취득 기간이 지났다면 소유권을 인정해야 한다”며 원고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깨고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에 따라 김씨의 다른 재산 되찾기도 실패할 것으로 보인다. 임병선기자 bsnim@
  • 공공기관 기록물 보존의무 강화/정부의 기록물 보존 실태

    - 공공기관 기록물 보존의무 강화 내년 1월1일부터 대통령을 비롯,각급 기관장이 업무와 관련해 만든 메모와방문객 명단,일정표,회의록,대화록,시청각 기록물 등의 기록물은 반드시 보관하도록 의무화된다. 각급 기관장에는 입법·행정·사법부뿐 아니라 수자원공사·한국방송공사등의 정부투자기관,초·중·고등학교,대학,농지개량조합 같은 준공무원 기관,인천국제공항공사 같은 특수법인 등이 광범위하게 포함된다. 행정자치부는 30일 이같은 내용의 공공기관 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시행령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기록물의 대상과 기관들은 당초 예상보다 구체적이고광범위하게 규정됐다. 대전의 정부기록보존소 관계자는 “대통령 관련 기록물은 대통령이 결재하거나 보고받은 문건,보좌기관이 만든 기록물 등이 포함된다”며 “대통령 임기 종료 직전에 차기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협의해 차기정부 인계대상과 중앙기록물관리소장 이관대상으로 분리돼 수집·보관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일선 행정기관에서는 국민의 생활과 밀접한 법령이나 인허가 사업,예산 100억원 이상의 사업에 관한 기록물을 반드시 보관해야 한다.또 공무수행과 관련한 조사·연구·검토서 같은 서류는 물론이고,공안기관 대책회의 등의 의견조정을 위한 부처간 회의 기록도 보존대상이다. 공무원이 이같은 규정을 어기면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된다. 시행령안은 앞으로 전자결재가 활성화될 것에 대비해 모든 전자문서를 컴퓨터 파일로 보존하며,건물 설계도면·인사기록카드·국무회의 회의록 등의 준영구 보존 이상으로 분류된 기록물은 분실등을 막기 위해 마이크로 필름 등으로도 이중 보존하도록 했다. 또 행정공무원이 기록물을 임의로 폐기해오던 것을 앞으로는 기관장이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을 선정,전문요원의 심사를 거친 뒤 폐기하도록 했다.전문요원은 기록물관리학을 전공한 석사 이상의 기록물관리직 공무원이 맡게 된다. 이와함께 민간기록물 가운데 국가기록물로 지정된 기록물은 1년에 한차례씩 관리상황을 점검하고,민간 등이 갖고 있는 국가기록물을 회수하려면 평가기관의 평가를 거쳐 보상할수 있도록 했다. 박정현기자 - 정부의 기록물 보존 실태 정부의 기록물 훼손 문제가 정식으로 제기된 것은 지난 97년 12월 대한민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교체가 됐을 때이다.정권교체에 불안감을 갖고 있던 일부 공직자들이 개인의 기득권 보호와 공무 수행상의 실책을 은폐하기 위해 정책결정자료를 파기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 검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안기부 등은 과거 야당인사들을 대상으로 수집한 파일이나 비공식 대북협상자료들을 없앤 것으로 전해졌다. 경제부처는 경부고속철도같은 대형사업 관련 공문서를 없앴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같은 주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로 드러났다.삼성자동차를 승인하기전에 보류 이유등을 밝힌 공문서가 없어진 것으로 경제청문회에서 밝혀졌다. 또 옛 재경원도 ‘환란(換亂)’과 관련한 일부 자료를 파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일부러 없애지 않아도 국가의 중요한 역사적 자료가 자동 폐기되는경우도 적지 않다.정부기록보존소의 관계자는 “12·12사태 당시 정승화 계엄사령관의 체포를 허락한 최규하대통령의 결재서류도 3년 보존기한을 지나자동 폐기됐다”고 밝혔다. 또 지속적인 추진이 필요한 사회·경제 정책들의 기록이 잘 보존되지 않아사람이 바뀌면 ‘처음부터’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도끊이지 않았다. 외교·안보와 관련된 사안의 경우도 상대방보다도 우리 입장을 잘 몰라 쩔쩔 매는 경우가 왕왕 문제로 지적돼 왔다. 공문서가 보존되더라도 효용성은 그다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게 공무원들의 얘기다.한 공무원은 “책임회피에 능한 공무원들은 자료를 잘 보존할 수밖에 없지만,실제로는 그 서류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정현기자
  • 英 담배밀수‘골머리’

    영국에서 담배밀수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흡연억제와 세수증대를 위해 정부가 높은 세금을 매긴 데 따른 부작용이다. 영국 세관 당국은 29일 밀수업자들이 지난해 담배밀수 및 밀거래로 챙긴 돈이 15억파운드(25억달러)에 이른다고 추산했다.올해 밀수담배는 영국 전체담배 소비량(700억개피)의 15%를 차지할 전망이다. 세관 당국자는 “고율의 세금부과 정책이 범죄자들로 하여금 마약에서 위험이 적고 수익성이 높은 담배 밀수에 손대게 했다”고 풀이했다. 영국내에서 담배 한갑에는 약 1파운드(1,800원)의 세금이 부과되고 있으며매년 5%이상 값이 인상되고 있어 일반 담배가게에서 담배 한갑은 약 4파운드(한화 약 7,200원)에 팔리고 있는 실정이다.반면 식당,디스코텍,주차장 등지에서 은밀히 거래되는 밀수담배는 이의 절반인 2파운드 정도. 느슨한 처벌도 밀수를 부추기고 있다.마약밀수에 대한 법정 최고형은 종신형이지만 담배밀수는 기껏해야 7년 징역형. 담배 밀수는 96년 중반 시작돼 97∼98년중 본격화됐다는 게 영국 당국의 분석.수법도 정교해지고 있다. 유럽연합(EU) 역외국가에 재수출하기 위해 수입하는 것처럼 가짜 운송서류를 꾸며 1,000만갑씩 트럭으로 들여오거나 정상적인 화물속에 숨겨서 들여오기도 한다. 박희준기자 pnb@
  • 탈옥수 신창원의 ‘모든 것’

    지난 1일 탈옥수 신창원은 충남 천안에서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경찰은 즉각 검문검색을 강화했으나 그는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신창원이 탈옥한 이후 지난 2년6개월간 이런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경찰은 그동안 그를 잡기 위해 5,000만원의 현상금을 내걸고 수배전단을 462만장이나 뿌렸으며 무려 1,100만차례나 수색활동에 나섰다.그럼에도 신창원은 멀쩡히 도심을 활보하고 있는 것이다. 신창원은 어떻게 이같이 신출귀몰할 수 있을까.MBC는 신창원에 관한 국민의 관심을 환기하고 그의 검거를 돕기 위해 특집방송을 마련한다.2일 밤 11시15분 방송되는 특집 ‘MBC스페셜-신창원은 있다’.신창원의 어린 시절부터교도소생활,최근 모습까지 골고루 담는다. MBC는 우선 인사이트 리서치와 공동으로 전국 6대 도시에 거주하는 15세이상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식조사 결과를 알려준다.이에 따르면전체의 35.3%가 ‘신창원의 범죄사실을 전혀 모른다’고 응답했다. 또 전체의 82.8%는 ‘경찰은 앞으로 6개월 이내에 신창원을 검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답변했다.그 이유로는 경찰의 수사능력 부족(42.1%)과 신창원의도피능력(24.4%)을 들었다. 이 프로는 신창원이 지난 89년 서울 돈암동 강도살인사건의 주범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복역중 10여년만인 지난 97년 1월 부산교도소를 탈옥해지금까지 강도짓을 일삼는 범죄자임을 확인시켜 준다.또 경찰의 도움을 얻어 신창원의 일상을 재구성해 시청자에게 보여준다.그는 최근 3개월간 아침 9시 공중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고,10시쯤 식당에서 우렁쌈밥으로 아침식사를들었다.또 유흥업소 여종업원이나 주유소 여종업원들과 사귀며 은신처를 마련했다. 윤영관PD는 “이 프로를 통해 신창원이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라 엄연한 흉악범임을 알리겠다”면서 “신창원에 관한 국민의 제보를 돕기 위해 여러 모습으로 변장한 신창원을 컴퓨터그래픽으로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허남주기자 yukyung@
  • 김상현의원에 준 5,000만원 “국정감사 무마와 관계없어”

    한보그룹으로부터 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 및 추징금 5,000만원을 선고받고 항소한 국민회의 의원 김상현(金相賢)피고인 사건 항소심 공판에서 증인들이 원심에서의 증언을 번복,앞으로 재판부의 판결이 주목되고 있다. 전 한보그룹 회장 정보근(鄭普根)씨는 22일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李光烈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96년 9월 국정감사를앞두고 김피고인이 한보그룹 여신 관련 자료를 요청한다는 정보를 들은 기억이 없고 당시 ㈜한보 이용남(李龍男)사장에게 김상현 의원을 아느냐고만 물어봤다”고 진술했다. 정씨는 97년 8월 1심 공판 때 증언에서 “김피고인이 국감을 앞두고 한보관련 자료제출을 요구해 이사장에게 이를 무마하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했었다. 이 전 ㈜한보 사장도 이날 증인으로 나와 “96년 9월 초 한보그룹 정태수(鄭泰守)총회장이 업무보고 자리에서 ‘김상현씨는 정치인으로서 큰 뜻이 있고 사람을 만나는데 돈이 필요할 테니 5,000만원을 건네주라’고 지시해 9월19일 김상현씨에게 돈을전달했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재판이 끝난 뒤 “김상현피고인은 96년 국감 때 한보그룹과 관련된 자료를 요청하지 않았다는 것이 자료로 입증이 됐기 때문에 피고인이받은 돈은 단순한 정치후원금으로 봐야한다”면서 “1심 재판부는 증인들의잘못된 증언을 토대로 심리해 유죄를 선고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피고인은 96년 국정감사 때 이 전 사장으로부터 “한보철강을 잘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 및 추징금 5,000만원을 선고받았었다.
  • 특별검사 한달내 수사 완료

    국민회의는 특별검사가 한달 이내 수사를 완료하고 필요하면 1회에 한해 연장,60일까지 수사할 수 있도록 하는 특검제 법안을 마련했다. 대한매일이 22일 단독 입수한 국민회의의 ‘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에 등에 관한 특별법안’은 총 12개조,부칙 2개조로 구성됐으며 특별검사가 공소제기와 공소유지를 담당,판결확정때까지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국회가 본회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에게 서면으로 특별검사 임명을 요청하면 대통령은 3일안에 변협에 서면으로 추천을 의뢰해야 하고 변협이 1주안에순위를 매겨 2배수의 후보자를 추천하면 대통령은 3일안에 특별검사를 임명,국회에 통보하도록 했다. 특별검사는 국가·지방공무원,정당인이 아닌 변호사 가운데 임명되며 보수와 대우는 고검장에 준하도록 했다.또 특별검사는 수석특별검사 이외의 다른 기관에 간섭을 받지 않으며 대통령이 정한 한도내에서 검찰·경찰총장에게자료·인원·예산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특별검사의 직무수행을 방해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한편 특별검사는 법무부장관(정신·신체적 질환을 이유로)이나 국회 본회의(정치적 중립성을 이유로)가 해임을 건의하는경우를 제외하고는 대통령이 해임할 수 없도록 했다. 국민회의는 23일 자민련,법무부와 당정협의를 갖고 24일 공동여당 당무·의원 합동총회에서 여당안을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곽태헌 추승호 기자 tiger@
  • ‘換亂사건’ 실형구형 안팎

    검찰이 21일 전경제부총리 강경식(姜慶植)피고인과 전청와대경제수석 김인호(金仁浩)피고인에게 각각 징역 4년과 3년의 실형을 구형한 것은 고위공직자가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한 결과 유발된 국가적 고통을 국민들에게 떠넘기는 전례를 더는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고위공직자가 결정한 정책이 옳으냐,그르냐를 떠나 정책이 결정되기까지 최선을 다했는지를 따지겠다는 것이다. 이승구(李承玖)대검 중수1과장은 이날 논고문을 통해 정책 과오에 대한 형사처벌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수사과정에서 드러난 강·김피고인의잘못된 정책에 대해 기소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검찰은 그러면서도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제시했다. 직무유기에 대해서는 얼마나 적극적으로 자료를 수집했는지,정책 결정자가쉽게 알아 듣도록 보고했는지,퇴임에 따른 업무 인수인계 시점을 어디까지로 봐야 하는지를 기준으로 삼았다. 직권남용은 형식적 직무와 실질적 직무로 세분했다. 검찰은 지난 97년 초부터 외환위기가 예견됐는데도 강·김피고인이 정치적야심이나 경제관료로서의 자존심 때문에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사실을 직무유기의 대표적인 사례로 적시했다. 또 피고인들이 김전대통령에게 이같은 상황을 보고했더라도 경제전문가가 아닌 대통령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할 ‘교육의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각료 직무기간에 대해서는 사표수리 통보를 받았더라도 후임 각료가 임명되는 순간까지는 직무를 성실히 다할 의무가 있다고 해석했다. 이에 따라 피고인들은 사표수리를 통보받은 이후 후임 경제부총리로 임명된임창열(林昌烈)경기지사에게 ‘IMF행 결정’과 같은 업무를 제대로 인계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직권남용에 대해서도 실질적으로는 직무를 벗어났다 하더라도 형식적으로직무권한에 포함된다면 직권남용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피고인이 경제부총리로서 특정 금융기관의 대출업무와 실질적 관계는 없더라도 시중은행장들에게 업무관련 지시를 하는 금융정책실장의 보고를 받는한 강피고인이 특정 금융기관에 대출을지시하는 것은 형식적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해석이다. 검찰의 이같은 판단이 법원에 의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주목된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北 앉기전 시비‘가시밭 對坐’예고

    베이징 구본영특파원 난산(難産)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21일 베이징 남북 차관급회담은 북한측의 두차례 연기 통보로 초반부터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여야 했다.향후 험난한 ‘회담 파고’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북한측은 우리측이 제시한 회담시간(오전 10시)에 대해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돌연 오전 8시쯤 오후 3시로 회담 연기를 요청해 왔다.회담이 임박한오후 2시20분쯤엔 추후 회담 시간도 정하지 않은 채 다시 연기를 통보,우리측 대표단을 아연 긴장케 했다. 북한측은 권민 참사관 명의로 전화통보를 통해 “남측이 회담전 20일까지인도키로한 10만t 비료수송약속을 안지켰기 때문에 회담을 할 수 없다”고일방통보했다. 이에 우리측 수석대표인 양영식(梁榮植) 통일부차관은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비료 2만2천t을 실은 11항차 수송선이 오후 1시10분 여수항을 출발,저녁8시30분 북방한계선을 지나 내일 새벽 2시께 북한 남포항에 도착할 예정”이라면서 “비로 수송선 출발이 다소 지연됐다는 설명을 했음에도 북한측이 회담을 연기시킨 것을 이해할수 없다”고 밝혔다.그는 이어 “북한측이 회담에 즉각 응할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북한측은 회담연기를 통보하면서 “비료 10만t이 도착한 이후 적당한 시기에 회담을 한다”고 밝혀 회담을 완전 무산시키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양영식(梁榮植) 남측 수석대표는 이날 오전 “북측이 공식으로 회담일정에 관한 입장을 알려오면서 오후 3시에 회담을 개최할 것을 요청해왔다”고 가자들에게 전했다.그는 이어 “이산가족 문제는 반백년동안 기다려 온 사안인데 몇 시간 기다리지 못할 입장이 아니다”며 수용의사를 밝혔다.그러나 오후 다시 회담을 연기해오자 “북측이 회담일정에 대해 언급이 없었다”고 다소 난감해했다.양수석대표는 “주재관을 통해 북측과 계속 연락을 유지하겠다”고만 말해 비공개 접촉라인은 정상가동중임을 시사했다.다른 한 당국자는 북측이 회담 개최 시점을 미룬 것과 관련,“부정적으로 해석하지 말아 달라”고 주문했다.북측의 변칙 움직임이 회담 파국의 예고편은 아니라고 애써 강조한 것이다.그러나 일부 관계자는 서해 교전 사태 이후 북한의 대남 자세 경직화와 무관치 않다며 우려하는 표정이 역력. 북측이 회담을 오전에서 오후로 연기하면서까지 대표단 명단을 통보해주지 않자 우리측 대표들은 황당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통일부 베이징 주재관을 통한 비공개 채널로 박영수 조평통 서기국 부국장이 수석대표로 정해진 사실만 겨우 전해들었을 뿐이었다.우리측은 북측 박영수 일행이 베이징역에 도착할 때 찍은 스틸 사진을 입수,북측 대표단에 대한 역추적 작업까지 벌이기도 했다.그러나 뚜렷한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는 후문.다만 권민 아·태평화위 참사가 회담 대표로 나올 가능성을 주목.그는 지난 97년부터 중국을 여러차례 드나들면서 99년 3월 베이징에서 열린 남북노동자 축구대회 준비회담 북측 대표를 맡았었다. 권씨의 나이는 40세 가량으로 베이징에서 일부 국내언론사의 방북 사업을성사시키는 거간꾼 역할도 했으나 해당언론사들도 정확한 신원을 파악하지못하는 베일속의 인물.99년 4월 엄대우 국립공원 관리공단 이사장과 금강산솔잎 혹파리 방제 대책협의를 논의하는 등 남북 민간급 교류에 폭넓게 참여해 온 인물로만 알려져 있다. 실향민들은 흥분감을 감추지못하면서 베이징 남북회담 전개과정을 초조히지켜보다가 회담이 계속 지연되자 실망스럽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김성재(金成在) 이북도민회 황해도지부 사무국장은 “회담이 잘돼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간절히 희망한다”고 말했다. kby7@
  • 朴義鼎씨 ‘페인트 투척’ 진상

    재미교포 박의정(朴義鼎·71)씨의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에 대한 페인트 투척사건은 김 전대통령에 대한 개인적인 불만으로 저지른 단독범행인 것으로 일단 결론이 내려졌다. 2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폭행죄를 적용,박씨를 구속 조사한 서울강서경찰서는 7일 이 사건을 서울지검 남부지청에송치했다.경찰은 박씨가 미국에서 귀국한 뒤 한달동안 친구 유모(69)씨 등 4명을 2∼5차례 만났지만 공범이나 배후세력으로 볼만한 혐의점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고 밝혔다. 박씨는 지난달 4일 귀국,종로구 평창동 윤모(70·S병원 원장)씨의 집에 한달동안 머물렀다.윤씨와는 91년 4월 방북했을 때 북에 있던 윤씨의 남동생을 찾아준 인연으로 알게됐다.박씨는 74년 미국으로 이민,97년 미국 시민권을획득한 이중국적자로 지금까지 3차례 북한을 방문했다.국내에는 1년에 2∼3차례,지금까지 모두 30여차례 왕래했다. 이번에 귀국해서는 김 전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상도동집 주변을 배회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다 김 전대통령의 일본방문계획을 우연히 알게돼 김포공항으로 찾아가기로 하고 범행준비를 했다.현장에서 뿌린 ‘김영삼씨는 국민앞에 사죄하라’는 유인물은 지난달 31일 알고 지내던 전 서울시의원 김모(50)씨의 강동구 성내3동 T건축사무실에서 직원 김모(25)씨에게 타이핑을 한뒤 30장을 복사하도록 시켰다.이어 지난 1∼2일 윤씨집 냉장고에 있던 달걀에 미리 준비한 주사기로 붉은색 페인트를 주입,비닐랩으로 싸서 양복주머니에 숨긴 뒤 3일 김포공항에서 김 전대통령에게 던졌다. 박씨는 범행동기에 대해 “IMF환란을 초래한 김 전대통령이 반성하지 않고경거망동하는 것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박씨는 “92년 대선 직전 김 전대통령을 만나 전국구 공천을 요구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해인간적인 배신감을 느껴왔다”고 털어놓았다. 김성수기자 sskim@
  • 가수 전인권 또 히로뽕

    수원지검 강력부(부장검사 朴泰奎)는 26일 히로뽕을 상습 흡입한 보컬그룹‘들국화’의 리더 전인권(全仁權·44)씨와 전씨의 전 매니저 하창덕(河昌德·43)씨를 향정신성 의약품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또 전씨 등에게 히로뽕을 판 박영국(朴英國·37)씨와 안양AP파 행동대원 박성덕(朴成德·42)씨 등 43명을 같은 혐의로 구속하고 이들로부터 히로뽕 67.7g과 대마초 312g을 압수했다. 검찰에 따르면 전씨는 지난 3월 중순 경기도 성남시 모 단란주점에서 마약중간공급책인 박영국씨로부터 히로뽕 0.75g을 20만원에 구입한 뒤 지난달중순 부천시 S병원에 입원중이던 하씨와 함께 0.08g을 흡입하는 등 2차례에걸쳐 히로뽕을 투약한 혐의다. 또 전씨의 전 매니저이자 작곡가인 하씨는 2월 중순부터 4차례에 걸쳐 박영국씨로부터 히로뽕 4g과 대마초 5g을 130만원에 구입한 뒤 전씨와 함께 2차례에 걸쳐 히로뽕을 흡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전씨는 지난 87년 12월 히로뽕을 상습 투약한 혐의로 구속된 이후 92년과 97년 대마초와 히로뽕 흡입으로 각각 구속됐으며 97년 8월 법원으로부터 징역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아 현재 집행유예기간 중에 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
  • “反인륜범죄 처벌 시한은 없다”

    - 게슈타포사령관, 유태인 1만7,000명 처형지휘-10년형 선고 ‘반인류 범죄의 처벌에는 시한이 없다’.20일 독일 슈투트가르트 지방법원. ‘나치 전범재판’이 열려 나치 비밀경찰인 게슈타포 장교였던 알폰스 쾨츠피리트(79)에게 10년 형을 선고하면서 이 원칙을 다시 확인시켰다. 1943년 11월 마즈다네크 강제수용소에서의 집단 처형 지휘 등 유태인 1만7,000여명을 살해하는데 가담한 혐의가 입증됐다는 법원의 발표다. 검찰은 부녀자와 어린이 등 500명의 총살에 직접 가담했다고 주장하면서 징역 13년을 구형했었다.쾨츠피리트는 2차대전중 폴란드 루블린 지역의 게슈타포 사령관이었다. 괴츠프리트는 1947년 러시아 군사법원의 실형선고로 시베리아에서 11년간수형생활을 했기 때문에 실제 수감은 피할 수 있을 전망이다. 독일에서 유태인 학살 등으로 조사받고 있는 혐의자는 60여명.나치의 범죄행위에 대한 단죄가 50여년이 지난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독일 법원은 “마지막 전쟁범죄자를 단죄할때까지 ‘나치 전범 재판’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석우기자 s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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