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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양호씨 4년 선고

    서울지법 형사 합의21부(재판장 민형기 부장판사)는 17일 경전투헬기사업을 도와주겠다며 대우중공업으로부터 1억5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돼 징역 6년이 구형된 전 국방장관 이양호피고인에 대해 특정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와 공무상비밀누설죄를 적용,징역 4년을 선고하고 1억5천만원을 몰수했다. 무기중개상 권병호씨(54·기소중지)를 통해 이 전 장관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씩이 구형된 대우중공업 전사장 석진철 피고인과 현 부사장 정호신 피고인에게는 각각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과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 비자금 항소심 선고­재벌총수 형감형 이유

    ◎경제기여 참작­「강요된 뇌물」 인정 감형/“검은돈 정치권에 더 큰 책임 물어야”/「지하미로 설계자」 이원조씨는 단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가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최원석 동아그룹회장·장진호 진로그룹회장 등 재벌총수 3명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권위주의적 정치풍토에서 비밀스럽게 돈을 건넨 것에 대해 1차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권성 재판장은 『국가를 운영하거나 정치활동을 하는데 돈이 드는 것은 인정하지만 돈의 흐름은 공개되고 통제가 가능한 「지상의 수로」를 통해 흘러야 한다』면서 『「지하의 미로」를 통해 흐르는 것은 정치권력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판결문에 직접적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한 공로도 참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정태수 한보그룹총회장과 이경훈(주) 대우 대표는 자금을 변칙적으로 실명전환하기는 했으나 은행의 업무를 방해한 것으로 볼수 없다며 업무방해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다.정회장은 1백억원을 노전대통령에게 제공한 부분에 대해서도 공소시효(5년)만료를 이유로 면소판결을 받았다. 재판부의 잣대는 이원조 피고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됐다.이피고인은 『5·6공을 거치며 대통령의 뇌물수수에 간여,「지하의 미로」를 적극 설계한 자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징역2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의 안현태 피고인은 계획적으로 범행에 가담했고 성용욱·안무혁 피고인은 경제적 이득을 취하지 않은 사실이 고려됐다. 노 전 대통령은 최종현 선경그룹회장과 배종렬 전 한양그룹회장으로부터 받은 2백10억원에 대해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이 없어 뇌물이 아니라는 이유로 추징금을 감경받았다.전 전 대통령도 안무혁 전 안기부장과 공모해 기업으로부터 54억5천만원을 거둔 것으로 볼수 없다며 추징금을 감했다. ◎「12·12」 「5·18」 재판일지 ▲95년 10월19일=민주당 박계동 의원,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4천억원 시중은행 예치폭로. ▲10월20일=대검 중수부 수사착수. ▲11월16일=노 전 대통령 구속수감.▲11월24일=김영삼 대통령 5·18특별법 제정발표. ▲12월4일=조홍전 수경사헌병단장 등 관련자 본격소환. ▲12월15일=헌법재판소 5·18헌법소원에 대해 사건종료 결정. ▲12월18일=노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첫공판. ▲12월21일=단식하던 전 전 대통령,안양교도소에서 경찰병원으로 후송.5·18민주화운동 등에 대한 특별법제정,공포. ▲96년 1월17일=장세동·최세창·유학성·황영시·이학봉 피고인 등 구속영장청구. ▲1월23일=전·노 두 전직대통령과 유학성·황영시·이학봉·이희성·주영복·차규헌 피고인 등 기소. ▲1월29일=노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관련 이건희 피고인 등 재벌총수 14명 구형. ▲1월30일=정호용·허삼수·허화평 피고인 등 국회의원 3명 구속영장 청구. ▲2월16일=5·18특별법 합헌결정. ▲2월22일=박준병 피고인 구속영장청구,최세창·장세동 구속. ▲2월26일=전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 첫 공판. ▲2월28일=12·12 및 5·18사건 수사종결. ▲4월29일=전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 관련,안현태 피고인 등 4명구형. ▲6월27일(17차공판)=윤성민 전 육참총장을 시작으로 증인신문. ▲7월4일(19차공판)=전·노 피고인측의 변호인단 집단불출석,재판부 국선변호인 선임. ▲7월8일(20차공판)=전·노 피고인측 이양우 변호사 등 변호인 8명 집단사퇴,전·노 피고인 출정거부선언. ▲7월16일=유학성·황영시·이학봉 피고인 구속집행정지. ▲7월29일(25차공판)=유학성·황영시 피고인측 정영일 변호사 등 변호인 6명 집단사퇴. ▲8월5일(27차공판)=김경일 12·12당시 1공수 1대대장(현역 소장)의 증언을 끝으로 사실심리 종료.검찰 전·노 피고인 비자금 사건과 병행해 구형. ▲8월26일(28차공판)=12·12 및 5·18사건과 전·노 피고인의 비자금사건 피고인 34명에 대한 선고. ▲10월7일=12·12 및 5·18사건 항소심 첫공판.최규하 전 대통령 등 증인 33명채택. ▲10월10일=전·노씨 비자금 사건 항소심 첫공판. ▲10월17일=광주 피해자 강길조씨,「피해자 진술권」으로 첫증언. ▲11월7일=노씨 비자금사건 2차공판. ▲11월14일=최 전 대통령 강제 구인돼 법정증언.항소심 결심 및 검찰구형.▲12월16일=항소심 선고.
  • 전씨 무기로 감형/12·12 5·18 항소심

    ◎노태우씨도 징역17년 선고 □선고형량 ·징역 8년­황영시·허화평·이학봉 ·징역 7년­정호용·이희성·주영복 ·징역 6년­허삼수·유학성 ·징역 5년­최세창 ·징역 3년6월­차규헌·장세동·신윤희·박종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항소심에서 무기징역과 징역17년이 각각 선고됐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권성 부장판사)는 16일 12·12 및 5·18 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비자금 사건과 병합된 전·노피고인에 대해 군형법상 반란 및 내란죄,뇌물수수죄 등을 적용해 이같이 선고했다. 1심에서 전피고인은 사형,노피고인은 징역 22년6월을 선고받았었다. 전·노피고인이 기업체로부터 뇌물로 받은 2천2백5억원과 2천6백28억원은 추징금으로 부과했다.추징금은 1심보다 54억5천만원과 2백10억원이 줄어들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전피고인에 대해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하고 5·17내란을 통해 정권을 탈취하면서 많은 사람을 살상하고 불법으로 조성한 막대한 자금으로 정치를 타락시켰다』면서 『그러나 87년 6·29선언을 통해 평화적 정권교체를 실천한데다,자고로 항장은 불살이라 하였으므로 형량을 낮춘다』고 감형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특히 『5·18 내란은 6·29 선언으로 국민들의 저항에 굴복하여 대통령 직선제 요구를 받아들일 때까지 계속된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따라서 공소시효는 87년 6월29일 시작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노피고인에 대해서도 『전피고인을 추수(뒤쫓아 따른다는 뜻)하여 영화를 누렸지만 수창(우두머리가 되어 주창한다는 뜻)한 자와 추수한 자 사이에 차이를 두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황영시·허화평·이학봉 피고인에게는 반란중요임무종사죄 등을 적용해 징역 8년,정호용·이희성 피고인 징역 7년,허삼수·유학성 피고인 징역 6년,최세창 피고인 징역 5년,차규헌·장세동·신윤희·박종규 피고인에게는 징역 3년6월 등 1심보다 낮은 형량을 선고했다.하지만 주영복 피고인에게는 1심과 같은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박준병 피고인에게는 『12·12 사태 당시 20사단 병력을 동원하라는 전피고인의 요청에 응하지 않은 점 등이 인정된다』면서 또다시 무죄를 선고했다.
  • 이양호 전 국방/징역 6년 구형

    검찰은 5일 경전투헬기사업 추진과 관련,대우중공업으로부터 1억5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 국방장관 이양호 피고인(59)에 대해 특가법상 뇌물수수 및 공무상비밀누설죄를 적용해 징역 6년에 몰수금 1억5천만원을 구형했다.
  • 「백범암살 진실」 영구 미제 가능성/안두희 피살과 배후규명 노력

    ◎당사자 통한 진실규명 불가/「참회록」 존재여부 관심 집중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범 안두희씨의 피살로 백범 암살의 진실을 당사자의 입을 통해 확인할 길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자칫 영구 미궁에 빠질 가능성도 커졌다. 안씨는 지난 49년 6월 범행 이후 지금까지 암살 동기 및 배후에 대해 한번도 속시원하게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단독범행이라는 말만 되풀이해왔다. 진실 규명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60년 4·19 혁명 직후부터였다.「김구 선생 살해 진상규명 투쟁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안씨를 집요하게 추궁했으나 끝내 안씨는 입을 열지 않았다. 한동안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안씨는 87년 권중희씨에게 각목폭행을 당하면서 조금씩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91년 처음으로 미국 중앙정보부(CIA)의 전신인 OSS를 배후로 거론했으며,92년 4월12일에는 김창용 특무대장이 4∼5차례에 걸쳐 자신에게 암살지시를 했다고 「증언」했다. 92년 9월에는 권씨에게 붙잡힌 상태에서 『범행 6일전 경무대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신성모 국방장관,채병덕육군참모총장 등을 만났다』고 말해 당시 권력 핵심부의 배후관련성을 시사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안씨는 『권씨 등의 강요에 의해 자백한 것』이라고 곧바로 부인해 의문만 증폭시켰다.94년 국회 백범 암살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단독범행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제 진실은 92년 그가 쓰겠다고 약속했던 「참회록」의 존재 가능성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안씨의 유품에서 참회록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백범암살의 진상규명은 역사가들의 몫으로 남겨지게 된다.〈김태균 기자〉 ◎피살 안두희는 누구인가/백범 저격… 47년간 은둔생활/암살죄로 15년형… 6‘25때 사면·군복귀/한때 군납공장 운영… 강원 제2갑부로/4·19후 「응징」 두려워 개명후 자취감춰/87∼88년 권중희씨에 수차례 납치·피습/94년 국회 증언… 암살 배후인물 안밝혀 백범 김구 선생을 지난 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4발의 총탄으로 저격,암살했던 안두희씨는 범행후 47년 동안 은둔과 잠행속에 살아왔다. 범행 당시 32세의 포병장교였던 안씨는 평생을 「백범 시해범」이라는 꼬리표를 단채,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데 전전긍긍했다. 안씨는 백범 시해 직후 징역 15년형을 언도받고 복역하던 중 6·25가 터지면서 당시의 실세였던 김창용 특무대장의 비호로 형집행정지처분을 받아 포병장교로 복귀했으나 전투도중 부상당해 51년 군복을 벗었다.56년 옛 동료장교들의 도움으로 강원도 양구에 군납공장을 지어 군대 부식을 공급하면서 부를 쌓았다.한때 강원도에서 두번째로 세금을 많이 낼 정도였다. 그러나 얼마후 터진 4·19혁명은 그가 진정한 죄과를 치르게 되는 계기가 됐다.혁명 직후 「김구 선생 살해진상규명 투쟁위원회」가 발족되면서 본격적으로 쫓기는 신세가 됐다.공장 문도 닫고 처 박모씨와 3남2녀의 자녀들을 데리고 「안영준」 등 가명을 써가면서 종로구 명륜동,동대문구 신설동,강원도 양구 등지로 도망다녔다. 안씨를 「응징」하려는 추적자들의 노력도 집요했다.65년 곽태영씨로부터 칼로 두군데나 목을 찔린 뒤 극적으로 살아나는 등 피습이 이어졌다.여러차례 이민을 시도했으나 법무부로부터 출국자 블랙리스트에 올라 실패했다.장성한 자녀들은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견디다 못해 70년대 말 모두 미국으로 이주했다.부인 박씨도 합의이혼하고 자녀들의 뒤를 따랐다. 86년 김명희씨(63)와 재혼하는 등 은둔에 「성공」,편안한 삶을 살아오던 그가 다시 세인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87년 3월 27일 집요하게 그를 추적해온 권중희씨의 피습을 받으면서부터였다. 권씨와의 질긴 악연은 이때부터 이어져 88년 2월,92년 2월과 4월·9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권씨로부터 납치 및 구타를 당했다. 말년에는 언론사의 인터뷰에도 응하고 94년엔 국회 법사위에서 병상에 누운채 증언하는 등 약간씩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하지만 백범 시해가 자신의 단독범행이라고 주장하는 점은 한결같았다.〈김태균 기자〉 □안두희씨 피습일지 ▲87년 3월27일=권중희씨,서울 마포구청 버스정류장에서 각목으로 안씨의 머리 구타. ▲88년 2월=권씨 등 3명,인천 집에서 안씨를 나무 막대로 구타. ▲92년 2월28일=권씨 등,백범묘소에서 안씨를 각목으로 폭행. ▲92년 4월12일=권씨 등,안씨 집으로 찾아가 안씨 구타. ▲92년 9월23일=권씨 등 4명,안씨를 경기 가평군 농장으로 납치,구타.
  • 「한총련」 사수대장/검찰,징역 6년 구형/38명엔 2∼3년씩

    서울지검 남부지청 형사4부(주성원 부장검사)는 21일 한총련시위로 구속기소된 「인천부천총련」 사수대장 주재준 피고인(26·인천대 토목공학4년)에게 징역6년을 구형하고 나머지 38명의 피고인에 대해서는 징역2년∼3년씩을 각각 구형했다.
  • 「한총련」 대부분 2∼6년 구형/29일 선고 공판

    ◎62명 첫공판/“막대한 피해·국민에 충격… 엄벌 마땅” 단일 사건으로는 사법 사상 최대 규모인 444명이 무더기로 구속기소된 「한총련」사건 관련 피고인들에 대한 첫 공판이 15일 서울지법에서 열려 대부분 피고인들에게 징역 2∼6년의 중형이 구형됐다. 서울지법 형사 합의21부(재판장 민형기 부장판사)와 22부(재판장 최정수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에 나온 피고인은 62명으로,검찰은 이들 가운데 40여명에 대해 구형했다. 특히 진압 경찰관을 감금,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우형 피고인(23·단국대4년)은 징역 6년을 구형받았다. 검찰은 논고를 통해 『피고인들은 이적성을 띠고 있는 불법집회에 참가해 막대한 인적·물적피해를 내고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만큼 엄벌에 처해 마땅하다』고 밝혔다. 검찰은 『피고인들은 주체사상으로 무장,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으며 한총련의 실체는 북한 잠수함이 훈련 도중 좌초한 것이라는 주장에서도 명백히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피고인 대부분이 검찰의 공소사실을 시인,피고인별로 10∼30분만에 결심에 이르는 등 재판은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이날 구형을 받은 피고인들에 대한 선고공판은 2주일 뒤인 오는 29일 열릴 예정이다. 한편 서울지법 산하 4개 지원에 기소된 관련 피고인 203명에 대한 첫 재판은 17일 서부지원,18일 동부지원,23일 북부지원,25일 남부지원 등의 순으로 각각 시작된다. 서울지법의 담당재판부인 형사합의 21·22·23부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세차례씩 재판을 열어 각각 30여명씩 출정시키기로 했다.4개 지원 담당 재판부도 본원과 마찬가지로 집중심리 방식으로 신속히 재판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이 사건 대부분 피고인들에 대한 1심 재판은 이달안에 결심이 이루어지고 이달말이나 다음달초 선고가 내려질 것으로 전망된다.〈김상연 기자〉
  • 미 도피 범죄자/단죄 획기적 계기 마련/양국 신병인도 합의 안팎

    ◎인권시비 우려 정치·군사범은 제외 우리나라에서 죄를 짓고 미국으로 달아난 범죄자를 단죄할 수 있는 획기적인 계기가 마련됐다. 한·미양국은 지난 11일 미국 워싱턴에서 가진 범죄인 인도조약 실무교섭을 통해 「양국의 법률이 1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토록 규정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는 신병을 인도한다」는 문안에 합의했다. 범죄인 인도조약은 형사사건 수사와 증인소환 등에 관한 협조를 규정한 사법 공조 조약과 함께 국가간 사법공조의 기본 뼈대이다.양국은 지난 93년 사법 공조조약을 체결한데 이어 범죄자의 신병을 주고받는 조약에 합의함으로써 법적 협력체계를 구축했다.앞으로 조약에 대한 양국의 서명과 국회비준 및 비준서 교환 등의 절차를 거쳐 내년 말쯤에는 발효될 것으로 전망된다. 96년 9월말 현재 해외도피사범은 모두 250여명으로 이 가운데 미국이 135명(54%)으로 단연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조약 체결 후 범죄인을 인도받으려면 한국 수사기관이 법원으로부터 범죄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법무부와 외무부를 통해 범죄인 인도요청서와 함께 미국 국무부로 보내면 된다.미국은 법무부를 통해 수사기관에 범죄인의 소재를 파악하도록 지시,신병이 확보되면 우리측에 넘겨주게 된다. 그러나 양국은 인권 시비를 부를 수 있는 정치·군사범과 상대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도피한 자국민은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또 형사 소추,형의 선고 또는 집행을 위해서만 범인을 인도하고 단순한 수사를 위한 인도요청은 할 수 없도록 했다.〈박은호 기자〉
  •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영화 초대석)

    ◎터키의 인권탄압 고발한 미 영화/70∼80년대 국내 정치상황 여파 “금수딱지”/실화 바탕… 철저한 미국시각 접근이 흠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실화를 바탕으로 70년대 터키의 인권탄압을 고발한 미국 영화.지난 78년 제작돼 그해 아카데미 각본·음악 등 두 부문 상을 탔으며,구미 각국에서 문제작으로 널리 인정받았다.그러나 70∼80년대 국내 정치상황 때문에 그동안 수입하지 못하고 비디오로만 소개됐다. 1970년 21살의 미국 청년 윌리엄(빌리)헤이스가 마약 2백g을 갖고 터키 이스탄불공항을 빠져나가려다 체포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빌리는 마약밀매혐의로 종신형을 구형받지만 미리 변호사를 통해 돈을 쓴 덕에 4년 징역형에 그친다.다시 열린 재판에서 30년형을 받은 빌리는 절망에 빠져 교도소 안에서 첩자노릇을 하는 터키인을 살해하고 정신병동으로 이감된다.그동안 한차례 「미드나잇 익스프레스」(탈옥을 뜻하는 속어)를 시도하지만 실패한 그는 76년 애인의 면회에 자극받아 결사적으로 탈옥해 미국으로 되돌아온다는 줄거리. 자유를 속박당하고인권을 철저히 짓밝힌 한 인간이 자유를 찾아 온몸을 내던지는 모습이 충격적으로 전달된다.알란 파커 감독은 「핑크 플로이드의 벽(The Wall)」 「미시시피 버닝」 「버디」를 만든 거장다운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또 올리버 스톤 감독이 각본을,「88올림픽 주제가」를 만든 조르주 모로더가 음악을 맡아 완성도를 높이는 데 한몫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본질적인 독소가 숨어 있다.철저히 미국적인 시각·가치관에 따라 만든 점이다.가령 사건의 계기가 된 빌리의 「마약밀매」에 대한 해석이 그렇다.우리 기준으로도 마약을 소지하고 출국하려는 행위는 마약밀매로 볼 수 있으며,마약사범에 대해 중형을 내리는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영화는 그같은 행위가 「철부지의 소행」이고(마약이 널리 퍼진 미국의 기준일 뿐이다),따라서 빌리에게 중형을 내린 것을 「터키의 미국에 대한 도전」쯤으로 여긴다. 또 빌리가 공적공간에서 만난 터키인이 모두 부패하고 잔인한 인물로 묘사된 것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해도 영화는 그 차원을 넘어 모든 터키인을 야만인으로,터키문화를 야만적이라고 경멸한다.사악한 정치체제나 집단은 있지만 사악한 국민·문화는 있을 수 없다.문화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미국적 가치관만으로 다른 나라를 재단하는 오만함이 이 영화에는 배어 있다. 「자유를 향한 인간의 원초적 갈망」이라는 숭고한 주제를 담았고,영화적 완성도가 뛰어난 데도 불구하고 씁쓰름한 뒷맛을 남기는 작품이다.31일 개봉.
  • 중 문화혁명 「4인방」 일원 요문원 10월8일 출감

    ◎공안부,가택연금 등 지시 【홍콩 연합】 중국 문화혁명 당시 극좌정치를 주도했던 4인방의 일원으로 모택동 사후 체포돼 재판에 회부됐던 요문원(71)이 오는 10월8일 20년간의 형기를 마치고 교도소에서 출감된다고 홍콩의 성도일보가 29일 북경 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 중국 지도부는 요의 출감후 처리문제에 대해 고심한 끝에 공안부가 그를 일정기간 가택연금 시키는 등의 방안을 강구하도록 지시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른바 「해서파관」사건으로 문화혁명에 앞장섰던 요는 지난 76년 10월6일 동료들과 함께 체포된 후 80년 11월 최고인민재판소 특별법정에서 징역 20년을 확정받았다.
  • 「12·12」­「5·18」 선고/재벌 중형선고 이유

    ◎뇌물엔 “단죄”… 정경유착 고리끊기/고액·구체명목·능동제공땐 실형/액수·획수 적고 초범땐 집행유예 김영일 재판장이 26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 비자금사건 관련 판결문에서 밝힌 재벌총수와 주요 피고인의 양형이유를 간추린다. ▲이건희 피고인=대통령에게 건넨 뇌물액수가 크지만 구체적 청탁과 관련돼 있지않고 국가경제에 기여한 점,체육·문화 등의 진흥에 애쓴 점,반성의 정도,초범인 점 등을 참작한다. ▲김우중 피고인=뇌물 액수가 크고 진해 해군잠수함기지 건설공사 수주와 관련한 금품공여 등 구체적인 명목과 관련돼 있고,뇌물공여죄로 처벌받은 전력 등에 비추어 실형을 면하기 어렵다.경제발전의 기여 및 사회봉사활동 노력과 반성의 정도 등을 참작한다. ▲최원석 피고인=뇌물 액수가 많은데다 횟수도 적지 않고 아산만 해군기지 건설공사 수주에 대한 사례 등 구체적인 명목과 관련된 점,이현우 피고인에게도 사례 명목으로 많은 뇌물을 공여한 점,1회 처벌 경력 등에서 실형을 면키 어렵다.경제발전 기여,반성 등의 정상을 참작한다. ▲장진호 피고인=뇌물 액수가 크고 지방공단지정과 관련된 행정절차상의 편의를 바라는 등 구체적인 명목과 관련됐고 뇌물공여 직후 공단지정 결정이 이루어진 점,먼저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하는 등 공여과정이 능동적이었던 점 등으로 실형을 면키 어렵다.경제 발전에 기여,사회봉사활동,반성,초범인 점 등을 참작한다. ▲이준용·이건 피고인=뇌물액수가 크고 아산만 해군기지공사 수주내정 사례 등 구체적인 명목과 관련됐으나 횟수와 총액이 많지 않고 경제발전 기여,반성,범행 자백 등을 참작한다. ▲김준기 피고인=뇌물액수가 적지 않으나 포괄적 선처 외에 구체적인 청탁과 무관한 점,경제발전 기여,사회봉사활동,반성 등을 참작한다. ▲정태수 피고인=뇌물액수가 크고 수서택지개발지구 특혜분양 등 구체적인 명목과 관련된 점,실명전환 액수가 큰 점 등에서 실형을 면키 어려우나 국가경제 기여,사회봉사활동,반성 등의 정상을 참작한다. ▲이경훈 피고인=위계에 의한 실명전환 액수가 적지않으나 전문경영인으로 경제발전에 기여한 점,반성,초범인 점 등을 참작한다. ▲이원조 피고인=대통령과 기업인 면담을 주선해 뇌물수수를 방조한 금액이 적지 않고 공여 기업주를 선정,액수를 조정하는 등 범행 모양이 좋지 않아 실형을 면키 어렵다.경제발전 기여,개인 이익을 취하지 않은 점,당뇨 등으로 고생하고 있고 초범인 점 등을 참작한다. ◎일부 무죄선고 파장/모두 「증거부족」이 원인/박준병씨 30단모임 기여안해/정호용씨 「5·18지휘」 인정못해 재판부는 12·12사건과 관련된 박준병 피고인의 반란중요임무종사죄,5·18사건에 연루된 황영시·정호용 피고인의 내란목적 살인죄에 대해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법조주변에서 예견되던 선을 넘어 세 피고인에게 무죄 또는 일부무죄판결이 내려짐으로써 적잖은 파장을 낳고 있다. 한마디로 증거부족이 무죄선고의 이유다. 박피고인의 경우 재판부는 무죄의 이유로 대략 4가지를 들었다. 당초 경복궁모임의 성격을 모르고 참석한 점,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병력출동지시를 받고도 부대에 출동지시를 내리지 않은 점,30경비단에서 뚜렷하게기여한 사실이 없는 점,결과적으로 육본측의 병력출동저지와 일치된 점을 꼽았다. 여기에는 28차례의 재판과정에서 보인 박피고인의 고분고분한 자세와 변호인의 끈길긴 무죄입증노력도 한몫 했다.자민련의 공천을 포기한 점을 정상참작의 사유로 거론하는 정치적 시각도 있다. 황피고인의 일부무죄논거는 자위권발동이나 광주 재진입작전을 결정하는 주요지휘관회의에 참여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게 핵심이다. 즉 증언과 증거를 종합할 때 80년5월21일 자위권발동이 결정된 국방부장관실 회의와 25일 육군회관에서의 상무충정작전 개시시기결정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또한 황피고인이 광주진압작전을 지휘하는 실권자였다는 김기석 당시 전교사부사령관의 증언이 막연한 생각일 뿐,내란목적살인의 증거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정피고인은 재판과정에서 본인이 적극적으로 나서 일부무죄선고를 받았다.재판부는 5·18과 관련,주요쟁점인 「지휘권 이원화」부분을 인정하지 않았다.증거부족이 그 이유이며,예하부대를 파견한 모체부대장으로서 할 일을 했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또한 자위권발동회의와 광주 재진입작전 결정회의에 참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도 거론했다. 특히 재판부는 공판과정에서 황·정피고인과 검찰이 신청한 증인 사이에 과잉진압여부를 놓고 주고받은 2건의 메모공방과 관련,피고인측의 손을 들어줬다.즉 황피고인이 「자동차는 경장갑차로…」 공격하라는 전화지시내용과,정피고인이 「소선배(소준렬 전 교사사령관),너무 기죽이지 마십시오」라는 내용의 전두환씨 친필메모를 소사령관에게 건넸다는 사실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나아가 검찰이 주요증거로 제출한 「5공전사」의 신빙성에도 의문을 나타냈다.항소과정에서 검찰측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7명 법정구속 배경/차규헌씨 「미운털 구속」/실형받고 구속안된 피고인/출국땐 재판부 허락받아야 12·12 및 5·18사건 선고공판에서는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나 불구속상태로 출정한 유학성·황영시·이학봉·최세창·장세동 피고인 등 5명이 징역 7년∼10년을 선고받고 다시 수감됐다.불구속기소된 피고인가운데 차규헌 피고인도 징역7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전두환 피고인 비자금사건 선고공판에서는 1심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됐던 안현태 피고인도 징역 4년을 선고받고 같은 처지가 됐다.이날 공판에서 법정구속된 피고인은 모두 7명이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더라도 항소심재판때까지 불구속상태로 놓아둘지 여부는 전적으로 재판부의 판단에 달려 있다. 이런 점에서 재벌총수를 포함해 불구속 기소된뒤 실형선고를 받은 11명의 피고인 가운데 유독 차규헌 피고인만 법정구속돼 눈길을 끌었다.이희성·주영복·박종규·신윤희·김우중·최원석·장진호·금진호·이원조·안무혁 피고인 등 나머지 불구속 기소 피고인 10명은 법원의 관용에 따라 여전히 불구속 재판을 받게 돼 희비가 엇갈렸다. 차규헌 피고인은 검찰에 이어 재판부에도 「미운 털」이 박혔다는 인상이 짙다.검찰 수사단계에서 전두환 피고인의 범죄행위를 비난하고,자신의 범행을 시인하는 등 검찰수사에 적극 협조한 점이 고려돼 불구속 기소됐지만 법정에서 진술번복이 잇따랐다.12·12사건때 예하부대에 병력동원을 지시한 사실을 부인하고,5·18사건과 관련해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 참석한 사실이 없다고 발뺌하는 등 검찰을 난처한 입장에 빠트렸다. 비자금사건으로 불구속 기소된 재벌총수 9명가운데 대우그룹 김우중·동아 최원석·진로 장진호·한보 정태수 회장 등 4명의 피고인은 예상을 뒤엎고 각각 징역 2년∼2년6월씩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법정구속은 면했다.재판부는 재벌총수로서 각종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면 국가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적극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법정구속되지 않은 피고인은 출국할때 재판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집행유예를 선고받은 피고인도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의 판단에 따라 같은 절차를 밟아야 한다. □「12·12,5·18」 수사 재판 일지 ▲95년10월19일=민주당 박계동 의원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4천억원 시중은행예치 폭로 ▲10월20일=대검 중앙수사부 수사착수 ▲11월16일=노 전 대통령 구속수감 ▲11월24일=김영삼 대통령 5·18특별법제정 발표 ▲11월30일=「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 발족 ▲12월2일=전두환 전 대통령 「골목성명」 발표후 경남 합천행 ▲12월3일=전 전 대통령 연행,안양교도소 구속수감 ▲12월4일=조홍 전 수경사헌병단장,노재현 전 국방부장관 등을 시작으로 관련자 본격 소환 ▲12월8일=최규하 전 대통령 출석요구서 전달 ▲12월12일=최 전 대통령 1차 방문조사 무산 ▲12월15일=헌법재판소 5·18헌법소원에 대한 사건종료결정 ▲12월16일=최 전 대통령 2차 방문조사 무산,최 전 대통령 대국민성명 발표 ▲12월18일=노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 첫공판 ▲12월21일=단식중이던 전전대통령 안양교도소에서 경찰병원으로 후송,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제정,공포 ▲12월27일=5·18사건 광주현장조사 및 광주지검과 공조 ▲96년1월17일=장세동·최세창·유학성·황영시·이학봉 등 구속영장 청구 ▲1월18일=12·12사건 위헌심판제청(서울지법).장세동·최세창 구속영장 보류 ▲1월23일=전·노 두 전직대통령과 유학성·황영시·이학봉·이희성·주영복·차규헌 등 기소 ▲1월29일=노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의 이건희 피고인 등 재벌총수 14명 구형 ▲1월30일=정호용·허삼수·허화평등 국회의원 3명 구속영장 청구 ▲2월16일=5·18특별법 합헌결정 ▲2월22일=박준병의원 구속영장 청구,최세창·장세동 구속 ▲2월26일=전전대통령 비자금사건 첫공판 ▲2월28일=12·12및 5·18사건 수사종결 ▲3월11일(1차공판)=전·노등 피고인 16명 출정 ▲4월22일(5차공판)=전피고인 직접신문,전상석·이양우 변호사 검찰신문에 항의,퇴정 ▲4월29일=전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의 안현태 피고인 등 4명 구형 ▲5월20일(8차공판)=변호인측의 반대신문 시작,변호인측 재판부의 야간재판에 반발해 퇴정 ▲6월13일(13차공판)=변호인단 주2회 재판에 항의,집단퇴정,재판파행 ▲6월24일(16차공판)=재판부 최 전 대통령 등 44명 증인채택 ▲6월27일(17차공판)=윤성민 전 육참차장을 시작으로 증인신문 ▲7월1일(18차공판)=최 전 대통령 증언거부 ▲7월4일(19차공판)=전·노 피고인측의 변호인단 집단불출석,재판부 국선변호인 선임 ▲7월8일(20차공판)=전·노피고인측 이양우 변호사 등 변호인 8명 집단사퇴,전·노 피고인 출정거부 선언 ▲7월11일(21차공판)=전·노 피고인 다시 출석,국선변호인 선임해 공판진행 ▲7월16일=유학성·황영시·이학봉 피고인 법원의 구속집행정지결정으로 석방 ▲7월22일(23차공판)=권정달 의원 증인출석 ▲7월25일(24차공판)=재판부 8월5일 결심공판 발표 ▲7월29일(25차공판)=유학성·황영시 피고인측 정영일 변호사 등 변호인 6명 또 집단사퇴 ▲8월1일(26차공판)=이희성 피고인 등 증인 7명 신문 ▲8월5일(27차공판)=김경일 12·12 당시 1공수 1대대장(현역소장) 증인을 끝으로 사실심리 종료,검찰 전·노 피고인 비자금사건과 병행해 구형,8월19일 선고공판 발표 ▲8월14일=재판부 선고공판 26일로 연기 발표 ▲8월26일(28차공판)=12·12및 5·18사건과 전·노 피고인의 비자금사건 피고인 34명에 대한 선고
  • 「12·12」­「5·18」 선고/사건의 실체와 의미

    ◎쿠데타·권력형 부패 중형 단죄/반란·내란 잘못된 역사 법적 심판/“「자위권」이 발포명령” 살인죄 인정 12·12 및 5·18사건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비자금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역사적 심판이 26일 내려졌다.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 김영일 재판장은 판결문을 통해 『12·12는 하극상에 의한 군사반란이며 5·17 및 5·18은 폭동을 통해 집권에 이른 내란이다』라고 규정했다. 이로써 12·12 및 5·18의 역사적 의미가 16년만에 구체적인 사실에 기초,바로잡히는 토대가 마련됐다.김재판장의 말대로 「크게 정지됐던」 역사의 흐름이 비로소 민주화라는 제 길로 들어서게 됐다. 5∼6공 정권의 정통성 결여도 사법부와 역사의 이름으로 명백히 밝혀졌다. 군사쿠데타를 통한 정권찬탈과 권력형 부정부패는 더이상 이 땅에 발붙일 수 없는 「안전판」이 설치된 셈이다. 재판부가 내린 형량은 죄질과 정상을 참작할 때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형량의 가장 큰 특징은 전·노 피고인에 대한 차등선고.전피고인에게는 반란 및 내란수괴이자2천2백여억원의 뇌물을 챙겼고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 사형을 선고했다.2인자이자 2천8백여억원의 뇌물을 받았으나 직선대통령인 노피고인에게는 구형량인 무기징역보다 낮은 징역 22년6월을 선고했다. 나머지 13명의 피고인에게는 구형량인 무기징역∼징역 10년보다 낮은 징역 10∼4년을 각각 선고했다. 특히 무기징역을 구형받은 황영시·정호용 피고인에게 증거부족을 이유로 내란목적살인죄를 인정하지 않고 나란히 징역 10년을 선고해 주목됐다.박준병 피고인에게 무죄판결을 내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검찰이 적잖은 상처를 입게 됐다. 그러나 재판부가 검찰의 공소사실과 죄목 10가지를 모두 인정한 것에 검찰은 흡족해 한다. 12·12의 쟁점도 명확히 정리됐다.이른바 ▲12·12의 동기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연행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 ▲병력출동 및 저지 등이다. 재판부는 12·12를 전두환 보안사령관 등 신군부가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특히 쟁점의 핵심인 정총장의 연행은 대통령이나 국방장관의 사전승인을 거치지 않고,사전구속영장이나 사후영장 없이 무력으로 연행한 불법조치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정총장의 연행재가와 관련,당일 하오7시쯤 최대통령에게 요청한 재가가 거부됐다는 점을 불법의 이유로 적시했다.특히 13일 상오5시10분의 사후재가는 국가권력이 전피고인 등의 행위로 그 권위를 도전받고 위법상태가 발생한 이후에 이뤄진 승낙이기 때문에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병력출동에 대해서는 같은 해석을 내렸다.신군부가 육본측의 지시에도 불구,당일 하오10시30분에 먼저 병력출동지시를 내리고 국방부·육본·경복궁 등에 병력을 진주시켰다는 것이다.하극상에 의한 명백한 쿠데타임을 적시한 것이다. 80년부터 81년1월24일까지의 5·17 및 5·18사건도 내란및 내란목적 살인 등의 유죄사실도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특히 발포명령자를 적극적으로 명시했다. 재판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발포명령이 실질적으로 5월21일 계엄사의 자위권보유 천명으로 이뤄졌다고 지적,실질적인 발포명령자를 전두환·주영복·이희성 피고인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검찰의 주장대로 내란목적 살인죄를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비상계엄의 확대선포가 폭동에 해당되며,선포유지행위가 포괄적으로 내란죄에 해당된다고 해석했다. 따라서 계엄군 배치와 국회의원 등원저지,광주 진압,정치인 체포,공직자 숙정,언론인 해직 및 언론통폐합,대법원 판사의 사직요구 등 일련의 과정을 내란행위로 규정했다.특히 대통령의 승인을 거쳤다 하더라도 국회해산과 국보위설치 등은 국헌문란에 해당된다고 판시하는 등 적극성을 보였다.
  • 「12·12」­「5·18」 선고/법정 표정

    ◎1996년 8우러 26일 정오의 심판/한특대 권력자가 사형수로/전씨 선고순간 두눈에 경련/노씨는 눈감은채 시종 고개숙여 전두환 피고인은 눈을 내리 감은 채 애써 태연하려 했다.그러나 속마음을 모두 감추지는 못했다. 26일 낮 12시 정각.12·12 및 5·18사건에 대한 선고공판이 열린 서울 서초동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 방청석은 물론 양 옆 통로까지 방청객으로 가득 찼지만 침 삼키는 소리도 크게 느껴질 만큼 법정은 무거운 침묵으로 가라 앉았다.재판장이 「주문」을 읽어내려갔다. 『피고인 전두환을 사형에,피고인 노태우를 징역 22년6월에,피고인 황영시…』 나머지 피고인에 대한 선고는 방청석의 술렁임 속에 묻혀버렸다.모두의 눈길이 두 전직 대통령에게 쏠렸다. 전피고인은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두 뺨의 근육이 불거질 정도로 입을 굳게 다물었다.두 눈은 파르르 떨렸다. 이어 천장을 잠시 응시한 뒤 시선을 떨구는 모습에서 착잡한 심정이 읽혀졌다.평소 습관대로 다리를 떨거나 흰고무신을 신은 발을 꼼지락거렸다. 한 시대를 풍미한 권력자가 일개 사형수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노태우피고인은 눈을 감은 채 시종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공판이 시작된 것은 예정보다 조금 늦은 상오 10시8분쯤. 전피고인은 건강이 많이 호전됐는지 50여일만에 반팔 수의를 입고 나타났다.예의 당당한 자세로 법정에 들어선 그는 판결문이 낭독되는 동안 담담한 표정이다가도 『수많은 광주시민을 살해했고』『집권의 정당성이 없으며』 등 아픈 곳을 찌르는 대목에서는 표정이 굳어지며 입을 꾹 다물었다. 노피고인은 시종 고무신을 벗어 놓고 발을 포갠 채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있기만 했다.『자위권 발동은 사실상 발포 명령이었다』는 대목에서 잠시 서너차례 고개를 가로저었을 뿐이었다. 낮 12시6분쯤 2시간에 걸친 상오 공판이 끝나고 재판부가 퇴정하자 또 한차례 소동이 펼쳐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전피고인이 담담한 얼굴로 돌아서서 무죄를 선고받은 박준병피고인에게 악수를 청한 것.이어 노태우·유학성·황영시·차규헌피고인 등 가까이 있던 과거의 「동지」들과 손을 잡으며 담소를 나눴다. 동시에방청석에서는 『살인마 전두환,내 아들을 살려내라』는 절규가 터져나왔다.광주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자식을 잃은 「5·18 동지회」 소속 어머니들이었다. 피고인들은 방호원들에 둘러싸여 총총히 법정을 빠져나갔다.그러나 소복 차림의 어머니들은 끝까지 법정을 떠날 줄 몰랐다.
  • 증감원 수뢰관련 전 부원장보 집유/서울지법 선고

    서울지법 형사 합의21부(재판장 민형기 부장판사)는 17일 기업 공개를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뇌물을 받아 징역 6년과 징역 5년이 구형된 박근우 증권감독원 전 부원장보(54)와 남순도 전 부국장(47)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수재죄 등을 적용,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과 징역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한솔제지로부터 1천5백만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3년이 구형된 유우일 전 부원장보(52)는 징역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 박전부원장보에게 5천만원을 준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코리아데이터시스템 대표 고정 피고인에게는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남전부국장에게 4천만원을 준 창성개발 대표 송산 피고인에게 징역10월에 집행유예 1년,유전부원장보에게 1천5백만원을 준 한솔제지 부사장 김도연 피고인에게는 벌금 1천만원을 선고했다. 박전부원장보는 95년 10월 코리아데이터시스템의 고피고인으로부터 기업 공개를 앞당길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5천만원을 받는 등 3개 업체로부터 6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됐었다.
  • 전­노씨 선고형량 얼마나 될까

    ◎전직대통령 정상참작땐 상당량 감형될수도 오는 19일 열리는 12·12 및 5·18 사건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비자금 사건 선고공판에서 전·노 피고인 등은 얼마의 형을 선고받을까. 법관이 형량을 감해 주는 것은 정상 참작의 사유가 있을 때,미수범일 때,종범일 때 등이다.사형은 무기 또는 10년 이상 징역까지,무기징역은 7년이상 징역까지,유기징역은 형기의 절반까지 감경할 수 있다. 정상참작 사유를 인정받으면 전피고인은 한차례 형량을 감경,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유기 징역을 선고받을 수 있다.노피고인도 상관살해죄가 미수인 점과 정상 참작 사유가 인정되면 두 차례 감경이 가능해 최저 징역 5년까지도 가능하다. 전·노피고인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가발전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정상을 참작받을 수 있다.16년전 사건이기 때문에 사실관계 입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일부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과는 달리 재판부가 전·노씨를 포함한 피고인들의 법정 태도가 대체로 양호했다고 보고 있는점도 이러한 예상을 뒷받침한다. 나머지 14명의 피고인들은 최저 징역 3년6월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이들은 전·노 피고인의 형량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피고인들이 반성의 빛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다 국민 감정이 극히 좋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감경의 폭이 크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따라서 구형량과 크게 다르지 않은 범위에서 선고가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 1심선고가 끝나면 항소심 공판은 빨라야 9월말에 열린다.항소심과 상고심은 각각 4개월 이내에 마쳐야 한다.
  • 피고인 최후진술내용

    ◎전두환 피고인/“「정치보복 재판」 본인으로 끝나야” 본인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이 법정에 서게 된 것을 본인의 부덕의 소치로 생각하며 이러한 일로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국민여러분에 대해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아울러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이 재판을 이끌어 온 재판부에 대해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검사 여러분에게도 같은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이 사건은 「역사 바로세우기」라는 구호아래 과거정권의 법통과 정통성을 심판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실의 권력이 제아무리 막강하다 하여도 역사를 자의로 정리하고 재단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본인은 생각합니다. 또한 국가의 계속성과 헌정사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서도 정권이 바뀌었다고 하여 그 정권의 정치적 시각과 역사관에 의해 과거 정권의 정통성을 시비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한 시대의 역사는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그들 나름대로 나라를 위해 노력한 처절한 삶의 기록입니다. 우리나라가 건국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민과 국정담당자는 온갖 역사적 시련을 그때마다 불굴의 의지로 극복하였기에,오늘날 우리나라가 민족의 역사상 처음으로 자급자족하며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갈 기틀을 만들어 놓았다고 본인은 확신합니다. 건국이후의 우리나라 역사가 독재와 부정축재로만 뒤덮인 암흑의 시기였다면,어떻게 오늘날의 번영이 가능하였겠습니까. 따라서 지난 반세기의 대한민국의 역사는 이런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하며 의도적으로 매도만 되어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본인은 지난 89년12월30일 당시 여야 4당의 합의에 의해 국회의 증언대에 섰을때 이미 과거에 있었던 모든 잘잘못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은 전적으로 본인 한사람에게 있으며 이를 위해 국민이 원한다면 감옥이든 죽음이든 그 무엇이라도 달게 받겠다는 말씀을 드린바 있습니다. 그러한 본인의 마음은 5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개인적으로는 버마에서 수많은 국가의 인재들을 잃고 이땅에 홀로귀국했던 그날부터 하루 하루의 삶을 국가를 위해 봉사하라는 뜻으로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여분의 인생이라 생각하고 보내왔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본인은 생명에 연연하거나 처벌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없으며 오직 바라는 것은 본인 하나의 처벌로 국론분열과 국력의 낭비를 막을 수만 있다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입니다. 끝으로 본인은 과거정권에 대한 정치보복적인 재판이 본인에서 끝이 나고 앞으로는 과거정권을 긍정적으로 승계함으로써 이를 바탕으로 민족의 정체성을 높이고 보다 밝은 미래를 향하여 온 국민이 매진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 입니다. ◎노태우 피고인/“역사는 심판대상 아닌 평가 대상”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으로 국정의 책임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참담한 심경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일이 이제 이루어진데 대해 국민여러분에게 죄송한 마음을 금할 길 없습니다. 역사와 국민에 무한한 책임을 지고 있던 전직 대통령으로 제 개인적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법정은 개개인의 잘잘못을 판단하는 것이아니라 우리 국민이 함께 살았던 한시대의 역사를 사법심판하는 자리가 돼 버렸습니다. 역사는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으로 지울 수도 다시 쓸 수도 없는 것입니다. 역사는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언정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역사는 항상 암과 명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을 떠나서 어제의 일을 오늘에 기준해서 판단하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이후 우리사회가 겪었던 그 어려웠던 여건을 돌아보면서 당시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있던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16년전에 있었던 역사를 그것도 국민적인 정치적인 심판이 끝난 일을 구태여 심판하려고 한다면 본인은 이것도 우리 역사의 한 장이라고 믿고 무엇이든 감내하겠습니다. 다만 사법적 책임이 어떻든 그 책임은 전직대통령에게 묻는 것으로서 끝내야지 다른 사람에게 묻지 말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국민들의 마음에 상처를 준 돈문제는 기본적으로 제 불찰에서 비롯된것입니다. 우리 정치사의 오래되고 잘못된 관행을 고치지 못한 점, 수많은 자금을 명예롭게 처리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서는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지난 10개월동안 수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도 많이 했습니다. 다만 돈을 한번도 뇌물이라고 생각하거나 또는 개인 축재를 하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대통령을 퇴임한 이후 이 세상을 하직하는 날까지 공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러한 돈을 개인적으로 쓸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이 재판은 노태우 개인 재판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 역사의 문제로 남게 됩니다. 오늘의 이 아픔이 더 밝은 내일을 위한 밑거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기타 피고인/“본분 충실… 잘못 있다면 겸허히 수용” ▲유학성 피고인=12·12 사건 당시 부대 상호간 충돌방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고 이를 위해 최규하 대통령에게 가서 결재해 달라고 건의도 했습니다. 그것이 죄가 된다면 처벌을 받겠습니다. 시국수습 방안도 구속되기 이틀 전 검찰에서 들어서 알게됐고 이전에는 듣지도 알지도, 설명을들은 바도 없었습니다. 권정달 증인의 증언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황영시 피고인=12·12 및 5·18사건과 관련해 심판을 받게된 것은 저의 부덕의 소치로 생각합니다. 당시 군인으로서 조국을 지킨다는 일념으로 임했고 이후 평생을 야전 군인으로서 지내오며 그때나 현재나 정치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도 잘못한 것이 있다면 겸허히 처벌을 받겠습니다. ▲차규헌 피고인=본인의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겠습니다. ▲박준병 피고인=제일 큰 고통은 직업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송두리째 빼앗아 버린 군사반란죄로 기소된 것입니다. 12·12 당일 저녁을 먹는줄 알고 30경비단에 들어 갔지만 총장 연행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했고 논의한 바도 없으며 참여한 적도 없었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최세창 피고인=박종규 피고인은 12·12 당시 여단장인 저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습니다. 죄가 있다면 여단장인 제가 받아야 합니다. 더 이상 그에게 불이익이 없기를 바랍니다. ▲장세동 피고인=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허화평 피고인=12·12 및 5·17,5·18 등 일련의 사건에서 특별한 목적보다는 군인으로서 명령을 따라 수행했을 뿐입니다.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된 이 공방은 이미 16년전의 일인데다 그간 4차례에 걸친 합의가 있었고 지난해 7월에는 검찰에 의해 「공소권 없음」으로 마무리된 사건입니다. 지난 87년 개정된 헌법에는 엄연히 소급입법이 금지돼 있는데도 지난해 12월 5·18 특별법을 제정한 데 이어 헌법재판소마저 이 법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려 헌법정신을 유린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허삼수 피고인=지난 80년 당시 제가 알게 모르게 한 행위가 죄가 된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이학봉 피고인=더 이상 말할 것이 없습니다. ▲박종규 피고인=당시 정병주 사령관을 체포하라는 최세창 여단장의 지시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며 군인으로서 명령에 따를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었습니다. ▲신윤희 피고인=12·12 당시 보안업무 수행과정에서 하소곤 장군님께 부상을 입힌 것에 대해 하 장군님께 사죄드립니다. ▲이희성 피고인=더 이상 하고싶은 말이 없습니다. ▲주영복 피고인=광주 사태 당시 계엄군과 광주 시민간에 인명피해가 나지 않도록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정호용 피고인=지금까지 구차한 변명이나 권모술수, 비열한 거짓말로 인생을 살지 않았습니다. 재판에서 진술한 내용은 모두 사실입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재판장이 진실에 입각해 증거에 따라 판단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 소설가 이순원씨 전·노씨 구형공판 방청기

    ◎이제 국민이 심판할 차례다/전·노씨는 구형순간 터진 박수의 의미 알아야 우리 같은 일반 사람들에게 법원이나 검찰청은 왜 그 주변분위기부터 삼엄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서울 형사지방법원 417호 대법정.10시부터 열리는 이 역사적 재판을 구경하기 위하여 진작부터 입장한 방청객들은 숨소리를 죽이고 조용히 앉아 있다.늦게 들어갔는데도 방청석 제일 앞에 자리를 잡고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소복차림의 아주머니들과 베잠방이를 입은 나이드신 촌로들,묻지 않아도 어디에서 올라온 누구인지 알겠다.목발을 짚고 뒤늦게 자리를 찾는 40대 남자의 모습도 눈에 아프게 들어온다.그래서 더 엄숙하게 보이는 법정은 마치 긴 회랑의 한 부분을 잘라놓은 것 같다. 잠시 후 검사들이 들어오고 변호인들이 자리를 채우고,부장판사를 포함한 세명의 판사가 들어왔다.늘 그렇듯 재판부 판사들의 얼굴은 근엄하다.가운데 앉은 재판장이 이 재판의 성격이 피고인들에 대한 반란수괴,내란수괴,내란중요임무 종사,반란중요임무 종사 등에 대한 것임을 알리며 개정을 선언하고 한사람 한사람 피고인을 호명해 법정 안으로 불러들였다. 전두환.그와 그 이름에 대한 어떤 선입견 때문이었을까.그는 하늘색 수의를 입고도 재판장보다 더 근엄한(?)얼굴로 꼿꼿이 들어와 재판부를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하곤 지정된 피고인석 앞에 서서 잠시 허리춤에 두 손을 짚어보았다간 자리에 앉았다.검찰이나 방청석을 향해선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였다. 노태우.안으로 들어서며 그는 재판부를 향해 인사를 하고 방청석을 향해서도 조금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인사를 했다.어쩌면 그것은 이제까지 우리가 보고 들어 알고 있는 두 사람의 성정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뒤를 이어 유학성,차규헌,박준병,최세창,장세동 등 16명의 피고인이 수의를 입거나 양복을 입은 채로 차례로 들어와 피고인석을 채웠다. 상오 중 공판에선 김경일 전1공수1대대장에 대한 증인신문과 피고인들에 대한 재판부 보충신문이 있었다.재판부 보충신문에 대해 전두환 피고인은 『답변을 하지 않겠다』고 했고,다시 재판장이 『노태우 피고인도 답변을 않겠느냐』는 물음에 그는『아직 그런 결심을 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해 작은 웃음을 자아냈다. 전두환 피고인은 마치 봉건시대의 상왕과도 같은 태도로 반란 및 내란 수괴의 피고인이 아닌 한때 만인지상의 권력자로서의 오로지 자신의 옛 영화와 명예만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피고인석에 앉아서도 그토록 자신의 그릇된 명예만을 중시하는 그가 이 재판이 열리기까지 16년간이나 땅에 떨어져 있던,한때는 스스로 「폭도」로까지 몰았던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명예를 단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았을까.그리고 상오 공판의 휴정과 함께 터져나온 죽은 사람들의 목숨도 아니고 『어디에 묻었는지도 모를 뼈다귀를 돌려달라』는 유가족들의 절규를 들으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재판은 하오2시에 속개되어 검찰측의 논고로부터 시작되었다.「현대사의 오욕」이 나오고 「잘못된 과거에 대한 철저한 청산」이 나오고,「역사와 국민 앞에 심판받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사건을 수사했으며,「법은 만민에게 평등하며 어떤 권력을 가진 자라도 법의 천강을 벗어날 수 없다는 교훈을 주는역사의 심판장이 되어야 한다」던 검찰 논고는 그 자체로서는 더없이 준엄하다.그러나 94년과 95년 두 차례에 걸쳐 공식적으로 12·12사건에 대한 기소유예와 5·18 사건에 대한 공소권 없음 등 결정을 내렸던 검찰이 아니던가.그래서인지 그 논고문의 울림까지 준엄하게 들리지는 않았다.논고 도중 전두환 피고인은 애써 검사와의 시선이 마주치길 피했고,노태우 피고인은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았다. 이윽고 구형순간이 다가왔다. 전두환 피고 사형.속으로야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그 순간에도 그는 미동조차 않고 있었다.방청석도 숨을 죽이고 다음 차례를 기다렸다.노태우 피고 무기징역.그는 움찔 몸을 떨었다.유학성 징역 15년…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호용 피고 무기징역. 검찰의 구형이 끝나는 순간 커다란 박수소리가 들렸다.어쩌면 그 박수는 15년만에 처음으로 그렇게 터져 나온 것인지 모른다.우리는 지켜볼 것이다.그들의 죄과도 이 재판도 결국은 우리가 심판할 것이다.
  • 「12·12」「5·18」 결심공판/검찰 구형 의미·평가

    ◎굴절된 현대사 바로 세우기/「성공한 쿠데타」 단죄… 악순환 “쐐기”/과거의 아픔 딛고 21세기 진입 발판/권력형부패·정경유착 차단 큰 교훈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이 연루된 12·12 및 5·18사건과 비자금사건에 대한 검찰의 구형이 마침내 5일 내려졌다. 검찰은 이들 사건을 반국가적이고 반역사적인 반란 및 내란으로 규정,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준엄하게 단죄했다. 전·노 피고인을 비롯, 16명의 피고인 모두에게 사형∼징역 10년의 중형을 구형했다. 특히 전두환·황영시·정호용 피고인에게는 전혀 개전의 정이 없다며 최고형을 내렸다. 이로써 검찰의 수사착수 2백48일, 재판 시작 1백47일만에 이들 사건에 대한 1단계 법적 처리가 일단락됐다. 검찰의 구형은 무엇보다 현대사를 굴절시킨 12·12 및 5·18 두 사건을 16년만에 법정에 세워 역사를 바로잡도록 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역사의 한 획을 새로 긋는 셈이다. 12·12라는 「성공한」 군사쿠데타를 단죄함으로써 정치군인에 의한 하극상과 정권찬탈의 악순환이 더이상 재연되지 못하도록 못을 박았다. 또한 무고한 광주시민의 목숨을 빼앗고, 국보위라는 무소불위의 초헌법적인 비상기구를 통해 내란에 성공해 탄생한 5공정권의 정통성 결여를 역사적으로 새삼 자리매김했다. 둘째로 우리 사회가 과거의 아픔을 딛고 21세기의 희망찬 선진사회로 나가는 발판을 마련했다. 권위주의적인 사회에서 민주적인 사회로 나가는 과정에서 두 전직대통령을 포함, 왜곡된 역사의 주역을 사법처리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내실을 다지고 깨어 있는 시민의식을 거듭 확인시켰다.한국의 민주화가 한단계 성숙했음을 대내외에 과시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부도덕한 지도자와 정권이 국리민복을 볼모삼아 수천억원의 뇌물을 챙기는 권력형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의 연결고리를 끊었다는 점 역시 이 사건이 주는 커다란 교훈이기도 하다. 전 피고인은 재임중 정치자금명목으로 무려 2천2백59억원, 노 피고인은 2천8백38억원의 뇌물을 재벌총수들로부터 챙겼다. 특히 전 피고인은 퇴임후 2천억원을 남겨 검찰 수사과정에서 3백89억원을 압수당하고도 아직 1천4백28억원을은닉하고 있다고 검찰은 밝혔다. 역사에 대한 참회와 개전의 정이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설명이다. 검찰은 이와 함께 한때 이번 사건에 대해 내린 「혐의 없음」과 「공소권 없음」 결정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씻고 사법권확립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지위고하를 떠나 죄를 지으면 처벌받는다는 사회정의와 법치의 원칙을 확인시켜준 셈이다.그러나 검찰의 신뢰성제고라는 측면에서 더욱 분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로써 이번 사건은 오는 19일 1심판결을 남겨두게 됐다. 주요피고인들은 반란 및 내란, 권력형 부정부패 등 사안의 성격으로 미루어 중형을 면하기 어렵다. 감경사유가 별로 없는 전 피고인은 사형, 노 피고인은 무기징역형 등 구형대로 선고받을 것으로 보인다. 유학성 피고인 등은 정상참작여하에 따라 최고 절반까지 형량이 줄어들 수도 있다. 2심의 첫 재판은 준비기간을 거쳐 9월 하순에나 열릴 전망이다.〈박선화 기자〉
  • 전씨 사형·노씨 무기 구형/반란수괴·내란혐의 등 적용

    ◎전씨 2천2백억·노씨 2천8백억 추징/정호용·황영시씨 등 14명 무기∼10년형/전두환씨 최후진술­“과거 잘잘못 본인 책임 어떤 처벌이든 받겠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사형과 무기징역이 구형됐다. 서울지검 형사2부 김상희 부장검사는 5일 서울지법 형사합의 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심리로 열린 12·12 및 5·18 사건 및 비자금 사건 결심공판에서 이같이 구형했다. 전 피고인에게는 추징금 2천2백23억1천6백66만원을, 노 피고인에게는 추징금 2천8백38억9천6백만원을 함께 구형했다. 전피고인에게는 반란 및 내란수괴·내란목적살인·살인·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뇌물수수 등 10개 죄목을, 노 피고인에게는 반란 및 내란중요임무종사·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뇌물수수 등 9개 죄목을 적용했다. ◎19일 선고공판 황영시·정호용 피고인에게는 반란 및 내란중요임무종사·내란목적살인죄 등을 적용,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이희성·주영복·허화평·허삼수·이학봉·유학성·차규헌·최세창 피고인 등 8명에게는 반란 및 내란중요임무종사죄 등으로 징역15년을 구형했다. 장세동 피고인은 반란중요임무종사로 징역12년을,박준병·신윤희·박종규 피고인 등 3명도 같은 죄목으로 각각 징역 10년을 구형받았다. 검찰은 논고문에서 「12·12 및 5·18 사건은 하극상에 의한 군사반란과 헌정질서를 파괴한 내란,비자금 사건은 사상 최대의 권력형 부정축재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총제적으로는 국가권력을 불법적으로 이용,군의 통수체계 및 민주헌정질서를 뿌리채 와해시키고 건전한 경제구조를 왜곡시킴으로써 국민에게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고 역사 발전의 수레바퀴를 오욕과 퇴보의 늪으로 떨어뜨린 반국가적·반역사적·비인도적·반민주적 범죄』라고 강조했다. 검찰은 『전 피고인은 반란 및 내란의 수괴로서 정권을 장악한 뒤 「정의사회 구현」을 외치는 등 도덕성과 청렴성을 표방하면서도 43개 기업체로부터 2천2백억원 이상의 뇌물을 수수했다』며 『그럼에도 일말의 뉘우침도 없이 억지와 변명으로 자신의 범행을 합리화하려는 태도로 일관하는 등 전혀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다』고지적했다. 검찰은 또 『노피고인도 12·12 및 5·18사건, 5공화국 출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공로로 전피고인에 이어 대통령에 취임한 뒤 「위대한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국정의 슬로건으로 내걸고도 2천8백38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뇌물을 받았다』며 『그런데도 겉으로만 사죄한다고 말할 뿐 실제로는 자신의 잘못을 숨기고 합리화하는데 급급했다』고 밝혔다. 전 피고인은 최후 진술에서 『현정권은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구호 아래 과거 정권의 법통과 정통성을 심판하고 있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실의 권력이 제아무리 막강하더라도 역사를 자의로 정리하고 재단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전 피고인은 이어 『본인의 부덕으로 본의 아니게 정책수행이 불투명해져 국민에게 불편과 피해를 준 책임은 전적으로 본인 한사람에게 있으므로 본인의 처벌만으로 국론분열과 국력의 낭비를 막을 수만 있다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노 피고인도 최후진술에서 『국정의 책임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 없다』며 『그러나 역사는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지 지울 수도 다시 쓸 수도 없는 것이며, 평가의 대상은 될 수 있어도 심판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오래된 정치적 관행을 고치지 못한 점이나 수많은 자금을 명예롭게 처분하지 못한 점은 송구스럽지만 단한번도 뇌물이나 개인적인 축재를 위해 돈을 받은 적이 없고,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국선변호인인 김수연 변호사는 최후변론을 통해 『12·12 및 5·18 사건은 역사의 심판에 맡겨야할 사건이지 재판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더욱이 16년전의 사건이므로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고,공소시효를 정지시킨 5·18 특별법도 소급입법금지의 원칙에 어긋나는 위헌법률』이라며 면소판결 또는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인식 변호사도 전·노 피고인의 비자금 사건과 관련,『수뢰죄는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해 뇌물을 받았다는 증명이 있어야 하는데도 검찰은 직무관련성을 전혀 명시하지 않았다』며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는 있지만 실정법규에는저촉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재판부는 이날 상오 5·18 당시 김경일 1공수1대대장(현역 소장)에 대한 증인신문과 피고인들에 대한 보충신문을 마쳤다.선고 공판은 오는 19일 상오 10시에 열린다.〈황진선 기자〉
  • 이철수 전 제일은행장/징역 3년 선고/서울지법

    서울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최정수 부장판사)는 2일 효산그룹과 우성건설에 거액을 불법대출해주고 2억8천만원의 커미션을 챙긴 혐의로 징역 6년을 구형받은 전제일은행장 이철수 피고인(59)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배임수재죄를 적용,징역 3년에 추징금 2억8천만원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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