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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인씨 돌연 출국 “도피 의혹”

    ◎6공 경제수석… 비자금 파문 관련 주목/야선 “정부가 묵인” 비난… 본인은 “펄쩍” 노태우 전대통령 재임중 청와대경제수석을 지낸 김종인씨가 25일 돌연 미국으로 출국,6공 비자금 파문과 관련한 도피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날 하오 4시30분 샌프란시스코행 아시아나 202편으로 비서관 한명과 함께 출국한 김씨는 김포공항 법무부출국심사대에 『스탠퍼드대 부설 후버연구소를 방문한다』고 출국이유를 밝혀 놓았다.김씨측은 이번 미국행은 지난 9월부터 예정됐던 것으로 비자금 파문과는 상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씨는 청와대경제수석으로 재직할 때 노전대통령의 비자금 조성에 깊숙이 관여해 온 것으로 알려져 이번 출국은 비자금 파문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정치권은 보고 있다. 김씨는 지난 93년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과 관련,수뢰혐의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추징금 2억1천만원의 형을 선고받았으며 지난 8·15 특사 때 사면복권됐다. 김씨는 다음달 1일 로스앤젤레스를 통해 귀국하는 것으로 항공사에 예약했으나귀국할 지는 불확실하다. 김씨의 돌연한 출국과 관련,야권은 26일 일제히 『정부가 그의 도피를 묵인한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즉각 노전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에 대해 출국금지조치를 내릴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국민회의의 박지원 대변인은 김씨의 출국을 정부의 묵인 아래 이뤄진 것으로 규정짓고 『정부가 이번 비자금파문을 노전대통령과의 정치적 절충을 통해 마무리지으려 하고 있다』면서 노전대통령 등에 대한 출국금지조치를 요구했다. 민주당의 이규택 대변인도 『검찰이 철저한 진상규명의지가 있다면 어떻게 김씨의 출국이 있을 수 있느냐』면서 『검찰이 즉각 비자금과 관련해 의혹을 받고 있는 인사들에 대해 출국금지조치를 내리지 않는다면 이번 사건을 은폐·축소하려 한다는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사냥시즌 개막/충남북 순환수렵장 “개방”

    ◎충남­꿩·노루/충북­멧돼지·고라니 서식/초보자,총포소지 허가·강습 받아야 자연을 벗삼아 스릴과 모험을 즐기는 사냥철이 다가와 55만 엽사를 설레게 하고 있다.산림청이 올해의 순환수렵장을 충청남·북도로 지정했다. 따라서 상설수렵장인 제주도 및 거제도일대를 포함,다음달부터 내년 2월말까지 4개월동안 수렵시즌에 들어간다. 특히 올해 순환수렵장인 충청도는 남도가 8년,북도가 4년만에 개방돼 조수가 크게 늘어났을 것으로 예상,사냥꾼들은 그 어느때보다도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엽도협회가 지난 20∼21일 이틀동안 서울 태릉사격장에서 개최한 수렵강습회에는 초보자 5백여명 등 1천5백여명이 몰려 시즌을 앞둔 사냥의 열기를 그대로 반영했다. 충청남도의 온양·예산·천안 등에서는 꿩·오리·노루가,충북은 멧돼지·고라니 등의 야생조수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냥전문지 「자연과 사냥」대표 이종익씨(47·명동총포)는 『충청도는 오랜만에 사냥터로 개방돼 멧돼지 등 큰 짐승 포획에 기대가 크다』면서 『특히 충남의 대호지갈대밭 및 당진·서산·예산 등 서북부지역과 충북의 음성·괴산·옥천 등이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수의 포획수량은 멧돼지·고라니는 시즌에 한사람이 2마리,장끼·까마귀·오리류는 한사람이 하루 2마리까지로 제한돼 있다.이를 어기면 1년이하의 징역이나 3백만원이하의 벌금. 사냥은 총기를 다루는 극단적인 스포츠여서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따라서 초보자는 까다로운 출렵절차를 밟아야 된다 우선 총포소지허가를 받고 수렵강습및 허가,조수포획승인 등을 받아야 사냥에 나설 수 있다.강습은 출렵에 따른 법규와 총기사용법·조수식별법·엽구식별법 등을 2시간정도 받으면 된다. 처음에는 총기구입(2백만원선)과 총포소지허가·공채매입비·포획사용료 등으로 2백80여만원의 많은 비용이 든다.그러나 다음해부터는 4개월동안 포획사용료만으로 사냥을 즐길 수 있다. 이종익씨는 『수렵은 배테랑을 포함해 두 사람 이상 조를 편성해 나서고 일몰전 하루 4시간정도가 적당하다.또 비탈길을 계속 걸어야 하므로 사냥화와 눈에 잘 띄는 간편한 복장에 초콜릿 등 비상식량도 준비해야 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엽도협회(972­6066∼7)는 다음달 10일 태릉사격장에서 「수렵인을 위한 특별강좌」를 개최하며 회원은 자동으로 보험에 가입된다.
  • 「3백억 처리」 어찌될까/불법 드러나면 전액 몰수

    ◎“정치자금법 적용 대상” 일반적 해석/통치행위로 볼 경우 헌납처리 할수도 6공의 「통치자금」3백억원은 어떻게 처리될까. 노태우 전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이현우 전청와대경호실장이 22일 신한은행 서소문지점의 차명계좌 3백억원이 「6공 통치자금」이라고 밝힘에 따라 앞으로의 수사 향배와 함께 이 거액의 향방이 관심을 끌고 있다.일단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뿌리를 알 수 없는 돈」이라는 전제에서다. 이 돈은 문민정부 이전 역대 정권과 마찬가지로 「6공」이 정권관리를 위해 비공식적으로 조성해 사용해왔던 관행의 일환이다.비록 「통치자금」으로 불리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정치자금법에 의해 적용받는 정치자금으로 보아야 한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행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정치자금은 당원의 당비,국고보조금,후원회의 후원금등 세가지 방식을 통해 조성할 수 있다.하지만 정당이 아닌 정치인 개개인은 후원금이든 기부금이든 후원회를 통해서만 받을 수가 있다.3백억원이 후원회를 통해 조성한 자금이라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불법이 돼 국고로 환수될 수밖에 없다. 또한 불법으로 정치자금을 받은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백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어 이전실장등 노전대통령측 인사들은 형사처벌 대상이 될 가능성도 크다. 정치자금 조성과정에서 기탁자의 의사에 반해 강제적으로 돈을 받아냈다면 정치자금법이 아닌 공갈등에 의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에 의한 형사 처벌 대상이다.그렇지만 통치자금 조성행위도 면책대상인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법 해석도 적지 않아 논란이 불가피하다. 검찰이 통치자금 관행에 대해 이처럼 법적으로 엄격하게 정치자금법 대상으로 적용하게 될 지는 아직 속단하기 어렵다. 통치자금이 말 그대로 통치에 필요한 돈이라면 국가예산으로 편성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예산으로 지출할 수 없는 성격의 자금을 통칭하는 의미정도로 이해되기도 한다.5공 청문회때 기업총수들이 대통령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하면서 불우이웃돕기라든가 일선장병 사기진작용 선물비등을 사용처의 예로 증언하기도 했었다. 문민정부이전까지 정당운영과 선거자금등으로 쓰이는 정당의 정치자금은 정치자금법의 규제를 받지만 통치자금은 그렇지 않은 「정체불명의 돈」으로 받아들이는 관행이 있어온 것도 사실이다.하지만 정치와 재벌의 유착,그리고 각종 특혜등 부정·부패로 연결되기 십상이어서 김영삼대통령은 취임 일성으로 정치자금은 단 한푼도 받지않겠다고 선언,이를 개혁조치의 핵심으로 실천해오고 있다. 이런 사정으로 해서 3백억원을 국가가 강제로 국고에 귀속시키는 방안도 있지만 자진헌납등의 절차를 먼저 밟게 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다. 연희동측의 설명대로라면 노전대통령은 문제의 3백억원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으로 볼 수 있다. 5공 청산과 관련,88년 11월 전두환 전대통령은 자진 헌납 형식으로 정치자금 잔여분 1백39억원,그리고 금융자산 2백33억원등 현금 1백62억원,대지 3백85평짜리 연희동 사저및 대지 94평짜리 바깥채,연희동 땅 2백평,34평짜리 용평 콘도미니엄,골프 회원권 2건등을 나라에 내놓았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 이같은 방식이 채택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는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이현우씨는 누구/6공때 경호실장·안기부장 지내/여단장 시절 인연… 9·9인맥 핵심 신한은행 서소문지점 3백억원 차명계좌에 대한 검찰수사와 관련,22일 대검에 출두한 이현우 전청와대경호실장(57·육사 17기)은 노태우 전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측근중의 측근이다. 이전실장은 노전대통령이 88년2월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경호실장을 맡아 4년6개월동안 근무하다 92년10월부터는 안기부장으로 자리를 옮겨 노전대통령이 임기를 마친 93년2월까지 재직했다. 「하나회」 멤버인 이전실장은 노전대통령이 9공수여단장 시절 대대장으로 근무하는 등 여러차례에 걸쳐 노전대통령을 직속상관으로 모셔 노전대통령의 군부 인맥인 「9·9인맥」에 속한다. 따라서 그는 노 전대통령의 그림자로 통한다 노전대통령과 이씨의 관계는 전두환 전대통령과 장세동 전안기부장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전실장은 청와대 경호실장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56사단장(85년)·정보사령관(87년)을 거쳐 육본인사참모부장으로 근무했다. 그는 경호실장 등으로 재직하면서 정치 개입을 가급적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 「정치색 없는 인물」로 평가됐으나 군인사에는 상당히 간여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전고를 졸업한 그는 충청권인사의 정·관계진출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병보석 전 상문고교장 미국으로 출국

    학교공금 등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4년을 선고받고 항소심 계류중 병보석으로 풀려난 전 상문고 교장 상춘식 피고인(53)이 법원으로부터 출국허가를 받아 지난 9일 미국으로 출국한 사실이 12일 밝혀졌다.
  • 예비군 처벌 완화… 범법자 양산 막는다

    ◎형사고발/훈련불참 2회서 3회로/직장예비군 편성 기피/고용주 처벌규정 신설/국방부 정부는 예비군훈련 불참 등에 따른 범법자가 해마다 2만 가까이 양산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 예비군의 훈련참가 기회를 대폭 늘리면서 법규위반자에 대한 처벌을 약하게 하는 방향으로 향토예비군설치법을 고치기로 방침을 세우고 조만간 당정협의를 거쳐 개정안을 확정키로 했다. 24일 국방부에 따르면 현재 일반훈련에 2차례 불참하면 형사고발하던 것을 3회 불참으로 변경,훈련대상자들에게 훈련참가 기회를 확대키로 했다. 또 각종 법규위반자에 대한 처벌을 대폭 완화,정당한 사유 없이 훈련에 참가하지 않으면 현재 3년이하 징역에 1백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물리도록 돼있는 것을 2년이하 징역에 1백만원 이하 벌금형으로 낮추기로 했다.아울러 지휘관 명령불복종의 경우 현행 2년 징역에 50만원 벌금을 1년징역에 50만원 벌금으로,예비군편성기피에 대해서는 3년이하 징역을 2년이하 징역으로 가볍게 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민자당이나 행정쇄신위 등에서 예비군훈련 불참자 등을 실형이나 벌금형등으로 처벌하지 말고 행정처벌인 과태료 등을 물려 범죄자 양산의 근원을 아예 차단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이는 것과는 크게 차이가 나 논란이 예상된다. 국방부는 이와 함께 최근 직장에서 예비군부대의 설치를 기피하는 것과 관련,고용주가 직장예비군편성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처벌하는 규정을 신설,1년이하 징역에 1백만원 이하 벌금형을 물리기로 했다. 국방부는 그러나 민자당 등에서 제기하고 있는 훈련횟수의 축소나 격년제 훈련,연령 하향조정 등의 방안은 남북대치 상황을 감안할 때 전투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채택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와 관련,국방부는 정치운동 금지 규정을 어기면 5년이하 징역,대리참석에 대해서는 1년이하 징역형 등 예비군 제도 존속에 필요한 처벌조항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제시간에 훈련부대에 도착하지 않거나 복장을 완전히 갖추지 않는 등의 사유로 귀가조치됨에 따라 예비군법을 위반,고발된 사람들은 지난 93년에만 1만8천7백16명으로 이 가운데 16명이 구속되고 1만5천2백28명이 불구속입건됐으며 1천7백79명은 즉심에 넘겨졌다. 94년에는 1만8천3백74명 가운데 구속 47명,불구속 1만5천여명,즉심 3천1백여명 등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중에는 9백71명이 고발돼 이 가운데 16명이 구속되고 2백17명이 불구속입건됐으며 7백38명이 즉심에 넘겨졌다.올들어 고발된 사람이 크게 줄어든 것은 예비군법이 범죄자 양산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일어 군부대에서 자체적으로 고발을 최소화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 관계자는 『예비군훈련과 관련된 범죄자 발생을 최소화하되 군부대에서는 「시간때우기」식이 아닌 철저한 훈련을 실시,예비군훈련을 내실화하려는게 이번 법개정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 전북은 부정대출/전 행장 등 둘 집유

    서울지법 형사합의21부(재판장 서재헌 부장판사)는 31일 전북은행 부정대출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전 전북은행장 정승재(62)피고인과 정피고인에게 대출커미션을 건네준 제성그룹회장 문훈봉(46)피고인에게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죄(횡령)를 적용,각각 징역2년6월에 집행유예 4년과 징역5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 타이슨의 표리(외언내언)

    뉴욕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편모슬하에서 어렵게 자라난 12살의 흑인소년 마이크 타이슨은 비행소년 교도소인 트라이언학교로 끌려간다.사람을 두들겨패고 돈을 뺏었기 때문.그곳에서 전직 프로권투선수였던 보비 스튜어트라는 카운슬러를 만나 권투에 몰입한다. 타이슨이 프로무대에 데뷔한 것은 18살때.이후 1년만에 19연속 KO승이라는 놀라운 주먹을 과시했고 86년 11월23일 WBC헤비급 타이틀전에서 챔피언 트레비 버빅을 KO로 눌러 최연소 헤비급 세계챔피언(20살4개월22일)의 신화를 창조했다.그 이듬해인 87년 9월2일에는 헤비급통합챔피언에 등극,「핵주먹」으로서의 명성을 드높였다.90년 2월11일 제임스 더글러스에게 챔피언 벨트를 뺏기기까지 타이틀전 파이트머니로 벌어들인 돈만 7천8백50만달러.우리 돈으로 6백20억원이 넘는다. 화려한 명성과 엄청난 부를 한손에 쥔 그가 몰락의 구렁텅이에 빠져든 것은 방탕한 생활때문.91년 7월 18살의 미인대회 출전 흑인소녀를 강간한 혐의로 기소된 타이슨은 92년 3월 6년 징역의 실형을 선고받고 3년동안 복역한뒤 지난 3월25일 가석방됐다.그는 지난20일 다시 핵주먹을 휘두르면서 화려하게 링에 복귀했다.경기결과는 1회 89초만의 실격승.4년만에 링에 오른 타이슨이 이날 챙긴 파이트머니는 2천5백만달러(약2백억원).1초에 2억2천만원을 벌어들인 셈이다. 타이슨이 재기전을 갖든 말든,또 얼마나 받았건 상관할 바 없지만 강간죄로 실형을 산 그의 재기를 위해 이처럼 요란한 쇼를 펼쳐야 했는지 우리 정서로는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미국에서도 그의 재기를 반대하는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경기가 열린 라스베이거스 MGM호텔앞에서 여성인권단체 회원들이 「강간은 스포츠가 아니다」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시위를 벌였고,LA타임스지는 18일자 1면 톱으로 타이슨의 재기전을 강력하게 비난했다.스포츠스타의 도덕성문제를 되새겨 보게 된다.
  • 일 문화원에 화염병/대학생 6명에 집유/서울지법 선고

    서울지법 동부지원 형사합의부(부장판사 송동원)는 18일 지난 6월 일본문화원에 화염병을 던진 혐의로 구속기소된 강국진씨(20·J대 사학과 4년)등 6명에 대해 현주건조물방화죄 등을 적용,각각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기습시위를 벌이고 화염병을 투척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지만 초범이고 가담정도가 경미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 출간/연변조선족 작가 김학철씨(인터뷰)

    ◎“중국내 조선의용군 항일투쟁사 전하고 싶어 집필” 『중국땅에서 일본에 혼신으로 맞섰으면서도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이 잊혀져가고 있는 조선의용군의 역사를 글로 남기고 싶었지요』 조선의용군 일원으로 항일투쟁에 가담했던 연변 동포작가 김학철(80)씨의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이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왔다.광복 50주년을 맞은 지난 15일 기자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그는 『혹독한 일제탄압기인 지난 30년 대에도 우리끼리는 한마음으로 독립투쟁에 나섰다.나라를 되찾은지 50년이 되도록 국토가 두동강난채 있을줄 몰랐다』고 한숨지었다. 19 16년 원산에서 태어난 작가의 삶은 가시밭길로만 이어져온 우리 민족의 신산스런 현대사를 거울처럼 보여준다.「넉가래(갑·수)」하나없이 「오리(을·우)」투성이인 성적표로 어머니를 걱정시키던 개구쟁이 소년 김학철은 멀쩡히 책값을 치르고도 일본순사한테 도둑으로 몰리자 민족감정이 불끈 솟는다.임시정부에 투신코자 다니던 보성고보 교복을 입은채 가출,상해까지 숨어들지만 정작 임시정부는 못찾고조선의용군에 끈이 닿는다.41년 일본과 교전중 포로가 돼 나가사키 형무소에서 부상당한 다리 한짝을 잘라내고 해방 때까지 복역한다.하지만 이 시기는 기나긴 감옥나들이의 서곡일 뿐.김일성 정권의 독재와 맞서다 중국으로 쫓기다시피 건너간 김학철에겐 문화혁명의 회오리와 또 다른 모택동 독재가 기다리고 있었다.바른말 잘하는 작가는 모택동을 천안문위에 올라선 벌거벗은 황제라고 비꼬면서 문혁의 실상을 낱낱이 고발한 「20세기의 신화」를 썼다가 10년징역을 포함,24년동안 실권된다.지난 80년 작가는 겨우 복권됐지만 작품은 아직 빛을 못보고 있는 상태. 이처럼 고난에 찬 일생을 털어놓는 작가의 어조는 그러나 낙천적이다 못해 익살맞기까지 하다.유년시절,독립투쟁당시,하다못해 감옥생활에 이르기까지 웃음을 머금게 하는 주변인물들의 일화가 살아있기 때문이다.험난한 시대를 살았으면서도 지은이가 지켜온 인간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이 역사를 결코 비관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이 모든 것을 단지 기억에 의지해 써냈다는 작가는 『앞으로는 연변 조선족이 소수민족으로 겪는 불익도 다뤄볼 예정』이라며 나이가 꺾지못한 창작욕과 인간애를 말했다.「최후의 분대장」은 번역이 끝나는대로 일본 이와나미 출판사에서도 출간된다.
  • 광복절특사 1,780명 가족품에/어제 전국 교도소 등서 풀려나

    ◎김 전해참총장·최장기수 김선명씨 포함 법무부는 광복 50주년을 맞아 단행된 특별사면대상자 가운데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던 1천1백55명과 모범수형자 3백52명,모범소년원생 2백25명 등 모두 1천7백80명을 15일 상오10시를 기해 전국 교도소와 구치소·소년원에서 일제히 석방했다. 이날 출소자 가운데는 군인사 및 율곡비리사건과 상무대비리사건으로 각각 징역 3년씩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던 김종호(59)전해군참모총장과 청우종합건설 조기현(57)전회장 등이 잔여형기의 집행면제에 따라 서울 영등포·의정부교도소에서 각각 석방됐다. 특히 43년10개월의 세계 최장기 수감을 기록한 미전향장기수 김선명(70)씨도 이날 수감중이던 대전교도소에서 출소해 가족의 품에 안겼다. 대전교도소에서는 또 42년을 복역한 안학섭(65)씨와 38년을 복역한 한장호(72)씨도 함께 출소했다. 이밖에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8년6개월동안 복역해온 장모씨(53)등 무기수 6명과 형기 10년이상을 복역한 43명을 비롯,각종 기능자격 취득자및 기능대회 입상자 90명이 가석방 및가퇴원대상자에 포함돼 출소했다. ◎전국 교도소 주변 이모저모/김선명씨 등 장기수들 서로 얼싸안고 눈물/환영나온 민가협회원들 경비원과 실랑이 정부의 사면조치로 15일 상오10시를 기해 전국 각 교도소와 구치소,소년원별로 사면대상자들이 일제히 석방됐다. ○…최장기수 김선명씨 등이 풀려난 대전교도소 앞에는 상오8시부터 민가협회원과 대전지역 대학생 등 50여명이 나와 환영.이들은 북한에 밀입북했던 임수경(28·여)씨의 확성기 구호에 맞춰 『김선명선생님 빨리 나오세요』를 연호하며 교도소경비원들과 한때 실랑이. 임씨외에 문익환 목사와 함께 북한을 방문했던 유원호씨,유서대필사건의 강기훈씨 등 재야인사들도 보였다. ○…대전교도소에서는 상오9시15분쯤 42년을 복역한 안학섭(65)씨가 제일 먼저 나왔으며 김선명씨와 38년을 복역한 한장호(72)씨의 순으로 출소. 이들은 이미 출소한 다른 장기수들을 얼싸안고 수십년만에 되찾은 자유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민가협회원들은 이들에게 화환을 걸어주었다. 출소한 장기수들은대부분 초췌했으며 특히 김씨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쇠약한 모습이 역력. ○…김씨 등은 한결같이 『아직도 비전향 장기수들이 많다』며 『이들의 조속한 석방을 위해 함께 노력해줄 것』을 당부. 한씨는 『오로지 통일을 기다리며 살아왔는데 현실은 아직 그렇지 못한 것같다』며 『여러 사람들이 힘을 모아 냉전의 이데올로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안씨는 『분단된지 50년이 다 됐지만 땅과 민족이 아직 화합할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며 『현실을 좀 익힌 다음 할 일을 찾겠다』고 설명. ○…전 전대협의장 김종식(28·전 한양대총학생회장)씨는 상오10시 충남 홍성교도소 문을 나섰다.한총련 소속 대학생 30여명과 가족들이 그를 맞이했다. 김씨는 지난 91년3월 전대협의장으로 선출된뒤 각종 반정부시위와 정원식 전 국무총리 밀가루세례사건을 주도하는 등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구속돼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지난 92년9월부터 홍성교도소에서 복역해 왔다.
  • “세계 최장기수” 김선명씨/6·25때 수감… 44년만에 출감

    이번 사면에 포함된 김선명씨(71)는 45년만에 출감한다.간첩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해왔다. 국제사면위원회와 민가협은 김씨가 흑백차별에 반대하다 27년간 옥살이를 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의 기록을 깬 세계 최장기수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기도 양평태생인 김씨는 6·25기간중 의용군으로 활동하다 9·28수복후 월북,지하당 건설임무를 부여받고 침투하다 철원근방에서 체포됐다. 그는 52년 고등군법회의에서 간첩죄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뒤 마포교도소에서 복역했다. 그러나 53년3월 육군본부 법무감실에서 그를 다시 조사,간첩혐의로 다시 재판을 받게 해 그해 7월 사형이 선고된뒤 이듬해에 무기로 감형됐다.
  • 미얀마인 밀항 도운 한국인 2명에 실형/일 지방재판소

    【도쿄 연합】 일본 후쿠오카(복강) 지방재판소는 1일 미얀마인들의 밀항사건에 관여한 한국인 김영태씨(47·갑판장)에게 징역 1년을,강석문씨(37·선장)에게 징역 1년2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각각 선고했다. 김씨 등은 지난 5월 일본에 집단 밀항하다 붙잡힌 미얀마인들을 승선시켜준 혐의로 기소됐었다.
  • 지방의회 벌칙제정권 없다(사설)

    대법원이 본격적인 지자제 출범에 때맞춰 1기 시·도의회가 제정한 「증언·감정등에 관한 조례」에 대해 4년만에 무더기 무효판결을 내림으로써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의 관계정립에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되었다. 이 조례의 무효 판결은 외형적인 법률논쟁에 대한 최종 결정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그 본질이 지방자치단체와 의회간의 집단적인 힘겨루기 양상이었으며 그동안 양 기관은 끊임없는 전면대결과 갈등을 겪어 왔다.이로써 지방의회의 권한이 크게 제한됐다는 비난의 소지도 있으나 세계 각국에서 지방의회에 벌칙 제정권까지 준 사례는 흔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예상된 결과라고 하겠다. 문제가 된 증언·감정에 관한 조례는 지방의회가 시·도 공무원들에 대한 감시권한을 강화하기 위해 의회에 출석·증언을 거부하거나 허위로 진술·감정을 한 공무원에 대해 징역 3월이하나 1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이다.그러나 조례안 벌칙규정이 법률적 근거없이 형벌을 정하고 있어 지방자치법은 물론 헌법상의 죄형 법정주의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점이다.실제 조례의 내용은 국회 증언감정법 못지않은 권한과 벌칙규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비록 지방자치단체의 벌칙제정이 위법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긴 했으나 자치단체장과 공무원들은 지방의회의 요구가 있을 때는 성실하게 증언할 의무가 있다.개정 지방자치법은 정당한 이유없이 의회 출석이나 증언을 거부할 때는 5백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릴 수 있고 위증자에 대해서는 고발조치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지방자치가 건전하게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의회와 자치단체간의 「협력과 견제」의 성숙한 관계가 요구된다.의회가 법적인 근거도 없이 공무원 「길들이기」의 수법으로 단체장등에게 필요 이상으로 증언을 요구한다면 행정이 위축돼 지역사회 발전의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 「5대 개혁과제」 복귀용 구호 인상/DJ 회견 내용속의 「비논리」

    ◎정국 위기론­뚜렷한 근거없이 아전인수식 진단/민주당 내분­상당부분 자기책임… KT에 떠넘겨/통일의 주역­지역 등권론 외치며 민족통합 될까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의 18일 기자회견내용은 2년7개월만에 대국민약속을 뒤엎고 정계에 복귀,민주당을 깨고 신당을 창당해야만 하는 불가피성을 국민에게 이해시키기에 미흡했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반응이다.「솔직하고 진솔한 자세」를 다짐했지만 정작 회견의 많은 부분은 아전인수식 변명으로 일관한 인상이 짙다는 지적이다. 김이사장은 정계은퇴 번복에 대한 사죄대목은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는 한마디로 넘어가고 은퇴당시와 현재의 상황변화가 엄청나 번복이 불가피하다는 점만 강조했다.현상황을 「심각한 국가적 위기」라고 진단하는 그는 『은퇴당시 기대대로 정부와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을 다하고 있었다면 정계에 복귀할 엄두도 낼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말하자면 정부와 야당인 민주당이 모두 잘못해 국가적 위기상황을 초래,그 해결을 위해 자신의 정계복귀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현시국을 국가적 위기라고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설령 그의 인식이 옳다고 하더라도 그런 상황이 곧바로 자신의 정계복귀를 정당화하는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각론으로 들어가 민주당의 난맥상과 관련,김이사장은 「9인9색」의 계파정치를 문제삼았다.그러나 그 원인의 대부분을 그 자신이 제공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즉 은퇴이후에도 권노갑 부총재를 대리인으로 하여 당무에 대한 수렴청정을 계속해왔으며 이것이 곧 이기택총재의 지도력 약화,민주당의 분란으로 연결돼왔다는 것이다. 이총재측은 『김이사장측이 이총재와 당을 흔들어 내분을 일으켜놓고 그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있다』며 적반하장이라고 비난하고 있다.「한지붕밑 아홉가족」이 된 것도 김이사장의 원격조정을 위한 「분리·견제」전술의 결과라는 주장이다.또 총재를 「얼굴사장」으로 격하시키고 「오너」가 설쳐댄 결과 이총재가 대통령의 대화상대가 될 수 없었다면 그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느냐고 따진다. 경기지사 선거패배의 책임을 묻는 것 또한 명분이 약하다는 분석이다.서울에서 승리한 것은 오로지 김이사장의 공로이고 경기도 패배는 이총재만의 책임이라는 것도 자연스럽지 못하며 책임을 묻더라도 당헌·당규절차에 따라 전당대회를 통해 해야 하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전당대회에서의 폭력사태등 불상사가 우려된다고 했지만 이를 막기 위한 노력은 일체 생략한 채 신당을 창당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이다. 김이사장이 제시한 신당의 5대개혁과제에도 모순이 적지 않다.우선 젊은 세대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정치를 표방했지만 정국을 「후(후)3김시대」로 역류시킨 그가 과연 이런 역할을 자임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또 개혁과제로 「단계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의 주역」을 자임하고 나선 데 대해서도 지역등권론을 들고나와 지역분할구도를 더욱 강화시킨 그가 민족의 대통합을 추진할 수 있겠느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전체적으로 김이사장이 제시한 신당의 개혁과제는 앞으로의 추진과정을 지켜봐야겠으나 자신의 정계복귀를 정당화하는 구호에 불과한 인상이라는 게정치권의 중론이다. ◎「대권 4수의 길」 DJ의 정당편력/87년 평민당 창당… 두번째 대권도전 고배/「꼬마 민주당」과 합당… 92년 대선 패배후 은퇴 「대권4수」의 길로 다시 들어선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은 40여년동안 숱한 정당생활을 거쳤다. 김이사장은 30살 때이던 지난 54년 목포에서 무소속 후보로 3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원내진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김영삼대통령이 25살의 나이로 최연소 당선기록을 세운 때였다.58년 4대 총선에 민주당후보로 나섰으나 낙선했고 5대 때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당선됐으나 5·16으로 며칠만에 내놓았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정당에 참여한 전력은 이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광복직후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와 좌익정당인 신민당에 잠시 참여했다.좌익에 환멸을 느껴 탈퇴했지만 이 경력은 그에게서 평생 「색깔론」의 꼬리를 떼어놓지 못하게 한 빌미가 됐다. DJ(김이사장)는 첫 소속정당인 민주당에 입당하면서부터 장 면박사의 총애를 받아 민주당 구파의 맥을 잇게 된다.60년 신구파의 대립으로 구파가 분당,신민당을 창당할 때 그는 민주당에 남아 있었다. 그러다 「5·16」으로 정치규제에 묶여 있던 인사들과 63년 민주당 재창당에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했다.65년에는 민주당이 윤보선총재가 이끄는 민정당과 통합,민중당을 창당할 때 합당 중재역을 맡았다. 그는 67년 양대 선거에 대비해 야권 통합운동이 본격화되면서 민중당과 신한당이 통합된 신민당에 참여했다.김대통령과의 경쟁은 원내총무 경선에서 처음 시작됐고 그는 패배했다. 이어 71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서 대선 첫 패배를 맛보게 된다.72년 유신이후 망명생활을 하다 73년 일본에서 납치사건을 겪고부터 「재야」에 몸담게 된다.80년 「서울의 봄」 때도 김영삼총재의 신민당에 입당하지 않고 재야에 남아있었다. 80년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은뒤 무기징역,20년형으로 감형되는 과정을 거쳐 82년 도미,민주화 투쟁을 계속했다. 3년 뒤인 85년 2·12 총선 직전 귀국,김대통령과 함께 민추협공동의장 자격으로 신민당 돌풍을 일으키며 정치재개의 발판을 마련했다. 87년 이른바 「이민우구상」 등과 관련,김대통령과 함께 신민당의 대다수 의원들을 이끌고 통일민주당을 창당했으나 야권 대통령후보 단일화 문제로 김대통령과 결별,제갈길로 나섰다.이 때 평민당을 창당,대선에 두번째 도전해 다시 실패하지만 이듬해 여소야대 정국아래 제1야당의 총재가 됐다.그러나 90년 「3당통합」으로 하루아침에 소수야당의 총재로 전락했고 몇차례의 재야인사들을 흡수하면서 당명을 신민당으로 바꾸었다.이어 14대 총선에 대비,이기택 총재의 「꼬마민주당」과 합당,이총재와 공동대표를 맡았다. 이듬 해인 92년 대통령선거에 세번째 도전하게 되지만 또다시 패배한 뒤 93년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떠났다.
  • 자전거 활성화(외언내언)

    「자전거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5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활성화법이므로 상당한 의욕이 담겨 있고 독려를 위한 요구와 벌칙도 적지 않다.그러나 과연 실행될 수 있을 것인가에는 아직 문제가 남아 있다. 이제 곧 공공주차장은 5%의 공간을 자전거보관소로 내놓아야 한다.줄을 그어 자리를 명시하더라도 그게 잘 지켜질지 의문이다.공공도로의 신설·확장·재정비시에는 자전거도로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기존도로는 또 자치단체장이 2년내 정비계획을 세워야 하고 그것으로 자전거도로가 지정된 것으로 본다.도로의 설정은 늦어도 2년이면 전국적으로 완성이 된다. 하지만 이 도로의 질서는 누가 책임지는가.자동차운전자들이다.자전거도로가 없는 이면도로까지 포함하여 자동차와 오토바이는 자전거보호의 의무를 지고 자전거도로를 통행하면 1년이하 징역이나 2백만원이하 벌금을 내게 된다.주정차도 범칙금 5만원이다.우리 습속에서 이것이 지켜지리라고 믿을 사람은 매우 적고 결국 교통경찰의 단속항목만 늘어날 것이다. 통계상으로 현재 자전거교통분담률은 통산 3%.시지역 2.3%,군지역 5.6%,서울 0.8%다.그동안 내무부는 자전거도로공사비도 적지않게 써왔다.94년만해도 1백56억원을 썼다.물론 군지역이나 외곽국도에 쓴 것이다.도시에서는 자전거가 발붙일 상황이 아니다.그러나 자전거도로가 필요한 것은 도시이다.이것이 문제의 어려움이다. 서울시정개발원이 지난 4월 자전거이용조사를 한 것이 있다.77%가 자전거를 타고 싶긴 하지만 교통질서난폭성이 무서워 타기가 두렵다는 반응이 40%였다.교통사고 불안감을 줄이는 대책이 먼저 있어야 자전거사용이 늘어날 수 있다.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도시교통난 해결의 최선책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자전거이긴 하다.「미래의 차」라고까지 부른다.그러나 우리의 행태는 전혀 다르다.자전거도로를 만들기전에 그 실현가능성을 보장할만한 운동이나 계몽프로그램들이 더 중요시돼야 한다.
  • 선거사범 조속 사법처리/검찰 방침/비용초가·불성실 신고 엄중처벌

    대검 공안부(안강민 검사장)는 28일 이번 4대 지방선거의 당선자가 확정됨에 따라 수사 또는 내사를 받고 있는 선거사범을 가급적 빠른 시일안에 소환,조사한 뒤 사법처리 하기로 했다. 검찰은 특히 후보자의 선거비용을 실사한 결과 불성실신고를 했거나 법정 선거비용을 초과해 지출한 후보자에 대해서는 엄단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금권선거를 뿌리뽑고 돈안드는 깨끗한 선거풍토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검찰은 선관위가 후보자들의 선거비용 수입·지출회계서와 증빙서류를 제출받아 선거비용에 대한 실사작업을 벌인 뒤 법정선거비용을 초과지출한 회계책임자 등에 대해 수사의뢰나 고발을 해오면 바로 수사에 나서기로 했다. 검찰은 그러나 선관위가 자체조사를 거쳐 고발이나 수사의뢰를 해오지 않더라도 선거전이 혼탁했다고 판단되는 지역에 대해서는 자체적으로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통합선거법에 따르면 각 후보의 회계책임자는 선거일후 30일까지 「선거비용 수입·지출보고서」를 해당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해야 하며 정당한 사유없이이 기간내에 제출하지 않거나 허위로 작성·제출하는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춘천지검 영월지청은 이에 앞서 지난 1월 94년 8월 치러진 영월·평창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선거비용 수입·지출명세서를 허위로 작성,선관위에 제출한 무소속 강도원후보의 회계책임자 강창원(38)씨 등 5명에 대해 최초로 선거비용 수입·지출보고서 허위제출혐의로 기소했었다.
  • 근무수칙 불이행이 도둑 불렀다/조폐창 돈뭉치 절취범 검거 안팎

    ◎범인 황씨 “3년간 한번도 검색 안받아”/검거될 때까지 태연히 타자치며 근무/유부남과 동거 주위 눈총 아랑곳 안해 조폐공사 옥천 조폐창의 지폐 도난 사건은 허술한 경비와 인수인계 절차를 무시한 안이한 근무체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범인 황경순씨(23·여)는 검찰에 연행될 때까지도 침착한 모습을 잃지않고 여유있게 웃기까지 해 수사관과 취재진을 경악게 했다. ○가방휴대 제지안해 ○…황씨는 검찰에서 『지난 93년 정사실에서 근무하면서 단 한번의 보안검색도 받지 않았으며 탈의실로 가방을 갖고 가도 별다른 제지는 없었다』고 진술해 경비의 허술함을 드러냈다. 또 여직원이 4백여명에 이르지만 탈의실에 1명만의 여자 청원경찰이 배치돼 사실상 마음만 먹으면 지폐를 빼내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미소까지 머금어 ○…수사관계자와 옥천조폐창 직원들은 나라를 뒤흔든 엄청난 사건이 입사경력 4년인 기능직 여직원의 범행으로 드러나자 허탈해하는 모습. 황씨는 16일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조폐창에 태연하게 정상출근해 근무한 뒤 검찰에 연행돼 차에서 내리면서 간간이 미소를 머금어 사안의 중대성을 전혀 모르는 듯한 표정. ○…그동안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의혹의 눈초리를 받아온 옥천조폐창 직원들은 황씨가 사무기능직이어서 처음부터 검찰의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았던데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타자를 치며 태연히 근무해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황씨의 부모 황모씨(60)는 대전시 서구 내동 자택에서 이번 사건의 범인이 딸이라는 소식을 듣고 『그럴리가 없다』며 믿지않는 표정. 황씨는 『딸이 1천원권 도난사건이 보도된 지난 13일 저녁 「별일 없느냐」는 전화를 해왔고 조폐창 사건이 어떻게 된거냐고 물었더니 「모르겠다」고 태연히 답했다』는 것.황씨는 딸이 옥천 옥천조폐창에 취업한 뒤 1년 정도 집에서 출퇴근하다 자취를 하겠다며 집을 나갔다고 말했다. ○“돈없어 고민” 토로 ○…황씨는 최근에는 여관비가 밀려 주인으로부터 독촉을 받았으며 투숙중인 여관에서 발견된 일기장에는 『또 부도났다.돈이 없어 고민이다』는 내용이 여러 곳에 적혀 있었다. ○…황씨는 1백64㎝의 키에 귀여운 용모로 애인 조씨와 지난 해 12월부터 대전의 여관을 돌며 동거해 왔으며 조씨는 사기 등의 전과로 지명수배된 상태다.조씨는 아침 저녁으로 황씨를 차로 출퇴근시켜 줘 그동안 사내에서는 소문이 파다했으나 본인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는 것.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여관주인은 『황씨가 머무는 방에 한 남자가 자주 들러 처음에는 술집여자인 줄 알았다』며 『이 사건이 보도된 뒤 황씨로부터 받은 신권이 아무래도 꺼림칙한데다 이상을 발견,신고하게 됐다』고 말했다. ○15일에도 제보 받아 ○…대전 동부경찰서는 검거 전날인 15일 하오 여관 주인 박씨의 제보를 받고 형사대를 급파,황씨가 묵던 객실의 양쪽방에 잠복했으나 황씨가 친구집에서 잠을 자고 돌아오지 않아 검거에 실패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한국조폐공사법은 화폐를 훔치거나 횡령할 경우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황씨에게는 단순 절도범(형법 7년 이하 징역)보다 중형이 부과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검찰의 설명.
  • 전과6범 혼혈재소자 “만학만세”/최영철씨 고졸검정 첫 전과목 만점

    ◎국졸학력… 미군부대서 점원 등 전전/“목회자 꼭 되어 이웃에 진빚 갚을터” 올해 고등학교 졸업자격 검정고시에서 전과6범으로 감호소에서 복역하고 있는 최영철씨(42)가 검정고시사상 처음으로 전과목 만점의 기록을 세우면서 전국수석의 영예를 차지했다. 국민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최씨는 지난 92년 3월 사기죄로 징역1년에 보호감호 7년을 선고받고 경북 청송 제1보호감호소에 입소한 뒤부터 검정고시에 도전하기로 결심,같은 해 8월 고교입학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한데 이어 지난달 5일 고졸 검정고시에서 국어·영어·수학등 모두 9과목에서 만점을 받은 것이다. 아직 영어의 삶을 살고 있는 최씨지만 이날 합격 소식을 듣고는 『만점이라는 점수는 아마도 새로운 삶을 개척하라는 이웃 사람들의 채찍인 것 같다』면서 『남은 4년9개월의 감호생활을 마치면 목회자가 되어 어려운 이웃에게 봉사하며 떳떳한 삶을 살 계획』이라고 밝혔다. 백인인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최씨는 혼혈아에 대한 우리사회의 냉대 속에 고아원을거쳐 14살이 되던 74년부터 경기도 부평의 미군부대에서 막일꾼·점원등으로 일하다 20살 때 미군PX의 물건을 몰래 빼내 판 것이 들켜 전과자의 길을 걷게 됐다.
  • 구멍뚫린 국경(두만강 7백리:13)

    ◎예나제나 북한쪽 변방선 밀수성행/쌀팔아 소금사서 야밤 국경 넘나들고/강변주민 10명중 8명은 밀수로 생활/보초서는 민병도 거들고 북한 요원도 한몫 두만강 7백리 용정시 개산툰진 선구촌에는 도적골이라고 있다.밀수꾼들이 도둑처럼 그 골짝으로 무리져서 다녔다고 해서 난 이름이다.이름 그대로 선구,배가 들어오는 어귀라서 역래로 밀수가 성행하던 고장이다. 일제시기 선구에는 해관과 일본경찰서가 있었고 곡물수레를 배에 실어 강을 건너 종성으로 넘나들었다.밀수꾼들은 야밤 삼경 도적골에서 도둑 고양이처럼 쌀짐을 지고 살금살금 강을 건너갔다.종성장거리에서 쌀을 팔아 소금을 사서 다시 야밤 도강을 시도했다.선구촌의 같은 패거리들이 소리없는 신호를 강건너로 보내는데 감시가 심할 때는 집 문앞 빨랫줄에 빨래를 널었다.빨래가 없으면 안전하다는 신호로 여기고 강을 건넜다. ○선구촌에 「도적골」 존재 해관을 용케 통과했어도 죽음의 신은 내내 그림자처럼 묻어다녔다.용정시 삼합진 경내에는 재피골이라고 있다.「잡히는 골」이 입에 오르면서 줄어든 이름이다.광복 전에 재피골에는 공안분주소가 있어서 오랑캐령을 넘는 밀수꾼들이 많이 잡혔다.그래서 사람들은 중간 골짜기로 다녔다.그런데 그 골짜기에 중국사람 쑹(송)가가 홀아비로 아들 하나를 데리고 살았단다.산중의 외딴 그 집으로 밀수꾼들이 홀로 들어가면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쑹가는 사람을 죽여서 뒷산 감자굴에 차곡차곡 쟁여놓았는데 광복후에야 비로소 발견되었다. 용정시 백금향 평정 사람이 조선에 가서 무명 다섯필을 둘러메고 강을 건너 집으로 가는 길에 백금의 김옥래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이튿날 평정으로 떠나갔는데 종무소식이었다.후에 숲속에서 나무에 목을 매고 죽은 시체를 발견했다.그런데 목을 맨 가죽띠가 김옥래의 것이었다.잡혀가서 모진 고문을 당했는데 결국 무사히 풀려났다.그런데 몇십년 후 문화대혁명때 그 일로 다시 잡혀 맞아죽었다고 한다. 운수 좋게도 재피골의 쑹가같은 강도를 만나지 않고 갈리골(오고 가는 길에 그 곳에 당도하면 목이 갈한다,다시 말하면 목이 탄다고 해서 생긴 이름)에 이르러 갈한 목을 축이고 집에 당도했다 해도 수시로 덮쳐드는 집사대의 눈길이 무섭다.집사대가 마을에 들어서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곤 했다.당시 소금은 금물이고 강역의 사람들은 열에 여덟은 밀수로 살아가는 판이라 두근닷근 뛰는 「일곱근」마음은 한시도 시름을 놓지 못했다.일단 발견만 되면 영창에 들어가거나 벌금을 톡톡히 내야만 했다. 내 외할아버지 허영혜는 강원도 내촌면 물레방앗골에서 양부모 시묘 6년을 해온 소문 난 효자였다.20년대 「나라가 망했는데 효자가 어찌 있으랴」고 효자문을 거절하고 오늘의 화룡시 용화향 개사냥골로 이주를 해왔었다.한번은 내 모친(허숙·78세·현재 필자와 동거)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해였디.집사대가 오자 아버지가 소금을 옥수수밭에 감추었다 이기야.그런데 세상을 모르는 내가 소곰재(잠자리)를 잡느라고 「소곰재 꽁꽁 앉은 자리 앉아라.먼데 가면 죽는다」라고 하면서 옥수수밭을 뱅뱅 돌지 않았겠니.그 소리를 듣고 집사대가 옥수수밭을 수색해서 아버지를 붙잡았디.집사대 대장이 일본 사람인데 아버지의 상투를 끄잡고 물매를 안겼디 않았갔니.벌금을 내고 무사히 풀리긴 했어도 아버지는 일본놈이 더러운 손으로 상투를 어지럽혔다고 그날 저녁 머리를 잘랐디.목숨보다도 더 귀중히 다루어온 아버지의 상투는 철없는 내 불찰로 없어졌다이』 ○소장사로 떼돈 벌어 광복후 공산당은 청년들로 공안부대를 조직하고 변경을 단속했다.하지만 청년들 역시 밀수꾼 집안의 자손이고 또 그들도 밀수를 밥 먹듯 해왔으니 보초는 허수아비나 다를바 없었다.천중백옹은 대약진 시기 부동촌 촌장으로 사람들을 조직하여 대량 밀수를 하면서 민병들을 거느리고 변경을 순라했다. 무정한 법은 유정한 인정에 진다.이것을 중국 사람들은 앞문을 막으면 뒷문이 열린다고 한다.박길남옹의 부친 박학철의 밀수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광복나서 얼마간 중국에서 조선 돈이 통용되었디요.북흥촌 김영준이라는 사람이 회령에서 온 소련군한테 조선 돈을 받고 소를 팔았거든요.그 돈을 가지고 회령에 가서 소를 사자니 이미 폐지된 화폐였다 이겁네다. 그때 소장사가 좋았다구요.중국에서 소 한마리를 팔아 갖고 가면 소 두마리가 되었디요.우리가 살던 대소가 모두 17호였는데 세집을 내놓고는 모두가 소장사를 해서 한해에 몇백마리가 건너왔습네다.골안에서 잡아서 삼합장에서 팔기도 하고 용정에 갖다 팔기도 했디요.검사잠 잠장은 보고도 못본체 했구만요.그때나 지금이나 고약한 놈은 어디에나 있었습네다.한 마을에서 누군가 고자질을 해서 위에서 공작조가 내려오지 않았갔시요.집집마다 장정들이 잡혀 들어갔디요.이학균이가 공작조 조장이고 간사로 박씨가 있었는데 우리하고 동성동본이라 어찌어찌 하라고 알려주어 아버지는 30만원(지금 돈 30원)을 벌금내고 놓여 나왔디요.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2년,혹은 4년씩 거의 모두가 징역살이를 했구만요. ○53년이후 최고 극성 변강 보초를 강역 민병들이 담당했으므로 녹아나는 것은 면목을 모르는 외지 사람들이었다.그때만 해도 사람들은 고지식하고 소박했으므로 돈보다 정으로 통했던 것이다.낯선 사람이라 해도 강하게 나오면 방임했다.밀수꾼은 모험을 하는 것이요 보초꾼은 직책일 뿐이라 각박하게 나오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끝나면서 1953년부터 3년동안 밀수는 고조를 이루었다.쌀을 갖고 가서는 암모니아비료며 광목이며 백곰표 크림이며 연필,종이 등을 대량 들여왔다.보초를 서는 민병들도 밀수대열에 끼어들었다.집집마다 밀수를 했으므로 처벌을 준다고 해도 기껏 경고를 하는데 그칠 수밖에 없었다.당시 두만강역에서 밀수에 죽은 사람은 단 하나,그것도 공포를 쏜 총알에 재수없게 맞았다.총을 쏜 민병은 당황한 김에 시체를 끌어다가 파묻었다.
  • 중,왕단 등 6명 연행/반체제인사 검속 강화/천안문 6주 대비

    ◎4명은 며칠째 행방불명/당타도 「연합전선」 출현… 비상 【북경 AFP 연합】 천안문사태 6주년을 앞두고 중국의 반체제 인사 10여명이 공안당국에 의해 연행되거나 행방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중국반체제 소식통들이 22일 밝혔다. 이 소식통들은 또 공안당국이 반체제 인사들의 가택에 대한 감시활동도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안당국은 21일 북경에서 지난 89년 천안문광장 민주화운동의 핵심적 인물인 왕단(26)을 비롯해 리우 니안춘(47),전산동대학 학생지도자 양 쿠안싱(25)등 3명을 연행했으며 지난주에도 왕 시즈헤(45),리우 샤오보(36),후앙 시앙등 3명이 연행된 바 있다. 또 천안문 학살사건에 대한 비디오를 만들었다가 4년 징역형을 살았던 시인 랴오 이우(35),법학 강사 첸 샤오핑(30),천안문 시위 가담자 뎅 후앙우와 7년 징역형을 복역하고 있는 리우 강의 동생인 리우 용등 반체제 인사 4명은 최근 며칠동안에 「사라진뒤 행방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이 소식통들은 밝혔다. 한편 왕단과 리우 니안춘 등은 의회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 인권보호를 위한 법률제정을 촉구하는 또하나의 탄원서를 보내기 위해 50여명의 서명을 받는 등 준비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이 소식통들은 설명했다. 【홍콩 연합】 중국 강소성 성도 남경의 지식인들과 정부관리 등이 중국 공산당을 전복시킬 목적으로 「연합전선」이란 이름의 조직을 최근 창설했다고 홍콩의 영자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가 22일 보도했다. 이는 최근 들어 두번째로 결성된 중국공산당 전복을 위한 조직으로 호북성 성도 무한의 지식인들과 노동자들이 같은 목적을 위해 「중국자유민주전선」을 이에 앞서 2월에 조직했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연합전선」 관계자들은 최고지도자 등소평(90)의 죽음이 임박했기 때문에 중국에 정치적 변화를 위한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다고 말했다고 포스트지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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