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징역 22년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혈관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조정안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유시민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판문점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139
  • 물러난 대통령 사회 위해 뭘 하셔야지요?

    물러난 대통령 사회 위해 뭘 하셔야지요?

    “퇴임하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아름다운가게’ 점장을 제안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퇴임(25일) 시기에 맞춰 의미 있는 심포지엄이 열린다.‘존경받는 퇴임 대통령의 역할과 조건’(가제)이란 주제로 19일 희망제작소가 주최한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인사말에서 재활용 물품 나눔단체인 ‘아름다운가게’의 점장 자리도 노 대통령에게 제안할 예정이다. ●“퇴임 대통령 역할, 사회적 논쟁하자” 한국에서 퇴임 대통령 연구는 불모지와도 같다. 한국 현대사는 연구 대상이 될 만한 퇴임 대통령 한 명을 갖지 못했다. 민주화 이전, 대통령 퇴임은 곧 하야(이승만·윤보선·최규하)와 암살(박정희)을 뜻하거나 사형선고(전두환) 혹은 ‘22년 6월의 징역형’(노태우)으로 이어졌다. 민주화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퇴임 뒤 활동이 비교적 과거와 다른 선례를 만들고 있지만 선거 개입 등 제왕적 대통령의 흔적을 여전히 지우지 못하고 있다. 심포지엄은 ‘퇴임 대통령이 사회의 소중한 자산이 돼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희망제작소측은 “연금과 경호 등 법적 예우를 받고 있는 퇴임 대통령이 재임 중 얻은 국정운영 노하우와 인적 네트워크는 그냥 묵혀두기 아까운 공적자원”이라면서 “노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는 지금이야말로 퇴임 대통령의 역할을 놓고 사회적 논쟁이 필요한 때”라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희망제작소는 퇴임 대통령의 긍정적 역할 모델로 미국 역대 대통령들을 주목한다. 심포지엄 발제를 맡은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영미학과 교수는 “초대 조지 워싱턴 때부터 순조로운 정권교체의 전통을 이어온 미국은 퇴임 대통령에 대한 사회적 존경이 형성돼 있지만, 독재로 점철된 한국은 전제 자체가 다르다.”면서 ‘한국적 모델’ 정립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미 국민이 퇴임 대통령들에게 보내는 신뢰는 그들의 초당적 활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재임 중엔 특정 당의 이해에 복무했지만, 퇴임 후엔 당파를 넘어 전 지구적 의제 해결에 앞장서 왔다. 지미 카터가 대표적이다. 재임 기간 동안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그는 전 세계 무주택자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국제 해비탯운동을 주도했다.1994년엔 평양을 방문해 1차 북핵 위기 해결의 물꼬를 텄고, 팔레스타인 분쟁 해결 노력으로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포드 전 대통령은 알코올 중독 및 마약 재활센터 ‘베티포드’를 설립해 5만여명을 치료했으며,‘아버지’ 부시는 2004년 동남아 쓰나미 난민을 구제하기 위해 1억 2800만달러를 모금했다. 클린턴도 현 대선 과정에서 힐러리를 적극 지원하며 당파색을 드러내고 있으나,‘클린턴 글로브 이니셔티브’를 설립해 세계의 빈곤·종교분쟁·기후변화 대처에 적극 나서고 있다. 박원순 상임이사는 “클린턴이 ‘전 세계 빈곤퇴치’를 주제로 3월에 개최하는 홍콩 대회에 초청받았다.”면서 “한국의 퇴임 대통령들도 이젠 재임 기간 동안 확보한 공적 권위를 정치적 당파성을 떠나 전 사회를 위해 쓸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당파성’ 담보 여부가 관건 한국적 역할모델 정착의 최우선 관건도 역시 ‘초당파성’ 담보 여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남북관계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는 등 유의미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지만, 선거 때마다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초당파적 퇴임 대통령만이 가질 수 있는 정치자본을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는 게 안 교수의 지적이다. 노 대통령이 퇴임 후 만들어 갈 역할모델이 새삼 중요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안 교수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노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를 뛰어넘어 선진국형 대통령제를 시스템화하고자 했던 문제의식만큼은 높이 살 만하다.”면서 “‘대연정’ 같은 뒤틀린 정치공학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정치 선진화를 위한 초당적 조정자의 역할이나 동북아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을 수행한다면 노 대통령 나름의 퇴임 후 모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경고도 잊지 않았다.“노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당파적 발언을 그치지 않고 정치 세력 집결자의 역할을 자임할 경우 전직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시각만 강화시킬 것”이란 우려다. 심포지엄 토론자로는 이화영 대통합민주신당 의원, 정윤재 세종국가경영연구소장, 장신기 김대중도서관 연구원, 권율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개발협력팀장 등이 참석한다. 장소는 희망제작소 세미나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BBK 수사 발표] 김경준씨 어떻게 되나

    ‘BBK 뇌관’에서 한순간에 ‘거짓말쟁이’로 전락한 김경준씨 앞에는 이제 검찰의 구형과 재판을 통한 실형 선고가 남게 됐다. 검찰은 5일 김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과 증권거래법 위반, 사문서위조와 사문서 행사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했다. 먼저 횡령죄에서 범죄 이익이 50억원 이상이면 5년 이상에서 무기징역형까지 선고될 수 있다. 김씨는 2001년 7월부터 석 달 동안 옵셔널벤처스 회사 자금 319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2000년 12월∼2001년 11월 증권계좌 38개를 이용해 가장매매, 고가매수 등으로 612차례에 걸쳐 주가를 조작한 혐의도 받고 있다. 증권거래법 위반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지만 범죄이익이나 회피 손실액의 3배에 해당하는 금액이 2000만원 이상일 경우 그 금액의 3배 이하의 벌금을 치러야한다. 미국 여권과 법인설립인가서 등을 위조한 혐의에 대한 형법상 사문서 위조 및 위조 사문서 행사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해당한다. 단순 계산으로만 따지면 김씨는 최고 무기징역형에 수백억원대의 벌금형을 치러야 하고, 유기징역이 내려진다면 최고 22년6개월이 선고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그 정도까지는 무리라는 게 법조계의 관측이다. 판사 출신인 이충상 변호사는 “재산범죄로 무기징역까지는 가지 않는 게 일반적인 분위기”라면서 “하지만 계속 말을 바꾸면서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는 점 등을 볼 때 10년에서 15년 사이의 중형이 선고되고 벌금도 병과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한편 검찰은 김경준씨의 누나 에리카 김씨와 부인 이보라씨도 횡령 사건의 공범으로 보고 기소중지와 입국시 통보 조치를 했다. 김홍일 3차장검사는 “수사하기 전부터 고소가 돼 있어 기소중지했지만 범죄인인도청구를 하기 위해선 범죄 혐의가 구체적으로 인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김회장 18일 첫 재판… 법원 신속 심리

    아들이 술집에서 맞고 들어오자 화를 참지 못하고 법보다 주먹을 앞세운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에 대한 첫 재판이 18일 오전 10시로 정해졌다. 서울중앙지법은 5일 검찰이 기소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을 형사 8단독 김철환 판사에게 배당했다.법원은 이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사회적 파장을 감안,‘적시(適時)처리사건’으로 지정하고 신속하게 심리하기로 했다. 적시처리 사건 지정은 국가의 막대한 손실이 예상되거나 소모적 논쟁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는 사건, 사회적 파장이 크거나 국민 관심도가 높은 사건을 제때에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한 제도다. 한편 검찰은 이날 보복폭행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 발표에서 사소한 시비로 시작한 사건이 국민적 관심을 끌어 모은 대형사건으로 번진 직접적인 원인으로 ‘김 회장의 돌발 행동’을 지목해 눈길을 끌었다. 서울중앙지검 서범정 형사8부장은 “사건을 처음 맡았을 때는 김 회장이 사건 초기부터 보복폭행을 지휘한 것이 아닌가 의심을 품었다.”면서 “하지만 수사 결과 김 회장이 첫 폭행 이후 10시간이 지나서야 보고를 받고 사건에 가담하게 된 사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검찰은 “뒤늦게 보고를 받은 김 회장이 화가 나 가해자들을 모아뒀다는 청담동 G주점에 직접 들렀고, 윤씨가 없는 것을 알고 난 뒤 화를 참지 못해 청계산으로 옮겨 쇠파이프를 들었는가 하면 윤씨를 찾아 내기 위해 북창동 S클럽으로 이동하는 원정 폭행까지 감행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의 ‘화’가 사건을 걷잡을 수 없이 키워버린 셈이다. 1심에서 구속 상태로 재판을 진행할 수 있는 기간은 최장 6개월이며 김 회장은 수사기관에 26일 동안 구속됐었으므로 구속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은 5개월 남짓이다.한편 김 회장은 혐의가 모두 사실로 받아들여질 경우 ‘흉기 등 상해’죄로 징역 3년 이상 15년 이하의 벌을 받는다. 그러나 7년6개월을 가중(형량의 2분의 1)할 수 있어 최대 형량은 22년 6개월까지 늘어난다.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중국 할머니 청소부서 CEO로 변신 화제

    ‘공공화장실 청소부에서 CEO로’ 중국 대륙에 한 70대 할머니가 불과 4년여만에 공중 화장실 청소부에서 거대한 과학영농 기업 CEO로 변신,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이 기막힌 인생유전의 주인공은 중국 중부 허난(河南)성 우성밍(吳勝明·여·74)씨.그녀는 50대 초반 경제 범죄 혐의로 영어(囹圄)의 생활을 하다가 고희(古稀·70살)가 돼서야 출옥한 뒤 청소부의 밑바닥 생활을 하다 지금은 수만 위안(수억원) 규모의 거대한 농장을 운영하는 사장으로 변신했다.   ▲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우성밍씨.하남상보  우씨는 52살때 경제사범으로 복역중 남편은 떠나가고 딸이 자살하는 불행을 겪고 감옥에서 풀려난 뒤 공중 화장실 청소부로부터 시작해 착실히 돈을 벌어 수만 위안(수억원) 규모의 과수원 농장을 경영하는 CEO로 변신해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하남상보(河南商報)가 23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그녀의 인생은 한마디로 반전이 반복되는 기막힌 한편의 드라마이다.우씨는 22년전인 1985년초까지만 해도 순탄한 생활을 했다.남편과 함께 꾸려가던 농기구을 제작하는 중소기업이 짭짤한 수익을 올린 덕분이다. 하지만 85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그녀의 인생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아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준 뒤 제때 받지 못해 회사의 자금 유동성에 문제가 생겨 부도를 내고 말았다.이 때문에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아 20년 가까이를 복역했다.복역기간중 남편은 떠나가고 마지막 남은 정신적 지주였던 16살난 딸도 자살하는 바람에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을 맛봤다. 70살이 되던 해인 2003년 출옥한 그녀는 공중화장실 청소부로 일했다.매달 월급은 400위안(약 4만 8000원).비록 수입을 적었지만 우씨는 알뜰살뜰 모았다.그 돈으로 20여년전 회사를 할 때 익힌 사업 수완을 발휘,재산을 늘려나갔다.이를 모두 포도밭에 투자했다. 여기에다 그녀의 인생유전 사연과 사회복지사업에 대한 열정 등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중국 대륙 전역에서 돈을 투자하기 위해 달려왔다.상하이(上海)에서 온 천(陳)모씨가 50만 위안(약 6000만원),허난성 카이펑(開封)에서 온 둥(董)모씨가 10만 위안(약 1200만원)을 투자하는 등 투자자가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이 덕분에 조그마하던 포도밭의 규모는 지금 170무(畝·약 1만 7000㎡)로 급성장했다.이를 계기로 우씨는 양링훙양과웨(楊凌紅陽果業) 과기개발유한공사를 설립,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우씨는 “내가 불굴의 투지를 불태우며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딸 때문”이라며 “복역중 자살한 딸이 양노원 등 사회복지사업에 힘써 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보고 이를 따를 뿐이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청소부→CEO’ 70대할머니 기막힌 인생유전!

    ‘청소부→CEO’ 70대할머니 기막힌 인생유전!

    ‘공공화장실 청소부에서 CEO로’ 중국 대륙에 한 70대 할머니가 불과 4년여만에 공중 화장실 청소부에서 거대한 과학영농 기업 CEO로 변신,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이 기막힌 인생유전의 주인공은 중국 중부 허난(河南)성 우성밍(吳勝明·여·74)씨.그녀는 50대 초반 경제 범죄 혐의로 영어(囹圄)의 생활을 하다가 고희(古稀·70살)가 돼서야 출옥한 뒤 청소부의 밑바닥 생활을 하다 지금은 수만 위안(수억원) 규모의 거대한 농장을 운영하는 사장으로 변신했다. 우씨는 52살때 경제사범으로 복역중 남편은 떠나가고 딸이 자살하는 불행을 겪고 감옥에서 풀려난 뒤 공중 화장실 청소부로부터 시작해 착실히 돈을 벌어 수만 위안(수억원) 규모의 과수원 농장을 경영하는 CEO로 변신해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하남상보(河南商報)가 23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그녀의 인생은 한마디로 반전이 반복되는 기막힌 한편의 드라마이다.우씨는 22년전인 1985년초까지만 해도 순탄한 생활을 했다.남편과 함께 꾸려가던 농기구을 제작하는 중소기업이 짭짤한 수익을 올린 덕분이다. 하지만 85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그녀의 인생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아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준 뒤 제때 받지 못해 회사의 자금 유동성에 문제가 생겨 부도를 내고 말았다.이 때문에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아 20년 가까이를 복역했다.복역기간중 남편은 떠나가고 마지막 남은 정신적 지주였던 16살난 딸도 자살하는 바람에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을 맛봤다. 70살이 되던 해인 2003년 출옥한 그녀는 공중화장실 청소부로 일했다.매달 월급은 400위안(약 4만 8000원).비록 수입을 적었지만 우씨는 알뜰살뜰 모았다.그 돈으로 20여년전 회사를 할 때 익힌 사업 수완을 발휘,재산을 늘려나갔다.이를 모두 포도밭에 투자했다. 여기에다 그녀의 인생유전 사연과 사회복지사업에 대한 열정 등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중국 대륙 전역에서 돈을 투자하기 위해 달려왔다.상하이(上海)에서 온 천(陳)모씨가 50만 위안(약 6000만원),허난성 카이펑(開封)에서 온 둥(董)모씨가 10만 위안(약 1200만원)을 투자하는 등 투자자가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이 덕분에 조그마하던 포도밭의 규모는 지금 170무(畝·약 1만 7000㎡)로 급성장했다.이를 계기로 우씨는 양링훙양과웨(楊凌紅陽果業) 과기개발유한공사를 설립,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우씨는 “내가 불굴의 투지를 불태우며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딸 때문”이라며 “복역중 자살한 딸이 양노원 등 사회복지사업에 힘써 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보고 이를 따를 뿐이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권성 헌재재판관 퇴임… “역풍 몰아칠수록 원칙 지켜야”

    권성 헌재재판관 퇴임… “역풍 몰아칠수록 원칙 지켜야”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의견마다 소수의견을 제시해 ‘Mr. 소수의견’이라고 불렸던 권성(65·사법시험 8회)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11일 헌재 대강당에서 퇴임식을 가졌다. 권 재판관의 정년퇴임은 13일이다. 권 재판관은 퇴임사에서 “재판관이기에 앞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 기본적 인권을 누리고 살 수 있었던 건 대한민국이 가진 민주헌법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국가의 진로에는 따로 그늘이 지고 역풍이 몰아닥치는 수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원칙을 굳게 지켜 나라의 민주주의 체제와 헌법을 수호하는데 힘쓰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관에 임명되기 전 명지대 석좌교수였던 권 재판관은 퇴임 후에도 후학양성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1969년 부산지법 판사로 법관의 길에 들어선 권 재판관은 99년 서울행정법원장을 마치고 2000년 헌재 재판관에 취임했다. 권 재판관은 판사시절이던 96년 12·12와 5·18사건 항소심 재판장을 맡아 사형과 징역 22년 6월을 선고받은 전두환·노태우씨를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으로 감형해 주면서 “항복한 장수는 죽이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겨 논란이 되기도 했다.87년에는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과 관련,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억울함을 풀 수 있는 권리라는 ‘신원권’을 도입, 배상판결을 내리기도 했었다. 헌법 재판소 재판관이 된 뒤에서도 그는 이슈가 되는 사건마다 독자적인 논리로 눈에 띄는 소수의견을 내놨다.2001년과 2002년 간통죄 위헌 소송이 제기됐을 때 헌재는 각각 8대1과 7대2로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권 재판관은 간통을 국가가 형사처벌하는 것은 성적 예속을 강제해 인간 존엄성을 침해한다며 위헌 의견을 냈다. 그는 2004년 신행정수도 건설 관련 특별법, 지난해 행정 중심복합도시건설 특별법, 지난 6월 신문법 대부분 조항에 대해서도 모두 위헌 의견을 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식민지 조선을 사랑한 일본 女아나키스트

    한국인의 아내로 살며 조선을 사랑하다 숨진 일본여인의 묘지가 한국에 있어 일본인의 발길이 늘고 있다. 경북 문경시 마성면 오천리에 자리잡은 묘의 주인은 일제시대 독립운동가이자 아나키스트였던 박열(朴烈·1902∼1974)의사의 아내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1903∼1926). 일본 요코하마 출생인 가네코는 문경 출신인 박열 의사의 도쿄 유학시절인 1922년에 만나 일제에 항거하는 아나키스트의 길을 걷게 된다. 경찰이었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가난에 찌든 어린시절, 신문을 팔며 힘든 생활을 했던 이력도 작용했다. 박 의사와 동거하던 1923년 9월1일 간토(關東)대지진 때 가네코는 천황을 암살하려 했다는 대역죄로 박 의사와 함께 검거돼 1926년 3월25일 둘다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일본 당국은 가네코가 그해 7월 우쓰노미야 형무소 여죄수 독방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수감생활 중 박열과 가네코가 옥중결혼을 했다는 소문이 무성했고, 옥중에서 임신까지 하게 돼 당국이 이같은 사실이 외부로 알려질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낙태수술을 하다가 숨졌다는 설도 있다. 이후 박 의사의 형이 일본으로 건너가 가네코의 시신을 수습해 집안 선영인 문경읍 팔령리에 안장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죽은 일본인이 한국에 묻히게 된 배경에는 조선의 남자를 사랑하고, 일본 제국주의를 반대했던 이력이 있었던 것이다. 박열의사기념사업회는 2003년 11월 마성면 박열 의사의 생가 뒤편으로 가네코의 묘를 이장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박열 의사는 경성고등보통학교 사범과에 입학했으며 1919년 3.1운동에 가담하기도 했다. 그해에 도쿄로 건너가 활동하기 시작한 그는 조선인 유학생들과 함께 아나키즘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친일파에 대한 테러활동도 전개했다. 한국전쟁 때 납북돼 북한에서 재북평화통일촉진협회장을 지낸 뒤 1974년 1월17일 사망했다. 일본 릿교(立敎)대 교수를 지낸 야마다 쇼지는 2003년 국내에서 발간된 ‘가네코 후미코:식민지 조선을 사랑한 일본제국의 아나키스트’에서 죽음의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가네코의 일생을 그렸다. 가네코의 짧지만 극적인 삶은 1972년 일본에서 일대기를 그린 ‘여백의 봄’이 출간된 뒤 일본에서 연구모임까지 결성될 정도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가네코의 고향인 야마나시현(山梨縣) 학습추진센터 회원들로 구성된 문인 14명은 3일 문경을 방문, 그의 삶을 기렸다.문경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재소자관리 ‘구멍’

    강간 혐의로 무기징역이 선고된 뒤 모범수로 복역하던 재소자가 교도소 안에서 성폭행과 살인을 하려다 또 무기징역형이 선고됐다. 서울남부지법 제11형사부는 31일 교소도 안에서 재소자를 가르치는 직업훈련 여교사를 성폭행하려다 실패하자 살해하려 한 무기수 김모(42)씨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의 범행이 습관화된 상태이고 미리 성폭행을 계획했으며 자신의 신원 및 범행이 드러날까봐 피해자를 살해하려 한 고의성이 인정되는 만큼 중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희대의 탈주범’으로 무기수가 된 신창원씨에게 징역 22년 6월형이 추가로 선고된 적은 있지만 복역 중인 무기수에게 다시 무기징역형이 선고된 것은 처음이다. 김씨는 지난 4월13일 오전 서울 고척동 영등포교도소 직업훈련소에서 용접 교육을 받다 “치과 진료를 받겠다.”며 교육장을 빠져 나왔다. 김씨는 교도관의 눈을 피해 건물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 1시간 동안 화장실에 숨어 있었다.김씨는 여교사의 교육이 끝날 때를 맞추기 위해 손목시계까지 미리 준비했다. 김씨는 같은 층 컴퓨터 교육실에서 강의를 끝내고 뒷정리를 하던 여교사에게 흉기를 들고 성폭행을 시도하다 반항이 심하자 목을 졸라 살해하려 했다. 당시 교육장은 훈련교사 1명이 재소자 50여명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었으며 김씨의 진료 예약 여부도 확인하지 않았다. 김씨는 검찰 조사에서 “범행 도구를 모두 교도소 안에서 마련했다.”고 진술해 재소자 관리에 구멍이 뚫린 것으로 나타났다. 교도소 관계자는 “훈련교사 1명이 적게는 20∼30명, 많게는 40∼50명의 재소자를 교육하다 보니 감시가 충분치 못했다.”고 해명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그룹 ④-무역·중화학·서비스 CEO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그룹 ④-무역·중화학·서비스 CEO

    “삼성물산의 역사는 삼성그룹의 역사입니다.” 삼성그룹의 모태기업인 삼성물산의 지난해 매출은 9조 6963억원으로 주력인 삼성전자 57조 6324억원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하지만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0%를 비롯해 삼성석유화학, 삼성정밀화학, 삼성카드, 삼성SDS, 제일기획 등 숱한 관계사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주식 1.38%를 보유하고 있고 등기임원(회장)으로 직접 챙기고 있는 데서도 그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이 회장이 등기임원으로 활동하는 삼성 계열사는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물산, 제일모직, 호텔신라, 삼성에버랜드뿐이다. 국내 종합상사 1호인 삼성물산은 84년 3위,1998∼2000년,2002년에 2위를 기록했던 것을 제외하면 종합상사의 매출기준이 달라진 2003년까지 줄곧 매출 1위 기업 자리를 지켜왔다. ●‘그룹의 역사’ 삼성물산과 인재들 고 이병철 회장이 28세였던 1938년 3월1일 대구시 서문시장 인근 수동(현 인교동)에서 250여평 규모로 출발한 삼성상회가 삼성물산의 전신이다. 이 회장은 이에앞서 경남 마산에서 정미소사업으로 큰 돈을 벌었지만 ‘부동산 투자’에서 다 날리고 자본금 3만원으로 상회를 시작했다. 삼성(三星)의 삼은 우리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로 크고 많고 강한 것을, 성은 밝고 높고 영원히 깨끗이 빛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첫 사업은 대구일대에서 생산되는 사과 등 청과물과 포항의 건어물 등을 만주와 중국으로 수출하는 일이었다.‘라면부터 미사일까지’ 취급한다는 종합상사의 70년전 버전인 셈이다. 삼성물산은 삼성의 대표기업답게 거쳐간 인물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초창기 삼성상회의 지배인으로 영입된 이순근씨는 이병철 회장의 와세다대 동문이다. 그는 정계에 투신했다 월북, 농림상까지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거의 모든 경영을 이순근씨에게 맡겼는데 오늘날 ‘전문경영인’ 체제를 일찌감치 시험한 것이다. 서울로 거처를 옮긴 지 1년 만인 1948년 종로2가 ‘영보빌딩’ 근처 2층건물에 삼성물산공사로 간판을 걸 당시에는 효성그룹 창업주인 조홍제 회장이 전무를, 김생기씨가 상무를 맡았다.1949년 11월 마른오징어 3만근을 배에 싣고 홍콩으로 떠난 조홍제씨가 교포무역상과 챤넬양행으로부터 오징어를 담보로 각각 면사 50근을 외상매입한 것이 국내 최초의 D/P(Document against Payment Base) 거래로 꼽힌다. 조홍제 회장은 62년 효성물산, 한국타이어를 갖고 삼성을 떠난다. 김생기씨도 삼성에서 독립, 영진물산·영진식품·혜성개발 등을 일궈냈다. 삼성물산 창립멤버로 60∼61년 사장을 역임한 고 허정구씨도 눈에 띈다.LG그룹 구인회 창업주의 사돈인 고 허만정씨의 장남인 허씨는 이후 삼양통상을 설립했다.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 허동수 GS칼텍스정유 회장,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아버지다. 70년에 대표이사를 지낸 정상희 사장은 3·5대 국회의원과 삼호무역 회장을 역임했고 신세계 이명희 회장의 남편인 정재은 명예회장의 아버지다. 이병철 회장과 고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을 이어준 신현확 전 국무총리는 86년 이병철 회장의 요청으로 삼성물산 회장으로 영입됐다. 홍 회장의 공백을 메우며 이건희 회장 체제가 자리를 잡은 91년까지 물산 회장과 삼성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이필곤 전 부회장도 삼성물산 대표이사를 두차례(85∼93년,95∼97년)나 지낸 대표적인 ‘물산맨’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의 자동차사업 진출을 진두지휘하다 사업진출 차질에 대한 ‘책임’을 지고 중국으로 물러난 뒤 삼성을 떠났다. 서울시 부시장을 거쳐 현재 알티전자 회장과 삼성 CEO 출신들의 모임인 ‘성대회’ 회장을 맡고 있다.93∼95년 사장을 역임한 신세길씨는 현재 서울반도체 회장이다. 현명관 부회장은 아직도 물산의 비상근 회장 직함을 갖고 있다. 삼성물산은 2001∼2004년 배종렬 사장을 끝으로 공동대표체제가 굳혀졌다. 건설부문의 이상대(58) 사장은 충남 서천생으로 경복고와 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했다.73년 제일합섬으로 입사한 뒤 대부분 삼성건설에서 일했다. 건설이 삼성물산에 합병되면서 97년 삼성물산 전략기획실장으로 일했고 2000년부터 주택부문 대표를 맡았다. 이 사장의 경복고 2년 선배인 상사부문 정우택(60) 사장은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포항제철을 거쳐 77년 삼성물산에 입사했다. 휴스턴 지점장, 카자흐스탄 법인장 등 줄곧 상사부문에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병철의 세번째 회사 제일모직 1954년 9월 설립된 제일모직은 삼성상회, 제일제당(53년)에 이은 삼성의 세번째 회사다. 긴 역사만큼이나 숱한 인재들을 배출했는데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김인주 구조본 차장, 최도석 삼성전자 경영총괄 사장, 김징완 삼성중공업 사장, 안복현 삼성BP화학 사장, 유석렬 삼성카드 사장 등이 제일모직에서 잔뼈가 굵었다. 지난해 제일모직 대표이사로 부임한 제진훈(58) 사장은 경남 산청생으로 진주고와 부산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제일모직에 입사한 ‘모직맨’이다. 제일모직에는 올초 상무보로 승진한 이건희 회장의 차녀 서현씨와 남편 김재열 상무가 같이 일하고 있다. ●‘봄날’을 기다리는 화학·중공업 80년 유공 인수 실패,90년대 중반 자동차 사업의 좌절 등으로 자동차·중공업∼정유·석유화학·화학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중화학그룹’을 도모했던 삼성의 꿈은 사실상 좌절됐다. 오늘날 삼성을 대표하는 업종은 전자와 금융이다. 하지만 화학·중공업 계열사들의 ‘절치부심’이 예사롭지 않다. 화학·중공업 계열사 CEO가운데 비교적 많이 알려진 CEO는 허태학(61) 삼성석유화학 사장이다. 경남 고성생으로 진주농림고와 경상대 농학과를 졸업한 뒤 69년 중앙개발(현 삼성에버랜드)에 입사했다. 허 사장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진학마저도 조부의 강한 반대에 부딪힐 정도로 보수적인 농촌출신으로 한때 덴마크의 달라스나 그룬트비히 같은 농촌 계몽자를 꿈꾸었다고 한다. 호텔신라 총지배인, 삼성에버랜드 사장, 호텔신라 사장을 거쳐 2003년 삼성석화에 자리를 잡았다. 에버랜드 사장시절에는 ‘캐리비안베이’라는 테마파크를 조성, 리조트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대표이사로 재직하던 93∼2002년 삼성에버랜드는 이재용 상무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기 위한 ‘징검다리’로 부상하면서 구설수도 따랐다. 허 사장은 96년 에버랜드의 전환사채(CB)를 이 상무에게 저가로 발행한 것과 관련, 최근 징역 5년을 구형 받았지만 지금도 공공연히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이건희 회장을 꼽을 정도로 삼성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삼성 CEO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할 정도로 ‘자기 PR’에도 열심이다. 삼성과 고 이병철 회장에게 큰 상처를 줬던 삼성정밀화학(옛 한국비료)은 제일합섬, 에버랜드, 삼성전자, 삼성종합화학, 삼성중공업, 삼성카드, 삼성자동차 등 가장 많은 회사를 옮겨 다닌 것으로 유명한 이용순(59) 사장이 2003년부터 맡고 있다.64년 8월 27일 설립된 ‘한비’는 유명한 ‘사카린 밀수사건’을 계기로 67년 10월 삼성이 주식의 51%를 국가에 헌납한 회사다. 한비는 이후 산업은행이 대주주로 공사형태로 운영됐지만 방만한 경영 등으로 위기를 맞자 94년 다시 삼성의 품으로 돌아왔다. 고홍식(58) 삼성토탈 사장은 삼성 사장단 가운데 몇 안되는 호남 출신으로 광주일고와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유난히 영남출신 CEO가 많은 삼성에서는 전주 출신의 배정충(60) 삼성생명 사장, 전남 구례생인 양인모(65) 삼성엔지니어링 부회장과 고 사장이 호남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LG전자 김쌍수 부회장이 기계공학과 1년 선배다. 72년 삼성에 입사한 고 사장은 줄곧 제일합섬에서 일하다 92년 비서실 경영팀장,93년 신경영실천위원회 팀장 등을 맡으며 그룹 전반의 일을 익히기 시작했다.95년 삼성종합화학 소속으로 화학소그룹 전략기획실장을 맡으며 화학계열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갔다.2001년부터 삼성종합화학 CEO를 맡으며 97년 당시 부채비율 800%로 ‘회생불능’이었던 삼성종합화학을 프랑스 토탈과의 합작과 고효율 경영으로 지난해 매출 2조 8000억원, 영업이익 5700억원(이익률 21%)이라는 ‘알짜기업’으로 변신시켰다. 순차입금 비율은 20%로 뚝 떨어졌다. 스스로 “화학이 곧 내 인생”이라는 고 사장은 2010년 이익 1조원 돌파를 목표로 삼성그룹 내에서 비교적 위상이 처지는 화학 사업의 ‘중흥’을 노리고 있다. 2006년 세계 1위 조선업체를 목표로 하고 있는 삼성중공업은 ‘현장경영’,‘극한원가’,‘질적인 1위’를 부르짖는 김징완(59) 사장의 지휘하에 부활을 꿈꾸고 있다. 경북 달성생인 김 사장은 현풍고와 고려대 사학과를 마치고 73년 제일모직에 입사했다. 중공업과는 88년부터 인연을 맺어 2001년 대표이사로 부임했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생산성 높은 조선소를 만들고 싶었던 이병철 회장은 일본 IHI사와의 합작을 통해 경남 통영시 안정리에 150만평 규모의 조선소를 세울 계획이었다. 하지만 오일쇼크의 여파로 계획은 차질을 빚었고 썩 내키지 않던 거제의 우진조선을 인수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또 하나의 ‘초일류’, 삼성 서비스 삼성에버랜드가 언론에 크게 부각될 때는 대부분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와 관련돼 있다. 그도 그럴것이 에버랜드는 이건희 회장(3.72%)은 물론, 이재용 상무 25.10%, 이부진 호텔신라 상무,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보, 이윤형씨 등 세딸이 나란히 8.37%의 지분을 갖고 있다. 고 이병철 회장의 4녀인 덕희씨의 남편인 이종기 전 삼성화재 회장(0.48%), 맏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의 남편인 조운해 전 고려병원장도 0.08% 지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회사는 국내 최대, 세계 6위권의 테마파크와 골프장, 빌딩관리 등 자산관리, 단체급식 등 유통, 조경 등 환경사업을 영위하며 지난해 매출 1조원 1600억원, 순이익 800억원대를 거둘 정도로 탄탄한 경영을 자랑한다. 박노빈(59) 사장은 보성고와 서울대 수학과를 마치고 74년 제일제당으로 입사,91년 삼성중공업을 거쳐 93년부터 에버랜드에 발을 담갔다. 사업 구상이후 무려 7년이 지난 79년 개관한 호텔신라는 초기 경기하락과 오일쇼크까지 겹쳐 적자에 허덕였다. 이병철 회장은 호암자전에서 “홍진기 회장의 총 지휘하에 손영희 사장이 경영을 맡고 장녀 인희가 고문이 돼 음식조리 등 안살림을 챙기고나서부터야 경영이 호전됐다.”고 회고했다. 경복고와 서울대 응용화학과를 졸업하고 줄곧 삼성물산에서 해외영업을 담당한 이만수(55) 사장이 2003년부터 경영을 맡고 있다.2001년 호텔신라로 들어와 지난해 상무보 승진에 이어 올초 상무로 승진한 이부진씨도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 삼성의 서비스 사업 가운데 가장 독특한 영역인 보안업체 에스원은 2002년부터 이우희(58) 사장이 맡고 있다. 삼성가의 고향인 경남 의령 출신으로 삼성내 거의 유일한 이건희 회장의 친척이다. 이 사장은 부산고와 부산대 법학과를 마치고 제일제당에 입사했다.94년부터 계속 비서실 인사팀장으로 일해왔다. 국내 최대 광고회사인 제일기획 배동만(61) 사장은 보성고와 고려대 축산학과를 졸업하고 73년 중앙일보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제일제당, 호텔신라를 거쳐 비서실 홍보팀장, 에스원 대표이사를 역임한 뒤 2001년 제일기획 사장으로 부임했다. 지난해부터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 초창기 사업동지 이병철·조홍제 세간에는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과 효성 창업주인 고 조홍제 회장이 경남 진주의 지수보통학교를 다녔고 삼성을 공동 창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조 회장은 지수보통학교를 다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1910년생인 이 회장은 서당을 다니다 1922년 3월 지수보통학교 3학년에 편입했다. 이 회장의 고향은 의령군 중곡면 중교리지만 진주시 지수면과는 인접해있다. 지수에는 이 회장의 둘째누이 분시씨가 결혼해 살고 있었다. 알려진 것과 달리 이 회장은 지수보통학교를 졸업한 것이 아니라 그해 9월 서울의 수송보통학교로 전학했고 25∼29년에는 중동학교를 다녔다. 1906년생으로 이 회장의 형인 병각씨와 동갑인 조 회장은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 상경,1922년 중동학교 초등과 1,2,3학년 과정을 이수하고 이듬해 협성실업학교 초등과 4,5,6학년 과정을 마쳤다. 효성 관계자는 “언제부터인지 선대회장과 삼성 이병철 회장,LG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이 지수보통학교 동문으로 소개됐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29년 도일,30년 와세다(早稻田)대 전문학부 정경과로 입학했고 조 회장은 27년 와세다대 공업전문학부에 입학했지만 29년 일본 호세이(法政)대 경제학부에 다시 입학한다. 둘의 동업관계에 대한 회고도 조금씩 다르다. 이 회장의 자서전인 호암자전은 48년 서울 종로2가에 삼성물산공사를 세울 당시 전무가 조홍제 회장, 상무가 김생기 전 영진약품 회장이었으며 설립자본금의 75%는 이 회장이, 나머지 25%는 조 회장, 김 회장, 이오석, 문철호, 김일옥씨가 분담했다고 밝혔다. 반면 조 회장의 회고록 ‘나의 회고’에는 48년 말 평소 안면이 있던 이 회장이 명륜동 조 회장의 집을 찾아와 사업얘기를 하던 차에 조 회장이 사업자금 800만원을 빌려준 것으로 나온다.2개월 뒤쯤 조 회장은 200만원을 더 투자해 1000만원을 채웠다. 이 회장이 이미 투자한 돈은 700만원이었다고 나와있다. 한국전쟁으로 잠시 헤어졌던 둘은 51년 이 회장이 당시 가족이 피난가 있던 마산에 들렀다가 조 회장을 만나 부산에 새로 차린 삼성물산에 와서 일하기를 권하면서 다시 이어졌다. 조 회장 역시 이와 비슷하게 기억했다. 호암자전은 또 조 회장과의 결별에 대한 별도 언급없이 63년 3월 2일 효성물산과 한국타이어, 한일나일론을 양도했다고만 명시했다. 나의 회고는 60년 3월초 일본 도쿄에서 골프를 치던 도중 이 회장이 결별 의사를 밝혔다고 소개한다. 이날 두 사람은 서로의 지분에 대해 언쟁을 가졌다. 둘의 재산분배는 62년 8월 이 회장의 자택에서 다시 논의된다. 조 회장은 “내 지분이 삼성 전체의 3분의 1쯤 되니 제일제당을 떼어달라.”고 제의하고 이 회장도 이를 받아들였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지분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고 갈등이 점점 커지다 64년에야 결론이 난다. 조 회장은 자신이 분배받은 재산(한국타이어와 한일나일론의 삼성 지분 50%, 효성물산)은 3억원 정도로 자기 몫의 10분의 1도 안됐다고 밝혔다. 분가하면서의 불화는 한동안 재계 인사들에게 회자됐었다. 그러나 지난 84년 먼저 세상을 떠난 조 회장의 빈소를 이 회장이 찾아와 한참동안 머물며 ‘앙금’이 없었음을 내외에 알렸다.3년뒤인 87년 이 회장도 영면했다. ukelvin@seoul.co.kr ■ 삼성물산 역대 대표이사 1938년 이병철 회장 1960년 허정구 사장(LG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사돈 허만정씨의 장남, 삼양통상 창업주) 1961년 박도언 사장 1963년 김선필 사장 1966년 안동선 사장 1967년 김진하 전무 1967년 박태암 사장 1967년 성상영 사장 1968년 정수창 사장(전 두산그룹 회장) 1970년 정상희 사장(이명희 신세계 회장 시아버지) 1971년 김정렬 사장 1974년 이은택 사장 1977년 손상모 사장(전 동부그룹 부회장) 1978년 송세창 사장(전 나산그룹 부회장) 1981년 경주현 사장(전 삼성종합화학 회장) 1984년 배상욱 사장 1985년 이필곤 사장 1993년 신세길 사장(현 서울반도체 회장) 1995년 이필곤 부회장(현 알티전자 회장) 1997년 현명관 부회장(현 전경련 부회장) 2000년 이상대 사장(현 건설부문) 2001년 배종렬 사장 2004년 정우택 사장(현 상사부문)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법원 “재용씨 73억 전두환비자금”

    법원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가 가지고 있던 괴자금 73억 5500만원을 ‘전두환 비자금’으로 인정했다.이에 따라 검찰은 문제의 돈을 추징하기 위해 민사소송을 내는 등 법리 검토에 들어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부장 김문석)는 30일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재용씨에 대해 징역 2년 6월에 벌금 33억원을 선고했다.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계좌추적 결과 전두환씨의 관리계좌에서 문제의 돈이 나온 사실이 인정되는 데다 축의금 20억원을 22년 만에 채권 161억원으로 증식했다는 피고인의 주장을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이어 “피고인이 보유하던 채권 가운데 73억 5500만원은 전두환씨로부터 받고도 증여세 32억 5000만원을 내지 않은 사실도 인정된다.”고 덧붙였다.그러나 나머지 채권 93억 4500만원은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만큼 조세포탈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전두환씨에 대한 추징금 2205억원 가운데 일부만 집행된 상황에서 채권으로 관리하던 비자금 일부를 증여받고도 숨긴 것은 비난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그러나 (잘못은)아들이 아닌,아버지에게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또 “벌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330만원을 하루로 환산해 노역장에 유치하고,벌금과 별도로 세무당국이 적정한 증여세도 부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교정대상 수상자] 본상

    ■ 교화상 고은숙 제주교도소 교위 26년 동안 수용자 교화업무에 헌신적으로 봉사해 왔다. 85년 한 여성 수용자가 출소할 때 입을 옷이 없는 사정을 알게 되자 의류와 여비를 자비로 지원하는 등 현재까지 10여명에게 귀향여비 등을 지원해 줬다. 파키스탄 수용자의 생후 5개월짜리 아이가 폐렴증세를 보이자 의료 지원을 받도록 적극적으로 도와 줬다. 93년 7월 여직원 봉사동호회인 교정도우미회를 결성,매월 여성 수용자 생일상 차려주기 등에 연간 120만원 상당을 지원,수용생활 안정에도 힘썼다. 지난해 12월에는 불우수용자 가족 10가구를 방문,쌀 등의 생필품을 지원해 줬다. ■ 공로상 고창부 제주교도소 교화위원 지난 88년부터 16년 동안 직업훈련 시설을 지원해 사회복귀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힘썼다.자동차직업훈련장,교육실,컴퓨터실 등에 모두 230만원의 교화시설비를 지원했다.검정고시반 영상교육 기자재가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고 VTR를 제공,수용자 60여명이 고입 및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하도록 도왔다.자매결연한 최모씨 등 5명이 출소한 뒤에는 직접 업체와 농장을 찾아다니며 자동차정비사업소와 농장관리인으로 취업하도록 알선했다.국제로타리 3660지구 제주클럽을 교정시설내에 유치,7년 동안 영치금 1440만원을 지원하도록 했다. ■ 창의상 유병성 수원구치소 교위 77년부터 수원교도소 및 수원구치소에 근무하면서 자살사고 방지 등 각종 교정사고 방지에 기여했다.수용자 직업교육에 특히 애정이 많아 기능을 갖춰 취업한 출소자가 거처할 방을 구하지 못했을 때 박봉을 털어 셋방을 얻어주기도 했다. 또 각종 아이디어로 업무수행의 효율성을 높여 96년 수원구치소 개청 후 연간 4000만원 상당의 예산을 절감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외국인 접견자를 위한 안내문과 외국인용 영치 장부를 비치하는 등 교정행정 발전에도 이바지했다. 89년과 2000년 두 차례에 걸쳐 법무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 자애상 박애례 광주교도소 종교위원 83년부터 21년 동안 수용자 신앙지도와 불우수용자 생활지원 등에 헌신해 왔다.96년부터 성경·찬송가 등 각종 신앙서적 1200여권을 기증했다.무의탁수용자 5명과 자매결연해 영치금 460만원을 지원했다.사형수 채모씨 등 6명을 상담,안정된 수감생활을 하도록 도왔다.사형수 3명은 영세를 받고,과거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기도 했다.99년 출소한 무연고 장기수 2명을 담양지역의 석가공업체에 취업 알선해 사회에 복귀토록 했다.무의탁 장기수 박모씨 등 2명에게 무릎 수술비 400만원 등을 후원했다. ■ 성실상 김주영 인천구치소 교위 23년 6개월간 장기근속하면서 무의탁 수용자 및 가족돕기,노역수용자 영치금 대납 등 불우 수용자 돕기에 앞장섰다.82년 무의탁 소년 수용자와 인연을 맺은 뒤 취업을 알선,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왔다. 87년 수용자 고시반 근무 때는 중·고졸 검정고시 합격자를 무려 130명이나 배출했다.수용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던 고아 수용자의 재판에는 참고인으로 출석,선처를 호소해 가정법원의 송치처분을 받도록 돕고,이후에도 면회 및 편지교환을 통해 인생의 ‘선배’역할을 해주고 있다.가족과 함께 중증장애시설에서 정기적으로 봉사하고 있다. ■ 자비상 노병섭 서울구치소 종교위원 34년여 동안 매주 한 번씩 1290여 차례의 법회를 열어 25만 8400여명의 수용자에게 설법과 법문을 해설,심성을 순화하는데 도움을 줬다. 84년에는 사형수와 자매결연해 불교에 귀의하게 하고 무기징역으로 감형을 받아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기도 했다. 20여 명의 사형수에게 1000여 차례에 걸쳐 상담을 하고 영치금을 지원하는 등 안정적인 수용생활을 하도록 도왔다. 불우 수용자 가족들의 생활을 돕고,수용자 교화용 기자재를 지원했다. ■ 면려상 이기태 청송교도소 교위 82년 2월 교도관으로 임용돼 22년 동안 청송교도소 한 곳에 근무하면서 불우 수용자돕기와 문제 수용자 교화에 헌신해 왔다.매월 무의탁 수용자 20명에게 영치금을 지원하고,문제 수용자 사동 근무를 자청하기도 했다. 전과 10범의 수용자를 집중 상담,출소 후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복귀시켰다.정신이상 수용자를 목욕시키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경비교도대 소대장 근무 때는 매월 두 차례씩 수용자 정신교육 강사로 나서 갱생의욕을 높였다.‘안동지역 탈북자 돕기 모임’ 총무로 관계 기관과 연계,탈북자 정착 등 지역사회 봉사에도 적극적이다. ■ 박애상 전주섭 강릉교도소 종교위원 지난 81년 이후 23년여 동안 강릉교도소에서 활동하면서 모두 80차례에 걸쳐 2400여명에게 의식개혁을 지도했다.92년부터 성경통신학교를 운영하면서 지금까지 11회,150명의 졸업생을 내보냈다. 통신학교 수료생 중 일부 본 과정을 수료한 수용자들이 목사와 선교사가 돼 국·내외에서 활발한 선교활동을 통해 촉망받는 종교인으로서 새 삶을 살아가도록 선도했다. 불우 수용자와 자매결연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수용자의 가족을 돕고,출소자의 취업을 알선하기도 했다. ˝
  • 신창원씨 고입검정고시 준비

    청송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있는 무기수 신창원(38)씨가 최근 고입 검정고시를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씨의 변호를 맡았던 엄상익 변호사는 27일 “신씨가 지난달 보내온 편지에서 교도소 내에서 다시 공부를 하고 싶다며 대학에 가게 되면 상담학을 전공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 왔다.”고 말했다. 중학교 중퇴 학력의 신씨는 1차 목표를 고입 검정고시 합격으로 정하고 있다. 엄 변호사는 신씨를 격려하기 위해 “바닥까지 경험했으니 공부도 열심히,글도 열심히 쓰다 보면 차차 굳었던 마음도 열릴 것”이라면서 교과서나 참고서가 필요하면 밖에서 보내 주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신씨는 1997년 1월 강도치사죄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 화장실 창문을 뜯고 달아나 2년 6개월 동안 전국을 돌며 강·절도 행각을 벌인 끝에 검거돼 항소심에서 추가로 징역 22년 6월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정은주기자 ejung@˝
  • 밀입국선 ‘사스 차단’ 이상 무!/ 전남 목포해양경찰서 섬진강호 함장 오안수

    “팅추안(停船·정선)” 칠흑 같이 어두운 밤바다,갑자기 경광등이 섬광을 번쩍인다.귀청을 찢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스피커는 ‘배를 멈추라’고 연신 새된 소리를 지른다. 영해를 침범한 중국 불법조업 어선의 단속 등 해상경비를 맡은 전남 목포해양경찰서 소속 1600t급 섬진강호.레이더를 따라 중국 밀입국선박을 추적해온 섬진강호가 중국배 옆으로 바짝 다가서자 승무원 47명의 움직임이 빨라졌다.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공격에 대비한 것이다.그러나 몇달전처럼 승무원들이 전기충격기 등을 챙겨 중국 선박의 갑판으로 무작정 ‘돌격’하지는 않는다.혹시라도 사스에 걸린 중국선원의 손에 수갑을 채우려다 감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긴장도는 한층 높다.밀입국 선박을 우리 해역에서 쫓아내지 못할 경우 사스에 걸린 밀입국자가 뭍으로 오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섬진강호 함장 오안수(48)경정은 “사스발생 이후 밀입국선에 대한 정책이 나포에서 추방으로 바뀌었지만 승무원들의 신경은 더 날카로워졌다.”고 말했다. ●생사를 넘나드는 추격전 오 함장을 비롯한 섬진강호 승무원들은 바다근무에 들어가면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섬진강호는 목포항을 떠나면 4박5일 동안 바다에 머문다.첫 경계근무는 육지에서 100마일 떨어진 전남 신안군 소흑산도 서방 30마일 해상,즉 우리의 배타적경제수역(EEZ) 경계선에서부터 시작된다.99년 여름에 취항한 섬진강호는 전장 84.5m,폭 10.4m에 20㎜ 발칸포 1문을 장착한 대형 경비함.집채만한 크기의 5000마력짜리 엔진 2대가 장착돼 있고 최대속도는 21노트(시속 38㎞)에 이른다. 오 함장은 경계해역에 들어서면 레이더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불법어선을 적발하면 항해등을 끄고 불법어선의 3마일 옆까지 다가선다.오 함장이 ‘단정(쾌속보트) 내려.’라고 짤막하게 명령하면,승무원들은 12인승짜리 보트에 올라타 물살을 가른다.뒤늦게 낌새를 챈 불법조업 어선은 그물을 끊고 줄행랑을 치지만 속도에 차이가 있어 결국에는 우리 함정에 붙잡힌다. 한 겨울이면 근무여건이 혹독해진다.거센 파도에 출렁이는 보트에서 자칫 떨어지기라도 하면 스크루에 휘감겨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나포할 때는 선원들의 저항도 만만찮다.8명이 2개조로 편성돼,가스총과 전자충격기로 무장을 갖춘다.오 함장은 “중국선박들이 나포되면 배 한척에 2000만∼300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어 필사적으로 달아난다.”고 털어놨다. ●황금어장 우리가 지킨다 해상경계는 해경의 몫이다.해군은 대간첩 작전만 맡는다.목포해경에는 3000t급 구난정 등 1000t이상의 대형함정 3척과 30∼500t급 중소형 경비정 18척이 있다.경계해역은 전남 영광에서 진도 앞바다까지 전남의 3.3배인 3만9356㎢나 된다. 지난 81년 순경으로 들어와 해경 생활 22년째인 오 함장은 지난해 1월 섬진강호의 지휘를 맡게 됐다.그가 지금까지 바다에서 지낸 시간은 통틀어 4910시간(241일).“바다에 있을 때가 편안하다.”는 그는 올 들어 6척,지난해 16척 등 중국어선 22척(선원 244명)을 나포했다.그가 이처럼 많은 밀입국 및 불법조업어선을 적발한 데에는 요령이 있다.그는 공해상에서 우리나라 쪽으로 빠른 속도로 들어오거나 유난히 물속에 가라앉은 어선이나 화물선 등에 초점을 맞춘다.지난해와 올해 이 방식으로 800여척을 검문검색했다. 요즘은 중국이 고기를 못잡게 하는 금어기(4월15일∼10월15일)라서 불법조업어선이 적은 편이다.또 사스 탓으로 나포 대신 추방을 불법조업 어선 정책으로 쓰고 있어 목포항에는 나포된 중국선박이 한척도 없다.작년 이맘때만 해도 대여섯척은 항구에 붙잡혀 있었다.그러나 밀입국자를 태운 선박은 여전하다.대부분 개인 소유 어선으로 생계해결 차원에서 유자망(한곳에 그물치고 고기를 잡는 것)을 치다가 밤이면 해안에 밀입국자를 슬며시 내려놓곤 해 단속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사스,해상으로는 못들어 온다 오 함장은 “중국 어선들이 회사 소유에서 개인으로 넘어가면서 담보금(벌금)을 못내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면서 “한 번 출동에 드는 기름값(1500만원)도 못 버는 셈”이라고 웃었다.나포된 어선에는 t수에 따라 2000만원에서 3000만원까지 벌금이 매겨진다.이 돈을 못내면 선장은 최고 3년 징역을 살게 된다.나머지 선원들은 일주일가량 기본조사 후 배와함께 중국으로 추방된다. 선상 생활은 고달픔의 연속이다.웬만큼 배타기에 자신있는 해경들도 파도가 한번 요동치면 속수무책이다.밥그릇이나 반찬통이 식당에서 이리저리 밀려다니고 하얗게 질린 대원들은 쓰러지기 일쑤다.오 함장은 “밀입국 선박은 한마디로 생사를 걸고 오기 때문에 그만큼 적발이 어렵지만,만약의 경우 있을지 모를 사스 전파를 원천차단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모든 승무원들이 힘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섬진강호 남기창기자 kcnam@
  • 무너진 후세인 / 過政수반 유력 찰라비

    이라크 과도정부 수반으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아흐마드 찰라비(58) 이라크국민회의(INC) 의장은 반 후세인,친미라는 확실한 노선을 대변하고 있지만 평가는 크게 엇갈리는 인물이다. 은행가 가문 출신으로 12세 때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민간 뒤 줄곧 해외에서 반정부 활동을 벌여왔다.민주주의와 자유시장체제 신봉자로 미국 MIT와 시카고대에서 수학하며 미 공화당 강경파들과 친분을 쌓았다.현재 딕 체니 부통령과 미 국방부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반면 미 국무부와 중앙정보국(CIA)은 그의 금융사기 경력과 이라크내 낮은 지지도를 들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CIA는 최근 미 행정부에 배포한 비밀 보고서에서 “찰라비는 이라크내 지지기반이 취약하고 이라크 국민에게 호감을 사지 못해 과도정부를 이끌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라크 반체제 진영에서도 그가 45년간 해외에서만 활동,국내 기반이 전무하고 80년대 요르단 법정에서 금융사기로 22년 징역을 선고받았다며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이후에도 CIA가 제공한‘반체제 공작자금’ 7000만달러 중 상당액을 횡령한 것으로 알려졌다.뉴욕타임스와 LA타임스 등도 “주변 아랍국가들은 찰라비를 기피인물로 꼽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 6일 미 군용기편으로 이라크 남부에 도착,‘자유 이라크군’ 창설에 착수하는 등 이라크 민심을 얻기 위해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연합군이 바그다드를 장악하던 9일에는 이라크 남부도시 나시리야의 군중집회에서 새로운 이라크 사회를 건설하겠다고 주창하기도 했다. 이밖에 이라크 이슬람혁명최고회의(SCIRI)를 이끌고 있는 망명 종교 지도자 모하마드 바키르 알하킴도 수반 후보로 떠오르는 인물이다.20년 이상 이란 망명 생활을 하다 최근 이라크로 돌아온 알하킴은 이라크 이슬람 교도의 60%를 차지하는 시아파의 지도자. 그러나 오랫동안 이란의 지원을 받은 데다 불투명한 자금운용으로 조직내 반발도 커 정부를 이끌기 힘들 것이라 평가되고 있다. 정은주기자 ejung@
  • 병역비리 박노항 검거/ 박노항 죄목과 형량

    국방부 검찰단은 26일 박노항 원사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수뢰죄를 적용키로 했다고 밝혔다. 박 원사는 그동안 검·군 합동수사 결과, 이미 99년 6월대법원에서 징역 8년에 추징금 4억8,110만원이 확정된 원용수씨(56·전 육본 모병연락관·준위)에게서 1억7,000만원을 받고 12명의 병역을 불법 면제시켜준 것을 비롯,140여건에 달하는 병역면제,보직조정 등 비리를 저지르고 수십억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나 수뢰죄 적용이 불가피하다. 박 원사가 병역비리 청탁과 함께 다른 군인이나 군무원에게 금품을 주었다면 제3자 뇌물공여죄가 더해지고 다른 공무원을 알선해주고 돈을 받았다면 특가법의 알선수재죄가추가된다. 특가법상 수뢰죄의 경우 형량은 무기 또는 징역 10년 이상,제3자 뇌물공여와 특가법상 알선수재죄는 각각 징역 5년 이하다.박원사가 98년 5월 이후 국방부 근무지를 이탈한 데 대해서는 군형법상 군무이탈죄(징역 2∼10년)가 적용된다. 다만 2개 이상의 범죄를 저지른 경우 경합범으로 분류,법정형이 가장 높은 죄의 형량에 그 죄의 2분의 1까지 가중해 처벌하도록 돼 있어 박 원사는 최고 무기징역 또는 징역 22년6월의 징역형을 받게 된다. 노주석기자
  • 서울지법, 상습강도·성폭행범 25년 중형

    최근 일반 형사사건에 대한 법원의 선고 형량이 높아지는가운데 상습 강도·강간범에게 유기징역으로는 최고형인 징역 25년이 선고됐다. 서울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崔炳德)는 9일 대낮에 가정집을 침입,상습적으로 금품을 빼앗고 부녀자들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안모(29) 피고인에게 특수강도강간죄 등을 적용,징역 25년을 선고했다.형법상 유기징역형은 법정최고형이 15년이지만 누범(累犯) 등의 이유로 가중처벌을 받으면 25년까지 선고가 가능하다. 무기수로 복역중 부산교도소를 탈출,도피행각을 벌였던 신창원(申昌源·34) 피고인이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지난해징역 22년6월을 추가로 선고받은 것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비슷한 범죄로 3차례나 처벌을 받았음에도 피고인은 지난 98년 출소 뒤 7개월 만에 가정집에 침입,강도죄를 저질렀고 피해자들의 신고를 막는다는 목적으로 미성년자 2명을 한꺼번에 성폭행한 점 등이 모두 인정된다”면서 “죄를 뉘우치고 범행을 자백한 점 등은 참작할 수 있지만 피고인의 죄질이 극히 불량하고 상습적인데다피해자들과 합의된 바도 없어 중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조태성기자 cho1904@
  • 3월의 독립운동가 이승훈선생

    국가보훈처는 27일 남강(南岡) 이승훈(李昇薰) 선생을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1864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선생은 무역업과 운송업으로 국내 굴지의 부호가 되었으나 연이은 사업실패를 겪으며외세와 민족문제에 대한 인식과 반일 민족의식을 갖게 됐다. 1907년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연에 감명받은 것을 계기로 비밀결사 조직인 신민회에 가입하여 평안북도 총감이 됐다.이후 태극서관을 설립,민족자본 육성에 힘쓰는 한편 초등교육기관인 강명의숙과 중등교육기관인 오산학교를 설립해 민족교육 운동을 펼쳤다. 1911년 안중근 의사의 사촌 안명근의 독립자금 모금사건인안악(安岳)사건에 연류돼 제주로 유배되었다.105인 사건의주모자로 지목되어 징역 6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르다 1915년 가출옥했다.미국 윌슨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천명 등으로 세계정세가 변하자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과 함께 서울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식을 가졌다.일제에 체포돼옥고를 치르다 1922년 7월 출옥한 선생은 물산장려운동,민립대학 설립운동에 참여했다.1924년 5월부터 10월까지 동아일보 사장을 지냈다. 1930년 5월 9일 ‘내 뼈를 표본으로 만들어 사랑하는 학생들에게 보여주기를 원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6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노주석기자 joo@
  • 신창원 2심서 22년6월 선고

    부산교도소 탈주범 신창원(申昌源·33)에게 항소심에서도 원심과 같이 징역 22년6월이 선고됐다. 부산고법 제2형사부(재판장 李仁宰부장판사)는 25일 신피고인에 대한 특수도주죄 등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검찰의 항소를 기각,원심대로 징역 22년6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신피고인이 탈주과정에서 충북 청주에서 김모씨(여)를 성폭행하고 금품을 강취한 혐의(특수강도강간)로 기소한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서는“피해자의 진술이 모호하고 범행을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며 원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신피고인은 그러나 97년 1월20일 교도소 탈주 이전인 89년 서울지법에 의해 강도치사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이번항소심 선고와는 관계없이 무기 징역형은 유지된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 신창원 22년6월형 추가 선고

    무기징역이 선고돼 복역중인 탈옥수 신창원(申昌源·33)에게 추가로 징역 22년 6월이 선고됐다. 부산지법 제2형사부(柳秀烈부장판사)는 18일 특수강도강간죄 등 15개 죄목으로 기소돼 사형이 구형된 신 피고인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13개 죄목을 적용,징역 22년6월을 선고했다.특수강도강간죄 등 2개 죄목에 대해서는 무죄를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탈옥 후 전국을 무대로 100차례가 넘는 절도 및 강도 행각을 벌이고 파출소에 침입해 무기 탈취를 기도하는 등 범행의 치밀성이나 대담성을 감안해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나 도피과정에서 경찰관을 다치게 한 것 외에는 타인을 살해하거나 상해를 입히지 않은 점을 참작해 극형인사형이나 무기징역형을 배제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양형은 신 피고인이 지난 97년 1월 20일 부산교도소를 탈옥한 이후2년6개월동안 전국을 무대로 저지른 범행에 한해 적용된 것이다. 신 피고인은 교도소 탈주 이전인 89년 강도치사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상태이기 때문에 이번 선고와는 관계없이 무기징역형이 유지된다. 한편 검찰은 재판부의 판결에 불복,항소하겠다고 밝혔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 해직교사 73명 추가 복직

    교육부는 1일 시국사건 등으로 해직된 교사 73명을 추가로 특별채용하기로했다.이로써 지난해 이후 특채된 해직교사 및 교원임용제외자 등은 321명으로 늘어났다. 특채교사 가운데 강구인(姜求仁·56)씨는 30년 만에 다시 교단에 선다. 그는 경북 포항 두마초등학교에 재직하던 72년 10월17일 유신 지지 교원 단합대회에 참석하지 못했다.당일 숙직을 했기 때문이었다. 한달 뒤 강씨는 포고령 위반으로 구속돼 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1년,다음해 육군고등군법회의에서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학교에서는 이미 파면 조치된 상태였다. 강씨는 “그동안 책 외판원 등을 했으나 당국의 감시로 쉽지 않았다”면서“명예가 회복돼 기쁘다”고 말했다. 22년만에 교단으로 돌아오는 이한옥(李翰玉·54)씨는 경북 상주의 하동중학교 기술·농업교사로 근무하던 78년 7월7일 학생질문에 대한 답변이 빌미가돼 해직됐다. 당시 이씨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이 선출된 것과 관련,수업중 “박대통령은 왜 단독출마했고 1표가 무효처리됐느냐”는 질문을받고 “선거에서 100% 찬성이란 공산주의 사회에서나 가능한 일로 민주국가이기 때문에 1표가 무효처리된 것으로 추측된다”고 대답했다. 이씨는 이 얘기를 전해들은 학부모의 고발로 같은 해 7월12일 경찰서로 연행돼 대통령 긴급조치 9호 위반죄로 구속기소됐다.항소심에서 징역 2년6월,자격정지 2년6월을 선고받은 이씨는 80년 2월 사면복권됐다. 고 김남주(金南柱)시인의 부인으로 지난 79년 서울 명성여중 국어교사 시절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산하 교사모임에서 활동한 혐의로 체포돼 해직된박광숙(朴光淑·50)씨는 지난해 복직이 결정됐으나 본인의 희망에 따라 이번새학기부터 다시 교단에 선다. 박홍기기자 hkpark@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