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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징역 22년
    202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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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근처 300m내 20대 여성만 성폭행

    한 동네에 사는 20대 여성만을 골라 성폭행한 제2의 ‘면목동 발바리’가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중랑경찰서는 2004년 5월부터 7차례에 걸쳐 혼자 사는 20대 여성들을 성폭행하고, 방화와 절도 행각을 벌여온 서모(26)씨를 강도, 강간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고 20일 밝혔다. 서씨는 자신의 집 반경 300m 안에 사는 젊은 여성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20년 넘게 면목동에서 살아온 서씨는 동네 사정에 밝은 점을 악용했다. 서씨는 2004년 5월 면목동 다가구 주택 1층에 침입해 혼자 있던 이모(당시 22세)씨를 성폭행한 뒤 증거를 없애려고 거실에 불을 지르고 달아났다. 서씨의 범행은 그가 군에 입대한 2005년 5월부터 2년간 그쳤다가 2007년 제대와 함께 재개됐다. 2009년에는 한 해에 5차례나 성폭행을 하기도 했다. 범행 대상을 물색한 뒤 피해자가 혼자 산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다음 날 바로 범행을 시도했다. 인적이 드문 곳이면 피해자가 잠을 자는 동안 과감하게 창문 전체를 뜯고 침입하기도 했다. 절도와 방화행각도 벌였다. 2009년에는 신모(49)씨 집에 침입해 금품을 훔치려다 쓸 만한 물건이 없자 옷장에 불을 질러 2500만원 상당의 재산 피해를 내기도 했다. 경찰에서 서씨는 “애인과 싸워 기분이 좋지 않거나 집에 현금이 없으면 화풀이로 불을 질렀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새 기술을 적용한 지문감식기를 이용해 서씨를 붙잡았다. 경찰은 2007년 서씨가 피해자의 입을 막을 때 사용한 스카치테이프에 남긴 조각 지문을 5년 만에 맞춰내 범인을 특정한 것. 경찰에서 서씨는 “죄책감 때문에 범행을 멈추고 싶었지만 성충동을 이기지 못했다.”면서 “ 검거돼 오히려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앞서 여성 10여명을 상대로 강도와 성폭행 행각을 벌이다 2010년 검거된 원조 면목동 발바리 조모(29)씨는 법원에서 징역 22년 6월을 선고받았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사설] 재벌비리 처벌 강화는 ‘재벌 때리기’ 아니다

    경제민주화가 대선의 화두가 되고 있는 가운데 ‘재벌 봐주기’를 제한하려는 정치권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소속 의원 23명은 횡령·배임죄로 처벌받는 재벌 총수에게는 반드시 실형이 선고되도록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기업인의 횡령액수가 5억~50억원이면 징역 3년 이하,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인 형량을 300억원 이상은 무기 또는 15년 이상, 50억~300억원은 10년 이상, 5억~50억원은 7년 이상으로 높인다는 내용이다. 재판부가 정상참작을 이유로 법정최저형량의 절반으로 작량감경하더라도 집행유예 선고가 불가능하게 만들겠다는 취지다. 이에 앞서 민주통합당은 경제범죄를 저지른 총수 일가에 대해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금지하는 사면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재벌 총수에 대한 ‘유전무죄’ ‘솜방망이 처벌’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법 앞에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는 헌법 11조의 조문에도 불구하고 1999년 이후 10대 재벌 총수 중 7명이 총 22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실형을 산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모두가 집행유예였다. 게다가 모두 사면받았다. 투자와 고용 확대 등 ‘경제 살리기’에 긍정적으로 기여했다는 게 사면 이유였다. 물론 국가경제에 대한 기여도 측면에서 볼 때 정상참작의 요인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솜방망이 처벌과 특별사면이라는 특혜 반복은 재벌의 제어되지 않는 탐욕과 독선을 확산시킨 요인이 되기도 했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이 재벌 개혁이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재계는 정치권이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대기업을 희생양으로 삼는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 상황에서 재벌 총수들을 지나치게 옥죄면 투자가 위축돼 서민이 더 고달파진다고 주장한다. 전혀 일리가 없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재벌 비리 처벌 강화를 ‘재벌 때리기’로 모는 것은 잘못이다. 헌법 정신대로 잘못을 저지르면 일반인과 동일한 처벌을 받으라는 요구다. 재벌 총수의 잇속을 위해 다른 주주나 소비자에게 손해를 끼치지 말라는 얘기다. 납품가 후려치기, 무차별 확장이나 편법 증여 등과 같은 악습의 고리를 끊고 ‘오너 리스크’를 줄이라는 것이 법 개정 추진에 담긴 뜻임을 되새기기 바란다.
  • [부고] 애국지사 최상욱 선생 별세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을 펼친 애국지사 최상욱 선생이 13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90세. 고인은 1922년 전남 광산에서 태어나 1943년 부안에 있는 남선교통주식회사에 근무하던 당시 일제의 한글말살 정책에 대항해 한글 사용을 강력히 주장했다. 같은 해 5월 16일 소련과 만주 국경에 배치된 일본군의 병사 급식에도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 차별이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창씨개명에 반대했다. 5월 27일에는 동네 사람들에게 신사참배는 우상숭배에 불과하며 이를 거부해야 한다고 설득하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고인은 9월 25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총독에 대한 불온한 말과 유언비어를 유포한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80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경옥씨와 아들 준영씨, 딸 백란·금란·미란·은란·희란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보훈병원. 장지는 대전현충원. 발인은 15일 오전 8시. 010-3951-3195.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전설의 ‘레즈비언 흡혈귀’ 체포 22년 만에…

    전설의 ‘레즈비언 흡혈귀’ 체포 22년 만에…

    사람을 죽이고 피를 모조리 마셔 충격을 안겨준 일명 ‘레즈비언 뱀파이어’가 수감된 지 22년 만에 출소할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22일자 보도에 따르면, 트레이시 위긴톤(46)이라는 여성은 1989년 당시 경찰이었던 에드워드 블래드덕(사망 나이 47세)이라는 남성을 죽이고 피를 마신 죄로 체포됐다. 당시 위긴톤은 피해자를 유인한 뒤, 범죄 현장에 숨어있던 동성애인, 친구인 또 다른 여성 2명과 함께 살해한 뒤 피를 마신 혐의로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체포 당시 위긴톤은 스스로를 “레즈비언 뱀파이어”라고 이야기 했으며, 피해자를 죽인 뒤 상당량의 피를 마셨다고 자백했다. 이어 “나는 고체 음식으로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으며, 지금까지 소나 돼지 등의 피를 마시며 살아왔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잔혹한 사건은 당시 영국 뿐 아니라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위긴톤의 변호사는 지난 해 “위긴톤은 현재 심각한 경제 상황에 봉착해 있을 뿐 아니라 무릎 수술 등으로 목발 없이는 이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20년 전과 같은 사건을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며 가석방을 신청했지만 기각된 바 있다. 하지만 법원은 최근 위긴톤 측의 가석방 재신청을 받아들이고, 이번 주 내로 석방을 허가할 것으로 알려져 언론과 시민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한편 살인에 동참한 여성 2명 중 한명은 무죄 판결을 받았고, 또 다른 여성은 18년 형을 끝내고 출소했다. 현지 언론은 끔찍한 살해 방법과 스스로를 뱀파이어라고 주장하는 기이한 살인마가 곧 출소할 것으로 보인다며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신출귀몰’ 탈옥수 신창원 감방서 고무장갑으로 자살 기도

    ‘신출귀몰’ 탈옥수 신창원 감방서 고무장갑으로 자살 기도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44)이 감방에서 목을 매 자살을 기도했다.  18일 경북 북부 제1교도소에 따르면 신창원은 이날 새벽 4시10분쯤 독방에서 고무장갑으로 목을 조르는 자살을 시도했다. 교도관이 신음 소리를 듣고 그를 곧바로 구조, 안동의 모 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치료를 받았다. 교도소측은 신창원이 의식은 없지만 숨을 쉴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신씨는 지난 1월 설거지와 빨래를 하기 위해 교도소에서 구입한 고무장갑으로 목을 조여 자살을 기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소측은 “신씨에 대한 가혹 행위는 없었다. 다만 지난 달 자신의 부친 사망 이후 적잖은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신씨는 강도치사죄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1997년 1월 부산교도소 감방 화장실의 쇠창살을 절단하고 탈옥, 2년 넘게 신출귀몰한 도피행각을 벌이다 1999년 7월 붙잡혔다. 이후 그에겐 22년6월의 형이 추가됐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부모에 대한 유명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부모에 대한 유명인사들의 회상기

    “어머니께서 불을 끄고 떡을 썰지 않았다면 나는 나의 미숙함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눈물을 감추고 나를 다시 암자로 돌려보낼 때 어머니는 분명 피눈물을 흘리셨을 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 석봉 한호(1543~1605)에게 그의 어머니 백씨 부인에 대해 묻는다면 아마도 이런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율곡 이이(1536~1584)가 조선의 대유학자가 된 배경에는 현모양처의 대명사인 어머니 사임당 신씨(1504~1551)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 분명하다. 흔히 역사에 천재로 이름을 남긴 위인들의 뒤에는 훌륭한 부모가 있다고들 한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1847~1931)은 어머니와 ‘홈스쿨링’을 통해 창의력을 키웠고,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1732~1799)은 자기 업적보다 벚나무를 벤 실수를 고백하자 용서하고 격려한 아버지와의 일화(실제로는 꾸며낸 일이라는 설이 유력)로 더 유명하다. 부모의 영향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한국축구의 대들보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씨, 피겨여왕 김연아의 어머니 박미희씨의 교육법과 열정은 제2의 박지성·김연아를 키우려는 부모들의 롤모델이자 벤치마킹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는 법. 여기 자녀들에게 재능만 물려줬을 뿐 사랑이나 진정한 교육은 주지 않았던 부모들이 있다.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 이번 주의 주인공은 올리버 트위스트처럼 삐뚤어진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던 불행한 천재들이다.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리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았던 우울한 그들의 내면을 가상의 일기장을 통해 들여다봤다. 어린 시절의 불행이 이들이 남긴 업적의 원동력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인성과 성공,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모든 부모의 꿈, ‘완벽한 교육법’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프로이센 계몽군주 프리드리히 2세 “내 친구도 죽인 매정한 부왕 왕실생활이 동냥보다 비참” ●왕자 시절인 18세(17 32년) 때의 일기 왕가의 숙명을 거부하고 도망치려다 결국 내 손으로 친구를 죽인 꼴이 됐구나. 궁궐 탈출을 끝까지 말렸던 한스(한스 헤르만 폰 카테 소위)는 결국 내 고집 때문에 오늘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 이외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아버지(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한스를 황제의 직권으로 사형시킨 것은 결국 나를 겨냥한 것일 테지. 자식에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지난 18년은 나에게 혼란의 연속이었다. 아버지는 날 프로이센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고, 어머니(조피 도로테아·하노버 왕조를 창시한 조지 1세의 딸)는 프랑스 왕족이 최고라고 하니 난 규율과 자유 어느 쪽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아버지는 아예 내 수업을 감시하는 대령을 뒀고, 내 스승은 문학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발길질을 당한 후 쫓겨났다. 아버지는 플루트 연주도, 시도 허용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건 권력이 아니라 예술인데 말이다. 왕실에서 사느니 차라리 동냥을 해서 빌어먹고 싶을 정도로 비참하다. 난 결심했다. 다시는 내 속내를 아버지에게 드러내지 않을 테다. 아버지보다는 내가 오래 살 테니 그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이중인격으로 ‘탈주사건’으로 친구 카테 소위가 처형당한 후 프리드리히 2세는 다시는 반항하지 않았다. 철저히 자신을 숨겼고, 아버지에게 복종하는 모습만 보여 신임을 얻었다. 1740년 왕좌에 오른 프리드리히 2세는 금욕적이고 냉철한 정치를 했던 아버지와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정치적·종교적 소수자를 위한 정책을 폈고 노예제 폐지에 앞장섰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불신이 가득했다. 이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받은 폭력과 강압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자기와 뜻이 다른 사람을 잔인하게 처단했고, 다른 사람의 의견은 철저하게 무시했다. 역사학자들은 그를 ‘어떤 왕보다 더 차가운 내면을 지닌 야누스적인 왕’으로 평가한다. ■美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 “불륜 즐기고 떳떳한 아버지 어엿한 보스턴상류층 일원” ●하버드대에 다니던 2 0세(1937년) 때 이젠 언제 어디서나 여자들과 즐길 수 있게 됐다. 병원에서도 간호사들과 사랑을 나눌 수 있으니. 아버지가 옳았던 것 같다. 여자는 어디까지나 남자들의 성공에 대한 자만심을 충족시켜 주는 트로피에 불과하다. 위대한 남자라면 두 개의 삶 정도는 가져도 무방한 것 같다. 아버지는 출신(케네디 가문은 본인들이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사실을 밝히길 꺼렸다)을 완벽하게 바꿔놓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고, 결국 보스턴 상류사회에 진입할 수 있었다. 어머니(로즈 케네디)는 지나치게 엄격하지만, 뭐 내가 미래에 이 나라를 이끌어 가려면 예의범절과 자기규율은 엄하게 배울수록 좋겠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포장에 불과한 것 아니겠는가. 다만 최근 들어 상인 출신인 아버지와 나는 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배우와 불륜을 즐기면서도 떳떳한 아버지처럼 행동했다간 분명 내 발목을 잡는 일이 생길 것 같다. 언제나 포장은 필요한 법이지. 나처럼 외견상으로는 완벽한 여성을 만나 결혼하고, 내 생활은 최대한 조용히 만끽하면 된다. 우리 부모님들조차 5년 전부터 각방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가문은 존경받는 신흥 명문가이지 않은가. ●바람기는 대를 이었다. 케네디의 아버지 조지프는 영화계에 투자하면서 여배우 글로리아 스완슨이라는 여배우와 염문을 뿌렸고 케네디가는 겉모습과는 달리 완벽하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는 추후 메릴린 먼로와 케네디의 스캔들로 대를 이었다. 누구에게나 선망받던 케네디와 재클린 오나시스의 결혼생활 역시 남편의 바람과 아내의 낭비벽으로 점철됐다. 케네디는 아버지처럼 여성에 집착했고 수많은 여성과 스캔들을 일으켰지만 재클린은 자기 시어머니처럼 이를 내색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엄격했던 어머니 로즈 때문에 케네디는 평생 압박감에 시달렸고, 각성제 암페타민과 진통제에 의존했다. ■佛국민가수 에디트 피아프 “사창가서 자란 내 어린시절 어머니가 여덟명이나 생겨” ●집을 떠나던 15세(19 34년) 때 내 인생을 철저히 다시 써야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가 서커스단의 난쟁이 곡예사와 사탕을 팔던 여인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진실을 얘기하면 사람들이 나한테 관심을 가질까. 그래 차라리 빈민촌의 가로등 아래에 버려진 것으로 하자. 경찰관들이 나를 발견했다고 얘기하면 더 극적이겠지. 난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다락방에서 어린 내 음식에 술을 타던 외할머니. 쥐떼가 우글거려서 면역력을 키우려 그랬다지. 어머니를 버렸던 아버지는 날 그곳에서 구한답시고 친할머니에게 버렸고, 난 사창가에서 자라야만 했다. 무려 여덟명의 어머니가 생긴 그 시절은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남자가 날 지켜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여자는 무조건 남자의 요구에 따라야 한다. 내가 커온 사창가의 법칙이 그랬으니까. 그러나 아버지의 무지막지한 따귀는 더 이상 참기가 힘들다. 내 부모는 나에게 목소리를 줬다. 그 덕분에 난 이제 집을 나가도 살 수 있을 테지. 언젠가 성공한다면 난 엄마보다 훌륭한 어머니가 될 것이고, 아버지보다 훌륭한 남편을 만날 것이다. 어쨌든 난 평범한 여자처럼 살고 싶다.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집을 나간 피아프는 독특한 목소리를 무기로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전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샹송 가수가 됐다. 하지만 사창가에서 자란 피아프는 평생 남자관계에 어려움을 겪었다. 자신을 지배하거나 때리는 남자들에게 매력을 느꼈고, 실제로 “사랑이란 커다란 소동이나 엄청난 거짓말, 번갈아가며 양쪽 뺨에 따귀를 맞는 것과 같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남자친구에게 따귀를 맞아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공연에 오르는 일도 흔했다. 암흑 같은 과거의 그림자는 피아프를 평생 괴롭혔다. ■스페인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 “어릴적부터 맘대로 하던 나 ‘최고’ 소리 안들으면 못참아” ●산 페르난도대 신입생 시절인 18세(1922년) 때 예술이 생계수단이 될 수 없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식인종 같으니라고. 아버지(돈 살바도르)에게 굽히는 건 오로지 내가 학업을 이어갈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미술교사의 길을 걷도록 하려는 아버지의 계획에는 추호도 관심이 없다. 난 장학금을 받아 로마에 갈 것이고, 거기에서 돌아오면 난 천재가 되어 세상이 우러러볼 것이다. 입학식에 무슨 옷을 입을까. 망토? 금박 지팡이? 너무나 파격적인 내 옷차림에 교수들은 당황하겠지. 난 여섯살에는 요리사가, 일곱살에는 나폴레옹이 되고 싶었고, 그 이후 점점 더 내 야망은 뻗어갔다. 여동생의 머리를 축구공처럼 차버리든, 친구가 타고 있는 자전거를 낭떠러지로 밀어버리든 부모는 내가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그렇다. 난 천재다. 1등이었던 형을 대신하는 2등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난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어릴 때부터 뭐든 내 맘대로 해 왔는데, 이제 와서 꿈을 포기하라니 꼭 후회하게 해 줄 것이다. ●과보호 속에 커버린 최고의 이기주의자로 달리의 형을 잃은 부모는 어린 달리를 완벽한 독재자로 키웠다. 무한한 인내심과 자유방임이 유일한 교육철학이었다. 어떤 끔찍한 행동을 하고 버릇없이 굴어도 결코 야단치지 않았다. 부모가 자신을 형의 대신으로 여긴다고 생각한 달리는 오로지 유명해지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달리는 그림으로 인정받은 후에도 기행을 멈추지 않았다. 1940년부터 1965년까지 달리의 이름은 거의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신문, 라디오, TV에 언급됐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참 고 서 적 << ▲18인의 천재와 끔찍한 부모들(외르크 치틀라우·강희진/ 미래의 창) ▲살바도르 달리(살바도르 달리·이은진/ 이마고) ▲결코 사라지지 않는 로마 신성로마제국(기쿠치 요시오·이경덕/ 다른세상) ▲죽기전에 꼭 알아야 할 세계역사 1001 DAYS(마이클 우드·박누리/ 마로니에북스) ▲에디트 피아프(실뱅 레네·신이현/ 이마고) ▲케네디 평전(로버트 댈럭·정초능/ 푸른숲) ▲케네디가의 형제들(에드워드 케네디·구계원/ 현암사)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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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행과 악행, 그가 25년 하루도 빠짐없이 신문에 이름 올린 이유…

    기행과 악행, 그가 25년 하루도 빠짐없이 신문에 이름 올린 이유…

    “어머니께서 불을 끄고 떡을 썰지 않았다면 나는 나의 미숙함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눈물을 감추고 나를 다시 암자로 돌려보낼 때 어머니는 분명 피눈물을 흘리셨을 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 석봉 한호(1543~1605)에게 그의 어머니 백씨 부인에 대해 묻는다면 아마도 이런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율곡 이이(1536~1584)가 조선의 대유학자가 된 배경에는 현모양처의 대명사인 어머니 사임당 신씨(1504~1551)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 분명하다. 흔히 역사에 천재로 이름을 남긴 위인들의 뒤에는 훌륭한 부모가 있다고들 한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1847~1931)은 어머니와 ‘홈스쿨링’을 통해 창의력을 키웠고,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1732~1799)은 자기 업적보다 벚나무를 벤 실수를 고백하자 용서하고 격려한 아버지와의 일화(실제로는 꾸며낸 일이라는 설이 유력)로 더 유명하다. 부모의 영향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한국축구의 대들보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씨, 피겨여왕 김연아의 어머니 박미희씨의 교육법과 열정은 제2의 박지성·김연아를 키우려는 부모들의 롤모델이자 벤치마킹 모델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는 법. 여기 자녀들에게 재능만 물려줬을 뿐 사랑이나 진정한 교육은 주지 않았던 부모들이 있다.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 이번주의 주인공은 올리버 트위스트처럼 삐뚤어진 어린시절을 보내야만 했던 불행한 천재들이다.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리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았던 우울한 그들의 내면을 가상의 일기장을 통해 들여다봤다. 어린시절의 불행이 이들이 남긴 업적의 원동력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인성과 성공,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모든 부모의 꿈, ‘완벽한 교육법’을 어디에서 찾아야할까. ●프리드리히 2세 (1712~1786/ 프로이센의 계몽전제군주) 왕자 시절인 18세(1732년) 때의 일기 왕가의 숙명을 거부하고 도망치려다 결국 내 손으로 친구를 죽인 꼴이 됐구나. 궁궐 탈출을 끝까지 말렸던 한스(한스 헤르만 폰 카테 소위)는 결국 내 고집 때문에 오늘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 이외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아버지(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한스를 황제의 직권으로 사형시킨 것은 결국 나를 겨냥한 것일 테지. 자식에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지난 18년은 나에게 혼란의 연속이었다. 아버지는 날 프로이센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고, 어머니(조피 도로테아·하노버 왕조를 창시한 조지 1세의 딸)는 프랑스 왕족이 최고라고 하니 난 규율과 자유 어느 쪽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아버지는 아예 내 수업을 감시하는 대령을 뒀고, 내 스승은 문학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발길질을 당한 후 쫓겨났다. 아버지는 플룻 연주도, 시도 허용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건 권력이 아니라 예술인데 말이다. 왕실에서 사느니 차라리 동냥을 해서 빌어먹고 싶을 정도로 비참하다. 난 결심했다. 다시는 내 속내를 아버지에게 드러내지 않을 테다. 아버지보다는 내가 오래 살 테니 그때 내가 하고싶은대로 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 후] 아버지에 대한 미움은 이중인격 왕을 낳았다 ‘탈주사건’으로 친구 카테 소위가 처형당한 후 프리드리히 2세는 다시는 반항하지 않았다. 철저히 자신을 숨겼고, 아버지에게 복종하는 모습만 보여 신임을 얻었다. 1740년 왕좌에 오른 프리드리히 2세는 금욕적이고 냉철한 정치를 했던 아버지와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정치적, 종교적 소수자를 위한 정책을 폈고 노예제 폐지에 앞장섰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는 불신이 가득했다. 이는 어린시절 부모에게서 받은 폭력과 강압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자기와 뜻이 다른 사람을 잔인하게 처단했고, 다른 사람의 의견은 철저하게 무시했다. 역사학자들은 그를 ‘어떤 왕보다 더 차가운 내면을 지닌 야누스적인 왕’으로 평가한다.   ●존 F. 케네디 (1917~163/ 미국의 35대 대통령) 하버드대에 다니던 20세(1937년) 때의 일기 이젠 언제 어디서나 여자들과 즐길 수 있게 됐다. 병원에서도 간호사들과 사랑을 나눌 수 있으니. 아버지가 옳았던 것 같다. 여자는 어디까지나 남자들의 성공에 대한 자만심을 충족시켜 주는 트로피에 불과하다. 위대한 남자라면 두 개의 삶 정도는 가져도 무방한 것 같다. 아버지는 출신(케네디 가문은 본인들이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사실을 밝히길 꺼려했다.)을 완벽하게 바꿔놓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고, 결국 보스턴 상류사회에 자리잡을 수 있었다. 어머니(로즈 케네디)는 지나치게 엄격하지만, 뭐 내가 미래에 이 나라를 이끌어가려면 예의범절과 자기규율은 엄하게 배울수록 좋겠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포장에 불과한 것 아니겠는가. 다만 최근 들어 상인 출신인 아버지와 나는 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배우와 불륜을 즐기면서도 떳떳한 아버지처럼 했다간 분명 내 발목을 잡는 일이 생길 것 같다. 언제나 포장은 필요한 법이지. 나처럼 외양상으로는 완벽한 여성을 만나 결혼하고, 내 생활은 최대한 조용히 만끽하면 된다. 우리 부모님들조차 5년 전부터 각방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가문은 존경받는 신흥 명문가이지 않은가. [그 후] 바람기는 대를 물렸다 케네디의 아버지 조셉은 영화계에 투자하면서 여배우 글로리아 스완슨이라는 여배우와 염문을 뿌렸고 케네디가는 겉모습과는 달리 완벽하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는 추후 마릴린 먼로와 케네디의 스캔들로 대를 이었다. 누구에게나 선망받던 케네디와 재클린 오나시스의 결혼생활 역시 남편의 바람과 아내의 낭비벽으로 점철됐다. 케네디는 아버지처럼 여성에 집착했고 수많은 여성과 스캔들을 일으켰지만 재클린은 자기 시어머니처럼 이를 내색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엄격했던 어머니 로즈 때문에 케네디는 평생 압박감에 시달렸고, 각성제 암페타민과 진통제에 의존했다.   ●에디트 피아프(1915~1963/ 프랑스의 국민가수) 집을 떠나던 15세(1934년) 때의 일기 내 인생을 철저히 다시 써야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가 서커스의 난쟁이 곡예사와 사탕을 팔던 여인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진실을 얘기하면 사람들이 나한테 관심을 가질까. 그래 차라리 빈민촌의 가로등 아래에 버려진 것으로 하자. 경찰관들이 나를 발견했다고 얘기하면 더 극적이겠지. 난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다락방에서 어린 내 음식에 술을 타던 외할머니. 쥐떼가 우글거려서 면역력을 키우려 그랬다지. 어머니를 버렸던 아버지는 날 그곳에서 구한답시고, 친할머니에게 버렸고, 난 사창가에서 자라야만 했다. 무려 여덟명의 어머니가 생긴 그 시절은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남자가 날 지켜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여자는 무조건 남자의 요구에 따라야 한다. 내가 커온 사창가의 법칙이 그랬으니까. 그러나 아버지의 무지막지한 따귀는 더 이상 참기가 힘들다. 내 부모는 나에게 목소리를 줬다. 그 덕분에 난 이제 집을 나가도 살 수 있을 테지. 언젠가 성공한다면 난 엄마보다 훌륭한 어머니가 될 것이고, 아버지보다 훌륭한 남편을 만날 것이다. 어쨌든 난 평범한 여자처럼 살고 싶다. [그 후]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집을 나간 피아프는 독특한 목소리를 무기로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전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샹송 가수가 됐다. 성공한 피아프는 늙고 병든 아버지를 다시 찾아 죽을 때까지 생활비를 부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창가에서 자란 피아프는 평생 남자관계에 어려움을 겪었다. 자신을 지배하거나 때리는 남자들에게 매력을 느꼈고, 실제로 “사랑이란 커다란 소동이나 엄청난 거짓말, 번갈아가며 양쪽 뺨에 따귀를 맞는 것과 같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남자친구에게 따귀를 맞아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공연에 오르는 일도 흔했다. 암흑 같은 과거의 그림자는 피아프를 평생 괴롭혔고, 1933년 낳은 딸은 어린시절 피아프가 그랬듯 순회공연에 데리고 다녔다. 딸 마르셀은 2살도 되기전 뇌막염으로 숨졌다. ●살바도르 달리(1904~1989/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산 페르난도대 신입생 시절인 18세(1922년) 때의 일기 예술이 생계수단이 될 수 없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식인종 같으니라고. 아버지(돈 살바도르)에게 굽히는 건 오로지 내가 학업을 이어갈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미술교사의 길을 걷도록 하려는 아버지의 계획에는 추호도 관심이 없다. 난 장학금을 받아 로마에 갈 것이고, 거기에서 돌아오면 난 천재가 되어 세상이 우러러볼 것이다. 입학식에 무슨 옷을 입을까. 망토? 금박 지팡이? 너무나 파격적인 내 옷차림에 교수들은 당황하겠지. 난 여섯살에는 요리사가, 일곱살에는 나폴레옹이 되고 싶었고, 그 이후 점점 더 내 야망은 뻗어갔다. 여동생의 머리를 축구공처럼 차버리든, 친구가 타고 있는 자전거를 낭떠러지로 밀어버리든 부모는 내가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그렇다. 난 천재다. 1등이었던 형을 대신하는 2등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난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어릴 때부터 뭐든 내 맘대로 해 왔는데, 이제 와서 꿈을 포기하라니 꼭 후회하게 해 줄 것이다. [그 후] 과보호 속에 커버린 최고의 이기주의자가 되다 달리의 형을 잃은 부모는 어린 달리를 완벽한 독재자로 키웠다. 무한한 인내심과 자유방임이 유일한 교육철학었다. 어떤 끔찍한 행동을 하고 버릇 없이 굴어도 결코 야단치지 않았다. 부모가 자신을 형의 대신으로 여긴다고 생각한 달리는 오로지 유명해지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달리는 그림으로 인정받은 후에도 기행을 멈추지 않았다. 1940년부터 1965년까지 달리의 이름은 거의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신문, 라디오, TV에 언급됐다. [참고문헌]  18인의 천재와 끔찍한 부모들(외르크 치틀라우·강희진/ 미래의 창)  살바도르 달리(살바도르 달리·이은진/ 이마고)  결코 사라지지 않는 로마 신성로마제국(기쿠치 요시오·이경덕/ 다른세상)  죽기전에 꼭 알아야 할 세계역사 1001 DAYS(마이클 우드·박누리/ 마로니에북스)  에디트 피아프(실뱅 레네·신이현/ 이마고)  케네디 평전(로버트 댈럭·정초능/ 푸른숲)  케네디가의 형제들(에드워드 케네디·구계원/ 현암사)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부고] 항일 애국지사 오경복 선생

    일제 강점기 때 국내에서 항일운동에 참여한 애국지사 오경복 선생이 지난 24일 별세했다. 89세. 1922년 황해 송화에서 태어난 선생은 광성중학교에 다니던 1940년 동지 5명과 함께 항일결사를 조직해 조선 민족의 참상에 대해 의견을 나누며 민족의식을 키웠다. 1941년 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에 유학했으나, 1942년 12월 항일결사 조직이 발각되는 바람에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이듬해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아 출옥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77년 대통령 표창과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유족으로 부인 하영희 여사와 2남 1녀가 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애국지사 등 176명 3·1절 포상

     국가보훈처는 3·1절을 맞아 미주지역에서 활동하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후원한 고(故) 강영소 선생을 비롯한 176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포상한다고 24일 밝혔다.  보훈처에 따르면 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120명(독립장 2명, 애국장 55명, 애족장 63명), 건국포장 27명, 대통령표창 29명으로, 이중 여성은 1명이며 생존자는 없다. 2005년 발족한 전문사료발굴·분석단이 수형인명부와 범죄인명부, 형사사건부, 판결문 등 다양한 자료를 수집, 분석해 국내는 물론 만주, 일본, 미주 등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를 다수 발굴했다.  발굴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는 미주지역 독립운동의 대표적 지도자인 강영소 선생. 그는 1909년 1월 미주지역의 통일된 독립운동 단체로 국민회를 결성하고, 1913년 안창호 선생과 함께 흥사단을 조직했다. 1922년부터 1931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지속적으로 독립운동 의연금을 제공했다. 역시 독립장을 받는 유상돈 선생은 1909년 평안북도 철산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면서 일본인 관리를 처단했다가 체포돼 투옥 중 탈옥, 러시아령으로 건너가 1910∼1920년대 중반까지 중국과 러시아 등에서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포상 대상자가 된 김안순 선생은 간호사로 1919년 3월 10일 전남 광주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체포돼 징역 4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김 선생은 그동안 관련 자료에서 ‘김안순’과 ‘김유운’이라는 서로 다른 이름으로 존재해 포상이 보류됐다가 두 차례에 걸친 현지조사와 경찰청에 지문 확인 의뢰를 통해 동일인임을 확인, 대통령표창을 받게 됐다고 보훈처는 설명했다.  이 밖에 1920년대 강원도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돼 옥중 순국한 진홍거 선생과 중국 서간도에서 부민단·한족회 지방 책임자로 활동하면서 1919년 안도현 내도산에서 독립군 병영지를 물색한 강호석 선생 등이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는다. 특히 강 선생은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인 석주(石洲) 이상룡 선생의 사위로 석주 선생 가문에서 독립유공자로 훈장을 받은 10번째 인물로 기록돼 눈길을 끈다.  이들을 포함해 정부 수립 이후 포상받은 독립유공자는 대한민국장 30명, 대통령장 93명, 독립장 809명, 애국장 3742명, 애족장 4627명, 건국포장 896명, 대통령표창 2246명 등 모두 1만 2443명에 이른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면목동 발바리’ 징역 22년6개월 선고

    서울북부지법 제11형사부(부장 강을환)는 10일 서울 중랑구 일대에서 강도와 성폭행을 일삼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면목동 발바리’ 조모(27)씨에게 법정 최고형인 징역 22년 6개월을 선고하고 20년간 위치 추적 전자 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가족과 동거인이 보는 앞에서 부녀자를 성폭행하고 어머니뻘인 60대 여성을 성폭행하기도 했으며, 강도 행위가 발각됐을 때 피해자들을 살해하려 하는 등 그 죄가 매우 중하다.”며 “경찰의 DNA 수사망이 좁혀오자 자수한 점과 수사 과정에서 범행을 모두 자백한 점을 고려해도 감형이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혼자 사는 여성을 대상으로 수차례 계획적 범행을 저지른 것 등에 비춰 볼 때 피고인이 이후 범죄를 또 저지를 위험성이 높다. 장기간 사회로부터 격리시킬 필요가 있어 현행법상 가능한 최고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또?” …15번째 왕비 찾는 스와질란드 국왕

    “또?” …15번째 왕비 찾는 스와질란드 국왕

    지난달 성추문이 불거진 스와질란드 왕실이 새로운 왕비를 들일 것으로 보인다. 스와질랜드의 음스와티 3세(42) 국왕이 최근 15번째 왕비를 얻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민이 100만 명 남짓인 아프리카 남부 내륙의 입헌군주국 스와질란드는 일부다처제를 보장한다. 음스와티 3세 국왕은 이미 왕비 14명을 뒀으며 그 사이에서 낳은 자녀 23명이 있다. 2008년 9월 14번째 부인을 얻은 지 2년 만에 음스와티 3세 국왕이 다시 혼례를 결심했다고 해외언론매체들이 보도했다. 최근 열린 리드(갈대) 댄스 축제에 참여해 한 번도 혼례를 치르지 않은 젊은 처녀 중 한명을 간택할 것으로 전해졌다. 리드 축제는 처녀 수천 명이 모후에게 갈대를 꺾어 바친 뒤 초원에서 반나체로 춤을 추는 연례행사로, 지금껏 음스와티 3세 국왕은 이 축제를 통해서 왕비 감을 골라왔다. 스와질란드에서는 나이가 10세 이상인 소녀는 혼인할 수 있다. 단, 혼례를 한 이후 5년 간 혹은 18세 이하 처녀들은 성관계를 맺을 수 없다. 그러나 몇 년 전 음스와티 3세 국왕이 17세밖에 안된 왕비와 잠자리를 해 스스로 법을 어긴 바 있다. 스와질란드 왕실의 혼례소식이 더욱 눈길을 끄는 이후는 지난달 떠들썩한 성추문이 불거졌기 때문. 국왕의 12번째 왕비인 노탄도 두베(22)가 은두미소 맘바 법무장관과 밀애를 즐기다가 경찰에 체포된 바 있다. 두베 왕비는 혼외정사로 시어머니인 인들로부카지 모후의 궁에 연금됐으며 맘바 장관은 22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됐다. 스와질란드 왕실에서는 2004년에도 불륜설에 휘말린 왕비 2명이 처벌을 피하려고 국외로 탈출하면서 체면을 구긴 바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탈옥수’ 신창원, 일반교도소 이감…모범수형 결과

    탈옥수 신창원이 중경비시설인 청송 제2교도소에서 일반경비시설인 청송 제 1교도소로 이감됐다. 법무부는 22일 신창원을 박근혜 한나라당 전(前) 대표에게 테러를 가해 수감된 지충호와 함께 일반교도소로 이감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제 2교도소에서 교육을 마쳤으며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 통상적인 이감 수순을 밟게 됐다. 본래 청소교도소는 제 1, 2, 3, 4교도소와 직업훈련소 등 4개 시설로 분할되며 그 중 제 2교도소는 아동 성폭행범을 포함한 흉악범죄자, 즉 특별관리 요구대상자들을 분리 수용하는 국내 유일의 중경비 시설이다. 앞서 신창원은 강도치사죄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1997년 1월 부산교도소 감방 화장실의 쇠창살을 절단하고 탈옥한 뒤 2년 넘게 도피행각을 벌이다 1999년 7월 붙잡혀 22년 6월의 형이 추가됐다. 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수철 최고 무기형…절도 등 혐의 5개로

    서울 영등포 초등생 성폭행 피의자 김수철이 16일 서울남부지검으로 송치됐다. 김이 A양을 납치·성폭행한 것 외에도 가출한 10대 소녀를 성매수하고, 기초수급대상자 혜택을 보기 위해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증을 훔쳐 사용한 혐의도 추가했다. 이로써 김은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미성년자 약취·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절도 등 5가지 혐의를 받게 됐다. 경찰이 적용한 5가지 혐의가 모두 입증되면 김은 최고 무기징역까지 선고가 가능한 것으로 법조계는 보고 있다. 초등생 성폭행 혐의에 대해 재판부가 무기징역이나 10∼15년의 징역형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나머지 4가지 범죄를 반영해 가중하면(경합범 가중) 무기징역 또는 징역 10년∼22년6개월이 된다. 김이 성폭행할 당시 술에 취했다고는 하지만 음주를 이유로 심신미약 감경에 신중해야 한다는 게 대체적 의견이다. 영등포경찰서는 이날 종합수사결과 발표에서 김이 순천교도소 출소 직후인 2009년 10월 영등포의 한 인력사무소에서 정모씨의 주민등록증을 훔친 사실도 드러났다고 밝혔다. 또 김은 2009년 12월 영등포의 한 PC방에서 만난 가출 여학생 이모양에게 숙식을 제공해 주겠다며 자신의 집에서 한 번에 2만원을 주고 2개월 동안 13회에 걸쳐 성매수를 한 사실도 확인됐다고 경찰은 전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폭력 안썼다” 法 관대한 처벌

    “폭력 안썼다” 法 관대한 처벌

    “집에 누구 없어? 화장실 좀 잠깐 써도 될까?” 2008년 지방의 한 아파트에서 A(22)씨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B(9)양에게 말을 걸었다. 볼일이 급하다고 사정하는 A씨를 보고 안됐다고 생각한 B양은 집 화장실을 쓰라고 허락했다. 하지만 B양의 집에 들어간 A씨는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겠다.”며 B양을 추행했다. A씨는 비슷한 방법으로 2년 동안 10차례에 걸쳐 6~12세 어린이를 추행했다. 범행 뒤에는 회유를 위해 1000원을 용돈으로 주기도 했다. 피해아동 가운데 일부는 충격과 증오심으로 A씨에게 받은 지폐를 찢어버리는 행동을 보였다. 치료감호소에서 여자어린이에 대한 성적 충동 조절 능력이 떨어지고 범행 뒤 죄의식이나 후회감 등을 보이는 소아성기호증 판정을 받은 A씨는 징역 5년에 전자발찌 부착 2년, 열람정보 제공 5년을 확정받았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A씨가 경찰에서 자백한 범행은 36차례나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신고가 접수된 사건만 조사해 기소했다. A씨는 전형적인 아동성범죄자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서울신문이 법무부 성폭력치료재활센터에 수감중인 성범죄자 28명의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의 아동성범죄자들은 함께 놀아주거나 도움을 청하는 식으로 어린이들의 환심을 샀다. 하지만 법원은 아동성범죄에서 물리적 폭행 없이 피해자를 속이거나 위력으로 제압하는 ‘위계·위력’을 사용한 경우를 오히려 감경요소로 삼는 등 관대한 처벌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C(39)씨는 차를 몰고 가다 어린이에게 길을 묻고 안내해달라며 차에 태운 뒤 성폭행했다. 강간치상죄로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출소한지 불과 1년여 뒤의 일이었다. 재판부는 소아성기호증 판정을 받은 C씨에 대해 “성적 콤플렉스로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는 이유만으로 여자어린이를 성적 만족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판시했다. C씨의 법정형량은 2년 6개월~12년 6개월이었지만 법원은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비특이적 인격장애와 충동억제능력이 부족하다는 소아성기호증 정신증상이 오히려 감경요소로 작용했다. 두 차례에 걸쳐 집 앞에서 놀고 있는 여자어린이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추행한 D(49)씨에게 적용되는 형량은 징역 3년~22년6개월이었지만, 징역 3년6개월이 선고됐다. 지하철역에서 만난 어린이들에게 화장실 위치를 안내해달라고 부탁하는 방법으로 3년 동안 7명을 추행한 E(32)씨에게도 형량 최하한인 징역 5년이 선고됐다. 범행을 반성하고, 형사처벌 전력이 없다는 점 등이 감경요소가 됐다. 양형뿐 아니라 범죄자의 출소 뒤 사후관리 조치도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이후 성폭력치료재활센터에 수감된 아동성범죄자 10명 가운데 재판부가 거주지 주변에 있는 학교에 대한 접근금지 조치 등 준수사항을 부과한 사례는 2건에 불과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상습 성폭행범 징역22년 중형

    8세 여아를 잔혹하게 성폭행한 ‘조두순 사건’으로 흉악범에 대한 유기징역 상한선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법원이 아동 성폭행범에게 잇따라 중형을 선고하고 있다. 서울북부지법 형사11부(부장 이상철)는 17일 상습적으로 여성을 성폭행해 성폭력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모(45)씨에게 징역 22년을 선고하고 석방 이후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부착하라고 명령했다고 밝혔다. 현행 형법상 유기징역으로 선고할 수 있는 최고 형량은 가중형량까지 쳐도 최대 25년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동종 전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흉기를 소지한 채 강간 범행을 저지르고, 상습적으로 강·절도 범행을 저질렀다.”면서 “장기간 사회에서 격리하는 것이 범행에 대한 단죄이자 뉘우치고 참회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지난해 1월 서울 노원구 한 주택에 들어가 A(9)양을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하는 등 2005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여성 8명을 잇따라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성폭행범 최고 30년 징역형

    성폭행범 최고 30년 징역형

    법무부는 25일 아동성폭력범 등 흉악범의 유기징역형 상한을 최대 30년으로 늘리고, 공소시효도 늘리는 등의 내용을 담은 ‘형법 및 성폭력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늘어난 한국인의 평균수명 등을 반영해 유기징역형의 상한을 20년으로 연장하고, 가중요소가 있다면 최대 30년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현행 유기징역의 상한은 15년으로 가중요소가 있을 때 최대 22년 6개월까지 선고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사형 및 무기징역형을 감경할 때 상한을 현행 15년에서 30년으로 높이고 하한도 현행 7~10년에서 15~20년으로 조정했다. 특히 ‘조두순 사건’으로 아동 성폭력범의 엄벌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법감정을 고려해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내용도 담았다. 성폭력범의 공소시효는 13세 미만 피해 아동이 만 20세가 될 때까지 정지되며, DNA 등 확실한 증거가 있어 범죄자를 특정화할 수 있을 경우 10년 더 연장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현행 성폭력범의 공소시효는 15년이다. 또 술을 마시거나 마약류를 사용한 상태에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법원이 심신미약 감경규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관련 전문가의 감정을 필수적으로 거치도록 명문화했다. 게다가 심신미약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법관이 감경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형법의 심신미약 감경규정을 필요적 감경에서 임의적 감경으로 개정했다. 징역 12년을 선고받은 조두순에게 개정안이 적용된다면 법관은 무기징역형을 선택해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을 인정해 감경을 해 주더라도 징역 30년까지 선고가 가능하다. 만약 2008년 12월 범죄 발생 후 조두순이 잡히지 않았다면 8세인 피해아동이 20세가 될 때까지 12년 동안 공소시효가 중단돼 2035년 12월(모두 27년)에나 공소시효가 완성된다. 또 DNA 증거가 있다면 10년 더 연장돼 모두 37년의 공소시효가 적용되고 2045년 12월에 완성된다. 법무부는 “조두순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판결 이후 국민들이 제기한 아동성폭력범죄의 선고형량 상향, 피해자보호 강화, 음주감경의 엄격한 인정 등을 반영할 필요성이 높았다.”고 밝혔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盧 전대통령 소환] 권력형 비리 부른 폐쇄된 특권

    [盧 전대통령 소환] 권력형 비리 부른 폐쇄된 특권

    2009년 4월30일은 13년 6개월 만에 또다시 ‘전직 대통령의 불행한 날’로 우리 역사에 기록된다. 이는 우리 사회에 존경받는 통치리더십의 실종을 의미하며, 권력층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사회적 갈등을 잉태한다. 전직 대통령이 존경받는 존재로 남기 위해서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 실태와 원인, 대안을 3차례에 걸쳐 모색해본다. 전직 대통령들이 퇴임 이후 부패와 권력형 비리로 얼룩진 뒷모습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벌써 세번째다. 사법적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전직 국가 최고 통치자였다는 상징성을 뛰어넘어 사회원로라는 측면에서도 리더십의 불신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계는 전직 대통령들이 연이어 사법 처리를 받는 데 대해 “대통령제가 갖는 한계인 대통령의 폐쇄적 특권에 대한 견제와 자정능력이 결핍된 결과”라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이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정치에 대한 불신과 권력에 대한 혐오가 누적되고 있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전직 대통령이 사법적 심판에 처음 거론된 것은 1995년 10월19일이었다. 당시 박계동 의원이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재임 중 각계에서 받은 거액의 비자금을 퇴임 후에도 은닉하고 있다.”고 폭로했고, 한달여 뒤인 11월1일 노 전 대통령은 검찰에 소환됐고 보름 뒤인 16일에 전격 구속됐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11월24일 5·18특별법 제정을 지시했고 특별수사본부는 5·18 민주화항쟁에 대해서 전면 재수사에 돌입했다. 12월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은 검찰 소환에 반발해 서울 연희동 집 앞에서 ‘골목길 성명’을 발표하고 고향 합천으로 내려갔지만 다음날 새벽 전국에 생중계되는 상황에서 체포되는 굴욕을 당했다. 12월21일, 5·18특별법이 제정·공포된 뒤 이듬해 8월26일 전 전 대통령에게는 사형이, 노 전 대통령에게는 징역 22년6월이 선고됐다. 두 사람에게는 뇌물죄와 군 형법상 반란 및 내란죄가 적용됐다. 이 판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통념을 깬 결정으로 전세계의 눈길을 끌었다. 1997년 12월 김영삼 대통령이 ‘국민 대화합’을 명분으로 특별사면했지만 국민들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정치 혐오증 차원이 아니라 사회의 권위가 통째로 무너지는 사회 해체에 가까운 현상이라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과 교수는 “전직 대통령들이 수사를 받고 법정에 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국민들에게 ‘권력은 비리를 저지르고 부패하는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줬다.”면서 “정치 혐오증이 더욱 악화되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박건형 유대근기자 kitsch@seoul.co.kr
  • 법원, 사이코패스엔 일반 양형+α

    법원이 사이코패스에게 높은 형량을 선고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아 재발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서울신문이 5일 사이코패스 테스트(P CL-R)를 양형 자료로 활용한 판결문 35개를 분석한 결과 전체 피고인 43명 가운데 사이코패스 성향으로 진단된 사람은 17명이었고 이들은 무기징역 등 높은 형량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사이코패스 성향이 짙은 피고인이 형량을 줄여달라고 항소한 사건은 예외없이 기각됐다. RCL-R를 자료로 활용하는 재판부는 대전고법 형사1부(부장 김상준)와 부산지법 형사합의5부(부장 고종주)이다.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20개 문항으로 나열한 PCL-R는 40점 만점으로 미국은 30점 이상, 한국은 24점 이상을 사이코패스로 분류한다. 한국 범죄자 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예비 연구에서는 평균 점수가 15.4점이었다. 강호순은 두 차례 테스트에서 27점과 28점, 연쇄살인범 유영철은 38점이 나왔다. 강모(41)씨는 20대 여성이 혼자 사는 원룸에 가스배관을 타고 침입해 15명의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전과 4범으로 강도강간죄로 처벌을 받은 적도 있었다. 심리검사 결과 성범죄자의 재범 위험성을 평가하는 테스트(K-SORAS)에서 22점(만점 30점), PCL-R에서 35점이 나왔다. 강씨는 법정 최고형(22년6개월)에 가까운 징역 20년을 확정받았다. 여섯 살 여자아이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정모(54)씨는 PCL-R에서 29점, K-SORAS에서 19점을 받아 징역 5년형과 함께 3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달라는 명령을 받았다. 아동 성범죄 전과가 있었는데 출소한 다음날 동일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었다. 재판부는 “형량만 높여 재범을 방지하기 어렵다.”면서 “출소하고 나서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초등학교 주변 등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PCL-R 점수가 낮아 사형을 면한 피고인도 있었다. 7년8개월간 여성 127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이모(49)씨는 테스트에서 비교적 낮은 점수인 16점을 받았다. 재판부는 “극도로 악한 성향이 뚜렷하다고 보이지 않아 교화·개선의 여지가 남아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PCL-R, K-SORAS 등 심리진단보고서를 양형 자료로 활용하는 김상준 부장판사는 “피고인의 재범 위험성을 과학적으로 진단할 필요가 있어 2007년 3월부터 심리전문위원에게 의뢰해 시행하고 있다.”면서 “사이코패스 경향이 높은 피고인이 왜곡된 범죄 의식을 바로잡고 충동 조절 능력을 익히도록 교정 당국이 치료적, 과학적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열린세상] 22년 늦은 무죄선고/금태섭 변호사

    [열린세상] 22년 늦은 무죄선고/금태섭 변호사

    1986년 간첩 혐의로 기소되어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까지 받고 재심을 신청했던 강희철씨가 최근 무죄 선고를 받았다. 무려 22년 만에 억울함이 밝혀진 것이다.1974년 오사카에 사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했던 그는 1982년 일본경찰에 적발되어 한국으로 강제추방당하게 된다.1986년 4월 한국의 수사기관은 그를 연행해서 간첩죄로 기소했다. 무기징역이 선고되었고 대법원에서 확정되었다. 그는 1998년 8·15 특별사면으로 석방되기까지 13년간 수감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번에 그에게 무죄를 선고한 제주지방법원 형사2부 재판장은 간첩 혐의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내용의 판결문을 낭독하면서 이례적으로 “불법수사로 말미암아 오랜 세월 동안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고통을 받은 피고인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유감의 뜻을 전했다고 한다. 뒤늦은(사실 이루 말할 수 없이 뒤늦은) 일이기는 하나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에게 정당한 판결이 내려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잘못된 결정이더라도 일단 한번 내려지면 뒤집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사법의 속성을 생각하면 재판부의 결단은 용기 있는 것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언론에 보도된 판결문에 의하면 강희철씨는 수사기관에 연행된 뒤 85일간 불법으로 구금된 채 조사를 받았는데 80일이 지난 후에야 간첩임을 자백하는 진술서를 작성했다. 담당 경찰관은 자백을 해야 가벼운 형을 받을 수 있다고 회유를 하면서 법정에 나와서 피고인을 지켜보았고 심지어 변호인 선임을 방해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자백을 제외한 유죄의 증거라는 것은 고작 피고인이 오사카 조선고급학교를 졸업했다거나, 친척 중에 조총련에서 활동한 사람이 있다거나, 심지어 일제 만년필과 스웨터를 수집했다는 등의 불명확한 것뿐이었다. 어떻게 이러한 상황에서 피고인에 대해 유죄판결이 내려질 수 있었는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단순히 재심을 통해 내려진 결론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 오류를 범하게 되었는지 철저히 검증하는 것이다. 과거의 수사, 재판 기록을 뒤져서 도대체 무슨 이유로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연행하게 되었는지, 기소에 이르게 된 경위는 어떠한지, 재판 과정에서 검찰과 피고인은 어떤 주장을 했고 그에 대해 재판부는 무엇을 근거로 어떻게 판단했는지 하나하나 따져보아야 한다. 우리 법학의 고질적인 문제점 중 하나는 이론적인 쟁점을 둘러싸고는 치열한 논쟁을 벌이면서도 정작 구체적인 사실 확정에 관해서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학계나 일반인이 사건 기록에 접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는 것도 그 주요한 원인 중 하나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번에 개정된 형사소송법이 학술연구 등을 위한 기록의 열람을 허용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출발점일 뿐이다.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과거의 오류를 되돌아보는 치열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강희철씨는 그간 가장 힘들었던 일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주위에서 이상한 눈으로 보는 것이 견디기 어려웠다는 대답을 했다. 그 고통을 풀어주는 일은 애초에 잘못된 결정을 했던 사법의 몫이다. 억울한 사람을 처벌받게 한 과정을 규명하는 것은 그 시발점이 될 것이다. 강희철씨에게 무죄판결을 선고한 재판부는 이번 판결이 피고인의 진정한 명예회복과 새로운 출발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했다. 이 판결이 우리 사법을 위해서도 진정한 명예회복과 새로운 출발로 나아갈 수 있는 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금태섭 변호사
  • [삼성특검 수사 발표] 李회장 실형 가능성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및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건희 회장에게는 ‘법령상’ 중형이 예상된다. 고등법원은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발행’ 사건으로 기소된 허태학·박노빈 전·현직 에버랜드 대표이사들의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30억원을 선고했다. 게다가 특검은 이 회장이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발행에도 개입한 사실을 밝혀냈기 때문에 이들보다 처벌 수준이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경가법은 회사에 50억원 이상의 손해를 가했을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회장이 에버랜드 CB 발행과 삼성SDS BW 발행으로 회사에 입힌 손해는 2509억원에 이른다. 게다가 이 회장은 1199개의 차명 증권계좌 등을 이용해 상장 계열사 주식을 사고 파는 과정에서 발생한 5643억원의 이익에 대해 1128억원의 양도소득세를 포탈한 혐의로도 기소됐다. 특가법상 이 회장은 최저 징역 5년에 벌금 2256억원, 최고 무기징역에 벌금 5640억원을 내야 한다. 두 혐의만 놓고 보면 최고 무기징역 또는 최저 징역 5년 이상 22년6개월 이하까지 선고받을 수도 있다. 법원이 이 회장의 사회공헌 정도를 감안해 정상을 참작하더라도 최소 징역 2년6개월 이상 11년3개월 이하의 실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특검이 공소제기한 사건에 대해 법원은 3개월 내에 1심 판결 선고를 해야 한다. 또 2심과 3심은 전심의 선고일로부터 각각 2개월 이내에 판결해야 한다. 이에 따라 오는 7월 말쯤 1심 판결 선고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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