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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전적 보니 ‘벽돌 테러+분신까지..’ 리퍼트 대사 수술 성공적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전적 보니 ‘벽돌 테러+분신까지..’ 리퍼트 대사 수술 성공적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전적 보니 ‘벽돌 테러+분신까지..’ 리퍼트 대사 수술 성공적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리퍼트 美 대사 피습, 대사 수술 성공적’ 마크 리퍼트 美 대사 피습 사건이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피의자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에게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경찰은 5일 오전 7시 40분쯤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조찬강연에서 리퍼트 美 대사를 흉기로 공격한 피의자가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라고 밝혔다.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는 리퍼트 美 대사 피습 현장에서 경찰에 붙잡힌 뒤 “오늘 테러했다. 우리마당 대표다. 유인물을 만들었다. 전쟁 훈련에 반대해서 만든 유인물이다”라고 주장했다.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는 지난 2010년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일본대사 초청 강연회에서 시게이에 도시노리 주한 일본대사를 향해 지름 10cm 크기의 시멘트 조각 2개를 던진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김기종은 진보성향의 문화운동 단체인 우리마당 대표를 맡고 있으며 1998년 통일문화연구소를 창립, 2006년 독도지킴이를 창립하기도 했다. 김기종은 2006년에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자 동료 6명과 함께 본적을 경북 울릉군 독도리 38번지로 옮기기도 했다. 2007년에는 지난 1988년 발생한 ‘우리마당 습격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중 분신을 시도해 전신에 화상을 입은 적도 있다. 1988년 우리마당 습격사건은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있었던 ‘우리마당’ 사무실을 괴한 4명이 습격해 안에 있던 여성을 성폭행하고 달아난 사건이다. 한편 신촌세브란스병원 측은 5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의 수술이 2시간 30분가량 진행됐으며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발표했다. 이날 오전 피습을 당해 오른쪽 얼굴과 왼쪽 팔 쪽에 자상을 입은 리퍼트 대사는 강북삼성병원에서 응급 치료를 받은 뒤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유대현 성형외과 교수와 최윤락 정형외과 교수의 집도로 수술을 받았다. 리퍼트 대사의 얼굴 봉합 수술을 담당한 유 교수는 “광대뼈에서 턱까지 길이 11cm, 깊이 3cm 정도의 깊은 상처였는데 천우신조로 (흉기가) 주요 신경과 침샘 등을 빗겨나가 기능에는 큰 문제가 없을 전망”이라며 “다만 조금만 더 (흉기가) 들어갔으면 경동맥이 손상됐을 수도 있었다”고 밝혔다. 리퍼트 대사의 얼굴 상처는 불과 1~2cm 차이를 두고 목 쪽의 경동맥을 빗겨나갔다는 것. 유 교수는 또 “기능적인 후유증은 없을 것 같지만 흉터가 전혀 없는 것처럼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만 1~2년이 지나면 희미해져서 눈으로는 알아보지 못할 정도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정형외과 수술을 집도한 최 교수는 “리퍼트 대사가 공격을 팔로 막는 과정에서 왼쪽 팔의 전완부 중간 부분에 새끼손가락에서 엄지손가락 방향으로 3cm가량 관통상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새끼손가락의 척골 신경과 엄지와 검지를 펼 때 쓰는 신경이 손상돼 봉합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며 “힘줄 손상이 동반됐기 때문에 4주 이상 고정할 필요가 있지만 기능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새끼손가락 쪽에 감각 저하가 예상되지만 6개월~1년 정도 지나가면 기능이 정상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리퍼트 대사는 현재 병실로 옮겨져 안정을 취하고 있으며 수술 경과를 지켜보기 위해 3~4일가량 입원치료를 받을 예정이다. 사진=뉴스 캡처(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리퍼트 美 대사 피습, 대사 수술 성공적)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속보] 리퍼트 미국 대사 민화협 강연서 피습…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검거

    [속보] 리퍼트 미국 대사 민화협 강연서 피습…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검거

    마크 리퍼트 미국 대사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행사 참석 도중 김기종(55) 우리마당 대표로부터 공격을 받아 얼굴 등을 크게 다쳤다. 리퍼트 대사는 5일 오전 7시 40분쯤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주최 조찬 강연회 장소에서 강의를 준비하는 도중 김씨로부터 흉기로 얼굴과 왼쪽 손목 부위를 공격당했다. 김씨는 진보성향 문화운동 단체인 우리마당 대표를 맡고 있다.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은 리퍼트 대사 오른쪽 뒤쪽 테이블에 있던 김씨가 갑자기 다가와서 리퍼트 대사를 밀어 눕히고 여러 차례 공격했다고 전했다. 리퍼트 대사는 피를 많이 흘린채 순찰차를 타고 인근 강북삼성병원으로 긴급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은 현장에서 용의자를 검거해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김씨는 경찰에 붙잡힌뒤 “오늘 테러했다. 우리마당 대표다.유인물을 만들었다. 전쟁 훈련에 반대해서 만든 유인물이다”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순찰차에 태워지기 직전 “전쟁 훈련 반대”라는 구호를 외쳤다. 김씨는 지난 2010년 7월 주한 일본대사에게 콘크리트 조각을 던진 혐의(외국사절 폭행)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리퍼트 미대사, 민화협 강연서 피습..왜?

    리퍼트 미대사, 민화협 강연서 피습..왜?

    경찰 등에 따르면 재야 문화운동가인 김 대표는 5일 오전 7시 40분께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리퍼트 대사에게 흉기를 수차례 휘두른 혐의로 현장에서 검거됐다. 김 대표는 지난 2010년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특별강연회 도중 시게이에 도시노리 당시 일본대사에게 지름 약 10㎝와 7㎝인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진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바 있다. 이후 김 대표는 법원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김 대표는 지난해 시게이에 전 일본 대사를 공격했던 일을 엮은 책인 ‘독도와 우리, 그리고 2010년’을 출간하기도 했다. 2006년에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자 김씨는 동료 6명과 함께 본적을 경북 울릉군 독도리 38번지로 옮긴 바 있다. 뉴스팀 chkim@seoul.co.kr
  • 리퍼트 미대사, 피습 당시 상황 봤더니..

    리퍼트 미대사, 피습 당시 상황 봤더니..

    경찰 등에 따르면 재야 문화운동가인 김 대표는 5일 오전 7시 40분께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리퍼트 대사에게 흉기를 수차례 휘두른 혐의로 현장에서 검거됐다. 김 대표는 지난 2010년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특별강연회 도중 시게이에 도시노리 당시 일본대사에게 지름 약 10㎝와 7㎝인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진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바 있다.이후 김 대표는 법원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뉴스팀 chkim@seoul.co.kr
  •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아파! 아파!” 고통…장윤석 국회의원 누구길래?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아파! 아파!” 고통…장윤석 국회의원 누구길래?

    우리먀당 김기종, 우리마당 김기종 대표, 장윤석 국회의원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아파! 아파!” 고통…장윤석 국회의원 누구길래? 미국 대사를 흉기로 공격한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55)씨가 5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김기종씨는 이날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화협 주최 조찬 강연회 행사장에서 리퍼트 대사가 앉은 중앙 헤드테이블의 오른쪽 뒤쪽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오전 7시 35분쯤 리퍼트 대사가 도착하고 5분여 뒤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조찬이 시작되자 김씨는 갑자기 일어나서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 참석자 옆에 A4 용지 크기의 유인물 10장을 내려놓고는 “받으라”고 말했다. 그 후 김 대표가 헤드테이블 쪽으로 이동해 리퍼트 대사를 밀쳐 눕히고 흉기를 수차례 휘두르기까지는 불과 1∼2초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한 참석자는 “다들 여유롭게 식사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는데 리퍼트 대사가 아침으로 나온 죽 첫술을 뜨자마자 갑자기 공격당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테러범이 옆으로 다가오자 리퍼트 대사가 자신에게 인사하려는 줄 알았는지 악수를 청하려는 자세로 일어났는데 그러고 나서 바로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고 전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참석자들과 김씨를 제지하려는 관계자들, 당시 현장에 있던 취재진이 뒤섞이면서 현장은 이내 아수라장이 됐다. 그 사이 김씨는 뒤쪽 테이블에 있던 미 대사관 경호팀과 민화협 관계자들, 새누리당 장윤석 의원 등 참석자들에 의해 제압당해 바닥에 엎드려 있다가 출동한 경찰에 인계됐다. 장윤석 의원은 2013년 제 21대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 회장으로 활동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당시 김씨는 “유인물을 나눠주십시오. 지난 3월 2일에 훈련 반대하면서 만든 유인물입니다. 한일관계 다리가 날아갔어. 왜 전쟁훈련합니까. 전쟁훈련하면 우리나라 통일 영원히 안 됩니다”라고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고 목격자들은 말했다. 김씨는 행사장 밖으로 끌려나간 뒤에도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린 채 한동안 저항했다. 경찰 조사를 받던 김씨는 제압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다며 병원 치료를 먼저 받겠다고 요구해 이날 오전 11시 11분쯤 서울 종로구 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 종로경찰서에서 나와 응급차량으로 옮겨지는 와중에 “전쟁훈련 반대한다”, “이산가족이 못만나는 이유가 전쟁훈련 때문이라 그랬다”, “전쟁훈련 중단하자, 키 리졸브…”라고 외치다 “아~ 아파! 아파!”라고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김씨는 검거 직후 종로경찰서로 이송돼 조사를 받았지만 진술을 거부했으며, “경호요원에게 밟혀서 발목 등을 다쳤으니 치료를 받고 변호사가 오면 그때 진술을 하겠다”고 말했다. 병원에 이송된 김씨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로 구급차에서 나와 응급실 안으로 실려 들어갔다. 김기종 대표는 과거 일본 대사에게도 시멘트 덩어리를 던져 처벌을 받았다. 김 대표는 2010년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특별강연회 도중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당시 일본 대사에게 지름 약 10㎝와 7㎝인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진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이후 김 대표는 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김 대표는 지난해 시게이에 전 일본 대사를 공격했던 일을 엮은 책인 ‘독도와 우리, 그리고 2010년’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테러를 미화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일본 대사를 공격했을 때 그를 두둔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중앙방송은 김 씨의 일본 대사 공격 직후인 2010년 7월13일 “일본 대사가 남조선과 일본 사이의 새로운 시대니, 공동번영이니 뭐니 하고 망발하는 데 격분한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은 그에게 콘크리트 덩어리를 던졌다”고 보도했다. 김씨는 같은 해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당시 주한 일본 대사 초청 강연회에서 시게이에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 2개를 투척했다. 중앙방송은 남한 네티즌들이 김 씨의 행동을 지지하는 글을 올렸다며 “김기종의 항의 행동은 일본에 대한 분노를 던진 것이라고 하면서 찬양을 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고 강조했다. 대외용 라디오 방송인 평양방송도 2010년 8월 1일 이 사건이 “역사왜곡과 독도강탈 책동을 끈질기게 벌이고 있는 일본 반동들이 당한 너무도 응당한 봉변”이라고 주장했다. 평양방송은 남한 시민단체와 언론이 김씨의 행동을 “윤봉길 열사의 폭탄투척 사건”에 비유하며 “속이 후련해 했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김씨가 이 사건으로 기소돼 법정에서 징역 4년을 구형받은 직후인 2010년 8월 24일에는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정부가 그에게 ‘부당한 탄압’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민족끼리는 “(정부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한 김기종을 구속하고 탄압을 가해오던 끝에 폭거를 감행했다”고 비난했다. 이 매체는 “일본 대사란 자에게 날아든 투석 세례는 민족적 분노의 분출로서 거기에 문제시될 것이란 하나도 없다”고 옹호했다. 김씨는 이외에도 간담회 등 행사에서 소동을 벌여 폭행과 상해 등의 혐의로 여러차례 처벌을 받았다. 김씨는 지난해 2월 13일 오후 서대문구 창천교회에서 열린 신촌 번영회 정기총회 박원순 서울시장 강연회가 끝날 무렵 맨 앞줄에 앉아 있는 변모(55)씨의 왼쪽 뺨을 때려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상해 혐의로 기소된 김 대표에 대해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김씨는 같은 해 5월에는 일본대사관에 일본 정부의 집단자위권 규탄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다 제지당하자 경찰에게 신발과 계란을 투척해 입건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리퍼트 미대사, 민화협 강연서 피습 ‘얼굴에 피 철철..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누구?’

    리퍼트 미대사, 민화협 강연서 피습 ‘얼굴에 피 철철..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누구?’

    리퍼트, 美 대사 민화협 강연서 피습..용의자는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경찰 등에 따르면 재야 문화운동가인 김 대표는 5일 오전 7시 40분께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리퍼트 대사에게 흉기를 수차례 휘두른 혐의로 현장에서 검거됐다. 김 대표는 지난 2010년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특별강연회 도중 시게이에 도시노리 당시 일본대사에게 지름 약 10㎝와 7㎝인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진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바 있다. 이후 김 대표는 법원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김 대표는 지난해 시게이에 전 일본 대사를 공격했던 일을 엮은 책인 ‘독도와 우리, 그리고 2010년’을 출간하기도 했다. 2006년에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자 김씨는 동료 6명과 함께 본적을 경북 울릉군 독도리 38번지로 옮긴 바 있다. 2007년에는 지난 1988년 발생한 ‘우리마당 습격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중 분신을 시도,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기도 했다. 우리마당 사건은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있었던 ‘우리마당’ 사무실을 괴한 4명이 습격해 안에 있던 여성을 성폭행하고 달아난 사건이다. 당시 야당이었던 평민당은 이 사건이 군 정보사령부에 의해 저질러진 정치테러라고 폭로했지만 현재까지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다. 리퍼트, 민화협 강연서 피습..용의자는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리퍼트, 美 대사 민화협 강연서 피습..용의자는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사진 = 방송 캡처 (리퍼트, 민화협 강연서 피습..용의자는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뉴스팀 chkim@seoul.co.kr
  • 리퍼트 미대사, 민화협 강연서 피습..김기종 ‘괴한 성폭행 우리마당 사건 당시엔 분신까지..’

    리퍼트 미대사, 민화협 강연서 피습..김기종 ‘괴한 성폭행 우리마당 사건 당시엔 분신까지..’

    리퍼트 대사 민화협 강연서 피습..용의자는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경찰 등에 따르면 재야 문화운동가인 김 대표는 5일 오전 7시 40분께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리퍼트 대사에게 흉기를 수차례 휘두른 혐의로 현장에서 검거됐다. 김 대표는 지난 2010년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특별강연회 도중 시게이에 도시노리 당시 일본대사에게 지름 약 10㎝와 7㎝인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진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바 있다. 이후 김 대표는 법원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김 대표는 지난해 시게이에 전 일본 대사를 공격했던 일을 엮은 책인 ‘독도와 우리, 그리고 2010년’을 출간하기도 했다. 2006년에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자 김씨는 동료 6명과 함께 본적을 경북 울릉군 독도리 38번지로 옮긴 바 있다. 2007년에는 지난 1988년 발생한 ‘우리마당 습격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중 분신을 시도,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기도 했다. 우리마당 사건은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있었던 ‘우리마당’ 사무실을 괴한 4명이 습격해 안에 있던 여성을 성폭행하고 달아난 사건이다. 당시 야당이었던 평민당은 이 사건이 군 정보사령부에 의해 저질러진 정치테러라고 폭로했지만 현재까지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다. 사진 = 방송 캡처 (리퍼트, 민화협 강연서 피습..용의자는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뉴스팀 chkim@seoul.co.kr
  • [속보] 리퍼트 미국대사 피습…용의자 검거 “우리마당 대표”

    [속보] 리퍼트 미국대사 피습…용의자 검거 “우리마당 대표”

    리퍼트 대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속보] 리퍼트 미국대사 피습…용의자 검거 “우리마당 대표” 마크 리퍼트 미국 대사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행사 참석 도중 괴한의 공격을 받아 얼굴 등을 크게 다쳤다. 리퍼트 대사는 5일 오전 7시 40분쯤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화협 주최 조찬 강연회 장소로 들어가던 도중 김모(55)씨가 휘두른 면도칼에 얼굴과 왼쪽 손목 부위를 공격당했다. 리퍼트 대사는 피를 많이 흘린채 인근 강북삼성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경찰은 현장에서 용의자를 검거해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김씨는 경찰에 붙잡힌뒤 “오늘 테러했다. 우리마당 대표다. 유인물을 만들었다. 훈련 반대해서 만든 유인물이다”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순찰차에 태워지기 직전 “전쟁 반대”라는 구호를 외쳤다. 김씨는 지난 2010년 7월 주한 일본대사에게 콘크리트 조각을 던진 혐의(외국사절 폭행)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기종 “제압과정에 부상당했다. 아파!” 그는 누구인가

    김기종 “제압과정에 부상당했다. 아파!” 그는 누구인가

    김기종 김기종 “제압과정에 부상당했다. 아파!” 그는 누구인가 미국 대사를 흉기로 공격한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55)씨가 5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를 받던 김기종씨는 제압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다며 병원 치료를 먼저 받겠다고 요구해 이날 오전 11시 11분쯤 서울 종로구 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실려가는 과정에 “아파, 아파”라고 외치기도 했다. 김씨는 검거 직후 종로경찰서로 이송돼 조사를 받았지만 진술을 거부했으며, “경호요원에게 밟혀서 발목 등을 다쳤으니 치료를 받고 변호사가 오면 그때 진술을 하겠다”고 말했다. 병원에 이송된 김씨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로 구급차에서 나와 응급실 안으로 실려 들어갔다. 김기종 대표는 과거 일본 대사에게도 시멘트 덩어리를 던져 처벌을 받았다. 김 대표는 지난 2010년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특별강연회 도중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당시 일본 대사에게 지름 약 10㎝와 7㎝인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진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이후 김 대표는 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김 대표는 지난해 시게이에 전 일본 대사를 공격했던 일을 엮은 책인 ‘독도와 우리, 그리고 2010년’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테러를 미화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는 이외에도 간담회 등 행사에서 소동을 벌여 폭행과 상해 등의 혐의로 여러차례 처벌을 받았다. 김 대표는 지난해 2월 13일 오후 서대문구 창천교회에서 열린 신촌 번영회 정기총회 박원순 서울시장 강연회가 끝날 무렵 맨 앞줄에 앉아 있는 변모(55)씨의 왼쪽 뺨을 때려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상해 혐의로 기소된 김 대표에 대해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김 대표는 같은 해 5월에는 일본대사관에 일본 정부의 집단자위권 규탄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다 제지당하자 경찰에게 신발과 계란을 투척해 입건되기도 했다. 2007년 6월에는 명동성당에서 열린 ‘6월항쟁을 기록하다’ 출판기념회에서 “6월 항쟁 기념사업이 분파적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고발한다는 내용의 유인물을 나눠주려 하다가 제지당하기도 했다.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조각을 던지기 전인 2010년 2월 김 대표는 외교기관 인근에서 옥회집회나 시위를 금지한 ‘집시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당시 김 대표는 주한 일본대사관 한국어 홈페이지의 ‘일한관계’에서 ‘다케시마 문제’에 대한 삭제요구를 하기 위해 대사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하려고 했지만 집시법 규정 때문에 집회를 하지 못했다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같은 해 11월 헌재는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2006년에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자 김 대표는 동료 6명과 함께 본적을 경북 울릉군 독도리 38번지로 옮긴 바 있다. 김씨는 2000년대 중반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김 대표는 지난 2006년 11월부터 2007년 4월까지 정부 승인을 받아 모두 8차례 방북했다. 공안당국은 반일활동에 주력했던 김 대표가 수차례 방북한 이후 반미활동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고 그의 반미활동 내용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새누리당 권은희 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김 대표는 헌재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한다는 등의 이유로 해산 결정을 받은 통합진보당이 속해 있던 ‘전쟁반대 평화실현 국민행동’의 일원”이라면서 “대법원으로부터 이적단체 판결을 받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연방통추) 등도 국민행동에 포함돼 있다”며 북한과의 연계 가능성을 지적했다. 권 대변인은 이어 “가장 우려스런 점은 김 대표가 교수라는 직함을 가지고 청년들을 가르쳤다는 사실”이라면서 “김 대표는 지난 1997∼2007년 성공회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로 재직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교수 재직과 관련해 성공회대 측은 “김 대표는 ‘전통 예술의 이해’라는 수업 하나만 맡았지만 그만둔 지가 오래돼 정확한 수업 내용은 파악이 어렵다”면서 “외래교수라는 말은 시간강사를 예우하는 차원의 명칭일 뿐 교수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서울 도심에 분향소를 설치하는 데 관여하기도 했다. 그는 2011년 12월 26일 ‘국가보안법피해자모임’ 회원들이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김 위원장 분향소 설치를 하려다 보수단체 회원들과 충돌·대치하는 과정에서 보수단체 회원으로 추정되는 10여명으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다. 2007년에는 지난 1988년 발생한 ‘우리마당 습격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중 분신을 시도,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기도 했다. 우리마당 사건은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있었던 ‘우리마당’ 사무실을 괴한 4명이 습격해 안에 있던 여성을 성폭행하고 달아난 사건이다. 당시 야당이었던 평민당은 이 사건이 군 정보사령부에 의해 저질러진 정치테러라고 폭로했지만 현재까지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지난 2001년부터 3년간, 2005년부터 2년간 두 차례에 걸쳐 민주평통 자문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리퍼트 대사 피습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살인미수’ 혐의 바로 적용하나

    리퍼트 대사 피습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살인미수’ 혐의 바로 적용하나

    리퍼트 대사 피습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리퍼트 대사 피습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살인미수’ 혐의 바로 적용하나 주한 미국대사를 습격했다가 검거된 우리마당독도지킴이 김기종(55) 대표는 살인미수 또는 상해 등의 혐의가 적용돼 중형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수사당국은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5일 아침 발생한 습격사건에 배후세력이 있는지, 김 대표의 반미활동에 수상한 점은 없는지 철저히 살펴볼 방침이어서 또다른 혐의가 추가될 가능성도 있다. 우선 이날 습격에는 살인미수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법조계에서는 관측하고 있다. 경찰은 9년전 발생한 박근혜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대표) 피습사건의 전례를 참고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2006년 5월 당시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를 위한 지지연설을 하려고 단상에 오른 박 대통령을 커터칼로 습격한 지충호(59)씨에게 살인미수죄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당시 박 대통령은 오른쪽 뺨에 길이 11㎝, 깊이 1∼3㎝의 상처를 입었다. 이날 마크 리퍼트 대사의 얼굴에 난 상처와 비슷하다. 다만 지씨의 살인미수 혐의는 법원에서 폭력행위등 처벌법상 집단·흉기등 상해죄로 바뀌었다. 법원은 지씨가 박 대통령 안면에 상처를 입히는 정도를 넘어 살해까지 기도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특히 ▲안면을 가격부위로 삼았을 뿐 목을 겨냥하지는 않았다고 보이는 점 ▲문구용 커터칼이 살인 도구로 다소 미흡한 점 ▲박 대통령의 상해 자체만으로는 생명을 위협하는 정도까지 이른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판단근거로 들었다. 살인이나 살인미수죄는 ‘고의성’이 관건이다. 피의자가 살인의 고의성을 부정할 경우 흉기 종류와 공격부위·범행동기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김 대표는 커터칼보다 훨씬 위협적인 25㎝ 과도를 사용했다. 게다가 리퍼트 대사를 밀쳐 눕히고 흉기를 휘두르는 등 ‘사망의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 역시 더 큰 점으로 미뤄 살인미수죄를 인정받기가 어렵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수사당국은 피습 당시 상황을 자세히 재구성하고 범행동기를 분석해 고의성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씨에게 살인미수 외에도 공직선거법 위반, 공갈미수, 공용물건손상 등의 죄목을 덧붙여 기소했다. 지씨는 대법원에서 징역 10년을 확정받았는데 김 대표 역시 이에 못지않은 중형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습격대상이 미국대사였다는 점에서 외국사절폭행죄, 강연을 방해했기 때문에 업무방해죄도 적용될 수 있다. 김 대표는 2010년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졌다가 이들 혐의가 추가돼 재판에 넘겨졌고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수사과정에서 김 대표의 또다른 혐의가 불거질 수도 있다. 사건의 파장을 고려하면 범행 동기와 배후, 그간의 활동이력까지 전면적 수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검찰이 테러·대공수사를 전담하는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에 수사지휘를 맡긴 만큼 ‘대공 용의점’이 있는지도 수사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김 대표가 북한과 연계됐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그가 2006∼2007년 8차례 방북한 뒤 반일에서 반미 중심으로 활동을 전환한 점이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초청받고 10일간 테러 계획했다” 충격 진술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초청받고 10일간 테러 계획했다” 충격 진술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초청받고 10일간 테러 계획했다” 충격 진술 5일 오전 미국 대사 공격이라는 초유의 사건을 일으킨 김기종(55)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의 범행 동기는 ‘한미연합훈련 반대’로 일단 추정된다. 김씨는 이날 오전 7시 40분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주최 조찬 강연회에서 강의를 준비하던 리퍼트 대사를 25㎝가량 길이의 흉기로 얼굴과 왼쪽 손목을 공격했다. 그는 현장에서 붙잡히면서 “오늘 테러했다. 우리마당 대표다. 유인물을 만들었다. 전쟁 훈련에 반대해서 만든 유인물이다”라고 주장, 자신이 한미연합훈련에 반대해 이 같은 일을 저질렀음을 내비쳤다. 김씨는 오전 8시 10분쯤 서울 종로경찰서로 옮겨져 들것에 누운 채로 약 3시간가량 조사를 받은 뒤 오전 11시께 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병원으로 가기 위해 구급차로 옮겨지면서도 취재진을 향해 이 같은 취지의 말을 반복했다. 김씨는 이불을 덮은 채 들것에 실려 이동하면서 “전쟁 훈련 때문에 남북 이산가족들이 만나지 못했다”며 “전쟁 훈련을 중단해야 한다. 예전에도 팀스피릿 훈련이 중단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길게 수염을 기른 그는 수척한 얼굴로 누워서 하늘을 응시한 채로 이 같은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그는 치료를 위해 옮겨진 병원에서도 “예전에 팀스피릿 훈련도 중단된 적 있다. 이번 키리졸브 훈련도 꼭 중단시켜야 한다. 그래서 내가 희생을 했다”면서 “전쟁 훈련을 중단시키고자 한 짓이다”라고 되풀이했다. 또 “강연에 초청을 받고 지난 10일간(범행을 계획했다)”이라며 “작년 10월에 부임해 마흔을 갓 넘은 사람이 어떻게 우리나라 통일 정책을 감당할지 안타까워서(범행을 저질렀다)”라며 리퍼트 대사에 대한 적개심도 드러냈다. 김씨는 평소 진보성향의 문화 단체인 우리마당독도지킴이를 이끌면서 반일·반미 성향의 활동을 펼쳐 왔다. 그는 2010년 7월 시게이에 도시노리 당시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져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으며, 이를 토대로 작년 ‘독도와 우리, 그리고 2010’년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김씨는 2006년 11월부터 2007년 4월까지 8차례에 걸쳐 방북했으며, 이후 반미 활동으로 전환한 것으로 공안 당국 등은 파악하고 있다. 한미연합훈련을 가리켜 ‘전쟁 훈련’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중단해야 한다는 그의 거듭된 주장으로 미뤄봤을 때 이번 범행도 그 연장선상에 있을 것으로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실제로 김씨는 이날 범행 현장에 ‘전쟁훈련 중단’과 ‘전시작전통제권 회수’를 요구하는 A4 용지 크기의 유인물도 가져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유인물에는 “남북 대화 가로막는, ‘전쟁훈련’ 중단하라! 우리나라에게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시켜라”며 “광복 70주년이라면서 군사주권 없는 우리의 처지가 비통할 뿐이다. 분단 70년의 극복은 그동안의 남북공동성명, 선언으로 충분하다”라고 적혀 있다. 김씨는 병원에서 오른쪽 발목에 깁스하는 등 간단한 치료를 받고 오전 11시 40분쯤 들것에 실려 종로경찰서로 돌아왔다. 경찰은 그를 상대로 정확한 범행 동기와 사건 경위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으며, 배후가 있는지도 밝힐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기종 테러 이유 “한미연합훈련 반대” 배후 있나?

    김기종 테러 이유 “한미연합훈련 반대” 배후 있나?

    김기종 테러 이유 김기종 테러 이유 “한미연합훈련 반대” 배후 있나? 5일 오전 미국 대사 공격이라는 초유의 사건을 일으킨 김기종(55)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의 범행 동기는 ‘한미연합훈련 반대’로 일단 추정된다. 김씨는 이날 오전 7시 40분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주최 조찬 강연회에서 강의를 준비하던 리퍼트 대사를 25㎝가량 길이의 흉기로 얼굴과 왼쪽 손목을 공격했다. 그는 현장에서 붙잡히면서 “오늘 테러했다. 우리마당 대표다. 유인물을 만들었다. 전쟁 훈련에 반대해서 만든 유인물이다”라고 주장, 자신이 한미연합훈련에 반대해 이 같은 일을 저질렀음을 내비쳤다. 김씨는 오전 8시 10분쯤 서울 종로경찰서로 옮겨져 들것에 누운 채로 약 3시간가량 조사를 받은 뒤 오전 11시께 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병원으로 가기 위해 구급차로 옮겨지면서도 취재진을 향해 이 같은 취지의 말을 반복했다. 김씨는 이불을 덮은 채 들것에 실려 이동하면서 “전쟁 훈련 때문에 남북 이산가족들이 만나지 못했다”며 “전쟁 훈련을 중단해야 한다. 예전에도 팀스피릿 훈련이 중단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길게 수염을 기른 그는 수척한 얼굴로 누워서 하늘을 응시한 채로 이 같은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그는 치료를 위해 옮겨진 병원에서도 “예전에 팀스피릿 훈련도 중단된 적 있다. 이번 키리졸브 훈련도 꼭 중단시켜야 한다. 그래서 내가 희생을 했다”면서 “전쟁 훈련을 중단시키고자 한 짓이다”라고 되풀이했다. 또 “강연에 초청을 받고 지난 10일간(범행을 계획했다)”이라며 “작년 10월에 부임해 마흔을 갓 넘은 사람이 어떻게 우리나라 통일 정책을 감당할지 안타까워서(범행을 저질렀다)”라며 리퍼트 대사에 대한 적개심도 드러냈다. 김씨는 평소 진보성향의 문화 단체인 우리마당독도지킴이를 이끌면서 반일·반미 성향의 활동을 펼쳐 왔다. 그는 2010년 7월 시게이에 도시노리 당시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져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으며, 이를 토대로 작년 ‘독도와 우리, 그리고 2010’년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김씨는 2006년 11월부터 2007년 4월까지 8차례에 걸쳐 방북했으며, 이후 반미 활동으로 전환한 것으로 공안 당국 등은 파악하고 있다. 한미연합훈련을 가리켜 ‘전쟁 훈련’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중단해야 한다는 그의 거듭된 주장으로 미뤄봤을 때 이번 범행도 그 연장선상에 있을 것으로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실제로 김씨는 이날 범행 현장에 ‘전쟁훈련 중단’과 ‘전시작전통제권 회수’를 요구하는 A4 용지 크기의 유인물도 가져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유인물에는 “남북 대화 가로막는, ‘전쟁훈련’ 중단하라! 우리나라에게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시켜라”며 “광복 70주년이라면서 군사주권 없는 우리의 처지가 비통할 뿐이다. 분단 70년의 극복은 그동안의 남북공동성명, 선언으로 충분하다”라고 적혀 있다. 김씨는 병원에서 오른쪽 발목에 깁스하는 등 간단한 치료를 받고 오전 11시 40분쯤 들것에 실려 종로경찰서로 돌아왔다. 경찰은 그를 상대로 정확한 범행 동기와 사건 경위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으며, 배후가 있는지도 밝힐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우리마당 김기종, 후송되면서 “아파! 아파!” 장윤석 국회의원 제압

    우리마당 김기종, 후송되면서 “아파! 아파!” 장윤석 국회의원 제압

    우리먀당 김기종, 우리마당 김기종 대표, 장윤석 국회의원 우리마당 김기종, 후송되면서 “아파! 아파!” 장윤석 국회의원 제압 미국 대사를 흉기로 공격한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55)씨가 5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김기종씨는 이날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화협 주최 조찬 강연회 행사장에서 리퍼트 대사가 앉은 중앙 헤드테이블의 오른쪽 뒤쪽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오전 7시 35분쯤 리퍼트 대사가 도착하고 5분여 뒤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조찬이 시작되자 김씨는 갑자기 일어나서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 참석자 옆에 A4 용지 크기의 유인물 10장을 내려놓고는 “받으라”고 말했다. 그 후 김 대표가 헤드테이블 쪽으로 이동해 리퍼트 대사를 밀쳐 눕히고 흉기를 수차례 휘두르기까지는 불과 1∼2초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한 참석자는 “다들 여유롭게 식사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는데 리퍼트 대사가 아침으로 나온 죽 첫술을 뜨자마자 갑자기 공격당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테러범이 옆으로 다가오자 리퍼트 대사가 자신에게 인사하려는 줄 알았는지 악수를 청하려는 자세로 일어났는데 그러고 나서 바로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고 전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참석자들과 김씨를 제지하려는 관계자들, 당시 현장에 있던 취재진이 뒤섞이면서 현장은 이내 아수라장이 됐다. 그 사이 김씨는 뒤쪽 테이블에 있던 미 대사관 경호팀과 민화협 관계자들, 새누리당 장윤석 의원 등 참석자들에 의해 제압당해 바닥에 엎드려 있다가 출동한 경찰에 인계됐다. 당시 김씨는 “유인물을 나눠주십시오. 지난 3월 2일에 훈련 반대하면서 만든 유인물입니다. 한일관계 다리가 날아갔어. 왜 전쟁훈련합니까. 전쟁훈련하면 우리나라 통일 영원히 안 됩니다”라고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고 목격자들은 말했다. 김씨는 행사장 밖으로 끌려나간 뒤에도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린 채 한동안 저항했다. 경찰 조사를 받던 김씨는 제압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다며 병원 치료를 먼저 받겠다고 요구해 이날 오전 11시 11분쯤 서울 종로구 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 종로경찰서에서 나와 응급차량으로 옮겨지는 와중에 “전쟁훈련 반대한다”, “이산가족이 못만나는 이유가 전쟁훈련 때문이라 그랬다”, “전쟁훈련 중단하자, 키 리졸브…”라고 외치다 “아~ 아파! 아파!”라고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김씨는 검거 직후 종로경찰서로 이송돼 조사를 받았지만 진술을 거부했으며, “경호요원에게 밟혀서 발목 등을 다쳤으니 치료를 받고 변호사가 오면 그때 진술을 하겠다”고 말했다. 병원에 이송된 김씨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로 구급차에서 나와 응급실 안으로 실려 들어갔다. 김기종 대표는 과거 일본 대사에게도 시멘트 덩어리를 던져 처벌을 받았다. 김 대표는 2010년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특별강연회 도중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당시 일본 대사에게 지름 약 10㎝와 7㎝인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진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이후 김 대표는 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김 대표는 지난해 시게이에 전 일본 대사를 공격했던 일을 엮은 책인 ‘독도와 우리, 그리고 2010년’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테러를 미화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일본 대사를 공격했을 때 그를 두둔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중앙방송은 김 씨의 일본 대사 공격 직후인 2010년 7월13일 “일본 대사가 남조선과 일본 사이의 새로운 시대니, 공동번영이니 뭐니 하고 망발하는 데 격분한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은 그에게 콘크리트 덩어리를 던졌다”고 보도했다. 김씨는 같은 해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당시 주한 일본 대사 초청 강연회에서 시게이에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 2개를 투척했다. 중앙방송은 남한 네티즌들이 김 씨의 행동을 지지하는 글을 올렸다며 “김기종의 항의 행동은 일본에 대한 분노를 던진 것이라고 하면서 찬양을 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고 강조했다. 대외용 라디오 방송인 평양방송도 2010년 8월 1일 이 사건이 “역사왜곡과 독도강탈 책동을 끈질기게 벌이고 있는 일본 반동들이 당한 너무도 응당한 봉변”이라고 주장했다. 평양방송은 남한 시민단체와 언론이 김씨의 행동을 “윤봉길 열사의 폭탄투척 사건”에 비유하며 “속이 후련해 했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김씨가 이 사건으로 기소돼 법정에서 징역 4년을 구형받은 직후인 2010년 8월 24일에는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정부가 그에게 ‘부당한 탄압’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민족끼리는 “(정부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한 김기종을 구속하고 탄압을 가해오던 끝에 폭거를 감행했다”고 비난했다. 이 매체는 “일본 대사란 자에게 날아든 투석 세례는 민족적 분노의 분출로서 거기에 문제시될 것이란 하나도 없다”고 옹호했다. 김씨는 이외에도 간담회 등 행사에서 소동을 벌여 폭행과 상해 등의 혐의로 여러차례 처벌을 받았다. 김씨는 지난해 2월 13일 오후 서대문구 창천교회에서 열린 신촌 번영회 정기총회 박원순 서울시장 강연회가 끝날 무렵 맨 앞줄에 앉아 있는 변모(55)씨의 왼쪽 뺨을 때려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상해 혐의로 기소된 김 대표에 대해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김씨는 같은 해 5월에는 일본대사관에 일본 정부의 집단자위권 규탄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다 제지당하자 경찰에게 신발과 계란을 투척해 입건되기도 했다. 2007년 6월에는 명동성당에서 열린 ‘6월항쟁을 기록하다’ 출판기념회에서 “6월 항쟁 기념사업이 분파적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고발한다는 내용의 유인물을 나눠주려 하다가 제지당하기도 했다.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조각을 던지기 전인 2010년 2월 김씨는 외교기관 인근에서 옥회집회나 시위를 금지한 ‘집시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당시 김씨는 주한 일본대사관 한국어 홈페이지의 ‘일한관계’에서 ‘다케시마 문제’에 대한 삭제요구를 하기 위해 대사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하려고 했지만 집시법 규정 때문에 집회를 하지 못했다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같은 해 11월 헌재는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2006년에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자 김 대표는 동료 6명과 함께 본적을 경북 울릉군 독도리 38번지로 옮긴 바 있다. 김씨는 2000년대 중반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김씨는 2006년 11월부터 2007년 4월까지 정부 승인을 받아 모두 8차례 방북했다. 공안당국은 반일활동에 주력했던 김 대표가 수차례 방북한 이후 반미활동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고 그의 반미활동 내용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새누리당 권은희 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김 대표는 헌재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한다는 등의 이유로 해산 결정을 받은 통합진보당이 속해 있던 ‘전쟁반대 평화실현 국민행동’의 일원”이라면서 “대법원으로부터 이적단체 판결을 받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연방통추) 등도 국민행동에 포함돼 있다”며 북한과의 연계 가능성을 지적했다. 권 대변인은 이어 “가장 우려스런 점은 김 대표가 교수라는 직함을 가지고 청년들을 가르쳤다는 사실”이라면서 “김 대표는 1997∼2007년 성공회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로 재직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교수 재직과 관련해 성공회대 측은 “김 대표는 ‘전통 예술의 이해’라는 수업 하나만 맡았지만 그만둔 지가 오래돼 정확한 수업 내용은 파악이 어렵다”면서 “외래교수라는 말은 시간강사를 예우하는 차원의 명칭일 뿐 교수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서울 도심에 분향소를 설치하는 데 관여하기도 했다. 그는 2011년 12월 26일 ‘국가보안법피해자모임’ 회원들이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김 위원장 분향소 설치를 하려다 보수단체 회원들과 충돌·대치하는 과정에서 보수단체 회원으로 추정되는 10여명으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다. 2007년에는 1988년 발생한 ‘우리마당 습격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중 분신을 시도,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기도 했다. 우리마당 사건은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있었던 ‘우리마당’ 사무실을 괴한 4명이 습격해 안에 있던 여성을 성폭행하고 달아난 사건이다. 당시 야당이었던 평민당은 이 사건이 군 정보사령부에 의해 저질러진 정치테러라고 폭로했지만 현재까지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다. 김씨는 2001년부터 3년간, 2005년부터 2년간 두 차례에 걸쳐 민주평통 자문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야생 동물 밀렵·밀거래 여전…구렁이·칠점사 최다

    #A씨는 지난 1월 경기 양평의 집 지하창고에 구렁이 가공품(8병)과 칠점사 등 뱀가공품(31병), 살아있는 뱀 90마리를 보관하고 있다가 적발됐다. #오소리와 암꿩, 멧돼지를 불법 포획해 냉동보관해오던 B씨는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무허가 포획)으로 처벌받았다. #C씨는 수렵금지구역에서 엽총으로 청둥오리를 사냥하다 적발됐다. 차량에는 수렵금지동물인 까투리 등이 추가 발견됐다. 야생 동물을 밀렵하고 밀거래하는 사례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3일 환경부에 따르면 밀렵·밀거래 단속 건수는 2008년 819건에서 해마다 줄고 있지만 2013년에도 366건이 적발됐다. 압수된 동물이 2010년 9862마리로 최고치를 기록했고 2013년에도 4002마리나 됐다. 적발되지 않은 건수를 감안할 때 사라진 동물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밀렵·밀거래 동물은 멸종위기에 처해 포획이 금지된 구렁이와 칠점사가 가장 많았고 고라니, 멧돼지, 너구리, 토끼 등으로 다양했다. 불법박제가 사라진 대신 보신용으로 판매되고 있다. 2009년 이후 해마다 야생 동물 포획을 위해 설치한 덫과 올무, 뱀그물 등 수거된 불법 사냥도구가 2만개를 넘는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멸종위기종 야생 생물을 포획·채취·훼손·고사 등의 행위를 하면 최고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고 상습 위반시 가중 처벌된다. 한편 환경부는 이날 ‘제2회 야생 동식물의 날’을 맞아 인천 국립생물자원관에서 기념식을 열었다. 올해 슬로건은 ‘야생 동식물 범죄는 중대한 범죄입니다’로, 야생 동식물의 불법 거래로 인한 범죄의 심각성을 알리는 다양한 행사를 추진키로 했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김영란법 국회 통과, 김영란 누구? ‘우리나라 최초 여성 대법관..48세에 대법관’

    김영란법 국회 통과, 김영란 누구? ‘우리나라 최초 여성 대법관..48세에 대법관’

    ‘김영란법 국회 통과’ 공직자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논란 끝에 3일 국회에서 최종 통과됐다. 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고 김영란법을 상정해 재석의원 247명 중 반대 4명, 기권 17명, 찬성 226명으로 통과시켰다. 지난 2012년 8월 대법관 출신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법안을 입법 예고한 이후 약 2년6개월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법안은 공포된 날부터 1년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거치고 내년 9월부터 시행된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이 3일 국회 본회의 처리를 앞두면서 법안을 처음 발의한 김영란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 여성 대법관으로 유명한 김영란 교수는 1978년 제20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수원지방법원과 서울지방법원, 대전고등법원 등에서 부장판사를 지냈다. 김 교수는 2004년 만 48세의 젊은 나이에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사법연수원 11기 출신인 김 교수는 당시 사법연수원 2, 3기 출신들이 거론되던 자리에 선배들을 제치고 올라 화제가 됐다. 김 교수는 2010년 대법관 임기 6년을 모두 채우고 물러난 뒤 같은 해 10월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를 맡았다. 이후 2011년부터 제3대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며 공직기강 확립을 위한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을 2012년 발의했다. 한편 여야간 합의를 통해 탄생한 김영란법은 ‘100만원이상 금품 수수시 직무관련성과 관계없이 처벌’하는 당초 원안의 취지를 그대로 살려냈다. 직무와 상관없이 1회 100만원(연 300만원)을 초과한 금품을 수수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배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게 김영란법이다. 다만 100만원이하의 금품을 수수했을 경우 직무 관련성이 있을 때에만 금품가액의 2배~5배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물론 이 경우에도 한 명에게 연 300만원을 넘게 금품을 수수하면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또 식사 대접과 골프 접대 등 후원 명목도 똑같이 처벌하도록 규정해 접대문화에 변혁이 예상된다. 법안 적용대상은 국회, 정부출자 공공기관, 국·공립학교 등의 공직자를 비롯해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사 종사자다. 이날 법사위에서는 논의를 거쳐 사립학교 이사장 및 임직원도 추가로 포함했다. 가족의 부정청탁·금품수수에 대한 공직자 신고 의무 조항은 유지되며 가족의 대상은 공직자의 배우자로만 한정됐다. 우여곡절 끝에 법안이 통과는 됐지만 적용대상을 둘러싼 형평성 문제로 시행 과정에 진통이 예상된다. 특히 5조2항에 ‘선출직 공직자·정당·시민단체 등이 공익적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거나 법령 개선을 제안하는 경우’에는 적용을 배제하고 있어 정치인만 빠져나올 구멍을 만들었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또 사립학교의 교직원과 언론인 등 민간 영역까지 규제하는 건 검찰권 남용이자 위헌이라는 의견도 있다. 여기에 접대문화의 판도 변화로 직격탄을 맞을 음식점과 골프장, 화훼단지 등 관련 사업장은 경기 침체의 우려를 내놓고 있다. 김영란법 국회 통과, 김영란법 국회 통과 김영란법 국회 통과, 김영란법 국회 통과, 김영란법 국회 통과, 김영란법 국회 통과 사진 = 서울신문DB (김영란법 국회 통과) 뉴스팀 chkim@seoul.co.kr
  • [욱~하는 대한민국] ② 빗나간 선택, 치정 범죄

    [욱~하는 대한민국] ② 빗나간 선택, 치정 범죄

    #1 2일 오전 4시쯤 서울 노원구의 한 파출소. 만취한 남모(54)씨가 찾아와 “사람을 죽였다”는 말을 반복했다. 경찰이 집을 찾아갔더니 한 여성이 피투성이가 된 채 숨져 있었다. 8년여를 동거했던 최모(49·여)씨가 가출했다가 2개월 만에 돌아오자 말다툼 끝에 남씨가 흉기로 수차례 찔러 숨지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2 충남 보령에서 수산물 납품업을 하는 A(46·여)씨는 지난 1월 26일 1t 트럭을 몰고 가던 중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A씨는 차를 멈춰 세운 뒤 견인차를 불렀다. 정비업체 직원은 브레이크의 연결장치를 누군가 일부러 자른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결과 내연 관계에 있던 최모(54)씨가 헤어지자는 A씨의 말에 화가 치밀어 범행을 저지른 사실이 드러났다. #3 지난달 19일 부산지법 동부지원은 살인미수 등 혐의로 구속된 C(36)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6월 내연녀 D(30)씨의 신체 일부를 흉기로 훼손하는 등 잔혹행위를 했다. D씨는 16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고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한쪽 눈을 잃고 두개골 일부를 드러낸 채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처지가 됐다. 헤어진 연인에게 앙심을 품거나, 헤어지자는 말에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해 범죄를 저지르는 이른바 ‘치정 범죄’가 해마다 수천 건씩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 25일 세종시에서 일어난 엽총 난사 사건은 편의점 지분 갈등 등 경제적 요인과 더불어 사실혼 관계였다가 어긋난 남녀 관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지난 1월 경기 안산에서 별거 중인 아내를 만나게 해달라며 인질극을 벌이다가 아내의 전남편과 의붓딸을 무참하게 살해한 사건 또한 치정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경우다. 2일 경찰청에 따르면 과거 혹은 현재 연인에 대한 살인과 살인미수, 강간·강제추행, 방화, 폭력 범죄는 최근 5년간 연간 9000건 안팎에 달했다. 이 가운데 살인 또는 살인미수는 2010년 133명, 2011년 127명, 2012년 99명, 2013년 106명, 2014년 108명이었다. 해마다 115명가량이 한때 사랑했던 사람의 생명까지 노린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결혼과 가족 관념이 느슨해지고 경제불황이 지속되면서 치정 범죄도 영향을 받는다고 분석했다. 기광도 대구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30~40대 미혼 남녀가 결혼하지 못하고 사실혼 관계만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생활 자체도 힘들뿐더러 언제든 관계가 깨질 수 있다는 불안감에 범죄 유발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결혼으로 만들어진 가정에 비해 동거 목적이 쾌락에 치우친 관계는 헤어지기 쉽고 상대방이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치정 범죄는 비뚤어진 소유욕에서 발생한다는 지적도 있다. 황의갑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애정이 아니라 일종의 소유물로 인식하다가 배신감을 느끼게 되면 극단적인 분노로 표출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특히 치정 범죄는 남성이 가해자인 경우가 많은데 여성의 교육수준이 높고 남녀가 평등한 시대의 흐름을 남성의 가치관이 따라가지 못하고 여전히 여성을 구속하려다 일어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치정 범죄는 피해자 시신을 훼손하거나 일가족을 살해하는 등 잔인하고 가학적인 양상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11월 수원 팔달산에서 발견된 장기 없는 토막시신도 중국동포가 내연녀를 살해한 뒤 신체를 훼손해 버린 것으로 드러났다. 정세종 조선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수사현장에서는 시신이 불태워졌거나 특정 장기나 신체부위가 흉기로 도려내진 경우 치정 쪽으로 가닥을 잡곤 한다”고 말했다. 물론, 치정 범죄의 특징인 잔혹성에 대해 분노의 표출이나 이상심리에 따른 행동으로 분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저 범인이 증거를 없애 수사망을 피하려는 시도인 경우도 있다. 기광도 교수는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수사 대상이 된다”면서 “때문에 아예 시신을 훼손해 신원을 확인할 수 없도록 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간통죄 폐지, 상간자가 물어야 할 위자료는 도대체 얼마?

    간통죄 폐지, 상간자가 물어야 할 위자료는 도대체 얼마?

    간통죄 폐지 간통죄 폐지, 상간자가 물어야 할 위자료는 도대체 얼마? 간통죄가 폐지돼 기혼자와 간통한 상간자도 형사 처벌을 받지 않게 됐다. 하지만, 상대 배우자로부터 민사 소송을 당하게 되면 위자료를 물어줘야 한다. 대법원은 2010년 9월 “제3자가 부부의 일방 당사자와 간통행위를 한 경우에는 다른 당사자인 남편 또는 아내로서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하므로, 이로 인해 다른 당사자가 입은 정신상의 고통을 위자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여러 판례를 보면 이런 경우 위자료는 적게는 500만원에서 많게는 3000만원 수준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단독 박강준 판사는 최근 A씨가 남편과 불륜을 저지른 B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B씨에게 1천2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1일 밝혔다. 5년 전 결혼한 A씨 부부는 어학연수차 일본에 갔다가 어학원에서 B씨를 알게 됐다. A씨 남편은 B씨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관계를 이어갔고 어느 날 두 사람이 A씨 집 침실에서 함께 잠을 자다가 발각되기도 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3개월가량 지속됐다. A씨는 남편과 B씨를 간통죄로 고소하지는 않았지만, B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박 판사는 “피고가 원고의 남편과 수시로 문자를 주고받고 원고의 집에서 함께 잠을 자기도 한 사정에 비춰보면 원고의 남편은 부부로서의 정조의무를 저버린 부정행위를 저질렀고 피고는 그 부정행위에 가담했다고 할 것이므로 이로 인해 원고가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원고 부부의 혼인 기간, 부정행위의 기간과 정도, 원고 부부가 이혼에까지 이르지는 않은 점 등 여러 사정을 참작했다”며 배상액을 1200만원으로 정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장준현 부장판사)는 C씨가 남편과 간통한 20대 여성 D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D씨에게 3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C씨는 15년 전 결혼해 남편과 사이에 아들 둘을 두고 있었다. 남편은 2013년 12월 유흥주점에서 일하던 D씨와 처음 만나 이듬해 3월까지 13차례에 걸쳐 간통했다. 남편은 D씨에게 2억원을 송금해 집 전세금 등으로 사용하게 하기도 했다. C씨는 간통 혐의로 남편과 D씨를 고소했고 두 사람은 유죄 판결로 각각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C씨는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낸 데 이어 D씨를 상대로 위자료 3억 5000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피고는 상대방이 유부남인 사실을 알면서 장기간 부정한 관계를 맺었고 이로 인해 원고가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음은 경험칙상 명백하다”며 3000만원을 물어주라고 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간통죄, 여성만 처벌할 때도 있었다? 도대체 언제

    간통죄, 여성만 처벌할 때도 있었다? 도대체 언제

    간통죄 간통죄, 여성만 처벌할 때도 있었다? 도대체 언제 현행 형법상 간통죄가 신설된 것은 1953년이지만, 그 기원은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할 정도로 유구하다. 헌법재판소는 2008년 10월 30일 간통죄 처벌 조항에 대한 합헌 결정문에서 “간통죄는 우리 민족 최초의 법인 고조선의 ‘8조법금(法禁)’에서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통설”이라고 소개했다. 한서 지리지에서 전하는 8조법금은 ‘사람을 죽인 경우 즉시 사형한다’, ‘다른 사람을 상하게 한 경우 곡식으로 갚는다’, ‘도둑질한 사람은 그 집의 노비로 삼는다’ 등의 내용으로 돼 있다. 헌재는 1990년 9월 10일 선고한 결정문에서도 “구약성경의 10계명에도 간통이 금지돼 있는 것을 보면 꽤 오랜 옛날부터 금기사항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근대에 이르러선 1905년 공포된 대한제국 형법대전에서 유부녀가 간통한 경우 그와 상간한 사람을 6월 이상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당시부터 벌금형은 없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12년 제정된 조선형사령은 부인과 그 상간자의 간통을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하도록 했다. 현행 형법상 간통죄는 1953년 신설된 내용 그대로다. 남녀평등처벌주의에 따라 부인의 간통뿐 아니라 남편의 간통도 처벌하도록 ‘쌍벌죄’로 정한 것이 전과 다른 특징이다. 앞서 대법원은 1952년 부인의 간통만 처벌하도록 한 법 조항이 위헌이라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법전편찬위원회는 1953년 당시 일본 형법에 남아있는 간통죄를 선구적으로 폐지하고자 했으나 정부가 위원회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간통죄가 포함된 초안을 국회로 넘겼다. 국회의원들은 난상토론을 벌인 끝에 재석원수 110명 중 과반수에서 단 한 표가 많은 57표의 찬성으로 정부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1985년 형사법 개정특별위원회 소위원회는 간통죄를 폐지하기로 의견을 모았으나 공청회 등을 거치며 의견을 변경해 1995년 형법 개정 때 이를 반영하지 못했다. 2010년에는 법무부 장관 자문기구인 형사법개정특별분과위원회가 간통죄 폐지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 26일 간통죄가 62년 만에 폐지될지 사회적 관심이 헌법재판소로 쏠린다. 헌재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재동 헌재 대심판정에서 간통죄를 처벌하도록 한 형법 조항의 위헌성을 판가름한다. 헌법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이 위헌 의견을 밝히면 간통죄는 즉시 폐지된다. 형법 241조는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간통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그와 간통을 저지른 제3자도 같은 처벌을 받는다. 벌금형 없이 징역형만 있어 양형이 센 편이다. 간통죄의 고소·고발 주체는 배우자로 제한돼 있다. 아울러 형사소송법 229조는 혼인이 해소되거나 이혼소송을 제기한 후가 아니면 배우자를 간통죄로 고소할 수 없도록 했다. 우리 사회는 1953년 제정된 간통죄 처벌 조항을 두고 존치론과 폐지론으로 치열한 논쟁을 벌여왔다. 일부일처주의 유지, 가족제도 보장, 여성 보호 등은 간통죄를 존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들이다.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 자유를 위해 간통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선다. 헌재는 1990∼2008년 네 차례 헌법재판에서 간통죄를 모두 합헌으로 판단했다. 질서유지와 공공복리를 위해 성적 자기결정권을 다소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 그동안 견해였다. 다만, 2008년에는 위헌 4명, 헌법불합치 1명으로 위헌 의견이 합헌 의견을 넘어섰고, 합헌 의견을 낸 일부 재판관이 입법적 개선을 주문하는 등 달라진 분위기가 엿보였다. 간통죄가 폐지되면 헌재법 47조에 따라 2008년 10월 30일 이후 간통 혐의로 기소되거나 형이 확정된 사람들이 공소 취소되거나 재심을 청구해 구제받을 수 있게 된다. 2008년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간통 혐의로 기소된 사람은 5466명으로, 이 중 22명은 구속 기소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간통죄 “과거에는 여성만 처벌” 도대체 어떻게 처벌했나

    간통죄 “과거에는 여성만 처벌” 도대체 어떻게 처벌했나

    간통죄 간통죄 “과거에는 여성만 처벌” 도대체 어떻게 처벌했나 현행 형법상 간통죄가 신설된 것은 1953년이지만, 그 기원은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할 정도로 유구하다. 헌법재판소는 2008년 10월 30일 간통죄 처벌 조항에 대한 합헌 결정문에서 “간통죄는 우리 민족 최초의 법인 고조선의 ‘8조법금(法禁)’에서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통설”이라고 소개했다. 한서 지리지에서 전하는 8조법금은 ‘사람을 죽인 경우 즉시 사형한다’, ‘다른 사람을 상하게 한 경우 곡식으로 갚는다’, ‘도둑질한 사람은 그 집의 노비로 삼는다’ 등의 내용으로 돼 있다. 헌재는 1990년 9월 10일 선고한 결정문에서도 “구약성경의 10계명에도 간통이 금지돼 있는 것을 보면 꽤 오랜 옛날부터 금기사항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근대에 이르러선 1905년 공포된 대한제국 형법대전에서 유부녀가 간통한 경우 그와 상간한 사람을 6월 이상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당시부터 벌금형은 없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12년 제정된 조선형사령은 부인과 그 상간자의 간통을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하도록 했다. 현행 형법상 간통죄는 1953년 신설된 내용 그대로다. 남녀평등처벌주의에 따라 부인의 간통뿐 아니라 남편의 간통도 처벌하도록 ‘쌍벌죄’로 정한 것이 전과 다른 특징이다. 앞서 대법원은 1952년 부인의 간통만 처벌하도록 한 법 조항이 위헌이라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법전편찬위원회는 1953년 당시 일본 형법에 남아있는 간통죄를 선구적으로 폐지하고자 했으나 정부가 위원회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간통죄가 포함된 초안을 국회로 넘겼다. 국회의원들은 난상토론을 벌인 끝에 재석원수 110명 중 과반수에서 단 한 표가 많은 57표의 찬성으로 정부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1985년 형사법 개정특별위원회 소위원회는 간통죄를 폐지하기로 의견을 모았으나 공청회 등을 거치며 의견을 변경해 1995년 형법 개정 때 이를 반영하지 못했다. 2010년에는 법무부 장관 자문기구인 형사법개정특별분과위원회가 간통죄 폐지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 26일 간통죄가 62년 만에 폐지될지 사회적 관심이 헌법재판소로 쏠린다. 헌재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재동 헌재 대심판정에서 간통죄를 처벌하도록 한 형법 조항의 위헌성을 판가름한다. 헌법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이 위헌 의견을 밝히면 간통죄는 즉시 폐지된다. 형법 241조는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간통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그와 간통을 저지른 제3자도 같은 처벌을 받는다. 벌금형 없이 징역형만 있어 양형이 센 편이다. 간통죄의 고소·고발 주체는 배우자로 제한돼 있다. 아울러 형사소송법 229조는 혼인이 해소되거나 이혼소송을 제기한 후가 아니면 배우자를 간통죄로 고소할 수 없도록 했다. 우리 사회는 1953년 제정된 간통죄 처벌 조항을 두고 존치론과 폐지론으로 치열한 논쟁을 벌여왔다. 일부일처주의 유지, 가족제도 보장, 여성 보호 등은 간통죄를 존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들이다.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 자유를 위해 간통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선다. 헌재는 1990∼2008년 네 차례 헌법재판에서 간통죄를 모두 합헌으로 판단했다. 질서유지와 공공복리를 위해 성적 자기결정권을 다소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 그동안 견해였다. 다만, 2008년에는 위헌 4명, 헌법불합치 1명으로 위헌 의견이 합헌 의견을 넘어섰고, 합헌 의견을 낸 일부 재판관이 입법적 개선을 주문하는 등 달라진 분위기가 엿보였다. 간통죄가 폐지되면 헌재법 47조에 따라 2008년 10월 30일 이후 간통 혐의로 기소되거나 형이 확정된 사람들이 공소 취소되거나 재심을 청구해 구제받을 수 있게 된다. 2008년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간통 혐의로 기소된 사람은 5466명으로, 이 중 22명은 구속 기소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간통죄 위헌 “非이슬람권 국가 중 간통죄 처벌 대만이 유일”

    간통죄 위헌 “非이슬람권 국가 중 간통죄 처벌 대만이 유일”

    간통죄 위헌 간통죄 위헌 “非이슬람권 국가 중 간통죄 처벌 대만이 유일” 헌법재판소가 26일 간통죄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 외국의 사례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법무부는 1992년 형법개정안에서 간통죄를 삭제하면서 세계적으로 폐지 추세에 있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 개정 때는 삭제안이 반영되지 못했다. 김종대·이동흡·목영준 전 헌법재판관은 2008년 결정문에서 “성의 개방 풍조는 막을 수 없는 사회 변화”라며 “간통죄의 존립기반이 근본적으로 동요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법조계와 학계에 따르면 중동 이슬람권 국가를 제외하면 대만이 유일하게 형법상 간통죄를 처벌한다. 그나마 대만 형법상 간통죄의 법정형은 우리보다 낮은 1년 이하의 징역이다. 미국은 20여개 주(州)에 간통죄가 남아있지만, 실제로 처벌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사문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의 경우 프랑스대혁명 때인 1791년 간통죄 처벌 규정을 없앴다. 무려 224년 전이다. 이후 간통죄를 되살린 프랑스는 1975년 형법을 개정하면서 다시 관련 조항을 폐지했다. 독일(옛 서독)은 당초 간통한 사람을 6개월 이하의 징역에 처했으나 1969년 개정 형법에서 이 조항을 삭제했다. 중국은 협박의 수단을 동원해 현역 군인의 부인과 간통한 경우에 한해 3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다. 다만, 단순한 간통은 처벌하지 않는다. 덴마크는 1930년, 스웨덴은 1937년, 일본은 1947년, 노르웨이는 1972년, 스위스는 1989년, 아르헨티나는 1995년, 오스트리아는 1996년에 각각 간통죄 처벌 법규를 폐지했다. 우간다 헌법재판소는 2007년 한 여성단체 청구를 받아들여 부인만 처벌하도록 한 간통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날 박한철·이진성·김창종·서기석·조용호 재판관은 다수의 위헌 의견에서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그다지 크지 않은 경우 국가 권력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현대 형법의 추세이고, 이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간통죄가 폐지되고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혼인과 가정의 유지는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지와 애정에 맡겨야지, 형벌을 통해 타율적으로 강제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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