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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묻지마 살인’ 조현병 판정에도 징역 45년…유기징역 역대 최고

    ‘묻지마 살인’ 조현병 판정에도 징역 45년…유기징역 역대 최고

    첫 살인 5시간 뒤 흉기 새로 구입해 또 살인정신감정 결과 ‘명시되지 않은 조현병’ 진단피해자 유족들 “형량 너무 약하다” 오열·분노 특별한 동기 없이 5시간 동안 2명을 잇달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30대 중국동포 남성이 징역 45년을 선고받았다. 징역 45년형은 ‘윤 일병 사건’ 1심 판결 이후 처음이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1부(부장 이환승)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김모(31)씨에 징역 45년을 선고했다고 28일 밝혔다. 10년간의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도 명령했다. ●특별한 동기 없이 5시간 간격으로 연달아 살인 김씨는 올해 5월 서울 금천구의 한 고시원에서 옆 방에 살던 50대 남성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하고 5시간 뒤 근처 건물 옥상에서 30대 남성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 조사 결과 김씨는 고시원에 살던 피해자와 몇 번 마주쳤을 뿐 평소 별다른 관계가 없었고, 건물 옥상에서도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를 살해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은 특별한 동기가 없을 뿐 아니라 급소를 찌르는 등 대담하고 용의주도했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첫 살인 후 범행 도구를 새로 샀고, 두 번의 범죄 간 시간도 짧으며 경찰 조사에서는 ‘아무나 죽이려고 샀다’고 말하기도 했다”면서 “범행에 대해 상황에 맞지 않는 변명으로 일관해 진정으로 반성하는지도 의문이 든다”고 질타했다. 또 “인명 경시가 심각하고 재범 위험도도 높은 척도로 나왔다. 피고인이 폭력적 성향을 억제하지 못해 다시 살인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진다”고 밝혔다. ●조현병 진단…재판부 “재범 우려…장기간 격리해야” 재판 과정에서 김씨의 정신감정을 의뢰받은 공주치료감호소는 김씨가 ‘명시되지 않은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소견을 냈다. 김씨는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주변을 의식하고 경계해 망상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을 받았다. 구치소에서도 잠을 자던 중 동료 수형자를 깨워 폭행했고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정신병으로 심신이 미약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점이 인정되기 때문에 법에 따라 양형에 참작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에 대한 의문을 품고 사실조회 의뢰도 했지만 정신병적 상태에서도 범행 도구를 준비할 수 있고, 이후 범행에 대해 진술할 수 있다는 답변이 왔다. 의도적이고 계획적이라는 사정만으로 정신병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러한 사정을 비춰볼 때 장기간 격리를 시켜 사회의 안전을 지키고 피해자들의 감정도 보살필 필요가 있다”면서 “피고인의 정신병적 장애가 범행의 한 동기가 됐다는 점을 참작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형법상 유기징역의 상한은 30년으로 규정돼 있지만 김씨의 경우 2건의 살인으로 기소돼 경합범 가중이 됐다. ●유가족들 “또 감형될 것 아니냐” “중국에 보내 사형받게 하라” 뉴스1에 따르면 재판을 방청한 두 피해자의 유가족들은 형량이 너무 약하다며 오열했다. 고시원 피해자의 부인은 “2심, 3심까지 가면 결국 또 감형될 것 아니냐. 중국에 보내 사형을 받게 해야 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옥상 피해자의 노모도 “정신병이 있다는 건 형을 낮추려고 하는 거짓말일 뿐”이라며 분노했다. 또 형이 선고된 뒤 피고인 김씨의 가족이 눈물을 보이자 옥상 피해자의 누나가 “남의 동생 죽여놓고 45년 받은 게 억울하냐”고 따지는 과정에서 양측이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검찰은 지난 12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김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김씨는 최후진술에서 “유가족들에게 미안하다”고 짧게 말했다. ●‘윤 일병 사건’ 1심 이후 첫 ‘징역 45년’ 김씨에 내려진 징역 45년은 군사법원이 아닌 민간법원에서 내려진 유기징역 중 가장 무거운 형량이다. 군사법원·민간법원 통틀어 징역 45년이 내려진 것은 지난 2014년 10월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이 후임병을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가혹행위를 가해 숨지게 한 ‘윤 일병 사건’의 가해자 이모 병장에게 징역 45년을 선고했던 것이 가장 최근 사례이며 첫 사례로 기록돼 있다. 다만 2심에서 징역 35년으로 대폭 줄어들었다가 대법원에서 징역 40년이 확정됐다. 형법상 유기징역 또는 금고의 상한선은 30년이다. 그러나 형을 가중하는 때에는 50년까지 선고할 수 있다. 법원에 따르면 김씨의 경우 형법 제38조 경합법 가중과 관련한 조항 등 법 조항이 적용돼 45년형이 선고됐다. 1명을 살해한 혐의에 대한 양형에, 추가로 1명을 더 살해한 혐의에 대한 양형이 더해져 이같은 형량이 나온 것이다. 향후 2심을 거쳐 대법원에서 징역 45년이라는 양형이 유지될지 주목된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배우자 살해하고도…“밥 안 준다”며 동거녀 살인미수

    배우자 살해하고도…“밥 안 준다”며 동거녀 살인미수

    배우자를 살해해 징역 13년을 복역하고 출소한 60대가 이번엔 동거녀를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 받았다. 부산지법 형사6부(최진곤 부장판사)는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A(63)씨에 대해 징역 8년을 선고했다고 27일 밝혔다. 10년간 위치추적 장치 부착과 해당 기간 피해자 접근 금지 명령도 내렸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A씨는 2003년 5월 울산지방법원에서 배우자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죄로 징역 13년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2016년 3월 출소했다. 그해 8월 다방에 손님으로 갔다가 다방을 운영하는 피해자 B씨를 알게 됐고 2년 뒤 동거를 시작했다. A씨는 B씨가 다방에서 성매매를 한다고 주장하며 자주 다툰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7월부터는 밥을 잘 차려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B씨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마음을 품고 ‘수사관 선생님들께’라는 제목으로 자필 편지를 썼다. 그는 같은 달 13일 오후 10시 45분쯤 반찬 문제로 B씨와 다투다 신발방에 있던 둔기로 머리 부위를 마구 때렸다. 둔기가 부러지자 폭행을 멈췄지만 B씨는 이미 치료 일수 불상의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B씨는 현재도 완치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배우자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죄로 13년을 복역하고 출소한 지 3년 5개월 만에 또다시 동거녀를 둔기로 때려 살해하려 했다”며 “비록 미수에 그쳤다 하더라고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 범행 후 112와 119에 신고한 점은 양형에 참작했다”고 밝혔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검찰, 김학의 ‘성접대·뇌물수수’ 1심 무죄 판단에 불복해 항소

    검찰, 김학의 ‘성접대·뇌물수수’ 1심 무죄 판단에 불복해 항소

    3억원대 뇌물과 성 접대 혐의에 대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2심에서 다시 판단을 받는다. 검찰은 26일 김 전 차관의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정계선 부장판사)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지난 22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전 차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 전 차관은 2006∼2008년 건설업자 윤중천씨에게 1억 3000만원 상당의 뇌물과 성 접대를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또 다른 사업가 최모씨와 모 저축은행 회장 김모씨 등에게 2억원 가까운 금품을 받은 혐의도 있었다. 1심은 김 전 차관이 ‘성 접대’를 받았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일부 뇌물수수 혐의는 증거불충분 등을 들어 무죄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2006년 9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윤씨로부터 성 접대를 받고 5회에 걸쳐 현금과 수표로 1900만원을 수수한 혐의에 대해 뇌물액수가 1억원 미만(공소시효 10년)이라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2012년 4월에는 윤씨로부터 부탁을 받고 형사사건 조회를 통해 윤씨에게 사건 진행상황을 알려준 혐의도 무죄로 판단했다. 또 사업가 최모씨로부터 상품권과 차명 휴대전화 사용대금을 받은 혐의에 대해 무죄를, 법인카드를 제공받아 사용한 혐의에 대해서도 공소시효 10년이 넘어 면소 판결했다. 앞선 검찰은 김 전 차관에게 징역 12년과 벌금 7억원을 구형하고 3억 3700여만원의 추징도 요청했다. 검찰 관계자는 1심 선고가 나온 뒤 “거액을 장기간에 걸쳐 수수했는데 직무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한 부분이나 일부 증거에 대한 판단 등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법원, 투자자 살해하려 한 일당 중형 선고

    법원이 부동산 투자금을 돌려달라고 독촉하는 투자자를 차로 치어 살해하려 한 2명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울산지법 형사11부(부장 박주영)는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A씨(58)와 B씨(65)에 대해 각각 징역 20년과 징역 18년을 선고했다고 25일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부동산 소개업자 A씨는 2017년 8월 지인 C(60·여, 징역 10년 선고)씨를 통해 피해자 D씨를 소개받아 부산과 경남 양산지역 부동산 투자 명목으로 총 11억 6500만원을 투자받았다. 하지만, D씨는 얼마 후 투자 금액이 실거래가보다 부풀려진 것을 알게 돼 투자금을 돌려달라고 독촉했다. 일당은 D씨를 차로 쳐 식물인간으로 만들기로 하고 B씨를 포섭해 위장 교통사고를 공모했다. B씨는 범행 공모 대가로 2300만원을 약속 받았다. 이들은 D씨를 미행하는 등 동선을 파악한 뒤 지난 4월 초 횡단보도를 건너던 D씨를 승용차로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D씨는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재판부는 “교통사고를 위장해 피해자를 살해하려 한 범행이 매우 대담하고 치밀하다”며 “피고인 A씨는 상당한 돈을 투자받았다가 곤란한 상황에 빠지자 극단적인 방법으로 이를 모면하려 한 점, B씨는 물질적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아무 원한 없는 피해자를 대상으로 범행했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故 설리 절친’ 가수 구하라, 자택서 숨진 채 발견…“잘 자” 마지막 메시지

    ‘故 설리 절친’ 가수 구하라, 자택서 숨진 채 발견…“잘 자” 마지막 메시지

    걸그룹 에프엑스(f(x)) 출신 가수 겸 배우 설리(25·본명 최진리)씨가 세상을 떠난 지 불과 42일 만에 걸그룹 카라 출신 가수 겸 방송인 구하라(28)씨가 24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돼 충격을 주고 있다. 구씨는 숨지기 전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잘 자”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긴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이날 오후 6시쯤 구씨가 서울 강남구 청담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구씨가 극단적 선택했을 개연성을 염두에 두고 정확한 사인과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구하라 일본 소속사인 프로덕션 오기는 국내 연예기획사 에잇디크리에이티브를 통해 “너무나 슬프고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게 됐다”면서 “갑작스런 비보를 전해드리게 되어 안타까운 심정이, 다시 한번 조문 자제에 대해서는 송구스러움을 전한다”며 구씨의 사망을 공식 확인했다. 구씨 측은 “유족과 지인들의 심리적 충격과 불안이 크다. 조문과 루머 보도를 자제해달라”고 밝혔다. 구씨는 하루 전인 지난 23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잘 자”라는 글과 함께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촬영한 사진 한 장을 게재했다. 사진 속에 구씨는 엷은 미소를 띄고 있다. 구씨는 최근 한국 소속사 없이 일본 에이전시와만 협업하며 일본 내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SNS로도 팬들과 매일 소통해왔다. 특히 절친인 설리가 사망하자 “그곳에서 너가 하고 싶은 대로 잘 지내. 네 몫까지 열심히 살게”라며 삶의 의지를 다지는 글을 남기기도 해 이번 구씨의 사망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구씨는 2008년 그룹 카라의 멤버로 연예계에 데뷔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큰 인기를 끌었다. ‘미스터’, ‘맘마미아’, ‘루팡’, ‘판도라’ 등을 수많은 곡들을 히트시키며 톱가수로 성장했다. 카라는 2010년 8월 일본에 데뷔해 한류 그룹으로 초고속 성장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대표적인 K팝 걸그룹으로 선 카라는 2011년 일본에서 활동한 한국 가수 중 CD·DVD 매출 최고 기록을 세웠다. 2016년 카라가 해제된 이후에는 빼어난 미모와 실력으로 솔로 가수로 활동하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두각을 드러냈다. 구씨는 지난해 전 남자친구 헤어 디자이너 최종범(28)씨로부터 폭행과 협박의 폭로전 논란 속에 경찰 수사와 법적 공방을 벌이며 힘겨운 시간들을 보냈다. 이후 지난 4월 안검하수 수술로 성형 논란에 휩싸여 극심한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구씨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극심한 심리적 불안감과 스트레스,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구씨는 올해 5월 한 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 구씨는 악성 댓글에 대해 “직접 어린 시절부터 활동하는 동안 지나 온 수많은 악플과 심적인 고통으로 많이 상처 받아왔다”면서 “아직 어린 나이에도 안검하수를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겠죠”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구씨는 최근에 아픔을 딛고 일본에서 솔로 활동을 재개하고 있었다. 올해 6월 일본의 한 프로덕션과 전속계약을 하고 이달엔 일본에서 새 싱글 ‘미드나잇 퀸’(Midnight Queen)도 발매했다. 한편 지난 8월 29일 법원은 구씨를 폭행하고 불법 촬영을 한 혐의로 기소된 전 남자친구 최씨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 오덕식 부장판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및 상해 등 혐의로 기소된 최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고 밝혔다.오 부장판사는 “같이 폭력을 휘두른 상해가 인정되지만 최씨가 술을 마신 채 먼저 피해자의 주거지를 찾아와 피해자를 깨워 싸움을 벌였다”면서 “특히 얼굴에 상처를 입자 연예매체에 제보해 연예인 생명을 끊어놓겠다고 협박하고 불러서 무릎 꿇게 한 경위에 비춰 비난가능성이 높고 여성연예인 피해자에게 극심한 고통을 줬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나체 사진을 불법촬영한 혐의에 대해서는 “피해자로부터 명시적 동의는 받지 않았지만 피해자 의사에 반한 걸로는 보이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최씨는 지난해 구씨 폭행 이후 함께 찍은 성관계 동영상을 거론하며 유포한 혐의로 기소됐다. 최씨는 지난해 8월 구씨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언론과 인터뷰했지만 쌍방 폭행이었다는 것이 드러났고, 구씨 측이 최씨가 사생활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사태가 커졌다. 최씨는 구씨에게 관련 영상을 보낸 뒤 연예매체에 제보하겠다고 메일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검찰은 최씨에 대해 “연예인이고 여성이었던 구씨에게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입게 했다”며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최씨는 진술기회를 얻어 “남녀 사이, 연인 사이의 일인데 이렇게까지 사회적으로 시끄럽게 하고 이 자리에 오게 돼서 많은 분께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호소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판깨스트]김학의 ‘무죄’ 끌어낸 ‘증거부족’...검찰이 무장해제됐다

    [판깨스트]김학의 ‘무죄’ 끌어낸 ‘증거부족’...검찰이 무장해제됐다

    검찰의 대규모 세 번째 수사김 전 차관 구속으로 자신감진술·물증 확보했다고 했지만법원은 증거 부족으로 무죄김 전 차관 측 “재판부에 경의”“검찰은 오늘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수사단을 구성했다.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할 계획이다.” 지난 3월 29일 검찰은 ‘별장 성접대 의혹’을 받는 김 전 차관에 대해 재수사를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3월 22일 김 전 차관이 해외 출국을 시도하려다 발각된 뒤 일주일 만이었습니다. 검찰 내부에서는 수사 객관성, 공정성 차원에서 “특별검사를 임명하자”, “특별수사단을 꾸리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결국 ‘특별’을 뺀 수사단으로 출범했습니다. 명칭도 참 길었습니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수사권고 관련 수사단. 핵심 인물인 김학의는 수사단 명칭에서 빠졌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수사는 지난 6월 4일 중간 수사결과 발표를 끝으로 사실상 마무리됐습니다. 이후에도 추가 수사가 이뤄졌지만 수사단장 등 절반이 넘는 검사는 원 소속으로 복귀했습니다. 수사단이 2개월가량 수사를 하면서 거둔 성과라고 한다면 김 전 차관과 건설업자 윤중천씨의 신병을 확보했다는 겁니다. 당시 수사단은 가장 큰 장벽인 공소시효 벽을 넘기 위해 김 전 차관에는 ‘포괄일죄’(여러 범죄 행위가 하나의 죄로 묶이는 것)를, 윤씨에게는 강간치상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수사단의 자신감은 상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재판에서도 검찰은 김 전 차관과 윤씨에 대해 각각 징역 12년형, 징역 13년형을 구형하는 등 중형을 선고해달라고 했습니다. 검찰의 세 번째 수사만에 성접대 의혹의 정점에 선 인물들에 대한 ‘단죄’가 이뤄질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지난 15일 윤씨의 1심 선고 결과는 검찰의 예상을 한참 빗나갔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 손동환)는 윤씨에게 징역 5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검찰 구형의 절반에도 못 미친 것입니다. 재판부는 의혹의 핵심인 성범죄 혐의에 대해서는 면소 또는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습니다. 면소 판결을 내린 건 공소시효(10년)가 완성됐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피해 여성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을 받은 2013년을 기준으로 공소시효 15년이 적용돼야 한다는 검찰의 주장을 배척한 것으로도 풀이됩니다. 재판부는 당시 “2013년 검찰이 적절히 공소권을 행사했으면 피고인이 적절한 죄목으로 법정에 섰을 것”이라면서 “이제는 대부분 공소시효가 지나 김 전 차관 등 사회 유력 인사들에 대한 원주 별장 성접대는 양형을 정하는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윤씨 측은 선고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재판부가 성접대 또는 성폭행 관련 사건에 여론의 영향을 받지 않고 적절한 판단을 한 것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고 했습니다. 지난 21일 검찰와 윤씨 측 모두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하면서 이제 윤씨 사건은 항소심에서 다툽니다. ●윤중천씨 사건 항소 하루 만에...김학의 무죄 선고검찰이 항소장을 제출한 다음날인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정계선)는 김 전 차관의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검찰이 공소시효 벽을 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주목할 점은 법원이 ‘증거 부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는 것입니다.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거나 직무관련성, 대가성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해 처벌을 할 수 없다는 것인데요. 아직 1심 판결밖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섣불리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증거가 부족했다는 얘기는 검찰이 김 전 차관을 무리해서 기소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분명 수사단은 지난 6월 김 전 차관이 윤씨와 사업차 최모씨로부터 1억 7000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설명하면서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당시 수사 결과 자료를 보면 “윤씨가 과거와 달리 금품 제공 등 접대 사실을 자인하고 대가 관계 등에 대해 의미 있는 진술을 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최씨도 수사단 수사 과정에서 차명폰 제공 외 금품 제공 사실을 새롭게 진술해 물적 증거를 확보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그런데 증거 부족이라니요. 검찰은 김 전 차관과 윤씨의 관계가 지속적으로 이뤄졌다고 보고 수년간 이어져 온 금품 수수 등에 대해 포괄일죄를 적용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뇌물 액수 중 가장 큰 금액(1억원)을 차지한 제3자뇌물수수 혐의가 증거 부족으로 무죄가 되면서 윤씨로부터 뇌물을 받았다 해도 1억원을 넘지 못하게 됐습니다. 이 때문에 김 전 차관이 2006~2008년 사이 윤씨로부터 3100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혐의는 공소시효 15년이 아닌 10년이 적용돼 면소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선고가 끝나자 김 전 차관 측은 기자회견을 자처하고 “법과 정의의 원칙에 따라 판결해준 것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습니다. 일주일 전 윤씨 측 변호인이 “깊은 경의를 표한다”고 했는데 똑같은 표현을 쓴 것입니다. 김 전 차관의 변호인이 말한 ‘법과 정의’가 앞으로 어느 쪽에 설지는 예단할 수 없습니다. 김 전 차관 측도 “많은 법률적 판단이 남아 있다”면서 이 사건이 대법원까지 갈 것임을 예고했습니다. 수사단도 “납득하기 힘든 판결”이라며 항소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하지만 이번 재판은 때를 놓친 수사와 기소로는 정의를 실현하기 어렵다는 교훈을 새삼 일깨워줬다는 것입니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최근 강연에서 “최선을 다해도 역사적 사실을 다 밝힐 수는 없다”고 했지만 적어도 항소심에서는 새로운 증거와 논리로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야 하지 않을까요. 수사가 제대로 됐는지 수사점검위원회를 열 수도 있다는 검찰의 첫 다짐이 빈말은 아니었기를 바랍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검찰 대규모 수사에도 김학의 ‘무죄’...“재판부에 경의를”

    검찰 대규모 수사에도 김학의 ‘무죄’...“재판부에 경의를”

    6년 만에 이뤄진 검찰 재수사증거 부족, 공소시효 벽 막혀세 번째 수사에도 1심 ‘무죄’‘별장 성접대 의혹’이 불거진 지 6년 만에 검찰이 대규모 수사단을 꾸리고 세 번째 수사에 나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구속하는 성과를 이뤘지만 법원은 김 전 차관에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5월 구속된 김 전 차관은 6개월 만에 수의를 벗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정계선)는 22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전 차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제3자 뇌물수수, 수뢰후 부정처사 혐의는 모두 무죄 판단을 받았고, 성접대 등 뇌물수수 혐의도 공소시효 벽에 막혔다. 이날 오후 2시쯤 시작된 재판에 김 전 차관은 흰 수염을 늘어뜨린 채 연두색 수의를 입고 나타났다. 재판부를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생년월일을 묻는 질문에 짧게 답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김 전 차관의 ‘스폰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건설업자 윤중천씨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부터 하나씩 열거하며 무죄로 판단한 배경 등을 설명했다. 2006년 9월부터 2008년 2월쯤까지 13차례에 걸쳐 이모씨 등으로부터 성접대를 받고, 윤씨로부터 현금 등 1900만원과 시가 1000만원짜리 그림을 수수하는 등 총 31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와 관련해 재판부는 “공소시효가 완성됐다”고 판단했다. 뇌물 액수가 1억원이 안 돼 공소시효 10년이 적용되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윤씨가 이모씨의 상가보증금 1억원을 돌려받지 못하도록 해 사실상 이씨에게 뇌물을 준 것이라고 검찰이 판단한 제3자 뇌물수수와 관련해, 재판부는 “1억원 채무 면제나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이 부분은 무죄라고 했다. 박모 변호사를 통해 윤씨의 부탁을 받고 형사사건 조회를 해 윤씨에게 진행 상황을 알려준 혐의(수뢰후 부정처사)에 대해서도 “증거가 부족하고 부정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또 사업가 최모씨로부터 상품권과 차명휴대전화 사용대금을 받은 혐의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법인카드를 제공받아 사용한 혐의는 공소시효 10년이 지나 면소판결했다. 선고가 끝나자 김 전 차관 측 변호인은 취재진에게 “무죄를 생각하면서 재판에 임했다”면서 “상당히 많은 관심을 받는 사건이고 사건 외적으로 압박을 느낄 수 있었을텐데 법과 정의의 원칙에 따라 판결해 준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앞서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김 전 차관에게 징역 12년과 벌금 7억원을 구형했다. 한편, 윤씨는 지난 15일 1심에서 징역 5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2013년 검찰이 적절히 공소권을 행사했으면 그 무렵 피고인이 적절한 죄목으로 법정에 섰을 것”이라면서 “이제는 대부분 공소시효가 지나 김학의 등 사회 유력 인사들에 대한 원주 별장 성접대는 양형을 정하는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홍콩 이공대 사실상 함락… 강경파 경찰총수, 200여명 폭동죄 기소

    홍콩 이공대 사실상 함락… 강경파 경찰총수, 200여명 폭동죄 기소

    ‘필사의 탈출’ 실패·화염병 8000개 발견 美상원 홍콩인권법 통과되자 中 “반격” “中, 홍콩 주재 英 영사관 직원 감금·고문”홍콩 시위대 ‘최후의 보루’인 홍콩 이공대가 사실상 함락되자 시위대가 퇴로를 찾지 못하고 ‘사면초가’에 놓였다. 미국 상원이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안’(홍콩인권법안)을 통과시키자 중국 외교부가 “우리도 반격하겠다”고 경고했다. 우리의 경찰청장에 해당하는 홍콩의 신임 경찰 총수가 취임 직후 이공대 시위자 200여명을 폭동죄로 기소하는 ‘초강수’를 뒀다. 20일 로이터통신은 “(이공대 봉쇄가 본격화된) 지난 18일부터 이날까지 1000명 넘게 체포돼 이공대에는 100명도 채 남지 않았다. 시위대의 선택지가 갈수록 줄고 있다”고 보도했다. 응급 구조요원도 현장을 모두 떠나 교정에는 부상자를 돌볼 사람이 없는 상황이다. 시위대는 수차례 이공대를 빠져나가려 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10여명이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처럼 하수도 터널로 탈출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앞서 시위대가 점거했다가 철수한 중문대에서 화염병이 8000개 넘게 발견됐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설명했다. AP통신은 19일(현지시간) “미 상원이 이날 홍콩인권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홍콩의 기본권을 억압하는 데 책임이 있는 이들은 미 비자 발급이 거부된다. 미 국무부는 해마다 홍콩의 자치 수준을 평가해 홍콩이 누리는 특별 지위를 지속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홍콩인권법안은 이미 자체적으로 홍콩 민주화 지지 법안을 만장일치 가결한 하원으로 넘겨진다. 양원은 조율을 거쳐 최종안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대통령이 서명하면 발효된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홍콩이든 중국 북서부든 그 어느 곳에서도 자유를 억압해서는 안 되고 홍콩 시민들을 그렇게 무자비하게 대하면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0일 성명을 내 “미 상원이 법안을 통과시켜 홍콩에 공공연히 개입하고 중국 내정에 간섭한 것에 대해 강력히 규탄하고 반대한다”고 말했다고 신화통신이 전했다. 겅 대변인은 미국에 “제 불에 타 죽지 않도록 입법을 철회하고 내정 간섭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와 관련, 19일 홍콩의 새 경찰 수장이 된 크리스 탕 경무처장이 임명 뒤 첫 조치로 시위대 200여명을 폭동죄로 기소했다고 명보 등이 소개했다. 동력이 약해지는 시위대의 기세를 완전히 꺾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탕 경무처장은 20일 홍콩 도심의 ‘점심 시위’마저 조기에 해산시키며 강경 대응을 이어 갔다. 경찰 소식통은 SCMP에 “이공대 봉쇄 작전에서 체포된 시위대에 대해 석방을 허용하지 않고 전원 폭동 혐의로 기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에서 폭동죄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최고 10년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한편 홍콩에 거주하던 영국 영사관 직원이 2주간 중국 당국에 감금돼 고문과 폭행, 가혹 행위를 당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에 영국 정부는 중국 대사를 초치해 항의하면서 영국과 중국 간 외교적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 무역 및 투자 담당 직원 사이먼 정은 지난 8월 8일 홍콩과 인접한 중국 선전 지역에 출장을 갔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돼 온갖 가혹 행위를 당하다 2주가량 지난 24일 성매매 혐의 유죄를 인정한 뒤에야 풀려났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증오 범죄에 선처 호소한 소말리아 출신 美 의원

    증오 범죄에 선처 호소한 소말리아 출신 美 의원

    “증오에 대한 해결책이 더 큰 증오가 될 수는 없습니다.” 미국 민주당 진보 성향 유색 여성의원 4인방 가운데 한명인 일한 오마 하원의원이 자신을 증오발언으로 위협한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 대해 선처를 호소했다고 가디언 등이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페트릭 카를리네오라는 이름의 50대 남성은 지난 3월 오마의 의원사무실에 전화해 “왜 오마를 위해 일하느냐. 그는 테러리스트다. 옛날이었다면 그의 두개골에는 총알이 박혀 있었을 것”이라고 위협한 혐의 등으로 최근 유죄가 인정됐다. 이 남성은 1998년에도 다른 범죄로 유죄를 받은 흉악범이었고, 그의 자택에서는 다수의 총기와 수백발의 탄약이 발견되기도 했다. 오마 의원은 이번 사건을 담당한 프랭크 게라시 판사에게 보낸 A4 2장 분량의 서신에서 증오 범죄의 심각성을 강조하면서도 “전쟁터에서 탈출한 사람으로서 정치적 폭력이 인간을 얼마나 불안정하게 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소말리아 난민 출신으로 “미국이 싫으면 너희 나라로 가라”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차별성 발언의 표적이 된 당사자이기도 하다. 오마 의원은 이어 “폭력을 저지른 사람들은 (사회적) 소외와 방심의 희생자가 되기도 했다”면서 “응징이 아닌 동정심이 이들을 회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또 “정치적 응징을 가하는 우리는 과연 어떤 사람들이냐”고 반문한 뒤 “증오에 대한 답이 또 다른 증오가 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람은 증오를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증오를 배울 수 있다면 사랑도 배울 수 있다’는 넬슨 만델라의 발언을 인용하기도 했다.최고 10년형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이번 사건에 대해 오마 의원은 사회통합을 위한 사회봉사 명령 등이 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오마 의원의 이번 발언은 최근 미국 내 인종차별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나와 주목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유세장에서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그를 언급하며 “오마는 알카에다에 대해 생각할 때 떳떳할 수 있느냐. 그는 미국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극단주의자”라고 공격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으로 논란이 확산된 가운데 민주당에서는 오마 의원의 신변 문제에 대한 우려가 제기돼 왔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뇌물수수’ 이동호 전 고등군사법원장 파면…검찰 구속영장 청구

    ‘뇌물수수’ 이동호 전 고등군사법원장 파면…검찰 구속영장 청구

    군납업체로부터 수년 동안 억대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동호 전 고등군사법원장에 대해 검찰이 19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국방부는 전날 이동호 전 법원장을 파면했다.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부장 강성용)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동호 전 법원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이날 밝혔다. 현행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뇌물을 수수한 사람 중 수뢰액이 1억원 이상인 사람은 무기 또는 징역 10년 이상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동호 전 법원장은 최근 수년 동안 경남 지역의 한 식품가공업체 대표 정모씨로부터 군납사업을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1억원이 넘는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동호 전 법원장이 차명계좌를 통해 정기적으로 뒷돈을 챙긴 금융거래 내역을 확보하고 범죄수익은닉규제법(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도 적용했다. 이동호 전 법원장은 지난 15일 검찰에 출석해 혐의를 대체로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1995년 군 법무관으로 임관한 이동호 전 법원장은 국군기무사령부 법무실장, 고등군사법원 부장판사를 지냈다. 지난해 1월 준장으로 승진해 육군본부 법무실장에 임명됐으며, 지난해 12월에는 군 최고 사법기관 수장인 고등군사법원장이 됐다. 국방부는 지난 5일 검찰이 고등군사법원장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등 강제수사에 착수하자 이동호 전 법원장을 직무에서 배제했고 전날 파면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안전도 검사 미 이행 유선장, 영업중단 통보 받고도 버젓이 영업

    송명화 서울시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 강동3선거구)은 지난 14일(목) 열린 서울시의회 환경수자원위원회 한강사업본부 행정사무감사에서 안전도 검사 미 이행으로 영업 행위 불가 통보를 받은 유선장이 버젓이 영업행위를 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한강의 수상시설인 유선장은 10년을 주기로 유선사업자 면허를 다시 받아야 하며 1년에 한 번 하천점용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2018년 12월 31일로 하천점용 허가가 만기된 잠실지구의 한 유선장의 경우 2018년도 하천점용료 6,300만원 체납과 안전도 검사 미 이행 등의 사유로 2019년의 하천점용 허가가 유보된 상태였다. 한강사업본부는 이 업체에 대해 금년 8월 1일자 공문을 발송, 안전도 검사 미 이행 등의 사유로 하천점용 미 허가에 따른 영업행위 불가 통보했으며, 하천점용 미 허가 상태로 영업행위를 할 경우 하천법 제33조 제1항 및 같은 법 제95조 제5호에 의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됨을 안내했다. 9월 3일에는 안전도 검사 관련 유선장 개선명령을 통해 안전도 검사 미 이행 시설로서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유선장 출입 및 유선장을 이용하는 모든 수상레저 활동을 금지한다는 안내문을 시민들이 잘 볼 수 있는 장소에 부착하도록 공문을 발송했다. 그러나 해당 유선장에서는 개선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현재까지 버젓이 영업행위를 하고 있으며 포털 블로그 리뷰에 최근에 수상보트와 음식점을 방문했던 글들이 올라와 있다. 송 의원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유선장 관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안전도 검사인데 30년이 넘은 유선장 시설에 대해 안전도 검사 없이 불법 영업행위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한강사업본부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경위와 해당 유선장에 대한 즉각적인 행정조치 후 그 결과를 의회에 보고할 것”을 주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악덕 친일 부호 장승원 사살… 세금 수송 마차 털어 독립운동 자금 조달

    악덕 친일 부호 장승원 사살… 세금 수송 마차 털어 독립운동 자금 조달

    “한 잔 술을 차려 놓고 ‘우리 상진아’ 하고 가슴을 치면서 고한다. 네가 죽던 날, 시신을 수레에 싣고 돌아왔을 때는 성안에 있는 네 친구들이 모두 너를 어루만지면서 울음을 터뜨렸었다.(…) 길거리에 가득한 남녀들이 상여를 따라 통곡하자, 길을 가던 남모르는 나그네까지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으니….”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의사(義士)의 삼년상을 마치던 날 대한제국 홍문관 교리였던 생부(生父) 박시규가 비통한 심정으로 지은 제문 앞부분이다. 고헌(固軒) 박상진은 1884년 12월 6일(음력) 울산 북구 송정동에서 태어나 큰아버지에게 양자로 들어갔고 3세 때 경북 경주 녹동으로 가 성장했다. 의사의 집안은 조부와 생부, 양부가 모두 급제했고 재산이 7000석이나 됐던 명문가였다. 종형을 따라 경북 청송 진보에 갔다가 그곳에서 왕산 허위를 만나 사제의 인연을 맺은 것이 운명을 바꾸게 됐다. 왕산은 구한말 평리원장(대법원장 격)에 올랐다가 개화사상을 수용하고 의병 투쟁을 벌인 혁신유림이었다.스승을 따라 상경한 의사는 21세에 양정의숙에 들어가 안희제 등 동지를 만나 국권 회복의 열망을 키웠다. 양정의숙을 졸업한 해인 1908년 왕산은 교수형을 당했고 서대문형무소로 들어가 버려진 스승의 시신을 포대기로 감아 안고 나오면서 의사는 무력투쟁을 다짐했다. 교남교육회, 달성친목회 등에 가입하고 의사는 투쟁 계획을 세워 나갔다. 나라를 잃은 1910년 판사시험에 합격, 평양법원 판사로 발령받았지만 곧바로 사직하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11년 의사는 스승과 가까웠던 안동 유림 이상룡, 김동삼이 설립한 만주 서간도의 경학사와 신흥강습소를 방문해 지원 활동을 시작했다. 중국 단둥에 안동여관을 설치했는데 독립운동 연락기관이었고 나중에 광복회의 거점이 됐다. 이듬해 귀국한 의사는 대구에 상덕태상회라는 곡물회사를 차렸다. 곡물 거래는 해외를 드나들고 독립운동 자금을 보내는 데 감시를 덜 받는 이점이 있었다. 국내외에 연락 거점을 마련한 의사는 1915년 8월 25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풍기광복단 등 독립운동 단체들의 연합체 격인 대한광복회 출범식을 가졌다. 7개 강령의 첫째는 친일 부호의 의연금을 받아 내고 일인이 불법 징수하는 세금을 압수한다는 것이었다. 일제 고관과 한인 반역자를 처단하는 내용도 있다. 겉으로는 회(會)였지만 사령관, 사령부, 지휘장 등 군대식 조직과 전국 각지에 지부를 갖춘 무장투쟁 단체였고 박 의사는 총사령이었다.대한광복회는 거사에 나섰다. 박 의사의 명령을 받은 우재룡은 1915년 12월 24일 엄동설한에 경주 광명동 효현교(나무다리) 일부를 파괴한 뒤 풀숲에 숨어 기다렸다. 일제가 악랄하게 징수한 세금 수송 마차가 대구로 가려면 효현교를 건너야 했다. 전날 권영만은 마부를 찾아가 대구 병원에 치료받으러 가야 한다며 애걸복걸해 짐칸에 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냈다. 마침내 효현교에 이른 마차가 부서진 다리를 보고 속도를 늦추자 그 틈을 타 권영만은 당시로선 거액인 8700원이 든 세금 행낭을 들고 유유히 빠져나왔다. 1917년 11월 10일 밤 경북 관찰사를 지낸 장승원의 경북 구미 집에서 권총탄 소리가 터졌다. 7만 5000석을 수확하는 당시 최고의 부자이면서 악명이 높았던 장을 처단하는 총소리였다. 그는 왕산의 추천으로 관찰사가 됐는데 자금을 대겠다는 약속을 어겼을뿐더러 밀고까지 해 광복회원 채기중과 강순필이 사살한 것이다. “조국 광복을 하자는 것은 하늘과 사람의 같은 뜻이니 이 큰 죄를 성토하노라.” 거사 후 두 사람은 담벼락에 이런 격문을 붙여 놓았다. 장은 광복 후 미군정 수도경찰청장과 3대 국무총리를 지낸 장택상의 아버지다. 장택상은 아버지 일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고 노덕술 등 친일 경찰을 군정 경찰로 받아들였다.“우리 2000만 민족은 노예로 변하여 섬 오랑캐의 악정 폭행은 날로 더해 가고 날로 거듭해 간다. 생각하면 피눈물이 샘솟는다. 각 동포는 능력에 따라 이를 도와….” 광복회원들은 친일 행각, 재산 규모에 따라 부호들에게 이런 포고문을 보내고 모금액을 통고했다. 불응하는 친일 인사는 사살했다. 악질 친일파 도고면장 박용하, 벌교 부호 서도현, 보성의 양재성 등이다. 조선총독 암살, 직산과 상동 광산 습격도 시도했다. 박 의사도 대구 부호 서우순 처단에 직접 가담했다가 발각돼 징역 6개월 형을 받았는데 이른바 ‘대구 권총 사건’이다. 장승원 처단 후인 1917년 겨울부터 박 의사와 광복회 조직원들은 일제의 추적을 받았고 1918년 1월 충남 천안 헌병대에 주요 회원들이 체포돼 광복회의 전모가 드러나고 말았다. 의사는 망국(亡國)에 분개해 단식으로 순국한 이만도의 아들인 경북 안동 이중업의 집에 은신했다. 의사를 보살펴 준 사람은 이중업의 부인이며 3·1만세운동을 주도했다가 체포돼 고문으로 실명한 여성 독립운동가 김락이다.숨어 있던 의사는 뜻밖에도 생모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식으로 태어났으니 도리가 아니겠는가”라며 만류도 뿌리치고 경주 집으로 갔다. 의사가 도착했을 때 생모는 눈을 감은 뒤였다. 1918년 2월 1일 장례를 치르는 중에 일경 수백명이 출동, 의사를 포박하려 했다. 의사는 “나는 내 할 일을 정당하게 했다. 너희에게 포박당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내 몸에 손대지 마라”고 꾸짖으며 백마를 타고 유유히 일경에 앞서 나아갔다. 물고문, 불고문과 3년이 넘는 재판 끝에 의사에게 사형 확정판결이 내려졌다. 사형 집행 며칠 전 면회 온 가족에게 의사는 “울 까닭이 없다”며 태연히 미소를 지었다. 1921년 8월 11일 오후 1시 대구감옥에서 의사는 순국했다. “어머님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나라님 원수도 갚지 못했네. 빼앗긴 국토마저 되찾지 못했으니 무슨 면목으로 저승길을 갈까.” 이 유시(遺詩)와 전해지지 않는 4장의 유서, 사진 1장을 남기고 간 36년 8개월의 짧은 삶이었다. 시신이 옮겨지던 청천역(경북 경산)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통곡했다. 일제는 새벽부터 기마대를 보내 길가에 줄지어 오는 조문객들을 휘몰아 쫓는 등 조문을 방해했다. 의사 집안은 195만평이나 되던 광대한 땅을 모두 날리고 풍비박산이 났다. 경주 최부잣집의 최준(의사의 처사촌)이 농간을 부려 재산을 빼앗아 갔다며 송사를 벌였지만 패소하고 말았다. 의사의 생부는 “일곱 집안 100여 식구가 갑자기 모두 거지가 되어 사방으로 떠돌아다니고, 나도 혼자서 이 옛집을 지키고 있다가 며칠 동안 굶어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썼다. 의사의 묘소는 경주 내남면 노곡리 등운산 기슭에 있다. 농로를 지나 작은 개울을 건너고 산길을 따라가다 오른쪽의 가파른 경사지를 100m 남짓 올라가니 어두컴컴한 숲속에 묘소가 나타났다. 잠시 묵념을 올렸다. 정부는 1963년 의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생가도 복원되고 동상이 세워졌으니 조금이나마 원혼을 달래 줄 것이다. 송정동 생가는 증손자 박중훈(65)씨가 돌보고 있다. 비가 내리는 날 찾아간 생가에서 박씨는 의사의 일생과 여태 끝나지 않은 장승원가와의 악연, 후손들의 비참한 삶을 들려주었다. 박씨는 의사의 일대기이자 평전인 ‘이루지 못한 혁명의 꿈’을 펴냈다. 평생 고통을 겪은 증조할머니, 할머니, 어머니의 일생도 정리해 따로 책으로 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박씨는 최현배 선생을 비롯한 울산 지역 독립운동가를 함께 기리는 기념관이 건립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악덕 친일 부호 장승원 사살… 세금 수송 마차 털어 독립운동 자금 조달

    악덕 친일 부호 장승원 사살… 세금 수송 마차 털어 독립운동 자금 조달

    “한 잔 술을 차려 놓고 ‘우리 상진아’ 하고 가슴을 치면서 고한다. 네가 죽던 날, 시신을 수레에 싣고 돌아왔을 때는 성안에 있는 네 친구들이 모두 너를 어루만지면서 울음을 터뜨렸었다.(…) 길거리에 가득한 남녀들이 상여를 따라 통곡하자, 길을 가던 남모르는 나그네까지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으니….”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의사(義士)의 삼년상을 마치던 날 대한제국 홍문관 교리였던 생부(生父) 박시규가 비통한 심정으로 지은 제문 앞부분이다. 고헌(固軒) 박상진은 1884년 12월 6일(음력) 울산 북구 송정동에서 태어나 큰아버지에게 양자로 들어갔고 3세 때 경북 경주 녹동으로 가 성장했다. 의사의 집안은 조부와 생부, 양부가 모두 급제했고 재산이 7000석이나 됐던 명문가였다. 종형을 따라 경북 청송 진보에 갔다가 그곳에서 왕산 허위를 만나 사제의 인연을 맺은 것이 운명을 바꾸게 됐다. 왕산은 구한말 평리원장(대법원장 격)에 올랐다가 개화사상을 수용하고 의병 투쟁을 벌인 혁신유림이었다.스승을 따라 상경한 의사는 21세에 양정의숙에 들어가 안희제 등 동지를 만나 국권 회복의 열망을 키웠다. 양정의숙을 졸업한 해인 1908년 왕산은 교수형을 당했고 서대문형무소로 들어가 버려진 스승의 시신을 포대기로 감아 안고 나오면서 의사는 무력투쟁을 다짐했다. 교남교육회, 달성친목회 등에 가입하고 의사는 투쟁 계획을 세워 나갔다. 나라를 잃은 1910년 판사시험에 합격, 평양법원 판사로 발령받았지만 곧바로 사직하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11년 의사는 스승과 가까웠던 안동 유림 이상룡, 김동삼이 설립한 만주 서간도의 경학사와 신흥강습소를 방문해 지원 활동을 시작했다. 중국 단둥에 안동여관을 설치했는데 독립운동 연락기관이었고 나중에 광복회의 거점이 됐다. 이듬해 귀국한 의사는 대구에 상덕태상회라는 곡물회사를 차렸다. 곡물 거래는 해외를 드나들고 독립운동 자금을 보내는 데 감시를 덜 받는 이점이 있었다. 국내외에 연락 거점을 마련한 의사는 1915년 8월 25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풍기광복단 등 독립운동 단체들의 연합체 격인 대한광복회 출범식을 가졌다. 7개 강령의 첫째는 친일 부호의 의연금을 받아 내고 일인이 불법 징수하는 세금을 압수한다는 것이었다. 일제 고관과 한인 반역자를 처단하는 내용도 있다. 겉으로는 회(會)였지만 사령관, 사령부, 지휘장 등 군대식 조직과 전국 각지에 지부를 갖춘 무장투쟁 단체였고 박 의사는 총사령이었다. 대한광복회는 거사에 나섰다. 박 의사의 명령을 받은 우재룡은 1915년 12월 24일 엄동설한에 경주 광명동 효현교(나무다리) 일부를 파괴한 뒤 풀숲에 숨어 기다렸다. 일제가 악랄하게 징수한 세금 수송 마차가 대구로 가려면 효현교를 건너야 했다. 전날 권영만은 마부를 찾아가 대구 병원에 치료받으러 가야 한다며 애걸복걸해 짐칸에 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냈다. 마침내 효현교에 이른 마차가 부서진 다리를 보고 속도를 늦추자 그 틈을 타 권영만은 당시로선 거액인 8700원이 든 세금 행낭을 들고 유유히 빠져나왔다.1917년 11월 10일 밤 경북 관찰사를 지낸 장승원의 경북 구미 집에서 권총탄 소리가 터졌다. 7만 5000석을 수확하는 당시 최고의 부자이면서 악명이 높았던 장을 처단하는 총소리였다. 그는 왕산의 추천으로 관찰사가 됐는데 자금을 대겠다는 약속을 어겼을뿐더러 밀고까지 해 광복회원 채기중과 강순필이 사살한 것이다. “조국 광복을 하자는 것은 하늘과 사람의 같은 뜻이니 이 큰 죄를 성토하노라.” 거사 후 두 사람은 담벼락에 이런 격문을 붙여 놓았다. 장은 광복 후 미군정 수도경찰청장과 3대 국무총리를 지낸 장택상의 아버지다. 장택상은 아버지 일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고 노덕술 등 친일 경찰을 군정 경찰로 받아들였다. “우리 2000만 민족은 노예로 변하여 섬 오랑캐의 악정 폭행은 날로 더해 가고 날로 거듭해 간다. 생각하면 피눈물이 샘솟는다. 각 동포는 능력에 따라 이를 도와….” 광복회원들은 친일 행각, 재산 규모에 따라 부호들에게 이런 포고문을 보내고 모금액을 통고했다. 불응하는 친일 인사는 사살했다. 악질 친일파 도고면장 박용하, 벌교 부호 서도현, 보성의 양재성 등이다. 조선총독 암살, 직산과 상동 광산 습격도 시도했다. 박 의사도 대구 부호 서우순 처단에 직접 가담했다가 발각돼 징역 6개월 형을 받았는데 이른바 ‘대구 권총 사건’이다. 장승원 처단 후인 1917년 겨울부터 박 의사와 광복회 조직원들은 일제의 추적을 받았고 1918년 1월 충남 천안 헌병대에 주요 회원들이 체포돼 광복회의 전모가 드러나고 말았다. 의사는 망국(亡國)에 분개해 단식으로 순국한 이만도의 아들인 경북 안동 이중업의 집에 은신했다. 의사를 보살펴 준 사람은 이중업의 부인이며 3·1만세운동을 주도했다가 체포돼 고문으로 실명한 여성 독립운동가 김락이다.숨어 있던 의사는 뜻밖에도 생모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식으로 태어났으니 도리가 아니겠는가”라며 만류도 뿌리치고 경주 집으로 갔다. 의사가 도착했을 때 생모는 눈을 감은 뒤였다. 1918년 2월 1일 장례를 치르는 중에 일경 수백명이 출동, 의사를 포박하려 했다. 의사는 “나는 내 할 일을 정당하게 했다. 너희에게 포박당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내 몸에 손대지 마라”고 꾸짖으며 백마를 타고 유유히 일경에 앞서 나아갔다. 물고문, 불고문과 3년이 넘는 재판 끝에 의사에게 사형 확정판결이 내려졌다.사형 집행 며칠 전 면회 온 가족에게 의사는 “울 까닭이 없다”며 태연히 미소를 지었다. 1921년 8월 11일 오후 1시 대구감옥에서 의사는 순국했다. “어머님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나라님 원수도 갚지 못했네. 빼앗긴 국토마저 되찾지 못했으니 무슨 면목으로 저승길을 갈까.” 이 유시(遺詩)와 전해지지 않는 4장의 유서, 사진 1장을 남기고 간 36년 8개월의 짧은 삶이었다. 시신이 옮겨지던 청천역(경북 경산)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통곡했다. 일제는 새벽부터 기마대를 보내 길가에 줄지어 오는 조문객들을 휘몰아 쫓는 등 조문을 방해했다. 의사 집안은 195만평이나 되던 광대한 땅을 모두 날리고 풍비박산이 났다. 경주 최부잣집의 최준(의사의 처사촌)이 농간을 부려 재산을 빼앗아 갔다며 송사를 벌였지만 패소하고 말았다. 의사의 생부는 “일곱 집안 100여 식구가 갑자기 모두 거지가 되어 사방으로 떠돌아다니고, 나도 혼자서 이 옛집을 지키고 있다가 며칠 동안 굶어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썼다. 의사의 묘소는 경주 내남면 노곡리 등운산 기슭에 있다. 농로를 지나 작은 개울을 건너고 산길을 따라가다 오른쪽의 가파른 경사지를 100m 남짓 올라가니 어두컴컴한 숲속에 묘소가 나타났다. 잠시 묵념을 올렸다. 정부는 1963년 의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생가도 복원되고 동상이 세워졌으니 조금이나마 원혼을 달래 줄 것이다. 송정동 생가는 증손자 박중훈(65)씨가 돌보고 있다. 비가 내리는 날 찾아간 생가에서 박씨는 의사의 일생과 여태 끝나지 않은 장승원가와의 악연, 후손들의 비참한 삶을 들려주었다. 박씨는 의사의 일대기이자 평전인 ‘이루지 못한 혁명의 꿈’을 펴냈다. 평생 고통을 겪은 증조할머니, 할머니, 어머니의 일생도 정리해 따로 책으로 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박씨는 최현배 선생을 비롯한 울산 지역 독립운동가를 함께 기리는 기념관이 건립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홍콩 경찰 이공대 진입…반정부 시위대와 충돌

    홍콩 경찰 이공대 진입…반정부 시위대와 충돌

    홍콩 행정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의 사퇴와 홍콩의 민주화 조치 이행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반정부 집회·시위가 6개월 동안 계속되는 가운데 홍콩 경찰이 시위대가 점거한 홍콩 이공대학에 진입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18일 새벽 홍콩 경찰은 이공대 교정에 진입해 시위대 진압에 나섰다. 경찰은 최루탄과 물대포 차량을 동원했다. 시위대를 식별하기 위해 파란색 염료를 섞은 물을 시위대를 향해 쐈다. 홍콩 경찰은 지난 6월 초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안) 반대 시위가 시작된 후 처음으로 ‘음향 대포’로 불리는 장거리음향장치(LARD)도 사용했다. 최대 500m 거리에서 150dB 안팎의 음파를 쏘는데, 이 음파에 노출되면 고막이 찢어질 듯한 아픔과 함께 어지러움 등을 느낀다고 한다. 이런 경찰의 강경 진압에 맞서 시위대는 화염병, 벽돌 등을 던지고 활을 쏘면서 저항하고 있다. 양측의 격렬한 충돌로 이공대 교정 곳곳에서는 불길이 치솟고 폭발음이 들리고 있다.이 현장에는 지난 주 퇴임한 스티븐 로 경찰청장의 후임으로 조만간 경찰청장 직위를 맡을 것으로 보이는 ‘강경파’ 크리스 탕 경찰청 차장이 직접 나와 작전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전날에는 시위대가 차량을 동원해 중국 인민해방군 막사 인근에 설치된 저지선을 향해 돌진하자 홍콩 경찰이 차량을 향해 실탄을 발사하기도 했다. 이 실탄 사격으로 다친 사람은 없었고, 차량 운전자는 도주했다. 홍콩 경찰은 “시위대가 화염병, 활, 차량 등 살상용 무기로 공격을 계속할 경우 실탄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홍콩 경찰은 이미 이공대 인근에서 수십 명의 시위대를 체포했다. 일부 시위대는 탈출을 시도할 것으로 보이지만 경찰이 이공대 교정을 전면 봉쇄하고 있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홍콩 경찰은 또 이공대 안에서 폭력 행위를 하는 시위대에게 폭동 혐의가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에서 폭동죄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고 징역 10년형에 처해진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윤창호씨 숨진 해운대서 4명 사상 대낮 만취운전자 구속

    윤창호씨 숨진 해운대서 4명 사상 대낮 만취운전자 구속

    하태경 “음주운전은 살인 다시 한번 확인”1년 전 윤창호씨 숨진 해운대서 또 참사경찰 50일간 음주운전자 1만여명 검거처벌기준·형량강화 ‘윤창호법’ 도입 무색지난해 9월 부산 해운대에서 만취 운전자의 차량에 치어 숨진 윤창호(당시 22세)씨 사건으로 인해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한 ‘윤창호법’이 도입됐는데도 또다시 해운대에서 대낮에 만취 상태로 음주운전을 하다 보행자를 치어 4명의 사상자를 낸 60대 운전자가 구속됐다.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17일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위험운전 치사상 혐의로 A(60)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A씨는 16일 오전 11시 20분쯤 혈중알코올농도 0.195% 만취 상태에서 코란도 승용차를 운전하다 부산 해운대구 좌동 대동사거리에서 보행자 4명을 덮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사고로 60대 보행자가 차량에 깔려 숨졌고, 40대와 초등학교 1학년인 모자가 다쳤다. 10대 청소년 1명도 발목을 다쳐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당일 오전 2시까지 술을 마시고 귀가한 뒤 대낮에 운전대를 잡았다가 사고를 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A씨를 상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사고 현장에는 시민들이 꽃과 추모의 글을 놓아두며 피해자를 애도하고 있다. 한 22세 대학생은 “매일같이 지나다니는 길에서 누군가 가족이었고 이웃이었던 분이 허망이 떠나시는 걸 지켜볼 수만 없었습니다”라면서 “이제는 음주 운전자가 당당한 사회가 아닌 우리가 맘 편히 다닐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주십시오”라는 글을 남겼다. 해운대구가 지역구인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서 “음주운전은 살인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면서 “윤창호법으로 음주운전이 큰 폭으로 줄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나 봅니다”라고 말했다. 해운대구에서는 지난해 9월 25일 혈중알코올농도 0.181% 만취운전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은 박모씨 차량에 치인 윤창호씨가 50여일간 사경을 헤매다 숨졌다. 이후 음주운전으로 인명 피해를 낸 운전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고 음주운전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 등을 담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 개정안’ 및 ‘도로교통법 개정안’인 일명 ‘윤창호법’이 도입됐다.특가법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29일 국회에서 통과돼 그해 12월 18일부터 시행됐다.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7일 국회를 통과해 올해 6월 25일부터 시행됐다. 개정된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면허정지는 0.03% 이상(기존 0.05% 이상), 면허취소는 0.08%이상(기존 0.1% 이상)으로 소주 1잔만 마시고 운전을 해도 면허정지 수준에 걸릴 수 있도록 처벌 기준을 강화했다. 또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사망하게 한 경우 기존 형량은 징역 1년 이상이었지만 개정 후에는 최소 3년 이상이며 무기징역까지 선고가 가능하도록 바뀌었다. 음주운전 2회 이상 적발시에는 징역 2~5년, 벌금 1000만~2000만원이 내려질 수 있다. 면허가 취소되는 적발횟수도 3회에서 2회로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주운전 사고는 끊이질 않아 윤창호법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청이 최근 50일간(9월 9일~10월 28일) 보복·난폭·음주운전 등 위험운전행위에 대한 집중 단속을 벌인 결과, 음주 운전자가 1만 595명으로 전체 검거자(1만 1275명)의 94%를 차지했다. 구속자는 검거자의 0.1%인 13명이었으며 음주운전 구속 피의자 가운데는 과거 음주운전 전력으로 면허가 취소됐는데도 혈중알코올농도 0.105%의 만취 상태로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적발된 경우도 있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해마다 2만건 이상의 음주운전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또 3만명 이상이 부상을 입고 400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10년간 음주운전이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한 2017년 음주운전 사고건수는 1만 9517건이며 이로 인한 부상자 수는 3만 3364명, 사망자 수는 439명이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윤창호법 무색’ 50일 단속에 음주운전 1만명 이상 적발

    ‘윤창호법 무색’ 50일 단속에 음주운전 1만명 이상 적발

    음주운전자 검거 94% 압도적 많아구속 13명…전체 검거자 0.1% 수준‘음주운전 방조’ 피의자 6명도 검거불법개조차량, 운전방해 차량 압수“위험운전 12월 27일까지 강력 단속”지난해 9월 만취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윤창호(당시 22세)씨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한 ‘윤창호법’이 도입됐지만 경찰이 50일간 진행한 위험 운전 행위 단속 기간 동안 음주운전자가 무려 1만명 이상이 적발돼 법안 마련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경찰청은 17일 보복운전이나 난폭운전, 음주운전 등 ‘위험 운전 행위’를 집중 단속해 9월 9일부터 10월 28일까지 50일 동안 1만 1275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음주 운전자가 1만 593명으로 전체 검거자의 94%를 차지했다. 이어 보복·난폭운전이 662명, 공동 위험 행위(폭주 레이싱 등)가 20명이었다. 경찰은 이 가운데 13명을 구속했다고 전했다. 전체 검거자의 0.1% 수준이다. 구속 피의자 중에는 과거 음주운전 전력으로 면허가 취소됐는데도 혈중알코올농도 0.105%의 만취 상태로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적발된 경우도 있었다.운전자가 술을 마시고 운전하도록 방조한 ‘음주운전 방조’ 피의자 6명도 이 기간에 검거됐다. 불법 개조한 차량 4대에 광고 풍선을 설치하고 복잡한 도로에서 대열을 이뤄 서행하는 방식으로 교통 위험을 일으킨 피의자들도 검거됐다. 범행에 이용된 차량은 압수됐다. 경찰은 “앞으로도 난폭운전, 보복운전, 음주운전 등 교통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위험 운전행위를 12월27일까지 꾸준히 강력하게 단속할 예정”이라면서 “죄질이 불량하거나 범행이 상습적인 피의자는 구속하고, 범행에 이용된 차량은 압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윤창호법은 음주운전으로 인명 피해를 낸 운전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고 음주운전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 등을 담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 개정안’ 및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의미한다. 특가법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29일 국회에서 통과돼 그해 12월 18일부터 시행됐다.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7일 국회를 통과해 올해 6월 25일부터 시행됐다.개정된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면허정지는 0.03% 이상(기존 0.05% 이상), 면허취소는 0.08%이상(기존 0.1% 이상)으로 소주 1잔만 마시고 운전을 해도 면허정지 수준에 걸릴 수 있도록 처벌 기준을 강화했다. 또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사망하게 한 경우 기존 형량은 징역 1년 이상이었지만 개정 후에는 최소 3년 이상이며 무기징역까지 선고가 가능하도록 바뀌었다. 음주운전 2회 이상 적발시에는 징역 2~5년, 벌금 1000만~2000만원이 내려질 수 있다. 면허가 취소되는 적발횟수도 3회에서 2회로 줄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해마다 2만건 이상의 음주운전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또 3만명 이상이 부상을 입고 400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10년간 음주운전이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한 2017년 음주운전 사고건수는 1만 9517건이며 이로 인한 부상자 수는 3만 3364명, 사망자 수는 439명이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판깨스트] ‘별장 성접대’ 윤중천 1심 판결… “성접대 처벌 못한다”며 ‘뒷북 기소’ 질책한 재판부

    [판깨스트] ‘별장 성접대’ 윤중천 1심 판결… “성접대 처벌 못한다”며 ‘뒷북 기소’ 질책한 재판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게 이른바 ‘별정 성접대’를 제공한 의혹의 핵심 인물인 건설업자 윤중천씨에 대한 사법부의 첫 판단이 6년 만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혐의였던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는 어떠한 처벌도 이뤄지지 못하게 됐는데요.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성접대 의혹과 관련해 윤씨를 처벌할 수 없게 된 상황을 두고 검찰의 ‘뒷북 기소’를 비판하는 질책을 윤씨의 판결선고 과정에서 쏟아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 손동환)는 15일 강간치상과 사기, 알선수재, 무고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윤씨에게 징역 5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14억 8730만원의 추징을 명령했습니다. 재판부는 검찰이 재판에 넘긴 윤씨의 공소사실 12개 공소사실 가운데 사기, 공갈미수, 알선수재 등 5개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김 전 차관과 윤씨를 둘러싼 의혹의 핵심이었던 강간치상 혐의는 면소 또는 공소기각 판결이 나왔습니다. 윤씨는 ‘별장 동영상’ 속 피해 여성이라고 주장하는 A씨를 지속해서 폭행·협박하고 성관계 동영상으로 억압해 2006년 여름과 2007년 여름, 2007년 11월까지 세 차례 강간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상해를 입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성폭력 범죄가 있었다고 지목된 시기를 중심으로 보면 2006년 여름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등치상) 혐의가, 2007년 여름과 그해 11월 13일 범행은 강간치상 혐의가 적용됐습니다. 그런데 이들 범죄는 공소시효가 10년으로 이미 처벌할 수 있는 시기가 지났습니다. 2007년 12월 21일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특수강간에 대한 공소시효가 10년에서 15년으로 늘어났지만 법이 개정된 날인 2017년 12월 21일 이후에 일어난 범죄에 대해서만 공소시효가 15년으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윤씨가 재판 과정에서 줄곧 공소시효가 이미 끝났다고 주장한 것도 이 때문이었죠. ●세 차례 강간치상 혐의 기소됐지만… “범죄 증명 안 되고 공소시효·고소기간도 지나” 그러나 강간치상 혐의가 적용되면서 상해가 인정된 시기로 공소시효를 달리 볼 수 있는 여지도 있긴 했습니다. 검찰과 A씨 측의 주장이 그랬습니다. A씨 측은 윤씨의 범행으로 2008년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2013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성폭력 범행과 관련된 A씨의 진술이 번복되거나 모순되는 점들이 있다며 A씨의 정신적 상해가 윤씨의 성폭행으로 발생한 것으로 보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강간치상 혐의는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무죄 판단을 한 것입니다. 다만 강간치상죄는 강간의 결과로 상해를 입혔다는 것으로, 강간의 가중범죄로 여겨져 성폭행과 상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더라도 강간 혐의에 대해서도 별도로 판단을 해야합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2006년 여름의 특수강간 혐의에 대해서는 이미 공소시효(10년)가 지났다며 면소를, 2007년 여름과 11월에 있던 강간 혐의에 대해서는 고소기간(1년)이 지났다며 공소기각으로 각각 판결했습니다. 재판부는 윤씨에게 유죄로 인정한 일부 사기 및 공갈미수, 알선수재 등의 혐의에 대한 양형이유를 설명하면서 면소와 공소기각을 한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습니다. 재판부는 “검찰은 2013년 이미 피고인을 수사했는데 성접대 부분에 관해 뇌물공여죄가 성립하는지는 판단하지 않고 성폭력 혐의만 판단한 다음 대부분 불기소했다”면서 “6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 성접대를 뇌물로 구성해 김학의에게는 뇌물죄를 적용해 기소한 한편 피고인의 뇌물공여 혐의는 공소시효(5년)가 지나버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그러자 이제 검찰은 성접대 부분이 피고인의 강간에 의한 것이고 그로 인해 피해 여성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입었다며 강간치상 혐의로 기소했다”면서 “2013년에 검찰이 적절하게 형사권을 행사했다면 피고인이 적절한 죄목으로 형사법정에 섰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성접대 의혹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불기소 처분이 모두 미흡했다고 질타한 것입니다. “피고인도 ‘그 때 이 사건이 마무리됐어야 한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성폭력 범죄와 상해 간의 인과관계가 여러 이유로 증명이 됐다고 보기 어렵고 고소기간이 지난 뒤여서 공소기각 판결을 해야해 피고인의 김학의 등 유력 인사들에 대한 성접대 의혹은 양형에 직접적인 고려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 “시골·고졸 출신 윤중천, ‘장벽’ 넘기 위해 접대” 이례적 양형이유 설명 이날 재판부는 양형이유를 설명하겠다면서 “재판부가 심리를 통해서 파악한 파편적인 내용일 수 있는데 형을 정하는 데 있어 필요한 내용이니 다소 불편해도 피고인과 검찰이 감안해서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형사재판에서의 양형이유를 설명하는 방식과는 매우 다르게 윤씨의 일생 경로를 읊기 시작했습니다. “피고인은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병대 복무를 마친 뒤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거주하던 집을 개축해서 빌라로 분양하는 등의 사업을 하면서 수완을 발휘했고 그 과정에서 나름의 성공도 거뒀습니다”로 시작된 양형이유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이 때 피고인은 건축 부지를 확보하기 위한 자금과 분양까지 가기 위한 시간부담 등을 금융기관 대출 등으로 메울 수 있고 그 대출은 개발사업 인허가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중략) 건설규모에 따라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믿으면서 피고인은 장벽 너머의 부를 꿈꾸었습니다. 장벽을 넘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건축과 관련된 조화로운 발전을 제시하는 게 필요한데, 피고인은 그 경쟁에서의 승리를 인허가권자와의 인맥, 친분, 압력이 있는 권력자들에게 얻을 수 있다고 믿었고 유력가, 재력가들과 친분을 형성해 그들에게 접대를 하는 데 몰두했습니다. (중략) 피고인은 화려한 시설과 멋진 조명을 갖춘 원주 별장을 꾸미고 파티를 꾸몄습니다. 외제 고급차를 타고 골프를 치면서 남성이든 여성이든 구분하지 않고 은밀한 친분을 유지하기 위해 성을 접대의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장벽을 넘기가 어렵다고 깨닫자 피고인은 꾸니는 데 더욱 신경을 씁니다. ‘내가 저 높은 장벽을 꿈꿀 수 있나. 법조인, 재력가, 해병대 인맥이 탄탄하니까 이들이 나에게 돈을 조금만 주면, 대표이사 직함을 주면, 주식 지분을 주면’이라고 생각했고, 그들에게 ‘내가 더 많은 것을 주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내 것이 됐든 남의 것이 됐든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접대를 위해 성을 거래한 여성들의 마음을, 상대의 신뢰를 믿고 피고인과의 사랑이라고 여긴 상대 여성(옛 내연녀)을 이용했습니다. (중략) 피해자들은 피고인 스스로 한 거짓말도 있었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로 작동하지 않은 국가형벌권 행사에 좌절했습니다.” 재판부가 자신의 삶을 조목조목 꼬집는 동안 윤씨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습니다. 윤씨 측은 판결에 대해 “재판부께서 고도의 집중심리를 통해 면밀히 검토해 지난 6년간 대한민국 전역에 소모적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성접대 또는 성폭행 관련 사건에 대해 여론의 영향을 받지 않고 적절한 판단을 해주심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면서 “나머지 신상털기식 수사에 따른 사기 등의 공소사실 중 일부 유죄가 선고된 것은 항소심에서 바로잡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여성단체 등에서는 성폭력 범죄를 처벌하지 못한 데 대한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 고미경 상임대표는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 사회가 여성에 대한 성착취와 폭력을 여전히 용인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법무부 차관이었고 검사였던 김학의를 비호하는 공범인 검찰은 본 사건을 성폭력이 아닌 뇌물죄로 기소하였고, 윤중천이 자행한 성폭력의 일부만을 기소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절망했어도 재판부에 일말의 기대가 있었지만 사법부는 사실상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처해 있는 상황은 전혀 고려도 하지 않았고, 성폭력에 대해서도 제대로 판결하지 않았다”고 토로했습니다. 송란희 사무처장도 “판사는 판결 중 가해자에 대해 시골, 고졸 출신으로 ‘장벽’을 넘고자 하는 과정에서 이와 같은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다고 말했는데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눈앞에 두고 있는 장벽은 가해자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면서 “가해자끼리의 연대, 검찰과 경찰, 법원의 연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통념과 같은 장벽을 결국 넘어서는 것이 누구인지 끝까지 보여줄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윤중천, 공소사실 12개 중 5가지만 유죄… “여론 영향 안 받은 재판부에 경의”

    윤중천, 공소사실 12개 중 5가지만 유죄… “여론 영향 안 받은 재판부에 경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게 ‘별장 성접대’를 제공한 의혹을 받고 성폭력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건설업자 윤중천씨가 1심에서 징역 5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다만 법원은 윤씨의 핵심 혐의로 꼽혔던 강간치상 혐의에 대해선 성폭력으로 정신적 상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려운 데다 공소시효도 이미 지나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윤씨 측은 “여론의 영향을 받지 않고 적절한 판단을 해주신 재판부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 손동환)는 15일 오후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등치상)과 사기, 알선수재, 무고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윤씨에게 징역 5년 6개월을 선고하고 14억 8730만원의 추징을 명령했다. 검찰이 지적한 윤씨의 범죄사실은 12개였지만 이 가운데 5개에 대해서만 유죄 판단이 나왔다. 윤씨는 이른바 ‘별장 동영상’ 속 피해 여성이라고 주장하는 A씨를 지속해서 폭행·협박하고 성관계 동영상으로 억압해 2006년 여름부터 2007년 11월까지 세 차례 강간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상해를 입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성폭력 관련 사건의 핵심은 공소시효에 대한 판단이었다. 2007년 12월 21일 형사소송법 개정에 따라 특수강간에 대한 공소시효가 10년에서 15년으로 늘어났는데, 법이 개정된 날인 2017년 12월 21일 이후에 일어난 범죄에 대해서만 공소시효 15년이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윤씨 측은 재판 과정에서 세 차례 모두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했다. 반면 A씨 측은 윤씨의 성폭행 이후 2008년 우울증을 진단받은 뒤 2013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판단을 받았다며 강간으로 인한 상해가 확인된 시점부터로 공소시효를 적용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성폭력 범행과 관련된 A씨의 진술이 번복되거나 모순되는 점이 있다며 A씨의 정신적 상해가 윤씨의 성폭행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강간치상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강간치상죄의 경우 강간을 한 결과 상해를 입혔다는 것으로, 강간의 가중범죄로 여겨져 상해를 입었다는 부분이 입증되지 않더라도 강간 혐의에 대해서도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강간 혐의에 대해서는 2006년 여름 성폭력 혐의에 대해선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면소를, 2007년 여름과 11월에 있던 성폭력 혐의에 대해서는 고소기간(1년)이 지났다며 공소 기각으로 판결했다. 윤씨는 2011~2012년 부동산 개발사업비 명목으로 옛 내연녀인 권모씨에게 빌린 21억 6000만원을 돌려주지 않고 이 돈을 갚겠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부인을 시켜 자신과 권씨를 간통죄로 ‘셀프 고소’한 혐의(무고 및 무고교사)도 받았다. 이 가운데 무고 및 무고교사 혐의는 무죄 판단을 받았고, 권씨에 대한 사기 혐의와 감사원 공무원에 대한 공갈미수 혐의, 검찰청탁 명목으로 돈을 받은 혐의가 유죄 판단돼 징역 4년인 선고됐다. 또 2008~2015년 골프장 인허가를 받아주겠다며 부동산개발업체로부터 회삿돈 14억 8730만원을 챙기고 차량 리스대금을 대납하도록 한 사기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1년 6개월이 선고됐다. 윤씨에게 총 5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한 재판부는 양형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검찰은 2013년 이미 피고인을 수사했는데 성접대 부분에 관해 뇌물공여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성폭력만 판단한 다음 대부분 불기소 처분을 했다가 5년이 지난 뒤에서야 성접대를 뇌물죄로 구성했다”면서 “김 전 차관에게는 뇌물죄를 적용해 기소했지만 피고인의 뇌물공여 혐의는 공소시효가 지나버렸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러자 검찰은 이제 성접대 부분이 피고인의 강간에 의한 것이고 그로 인해 피해 여성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입었다며 강간치상 혐의로 기소했는데 2013년 검찰이 적절하게 형사권을 행사했다면 그 때 이미 피고인이 형사법정에 섰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선고를 마쳤다. 선고 직후 윤씨의 변호인은 입장문을 내고 “재판부께서 고도의 집중심리를 통해 면밀히 검토해 지난 6년간 대한민국 전역에 소모적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성접대 또는 성폭행 관련 사건에 대해 여론의 영향을 받지 않고 적절한 판단을 해주심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나머지 신상털기식 수사에 따른 사기 등의 공소사실 중 일부 유죄가 선고된 것은 항소심에서 바로잡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윤중천 1심서 징역 5년 6개월… “강간치상 혐의는 공소시효 지나 처벌 못해”

    윤중천 1심서 징역 5년 6개월… “강간치상 혐의는 공소시효 지나 처벌 못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별장 성접대’를 제공한 의혹을 받고 성폭력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건설업자 윤중천씨가 1심에서 징역 5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다만 핵심 혐의로 꼽혔던 강간치상 혐의는 공소시효가 모두 지나 처벌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나왔다. 이 같은 선고를 한 법원은 “검찰이 2013년 적절하게 형사권을 행사했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 손동환)는 15일 오후 강간치상과 사기, 알선수재, 무고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윤씨에게 징역 5년 6개월을 선고하고 14억 8730만원의 추징을 명령했다. 윤씨는 이른바 ‘별장 동영상’ 속 피해 여성이라고 주장하는 A씨를 지속해서 폭행·협박하고 성관계 동영상으로 억압해 2006년부터 2007년 11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강간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상해를 입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07년 12월 21일 형사소송법 개정에 따라 특수강간에 대한 공소시효가 10년에서 15년으로 늘어났는데 그 이후에 일어난 범죄에 대해서만 공소시효 15년이 적용된다. 윤씨 측은 재판 과정에서 세 차례 범행 모두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했지만 A씨 측은 2008년 우울증을 진단받은 뒤 2013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판단을 받았다며 상해가 확인된 시점부터로 공소시효를 적용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성폭력 범행과 관련된 A씨의 진술이 번복되는 등 모순되는 점이 있다며 A씨의 정신적 상해가 윤씨의 성폭행으로 인해 발생한 것인지 보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상해 발생시기가 아닌 범행일을 기준으로 공소시효를 적용해야 한다며 성폭력 범죄에 대해선 이미 공소시효(10년)가 모두 지나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윤씨는 또 2011~2012년 부동산 개발사업비 명목으로 옛 내연녀인 권모씨에게 빌린 21억 6000만원을 돌려주지 않고 이 돈을 갚겠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부인을 시켜 자신과 권씨를 간통죄로 ‘셀프 고소’한 혐의(무고 및 무고교사)도 받았다. 2008~2015년 골프장 인허가를 받아주겠다며 부동산개발업체로부터 회삿돈 14억 8730만원을 챙긴 혐의도 있다. 재판부는 이 가운데 권씨와 부동산 개발업체에 대한 사기 및 알선수재 혐의만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검찰은 2013년 이미 피고인을 수사했는데 성접대 부분에 관해 뇌물공여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성폭력만 판단한 다음 대부분 불기소 처분을 했다가 5년이 지난 뒤에서야 성접대를 뇌물죄로 구성했다”면서 “김 전 차관에게는 뇌물죄를 적용해 기소했지만 피고인의 뇌물공여 혐의는 공소시효가 지나버렸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러자 검찰은 이제 성접대 부분이 피고인의 강간에 의한 것이고 그로 인해 피해 여성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입었다며 강간치상 혐의로 기소했는데 2013년 검찰이 적절하게 형사권을 행사했다면 그 때 이미 피고인이 형사법정에 섰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선고를 마쳤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이상희 아들 폭행 20대男, 9년 만에 유죄 확정 “끈질긴 부성애”

    이상희 아들 폭행 20대男, 9년 만에 유죄 확정 “끈질긴 부성애”

    배우 이상희(59·예명 이장유)가 끈질긴 집념으로 9년 만에 아들의 억울함을 풀었다. 15일 대법원은 이상희의 아들을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폭행치사)로 불구속 기소된 A(26)씨에게 항소심에 이어 유죄를 확정 선고했다. 대법원은 A씨의 폭행은 먼저 주먹질한 피해자를 피하려는 단순 방어, 정당 방위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 항소심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바 있다. 해당 사건은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10년 1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던 이상희의 아들(당시 17세).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이던 A씨와 다툼이 벌어져 그에게 맞고 쓰러졌다. 이후 이상희의 아들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큰 부상으로 뇌사에 빠져 이틀 만에 사망했다. 당시 A씨는 미국 수사당국에 “이상희의 아들이 먼저 주먹을 휘둘렀다”며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의견은 받아들여져 불기소 처분됐다. 이상희는 자신의 아내와 기나긴 공방을 시작했다. 이듬해인 2011년 국내 한 대학에 재학 중인 사실을 확인하고 관할인 청주지검에 2014년 1월 재수사를 의뢰한 것. 1심 재판 결과 A씨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때 재판부는 “피해자가 피고인에 의한 외부 충격으로 사망했다는 것을 뒷받침할 의학적 소견이 부족하고, 피고인이 당시 자신의 행동으로 피해자의 사망을 예견하기도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항소했다. 이상희는 SBS 시사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해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후 약 3년 6개월간 공방이 이어졌고, 2심 재판부는 원심과 다른 판단을 내린 것. 그럼에도 이상희는 상고 의사를 밝혔다. “유죄는 선고됐으나 구속 처벌이 아니라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이나 다름 없다”는 이유다. 그 결과 대법에서도 이상희의 손을 들어줬다. 한편 이상희는 연극배우 출신으로 영화 ‘도가니’, ‘추격자’, ‘차우’, ‘이웃사람’, 도어락‘, ’말모이‘, ’기방도령‘, ’목격자‘, ’배심원들‘ 등에 출연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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