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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12 공모, 차례로 대통령에… 내란죄 판결로 함께 감옥행

    12·12 공모, 차례로 대통령에… 내란죄 판결로 함께 감옥행

    26일 별세한 노태우 전 대통령과 그의 육사 동기인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79년 12·12 사태를 함께 일으켜 정권을 잡은 뒤 5·6공에서 차례로 대통령을 지낸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이들은 군인 시절부터 줄곧 인생의 파트너이기도 했지만,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에 ‘5공 숙청’을 명분으로 전 전 대통령을 백담사로 보낸 애증의 관계이기도 했다. ●盧 ‘5공 청산’ 민심에 全에 백담사행 권고 두 사람의 인연은 고교 때부터 출발한다. 노 전 대통령은 대구공고의 전신인 대구공업중을 거쳐 1951년 경북고를 졸업했다. 한 살 많은 전 전 대통령은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부모님을 따라 대구에 정착해 같은 해 대구공고를 졸업했다. 두 사람은 이듬해인 1952년 육사 제11기(정규 육사 1기) 동기생으로 처음 만난다. 12·12 쿠데타 당시에는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이 맡고 있던 9사단 병력을 중앙청으로 출동시켜 당시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 겸 보안사령관이 권력을 장악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러나 취임 이후 ‘5공 청산’이라는 거센 바람이 불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삐걱대기 시작했다. 전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요구가 빗발치자 노 전 대통령은 민심이 가라앉을 때까지 조용한 곳에 가 있으라고 권고했고, 전 전 대통령 측은 백담사를 택했다.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전 전 대통령은 내란죄 등으로 무기징역을, 노 전 대통령은 징역 17년의 중형을 각각 선고받았다. 같은 해 12월 임기 말이던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정치적 합의에 따라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전 전 대통령은 먼저 검찰 소환에 응해 구속된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노태우가 일을 그르쳤어. 그렇게 쉽게 검찰에 가는 것이 아닌데 끝까지 버텼어야지”라면서 강한 불만을 터뜨린 것으로 전해졌다. ●盧 부고 전해 들은 全 침묵 속에 눈물지어 이들의 마지막 만남은 2014년 8월 13일이다. 전 전 대통령은 이날 갑작스럽게 노 전 대통령의 자택을 방문했다. 그는 병상에 누워 있는 노 전 대통령에게 “이 사람아, 나를 알아보시겠는가”라고 했고, 의사소통이 어려운 노 전 대통령은 김옥숙 여사가 “전 전 대통령을 알아보시면 눈을 깜박여 보시라”고 하자 눈을 깜박였다고 한다. 전 전 대통령은 이날 노 전 대통령의 부고를 듣고 침묵 속에 눈물을 지었다고 측근이 전했다. 별도의 애도 메시지를 낼 계획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를 조문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
  • 5·18 발포 명령자 규명, 사죄 않고… 용서받을 기회도 사라졌다

    5·18 발포 명령자 규명, 사죄 않고… 용서받을 기회도 사라졌다

    전두환과 육사 11기… 친구 넘어 군신 관계12·12 쿠데타 때 군권 장악 결정적인 역할회고록 통해 “광주사태 진범은 유언비어”‘비자금 사건’은 정경 유착 표본으로 평가26일 별세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피로 물든 한국 현대사의 ‘진실’까지 무덤으로 가지고 갔다. 그는 신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철권통치를 유지했던 제5공화국의 2인자였으면서도 임종 순간까지도 ‘양심 고백’을 하지 않았다. ●육사에서 전두환과의 운명적 만남 노 전 대통령은 1932년 경북 달성군(현재 대구)에서 부친 노병수와 모친 김태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대구공업중(대구공고) 항공과에 입학한 뒤 경북중 4학년(학제 개편 이후 경북고 1학년)으로 편입했고, 6·25전쟁이 발발하자 학도병으로 헌병학교에 지원해 군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육군사관학교 11기로 입교한 그는 대구공고 1년 선배인 전두환 전 대통령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둘은 생도 시절 방을 같이 쓰면서 단순한 동기를 넘어서는 관계를 맺었다. 육사 졸업 4년 뒤 육사 동기인 김복동의 동생 김옥숙 여사와 결혼했다. 이후 참모총장 수석보좌관,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 보안사령관 등의 보직을 넘겨받는 등 전 전 대통령의 뒤를 이었고 둘의 인연은 ‘10·26사태’와 ‘12·12쿠데타’로 이어진다. ●12·12 군사반란이 돌발사고? 전두환·노태우 등 육사 11기가 중심이 된 사조직 ‘하나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위 세력으로 성장했다. 하나회는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움직였다. 12·12사태 당시 노 전 대통령은 9사단 병력을 출동시켜 군권 장악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전 전 대통령과의 관계는 ‘친구’에서 ‘군신’(君臣)으로 바뀌게 된다. 12·12군사반란은 신군부 세력이 최규하 당시 대통령의 승인 없이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 등을 ‘김재규 내란 방조죄’라는 죄목으로 체포·연행·구속한 사건이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2011년 8월 회고록에서 “국가원수를 시해한 김재규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그 사건에 관련이 있다고 의심되는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려다가 일어난 돌발사고였다”고 주장했다.●5·18 발포 명령 누가 했나 신군부는 다음해 5월 17일 비상계엄확대조치를 단행하고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 진압했다. 이로써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신군부는 본격적으로 정치 무대에 뛰어들었다. 1988년 광주 청문회와 1995년 5·18 및 12·12사건 수사 당시 누가 공수부대의 발포를 명령했는지가 초미의 관심이었지만, 규명하지 못했다. 다만 검찰은 당시 계엄군이 자위권 보유를 천명한 사실을 들어 포괄적 책임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에게 물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 “광주사태의 진범은 유언비어였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상도 군인들이 광주 시민들 씨를 말리러 왔다. 무지막지한 군인이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잘라 냈다. 처녀의 젖가슴을 도려냈다’는 유언비어가 사실인 양 퍼져 갔고, 그래서 광주 시민들이 치를 떨면서 무기고를 탈취하고 군과 대항하게 된 것이다. 그게 5·18이다”라고 말했다. ●비자금 투옥과 그 이후 1980년 8월 27일 전 전 대통령이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듬해 7월, 육군 대장으로 예편했다. 1987년 민주정의당(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지만 ‘호헌철폐·독재타도’ 구호 아래 직선제 개헌을 앞세워 들불처럼 일었던 민주화 요구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6월항쟁을 잠재우고자 직선제 개헌과 김대중 사면복권 등을 담은 ‘6·29선언’을 발표해 온건 이미지를 구축했고, 양김(김대중·김영삼)의 분열 속에 치러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36%를 얻어 1971년 이후 첫 직선제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인 1995년 12월 박계동 의원의 폭로로 불거진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기소됐다. 전직 대통령 기소는 이때가 처음이다. 이듬해 12·12와 5·18에 대한 기소까지 더해져 징역 17년에 2628억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전직 대통령의 개인 비리 차원을 넘어서 정치권력과 재벌이 합작해 정치와 경제를 밀실에서 주무른 정경유착의 표본으로 평가받는다.
  • ‘치매’ 진단 전두환, 노태우 사망 소식 듣고 ‘눈물만…’[노태우 별세]

    ‘치매’ 진단 전두환, 노태우 사망 소식 듣고 ‘눈물만…’[노태우 별세]

    전두환 전 대통령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고를 듣고 침묵 속에 눈물을 지었다고 측근이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이 26일 사망함으로써 60여 년에 걸친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운명적인 애증 관계도 끝이 났다. 전 전 대통령 측 관계자는 이날 오후 “노 전 대통령 별세 소식을 접하고 아무 말씀을 하지 않은 채 눈물만 지으셨다고 부인 이순자 여사가 전했다”고 밝혔다. 별도의 애도 메시지를 낼 계획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를 조문할 가능성도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 전 대통령은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육사 동기 전두환과 길고도 질긴 인연…부고 듣고 침묵 속에 ‘눈물’ 두 전직 대통령은 동료로서 출발해 1979년 12·12 쿠데타로 전 전 대통령이 권력을 잡은 후에는 최고통치자와 2인자로 자리매김 한 바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은 고교 때부터 출발한다. 노 전 대통령은 대구공고의 전신인 대구공업중을 거쳐 1951년 경북고를 졸업했다. 한 살 많은 전 전 대통령은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부모님을 따라 대구에 정착해 같은 해 대구공고를 졸업했다. 이후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1952년 육사 제11기(정규 육사 1기) 동기로 입학했다. 노 전 대통령이 대위 시절인 1959년 김옥숙 여사와의 결혼 당시 전 전 대통령이 사회를 봐줄 정도로 두 사람은 돈독했다. 노 전 대통령은 육군참모총장 수석부관을 시작으로 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 보안사령관 등 전 전 대통령이 거쳐 간 자리를 이어받았다. 1979년 12·12 쿠데타 당시에는 자신이 맡고 있던 9사단 병력을 중앙청으로 출동시켜 당시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 겸 보안사령관이 주도하는 신군부의 권력장악 과정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전 전 대통령이 권력을 잡은 후에는 최고통치자와 2인자로 자리매김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에 이어 13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사관학교 생도 시절부터 시작해 전 대통령과 내가 국정 최고책임자로 나설 때까지 우리의 관계는 돈독했다. 우정과 동지애가 유난히 강했는데 공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특수한 관계였다”고 적었다.그러나 취임 이후 ‘5공 청산’이라는 거센 바람이 불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삐걱대기 시작했다. 전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요구가 빗발치자 노 전 대통령은 민심이 가라앉을 때까지 조용한 곳에 가 있으라고 권고했고, 전 전 대통령 측은 백담사를 택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은 12·12 쿠데타와 비자금 사건 등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인 1995년 11월 16일과 같은 해 12월 3일 나란히 구속돼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전 전 대통령은 무기징역을, 노 전 대통령은 징역 17년의 중형을 각각 선고받은 뒤 같은 해 12월 당시 임기 말이던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의 정치적 합의에 따라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전 전 대통령은 먼저 검찰 소환에 응해 구속된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노태우가 일을 그르쳤어. 그렇게 쉽게 검찰에 가는 것이 아닌데 끝까지 버텼어야지”라면서 강한 불만을 터트린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그들(5공 측 인사들)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대통령이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하면 대통령이 아니라 독재자라는 것이 나의 철학이었다. 그런 인식 차이로 인해 전임자는 나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면서 서운해 할 수 있는 것이고, 나는 미안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회고했다. “어디 가냐고 5분마다 묻더라”…전두환 측 ‘치매’ 주장 한편 지난 8월 광주지법 형사1부(재판장 김재근)는 법정에서 전 전 대통령 항소심을 진행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급격히 노화된 모습이었다. 앞서 전 전 대통령 측은 알츠하이머(치매) 진단을 받았다며 법정 출석을 거부해왔었다. 하지만 골프를 치는 정정한 모습이 목격되면서 논란이 됐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헬기의 광주 도심 사격이 있었다고 인정하면서 전 전 대통령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 네덜란드 심리학자가 “100여명 자살 도와, 공론화 절실, 감옥 가도 좋아”

    네덜란드 심리학자가 “100여명 자살 도와, 공론화 절실, 감옥 가도 좋아”

    네덜란드 심리학자가 100여명의 자살을 도왔다고 주장하며 ‘조력 자살’ 공론화에 나섰다고 영국 가디언이 25일 보도했다. 오스트리아에서도 조력 자살이 합법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dpa 통신이 전날 전했다. 올해 78세의 빔 판데이크(사진)가 주인공이다. 그는 현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속한 민간단체 회의 참석자에게 1회 복용분에 50유로(약 6만 8000원)를 받고 ‘자살 가루약’을 팔았다고 주장했다. 판데이크는 “스스로 생 마감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향후 스스로 선택하는 시점에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수단을 조심스레 제공해 왔다”며 “100여명에게 약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에서 의사가 집행하지 않는 조력 자살은 불법인데 스스로 불법을 저질렀다고 실토한 셈이다. 경찰은 그에게 약을 받은 사람 가운데 적어도 6명이 실제 죽음에 이른 것으로 보고 있다. 조력 자살은 불치병 등으로 고통받는 환자가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의미한다. 환자 스스로 적극적으로 죽음을 택한다는 점에서 무의미한 연명 조치 등 의료행위를 중단함으로써 자연적으로 죽음을 맞도록 하는 존엄사와는 다르다. 네덜란드 현행 법은 병이 호전될 가망이나 대체 치료법이 없는 상황에 고통을 견디기 어려울 때 환자의 심사숙고를 거친 자발적 요청에 의해 의사가 환자의 생 마감을 도울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밖의 경우는 만약 유죄로 인정되면 최고 징역 3년에 처할 수 있다. 판데이크는 자신의 범행 고백으로 감옥에 가더라도 개의치 않으며 사안이 공론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내 얘기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인지하고 있다”며 “사법부가 무시하기 어려울 만큼 사회가 크게 동요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폭로에 나선 취지를 설명했다. “그들이 날 체포하든 감옥에 집어넣든 별로 신경 안 쓴다. 뭔가가 일어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판데이크가 속한 ‘최후의지협회(CLW)’란 단체는 생애 마감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며 이를 선택하는 이들에게 조언하고 진보적인 입법을 옹호하는 것을 표방하고 있다. 이 단체는 최근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약물을 판매했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에 직면했다. 네덜란드에서는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가 합법화된 이후 갑절로 증가했으며, 일각에서 불붙은 찬반 논란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현재 조력 자살이 합법인 국가는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 스페인, 캐나다 등이 있다. 오스트리아가 합법화하면 유럽연합(EU)에서 다섯 번째가 된다. 영국도 오는 29일 조력 자살 합법화 공청회가 열린다. 독일 헌법재판소도 조력 자살을 금지하는 것이 헌법 위반이라고 결정해 관련 입법이 진행될 전망이다. 포르투갈에서도 관련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전날 정부가 조력 자살을 합법화하는 법안을 발의해 합법화를 앞두고 있다.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조력 자살을 금지하는 법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결정한 데 따른 것이다. 앞서 오스트리아 정부는 전날 만성 질환을 앓고 있거나 또는 말기에 있는 환자들이 조력 자살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정부는 다만 조력 자살의 허용 조건을 법안에 명시했다. 환자는 의사 둘과 상의해 조력 자살 의사가 자기 결정에 따른 것이라는 증명서를 받아야 한다. 또한 조력 자살 전 12주의 숙려 기간을 거쳐야 한다. 다만 환자가 매우 아프거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경우 이 기간은 2주로 단축될 수 있다. 미성년자는 조력 자살 대상에서 제외된다. 한편 국내에서는 2009년 대법원의 ‘김할머니 사건’ 판결에 따라 법률에 의한 제한적 존엄사가 인정된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연명 치료가 무의미하고 환자의 의사가 추정되는 경우의 존엄사가 가능하다. 그러나 안락사와 조력 자살은 허용되지 않는다. 일명 ‘촉탁살인’(형법 제252조-촉탁, 승낙에 의한 살인등) 죄에 따라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의사가 환자의 촉탁을 받고 약물투여로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도움을 줘서 죽게 하는 것은 형법 위반이다. 지난 22일에는 암 투병 등으로 고통 받던 20년 지기의 부탁을 받고 살해한 40대 여성이 촉탁살인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형을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부탁을 받고 저지른 것이기는 하나 사람의 생명을 빼앗은 중대한 범죄”라고 판시했다.
  • ‘육사 동기’ 노태우·전두환…60년 걸친 애증 관계 [노태우 별세]

    ‘육사 동기’ 노태우·전두환…60년 걸친 애증 관계 [노태우 별세]

    육사 11시 동기생으로 만나쿠데타 뒤 정치적 2인자로‘5공 청산’으로 전두환 불만 노태우 “국민 요구 무시하면 독재”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별세하면서 60여년에 걸친 ‘육사 동기’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운명적인 애증 관계도 끝이 났다. 노 전 대통령은 대구공고의 전신인 대구공업중을 거쳐 1951년 경북고를 졸업했다. 한 살 많은 전 전 대통령은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부모님을 따라 대구에 정착해 같은 해 대구공고를 졸업했다. 두 사람은 이듬해인 1952년 육사 제11기(정규 육사 1기) 동기생으로 만났다. 노 전 대통령은 생도 시절 럭비부에서, 전 전 대통령은 축구부에서 활동했다. 노 전 대통령이 대위 시절인 1959년 김옥숙 여사와의 결혼 당시 전 전 대통령이 사회를 봐줄 정도로 두 사람은 돈독했다. ●쿠데타 당시 9사단 병력 동원해 권력장악 도와 노 전 대통령은 육군참모총장 수석부관을 시작으로 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 보안사령관 등 전 전 대통령이 거쳐 간 자리를 이어받았다. 12·12 쿠데타 당시에는 자신이 맡고 있던 9사단 병력을 중앙청으로 출동시켜 당시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 겸 보안사령관이 주도하는 신군부의 권력장악 과정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는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전 전 대통령의 권고로 군문을 떠나 정두환 정권에 합류했다. 전 전 대통령의 튼튼한 신임을 바탕으로 정무장관에서 시작해 초대 체육부장관, 내무부장관, 서울올림픽조직위 위원장, 대한체육회장, 민정당 대표위원, 제12대 국회의원(전국구) 등을 거치며 2인자로서의 터를 닦았다.1987년에는 전 전 대통령의 추천으로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으며, 직선제 개헌 약속 등을 핵심으로 하는 전격적인 6·29 선언과 ‘보통 사람’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이른바 ‘3김’을 따돌리고 제13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사관학교 생도 시절부터 시작해 전 대통령과 내가 국정 최고책임자로 나설 때까지 우리의 관계는 돈독했다. 우정과 동지애가 유난히 강했는데 공인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특수한 관계였다”고 적었다. ●대통령 취임 후 ‘5공 청산’ 거센 바람…관계 삐걱 그러나 취임 이후 ‘5공 청산’이라는 거센 바람이 불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삐걱대기 시작했다. 전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요구가 빗발치자 노 전 대통령은 민심이 가라앉을 때까지 조용한 곳에 가 있으라고 권고했고, 전 전 대통령 측은 백담사를 택했다. 전 전 대통령은 백담사로 떠나기 전날인 1988년 11월 22일 밤 노 전 대통령에게 전화로 백담사 은둔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전임자의 신변을 안전하게 해주지 못해 부끄럽다. 잠시 고생스럽더라도 참고 견디면 조속한 시일 내에 어려움을 극복하고 원상으로 회복하겠다”고 달랬다. 노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은 12·12 쿠데타와 비자금 사건 등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인 1995년 11월 16일과 같은 해 12월 3일 나란히 구속돼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전 전 대통령은 무기징역을, 노 전 대통령은 징역 17년의 중형을 각각 선고받은 뒤 같은 해 12월 당시 임기 말이던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의 정치적 합의에 따라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검찰 수사 과정에서 전 전 대통령은 먼저 검찰 소환에 응해 구속된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노태우가 일을 그르쳤어. 그렇게 쉽게 검찰에 가는 것이 아닌데 끝까지 버텼어야지”라면서 강한 불만을 터트린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전 대통령은 또 “나는 땜쟁이(대구공고) 출신이고 노씨는 명문고(경북고) 출신인데도 나보다 뒤처졌던 현실에 대해 불만이 있었을 수도 있다”면서 “노씨 및 부인 김옥숙씨가 대통령과 영부인이 된 뒤 사람이 확 달라져 버린 것을 보고 친구나 동기에게 후임 자리를 물려주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그들(5공 측 인사들)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대통령이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하면 대통령이 아니라 독재자라는 것이 나의 철학이었다. 그런 인식 차이로 인해 전임자는 나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면서 서운해 할 수 있는 것이고, 나는 미안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회고했다.
  • [노태우 별세] 노태우 전 대통령이 걸어온 길

    [노태우 별세] 노태우 전 대통령이 걸어온 길

     ●육사에서 전두환과 운명적 조우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32년 12월 4일 경북 달성군(현재 대구)에서 부친 노병수씨와 모친 김태향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가 결혼한지 8년 만에 태어나 귀여움을 한몸에 받으며 성장했다. 부친이 일제시대 면서기로 일한 덕에 여유있는 생활을 누렸지만, 노 전 대통령이 7살 되던 해 부친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가세가 기울어 어렵게 살았다.  대구공업중학교(대구공고) 항공과에 입학한 그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말라리아에 걸려 생사를 오가는 투병 생활을 거치며 의사의 꿈을 갖게 되고, 경북중학교 4학년(학제 개편 이후 경북고 1학년)으로 편입한다. 편입한 해에는 중간 정도의 성적을 받았지만 5학년부터는 상위권을 유지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6학년 때 6·25 전쟁이 발발하자 학도병으로 헌병학교에 지원해 군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된다. 헌병학교 9기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헌병으로 근무한 1년 동안 2등 중사(현재의 상병)까지 진급한다.  이후 육군사관학교 11기로 입교한다. 이곳에서 그는 대구공고 1년 선배인 전두환 전 대통령과 운명적인 조우를 하게 된다. 두 사람은 생도 시절 방을 같이 쓰면서 단순한 육사 동기를 넘어서는 관계를 맺게 된다. 육사 졸업 4년 뒤 육사 동기인 김복동의 동생 김옥숙과 결혼한다. 월남 파병을 다녀오고 제9공수여단장, 제9보병사단장 등 요직을 거쳤다. 참모총장 수석보좌관,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 보안사령관 등 보직을 전 전 대통령으로부터 넘겨받는 등 그의 뒤를 따랐다. 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12·12 쿠데타’로 이어진다.   ●12·12 쿠데타와 5·18  노 전 대통령이 속한 육사 11기가 중심이 된 육군의 사조직 ‘하나회’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위 세력으로 성장했다. 국가보안사령부, 수도경비사령부 등 수도권 지역에서 세력을 성장하던 하나회는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움직였다. 이때 전 전 대통령과 함께 핵심 세력으로 꼽히는 사람이 바로 노 전 대통령이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9사단에서 29연대, 30연대를 강제로 출동시키는 등의 역할을 담당했다.  이들은 1979년 12월 12일, 당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김재규 내란 방조죄’라는 죄목으로 체포해 청와대를 포위하고 국방부부터 차례대로 장악했다. 이 사건으로 9사단장이었던 노 전 대통령은 군부 요직을 차지하게 된다. 이때를 기점으로 전 전 대통령과의 관계는 사실상 ‘친구’에서 ‘군신’으로 바뀌게 된다.  두 전직 대통령은 다음해 5월 17일 비상계엄확대조치를 단행하고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로써 권력을 완전히 장악, 본격적인 정치 무대에 뛰어든다.  ‘12·12 쿠데타’는 노태우 정권까지 정당화 됐다. 하지만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 과거 청산 움직임과 함께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된다. 이후 5·18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노 전 대통령은 법정에 서게 됐다. 1997년 재판부는 “12·12는 명백한 군사반란이며 5·17과 5·18은 내란 또는 내란목적 살인행위였다”고 판결했다.   ●5공화국의 2인자  노 전 대통령은 늘 두번째였다. 정치군인의 길을 걸었던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육사 동기들의 반감을 다스리는 것을 비롯해 전 전 대통령 주변에서 도움을 줬다. 5공화국에서 주요 요직을 맡았지만 전 전 대통령의 2인자일 뿐이었다.  1980년 8월 27일 전 전 대통령이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국군 보안사령관직을 1년간 맡다가 이듬해 7월 육군 대장으로 예편했다. 군에서 예편한 직후 외교안보 담당 정무 제2장관에 임명됐고 올림픽을 서울에 유치하기 위해 노력했다. 1982년에는 남북 고위회담 수석대표를 맡았고 이어 초대 체육부장관과 제41대 내무부장관을 지냈다. 5공화국의 가장 큰 역점 사업이었던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을 역임했다.  1985년에는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육사 동기인 권익현의 뒤를 이어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을 거쳐 총재를 지냈다. 1987년 6월 10일 민주정의당 전당대회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전 전 대통령의 4·13 호헌조치를 계기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을 주장하는 민주화 운동이 확산되면서 노 전 대통령은 1인자가 될 기회를 잡는다. 6월 29일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김대중 사면복권 및 구속자 석방 등 8개항의 시국수습방안인 ‘6·29선언’을 발표한다. 이에 강성 군부세력과 구별되는 온건 군부세력의 이미지를 구축하게 됐다.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36%의 득표율로 1971년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 직선제로 선출된다.   ●6공화국과 북방정책  1988년 2월 출범한 노태우 정부의 앞길은 말 그대로 가시밭길이었다. ‘위대한 보통사람들의 시대’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민족자존, 민주화합, 균형발전, 통일번영을 4대 국정기조로 내걸었지만 정권의 탄생 배경과 인적구성으로 볼 때 이러한 정책들을 실천하기에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따랐다. ‘6공화국’이 아닌 ‘5.5공화국’이란 평가도 나왔다.  1988년 4월, 민주화 이후 첫 총선을 통해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됐다. 노태우 정부의 순탄찮은 운명을 암시하는 전주곡이었다. 재야인사들에 대한 복권과 해금을 단행하지만, 평민·민주·공화 야3당이 청문회를 통해 5공화국의 비리를 파헤치면서 핵심인사들에 대한 처벌이 이어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그해 11월 과오를 사과하고 백담사로 유배를 떠나야 했다.  노태우 정부가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된 것은 1989년 서경원 의원 밀입북 사건과 현대중공업 파업 등을 통해 형성된 공안정국을 통해서다. 1990년에는 대통령 선언 형식으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동시에 ‘1노 3김’의 분할체제를 청산하는 정계개편을 추진하기 시작한다. 민정·민주·공화 3당은 1990년 1월 22일 ‘내각제 개헌’을 조건으로 합당을 선언한다. 1992년 14대 총선으로 민자·민주·국민의 3당구조가 출현하기까지 의회는 214석의 거대여당이 주도하는 사실상의 일방적 독주체제가 2년 남짓 이어진다.  노태우 정부는 근본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제도적·절차적 측면의 민주주의가 상대적으로 신장된 시기였다. 5공에 비해 입법·사법부의 자율성이 강화됐고 30년만에 지방자치제가 부활됐다. 노동·시민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국민들의 요구가 활성화된 시기이기도 했다. 정치적 불안에도 불구하고 저달러·저유가·저금리의 ‘3저호황’이란 우호적 대외환경 덕분에 상당한 수준의 경제성장을 달성하기도 했다.  남북관계도 진전이 있었다. 그 시작은 1988년 발표된 7·7선언이었다. 6공화국 대외정책의 핵심인 ‘북방정책’의 기본지침이었던 선언을 바탕으로 중국·소련 등 사회주의권과 관개개선이 이뤄진다. 경제력과 군사·외교적인 측면에서 북한에 대한 우위를 확보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사회주의권 외교를 적극적으로 펼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북한과도 대화창구도 복원, 1991년 9월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과 12월 ‘남북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기본합의서’를 채택하기에 이른다.   ●비자금 투옥과 그 이후  1992년 대선을 통해 김영삼 정부에 성공적으로 정권을 승계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5년 10월 박계동 당시 민주당 의원의 폭로로 불거진 비자금 사건으로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는다. 10월 27일 연희동 자택에서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한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통해 4500억여원의 비자금 조성해 13·14대 총선자금, 부동산 위장 매입, 민정·민자당 지원 등에 사용하고 잔금 1940억원을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고 구속기소된다.  ‘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전직 대통령의 개인비리 차원을 넘어서 정치권력과 재벌이 합작해 정치와 경제를 밀실에서 주무른 정경유착의 표본으로 평가받는다. 30대 재벌총수 대부분이 관련돼 재판을 받았고, 노 전 대통령은 ‘포괄적 뇌물죄’가 적용돼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원을 선고받고 1997년말 국민의 정부 출범을 앞두고 사면·복권된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전임자였던 전두환 대통령과 달리 외부활동을 삼간채 자택에 칩거하며 사실상의 ‘은둔’ 생활에 들어간다. 10년 넘게 권부의 1·2인자 자리를 지켰던 그로선 치욕적이고 불우한 말년이었다.
  • “보통 사람” 노태우 별세…‘1노 3김’ 시대 저물다

    “보통 사람” 노태우 별세…‘1노 3김’ 시대 저물다

    “나 이 사람 보통 사람 믿어주세요.”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향년 89세로 26일 별세했다. 이날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일이기도 하다. 지병으로 오랜 병상 생활을 해온 노 전 대통령을 최근 병세 악화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의료진의 집중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의 별세로 김대중 전 대통령(2009년), 김영삼 전 대통령(2015년), 김종필 전 국무총리(2018년)와 함께 1980년 한국 정치를 상징하던 ‘1노 3김’ 시대도 저물게 됐다. 고인은 제4공화국 당시 전두환과 함께 군 내 불법 사조직인 하나회를 결성,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하였고, 전두환 집권 뒤 정치인으로 전향했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전국 득표율 36%로 김영삼과 김대중 그리고 김종필을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제6공화국 출범 이래 직선제로 선출된 최초의 대통령이었고, 취임 당시 만 55세로 최연소 대통령이었다.노 전 대통령은 선거 유세에서 “보통 사람의 위대한 시대”라는 슬로건을 내세웠고, 이후에도 취임식이나 각종 연설이 있을 때마다 ‘보통 사람들’이라는 단어를 유독 많이 사용했다. 대통령 퇴임 후 내란 혐의로 1995년 전두환과 함께 구속 기소됐고,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의 반란수괴 등에 관한 판결로 징역 17년을 선고받으면서 헌정사상 첫 번째로 구속된 대통령이 되었으나 같은 해 12월에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사면됐다. 2002년 전립선암 수술 이후 건강악화로 인해 연희동 자택과 병원을 오가며 칩거생활을 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식 참석을 마지막으로 20년 가까이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전두환과 달리 5.18 민주화운동의 가해 책임자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반성과 사죄를 표현했다. 2020년 5월 18일 아들 노재헌씨가 노태우 전 대통령을 대신해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40년만에 조화를 헌화했다. 노재헌씨는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이제 됐다’고 말씀하실 때까지 무릎을 꿇을 것이라고 말했고, 3년째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故 노태우 전 대통령(1932~2021) 연보 1932년 8월 17일(음력 7월 16일). 대구 출생 1951년 7월. 경북고 졸업 1955년 9월. 육군사관학교 졸업(11기), 육군 소위 임관 1968년 6월. 육군대학 정규과정 졸업(중령) 1971년 11월. 보병 제21연대장(대령) 1974년 10월. 제9공수특전여단장(준장) 1979년 1월. 보병 제9사단장(소장) 1979년 12월. 수도경비사령관(소장) 1980년 8월. 국군보안사령관(중장) 1981년 7월. 전역(육군대장), 정무 제2장관 1982년 3월∼1986년 5월. 체육부장관, 내무부장관,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 대한체육회장 1985년 2월. 제12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대표위원 1987년 6월 29일. 6·29 선언 1987년 8월 민주정의당 총재 취임 1988년 2월. 제 13대 대통령 취임 1988년 9월. 서울올림픽 개회선언 1988년 10월. 미국 방문,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 1989년 2월. 조지 H.W. 부시 미국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 1990년 5월. 민주자유당 총재 취임 1990년 12월. 소련 방문,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한소 정상회담 1991년 9월.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1993년 2월. 대통령 퇴임 1995년 11월. 특정범죄가중처벌법(뇌물수수) 위반 혐의 구속수감 1997년 4월. 대법원 징역 17년 확정 판결 1997년 12월. 특별사면·출감 2006년 3월. 을지무공훈장 등 11개 서훈 취소 2021년 10월26일 별세
  • 故 노태우 전 대통령(1932~2021) 연보

    故 노태우 전 대통령(1932~2021) 연보

    1932년 8월 17일(음력 7월 16일). 대구 출생 1951년 7월. 경북고 졸업 1955년 9월. 육군사관학교 졸업(11기), 육군 소위 임관 1968년 6월. 육군대학 정규과정 졸업(중령) 1971년 11월. 보병 제21연대장(대령) 1974년 10월. 제9공수특전여단장(준장) 1979년 1월. 보병 제9사단장(소장) 1979년 12월. 수도경비사령관(소장) 1980년 8월. 국군보안사령관(중장) 1981년 7월. 전역(육군대장), 정무 제2장관 1982년 3월∼1986년 5월. 체육부장관, 내무부장관,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 대한체육회장 1985년 2월. 제12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대표위원 1987년 6월 29일. 6·29 선언 1987년 8월 민주정의당 총재 취임 1988년 2월. 제 13대 대통령 취임 1988년 9월. 서울올림픽 개회선언 1988년 10월. 미국 방문,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 1989년 2월. 조지 H.W. 부시 미국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 1990년 5월. 민주자유당 총재 취임 1990년 12월. 소련 방문,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한소 정상회담 1991년 9월.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1993년 2월. 대통령 퇴임 1995년 11월. 특정범죄가중처벌법(뇌물수수) 위반 혐의 구속수감 1997년 4월. 대법원 징역 17년 확정 판결 1997년 12월. 특별사면·출감 2006년 3월. 을지무공훈장 등 11개 서훈 취소 2021년 10월26일 별세
  • ‘헤어지자’는 여친 코뼈 골절되도록 폭행한 30대, 징역형

    ‘헤어지자’는 여친 코뼈 골절되도록 폭행한 30대, 징역형

    이별을 통보하는 연인에게 다시 만나자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코뼈가 골절될 정도로 폭행한 30대 남성이 2심에서도 실형을 선고받았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윤승은 김대현 하태한)는 상해·폭행·협박·재물손괴 등 혐의로 기소된 A씨(31)에게 원심과 같은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A씨는 ‘헤어지자’는 전 여자친구 B씨(28)에게 수십 차례 연락해 다시 만나자고 종용하고, 사생활이 담긴 영상을 유포하겠다는 식으로 협박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지난해 11월 촬영한 영상을 함께 삭제하고 관계를 정리하자며 B씨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로 불러냈다.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자는 자신의 요구를 거절하는 B씨의 목을 조르고 무릎으로 얼굴을 올려 치는 등 폭행했다. B씨는 코뼈가 골절되고 입술 안쪽이 찢어져 크게 다쳤다. A씨는 또 B씨가 연락을 피한다는 이유로 B씨의 승용차 타이어를 가위로 찔러 구멍을 내 손상시킨 혐의도 받는다. 지난해 10월에는 서울 강남구의 자택에서 B씨가 다른 남자와 만났다고 의심하며 욕설을 하고 주먹으로 때리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1심은 “피해자는 상해를 입었을 뿐만 아니라 심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며 A씨에게 폭력 등 범죄 전력이 있는 점을 고려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A씨는 택시에 승차해 택시기사의 얼굴을 팔과 주먹으로 때려 상해를 입힌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운전자폭행)도 받는다. A씨는 형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으나, 2심도 1심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2심은 “보복적 성격이 강한 범행으로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며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기다리던 상황에서도 피고인은 피해자를 뒤따라가 폭행을 계속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범행을 모두 자백하고 반성하는 점 등을 고려해 형량을 정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 전 직장 女 동료 찾아가고 문자 보낸 20대男…스토킹처벌법 적용 첫 구속

    전 직장 女 동료 찾아가고 문자 보낸 20대男…스토킹처벌법 적용 첫 구속

    전 직장 여성동료를 따라다니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지속해서 스토킹한 남성이 지난 24일 경찰에 구속됐다. 지난 21일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이후로 구속된 첫 사례이다. 경기 안성경찰서는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20대 남성 A 씨를 24일 구속했다고 26일 밝혔다. A씨는 같은 직장에 다니던 여성 B씨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변을 비관하는 문자 메시지를 여러 차례 보내는 등 괴롭힌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B씨가 직장을 옮기자 새 직장으로 찾아가 B씨를 기다리며 주변을 서성이는 행위도 반복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A씨의 이러한 행위가 스토킹처벌법에 따른 처벌의 핵심 요건인 ‘지속성’과 ‘반복성’을 충족한다고 보고 A씨를 체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해 구속했다. 스토킹범죄의 처벌 및 그 절차에 관한 특례와 스토킹범죄 피해자에 대한 보호절차를 규정한 법률로, 2021년 3월 24일 국회를 통과해 10월 21일부터 시행됐다. 스토킹처벌법은 1999년 처음 발의됐으나 지속적으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고, 이에 스토킹은 경범죄 처벌법인 지속적 괴롭힘으로 분류돼 ‘10만 원 이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에 그쳐 왔다. 이 법에 따라 스토킹범죄자는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으며, 만약 흉기 등 위험한 물건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를 경우에는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형량이 가중된다. 경찰 관계자는 “상대가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지속·반복적으로 괴롭히는 행위에 대해 스토킹처벌법을 적용해 엄정히 대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정치자금법 위반 김선교 의원 1년 6월 구형

    정치자금법 위반 김선교 의원 1년 6월 구형

    검찰이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선교(여주·양평) 의원에게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징역형을 선고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수원지법 여주지원 형사부(조정웅 부장판사) 심리로 25일 열린 이 사건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선거 관련 불법행위 중 금품수수가 갖는 위법의 중대성을 고려해 엄중한 처벌을 내려달라”며 김 의원에게 징역 1년 6월과 4800여만원 추징을 구형했다. 검찰은 “미신고 후원금은 대부분 김 피고인 당선을 위한 자금으로 지출됐다”며 “그런데도 피고인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선거법 위반으로 인한 재판 전력이 있는데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구형 사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김 의원과 함께 기소된 회계책임자 A씨 등 선거캠프 관계자 3명에게 징역 1년 6월∼징역 8월을, 1명에게는 벌금 700만원을 각각 구형했다. 김 의원은 관련법에 따라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나 징역형을 확정받으면 당선이 무효가 된다. 캠프에서 회계를 담당했던 A씨(징역 8월 구형)가 벌금 300만원 이상을 확정받아도 정치자금법에 따라 당선무효 처리된다. 검찰의 구형이 끝난 뒤 김 의원은 최후 진술에 앞서 피고인석 앞으로 걸어 나와 재판부를 향해 큰절을 하며 선처를 호소했다. 김 의원은 4·15 총선을 앞둔 지난 3∼4월 연간 1억 5000만원으로 정해진 후원금을 초과해 모금하고 현금 후원금에 대한 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불법 모금한 후원금 등을 선거비용으로 쓰면서 공직선거법에서 정한 선거비용인 2억 1900만원을 초과해 사용한 혐의도받고있다. 선고 기일은 다음 달 15일 열린다.
  • 친딸의 ‘뼈’가 녹아내리도록 기저귀 안 갈아준 20대 부부

    친딸의 ‘뼈’가 녹아내리도록 기저귀 안 갈아준 20대 부부

    뼈가 녹아내릴 때까지 생후9개월 딸의 기저귀를 제때 갈아주지 않은 20대 부부가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대전지법 형사12부(부장 유석철)는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27)씨와 아내 B(25)씨에게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25일 밝혔다. 40시간 아동학대 재발 예방 강의, 5년간 아동 관련 기관 취업제한 등도 명령했다.A씨 부부는 2017년 대전 중구 자신의 집에서 생후9개월 된 친딸을 키우면서 용변 등이 묻은 기저귀를 잘 갈아주지 않거나 씻기지 않았다. 방도 곰팡이가 필 정도로 제대로 청소하지 않는 등 젖먹이를 장기간 비위생적 환경에 노출했다. 이들은 “아기 다리가 아파 보인다”는 친족의 말을 들은 뒤에야 딸을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당시 의사는 아이에게 우측 고관절 화농성 염증 진단을 내렸다. 세균 감염으로 생기는 질환이다. 조사 결과 기저귀에 곰팡이까지 피면서 발진이 심했고, 오른쪽 고관절 부위 뼈는 염증으로 일부 녹아내리기까지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진은 “병이 악화해 당장 치료하기 어렵고 나중에 후유증으로 잘 걷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검찰은 ‘딸이 생후 1개월 때부터 오전 8시 30분쯤부터 오후 5시까지 자고 밤에는 깨어 있는 등 부모의 생활방식에 따라 밤낮이 바뀌고, 별다른 이유식도 먹지 못한 채 주로 미역국 밥을 먹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형편이 어렵더라도 부모는 자식이 성인이 될 때까지 건강히 성장하도록 양육할 의무가 있는 데도 이 부부는 딸의 뼈가 녹아내릴 때까지 치료하지 않을 정도로 아무런 가책이 없었고, 의무도 하지 않았다”며 “다만 형사처벌 전력이 없고, 딸보다 더 어린 자식을 전적으로 돌봐야 했던 상황을 양형에 고려했다”고 밝혔다.
  • 곰팡이 방에서 기저귀도 안 갈아 준 20대 부모...아이 뼈도 녹았다

    곰팡이 방에서 기저귀도 안 갈아 준 20대 부모...아이 뼈도 녹았다

    용변을 본 아이의 기저귀를 제때 갈아주지 않아 신체 발달에 장애까지 생기게 한 젊은 부부가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A(27·남)씨와 B(25·여)씨는 2017년쯤 생후 9개월 된 자신의 친딸을 주거지에서 양육하면서 아이의 기저귀를 잘 갈아주지 않거나 잘 씻기지 않았다. 방은 곰팡이가 필 정도로 청소도 제대로 하지 않는 등 아이를 비위생적인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했다. 이들은 다른 가족이 “아기 다리가 아파 보인다”고 말하자 그제서야 친딸을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당시 의사는 아이에게 우측 고관절 화농성 염증 진단을 내렸다. 이는 세균 감염으로 생기는 질환으로 알려졌다. 조사 결과, 아이에게는 기저귀 부위 곰팡이 감염에 의한 발진이 심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오른쪽 고관절 부위 뼈는 염증 때문에 일부 녹아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의료진은 “병이 악화해 당장 치료하는 것은 어렵다”거나, “후유증으로 잘 걷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아이가 생후 1개월 때부터 오전 8시 30분쯤부터 오후 5시까지 자고 밤에는 깨어 있는 등 A씨 부부의 생활 패턴에 따라 밤낮이 바뀐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밝혔다. 또 별다른 이유식도 먹지 못한 채 미역국 밥을 주로 먹였다고 덧붙였다. 대전지법 형사12부(유석철 부장판사)는 아동복지법 위반(아동 유기·방임) 혐의로 기소된 A씨 부부에게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보호관찰을 받을 것, 40시간 아동학대 재범 예방 강의 수강, 5년간 아동 관련 기관 취업제한도 각각 명령했다. 재판부는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하더라도 피고인들에게는 피해자가 성인이 될 때까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양육할 의무가 있다”며 “피해자 뼈가 녹을 정도인데도 제대로 치료하지 않은 채 부모로서 아무런 가책 없이 최소한의 의무조차도 다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다만 형사처벌을 받은 적이 없는 점이나 피해 아이 동생을 전적으로 돌보는 상황 등을 양형에 고려했다.
  • 헤어진 옛 연인한테 협박문자 보낸 남성 ‘스토킹법’ 위반 입건

    헤어진 옛 연인한테 협박문자 보낸 남성 ‘스토킹법’ 위반 입건

    헤어진 옛 연인 주거지에 찾아가 협박성 메시지를 수차례 보낸 30대 남성이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형사입건됐다. 지난 21일 스토킹처벌법의 시행으로 피해자에게 공포심 또는 불안감을 유발하는 문자를 보낸 스토킹 가해자에게는 종전보다 더 무거운 형벌을 부과할 수 있게 됐다. 25일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서울 동대문경찰서는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A(39)씨를 전날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3일 오후 8시 58분쯤 3년 간 교제하다 헤어진 피해자의 주거지에 찾아가 휴대전화로 피해자에게 협박성 메시지를 수차례 전송하고, 그 다음 날 오전 7시 2분쯤 피해자에게 협박성 이메일을 보내 스토킹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는 전날 직접 관할 파출소를 방문해 A씨의 스토킹범죄를 신고했다. 경찰은 A씨에 대해 피해자의 주거지에 100m 이내 접근 금지, 연락 금지와 같은 긴급응급조치를 하고 A씨를 스토킹처벌법 위반죄로 형사입건했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은 상대방에게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문언, 화상 또는 영상 등을 반복적으로 보낸 사람을 징역 1년 이하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스토킹처벌법의 시행으로 우편, 전화 또는 인터넷 등의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말, 부호, 영상 등을 반복적으로 보내 피해자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킨 사람에게 징역 3년 이하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됐다.
  • 학생 153명 복지사 자격 부정 취득 돕고 돈 받은 교수

    학생 153명 복지사 자격 부정 취득 돕고 돈 받은 교수

    사회복지 현장실습 기관과 짜고 대학생들에게 수년간 실습 확인서를 허위로 발급해 자격증 취득을 도운 대학교수들이 실형에 처해졌다. 춘천지법 영월지원 형사1단독 여동근 판사는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와 배임수재 혐의로 기소된 전 대학교수 A(51·여)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고, 1700여만원 추징을 명령했다고 24일 밝혔다. 사문서위조에 위조사문서행사 혐의까지 더해진 같은 학과 소속 전 겸임교수 B(67)씨에게도 징역 1년 6개월과 함께 1400여만원의 추징 명령이 내려졌다. 두 사람은 사회복지사업과 관련된 실습기관장 5명과 짜고 2014년 7월부터 2019년 5월까지 5년간 학생 153명이 현장실습 120시간을 받은 것처럼 허위 확인서를 만들어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학생들로부터 실습비 명목으로 20만∼30만원씩 받아 실습기관장들에게 줬다. 5년간 이들이 챙긴 금액은 3100여만원에 달했다. A씨는 서울에서 사회복지 관련 공무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B씨를 2014년 겸임교수로 채용한 뒤 실습 기관 물색을 지시하는 등 범행을 주도했다. B씨는 실습확인서 발급을 거부당하자 도장을 제작해 확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여 판사는 “이 사건 범행은 학생들이 사회복지과에 입학하거나 자퇴를 하지 않게 하려는 목적에서 저지른 것”이라면서 “궁극적으로 학과장인 A씨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두 사람과 함께 기소된 조교수에게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 실습기관장 5명에게는 징역형 집행유예 또는 벌금형을 내렸다.
  • 현장실습 기관과 짜고 학생 153명에 자격증 부정 발급한 대학교수 2명 실형

    현장실습 기관과 짜고 학생 153명에 자격증 부정 발급한 대학교수 2명 실형

    5년간 사회복지 현장실습 기관과 짜고 대학생들에게 실습 확인서를 허위로 발급해 관련 자격증을 따게 한 대학교수들이 실형에 처했다. 춘천지법 영월지원 형사1단독 여동근 판사는 위계공무집행방해와 배임수재 혐의로 기소된 전 대학교수 A(51·여)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고, 1700여만원 추징을 명령했다고 24일 밝혔다. 사문서위조에 위조사문서행사 혐의까지 더해진 같은 학과 소속 전 겸임교수 B(67)씨에게도 징역 1년 6개월과 함께 1400여만원 추징 명령을 내렸다. 두 사람은 조교수, 사회복지사업과 관련된 실습기관장 5명과 짜고 2014년 7월부터 2019년 5월까지 학생 153명이 현장실습 120시간을 받은 것처럼 허위 확인서를 만들어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학생들로부터 실습비 명목으로 20∼30만원씩 받아 실습기관장들에게 줬다. 5년간 이들이 챙긴 금액은 3100여만원에 달했다. A씨는 서울에서 사회복지 관련 공무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B씨를 2014년 겸임교수로 채용한 뒤 실습 기관 물색을 지시하는 등 범행을 주도했다. B씨는 실습확인서 발급을 거부당하자 도장을 제작해 확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씨는 배임수재 혐의는 부인했으나 재판부는 법정에서의 학생들 진술과 B씨가 수사기관에서 털어놓은 범행 사실 등을 근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 판사는 “이 사건 범행은 학생들이 사회복지과에 입학하거나 자퇴를 하지 않게 할만한 유인을 만들 목적에서 저질러진 것으로, 궁극적으로 학과장인 A씨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며 “경찰 수사가 시작되려 하자 적극적으로 방해했고, 배임수재 범행은 단순 부인하는 것에서 나아가 B씨에게 범행의 책임을 전부 전가하려는 태도를 보인다”고 판시했다. B씨에게도 “이 사건 범행에서 핵심이 되는 실행행위를 수행했다”며 실형을 내렸다. 다만 A씨가 건강이 좋지 않은 점과 B씨가 수사에 비교적 협조적으로 임한 점 등을 고려해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두 사람과 함께 기소된 조교수에게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 실습기관장 5명에게는 징역형 집행유예 또는 벌금형을 내렸다.
  • “내 탓이다” 데이트폭력남 선처 바란 여친…항소심 결과는

    “내 탓이다” 데이트폭력남 선처 바란 여친…항소심 결과는

    항소심서 벌금형 깨고 징역 1년 실형 선고“합리성 매우 결여…전형적인 피해자 모습” 여자친구가 바람을 피운다고 의심하며 데이트폭력을 가해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은 40대가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춘천지법 형사1부(부장 김청미)는 상해·감금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42)씨에게 벌금 1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1년을 선고했다고 23일 밝혔다. A씨는 2019년 3월 승용차에 여자친구 B(29)씨를 태우고 가던 중 바람을 의심하며 추궁하다가 B씨가 변명한다는 이유로 뺨과 머리를 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B씨가 차에서 내려 앞쪽에 정차된 화물트럭에 도움을 요청하자 A씨는 B씨를 붙잡아와 차량에 태운 뒤, 도망가지 못하도록 신발과 양말을 벗기고는 또다시 폭행하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B씨가 거듭 선처를 탄원하는 점 등을 고려해 벌금형을 내렸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형이 가벼워서 부당하다”는 검찰 주장을 받아들여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B씨가 선처를 탄원하며 원심법원에 제출했던 탄원서에서는 본인이 피해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잘못해 형사절차가 진행되고, A씨의 사업 등에 지장을 미칠까 노심초사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 점에 주목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합리성이 매우 결여돼 있어 전형적인 데이트폭력 피해자의 모습이 엿보여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오롯이 양형에 반영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고 봤다. 이어 “피해자는 상당한 시간이 흘러 관계를 정리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피고인과 이 사건 범행을 바라보게 된 시점이라고 여겨지는 당심에서 처벌을 원한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 ‘두테르테·저커버그 저격수’가 올해 노벨상 받은 이유 [김정화의 WWW]

    ‘두테르테·저커버그 저격수’가 올해 노벨상 받은 이유 [김정화의 WWW]

    지난 11일(현지시간) 경제학상을 끝으로 제121회 노벨상 수상자 발표도 끝났다. 과학·문학·경제학 등 각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이들을 기리는 노벨상은 최근 들어 계속 성별과 인종의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분야의 특성상 수상자가 북미, 유럽국가 백인 남성 위주로 선정된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올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마리아 레사(58)는 여러 면에서 ‘독특한’ 수상자다. 올해 수상자 중 유일한 여성이고, 자국 필리핀에서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인물이며, 언론인으로서는 80여년 만이라서다.독재정권 맞서고 테러집단 취재…빈라덴도 참고했다1963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태어난 레사는 부모를 따라 1970년대 미국으로 건너가 자란 이중국적자다. 그가 모국에 다시 돌아온 건 1986년, 필리핀 민중이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거리로 뛰쳐나온 시기와 맞물린다. 마르코스는 1965년부터 21년간 장기 집권했는데, 1986년 부정선거로 대통령에 재당선됐지만 그해 ‘피플 파워 혁명’으로 축출됐다. 레사는 필리핀에 돌아온 이후 언론인으로서 ‘테러와의 싸움’에 천착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시아 지역의 테러 단체는 비교적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다. 레사는 1990년대 CNN의 마닐라 지국장을 맡은 데 이어 자카르타 지국장을 역임했는데, 1998년 인도네시아 폭동, 1999년 동티모르 사태, 2002년 자카르타 주재 필리핀 대사 관저 폭발 등 주요 사건을 다뤘다.특히 아시아 지역 탐사 전문 기자로 테러 관련 뉴스를 다루면서 동남아시아의 신흥 테러 집단을 쫓았다. 필리핀 남부 최대 이슬람 반군 조직인 ‘모로 이슬람 해방 전선’(MILF)을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에다와 연결시킨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레사의 취재는 광범위한 영향력을 자랑했는데, 그가 취재한 비디오테이프가 후에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빈 라덴의 은신처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테러집단과 싸우던 레사의 전투는 2012년 온라인 탐사보도 전문매체 ‘래플러’(Rappler)를 공동 설립하며 새로운 길을 걷게 된다. 래플러는 2016년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당선 이후 그를 집중 비판하면서 저항 언론의 상징이 됐다. 두테르테는 정권을 잡은 직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는데, 대대적인 마약 범죄 소탕 과정에서 수천명이 사망했다. 두테르테 정권 비판 후 박해 “살해·강간 위협은 일상”래플러는 용의자 등이 재판 없이 사살되는 초법적 처형 등에 문제제기 하며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고, 이 때문에 레사는 두테르테의 눈엣가시로 여겨져 노골적인 박해를 받았다. 두테르테는 2018년 래플러 기자들의 공식 취재 활동을 금지하고 사이트 운영 허가까지 취소했다. 레사는 래플러의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로서 두테르테의 끊임없는 탄압을 견뎌야 했다. 사기와 탈세, 뇌물 혐의로 기소됐고 2019년 2월에는 사이버 명예훼손 혐의로 체포됐다. 그가 체포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것만 10번에 달한다.지난해에는 결국 사이버 명예훼손 혐의가 인정돼 법원에서 최대 6년 이하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뒤 보석이 허가돼 불구속 상태에서 항소 방침을 밝혔다. 레사는 당시 “이번 판결은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타격”이라고 비판하며 표현의 자유를 위해 계속 싸우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권위주의 정권에 맞선 레사는 2018년 미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로 뽑혔으며, 제70회 세계신문협회가 시상한 황금펜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페북은 민주주의 저해…적극 조치 나서야”레사는 자국 내 독재 권력에 저항 할뿐 아니라 페이스북 같은 빅테크 기업의 윤리적 역할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이며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이는 래플러가 초창기 페이스북 페이지를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레사는 미 대선을 앞둔 2016년 페이스북 임원을 만나 소셜미디어 기업이 플랫폼에 퍼지는 가짜뉴스와 혐오표현, 범죄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줄곧 강조했다. 그는 “소셜미디어는 무기가 된다. 미국 이전에 필리핀이 그 길을 걸었다”며 “온라인 폭력은 실제 세계의 폭력으로 이어진다”고 말한 바 있다. 노벨상 수상 이후에는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페이스북이 혐오표현과 허위정보 차단에 실패했고, 팩트에 반하는 편향성을 지니고 있다”며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는 레사 자신이 온라인에서 각종 협박과 폭력 위협에 시달려왔기 때문이다. 그는 2016년 이후 두테르테의 지지자들로부터 끊임없이 공격받았다. 국제언론인센터(ICFJ)가 최근 발간한 빅데이터 사례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6~2021년 레사에 대한 소셜미디어 공격이 급증했는데, 이는 결국 실제 위협으로 번졌다.특히 여성에 대한 공격은 더 심했다. 사이버 공간에서 레사는 강간이나 살해 협박은 물론 ‘가짜뉴스의 여왕, 거짓말쟁이, 개 같은 X’ 등 각종 독설과 인종·성차별적 공격을 받았다. 미 싱크탱크인 우드로윌슨센터 소속 가짜뉴스 연구자인 니나 잰코위치는 워싱턴포스트(WP)에 기고한 칼럼에서 “레사의 수상은 페이스북의 실패에 대한 고발 성격이 짙다”고 평하기도 했다. 잰코위치는 “래플러 창립 초기 레사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에게 ‘필리핀 국민의 97%가 페이스북을 사용한다’며 엄청난 영향력에 대해 설명하자, 저커버그는 나머지 3%에 대한 관심과 시장 점유율에만 관심을 보였다”는 일화를 덧붙였다. 실제 최근 페이스북은 가짜뉴스 등을 제대로 거르지 않고 있다는 직원의 내부 고발 이후 큰 곤욕을 치르고 있다. 올해 노벨상 여성은 딱 1명…“언론 역할 일깨웠다”온라인 플랫폼이 이 같은 현상을 방치하면서 사이버 공격은 더욱 힘을 얻었고, 두테르테는 이같은 지지를 등에 업고 더 적극적으로 레사를 탄압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두테르테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비교하면서 “트럼프가 미국 기자들을 ‘민중의 적’이라고 불렀다면, 두테르테는 한걸음 더 나아갔다”며 “그는 기자들을 ‘암살당해도 싼 개자식들’이라고 표현했다”고 짚었다. 노벨위원회가 이번에 레사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위한 용감한 싸움을 벌였다”며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가 점점 더 불리한 조건에 직면하고 있는 세상에서 이러한 이상을 옹호하는 모든 언론인을 대표한다”고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노벨위원회가 저널리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언론인들에만 평화상을 수여한 건 1935년 이후 처음이다. 당시 독일 언론인 카를 폰 오시에츠키는 독일이 1차 세계대전 뒤 비밀리에 재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 공로로 평화상을 받았다.레사는 전통 매체와 뉴미디어, 컴퓨터 기술을 접목해 저널리즘을 재정립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기존 신문·방송에 머무르지 않고 디지털 미디어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어서다. 과거 인터뷰에서 그는 “부정부패와 가짜 뉴스, 언론의 자유를 침묵시키려는 시도에 맞서 싸우기 위해 모든 시간을 바친다”며 “이 세대의 싸움은 진리를 위한 전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수상 이후에도 레사는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을 거론하며 “사실(facts)이 없는 세계는 진실과 신뢰가 없는 세계를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래플러는 매일 폐간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지만, 북극성을 앞에 두고 사실을 수호하면 권력에 책임을 지게 할 수 있다”고 하는가 하면 소셜미디어의 책임에 대해서도 거듭 경고했다. 레사는 소셜미디어가 “정보 생태계에서 폭발하는 원자폭탄과 같다”며 “2차 세계대전 뒤에 그랬듯 세계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단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리아 레사는 누구·Maria Angelita Ressa1963 필리핀 마닐라 출생1986 프린스턴대 졸업1986 필리핀 귀국1987 다큐멘터리 탐사 프로그램 전문 프로브 프로덕션 설립1987~1995 마닐라 CNN 지국장1995~2005 자카르타 CNN 지국장2003 책 ‘테러의 씨앗’(Seeds of Terror) 출판2005 필리핀 최대 미디어 기업 ABS-SBN 뉴스 운영2012 탐사보도 전문 매체 ‘래플러’(Rappler) 설립2013 책 ‘빈라덴에서 페이스북까지’(From Bin Laden to Facebook) 출판2018 타임 ‘올해의 인물’ 선정2021 필리핀인 최초 노벨평화상 수상
  • ‘이재명에 20억’ 주장한 박철민 “10년간 조폭이었지만…”[추후보도 추가]

    ‘이재명에 20억’ 주장한 박철민 “10년간 조폭이었지만…”[추후보도 추가]

    이재명 지사에게 20억원 가까이 지원했다고 주장한 조직폭력배 출신 박철민(31)씨가 추가로 ‘자필 문건’을 공개하며 “저도 나쁜 놈이었다. 저의 잘못된 삶으로 부정처사가 왜곡되지 않길 부탁드린다”라고 주장했다. 성남국제마피아파 조직원 출신인 박철민씨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수차례 돈을 지원했다고 주장하며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 신고를 접수했다. 박철민씨는 ‘증거 조작’ 논란으로 번진 소셜미디어의 돈다발 사진이 이 지사에게 간 돈이 맞다고 재차 주장했고, 이 지사 측은 “하나하나 대응할 가치를 못 느낀다”라고 밝혔다. 장영하 변호사는 22일 박철민씨의 문건을 공개했다. 문건에는 “10년간 조직폭력배 생활을 했고, 일각에선 제가 조직폭력배가 아니었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증빙자료를 공개하겠다”라며 자신의 범죄사실에 대한 변호인 의견서와 경기남부경찰청 광역수사대의 ‘국제마피아파 조직원들에 대한 인지보고서’를 증빙으로 첨부했다. 박철민씨는 “수감 생활을 마치면 뇌물공여사건도 죗값을 받을 각오가 돼 있다. 정말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다. 조폭 생활하면서 나쁜 짓 많이 했다. 인정한다. 이번 수감 생활을 끝으로 아버지 성함에 누를 끼치지 않고 열심히 살고자 한다”라며 “이재명 도지사님 서울구치소 밥 맛있습니다. 건강 잘 챙기십시오”라고 적었다. 민주당, 장영하 변호사 검찰에 고발 민주당은 이 후보의 조폭 연루설을 제기한 장영하 변호사를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신선일 민주당 민원법률국장은 이날 오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한 뒤 “국민의힘 당원인 장 변호사는 마약 전과가 있는 조폭 박철민과 결탁해 이 후보에 대한 허위사실을 반복적으로 유포했다”며 “이는 대선 선거인단의 선택을 호도해 대선 공정성과 객관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박씨는 현재 폭행 등 8가지 범죄사실로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받고 수원구치소에서 복역중이다. 그는 여성 지인들과 공모해 의도적으로 남성들에게 접근한 뒤 성폭행이나 성추행이라며 협박해 합의금 2억여원을 받아냈고, 스스로 필로폰을 투약한 사실도 유죄가 인정됐다. 과거 구치소에 있을 당시에는 동료 재소자에게 “구형 선처를 받아주겠다”며 1억 9000만원을 받아 유죄 판결을 받았다. 박철민 아버지는 국민의힘 소속 박용승 박철민의 아버지는 성남시의회 1~3대 의원을 지낸 국민의힘 소속 정당인 박용승씨다. 박용승씨는 2008년 총선 때 친박연대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했고, 지난해 4·15 총선 때 함께 치러진 성남시의원 ‘라’선거구 보궐선거에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후보로 공천됐다가 피선거권이 상실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돼 출마하지 못했다. 당시 지역 언론에 따르면 그는 다섯 차례에 걸친 무면허운전(도로교통법위반)으로 2017년 12월 실형(징역 4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피선거권 제한으로 후보 등록이 불가함에도 미래통합당이 공천한 것이었다. 박씨는 올해 4월 24일 국민의힘 성남수정구 당협위원회 청년위원장으로 임명됐다. 박철민과 소통하는 장영하 변호사는 판사(1981년 사법고시 23회) 출신으로, 15년 전인 2006년부터 선거에 출마했다. 2006년 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성남시장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출마했던 이재명 지사와 맞붙기도 했다. 당시 두 사람 모두 현직 시장이었던 한나라당 이대엽 후보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장영하 변호사는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당적을 바꿔 국민의당 후보로 성남시 수정구에 출마했다 낙선했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바른미래당 후보로 성남시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또다시 떨어졌다.  추후보도 내용 (2026년 3월 20일) 서울신문은 2021년 10월 21일자 기사 등에서 장영하 변호사의 기자회견 등을 인용해 이재명 대통령의 조직 폭력배 연루 의혹 및 금품 수수 의혹과 관련한 내용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당시 이 의혹을 제기한 장영하 변호사는 “이 대통령(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이 성남시장 시절 ‘국제마피아파’ 측근에게 사업 특혜를 주는 조건으로 20억 원 가량을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장 변호사는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대법원은 2026년 3월 12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장 변호사의 유죄를 확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당시 제기된 조직 폭력배 연루설 및 금품 수수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법적으로 확인됐습니다. 서울신문은 이같은 사실을 추후 보도합니다.
  • 청소일하며 남편 병수발… 죽음으로 끝낸 10년 간병

    청소일하며 남편 병수발… 죽음으로 끝낸 10년 간병

    10년 넘게 아파트 청소일을 하며 몸이 불편한 남편을 부양했던 70대 아내. 그가 2년 전 남편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울산지방법원 형사11부(재판장 박현배)는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A(72)씨에 대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고 22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019년 10월5일 오후 3시30분쯤 울산 북구 주거지 안방에서 남편 B(69)씨와 말 다툼을 하던 중 뺨과 눈 부위를 손으로 때리고, 넘어뜨린 뒤 가슴과 복부를 발로 여러 차례 차거나 밟는 등 다발골절 및 장간막 파열 등의 상해를 입힌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사건 당일 “남편이 다쳤다”며 119에 직접 신고했다. B씨는 10년전쯤부터 간경화 등으로 몸이 불편해 보행보조장치가 없으면 정상적 거동이 힘들었다. A씨 신고로 출동한 119구급대원 등이 심폐소생술을 하며 B씨를 병원으로 옮겼지만 B씨는 끝내 숨졌다. 경찰은 사건 발생 며칠 뒤 A씨에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했다. 단순 사고가 아니라 남편을 때려 숨지게 한 것으로 본 것이다. 경찰은 약 1년 간 수사 끝에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고, 올해 초 검찰은 A씨를 불구속 기소했다.지난 20일 A씨에 대한 1심 재판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렸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숨진 B씨 몸은 성한 곳이 없었다. 좌우로 12개씩 이뤄진 갈비뼈 양측 24개에 모두 골절이 보였다. 오른쪽 겨드랑이 부위부터 아래로 6개의 갈비뼈도 추가로 부러진 상태였다. 숨진 B씨 사진을 본 배심원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앙상한 팔 다리에 방청석에선 “미이라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왜소한 체구였다. 부검 결과 B씨 직접적 사인은 장간막 파열로 인한 다발성 출혈이었다. 두 사람 사이엔 자녀가 없었다고 한다. 집 안에서 B씨에게 강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내인 A씨 뿐이었고, 방 안 구조 상 그 정도의 상해를 입힐 요인이 없었다는 것, A씨가 이날 막걸리를 마신 음주 상태였다는 것이 검찰의 근거였다. 검찰은 재판부에게 A씨에 징역 5년을 선고해달라고 했다. A씨 측은 억울함을 토로했다. A씨 측은 “넘어져 있는 피해자를 발견하고 정신을 차리게 하기 위해 머리를 흔들고 얼굴 부위를 쳤을 뿐이다”며 “피해자를 넘어뜨리게 하거나 가슴과 복부를 발로 차거나 밟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피해자 스스로 넘어지면서 상해가 발생했을 수 있고, 심폐소생술 과정에서 갈비뼈 골절 등 상해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B씨가 지난 2018년에도 넘어져 갈비뼈가 4개 이상 부러지는 사고가 있었던 점, 둘 사이가 평소 좋았던 점을 들어 반박했다. 숨진 B씨의 친동생도 “형수가 그럴 일 없다”며 선처를 구했다. 이날 배심원 7명은 고심 끝에 모두 A씨가 유죄라고 봤다. 응급실 의사와 부검의, 부검감정서를 감정한 법의학교수 등이 증인으로 출석해 “단순히 넘어져서 생긴 상처로 보기 어렵다”라며 “피해자 손등에 발생한 멍자국의 경우 ‘방어흔’이다”고 설명했다. 국민참여심판 배심원 4명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나머지 3명은 징역 4년의 의견을 냈다. 박현배 판사는 “피고인이 배우자인 피해자에게 다발골절 및 장간막 파열 등의 상해를 가해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죄질이 좋지 않다”면서 “다만 오랜 기간 홀로 생계를 책임지면서 간병한 점, 다소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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