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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사죄·증언 없이 떠난 전두환, 역사 심판은 영원하다

    [사설] 사죄·증언 없이 떠난 전두환, 역사 심판은 영원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어제 사망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한 달이 되지 않아 군사반란과 민주화운동 유혈진압의 두 책임자가 사망함으로써 일그러진 역사의 한 페이지는 막을 내렸다. 전씨는 현재 진행 중인 고 조비오 신부 명예훼손 사건 재판의 피의자로서 반성은 물론 진실 고백도 거부했다. 또한 1979년 12·12 군사쿠데타, 1980년 5월 광주 학살에 대한 참회나 사죄도 하지 않았다. 언론 탄압을 비롯해 삼청교육대, 부산형제복지원 사건 등 민주주의 말살, 인권유린, 노동운동 탄압, 간첩단 조작 사건, 천문학적 비자금 조성 등 수많은 과오에 대해 변변한 유감의 표시조차 없었다. 단언컨대 전씨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과만 있고 공은 찾기 힘든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는 1996년 군사반란 수괴죄, 반란 모의 참여죄, 내란 목적 살인죄 등으로 사형이 선고돼 헌정 질서 파괴와 무고한 시민 학살에 대한 법적 판단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대법원 판결을 통해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정치적 고려에 의한 대통령 사면으로 다시 세상에 나왔다. 사면이 그의 죄에 대한 판결을 없애는 것이 아닌데도 그는 평생에 걸쳐 깊은 상처를 안고 사는 광주의 피해자들과 국민들 앞에 한마디 반성도 참회도 없었다. 오히려 숨을 거둘 때까지 자기 행위의 정당성을 뻔뻔하게 주장했고, 전 국민의 공분을 일으켰던 ‘전 재산 29만원’ 운운으로 전체 2205억원의 추징금 중 956억원의 미납금을 남기고 갔다. 세금 체납액도 9억 7000만원에 이른다. 우리는 어떤 인간이건 존재의 소멸을 통해 그 생애의 공과에 대한 종합적 평가를 하곤 한다. 하지만 전씨의 죽음을 대하는 많은 국민들은 어두운 역사의 일단락을 깔끔하게 맺지 못했다는 답답함과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자식들을 통해 밝혔던 것처럼 뒤늦게나마 참회하고 용서를 구했다면 우리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화합하는 일 또한 어느 정도 가능했을 터다. 피해자의 용서는 가해자의 참회와 사죄에서 출발한다. 사회의 화합은 거기에서 비로소 싹틀 수 있었으나 안타깝기만 하다. 그를 단죄해야 할 법적 다툼의 실효성은 사라졌다. 오직 남은 자들이 판단하고 역사가 심판해야 할 과제가 됐다. 전씨는 비록 사죄·증언 없이 떠났지만 역사의 심판은 영원하다는 진리를 살아 있는 자들이 구현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규명되지 않은 5·18 진상에 대해서도 끝까지 밝혀야 할 책임이 우리들에게 부여됐다. 더디더라도 계속해서 화합과 치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함은 우리의 또 다른 사명이기도 하다.
  • 코인 부당이익 1년 이상 징역형… 가상자산 제도권 편입 급물살

    코인 부당이익 1년 이상 징역형… 가상자산 제도권 편입 급물살

    금융당국이 시세조종이나 미공개정보 이용 등 불공정거래행위로 가상자산 거래에서 부당이득을 얻으면 최고 5년 이상 징역형에 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가상자산 발행인은 이용자들에게 백서, 코인평가서 등을 공개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하면 형사처벌하는 방안도 검토한다.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가상자산 이용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기본방향 및 쟁점 보고서를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가상자산 범위에는 현행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에 명시된 항목 외에 증권형토큰, 스테이블코인, 디파이, 대체불가토큰(NFT) 등이 추가된다. 금융당국이 현행 규정으로도 NFT에 대해 부분 과세를 할 수 있다고 밝힌 데 이어 가상자산 범위에도 포함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도규상 금융위 부위원장은 지난 17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에서 “현행 규정으로도 NFT에 대해 과세도 가능하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고 말한 바 있다. 보고서에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미공개 중요 정보 이용, 시세조종, 부정거래 등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제재는 자본시장법 수준을 부과하는 안이 제시됐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부당이익이 50억원 이상이면 5년 이상 징역,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이면 3년 이상 징역, 5억원 미만이면 1년 이상 징역에 처해진다. 부당이익 규모와 관계없이 벌금은 부당이익의 3~5배를 부과할 수 있다. 또 투자자와 사업자의 정보 비대칭 현상 해소를 위해 가상자산 발행인에게 중요 정보 제출·공시를 의무화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를 위반하면 형사처벌하는 규정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명시했다. 가상자산 사업 진입 규제는 등록제 또는 인가제로 운영하고, 진입 요건은 현행 특금법에 더해 개인 간 금융(P2P)업의 규율 수준을 제안했다. 예치나 신탁 방식으로 고객의 가상자산을 분리·관리할 의무도 법령에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도 담겼다. 또 이용자 보호와 블록체인산업 진흥 균형, 원칙 중심 규제, 민간 자율규제 부여와 금융당국의 감독권, 불공정행위 자율 상시 감시체계와 불법이익 환수 법 집행 체계 등을 기본 원칙으로 제시했다. 금융위는 이 보고서에 대해 “국회에 계류 중인 가상자산 관련 여러 입법안과 전문가들 의견을 정리한 것이고, 금융위의 공식 의견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다만 가상자산 업계는 이 보고서를 토대로 입법 작업이 본격화하면 가상자산의 제도권 편입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했다.
  • 입학사정관 퇴직 후 3년 내 입시상담·개인과외 땐 처벌

    대학 입학사정관이 퇴직한 뒤 3년 이내에 학원, 교습소 등 사교육 기관을 설립하거나 취업하다 적발되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 등 처벌을 받게 된다. 교육부는 23일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고등교육법’,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학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현행 고등교육법에는 입학사정관이 퇴직한 뒤 3년 이내에 학원을 설립하거나 취업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는 위반했을 때 제재 규정이 없어 퇴직 입학사정관이 학원 등을 통해 입시 상담을 해 주고 고액을 받는 사례가 매년 발생해 왔다. 이번 고등교육법 개정안에는 벌칙 조항을 신설해 이 문제를 보완했다는 것이 교육부의 설명이다. 또 입학사정관 취업 제한 범위에 교습소 설립과 개인과외 교습 항목까지 넣어 개인 과외만으로도 처벌받을 수 있도록 강화했다. 이와 함께 학원법 개정안에는 학원의 책임을 규정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퇴직 후 3년 이내 입학사정관을 강사나 학원 법인의 임원으로 영입한 학원은 1년 이내 교습 정지 또는 학원 등록 말소까지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학원 설립 등록 수리의 주체인 시도교육감이 퇴직 입학사정관의 위법 행위를 사전에 포착하고 이를 방지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원 관리·감독 관청인 시도교육청이 사전에 입학사정관의 학원 설립·취업 정보 등을 공유할 예정”이라며 “입학사정관이 (학원에) 신분을 숨기고 취업을 했다면 학원장이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입학사정관의 공공성, 그리고 다루는 업무의 비밀성 등을 고려해 3년 이내 퇴직한 입학사정관만 다루도록 명확히 규정했다”고 덧붙였다.
  • “광주는 폭동” “전 재산 29만원” 분노만 키운 정치군인의 퇴장

    “광주는 폭동” “전 재산 29만원” 분노만 키운 정치군인의 퇴장

    빈농의 아들 출신으로 12·12 군사쿠데타를 통해 제11·12대 대통령직을 움켜쥔 전두환 전 대통령의 권력욕은 굴곡지고 어두운 대한민국 현대사를 만들어 냈다. 전씨는 12·12 군사반란,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등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일절 인정하지 않은 채 23일 세상을 떠났다. ●한국전쟁 중에 육군사관학교 입학 전씨는 1931년 경남 합천의 빈농에서 10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어린 시절부터 일본인 식품공장에서 배달 일을 하는 등 가족을 부양했다. 전씨는 대구공고를 졸업한 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그는 훗날 회고록에서 “내 성적은 228명 중 끝에서 두 번째였다. 육사 합격은 내 인생에서 운명적 전환점이었다”고 밝혔다. 1955년 육사 11기로 졸업한 후 군인의 길을 걸었으나 처음부터 돋보이지는 못했다. 군 생활 초반에는 한직을 전전하다 1961년 박정희 당시 육군 소장이 일으킨 5·16 군사정변에서 육사 생도들의 지지 선언을 주도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박 소장의 눈에 띈 이후 당시 최고 권력기관이었던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실 비서관으로 기용된다. 그후 중앙정보부 인사과장, 30대대장, 1사단장, 보안사령관 등 출세가도를 걸었다. 그가 속했던 하나회의 전신 오성회도 군 내 주류 모임으로 급부상했다. 전씨가 보안사령관으로 재직하던 1979년 유신 통치의 마침표를 찍은 10·26 사태가 발생한다. 그는 하나회를 등에 업고 박정희 대통령 총격 사건 수사·처리를 맡은 합동수사본부를 이끌면서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에게 총격을 가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체포뿐만 아니라 자신의 상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마저 체포하면서 12·12 신군부 반란을 일으켰다. 1980년 5월 17일 전국 대학생들이 군부에 반기를 들고 ‘서울의 봄’이라 불리는 민주화 요구 시위에 나선다. 그러자 전씨는 ‘시국 수습’을 핑계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민주화 세력을 탄압했다. 5월 18일 서울 시위에 이어 광주에서도 ‘전두환 퇴진’ 등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자, 신군부는 계엄군·공수특전여단을 투입해 무력 진압하며 걷잡을 수 없는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같은 달 27일에야 마무리된 계엄군의 무분별한 진압은 무고한 광주시민들의 목숨을 앗아 갔다. ●개헌까지 하며 11·12대 대통령 연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신설하며 국정 실권을 장악한 전씨는 1980년 최규하 대통령 사임 직후 선거에 단독 입후보해 제11대 대통령이 된다. 같은 해 10월 ‘7년 단임 대통령제’를 골자로 하는 새 헌법을 공포하고, 1981년 간선제로 치러진 제12대 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해 당선되며 제5공화국을 열었다.‘3저(저유가·저금리·저달러) 호황’을 누리는 국가 개발 시기에 정권을 잡았으나, 끊임없는 민주화운동 탄압은 그의 몰락을 앞당겼다.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대통령 직선제 요구가 거세졌고, 맞대응으로 내놓은 4·13 호헌조치는 6월 항쟁의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결국 당시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선후보가 집권여당 대표로 6·29 선언을 발표하면서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다. 1988년 대통령 임기를 마친 전씨는 여생 내내 심판대에 올랐다. 퇴임 직후 전씨가 ‘5공 청문회’에 나와 5·18 진압에 대해 “자위권 발동”이라고 답한 데 대해 이철용 평화민주당 의원이 “살인마”라고 비판한 것은 사회가 그의 책임을 묻기 시작한 상징적 사건이다. 이후 계속되는 대규모 시위에 전씨는 부인 이순자씨와 강원 백담사로 들어가 769일간 은둔 생활을 했다. 문민정부 들어 본격적인 법적 심판이 시작된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은 5·18 특별법을 제정했고, 그해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반란수괴죄 및 살인,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2심을 거쳐 1997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을 최종 선고받았다. 1997년 김영삼 정부는 국민 대화합 명분으로 그를 특별 사면했다. 전씨는 이후에도 반성 없는 모습으로 국민적 공분을 샀다.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던 전씨는 2003년 법원의 재산 명시 명령에 ‘예금 29만원’을 기재하며 사실상 납부를 거부했다. 2006년 노무현 정부는 전씨 등 3년 이상 형을 선고받은 176명의 서훈을 취소하고 훈장 환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전씨는 훈장 반환도 거부하다 7년 만인 2013년에야 12·12 이후 받은 9개 훈장을 반납했다. ●조비오 신부 사자 명예훼손 등 1심 유죄 2017년 4월 출간한 전두환 회고록도 논란이 됐다. 5·18 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비상계엄은 “정당한 법 절차를 따랐다”고 주장했다.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두고는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했다. 5·18 관련 단체들은 사자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적시 등으로 고발했다. 전씨는 1심 내내 알츠하이머 투병, 고령 등을 이유로 출석을 거부하다 2019년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고 지난해 11월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불복, 항소해 재판을 진행하다 오는 29일 변론을 앞두고 있었다. 올해 8월 다발성 골수종 확진을 받았던 전씨는 생전 가깝게 지낸 노 전 대통령이 별세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 사죄없이 떠난 현대사의 오점

    사죄없이 떠난 현대사의 오점

    12·12 군사 반란을 일으키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사망했다. 전씨의 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화 투쟁을 벌인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전씨의 동료이자 후계자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전씨까지 모두 세상을 떠남에 따라 현대사의 한 페이지가 완전히 넘어가게 됐다. 전씨는 생의 마지막 날까지 자신의 과오에 대한 일말의 사과나 반성을 하지 않았다. 전씨는 오전 8시 40분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쓰러져 8시 55분쯤 경찰과 소방에 신고됐다. 경찰은 오전 9시 12분쯤 사망 사실을 확인했으며, 시신은 신촌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졌다. 전씨는 지난 8월 악성 혈액암인 다발성 골수종 확진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었다. 1931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전씨는 1955년 육사(11기)를 졸업한 뒤 군인으로 승승장구했다. 군부 내 사조직 ‘하나회´를 만들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지원했고, 10·26 사태가 발발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정권을 찬탈하기 위한 12·12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하고 간선제 투표로 11, 12대 대통령에 올라 7년여간 독재 통치를 했다. 전씨는 내란죄 등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가 1997년 12월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이후 전씨는 과오에 대해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약속했던 재산 헌납도 지키지 않았다. 추징금 2205억원 중 미납한 금액은 956억원에 달한다. 최근에는 광주 시민들을 향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청와대는 고인의 명복을 빌었지만, “끝내 역사의 진실을 밝히지 않고 진정성 있는 사과가 없었던 점에 대해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조문이나 조화도 하지 않기로 했다. 대선후보 모두 빈소를 찾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전씨는 명백하게 확인된 것처럼 내란 학살 사건의 주범이다. 최하 수백 명의 사람을 살상했고 중대 범죄를 인정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처음엔 “전직 대통령이시니까 조문을 가야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가 2시간 뒤 조문을 가지 않겠다고 번복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순자씨와 아들 전재국·재용·재만씨, 딸 효선씨가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이다. 발인은 27일 오전 8시.
  • 전두환 빈소 앞 전광판, 며느리 ‘박상아’ 이름 빠져있다

    전두환 빈소 앞 전광판, 며느리 ‘박상아’ 이름 빠져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향년 90세로 별세한 가운데 장례식장의 전광판에서 둘째 며느리 박상아씨의 이름이 빠져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날 오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전 전 대통령의 빈소 앞 전광판엔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 차남 전재용씨, 3남 전재만씨, 딸 전효선씨 등이 이름을 올렸다. 고인의 부인 이순자씨와 손자·손녀 11명도 이름을 올렸다. 전재국씨의 아내인 첫째 며느리 정도경씨 이름도 있다. 다만 둘째 며느리인 배우 출신 박상아씨와 셋째 며느리 이윤혜씨의 이름은 전광판에 게시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장례식장 관계자는 “가족이 많은 경우 첫째 며느리만 적기도 한다”며 “이름 적는 건 유가족이 결정한 내용이라서 특별한 이유는 모르겠다”고 전했다.‘전두환 둘째 며느리’ 박상아 근황…“우린 죄인, 남편 목회자 반대했다” 전재용·박상아씨 부부는 지난 3월 극동방송 ‘만나고 싶은 사람 듣고 싶은 이야기’에 출연해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며 근황을 전한 바 있다. 박상아씨는 ‘젊은이의 양지’, ‘태조왕건’ 등에 출연한 배우 출신으로, 전재용씨와 혼인한 뒤 연예계를 떠났다. 당시 방송에서 전씨는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내 박씨는 처음 전씨의 신학대학원 진학을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는 “누가 봐도 죄인인 저희 같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도 사실 숨기고 싶은 부분인데 사역까지 한다는 것은 하나님 영광을 너무 가리는 것 같았다”며 “안 된다고 했는데, 하나님 생각은 저희 생각과 다른 것 같다”고 했다. 전씨는 신학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교도소에서 2년 8개월이란 시간을 보내게 됐는데, 방에 앉아 창살 밖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찬송가 소리가 들렸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교도소 안에 있는 종교 방에 있던 분이 부른 것이었다. 그분이 노래를 너무 못 불렀는데도 눈물이 났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러면서 찬양, 예배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앞서 전씨는 지난 2015년 8월 대법원에서 탈세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40억원을 확정 판결받았다. 2006년 12월 경기도 오산시 임야(林野)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다운계약서를 작성하고 양도소득세를 포탈한 혐의다. 그러나 벌금 중 1억4000만원만 납부하고, 38억6000만원을 내지 않았다. 전씨는 노역장 965일(약 2년 8개월) 유치 처분을 받고서 원주교도소에서 복역한 뒤, 지난해 2월 출소했다. “아버지, 생각하지 못한 만큼 너무 기뻐하셨다” 전씨는 “신학대학원에 가기 전에 부모님(전 전 대통령 부부)에게는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았다”며 “아버지는 치매라서 양치질하고도 기억을 못 하는 상태였는데도 말씀드렸더니 생각하지 못한 만큼 너무 기뻐하셨다”고 했다. 이어 “아버지는 ‘네가 목사님이 되면 네가 섬긴 교회를 출석하겠다’고도 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목사님이)꼭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 “왜 말 안 들어” 한겨울에 반소매 옷만 입혀 9살 쫓아낸 엄마

    “왜 말 안 들어” 한겨울에 반소매 옷만 입혀 9살 쫓아낸 엄마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겨울 밤중에 초등생 아들을 반소매 등 얇은 옷차림 상태로 집밖에 내쫓은 친엄마가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엄마의 이러한 학대에 가담한 지인들에게도 각각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대구지법 형사4단독 김남균 판사는 한겨울에 초등생 아들을 집밖에 내쫓은 혐의(아동복지법 위반)로 기소된 친엄마 A(27)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 보호관찰 받을 것과 80시간 아동학대 재범예방 강의 수강을 명했다고 23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12월 23일 오후 10시 59분쯤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며 아들(9)에게 “보기 싫다. 집 밖으로 나가라”고 말하며 반소매 옷에 얇은 바지만 입힌 채 집 밖으로 나가게 했다. 이에 지인 B(29)씨와 C(39)는 A씨에 동조해 “집에서 먼 곳에 내려주고 오겠다”며 A씨의 승낙을 받은 뒤 아이를 차에 태워 집에서 2㎞ 이상 떨어진 저수지 근처에 내려놓았다. B씨 등은 아이에게 “집에 찾아올 생각하지 마라”고 말하고선 그대로 자기들끼리 집에 돌아왔다. 길가에 버려진 아이는 자신이 다니는 초등학교 근처까지 혼자서 걸어왔고, 인근 주민들에게 발견돼 구조됐다. 아이를 맡아 집으로 데려간 경찰이 A씨에게 아이를 임시보호하겠다고 하자, A씨는 아들이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경찰의 인수 요구를 거부했다. 김 판사는 “피고인들이 범죄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 피해 아동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벗어난 상태로 유기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 B씨가 아이를 쫓아낸 뒤 30분쯤 지나 외투를 들고 찾아나서기도 한 점 등을 종합했다”라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A씨를 도와 범행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된 지인 B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C씨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 ‘전두환 며느리’ 배우 박상아 근황…“우린 죄인, 남편 목회자 반대했다”

    ‘전두환 며느리’ 배우 박상아 근황…“우린 죄인, 남편 목회자 반대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지병인 ‘다발성골수종’으로 별세한 가운데, 목사의 길을 선택한 전 전 대통령의 차남 전재용(57)씨와 며느리 박상아(49)씨가 출연한 과거 방송이 재조명되고 있다. 당시 목회자의 길을 걷겠다는 전씨의 말에 아내인 배우 박씨는 반대했지만, 아버지 전 전 대통령은 기뻐했다고 밝혔다. 전재용·박상아 부부는 지난 3월 극동방송 ‘만나고 싶은 사람듣고 싶은 이야기’에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 전씨는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내 박씨는 처음 전씨의 신학대학원 진학을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누가 봐도 죄인인 저희 같은 사람들이 사역 한다는 것은 영광을 너무 가리는 것 같았다” 박씨는 “누가 봐도 죄인인 저희 같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도 사실 숨기고 싶은 부분인데 사역까지 한다는 것은 하나님 영광을 너무 가리는 것 같았다”며 “안 된다고 했는데, 하나님 생각은 저희 생각과 다른 것 같다”고 했다. 전씨는 신학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교도소에서 2년 8개월이란 시간을 보내게 됐는데, 방에 앉아 창살 밖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찬송가 소리가 들렸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교도소 안에 있는 종교 방에 있던 분이 부른 것이었다. 그분이 노래를 너무 못 불렀는데도 눈물이 났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러면서 찬양, 예배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앞서 전씨는 지난 2015년 8월 대법원에서 탈세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40억원을 확정 판결받았다. 2006년 12월 경기도 오산시 임야(林野)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다운계약서를 작성하고 양도소득세를 포탈한 혐의다. 그러나 벌금 중 1억4000만원만 납부하고, 38억6000만원을 내지 않았다. 전씨는 노역장 965일(약 2년 8개월) 유치 처분을 받고서 원주교도소에서 복역한 뒤, 지난해 2월 출소했다.“아버지, 생각하지 못한 만큼 너무 기뻐하셨다” 전씨는 “신학대학원에 가기 전에 부모님(전 전 대통령 부부)에게는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았다”며 “아버지는 치매라서 양치질하고도 기억을 못 하는 상태였는데도 말씀드렸더니 생각하지 못한 만큼 너무 기뻐하셨다”고 했다. 이어 “아버지는 ‘네가 목사님이 되면 네가 섬긴 교회를 출석하겠다’고도 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목사님이) 꼭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하나님은 저를 별로도 만들었다가 땅에도 떨어트리셨다”며 “건강하기 때문에 이렇게 생활하고 있다는 작게 생각했던 일을 감사하게 여기게 됐다”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한편 아내 박씨는 1995년 KBS 제1회 슈퍼 탤런트 선발대회 대상을 받았다. 이후 ‘젊은이의 양지’, ‘파파’, ‘태조왕건’, ‘꼭지’ 등 다수의 인기 작품에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이후 2004년 미국으로 건너가 전재용과 비밀리에 혼인 신고를 한 후 연예계에서 자취를 감췄다. 방송에서 박씨는 전씨를 좋아하게 된 이유에 대해 “저와 달리 기본적으로 성격이 온순하고 부드러워서 사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런 부분이 좋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 ‘탈북자 상대 재입북 공작’ 40대 공작원 ‘국화’, 징역 3년형

    ‘탈북자 상대 재입북 공작’ 40대 공작원 ‘국화’, 징역 3년형

    북한 국가안전보위부(보위부)에 포섭돼 탈북자 재입북 공작을 한 40대 탈북 여성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수원지법 형사11부(김미경 부장판사)는 23일 국가보안법 위반(편의 제공,회합·통신 등,목적 수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 대해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보위부 소속 해외 공작원으로 활동하며 대남공작에 가담했고 실제로 한 탈북민이 재입국하는 과정에 관여하는 등 죄질이 좋지 않다”며 “그런데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공고히 유지돼 피고인의 범행으로 실제 발생한 위협이 없다는 점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A씨는 해외에서 활동하던 2016년 국내 거주 탈북자 B씨의 연락처를 보위부에 넘겨 준 뒤 B씨에게 보위부의 지시를 따르도록 수차례에 걸쳐 기망·회유한 혐의로 지난 5월 구속기소 됐다. 보위부는 B씨에게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재입북을 권유하도록 했고, 실제로 탈북자 1명이 권유를 받고 2016년 9월 동거녀와 함께 다시 북한으로 넘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B씨 역시 이같은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아 현재 복역 중이다. A씨는 2003년 탈북해 중국으로 건너가 살다가 공안에 불법체류자로 붙잡혀 2007년 강제로 북송,2년여간 노동단련대에서 복역했다. 이후 2012년부터는 탈북자가 북한의 가족에게 보내는 돈을 전달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송금 브로커 일을 해 오던 중 2014년 지역 보위 지도원들로부터 “당신이 브로커 역할을 하는 게 다 소문이 났다”는 말을 듣고 보위부에 자수했다. A씨는 자수 과정에서 보위부에 포섭돼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정보원 활동을 시작했다. 대호명(공작과정에서 보안 유지를 위해 사용하는 명칭)으로는 ‘국화’, 보위부와 사용할 암호로는 ‘상품거래’ 용어를 부여받았다. A씨는 보위부 해외공작원으로 일하다가 2018년 11월 베트남, 라오스, 태국을 거쳐 같은 해 12월 국내로 입국했다.
  • 선거법 위반 김보라 안성시장 항소심서 징역 8월 구형

    선거법 위반 김보라 안성시장 항소심서 징역 8월 구형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보라 경기 안성시장의 항소심에서 검찰이 재차 징역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23일 수원고법 형사2부(김경란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사건 2심 결심공판에서 김 시장에게 징역 8월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은 지난 6월 치러진 1심 결심공판에서도 김 시장에게 징역 8월을 구형한 바 있다. 검찰은 “피고인의 아들까지 지지 서명에 동참했고, 지지 서명서를 선거 캠프에서도 나눠준 점 등을 보면 피고인이 지지 서명 운동을 공모했을 거라는 건 분명하다”며 “당선을 위해 지지단체를 내세워 사전 선거운동을 한 것으로 사안이 중대하다”고 구형 이유를 설명했다. 김 시장 측 변호인은 최후 변론을 통해 “검찰이 주장하는 근거들은 객관적 사실에 따른 게 아니라 대부분 추측에 의한 것이며,피고인이 지지 서명 운동을 공모했다는 객관적 증거는 없다”며 “시민단체 활동 등으로 20년간 시에 공헌해 온 피고인이 계속 시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선처해달라”고 말했다. 김 시장은 최후 진술로 “지지자들과는 후보자의 도리로 만났을 뿐 사전 선거운동을 공모한 사실은 없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지위가 주는 무거운 책임에 대해 통감하며 정치인으로서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살피겠다”고 말했다. 김 시장은 지난해 1월 서명이 포함된 지지자 2000여 명의 명단을 작성하고, 같은 해 3월 30일부터 4월 10일까지 안성시설관리공단 사무실을 7차례 방문해 명함을 나눠주는 등 불법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김 시장의 사전 선거운동 혐의에 대해 “지지 서명 자체는 경선 운동을 위한 것이지 선거운동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고,시설관리공단 방문에 대해선 유죄로 판단해 벌금 80만원을 선고했다.
  • “전남편에게 복수해달라”…美 ‘가짜 킬러 사이트’에 속아 살인 청부한 사람들

    “전남편에게 복수해달라”…美 ‘가짜 킬러 사이트’에 속아 살인 청부한 사람들

    미국에서 가짜 살인 청부 사이트에 속아 살인을 의뢰한 사람이 16년간 수백명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2일 (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렌터히트맨’(RentAHitman)이라는 가짜 살인 청부 사이트를 소개하며 웃지 못할 사연을 소개했다. 매체에 따르면, 미시간 남동부에 거주하는 웬디 웨인(52)은 지난해 전 남편에 대한 복수를 꿈꾸던 중 우연히 이 사이트를 발견했다. 고객의 문제를 맞춤형으로 해결해 준다는 살인 청부 업자가 운영하는 것으로 꾸며져 있는 이 사이트는 ‘업계’의 화려한 이력과 함께 1964년에 제정된 ‘히트맨정보보호법’(HIPPA)에 따라 고객의 비밀도 확실히 보장해 준다고 광고했다.심지어 이 사이트를 이용한 고객 댓글도 달려 있었다. 사이트에는 전국에 1만7천985명의 현장 요원이 있어 고객이 원하는 곳에서 정확히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도 적혀 있었다. 사이트 광고를 믿은 웨인은 실제로 살인을 청부했고, 지난해 7월 미시간 남동부의 한 카페에서 ‘현장요원’과 만났다. 웨인은 착수금으로 200달러를 건넸고, 일을 끝내면 5천 달러를 더 주기로 했다. 또 전 남편의 집과 직장주소 그리고 출퇴근 시간까지 자세히 설명했다. 하지만 요원은 경찰이었고, 사이트 역시 가짜였다. 웨인은 자신의 죄를 인정했고, 살인 모의 혐의로 지난 1월 법원에서 징역 9년형을 선고받았다.이 사이트에는 킬러 에이전트인 ‘구이도 파넬리’가 운영자라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북 캘리포니아에 사는 네트워크 보안전문가인 밥 이네스(54)라는 남성이 지난 2005년에 만든 것이다. 사이트 이름이 ‘렌터히트맨’인 것은 인터넷 보안전문가인 자신을 고용하면 의뢰인의 사이트를 공격(Hit)해 보안성을 점검해 주고, 사이트 홍보도 잘해서 흥행(Hit)도 시켜준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사업은 잘되지 않았고, 사이트는 사실상 방치됐다. 몇 년 후 이네스는 우연히 이 사이트와 연계된 이메일 300여통을 확인했는데, 상당수가 ‘히트맨’을 킬러로 생각해 살인 의뢰를 보내왔다. 이네스는 2005년 웹사이트 개설 이래 650∼700명이 자신에게 연락해 왔으며 약 400명은 실제 의뢰서를 작성했다고 WP에 밝혔다. 이네스는 “해당 사이트는 여러 번 언론에 노출됐지만, 여전히 의뢰서가 들어와 정기적으로 경찰에 명단을 넘긴다”고 전했다. 이어 “명단을 경찰에 넘기기 전 반드시 ‘여전히 우리의 서비스를 원하느냐’, ‘현장 요원과 계약을 추진하길 원하느냐’고 물어 확인한다”면서 “다른 사람을 헤치려는 사람에게 이 사이트는 가장 손쉬운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 사과없이 떠난 전두환의 일생…분노만 키운 全의 입

    사과없이 떠난 전두환의 일생…분노만 키운 全의 입

    빈농의 아들 출신으로 12·12 군사쿠데타를 통해 제11·12대 대통령직을 움켜쥔 전두환 전 대통령의 권력욕은 굴곡지고 어두운 대한민국 현대사를 만들어 냈다. 전씨는 12·12 군사반란,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등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일절 인정하지 않은 채 23일 세상을 떠났다. 전씨는 1931년 경남 합천의 빈농에서 10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어린 시절부터 일본인 식품공장에서 배달 일을 하는 등 가족을 부양했다. 전씨는 대구공고를 졸업한 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그는 훗날 회고록에서 “내 성적은 228명 중 끝에서 두 번째였다. 육사 합격은 내 인생에서 운명적 전환점이었다”고 밝혔다. 1955년 육사 11기로 졸업한 후 군인의 길을 걸었으나 처음부터 돋보이지는 못했다. 군 생활 초반에는 한직을 전전하다 1961년 박정희 당시 육군 소장이 일으킨 5·16 군사정변에서 육사 생도들의 지지 선언을 주도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박 소장의 눈에 띈 이후 당시 최고 권력기관이었던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실 비서관으로 기용된다. 그후 중앙정보부 인사과장, 30대대장, 1사단장, 보안사령관 등 출세가도를 걸었다. 그가 속했던 하나회의 전신 오성회도 군 내 주류 모임으로 급부상했다. 전씨가 보안사령관으로 재직하던 1979년 유신 통치의 마침표를 찍은 10·26 사태가 발생한다. 그는 하나회를 등에 업고 박정희 대통령 총격 사건 수사·처리를 맡은 합동수사본부를 이끌면서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에게 총격을 가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체포뿐만 아니라 자신의 상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마저 체포하면서 12·12 신군부 반란을 일으켰다. 1980년 5월 17일 전국 대학생들이 군부에 반기를 들고 ‘서울의 봄’이라 불리는 민주화 요구 시위에 나선다. 그러자 전씨는 ‘시국 수습’을 핑계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민주화 세력을 탄압했다. 5월 18일 서울 시위에 이어 광주에서도 ‘전두환 퇴진’ 등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자, 신군부는 계엄군·공수특전여단을 투입해 무력 진압하며 걷잡을 수 없는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같은 달 27일에야 마무리된 계엄군의 무분별한 진압은 무고한 광주시민들의 목숨을 앗아 갔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신설하며 국정 실권을 장악한 전씨는 1980년 최규하 대통령 사임 직후 선거에 단독 입후보해 제11대 대통령이 된다. 같은 해 10월 ‘7년 단임 대통령제’를 골자로 하는 새 헌법을 공포하고, 1981년 간선제로 치러진 제12대 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해 당선되며 제5공화국을 열었다. ‘3저(저금리·저유가· 저달러) 호황’을 누리는 국가 개발 시기에 정권을 잡았으나, 끊임없는 민주화운동 탄압은 그의 몰락을 앞당겼다.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대통령 직선제 요구가 거세졌고, 맞대응으로 내놓은 4·13 호헌조치는 6월 항쟁의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결국 당시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선후보가 집권여당 대표로 6·29 선언을 발표하면서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다. 1988년 대통령 임기를 마친 전씨는 여생 내내 심판대에 올랐다. 퇴임 직후 전씨가 ‘5공 청문회’에 나와 5·18 진압에 대해 “자위권 발동”이라고 답한 데 대해 이철용 평화민주당 의원이 “살인마”라고 비판한 것은 사회가 그의 책임을 묻기 시작한 상징적 사건이다. 이후 계속되는 대규모 시위에 전씨는 부인 이순자씨와 강원 백담사로 들어가 769일간 은둔 생활을 했다. 문민정부 들어 본격적인 법적 심판이 시작된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은 5·18 특별법을 제정했고, 그해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반란수괴죄 및 살인,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2심을 거쳐 1997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을 최종 선고받았다. 1997년 김영삼 정부는 국민 대화합 명분으로 그를 특별 사면했다. 전씨는 이후에도 반성 없는 모습으로 국민적 공분을 샀다.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던 전씨는 2003년 법원의 재산 명시 명령에 ‘예금 29만원’을 기재하며 사실상 납부를 거부했다. 2006년 노무현 정부는 전씨 등 3년 이상 형을 선고받은 176명의 서훈을 취소하고 훈장 환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전씨는 훈장 반환도 거부하다 7년 만인 2013년에야 12·12 이후 받은 9개 훈장을 반납했다. 2017년 4월 출간한 전두환 회고록도 논란이 됐다. 5·18 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비상계엄은 “정당한 법 절차를 따랐다”고 주장했다.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두고는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했다. 5·18 관련 단체들은 사자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적시 등으로 고발했다. 전씨는 1심 내내 알츠하이머 투병, 고령 등을 이유로 출석을 거부하다 2019년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고 지난해 11월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불복, 항소해 재판을 진행하다 오는 29일 변론을 앞두고 있었다. 올해 8월 다발성 골수종 확진을 받았던 전씨는 생전 가깝게 지낸 노 전 대통령이 별세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 전두환 전대통령 사망-5·18 유혈진압 사죄없이 떠났다

    전두환 전대통령 사망-5·18 유혈진압 사죄없이 떠났다

    12·12 군사 반란을 일으키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사망했다. 전씨의 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화 투쟁을 벌인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전씨의 동료이자 후계자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전씨까지 모두 세상을 떠남에 따라 현대사의 한 페이지가 완전히 넘어가게 됐다. 전씨는 생의 마지막 날까지 자신의 과오에 대한 일말의 사과나 반성을 하지 않았다. 전씨는 오전 8시 40분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쓰러져 8시 55분쯤 경찰과 소방에 신고됐다. 경찰은 오전 9시 12분쯤 사망 사실을 확인했으며, 시신은 신촌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졌다. 전씨는 지난 8월 악성 혈액암인 다발성 골수종 확진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었다. 1931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전씨는 1955년 육사(11기)를 졸업한 뒤 군인으로 승승장구했다. 군부 내 사조직 ‘하나회‘를 만들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지원했고, 10·26 사태가 발발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정권을 찬탈하기 위한 12·12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하고 간선제 투표로 11, 12대 대통령에 올라 7년여간 독재 통치를 했다. 전씨는 내란죄 등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가 1997년 12월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이후 전씨는 과오에 대해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약속했던 재산 헌납도 지키지 않았다. 추징금 2205억원 중 미납한 금액은 956억원에 달한다. 최근에는 광주 시민들을 향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청와대는 고인의 명복을 빌었지만, “끝내 역사의 진실을 밝히지 않고 진정성 있는 사과가 없었던 점에 대해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조문이나 조화도 하지 않기로 했다. 대선후보 모두 빈소를 찾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전씨는 명백하게 확인된 것처럼 내란 학살 사건의 주범이다. 최하 수백 명의 사람을 살상했고 중대 범죄를 인정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처음엔 “전직 대통령이시니까 조문을 가야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가 2시간 뒤 조문을 가지 않겠다고 번복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순자씨와 아들 전재국·재용·재만씨, 딸 효선씨가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이다. 발인은 27일 오전 8시.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광주에 무지개 떴다” 전두환 사망한 날 목격담·사진 속출

    “광주에 무지개 떴다” 전두환 사망한 날 목격담·사진 속출

    23일 광주를 비롯한 남부 지역에 무지개가 목격됐다. 이날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광주에 무지개가 떴다’는 목격담과 사진이 다수 올라왔다. 온라인 커뮤니티 클리앙에는 오전 11시 48분쯤 ‘전두환 떠나자 광주에…’라는 제목의 글과 사진이 올라왔는데, 글쓴이는 “오늘 방금 찍었다”라고 전했다. 트위터에도 광주시청 위로 커다랗게 드리워진 무지개 사진이 공유됐다. 이날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무지개 사진은 광주 외에도 전남 나주, 경남 김해 등에서도 속속 올라왔다. 공교롭게도 이날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망해 무지개와 이를 연관 짓는 이들이 많았다.작곡가 김형석은 트위터에 광주에서 촬영된 무지개 사진을 공유하며 “광주에 무지개가 떴다네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하다 억울하게 숨진 수많은 분들을 애도합니다”라고 썼다. 김형석은 전씨의 사망 소식에 “안타깝지 않은 죽음이란 것도 있다”라고 평가했다. 전씨는 이날 오전 8시 40분쯤 자택 화장실에서 쓰러져 오전 8시 55분쯤 경찰과 소방에 신고됐으며, 경찰은 오전 9시 12분쯤 사망 사실을 확인했다. 전씨는 최근 알츠하이머와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 등의 지병을 앓았다. 군부 내 사조직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의 수장이었던 전씨는 1979년 12월 12일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국을 장악하고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로 인해 1980년 ‘서울의 봄’으로 상징되는 민주화 열망을 짓밟았고, 5·18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하기에 이르렀다.간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취임했지만, 1987년 민주항쟁에 밀려 퇴임 뒤 백담사로 쫓겨나듯 물러나 칩거했다. 이때 재산 헌납을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 집권 때인 1995년 구속기소돼 1996년 내란·내란목적살인죄·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수감됐다. 2년 만인 1997년 12월 22일 특별사면으로 석방됐지만 전직 대통령 예우 등은 박탈됐다. 대법원에서 추징금 2205억원이 확정됐지만 그는 전 재산이 ‘29만원’에 불과하다며 버텼고, 정부와 검찰의 추징금 환수 노력에도 끝내 완납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다. 군사 쿠데타와 집권 기간 동안의 민주화 운동 탄압, 무엇보다 5·18민주화운동 유혈진압에 대해 단 한번도 진정성 있게 사과하지 않았다.
  • 용인 사육장 탈출 곰 1마리 추가 사살…“갑자기 달려들어”

    용인 사육장 탈출 곰 1마리 추가 사살…“갑자기 달려들어”

    경기 용인시의 한 곰 사육장에서 탈출한 반달가슴곰 5마리 가운데 1마리가 추가 사살됐다. 23일 용인시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40분쯤 용인시 호동 한 농장 인근에서 반달가슴곰 1마리가 포획단에 의해 사살됐다. 이 곰은 갑자기 튀어나와 포획단을 향해 달려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달가슴곰이 사살된 지점은 곰이 탈출한 사육농장에서 직선 거리로 2km 가량 떨어진 위치다. 시와 포획단은 사살된 곰이 전날 사육농장 부근을 배회하다 산능성이를 타고 반대편인 호동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시 관계자는 “곰이 갑자기 달려들어 어쩔 수 없이 사살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남은 한 마리를 수색 중”이라고 전했다. 수색 작업은 한강유역환경청 직원과 엽사 등 30여 명이 투입돼 생포를 원칙으로 이뤄지고 있다. 열화상카메라가 탑재된 드론 1대와 무인트랩 2대가 동원됐고, 수색견은 곰을 쫓아낼 우려가 있어 곰이 민가로 접근했을 때만 동원할 예정이다. 앞서 22일 오전 10시 30분쯤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의 한 곰 사육농장에서 반달가슴곰 5마리가 탈출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한강유역환경청 직원이 농장 인근에서 3마리를 발견해 2마리를 유인해 생포했다. 다른 1마리는 마취총을 쐈지만 쓰러지지 않고 덤벼들어 결국 사살했다. 16마리의 사육곰이 머물고 있는 이 농장에서는 지난 7월에도 반달가슴곰 1마리가 탈출한 적이 있다. 당시 농장 주인은 불법 도축 사실을 숨기기 위해 1마리가 탈출했는데도 2마리가 탈출했다고 허위 신고했다. 그는 지난해 6월에도 불법 도축을 하다 1심에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결국 경찰은 지난달 공무집행방해, 동물보호법 위반, 야생생물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농장주를 구속했다.
  • “더 뚱뚱해서”…흉기로 친구 찌른 50대의 황당한 범행 이유

    “더 뚱뚱해서”…흉기로 친구 찌른 50대의 황당한 범행 이유

    “술 마시던 중, 둘 중 더 뚱뚱한 사람을 범행 대상으로….” 흉기로 친구를 3차례 찔러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50대 남성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남성은 지인 2명과 함께 술을 마시던 중 한 명에게 이유없이 흉기를 휘둘렀다. 범행 동기를 묻자 남성은 “더 뚱뚱해서”라고 진술했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윤승은)는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A씨(58)에게 지난 18일 1심과 같이 징역 8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9월 지인 B씨 주거지에서 자신의 친구 C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B씨는 늑골이 부러지고 소장 등이 흉기에 찔려 전치 4주의 상해를 입었다. C씨는 술에 취해 잠들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수사기관에서 ‘술을 마시던 중 둘 중 1명을 살해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더 뚱뚱한 B 씨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부는 “아무런 이유 없이 피해자를 상대로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범행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어 그 동기나 경위에 참작할 바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해자로서는 친구인 피고인과 술을 마시다가 잠시 졸고 있는 틈에 갑작스런 공격으로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다”면서 “피해자는 현재까지 피고인을 용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 5·18조사위 “사죄 기회 있었지만 변명 일관…희생자 고통 가중”

    5·18조사위 “사죄 기회 있었지만 변명 일관…희생자 고통 가중”

    “진상규명 지속할 것…신군부 핵심인물들 더 늦기 전에 진실 고백해야”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진상규명위)는 2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망에 대해 국민에게 사죄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다면서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진상규명위는 이날 “전두환 씨는 지난 41년간 피해자와 국민 앞에 진실을 밝히고 사죄할 기회가 있었으나 변명과 부인으로 일관했다”면서 “이는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고통을 가중시켜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씨를 포함한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죄의 핵심 인물들에게 출석요구서를 발송했고, 전두환 씨는 지병을 이유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면서 “그의 사망에도 법률이 부여한 권한과 책임에 따라 진상규명을 위한 엄정한 조사를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진상규명위는 “신군부 핵심 인물들은 더 늦기 전에 국민과 역사 앞에 진실을 고백할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1979년 12월 12일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당시 국군보안사령관은 5·18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하고 같은 해 9월 1일 통일주체국민회의 간접선거를 통해 11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1997년 대법원에서 5·18민주화운동의 유혈진압과 관련해 내란수괴, 내란목적살인죄 등 으로 무기징역 판결이 확정됐다.
  • 층간소음 흉기 난동 40대…스토킹 처벌법 위반 혐의도 추가

    층간소음 흉기 난동 40대…스토킹 처벌법 위반 혐의도 추가

    층간소음으로 갈등을 빚던 빌라 아래층 일가족 3명에게 흉기를 휘두른 40대 남성에게 경찰이 이른바 ‘스토킹 처벌법’ 위반 혐의도 적용하기로 했다. 인천 논현경찰서는 살인미수와 특수상해 혐의로 구속한 A(48)씨에게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 처벌법) 위반 혐의를 추가해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23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A씨는 사건 당일인 지난 15일 피해자들의 의사에 반해 여러 차례 아래층을 찾아가 행패를 부렸다”면서 “지난 9월부터 A씨의 지속적인 괴롭힘이 있었다고 판단해 스토킹 처벌법 위반 혐의를 함께 적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1일부터 시행된 스토킹 처벌법은 반복적으로 스토킹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했으며,흉기 등을 휴대해 범죄를 저지르면 5년 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A씨는 지난 15일 오후 4시 50분 인천 남동구 한 빌라에서 아래층에 사는 60대 B씨 부부와 20대 딸 등 일가족 3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하려 한 혐의를 받고있다. A씨는 경찰에서 “아래층에서 소리가 들리고 시끄러워서 항의했고 평소 감정이 좋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이번 흉기 난동 사건은 당시 출동한 경찰관 2명이 차례로 현장을 이탈한 뒤 뒤늦게 합류한 사실이 알려지며 부실 대응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 인천 층간소음 살인 미수 40대男 ‘스토킹 처벌법’ 혐의 추가

    인천 층간소음 살인 미수 40대男 ‘스토킹 처벌법’ 혐의 추가

    인천서 발생한 ‘층간소음 살인미수 사건’을 조사 중인 경찰이 피의자 A씨에 대해 ‘스토킹 처벌법’ 위반 혐의도 추가했다. 23일 인천 논현경찰서는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구속된 A씨(48)에게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추가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A씨가 지난 9월부터 아래층에 살고 있는 피해자들을 지속적으로 괴롭힌 것으로 보고 스토킹 처벌법 위반 혐의를 추가했다. 지난 4월 공포된 스토킹처벌법은 스토킹 행위를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주거지, 직장, 학교 또는 그 부근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행위 △우편·전화·팩스 등 정보통신망 등을 이용해 물건, 글, 그림, 음향, 영상 등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 △주거 또는 그 부근에 놓여 있는 물건 등을 훼손하는 행위로 규정했다. 또 재발 우려가 있고 긴급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피해자의 주거지 100m 이내 접근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등을 결정하고, 이를 위반하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하도록 했다. 이런 조처에도 행위를 반복·지속할 시 스토킹 범죄에 해당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형사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 A씨는 지난 15일 오후 4시50분쯤 인천시 남동구 서창동 한 빌라 3층에 거주하는 40대 여성 B씨와 60대 남성 C씨 부부, 자녀인 20대 여성 D씨 가족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가 휘두른 흉기에 B씨는 목이 찔려 의식을 잃었고, C씨와 D씨는 얼굴과 손을 찔렸다. 당시 A씨는 피해 가족의 신고를 받고 경찰관 2명이 출동한 가운데 범행을 했다. 인천경찰청은 해당 경찰관들의 미흡 및 소극 대응을 인정하고 사과문을 게재했다. 해당 경찰관들은 대기발령 조치됐으며, 논현경찰서장은 직위해제 됐다.
  • 사죄 없이 “찬송가 들려” 목회자 된다는 전두환 아들 [김유민의돋보기]

    사죄 없이 “찬송가 들려” 목회자 된다는 전두환 아들 [김유민의돋보기]

    지난달 26일 먼저 세상을 떠난 ‘군사 쿠데타 동료’ 노태우 전 대통령의 유족과 달리 23일 사망한 전두환 전 대통령 유족은 과오를 인정하지 않았다. 부인인 이순자씨와 아들 재국·재용·재만씨, 딸 효선씨 중 어느 누구도 전씨가 미납한 추징금을 납부하겠다거나 5·18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사죄하지 않았다. 부인 이순자씨는 2017년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를 내고 “정략적인 역사 왜곡 앞에서 나는 몇 번이고 전율했다”라며 “당시 수사책임자인 동시에 정보책임자였던 그분은 결코 발포 명령을 내릴 위치에 있지 않았다”라며 전씨의 쿠데타를 두둔했다.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죄 재판을 받으러 광주를 오갈 때에도 전씨와 동행하면서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노태우씨는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1997년 대법원에서 추징금 2628억 원을 선고받았고 16년 만인 2013년 추징금을 완납했지만 전두환씨는 2200억 원의 추징금에 “통장에 29만원 밖에 없다”며 1020억 원 정도를 납부하지 않았다. 전두환씨 장남 재국씨는 “온 가족이 돈을 모아 부친(전두환)의 추징금을 완납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연희동 자택이 공매에 넘어가자 이에 반발하며 소송을 통해 본채를 사수했다. 또한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실이 드러나 국정감사에 불려 나와 사과하기도 했다.하루 일당 400만원…황제노역 논란“전두환, 아들 신학 공부에 기뻐해” 전두환씨의 차남 재용씨는 양도소득세 포탈 등의 혐의로 처벌받으면서 부과된 40억원의 벌금을 내지 않고 ‘황제 노역’을 하다가 비난을 받았다. 전재용씨는 2006년 12월 경기도 오산시 임야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다운계약서를 작성하고 양도소득세를 포탈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015년 8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40억원을 선고받았다. 전씨는 벌금 40억원에서 불과 1억4000만원(3.5%)만 납부하면서 원주교도소에서 약 2년8개월간 하루 8시간씩 노역을 했고 지난해 2월 출소했다. 하루 일당이 400만원인 셈이라 당시 논란이 됐다. 그리고 지난 3월 극동방송 ‘만나고 싶은 사람 듣고 싶은 이야기’에 출연해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원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며, 이 소식에 아버지 전두환씨가 굉장히 기뻐하고 있다고 말했다.전재용씨는 “교도소에서 2년8개월이란 시간을 보내게 됐다. 처음 가서 방에 앉아 창살 밖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찬송가 소리가 들렸다”라며 “종교방에 있던 분이 노래를 너무 못 불렀는데도 눈물이 났다. 그러면서 찬양, 예배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목회자의 길을)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전씨는 “부모님에게 말씀드렸더니 생각하지 못한 만큼 너무 기뻐했다”라며 “아버지는 ‘네가 목사님이 되면 네가 섬긴 교회를 출석하겠다’고도 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꼭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강조했다. 광주사태 가해로 국민 지탄…아들의 사죄 이러한 유족의 행보는 지난달 별세한 노태우씨 유족과 대비되는 것이기도 하다. 노태우씨의 아들 재헌씨는 부친을 대신해 여러 차례 5·18에 대한 사과의 뜻을 밝혔다. ‘삼가 옷깃을 여기며 5·18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분들 영령의 명복을 빕니다. 진심으로 희생자와 유족분들께 사죄드리며 광주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노재헌씨는 2019년 8월 23일 두 전직 대통령의 직계가족 중 유일하게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사죄했다. 지난해 5월 29일에는 5·18 40주년 기념 배지를 달고 광주 남구 양림동에 위치한 오월어머니집을 찾았다.재헌씨는 오월어머니집 방명록에 ‘오늘의 대한민국과 광주의 정신을 만들어주신 어머님들과 민주화운동 가족 모든 분들께 경의와 존경을 표합니다’고 적었다. 같은해 6월23일에는 CBS라디오와 인터뷰에서 ‘5·18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치유와 화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100번이고 1000번이고 사과를 해야 되고 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일어나지 말아야 될 5·18과 관련해 항상 마음의 큰 짐을 가지고 계셨다”며 “특히 병상에 누운 뒤부터는,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상황이 오면서 참배를 하고 사죄의 행동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고 저한테도 고스란히 마음의 짐이 됐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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