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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공화국과 張勉](23)-지지부진한 혁명과업(下)

    장면(張勉)정부에게 부정축재자 처벌은 정치비리 사건 처리보다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국민감정을 만족시키려면 ‘부정축재’범위를 넓혀 주요 기업인들을 대부분 구속하고 그들의 재산을 국고에 환수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경제활동을 크게 위축시켜 가뜩이나 어려운 국민생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은 불보듯 뻔한 사실이었다.더욱이 국정지표의 으뜸으로 ‘경제제일주의’를 내건 장면정부로서는 민간경제를 파국으로 몰고갈 수도 있는 정책을 섣불리 시행하기가 어려웠다. ‘국민감정을 따른다’는 명분과 ‘경제건설의 토대를 망칠 수 없다’는 당위 사이에서 그 수위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가 장면정부의 고민이었다.그고민은,장면이 총리로 등극해 처음 민의원에서 밝힌 시정방침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장면은 우선 “구정권 하에서 부정·불법 축재한 자를 처단할 것은 물론이나 사업과 경제를 마비시키지 아니하는 적절한 한도는 있어야 한다”고 전제했다.이어 과도정부가 조세범처벌법에 따라 적발한 46개사,23명을 계속 수사하는 한편 추가조사도 벌이겠다면서 “증거를 포착하기 곤란한 만큼 국민의 협조가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부정축재자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정치비리 관련자에 대한 것 못지않았다.이승만(李承晩)이 하야한 지 10여일만인 1960년 5월10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부정축재자의 재산을 환수하라”는 데모가 일어날 정도였다. 반면 부정축재의 범위를 정하고 범죄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기는 정치사건에 비해 훨씬 힘들었다.게다가 허정(許政)과도정부가 부정축재자 처리를 ▲징역형보다는 재산형(財産刑)으로 ▲그것도 현금이 아니라 주식으로 헌납하도록 테두리를 정한 터여서 운신의 폭은 좁았다. 장면정부가 출범한 나흘 뒤인 8월27일 참의원(상원)은 ‘부정축재자 조사특별위원회 설치에 관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31일에는 정부가 부정축재한 46개 업체에 벌과금 87억환,추징금 109억환을 통고했다. 장면정부는 정부대로,국회는 국회대로 추진하던 부정축재자 처벌은 정치비리 관련자 처리와 맞물려 소급입법 대상으로 넘어간다.개정헌법을 바탕으로 부정선거관련자 처벌법,반민주행위자 공민권제한법,특별재판소 및 특별검찰청조직법은 60년 말에 속속 제정되지만 부정축재 특별처리법만은 해를 넘긴다. ‘부정축재처벌법’제정이 늦어진 까닭은 장면정부의 경제진흥책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61년 봄 국토건설사업을 시작해야 했고 경제개발5개년계획(1962∼66년)을 거의 성안(成案)한 입장에서 민간경제계를 ‘죽일지도 모르는’모험을 감행할 수는 없었다.더욱이 장면정부는 60년 12월5일부터 닷새동안 ‘종합경제회의’를 열어 경제개발을 해나가는 데 민간경제계와 보조를 맞추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부정축재처벌법’안은 61년 2월9일 민의원을 통과한다.60년 4월26일을 기준으로 그 5∼8년전까지를 조사대상 기간으로 정해 ▲지위 또는 권력을 이용해 부정한 방법으로 축재한 자 ▲‘3·15부정선거’에 1천만환 이상 정치자금을 제공한 자 ▲지난 5년간 연 1천만환 이상 탈세한 자를 처벌대상으로 삼았다.경쟁입찰에서 담합했거나 재산을 해외도피한 자,뇌물수수로 연 600만환 이상 이득을 취한 공무원도 부정축재자에 포함시켰다.경제계는 예상을 뛰어넘는 엄격한 기준에 큰 충격을 받았다.법안대로라면 처벌받을 사람이 5만7,000여명이나 되는 것으로 추산됐다.61년 초 결성된 한국경제협의회(전경련의 전신)는 대한상의·무역협회·방직협회·건설협회와 뜻을 모아 법안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로 했다. 3월4일 몇몇 일간지에 발표한 경제 5단체 성명서의 뼈대는 다음과 같다.“이 법안이 그대로 참의원을 통과하면 사회에 일대 혼란을 불러들여 기업인의손발을 묶을 것이다.기업활동을 가로막고 민족자본을 흐트러뜨리며 나아가분열을 조장하는 이 법안을 제정하지 않기를 충심으로 진언한다.”이 성명서는 사회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그 안에 “북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남한의 경제 번영이라면,이 법안은 북괴에게 일석이조의 효과를 약속하는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는 구절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민의원이 곧바로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경제협의회 대표를 출석시키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성명서 해프닝’은 경제5단체가 해명서를 신문에 싣는 것으로 결말짓지만 그 과정에서 정치권은 “중소상공인 5만여명이 피의자로 묶인다면 경제진흥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경제계 주장을 어느정도 받아들였다. 그 결과는 참의원에서의 법안 심의에 반영됐다.민의원에서 통과된 법안 내용을 참의원이 대폭 완화한 것이다.수정안은 처벌대상을 ▲3·15선거에서 자유당에 자진해서 3,000만환 이상을 제공한 자 ▲공무원 및 정당인으로서 부정하게 재산상 이득을 취한 자로 제한했다.피의자는 5만7,000여명에서 600여명으로 크게 줄었다. 참의원의 수정안은 4월12일 민의원에서 그대로 통과됐다.재석 163석 가운데찬성 138표,반대 25표였다.장면총리는 각료를 모두 대동하고 표결 현장에 참석해 재계를 지원했다. 국민감정을 만족시키느냐,아니면 경제진흥을 위해 정치에 연루된 경제인들을 용서하느냐 라는 갈림길에서 장면정부는 후자를 택했다.경제발전이야말로시대적인 사명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법에 따른 부정축재처리위원회(위원장 沈宗錫 참의원 의원)는 5월4일 가동됐다.위원회는 처벌 대상자에게 5월16일까지 자진신고하라고 공표했는데 그 마감일에 쿠데타가 터졌다. 군사정권은 61년 12월20일 기업체 30개사에 494억여환,공무원 32명에 75억환의 부정축재분을 환수한다고 최종 통보했다.이어 62년 1월23일 백인엽(白仁燁)예비역 육군중장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등 부정축재자 12명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張총리“소급입법 위헌”첫 지적 장경순(張慶淳·73)씨는 민주당 신파 출신으로 5대 국회에 진출,재경분과위원회에서 활약했다.김영선(金永善)재무장관의 추천으로 중앙정계에 데뷔한그는 장면(張勉)정부의 경제관련 정책을 가까이서,두루 지켜보았다. “부정축재자 처리를 민의원에서는 재경분과위에서 맡았습니다.민주당 신파건 구파건 구분없이 엄중 처벌해야 한다는 데는 뜻이 같았지요.하지만 장면총리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장 전의원은,민의원이 ‘부정축재자 처벌법’제정을 놓고 갑론을박하던 어느날 밤 장총리가 신파 간부 15명을 중앙청으로 불러 회의를 열었다고 했다.한명씩 돌아가며 발언한 뒤 장총리는 “특별법을 만드는 것은 좋다.그러나 제정 후에 위헌 판정을 받으면 어쩌겠느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소급입법은 위헌이므로 개헌을 거쳐야 가능하다’는 생각들을 못했기 때문에 장총리의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는 것.그는 “장총리는 특별법 제정에 끝까지 신중을 기했지만,여론의 압력이 거센데다 윤보선(尹潽善)대통령마저 10월10일 특별담화를 발표해 독촉하는 바람에 소급법을추진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장 전의원은 부정축재자 처벌과 관련해 민주당이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말들이 나돌았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고 해명했다.만약 정치자금을 불법으로 챙겼다면 5·16쿠데타 후에 무사했겠느냐는 설명이다. 다만 몇몇 의원이 개인적으로 욕심을 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가령 민주당 이(李)모 의원이 나서 기업인들을 위협하는 발언을 하면 주위에서 “또낙전지변(落錢之辯=돈 달라는 말)이군”하며 혀를 차곤 했다고 기억했다. 장 전의원은 “장면정부가 몇년만 계속했어도 우리 경제가 훨씬 빨리,그리고 정경유착·빈부격차와 같은 부작용 없이 발전했을 것”이라며여러가지 근거를 들었다. 먼저 장총리를 비롯해 경제각료들이 모두 열의에 차 있었음을 꼽았다.“김영선장관 집으로 전화할 때는 새벽 5시 전에 해야 했다.그 시각이 지나면 이미 출근하고 없었다.참 부지런하고 청빈한 분들이었다”고 아쉬워했다. 국회 분위기도 마찬가지여서,의원 대부분은 새로 태어나야 한다는 각오 아래 소장층은 건설복을 입고다니며 새생활운동을 실천했다고 회고했다.또 국정감사를 앞두고는 의원들이 “일체의 향응에 응하지 않겠다”는 결의도 했다는 것. “서민생활 안정에 주력해 세법도 많이 개정했다”고 밝힌 장 전의원은 자신이 발의해 근로소득세 면세점을 1만6,500환에서 3만환으로 높였다고 공개했다.“하루벌이가 1달러(당시 달러당 1,300환)도 안되는 근로자에게서 소득세를 받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주장해 통과시켰다고 한다. 그는 5·16쿠데타후 민주당 재건에 참여,6대 국회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이후에도 “당복(黨福)이 없어(당을 잘못 선택했다는 뜻)” 낙선을 거듭하다“가족을 먹여살리려고” 정치를 포기하고 사업가로 돌아섰다.지금은 여권전직의원들의 모임인 ‘일오회(一五會)’회장으로 있다. “장면정부를 무능·부패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악선전일 뿐”이라고 잘라말한 장 전의원은 “장면정부때 데모하다가 죽거나 다친 사람 있느냐”“그때경제비리가 무엇이 있었냐”고 거듭 반문하면서 “데모가 전투처럼 변한 거나 대형 경제사건이 터진 것도 모두 박정희(朴正熙)정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용원 기자
  • 美, 총기소지 규제 강화법안 마련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27일 총기류와 화약류의 판매 및 소지에 대한 규제를 더욱 강화한 이른바 ‘브래디 빌’ 법안’을 마련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총기류 단속 강화를 지지하는 의회인사들과 시민들이 참석한 백악관 행사에서 현재 적용되고 있는 ‘브래디법’을 더욱 강화,총기류에 어린이 보호장치 의무장착,총기구매자의 신원조사,화약류의 규제대상적용 등을 새로 포함한 법안을 제시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청소년시절 범죄경력자는 영원히 총기소지를 못하며 ▲총기소지 연령을 현 18세에서 21세로 높이며 ▲청소년 총기범죄에 대해 부모에 책임을 물리도록 했다. 또 다이너마이트와 뇌관 등 화약류를 규제대상에 포함시킨 것을 비롯해 한달내 2개이상의 총기류를 살 수 없게 했으며,총기판매자는 기록을 반드시 보관해야함은 물론 구매자는 총기를 사기 위해 반드시 3일동안 기다리는 기간을 갖도록 규정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 법안을 의회에 보낼 종합범죄대책 법안의 일환으로 제시했는데 특히 어린이들이 총기를 접하게한 부모에게는 3∼10년의 징역형과1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백악관은 콜로라도주 컬럼바인 고교 총기난동의 여파로 이 법안이 통과될분위기가 마련됐다고 보고 있으나 미 총기류협회(NRA)의 강력한 로비를 받는 공화·민주 양당 지도자들은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통과여부는 불투명한 상태이다.
  • 엄마살해범 잡은 ‘4세 증언’…서울지법,증거력 인정

    법원이 살인방화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4세 여자아이의 증언을 받아들여피고인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서울지법 형사합의21부(재판장 金二洙 부장판사)는 20일 돈문제로 이웃집주부를 살해하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집에 불을 지른 이모 피고인(35·실내악 이벤트업)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김모양(당시 4세 10개월)의 증언을 인정,이피고인에게 살인죄 및 현주건조물방화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4세 아이라도 같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정신능력이뛰어난데다 사건의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 일관된 증언을 하고 있어 증언력과 신빙성이 인정된다”면서 “피고인의 알리바이는 피고인 가족의 증언에도불구하고 믿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씨는 96년 8월 빚독촉을 하는 이웃집 주부 김모씨(당시 28세)와 말다툼끝에 김씨를 목졸라 숨지게 하고 김씨의 딸인 김양을 목졸라 기절시킨 뒤 집에 불을 지른 혐의로 지난해 10월 구속기소됐다. 사건의 목격자였던 김양은 두개골 골절상과 다리에 화상을 입고 기절했지만기적적으로 구조된 뒤 이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경찰은 김양의 진술을 토대로 이씨를 살해용의자로 검거했으나 만 16세 미만은 법정에서 선서의무가 없는데다 위증죄 처벌도 불가능한 선서 무능력자로 분류된 점 등 때문에 석방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검찰은 2년동안의 보강수사 끝에 지난해 10월 이씨를 구속기소했다. 김양의 증언력 인정 여부는 6개월간의 법정공방으로 이어졌다.검찰은 김양이 이씨의 외모 등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이씨가 살해범이라고 주장했으나 이씨의 변호인은 이씨의 알리바이와 함께 경찰이 김양의 진술을 유도,왜곡했다며 공소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그러나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을 인정,김양의 증언을 증거로 채택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
  • 사면·복권 주요인물

    22일 발표된 특별사면 대상에는 39년째 복역중인 미전향 장기수 禹용각씨(71)를 포함,많은 공안·시국 사범들이 포함돼 있다. ◆禹용각씨=평북 영변출신으로 지난 58년 동해안으로 침투하던 중 울릉도 서북 해상에서 검거됐다.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9세의 나이에 수감돼 지금까지 대전교도소 특별사동 독방에서 보냈다.뉴욕타임스는지난해 3월 ‘40년 동안 단 한번의 면회도 없이 독방에 수감돼 있는 양심수’라고 禹씨를 소개,석방을 촉구하기도 했다. ◆高永復 전 서울대 명예교수(71)=이화여대 강사로 재직하던 지난 61년 9월북한에 있는 삼촌의 소식을 전하며 접근한 북한공작원에게 포섭됐다.96년까지 ‘부부간첩 최정남·강연정’ 등 북한공작원 6명과 수차례 접촉,은신처를 제공하는 한편 국내정세를 보고해온 혐의로 97년 11월 구속돼 징역 2년을선고받았다.1년3개월 복역했다. ◆趙相綠씨(53)=재일 조총련 간첩단 사건으로 지난 78년 2월 구속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20년 동안 교도소에서 보냈다.남파간첩이 아닌 공안사범 가운데 최장기수다.76년 일본 명치대로 유학간 뒤,조총련계 친지들로부터 북한의 주체사상 등을 교육받고 귀국,가족에게 북한식 통일론 등을 가르친 혐의를받았다. ◆任鍾晳씨(32)=지난 89년 전국대학생 대표자협의회(전대협) 의장에 선출돼학생운동을 주도했다.林秀卿씨 밀입북과 관련,같은해 12월 체포돼 징역 5년에 자격정지 5년을 선고받고 3년5개월 동안의 수감끝에 92년 12월 가석방됐다.현재 청년정보문화센터 소장으로 시민단체와 연대해 활발한 사회운동을펼치고 있다. ◆林秀卿씨(30)=한국외국어대 4학년에 재학중이던 지난 89년 7월 북한에 밀입북,평양에서 열린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했다.이로 인해 구속돼 징역 5년에 자격정지 5년을 선고받은 뒤 수감생활을 하다 92년 12월 석방됐다. 현재 미국에 유학중이다. ◆徐敬元 전 국회의원(61)=평민당 국회의원 시절인 88년 8월 북한에 3일 동안 밀입북한 혐의로 구속돼 8년6개월 동안 복역했다.지난해 3월 가석방으로풀려났다.徐 전 의원은 이번에 잔형면제 및 복권 조치됐다. ◆黃秀英씨(54·필명 黃晳暎)=지난89년 밀입북한 뒤 미국과 독일 등 해외에서 도피생활을 하다 밀입북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뒤 지난해 3월 가석방됐다. ◆崔虎敬씨(41)=지난 92년 중부지역당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崔씨는 지난해 8월 8·15특사에서 준법서약서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면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번 사면에서 징역 20년으로 감형됐다. ◆朴志晩씨(40)=고 朴正熙 대통령의 외아들이다.지난 89년 코카인 흡입 혐의로 처음 입건된 이래 10년 동안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 혐의로 적발돼적발-선처-재적발의 악순환을 되풀이하면서 4차례나 구속됐다.지난해 4월 히로뽕 흡입 혐의로 4번째로 구속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뒤현재 공주치료감호소에서 치료감호를 받고 있다. ◆朴基平씨(40·필명 박노해)=‘노동자 시인 박노해’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지난 91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사건과 관련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지난해 8·15사면 때 준법서약서를 쓰고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지난해11월 노동부 공무원을상대로 특강을 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白泰雄씨(36)=사노맹 상임중앙위원으로 활동하다 92년 4월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지난해 8·15사면 때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金載千 patr
  • 핵주먹 타이슨 내일‘심판의 날’

    [워싱턴AP연합] ‘핵주먹’마이크 타이슨(32)이 영원히 글러브를 벗게 되는가-.자격정지 19개월만에 가진 복귀전에서 통쾌한 KO승을 거둔 타이슨은 6일(한국시간) 자동차 추돌사고를 일으킨 운전자를 폭행한 혐의로 최종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성폭행으로 철창신세를 지다 가석방된 후 보호감찰을 받고 있는 타이슨이또다시 유죄판결을 받으면 이제는 영원히 링을 떠나야 할 처지.2급폭행으로분류된 타이슨은 이번 재판에서 최고 2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고 그렇게 될 경우 그를 가석방시킨 인디애나법원에서도 징역형을 선고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타이슨을 ‘움직이는 시한폭탄’이라며 징역형을 요구할 것처럼 보였던 담당검사와 원고의 태도가 그동안 많이 누그러져 실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또 타이슨은 거액을 주고 법정 밖에서원고측과 타협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 모든 그린벨트 땅 거래허가제

    ◎건교부,투기억제 위해 25일부터 3년간 올 연말로 예정된 그린벨트 재조정을 앞두고 전국의 모든 그린벨트 지역이 ‘토지거래계약 허가구역’으로 새로 지정돼 투기행위 단속이 대폭 강화된다. 건설교통부는 현재 그린벨트로 묶여있는 수도권·부산권·대구권·광주권 등 전국 14개 권역 5,397㎢(전국토의 5.4%)를 오는 25일부터 2001년 11월24일까지 3년동안 ‘토지거래계약 허가구역’으로 지정한다고 18일 밝혔다. 이에 따라 ▲주거지역 270㎡ ▲상업지역 330㎡ ▲공업지역 990㎡ ▲녹지지역 330㎡ ▲미지정지역 270㎡ 이상의 그린벨트내 토지를 거래할 때는 계약체결 전에 시장·군수·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기준면적 미만의 소규모 토지거래는 사후신고 절차만 밟도록 했다. 시·군·구청의 허가를 받지 않고 계약을 하면 2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거나 계약체결 당시 땅 값의 30%에 이르는 금액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그린벨트 지역은 지난해 공시지가로 46조7,000억원 규모로 24만5,000가구 74만2,000명이 거주하고 있다.이 중 광역시 이상의 권역에 61만1,000명,수도권에는 35만5,000명이 살고 있다.
  • 해방후 첫 사형수 시인 兪鎭五(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1)

    ◎詩 낭독 탁월한 분단시대 최고 저항시인/중학생때 일본아이 자주 때려 형사 등살에 渡日/1946년 ‘국제청년데이’ 축시 낭독 10만 군중 갈채/지리산 문화공작대장 활약중 압송돼 사형 언도/‘아내와 월북했다’ 가설 바로잡는일 ‘국민의 몫’ 변혁기 문학은 사회와 역사 발전의 거울로서의 역할을 맡아왔다.해방의 공간에서 또 독재와 민주화의 공간에서 우리 문학이 줄곧 본연의 자리를 지켜왔느냐에는 많은 평가들이 엇갈리고 있다.그 가운데 새로운 세기는 다가오고 이제 우리 문학의 새좌표 설정이 요구되고 있다.이를 위해 그동안 우리 문학에 새겨져온 숱한 갈등과 번뇌의 흔적들을 문학평론가 任軒永 교수를 통해 재조명한다.주1회씩 연재될 任교수의 글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우리 문단의 비사들이 많이 포함될 예정이어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 시인이,“아아,사랑은/가고 돌아오지 않네!… 허공으로 사라졌네”라고 애절하게 노래하던 한 시인이 총탄의 이슬로 사라졌다.때는 1936년 8월19일,무대는 스페인 그라나다 근교 어느 과수원이었다. ○‘한국판 로르카’ 시인 투사 ‘1927세대의 샛별’이란 별명을 가진 민요시인 가르시아 로르카는 스페인 내전중 38세의 젊음을 피살로 마감했다.이 비참한 최후는 그의 시를 더욱 감동적으로 만들어 일약 세계적인 서정시인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노도 같았던,광풍 같았던,홍역 같았던 우리의 해방 공간과 분단의 틈새에는 ‘한국판 로르카’가 없었을까.독특하고도 마력을 지닌 시 낭독으로 청중을 열광시켰다는 그 로르카에 못지 않게 10만 참석자들을 뜨겁게 달궜던 한 시인이 있었다.바로 유진오(兪鎭五)였다. 활동으로 본다면 유진오가 ‘한국의 로르카’가 아니라 로르카가 도리어 ‘스페인의 유진오’가 됨직할 만큼 28세에 문학적 생명을 총살당한 이 시인은 세계문학사에서 보기 드문 투사였다. 이제 통일을 향한 민족문학사는 분단의 장막에 가려졌던 문학인과 문학적 사건들을 21세기적 가치관으로 재조명할 처지에 있다 바로 그 첫 대상이 1950년 6월29일 긴급 처형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분단시대 최고의 저항시인 유진오이다. 이 시인의 생애에 대한 연구자료는 문학사가 정영진의 ‘육탄시인 유진오의 비극’(저서 [통한의 실종문인] 게재)과 작가 강준식의 중편소설 ‘어둠을 찾아서’(문학사상 1990.3)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이 어딘지 조차도 미궁에 있었는데,이 두 자료와 증언에 의하면 유진오는 서울사람이라고 보는게 옳을 것 같다.아버지 유치구(兪致九)와 어머니 양만선행(梁萬善行·전주 출신)의 4남중 막내로 논산에서 태어났다.아버지는 노량진에서 서울시내 전체를 공급지로할 규모의 지물포 도매점을 경영했었는데 사업차 잠시 논산에 가있을 때 유진오가 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넉넉한 집안으로 맏형은 검사,둘째는 외교관,셋째는 일본에 귀화,그리고 막내가 시인인데,그는 겉보기에는 얌전했으나 중동중학 시절 음악 미술 스포츠 등 다방면에 재능을 가졌으며 특히 기타를 잘 쳐 부민관의 어떤 음악회에 찬조출연할 정도였다고 전한다. ○사업가 집안의 서울사람 큰 키에 좋은 체격이었던 그는 중학생 때부터 일본사람들을 너무나 증오하여 일본아이들을 때리다가 경찰서에들락날락 했었다고 전한다.이런 행동 때문에 계속 고등계형사의 시달림으로 국내에서의 진학이 어려워 1941년 도쿄로 건너가 와세다(早稻田)에 입학했으나 역시 형사의 등살에 못이겨 메이지(明治)로 옮겼지만 여전해 일본의 저명한 국수주의자가 만든 분카가쿠인(文化學院)에 들어가 동양문학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일제 말엽 징병기피를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해방직전에 밀입국했다.1945년 9월 그는 오장환의 추천으로 등단,당시 패기있는 젊은 시인들(金光現 金尙勳 李秉哲 朴山雲 兪鎭五)과 ‘전위시인집’(노농사 1946.10)을 내 화제를 일으켰다. 1946년 9월1일,국제청년데이(International youth day) 기념행사가 훈련원 (현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렸다.1915년 10월3일에 제1회 대회를 가진 국제청년데이란 진보적인 청소년들의 세계적 조직으로 이듬해부터는 9월 첫 일요일에 하던 행사를 1932년 이후 9월1일로 바꿔 실시했다. 한국에서는 해방후 처음 열린 이 청년축제에 10만명이 운집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이날 식전에서는 평론가김오성(金午星)이 구속되는 등 이미 파란이 예상되었는데,시인 유진오는 축시낭독을 위해 특별초청을 받았다.문장 한토막씩을 띄어가며 격정적으로 특유의 몸짓을 해가며 청중을 사로잡는 것으로 이미 명성이 나있던 유진오로서는 가장 많은 독자 앞에 서게 된 기회이기도 했다. ○친일파를 ‘망령영감’ 야유 “눈시울이 뜨거워지도록/두 팔에 힘을 주어 버티는 것은/누구를 위한 붉은 마음이냐?”고 서두를 꺼낸 유시인은 “왜놈의 씨를 받아/소중히 기르던 무리들이/이제 또한 모양만이 달라진/새로운 점령자의 손님네들 앞에/머리를 숙여/생명과 재산과 명예의/적선을 빌고 있다/누구를 위한/벅차는 우리의 젊음이냐?”고 포효하면서 “썩은 강냉이에 배탈이 나고/뿌우연 밀가루에 부풀어 오르고도/삼천오백만불의 빚을 걸머지고”있다면서 미군정을 정면으로 매도함과 동시에 보수세력(친일파)을 “망령한 영감님”이라 야유하면서 “지옥으로 쫓아야 한다”고 목청을 높여 참석자들로부터 갈채를 받았다. 그의 시낭독 기교가 탁월하다는 말은 곧 미군정의 감시와 탄압의 대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여,행사 이틀뒤인 9월3일 미군정 포고령 위반으로 피검,분단문학사의 첫 필화사건의 주인공으로 부각된다.이 낭송의 투사시인에게 문학가동맹측은 ‘인민의 계관시인’이란 찬사를 보내면서 석방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했으나 10월 군사재판에서 이 시인은 1년 징역형을 선고 받아 약 9개월 복역한 뒤 석방(1947.5)되었다. 문학가동맹의 문화공작대 제1대 소속으로 경남지방을 순회(47.7)하고 돌아온 이듬해 그는 행운의 해를 맞는다.시집 ‘창’(정음사,48.1)을 낸데 이어 5월,창경국민교 여교사 김금남(金今男)과 결혼,1년 뒤 딸(香濬)을 얻는다.겉보기로는 이 시인에게 가장 행복했던 이 순간은 너무나 짧았다. 그는 조직으로부터 지리산 문화공작대장 파견 지령을 받고 입산(49.2.28), 여순병란(麗順兵亂)사건의 주모자 김지회(金智會)부대에 합세하나 ‘싸우다 쓰러진 용사’란 시를 낭독하는 등 한달간 머물다가 하산명령으로 내려오던 중 남원지역 민보단(民保團)에 피체(49.3.29)돼 서울로 압송,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49.9.30)를 받는다. 집안 어른이 앞장서 안재홍 신익희 등 정계 거물들의 탄원 서명과,시인과 이름은 같으나 전혀 다른 유명한 헌법학자 유진오(兪鎭午)를 동원하여 무기감형(49.11.7)에 성공,서대문교도소에 복역 중 그는 운명적인 전주로 이감된다(50.3).그 석달 뒤 일어난 6·25는 서울의 모든 죄수들이 석방되는 계기가 되었으나 대전 이남지역 교도소 수감자들 중 특수한 사람들은 ‘긴급처형’ 되었는데,유진오는 6월29일 새벽 30여명과 함께 총살당했다고 기록들은 전한다. “아,솔직히 말하면 나는 살고 싶다.살아서 내 생존의 확인인 시를 쓰고싶은 것이다.그렇지 않다면 사시나무 떨리듯 엄습해 오는 이 공포는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 어째서 어머니의 자애로운 얼굴이 보고 싶으냐? 어째서 밤이면 두고 온 아내와 딸아이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어지는 것이냐?” ○신익희 등 거물 탄원 서명 논픽션에 가까운 강준식의 소설 ‘어둠을 찾아서’에서 인용한 유진오의 옥중수기중 한 부분이다.이렇게 해서 한 시인,민주주의와 자유를 사랑하던 한 시인은 사라졌고,분단체제는 그의 모든 미학과 사랑까지 불온시해 버렸다. 참고로 그의 작품은 평론가 오성호의 노력으로 ‘창’이란 제목으로 출판되어 있음을 덧붙인다. “시인이 되는 것은 급하지 않다.먼저 투철한 민주주의자가 되어야 겠다”던 이 시인의 불온성은 해방공간의 홍역이었을 따름이지 21세기를 바라보는 오늘로 전이될 성질은 아니다.지금은 오히려 역사적 진실의 복원이 절실한 시기가 아닌가.여기까지가 문학평론가의 몫이다.왜냐 하면 아직도 유진오의 이야기는 끝이 안났기 때문이다. 그와 약간의 인척관계에 얽혀있는 작가 강준식의 소설에 따르면 유진오는 처형의 순간을 교묘히 넘겨 살아남아 어린 딸을 형수에게 맡기고 아내와 월북했을 수도 있다는 설득력있는 가설을 제공하고 있다.이쯤되면 대체 비평가의 글이란게 하잘 것 없는 거짓부렁이일 수도 있음을 통감한다.누가 문학사를 바로 잡을수 있는가.국민과 정부와 연구자 모두의 협력이 절실하다면 과장일까.
  • 비리 軍 간부 수뢰액 일반 공무원의 10배/대부분 실형 안받아

    최근 3년간 군 간부들의 평균 수뢰액수가 일반 공무원에 비해 10배 이상 많았음에도 불구,대부분 실형을 선고받지 않고 석방된 것으로 드러났다. 한나라당 李揆澤 의원은 9일 국회법사위의 군사법원에 대한 국감에서 “최근 3년간 군내 뇌물수수 사건 재판에서 군 관계자들의 수뢰액은 총 24건에 18억8,500만원,1건당 평균 액수는 7,850만원으로 일반 행정부서 공무원들의 건당 평균 500만∼600만원에 비해 10배가 넘는다”고 지적했다. 李의원은 또 최근 4년간 발생한 군 뇌물범죄 33건 중 2건은 현재 군사법원에 계류중이고 27건은 집행유예나 기소유예 등으로 석방됐으며 4건만 징역형이 선고돼 결국 군사법원의 ‘관대한 처분’이 군내 뇌물범죄를 부추겼다고 주장했다.
  • 獄中喪主 김희로/崔弘運 논설위원(外言內言)

    아들의 석방만을 기다리며 “한번만이라도 아들을 얼싸안고 싶다”던 金嬉老씨(70)의 어머니 朴得淑 할머니(90)가 지난 3일 숨졌다.5일 일본 시즈오카 현 가케가와시 시립양로원에서 있은 朴할머니의 장례식장에는 그토록 기다리던 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대신 “오늘 아침 어머니께 편지를 쓰던 중 운명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이 쏟아졌다. 장례식 시간에 맞춰 형무소에서나마 어머니를 보내드리겠다. 정말 어머니와 함께 가고 싶은 심정이다”는 金씨의 비통한 심정을 담은 편지만 날아와 지키고 있었다. 金嬉老. 그는 지난 68년 2월 일본 시미즈시에서 “더러운 돼지새끼 같은 조센진(朝鮮人)”이라는 민족차별적인 언동에 흥분해 야쿠자 2명을 총으로 살해하고 인질극을 벌이다 붙잡혀 30년동안 복역하고 있다. 인질극 당시 朴할머니는 “일본인에게 붙잡혀 더럽게 죽지 말고 꺼끗이 자결하라”고 권할 만큼 강골의 여인이었다. 그러던 朴할머니도 아들이 사건발생 7년 뒤인 75년 무기징역형으로 확정판결을 받은 뒤 수감생활이 길어지자 일본 법무성에 수도 없이 탄원하며 석방을 고대했다. “아들이 일본 법률을 어긴 것은 절반 이상 나의 잘못”이라며 “차라리 나를 처벌해 달라”는 내용이 전부였다. 일본의 무기수는 확정판결을 받고 10년이 지나면 가석방 대상이 되지만 金씨는 그때마다 번번이 제외돼 지금까지 차디찬 감방을 지키고 있다. 그동안 우리 국민들이 기울인 석방노력도 간단하지 않다. 그 가운데 지난 90년 金大中 대통령과 金泳三 전 대통령 등이 서명한 10만명 석방보증서를 일본정부에 제출했던 석방운동은 특별했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지난달 초 金대통령의 일본방문때도 이 문제가 실무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됐지만 결과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우리가 金씨의 석방을 바라는 이유는 비록 그 잘못은 크지만 그동안의 수감생활을 통해 충분히 반성했을 뿐 아니라 그 행위 자체도 개인감정 차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민족차별적인 일본인들의 이중성을 향한 우리 모두의 분노를 대변한 것이다. 30년째 일본 구마모토 형무소에서 복역중인 그는 일본에서도 최장기수다. 그의석방을 위해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길 기대한다.>
  • 어떻게 해야 사라질까(중하위 공직 비리:3­2·끝)

    ◎“처벌불감증 추방” 제도화/재산몰수 등 징계수위 높여/‘모두 잃는다’ 인식 갖도록/美·英·獨선 발본색원 조치 공무원의 비리는 도마뱀의 꼬리인가.끊임없는 사정작업으로 꼬리(비리 공무원)를 잘라내도 비리공무원은 계속 생겨난다. 이런 탓에 ‘200억원 재산의 6급 주사’를 계기로 부정축재 재산을 몰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아무리 가벼운 비위사실이라도 3차례 적발되면 파면 또는 해임하는‘징계 3진 아웃제’도 제기된다. 그리고 금고 이상의 형을 받거나 파면된 공무원으로 한정된 퇴직금지급 제한대상 공무원의 범위를 자격상실, 자격정지 또는 해임된 공무원까지 확대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마디로 비리를 저지르면 명예뿐 아니라 재산적으로도 손해라는 인식을 심어줘서 비리가 발붙이지 못하는 건전사회를 이룩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상위직은 명예, 중·하위직일수록 재산을 중요시한다는 현실을 감안한 것이다. 尹泰範 부산 부경대 교수는 “우리 사회는 공익이 개인적인 이익에 우선하지 못한다”며 “부정부패는 천민자본주의의 속성”이라고 말했다. 비리가 적발돼도 그만이라는 ‘한탕주의’와 ‘처벌불감증’이 부정부패를 부추기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잘해야 몇년 감독갔다 오면 평생 먹고 살 수 있다는 얄팍한 계산은 특정 비리공무원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국민의 세금을 빼돌렸던 지난 95년의 ‘인천 북구청 세무비리사건’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그래서 부랴부랴 제정된 것이 뇌물 또는 국고횡령 등의 범죄로 취득한 불법재산을 환수하기 위한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이지만 한번도 적용된 적이 없다. 우리나라는 비리공무원을 처벌하는 조항과 적용범위,대상,강도 등의 면에서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슨한 ‘솜방망이 제재’에 그치는 것으로 평가된다. 감사활동에서 형사 처벌돼야 할 비리가 적발돼도 파면같은 행정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선진국은 비리공무원에게는 재산형 등의 처벌을 가해 부정부패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뇌물수수 또는 공금유용 등으로 기소되면 불법 취득한 재산에 대해서는 즉각 잠정동결조치에 돌입하도록 돼 있다. 형사재판이 시작되면 재산 몰수 에들어가고 모든 절차가 끝나는 대로 국고에 환수된다. 재산몰수에 그치는 게 아니라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벌금형이 추가된다. 이때문에 공무원이 한번 비리에 연루되면 공직생활도 끝이고 그나마 모은 재산도 빼앗기게 된다. 미국의 이런 제도는 필리핀의 마르코스나 파나마의 독재자 노리에가의 미국내 재산이 동결되도록 하기도 했다. 독일은 뇌물을 주고받으면 6개월에서 5년간의 징역형을 규정하고 있다. 한 장관이 지난 93년 한 연합회에 친척의 회사제품을 소개하려고 보낸 편지가 공개되는 바람에 사임했던 사실은 독일의 깨끗한 공직사회를 반영한다. 영국의 경우는 좀더 강한 조치를 취한다. 합법적인 강의료와 원고료같은 부수입도 공개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합법을 가장한 뇌물 수수도 불가능하도록 한다. 이런 탄탄한 제도 덕분에 고위직이 거액의 부정을 저지른 경우는 거의 없다.
  • 팔당호 오염사범 뿌리뽑아야(사설)

    검찰이 팔당호를 비롯, 한강수계의 상수원 오염업소에 대한 수사의 칼을 본격적으로 빼들었다. 팔당호 수질개선 대책이 현지 주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사회문제로 떠오른 시점이어서 오염업소에 대한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는 시의적절한 것이다. 오염발생업체뿐 아니라 이를 묵인하는 단속 및 허가 공무원들과의 유착 여부까지 수사를 확대한다는 점이 기대를 갖게 한다. 이번 기회에 오염의 뿌리를 뽑아주기 바란다. 환경보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만큼 중요한 문제다. 바로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후손 대대로 아름답고 깨끗하게 물려주어야 하는 것이 바로 환경이다. 더구나 한번 훼손된 환경을 원상회복하려면 엄청난 비용과 오랜 시일이 걸린다. 따라서 오염을 미리 막는 것이 최선책이다. 오염업소에 대한 단속은 과거에도 수없이 되풀이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과는 거의 없었다. 예컨대 임진강을 오염시키는 동두천시 일대의 가죽공장은 신문·TV 등 각 언론매체들이 여러차례 그 현장을 고발해 왔지만 크게 개선된 기미가 없다.영세업자들의 생업이라는 단순한 온정주의 시각도 곁들여져 단속과 처벌이 미지근했던 탓이다. 같은 이유로 팔당호 오염에 큰 영향을 미치는 축산농가에 대해서도 엄정한 단속과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 한강수계 주변에 줄줄이 들어선 러브호텔과 음식점 등이 수질 오염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도 지금까지의 단속이 시늉에 그쳤다는 반증이다. 97년 통계를 보면 환경사범에 대한 1심재판 결과 3년 이상 징역형은 전체 3,169명 중 13명뿐이다. 1년 이상 징역형을 선고받은 환경사범은 182명이지만 이 중 162명은 ‘영업형’ 환경사범과 거리가 있는 유해화학물질 관리법 위반사범이다. 91년에서 97년까지 화학물질 사범을 제외한 실형선고자는 전체의 6%인 반면 집행유예나 벌금형은 87%다. 다른 범죄의 실형선고율 22.4%에 크게 못 미친다. 올들어 7월까지의 환경사범 구속비율도 3.4%에 그쳤다. 벌금 역시 미미하기 짝이 없다. 영세업자나 축산농민들의 딱한 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온정을 기대해서도,베풀어서도 안 된다. 오염의 정도가 원상회복이 불가능해질 정도로 높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당 주민이나 업주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오염이 없는 업종으로 전환하든가,오염을 완벽하게 차단하든가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입는 현지 주민들의 피해는 환경부가 수질보전 대책에서 밝힌 것처럼 합리적인 수준에서 보상하거나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필요한 재원은 깨끗한 물을 마시게 되는 하류의 수도권 주민들이 부담해야 한다.
  • 폐기물 불법투기 최고 5년형/환경범죄 처벌 강화

    ◎과징금 개인 1억·법인 2억으로/폐기물관리법 개정안 예고 폐기물을 불법으로 버리거나 매립하면 최고 1억원의 벌금이 부과되고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지는 등 처벌이 대폭 강화된다.또 영업정지처분을 받은 폐기물처리업자에게 부과되는 과징금도 2,000만원 이하에서 개인 1억원 이하,법인 2억원 이하 등으로 대폭 상향조정된다. 환경부는 6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폐기물관리법’ 개정안을 마련,입법예고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반사회적 환경범죄에 강력 대처키 위해 폐기물 불법처리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했다”고 밝혔다. 소규모 소각로에 대한 규정도 강화,시간당 처리능력이 지정폐기물은 25㎏ 미만,폐가스와 일반폐기물은 100㎏ 미만인 소형소각로의 설치가 전면 금지되고 현재 가동중인 소각로도 앞으로 5년까지로 제한했다. 환경부는 또 폐기물을 배출하는 사업장이 발생부터 처리까지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입증토록 의무화했다.
  • 팔당주변 호화별장 불법 증·개축/겉치레 단속·솜방망이 처벌 탓

    ◎규제 법률 80년대후 제정 법적용 한계/적발돼도 벌금내면 그뿐 “일단 짓고보자”/1년에 한두번 단속… 현황파악 엄두못내 허술한 단속과 ‘솜방망이 처벌’이 한강변 호화별장들의 증·개축과 형질변경 등 불법행위를 부추기고 있다. 단속 인력의 부족으로 단속 횟수도 적을 뿐 아니라 단속을 하더라도 형식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그나마 불법 사실을 적발하더라도 처벌 법규가 약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지난 7월 말 실시된 팔당호 주변 호화별장의 토지형질 무단변경 등에 대한 경찰의 일제단속도 결과가 흐지부지되고 말아 상수원구역의 불법행위를 뿌리뽑겠다던 당국의 의지를 무색케 했다.적발된 별장 14곳 대부분이 가벼운 벌금형을 받거나 무혐의 처리됐다. 불법 증·개축에 대한 건축법의 처벌 규정은 10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다.지금까지 징역형은 거의 없고 대부분 벌금형이다. 70∼80년대에 건축된 별장들은 규제법률들이 그 후에 제정됐기 때문에 신고 후 세금만 물면 철거를 피할 수 있었다.이같은 관행 탓인지 별장주들은 ‘일단 저질러 놓고 보자’고 생각한다. 단속도 ‘수박 겉핥기’식이다.남양주시와 양평·가평군 등 한강변의 시·군의 건축과는 호화별장의 불법행위에 대해 1년에 고작 한두번 밖에 단속하지 않는다.농지 전용과 임야 형질변경에 대한 단속은 이보다 자주 있지만 별장주들의 비협조로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게다가 담당직원의 수도 턱없이 부족하다. 가평군청 관계자는 “가평군에서 불법 별장 단속을 맡은 공무원은 10명도 되지 않는다”면서 “인·허가 업무에 매달리다 보면 단속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별장 신축 허가기준도 애매하고 허가과정도 주먹구구식이다.팔당 주변 상수원 보호지역의 별장은 건물면적이 연건평 240평까지로 제한돼 있지만 대지는 제한이 없다.담당 공무원들이 현지에 나가 대지 규모를 판단해 보고 제한한다.공무원의 자의에 맡기다 보니 별장주와 유착될 수밖에 없다. 중과세를 피하려고 별장을 일반주택으로 위장하는 사례도 많다.별장과 주택을 구분하는 기준이 애매하기 때문이다.별장 판정의 기준은 별장주 가족들의 이용 빈도다.한달에 두번 정도 이용하면 별장으로,이보다 자주 이용하면 주택으로 판정한다. 규정이 애매할 뿐더러 일일이 실사할 수도 없다.별장주의 신고를 그대로 믿거나 주민 제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담당 직원들도 정확한 판정이 불가능하다고 실토한다. 남양주시 화도읍 금남리에서 슈퍼마켓을 하는 李남현씨(29)는 “북한강변에 주택으로 신고된 집들은 평소에는 대부분 비어있는 별장”이라고 말했다.
  • 親日의 군상:1­2/외국의 민족반역자 처벌(정직한 역사 되찾기)

    ◎佛,나치 협력자 15만명에 실형/대만­비밀경찰조직 軍統局서 명단 작성/중국­‘인민의 적’ 규정… 인민재판 통해 처단 2차대전 종전은 4년에 걸친 세계대전의 종막을 고함과 동시에 준엄한 단죄의 서곡이기도 했다.종전후 승전국들은 ‘전범재판’을 통해 패전국의 전쟁지도자들을 처단했으며,일부 피지배국가들은 자국내의 민족반역자들에게 준엄한 단죄를 하였다. 유럽의 ‘뉘른베르크재판’과 일본의 ‘도쿄재판’이 전범재판이라면,프랑스를 비롯한 일부 유럽국가와 중국 대만 등이 외세협력자를 처단한 것은 반민족행위자 재판이라고 할 수 있다.이들 국가는 종전 직후 민족반역자들을 법정에 세움으로써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암울했던 피지배의 역사를 극복할 수 있었다.반면 우리는 해방후 제헌국회에 구성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친일파들의 방해로 도중에 와해,친일파 척결은 ‘미완의 역사’로 기록돼 왔다.외국의 반민족행위자 단죄의 실상을 알아본다. ○150만∼200만명 연루 ▷프랑스◁ 프랑스의 나치협력자 처단은 1944년 드골장군이 나치협력자 처단은 전담재판소 개설과 ‘비(非)국민제도’ 창설을 골자로 하는 훈령 발포로 본격화됐다.저항작가 장 포랑의 연구에 따르면,이 숙청조치에 관련된 사람은 모두 150만∼200만명으로 추산된다.이들중 죄상이 경미한 99만명은 1개월 이내에 풀려났으나 15만여명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나치에 협력한 비시정권의 원수격인 페탱을 포함,3부요인 등 고위인사를 특별심판한 최고재판소는 1960년까지 계속된 재판에서 총 108건을 처리,18명에게 사형,25명에게 징역형을 선고하고,15명에게 공민권 박탈조치를 내렸다. 페탱은 고령이라는 이유로 사형집행정지 처분을 받았으나 감옥에서 자살하였다. ○지식인 대부분 중벌 일반법원은 총 취급건수 14만건중에서 4만여건을 시민법정에 이송하고 나머지 5만7천건을 재판하여 6,763명에게 사형,2,777명에게 종신 강제노동형,2만6,529명에게 유기 강제노동형,3,678명에게는 공민권 박탈을 선고했다.사형선고를 받은 자 가운데 779명은 실제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또 지방법원은 총 12만건을 재판에 회부,4,783명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으며 이들중 3,000여명의 사형이 집행됐다.시민법정 역시 다수의 나치협력자를 처단하였다.11만5,000여건을 취급하면서 9만5,000명에게 ‘비국민 판정’을 내렸다.비국민 판정은 선거권 박탈,공직진출자격 박탈,무기 소유·휴대 금지 등 사실상 시민의 권리를 박탈한 준 사법적 조치로,이는 반역자들을 매장하고 그들의 재부상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고안한 프랑스 특유의 ‘발명품’으로 불린다. 드골정부는 특히 나치에 협력한 언론인과 작가 등 지식인을 대부분 사형·무기징역 등 중벌로 다스렸다.나치지배하 비시정권에 협력한 원로언론인 6명이 사형선고를 받은 것을 비롯해 저명한 작가·시인들도 예외없이 준엄한 심판을 받았다. ○2년5개월 漢奸재판 ▷중국·대만◁ 전후 중국과 대만은 각자 친일파를 처단하였는데 처단방식에서는 서로 차이가 있었다.우선 중국은 1946년 4월부터 2년5개월에 걸친 ‘한간재판’(중국에서는 친일파를 한간이라 부름)에서 ‘인민재판’ 방식을 취했다.피의자에 대해 검찰의 조사가 끝나면 민중들로 구성된 배심원들이 공개된 장소에서 민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재판을 진행,군중들의 참여를 유도하였다.중국공산당 정부는 인민재판을 통해 민중들의 울분을 정화시키고 민심을 살 목적으로 이 방식을 취하였다.특히 중국공산당 정부는 친일파를 ‘인민의 적’으로 규정,한간재판을 통해 봉건세력을 제거하고 동시에 혁명의 기반을 닦는 계기로 활용하였다. ○‘유전무죄’ 유행하기도 한편 蔣介石의 국민정부는 국가가 공권력을 동원,피의자를 체포·기소·재판하는 ‘규문(糾問)주의’방식을 취하였다.국민정부는 비밀경찰조직인 군통국(軍統局)이 작성한 한간 명단을 근거로 ‘한간사냥’을 진행하였는데,가정부로 위장해 근무해오던 특무요원이 그 주인을 체포한 예도 있었다. 국민정부는 그러나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유행어가 나돌 정도로 관련 공무원들의 부패가 심했던데다 1심판결로 사형을 집행하는 등 감정적 처리가 빈발했었다.또 재판관중에 친일파가 포함된 사실이 밝혀져 국민정부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데다 국민정부측이 汪精衛(일제의괴뢰정부인 남경정부의 주석)의 무덤을 폭파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민중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친일파 청산 ‘용두사미’/반민특위 의욕적 출발… 사형선고 1명마저 석방 49년 1월 8일 화신백화점 사장 朴興植의 검거를 시작으로 본격 활동에 들어간 반민특위는 8월말 업무를 마감할 때까지 8개월동안 총 682건(여자 66명 포함)을 처리하였다. 이중 반민특위는 중추원 참의 등 당연범 198건을 포함,408건에 대해 영장을 발부하여 이들중 305명은 체포(자수 61명 포함)하였고 미체포자는 173명이었다.또 반민특위는 이들중 84건을 석방하고 559건을 검찰에 송치하였는데 221건이 기소되었다. 기소사건 가운데 특별재판부에서 재판이 종결된 건수는 38건으로 이중 체형선고는 12건이었다.최고형인 사형은 일제 고등경찰 출신의 金悳基가 유일하였는데 그는 6·25 직전 감형으로 풀려났고 나머지 유죄판결자 역시 이같은 경로로 전부 풀려났다.결국 반민법 해당자로 처단된 자는 아무도 없는 셈이다. 당초 반민특위는 반민족행위자를 7천명 정도로 잡고 왕성한 의욕을 보였으나 친일파의 방해와 인력부족,중도에 공소기간 단축으로 친일파 청산은 결국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친일 문제 반드시 청산돼야/민족통일과 연결… 새 역사 출발점으로/姜萬吉 고려대 교수·한국사 해방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일제 강점시대의 친일파들은 대부분 죽었다.따라서 아직도 친일문제가 논의되어야 하는가,친일파 문제가 과연 현실문제인가 하는 의문이 있을 법도 하다.그러나 친일문제는 엄연히 현실문제요,지금부터라도 반드시 청산되어야 할 문제다. 역사교육 및 사회정의 차원에서 친일파 문제는 청산돼야 하며 그것은 오늘의 현실적 과제이다.역사에서 李完用 등은 분명히 매국노라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그 매국행위로 얻은 재산은 고스란히 후손들에게 전해져 있는 게 현실이다.그밖의 친일행위자들도 그 자신이 단죄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친일행위로 얻어진 정치·경제·사회적 기반이 후손들에게 전해져서 그대로 누려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국재산 버젓이 상속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역사교육이란 것이 왜 필요하며,사회정의라는 말이 왜 있어야 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반세기가 아니라 1백년이 지났다 해도 반민족행위에 대한 역사적 청산이 불가피함을 알게 된다. 친일파 문제가 청산되지 않음으로써 친일 논리가 청산되지 않은 또 다른 중요한 과제가 남아 있다.李完用을 비롯해서 크고 작은 친일파들은 그때 그때마다 저들의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는 논리들을 내놓았다. 그것을 요약하면,한 시대 한 민족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가,그 역사를 누가 주체가 되어 움직여 가는가,그 사회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전진해 가는가 하는 문제보다 주인이야 누구든,폭압통치가 자행되건 말건,그 사회가 물량적으로 ‘풍부’해지고 경제적으로 ‘발전’하기만 하면 역사가 발전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식의 논리라 할 수 있다.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하던 시기,그들에 의해 조작되었던 이 되지 못한 논리가 이른바 한·일 국교 재개 이후 일본 학계에서 다시 살아나더니,어느 틈에 우리 학계의 일각에서도 동의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이렇게 된 원인의 하나는 해방 후 반세기가 지나도록 친일파들의 자기합리화 논리를 우리가 이론적으로 극복하지 못한데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이래도 친일파 문제가 현실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친일 논리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그것은 언제나 현실문제로 되살아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친일문제 청산은 일본과의 문화교류 확대를 위한 전제조건으로서도 중요한 문제다.지금 우리는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하려 하고 있다.그런데도 일본은 아직 과거의 침략행위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군국주의 찬양 문화물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일본 대중문화에 대해 벽을 쌓고 지낼 수는 없다.우리의 문화적 주체성을 확립하려면 그 벽을 낮추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일본문화 개방 폭을 넓히는 전제조건으로서,또 우리의 문화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방법으로서,일제시대 반민족행위에 대한 역사적 청산은 불가결하다. ○日 문화개방 전제조건 친일문제 청산이 민족통일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통일이 어느정도 전망되고 있지만,통일의 시점이 바로 민족사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그 출발점에서 중요한 문제의 하나로 부각될 일이 바로 식민지 잔재 청산일 것이다. 이미 교환된 남북합의서는 어느 한 쪽에 의한 흡수통일이나 우위통일이 아니라 분명 남북 대등통일을 약속하고 있다.통일이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분단시대 청산은 바로 일제시대 청산과도 연결될 것이며,이 점에서도 남북 양쪽이 대등한 조건을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이렇게 보면 친일파 청산은 현실적 문제일 뿐만 아니라 미래지향적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 부실대학 퇴출/任英淑 논설위원(外言內言)

    광주예술대와 한려대에 대한 교육부의 폐쇄 계고조치는 이제 대학도 문닫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단국대 부도사태에 이은 두 대학의 강제퇴출은 교육사업도 구조조정의 거센 바람 앞에서 예외일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99학년도부터 신입생 모집이 중지되고 1년간의 계고기간을 거쳐 최종 폐쇄결정이 내려질 두 대학의 운영상태는 사실 일반기업보다 더욱 심각하다.지난 95년 개교한 한려대는 6월말 현재 교사(校舍) 확보율 25%,교원 확보율 26%, 재정잔고 4만3000여원으로 대학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다.97년 개교한 광주예술대 역시 학생확보율 35%로 교육여건이 열악하다. 설립자가 같은 두 대학은 족벌체제로 운영돼 재단이사장과 이사가 설립자의 부인,친동생,동서 등 친인척이다.설립자 자신은 학생등록금과 국고보조금등 426억원을 횡령·유용한 혐의로 지난해 구속돼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2심에 계류중인 상태다.이런 대학이 지금까지 지탱할 수 있었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문제는 이번에 사실상 폐교명령을 받은 두 대학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부실대학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교육계 비리의 대명사처럼 알려진 일부 사립대학은 물론 국·공립대학까지 교수채용 비리등 온갖 파행을 보이고 있다.대학의 구조조정은 입시제도나 학사행정 개편 뿐 아니라 뿌리깊은 병폐를 치유하는 대수술을 통해 확실하게 이루어져야 진정한 교육개혁이 가능할 것이다. 대학 부실은 학교법인에 그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관계 당국의 관리·감독 소홀에도 원인이 있다.한려대와 광주예술대의 경우 설립 당시 재원조달계획을 위조해 교육부에 제출한 것으로 이제야 밝혀졌다.설립자는 전남지역에서 3개 고교를 운영하다가 90년 이후 재벌이 계열사를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듯 4개 대학을 잇달아 설립했는데 당국은 모두 인가해주는 잘못을 저질렀다.그 4개 대학중 이번에 퇴출되지 않은 두 대학도 재정잔고가 20만원 미만으로 정원감축 조치를 당했다.이에 대한 책임소재를 분명히 가려 엄중한 문책이 뒤따라야 하고 앞으로 대학 신설허가를 함부로 해서는 안될 것이다. 대학 폐쇄의 가장 큰 피해자는 해당 학교의 학생과 교수들이다.그들에 대한 보호조치가 강구돼야 한다.특히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가능한 한 최선의 교육환경이 제공될 수 있도록 관계당국은 배려해야 할 것이다.대학 퇴출은 이제 시작이다.고등학생과 학부모들에게는 앞으로 대학 선택에 신중을 기해 다니던 대학이 문을 닫는 불상사를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과제가 주어졌다.
  • 정직한 역사위에 ‘제2건국’을/李昌淳 특집기획팀장(데스크 시각)

    ‘제2건국’이라는 말이 절실히 마음에 와닿는 오늘이다. 건국 50주년을 맞은 지금 왜 제2건국이란 말이 미래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로 들리는가. 지난 반세기와 그 연장선상에 있는 오늘의 현실이 불만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사람들의 가장 큰 현실적 불만은 경제적 어려움이다. 그러한 경제난의 원인은 경제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경제·사회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그중에서도 정경유착에 의한 부패와 비리 등이 중요한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부패 공화국’이라는 말이 일반화될 정도로 부패와 비리는 널리 퍼져 있다. 어제 신문 1면에도 경성그룹에 대한 특혜대출과 崔淳永 신동아그룹 회장의 거액 밀반출 사건이 크게 보도됐다. 정당한 경쟁보다는 정치인·관료들과의 유착을 통한 특혜를 얻어 사업을 하려는 잘못된 기업경영 풍토가 일반화돼 왔다. 경제발전이 필요했던 우리 사회에서는 물질적 풍요가 최고의 가치처럼 여겨졌다. 물질적 풍요는 물론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일이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 속에 부패와 사회적부조리가 묻히며 정의에 대한 가치관의 혼란이 사회문제화돼 왔다. ○친일파 청산 역사적 과제 가치관의 혼란은 광복 후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하지못한 부끄러운 역사로부터 시작됐다. 광복 후 친일파 청산은 너무나 당연한 역사적 수순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이승만 정권과 결탁한 친일파는 반공을 앞세우며 오히려 집권세력의 핵심이 됐다. 그들은 친일파 청산작업을 적극적으로 방해했다. 친일파 처단을 위한 반민족행위처벌특별위원회(반민특위)가 1948년 발족했으나 친일파의 방해로 제대로 활동도 못하고 49년 해체됐다. 반민특위 활동으로 기소된 친일파는 겨우 221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중 1명 사형,1명 무기,10명 유기징역형의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1950년까지 풀려났으며 유일하게 사형을 선고받은 김덕기도 한국전쟁 직전에 석방됐다. 2차대전중 독일에 협력했던 프랑스 비시정권의 퓌시 내무장관등 주요 인사들이 처형된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친일파를 단죄하지 못한 것은 ‘정의의 역사’가 현실에서 패배한 민족의 비극이다. 그 비극은 독재권력에 의해 현대사가 왜곡되며 계속돼 왔다. 그러한 민족의 비극을 단절시키기 위해 이제 일그러진 현대사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 첫 출발은 광복 직후 실패했던 친일파 청산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친일파를 청산하자는 것은 개인을 단죄하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다. 역사의 시계를 뒤로 돌리려 하는 것도 아니다. 친일파 청산의 실패로 나타난 가치관의 혼란을 바로잡고 정의가 살아 있는 올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로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만이 건강하고 강한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정당하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힘을 길러야 세계와의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 부패구조 아래 특혜를 받고 불공정 경쟁을 통해 이익을 얻는 잘못된 관행으로는 세계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음이 IMF사태로 증명되고 있다. 정의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자는 역사의 실패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제2건국도 물질적 풍요를 최고의 가치로 여겨왔던 지난 반세기의 실패를 거울삼아 정직한 역사 위에 만들어져야 한다. 정직한 역사는 민족의 밝은 미래를 보장한다.
  • 檢警 음주운전자 구류 대립

    ◎檢­구류는 벌금보다 하위개념… 처벌완화 초래/警­벌금에 구류형 추가하면 단속효과 커질것 음주운전자에 대한 처벌조항에 구류를 추가시키는 방안을 놓고 경찰과 검찰 사이에 마찰음이 일고 있다. 경찰은 기존의 징역형 또는 벌금형에다 구류형을 추가시키면 단속효과가 훨씬 커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반면 검찰은 벌금의 하위개념인 구류는 법체계상 음주운전자에 대한 처벌을 완화하는 결과만 초래한다는 법리를 내세워 반대하고 있다. 도로교통법에는 음주운전을 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돼 있다. 경찰은 기존의 도로교통법에 구류 조항을 추가하면 음주운전자가 크게 줄어 들 것으로 보고 있다.징역이나 벌금을 병행하되 단순음주자의 경우 상황에 따라 일정기간(1∼29일) 유치장에 억류,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도록 하겠다는 것이다.구류가 벌금보다 형량이 낮긴 하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더 크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경찰은 30일 관련부처인 검찰에 음주운전자에 대한 처벌규정에 구류조항을삽입하겠다는 공문을 보냈다. 그러나 검찰의 생각은 다르다.우선 법체계상의 문제점을 지적한다.음주단속을 강화한다고 하면서 벌금보다 형량이 더 낮은 구류를 신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단순히 음주운전을 했다는 이유로 신체상의 제약을 가하겠다는 경찰의 의식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알코올 농도 0.05 이상이면 형사입건하도록 돼 있는데다 벌금액수도 오는 정기국회를 거치면 기존 3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오르는 마당에 더이상 추가 처벌은 말도 안된다고 주장한다.
  • 클린턴 혐의 모두 사실땐 총형량 30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형사 소추를 당할 위기에 몰렸다. 스타 검사가 걸어 놓은 혐의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클린턴에게 적용될 죄목은 자그마치 5가지. 모두 합하면 형량도 30년에 달한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클린턴 대통령이 받을 수 있는 형사처벌과 형량을 소개,관심을 끌었다. 물론 현직 대통령의 특권이란 보호막이 있어 당장 형벌을 받지는 않는다. 폴라 존스 성추행과 관련,법정에 선 르윈스키에게 거짓말을 하도록 요구한 것이 밝혀지면 위증교사죄가 성립돼 5년 이하 징역이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친구인 버넌 조던과 함께 르윈스키에게 거짓말을 하도록 요구했을 경우에는 위증교사 공모죄가 성립된다. 벌금형 또는 징역 5년형을 받게 된다. 덤으로 위의 두 죄목을 사법방해죄와 방해를 위한 공모죄로 적용할 경우 받게 될 형량은 징역 10년이다. 진행 중인 사법 기관의 조사를 지연시키거나 영향을 주기 위해 증인을 위협하거나 매수한 혐의가 밝혀질 경우엔 벌금형 또는 10년 이하 징역형이 기다리고 있다. 타임은 모든 죄목이 별개로 적용될 수도 있어 형량은 최고 30년까지도 가능하지만 클린턴이 초범이기 때문에 감량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 7·21 재·보선­투표일

    ◎‘결전의 날’ 3당 총장에 들어본 출사표 마침내 결전의 날. 야전사령관으로 전선을 지휘한 각당 사무총장들은 상황실로 돌아와 최후의 작전을 점검에 들어갔다. 혈전 16일을 결산하는 국민회의 자민련 한나라당 사무총장의 대천명사(待天命辭)를 들어본다. ◎국민회의 鄭均桓/“여소야대 타파하고 개혁작업 탄력붙을것/광명乙 가장 힘들어” ­선거 판세를 어떻게 보는가. ▲선거가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안정과 경제회생을 이루기 위해 여당후보를 지지, 여소야대 정국을 해소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 종로,경기 광명을,수원 팔달,우리당에서 후보를 낸 3개지역에서는 전승이 기대된다. 부산 해운대에서도 여권 연합후보가 앞서고 있으며 서울 서초갑과 강원 강릉을도 3∼4% 뒤지고 있으나 역전도 가능하다고 본다. ­이번 재·보선이 정계개편에 어떤 영향을 미치리라고 보는가. ▲국민의 힘으로 여소야대 정국을 깨고 金대통령의 개혁작업이 탄력을 받을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본다. ­막판에 흑색선전 시비가 일었는데 선거때마다되풀이 되는 부정선거 시비의 근본적인 대책은 있는가. ▲부정선거 방지를 위해 선거법을 강화할 것이다. 7년이하 징역형으로 돼있는 흑색선전 관련조항과 3년이하로 돼있는 비방돤련 조항을 ‘이하형’에서 ‘이상형’으로 개정할 것이며 예외없이 당선무효 되도록 하겠다. ­최후 작전 지시는 무었이었나. ▲야당후보들의 돈봉투 살포등 부정선거 방지를 위해 골목 감시조를 배치하라는 것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지역,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광명을이 어려웠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국회의원 선거를 시장이나 지방의원 뽑는 선거로 착각하는 것이 힘들었고 전체적으로는 야당의 흑색선전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몇 석을 얻으면 승리로 보는가. ▲재·보선이 치러지는 7개 선거구가 모두 한나라당 의석이었다. 그러므로 단 한곳이라도 이기면 여당의 승리 아니겠는가. ◎자민련 李完九/“선거전 무관심 극명/2곳 승리면 대만족/대구북갑 열세 인정” ­이번 선거전을 어떻게 평가하나. ▲정치권 전체에 대한 국민들의무관심과 불신이 또 한번 극명하게 드러난 선거다. 선거전 양상도 흑색선전,향응제공 등 이전의 구태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선거를 치르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서초갑과 대구북갑의 후보 선출이 선거일 한달도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져 처음부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선거결과에 대한 전망은.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 투표율이 낮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투표에 참여하는 층이 연령·지역·성별로 어떤 층이냐에 따라 기존의 여론조사와는 상당히 다른 결과가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 ­선거구별 구체적인 예상은. ▲해운대·기장을은 승리가 확실하다. 서초갑은 결과를 끝까지 지켜봐야 될 곳이며 승리를 기대하고 있다. 대구북갑은 열세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후보를 낸 3곳중 2곳에서 승리하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한 곳 정도만 승리해도 만족할 만하다. ­유권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경제난을 극복하고 정국의 안정을 기하기 위해 현명한 선택을 해달라. 이번 선거는 혼탁 및 과열로 얼룩지고 탈법과 불법이 기승을 부린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자민련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 유종의 미를 거둘 것을 다짐한다. ­막판 선거전략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라는 자세로 임할 것이다. 상대 후보의 불법 및 타락 선거 감시도 철저히 하겠다. ­선거후 정국 전망은. ▲기본적으로 각당의 의석수에 따라 후반기 원(院)구성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될 것이다. ◎한나라당 徐淸源 ­현재 판세는. ▲대구 북갑과 강원 강릉을, 그리고 서울 서초갑 등 3곳은 확실한 당선권이다. 2∼3곳은 백중우세이거나 백중열세다. 전반적인 공포 분위기 속에 우리당 지지자들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답을 유보하고 있다. 적어도 5곳 이상에서 승리할 것이다. ­이번 선거의 의미는. ▲새 정부 출범 6개월 간의 국정운영에 대한 총체적인 심판의 장이다. ‘준비된 정권’이라고 하지만 경제는 갈팡질팡하고 안보와 치안은 구멍이 뚫렸고 외교도 허점투성이다. 잘못을 저질러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현명한 국민들이 잘 판단할 것이다.­선거운동중 어려웠던 점은. ▲여당에 의해 유례없는 총체적 부정·불법사례가 여당에 의해 자행됐다. 경찰 등 정보기관이 우리 당 운동원들과 지역 유지들을 위협·협박하고 후보자나 그 가족들을 미행하는 등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 나도 20년 가까이 정치했지만 자유당 시절에서나 있었던 일들이 되살아나 가슴 아프다. 정말 이 정권이 민주주의를 퇴보시키고 경찰국가로 만들려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불법선거운동에 대한 대응책은. ▲여권의 금권·관권사례에 대해 선거 이후 당운을 걸고 끝까지 추적,진상을 밝히겠다. 국회 차원에서도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 ­李漢東 총재대행이 대통령 비자금의 여권 선거자금유입 의혹을 제기했는데. ▲연예인 동원, 식사제공 등 여권은 막대한 비용을 선거에 투입했다. 金大中 대통령 비자금에 대해 당이 갖고 있는 정보를 토대로 선거가 끝나면 진상조사위 차원에서 광범위하게 조사하겠다. ­투표율이 당락에 미치는 영향은. ▲지역에 따라 상관관계가 있다. 일단 해당 지역에 투표율을 높이는데 최선을 다해달라고 지시했다.
  • 軍복무자 호봉가산 의무화/위반땐 최고 3천만원 벌금

    ◎공익근무도 공무원시험 5% 가산점/병무청,법개정안 입법예고 앞으로 공공기관은 물론 일반 기업체의 사용자가 근로자의 병역의무 복무기간을 실제 근무기간으로 인정,호봉 승급에 반영해 주지 않으면 300만∼3,000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또 28개월의 공익근무을 마친 복무자도 현역 근무자와 마찬가지로 6급 이하 공무원 채용시험에서 총점의 5%를 가산점으로 받는다. 병무청은 20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병역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은 관계부처 등과의 협의 및 국회 의결과정 등을 거쳐 빠르면 내년부터 시행된다. 병무청 관계자는 “현행 병역법에도 군 복무기간을 호봉 승급에 반영해야한다는 규정이 있으나 위반 업체에 대한 법적 제재조치가 없어 대부분의 기업체들이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의무규정을 이행하지 않는 고용주에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형사 처벌조항을 신설한 것”이라고 밝혔다. 개정안은 또 유학이나 해외 취업 등으로 일정기간 병역의무를 연기한 뒤 귀국하지 않는 경우 귀국보증인에게 물리는 과태료를 현행 3,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올렸다. 공사상자 가족의 범위도 현행 ‘아버지 또는 형제’에서 ‘부 모 또는 형제 자매’로 확대,모 또는 자매가 여군으로 자원 입대해 복무 중 사망하거나 다친 경우에도 가족 중 한사람은 보충역에 편입돼 6개월간의 공익근무만으로 병역의무를 마칠 수 있도록 했다. 공익근무 요원이 복무 중 정당한 이유없이 출근하지 않는 경우 경고조치와 함께 결근 일수의 5배를 연장 복무하고 4회 이상 경고 조치를 받으면 형사고발해 3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도록 했다.현재는 공익요원이 복무 중 정당한 직무명령을 어길 경우 현역으로 입대하게 돼있다. 징병검사나 병역 복무기간 중 질병이나 심신장애로 인해 병역 감면처분을 받은 경우 질병 등이 치유되거나 호전돼 본인이 희망하면 재검을 실시해 현역으로 입영할 수 있다. 개정안은 이밖에 지방병무청이 복무기관과 복무분야를 미리 결정해 공익요원을 소집하던 것을 앞으로는 복무기관만 먼저 정하고 구체적인 복무분야는 복무기관이 결정하도록 했다.복무기관이 업무 수요에 따라 공익근무 요원을 탄력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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