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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연숙칼럼] 청계천 이후

    [신연숙칼럼] 청계천 이후

    기자가 살고 있는 대로변 아파트단지 담장과 인도 사이에는 어떤 배려가 있었는지, 녹지공간이 조성돼 있었다.20년 이상된 단지인 만큼 나무들은 제법 커서 대로와 주거공간의 차단막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나무들에 빨간페인트 표시가 그려지더니 나무들이 옮겨지고 녹지공간에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녹지대신 ‘실개천’을 조성하게 됐다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배출되는 지하수 등을 이용해 담장을 따라 실개천을 흐르게 한다고 했다. 시멘트와 자연석을 섞어 구불구불 실개천이 조성되었다. 시작과 끝지점에는 분수대가 설치되었고 중간중간에는 꽃나무와 수초가 심겨져 보기에 나쁘진 않았다. 밤에 조명까지 비치면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됐다. 그러나 실개천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봄 여름 가을의 꽤 많은 시간, 웬일인지 실개천은 흐르지 않는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겨울철 몇 개월동안은 아예 바닥을 앙상히 드러낸 채 낙엽과 쓰레기가 뒹굴기도 한다. 차갑게 말라있는 돌 조경물을 지나칠 때면 차라리 포근한 흙냄새가 좋았다는 생각도 든다. 주민들은 번듯한 녹지를 두고 왜 공사를 하게 뒀을까 회의가 들 때도 있다. 청계천 완공날 천변을 둘러보며 집앞 실개천 생각이 났다. 암석과 시멘트구조물로 이뤄진 시설물에 분수와 폭포, 아름다운 조경과 조명 등이 역시 집주변의 양재천보다는 실개천의 확대판을 보는 느낌이었다. 겨울철에도 저처럼 풍부한 물이 흐를 수 있을까, 걱정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집앞 실개천과 청계천은 근본적으로 다른 데가 있다. 실개천은 멀쩡한 녹지를 파내고 인공시설물을 만든 것이지만 청계천은 매연에 찌든 시커먼 고가도로와 복개판을 걷어내고 어둠에 갇혔던 개천을 밝은 세상에 되돌려놓은 것 아니던가. 우리 사회가 자동차도로 이용 편의와 영세상인들의 상권, 오래된 시장 문화 등을 포기하고 하천의 복원이라는 환경대의를 선택한 최초의 역사적 증거물 아니던가. 청계천 복원을 두고 ‘또 하나의 개발’이라든가,‘조금 긴 분수’일 뿐 생태복원과는 거리가 멀다는 등의 비판적 시각이 존재하는 것을 안다. 일면 사실이기도 하다. 정치인 시장의 치적용 생산물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편의 대신 자연의 복원에 우선적 가치를 부여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을 폄하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청계천을 찾은 백만여 인파는 자연에 대한 현대인의 갈증을 입증한다. 시민들이 그저 눈요깃거리를 찾아, 흐르는 물에 발 담그고 징검다리를 밟고 다녔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물속에서 첨벙대는 아이들에게 부모들이 주고 싶었던 것은 찰찰 흐르는 냇물이 간질여주는 자연의 촉감이 아니었을까 한다. 문제는 이러한 가치선택의 진정성, 지속성이다. 그러니 청계천은 한계를 보완해 나가되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청계천이 단순히 ‘또 하나의 개발사업’이 아니었음을 추후 행동을 통해 보여주어야 한다. 좋은 조짐은 이미 보인다. 청계천 이후, 정릉천·성북천 복개구간 복원이 결정되었고 변화는 과천 등 다른 도시로까지 확산되었다. 그러나 안 좋은 조짐도 많다. 호시탐탐 개발 표적이 되는 그린벨트, 레저·주거시설에 자리를 내주고 있는 전국의 숲들이 그 사례다. 당장 건너편 마을의 울창한 도시숲이 사립고교와 신축아파트업체 합작의 골프연습장 시설로 뜯겨나가게 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청계천의 자연성 복원 가치가 얼마나 유의미한 것이었는지, 그것은 이제부터의 행동에 달렸다. 논설실장 yshin@seoul.co.kr
  • [문화마당] 섬진강,그리고 청계천/김용택 시인·교사

    높고 낮은 산이 있어 작은 골짜기를 만들고 그 골짜기들은 물을 모아 세상으로 흘려 보냈다. 물이 흘러가는 골짜기, 물 좋고 햇빛이 좋은 곳에 사람들은 집을 짓고 논과 밭을 만들어 해뜨면 들에 나가 논과 밭을 가꾸고 배고프면 밥 먹고 해지면 집으로 들어와 고단한 몸을 뉘어 쉬었다. 산이 높고 골이 깊으면 물이 많아 들이 넓었고 사람들도 많이 모여들었으며 물이 적으면 사람들이 적게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골짜기마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산을 등지고 강을 바라보며 강과 함께 마을을 만들어 오랫동안 살아왔다. 나는 산에 등을 기대고 산그늘 속에 가만히 앉아 있는 그 평화로운 강 마을들을 좋아한다. 사람들의 마을인 것이다. 이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강이 어디 있겠냐마는 섬진강은 참 아름다운 강이다. 언제 보아도, 평생을 보며 살았어도, 섬진강은 다시 나에게 아름다운 강이다. 섬진강을 멀리서 보면 작은 산들이 그 몸을 가려 보이지 않는다. 섬진강은 가서 물에 몸을 담그고 물에 손을 넣어보아야 비로소 느껴지는 강이다. 사람들이 온몸을 강물과 섞고 사는 작고 아름다운 섬진강을 나는 이렇게 쓴 적이 있다.‘섬진강은 새색시 옥색 옷고름을 뚝 따 던졌더니 바람결에 날아가 아무렇게나 떨어진 모양’이라고. 나는 그 작고 아름답고 서러운 강 한 마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그 강을 바라보며 아이들 곁에 살고 있다. 어렸을 때 산에서 나무를 해 가지고 오다 강가에 쉬며 징검다리에 엎드려 강물을 마셨고, 여름이면 하루도 빠짐없이 강물에 몸을 담그고 살았다. 강물에서 하도 오랫동안 고기를 잡고 놀다 보니, 강물 속에 있는 바위들의 모양을 지금도 다 기억하고 있다. 봄에 꽁꽁 언 강이 풀려 새물이 흐르고, 여름에는 강물이 불어 넘쳐 쿵쿵쿵 흘렀으며, 가을에는 아름답게 단풍 물든 산이 강물에 얼굴을 씻고 둥근 달을 띄워 올렸다. 겨울 아침에는 하얀 눈을 쓴 산이 우뚝 솟으면, 강물은 길고 거친 붓 자국처럼 흘렀다. 사시사철 시시때때 언제 어느 때 보아도 섬진강은 내게 가슴이 뛰는 감동의 강이었다. 그러나 다시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이제 강 어디에도 온전한 곳이 없다. 강물이 죽어 나는 언제부턴가 섬진강 강물에 내 몸을 담그지 않았다. 강이 나를 버린 것이다. 아니 우리가 강물을 죽여버린 것이다. 섬진강 강물을 따라 가다 보면 강 곳곳에 둑을 쌓아 유장하던 강굽이를 죽여버렸고, 오랫동안 강물 스스로 만들어 온 강기슭에 둑을 쌓고 강바닥을 훑어버린다. 세상에 그 어느 나라가 흐르는 강물을, 그 경관을 저렇게 무참하게 죽이는 나라가 있단 말인가. 달빛이 하얗게 부서지던 저 아름답고 눈이 부신 백사장을 저렇게 무참하게 죽이는 사람들이 또 있단 말인가. 며칠 전에 서울 복판을 흐르는 청계천이 뚫린 날 나는 꽉 막혀 있어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후련함을 맛보았다. 나는 청계천을 놓고 생태학적인, 사회적인, 정치적인, 개개인들의 이해관계는 잘 따지지 못한다. 그러나 그 답답한 서울의 복판으로 물이 흐르고 그 물길을 따라 새들이 날아오고 작은 고기들이 돌아다니고 물가에 풀과 나무가, 꽃들이 자란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뛴다. 아이들이 첨벙거리며 놀던 냇가를 죽인 후 다시 살리는데 온 국민이 흥분하고 있다. 하지만 온 국민들이 기뻐하는 그 사이에도 이 나라 지자체들의 무지하고 무분별한 단발성 관광 개발과 땅에 대한 이해도 개념도 없는 지역 건설족들에 의해 강은 무참하게 파괴되고 죽어 간다. 다시는 살릴 수 없도록 강을 파괴하는 자들에게 경고한다. 아직은 살아 숨쉬는 섬진강을 죽이지 말라. 섬진강을 죽이는 일에 앞장서고 협조한 이들을 낱낱이 기록하여 나는 우리 자손 만대에 전할 것이다. 김용택 시인·교사
  • [청계천 새물길 열렸다] 47년만에 다시 시민의 품으로

    [청계천 새물길 열렸다] 47년만에 다시 시민의 품으로

    청계천에 다시 물이 흐르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인간이 자연과 떨어져 살 수 없다는,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증거다. 개발 위주, 편리함을 추구하던 우리사회가 삶의 질 향상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58년부터 시작된 청계천 복개, 그리고 그 위에 놓인 청계고가도로는 개발주의 시대의 상징물이었다. 그 앞에서 600년 역사의 흐름은 무기력하기만 했다. 이제 원래 모습을 되찾은 청계천은 사람과 자연의 행복한 만남의 상징물이다. 차량과 고층 빌딩이라는 도심의 ‘점령군’이 철수한 자리에 원래 주인이었던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게 된 것이다. 급격한 도시화에 따라 ‘서울의 하수구’로 전락했던 청계천에 원래의 푸른 물결을 되돌려주자 벌써부터 버들치와 잉어가 돌아오고, 왜가리 등 새들이 날아와 도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고 있다. 조선왕도의 개국에서부터 일제 침탈까지의 굴곡의 역사를 지켜본 청계천이 잠시 호흡을 멈췄다가 다시 미래로 흐르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화합의 표상이며, 미래를 여는 창인 셈이다. 서울이 정체성을 회복하는 전기를 마련했다는 의의도 크다. 지금 서울에서 600년 고도(古都)의 흔적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일제 강점과 한국전쟁, 그리고 압축성장을 겪은 서울은 ‘정체성’을 상실한 채 끊임없이 확장돼 왔다. 청계천 복원은 서울이 국적 불명의 상태에서 벗어나 한민족과 함께 어우러지는 ‘인간다운 도시’로 탈바꿈하는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청계천 복원 과정에서 역사성을 되살리는 데 소홀했다는 비판이 뒤따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민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은 미완의 숙제로 남는다. 공기를 맞추다 보니 호안석축 등 문화재 복원 등에는 다소 미흡했다. 결국 청계천 100인위원회 등 시민단체들이 참여를 중단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다. 결국 청계천의 온전한 복원을 위해서는 장충단공원에 있는 수표교를 옮기는 등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는 작업이 계속돼야 한다.‘복원을 빙자한 개발사업’이라는 오명을 털어내기 위해서라도 간과돼서는 안된다. 환경, 그 자체로 소중한 청계천을 가꾸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청계천 주변을 고층 빌딩숲으로 만드는 것에만 급급하지 말고 남산, 종묘, 한강 등 도심의 자연·역사 환경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성숙한 시민의식도 요구된다. 청계천은 이제 서울시의 전유물이 아닌, 서울시민과 국민 모두에게 주어진 ‘선물’이기 때문이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역대 서울시장 ‘한마디’ 회색빛 청계천 고가도로와 함께한 역대 서울시장은 청계천 복원사업을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 서울신문은 10월1일 역사적인 청계천 복원에 맞춰 1970년 이후 15대 양택식 시장에서부터 이명박시장 전임인 31대 고건 시장에 이르기까지 13대 12명의 역대 시장에게 청계천 복원에 대한 촌평을 부탁했다. 역대시장들은 대부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발언이 정치적으로 해석될 것을 염려하는 시장도 있었고, 접촉이 안되는 경우도 있었다. ●고건(67):제22대(1988.12.5∼1990.12.26),31대(1998.7.1∼2002.6.30) 두 차례나 서울시장을 역임한 고 전 시장은 “훌륭하고 잘 한 일”이라며 “충분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한 일이다.”라고 호평했다. 그의 재임 중에도 청계천 복원문제가 거론됐었지만 ‘후임 시장들의 몫’이라며 미뤄뒀었다. 그는 유력한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탓인지 말을 아꼈다. ●조순(77):30대(1995.7.1∼1997.9.9) “아주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은 시작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운영 과정의 문제점은 그때그때 보완해 나가면 된다.”조 전시장은 취임 직전 삼풍백화점이 붕괴돼 사건 현장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재임 중 성수대교와 당산철교를 새로 놓았으며, 여의도 광장 등을 공원화해 시민의 시정을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주춧돌을 놓았다. ●최병렬(67):29대(1994.11∼1995.6) “서울을 바꿔 놓은 역작이다.” 최 전 시장은 “교통난이 우려되는 가운데 대담하게 고가도로를 철거했는데 교통에 영향을 적게 미치면서 서울의 옛 모습을 복원시켜 시민을 즐겁게 했다.”면서 “경제적인 효과까지 거뒀으니 일거삼득이다.”고 극찬했다. 최 전 시장은 이어 “성수대교 붕괴로 시장을 맡은 이후 다리 고치고, 지하철 고치다가 임기를 보냈다.”며 자신의 재임시절을 회고했다. ●김상철(56):26대(1993.2.26∼1993.3.4) 7일 동안 서울시정을 맡았던 김 전 시장은 “청계고가를 해체하고 청계천을 복원한 것은 창조적인 발상의 소산”이라며 “도심에 물길이 흐르면서 도심의 생명력도 살아났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는 “주변 상인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이명박 시장과 시청 직원들의 지혜와 추진력이 큰 역할을 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상배(66):25대(1992.6.26∼1993.2.25) “92년에는 교통 혼잡을 극복하는 문제가 가장 큰 이슈여서 복원 사업을 할 여건이 못됐다.” “그때 복원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 전 시장은 “이제 정릉천 등 지하에 묻힌 다른 개천들이 복원될 차례”라면서 “삼청공원에서 시작되는 청계천 수원도 원래 모습을 되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세직(72):23대(1990 12.27∼1991.2) 한 달 반정도 서울 시정을 맡은 박세직 전 시장은 “86아시안게임·88서울올림픽 당시 외국손님이 많이 왔을 때 도심에 산책코스가 마땅히 없어 아쉬웠었다.”면서 “이번 청계천 복원으로 도심에 산책코스가 생긴 것은 관광자원을 개발하는 데에 있어 상당히 잘 된 일이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공사 초반 교통문제 등의 우려와 달리 성공적으로 끝나 국내·외적으로 호평을 받는 것은 건축·토목 분야 경험이 많은 이명박 시장의 공”이라고 말했다. ●김용래(71):21대(1987.12.30∼1988.12.4) 김 전 시장은 “과거 서울은 교통정책·도시재개발정책 등 개발정책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으나, 지금은 문화와 환경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면서 “이런 의미에서 청계천 복원은 시대의 흐름을 잘 짚어낸 역작”이라고 말했다. 김 전 시장은 이어 “재임 당시 88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문화와 환경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좀더 인간적인 서울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바로 이 때부터 태동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당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문제가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고 소개한 뒤 “고가도로 자체의 설계가 정밀하게 되지 못해 일부 구간은 통행을 중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김성곤 이두걸 김유영 김기용기자 sunggone@seoul.co.kr ■ 숫자로 본 청계천 ‘연인원 69만 4405명이 동원되고, 돌 6만 9194t이 투입됐다.’ ‘콘크리트 20만 5280㎥, 철근 3만 5000t을 캐냈다.’ 청계천 복원사업을 대표하는 숫자들이다. 2003년 7월1일 청계고가도로 철거와 함께 첫 발을 뗀 복원공사는 823일 만인 2005년 9월30일 매듭이 지어졌다. 공사구간 3곳에 동원된 공사관계자들은 여름철 강우 때 물이 흘러들 것에 대비, 한겨울에도 모닥불을 쬐가며 하안 벽체를 조성하는 등 공기(工期)를 맞추려고 쉼없이 일했다. 청계천에 얽힌 숫자는 흥미진진하다. 청계천 복원구간 길이는 정확하게 말하면 5847m. 시오리(里)에 조금 못미치는 거리다. 2년 3개월동안 10t,15t짜리 덤프트럭 13만 5182대가 투입됐으며, 하루 평균 165대가 북적댔다고 보면 된다. 공사에 들어간 인원은 하루 평균 850명이다. 청계천을 유지·관리하는 데 들어가는 전기사용 용량은 2200㎾로,30W 전구 7만 3000개를 동시에 켜는 것과 맞먹는다. 전기요금만 연 8억 8000만원이나 된다. 가구당 연간 40여만원을 전기료로 낸다고 치면 2000여가구의 아파트단지가 쓸 전력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또 공공 산업용 전기료는 ㎾당 기본요금 4500원, 사용료 당 50원으로 싸게 매겨지기 때문에 민간차원으로 환산하면 어림잡아 21억 4000여만원을 내야 하는 셈이다. 주택과 비교할 때 최고수준인 ㎾당 기본요금 1만 1000원과 비교하면 2.44분의1 정도다. 따라서 실제 요금으로 따지면 서민가정 5000가구가 사용하는 전기량과 비슷하다. 공사 때 쏟아부은 콘크리트는 레미콘 트럭으로 3만 4300대 분량. 바닥면적 300평 건물을 513층 높이로 지을때 들어가는 물량이다. 징검다리와 수경시설 등 구간 곳곳에 설치돼 청계천의 밤을 밝히는 조명등은 자그마치 8973개다. 가로등 464개, 산책로 조명등 818개, 수목 조명등 974개, 수로 조명등 1878개, 시점부 청계광장 등 기타 2529개 등이다. 말 그대로 푸른 청계천이 되도록 주변에 심어놓은 식물은 150만 4109본이다. 나무 19종 8만 9415그루, 초화류 17종 59만 4584포기, 물 위에 살도록 그물 모양의 매트로 엮어 띄워놓은 수상식물 12종 82만 110포기로 엄청난 숫자다. 복개된 구간을 파헤치면서 쓴 석재만 15t트럭 4600대분이다. 경사면 벽체를 맏드는 데 1만 5132t, 호안 조경석에 5만 4062t이 들어갔다. 독도를 알리는 돌을 포함해 제주도 등 우리나라 8도를 상징하는 시점부 폭포 아래의 ‘8도석’도 포함됐다. 청계천에는 하루 12만t의 물을 흘러보내는데, 보통 고지대나 재난지역에 물을 공급하는 5t짜리 ‘물차’ 2만 4000대를 동원한 꼴이다. 고가도로 및 복개 구조물을 뜯어내면서 생긴 콘크리트와 아스콘, 철재 폐기물은 90만 7000여t이다.15t 트럭으로 6만 500대 분량을 실어날랐다. 이 가운데 콘크리트·아스콘 87만 2000t의 96%인 83만 7100여t은 도로 기층재나 성토용으로 복원구간에 고스란히 재활용됐다. 청계천을 가둬놓았던 폐기물은 돈까지 벌어줬다. 철근 3만 5000여t을 폐기물 재활용 업체에 팔아넘겨 t당 평균 8만 8000원을 받았다. 총액 30억 800여만원을 벌었다. 색다른 수치도 있다. 청계복원추진본부 남원준 총괄담당관은 “착공을 전후해 청계천 주변 상인들과의 원만한 논의를 위해 직원들이 일일이 이들과 면담한 건수만 4220회”라고 밝혔다. 이같은 내용을 담은 ‘청계천 백서’는 내년 1∼2월쯤 나온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청계천 철거서 개통까지 청계천이 47년 동안의 어둠을 털고 1일 시민품에 안긴다.2년 3개월 동안의 공사를 마치고 시오리 청계천 물길이 힘찬 약동을 시작한다. 숨이 막혀 청계천을 떠났던 사람들은 다시 찾아온 버들치와 백로처럼 청계천으로 돌아왔다. 청계천은 600년 역사를 물길로 담아왔지만 언제부턴가 천(川)아닌 길로 바뀌었다. 하지만 잊혀졌던 청계천은 물고기가 뛰노는 생태하천으로, 세계적인 명소로 거듭났다. ●청계천 새물맞이 서울시는 1일 오후 6시 청계천 복원의 주역인 이명박 서울시장 등 주요 인사와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통을 기념하는 ‘청계천 새물맞이’행사를 개최한다. 이날 청계천의 시작 지점인 청계천광장에는 전국 8도의 강과 못(池) 10곳에서 길어 온 물을 청계천에 흘려 보내는 8도의 물의 합수(合水) 의식이 진행된다. 이어 불꽃놀이와 조수미, 보아, 김건모 등 성악가, 가수의 축하공연이 이어진다. 청계천 산책로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개방된다. 새물맞이 행사가 열리는 청계광장∼삼일교 구간은 행사 뒤인 오후 9시부터 개방되지만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청계광장에서 삼일교 방향으로만 진행할 수 있다. 새물맞이 행사를 하루 앞두고 30일 전야제 행사로 열 예정이던 정명훈씨가 지휘하는 기념음악회와 8도의 물 안치식은 비로 하루 연기돼 1일 오후 8시30분에 열린다. 2002년 민선 3기 서울시장선거에서 청계천 복원을 공약으로 내 걸었던 이 시장은 취임 1년 만인 2003년 7월 청계고가도로 철거 작업과 함께 청계천 복원의 대역사(大役事)에 착수했다. 그러나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다. 도심부 교통체증은 교통체계의 개편과 시민 협조가 필요했고, 주변 상인들의 반발은 수많은 만남으로 해결했다. 복원과정에서 발굴된 문화재로 인해 공사가 지연되기도 했고, 장애인에 대한 배려 부족과 악취, 화장실 문제 등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고 청계광장∼고산자교에 이르는 5.84㎞의 청계천 물길이 열리게 됐다. 청계천의 복원으로 생태계는 물론 상권도 살아나고 있다. 청계천이 가져온 또 다른 혜택인 셈이다. ●미래로 흐르는 물길 청계천을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부쩍 늘었다. 점심 무렵에는 주변 샐러리맨들의 휴식처가 된다. 가로등이 켜지는 저녁에는 연인·가족·친구들이 삼삼오오 청계천을 찾아 청계천의 변신에 놀라워한다. 지난 29일 퇴근 후 도심에서 가족과 만나 청계천 구경을 나왔다는 한경준(42·광진구 자양동)씨는 “청계천을 보니 우리도 이제 명소를 하나 가졌다는 자부심이 생긴다.”면서 “앞으로 이를 잘 지키는 데 힘써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동료들과 청계천을 찾은 황인규(32·양천구 목동)씨는 “청계천처럼 우리도 과거의 어두운 기억을 털고 밝은 미래를 지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청계천 우표 1만장 발행 청계천의 어제와 오늘을 담은 ‘우표첩(바람부는 청계천)’이 청계천 복원을 기념해 4일 발행된다. 판매량은 1만장이다. 서울·경기지역 우체국과 우리은행 창구에 주문하면 된다. 우표책자 제작업체와 서울시가 ‘나만의 우표’ 형식을 빌려 서울중앙우체국에 접수했다.‘나만의 우표’는 개인 또는 기관·단체가 신청하면 우정사업본부가 만들어 준다. 전지 1장(낱장 20장 묶음)당 판매가는 8000원이고, 선물용인 우표첩은 4만 9000원이다. 전지에는 1장당 220원짜리 우표와 청계천의 과거와 현재(공사 중인 사진 포함)의 사진 14장이 실려있다. 우표첩에는 1권당 우표 36장이 첨부돼 있고, 그림엽서가 1장씩 포함됐다. 서울중앙우체국(100.epost.go.kr), 서울시(www.seoul.go.kr) 홈페이지에서 신청 가능하다. 전화는 (02)2278-0038,1544-3869. 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 [청계천 새물길 열렸다] 황병기교수의 산책기

    [청계천 새물길 열렸다] 황병기교수의 산책기

    나는 1936년 서울 북촌의 가회동에서 태어나 그 동네에서만 살다가 74년 비로소 서대문 밖의 북아현동 꼭대기로 이사 온 후 지금도 그 곳에서 살고 있다. 이렇게 서울에서만 살아온 토박이여서 지난 94년 서울 정도 600주년 때는 자랑스러운 서울시민의 한 사람으로 뽑히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추억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의 하나가 삼청동 계곡의 시냇물에서 바위 뒤에 숨어 있는 가재를 잡아다가 집에서 놋대야를 놓고 기르던 일이다. 맑은 수돗물에서 사는 것을 가재가 싫어하기 때문에 흙과 돌까지 퍼 와서 대야의 물을 가급적 시냇물과 흡사하게 만드느라 고생했다. 이 삼청동의 맑은 물줄기를 따라 계속 남쪽으로 내려가면 경복궁 동편으로 해서 중학동을 지나 결국 청계천이 되어 서울 중심부를 동쪽으로 흘러갔다. 그 당시도 개울물이 그다지 맑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끔 아낙네들이 빨래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빨래할 정도의 물은 되는가 보다고 생각했다. 하기는 이름이 ‘청계천’이니 옛날에는 오죽 맑은 물이었을까 하고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그 후 청계천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50년대에 박태원의 장편 소설 ‘천변풍경’을 읽으면서이다. 이 소설은 청계천 부근에서 사는 서민들의 삶을 다룬 단편소설집인데, 이 단편들을 계속해서 읽으면 하나의 일관된 장편소설이 되는 이른바 옴니버스식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은 후 청계천은 단순한 냇물이 아니라 서울 사람들의 애환이 서려 있고, 서울의 혼이 담겨 있는 정다운 물로 느껴지게 되었다. 그러나 60년대부터 서울 인구의 폭증과 산업화의 급류 속에서 청계천은 차츰 악취가 풍기는 구정물처럼 변하고 인근은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 촌의 모습이어서 서울의 치부처럼 느껴졌다. 사실 외국에서 손님이라도 오면 보이는 것이 창피할 정도였다. 그래서 60년대 말에 복개공사가 이루어져 이 치부가 말끔히 사라지자 시민들이 박수를 치기도 했다.70년대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자 그 위를 차로 달릴 때 바라보이는 빌딩들이 한국 산업화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세월은 흘러 21세기에 들어왔다. 그동안 서울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강남시대를 맞이했지만, 나는 여전히 강북에서 그리고 청계천 북쪽의 북아현동 꼭대기를 지키고 있다. 그동안 어언 정년퇴임을 하고 이문동의 옛 중앙정보부 자리에 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문화원에 출강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마다 청계고가도로를 이용했다. 그런데, 어느 날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청계천을 다시 복원한다는 뉴스를 듣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엉뚱하기도 하고 기발하기도 한 뉴스였다. 처음에는 시민들로부터 온갖 걱정과 염려를 사고 진통을 겪었지만 차츰 청계천 복원이 일종의 희망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불과 2년여 만에 이것이 먼 장래의 일이 아니라 바로 목전의 현실로 다가오고 인터넷상에 복원된 청계천의 환상적인 가상사진이 뜨기 시작했다. 60년대의 청계천 복개가 문자 그대로 부정적인 옛 것을 덮어서 없애버린 것인데, 오늘의 청계천 복원은 그 옛 것에 대하여 오히려 자부심을 가지고 미래지향적인 것으로 되살려 낸 것이니 가히 청계천의 기적이 이루어진 것이다. 지난 9월29일 나도 꿈의 청계천 복원현장을 아내(한말숙·소설가)와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둘러 보았다. 처음에 청계천 광장을 지나 산책로로 내려가자 상전벽해라기보다도 천지개벽이 이것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과연 서울은 위대하고 대한민국은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최선을 다하여 복원한 흔적이 역력한 광통교를 흥미롭게 살피고, 풀밭사이의 산책로를 걸으면서 징검다리도 건너보고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는 192m 길이의 도자벽화 정조반차도도 흥미롭게 보았다. 더구나 이 반차도는 옛 군악대인 취타수들의 연주모습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국악사적으로 중요한 자료여서 더욱 반가웠다. 그러나 한참 걸어가다 보니 차츰 지루해지고 허전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왜 그럴까하는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청계천 복원도 문명의 힘으로 밀어붙인 인공물의 한계성을 극복할 수는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복원된 청계천이 앞으로 오랜 시간을 두고 잘 가꾸어지면서 연륜과 역사가 더해지고 서울 시민들의 삶과 자연스럽게 한 살이 되기 위하여서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입계단으로 올라와 한동안 청계로 위의 난간 쪽 보도로 걸었다. 그런데 이 보도의 폭이 두 사람도 함께 걸을 수 없이 좁아서 휠체어는 물론 유모차조차 다닐 수 없는 길 아닌 길이라는 것은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우리는 자연과 문화와 역사에 대하여 좀 더 겸허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이제부터 꾸준히 청계천을 가꾸어가야 할 것이다. 황병기 (이화여대 명예교수)
  • 청계천 물맞이 축제

    청계천 물맞이 축제

    축제(祝祭)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하늘의 만남이다. 동서고금의 공통분모다. 우리의 추석과 설은 일가친척과 조상, 그리고 친구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잔치다. 성탄절인 크리스마스도 고대 로마의 마을 사람들이 한 해를 마감하는 동지 명절과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그러면서도 과거와 현재의 해원(解怨)을 통해 밝은 미래를 내오는 장이다. 전통 장례식을 담은 이청준씨의 소설 ‘축제’는 옛 악연을 풀고 새 삶을 노래한다. 청계천복원기념축제 역시 큰 어우러짐을 꾀한다. 오는 30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다양한 문화·체육 행사 등을 통해 시민과 청계천은 푸른 물살 위에서 함께 춤춘다. 서울세계도시시장포럼은 국경을 넘어 세계에 첫 인사를 하는 자리다. 그러면서도 개발독재 시대의 잔재를 털고 환경과 사람이 중심이 된 21세기 서울을 연다는 점에서 ‘씻김굿’의 자리이기도 하다. 새와 구름, 그리고 물의 이미지가 형상화된 엠블럼처럼 인간과 자연도 잿빛 도시 서울에서 다시 손잡는다.‘열린청계 푸른미래’를 슬로건으로 내건 것도 이런 까닭이다. 시민과 청계천은 한달 동안의 축제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뛰어넘어 ‘행복한 만남’을 이룬다. 물이 흐르는 청계천 고산자교 아래 징검다리에서 뛰어놀고 있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정겹다. 글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시민잔치 한마당 덩실 은빛물결 다시 춤춘다 청계천이 춤을 춘다. 10월1일 청계천에 맑은 물이 흐른다.2003년 7월 청계천 복원공사에 들어간 이후 2년3개월 만이다. 개발시대엔 서울 교통의 대동맥이었던 청계고가가 사라지고 묻혔던 청계천이 물줄기를 다시 찾았다. ‘청계천 물맞이 축제’가 성대하게 치러진다. 오는 26일부터 11월3일까지 청계천 주변과 서울광장 등에서 복원기념 축하음악회 등 다양한 문화, 체육행사 등의 축제가 펼쳐져 볼거리를 제공한다. ●‘열린 청계 푸른 미래’ 이번 축제의 슬로건은 ‘열린 청계 푸른 미래’다. 콘크리이트 더미에 덮여 있던 청계천이 새롭게 태어나면서 다음 세대에게 늘푸른 자연과 환경을 선사하는 뜻을 담았다. 엠블럼은 새로운 청계천과 하늘의 첫 만남을 상징하는 새와 구름, 그리고 물의 이미지가 형상화된 물고기와 물결 무늬로 꾸며졌다. 또한 이번 축제는 기다림과 만남, 약속이라는 테마를 통해 청계천의 성공적인 복원을 국내외에 선포하고, 지속 가능한 도시개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예정이다. ●클래식과 가요의 향연 이번 축제는 20여개에 달하는 다양한 행사로 꾸며진다. 축제의 공식적인 일정은 30일 새물맞이 전야제로부터 시작돼 10월1일 오후 6시에 열리는 ‘청계천 새물맞이 행사’에서 절정을 이룬다. 청계천이 푸른 물결을 국내외에 선보이는 통수식에 이어 가수 보아, 김건모씨와 성악가 조수미씨의 화려한 축하공연이 펼쳐진다. 축제는 크게 문화행사와 시민참여행사로 나뉜다. 문화행사의 ‘얼굴’은 10월1일과 2일 오후 7시30분부터 9시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복원기념축하음악회.1일은 서울청소년교향악단(지휘 박태영),2일은 서울시립교향악단(지휘 정명훈)이 선보인다. 슈베르트 교향곡 제8번 미완성, 말로 교향곡 제1번 거인, 베토벤 피아노교향곡 제5번 황제 등 명곡들이 가을밤의 정취를 수놓는다. 10월3일 서울광장에서는 ‘7080 콘서트’가 기다리고 있다. 오후 7시부터 2시간 30분 동안 열리는 이 행사에는 김수철, 김세환, 신형원, 남궁옥분 등 7080세대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가수들이 대거 출연, 한목소리로 청계천 개통을 축하한다. 이밖에 10월2일 서울광장에서 ‘복원기념 국악한마당’이,3일 청계천변에서 ‘청계천 민속놀이 재현행사’ 등 다채로운 문화 행사가 준비돼 있다. ‘청계천 옛모습 사진전’,‘2005 청계천을 거닐다’ 전시회 등도 볼거리다. ●청계천 달리며 팔도음식도 맛봐 시민들이 대거 참여할 수 있는 행사도 열린다.10월1일부터 사흘 동안 원구단과 동화면세점, 영풍문고 일대 등에서 ‘청계천 사랑 음식한마당’이 펼쳐진다. 팔도의 음식이 청계천 나들이를 더욱 즐겁게 한다.10월1일부터 8일까지는 동대문·남대문시장, 명동상가에서 ‘청계천 복원기념 빅세일’도 연다. 체육행사도 빠질 수 없다.2일 오전 9시부터 서울광장과 청계천변을 지나 한강까지 달리는 ‘제3회 하이서울 청계천-한강 마라톤대회’가 열린다. 다음날에는 서울광장부터 청계천 고산자교까지 푸른 물결을 보며 걷는 ‘청계천 시민 걷기대회’도 개최된다. 청계천 복원을 대외에 널리 알리는 국제행사도 예정돼 있다.30일부터 10월1일까지 롯데호텔에서 ‘서울 세계도시 시장포럼 2005’가 개최된다. 중국 베이징, 그리스 아테네 등 30여개국 대도시의 시장·부시장 및 전문가 500여명이 참석한다. 청계천 복원의 의미와 경험을 공유하고 지속가능한 21세기형 환경도시상을 논의한다. 이어 10월9일부터 12일까지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센터에서 투자환경설명회가 열린다. 청계천 복원으로 높아진 서울의 투자가치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자리다.4500여명의 화교가 참석하는 제8차 세계화상대회도 함께 곁들여진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청계천은 365일 문화공간 아티스트 50개팀 연중공연 만드는 것 못지않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에 비유할 수 있는 서울의 청계천도 예외가 아니다.1년 365일 청계천을 문화 공간으로 가꿀 ‘청계천 아티스트’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청계천 아티스트는 청계천 곳곳에서 다양한 문화활동을 펼칠 거리예술가들을 통칭한다. 음악 미술 연극 무용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 서울문화재단(대표 유인촌)이 기획·운영한다. 청계천 아티스트는 서류와 오디션을 포함한 심사과정을 거쳐 선발된다. 일정 수준 이상의 공연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이다.1차 서류심사를 통과한 55개 팀은 23∼24일 이틀동안 관철동 피아노거리에서 열리는 공개오디션을 통해 50개 팀이 선발된다. 이들은 내년까지 거리예술가로 청계천광장, 장통교 등 청계천 주변 10여곳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체계적인 활동을 위해 구역을 나누고, 주중에는 점심·저녁, 주말에는 오후·저녁 등 공연 시간대도 구분한다. 활동기간이 명시된 공식 ID카드 등도 발급된다. 외국의 거리예술가처럼 시민이 공연자에게 기부금을 낼 수도 있다. 사후관리는 엄격하다.3회 이상 공연에 불참했을 때에는 자격이 정지된다. 또 한해 두 차례 오디션을 통해 ‘물갈이’를 유도한다. 서울문화재단은 내년에는 우수 거리예술가에게 영국·캐나다 등의 거리예술 축제인 국제 버스킹 페스티벌 참가 기회를 부여하고,2007년에는 직접 페스티벌을 개최할 계획이다. 서울문화재단 관계자는 “청계천 아티스트는 청계천 복원으로 문화도시로 탈바꿈한 서울을 이끄는 첨병”이라면서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등의 ‘명품’인 지하철 거리예술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새광고] 정시배송 재미있게 표현

    세계 최대의 항공 특송회사 가운데 하나인 FedEx는 이 달 들어 새로운 TV광고 징검다리편을 선보였다. 한 직원이 배달 도중 강 위의 도로에서 교통체증에 걸려 제 시간에 도착하기 어렵게 되자 배송 전문가 팀의 협조로 강 위를 걸어서 약속한 시간에 고객에게 배송한다는 내용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고 있다. 광고는 직원간의 팀워크를 부각시키고 있다.
  • “취업 관문 돌파하는 징검다리로 활용해야”

    아르바이트도 당당한 경력이다. 경험의 폭을 넓히는 것은 물론이고 취업을 위한 비장의 카드로도 활용할 수 있다. 아르바이트로 인생의 로드맵을 만들어 취업 관문을 뚫는 방법을 전문가로부터 들어봤다.?아르바이트는 당당한 경력 전문가들은 취업준비생이나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단순한 돈벌이로만 생각해 값진 경력으로 발전시키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기업들은 아르바이트를 통해 사회조직과 인간관계에 대해 눈뜨고 사회가 어떤 것인지 체험한 흔적을 높이 산다. 하지만 대부분 이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취업을 위한 중간단계로 활용해야 한다는 확고한 인식이 필요하다. 리크루트 이정주(47) 대표는 “아르바이트가 진짜 경력이 되려면 사회조직 적응과 인간관계 수립, 돈을 번다는 것의 어려움을 안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면서 “취업준비생 및 대학생들이 조기에 진로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확립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장기 계획이 필수다.1,2학년 때에는 육체적·정신적으로 어려운 아르바이트를 통해 돈을 벌어보는 것이 좋다.3·4학년이 되면 업무와 관련된 능력을 쌓을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권할만 하다.?한 가지에만 집중을… 취업준비에서 성적과 자격증에 대한 공부가 서류심사와 필기시험의 한 축이라면 아르바이트는 사회에 대한 집중적인 경험 등 면접에 관한 한 축이다. 그러나 대부분 취업준비생들은 이를 쉽게 생각한다. 그래서 대학생들은 방학이라는 짧은 시간을 이용해 아르바이트와 학교수업, 어학공부 등을 동시에 하려고 욕심을 부린다. 아르바이트에도 전력을 쏟지 못하고 어학능력 등도 뚜렷하게 향상시키지 못하는 이유다. 한가지에 집중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학기 중에는 학업과 어학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힘쓰고 방학 중에는 아르바이트에 전념하는 것이 취업에는 좀 더 효율적인 방안이다.?무보수로라도 관심분야의 경력을 쌓아라 하고 싶은 분야의 아르바이트 자리가 없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해 취업관련 분야의 경험을 쌓는 것이 취업의 필수조건이다. 때에 따라서는 돈을 받지 않고 무보수로 일을 해 자기의 인생밑천으로 삼겠다는 자세도 필요하다. 스카우트 도명희(27)씨는 “아르바이트 전문 사이트를 통해 자신이 가고 싶어하는 업체나 이와 비슷한 곳에서 채용을 하는지 확인해야 한다.”면서 “만일 원하는 업체에서 채용을 하지 않는다면 전화를 하거나 방문해 아르바이트 의사를 강력하게 피력하면 그 모습을 높이 평가해 기회를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잠실 주공5단지 ‘금요 알뜰시장’

    잠실 주공5단지 ‘금요 알뜰시장’

    서울 송파구 잠실 5단지 주공아파트. 매주 금요일 오전 8시면 한쪽 주차장에서 ‘알뜰시장’이 열린다. 감자·배추·양파 등 야채와 수박·참외·토마토 등 과일, 오징어·고등어 등 생선, 건어물, 곡류, 밑반찬 상인이 원을 그리며 좌판을 편다. ●도매시장·산지서 농·수산물 ‘직송´ 장터로 들어선 주부들의 발길도 분주하다. 손수레를 끌고 나온 주부 이상미(48)씨는 매주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도매시장이나 현지에서 곧바로 온 물건이라 할인점이나 백화점, 마트보다 싱싱해요. 값도 저렴하고요.” 이씨는 사려고 맘먹었던 상품이 동날까봐 아침 일찍 서둘렀단다. 직장인 김정민(37)씨는 출근길에 잠시 장터를 들렀다. 바삐 수박과 양파·감자를 고르더니 아파트까지 배달해달라고 주문한다.“물건도 좋지만, 집까지 갖다주니까 편리하죠. 재래시장과 백화점, 마트의 장점만 모아놓은 셈이에요.” 손님이 밀려들면 배달이 다소 늦어지는 게 유일한 불만이라고 했다. 아파트 알뜰시장이 큰 호응 속에서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할인점 열풍으로 재래시장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박리다매 전략에 집안까지 배달 10여년전 서울·경기지역에서 처음 시작한 알뜰시장은 대전을 거쳐, 천안, 충주, 청주 등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500가구가 넘는 서울·경기지역 아파트 단지에선 알뜰시장이 열리지 않는 곳이 없다고 상인들은 전했다. 성공비결은 이윤을 적게 보더라도 많이 판매하는 것. 서울수산 전성삼 사장은 “일반 소매상의 마진이 20%라면 알뜰시장은 5∼7%를 넘지 않는다.”면서 “단골을 확보해 꾸준히, 많이 판매하는 것이 전략”이라고 말했다. 알뜰시장 상인들은 ‘5일장 장돌림’ 만큼이나 바쁘다. 새벽 3∼4시,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이나 노량진수산시장으로 달려가 상품을 구매한다. 좋은 상품을 할인점에 뺏기기 않으려 서두르는 것. 트럭에 야채·과일·생선을 가득 싣고 알뜰시장이 서는 아파트로 직행한다. 안산·수원·인천까지도 단숨에 달려간다. 밑반찬 상인도 분주하긴 마찬가지다. 대전에서 ‘팔도맛김치’를 운영하는 김남일(65) 할머니는 목요일 아침부터 김치를 담근다. 포기김치·오이김치·열무김치를 만들어 하루 동안 숙성시키는 것. 금요일엔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 겉절이를 만든다. 하루종일 아삭아삭한 맛을 유지하는 노하우다. ●취업난 반영… 상인 중엔 대졸자도 아침 6시에 대전에서 출발하면 8시쯤 잠실에 도착한다.“30년 동안 국산만 고집하며 김치를 만들었어. 조미료 대신 멸치·다시마·무를 끓여 양념하고. 끝맛이 시원하고 담백하다고 단골들이 좋아해.”김 할머니는 젊은 주부들에게 김치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재미 덕에 서울나들이가 힘들지 않다고 했다. 좌판이 펼쳐지면 주부들이 물밀듯이 쏟아진다.30여명의 젊은 상인들이 물건을 파느라 정신이 없다. 취업난에 대졸자들도 알뜰시장을 찾아 일을 배운다. 야채는 1000원을 기준으로 팔린다. 깻잎을 비닐봉지에 맘껏 담아도 1000원, 바구니에 가득한 야채도 1000원, 어른 팔뚝보다 굵은 무도 1000원, 당근 3개도 1000원이다. 돈바구니엔 1000원짜리 지폐가 쌓여간다. 생선 장터엔 오징어·갈치·고등어 등이 얼음 위에서 주인을 기다린다. 흰색 이름표엔 원산지가 시·도까지 표시돼 있다. 수입품도 눈에 띈다.“요즘은 주부들이 상품을 더 잘 알아요. 어설프게 수입산을 국산이라고 장난쳤다가는 쪽박차기 십상이죠. 교환·환불은 기본입니다.”한 상인의 말이다. 과일가게에선 수박 맛보기가 한창이다.1만원짜리 수박을 큼직하게 썰어 시식하도록 하는 것. ●오후 4시 지나면 50%까지 할인 판매 잠실 5단지에선 야채·과일·생선·건어물·먹을거리·곡류 등 기본 품목만 판매된다. 옷과 생활용품 등 공산품도 나오는 다른 알뜰시장과 사뭇 다르다. 알뜰시장 운영위원회 조희철(66) 위원장은 “주변 상가 상인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계약할 때 공산품 판매를 금지했다.”고 설명했다. 계약전 충분한 시장조사를 통해 얻은 결론이다. 계약전 충분한 시장조사를 통해 얻은 결론이다. 뜨거운 태양볕을 하루종일 받은 야채와 생선이 늦은 오후엔 고개를 숙인다. 이때부터 세일을 시작한다.‘그날 물건은 그날 다 판다.’는 알뜰시장 원칙 때문이다.20∼30%로 시작한 할인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50%까지 높아진다. 야채를 판매하는 합동물산 임기선 사장은 “지친 야채를 물에 넣으면 금세 살아나지만, 다음날 판매하긴 어렵다.”면서 “원가보다 싸게 내놓는 게 버리는 것보단 이득”이라고 말했다. 생선도 사정은 마찬가지다.“잡은 지 2∼3일 지난 생선이라면 알뜰시장 보단 할인점에서 사는 게 낫지요. 소상인이 기업의 냉장·냉동시설을 따라가지 못하니까요.”전성삼 사장의 말이다. 생선은 2∼3시간 단위로 가격을 낮춰서 몽땅 팔고 있다. 뜨겁던 태양이 뉘엇뉘엇 아파트 사이로 넘어가자 상인들은 장터를 깔끔하게 청소하고, 트럭을 나눠 타고 떠났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치열한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 안타까워 야채·과일을 판매하는 합동물산 임기선(44) 사장은 아파트 알뜰시장을 처음 만든 사람에 속한다. 1995년 서울 노원구 중계동 미도아파트 앞에서 1t트럭에 채소·과일을 싣고 장사를 할 때였다. 아파트 부녀회장이 ‘일주일에 한번씩 아파트 안에서 장사를 해보라.’고 제안해 왔다. 아파트로 들어가니 매출이 10배 늘었다. “5년 동안 같은 장소에서 매일 장사해도 주민들은 문밖에선 남이라 생각하지요. 아파트로 들어오니까 신기하게도 식구로 받아주고 믿더군요. 상품에 문제가 있어도 일주일 기다려서 바꿔가고….” 품목을 다양화해달라는 요청에 따라 평소 알고 지내던 생선, 건어물, 먹을거리 상인들을 불러모았다. 알뜰시장이 탄생한 것이다. 알뜰시장 전문업체인 합동물산을 세워 사업을 확장했다.97년 외환 위기가 터지자 오히려 호황을 누렸다. 주머니가 가벼워진 소비자들이 백화점이나 마트보단 알뜰시장을 찾게 된 것. 임 사장은 현재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거래되는 야채·과일 30∼40%가 알뜰시장에서 판매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2∼3년전부터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이 시작됐다고 안타까워했다.“브로커들 때문에 계약금이 너무 부풀어 올랐어요.3억원이 넘는 곳도 생겼으니. 장사란 이윤을 남겨야 하는데 계약금 때문에 물건을 싸게 파는 게 점점 불가능해져요.” 청춘을 바친 알뜰시장이 농민과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징검다리가 됐으면 한다고 임 사장은 소망했다. ■ 품질·가격 주민의 신뢰 얻어야 살아남아 생선을 취급하는 서울수산 전성삼(45) 사장은 ‘악연´으로 알뜰시장을 만났다.1995년 서울 노원구 하계 7단지 주공아파트 상가에서 생산을 팔다 알뜰시장이 들어서 크게 손해를 입었다. 이에 전 사장은 전업을 결심하고 알뜰시장에 뛰어들었다. 싸고 싱싱한 생선을 구하기 위한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노량진 수산시장에 만족하지 않고, 인천수협과 옹진수협으로 달려갔다. 도매상 없이 고깃배에서 생선을 사기 위해서였다. 4월∼6월이면 꽃게를 무더기로 사와 이윤없이 팔았다. 아침이면 30∼40명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주민들에게 신뢰를 주는 게 중요해요. 좋은 꽃게를 2개월만 싸게 팔면 1년내내 장사가 쉬워지죠.”‘박리다매’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얘기다. 아내는 물론 처남 2명과 처남댁도 시장에 뛰어들었다. 손발이 척척 맞는 데다 수입이 많으면 많이 나눠쓰고, 적게 벌면 조금씩 가져가니 사업이 훨씬 수월했다. 웰빙 열풍에 오히려 요즘 힘들다고 했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없어요.10여년 전에 보다 생선이 20분의1로 줄었으니….”수십년 동안 어린 생선까지 긁어모아 젓갈과 어묵을 만드는 바람에 그 죄값을 치르는 것이라고 한숨졌다. 꽃게를 싸게 파는 행사도 2년 동안 하지 못했다. “근해에 잡은 싱싱한 생선이 없으면 알뜰시장은 망해요. 냉동처리한 수입산이야 할인점에서 사는 게 낫지요.”알뜰시장이 도시속 5일장 풍속으로 살아남기를 전 사장은 기원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레포츠의 천국 인제로

    레포츠의 천국 인제로

    무덥고 습한 장마에 지친 사람들은 레포츠의 천국 인제로 떠나자.63m에서 번지점프, 내린천을 외줄로 건너 가는 플라잉폭스, 순식간 50m 하늘로 튀어 오르는 번지불릿 등 18가지의 레포츠를 마음껏 즐기다보면 무더위로 인한 짜증은 사라진다. 맨손고기잡기, 물축구, 뗏목 타기 등 다양한 체험 행사는 물론 볼거리가 많아 온가족의 나들이 장소로도 좋다. 활력이 넘치고, 행복해지는 곳 ‘하늘내린인제’가 바로 그곳이다. 인제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하늘이 잔뜩 찌푸린 날 인제로 떠났다.‘날씨도 안 좋은데 언제 가나’걱정을 하며 나선 길. 그러나 홍천까지 쭉 뻗은 6번 국도는 고속도로 같았다. 한창 확장공사중인 도로를 달려 2시간30분만에 도착했다.“길 좋아졌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한국의 때묻지 않은 숲과 계곡을 가지고 있는 인제는 결코 멀지않았다. 합강변에 우뚝 서 있는 번지점프타워와 내린천에서 래프팅을 하는 사람들이 보이자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바람을 가르며 먼저 플라잉폭스. 강폭이 50m가 넘는 합강을 순식간에 날아 건너간다. 먼저 안전띠를 매고 줄에 걸 도르래를 들고 타워 위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앉는 자세를 배운 후 도르래를 두 손으로 꽉 잡았다.“출발!”교관의 외침에 따라 외줄을 미끄러져 내려갔다.“와∼아”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고, 내 몸이 강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머리 위에서 ‘끼릭끼릭’하며 돌아가는 도르래 소리가 공포감을 더해줬다. 잠시 감았던 눈을 뜨자 가슴 깊은 곳까지 시원함이 느껴졌다. 내가 한 마리 물새가 되어 아름다운 합강을 날고 있는 듯하다. 숲을 향해 돌진했다.‘윽, 이러다 나무에 부딪친다….’이를 알고 조교가 속도줄임장치를 이용해 안전하게 세워준다.“어휴, 나무에 부딪치는 줄 알았어요.”라고 하자 “조교가 항상 끝에서 대기를 하고 있어 안전합니다!”라며 안심시킨다. 다음 걱정이 뒤따랐다.‘합강을 건너왔는데 또 어떻게 건너나?’ 조교는 다 알고있다는 듯 길을 안내했다. 숲을 5분 걸어 올라가자 나무로 둘러싸인 곳에서 도르래를 건 다음 다시 출발했다.“이곳은 나무가 바로 밑에 있으니 다리를 올리세요.” 조교의 주의에 따라 발을 오그린 채 미끄러져 내려간다. 아슬아슬 나무 숲을 빠져나오자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이며 올 때보다 두배는 더 빠른 속도로 미끄러져 간다.“야호!” 잔뜩 찌푸린 하늘과 다르게 내 마음은 쾌청해졌다. 이번에는 1초만에 50m를 튀어 오른다는 번지불릿. 이건 좀 쉬워 보인다. 어깨를 누르는 안전바도 있고 철재 공처럼 생긴 기구 안에 타니까.“자 준비되셨죠. 출발합니다.”잔뜩 기대하고 있는데 아무 반응이 없다.“아니, 안 움직…”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쑹’하며 몸이 하늘로 솟구친다. 허를 찔린 느낌이다. 몸을 무엇인가 누르고 있는 느낌을 받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안전바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정말 젖 먹던 힘까지 짜내 손잡이를 잡았다. 오금이 저린다. 솟구치던 몸이 이내 땅으로 떨어진다. 안도의 한숨도 잠깐, 공처럼 생긴 기구가 빙글빙글 돈다. 그제서야 밑에서 구경을 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위로는 인제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찔하고 머리가 어지럽다. 몇 번을 빙글빙글 돌더니 제자리에 내려놓는다. 문을 열고 내리는데 다리가 후들거리고 어지러워 창피함을 무릅쓰고 잠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고놈 참 희한하네 이번엔 수륙양용차에 올랐다. 타자마자 차가 90도 회전하더니 ‘웽’하며 달린다. 갑자기 풀숲으로 들어가더니 둔덕을 넘어가는데 뒤에 앉아있는 사람은 거의 짐짝 수준이다. 이리저리 흔들림에 정신을 차릴 수 없게 한다. 그런데 달리던 차가 순간, 강 속으로 들어간다. “어어 조심하세요.”하는 소리를 뒤로하고 물 속으로 풍덩하고 뛰어들었다. 잔뜩 긴장했는데 희한하게도 차가 물위에 떠있다.‘윙’하고 엔진의 출력을 높이는가 했더니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앞으로 나간다. 수륙양용차였다. 아이들이 무척 좋아할 것 같다. 축제기간에는 무료라 한다. 난생 처음 타보는 뗏목도 안 타볼 수 없지. 살짝 물에 가라앉으며 합강을 따라 두둥실 떠내려간다.“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노래가 절로 나온다. ■ 인제, 축제가 시작된다 오는 24일까지 인제군 일대에서 펼쳐지는 이번 축제에서는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또한 축제기간에는 레포츠 이용요금을 대폭 할인하고, 무료 체험행사도 많이 열린다. 내린천 2㎞ 구간에서는 뗏목여행, 내린천 물속을 탐험하는 스노클링, 계곡 트레킹을 하며 족대로 고기잡기, 맨손 민물고기잡기 등을 즐길 수 있다. 레포츠 체험스쿨에서는 리컴번트와 수륙양용차 등 이색 레포츠를 만끽할 수 있다. 또 물축구와 인공암벽을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했고 레펠 징검다리 건너기 등 장애물을 통과하는 모험 파크장을 조성했다.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축제기간 전국 래프팅대회를 비롯해 곰배령을 트레킹하며 최종 목적지를 찾는 어드벤처 랠리대회, 산악마라톤, 하이킹, 모터사이클대회, 내린천 걷기대회 등 동호인들이 참가하는 대회들도 눈길을 끈다. 문의는 내린천X-게임리조트(www.injejump.co.kr,033-461-5261)나 축제 홈페이지(www.leports.gangwon.kr). 인간은 누구나 날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도 오늘은 ‘새’가 되기로 했다. 줄 하나 매고 수십m에서 뛰어내리는 레포츠의 꽃이라는 번지점프.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다는 인제 번지점프대. 무려 63m. 밑에서 올려다볼 때는 자신 있었다.“저 정도야!” 조교가 “서명하세요.”라고 종이를 내민다. 혹시 고혈압이나 본인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에 책임을 지지 않으며 올라갔다가 점프를 못해도 환불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1억원 보험에 들어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이름 주민번호 주소를 적고 사인까지 했다. 몸무게를 재고 “몸에 묶을까요, 발목에 할까요.”라는 물음에 “더 짜릿하도록 발목에!”라고 답했다. 호기를 부린 것이다.“저 높이가 63m예요?생각보다 낮네요.”,“올라가면 맘이 달라지실걸요. 못 뛰어내리는 분들도 많아요.”내린천X-게임 리조트의 오복환 부장은 은근히 겁을 준다. 실력을 보이리라 다짐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움직이는 엘리베이터.“의자에 앉으세요. 창밖을 보면 공포감이 생겨 뛰기가 쉽지 않아요.” 정말 투명 아크릴로 된 바닥을 통해 보이는 땅이 아득하게 멀어진다. 불안해진다. 밑에 사람들이 손가락만 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장난이 아닌데…. 순간 엘리베이터가 정지했다. 발목에 비너로 줄을 연결시키며 “점프대에 서서는 눈을 들어 위를 보세요. 밑을 보면 뛰기 어렵습니다.”조교의 말이 가슴에 꽂힌다. 문을 열자 인제의 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일어나서 나가세요.”라는 말에 슬슬 걸어나섰다. 밑을 보니 순간 어지러워지며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더 나가세요, 더…. 점프대 끝에 서세요.” 밀려나가서 난간을 잡았으나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것과는 달랐다. 상상할 수 없는 공포감이 밀려온다. 심장이 벌렁벌렁. 눈앞이 깜깜해졌다. 포기하면 안 될까? “아까의 용기는 어디에 갔습니까. 창피하지 않습니까. 밑에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자 손을 벌리세요. 그리고 하나, 둘, 셋 구령에 맞춰 뛰어내리세요.” 조교의 우렁찬 음성,“셋! 셋입니다. 뛰세요.”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로 엘리베이터로 들어왔다.“내려갑시다. 다음에 하지요.” 내 목소리가 모기소리 같았다.“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생도 하는데 안전합니다. 하루에 수백명씩 뛰어도 사고 한번 안 났으니까 안심하고 뛰세요.” 조교와의 승강이로 입이 타는 듯했다. 용기를 내기로 했다. 점프대 끝에 섰다. 정말 이렇게 다리가 후들거리기는 처음이다. 머릿속이 텅 비어 있는 것 같다. 하늘도 땅도 물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또 “셋! 점프.”하는 조교의 목소리에 눈을 질끈 감고 심청이가 인당수에 뛰어드는 것처럼 그냥 앞으로 한발을 내디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몸이 어디론가 쫙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정말 한없이 깊은 나락으로 추락하는 느낌이 이런 걸까. 한참을 떨어지는 것 같다. 멈춰야 할 것 같은데,‘이러다 그냥 떨어지는 거 아냐?’머릿속이 다시 두려움으로 복잡해졌다. 그때였다.‘팅’하며 몸이 다시 솟구친다.‘살았다. 살았어.’눈을 떴다. 비록 거꾸로지만 합강 내린천 방태산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온다. 몇 번을 튀다 멈춘다. 그러고는 서서히 내려간다. 줄을 떼고 안전장비를 풀었다. 다리가 아직도 후들거린다. 정말 이런 경험 처음이다. 내가 해냈다. 정말 한번은 해볼 만한 경험이었다. …… 하지만 다시 뛰라면…?
  • 한나라 지역화합특위 1돌 정의화위원장 술회

    한나라 지역화합특위 1돌 정의화위원장 술회

    “‘호남 끌어안기’가 아니라 ‘호남에 끌어안기기’가 돼야 합니다.” 한나라당 지역화합발전특위가 최근 ‘한 돌’을 맞았다. 광주와 전·남북 예산정책 간담회와 남해개발 세미나 등 다양한 아이디어로 특위를 이끌어 온 정의화 위원장을 27일 국회에서 만났다. 지난 24일 전북지역 예산정책 간담회에 이어 28일 광주·전남지역 간담회를 앞둔 그는 1년 활동을 ‘화합’과 ‘발전’의 징검다리로 설명했다. 먼저 “진정한 화합을 위해선 정치적 레토릭(수사·修辭)으로서의 ‘서진(西進) 정책’이 아니라 국민들 마음 속에 드리운 지역감정이라는 ‘검은 그림자’를 없애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영남당·호남당·충청당 등 후진적 정당구조로는 선진국 도약이 불가능하고 탈(脫)지역정당화를 이뤄야 하는데 이를 위해 지역갈등 해소는 필수적”이라고 역설했다. ●“달팽이 기듯 가더라도 호남에 꼭 안길것” 그는 “최근 호남지역에서 당 지지도가 처음으로 두 자릿수를 기록하고 박 대표 지지도가 50%를 넘어선 것은 고무적이지만 이런 현상에 만족해서는 안된다.”라며 “진정한 지역화합은 의석 1∼2석을 늘리는 게 아니다.”고 덧붙였다. 정 의원은 10여명의 특위관계자들과 광주시, 전남·북 등을 방문, 예산 관련 고충을 듣고 증액에 노력했고 일부 분야는 정부 예산안보다 더 늘렸다. 섬진강을 기반으로 한 사천·남해·통영·고성·하동 등 경남권 도시와 여수·광양·순천·고흥·보성 등 전남권 도시를 묶는 ‘지역화합특별구역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곧 제출해 지역화합·발전을 이루는 ‘상징적 거점’을 형성하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그는 ‘호남 다가서기’가 쉽지는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특위 위원들이 지난해 8월 한나라당, 더 거슬러 올라가 신한국당 등 전신 정당 국회의원으로선 처음으로 전남대를 방문했을 때 얘기다. 한 특위 위원은 “달팽이가 기어 오는 시간보다 더 오래 걸렸다.”고 의미를 한껏 부여했지만 ‘계란 세례’를 받기도 했다. 그는 “당시 전남대 총장 등과 ‘지방 대학 육성방안’ 간담회를 마치고 나오는데 ‘국가보안법 철폐’‘한나라당 해체’ 등의 피켓을 든 학생 70여명이 길을 막았다.”며 “뒷문으로 나가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학생들에게 즉석 토론을 제안, 당 입장을 설명하고 설득하면서 박수를 받기도 했다.”고 일화를 들려주었다. ●“YS-DJ 화해 추진도” 지역화합을 향한 정 위원장의 열정은 국회 차원으로 넓어졌다.‘민족대통합을 위한 국회의원 연구모임’을 만든 뒤 ‘김영삼(YS)-김대중(DJ) 재평가’작업에 들어섰다. “지난 15일 총론 성격의 세미나에 이어 각론격으로 9월 광주에서 ‘DJ 평가’와 11월 부산에서 ‘YS 평가’ 세미나를 각각 연다. 그 결과를 책으로 만든 뒤 연말에 증정식 형식으로 두 분의 화해를 모색하는 자리를 준비하고 있다.” 정 의원의 ‘호남 애정’은 체험에서 비롯한다.“전북 전주에서 전공의, 김제에서 공중보건의로 일하면서 이전에 지역 감정을 조장하는 소문에서 비롯된 선입견이 확 바뀌었다.”면서 “그곳 주민들은 순박하고 풍부한 예술적 소양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때 트기 시작한 ‘지역 화합 열정’의 싹은 전남 낙도지역 초등학생 수학여행 초청, 봉생문화재단 결성뒤 광주 지역과 문화교류 등을 거쳐 94년 ‘영호남민간인교류위원회’발족, 특위구성 제의로 쑥쑥 자랐다. 특위가 보여준 가능성을 기폭제로 한나라당 수요모임, 국민생각 등의 의원모임과 사무처 직원들의 ‘호남 러시’가 뒤따랐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7) 대마도에서 이키까지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7) 대마도에서 이키까지

    너무 가까우면 상대를 깊게 알 수도 있지만 뜻밖에 전혀 모를 수도 있다. 대마도(‘쓰시마’라는 현지 표기 대신 용어의 역사성을 고려해 대마도로 쓴다.)와 한국의 관계가 그렇다. 누구나 아침 6시 서울역에서 KTX를 타면 8시40분에 부산역에 내려 10시30분에 출발하는 대마도행 페리를 탈 수 있다. 불과 1시간30분이면 하타가쓰항에 도착해 점심을 먹을 수 있으니 서울에서 흑산도 가는 것보다도 빠르다. 날씨만 맑으면 당연히 대마도가 육안으로 보이며, 반대로 대마도 최북단 와니우라에서는 불야성을 이룬 한국의 남해안이 지척에 보인다. 거리만 가까운 것일까? 역사적으로나, 심정적으로나 대마도는 우리와 ‘하나’가 아닐까. ●부산서 1시간30분… 너무도 가까운 섬 많은 사람들이 대마도는 알지만 이키(壹岐)에 관해서는 거의 무관심하다. 이키는 한반도에서 대마도를 거쳐 규슈로 가는 징검다리였으며, 일본 입장에서 보자면 한반도는 물론 중국 대륙으로 들어가는 관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문화의 흔적이 강력하게 남아 있는 섬들임에도 두 섬의 정체성이 어쩌면 이리도 다른지! 대마도가 한반도에 밀착되어 있다면 이키는 보다 일본적인 곳이다. 대마도 스스로도 조선과 일본 양쪽에 모두 걸친 속국, 혹은 일본 본토와는 전혀 다른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 문화사적으로 대마도가 비일본적이라는 사실은 역사적 정체성이 한반도에도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마도에서 한반도 문화를 모두 걸러낸다면 남는 게 거의 없을 것이다. 대마도가 오늘처럼 확고하게 일본 본토에 속하게 된 것은 메이지 정부가 대한(對韓)외교권을 중앙 정부로 가져가 이를 일본 정부에 편입시킨 결과일 뿐이다. 대마도는 국제법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일본 땅이다. 그러나 문화적으로나 심정적으로는 우리와 더욱 가깝다. 대마도 서쪽 해안은 가히 한국 쓰레기들의 종합 전시장이다. 우리나라의 바다에 버려진 쓰레기가 이곳 서쪽으로 모인다는 사실은 옛적 표류민 표착의 단서가 된다. 한반도 동남부에서 표류를 해도 자연스럽게 대마도에 닿곤 했으니 신라인 박제상이 이곳에서 죽은 것도 실은 이같은 교류사의 내역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백제나 신라식 산성이 존재함은 대마도의 선주민들 다수가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었음을 뜻한다. 그래서 동국여지승람에 ‘대마도는 옛날에 우리 계림에 속해 있었는데 언제부터 왜인들의 소굴이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조선에서는 대마도가 우리 주권 하에 복속된 섬은 아닐지라도 조선 영토의 일부로 보기도 했다. 지방에 내려보내는 경차관을 대마도에 파견했는가 하면 대마도 사람들이 수직왜인이 되어 조선의 벼슬과 녹봉도 받았다. 일찍이 고려 조정은 대마도주에게 구당관(勾當官)과 만호(萬戶), 즉 변방과 수상교통의 요충지를 책임진 관직을 내렸다. ●주민들 다수가 한반도에서 건너가 일본 본토인들 입장에서는 대마도가 한반도에 가깝다는 주장에 대해 거북스러움을 느낄 터이지만, 정작 역사시대의 일본인들 스스로가 대마도를 별종의 섬으로 간주하여 본토와는 전혀 다른 곳으로 보았다. 오늘날도 대마도는 ‘국경의 섬’식으로 인식돼 대륙에 맞서는 자위대 기지가 곳곳에 위치하는 전략적 가치만 인정받을 뿐 대단히 낙후되어 있다. 그래서 뜻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나가사키현에 붙어서 소외받을 바에는 차라리 부산시 영도구에 붙어서 잘 살아보자는 농담도 나온다. 그 농담이 농담으로만 여겨지지 않음은 웬일일까.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이키 관광상품을 개척한 범주항공의 신우진 차장은 “이키에는 주로 후쿠오카에서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이 오지만 대마도는 일본인보다 한국인 관광객들로 생계를 꾸려 간다.”고 통계 수치까지 제시한다. 대마도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어 기본 단어를 구사할 수 있으니 이는 근래의 일이 아니다. 대마도 역사자료관에는 외국에서 만들어진 본격 한국어 교재가 있다. 한국문화를 흡수하기 위한 방책으로 한국어를 전문적으로 학습했다는 사실을 말하는 증거다. 대마도는 남북이 81㎞에 이른다. 작은 섬이라고 여기는 일반의 인식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미국 밑에 쿠바가 있듯이 한반도 코밑에 거대한 섬이 버티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한·일간 절묘한 곳에 자리잡은 대마도에 왜구가 득실거리기라도 할라치면 한반도는 밤잠을 못이루었던 것이다. ●만성적 식량부족으로 왜구들 극성 대마도는 한마디로 ‘먹고살기 힘든 섬’이다. 북쪽 히타카쓰항에서 남쪽 이즈하라까지 근 2시간여 거리를 달려 보지만 보이는 것은 산뿐이다. 섬이라기보다는 그냥 바다에 산들이 떠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만성적인 식량부족에 시달리던 배고픈 사람들이라 눈 앞에 건너다 보이는 조선을 바라보며 해적질을 꿈꾸었던 게 무리는 아니다. 대마도의 이름난 사찰마다 조선에서 얻어온, 정확하게 말해 약탈해 온 불상이나 범종들이 한두 개씩은 놓여 있다. 이키의 안국사에는 한반도에서 전래한 팔만대장경 초판본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약탈품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섬이라는 고립된 조건 속에서 고귀한 문화유산들이 멸실되지 않고 남아 전하는 것이다. 조선 정부는 대마도에 일정한 식량을 공급하고, 무역을 허락하며, 왜관을 열어 회유함으로써 왜구의 고통을 덜고자 했다. 대마도는 부족한 식량을 조선을 통해 해결하는 반면 일본 본토와 조선 사이에서 조정능력을 발휘하여 자신들의 생존권을 유지했다. 오랫동안 대마도는 에도 바쿠후를 대리하여 대한 외교를 수행했다. 대리인이라고는 하나 사실상 막중한 권한을 가지고 바쿠후와 한반도 사이에서 능수능란한 중재 역할을 하면서 자신들의 이득을 챙겼다. 일종의 생존전략인바, 그들은 양자 사이의 중개무역으로 이윤을 냈으며, 그 수입으로 먹고살았다. 이런 탓에 임진왜란 이후에 일시적으로 한·일간 국교가 단절되어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은 이들도 대마도민들이었다. 현재 나가사키현에 속한 대마도와 이키는 히라도(平戶)와 더불어 왜구의 본거지였다. 태종 때 대마도정벌에 나선 이종무 장군의 아소만 소탕작전도 왜구를 청소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소만을 바라보니 왜 이 장군이 한달여 동안 그토록 많은 피해를 입어가면서도 왜구를 소탕하지 못했던가가 자명해진다. 한마디로 천혜의 요새다. 섬들이 은하수의 별처럼 흩어져 있어 섬 사이로 신출귀몰한다면 강력한 대군도 왜구 몇을 감당하기 어려운 요충지다. 이키와 히라도에서 출발한 왜구들은 이곳 대마도 왜구와 연합작전을 펼치기도 하며 끊임없이 한반도의 해안을 침탈해 댔으니 고려와 명나라가 왜구 때문에 망했다는 말도 절반은 진실에 가깝다. ●전쟁과 평화 교차하는 ‘국경의 섬´ 그런데 일본의 후소샤판 교과서에는 ‘왜구란 조선반도 및 중국 대륙 연안에 출몰했던 해적집단을 뜻한다. 그들 중에는 일본인 외에 조선인도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왜곡하고 있다. 왜구는 대마도, 이키제도와 히라도 등을 포함해 세토나이카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의 해적 및 악당들로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 최근 들어 왜구의 구성을 국적이나 민족을 넘어선 차원의 인간집단으로 파악하려는 시각은 당시의 현실과 동떨어진 가공된 역사상일 뿐이다. 여기에는 왜구 근거지는 북규슈 지역의 도서 연안이고, 발생 원인도 일본 내의 정치적 혼란에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왜구의 시대에 이어 이번에는 임진왜란의 주역으로 다시금 대마도와 이키가 등장한다. 강항은 간양록에서 ‘이번 전란의 꼬투리는 대마도주 소오(宗義智)의 수작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고니시 유키나카(少西行長)의 딸 마리아가 바로 이 소오의 아내였다. 조선 침략의 선봉장이 된 고니시의 출병에는 조선말을 잘하는 대마도 사람 8000여명이 동원된다. 웬만한 남자들은 전부 동원됐다.‘전쟁이 끝나자 남자는 없고 과부들만 들끓어 대를 이을 수 없었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다. 이키도 대규모 병사를 내어 한반도에 출병했다. 과거의 왜구들이 왜군으로 변신한 것이다. ●조선통신사 맞이하는 기착지… 친선의 가교로 전쟁이 끝나고 조선통신사의 왕래가 재개되자 다시금 대마도와 이키는 한반도에서 오는 귀한 문화사절단을 맞이하는 기착지로 변신한다. 수백명에 이르는 조선통신사는 그 자체가 한반도의 선진문물을 전하는 통로였다. 조선정부는 성심성의껏 사신을 조직하였으며, 대마도와 이키 등지의 번주들도 최선을 다해 이들을 맞았다. 대마도와 이키는 조선통신사를 통한 친선과 교류의 장이었지만 때로는 왜구의 본거지로 역사의 굴절을 계속했다. 이키의 아름다운 ‘원숭이바위’가 있는 곳에는 2차대전 당시의 포대가 있으며, 대마도에도 거대한 지하포대가 있다.1905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 해군은 아소만 일대에 군함을 잠복시켜 놓고 반세키(万關)운하를 통해 러시아함대를 기습·괴멸시켰다. 근래 대마도에서는 러일전쟁 100주년을 기념한답시고 곳곳에 러일 친선을 기원하는 전승비를 세웠다. 명분은 친선이겠지만 본래 목적은 딴 곳에 있다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니 이처럼 일본은 대마도인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대마도를 자국 본토와는 달리 오로지 ‘국경의 섬’으로 만들어가는 중이다. 대마도와 이키는 한·일 간의 친선을 돋우는 징검다리도, 침략의 가교도 될 수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최익현 선생이 단식 끝에 절명했을 때, 대마도 사람들은 선생의 유해를 지극정성으로 이즈하라의 슈젠지(修善寺)에 모셨다. 이키에는 해방되던 해, 꿈에 그리던 조국을 향해 귀환선에 몸을 실었다가 집단 수장된 우리 동포 160명을 애도하는 비가 한국쪽 바다를 향해 서 있다. 또 와니우라 포구의 팔각정 형태의 한국 전망대에는 1703년 무려 112명의 역관사들이 조난당해 생을 마친 사실을 기록한 비석도 서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딛고 바다가 국제교류의 장으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진실된 한일교류의 징검다리되어야 17세기 대(代)의 외교관으로 한국말에 능통했던 아메노모리 효슈의 말처럼 대마도와 이키는 진정한 ‘친선교류’의 징검다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임진왜란으로 한반도의 수많은 백성들이 죽어 가고, 문화재가 불타 버렸지만, 강제 동원되어 이 전쟁에 참가해야 했던 대마도나 이키의 백성들도 운명은 비슷했다. 조선통신사가 오고 갔듯이 이제 한·일간의 해양 네트워크는 더이상 침탈의 역사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러일전쟁 100주년,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국을 꺾었다.’는 자부심과 승리의 기분을 지금껏 향유하려고 드는 한 국제사회에서 그들이 ‘소인배’라는 비난과 지탄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21년 전인 1984년. 당시 서울신문사에서 대마도와 이키의 역사·고고·미술·민속·언어·물질문화 등을 망라한 보고서를 냈던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바다를 통해 일본을 제대로 알고자 하는 목적의 대마도·이키 답사가 21년 만에 다시 서울신문 지면에서 재현된 셈이다. 일본인들에게는 발틱함대를 괴멸시킨 러일전쟁 승전 100주년 기념의 해이겠지만 우리에게는 ‘을사늑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친선의 바다인가, 침탈의 바다인가.’ 그 난해한 화두를 대마도와 이키에서 다시 곱씹어 본다.
  • 임백천과 함께 가 본 서울숲

    임백천과 함께 가 본 서울숲

    뚝섬 서울숲 개장을 앞두고 서울시 홍보대사로 활동중인 임백천(방송인)씨가 자전거를 타고 서울숲을 둘러보고 있다. 임씨는 지난 2003년부터 줄곧 서울시 홍보를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다. 서울숲 나무심기가 한창 진행중이던 지난해에는 이명박 시장과 함께 이곳에 직접 소나무를 심는 등 서울숲에도 많은 관심을 보여왔다. 지난 13일 둘러본 ‘미리 가본 서울숲’에는 최광빈 서울시 공원과장, 이병숙 서울신문 시민기자도 동행했다.35만평 규모의 뚝섬 서울숲은 18일 문을 연다. 지난 2003년 1월부터 공사를 시작한 지 2년 5개월 만이다. 서울시는 서울숲이 영국의 하이드파크(Hide park),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Central park)와도 견줄수 있는 명소가 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1시간정도 서울숲을 둘러본 임백천씨는 “내가 심은 소나무가 이렇게 아름다운 숲을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며 감동을 전했다. 글  김기용기자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개장을 닷새 앞둔 지난 13일, 서울숲은 곳곳에서 막바지 정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러나 숲을 휘감아 도는 개울물과 고즈넉한 호수 옆 레스토랑, 야생 동·식물을 관찰할 수 있는 생태숲, 아이들을 위해 곳곳에 마련한 작은 놀이터 등은 서울숲이 서울의 명소가 될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고도 남았다.1년 만에 다시 들른 임백천씨는 “그새 이렇게 숲의 풍모가 갖춰졌다니 놀랍다.”면서 “닷새가 지나 공사가 마무리되고,1년이 지나 녹음이 더 우거지고,10년이 지나 이곳을 사랑하는 시민의 손때와 숨결이 묻어지면 서울숲은 비로소 완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백천씨는 이날 오후 4시 서울숲을 관리하는 사무실 겸 방문자들의 안내를 돕는 방문자센터에서 “2층 규모의 방문자센터가 여느 공원관리사무소와는 달리 ‘관(官)분위기’가 전혀 풍기지 않는다.”고 운을 뗐다. 그는 또 창을 큼지막하게 만들고 외벽 일부를 목재를 사용해 디자인한 것을 놓고 “‘인공(人工)’이되 인공의 분위기를 최대한 줄이려는 노력들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최광빈 공원과장이 서울숲의 대략적인 개요와 특징을 설명하자 임백천씨는 자신이 방문했던 외국의 경우와 비교해 가며 ‘정신병원론’을 개진했다. “서울숲이 영국의 하이드파크나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와 견줄 만하다는 이야기에 놀랐습니다. 미국에 갔을 때 들은 이야기인데, 만일 뉴욕에 센트럴파크가 없었다면, 그 자리에는 그만한 크기의 정신병원이 들어섰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서울도 마찬가지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이병숙 시민기자도 “비록 자연환경에 대한 관심이 늦긴 했지만 예부터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했던 우리네 전통은 금방 살아날 것”이라면서 낙관론을 펼치기도 했다. 방문자센터를 나와 100m 정도 걸으면 뚝섬에 과거 경마장이 있었던 것을 고려해 만든 ‘경마군상’을 볼 수 있다. 이곳을 지나면 바로 옆으로 물을 통해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연못’이 있다. 물 깊이는 3㎝ 정도 되는 곳으로, 바닥이 티 하나 없는 깨끗한 검은 대리석으로 돼 있어 얼굴을 비춰보면 마치 거울처럼 보이게 된다. 이곳에서는 주변에 곧게 솟은 나무를 그냥 바라보는 것보다 수면을 통해 비춰보는 것이 더 아름답다고 최 과장은 귀띔한다. 수면에 비친 제 얼굴에 반했다는 나르시스도 이랬을까. 임백천씨는 한참 ‘거울연못’을 들여다보더니 직접 손을 담가보며 “이제 결국 사람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그동안 서울의 자연을 망쳐놨으니 이제 사람의 손으로 돌려놓아야만 해요. 물론 인간이 망쳐놓기 전 모습으로 되돌릴 순 없겠죠. 하지만 세월이 흘러 사람들의 손때가 묻고 숨결이 스며들면 ‘자연처럼’되지 않을까요.” 이병숙 시민기자도 ‘결자해지(結者解之)’라면서 “이제 사람의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최 과장은 “서울숲이 넉넉잡고 10년만 있으면 인공의 기운은 사그라들고 명실상부한 숲의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라면서 “서울시가 시 조직으로 ‘푸른도시국’이라는 과거에 없던 기구를 만든 것도 자연에 대한 인간의 관심이 많이 커진 것을 방증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가 있는 임백천씨는 “서울숲이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특히 서울숲 곳곳에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작은 놀이터들이 마련돼 있는 것을 보고 “고마운 일을 했다.”면서 많은 부모의 ‘입’을 대신했다. 그는 또 아이들이 과학적 원리를 체험을 통해 알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아르키메데스의 수차’ 앞에서 꽤 오래 머물며 직접 돌려보기도 했다. 수차를 몇바퀴 돌리자 2∼3m 아래의 물이 수차를 따라 올라오는 것이 신기하다는 표정이다. 임백천씨는 “사람은 흙과 멀어지면 병원과 가까워진다.”면서 “서울숲에 오면 아이들이 다칠 걱정 없이 맘껏 뛰놀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최 과장은 “서울숲 문화예술공원 안 숲 속 놀이터에는 아치형 징검다리 등 아이들이 즐길 수 있을 만한 이색적인 놀이기구가 다양하다.”면서 “특히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에는 나무의자 하나에도 가시가 발생하지 않도록 특별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숲에 있는 생태숲은 서울숲을 만든 관계자들이 유독 자랑하는 공간이다. 이곳은 사람은 들어갈 수 없으며 오로지 야생동물만이 자유롭게 살 수 있다.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은 한강까지 직선으로 뻗은 보행전망교(길이 560m·너비 3m)뿐이다. 이곳에 올라 생태숲 아래를 내려다보며 동물들이 뛰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만큼은 사람이 ‘손님’이다. 생태숲은 4만 5000평 정도다. 임백천씨도 이곳에 올라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며 야생동물을 찾으려고 했다. 겨우 발견한 것이 멀리 나무밑에 앉아 있는 2∼3마리 ‘다마사슴’뿐이었다.‘더운 날씨 때문일 것’이라며 서로서로를 위로한 뒤 ‘서울숲’ 이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임백천씨는 “선유도공원·서울대공원·월드컵공원 등은 모두 공원으로서 아주 좋은 명소”라고 전제한 뒤 “하지만 이름만큼은 서울숲이 가장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생태숲처럼 사람은 전혀 들어갈 수 없고 야생동물들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에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숲’이라는 명칭이 잘 어울린다.”고 친절한 해설까지 덧붙이기도 했다. 서울숲 한가운데 만들어진 호수 옆에는 현재 내부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인 레스토랑이 있다. 호수를 바라보며 식사와 차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연인들에게 특히 인기를 끌 것으로 기대된다. 임백천씨가 목재로 만들어진 바닥에 붙어 새까맣게 변해버린 ‘껌’을 발견하고선 눈살이 찌푸러졌다.“바로 이런 것들이 우려됩니다. 껌 하나라고 사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여긴다면 서울숲은 하루만 지나면 ‘쓰레기장’이 될지도 몰라요. 이제 모든 것은 서울시민에게 달렸어요. 서울시민들의 수준 높은 시민의식을 기대할 수밖에 없죠.” 그는 이어 “앞으로 개장 때까지 며칠 남지 않았지만 내가 진행하는 라디오에서 서울숲 홍보를 계속할 생각”이라면서 “동시에 시민들이 이곳을 아끼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호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숲 가는 방법 시는 하루 평균 30만명의 관람객이 서울숲을 찾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주차는 500대 정도만 가능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낫다. 지하철은 2호선 뚝섬역(8번 출구)을 이용할 수 있다. 버스는 6개 노선(141·145·148·2014·2224·2413)을 이용해 서울숲 정류장까지 갈 수 있다. 게다가 10월 청계천 복원공사가 끝나면 청계천 수변 보행로에서 중랑천변∼한강∼서울숲까지 이르는 10.8㎞의 그린웨이가 만들어져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올 수도 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시민기자 이병숙 임백천과 ‘데이트’ 서울신문 시민기자로 활동한 지 어느덧 1년. 인기 연예인과 함께한 이번 동행취재는 아무래도 1년 기념 특별보너스인 듯하다.18일 개장을 앞둔 서울숲을 서울시 홍보대사이자 방송인인 임백천씨와 미리 둘러볼 수 있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막바지 공사가 한창인 숲에는 70∼80년대에 인기 있던 포크송이 은은하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먼저 관리사무소에서 서울숲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들었다. 서울숲은 인근 한강시민공원과 중랑천을 지나 새로 복원된 청계천과 연결됐고, 강 건너 응봉산공원과도 연결될 예정이라니 이름 그대로 서울 시민 전체의 휴식공간이 될 것이다. 임백천씨는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사람이 흙과 멀어지면 병이 가깝다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숲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겠느냐.”면서 연방 감탄했다. 지난해 식목일에 나무를 심었다기에 얼마나 자랐나 가보자고 했더니 너무 넓어 못 찾겠단다. 그는 미국 오스트리아 등 다른 나라의 예를 들며 과연 우리도 휴지 하나 버리지 않는 그곳 사람들처럼 이 아름다운 숲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을지도 걱정했다. 어린이들의 학습장이 돼 줄 생태공원에는 서울대공원에서 이사온 사슴들이 낯선 듯 한쪽에 몰려서서 멀뚱한 눈으로 우릴 바라보고 있었다. 사슴들은 사육에서 점차 방목으로 길들여질 것이란다. 울창한 숲 사이로 물이 흐르고 사슴이 자유롭게 뛰노는 낙원이 눈에 선했다. 최광빈 공원과장의 안내로 숲을 둘러보는 동안 이곳이 폐건축자재나 쌓여 있던 불모지였다는 말에 환골탈태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단장을 끝낸 넓은 잔디밭을 배경으로 깔끔하게 정돈된 회양목 샛길에 자전거 타는 임백천씨의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내가 조금만 어리거나 예쁘면 자전거 뒤에 앉아서 같이 타자고 했을 텐데…. 아쉬움을 달래며 돌린 시선 끝에는 성하로 접어든 햇살이 녹음을 향한 실록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이병숙 시민기자
  • [이 주일의 어린이 책] 책벌레도 좋은 말을 사랑해요

    ‘노란 똥 책벌레’(이상교 글, 이경희 그림, 작은책방 펴냄)는 책 읽는 기쁨을 간지럼 피우듯 즐겁게 전해주는 그림동화책이다. 책 읽기를 너무 싫어하는 꼬마 친구 결이. 그런 결이에게 책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리 없다. 징검다리 장난감이 되질 않나, 낮잠 잘 때 눌러 베는 베개가 되질 않나…. 그런 어느날 책갈피에서 꼬물꼬물 기어나온 송충이 모양의 초록색 벌레 한 마리. 사각사각 책의 글자를 잘도 갉아먹는다 싶더니 글자가 사라진 자리에 노란색으로 반짝이는 똥을 싸놓는 거다! “옳아, 때는 이때다!” 평소 읽기 싫었던 책들에다 국어사전까지 몽땅 책벌레에게 갖다 줘버린 결이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밖에서 놀기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데…. 한참 뒤 어떤 일이 벌어질까. 큰일 났다. 냉장고에 꽁꽁 숨겨뒀던 아이스크림, 변신 로봇, 장난감 블록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벌레가 글자를 갉아먹은 물건들은 감쪽같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결이는 그만 깜빡 잊고 있었던 거다. 나쁜 말을 갉아먹으면 까맣게 흉한 색깔로 변해버리거나, 책을 읽을수록 향기로운 똥을 누는 책벌레. 자잘한 아이디어들이 어느새 아이들에겐 풍성한 메시지로 다가간다.4세 이상.85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옴부즈맨칼럼] 청년실업과 미디어의 역할/박상건 서울여대 겸임교수

    청년실업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청년의 좌절과 사회적 단절은 공동체 문화의 피폐이며 국가 허브의 흔들림을 의미한다. 조국의 미래인 그들, 전국 대학생의 거의 절반인 56만 9000명이 휴학 중에 있다. 학기가 끝나면 그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지난해 6.7%였던 청년실업률은 8.6%로 뛰어올랐다. 지난 4월 한 대학신문의 조사에 의하면 대학생의 51.4%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같은 달 한강에서 자살한 한 휴학생의 유서에는 취직 고민이 배어 있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하다. 위험 수위를 알리는 휘슬 블로어(whistle-blower)와 조정과 통합의 공공저널리즘으로 사회적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10개 종합일간지를 대상으로 조사한 지난 1년간(2004년 6월4일∼2005년 6월4일) ‘취업’관련 보도는 총 978건이었다. 이 중 ‘대학생 취업’관련 보도는 590건이었다. 심각성에 비해 매우 적은 보도였다. 매체별로 보면 서울신문, 조선, 중앙, 동아, 한겨레, 국민이 60건 이상, 나머지 신문은 48∼54건이었다. 이들 보도프레임을 분석한 결과 청년실업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어젠다 세팅(Agenda setting·의제설정)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대부분이 대학내부의 경쟁력, 새로운 취업 백태와 풍속도로 접근하는 경향을 보였다. “대학생활 ‘취업을 위한 조건갖추기’로 변질” “순수 인문학 갈수록 도태” “졸업연기 ‘둥지족’는다” “고시촌 젊은이들 한탕에 물드는 모습 아쉬워” “대학생 87%, 현재 다니는 대학 불만” “도서관은 독서실이 아닙니다” “자기계발 하는 대학생 11.3%에 불과” 등 본질을 도외시한 부정적 접근의 기사도 적지 않았다. 반면에 문제의 심각성을 간파하고 정부에 적극적인 대책을 촉구하는 경우도 있었다.“대학이 변해야 나라가 산다” “정부, 취업난 해결에 힘쓰길” “‘주먹구구’ 청년실업대책” “실업률 4년 만에 최고…절반이 청년실업” “‘백수’ 천지에 실업률은 3.5%?”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40개 대기업 대졸 신입사원 분석” 같은 기사는 청년실업의 문제를 직접 찾아나서는 탐사보도의 모델을 보여줬다. 서울신문의 “‘25세 캔디소녀 서승주씨의 인생개척기’(2004년 11월20일),“구직 여성들 이색·틈새직업 노려라-미술심리치료사·마술사·헤리티지공예…”(2004년 11월24일),“천안 목천 여대생 100명 ‘취업전략 캠프’ 힘찬 함성”(2004년 8월28일) 등은 청년실업 극복기와 실질적인 취업정보를 전하는 공공저널리즘의 전형이었다. 이와 함께 “여름방학 잡으면 취업이 보인다”(2004년 6월14일)“취업난, 온라인 창업으로 극복”(2004년 7월14일) “중소기업 그곳에도 길이 있다”(2004년 9월23일) “여름방학 인턴·연수로 취업 터닦기”(2005년 5월9일) “대학생에 대한 편견 버리기를”(2005년 5월20일) “청년창업 성공의 기초는 자신감”(2005년 1월26자) “공모전’은 취업 지름길”(2005년 5월4일) 등의 기사도 미디어의 사회적 책무를 다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구호보다 구체적 대안이 필요한 때이다.60여개에 이르는 정부 부처와 위원회, 그 산하기관 그리고 유관기관과 단체가 업무특성에 맞는 범위 안에서 월, 연 단위 일자리 창출 목표를 세워 그 수치를 체크하며 국민의 지팡이 역할을 다한다면 결코 불가능한 문제만은 아니다. 이를테면 보훈처는 국가유공자 취업부분, 산자부는 산업분야, 문화부는 문화예술인 자녀를 대상으로 일자리를 창출해나간다면 그 효과는 만만찮을 것이다. 각 자치단체도 실업률 낮추기 계획을 세워 동참하고 각 정당의 정치공약 공모전과 모니터단 확대는 물론 한국학술진흥재단, 한국언론재단, 한국문예진흥원 등이 대학·대학생 연계 프로그램을 확대해 집중 지원하는 묘안을 짜낸다면, 한 방울이 강물이 되고 바다를 이룰 것이다. 이런 일은 미디어가 그 방향타와 징검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 지면에 사회와 사회를 잇는 별도 섹션을 마련하여 프로모션은 물론 국내외 취업 타개관련 탐사보도에 적극 나서야 한다. 배고픈 자의 희망은 빵이다. 지금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은 가능성에 대한 정열”이라는 사실을 실감시켜 주는 일이다. 박상건 서울여대 겸임교수
  • 안방을 점령한 겸업연기자들

    가수가 드라마에 나온다. 영화에도 나온다. 이제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풍경이다. 음악 활동으로 확보한 팬들의 지지를 얻기도 한다. 반면, 연기력이 도마에 오르는 등 ‘갑론을박’도 끊이지 않는다. 여성 그룹 ‘쥬얼리’의 리더였던 박정아가 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의 실패를 딛고 영화에 도전한다. 같은 팀 이지현도 DMB 시트콤을 통해 연기에 나선다. 또 ‘베이비복스’의 윤은혜도 연기자 대열에 동참하는 등 끊임없이 가수 출신들이 연기 영역으로 밀려들고 있다. ■ 안방점령 겸업연기자 ●남자가 여자보다 세다? 최근 눈에 띄는 점은 남자 가수의 변신은 대체적으로 ‘무죄’였으나, 여자 쪽의 변신은 ‘유죄’였다는 것. 남자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비와 문정혁(에릭)을 꼽을 수 있다. 비는 ‘상두야 학교 가자’ ‘풀하우스’ 등에서 노래 못지 않은 연기력을 보여주며 캐스팅 0순위에 올랐다. 출연 논란을 빚기도 한 ‘못된 사랑’을 통해서 다시 안방문을 두드릴 예정. 문정혁은 지난해 ‘불새’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올해에는 ‘신입사원’에서 코믹한 이미지로 변신, 연타석 홈런을 쳤다. 영화 ‘달콤한 인생’에 카메오로 깜짝 출연했고,‘6월의 일기’에도 주연급으로 나서는 등 스크린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러브 홀릭’의 안칠현(강타)은 시청률면에서 고전하고 있지만, 연기력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그러나 여자 가수들은 장나라의 연착륙을 빼고는 대체로 실패 사례가 많다. 가수나 CF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효리나 박정아는 첫 데뷔에서 주연을 맡았지만, 참패했다. 덩달아 시청률도 바닥을 기었다. 앞서 성유리나 서지영도 참담한 성적표를 받은 경우. 유진과 정려원 정도가 시간이 지날수록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는 편이다. 방송 관계자는 “남자 가수들의 연기력이 여자에 비해 월등하다고는 볼 수 없다.”면서 “다만 전문 연기자가 아닌 상황에서 얼마나 자신에게 어울리고, 스스로 소화할 수 있을 만한 크기의 역을 맡느냐가 성패의 관건”이라고 전했다. ●영역 넓히기 역사 가수만 연기하나? 연기자의 음반을 낸 사례도 있다.1990년대 초 아이돌 스타로 떠올랐던 손지창 장동건 이휘재 등이 그러하다. 프로 가수만큼의 가창력은 보여주지는 못했다. 당시 노래와 연기를 병행해 흥행 몰이를 하던 홍콩 연예계를 답습한 사례였다. 최근에는 권민중 강성현(보보) 등이 가수 변신을 시도했지만, 묻혔다. 차태현 정도가 그나마 히트한 정도다. 산울림의 김창완이나 이상우처럼 가수 출신으로 드라마의 감초 역할을 하며 신선한 맛을 제공해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후 이현우나 신성우가 그 맥을 잇고 있다. 가수로서 연기에서도 대박을 터뜨린 것은 김민종 엄정화 임창정 정도. 그러나 이들에게 연기는 다른 무엇보다 개인적인 선택이었다. ●음반판매는 ‘바닥’ 하지만 요즘 가수의 연기 겸업은 살아남기 위한 측면이 크다. 자동차 신제품 출시 주기가 줄어드는 것처럼, 인기 수명은 나날이 짧아지고 있다. 더욱이 음반계 불황으로 본업에 충실해질 수 없는 상황이라 음악 무대 이외의 곳으로 눈길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들의 음반판매 실적은 참담한 수준이다. 한국음악산업협회의 집계(4월말 기준)에 따르면, 가수 비의 앨범 ‘비(Rain) 3집’은 지금까지 18만 974장이 팔렸다.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가수가 불렀고, 지난해 10월8일부터 발매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부끄러울 정도의 실적이다. 지난 3월 부터 발매를 시작한 가수 강타의 3집 ‘Persona’는 4만 6322장이 팔렸다. 같은달 발매를 시작한 쥬얼리의 4집 ‘Super Star’도 2만 2217장 밖에 팔려나가지 않았다. ●연기 하려면 제대로 배워라 멀티 엔터테인먼트 시대에, 게다가 드라마는 젊은 층 위주의 트렌디 위주로 흐른다. 젊은 인기 가수들의 연기 진출은 이러한 상황과 맞물려, 가속화 되고 있다. 드라마를 만드는 제작자로서는 가수로 인지도가 높으니까 시청률을 어느 정도 담보했다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다는 것을 보면, 역시 중요한 지점은-연기자가 음악에 도전했을 때 가창력을 문제삼는 것처럼-연기력이다. “방송사들이 연기력이 떨어지는 가수를 놓고 시청자를 상대로 실험하는 것 같다.”고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는 시청자들도 많다. 한 중견 연기자는 “젊은 층을 상대로 한 드라마가 늘어나며 중견 전문 연기자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면서 “가수 출신들은 연기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잦아 같이 연기하기가 껄끄럽기도 하다.”고 토로했다. 모 방송사 PD는 “연기 경험이 없는 데도 단역 수업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주연을 맡았을 때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면서 “방송사도 연기력이 떨어지는 배우를 주연으로 캐스팅, 낭패를 본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에 무차별적인 기용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겸업톱스타 매니저 인터뷰 ●결국 수익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 “드라마 출연 만으로는 수익을 낼 수 없어요. 오히려 손해죠.‘돈이 되는’ CF 섭외를 위한 전략적인 포석인 측면이 강해요.” 최근 가수에서 드라마 연기자로 변신을 꾀해 주목 받고 있는 톱스타 A씨의 매니저 B씨. 그는 가수들이 주위의 우려와 곱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너도나도 연기자 겸업에 나서는 데는 소속 기획사 입장에서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일반적으로 ‘수명이 점점 짧아지고 음반시장의 침체로 입지를 잃은 가수들이 연예인으로서의 생명 연장과 돈 벌이를 위해 드라마로 눈을 돌린다.’고 생각하는데, 기획사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고 귀띔했다. 가수가 연기자로 완전히 탈바꿈해 성공할 가능성보다는 새로 낸 음반의 홍보 차원이나,CF 모델로 발탁돼 ‘대박’을 터뜨리기 위한 ‘징검다리’격으로 드라마를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와 달리 음반 활동이 중단되거나 그룹이 해체돼 가수로서 생명이 끊긴 가수가 아닌, 음반 활동도 열심히 하고 현재 인기는 물론 연기 능력도 갖춘 가수를 안방극장에 데뷔시키는 것이 최근 추세”라고 강조했다. ●1년에 1개 음반 1개 드라마가 추세 실제로 그가 매니지먼트하고 있는 A씨는 아이돌 스타 출신. 예전만큼의 인기는 아니지만,10대 팬층이 여전히 공고하고, 한류 열풍에 힘입어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엔 새 음반을 내고 활발한 활동도 벌이고 있다. 드라마 출연은 원래 예정에 없었던 일. 하지만 “A씨의 재능을 썩히기 아깝고, 마침 작품 시놉을 받았는데 놓치기 아쉬울 정도로 맘에 들어 조금 무리하게 진행했다.”고 그는 밝혔다. 그러나 그는 A씨를 예로 들며 “아무리 톱스타라고 해도 드라마 회당 출연료는 300만원에서 많아야 700만원 정도로 일반 주연급 연기자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각종 ‘행사’에 게스트로 나가 10분 동안 노래 몇곡만 부르면 하루 수천만원의 수익을 올리는데, 굳이 ‘3일치 행사분’ 밖에 안 되는 16부작 드라마를 두세달씩 시간을 들여 찍을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결국 CF로 이어져야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 그의 말에 따르면, 요즘 기획사들은 소속 가수들로 하여금 1년 동안 1개의 음반을 내고 1개의 드라마에 출연시키는 것이 추세다. 봄·여름 드라마에 출연해 인지도를 올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가을·겨울 동안 가수 활동을 하면서 CF 출연도 동시에 노린다는 것. 특히 그는 “몇몇 다른 소속사 가수 출신 연기자의 경우 연기력에 혹평을 받아도 CF 수익에서는 성공한 사례가 적지 않다.”며 가수가 드라마에 한번 실패하고도 또 드라마를 기웃거리는 이유를 설명했다. 가수가 첫번째 음반에 실패하고도 2·3번째만에 성공하는 경우가 있듯이,‘언젠가는 드라마에서도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가수도 가창력이 좋아야 인정 받듯이 연기자 변신을 꾀할 때도 연기력이 뒷받침 돼야 실패할 가능성이 적다.”고 지적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수도권플러스] 관악산 등산로 2곳에 나무다리 설치

    서울시는 1일 관악구청과 공동으로 관악산 등산로 구간중 비오면 건너기 위험한 2곳에 8월말까지 목교(木橋)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목교가 설치되는 위치는 관악구 관악산공원 아카시아동산에서 제4야영장 사이로 징검다리로 되어 지나다닐 수 있으나 우기철이 되면 물이 넘쳐서 건너려면 옷이 젖거나 휩쓸리는 위험이 있는 곳이다. 서울시는 ‘아카시아동산∼제4야영장∼보덕사입구∼제1야영장’의 3km 구간에 목재휀스, 손잡이, 징검다리(3곳), 생태연못(2곳)을 설치하고 안내판을 정비하는 등 8월까지 관악산 등산로를 대대적으로 정비하기로 했다.
  • “청계천 순조로우니 밖에서 시샘하는듯”

    “청계천 공사가 순조로우니까 극소수 사람들은 마음에 안 들어하는 듯합니다. 바깥에서 하는 일 없는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쳐다보는 것 같아요.” 이명박 서울시장이 25일 하늘색 점퍼에 등산화 차림으로 자신의 ‘야심작’으로 불리는 청계천 복원공사 현장을 돌아보며 남다른 애착과 최근 일련의 사태에 대한 속내를 드러냈다. 이 시장은 시험 통수(通水)를 일주일가량 앞둬서인지 감회에 젖은 듯 바닥 조명 하나에도 관심을 보였다. 오전 7시40분부터 9시까지 예정됐던 답사시간은 9시40분으로 길어졌다. 청계천 시점부에서 장석효 청계천복원추진본부장이 서린동과 무교동을 잇는 모전교의 설계변경 전·후를 담은 사진을 비교하며 공사 현황을 설명하자 이 시장은 다리(모전교)를 가리키며 “내가 바꾸라고 말한 게 잘했지.”라며 흡족해했다. 이 시장은 지난 3월 모전교 아치 모양이 전통미를 살리지 못한 것 같다며 재시공을 지시했다. 이 시장은 시점부 청계광장에 놓인 8도석에 대해 “독도가 너무 크게 만들어진 것 같다. 징검다리가 너무 촘촘하게 놓인 것 아니냐. 물 흐르는 데 지장은 없느냐.”고 묻는 등 모든 분야에 관심을 나타냈다. 이어 “30년 만에 (청계천을) 주인 품으로 되돌려주는 일이니,300년 뒤에도 잘못됐다는 말이 나오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식물 표지판을 지적하며 “잘못 만들었다간 나중에 고치기 어렵다.”면서 “무엇이든 단순한 게 가장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오간수교에서 하천 둑으로 내려오는 계단을 지적하며 공사 관계자가 “양윤재 행정2부시장이 이렇게 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하자 그는 “왜 그랬는지 양 부시장이 나오면 물어봐야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 시장은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에 이르러서는 “청계천 관련 의혹을 캐는 과정에서 (복원사업) 전체가 비리로 덮인 것처럼, 불필요한 얘기가 너무 많이 흘러나왔다.”면서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옳은 방법은 아니라고 본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내년 지방선거 잠룡 대리전? 차차기 대결?

    내년 지방선거 잠룡 대리전? 차차기 대결?

    내년 ‘5·30 지방선거’를 1년여 앞두고 여야가 ‘빅2’, 즉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후보 구도를 어떻게 그려나갈 것인지를 놓고 머리를 싸매고 있다. 선거 결과는 이후의 정국 운영은 물론 오는 2007년 대선에서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소지가 많은 탓에 전초전격인 ‘빅2선거’에 관심도가 더 높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열린우리당의 경우 오는 8월 말까지 당원으로 가입해야만 지방선거에 출마할 수 있도록 당헌 당규를 개정하면서 계파별로 ‘인물 고르기’도 뜨거워지고 있다. 하지만 전체 후보의 30%를 전략공천 몫으로 남겨놓아 ‘거물급 영입’은 뒤로 미뤄질 분위기다. 열린우리당 민병두 전 기획위원장은 “젊은 의원들 중심으로 ‘차차기’ 구도로 갈 것인지, 아니면 각 계파의 ‘대선 대리전’으로 갈 것인지를 봐야 한다.”면서 ‘2대 관전포인트’를 제시했다. 구도가 어떻게 짜여지느냐에 따라 출마 후보도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도 곁들였다. ‘차차기 구도’는 18대 대선을 징검다리 삼아 건너가게 될 젊은 의원들이 후보군의 중심이다.‘대리전’ 구도는 대선주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계파들이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유하기 위해 ‘혈투’를 벌이게 되는 상황이다. 당 내분 격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당내 경선이 연령·선수에 따라 차차기냐, 대리전이냐는 구도로 형성되기보다 본선 경쟁력 위주로 짜여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은 취임 초 기자들과 만나 “서울시장 출마자에 이해찬 총리, 진대제 장관도 있고, 경기도에는 김진표 부총리가 출마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들 세 사람이 유력하다는 의미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 총리는 지난 20일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한번 해 봤으니 또 할 일은 아닌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총리가 여전히 거론되는 가운데 진대제 정보통신부장관, 김한길·신기남 의원과 유인태 서울시당위원장이 후보군에 든다.‘주니어 그룹’에는 김영춘·임종석 의원 등이 있다. 경기도지사 출마자로 부천시장을 지낸 원혜영 정책위의장과 김진표 교육부총리, 배기선 의원, 천정배 전 원내총무 등이 유력한 가운데 ‘주니어 그룹’에서 김부겸 원내수석부대표가 뛸 것으로 예상된다. ‘친노’ 직계 및 재야파 출신으로 분류되는 이 총리와 유 서울시당위원장, 신기남 의원, 원혜영 정책위의장, 배기선 의원 등은 정동영(DY) 통일부장관보다 비교적 김근태(GT) 복지부장관과 친한 편이다. 김한길 의원과 천정배 의원은 ‘구 당권파’로 DY계로 분류된다.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경선에 양대 세력이 각각 출마하면 4·2전당대회처럼 세력대결의 양상이 재현되며 ‘대리전’이 될 수도 있다. ●한나라당 대선 대리전과 차차기 구도가 복잡하게 얽힐 것 같다. 우선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등 이른바 ‘3룡(龍)’의 대선 대리전 성격이 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대선 후보를 뽑기 위한 당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차차기 주자’들과의 합종연횡도 불가피하게 될 상황도 미리부터 그려볼 수 있다. 실제로 이 시장와 손 지사를 각각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당내 ‘국가발전전략연구회(발전연)’와 ‘새정치수요모임(수요모임)’ 의원들 사이에선 벌써부터 ‘수도권 패키지 출마론’이 흘러나오는 등 발빠른 움직임이 포착된다. 이에 비해 박 대표는 ‘측근 정치 불가’ 원칙을 고수하며 특정인과의 연대를 멀리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3룡의 경쟁구도에 따라 세불리기를 위해 탄력적 응집력을 보일 가능성도 있다. 서울시장 후보의 경우 박 대표와 가까운 인사로는 맹형규·진영 의원이 거론되고 있다. 이에 비해 국발연에서는 이재오·홍준표·박계동 의원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수요모임에선 원희룡 의원이 뜻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 주류인 ‘국민생각’의 박진 의원도 ‘차차기’를 위한 포석으로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경기지사 후보의 경우 ‘친박(親朴)’ 진영에서는 이렇다 할 인사가 없는 상태다. 국민생각의 임태희 의원이 있긴 하지만 성향상 ‘친손(親孫)·비박(非朴)’에 가깝다. 반면 발전연에서는 김문수·전재희 의원이, 수요모임에서는 남경필·정병국 의원이 출마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내비친 상태다. 문소영 전광삼기자 symun@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2)제주·전라 잇는 42개섬 ‘추자군도’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2)제주·전라 잇는 42개섬 ‘추자군도’

    행정구역명은 북제주군 추자면이다. 그런데 추자도에서 제주도 토박이말을 듣기가 쉽지 않다. 대개 호남 말씨다. 남도 사투리의 ‘징함’이 빠진 채 표준화되어 조금은 무미건조하다. 공무원들을 만나 보면 조금 달라 제주도 말투가 엿보인다. 자연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중간지대라고나 할까.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전라남도 영암·완도군 등에 딸린 섬이었다.1946년 북제주군에 편입됐으니 불과 60여년 전이다. 재미있는 것은 1831년에 잠시 제주목에 이속됐다가 1891년에 완도군이 창설되면서 이곳으로 되넘어간 기록이 나온다. 좀 왔다갔다 했지만 그러나 추자도는 틀림없는 호남문화권이다. 뱃길은 여전히 목포로 열려져 있어 농산물 공급은 물론이고 상급학교도 대부분 이곳에서 다녔다. 덕분에 추자도 1세대들은 ‘전라도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근래 20여년 전부터 젊은이들이 제주도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이 덕분에 그들은 비교적 ‘제주도적’이다. 이곳 공무원들이 대개 제주도에서 ‘내려오기’ 때문에 그런 영향도 없지 않을 것이다. 추자도 토박이로 제주도에서 교육받고, 집안에서는 전라도 말을 쓰는 사람의 경우, 그 문화적 정체성은 대단히 복잡하다. 제사나 장례, 세시풍속 등은 확실히 전라도적이다. 반면 제주도 출가 잠녀가 아니라 토박이 잠녀들이 물질하는 형태는 ‘제주도적’이며, 전복이나 소라맛 역시 ‘제주도적’이다. 그러나 묵리의 처녀당에서 해마다 올리는 당제의 명칭과 이때 걸궁이란 풍물굿을 동원하는 것은 ‘전라도적’이다. 풍물굿이 없던 제주도에 ‘걸궁’이 전파된 것이니, 추자도 걸궁은 본디 한반도 최남단의 풍물굿이 아니었던가 싶다. 흥미로운 연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추자도의 이런 중간자적 성격은 예로부터 육지와 제주도의 징검다리였다는 지정학적 요인에 의해 결정지어졌다. 제주행 비행기에서는 망망한 바다 위에 떠있는 추자군도를 어렵잖게 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 최영 장군이 목호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제주도로 가다가 바람을 피해 머물렀다는 곳이 바로 추자도다. 지금도 상추자항의 봉줄리산 기슭에는 최영 장군 사당이 위엄있게 포구를 굽어보고 있다. 옛날에는 추자도를 징검다리 삼아 제주도로 향하였다. 예전에는 추자를 주자(舟子)로 불렀으니, 영암·무안·나주·진도 등 전라남도 남서해안으로 가는 뱃길이었다. 제주도는 애월이나 조천으로 드나들었다. 당연히 이름난 유배지였다. 유배객 중에는 해배 후 되돌아간 이도 있었으나 아예 섬사람이 된 이도 많았다. 정조 때 안조환은 유배 당시 천신만고의 생활상을 이렇게 노래했다.‘출몰사생 삼주야에 노 지우고 닻을 지니 수로천리 다 지내어 추저섬이 여기로다. 도중으로 들어가니 적막하기 태심하다. 사면으로 돌아보니 날 아는 이 뉘 있으리. 보이나니 바다이요 들리나니 물소리라….” 상추자, 하추자로 위·아래 섬이 갈리는데 추자교로 이어져서 이제는 상하 구분이 의미가 없다. 상추자항은 대서·영흥리, 하추자항은 신양리 소속이며, 그밖에 예초·묵리 같은 아름다운 포구들이 흩어져 있다. 단단한 바위밭에 해류가 거칠게 흘러 흐리멍텅한 고기들은 살 수가 없는 곳이다. 참돔이나 감성돔·우럭·농어 같은 고급 어종이 바위밭에서 물살과 씨름하면서 육질을 키우는 까닭에 그야말로 ‘바다낚시의 천국’이다. 도처에 보이느니 낚시꾼들이다. 추자도는 끊임없이 왜구에게 시달렸다. 왜구들은 제 집 드나들 듯 추자군도를 드나들었으며 심지어 20세기 초반까지도 수적(水賊)이란 이름의 바다도둑이 설쳐댔다. 일제시대, 이곳 수산자원에 눈독을 들인 일인들은 대서리에 진을 쳤다. 학교와 조합을 만들고 삼치어업에 매달렸다. 기선급 선박이 엄청난 양의 삼치를 잡아 그대로 상고선에 실어 일본으로 가져갔다. 이른바 추자도 삼치파시는 이들 일본배들 때문에 이뤄졌다.1000여명이 넘는 ‘뱃동서’들이 일시에 포구로 쏟아져 들어왔으니 술집과 여관이 번성할 수밖에 없었다. 덩달아 일본 기생도 들어오고, 술꾼들은 취하여 쌈박질을 일삼아 이래저래 ‘난장’이었다. 당시의 여관 흔적 등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일본인이 물러간 다음에도 삼치어업은 이어졌다. 삼치는 예전 방식대로 잡는 즉시 일본으로 수출했으며, 덕분에 파시도 70년대까지 명맥이 이어졌다. 이곳에는 ‘시와다 그물사건’이라는 전설 같은 일제하 어민항쟁이 전해진다.1926년 5월14일, 추자면민들이 대거 운집해 면장과 추자어업조합에 대한 불편과 불만을 토로했다. 형세가 대단히 격렬해 목포와 제주에서 경찰이 들이닥치고, 주동자 21명이 검거, 압송되기에 이르렀다. 어업조합과 면장 등이 공모, 은행 빚으로 어구를 사들인 뒤 2배나 비싸게 팔았는가 하면, 주민 의견을 무시하고 우뭇가사리를 강제 매입해 빚어진 사건이었다. 낌새를 알아 챈 조합장이 주재소와 결탁해 어민들을 억압하려 하자 예초리 남녀 700여명이 함께 시위를 일으킨 것이다. 본디 이곳 사람들은 외줄낚시로 필요한 만큼의 고기만 낚았으나 일본인들이 대형 그물로 싹쓸이하듯 고기를 잡아가자 이에 반발한 사건이었다는 증언도 있다. 이곳 노인들은 “물반 고기반이었는데 왜놈들이 싹쓸이해 가 그걸 못 보겠어서 다들 일어선 게지.”라고 말한다. 일제의 수탈적 약탈어업이 빚은 필연적 결과였다. 추자도에는 딸린 섬들이 42개나 된다. 돈대산에 올라서니 완도군 청산도가 한눈에 들어 온다. 청산도 삼치파시가 추자도 삼치파시와 다르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구로시오 해류가 흐르는 청산도와 나로도, 추자도 남쪽에 삼치떼가 몰려든 것이다. 추자도 최남단에는 관탈도가 있다. 옛적 귀양객들이 이곳에 이르러 다왔다는 생각에 갓을 벗었다 해서 ‘관탈’이라는 지명이 붙었단다. 관탈도에서는 불과 30분이면 제주항에 닿는다. 그러니 완도-청산도-추자도-관탈도 등이 징검다리처럼 일렬로 늘어서 육지와 제주도를 연결하고 있는 셈이다. 그 옛날 설문대 할망이 제주도와 남해 바다를 만들 때 징검다리는 박아놓은 섬들은 아닐는지. 이곳 토박이인 황필운(38) 선장과의 약속에 맞춰 선착장으로 나갔다. 매일 아침 9시면 정확하게 행정선 추자호가 바다로 떠난다. 횡견도와 추포도를 들러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길게 누워 있는 횡견도의 바람막이 돌담이 이곳의 모진 삶을 웅변해 준다.13가구가 사는 이곳에서 여자들은 물질로 전복·소라 등을 잡고, 남자들은 톳·가사리·미역 등 해초를 뜯어 생활한다. 한때 횡견분교까지 있었으나 잡초만 무성하고, 보리농사로 자족자급이 가능했던 섬이 지금은 인적이 끊겨 한적하다. 추포도는 2가구가 등록돼 있으나 실제로는 1가구만 산다. 낚시꾼들 뒷바라지로 생계를 잇는다. 고도에서 사는 1가구, 결코 쉽지 않은 삶일 것이다. 정 다산이 ‘남도경영’을 부르짖으며 경세유표에서 ‘남도의 섬을 잘 다스려야 재물이 숲처럼 일어서리라.’라고 했건만, 이들 낙도는 오로지 낙도라는 오명만 뒤집어쓰고 파도 아래 잠들어 있을 뿐이다. 요트처럼 빠른 배라면 뭍에서 불과 1시간도 채 안돼 당도할 수 있는 이 ‘보물섬들’이 오로지 ‘떠나가는 섬’으로만 인식되고 있으니 이곳에서도 우리 바다의 미래는 아득하다. 추자군도의 최대 문제는 역시 물이다. 횡견도 같은 섬에서는 아예 빗물을 받아 쓴다.‘물 쓰듯’이라는 말은 이곳에서는 도저히 내뱉을 수 없는 말이다. 추자 본도에는 담수화공장이 있어 바닷물로 만든 비싼 물을 먹고 산다. 그래서 집집마다 거대한 물탱크 한두 개쯤은 갖추고 있다. 추자도는 아름다운 풍광에 비해 너무나 덜 알려진 섬이다. 강태석 면장은 “청정해역일 뿐 아니라 천혜의 어족자원을 갖고 있어 21세기형 관광에 적합한 곳인데, 문제는 뱃길이지요.” 무인도를 이용한 청소년 자연생태체험학습장과 유료 유어장 등이 면에서 꿈꾸는 올 여름 사업들이다. 제주항에서 불과 1시간도 걸리지 않아 1일 관광도 가능하지만 배편이 하루에 편도 1회뿐이라 잠을 자고 나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하추자의 돈대산을 오르자 눈 아래 신양항이 굽어보이고, 멀리 전라도 바닷가가 한눈에 잡힌다. 날씨가 맑으면 한라산도 보인단다. 해양성 기후라 바람 심한 것을 빼면 아열대식물도 생존 가능한 곳이다. 그래선지 곳곳에 동백이 유난히 많다. 추자도에 딸린 사수도는 상록활엽수림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우거져 있고, 여기에 흑비둘기와 슴새들이 번식해 1982년 천연기념물(333호)로 지정되었다. 전복, 소라, 미역, 톳, 천초가 지천인 곳이 이곳 말고 또 어딨겠는가. 아, 그런데 사람들이 잘못알고 있는 상식이 하나 있다. 추자도 특산품하면 대개 멸치젓을 꼽곤 한다. 지금도 멸젓이 팔리고는 있지만 오늘날 추자도의 최고 특산은 ‘추자굴비’다. “어획량은 최고지만 문제는 덜 알려졌다는 점”이라는 김금충 수협 상무의 말이 아니더라도 실제로 조기들이 동중국해에서 추자도 근해로 몰려오기 때문에 해마다 엄청난 양이 잡힌다. 예전에는 그대로 영광 등지에 생조기로 출하했으나 이제는 아예 굴비로 말리고 있다. 어족이란 참으로 묘한 것, 칠산바다를 떠돌던 조기들 간 곳 몰라 했더니 추자도에 운집했었나 보다. 지금 추세라면 법성포 굴비 못지 않아 ‘추자굴비’ 없으면 차례도 지내지 못할 날이 다가오지나 않을까. 실제로 추자군도에서 최대의 주력품으로 굴비를 키우고 있으니 곳곳에 조기잡이 안강망 어선들이 눈에 뜨인다. 조기를 잡지 않는 비수기에는 돔이나 고등어 낚시로 살아간다. 떠나 오면서, 추자도가 ‘오지’란 생각을 싹 잊어버렸다. 제주항에 1시간 만에 도착했고, 곧장 공항으로 가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오는 데 고작 1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스티로폼 박스에 횟감과 함께 넣어 온 얼음이 서울에 도착해서도 그대로이니 ‘멀고도 가깝다.’거나 ‘가깝고도 멀다.’는 야누스적 표현이 모두 맞는 곳이다.
  • [이사람] 신생 케이블채널 엑스포츠 이희진 사장

    [이사람] 신생 케이블채널 엑스포츠 이희진 사장

    조금 부풀려 이야기하자면, 그가 없었으면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세계를 놀라게 했던 붉은 악마의 길거리 응원은 성사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부활한 코리안 특급 박찬호와 함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신생 스포츠전문 케이블 채널 엑스포츠(Xports)의 이희진(40) 사장.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그는 KBS MBC SBS 등 국내 지상파 3사를 제치고,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직접 중계권을 사려 했다. 하지만 막대한 비용 부담이 문제였다.FIFA와 작성해 나가던 계약서를 그대로 지상파 3사에 넘기고 말았다. 이 계약서에는 ‘퍼블릭 뷰잉(Public Viewing)’이라는 추가 권리도 담겨 있었다. 이는 전광판이나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해 경기를 옥외에서 내보낼 수 있는 권리. 이 조항이 국내 기업의 홍보 마케팅, 한국대표팀의 선전과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서울 광화문을 포함해 전국 방방곡곡을 붉은 물결로 물들인 길거리 응원이라는 월드컵 사상 초유의 역사가 이뤄질 수 있었다. 월드컵을 공동 개최한 일본은 어땠을까. 이 권리가 FIFA측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처럼 대대적인 길거리 응원이 생겨나지 못했다. “계약이 2006년까지 유효하기 때문에 내년에도 대대적인 붉은 악마의 물결이 재현되지 않을까요?” ●돈키호테 또는 봉이 김선달? 이 사장은 올해 초 스페인 한국 교포 기업가의 지원을 받아, 지상파 3사를 따돌리고 4년 동안의 메이저리그 독점 중계권을 따냈다. 가격은 약 4800만 달러(약 470억원) 정도. 지난해 박찬호를 비롯, 한국 메이저리거들과 일본에 진출한 이승엽의 성적이 신통치 않았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무모한 도박으로 여겼다. 한편으로는 중계권료를 높였다는 비난도 나왔다. 이 사장을 두고, 돈키호테 또는 봉이 김선달이라는 말도 일었다. 원래는 지상파와 케이블 등에 재판매할 계획이었지만, 지상파에서 중계를 꺼려하자, 자체 채널인 엑스포츠를 덜컥 만들게 됐다. 이제 케이블 신규 채널로 개국한 지 한달 반이 조금 넘은 상태. 벌써 가입자 수가 1000만(총 가입자 약 1200만)을 훌쩍 뛰어넘었다. 전무후무한 일이다. 시청률도 200여개 케이블 채널 가운데 최고 2위까지 뛰어오르는 등 당초 예상을 깨고 고공 비행을 거듭하고 있다. 물론 박찬호와 최희섭의 상승세가 이러한 비상에 뒷바람이 된 것은 사실. 하지만 이 사장은 “지난해 한국 메이저리거들이 바닥을 쳤을 때도 메이저리그 국내 중계는 이윤을 남겼다.”면서 “무모한 도전이 아니라, 사업상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또 “환율이 떨어졌기 때문에 앞으로 발생할 환차익을 고려하면 중계권료를 턱없이 비싸게 주고 산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메이저리그 중계만 밀고 나갈 생각은 없다. 앞으로 지상파를 비롯해 DMB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메이저리그 경기를 전달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또 다매체 시대를 맞아 콘텐츠를 다양화하고, 품질을 높이는 것만이 호황을 유지하는 길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달 말부터 세계 3대 메이저 종합격투기대회의 하나로, 미국에서 열리는 UFC(Ultimate Fight Championship)도 방송, 콘텐츠의 다변화를 꾀한다. 또 연말에는 메이저리그 올스타팀을 초청, 국내 프로야구 올스타팀과 경기를 벌이는 이벤트도 추진하고 있다. 게다가 내년 3월 예정된 야구 월드컵의 국내 방송 배급권을 따낸 상태. 그는 “올해에는 1·4분기 영업이 없어서 적자가 나겠지만, 채널 영업으로 2년 만에 흑자를 낼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좌충우돌 스포츠 마케팅 수업 배구 농구 등 스포츠를 즐겼지만, 처음에는 스포츠 시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국 외국어대학 영어과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 발을 디딘 것도 91년 KBS영상사업단을 통해서다. 원래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당시 해외로부터 영화나 만화, 다큐멘터리 등을 사들여 편성하는 일을 맡았다. 스포츠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게 된 것은 97년. 박찬호가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승격했고,KBS가 독점 중계했다. 그리고 이 계약을 이 사장이 담당했다. “스포츠 마케팅이 막 움트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무엇인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는 생각이 번뜩 들더라고요.” 이 때부터 이력서가 화려하게(?) 채워졌다. 다국적 스포츠 마케팅사인 IMG에 들어가 이 분야에 대한 본격적인 수업을 쌓기 시작했다.IMG 한국 지사장까지 지낸 뒤에는 미국에 모기업을 둔 Sports.com이라는 인터넷 미디어 회사로 옮겼다. 이후 그의 발걸음은 홍콩 NBA지사를 거쳐, 창업의 길로 이어지게 된다. “주변에서 너무 쉽게 직장을 바꾸는 것이 아니냐고 말리기도 했지만, 스포츠 마케팅이라는 커다란 틀에서 여러 가지를 배워 보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 프로축구 K-리그를 일본 등 해외에 판매하기도 했고, 국내 종합 격투기대회 스피릿MC도 만들어 내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어려웠던 시절도 많았다.2000년 한 때 나스닥에 상장되기도 했던 Sports.com에서는 모기업의 지원이 끊어지며, 자신이 직접 채용했던 직원들을 눈물을 머금고 집으로 돌려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또 2003년 3월에는 브라질 축구올스타팀을 초청, 경기를 벌였지만 관중 동원에 실패하며 목돈을 까먹고 휘청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스포츠마케팅을 해보자는 일관된 생각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사실 운이 좋았습니다. 지상파 방송사의 경험을 시작으로 다양한 곳에서 감각을 키울 수 있었으니까요. 구매자로, 때로는 판매자나 개인 사업자 등 여러 관점에서 스포츠를 바라보게 됐습니다.” 이 사장은 국내 인구의 70∼80% 이상이 케이블 등을 접하는 상황에서 지상파도 여러 매체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여기고 있다. “물론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큰 대회는 지상파가 담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미디어가 속속 출현하고 있는 가운데 지상파가 타 매체에 대한 도움을 꺼리는 등 오히려 각 매체 사이의 벽이 견고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 사장의 궁극적인 목표는 스포츠와, 이를 방송하는 채널, 그리고 기업으로 이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의 중간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 한국 기업들이 스포츠를 징검다리 삼아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통로를 활성화시키는 데에 꿈을 두고 있다. ■ 이희진사장 프로필 ●1965년 서울 출생 ●서울 문창초-신림중-문일고-한국외대(영어과)졸업 ●부인 임지희(36)씨와 1녀 ●1991년 KBS영상사업단 입사 ●1997∼2000년 IMG 한국지사 근무 ●2000년 미국프로농구(NBA) 홍 콩 지사, 인터넷미디어사 Sports.com 근무 ●2001년∼ 스포츠마케팅사 SNE 사장·2005년 스포츠전문 케이블 채널 Xports 및 스포츠마케팅사 IBsports 사장 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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