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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법부터 공략해라

    공인중개사시험도 얕보면 큰 코 다친다.명색이 전문자격증인데다 시험수준도 회를 거듭할수록 높아지고 있다. 응시자가 워낙 많이 몰리다보니 합격자의 지나친 양산을 막기 위한 변별력 확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출제되는 문제들은 종합적인 이해력과 응용력을 요구한다.판례와 사례문제의 출제비중이 높아지고,문제 지문도 길어져 수험생들의 부담이 커졌다.부동산학개론,민법 및 민사특별법,부동산중개업법령 및 중개실무,부동산 공시법,부동산 공법,세법 등 방대한 분량의 시험과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전략이 필수적이다.EBS 공인중개사 강사들로부터 그 노하우를 들어본다. ●“민법, 사법시험 수준 문제도 출제” 1차 시험과목인 부동산학개론과 민법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민법은 특히 전과목에 걸쳐 기본이 되는 개념 정의를 내려주는 과목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홍남기 강사는 “민법에서 과락을 면하는 수준인 40점 정도를 득점할 정도가 됐을 때 다른 법과목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민법은 기본 과목이면서도 문제 수준이 상당해 과락률이 높다.사법시험에 출제됐던 민법문제가 등장할 정도다. 홍 강사는 “민법에서는 기출문제가 중요한데 10회 시험 이후의 문제들을 숙지해야 한다.”고 말했다.10회 이전의 기출문제들은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낮아 최근 출제 경향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민법의 출제비중은 민사특별법과 채권법,물권법에서 높다. 부동산학개론은 전 범위에 걸쳐 문제가 골고루 나오는 편이지만 특히 중시할 부분은 부동산 투자와 금융,감정평가,시장원리,정책 분석 등이다. 송재용 강사는 “시험을 처음 준비한다면 출제비중이 높은 부분을 중심으로 기본서를 먼저 속독하고 기출문제로 출제 경향을 파악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중개업법은 판례가 중요 부동산 중개업법은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과목이다.임선정 강사는 “과목자체가 쉽다기보다는 지금까지 출제된 문제 난이도가 낮은 편이었다.”면서 “하지만 난이도가 높아질 전망이어서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매매계약서,확인설명,경매,주택임대차,상가건물임대차 등의 출제비중이 높고 사례 위주의 문제가 많기 때문에 판례공부가 중요하다. 부동산 공시법은 민법에 대한 이해가 기초가 돼야 한다.권리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돼야 공시 절차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시법은 등기법과 지적법으로 구성되는데 출제비율은 비슷하다.박준영 강사는 “공시법은 배점이 높지 않은 데 비해 학습량이 많아 수험생들이 부담스러워 하는 과목”이라며 “이해가 우선돼야 하지만 지적법의 경우 법조문 위주로 암기를 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공법과 세법은 과락률 높아 부동산 공법은 가장 어렵다고 꼽히는 과목이다.토지의 법적 쓰임새를 평가하는 기술적 파트이기 때문에 더욱 생소하다.워낙 범위가 방대해 암기로는 정리가 불가능하다.이혁준 강사는 “도시계획법 등 8개 법을 정리해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공법 공부 70% 정도는 됐다고 볼 수 있다.”면서 각 법의 체계적인 이해를 강조했다.이 강사는 “공법은 끊임없이 법이 개정되는데 시험일을 기준으로 3개월 이내에 개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출제되지 않기 때문에 개정내용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세법은 개정내용에 주목해야 한다.김명희 강사는 “세법은 가장 현실 반영적인 학문인만큼 개정되는 양도소득세,개정세법을 숙지해야 한다.”면서 “세법만은 최근 교재를 이용해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혜승기자 1fineday@˝
  • 코엘류 왜 변심?

    움베르투 코엘류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은 왜 자진사퇴 쪽으로 갑자기 마음을 바꿨을까. 코엘류 감독은 19일 자신의 경질 여부를 결정할 예정인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가 열리기 직전 기자회견을 갖는다. 코엘류 감독 본인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 ‘자진사퇴’를 밝힐 것으로 여겨진다.그동안 임기(계약기간 2003년 3월∼2004년 8월)에 강한 집착을 보인 코엘류 감독이 갑작스럽게 자진사퇴로 선회한 것에 대해 팬들과 축구계는 오히려 당혹해하는 모습이다. 코엘류 감독은 지난 8일 기술위원회 때까지만 해도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면서 애착을 보였다.또 오는 28일 열릴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에 대비해 해외파 소집을 요청하는 등 명예회복을 벼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는 내심 상당한 중압감에 시달려 온 것으로 여겨진다.외부와의 연락을 완전히 끊고,포르투갈과 프랑스의 지인들에게 괴로운 심정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 등에서 심정을 짐작할 수 있다.지난 9일 입국한 부인과 둘째딸이 사퇴를 권유했을 가능성도 있다. 김진국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일단 코엘류 감독이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힌 뒤 본격적인 대책 마련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하지만 협회와 코엘류 감독이 이미 충분한 교감을 나눴다는 추측이 무성하다.협회로서는 자신 있게 영입한 감독을 자를 경우 실수를 인정하는 꼴이 되고,코엘류 감독으로서도 차후 지도자 생활을 감안해 명예퇴진이 유리하다고 판단해 ‘자진사퇴’로 가닥을 잡았다는 것. 이와 관련해 조중연 이회택 협회 부회장 등이 18일 서울 인근의 골프장에서 코엘류 감독과 회동,남은 연봉(약 25만달러) 지급과 기술자문역 위촉 등에 의견을 같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엘류 감독이 사퇴하면 대표팀은 일단 박성화 수석코치 체제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대행체제는 짧게는 오는 28일 파라과이의 평가전까지,길게는 아시안컵까지 갈 가능성이 높다. 차기 감독으로는 2002월드컵 4강 신화의 주인공 거스 히딩크(PSV에인트호벤)를 비롯해 브뤼노 메추 전 세네갈대표팀 감독,터키를 2002월드컵 3위로 이끈 세뇰 귀네슈,룩셈부르구 전 브라질 대표팀감독(현 브라질 크루제이루 감독) 등이 거론된다.국내 인사로는 김호 전 수원감독과 허정무 전 국가대표팀 감독 등이 후보로 꼽힌다. 박준석기자 pjs@˝
  • [씨줄날줄] 세대교체/이기동 논설위원

    우리는 이번 선거를 통해 386세대들에게 맥없이 나가떨어지는 4·19,6·3세대 ‘주역들’을 목도했다.지난 40년간 한국정치의 주인공이었던 3김의 마지막 주자 김종필 총재의 10선꿈은 좌절됐다.월드컵 붉은 악마에서 지난 대선때의 반미 촛불시위,그리고 탄핵촛불….새로운 바람의 위력은 실로 유난했다.한나라당에 가장 무서운 존재는 이번에도 젊은 표였다.막판 ‘노풍(老風)’ 기대도 젊은 바람앞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새 바람의 화두는 세대교체,물갈이였다.당선자중 초선 188명,50대 이하가 전체의 83.6%라는 등의 외형적 통계가 이를 웅변한다.어느 세대고 새롭지 않은 때가 있었을까.토크빌의 말처럼 새 정부는 항상 나름대로 새로운 인물들이 시작하는 것.새 촛불세대도 다가올 세대에게 언젠가는 청산 대상일 수밖에 없을 것.미국현대사에서는 세대를 1900년초 출생자부터 시작해 (1)GI세대(몸사리는 정부관료형)(2)침묵세대(2차대전을 겪은 무소신 세대)(3)베이비붐세대 (4)X세대 (5)새천년 (6)미래세대의 6단계로 나눈다. 이중 우리의 386과 기질적으로 가장 가까운 세대는 X세대.사려깊지 못하고 폭력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 특질을 갖고 있다.그래서 ‘13일의 금요일에 태어난 아이들’로 부르기도 한다.이들은 도리어 부모세대를 무모하게 베트남전에 뛰어들고 스리마일섬 원전사고를 일으키는 무능,무책임한 세대로 매도한다.히피들이 새 문화양식을 표현했듯이 새 세대는 항상 자기 방식대로 커밍아웃을 한다.오죽했으면 버릇없음의 대명사인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가 후배 X세대들을 파괴자란 뜻의 ‘베이비 버스터(Buster)’라 불렀을까. 지구상에 세대교체를 겪지 않는 나라가 어디 있고 ‘파괴자’가 아닌 새 세대가 어디 있었을까만 진정으로 경계할 것은 폭력의 커밍아웃.문화혁명때의 중국 홍위병,크메르루주 소년병들이 그랬고 고대불상까지 파괴한 극단이슬람 탈레반학생정권의 폭력성이 이를 보여준다.17대 국회의 다수당을 차지한 열린우리당의 새 주역들에게 국민이 기대하는 것은 이념적 순수주의에 집착하기보다는 화합과 나라 살리기에 힘과 지혜를 모아달라는 것이다.현재는 모두 과거와 연결돼 있는 것.이 끈을 통해 과거의 경험에서 배우고 미래의 지혜를 얻는 세대교체가 됐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이기동 논설위원 yeekd@seoul.co.kr˝
  • [남규철의 DVD 폐인] 화질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

    DVD와 관련된 글을 읽다 보면 종종 ‘레퍼런스급 타이틀’이란 단어를 볼 수 있다.‘레퍼런스’의 사전적 의미는 ‘참고’,혹은 ‘기준’인데,‘레퍼런스급 타이틀’이라면 말 그대로 다른 타이틀의 기준이 될 만한 DVD퀄리티를 가졌다는 뜻이다.즉 음질·화질 등 DVD로서 기술적 완성도가 뛰어나다고 보면 된다.물론 ‘레퍼런스급 타이틀’이란 말 자체가 영화의 완성도보다는 영화를 담는 그릇(DVD)에 집착하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불편해 하는 목소리도 분명히 존재한다.하지만 DVD만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수준의 영상경험을 느끼고 싶다면 이런 타이틀들을 찾아보는 것도 무척 즐거운 일이 될 듯.오늘 소개하는 작품들이 바로 ‘레퍼런스급의 화질’을 가진 타이틀들이다.많은 DVD애호가들이 주저없이 엄지 손가락을 추켜세우는 화질의 타이틀들을 통해 즐겁고 강렬한 영상경험을 만끽하기 바란다. ●몬스터 주식회사 화질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타이틀들은 픽사(Pixar)가 만들어온 100% 디지털 애니메이션들이다.디지털로 제작된 까닭에,아날로그인 필름을 디지털로 변환하는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어 보다 깨끗한 영상을 보여주고,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답게 화려하면서도 아름다운 색상까지 풍부하게 담고 있다.특히 ‘몬스터 주식회사’는 주인공 셜리의 온몸에 난 부드러운 털들의 세밀하면서도 선명한 이미지와,풍성한 색상들이 가득한 타이틀로 ‘레퍼런스급의 화질’이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대단히 만족스러운 화면을 보여준다. ●비독 극영화들중에서 강력한 화질을 보여주는 타이틀들은 HD카메라로 제작된 작품들.높은 해상도의 HD급 기술로 촬영한 대표적 작품들로 ‘비독’‘스타워즈 에피소드 2’‘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등을 꼽을 수 있다.그 중 가장 먼저 개봉된 프랑스 영화 ‘비독’은 독특한 비주얼과 함께,배우들 잔주름과 피부 질감까지 손에 잡힐 듯 느껴질 만큼 화질이 훌륭하다.단단하면서도 깊이감이 느껴지는 흑색의 표현도 만족스러우며,아지랑이나 잡티 등의 세세한 노이즈도 찾아 보기 힘들만큼의 깨끗한 영상도 보통 타이틀과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반지의 제왕:반지 원정대 확장판 올 아카데미상을 통해 영화 자체로도 절대강자임을 드러낸 작품이지만,DVD로도 같은 위상을 자랑하는 타이틀이다.영화가 시작하면 등장하는 거대한 전투 장면은 수만명의 병사들이 보여주는 세밀한 디테일과 선명한 영상들로 대단히 놀랄 만한 경험을 하게 해준다.여기에 어두운 장면에서도 잘 표현되는 이미지들과 명암표현,아름다운 자연에서 보여지는 따스하고 풍부한 색상들까지,‘Lord of DVD’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타이틀이다. 이외에도 ‘스워드 피쉬’‘글래디에이터’‘원더풀 데이즈’등도 레퍼런스급 화질을 가진 타이틀로 꼽힌다. DVD칼럼니스트·09DVD업무팀장˝
  • [신용회복 현장을 가다] 상담원 이동기과장

    “제가 자격이 됩니까? 꼭 돼야 하는데요.” 빚 때문에 고통받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신용회복위원회를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 하는 이야기다.처음 상담업무를 할 때는 그들이 왜 빚을 갚는 방법보다 신청자격에 더 집착을 보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오랜기간 빚을 갚아 나가려면 소비습관을 바꾸고 소득을 늘리는 것이 우선인데,정작 중요한 것을 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것을 느끼게 됐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울기만 하다 “혼내지 말고 제 얘기좀 들어주세요.”라며 채권기관의 전화,방문,재산 가압류때문에 장사를 할 수 없어 빚을 갚고 싶어도 갚을 수 없다는 아주머니,장애인인 어머님을 대신해서 생활을 꾸려 가다 빚이 늘어났다는 20대 여성,세상에 빚을 남기고 떠나면 안 된다는 80이 넘으신 노인.사연은 제각각이지만,빚을 나눠 갚을 수 있고 가혹한 채권추심만 없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한결같은 말에 가슴이 뭉클해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반면 집을 여섯채나 갖고 있으면서도 부동산은 정리하지 못하겠다고 우기는 중년여성,고급 승용차를 팔지 못하겠다는 20대 남성,무조건 채무를 감면해 달라고 우기는 분들을 보면 혀를 차게 된다. 상담을 통해 가장 중요하게 느낀 것은 은행에 다니면서 배운 금융지식도,틈틈이 배운 채권추심 절차에 대한 지식도 아니었다.사람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었다.신용불량자 대부분은 하루빨리 빚을 갚고 깊은 늪에서 탈출하기를 갈망하고 있으며 빚을 갚으려고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신용을 관리하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린 결과만 놓고 이야기하지,그렇게 되기까지 과정에 귀기울여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대부분 사람들은 이들을 금융기관의 돈을 ‘떼먹은’ 게으르거나 부도덕한 사람들로 치부하고,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많다고 미리 결론을 내린다.또 능력이나 품성을 평가하기보다는 처음부터 ‘문제가 있는 사람’ 또는 ‘예비범죄자’로 간주해 채용을 꺼린다.이런 상황에서 소비습관을 바꾸고 소득을 늘리라는 말은 그야말로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 위원회를 통해 개인워크아웃을 받아야만 추심의 공포에서 벗어나고,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할 수 있고,자유로운 금융거래를 통해 소득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신청자격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개인워크아웃 신청자격이 신용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일상생활에서 신용을 회복할 수 있는 자격으로 생각하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람은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신용불량자는 한때의 ‘신용관리 실패자’일 뿐,부도덕하거나 게으른 사람이 아니며,금전사고를 낼 예비범죄자 집단은 더더욱 아니다.상처를 하루빨리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보살펴 주어야 할 우리의 따뜻한 이웃이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9)인간이 평등할 수 있을까?-백정해방운동 (下)

    흔히 진주를 한국 인권의 고향이라 말한다.1862년 류계춘과 그의 동지들이 주도했고 한국 최초의 농민 생존권 투쟁이 된 ‘임술년 농민항쟁’과 1923년 ‘형평사 운동’이 진주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2003년은 형평운동 80주년이었고,지난 1993년에는 해방 후 처음으로 진주에서 형평운동 70주년 기념사업회가 결성되었다.백정해방운동을 백정이라는 특수 신분의 해방 운동으로 기념하는 데 그치지 말고,보다 폭넓은 인간의 불평등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한 계기로 삼자는 뜻이었다.인권문제에 애정을 가진 이들이 모여서 형평기념탑을 세우고,인권 문제에 관한 국제 회의도 열어 70년 전 일제 때에 시작된 형평운동 정신을 새롭게 하는 일을 논의하였다.일본에서는 일본의 백정에 해당하는 부락민(部落民) 다수와 부락민의 인권과 차별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부락민의 생존권을 돕고 일본사회의 차별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부락해방인권연구소 관계자들이 참가하기도 하였다. 그때 처음으로 강상호와 장지필의 이름과 생애가 공식적으로 거론되었다.그 이전에는 국내의 극히 적은 연구자들에 의해 간신히 이름과 생애가 이야기되고 있었을 뿐이었다.다행스럽게도 강상호는 진주를 대표하는 부자이며 명문가 출신인데다 후손들이 진주 지역에 살아 있었기에 그에 대한 연구 자료는 풍부한 편이었다.그러나 장지필의 경우에는 그의 후손들이 살아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한국의 후예들은 공식참배 안해 형평운동 70주년 국제 행사 이후 한 해에 두 차례씩 일본 부락민들이 강상호의 무덤을 참배하는 행사가 계속되고 있다.일본 부락민들의 강상호 무덤 참배 때마다 안내자로 참석해온 필자는 올봄 그의 아들 강인수씨와 둘이서만 참배를 했다.참배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 최초의 인권해방운동 선구자는 차도 옆에 누워서 자동차 굉음과 흙먼지,행인들이 내던지는 오물,그 보다 더 심한 무관심 속에서 초라하게 삭아가고 있었다.아들은 여유없는 그의 노년을 부끄러워할 뿐 말이 없었다.한국의 백정 후예들이 강상호 무덤을 공식적으로 참배했다는 이야기도 아직 듣지 못하였는데,이 역시 안타깝다. 형평사 운동이 시작되던 1923년 당시 한국에는 40여만 명의 백정들이 살고 있었는데,백정의 원류는 고구려의 영토 확장 때 생겨난 전쟁 포로나 귀순자들이라고 한다.그들은 고구려로 온 뒤 주로 변방에서만 살았는데,‘삼국사기’는 이들이 모여 살았던 곳을 부락(部落)이라 불렀음을 적고 있다.‘280년(서천왕11)에는 숙신을 공격하여 주민 600호를 옮기고 항복한 부락 예닐곱 곳을 부용으로 삼았다’는 것이다.원래 부락은 흉노족이 사막지대에서 떼를 지어(部) 천막을 치고 정착한 곳(落)을 의미했다.고려 때는 고구려에 복속당한 북방 유목민들의 후예인 수척(水尺),양수척(揚水尺),화척(火尺)들이 살던 곳을 부락이라 불렀다.이런 예를 두고 볼 때 부락은 원주민과 다른 족속이 집단을 이루고 사는 곳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겠다. 일제 식민지 이후 총독부는 한국 민속을 파괴하고 마을이나 산의 지명을 바꾸는 것으로 정체성을 소멸시키려 하였다.그 과정에서 한국 고유어인 ‘동네,마을’ 대신 ‘부락’을 쓰게 하였는데,일본의 부락과 부락민이 일본인들로부터 차별 멸시당하듯이 한국인 전체를 부락,부락민으로 취급함으로써 식민지배의 우월성을 강조했던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백정들의 거주지를 부락이라 불렀던 것과 일본의 부락민들이 사는 곳을 부락이라 한 것은 우연이라 할 수 있겠다. ●일반인들의 생활언어도 사용못해 당시에 백정들은 갓 대신 패랭이를 써야 했고,상투머리엔 반드시 검은 띠를 둘러 백정임을 표시해야 했다.백정 여자들은 언제나 검정색 물들인 치마를 입어야 했고,비단옷이나 양반들이 입는 두루마기며 도포를 입어서는 안되었다.기와집에 살 수 없었으며 세 칸 이상의 넓은 집은 갖지 못했다.또,백정들끼리만 결혼할 수 있었고,혼인할 때 신부는 가마를 타지 못하고 신랑은 말을 탈 수 없었다.서당이나 향교에서 일반인들과 함께 글을 배워서도 안되었다.죽은 뒤에도 상여에 관을 얹지 못하며,거적대기에 말아 매장하되 일반인 무덤보다 높은 곳에는 봉분을 짓지 못했다.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일반인 소년이나 아이에게 백정은 존댓말을 써야 했고 공공장소를 지날 때는 허리를 숙인 채 빠르게 뜀박질하여 지나가야 했다.이러한 법이나 관습을 어길 경우에는 때와 장소와 상관없이 일반인으로부터 처벌받아야 하고,같은 죄를 다시 범한 백정은 중형에 처해졌다.심지어 일반인들의 생활 언어를 사용하는 것까지 금했다.백정들의 삶은 온갖 금지와 차별의 울타리 안에 구금되어 있었다. 그리고 백정마을은 전국 주요 행정관청이 있는 곳에 만들어졌는데,각 지방관아와 병영에서 필요로 하는 육류와 피혁을 손쉽게 얻기 위해서였다.특히 향교가 있는 지역에서는 봄·가을에 있는 공자와 유교 선현들께 올리는 제사 음식 중에 반드시 필요로 하는 육류와 육류를 가공하여 만든 제수를 공급받기 위해 백정을 꼭 필요로 했다.따라서 숙종 연간만 하더라도 백정은 일종의 관노비였다.그 후 조선사회 신분제도와 경제토대의 붕괴로 지방 토호들이 백정을 사노비화하면서 백정들의 사회 진출이 시작되었다.그러나 대부분의 백정들은 철저한 문맹과 궁핍으로 최하층민의 가련한 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백정들에게는 무거운 의무만 있고 사람답게 살 권리가 없었다. 강상호는 백정들의 생활을 개선시키지 않고 한 인간으로 사는 것이 위선임을 절감했다.그리고 식민지 상황에서 조선인들끼리 차별하고 탄압하는 것은 결국 일본의 식민통치를 돕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질타하였다.인간은 평등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사는 삶이야말로 고귀하다고 외쳤다.인간을 차별하는 것은 과거에 집착하기 때문이며,미래를 위해 인간 평등을 지향해야 한다고 굳건히 믿었다. 1923년 봄 진주에서는 역사상 최초의 인권해방운동이 시작되었다.이 운동에는 백정 출신들과 함께 일반 지식인들도 참여함으로써 신분차별의 철폐가 민족해방보다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새로운 생각을 낳았다.형평운동이 시작되자 전국의 백정들은 일제히 환영하면서 대대적인 집회를 열었다.전국적인 사회 문화 운동의 출발지가 서울이 아닌 진주라는 작은 도시라는 점과 운동본부 및 핵심 지도부 인물 대부분이 지역인들이라는 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백정자식 양자로 들여 취학시켜 강상호·장지필 등 본부 임원들은 각각 순회 지역을 나누어 돌면서 각 지역에서 벌어지는 백정들의 군중 집회에 참석,축사를 하거나 앞으로의 진행방향에 대하여 토론을 벌였다.백정들은 수백년 동안 억눌러온 감정을 폭발시켰지만 폭력 사태로는 나아가지 않았다.철저한 온건 노선을 지키면서 모든 조선인들의 양심에 호소하는 눈물 겨운 장면을 만들어냈다.민족 해방을 부르짖는 것도 아니고,어떤 사회적 쟁점을 논의하기 위한 집회도 아닌 오직 천한 신분 백정도 똑같은 인간임을 인정해달라는 선언과 맹세의 집회다보니 일본 경찰도 적극 단속할 수는 없었다. 형평운동이 본 궤도에 올라 백정들의 생활 개선과 교육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가장 먼저 나타난 차별의 벽은 백정들이 일반인 학교에 입학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만약 백정들이 학교에 입학하면 일반인들이 모두 동맹 휴학을 하겠다는 선언을 했다.강상호는 그때 두 명의 백정 자식을 양자로 들여 직접 아이들 손을 잡고 학교까지 데려다 주는 등 일반 지식인들이 먼저 백정 차별을 극복할 것을 주장했다. 이렇듯 들불처럼 확산되는 형평운동은 그때 막 한국사회에 상륙한 사회주의 노선과 다른 몇몇 사상단체들의 관심을 끌었다.그러면서 점점 예기치 못한 혼란 속으로 빨려 들었다.강상호는 장지필과의 계속되는 갈등에도 불구하고 백정도 떳떳한 조선인으로 대우받는 것이 어쩌면 민족해방보다 값진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형평운동에 자신과 전 재산을 아낌없이 던져 넣었다.국가나 사회보다 인간이 소중하다는 그의 사상을 그는 의심하지 않았다.해방과 한국 전쟁 이후 그는 심한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죽었다. 굳이 형평운동이 아니더라도 인간평등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진주 촉석공원 앞 그의 작고 외로운 무덤 앞에 술 한 잔을 올리고 강상호란 이름을 불러 보면 어떨까.˝
  • [토요영화]

    ●맨 인 블랙(KBS2 밤 11시10분)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영화.토미 리 존스와 윌 스미스의 콤비 연기도 일품이다.MIB,즉 ‘맨 인 블랙’은 외계인들을 관리 담당하는 비밀 기관으로,요원들은 항상 검은 양복에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다닌다.MIB의 신참 J와 베테랑 요원 K는 외계인들의 시체가 줄줄이 실려오자 곤혹스러워한다.범인의 정체는 바퀴벌레 외계인으로,아퀼리안 성인들이 원하는 은하계를 훔치는 것이 목적이다. ●내가 좋아하는 계절(EBS 밤 11시10분) 고통스러운 삶의 도피처로 죽음을 택한 불행한 가족을 다룬 작품.세상에서 가장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가족이며,어린 시절의 상처가 성인이 된 후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보여준다.누벨바그 제2세대 감독 앙드레 테시네 감독의 1993년 작품으로 남매로 나오는 카트린 드뇌브·다니엘 오테이유의 감정 연기가 빛난다. 여자로서 한 집안의 가장인 베르트는 나이가 들면서 건강이 악화되어,딸 에밀리와 함께 살려고 떠난다.에밀리는 냉정한 전문직 여성으로 남편 브뤼노와 딸 앤,양자 루시앵과 살고 있다.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자,에밀리의 골치덩어리 남동생 앙투안이 그녀의 집에 나타난다.앙투안은 이기적이고 어릴 적부터 누나에 대한 집착을 보여온 인물로 에밀리와 브뤼노는 그런 앙투안이 부담스럽다.과거의 기억으로 감정이 폭발한 앙투안은 결국 브뤼노와 주먹다짐을 벌인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9)인간이 평등할 수 있을까?-백정해방운동 (下)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9)인간이 평등할 수 있을까?-백정해방운동 (下)

    흔히 진주를 한국 인권의 고향이라 말한다.1862년 류계춘과 그의 동지들이 주도했고 한국 최초의 농민 생존권 투쟁이 된 ‘임술년 농민항쟁’과 1923년 ‘형평사 운동’이 진주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2003년은 형평운동 80주년이었고,지난 1993년에는 해방 후 처음으로 진주에서 형평운동 70주년 기념사업회가 결성되었다.백정해방운동을 백정이라는 특수 신분의 해방 운동으로 기념하는 데 그치지 말고,보다 폭넓은 인간의 불평등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한 계기로 삼자는 뜻이었다.인권문제에 애정을 가진 이들이 모여서 형평기념탑을 세우고,인권 문제에 관한 국제 회의도 열어 70년 전 일제 때에 시작된 형평운동 정신을 새롭게 하는 일을 논의하였다.일본에서는 일본의 백정에 해당하는 부락민(部落民) 다수와 부락민의 인권과 차별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부락민의 생존권을 돕고 일본사회의 차별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부락해방인권연구소 관계자들이 참가하기도 하였다. 그때 처음으로 강상호와 장지필의 이름과 생애가 공식적으로 거론되었다.그 이전에는 국내의 극히 적은 연구자들에 의해 간신히 이름과 생애가 이야기되고 있었을 뿐이었다.다행스럽게도 강상호는 진주를 대표하는 부자이며 명문가 출신인데다 후손들이 진주 지역에 살아 있었기에 그에 대한 연구 자료는 풍부한 편이었다.그러나 장지필의 경우에는 그의 후손들이 살아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한국의 후예들은 공식참배 안해 형평운동 70주년 국제 행사 이후 한 해에 두 차례씩 일본 부락민들이 강상호의 무덤을 참배하는 행사가 계속되고 있다.일본 부락민들의 강상호 무덤 참배 때마다 안내자로 참석해온 필자는 올봄 그의 아들 강인수씨와 둘이서만 참배를 했다.참배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 최초의 인권해방운동 선구자는 차도 옆에 누워서 자동차 굉음과 흙먼지,행인들이 내던지는 오물,그 보다 더 심한 무관심 속에서 초라하게 삭아가고 있었다.아들은 여유없는 그의 노년을 부끄러워할 뿐 말이 없었다.한국의 백정 후예들이 강상호 무덤을 공식적으로 참배했다는 이야기도 아직 듣지 못하였는데,이 역시 안타깝다. 형평사 운동이 시작되던 1923년 당시 한국에는 40여만 명의 백정들이 살고 있었는데,백정의 원류는 고구려의 영토 확장 때 생겨난 전쟁 포로나 귀순자들이라고 한다.그들은 고구려로 온 뒤 주로 변방에서만 살았는데,‘삼국사기’는 이들이 모여 살았던 곳을 부락(部落)이라 불렀음을 적고 있다.‘280년(서천왕11)에는 숙신을 공격하여 주민 600호를 옮기고 항복한 부락 예닐곱 곳을 부용으로 삼았다’는 것이다.원래 부락은 흉노족이 사막지대에서 떼를 지어(部) 천막을 치고 정착한 곳(落)을 의미했다.고려 때는 고구려에 복속당한 북방 유목민들의 후예인 수척(水尺),양수척(揚水尺),화척(火尺)들이 살던 곳을 부락이라 불렀다.이런 예를 두고 볼 때 부락은 원주민과 다른 족속이 집단을 이루고 사는 곳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겠다. 일제 식민지 이후 총독부는 한국 민속을 파괴하고 마을이나 산의 지명을 바꾸는 것으로 정체성을 소멸시키려 하였다.그 과정에서 한국 고유어인 ‘동네,마을’ 대신 ‘부락’을 쓰게 하였는데,일본의 부락과 부락민이 일본인들로부터 차별 멸시당하듯이 한국인 전체를 부락,부락민으로 취급함으로써 식민지배의 우월성을 강조했던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백정들의 거주지를 부락이라 불렀던 것과 일본의 부락민들이 사는 곳을 부락이라 한 것은 우연이라 할 수 있겠다. ●일반인들의 생활언어도 사용못해 당시에 백정들은 갓 대신 패랭이를 써야 했고,상투머리엔 반드시 검은 띠를 둘러 백정임을 표시해야 했다.백정 여자들은 언제나 검정색 물들인 치마를 입어야 했고,비단옷이나 양반들이 입는 두루마기며 도포를 입어서는 안되었다.기와집에 살 수 없었으며 세 칸 이상의 넓은 집은 갖지 못했다.또,백정들끼리만 결혼할 수 있었고,혼인할 때 신부는 가마를 타지 못하고 신랑은 말을 탈 수 없었다.서당이나 향교에서 일반인들과 함께 글을 배워서도 안되었다.죽은 뒤에도 상여에 관을 얹지 못하며,거적대기에 말아 매장하되 일반인 무덤보다 높은 곳에는 봉분을 짓지 못했다.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일반인 소년이나 아이에게 백정은 존댓말을 써야 했고 공공장소를 지날 때는 허리를 숙인 채 빠르게 뜀박질하여 지나가야 했다.이러한 법이나 관습을 어길 경우에는 때와 장소와 상관없이 일반인으로부터 처벌받아야 하고,같은 죄를 다시 범한 백정은 중형에 처해졌다.심지어 일반인들의 생활 언어를 사용하는 것까지 금했다.백정들의 삶은 온갖 금지와 차별의 울타리 안에 구금되어 있었다. 그리고 백정마을은 전국 주요 행정관청이 있는 곳에 만들어졌는데,각 지방관아와 병영에서 필요로 하는 육류와 피혁을 손쉽게 얻기 위해서였다.특히 향교가 있는 지역에서는 봄·가을에 있는 공자와 유교 선현들께 올리는 제사 음식 중에 반드시 필요로 하는 육류와 육류를 가공하여 만든 제수를 공급받기 위해 백정을 꼭 필요로 했다.따라서 숙종 연간만 하더라도 백정은 일종의 관노비였다.그 후 조선사회 신분제도와 경제토대의 붕괴로 지방 토호들이 백정을 사노비화하면서 백정들의 사회 진출이 시작되었다.그러나 대부분의 백정들은 철저한 문맹과 궁핍으로 최하층민의 가련한 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백정들에게는 무거운 의무만 있고 사람답게 살 권리가 없었다. 강상호는 백정들의 생활을 개선시키지 않고 한 인간으로 사는 것이 위선임을 절감했다.그리고 식민지 상황에서 조선인들끼리 차별하고 탄압하는 것은 결국 일본의 식민통치를 돕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질타하였다.인간은 평등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사는 삶이야말로 고귀하다고 외쳤다.인간을 차별하는 것은 과거에 집착하기 때문이며,미래를 위해 인간 평등을 지향해야 한다고 굳건히 믿었다. 1923년 봄 진주에서는 역사상 최초의 인권해방운동이 시작되었다.이 운동에는 백정 출신들과 함께 일반 지식인들도 참여함으로써 신분차별의 철폐가 민족해방보다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새로운 생각을 낳았다.형평운동이 시작되자 전국의 백정들은 일제히 환영하면서 대대적인 집회를 열었다.전국적인 사회 문화 운동의 출발지가 서울이 아닌 진주라는 작은 도시라는 점과 운동본부 및 핵심 지도부 인물 대부분이 지역인들이라는 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백정자식 양자로 들여 취학시켜 강상호·장지필 등 본부 임원들은 각각 순회 지역을 나누어 돌면서 각 지역에서 벌어지는 백정들의 군중 집회에 참석,축사를 하거나 앞으로의 진행방향에 대하여 토론을 벌였다.백정들은 수백년 동안 억눌러온 감정을 폭발시켰지만 폭력 사태로는 나아가지 않았다.철저한 온건 노선을 지키면서 모든 조선인들의 양심에 호소하는 눈물 겨운 장면을 만들어냈다.민족 해방을 부르짖는 것도 아니고,어떤 사회적 쟁점을 논의하기 위한 집회도 아닌 오직 천한 신분 백정도 똑같은 인간임을 인정해달라는 선언과 맹세의 집회다보니 일본 경찰도 적극 단속할 수는 없었다. 형평운동이 본 궤도에 올라 백정들의 생활 개선과 교육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가장 먼저 나타난 차별의 벽은 백정들이 일반인 학교에 입학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만약 백정들이 학교에 입학하면 일반인들이 모두 동맹 휴학을 하겠다는 선언을 했다.강상호는 그때 두 명의 백정 자식을 양자로 들여 직접 아이들 손을 잡고 학교까지 데려다 주는 등 일반 지식인들이 먼저 백정 차별을 극복할 것을 주장했다. 이렇듯 들불처럼 확산되는 형평운동은 그때 막 한국사회에 상륙한 사회주의 노선과 다른 몇몇 사상단체들의 관심을 끌었다.그러면서 점점 예기치 못한 혼란 속으로 빨려 들었다.강상호는 장지필과의 계속되는 갈등에도 불구하고 백정도 떳떳한 조선인으로 대우받는 것이 어쩌면 민족해방보다 값진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형평운동에 자신과 전 재산을 아낌없이 던져 넣었다.국가나 사회보다 인간이 소중하다는 그의 사상을 그는 의심하지 않았다.해방과 한국 전쟁 이후 그는 심한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죽었다. 굳이 형평운동이 아니더라도 인간평등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진주 촉석공원 앞 그의 작고 외로운 무덤 앞에 술 한 잔을 올리고 강상호란 이름을 불러 보면 어떨까.
  • [사설] 학벌타파 제대로 되려면

    정부가 사회의 발전 역량을 좀먹는 학벌주의를 추방하는데 발벗고 나섰다.학벌주의를 결과적으로 조장하는 대학의 서열화 구도를 타파하는 방안으로 지방 대학들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현실적으로 취업과 승진에서 만연되고 있는 학벌주의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가 먼저 획기적인 인사 정책을 도입하기로 했다고 한다.직무능력표준제를 도입하고,학벌 대신 개인 역량을 제대로 측정해 활용하는 사례도 적극 발굴해 민간 기업의 학벌주의적 병폐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확실히 우리네 뒤틀린 학벌주의는 극복되어야 한다.출신 대학에만 집착한 나머지 개인의 특기나 능력 따위는 무시해 버리는 관행이 더이상 방치되어선 안 된다.이른바 명문대학 출신이라는 우월감에 도취되어 정실주의 행태를 자행하며 사회의 총체적 역량을 소모적으로 축내선 안 될 것이다.명문 대학 출신이 아니라고 이방인으로 간주하는 반사회적인 배타성이야말로 이제는 청산되어야 한다.출신 대학이 평생을 옥죄는 족쇄가 되는 학벌주의,이젠 정말 바로잡혀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이번 대책으로 우리네 학벌주의가 극복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우선 몇몇 쟁점에선 정부내에서조차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또 시급한 대책 상당수가 장기 과제로 미뤄졌다.지방대 출신 고시 채용목표제만 해도 2007년에야 시행된다고 한다.국립대학의 법인화는 아예 장기 검토과제로 분류됐다.많은 정책이 선언적이거나 권고 사항에 그친 것도 문제다.고질적인 학벌주의가 타이르거나 권고해서 해결될 일인가.정부는 서둘러 이번 대책의 맹점을 보완해야 할 것이다.˝
  • 파월 “이라크 WMD정보 부실”

    |워싱턴 백문일특파원|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유엔에 제시된 이라크 관련 정보가 잘못된 것일 수 있다고 2일 공식 시인했다.미국이 전쟁의 명분으로 삼은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이 엉터리 정보에 기인했을 수 있다는 발언으로 9·11 위협을 묵살했다는 의혹을 사는 부시 행정부에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파월 장관은 지난해 2월5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라크가 WMD를 개발중이며 생물무기가 알카에다의 손에 넘어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이라크는 당시 ‘3류 정보기관의 작품’이라고 강력 부인했으나 영국은 이라크가 유엔 결의안을 위반한 강력한 증거라며 전쟁 쪽에 무게를 실었다. 유엔 안보리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결의안 채택을 거부했지만 파월 장관의 ‘연설’은 미국내에서 전쟁을 지지하는 광범위한 여론을 이끌어냈다.파월 장관은 특히 “이같은 정보가 어떻게 준비됐는지 이라크정보 진상조사위원회가 조사할 것을 희망한다.”고 밝혀 정보의 왜곡 가능성을 증폭시켰다. 파월 장관은 당시 정보당국으로부터 ‘다양한 정보원’을 거친 최상의 정보라고 들었고 자신 역시 확실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강조했다.그러나 그는 정보가 잘못됐다면 그같은 정보가 준비된 과정을 알 필요가 있으며 중앙정보국(CIA)과도 논의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워싱턴포스트는 파월 장관이 유엔에서 밝힌 정보원은 신뢰할 수 없다는 경고가 정보당국에는 팽배했으나 파월 장관에게 보고할 때는 빠졌다고 3일 보도했다.이동식 실험실에 관한 의심스러운 정보 역시 미국이 지원한 이라크국민회의(INC)와 관련된 인물이 제공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그같은 실험실은 발견되지 않았고 데이비드 케이 전 이라크무기사찰단장이 한때 실험실로 오인한 두 대의 트럭도 대포측량기구를 위해 수소를 생산하는 장치로 판명됐다.그럼에도 딕 체니 부통령은 이동 실험실의 결정적 증거를 찾아냈다고 주장했다.앞서 조지 테닛 CIA 국장은 체니 부통령에게 실험실로 간주해선 안 된다고 경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이라크 정보가 거의 잘못됐다.”는 케이 전 단장의 증언과 “미국이 9·11이전부터 이라크 공격에 집착했다.”는 폴 오닐 전 재무장관이나 리처드 클라크 전 백악관 테러담당관의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됐다. 이라크 무기개발과 관련된 정보는 국방부내 특수작전국(OSP)이 각 정보당국의 요원들과 함께 2002년 여름부터 작성하기 시작했으나 기존의 보고라인이 아닌 체니 부통령의 직접적인 영향권내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앞서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은 정보당국이 상부로부터 부당한 압력을 받았으며 2002년 10월부터는 이라크 무기 시스템을 과대평가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mip@
  • 빈곤연대, 30일 타워팰리스 인근서 ‘빈민 위령제’

    “우리가 그 사람들 돈을 뺏었습니까,집을 뺏었습니까.왜 하필 이곳입니까.”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주민들은 곤혹스럽다.한동안 로또복권 당첨자가 선호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로또팰리스’란 비아냥에 시달리더니 이번엔 빈민단체들의 ‘표적’ 집회의 대상이 됐다. 전국빈민연합,주거권 실현 국민연합 등 30여개 단체로 구성된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연대’가 30일 ‘빈곤으로 숨진 사람들을 위한 위령굿’을 인근에서 열기로 했기 때문이다. 29일 이곳에서 만난 주민들은 “왜 또 우리가 ‘타깃’이 되느냐.”며 볼멘소리를 냈다.회사원 이모(28)씨는 “여기 사는 사람들이 모두 재벌도,투기꾼도 아닌데 왜들 난리인 줄 모르겠다.”면서 “차라리 평범한 동네로 이사가고 싶다.”고 불만을 토로했다.주부 박모(41)씨도 “타워팰리스에 관한 이미지의 절반은 언론과 광고가 만들어낸 거품”이라면서 “마치 우리가 부정부패로 부를 축적하고 그에 대해 시위라도 벌이려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집회를 열기로 한 빈곤연대측은 “주민들이 억울해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빈곤연대에 참여한 민주노총의 오건호 정책부장은 “엄청난 규모의 분양 후 프리미엄 등을 고려하면 그곳 부의 상당부분은 정당치 못한 불로소득”이라면서 “국민경제 전체를 두고 보더라도 그곳의 부는 다른 곳의 부가 이전돼 축적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빈곤연대에는 전빈련 등 빈민단체 말고도 보건복지민중연대,빈곤문제연구소 등 복지운동단체와 노들장애인야학 등 장애인단체,민주노총,민주노동당 등이 참여하고 있다.이들은 최저생계비 보장과 공공주거권 확보,사회복지 예산 확대 등을 내걸고 매달 20일 관공서나 주요 경제단체,투기지역 인근에서 정기적으로 집회를 열 계획이다. 이들의 행동에 대해 전문가들은 “외환위기 이후 심화된 빈부격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입을 모으면서도 방법의 적절함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한신대 사회학과 김종엽 교수는 “타워팰리스 주민들이 빈부차를 심화시켰다는 논리적 근거는 없다.”면서 “아무리 상징적 행동이라지만 대중적 지지를 얻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연세대 사회학과 신진욱 박사는 “타워팰리스는 협상이나 압력의 대상이 아닌 주거지역일 뿐”이라고 일축했다.그는 “빈곤의 원인을 찾기보다 표면적인 결과에 집착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자칫 계급갈등이 지역갈등으로 변질될 위험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중앙대 사회학과 신광영 교수는 “부와 가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이라면서 “사회에 대한 구조적 인식에 기초한 정치적 퍼포먼스”라고 평가했다. 이세영 김준석기자 sylee@seoul.co.kr˝
  • [은행이 달라진다] ③ 개혁 과제와 문제점-수익성만 치중…中企·개인 불안

    “금융은 국방(國防)에 버금가는 국가의 기둥이다.하지만 요즘 은행들은 수익성에만 집착한다.국가경제와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책임질 곳이 1∼2개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올초 LG카드 지원협상이 타결된 뒤 주채권은행이었던 우리은행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채권기관간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겪은 어려움을 얘기한 것이지만 여기에 동의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은행들의 개혁 페달에 힘이 실릴수록 그 이면에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수익성에만 급급해 서민과 중소기업들을 옥죄고,고용불안과 고객불편을 낳는다는 등 다양한 부작용이 지적되고 있다. ●“은행 본연의 공공성 인식해야” 중소·영세기업 및 개인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면서 최근 은행들은 앞다퉈 담보확대를 요구하고 신용대출을 조이는 등 대출관행을 보수적으로 가져가고 있다.이 때문에 가뜩이나 힘든 기업과 개인을 은행들이 더 어렵게 만든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시중은행 관계자는 “경영 건전성과 공익적 책임 사이에서 고민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하지만 그는 “은행 수익성이 악화되면 다른 건전한 기업이나 개인에까지 나쁜 영향이 미친다.”며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금융연구원 구본성 연구위원은 “시장환경이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에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책임진다는 기존 개념의 은행 역할은 많이 줄었다.”면서도 “그러나 사회적 책임을 위해 중소기업 등의 안정에 좀더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환골탈태까지는 시간 더 걸릴 듯 외국계 은행에서 시중은행으로 자리를 옮긴 김모씨는 “과거 지향적인 마인드와 지연·혈연·학연 등을 기초로 한 패거리 문화가 여전해 변화를 가로막고 있다.”고 전했다.그는 “표면적인 의사결정 과정은 2∼3단계밖에 안 되지만 유관부서의 서명 등을 받느라 업무서류 한 장이 9개 부서를 거친 적도 있다.”고 했다. 무분별한 대출이 문제가 됐던 지난해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이나 LG카드 사태도 기업의 이름값에 의존하는 대출관행이 여전함을 보여준다.은행들이 강조하는 수수료 수입 확대도 아직 구두선에 그치고 있다.지난해 전체 영업이익에서 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하나은행 등 극소수를 빼고는 대부분 은행에서 더 줄었다.반대로 이자수입의 비중은 더 늘었다. 변신의 방향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한국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중국 등지에 점포를 개설하고 있지만 상당수는 다른 은행이 가니까 나도 간다는 식의 특성없는 진출”이라고 예를 들었다. ●은행원 개혁피로 확대 “실적 올려야지,공부 해야지,보험 팔아야지,휴대폰 팔아야지 요즘 같아서는 몇달 정도 푹 쉬었으면 좋겠습니다.”(시중은행 과장) 실적압박과 업무평가가 쉼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은행원들은 지난해 9월부터는 방카슈랑스 때문에 보험판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최근에는 휴대전화를 통한 모바일 뱅킹이 확산되면서 제휴 이동통신사의 휴대전화 가입자 유치까지 은행원 몫이 됐다.한 은행은 최근 직원 1인당 20대의 이동통신 가입자 유치할당을 내렸다. 명예퇴직이나 후선(後線)배치 등이 아니더라도 은행원들은 일상에서 구조조정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한 시중은행은 지난해부터 지점장급 이상 직원에 대한 직원교육을 중단했다. 앞으로 얼마 활용하지도 못할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것은 낭비라는 게 이유다.한 시중은행은 임원 10여명의 평균 재임기간이 13개월에 불과하다. 고객불편도 잇따르고 있다.은행들은 지난해 말부터 영업점의 번호표 발급기를 치우고 창구손님들을 줄세우기 시작했다.인터넷뱅킹을 못하면 창구를 찾아야 돼 많게는 건당 수천원에 이르는 수수료를 내야 한다.지난해부터 인터넷뱅킹 거래가 창구거래 규모를 추월하는 등 ‘디지털 디바이드’(정보화 수준에 따른 차별) 현상은 이미 은행고객들 사이에 심각하게 현실화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부문에서도 대변혁을 맞고 있는 금융가.은행들이 수익 만능주의와 공익적 책임 사이에서 하루빨리 방향과 중심을 잡아 나가야 할 것이라고 금융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월드이슈-커지는 中·日 갈등] ‘센카쿠 상륙자’ 체포…대륙 분노 폭발

    중국과 일본간 마찰음이 크다.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참배로 생긴 불협화음이다.24일 센카쿠 열도에 상륙한 중국인을 일본당국이 체포함으로써 불에 기름을 부었다.수습은 커녕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지는 형국이다.특히 대륙쪽 분노가 거세다.지도부와 인민들 감정이 불같다.반면 열도쪽은 ‘야스쿠니 분쟁’,센카쿠 소동이 조용히 가라앉아주길 기다리는,소극적 분위기다. |도쿄 황성기특파원|정월 초하루,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를 찾았다.신사를 참배하는 게 “정월의 일본 전통의식”이라는 까닭을 들었다.그는 2001년 4월 취임한 뒤로 4년째 야스쿠니를 참배했다. 중국쪽 반발은 급기야 일본 정상의 방중을 거부하는 움직임으로 표현됐다.정상 방문을 ‘노’할 만큼 민감한 외교사안인 중국에 비해 일본쪽 감도는 다르다.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19일 출입기자단에게 이렇게 말했다.“중국이 내 방문을 바라지 않을 때 갈 필요가 없다.” 중국측이 듣기에 불쾌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다.그는 “(중국과의)무역분야에서 교류가 이어져 무역액이 증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양국 경제가 잘 되고 있는 만큼 큰 문제 없다는 인식이다. 지난 3년간 고이즈미 총리는 미국,영국,한국 등 주요국 방문 외교를 펼쳤지만 중국에는 가지 못했다.중국 지도부가 고이즈미가 총리로 있는 일본을 찾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아사히 신문은 “외교감각에 큰 의문이 든다.”고 지적할 만큼 고이즈미 총리는 대중(對中),대한(對韓) 외교에 무신경이다.도쿄대의 다나카 아키히코 교수 같은 식자들이 “외교적 손해”라고 자제를 당부하는데도 그의 고집은 꺾일 줄 모른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집착증’은 유난하다.뿌리를 찾자면,2차대전 당시 가미카제(神風) 특공대로 출전해 사망한 아버지 친척이 있다는 정도다.총리가 되기 전 자주 찾은 곳이 특공대의 발진기지 지란(知覽)비행장이 있던 가고시마였다.아버지 고향이기도 한 그곳 박물관에 들러 특공대원 유서를 읽고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보수세력 결속과 지지율 확보 속셈이라는 설 등도 분분하지만,그는 한번도 자신의 집착에 대해 딱 부러지게 피력한 바 없다. 그의 야스쿠니 행으로 속이 타는 건 여당 지도부와 외무성이다. 2003년 5월로 예정됐던 고이즈미 총리의 방중이 같은 해 1월의 세번째 참배로 연기되면서 자민당과 연정 파트너인 공명당 수뇌부의 중국을 찾는 발길이 바빠졌다.지난달 중국을 방문한 간 자키 공명당 대표와 면담한 공산당 간부는 일본과 독일,프랑스가 수주전을 벌이고 있는 고속철과 일본,프랑스가 유치를 다투는 국제열핵융합실험로(ITER) 부지 선정에 대해 야스쿠니와 연계한 협조를 암시하기도 했다. 순조롭지 않은 중·일관계는 고속철이 아니더라도 막 경기회복에 접어든 일본에 경제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세계의 공장’ 중국이 일본 제조업을 삼킨다며 ‘중국 위협론’을 내세워 대륙 때리기를 일삼던 보수언론조차 슬그머니 ‘일본 경제 견인론’으로 바뀌면서 중국시장을 강조하기 시작한 터다. 수치를 살피면 중국의 중요성은 자명하다.작년 일본의 무역상대국 중 수출에서는 미국(24.5%)에 이어 중국이 2위(12.1%)를 차지했다.수입면에서 볼 때는 미국(15.3%)을 제치고 중국은 단연 1위(19.6%)로 올라섰다.산케이 신문은 “중국이 일본경제의 성장센터가 되고 있는 실태로 볼 때 중국위협론은 난센스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중국을 치켜세웠다. 중국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도약대로 한 경제의 지속발전을 위해 일본의 협력이 중요하고,이런 사실을 일본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야스쿠니로 티격태격해도 경제교류는 잘 되고 있다고 강변하는 고이즈미 총리 발언의 근거가 이런 데 있다.6자회담과 납치문제에서는 중국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한 일본이다.그래서 외무성과 주중 일본 대사관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때마다 진땀을 흘린다. 중·일의 야스쿠니 분쟁은 참배 중단과 강행(일본측),참배 불용과 인정(중국측)이냐 하는 양자택일밖에 없는,단순해 보이면서도 풀기 어려운 외교 방정식이다.양국 정상의 상호방문도 연계돼 있다.한때 일본 정부 내에 간담회까지 만들어 기세를 올리던 야스쿠니 대체 추도시설 건립도 보수우익들의 맹렬한 반대로 쏙 들어간 상태다. 해결은 쉽지 않다.별 악재가 없는 한 여름의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무난히 승리를 거둘 경우 고이즈미 정권은 탄탄한 장기집권 체제로 들어선다.고이즈미 총리는 틈만 나면 “내년에도 참배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1973년 국교정상화 이후 정상 방문을 몇 년째 끊은 채 야스쿠니를 놓고 신경을 곤두세운 외교전을 벌이는 불편하고 어색한 중·일관계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marry04@seoul.co.kr˝
  • [은행이 달라진다] ② 인사·조직 혁신

    지난해 말 조흥은행은 인사이동을 앞두고 직원들에게 가고싶은 부서를 써내게 했다가 큰 홍역을 치렀다.국제·자금운용·투자금융·프라이빗뱅킹 등에만 희망자가 집중됐기 때문이다.자리 하나를 놓고 무려 20여명이 다투는 진풍경도 연출됐다.대기업이나 여신쪽에 몰렸던 과거와는 판이한 양상이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본부직원 1800여명의 22%인 400여명을 일선 영업점으로 내보냈다.돈 되는 곳에 조직과 인력을 집중하기 위해서다.연수기회·인센티브·승진우대 등 혜택도 본점보다는 영업점 쪽에 몰아주기로 했다.현재 우리은행의 본점 직원은 전체의 15.4%로 2001년 말(18.0%)보다 크게 축소됐다. 요즘 은행권의 소프트웨어 혁신 작업이 활발하다.인재양성과 조직문화의 발전 없이는 아무리 사업영역을 다각화하고 업무방식을 개선한다 해도 남보다 앞서갈 수 없기 때문이다.신한은행 임원은 “기존 은행원이 창구직원을 뜻하는 클러크(clerk) 수준이었다면 앞으로는 진정한 뱅커(banker)들이 배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클러크에서 뱅커로 도약 요즘 은행원들의 명함만 갖고는 그 사람이 뭘 하는지 알기 힘들다.신한은행 영업점 직원들의 경우 ▲빠른창구 JAM(상담역) ▲OK창구 AM(책임상담역) ▲VIP코너 SAM(선임상담역) 등으로 적혀 있다.융자담당 주임,당좌담당 대리 같은 말은 이제 안쓴다.공급자(은행)가 아닌 수요자(고객) 중심으로 시스템을 바꾼 결과라고 은행측은 설명했다.다른 은행들도 비슷하다.하나은행 관계자는 “예금·대출·보험·외환 등 고객의 금융부문 전반을 책임지면서 고객에게 최대한 많은 상품을 파는 것이 신개념 조직체계의 지향점”이라고 했다. 지금 은행권에는 윤리경영 바람이 거세다.남의 재산을 책임지려면 그에 걸맞은 도덕적 기반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국민·우리은행은 실적평가나 인사 때 사회봉사 등 윤리경영 점수를 반영한다.신한은행도 곧 직원들의 사회공헌도를 인사에 반영한다.은행장들은 최근 인사청탁에 대해서도 잇따라 경고를 보내고 있다.국민은행 김정태 행장은 “인사청탁을 한 직원은 대상에서 빼는 것은 물론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만들겠다.”고 했다. ●“유니버설 스페셜리스트가 돼라.” 국민은행 김 행장은 직원들에게 “우선 1개 부문에서 전문가(스페셜리스트)가 되고 다음으로 2∼3개 부문의 전문가(멀티 스페셜리스트)가 돼야 하며,궁극적으로는 전방위 전문가(유니버설 스페셜리스트)를 지향하라.”고 강조한다. 전문성을 향한 은행권의 노력은 집착에 가까울 정도다.산업은행은 올해 신입행원의 19%인 17명을 기계·우주공학 등 이공계 전공자에서 뽑았다.하나은행도 여신심사 부문 신입행원을 전자·기계·화학 전공자로만 뽑았다.신한은행은 기업금융·가계금융·전산 등 3개 직군간 이동을 아예 금지시켰다.지난해 말부터 대부분 은행들은 기업금융·가계금융 등으로 나눠 신입행원을 뽑고 있다. 발탁인사에서도 전문성이 강조된다.지난해 12월 외환은행은 38세의 언론인 출신 김형민씨를 홍보담당 상무에 앉혔다.30대 은행 임원은 시중은행 최초다.올 1월 국민은행은 38세 차장 두 명에게 각각 전략기획팀과 자산유동화팀 등 핵심부서를 맡겼다.둘 다 해당분야 석사로 입행 이후 한 우물만 판 덕에 남들보다 10년 가량 앞서 팀장에 발탁됐다. ●밤새워 공부하는 은행원들 주경야독을 하는 이른바 ‘샐리던트’(샐러리맨+스튜던트)도 급격히 늘고 있다.신한은행의 경우,행원급에 대해서는 개인평가 총점의 80%를 기본능력과 소양에 할애한다.업무실적 반영률은 20%에 불과하다.당장의 실적보다는 기본을 쌓는 데 치중하라는 것이다. 이 은행 김모(33) 대리는 퇴근 이후가 더 바쁘다.지난해 생명보험 대리점 자격증을 딴 데 이어 올해에는 종합자산관리사와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 중이다.방카슈랑스 영업기법과 중국어 강의까지 듣는다.그는 “고교 3학년일 때에도 이만큼 공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우리은행은 ‘블루 스파이더’(파란 거미) 제도를 운영 중이다.과장급 이상 직원이 입행 3년 미만 직원에게 은행실무를 ‘거미’처럼 밀착해 가르치는 1대1 도제(徒弟)식 학습제도다. 보름에 한번씩 시험도 치른다.신입행원들의 실력도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올해 우리은행 입행 지원자 8000명 중 1000여명이 영어시험 토익 900점 이상이었다. 우리은행 조성권 홍보팀장은 “동네은행이란 표현은 이제 옛말이 됐고,은행 브랜드와 금리·서비스의 질을 찾아 고객이 은행을 직접 고르는 시대가 됐다.”면서 “그것이 각 은행들이 차세대 선도은행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고 했다. 김태균 김유영기자 windsea@seoul.co.kr②˝
  • 말말말˙˙˙

    LPGA 투어의 얼굴이 바뀌고 있다.이같은 변화는 반겨야 할 일이며,같은 얼굴에 같은 언어만 구사하는 선수들만 있던 옛날에 집착해서는 안된다.-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타이 보토 커미셔너,아시아 출신 선수들이 대거 진출한 데 대해 일부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는 것을 비판하면서-˝
  • [총선 D-27]본지 선거자문위윈이 본 권역별 민심-② 충청지역

    지난 12일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로 충청권 민심도 크게 출렁이고 있다.이 곳은 탄핵안 의결 당시 폭설과 산불 등 천재지변으로 커다란 고통을 겪고 있던 지역이다.지역 곳곳에서 탄핵에 대한 찬반을 떠나 민생을 외면한 듯한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타격 상대적으로 크지 않아 민심 변화의 가장 큰 수혜자는 물론 열린우리당이다.사실 작년 12월 서울신문과 KSDC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열린우리당은 충청지역에서 의외의 강세를 보인 바 있다.당시 전국적으로는 한나라당보다 지지율이 3%포인트 이상 뒤졌던 열린우리당이었지만,대전·충청 지역에서는 오히려 한나라당보다 2%포인트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올들어 이 지역 열린우리당의 지지는 조금씩 상승하다가,이번 탄핵정국을 맞아 급상승을 타게 된 것이다. 탄핵안 의결 이후의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호남과 충청 지역에서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가장 높이 올라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충청 지역에서도 열린우리당의 지지율 상승에는 부동층과 민주당 지지자의 이동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반면 보수적인 유권자로부터 단단한 지지를 받고 있는 한나라당 및 자민련의 타격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결국 탄핵안 의결의 가장 커다란 수혜자는 열린우리당,가장 커다란 피해자는 민주당이라고 할 수 있다. 열린우리당이 충청권에서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이 가능하다. 하나는 행정수도 이전이다.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행정수도의 충청권 이전’을 내세워 충청권의 표심을 챙길 수 있었으며,이것이 그의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이 카드의 효과는 아직도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여야 가릴 것 없이 거의 모든 예비후보들이 “행정수도 이전이 차질없이 진행되도록 앞장서겠다.”고 입을 모은다.한 야당 후보는 “이곳에서 행정수도 이전 반대는 금기사항이다.공식석상은 물론 사석에서도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고 전했다.그는 “실질적 이득 못지 않게 과거 정권에서 줄곧 지녀왔던 소외감이 충청민들로 하여금 행정수도 이전에 강한 집착과 기대감을 갖게 하고 있다.”며 “이는 곧바로 여당 후보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정치환경”이라고 지적했다.이같은 정치환경은 곧바로 ‘노 대통령 탄핵=행정수도 이전 무산’의 등식으로 유권자들에게 다가서고 있다.지역을 돌아본 결과 많은 유권자들은 이번 탄핵 의결로 행정수도 이전에 차질이 있지 않을까 우려했다. 두 번째 원인은 4당이 분점하고 있는 충청 정치지형의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다른 지역에서 한나라당,민주당,열린우리당의 3당 구도가 형성된 것과 달리 충청 지역은 자민련까지 가세해 4당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대개 보수성향의 유권자들은 한나라당과 자민련을 지지하고 있으며,반면 진보 성향의 유권자들은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충청권 유권자는 다른 지역에 비해 보수적 성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앞에서 지적한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쟁점을 통해 드러난 충청민의 실리적 성향이 이러한 보수 성향을 완충하고 있으며,보수적 유권자의 표는 한나라당으로 집중되기보다는 자민련으로 나뉘고 있다.이러한 이유로 탄핵 이전부터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보다 강세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탄핵안 의결로 부동층 및 민주당 지지자들이 대거 열린우리당으로 마음을 바꾸게 되었고,그 결과 열린우리당의 우세가 더욱 확고해진 것으로 평가된다. ●열린우리당 강세 이어질 듯 그렇다면 충청 지역에서의 열린우리당 강세가 총선까지 이어질 것인가.일단은 이러한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열린우리당이 전국적으로 약세를 보이던 작년 말에도 이 지역만은 열린우리당이 우위를 점했다는 사실에서 현재의 강세가 탄핵안 의결로 나타난 일시적인 현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일부에서는 선거일이 다가오면 다시 과거와 같은 지역주의 바람이 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그러나 적어도 충청지역에서는 지역주의의 형태가 변화하고 있음이 확실하다.과거 특정 정치지도자의 선호에 근거했던 막연하고 감정적인 지역주의에서 벗어나,구체적인 정책(행정수도 이전)과 그것이 주는 구체적인 이익에 기반한 새로운 형태의 지역주의가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따라서 과거와 같은 막연한 바람은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 곳이 어딘가.모든 여론조사기관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곳이다.전국 어느 곳보다 주민들이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고,이 때문에 예측이 어렵고,여론조사기관들이 곧잘 골탕을 먹는 지역이다.분명히 탄핵의결에 대해 부정적인 기류가 강하게 감지되는데도 막상 대놓고 물어보면 “관심없다.”거나 “모르겠다.”는 답변이 적지 않았다. 열린우리당의 핵심 지지층인 젊은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율이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보다 낮은 점도 변수가 될 수 있다. 가장 커다란 불확실성은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선거는 정당 선택보다는 후보 선택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에 있다.4월15일 각 선거구에서 유권자의 후보 선택은 노무현 대통령이나 정당에 대한 선호도뿐만 아니라 후보자의 개인적 자질,선거운동의 효율성 등 여러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대표집필 김욱 배재대 교수 ■ 서울신문 총선 자문위원단 ●총괄 어수영 이화여대 교수(한국선거학회 회장),이남영 숙명여대 교수(KSDC 소장),이영란 숙명여대 교수,김형준 명지대 객원교수 ●수도권 박명호 동국대 교수,장원호 서울시립대 교수,이명진 국민대 교수 ●충청권 김욱 배재대 교수,김도태 충북대 교수 ●호남권 김영태 목포대 교수,김광수 전남대 교수 ●영남권 전용헌 계명대 교수,황아란 부산대 교수˝
  • 盧대통령 “총선결과 재신임 연계… 진퇴 결단”

    노무현 대통령은 11일 재신임 방법과 관련,“총선에서 나타난 국민들의 뜻을 심판으로 받아들이고 진퇴까지를 포함하는 정치적 결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노 대통령이 사실상 총선을 재신임과 연계시킨 것에 대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야당은 (대통령)자리를 내놓으라고 하고,저도 스스로 재신임 약속을 했으니 자리를 걸고 책임을 지는 결단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이어 “자리에 집착하지도 않겠다.”면서 “구차하게 잔꾀를 부리지도 않겠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재신임의 내용을 애매하게 하지 않을 것이며 명확하게 조건과 결과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는 시기를 전후해 밝히겠다.”고 말했다.노 대통령은 입당 시기와 관련,“특검에서 측근들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되는 것을 보면서 늦지 않게 당과 논의해 결정하겠다.”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탄핵발의와 관련한 야당의 사과요구에 대해 “잘못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시끄러우니까 사과하고 넘어가자는 뜻이라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라면서 거부했다. 이어 “탄핵은 헌정이 부분적으로 중단되는 중대사태”라고 전제,“이와 같은 중요한 국사(國事)를 놓고 흥정하거나 거래하는 선례를 남기는 것은 정치 발전에 이롭지 않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이 저렇게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하고)있는데,지금이라도 야당이 (탄핵발의를)철회해주면 만사는 해결된다.”며 야당의 선(先) 철회를 요청했다. 노 대통령은 불법 대선자금 규모와 관련,“대선 후에 측근들이 받은 것과 영수증을 변칙 처리한 부분은 불법자금에서 제외해야 한다.”면서 “그러면 10분의1 수준이 된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이 총선과 재신임을 사실상 연계한 것과 관련,한나라당 은진수 수석 부대변인은 “재신임과 총선 연계를 노골적으로 제시한 것은 10분의1 약속을 파기하고 탄핵을 회피하기 위한 책략이며 국민과 의회를 협박하고 능멸하는 작태”라고 비난했다. 민주당 김영환 대변인은 “총선에 재신임을 거는 것은 명백한 위헌”이라며 “이 태도야말로 가장 직접적인 총선 개입 올인 전략”이라고 공격했다. 곽태헌 박정경기자 tiger@seoul.co.kr ˝
  • 儒林(47)-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권력이 가진 속성 중에서 변덕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중독과 환상이다.권력은 강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어 인간의 욕망 중에서 가장 무서운 집착을 보인다.권력이 바로 자리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된 권력자는 어떻게 해서든 그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으려 하며,이로 인해 권력자는 독재자로 변화되어 간다.이러한 과정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권력자가 자신의 행동이 곧 정의라는 환상에 사로잡힌다는 점이다.따라서 이 세상의 모든 권력자들은 자신이 행하는 권력의 통치술이 가장 올바른 정도라는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그리하여 권력자들은 정의라는 이름 하에 권력을 휘두르게 되며,이것이 바로 권력의 횡포이다. 조광조를 숙청하기 위해서 기묘사화를 일으킨 중종도 이러한 권력자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연산군을 쫓아내는 반정에 의해서 왕위에 오른 중종.그도 처음에는 연산군을 폐위시키는 데 앞장선 훈구파들에 의해 옹립된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그후 10년 동안 중종은 왕으로서 자신의 뜻을 펴기 위해 강력한 친위세력을 조직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이러한 중종의 의지는 중종 10년 8월(1515년)에 있었던 알성시(謁聖試)에서 중종이 직접 성균관에 거동하여 문과시험을 주재한 데서 잘 드러난다.시험문제는 다음과 같다. “공자께서 ‘만약 내가 등용이 된다면 단 몇 개월 만에도 가능하지만,적어도 3년이면 (정치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이룰 수 있다.’고 하셨다.성인이 어찌 헛된 말을 하셨으리오.그 뜻의 규모와 정치를 베푸는 방안에 관하여 공자께서는 시행하기 전에 먼저 작정한 바가 반드시 있을 것이니 이를 낱낱이 헤아려 말할 수 있겠는가.주나라 말기는 나라의 기강(紀綱)과 법도(法度)가 이미 땅에 떨어졌을 때임에도 불구하고 공자께서 3년 이내에 (바른 정치를 펴)이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하셨다.그렇다면 (공자께서 등용되었다면)그로부터 3년 후의 결과는 어떠하겠는가.우리는 정말 공자의 다스림에 이상적인 결과를 구체적으로 볼 수가 있었겠는가.성인이 스쳐 지나가거나 머무르는 곳에는 반드시 교화(敎化)가 이루어진다는 묘한 이치를 쉽게 논할 수는 없다.” 중종은 자신의 속마음을 다음과 같이 털어놓고 있다. “내가 왕이 될 만한 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조종(祖宗)의 기업을 잇고 정치에 임하여 좋은 성과를 소망하여 온 지도 벌써 10년이 되었으나 아직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지 못하였으며,나라의 법도도 정해지지 못하였다.그러니 어찌 정치의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었으리오.(이 자리에 모인)여러 성균관 학생들은 공자의 가르침을 배우는 사람들이므로 모두가 요순시대의 이상적인 정치를 이루려는 포부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개인의 입신출세만을 여기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그렇다면 오늘날과 같은 어려운 시대를 당하여 이 난국을 극복하고 옛 성인의 이상적인 정치를 다시 이룩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할 것인가.이에 대한 대책을 논하라.” 중종이 직접 출제한 알성시의 문제를 통하여 알 수 있듯이 중종은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나라의 법도를 바로잡아 이상적인 정치를 펴고 싶은 군왕의 충정을 갖고 있었다. 이에 조광조는 그가 남긴 문장 중에서 가장 체계적이며 논리적인,다음과 같은 답안을 통해 알성시에서 차석으로 급제한다. “하늘과 사람은 그 근본됨이 하나입니다.그러므로 하늘이 사람에 대하여 도리에 맞지 않은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임금과 백성은 그 근본됨이 하나입니다.그러므로 예전에 이상적인 임금들이 백성들에게 도리에 맞지 않은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옛날에 성인들은 하늘과 땅의 큰 것과 수많은 백성들의 무리를 하나로 여기셨으며,그런 이치에 따라 도를 행하였습니다.”˝
  • 돌아온 김동률…재즈·라틴·유로뮤직 발라드에 녹여 ‘토로’

    가수 김동률이 4집 ‘토로(吐露)’를 들고 돌아왔다.3집 ‘귀향’ 이후 3년 만이다.‘토로’는 4년간의 유학생활 등 쉬는 동안 쌓아 뒀던 모든 것을 이 앨범 하나에 털어넣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이번 앨범은 김동률 음악의 ‘골수’가 담겼다고 볼 수 있다.본격적인 작업 기간은 7개월.그동안 미국,영국,일본을 오가며 녹음작업을 했다.“음악적 욕심과 집착이 강해 제일 힘들었다.”고 한 만큼 만족도도 높다.“어린아이가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릴 때 언젠가 유화를 그려보고 싶듯이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구상했던 음악을 이번 앨범에서 다 이뤘다고 볼 수 있죠.” 영화 ‘반지의 제왕’ 사운드 트랙에 참여한 바 있는 54인조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깔린 이번 앨범은 사운드 면에서 볼 때 외국 아티스트들의 음반과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다고 자평한다. 클래식을 바탕으로 하는 서정성 강한 음악에 천착해온 김동률은 이번 음반에서 버클리 유학시절에 접한 재즈,요즘 관심있는 라틴·유럽 음악들을 발라드라는 틀 안에 녹여내는 변화를 시도했으며 쟁쟁한 뮤지션들을 참여시켜 완성도 높은 음악을 보여주고 있다. 타이틀 곡인 ‘이제서야’는 유려한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어쿠스틱 기타의 선율이 아름답게 어우러지고 있으며 8번째 트랙 ‘신기루’는 삼바리듬에 실어 흥겹게 풀어내고 있다. 또한 피아노 연주곡 ‘리버(River)’는 주목 받는 젊은 피아니스트이자 친구인 김정원이 연주했다.1집에도 참여했던 이소은과 함께 불러 예쁘고 경쾌한 느낌을 전달하는 ‘욕심쟁이’를 비롯해 총 11곡이 수록됐다. 본인이 가장 맘에 드는 곡은 ‘잔향’.“기존 가요의 기승전결 구조가 아니라 마치 오페라 아리아를 듣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곡이죠.”훌륭한 목소리에 노래도 썩 잘부르는 김동률은 정작 가수라는 역할에 대해서는 큰 욕심이 없단다.작곡과 연주가 음악인생의 처음과 시작이다.그래서 앨범 감상 포인트를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꾸했다.“다른 건 없구요,좋은 스피커로 들었으면 좋겠어요.제 목소리와 가사만 듣는다면 너무 가슴 아파요.” 박상숙기자˝
  • 儒林(47)-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儒林(47)-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권력이 가진 속성 중에서 변덕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중독과 환상이다.권력은 강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어 인간의 욕망 중에서 가장 무서운 집착을 보인다.권력이 바로 자리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된 권력자는 어떻게 해서든 그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으려 하며,이로 인해 권력자는 독재자로 변화되어 간다.이러한 과정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권력자가 자신의 행동이 곧 정의라는 환상에 사로잡힌다는 점이다.따라서 이 세상의 모든 권력자들은 자신이 행하는 권력의 통치술이 가장 올바른 정도라는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그리하여 권력자들은 정의라는 이름 하에 권력을 휘두르게 되며,이것이 바로 권력의 횡포이다. 조광조를 숙청하기 위해서 기묘사화를 일으킨 중종도 이러한 권력자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연산군을 쫓아내는 반정에 의해서 왕위에 오른 중종.그도 처음에는 연산군을 폐위시키는 데 앞장선 훈구파들에 의해 옹립된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그후 10년 동안 중종은 왕으로서 자신의 뜻을 펴기 위해 강력한 친위세력을 조직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이러한 중종의 의지는 중종 10년 8월(1515년)에 있었던 알성시(謁聖試)에서 중종이 직접 성균관에 거동하여 문과시험을 주재한 데서 잘 드러난다.시험문제는 다음과 같다. “공자께서 ‘만약 내가 등용이 된다면 단 몇 개월 만에도 가능하지만,적어도 3년이면 (정치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이룰 수 있다.’고 하셨다.성인이 어찌 헛된 말을 하셨으리오.그 뜻의 규모와 정치를 베푸는 방안에 관하여 공자께서는 시행하기 전에 먼저 작정한 바가 반드시 있을 것이니 이를 낱낱이 헤아려 말할 수 있겠는가.주나라 말기는 나라의 기강(紀綱)과 법도(法度)가 이미 땅에 떨어졌을 때임에도 불구하고 공자께서 3년 이내에 (바른 정치를 펴)이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하셨다.그렇다면 (공자께서 등용되었다면)그로부터 3년 후의 결과는 어떠하겠는가.우리는 정말 공자의 다스림에 이상적인 결과를 구체적으로 볼 수가 있었겠는가.성인이 스쳐 지나가거나 머무르는 곳에는 반드시 교화(敎化)가 이루어진다는 묘한 이치를 쉽게 논할 수는 없다.” 중종은 자신의 속마음을 다음과 같이 털어놓고 있다. “내가 왕이 될 만한 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조종(祖宗)의 기업을 잇고 정치에 임하여 좋은 성과를 소망하여 온 지도 벌써 10년이 되었으나 아직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지 못하였으며,나라의 법도도 정해지지 못하였다.그러니 어찌 정치의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었으리오.(이 자리에 모인)여러 성균관 학생들은 공자의 가르침을 배우는 사람들이므로 모두가 요순시대의 이상적인 정치를 이루려는 포부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개인의 입신출세만을 여기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그렇다면 오늘날과 같은 어려운 시대를 당하여 이 난국을 극복하고 옛 성인의 이상적인 정치를 다시 이룩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할 것인가.이에 대한 대책을 논하라.” 중종이 직접 출제한 알성시의 문제를 통하여 알 수 있듯이 중종은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나라의 법도를 바로잡아 이상적인 정치를 펴고 싶은 군왕의 충정을 갖고 있었다. 이에 조광조는 그가 남긴 문장 중에서 가장 체계적이며 논리적인,다음과 같은 답안을 통해 알성시에서 차석으로 급제한다. “하늘과 사람은 그 근본됨이 하나입니다.그러므로 하늘이 사람에 대하여 도리에 맞지 않은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임금과 백성은 그 근본됨이 하나입니다.그러므로 예전에 이상적인 임금들이 백성들에게 도리에 맞지 않은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옛날에 성인들은 하늘과 땅의 큰 것과 수많은 백성들의 무리를 하나로 여기셨으며,그런 이치에 따라 도를 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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