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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선언] 생명이 긴 스타만들기

    올림픽이 개막되자마자 여자 스포츠 스타 한 명이 탄생했다.18살 나이에 여자 공기소총 부문에서 은메달을 거머쥔 강초현(유성여고 3년)이 바로 그녀다.도무지 인생의 세파라곤 겪어본 적이 없을 듯 보이는 그녀의 맑디 맑은 얼굴.은메달에 그친 서운함으로 눈물을 흘리는 티없이 순수한 모습.그래서 더 드라마틱한 인생역정이 각 신문마다 몇회에 걸쳐 소개됐다. 필자 역시 그 기사를 접하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그래,역시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구나 하면서.무엇보다 인생의 어려움과 가난이 그녀에게는 좌절과 방황의 원인이 아니었다는 점도 감동적이었다.아니,고마움까지 느꼈다고 하는 게 더 솔직한 심정이리라.그런 고통이 그녀를 남들보다 더 성숙하게 만들었기에. 깜찍한 외모,월남전에서 다리를 잃고 고생하는 아버지를 업고 다닌효녀,어머니의 파출부 일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가정환경,어머니가 아버지의 병간호 때문에 집을 비울 때는 군소리 없이 집안일을 떠맡았던 착한 심성,머리맡에 강초현의 만점짜리 표적지를 놓고 늘 딸의성공을 빌었던 든든한 후원자 아버지의 죽음,그로 인한 좌절,그리고올림픽에서의 은메달.줄여 말하자면 어린 나이,가난,예쁜 외모,그리고 성공 등 강초현은 분명히 만인의 사랑을 받을 만한 요소를 두루갖추고 있다. 같은 날 강초현 선수에 뒤이어 은메달을 획득한 유도의 정부경 선수가 대부분 단신으로 처리된 걸로 봐서 강초현의 스타성은 확실히 그진가를 발휘한 것 같다. 그런데 바로 그런 점들 때문에 나는 심란하다.올림픽대회가 끝나고선수들이 귀국하면 또한번 강초현의 이야기로 떠들썩할 것이다. 방송출연과 인터뷰가 밀려들 것이고,어쩌면 광고제의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인터넷상에서는 그녀에 대한 얘기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스포츠계의 신데렐라’라는 별명을 얻은 강초현 선수에게 “연예인 해도 될 만큼 예쁜”,“깜찍한” 등의 수식어도 적지 않게 따라다닌다. 그녀의 이미지와 상반돼서 더 인상적인 ‘겁없는 총잡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민들의 요란한 관심과 애정이 그녀를,또는 그녀와 같은스포츠 스타들을 몸살나게 할지도모른다.얼마나 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그런 식의 관심집중과 부담속에서 고통받거나 좌절했는지 우리는기억하고 있지 않은가.물론 요즘 같은 세상에 ‘스타 만들기 시스템’을 무조건 부정할 수는 없다.무엇보다 대중들이 ‘스타’와 ‘스캔들’을 간절히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관심과 애정이 좀더 은근하고 깊이 있었으면 좋겠다.그녀가 우리의 지지로 힘을 받아 훈련과 자기 수양에 더 몰두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여론의 형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스포츠는 궁극적으로 자기와의 싸움이며,깊은 심적 수련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강초현 선수의 경우를 보면서 우리는 월남전으로 인해 고통받는 가족들의 문제를 상기해 볼 수도 있겠다.그녀가 고통을 어떻게 행운의계기로 바꾸어냈는지도 궁금하다.또 어려운 환경에 처한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스포츠의 꿈을 심어줄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이건 비단 스포츠 스타들만의 얘기는 아니다.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스타들이 존재한다.그들을 대하는 시선이 깊이있어진다는 것은 바로,나자신에 대한 내 시선이 깊이있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모쪼록 이번만은 우리의 스타 강초현이 내적으로 더 무르익을 수 있도록 그녀를 가만히 놔뒀으면 좋겠다.세인의 관심으로부터 초연할 수 있는 나이와 연륜을 갖게 될 때까지,그래서 그녀가 아주 길게 우리 곁에 머무는 스타가 될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박 미 라 페미니스트저널 if 편집위원
  • 양천구 60-84세 설문 56%가 “노인으로 불리면 거부감”

    ‘노인이라고 부르면 섭섭하지요’ 60세 이상 고령자 10명중 7명 이상은 스스로를 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또 10명중 9명은 남자도 집안일을 할 수 있으며,딸이 아들대신 부모를 부양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서울 양천구(구청장 許完) 노인종합복지관은 최근 노인을 제대로 알자는 취지에서 60∼84세 고령자 19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자 183명중 72.1%가 스스로 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으며,56.3%는 노인으로 불리면 거부감이 든다고 답했다. 이들중 95.6%는 남자도 집안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89%는 딸이 아들대신 부모를 부양할 수 있다고 답했다.아들 내외가 장인·장모를 모셔도 찬성한다고 답한 이들도 75.4%에 달했다. 이들은 또 ‘노인은 잔소리가 많다’‘노인은 옛날얘기를 좋아한다’란 사회적 통념에 대해서 각각 69.4% 및 66.1%가 ‘틀렸다’고 응답,고령자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에 대해 상당히 불만스러워 하고 있었다. 장례방식에 있어서는 76%는 반드시 매장을 고집하지 않는다,94.5%는 장례의식과 절차도 상황에 맞게 적절히 고쳐 지낼 수 있다고 각각 답해 고령자층에서도 장례문화 개선의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조사됐다.. 임창용기자 sdragon@
  • 부당내부거래 수사 파장

    이익치(李益治) 현대증권 회장의 검찰 소환여부를 놓고 말들이 많다. 소환근거는 금융감독위원회가 지난해 12월 현대투신증권의 계열사간 부당내부거래 혐의에 대해 검찰에 수사의뢰해 둔 상태여서 이 사건의 핵심고리인이 회장을 조만간 소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주장이다. 여기에는 계열분리 등 현대사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전방위 압박의 일환으로검찰이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란 분석도 깔려있다. 소문의 진원지는 일단 MH(鄭夢憲)쪽 사람인 이 회장을 못마땅해 하는 MK(鄭夢九)측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최근 이 회장에 대해 좋지않은 감정을갖고 있는 MK쪽과 MJ(鄭夢準)쪽이 이회장의 소환에 적극적이라는 얘기도 그럴듯 하게 나돈다.그 반대로 ‘이회장의 퇴진’을 내심 바라는 MH내부의 역모의라는 주장도 있다. 문제는 소환의 주체인 검찰이 이 사건을 보는 시각이다. 검찰은 우선 이 사건이 난마처럼 얽힌 MK·MH형제간 경영권다툼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검찰이 이 회장의 소환여부에 대해 ‘신중함’을 거듭 강조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섣불리 정씨 일가의 집안일에 검찰력이 끼어드는 성급함을 자초하지는 않겠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검찰이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닌 것같다. 검찰은 고발장 접수이후 금감위 관계자들에 대한 기초조사를 줄곧 해왔다고밝혔다.이 말 대로라면 다음 순서는 현대 실무자들에 대한 본격적인 소환·조사가 이뤄질 수 밖에 없다. 다만 그 시기를 조절하고 있는 분위기다.‘가까운 시일내에는 조사가 없을것’이라는 검찰 고위 관계자들의 언급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따라서 검찰주변에는 현대중공업·전자·증권간의 외환거래 의혹에 대한 금감위의 조사내용을 봐가며 소환여부와 시기 등을 조절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때까지는 사태추이를 지켜 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주병철 이종락기자 bcjoo@
  • 통계청조사 국민 하루 생활시간 실태

    통계청이 발표한 ‘생활시간 조사’를 보면 성별,연령별,직업별 다양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쓰는지를 알 수 있다. 먼저 20세 이상 취업자의 경우 하루 수면시간은 7시간 36분이다.출퇴근 등일과 관련해 이동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1시간 44분,신문을 읽는 시간은 38분이다. 이들이 평일에 일하는 시간은 평균 7시간17분이며,토요일은 6시간26분,일요일은 3시간51분을 일에 매달린다. 20대 취업자의 식사시간은 평균 1시간34분이며,교제활동과 취미에 할애하는시간도 각각 46분,40분에 그친다. 반면 10세 이상 전 국민은 하루 24시간 중 10시간18분을 잠자고,식사하고,세수하는 ‘필수활동’에 쓴다.개인 여가활동은 하루 5시간이며,이중 TV 시청(2시간5분),신문 읽기(7분) 등 대중매체 이용에 2시간23분을 할애한다. 또 10세 이상 전 국민은 평일에는 밤 11시26분,토요일에는 11시32분에,65세이상은 요일에 관계없이 밤 10시14분쯤 각각 잠자리에 든다. 우리나라 국민은 평균적으로 아침식사를 오전 7시46분에 시작하여 23분간하고,저녁식사는 평균 오후 7시22분에 시작해 30분 정도 소요된다. 아침식사를 거르는 사람은 남자(8.8%)보다는 여자(10.5%)가 많으며,20대 미혼 여성은 4명 중 1명꼴(25.5%)로 아침식사를 거른다.성인남자 5명 중 1명은평일에 청소와 집안 정리를 하루 10분 이상 하며,집이나 차를 관리하는 일은여자보다 남자가 많이 한다.성인 남성이 평소에 하는 집안일은 청소(19.8%),가족 보살피기(12.9%),식사 준비 및 설거지(12.1%) 순이다. 20세 이상 여자 중 평일에 10분이상 집안일을 한 사람은 92.2%이며 평균 가사시간은 4시간19분이다.평일에 초등학생은 7시간20분,중학생은 8시간52분,고등학생은 10시간7분을 공부한다. 학교 수업과 관계없이 자기 계발을 위한 학습을 하루 10분 이상 하는 대학생은 8명 중 1명꼴이고,일반인은 20명 중 1명에 불과했다. 서울지역 임금 근로자는 출퇴근하는 데 1시간20분을 써서 49분으로 가장 짧은 충남과 전남에 비해 31분이 더 걸린다.남자가 여자보다,미취업자가 취업자보다 신문을 많이 읽는데 평일에는 남자의 28%가 평균 39분 신문을읽고,일요일에는 23%가 41분 읽는다. 김성수기자 sskim@
  • [외언내언] 아버지와 방학

    현대사회의 병폐로 ‘가정 붕괴’를 지적하는 학자가 많다.그 원인 가운데하나로 흔히 ‘아버지의 부재(不在)’가 꼽힌다.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부모구실은 ‘엄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곧 ‘엄부자모’(嚴父慈母)였지만 요즘은 거꾸로 되었다고도 한다.엄하건,자애롭건 아버지가 가정에서 일정한 구실을 해야 그 가정이 건강하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아이들과 시간을 나누는 아버지는 많지 않다.아버지로서도 할 말은 있다.국제통화기금(IMF)사태가 완화됐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구조조정이다 기업퇴출이다 ‘살벌한’ 판에 바깥 일에 전념해야지 집안일에 눈 돌릴 틈이 없다는 것이다.그렇더라도 틈틈이 짬을 내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것은 ‘아이들과의 피부접촉’을 늘리는 일이다. 저서 ‘털 없는 원숭이’‘맨 워칭’등으로 유명한 동물학자 데스먼드 모리스는 “인간은 다른 어떤 동물보다 접촉(intimacy)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고 갈파한 바 있다.신체 접촉 없이 자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세상을바라보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은 정설이다.굳이 학술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금의 아버지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와 관련된 작지만 따뜻한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동네 목욕탕에 함께 가 등을 밀어주던 투박한 손,소나기로 넘쳐난 개울을 건너면서 업혔던 그 너른 등짝 등…. 전국의 초·중·고교가 여름방학에 들어간지 일주일쯤 지났다.방학은 학생인 아이에게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평소엔 각자생활에 바쁘던 부모·자식이 한 공간에서 마주칠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학에 아이를 돌보는 일은 여전히 어머니만의 몫으로 남아서,방학에 아이들과 지내는 일을 ‘전쟁’이라고 표현하는 어머니들이 적지 않다.이번 방학에는 아버지들이 한번 나서보는 게 어떨까? 아이에게 아버지의 따뜻한 체온을 전하는 것은 며칠씩 집을 떠나는 여행으로만 가능한 일은 아니다.집에서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적지 않다.공중목욕탕 함께 가기는 고전적인 방법이다.갖가지 핑계를 만들어 아들·딸 업어주기를 하는 것도 좋다.때로는 온 식구가한 방에 모여서 자보자.밤새 오순도순 얘기하면서 아이들 생각을 들어보면 아이들과 훨씬 가까워질 수 있다. 아이에게 운동하라고 잔소리하기 전에 롤러블레이드·줄넘기·자전거타기를함께 즐기자.그러기 위해 아버지들은 하루의 골프,한두번의 술자리를 기꺼이 포기해야 한다. 다만 잊지 말고 꼭 챙길 일이 있다.아버지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주위의 아이들에게도 사랑을 나누어 주자.이웃에게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그것은 부모된 이의 의무 가운데 하나이다. 李容遠 논설위원ywyi@
  • 바레인 왕족 딸-美 해병대원 죽음 무릅 쓴 ‘007사랑’

    [로스앤젤레스 연합] 미국 해병대원과 사랑에 빠져 미국으로 도주한 뒤 결혼까지 한 바레인 국왕 사촌의 딸(당질)이 본국으로 송환될 경우 이슬람 율법에 의해 처형된다며 정치적 망명을 신청,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10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따르면 하마드 빈 이사 알-할리파 바레인 국왕의 사촌인 압둘라 알-할리파의 딸 메리엄(19)은 작년 봄 바레인 수도 마나마의 한 쇼핑몰에서 미 해병대원 제이슨 존슨(25) 병장을 만나 교제해왔으나가족이 반대하자 존슨과 함께 시카고로 도주,2주만인 11월 라스베이거스에서결혼식을 올렸다. 이슬람국가에서는 부모의 동의없이 남녀가 교제하거나 비이슬람교도와 결혼할경우 율법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바레인은 이슬람국 중 가장 개방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최근 이슬람근본주의가 급부상하고 있다. 바레인 거주 국방부 직원 및 가족 500명의 보호임무를 위해 파견된 존슨 병장은 메리엄을 탈출시키기 위해 야간투시경으로 공항출입국 절차를 사전에정찰한 뒤 그녀를 미 해병대원으로 가장시키고 렌터카를 이용하는 등 치밀한계획을 세웠다. 존슨은 민항기에 탑승하려면 바레인 시민에게는 여권이 필요하지만 미 해병에겐 필요치 않다는 것을 알아내고 헌 군복들을 준비하고 가짜 신분서류를만들었으며 메리엄의 긴 머리카락을 미 프로야그팀 뉴욕 양키스의 모자 속에감췄다. 존슨은 파병 근무기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음에도 메리엄과 함께가아니라면 귀국하지 않겠다고 상관에게 말한 뒤 ‘탈출작전’에 돌입했다. 기관총 사수인 존슨은 서류위조죄목 등으로 병장에서 이등병으로 강등됐다.메리엄은 시카고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바레인 정부로부터 송환요청을 받고 대기중이던 미 이민귀화국(INS) 요원들에게 체포돼 곧바로 출국당할 위기에 놓였으나 귀국시 처형될 것이라며 정치적 망명을 요청했다. 존슨도 “메리엄이 돌아가면 죽을 것이다”며 “그녀는 왕족을 곤혹스럽게했다. 가족들은 명예를 지키기 위해 보복을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두 사람은 결혼 후 정부 소유의 한 소형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데 메리엄은 바레인에 있었으면 하인들에게 시켰을 법한 집안일을도맡아 하고 있다. 메리엄은 오는 17일 샌디에이고에서 열리는 이민국 청문회에 참석할 예정인데 미 정부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바레인과의 관계를 고려,망명에 반대하고있다.미국은 외국인이 인종,종교,정치적 견해 등으로 처형받을 우려가 있을경우 정치망명을 허용하고 있으나 미 시민권자와 결혼한 것만으로는 미 체류가 보장되지 않는다. 주미 바레인 대사관측은 이번 사건은 왕족문제가 아니라 가족문제이기 때문에 메리엄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귀국을 촉구하고 있다. 존슨의 가족들은 자신들이 새 며느리를 사랑하듯이 메리엄 가족들도 존슨을받아들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멘트 트럭운전사인 아버지 데일 존슨은 “며느리 가족 입장에서 보면 나도 기쁘지 않으나 사랑하는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둘의 결합은 위대하다”고밝혔다.
  • 李漢東총리 53일만에 공관입주

    이한동(李漢東)국무총리가 10일 오전 공관으로 이사했다. 총리로 지명된 지 53일 만이다.‘혹독했던’ 인사청문회를 거쳐 지난 6월29일 총리 임명장을 받았지만 집안일 때문에 그동안 이사를 미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사는 간단했다고 한다.옷가지와 이불,음식,서적이 대부분으로 일반 이사차량 1대분이었다. 총리실에서도 특별한 준비를 하지 말라는 지시가 떨어졌다.도배도 하지 않고 카펫 청소 등 간단한 정리만 했다.도배는 98년 김종필(金鍾泌·JP) 전 총리가 입주했을 때 한 것으로,박태준(朴泰俊) 전 총리도 그냥 사용했었다. 오전에는 우선 부인 조남숙(趙南淑)여사만 이사를 했다.양친은 별세했고 1남2녀의 자제들은 따로 산다.이 총리는 이날 서울 염곡동 자택에서 출근을한 뒤 퇴근은 공관으로 했다. 물론 공관 이용이 처음은 아니다.의료계 파업 관련 관계장관회의 등 몇차례공식적인 행사를 공관에서 열었다. 관용차량도 총리지명 며칠 뒤부터 사용했다. 그래도 공식적인 공관입주는 의미를 갖는다.이 총리로서는 본격적인 활동을 의미한다.이 총리는 그동안 염곡동 자택에서 지내면서 여러 불편을 겪었다는 후문이다. 청사와의 거리도 멀어 출퇴근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 가장 큰 애로점이다.자택이 좁아서 이런저런 회의를 갖기도 어려웠다고 한다.또 지역구 주민등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공무 수행에 지장이 있었다는 것이다. 공관 입주로생활에 ‘안정’을 찾은 이 총리가 11일부터 시작되는 국회 대정부 질문의관문을 잘 통과할지 주목된다. 이지운기자 jj@
  • “무대위 열연…주부 스트레스 날려요”

    결혼후 신혼의 단꿈도 잠깐 뿐,정신없이 아이들을 낳고 기르고 해도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에 지쳐만 가는 것이 보통 전업주부의 일상이다.커가는 아이들과 늘어나는 아파트 평수,살림살이에 흐뭇해 지다가도 가슴 한켠에 휑하게지나가는 허전함은 어쩔 수가 없다. 일상의 지루함과 스트레스를 날려 버릴만한 뭐 신나는 일이 없을까.주변을둘러보며 눈을 반짝이던 주부들이 모처럼 집안을 벗어나 무대에서 뭉쳤다. 주부극단 연합회가 지난 1일부터 오는 14일까지 여성주간행사로 펼치고 있는 ‘주부연극제’.12개 참가 단체중 하나인 ‘강남모자이크 주부극단’도 그런 평범한 전업주부들의 모임이다.6일 오후3시 이들의 출전작품 ‘아름다운사인’이 공연된 서울 여의도 굿모닝300홀,무대 객석 할 것없이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오직 이날을 위해 지난 몇달간 구슬땀을 흘려온 단원들은 애써 외운 대사를 잊지 않기 위해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진정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초반의 긴장감은 잠시.막판엔 애드립까지 자연스레 던질 정도로 연기에 물이 올랐다.남의일 같지 않다는 표정으로 지켜보던 관객들도 아낌없이웃고 울며 박수갈채를 던져 이들의 신명을 북돋웠다. 공연이 끝나고 분장실에서는 시끌벅쩍 연기점검이 한창이다.“언니,아까 그장면에서 너무 잘하더라” “인삼밭에서 농약먹고 죽는 그 대목에서 목소리가 너무 오버한 거 아니야”서로의 연기를 조목조목 지적해주며 하하호호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강남모자이크 주부극단 10여명이 처음 만난 건 96년 강남구청이 구민들을 위해 마련한 ‘유인촌의 연기교실’에서였다.수업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열성분자들이 뜻을 합쳐 직접 극단을 만들었다. 여학생 시절부터 연극반을 하는 등 연극에 못다한 사랑을 키워온 이도 있었지만 ‘늦바람’난 초보도 꽤 있다.아이를 학교 보내고 집안일을 대충 정리한 뒤 매주 2∼3차례 어김없이 강남구민회관에서 만나 한나절씩 연기 연습을했다. 35살의 ‘막내’부터 올해로 환갑을 맞은 ‘언니’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그러나 무대를 향한 열정만은 한결같다. “너무 늙었다고 안 시켜줄까봐 처음에 걱정 했었지.요즘엔 설겆이 하고 빨래 하면서도 대사 외고 연기연습을 하는데 그렇게 재미날 수가 없어”단원들에게 ‘언니’로 통하는 박찬열씨(60)는 연극을 하면서 10년쯤은 젊어진 것같단다. 집안일도 소홀해질 것 같지만 생활에 활력이 넘치다 보니 청소며,빨래며 오히려 더 신이 난다.초반엔 뜨악한 눈길을 던지던 남편들도 이제는 오히려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극단 대표를 맡고 있는 조선옥씨(47)는 “평소에 경험할 수 없었던 하이라이트를 받으며,다른 인생을 살아본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연극 맛이란 게 안해보면 죽어도 몰라요.사는게 얼마나 재미있어 지는데….다른 주부들도 연극 배우러들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2살된 막내아이를데리고 다니며 연습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 아이가 벌써 6살이 됐다는 조혜선(35)씨의 당부다. 허윤주기자 rara@
  • ‘평등부부상’ 수상 이것이 비법

    여성신문이 최근 선정한 ‘제6회 평등부부상’을 수상한 유인종 서울시교육감(68)·이재우 중앙대 교육학교수(64)는 올해로 결혼 44년째를 맞았다. 세 자녀를 한국의 장모에게 맡기고 떠난 미국 유학시절,교육학 학위공부를나란히 시작한 이들 부부는 서로 논문자료를 챙겨주고 가사일을 분담하는 등내·외조를 아끼지 않았다. 지금도 아침출근 때 부인이 넥타이나 양말을 챙겨주는 일은 결코 없다.아침은 토스트로 간단히 하고 저녁식사는 부부가 함께 준비한다. 유학생활중 얻은 막내아들 등 1녀3남을 의사와 컴퓨터전문가로 키운 이들 부부의 교육철학도 남다르다.우선 네 아이 모두 초등학교를 1년 늦게 입학시켰다.조금 더 어른스러워진 아이들은 학교에 들어가 형,언니 노릇을 하며 리더십이 자연스럽게 길러 지더라고.유치원에도 보내지 않고 집에서 가르쳤다.집안환경이 좋으면 유치원보다 백 배 배우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또 아이들끼리 싸움이 나면 절대 부모가 나서서 말리지 않았고 용돈은 부부가 의논해서 한 사람이 주었다. 좋은 부부는 저절로 생기지 않고 ‘인내의 지혜,인내의 용기’가 만든다는것이 44년 결혼생활 끝에 내린 결론이다. 유인종교육감 부부와 함께 ‘제6회평등부부상’을 수상한 부부 4쌍의 사는모습을 잠깐 들여다 보았다. ■김정길씨(65·혜민병원 이사장)-임숙재씨(61·혜민병원 원장)결혼생활 39년을 맞은 이들 부부는 사회복지법인 희망원,신혜정신요양원과의료법인 혜민병원을 설립 운영해 오면서 가정과 사회에 공동으로 봉사하고있다. ■오태일씨(37·부목사)-조선희씨(35·군산여성의전화 가정폭력 전문상담원)군산에서 부목사로 활동하고 있는 오태일씨는 군산 여성의 전화에서 상담원으로 활동하는 부인이 각종 모임과 장기간의 세미나에 참석하는 동안 가사일과 자녀양육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특히 1년에 1차례 혼자만의휴가를 갖는 등 각자의 생활을 인정하고 배려해 준다. ■전건씨(54·노인대학 강사)-손복숙씨(51·노인대학 강사)결혼 25년차로 자녀양육은 물론 가사까지 여유있는 사람이 먼저 하는 것이원칙이다.집안일은 항상 상의해 결정하는 이들 부부는 10여년전부터 정신요양원,노인대학,양로원 등을 매주 한차례씩 찾아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최병학씨(36·경신공업 총무국 인사팀장)-정금주씨(33·자민련 여성국차장)장모와 함께 살며 가사분담과 자녀양육을 생활화해오고 있다.모든 재산은 공동으로 소유하는 한편 직장에서 인사팀장을 맡고 있는 남편은 여성간부 채용,여직원 유니폼 착용 폐지 운동 전개 등 직장내 남녀 평등운동을 실천해왔다. 허윤주기자 *
  • [외언내언] 家臣

    가신(家臣)이란 권력자의 ‘핵심측근’을 가리킨다.봉건적인 냄새가 물씬풍기는 말로 어감은 좋지 않다.중국 춘추시대인 기원전 7∼8세기경 지역 권력자 밑의 벼슬아치를 일컬었다.유럽에서는 봉건영주를 떠받드는 권력 주변층,9∼19세기 일본에서는 쇼군(將軍)을 사수하는 사무라이가 각각 가신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최씨 군사정권이 자기 집에 교정도감(敎定都監)과정방(政房)을 두어 국가일을 처리할 때 집안일을 돌보던 사람을 가신이라고불렀다.김영삼(金泳三)정부때 대통령의 측근그룹을 가리키는 ‘가신’이란말이 크게 유행됐다. 가신의 역할은 우선 권력자를 지지하는 열성친위대여야 한다.가신은 권력쟁취의 공신이며 그 기반을 다지는 주춧돌이다.위험요소를 찾아내 제거해 권력안정을 도모하는 것도 가신의 일이다. 반면 힘의 중심이 다른 쪽으로 이동하면 가신들은 ‘바지저고리’가 될 수있다.과거 문민정권의 핵심에 있던 민주계와 가신들이 개혁 선봉대에 서지못했던 이유는 권력이 가신보다는 대통령의 아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라는 어느 교수의 지적도 그럴 듯하게 들린다. 분수를 지키는 일은 가신의 제1수칙이다.어느 정치인은 “목수는 자신이 살기 위해 집을 짓지는 않는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권력은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 권력생리에 가깝다.자칫 날뛰다가는 칼을 맞아 팽(烹)당하기 쉽다.조선시대 이방원을 도와 제2의 왕자난을 치른 가신 이숙번은 권력에 취해 오만방자하게 굴다가 결국 탄핵을 받아 유배됐다. 또 권력자가 지나치게 소수 측근에 의지하면 가신들이 ‘병풍’이 돼 권력자가 외부와 격리되는 문제가 생긴다.권력자는 모름지기 가신에 의지하면서도 경계하는 등 팽팽한 긴장을 유지할 일이다.영화 ‘대부’에서 마피아 두목 말론 브랜도가 아들인 알 파치노에게 자신의 사후 적과 화해를 권하는 측근이 바로 ‘배신자’라고 경고성 예언을 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가신은 요컨대 권력의 기반인 동시에 배신과 힘의 남용 가능성도 갖고 있는 그룹이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측근 행정보좌관들에게 어떤 부처의 관리들을 지배하거나 간섭할 권한을 주지 않았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박정희(朴正熙)대통령은 측근의 독주를 막기 위해 늘 2명 이상을 경쟁시켜 상호 견제토록 했다. 현대 그룹 대주주 3부자 퇴진의 배경에 오너 형제의 참모들인 가신그룹의충동질이 있었다는 시각도 있는 모양이다.가신의 통제와 단속도 권력자의 일이라고 보면,가신들이 꾸민 일이라 하여 오너들이 면책되지는 않을 것이다. 李商一 논설위원 bruce@
  • [외언내언] 총리의 휴가

    공직과 가정 중 어느 것이 우선인가.동양사회에서는 공직을 우선시하는 반면 서양인들은 가정에 무게를 두는 경향이 있다.출산휴가를 가지 않겠다던토니 블레어 영국총리가 새로 태어난 네번째 아기 레오를 돌보기 위해 24일의회 총리답변과 25일 각의를 부총리에게 맡기고 2주간 휴가에 들어가 영국사회가 찬반론으로 시끄럽다고 한다.전체적으로는 찬성론이 우세하다. 전통적으로 영국총리는 해외출장이 아니면 매주 수요일 의회답변은 빠지지않는데 ‘휴가’로 불참한다는 것은 이례적이다.그래서 총리의 휴가를 두고논쟁이 뜨겁다.옹호론자들은 직장일을 핑계로 ‘아버지 역할’을 포기하는남자들에게 모범을 보여주는 행동이라고 환영이다.아무리 총리라고 하지만국가 경영이 가정 평화보다 앞설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반대론자들은 의외로 국정차질에 비중을 두는 것이 아니어서 더욱 흥미롭다.하나씩 낳아도 만원인 지구에 네번째 아이를 낳은 가족에게 출산휴가까지주어서 되겠느냐며 차라리 기존의 휴가제도를 잘 이용하라고 충고한다.특히고용주들은 ‘미심쩍은 병가’와 ‘집안의 급한일’로 결근이 잦은 영국사회에서 총리까지 집안일로 휴가를 가서야 되겠느냐고 지적한다. 어디 영국 총리뿐인가.콜 전독일총리는 90년대 중반 산적한 통일과업의 원만한 처리를 위해 매월 한차례씩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한번은 콜 전총리가 갑자기 회담을 취소하고 이탈리아로 휴가를 떠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아들이 이탈리아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을 찾아갔던 것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통일 과업보다 아들 부상을 우선시하는 총리의 모습이 우리에게는 어쩐지 익숙지 않다. 98년 사임한 매커리 전백악관 대변인과 지난달 그만둔 루빈 전국무부 대변인의 사임 이유도 ‘가정 화목’이 었다.두 사람 모두 미국 워싱턴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공직자였고 사자떼 같은 기자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었던 성공적 관료이나 ‘아내와 함께 있기위해’라든가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라는,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이유를 내세워 인기 절정기에 사직하고 가족으로돌아갔다. 이들의 모습은 우리에게는 이해가 되지않는다.국정을 책임진 총리가 휴가를 가고,잘 나가던 고위 관리가 가정을 핑계로 평범한 남편과 가장으로 미련없이 돌아가는 모습이 부러울 뿐이다.그러나 총리도 필요할 때면 가족으로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정치의 모습이 아닐까.정치가 꼭 권위와 형식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는 느낌이다.국정책임자라고 가정의 희생을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모든 이의 가정이 평화로울때 나라도 평안하기 마련이다. ◆李基伯 논설위원 kbl@
  • 현대 夢九·夢憲회장 만날까?

    현대건설 생일날,정몽구(鄭夢九) 현대·기아자동차 총괄회장과 정몽헌(鄭夢憲) 현대 회장 형제간의 ‘화해의 장’이 마련될까. 몽헌 회장이 이끄는 현대건설은 오는 20일 계동 사옥에서 창립 53주년 기념식을 갖는다.행사에는 예년처럼 정주영(鄭周永) 명예회장이 참석할 예정이다.지난 해부터는 정세영(鄭世永)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과 현대건설 출신 원로들도 나왔었다. 그래서 이번 행사에 몽구 회장도 참석하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조심스레 흘러 나온다.몽구·몽헌 회장은 지난 3월 경영권 다툼 이후 4월초 정 명예회장의 일본방문때 김포공항에서 잠시 만났다.그 뒤로 집안일로 가회동 정 명예회장 자택에서 두어차례 마주쳤지만 깊은 얘기는 나누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며,공식 석상에서 얼굴을 맞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현재로서는 두 형제의 회동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게 현대 고위 관계자의 전언이다.현대건설은 그룹의 모태(母胎)인데다 형제간 쌓였던 앙금을 대외적으로 자연스레 씻어낼 수 있는 적절한 자리이기 때문이다.그러나 현대건설측은 몽구 회장이 참석해 형제간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그럴 가능성이 적다고 말한다.지금까지 계열사 행사에 형제들이 함께 참석한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현대건설측이 16∼17일쯤 몽구 회장 등에게 초청장을 보낼 것으로 알려져 기념식은 몽구·몽헌 회장의 회동 여부로 이래저래 관심이 쏠릴 전망이다. 주병철기자
  • ‘선거전화’ 노이로제

    유권자들은 피곤하다.선거철을 맞아 쓸데없는 전화가 밤낮 없이 빗발치니까. 4·13 총선을 한달여 앞두고 가정주부를 비롯한 유권자들이 여론조사를 빙자한 선거운동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하루종일 집에서 지내는 가정주부들은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해코지를 당하지 않을까 두려움마저 느끼는가 하면 수화기 들기를 겁낸 나머지 일부러 외출하거나 114 안내 거부를 요청하는등 ‘전화 노이로제 증후군’을 호소하는 피해까지 생겨나고 있다. 접전이 예상되는 광주시 동구의 가정주부 이모씨(50·운림동)는 “남편은출근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간뒤 혼자 집안일을 하고 있을 때 여론조사를 한다며 특정 후보를 홍보하려는 전화가 하루에도 2∼3차례씩 걸려와 일손을 멈추게 만든다”며 “전화에 질려 집을 비울 때도 있다”고 말했다.선거운동원들은 전화를 통해 “A씨가 이 지역에서 출마한 사실을 알고 있느냐”,“A씨가 이 지역에서 많은 일을 했다는데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할 것이다”라는등 노골적인 후보 알리기까지 하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 주부 한모씨(41·장안구 정자동)도 “한밤중에 특정후보를홍보하는 전화가 걸려와 가족들의 단잠을 깨우는 일까지 있었다”면서 “유권자를 짜증스럽게 만들어 상대후보를 깎아내리려는 수법같다”고 말했다. 여론조사를 한다며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하기도 한다. 주부 김모씨(37·대구시 달서구 월성동)는 “전화로 선거 관련 여론조사를한다며 남편의 고향과 함께 ‘지역감정은 경상도 책임인가,전라도 책임인가’ 등을 물으며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말을 해 매우 불쾌했다”고 밝혔다. 여론조사를 빙자해 상대후보를 깎아내리려는 흑색선전도 횡행하고 있다.대전시 유성구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송석찬(宋錫贊)씨는 “대덕리서치라는 정체불명의 여론조사기관이 ‘송후보가 여자관계등 사생활이 문란한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구청장하면서 재산이 갑자기 불어났다는데’ 등 흑색선전을 하고 있다”며 최근 유성구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하기도했다. 이같은 전화공세는 후보간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거나 시민·사회단체에서낙선운동을 벌이는 지역에서 더욱 극심한 실정이다.전화번호 등 개인신상정보 유출 및 암거래에 대한 철저한 단속과 함께 전화공해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특정정당이나 후보자를 비방하거나 홍보하는 전화 등이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제보가 없으면 단속이 어려운 실정”이라면서 “전화를 받을 경우 시민들의 적극적인 신고가필요하다”고 말했다. 광주 임송학기자·전국종합 shlim@
  • 가사서비스 지출비용 연 1조원

    우리나라 가정에서 파출부,정원관리인,가정교사 등 집안일과 관련된 유급종사자를 고용해 지출하는 돈이 1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3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98년 기준 가사서비스 비용은 9,335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0.2%였다.이는 97년(9,566억원)보다 다소 줄었으나 90년에 비해서는 4배가량 확대된 것이다. 국민소득 통계에 반영되는 가사서비스는 요리사,가정부,파출부,유모,개인비서,정원관리인,가정교사 등의 유급고용인에 의해 생산된 서비스가 해당된다. 그러나 주부의 무급가사노동은 포함되지 않는다.최근 일본 경제기획청 경제연구소가 요리,청소,육아 등 여성의 무급가사노동을 돈을 따진 결과 GDP의 15∼20%인 것으로 추정됐다. 이 평가에는 자원봉사나 사회활동도 포함돼 순수한 의미의 가사노동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손성진기자 sonsj@
  • KBS2 시트콤 ‘반쪽이네’여주인공 정애리씨

    “제가 시트콤에 출연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놀랐다고들 하대요.저는 그렇게놀라는 것이 너무 놀라워요”22일부터 방송되는 KBS 2TV 주간시트콤 ‘반쪽이네’에서 여주인공 변재란역을 맡은 정애리씨.근 1년만에 출연하는 드라마 선택에 대해 주위 반응이 너무 뜻밖이었다.사람들이 시트콤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미리 알았다면 훨씬 많은 고민을 했을거라고 한다. “시트콤은 시청자들의 말초 신경을 자극해 웃기기만 하면 되는 드라마가 아니예요.정통 드라마보다 연기자와 제작진의 호흡이 더 필요하고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을 꾸밈없이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드라마예요”구멍난 스타킹을 신고 회사에 출근할 수도 있고 너무 바빠 흐트러진 머리로돌아다닐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단지 이전의 드라마에서는 자신의 이런 모습이 보여지지 않았을 따름이란 것이다. 그녀가 맡은 변재란은 잡지사 편집팀장.활동적이고 자신의 일에 완벽하지만집안일은 영 신통치 않다.만화가인 남편에게 집안일을 많이 의존하고 대신남편이 생계부담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일을 소신있게 하도록 배려한다.그동안 해왔던 무거운 이미지와 다른 밝고 건강한 이미지라는 점이 가장 맘에 들었다고 한다. “사실 연기를 더 쉴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반쪽이네’는 일주일에 한 번방송이라 촬영부담이 적어요.그런 점도 마음이 끌렸어요”현재 그녀는 지난 1일부터 방송을 시작한 KBS 제3라디오 사랑의 소리방송의‘사랑의 간병인’과 CBS의 간증 프로그램인 ‘새롭게 하소서’의 MC다.두프로 다 매일 방송이고 특히 ‘사랑의 간병인’은 1시간짜리 생방송이라 라디오에 묶여 있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또 다른 큰 이유는 3월부터 시작될 강의.그녀는 서일대에서 1학년을 상대로 사회복지학을 강의한다.서울 청량리일대에서 봉사활동을 해온 ‘다일’공동체에서 10년 넘게 봉사활동을 한 경험을 학문과 접속시킬 생각이다. 전경하기자
  • 司試 우먼파워 가속화

    사법시험에서 ‘우먼 파워’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2년 연속 수석합격은 여성의 몫인데다 합격자도 10명 가운데 2명 가까운 수준에 육박했다. 올해 사법시험에 원서를 낸 2만2,964명 가운데 여성은 2,669명(11.6%)이었으나,최종합격자 709명 가운데 여성합격자는 122명(17.2%)이었다.남성보다훨씬 높은 합격률을 기록한 셈이다. 여성합격자는 96년 36명(7.2%),97년 49명(8.1%),98년 93명(13.3%)으로 갈수록 증가 추세다. 합격자 가운데 재학생과 35세 이상의 노장파들의 약진도 눈에 띈다.재학생합격자는 158명으로 21.3%를 차지했다.96년 74명(14.7%) 97년 101명(16.7%)98년 148명(21.1%)인 점에 비춰 대학가의 고시열기를 반영했다.행자부 관계자는 “경제난으로 취업연령층의 우수 인재들이 사법시험을 선호하고 있기때문”이라고 분석했다. 43세의 최고령자를 비롯해 35세 이상 합격자도 지난해의 47명에서 55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출신 대학별로는 서울대가 276명(30.4%)으로 지난해의 42.4%에 비해 급격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고려대가 149명으로 지난해의 147명과 비슷했으며,연세대가 80명으로 지난해의 56명보다 늘었다.이밖에 한양대 43명,성균관대26명,이화여대 20명,경북대 16명,서강대 13명이었다.합격선은 48.50으로 사상 최저 수준으로 꼽히고 있다.한 관계자는 “문제가 어려웠다기보다는 수험생들의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박정현기자 jhpark@ ”슬럼프 없이 꾸준히 공부한 게 주효한 것 같다.” 26일 발표된 제41회 사법시험에서 2차 시험 평균 58.64점으로 전체 수석의영예를 차지한 윤재남(尹在南·여·25·연세대 법학과 졸)씨가 털어놓은 평범하지만 솔직한 합격 비결이다. 윤씨는 시험준비를 집과 가까운 독서실에서 주로 했다고 한다.평소에는 하루 12시간씩 공부하다가 2차 시험을 앞두고는 하루에 15시간씩으로 늘렸다. 이같은 방대한 학습량에 힘입어 대학 3학년 때 연습삼아 본 1차 시험을 제외하곤 단 한번의 실패도 없이 최종 합격 관문을 통과했다. 사법시험 사상 여성 수석 합격은 7번째.윤씨는 여성 합격자 수가 매년 늘어나는 것에 대해 “어떤 분야든 여성의 사회참여가 증가하는 것은 자연스런현상”이라고 야무지게 말했다. “편견 없는 공정한 판사,연구하는 판사가 되고 싶다”는 윤씨는 최근 법조계를 뒤흔들고 있는 옷로비 사건 등에 대해 “법조계 전체의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희망섞인 진단을 내렸다. 서울 인헌중 국어교사인 윤황호(尹煌鎬·58)씨와 오행숙(吳幸淑·53)씨 사이의 1남3녀중 3녀. 박현갑기자 eagleduo@ *司試 이색 합격자들 26일 제41회 사법시험 최종 합격자가 발표됐다.합격자 명단에는 약사 출신,국제변호사 출신,행시와 사시 동시 합격 등 다채로운 이력을 지닌 합격자들이 다수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특히 판사 남편을 둔 주부와 먼저 사시 관문을 통과한 동생을 둔 형 등 사연많은 합격자들도 많았다. 약사 출신으로 합격의 영광을 거머쥔 박금낭(朴錦娘·31·여·서울대 약학과 졸)씨는 현재 서울지법 판사인 기우종(奇佑鍾·33)씨의 부인.지난 95년결혼과 함께 고대해오던 ‘법조 부부’의 꿈을 이뤘다. 대학을 졸업한 지난 90년 이후 보조 약사로 일하면서4살 난 아들을 키운주부고시생 박씨는 집안일,아이보기,남편 뒷바라지 등 1인다역의 힘겨운 생활 속에 고시공부를 해왔다. 2년 연속 가족에게 합격의 영광을 안겨준 효자형제도 있다.김현성(金顯星·31·서울대 정치학과 졸)씨가 그 주인공.그는 한해 먼저 합격한 동생 김현호(金顯昊·29·사시 40회)씨와 나란히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됐다. 최종진(崔鍾震·28·한양대 정치외교학과 졸)씨는 형이 수원지법 최종두(崔鍾斗·36·미 듀크대 연수중)판사이고,매형도 대전지법 천안지원 유승용(兪承龍·36)판사인 법조인 가족. 황희석(黃希錫·32·미국 뉴욕주)씨는 국제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사시에 합격해 관심을 끌었다.법무법인 ‘아람’에 근무하고 있는 황변호사는 “시험과 관계된 실무에 종사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면서 “한·미 양국의 법체계를 두루 익힌 전문인력으로 우리나라 법조계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지난해 42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올해 사시에 합격한 이정수(李政洙·22·서울대 경제학과 4년)씨를 비롯,공태구(孔太究·32·행시 43회),엄기표(嚴基標·28·행시 43회)씨는 행시와 사시를 동시에 합격한 인물들이다. 최여경기자 kid@
  • [고시촌 24시] (6)주부고시생

    ◇ 주부고시생 집안일, 아이보기, 남편 뒷바라지….누군가가 거들어도 벅찬 일들을 하면서꿈을 쫓고 있는 주부 고시생들.이들이 서울 신림동 고시촌의 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신림동 주부 고시생들의 나이는 대략 30대 초·중반.아이들이 엄마를 찾으며 보챌 무렵에 다시 고시계로 나선 것이다.대학 시절에 한번쯤 사법시험이나 행정고시를 준비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결혼과 함께 전업주부가 됐던‘노병(老兵)’이 대부분이다. 주부 고시생의 성공 여부는 ‘남편의 외조’와 ‘아이들의 이해’에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남편이 집안일을 돌보지 않는다고 얼굴을 찡그리거나 아이들이 엄마와 한시도 떨어져 있지 못한다면 ‘아내와 엄마의 자리’로돌아가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2차 시험에 대비하고 있는 고려대 출신 김모씨(32)는 남편 이모씨(32·회사원)와 아침 식사때나 잠깐 얼굴을 보는 게 고작인 주부 고시생이다.이씨의 적극적인 권유로 지난해 8월부터 행시를 준비하기 시작,지난달 말쯤에는 아예 거처를 신림동으로 옮겼다. ‘집과신림동을 오가는데 시간과 체력을 낭비하고 공부에 소홀해진다’며이사를 바라자 이씨도 “공부를 위해서라면”이라며 흔쾌히 동의했다.3살배기 딸과 2살배기 아들은 친정어머니에게 맡겼다. 대부분의 주부 고시생처럼 김씨 역시 공부와 집안일을 함께하는데 어려움이작지 않다. 물론 남편과 친정식구들의 지원은 확보했지만 시댁은 아직도 어렵다. 이 때문에 시댁 경조사가 있을 때면 남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지난 설,행시 1차 시험(3월14일)을 앞둔 김씨에게 위기가 왔다.친지들을 보기위해 적어도 이틀 동안 공부에서 손을 떼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남편이 방패가 돼줬다.김씨가 막내며느리에다 고시준비생인 점을 강조하며 집안일에서 빼준 덕분에 시댁에 가지 않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고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시댁 경조사를 남편이 책임지고 막아주지 않으면 피로가 겹치고 공부의 흐름이 끊겨 힘들어진다”며 남편의 외조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강조했다. 새벽 6시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김씨에게 아침식사 시간은 유일하게 남편의얼굴을볼 수 있는 때다.“남편도 어느덧 이런 일에 익숙해졌는지 혼자 저녁식사를 하고 빨래,청소를 해놓는다”면서 “꾹 참아주는 남편과 아이들을 봐서라도 반드시 합격해야 한다”며 각오를 다진다. 남편 이씨는 오히려 좀더 지원해주지 못한다며 미안해한다.바라는 것은 한가지.평생 수험생으로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주는 것뿐이다. 최여경기자 kid@
  • [세계로 나가자]해외일자리 안내 (6)오페어-체험기

    단순한 어학연수 보다는 현지인과 함께 생활하며 영어 공부를 하고 싶은 학생,농장 식료품점 등에서 일하기 보다는 가사일을 도우며 외국 문화를 배우려는 젊은 여성들은 오페어(Au-pair)에 도전해 보자.오페어는 외국의 가정에 머물며 그들과 동등한 가족 구성원이 돼 아기를 돌보며 가사일을 돕고 숙식과 용돈을 제공받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장점은 외국의 문화와 생활방식,영어를 자연스럽게 배우는데 있다.오페어는 불어로 ‘동등한’이란 뜻이다.원래는 영국 소녀들이 프랑스 가정에서 영어를 가르쳐주고 불어를 배우던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미 공보국(USIA)후원으로 미국에서 86년 본격화된 이후 오페어는 ‘외국인보모’로 통하게 됐다.일정 급료를 받지만 단순한 베이비시터와 달리 오페어에는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문화를 교류한다’는 기본정신이 깔려있다. 오페어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아기를 좋아하고 아기를 돌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현지 가정에 들어가기 전에 집주인과 간단한 영어 인터뷰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인회화실력도 필수다.남성도 가능하지만 아무래도여성을 선호한다.참가기간은 1개월∼12개월 정도고 그만둘 때는 2주 전에 주인에게 통보해야 한다. 하는 일과 근무시간은 나라마다 또는 가정마다 차이가 나지만 하루에 5시간 정도 아이를 돌보는 일이 주가 된다.아이 돌보기는 책읽어 주기,놀아주기,등·하교시키기 등이다.어학원에서 어학연수를 병행할 수도 있고 대부분의가정이 부유층이기 때문에 독방,숙식,보수가 제공되며 자동차를 이용할 수도 있고 보너스가 지급되기도 한다.지원자격은 국가별로 차이가 있지만 만18∼30세로 제한된다.대부분의 가정에서 국제운전면허 소지자를 원하고 의사소통이 자유로운 여성이 유리하다.워킹홀리데이비자 또는 학생비자로 출국한 사람은 보수를 받을 수 있지만 관광비자를 지닌 사람은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숙식만 제공된다. 오페어가 가능한 나라는 미국 호주 뉴질랜드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이스라엘 등.미국은 주인집에서 항공티켓을 제공하는 장점이 있지만 능숙한 영어를 원하며 1997년 말 영국인 오페어우드워드가 아이를 숨지게 한 사건 이후오페어 선발조건이 까다롭다. 최근 한국인들은 호주와 뉴질랜드 오페어를 선호한다.미국은 수속기간이 3개월 정도고 호주,뉴질랜드는 1개월 정도 걸린다. 우리나라에서 아기를 돌보는 것과 다른 점이 많기 때문에 가정에 들어가기전 3∼4일에 걸쳐 현지에서 실시되는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해 주의사항과 각나라의 가족문화를 배우는 것이 좋다.문의 워킹홀리데이사무국 (02)723-5700,워킹홀리데이협회 (02)723-4646,웹사이트 www.wh.co.kr이창구기자 window2@- 오페어 체험기“평생 못잊을 추억 만들었지요” 오페어를 결정한 것은 워킹홀리데이비자를 받아 호주에 도착한지 3개월이지났을 때였다.영어학교가 끝나갈 무렵부터 틈틈이 경마장에서 주말 안내를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좀더 적극적으로 직업소개소를 찾아다녔고 그때야 비로소 오페어라는 직업을 알게됐다.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이 일이 평생 잊을 수 없는 좋은 추억과 소중한 경험이 될 줄이야. 오페어의 장점은 너무나 많다.우선 그 나라의 지극히 평범한 중산층 문화를 체험하기에 완벽하다.나는 라디오 방송국 기자인 아저씨와 간호사로 근무하는 아주머니 그리고 아들 둘,딸 하나를 둔 건강하고 단란한 가족과 생활을하면서 그들의 일상에서 생겨나는 희로애락을 함께할 수 있었다. 잘하든 못하든 그들의 언어로 대화해야 하기 때문에 듣기,말하기에 자신감이 없었던 나는 이 일로 해서 상당한 회화실력을 쌓았다.돈도 벌고 영어도배우고,꿈에 그리던 일 아니던가. 나도 우리문화를 알리는 외교관이라는 뿌듯함이 생겼다.돈독해진 그 가족과의 우정 때문에 귀국 후에도 편지,전화로 국제적 친분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도 있다. 일과는 대체로 아침 7시30분에 일어나서 아이들 등교하는 일을 돕고 4살 짜리 클라우디아와 일주일에 3번 5시간씩 놀아주고 매일 오후 3시20분이면 학교로 아이들을 데리러 가는 것이었다.주당 30시간 정도 일하고 200달러를 주급으로 받았다.주말에는 친구들과 함께 서핑,스쿠버 다이빙,캠핑,파티 등으로 재미있게 보냈다. 처음에는 어린아이가 낯선 나에게 서먹함을 느껴 친해지기가 힘들었고 다림질 같은 집안일을 하면서 회의감도 느꼈다.그러나 외국생활에서 오는 외로움이나 소외감을 느끼지않게 배려해주었던 아주머니와 아저씨 그리고 어느새나를 믿고 따르는 아이들이 나의 고민을 씻어 주었다. 돌아오기 전에는 모은 돈으로 호주 여러 지역과 뉴질랜드를 여행했다.여행하면서 만난 많은 배낭여행자들과 빼어난 자연환경,소박한 시골인심 등 나는아주 귀중한 보물을 얻었다. 오페어를 준비하는 후배들이여,경험만이 산지식이란 걸 명심하자. 조희정(학원강사)
  • [제2공화국과 張勉](26) 장면의 정치역정·생애(中)

    초대 주미대사로서 큰 공을 세운 장면(張勉)은 1951년 1월28일 귀국해 2월3일 국무총리에 취임한다.이 무렵 이승만(李承晩)대통령과 국회는 상극이라할 만큼 알력이 심해 장면 총리는 양쪽을 융화·조정하는 데 온힘을 기울였다.아울러 ‘국민방위군 사건’‘거창 양민학살 사건’ 해결에 앞장섰고,그해 11월에는 파리 제6차 유엔총회에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했다. 장면이 이승만 아래에서 총리직을 수행하는 동안 권한을 행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그렇지만 정치적 위상은 한층 높아져,이승만을 몰아내고 그를대통령으로 옹립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50년 6월19일 개원한 2대 국회는 다양한 세력으로 구성됐다.자유당 창당 전이라 공인된 여당이 없었고 친(親)이승만 계열 의원은 대한국민당 24명을 비롯해 57명에 불과했다.반면 야당의원은 27명,무소속은 의원 정수의 60%인 126명에 달했다. 2대 국회는 개원 엿새 만에 6·25를 맞아 사망·납치·행방불명된 의원이 35명에 이를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다.의원 대다수가 이승만의 ‘서울 사수(死守)’ 발언을 믿었다가 큰 곤욕을 치른 데다 이승만의 독재 성향이 이미두드러져 의회에서는 반(反)이승만 기류가 주를 이뤘다. 당시는 국회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간선제였고 이승만의 임기는 52년 7월23일까지였다.국회에서 재선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자 이승만은 51년 말두 가지 방안을 추진한다.하나는 여당을 만드는 것이고,또 하나는 대통령직선제로 개헌하는 것이었다. 여당 창당작업은 그러나 두 갈래로 나눠졌다.무소속 의원 중심의 원내자유당과 5개 사회단체를 뼈대로 한 원외자유당이 별도의 정당으로 등록했다.이가운데 원내자유당은 이승만의 뜻과는 달리 내각책임제로의 개헌을 은밀히추진하면서 대통령으로 장면을 추대하기로 야당과 합의한다. 당시 원내자유당을 이끈 오위영(吳緯泳)은 회고록에서 “일부 정치인들이이박사의 영구집권을 위해 활동하기 시작한 실정에서 재야의원들은 대부분강력한 야당을 조직해 다가오는 대통령선거에서 민주적인 지도자를 추대하자는 중론이 대두되고 있었다”고 밝혔다. 국회는 이승만정부가 발의한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52년 1월18일 찬성 19,반대 143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부결했다.이어 개헌 정족수에 맞춰의원 123명의 서명을 받아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제출했다.4월 이 무렵 장면도 총리를 사임했다. 국회는 6월2일 제2대 대통령을 뽑기로 계획을 세웠다.그 날이 되면 장면은새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내각책임제 개헌도 순조롭게 이루어질 터였다. 하지만 반격이 시작됐다.‘부산정치파동’이 발생한 것이다.이승만이 경남과 전남북에 계엄령을 선포한 다음날인 5월25일 계엄군은 버스로 등원하는의원들을 연행했다.그리고는 경찰이 국회를 포위한 상태에서 대통령직선제개헌안을 강제로 통과시켰다.이때 개정한 헌법이 ‘발췌개헌’이다. 부산정치파동후 장면은 가톨릭계인 경향신문의 고문으로 들어앉아 정치에는 일절 간여하지 않을 듯이 보였다.그러다 55년 9월 통합야당인 민주당이 출범하자 최고위원으로 정계에 복귀했다.오위영을 비롯해 김영선(金永善)·홍익표(洪翼杓)·이상철(李相喆) 등 신파의 핵심세력이 52년 그를 대통령으로추대하려던 원내자유당계였다. 장면은 56년 정·부통령 선거에 부통령으로 출마해 이기붕(李起鵬)을 누르고 당선됐다.국민의 투표로 검증받은 권력서열 2위가 된 것이다.더구나 이승만이 81세의 고령이어서 유고시 대통령 자리를 승계하는 부통령이란 위치는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가졌다. 그러나 부통령 재직 4년은 장면이 회고록에서 ‘죄없는 죄인’이라고 표현할 만큼 험난한 세월이었다.이승만은 강력한 정적으로 떠오른 그를 견제하느라 상식 밖의 행동을 예사로 했다.가령 56년 8월15일 열린 정·부통령 취임식에서 이승만은 내외 귀빈을 전부 소개하면서 정작 그 자리의 공동 주인공인 장면을 무시했다.남산 국회의사당 기공식에서는 다른 초청객의 자리는 준비하고도 부통령 좌석은 마련하지 않아 장면이 그냥 돌아갈 정도였다. 이 시기 장면의 처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그에대한 암살 기도와 외국 원수와의 만남을 방해한 사례다. 부통령 취임 한달여 만인 9월29일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장면은 김상붕(金相鵬)이 쏜 총에왼손을 맞았다.이 저격사건의 배후는 김종원(金宗元)치안국장이라는 추측이 강하게 나돌았지만 훗날 장면정부 아래서 속개된 재판에서도 관련자는 김상붕,그에게 총을 준비해 준 이덕신(李德信·성동경찰서 사찰계 형사주임),두 사람 사이를 연결해 준 최훈(崔勳) 등 세 사람으로 한정됐다.장면은 사건의 배후를 철저히 파헤치는 대신이들을 감형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고 딘 디엠 베트남대통령이 공식 방한한 날은 57년 9월18일이었다.디엠의맏형은 가톨릭 사이공교구 대주교였고 본인도 독실한 신자였다.게다가 장면과는 미국에서 만나 돈독한 우정을 쌓은 사이였다. 디엠은 장면을 만나려고 했으나 이승만정권은 그의 방한 사실조차 장면에게 알리지 않았다.디엠은 개인적으로 노기남(盧基南)대주교에게 전화해 일요일 첫 미사때 명동성당에 들르겠다며 장부통령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장면과 디엠은 결국 주교관 2층 노대주교 방에서 몰래 만나 우정을 재확인할수 있었다. 외국원수에 대한 의전마저도 무시할 정도로 장면을 철저히 배제한 이승만의 폭거는 4월혁명으로 쫓겨날 때까지 계속됐다. 장면이 순화동 부통령 공관에서 ‘창살 없는 감옥’ 생활을 하던 그 무렵을 이철승(李哲承)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세월이었지만 민주 염원의 상징으로서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고 회상하면서 “장박사가 사실은 남달리 외유내강한 분”이라고 평가했다. 장면은 총리·부통령을 거치면서 국가지도자로서 확고한 위상을 차지했다. 그런 까닭에 4월혁명으로 이승만정권이 물러나자 민심은 당연히 장면에게로쏠리게 됐다. 이용원기자 ywyi@**前비서관 李聖模·李泓烈씨가 본 장면 장면(張勉)에게는 10여년 동안 그림자처럼 수행한 비서관이 두 사람 있다. 이제는 70대가 된 이성모(李聖模·72)씨와 이홍렬(李泓烈·77·미국 거주)씨가 그들이다. 이들은 장면이 주미대사로 활동한 50년대 초부터 66년 타계하기까지 때로는 함께,때로는 엇갈리며 그의 곁을 지켰다.이들이야말로 가족이나 정계의 동료보다도 장면의 모든 것을 더 가깝게,더 오랫동안 지켜본 증인들이다.그들이 밝힌,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몇 토막을 소개한다. 이성모씨는 1951년 초 피난지 부산에서 장총리를 만난다.경찰관으로 경호업무를 맡은 그는 인품에 감화해 곧 경찰복을 벗고 비서로 들어간다.그가 직접 본 부산 피난 시절 장면과 어머니 사이의 에피소드다. “장총리는 꼭 집에서 점심을 들었다.하루는 점심을 먹으러 집에 왔다가 모친(黃누시아)이 등 찢어진 삼베옷을 입은 것을 보고 흉하니 갈아입으라고 말씀드렸다.그랬더니 모친이 불같이 화를 내며 ‘자네가 이 나라 총리 맞는가. 지금 피난민이 곳곳에 우글거리는데 잘먹고 편히 있는 내 걱정할 땐가.’장총리는 무릎을 꿇고 한 시간이나 빌었다.모친 지시대로 범일동 고아원에 가아이들을 돌본 다음에야 용서받았다.장총리 부모도 매우 훌륭한 인격자였고,그는 부모 말씀에 절대 복종했다.” 이홍렬씨는 50년 4월 로스앤젤레스총영사관 부영사 때 장면 주미대사를 알게 된다.51년 총리로 내정된 장면의 부름으로 함께 귀국해 총리실 파견근무를 했고 그 인연으로 비서관이 된다. “장총리를 10여년 모셨는데 화내는 모습을 딱 한번보았다.60년 12월이었다.청와대로 전화하라고 해서 윤보선(尹潽善)대통령의 비서실장인 이재항(李載沆)씨를 바꿔주었다.장총리가 통화를 몇분 하더니 화난 표정에 목소리가높아졌다.대통령에게 긴히 할 말이 있는데 이재항씨가 자꾸 핑계를 대며 안바꿔주는 모양이었다.전화를 끊은 장총리는 ‘아주 고약한 사람이로군’하고혼잣말을 했다.그것이 그분이 할 줄 아는 가장 험한 욕이었다.” 이홍렬씨는 장면이 돈 문제에도 담백했다고 밝혔다. “51년 총리 시절 파리에서 열린 제6차 유엔총회에 대표단을 이끌고 가게돼 있었다.떠나기 열흘 전쯤 한국은행 총재가 나를 불렀다.‘외교활동을 하려면 가외비용이 많이 들 것’이라면서 돈가방을 주었다.얼핏 봐도 100달러지폐가 가득 들어 있었다.일단 거절하고 돌아와 말했더니 ‘잘했다’는 한마디뿐 더는 말이 없었다.돈을 챙기는 데는 관심이 전혀 없어 쿠데타후 명륜동자택으로 돌아가서는 생활비가 없을 정도였다.” 이성모·이홍렬 두 비서관은 군사정권 아래서 고된 삶을 살았다.이성모씨는 장면 집안일을 돌보는한편 정치에도 뛰어들었다.민주당 재건에 참여,섭외부장·조사부장을 역임했고 경북 영주·봉화 지구당위원장으로서 6·7대 총선에 출마하지만 거듭 실패했다.이후 사업을 하면서 장면 추모모임인 ‘운석회’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해왔다. 이홍렬씨도 5·16쿠데타후 장면을 곁에서 모시다가 그의 타계후 정치에는일절 발을 끊고 생활인으로 돌아갔다.지난 88년 도미해 로스앤젤레스에 자리잡은 그는 본지에 ‘제2공화국과 장면’ 연재가 시작되자 일부러 두 차례 귀국해 증언하고 자료를 제공하는 열성을 보였다. 이용
  • [역경을 딛고…]고대에 10억기증 崔丙順할머니 육필수기(1)

    평생 모은 재산 10억원을 고려대에 장학금으로 내놓은 최병순(崔丙順·84)할머니(대한매일 3일자 23면 보도).장학금 기증으로 ‘희망의 닻’을 내린감동 못지 않게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할머니의 파란만장한 삶은 우리 모두를 숙연케 한다.할머니는 일제시대,광복 이후의 혼란기,한국전쟁,5·16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세월을 홀몸으로 견뎌냈다.부역 혐의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가난과 병마,고통으로 점철된 삶을 인내와 용기로 꿋꿋이 이겨낸 최할머니의 육필 원고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별안간 다리가 부러진 것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지난 세월이 떠올라 설움이 북받친다. 언제 뜰 지 모르는 세상,살았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다.‘이 몸에 소망이 무언가…,소망의 닻을 주리라’.즐겨 부르던 찬송가를 불러봤다.이제 그 소망이 이루어졌다. 유언 공증을 해야겠다.은행에 있는 돈과 집까지 모두 고려대학교에 내놓으려 한다. 가난과 병마,고통,불행으로 점철된 내 삶의 이야기도 함께 적는다. 지나온 날들은 밤과 같은 세월이었다.하루하루가 생존과의전쟁이었다. 어려서부터 찾아온 병마,손을 쓸 수 없었던 가난,젊은 세월을 옥죄던 봉건적 가족제,전쟁과 이념에 희생돼 치렀던 10년간의 옥살이…. 수많은 사람들이 추위와 굶주림,병으로 죽어갈 때도 ‘이렇게 죽을 수 없다’는 일념으로 버텨냈다.‘빨갱이’라는 낙인에 등을 돌린 세상.이를 악물고 버텨왔다.식모살이,품팔이,행상,창녀촌 빨랫일,보모,극장 암표상 등 안해본 일이 없다. 이처럼 고통스러운 운명이 또 있을까.인생의 행복도 제대로 맛보지 못하고살아온 한 생.이제는 자식없는 설움과 고독만이 남았다. 나는 1915년 경기도 광주군 초월면에서 났다.할아버지와 아버지,어머니,삼촌,오빠,그리고 나 6식구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5살 때였다.갑자기 목에 조그만 혹이 생기기 시작했다.불행은 이 때부터 시작됐다.이른바 ‘연주창’이라는 것이었다.혹은 계속 커져만 갔다.고개를 가눌 수가 없었다.여름이 되니 열이 나고 곪아터져 고름이 나왔다.촌구석에 살다보니 고칠 수도 없었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혹은 눈으로,가슴으로,겨드랑이로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견딜 수 없을 만큼 병은 깊어지고 있는데 7살되던 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가눌 시간도 없었다.곧바로 부뚜막 일을 시작했다.농사일도 거들어야 했다.학교는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그 때는 15∼17세면 결혼을 했다.그러나 나는 시집을 갈 수도 없었다. 병마에 시달린 지 14년.하늘의 은혜가 내렸다.18세되던 해 마을을 지나던한 노인이 집에 찾아와 하룻밤 재워줄 것을 청했다.자신을 ‘돌팔이 의원’이라고 소개한 이 노인은 맥을 짚어보더니 치유를 장담했다.하얀 가루를 솜에 뿌려 환부에 대고 불을 붙이니 고름이 쏟아졌다.몸에서 불이 나는 듯 했다.환부 이곳저곳에 여러차례 하니 고름이 모두 빠지면서 혹이 사라졌다. 아버지는 내가 낫기를 기다렸다는 듯 19세 나던 해 근처의 마을로 나를 시집보냈다.고생이 끝나는 줄 알았다.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엄청난 고통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남편은 노름과 술에 찌들어있던 사람이었다.집안 일을 돌보지 않고 나가서만 살았다.시댁에서는 남편이 해야할일을 나에게 강요했다.시댁은 많지 않은 논과 주변의 텃밭으로 근근이 생활했다.농사일과 막내 며느리로서의 집안일은 모두 내가 해야 했다. 시댁에서는 동짓달에도 방에 불을 때주지도 않아 늘 냉방에서 자야 했다.텃밭을 일구고 거름을 져 나르고,식사준비에서부터 설거지까지 새벽부터 밤까지 잠시도 쉴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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