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집사
    2026-01-2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365
  • “이웃집 딸 도우려…” 어처구니없는 범행/서울신대 시험지 도난

    ◎진술엇갈린 경비원 추궁끝 개가/사다리 이용 교무과 창문깨고 침입/범행동기 석연찮아 공범여부 수사/외부소행 위장 위해 깨진창 도주 【부천=김동준·조덕현·김학준·박희순·서정아기자】 서울신학대 후기대 학력고사 시험문제지 도난사건의 범인은 이학교 경비원이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단순범행으로 밝혀져 세인을 다시한번 놀라게 했다. 경찰은 사건이 발생하자 이번사건을 학교내부 구조와 사정을 잘아는 학교관계자의 소행으로 보고 경비원 등을 주요 수사대상자로 탐문수사를 벌인끝에 사건당일의 행적에 대해 엇갈린 진술을 하는 경비원 정계택씨(44)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집중신문을 했다. 경찰은 정씨에 대한 알리바이를 조사한끝에 정씨가 2년전부터 알고 지내던 부천시 심곡1동 S교회의 교인인 이성분씨(40)와 가까이 지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이씨를 소환 조사한끝에 정씨가 이씨의 딸 황모양(18)을 위해 시험지를 빼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범행동기◁ 범인 정씨는 2년전부터 함께 일해왔던 이학교 파출부 이성분씨의 딸 황모양(18·B여고3년)이 청주대학에 합격했으나 입학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딱한 사정을 알고 황양을 이학교에 입학시키기위해 범행을 저질렀다. 정씨는 경찰에서 황양이 지난번 전기대 입시에서 청주대사회복지학과를 지원했다가 신체검사에 응하지 않아 떨어져 늘 불안해 하고 있다는 것을 황양의 어머니 이씨로 부터 전해듣고 황양이 자신이 근무하는 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해 장학금을 받도록 하기위해 범행을 저지르게 됐다고 진술했다. ▷범행과정◁ 정씨는 당직근무를 섰던 21일 상오2시10분쯤 문제지가 보관돼 있던 교무처 출입문을 열려고 했으나 실패하자 길이 1m가량의 막대기로 교무처 창문을 깨고 사다리를 이용,본관 교무처로 들어갔다. 정씨는 이어 만능열쇠(마스터키)로 전산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 문제지 박스를 칼로 찢어 문제지를 빼냈다. 정씨는 문제지를 빼낸뒤 외부인의 소행으로 위장하기 위해 깨진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경찰수사◁ 경찰은 이 사건이 일어난 직후 학교 내부사정을 잘아는 자의 범행일 것으로 보고 당일 당직근무를 섰던 학교관계자들의 신병을 확보,이들에 대한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교수·경비원·학생등 10여명의 알리바이 등을 집중 추궁,이 가운데 진술이 3차례나 엇갈리는 범인 정씨에 대해 주목했다. 경찰은 정씨를 모처에서 집중조사,범행일체를 자백받았다. 경찰은 정씨 진술의 신빙성이 적은 것으로 보아 혼자 저지른 단독범행이 아닐 것으로 보고 공범여부·배후및 금품수수여부 수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와함께 경찰은 조학장 반대세력이 이 사건에 깊숙이 개입됐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이들에 대한 수사도 함께 펴고 있다. 경찰은 또 정씨의 범행동기가 자신이 알고있는 이웃집 딸의 대학진학을 위해 이같은 엄청난 범행을 저지른 것에 대해 의문을 품고있다. 경찰이 정씨의 단독범행이 아닐 것이라고 보는 점은 이 학교 조종남학장이 6차례 연임하는등 18년간 장기집권해온데 대한 불만이 누적돼 지난해 연말 학장문제와 관련,학내분규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범인주변◁ 범인 정씨는 실제나이로는 44년 양띠이나 주민등록이 4년 늦게 돼있으며 경기도 부천시 남구 심곡본동에 있는 처남의 집에서 부인(48),아들(16)과 함께 살고 있다. 정씨는 부천 S교회 집사로 일해오면서 이교회집사인 이씨와는 같은 교회에 다니는 신자로서 평범한 관계를 유지해 왔을 뿐 특별히 가까운 관계는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경찰의 전과조회결과 전과2범인 것으로 드러났으며 현재도 업무상배임혐의로 수배를 받고 있다. ◎“사건확대돼 문제지 전달 못해/수험생들과 학부모들에 죄송”/범인 일문일답 ­범행 동기는. ▲평소 교회를 통해 알고지냈던 신도의 딸인 황양을 내가 다니는 학교에 입학시켜 도와주고 싶었다. ­어떻게 도와주고 싶었나. ▲황양이 전기대에 입학하고서도 입학등록금이 없어 진학을 못한다는 얘기를 듣고 황양을 좋은 성적으로 우리학교에 합격시켜 등록금 면제혜택을 주고싶었다. ­그래서 시험지를 훔쳤나. ▲처음에는 막연히 황양이 좋은 성적으로 우리대학에 입학할 것같은 느낌이어서 황양의 입학원서까지 내가 가서 써와 접수했다.그러나 시험일이 가까이 다가오자 겁이 났다. ­범행에 가담한 다른 사람은 없는가. ▲공모자는 없다.모든 일은 혼자서 했다. ­마지막 할말은. ▲단순하게 생각했던 나의 소행이 이렇게 크게 사회문제화 될줄을 미쳐 몰랐다. ­지금의 심정은. ▲수험생과 학부모들께 죄송할 뿐이다.
  • 부흥회 참석길 교회버스에 불/한마을 신도 5명 숨져

    【울산=이용호기자】 14일 상오10시30분쯤 경남 울산군 범서면 구영리 현대정공 사원아파트 앞길에서 울산군 범서면 사연리 천상교회를 떠나 언양면 서부리 서부교회로 가던 천상교회소속 경남5가9593호 승합차(운전사 박정부·59)가 엔진과열로 불이 나 운전석 뒤쪽에 타고있던 집사 김곡지씨(46·울산군 범서면 사연리46)등 한마을 신도5명이 불에타 숨지고 운전사 박씨와 목사 옥지련씨(60·천상교회)는 운전석 옆문을 열고 급히 빠져나와 화를 면했다. 운전사 박씨와 옥목사에 따르면 이날사고는 승합차에 신도 7명을 태우고 서부교회에서 열리는 부흥회에 참석키위해 언양면쪽으로 가던중 오르막길을 넘어서면서 갑자기 운전석 뒤쪽에 있는 엔진부분에서 검은 연기와 함께 펑하며 불길이 치솟았다는 것이다. 경찰은 옥씨등 생존자의 말에 따라 엔진과열로 인한 차량화재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중이다. 사망자는 다음과 같다. ▲김곡지(여) ▲허금선(49·여·울산군 범서면 입암리750) ▲김서원(54·남·〃 747) ▲이근순(48·여·〃 760) ▲박미영(5·여·허씨의 외손녀).
  • 동거 여인의 9살짜리 딸/교회집사,상습 성폭행

    서울동대문경찰서는 5일 S교회 집사 정영복씨(51·문구제조업·성북구 안암동 퍼시픽하우스A동 101호)를 강간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정씨는 지난 80년 4월부터 지난해 4월20일까지 용산구 보광동 60의 1에 전세를 얻어놓고 김모씨(42·여)와 동거해오면서 지난 86년 김씨의 딸(당시 9살)을 강제로 폭행하는등 5차례 폭행해 정신분열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고있다.
  • “먼저 「인간학」배워야 인술 폅니다”(이사람)

    ◎「사랑의 의술」일구기 40년 박선규박사/간호사 부인과 양로원 돌며 수백명 진료/사회봉사도 앞장… 대전선 모르는 이 없어/독학으로 의시합격… 명의되려 문학·예술도 공부 「박선규박사」하면 대전지역에선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대전에서 무려 40여년이 넘게 「박외과」를 운영해온데다 그동안 각종 사회봉사단체의 장으로서 어려운 이웃에 사랑의 인술을 베풀어오고 있기때문이다. ○병원 아들에 물려줘 바로 이 박원장은 지난 1월 병원을 장남인 경진씨(45)에게 맡기고 자신은 75세의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간호사자격증을 갖고 있는 부인 허명희씨(65)와 함께 양로원등 소외된 이웃을 찾아 사랑의 의술을 펼쳐오고 있다. 보통사람같으면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여생을 즐기겠지만 남을 돕는 것이 천직이라고 생각하는 그로서 그게 그렇게 되지 않는 모양이다. 『은퇴할 때는 무엇인가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습니다』 그는 이제 전적으로 이웃을 돕는 일에 매진하고 있지만 너무 늦게 시작한것 같다면서 기력이 남아있는한 어려운 이웃에게 작은 봉사나마 계속하겠다고 말한다. 박원장이 의사시험에 합격한 것은 1940년이라고 했다.의사생활 꼭 50년만에 원장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그는 이제부터 진짜 의사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선 병중에 있는 노인들을 치료해 주기위해서는 침술을 배워 양의에 접목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그래서 병원을 아들에게 인계하자마자 곧바로 대만으로 달려가 중국의약원이란데서 침술을 공부했다.지난3월 귀국한 박원장은 외과전문의로서 풍부한 경험과 대만에서 배워온 침술로 대전은 물론 홍성·서천등지에 있는 9개 양로원을 찾아 5백여명에 달하는 노인들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기 시작했다. 『외과의여서 사람의 맥과 혈을 잘 알고 있기때문에 침술공부가 그리 어렵지 않더군요』 박원장은 아픈 노인들에게 치료만 해주는 것이 아니다.노인들의 신상카드를 일일이 작성해 정기검진을 해가면서 말벗이 되기도 한다.그뿐만이 아니다.노인들의 애로사항을 조목조목 메모해 가지고는 노인들이 필요로 하는책이나 돋보기·내의·물리치료기·생활필수품 등을 비롯해 하다못해 과일까지 사다주면서 「늙어 서러운 이야기들」을 들어준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어서 늘 즐거운 마음으로 다니고 있습니다.왜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기쁨은 나눌수록 커지고 슬픔은 나눌수록 적어진다고 말입니다』 박원장의 순회진료팀에는 부인과 운전기사가 참여하고 있다. 박원장이 진찰과 시술을 할 때 부인은 간호사가 되고 운전기사는 이들을 뒷바라지 하고 있어 훌륭한 이동병원이 되고 있다. 『저를 적극 도와주는 집사람과 운전기사가 정말로 무척 고맙습니다』 ○침술 배워 노인치료 박원장의 고향은 충남 홍성군이다. 이곳에서 태어나 갈산국교를 졸업했으나 시한 폐결핵으로 상급학교에 진학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소년기를 병마와 싸운 끝에 다행히 이겨낸 그는 마음속으로 병든 사람을 고쳐주는 의사가 되기로 굳게 다짐했다. 진학의 기회를 놓친 그는 독학으로 그의 집념을 이뤄냈다. 『당시는 일제 치하여서 공부하는데도 어려움이 많았죠.그러나 글자 그대로 명의가 되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냈습니다』 25세때 드디어 그는 의사시험에 합격했다. 그로부터 충남도 보조의사로 3년,도립병원 외과의사로 3년을 근무한 뒤 1946년에 대전시 대흥동에 박외과를 차려 개업의가 됐다. 지난 87년에는 병원을 가장동으로 옮겼고 지난해말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 장남에게 이 병원을 물려주었다. 『의사는 기계기술자가 아닙니다.인간 특히 병든 사람을 치료해주는 의료인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먼저 인간학을 배워야 합니다』 박원장이 펴는 의사관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학」으로 일관된다. 후배의사들에게도 항상 이를 강조하고 자신도 이를 실천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해 오고 있다고 했다. 특히 이른바 명의가 되기 위해서는 문학과 예술 그리고 철학을 알아야 하고 나아가 자연과 시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거문고 타기 수준급 그래서 그는 평생 의학서적 이외에도 이같은 분야의 책들을 두루 섭렵했다.그는 68세에 이르러서는 거문고를 배워 지금은실력이 수준급이라고 한다. 4년전부터는 화실에도 나가 한국화를 배우고 있으며 지금까지 그려온 그림들을 갖고 곧 전시회도 열 계획이다. 거문고를 타고 그림을 그리는 박원장의 건강 지키기 역시 남다른 데가 있다. 30년째 하루도 빠지지않고 새벽등산을 하고 있으며 최근들어선 헬스클럽에도 나가고 있다. 음식은 야채·생선을 주로들고 「어떤 술이든 한잔에서 그친다」는 원칙을 반드시 지킨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75세의 고령에도 불구,60을 갓넘은 나이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같은 건강을 바탕으로 그의 사회활동은 은퇴에 관계없이 여전히 정력적이고 의욕이 넘친다. 현재도 바르게살기운동 충남도협의회 회장으로 활약하면서 대한적십자사 중앙위원,한국유네스코한국위원회 전국부회장겸 대전·충남지부장,대한 나관리협회 대전·충남지부장직도 맡고 있다. 특히 적십자사와는 올해로 34년째 인연을 맺어 지난 71년에 있었던 남북적십자예비회담 교체수석대표와 본회담대표도 역임했었다. 또 로터리클럽 365지구(서울·경기·강원·충청)총재와 국제로터리클럽 청소년봉사위원회 위원으로 세계적 행사에도 자주 참여한다. 『모든 일을 사명감을 갖고 처리하고 또한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세로 임하고 있습니다』 박원장은 『자신을 필요로하는 곳이 있으면 언제든지 달려가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고 말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모두가 자아를 상실하고 있다는 점입니다.가치관이 전도돼 돈과 권력·향락에 몰두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박원장은 방향감각을 잃은 인간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인간회복운동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특히 인생은 유한하다면서 모두가 결국은 한줌의 흙으로 변한다는 생각을 가끔한다면 우리사회가 훨씬 건전해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박원장은 곧 자신을 되돌아보는 글들을 모아 책으로 펴낼 계획이라면서 내년1월에는 다시 대만으로 건너가 그동안 노인들을 치료하면서 의문으로 나타났던 침술공부를 하고 돌아오겠다고 했다. 슬하에 3남1녀를 둔 박원장은 이야기를 마친뒤 홍성과 보령에 있는 양로원에 갈차례라면서 부인과 함께 서둘러 진료가방을 챙겼다.
  • 감자장수로 변장…들풀로연명/모윤숙씨/명사들의「6·25체험」기록내용

    ◎어린 자녀들과 떨어져 단신 피난길에/유진오씨/온갖 고문·사상교육 받고 겨우 풀려나/복혜숙씨/평양까지 끌려갔으나 미공습때 도주/황신덕씨 「6·25」의 의미가 퇴색해 가고 있다. 불행한 것은 아예 6·25를 모르는 세대도 있다. 급변하는 세계사의 흐름과 탈냉전의 조류속에서 6·25를 거론하면 구태의연한 발상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이런 가운데 현민 유진오 박사,여류시인 모윤숙씨,왕년의 대스타 복혜숙씨,당시 서울신문 정치부장 김영상씨등 사회지도층인사들의 소중한 6·25체험기록이 발견돼 관심을 끌고있다. 그들이 겪었던 한계상황와 심경을 반추해보는 것은 오늘날 또다른 의미를 부여해준다. 체험기록내용은 다음과 같다. ○폭력에 대한 항의/이건호 고대교수 서울이 함락되고도 집에 숨어있었다. K씨로부터 공산주의자들이 인민위원회를 열어 소위 반동분자라고 하는 사람들을 학살한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을 뜨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이미 한강다리가 폭파됐고 또한 공산군들의 만행이 심각해 피난을 떠나기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집에 숨어라디오를 들으면서 전황을 파악했다. 두명의 공산군이 어떻게 알고 은신처에 나타났다. 체포될 뻔했으나 그중 한명이 내책으로 공부한 법학도여서 그의 도움으로 위기를 면할 수 있었다. ○나는 진정 살아있나/모윤숙씨 25일 정오 평양방송으르도 서울역에 전화를 했다. 당시 평양방송은 국방군의 북침으로 전쟁이 터졌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서울역에서는 괴뢰군이 38선을 전면 남침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북괴 내무성 경찰에게 추적을 당하게 됐다. 감자장수로 변장,남쪽으로 피난하면서 들풀과 밭의 곡식으로 연명했다. ○서울에서의 탈출/유진오 박사 50년 6월25일 둘째딸로부터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처음 듣고 38선에서 흔히있는 총격사건으로 대수롭지않게 생각했다. 다음날(26일)공무원 훈련원에 강의하러 가는 도중 비로소 진짜 전쟁이 발발했다는 것을 공식 확인했다. 암담한 심정으로 K씨를 만나러 민중서관으로 갔다. 27일 정부가 수원으로 이동했으며 국군의 이동행렬을 보면서 전황이 몹시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판단,집에 돌아와어린 네자녀를 친척집으로 피신시키고 큰아이들과 집사람을 집에 남겨둔채 피난길을 떠났다. ○내려앉은 방공호/황신덕씨 6월28일 아침 서울이 함락된 것을 보고 인민재판에서 사람들이 처형돼 불안해 하던 중 7월25일 낯선 사람들에게 체포됐다. 7월30일 트럭에 실려 평양으로 실려갔다. 도중에 황해도 남천의 인민법정에 수용돼 사상교육을 강제로 받고 개조센터라고 부리는 수용소에 감금됐다. 조사를 받는 동안 안면이 있는 인사 3백여명을 보았다. 10월초 유엔군의 공습이 심해지자 10일쯤 이름도 모르는 장소로 끌려다녔다. 그러다 어느 굴속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집단학살을 당할 것이라고 예상,죽음을 각오하고 있는데 갑자기 부근에 공습이 있어 이때다 싶어 정반대쪽으로 마구 달렸다. ○여배우가 겪었던 일/복혜숙씨 27일 밤 10시쯤 딸과 함께 피난을 떠나기 위해 의사인 남편과 헤어져 한강을 건너던 도중 김인선 검찰총장 가족과 만나 함께 가게 됐다. 안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수원·천안을 거쳐 시댁이 있는 홍성에서 머물던중 김총장은 정부가있는 대구로 떠나고 나는 다시 서울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친척이 만들어준 위조신분증을 갖고 서울로 향하던중 8월19일 청양에서 체포돼 경찰서에 감금되어 심문을 받게 됐다. 조사관은 김총장이 숨어있는 곳을 대라고 온갖 위협과 고문을 자행했다. 28일 밤9시에 다시 중부내무서로 연행돼 온갖 고문을 받은뒤 특별선전교육을 받도록 명령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피로 뒤범벅 된 부상자치마를 입고/박순천씨 6월25일 아침 공산군의 침략소식을 듣고 긴급 소집된 국회에 참석,끝까지 서울을 사수하기로 한 결정에 따르기로 하고 서울에 남아있었다. 7월8일 정치보위부로 옮겨져 심문을 받은뒤 13일 다른 6명과 함께 석방됐다. 유엔군이 서울을 수복할 때까지 피묻은 치마를 입고 변장,숨어 지냈다.
  • 해발 1,160m 시범목장서 양치기 17년(이런 공무원)

    ◎국립종축장 남원지장 김춘석목부/호롱불 막사서 조수 둘과 외로운 생활/70년대엔 무장공비 나올까 뜬눈 밤샘도/연구소에 실험용 양 보낼땐 자식 잃은 기분 넓은 들과 양떼 그리고 양치기.어린시절 한번쯤은 누구나 꿈꿔봤던 아름답고 평화로운 목장풍경이다.전북 남원군 운봉면 용산리 지리산의 준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선 해발 1천1백60m의 덕두산 바래봉 국립종축장 남원지장(남원지장)에서 목부(목부)로 일해오고 있는 김춘석씨(48)가 바로 우리들이 흔히 동경해오던 동화속의 인물이다.양띠해가 저물어가는 올해까지 17년간이나 양만을 벗삼아 살아온 그는 기능직 공무원 가운데 말단직이지만 앞으로도 동화속의 착하고 묵묵한 양치기로 남아있겠다고 했다. 『아마 제가 양띠어서 양과 인연이 닿게 됐나봅니다.우리나라가 호주와 합작해서 면양시범목장으로 이곳 남원지장을 만든지 3년째 되던 지난 74년에 양치기가 됐습니다』 ○중 중퇴 아쉬워 독학 그는 맨처음 일용직으로 이곳에 취직했다.군제대를 한 다음해인 68년 동네어른의 중매로 동갑내기인 부인한금이씨와 결혼했으나 살길이 막막하던 차에 일용직으로 취직하게 된것만도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었다.열심히 내일같이 일한 결과 기능직 10등급이 됐다고 했다. 그가 태어난 곳은 이곳 목장에서 내려다 보이는 운봉면 동천리이다.험산준령에서 양들을 지키는 일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고 했다.더욱이 가족과 멀리 떨어져 지내야 할 고독감을 이겨내는데는 오랜 기간이 지나야 했다. 『물론 지금도 양을 몰고 산위에서 생활하는게 쉽다고는 볼 수 없지만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산에 오르기가 무서웠습니다.당시 북에서 무장공비들이 자주 넘어올 때 아닙니까.그래서 밤이면 몽둥이를 머리맡에 두고 거의 뜬눈으로 새우기도 했죠』 무리를 벗어나 길을 잃은 양들을 밤늦게까지 찾아 헤맨적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지금은 양의 수가 많이 줄어 1천3백마리 정도지만 초창기에는 4천∼5천마리나 됐으니 그가 한숨을 돌릴 시간조차 없었던 것도 당연했다. 특히 태풍이 심하게 불거나 비가 많이 올 때는 양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더욱 많았다.어떤때는 비바람을 뚫고밤길로 바래봉을 완전히 넘어 뱀사골부근까지 이들을 찾아 나선적도 있었다.그래서 그의 산타는 실력은 일반인이 2∼3시간 걸리는 곳을 1시간이면 충분히 주파한다고 했다. 그에게 가장 가슴아픈 일은 친자식처럼 키워온 양들을 자기손으로 골라 전국의 각병원과 연구실에 실험용으로 보낼때다. 『양은 성격이 온순해 다투거나 싸우는 일이 없고 인내심도 강합니다.각박한 요즘세상에서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 많은 동물이지요』 그는 보조수 2명과 함께 산꼭대기에 마련된 4평남짓한 막사에서 생활을 하며 양들을 돌본다.이곳 막사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그래서 밤에는 등불을 켜야 한다.그는 집이 가난해 중학교를 중퇴했기 때문에 호롱불밑에서 못배운 공부도 독학으로 한다. ○월급 절반 항상 저축 『동료가 쌀이나 반찬거리를 가지러 내려갔다가 올라올 때가 제일 기다려집니다.가끔씩 가족들 소식이나 그곳에서 일어난 이야기등을 한아름 가지고 올라오거든요.그럴때면 「사람사는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어요.떨어져 살고있는 가족들에게는 미안하기만 하죠』그는 풀이 새파랗게 돋는 6월부터 양떼를 몰고 5백㏊에 달하는 바래봉 산꼭대기에서 양과함께 지내다 10월말이면 가족이 살고 있는 운봉면 용산리 축사로 양떼를 몰고 내려온다. 그는 부인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과 함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특히 첫째 둘째인 미숙(22) 미정양(20) 셋째 넷째인 창진(18)창길군(14)등 자녀들이 아무 불평없이 훌륭하게 자라준 것이 대견스럽다는 것이다. 『옛날에 쌀 1가마값이 9천원을 했는데 월급이 1만3천원이었으니 집사람이 가계를 꾸려가는데 어려운 것은 당연한 것이죠.아이들도 남들처럼 잘입히고 잘먹이지도 못했지만 저를 이해하고 따랐습니다.』 ○정년까지 양과 생활 월세 3천원짜리 방에서 시작해 자식들을 키우느라 아직 집한칸도 마련하지 못했지만 자식들이 양떼들처럼 곱고 곧게 자라주고 있어 그저 감사할 뿐이라고 했다. 지난해에는 융자 4백만원을 얻어 근처 서천리에 택지 60평을 샀다.그리고 내년쯤에는 그동안 저축한 돈으로 이곳에 가족들과 함께 살 집을 지을 예정이다.그는 매월월급의 절반정도인 30만원가량을 꼬박꼬박 저축하고 있다. 『정년이 될때까지 계속 양들과 함께 일할 생각입니다.몇년전까지는 퇴직후에도 양을 길러볼까 했는데 우루과이라운든가 하는것 때문에 약간은 망설이고 있습니다.죽을때까지 양과 함께 하겠다는 당초 생각이 이뤄질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저는「평생양치기」이에요』 묵묵히 일하는 이런 공무원이 있기에 지리산의 차가운 초겨울 바람도 결코 매섭지만은 않은것 같았다.
  • 청백리의 귀감 이호종 청양군수(이런 공무원)

    ◎「정년군수」 전재산이 달동네 13평 집/민원인이 놓고간 쇠고기 문밖에 매달고/직원 숙소 현관서 청탁막아 「문지기」 별명/결혼 축의금도 돌려보내는 “결벽”… 가족들이 토끼 길러 생계 보태 「청백리」 예부터 이들이 많으면 국운이 성했고 적으면 그렇지 못했다. 한결같이 이들은 국가를 지탱하는 동량으로 국난을 타개 했으며 국민들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래서 인공위성이 날고 달을 정복한지도 2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이들을 국가는 원하며 상을 내리기도 한다. 「깨끗해야 백성이 따른다」는 이치를 단지 「모든일을 내집일 같이 하되 신세는 지지 않는다」는 소박한 신조로 실천해온 오늘의「청백이」는 천안에서도 승용차로 족히 2시간은 가야하는 내륙의 오지인 충남 청양군에 있었다. 이호종청양군수(59)는 단벌 양복을 5∼6년씩 입으며 한때는 점심을 소금밥으로 대용하는등 근검 절약하는 내핍생활을 해오면서도 그동안 31년간의 공직생활중에서 주위의 유혹에 한눈판 일 없이 오직 「정의」로만 봉직해온 공무원이었다. 그는 지난달에 퇴직원을 내놓았다.면사무소 서기보로 출발해 군수자리까지 올라봤으니 여한이 없다고 했다.그의 전재산은 대전시 중구 대사동 산중턱 달동네에 있는 13평짜리 집이 고작이다. 『공무원은 주민을 위해 일을 잘한다는 칭찬을 들어야지요』그는 공무원이 청빈하다는 말을 듣는 것은 공무원의 기본자세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군수의 이런 자세때문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생활신조를 귀감으로 삼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도 그는 도시락을 싸오거나 아니면 반드시 청내식당을 이용한다. 공무외에는 관용차를 절대로 타지 않았고,대전시청과 충남도청에 근무할 때는 버스타기도 꺼려 대사동 집에서 꼬박 30분을 걸어 출퇴근했다는 것이 주위의 이야기이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4명의 누이동생을 출가시켰죠.아들 두명은 대학을 나와 결혼해 잘 살고 있습니다.남들은 박봉이라 할지 모르지만 국가에 봉사한 만큼의 월급만으로도 생활할 수 있어요.공무원의 의무는 무한정합니다.그렇다고 남의 신세를 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신세안지기 신조로 한때는 「결벽증」이 심하다는 비난도 받았다고 했다. 공무원의 의무가 무한정하다는 말은 지나온 그의 발자국을 조명해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동안 40여차례에 걸친 전보 또는 승진발령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발령사실조차 주위에서 알려줄 정도로 무관심했다고 한다. 언제 어떤자리로 옮겨가도 자신을 필요로 한다면 기꺼이 가야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지난 84년 대전시 감사실장에서 충남도 감사담당관으로 발령을 받았었습니다.감사실장은 지방서기관이고 감사담당관은 국가사무관으로 강등이 된 셈이었지요.그래도 저는 그 자리로 기꺼이 갔습니다』 꼭 자신이 적임자라서 불렀다면 오히려 보람있는 일이라는 생각에서였다고 했다.사실 그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기에 남들이 가기 싫어하는 감사·기획·예산·법무계통의 자리에 오랜기간을 있었다. 『공직생활 자체가 보람이었지만 굳이 보람된 일을 꼽으라면 아산군수 시절 군청사를 새로 지어 옮긴 것입니다』 구청사를 팔 때는 일부업자로부터 「싸게 팔면 거액을 건네주겠다」는유혹도 있었지만 그는 이를 뿌리치고 6개월간 업자들과 승강이를 벌인 끝에 예상가격보다 5억원을 더 받아 냈다.당시 이 일을 놓고 「관청이 도둑」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감사관 시절에는 직원들의 숙소 현관 옆방을 차지하고 외부인들의 청탁을 막아내 「문지기」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가 공무원생활을 하면서 4명의 여동생과 두아들을 결혼시키는 동안 단한차례도 동료들에게 알리지 않았던 사실도 그의 곧은 성품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대목이다. 지난 70년 논산군 감사실장시절 둘째누이를 결혼시켰을 당시 유일하게 동료직원들이 참석했는데 그때는 신랑측에서 보낸 청첩장을 보고 왔으나 이들이 낸 축의금은 곧 돌려 주었을 정도였다. 충남지방공무원 교육원장으로 있던 지난해 3월 맏아들 결혼식 때였다.교육원 간부 한명이 이를 알고 「동료직원만이라도 참석하게 해달라」고 간청했으나 그는 『그러면 날짜를 바꾸겠다』고 해 직원들이 참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행사를 치르고 나면 그는 꼭 부하직원들을 집으로 불러 평소 때처럼 저녁식사를 함께 해오곤 했다. 그의 강직한 성품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사건은 두차례의 「고기 소동」이었다. 처음은 부인 신부희씨(53)와 결혼한지 채 몇달도 되지않았던 60년의 일이었다.동료 2명이 결혼축하차 쇠고기 두근을 사들고 갔다가 부인 신씨만 있어 고기를 건네주고 그대로 돌아갔다.이 사실을 뒤늦게 안 이군수는 신부가 눈물을 흘릴 정도로 크게 꾸짖었다. 이를 본 주위사람들이 『너무하지 않느냐』고 말하자 그는 『앞으로 오랜기간 공직에 머무를 텐데 지금부터 집사람을 바르게 살도록 가르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그랬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또 한번은 공주군청 행정계장으로 있을 때의 「고기소동」이었다.그때도 누군가가 쇠고기 두근을 집으로 전달했다.부인은 한번 혼난 일이 있어 되돌려주려 했으나 고기를 갖고 온 사람이 그대로 가버려 돌려 줄 수가 없자 대문기둥에 이틀동안이나 매달아 놓았다.결국 고기는 썩어 못먹게 되었고 이를 안 동료들이 이웃집에라도 주지 그랬느냐고 하자 『어떻게 옳지 못한 뜻을 남에게 전해주느냐』고 했다는 것이다.이밖에 한 여직원이 이군수가 떨어진 양말을 신고 있는 것을 보고 양말을 선물했다가 돌려 받은 일등 그의 신세 안지기 일화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제가 오랜 공직생활동안 한결같이 자세를 흐트러 뜨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와 집사람,그리고 두아들과 딸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은 어려운 가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토끼를 길렀고 두아들과 딸은 집에서 학교를 다니기 위해 스스로 「서울 유학」을 포기하고 가까운 충남대학에 진학했다. 『공무원은 언제나 겉과 속이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그래서 틈만나면 「독행불책영 독침불책금」이라는 한학자 김집선생의 말씀을 후배공무원들에게 말해주곤 합니다』 공무원은 혼자 가더라도 그림자에 부끄럽지 않아야 하고 혼자 잠을 자더라도 이불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후배공무원들에게 꼭 남겨주고 공직을 떠나겠다는 그에게서 자랑스런 공무원의 참모습을 보았다.
  • 「새생활운동」 뒷바라지/김용은씨(이런 공무원)

    ◎새 질서 정착위해 “24시의 뜀박질”/향락·퇴폐업소 계도… 자정 퇴근 일쑤/2∼3일마다 방범대 새벽 순찰 동행/“한달 한번 얼굴 마주했으면…” 아내 푸념 듣기도 춘천시민들은 요즘들어 시내가 예전에 비해 퍽 깨끗해진 데다 시민들의 생활질서도 점차 자리잡아 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고 곧잘 이야기 한다.불법주차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노상 적치물도 찾아보기 힘들며 과소비 풍조도 고개를 숙이고 있는것 같다는 것이다.그러나 시민들은 전적으로 자신들의 각성과 올바른 의식변화에 의해서만 이렇게 됐다고는 믿지않고 있다.그렇다고 한 30대의 젊은 공무원이 낮과 밤을 잊고 차근차근 뒷바라지를 해온 줄도 잘 모른다. 이 주인공은 소리소문없이 자신주변의 작은 일부터 하나하나 몸소 실천해가며 맡겨진 업무를 단지 충실히 한다는 자세로만 일해 오고있기 때문이다. ○민간차원 운동 지원 춘천시청 총무과 시정계 행정주사보 김용은씨(33). 자신은 물론 누구의 눈에도 비치지 않았던 작은 일이 쌓여 18만명이나 살고있는 춘천의 분위기를 바꿔나가는 「태산」이 될 줄 그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왜 기자가 그와 만나려하고 무슨 일을 해왔는가를 물어보기까지는 한동안의 설명이 필요했다. 『제가 속하고 있는 총무과 시정계의 일가운데 하나가 무질서·부조리·과소비등 나쁜 습성을 바로잡자는 민간차원의 운동을 지원하는 것입니다.그래서 저부터 근검 절약하고 올바르게 살고자 했고 시민 모두가 이런 자세를 갖게되면 좋겠다는 생각뿐 이었습니다』 ○공무원 수범 보여야 공무원이 매사에 모범을 보이고 시민들에게 신뢰감을 심어줘야 한다는 김씨의 생각은 그의 하루일과에서 잘 나타나고 있었다. 그가 퇴근시간이 몇시인지를 잊은지는 오래됐다.매일 자정이 가까워서야 퇴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새질서 새생활 실천운동」이 시작된 지난해 10월이후부터 그의 일과는 더욱 바빠졌다. 시민들의 참여분위기 확산을 위한 홍보물 제작,이를 추진하는 민간단체 지원,게다가 시정계의 고유업무등 잠시 나마 쉴틈이 없다. 밤에는 유해업소 계도와 단속외에도 자율방범대의 활동지원….거의 일에묻혀 살다시피 하고있다. ○일요일도 19시 퇴근 1주일에 2∼3일 정도는 자율 방범대 사무실에 들러 방범대원들과 함께 새벽2시까지 방범활동 현장을 돌아 보기도 한다.그에겐 물론 일요일도 잊어버린지도 오래다. 가장 일찍 퇴근한 때가 하오 7시쯤이라고 하길래 평일인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일요일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일요일인 지난 6일엔 올들어 처음 아들을 데리고 구룡폭포에 놀러 갔습니다.아이가 그렇게 좋아할 수 없더군요.집사람도 이렇게 밖에 나오진 않더라도 한달에 한번쯤은 얼굴이라도 마주할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한마디 하더군요』 그는 『얼마만에 쉬어본 일요일이냐』고 묻는데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는 『이젠 버릇이 돼 일요일이라도 눈만 뜨면 출근해 밀린 업무를 처리하게 된다』고만 했다. 주위 동료들이 함께 노력한 결과 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지만 그의 이같은 「퇴근이 없는 하루」가 해를 거듭하면서 춘천시내에서만 32개대의 자율방범대가 조직됐고 23개 동에는 방범대후원회까지 생겨 나게 됐다는 것이 동료들의 설명이다. 거리질서 확립,유해환경업소 계도등으로 거의 안다녀본 곳이 없게되다 보니 이제는 경찰관,국민운동단체 회원,일선 동사무소 직원들 뿐아니라 상당수의 시민들까지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는 잘 모르지만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다. ○「10% 절약」에 앞장 『최근 들어서 더욱 바빠졌어요.과소비 추방을 위한「10%절약운동」의 범시민적 확산을 위한 지원임무가 저에게 새로 맡겨졌거든요. 과소비 추방은 본인 스스로의 의식전환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습니다.생활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먼저 나서주면 좋겠습니다』그는 박봉이지만 공무원이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있다. 수당등을 포함,50여만원의 월급 가운데 절반가량을 저축하면서 살고있는 김씨는 전기밥솥도 집에서 사용하지 않는다. 늦게 퇴근하다 보니 집에서 자신이 올때까지 켜놓던 마루의 불도 최근 들어서는 켜지 못하도록 했다.버스가 없으면 30분 가량을 걸어 집으로 가는것을 생활화 하는등 자신부터 「10% 절약」에 앞장서고 있다. ○76년 면서기로 출발 지난 76년 2월 춘천제일고교를 졸업한 그는 그해 6월 당시 5급인 행정서기보로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사무소에서 공무원의 첫발을 디뎠다. 『강원대에 합격했었습니다.어려운 가정사정때문에 저보다 공부 잘하는 동생 용진이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진학을 포기 했었습니다』 그가 공무원이 된데는 전매청에서 근무하다 정년퇴직한 아버지 김기수씨(74)의 영향이 크다.당시 어린 나이였지만 국가를 위해 봉사하시는것 같아 자랑스러웠다고 했다.현재 형 용선씨(35)도 춘천선거관리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는등 공무원 가족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의 작은일도 여럿이 모이면 애국이 될 수 있는 공무원의 신분이 대학진학 포기라는 아쉬움을 상쇄할 수 있다는 그는 「우리 가족은 공무원 가족」이라는데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비록 14평짜리 임대아파트이지만 14년간 개미처럼 일하고 모은 끝에 지난해 시내 후평동에 보증금 2백40만원을 주고 보금자리도 마련한 사실이 그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고 있음을 그에 환한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 「교통할아버지」의 작은 봉사/김재순 사회1부기자(현장)

    ◎학교앞 네거리서 16년째 안전파수 『어쩌다 몸이 아파 아침에 교통정리를 못하는 날엔 행여 학생들이 사고라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돼 오래 누워있지도 못합니다』 주말인 31일 상오8시30분쯤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700 네거리.16년째 이 거리에서 하루도 거르지않고 교통정리를 해온 남원식씨(62)가 힘차게 팔을 휘저어 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 거리 주변에는 명덕중·고,화곡중·고,덕원중·고등 10여개의 학교가 모여있어 아침등교시간이면 한꺼번에 몰려드는 학생과 시민들로 항상 붐비는 곳이다. 그러나 서울시내 변두리라서 그런지 아직 신호등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학생들은 물론 주민들 모두가 늘 교통사고의 위험을 느끼는 곳이다. 남씨가 이곳에서 교통정리를 시작한 것은 지난 77년부터. 31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난 남씨는 농업전문대를 졸업,영농인의 꿈을 키우기도 했으나 6·25전쟁이 터지자 곧바로 군에 투신해 화랑무공훈장을 받을만큼 전공을 세웠다. 지난 66년 제대한 그는 고향에서 10년남짓 마을도로포장등 지역개발에 힘을 쏟다 서울로 올라왔다.발산동에 이사를 마친 그는 무엇인가 이곳에서도 사회봉사활동을 해야겠다고 일거리를 찾던터에 어린 학생들이 큰길을 건너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위험천만한 모습을 보고서는 교통질서 자원봉사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처음 교통봉사에 나선 남씨를 보고 사람들은 『팔자좋은 노인네가 시간이 남아 그러겠지』라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했지만 남씨의 실생활은 참으로 어려운 처지였다. 거리에서 폐지나 빈병을 모아 팔아 번 돈과 부인 박공분씨(56)가 파출부 일을 하며 버는 돈이 수입의 전부였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있다. 『개인적으로는 무척 어려운 때가 많지만 어린 학생들의 맑고 티없는 얼굴이 눈에 어른거려 교통정리를 그만둘수가 없었다』는 남씨는 『이제 집사람도 나의 봉사활동을 이해,아침마다 행장을 차려주고 있다』고 대견해했다. 그의 이같은 봉사활동덕인지 하루 2∼3건의 크고작은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던 이곳에선 최근에는 교통사고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중학교때부터 이거리로 다닌 이인혜양(17·M여고1년)은 『교통할아버지 때문에 마음놓고 다닌다』고 고마워했다.
  • 잼버리장 찾은 최고령 대원 윤문식옹

    ◎“일제치하서도 스카우트 정신 지켜”/조선척후단 창립단원… 남해지부 결성/「1일1선」 실천하며 독립운동도 참가 10일 세계잼버리 대회장을 찾은 한국최고령스카우트 윤문식옹(93·경남 남해군 남면 당황리)은 깊은 감회에 젖었다. 전세계에서 모인 청소년들의 구김살없는 얼굴과 훌륭한 시설을 둘러보며 지금으로부터 반세기가 훨씬 넘은 지난날 일제의 박해를 피해 스카우트활동을 하던 때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리라. 부인 황다이 할머니(77)와 아들내외,손자들과 함께 대회장에 도착한 윤옹은 대회장입구에서부터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김석원 총재등 대회관계자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은 윤옹은 『스카우트 정신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름없이 고귀한 것』이라는 말과 함께 작은 정성이라며 금일봉을 전달했다. 윤옹은 조선소년군과 함께 한국보이스카우트의 전신인 조선소년척후단 창립단원. 기독교 신자였던 윤옹은 22년 경남 마산 문장교회 주최의 여름성경학교 강습회 참가중에 정인과목사로부터 『궁극적으로 조국독립에 기여하자는 것이 조선소년척후단 운동의 취지』라는 말을 듣고 관심을 갖게 됐다. 서울로 올라가 YMCA에서 상세한 취지와 목적·조직·활동방법등을 터득한 윤옹은 남해로 내려와 동지들을 규합,지도자 8명과 대원 26명등 34명으로 조선소년척후단 남해지부를 결성했다. 신념만큼은 누구보다 투철했지만 막상 활동을 전개하려고 보니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교재라고는 윤옹이 중앙본부에서 어렵사리 구해온 「소년척후교본」한권이 전부였다.복장도 평상시의 옷 그대로 제각각이라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활동을 펼치기에는 너무 벅찼다. 황다이 할머니는 며칠을 꼬박 길쌈에 매달려 베를 짜고 물감을 들인뒤 손수 바느질을 해 단원들의 옷과 모자를 만들어내야 했다. 다음에는 일본경찰의 눈을 피하는 일이 뒤따랐다. 동네 주민들이 모아준 독립자금을 상해임시정부에서 파견된 밀사에게 전달하느라 수화(수화)까지 익혔고 때로는 일본경찰에 꼬리를 밟혀 몇달씩 산속에 숨어지내기도 했다. 남해지부의 특징은 단원 모두 10원씩의 비상금을 늘 지니고 있었다는 점. 당항교회 장로와 집사등 어른들이 논밭을 팔아 마련해 준 이 돈은 당시 시골은 물론 큰 도시에서도 아주 큰 액수로 끼니를 거르거나 병든 이들을 보면 그 자리에서 나누어 주는데 쓰여졌다. 윤옹은 손자뻘이 되는 이번 대회 참가대원들에게 『일일일선(일일일선)의 스카우트정신을 항상 마음에 간직해 훗날 세계평화에 앞장서는 지도자로 성장해줄 것』을 당부했다.
  • 남녀차별 구인광고 단속/노동부/응시자격제한등 연말까지 추적

    ◎위반 기업체 색출,사법처리키로 노동부는 13일 기업체의 사원모집 단계에서 남녀차별을 시정하기 위해 오는 연말까지 일간신문에 나오는 사원모집공고를 모두 분석,위반업체를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사법처리하기로 했다. 노동부는 이날 전국 44개 지방노동관서에 공문을 보내 오는 20일부터 12월말까지 일간신문에 실리는 관내기업의 채용광고를 분석,노동부가 연초에 발표한 「모집·채용상의 남녀차별개선지침」을 어긴 업체는 입건조치하라고 지시했다. 지침은 ▲일종직종에 남자만 모집하는 것 ▲응모자격별로 남자만 뽑는 것(대졸남자 사원모집 등) ▲병역필 또는 면제된 남성 등의 표시로 응시자격을 제한하는 것 ▲여자에게만 미혼,용모단정 등을 조건으로 하는 것 등을 대표적인 차별모집사례로 꼽았다. 노동부는 기업체가 지침을 어긴 광고를 냈을 경우 위반사항을 고쳐 다시 광고를 내도록 시정명령하고 기업체가 이를 듣지 않을 경우 남녀고용평등법 위반혐의로 입건 송치할 방침이다.
  • 4월 평양 국제예술제/미주교포 1백명 참가

    【로스앤젤레스 연합】 평양에서 열리는 4월 국제친선예술전에 약 1백여명의 미주교포들이 참가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축전 참관단 및 예술인단 모집사업을 펴고 있는 「미주 한민족음악가협회」와 「조국통일 북미주협회」는 15일 예술인단 20여명,참관인단 70여명,통협관계자 10여명 등 모두 1백여명의 교포들이 평양예술축전 참가차 북한을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평양축전참가 예술인들은 이달말 로스앤젤레스에서 예술제를 가진뒤 평양으로 떠날 예정이다.
  • 유권자가 할수 있는 일(사설)

    시군구 의원을 뽑는 지자제선거가 막을 올렸다. 8일부터 시작된 후보자 등록을 마치고 나면 선거운동의 열전은 본격화 할 것이다. 여기서 뽑혀진 의원들이 모여 내가 사는 마을의 살림을 의논하고 결정해가게 될 것이다. 시민들로서는 이 처음으로 실시되는 선거제도에 대해 아직도 낯선 점이 많다. 어떤 역할을 하고,우리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입힐지를 그저 관념으로나 짐작할뿐 손에 잡히게 이해되지 않는다. 문을 나란히 한 아파트 이웃집사람 조차도 모르고 사는 도시사람들에게는 그 지역에 어떤 유능한 인사가 있고 어떤 인격을 지닌 사람이 있는지 파악도 제대로 안된다. 그런 중에서 누군가를 뽑아 지역 일을 의논하고 결정할 역할을 위임해야 한다는 것이 막연하고 모호하다. 그런줄을 알기 때문에 선거운동은 더 치열하고 열띨 것이다. 탈법과 부정을 무릅쓰고 온갖 방법을 동원할 것이고,유권자는 거기 휘말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어서는 안된다. 지나간 세월은 어찌 되었든 이제부터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우리 손으로 우리 대표를 뽑는 일을 제대로해가야 한다. 능력이 있고 생각이 올바르고,정의롭고,정서적으로 균형이 잡힌 제대로 된 대표라야 우리 대신,우리를 대변할 수 있다. 적어도 부정하고 불법한 사람은 곤란하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싫든좋든 우리대표를 내손으로 뽑아 일을 맡겨야 하고,잘못 뽑은 대표때문에 보는 손실에 대해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지자제의 기초의회 의원들은 그중에서 가장 섬세한 직접 단위의 대표들이다. 이 자리를 장차 중앙정치에의 진출을 위한 징검다리로 딛고 가려는 정치꾼에게 유린당하게 해서도 안되고,권력사냥의 근거삼아 탐욕스럽게 덤벼드는 정상배에게 내주어도 안된다. 별로 도덕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치부한 졸부의 치장용 명예직으로 이용당하게 해서도 안된다. 모든 선거가 타락된 방법으로 치러져 오는 불행을 우리는 그동안 겪어왔다. 그 타성때문에 많은 후보자들은 구시대식의 선거운동을 펼 것이다. 불법을 저지르고 금력을 동원하려 할 것이다. 우리 또한 선거가 있으면 「선심」이라는 횡재가 따를 것이라는 생각에 길들여져 왔다. 그러나 그 하찮은 미끼에 걸려서 우리의 보다 크고 장래가 걸린 중요한 권리와 이익을 던져주고 말게 되어서는 돌이킬수 없는 손실이 온다. 그런 것에 넘어가지 않아야 나와 나의 가족의 미래를 인질잡히지 않게 된다. 시민이 눈을 바로 뜨고 불의와 부정을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어야만,후보들의 버릇이 고쳐진다. 법도 있고 벌칙도 있고 감시기구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을 다 묶어도 유권자의 태도만한 힘에는 못미친다. 시민들이 이번에 그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 당리당략에 이용하느라고,시민의 손에 닿기 전에 선도도 잃어졌고 기대치도 떨어지게 되어버린 것이 지자제다. 그러나 지자제는 의회민주주의의 보석같은 제도다. 우리와 우리 삶의 주변을 다스리는 직접 기능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이 제도로 우리는 민주주의를 학습한다. 시답잖게 생각하고 포기해서도 안되고 함부로 해서는 더욱 안된다. 유권자가 얼마나 냉정하고 엄격한지 본때를 보여 줘야한다.
  • 진실 밝히는 증인의 용기/김균미 사회부기자(현장)

    ◎위압적 피고에 당당한 대응 감명 2일 상오10시 서울 서초동 서울형사지방법원 311호 중법정. 보복을 두려워하는 증인들의 출석거부로 그동안 재판이 지연돼온 국내 최대 폭력조직 「서방파」 두목 김태촌피고인(42)의 공갈 등 사건 제10차 공판이 서울형사지법 합의지부(재판장 김권택부장판사) 심리로 열리고 있었다. 이날 재판에는 조모목사의 아들과 결혼해 딸까지 둔 상태에서 별거를 하던 탤런트 출신 나모씨(29·여)의 이혼문제를 놓고 김피고인으로부터 온갖 협박을 당한 나씨의 부모가 강제 구인돼 증인으로 나왔다. 집안 문제인데다 김피고인측의 보복이 두려워 법원의 증인출석 요구를 받고도 세차례나 나오지 않았던 나씨의 어머니(51)는 『지난해 1월2일 하오2시부터 정체불명의 남자로부터 「남의 가정을 파괴했으니 너희들도 생선회칼로 모두 죽여 버리겠다」는 내용의 협박전화가 밤새도록 걸려왔다』면서 『이 일로 가족들은 외출조차 제대로 못하고 극도의 불안상태에서 며칠을 지냈다』고 증언했다. 이어 아버지 나씨도 『영등포경찰서 소속이모형사의 연락을 받고 김피고인을 만나러 나갔다가 김피고인이 남의 집사정을 너무 훤히 알고있어 협박전화를 건 장본인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씨 부부의 증언으로 입장이 불리해진 김피고인은 나씨에게 『내가 언제 당신가족을 몰살하겠다고 했느냐』고 맞서 나왔다. 나씨는 이에대해 『지금까지는 창피스러운 생각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당신이 이혼을 시키지 않으면 우리 가족을 쓸어버리겠다고 협박해 가장으로서의 부끄러움도 잊고 무릎까지 꿇으며 살려달라고 빌지 않았느냐』고 폭로한 뒤 『이런 것들이 협박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당당하게 증언했다. 그러고는 분함을 못이기겠다는 듯 흐느끼는 울음을 터뜨렸다. 김피고인도 이에 질세라 『당시 현장에 있던 이형사도 내가 당신집에 찾아간 적도 없고 협박한 사실도 없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는데 설마 형사가 거짓말을 하겠느냐』고 협박사실을 거듭 부인했다. 이에대해 나씨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이형사도 당신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잘라말해 지난 9차례의공판과정에서 피고인답지 않게 위압적이고 뻣뻣한 태도를 보여온 김피고인에게 그 어느 증인보다 용감하게 맞섰다. 한시간남짓 힘들게 증언을 끝내고 경찰의 보호아래 법정을 나서는 두 부부의 뒷모습을 보며 법정에 선 피고인에게 진실을 밝히는 것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 「기부금 입학」 적극 검토할 때/김용운(서울시론)

    ◎과외비·「뇌물」로 쓰는 돈 교육투자 유도를 어떤 면에 있어서도 장점은 항상 단점을 내재하고 있으며 거꾸로 어떤 단점일지라도 때로는 장점일 수 있다. 그러므로 불행한 일을 범했다하여 스스로에게 자학적인 매질을 가하는 일은 금물이다. 한국인의 국민성에도 장단점이 동시에 내재되어 있는데,대체로 다음과 같이 우리의 특성을 제시해도 무방할 것이다. (1) 강한 생명력으로,그속에는 끈질긴 집요함이 내재되어 있다. 이 강한 생명력은 세계적인 경제성장력을 과시하여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아래 불과 30년만에 GNP를 80배나 성장시켰다. (2) 철저한 평등정신이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보편사상도 여기에서 나왔다. 가장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로 일컬어지고 있는 영국에서도 귀족과 평민 사이에는 엄연한 구분이 있다. 심지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가 계급에 따라 다르며 얼마전까지만 해도 음식점의 출입문까지 다를 정도였었으니 귀족학교와 평민학교의 구별이 있는 것은 당연했었다. 한국인의 철저한 평등의식은 마침내 한국을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균질적인 사회로 만들어 낸것이다. 7천만이 넘는 인구인데도 성씨의 개수는 겨우 2백60개 정도이며 그중에서도 대부분이 김,이,박씨로 임금의 성씨를 사용하고 있다. 서양인의 성씨에 스미스(Smith 대장장이),위버(Weaver 직인),스튜어드(Steward 집사)와 같은 직종의 성을 당당하게 내세우는 것과 일본이 무목이니 견총과 같은 하찮은 이름을 성씨로 삼는 것과 크게 다르다. 한국인의 교육관은 오늘날에도 지난달 과거시험용의 학문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 우리에게 있어서의 교육은 오직 출세와 가문의 성장에 있으며,서울대에 일등으로 입학하면 마치 조선시대의 장원급제와 같은 일로 여겨 신문,TV 등이 온통 떠들썩하다. 평등의식이 강하기에 누구나가 대학에 가야하며,강한 생명력이 있기에 출세욕이 왕성하며 대학을 출세의 수단으로 삼는다. 그리하여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교육열을 자아낸 것이다. 해방이후 6·25라는 민족적 수난을 당하면서도 한국이 급속히 발전할 수 있었던 활력의 원천은 교육열 때문이었다. 농사일에 빼놓을수 없는 소까지도 팔아서 공부를 시킨다하여 상아탑이 아니라 우골탑이라는 부를 정도였다. 하지만 그로 인해 산업화사회로 돌입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분명히 높은 교육열과 억척스럽게 일하는 자세는 한국인의 장점이다. 그 자체만을 생각한다면 아무도 그 사실을 나무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지나치자 엉뚱한 부작용을 나타냄으로써 오늘날 사회악으로 현실화된 것이다. 과도한 입시경쟁은 수험사업이라는 기현상을 낳았다. 80만 대학수험생만을 대상으로 해도 이들이 개인당 1년간 소비하는 수업비용(과외비·학원비 등)은 가히 천문학적이다. 비싼 과외일수록 효과가 있다는 미신도 있어 과외비는 더욱 높아진다. 돈만 쓰면 합격이 가능하다는 풍조는 거의 대부분의 학부모의 상식이 되어 갔다. 그간 「잘 살아보세」의 구호에 도취해온 국민은 경제성장과 더불어 생긴 돈을 어딘가에 써야만 했다. 잘 사는 것이 목적이기에 잘 사는 것을 남에게 보여야만 한다. 이것이 한쪽에서는 과소비현상으로 나타나고 또한 고액 과외를 상식화하게 했다. 돈이 많아 그 돈으로 입학할일이 있다면 누가 그 유혹을 물리칠 수 있을까? 요즘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부정입학사건도 이러한 사회적인 구조에서 잉태한 병폐임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이번 적발된 부정입학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여론이 많다. 근본적인 병인이 엄존하는 만큼 실제로 그럴 수도 있다. 지금까지 으레 문제가 제기되면 일벌백계주의로 몇사람 노출된 자만을 엄벌하고 병인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없었던 것이 상례였다. 때문에 걸린 자는 재수가 없는 사람일 뿐이라는 말이 나온다. 물론 당한 자는 권력·금력의 부족함을 한탄할 뿐이다(나보다 더한 일을 한 사람도 많은데 오로지 「백」이 없어서 적발당했다는 넋두리를 한다). 그리하여 마치 자리가 일시적으로 목을 움츠리는 분위기만 생길 뿐 근본적인 대책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특히 염려스러운 일은 모처럼 학원의 자율화가 거론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하여 입시정책이 보다 경직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이 부정입학은 평등의식이 강한 국민감정을 충분히 자극하여 감정적인 여론이 대두되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보다 적극적으로 학원과 입시 대책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비싼 과외는 과소비와 같은 차원의 것이다. 돈은 많은데 그 돈을 적절하게 쓸 줄 모르는 데에서 나온 현상이다. 수험공부란 아무리해도 톱밥에 톱질하는 비생산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과외비용은 세계제일인데 비해 각종 교육부문에 정식으로 투입되는 액수는 매우 적다. 실제로 한국의 대학에 투자되는 금액은 후진국 수준이고 학교의 지적분위기도 매우 낮다. 신학기에는 으레 「등록금 인상」시비가 학원의 연례행사처럼 되고 있다. 「등록금 인하하여 부모님께 효도하자」라는 웃지못할 구호는 있어도 보다 나은 교육환경을 들고 나오는 예는 별로 없다. 레슨이나 과외와 부정입학에 투자되는 금액은 세계제일의 수준인데 학교에 투자되는 돈은 그에 반비례한다는 사실은 바로 한국민의 경직화된 형식주의의 소산인 것이다. 요컨대 오늘날 우리가 앓고 있는 학원문제는 한국적 원형을 교육의 현실에 적극적으로 승화시키는 장치가 제도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교육에 투자하는 돈은 아무리 고액일지라도 정당하게 쓰이기만 하면 결코 과소비는 아닐 것이다. 생명력이 강하여 향상심이 교육에 결부되어 교육의 질이 높아질 것이다. 문제는 돈으로 간판을 사고 형식적으로 하는 교육에 있다. 눈 가리고 아옹 식의 일시적 대응만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것이 오늘날 말썽을 일으키고 있는 부정입학의 문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때 선진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기부금 입학제도 또는 예·체능계의 특별학교 창설과 같은 제도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입학이 곧 졸업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어야 함을 강조해야 한다.
  • 종교시비 살인/경찰,20대 영장

    【광주=최치봉기자】 전남 여수경찰서는 22일 자신이 믿는 종교를 비난했다는 이유로 친구의 어머니를 살해한 고영진씨(25·광주 C대 3년 휴학·여수시 동산동 463의2)를 살인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고씨는 지난 21일 하오 전남 여수시 군자동 63 친구 최정환씨(26) 집 마당에서 최씨의 어머니 김귀심씨(66·교회집사)가 평소 자신이 심취해 왔던 D종교를 『악마의 집단』이라고 비난한데 앙심을 품고 김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 안수기도 받다 20대 처녀 숨져

    21일 상오6시쯤 서울 노원구 월계3동 319의4 최북현씨(63·여)의 셋째딸 유미선양(21)이 안방에서 동네 Y교회 집사인 최귀임씨(48) 등 신도 3명으로부터 안수기도를 받은 뒤 숨졌다. 유양은 지난해 5월 골프장 캐디로 일하다 남자직원의 유혹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뒤 정신질환 증세를 보여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으나 차도가 없자 지난 15일부터 최씨 등에게 안수기도를 받아왔으며 이날도 20일 하오11시30분쯤부터 21일 상오4시30분쯤까지 온몸을 광목천으로 묶인채 손바닥으로 온몸을 내리치는 등의 치료를 받은뒤 숨졌다.
  • 교포한약상,“우린 외롭지않아요”/기독교인들,중국교포 초청 위로잔치

    ◎진도아리랑등 함께 부르며/1백명 뜨거운 동포애 확인 한국 대학생 선교회와 예술인 선교회 회원 및 새터교회 집사 등은 3일 상오 서울에서 한약을 팔며 머물고 있는 중국교포 1백여명을 중구 정동 대학생 선교회관 강당으로 초청,위안잔치를 베풀었다. 선교 회원들은 중국에 사는 교포들이 고국에 와서 한약재 등을 팔며 고생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같은 동포로서 이들을 돕기로 결심,지난달 30일 덕수궁과 시청역으로 나가 한약을 팔고 있던 이들에게 초청장 2백여장을 나눠 주었다. 1백여만원의 경비를 들인 이날의 잔치에서는 과학과 신앙의 문제를 영상으로 묶어 동물의 세계를 그린 「주관자」라는 영화도 상영됐다. 영화를 본 교포들은 『중국에서도 동물세계에 대한 것을 TV를 통해 봤지만 이처럼 자세하게 꾸며진 것은 처음 봤다』면서 한결같이 재미있다고 했다. 교포들 가운데는 종교를 가진 사람이 없어 찬송가 합창순서에서는 대부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회원들의 따뜻한 마음에 감격해 박수를 치며 함께 호응하려고 애를 썼다. 교포들은 1백여평 크기의 넓은 강당에 난로가 하나뿐이어서 다소 싸늘한 환경이었는데도 합창과 게임에 잘 호응해 분위기를 훈훈하게 했다. 우리 민요 「진도아리랑」을 부를때는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흥을 돋웠고 한민족 한핏줄임을 확인하는 듯했다. 중국 흑룡강성 하성시에 산다는 권백무씨(46)는 『한국에 있는 동안 동포들이 친절하게 대해줘 고맙기 짝이없으며 이렇게 잔치까지 열어주니 어떻게 감사의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면서 『중국에 돌아가면 동포의 뜨거운 정을 다른 교포들에게 꼭 전하겠다』고 말했다. 선교회측은 이번 위안잔치를 계기로 중국교포들에게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고 약재판매도 도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 “서울의 새 고심” 중국동포 한약행상/「보따리장사」 실태와 문제점

    ◎“한밑천 잡는다” 소문에 계속 몰려/덕수궁ㆍ시청 지하도 등 떼지어 “점령”/“나쁜 인상 줄라” 정부선 단속 못해/89년부터 급증… 올 1만5천명 입국 요즘 서울 한복판 덕수궁 앞길과 시청 앞 지하도,파고다공원 등이 한약시장처럼 돼버렸다. 길 가득히 늘어선 중국교포들이 우황청심환 등 각종 한약들을 길바닥에 늘어놓고 손님들을 부르고 있다. 처음 덕수궁 앞길에 몇 사람씩 모이기 시작하던 이들은 점차 숫자가 늘어 길이 좁아지자 시청 앞 지하철역으로 진출하고 이곳도 모자라 파고다공원 앞까지 점령한 것이다. ▷실태◁ 이들이 덕수궁 앞길에 모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월경. 고국 방문길에 장사가 된다는 한약을 사들고 온 교포들 사이에 판로와 가격 등의 정보를 알려면 덕수궁 앞에 나가면 된다는 소문이 나 20∼30명씩 모이던 것이 얼마 뒤부터는 아예 약 보따리를 길가에 풀어놓기 시작하게 됐다. 중국과 교류가 막혀 있던 때 홍콩 등을 통해 드물게 들어오던 중국산 편자환 우황청심환 등이 희소가치에다 효험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가중국과의 교류가 시작되면서 모국을 찾는 교포들이 조금씩 들어온 것이 몇 곱절의 값으로 팔렸고 때마침 중국에서 개발됐다는 대머리치료제 등이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치자 중국산 한약은 들여오기가 무섭게 팔려나갔다. 중국산 한약이 이처럼 밀어닥치자 국민보건을 담당하고 있는 보사부가 그냥 둘 수만은 없어 이들 한약에 대한 성분검사를 실시하게 됐고 그 결과 지난달 18일 중국산 우황청심환 3종과 녹태고 및 정력제로 인기가 있던 「남보」 등에서 수은과 납 등 중금속이 검출되고 함량도 부족하다고 발표하면서 한약에 대한 인기는 급속도로 떨어졌다. 처음에는 선물용이나 여비 정도나 뽑기 위해 조금씩 들여오던 한약이 장사가 되면서 너도나도 빚까지 얻어 갖고와 양은 엄청나게 늘어났는데 갑자기 팔리지가 않으니 야단이 난 것이다. 팔리지 않은 약을 들고 시내 중심가로 한두 사람 나오기 시작하다 순식간에 중심가를 거의 모두 차지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오갈 데도 없이 여관이나 여인숙에서 묵고 체류기간을 넘겨 불법체류를 하거나 생활비나 돌아갈 여비가 없어 막노동을 하는 사람까지 생기게 됐다. 사태가 이처럼 심각해지자 서울시가 단속에 나섰으나 모처럼 교류가 시작돼 고국을 찾은 교포들을 함부로 단속했다가 중국교포사회에 고국에 대한 인상만 나쁘게 만들고 자칫 반한감정까지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어 주춤하는 사이 교포노점상들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게 됐다. 하는 수 없이 내무 법무 재무 보사부와 서울시 등 관계부처가 합동대책회의까지 열었으나 세관에서 더이상 한약을 들여오는 것을 막는다는 대책만을 세웠을 뿐 현재까지 들어와 서울도심을 차지하고 있는 교포 노점상들에 대해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 돼버렸다. 지금까지는 서울시가 대우와 협의하여 노점을 펴고 있는 교포들의 한약을 모두 사들인다는 것이 대책의 모두인 실정이다. ▷통관현황◁ 88년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에만 해도 한 달 입국자 수가 두자리 수에 불과했던 중국교포는 이듬해인 89년 김포공항에만 8천9백7명이 들어와 88년의 4.3배에 달하고 있다. 관세청이 중국교포들이가지고 들어오는 한약재 등에 대해 본격적으로 과세통관을 하기 시작한 올 들어 10월말까지만 해도 지난해에 비해 갑절에 가까운 1만5천2백16명이 들어왔다. 중국교포들이 우리나라에 갖고 들어오는 한약은 대체로 30여 가지. 가장 흔하게 가져오는 우황청심환은 한 사람당 2백∼3백알까지 가져오며 녹용도 2㎏ 정도는 거의 모두 가져온다. 이외에도 빠지지 않는 단골메뉴는 편자환이며 반입량으로 볼 때 활락환 녹태고 삼편환 호골환 101발모제 강압환 등의 순이다. 올 들어 10월31일 현재까지 중국교포들이 세금을 물고 통관한 약재는 녹용 1천9백77㎏,청심환 81만4천1백10개,편자환 3만1천6백83개 등이며 감정가격은 29억여 원에 이르며 과세액만 해도 11억7천5백여 만원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 한 사람당 세금없이 반입할 수 있는 면세통관량(우황청심환 1백50알,편자환 30개,녹용 1㎏)을 합치면 올해 들어서만 2백여 억원어치의 각종 약재를 들여온 셈이다. 이 금액은 교포 한 사람이 1백만원어치 이상의 한약재를 가지고 온다는 수치다. 최근에는 이같은한약재 반입 외에도 아편과 마약성분이 짙은 고가품의 약재,그림,삼베 등 반입하는 품목도 다양화되고 있어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중국교포들이 가져오고도 통관이 금지돼 현재 세관 보세창고에 쌓여 있는 한약만도 수십여 억원어치다. 김포공항의 한 당국자는 『정식으로 친지초청으로 온 교포는 총입국자의 5% 내외로 추산된다』고 말하고 『나머지는 모두 「위장친지」들을 동원,약장사를 하러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을 찾은 교포 한약상의 변 ○「중금속 보도」 이후 팔리지 않아 곤혹/오청자(54ㆍ심양시 거주) 서울에 사시던 시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장남(34)과 함께 지난 8월27일 심양에서 비행기를 타고 급히 왔다. 도착해 보니 시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셔서 「며느리의 도리」를 다하지 못해 안타깝다. 83년 한국에 있는 친척과 연락이 되어 그동안 서신왕래만 해오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고국을 방문했다. 왕복 비행기삯과 체류비라도 마련하기 위해 이웃사람들의 권유로 한약과 수공예품을 사왔다. 한약은 약공장에서,수공예품은 시장에서 사왔다. 9월부터 지난 15일까지 이 동네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한약을 팔았는데 생각보다 잘 팔리지 않았고 신문과 TV에서 「중국산 한약재에 수은 등 중금속이 들어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부터는 한약을 사갔던 사람들까지 물건을 갖고와 환불해달라고 요구해 곤혹을 치렀다. 친척들은 내가 한약을 팔려고 밖으로 나가려 하면 창피하다고 못 나가게 막고 있다. 그래서 친척이 아침밥을 먹고 직장과 학교 등에 나가고 난 뒤 설거지와 청소를 하고 한약을 팔러 나왔다가 친척들이 집에 들어오기 전에 돌아간다. 덕수궁으로 나온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아 친척이 아직은 행상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지만 신문에 이름과 사진이 보도되어 알게 될까 걱정이다. ○친척에 선물도 하고 여비도 보태려/심양 거주 교민(59) 한국에는 지난 9월에 홍콩을 경유하는 비행기를 타고 왔다. 50년 만의 귀국이었다. 일제 때 전주에서 살다가 일본인들에게 집을 빼앗겨 만주 봉천으로 가는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갔다. 너무 오랜만에와서인지 고국산천도 많이 변해 있었다. 친척집에 선물도 하고 일부는 팔아서 여비에 보태 쓰려고 한약을 가져왔다. 녹용·우황청심환 등 한약재 5만원(한화 8백만원)어치를 사왔는데 김포공항에서 비싼 세금 때문에 친척들에게 선물은 못했다. 과세를 물면 물건을 가져올 수 있지만 워낙 비싸 엄두도 못내고 팔아서 여비가 될 만큼만 갖고 들어왔다. 게다가 TV와 신문에서 중국교포들이 가져오는 한약은 모두 가짜라는 소문을 퍼뜨려 팔리지도 않는다. 다행히 며칠 전 한국정부에서 우리의 한약재를 사주겠다니 무엇보다 반갑다. 덕수궁 앞길을 지나다니는 시민들에게 이따금 불평을 듣기도 한다. 우리 때문에 길거리가 지저분하다는 소리도 들었다. 특히 나이들어서 뭣 때문에 고국까지 와 이같은 고생을 하느냐며 따질 때는 섭섭한 생각까지 든다. 집사람(60)과 같이 와 현재 여관에서 묵고 있다. 하루 여관비와 식비는 1만원이면 된다. 다음 달이면 돌아가야 하는데 정부에서 빨리 우리 물건을 사주었으면 좋겠다. ○유학경비 마련하려… 밤엔 악보 그려/변은숙(25ㆍ심양대학 음대 졸업) 일본에 유학할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약을 갖고 왔다. 여기에 온 교포들 가운데 대부분이 생계유지를 위해 돈을 벌려고 하지만 내 경우는 다르다. 나는 중국에서도 발레단의 피아노 연주를 맡고 있기 때문에 음악공부를 더 깊이 하고 싶었다. 마침 경북 봉화가 고향인 부모가 이웃집에서 3만원(한화 5백만원)을 빌려 한약을 사주면서 한국에 가 팔아 일본유학경비로 쓰라고 해 갖고 왔다. 그러나 인천항에 도착하자마자 희망이 사라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한약에 대한 관세가 너무 비쌌다. 할수없이 절반 정도는 세관에 맡기고 절반만 찾아갖고 왔다. 서울에 먼저 와 있던 남동생(23ㆍ악사)이 용산구 이태원동에 계약금 2백만원에 월 20만원을 주기로 하고 얻은 조그만 방에 있다. 중국에서 부모가 하는 한국말을 알아듣긴 했으나 말하기는 서툴다. 한 달 동안 서울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한국말을 익혀 지금은 어느 정도 통한다. 저녁 때는 동생의 주선으로 드럼연주단에 악보를 그려주고 1만∼3만원씩 벌고 있다. 첫날은 2만원,둘째날은 4만원어치를 팔았다. 한약이 잘 팔리지 않아 서툰 한글이지만 약명과 효용 등을 자세히 써서 내걸었다. 어떤 짓궂은 남자 손님들은 「남성정력에 좋음」이라고 써붙인 「남성 609」를 들고 효용을 실험해봤느냐고 자꾸 물어와 얼굴이 뜨겁기도 했다.
  • 「국토개발도면」 빼내 땅투기/KDI직원등 9명 구속

    ◎1백만평 전매,40억 챙겨 서울지검 특수2부(강신욱부장검사ㆍ김인호검사)는 15일 건설부의 용역을 받아 국토개발연구원이 작성한 국토이용개발계획 도면집을 몰래 빼낸 한국개발원(KDI) 정보자료실사서 정태준씨(29)를 절도혐의로 정씨가 빼낸 도면집을 복사해 부동산업자들에게 팔아넘긴 한국경제서적센터대표 김성태씨(36)를 장물취득혐의로 각각 구속했다. 검찰은 또 김씨로부터 도면집을 사들여 포항ㆍ대전일대 토지거래신고지역안에 있는 임야 등 1백만평을 신고하지않고 미등기전매해 40억여원의 전매차익을 챙긴 손광락씨(35ㆍ경기도 과천시 부림동 주공아파트 809동1005호) 등 부동산중개업자 7명을 국토이용관리법 및 부동산중개업법 위반혐의로 구속하고 손씨의 조카 이동진씨(35)를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검찰은 이들로부터 건설부가 발행한 도면집사본 2부 등 모두 33점을 증거물로 압수하는 한편 정씨가 몰래 빼낸 뒤 회수하지 못한 도면집 1권을 포함,국토개발연구원의 도면집 3권의 행방을 찾고 있다. 정씨는 지난해 8월 「2천년대의 공영개발을위한 도시근교산지 및 구릉지 이용가능지 도면집」과 「공주도시기본계획」 등 국토개발연구원의 도면집 2권을 몰래 빼내 김씨에게 건네주고 2백30만원을 사례비로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정씨는 한국개발원과 국토개발연구원간에 상호자료대차계약이 체결돼 있는 점을 이용,국토개발원의 다른 자료를 대출하면서 도면집을 몰래 빼냈다는 것이다. 손씨는 김씨로부터 넘겨받은 도면집사본에서 포항근교지역이 제1차로 개발되는 것을 알고 조카 이씨와 현지 부동산업자들로 투기조직을 만들어 지난해 9월부터 지난달까지 1년동안 부동산투기를 해왔다. 손씨 등은 도면집에 표시된 개발예정지인 경북 영일군 지행면 죽정리 산145일대 토지 1백만평을 엄모씨 등 현지주민 60명으로부터 한평에 5백∼2천원씩에 사들여 서울 등지에서 온 김은식씨 등 1백여명에게 도면을 보여주면서 『개발이 시작되면 엄청난 이익을 남길 수 있다』고 선전,5배가량 비싼 한평당 2천5백∼1만원씩에 팔아 40억여원의 차익을 남겼다는 것이다. 정부의 개발계획도면집 진본이 전문부동산투기꾼들에게 유출돼 투기에 악용된 것으로 밝혀진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