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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주시장 사무실 수색/선거관련 비밀장부 압수/검찰

    ◎콘도사장에 허위진술 제의 확인 【전주=조승용 기자】 이창승 전주시장을 선거법 위반 및 입찰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한 전주지검은 18일 이시장의 집무실 및 자택과 코아호텔의 개인 사무실을 압수 수색,선거관련 비밀장부와 컴퓨터디스켓 3장 및 이사장의 정치입문을 도와준 것으로 알려진 야당 H모 의원의 편지 등을 찾아냈다. 또 이시장이 지난 4월 지구당 대의원 김삼주씨(43·구속중)에게 준 2천만원이 콘도 매입 자금이라고 주장함에 따라 콘도회사인 조이랜드의 김모 사장(44)을 조사한 결과 『이시장이 검찰에 소환되기 전날인 지난 16일 밤 전주 코아호텔로 불러 그 돈을 일단 콘도 매입자금으로 해 두자고 제의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 마케도니아 대통령 암살 모면/차량 폭탄공격받아 두개골 금가

    【스코폐 AP AFP 연합】 키로 글리고로프 마케도니아 공화국 대통령이 3일 아침(현지시간) 집무실로 가던 길에 차량 폭탄의 공격을 받아 중상을 입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경찰이 발표했다. 올해 78세의 글리고로프 대통령은 이날 상오 9시 30분쯤 리무진 승용차를 타고 대통령 집무실에서 1백m 떨어진 스코폐 시내 중심가를 지나다 옆의 자동차에서 원격조정된 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상처를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번 폭발로 승용차 운전사가 숨지고 행인 3명이 다쳤으며 이중 한 명은 중상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글리고로프 대통령은 두개골에 금이 가고 뇌진탕을 일으키는 등 중태에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건이 자신들의 범행이라고 주장하는 단체나 개인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나 경찰은 20대 중반의 용의자 2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 차협상 타결/한·미 합의 배경과 교훈

    ◎「301조 압력」에 빗장풀린 차시장/「누진세」 유지 대가 「세인하」 실리 양보/마찰 요인 잠재… 언제 또 터질지 몰라 한·미 자동차협상의 타결로 우리나라는 미국의 악명높은 슈퍼 301조의 발동대상에서 빠질 수 있게 됐다.그러나 대형차에 대한 자동차세율 인하 등의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국내 자동차 업계는 대형차 부문의 내수시장에서 수입차와 경쟁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타결 내용은 관세,자동차세,할부금융,방송광고,형식승인,가속주행 소음,소비자인식 개선 등 7개 항목 가운데 관세,할부금융,방송광고,소비자인식 개선 등 4개 항목은 우리 원안대로 됐고,자동차세,형식승인,가속주행 소음 등 3개 항목은 양측 입장의 중간 선에서 조정이 이뤄졌다.협상타결의 관건이었던 자동차세 문제는 배기량에 따른 누진세제의 틀을 유지하되 미국측의 세율 인하 요구를 대폭 수용하는 선에서 절충됐다. 이번 협상은 몇가지 귀중한 교훈을 남겼다.우선 끌려다니는 협상을 더이상 계속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통상업무의 주무부처인 통상산업부 내에서는 세제 등 자동차 관련 제도의 재정비와 관련,이미 오래 전부터 『마찰의 불씨를 사전에 없애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왔다.그러나 각 부처간의 이견과 무관심으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가 슈퍼 301조를 앞세운 미국의 개방 압력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이왕 고쳐야 할 제도라면 밀려서 하는 것보다는 스스로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개선해 나가는 것이 국민과 협상 상대국의 신뢰를 함께 얻을 수 있는 길이다. 자동차 시장개방에 관한 대외협상은 이번이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이번 협상이 일단락되긴 했지만 언제라도 재발할 수 있다.한국 자동차산업의 급성장에 자극을 받은 미국과 유럽의 자동차 업체들은 한국차를 일본에 이은 새로운 경쟁상대의 출현으로 보고 있다.이미 유럽연합(EU)은 한국 자동차시장의 폐쇄성에 관한 광범위한 자료수집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그 자료의 일부를 이번에 미국에 넘겨주어 한국시장 공략에 활용케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웃 일본은 자동차 수출이 본격화된 지난 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10년 가까이 미국과 자동차 협상을 해오고 있다.이번은 무사히 넘어갔지만 언제 다시 WTO(세계무역기구)나 미국 슈퍼 301조의 그물에 걸려들지 모른다.만약 고율의 보복관세라도 당하는 날에는 국내 자동차산업이 재기불능의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이제 국내 자동차 업계는 내수시장에서도 외국차와 경쟁해 이길 수 있는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매우 시급해졌다.개방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며,정부의 국내산업 보호 역할은 갈수록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앞으로 수년내에 신차개발 능력,품질과 성능,생산성 등을 미국과 일본 수준으로 끌어올려 스스로의 경쟁력으로 내수시장을 지켜야 한다. 시장 개방이 당장에는 국내산업에 타격을 입힐 것이다.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경쟁력 강화를 촉진하는 측면도 있다.지난 80년대 초반의 담배시장 개방 이후 국산담배의 품질이 크게 향상됐고,최근에는 유통시장 개방이 추진되자 대형 할인매장 등 경쟁력 있는 유통업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 그 실례이다. 통상관련 부처간의 주도권 싸움은 이번 협상을 어렵게 만든 요인으로 작용했다.통산부 관계자는 『미국과의 협상도 어렵지만 우리 내부의 의견 조율과 전문 발송과 같은 사소한 일로 신경전을 벌이는 일이 더 힘이 든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통상관련 부처들간의 긴밀한 협조체제 구축이 시급한 과제이다. ◎대응책 마련 분주한 차업계/“올것이 왔다”… 국내 「빅3」 긴장/“경쟁 힘겹지만 기술개발 계기로” 새 다짐 한·미 간의 자동차 협상의 타결로 외제차 홍수가 우려되자 현대·기아·대우자동차 등 국내 자동차 업계와 한국자동차 공업협회는 비상이 걸렸다. 외제차에 대항해 국산차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대형 승용차의 신차 개발을 서두르는 한편 대 고객 서비스를 향상시키기로 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부산하다. 국내 자동차업계는 시장개방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도 예상보다는 빨리 온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먼저 신차 개발 등의 기술개발과 연구개발,마케팅 능력 향상에 눈을 돌리고 있다. 현대는 외제 고급차의 경쟁 차종인 그랜저의 사양과 성능을 다양화한 모델을 계속 내놓기로 했으며,4천㏄급의 대형 승용차를 빠르면 내년에 판매할 계획이다. 기아는 마쓰타와 공동 개발 작업이 마무리 단계인 3천5백∼4천㏄급 대형 승용차를 빠르면 내년 상반기 중에 시판하기로 했다.또 현재 8백여개인 영업소를 올해 말까지 1천개로 늘려,영업력을 강화하기로 할 방침이다. 대우는 당분간 대형 승용차 개발을 하지 않을 방침이었으나 소형과 준중형,중형 승용차와 함께 3천㏄급의 대형 승용차도 2∼3년내에 내놓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대자동차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기술개발 투자와 디자인 개발,대형 승용차 개발,수출지역 다변화 등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며 『국산차를 외제차와 비교하면 가격에 비해 아직도 상품가치는 좋다는 점도 소비자들에게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해 국내 자동차 업체들은 2백31만대를 생산해 세계 6위로 올라섰으나,대부분 소형차 위주의 양적인 성장이었다. 정덕영 한국자동차 공업협회 부회장은 『개방을 피할 수 없는 도전으로 생각하고,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한·미 자동차 협상 타결을 계기로 이제는 질적으로도 세계의 자동차 대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힘을 갖춰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 자동차 협상 뒷 얘기/“누진세 폐지” 미 막판까지 미련/한덕수 실장 막후협상 주도 큰 역할/「3차」까지 탐색만… 「4차」부터 급진전 ○…지난 19일부터 28일까지 열흘간 계속된 한·미 자동차 협상은 대형차의 자동차세 누진구조 존치를 주장하는 우리측과 폐지를 주장하는 미국측 대표단간의 밀고 당기기로 시종일관했다는 후문.모두 7차례의 회의 중 3차회의까지는 양측이 서로 원안에서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아 답보 상태로 평행선을 달렸다. 양측이 수정안을 주고받으며 실질적인 절충을 시작한 것은 지난 22일의 4차회의.이날 회의에서 우리측은 협상 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2천5백∼3천㏄와 3천㏄ 초과 차량의 세율을 현재의 ㏄당 4백10원과 6백30원에서 각각 3백50원과 4백50원으로 낮추는 수정안을 제시. ○…이에 대해 미측이 지난 25일의 5차회의에서 내년에는 각각 ㏄당 3백10원과 3백70원으로 낮추되,97년부터는 2백50원의 단일세율로 고치자는 수정안을 제시해와 협상이 급진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27일 하오∼28일 새벽(현지시간)까지 계속된 마지막 7차회의에서도 미국측이 「97년 단일세율 수용」 요구를 다시 거론해 한때 결렬이 아니냐는 관측도 대두.미국은 특히 이에 대한 우리측의 수용 가능성이 없음을 확인하고 당장 수용하라는 요구를 철회하는 대신 「이 문제를 추후 협의한다」는 단서를 합의문에 포함할 것을 수정 제의,막판까지 대표단을 긴장시키기도. ○…이번 협상을 타결로 이끈 데는 한덕수 통상산업부 통상무역실장의 공헌이 컸다는 후문.한실장은 협상 초반에는 양측 대표단간의 공식 교섭에는 참가하지 않고 미국 무역대표부의 캔터 대표,캐시디 대표보와 별도의 창구를 터놓고 공식 협상에서 막힌 부분을 막후 협상을 통해 풀어나가는 역할을 담당.회담 후반에는 대표단과 합류해 공식 타결로 이어가는 등 능숙한 협상 수완을 발휘했다는 평. 협상 타결 이후 캔터 대표는 한실장을 자기 집무실로 초청했는데 통상부 관계자는 『이같은 일은 전례가 없는 「특별 예우」에 해당한다』고 귀띔.
  • 알와리드 사우디 왕자 사업가로 “대 성공”

    ◎세계굴지 기업·은행·호텔 대거 매입/장래 중시… 부실기업 집중투자 적중/언론매체·쇼비즈니스도 큰 관심… 한해 5천만달러 수익 호화궁전,전용 비행기,40인승 호화요트에 4백명의 가신,2명의 24시간 무장경호원을 거느린 아라비안 나이트 왕자 알와리드 빈 타랄.이들 식솔에게 지급되는 급료는 그러나 그의 가계비 지출의 2%도 안될 만큼 「사막의 왕자」는 갑부다.알와리드는 또한 궁핍한 서민들에게 한해에 1억5천만달러를 희사하며 가난한 왕자들을 먹여살리기도 한다. 세계 굴지의 기업체·은행·호텔·유통체인 위락시설등을 닥치는대로 매입,1백억달러의 「부의 왕국」을 건설한 사우디 아라비아의 왕자이자 톱 경영자로 자리잡은 알와리드.왕자라기 보다는 전문기업가로 성공을 거듭하는 그에게 유수의 세계 경영인들이 경이로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알와리드는 현 파드국왕의 조카로 재무장관직을 맡고 있는 타랄의 아들이다. 올해 38세인 알와리드의 다음 목표는 이탈리아의 전직 총리이자 언론재벌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TV매체 인수를 성사시키는 일이다.한때 미국 CBS매입에도 관심을 가졌던 그는 이탈리아 TV왕국의 12억달러 상당의 주식 매입을 놓고 요즘 호주출신의 황색 언론재벌 루퍼트 머도크와 치열한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않는 알와리드는 지난 70∼80년대에 오일달러를 흥청망청 낭비하던 아랍의 귀족이나 거부들과는 달리 사업수완이 출중하다.미국 샌프란시스코 소재 멘로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전과목 A학점을 받을 정도로 학업성적도 우수했다. 사우디 수도 리야디에 있는 그의 집무실에는 레흐만 브러더스,메릴 린치,골드만 삭스등 투자자문회사의 신용조사 자료로 가득차 있다.그는 핵심측근 10여명의 자문을 받아 당장 목전의 수익보다는 3∼4년후,아니면 10년후의 투자전망을 더 중시한다.그리고 대중 앞에 나서기를 꺼려하는 그는 계약을 체결할 때는 반드시 대리인을 내세워 리야드에서 무선전화를 통해 지시한다. 그 좋은 사업 성공사례가 15년전 미국 중앙은행(FRB)으로부터 부실기업 판정을 받은 시티은행의 주식을 다량 매입할 때의 일이다.측근들은 주식인수를 적극 만류했지만 그는 주당 16달러에 이 은행 보유 주식의 9.9%를 과감히 사들였다.현재 시티은행 주가는 당시보다 4배 이상(주당 67달러) 올라 이 은행내 그의 자산을 2백80억달러로 늘렸다. 적자 투성이인 유로 디즈니랜드에도 3백50억달러(24.8%의 주식보유)를 투입했지만 투자전망이 밝다고 판단하고 있다. 알와리드는 또한 뉴욕의 플라자호텔에 1억6천만달러(50%),샌프란시스코의 페어먼트 유통체인에 4천만달러(50%),토론토의 포시즌 호텔에 1억2천4백만달러(26.6%)등을 투자해 호텔업계 종사자들을 놀라게 한다. 현재 이들 호텔에 대한 투자가치는 다소 떨어지고 있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오히려 그는 5년 이내에 호텔수를 40개,10년후에는 80개로 늘릴 야심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알와리드는 그러나 커크 커코리언 회장의 크라이슬러 자동차,영국 사치 & 사치 회사의 주식 인수제의에 대해서는 단호히 거부했다. 그의 사업 스타일과 관련,사우디 거부 아므로 카쇼기는 『외국 기업인들과 공동출자를 통한 그의 사업수완이 점차 세련되고 있다』며 『실패를 거듭하는 다른 왕족들과는 달리 알와리드는 한해에 5천만달러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사우디 주재 한 전직 미국대사도 『그는 여러 분야에서 성공을 하고 있고 자신에 대해서도 엄격하다』고 전한다. 아랍 TV & 라디오(ART)를 소유하고 있는 알와리드는 특히 언론매체와 할리우드의 쇼비즈니스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그래서 그는 자신의 전용 비행기를 보내 팝스타 마이클 잭슨을 점심식사에 초대할 정도로 절친하다.영화,만화영화,리조트등을 포함하는 새로운 초대형 멀티미디어 왕국을 겨냥하는 두사람은 최근 비밀협정에 서명,더욱 주목되고 있다. 비교적 비대한 몸집의 아랍귀족과는 달리 알와리드는 주치의가 처방해주는 하루 1천3백 칼로리의 영양분만 섭취할 정도로 절제력이 뛰어나다.한밤중에 조깅을 하고 새벽 4시에 잠자리에 들며,반드시 오후 4시에 점심식사를 하는 괴벽의 소유자이기도 하다.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무절제한 식사로 몸이 뚱뚱해지는 것이다.
  • 최 구청장 사전선거운동 「물증」 찾기

    ◎「임채정 의원 사무실 수색」의 저변/돈받은 4명의 진술 뛰어넘는 실증 추적/선거운동 기간이전 「활동보고」에 큰 기대 최선길 서울 노원구청장이 경찰에 구속된 것은 1천만원을 지역단체장들에게 뿌리고 개인택시 운송조합을 상대로 사전에 선거운동을 한 혐의이다.경찰은 그러나 구체적인 물증은 아직 확보하지 못한 상태이다. 최구청장의 핵심 선거참모인 손국원씨(58)와 손씨로부터 2백만∼1백만원을 받은 4명의 지역단체장들에게 『최구청장의 지시로 돈을 주고 받았다』는 진술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경찰이 최구청장을 구속한 뒤 구청장집무실과 최구청장 부부가 살던 중계본동 전셋집,그리고 압구정동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한 것도 사실은 확실한 물증을 찾기 위해서이다.경찰은 그러나 이 곳에서 4억2천여만원이 든 예금통장 22개와 개인 비망록 등을 찾아 내긴 했지만 이렇다할 진척은 보지 못하고 있다.통장에서 5백만원 이상 인출된 내용을 추적했으나 지난 2월26일 최구청장의 장남이 빼 쓴 5백만원은 현금이어서 더이상의 추적이 불가능하다.3월30일 최구청장이 제일은행에서 10만원권 자기앞수표로 찾은 5백만원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수표뒷면의 기록을 확인하려면 상당기간이 걸릴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봉천동 부동산 매각대금 15억원의 사용처와 전셋집 안방에서 마대에 보관되어 있던 1억2천만원 조성경위등에 대한 수사도 여전히 원점이다.최구청장의 부인 김모씨(52)가 조사를 받다 『아프다』며 병원에 입원해 버렸기 때문이다.부인 김씨에 대한 참고인 조사없이 자금흐름에 대한 추적은 사실상 희망이 없다. 경찰이 정치적 파장을 무릅쓰고 22일 상오 새정치국민회의 임채정의원 지구당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전격 실시한 이유도 알고 보면 여기에 있다.전날 조사과정에서 최구청장의 여비서 이선영씨(25)와 운전기사 이대식씨(39)로부터 『지난 19일 하오 4시쯤 구청장집무실에 있던 선거관련 서류를 임의원 지구당사무실로 옮겼다』는 진술을 받아낸 것이다. 경찰은 압수수색에서 선거기간동안 최구청장이 직접 쓴 메모지철인 「구청장 활동보고」와 노원관내직능단체 회원명단·자원봉사 지원서등 선거관련 서류를 찾아냈다.그러나 선거비용지출 명세서·재산등록 목록등 대부분의 서류가 선거가 끝난뒤 노원선관위에 제출한 문건들이다.다만 공식 선거운동기간이 아닌 지난 5월31일부터 6월20일 사이에 최구청장이 지역인사및 단체를 만나고 직접 기록한 「구청장 활동보고」에 기대를 걸고 있다.경찰 스스로도 『최구청장에게 사전 선거운동혐의가 있는 만큼 분석할 가치가 있는 자료』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고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정기국회 도중 현역의원 지구당사무실을 수색한 만큼 시간이 흐를수록 정치적 공세에 시달릴 것은 뻔한 이치이다.가능한한 빠른 시일안에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해야 할 판이다. 여기에 구속을 각오하면서 돈받은 사실을 털어 놓을 관련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경찰에겐 또 다른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임의원 사무실 수색 정가반응/“서류 지구당 도피 해명하라”­여/“야당 탄압 강력히 대응” 천명­야 경찰이 최선길 서울 노원구청장의 선거법위반수사와 관련,22일 아침 새정치 국민회의 임채정 의원(노원을)의 지구당사무실을 압수수색을 실시하자 국민회의측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서는 등 이를 둘러싼 정국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다. ○…민자당은 국민회의측이 최락도 의원과 박은태 의원의 비리와 최선길구청장의 선거법 위반사건 수사에 이어 이번에도 야당탄압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대해 크게 개의치 않겠다는 표정이다. 오히려 국민회의 김대중총재가 정계은퇴 이후에 만든 아태재단이 국민회의의 자금지원 통로가 되는 것을 차단하는 기회로 삼겠다는 생각이다. 손학규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국민회의가 이를 표적수사이자 덮어씌우기식의 공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부정·부패에 대한 수사를 왜곡·방해하고 정부 여당을 무조건 공격하는 것이 야당의 임무인 양 착각하는 구시대의 행태』라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는 왜 구속까지 이른 구청장의 서류가 국민회의 지구당에 옮겨져 보관되었는지 놀랄 뿐』이라면서 국민회의의 해명을 촉구했다. 손대변인은 『아태재단이라는 비영리법인을 끊임없이 편법적인 정치헌금의 통로로 이용한다는 비난을 자초해놓고 정부여당을 비난하는 것은 무책임한 정치공세』라면서 『국민회의는 아태재단과의 관계를 스스로 정리하고 의혹의 소지를 없에고 국민앞에 떳떳이 나서라』고 요구했다. ○…국민회의는 격앙된 분위기속에 강경대응을 천명하고 있다.창당 이후 은밀하게 진행돼 온 「김대중 죽이기」의 일환이라는 생각에도 변함이 없다.무엇보다 임의원이 신당 창당의 일등공신이라는 점에서 이런 심증을 더욱 굳히는 것 같다. 당 진상조사위(위원장 유재건 부총재)는 압수수색 사실이 알려진 직후 당사에서 회의를 열고 『지금은 국회 회기중이고 특히 임의원은 입법활동과 국정감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데 한마디 사전통보없이 압수수색을 한 것은 국회 경시풍조의 표본』이라고 비난하고 『잘 모르는 국민들은 마치 임의원이 관련된 것처럼 비쳐질 우려가 있다』며 국민회의와 임의원에 대한 「흠집내기」와 야당탄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조사단은 이와 함께 경찰측에 강력한 항의를 전달하는 것은 물론서울 경찰청에 대한 국정감사 때 철저히 따지기로 방침을 정했다. 박지원대변인도 논평에서 『경찰이 국회를 무시한 중대한 사태로 분노한다』면서 『경찰은 무리한 표적수사를 즉각 중단하고 현역의원 지구당사무실의 압수수색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사자인 임의원도 이날 하루종일 흥분을 감추지 않은 채 『국회 회기중에 현역의원의 사무실을 한마디 말도 없이 이럴 수가 있느냐』고 반발했다. 하지만 국민회의는 수사가 현역의원의 지구당사무실을 압수수색할 정도로 점차 확대되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는 눈치가 역력하다. ◎압수수색 이모저모/「정치적 부담」 고려 한밤 수색 피해/경찰,만일의 사태대비 VTR 촬영 ○…서울경찰청은 21일 하오 9시30분쯤 최구청장의 여비서 이선영씨등으로부터 『임채정 의원 지구당사무실로 선거관련 서류를 옮겼다』는 진술을 받아내고 곧바로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일 예정이었으나 수뇌부회의를 갖고 22일 상오로 연기했다는 후문. 경찰은 정기국회 개회중인데다직원이 아무도 없을 한밤에 현역 야당의원의 지구당사무실을 수색한데 따른 「정치적 부담」을 우선 고려했다고 설명. 한 관계자는 『처음엔 노원구선관위 직원을 불러 참고인으로 입회시킨 뒤 수색을 벌이는 문제까지 검토됐었다』고 소개. 경찰은 이에 앞서 여비서 이씨들로부터 진술을 받아낸 뒤 「서류이동을 지휘한 최구청장의 비서관인 강현우 비서관이 서류를 소각할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곧바로 지구당사무실 주변에 수사관들을 배치. ○…경찰은 이날 수색에서 사무실에 자고 있던 이승원 총무부장에게 영장을 제시하며 취지부터 자세히 설명한 뒤 이부장이 넘겨준 선거관련 서류가 든 보따리 2개를 들고 10분만에 철수.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이 과정을 모두 비디오로 촬영하고 지구당 사무국장의 출근을 기다려 압수경위를 설명. ○…경찰은 최구청장이 관악구 봉천동 부동산을 매각하고 받은 15억원 가운데 수표로 받은 10억3천만원의 흐름을 추적하는데 수사력을 집중. 그러나 최구청장의 부인이 병원에 입원해 버린데다 종로경찰서에 수감된 최구청장마저 『어떻게 당선된 구청장인데 내가 말할 것 같으냐』고 완강히 버티고 있어 예상외로 길어질 전망.
  • 김대통령 모처럼 주말 나들이

    ◎충현교회 예배참석·가족과 함께 설렁탕 외식/식사중 국교 5년생에 즉석 사인 해 주기도 집권 후반기 들어 김영삼 대통령의 주말 일정이 다소 여유있고 「부드러워진」 듯하다. 김대통령은 토요일에도 하오 늦게까지 집무실을 지키며 비공식 접견과 함께 업무를 챙겨 청와대비서실도 따라서 늦게까지 근무하는 경우가 많았다.일요일에는 수시로 관련 수석비서관을 전화로 찾는등 거의 휴식의 시간을 갖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후반기 들어서는 토요일 집무실 퇴청시간을 다소 앞당기고 있다.일요일에도 되도록 느긋한 시간을 가져보려 시도하는 인상이다.다만 전화로 관련 수석비서관을 찾는 횟수가 줄어든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청와대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일요일인 17일 김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나 가족들과 취임 전에 다녔던 충현교회 예배에 참석한 뒤 외식을 함께하며 모처럼 한가로운 시간을 갖고 가을정취를 만끽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11시 부인 손명순여사와 장남 은철,차남 현철씨 내외,그리고 손자 손녀등 가족들과 서울 강남구역삼동의 충현교회에 도착,1시간동안 진행된 주일예배에 참석했다. 김대통령은 취임 이래 일요일에는 가까운 가족들과 청와대 관저에서 주일예배를 봐왔으며 성탄절같은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 평소 다니던 충현교회를 직접 찾아 예배에 참석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김대통령이 예배에 참석하자 신도들은 박수로 환영했으며 김대통령은 예배후 오랜만에 만난 가까운 교인 가족들과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이어 김대통령은 곧바로 은평구 신사동에 있는 봉이설렁탕집을 찾아가 가족들과 설렁탕으로 점심을 함께하며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김대통령은 취임후 몇차례 이 식당에 들렀었지만 자녀와 손자 손녀등 온가족과 함께 찾아간 것은 처음이라고 청와대의 한 관계자가 설명했다. 김대통령이 식사를 하는 동안 때마침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시민들은 『힘 드시지 않느냐』며 김대통령에게 인사를 했다.이에 김대통령은 『열심히 하고 있다』고 따뜻하게 답했다.김대통령은 식사 도중 녹번국민학교 5학년생인 정민주군의 요청을 받아 즉석에서 사인을 해주기도 했다.
  • 김 대통령·여야 대표 연휴 어떻게 보냈나

    ◎청남대서 휴식·민심동향 체크­김 대통령/일본 방문후 자택·호텔서 정국 구상­김윤환 대표/외부 면담 일체 사절… 제주 나들이­김대중 총재/청구동서 수뇌들과 「국회대책」 숙의­김종필 총재 ○…김영삼 대통령은 10일 하오 지방집무실이 있는 청남대에서 3박4일 동안의 추석연휴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김대통령은 이번 연휴를 부인 손명순여사를 비롯해 장남 은철,차남 현철씨 내외및 손자·손녀들과 함께 보냈다.손여사는 중국에서 열린 세계여성회의에 참석한뒤 8일 하오 귀국,곧바로 청남대에 합류했다. 손여사가 돌아온 뒤 대통령 가족은 손여사가 들려주는 북경회의 일화로 이야기꽃을 피웠다는 후문이다. 김대통령은 연휴 동안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 조깅을 했으며 민심동향과 여론파악을 위해 친지,자문교수 등 여러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의견을 수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통령은 모처럼만에 가족들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갖기 위해 김광석 경호실장및 김기수 수행실장만 수행토록 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자당의 김윤환 대표는 지난 5일 일본을 방문,6일 후쿠다(복전)전일본총리영결식에 참석하고 다케시다(죽하등)전총리등 정치지도자들과 만난 뒤 9일 하오 귀국,자택과 호텔에서 정국구상을 겸해 휴식을 취했다. 김대표는 10일에는 윤원중 대표비서실장으로부터 자신이 서울을 떠나있는 동안의 당무와 정국상황을 보고 받았는데 재정경제원이 양도성예금증서(CD)와 기업어음(CP)을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한데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는 후문이다.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연휴첫날인 8일 부인 이희호여사등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로 내려가 한호텔에서 머무르다 10일 하오 귀경. 김총재는 연휴동안 외부인사와 면담을 일체 사절한 채 휴식을 취하며 정기국회 대책등 정국구상을 가다듬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9일 하오에는 천지연폭포로 잠시 나들이,관광객들의 사진촬영요청에 응하는등 여가를 즐기기도 했다. 김총재의 제주행에는 김옥두 의원등 측근 몇사람만이 수행했다. ○…민주당의 이기택 상임고문은 지난 5일 중국을 방문,연길 교민사회와 백두산,상해임시정부 등을 둘러보는등 연휴를 해외에서 보냈다.12일 귀국 예정. 이고문의 중국행에는 측근인 이장희·양문희 의원과 그의 사조직인 통일산하회 소속 원외위원장 60여명이 수행했다. ○…누적된 피로로 연휴가 시작되기전 며칠동안 출근치 못했던 자민련의 김종필 총재는 연휴동안 청구동자택에 머물며 컨디션을 조절했다. 김총재는 그럼에도 김복동 수석부총재와 조부영 사무총장,한영수 원내총무,이긍규 비서실장등을 불러 대표연설에 담을 내용을 논의하는등 정기국회대책 마련에 골몰했다. 김총재는 11일부터는 정상적으로 당무에 임할 계획이다.
  • 유형의 수도 이르쿠츠크(시베리아 대탐방:34)

    ◎왕정반란 「12월 당원」들의 마지막 안식처/유형 온 주모자가 살았던 주택을 박물관으로/앙카라 강변엔 17세기 「시베리아 정복탑」 우뚝 이르쿠츠크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명물은 앙가라강변에 세워진 시베리아 정복탑이다.총독청사 바로 맞은 편에 있는 오벨리스크다.동진하던 러시아 정복자들은 17세기말 이곳에 이르러 가쁜 숨을 내쉬고는 잠시 정복의 발길을 멈추었다.그리고는 이곳에 높이 10여m의 대형 정복탑을 세워 그동안의 공적을 자축했다.정복의 상징인 대형 쌍독수리 문양 아래 모라비요프·아무르스키·스페란스키 등 정복자들의 이름이 쓰여져있고 「시베리아 정복자들에게 영광있기를」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철도 개통… 도시 부흥 이르쿠츠크는 1686년 정식 도시가 된 뒤 성장을 거듭,1764년에는 이르쿠츠크 구베르니(주)의 수도가 됐다.그러나 도시발전의 진짜 전기는 1898년 시베리아철도가 이곳을 통과하면서 찾아왔다.따라서 3년 뒤면 동시베리아 철도가 개통된지 1백주년이 된다.당시 이곳은 주도 였기 때문에 동시베리아의 철도업무를 이곳에서 관장했다.관공서 거리였던 칼 마르크스거리에는 당시 이르쿠츠크·부리야티·치타주의 철도를 총괄하는 동시베리아 철도청이 있었다.4층짜리 대형 대리석건물인데 혁명 전 세워진 건물원형에다 혁명 뒤 소비에트식 건물장식을 곳곳에 덧붙이고 역시 혁명성이 강한 대리석 조각까지 건물상단 곳곳에 만들어 붙여서 연대불명의 이상한 건물이 돼버렸다.시베리아 곳곳에 이런 식으로 옛건물에 사회주의 장식을 덧붙여 건물의 원형을 훼손시킨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르쿠츠크는 혁명 전 러시아 유형의 수도였다.특히 1825년 왕정에 반대기치를 내걸고 반란을 일으켰던 「데카브리스트」(12월당원) 주모자들 대다수가 이곳으로 유형 와 생을 마쳤다.사회주의 시절 볼셰비키들은 이 데카브리스트의 반란을 혁명의 시작이라고 추앙했다.그래서 이곳은 혁명의 성지 같은 곳이 됐다.당시 데카브리스트들이 유형 와 거처했던 집을 개조해 박물관으로 만들고 성역화해 놓은 이들의 무덤이 곳곳에 있다. ○교회에 구경꾼들 몰려 제르진스키거리에있는 「돔 무제 데카브리스트」는 1826년부터 30여년간 12월당 혁명주모자들 수명이 유형생활을 했던 집을 박물관으로 꾸민 대표적인 명소다.12월당 혁명은 1825년 알렉산더 1세가 후사 없이 죽고 그의 동생인 니콜라이 1세가 뒤를 이어 즉위할 즈음에 일어났다.당시 군대내에 왕정폐지를 주장하던 비밀결사조직인 12월당원 5백여명이 「새 차르즉위 반대,공화정 수립 지지」를 내걸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시나드광장에서 무력저항을 시작한 것이다.25년 12월14일 하오3시 직후였다.물론 이 저항은 왕군에 의해 무자비하게 분쇄됐고 이후 주모자 5명은 처형되고 나머지 주모자급 1백28명이 모두 시베리아로 유형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이들은 중죄인으로 유형지에서도 모두 죽을 때까지 카타르가(쇠족쇄)를 차고 살아야했다.박물관 자료에는 당시 12월당원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중심으로 한 「북 소사이어티」와 키예프를 중심으로 한 「남 소사이어티」등으로 나뉘어 이미 광범위한 비밀세력을 형성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데카브리스트들의 박물관,그들의 무덤이 있는 교회입구에는 반드시 늘어서서 여행객들을 맞는 불청객들이 있다.바로 구걸꾼들.입구의 좌우로 10여명씩 늘어서서 연신 성호를 그으면서 자비를 구하는 데 도저히 그냥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이들을 위해 잔돈을 준비하는 것도 신경써야 할 일이다. 이르쿠츠크는 폴란드인들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도시다.제정 러시아시절부터 러시아에 이주해온 폴란드인의 정신적 수도 같은 곳이고 폴란드인들의 대성당이 이곳에 있다.시베리아 폴란드인들도 유형 와 정착한 사람들이다.나폴레옹시대가 지난 1861년 당시 바르샤바가 있는 동폴란드는 러시아영토였다.1861년부터 63년까지 폴란드인들은 거센 독립운동을 전개했다.그러나 이 독립운동은 실패로 끝났고 1만여명이 시베리아로 유형을 왔다.이들의 주유형지가 바로 이르쿠츠크였고 그들의 친척·후손들이 지금도 이 일대에 모여살게 된 것이다. 주청사 바로옆 「폴란드혁명거리」에 위치한 폴란드성당인 「성모 무염시태(무염시태)성당」도 1884년 이들이 세운 것이다.소련시절 교회가 폐쇄된 채 국유화돼 시립 파이프오르간 연주장 등으로 쓰이다 지난해말 건물 일부가 폴란드신도들에게 되돌려졌다.폴란드에서 파견돼온 베르다벳다라는 젊은 수녀는 현재 이르쿠츠크 오블라스치(주)에 약 3천여명의 폴란드인이 사는 데 매주 3백여명의 신자들이 참석해 미사를 올린다고 했다.이곳 뿐아니라 블라디보스토크·크라스노야르스크·옴스크 등 시베리아 여러 곳에 폴란드성당이 있는 데 하나 같이 교회건물 반환문제를 놓고 러시아정부와 마찰을 빚고 있다. ○폴란드 혁명거리로 모스크바에도 많은 폴란드인이 살고 폴란드 성당이 2곳 있는 데 이들은 시베리아 폴란드인들과는 또 다른 이주배경을 갖고 있다.우크라이나·벨로루시 등 서부러시아는 과거 폴란드의 지배를 받았다.당시 그곳에 살던 폴란드인 다수가 모스크바로 옮겨가 살았다.특히 폴란드인들은 교육열이 높아 모스크바의 각종 대학·인스티튜트(단과대학)등에서 공부했다.소련시절에는 모스크바 거주 폴란드인수가 10만명을 넘었다.모스크바의 가톨릭교회도 소련시절 국유화됐는 데 최근 반환을 요구하는 폴란드인들과 시정부가 맞붙어 유혈충돌까지 벌어졌다.모스크바 폴란드성당건물은 외양만 교회이지 시정부에서 건설회사 사무실로 사용해 내부는 완전히 일반 사무실처럼 바뀌어 있다.러시아전역이 마찬가지지만 국유화된 교회는 이렇게 사무실로,창고로,때로는 감옥으로도 바뀌어 철저히 파괴됐다.모스크바의 폴란드성당은 몇개월 전 건물일부가 반환돼 폴란드인들과 모스크바에 주재하는 외국인 가톨릭신자들이 그곳에서 미사를 본다. 이르쿠츠크의 폴란드성당 멀지 않은 곳에는 주청사건물을 비롯한 정부청사들이 들어서있다.시베리아의 각 도시들이 마찬가지지만 주도에는 주청사·지방의회·지방선거위원회 등과 함께 연방대통령 대리인의 집무실이 나란히 들어서 있는 게 흥미롭다.93년말 새헌법 채택으로 지방정부의 자치권을 대폭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자신의 심복들로 임명하는 지방관을 보내 주정부의 일을 감독·감시토록 하는 것이다.그래서 주민이 선거로 뽑은 주지사·시장과 이 대통령 대리인 사이에 크고 작은 마찰이 끊이지 않는다.
  • 청와대 문장/문민 도덕성·세계화 상징

    ◎본관 한식건물·북악산 담은 3가지 두마리의 봉황이 무궁화를 감싸고 있는 모양의 「대통령 표장」외에 청와대를 상징하는 「청와대 문장」이 새로 제정돼 4일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대통령 표장은 대통령과 직접 관련해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어서 청와대측은 지금까지 비서실과 경호실등 청와대 전체를 상징하는 문장(엠블렘)이 없어 불편을 겪었었다. 이번에 새로 「청와대 문장」이 제정됨에 따라 「대통령표장」은 대통령 관저나 집무실,대통령임석장소,대통령 탑승 항공기 자동차 기차 함선등 공식규정(대통령공고 제7호)에 명시된 곳에만 사용토록 엄격히 규제된다.청와대의 여타시설과 각종 실내장식 및 배지,서식,기념품등에는 새로 제정된 문장이 사용된다. 새 청와대문장은 대통령집무실인 본관 한식건물을 중앙에 두고 뒤쪽의 북악산을 삼각형으로 도형화한 모양이다.문장은 삼각형으로 된 기본형과 여기에 원형 테를 두른 두종류(푸른테 및 금테)등 모두 3종.용도에 따라 청와대라는 표기를 한글이나 영문으로 하도록 했다. 문장 중앙에 자리잡은 청색의 본관건물은 희망과 활력,그리고 깨끗한 도덕성을 갖춘 문민정부를 상징하며 세계화를 지향하는 청와대의 위상을 전통적인 멋과 현대적 감각을 융합해 표현한 것이라는게 청와대측 설명이다.또 배경의 북악산(녹색)은 민족의 진취적인 기상과 평화,안정,환경보호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비서실은 지난 3월 디자인 기획 전문회사인 「캐슬론」(대표 이한승)에 문장도안 제작을 의뢰한뒤 국립현대미술관,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와 미대교수등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최종도안을 확정했다.
  • “남북정상회담 주선 용의”/갈리 유엔총장

    【유엔본부=이건영 특파원】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유엔사무총장은 30일 『남북한간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정상회담 주선을 비롯해 양측간 메시지 전달 등 중재역할을 맡을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북경세계여성회의 참석 후 오는 6일 한국을 공식방문할 예정인 갈리총장은 이날 하오 유엔본부 집무실에서 한국특파원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남북한 관계개선을 위한 문제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진지한 중개자 역할을 맡을 수 있다』면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자신의 중재의사를 강력히 피력했다. 그는 그러나 『중재역할은 남북한 양측의 합의가 있어야 가능하다』면서 『아직 남북한 어느 쪽으로부터도 중재 요청을 공식으로 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그는 『올해에는 일정상 북한을 방문하지 못하지만 내년에는 방북초청을 받은 만큼 방북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한뒤 10월 유엔 50주년 특별정상회의에 북한에서 누가 참석할 것으로 통보해 왔느냐는 질문에 『보고받은 바 없으며 따라서 김정일의 참석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누가 오더라도 환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스리랑카 자살 폭탄테러/정부청사 폭파… 21명숨져/반군 소행 추정

    【콜롬보 AP 로이터 연합】 7일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의 한 정부청사에서 타밀 게릴라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최소한 21명이 사망하고 50여명이 부상했다고 현지 경찰이 밝혔다. 목격자들은 코코넛이 실린 손수레를 끌던 범인이 스리랑카 서부주 정부의 수실 프레마자얀타 수석장관의 집무실이 있는 청사 밖에서 검문을 받은 직후 손수레에 숨겨놓은 폭탄을 터뜨렸다고 말했다. 이번 폭탄테러를 자신들의 행위라고 주장하는 단체는 나타나지 않고 있으나 현지경찰과 관리들은 지난 6일 타밀족의 자치권 확대를 허용하되 반군단체인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를 협상대상에서 배제하는 내용의 평화안이 발표된데 불만을 품은 LTTE측의 소행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새 총무처 금명 임명/김 대통령 귀경/「4천억 파문」대책 청취

    김영삼 대통령은 전직대통령 가·차명 계좌설 발언 파문으로 사임한 서석재 전총무처장관의 후임을 빠르면 7일 임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통령은 이에 앞서 이홍구 국무총리로부터 신임 장관에 대한 제청을 받을 예정이며 서전장관의 발언파문에 대한 정부 대책도 함께 보고받을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6일 『민자당의 지도체제 개편 혹은 당직인선에는 절차상 시간이 걸린다』면서 『따라서 전면적인 당정개편은 8월말이나 9월초에 단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오는 15일 광복50주년 기념행사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주무장관 자리를 비워둘 수 없어 총무처장관만 주초에 임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대통령은 하계집무실인 청남대에서 5박6일동안의 여름휴가를 마치고 6일 하오 청와대로 돌아왔다. 김대통령은 7일 낮 청와대에서 민자당 고문단과 오찬 모임을 갖는등 정상집무를 시작한다.
  • 「4천억 가명계좌」 큰 파문/전 대통령중 한사람이 보유설

    ◎서 총무처 “측근이 실명화 타진 해왔다”/“와전 해명속 야권선 국조권 발동 요구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 가운데 한쪽에서 4천억원대의 가·차명 예금계좌를 보유,이를 실명화하는 방안을 찾고 있는 것처럼 서석재총무처장관이 말한 것으로 알려져 정가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서장관은 3일 『여러 사람 사이에서 들은 얘기를 전달했을 뿐』이라며 자신의 발언이 와전됐다고 해명했으나 야당은 검찰수사와 국정조사권 발동을 촉구하고 나서는 등 대여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김영삼대통령은 이날 휴가지인 청남대에서 이홍구 국무총리등으로부터 서장관의 발언파문을 보고받고 별다른 언급은 없었으나 오해를 불러일으킨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히 진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와관련,「서장관의 발언읜 정치적인 의도가 전혀 없는 단순한 해프닝」이라고 밝혔다. 서장관은 지난 1일 하오 기자들과 저녁을 나누며 비보도를 전제로 『5·6공 정권 실력자의 주변 인사가 4천억원의 가·차명계좌를 실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배려해 줄 수 없느냐는 의사를 타진해 왔다』고 말했다. 서장관은 특히 『이 인사가 자금출처를 조사하지 않는다면 그 절반인 2천억원을 정부에 내놓겠다고 제의해 왔다』고 덧붙였다. 서장관은 이어 『전직대통령중 누군지는 말할 수 없지만 전·노 두 전직대통령중 한사람측의 실력자가 보낸 사람이라고만 말해 주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서장관은 이같은 발언이 일부 언론에 보도되자 3일 상오 집무실에서 기자들을 만나 『지방선거때 한 민간인을 만나 「전직 권력자 주변에 있던 한 사람이 4천억원 정도의 가명계좌가 있는데 처리방법으로 고심하더라」는 얘기를 했다』면서 전·노전대통령은 일체 거론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그는 『확신을 갖고 한 얘기가 아니다』라면서 『시중에서 들은 얘기를 술자리에서 얘기한 것일 뿐,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있고 루머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자당의 김윤환 사무총장은 『서장관으로부터 현 정부의 청렴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시중의 루머를 거론했을뿐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얘기』라고 전·노전대통령의 관련설을 부인했다. 그러나 민주당과 자민련,가칭 새정치국민회의 등 야권은 철저한 진상공개와 검찰수사,국회 국정조사권 발동등을 촉구하고 나섰다.
  • 「청남대 구상」에 이목 집중/김대통령,일정 앞당겨 오늘부터 휴가

    ◎남북한당국자 북경 3차회담 대비/획기적 대북제의·국정청사진 준비 김영삼 대통령이 1일 하오 여름휴가에 들어간다.엄밀히 말하면 잠시 청와대를 떠날 뿐 하계집무실인 청남대에서 수시로 보고도 받고 긴급을 요하는 중요사항에 대해서는 결재를 하는등 실제로는 집무를 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휴가랄 수도 없다. 그러나 일단 방미의 여독을 푸는 휴식과 사색의 시간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향후 정국방향과 관련,「청남대구상」에 시선이 모아진다.아울러 관심을 끄는 것은 휴가를 떠나는 일정이 며칠 앞당겨진 점이다.김 대통령은 당초 오는 5일부터 휴가를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었기 때문이다. 정가에서는 김대통령이 휴가를 앞당기자 『당정개편등 전반적인 정치일정이 빨라지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의 한 수석비서관은 『대통령의 휴가일정과 당정개편시기를 연관시키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그는 『오는 10일부터 북경에서 제3차 남북한 당국자회담이 열리는 데 대비,김대통령이 그전에 휴가일정을 마치기 위해 일정을 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대통령은 청남대에서도 하루 한차례씩 헬기로 공수되는 각종 보고문서를 받아보게 된다. 또 전화를 통해 수시로 필요한 사람과 정국운영방안을 협의하거나 필요하면 직접 청남대로 부를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김대통령이 이 시점에서 휴가를 갈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있다.그러나 대통령이 청와대에 머물면 정부의 다른 고위관계자도 휴가를 가지 못해 공직사회 전체에 문제가 생긴다. 또 약간의 여유를 갖고 구상에 몰두하는 것도 바람직스러운 일이다.실제로 김대통령은 93년과 94년 여름휴가 뒤 각각 금융실명제와 남북공동발전계획 제의등 굵직한 이슈들을 터뜨렸었다. 김대통령의 금년 「청남대구상」의 첫장은 「남북문제」일 것으로 전망된다. 김대통령은 해방 50주년인 올해 광복절에는 그야말로 「교과서에 실릴 정도」의 연설을 준비하고 있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설명한다.핵심은 남북관계다.김대통령의 대북제의가 실효성을 거두려면 북한의 수용태세가 관건이다.때문에 김대통령은 빨리 휴가를 마친 뒤 북경회담을 앞둔 7일부터는 정상근무에 들어간다는 생각이다. 정치분야의 구상이 실천되는 것은 15일이후로 예상된다. 청와대는 김대통령이 임기 후반에 접어드는 오는 25일 취임사에 담았던 내용에 버금가는 국정운영청사진을 국민에게 제시한다는 일정을 짜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대통령이 이 청사진을 밝히고 그 원칙에 따라 당정개편을 추진하는 게 순리라고 밝힌다.반면 새 인물을 포진시킨 가운데 집권 2기를 맞는 것이 모양상 좋다는 주장도 있다.개편시기는 대통령이 이중 어느쪽을 선택하느냐로 결정될 것이다.
  • 김 대통령 휴가

    김영삼 대통령은 1일 하오부터 여름 휴가에 들어가 하계집무실인 청남대에서 업무를 보기로 했다.김대통령은 오는 5일쯤 귀경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 북한 군부의 실세/이하일/김명국/박재경/「최측근 신트로이카」급부상

    ◎본사 통일안보연 발행 「북한인명사전」은 말한다/떠오르는 별 14명… 혁명 1세대는 전역할듯/김정일,올들어 12차례 군관련 활동… 「군심 어루만지기」 나서/측근3명 「군사위」에 보강… 등국 수준 마쳐 병영국가인 북한에선 최고실권자를 누가 가장 가까이서,또 얼마나 자주 「모시느냐」에 따라 힘이 붙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그런 의미에서 김정일의 군관련 활동시 그를 수행하는 장령(장성)들은 현재 김의 신임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향후 김정일정권 출범시 요직을 차지,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인물로 봐도 좋을 것 같다.현역 병력수 세계 제5위의 북한군.그 북한군을 틀어쥐고 있는 실세는 과연 누굴까.다음은 주요 북한인물 1만6천명의 활동사항을 추적,해마다 내용을 수정·증보하고 있는 서울신문사 발행 「북한인명사전」 수록자료분석을 통해 조명한 북한군 실세들의 면면이다. 대부분의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일의 후계체제 구축과정에서 군사분야를 가장 취약한 부문으로 꼽고 있다.동시에 김정일이 각 분야를 차례로 장악·통제해 나가면서 맨나중에 접근한 것도 군부라는데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이는 김정일의 군경력이 없는 탓도 있지만 그만큼 ▲군부의 지지가 확고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저항이 만만치 않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이런 맥락에서 김일성 사후에 이뤄지고 있는 김정일의 잦은 군부대방문과 군관련행사 참석은 다분히 「군부 어루만지기」의 성격이 짙다고 할 수 있다.즉 김일성사망 이후 여러가지로 어려운 시기에 물리력을 지닌 군부를 다독거려 이들의 저항을 무마하는 동시에 「최고사령관­전사」간의 친화를 과시함으로써 충성을 유도하려는 의도가 배어있는 것이다. 「북한인명사전」 수록자료분석 결과 지난 연초부터 6월말까지 군과 관련한 김정일의 활동은 모두 12차례 있었던 것으로 집계됐다.그리고 김의 행차엔 대장 이봉원·이하일·김명국 상장 박재경이 밀착수행한 것으로 나타났다.북한군 현역 장령(장성)수는 약 1천2백명.이 가운데 상장(우리의 중장)급 이상 핵심장성들은 거의가 군부 엘리트코스인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종합군사대학·강건종합군관학교출신들로 김정일의 친위군맥을 형성하고 있다.그 가운데서도 김정일을 지근거리에서 수행하고 있는 실세는 15명 내외인 것으로 분석됐다. 에서 보듯이 12차례의 김정일 군관련 활동 때 대장 이봉원이 9차례를 수행,현 시점에서 그가 김정일의 군사분야 최측근임을 시사했다.차수 최광은 총참모장임에도 불구,김정일을 7번 수행하는데 그쳐 3위에 머물렀으며 대장 이하일·대장 김명국·상장 박재경이 각각 8차례 김정일을 수행,역시 그들이 요즘들어 잘나가는 실세임을 보여주었다.수행 빈도 랭킹 4위는 각각 6회를 기록한 차수 이을설·김광진·상장 김하규가 지켰으며 4회씩을 기록한 대장 김일철·조명록이 5위에 랭크됐다.차수 백학림은 3회로 6위.최근들어 움직임이 부쩍 활발해진 대장 박기서는 두번 김정일을 수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봉원(70)◁ 인민무력부 작전국장,525부대사령관,534훈련소사령관 등 요직을 섭렵한 인물로 야전보다는 정치국쪽에서 주로 근무했다.노동당 조직지도부 책임지도원 시절 함남도당위원회를 맡아 연안파 잔존세력과 남로당계 잔존자들을 대량 색출,김일성유일지배체제확립에 공을 세워 김부자의 신임을 얻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그가 빈번하게 김정일을 수행하는 것은 김의 신임이 두터운 까닭도 있지만 오진우사망으로 공석 중인 인민무력부총정치국장직을 조직담당 제1부국장인 그가 대행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그러나 일부 귀순자는 『김정일의 믿음이 이봉원으로부터 떠난지 이미 오래』여서 당분간 현 직책을 맡다가 곧 예편될 것이라고 상반된 주장을 펴고 있기도 하다. ▷이하일(65)◁ 대장이자 현직 노동당 군사부장.지난 80년 처음으로 노동당중앙위원에 선임됐으며 제7기(82) 때부터 지금까지 3회에 걸쳐 최고회의 대의원을 지내고 있다.공식서열 40위.당중앙위위원,당중앙군사위원,국방위 위원.82년 김일성훈장 수훈. ▷박재경◁ 김정일의 군부대시찰 때 거의 빠지지 않는 박의 현직은 인민무력부 선전담당부국장.김정일위상강화작업의 선봉에 서있는 인물이다.최근들어 급부상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 11월 최광의 베트남·라오스 순방시 동행,군사외교의 한 축을 맡고 있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당중앙위 후보위원. ▷김명국◁ 92년 4월 상장으로 진급하면서 처음 알려진 북한군 작전통.상장진급 2년 후인 94년 4월 대장으로 고속승진.김은 이어 주도일차수 사망(94·7·1)으로 공석이 된 북한군의 노른 자위인 평양방어사령관에 발탁됐다.김일성으로부터도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으며 김정일집무실 파견근무경력도 갖고 있다.당중앙위원,당중앙군사위원,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김광진(67)◁ 6·25참전 이후 포병사령관,부총참모장을 거쳐 85년 인민무력부 부부장에 올랐다.그동안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않던 김은 김일성 사후 각종 행사에 참석,군부대 대표로 연설하는 등 급부상하고 있다.최광 또는 오극렬이 인민무력부장으로 올라갈 경우 1순위 후임 총참모장으로 점쳐지고 있다.남북고위급회담 북측대표로 우리에게 낯이 읽은 그는 핵개발과 관련,인민군내에서 제일 정통한 것으로 알려졌다.차수,당중앙군사위원,당중앙위원 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김하규◁ 포병 출신으로 교도지도국장을 거쳐 지난 92년 포병대회때 「보고」를 맡았다.현직 포병교도지도국사령부 국장,당중앙군사위원,최고인민회의 대의원.그의 아들 5형제가 모두 군관으로 근무 중이어서 화제가 됐던 인물이기도. ▷김일철(67)·조명록(65)◁ 현직 해·공군사령관으로 2대에 걸쳐 김부자에게 충성하고 있는 대표적인 북한군내 1.5세대다.특히 김일철은 김정일의 해군 보좌역으로 군부대 및 함정찰 때 수행,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20년째 공군사령관직을 고수하고 있는 조명록도 김정일시대의 군부에서 부상 가능성이 높은 인물로 점쳐지고 있다. 이밖에 군부대시찰시 수행은 않고 있지만 「김정일 군맥」의 파워맨으로 분류되는 장령 중에서 우뚝한 사람으로는 다음의 6명이 있다. ▷박기서◁ 현역 820기계화군단장.지난 92년 4월 김정일이 6백64명의 장성을 진급시킬 때 대장으로 진급했다.82년 4월 김일성훈장을 받았으며 86년 2월 당중앙위원에 진출.김정일과 친척관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당중앙군사위원. ▷김두남(67)◁ 김영남 정무원부총리 겸 외교부장의 동생.지난 85년부터 김일성의 무관으로 근무하다 김일성 사후 김명국의 뒤를 이어 김정일의 군사무관을 맡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만경대혁명학원 출신으로 소련군사아카데미 유학경력을 가진 그는 80년 52세 때 당군사부장을 지냈으며 당조직지도부 군담당부장에 기용됐던 엘리트다.대장,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원응희◁ 425기계화군단장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원도 상장 박재경과 더불어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인물. ▷김강환(63)◁ 현직 인민무력부 총참모부 부총참모장.주로 작전분야에서 근무해온 그는 김정일이 북한의 수령 후계자로 공식추대된 80년 6차 당대회서 정치국후보위원과 당중앙군사위원에 선출된데 이어 인민군부총참모장에 올랐다.84년 김두남의 뒤를 이어 당군사부장에 임명돼 한동안 김정일의 군사자문역을 맡기도 했다. ▷오극렬(64)◁ 전 인민군총참모장이며 현 당작전부장.김정일의 군부내 오른팔이기도 한 그는 80년대 중반 어린 나이에 인민군총참모장직을 역임한 바 있다.인민군의 무기현대화와 정규전교리발전에 공을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장성우(67)◁ 오극렬 이봉원과 함께 군부내 김정일의 최측근 트로이카로 꼽히고 있다.김의 매제인 노동당 3대혁명소조부장 장성택의 형으로 현직 사회안전부 정치국장.대장으로 노동당중앙위원,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겸하고 있다.백학림이 물러날 경우 사회안전부 후임부장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상의 14명이 「떠오르는 별」이라고 한다면 곧 「떨어질 별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대부분 김일성과 함께 항일 빨치산활동을 한 혁명1세대들인 이들은 멀잖아 원로대접을 받으며 군복을 벗게 될 것으로 보인다.김정일의 전면등장과 함께 퇴장이 예상되는 대표적인 인물로는 인민군총참모장 최광,차수·사회안전부장 백학림,차수·사회안전부장 이을설,3군단사령관 이두익 등이 꼽히고 있다. 최근 북한은 당중앙군사위원에 차수 김광진과 대장 김명국·박기서를 보강한 것으로 확인됐다.당중앙군사위원으로 추가된 이들 3명은 모두 김정일의 측근으로 이번 개편이 김정일 측근세력의 부상과 당의 역할강화에무게가 실린 것이란 해석을 가능케 하고 있다.특히 당중앙군사위원의 교체는 김정일의 군장악과정 중 마지막 수순으로 분석돼 더욱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이렇게 볼 때 현재 북한군은 공식적인 김정일 후계체제 출범에 앞서 「과도기」의 위기관리를 담당,권력강화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 「6·25」평가 새로이…개혁한국 부각/미언론 YS방미활동 대서특필

    ◎주요신문 1면 머릿기사로… WP지 특집 꾸며/CNN 특별회견… “민주화 실천 대통령” 각광 이번 김영삼 대통령의 미국방문에서 이례적인 일은 「미국언론의 비상한 관심」이라는데 워싱턴의 소식통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이는 잊혀졌던 한국전쟁에 대한 재조명이라는 새로운 이벤트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생을 바쳐온 김대통령 개인의 퍼스낼리티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28일자 워싱턴포스트,뉴욕타임스,유에스에이 투데이등 미국의 주요신문들은 김대통령과 클린턴대통령이 한국전참전기념조형물 제막식후 함께 돌아보는 사진과 함께 김대통령의 방미관련 기사를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이들은 또 한·미 정상회담을 포함,한국의 역사및 발전상등을 소개하고 참전용사들의 회고를 통해 한국에 관한 기사들을 실었다. 특히 워싱턴포스트같은 경우는 6페이지의 별도 섹션판을 할애,김대통령의 방미특집을 꾸몄다.「워싱턴은 김대통령을 환영」이라는 제하의 리드기사와 함께 한반도통일,경제,관광,스포츠등이 다채롭게 소개됐다. 그밖에 LA타임스,크리스찬 사이언스 모니터등 유력지들도 논평과 사설등으로 한국전쟁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와 전쟁이후 오늘날 변화된 한국의 모습을 심층적으로 보도했다. TV는 26일 있었던 상·하 양원합동의회연설을 생중계로 보도하고 김대통령과의 회견을 보도하는등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했다.특히 CNN은 김대통령이 떠난후인 28일 하오6시(한국시간 29일 상오7시) 「더 월드 투데이」프로에서 약10분간에 걸친 특집회견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ABC는 27일 상오 「굿모닝 아메리카」프로에서 6분간에 걸쳐 김대통령이 조깅하는 모습,집무실에서의 집무광경,와이셔츠차림으로 수석비서관들과 담소하는 모습등 인간적인 측면을 부각시켰다. 또한 CBS,NBC등 주요방송들은 정상회담과 제막식관련 보도이외에 토크쇼등에서 한국전쟁참전용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전은 궁극적으로 공산주의의 붕괴를 몰아온 20세기의 역사적 사건』이라는 결론을 도출하기도 했다. 주요 시사주간지들의 경우도 김대통령의 방미를 일제히 커버스토리로 다뤘다.뉴스위크지는 「한·미관계의 스트레스와 긴장」이라는 제목으로,비즈니스위크지는 「한국,하이테크의 정상을 향하여」라는 제목으로 각각 7월31일자에서 보도했으며 타임지는 지난 6월26일자에서 「매우 강직한 김대통령」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이에 대해 미국 공보원의 한 고위담당자는 『한나라 국가원수의 워싱턴방문에 대해 이같이 전체 매스컴이 떠들썩한 것은 드문 일』이라며 『김대통령이 역경을 이기며 민주화를 실천한 대통령이기 때문에 더욱 매스컴의 각광을 받은 것같다』고 분석했다.
  • 김대통령­클린턴 2년새 4번째 대좌/김대통령­방미 여로

    ◎“6·25참전 미군 희생은 한국번영 초석”­김대통령/단독·확대회담 60분… 덕담 교환하며 우호 확인/미 각계 유력인사 4백명 부부동반 초청 환담 김영삼 대통령은 워싱턴 국빈방문 사흘째인 27일 상오 11시40분(한국시간 28일 0시40분·이하 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단독·확대정상회담을 갖고 북한 경수로 지원문제 등 두 나라 사이의 현안을 논의한데 이어 클린턴 대통령과 함께 내외신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26일 하오 조지타운대학에서 명예인문학박사학위를 수여받았으며 저녁에는 미국의 정계·재계·언론계·문화계 등 각계의 유력인사들을 초청,리셉션을 베풀고 환담을 나눴다. ○회담장 향하며 미소 ▷단독 정상회담◁ ○…김대통령과 클린턴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의 클린턴대통령 집무실(오벌오피스)에서 20분 남짓 단독정상회담을 가졌다. 양국 대통령은 사진기자들을 위해 잠시 포즈를 취하며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 회담에 돌입했다. 양국 정상회담은 지난 93년7월 클린턴대통령의 방한과 93년11월김대통령의 방미,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보고르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에 이어 이번이 네번째. 단독정상회담에는 우리측의 유종하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미국의 레이크 백악관 안보보좌관만 배석했다. 두 정상은 여러차례 정상회담과 전화통화 등으로 가까워진 탓인지 회담을 갖기 위해 이동하는 도중에도 시종 웃음을 지으며 대화를 나눴다. ○통상문제 집중 거론 ▷확대 정상회담◁ ○…김대통령과 클린턴대통령은 단독정상회담에 이어 캐비닛룸으로 자리를 옮겨 확대정상회담에 들어갔다. 양국 대통령은 확대회담에 앞서 각각 배석자를 소개한 뒤 두 나라 우호관계를 화제로 덕담을 주고 받았다. 약 40분간 진행된 확대정상회담에서는 단독회담에서 논의된 내용을 토대로 그 구체적인 실천방안과 함께 양국간 통상증진 문제가 집중 거론됐다.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지난해 6월부터 우리 정부가 시행한 외국인 투자환경개선정책을 설명한 뒤 『미국이 지속적으로 한국에 대한 투자를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확대정상회담을 끝낸 양국정상은 단독회담이 열렸던 오벌 오피스로 다시 자리를 옮겨 잠시 환담한 뒤 공동기자회견장으로 이동했다. 확대정상회담에는 우리측에서 공로명외무·박재윤 통상산업부 장관,박건우 주미대사,청와대의 한이헌경제·유종하 외교안보·윤여전 공보수석,임성준 외무부 미주국장이 배석했고 미국측에서는 고어 부통령,크리스토퍼 국무·페리 국방·브라운 상무장관,파네티 백악관비서실장,캔터 USTR(미국무역대표부)대표,레이크 안보보좌관,레이니 주한대사,로드 국무부차관보 등이 배석했다. ○미의 평화지원 다짐 ▷백악관 공식환영식◁ ○…정상회담에 앞서 김대통령은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 참석했다. 레이저 백악관의전실장의 안내로 입장,클린턴 대통령과 인사를 나눈 김대통령은 앨 고어 부통령내외,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존 섈리캐슈빌리 합참의장 등 미국측 환영인사를 소개받은 뒤 사열대로 올랐다. 김대통령은 21발의 예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애국가와 미국국가가 연주된 뒤 의장대를 사열했고 미국 고적대의 분열식을 참관했다. 클린턴대통령은 환영사를 통해 『한·미관계는 상호 고통분담의 역사와 공동목표의 미래를 공유하고 있다』면서 『김대통령의 희생과 집념에 힘입어 한국은 경제성장에 걸맞는 정치적 발전을 이룩했다』고 평가했다. 클린턴대통령은 또 『북한핵문제가 한·미·일 세나라간의 긴밀한 공조체제 아래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면서 『주한미군의 지속적인 주둔,남북대화 재개,한반도의 평화와 안정확보를 위한 미국의 확고한 지원을 다짐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답사를 통해 『42년전 오늘 한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참전우방의 젊은이들이 피를 흘린 전쟁이 3년만에 역사상 가장 긴 휴전에 들어갔다』고 상기시킨 뒤 『한국국민이 미국의 한국전 참전용사와 국민에게 보내는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미국 젊은이들이 흘린 피와 땀의 결실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증언하러 왔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또 『그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4천4백만 한국인은 오늘날 민주주의와 번영을 구가하고있다』고 감사의 뜻을 밝히고 『한국은 앞으로 보다 평화로운 세계,보다 번영하는 지구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미국국민과 굳게 손잡고 나아가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5차례 열렬한 박수 ▷미국 유력인사 리셉션◁ ○…김대통령은 26일 하오 백악관 바로 옆쪽에 자리한 코코란 미술관 1층홀에서 톰 폴리 전하원의장,제시 브라운 육군성장관,샘 넌 상원의원 등 미국의 유력인사 4백명을 부부동반으로 초청,환담을 나눴다. 김대통령은 박건우주미대사의 안내로 리셉션장에 들어선 후 4중주 실내악단의 「아리랑」 등의 연주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중앙 플로어에서 45분간에 걸쳐 참석자 전원과 악수를 나누며 인사. 김대통령은 이어 인사말을 통해 『전쟁의 잿더미에서 실의에 빠진 우리에게 미국은 전쟁복구와 경제재건을 위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면서 『어려울 때의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김대통령이 『한국이 기적을 이루기까지 미국의 도움이 컸다』면서 『그동안 참으로 고마웠습니다』고 인사하자 일제히 박수를 보내는 등모두 5차례에 걸쳐 박수로 호응했다. ○자유는 번영의 열쇠 ▷명예박사학위 수여◁ ○…김대통령은 26일 하오 조지타운대학 본관 힐리홀에서 오도노반 총장등이 참석한 가운데 명예인문학박사 학위를 수여받고 「자유는 번영의 열쇠」라는 제목의 학위수락 연설을 했다. 순차통역으로 진행된 연설에서 김대통령은 『한국에서 북한공산주의의 위협은 군사독재를 불러왔고 절대빈곤의 고통은 개발독재를 정당화했다』면서 『그러나 나는 자유와 인권은 양보할 수 없는 권리로 그 모든 것에 우선하는 가치임을 확신했다』고 강조했다. ○전화통화도 10여회 ○…스탠리 로스 백악관 NSC(국가안보위) 아시아담당 보좌관은 27일 한·미 정상회담에 앞선 브리핑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이 매우 친밀한 관계라며 수치를 비교해가며 강조. 로스 보좌관은 두 정상간의 직접 대좌는 93년 여름 클린턴대통령의 한국방문으로 가진 첫대좌 이래 4번째라고 소개하고 두번째는 블레이크섬 회담후 백악관에서,세번째는 APEC 보고르회담에서라고 발표. 그는 또 양국 정상간에는 전화와 서신교환도 잦다고 설명하고 지금까지 직접 전화통화만도 10차례가 넘는다며 이는 매우 친밀한 관계라고 부연설명. ◎김대통령 미 조지타운대 명박 수락연설/요지 세계 최고수준의 학문적 업적과 교육적 명성으로 빛나는 조지타운대학으로부터 수여받은 이 학위는 나에게 최상의 영예가 될 것입니다.클린턴대통령을 비롯하여 미국과 세계를 이끌어온 이 대학졸업생들,그리고 21세기의 주역이 될 학생 여러분과 동문이 된 이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 대학이 2백여년전,종교적 자유와 미국의 독립을 위한 투쟁과정에서 창설되었다는 사실에,40여년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건 투쟁을 해온 나로서는 깊은 감명을 받습니다. 태평양 너머 동북아 한가운데에 위치한 한국의 지난 반세기는 우리 모두에게 자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우리는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후 국토분단과 전쟁,그리고 절대빈곤이라는 3중고를 안고 국가건설에 나서야 했습니다.우리는 절망의 어두움으로부터 희망의 빛을끌어내야 했습니다. 대학생으로서 서양철학에 심취해 있던 나는 당시 한국의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조국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숱한 고뇌를 하였습니다. 나는 미국이 이미 누리고 있던 자유와 평등,풍요와 복지는 다름아닌 민주주의라는 나무가 맺은 결실임을 확신하였습니다.나는 스물다섯살의 나이로 정계에 투신하여 40여년간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삶을 바쳤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에는 숱한 역경이 있었습니다. 일본 식민통치가 남긴 척박한 토양에 민주주의는 뿌리내리기 어려웠습니다.북한 공산주의의 위협은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는 군사독재를 불러왔습니다.절대빈곤의 고통은 개발독재를 정당화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자유와 인권은 양보할 수 없는 권리로서 그 모든 것에 우선하는 가치임을 확신하였습니다.자유민주주의가 빈곤으로부터 해방되는 지름길이며,공산주의의 위협을 극복하는 요체라고 믿었습니다.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별개가 아니라 자유라는 한 뿌리를 가진 두 가지라는 나의 신념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이러한 신념을함께 한 한국 국민의 기나긴 민주화 투쟁은 마침내 문민 민주주의시대를 활짝 열었습니다. 나는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한국사회에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뿌리내리기 위해 과감한 개혁을 단행해왔습니다. 이러한 개혁조치가 경제를 침체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없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지금 한국 경제는 몇년전의 만성적 침체를 벗어나 8%이상의 높은 성장을 구가하고 있습니다.정당성과 효율성을 함께 지닌 민주정부만이 국민에게 참다운 번영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오랜 민주화투쟁을 통해 자유 없는 번영은 진정한 번영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자유 없는 번영은 풍족한 노예생활과 같기 때문입니다.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인류는 새로운 문명을 태동시키고 있습니다.정보화의 거대한 물결이 세계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고 있습니다.동양과 서양이 진정으로 만나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문화의 조화」를 통해 인류역사 추진의 두 수레바퀴가 되는 위대한 시대가 열렸습니다. 자유와 정의와 진리의 산실인대학을 비롯한 세계의 지성계가 새로운 문명을 이끌어나가야 합니다.나는 세계공동체의 시대이자 지식사회의 시대를 맞아 세계 대학간의 교류와 협력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해졌음을 강조하고자 합니다.이미 조지타운대학을 비롯한 미국의 대학에서 교육받은 한국의 인재들은 한국사회의 주역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지금도 5만여명의 한국 학생이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시아는 이제 세계경제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름으로써 여러분의 새로운 개척지가 될 것입니다. 한·미 우호관계는 자유와 번영의 가치 아래 새로운 세기의 개막과 더불어 더욱 성숙되어갈 것으로 나는 확신합니다.
  • 김정일의 북한 1년(오늘의 북한)

    ◎노동당 비서 11명 풀가동… 쌀외교 주력/「김일성 유훈」 실천 독려… 식량난 해결 심혈/아·태시대 개막대비,외교관들 대폭 경질/황장엽·김용순·김영남 맹활약… 요인 24명 1회이상 외국방문 김정일이 「상중」이란 이유로 권력 전면등장과 대중앞 출현을 꺼리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지난 1년간 김용순 황장엽등 11명의 노동당 비서들에 의해 이끌어져온 것으로 밝혀졌다.그러나 비록 눈에 드러나게 행보는 하지 않았어도 김정일은 막후에서 노동당비서국을 장악,북한핵타결과 쌀지원,서방을 겨냥한 남방외교 등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분석됐다.이같은 사실은 서울신문사 통일안보연구소가 20일 간행한 1995년 개정·증보판 「북한인명사전」이 파악한 북한요인들의 지난 1년 행적 정밀분석결과 밝혀진 것이다.다음은 북한인물 1만6천명을 수록,규모와 내용면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북한인명사전」수록자료분석을 통해 조감해본 요인들의 주요활동과 북한의 지난 1년 결산이다. 김정일이 「김일성 없는 북한」을 이끌어온 지난 1년동안 주요 직책에대한 인사를 단행하지 않음으로써 북한내 권력의 큰 부침은 없었던 것으로 분석됐다.그러나 인민무력부장 오진우,인민무력부 부부장 김봉률 사망 등 변수가 돌출,그의 전면등장시 세대교체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됐다.김정일은 또 숙부인 김영주등 4명의 부주석에게 업무를 분담시킴으로써 충성심 경쟁을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1년간 김일성의 유훈이란 그늘막에 숨어서 북한을 통치해온 김정일의 이같은 행보는 「즉위」시기를 늦춤으로써 자신의 「효자」이미지를 한껏 치켜올리면서 「등극」에 필요한 정지작업의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김정일 무얼 했나 김일성 사후 지난 1년 동안 김정일은 김일성 노선을 충실히 답습,주민들에게 소위 「유훈관철」을 독려해온 것으로 분석됐다.귀순자들에 따르면 북한주민들은 간단없이 지속돼온 「운동」이나 「전투」에 지쳐 이젠 어떤 새로운 구호가 등장해도 움직이질 않는다고 한다.따라서 기계 대신 전적으로 인력에 의존,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밖에 없는 김정일에게 인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김일성의 「유훈」은 허기진 주민들을 노동현장으로 내몰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했다. 두번째로 김정일은 인민군 끌어안기에 많은 신경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올해 벽두 제241부대(1.1)방문으로 시작된 김정일의 군선무활동은 지난 4월말까지 ▲제9차 군선동원대회 참가자 접견(1.28) ▲제291부대 여성해안포중대(2.5) ▲해군 155부대(2.6) ▲제1017부대(4.25)시찰로 이어졌다.김정일의 이같은 잦은 군부대방문은 군경력이 없는 자신의 약점을 커버하면서 군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계산된 행동으로 분석됐다. 세번째로 김정일은 식량난 해결에 사활적 노력을 경주한 것으로 확인됐다.북한이 우리의 대북 쌀지원을 받아들인 것이나 일본에 쌀을 요청한 것도 김정일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부주석들의 역할분담 생전에 김일성이 제정받던 외교관들의 신임장은 부주석 이종옥(5회)과 박성철(2회)이 나누어 접수한 것으로 나타났다.같은 부주석이면서도 김영주나 김병식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것은 업무분담원칙과 견제(김영주)때문이란 분석이 가능할 것 같다. ○주요직책 임면 김정일은 김일성 사후 주요직책에 대해 불과 5건의 인사밖에는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인사는 현준극의 노동당 국제부장 기용이다.현준극은 지난 88년 이래 노동신문의 책임주필 자리를 16년간 지켜온 언론통으로 북한 기자동맹중앙위 위원장직도 겸직하고 있는 인물.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일이 현준극을 당국제부장이란 요직에 앉힌 것과 관련,주중국대사(66년)·당중앙위 국제부장(86년)을 지낸 그의 경력을 사 대중국외교에 무게를 실으려는 행마일 가능성이 높다고 풀이하고 있다. 한편 외교관에 대한 인사는 고위직책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와 폭이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지난 4월30일까지 김정일에 의해 이뤄진 외교관 인사는 대사 26명 신규 임명,경질 15명 등 41명에 이르렀다.아프리카와 아시아지역이 중점 인사대상지역이었는데 이는 향후의 아·태시대개막 대비와 비동맹국 중시차원에서 이뤄진 인사로 풀이된다. ○외국방문 누가 많이 했나 김일성사후 외국을 제일 많이 나다닌 북한요인은 대외경제위원회 위원장 이성대였다.그는 중국 두번,태국·방글라데시 각각 한번씩 모두 네차례 해외 나들이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직책이 대외경제와 유관한 탓에 최다 해외방문자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그다음으로는 현준극 노동당 국제부장이 3회로 2위,황장엽 노동당 국제담당비서 등 5명이 두번씩 외국엘 나간 것으로 나타났다.그밖에 당·정간부 가운데 부장급 이상과 정당·사회단체장으로 한차례씩 외국을 방문했던 인물은 이종옥 부주석 등 모두 17명이었다.이들의 방문국은 중국·태국·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이 대부분이어서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외화난의 심각성과 그들의 수교범위를 한눈에 읽게 하고 있다. ○회담 누가 많이 했나 94년 7월8일 이후 지난 4월30일 사이에 북한을 방문한 외국인사 또는 대표단과 회담을 가장 많이 한 인물은 13회를 기록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 황장엽으로 밝혀졌다.그다음은 대외경제위원회의 이성대 위원장이 3회로 2위,여연구 최고인민회의부의장 등 3명이 2회,김영남 부총리겸 외교부장 등 4명이 각각 1회씩을 기록했다. ○담화와 환담 정식 회담은 아니지만 집무실에서 얘기를 나눈 것을 담화로 정의했을 때 이 부문에선 직책이 직책인지라 황장엽 노동당 국제담당비서와 김영남 부총리겸 외교부장이 각각 16회씩으로 공동 1위를 차지했다.부주석 이종옥은 이들보다 2회가 적은 14회로 2위에 올랐으며 3위는 9회를 기록한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의장에게 돌아갔다.김용순 노동당 대남담당비서는 8회,부주석 박성철과 부총리겸 문화예술부장 장철이 각각 6회를 기록했다.부총리 홍성남과 부주석 김병식은 각각 4회를 기록.김정일의 숙부인 부주석 김영주는 단 1회로 말석을 차지했는데 이는 두차례의 공장 격려방문외 김일성 사후 파악된 그의 유일한 공무다. ○면담과 접견 인사차 들른 외빈을 가볍게 만난 횟수로는 부주석 이종옥이 8회로 선두를 지켰다.김영남 부총리겸 외교부장이 6번으로 차석.그 뒤를 각각 5번씩 기록한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황장엽 노동당 국제담당비서가 이었다.
  • 세르비아공,보스니아 승인/밀로세비치대통령­빌트EU특사 합의

    ◎제파서 또 대규모 포격전/나토 “수일내 대세계 공습태세 완료” 【사라예보 로이터 AFP 연합】 보스니아 세르비아계가 포위하고 있는 유엔안전지대 제파에서 22일 탱크와 박격포가 동원된 대규모 전투가 발생했다고 알렉산더 이반코 유엔 대변인이 발표했다. 이반코 대변인은 『탱크와 박격포 공격이 보고되는 등 바로 제파시 서부에서 대규모 전투가 있는 것같다』면서 『보병부대도 이동했을지 모른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제파 함락을 위한 세르비아계의 최종공격인지는 아직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또 수도 사라예보에는 이날 6발의 로켓이 떨어져 이중 2발이 대통령 집무실 건물을 맞췄다고 현지 목격자들과 경찰들이 전했다.그러나 인명피해 발생여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한편 라트코 믈라디치 세르비아계 사령관은 이날 발행된 격월간지 스베트지와의 인터뷰에서 사라예보를 포함한 모든 회교정부 고립지역들을 장악하겠다고 위협했다. 【워싱턴·사라예보 로이터 AP 연합】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군용기들이 수일내에 세르비아계에 대한 대규모 공습태세를 갖추게 될 것이라고 윌리엄 페리 미국 국방장관이 22일 밝혔다. 런던에서 열린 보스니아대책 국제회의에 참석한뒤 귀국중인 페리 장관은 이날 기내 기자회견에서 『나토 군사위원회가 이번 주말부터 공습계획의 구체안 마련에 착수,3∼4일안에 완성할 것』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상황이 악화될 경우 계획마련이 이보다 앞당겨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유엔안전지대 제파와 비하치에서는 전날밤 간헐적인 포격과 기관총 공격만이 있었을뿐 큰 충돌은 없었다고 한 유엔군 대변인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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